법회(신수기도)2015. 2. 2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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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 출가(出家), 재가(在家)의 뜻 / 탐욕에 대한 일화 / 보시(布施) / 마음의 보시—탐진치 삼독을 버리는 것 / 돈은 열심히 벌고, 잘 쓰고, 보시해야 /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출가(出家)라 하는 말은 말을 바꿔서 말하면 ‘크게 버리는 것’입니다. ‘크게 버리는 것’이 그것이 바로 출가인 것입니다.
탐욕을 벗어 버리는 그 방법이 무엇이냐 하면은 그것이 바로 보시(布施)인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재산을 열심히 벌고 또 소중하게 관리를 하고, 쓸 때 자기를 위해서도 쓰고, 집안을 위해서도 쓰되 경우에 따라서는 잘 베풀 줄도 알아야 다음 생에 끊임없는 복록(祿)을 또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베푸는 것은 자기의 업장(業障)과 모든 재액(災厄)을 갖다가, 그 물질적인 재산을 버리면서 자기의 업장도 거기서 녹아지는 것이고, 탐심도 거기서 녹아지면서 동시에 그것이 세세생생에 쓰고 남을 복의 씨를 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명예·권리·재산도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되고 가지고 갈 수가 없는 것이라면, 부처님의 법(法)을 믿고 그것을 실천해서 ‘참나’를 깨닫는 것만이 이것이 영원한 것이며, 내가 참나를 찾아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길이다.
 
**송담스님(No.353)—88년 신수기도 회향(88.02.26) (용353)
 
(1/3) 약22분.
 
(2/3) 약 20분.
 
(3/3)약 12분.
 
(1/3)----------------
 
오늘 무진년 정월 초아흐레, 신수기도 회향(廻向) 법요식을 맞이해서 조실 스님의 순치황제(順治皇帝) 출가 인연에 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순치황제가 19년 동안 중국의 천자(天子) 노릇을 하다가 무상(無常)을 느끼고 중국 천하와 천자의 높은 지위를 버리고서 출가한 것,
마치 우리 부처님께서 가비라(迦毗羅) 왕국의 태자(子)의 고귀한 지위를 버리고서 출가한 것 또 역대 조사들이 정든 부모와 가정과 청춘을 버리고 출가한 인연, 이 모두가 일맥상통한 점이 있는 것입니다.
 
출가(出家)라 하는 말은 말을 바꿔서 말하면 ‘크게 버리는 것’입니다. ‘크게 버리는 것’이 그것이 바로 출가인 것입니다.
 
출가에도 두 가지 뜻이 있고, 재가(在家)에도 두 가지 뜻이 있는데,
몸뚱이는 세속(世俗)에 있으면서 마음은 출가한—청신사(清信士) 청신녀(清信女)로서 비록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그 마음은 모든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을 다 버려 버리고,
청정한 신심으로 불법에 귀의(歸依)해서 항상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그런 분은 바로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출가한 분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또 몸뚱이는 출가했으면서도 마음은 속가(俗家)에 가 있는 그러한 출가도 있습니다.
비록 출가해서 염의(染衣)를 입고 머리는 깎았으되 마음이 완전히 오욕락(五欲樂)을 버리고, 탐진치 삼독을 버리고서 청정한 출가인으로서 사문(沙門)으로서 도를 닦지를 못하고,
몸뚱이는 절에 있으면서 마음속에 세속의 명리와 탐심을 버리지 못했다면 이것은 몸뚱이는 출가했으면서도 마음은 출가를 못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몸뚱이도 세속에 있고, 마음도 완전히 세속의 탐진치 삼독과 오욕락에 빠져서 일생을 그냥 고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바로 몸뚱이도 마음도 세속에 있는 것입니다.
 
몸도 출가하고, 마음도 출가한, 정말 청정한 사문은 바로 그러헌 분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또는 순치황제라든지 역대 조사들은 몸도 출가하고, 마음도 출가한 그러한 모범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많은 거사(居士)라든지, 청신녀 가운데에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그렇게 신심이 돈독해서 정법을 믿고 수행을 쌓아서 도를 얻은 분도 인도나 중국, 한국, 일본에 많이,
널리 이름이 알려지지 안 해서 그렇지, 정말 훌륭한 그런 분들도 많이 계시리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께서 왕사성(城)에 계실 때 아주 부자 집안이 있었는데, 아들을 하나 밖에는 기르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아주 신심이 돈독해서 항상 부처님께 나아가서 부처님 설법을 듣고 집에 와서 부모에게 효도를 하고 그렇게 지내다가 너무 부처님 법문에 감동을 받아가지고,
‘내가 세속에 이렇게 묻혀서 있을 것이 아니라 출가를 해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가지고 정말 대도를 성취하리라’ 이런 마음을 먹고서, 아주 마음의 결정을 하고 부모님께 출가할 의사(思)를 표시를 했습니다.
 
그 부모는 ‘우리 늙은이 앞에 자식이라고는 너 하나 밖에 없는데, 네가 출가해 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이냐? 도저히 안 된다’ 이렇게 허락을 아니 했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도저히 출가할 뜻을 굽힐 수가 없어서 부지런히 일을 하고 그래가지고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래가지고 돈을 갖다가 부모님께 드리면서 “부모님의 뜻을 어기는 것은 대단히 죄송하나 내가 출가해서 도업(道業)을 성취하고자 하는 이 깊고도 큰 뜻을 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그동안 번 이 재산을 옴막 드릴테니 이것을 마음껏 잡숫고 싶은 대로 잡숫고, 입고 싶은 대로 입고 그리고서 남은 돈은 보시를 하십시오”
이렇게 간곡히 부탁을 하고서 적당한 날이 돌아오면은 출가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워낙 간탐심(慳貪心)이 많아가지고 그 많은 재산을, 평생 동안 쓰고도 남을 만한 재산을 한푼도 쓰지 않고 땅속 깊이 항아리에다 담아서 묻었습니다.
아까워서 먹지도 못하고, 아까워서 입지도 못하고, 남에게 보시도 못하고서 땅속에다 묻어 놓은 채, 행여나 누가 그걸 손댈까봐 밤낮으로 그걸 지키면서 벌벌 벌벌 떨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그 부모가 돌아갔습니다.
 
돈 한푼도 쓰지 못하고 마지막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 어머니 장례를 잘 지내고서,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안되기는 안되었지만 ‘드디어 내가 출가할 수 있는 기회는 왔구나’ 이리하고서 가산을 버려 버리고서,
 
부처님께 나아가서 출가를 해가지고 어떻게 폐침망찬(餐)하고—밥먹고 잠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 가지고 대도를 성취를 했습니다.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을 했어.
 
아라한과를 증득을 해가지고서 갠지스 강(Ganges江)—항하(河) 가에다가 암자(子)를 짓고서 거기서 보림(保任)을 하고 있는데, 밤이 으스름해지면 어디서 참 이상한 슬피 우는 그 귀신 소리가 나.
 
그 참 이상하다? 그 소리 난 데를 살살 걸어가서 보니까,
머리를 갖다가 산발을 하고서 그리고서 얼굴은 어떻게 험상궂게 생긴 데다가 손가락 발가락은 앙상해가지고, 마치 불에다가 끄슬러 놓은 것 같이 그렇게 생겨 가지고는 그 통곡을 하면서 운다 그말이여.
 
“대관절 네가 누구길래 내 공부하는 데 가까이 와 가지고 그렇게 밤만 되면 통곡을 하는고?” 물어보니까,
“예,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성자(者)의 어미입니다. 내가, 어미가 죽어가지고 이러한 아귀(鬼)의 꼴이 되었습니다. 성자가 되셨으니 자비로서 이 어미를 갖다가 제도를 해주시오” 간곡히 부탁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 성자는 너무 참 기가 막혀.
아라한과를 증득을 했으니 생사에 초월을 하고 무슨 거기에 인간의 얽매임이 있으리오마는 자기를 낳아주신 어머니가 세상에 저러한 아귀도에 떨어져서 고통을 받고 있어.
 
그 아귀가 말하기를 “내가 이렇게 아귀가 되어 가지고 목이 말라서 물을 먹기 위해서 강변으로 쫓아가면 강은 순식간에 말라 버리고, 배가 고파서 저 먼 데 과일 밭이 보여서 과일을 실컷 먹기 위해서 쫓아가면 순식간에 과일 밭이 쑥대밭이 되어버려.
이렇게 해서 여태까지 내가 물 한 모금 못 먹고, 과일 한 개를 먹지 못하고서 이렇게 피골이 상접해”
 
몸뚱이는 장구통만큼, 이렇게 큰 절구통 같이 배는 크고, 목구멍은 실낱 끝 모가지여. 그래서 아귀의 모습은 ‘장구통 배아지에 실낱 끝 모가지’라고 옛날부터서 전해 내려오는데.
 
그 성자가 말하기를 “어머니께 전생에 보시를 하라고 그렇게 내가 말씀을 드렸는데 어머니께서 그것을 탐심이 과해 가지고 쓰지도 못하고, 남에게 보시도 안 하고 그러시더니 결국은 이렇게 되셨구려” 그러면서 같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아귀가 부탁하기를 “내가 그때 그 많은 재산을 아까워서 못 쓰고 울타리 밑에다가 묻어놨는데 그것을 파다가 스님네와 부처님, 그리고 여러 대중에게 고루고루 베풀고, 가난한 사람한테도 베풀고 해서 보시를 좀 해주시고,
그리고 부처님께 설법을 좀 해서 내 이름을 좀 불러주면서 나를 좀 천도(薦度)를 해 달라”고 부탁을 했어.
 
그래서 그 성자는 옛날에 자기가 살던 집을 찾아와 가지고 울타리 밑에를 그럴만한 데를 여기저기 파보니까,
과연 그 항아리 속에 엄청난 금은보화가 들어있어서 그걸 갖다가 널리 보시를 하고 큰 대시회(大施會)를 열어가지고 대중공양(大衆供養)을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비롯한 부처님의 제자들이 모두 잘 공양을 하셨는데, 그 아귀가 그 공양 석상(上) 저 갓에 가서 벌벌벌벌 떨면서 울면서, 그 공양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거기 서있었는데,
 
그 공양이 다 끝나자 그 아귀가 엎드려서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절을 하면서,
“석가 세존(世尊)이시여! 이 불쌍한 죄 많은 중생을 위해서 참회를 받으시고 설법을 해서 제도해 주시옵소서” 아주 간곡히 울면서 간청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 아드님이신 성자도 또 같이 엎드려서 슬피 울면서 “세존이시여! 원컨대 이 조그마한 공양하는 공덕으로 참회를 받으시고 이 불쌍한 아귀 중생에게 빨리 해탈을 얻도록 해 주시옵소” 이렇게 간청을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자비심(慈悲心)을 일으키셔서 방편력(方便力)으로 설법을 하셨습니다.
그 바람에 거기에 운집(雲集)한 모든 대중과 이 우주 법계에 가득한 유주무주(有主無住)의 고혼(孤魂)들까지라도 모두 해탈을 하고, 그 아귀도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워낙 죄를 많이 짓고 간탐이 심해서 해탈도는 증득을 못하고 겨우 아귀의 몸을 간신히 벗었던 것입니다.
그 후에 그 성자가 참선을 하면서 선정(禪定) 중에 ‘지금쯤은 우리 어머니가 어디에 태어나셨나?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신가?’하고 가만히 작관(作觀)을 해보니까,
아직도 귀신의 몸을 벗지를 못하고서 고통은 받지는 않는데, 아주 재산이 많은 귀신이 되어가지고 있다 그말이여.
 
살아있는 사람은 금은보화를 가지고 있지만 귀신은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잘 알 수는 없으나 하여간 경전에 아주 부자의 귀신이 되어가지고 그 재산을 또 지키고 있다 그말이여. 
 
사람이 탐심이 많으면 죽어서도 좋은 곳을 가지 못하고, 그 자기의 재산을—자기가 모아놓고 평생에 쓰지 못한 그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귀신이 되어가지고 그 재산을 항상 지키면서 그 애착 때문에 떠나지를 못하는 수도 있고,
 
또 구렁이 같은 것이 되어가지고 그 집안의 용마루 밑에나, 어디 창고 벽 사이나 그런데 가서 구렁이가 되어가지고 여러 해 동안을 그것을 지키면서 있는 것입니다. 그걸 '업'이라고 그러는데,
 
그래서 그 부자 귀신이 되어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이 성자가 거기를 가 가지고서 “옛날에 어머니가 그렇게 간탐심이 심해가지고 아귀도에 떨어져서 그 고통을 한 것을 벌써 잊었습니까?
부처님의 그 공덕으로 그렇게 고통을 잠시 벗었으면 아주 벗어 버릴 일이지, 어찌 다시 이런 부자 귀신이 되어가지고 또 지금도 간탐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까”
 
눈물로서 호소를 했으나 “나는 이 재산 없으면 못살어, 내가 이 재산 지키는 재미로 이렇게 살고 있는데 나는 못 버린다”고 아주 그냥 탁 잡아뗀다 그말이여.
 
그래도 아주 여러 시간을 두고 이리 설득하고, 저리 설득하고 해가지고 간신히 무엇을 얻어냈느냐 하면, 백목(白木) 두 필을 겨우 얻어냈습니다.
 
얻어가지고 그것을 가지고 와서 ‘돈으로 바꿔가지고 스님네께 보시 공양을 하리라’하고, 아직은 그 어떤 스님한테 임시로 그것을 맡겨 놨는데 얼마 있다가 그걸 찾아다가 팔려고 가니까 그것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것 이상하다’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 자기 어머니가 다시 훔쳐갔구나’ 생각을 하고 다시 어머니한테 가서 보니까 과연 그 백목 두 필이 그 어머니한테 가서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또 설득을 해가지고 또 찾아다가 다시 맡겨놨는데 또 찾아가고, 세 번을 그렇게 찾아왔다가 또 도둑을 맞고, 찾아왔다가 도둑을 맞고, 그러니까 그 맡았던 스님이 진심(瞋心)을 내는 거여, ‘나 앞으로 이거 못 맡겠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걸 팔아서 대중에게 나눠드릴 게 아니라,
아주 이 자리에서 조금씩 잘라서 나눠드릴 수 밖에 없다 해가지고 그 자리에서 그것을 끊어 가지고 스님네한테 전부 다 나눠드려가지고 그 자리에서 모두 옷을 해서 그래가지고 입었습니다.
그런데 아! 그 옷이 또 자고 나면 없어져 버려.
 
그래서 그런 탐심이라 하는 것은, 중생의 탐심이라 하는 것은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 탐심 때문에 그 무서운 아귀도에 떨어져서 그 고통을 받고도 정을 못 떼시고,
또 귀신이 재물 부자 귀신이 되어가지고 간신히 보시한 것이 그것이 또 아까워 가지고 세 번을 훔쳐오더니, 네 번째는 옷을 만들어서 입고 있는 것도 잠깐 벗어 놓은 차에 그것도 또 훔쳐 가버린다 그말이여.(처음~21분37초)
 
 

 

 

 

(2/3)-----------------
 
부처님께서 그러한 사실을, '대중이 그렇게 옷을 도둑맞았다'고 하는 그러한 사실을 부처님께서 들으시고서 대중하게 설법을 하시기를,
“탐욕의 불이라고 하는 것은, 그 간탐하는 욕심의 불이라 하는 것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로구나!
길이길이 악도에 떨어져서 무량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이렇게 탐욕의 무서운 독이로구나!
너희들은 어서 속히 중생들의 그 탐욕을 때를 빨리 벗어 버릴지니라.”
 
그래서 그 탐욕을 벗어 버리는 그 방법이 무엇이냐 하면은 그것이 바로 보시(布施)인 것입니다.
 
보시라 하는 것은 보통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질을 남에게 나눠주는 것을 다 보시라고 생각하고,
재산이라든지, 재산 가운데에는 돈도 있고 금은보화 또는 먹을 거 또는 입는 거 이런 물질 보시를 대충 다 보시라고 생각을 하고,
 
그것을 절에다 시주를 한다든지, 스님네께 공양을 한다든지 또는 양로원이나 고아원 또는 형무소, 그렇지 않으면 가난한 사람에게 그러한 물질을 보시한 것이 바로 보시다.
이렇게 일반적으로 생각을 하지만 그것도 보시가 아닌 것은 아니야.
 
그 밖에도 몸뚱이, 신체의 보시가 있어. 몸뚱이를 배고픈 호랑이한테 보시를 한 것. 부처님께서 과거에 인행(因行) 때에 배고픈 호랑이에게 그 몸뚱이를 보시하는 설화가 있습니다마는 그런 거라든지,
또 스님네가 돌아가실 때에 산중에서 돌아가시면은 산중에 사는 모든 산짐승에게 보시를 하고 또 물에서 돌아가시면은 수중의 모든 중생들에게 보시를 하고, 이러한 몸뚱이를 보시하는 것이여.
 
또 이 몸뚱이의 살과 뼈만이 아니라, 이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 노력을 해서 다른 사람에게 그 노력을 보시하는 것도 또한 한 보시의 종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보시’가 있어. 마음의 보시는 수행을 해서 탐진치 삼독을 버리는 거여. 그것이 바로 마음의 보시고,
또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것도 하나의—당신이 누려야 할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는 것도 그것도 보시고, 아까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순치황제 출가하신 것도 또한 보시여.
 
수행을 해서 아(我)가 공(空)하고, 법(法)이 공하고, 아공(我空)과 법공(法空), 구공(俱空)하는 것이 그것도 또한 엄격히 말하면 그것도 하나의 마음의 보시라 할 수가 있는 것이여.
 
그리고 법보시(法布施)가 있는데 경전을 인쇄해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시를 한 것, 이것 법보시고,
또 자기가 수행을 해서 깨달은 바가 있던지, 경전을 봐서 부처님의 거룩한 법을 아는 바가 있으면 그것을 인연 있는 사람에게 그것을 알려주고 법을 믿도록 인도하는 것 이것도 또한 법보시에 들어갈 것입니다.
 
아까 마음의 삼독심을 버리고 아공과 법공 구공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마음의 보시’라 했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에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 「마음의 보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느냐? 남의 잘못을 용서(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자존심만을 내세우고 남의 인격을 짓밟는 것이 아니라, 항상 저 사람의 입장이 되어가지고 나의 주장을 양보하고 그 사람의 뜻을 따라주는 것, 부부간에도 그렇고, 친구 간에도 그렇고, 형제간에도 그렇고,
자기의 뜻이 옳다고 주장을 하고 자기의 의견만을 내세우면 이것은 마음의 보시가 아닌 것입니다.
 
보시를 하는 것에서 일체 중생을 수순(順)하고, 그것이 바로 육바라밀(蜜) 속에 제일 첫번째 있는 단바라밀(蜜), 보시바라밀이 되는 것입니다.
물질로 보시하고, 몸뚱이로 보시하고 또는 법으로 보시하고, 이 보시를 자꾸 부처님께서 권장하시는 뜻은 보시를 그렇게 함으로서 마지막에 가서는 마음의 보시의 참뜻을 터득하게 하려는 데 있는 것입니다.
 
남을 용서를 못하고, 남의 잘못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공격을 해대고, 미워하고 용서를 하지 아니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마음의 보시를 하지 안했기 때문에,
보시를 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견을 국집(局執)하는 것은 자기의 재산을 남에게 베풀지 아니하고 항아리에다 담아서 땅속에다 묻어놓고 지키다가 아귀가 되고 구렁이가 된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어.
 
자기의 아만(我慢)과 아애(我愛), 아치(我癡)를 자기의 마음의 재산으로 삼아서 그것에 국집해 가지고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남에게 양보할 줄을 모르고, 자기의 의견만을 주장을 하다가,
결국은 아내와 싸우고, 남편과 싸우고, 부모 자식 간에 싸우고, 친구 간에 싸우고, 모든 이웃과 싸운다면 그 사람이 어떻게 해탈도를 증득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한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세계가 어떻게 그 사회가 복을 받게 되며, 행복한 그리고 평화로운 세계가 이룩되겠습니까.
 
 
이번 무진년 새해를 맞이해서 신수기도를 일주일간 참으로 정성껏 받들었습니다. 새벽부터 법당에 가득 모여서 기도를 했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이렇게 기도에 많은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이 참석을 하셔서 기도하신 것은 대단히 기특하고, 감사하고 참 훌륭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 그러한 기도를 하느냐 하면은 그 기도를 통해서 보시의 참뜻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물질 보시, 신체의 보시, 마음의 보시, 법보시 이러한 여러 가지 보시를 그때그때 상대에 따라서, 상황이 따라서, 자유자재로 보시를 할 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째서 보시를 하면 업장(業障)이 소멸(消滅)이 되며 소원을 성취를 하냐’하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런 재산이라든지, 몸뚱이라든지 또는 자기 마음속에 있는 자존심이라 하는 것이 전부가 업(業) 소생(所生)인 것입니다. 업으로 뭉쳐진 것이여요.
 
탐욕을 가졌기 때문에 그 탐욕의 소산(産)으로 결국은 그런 재산이 뭉쳐졌고, 이 몸뚱이도 탐진치 삼독으로 인해서 이 몸뚱이를 받아나게 된 것이고,
자기의 자존심도 아무리 학식이 높고 이 세상에 제일가는 명예와 권리를 가졌다 하더라고 그 마음속에 자기의 마음을 비우지 못했다면 그런 것들도 전부 탐진치 삼독의 소산일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탐진치 삼독이라 하는 것을 우리는 가까운 그 비근한 예를 들어봐도 알 수가 있습니다.
꿈을 꾸면 구렁이나 그런 뱀 꿈을 꾸거나 돼지꿈을 꾸면은 재수가 있다 해가지고 그 이튿날 당장 나가서 복권을 삽니다.
 
어째서 구렁이 꿈이나 돼지꿈을 꾸면, 물론 용도 구렁이의 한 종류이기 때문에 마찬가지입니다마는,
‘용꿈이나 구렁이나 돼지꿈을 꾸면은 재수가 있다’해 가지고 그 이튿날 복권을 사면은 1억짜리가 당선된다고 믿고 다투어 그 꿈을 서로 살려고 그러고 그런데, 그 돼지도 완전히 탐욕의 권화신(權化身)인 것입니다.
 
돼지는 욕심이 많아가지고 먹을 것을 보면 제 새끼도 소용없고, 옆에 누가 올까봐서 오면 막 물어뜯어 버리면서 배아지가 터지도록 막 먹어 대는 것입니다.
사람이 식탐이 많은 사람은 먹을 것을 보면 옆에 사람이 있는 것이 보이지를 않고, 잔뜩 먹고 옆구리가 빵빵해져야 “어째서 빨리들 안 먹어?” 자기가 배가 부르기 전에는 옆에 사람 배고픈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게 다 가만히 그 사람 한참 먹고 있을 때 눈을 보면 영락없이 돼지 눈입니다. 돼지라든지 구렁이라는 것이 전부 전생(前生)에 탐심이 많아가지고 그러한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아까도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탐심 많은 그 탐착심, 자기가 모아 놓은 재산 먹지 못하고, 쓰지 못하고 꽁꽁 뭉쳐서 땅속에다 묻어놓고 갔다하면은 백발백중 구렁이가 되어가지고 집에 와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헌 집, 묵은 집을 뜯으면 귀 달린 구렁이가 나온다고 그럽니다.
이게 다 그 집안에 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피땀 흘려 모아가지고 그 재산을 아까워서 쓰지 못하고 물려주고서 그놈 아까워서 어디로 뚝 떠나지를 못하고 구렁이가 되어가지고 그 집에 와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걸 다 ‘업’이라고 그러죠. 그러한 구렁이.
 
그리고 꿈에 똥항에 빠졌다든지, 똥을 옷에다가 쌌다든지, 무슨 똥을 보면 재수가 있다고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똥이라든지 구렁이라든지 용이나 또 돼지 이런 것들은 바로 그것이 재물, 재산과 동격인 것입니다. 그래서 꿈에 그런 것을 보면 재수가 있다고 참 좋아들 합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거느리고 어디를 지나가시는데, 부처님께서 제일 앞에 서서 바리때를 들고 이렇게 가시는데 요리 골짜기를 보시고서 “어이쿠 구렁이 봐라. 독사(蛇) 봐라!” 그리고 부처님 지나가시니까,
그 뒤에 따라가던 사리불(舍利弗), 목련존자(目連尊者), 차츰차츰 제자들도 이리 보면서 “어이쿠 독사 봐라!” 가면서 그러니까, 그러면서 제자들이 쑤욱 다 지나갔는데,
 
저만큼서 풀을 뜯던 사람이 ‘아!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이 저기 독사가 있다고 깜짝 깜짝 놀라면서 지나가시는데 대관절 무슨 무서운 독사가 있기에 그런고’하고 살금살금 가서 조심스럽게 골짜기를 들여다보니까,
 
아따! 금은보화가 찬란하게 번쩍거리는데 ‘참 이상하다, 어째서 저것을 독사라고 지나갔을까! 내 눈에는 저것이 헛보이나 보다’해 가지고,
무서워서 돌멩이를 거기다가 던져보니까 ‘쨍그랑!’하고 소리가 나는데, 저것이 독사 같으면 꿈틀거리고 물러 쫓아올텐데 오히려 그 번쩍번쩍하면서 쨍그랑하고 소리가 나고, 몇 번을 던져 봐도 마찬가지다 그말이여.
그래서 가 가지고는 작대기로 이리저리 쑤석거려 봐도 독사 커녕은 분명히 칠보(七寶)가 분명하다 말이여.
 
그놈을 갖다가 속적삼을 벗어서 탁 쌓아 가지고는 누가 쳐다보나 어쩌나 두리번거리면서 마침 아무도 안 보고 있으니까 그놈을 갖다가 집으로 가지고 와 가지고는 그냥 벌벌 벌벌 떨면서 마당 저 뒤에다가 구덩이를 파고서 항아리에다 담아서 묻어놓고는.
 
아! 그놈을 해놓고는 너무너무 좋아서 잠이 안 오네. 그래가지고는 밤중에면 가만히 가서 뚜껑을 열고 만지작거리다 도로 넣고 넣고, 이렇게 좋은 것을 그냥 묻어만 놔서는 안되겠고,
조금씩 뜯어다가 맛있는 것도 사 먹고 또 집도 고치고, 논도 사고 해서 차츰차츰 인자 심심하면 한덩어리씩 내다팔고 팔고 그랬는데,
 
며칠 있더니 관가에서 지금 같으면 형사대들이 와 가지고는 집을 둘러싸고는 “이놈 나오라”고 고함을 질러서 그래가지고는 무슨 일인고 하고 나갔더니,
“너 이놈” 다짜고짜로 때려 묶어서 끌고가 가지고는 아주 그냥 뒈지게 뚜드려 패서 몰골이 났다 그말이여.
 
“너 이놈 바른대로 대라. 나라의 보물이 잃어버린 지가 여러 날이 되어도 간 곳이 없는데 이놈, 네놈이 훔쳐다 팔아먹어?” “아닙니다, 제가 팔아먹지를 않았습니다”
“이놈, 네가 갔다가 아무데 금방에다가 몇 번을 이러이런 것을 팔아먹지 않았냐?”
“훔치지는 절대 안 했고 골짜기에서 주워 왔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나쁜 놈의 자식, 주워 와? 골짜기에 왜 나라의 창고에 든 놈이 거기에 있어? 이 나쁜 놈, 요놈이 맛을 봐야 해” 어떻게 뚜드려 맞았던지 볼기가 아주 그냥 개떡처럼 뚜드려 맞았어.
그래가지고는 기절을 했다가 찬물을 찌그려서 또 뚜드려 패고 해서 날이면 날마다 뚜드려 맞고, 몇 번을 죽었다 살아나서 아주 그냥 궁뎅이가 말로 할 수가 없어.
 
꿍꿍 앓으면서 “아휴, 그때 부처님이 독사라고 그러더니 정말 이놈이 독사로구나!” 아, 그냥 그 말을 푹 해버렸다 그말이여. 그러니까 그 말을 옥졸이 듣고 가서 보고를 했어. “그놈 잡아오너라”
 
“부처님이 어떻고 어때?” 그러니까,
“예, 사실은 부처님이 지나가시면서 독사라고 그랬는데 내가 아무리 봐도 독사가 아니기에 주워 왔습니다”
 
급히 사람을 부처님께 보내 가지고 “정말 그 골짜기에서 독사를 보신 일이 있었습니까?”
“응, 그걸 봤지”
 
사실이 확인이 되니까, “너 이놈! 아무리 그걸 주웠기로서니 그 많은 보물을 주웠으면 당연히 나라에다 바쳐야 하는 것인데, 네가 숨겨놓고 살살 그놈을 팔아먹은 죄가 마땅히 널 사형을 시킬 일이로되, 부처님과 관련이 되어졌어. 그러니 부처님의 그 공덕으로 봐서 너를 살려준다”해 가지고는 풀어줬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리고 부처님 제자들은 그런 재물을 분명히 그것을 독사로 보셨기 때문에 깜짝 깜짝 ‘이크! 이크!’하면서 지나가셨습니다.
 
부처님이야 그까짓 것이 뭐 금이나 자갈이나 그것가지고 탐내실 분은 아니로되,
만약에 부처님 제자 가운데 좀 아직 확실히 도를 이루지 못한, 조금 어리석은 사람이 있어서, 만약에 그놈을 살며시 훔쳐다가 놓고 팔아먹었다 하면 진짜 그 스님도 독사에 물렸을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마는,
 
부처님과 제자들은 확실히 그것이 독사인 줄 아셨기 때문에 손을 대지 않고 지나가셨으므로 그런 국법에 저촉을 받으시지를 않았습니다.
 
어리석은 나무꾼이 그것을 독사라고 부처님과 제자들이 일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현혹이 되어가지고 그놈을 훔쳐다 놓고 팔아먹다가 그 못 당할 그런 곤욕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21분38초~41분17초)
 
 
 
 
 
 
 
(3/3)----------------
 
그래서 재산이라고 하는 것이 독사요, 똥보다도 더 더럽고 독사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여.
그러나 세속에 살면서는 그것이 나중에 독사가 되었건, 똥이 되었건 우선 그것이 없으면 당장 먹고 살 수가 없고, 집도 재산인데 그것이 없으면 이 몸뚱이를 갖다가 거처를 할 수가 없고, 자녀들도 가르킬 수도 없고, 아무것도 안되어 버려.
 
출가한 스님네는 그저 도(道)만 열심히 닦으면은—도 닦다가 굶어 죽은 일이 없기 때문에 나가서 돈벌이 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하지만, 세속에 사시면서는 천상 돈이 있어야지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되어.
어디 나가서 자기 동기 간한테 가서 손 벌려도 잘 주지도 않고, 친구 간한테도—좀 가난해서 돈이 없다고 돈 달라고 하면 당장 그 이튿날부터선 친구도 별로 반가워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돈 있으되 그것을 적당한 방법으로 잘 벌고, 열심히 벌고, 벌어서 요긴하게 쓰고 그리고 또 적당하게 보시도 하면서 그것을 소중하게 간직은 하되,
그것이 아까워서 먹지 못하고, 쓰지 못하고, 땅에다 묻어놓고 벌벌 떨다가 아귀가 된다든지, 구렁이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탓으로, 그렇게 비참하고 불쌍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께서는 재산을 열심히 벌고 또 소중하게 관리를 하고, 쓸 때 자기를 위해서도 쓰고, 집안을 위해서도 쓰되 경우에 따라서는 잘 베풀 줄도 알아야 다음 생에 끊임없는 복록(祿)을 또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베푸는 것은 자기의 업장(業障)과 모든 재액(災厄)을 갖다가,
그 물질적인 재산을 버리면서 자기의 업장도 거기서 녹아지는 것이고, 탐심도 거기서 녹아지면서 동시에 그것이 세세생생에 쓰고 남을 복의 씨를 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7일 동안 열심히 기도를 해서 마음이 청정해졌고 업장이 소멸이 되었습니다.
 
이 회향날 또 이러한 조실 스님의 법문과 산승의 이런 말씀을 듣고서 ‘참! 과연 옳은 말이다. 내가 그동안에 아까 와서 아낄 줄만 알았지 정말 보시의 참뜻을 내가 몰랐구나!’
이리 생각을 하고 앞으로는 그 재산을 옳게 관리하고, 옳게 쓰고, 옳게 베푼다면—그거 써 버리면 아주 없어질 줄 알고, 늙으면은 간탐심이 굳어져 갖고 보시를 잘 못합니다.
 
젊어서는 또 생기거니 하고, 생길 수도 있고 벌 수도 있으니까 더러 쓰다가, 나이가 한 오십 육십 되면 인자 내가 벌 수도 없고, 누가 잘 갖다주지도 않으니까 ‘이것 떨어져 버리면 내가 인자 꼼짝을 못하겠다’해 가지고,
열 번, 스무 번 꽁꽁 싸가지고는 깊은 데다 넣어 놓고 있다가 결국은 죽어버리면 참 그것 못쓰는 것입니다.
 
이 회향날을 맞이해서 보시(布施)가 마음의 업장을 소멸하고, 나아가서는 「참 보시」는 물질적 보시뿐만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그 보시야말로 보시의 참뜻이라 하는 거,
 
그리고 남에게 보시 하되 ‘내가 보시를 했다’하는 생각—상(相)이 있고, ‘내가 이렇게 보시를 했으니까 나한테 그 보답을 해야 한다’고 하는 보답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으면 이것은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가 아닌 것입니다.
 
무주상 보시라야 그 공덕이 무량무변(邊)한 것이지, 유주상(有住相)으로 하면 그 보시가 아주 그 조그마한 한계가 있는 그러한 보시 밖에는 안되고, 그 보시 공덕으로 얻어봤자 유루(有漏)의 복 밖에는 얻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무주상 보시를 해야 무루복(無漏福)을 영원토록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안비천말적유사(雁飛天末迹留沙)요  인거황천명재가(人去黃名在家)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채득백화성밀후(採得百花成蜜後)에  부지신고위수감(不知辛苦爲誰甘)고
나무~아미타불~
 
안비천말적유사(雁飛天末迹留沙)요, 기러기는 저 하늘가에 날아갔는데, 기러기 발자취는 모래사장에 남아있고,
인거황천(人去黃)에 명재가(名在家)로구나. 사람은 저 황천(黃泉)으로 떠났는데 그 이름만 자기 살던 집에 남아 있구나.
 
채득백화성밀후(採得百花成蜜後)에, 벌이 일백 가지 꽃에서 꿀을 따다가 놨는데,
부지신고위수감(不知辛苦爲誰甘)이다. 그 벌이 백 리, 이백 리 밖에까지 나가서 온갖 풀과 꽃,
그리고 심지어는 시궁창, 변소, 간장독 또 뱀 썩은 거, 모든 짐승이 썩은 거, 쇠똥, 천 가지, 만 가지 물건에서 꿀이 될만한 요소를 빨아다가 그래서 모아 놓은 것입니다.
 
그 고통이 얼마며 그 벌의 세계에 있어서도 위계질서가 분명해가지고 그 법도가 엄한 것이며, 놀고먹는 벌은 다 물어서 죽여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천 가지, 만 가지 고통을 사양하지 않고 모아 놓은 꿀, 자기네들도 함부로 먹지 않고 꿀통에다가 그렇게 일 년 내에 모아 놓은 꿀을, 벌의 그 고통은 아랑곳없는 사람이 그놈을 딱 도려서 따다가 먹어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일평생 동안 명예와 권리를 위해서 젊어서부터 공부하고 피땀 흘려서 노력을 하고, 밤잠 안 자고 공부해가지고 그래가지고 고시에 합격하고 판사 검사가 되고, 도지사 장관이 되고 그러한 하늘을 찌르는 높은 명예와 권리를 얻었다 해도,
 
마치 기러기 하늘 끝에 날아간 뒤에 발자취만 모래밭에 남듯이, 황천에 한번 떠나 버리면 아무 할 일없이 이름만 얼마동안 세상에 남아 있다가 오래되면 그것마저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평생 동안 피땀 흘려서 모은 재산 아까워서 먹지 못하고, 쓰지 못하고, 꽁꽁 뭉쳐놨던 재산, 가는 길에 한푼 가져가지 못하고 그 재산은 엉뚱한 사람이 그것을 먹어 치우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백년을 다 못다 사는 이 무상한 몸뚱이를 가지고 태어났으되 무엇을 위해서 그러면은 이 몸뚱이와 목숨을 바쳐야 하느냐?
 
명예도 헛것이요, 권리도 헛것이요, 재산도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되고 가지고 갈 수가 없는 것이라면,
 
우리는 부처님의 법, 정법(正法)을 믿고 그것을 실천해.
그래서 ‘참나’를 깨닫는 것만이 이것이 영원한 것이며 내가 영원히 참나를 찾아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길이다. 
 
금년에 삼재가 드신 분들은 지난 입춘에 기도를 열심히 하셨을 것이고 또 이번에 신수기도에도 참 열심히 새벽같이 나와서 열심히 하셨을 줄 생각합니다.
 
많이 업장이 소멸이 되고 삼재를 면하셨을 것입니다마는 아주 정말 깨끗이 뿌리째 그 삼독의 악귀를 갖다가 내버리려면,
이웃의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에게 보시하시고 또 절에 불사(佛事)가 있으면 보시하시고 또 병든 스님네가 있으면 보시를 해서 아주 마지막 그 끝마무리를 잘하십시오.
 
이번 한번 뿐만이 아니라 세세생생에 정법에 의지해서 도를 닦으면서 그러한 무주상 보시를 하시는 것은,
세세생생에 삼재팔난(三災八難)을 면하고, 무량무변의 무루복을 증득해서 복(福)과 혜(慧)를 구족(具足)한 그러한 인격완성을 성취하실 것입니다.(41분18초~53분12초)(끝)
 
 
 
 
 
----------------(1/3)
 
*회향(廻向) ; 회전취향(回轉趣向)의 뜻. ①방향을 바꾸어 향하다. ②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그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함. ③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그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순치황제(順治皇帝) ; 1638년에 태어나 1643년 어린 나이에 황위에 오른 청나라 제 3대 황제. 재위 기간은 1643년~1661년.
*가비라국(迦毗羅國) ; kapila國(카필라).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아버님 정반왕(淨飯王)이 다스리던 나라. 실달다(悉達多) 태자(太子) 곧 석존(釋尊)이 태어난 곳.
*재가(在家) ; ①세속 떠나지 않고 에서 스님처럼  닦음또는 그런 사람. ②사회에서 살아가는 일반 사람.
*청신사(清信士)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남자 신도, 곧 우바새(優婆塞).
*청신녀(清信女)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여자 신도, 곧 우바이(優婆夷).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귀의(歸依)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함. ②몰아의 경지에서 종교적 절대자나 종교적 진리를 깊이 믿고 의지하는 일. ③돌아가거나 돌아와 몸을 의지함.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염의( 물들일 염,옷 의) ; 출가자의 옷. 출가하여 속세의 옷을 벗고 법의(法衣)를 입는 것도 염의라 하고,
출가할 때에 머리나 수염을 깎고 염의를 입음으로써 스님이 되는 것을 낙발염의(落髮染衣), 체발염의(剃髮染衣)라고 한다.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사문(沙門) ; 슈라마나(산스크리트어: śramaṇa, 팔리어: samaṇa)의 음역. 식(息)·근식(勤息)·정지(淨志) 등으로 번역. 여러 선법(善法)을 근수(勤修)하고, 악법(惡法)을 행하지 않으며, 심신을 조어(調御)하여 청정(淸淨)한 깨달음의 길을 지향(志向)하고 노력함을 뜻함.
①인도에서 바라문교의 「베다」 성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제종교 수행자의 총칭.
②출가하여 불문(佛門)에 들어 도를 닦는 사람.
*거사(居士) ; ①고대 인도에서 상·공업에 종사하던 부호. ②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는 남자 신도. 출가하지 않고 법명(法名)을 받은 재가(在家)의 남자.
*옴막 ; '전부(全部)'의 사투리.
*간탐심(慳貪心 아낄 간,탐할 탐,마음 심) ; 몹시 인색하고 욕심이 많은 마음.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아라한과(阿羅漢果) ; 아라한(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의 깨달음의 경지. 곧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자의 지위로서, 성문 사과(聲聞四果-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의 가장 윗자리이다.
*항하(恒河) ; 갠지스 강(Ganges江, 히말라야 산맥에서 시작하여 인도 북부 가로질러 벵골 ()으로 흘러들 가는 인도 최대 길이 2,510킬로미터).
*보림(保任 보임) ;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더욱 갈고 닦는 수행. 흔히 ‘보림’이라 읽는다.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성자(聖者)모든 번뇌 버리고 진리 깨달은 사람.
*아귀(餓鬼) ; 생전에 탐욕이나 질투가 많아 육도(六道) 중 하나인 아귀도(餓鬼道)에 이르게 된 죽은 사람의 영혼. 몸이 앙상하게 마르고 목구멍이 바늘구멍 같아 음식을 먹을 수 없어서 늘 굶주린다고 한다.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시회(施會) ; 베푸는 모임.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일.
*석상(上)[주로 일부 명사  쓰여]여러 사람 모인 자리.
* ; ‘가(바깥쪽 경계 되는 가장자리 부분이나  부근)의 사투리.
*오체투지(五體投地) ; 불교 신자가 교만을 떨쳐버리고 어리석음을 참회하고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께 큰절을 올려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방법.
신체의 다섯 부위를 땅에 닿게 하는 절. 먼저 두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땅에 댄 다음 머리가 땅에 닿도록 한다.
고대 인도에서 행하여지던 예법 가운데 상대방의 발을 받드는 접족례(接足禮)에서 유래한 것이다. 오륜투지(五輪投地)ㆍ오륜착지(五輪着地)ㆍ거신투지(擧身投地)ㆍ투지례(投地禮)라고도 한다.
*세존(世尊) : [범] Bhagavat ; Lokanatha ; Lokajyestha의 음역(音譯)으로 바가범(婆伽梵) 로가나타(路迦那他) 로가야슬타(路伽惹瑟吒)라 하며 부처님 십호(十號)의 하나,
부처님은 원만한 공덕을 갖추어 세상에서 가장 높으시므로, 이렇게 부르며 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자비(慈悲) ; 자(慈)는 ‘우정•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동정’을 원의(原義)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방편력(方便力) ; 뛰어난 교화방법. 일을 성공시키기 위한 방법론적 지혜의 힘. 방편의 작용.
중생을 인도하기 위한 여러 방법을 고안하여 세상에 펼치는 지혜의 작용.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유주무주(有主無主) ; ①주인(영가를 인도해 줄만한 인연있는 사람)이 있거나 없는. ②제주(祭主)가 있거나 없는.
*고혼(孤魂) ; 문상(問喪)할 사람이 없는 외로운 넋.
*선정(禪定) ; 산스크리트의 디야나(dhyāna), 팔리어 자나(jhāna)의 음역(音譯)인 선(禪)과 그 의역(意譯)인 정(定)이 합하여 생긴 말. 선(禪)은 정(定)·정려(靜慮)·기악(棄惡)·사유수(思惟修) 등으로 의역한다.
6바라밀의 하나. 마음 고요한 내관(內觀). 마음의 번뇌를 가라 앉히는 것. 정신 집중의 수련. 좌선에 의해 몸과 마음이 깊게 통일 된 상태.
*백목(白木)무명실  천.
 
 
 
 
 
-----------------(2/3)
 
*보시(布施) : [범] dana  음을 따라 단나(檀那)라고도 쓴다。남에게 베풀어 준다는 뜻이다.
재물로써 주는 것을 재시(財施)라 하고, 설법하여 정신의 양식과 도덕의 재산을 풍부하게 하여 주는 것을 법시(法施)라 하고, 계를 지니어 남을 침해하지 아니하며 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게 하여 주는 것을 무외시(無畏施)라 한다.
*아공(我空) ; 인공(人空). 인무아(人無我).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아집(我執)에 대해,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없다고 보는 견해 혹은 이치, 또는 이러한 깨우침을 증득한 상태 또는 경지이다.
아집(我執)은 번뇌장(煩惱障)이라고도 하는데, 번뇌장은 중생의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여 열반(또는 해탈)을 가로막아 중생으로 하여금 윤회하게 하는 장애라는 의미이다.
*법공(法空) ; 법무아(法無我). 존재하는 만물 각각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법집(法執)에 대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생기는 것이므로 실체로서의 자아는 없다는 견해 혹은 이치, 또는 이러한 깨우침을 증득한 상태 또는 경지이다.
법집(法執)은 소지장(所知障)이라고도 하는데, 소지장은 참된 지혜, 즉 보리(菩提)가 발현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라는 의미이다.
*구공(俱空) :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의 경지에 차례로 도달한 후, 다시 그 아공(我空)과 법공(法空)까지도 버려 비로소 제법(諸法)의 본성에 계합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수행에 의해 이러한 경지를 증득한 것을 뜻한다.
*수순(順) ; 남의 뜻에 따르거나 순순히 따름.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로, 도피안(到彼岸)·도(度)·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생사의 바다를 건너 열반의 언덕에 이르는 여섯 가지 수행의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단바라밀(檀波羅蜜)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단()은 산스크리트어 dāna의 음사(音寫)로 보시, 보시(布施)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바라밀(波羅蜜)은 도()•도피안(到彼岸)이란 뜻임.
생사의 바다를 건너 열반의 언덕에 이르는 수행의 법을 말함.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과 같음.
*국집(局執) ; 마음이 확 트이지 못하고 어느 한편에 국한(局限), 집착하는 것. 사리(事理)를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에 얽매이거나 자기의 소견만이 옳다고 고집하여 매우 답답한 모습을 말한다.
*아만(我慢 나 아,거만할·게으를 만) ; 스스로를 높여서 잘난 체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① 오온(五蘊)의 일시적 화합에 지나지 않는 신체에 불변하는 자아가 있다는 그릇된 견해에서 일어나는 교만. 자아가 실재한다는 교만.
②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김. 자신을 과대 평가함.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아애(我愛) ; 자아에 대한 애착심.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아치(我癡) ; 자아(自我)를 바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障礙)가 사라져 없어짐.
*똥항(똥缸 항아리 항) : 재래식 화장실(칙간)의 바닥을 파고 이를 묻어 분뇨를 저장하던 것으로 이 항아리에 분뇨가 가득 차면 똥장군 등에 퍼담아 밭에 내다 거름으로 이용하였다.
*권화신(權化身) ; 여러 가지로 변하여 나타난 몸.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들어 안팎에 칠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라고도 한다.
*사리불(舍利弗), 목련존자(目連尊者)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속적삼저고리  껴입는 적삼저고리 모양 윗도리  배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입는 홑옷이다.
*다짜고짜로어떤 일의 내용 자세히 알아보려 하지 않고 덮어놓고 바로.
*몰골 ; 볼품없는 모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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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록(祿 복 복,복 록) ; 타고난 복과 벼슬아치 녹봉(祿俸 예전나라에서 벼슬아치들에게 벼슬살이 대한 보수 주던 곡식이나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는 에서복되 영화로운  비유적으로 이르는 .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재액(災厄)재앙으로 입게 되는 불운.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대승불교도들의 실천덕목 중 하나. 상(相)에 머뭄(住)이 없는(無) 보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말한다.
무주상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05~106에서.
(46)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한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참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둘 아닌 것이 한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참고] [금강경오가해]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p141~145, [금강경오가해 설의-육조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p101~104.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또 수보리야, 보살은 법(法)에 응당히 머문 바 없이 보시를 할지니, 이른바 색(色)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상(相)에 머물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상(相)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육조 스님 해의解義)
부차(復次)라 한 것은 앞을 이어서 뒷말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범부(凡夫)의 보시는 다만 아름다운 외모와 오욕의 쾌락을 구하는 고로, 그 과보가 다하면 곧 삼악도(三惡途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므로,
세존께서 크나큰 자비로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를 행하도록 가르치시니,
아름다운 외모나 오욕(五欲)의 쾌락을 구하지 않고, 다만 안으로는 인색한 마음을 없애고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 이와 같이 상응(相應)하는 것이 ‘색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色布施)’이니라.
 
무상(無相)의 보시를 한다는 것은, '보시한다'는 마음도 없고, 베푸는 물건도 없으며,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相布施)'라 하느니라.
 
보살이 보시(布施)를 행할 때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면 그 얻는 복이 시방(十方)의 허공과 같아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일설에 '보(布)'란 '普(넓다)'요, '시(施)'란 '散(사방에 흩어버린다)'이니, 가슴 가운데 있는 모든 망념·습기·번뇌를 널리 흩어버려 사상(四相)도 끊어지고 마음에 전혀 쌓여 있지 않는 것이 '참 보시(眞布施)'라 하며,
또 일설에는 '보(布)'란 '普'니 육진 경계(六塵境界)에 머물지 않으며 유루(有漏)의 분별도 하지 않아 오직 항상 청정한 데 돌아가서 만법(萬法)이 공적(空寂)함을 요달함이니라.
만약 이 뜻을 요달하지 않으면 오직 온갖 업(業)만 더하므로 모름지기 안으로 탐애(貪愛)를 없애고 밖으로 보시를 행해서 안밖이 상응하여야 무량한 복을 얻게 될 것이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보아도 그 허물을 보지 않아서 자성(自性) 가운데 분별을 내지 않음이 '이상(離相)'이 되느니라.
가르침에 의해 수행해서 마음에 능소(能所)가 없는 것이 곧 선법(善法)인 것이라. 수행인이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선법이라 할 수 없고, 능소심(能所心)이 멸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치 못하니,
순간순간 항상 반야지혜를 행하여야 그 복이 무량무변한 것이니라.
 
이같은 수행에 의지하면 일체 인천(人天 사람과 하늘신)의 공경하고 공양함이 따르니 이것을 복덕(福德)이라 하도다.
항상 부주상보시(不住相布施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보시)를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면 그 공덕이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무량무변(邊)한없이 크고 넓음또는 헤아릴  없이 많음.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복(福)—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의 복이어서 한도(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그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그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또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또 그 얻었던 것을 결국은 다 없애면서 그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와 같은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1996.02.19)에서.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왜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 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또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또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해 볼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할 수도 없고, 생활도 할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 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은 안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해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할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그 과보(果報)를 바래.
공투세를 해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의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은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그 무루복을 참으로 더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써,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를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게송) ‘雁飛天末迹留沙  人去黃名在家’ ;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36 게송 참고.
*(게송) ‘採得百花成蜜後  不知辛苦爲誰甘’[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36 게송 참고. 당대시인(唐代詩人) 나은(羅隱 833~909)의 시 《봉(蜂)》 참고.
*황천(黃泉) ; 저승(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
*아랑곳없다 ; 어떤 일에 참견을 하거나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삼재팔난(三災八難)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과 깨달음으로 향하는 청정한 수행에 방해가 되는 여덟 가지 난관.
삼재(三災) :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이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를,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팔난(八難) : 깨달음으로 향하는 청정한 수행에 방해가 되는 여덟 가지 난관.
①지옥(地獄). ②아귀(餓鬼). ③축생(畜生). ④장수천(長壽天). ⑤변지(邊地). ⑥맹롱음아(盲聾瘖瘂). ⑦세지변총(世智辯聰). ⑧불전불후(佛前佛後).
①,②,③은 고통에 시달려 수행할 수 없기 때문,
④는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여러 천(天)으로, 수명이 길고 편안하여 불법(佛法)을 구하지 않기 때문,
⑤는 북구로주(北俱盧洲)로서, 사주(四洲) 가운데 가장 살기 좋은 곳이기 때문,
⑥은 눈이 멀고 귀먹고 말 못하기 때문,
⑦은 세속의 지혜는 있어도 그릇된 견해에 빠져 바른 가르침을 구하지 않기 때문,
⑧은 가르침을 설할 부처님이 안 계시기 때문임.
*구족(具足 갖출 구,충족할 족) ; 빠짐없이 두루 갖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