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화선원2015. 3. 15. 14:06
§(280) 용화선원의 가풍—불조(佛祖)와 같이 되지 못한 이상에는 완전히 초학자의 마음가짐으로 정진을 하자.

**송담스님(No.280)—85년(을축년) 동안거 결제 법어(85.11.26) (용280)
 

약 4분.

 

 

이 용화선원(龍華禪院), 물론 어느 선원이나 다 마찬가지지만, 용화선원의 특이한 노선(線)이라고 할까? 가풍(家風)이라고 할까? 용화선원에서 바라는 용화선원의 특성을 구태여 말을 하자면,

 

‘불조(佛祖)와 같이, 불조가 깨달으신 바와 같이 그러한 철저한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설사 조그마한 견처(見處)가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 그런 것을 인정을 하지 말아라.

 

'알았다'고 하는 소견(所見), '깨달았다'고 하는 소견, 한철 두 철 하다보면 어떤 지견(知見)이 생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마는 불조(佛祖)의 친증처(親證處)에 바로 이르르지 못하면 자기가 깨달았다고 하는 생각을 갖지 말아라.

 

깨닫지 못하면 차라리 말지언정 깨달았다 하면은 불조와 같이 불조의 친증처에 이르러야 한다’ 이러한 각오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체중현(體中玄) 도리, 여래선(如來禪) 도리, 공견(空見)을 봤다 하더라도,

그러한 ‘보았다’고 하는 소견을 속에 가지고 있으면, 그러한 지견을 속에 지니고 있으면 공부는 아무리 정진을 한다고 해도 그 이상 진취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완전히 백지(紙) 상태—10년, 20년을 정진을 했다 하더라도 완전히 초학자(初學者)의 마음, 순수한 초학자의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정진을 하자」 이것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이 도량에 일단 방부(房付)를 들이고 같이 정진하게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불조(佛祖)와 같이 되지 못한 이상에는 완전히 초학자의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그러한 사상으로 정진을 하자」 이것입니다.(14분14초~17분4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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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선(線)개인이나 조직단체 따위 일정한 목표 향하여 나아가기 위해 따르는 활동 방침.

*가풍(家風) ; 한집안에서 오래 지켜 온 생활 습관이나 규범.

*불조(佛祖) : 부처님과 조사(祖師), 불(佛)은 삼세제불(三世諸佛), 조(祖)는 역대(歷代)의 조사를 말함.

*견처(見處) ; 자기 나름대로 얻은 어떤 생각이나 입장, 견해.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지견(知見) ; 배워서 얻은 지식과 보고 들어 쌓은 분별력을 아울러 이르는 말.

*친증처(親證處) ; 친히 증(證,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하다)한 곳.

*체중현(體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體中玄•句中玄•玄中玄)의 하나.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07, p212 에서.

[三玄]삼현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체중현(법문에서)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37)—정묘년 칠석차례(87.07.07.음)에서.(2분 48초)

체중현(體中玄)으로 보면, 공(空)의 이치에서 보면 어떠헌 공안을 묻되 할(喝)을 해 버려도 맞고, 방(棒)을 해 버려도 맞고, 양구(良久)를 해 버려도 맞고, 닥치는 대로 막 잡아서 아무것이라도 일러도 다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있어서는 아무렇게나 일러도 맞지를 않습니다. 그 공안에 여지없이 이(理)와 사(事)에 탁! 맞아떨어지게 일러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 한 철, 두 철 열심히 허다 보면 어지간한 사람이면 다 그 공의 이치를 보게 됩니다.

그 공의 이치, 그게 체중현(體中玄)인데, ‘체(體) 가운데에 현(玄)’-체의 이치를 보게 되면 그것이 바로 공(空)인데, 공의 이치를 보게 되면 경(經)을 봐도 모두가 그 소식입니다.

조사어록을 봐도 모두가 다 그 도리고, 조금도 맥힐 것이 없어. 환하고.

 

그런데 현중현(玄中玄)에서는 그렇지를 않거든.

체(體)의 이치를 본, 겨우 그 이치만 보고 현중현을 못 본 사람은 된장이나 똥이나 마찬가지여.

선과 악이 마찬가지고, 크고 작은 것이 마찬가지고, 부처와 중생이 다를 것이 없고, 내 마누라나 형수가 다 똑같고, 그저 거지나 임금이 다 똑같고, 생과 사가 똑같고, 그러니 오직 쾌활하냐 그말이여.

 

그러나 그것 가지고서는 부처님과 조사가 인가(印可)를 허지를 않았습니다. 그것 가지고서는 진리를 바로 봤다고 헐 수가 없어. 그것은 바른 견성(見性)이 아니여.

 

그래서 조사(祖師)는 현중현이라고 허는 관문(關門)을 시설을 해 가지고, 현중현 도리를 보지를 못허면 바로 보았다고 인가를 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현중현 도리는 선지식이 아니면은 그것을 가려내지를 못해.

 

[참고 ❷] 송담스님 법문(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2분 19초)

공안은 그 열쇠가 아니면은 도저히 그 열 수가 없는 아주 이 자물통과 같아서 도저히 그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인가(印可)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속에·진흙 속에 들어가서 무엇이 발을 찔렀는데, ‘뭣이 찔렀다.’ 이래 가지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찌른 것이 뾰족한 돌멩이냐, 그렇지 않으면 무슨 나무 꼬타리냐, 사금파리냐, 또는 쇠꼬치냐, 분명하게 딱! 말을 해야 하는 것이지, 막연하게 ‘뭣이 찔렀다.’ 이렇게만 말한 거와 같아서,

 

아! 찌른 거야 사실이지, 사실 아닌 것은 아니여.

그러나 분명하게 쇠꼬치면 쇠꼬치, 사금파리면 사금파리, 돌멩이면 돌멩이를 분명히 말을 해야 알 수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학자가 공부를 하다가 자기 나름대로는 반드시 견처(見處)가 있어서 온 것은 사실이나,

불조(佛祖)와 같이 깨닫지 못하면 체중현(體中玄)·구중현(句中玄)·현중현(玄中玄), 현중현 도리를 바로 보지 못하면 스스로 그것에 만족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활구문중(活句門中)에 있어서의 납자(衲子)의 지조(志操)라 할 것입니다.

 

[참고 ❸] 송담스님 법문(No.466)—92년 보살 선방에서 하신 법문(92.02.02)에서.(2분 26초)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공부해 나가다가 조금 느껴지는 그런 편안함이나 맑음이나 또는 시원함, 그런 소견이나 경계 그런 거,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중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경계에 ‘나도 한 소식 했다. 나도 깨달았다. 이것이 깨달음이 아닌가’하고 거기에 머물러 버리면 그 사람은 거기서 끝나는 거죠.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예를 들어서 저 지방에서 서울을 향해 가는데 대전이나 수원이나—시골 산중에 있던 사람이 거기에 나오면은 굉장하거든, 차도 많고 높은 건물도 많고 하니까 여기가 서울이구나! 하고 주저앉은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을 향해서 가는 사람은 중간에 좀 볼만한 데가 도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서울로 착각한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로 가서 중앙청을 갈라면 중앙청까지 딱 가서 대통령을 만나든지 장관을 만나든지 해야지,

저 중간에 가 가지고 조금 높은 건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갖다가 서울이라고 착각한다면 그거 되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니면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경지가 아니면 중간에 체중현(體中玄) 도리, 중간에 나타나는 보이는 그런 경계는 탁! 스스로 부정을 해 버리고 부인을 해 버리고 거기에 빠져서는 안 돼.

 

탁! 치워버리고 언제나 초학자와 같은 그런 심경으로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으로 자기의 본참공안만을 향해서 한결같이 정진을 다그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참고 ❹] 송담스님 법문(No.112)—79년 11월 관음재일 법어(79.11.24)에서.(2분 36초)

가끔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는 공안에 대한 조리(條理)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공안에 있어서 이 학자가 깨달은데 있어서 체중현(體中玄) 도리를 보는 사람,

체중현 도리를 보아 가지고 그것으로써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조그마한 소견을 가지고 ‘아! 내가 깨달았다’고 하는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가질까봐,

 

『절대로 이 공안이라 하는 것은 현중현(玄中玄) 도리를 바로 봐야만 그것이 바로 확철대오(廓徹大悟)다.』

그러한 것을 우리에게 깊이 납득을 시키고 철저하게 명심을 하기 위해서 가끔 공안에 대한 말씀을 구체적으로 해주신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법문을 듣고, 어떠한 공안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이렇게도 따져보고, 저렇게도 일러보고 해서 ‘혹 이런 것이 아닌가. 저런 것이 아닌가’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이 공안은 마치 체중현 도리에서 보면 아무렇게 일러도 맞지 아니한 것이 없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공견(空見)에 빠진 사람, 공견에 빠져가지고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에는 고함을 치나, 욕을 하나, 호령을 하나, 손을 들거나, 발을 구르거나, 무엇이 어떻게 이르건 다 안 맞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이 현중현 도리를 본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봐가지고서는 불법을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현중현 도리는 마치 자물쇠통에 꼭 제 열쇠가 아니면은 열리지 아니한 것처럼, 바로 깨달은 사람만이 바로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래선(如來禪)생각과 알음알이가 아주 끊어지지 않아서 말의 자취가 있고 이치의 길이 남아 있는 선.

*공견(空見) ; 공(空)에 집착하여 일으키는 그릇된 견해. 공(空)을 허무론적인 견해로 이해하는 것으로, 이에 따르면 인과(因果)의 도리를 비롯한 모든 것의 존재가 부정된다.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Posted by 닥공닥정
생활속 정진(요중선)2013. 10. 9. 17:34

 

§(414) 공부는 간단하고 쉬운 . 언제 어디서든 항상 화두를 잡드리해야. 우주는 우리의 생각 일어남으로 해서 벌어진 . (게송)춘유백화추유월~.

 

우주법계(宇宙法界) 우리의 생각일어남으로 해서 벌어진 것입니다.극락세계(極樂世界) 자기의 생각으로 인해서 극락세계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고, 무서운 지옥(地獄) 자기의 생각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옥을 만들어서 지옥으로 들어가서 () 받는 것도 자기의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에 달려 있는 거고, 천국을 건설을 해서 천국에서 유희를 하는 것도 자기의 생각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414)—1990 4 첫째 일요법회 (용414)

 

약 11분.

 

 

공부는 복잡한 것이 아니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천하 간단하고 쉬운 것입니다.

 

초학자(初學者) 불가불 장소가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나, 자꾸 버릇 하면 장소도 상관이 없고 시간도 상관이 없습니다.

앉아서도 하고, 서서도 하고, 차를 타고 가면서도 하고, 일하면서도 하고, 설거지 하면서도 하고, 누워서도 하고, 잘려고 잠자리에 누웠서도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머물렀다가 내쉬면서이뭣고~?’ 이렇게 하면서 언제 잠든 모르게 잠이 들어. 꿈속에서도 화두(話頭) 그대로. 이튿날 아침에 눈을 뜨면 엊저녁에 들던 화두가 그대로 들어 있게 되거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항상 잡드리를 하시면, 그렇게 공부가 결국은 색을 보되 색이 아니요(見色非干色), 소리를 듣되 소리가 아니요(聞聲不是聲). 성색(聲色) 걸림이 없이(色聲不礙處), 그래서 법왕성(法王城) 도달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親到法王城).

 

우주법계(宇宙法界) 우리의 생각일어남으로 해서 벌어진 것입니다.

극락세계(極樂世界) 자기의 생각으로 인해서 극락세계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고, 무서운 지옥(地獄) 자기의 생각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옥을 만들어서 지옥으로 들어가서 () 받는 것도 자기의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에 달려 있는 거고, 천국을 건설을 해서 천국에서 유희를 하는 것도 자기의 생각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이 무량겁이요, 무량원겁(無量遠劫) 즉일념(卽一念)』이라고 법성게(法性偈)에도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가운데는 법화경도 읽어 보시고, 화엄경도 읽어 보시고, 원각경, 금강경, 경이란 경은 읽어 보신 그런 분도 있을 것입니다마는,

경을 참으로 뜻을 옳게 알고 읽으셨다면 일념(一念) 속에 육도법계(六途法界) 있는 것이고, 생각 단속함으로 해서 불국토를 건설하느냐, 지옥을 만드느냐는 달려 있는 도리를 이해하실 것입니다.

 

 

춘유백화추유월(春有百花秋有月)하고  하유청풍동유설(夏有清風冬有雪)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약무한사괘심두(若無閑事掛心頭)하면  변시인간호시절(便是人間好時節)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춘유백화추유월(春有百花秋有月)이요, 봄에는 가지 꽃이 있고 가을에는 휘황찬 밝은 달이 있구나.

하유청풍동유설(夏有清風冬有雪)이로다. 여름에는 맑은 바람이 있고 겨울에는 하얀 눈이 있구나.

약무한사괘심두(若無閑事掛心頭)하면, 만약 부질없는 일이 마음에 걸려 있지 아니하면,

변시인간호시절(便是人間好時節)이다. 문득 이것이 인간의 좋은 시절이더라.

 

약무한사괘심두(若無閑事掛心頭), 부질없는 일이 마음에 걸려 있지 않는다. 무엇이 부질없는 일인가?

지나간 일에 대한 쓸데없는 생각, 아직 닥쳐오지 않은 장차 미래 일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댕겨서 걱정하고 근심하는 . 현재 보고 듣고 하는 일에 대해서 그리 끌려가 가지고 생각 생각 하는 .

 

과거의 마음, 미래의 , 현재 닥쳐 있는 모든 귀와 눈을 통해서 제출되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사량(思量) 분별(分別) 따지고, 이래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그래 가지고 스스로를 들볶는 것입니다.

 

그러면 목석(木石)이나 되면 모를까, 지나간 일도 생각이 나고, 앞으로 일도 생각 걱정도 하고, 현재 닥친 일도 생각하기 마련인데, 어떻게 지나간 일도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일도 생각하지 말고, 현재 닥치는 일에 대해서도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라.

그럼 목석(木石) 되란 말인가? 그게 아니거든.

 

살아 있으니까 지나간 일도 불현듯 생각날 것이고 앞으로 일도 무엇인가 필요해서 생각을 수가 있고, 현재 눈으로 보고 듣고 하다 보면 무슨 생각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마는, 살아 있으니까.

 

무슨 생각이 나자마자 화두(話頭) 돌리는 , 천하에 묘한 법이거든. ‘이뭣고~?’

 

아무 생각 할려고 한다고 해서 해지는 것이 아니예요. 할려고 하는 생각도 또한 생각이기 때문에, 할려고 하지도 말고 쫓아낼려고 하지도 말고이뭣고~?’ 챙기거든.

이런 간단하고도 쉽고도 묘한 법이 그래서 이것을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이제 겨울이 지내가고 입춘, 우수, 경첩, 춘분, 이제 개나리가 피고, 산에는 진달래가 피고, 목련이 도처에 피고, 그래도 조석으로는 꽃샘추위로 춥기는 허지만, 이제 봄이 무르익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헌 좋은 때에 나라는 정치적으로는 시끌사끌하고 국제적으로도 복잡하고 모다 그렇지만, 우리 최상승법을 하는 사람은 이러한 중요한 때일수록 우리가 있는 일은 열심히 정진을 해서참나 깨달라야만 앞으로 우리나라가 통일이 것이고 세계평화도 것입니다.

 

앞으로 십여 , 열흘 후에는 음력 316 법보재(法寶齋)일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아시겠지만 법보단(法寶壇) 만년위패(萬年位牌) 봉안한 여러 영가(靈駕),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 원근친척과 유주무주(有主無主) 법계 고혼(孤魂)까지도 천도(薦度)하는 대법요식이 거행되는 날입니다.

 

법보재에 들으신 분은 말할 것도 없고, 법보재에 들으신 분들도 서로서로 권고해서 법보재에 들으시도록 권고를 하시고, 분도 빠지시지 말고 모두 그날 참여하셔서 우리의 선망부모와 원근친척의 영가들을 천도하는 중대한 법요식에 빠지지 않도록 부탁을 드립니다.

설사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서 참석을 하신다 하더라도 법보영가들을 천도하는 데에는 차질이 없겠습니다마는 기왕이면은 참석을 하시면은 영가들도 기쁜 마음으로 좋은 곳으로 가서 왕생을 하시게 것입니다.(6213~738)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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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법왕(法王) ; 부처님을 찬탄하는 . () 가장 수승하고 자재하다는 . 부처님은 법문(法門) 주인이며 중생을 교화함에 자유자재한 묘용(妙用) 있으므로 이렇게 이름.

*법성게(法性偈) ; 통일 신라 시대에,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화엄경을 연구하고 경의 핵심을 추려서 지은 7 30(210) 게송.

*(게송) 춘유백화추유월~’ ; [무문관(無門關)] 19 '평상시도(平常是道)' 무문혜개(無門慧開) 게송 참고.

*부질없다 ; (사람의 언행이나 일의 형편이)공연하여 쓸모가 없다.

*쓸데없다 ; (무엇이)아무런 쓸모나 값어치가 없다.

*닥쳐오다 ; (일이나 시일이 무엇에)빠르게 가까이 다가오다.

*닥치다 ; 어떤 일이나 대상 따위가 가까이 다다르다.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열가지 병이 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 무엇고(是甚 시심마,시삼마) : ‘ 무엇고? 화두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무엇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찾는 것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법보재(法寶齋) ; 매년 음력 3 16일에 용화사 법보재자(法寶齋者) 법보전 만년위패에 모신 선망부모 영가들과 인연 있는 영가들의 무량겁으로부터 지은 업장을 참회 소멸하고, 정법(正法) 귀의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고, 재자와 영가 모두 진리의 세계에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전강 조실스님께서 개설(1963)하신 합동 천도재(薦度齋).

*법보단(法寶壇) ; 용화선원의 () 법당(法堂) 법보전(法寶殿) 안에 위패를 모신 ().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 ()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사람의 선망부모가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 수천만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부모가 바로 사람의 부모고, 사람의 부모가 부모여서,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 하는 것입니다.

*유주무주(有主無主) ; ①주인(영가를 인도해 줄만한 인연있는 사람) 있거나 없는. ②제주(祭主) 있거나 없는.

*고혼(孤魂)문상(問喪) 사람이 없는 외로운 .

*천도(薦度) ;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 따라 다음 생을 받게 되는데, 유족들이 불보살(佛菩薩) 모신 법당(法堂)에서 돌아가신 영가를 청해 모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하고 또한 영가에게부처님의 가르침(法門)’ 들려줌으로써,

영가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혜의 눈을 밝혀 삶의 무상을 깨달아 이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보다 좋은 곳으로, 나아가 육도윤회를 벗어나 극락왕생·해탈의 바른 길로 건너가도록 하는 .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