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6) ‘이뭣고?’ 화두 / ‘알 수 없는 의심’을 관(觀)해야 / 용화선원의 가풍(家風)-평상시가 용맹정진 / 여법하게 정진하는 것이 참다운 불사 / 장애 극복은 정진력으로.

사실 이 ‘이뭣고~?’ ‘이뭣고?’ 이 문제는 불법(佛法)이 생겨나기 이전에, 부처님이 탄생하시기 이전에,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하나의 커다란 숙제인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볼라고 동서고금의 모든 성현들이 철인들 철학자들이 이것을 알아볼라고 별별 방법을 썼습니다마는, 오직 이 문제를 깨달으신 분, 바로 깨달라서 바로 지도하신 분은 오직 우리의 위대한 스승이신 부처님이시고, 부처님의 그 법을 깨달은 방법이 바로 법(法)이고 그 법을 이어받아서 깨닫고 또 그 제자에게 전하고 하신 분들이 바로 역대조사 선지식들이 아니시겠습니까.


‘이뭣고?’하는 그 글자, ‘이뭣고?’한 글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했을 때 그 「알 수 없는 그 의심」 그것이 화두에 요긴한 것입니다.


화두가 정말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되는 것은 마지막 깨닫기 한 일주일 전부터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을 하기 위해서, 생사윤회를 아니할라면은, 그런 부처님의 5계(五戒)를 잘 지켜야만 한다.


**송담스님(No.346)(참선법 D) - 88.1.21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 (용346)

 

(1) 약 20분.

 

(2) 약 19분.


(1)------------------

<‘이뭣고?’ 화두>

 

이 화두, 그 천칠백 화두가 있는데 그 가운데에 최초의 화두요, 동시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가 ‘시삼마(是甚麼)’ 화두입니다.  ‘시삼마’는 우리말로는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그말이여.
‘이것이 무엇이냐?’

남악회양(南嶽懷讓) 선사가 육조 스님께 딱 찾아가 뵈옵고 절을 하니까, 『십마물(什麽物)이 임마래(恁麽來)냐?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이렇게 물으셨어.

그리고 하택신회(荷澤神會) 선사가 내나 그분도 육조 스님의 제자인데, 하택신회 선사 젊어서 육조 스님 앞에 딱 가서 절을 하니까, 『십마물(什麽物)이냐? 무슨 물건이냐?』하고 물으니까,
하택신회 선사는 『제불지본원(諸佛之本源)이요 신회지불성(神會之佛性)입니다.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요. 이 자기 자신 신회의 불성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어.

그런데 남악회양 선사가 떠억 와서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하고 육조 스님이 물으시니까,
남악회양 선사는 망지소조(罔知所措)여. 몸 둘 바를 몰라.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른다 그말이여.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하고 묻는데 꽉 맥혀 가지고 어찌할 바를 몰라. 몸 둘 바를 몰랐어.

그런데 육조 스님께서 『모든 부처님의 근원이요, 신회의 불성입니다』하고 대답한 하택신회에게는 『네가 나중에 공부를 해서 깨달은 바가 있다 하더라도 너는 지해종사(知解宗師) 밖에는 안 되겠다』
지해종사라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교리적으로 불교를 연구하는 그런 강사와 같은 그런 것 밖에는 너는 못 되겠다. 그렇게 말씀을 하시고,

남악회양 선사는 꽉 맥혀 가지고 그 뒤로 8년 간을 ‘무슨 물건이냐? 그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한 그 의심을 가지고 8년 동안을 그놈을 가지고 앉으나 서나 밥을 먹으나 일을 하나, 8년 동안을 그것을 참구를 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8년 만에사 확철대오를 했어.

그래 가지고 육조 스님한테 『설사일물(說似一物)이라도 즉부중(卽不中)입니다. 설사 ‘한 물건(一物)’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이렇게 그 깨달은 바를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아? 도리어 수증할 것이 있느냐?』 그러니까, 『수증(修證)은 즉불무(卽不無)어니와 오렴(汚染)은 즉부득(卽不得)입니다. 수증할 것이 없지는 않습니다마는 오렴은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해 가지고,
『여시여시(如是如是)다. 너도 또한 그렇고 나도 또한 그렇다.』 그렇게 쾌히 인가(印可)를 하신 것입니다.

지금 용화선원에서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 또 제가 말씀을 드린 모든 것이 완전히 그 남악회양 선사가 하던 그 참선법, 그것을 바로 조사선(祖師禪)이라 그러고, 그것을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 그러는데 그 활구참선법, 남악회양 선사처럼 그렇게 해 가도록 항상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물건이냐?’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거거든.

지금 여러분이 이렇게 집을 떠나서 여기에 오셔서 석 달 동안을 고생을 하면서 고행을 하면서 이렇게 와서 계신데, ‘무엇이냐?’ 그말이여.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이 몸뚱이가 여러분이라고 혹 생각하실 분이 계실런지 모르지마는, 이 몸뚱이는 흙 기운과 물 기운과 불 기운과 바람 기운이 뭉쳐서 이렇게 몸뚱이라고 하는 것을 임시 이렇게 이루고 있는 것뿐이지, 몸뚱이 이것이 여러분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시시각각으로 변해서 늙어가다가 나중에 결국은 이 몸뚱이에서 영혼이 떠나 버리면 그냥 10분 못 가서 내장이 버글버글버글 썩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바람은 바람 기운으로 나가 버리고, 불 기운은 불 기운대로 흩어져 버리고, 물 기운은 물로 돌아가 버리고, 흙 기운은 흙으로 돌아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는 그래서 송장 덩어리인 것입니다.

송장 덩어리를 운전을 하고 있는 놈, 운전하고 있는 그놈을 우리는 찾는 것이거든.

그것을 고인들은 다 ‘자성(自性)’이라 하기도 하고, ‘마음’이라 하기도 하고, 또는 ‘영혼’이라 하기도 하고 또는 ‘진여(眞如)’라 하기도 하고 또는 ‘불성(佛性)’이라 하기도 하고, ‘법계(法界)’라 하기도 하고, ‘여래(如來)’라 하기도 하고, 경전마다 그것에 대한 이름을 달리 말씀을 하셨고 세계 나라마다 그것에 대한 이름도 다 각각 다르지만,

그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 우리는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몸뚱이를 바꿔서 태어나면서 이렇게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데, 그 자체를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생사고해(生死苦海)를 이렇게 유전(流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놈을 우리는 깨달라야겠다. ‘그놈을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자’ 이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그놈이 무엇이여?’ 눈으로 볼라야 볼 수 없고, 손으로 잡을라야 잡을 수도 없고, 냄새를 맡을라야 무슨 냄새가 거기서 나며, 그놈을 ‘어떻게 생겼는가?’ 아무리 생각해 본들 알 수가 없다 그말이여.

사실 이 ‘이뭣고~?’ ‘이뭣고?’ 이 문제는 불법(佛法)이 생겨나기 이전에, 부처님이 탄생하시기 이전에,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하나의 커다란 숙제인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볼라고 동서고금의 모든 성현들이 철인들 철학자들이 이것을 알아볼라고 별별 방법을 썼습니다마는, 오직 이 문제를 깨달으신 분, 바로 깨달라서 바로 지도하신 분은 오직 우리의 위대한 스승이신 부처님이시고, 부처님의 그 법을 깨달은 방법이 바로 법(法)이고 그 법을 이어받아서 깨닫고 또 그 제자에게 전하고 하신 분들이 바로 역대조사 선지식들이 아니시겠습니까.

이것은 그 법을 모르고서는 도저히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지만 법을 모르고서는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불법이요, 정법(正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이다.

이것은 이론적으로는 아무리 따져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과 지식 가지고 따져서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화두를 참구(參究)해 가지고 그 화두를 타파(打破)함으로 해서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 아까 ‘이뭣고?’라고 하는 화두는 그밖에 ‘마삼근(麻三斤)’이라든지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든지 ‘판치생모(板齒生毛)’라든지 천칠백 개나 되지만, 그 많은 화두 가운데에 가장 근원적이고 최초의 화두가 바로 ‘이뭣고?’거든.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앉아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일을 할 때나 속이 상할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이뭣고?’


<단전호흡과 화두 의심>

 

그러면 언제 단전호흡을 하고 언제는 이 화두를 드느냐?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꾸었다가 내쉬면서, 그 내쉴 때 ‘이뭣고~?’ 이렇게 화두를 드는 것입니다.

숨이 다 나가면 또 스르르 하니 들어마셨다가 약 3초 동안 딱 정지했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뭣고?’를 길게 숨 다 나갈 때까지 ‘이뭣고?’를 길게 하시라 그말이여. ‘이뭣고~?’ 또 숨이 다 나가면 또 스르르 호흡을 들어마셔 가지고 또 약 3초 동안 딱 머꾸었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처음 하신 분은 숨을 내쉴 때마다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하시지만, 나중에 차츰차츰 익숙해지면 그리고 ‘이뭣고?’한 뒤에 알 수 없는 생각이 있으면은 「그 알 수 없는 그 의심(疑心)」, 의심이 있는 동안에는 다시 또 ‘이뭣고?’ ‘이뭣고?’ 안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알 수 없는 그 의심’이 흩어져 없어져 버리거나, 딴 생각이 나오거나 하면은 그때 또 다시 ‘이뭣고?’하고 한 번 챙기는 것입니다.

‘이뭣고?’하는 그 글자, ‘이뭣고?’한 글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했을 때 그 「알 수 없는 그 의심」 그것이 화두에 요긴한 것입니다.

의심은 없으면서 「이뭣고?」 「이뭣고?」 밤낮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듯이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를 잠시도 잊어버리지 말고 ‘이뭣고?’를 해라』 그러니까,
아하! 그렇게 생각하고는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이뭣고?’를 마치 ‘관세음보살’하듯이 그렇게 하면은 그것은 잘 모르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이것이 무엇이냐?’한 그 알 수 없는 그 간절(懇切)한 의심, 그 의심이라야 옳게 하는 것입니다. 의심이 있어야.
그래서 입으로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그 ‘대관절 이것이 무엇인고?’한 그 알 수 없는 의심 그것이 있으면 화두를 이미 들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무슨 물건'을 가지고 다니다 어디다 놔 버렸는데, ‘아! 그걸 어디다 놨나? 그것이 어디가 있는가? 아! 그거 참 어디가 있는가?’ 그렇게 찾은 것처럼,
‘이거 참!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놈이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그 의심이 그것이 화두인 것입니다.

그 의심이 항상 있어야 하고, 그 의심이 있으면 ‘이뭣고?’ ‘이뭣고?’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할 필요가 없어요. 「알 수 없는 그 의심」을 단전호흡을 하면서 그 의심을 관(觀)하는 것입니다.

앉아서도 그 의심, 서서도 그 의심, 이것은 자꾸 안 될수록에 더 열심히 하시면 나중에 언젠가는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현전(現前)하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나, 옷을 입을 때나, 똥을 눌 때나, 입선(入禪)을 할 시간이나 또는 방선할 때나 그 의심이 항상 있어야 하거든.

그래서 ‘방선(放禪)해도 잡담을 하지 말아라.’ 이런 소리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입선·방선이 전혀 상관이 없어요. 공부가 그렇게 되면은....

여러분이 댁에 계시면은 다 편안하고 잘 잡숫고 자유롭게 계실 텐데,
아! 여기 오셔서 백 명 이렇게 많은 수가 사시니 식사도 반찬도 변변치 못하고 모든 이 목욕탕이라든지 화장실이라든지 그런 시설도 다 불편하고, 아침에 좀 늦잠도 자고 싶은데 자도 못하고, 여러 가지로 자유롭게 살고 싶은 것도 모든 자유가 제한이 되고 그래서 생각해 보면은 참 이러한 고생이 없습니다.

이러한 고생을 무릅쓰고 여기 와서 계시는 것은 순전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기 오신 것인데, 어디에 음식이 맛이 있고 없는 것이 상관이 있으며, 입선·방선이 무슨 상관있습니까?

입선을 하나 방선을 하나, 반찬이 쓰거나 달거나, 밥이 질거나 되거나, 분 따라서 잘 수용을 하고 섭취를 하고 모든 것에 적응을 하면서 자나깨나 우리가 정신 쓸 곳, 신경 쓸 것은 오직 ‘이뭣고?’ 하나 뿐이거든.

‘이뭣고?’ 벌써 화두를 떠억 들고 있는 사람을 보면 눈매가 달라지고 모습이 엄숙하고 경건하면서 벌써 눈이 왔다갔다 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눈이 딱 못박혀 있는 것처럼 눈동자가 따악 박혀 있는 것입니다.
엄숙하고 경건해서 누가 감히 옆에 가서 장난도 칠 수가 없고, 말 붙이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이렇게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입선시간은 말할 것도 없이 하지마는 방선해서 설사 자리에서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시기도 하고 혹 밖에 나가서 포행(布行)을 하신다 해도 각자 자기 나름대로 속으로 ‘이뭣고?’가 따악 자리잡혀 있어야 하거든, 어디 가서 잡담을 하고 히히덕거리고 수군덕거리고 남의 흉보고 그럴 시간이 어디가 있느냐 이 말씀이여.

이 용화선원 조실 스님 열반(涅槃)하신 뒤로 벌써 13년이라고 하는 세월이 흘렀고 그 동안에 처음에 한 2~30명 하다가 4~50명 하다가 6~70명 하다가 이제는 백삼십이 명까지 방부를 드려서,
참 팔도에서 여러 발심(發心)한 보살님네들이 구름처럼 모여서 이렇게 정진을 하시니 이러한 기쁠 도리가 없고 이렇게 고맙고 감사할 도리가 없고, 또 선방의 규칙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좋아졌으나 아직도 멀었습니다.

물론 여러분 가운데는 참 모범이 될 만한 훌륭한 분도 많이 계십니다마는 아직 오신지 얼마 안 되신 분, 아직도 공부하는 요령을 확실히 터득을 못 하신 분도 계시고, 또 오시기는 오셨지만 아직 불법이 무엇인지, 참선이 무엇인지, 선방이 무엇인지, 좋다고 하니까 오시기는 오셨으나 막상 확실히 모르시기 때문에 좀 그런 분이 계실 줄 압니다마는,

여러분 가운데 발심을 해서 공부하신 분이 계시면 그분의 거룩한 모습을 보고 모두가 다 그 본(本)을 봐 가지고 입선·방선이 상관없이, 입승(立繩) 스님이나 누가 ‘잡담하지 말아라. 떠들지 말아라. 시끄럽게 하지 말아라’ 이러한 말씀 듣기 이전에, 각자 방선 시간에도 주욱 앉아서 정진하시고 또 졸리면 나가서 포행하다가 들어오셔서 하시고 해서,

입선·방선이 상관이 없게 이 큰방을 언제나 묵언(默言) 구역으로 해 놓고, 부득이 해서 할 요긴한 말씀이 있으면 밖에 나가서 간단하게 끝마치고 들어와서 또 정진을 하셔야죠.
이 큰방에 둘씩·셋씩·넷씩·다섯씩 구석구석이 모여 가지고 수군덕수군덕 해 쌌고 그래 싸면 공부를 좀 할려고 한 분까지 공부를 못 하시게 됩니다.(55분5초)

 

 



(2)------------------

<용화선원의 가풍(家風)>

오늘부터서 지금 섣달 초하루부터서 8일날 까지는 용맹정진(勇猛精進) 기간입니다.
전국에 선방이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고 온전히 만 일주일 간을 갖다가, 공양하고 변소에 갈 시간만 내 놓고는 전부가 큰방에 앉아서 다 법복을 수하고 그렇게 용맹정진하는 시간입니다.

조금만 졸아도 죽비를 갖다가 탁탁 쳐서 경책(警策)을 주면서 그렇게 합니다마는, 이 용화선원은 왜 그렇게 용맹정진을 아니하냐 하면은 평상시가 바로 용맹정진이 되도록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다.
비록 잠은 여섯 시간을 자지만 그 밖의 시간은 완전히 용맹정진으로 석 달 동안을 그렇게 하자는 것이 조실 스님의 지도 방법이십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께서 열반하신 뒤로도 그렇게 주욱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데 선방은 용맹정진도 하고 잠도 조금씩만 자고, 참선 입선 시간을 (한번에) 3시간씩 이렇게 하기도 하고 그러는데 이 용화선원이 선방이 좋다고 와 보니 맨 잠만 자고 입선 시간도 겨우 8시간 밖에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용화선원의 가풍(家風)을 잘 이해를 못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가풍을 따르지를 못하고 실천을 안 해서 그렇지, 가풍이 무른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 도량(道場)에 들어와서 무슨 잡담을 할 시간이 있겠습니까? 그 전에 강월 스님이 입승을 할 때에 지대방이고 어디고 일체 잡담을 못하게 하고, 심지어 화장실에 가서도 말을 못하게 하고, 누구하고도 둘이 마주서서 말을 주거니 받거니 못하게 하고, 몇철 간을 그렇게 한번 해 봤습니다.
그러니까 정진할려고 애쓴 보살님네들은 참 좋다고 그러고 지금도 그렇게 했으면 좋다고 원하시는 보살님들도 상당수가 계십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유치원 학생이 아닙니다. 국민학교 학생도 아니고 중학교 학생, 고등학교 학생도 아니고 대학생도 아니고 대학을 졸업한 대학원 학생들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대학원 학생한테다가 유치원 학생 다루듯이 해서 되겠느냐 그말이여.
그것은 여러분에 대한 대접도 아니고 도리가 아니기 때문에 특수한 일 아니고선 기본법 외에는 완전히 여러분에게 자유를 드려 가지고 자발적으로 여러분들이 조실 스님의 가풍에 적응하고 순종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오셔서 나시면 잘 하신 분은 당신 좋고 여러분에게 모범이 되어서 좋고 또 용화선원의 가풍을 순종을 함으로써 용화선원을 빛내는 일이 되는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불법을 빛나게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큰 절을 짓고 돈을 많이 내서 그것이 불사(佛事)가 아니라,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이 도량에 터억 들어서서 여법(如法)하게 참되게 정진하는 것, 그것이 바로 가장 참다운 불사를 이룩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거기에 불법이 일어나는 것이지 큰 절을 몇 억씩 들여서 절만 크게 진다고 해서 불법이 흥왕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물론 그런 불사도 필요하지요. 필요하지만 그보다도 더 근본적으로 중요한 불사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진실한 불자(佛子)로서 수행을 알뜰히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견성(見性)을 하게 되고 견성을 해야 부처님이 탄생을 하시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부터 아주 그 동안에 잘 하시는 분은 계속해서 잘 하실 것이고, 그 동안에 혹 그렇게 철저히 잘 못 하신 분은 오늘부터서 아주 완전히 새로 태어난 기분으로 여법하게 해 주실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단전호흡, 화두 의심>

 

아까 단전호흡을 하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꽉 맥힌 분, 그분은 호흡을 들어마실 때 배를 볼록이 하지 말고 배를 홀쪽하게 하고 또 내쉴 때 배를 볼록하게 하고 해서 반대로 이렇게 하시라는 것과,
숨을 들어마셔서 이리해서 차츰차츰 해서 저 배꼽 밑에까지 쪄 넣을라고 그러한 호흡법을 하시지 말고, 그냥 코로 스르르 하니 숨은 들어마시되 배꼽 밑의 단전, 아랫배만 약간 볼록...

 

볼록하게 맨들으라니깐 저 개구리 배에다가 바람 넣은 것처럼, 아랫배가 그냥 포대화상(布袋和尙)처럼 맨들라고 애를 쓰고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조금 약 2, 3센치 조금만 볼록하게 자기 느낌상으로만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고 내쉴 때도 너무 뱃가죽이 등어리에 가서 따악 붙도록 그렇게 억지로 헐라고 하시지 마세요. 약간 홀쪽하게 하는 듯만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면 그렇게 답답한 것은 저절로 없어지게 될 것이고.

그리고 ‘암만 화두를 들고 할라고 해도 화두가 잘 순일하게 들리지 않는다. 한 철, 두 철 내지 3년, 4년, 5년째 해도 영 화두가 순일하게 들리지 않고 자꾸 그런다.’ 그런 것을 호소하시는 분도 계시는데, 화두가 정말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되는 것은 마지막 깨달으기 한 일주일 전부터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진짜 순일무잡하게 되어서 화두를 들라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리고, 뭐 놓고 들 것도 없이 그냥 새벽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잠을 자도 꿈속에서도 화두가 고대로, 자다가 눈을 새벽에 딱 뜨면 새로 화두 들 것도 없이 엊저녁에 들고 잠들었던 그 화두가 고대로 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아침에 눈 딱 떠도 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세수를 해도 고대로 있고, 양치질을 해도 고대로 있고, 화장실 가도 고대로 있고, 밥을 먹어도 고대로 있고, 뭐 소지를 해도 고대로 있고, 옆에서 떠들거나 말거나 전혀 상관이 없이 고대로 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지경에 이르르면 일주일이 못 가서 툭 터지게 되는 것입니다.

설사 일주일 되어서 안 터지더라도 ‘빨리 터졌으면’ 그러한 생각을 가질 것이 없습니다. 그런 상태로 있으면 일주일을 가도 좋고, 열흘을 가도 좋고, 한 달을 가도 좋고, 계속 고대로 해 나가면은 언젠가는 지가 터지지 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순일무잡하게 되었을 때에 깨닫기를 바래거나, ‘누가 이럴 때에 나를 툭 깨닫게 해 줬으면’ 그런 생각을 가져서는 아니 된 것입니다. 고대로 해 나가는 것입니다.

공부 막 좀 될라고 하면 옆에서 떠들어 싸서 못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공부가 진짜 잘된 것이 아니에요. 떠든다고 화두가 달아나 버린다면은 그 화두는 아직도 지금 들렸다 안 들렸다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그래서 이렇게 - 뭐 참선은 집에서는 못할 바 아니지마는, 그래도 여기 와서 조실 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또 모두 여러 발심한 도반들과 같이 규칙생활을 하면서 가정의 모든 복잡한 것을 떠나서 이렇게 와서 하신 것이니,
서로 서로 목적이 같을 진대는 서로 서로 여법하게 잘해서, 나로 인해서 다른 분들이 공부를 잘하고, 다른 분들로 인해서 내가 공부가 잘 되도록 이렇게 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화두가 안 들려도 그걸 성내거나 성화하시거나 번민, 번뇌심을 내실 필요가 없어요. 망상이 일어나면 그냥 고대로 놔둬 버리고 - 오늘 아침에 조실 스님께서 참 아주 요긴한 법문을 해 주셨는데,
망상 일어난 거 그걸 버릴라고 할 것이 아니고 고대로 놔두고, 그냥 다시 화두만 떠억 - 숨을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화두만 딱 다시 한번 들은 것뿐이지, 일어나는 망상을 누를라고 하거나 쫓아낼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말이여.

쫓아낼려고 하고 누를라고 하면은 그것이 눌러지지도 않고 화두만 더 달아나 버린다 그말이여.
 


<장애 - 지계·정진력으로 이겨야>

 

그리고 자기가 지은 업(業)에 따라서 - 전생에 지은 업, 또 금생에 지은 업, 그런 업으로 해서 몸에 자기가 아닌 다른 영혼, 이런 것이 항시 자기 주변을 맴돌거나 자기에게 이렇게 붙거나 그러한 경우가 있습니다.
참선을 안 하신 세속에 사신 분 가운데에도 그런 분들이 상당수가 있고, 또 그것이 남이 보면은 전혀 모르지마는 자기 혼자만 아는 일이죠.

그것이 전생에 어떤 인연있는 영가 - 그것이 원결(怨結)이 있는 영가라든지, 서로 짝사랑을 하던 그런 영혼이라든지, 자기가 너무 그 사람에 대해서 너무 애착을 하고 집착을 하던 그런 영혼이라든지, 또는 무슨 원결이 있어 가지고 나한테 복수를 하기 위해서 나한테 따라붙은 그런 영혼이라든지,
그런 것이 요렇게 붙어서 항상 자기 주변에 이렇게 맴돌며 있는 그런 경우도 있고, 아주 언제나 자기한테 붙어 갖고 다니는 그런 경우도 있고, 뭣한 경우는 계속 귀에다가 뭐라고 계속 소곤대고 명령을 하고,

자기가 이렇게 살고 있지마는 실지는 하나도 자기 마음대로 못 하고, 먹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못 먹고, 그 영혼이 먹으라고 하면 먹고 먹지 말라면 안 먹고, 어디를 가자고 하면 가고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가고, 일체가 다 그 영혼에 - 특수한 그것이 신(神)인지 영(靈)인지 - 조종한대로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애착(愛着)을 갖지 말아라. 물질에 대한 탐착·애착도 못쓰고 사람에 대한 애착과 탐착도 그것이 괴로움의 근본밖에는 아니 된 것입니다.

더군다나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자기의 잇속을 챙겨 가지고 남을 해롭게 하고 남을 갖다가 억울하게 탄압을 하고 심지어는 남을 죽이고 이러한 일은 참 해서는 아니 된 것입니다.
그때는 조금 이익을 얻었을런가 모르지마는 세세생생에 원결이 되어 가지고 기어코 그 앙갚음을 하게 되기 때문에 어찌 우선 조금 이익을 보기 위해서 그런 큰 고통을 받아서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 남에게 고통을 주지 말아라.

 

남의 물건도 훔치지 말 것이며, 남에게 진심(瞋心)을 내지 말 것이며, 산목숨을 죽이지 말 것이며, 또 남을 거짓말하고 속이고 사기를 하지 말 것이며, 또 술을 마시면은 자기의 바른 정신을 놔 버리고 그래가지고 못할 짓 없이 온갖 본의 아니게 못된 행동이 나오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말라’한 것이,
반드시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될, 생사해탈을 하기 위해서 생사윤회를 아니할라면은 그런 부처님의 5계(五戒)를 잘 지키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안 지켜 놓으면은 금생에도 그 과보(果報)를 받는 수가 있지마는, 내생에 두고두고 세세생생에 그런 참 괴로운 과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다행히 금생에 이렇게 발심을 해서 선방에 나오셨지만, 과거에 지은 업연(業緣)으로 해서 그런 영혼이 우리한테 따라붙어 가지고 참선만 할라고 하면은 와 가지고 자기를 직접 간접으로 괴롭히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참선을 안 하고 그럭저럭 지내면은 또 괜찮은데 참선만 할라고 떠억 앉으면은 와서 괴롭히는 수가 있거든.

그건 왜 그러냐 하면은, 참선을 해서 확철대오를 해 버리면 자기가 발붙일 곳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이 참선을 해서 차츰차츰 공부가 잘 되어가면 ‘도고마성(道高魔盛)이다. 도가 높아갈수록에 마군이가 성하게 된다’ 이거거든.

그렇다고 해서 참선을 안 할 수가 있습니까? 그럴수록에 더 신심을 돈독히 해 가지고 자꾸 올바른 방법으로 꾸준히 공부를 해 나가고, 옆에 와서 집적대거나 귀에다 대고 소곤거리거나 말거나, 그것을 가지고 탓을 해서는 안 돼요.
그놈을 탓하고 억지로 떼어 내버릴려고 할수록 그놈은 더욱 꽉 붙잡고 늘어지기 때문에, 떼어 버릴라고 하지 말고 그냥 놔둬 버려.

놔둬 버리고 단전호흡을 하면서 자꾸 화두를 간절히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참구해 나가면, 그렇게 해서 화두가 점점 순숙해져서 순일무잡하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그까짓 잡신·영혼이 어디에 들러붙을 것이냐 그말이여.

오직 그것을 이겨내는 방법은 정진력(精進力), 이 최상승 활구참선(活句參禪)으로 밀고 나가는 도리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조금도 조급한 생각내지 말고, 원망하고 한탄하지도 말고, 짜증내고 번민하지 말고서, 오직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을 하면서 화두를 간절히 참구해 나가면,
하루를 그렇게 지내고 이틀을 그렇게 지내고 한 달, 석 달을 그렇게 지내고 1년, 이태, 3년을 그렇게 지내고 10년 세월을 그렇게 쪼옥 해 나가면 자연히 그런 원결이 있는 영혼도 거기에 감복(感服)이 되어가지고 그냥 원결을 풀고 좋은 곳으로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드릴 말씀이 한이 없지만 오늘은 이만 말을 맺고자 합니다.(35분15초~73분48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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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이뭣고?’ 화두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남악회양, 육조 스님, 하택신회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십마물 이마래(什麼物伊麼來) : 십마(什麼)는 의문의 말로 '무엇이냐'의 뜻이며, 이마(伊麼)는 임마(恁麼)와 같은 말로 '이렇게'의 뜻으로, 십마물 이마래(什麼物伊麼來)라는 말은 곧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하는 말。
*망지소조(罔知所措) ; 너무 당황하거나 급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고 갈팡질팡함.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생사고해(生死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를 가리킴. 생사와 그 괴로움이 무한한 것을 바다에 비유함.
*유전(流轉) ; 생사 인과(因果)가 서로 끊임없이 이어짐.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화두(話頭)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 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마삼근(麻三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판치생모(板齒生毛)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의심(疑心)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본(本) ; 모범으로 삼을 만한 대상.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묵언(默言) ; 말을 하지 않음.

 

 



------------------(2)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경책(警策 깨우칠 /채찍·회초리 ) ; 선방에서 대중이 좌선할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지는 스님의 어깨를 쳐서 졸음을 깨워 정진을 독려하는 행위. 또는 그때 사용하는 장군죽비를 가리키기도 한다.

*장군죽비(將軍竹) ; 보통 죽비()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40~50센티의 불교 용구인데, 장군죽비는 참선할  졸거나자세가 흐트러진 수행자의 어깨를 쳐서 졸음을 쫓는  1.5~2m  죽비.

*가풍(家風) ; 한집안에서 오래 지켜 온 생활 습관이나 규범.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절. 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지대방 ; 절의 큰방 머리에 있는 작은 방. 이부자리, 옷 등의 물건을 넣어 두는 곳이며, 스님들이 잠깐 휴식을 하기도 하는 곳이다.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포대화상(布袋和尙) ; 중국 후량(後梁) 때의 스님. 본이름은 계차(契此). 절강성(浙江省) 명주(明州) 출신. 체구가 비대하고 배가 불룩하게 나왔으며, 항상 포대를 지팡이에 걸어서 어깨에 메고 동냥한 것을 그 속에 담고 떠돌아다니면서 수행한 선승(禪僧). 916년에 명주 악림사(嶽林寺)에서 입적함.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나쁜 마음의 작용.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원결(怨結 원망할 원/맺을·번뇌 결) ; 원망(怨望)의 마음이 얽혀 풀리지 않는 것을 말함.
*애착(愛着) ; 사랑하여 집착함. 애집(愛執).
*앙갚음 ; 남에게 해를 받은 만큼 저도 그에게 해를 다시 줌.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업연(業緣) ; 업보(業報)의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의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의 인연을 부른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참선할 때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감복(感服) ; 마음속으로 감동하여 탄복함.

Posted by 닥공닥정
참선(자세 호흡)2014. 6. 7. 19:31

 

 

§(346) 참선의 자세, 호흡(단전호흡의 목적) / 호흡이 안 될때 / 참선의 목적.

물론 단전호흡을 하지 않아도 오직 자세만 바르게 하고 화두만을 잘 참구해도 참선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단전호흡이 매우 유익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참선을 하는데 있어서 몸이 건강하고 또 정신이 맑고 그래야 참선을 잘할 수 있기 때문에 참선을 잘하기 위한 하나의 기초라고 할까? 한 방편(方便)으로써 이 단전호흡을 권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전호흡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리하게 하지 말아라. 힘들여서 하지 말아라」 「아주 부담없이 자연스럽게 호흡을 쉬어라」

 

호흡을 숨을 들어마실 때 배를 볼록하게 하고, 숨을 내쉴 때에 홀쪽하게 하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가슴이 정 답답하고 숨이 맥히고 그런 분은 그 반대로 하세요. 숨을 들어마실 때 배를 홀쪽하게 만들고, 숨을 내쉴 때 배를 볼록하게 만들고, 반대로 그렇게 하면 그 답답한 것이 얼마 안 해서 없어질 것입니다.

 

그런 것도 본인이 잘 증험을 해서 지혜롭게 해 나가셔서, 자기에게 가장 알맞는 시간과 호흡하는 요령을 체달(體達)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불교는 이 몸뚱이를 가지고 오래 살라고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것은 외도 법이고.

 

반드시 화두를 참구를 해서 그 공안을 타파해 가지고 확철대오를 해서, 생사없는 진리를 깨달라야 할 것이다 그 말씀입니다.

 

**송담스님(No.346)(참선법 D)-88.1.21 보살 선방에서 하신 법문. (용346)

 

(1) 약 16분.

 

(2) 약 20분.

 


(1)------------------ 

 

편안하게 앉으세요. 참선(參禪)할 때처럼, 반가부좌하고 앉으세요.
오늘 아침에 전강 조실스님 녹음 법문을 다 들으셨겠습니다마는, 자꾸 망상이 일어나고 화두가 순일(純一)하게 들리지 않고 조금 들린 듯 하다가 또 안 들리고, 화두가 순일하게 들리지 아니한 것으로 해서 많은 참선 수행자들이 애를 먹고 고민을 하고 그래 온 것은 사실입니다.

‘화두가 잘 들리지 않고 공부가 안되니까 공부를 하는 것이다.’ 아침에 조실 스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마는.



<참선의 자세>

 

첫째, 자세를 바르게 갖는 것. 자세가 바르지 못하면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잘 안되는 수가 있습니다.
자세가 너무 힘이 들어 있어서, 허리나 목이나 그런 데에 힘이 너무 들어 있어도 피로하고 오래가지 못하고 몸이 아프기도 하고,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자세를 바르게 한다’고 하는 것은 물론 이 가운데는 잘 아시고 또 대부분 다 자세가 바르시고 그렇습니다마는 처음 오신 분이나 또 아직 좌선(坐禪)의 자세가 바로 잡히지 아니한 그러한 분들에게는 필요하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열댓 분이 화두(話頭)라든지 그밖에 공부에 대해서 말을 해주기를 신청을 하셨지마는, 여기 신청을 안 하신 분들도 마음으로 듣고자 하신 분도 많이 계실 것 같고 또 그전부터 잘 아시는 분도 다시 들어서 해로울 것이 없으리라 생각을 해서 제가 큰방에 나와서 이렇게 말씀을 드리기로 한 것입니다.

맨 처음에 오른다리나 왼다리를 저 안으로 이렇게 굽어 넣고 그리고 그 다리 위에다 다른 다리를 이렇게 들어올려서 딱 놓고서, 옷을 잘 가지런히 해서 덮고, 그리고서 방바닥에다 손을 짚고서 궁댕이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으세요. 앞에다 손을 짚고서 궁댕이를 쑥 들었다가 한번 딱 놓으세요.

그리고서 (발 위 아랫배 앞에다가)오른손을 먼저 놓고 왼손을 위에다 포개고 그리고 엄지손을 이렇게 맞대.
가만히 이렇게 맞대고, 너무 힘을 주어서 이렇게 올라가게 하지 말고 가만히 맞대는데, 엄지손이 동그스름하게 두 손가락이 무지개다리처럼 되도록. 이것이 너무 이렇게 올라가도 못쓰고 또 밑으로 내려앉거나 앞으로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이렇게해서 새끼손가락 부분이 아랫배에 가서 닿고 손등어리는 발 위에 가서 놓여지도록, 그래서 이 손 모습이 참 이쁘게 되어야 해.

그렇게 하고 몸을 앞으로 숙이거나 뒤로 자지바지하거나 또는 좌우로 이렇게 기울어져서는 안 됩니다. 두 어깨 위에 두 귀가 놓이도록, 허리는 단정히 쭉 펴되 힘을 주지 말고, 이렇게 했으면 좌우로 서너 번 흔드세요. 궁댕이 들썩들썩 이렇게 흔들다가 차츰차츰 가운데에다가 딱 안정을 하세요.

그러면 아까 손을 앞에다가 짚고서 궁댕이를 한번 쑥 들었다가 놓고, 그 다음에 좌우로 서너 번 흔들고, 그렇기 때문에 앉은 자세가 아주 옷 구겨진 것도 다 없어지고 아주 편안할 것입니다. 저절로 바르게 할려고 안 해도 이렇게 하면은 자세가 바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금니는 지그시 물고 또 혀는 위에로 꼬부려서 저 입천장 안에다 갖다 대세요, 혀 끄터리를.
그리고 눈은 앉은 자리에서 약 3미터 지점에다가 떨구세요. 그렇다고 해서 의식적으로 어느 한 점을 정해 놓고 거기만 자꾸 응시를 하거나 주시를 할 필요는 없고, 그냥 볼라고 한다면은 그 지점이 보이되 의식적으로는 아무 것도 본 바가 없어야 합니다. 그저 평상으로 딱 뜨기만 하지 어느 지점을 주시(注視)해서는 안 된다 이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이게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잘 되신 것 같습니다.




<호흡, ‘단전호흡을 꼭 해야만 하냐?’>

 

이렇게 자세를 바르게 했으면 그 다음에는 단전(丹田) 호흡을 하는데 ‘단전호흡을 꼭 해야만 하냐?’ ‘단전호흡을 안 해도 상관이 없느냐’ 이런 문제로 스님네 가운데에도 논란이 있고 또 여러분 가운데에도 ‘단전호흡 안 하더라도 참선을 잘 할 수가 있지 않느냐?’ 혹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도 있을런지 모릅니다마는,

물론 단전호흡을 하지 않아도 오직 자세만 바르게 하고 화두만을 잘 참구해도 참선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단전호흡이 매우 유익한 것입니다.』
첫째, 혈액순환을 잘 하도록 도와주게 되고 또 혈액순환을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오장육부 사이사이에 끼어있는 노폐물, 찌꺼기 이런 것이 다 밖으로 배출이 되는 것입니다.

혈액순환이 잘 안 되면 그런 찌꺼기, 노폐물 그런 것이 몸안에 꽉 끼어 가지고 있어서 몸에 피로가 오고 또 정신도 맑지 못하고 몸이 무겁고 오장육부의 기능도 활발하지 못하고 그러기가 쉬운데, 이 단전호흡을 함으로 해서 혈액순환이 활발히 되니까 그 몸안에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모든 찌꺼기, 노폐물 그런 것이 싹싹 청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몸이 피로가 풀리고 몸이 가벼워지고 따라서 정신도 맑아지고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인도에 요가(yoga)라고, 여러분도 잘 하신 분도 계시고 말씀으로라도 다 들으셔서 아시겠지만, 요가는 ‘육체의 자유’ 또 ‘정신의 자유’ 모다 그런 것을 추구하는 그래서 인도의 요가는 세계적으로 널리 선전이 되고 그럽니다마는,
그 요가의 근본이 물론 몸뚱이를 오그렸다 폈다 하는 그런 것도 그 안에 들어있지만, 그 보다도 훨씬 더 요가의 중요한 점은 호흡에 있는 것입니다.

그 호흡을 잘함으로 해서 육체와 정신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의 신선도(神仙道), 도교에서는 오직 이 단전호흡을 통해서 장생불사(長生不死)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팽조(彭祖)라고 하는 사람은 신선도를 하는 아주 손꼽는 신선인데 그이는 칠백 세까지도 살았다고 하는 말이 전해오고 있고 그밖에 오백 세나 삼백 세 백오십 세 이런 것은 수두룩한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오직 이 단전호흡만을 일생을 통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처음에는 몸에 병이 있어 가지고 사회생활을 하지 못할 만큼 약해서 그러던 사람이 이 단전호흡법을 배워가지고 일심으로 그것을 날마다 2년·3년·10년 이렇게 해 가지고 병도 다 낫고 그래가지고 10년·20년·30년 이렇게 수명을 연장(延長)을 해 가지고 어지간하면 백오십 세 이상을 다 사는 것입니다.




<참선에서 단전호흡의 목적>

 

그러면 ‘우리가 참선하는 사람으로서 이 단전호흡을 한 것도 그렇게 이 몸뚱이를 가지고 몇백 세씩 살기 위해서 이것을 하냐’하면은 목적이 그 사람들과 다릅니다.

우리는 이 참선을 하는데 있어서 몸이 건강하고 또 정신이 맑고 그래야 참선을 잘할 수 있기 때문에 참선을 잘하기 위한 하나의 기초라고 할까? 한 방편(方便)으로써 이 단전호흡을 권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임제종(臨濟宗) 계통에서는 호흡, 단전호흡에 대해서 별로 그렇게 말하지 않지마는, 조동종(曹洞宗) 계통에서는 아주 철저하게 이 단전호흡을 하도록 자세하게 지도를 해 왔고 그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무슨 종파에 상관없이 우리 육체에 좋고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되고 해서 참선에 도움이 된다면 구태여 그것을 안 할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유독 사람의 체질상, 조금 신경을 쓰거나 그러면은 기운이 위로 올라가서 골이 아프고 얼굴이 붉어지고 목이 뻣뻣해지고 하는 그러한 체질을 가진 분은 반드시 단전호흡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도 않는 사람도, 참선을 전혀 하지 아니한 세속 분들도 그러한 체질을 가진 사람은 항상 일평생 동안 단전호흡을 해야만, 그이는 기운을 항상 올라가는 것을 막고 그래서 고혈압 같은 것도 다 예방을 하고 그러는 것이고,
특히 참선을 하신 분은, 특히 이 화두를 타 가지고 화두를 참구(參究)하는 참선하신 분은 그런 체질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이 단전호흡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단전호흡을 하지 않고 그냥 ‘이뭣고?’ ‘이뭣고?’하고 간절히 간절히 화두를 들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있는 기운이 머리위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나중에는 상기병(上氣病)이라고 하는 무서운 병이 일어나 가지고 골이 아프고, 화두만 들면 골이 아프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단전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참구하면 그런 상기병을 미연에 방지하고 혹 상기 증세가 있는 분도 이 단전호흡을 잘하면 그런 상기병이 낫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혈압이 높으신 분도 계시지 않은가 싶은데 그런 분은 특별히 이 단전호흡에 관심과 정성을 가지고 잘 해 나가시면 혈압도 약을 먹지 않고서도 그 혈압을 내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15분35초)





(2)------------------



<단전호흡>

 

그러면 단전호흡을 어떻게 하느냐?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3초 동안 참았다가 내쉰다' 대충 이렇게만 생각하시고,

'그 숨을 들어마셔서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이리해서 가슴으로 해서 배로 해서 배꼽을 지내서 저 배꼽 밑에까지 호흡을 집어넣는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 그렇게 하면 십중팔구는 이 가슴이 답답해지는 증상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숨을 들어마셔서 그것이 배꼽 밑에까지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가슴 밑에 가로막이라고도 하고 횡격막이라고 하는 막이 허파 밑에 횡격막이 있는데, 허파까지 밖에는 공기가 들어가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 밑에는 소장과 대장이 있어 가지고 그 밑에까지 공기가 들어갈 수가 없어요.
내려가질 않는 것인데, 억지로 그 밑에까지 내려보낼려고 하니 여기가 딱 걸려 갖고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도 잘 안되고 이렇다 그말이여.

그래서 숨을 들어마셔서 배꼽 밑에까지 내려보낼려고 억지로 누를라고 하지 말고 그냥 숨은 이렇게 쉬되,
그 ‘이리 내려간다’고 하는 과정은 전혀 생각하지 말고 그냥 아랫배, 배꼽 밑에 단전 부위만 볼록하게 맨들기만 하면 되요. 볼록하게 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또 내쉴 때는 또 배를 홀쭉하게 맨들기만 하면 되어요.

숨은 안 쉬고도 배를 내밀었다 잡아당였다 할 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숨을 들어마심에 따라서 그놈에 맞춰서 배를 볼록하게 하면 되는 것이지, 숨을 꼭 그리해서 저리해서 저 밑에까지 밀어 넣을라고 하시지 말라 이거거든.

그리고 숨을 들어마실 때 너무 가뜩 들어마시지 말고 8부(八部)쯤만 들어마시는 거여. 이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너무 가뜩 들어마시면은 그 다음에 숨이 가빠지니까 무리가 오게 되죠. 그래서 몇 번 안 해서 헛숨을 쉬어야 하고 힘이 들고 이런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단전호흡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리하게 하지 말아라. 힘들여서 하지 말아라' 이거거든.
'아주 부담없이 자연스럽게 호흡을 쉬어라' 이거거든.
보통 우리가 단전호흡을 안 할 때 그냥 예사로 아무 부담없이 숨 쉬듯이 하되, 조금 길게 쉬고 길게 마시고 들어마실 때는 하복부를 약간 볼록하게 맨들고, 내쉴 때는 하복부를 홀쭉하게 맨들고 그것 뿐인 것입니다.



〇준비 호흡

 

그러면 이 단전호흡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호흡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준비호흡은 또 어떻게 하냐?
숨을 들어마시되, 가슴이 미어지도록 숨을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한번 해 보세요.

이렇게 어깨를 드는듯 하면서 가슴이 미어질 만큼 가뜩 숨을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들어마셔 가지고 꽉 참아요. 한참 참았다가 더이상 참을 수가 없을 때 입을 조금 벌리고 ‘후-’하고 숨을 다 내뿜습니다. 내뿜을 때는 아까 들어올렸던 가슴을 약간 홀쪽하게 하는 듯 하면서 완전히 다 짜내야 하는 것입니다. 다 내쉬어버려.

다 내쉰 다음에는 다시 한번 또 들어마셔요. 가뜩 들어마셨으면 또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았다가 또 ‘후-’하고 다 내쉬는 것입니다.
이렇게 2번 내지 3번을 하고 나면 허파 속에 있던 구석구석의 묵은 공기가 완전히 다 밖으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〇본 호흡

 

다 내뿜어버린 다음에, 인자 준비호흡을 그렇게 해서 3번을 했으면, 그 다음부터서는 정식으로 본 호흡으로 들어가는데, 숨을 아까 다 내 뿜었으니까 그 다음에는 자동으로 숨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스르륵 따라 들어가는 것입니다, 호흡이.
그때는 따라 들어감에 따라서 가슴은 고대로 놔두고 배꼽 밑에 단전만 차츰차츰차츰 이렇게 불으게 하는 것입니다. 아주 기분이 좋지요.

그러면 아까 준비호흡을 할 때는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셔. 그때는 소지를 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지마는 이제 본 호흡으로 들어가서는 그렇게 잔뜩 들어마시면 안 되어요.

‘스르르~’하니 들어마심에 따라서 아랫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볼록하게 되면 8부쯤만 들어마시거든. 그 8부쯤 들어마신 상태에서 딱 머꾸어요. 머꾸어 가지고 하나, 둘, 셋 이렇게 약 3초 동안 딱 머물렀다가 또 조용하니 내쉬되 코로 내쉬는 것입니다. 코로 내쉼에 따라서 볼록해졌던 배는 또 차츰차츰 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아까 준비호흡을 할 때는 가슴이 미어지도록 가뜩 들어마셨다가, 한참 억지로 참았다가 내쉴 때는 입을 조금 벌리고 ‘후-’하고 내쉬었지만, 정식 본 호흡으로 들어가서는 코로 들어마시고 코로 내쉬는 것입니다.

한번 해 보세요, 각자. ‘스르르~’하니 들어마셔 가지고 따라서 배가 볼록해졌으면 잠깐 머물러요. 3초 동안 정지했다가 또 조용하니 코로 내쉬어요. 내쉼에 따라서 아랫배가 차츰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그렇게 해서 숨이 다 나갔으면 또 ‘스르르~’하니 들어마셔, 들어마심에 따라서 아랫배가 차츰차츰차츰 볼록, 딱 정지했다가 3초 지난 다음에 또 조용하니 내쉬어. 내쉼에 따라서 배는 차츰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이것뿐인 것입니다.

항상 숨을 들어마실 때 배가 차츰차츰 볼록해진 것을 의식을 하면서 하시라 그 말이에요. 또 내쉴 때는 아랫배가 차츰차츰차츰 홀쪽해지는 것을 환히 느끼면서 배를 차츰차츰 홀쪽하게 하시라 그 말이어요.
그래서 호흡을 쉴 때에, 배가 차츰차츰 볼록해졌다가 머꾸었다가 또 차츰차츰 홀쪽해진 것에다가 항상 우리의 신경을 거기다 두기 때문에, 자연히 머리에 몸에 있는 모든 기운이 단전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경을 머리에다가 두면은 전신의 기운은 머리로 올라가는 거고, 우리의 신경을 단전에다가 두면 전 기운이 단전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또 발에다가 신경을 두면 발로 내려가는 거고, 우리의 생각 두는 곳에 기운도 그리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단전호흡을 하면은 혈압이 높은 사람, 상기 증세가 있는 사람, 골치 아픈 사람, 피로한 사람, 흥분한 사람 모든 그런 증상이 다 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주 간단한 것입니다.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요가를 가리키는 곳에 가면은 여러가지 호흡법이 있고 또 국선도라든지 그런데 가면은 또 여러가지 호흡법이 있습니다마는 그 나름대로 특징이 있고 좋지마는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참선하는데 적합한 호흡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하다 보면 좀 어렵게 느껴지실런지 모르지마는 꼭 고대로 계속해서 하면 나중에는 무심결에 그렇게 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자세를 바르게 하고 또 호흡을 바르게 하고, 그런데 그 들어마시는 시간, 약 3초에 걸려서 들어마시고 또 딱 정지하는 시간도 3초, 내쉬는 시간도 3초, 3초보다 조금 더 길어도 좋아요, 내쉬는 호흡은.
그래서 들어마시는데 3초, 딱 머꾸는데 3초, 내쉬는데 4초 이렇게 하면은 합해서 한 10초, 한번 들어마셨다가 내쉬는데 약 10초 가량 걸릴 것입니다. 그러면은 1분 동안에 약 6번 가량 호흡을 할 수가 있고, 1분이 60초니까 6번을 쉴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체질에 따라서 숨이 조금 짧은 사람은 조금 짧고, 숨이 평소에 긴 사람은 조금 더 길게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마는, 계속해서 이렇게 하다보면 들어마시는데 한 5초, 머무르는데 5초, 내쉬는데 5초 해서 약 15초 걸리게 할 수도 있고,
또 들어마시는데 10초, 머무르는데 10초, 내쉬는데 10초 해서 숨 한번 들어마셨다가 내쉬는데 한 30초에 걸려서 하게도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1년·이태 오래하다 보면.

그렇게 하는데 ‘덮어놓고 길게만 해서 좋다.’ 이리 생각해 가지고, 처음부터서 ‘에이! 난 오늘부터서 숨 한번 쉬는데 30초씩 길게 잡아야겠다’해 가지고, 그렇게 했다하면 큰일나는 것입니다.
무리가 가 가지고 나중에는 숨을 내쉬지도 못하고 들어마시지도 못하고 가슴이 뻑뻑해 가지고 애를 먹게 되고 그것은 기지도 못하면서 날을려고 하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한 3초, 3초, 3초 해서 누구든지 할 수 있는 호흡으로부터 시작해 가지고,
계속 1달·2달 하다가 보면 조금 길어지면 그때는 한 4초, 4초, 4초, 더 나중에 한 1년쯤 지낸 다음에는 한 5초, 5초, 5초, 이렇게 해서 차츰차츰 무리가 하나도 없이 자기에게 가장 편할대로해야 하는 거지,

억지로 무리하게 하면은 가슴이 답답해지는 병이 생기기도 하고 소화도 잘 안되고, 오히려 오래 살기 위해서 단전호흡을 하다가 생병(生病)이 나 가지고 그런 것이니까 절대로 무리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지금 3초씩 3초씩 하라고 했지만 그것도 자기 체질에 너무 길다 싶으면 2초씩 2초씩 해서 한 6~7초 걸쳐서 한 호흡씩을 해도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 차츰차츰 나중에 가서 길어지게 자연히 되는대로 하는 것이지, 호흡을 갖다가 억지로 자기 체질에 안 맞게 무리하게 해서 병이 나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꽉 맥히고 그런 분은 그 반대로>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는 참선하신 지가 오래되어 가지고, 호흡도 여러 가지로 애도 써 보시고 하는데, 항상 이 가슴이 답답해서 여기가 꽉 맥혀 가지고 그러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 분은 아까 말한 ‘호흡을 숨을 들어마실 때 배를 볼록하게 하고, 숨을 내쉴 때에 홀쪽하게 하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가슴이 정 답답하고 숨이 맥히고 그런 분은 그 반대로 하세요.

숨을 들어마실 때 배를 홀쪽하게 만들고, 숨을 내쉴 때 배를 볼록하게 만들고, 반대로 그렇게 하면 그 답답한 것이 얼마 안 해서 없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계속해서 그대로 하셔도 좋고,

또 (가슴이 답답한 것이) 괜찮으면은 아까 처음에 말한대로 그렇게 숨을 들어마실 때는 단전이 볼록하게 되고 내쉴 때는 홀쪽하게 그렇게 하고.
그렇게 해서 정 가슴이 답답하면 그 반대로 숨을 들어마실 때 아랫배를 홀쪽하게 만들고, 숨을 내쉴 때 배를 요렇게 볼록하게 맨들고 하면 그 답답한 것이 없어져요.

그런 것도 본인이 잘 증험을 해서 지혜롭게 해 나가셔서, 자기에게 가장 알맞는 시간과 호흡하는 요령을 체달(體達)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의 목적 - 생사해탈(生死解脫)>

 

이렇게 해서 자세가 바르게 되고 또 호흡이 이렇게 해서 잘 골라지면 화두를 참구하는데,
화두(話頭), 이 화두라 하는 것은 화(話)는 ‘말씀’이란 말이고, 두(頭)는 그냥 어조사로 붙어있는 아무 뜻 없는 말입니다. ‘말씀’이라 그말이여. ‘이뭣고?’란 말씀 또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한 그 말이라 그말이죠.

그 한마디 말을 그것을 ‘화두’라 그러기도 하고 또 그것을 ‘공안(公案)’이라 그러기도 하고 그러는데, 이 참선하는데 있어서 밤낮 이 자세만 바르게 하고 계속 단전호흡만 하고 앉아 있으면 그것은 신선도(神仙道)나 무슨 요가(yoga)하는 사람이나 그런 외도(外道)나 무엇이 다를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우리 참선(參禪)하는 사람은 목적이 이 자성(自性)을 깨달으는 것이 목적이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밤낮 그 호흡만 해 갖고 몸이 건강해지고 설사 백오십 세·이백 세 살아본들 그까짓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말이여.

백 살을 사나, 이백 살을 살다가 죽으나 또는 천 살을 살다 죽으나 죽을 때는 마찬가지인데, 우리 참선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한 것은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것이 목적이거든. 이 몸뚱이를 가지고 오래 사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사해탈하는 것이여.
영원히 생사없는 이치를 깨닫는 것이 우리의 목적인데, 공연히 이 단전호흡만 해 가지고 백오십 세나 이백 세 살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냐 그말이여, 결국은 죽고 말텐데.

영랑 신선은 동해 바다가 3번 마른 것을 보도록 오래 살은 신선이었었지만은 결국은 사람도 아니고 원숭이도 아닌 이상한 몰골을 해 가지고 원효 스님 토굴에 나타난 일화를 여러 분들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마는, 불교는 이 몸뚱이를 가지고 오래 살라고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것은 외도 법이고.

우리 불법(佛法)은 이 몸뚱이는 한번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결국은 늙어서 병들어 죽는 것은 정칙(定則)인데, 그러한 생사(生死) 속에서 생사 없는 놈이 있다 그말이여. 생사 없는 그놈을 깨닫는 것이 불법이여.
그것을 깨달라 버려야 영원히 생사가 없는 것이지, 이 몸뚱이를 가지고 몇백 년 살라고 하는 그런 것이 불교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이 호흡만 밤낮 하고 있어 갖고 뭣할 것이냐 그말이여.

반드시 화두를 참구를 해서 그 공안을 타파해 가지고 확철대오를 해서, 생사없는 진리를 깨달라야 할 것이다 그 말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화두를 참구(參究)하는데, 화두는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화두가 됩니다.
그 천칠백 공안 속의 최초의 화두가 (문을 좀 열었다가 닫으세요. 요쪽을 요리 가운데를 보고 앉으세요. 요리 둘러 앉어. 눈을 뚝 뜨고.)

이 화두, 그 천칠백 화두가 있는데 그 가운데에 최초의 화두요, 동시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가 ‘시삼마(是甚麼)’ 화두입니다.  ‘시삼마’는 우리말로는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그말이여.
‘이것이 무엇이냐?’(처음~35분5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로 좌선(坐禪) 수행을 말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임제종(臨濟宗) ; 중국 선종 제6조(祖) 혜능(慧能)으로부터 남악(南嶽)·마조(馬祖)·백장(百丈)·황벽(黃檗)을 거쳐 임제의현(臨濟義玄)에 이르러 일가(一家)를 이룬 종파이다.
임제종은 북방에서 널리 성행했는데, 송대(宋代)에 석상 초원(石霜楚圓) 문하에서 양기 방회(楊岐方會)의 양기파와 황룡 혜남(黃龍慧南)의 황룡파가 나와, 양기파는 성행했으나 황룡파는 얼마 안 가 쇠퇴함.
양기파 문하의 대혜 종고(大慧宗杲)는 천만 가지 의심도 결국은 하나의 의심에 지나지 않으며, 화두(話頭)의 의심이 깨뜨려지면 천만 가지 의심이 일시에 사라진다고 하여 화두와 정면으로 대결할 것을 역설했는데, 그의 선풍(禪風)을 간화선(看話禪)이라 한다.
*조동종(曹洞宗) ; 중국의 선종은 달마(達磨)로부터 시작하여 당나라 때의 6조(六祖) 혜능(慧能)에 이르러 크게 성했다. 조동종은 이 혜능 문하인 청원행사(靑原行思)의 계통으로부터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와 그의 제자 조산 본적(曹山本寂, 839-901)에 의해 형성된 종파이다.
굉지 정각(宏智正覺, 1091-1157)은 자신이 본래 부처의 청정한 성품을 갖추고 있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묵묵히 좌선만 하면 저절로 그 청정한 성품이 드러난다는 묵조선(默照禪)을 선양하였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이 사용된다.
*요료법(尿療法) ; 요료법은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2)

 

*8부(八部)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만큼.
*소지(掃地) ; ①마당(땅)을 쓸다. ②청소.
*무심경(無心결) ; [주로 ‘무심결에’의 꼴로 쓰여]아무런 생각이 없어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
*생병(生病) ; 무리한 일을 해서 공연히 얻은 병.
*체달(體達) ; 사물의 이치를 통달하여 깨닫음.
*‘이뭣고?’, ‘판치생모(板齒生毛)’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외도(外道) ; 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정칙(定則) ; 정해진 규칙이나 법칙.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