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법문2017. 2. 15.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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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6) (게송)탐착몽중일립미~ / 잡담하지 말자! 무심코하는 잡담이 우리의 정진에 크게 해를 끼친다 / 이 무상한 세계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참선.

 

 생각  생각 일어났다 꺼질   속에 생사가 들어있는 것이고,  생사를 정말 무상한  깨닫고,  생사가 무서운 줄을 아는 사람이라야 헛되이 시간을  보내고 무상 속에 영원을 사는 길을 아는 사람인 것이여.

 

정진이라고 하는 것은 참나를 깨닫는 수행이고 생활이고 공부인데, 이 공부에 제일 해로운 것이 무엇이냐?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우리 수행하는 데에 절대적으로 해로운 것이지마는 그보다도  우리 정진하는데 해로운 것은 잡담(雜談) 것입니다.

 

잡담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 악의 없이 하는 것이 자기를 해롭게 하고 듣는 사람을 해롭게 하고, 자기의 시간을 빼앗고 상대방의 시간을 빼앗는 것이니 정말 수행을 하는 사람은 살생, 도둑질 그런 것은 물론 안 할 것이지마는 잡담은 무심코하는 소리가 그렇게 우리의 정진에 크게 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786)—2017 동안거 해제(17.2.11) (용786)

 

약 15분.

 

탐착몽중일립미(貪着夢中一粒米)타가  실각금대만겁량(失却金臺萬劫糧)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무상찰나실난측(無常刹那實難測)이라  호불맹성급회두(胡不猛省急回頭)

나무~아미타불~

 

탐착몽중일립미(貪着夢中一粒米)타가  실각금대만겁량(失却金臺萬劫糧)이다.

 가운데에 한  쌀알을 탐착(貪着)하다가 금선대, 금대(金臺) 부처님 세계에 만  동안 먹을  있는 양식을 잃어버리는구나.

 

무상찰나(無常刹那) 실난측(實難測)이여. 생사 문제는 앞으로 팔십 , 구십 ,  세까지 사는 사람도 있겠으나 사실은 생사 문제는 오늘 갈지 내일 갈지 모르는 거고.

심지어는 1 후에도 죽을 수도 있고, 5 후에도 죽을 수가 있어서 그래서 무상(無常)이라고 하는 것은 찰나간(刹那間)이라 헤아릴 수가 없어. 그러니 어찌 맹렬히 반성을 하고 급히 마음을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들지 않을까 보냐.(胡不猛省急回頭)

 

‘꿈 가운데에 한 톨의 쌀에 탐착한다  말은,  사바세계(娑婆世界) 정말 꿈속의 생활인 것입니다. 생로병사와 빈부귀천 이런 것들이 전부 꿈속에서 일어나는 상황이고 믿을 것이 못되는 것이지.

그런데  , 백이십 세까지 우리가 살거다하고 마음놓고 그럭저럭 지내다가는 참으로 불법을 옳게 믿는 사람이 아니고, 참으로 무상한 것을 깨달은 사람이 아니여.

 

생사(生死)라고 하는 것은  , 이십 , 육십 , 칠십  뒤에 오는 것이 아니라     지내가는 것이 바로 생사를 향해서 걸어가고 있는 것이지.

 생각  생각 일어났다 꺼질   속에 생사가 들어있는 것이고,  생사를 정말 무상한  깨닫고,  생사가 무서운 줄을 아는 사람이라야 헛되이 시간을  보내고 무상 속에 영원을 사는 길을 아는 사람인 것이여.

 

우리가 오늘   먹고 이렇게 법당에 와서 법회에 참석을  가지고 이렇게 법을 설하고 법을 듣고 이러고 있지마는 정말 무상한 줄을 확실히 깨닫고,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속에 있다고 하는 것을 확실히 믿고 이렇게 말을 하고 여러분이 듣고 그러므로써 비록  사바세계가 무상한 세계이지마는  무상한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정진을 하는데, 정진이라고 하는 것은 참나를 깨닫는 수행이고 생활이고 공부인데, 이 공부에 제일 해로운 것이 무엇이냐?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물론 그것이 우리 수행하는 데에 절대적으로 해로운 것이지마는 그보다도  우리 정진하는데 해로운 것은 잡담(雜談) 것입니다, 잡담.

 

잡담은 누구를 죽이는 것도 아니고, 남을  해롭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만 아무 생각없이 잡담을 하는 것은 정말 자기에게 아무 이익이 없고, 뿐만 아니라 자기를 해롭게 하는 거고.

 

잡담이라 하는 것은 자기만 해로울 뿐만 아니라  잡담을 듣는 사람에게도 해를 끼치는 것이여.  사람의 생각을 잡담을 함으로 해서 생각을 어지럽혀 주고, 잡담을 함으로써  사람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게 되는 것이고.

잡담은 악의(惡意)가 없지마는 자기에게도 해롭고 다른 사람에게도 해롭고, 특히 정진하는 사람에게는 잡담은 정말 해로운 것입니다.

 

잡담을 하다보면 시간이 가는 줄을 모릅니다.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르고 10, 20, 30, 1시간, 2시간이 금방 지나가는 것입니다.

악의없이 하는 잡담이 자기의 시간을 뺏어 가고,  듣는 사람의 시간을 뺏어 가고, 시간만 뺏어 가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혼탁하게 만들고 어지럽게 만드는 것이거든.

 

그래서 잡담이라고 하는 것은  정법을 믿고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삼가해야  종목인 것입니다.

 

살생하고 도둑질하고 음행하고 모다 그런 것은 오계(五戒), 십계(十戒)에 들어있지마는,

 잡담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 악의 없이 하는 것이 자기를 해롭게 하고 듣는 사람을 해롭게 하고, 자기의 시간을 빼앗고 상대방의 시간을 빼앗는 것이니 정말 수행을 하는 사람은 살생, 도둑질 그런 것은 물론 안 할 것이지마는 잡담은 무심코하는 소리가 그렇게 우리의 정진에 크게 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내가 오는  자리에 올라온 것은 법담(法談)을 하기 위해서 올라온 것이 아니고 법문은 이미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우리는 이미  들었습니다. 더이상 내가 거기다 덧붙여서 무슨 법을 설할려고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고, “잡담을 하지 말자!”

 

잡담은 자기의 시간을 빼앗고 상대방의 시간을 빼앗고, 자기의 마음을 혼잡하게 만들고 듣는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니 무심코 풀풀풀풀 끝없이 하는  잡담은 대단히 해로운 것이니 우리 수행하는 사람은 잡담을 하지 말자!’

 

이것을 새해를 맞이해서 여러 도반들에게 부탁을 하고자  스스로도 잡담을 안 하도록 결심을 하면서 여러분들도  산승(山僧)의 간곡히 부탁드리는 말씀을 깊이 명심하시고 잡담하지 말고,  잡담하는  ,  시간으로 이뭣고?’ 해서  사바세계 무상한 혼탁 세계에 우리가 태어났지마는  무상한 세계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참선(參禪)인데.

 

참선에 아주 해로운 것이 잡담인 것입니다. 잡담은 시간을 빼앗아가고 자기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상대방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상대방의 시간을 빼앗아가는 것이니 잡담을 하지 말고,  잡담하는  입으로  시간으로 이뭣고?’ 하자고 하는 이런 간곡한 부탁을 여러 도반들께 부탁하고자 새해 인사로  자리에 올라왔습니다.

 

 말이 옳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전부 손을...(박수)

 

여러분이 이렇게 박수를 침으로 해서 저의 말씀을 깊이 명심하고 앞으로는 잡담을 하지 말고, 잡담하는  시간에 이뭣고?’ 하고 정진을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기로 나와 약속한 것으로 믿고 이것으로써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환자구의원(患者求醫員)이요  영해억모심(嬰孩憶母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환자가, 끙끙 앓고 있는 환자가 의원을 구하듯이, 어린아이가 배가 고파서 엄마를 생각하고 우는 것처럼 그러한 간절(懇切)한 마음으로 이뭣고?’ 함으로 해서 우리의 목적인 생사해탈(生死解脫)하고 참나를 깨달아서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을 반드시   살아있을  성취를 하기를 간곡히 약속을 하고 부탁을 합니다.(처음~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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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탐착몽중일립미~’ ; 성철스님 납자십게(衲子十偈)’에서 회두(回頭)’ 게송 참고.

*탐착(貪着) ; ①만족할  모르고 탐하고 집착함. 탐하고 구하는 . 욕심부려 집착하는 . 집착하는 . 욕심부리는 . 욕심에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대상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 ②깊이 마음에 두는 . 갈애(渴愛), 애착(愛著 愛着), 염착(染著), 집착(執着), 탐애(貪愛), 탐욕(貪欲)이라고도 한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 조건()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 없다[].

*찰나간(刹那間 ·짧은시간 /어찌 나/사이 간) ; 지극히 짧은 시간 동안.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모두 사바세계이다.

*생사(生死) ; ①생과 . 살아 있는 것과 죽은 .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송담스님(No.389)—89(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 생각 일어날  새로 태어난 것이고,  번뇌가 꺼질   죽는 ,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것이 바로 생사(生死)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생각이 일어날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 ,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 ; 자기의 뜻에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 ; 인과(因果)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잡담(雜談 섞일·잡동사니·여러 가지 /말씀·말할 ) ; ①쓸데없이 지껄이는 . ②쓸데없는 말을 지껄이다.

*악의(惡意) ; ①남을 해치려 하거나 미워하는 악한 마음. ②옳지 않거나 좋지 않은 의미나 의도.

*오계(五戒) ; (산스크리트어 pañca-śīla) 재가(在家) 신도가 지켜야  다섯 가지 계율.

①불살생(不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 ②불투도(不偸盜). 주지 않은 것을 빼앗지 말라. ③불사음(不邪).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④불망어(不妄語). 거짓말을 하지 말라. ⑤불음주(不飮酒). 취기(醉氣) 있는 것에 ()하지 말라.

*무심코(無心코) ; 아무런 뜻이나 생각이 없이.

*법담(法談 부처의 가르침 법/말씀·말할 담) ; 불교의 도리에 관하여 나누는 이야기. 또는 그러한 설법(說法). 선사(禪師)들이 본분(本分 : 근본 깨달음本覺) 대하여 서로 묻고 대답하는 . 법화(法話) 같은 .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게송) 환자구의원 영해억모심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朴敬勛 , 동국대학교 역경원) p127 ‘벽천선화자(碧泉禪和子)에게 게송 참고.

사중구의원(死中求醫員)  영해억모심(嬰孩憶母心)

죽을병든 사람이 의원(醫員)을 구하듯 그렇게 간절하게 하고, 어린 아이가 엄마를 생각하듯 하라.

주공친절처(做工親切處)  홍일상동령(紅日上東嶺)

그렇게 공부를 간절히 지어서 친절한 [친절처親切處 : 불도佛道와 매우 친하게 된 경지]에 이르면, 서쪽에 졌던 붉은 해가 그 이튿날 새벽이 되면 동쪽 산에 떠오를 것이다(반드시 확철대오 할 때가 올 것이다).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정성스런·절박할 )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Posted by 닥공닥정
대중 생활2015. 7. 14. 17:11

§(527) 한 생각 단속하는 그 자리가 바로 선방 / 화두만 챙기면, 다 그것이 법문(法門) / 선방 규칙에 순응해야 / 음식 조심, 잡담 조심.

 

어디를 가건, 해제 동안을 어느 산 어느 물을 넘고 건너가건, 우리의 일대사(一大事) 문제는 중단할 수가 없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고, 차를 타거나, 배를 타거나, ‘한 생각’ 단속을 하면 있는 그 자리가 바로 선방(禪房)인 것입니다.

 

무슨 얘기를 듣건, ‘이뭣고?’를 놔 버리고 들으면은 그것이 다 번뇌(煩惱)요 망상(妄想)이요 잡담인데, 터억 ‘이뭣고?’를 들고서 그냥 들으면 다 그게 화엄경(華嚴經)이여. 하나도 버릴 것도 없고. 내 자신이 옳다 그르다 시비심을 내니까 그 말이 잡담이 되는 거고, 그것이 나한테 방해가 되는 것이지, 내가 그 말을 듣고 화두만 딱 챙긴다면 무슨 상관이 있느냐.

 

맛있는 음식을 보면 ‘조금 더 먹고 싶다’할 때 딱! 숟갈을 놓을 줄 알아야 하거든. 이것이 수행인의 지조(志操)여 그게.

 

**송담스님(No.527)—94년 동안거해제 법회(94.01.15.음) (용527)

 

 

약 19분.

 

 

오늘 이 자리에는 용주사 중앙선원 대중, 그리고 화운사 선원 대중, 회룡사 대중 그리고 대전의 세등선원 대중, 전주 위봉사 대중, 용화사 법보선원 대중이 한자리에 이렇게 모이셨습니다. 멀고 가까운 데 토굴에서 정진하는 도반들도 많이 오신 것 같습니다.

 

오늘 해제(解制)를 맞이해서 또 걸망을 지고 다시 또 어느 산, 어느 선지식 또는 어느 도반을 찾아가기도 하고 또는 은사 스님과 또 존경하는 어떤 분을 찾아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디를 가건, 해제 동안을 어느 산 어느 물을 넘고 건너가건, 우리의 일대사(一大事) 문제는 우리가 중단할 수가 없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고, 차를 타거나, 배를 타거나, 터억 ‘한 생각’ 단속을 하면 있는 그 자리가 바로 선방(禪房)인 것입니다.

 

 

하근기(下根機)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제일 정진에 해로워.

입이 있으니 말을 안 할 수가 없고, 귀가 있으니 무엇을 안 들을 수가 없고, 배고프면 먹게 되고, 목마르면 마시게 되는데, 무슨 말을 듣거나—상대방 말은 그저 그냥 들어두는 거여.

 

듣고서 ‘옳다, 그르다’ 시비심을 낼 필요가 없어.

‘아, 그러냐고’ 이쪽 귀로 들어와 가지고 이쪽 귀로 스쳐나가도록 놔둬. 가운데 뚫어졌는가 어쩐가 모르겠는데, 그냥 들리는 대로 놔두고, 나는 속으로 터억 본참공안(本參公案)을 들고...

 

객실에서 잡담을 하거나 말거나, 지대방에서 잡담을 하거나 말거나, 떠들면 떠드는 대로 그냥 놔둬. 놔두고 나는 성성(惺惺)하게 잡드리를 해 보시라 그말이여.

 

세속적인 잡담을 하거나, 절간의 무슨 얘기를 하거나, 정치 얘기를 하거나, 스님네들이 여럿이 모이다 보면 산중에 있으면서도 정치에 대해서 아주 잘 아는 분도 있고, 예술에 대해서 잘 아는 분도 있고, 세속에 대해서도 참 잘 아는 분이 많아.

 

그냥 듣고서 나는 ‘이뭣고?’만 챙기면, 자기 본참화두만 챙기면, 다 그것이 법문(法門)이여. 

 

‘이뭣고?’를 놔 버리고 들으면은 그것이 다 번뇌(煩惱)요 망상(妄想)이요 잡담인데, 터억 ‘이뭣고?’를 들고서 그냥 들으면 다 그게 화엄경(華嚴經)이여. 하나도 버릴 것도 없고.

 

내 자신이 옳다 그르다 시비심을 내니까 그 말이 잡담이 되는 거고, 그것이 나한테 방해가 되는 것이지, 내가 그 말을 듣고 화두만 딱 챙긴다면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말이여.

물 흘러가는 소리나, 바람 부는 소리나, 새가 우는 소리나, 무엇이 다를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아무 상관이 없거든.

 

해제했다고 해서 우리가 그럭저럭 지내면 안 된다 그거거든. 물론 해제를 했으니까 자고 싶을 때 자고, 눕고 싶을 때 눕고...

결제 동안에는 시간이 딱 정해져 가지고 있어서 좀더 눕고 싶어도 못 눕고, 더 앉았고 싶어도 잘 못 앉았고, 죽비 치고 입선을 하면은 밖에 나가고 싶어도 나가지도 못하고 여러 가지로 크고 작은 구속이 있었을 것입니다. 

 

해제를 했으니까 이제는 아무 데라도 가고 싶은 데로 가고, 팔도강산 아무 데라도 가고 싶은 데로 갈 수가 있을 것이여. 그러나 그 가는 것을 억지로 막을 수도 없고 붙잡을 수는 없습니다.

또 해제를 했으니까 어디서 오라고 하는 데는 없어도, 벌써 진즉부터 걸망이 들썩들썩 걸망귀신이 가만히 안 있거든.

 

그래서 가시는 것은 좋은데, 제가 도반으로서 노바심절(老婆心切)한 마음으로 부탁을 하고 싶은 것은 가실 때 가시라 이거거든.

가시되,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이 아니라, 가시는 걸음걸음 떠억 화두를 들고 가시라 그거거든.

 

가다가 배고프면 빵도 사먹고, 주스도 사먹고, 해제 하고 떠날 때는 그렇게 참!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데는 많다’고 참 좋은데,

화두 하나만 딱 챙기고 댕기다가, 여기저기 댕겨 봤자 별로 썩 좋을 곳이 없으면 또 다시 오시라 이거거든. 언제라도 여기는 문이 열려 있으니까 다시 와서 또 정진을 하시라 이거거든.

 

 

그런데 그 동안에는 삭발 목욕일(削髮沐浴日)에는 아무 데라도 자유롭게 일주문(一柱門) 밖에 나가기도 하고, 또 반산림(半山林) 때는 어디 경기도 과히 멀지 않는 데에 등산도 하시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다음부터서는 삭발 목욕일에도 요 도량 안에 좋은 목욕탕이 있으니까 여기서 목욕을 하고 삭발도 하고 그리고 뭐 찰밥이 되었건 빈대떡이 되었건, 맛있는 거 잡수고 싶으면 해 달라고 허셔! 그러되 일주문 밖에는 나가지 말고 이 도량 내에서 정진을 하시도록.

 

또 반산림 때 등산을 했는데 이 다음부터서는 등산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등산을 하니까 나가서 젊은 스님네는 차도 타고 걷기도 하고, 산도 갔다 오고 하니까 스트레스도 해소가 되고 대단히 좋고,

또 갔다 와서 기분을 일신(一新)해 가지고 또 새로운 마음으로 인자 정진을 하고 좋은 점 있으리라 생각하고, 나도 충분히 이해를 합니다마는,

 

갔다 와서는 며칠 동안 그 여독이 풀리지를 않고, 나가게 되면 모다 먹을 거 음식이라든지 여러 가지가 부작용이 일어나고, 그래서 일단 결제 하고 나면 해제할 때까지는 일주문 밖에를 나가지 않고 정말 이 도량 내에서 모든 일을 해결하도록 이렇게 했습니다.

 

그 전에는 어느 선방이고 다 그렇게 했습니다. 중국도 그렇고 어디나 다 그렇게 했습니다. 한국도 다 그렇고.

심지어는 ‘부모가 돌아가셨다, 누가 돌아가셨다’ 부고장(訃告狀)이 와도 결제 중에는 본인한테 알리지를 않고, 종무소에서 딱 간직하고 있다가 해제하고 부고장을 보인 것입니다.

 

결제하면 일단 금족(禁足)이거든.

일주문 밖에 나갈 수가 없고 도량 내에서 정진을 하고 여법하게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데 차츰차츰 완화가 되었는지 문란해졌는지 결제 중에도 왔다갔다 하고 일주문 밖에 나가고 그래서,

다른 선방에서는 어떻게 하건 말건, 용화사 법보선원은 구식이 되었건 말건, 옛날식으로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다 안 그러지만 법보선원만큼은 그렇게 한 번 그렇게 지내는 그런 도량으로 가꾸어 나갔으면 이런 생각입니다.

 

나가되 나간 바가 없고, 무엇을 먹어도 한 알갱이 쌀도 씹지 않고, 천리만리를 걷되 한 조각 땅도 밟은 바가 없다면 그런 경지라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한 경지에까지 이르러서 무애(無礙)하고 자유자재하다면 구태여 또 방부(房付)를 들일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그 선원에 방부를 들이면 구순 안거(九旬安居) 동안에는 그 선원의 규칙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보살 화현(化現)으로 방부를 들였다 하더라도 방부를 들인 이상은 그 선방의 규칙에 순응을 해야 해.

 

왜 그러냐? 자기 자신은 상관이 없어.

자기 자신은 담을 넘어서 나가서 뭘 먹고 들어오거나, 맘대로 왔다갔다 해도 자기의 공부 분상(分上)에는, 상근기(上根機)는 상관이 없겠으나, 후배를 위해서 상근기도 하근기와 발을 맞춰서 가야 하는 거여.

 

어른은 발이 길고 발이 빨라서 빨리빨리 걸어가지만, 일단 어린애 하고 손을 잡고 갈 때에는 어린애의 발에 맞춰서 걸어가야지, 어린애 손을 잡고 가면서 어른이 제멋대로 가면 어린애가 따라 올 수가 없고, 팔이 빠지거나 그 몸을 다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일단 같이 손을 잡고 갈 바에는 같이 보조를 맞춰야 하는 거여. 그래서 그러한 정도의 마음가짐을 가지신다면 90일 동안 일주문 밖에 안 나간다고 해서 그렇게 못 견딜 일이 없다.

구참(舊參)은 구참대로 얼마든지 모범을 보이실 수가 있고, 신참(新參)은 좀 바람 좀 쐬고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가 있으나 그런 대로 구참의 모범을 따라서 지내 놓고 보면 안 나가도 아무 일이 없는 거다 그말이여.

 

 

맨 처음에 참선을 이 가부좌하는 법을 배우고, 반가부좌하는 법을 배워 가지고 앉았으면, 1시간 동안을 방선(放禪) 죽비칠 때까지 앉았으면 발이 저려.

저려서 처음에는 아프다가, 나중에는 아픈 줄도 모르고 완전히 두 다리가 마비가 되어 가지고 내 다리가 아닌 것처럼 됩니다.

 

처음에는 다리가 아프면 이쪽으로 바꿨다 이쪽으로 바꿨다, 발을 뒤로도 돌려서 앉아보고 이리도 돌려서 앉아보고, 안절부절을 하면서 이 좌선을 익혔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조금 저려도, 아퍼도 참고서 있다 보면 자연히 그 저린 것이 풀리게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리가 아프고 저리다고 해서 그것을 못 견뎌 가지고 안절부절하고 일어섰다 앉았다, 다리를 뻗었다 오그렸다 그래 가지고서는 좌선에 길이 들지를 않애. 꽉 참고, 방선할 때까지 고대로 참고 지내다 보면 저절로 나중에는 풀리게 되어.

 

그래서 좌선을 처음에 시작하기 전에 다리를 뻗고 발목도 돌리고 발목 운동도 하고, 몸도 좌우로 흔들고 준비 운동을 한 다음에 좌선에 들어가고,

또 죽비를 치고 방선을 해도 불쑥 그렇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발목도 좌로 돌리고 우로 돌리고 또 밖으로도 뻗치고 안으로도 오그리고, 다리를 쭉 펴기도 하고, 이렇게 해서 몸을 좌우로 흔들고, 그렇게 해서 준비 운동을 잘한 다음에 일어날 때 두 손을 방바닥에다 대고서 가만히 이렇게 일어나야 하거든.

 

일어나고 걸어갈 때도 갑자기 펄떡펄떡 뛰어서 높은 데서 뛰어 내리고 달음박질하고 그런 게 아니라, 좌선한 뒤끝에는 걷기도 가만가만 걷기 시작하고 그러지, 일어나자마자 뛰어 댕기는 법이 아니여.

 

 

그리고 해제하고 어디를 가시더라도 음식을 혹 맛있는 것을 먹게 되기도 하고, 참 어느 도반 절이나 은사 스님한테 가면 그동안에 석 달 동안에 참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정진을 하느라고 애썼다고 아주 영양가 높은 그런 것을 먹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음식이라 하는 게, 맛있는 것일수록에 적게 먹을 줄 알아야 하거든.

모처럼 맛있는 것 만났다고 잔뜩 넣고, 손가락 넣으면 묻어나올 정도로 먹어 놓으면 소화가 안 되어 가지고 배탈이 나고 설사를 하고 여러 날을 고생을 하게 되거든.

 

그래서 맛있는 음식을 보면 ‘조금 더 먹고 싶다’할 때 딱! 숟갈을 놓을 줄 알아야 하거든. 이것이 수행인의 지조(志操)여 그게.

수행하는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보면은 옆에 사람 먹어 보라는 말도 않고 잔뜩 먹고 껄껄하면 그게 좋지 못한 거여.

 

음식 조심하고, 잡담 많이 하지 말고,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거나 항상 화두를 들고 단속을 하고, 여기 산철에 또 방부를 들일 때가 있으면 방부들이고, 다시 또 인연이 도래하면 또 와서 정진을 하고 우리가...(39분36초~57분5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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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하근기(下根機 아래 하/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질이나 근성, 능력이 가장 낮은 사람.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번뇌(煩惱) : 망념(妄念)이라고도 하는데, 몸과 마음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정신작용의 총칭이나, 이곳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 이외의 모든 생각을 말함.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화엄경(華嚴經) ; 본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며, 이 경은 부처님께서 성도(成道)한 깨달음의 내용을 그대로 표명한 경전이다.

3가지 번역이 있는데, 60권은 동진(東晋)의 불타발타라(佛駄跋陀羅) 번역이고, 80권은 당(唐)의 실차난타(實叉難陀) 번역, 40권은 당(唐)의 반야(般若) 번역임.

이 가운데 40권은 60권과 80권의 마지막에 있는 입법계품(入法界品)에 해당하며, 십지품(十地品)과 입법계품(入法界品)만 산스크리트 원전이 남아 있다.

 

[참고] 법장현수(法藏賢首) 스님의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에 보면,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용궁(龍宮)에 가서 대부사의경(大不思議經=화엄경)을 보았는데, 상본·중본·하본 3가지 본(本)이 있었다. 그 중에 상본(上本)이 십삼천대천세계미진수(十三千大千世界微塵數)게송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었다 한다.

중본(中本)은 49만 8800게송 1200품(品)이고, 하본(下本)은 10만 게송 38품이었다 한다. 용수보살이 상본과 중본은 사바세계 사람들 마음의 힘으로서 능히 가질 수 없으므로 전하지 않고, 하본(下本)을 외어 세상에 전하였고 또 그것을 간략히 한 약본(略本)이 80권 본, 60권 본이 되었다 한다.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은 ‘미진수(微塵數 셀 수 없는 무한수)’의 품(品)으로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모든 현상—삼라만상(森羅萬象) 전부가 그 화엄경을 이루고 있으며, 곧 비로자나(毘盧遮那) 전신체(全身體)로 우리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말한다.(전강선사 법문 275번 참고)

*걸망 ; 물건을 담아서 등에 질 수 있도록 만든 자루 모양의 큰 주머니.

*노바심절(老婆心切) ; 노파(老婆)가 자식·손자를 애지중지 하듯이, 스승이 수행자에게 나타내는 자비심으로 지극히 친절(親切)하다는 뜻.

*삭발일(削髮日) ; 스님들이 정해놓고 머리를 깎는 날.

불교에서는 머리카락을 무명초(無明草) 즉 ‘무명의 풀’로 보기 때문에 삭발은 인간 내면의 무명과 번뇌, 아집과 교만을 잘라 내버리겠다는 새로운 각오와 서원을 의미한다.

*일주문(一柱門) ; 사찰로 들어가는 첫번째 문으로, 한 줄로 세운 기둥 위에 맞배지붕 양식으로 되어 있음.

일심(一心)을 상징한다. 붓다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붓다의 진리를 생각하며 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반산림(半山林) ; 안거 기간의 중간.

*일신(一新)하다 ; ①(사람 기분이나 분위기)아주 새롭게 하다. ②(기분이나 분위기)아주 새로워지다.

*부고장(訃告狀) ; 사람의 죽음을 알리는 글.

*금족(禁足 금할 금, 발 족) ; ①일정한  있게 하여 으로 나가지 못하게 . ②결제(드나들지 못하게 .

*무애(無礙, 無碍) ; 산스크리트어 apratihata 의 한역어(漢譯語). 무장애(無障礙), 무가애(無罣礙)라고도 한다.
①물질적으로 공간의 일부를 차지하지 않는 것. 다른 것을 거부하지 않는 것. 장애를 주지 않는 것.
②막힘이나 걸림이 없음. 거침없음. 거리낌없음.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 자재함.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구순 안거(九旬安居) ; 수행(修行)하는 스님들이 한 곳에 모여 외출을 금지하고 도를 닦는 일을 안거(安居)라 하는데, 하안거(夏安居,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 동안거(冬安居, 10월 15일부터 이듬해 1월 15일까지)의 한 안거 기간이 90일 이므로 구순 안거(九旬安居)라 한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분상(分上 분수 분, 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상근기(上根機 위 상/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질이 매우 뛰어난사람.

*구참(舊參 옛•오랠 구/참구할•참여할 참) ; 다년(多年)에 걸쳐서, 오랫동안 스승을 따라, 수행을 쌓은 사람.

*신참(新參 새·처음 신/참구할·참여할 참) ; 단체나 부류에 새로 참가하거나 들어옴. 또는 그런 사람.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지조(志操 뜻 지, 절개 조) ; 원칙과 신념을 굽히지 아니하고 끝까지 지켜 나가는 꿋꿋한 의지나 기개.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4. 9. 17. 06:53

 

 

§(760) (게송)수행막대빈모반~ / (게송)진로형탈사비상~ / 잡담(雜談)하지 마라 / 정진과 소임이 둘이 아니다 / '한 생각'을 정말 알뜰히 단속을 해야.

신심과 분심이 철저하면 화두(話頭)에 대한 철저한 의심이 돈발(頓發)하게 되어 있습니다.


잡담을 하면 자기에게도 해로울 뿐만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해를 끼치고 제3자에게도 해를 끼치니 우리 정진하는 사람에게는 잡담이 제일 해로운 것입니다.


수행도 정말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알뜰히 정진을 하고 알뜰히 단속을 해야, 의단이 독로하고 화두가 순일해서 어떠한 찰나(剎那)에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자성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소임을 알뜰히 살면서 정말 이 정법을 믿는 사람은 화두를 들고 아침으로는 법문을 들으면서 하루 일과를 알뜰히 살아간다면, 비록 머리는 안 깎았어도 출가한 스님과 마찬가지로 정진할 수 있습니다.


**송담스님(No.760)—2013(계사년) 하안거 결제(05.24) (용760)

 

(1) 약 10분.

 

(2) 약 13분.


(1)------------------

수행막대빈모반(修行莫待鬢毛斑)하라  호리신분진소년(蒿裡新墳盡少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일실인신기시환(一失人身幾時還)고  지옥시장기등한(地獄時長豈等閑)고
나~무~아~미~타~불~

수행(修行)을 막대빈모반(莫待鬢毛斑)하라. 수행(修行)하는데 귀밑을 희기를 기다리지 말아라.
나이가 40, 50이 넘어가면 차츰차츰 흰머리가 하나씩 둘씩 생겨나는데, 수행을 머리털 흴 때 하리라 그렇게 기다리지 말라.
호리신분(蒿裡新墳)이 진소년(盡少年)이다. 쑥대밭에 새 무덤이 다 소년의 무덤이 많다.

일실인신기시환(一失人身幾時還)이면, 한 번 사람 몸을 잃어버리면 언제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 것이냐!
지옥시장기등한(地獄時長豈等閑)고, 지옥에 한 번 떨어지면 팔만사천 겁(劫)을 지내도 벗어나기가 어렵다. 더군다나 어떻게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할 것을 기대할 수가 있겠느냐?

사람이 생겨난 때가 없어.
비록 금생에 사람 몸 받았다하지만은 그 이전에도 우리의 생명은 몇 억만 겁 전에부터서 우리는 사람이 되었다, 업(業)에 따라서 천당(天堂)에도 가고, 축생(畜生)도 되고, 축생도 가지가지 축생으로 태어났다가 다시 또 사람이 되고.

그런데 수백만 번을 몸을 바꿔서 태어나면서 육도(六途)를 윤회(輪廻)하다가 금생에 다행히도 사람 몸을 받았는데,
사람 몸을 받았으나 인생이 무상(無常)함을 철저히 깨닫고 발심(發心)을 해서 불법을 믿고 출가해서 스님이 되는 것은 더 말할 수 없이 다행한 일이고.

사정에 따라서 출가해서 스님이 못되었더라도 가정에 살면서 결혼해 가지고 아들딸 낳으면서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면서도 불법을 믿고, 법문(法門)을 듣고 참선(參禪)을 하는 분도 많은데 그러기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말이지.

여태까지 우리가 성불(成佛)을 못한 것은 수많은 몸을 받아났으면서도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철저하게 수행을 못했기 때문에 아직도 성불을 못한 채 이렇게 중생(衆生)의 몸으로 있다 그말이야.

신심(信心)! 무엇을 믿느냐 하면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코로 냄새 맡고, 입으로 음식을 먹고, 몸으로 느끼고, 생각으로 슬퍼하고 기뻐하고 이러한 작용을 하는 — 작용력이 있는 그것이 바로 우리의 자성(自性) 자리인데.

그 자성 자리는 부처님이나 보살님이나 우리 중생(衆生)이나 축생이나 그 자성(自性) 자리 자체는 조금도 차등이 없지만,
그러한 부처님과 똑같은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아서 성불을 못하면 고대로 중생으로서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는 것이고,

자기한테 그런 부처님과 똑같은 불성이 있다고 하는 것을 철저히 믿고 발심을 해서 비록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났지만은 철저하게 무상함을 깨닫고 정법을 믿고 수행을 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이며.

그렇게 해서 신심과 분심(憤心)과 — 분심은 무슨 분심이냐?
‘왜 억만 겁(劫)토록 불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직도 내가 깨닫지 못했던가? 무엇을 하느라고 여태까지 성불을 못했는가?’ 생각해 보면, 분심이 날 수밖에는 없어.

그래서 신심과 분심이 철저하면 화두(話頭)에 대한 철저한 의심이 돈발(頓發)하게 되어 있습니다.

방금 조실스님의 녹음 법문을 통해서 ‘이뭣고~?’ 화두에 대해서 그렇게 간곡히 자상하게 법문을 해주셨는데,
정말 옛날에는 녹음기가 없었지만 지금은 다행히 녹음기가 있어서 조실스님의 육성(肉聲) 법문을 녹음기를 통해서 언제라도 들을 수 있으니 그 법문을 듣고 참회(懺悔)하고 분심을 내서,
그날 하루하루를 짬지게 알뜰하게 산다면 비록 사바세계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무상을 깨닫고 정진을 할 수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옛날에 부처님 이후로 역대 조사(祖師)스님이 계시지만은 경전으로는 그 법문이 전해 내려오지만은 그 육성(肉聲)은 들을 수가 없습니다.

다행히 녹음기라고 하는 기계를 발명을 해 가지고, 조실스님의 녹음 법문을 살아계신 조실스님한테 듣듯이 그 법문을 들을 수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아침 6시부터 40분간 불교 방송국에서 저의 설교한 것이 방송이 됩니다.
그것을 들으면 내가 들어도 ‘아, 내가 저런 말을 했구나’하고 감개(感慨)가 새롭고, 아침에 늦게까지 잠자지 말고 6시에는 꼭 일어나서 법문을 들으시고, 그날 하루를 알뜰하게 정진하면서 살아가신다면 참 좋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박수)(처음~10분4초)

 

 

 



(2)------------------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이면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지금 이 자리에는 용화사 법보선원 15명 대중, 인제 용화선원 49명, 광주 용화선원 13명, 용주사 중앙선원 17명, 망월사 천중선원 24명, 약사암 10명, 위봉사 위봉선원 31명, 승련사 9명, 원효사 송나선원 17명, 회룡사 선원 20명, 세등선원 18명, 복전암 22명, 전라도 끄터리 도덕사 3명 — 합해서 248명의 수좌(首座)들이 이 법당에 참석을 했습니다.
그밖에도 여러 사찰에 청신사∙청신녀, 신심(信心)있는 신도님들도 많이 참석을 하셨습니다.

비록 13개 선방(禪房)으로 갈라져서 각각 그 선방에서 정진을 하고 있지만은 우리는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의 법문을 들으면서 열심히 정진을 하기 때문에,
비록 장소는 여기저기 떨어져 있어도 같은 신심과 같은 믿는 선지식(善知識)의 법문에 의해서 정진을 하기 때문에 비록 멀고 가까운 것에 상관없이 한 도량에서 정진하고 있다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하루하루를 정진을 하면 잡담(雜談)하고 그럭저럭 지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항상 우리가 한 회상(會上)에서, 한 선방에서 같이 정진을 하고 있으면 말 한마디 잡담을 할 수도 없고, 허튼소리 할 수도 없고 그럭저럭 시간을 보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항상 같이 우리가 정진하고 있다는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정진을 해서 석 달 동안, 90일 동안을 하루같이 그렇게 알뜰하게 정진을 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잡담을 하면 자기에게도 해로울 뿐만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해를 끼치고 제3자에게도 해를 끼치니 우리 정진하는 사람에게는 잡담이 제일 해로운 것입니다.

그러니 잡담을 하지 말고 선방에서 죽비를 치고 입선(入禪) 시간뿐만이 아니라 방선(放禪) 시간이나, 공양하고 난 뒤끝이나, 소지(掃地)를 하거나,
또 각기 소임 따라서 용상방(龍象榜)에 어제 다 방을 짰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만은 각자 자기가 맡은 소임(所任) — 선덕이나 입승이나 부전이나 공양주나 채공이나 별좌나 모든 소임은 각기 분 따라서 다른 소임을 맡았으나 그 소임을 충실히 하면서,

소임을 보면서도 항상 경건하게 화두를 들면서 그 소임을 보아 나아가면 오히려 소임 보는 것이 자기의 정진에도 보탬이 되고 소임을 각자 열심히 살므로 해서 다른 스님네가 정진을 장애(障礙)없이 잘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소임'이라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자기가 맡은 소임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자기 한 사람으로 해서 여러 대중 스님네께 수행을 해나가는데 지장(支障)을 주는 것인 만큼 소임을 예사로 생각하지 말고,
항상 경건한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소임을 살면서 그 속에서 또 정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진! 정진과 소임이 둘이 아닌 것을 확실히 깨닫고 열심히 소임을 보면서 수행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다.
진로형탈(塵勞逈脫)이라 하는 것은 이 사바세계 우리가 생로병사(生老病死)와 희로애락(喜怒哀樂)과 성주괴공(成住壞空), 그러한 살아가는 것이 수고로운 것인데, 진로형탈—‘생사윤회(生死輪廻)를 벗어난다’고 하는 것은 이것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정말 이 일상생활 속이 정진을 안 한 사람은 온통 업(業)을 짓는 것이고, 진로(塵勞) 속에서 몸부림치는 것이지만 그 속에서 떠억 화두를 챙기고 정진을 하면 일상생활이 바로 그것이 수행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다, 소임을 보면서도 승두(繩頭)를 꽉 잡아 — 승두가 무엇이냐 하면은 화두를 들고 정진하는 사람은 ‘화두’인 것입니다.
숨을 들여마셨다 내쉬면서 ‘이뭣고~?’, 기분이 나쁠 때도 ‘이뭣고~?’, 언짢은 말을 들어도 ‘이뭣고~?’,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일체처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놓치지 않도록 잘 잡드리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이다, 한바탕 정진을 해 가지고 그 추위가 뼛골에 사무치지 아니하면,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고.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침을 얻으리오. 매화는 되게 강추위를 한 뒤끝에 피어야 향기가 난다는 것입니다.

수행도 정말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알뜰히 정진을 하고 알뜰히 단속을 해야, 의단이 독로하고 화두가 순일해서 어떠한 찰나(剎那)에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자성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럭저럭 잡담이나 하고 그럭저럭 지내면 3년, 10년, 30년을 선방에서 산다 하더라도 공부에 진취가 없는 것입니다. 공부라 하는 것은 꼭 오랜 세월 해야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길게 무엇을 연구해 갖고 알아지는 것이 깨달음이 아니고,
알뜰하게 화두를 단속해서 화두가 순일하고 의단이 독로해야 거기에서 어떠한 찰나에 화두를 타파하게 되는 것이니, 한 생각 한 생각을 정말 알뜰히 단속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자(富者)는 공연히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알뜰히 작은 돈을 잘 함부로 쓰지 않고 모아 가지고 그래 가지고  큰 돈이 되는 것이지,
부자라 돈이 많으니까 돈을 아무렇게나 풀풀 써버릴 것같지만은 부자일수록에 더 재산을 소중히 알고 돈을 소중히 간직했다가 쓸 때 알뜰하게 쓰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량겁(無量劫)을 오늘까지 살아왔지만은 ‘우리를 끌고다니는 나의 마음자리, 나의 주인공를 정말 얼마나 알뜰히 단속을 하면서 살아왔는가?’ 냉정히 반성을 해봐야 하는 것입니다.

선방에서 살면 소임없이 살 수 없는 거고, 가정에서도 남편은 남편의 할 일이 있고, 아내는 아내의 할 일이 있고, 가족은 가족 나름대로 다 자기 할 일이 있고, 학생은 공부하고.
그런데 그 자기의 소임을 알뜰히 살면서 정말 이 정법을 믿는 사람은 화두를 들고, 아침으로는 법문을 들으면서 하루 일과를 알뜰히 살아간다면 비록 머리는 안 깎았어도 출가한 스님과 마찬가지로 정진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어 가지고 그럭저럭 지내는 것보단, 머리를 안 깎았으면서도 세속에서 살림하면서도 알뜰히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신심, 그러한 분심, 그러한 의심으로 금년 계사년 여름 하안거 정진을 스님네나 보살님네나 거사님이나 정말 산승이 오늘 이렇게 간곡히 말씀드린 말씀을 깊이 명심을 하고 정진을 잘 하시기를 부탁을 합니다.(처음~22분39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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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수행막대빈모반~’ ; [치문경훈(緇門警訓)] '잡록(雜錄)'에서 '굉지선사시중(宏智禪師示衆)' 참고.
[참고] 〇宏智禪師示衆
蒿里新墳盡少年  修行莫待鬢毛斑  死生事大宜須覺  地獄時長豈等閒
道業未成何所賴  人身一失幾時還  前程黑暗路頭險  十二時中自着奸


굉지(宏智)선사가 대중에게 보임.
쑥대밭에 새 무덤이 다 소년의 무덤이니, 수행(修行)하는데 귀밑을 희기를 기다리지 말아라. 생사대사(生死大事)를 모름지기 깨달아야 하니, 지옥 고통 길고 기니 어찌 등한히 하겠는가.
도업(道業)을 못 이루면 그 무엇에 의지하며, 사람 몸 한 번 잃고 언제 다시 돌아오리. 앞길이 캄캄하고 가야 할 길 험하구나. 하루 어느 때나 마음을 다잡아 도(道)를 구하여라.
*쑥대밭 ; 쑥이 무성하게 나 있는 거친 땅.
*겁(劫) : [범] Kalpa  음을 따라 갈랍파(羯臘波) 또는 겁파(劫波)라 하고, 다시 줄여서 겁(劫)이라고만 한다. '무한히 오랜 세월'을 가리키는 말이다.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천당(天堂) ; ①천상(天上)에 있다는 신(神)의 전당(殿堂), 하늘의 세계.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모든 하늘을 통칭하는 말. ②정토교(淨土敎)의 극락세계(極樂世界).
*축생(畜生) ; 삼악도(三惡道) 또는 육도(六道)의 하나로, 죄업 때문에 죽은 뒤에 짐승으로 태어나 괴로움을 받는 세계.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6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출가(出家) : [범] Pravrajita 집에서 나온다는 말이다。가정 생활을 떠나서 수도와 포교를 전문으로 하기 위하여, 승려가 되는 것을 말함이다。그러나 몸 출가(身出家)보다도,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등 삼독(三毒)의 불이 늘 붙고 있는 번뇌 망상의 불집에서 뛰어나오는 마음 출가(心出家)를 하여야 한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로 좌선(坐禪) 수행을 말한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깨달음을 여는 것. 각자가 스스로 무상의 깨달음을 열고, 부처가 되는 것. ④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감개(感慨) : 마음속에 어떤 느낌이나 감정이 강하게 복받쳐 일어나는 것. 또는, 그 느낌이나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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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전강선사(田岡禪師) ;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음)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셨다.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 선사의 법맥을 이으셨다.


33세의 젊은 나이로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 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고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 12월 2일(음)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하시고 앉아서 열반에 드셨다.
그리고 후학(後學)을 위한 700여 개의 육성 법문테이프를 남기셨다.
세수(世壽) 77세, 법랍(法臘) 61세.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소임(所任) : 맡은 바 직책이나 임무.
*용상방(龍象榜) ; 절에서 하안거·동안거 결제 때나, 큰일을 치를 때에 각자 할 일을 정해 붙이는 명단. 행사가 끝날 때까지 모든 사람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붙여서 각자가 맡은 일에 충실하도록 한 것이다.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다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 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Posted by 닥공닥정
대중 생활2014. 6. 29. 08:33

<핸드폰에서, 아래 법문은 위 유튜브에서 35분 58초부터 시작됩니다>

 

 

 

§(269) (게송)종조난설인장단~ / 남의 얘기, 일체 잡담을 하지 말라 / 입방선(入放禪)을 형식적으로 하지 말라 / 이러한 공부하기 좋은 여건이 다시 어느 곳에 있겠는가? / (게송)일파유조수부득~.


이러한 좋은 여건 하에서 공부의 힘을 얻지 못한다면 다시 어느 곳에서 어느 세상에 우리가 생사심(生死心)을 돌이켜서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성취할 수가 있겠습니까?

 

**송담스님(No.269)-85년(을축년) 하안거결제 법회(85.06.03)(46분)에서.(용269)

 

약 11분.

 

종조난설인장단(終朝亂說人長短)타가  경야혼침요수면(竟夜昏沈樂睡眠)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여차출가도수시(如此出家徒受施)인댄  필어삼계출두난(必於三界出頭難)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종조난설인장단(終朝亂說人長短)타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남이 잘하고 못한 것만을 어지러이 말을 하다가—누가 잘하니 못하니, 누가 옳고 그르니, 맨 남의 얘기.

선방에 와 가지고 방부를 들이고 참선을 하면서 맨 집안 얘기 아니면, 남의 집 며느리가 어떻고, 자식이 어떻고, 시어머니가 어떻고, 맨 남의 잘하고 못한 이야기만 죽비(竹篦) 쳐서 방선(放禪)하자마자 시작을 해.


하도 말을 해 쌓어 지대방을 저 별채에다 해서 따로 딱! 띄어 놓고, 인자 큰방에서는 일절 잡담을 하지 말라고 이렇게 해놨는데, 아마 큰방에서는 일체 잡담을 안 하시리라고 생각을 하는데, 워낙 참지 못한 분은 큰방에서도 간혹 혹 하시지 않는가? 내가 항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내가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또 저 별채에서 혹 연세가 많으신 분이나, 인자 그런 분을 위해서 잠시 거기서 좀 허리도 좀 펴고 그러라고 별채를 한 것이지, 거기 가서 맘대로 잡담을 하시라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저 별채에다 뚝 큰방에서 떨어지게 해놨으니까 실컷 좀 얘기 좀 해보자' 그리고 아주 마음먹고 아주 잡담을 시작을...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별채도 널찍허니 해놨으니 아! 거기서도 얼마든지 참선 하실 수도 있고 또 허리가 아프면 허리도 쭈욱 펴고 눕되 누워서도 ‘이뭣고?’ 이렇게 하셔야지, 거기서 얘기를 하면—아! 허리 좀 펴고 좀 그럴라고 가신 분들도 있는데,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도 잡담을 안 해야 하는데, 이 별채라고 해서 잡담을 하시면 언제 정진을 할 것이냐 그말이여.

지금 뭐 별채라고 해서 생사 무상살귀(無常殺鬼)가 거기는 없는 것도 아니고, 거기도 역시 사면(四面)에서 타 오는 불구덩이 함정이 아닌 것이 아닌 것입니다.


경야혼침요수면(竟夜昏沈樂睡眠)이여. 밤이 되면은 아주 세상 모르고 잠을 자는데.낮에 눈 떠 갖고 있을 때는 시비와 잡담으로 세월을 보내고, 밤이 되면은 온통 내 세상이다 해 가지고 다리를 뻗고 코를 골면서 이 꿈속에서는 온갖 잡스러운 꿈을 꾸면서 그렇게 하다가, 낮에 되면은 또 잡담으로 세월을 보내고, 입방선(入放禪)은 형식적으로 하고.
여차출가도수시(如此出家徒受施)여, 이렇게 출가해 가지고 도를 닦는다고 해봤자,필어삼계출두난(必於三界出頭難)이여. 욕계 · 색계 · 무색계, 이 삼계(三界)에서 뛰어나기는 영판 어려울 것이다, 이것입니다.


여기에 모이신 스님네나 금년에 모다 방부를 들이고 또 이 결제에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여러분들 가운데에는 결코 그러한 분은 한 분도 없으시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공연히 내가 노바심(老婆心)으로 이러한 말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그래도 우리가 결제를 맞이해서 도반(道伴)들에게 해 드릴 말씀은 우리가 서로서로 채찍질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이번 결제는 정말 알차고 짬지게 정진을 해 보자고 이렇게 말씀을 드린 것은 도반으로서에 참 좋은 것이지 이것을 나쁘게 들으실 분은 안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다 주마가편(走馬加鞭)으로, 달리는 말에는 채찍질을 할 필요가 없지만 더 잘 달리라고 채찍을 흔드는 것입니다.


앞으로 오뉴월 또 삼복더위가 돌아올 것입니다마는 아직은 그렇게 덥지를 아니합니다.어쨌든지 시간을 아끼고 거의 묵언을 하시면서, 묵언(默言)은 벙어리처럼 말을 일체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말은 간단히 한마디로 끝내버리고 그리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라 이것입니다.
그리고서 항시 앉았을 때나, 섰을 때나, 포행(布行)을 할 때나, 또는 화장실에 갈 때나, 세수를 하거나 공양을 하거나, 무엇을 빨래를 하거나, 도량 소지(掃地)를 하거나, 일체처 일체시에서 꼭 입선 시간에 큰방에 앉아서 정진하는 바로 그 마음으로 묵묵히 그러면서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화두를 들고서 한 시간 한 시간을 지내고 하루하루를 그렇게 지내신다면 반드시 이번 한철 동안에 공부에 힘을 얻으시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러한 좋은 여건하에서 공부에 힘을 얻지 못한다면 다시 어느 곳에서 어느 세상에 우리가 생사심(生死心)을 돌이켜서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성취할 수가 있겠습니까?


부디 결제 때 이렇게 간곡히 말씀을 드리고, 여러분의 면면을 내가 살펴보니 전부가 다 숙연한 마음으로, 『정말 이번 한철은 알차게 지내야겠다. 정말 내가 쓸데없는 시비와 잡담으로 단 일분일초라도 지내지 않겠다』고 하는 그러한 각오가 역력히 눈에 얼굴에 나타나 보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석 달 동안 계속해서 흐트러지지 않도록 그렇게 정진(精進)을 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드리면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일파유조(一把柳條)를 수부득(收不得)하야  화풍탑재옥난간(和風搭在玉欄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한아름 버들가지를 휘어잡지 못해서, 바람과 함께 옥난간에 매어 두노라.(35분49초~46분32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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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종조난설인장단~’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공양할 때 공양순서를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지대방 ; 절의 큰방 머리에 있는 작은 방. 이부자리, 옷 등의 물건을 넣어 두는 곳이며, 스님들이 잠깐 휴식을 하기도 하는 곳이다.

*큰방 ; 스님들의 본업인 수행을 행하는 장소. 예불과 공양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참선만을 행하는 선원(禪院)에서 대중이 한 자리에 모여 참선수행하는 방(房)을 '큰방'이라 한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삼계(三界) : [범] trayo-dhā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세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āma-dhā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②색계(色界 rūpa-dhā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색(色)은 곧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ārūpya-dhātu) : 맨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나(我)’를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이것을 흔히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면서 유형(有形)한 계층으로만 말하지마는, 실상은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區分)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 세계의 어떤 곳에도 탐(貪) • 진(瞋) • 치(痴) 등 삼독심(三毒心)의 경중(輕重)에 따라 삼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노바심(老婆心) ; 노파(老婆)가 자식·손자를 애지중지하듯이, 스승이 수행자에게 나타내는 자비심. 친절심(親切心). 파심(婆心)이라고도 함.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짬지다 ; 일하는 솜씨가 여물고 깐깐하다.

*포행(布行) ;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일.

*소지(掃地) ; ①마당(땅)을 쓸다. ②청소.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생사심(生死心) ;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 번뇌(煩惱), 망상(妄想)을 말함.

*무상대도(無上大道) ; 최고의 큰 깨달음.

*정진(精進) : [범]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게송) 일파유조수부득(一把柳條收不得) 화풍탑재옥난간(和風塔在玉欄干) ; 『가태보등록(嘉泰普燈錄)』 제23권 황정견(黃庭堅)거사 게송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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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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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하심 팔풍 경계대처2014. 1. 18. 14:08

§ 선방에 나온 수행자라면 말을 많이 해서는 안 됩니다 / 입차문래(入此門來) 막존지해(莫存知解) / (게송) ‘종조난설인장단~’

 

**송담스님(No.582) - 1997년 성도재 법회(96.12.08)(65분)에서. (용582)

 

약 10분.

 


우리가 가장 주의할 것은 말을 많이 하지 말아야 해.

아무리 신심이 있고 정진을 하려고 해도 말을 많이 하다보면 정진하는 마음이 흐트러지게 마련이고,
화두가 성성적적(惺惺寂寂)하고 밀밀면면(密密綿綿)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이 된 그런 경지에서 무슨 말이 잡담(雜談)이 나오며,
잡담하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걸망을 지고 선방에 나온 수행자라면 수행자답게 말을 많이 해서는 안 됩니다.

뿐만이 아니라 자기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보다 앞서가는 선배도 있을 것이고, 자기보다 뒤따라오는 후배도 있을 것이니,
첫째는 자기 자신을 위하고 선배에 대한 도리를 생각해서도 그렇고, 후배를 위해서라도 말을 많이 해서는 안 됩니다.

잡담으로 세월을 보내고, 우리 선방에서는 교리를 가지고 따지는 곳이 아니고, 무슨 조사 어록(祖師語錄)을 가지고 따지는 곳이 아니고,
하물며 인도 불교가 어떻고, 티벳트 불교가 어떻고, 무슨 불교 뭐 그런 것을 이론적으로 토론하는 세미나가 열리는 그런 곳도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가 불교 경전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건, 조사 어록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건, 무슨 인도 불교나 티벳트 불교에 대해서 일본 불교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 해도, 그러한 것을 여기서 말하는 단계가 아니여.

자기가 포교사(布敎師)가 되어 가지고 어느 절에 가서 신도들을 모여 놓고 설교를 하는 마당에서는 그런 세계 각국의 불교에 대해서 또는 각 종파에 대해서 얼마든지 웅변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용화선원에 와서는 “입차문래(入此門來)된 막존지해(莫存知解)니라.” “이 문중에 들어와서는 지해(知解)를 두지 말아라.”

일단 들어왔으면 전강 조실스님의 녹음법문을 듣고 그 법문에 의지해서 묵묵히 바보가 되어서,
몸은 냄새가 안날 만큼 씻고, 옷도 냄새가 안날 만큼 깨끗이 씻어서 입고, 그리고서는 공양은 인연 따라서 공양을 들고, 그리고 그분 속에는 바보인지, 천치인지, 농판인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똑똑한 체하고 잘난 체하려면 세속에 나가서 국회의원도 나가고, 도의원도 나가고, 도지사도 허고, 장관도 하지 이 문중에 들어와 가지고,
부모와 형제와 고향과 가정을 다 버리고 청춘을 버리고 이 도(道) 문중에 들어와 가지고,
어디 가서 잘난 체하고 똑똑한 체 할 때가 없어서 여기에 들어와서 입을 벌려 함부로 그러냐.

그래서 어느 선방에 가면 득도자출(得道者出)이다. ‘도를 얻은 자는 나갈지니라.’ 딱 써 붙인 데도 있어.
깨달았으면 중생 교화하러 나가지, 뭣하러 남의 선방에 댕기면서 다른 사람 공부하는데 방해를 치느냐.

절에 들어와서 선방에 들어와서 똑똑한 체 하고 잘난 체 한 사람은 그게 진짜 똑똑한 것이 아니여.

똑똑할 때 가서 똑똑한 체 해야 남이 알아주고 얻어먹을 것도 생기는 것이지,
선방에 와서 똑똑한 체 해 가지고 무슨 이익이 있으며, 누구를 위해서 똑똑한 체 하느냐 그말이여.


종조난설인장단(終朝亂說人長短)타가  경야혼침낙수면(竟夜昏沈樂睡眠)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여차출가도수시(如此出家徒受施)하면  필어삼계출두난(必於三界出頭難)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종조난설인장단(終朝亂說人長短)타가 경야혼침낙수면(竟夜昏沈樂睡眠)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쓸데없는, 누가 잘하고 못하고, 무엇이 옳고 그르고 그런 잡담을 하다가 밤이 되면 잠에 떨어져.

이렇게 출가해 가지고 공연히 시주것만 소모하면(如此出家徒受施),

필어삼계출두난(必於三界出頭難)이다. 반드시 삼도 고해(苦海)에서 해탈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 선방, 비구선방이나 보살선방이나 시민선방에 그러한 사람이 있어서 내가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다 열심히 정진하신 그런 참 좋은 도반(道伴)들이 이렇게 모여서 지내기 때문에 원장(院長)으로서는 항상 기쁜 마음과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행여나 보통 어느 선방이든지 납월 팔일 용맹정진(勇猛精進) 기간이 지내면 벌써 한철이 다 지나간 것처럼 생각이 해이해져 가지고 해제(解制)가 빨리 돌아왔으면, 해제가 돌아오면 어디를 가야겠다, 어디 절에를 가야겠다.

제주도를 갈까, 설악산을 갈까, 오대산을 갈까, 그러한 생각으로 걸망 귀신이 들썩들썩 한다고 그런 말이 옛날부터서 있어 왔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남은 해제까지의 기간을 지내온 기간보다도 훨씬 더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어 가지고 거의 묵언을 하면서 가행정진(加行精進)으로서 이 삼동(三冬) 안거를 알뜰하게 정진해 주실 것을 부탁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씀을 드린 것 뿐입니다.

이것으로서 납월 팔일에, 원장으로서 여러 형제 자매 도반들에게 노바심(老婆心)에서 우러나와서 간곡한 말씀을 드리고 내려갑니다.(54분41초~64분36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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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밀밀면면(密密綿綿) : 면밀(綿密)이란 말을 거듭하여 뜻을 강조한 것으로 길게 계속해서 끊어지지 않는 것。 정밀하게 이어져서 끊어지지 않는 모습
*의단독로(疑團獨露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참선할 때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포교사(布敎師) ; 불교의 교법을 널리 세상에 알리는 스님이나 신도.
*입차문래(入此門來) 막존지해(莫存知解)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220 참고.
〇 神光이  不昧하야  萬古徽猷로다  入此門來에  莫存知解어다
 거룩한 빛 어둡지 않아 만고에 밝고나. 이 문 안에 들어오매 알음알이를 두지 말지어다.

.....(중략) 知解二字는  佛法之大害故로  特擧而終之하니  荷澤神會禪師가  不得爲曹溪嫡子者는 以此也라
지해(知解) 두 글자는 불법에 큰 해독이 되므로 특별히 들어서 끝을 마치니 하택신회선사가 조계의 적자가 못 됨은 이 때문이다.

*지해(知解) ; 참선 수행을 통해 최상의 지혜를 깨달으려 하지 않고, 불교를 이론적으로 연구하거나 지식으로 해석하는 것.
*천치(天癡, 天痴) ; ①어리석고 못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선천적으로 정신 작용이 완전하지 못하여 어리석고 못난 사람.
*농판 ; ‘멍청이(아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의 사투리(전남).
*(게송) ‘종조난설인장단~’ ; [초발심자경문]의 ‘자경문(自警文)’ 게송.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삼계(三界-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걸망 ; 물건을 담아서 등에 질 수 있도록 만든 자루 모양의 큰 주머니.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가행정진(加行精進) ; 어떤 일정한 기간에 일상생활보다도 좌선정진(坐禪精進)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함.
*납월 팔일(臘月八日) ;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 성도일(成道日).
*삼동(三冬) ; 겨울철의 석 달.
*노바심(老婆心 노파심) ; 노파(老婆)가 자식·손자를 애지중지 하듯이, 스승이 수행자에게 나타내는 자비심. 친절심(親切心). 파심(婆心)이라고도 함.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