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화두불명수계)2014. 12. 1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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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0) (게송)약인정좌일수유~ / (게송)활구참선객~ / 염라대왕의 합장 배례 / 대승십선계 / (게송)삼계진화택~ / (게송)온포사아귀~.

불교의 최상승법(最上乘法)은 지식이 있거나 없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막론하고 화두를 타서 ‘이뭣고?’를 하면, 끝없이 육도법계(六道法界)에 윤회할 것을 일념(一念) 간에 그 윤회의 쇠사슬을 끊고 해탈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활구참선을 믿고, 이 정법을 믿고 정진하는 사람은 염라대왕 앞에 떠억 끌려가도, 염라대왕이 그 활구참선을 하다가 온 사람은 염라대왕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합장을 하고 절을 한다 이것입니다.


왜 그러냐?  활구참선을 한 사람은 확철대오(廓徹大悟) 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 할 수 있는 자격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염라대왕도 합장 배례를 할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불도 수행을 성취하고자 하면 계(戒)와 정(定)과 혜(慧), 삼학(三學)을 닦아야 하나니, 계의 그릇이 온당해야 선정(禪定)의 물이 담기고, 선정의 물이 맑고 고요해야 지혜의 달이 나타날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계(戒)로써 스승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송담스님(No.770) - 2014(갑오)년 동안거결제 및 화두 불명 수계식 (용770)

 

(1) 약 19분.

(2) 약 22분.


(1)------------------

약인정좌일수유(若人靜坐一須臾)하면  승조항사칠보탑(勝造恒沙七寶塔)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보탑필경쇄위진(寶塔畢竟碎爲塵)이나  일념정진성정각(一念精進成正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인(若人)이 정좌일수유(靜坐一須臾)하면  승조항사칠보탑(勝造恒沙七寶塔)이다.
만약 사람이 잠깐 동안 정좌를 하면, 항하사(恒河沙) 모래수와 같은 칠보탑을 조성해 모신 것보다도 그 공덕이 수승(殊勝)하다.

왜냐하면 보탑(寶塔)은 필경쇄위진(畢竟碎爲塵)이나  일념정진(一念精進)은 성정각(成正覺)이다.
보탑을 칠보로 해서 잘 조성을 해서 모셨다 하더라도 천 년, 만 년 가면 지진이 일어나고 그래 가지고 언젠가는 탑이 부서져서 먼지가 될 때가 있고 말지만은 ‘한 생각’ 정진을 하면 그 정진하는 공덕으로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정각(正覺), 바른 깨달음을 얻으면 그것이 성불한 것이다 그말이지.


오늘 갑오년 시월 동안거 결제날을 기해서 이 자리에는 오늘 화두를 타고, 불명(佛名)을 타고, 또 오계(五戒)를 받는 그런 법요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용화사 법보선원 19명, 인제 용화선원 16명, 광주 용화선원 12명, 용주사 중앙선원 18명, 망월사 천중선원 24명, 약사암 12명, 위봉사 선원 24명, 승련사 선원 13명, 원효사 송라선원 15명, 회룡사 선원 11명, 세등선원 14명, 복전암 15명, 도덕사 6명의 스님들이 동안거 결제에 참석을 했고,

용화유아학교, 학생회, 광주용화선원, 동화사 90명, 마하정사 8명, 묘적암 23명, 보천사 14명, 복전선원 109명, 위봉사 11명, 심우정사 13명, 연화사 4명, 영산선원 76명, 원효사 12명, 위봉사 11명, 부산시 정수사 150명, 진불선원 23명, 태유선원 8명, 화운암 11명,

이렇게 해서 1,798명의 스님과 일반 신도들이 화두 불명 십선계를 받기 위해서 이 자리에 경건한 마음으로 참석을 했습니다.

특히 유아, 어린이들 7~8, 4~5살 먹은 어린이까지도 이 자리에 모두 참석을 했습니다.
연세가 많으나, 애기처럼 나이가 아직 말귀도 못 알아들을 정도로 어린 애기거나, 남녀노소를 막론(莫論)하고, 이 자리에 참석한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육도윤회(六途輪廻)로부터서 해탈을 해 가지고 정각을 이룰 수 있는 확실한 종자(種子)를 심게 되는 것입니다.


‘불교는 일반 종교와 무엇이 다르냐?’하면은 (일반) 종교는 교주를 신봉하고 기도를 하고 해서 천상이나 모다 그런데 가거나,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을 목적으로 많이 신앙을 하고 있으나,
불교의 최상승법(最上乘法)은 지식이 있거나 없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막론하고, 화두를 타서 ‘이뭣고?’를 하면 끝없이 육도법계(六道法界)에 윤회할 것을 일념(一念) 간에 그 윤회의 쇠사슬을 끊고, 해탈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해탈(解脫)이라 하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는 부르면 ‘예’하고 대답할 수 있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알고, 칭찬하면 기뻐할 줄 아는 우리의 심성(心性)이 있는데, 그 심성자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지고 일생 동안을 살고,
일생을 살다가 다시 또 몸을 바꿔 나서 업에 따라서 천상에도 태어나고 인간으로도 태어나고 죄를 지으면 축생도 되고 지옥도 가지만은 그 근본의 마음자리는 어디를 가나 그것이 변하는 것이 아니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우리는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쓰고 있고, 그것에 의해서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그것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최상승법이요, 활구참선(活句參禪)은 눈으로 무엇을 볼 때도 ‘이뭣고?’, 귀로 무슨 말을 들을 때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슬프거나 기쁠 때도 ‘이뭣고?’
그 화두 하나를 챙김으로 해서 육도법계를 윤회 속에 있으면서 해탈하는 길에 나아가는 것이 바로 이 활구참선인 것입니다.


이 활구참선은 얼굴이 잘생기거나 못생기거나, 지식이 있거나 없거나 전혀 그것이 상관이 없습니다. 철저한 신심(信心)으로 ‘이뭣고?’
이 한마디는 흙탕물 속에 잠겨 있는 보배를 건져서 냉수에다 씻으면 거기서 빛이 나듯이, 그 동안에는 육도윤회를 무량겁을 해왔지만은 오늘 이 인연과 이 기회를 발판으로 해서 철저히 최상승법을 믿고 ‘이뭣고?’를 하기로 결심을 하고.

오늘부터는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간에 슬프거나 기쁘거나 속이 상하거나 ‘이뭣고?’
‘이뭣고?’ 한마디로써 바로 윤회로부터서 해탈하는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활구참선객(活句參禪客)을  하인작득쌍(何人作得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보연천사일(報緣遷謝日)에  염왕자귀항(閻王自歸降)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활구참선객(活句參禪客)이여, 지금 산승(山僧)의 말을 듣고 이 시간 이후로 열심히 ‘이뭣고?’를 하는 활구참선객은, 하인(何人)이 작득쌍(作得雙)이리요, 누가 그 사람과 나란히 어깨를 할 수가 있겠는가?

보연천사일(報緣遷謝日)에, 이 세상에 인연이 다해서 살 만큼 살다가 결국 몸을 바꾸게 되는데,
어디로 가냐하면은 — 일반적으로 말할 때 저승에 간다고 그러는데 그것이 자기가 지은 인연 따라서, 업에 따라서 육도(六道) 어느 곳엔가는 태어나는데.

이 활구참선을 믿고, 이 정법을 믿고 정진하는 사람은 염라대왕 앞에 떠억 끌려가도, 염라대왕이 그 활구참선을 하다가 온 사람은 염라대왕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합장을 하고 절을 한다 이것입니다.

염라대왕은 살아서 천자(天子)를 했거나, 대통령을 했거나, 만석꾼 부자였거나, 장군이거나 누구라도 염라대왕은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염라대왕은 어떠한 사람, 어떤 무서운 권리가 있는 사람이 오더라도 무서워하지 않고 큰소리를 치고, 지은 업(業)을 심판을 하는데, 활구참선을 하다가 온 사람은 염라대왕이 그 사람이 잘살았거나, 잘생겼거나 못생겼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상관이 없이 활구참선을 한 사람이 오면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합장 배례(拜禮)를 합니다.

왜 그러냐? 활구참선을 한 사람은 확철대오(廓徹大悟) 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 할 수 있는 자격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염라대왕도 합장 배례를 할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산승의 이 말을 ‘설사 그럴 수가 있을까?’ 그렇게 혹 의심을 하고, 확실히 안 믿어지는 사람도 있을런지 모르나 이것은 무엇 때문에 내가 거짓말로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이 게송(偈頌)은 과거에 확철대오한 도인(道人)이 읊어 논 게송인 것입니다. 확철대오를 한 도인의 이 게송은 진리에 계합하는 게송이기 때문에 산승도 이 게송을 믿고 자신감을 가지고 여러분께 읊어 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활구참선은 경을 읽고 해석하고 분석한 것도 아니고 이론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속이 상할 때에도 ‘이 속상하는 이놈이 무엇인가?’ 슬플 때에도 슬픈 데로 쫓아가지 않고 ‘이 슬퍼할 줄 아는 이놈이 무엇인가?’

우리는 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보면 보는 데로 쫓아가고, 귀로 무슨 말을 들으면 듣는 그리 쫓아가는데,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은 눈으로 무엇을 보자마자 그리 가지 않고,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바로 ‘이뭣고?’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귀로 좋은 말이나 나쁜 말을 듣더라도 그리 쫓아가지 아니하고, 그런 말을 듣자마자 바로 ‘이뭣고?’로 돌아오기 때문에,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희노애락(喜怒哀樂),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서 그것이 바로 자기로 돌아오는 수도장(修道場)이요,
우리 상대하는 모든 것들은 수도장이고, 모든 소리는 법문(法門)이고, 만나는 사람은 나로 하여금 자성불(自性佛)로 돌아오게 하는 선지식(善知識)이요, 부처님인 것입니다.

활구참선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은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살더라도 이 사바세계가 육도윤회 생사 속에의 그런 불구덩이가 아니라 성불로 돌아가는 발판이요, 수도장이요, 부처님이 살아계시는 세계인 것입니다. 그래서 활구참선이라 하는 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 최상승법을 믿고 열심히 앞으로 참선을 해 나갈 사람은 절차상(節次上)  대승십선계(大乘十善戒)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처음~19분4초)

 

 



(2)------------------

십선계의 첫째는 불살생(不殺生)이니,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
앉아 있는 분은 호궤합장(互跪合掌)을 하십시오, 꿇고 앉아서 합장을 하십시오.

(무릎을 꿇으시고 상체를 세워서 합장을 하십시오. 엉덩이는 발뒷꿈치에서 떼어서 상체를 세워주세요)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
둘째는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不偸盜)
셋째는 사음을 하지 말라.(不邪淫)
넷째는 망어, 거짓말을 하지 마라.(不妄語)
다섯째는 음탕하고 상스러운 말을 하지 말라.(不綺語)
여섯째는 두 가지 말을 하지 마라.(不兩舌)
일곱째는 악한 욕을 하지 마라.(不惡口)
여덟째는 탐욕심을 내지 말라.(不貪慾)
아홉째는 성을 내지 마라.(不瞋恚)
열번째는 사견을 내지 말라.(不邪見)

어째서 살생을 하지 말아야 하냐 하면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 이겁니다. 산 목숨을 죽이면, 나의 자비(慈悲)의 종자(種子)가 있는데 자비 종자를 손상하지 때문에 살생을 하지 말라.

두번째, 왜 도둑질을 하지 말아야 하냐 하면은 복덕(福德) 종자를 손상하기 때문에. 복덕이 있어야 살아갈 수가 있는데, 잘살 수가 있는데 복덕 종자를 상하기 때문에 도둑질을 하지 말라.

자기 남편, 자기 아내가 아닌 사람과 관계를 하지 말라. 사음(邪淫)을 하면은 집안의 평화가 깨지게 되고, 자기 몸을 더럽히게 되고 그러니 사음을 하지 마라.

네번째, 거짓말을 하지 마라. 거짓말을 하면은 진실(眞實) 종자를 손상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지 말라. 거짓말을 해 버릇하면은 남이 자기를 인격적으로 믿지를 않고 그러니 거짓말을 하지 마라.

다섯째, 음탕하고 상스러운 말을 하지 마라. 음탕하고 상스러운 말을 하게 되면은 그것도 수행자로서의 인격을 손상하고 남의 존경을 받지 못하고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그 사람 말을 믿지를 않는 게야.

이간(離間)하는 말을 하지 마라. 이간질을 하면은 여기 가서 이 말하고, 저 가서 저 말하고, 두 가지 말로 이랬다저랬다 하면은 그것도 자기의 인격을 손상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일곱째는 욕(辱)을 하지 마라. ‘저런 죽일 놈’ 입에 못 담을 욕을 부애가 나면 욕을 하는데, 욕을 하면은 그 욕이 상대방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남에게 욕하는 것이 결국은 자기가 자기한테 욕을 하는 거고, 자기 인격을 손상하기 때문에 욕을 하지 마라.

부애가 나면은 바로 부애 난 그 마음을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를 해야지, 욕을 해서 — 입으로 욕을 하면 자기 입을 더럽히게 되고 자기 인격을 손상하기 때문에 욕을 하지 마라.

여덟번째, 탐욕심을 내지 마라. 남의 것을 욕심을 내고 탐욕을 내 가지고 부당한 방법으로 착취를 하면은 그 탐욕심으로 인해서 자기의 인격을 손상하고 청정한 마음을 더럽히기 때문에 탐욕심을 내지 마라.

아홉번째, 진심(瞋心)을 내지 마라. 우리 마음에 조금 안 맞으면 성을 내는데, 성을 낸다고 해서 아무도 그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자기의 인격을 손상하는 일이라, 성을 내면은 맨 처음 자기가 해로운 것이고 부끄러운 것입니다.

열번째, 사견(邪見)을 내지 마라. 어리석고 삿된 견해를 가지면, 그 첫번째가 무엇이냐 하면은 인과(因果)를 안 믿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인과법에 의해서 운영이 되어 가는데, 사견을 낸 사람은 인과를 안 믿기 때문에 어리석은 말, 어리석은 생각, 어리석은 행동을 해 가지고 자기가 자기를 해롭게 하고, 자기 인격을 손상을 하고 다른 사람을 언짢게 하는 것입니다.

이상 설한 열 가지 계(戒)는 불도(佛道)를 믿고 최상승법에 의해서 자기를 깨닫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이 10가지 계를 지켜야 하니, 능히 잘 지키겠는가? ‘예!’

이 열 가지 계는 마땅히 우리가 지켜야 할 바니 잘 지키겠는가? (예!)

이상 설한 10가지 대승십선계(大乘十善戒)는 부처님을 믿고, 도를 닦고, 성불하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이 십선계를 지켜야 하니 잘 지키겠는가? (예!)

연비(燃臂)해 주세요.

백겁적집죄(百劫積集罪)
일념돈탕제(一念頓蕩除)
여화분고초(如火焚枯草)
멸진무유여(滅盡無有餘)

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瞋痴)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

참회진언(懺悔眞言)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사부대중과 같이)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자종금신지불신(自從今身至佛身)
견지금계불훼범(堅持禁戒不毁犯)
유원제불작증명(唯願諸佛作證明)
영사신명종불퇴(寧捨身命終不退)

원이차공덕(願以此功德)
보급어일체(普及於一切)
아등여중생(我等與衆生)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불도 수행을 성취하고자 하면 계(戒)와 정(定)과 혜(慧), 삼학(三學)을 닦아야 하나니, 계의 그릇이 온당해야 선정(禪定)의 물이 잠기고, 선정의 물이 맑고 고요해야 지혜의 달이 나타날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계(戒)로써 스승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십악 참회(十惡懺悔)를 하고 또 연비(燃臂)를 하고, 참회진언을 외우면서 연비를 해서 과거 무량겁으로부터 지어온 모든 죄는 다 봄눈처럼 다 소멸이 되었습니다.
이 청정한 몸으로, 청정한 마음으로 앞으로 우리는 일체처 일체시에서 언제 어디서라도 항상 ‘이뭣고?’로써 생활을 해 나가야 합니다.

속이 상할 때에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기분이 나쁠 때도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서 항상 숨을 깊이 들여마셨다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해 나아가면 자기가 어떠한 처지에 있거나 간에 바로 그때, 그 자리가 바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선방이 되는 것이고, 바로 부처님 세계로 가는 길이니, 우리는 오늘부터 정말 참되게 올바르게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인생이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일체처 일체시에서 항상 자기로 돌아오는 수행의 길을 알았고, 그것을 과거에 지은 것은 참회하고 앞으로 잘 이것을 실천해 나가겠다고 부처님 앞에서 서약을 하고 연비를 받았으니, 우리는 비록 이 몸뚱이는 이만큼 늙었지만은 우리의 마음은 갓난애기처럼 깨끗해졌습니다. 그 깨끗한 마음으로 앞으로 열심히 ‘이뭣고?’만 해가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산승은 여러분의 그 진실한 마음으로 참회하고 열심히 최상승법에 의해서 잘 ‘이뭣고?’를 하겠다고 맹세하신 것을 믿습니다.
저는 이렇게 여러분께 말씀하고 여러분의 그런 진실한 마음을 봄으로 해서 비록 내가 늙었지만은 저도 오늘 새로 태어난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여러분...(박수)


마지막으로 게송을 하나 읊고 내려가고자 합니다.

삼계진화택(三界眞火宅)이요  사대성고취(四大誠苦聚)로다
나~무~아~미~타~불~
여아구출몰(汝我俱出沒)하니  겁해종난측(劫海終難測)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이 삼계는 정말 진화택(眞火宅)이여, 불이 훨훨 타고 있는 집이다 그말이여.
이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졌으니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은 생로병사(生老病死), 생주이멸(生住異滅)의 당체(當體)다 그말이여.

그러니 여아(汝我)로 구출몰(俱出沒)이여, 나나 모든 다른 사람이나 다 그 삼계 진화택 속에서 사대(四大)의 고취(苦聚) 괴로움이 뭉쳐진 이 몸뚱이를 가지고, 이 세상에 나왔다가 이렇게 살다가 또 결국은 가는데, 어디로 가냐 하면은 자기가 지은 업(業)대로 가는데,

이 자리에 오늘 참석하신 여러 도반, 신도 여러분은 이 활구참선법을 배우고 그것을 잘하겠다고 서약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에 어떻게 살았거나 그건 상관이 없습니다.

참회를 해서 깨끗해졌고 앞으로 열심히 최상승법을 실천해 나가면 우리는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다 가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한 걸음 앞서가고, 한 걸음 뒤서 가지만은 도솔천내원궁에 가서, 미륵부처님 회상에 가서 우리는 다 같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온포사아귀(溫飽思餓鬼)하고  신안염지옥(身安念地獄)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수생참괴심(須生慚愧心)하고  염기근즉각(念起勤卽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온포사아귀(溫飽思餓鬼)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옷을 입어서 그럴 때에는 거기에 빠지지 말고 아귀도(餓鬼道)에 빠지는 중생들을 생각해 봐라. 나도 이 더운 것에 빠지고 배불리 맛있게 먹는 데에만 재미를 붙이고 살다 보면은 아귀도에 틀림없이 가게 될 것이다.

몸이 편안할 때에는 그 편안한 데에 빠져서 그럭저럭 지내지 말고 지옥 중생들을 생각해 봐라. 지옥 중생이 어떻게 해서 지옥에 갔냐 하면은 배부르고 뜨시고 몸이 편안한 데에만 빠져 가지고 '참나'를 찾는 수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가서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수생참괴심(須生慚愧心)하야, 내가 오늘날까지 그럭저럭 살아온 것에 대해서 부끄러운 생각을 가지고, 무슨 생각이 일어나거나, 무엇을 보거나 무엇을 듣거나 간에 부지런히 ‘이뭣고?’를 하라.

마지막으로 이런 고조사(古祖師)의 게송을 읊고서 자리에서 내려가고자 하는데, 여러분을 만남 김에 두서없이 여러가지 말을 했으나 앞으로 더 많은 말씀을 하고 싶으나 시간 관계로 입을 닫고, 미처 못한 간절한 뜻은 이 주장자를 한번 내림으로써 주장자에게 맡기고 내려갑니다.(19분7초~40분37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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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약인정좌일수유~’ ; 보조 지눌(普照知訥) 스님의 [진심직설(眞心直說] 진심공덕(眞心功德) 장(章)에서 ‘古頌’으로 인용한 게송 참고.
*항하사(恒河沙) ; [불교] 갠지스 강(Ganges江)의 모래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수승(殊勝 특히·유달리 수, 뛰어날·훌륭할 승) ; ①가장 뛰어난 일. ②[불교] 세상에 희유하리만큼 아주 뛰어남.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해탈(解脫) : [범] Vimoksa ; Vimukta ; mukti  [파] Vimokha ; Vimutta ;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또는 열반(涅槃)의 딴 이름으로도 쓰인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게송) ‘활구참선객~’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대사) (2권) '贈熙長老' 참고.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곳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2)


*호궤합장(互跪合掌) ; 두 무릎을 꿇고 앉되, 무릎 위 허벅지와 상체가 수직이 되게 곧게 일으켜 세우고, 발가락은 세운 채 손은 합장을 취한 자세.
*대승(大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 이에 반해, 그들은 전통의 보수파를 낮추어 소승(小乘)이라 함.
②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행자•보살, 또는 그들을 위한 붓다의 가르침.
③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존칭. 위대한 가르침.
☆승(乘)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십선계(十善戒) ;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자비(慈悲) ; 자(慈)는 ‘우정•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동정’을 원의(原義)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복덕(福德) ; ①착하고 어진 행실에 대한 보답으로 받는 행복과 이익. ②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는 착한 일.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 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
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백겁적집죄(百劫積集罪)  오랜 세월(百劫) 쌓인 죄업
일념돈탕제(一念頓蕩除)  한 생각에 문득 사라지니
여화분고초(如火焚枯草)  불(火)이 마른 풀을 태우듯이
멸진무유여(滅盡無有餘)  모두 멸하여 남김없이 사라지리

*참회게(懺悔偈)
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이제까지 제가 지어온 모든 악업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瞋痴)  모두가 비롯됨 없는 탐·진·치로 말미암았네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  몸과 입과 생각으로 지었으니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  제가 지금 그 모든 것을 참회합니다

*참회진언 ; 죄업(罪業)을 참회하는 진언.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죄란 스스로 성품이 없어 마음을 좇아 일어나니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마음이 멸하면 죄도 또한 사라지니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죄와 마음 멸하여 모두가 공해지면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이것을 참된 참회라 이름하리라

*자종금신지불신(自從今身至佛身) 제가 지금 이 몸으로부터 부처의 몸에 이를 때까지
견지금계불훼범(堅持禁戒不毁犯) 금하는 계율 굳게 지켜 훼범하지 않으리니
유원제불작증명(唯願諸佛作證明) 바라옵건데 모든 부처님께서 증명해 주소서
영사신명종불퇴(寧捨身命終不退) 목숨은 차라리 버릴지라도 마침내 물러나지 않겠습니다

*원이차공덕(願以此功德) 원컨대 이 공덕으로써
보급어일체(普及於一切) 일체 중생에게 널리 미쳐서
아등여중생(我等與衆生)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모든 중생들이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모두 함께 불도를 이루어지이다

*삼학(三學) ; 깨달음에 이르려는 자가 반드시 닦아야 할 세 가지 수행.
삼증상학(三增上學)·삼승학(三勝學)이라고도 하는데, 즉 계학(戒學)·정학(定學)·혜학(慧學)의 세 가지를 말한다. 이것을 증상(增上:탁월하다는 뜻)계학·증상심학(心學)·증상혜학 또는 줄여서 계·정·혜라고도 한다.
①계는 악을 저지르지 않고 선을 닦는 계율(戒律).
②정은 심신을 고요히 하고 정신통일을 하여 마음이 산란하지 않게 하는 선정(禪定).
③혜는 번뇌를 파하고 진리를 증득(證得)하는 지혜를 가리킨다.
*연비(燃臂) ; 불교에서 수행자가 계(戒)를 받을 때, 팔뚝에 향이나 심지로 불을 놓아 뜨는 의식 또는 그 자국.
*(게송) ‘삼계진화택~’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대사) (1권) '寄應禪子兼示神秀沙彌—응선자(應禪子)에게 주면서 신수사미(神秀沙彌)에게도 보임' 참고.
*삼계(三界) : [범] trayo-dha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세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amadha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
②색계(色界 rupadha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색(色)은 곧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arupadhatu) : 맨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나(我)」를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이것을 흔히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면서 유형(有形)한 계층으로만 말하지마는, 실상은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區分)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 세계의 어떤 곳에도 탐(貪) • 진(瞋) • 치(痴) 등 삼독심(三毒心)의 경중(輕重)에 따라 삼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사대(四大) ; ① 지(地) • 수(水) • 화(火) •풍(風)을 말함. 대(大)란 원소란 뜻. 일체의 물질을 구성하는 네(四) 가지 원소(大).
(1)지대(地大). 굳고 단단한(堅) 것을 성(性)으로 하고, 만물을 실을 수(負載) 있고, 또 질애(質礙)하는 바탕. 질애(質礙)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여 다른 존재와 서로 융화하지 못한다는 뜻.
(2)수대(水大). 습윤(濕潤)을 성으로 하고, 모든 물(物)을 포용(包容)하는 바탕.
(3)화대(火大). 난(煖)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숙(成熟)시키는 바탕.
(4)풍대(風大). 동(動)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장케 하는 바탕.
② 신체를 말함. 원래, 신체는 지•수•화•풍의 4대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함.
*생주이멸(生住異滅) ; 모든 사물이 생기고(生), 머물고(住), 변화하고(異), 소멸함(滅). 또는 그런 현상.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게송) ‘온포사아귀~’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대사) (1권) '寄應禪子兼示神秀沙彌—응선자(應禪子)에게 주면서 신수사미(神秀沙彌)에게도 보임' 참고.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법보재)2014. 10. 29. 14:12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758) (게송)올올불수선~ / 부처님께서는 우리 중생에게 원하시는 것 /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는 것이 생사 / (게송)야야포불면~.

영가를 여기다 모셨기 때문에 명절이나 제삿날을 기해서 여기 와서 부처님께 공양도 올리고, 영가를 위해서 제사도 모시게 되고 그러면서 또 조실스님 법문을 듣고 또 정법에 의해서 참선을 하시게 되니, 영가 때문에 영가만 좋을 뿐만 아니라 온 가정, 일가친척이 정법을 믿고 ‘참나’를 닦는 참선을 하시게 되니 어찌 그 영가가 편안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불공도 드리고 부처님께 와서 절도 하지마는 부처님께서는 자기가 자기의 마음을 깨달아서 생로병사(生老病死)에서부터서 해탈해 가지고 여러 중생들이 다 부처가 되기를 제일 좋아하시고 바라시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758)— 2013(계사년) 법보재(04.25)-30분 (용758)

 

(1) 약 22분.

 

(2) 약 9분.

 


(1)------------------

올올불수선(兀兀不修善)이요  등등부조악(騰騰不造惡)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적적단견문(寂寂斷見聞)이요  탕탕심무착(蕩蕩心無着)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올올불수선(兀兀不修善)이요, 올올하야 선(善)도 닦지 아니하고 등등(騰騰)하야 악(惡)도 짓지 않는다.
적적(寂寂)하야 보고 듣는 것이 끊고, 탕탕(蕩蕩)하야 마음이 착(着)함이 없다.

이 게송은 육조(六祖) 혜능(慧能)스님께서 임종하실 때 마지막에 이 게송을 읊으시고 열반을 하셨습니다.

올올(兀兀)하야 선(善)도 닦지 않는다.
‘올올하다’고 한 것은 태산처럼 동함이 없고 따악 정(靜)해져 갖고 있는 모습입니다.
등등(騰騰)하야 악도 짓지 않는다.
등등한 것도 태산처럼 움직이지 않고 따악 부동한 모습! 그러니 무슨 악을 지을 것이 있으며.

적적(寂寂)하야 견문(見聞)이 다 끊어졌다. 적적한 것은 말 그대로 고요하고 고요해서 보고 듣는 것이 다 끊어졌다 그말이여.
마지막에 탕탕(蕩蕩)하야 마음이 착(着)함이 없다. ‘탕탕하다’는 것은 넓고 넓은 모양을 표현한 것입니다.

올올하고, 등등하고, 적적하고, 탕탕한 모습은 육조스님께서 열반하실 그 장면을 — 그 몸가짐과 마음 상태를 고대로 읊으신 게송인 것입니다.

이 게송 안에는 생사(生死) 없는 모습,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으신 보살 화현(化現)으로서의 마지막 읊으시고 열반에 드신 그 게송인 것입니다.

이 게송을 오늘 계사(癸巳)년 3월 16일 법보재(法寶齋) 날에 읊은 것은, 이 법당에는 수많은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원근 친척과 인연있는 분의 영가(靈駕)가 봉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 영가는 법당앞 전후좌우 사방에 다 모셔져 있는데 — 이 영가는 항상 앞에 부처님을 모시고, 조실스님을 모시고, 우주법계의 모든 불보살과 제석천왕과 신장들이 옹호를 하고 계신 이 법당 안입니다.

이 법당 안에 모셔져 있는 우리의 선망부모, 원근 친척의 영가들은 그러한 장엄한 외호 속에 편안하게 봉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영가들의 마음 상태는 불보살과 모든 신장(神將)의 가호(加護) 속에 아까 읊은,
‘올올하야 선도 닦지 않고, 등등하야 악도 짓지 아니하며, 적적하야 모든 견문이 다 끊어졌으며, 탕탕하야 마음이 착(着)한 바가 없다’고 하는 그러한 상태에 영가들도—육조스님이 열반하실 때의 그 마음과 그 모습 속에 영가들도 그렇게 편안하게 봉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많은 영가들은 성(姓)도 각각이요, 평생 동안 지은 업(業)도 각각이요, 평생 살아온 것도 다 다르지만 일단, 이 법보전(法寶殿) 안에 법보영가로 봉안된 뒤에는 지나간 과거는 하나의 꿈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고,

그 꿈속에서 희로애락과 성주괴공(成住壞空)과 생주이멸(生住異滅) 속에 많은 고통, 슬픔,외로움 모다 그런 한(恨)이 맺힌 영가도 계실 것이고, 비교적 편안하게 잘 사시던 영가도 계실 것입니다마는,
일단 이 법보전에 모시게 되면 그런 것은 다 없어지고 오직 이 육조스님께서 열반하실 때 읊으신 게송과 똑같은 상황 속에서 영원을 사실 것입니다.

이 영가분 가운데에는 이미 극락세계나 도솔천 내원궁이나 또는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하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마는 아직 인연이 있어서 이 법당 안에 고대로 안주하고 계시면서 극락세계나 도솔천 내원궁에 가실 날을 기다리고 계실런지도 모르고,

또는 이 법당 안에서 부처님을 모시고 조실스님을 모시고 대중들이 조석으로 예불하고 축원하는 이러한 분위기가 너무너무 좋아서 딴데로 갈 생각이 없이 여기서 편안하게 계신 그런 영가도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것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만은 일단 각 가정마다 비명에 간 영가도 있고, 일생을 참 괴로움과 슬픔 속에 사시던 영가도 있고, 또 돌아가실 때 병으로 앓다가 돌아가신 분, 전쟁에 나가서 전사한 그런 영가분,
또는 악연이 있어서 다른 사람한테 죽음을 당한 그런 영가도 있을런지 모릅니다만은 일단 여기에 모시게 되면 그 영가는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여기에 모셔지지 않은 영가는 좋은 곳으로 가지 못하고 원한을 품고 세상에 있게 되면 그 영가가 갈 곳이 없어서 자기가 살던 집, 자기가 아는 형제간, 부모, 일가친척,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여가 붙었다 저가 붙었다,
그러면서 고혼(孤魂)으로서 정처가 없는 불쌍한 영가로서 떠돌던 그런 영가들도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런 영가들이 집안에 여가 붙었다 저가 붙었다 하고, 이 사람한테 붙었다 저 사람한테 붙었다 하면 집안에 병고액난(病苦厄難)이 끊어지지 않고 일체 관재구설(官災口舌)과 온갖 재난이 끊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실스님께서는 그러한 많은 인연 있는 신도와 그런 불쌍한 영가를 위해서 법보전 안에 법보 영가를 모시는 제도를 마련을 하셨습니다.

일단 여기에 모시게 되면은 영가도 편안할 뿐만 아니라 그 영가를 모신 가정과 가족들도 걱정하실 것이 없습니다.
많은 그 동안에 겪었던 병고액난과 관재구설과 모든 불화가 다 녹아 없어지고, 그 인연으로 결국은 정법(正法)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영가를 여기다 모셨기 때문에 명절이나 제삿날을 기해서 여기 와서 부처님께 공양도 올리고, 영가를 위해서 제사도 모시게 되고 그러면서 또 조실스님 법문을 듣고 또 정법에 의해서 참선을 하시게 되니,
영가 때문에 영가만 좋을 뿐만 아니라 온 가정, 일가친척이 정법을 믿고 ‘참나’를 닦는 참선을 하시게 되니 어찌 그 영가가 편안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부탁할 것은 일단 영가를 모신 분은 항상 여기 와서 법회에도 참석하시고, 제삿날을 잊지 않고 꼭 와서 부처님께 공양도 올리고, 대중공양도 하고 , 또 조실스님 법문도 듣고 이렇게 함으로써,
영가는 ‘아, 내 식구가 와서 오늘 불공(佛供)을 하는구나’ ‘내 죽은 날을 기해서 제사를 지내는구나’ 영가는 환히 다 보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다 영가를 모신 분은 절에를 자주 오셔야 하고, 명절에는 꼭 잊지 않고 참여해서 불공을 올리고, 제사를 올리는 의식에 정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영가로 인한 인연으로 많은 신도들이 정법을 믿고 참선을 함으로써 자기 자신은 육도윤회에서 해탈을 해 가지고 ‘참나’를 깨달아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게 되는,
그러한 목적으로 이 법당을 창건을 해서 영가를 모시게 해 주신 전강영신(田岡永信) 대종사(大宗師).

여러분이 보시고 계신 이 사진을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만은 이러한 제도가 없으면 ‘불교를 믿는다’고 믿어도 무엇이 불법(佛法)인가를 모르는 것입니다.

‘불법은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는 거다’ 막연히 그렇게 알고 절로 왔다갔다 하고, 불공이나 드리고 거기에서 끝나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불교는 불(佛) 자가 ‘부처 불(佛)’ 그러지만, ‘부처’라는 게 무엇입니까? ‘깨달은 분’이란 말인 것입니다.

부처님, 석가모니 부처님, 깨달으셨으니까 부처님인데, 그 부처님을 믿는 것은 당연히 우리의 교주이시고 그러니까 당연히 존경하고 믿어야 하지마는 부처님은 당신을 믿고 존경하라고 그것만을 바라시지는 않습니다.

『우리 모든 중생들이 정법을 의지해서 자기가 자기를 닦아서 스스로 부처가 되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원하신 것입니다.

불교를 믿으면 부처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하는데 부처님은 절에 많는 돈과 쌀을 갖다 주신 것, 그것을 그렇게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스님네는 혹 좋아할런가 모르나 부처님은 그것을 좋아하시지 않고,
불공도 드리고 부처님께 와서 절도 하지마는 자기가 자기의 부처를 깨닫는 — 자기의 마음을 깨달아서 생로병사(生老病死)에서부터서 해탈해 가지고 여러 중생들이 다 부처가 되기를 제일 좋아하시고 바라시는 것입니다.

용화사 이 법보전은 그러한 의미에서 비록 부처님 열반하신 뒤로 삼천 년이 되어서 말세가 되었다 하지마는 법보 제자들은 말법(末法) 속에 다시 정법(正法) 시대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자리에 모이신 비구·비구니·사미·행자·청신사·청신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자기가 자기를 깨닫는 것은 남이 대신 깨달아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깨닫는데, 깨닫는 것이 무슨 팔만대장경 어려운 경전을 읽고 외우고 해석하고 그것이 아닌 것입니다.
물론 경도 공부하고, 외울 경(經)도 있곤하나 그것이 경이라고 하는 것은 다 알고보면 팔만대장경이 다 ‘자기가 자기를 깨달으라’고 하는 말씀을 이러한 각도에서도 말씀하시고 저런 각도에서도 말씀하신 것이라,

경전을 옳게 본 사람은 자기 마음을 깨닫는 공부를 해야만 되는 건데, 중생은 길이 잘못 들었거나 근기(根機)가 약해 가지고 자기 깨닫는 것은 뒷전으로 두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면 소원을 성취한다, 복을 많이 짓는다’ 이러한 정도로 해서 불교를 믿으면서, 일생을 나름대로 ‘나는 불교 신자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분이 참 많습니다마는,

정말 ‘나를 깨닫는 공부’는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무엇을 볼 때 보는 데로 따라가지 말고, 보는 바로 ‘나’ — ‘이놈이 무엇인가?’
귀로 무엇을 들을 때는 듣는 그리 쫓아가지 말고, 바로 ‘이뭣고?’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여기 조실스님 영정(影幀) 옆에
생야시(生也是)  사야시(死也是)  두두비로(頭頭毘盧)  물물화장(物物華藏)

나는 것도 이놈이요, 죽은 것도 이놈이다.
생사(生死)는 보통 육체를 기준으로 해서 이 몸뚱이가 태어나면 생(生)이라 그러고, 살다가 죽으면 그것을 사(死)라고 그러는데,

이 불법 문중에서는 생사는 육체를 기준으로 두기 보다는 우리의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루에도 수백 가지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데,
그 생각 일어나는 것이 바로 생(生)이고, 그 생각이 이리저리 하다가 또 꺼지면 그것이 죽음(死)인 것입니다.

생사(生死), 하루 동안에도 생각을 기준으로 해서 생사를 삼는다면은 우리는 하루에도 몇백만 번을 태어났다 죽었다 하는 것입니다.

그 생각의 ‘죽었다 살았다’ ‘생겨났다 죽었다’하는 것이, 그것이 원인이 되어 가지고 온갖 업(業)을 짓게 되고,
결국은 업 속에서 육체가 죽을 때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이고, 죽은 뒤에는 어디로 갈지 모르는 것입니다.

다행히 착한 일을 하고 좋은 일을 한 사람은 천당에 갈 것이고, 염불도 많이 하고 그런 사람은 또 극락에도 갈런지 모르나,
대부분 살다가 보면 알게 모르게 많은 업을 지어 가지고 지옥에도 안 간다고 아무도 보증을 할 수가 없고, 축생이 될런지 다시 또 인도환생할런지 모릅니다마는,

결정코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한 생각을 단속을 잘하면 지옥에 갈까 걱정할 것도 없고, 축생이 될까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뭔 말을 듣거나, 생각에 무슨 생각이 떠오르거나,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가 바로 내가 나를 챙길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입니다.

누가 나한테 오장(五臟) 뒤집어지는 억울하고 그런 고약한 말을 하더라도, 그 말로 따라가면은 울화(鬱火)가 치밀어져 가지고 눈에 독이 오르고 얼굴이 변하고 당장 그 사람과 싸움을 하게 되는데,

정법을 믿고 참선하는 사람은 그 말을 듣자마자 숨을 들어마셨다 내쉬면서 ‘이뭣고~?’
또 ‘이뭣고~?’ 이렇게 자기를 단속하는 참선으로 돌아오게 되면 상대할 아무 원수도 없고 미운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처음~21분28초)

 

 

 



(2)------------------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우리가 태어났지만은 이 정법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과 정법을 믿지 않고 빈부귀천, 성주괴공, 생로병사 속에서 사는 사람과는 세계가 다른 것입니다.

정법을 믿을 줄 모르고 ‘참나’를 찾는 참선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람으로서 태어나 가지고 이 몸뚱이를 가지고 지옥에 가서 지옥고를 받는 중생과 별로 다를 것이 없고,
소나 돼지나 개처럼 겉은 분명히 사람인데 축생처럼 일생을 그렇게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도반 여러분, 법보 가족 여러분!
정말 우리는 만나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아서 태어났습니다. 만나기 어려운 또 불법을 만났습니다.

불법 가운데에서도 이 법보전에 영가를 모신 법보 가족,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은 정말 이 세상에서 극락세계에 태어난 것보다도 천당에 태어난 것보다도 훨씬 더 다행하고 행복한 삶을 사시게 되는 것입니다.


야야포불면(夜夜抱佛眠)이요  조조환공기(朝朝還共起)로다
나~무~아~미~타~불~
욕식불거처(欲識佛去處)인댄  지자어성시(只這語聲是)니라
나~무~아~미~타~불~

이 게송은 포대화상(布袋和尚)이 읊으신 게송입니다.

야야포불면(夜夜抱佛眠)이요, 밤이면 밤마다 부처님을 안고 자고
조조환공기(朝朝還共起)다. 아침이면 아침마다 그 부처님과 함께 일어난다
욕식불거처(欲識佛去處)인댄, 부처님 간 곳을 알고자 할진댄
지자어성시(只這語聲是)다. 다못 이 말소리 이놈이다, 이것이다.

우리는 밤마다 부처님을 안고 자는데 자면서도 부처님을 안고 자는 줄을 모르고, 하루 지나간 일을 이 생각 저 생각 걱정하다가 잠든 줄 모르게 잠이 들고 밤에 꿈도 꾸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부처님과 함께 일어난 줄을 인식을 못하고 그냥 자고 일어나는 것 뿐인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 안에 반드시 자성불(自性佛)이 계신 것을 확실히 믿어야 하고 인식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자리! 우리의 본성(本性)자리는 얼굴이 잘생겼거나 못 생겼거나, 지식이 있거나 없거나, 늙었거나 젊었거나 일단 사람으로 태어나면 그 몸안에는 자성(自性)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그 자성이라는 것이 그것이 자기의 마음자리고, 그것이 자기를 지켜주고 살아가는 자기의 부처님인 것입니다.

그 부처님을, 잘 때 따악 부처님과 함께 잠에 드는 거고, 아침에 일어날 때는—이 육체는 송장인데 육체가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이 육체 속에 있는 부처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어나는데 부처님이 어디 계시냐?
눈으로 볼래야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져 볼래야 만져 볼 수 없습니다.

그 부처님은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이것이 나의 부처님이고, 이 말을 듣고 있는 그것이 바로 여러분 자신의 부처님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항상 보다가 놓쳐버리고, 듣다가 놓쳐버리고, 골을 내다가 놓쳐버리고, 걸어가다가 잊어버리고.

그런데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항상 ‘이뭣고~?’ ‘대관절 이놈이 무엇인가?’

생하는 놈도 이놈이요, 죽은 놈도 이놈이다.
이놈이라는게 우리는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고 아무리 우리의 마음으로 찾아봤자 그것은 ‘아, 이것이로구나!’ 이렇게 알기는 어려운 것이고,

항상 ‘이뭣고~?’
자꾸 그렇게 잊어버리면 또 챙기고, 잊어버리면 또 챙기고 하다보면 나중에는 챙기지 안 해도 항상 알 수 없는 ‘이뭣고~?’한 의문이 마음속에 끊어지지 않게 됩니다.

이것은 열심히 한 사람에게는 언제 오더라도 그 경계(境界)가 오는 것이고,
그 경계가 와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의심이 끊어지지 않고, 그 의단이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유지가 되어가면 반드시 그 사람은 자기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불법을 믿는 것은 이러기 위해서 불법을 믿는 것이고, 부처님께서 나오셔서 49년 동안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신 것은 오직 이 하나를, 이 한마디를 우리 중생들에게 일러주시기 위해서 탄생을 하신 것입니다.

오늘 법보재를 맞이해서 우리의 법보 영가의 재사를 모시면서 우리는 다같은 한 가족으로서 일생 동안을 이러한 마음으로 같이 살고,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또 이러한 정법 문중에서 다시 만나서 또 이 정법에 의해서 ‘참나’를 깨닫고, 이 깨닫는 법을 일체 중생에게 전달을 하고,
그래서 온 우주법계가 깨달은 부처님으로 가득 찰 때까지 우리는 한 형제요, 가족으로 이렇게 살게 되기를 바라면서 법상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박수)(처음~30분33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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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올올불수선~’ ; [육조단경(六祖壇經)] 육조(六祖) 혜능(慧能)대사 임종게(臨終偈).
*육조(六祖) 혜능(慧能)대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법보재(法寶齋) ; 매년 음력 3월 16일에 용화사 법보재자(法寶齋者)와 법보전 만년위패에 모신 선망부모 영가들과 인연 있는 영가들의 무량겁으로부터 지은 업장을 참회 소멸하고,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고, 재자와 영가 모두 진리의 세계에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전강 조실스님께서 개설(1963년)하신 합동 천도재(薦度齋).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신장(神將) ; 불법(佛法)을 보호하는 신장. 또는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법보전(法寶殿) ; 법보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 그래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다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
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생주이멸(生住異滅) ; 모든 사물이 생기고(生), 머물고(住), 변화하고(異), 소멸함(滅). 또는 그런 현상.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고혼(孤魂) ; 의지할 곳 없이 떠돌아다니는 외로운 넋.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전강영신(田岡永信)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말법(末法) : 부처님의 교법이 세상에 전하여 가면서 중생을 교화하는데 대하여 부처님께서 예언한 바가 있다.
처음 오백 년 동안은 정법(正法) 시기가 되어, 교법이 온전히 있음은 물론 닦아 가는 사람도 많고, 닦는 사람은 대개 깨쳐서 성과(聖果)를 얻게 되지마는,
그 다음 천 년 동안은 상법(像法) 곧 정법에 비슷한 시기가 되어, 교법도 있고 수행하는 사람도 있지마는 깨치는 사람은 적게 되고, 그 다음 만 년 동안은 말법 곧 쇠잔하고 미약한 교법이 남아 있는 시기가 되어, 수행하는 사람도 별로 없으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그 때 인도만을 표준한 말인 듯하다。인도의 불교사는 과연 그대로 되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대답하여 예언하기를, 불교가 중인도에서는 차츰 쇠미하게 되겠으나, 변지(邊地)와 외국에 널리 전파되어 점점 융성하게 되리라고 하였다。과연 불교의 중심이 중인도로부터 북부인도와 세일론으로 옮기었고, 다시 중앙아시아로, 북부아시아로 옮겨가게 되었다.
중국 • 한국 • 일본에 불교가 왕성하고 많은 도인(道人)이 난 것도 다 부처님이 열반한 지 1500년 이후의 일이었다。다시 말하면, 말법이라는 시기가 시작된 뒤의 일이다.
그러므로 세계적으로 불교 교단 전체를 통하여 볼 때에는 말법시기가 일정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파리어(巴利語)로 된 <잡아함경(雜阿含經)>에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부지런히 신(身) • 수(受) •심(心) • 법(法)의 사염주(四念住)를 닦아서 탐욕과 분심을 끊으면 정법은 영원토록 세상에 머물러 빛나게 될 것이나, 수행하지 않게 되면 정법은 곧 소멸하고 말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여러 경전에도 『누구나 부처님 말씀대로 닦으면(如説修行) 다 반드시 견성 성불한다』하였고 조사들의 말씀에는 『참선하는 이가 견성하는 것은 세수하다가 코를 만지는 것처럼 아주 쉽고 당연한 일이다』하였으므로, 누구나 공부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다만 우리는 사학(邪學)과 외도(外道)가 번성한 이 시대에 났으므로, 망녕된 알음알이를 내지 말고 줄기차게 정진한다면, 하나도 실패함이 없을(萬無一失)뿐 아니라 정법은 영원히 나아갈 것이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곳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울화(鬱火 답답할 울,불 화) ; 분한 마음을 삭이지 못하여 일어나는 화(火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생기는 노엽고 답답한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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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게송) ‘야야포불면~’ ; 만신찬속장경(卍新纂續藏經) 제88책 <거사전(居士傳) 7> 부대사전(傅大士傳) 참고.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경계(境界) ; ①어떤 영역끼리의 한계. 또는 영역끼리의 사이, 접점. ②인식 또는 어떤 세력이 미치는 범위.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초파일)2014. 9. 28. 12:01

§(759) (게송)천상천하무여불~ / 부처님이 사바세계에 오신 목적—자성불(自性佛)을 깨달아라 / (게송)작래무영수.

우리가 부처님이 탄생하신 뜻과 목적을 깊이 인식을 해서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마음의 부처를 찾아서 마음의 부처를 깨닫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정말 원하시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산승(山僧)이 이렇게 말할 줄 알고, 산승이 이렇게 말씀을 하면은 여러분이 알아들을 줄 아는 그것이 바로 —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마음속에 있는 우리 자신의 부처님인 것입니다. 그래서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엇을 들을 때, 보고 듣는 밖으로 나가지 말고 바로 그것에 즉해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올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 무엇고~?’입니다.


**송담스님(No.759)—2013(계사년) 부처님오신날(05.17)-14분 (용759)


약 14분.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이요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로다
나~무~아~미~타~불~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하되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로다
나~무~아~미~타~불~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이요,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다.
하늘 위, 하늘 아래 부처님과 같으신 분이 없고,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다, 시방세계(十方世界)에 견줄 바가 없다.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하되, 온 세계를 다 내가 두루 봐도.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다, 부처님과 같은 그런 분이 안 계시다.

이 게송은 부처님을 찬양하는 찬불게(讚佛偈)입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는 지금 금년이 불기(佛紀) 2557년인데 —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해를 일 년으로 해서 2557년인데, 부처님께서는 80세를 사시다가 열반(涅槃)에 드셨기 때문에 거기에다가 80를 보태며는 2637년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왕궁에 태자로 태어나셔서 무상(無常)을 깨달으시고 출가를 하셔서 6년 고행(苦行) 끝에 결국은 깨달아서 성불(成佛)을 하셨는데,
‘부처님께서 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오셨는가?’, ‘이 사바세계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

우리는 오늘 여러분이 보신 바와 같이 2만여 개의 등불을 켜고 향과 꽃과 일체 과일과 음식, 온갖 정성을 다해서 불단(佛壇)에 이렇게 공양(供養)을 올렸습니다.

부처님의 생신을 — 탄생하신 날을 우리가 정성을 다해서 이렇게 공양을 올렸는데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입으로 잡수실 수도 없고, 코로 맡으실 수도 없으시고, 등상불(等像佛)로 계시지마는,
우리의 정성은 우주 법계에 가득차 계신 부처님의 법신(法身)과 보신(報身)과 화신(化身)으로서 우리의 정성을 잘 받으셨으리라고 믿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금강경(金剛經)에 말씀하시기를,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만약 색상(色相)으로써 나를 보거나, 음성(音聲)으로써 나를 구하는 사람은,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사람이라 여래(如來)를 보지 못할 것이다(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종호(八十種好)와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갖추신 우주 법계에는 다시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모든 것을 다 원만히 구족해 가지고 탄생을 하셨으면서도,
색상이나 음성으로서 나를 보거나 찾는 사람은 사도를 행한 사람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뜻은 진짜 부처님, 진짜 여래는 눈이나 귀로써 찾는 것이 아니라, 모양으로 찾거나 음성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우리 자신의 자성불(自性佛)을 찾음으로 해서 부처님의 참모습을 보고 깨달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아주 깊이 표현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을에서는 부모나 조부모의 생신에 여러가지 맛있는 음식과 떡과 과일과 모다 그런 것을 장만을 해서 그 어른께 생신을 축하하는 뜻으로 공양을 올리거든,

하물며 만덕존자(萬德尊者)이신 우주 법계의 부처님이신 그 부처님의 탄생을 우리가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정성을 다해서 축복을 해드리는 것은 우리의 도리를 다한 것이고,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마는 부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은 거기에서 그쳐서는 아니되고,

우리가 부처님이 탄생하신 뜻과 목적을 깊이 인식을 해서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마음의 부처를 찾아서 마음의 부처를 깨닫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정말 원하시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조실스님의 법문을 다같이 경청을 했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올라온 것은 설법을 하기 위해서 올라온 것이 아니라 여러분과 같이 조실스님의 법문을 듣고, 여러분과 같이 부처님의 탄신을 축복하면서,
어떻게 하면은 정말 부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오늘 초파일 경축일을 우리가 보내며, 앞으로 어떻게 우리가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간곡히 말씀을 드리고자 이 자리에 왔습니다.

우리는 부처님과 똑같은 ‘부처님’을 우리 자신도 낱낱이 다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엑스레이로 찍어도 그것은 사진에 나타나지 않고, 의사가 해부를 해도 그것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산승(山僧)이 이렇게 말할 줄 알고, 산승이 이렇게 말씀을 하면은 여러분이 알아들을 줄 아는 그것이 바로 —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마음속에 있는 우리 자신의 부처님인 것입니다.

그래서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엇을 들을 때, 보고 듣는 밖으로 나가지 말고 바로 그것에 즉해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올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 무엇고~?’입니다.

좋은 일을 보거나 좋은 소리를 들어도 ‘이 무엇고~?’ 누구한테 욕을 듣거나 슬픈 소리를 듣더라도 그리 가지 말고 바로 ‘이뭣고~?’로 돌아온다면 가장 빨리 자기 마음을 찾는 공부가 될 것입니다.


작래무영수(斫來無影樹)하야  초진수중구(燋盡水中漚)니라
나~무~아~미~타~불~
가소기우자(可笑騎牛者)여  기우갱멱우(騎牛更覓牛)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그림자 없는 나무를 베어다가, 물 가운데 버큼을 다 녹여 없앨지니이다.(斫來無影樹  燋盡水中漚)

가소기우자(可笑騎牛者)여, 기우갱멱우(騎牛更覓牛)로구나.
가히 우습구나, 소를 타고 있는 사람이여. 소를 타고 있으면서 소를 찾고 있구나.
이 게송은 서산대사(西山大師)가 남기신 게송입니다.

우리는 오늘 계사년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해서 한 생각 깊이 반성하고 각오(覺悟)할 것을 서산대사께서는 이 게송으로서 우리에게 남겨 주셨습니다.

오늘 이 초파일에 같이 부처님 오신날을 축복한 인연으로 우리는 더욱 건강하고, 건전한 신심과 정신으로서 앞으로 열심히 ‘이뭣고~?’를 하시면 가정도 화평하시고 우리의 크고 작은 소원도 다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가지 음식을 많이 장만했으니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공양을 잡숫고, 같이 부처님 오신날을 축복하면서 돌아가시길 바랍니다.(처음~13분35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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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세계(十方世界) ; 온 세계. 사방(四方 동•서•남•북)과 사유(四維 동북•동남•서남•서북)와 상하(上下)에 있는 무수한 세계.
*찬불게(讚佛偈) ;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
『본생경(本生經)』에서 말하기를, 아주 먼 과거에 저사(底沙)라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그때 두 사람의 보살이 있었으니, 한 사람은 석가(釋迦) 보살이라 했고 또한 한 사람은 미륵(彌勒) 보살이라 했다.


어느날 저사불께서 두 보살을 관찰해 보시니, 지혜의 면에서는 미륵 보살이 앞서 있으나 중생 교화의 면에서는 석가 보살이 앞서 있어서, 저사불은 석가 보살로 하여금 속히 부처를 이루게[成佛] 하기 위하여 설산에 올라가 보굴(寶窟) 속에서 화광삼매(火光三昧, 火定)에 드셨다.
이때 석가 보살이 산에 올라가 약을 캐고 있었는데, 저사불께서 보굴 속에 앉아 화광삼매에 들어 밝은 광명을 내뿜는 것을 보자, 그 거룩한 모습에 어찌 할 수 없어-들었던 발을 내려놓고 또 다른 발을 들어서 걸어가지를 못하고-한 발을 들은 채로 합장하고, 환희하며 믿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하여 일심으로 우러러 뵙되 잠시도 눈을 깜박이지 않고 7일 낮과 7일 밤을 있었다.
여기에서 그 칠일칠야(七日七夜) 시일이 지나가면서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 천상천하에 부처님 같으신 이 없으시고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 시방세계에서도 견줄 이 없도다.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 세상에 존재하는 것, 내 모두 보았으나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 그 어느 것도 부처님에 비할 바 아니네.

이 게송을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이다해서 찬불게(讚佛偈)라 하는데,
7일 7야 동안 세존(世尊)을 자세히 관하되[諦觀] 조금도 눈을 깜박이지 않으시니, 이로 인해 아홉 겁(九劫)을 뛰어넘어 91겁 만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를 얻으셨다.
[참고] [대지도론(大智度論)] (4권) '初品中菩薩釋論第八' 참고. [전등록 2] (동국역경원) p133 참고.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고행(苦行) ; ①어떤 경지에 이르거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육신을 극도로 괴롭히는 수행. ②깨달음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가지 고난을 겪으며 하는 수행.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깨달음을 여는 것. 각자가 스스로 무상의 깨달음을 열고, 부처가 되는 것. ④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불단(佛壇) ; 법당 안에 불상(佛像)을 높이 모셔놓고 장엄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壇)으로 수미단(須彌壇)이라고도 한다. 수미라는 말은 불교의 우주관에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산—수미산(須彌山)에서 따온 것이다.
수미단이라 한 것은 진리를 깨달으신 부처님이 시방세계에서 가장 위대하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등상불(等像佛) ; 나무, 돌, 흙 등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으로 만든 부처님.
*법신(法身) ; 진리 그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 비로자나불과 대일여래가 여기에 해당함.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빛깔이나 형상이 없다.
*보신(報身) ; 부처가 전생에 보살로 있을 때 중생을 위해 서원을 세우고 거듭 수행한 결과,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님. 아미타불과 약사여래가 여기에 해당함.
*화신(化身) ;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여 때와 장소와, 중생의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나타나 그들을 구제하는 부처님. 석가모니불을 포함한 과거불과 미륵불이 여기에 해당함. 응화신(應化身)·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금강경(金剛經) ; 금강경의 완전한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또는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能斷金剛般若波羅蜜經)].
금강(金剛)은 단단하고 날카로움을 뜻하는 다이아몬드를 가리키며, 반야(般若)는 지혜를, 바라밀(波羅蜜)은 저편 언덕으로 건너는 것, 즉 열반에 이른다는 바라밀다(波羅蜜多)의 줄임말이다.
풀이하면 ‘금강석처럼 견고한 지혜를 얻어 열반에 이르라는 부처의 말씀’을 뜻하는 것이다.
이 금강경은 대 반야경 육백부(六百部) 중에서 577권에 해당되고, 그 내용이 약 3백송(三百頌) 정도의 분량이기 때문에 ‘삼백송 반야경’이라고도 하며, 대략 서기 150~200년경의 대승경전 최초기에 만들어진 경전이라 할 수 있다.
「금강경」의 금강(金剛)은 금강석 곧 다이아몬드를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기에 무엇이라도 부술 수 있고, 세상에서 가장 예리하기에 무엇이라도 자를 수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기에 어둠을 밝게 비출 수 있다는 금강석을 부처님의 가르침, 반야의 지혜로 비유한 것이다.
금강석처럼 단단하고 예리하고 반짝이는 완전한 반야의 공지(空智)로 보살행을 수행하면 열반을 성취하여 성불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설한 경전이란 뜻.
「금강경」은 부처님과 수보리의 문답으로 전개되어, 공(空)사상에 입각하여 집착 없이 보살행을 실천하는 일을 중심 내용으로 대승불교의 기본 사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게송) ‘약이색견아~’ ; [금강경(金剛經)]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사구게(四句偈).
*색상(色相) ; 육안(肉眼)으로 볼 수 있는 모든 물질의 형상.
*사도(邪道) ; 올바르지 않은 삿된 길.
*여래(如來) : 부처님 10호의 하나。 범어 Tathagata의 역(譯)。 여(如)는 진여(眞如)의 뜻이니 곧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의 뜻。 또 여거여래(如去如來)의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과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먹음은 것,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것 등등.
*삼천위의(三千威儀) ; 비구(출가한 남자 스님)의 일상 행동에서 지켜야 할 계율이 250종이어서 이를 ‘비구 250계’라고 한다. 일상생활은 크게 행(行)·주(住)·좌(坐)·와(臥)로 나누기 때문에 이 네 가지에 250을 곱하면 천이 된다. 이를 다시 과거·현재·미래의 삼세(三世)에 곱하면 3천이 된다.
*팔만세행(八萬細行) ; 부처님의 모든 행동은 원만하여 모자라거나 넘침이 없다는 것. 팔만 가지 세세한 행동들이 전부 부처님의 위의(威儀, 훌륭한 행위)에 어긋남이 없다는 뜻이다.
*자성불(自性佛) ; 우리 마음속에 있는 우리의 자성(自性)이 곧 부처라는 뜻.
*만덕존자(萬德尊者) ; 만덕(萬德)을 구족(具足)한 존자. 부처님을 말함.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게송) ‘작래무영수~’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92 ‘법장대사(法藏大師)’ 게송 참고. *斫(작)베다. 자름. *燋(초)그을리다. *漚(구)거품. *騎(기)말 타다. *覓(멱)찾다.
*버큼 ; ‘거품’의 사투리.
*서산대사(西山大師)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각오(覺悟) ; ①앞으로 해야 할 일이나 당할 어려움 따위에 대하여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함. 또는 그런 마음. ②이치나 도리를 깨우쳐 앎.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Posted by 닥공닥정
거울 법문2014. 3. 1. 18:54

§(152) 참선(參禪)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능력이요 자격 / 거울법문 / 다못 바보처럼 「이뭣고?」 이렇게 해야 / 참선•불법(佛法)의 목적은 깨닫는데 있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다.

 

참선(參禪)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능력이요 자격입니다. 지식이 있건 없건 그것도 상관이 없고, 머리가 좋고 나쁘고 헌 것도 상관이 없고, 죄를 많이 짓고 안 짓고,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안 허고 헌 것도 전혀 상관이 없어.


참선하는데 제일 조심해야 할 것은 분별심(分別心)으로 따져 들어가는 거 - 경전에 있는 말씀, 어디서 들은 법문의 말씀, 그러헌 교리적으로 또는 철학적으로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따져 들어가는 거, 설사 무슨 그럴싸한 결론을 얻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알음알이지, 깨달음은 아닌 것입니다. 참선의 목적, 불법(佛法)의 목적은 깨닫는데 있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예요.


**송담스님(No.152) (참선법B) - 1981년 10월 첫째일요법회(1981.10.04)에서. (용152)

 

약 21분.

 


내가 나를 찾는데 - ‘내’라는 게 뭣이냐 허면은,
눈으로 무엇을 보고서 ‘아! 저것이 주장자다. 저것이 마이크다. 저것이 사람이다.’ 그렇게 아는 놈이 있거든.

‘저 산은 푸르다.’ 푸른 줄 아는 놈. 그것이 바로 나의 ‘나’여. 또 소리를 듣고 ‘저게 어린애 목소리다’하고 아는 놈. 그놈을 여의고 내가 없어. 대관절 거기에서 나를 찾어야 한다 그 말입니다.

눈으로 무엇을 볼 때 그때가 바로 나를 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때 바로 그 찰나(刹那)가 나를 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나를 찾는 기회요. 나를 깨닫는 기회다 그말이야.

그놈을 여의고 내가 없고, 그놈을 여의고 부처도 없고 성품도 없기 때문에 그렇다.

눈으로 무엇을 볼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선을 할 수가 있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줄 안 사람은 누구나 참선을 헐 수가 있고,
코로 무슨 냄새를 맡을 줄 아는 사람은 누구도 참선을 헐 수가 있는 것이어서,

참선(參禪)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능력이요 자격입니다.

지식이 있건 없건 그것도 상관이 없고,
머리가 좋고 나쁘고 헌 것도 상관이 없고,
죄를 많이 짓고 안 짓고,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안 허고 헌 것도 전혀 상관이 없어.

눈앞에 모든 물건을 보는 것은 자기가 거울을 하나 놓고 그 거울에 비추어진 자기 얼굴을 보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머리가 나쁘고 무식허다 하드라도 거울로 떠억 자기 얼굴을 보고서 『대관절 저 사람이 누군고?』 하고 의심헐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옛날에는 거울이라는 것을 전혀 보지도 듣지도 못한 사람이 자기 남편이 중국에 갔다 오는 길에 거울을 하나 선사를 했는데,
그 거울을 그 부인이 보고서 대성통곡(大聲痛哭)을 하면서 ‘중국에 가서 여러 달 있다 오더니 예쁜 각시를 하나 얻어 가지고 왔다’고 대성통곡을 헌다 그말이여.

그래 시어머니가 『아! 대관절 왜 그렇게 우냐? 좋으면 좋게 좋지. 아무리 좋다고 남편이 오랜만에 돌아와서 좋다고 그렇게 통곡까지 할 수가 있느냐?』
며느리가 『아니오, 어머니. 좋아서가 무엇입니까? 중국에 갔다 와서, 나는 잘 갔다 온 줄 알았더니 계집을 하나 뀌어 차고 왔다.』고 그러거든.
그래서 『무슨 계집이 어디가 있느냐?』
『여기 보세요.』 거울을 드리니까,
시어머니가 그 거울을 보더니 『아이구, 어디서 예쁜 각시 커녕은 늙은 년을 어디서 데리고 왔다.』

거울을 통해서 자기 얼굴을 보듯이, 하늘을 보아도-그 하늘에 뜬 구름을 보면서 그 구름을 통해서 자기를 볼 줄 알아야 하거든.
먼 산에 푸른 산을 보아도 그 푸른 산의 모습을 보고서 바로 자기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자기로 돌아 올 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지나가는 버스를 보고도 그 버스를 통해서 자기로 돌아와야 하고, 어떤 놀고 있는 어린애를 보고도 자기로 돌아올 줄 알아야 한다.
어머니 되신 분들은 어린애를 보고는 자기 어린애를 금방 생각할 줄 아실 것입니다.

그렇듯이 그 어린애를 보건, 푸른 산을 보건, 흰 구름을 보건, 버스를 보건 무엇을 보든지 간에 그 본 찰나에 자기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자기를 보아야 하는 것이다.
자기를 깨달라야 하는 것이다.
자기의 부처를 깨달라야 하는 것이다.

자성불(自性佛)을 깨닫기 위한 공부가 바로 화두(話頭)를 드는 것이여.

「이뭣고?」 무엇을 보던지 간에 「이뭣고?」 이렇게 공부를 지어 가는 것입니다.

무슨 소리를 듣더라도 마찬가지여. 어떤 소리를 듣더라도-아들을 잃어버린 사람은 어디서 어린애 우는 소리나 목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를 듣는 찰나에 죽은 아들을 생각허겠죠.

그와 같이 어떠헌 소리를 들으면 퍼뜩 「이뭣고?」 이렇게 공부를 지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이 어렵다 하겠습니까?

눈을 뜨면 무엇이 보이고 잠에서 일어나면 항시 개방되어 있는 것이 귓구멍인데 들으라고 안 해도 언제나 소리는 들려오고 있고,
눈을 떴다하면 언제라도 노란 것 아니면 파란 것, 파란 것 아니면 검은 것, 사람 아니면 짐승, 물건, 집, 장님이 아닌 동안에는 언제나 눈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보게 될 것입니다.

후각이 이상이 생기지 아니한 사람은 언젠가 무슨 냄새가 들어오던지 들어올 것이고, 무슨 음식을 먹을 때 그 맛을 볼 것이고, 짜고 싱겁고 구수한 것을 알 것이고,

눈도 감고 귀도 막고 코도 막고 입을 막았다 하더라도 무엇인가 생각이 날 것입니다.

지나간 생각, 현재 닥치고 있는 생각, 앞으로 다가올 생각, 사람 생각 아니면 재산 생각 아니면 명예와 권리에 대한 생각, 무엇인가 생각이 일어날 것입니다.

일어나는 그 생각이 두 번째 다음 생각으로 옮겨가기 전에 「이뭣고?」
「‘이뭣고?’헌 이놈이 뭣고?」 이렇게 허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찾고, 찾는 그놈을 다시 되찾고.

아까 조실스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뭣고?」 저 푸른 산을 볼 때에 「저 산을 보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그 다음에는 금방 「이 ‘이뭣고?’헌 이놈이 뭣고?」 이렇게 공부를 허는 것입니다.

분별심(分別心), 사량심(思量心), 과거에 책을 보고 알았건, 귀로 들어서 알았건, 눈으로 봐서 알았건, 누구한테 배워서 알았건, 생각해서 알았건, 일체 지식이나 상식 다 이 공부허는 데에는 필요가 없습니다.
그 보고 듣고 알고 헌 그러헌 것들을 여기에 끌어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놔두고 다못 바보처럼 「이뭣고?」 이렇게 허는 것입니다.

이 참선하는데 제일 조심해야 할 것은 분별심(分別心)으로 따져 들어가는 거-경전에 있는 말씀, 어디서 들은 법문의 말씀, 그러헌 교리적으로 또는 철학적으로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따져 들어가는 거,

설사 무슨 그럴싸한 결론을 얻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알음알이지, 깨달음은 아닌 것입니다.

참선의 목적, 불법(佛法)의 목적은 깨닫는데 있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예요.

그래서 참선하는 데에는 ‘무슨 경책(經冊)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공부를 잘하냐?’ 절대로 그렇지를 않고, ‘머리가 좋아야만 하는 것이냐?’ 절대로 그렇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코가 없으면 똥을 된장으로 알고 집어먹을 만큼 미련헌 것이 오히려 이 참선을 허는 데에는 훨씬 빨리 깨달을 수 있는 면이 있다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과거에 어떤 조사는 『지옥에 염라대왕이 와서 끌어갈랴고 해도 하나도 무서워헐 줄도 모르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오셔서 아미타불이 오셔서 극락으로 데려간다고 해도 하나도 좋아헐 줄도 모르고 이러헌 바보가 있다면 당장 내가 인가(印可)를 하겠다.』 이렇게 말씀하신 도인(道人)도 계십니다.

소란 놈이 목이 마를 때 주인이 맑은 시냇가로 끌어다 대주면 소는 의심 없이 그 물을 꿀꺽꿀꺽 마시기만 허면 되는 것입니다.

‘이 물이 농약이 안 섞여 있을까? 누가 이 물에다가 독약이나 안탔을까? 이 물에는 균이 없을까? 이 물을 마시면 설사를 안 헐까?’ 이러헌 등등 머리가 영리하고 지식이 있는 척하고 이리저리 따지고 재고 그러기 보다는 주인을 믿고 주인이 끌어다가 대주면 여지없이 의심 없이 꿀꺽꿀꺽 마시는 그러헌 순한 소처럼,

『바른 자세로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2~3초 정지헌 뒤에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뭣고?」 해라』하면,

『아무 의심 없이 「이뭣고?」 그렇게만 허면, 무량겁 업이 다 녹아지고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이도 거기에서 다 항복을 하고, 「이뭣고?」 한마디에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다 읽은 공덕(功德)과 같고,
이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해 나가면 금생에 결정코 ‘참나’를 깨달라서 대도(大道) 견성(見性)을 헌다』
그렇게 말을 들으면,

여지없이 확- 믿고, 앉어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차를 탈 때나 일을 할 때나 한 생각 한 생각 그렇게 순진하게 착실하게 간절하게 공부를 지어간다면 결단코 견성을 허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영리헌 것, 참 별로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세지총명(世智聰明), 세속적인 지혜가 영리하고 총명한 사람은 그 사람 도 닦기가 힘들다 그랬습니다.
세상에서는 영리허고 똑똑헌 것을 대단히 참 취하지만 도 닦는 데는 약삭빠르고 영리하고 똑똑한 거 그거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러믄 ‘영리하고 똑똑한 사람은 도를 닦지 않고 바보·천치(天癡)들만 모여서 참선을 해야겠구나. 나는 바보·천치가 아니고 영리허니까 참선은 해봤자 적성에 안 맞구나.’ 이렇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영리해도 영리헌 데에 빠지지 아니하면 그것도 상관이 없는 것이고, 아무리 경책을 많이 읽었어도 경책을 읽은 그것에 집착함이 없으면 아무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좋은 것, 아무리 좋은 것도 집착(執着)하면 그것이 병이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깨달음을 얻어가지고서도 그 깨달음에 집착을 허면 참 깨달음이 아닌 것입니다.

『보살도(菩薩道)를 증득(證得)한 보살이 「나는 보살도를 증득했다」한 생각을 갖게 되면 이미 보살이 아니다. 나한과(羅漢果)를 증득한 성현이 「나는 나한과를 증득했다」고 허는 생각을 가지면 이미 나한(羅漢)이 아니다.』하는 말씀이 금강경(金剛經)에 있습니다.

그러헌 깨달음을 얻은 성현(聖賢)도 ‘내가 성현이 되았다’고 허는 생각을 가져서는 아니 되거든 그밖에 무엇에 우리가 집착을 헐 것이 있겠습니까?

얼굴이 조끔 남보다 이쁘게 생겼다고 그것을 집착할 것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잘 생긴 얼굴도 1mm에 십분의 일도 못 될 만큼 얇은 껍데기만 벗겨 놓으면 보기가 흉할 것입니다.

아무리 신체가 건강한 사람도 숨 한 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10분 못가서 내장이 버글버글 썩어 들어가고, 아무리 힘이 센 장사라도 마찬가지여.
아무리 권리와 명예가 많은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은 사람도 또한 마찬가지요.

우리는 아무것에도 그것을 내가 가졌다고 해서 으시대고 뽐내고 남을 업신여기고 그럴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군자는 참으로 이 불법을 올바르게 믿는 보살은 돈이 많을수록에 겸손(謙遜)하고, 지식이 많을수록에 겸손하고, 권리와 명예가 많을수록에 겸손하고, 힘이 셀수록에 겸손을 하는 법인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 하나를 가지면 자연히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돈을 가졌다, 권리가 있다, 명예가 있다, 지식이 있다’하고 목에다 힘을 주고 뒤로 자지바지해 가지고 남을 업신여기면, 만나는 사람마다 그 사람은 싫어허는 것입니다. 미워허는 것입니다.
그 사람 잘못 되기를 고소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집착하는 마음만 없으면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힘이 세면 셀수록 좋고,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그 뭐 하등(何等)의 나쁘다 할 것이 없습니다.

집착하는 마음을 갖지 말고 언제나 「이뭣고?」를 앞세우고 살아간다면 거기에서 업장(業障)은 소멸이 되고 복(福)과 지혜(智慧)가 증장이 될 것입니다.

이러헌 그렇게도 간단하고 그렇게도 쉬웁고, 누구도 할 수 있는 이 법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는 것입니다.(20분50초~41분1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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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剎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대성통곡(大聲痛哭) ; 큰 소리로 몹시 슬프게 욺.
*자성불(自性佛) ; ‘자성(自性)이 즉 부처’라는 뜻.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이 무엇고(이뭣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알음알이 ; ①어떤 인식대상에 대해 마음 또는 마음작용이 가지는, 그 인식대상에 대한 형상 즉 이미지를 아는 것을 말한다.
②마음이 번뇌에 덮여있는 상태, 말하자면 거울에 때가 낀 상태에서 가지는 이러한 앎을 깨달음[무루혜 無漏慧-모든 번뇌를 해탈(解脫)한 성자(聖者)의 지혜]과 구분하여 알음알이라 한다.
*아미타불(阿彌陀佛) ; Amitabha Buddha(無量光佛-무한한 공간에 꽉 차 있어서 안팎과 갓이 없는 빛의 부처님), Amitayus Buddha(無量壽佛-무한한 시간에 뻗치어서 끝없는 생명의 부처님) 대승불교의 중요한 부처님. 줄여서 미타(彌陀).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Buddha)의 감화를 받은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가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로 기원하였다.
또 48원(願)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오랜 겁을 수행한 결과 지금부터 10겁 이전에 그 원행(願行)이 성취되어 아미타불이 되었다.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 ; 많은 수의 악마의 군세(軍勢)를 뜻함.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팔만사천(八萬四千) : 법수(法數)에는 이 말이 퍽 많다. 그것은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사천이다.
또한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이것을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좋은 과보를 받을 선행(善行).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천치(天癡, 天痴) ; ①어리석고 못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선천적으로 정신 작용이 완전하지 못하여 어리석고 못난 사람.
*집착(執着) ; 허망한 분별로써 어떤 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그릇된 분별로써 어떤 것을 탐내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함.
*보살도(菩薩道) ; ①보살의 수행. 보살이 자리이타(自利利他)를 갖추어 깨달음에 이르는 도. ②대승불교.
*증득(證得) ;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함.
*나한과(羅漢果) ; 아라한(阿羅漢)의 경지.
*나한(羅漢) ; 아라한(阿羅漢)의 준말.
*아라한(阿羅漢) ;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 이 경지를 아라한과(阿羅漢果),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를 아라한향(阿羅漢向)이라 함. 응공(應供)•응진(應眞)•무학(無學)•이악(離惡)살적(殺敵)•불생(不生)이라 번역.
마땅히 다른 사람의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으므로 응공(應供), 진리에 어울리므로 응진(應眞), 더 닦을 것이 없으므로 무학(無學), 악을 멀리 떠났으므로 이악(離惡), 번뇌라는 적을 죽였으므로 살적(殺敵), 미혹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불생(不生)이라 함.
*금강경(金剛經) ; 금강경의 완전한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또는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能斷金剛般若波羅蜜經)].
금강(金剛)은 단단하고 날카로움을 뜻하는 다이아몬드를 가리키며, 반야(般若)는 지혜를, 바라밀(波羅蜜)은 저편 언덕으로 건너는 것, 즉 열반에 이른다는 바라밀다(波羅蜜多)의 줄임말이다. 풀이하면 ‘금강석처럼 견고한 지혜를 얻어 열반에 이르라는 부처의 말씀’을 뜻하는 것이다.
이 금강경은 대 반야경 육백부(六百部) 중에서 577권에 해당되고, 그 내용이 약 3백송(三百頌) 정도의 분량이기 때문에 ‘삼백송 반야경’이라고도 하며, 대략 서기 150~200년경의 대승경전 최초기에 만들어진 경전이라 할 수 있다.


「금강경」의 금강(金剛)은 금강석 곧 다이아몬드를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기에 무엇이라도 부술 수 있고, 세상에서 가장 예리하기에 무엇이라도 자를 수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기에 어둠을 밝게 비출 수 있다는 금강석을 부처님의 가르침, 반야의 지혜로 비유한 것이다.
금강석처럼 단단하고 예리하고 반짝이는 완전한 반야의 공지(空智)로 보살행을 수행하면 열반을 성취하여 성불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설한 경전이란 뜻.
「금강경」은 부처님과 수보리의 문답으로 전개되어, 공(空)사상에 입각하여 집착 없이 보살행을 실천하는 일을 중심 내용으로 대승불교의 기본 사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성현(聖賢) ; 성인과 현인을 아울러 이르는 말.
*으시대다 ; 어울리지 아니하게 우쭐거리며 뽐내다.
*업신여기다 ; (사람이 대상을)교만한 마음으로 낮추어 보거나 하찮게 여기다.
*겸손(謙遜 겸손할 겸,겸손할 손) ;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있음.
*하등(何等) ; (주로 ‘하등의’ 꼴로 쓰여;뒤에 오는 ‘없다’, ‘않다’ 따위의 부정어와 호응하여) ‘아무런’, ‘아무’ 또는 ‘얼마만큼’의 뜻을 나타내는 말.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