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삼요)2016. 6. 15. 10:29

 

 

§(712) (게송)진로형탈사비상~ / 신심·분심·의심 삼요(三要) / ‘이뭣고?’화두가 화두의 근본 / 진정신심(眞正信心) 발해야. 정성이 안으로부터서 발해야.

 

정진을 할려면 첫째 철저한 신심(信心) 있어야 하고, 신심이 있으므로 해서 분심(憤心), 분발심(奮發心) 있어야 하고, 신심과 분발심을 바탕으로 해서 화두(話頭) 들어야 화두에 대한 대의심(大疑心) 일어나는 것입니다. 무슨 신심(信心)이냐 하면은우리도 여법(如法)하게 열심히 수행하면 반드시 깨달을 수가 있고, 성불(成佛) 수가 있다 하는 신심입니다.

 

오종(五宗) 가운데에 임제종(臨濟宗)에서는 간화선(看話禪)이라 해서 화두를 의심을 가지고 깨닫는 간화선입니다마는, 간화선이라 하는 것은 육조 스님으로부터시삼마(是甚)’ 화두가 나왔고, 뒤로 임제(臨濟) 스님이 화두에 대한 구체적인 수행법을 설법을 하셨고, 뒤로 대혜종고 선사에 의해서 간화선이 체계화가 되었습니다. 화두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때부터서 화두란 말은 없었지마는 화두의 근본 이념은 법문 속에 들어있습니다.

 

오조(五祖) 스님 법문 가운데에정성(情誠) 자내발(自內發)해야 한다. 안으로부터서 정성심이 일어나야 한다 하는 간곡한 말씀이 있습니다. 정성심(情誠心) 안으로부터 발해야 한다 하는 것은 결국은 초단계에 있어서는 대중 법도를 지키면서 최소한도로 다른 대중 스님네에 () 끼치지 않는 범위내에서는 자기 나름대로 노력을 계속 함으로 해서 정성심이 안으로부터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712)—2007(정해) 하안거 결제 법어. (용712)

 

(1) 약 12분.

 

(2) 약 11분.

 

(1)------------------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진로형탈(塵勞逈脫) 사비상(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생사 진로(塵勞) 멀리 해탈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승두(繩頭) 잡고 한바탕 공부를 해야 것이다.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한번 추위가 뼛골에 사무치지 아니하면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침을 얻으리오.

겨울에 되게 강추위를 뒤끝에 매화꽃이 피어야 매화꽃 향기가 진동하는 법인데, 겨울 날씨가 뜨뜻해 가지고 강추위를 하지 아니하면 뒤끝에 매화가 피어봤자 별로 향그럽지 못하다.

 

게송은 황벽(黃檗) 희운(希運)선사, 조사께서 우리 후래(後來) 선학자, 수행자를 위해서 특별히 읊어 주신 게송(偈頌)입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도 생존시에 법회 많이 게송을 읊어서 설법을 하셨습니다.

 

방금 조실 스님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우리는 경청했습니다. 구구절절이 참선해 나가는 있어서 요긴한, 우리가 뼛골에 사무치도록 깊이 이해하고 마음에 새기는 가운데 정진을 해야 그러한 금쪽 같은 법문(法門) 들었습니다.

산승이 더이상 여기 법상(法床)에서 말이 없습니다마는 이렇게 용주사 대중・복전암 선방・회룡사・승련사・위봉사・화운사 그리고 세등선원 결제(結制) 대중들이 법당 가득히 모였으므로 격려의 말씀을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금번 여름에 방부(房付) 들인 수좌(首座) 대중 가운데에는 철에 나온 그런 수좌들이 있기 때문에 화두를 들고 정진해 가는데 말씀 부언해서 말씀하고자 합니다.

정진을 할려면 첫째 철저한 신심(信心) 있어야 하고, 신심이 있으므로 해서 분심(憤心), 분발심(奮發心) 있어야 하고, 신심과 분발심을 바탕으로 해서 화두(話頭) 들어야 의심이, 화두에 대한 대의심(大疑心) 일어나는 것입니다.

 

무슨 신심(信心)이냐 하면은우리도 여법(如法)하게 열심히 수행하면 반드시 깨달을 수가 있고, 성불(成佛) 수가 있다 하는 신심입니다.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인물이 잘나거나 못났거나, 학식이 깊거나 학식이 별로 없거나 그런 것이 전혀 상관이 없이 우리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불성(佛性)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올바른 방법으로 참선을 하면 반드시 우리도 조사(祖師) 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다고 하는 신념이 확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념이 확고하면 우리는 그럭저럭 지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부모를 버리고, 형제를 버리고, 가정을 버리고, 청춘을 버리고, 인생을 버리고 출가(出家) 했고, 설사 세속에 출가 아니하고 산다하더라도 어쩔 없이 가정을 벗어날 수는 없으나 가정에서라도 따라서, 따라서 열심히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가정에서도 녹음을 통해서 들으면서 열심히 정진을 한다면머리를 깎지 않은 신남신녀, 청신사 청신녀의 신분으로도 과거에 깨달은 분이 많습니다비록 출가는 했어도 열심히 올바르게 정진하면 깨달을 있다고 하는 신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다음에 분심(憤心)이라 하는 것은내가 인생으로 태어나서 오욕락(五欲樂) 버리고 머리를 깎고 출가했으니 어찌 초라도 그럭저럭 지낼 수가 있겠는가. 과거에 불보살은 진즉 해탈도을 얻어서 중생교화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무량겁을 두고 오늘날까지 오면서 깨닫지 못했는가.

지금이라도 불법을 듣고 알고 믿었으니 어쨌든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화두를 챙겨서 정진을 해야겠다그런 분심이 항상 가슴속에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신심과 분심이 있다면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종(五宗) 가운데에 임제종(臨濟宗)에서는 간화선(看話禪)이라 해서 화두를 의심을 가지고 깨닫는 간화선입니다마는, 간화선이라 하는 것은 육조 스님으로부터시삼마(是甚)’ 화두가 나왔고, 뒤로 임제(臨濟) 스님이 화두에 대한 구체적인 수행법을 설법을 하셨고, 뒤로 대혜종고 선사에 의해서 간화선이 체계화가 되었습니다.

화두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때부터서 화두란 말은 없었지마는 화두의 근본 이념은 법문 속에 들어있습니다.

 

화두라고 하는 것은 간단한 한마디고 문헌에 『염송(拈頌)』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화두(千七百 話頭) 있습니다마는, 화두의 최초의 근본은시삼마(是甚) 이뭣고?’ 화두입니다. ‘ 뚱이를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것이불성(佛性)이다, 자성(自性)이다그런 말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 화두면어째서 ()라고 했는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면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어떠한 화두를 하고 간에 깨달을 때에는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골낼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알고, 슬퍼할 줄도 아는 대관절 이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이것이이뭣고?’ 화두가 화두의 근본인데, 이것은 이론적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없는 의심뿐인 것입니다. ‘이뭣고?’

 

입으로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해서 염불하듯이, 진언 외우듯이 그냥 입으로만이뭣고. 이뭣고.’ 하는 것이 아니라이뭣고?’ 없는 의심이 있어야 화두를 올바르게 드는 것이고, ‘이뭣고?’ 오래 하다보면이뭣고? 하는 이놈이 뭣고?’ 이렇게 다시 되잡아서 이렇게 들어도 되는 것입니다.

이뭣고?’  ‘~’ ~’하는 이놈이 무엇인가? 없는 의심(疑心)입니다.(처음~123)

 

 

 

 

 

(2)------------------

 

그런데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하려면 첫째,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합니다. 가부좌(跏趺坐) 반가부좌(半跏趺坐) 해서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호흡은 어떻게 하느냐 하면은, 숨을 쑤욱 들어마셨다가 한참 있다가 내쉬는 것입니다. 내슀으면 다시 스르르 들어마시고.

들어마실 때는 가슴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은 고대로 놔두고, 들어마실 때는 아랫배가, 배꼽 밑에 단전(丹田) 부위가 볼록하니 나오도록 느끼면서 들어마셨다가 한참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내쉬되, 내쉼에 따라서 차츰차츰 배가 홀쭉하게 하는 것입니다. 호흡이 나가면은 스르르 들어마시고, 이것이 단전호흡(丹田呼吸)인데.

 

단전호흡을 처음에 준비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준비 호흡은 빨리 잔뜩 가슴으로 들어마셔요. 가득 들어마셨다가 ~ 하고 내쉽니다. 점도 남김 없이 내쉰 다음에는 스르르 빨리 들어마셔요. 번을 이렇게 준비호흡을 하고 다음에 정식으로 단전호흡으로 들어가는데,

들어마실 때는 스르르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볼록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들어마셨다가 한참들어마신 시간 4, 5, 잠시 머무르는 동안이 3, 4, 내쉬면서 4, 5, 대충 10 가량 걸려서 들어마셨다 내쉬는데 무리하게 오래 참아서는 아니됩니다.

 

자기의 그때 상황에 따라서 자연스러우면서도 조용히 이렇게 호흡을 하는데, 단전호흡을 함으로 해서 건강도 좋아지고 소화도 잘되고 혈액순환도 잘되고 해서 건강이 좋아야 정진을 올바르게 수가 있고,

이뭣고?’ 화두를 열심히 들다 보면 사람에 따라서는 상기(上氣) 되는 수도 있고, 소화가 안되는 수도 있고 그러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들어야 상기병도 걸리고, 소화도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심(信心) 분심(憤心) 의심(疑心), 신분의(信憤疑) 가지 요긴한 것과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하면서 의심을 하되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뭣고?’ 눈썹과 사이 중간을 찌푸리면서이뭣고! 이뭣고!’ 자꾸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이뭣고?’ 화두를 단전에다 두고 화두를 드는 것을 자꾸 하다 보면 그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까지는 가지 요소를 지키면서 잘해야지, 처음에 말뚝 신심이 나가지고 이러한 자세와 호흡과 의심을 드는 것을 모르고서 화두를 심하게 힘들여서 하게 되면 바르게 공부하는 방법이 자리잡기 전에 병부터 나는 것이니,

초학자(初學者) 산승(山僧) 설한 『참선법(參禪法)』이라고 하는 녹음테이프가 있으니까 그것을 들으면서, 이러한 자세히 공부하는 법을 말해 놓은 것이 있으니까 그것을 들으면서 기초를 잘해 가지고 그래가지고 올바르게 정진을 해야 것입니다.

 

게송에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 황벽 스님의 게송을 읊었습니다마는 게송의 뜻을 올바르게 이해를 못하면 육체를 억압하고 들볶고 무리하게 하는 것을 바로 용맹정진(勇猛精進), 가행정진(加行精進)이라고 착각을 수가 있습니다.

육체를 갖다가 잠을 자지 않고 밥을 굶고 묵언을 하고, 모다 수행자들이 이렇게 해서 육체를 억압을 하는 것으로써 정진을 열심히 것으로 착각할 수가 있습니다.

 

산승도 묵언도 봤고, 단식도 봤고, 잠도 있으면 잘라고 애를 써봤습니다마는, 결과 그렇게 것만이 정말 올바르게 용맹정진한 것이 아니다고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후배 여러분들께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실컷 먹고, 실컷 자고, 마음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잡담을 하고 그러라는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지 참선을 하는 사람은 필요한 외에는 말을 적게 하는 것이 좋고, 잠도 선방에서 지정된 여섯 시간이—9시에 자고 3시에 일어나니까 여섯 시간을 자도록 되어 있습니다마는,

그래도 선방 스님네들은 그렇게 여섯 시간을 수가 없어서 설사 잠잘 시간에도 시간을 잠자지 않고 자고 할라고 애쓰고.

3시에 일어나게 되었지마는 30분이나 시간 자고 일찍 일어나서 조용히 앉아서 정진을 하는 그러한 스님네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잠을 잔다던지, 아주 말을 한다던지, 밥도 적당하니 먹어야지 너무 과식을 하면 아니된 것입니다. 과식을 해야 하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너무 밥을 적게 먹어도 그것도 영양이 부족해서 정진을 계속해서 하기 어려우니, 말과 수면과 먹는 것도 지혜롭게 해야 앞으로 꾸준히 정진해 나가는데 장애가 없을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진정신심(眞正信心) 발해야 한다. 진정으로 신심을 내야 한다 그런 구절이 나왔습니다마는 신심이다, 분심이다, 의단이라 하는 것이 억지로 하는 것과 저절로 속에서 일어나는 것과 차등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부득불 억지로 신심도 내고, 분심도 내고, 의심도 내려고 몸부림을 수밖에는 없겠습니다마는, 오조(五祖) 스님 법문 가운데에정성(情誠) 자내발(自內發)해야 한다. 안으로부터서 정성심이 일어나야 한다 하는 간곡한 말씀이 있습니다.

 

억지로 겉으로 지어서 가지고는 몸만 괴롭히고 시간만 낭비하는 것이고, 안에서부터 정성심(情誠心) 솟구쳐 나오면 억지로 분심을 낼라고 해도 저절로 분심이 나고, 억지로 화두를 낼라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떠억 들어지는 것입니다.

정성심이 안으로부터서 발하면 저절로 화두가 들어지고, 저절로 잡담을 아니하게 되고, 잠을 억지로 잘라고 해도 저절로 조금만 자도 머리가 개운하고 좋은 것입니다.

 

정성심(情誠心) 안으로부터 발해야 한다 하는 것은 결국은 초단계에 있어서는 대중 법도를 지키면서 최소한도로 다른 대중 스님네에 () 끼치지 않는 범위내에서는 자기 나름대로 노력을 계속 함으로 해서 정성심이 안으로부터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123~2230)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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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진로(塵勞 티끌·속세 /근심할 ) ;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번뇌(煩惱). 생사(生死). 생사윤회(生死輪廻).

*승두(繩頭) : ()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 어조사다。 불조의 계법(戒法) 규칙. 화두.

*한바탕 ; 크게 한판( 벌이는 ). 한판 크게.

*황벽(黃檗) : (? – 850) 법명은 희운(希運), 복건성(福建省) 복주부(福州府) 민현(閩縣)에서 났다. 어려서 신동이라고 불리더니, 강서성 서주부 황벽산에 가서 출가하였다가, 백장에게서 마조의 할에 백장이 깨치던 사연을 듣고, 자리에서 크게 깨치고 나서 백장의 법을 이었다。그 뒤에 배휴(裵休) 청을 받아 여러 곳에서 교화하였으나, 가는 곳마다 이름을 처음 출가하던 이름 그대로 황벽산이라 하였다.

그가 염관사(鹽官寺) 있어 예불하는 자리에서 뒷날의 선종(宣宗) 그에게 법문을 묻는데, 그가 번이나 뺨을 때린 일이 있었다。뒤에 선종이 즉위하여 그에게추행사문(麤行沙門)’ 행실이 거친 중이란 법호를 주려고 하자, 휴가 간하기를 『황벽선사가 폐하에게 손질한 것은, 폐하의 삼제(三際 三世) 윤회를 끊는 뜻입니다』하여 단제선사(斷際禪師) 호를 내리게 되었다.

*후래(後來) ; ①뒤에 오거나 뒤져서 . ②장차 오게 되는 앞날.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

*결제(結制 맺을 /만들·법도 )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 15일에 결제한다.

*방부(房付 ·거처 /·부탁할 )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 말함。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 이르기까지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조사(祖師) : 1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 () 상응(相應)하는 도인.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오종(五宗, 五家) ; 중국의 선종은 달마(達磨)로부터 시작하여 당나라 때의 6(六祖) 혜능(慧能) 이르러 크게 성했다. 혜능 문하인 청원행사(靑原行思) 남악회양(南嶽懷讓) 계통으로부터 일어난 선문오종(禪門五宗, 禪門五家) 말한다.

오가(五家) 가운데 제일 먼저 일어난 종은 위앙종(潙仰宗)으로 남악회양 아래 2 백장회해(百丈懷海) 제자 위산(潙山靈祐)에서 일어났고, 임제종(臨濟宗) 백장회해의 제자 황벽희운(黃檗希運) 법을 받은 임제의현(臨濟義玄)에서 일어났다.

다음으로 조동종(曹洞宗) 청원행사 아래 3 운암담성(雲巖曇晟) 제자 동산양개(洞山良价)에서 일어났고, 운문종(雲門宗) 청원행사 아래 5 설봉의존(雪峰義存) 제자 운문문언(雲門文偃)에서 일어났으며, 법안종(法眼宗) 청원행사 아래 7 나한계심(羅漢桂琛) 제자 법안문익(法眼文益)에서 일어났다.

*간화선(看話禪) ; () 화두(話頭) 말이다. 간화(看話)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을 본다[]’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화두를 ()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최상승법(最上乘)’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도 말씀하신다.

*육조 스님, 임제 스님, 대혜종고 선사 ; 분류역대 스님 약력참고.

*이뭣고(是甚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 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7822) [ ‘참선법 A’ 에서]

*천칠백 화두(千七百 話頭) ;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스님이 답하되 「무()」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참구(叅究)하는 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2~53.

무자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라고 하신 의지가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무자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없이 소리로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무자화두는무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판치생모 했을까?   화두도무자화두와 같이판치생모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했는고?” 하는 것과어째서판치생모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2)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책상다리할 /앉을 ) ;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 발바닥을, ()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 삼푼 되는 (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 () 뜻하며, '단전'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말뚝 신심 ; 말뚝은 보기에는 견고해 보이나 뿌리가 없어 외부의 힘에 쉽게 흔들리거나 썩어 버린다. 이것에 비유하여 보기에는 열심인 듯하나, 꾸준하지 않고 잠깐 일어난 신심을 '말뚝 신심'이라 한다.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정성심(情誠心 진심·성심·참마음 /정성·진실 /마음 ) ; 정성심(精誠心). 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은 생사 문제, 일대사(一大事) 해결했는데, 무슨 연고로 나는 아직도 생사 문제를 해결 못했나? 진실로 힘을 다하여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마음.

*오조(五祖) 스님 법문 ; 오조 홍인(五祖弘忍) 스님의 『최상승론(最上乘論)』에서.

經云  衆生若情誠不內發者  於三世縱値恒沙諸佛無所能爲  經云  衆生識心自度  佛不能度衆生  若佛能度衆生者  過去諸佛恒沙無量  何故我等不成佛也  只是情誠不自內發  是故沈沒苦海  努力努力. 勤求本心勿令妄漏  過去不知已過未來亦不及 今身現在有遇得聞妙去  分明相勸決解此語  了知守心是第一道  不肯發至誠心求願成佛受無量自在快樂  乃始轟轟隨俗貪求名利  當來墮大地獄中受種種苦惱  將何所及 奈何奈何  努力努力  但能着破衣飱麤飱  了然守本眞心  佯癡不解語  最省氣力而能有功  是大精進人也  世間迷人不解此理  於無明心中  多涉艱辛廣修相善  望得解脫  乃歸生死苦  了然不失正念而度衆生者  是大力菩薩(아래 밑줄친 한글 문장이 원문에 해당)

 

[법문①] 송담스님(No.644)—2000 7 첫째 일요법회에서.(11분 19초)

 

홍인대사(弘忍大師)께서 말씀하시기를, () 이르되 중생이 만약 정성(情誠)스러운 마음이 안으로부터 돈발(頓發)하지 아니한 자는 삼세(三世) 비록 항하사의 모든 부처님을 만난다 하더라도 무소득(無所得)이니라. 어찌할 바가 없느니라.

 

고봉 스님께서 말씀하신 선요(禪要)대신심(大信心) 대분심(大憤心) 대의단(大疑團) 갖추어지지 못하면 그것은 결정코 공안(公案) 타파해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깨달을 수가 없다이런 말씀이 있는데 정성(情誠) 안으로부터 돈발하지 아니하면 삼세제불을 비록 만난다 하더라도 어찌해 수가 없는 것이다 말이 바로 거기에 해당되는 말씀이라고 봅니다.

 

경에 말씀하시기를 중생이 마음을 스스로 깨달아서 자기가 자기를 제도(濟度)해야지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으니 만약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수가 있다하고 말을 한다면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항하사 무량의 수없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무슨 연고로 우리들은 아직도 성불(成佛) 못했을 것이냐. 다못 이것은 정성이 안으로부터서 돈발하지 못한 연고로 생사고해에 침몰한 것이니 노력하고 노력해서 부지런히 본심을 깨달라서 잠깐 동안도 한눈을 팔지 말지니라. 이렇게 오조(五祖) 스님은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아직 돌아오지 아니했어. 다못 지금 우리가 현재 최상승법(最上乘法) 만났으니 분명히 서로 권고해서 선배는 후배에게 권고하고 후배는 선배를 따라서 밀고 끌면서 결정코 내가 이제 말한 법을 깊이 이해해 가지고 확실하게 자기의 본심을 지킬 줄을 알아야 것이니 이것이 바로 제일의 ()니라.

 

지극한 정성스런 마음을 발하지 못해 가지고 막연하게 성불하기를 바라고 자재해탈(自在解脫) 얻고자 한다면 이것은 일이 아니고, 그럭저럭 속심(俗心) 버리지를 못하고 명예나 이끗을 탐구해서 그렇게 그럭저럭 지낸다면은 당래(當來) 대지옥에 떨어져서 가지가지 고통을 받게 것이니 그때 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노력하고 노력할지니라. 이렇게 오조 스님은 간곡히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 끝에 누차(屢次) 산승(山僧) 법상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바로 이와 같이 우리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수행하는 사람은 단능착파의(但能着破衣)하고, 다맛 해어진 옷을 입고 누더기를 입고, 먹는 것은 산해(山海) 진미(珍味)라든지 고량진미(膏粱珍味) 아니고 거칠고 머트러운 음식을 먹으면서[飱麤飱], 요연수본진심(了然守本眞心)하야, 요연히 본래의 자기 참마음을 지키되,

양치불해어(佯癡不解語)하면, 거짓 바보가 되어가지고 말귀도 알아듣는 사람 같은 그런 바보가 되어가지고 자기의 본심을 향해서 수행을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힘은 최고로 적게 들이면서 가장 효과적으로 도업을 성취할 있으니 이런 사람이야말로 대정진인(大精進人)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세간(世間) 사람은 이러한 이치를 아지를 못하고서 무명심(無明心) 가운데에 갖은 고통을 겪으면서 널리 () 나타나는 그러한 () 닦음으로 해서 해탈도(解脫道) 바래니, 그러다가 결국은 생사고(生死苦)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느니라.

 

보통 우리는용맹정진한다. 가행정진한다결제 안거 동안에 밤잠을 자고, 먹고, 말도 아니하고 어떻게든지 알뜰하게 정진을 하려고 애를 쓰는 수행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건 대단히 칭찬할만한 일이고 갸륵한 일이 아닌 것은 아니나, 세상 사람들은 수행을 육체를 들볶는 것으로써 용맹정진을 삼고 형식에 나타나는 특별한 묵언이라든지 또는 단식이라든지 또는 장좌불와라든지 그러한 여러 가지 ()으로 나타나는 수행을 함으로 해서 정말 용맹정진으로 삼는 그런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러나 참다운 용맹정진이라고 것이 어찌 가시적인 그런 행동이라든지, 육체를 들볶는 것으로써 참다운 정진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조 스님은 요연불실정념(了然不失正念)하야, 요연히 바른 생각을 잃지 아니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것만이 이것이 대력보살(大力菩薩)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

쉽게 말해서 먹을 , 공양할 적당히 공양하고, 잠을 너무 많이 자는 것도 좋지 않지마는 너무 적게 자므로 해서 정말 입선(入禪) 시간에 노상 꾸벅꾸벅 많이 졸고만 있는 것도 지혜로운 수행이라고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고인이 말씀하시기를너무 음식을 적게 먹거나, 너무 잠을 적게 자거나, 옷을 너무 부족하게 입은 것도 이것도 퇴타(退墮) 인연이 되는 수가 있느니라

그래서 지나치게 호의호식(好衣好食)하고, 지나치게 안락을 취하는 것도 옳지 않지만 최소한도(最小限度) 먹을 만큼은 먹어줘야 하고, 입을 만큼은 입어줘야 하고, 최소한도로 만큼은 자줘야 그래야 평상시에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게 정진을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선관책진(禪關策進)』에 보면너무 그렇게 초학자(初學者)들에게 말하면 마냥 먹으려고 그러고, 마냥 입으려고 그러고, 잠도 충분히 자려고 한다면 어느 겨를에 정진을 수가 있겠느냐. 적어도 초학자는 잠도 잘라고 하기도 하고, 먹는 것도 어느 정도 제한도 하고, 말이라든지 모든 것도 제한을 가면서 이를 악물고 정진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인데 처음부터서 그래서야 수가 있겠느냐이런 고인이 말씀도 있습니다.

 

오늘 일요법회에 날씨도 더웁고 그런데 과거에 수없이 이런 말씀도 산승도 말했고, 전강 조실 스님도 말씀을 하신 바를 오늘 다시 중언부언 이렇게 말씀을 하게 됩니다마는, 정말 우리는 것은 이것 밖에 없습니다.(121~2321)

 

[법문②] 송담스님(No.666)—2002(임오년) 부처님오신날 법문에서.(5분 20초)

 

그러면 과연 어떻게 해야 부처님의 덕을 찬양하고 나아가서 부처님의 법문을 믿고 실천해서 정말 부처님을 기쁘게 드리는 길이 무엇이냐? 이것에 대해서 잠깐 말씀을 하고자 합니다.

 

() 말씀하시기를 중생이 만약 정성(情誠) 안으로부터서 ()하지 아니하면 과거·현재·미래의 삼세에 항하사(恒河沙) 모래수와 같은 그러한 모든 부처님을 만나뵌다 하더라도 부처님이 능히 어떻게 수가 없는 것이다자기가 속에서부터 능동적(能動的)으로 신심(信心) 분심(憤心) 속에서 터져 나와야지 그렇지 아니하면 억만 부처님을 친견한다 하더라도 부처님이 사람을 어떻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말씀도 하시고.

 

중생이 자기 마음을 깨달아서 자기가 자기를 제도한 것이지, 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수가 없는 것이다그렇게 말씀도 하셨습니다.

경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오조 홍인(五祖弘忍)대사께서는 『최상승론(最上乘論)』이라고 하는 법문을 통해서만약 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있는 것이라면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항하사 모래수와 같이 한량이 없으신데 무슨 까닭으로 우리는 오늘날까지 성불(成佛) 못하고 이렇게 생사윤회(生死輪廻) 하고 있겠느냐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못 정성이 안으로부터서 능동적으로 터져 나오지 아니한 까닭에 과거에 무량 부처님이 출세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한량없는 법을 설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고해(苦海) 침몰하고 우리가 있는 것이다이렇게 오조 스님께서 말씀을 하시고노력하고 노력할지어다. 부지런히 자기의 본마음을 찾아서 잠시 동안도 잊어서는 아니되느니라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통해서 보면 부처님의 위대하심과 덕을 찬양하는 그치지 말고 부처님께서 열어주신 일러주신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목적을 향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일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셔서 6 고행을 하시고 그래 가지고 깨달으신 우리가 믿고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 마지막 사라쌍수 간에서 열반하실 유언으로서 무슨 말씀을 하셨느냐?

 

나는 어진 의원과 같아서 사람들의 병에 따라서 병을 진단을 가지고 좋은 약을 일러줬지만 좋은 약을 가르켜 주었지만 먹고 먹는 것은 의원의 허물이 아니니라

나는 인도(引導)하는 사람과 같아서, 바른 길로 안내(案內)하는 사람과 같아서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일러주었지마는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것은 인도하는 사람의 허물이 아니니라

마지막에 말씀을 하셨습니다.(912~1432)

 

[법문③] 송담스님(No.706)—2006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7분15초)

 

오조 홍인(五祖弘忍) 대사의 법문에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은 일대사(一大事) 해결했는데, 나는 오늘날까지 생사 문제를 해결을 못했느냐. 이런 데에 대한 신심과 분심에 대해서 그리고 화두를 타고 정진하는 사람은 의심이,  자기 마음으로부터서 그런 문제를 해결하리라고 하는 정성심(情誠心) 일어나야 한다 것입니다. 그런 정성심이 마음으로부터서 일어나지 아니하면, 속마음으로부터서 일어나지 아니하면 진실한 발심이 아니고 진실한 분심이 아닌 것입니다.

 

정말 진실한 정성이 마음으로부터서 일어나면 저절로 신심(信心) 분심(憤心) 한목 일어나서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터억 화두가 드러난다. 이러한 오조 스님이 직접 화두(話頭)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아니했지마는 그런 법문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법문 끝에 다맛 해어진 옷을 입고 거친 음식을 먹고 요연(了然) 수본진심(守本眞心) 하되 양치불해어(佯癡不解語)하면양치(佯癡)라는 것은거짓 ()’, ‘어리석을 ()’, 양치입니다. ‘거짓 ()’, ‘병들 ()’ 양병(佯病)이라 하면, 사실은 병은 났는데 병이 것처럼 거짓 꾀병을 앓는 것을 양병이라 하는데,

실지는 바보도 아니고, 어리석지도 않지마는 바보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바보 노릇을 하냐 하면은 말귀를 알아듣는 것처럼 바보 노릇을 하라 이것입니다.

 

선방에 가지고 똑똑한 체하고, 잘난 체하고, 그래 가지고 시비를 하고 그래서 옆에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대중을 소란케 하고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양치가 아니라 진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선방에 와서는내가 과거에 좋은 훌륭한 대학을 나왔거나, 과거에 무슨 자랑할 만한 경력이 있거나, 무슨 말을 잘하거나, 외국어를 잘하거나, 수단이 있어서 무슨 일을 처리하고, 무슨 재주가 있어서 그림이나 글씨를 그리고 물건을 만들고....’ 그런 생각을 버리고, 출가한 선방에 나온 지가 여러 철이 되어서 구참이 되거나 그런 생각도 버리고,

오직 말귀도 알아들은 거짓 바보가 되어 가지고 하루하루를 그렇게 지내고 한달 한달을 그렇게 지내서, 그러면서 속으로는 떠억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거각을 해서, 퍼뜩 잊어버리면 챙기고, 놓치면 챙기고 해서 그렇게 해서 누구하고 잡담할 겨를도 없고,

 

밥이 맛있거나 없거나 반찬이 맛이 있거나 말거나 밥이면 , 찰밥이면 찰밥, 국수면 국수, 라면이면 라면, 그저 원주 별좌 공양주가 정성껏 해다 올리면 그저 죽비에 따라서 떠억 공양을 들되,

숟갈을 들고 밥을 뜨고, 저분으로 반찬을 드는 이것이 전체가 화두를 드는 의심 속에서 드렇게 하되 어떻게 밥을 먹었는지 말았는지, 밥이 맛이 있는지 없는지... 그렇게 철을 하루하루를 지내면 반드시 의단(疑團)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서 마침내는 의단을 타파(打破)하고 자기의 본성을 깨닫게 것입니다.

 

이렇게 거짓 바보 노릇을 하면서 말귀도 알아들은 바보 노릇을 하면서 이렇게 정진을 해야 기력(氣力) 적게 소모하고서도 정진에 크게 () 있으니 이렇게 정진하는 사람을 과연 대정진인(大精進人)이라고 수가 있는 것이다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조 스님 당시에 화두라고 하는 간화선법(看話禪法) 없었으나 그때 화두라고 하는 것이 있었다면 오조 스님께서는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듯 산승이 지금 말한 것처럼 화두를 어떻게 거각을 하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렇게 정진을 한다면 달이 어떻게 지내간 모르는 사이에 달이 지내가서 정말 정진하는 사람으로서의 기틀이 달을 지내고 나면 자리가 잡혀나갈 것입니다.(1212~1927)

 

*( 부술·쓰러질·폐단 ) ; 남에게 끼치는 신세나 괴로움.

 

Posted by 닥공닥정
참선(자세 호흡)2015. 8. 7. 17:13

§(560) 간화선(看話禪) / 단정한 자세, 올바른 단전호흡, 다맛 알 수 없는 의심으로 나가야 / 義理禪으로는 생사를 못 면함 / 전강 선사의 용맹정진과 단전호흡의 필요성.

몸을 단정히 하면서도 긴장과 힘을 뺄 것. 그리고 호흡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내쉬되 조금도 무리가 없이 하라.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 하는 글자가 아니라 ‘이뭣고?’할 때 그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이 있거든. 그 의심을 이마에다가 두고 ‘이뭣고?’하지 말고,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단전(丹田)에다 두고 하라 그말이여.
이거 물건이 아닌데 어떻게 ‘이마에다 두었다 또는 단전에다 두었다’ 할 수가 어떻게 있느냐 하지만, 자꾸 하다 보면 ‘아하, 단전에다 두라는 뜻이 이런 것이로구나!’하고 자꾸 열심히 하면 스스로 그걸 터득하게 됩니다.

 

제일 못쓸 것이 사량분별(思量分別)로 공안을 분석하고 따지는 거여. 이건 일본에서 나오는 참선에 관한 책들이 많은데, 그러한 식으로 공부를 하는 것은 한국의 활구참선(活句參禪)에서는 대단히 꺼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화두를 들고 정진하는 것은 ‘참나’를 깨닫는데에 있는 것이고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데 있는 것이지, 불조(佛祖)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는데 있는 것이지, 그거 공안을 분석해서 따져가지고 어디다 쓸 것이냐 그말이여. 그건 아무 소용이 없는 거여.

 

죽을 때까지 확철대오를 못해도 상관이 없어!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마지막 숨이 끊어지려고 하는 그때에도 알 수 없는 화두를 ‘이뭣고?’ 그러다가 숨이 딱 끊어진다면 그 사람은 진짜 수행자의 바른 열반이여 그게.

 

**송담스님(No.560)—95년 동안거결제 법회(95.12.07) (용560)

약 21분.



이 용화사에서 전강 조실스님께서 설하신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방법은 이것은 용화사에서는 ‘최상승법(最上乘)이다. 활구참선(活句參禪)이다’ 이렇게 조실 스님께서도 말씀을 하시고, 산승(山僧)도 그런 말을 하게 됩니다마는,
이것은 천 년을 두고 많은 선지식들이 이 간화선(看話禪)을 통해서 수행을 해 오셨고, 그래서 이것은 바르게 이 화두를 거각(擧却)하고, 바르게 정진을 해 가면 거의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물론 이 간화선도 잘못하면 얼마든지 잘못될 수가 있습니다. 자세를 바르게 안 한다든지, 호흡을 바르게 안 한다든지, 화두를 거각하고 화두를 의심하되, 잘못되게 화두를 의심하면 이것도 또한 잘못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그 약을 먹고 효험을 봤다고 해서 체질도 다르고 또 약 먹는 방법을 잘못 지나치게 과격하게 먹는다든지 잘못 먹으면 그 약을 먹고 해(害)를 입을 수도 있는 거와 같아서, 이 참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심을 해라. 간절히 이 화두를 의심해라’ 그러니까 간절히 한답시고 너무 용을 써 가지고 미간(眉間)에다가 ‘적을 소(小)’자를 쓰면서 이마를 찡그리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이래가지고 너무 힘을 쓰다 보면, 용을 쓰면 기(氣)가 위로 올라가 가지고 나중에는 눈이 벌게지고, 골이 뽀개지도록 아프고 이러한 병을 얻는 수도 있습니다.

조실 스님께서도 아주 젊은 소년 시대에 발심을 해가지고 너무 그렇게 용을 쓰고 정진을 하다가 상기병(上氣病)을 얻어서 머리가 터지고, 코로 입으로 피가 넘어오고 하는 그러한 경험을 가진 분의 한 분인 것입니다.
녹음 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그러한 처절한 그 광경을 들으셔서 많이 다 알고 계실 줄 압니다마는 여러 도반들은 그래서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을 자주자주 들으시면서 정진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알 수 없는 의심을 간절히 들되, 단전호흡을 하면서, 단전호흡은 우리의 의식을—숨을 들어마시면 배꼽 밑에 단전(丹田)이 차츰차츰 차츰차츰 약간씩 이렇게 볼록해짐을 느끼면서 숨을 들어마시고, 들어마셨으면 잠깐 정지했다가 또 조용히 숨을 코로 내쉬는데, 내쉼에 따라서 아랫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들어마실 때도 너무 가득 들어마시려고 하지 말고 7부(七部)나 8부쯤 들어마셔.
또 머무르는 시간도 너무 얼굴이 벌게지도록 너무 오랫동안 참지 말고, 3초 동안 잠시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되 뱃속이 완전히 등에 딱 붙도록까지 너무 그렇게 하려고 하지 말고, 항상 자연스럽게 호흡을 해야 합니다.

무리하게 해 가지고 한 서너 번, 네댓 번만 해도 숨이 가빠가지고 헛숨을 쉬어야 하고, 그런 무리하게 하니까 그래서 이 단전호흡 하다가 또 생병(生病)이 나는 수도 있다 그말이여.

그리고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도 단정(端正)하게 앉되, 너무 뒤로 자지바지 해가지고 허리에다가, 등에다가, 어깨에다, 목에다, 힘을 주고 뒤로 이렇게 뻣뻣하니 그렇게 하는 게 아니어.
단정하되 허리의 힘도 빼고, 어깨의 힘도 빼고, 목의 힘도 빼고, 눈도 평상으로 뜨되 눈에다 너무 독을 들여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그말이여.

몸을 그렇게 단정히 하면서도 긴장과 힘을 뺄 것. 호흡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내쉬되 조금도 무리가 없이 하라 그말이여.

 

처음에는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뭣고 화두를 하는 분은 ‘이뭣고?’ 무(無)자 화두를 하는 분은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 하는 글자가 아니라 ‘이뭣고?’할 때 그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이 있거든. 그 의심을 이마에다가 두고 ‘이뭣고?’하지 말고,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단전(丹田)에다 두고 하라 그말이여.

이거 물건이 아닌데 어떻게 ‘이마에다 두었다 또는 단전에다 두었다’ 할 수가 어떻게 있느냐 하지만, 자꾸 하다 보면 ‘아하, 단전에다 두라는 뜻이 이런 것이로구나!’하고 자꾸 열심히 하면 스스로 그걸 터득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성(惺惺)하고 그럴 때는 단전에다 두고 하고, 너무 혼침(昏沈)이 오고 기(氣)가 가라지고 할 때는 미간(眉間)에다가 화두를 딱 두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가 졸음도 달아나고 또 무기력한 기운이 없어지고 다시 또 성성해지면 다시 그 화두를 단전에다 딱 두고 하고. 이게 문무지법(文武之法)이여.
그때의 자기의 기(氣)가 올라가면 밑에다 두고, 너무 침체하면 위에다 두고 하는 것은 그것도 나중에 정진을 해서 차츰차츰 익숙해지면 그러한 요령이라고 할까, 그러한 방편을 써도 좋은 것입니다.


제일 못쓸 것이 사량분별(思量分別)로 공안을 분석하고 따지는 거여. 이건 일본에서 나오는 참선에 관한 책들이 많은데, 그러한 식으로 공부를 하는 것은 한국의 활구참선(活句參禪)에서는 대단히 꺼리는 것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다 분석을 해 놨습니다. 그렇게 분석해서 그 의리선(義理禪)으로 따져서 공안마다 그럴싸한 해답을 얻은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말이여. 어떻게 그것이 생사를 면할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우리가 화두를 들고 정진하는 것은 ‘참나’를 깨닫는데에 있는 것이고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데 있는 것이지, 불조(佛祖)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는데 있는 것이지, 그거 공안을 분석해서 따져가지고 어디다 쓸 것이냐 그말이여. 그건 아무 소용이 없는 거여.

그것은 밥벌이도 되지도 않는 거고, 자기 생사도 못 면하는 거고, 결국은 저도 죽고, 그러한 식으로 남을 가리키면 남까지 그르치고 정법을 멸망하는 결과 밖에는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그말이여.

그래서 아까 조실 스님께서 녹음을 통해서 설하신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도 그러한 무자(無字)를 참구(參究)해 나가는 데 그런 10가지의 잘못 공부해 나가는 법과 바르게 해 나가는 법을 가려놓으신 것인데, 여하약하(如何若何)를 막론(莫論)하고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그렇게만 해 가면 무자십절목이고 백절목이고 따질 것이 없어.

우리는 그 무자십절목 새기기도 어렵고, 바로 설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법문이지만,
여기에 모이신 도반들은 궁금하니까 ‘무자십절목을 본격적으로 연구를 해가지고 그런 병에 걸리지 말아야겠다’ 혹 그러한 생각을 내실는지 모르지만, 그것보다는 알 수 없는 의심,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다맛 알 수 없는 의심으로만 나가면 돼.

‘이것이로구나’하고 생각하면 그게 아니어. 그런 것은 바른 공부가 아니고,
오늘도 다맛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 알 수 없는 의심으로만 나가야, 꽉 맥힌 의심으로만 나가야 그 공부는 바르게 해 나가는 거고, ‘아하, 이것이로구나!’하고 알아 들어가면 그건 바른 공부가 아니어.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는 것은 바른 깨달음으로 연결이 되지 아니하고, 알아 들어가는 것은 이것은 활구참선이 아니어. 죽은 참선이요, 사구선(死句禪)이여.
그래서 『알 수 없는 의심』으로만 나가야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진일보(進一步)를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지, 알아 들어가는 것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이여.

그래서 죽을 때까지 확철대오를 못해도 상관이 없어!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마지막 숨이 끊어지려고 하는 그때에도 알 수 없는 화두를 ‘이뭣고?’ 그러다가 숨이 딱 끊어진다면 그 사람은 진짜 수행자의 바른 열반이여 그게.확철대오를 못했더라도 하나도 후회할 것이 없어. 금방 그 사람은 몸 바꿔 나서 다시 정법문중(正法門中)에 몸을 받아날 것이다 그말이여.

조실 스님께서 열일곱, 여덟 어린 나이로 출가해서 결국은 23살의 새파란 청년시절에 확철대오를 하셨는데, 열반하신 조실 스님의 어릴 적 도반이신 고암 대종사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자네 스님은 전생 공부여”
금생에 물론 머리가 터지도록 용맹정진을 하셔서 그렇게 깨달으시기는 했지만, 그렇게 해서 깨닫는다면 누가 안 하겠냐 그말이여.

물론 과거에 많은 조사(祖師)와 선지식들도 목숨 바쳐서 다 그렇게 정진을 해서 다 깨달으신 것이기는 하지만, 이런 말씀을 듣고 여러 도반들이 ‘나도 조실 스님처럼 그렇게 해야겠다’ 밤잠을 안 자고 그렇게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할 그러한 분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이걸 강요하기가 어렵고, 자발적으로 속에서 신심과 분심이 섞여 나와 가지고 저절로 그렇게 되어져야 하지, 억지로 권할 수도 없고, 억지로 한다 해도 며칠 안 가면 또 떡심이 풀어져서 잘되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속에 불이 붙어서 한다면 아무도 말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올바른 방법으로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을 가지고 하라’고 조실 스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당신이 그런 것, 저런 것도 따지지 않고 우격다짐으로 하셨다 그말이여.
오기로, 우격다짐으로 용을 쓰고 해 가지고 결국은 병을 얻으셔. 병을 얻어 가지고도 공부를 그만두지 않고 죽을 폭을 내고 밀고 나가가지고 결국은 깨달으셨어.

그래서 혹 여러분 가운데에 그렇게 가행정진, 용맹정진 하다가 병이 났다고 해서 공부를 그만두어서는 안 됩니다. 어쨌든지 단전호흡을 하면서라도 기어코 밀고나가야 합니다.

밀고나가서 기왕 병든 김에 ‘공부하다 죽으면 내가 상관있느냐. 도업을 이루지 못하고 백년을 살면 뭣 할 것이냐. 차라리 이 공부를 하다가 죽어서 몸을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이 공부를 내가 그만 둘 수가 없다. 중도에 폐지할 수가 없다’고 하는 그러한 각오와 그러한 신심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꼭 병이 나야만 확철대오 하는 것은 아니고, 조실 스님께서는 당신의 그런 너무너무 참 가슴 아픈 경험이 있으시기 때문에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기초로 잘해 가지고 하면은 아무리 용맹정진을 해도 그런 무서운 상기병에는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하는 것을 자신을 가지신 것입니다.

‘임제종(臨濟宗) 계통의 모다 어록을 보면 뭐 단전호흡 소리는 있지도 않는데 무슨 단전호흡을 하느냐?’ 그렇게 주장하는 분도 있습니다.

주로 이 단전호흡을 주장하는 종파는 조동종(曹洞宗)에서는 아주 철저하게 이 단전호흡을 권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임제종 계통의 선지식은 중국에서나 이 한국에서도 전강 조실스님을 제외하고는 별로 이 단전호흡에  대해서 그렇게 말씀을 많이 안 하십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수식관(數息觀)이라든지 그런 것을 방편으로 권장을 하신 것을 보면,
꼭 조동종 이전에는 이 호흡에 관한 것이 없느냐 하면 부처님 때부터서 있어 왔고, 그러니까 ‘이것은 외도(外道)들이 하는 것이다’ 이렇게 속단할 일이 아니고.

신선도에서 주로 이 단전호흡을 해가지고 장생불사(長生不死)를 도모하는 것은 사실이나,
부처님 때부터서 이 수식관법이 있었고, 중국에서도 조동종에도—조동종도 외도가 아닙니다. 조동종도 분명히 육조(六祖) 스님 이하에서 벌어지는 오종가풍(五宗家風)의 청원행사(靑原行思) 선사를 종주로 해서 발달한 당당한 선종(禪宗)의 종파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애당초에 며칠만큼씩 정기 법회를 여는 것은 부처님 회상(會上)에서 처음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라문(婆羅門) 계통 그런 외도들이 1주일에 한번이라든지, 열흘에 한번이라든지, 보름 만에 한번이라든지, 정기 법회를 열어가지고 활발하게 포교 활동을 한다고 하니, 우리 부처님께서도 그렇게 해 주십시오’하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그러면 그렇게 하자’해 가지고, 부처님께서도 보름마다 이렇게 정기 법회를 여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외도가 하는 일이라도 그것이 좋은 것이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또 우리 불법문중(佛法門中)에 있는 일이라도 그것이 올바르지 못한 것이면 그것을 개혁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단전호흡을 꼭 그 외도들의 하는 일이라 생각할 것이 아니라, 바르게 잘 이용을 해서 몸도 건강하고, 공부하다가 상기병과 같은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고 그러면서 가행정진도 하고 용맹정진도 한다면은,
다 같이 병들지 않고 구경(究竟)의 목적지에 도달한다면 그것 또한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래서 오늘 백척간두(百尺竿頭)에 활보(闊步)를 한다면은 삼세제불(三世諸佛)이 눈앞에 공화(空花)에 지내지 못하다.

불조(佛祖)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달아서 불조의 득인증처(得人憎處), 패궐처(敗闕處)를 바로 봐 버린다면은 삼세제불이 눈앞에 공화(空花)일 것이 분명할 것이다 그말이고,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 ‘똥 닦아 내버린 종이’라고 하신 조사(祖師)의 말씀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말이여.

오늘 결제일을 맞이해서 이미 우리는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을 통해서 결제 법문은 그새 다 들어 마쳤습니다.
그래서 산승이 올라와서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마는, 이 도반(道伴)들이 이렇게 각처에서 모이시고, 다 같이 이렇게 결제를 하게 되었으니 선배의 입장에서 새로 발심(發心)한 신참(新參) 도반들을 위해서 장애 없이 공부를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바심절(老婆心切)로 이런 말씀을 하게 된 것입니다.(23분17초~44분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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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 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도 말씀하신다.
*거각(擧却 들 거, 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 ; [주로 ‘용을 쓰다’의 구성으로 쓰여]무리하게 어떤 일을 해내려고 마음을 몰아 애써서 한꺼번에 내는 힘.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 기운 기, 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7부(七部)나 팔부(八部)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70~80% 정도 만큼.
*헛숨 ; 아무 까닭 없이 내쉬는 숨.
*생병(生病) ; 무리한 일을 해서 공연히 얻은 병.
*단정하다(端正-- 바를 단/바를 정) ; 옷차림새나 몸가짐 따위가 얌전하고 바르다.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혼침(昏沈 어두울 혼, 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 ; [몽산법어 蒙山法語]의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을 말함.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은 조주 스님의 ‘무자(無字)’ 화두를 가지고,
참선 수행에 있어서 본참공안에 대해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수 없는 의심을 일으켜 화두 참구를 하지 않고, 사량분별·알음알이로 공부를 삼는 잘못된 병폐를 10가지로 정리하여 그 병폐를 알고 극복해 올바른 활구참선을 하기 위한 몽산 스님의 법문.
*참구(參究 헤아릴 참, 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여하약하(如何若何) ; 이러쿵저러쿵. 이러하다는 둥 저러하다는 둥 자꾸 말을 늘어놓는 모양.
*막론하다(莫論--) ; 이것저것 따지고 가려 말하지 아니하다.
*거두절미(去頭截尾) ; 말이나 사건 등의 부차적인 설명은 빼어 버리고 사실의 요점(要點)만 말함.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 백척간두능활보(百尺竿頭能闊步).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을 나아간다는 뜻.
①이미 연구를 쌓을 만큼 쌓은 위에, 거기서 멈추지 말고 다시 더 연구를 계속하여 노력한다는 말.
②백척간두는 높은 장대 위에 섰다는 말로서, 막다른 매우 위험한 지경이란 뜻이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죽을 것 같이 생각되지만 사실은 크게 살아나게 된다는 말.
③깨달음을 얻었더라도 더욱 그 깨달음을 넘어서 절대의 살아 움직이는 경지에까지 나아가야 함을 말한다.

[참고] **송담스님(No.560)—95년 동안거결제 법회에서.
백척간두(百尺竿頭)에, 백 척이나 되는 저 높은 장대 위에 능히 활보(闊步)를 한다면은 삼세제불(三世諸佛)이 눈앞에 공화(空花)에 지내지 못하다.
불조(佛祖)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달아서 불조의 득인증처(得人憎處), 패궐처(敗闕處)를 바로 봐 버린다면은 삼세제불이 눈앞에 공화(空花)일 것이 분명할 것이다 그말이고,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 ‘똥 닦아 내버린 종이’라고 하신 조사(祖師)의 말씀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세등46)—계해년 하안거해제 법어
정체종래절성색(正體從來絶聲色)한데  멱즉지군불견종(覓則知君不見蹤)이니라
묘봉정상일전신(妙峰頂上一轉身)하면  시방무처불봉거(十方無處不逢渠)니라

정체종래절성색(正體從來絶聲色)한데, 바로 그 본체(本體)는 본래로부터 소리와 빛이 끊어졌다. 그 자리는 소리도 없고 색상이 없기 때문에,
멱즉지군불견종(覓則知君不見蹤)이요. 찾은즉 알거라, 그대는 그 자취를 보지 못할 것이다.
소리가 있어야만 귀로 들을 수가 있을 것이고, 색상(色相)이 있어야—빛깔이나 무슨 모양이 있다면 그 자취를 볼 수가 있건마는, 본래 모양도 없고 빛깔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눈으로 볼라고 하거나, 귀로 들을라고 하면 벌써 틀려버린다 그말이여.

묘봉정상(妙峰頂上)에 일전신(一轉身)하면, 묘고봉(妙高峰)은 수미산(須彌山)이란 말인데, 최고의 높은 산이여.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을만큼 올라간 수미산 꼭대기 정상에서 한번 몸을 굴리면,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진일보(進一步)여. 백척(百尺)이나 되는 장대 위에서 한 걸음을 내디디면,

시방무처불봉거(十方無處不逢渠)라. 시방세계(十方世界)에 그를 만나지 아니한 곳이 없더라.
백척간두에서 행여나 떨어질세라 그놈을 붙잡고 벌벌 떨고 있는 동안에는 그를 만날 수가 없지만, 거기에서 목숨을 버리고 한 걸음을 내디딜 때에, 온통 눈으로 보이는 것은 전부 바로 그놈이요.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은 모두가 그것이 아닌 것이 없어.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떡심 ; 기운이나 힘.
*오기(傲氣 오만할 오, 기운 기) ;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 또는 앞뒤 가리지 않고 어떤 일에 끝까지 덤비는 경향.
*우격다짐 ; 억지로 우겨 내몰거나 강요함.
*임제종(臨濟宗) ; 중국 선종 제6조(祖) 혜능(慧能)으로부터 남악(南嶽)·마조(馬祖)·백장(百丈)·황벽(黃檗)을 거쳐 임제의현(臨濟義玄, ?-867)에 이르러 일가(一家)를 이룬 종파이다.
임제종은 북방에서 널리 성행했는데, 송대(宋代)에 석상 초원(石霜楚圓) 문하에서 양기 방회(楊岐方會)의 양기파와 황룡 혜남(黃龍慧南)의 황룡파가 나와, 양기파는 성행했으나 황룡파는 얼마 안 가 쇠퇴함.
양기파 문하의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는 천만 가지 의심도 결국은 하나의 의심에 지나지 않으며, 화두(話頭)의 의심이 깨뜨려지면 천만 가지 의심이 일시에 사라진다고 하여 화두와 정면으로 대결할 것을 역설했는데, 그의 선풍(禪風)을 간화선(看話禪)이라 한다.
*조동종(曹洞宗) ; 중국의 선종은 달마(達磨)로부터 시작하여 당나라 때의 6조(六祖) 혜능(慧能)에 이르러 크게 성했다. 조동종은 이 혜능 문하인 청원행사(靑原行思)의 계통으로부터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와 그의 제자 조산 본적(曹山本寂, 839-901)에 의해 형성된 종파이다.
굉지 정각(宏智正覺, 1091-1157)은 자신이 본래 부처의 청정한 성품을 갖추고 있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묵묵히 좌선만 하면 저절로 그 청정한 성품이 드러난다는 묵조선(默照禪)을 선양하였다.
이 이름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자세하지 않으나, 법안 문익(法眼文益)선사의 <종문십규론(宗門十規論)>에 있는 것이 가장 오래된 기록일 것이다.
「동」은 동산양개(洞山良价)의 동이겠지만, 「조」는 동산의 제자 조산 본적(曹山本寂)이 그 종지를 크게 밝혀서 완성한 때문이라 하는 말도 있다. 중국의 문법에 선후와 시종을 거꾸로 붙이는 전례가 아주 없는 바도 아니지만 제자의 이름을 스승의 이름 위에 놓은 것이 당연한 경우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송나라 이후에는 조계산(曹溪山)의 「조」로써 육조의 바른 갈래라는 뜻으로 해석하여 왔다. 또한 조산 본적의 조산도 조계산을 사모하는 뜻으로 지은 이름인 것이다.
그 가풍은 정편 오위(正偏五位)를 세워서 아주 세밀하고 말과 행실이 서로 일치하고, 이치와 일이 무르녹게 합하여, 본래 면목으로써 종지(宗旨)를 삼는다.
일본의 조동종은 도원(道元: 1200~1253)이 1223년 송나라에 들어가 중국 조동종의 선승인 여정(如淨) 선사에게 가르침을 받아 계승하였다. 도원 선사는 1227년 귀국하여 일본에 조동종을 전파하였다.
*수식관(數息觀) ; 출입하는 숨을 세어서 마음을 통일하는 것. 그것에 의해 마음의 산란을 막음. 호흡을 세어서 마음을 집중시키는 수행법.
*외도(外道 바깥 외, 길 도) ; 불교 이외의(外) 다른 교(道).
*장생불사(長生不死 길 장/날 생/아니 불/죽을 사) ; 오래도록(長) 살고(生) 죽지(死) 않음(不).
*육조(六祖) 스님, 청원행사(靑原行思) 선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오종가풍(五宗家風) ; 중국의 선종은 달마(達磨)로부터 시작하여 당나라 때의 제 6조(六祖) 혜능(慧能)에 이르러 크게 성했다. 이 혜능 문하인 청원행사(靑原行思) 및 남악회양(南嶽懷讓)의 계통으로부터 일어난 선문오종(禪門五宗, 禪門五家)의 가풍(家風, 전통적인 독자적인 가르침의 방식, 지도의 방법)을 말한다.

오가(五家) 가운데 제일 먼저 일어난 종은 위앙종(潙仰宗)으로 남악회양 아래 제2세 백장회해(百丈懷海)의 제자 위산(潙山靈祐)에서 일어났고,
임제종(臨濟宗)은 백장회해의 제자 황벽희운(黃檗希運)의 법을 받은 임제의현(臨濟義玄)에서 일어났다.
다음으로 조동종(曹洞宗)은 청원행사 아래 제3세 운암담성(雲巖曇晟)의 제자 동산양개(洞山良价)에서 일어났고,
운문종(雲門宗)은 청원행사 아래 제5세 설봉의존(雪峰義存)의 제자 운문문언(雲門文偃)에서 일어났으며,
법안종(法眼宗)은 청원행사 아래 제7세 나한계심(羅漢桂琛)의 제자 법안문익(法眼文益)에서 일어났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201~206 참고.
[ 臨 濟 家 風 ]  赤手單刀로  殺佛殺祖로다  辨古今於玄要하고  驗龍蛇於主賓이라  操金剛寶劒하야  掃除竹木精靈하며  奮獅子全威하야  震裂狐狸心膽이로다  要識臨濟宗麼아  青天轟霹靂이요  平地起波濤로다

임제가풍 : 맨손에 한 칼 들고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임이로다。예와 이제를 삼현(三玄) 삼요(三要)로써 판단하고, 용과 뱀을 빈주구(賓主句)로 알아 낸다。금강의 보검으로 도깨비를 쓸어 내고, 사자의 위엄을 떨쳐 여우와 너구리의 넋을 찢네。임제종을 알려는가? 푸른 하늘에 벼락치고 평지에 파도가 이는도다。

[ 曹 洞 家 風 ]  權開五位하야  善接三根하며  橫抽寶劍하야  斬諸見稠林하며  妙協弘通하야  截萬機穿鑿이로다  威音那畔에  滿目煙光이요  空劫已前에  一壺風月이로다  要識曹洞宗麼아  佛祖未生空劫外에  正偏不落有無機로다

조동가풍 : 권도(權道)로 오위(五位)를 열어 세 가지 근기를 잘 다루며, 보검을 빼어 들고 모든 사견의 숲을 베어 내며, 널리 통하는 길 묘하게도 맞추어서 모든 기틀의 천착(穿鑿)을 끊음이로다
위음왕불 나시기 전 눈에 가득한 풍경이요, 공겁 이전 별(別) 세계 경치로다。조동종을 알려는가? 부처님과 조사도 안 나시고 아무 것도 없던 그 전, 정편(正偏)이 유무(有無) 기틀에 떨어지지 않음이로다。

[ 雲 門 家 風 ]  劒鋒有路하고  鐵壁無門이라  掀翻露布葛藤하고  剪却常情見解하니  迅電은  不及思量이요  烈焰에  寧容湊泊이리요  要識雲門宗麼아  柱杖子跋跳上天하고  盞子裡에  諸佛이  説法이로다

운문가풍 : 칼날에는 길이 있고 철벽에는 문이 없다。온 천하의 갈등을 둘러엎고, 못된 소견을 잘라 내 버리니, 번쩍 하는 번갯불은 사량으로 미칠 수 없거니, 활활 타는 불꽃 속에 어찌 머무를 수 있으리요。운문종을 알려는가? 주장자가 날아 하늘 높이 오르고, 잔 속에서 모든 부처님이 설법을 하시도다。

[ 潙 仰 家 風 ]  師資唱和하며  父子一家로다  *脇下書字하니  頭角이  崢嶸이요  室中驗人에  獅子腰折이로다  離四句絶百非를  一搥粉碎하니  有兩口無一舌이여  九曲珠通이로다  要識潙仰宗麼아  斷碑는  橫古路하고  鐵牛는  眠少室이로다

위앙가풍 : 스승과 제자가 부르면 화답하고, 아버지와 아들이 한 집에 살고 있네。옆구리에 글자 쓰고 머리 위에 뿔이 뾰족하구나。방 안에서 사람들을 시험하니 사자 허리 부러지다。
이사구절백비(離四句絶百非)를 한 망치로 부수었네。입은 둘이 있으나 혀는 하나도 없는 것이 구곡주를 꿰뚫었다。위앙종을 알려는가? 부러진 비석 옛 길에 쓰러져 있고 무쇠 소는 작은 집에 잠을 자네。

[ 法 眼 家 風 ]  言中有響하고  句裡藏鋒이라  髑髏는  常干世界하고  *鼻孔은  磨觸家風이라  風柯月渚는  顯露眞心하고  翠竹黄花는  宣明妙法이로다  要識法眼宗麼아  風送斷雲歸嶺去하고  月和流水過橋來로다

법안가풍 : 말 가운데 메아리가 있고 글 속에 칼날이 숨었구나。해골이 온 세상을 지배하고 콧구멍은 어느 때나 그 가풍을 불어내네。
바람 부는 나뭇가지와 달 비치는 물가에는 참 마음이 드러나고, 푸른 대와 누른 꽃은 묘한 법을 환히 밝혀 주네。법안종을 알려는가? 맑은 바람 구름을 산마루로 보내 주고, 밝은 달 물에 떠서 다리 지나 흘러오네。
*가풍(家風) ; ①종풍(宗風)—종문(宗門)의 풍규(風規 풍습상의 규정). 문풍(門風)—선문(禪門)에 있어서의 종풍(宗風).
②선림(禪林, 선종禪宗)에서의 행위의 규범. 청규(淸規, 선원에서 일상의 생활규정). 선종에서 가르침을 나타낼 경우, 각자가 갖는 독자적인 방식, 또는 지도의 방법을 말함.
③그 종(宗)만이 사용하는 전통적인 가르침의 방식. 지도의 방법. ④한집안에서 오래 지켜 온 생활 습관이나 규범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바라문(婆羅門) ; 산스크리트어 brāhmaṇa의 음역어. 고대 인도 바라문교의 카스트(caste, 네 가지[四種姓]로 분류되는 세습적 신분 계급 제도) 제도의 최상위 계급인 사제(司祭) 계급을 일컫는다.
베다(Veda 바라문교 근본 경전)를 교육하고 사원과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제식(祭式)을 관장했다.
*구경(究竟 궁구할 구, 마칠•다할 경)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그 위에 더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불조득인증처(佛祖得人憎處) ; 부처와 조사의 사람에게 미움받은 곳. 불조의 패궐처(敗闕處)라고도 하니, 부처와 조사의 허물된 곳.
*공화(空花, 空華) ; 환(幻). 공안화(空眼花). 공중(空中)의 꽃. 눈의 장애로 말미암아 생기는 허공의 꽃.
실재하지 않는 것을 있는 것으로, 관념을 실재하는 객관 대상으로, 고유한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는, 번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망상(착각·환상·편견 등)을 말한다.
[참고] **송담 스님 법문 (No.521, No.636) 참고.
눈이 멀쩡한 사람은 허공 속에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데, 눈병이 난 사람은 허공에 이상한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보이고 그러는데, 눈병만 고치면은 허공에 피어있던 꽃이 안 보인다.
그래서 눈병이 났던 사람은 ‘허공에 있던 꽃이 있다가 없어졌다’고 하지마는, 허공의 꽃은 있다가 없어진 게 아니라 원래 없던 것이다.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통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을 만나면 육식(六識, 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이 생기는데, 그 육식(六識)에 포착되는 모든 것들을 이름과 모양—명상(名相)이라 하는데, 명상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림자요, 메아리, 환(幻)인 것이다.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명상(名相) 그것을 ‘있는 것’으로 집착을 함으로 해서, 모든 탐진치 삼독심이 일어나 생사윤회의 업을 짓는데, 마음 하나만 공(空)해 버리면 일체 명상(名相)은 동시에 다 공(空)해 버리는 것이다.

원래는 이 세상에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生死)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生死)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이거거든.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신참(新參 새·처음 신/참구할·참여할 참) ; 단체나 부류에 새로 참가하거나 들어옴. 또는 그런 사람.
*노바심절(老婆心切) ; 노파(老婆)가 자식·손자를 애지중지 하듯이, 스승이 수행자에게 나타내는 자비심으로 지극히 친절(親切)하다는 뜻.

Posted by 닥공닥정

 

 

§(560) (게송)심사학도별무타~ /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 / 바른 스승의 지도 / 관법(觀法), 간화선(看話禪).

달마 스님께서 이 도를 닦으려면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라’ 했어.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 동안을 헛되이 보낸다’

 

마음으로 닦아가는 이 참선 공부는 두 갈래, 세 갈래가 아니라 몇백 갈래, 몇천 갈래로 갈라질 수가 있어. 그래서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낸다’고 달마 스님께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스승을 찾아서 도를 닦아 가는 데 그게 별것이 아니다. 다못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무슨 소를 타냐? 이건 자기의 소여. 자기의 마음소를 타고 자기의 마음을 찾는 것이다 그말이여.

 

이 화두는 아무데서나 함부로 타고, 제멋대로 책에서 골라 잡아가지고는 아니 되고, 정말 자기가 믿어지는 그리고 또 믿을 수 있는 그러한 선지식으로부터 어렵게 화두를 타야 해.
화두를 타 가지고 한 번 탔으면 확철대오 할 때까지 10년이고 20년이고 한 화두를 가지고 꾸준히 해나가야 해.

 

부처님께서 설하신 방편법이 팔만사천 가지가 있지마는 그런 방편법에 우선 잠시 효과가 있다고 해서 방편법에 떨어져 가지고 그런데 집착을 하게 되면 임시는 좋은 것 같아도 정말 구경(究竟)의 깨달음에는 이르기가 어렵고, 그러한 폐단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방편법일수록에 바른 선지식, 그러한 방편법을 통해서 목적을 달성한 그러한 선지식의 직접적인 지도하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송담스님(No.560)—95년 동안거결제 법회(95.12.07) (용560)

 

(1) 약 15분.

(2) 약 12분.


(1)------------------

심사학도별무타(尋師學道別無他)라  지재기우자도가(只在騎牛自到家)니라
나무~아미타불~
백척간두능활보(百尺竿頭能闊步)하면  항사제불안전화(恒沙諸佛眼前花)니라
나무~아마타불~

심사학도별무타(尋師學道別無他)여. 스승을 찾아 도를 배우는 것이 다른 일이 없어. 별다른 것이 없다 그말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지재기우자도가(只在騎牛自到家)니라. 다못 소를 타고 스스로 자기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달마 스님께서 이 도를 닦으려면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라’ 했어.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 동안을 헛되이 보낸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수행자들이 그 도를 배우기 위해서 불탄산고수활(不憚山高水濶)하고—산 높고 길이 먼 것을 꺼리지 아니하고, 옛날에는 요새처럼 교통이 편리하지를 못해가지고 100리, 200리, 중국 같은 데는 수천 리라도 걸어서 걸어서 선지식(善知識)을 걸망을 지고 찾아갔다 그말이여.

그 고생을 무릅쓰고 스승을 찾는 것이 다른 일이 없어. 특별히 무슨 다른 것이 아니다.

인도에서는 물이 귀해 가지고—도반(道伴)과 같이 부처님 회상(會上)을,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셨다’는 말을 듣고 수천 리를 걸어서 걸어서 가는데, 물이 귀해 가지고 목말라 죽게 되었다 그말이여.
우선 물을 먹어야겠는데, 간신히 물 웅덩이를 만났어. 만나서 물을 먹으려고 보니까 그 속에 자잘한 벌레가 우글우글우글 그러니 저것을 목마르다고 마시게 되면 살생을 하게 되고, 안 마시면 목이 말라 죽게 되었다 그말이여.

그래서 한 사람은 우선 벌레를 먹어서 살생을 하더라도 ‘우선 이 목숨을 살아야 부처님을 친견하고, 법문을 듣고 생사해탈을 할 거여’하고 ‘나는 먹어야겠다’
한 사람은 ‘어찌 내 목숨 살자고 저 수없는 벌레를 내가 죽일 수가 있느냐. 내가 도를 닦는 것도 내 한 몸도 생사해탈을 하지마는 많은 중생을 제도하는 그런 보살도를 성취하기 위해서 내가 부처님도 찾아가는 데, 나 살자고 벌레를 죽이다니 나는 그럴 수가 없다’

그래가지고 한 사람은 그 물을 마시지 않고 목이 말라서 부처님 회상에 오기 전에 이미 숨이 끊어져서 죽었고,  한 사람은 그 벌레 섞인 물을 마시면서 겨우 겨우 목숨을 부지해 가지고 부처님 회상에 왔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둘이 오다가 혼자만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보고를 하니까, 그 저 살기 위해서 벌레를 죽인 사람을 꾸짖으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두 사람 다 꾸짖을 수도 없고, 두 사람 다 칭찬하기도 어렵고,

이것은 각자 ‘안 먹고 죽은 사람이 옳다’고 생각하면 안 먹고 죽는 것이고,
‘아니야, 내가 설사 저런 살생을 하고 벌레를 죽이고라도 이 물을 먹고 부처님을 친견해야겠다’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먹고라도 부처님을 친견해서, 그 대신 정말 목숨을 바쳐서 도를 닦아가지고,
‘자기로 인해서 그 죽은 벌레까지라도 기어코 내가 제도를 해야겠다’하는 그러한 백 배, 천 배의 신심과 분심으로 정진을 한다면 그것 또한 나쁘다고만 말할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한국은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 가는 곳마다 산도 좋고, 마음대로 마실 수 있는 물이 산마다 모다 있고 마을마다 있지마는,
지금은 인간의 무지하고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그 좋은 계곡물, 좋은 샘물이 오염이 되어서 마음놓고 먹기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고, 이대로 각성(覺醒)을 못하고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외국에서 물을 사다 먹어야만 할 그러한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자연을 그렇게 오염을 시키고 망가뜨리면 사람도 결국은 살아남지 못할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짐승보다도 더 어리석은—짐승도 돼지나 개가 자기 잠자리에다가 대소변을 보지 아니하고 저 멀리 가서 대소변을 보고 오고,
돼지도 가둬 놓았으니까 울 밖으로 마음대로 나가지는 못하지만 저쪽 한쪽 구석에다가 자리를 딱 봐놓고 꼭 거기다가 대소변을 보고, 자기가 누울 자리는 보송보송하게 그렇게 유지를 해 나가는 것을 나는 농촌에서 보았습니다.


그래서 스승을 찾아가는 데 그 고생을 하면서 목숨까지 바치면서 스승을 찾아가는 그러한 신심.
바로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도반들도 그러한 신심으로 이 추위를 무릅쓰고 저 충청도에서, 전라도에서, 경기도에서 모다 도반들이 이렇게 모이셨습니다.

비록 조실 스님은 열반하셔서 직접 친견하지는 못하지만 녹음을 통해서나마 그때 설하시던 그 법문을 귀로 듣고, 다음으로는 같은 뜻과 목적을 가진 도반들과 한 법당에서, 한 자리에서 법문을 들으면서 결제(結制)를 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으로 모이셨다고 생각을 합니다.

산승(山僧)은 무슨 ‘덕숭문인(德崇門人)이다, 범어문중(梵魚門中)이다’ 무슨 그런 문중에 대한 생각이 별로 그렇게 없습니다.
누구든지 정법을 믿고, 이 조실 스님의 법문을 믿고 그 법에 의지해서 공부하려고 하는 그런 신심을 가지고 수행한 사람이면 바로 그분이 사형(師兄)·사제(師弟)고, 그분이 바로 한 문중이고, 좋은 도반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이러한 승속, 남녀노소의 도반들이 한자리에 이렇게 모여서 결제 법회를 가지게 된 것은 바로 그러한—마을에서는 형제간이 집안에 경사가 있으면 모두 다 모여서 잔치를 하고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결제, 해제 때 이런 좋은 도반들이 이렇게 모인 것에 대해서 너무나 감사하고 기쁜 것을 뭐라고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스승을 찾는 것이 가장 급하다’고 달마 스님께서 말씀을 하신 그 뜻이 무엇이냐?

이 공부는 책을 봐가지고 할 수도 없는 것이고, 스스로 혼자 연구해 가지고도—몇백만 명 가운데는 ‘위음왕불(威音王佛) 이전에는 무사자오자(無師自悟者)가 스승 없이 스스로 깨달은 사람이 있을란가 몰라도, 만중(萬中)에 희유(希有)다. 만 명 가운데에도 희유하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스승을 찾아서 공부한다고 하는 것은 수행자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고, 발심(發心)을 하고 분심을 낼수록에 바른 스승의 지도하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가령 공부를 열심히 하고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폐침망찬(廢寢忘餐)하고, 물불을 가리지 아니하고 정진하는 사람을 교통수단에다가 비유한다면 비행기를 타고 간 사람에다가 비유하고,
그럭저럭 천천히 가는 수행을 하는 사람을 걸어간 사람에다가 비유한다면, 차라리 그럭저럭 간 사람은 며칠을 간다 하더라도, 설사 잘못 간다 하더라도 몇십 리나 몇백 리 밖에는 틀리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나 빠른 비행기와 같은 교통수단을 이용한다면 잠깐만 방향을 잘못 잡아도 몇천만 리를 엉뚱한 데로 날아가 버리게 되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열심히 발심해서 공부한 사람일수록에 공부를 바른 스승의 지도하에 바르게 해야 한다.

가보지 아니한 처음 가는 길을 가는 것과 같아서—눈으로 보고, 발로 걸어가는 길도 가다가 보면 두 갈래 길도 나오고, 세 갈래 길도 나오는데 거기서 어느 길이 옳은지를 알 것이냐 그말이여.
먼저 가봐서 그 길을 아는 사람의 안내가 없이는 자기 혼자 가다가 딱! 갈라지면 왼쪽으로 가야할지, 오른쪽으로 가야할지 알 수가 없는 거여.

더군다나 마음으로 닦아가는 이 참선 공부는 두 갈래, 세 갈래가 아니라 몇백 갈래, 몇천 갈래로 갈라질 수가 있어. 그래서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낸다’고 달마 스님께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스승을 찾아서 도를 닦아 가는 데 그게 별것이 아니다. 다못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무슨 소를 타냐? 이건 자기의 소여. 자기의 마음소를 타고 자기의 마음을 찾는 것이다 그말이여.

백척간두(百尺竿頭)에 능활보(能闊步)하야사, 백척간두에, 백 척이나 되는 저 높은 장대 위에 능히 활보를 해야만,
항사제불(恒沙諸佛)이 안전화(眼前花)니라. 항하사수(恒河沙數)와 같은 모든 부처님이 눈앞에 공화(空花)가 되는 것이다.(처음~15분21초)




(2)------------------

아까 조실 스님께서 신해년에 설하신 녹음 법문을 우리는 경청했습니다마는 화두(話頭)! 선지식으로부터 딱 지정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렇게나 천칠백 공안(公案)이나 있으니까 이리저리 책을 『염송(拈頌)』이나 그런데 뒤적거리다가,
요새는 『염송(拈頌)』도 번역이 되어 나온 것이 있고 그래서 한문을 잘 모르더라도 이리 보고 ‘에잇! 나는 이 공안으로 한번 해보자’ 조금 해 보다 잘 안되면 ‘에이! 이것으로 한번 해보자’ 한 철마다 화두를 이리저리 바꾸고.

또 어떤 선지식한테 가서 화두를 타서 한 철, 두 철 해 봤지만 암만해도 바닥이 안 나고 잘 안되니까 또 저 다른 선지식을 찾아가서 화두를 타가지고 이리저리 해봐도 안된다 그말이여.
처음에는 곧잘 된 것 같아서 ‘이제는 이것이 내 본참공안으로서 좋다’ 이리 생각하고 해 보면 나중에 또 영 안돼. 안되고는 먼저 했던 공안이 다시 떠오르면서 그것을 해보니까 이제 좀 된 것같다 그말이여.

그래서 말도 이놈도 타 보고, 저놈도 타 보고 그래서 그 말 타는 사람은 말을 가끔 바꿔보는 재미도 있다고 그런 말도 들었는데, 화두를 만약에 자꾸 이놈으로 해보다 저놈으로 해보다, 그것은 무엇과 같으냐 하면,
우물을 파는데 이놈 조금 파 보다가 안되면 저쪽에 가서 또 파 보고, 그놈 파서 안되면 이쪽에 파보고 해서 몇 군데를 우물을 파 간신히 물이 나왔는데, 가무니까 물이 차츰차츰 줄어들어. 장마철에는 물이 출출출 넘고, 이러한 샘물은 그게 건수(乾水)라 해서 먹을 수가 없는 거여.

화두도 처음에 조금 요리 해 보고 되니까 ‘된다’고 그러다가, 안되니까 또 이리저리 바꾼 사람은 우물 파는 사람과 같애.
그 사람은 뭔 소견이 나 봤자 그것은 의리선(義理禪) 따위이지 정말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확철대오한 것이 아니어.

그래서 이 화두는 아무데서나 함부로 타고, 제멋대로 책에서 골라 잡아가지고는 아니 되고, 정말 자기가 믿어지는 그리고 또 믿을 수 있는 그러한 선지식으로부터 어렵게 화두를 타야 해.
화두를 타 가지고 한 번 탔으면 확철대오 할 때까지 10년이고 20년이고 한 화두를 가지고 꾸준히 해나가야 해.

이 참선 공부라 하는 것이 처음에는 곧잘 잘된다고 느껴져. ‘참 좋다. 이 공부가 잘 되는구나’하고.
뚝! 변해 가지고 또 안돼. 가슴이 답답하고, 가슴에 주먹 같은 것이 치밀러 올라와가지고 소화도 잘 안되고, 숨도 잘 안 쉬어지고 고약하다 그말이여.

이거 상기병(上氣病)이 걸렸나? 호흡을 잘못해서 그랬나? 화두를 잘못 들어서 그러나? 심지어는 이  화두가 나한테 맞지 않아서 그런가?
이래 가지고 이리저리 번민을 하고 고민을 하고, 화두를 바꾸려고 했다가 또 선지식이 내 근기를 잘 몰라가지고 나한테 공부하는 법을 잘못 일러줘서 그랬나?

천 가지 만 가지 번뇌심이 일어나고, 차라리 이거 참선을 하지 말고 경(經) 공부를 할까?
이 공부를 하지 말고 무슨 주력(呪力)을 할까? 내가 업장(業障)이 두터우니까 기도를 해가지고 업장을 소멸한 다음에 참선을 할까?

이러다가 요새 비파사나(vipassanā)라고—‘사념주관(四念住觀)’

이라고 관법(觀法)이 있는데, 부처님 때부터 관법이 있어서 동남아에서는 그러한 관법이 지금까지도 전해 와서 그런 관법 수행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도 한국 스님이 동남아에 가 가지고 그 법을 배워가지고 와서 널리 권장을 하고, 포교를 하는 그런 분도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마는,
그런 관법이 차츰차츰 중국으로 건너와서 중국에서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임제종(臨濟宗)의 화두로서 공부를 하는 그러한 참선으로까지 발전을 해서 한국에까지 지금 전해 와서 우리가 그런 간화선(看話禪)을 하고 있습니다마는.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근기 따라서 팔만사천 가지의 방편(方便)을 설하셨습니다.
어느 하나도 나쁘다 할 것은 없고 다 그 나름대로 중생의 근기에 맞으면—마치 수천 가지, 수만 가지 약이 약국에서 팔려지고 있지만, 어느 약이 좋다 나쁘다 하기가 어렵고, 약마다 그 체질과 병에 맞으면 그 병을 나을 수가 있는 것이고,

또 아직도 계속 약이라든지 의술이 발전 과정에 있어서 그 증상에는 잠시 효과가 있지마는 나중에 부작용이 남아서 좋지 않은 약을 장기간 복용을 하면은 작은 병은 나았지마는 큰 병을 얻는 수가 허다 해서 약을 너무 함부로 남용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처럼,

부처님께서 설하신 방편법이 팔만사천 가지가 있지마는 그런 방편법에 우선 잠시 효과가 있다고 해서 방편법에 떨어져 가지고 그런데 집착을 하게 되면 임시는 좋은 것 같아도 정말 구경(究竟)의 깨달음에는 이르기가 어렵고, 그러한 폐단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방편법일수록에 바른 선지식, 그러한 방편법을 통해서 목적을 달성한 그러한 선지식의 직접적인 지도하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주문을 외워서 주력을 하는 거라든지, 어떤 관법(觀法)을 닦아가지고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람일수록에 바른 지도자를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용화사에서 전강 조실 스님께서 설하신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방법은 이것은 용화사에서는 ‘최상승법(最上乘)이다. 활구참선(活句參禪)이다’ 이렇게 조실 스님께서도 말씀을 하시고, 산승도 그런 말을 하게 됩니다마는,
이것은 천 년을 두고 많은 선지식들이 이 간화선을 통해서 수행을 해 오셨고, 그래서 이것은 바르게 이 화두를 거각(擧却)하고, 바르게 정진을 해 가면 거의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물론 이 간화선도 잘못하면 얼마든지 잘못될 수가 있습니다.
자세를 바르게 안 한다든지, 호흡을 바르게 안 한다든지, 화두를 거각하고 화두를 의심하되, 잘못되게 화두를 의심하면 이것도 또한 잘못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그 약을 먹고 효험을 봤다고 해서 체질도 다르고 또 약 먹는 방법을 잘못 먹고, 지나치게 과격하게 먹는다든지, 잘못 먹으면 그 약을 먹고 해(害)를 입을 수도 있는 거와 같아서, 이 참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심을 해라. 간절히 이 화두를 의심해라’ 그러니까 간절히 한답시고 너무 용을 써 가지고 미간(眉間)에다가 ‘적을 소(小)’자를 쓰면서 이마를 찡그리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이래가지고 너무 힘을 쓰다 보면, 용을 쓰면, 기(氣)가 위로 올라가 가지고 나중에는 눈이 벌게지고, 골이 뽀개지도록 아프고 이러한 병을 얻는 수도 있습니다.

조실 스님께서도 아주 젊은 소년 시대에 발심을 해가지고 너무 그렇게 용을 쓰고 정진을 하다가 상기병(上氣病)을 얻어서 머리가 터지고, 코로 입으로 피가 넘어오고 하는 그러한 경험을 가진 분의 한 분인 것입니다.

녹음 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그러한 처절한 그 광경을 들으셔서 많이 다 알고 계실 줄 압니다마는 여러 도반들은 그래서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을 자주자주 들으시면서 정진을 하시기를 바랍니다.(15분22초~26분4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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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심사학도별무타~’ ; [부휴당대사집(浮休堂大師集)] ‘어느 선자(禪子)에게(贈某禪子)’ 게송 참고.
*불급심사 공과일생(不急尋師空過一生) ;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의 저술로 전해지는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에 있는 말씀.
[참고] [선문촬요 禪門撮要 上 血脈論] (경허성우 鏡虛惺牛 엮음)에서.
不急尋師空過一生 然卽佛性自有 若不因師終不明了 不因師悟者萬中希有.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불성은 스스로 가지고 있으나 스승을 인연하지 않으면 끝내 분명히 알지 못하니,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깨닫는 이는 만에 하나도 드물다.
*불탄산고수활(不憚山高水濶) ; 높은 산 깊은 물도 꺼리지 않고. 憚(꺼릴 탄), 濶(넓을 활).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금수강산(錦繡江山 비단 금/수놓을 수/강 강/뫼 산) ; 비단(緋緞)에 수(繡)를 놓은 듯 매우 아름다운 산천. 함경북도 북쪽 끝에서 제주도 남쪽 끝까지 3,000리가 되는 우리나라의 자연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각성(覺醒 깨달을 각/깰·잠에서 깰 성) ; ①어떤 잘못이나 사실 등을 깨달아 앎. ②깨어나 정신을 차림. ③정신을 차리고 주의깊게 살피어 경계하는 태도.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문중(門中) ; 한 스승 아래 대대로 형성된 스님들의 계통.
*사형(師兄) ; 한 스승 밑에서 자기보다 먼저 그 스승의 제자가 된 스님를 높여 이르는 말.
*사제(師弟) ; ①한 스승의 제자로서 자기보다 나중에 계(戒)를 받은 스님을 일컫는 말. ②스승과 제자.

*위음왕불(威音王佛) : [범]  Bhismagarjitasvararaja-Buddha <법화경> 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에 나타나는 부처님의 이름. 한량없는 과거의 부처님으로, 이 부처님 이전에는 부처님이 없었다고 하여 ‘지극히 오랜 옛적’을 뜻한다.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폐침망찬(廢寢忘餐 폐할 폐/잘 침/잊을 망/밥 찬) : 자는(寢) 것을 폐(廢)하고 밥 먹는(餐) 것을 잊으며(忘) 일에 심혈을 기울임.
*백척간두(百尺竿頭 일백 백, 자 척, 장대 간, 머리 두) ; ①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올라섰다는 뜻으로, 몹시 어렵고 위태로운 지경을 이르는 말. ②모든 상대적 차별을 없앤 절대의 경지.
*항하사수(恒河沙數) ; 인도 갠지스 강(Ganges江)의 모래와 같은 수(數)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공화(空花, 空華) ; 환(幻). 공안화(空眼花). 공중(空中)의 꽃. 눈의 장애로 말미암아 생기는 허공의 꽃.
실재하지 않는 것을 있는 것으로, 관념을 실재하는 객관 대상으로, 고유한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는, 번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망상(착각·환상·편견 등)을 말한다.

눈이 멀쩡한 사람은 허공 속에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데, 눈병이 난 사람은 허공에 이상한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보이고 그러는데, 눈병만 고치면은 허공에 피어있던 꽃이 안 보인다.
그래서 눈병이 났던 사람은 ‘허공에 있던 꽃이 있다가 없어졌다’고 하지마는, 허공의 꽃은 있다가 없어진 게 아니라 원래 없던 것이다.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통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을 만나면 육식(六識, 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이 생기는데, 그 육식(六識)에 포착되는 모든 것들을 이름과 모양—명상(名相)이라 하는데, 명상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림자요, 메아리, 환(幻)인 것이다.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명상(名相) 그것을 ‘있는 것’으로 집착을 함으로 해서, 모든 탐진치 삼독심이 일어나 생사윤회의 업을 짓는데, 마음 하나만 공(空)해 버리면 일체 명상(名相)은 동시에 다 공(空)해 버리는 것이다.

원래는 이 세상에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生死)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生死)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이거거든.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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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선문염송(禪門拈頌) ;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 고려 보조국사 지눌(知訥)의 제자 진각국사 혜심(慧諶) 스님이 1226년 수선사(修禪社, 지금의 송광사松廣寺)에서 화두 1125칙(則)과 각각의 칙(則)에 대한 짤막한 해설과 게송 등을 모아 엮은 30권의 책이다. 염송(拈頌)이라고도 한다.
*건수(乾水 마를 건, 물 수) ; 평상시에는 물이 고여 있지 않다가, 장마 때 땅속으로 스몄던 빗물이 잠시 솟아나서 괴는 샘물.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衆生心)이요 사량심(思量心)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곧잘 ; 제법 잘.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 기운 기, 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주력(呪力) ;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로 하는 기도.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의 효과.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비파사나(팔리어 vipassanā, 산스크리트어 vipaśyanā) ; 비바사나(毘婆舍那)·비발사나(毘鉢舍那)로 음역. 능견(能見)·정견(正見)·관찰(觀察)·관(觀)이라 번역.
비파사나(위빳사나)는 ‘분리해서vi  보는 것passanā’이라는 문자적인 뜻 그대로, 대상[유위제법(有爲諸法)—오온(五薀)·십이처(十二處)·십팔계(十八界)]을 나타난 모양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명상하고 관찰하여 법(法)의 무상(無常)하고 고(苦)이고 무아(無我)인 특성을 통찰하는 수행.

비파사나는 마음[心]·마음부수[心所]·물질[色]로 구분되는 71가지 구경법들 가운데 하나를 통찰하는 수행인데 이처럼 법을 통찰해 들어가면 제법의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철견(徹見)하게 된다.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비파사나의 힘으로 탐·진·치의 뿌리를 멸절시켜야 영원히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되며 그래야 해탈·열반을 실현하게 된다.
비파사나는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것 그 자체이지 결코 특정한 수행기법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 「초기불교 이해」 (각묵 스님, 초기불전연구원) 참고.
*사념주관(四念住觀) ; 현장법사(600~664) 이전에 번역한 경전의 번역을 말하는 구역(舊譯)에서는 사념처(四念處)라 하고, 신역에서는 사념주(四念住)라고 함. 사념처관(四念處觀)과 같음.
네 종류의 수행방법. 네 가지의 관상법(觀想法). 네 종류의 마음이 고요해지는 내관(內觀).
신념주(身念住, 身念處) · 수념주(受念住, 受念處) · 심념주(心念住, 心念處) · 법념주(法念住, 法念處)의 네 가지를 마음에 떠올리는[觀] 수행.

①신념주(身念住, 身念處) : 부모에게 받은 육신이 부정(不淨)하다고 관하는 것.
②수념주(受念住, 受念處) : 우리의 마음에 낙(樂)이라고 하는 음행·자녀·재물 등을 보고, 낙이라고 하는 것은 참 낙이 아니고, 모두 고통(苦痛)이라고 관하는 것.
③심념주(心念住, 心念處) : 우리의 마음은 항상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고, 늘 변화 생멸하는 무상(無常)한 것이라고 관하는 것.
④법념주(法念住, 法念處) : 위의 셋을 제하고, 다른 만유에 대하여 실로 자아(自我)인 실체(實體)가 없으며, 또 자아가 없으므로 소유도 없다고, 무아관(無我觀)을 하는 것.

신·수·심·법(身·受·心·法) 네 가지를 따로따로 관하기도 하고, 신수심법(身受心法)은 부정(不淨)하며, 고(苦)이며, 무상(無常)하며, 무아(無我)라고 총합하여 관하기도 한다.
*임제종(臨濟宗) ; 중국 선종 제6조(祖) 혜능(慧能)으로부터 남악(南嶽)·마조(馬祖)·백장(百丈)·황벽(黃檗)을 거쳐 임제의현(臨濟義玄, ?-867)에 이르러 일가(一家)를 이룬 종파이다.
임제종은 북방에서 널리 성행했는데, 송대(宋代)에 석상 초원(石霜楚圓) 문하에서 양기 방회(楊岐方會)의 양기파와 황룡 혜남(黃龍慧南)의 황룡파가 나와, 양기파는 성행했으나 황룡파는 얼마 안 가 쇠퇴함.
양기파 문하의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는 천만 가지 의심도 결국은 하나의 의심에 지나지 않으며, 화두(話頭)의 의심이 깨뜨려지면 천만 가지 의심이 일시에 사라진다고 하여 화두와 정면으로 대결할 것을 역설했는데, 그의 선풍(禪風)을 간화선(看話禪)이라 한다.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 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도 말씀하신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구경(究竟 궁구할 구/마칠•다할 경)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그 위에 더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관법(觀法) ; 마음을 지금 여기에 두고, 분별적인 사유에 휩싸이지 않고, 대상[諸法]의 인상이나 겉모습에 떠돌지 않고, 대상을 꿰뚫어서 대상[諸法]의 진실한 모습을 통찰하는 수행. 이로써 고통과 근심을 소멸하고 올바른 길에 들어서게 하고 열반(涅槃-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을 깨닫게 한다.
*거각(擧却 들 거, 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 ; [주로 ‘용을 쓰다’의 구성으로 쓰여]무리하게 어떤 일을 해내려고 마음을 몰아 애써서 한꺼번에 내는 힘.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참선(자세 호흡)2014. 6. 7. 19:31

 

 

§(346) 참선의 자세, 호흡(단전호흡의 목적) / 호흡이 안 될때 / 참선의 목적.

물론 단전호흡을 하지 않아도 오직 자세만 바르게 하고 화두만을 잘 참구해도 참선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단전호흡이 매우 유익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참선을 하는데 있어서 몸이 건강하고 또 정신이 맑고 그래야 참선을 잘할 수 있기 때문에 참선을 잘하기 위한 하나의 기초라고 할까? 한 방편(方便)으로써 이 단전호흡을 권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전호흡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리하게 하지 말아라. 힘들여서 하지 말아라」 「아주 부담없이 자연스럽게 호흡을 쉬어라」

 

호흡을 숨을 들어마실 때 배를 볼록하게 하고, 숨을 내쉴 때에 홀쪽하게 하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가슴이 정 답답하고 숨이 맥히고 그런 분은 그 반대로 하세요. 숨을 들어마실 때 배를 홀쪽하게 만들고, 숨을 내쉴 때 배를 볼록하게 만들고, 반대로 그렇게 하면 그 답답한 것이 얼마 안 해서 없어질 것입니다.

 

그런 것도 본인이 잘 증험을 해서 지혜롭게 해 나가셔서, 자기에게 가장 알맞는 시간과 호흡하는 요령을 체달(體達)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불교는 이 몸뚱이를 가지고 오래 살라고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것은 외도 법이고.

 

반드시 화두를 참구를 해서 그 공안을 타파해 가지고 확철대오를 해서, 생사없는 진리를 깨달라야 할 것이다 그 말씀입니다.

 

**송담스님(No.346)(참선법 D)-88.1.21 보살 선방에서 하신 법문. (용346)

 

(1) 약 16분.

 

(2) 약 20분.

 


(1)------------------ 

 

편안하게 앉으세요. 참선(參禪)할 때처럼, 반가부좌하고 앉으세요.
오늘 아침에 전강 조실스님 녹음 법문을 다 들으셨겠습니다마는, 자꾸 망상이 일어나고 화두가 순일(純一)하게 들리지 않고 조금 들린 듯 하다가 또 안 들리고, 화두가 순일하게 들리지 아니한 것으로 해서 많은 참선 수행자들이 애를 먹고 고민을 하고 그래 온 것은 사실입니다.

‘화두가 잘 들리지 않고 공부가 안되니까 공부를 하는 것이다.’ 아침에 조실 스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마는.



<참선의 자세>

 

첫째, 자세를 바르게 갖는 것. 자세가 바르지 못하면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잘 안되는 수가 있습니다.
자세가 너무 힘이 들어 있어서, 허리나 목이나 그런 데에 힘이 너무 들어 있어도 피로하고 오래가지 못하고 몸이 아프기도 하고,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자세를 바르게 한다’고 하는 것은 물론 이 가운데는 잘 아시고 또 대부분 다 자세가 바르시고 그렇습니다마는 처음 오신 분이나 또 아직 좌선(坐禪)의 자세가 바로 잡히지 아니한 그러한 분들에게는 필요하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열댓 분이 화두(話頭)라든지 그밖에 공부에 대해서 말을 해주기를 신청을 하셨지마는, 여기 신청을 안 하신 분들도 마음으로 듣고자 하신 분도 많이 계실 것 같고 또 그전부터 잘 아시는 분도 다시 들어서 해로울 것이 없으리라 생각을 해서 제가 큰방에 나와서 이렇게 말씀을 드리기로 한 것입니다.

맨 처음에 오른다리나 왼다리를 저 안으로 이렇게 굽어 넣고 그리고 그 다리 위에다 다른 다리를 이렇게 들어올려서 딱 놓고서, 옷을 잘 가지런히 해서 덮고, 그리고서 방바닥에다 손을 짚고서 궁댕이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으세요. 앞에다 손을 짚고서 궁댕이를 쑥 들었다가 한번 딱 놓으세요.

그리고서 (발 위 아랫배 앞에다가)오른손을 먼저 놓고 왼손을 위에다 포개고 그리고 엄지손을 이렇게 맞대.
가만히 이렇게 맞대고, 너무 힘을 주어서 이렇게 올라가게 하지 말고 가만히 맞대는데, 엄지손이 동그스름하게 두 손가락이 무지개다리처럼 되도록. 이것이 너무 이렇게 올라가도 못쓰고 또 밑으로 내려앉거나 앞으로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이렇게해서 새끼손가락 부분이 아랫배에 가서 닿고 손등어리는 발 위에 가서 놓여지도록, 그래서 이 손 모습이 참 이쁘게 되어야 해.

그렇게 하고 몸을 앞으로 숙이거나 뒤로 자지바지하거나 또는 좌우로 이렇게 기울어져서는 안 됩니다. 두 어깨 위에 두 귀가 놓이도록, 허리는 단정히 쭉 펴되 힘을 주지 말고, 이렇게 했으면 좌우로 서너 번 흔드세요. 궁댕이 들썩들썩 이렇게 흔들다가 차츰차츰 가운데에다가 딱 안정을 하세요.

그러면 아까 손을 앞에다가 짚고서 궁댕이를 한번 쑥 들었다가 놓고, 그 다음에 좌우로 서너 번 흔들고, 그렇기 때문에 앉은 자세가 아주 옷 구겨진 것도 다 없어지고 아주 편안할 것입니다. 저절로 바르게 할려고 안 해도 이렇게 하면은 자세가 바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금니는 지그시 물고 또 혀는 위에로 꼬부려서 저 입천장 안에다 갖다 대세요, 혀 끄터리를.
그리고 눈은 앉은 자리에서 약 3미터 지점에다가 떨구세요. 그렇다고 해서 의식적으로 어느 한 점을 정해 놓고 거기만 자꾸 응시를 하거나 주시를 할 필요는 없고, 그냥 볼라고 한다면은 그 지점이 보이되 의식적으로는 아무 것도 본 바가 없어야 합니다. 그저 평상으로 딱 뜨기만 하지 어느 지점을 주시(注視)해서는 안 된다 이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이게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잘 되신 것 같습니다.




<호흡, ‘단전호흡을 꼭 해야만 하냐?’>

 

이렇게 자세를 바르게 했으면 그 다음에는 단전(丹田) 호흡을 하는데 ‘단전호흡을 꼭 해야만 하냐?’ ‘단전호흡을 안 해도 상관이 없느냐’ 이런 문제로 스님네 가운데에도 논란이 있고 또 여러분 가운데에도 ‘단전호흡 안 하더라도 참선을 잘 할 수가 있지 않느냐?’ 혹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도 있을런지 모릅니다마는,

물론 단전호흡을 하지 않아도 오직 자세만 바르게 하고 화두만을 잘 참구해도 참선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단전호흡이 매우 유익한 것입니다.』
첫째, 혈액순환을 잘 하도록 도와주게 되고 또 혈액순환을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오장육부 사이사이에 끼어있는 노폐물, 찌꺼기 이런 것이 다 밖으로 배출이 되는 것입니다.

혈액순환이 잘 안 되면 그런 찌꺼기, 노폐물 그런 것이 몸안에 꽉 끼어 가지고 있어서 몸에 피로가 오고 또 정신도 맑지 못하고 몸이 무겁고 오장육부의 기능도 활발하지 못하고 그러기가 쉬운데, 이 단전호흡을 함으로 해서 혈액순환이 활발히 되니까 그 몸안에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모든 찌꺼기, 노폐물 그런 것이 싹싹 청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몸이 피로가 풀리고 몸이 가벼워지고 따라서 정신도 맑아지고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인도에 요가(yoga)라고, 여러분도 잘 하신 분도 계시고 말씀으로라도 다 들으셔서 아시겠지만, 요가는 ‘육체의 자유’ 또 ‘정신의 자유’ 모다 그런 것을 추구하는 그래서 인도의 요가는 세계적으로 널리 선전이 되고 그럽니다마는,
그 요가의 근본이 물론 몸뚱이를 오그렸다 폈다 하는 그런 것도 그 안에 들어있지만, 그 보다도 훨씬 더 요가의 중요한 점은 호흡에 있는 것입니다.

그 호흡을 잘함으로 해서 육체와 정신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의 신선도(神仙道), 도교에서는 오직 이 단전호흡을 통해서 장생불사(長生不死)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팽조(彭祖)라고 하는 사람은 신선도를 하는 아주 손꼽는 신선인데 그이는 칠백 세까지도 살았다고 하는 말이 전해오고 있고 그밖에 오백 세나 삼백 세 백오십 세 이런 것은 수두룩한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오직 이 단전호흡만을 일생을 통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처음에는 몸에 병이 있어 가지고 사회생활을 하지 못할 만큼 약해서 그러던 사람이 이 단전호흡법을 배워가지고 일심으로 그것을 날마다 2년·3년·10년 이렇게 해 가지고 병도 다 낫고 그래가지고 10년·20년·30년 이렇게 수명을 연장(延長)을 해 가지고 어지간하면 백오십 세 이상을 다 사는 것입니다.




<참선에서 단전호흡의 목적>

 

그러면 ‘우리가 참선하는 사람으로서 이 단전호흡을 한 것도 그렇게 이 몸뚱이를 가지고 몇백 세씩 살기 위해서 이것을 하냐’하면은 목적이 그 사람들과 다릅니다.

우리는 이 참선을 하는데 있어서 몸이 건강하고 또 정신이 맑고 그래야 참선을 잘할 수 있기 때문에 참선을 잘하기 위한 하나의 기초라고 할까? 한 방편(方便)으로써 이 단전호흡을 권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임제종(臨濟宗) 계통에서는 호흡, 단전호흡에 대해서 별로 그렇게 말하지 않지마는, 조동종(曹洞宗) 계통에서는 아주 철저하게 이 단전호흡을 하도록 자세하게 지도를 해 왔고 그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무슨 종파에 상관없이 우리 육체에 좋고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되고 해서 참선에 도움이 된다면 구태여 그것을 안 할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유독 사람의 체질상, 조금 신경을 쓰거나 그러면은 기운이 위로 올라가서 골이 아프고 얼굴이 붉어지고 목이 뻣뻣해지고 하는 그러한 체질을 가진 분은 반드시 단전호흡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도 않는 사람도, 참선을 전혀 하지 아니한 세속 분들도 그러한 체질을 가진 사람은 항상 일평생 동안 단전호흡을 해야만, 그이는 기운을 항상 올라가는 것을 막고 그래서 고혈압 같은 것도 다 예방을 하고 그러는 것이고,
특히 참선을 하신 분은, 특히 이 화두를 타 가지고 화두를 참구(參究)하는 참선하신 분은 그런 체질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이 단전호흡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단전호흡을 하지 않고 그냥 ‘이뭣고?’ ‘이뭣고?’하고 간절히 간절히 화두를 들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있는 기운이 머리위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나중에는 상기병(上氣病)이라고 하는 무서운 병이 일어나 가지고 골이 아프고, 화두만 들면 골이 아프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단전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참구하면 그런 상기병을 미연에 방지하고 혹 상기 증세가 있는 분도 이 단전호흡을 잘하면 그런 상기병이 낫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혈압이 높으신 분도 계시지 않은가 싶은데 그런 분은 특별히 이 단전호흡에 관심과 정성을 가지고 잘 해 나가시면 혈압도 약을 먹지 않고서도 그 혈압을 내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15분35초)





(2)------------------



<단전호흡>

 

그러면 단전호흡을 어떻게 하느냐?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3초 동안 참았다가 내쉰다' 대충 이렇게만 생각하시고,

'그 숨을 들어마셔서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이리해서 가슴으로 해서 배로 해서 배꼽을 지내서 저 배꼽 밑에까지 호흡을 집어넣는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 그렇게 하면 십중팔구는 이 가슴이 답답해지는 증상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숨을 들어마셔서 그것이 배꼽 밑에까지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가슴 밑에 가로막이라고도 하고 횡격막이라고 하는 막이 허파 밑에 횡격막이 있는데, 허파까지 밖에는 공기가 들어가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 밑에는 소장과 대장이 있어 가지고 그 밑에까지 공기가 들어갈 수가 없어요.
내려가질 않는 것인데, 억지로 그 밑에까지 내려보낼려고 하니 여기가 딱 걸려 갖고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도 잘 안되고 이렇다 그말이여.

그래서 숨을 들어마셔서 배꼽 밑에까지 내려보낼려고 억지로 누를라고 하지 말고 그냥 숨은 이렇게 쉬되,
그 ‘이리 내려간다’고 하는 과정은 전혀 생각하지 말고 그냥 아랫배, 배꼽 밑에 단전 부위만 볼록하게 맨들기만 하면 되요. 볼록하게 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또 내쉴 때는 또 배를 홀쭉하게 맨들기만 하면 되어요.

숨은 안 쉬고도 배를 내밀었다 잡아당였다 할 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숨을 들어마심에 따라서 그놈에 맞춰서 배를 볼록하게 하면 되는 것이지, 숨을 꼭 그리해서 저리해서 저 밑에까지 밀어 넣을라고 하시지 말라 이거거든.

그리고 숨을 들어마실 때 너무 가뜩 들어마시지 말고 8부(八部)쯤만 들어마시는 거여. 이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너무 가뜩 들어마시면은 그 다음에 숨이 가빠지니까 무리가 오게 되죠. 그래서 몇 번 안 해서 헛숨을 쉬어야 하고 힘이 들고 이런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단전호흡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리하게 하지 말아라. 힘들여서 하지 말아라' 이거거든.
'아주 부담없이 자연스럽게 호흡을 쉬어라' 이거거든.
보통 우리가 단전호흡을 안 할 때 그냥 예사로 아무 부담없이 숨 쉬듯이 하되, 조금 길게 쉬고 길게 마시고 들어마실 때는 하복부를 약간 볼록하게 맨들고, 내쉴 때는 하복부를 홀쭉하게 맨들고 그것 뿐인 것입니다.



〇준비 호흡

 

그러면 이 단전호흡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호흡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준비호흡은 또 어떻게 하냐?
숨을 들어마시되, 가슴이 미어지도록 숨을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한번 해 보세요.

이렇게 어깨를 드는듯 하면서 가슴이 미어질 만큼 가뜩 숨을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들어마셔 가지고 꽉 참아요. 한참 참았다가 더이상 참을 수가 없을 때 입을 조금 벌리고 ‘후-’하고 숨을 다 내뿜습니다. 내뿜을 때는 아까 들어올렸던 가슴을 약간 홀쪽하게 하는 듯 하면서 완전히 다 짜내야 하는 것입니다. 다 내쉬어버려.

다 내쉰 다음에는 다시 한번 또 들어마셔요. 가뜩 들어마셨으면 또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았다가 또 ‘후-’하고 다 내쉬는 것입니다.
이렇게 2번 내지 3번을 하고 나면 허파 속에 있던 구석구석의 묵은 공기가 완전히 다 밖으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〇본 호흡

 

다 내뿜어버린 다음에, 인자 준비호흡을 그렇게 해서 3번을 했으면, 그 다음부터서는 정식으로 본 호흡으로 들어가는데, 숨을 아까 다 내 뿜었으니까 그 다음에는 자동으로 숨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스르륵 따라 들어가는 것입니다, 호흡이.
그때는 따라 들어감에 따라서 가슴은 고대로 놔두고 배꼽 밑에 단전만 차츰차츰차츰 이렇게 불으게 하는 것입니다. 아주 기분이 좋지요.

그러면 아까 준비호흡을 할 때는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셔. 그때는 소지를 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지마는 이제 본 호흡으로 들어가서는 그렇게 잔뜩 들어마시면 안 되어요.

‘스르르~’하니 들어마심에 따라서 아랫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볼록하게 되면 8부쯤만 들어마시거든. 그 8부쯤 들어마신 상태에서 딱 머꾸어요. 머꾸어 가지고 하나, 둘, 셋 이렇게 약 3초 동안 딱 머물렀다가 또 조용하니 내쉬되 코로 내쉬는 것입니다. 코로 내쉼에 따라서 볼록해졌던 배는 또 차츰차츰 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아까 준비호흡을 할 때는 가슴이 미어지도록 가뜩 들어마셨다가, 한참 억지로 참았다가 내쉴 때는 입을 조금 벌리고 ‘후-’하고 내쉬었지만, 정식 본 호흡으로 들어가서는 코로 들어마시고 코로 내쉬는 것입니다.

한번 해 보세요, 각자. ‘스르르~’하니 들어마셔 가지고 따라서 배가 볼록해졌으면 잠깐 머물러요. 3초 동안 정지했다가 또 조용하니 코로 내쉬어요. 내쉼에 따라서 아랫배가 차츰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그렇게 해서 숨이 다 나갔으면 또 ‘스르르~’하니 들어마셔, 들어마심에 따라서 아랫배가 차츰차츰차츰 볼록, 딱 정지했다가 3초 지난 다음에 또 조용하니 내쉬어. 내쉼에 따라서 배는 차츰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이것뿐인 것입니다.

항상 숨을 들어마실 때 배가 차츰차츰 볼록해진 것을 의식을 하면서 하시라 그 말이에요. 또 내쉴 때는 아랫배가 차츰차츰차츰 홀쪽해지는 것을 환히 느끼면서 배를 차츰차츰 홀쪽하게 하시라 그 말이어요.
그래서 호흡을 쉴 때에, 배가 차츰차츰 볼록해졌다가 머꾸었다가 또 차츰차츰 홀쪽해진 것에다가 항상 우리의 신경을 거기다 두기 때문에, 자연히 머리에 몸에 있는 모든 기운이 단전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경을 머리에다가 두면은 전신의 기운은 머리로 올라가는 거고, 우리의 신경을 단전에다가 두면 전 기운이 단전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또 발에다가 신경을 두면 발로 내려가는 거고, 우리의 생각 두는 곳에 기운도 그리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단전호흡을 하면은 혈압이 높은 사람, 상기 증세가 있는 사람, 골치 아픈 사람, 피로한 사람, 흥분한 사람 모든 그런 증상이 다 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주 간단한 것입니다.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요가를 가리키는 곳에 가면은 여러가지 호흡법이 있고 또 국선도라든지 그런데 가면은 또 여러가지 호흡법이 있습니다마는 그 나름대로 특징이 있고 좋지마는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참선하는데 적합한 호흡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하다 보면 좀 어렵게 느껴지실런지 모르지마는 꼭 고대로 계속해서 하면 나중에는 무심결에 그렇게 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자세를 바르게 하고 또 호흡을 바르게 하고, 그런데 그 들어마시는 시간, 약 3초에 걸려서 들어마시고 또 딱 정지하는 시간도 3초, 내쉬는 시간도 3초, 3초보다 조금 더 길어도 좋아요, 내쉬는 호흡은.
그래서 들어마시는데 3초, 딱 머꾸는데 3초, 내쉬는데 4초 이렇게 하면은 합해서 한 10초, 한번 들어마셨다가 내쉬는데 약 10초 가량 걸릴 것입니다. 그러면은 1분 동안에 약 6번 가량 호흡을 할 수가 있고, 1분이 60초니까 6번을 쉴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체질에 따라서 숨이 조금 짧은 사람은 조금 짧고, 숨이 평소에 긴 사람은 조금 더 길게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마는, 계속해서 이렇게 하다보면 들어마시는데 한 5초, 머무르는데 5초, 내쉬는데 5초 해서 약 15초 걸리게 할 수도 있고,
또 들어마시는데 10초, 머무르는데 10초, 내쉬는데 10초 해서 숨 한번 들어마셨다가 내쉬는데 한 30초에 걸려서 하게도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1년·이태 오래하다 보면.

그렇게 하는데 ‘덮어놓고 길게만 해서 좋다.’ 이리 생각해 가지고, 처음부터서 ‘에이! 난 오늘부터서 숨 한번 쉬는데 30초씩 길게 잡아야겠다’해 가지고, 그렇게 했다하면 큰일나는 것입니다.
무리가 가 가지고 나중에는 숨을 내쉬지도 못하고 들어마시지도 못하고 가슴이 뻑뻑해 가지고 애를 먹게 되고 그것은 기지도 못하면서 날을려고 하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한 3초, 3초, 3초 해서 누구든지 할 수 있는 호흡으로부터 시작해 가지고,
계속 1달·2달 하다가 보면 조금 길어지면 그때는 한 4초, 4초, 4초, 더 나중에 한 1년쯤 지낸 다음에는 한 5초, 5초, 5초, 이렇게 해서 차츰차츰 무리가 하나도 없이 자기에게 가장 편할대로해야 하는 거지,

억지로 무리하게 하면은 가슴이 답답해지는 병이 생기기도 하고 소화도 잘 안되고, 오히려 오래 살기 위해서 단전호흡을 하다가 생병(生病)이 나 가지고 그런 것이니까 절대로 무리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지금 3초씩 3초씩 하라고 했지만 그것도 자기 체질에 너무 길다 싶으면 2초씩 2초씩 해서 한 6~7초 걸쳐서 한 호흡씩을 해도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 차츰차츰 나중에 가서 길어지게 자연히 되는대로 하는 것이지, 호흡을 갖다가 억지로 자기 체질에 안 맞게 무리하게 해서 병이 나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꽉 맥히고 그런 분은 그 반대로>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는 참선하신 지가 오래되어 가지고, 호흡도 여러 가지로 애도 써 보시고 하는데, 항상 이 가슴이 답답해서 여기가 꽉 맥혀 가지고 그러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 분은 아까 말한 ‘호흡을 숨을 들어마실 때 배를 볼록하게 하고, 숨을 내쉴 때에 홀쪽하게 하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가슴이 정 답답하고 숨이 맥히고 그런 분은 그 반대로 하세요.

숨을 들어마실 때 배를 홀쪽하게 만들고, 숨을 내쉴 때 배를 볼록하게 만들고, 반대로 그렇게 하면 그 답답한 것이 얼마 안 해서 없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계속해서 그대로 하셔도 좋고,

또 (가슴이 답답한 것이) 괜찮으면은 아까 처음에 말한대로 그렇게 숨을 들어마실 때는 단전이 볼록하게 되고 내쉴 때는 홀쪽하게 그렇게 하고.
그렇게 해서 정 가슴이 답답하면 그 반대로 숨을 들어마실 때 아랫배를 홀쪽하게 만들고, 숨을 내쉴 때 배를 요렇게 볼록하게 맨들고 하면 그 답답한 것이 없어져요.

그런 것도 본인이 잘 증험을 해서 지혜롭게 해 나가셔서, 자기에게 가장 알맞는 시간과 호흡하는 요령을 체달(體達)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의 목적 - 생사해탈(生死解脫)>

 

이렇게 해서 자세가 바르게 되고 또 호흡이 이렇게 해서 잘 골라지면 화두를 참구하는데,
화두(話頭), 이 화두라 하는 것은 화(話)는 ‘말씀’이란 말이고, 두(頭)는 그냥 어조사로 붙어있는 아무 뜻 없는 말입니다. ‘말씀’이라 그말이여. ‘이뭣고?’란 말씀 또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한 그 말이라 그말이죠.

그 한마디 말을 그것을 ‘화두’라 그러기도 하고 또 그것을 ‘공안(公案)’이라 그러기도 하고 그러는데, 이 참선하는데 있어서 밤낮 이 자세만 바르게 하고 계속 단전호흡만 하고 앉아 있으면 그것은 신선도(神仙道)나 무슨 요가(yoga)하는 사람이나 그런 외도(外道)나 무엇이 다를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우리 참선(參禪)하는 사람은 목적이 이 자성(自性)을 깨달으는 것이 목적이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밤낮 그 호흡만 해 갖고 몸이 건강해지고 설사 백오십 세·이백 세 살아본들 그까짓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말이여.

백 살을 사나, 이백 살을 살다가 죽으나 또는 천 살을 살다 죽으나 죽을 때는 마찬가지인데, 우리 참선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한 것은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것이 목적이거든. 이 몸뚱이를 가지고 오래 사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사해탈하는 것이여.
영원히 생사없는 이치를 깨닫는 것이 우리의 목적인데, 공연히 이 단전호흡만 해 가지고 백오십 세나 이백 세 살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냐 그말이여, 결국은 죽고 말텐데.

영랑 신선은 동해 바다가 3번 마른 것을 보도록 오래 살은 신선이었었지만은 결국은 사람도 아니고 원숭이도 아닌 이상한 몰골을 해 가지고 원효 스님 토굴에 나타난 일화를 여러 분들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마는, 불교는 이 몸뚱이를 가지고 오래 살라고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것은 외도 법이고.

우리 불법(佛法)은 이 몸뚱이는 한번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결국은 늙어서 병들어 죽는 것은 정칙(定則)인데, 그러한 생사(生死) 속에서 생사 없는 놈이 있다 그말이여. 생사 없는 그놈을 깨닫는 것이 불법이여.
그것을 깨달라 버려야 영원히 생사가 없는 것이지, 이 몸뚱이를 가지고 몇백 년 살라고 하는 그런 것이 불교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이 호흡만 밤낮 하고 있어 갖고 뭣할 것이냐 그말이여.

반드시 화두를 참구를 해서 그 공안을 타파해 가지고 확철대오를 해서, 생사없는 진리를 깨달라야 할 것이다 그 말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화두를 참구(參究)하는데, 화두는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화두가 됩니다.
그 천칠백 공안 속의 최초의 화두가 (문을 좀 열었다가 닫으세요. 요쪽을 요리 가운데를 보고 앉으세요. 요리 둘러 앉어. 눈을 뚝 뜨고.)

이 화두, 그 천칠백 화두가 있는데 그 가운데에 최초의 화두요, 동시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가 ‘시삼마(是甚麼)’ 화두입니다.  ‘시삼마’는 우리말로는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그말이여.
‘이것이 무엇이냐?’(처음~35분5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로 좌선(坐禪) 수행을 말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임제종(臨濟宗) ; 중국 선종 제6조(祖) 혜능(慧能)으로부터 남악(南嶽)·마조(馬祖)·백장(百丈)·황벽(黃檗)을 거쳐 임제의현(臨濟義玄)에 이르러 일가(一家)를 이룬 종파이다.
임제종은 북방에서 널리 성행했는데, 송대(宋代)에 석상 초원(石霜楚圓) 문하에서 양기 방회(楊岐方會)의 양기파와 황룡 혜남(黃龍慧南)의 황룡파가 나와, 양기파는 성행했으나 황룡파는 얼마 안 가 쇠퇴함.
양기파 문하의 대혜 종고(大慧宗杲)는 천만 가지 의심도 결국은 하나의 의심에 지나지 않으며, 화두(話頭)의 의심이 깨뜨려지면 천만 가지 의심이 일시에 사라진다고 하여 화두와 정면으로 대결할 것을 역설했는데, 그의 선풍(禪風)을 간화선(看話禪)이라 한다.
*조동종(曹洞宗) ; 중국의 선종은 달마(達磨)로부터 시작하여 당나라 때의 6조(六祖) 혜능(慧能)에 이르러 크게 성했다. 조동종은 이 혜능 문하인 청원행사(靑原行思)의 계통으로부터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와 그의 제자 조산 본적(曹山本寂, 839-901)에 의해 형성된 종파이다.
굉지 정각(宏智正覺, 1091-1157)은 자신이 본래 부처의 청정한 성품을 갖추고 있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묵묵히 좌선만 하면 저절로 그 청정한 성품이 드러난다는 묵조선(默照禪)을 선양하였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이 사용된다.
*요료법(尿療法) ; 요료법은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2)

 

*8부(八部)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만큼.
*소지(掃地) ; ①마당(땅)을 쓸다. ②청소.
*무심경(無心결) ; [주로 ‘무심결에’의 꼴로 쓰여]아무런 생각이 없어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
*생병(生病) ; 무리한 일을 해서 공연히 얻은 병.
*체달(體達) ; 사물의 이치를 통달하여 깨닫음.
*‘이뭣고?’, ‘판치생모(板齒生毛)’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외도(外道) ; 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정칙(定則) ; 정해진 규칙이나 법칙.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 활구참선의 법맥.


**송담스님(No.88) - (참선법A) 법련사 불교학생회 청법 법문(1978.10.1)에서. (용088)


약 6분.

 


§ 활구참선의 법맥

삼천 년 전에, 부처님께서 가섭존자에게 법을 전하시고, 가섭존자는 아난존자에게, 아난존자는 상나화수존자에게, 이렇게 해서 28대 달마대사까지 전해 왔습니다.

달마대사는 일 백 오십 세가 되도록 인도 천지를 두루 다니시면서 이 정법을 펴시다가, 그 이전에 중국에 불법이 건너갔다고는 하지마는, 경전이나 불상이나 그런 상법(像法)만이 건너갔지,
내가 나를 깨닫는 부처님의 최상승법은 전해지기 못했기 때문에 일 백 오십 세의 고령으로 3년간의 항해 끝에 중국 남해안에 도달하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맨 처음에 양(梁) 무제(武帝)를 만나니,
“짐(朕)이 절을 많이 짓고, 경전을 보시하고, 스님네 봉양을 많이 한 공덕이 얼마나 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달마대사께서는, “공덕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가장 성스러운 진리입니까?”
달마대사께서, “확연해서 성스러울 것도 없습니다!(廓然無聖)”
“그러면 내 앞에 서 있는 당신은 누구요?”
“모르겠습니다!(不識)”하고 달마대사가 대답했습니다.

거기에서 대화가 끊어져서, 달마대사는 양자강을 건너서 위나라 숭산 소림굴에 들어가 9년 간 면벽관심(面壁觀心)을 하다가 혜가라고 하는 제자를 만나 법을 전하셨습니다.

부처님으로부터 육조 혜능스님까지 33대가 되고, 육조스님 이후로 오종가풍(五宗家風)이 벌어져 중국 천지에 선풍이 크게 진작을 했습니다. 그 오종가풍 가운데 임제종의 활구참선법이 한국에 전해졌습니다.

조선에 와서 수백 년 간 교풍(教風)이 성하고 선풍(禪風)이 다소 침체한 감이 있었으나, 백여 년 전에 경허선사가 대강사로 확철대오(廓徹大悟) 하시어 종풍(宗風)을 중흥하셨습니다.
그 밑에 만공선사를 비롯한 육대 선지식이 배출되고, 오늘날 활구참선법이 이 땅에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46분29초~51분5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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回 이 법어는 송담(松潭)스님께서 1978년 10월 1일, 「법련사 불일 청년회」의 청법으로 설하신 내용이며, 스님께서 직접 편집하신 것을 『불일회보』(1988년 6. 7. 8월)에 게재했었던 원고임.

*가섭(迦葉), 아난존자(阿難尊者), 달마대사(達摩大師), 혜가(慧可) ; 분류 ‘역대 스님 약력’에서 참고.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짐(朕) ; 예전에, 임금이나 군주가 자기를 이르던 말.
*오종(五宗) ; 임제종(臨濟宗), 조동종(曹洞宗), 운문종(雲門宗), 위앙종(潙仰宗), 법안종(法眼宗)
*임제종(臨濟宗) ; 임제 의현(臨濟義玄, ?~867)에 의해 비롯된 종파.
*경허선사 ; 경허성우(鏡虛惺牛, 1849~1912). 한국 근현대 선불교의 중흥조.
*만공선사 ; 만공월면(滿空月面, 1875~1946). 경허선사의 법을 이어 덕숭산 정혜사에서 선풍(禪風)을 떨쳤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