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법문2017. 9. 27. 16:01

§(319) 정중로월(井中撈月) / 오백 마리의 원숭이가 우물에 빠지다 / 바른 신심과 바른 스승, 도반을 만나 올바르게 노력 / (게송)월마은한전성원~ / 거울 법문 / 허공이라는 거울.

 

옳게 믿으면 처음에는 옅은 데로 들어갔다가  믿음이 간절하고 한결같으면 차츰차츰 좋은 인연을 만나가지고 바른 스승을 만나서, 바른 법을 향해서 나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 절에 갔다가 결국은 참나’를 깨닫고 영원한 보배를 얻을  있는,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쓰고도 쓰고 남을 그러한 영원한 보배를 얻은 데에까지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울만 거울이 아니라, 이 삼천대천세계  허공계, 끝없는 허공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의 거울인 것입니다.  거울에 나타나는 모습은 언제나 자기인 것입니다. 그 허공으로  거울에 나타나는 모든 것이 바로 자기의 모습인 것입니다.

 

 사람의 허물은  허물의 그림자다. 저 사람 잘못한 것은 바로  허물이  사람이라고 하는 거울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 말씀이여.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그 회사나, 그 사회나, 그 국가나, 그 세계에 모든 것들이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모든 나쁜 것을 눈을 통해서 보거나, 귀를 통해서 듣거나, 코와 혀와 몸뚱이와 뜻을 통해서 느꼈을  바로 거기에서 자기를 반성을 하고, 자기의 허물을 고치고, 나아가서는 참나’로 돌아오는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 진정코 참다운 자기 모습을  것입니다.

 

**송담스님(No.319)—86 병인년 성도재 법회(87.01.17) (용319)

 

(1) 약 17분.

(2) 약 12분.

 

(1)------------------

 

「승기율(僧祇律)」이라고 하는 경책(經冊)에 정중로월(井中撈月)이다.  가운데에 달을 붙잡는다. 샘 속에 들어있는 달을 건진다하는 내용의 법문이 있는데,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을 향해서 말씀을 하시기를,

 

과거 시(時)에  나라는 가시국(伽尸國)이라  나라고, 그 가시국이라  나라에 바라나(波羅奈)라고 하는 성(城)이 있었는데  성안에 숲이 있어. 아주 우거진 숲이 있는데  숲속에는  마리의 원숭이 떼들이 있었어.

 

근데  마리의 원숭이를 이끌고  원숭이의 우두머리가  마리의 권속을 이끌고  숲속을 유행(遊行)을 .  골짜구니에서  골짜구니로,  골짜구니에서  골짜기로 이렇게 다니다가  우물이 있는데, 샘이 있는데, 그  속에 이상한 것이 보인다 그말이여. 환희 밝은 쟁반같이 밝은 것이 보이는데.

 

 이상하다. 저게 분명히 저것이 달인데, 아무래도  달이 떨어져가지고 우물에 빠져서 죽게 되었어. 저 우물에 빠져서 죽게  달을 건져야지 만약에  달을 건지지 아니하면  세계에 암흑세계가  것이 아니냐.

그러니 다행히 우리가  달을 발견했으니까 망정이지 만약에 우리가 보지를 않았던들 영원히   속에 빠져서 없어져버리면 하늘에는 영원히 암흑세계가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저것을  봤으면 모르되 보고서 그냥  수가 있느냐

 

그래서 여러 가지로  마리의 원숭이들이 연구를 한 결과  우두머리가 좋은 꾀를 하나 발견을 했습니다.

우물가에 있는 나뭇가지를 자기가 붙잡고, 자기 다음 원숭이는 우두머리의 꼬리를 붙잡고  그다음 우두머리는  앞에 꼬리를 붙잡고 해서 차츰차츰해서 꼬리에 꼬리를 붙잡고 우물 속으로 늘어져 들어가 가지고 마지막 원숭이가 달을 건져내면 되겠다.

 

거 참 좋은 꾀다. 그래가지고 하는데  마리나 되는 원숭이가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붙잡고 늘어져 놓으니 너무 무거워가지고 우두머리가 잡고 있는 나뭇가지가 부러져 버렸습니다. 부러져가지고  마리나 되는 원숭이가 우물 속에  빠져서 죽었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을 하셔가지고 팔만사천(八萬四千) 묘법(妙法)을 설하시고  교외별전(敎外別傳)으로 삼처전심(三處傳心)을 해서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세계에 전하시고서 한량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자아 면목(面目)을   있도록 그렇게 하시고서 열반에 드셨는데, 80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셨는데,

 

삼천년이 되는 오늘날까지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부처님의 법을 계계승승(繼繼承承)해서 그렇게 전해 내려오고   법이 많은 신남신녀와 모든 재가 출가의 모다 사부대중(四部大衆)들이  법을 믿고 부처님과 조사들의 득도(得道) 인연을 본받고 그래가지고 모두 경을 읽는다, 염불을 한다, 주력을 한다, 기도를 한다,  참선을 한다, 이래가지고 모두 발심(發心)하고 분심(憤心)을 내어 가지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단히 장한 일이요, 기특한 일이요, 고마운 일이요, 뭐라고 칭찬을 한다 하더라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일이나,  원숭이 우두머리가 잡은  나뭇가지가 ! 부러진 날이면  마리 잔나비가 일시에 달을 건지려고 하다가 우물에  빠져 죽어 버린 거와 같은 현상이 있을 수가 있다 이거거든.

 

제마다 모두 자기의 근기에 따라서 온갖 노력을 하고 애를 쓰고 있는데,  붙잡은 가지가 그것이 약한 가지, 뿌리가 얕이 백혔다든지 또는 나뭇가지가 약해가지고  부러진 날이면 어떻게 되느냐?

 

그래서 우리가 자기 딴은 신심을 내서 노력을 하지만  공부해 나가는, 자기가 믿는 법이라든지, 자기가 의지하는 정신적으로 의지하는 선지식이라든지, 큰스님네라든지, 그런 것들이 뿌리가 약하거나, 가지가 약한 것을 붙잡고 하다가  부러져가지고 우물에 빠져 버린 거와 같은 현상이 우리가 수행해 나가는 데에 그런 현상이 있을 수가 있다 이것입니다.

 

기도를 자기 나름대로 아들을 낳고자 원을 해서 무슨 기도를 한다든지 또는 부자가 되고자 해서 무슨 염불을 한다든지 또는 깨닫고자 해가지고 화두(話頭)를 타가지고 참선(參禪)을 한다든지, 각기 자기의 근기와 원에 따라서 하는데,

그것이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지 아니  가지고 잘못 잡아가지고 손이 미끄러져서 빠진다든지   붙잡아도 약한 가지를 붙잡았다든지, 뿌리가 약한 것을 붙잡았다든지,  같이 모다 이렇게 잡고 있는데 그중에 한 사람이 손이 빠져도  떨어질 것이고.

 

그래서 우리가 각기 자기의 종파(宗派)의 법이 옳다’고 믿고 그렇게 주장을 하고  이렇게 공부를 하고,

 같은 참선을 하되 자기가 믿는 선지식(善知識)에 따라서 자기가 믿는 선지식이 지도하고 가르키시는 법이 옳다’고 주장을 하고, 자기가 믿지 않는 선지식을 비방을 하고 모다 이래가지고 저마다 자기 것은 옳고 남의 것은 옳지 못하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서로 파가 갈라지고, 시기와 질투를 하고 모다 그러는데.

 

참, 더욱이 요새 참선을 하는 사람들이, 참선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날로 늘어가고 있고, 대단히  좋은 현상이기는 하나 행여나 잘못 붙잡거나, 약하고 뿌리가  그런 나무를 붙잡고 늘어지다가 결국은 손이 빠지거나, 뿌리가 뽑히거나, 가지가 부러지거나 하면 달은 건지지를 못하고 우물에 빠져 죽고야만 말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볼라야   없고, 알라야   없는, 그리고 가르킬라야 가르켜  수도 없고, 배울라야 배울 수도 없는   물건을 우리가 깨닫기 위해서 그렇게 애를 쓰고 정진을 하고 집안일을 갖다가 뒤로 미루고 이  일을 위해서 애를 쓰고.

 일생에  태어난 셈치고 가정과 자기의 청춘과 인생을  바쳐서 출가해가지고 도(道)를 닦고 그러는데.

 

이 원숭이가 만약에 튼튼한 나무를 붙잡고 달을 건질라고 애를 쓰다가 나뭇가지만 부러지지 아니했다  번이고 건질라고 시도를 하면은, 물에다가 손을 넣으면은 달이 흩어져버리고  한참 손을 빼고 기다리고 있으면  흩어졌던 달이 다시  온전해지면  가만히 건질라고 하면 빠지고,

누차 애쓰다 보면 ! 이것이 물속에 있는 달이 아니고  달이 바로  하늘에 있다. 저 하늘의 달이 떨어진  알았는데 하늘의 달이 떨어진 것이 아니고 원래  달은 하늘에 휘황창 밝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되 바르게 믿고, 철저하게 믿고, 바른 스승과 바른 도반을 만나서 올바르게 노력을 한다면 결정코  공(功)이 헛되지 아니해서 반드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게 되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월마은한전성원(月磨銀漢轉成圓)한데  소면서광조대천(素面舒光照大千)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연비산산공착영(連臂山山空捉影)하되  고륜본불낙청천(孤輪本不落靑天)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월마은한전성원(月磨銀漢轉成圓)이요, 달이  하늘에 돌고 도는 가운데에 점점 둥글어져.

소면서광조대천(素面舒光照大千)이로구나.  밝고 밝은 달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비추는구나.

 

연비산산공착영((連臂山山空捉影)이나, 원숭이들이 팔에 팔을 연결을 해가지고 부질없이  우물 속에 달을 건지려고 하나,

고륜본불낙청천(孤輪本不落靑天)이로구나. 하늘에 떠있는  둥근달은 본래 푸른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더라.

 

우리가 불법을 믿되 각기 자기 나름대로의 크고 작은 원(願)이 있어서  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절에를 오게 됩니다.

그래가지고 처음에는 작은 , 가까운 , 자기 나름대로 모두 원을 가지고 와서 차츰 절에 다니고, 다니면서 법문(法門)을 듣고 하다 보면 차츰차츰 인연이 도래(到來)하면 인자 바르게 믿게 되는데.

 

자기가 애당초에 잘못 믿어가지고, 기도를 해도 아들을 낳기 위해서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하고 시주(施主)를 하되 아들을 못 낳으면 에이, 그까짓  기도 해봤자 소용이 없다

또 부자가 된다고 그래서 기도를 해봤지마는 별로 부자도 되지도 않고 에이, 그까짓  불법 믿어봤자 소용이 없다 병을 고치기 위해서 기도를 하고 불공을 하고 시주를 했는데 ‘그 해봤자 그까짓  소용이 없다

 

그러자 마치 다른 종교에서  종교 와서 기도를 하면은  병도 고칠 수가 있고 부자도 된다’고 끈질기게 와서 졸라대고 유혹을 하면 솔깃이 그리 기울어져가지고 그런 데에 가서 개종(改宗)을 하기도 하고.  그런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불교가 아무리 정법이고 최상승법이라 하더라도 잘못 믿으면 그렇게 되기가 십상팔구(十常八九)인 것입니다.

 

옳게 믿으면 처음에는 옅은 데로 들어갔다가  믿음이 간절하고 한결같으면 차츰차츰 좋은 인연을 만나가지고 바른 스승을 만나서, 바른 법을 향해서 나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 절에 갔다가 결국은 참나’를 깨닫고 영원한 보배를 얻을  있는,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쓰고도 쓰고 남을 그러한 영원한 보배를 얻은 데에까지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19분30초~36분46초)

 

 

 

 

 

(2)------------------

 

어떤 사람이 남편이 중국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좋은 거울을 사가지고 와서 선사를 했습니다. 그 아내가 남편이 갖다  것을 보고 이리 들여다보니까 아주 쁘게 생긴 미인이 하나가 들어있거든.

 

옛날에는 거울이라는 것이 없었는데, 중국에 가 가지고 거울을 가지고 오니까 거울이 무엇인 줄도 모르고 남편이 ‘이거  좋은  가지고 왔으니까 이거 가지라’고 줬는데 요리 들여다보니까  미인이 들어와 있어.

‘중국 갔다가 오더니 어디서 아주 새파란 젊은 년을 갖다가 데리고 왔다’고 아주 그냥 남편한테 눈을 흘기고 막하고. 그래서 ‘아니 그것이 아니라고, 내가 무슨 여자를 데리고 왔느냐?’고. ‘요 속에 들어 있지 않느냐’고 한참 싸우다가 결국은 시어머니한테 그것을 보였습니다.

 

시어머니가  거울을 이리 들여다보니까 ‘젊은 여편네라더니 늙은 년을 데리고 왔지 않느냐’ 그래가지고 ‘너는  눈이 젊은 것이 그렇게 눈이 시원찮으냐. 이거 봐라 이것이 늙은 년이지 젊은 년이냐?’ 그러다가 한참 둘이 인자 주거니 받거니 하니까 시아버지가 들어왔습니다. ‘뭔 소리를 그렇게 시끄럽게 그래싼고?

 

‘아들이 중국에서 젊은 년을 데리고 왔다고 며느리가 그래서 보니까 젊은 년이 아니고 늙은 년을 데리고 왔구료’ 그러니까, 영감이 들여다보니까 ‘늙은 켕이 늙은 놉을 데리고 왔지 않느냐?’

이래가지고 결국은 거울이 무엇인 줄을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 거울이라는 것은  앞에 있는 고대로 비추는 것이어서, 늙은 사람이 들여다보면은 늙은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고, 젊은 사람이 들여다보면 젊은 사람 얼굴이 나타나는 거여.

 

여러분이  세상에서 눈을 통해서 보는 모든 것이   거울에 나타나는 자기 모습인 것입니다.

 

자기의 모습이 나타난 줄을 모르고 거울 속에 젊은 사람이 나타났다는 , 늙은이가 나타났다는  이래가지고 거울 속에 있는  모습을 그것을 가지고 마음을 일으켜서 성을 내고, 원망을 하고,  탓을 갖다가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거울에 나타난 그림자는 바로 그것이 자기의 얼굴인 것입니다. 

 

중국에서 가져온 거울만이 거울이 아니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울만 거울이 아니라, 이 삼천대천세계  허공계, 끝없는 허공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의 거울인 것입니다.

 

그래서  거울은 동서남북이 평면으로  거울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거울이여. 동서남북도 없고 상하가 없어. 어디서 보나  보이는 것인데. 이 거울은 물체만  안에 보이고  거울에 나타난 모습은 눈을 통해서만  수가 있는데.

 

이 허공의 거울은 눈으로   있는 그런 색상만 비추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들을  있는 모든 소리도  허공의 거울에는 나타나는 것입니다. 코를 통해서 맡을  있는 모든 냄새도  거울에는 나타나는 것입니다.

 혀를 통해서 맛볼  있는 모든 맛도  거울에는 나타날 수가 있고, 몸뚱이를 통해서 느낄  있는 모든 것도 거기에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느낄  있는 모든 법도  허공의 거울에는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울을 입체적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입체적이라 하면은 겨우 삼차원(三次元) 밖에는  되는 것인데, 허공으로   거울은 최소한도로 육차원(六次元)으로  거울이라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느낄  있는 모든 상대가  속에 나타나기 때문에 것을 육차원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같습니다.

 

 거울에 나타나는 모습은 언제나 자기인 것입니다. 그 허공으로  거울에 나타나는 모든 것이 바로 자기의 모습인 것입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은 자기의 모습이요. 귀로 들을  있는 것은 자기의 음성이요. 코로 맡을  있는 것은 자기의 내음이요. 혀로 맛볼  있는 것은 자기의 맛이요. 몸으로 느낄  있는 것은 자기의 몸이고, 뜻으로 느낄  있는  나타나는 것은 바로 자기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허공으로  거울의 뜻을  이해만 한다면 어디에서나 언제라도 자기의 모습을  수가 있고, 자기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고, 자기의 내음을 맡을 수가 있고, 자기의 맛을  수가 있고, 자기의 몸을 촉감  수가 있고, 자기의 마음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찌 거기에 나타나는 것을 보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로  거울에 나타난 자기의 모습을 보고서 더럽게 생겼다’고 욕을 퍼붓고 심지어  거울 속에 그런 것이 들었다고 거울을 부실려고 달라들고 그러할 수가 있겠습니까?

거울에 나타나는 그 모습을 보고 눈꼽이 끼었으면 눈을 닦고, 얼굴에 더러운 것이 묻었으면 그것을 닦고 그리고  얼굴에 예쁘게 단장을 하면은  것을 어찌 거기에 나타난 모습이 미웁다고 그것을 원망하고, 탓하고, 성을 내면  거울에는 점점 보기 싫은 모습이 나타나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허물은  허물의 그림자다. 저 사람 잘못한 것은 바로  허물이  사람이라고 하는 거울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 말씀이여.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그 회사나, 그 사회나, 그 국가나, 그 세계에 모든 것들이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모든 나쁜 것을 눈을 통해서 보거나, 귀를 통해서 듣거나, 코와 혀와 몸뚱이와 뜻을 통해서 느꼈을  바로 거기에서 자기를 반성을 하고, 자기의 허물을 고치고, 나아가서는 참나’로 돌아오는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 진정코 참다운 자기 모습을  것입니다.

 

무엇을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무엇을 맡을 때나, 무엇을 먹을 때나, 무슨 생각이 나거나 바로  찰나 찰나가 자기가 자기의 모습을 보고서  잘못된 곳을 고쳐나갈  있는, 그리고 자기를 아름답게   있는 거울로  사용을  나간다면 우리는 나날이 아름다워지고, 나날이 향상이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있는 곳은  집안은 항상 몸도 아름답고 예쁘고, 마음도 아름다운 사람들로 가득차게  것입니다.

 

선방에서 모두가  그런 마음으로 산다면 모든 시비는  끊어질 것이고, 선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은 법(法)의 기쁨과 (禪)의 즐거움으로 가득찰 것이며 모든 대중은 서로서로 좋은 도반(道伴)이 되어주고, 서로서로 좋은 선지식이 되어  것입니다.

 

 거울을 통해서  사람이 예뻐지고, 저 사람 거울을 통해서 내가 예뻐질 것입니다.

물속에 떨어진  달을 건지려고 애를 쓰다가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36분50초~48분2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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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기율(僧祗律) ; 마하승기율(摩訶僧祇律). 40권. 동진(東晉)의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 법현(法顯) 공역. 마하승기부(摩訶僧祇部), 곧 대중부(大衆部)의 율장(律藏). 1권에서 35권까지는 비구계이고, 후반의 5권은 비구니계이다. 대중율(大衆律)이라고도 약칭한다.

*팔만사천(八萬四千) : 법수(法數)에는  말이  많다。그것은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또한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이것을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묘법(妙法) ; ①심원미묘(深遠微妙) 도리. 특별한 진리. ②바른 이법(理法). ③뛰어난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고귀한 가르침.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 하는데,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 p28, p34에서.

世尊이  三處傳心者는  爲禪旨요  一代所説者  教門이라. 故로  ,  禪是佛心이요  教是佛語니라

세존께서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 되고,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教門) 되었다。그러므로 () 부처님의 마음이요, ()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是故로  若人이  失之於口則拈花微笑가  皆是教迹이요.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  皆是教外別傳禪旨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것[拈花微笑] 모두 교의 자취(教迹)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밖에 따로 전한 선지[教外別傳禪旨] 되리라.

*삼처전심(三處傳心) ; 세존이 가섭(迦葉)존자에게 마음 () 등불을 따로 전했다는  .

 곳이란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다자탑전분반좌 多子塔前分半座] 첫째요,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영산회상거염화 靈山會上擧拈花] 둘째요, 사라쌍수 아래에서  속으로부터  발을 내어 보이심[사라쌍수하곽시쌍부 沙羅雙樹下槨示雙趺] 세째이다.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

다자탑(pahuputraka) 중인도 비사리(毘舍離Vaisali) 서북쪽에 있다。이 탑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는데,   하나는 어떤 장자(長者) 산에 들어가서 도를 닦아 이룬 뒤에,  아들  육십 명이 아버지가 공부하던 곳을 기념하기 위하여 탑을 쌓았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곳에서 설법하실 때에 가섭존자가 누더기를 걸치고 뒤늦게 참석하자, 여러 제자들이 그를 낮보았다。이에 부처님께서 앉으셨던 자리를 나누어  분이 함께 앉으셨다 한다.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심.

범어의  Grdhrakuta 음대로 써서 기사굴산(闍崛山)이라 하고, 뜻으로 번역하여 영취산(靈鷲山) • 취봉(鷲峰) 또는 영산(靈山)이라고만 한다。그  모양이 독수리 같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위에 독수리가 많았던 탓이라고도 한다。이 산은 중인도 마갈타(摩竭陀 Magadha) 서울 왕사성(王舍城 Raja-grha) 동북쪽  리에 있다.

부처님께서 어느   곳에서 설법을 하시는데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부처님은  꽃송이 하나를 들어 보이니, 백만 대중이 모두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하는데, 가섭존자만이 빙그레 웃었다。이에 부처님은 『바른  열반의 묘한 마음을 가섭에게 전한다』고 선언하셨다 한다.

 

*라쌍수하곽시쌍부(沙羅雙樹下槨示雙趺) : 사라쌍수 아래에서  속으로부터  발을 내어 보이심.

부처님께서 북부 인도의 구시라(拘尸羅 Kusinagara) 서북쪽으로 흐르는 발제하(跋提河 Ajitavati) 물가, 사라수 여덟 대가 둘씩 마주  있는 사이에 침대를 놓게 하고 열반에 드시니,  숲이 하얗게 변하였다。그리하여 학의 (鶴林, 鶴樹)이라고도 하게 되었다.

부처님의 몸은 금으로 만든 관에 모시고 다시 구리로 지은 덧곽에 모셔 두었는데,  곳에 갔다가 부처님이 열반하신  7 만에 당도한 가섭존자가 부처님의 관을 3 돌고 3 절하매, 관곽 속으로부터  발을 내어 보이셨다 한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 화두(話頭) 준말이다. 간화(看話) 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을 본다[]’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화두를 ()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면목(面目  / )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 : [] dharma [] dhamma 음을 따라 달마(達磨達摩) 또는 담무(曇無)  왔다。온갖 것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이니, 온갖 일과 모든 물질이며, 온갖 이치와 옳은 (), 그른 (), 참된 (), 거짓된 () 모두  달마 들어 있다。그러나 흔히 부처님이 가르친 교리만을 법이라고 한다.

*계계승승하다(繼繼承承-- 이을 계/받들·이을 승) ; ①(자손이)여러 대를 이어 가다. ②(다른 사람이)먼저 사람이 하던 일을 이어받다.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 있는  가지 제자.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 : upasaka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 : upasika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득도(得道) ; 득도(得度). ①불교의 진리[道]를 체득(體得)하는 것. 깨달음. 깨달음을 이룸. ②제도(濟度)함을 얻는[得] 것. 생사윤회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피안(彼岸)으로 건너감[度]. 또는 다른 사람을 이끌어서 건네주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분심(憤心)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종파(宗派) ;  종교에서 교리나 의식의 차이로 나뉜  갈래.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한역. ().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방법. ③무상(無上)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본래면목(本來面目  / / / )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게송) 월마은한전성원~’ ; [관음예문(觀音禮文)] 나오는 게송舒펼().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 ; 소원(所願). 바라고 원함또는 바라고 원하는 .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도래(到來 이를 / ) ; 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시주(施主 베풀 /주인 )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

*십상팔구(十常八九) ; 열에 여덟이나 아홉 정도로 거의 예외가 없음.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2)

 

* ; ①‘머슴(이전에, 부농이나 지주에게 고용되어 그 집의 농사일이나 잡일을 해 주고 대가를 받는 사내)’의 사투리. ②그날그날 품삭과 음식을 받고 일을 하는 품팔이 일꾼.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 수행하는 . 불법(佛法) 닦으면서 사귄 벗.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칠석)2016. 7. 18. 19:08

§(478) (게송)사서순환난부한~ / 동사섭 / 유루복은 삼생의 원수 / 내가 나를 깨닫는이뭣고?’ 불법을 전해 나가는 가장 빠르고 간단한 좋은 .

 

오늘 칠석법회에 동참하신 여러분들은 반드시 소원을 성취하실 것이고, 그러한 유루복(有漏福) 소원을 성취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전강 조실 스님의 최상승법문에 의지해서 반드시 대도(大道) 성취하게 것입니다. 물론정법에 의지해서, 나도 옳은 법에 의지해서 열심히 참선을 하면 반드시 견성성불(見性成佛) 있다 하는 철저한 신심에 의지해서 열심히 정진을 하셔야 것입니다.

 

유루복이라 하는 것은 삼생(三生) 원수다전생(前生) 원수요, 금생(今生) 원수요, 내생(來生) 원수. 그놈을 모을 죄를 짓게 되고, 모아 가지고 유지하면서 짓게 되고, 그놈이 몸으로부터 떠나서 내가 망할 나를 괴롭히고 가니 그래서 이렇게 삼생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불법(佛法) 무엇이냐? 내가 나를 깨달아 나가는 길이여. 사람이라도 자꾸 활구참선(活句參禪) 해서 자기의 면목(面目) 깨닫는 그것이 바로 불법의 () 전해 나가는 것이다 그말이여.

 

이뭣고?’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이뭣고?’ 대한 말씀이 있었지마는 간단하게이뭣고?’ 뿐이거든. 이외에 불법을 전해 나가는 이상 빠르고 간단한 좋은 법은 없어.

 

**송담스님(No.478)—1992(임신) 칠석 법회(92.08.05) (용478)

 

(1) 약 18분.

(2) 약 8분.

 

(1)------------------

 

사서순환난부한(四序循環暖復寒)한데   미후심련육화촌(獼猴深恋六華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이성안색증무가(耳聲眼色曾無暇)한데   염념나지시사문(念念那知是死門)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사서순환난부한(四序循環暖復寒)이여. 춘하추동 사시(四時) 계절이 돌고 돌아서, 봄이 오면 따뜻하고 얼마 가면 여름이 되어 더웁고, 얼마 가면 가을이 되어 서늘하고, 얼마 가면 눈이 내려서 춥다.

그런데 미후심련육화촌(獼猴深恋六華村)이여. 원숭이는 육화촌(六華村) 꽃이 피고 열매가 열고, 맛있는 과일들이 여는 항상 그것을 그리워하더라.

 

이성안색증무가(耳聲眼色曾無暇). 귀로 무슨 소리를 듣거나, 눈으로 무슨 빛깔을 보면 육화촌(六華村) 흐드러지게 여는 맛있는 과일들 생각에 어떻게 생각이 간절하던지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어.

염념나지시사문(念念那知是死門)이라. 그러는 가운데 생각 생각이 지내가서 죽음에 이르는 것을 아지 못하더라.

 

() 원숭이에다가 빗대서 원숭이가 여름, 가을에 맛있는 과일을 그리워하면서 죽음에 이르는 줄을 모르는 데다 빗대서 말을 했지마는,

우리 중생들의 삶이 마냥 오욕락(五欲樂)—재산에 대한 욕심 색에 대한 욕심, 명예와 권리에 대한 욕심 오래오래 살고자 하는 욕심, 편안하고 즐겁게 사는 욕심 이런 오욕락을 잠시도 잊지 않고어떻게 하면 좀더 잘살까? 어떻게 하면 좀더 권리를 하고 명예를 얻을까? 어떻게 하면 좀더 재산을 모일까? 어떻게 하면 좀더 남부럽지 않게 좋은 집에, 좋은 차에 그렇게 잘살까?’ 자나깨나 생각이거든.

 

눈으로 무엇을 보아도 생각이요, 귀로 무슨 소리를 들어도 생각이여. 그렇게 해서 좀더 그것을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몸부림을 치고 그러는 사이에 해가 가서 주름살이 잡히고 흰머리가 나고 그래서 한을 풀지를 못하고 뜻을 충분히 이루지 못한 잔뜩 () 퍼짓고 이승을 하직하게 되는데.

그것이 ()에서 그렇게 해서 끝나고 말면 좋은데, 지은 ()으로 인해서 생각을 스스로 돌려서 발심(發心) 하지 못한 탓으로 해서 내생(來生) 그와 같은, 금생(今生) 보다도 좋지 않은 곳에 태어날 수도 있고 그래 가지고 무량겁(無量劫) 생사윤회(生死輪廻)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임신년 칠월 칠석(七夕)날인데, 칠석날은 토속신앙, 민속신앙으로 수천 전부터서 중국으로 우리나라로 이렇게그날은 수명장수(壽命長壽) 빌고, 부귀영화를 빌고, 부모와 가족들의 안녕을 빌고, 소원을 비는 그러한 뜻으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칠성단(七星壇) 기도를 하는 그러한 날입니다.

 

우리 용화사는 전강 조실 스님께서 방금 녹음법문(錄音法門) 통해서, 주안(朱安)—지금은 염전(鹽田) 없어졌고 이렇게 모다 주변에 고층 건물이 빽빽이 들어서서 흔적이 없지마는 전만 해도 여기에 염전이 있었습니다. 호수도 있었고 그런데하필 여기에다가 용화선원을 짓고 살았느냐?’ 인자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그것이 불보살이나 선지식이나 그런 도인들이 불법(佛法), 정법(正法) 없는 곳에 일부러 가셔서 동사섭(同事攝) 하신 겁니다. 모든 중생들과 같이 생활을 하면서 근기(根機) 맞춰서 방편(方便) 법을 가지고 차츰차츰 정법에 인도하는 그러한 방편으로.

 

염전 가에 조그마한 불당이 하나 있었는데, 불당에 의지해서 이렇게 신도가 처음에는 , , , 스무 해서 오늘과 같이 이렇게 법보선원을 이렇게 지어서 많은 신남신녀와 형제자매, 여러 법보제자 이렇게 운집을 해서 법회를 열고.

여름 겨울로 결제를 하고 이렇게 해서 참선, 활구참선(活句參禪) 하는 정법 도량(道場)으로 발전하게 것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조실 스님의 법력이요, 원력으로 이렇게 것입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 갑인년 12 초이튿날 열반에 드셨지만, 조실 스님의 낭연독존(朗然獨存) 원각대지(圓覺大智) 법신(法身) 항상 도량에 머물러 계십니다.

우리는 그렇게 믿고, 그러한 신심으로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듣는다면 항상 우리 도량에 조실 스님이 계셔서 우리를 돌봐 주시고, 눈여겨보시고,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몸으로 그것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칠석날 여기에 모이신 신남신녀 여러분께서는 과연 조실 스님 생존 시에 직접 친견한 분들도 많이 계실 것이고, 생존 시에는 친견하지 못한 분들도 많이 계실 압니다.

그러나 녹음 법문을 통해서 조실 스님의 육성을 들을 수가 있는 것은 매우 다행한 일로 생각을 합니다. 녹음 법문이지만 열심히 경건한 마음으로 듣고, 법문 내용에 의지해서 우리가 열심히 정진을 한다면 우리도 반드시 대도를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칠석날 복을 빌고, 수명장수를 빌고, 부귀영화를 비는 그리고 가정이 편안하고 사업이 번창하고, 모든 그런 크고 작은 소원을 비는 그런 소박한 신심으로도 여기에 참석하신 분도 여기에 계실 겁니다.

어찌 그것을 나쁘다고 있겠습니까. 그것도 대단히 필요한 것이고 그러한 소박한 신심이 그것이 계기가 되고, 동기가 되어서 최상승법(最上乘法)에까지 나아갈 있도록 그것이 바로 과거에 모든 도인(道人)들이 놓으신 방편이요, 동사섭(同事攝)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칠석법회에 동참하신 여러분들은 반드시 소원을 성취하실 것이고, 그러한 유루복(有漏福) 소원을 성취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조실 스님의 최상승법문에 의지해서 반드시 대도(大道) 성취하게 것입니다.

물론정법에 의지해서, 나도 옳은 법에 의지해서 열심히 참선을 하면 반드시 견성성불(見性成佛) 있다 하는 철저한 신심에 의지해서 열심히 정진을 하셔야 것입니다.

 

복을 빌고 수명을 빌어서 유루복을 뜻대로 성취한들 그것이 과연 얼마나 가겠습니까? 유루복(有漏福)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 말씀에삼생(三生) 원수다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유루복은 그것을 얻기 위해서 한량없는 죄를 짓게 되고, 그러니 그것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죄를 짓게 하니 원수고, 빈다고 해서 성취가 되기도 어려우려니와 뜻대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이루어진 뒤에 그것을 누리고 유지해 나가는 데에도 본의 아니게 많은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니 번째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번째는 그렇게 이루었던 복이 언젠가는 나로부터 떠나게 됩니다. 그놈이 떠날 그냥 조용하게 떠나는 것이 아니라 갈기갈기 마음, , 가정을 뒤찢고 흔들어 놓고 그리고서 떠나게 되니 번째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 하는 것은 삼생(三生) 원수다전생(前生) 원수요, 금생(今生) 원수요, 내생(來生) 원수. 그놈을 모을 죄를 짓게 되고, 모아 가지고 유지하면서 짓게 되고, 그놈이 몸으로부터 떠나서 내가 망할 나를 괴롭히고 가니 그래서 이렇게 삼생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없이 유루복을 얻는 것이 이것이 인생에 가장 소원이고, 그것이 인생의 목표고, 그래야만 잘사는 것으로 그렇게 대부분 생각을 합니다마는 삼생에 원수라고 하는 것을 철저하게 깨닫고.

 

그러면은복을 것도 없고 재산을 모일 것도 없는가?’

인생을 살아는 데에는 필요합니다. 필요하나 그것이 영원성이 없는 허망한 것이요, 자칫 잘못하면 그것으로 인해서 죄를 짓고 악도(惡道) 떨어질 있다고 하는 것을 철저히 알고서 한다면 열심히 돈을 벌되 죄를 짓지 않을 수도 있고, 재산을 많이 모였으되 그것을 바르게 쓰고 뜻있게 써서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되게 사용한다면 원수라고 수가 없을 것이며,

 

시절인연(時節因緣) 도래해서 내가 사업이 여의치 못하고 집안 형편이 어렵게 된다고 하더라도! 이거 인연(因緣) 돌아와서 나로부터 떠나는구나그렇게 생각하고참으로 이런 유루복이 허망한 것이라더니 ! 부처님 말씀이 옳구나

그러니 떠나면 떠나는 대로, 형편이 어려워지면 어려운 대로 정말 무상(無常) 깨닫고내가 의지할 것은 이러한 유루복이 아니라 정말 불법(佛法)이요! 불법에 의지해서 내가 참나를 깨달아서 영원한 행복을 얻는 것이 이것이 바로 길이로구나!’

오히려 재산이 망함으로써 참된 발심을 하고 참된 불자(佛子) 된다면 재산이 없어진 것도 그렇게 원통하고 슬플 것이 아닐 것입니다.(처음~1738)

 

 

 

 

(2)------------------

 

흉중하애부하증(胸中何愛復何憎)이며   자괴인전백불능(自愧人前百不能)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제차현성공안외(除此現成公案外)   차무불법계전등(且無佛法繼傳燈)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흉중(胸中) 하애부하증(何愛復何憎)이며 자괴인전백불능(自愧人前百不能)이다.

가슴 가운데에 무엇을 사랑하며, 다시 무엇을 미워할 것이 있느냐? 그거거든.

 

인생을 살아가는데 빈부귀천과 흥망성쇠가 덧없이 닥쳐오고 지내가고,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데 어리석은 중생은 그것이 전부 탓을, 원인을 남에게 돌려.

누구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되었다. 첫째, 부모를 잘못 만나서 내가 이렇게 고생을 한다. 누구 때문에 우리 집안이 이렇게 되었으며, 누구 때문에 사업이 망했으며, 누구 때문에 손해를 봤다

 

밤낮누구 때문에~’하고 다른 사람에게 원인을 돌려 가지고 미워하고, 누가 잘해 주면! 그이 덕분에 우리가 이번에 사업이 이렇게 잘되었다 그이를 고마워하다가, 쪼끔 잘못하면 사람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망했다 원망하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미워하고 이러는데.

 

사실은 전부가 자기 때문이고, 자기가 지은 때문이지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여. 그러한 사람을 만나게 근본이 자기가 과거에 그렇게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거고.

가정 내에도 그렇고, 회사 내에도 그렇고, 직장 내에서도 그렇고. 일체사(一切事) 일체물(一切物) 자기가 지은 인연 이외에 만나질 수가 없어. 우연히 만난 같아도 지은 인연으로 만난 것이여.

 

자괴인전백불능(自愧人前百不能)이여. 스스로 사람 앞에 자기 능력 없는 것이 부끄러울 뿐이여. 자기가 지은 인연으로 이렇게 것이기 때문에 가만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면, 남을 원망한 마음이 없어지면 전부 원인이 자기 탓이거든.

내가 복을 많이 짓지 못했고, 내가 좋은 인연을 맺지 못했고, 내가 금생에 능력이 부족했고, 내가 모든 것이 부족해 가지고 이렇게 되었다하고 이렇게 결국은 돌아가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니 사업이 잘되어도 잘된다고 우쭐댈 것도 없고, 뭣이 실패를 해도 실패했다고 그렇게 실망(失望) 하고 낙망(落望) 것도 없어.

잘되거나 못되거나 우리가 ! 정신 차리고 발에 힘을 주고 ! 버티어 자리는이뭣고?’ 밖에는 없어. 그래야 잘되어 가운데에도 더욱 잘되어 것이고, 뭣이 잘못된 가운데에서도 살아날 길이 거기서 트이는 것이다.

 

제차현성공안외(除此現成公案外), 공안을 현성(現成)하는, 현성공안(現成公案)하는 밖에는,

차무불법계전등(且無佛法繼傳燈)이여. 불법의 법등(法燈) 계속해서 전해 나가는 길이 밖에는 없는 것이다.

 

불법(佛法) 무엇이냐? 내가 나를 깨달아 나가는 길이여. 사람이라도 자꾸 활구참선(活句參禪) 해서 자기의 면목(面目) 깨닫는 그것이 바로 불법의 () 전해 나가는 것이다 그말이여.

 

부처님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금란가사(襴袈裟) 발우, 그것이 육조(六祖) 스님 때까지만 전해 내려오고 육조 스님 이후로는 그것으로 인해서 시비가 일어나니까 그것을 전하지 않게 되었지마는.

그것을 전하고 전하지 않는 육조 스님도 금란가사와 발우대 그것을 5 스님으로부터 은밀히 전해 받아 가지고 결국은 도명(道明) 장군한테 맞아 죽을 봤고, 그리고도 생명이 위험하니까 포수들이 사는 산중에 들어가서 십칠 년인가를 숨어서 지내셨다 그말이여.

 

그러한 형식적인 가사다, 발우대다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정법에 의지해서 열심히 참선을 가지고 참나를 깨닫는 , 거기에 벌써 부처님의 금란가사와 발우대는 전해 받은 거다 그말입니다.

 

이뭣고?’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어렵고 한량이 없지마는 그것을 읽어야만 불법을 아는 것이 아니여. ‘이뭣고?’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고?’ ‘이뭣고?’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이뭣고?’ 대한 말씀이 있었지마는 간단하게이뭣고?’ 뿐이거든. 이외에 불법을 전해 나가는 이상 빠르고 간단한 좋은 법은 없어.(1741~2553)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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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사서순환난부한~’ ; 중봉명본 스님의천목중봉화상광록(天目中峯和尙廣錄)’ 30 ‘警世二十二首게송 참고.

*() : [] karma []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 업이라 한다. 개인은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 윤회(輪廻)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동자(同字).

*() ; () Kalpa  음을 따라 갈랍파(羯臘波) 또는 겁파(劫波) 하고, 다시 줄여서 ()이라고만 한다. 인도에서의 가장 시간단위. 지극히 시간. 무한히 오랜 세월을 가리키는 말이다.

[참고] () 무한히 시간을 개자겁(芥子劫)•반석겁(盤石劫)으로 비유한다.

개자겁(芥子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 8km) () 안에 겨자 씨를 채워, 100년에 알씩 집어내어 겨자 씨가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반석겁(盤石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 8km) 반석(盤石) 부드러운 천으로 100년에 번씩 쓸어 반석이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생사윤회(生死輪廻 /죽을 /바퀴 /빙빙돌 )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 죽고()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 돌듯이()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칠석(七夕) ; 매년 음력 77 칠석날이 되면 칠성의 주존불이자 북극성을 뜻하는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칠성여래(七星如來) 칠원성군(七元星君)에게 공양을 올리고 가족의 수명장수와 복덕구족을 위해 칠석기도를 올리며 법회를 거행한다.

용화사는 최상승법을 믿고 닦아가는 도량으로써 오직 비로자나 법신불 분만을 모셨다. 부처님 속에 치성광여래도 계시고, 칠성여래도 계시고, 일월광보살도 계시고, 부처님 속에 팔만대장경도 속에 들어 계신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동사섭(同事攝) ; 보살(菩薩) 중생을 제도하고 섭수(攝受)하기 위하여 행하는 4(四攝보시布施, 애어愛語, 이행利行, 동사同事) 하나.

불보살(佛菩薩) 중생의 근기(根機) 따라 몸을 나타내되, 그들과 사업·이익을 같이하면서, 일심동체가 되어 고락(苦樂) 같이하고 화복(禍福) 함께 함으로써 진리의 길로 이끌어 들이는 것을 말한다.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편할 )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도량(道場) : [] bodhimandala 도를 닦는 곳이란 말이다。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낭연독존(朗然獨存 밝을 /그럴 /홀로 /있을 ) ; 밝게 홀로 드러나다.

*원각(圓覺) ; ‘원만(圓滿) 신령스러운 각성(覺性)’ 부처님의 원만한 깨달음을 일컫는 말이다또한 원만한 깨달음의 경지인 청정한 본심을 일컬어 원각묘심(圓覺妙心)이라 한다.

일체의 생명에는 본래부터 깨달음[本覺] 있고 진심(眞心) 있어서() 입장에서 그것을 표현을 하면 일심(一心)이라 하고인과(因果) () 잡아서 표현을 하자면 그것을 여래장(如來藏)이라 표현하고인과(因果) () 잡아서 표현을 하면 그것을 원각(圓覺)이라 한다.

*법신(法身) : []  dharma - kaya  ‘ 이란 말인데, 실불(實佛) • 법성신(法性身) •진여불(眞如佛) • 법계성(法界性) 같은 말들이 모두 한뜻이며, 『선가귀감』 첫머리에 있는한물건이란 것도 이것이다.

진여의 바탕(眞如本體)’ 이름이니, 중생에 있어서 부족할 것이 없고 부처님이라고 특별할 것이 없어, 본래 깨끗하고 빛나고 두렷하여 무한한 공간과 무궁한 시간에 있으되, 가지 말로도 설명할 없고(離四句) 가지 아닌 것으로도 옳게 가르칠 없으며(絕百非), 무엇으로나 형용하여 수가 도저히 없는 것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 화두(話頭) 말이다. 간화(看話)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을 본다[]’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화두를 ()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최상승법(最上乘)’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 따라 수행하는 사람.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 복이어서 한도(限度)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받아버리면 다시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얻었던 것을 결국은 없애면서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죄를 짓지 않게 하고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 같은 좋은 방향으로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 설날통알 설날차례(1996.02.19)에서.(4분 51초)

 

()이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 말씀에 유루복(有漏福) 무루복(無漏福) 있는데, 유루복은 삼생(三生) 원수다.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 가게 되니까 그래서 유루복은 원수이고,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수도 없고, 생활도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좋은 방향으로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과보(果報) 바래.

공투세를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무루복을 참으로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 열심히 함으로서,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成佛].

*악도(惡道, 惡途) ; 악한 짓을 중생이 과보로 받는다고 하는 괴로움의 생존. 지옥아귀축생 등의 세계. 삼악도(三惡道).

*시절인연(時節因緣) ; 시절이 도래(到來)하고 인연이 합쳐지는 기회. [참고]시절(時節)—어떤 시기나 . 도래(到來)—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기회(機會)—어떠한 , 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 () 아울러 이르는 .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 조건()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 없다[].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 이어가고, () 집과 ()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 되고 ④자비심(慈悲心)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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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흉중하애부하증~’ ; 중봉명본 스님의천목중봉화상광록(天目中峯和尙廣錄)’ 29 ‘山居十首게송 참고.

* ; ①주로 잘못된 일이나 부정적 현상이 생겨난 원인이나 까닭. ②무엇을 구실이나 핑계로 삼아 나무라거나 원망함.

*낙망(落望) ; 희망을 잃음.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현성공안(現成公案) ; 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진리 자체이므로 그것을 참선하는 수행자에게 제시된 과제로 .

*법등(法燈) ; 부처님의 가르침. () 세계의 캄캄한 마음을 없애는 것을 등불에 비유한 .

*면목(面目 / )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금란가사(襴袈裟) ; 금실을 넣고 베로 만든 가사.

*금란가사(襴袈裟) 발우 ; 석가모니 부처님이 가사와 발우를 마하가섭에게 전하고 계속 이어져 중국 육조 혜능 대사까지 전해 내려온 부처님의 법통을 표시하고 전등의 신표로 삼았다.

*육조(六祖) 스님 ; 분류역대 스님 약력참고.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 달리 이르는 .

 

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16. 6. 3. 08:26

 

 

§(402) 번뇌(煩惱) 나무로 지혜의 불을 피워서 열반(涅槃) 밥을 짓는다. 일어나는 번뇌를 돌이켜서 번뇌 일어나는 뿌리를 찾는 것이 참선(參禪).

 

우리 중생들이 오욕락(五欲樂),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으로 오욕락에 빠져서, 거기에 맛을 붙여서 그놈을 탐을 내다가 그냥 거기서 떨어져 나오지를 못하고 만다.

 

오욕락(五欲樂)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마왕 파순이가 도인(道人) 올개미에 얽어 가기 위해서 모다 널어놓은 것이여. 그것이 바로 원숭이 잡기 위해서 진드기에다가 맛있는 음식을 붙여 놓은 거와 같은 것이다.

 

번뇌라고 하는 나무가 있어야 지혜라고 하는 불을 피울 수가 있고, 지혜의 불을 피워야 열반의 밥을 지을 수가 있다. 그래서 열반의 밥을 나도 먹고, 모두 사람에게 열반의 밥을 먹여서 해탈도(解脫道) 증득하게 하는 것입니다.

 

번뇌와 망상이 일어날 때에 어떻게 그놈을 잡드리를 하고, 어떻게 그놈을 돌이켜서 그놈에 ()해서 화두를 드느냐? 여기에 공부를 성취할 있는 묘한 길이 있는 것입니다.

 

정말 빨리 깨닫고자 원하면 티끌도 원래 () 있지를 않다깨달음이 데에 있고, 극락세계(極樂世界) 데에 있고,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데에 있는 것이 아니여. 티끌도 ()하지 않혀.

 

**송담스님(No.402)—1989(기사년)동안거 결제 법어(89.10.15.) (용402)

 

(1) 약 13분.

 

(2) 약 6분.

 

(1)------------------

 

사서순환난부한(四序循環暖復寒)한데   미후심련육화촌(獼猴深恋六華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이성안색증무가(耳聲眼色曾無暇)하여   염념나지시사문(念念那知是死門)

나무~아미타불~

 

사서순환난부한(四序循環暖復寒), 춘하추동(春夏秋冬)! 계절이 돌고 돌아서, 그렇게 더웁고 더웠던 여름철이 가고, 가을을 거쳐서 다시 엄동 겨울이 돌아왔구나.

겨울이 돌아왔는데, 미후심련육화촌(獼猴深恋六華村)이다. 잔나비는 피고, 피고 열매가 열던 여섯 마을, 육화촌(六華村) 그리워하는구나.

 

이성안색증무가(耳聲眼色曾無暇)하더니, 귀로는 온갖 소리를 듣고, 눈으로는 온갖 아름다운 색상을 보느라고 일찍이 틈이 없었어. 귀로는 온갖 새소리 바람소리 흐르는 소리요, 눈으로는 노랗고 빨갛고 모든 , 아름다운 꽃이 피고 그런 것을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느라고 아무 다른 겨를이 없었다.

염념나지시사문(念念那知是死門). 그러느라고 생각 생각이 여섯 아름다운 마을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느끼고, 생각으로 생각하느라고 겨를이 없었던 바로 그러한 것들이, 생각 생각이 죽음의 문인 줄을 어찌 알았으리오.

 

잔나비가 그렇게 자연 경계, 아름다운 대자연의 경계에 취해서 그렇게 나무로 올라갔다 내려왔다, 바위로 올라갔다 내려왔다, 이리저리 뛰고 건너고 그렇게 놀다가,

아주 맛있는, 제일 맛있는, 잔나비가 제일 좋아하는 것을 어느 포수가 진드기거기에 닿기만 하면 ! 들어붙어 가지고 떨어지지 않어어떻게 접착력이 강한 진드기를 먼저 바위에다 발라 놓고 거기다 맛있는, 잔나비가 제일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놓으니까,

 

원숭이란 놈이 산중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가, 맛있는 것이 있으니까 그놈을 먹으러 ! 바위로 올라가니까 앞발이 ! 들어붙어. 앞발을 떼기 위해서 뒷발을 대니까 뒷발도 붙어. 그놈을 띠기 위해서 입으로 어떻게 하면 떨어질까 하고 입을 대니까 입까지 들어붙어 버렸다.

 

이것이 우리 중생들이 오욕락(五欲樂),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으로 오욕락에 빠져서, 거기에 맛을 붙여서 그놈을 탐을 내다가 그냥 거기서 떨어져 나오지를 못하고 만다 그말이여.

그러니 잔나비는 맛있는 음식 뭉텅이를 먹기 위해서 달라들었다가 진드기에 붙어서, 포수가 와서 잔나비를 잡아다가 길을 들여서 팔아먹는다 그말이여.

 

오욕락! 탐진치 삼독심으로 오욕락을 즐기다가, 오욕락(五欲樂)마왕(魔王) 파순(波旬)이가 () 닦는 사람들을 그냥 도를 닦게 두면 저마다 도를 성취해서, 진리를 깨달아서 () 깨닫게 되면 마왕 파순이의 궁전이 파괴가 되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도인(道人) 되어 버리고, 부처님이 되어 버리면 마왕 파순이가 자기의 영토가 없어지고, 자기 궁전이 없어지고, 자기의 권속들이 전부 멸망을 당하기 때문에 갖은 수단으로 닦는 사람을 방해를 치는데,

오욕락(五欲樂)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마왕 파순이가 도인(道人) 올개미에 얽어 가기 위해서 모다 널어놓은 것이여. 그것이 바로 원숭이 잡기 위해서 진드기에다가 맛있는 음식을 붙여 놓은 거와 같은 것이다.

 

마왕 파순이는 눈을 통해서 탐착(貪着) 하게 하고, 귀를 통해서 탐착하게 하고, 코를 통해서 탐착하고, ·몸뚱이·생각, 육근(六根) 통해서 육진(六塵) 탐착해 가지고, 육식(六識) 발동을 하면 벌써 그게 마왕 파순이의 올개미에 걸려든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나 우리가 육근(六根) 육진(六塵), 육식(六識), 십팔계(十八界)인데, 십팔계를 여의고 따로 진리가 있고, 따로 부처님이 있고, 따로 () 있다고 생각하면 불법(佛法)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비록 온갖 번뇌와 망상이 그놈 때문에 육도윤회(六途輪廻) 것은 사실이지만 번뇌(煩惱) 나무로 지혜의 불을 피워서 열반(涅槃) 밥을 짓는다이렇게 비유를 했습니다.

 

번뇌라고 하는 나무가 있어야 지혜라고 하는 불을 피울 수가 있고, 지혜의 불을 피워야 열반의 밥을 지을 수가 있다. 그래서 열반의 밥을 나도 먹고, 모두 사람에게 열반의 밥을 먹여서 해탈도(解脫道) 증득하게 하는 것입니다.

 

번뇌(煩惱)라고 하는 나무가 없으면은 결단코 지혜의 불을 피울 수가 없어.

우리가 눈으로 알고, 귀로 들을 알고, 코로 맡을 알고, 혀로 맛볼 있고, 몸뚱이로 느끼고, 생각으로 온갖 것을 생각할 알기 때문에, 바로 일어나는 번뇌를 돌이켜서 번뇌 일어나는 뿌리를 찾는 것이 참선(參禪) 아닌가.

 

정진하는 사람에게 망상이 일어나서, 화두(話頭) 순일치 못하고 의단(疑團) 독로(獨露)하지 못해서 도를 성취하지 못한다대부분 그것 때문에 많은 수행자들이 고통을 하고 괴로워하고.

혼침(昏沈) 일어나고 졸음이 오기 때문에 성성(惺惺)하지 못하고, 번뇌가 일어나기 때문에 적적(寂寂)하지 못한다언필칭(言必稱)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그렇게 말을 하지만, 다행히 잠이 오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생명을 유지할 수가 있어.

잠이 봐요, 잠이 참으로 오면 공부도 못하고 건강도 유지가 되지를 않습니다. 잠이 오기 때문에 그만큼 건강이 유지가 되고 이렇게 생명을 유지해. 생명이 유지가 되어야 참선도 하는 것이여.

 

번뇌가 일어나고 목석처럼 되어 버린다던지, 눈으로 봐도 아무것도 분간(分揀) 못하고, 귀로 소리를 들어도 아무것도 분간을 못하고, 먹어도 아무것도 분간을 못하고, 그런 사람이 공부를 잘할 같지마는, 그렇게 되어 버린 사람은 어떻게 사람이 공부를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그래서 졸음이 온다고 해서 공부 못하는 것이 아니여. 졸음을 내가 어떻게 지혜롭게 단속을 하고 이겨 나가느냐?

번뇌와 망상이 일어나면, 번뇌와 망상이 일어날 때에 어떻게 그놈을 잡드리를 하고, 어떻게 그놈을 돌이켜서 그놈에 ()해서 화두를 드느냐? 여기에 공부를 성취할 있는 묘한 길이 있는 것입니다.(처음~133)

 

 

 

 

 

(2)------------------

 

생사유이방(生死有異方)하고   열반무비결(涅槃無秘訣)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화급요상응(火急要相應)인댄   일진원불격(一塵元不隔)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생사유이방(生死有異方) 열반무비결(涅槃無秘訣)이여. 세상에 나서 한평생 살다가 죽고, 태어났다 죽고 태어났다 죽고 하는데, 어느 사람이고 그렇지 아니한 사람이 없어.

길을 면치를 못하는데 모양은 사람이면 사람, 사람이면 사람, 태어나서 일평생을 살다 가는 방법이 달러. 길이 다르다 그말이여.

 

그런데 열반(涅槃)에는 무비결(無秘訣)이여. 생사해탈 하는, 생사해탈 해서 영원히 진리와 계합(契合)하는 데에는 똑같은 비결이 없어.

눈으로 보다가 깨닫기도 하고, 귀로 소리를 듣다가 깨닫기도 하고, 걸어가다 깨닫기도 하고, 또는 넘어지다 깨닫기도 하고, 자다가 ! 벼개에서 떨어지다 깨닫기도 하고, 욕하는 소리를 듣다가 깨닫기도 하고, 피는 것을 보다가 깨닫기도 하고, 주렴(珠簾) 걷다가 깨닫기도 하고, ! 깨닫는 데에도 특별한 것이 없어.

 

그러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깨닫게 될런지를 모른다 그말이여. 그러기 때문에 항상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 여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본참공안을 여의지 않고 의단이 독로하고 화두가 순숙(純熟)해야만 언제 어떻게 깨닫게 될는지 모르는데, 화두를 버리고 의단이 독로하지 못하고 그냥 보면은 보는 끄달리고, 들으면 들은 데에 끄달려서 그러한 상태에서는 깨달음이 오지를 않혀.

항상 화두(話頭) 잡드리하고 의단이 독로하고 화두가 순숙하도록,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도록 잡드리를 하는 데에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정말 빨리 깨닫고자 원하면 티끌도 원래 () 있지를 않다

깨달음이 데에 있고, 극락세계(極樂世界) 데에 있고,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데에 있는 것이 아니여. 티끌도 ()하지 않혀.

 

그래서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지난번 일요법회 , “바로 그놈이 끄터리에, 코밑에서 뱅뱅 돈다 조실 스님은 그러한 비유의 법문을 하셨지만, 바로 끄터리에 뱅뱅 도는눈으로 , 귀로 들을 , 코로 냄새 맡을 , 혀로 맛을 , 몸으로 느낄 , 생각 일어났다 꺼질 , 찰나찰나를 우리는 범연(泛然) 넘겨서는 안된다.(3634~4153)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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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사서순환난부한~’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峯和尙廣錄卷第三十'에서 '警世二十二首' 게송 참고.

*잔나비 ; ‘원숭이 사투리.

*진드기 ; 진드기는 사람이나 가축의 피부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 벌레인데, 사람이나 가축의 피부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 특성으로 인해진드기 같은 ’ ‘진드기처럼 달라붙네라는 말로 쓰여, 물체를 서로 붙이는접착제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 ; 자기의 뜻에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마왕(魔王) 파순(波旬) ; 천마(天魔). 욕계(欲界) 제육천(第六天)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임금은 마왕(魔王)이니, 이름이 파순(波旬)이다。그는 항상 불법을 파괴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것은 불도를 공부하는 이가 있으면 그의 궁전이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한다。그러므로 누구나 불법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때에 천마가 따르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생각 일어나는 그것이 천마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 따라 수행하는 사람.

*불도(佛道) ; ①불과(佛果).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 무상보리(無上菩提) 말한다. ②불과(佛果) 이르는 방법. 불과를 성취하여 성불하기 위한 인행(因行, 깨달음의 원인이 되는 ) 말한다. ③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하는 가르침.

*올개미 ; 올가미. 노끈이나 철선 따위로, 잡아당겨도 매듭이 풀어지지 않도록 가닥을 고리처럼 만들어 짐승을 잡는 기구.

*널어놓다 ; 펼처서 벌이어 놓다.

*탐착(貪着) ; ①만족할 모르고 탐하고 집착함. 탐하고 구하는 . 욕심부려 집착하는 . 집착하는 . 욕심부리는 . 욕심에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대상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 ②깊이 마음에 두는 . 갈애(渴愛), 애착(愛著 愛着), 염착(染著), 집착(執着), 탐애(貪愛), 탐욕(貪欲)이라고도 한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경계(六境) 인식하는 경우 소의(所依)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眼根(耳根(鼻根(舌根(身根(意根)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 기관·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육진(六塵) ; 육근(六根) 대상 경계인 (((((() 말함. 육경(六境)이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viṣaya () 대상을 뜻함.

①색경(色境). 눈으로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있는 대상인 .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육식(六識) ; (((((() 육근(六根)으로 각각 (((((() 육경(六境)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십팔계(十八界) ; (, 산스크리트어 dhātu) 요소를 뜻함. 인식을 성립시키는 열여덟 가지 요소. 불교에서 인간과 밖의 모든 존재 속의 인식작용을 18가지 범주로 나눈 . 육근(六根육경(六境육식(六識) 합한 것이다. 육식(六識) 제외한 12가지를 12()라고 한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번뇌(煩惱 번거러울 /괴로워할 )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성냄()•어리석음()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앞의 () () ()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이러한 번뇌[]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三業]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 과보를 받게 된다. [ 三道]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 음사. (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안온(安穩원적(圓寂안락(安樂) 등으로 번역.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버리듯이, 타오르는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 등의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하여 평온하게 상태. 사제(四諦)에서 (),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 소멸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解脫) 깨달음의 경지.

②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없이 무엇이나 열반이며 어느 때나 열반이다. 이것이 열반인 것이다.

*해탈도(解脫道) ; ①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②사도(四道) 하나.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혼침(昏沈 어두울 ,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

*적적(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함.

*언필칭(言必稱) ; 말을 때면 항상 일컫기를.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2)

 

*(게송) 생사유이방~’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峯和尙廣錄卷第二十八'에서 '卽事十首' 게송 참고.

*벼개 ; 베개(잠을 자거나 누울 때에 머리 밑에 괴는 물건) 사투리.

*주렴(珠簾 구슬 / ) ; 구슬 따위를 실에 꿰어 만든 (가늘게 쪼갠 대나무나 갈대 같은 것을 따위로 엮어서 만든 가리개).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순숙(純熟 순수할·온전할 /익을 ) ; 완전히 익음.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계시는 청정한 국토로, 세계에서 서쪽(西方)으로 십만억 불토(佛土) 떨어진 곳에 있는데, 일체의 괴로움이 없고 자유롭고 지극한 즐거움만 있는 세계. 수가마제(須呵摩提, 須訶摩提), 수마제(須摩提) 등으로 음사하고 정토(淨土), 안락(安樂), 안양(安養),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정토(極樂淨土), 낙방(樂邦) 등으로도 한역한다.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꼭대기에서 12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범연(泛然) ; ①두드러진 데가 없이 평범하게. ②특별한 관심이 없어 데면데면하게.

 

Posted by 닥공닥정
생활속 정진(요중선)2016. 1. 15. 10:37

§(422) (게송)사서순환난부한~ / 대혜종고 선사 법문()이라 하는 것은~’ / () 어찌 산중에만 있겠습니까? / (게송)수류상출몰~.

 

집착하지도 말고 버릴라고 하지도 말아라이것이 우리 참선하는 사람이 항상 어떻게 자기 마음을 단속해 나갈 것인가? 분명하게 가운데 말씀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버리지도 않고 거기에 집착하지도 말며, 거기에 집착하지도 말고 그걸 버릴라고도 하지도 말고서 오직 일체처 일체시에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만을 일체처 일체시에 떠억 거각을 나가라 그말이여

 

제가 여러분께 간절히 부탁하고 싶은 것은 언젠가 출가할 하고, 이렇게 선방에 아주 들어와서 방부를 들이고 참선 하실 하더라도 우선 당장 있는 자리에서이뭣고?’ 들으라 이거거든. 이뭣고?’ 눈으로 그때 들고, 귀로 소리를 들을 드는 것이지, 보는 버리고 드는 것이 아니고, 귀로 듣는 버리고 드는 것이 아니라, 듣자마자이뭣고?’ 챙기면 바로 자리가 선방이요 선불장(選佛場)이여.

 

() 어찌 산중에만 있겠습니까? 어찌 머리를 깎은 스님에게만 확철대오(廓徹大悟) 있겠습니까?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은 참선이라고 하는 것은 고요한 데에나, 시끄러운 데나, 일용응연처나, 사량분별처우리 중생은 사량분별을 여의고는 1분도 지내지를 못하는데바로 거기에 집착하지 말고, 그걸 버릴려고 하지 말고, 바로 거기에 ()해서 화두를 들으라 말입니다.

 

**송담스님(No.422)—90 7 첫째일요법회(90.07.01) (용422)

 

(1) 약 20분.

(2) 약 8분.

 

(1)------------------

 

사서순환난부한(四序循環暖復寒)한대  미후심련육화촌(獼猴深戀六花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이성안색증무가(耳聲眼色曾無暇)하야  염념나지시사문(念念那知是死門)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사서순환난부한(四序循環暖復寒)이요  미후심련육화촌(獼猴深戀六花村)이다.

춘하추동 사시절이 돌고 돌아서 더워졌다 추워지고 추워졌다 더워져.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좋다 싶으면 어느새 여름이 와서 잎이 피고 삼복성염(三伏盛炎) 돌아와. ‘! 이거 더워서 못살겠다하면 어느덧 입추 처서가 돌아오면은 조석(朝夕)으로 서늘바람이 온다.

서늘해서 인제 좋다 싶으면 어느덧 찬바람이 불어서 입동 소설 대한이 돌아온다. ‘! 이렇게 추워서 수가 없다, 얼어죽겠다싶으면은 입춘 우수가 돌아온다 그말이여.

 

그러는데, 사람도 나서 똥오줌도 가리지 못하고 우는 때가 엊그제 같은데 금방 유치원을 가고, 금방 유치원을 다니는가 싶으면 얼마 후에 보면 벌써 중학생이 되고, 얼마 후에 보면은 대학생이 되고, 얼마 후에 보면 벌써 첫아들을 낳았다고 그런다 그말이여.

첫아들을 낳은 지가 엊그제인데 금방 환갑이 돌아왔다그러고손자를 봤다 그런다 그말이여. 아마 자리에 앉으신 청신사(清信士) 청신녀(淸信女) 분께서도 당신의 일생을 돌아다보면 이와 마찬가지였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니 세상에 나면 늙고, 늙으면 병들고, 병들면 죽게 되는데, 원숭이란 놈은 꽃이 피고 꽃이 곳에는 맛있는 열매가 열려, 육화촌(六花村)—여섯 가지 꽃이 피는 마을을 항상 그리워한다 그말이여.

 

그런데무엇을 원숭이가 육화촌을 그리워한다고 비유를 했냐?’하면은 시시각각으로 이렇게 죽음을 향해서 우리는 가고 있는데,

눈으로는 예쁜 것을 보고자 하고, 귀로는 좋은 소리와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데에 정신을 쏟고, 코로는 좋은 향내를 그리워하고, 혀로는 맛있는 음식에 끄달리고, 몸뚱이로는 부드러운 옷과 가벼운 , 울긋불긋하고 좋은 옷을 입을려고 그러고, 우리의 마음으로는 잘한다는 칭찬을 듣기를 좋아하고 명예와 권리를 탐한다.

 

이러한 것이 마치 원숭이란 놈이 육화촌의 아름다운 꽃과 향기와 맛있는 음식 과일을 그리워해서 밤낮 거기만 들락거린 거와 무엇이 다르냐 그말이여.

귀를 통해서 좋은 소리를 듣는 데에 탐착하고, 눈으로 아름다운 것을 탐착하는 동안에(耳聲眼色曾無暇), 생각 생각 초가 지나가면서 우리가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어찌 망각할 수가 있겠느냐?(念念那知是死門)

 

 

그래서 우리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완성을 대혜종고(大慧宗) 선사는 우리 공부해 나가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선()이라 하는 것은 고요한 곳에도 있지 아니하며, 또한 시끄러운 곳에도 있지 아니하며, 또한 일용응연처(日用應緣處) 일용응연처는 하루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자리에 때까지 우리가 보고 듣고 만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경계를 일용응연처라 그러는 거여.

사람을 만나서 얘기 하나, 일을 하나, 먹고 입고 누는 그것이 일용응연처인데 거기에도 참선은 있지 않어. 사량분별처(思量分別處)에도 있지 않어. 과거 일을 생각하고, 미래 일을 생각하고, 현재 일을 생각하고 일체 것을 생각하고 따지는 거기에도 있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것이냐? 고요한 , 시끄러운 , 일용응연처, 사량분별처를 버리지도 말아라.

거기에, 고요하고 시끄럽고 일용응연(日用應緣)하고 사량분별(思量分別) 거기에 있지 아니하니 거기에 집착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을 버릴라고 하지도 말아라』

 

집착하지도 말고 버릴라고 하지도 말아라이것이 우리 참선하는 사람이 항상 어떻게 자기 마음을 단속해 나갈 것인가? 분명하게 가운데 말씀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버리지도 않고 거기에 집착하지도 말며, 거기에 집착하지도 말고 그걸 버릴라고도 하지도 말고서 오직 일체처 일체시에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

이뭣고?’ 사람은이뭣고?’ ‘판치생모(板齒生毛)’ 사람은판치생모(板齒生毛)’ ‘무자(無字)’ 사람은무자(無字)’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화두를 사람은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본참공안(本參公案)만을 일체처 일체시에 떠억 거각을 나가라 그말이여. 그렇게 해서 안되어도 안된다는 생각도 내지 말고이뭣고?’ 잘되어도 잘된다고 좋아하는 생각도 내지 말고이뭣고?’

불급불완(不急不緩)하게 잡드리 나가면 나중에 순일무잡(純一無雜) 경계가 오고야만 말아. 들라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현전(現前)하면서 순일무잡해지거든.

 

순일무잡해지더라도 조금도 좋아하는 생각도 말고, ‘! 이것이로구나그런 생각도 내지 말고, ‘! 이럴 빨리 터졌으면그런 생각도 내지 말고, ‘이럴 어느 선지식을 만나서 깨닫게 해줬으면그러한 생각도 내지 말어. 이러한 생각들이 모두 지각심(知覺心)이라 하는 거여.

애써서 잘되아 가는 데다 뿌린 거여 그게. 그런 생각을 내지 말고 잡드리 나가면 어떠한 찰나에 홀연히 축착합착(築着磕着)해서 ! 터지게 되는 거여.

 

이것이 바로 자신의 몸속에 있는 살림살이여. 자기한테 있는 것을 자기가 깨닫는 견성성불하는 도리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어리석은 사람은 병이 나면 건강할 때를 기다리고, 일이 바쁘면 일이 끝나기를 바래고, 시끄럽고 복잡하면은 조용하기를 기다리고, 밤낮 기다리다가 세월이 지내간다 그말이여. 아들 대학이나 들여보내 놓고, 시집이나 보내 놓고, 인제 아들 장가나 보내 놓고 선방(禪房) 가서 하리라.

 

일이라 하는 것은 한도 끝도 없어. ‘ 다하고 죽은 무덤은 없다이런 속담도 있습니다마는 우리는 세상에 온갖 인연을 맺어놓고 많은 빚을 져놨기 때문에 다하고 죽을 수는 없습니다.

 

용기를 다해 가지고 ! 끊어 버리고 출가를 하던지—‘자식이고 딸이고 자기 있으면 잘살 것이고, 자기가 좋은 인연을 맺었으면은 좋은 시집 장가갈 것이고, 내가 신경 없다. 살림도 자기가 있으면 잘살 거다. 내가 신경 없다

! 끊어 버리고 아주 머리를 깎아 버리던지, 선방에 와서 아주 방부(房付) 들이고 죽이 끓거나 밥이 끓거나 모르쇠 하던지, 대용기가 있으면 한번 그렇게 만한 것이고.

 

그렇게까지 용기가 없으면 괜히 있지도 못한 용기를 가지고 댕겅 머리부터 깎았다가 며칠 가서 가발 쓰고 갈라고...  , 그런 출세는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정말 끊고 들어올 수만 있으면야, 중국 청나라 순치 황제는 천자의 지위도 버려 버리고 나온 예도 있고, 부처님은 머지않아 자기가 임금이 있는 그러한 위치에 있는 태자의 신분도 버리고 출가를 했고, 달마 스님도 향지국에 3 왕자의 귀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그걸 버리고 출가하고,

이러한 예를 들자면은 인도, 중국, 한국에 끝도 없지마는 우리 모두가 그렇게 하기를 나는 여러분께 재촉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간절히 부탁하고 싶은 것은 언젠가 출가할 하고, 이렇게 선방에 아주 들어와서 방부를 들이고 참선 하실 하더라도 우선 당장 있는 자리에서이뭣고?’ 들으라 이거거든.

 

이뭣고?’ 눈으로 그때 들고, 귀로 소리를 들을 드는 것이지, 보는 버리고 드는 것이 아니고, 귀로 듣는 버리고 드는 것이 아니라, 듣자마자이뭣고?’ 챙기면 바로 자리가 선방이요 선불장(選佛場)이여.

그렇게 평소에 잡드리를 하다가 어느 정도 시절인연(時節因緣) 돌아와서 선방에 와서 달씩 있을 있게 오신다면 그때는 누워서 먹기야. 잘될 것이다 그말이여.

 

집에서 복잡한 살림살이 속에서 바로 그때 장소에서 자꾸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고 아침저녁으로 시간 나는 대로 30분씩 시간씩 잡드리를 나가면, 그렇게 잡드리를 놓으면 나중에 머리를 적당한 ! 깎는다 하더라도 다시는 가발 같은 쓰게 것이다 그말이여.

 

() 어찌 산중에만 있겠습니까? 어찌 머리를 깎은 스님에게만 확철대오(廓徹大悟) 있겠습니까?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은 참선이라고 하는 것은 고요한 데에나, 시끄러운 데나, 일용응연처나, 사량분별처우리 중생은 사량분별을 여의고는 1분도 지내지를 못하는데바로 거기에 집착하지 말고, 그걸 버릴려고 하지 말고, 바로 거기에 ()해서 화두를 들으라 말입니다.

 

 

, 그러면 10 동안만 죽비() 치고 입선(入禪) 하겠습니다.

편안하게 앉으셔서 반가부좌(半跏趺坐) 하고 몸을 좌우로 서너 흔들어요. 흔들어서 한가운데에다 안정을 시켜.

몸은 단정하되 어깨의 힘을 빼고, 목도 머리도 전후좌우로 삐뚤어지지 않게 단정하니 하되 목에 힘을 빼고, 눈은 부릅뜨거나 감지를 말고 평상(平常)으로 떠요. 어금니는 지긋이 물어. 너무 물지 말고 가만히 맞닿도록 그렇게 하고, 혀는 위로 꼬부려서 입천장에 갖다가 대고서...

 

(죽비입선죽비)

 

이렇게 잠시 같이 입정(入定) 뜻은, 여러분은 댁에 돌아가시면은 집에 가서 삼십 분도 하시고, 시간도 하시고, 시간도 하실 있겠고 선방에 계신 스님네나 보살님네는 하루에 여덟 시간, 시간을 얼마든지 하실 있지만,

 

우리가 이렇게 법회에 이렇게 법당에 이렇게 같이 모이셨으니 인연으로같이 죽비를 치고 같이 입선한 인연으로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도 같이 가서, 분도 낙오자가 없이 같이 가서, 거기서 같이 만나, 같이 가서 미륵(彌勒)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같이 확철대오 하고,

사바세계(娑婆世界) 인연이 있어서 다시 하강하게 되어서 일체 중생을 제도하더라도 우리가 모두 같은 형제간이 되고, 같은 도반이 되고자 해서 일부러 이런 시간을 갖고자 것입니다.(3248~5210)

 

 

 

 

 

(2)------------------

 

수류상출몰(隨流常出沒)하고  불체왕래종(不滯往來)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두두무취사(頭頭無取捨)하고  처처절소친(處處絶疎親)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수류상출몰(隨流常出沒)하고, 흐름을 따라서, 인연 따라서 나왔다 죽었다 왔다갔다 이렇게 하되, 불체왕래종(不滯往來)이요. 가고 오는 자취에 맥힘이 없어.

 

두두무취사(頭頭無取捨)  처처절소친(處處絶疎親)이다.

두두물물(頭頭物物) 취하지도 말고 버리지도 말아라. ‘()한다 하는 것은 집착하는 것이고, ‘버린다 하는 것은 그걸 멀리 할려고 하는 거다 그말이여.

 

모든 나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취할려고 하지도 말고, 취하는데 집착하지도 말고 버릴려고 하지도 말아라. 그러면모든 애착을 버리라그러는데, 애착을 버리면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자식이 부모를 버리고, 모두 버리고 사업도 버리면 모든 사람이 버리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그말이여.

 

()하지도 말고 버리지도 말라 말은 취하되 취한 바가 없고 버리되 버린 바가 없어.

취할 것을 취하되 취한 데에 집착하지 말고, 능히 버려야 것을 버리되 버린 데에 집착하지 말아라 그거거든.

 

친하고 성근 , 친소(親疎) 끊어 버려라그러는데, 친소를 끊어 버리면 부모자식 간은 친한 사이고 친구 간도 친한 것이고, 스승 상좌도 친한 것인데, 친한 것을 끊어 버리면은 그거 어떻게 되냐 그말이여.

친할 것을 친하되 친한 데에 집착하지 말고, 성근 것을 집착하지 않고 버리되 버린 바에 집착하지 않다이건 대단히 말로는 쉽지마는 우리가 그것을 실천하는 데에 있어서는 상당히 이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아니해.

 

그러나 친한 가운데에 화두(話頭) 들면 친한 집착하지 않고, ‘취하되 취한 바에 집착하지 않는다하는 것은 취하되 화두를 들면 집착하지 아니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일체처 일체시에 화두를 들고, 화두를 참구(參究)하는 것으로 생활화하면, 생활 속에 충실하되 집착한 바가 없으니 그것이 바로 취사(取捨) 없는 데에 나아갈 수가 있고,

인간은 친소(親疎) 속에서 친소의 인연 속에서 살아가되 화두를 들고 모든 사람을 상대해 나가면 친하다고 해서 애착에 떨어질 것이 없고, 성글다고 해서 원수처럼 원수를 맺을 까닭도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오늘 가지 광고 것이 있습니다.

해마다 중고등부 학생회 어린이 학생회에서 행하는 수련대회가 있는데 중고등부는 8 6일부터서 8 9일까지 34일로 해인사로 가서 수련대회를 갖게 되고, 어린이 학생회는 8 11일부터서 8 13일까지 23일로 천안 광덕사로 수련대회를 가게 됩니다.

 

구체적인 것은 사무실이나 교무 스님께 의논을 해서, 여러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의 자녀들이 있으면 수련대회에 참석을 하도록 그렇게 권장을 합니다.

 

모두 시험, 입학 시험이다 과외공부다 모든 그런 계획이 짜여져 있어 가지고어떻게 그런 황금 같은 시간을 34, 23일씩 그렇게 수가 있겠는가? 된다. 어쨌든지 시간이라도 공부를 해야 좋은 학교에 들어간다 이렇게 생각이 드시겠지만,

방학 동안에 34일이나 23 수련대회를 갔다오면 업장(業障) 소멸(消滅) 되고 신심이 돈독해서 마음속에 쌓였던 스트레스를 깨끗이 씻어 버리고 청정한 마음으로 불보살(佛菩薩) 가피(加被) 짊어지고 가슴 가득히 돌아오면 업장이 소멸이 되었으니 공부가 무장무애(無障無碍)하게 공부가 저절로 잘되어 것입니다.

 

어쨌든지 인원 초과가 되어서 교무 스님이 쩔쩔매도록, 차라도 불러야 정도로 그렇게 주시기를 부탁을 드리고 오늘 법회 법어를 마치겠습니다.(5211~605)()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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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사서순환난부한~’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峯和尙廣錄卷第三十'에서 '警世二十二首' 게송 참고.

*삼복(三伏) ; ①일 중에서 여름철의 가장 더운 기간. ②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 아울러 이르는 .

*성염(盛炎 성할 /불꽃·더울 ) ; 매우 심한 더위. 또는 최고조에 달한 더위.

*서늘바람 ; 첫가을에 부는 서늘한 바람.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대혜종고(大慧宗) 선사 ; 분류역대 스님 약력참고.

*()이라 하는 것은 고요한 곳에도 있지 아니하며~’ ;

[참고]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 47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 (30) 【宋 온문(蘊聞)編】 19示妙證居士(묘증거사에게 보임)(聶寺丞)’에서.

禪不在靜處。不在鬧處。不在思量分別處。不在日用應緣處。然雖如是。第一不得捨卻靜處鬧處日用應緣處思量分別處參忽然眼開。都是自家屋裏事.

 

() 고요한 [靜處]에도 있지 않고 또한 시끄러운 [鬧處]에도 있지 아니하며 일용응연처(日用應緣處일상생활에서 인연에 응하는 ,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자리에 때까지 우리가 보고 듣고 만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경계)에도 있지 않고 사량분별처(思量分別處)에도 있지 않습니다.

비록 이와같으나 제일(第一) 정처(靜處) 요처(閙處) 일용응연처(日用應緣處) 사량분별처(思量分別處) 버리고서도 아니됩니다. ()하여 홀연히 눈을 뜨면 바야흐로 모두 자가옥리사(自家屋裏事자기 집안의 )입니다.

*자가옥리사(自家屋裏事) ; ①자기 집안의 . ②자기의 내부에 갖추어져 있다는 . 가리사(家裏事옥리사(屋裏事)라고도 한다.

불법의 진리를 깨치고 보면 인간세상의 모든 일은 자기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부에 있는 것이다.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 번뇌와 보리, 부처와 중생, 모든 것이 자기 내부에 있는 것이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다.

*() ; 선지(禪旨) : [] dhyana 음을 따라 선나(禪那)• 타연나(駄衍那) 쓰고, 고요히 생각함(靜慮), 생각하여 닦음(思惟修), 악한 것을 버림(棄惡) 또는 공덕림(功德林) 등으로 번역한다.

진정한 이치를 궁리하고 생각을 안정하게 하여 산란치 않게 하는 것을 말한다。중국에서는 가섭존자가 전한 선법이 널리 퍼지지 못하고 교법만이 유포되었었는데, 달마대사(達摩大師) 건너온 뒤로부터 선법이 크게 발달되어 이른바 조사선(祖師禪) 완성되었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하나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일(純一)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축착합착(築着磕着) : 맷돌 아래짝이 서로 들어맞듯이 수행자가 애를 쓰다가 어느 홀연히 진리에 계합하는 것을 비유함。 「축착합착(築着磕着)」합해서 쓰임.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 선실(禪室) 같은 . 선방에 간다라는 말은참선하러 절에 간다또는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방부(房付)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 참가하다.

*모르쇠 ; 아는 것이나 모르는 것이나 모른다고만 하는 .

*선불장(選佛場) ; 부처() 뽑는() 장소()라는 .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

[참고]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개당보설(開堂普說)’, 거사(龐居士) 게송이 아래와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無爲)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 급제하여 돌아가네.’ (통광 스님 역주고봉화상선요어록’ p37,46에서)

*시절인연(時節因緣) ; 시절이 도래하고 인연이 합쳐지는 기회. *시절(時節) ; 어떤 시기나 .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죽비( 대나무 /빗치개·통발 )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 들어가는 , 좌선(坐禪) 시작하는 . 참선(좌선)수행.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

*입정(入定) ; ①선정(禪定) 들어가는 . 마음을 한곳에 정하고 ··(身口意) 삼업(三業) 갈무리는 . ②수행하기 위하여 안에 들어앉는 . 입선(入禪). ③입적(入寂, 수도승이 죽음).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꼭대기에서 12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56 7천만 뒤에)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 뜻은 지족(知足).

*미륵불(彌勒佛) : []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呾麗耶), 매달례야(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불의 5().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2)

 

*(게송) 隨流常出沒  不滯往來 ; [천성광등록(天聖廣燈錄)] 25, 처인선사(蘄州靈泉山處仁禪師) 참고.

*(게송) 頭頭無取捨  處處絶疎親 ; [가태보등록(嘉泰普燈錄)] 17, 월암선과선사(潭州大溈月庵善果禪師) 참고.

*두두물물(頭頭物物) ; 온갖 사물과 현상.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구(參究 헤아릴 /궁구할 ) ; ①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 행동··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생긴 장애() 사라져 없어짐.

*가피(加被 더할·베풀 /입을·두를 ) ; 불보살(佛菩薩)에게 위신력(威神力) 받는 . 불보살이 중생에게 불가사의한 힘을 부여해서 이익을 주는 . 가호(加護) 같음.

*무장무애(無障無碍) ; 일이나 행동을 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방해가 없음.

 

Posted by 닥공닥정
발심 자신(自信)2014. 6. 4. 16:33

§(326) 전강 선사의 발심수행 / 억지로라도 노력하면 된다 / (게송) 빈궁치천부생교~ / 깨닫는 일이 나의 본업(本業) / 언제나 지금 / ‘딴 생각(別念)’하지 마라.

‘내가 금생에 도(道)를 이루지 못하고 100세를 살면 뭐하느냐. 내가 공부하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공부를 내가 그만 둘 수가 없다’ 이렇게 막 밀고 나갔던 것입니다.


억지로라도 할 것은 이것 밖에는 없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은 결국은 진발심(眞發心)이 되는 것이니까, 이 세상에 할 것이라고는 이것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오직 이것, 이 일대사(一大事) 문제, 이 무위의 이치를 깨닫는 이 한 일에 나의 본업(本業)을 삼고 나의 모든 정성을 다 바칠 때에, 참다웁게 살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고 참다운 행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생사(生死)라 하는 것은 늙어서야만 죽는 것이 아니고 젊어서도 많이 죽습니다. 어려서도 죽습니다. 그래서 지금 아니하면 영원히 할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뒤로 미룬다.’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서 시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일부터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돌아오는 여름부터서 해야겠다 그것도 안 되고, 내일로 미뤄도 안 되고, 오늘 저녁으로 미뤄도 안 되고, 지금! 언제나 지금부터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26) - 1987년 3월 첫째일요법회(87.03.01)에서. (용326)

 

(1) 약 15분.

 

(2) 약 18분.

 


(1)------------------

우리가 방금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조실 스님께서 그 어려서 아주 소년시절에 출가를 해 가지고 어떻게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셨던지,
법당 뒤에다가 멍석을 깔고 거기에 방석 하나를 떠억 갖다 놓고서, 가서 공양시간에 공양만 드시고는 바로 나오셔서 그 법당 뒤에 자리에 와 가지고 앉아서 정진하시고,
그러다가 조금만 졸음이 오는 성 싶으면 일어나서 법당 뒤에서 왔다갔다 포행(布行)을 하시다가, 또 잠이 깨지면 다시 또 그 자리에 와서 정진하고, 한 철을 그렇게 한결같이 정진을 하셨습니다.

입선(入禪)·방선(放禪)도 상관이 없고, 그저 밥만 한 숟갈 자시면은 바로 그 자리에 가서 공부를 하시고,
처음에는 사람들이 ‘어린 것이 말뚝 신심이 나가지고 이거 아주 공부한 척 한다고, 지가 저 며칠을 갈까 보냐고?’ 모다 수근덕거리고 모다 비웃고 손가락질하고 그랬었지만,
하루를 그렇게 하시고, 이틀을 그렇게 하시고 사흘, 나흘, 1달, 2달, 계속 한결같이 그렇게 하시거든.

어떻게 참 철저하게-그것이 일부러 지어서 헐랴고 하신 것이 아니라,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심(疑心)이 그냥 한목 돈발(頓發)을 하신 것이여.
지어서 한 것 같으면 며칠 하다가 배시시하고 식어버릴 텐데 그것이 아니거든.

어떻게 그 어린 소년이 그렇게 참 신심과 분심이 한목 났는가?
어릴 때 같이 놀고 같이 공부하던 사람이 병이 나가지고 그래 가지고 죽게 되었습니다. 그 정든 친구, 같이 뛰놀고 공부하던 친구가 그렇게 허망하게 죽어서 거기에서 결국은 발심(發心)을 하신 것입니다.

그 친구가 죽은 뒤에 꿈을 꾸셨는데, 지옥 구경을 하시는 꿈을 꾸었어.
사람을 갖다가 톱으로 썰어서 죽이는 거 또 큰 맷돌에다가 사람을 콩나물처럼 여러 명씩을 집어넣으면서 맷돌을 들들들들 돌리니까 사람이 거기서 뼈와 살과 창자가 짓이겨져서 핏물이 꿀꿀꿀 쏟아지는 그런 광경하며.
그 지옥 구경을 하시고서 놀래서 꿈을 깨셨는데, 꿈을 깨가지고도 그 피비린내 나는 냄새가 콧전에서 사라지지 아니하셨다 이거거든.
그런 꿈을 꾸시고서 대발심(大發心)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그러한 어떠한 계기를 만나서 그런 발심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철저한 무상(無常)을 느낀다든지, 인간 세상에 있어서 그 흥망성쇠와 생사고뇌 속에서 가정에서나 또는 이웃친구나 그러한 인간의 영욕득실 경계에서 뼛속에 사무치는 그런 계기를 만나가지고 발심을 해야,
그래야 참 분심이 솟구쳐 오르고 공부를 해도 억지로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신심과 분심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조실 스님께서는 어려서 경을 배우시다가 그만 두어버리고 선방으로 나오셔서, 그때 선방에 나오신 수좌(首座) 가운데에 제일 나이가 어리셨다고 하니까,
그 어린 나이에 출가하셔 가지고 무섭게 정진을 해서 결국은 코에서 피가 쿨쿨 선지피가 넘어오고 그래도 공부를 쉬지 않고 계속해서 정진을 하셨습니다.

그때 앉는 자세라든지 또는 호흡하는 법이라든지, 화두를 드는 법이라든지 그런 것을 자상하게 지도하신 스님이 있었다면 그렇게 피가 넘어오지 않고도 이 공부를 잘 하실 수가 있었을 텐데,
그러한 분을 만나지를 못해가지고 그 신심과 분심이 복받쳐 오르는 바로 그것으로 화두를 맹렬히 들고 막 부셔나가다 보니까,

그냥 그렇게 기(氣)가 상충(上衝)해 가지고 상기(上氣)가 되어서,
그렇게 피가 목구멍으로 나오고 콧구멍으로 나오고 해 가지고 하룻밤 지나고 나면은 턱밑에 가슴에 피가 아주 그냥 흘러내려 가지고 멍어리가 지고, 눈알은 벌게 가지고 충혈(充血)이 되고,

그래도 ‘내가 금생에 도(道)를 이루지 못하고 100세를 살면 뭐하느냐. 내가 공부하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공부를 내가 그만 둘 수가 없다’ 이렇게 막 밀고 나갔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는 마침내 아까 조실스님 법문 가운데에 그 깨달음을 얻어가지고,
전라남도 곡성(谷城) 태안사(泰安寺)를 가시는 도중에 개천을 건너면서, 그 돌로 이렇게 징검다리를 놓은 거기를 건너시다가 거기서 공안(公案)을 타파(打破)를 하신 것입니다.

『운무(雲霧) 중에 소를 잃었으니 어떻게 하면 소를 찾겠는가?』 불현듯 그 생각이 나시면서 『담 너머 외 따오너라.』 ‘외’라고 한 것은 ‘오이’를 말한 것입니다.
‘담을 넘어가서 오이를 따오너라.’ 그 생각이 떠억 떠오르면서 그 심안(心眼)을 뜨셨는데, 그길로 태안사에 들어가 가지고 가서 오도송(悟道頌)을 읊으시고,

이 법당 앞에서 오줌을 출출출출 누니까, 주지 스님이 나와 가지고 법당 앞에다 오줌 싼다고 호통을 치니까, 부처님 앞에서 오줌을 눈다고 호통을 치니까,
『부처 없는 곳을 일러라!』 이렇게 조실 스님께서 대들었습니다.
『요새 수좌 놈들이 건방진 놈의 자식들. 당장 가라!』해 가지고 아침도 못 얻어 잡숫고 쫓겨났다고 그런 일화가 있습니다마는,

이 공부라 하는 것은 그렇게 발심이 되어야 하고, 발심이 되어서 헐 때에 정말 그때 참 잘 단속을 하고 공부를 몰아붙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를 놓쳐버리면 다시 또 생각을 아무리 가다듬고 할라고 해도 억지로는 힘만 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그러한 발심할 수 있는 그러한 경계가 수없이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역경계(逆境界)인 것입니다.
이 사바세계는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또는 육체상으로나, 대인관계에 있어서나, 가정적으로나 또는 사회 무슨 사업관계로나 도처에 우리가 발심할 수 있는 그러한 계기가 수없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계기를 거기서 놓치지 말고 거기서 돌이켜 나간다면, 우리는 조실 스님과 같이 정말 발심을 하게 되는 것이고 발심이 되어야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발심이 안 되고 ‘참선이 좋다 하니까 나도 좀 해볼까’ 이러한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억지로 하는 것은 그것은 흉내내는 것 밖에는 안 되고, 흉내도 또 안 내는 것 보다는 낫습니다마는,

옛날에 원숭이가 산중에서 이리 뛰놀고 저리 뛰놀고 하다가 그 산중에 숲속에서 참선하시는 스님을 보고서 그 원숭이도 그렇게 그 스님의 흉내을 내서 떠억 가부좌(跏趺坐)를 하고 앉아,
지가 무슨 참선이 무엇인줄 알겠습니까? 원숭이란 놈은 원래 흉내내기를 좋아하는 짐승이라, 스님이 참선하고 있으니까 저도 그와같이 흉내를 내고 앉어.
그것이 인연이 되어 다음 생에 사람으로 태어나 가지고 출가해서 참선을 해가지고 도과(道果)를 이룬 것이 그게 바로 독성(獨聖)님이라 그런 것입니다.

잠시 흉내만 내는 인연으로도 그렇게 도과를 이루거든,
사람으로써 참선이 좋다고 하는 말을 듣고 자기도 좀 아침·저녁으로 해 보기도 하고, 또 토요일에 철야정진하기도 하고, 일상생활 속에서도 자꾸 할려고 노력을 하고,
아! 그것도 쉬지 않고 애를 쓰다 보면 언젠가는 헐랴고 안 해도 저절로 되어지는 그냥 신심과 분심과 의단이 독로(獨露)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다행이 그러한 어떠한 경계를 만나서 신심과 분심이 돈발한다면 그것은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겠지만,
그런 경우를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억지로라도 자꾸 할라고 노력을 하고, 시간을 정해놓고 노력을 하고, 기회를 만들어서 노력을 하고, 방부를 들여서 노력을 하고, 또 이 선학원이라든지 그밖에 일요선방이라든지 그런데 가서도 할려고 노력을 하고,
가정에서도 새벽에 일어나서 1시간~2시간씩 하고 생활 속에서도 자꾸 할려고 노력을 하고, 그렇게 하다보면 자연히 분발(奮發)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억지로라도 할 것은 이것 밖에는 없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은 결국은 진발심(眞發心)이 되는 것이니까,
이 세상에 할 것이라고는 이것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명예나 부귀·공명, 오욕락이라 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잠시 꿈꾸는 것에 지내지 못해여.
산더미 같은 재산을 모여도 가지고 가지 못하고, 온 세상을 다 차지할 만큼 큰 부자라도 한 푼 가지고 가지를 못하고, 명예나 권리가 하늘을 뻗지른다 하더라도 10년 20년을 넘지를 못하는 것이고,
그러다가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閻羅大王)은 하나도 그것을 두려워하지를 않는 것입니다.(23분36초)

 

 

 



(2)------------------

빈궁치천부생교(貧窮致賤富生驕)하되  등시무명화자소(等是無明火自燒)니라
나무~아미타불~
숙홀보연전도전(焂忽報緣顚倒轉)헌디  방지일점불상요(方知一點不相饒)니라
나무~아미타불~

빈궁치천부생교(貧窮致賤富生驕)로구나. 가난하고 빈궁(貧窮)하면 천(賤)하게 되고 부자가 되면 교만(憍慢)이 생겨.

사업에 실패해서 재산이 다 없어져 버리고 가난해지면 스스로 아주 천둥이가 된다 그말이여. 기를 피지 못하고 기운이 없고 살맛이 없고 어디 친구도 만나기가 싫고.
그러다가 사업이 잘되어서 돈푼 벌고 좋은 집을 살고 여유가 생기면 교만이 생겨. 남을 업신여기고 아주 자기야말로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것처럼 으시대고. 그런데,

등시무명화자소(等是無明火自燒)여. 가난해서 천하게 느껴지거나, 부자가 되어 가지고 교만심이 나거나, 다 같이 무명(無明)의 불로써 자기가 자기를 태워 죽이는 것 밖에는 안 된다.

숙홀보연전도전(焂忽報緣顚倒轉)이여. 그러다가 숨 한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 이승을 하직하고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는데, 부자라고 했다고 해서 더 알아주지도 않고, 가난했다고 해서 동정을 받지도 못해.

방지일점불상요(方知一點不相饒)여. 염라대왕 앞에 턱 끌려가고서야 비로소, 하! 가난하고 부자고 그래봤자 그거 한 점(點)도 소용이 없다고 한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생사없는 도리, 무위·무위법(無爲法)은 가난한 사람도 가난할수록에 이것을 해야 천둥이가 안 되는 거고,
명예와 권리가 있고 부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교만심을 낼 것이 아니라 이 무위법-참선(參禪)을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참선을 하는 사람은 설사 가난해졌다 하더라도 천둥이가 되지를 않고, 사업이 잘되어서 부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남을 업신여기고 교만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부자고 한 것이 잠깐 꿈속에서 가난뱅이가 되고 꿈속에서 부자가 된 것뿐인대,
꿈속에서 가난해졌다고 해서 그 사람이 천해질 까닭도 없고, 꿈속에서 무슨 대갑부(大甲富)가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무슨 교만을 낼 건덕지가 있겠느냐 이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태어나서 할 것이라는 하는 것은 이 무위법-흥망성쇠와 희로애락과 빈부귀천과 이 생노병사 속에서 생사가 없고 교만하고 천할 것도 없고 하는-이 참선법 이것 밖에는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니 해 놓으면 천상 천둥이가 되었다가 교만을 부렸다가 허면서 꿈속에서 결국은 지옥 갈 채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하에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인데, 아무 소용도 없다면 결과도 아무 소용이 없으면 괜찮하겠는데 결과적으로는 지옥 갈 준비를 한 것 밖에는 안 돼.

그래서 부자도 ‘이뭣고?’를 해야 하고, 가난한 사람도 ‘이뭣고?’를 하고, 병든 사람도 ‘이뭣고?’를 해야 하고, 권리가 있는 사람도 ‘이뭣고?’를 해야 하고, 죽을 고비에 든 사람도 ‘이뭣고?’를 해야 하고,

오직 이것, 이 일대사(一大事) 문제, 이 무위의 이치를 깨닫는 이 한 일에 나의 본업(本業)을 삼고 나의 모든 정성을 다 바칠 때에, 참다웁게 살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고 참다운 행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중생은 겪고 다 겪을 대로 겪어놔야 겨우 그때사 조금 ‘그렇구나’하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남이 겪는 것을 보고도 내가 그것을 깨달아버려야 하는데, 자기가 남하는 것은 예사로 보고, 자기가 겪고 겪을 대로 겪고 난 뒤에사 겨우 조금 ‘아하, 그렇구나’하고 느끼는데 그것도 오래가지를 못하고 금방 또 다시 경계(境界)에 끌려가고 경계에 속게 되는 것입니다.

‘행여나 이제는’하고 자꾸 바래고, ‘이번만 지내고 이 다음부터서 해야겠다’하고 자꾸 뒤로 미루고, 다른 것은 뒤로 미룰 수가 있지만 이 생사 문제, 일대사 문제는 뒤로 미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남녀와 노소와 지식의 유무와 빈부귀천 그걸 가리지 말고 금생에 이 사람 몸뚱이 받았을 때 철저하게 정진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생사(生死)라 하는 것은 늙어서야만 죽는 것이 아니고 젊어서도 많이 죽습니다. 어려서도 죽습니다.
그래서 지금 아니하면 영원히 할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뒤로 미룬다.’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서 시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일부터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돌아오는 여름부터서 해야겠다 그것도 안 되고, 내일로 미뤄도 안 되고, 오늘 저녁으로 미뤄도 안 되고, 지금! 언제나 지금부터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 법당에 앉아계실 때는 지금 이 자리에서, 법당에서 나갈 때는 나갈 바로 그때,
앉았을 때는 앉았을 때 하고, 일어섰을 때는 일어섰을 때 하고, 걸어갈 때는 걸어갈 때 하고, 언제나 지금이거든.

사실은 ‘지금’이란 시간도 우리에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미 지금이라고 할 때 시계바늘은 벌써 지나가고 있기 때문에 지금이란 시간도 우리는 붙잡을 수가 없고, 다맛 ‘이뭣고?’ 뿐입니다.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몸이 아플 때도 ‘이뭣고?’
밥을 먹을 때도 ‘이뭣고?’
똥을 눌 때도 ‘이뭣고?’
1초 1초 생각 생각이 ‘이뭣고?’거든.

공부가 처음에 앉는 자세를 배우고 또 호흡하는 법을 배우고 또 화두드는 법을 배워서 해보면 처음에는 곧잘 잘 된 것 같애.

그런데 한달 두달 석달 해가다 보면 영판 잘 안 되고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고 또 이렇게 해 갖고 될 것인가 새삼스럽게 회의심이 일어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 보면은 모다 참선한다고 하지마는, 참말로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견성(見性)한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된가. 에이 해봤자 아무래도 안될 것 같다. 이렇게 어려운 것을 낸들 될 것인가’ 이렇게 해서 스스로 의심하고 자포자기를 하고.

그리고 공부를 열심히 할라고 할수록에 뭔 일이 자꾸 사건이 생겨.
집안에 뭔 일이 생기기도 하고, 자손에 뭔 일이 생기기도 하고, 일신상에 뭔 일이 생기기도 하고, 병이 나기도 하고, 무슨 근심 걱정거리가 생기기도하고,
또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잘되어간다 싶으면 꼭 무슨 사건이 일어나거든.

이것이 다 우연한 일이 아니고 ‘공부를 잘해서 도를 이루게 되면 제일 그것을 싫어한 사람이 누구냐?’하면 마군(魔軍)거든. 마군이는 참선을 열심히 한 사람이 있으면 자기가 멸망을 하게 되거든.
도인(道人)이 하나 태어남으로 해서 마군이가 설 자리가 없어지니까, 마치 대한민국이 모든 것이 잘 되어가면은 제일 싫어한 것이 이북의 공산당이거든.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해를 치거든. 그와 똑같은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대한민국이 잘 살고 잘되고 세계적으로 훌륭해지면 자기네 설자리가 없어지거든.
결국은 전 이북(以北) 동포들이 이남(以南)이 행복하고 잘 살고 한줄 알면 전부 대한민국을 그리워하고 모두다 38선을 넘어오게 될것이고 전부 자유통일이 되기를 바라게 되면,
그 공산정권은 아무리 무섭게 탄압을 한다해도 결국은 전 백성이 민주주의를 원하고 전 백성이 대한민국을 그리워한다면 이북 공산당 무너진 것은 그건 참 봄이 돌아와서 얼음 녹듯이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그것을 다 증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산치하에서 그렇게 무서운 탄압을 해서 그렇게 모다 서로 감시를 시키고 꼼짝을 못하게 하고 여행도 못하게 해도 전 백성이 자유을 원하고 민주주의를 원하고 그렇게 되면은 그 정권은 오래 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백성의 인심(人心)이 천심(天心)’이라고 모든 백성이 한결같이 바래면 그것이 바로 하늘의 마음이요 우주의 진리의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도 닦는 불자(佛子)도 열심히 도를 닦으면, 마군이가 여러 가지 각도에서-눈을 통해서, 귀를 통해서, 코를 통해서, 입을 통해서, 몸뚱이를 통해서, 우리의 심식(心識)을 통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를 갖다가 현혹을 시키고 유혹을 하고 방해를 놓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마군이의 현혹에 우리가 흔들리지 안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군이가 육근(六根) 문 뒤에서 항상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잠깐 딴 생각 먹고 한눈을 팔면 바로 그 구멍을 통해서 마군이는 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1분 1초도 딴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입니다.

그 ‘딴 생각(別念)’이라 하는 것은 명예에 대한 딴 생각, 권리나 부귀영화나 오욕락이나 그런것도 물론이지만, 가장 우리 참선을 해 나가는 사람에 있어서는 ‘빨리 깨달으리라’하는 그런 생각, 누가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해주기를 바래는 생각, ‘이렇게 해 갖고 이 공부가 깨달을 것인가?’ 그러한 생각, 또 공부해서 조금 득력(得力)을 해서 화두가 순일(純一)하게 되어가면 ‘아! 좋다’고 하는 생각, 조금 얻은걸 가지고 만족하는 생각, 이런 것들도 오히려 세속의 그런 명예·권리·재산 그런 것에 대한 생각보다도 더 무서운 생각이 바로 이러한 것인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선지식(善知識)을 여의지 않고 좋은 도반(道伴)을 여의지 아니하고 같이 정진을 하면 자연히 그러한 유혹으로부터 자기를 지킬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8분28초~41분22초)

 

 

 


------------------(1)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포행(布行) ; 스님들이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한가로이 뜰을 걷는 일.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말뚝 신심 ; 말뚝은 보기에는 견고해 보이나 뿌리가 없어 외부의 힘에 쉽게 흔들리거나 썩어 버린다. 이것에 비유하여 보기에는 열심인 듯하나, 꾸준하지 않고 잠깐 일어난 신심을 '말뚝 신심'이라 한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수좌(首座) ; 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상충(上衝) ; 위로 치밀어 오름.
*멍어리 ; ‘멍울(우유나 풀 따위 속에 작고 둥글게 엉겨 굳은 덩이)’의 사투리.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심안(心眼) ; 마음의 눈. 지혜.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
*전강 선사 오도송(悟道頌).
작야월만루(昨夜月滿樓)하더니
창외노화추(窓外蘆花秋)로다
불조상신명(佛祖喪身命)한데
유수과교래(流水過橋來)로구나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 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용화선원刊 p23.
*사바세계(娑婆世界);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가부좌(跏趺坐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도과(道果 길·불교 도,결과 과) ; 불도(佛道) 수행의 결과(結果). 깨달음. 열반.
*독성(獨聖) ; 남인도 천태산에서 홀로 수행한 성자였다고 하는 나반존자(那畔尊者)를 말함. 이 존자는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일을 꿰뚫어 알고 있고,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중생에게 복을 주고 소원을 성취시켜준다고 함.
*독로(獨露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분발(奮發 떨칠 분,꽃이필·이룰 발) ; 마음과 힘을 다하여 기운을 내어 떨쳐 일어남.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2)

*(게송) 빈궁치천부생교~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峯和尙廣錄卷第三十'에서 '警世卄二首' 게송 참고.
*致(치)이루다. 이르다. 도달함. *賤(천)천하다. 신분이 낮다. *驕(교)교만하다. 자만함. *燒(소)타다. 사르다. *焂(=倏)(숙)갑자기. *忽(홀)문득. 갑자기. *饒(요)넉넉하다. 너그럽다. 풍요. 여유. *點(점)점. 작은 흔적. 작은 조각.
*빈궁(貧窮) ; 가난하여 살기가 어려움.
*교만(憍慢) ; 자신이나 자신의 행위에 도취되어 일으키는 거만함을 교(憍), 자신과 남을 비교하여 일으키는 거만함을 만(慢)이라 함.
*천둥이 ; ‘천더기(업신여김과 푸대접을 받는 사람. 또는 그런 물건)’의 사투리.
*무명(無明) ; 모든 현상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는 근본 번뇌. 사제(四諦)에 대한 무지로서,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 번뇌. 본디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원초적 번뇌.
*무위(無爲) ; ①(산스크리트어: asaṃskrta, 팔리어: asavkhata) 무위(無爲)는 조작(造作: 만들다)의 뜻이 없는 것으로 유위의 대(對)가 되며, 조작되지 않은 세계, 즉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세계, 즉 생멸변화를 떠난 절대적이며 항상 존재하는 진리 또는 진리의 세계를 뜻한다.
②온갖 분별이 끊어진 마음 상태. 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마음 상태. 분별과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마음 상태.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의 삼독(三毒)이 소멸된 열반의 상태.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이뭣고?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이뭣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불교]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③참학(參學)의 일대사. 절대의 수행이라는 것.
일대사는 수행의 목적으로 말하면 ‘깨닫는 것’이고, 실천으로 말하면 ‘참선(參禪)’이다.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間’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 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라고 한다.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행여나 ; [주로 부정문이나 반어 의문문에 쓰여]그럴 리야 없겠지만 그래도. ‘행여(幸-)’를 좀더 분명하게 이르는 말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견성(見性) : ‘성품(性)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마(魔) :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 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육근(六根) ; 육경(六境-色•聲•香•味•觸•法)을 인식하고 판단하기 위한 능력이 있는 기관. 눈, 귀, 코, 혀, 몸, 뜻(眼,耳,鼻,舌,身,意)을 이른다.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 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고]딴 생각(別念 별념)’에 관한 [몽산법어] (용화선원刊)에 있는 글.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몽산법어]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Posted by 닥공닥정
참선 (목적)2014. 6. 3. 17:30

§(326) (게송) 군금욕식무위리~ / 생멸·차별의 세계를 여의고 따로 ‘함이 없는 이치(無爲)’를 찾을라고 하면 벌써 틀려버린 것이다.

모든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있어서의 흥망성쇠와 희로애락과 탐진·번뇌가 바로 그 ‘남이 없는 진여불성(眞如佛性)의 하나의 나타남이다, 진여불성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파도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버린다면, 번뇌망상을 여읠라고 할 것도 없고, 무위의 이치를 구할라고 할 것도 없다.


물이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된 것이기 때문에, 얼음을 보고 바로 얼음이 물과 다르지 않는 줄 안다면, 얼음을 버리고서 따로 물을 찾을 것이 없을 것이다.


**송담스님(No.326) - 1987년 3월 첫째일요법회(87.03.01)에서. (용326)


약 9분.

 


군금욕식무위리(君今欲識無爲理)인댄  불리천차만별중(不離千差萬別中)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단지공월낙담심(但知空月落潭心)하면  쟁사치원왕노형(爭似癡猿枉勞形)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군금욕식무위리(君今欲識無爲理)인댄, 그대가 이제 ‘함이 없는 이치(無爲)’를 알고자 할 진댄,
불리천차만별중(不離千差萬別中)이다. 천차만별(千差萬別) 가운데를 여의지를 말어라.

단지공월낙담심(但知空月落潭心)인데는, 다못 저 허공의 달이 못 가운데에 떨어진 줄만 안다면,
쟁사치원(爭似癡猿)이 왕노형(枉勞形)이리요. 어찌 어리석은 원숭이가 헛되이 수고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

함이 없는 이치, 우리가 참선(參禪)을 해서 고행 정진(苦行精進)을 한 목적은 무위(無爲), ‘함이 없는 이치’를 깨닫고자 한 데에 있는 것이여.

우리 인생은 나서 늙어서 병들어 죽는, 이 모든 것이 전부가 유위법(有爲法)이거든.
어떤 원인이 있어서 생겨나고, 어떤 일이 성립이 되었다가, 그 원인이 흩어지면 그것이 죽거나 또는 없어지거나 그러는데, 인간 세상에 그 오욕락(五欲樂)이 모두가 다 ‘함이 있는 법’이고, 흥망성쇠·희로애락·생노병사 일체가 다 유위법(有爲法)이여.
그럴 수밖에 없는 원인이 있어 가지고, 그러다가 그 원인이 소멸이 되면은 모두가 다 죽게 되고 또 파괴가 되고 멸망하게 되고 그러는데.

영원히 불생불멸(不生不滅)하고 생노병사를 초월한 것을 갖다가 무위(無爲)라 그러는데,
‘함이 없는 이치’다, ‘함이 없는 법’이다 그러는데.

그 ‘함이 없는 법’을 어떻게 해야 깨닫느냐? 어디서 찾아야 하느냐 하면, 바로 인간의 생노병사와 희로애락과 번뇌망상과 흥망성쇠(興亡盛衰) 바로 그 차별세계, 생멸·차별의 세계를 여의지 아니해야 한다.(不離千差萬別中)
바로 거기서 찾아야 생사없는 도리를 깨닫게 되지, 그 차별세계를 여의고 따로 ‘함이 없는 이치’를 찾을라고 하면 벌써 틀려버린 것이다.

단지공월낙담심(但知空月落潭心), 저 허공의 휘황찬 밝은 달이 못 가운데에 떨어져 못 가운데에 비춘 줄 안다면, 뭣하러 그 못 속에 있는 그 달을 건질라고 할 것이 있느냐.(爭似癡猿枉勞形)

원숭이가 샘을 들여다보니까 그 속에 휘영청 밝은 아주 좋은 것이 있으니까, 그것을 건질려고 손을 넣으면은 흩어져 버리고, 또 손을 빼고 한참 있으면 또 나타나고, 또 그놈을 건질라고 손을 집어넣으면 또 흩어져 버리고, 아! 그런 참 어리석은 짓을 한 그 설화가 있는데.
그 허공의 달이 거기에 비추지, 그 물 속에 본래 달이 있는 것이 아니요. 물 속에 비친 것은 허공에 있는 달이 비췄다고 하는 사실만 안다면, 뭣하러 물 속에 있는 달을 건질라고 할 것인가.

우리 인간의 차별 세계에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때로는 즐거워하고, 때로는 반겨하고, 때로는 미워하고 사랑하고 하는, 모든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있어서의 흥망성쇠와 희로애락과 탐진·번뇌가 바로 그 ‘남이 없는 진여불성(眞如佛性)의 하나의 나타남이다, 진여불성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파도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버린다면, 번뇌망상을 여읠라고 할 것도 없고, 무위의 이치를 구할라고 할 것도 없다 그말이여.

물이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된 것이기 때문에,
얼음을 보고 바로 얼음이 물과 다르지 않은 줄 안다면, 얼음을 버리고서 따로 물을 찾을 것이 없을 것이다.(처음~8분2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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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군금욕식무위리~ ; [금강경오가해]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함허득통 설의(說誼) 참고.
*무위(無爲) : 조작(造作)을 뜻하는 위(爲)가 없는 생멸변화가 없는 진리 그 자체를 말함. 곧 실상•열반•보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천차만별(千差萬別) ; 여러 가지 사물이 모두 차이가 있고 구별이 있음. 세상 사물이 한결같지 아니하고 각각 모습ㆍ모양이 다름을 이르는 말. ‘온갖 차별이 있는 모양·경계’의 뜻. 모든 경계.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고행(苦行) ;  깨달음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가지 고난을 겪으며 하는 수행.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유위(有爲, 산스크리트어: saṃskrta, 팔리어: savkhata)에서 위(爲)는 위작(爲作) · 조작(造作: 만들다)의 뜻으로, 유위는 만들어진 것, 조작된 것, 다수의 요소가 함께 작용된 것, 여러 인연이 함께 모여서 지은 것, 인연으로 말미암아 조작되는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또는 이렇게 하여 드러난 생성과 소멸의 세계, 즉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의 세계를 뜻한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 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흥망성쇠(興亡盛衰) ; 흥하고 망함과 성하고 쇠함. 곧 어떤 사물·현상이 생겨나서 소멸하는 전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사바세계(娑婆世界);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Posted by 닥공닥정
무상(無常)2014. 3. 28. 14:38

 

 

§ (게송) 사서순환난부한~ / 오욕락(五欲樂).

 

**송담스님(No.521)-1994년 1월 첫째일요법회(94.01.02)에서.(용521)


약 10분.

 


사서순환난부한(四序循環暖復寒)한데   미후심연육화촌(獼猴深戀六華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이성안색증무가(耳聲眼色曾無睱)한데   염염나지시사문(念念那知是死門)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사서순환난부한(四序循環暖復寒)한데, 춘하추동 사서(四序)가 돌고 돌아서 더웠다가 다시 추워졌다 그말이여.
미후심연육화촌(獼猴深戀六華村)이여. 원숭이는 깊이 육화촌(六華村)을 그리워하더라.
육화촌은-원숭이란 놈은 여름, 가을에 산에는 온갖 맛있는 과일이 모다 익을 때 그 맛있는 과일이 익었을 그때의 일을 그렇게 그리워하더라 그말이여. 날씨가 추워져 가지고 마땅히 먹을 만한 것이 그렇게 흔치 않으니까.

이성안색증무가(耳聲眼色曾無睱)여. 귀로 소리를 듣고 눈으로 모든 색을 보는데 생각 생각이 그 육화촌에 맛있는 과일 그 생각만을 하느라고 아무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어.
그래 가지고 행여나 이리 가면 맛있는 것이 있을까, 이리 가면 먹음직한 것이 있을까 하고.

염염나지시사문(念念那知是死門)이여. 생각 생각이 죽음의 문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춘하추동 사시절이라는 게 봄이 여름이 되고 여름이 가을이 되고 가을이 되면 추워져. 소한•대한을 지나면은 다시 또 입춘•우수가 되어서 계속해서 춘하추동 춘하추동 끝없이 이게 돌아가는데,
잔나비가 육화촌을 그리워한다 그 말은 우리의 심의식-우리의 마음을 갖다가,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우리의 심식(心識)을 잔나비에다가 비유해서 한 말인데,

우리의 심식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육창(六窓)을 통해서 귀로는 좋은 소리를 듣기를 바래고, 눈으로는 곱고 이쁜 것을 보고 싶어 하고, 코로는 맛이 좋은 향내를 맡고자 하고, 혀로는 맛있는 맛을 추구하고, 우리의 몸으로는 따뜻하고 시원하고 부드럽고 그 좋은 것을 항상 찾는다 그말이여.

우리의 생각으로는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는 모든 사람, 모든 일, 모든 것들을 그렇게 추구하는 것을 잔나비가 육화촌을 그리워한다고 비유해서 읊은 시다 그말이여.

우리 중생들은 항상 잔나비가 육화촌을 그리워하듯이, 우리는 육근(六根)을 통해서 끝없이 자기의 탐진치(貪瞋痴)와 오욕락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어.

오욕락(五欲樂)이라 하는 것은 재색식명수(財色食名壽)여.
재산이란 게 부(富)를 말하는 것이고, 색(色)이라 하는 것은 남녀 간의 이성을 그리워하는 것이고, 식(食)은 맛있는 음식, 명(名)에는 명예와 권리, 수(壽)는 수명인데, 안락한 것을 추구한다 그말이여.
우리가 인간이 돈을 벌고 공부를 하고, 뭐 끝없이 밖으로부터 무엇을 추구하는데 대충 분리를 해 보면, 재색식명수(財色食名壽)-오욕락(五欲樂)이다 그말이여.

그 오욕락을 구하기 위해서 그 어려서부터서 참 열심히 공부를 하고 밤잠을 자지 않고 가정교사를 들이고서 좋은 학교를 갈려고 한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오욕락을 추구하기 위해서 그런 거고.
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것도 재색식명수(財色食名壽) 오욕락을 획득을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지, 다른 것이 없다 그 말이여.

물론 조금 생각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국가다, 사회다, 세계평화다 이렇게 좋은 말을 하지만 오욕락을 벗어나지를 못한 거여 그게 다.

정말 오욕락을 벗어나서 인류를 생각하고 중생을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벌써 다른 거여 그게.
얼굴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어떠한 일을 당했을 때의 처신이 다 다르게 되어 있는 거여.

탐진치와 오욕락에 탁 뿌리가 깊이 박혀 가지고, 오욕락과 탐진치에다 뿌리를 박고 아무리 입으로 거룩한 소리를 해봤자 중대한 일을 당하면 사리사욕에 다 떨어져버리고 마는 거여.

그래노니 경제나 사회나 교육이나 사법이나 정치나 회사나 일체가, 그 오욕락을 추구하는 사리사욕과 탐진치 삼독 때문에 형무소가 필요하고 사정(司正)이 필요하고,
나아가서는 온 국가가 이렇게 복잡하고, 온 세계가 싸움을 끝없는 전쟁을 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처음~9분2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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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사서순환난부한~’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峯和尙廣錄卷第三十'에서 '警世二十二首' 게송 참고.
*심식(心識) ; ①영혼. ②마음. ③모든 차별적 인식. ④심의식(心意識). ⑤단순히 식(識)을 말함.
*육창일원(六窓一猿) ; 여섯 창문이 있는 집에 한 마리의 원숭이가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이리저리 여섯 개의 창문으로 얼굴을 내민다는 비유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육창(六窓)에 비유하고 심식(心識)을 한 마리의 원숭이에 비유한 것.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