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 바른 스승이란? / 전강 스님의 용맹정진, 만공 스님과의 법거량, 인가 / 추호도 의심없이 공안을 바로 봐야 / 진실로 시간을 아껴서 정진해라.

 

참선을 나가는 데에는 바른 스승을 구해야 한다. 어떠한 것이 바른 스승이냐? 실오실참(實悟實參), 실답게 닦아 가지고, 실다웁게 깨달라서 바른 선지식의 인가(印可) 맞아야 한다.

어떻게 발심(發心) 하고 () 나서 밤이나 낮이나 철봉대를 붙잡고 정진을 하신 가운데(상기병으로 피를 너무 쏟아서 힘이 없어서 앉으면 잠이 오고 정진할 수가 없어서, 안 잘려고 철봉을 붙잡고 정진을 하심),

개천에서무무(無無) 역무(亦無)어떤 도반들이 그런 소리를 지르면서, 가재를 잡으면서 모다 그런 소리가 들려온 것을 보고서 그때 확철대오를 하셨다.

 

우리가 근기(根機) 수승하지를 못해서 중근기, 하근기라 하더라도 바른 스승을 만나 가지고 올바르게 지도를 받고, 그래서 올바르게 수행을 한다고 하면은 누구나 자기에게 있는참나 깨달라서 생사해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나기 어려운 사람의 몸을 받어 가지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나 가지고, 만나기 어려운 선지식을 만나 가지고도 바로 믿지 못하고 갈팡질팡, 그렁저렁 하다가 아까운 세월 보내고, 마지막 죽어 때에 천만 가슴을 쥐어뜯고, 눈물을 흘리면서 후회를 한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공안에 대해서 낱낱이 추호도 의심없이 공안을 바로 봐야 자기의 생사(生死) 면하는 것이며, 불조의 면목(面目) 보는 것이며, 우주의 근본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생사해탈을 해서 불조(佛祖) 지혜목숨, 혜명(慧命) 잇게 되는 것입니다.

시간은 잠시도 머물러지 아니하고 1, 1 이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바로 우리가 사형집행 시간에 도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잠시도 망각을 해서는 아니되겠습니다. 진실로 1, 1 시간을 아끼는 사람이라야 영원한 생사해탈을 기약할 수가 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송담스님(No.026)—76 동지법문 (76.12.22) (용026)

 

(1) 약 21분.

(2) 약 4분.

 

(1)------------------

 

참선을 나가는 데에는 바른 스승을 구해야 한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떠한 것이 바른 스승이냐? 실오실참(實悟實參), 실답게 닦아 가지고 실다웁게 깨달라서 바른 선지식(善知識) 인가(印可) 맞아야 한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목구녕에서 선지피가 덩어리 덩어리 맺혀서 쏟아지도록, 그렇게 말로써 형언할 없는 그러한 고행정진을 하셔 가지고, 급기야 확철대오를 가지고서 한국의 6대선지식으로부터서 법문답(法問答) 가지고 인가를 받으셨습니다.

 

조실 스님께서 받으신 인가는오냐, 옳게 알았다. 니가 견성을 했다이렇게 인가를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선지식과 법문답을 가지고 선지식이 조실 스님의 깨달은 증득한 힘과 역량이 너무나도 투철하시고 확철대오를 하셨기 때문에 어떠한 선지식도 조실 스님의 밝고 투철한 깨달은 경지에 대해서 무릎을 꿇지 않코서는 배기지 못했던 것입니다. “옳다, 니가 옳다하고 말씀하실 겨를 조차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러한 다섯 분의 선지식의 인가를 받어 가지고 마지막에 만공 큰스님한테 가지고 만공 큰스님과 법거량(法擧揚) 하셨는데, 만공 스님께서는 중요한 꼬타리를 ! 붙잡으셔 가지고 조실 스님을 인정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거기에서 처음에는 조실 스님께서는 만공 스님께서나를 떠볼라고, 시험해 볼라고 이러시지 않나?’하고 처음에는 범연(泛然) 그렇게 생각하셨다가 두고 두고 인정(認定) 하시고, 놀리시고, 무시를 하시고, 그러시기 때문에,

선지식이 학인(學人) 그러실 수는 없다. 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기 때문에 저러신 것이지, 어찌 선지식으로서 깨달은 학인이 온다면 분명히 깨달은 사람을 깨달았다고 하실 일이지, 절대로 거짓말하시거나, 후배를 농락하실 리는 없다

 

그래 가지고 거기서 생각을 돌이켜 가지고, 철봉대(鐵棒臺) 붙잡고 날새기 공부를 하시면서 그때 하신 화두가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였습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화두를 철봉을 붙잡고 밤이슬을 맞으면서 며칠을 두고 용맹정진을 끝에 확철대오를 하셨던 것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철봉을 잡고, 남이야 개천가에서 히히닥거리고 장난을 하거나, 잡담을 하거나 그런 것도 불구하고, 어떻게 발심(發心) 하고 () 나서 철봉대를 붙잡고 정진을 하신 가운데,

개천에서무무(無無) 역무(亦無)어떤 도반들이 그런 소리를 지르면서, 가재를 잡으면서 모다 그런 소리가 들려온 것을 보고서 그때 확철대오를 하셨는데,

 

즉시에 무슨 공안(公案) 도리가 나타났냐 하면은 마조(馬祖) 원상(圓相),

마조 스님이 둥그러미를 땅에다가 그려 놓고서 안에 들어가도 치고,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친다이렇게 어떠한 스님에게 법을 물었습니다. 스님이 둥그러미 안에 뛰어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은 가지고 계시던 주장자로 스님을 방맹이 쳤습니다.

맞은 스님이 말이, 조주 스님을 ! 쳐다보면서스님은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조주 스님은 아무 말씀도 하시고,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공안에 대해서 조실 스님께서는 여지없이 간파(看破)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분이 솟구쳐 나고, 어떻게 말로써 표현할 없는 분이 나던지,

그길로조실로 계시는 만공 스님께서는 이미 보월 스님에게 조실 자리를 물려주시고 당신께서는 금선대(金仙臺) 은퇴하고 계실 때입니다. 증사(證師) 그렇게 금선대에 계시고, 조실에는 만공 스님의 수제자이신 보월 스님께서 조실로 계실 ,

 

조실방에 뛰어 들어가서 보월 조실 스님 앞에다가 원상 떠억 그려 놓고 안에 들어가도 치고, 안에 들어가지 해도 친다고 하셨으니, 말씀 일러주십시오보월 스님께서 원상을 손으로 이리 뭉개버리셨습니다.

그러니까! 천하 선지식으로서 학자를, 이렇게 천하 학자를 죽일 수가 있습니까. 이래 가지고 조실에 앉어 계실 수가 있습니까?” 고함을 지르면서 그러니까, 사람 보소, 사람 !” 그리고 어리둥절하실 ,

 

그길로 금선대에 쫓아 내려가서 만공 스님 앞에 가서제가 조실 스님을 매장(埋葬) 하고 왔습니다! 세상에 조실에 앉아서 천하 학인의 눈을 그렇게 멀릴 수가 있습니까?” 이래 가지고,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셨죠.

 

그렇게 해서 전강 조실 스님은 만공 스님께 정식으로 다시 그렇게 해서어디 안에 일러봐라그러니까큰스님께는 이르겠습니다.”

 

옆에 용담 스님이라고 하는, 여러분이 지금 선가귀감(禪家龜鑑) 번역한 것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마는, 처음에 용담 스님께서 선가귀감을 번역을 하신 것입니다. 그걸 번역을 했던 것을 근본으로 해서 법정 스님이 새로 교정을 가지고 내놓은 것이 요새 발간해 나오는 선가귀감입니다.

처음에 번역했던 용담 스님이 전강 조실 스님과는 아주 다정한 도반이었습니다.

 

마치 용담 스님이 옆에 계시는데, 그러면용담, 자네가 묻소그래서 용담 스님이 원상을 떠억 그려 놓고서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치노라.” 그러니까는 조실 스님께서 거기서 터억 일르셨습니다. 이것은 설파(說破) 되기 때문에 조실 스님께서는 말씀을 하시지 했습니다.

 

그리고 밖에 처음에 만공 스님한테 가서 절을 하니까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전강 스님께서)주먹을 터억 내미니까는허어, 습기를 면치 못했구나. 아니다! 견성이 아니다. 견성이 아니다이렇게 부인을 하셨습니다.

그래서스님, 그때 법을 다시 물어 주십시요그랬던 것입니다. 그러니까허허허, 보게.”

 

이렇게 해서 그날부터서는 모든 공안에 대해서 정식으로 탁마(琢磨) 허락을 하셔 가지고, 천칠백 공안 낱낱이 만공 스님과 서로 탁마를 가지고,

결국은 만공 스님께서허허, 학자(學者) 선지식 똥구녁에 들어가기도 하고, 선지식이 학자 똥구녁에도 들어간 것일세이렇게 해서 모든 탁마를 마치시고,

 

그래 가지고 조실 스님을 하직을 하고 팔도에 자유자재로 다니시면서 오후보림(悟後保任) 가지고, 말년에 이르러서 용화사 법보선원에서 말년 회향을 우리를 지도하시면서 마지막 열반하신 그날까지 법상에 올라가셔서 설법을 주시고 열반(涅槃) 드셨던 것입니다.


그러한실오실참(實悟實參) 가지고 바른 선지식의 인가를 맞아야, 선지식이라야 비로소 우리가 목숨 바쳐 의지해서 공부에, 참선에 지도를 받을 있는 바른 스승이다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지식은, 우리의 도를 지도해 주실 선지식은 무엇과 같으냐? 하면은 목수(木手)에다가 비교할 수가 있고, 도를 배우는 학자는 재목(材木)에다가 비유할 수가 있습니다.

 

재목도 좋은데다가 좋은 훌륭한 목수를 만나야 훌륭한 집을 지을 수가 있습니다. 어떠한 물건을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재목이 좋고 훌륭한 재목이라 하더라도 목수를서투르고, 경솔하고, 지혜롭지 못한 서투른 목수를 만나 놓으면은 아까운 재목을 버리고 말아 버리는 것입니다. 설사 재목이 조금 좋은 재목이라 하더라도 훌륭한 목수를 만나 놓으며는 상당한 효과를 나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근기(根機) 수승하지를 못해서 중근기, 하근기라 하더라도 바른 스승을 만나 가지고 올바르게 지도를 받고, 그래서 올바르게 수행을 한다고 하면은 누구나 자기에게 있는참나 깨달라서 생사해탈을 수가 있는 것이지마는,

우리 근기가 비교적 순수하고, 근기가 수승하다 하더라도 바른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자기는 영원히 깨닫기커녕은 삿된 도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바른 스승은 깨달은 바가 분명하면 되는 것입니다.

 

공자님 말씀에소인(小人) 유재자다(有才者多)이라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소인놈 가운데 재주있는 놈이 많느니라이런 말씀을 공자님이 하셨습니다.

재주가 있어 가지고, 잘하고 똑똑하고, 영리하고 수단 좋고, 이러한 사람이 소인놈 가운데에소인(小人) 유교에서는 군자(君子) 상대말로 사용합니다. ‘군자가 아닌 소인 속에 재주있는 사람이 많다이렇게 공자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불가(佛家)에도세지총명(世智聰明), 세상에서 말하는 지혜가 있고, 총명한 사람은 도에 들어오기가 어렵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바른 선지식을 만나냐, 만나느냐, 만나 가지고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서 내가 나를 깨달라서 생사해탈하는 바른 길에 들어갈 있느냐, 없느냐의 판가름이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만나기 어려운 사람의 몸을 받어 가지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나 가지고, 만나기 어려운 선지식을 만나 가지고도 바로 믿지 못하고 갈팡질팡, 그렁저렁 하다가 아까운 세월 보내고, 마지막 죽어 때에 천만 가슴을 쥐어뜯고, 눈물을 흘리면서 후회를 한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 남전 스님이 고양이를 칼로 버리는남전참묘(南泉斬猫)’라고 하는 공안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고,

다음에는 부처님께서 열반 하실 때에 제자들을 향해서내가 열반을 했다고 해도 나의 제자가 아니요, 내가 열반을 하지 아니했다고 해도 나의 제자가 아니니, 일러라 하신 가지 공안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째서 남전 스님이 고양이를 죽였냐? 남전 스님 회상에 동당(東堂) 대중과 서당(西堂)—지금 용화사에도 선방에서는 비구 스님네들이 참선을 하시고, 저쪽 작은 선방에서는 보살님네들이 거기서 참선을 하고 계십니다마는 그리고 여기 웃절에도 분이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고 계십니다마는,

 

남전 스님 회상에서도 동당, 서당 노나서 정진을 하셔서 고양이 마리가 있었는데, 동당에서는 고양이가 동당 고양이다 서당 대중들은그것은 서당의 고양이다 가지고, 고양이 마리를 가지고 서로 싸우게 되었습니다.

그때 조실 스님으로 계시는 남전 스님께서고양이를 이리 가져오너라 가지고 고양이 목을 처억 추켜들고일러라! 이르지 못하면은, 한마디 바로 이르지 못하면은 고양이를 죽일 것이다

 

동당 대중, 서당 대중이 전부 고양이를 가지고 싸우다가, 덩둘허니 그걸 쳐다보고는 입이 붙어 버렸습니다. 아무도 한마디도 이르지를 못했습니다. 남전 스님은 고양이 목을 !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자 남전 스님의 제자이신 조주(趙州) 스님우리가 화두로 공부하고 있는 무자(無字) 판치생모가 전부 조주 스님으로부터 나온 화두입니다. 조주 스님이 떠억 들어오셨습니다.

 

그러니까 남전 스님께서아까 약허약허 해서 고양이를 들고 일르라고 하자, 대중이 아무도 일르지 못했다. 그래서 고양이를 죽였는데, ! 한마디 일러라그러니까 조주 스님이 신고 있던 신을 벗어서 머리에다가 이고서 나갔습니다.

나가니깐 남전 스님께서 하신 말씀이어허, 네가 있었으면 고양이를 살릴 했구나이렇게 내용의 법문을 조실 스님께서는 대중을 향해서 물으셨고,

 

다음에 부처님 열반 시에 부처님이 열반하실라고 하니까, 대중들이 땅을 치고 우는 사람, 땅에다 머리를 짖쳐서 피를 흘리면서 통곡을 하는 사람, 몸부림을 사람, 비단 사람뿐만이 아니라 거기에 모였던 코끼리, 짐승까지라도 슬픔에 잠기지 아니한 것이 없었고,

거기에 사라쌍수(沙羅雙樹), 부처님께서는 사라수라고 하는 나무가 나란히 있는 사이에 자리를 펴시고 거기에서 열반에 드셨는데, 나무를 비롯한 근처의 , 파란 이파리가 일시에 백색으로 변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학수(鶴樹), 학같이 하얀 나무라, 학수쌍존(鶴樹雙尊)이라고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마는 하늘의 해가 무색해지고, 산에 나무 이파리 흰빛으로 변했고 짐승, 사람 모든 것이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때에내가 죽는다고, 열반에 든다고 해도 나의 제자가 아니요, 내가 열반에 들지 아니했다 해도 제자가 아니니, 일러라 공안을 조실 스님께서는 대중을 향해서 물으셨습니다.

 

이러한 공안에 대해서 낱낱이 추호도 의심없이 공안을 바로 봐야 자기의 생사(生死) 면하는 것이며, 불조의 면목(面目) 보는 것이며, 우주의 근본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생사해탈(生死解脫) 해서 불조(佛祖) 지혜목숨, 혜명(慧命) 잇게 되는 것입니다.(153~3552)

 

 

 

 

(2)------------------


오늘 조실 스님께서 주신 법문(法門) 너무나도 위대하고, 깊고, 기가 맥힌 그러헌 법문을 고루고루 주셨습니다.

동짓날을 기해서 오늘부터서 하루에 1분씩 낮의 시간이 길어지고, 밤의 시간이 짧아지는 것입니다. 내년에 춘분이 돌아올 때까지 그때 가서 비로서 밤과 낮이 가지런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간은 잠시도 머물러지 아니하고 1, 1 이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도달을 해야 마지막 죽음의 시간이우리의 목구녁에서 숨이 ! 끊어질 시간이 1, 1 다가오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을 하고 1, 1 지내가는 시간을 어찌 등한히 지낼 수가 있느냐 말씀입니다.

시간이 바로 우리가 사형집행 시간에 도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잠시도 망각을 해서는 아니되겠습니다.

 

진실로 1, 1 시간을 아끼는 사람이라야 영원한 생사해탈을 기약할 수가 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지금은 백일기도 중간이요, 동안거 결제 기간입니다.

결제에 참여하신 보살님은 말할 것도 없고,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모든 신남신녀 여러분들께서도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오고가는 길거리에서, 언제 어데서 생각, 생각을 돌이켜서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간절히, 간절히 화두를 들고, 참나를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정진을 계속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돌아오는 16 날은 우리에게 그렇게 간곡히 정법을 설해 주시던 조실 스님의 생신일입니다. 조촐히 그날을 추모하는 법회를 갖고저 합니다. 있으면 참여하셔서, 그때 조실 스님의 법문 한편을 듣도록... 음력 16일입니다. 이달이죠!

그러면 오늘은 이만 말씀을 드리고 다음 법요식을 진행하겠습니다.(3553~3916)(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인가(印可 도장 , 옳을·인정할 )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선지피 ; ①선지. 짐승을 잡아 죽여서 받은 . 식어서 굳어 덩어리진 피를 말한다. ②다쳐서 선지처럼 쏟아져 나오는 .

*법문답(法問答) ; 법거량(法擧揚).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객(禪客) 사이에 주고받는 () 대한 문답.

*꼬타리 ; ‘꼬투리(어떤 이야기나 사건의 실마리)’ 사투리.

*범연(泛然) ; ①두드러진 데가 없이 평범하게. ②특별한 관심이 없어 데면데면하게.

*학인(學人) ;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 성자. 수행승. () 닦는 수행승.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철봉대(鐵棒臺) ; 체육 도구의 하나. 기둥 사이에 일정한 높이로 쇠막대를 평행하게 걸쳐 놓은 기구.

*날새기 ; 저녁, 밤을 지나 날이 밝아 때까지 자지 않는 .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 發起菩提心 발기보리심, 發菩提心 발보리심.

*(/忿)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 푸른 ,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 참의(叅意)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5 165원상(圓相)’ 공안.

馬祖因見僧參  畫一圓相云  入也打不入也打  僧便入  師便打  僧云和尙打某甲不得  靠却拄杖  休去.

마조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하고 물으시니, 스님이 원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스님을 후려치니까, 스님이 말하기를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 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셨습니다.

 

[참고] 송담스님(No.282)-86 1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그려 놓고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공안을 물은데 어떤 스님이 안에 들어갔어.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스님을 한대 후려쳤습니다. 치니까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 했습니다. 아무 없이 그냥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원상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공안에 스님이 뛰어들어가는 도리는 무슨 도리며,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방을 후려치니까 스님이 () 맞고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스님이 그렇게 말한 데에 마조 스님이 아무 말없이 저리 가버렸으니...

이러한 공안에 확연(確然)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공안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라 하는데, 이것이 부처님과 조사가 씹다가 버린, 먹다가 버린 찌꺼기에 지나지 못한 것이기는 하나, 이러한 공안이 바로 학자(學者) 소견(所見) 가려보는 데에는 좋은 시금석(試金石) 되는 것입니다.

*마조(馬祖) 스님, 만공 스님, 보월 스님 ; 분류역대 스님 약력참고.

*간파하다(看破--) ; 속내(드러나지 않은 일이나 숨겨진 마음) 꿰뚫어 알아차리다.

*용담(龍潭) 스님 ; 생몰년 미상. 성은 (), 법명은 초안(初眼)이며, 용담은 법호이다.

한용운(韓龍雲) 스님의 수제자로, 덕숭산 만공(滿空) 선사의 회상에서 지도를 받아 득의처(得意處) 인증(認證)받았다. 《선가구감》 연구에 골몰하여 완벽한 번역과 풀이를 위해 정성을 다하였다.

또한 여러 고승들과 함께 「불교혁신총동맹」을 결성하여 불교혁신운동을 전개하였고, 「선학원」 부이사장, 「해동역경원」 부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8 419, 신의주에서 병원을 하고 있던 동생을 만나겠다며 김구 선생과 함께 「정당사회단체 대표자연석회의」에 참석하러 월북하였으나, 소식이 단절되었다.

—[선가구감] (용담 스님 역주 | 효림) 편역자 소개에서.

*선가귀감(禪家龜鑑) ; 조선 서산대사가 경전과 어록 중에서 수행의 지침이 선종(禪宗) 중심으로가장 요긴하고도 절실한 부분을 가려 뽑은 불교 개론서.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선가귀감 있다.

*설파(說破) ; 어떤 내용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말함.

*탁마(琢磨 , )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②옥이나 따위를 쪼고 .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

*오후보림(悟後保任) ;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 습기(習氣) 제하고 ()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공부. 장양성태(長養聖胎).

[참고] 보조국사 지눌(1158~1210) <수심결修心訣>에서.

頓悟者  凡夫迷時  四大爲身  妄想爲心  不知自性是眞法身  不知自己靈知是眞佛也  心外覓佛  波波浪走  忽被善知識  指示入路  一念廻光  見自本性  而此性地  原無煩惱  無漏智性  本自具足  卽與諸佛  分毫不殊  故云頓悟也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 범부(凡夫) 미혹했을 사대(四大) 몸이라 하고 망상(妄想) 마음이라 하여,

자기의 성품(自性) 법신(法身) 모르고 자기의 신령스런 (靈知) ()부처인 알지 못하여,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물결따라 여기저기 헤매다가

홀연히 선지식(善知識) 지시로 바른 길에 들어가 생각 돌이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면,

성품(性品)자리에는 원래(原來) 번뇌(煩惱) 없고, 무루(無漏) 지혜 성품이 본래(本來) 스스로 구족(具足)하여 모든 부처님과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으니 그러므로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라고 한다.

 

漸修者  雖悟本性 與佛無殊  無始習氣  卒難頓除故  依悟而修  漸熏功成  長養聖胎  久久成聖   云漸修也 比如孩子初生之日  諸根具足  與他無異    其力未充  頗經歲月  方始成人

 

점수(漸修, 차츰 닦음), 비록 본래 성품(本性)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으나 오랫동안 익혀온 습기(習氣) 갑자기 모두 없애기는 어려우므로,

깨달음에 의지하여 닦아 점차로 익혀 () 이루어 성인(聖人) () 길러 양성하면, 오랜 동안을 지나 성인(聖人) 이루게 되므로, 점수(漸修, 점차로 닦음)라고 한다.

비유(比喩)하면, 마치 어린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모든 기관(諸根) 갖추어 있음은 남과 다르지 않지만, 힘이 아직 충실하지 못하므로 제법 세월(歲月) 지난 뒤에야 비로소 어른(成人) 되는 것과 같다.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 집착(執着)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덩둘하다 ; ①매우 둔하고 어리석다. ②어리둥절하여 멍하다.

*약허약허 ; 약하(若何)하다여하(如何)하다의 높임 . 여하(如何)하다 : 어떠하다(어떻다, 의견·성질·형편·상태 따위가 어찌 되어 있다).

*사라쌍수(沙羅雙樹) : 북부 인도의 구시성(拘尸城 kuśinagara) 서북쪽으로 흐르는 발제하(跋提河 Ajitavati) 물가, 사라수 여덟 대가 둘씩 마주 있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사라쌍수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고 오른쪽 겨드랑이를 밑으로 해서 입멸하시니, 숲이 하얗게 변하였다. 그리하여 학의 (鶴林, 鶴樹)이라고도 하게 되었다.

*면목(面目 , )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 정법(正法) 명맥(命脈). ②법신(法身)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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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신수기도)2015. 2. 10. 14:28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408) 선원에서 왜 기도를 하냐? / 삼재소멸, 소원성취는 정법을 믿고 참선 정진이 최고 / 기도—참회—마음청정—자비·지혜심 / 불방일(不放逸)이 가장 좋은 정진.

 

기도나, 염불이나, 경을 읽는 것이나, 주력(呪力)이나 그런 것도 올바른 방법으로 지극정성(至極精誠)이 하면 참선문(參禪門)과 결국에 가서는 일맥상통(通)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법도 삿된 사람이 설하면 사법(邪法)이 되고, 삿된 법도 정법을 지닌 사람이 설하면 정법이 된다」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항상 성성(惺惺)하게 화두를 잡도리를 하면 그것이 바로 불방일(不放逸)이고 그것이 바로 정진이여. 몸과 마음을 구속하고, 강제로 어거지로 쪄 누르고 구속하고 그런 것이 아니여.

 

일심으로 바르게 한결같이 기도를 하고 정진을 하면 자연히 마음이 청정해지니까, 인아상(人我相)이 떨어지고 보면 '내'라는 생각이 없고, 전부(部)가 '나'요 '내'가 전부다. 그러니 나를 위해서 남을 해꼬자 할 생각이 있을 수가 없고, 남이 고통 하는 것을 보면 자연히 우러나온 마음은 자비심(慈悲心)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송담스님(No.408)—90년 신수기도 입재(90.01.29) (용408)

 

(1) 약 22분.

(2) 약 8분.

 

 

(1)------------------

 

오늘 경오년 정월 초삼일 신수기도, 7일 기도의 입재(入齋) 법요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방금 조실 스님의 기도 입재에 대한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경청을 했습니다.  

 

조실 스님의 법문을 오늘 여러분께서 잘 들으셔서 아시겠습니다마는,

기도는, 어떻게 해서 그 기도를 성취를 하느냐? 업장(業障)을 소멸하고 소원을 성취하는 기도는 정법(正法)을 믿고 정법을 실천함으로 해서 우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하는 그러한 요지(要旨)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는 사람에게 거기에는 어떠한 마장(魔障)도 거기에는 붙지를 못합니다.

계행(戒行)을 지키면서 정법을 믿는 사람은 25신장(神將)이, 선신(善神)이 항상 전후좌우로 옹호를 하기 때문에 삼재(三災)와 일체 마장이 거기에는 붙지를 못해.

 

그러니 삼재를 소멸하고 소원을 성취하는 데에는 철저하게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을 하는 것이 최고다. 

 

금년은 해·묘·미(亥·卯·未), 돼지띠와 토끼띠와 또 염소띠, 해·묘·미생이 금년에는 '앉은삼재'여. 작년에는 '들삼재'고 올해는 '앉은삼재'고, 내년에는 '날삼재'인데,

 

이 삼재가 들면 이상하게 여러 가지 일이 자꾸 꼬이고, 뜻밖에 일이 사고가 일어나고 자꾸 무엇을 하면은 장애가 붙고 한다고,

옛날부터서 삼재가 닥쳐온 사람은 3년 동안을 매사에 있어서 조심을 하고 항상 기도를 하고 정성을 들이고, 모든 일에 있어서 근신(愼)을 하고 그러한 것이 일반 사람에게 널리 알려져서 있습니다.

 

그래서 전국 방방곡곡에 크고 작은 사찰에서는 이 정초(正初)에는 꼭 신수기도를 합니다.

우리 용화선원에서도 조실 스님 계실 때부터 쭈욱 정초에 이렇게 신수기도를 하는데, ‘어찌 선원(禪院)에서 기도를 하느냐?’ 이러한 정법을 철저히 믿는 그러한 분들은 혹 그러한 질문을 하시는 수가 있습니다.

 

‘기도는 기복불교(祈福佛敎)에 속한 것이지, 어찌 그것이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권장할 만한 일이겠느냐?’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과연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기도나, 염불이나, 경을 읽는 것이나, 주력(呪力)이나 그런 것도 올바른 방법으로 지극정성(至極精誠)이 하면 참선문(參禪門)과 결국에 가서는 일맥상통(通)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정법도 삿된 사람이 설하면 사법(邪法)이 되고, 삿된 법도 정법을 지닌 사람이 설하면 정법이 된다」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비록 이 기도도, 삿된 사람이 기도를 하면 그 기도가 사법(邪法)이 되고, 정법을 믿고 정법의 사상을 가진 사람이 기도를 하면 그 기도도 정법이 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칼이지만 그 칼을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외적(敵)에게 휘두르면 그 칼은 국가와 민족을 지키는 정의(義)의 칼이 되는 것이고,

바로 그 좋은 칼이지만, 정의의 칼이지만, 도적이나 악인이 휘두르면 그 칼은 흉기로 변해 버리고마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설사 그동안에 정법을 믿고 참선을 하신 분들도 오늘부터서 7일간, 초아흐레까지 7일간 이 기도 중에는 열심히 기도를 하시되,

첫째, 청정(清淨)한 마음으로 또 바른 마음으로 또 정성스런 마음으로 한결같은 마음으로 해서 7일간을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하시면 그 기도는 지혜의 눈을 뜨고 자비를 실천할 수 있는 그런 마음 경계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왜 기도를 지극정성으로 하면 지혜로운 마음, 자비스러운 마음이 우러나냐?’하면, 지극정성으로 하다보면 내 마음이 ‘내다’ ‘부처님이다’ ‘남이다’하는 그러한 인아상(人我相)이 뚝 떨어져 버려.

 

그리고 그러기 때문에 기도를 열심히 하다 보면은 그렇게 하염없이 눈물이 나오는 수가 있어. 왜 나오냐?

자기가 그동안에 지은 죄에 대한 마음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참회의 눈물일 수도 있고, 그동안에 남편을 원망하고 또 시부모를 원망하고 또 다른 친척이나 친구,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그러한 생각이,

 

기도를 함으로 해서 ‘다 그 원인이 자기가 전생으로부터 지은 업(業)으로 인해서 이렇게 된 것이지 어찌 상대방에게 그 모든 허물을 갖다가 전가(轉嫁)시킬 수가 있느냐? 정말 내가 지은 업이 그렇게 깊어서 그랬다’고 하는,

솟구쳐 오르는 뜨거운 참회의 눈물이 나온다 그말이여. 그러고 난 뒤는 그렇게도 원망스럽고 미웠던 사람이 하나도 미운 생각이 없어져.

 

그러한 기도는 바로 참회(懺悔)로 이어지고,

그 참회로 인해서 내 마음이 정말 청정해지기 때문에, 마음이 청정해지면 거기서 나오는 모든 마음은 자비로운 마음밖에는 나올 것이 없고, 거기서 나오는 마음은 지혜로운 마음일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 년에 한번쯤은 우리 법보제자(法寶弟子),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들께서도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하신 것도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물론 참선을 해서 여러 해 해가지고, 화두 한번 터억 거각(擧却)을 함으로써 일체 죄업이 거기에 붙지를 못하고 바로 불보살의 청정한 마음과 찰나간에 계합(契合)이 될 정도로 정진이 잘된 사람에게는,

구태여 뭐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아미타불을 부르고 무슨 기도를 할 것이 없겠습니다마는,

 

우리의 정진이 그러한 순숙한 경지에까지 도달하지 못한 분상(分上)에는 일 년에 한번쯤은 정성스럽게 기도를 한 것도 뜻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어떤 사람이 평소에 착한 마음을 가지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그리고 열심히 또 직장에 나가서 일을 하고 그런데 우연히 넘어져 가지고 팔이 부러졌습니다.

그래서 간신히 치료를 받아가지고 팔이 나으니까 이제는 해소병(病)이 생겨 가지고 까닭 없이 기침이 나오고 해가지고 여러 달을 고생하다가 또 그걸 간신히 나았습니다.

그놈을 겨우 나으니까 이제는 몸이 염증이 생기고 피부병이 생겨 가지고 백약(百藥)이 무효여.

 

그래서 ‘어느 절 훌륭한 스님이 계시다’고 해서 거기를 찾아갔더니, “그대는 전생의 업이 많아서 업으로 인해서 그렇다. 그러니 지장경을 많이 읽고 지장보살을 많이 불러라”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그동안에 ‘지장경을 좀 열심히 읽고 그래도 병이 안 낫는다’고 어제 찾아 왔습니다.

찾아와서 “대관절 어떻게 하면 이 병을 나을 수 있으며, 업이 있다니 어떻게 무슨 전생에 무슨 업을 지어 가지고 하필 내가 이런 죄를 받게 됩니까?”

 

“그리고 그 스님 말씀하시기를 ‘좋은 일을 많이 하라’고 그러니 무슨 좋은 일을 해야겠습니까?”

이러한 질문을 와서—아주 청년이 얼굴이 부성 부성하니 부어가지고, 온 몸뚱이가 투두룩투두룩 하니 피부병이 생겨 가지고 와서—물었습니다.

 

과연 이 세상에 전생에 업 짓지 않은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선업(善業)도 업이요, 악업(惡業)도 업인데, 선과 악은 종이 한 장의 안팎과 같아서 ‘선(善) 한다’고 한 것이 때와 장소가 바뀌면 악(惡)이 될 수도 있고,

분명히 겉으로 보기에는 악(惡)인 것 같은데, 세월이 지나고 또 그 일을 깊이 검토해 보면 또 그것이 선(善)으로 개념이 바뀌어지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업이나 악업이나, 아상(我相), 유위(有爲)의 상(相)을 가지고 지으면 그것이 바로 장차 새로운 과보(果報)를 받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일을 많이 하라고, 그럼으로써 빨리 그 병이 나을 것이다”(하니까) 그런데,

“무엇이 좋은 일입니까?” 이렇게 질문을 한다 그말이여.

 

그래서 “좋은 일은—물론 방생(放生)을 한다든지,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주고 약을 준다던지, 모다 그런 좋은 일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누구나 알 수 있고 행하기 쉬운 좋은 일이라 하는 것은,

첫째, 남에게 해(害)를 끼치지 말어라. 큰일이나 작은 일이나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어라.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한 것이 그것이 바로 좋은 일이다.” 이렇게 일러 주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정진(精進), 정진하는데 가행정진(加行精進)하고 용맹정진(勇猛精進).

정진도 역시 ‘불방일(不放逸)—방일하지 아니한 것’이 가장 좋은 정진인 것입니다.

 

정진을 좀 열심히 하려면 밤잠을 덜자고, 밥을 적게 먹고, 그래가지고 몸뚱이를 갖다가 구속을 하고 알날신심(遏捺身心)해서 이렇게 하는 것으로써 가행정진이라고 생각하고 또 용맹정진이라고 대부분 생각합니다마는,

「가장 좋은 정진은 방일(放逸)하지 않는 것」이여.

 

한 생각, 한 동작,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항상 방일하지 않는—방일(放逸)이란 말은 화두(話頭)를 놓치고 경계(境界)에 팔려 나가고 그래가지고 게으른 생각이 나서 그럭저럭 지내는 것을 보통 방일이라고 하는데,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항상 성성(惺惺)하게 화두를 잡도리를 하면 그것이 바로 불방일(不放逸)이고 그것이 바로 정진이여. 몸과 마음을 구속하고, 강제로 어거지로 쪄 누르고 구속하고 그런 것이 아니여.

 

 

그래서 선(善)도 남을 해치지 아니하면 그것이 제일가는 선이요,

거기서 조금 더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가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남에게 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쓰는 것인데, 몸뚱이로 나의 기력을 써서, 실력을 써서 남을 도와 줄 수도 있고,

말 한마디라도 남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남을 위안을 해주고, 남의 고통을 덜어주도록 말을 자비스럽고 지혜로운 방편으로 말 한마디라도 해주는 것, 그것도 또한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여.

 

또 마음으로라도 항상 남이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 마음으로 그이를 위해서 축원 기도를 해주고 잘되기를 빌어주고 또 남이 잘한 일이 있으면 마음으로 같이 기뻐해주고 축복을 해 주는 것, 그것도 또한 좋은 일을 하는 것인데,

또 물질적으로 돈과 쌀이라든지 그밖에 그런 것을 베풀고 그런 것도 또한 착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으나,

 

아까 조실 스님 말씀에 ’모두가 다, 지옥고 받고 있는 모든 중생들도 전부 나의 부모요,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다 나의 가족이요, 전부 동시에 그것이 바로 내 몸뚱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마는,

일심으로 바르게 한결같이 기도를 하고 정진을 하면 자연히 마음이 청정해지니까, 인아상(人我相)이 떨어지고 보면 '내'라는 생각이 없고, 전부(部)가 '나'요 '내'가 전부다 그말이여.

 

그러니 나를 위해서 남을 해꼬자 할 생각이 있을 수가 없고, 남이 고통 하는 것을 보면 자연히 우러나온 마음은 자비심(慈悲心)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산천초목 모다 그런 자연까지도 전부가 다 나의 집이요, 나의 가족이요, 나의 몸뚱이, 이러한 심경(境)이 그렇게 될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을 한 사람은 또 기도를 한 사람은 항상 모든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내 몸같이 자비로써 모두를 다 돌봐주고 섭수(受)하게 될 수 밖에는 없습니다.

심지어 들이나 산에를 가도 그 들국화가 같은 거, 산에 진달래 같은 거, 아무리 아름답게 피어 있어도 자기집에 있는 꽃병에 꽃꽂이를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을 꺾어 가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 생존시에 조실 스님과 같이 수행하던 용담 스님이라고 계셨는데,

그분은 양양 군수의 아들로, 출가해 가지고 조실 스님이 젊은 나이로 견성(見性)허신 그것을 보고서 굉장히 도반이면서 그렇게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참 존경하고 신(信)하고 그런데,

 

그분은 해방(解放)이 되자마자 선학원(禪學院)에서 「선가귀감」을 번역을 해서 간행한 그러한 공로가 있는 분인데,

‘이북(以北)으로 넘어가서 내가 공산당들을 전부 정법으로 제도를 한다’고 월북(北)을 해서 지금 소식을 못 듣고 있습니다마는 그분과 같이 산에를 놀러가셨습니다.

 

그런데 조실 스님은 젊어서 퍽 부잡(雜)하신 그런 성격도 가지셔서 산에 가면, 친구하고 같이 가면 그저 돌팔매질도 하고 돌도 떠둥글치고 이렇게 하면서 인자 즐겁게 노시는데,

 

하루는 이렇게 돌을 요렇게 뚝 떠둥글치니까, 그 용담 스님이란 분이,

“허어, 자네 견성을 한 도인(道人)이 어찌 그런 돌을 있는 고대로 놓고 보고 자연을 고대로 놓고 요렇게 봐야지, 그놈을 뚝 떠둥글치면 자연이 손상이 될 뿐만 아니라,

그 바위에 의지해서 개미도 살고, 벌레도 살고, 눈에 안 보이는 모든 짐승도 살고 있는데 그것을 떠둥글치게 되면은 그 벌레들이 집을 잃을 것이고 그 바위가 굴러가다가 또 많은 생명도 죽게 되지 않겠는가.

도인이면서 일체 중생을 제도해야 할 그런 숭고한 사상과 마음을 가지신 도인이 어찌 그러는가.”

 

아! 친구가 그 말을 한 것을 듣고서 ‘어떻게 마음으로 부끄러운 생각을 가지셨다’는 것입니다.

저에게 그 말씀을 하시면서 그 친구가 그렇게도 참 착하고 좋은 도반이였었는데, 그리고 그렇게 나를 신(信)하고 그 정법을 신하고 나를 아껴주던 친구가 이북으로 갔다고 하는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처음~21분32초)

 

 

 

 

 

 

 

(2)------------------

 

우리 도 닦는 사람들은 혹 산에를 가시더라도 행여나 꽃 같은 것을 꺾지 마시고, 무슨 바위 같은 그런 것을 떠둥글치거나 그러지 마시고 자연을 손상하는 그런 일이 없으셔야겠고,

또 가지고 가서 맛있게 잡숫고 휴지조각 같은 거, 깡통 같은 거, 병 같은 거, 더러운 것을 갖다가 거기다 골짜구니에다 함부로 버리거나 쑤셔넣지 말고, 반드시 오실 때는 그것을 싸가지고 오시도록.

 

그 조그마한 일이지만 그러한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 마음이 나아가서는 모든 이웃을 사랑하고, 우리의 겨레를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는 숭고한 생각과 바로 그것이 직결(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오천년 역사를 가진 참 위대한 국민이지마는 그동안에 외침을 당하고 남의 속국 노릇을 많이 하고 식민지 생활하면서 그러한 좋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그런지 고쳐야 할 점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백성들도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세계 어느 나라 민족보다도 더 잘할 수 있는 바탕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88년도에 올림픽을 우리가 치러내서 세계 각국에 다 찬사를 받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일 년도 못가서 그것이 다 깨져 버리고 무너지고 다 잃어버리고 잊어버렸습니다.

 

좋은 것은 계속해서 실천을 해나가고 옳지 못한 것은 즉각 그 자리에서 참회하고 소멸해버리는 그런 용기와 지혜를 가져야 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그 머지않아서 선진국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러한 때를 놓쳐버리고 다시 혼돈과 빈궁의 그런 국가로 전락하게 될는지, 그런 대단히 위급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 나라를 구제하는 길은 바로 온 국민이 내 가족이요, 심지어 지옥고 받고 있는—그 지옥속에 고통받는, 모든 죄짓고 지옥고 받고 있는 중생들이 전부 나의 부모라고 그런 마음이 든다면 자기가 몸담아 있는 그 회사와 공장은 바로 그것이 자기 회사고,

 

또 그 사장의 입장에서는 그 공장에서 일하는 그 많은 직원들 노동자들이 바로 내 아들이요 내 딸이요 내 조카요 내 가족이고 바로 또 내 몸뚱이라고 서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노사분규는 바로 오늘 하루 동안에 전부가 다 끝나고 해결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아니고서는 노사분규는 해결이 되지 아니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90년대에 세계에 일등 가는 국가가 되느냐? 이대로 아주 미개국으로 후진국으로 전락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아까 조실스님께서 말씀하신 그러한 지혜와 자비의 마음을 품느냐 안 품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동참하신 여러분께서는  당장 이 시간부터서 내 식구, 내 몸뚱이, 내 가족 그런 좁은 울타리 안에서의 그런 인아상(人我相)에 떨어지지 말고,

가슴을 활짝 열고 ‘온 국민이 다 내 가족이요, 온 세계가 다 내 몸뚱이요, 지옥 세계도 다 나의 선망부모(先亡父母)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시게 될 것을 부탁을 드립니다.

 

 

7일간 기도를 하고 초 9일날 기도회향이 있습니다마는 그때는 바로 입춘날입니다. 그리고 또 일요법회 날입니다. 일요법회는 오후 2시에 거행을 하는 것이 예입니다마는, 이번 일요법회는 11시에 일요법회와 기도 회향과 입춘법회까지 아울러서 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너무나 뜻 깊고 또 그런 날이기 때문에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 보왕삼매론이라고 여러번 번역되어서 널리 모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알려진 글을 제가 한문으로 된 원문을 도서관에서 어렵게 구해 가지고,

 

원문에 입각해서 잘 부족한 점을 보완해서 번역을 잘해 가지고 글씨는 잘 쓰지는 못하지만, 손수 써서 그래가지고 그것을 복사를 해가지고 그날 새해의 선물로 나눠드리고,

또 ‘입춘대길(入春大吉)’이라 한 것도 또 써서 복사를 해가지고 보시를 해드릴까 합니다.

 

그것을 갖다가 다 표구를 해서 보왕삼매론을 걸어 놓고,

이 보왕삼매론의 취지는 모든 역경(逆境)에서—내 마음에 맞지 않고, 나의 뜻에 맞지 않는 그런 어려움 속에서,

거기에서 지혜와 자비로서 그것을 극복하고 나아가서는 구경(究竟)의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그런 아주 적극적인 수행 방법이요, 해탈(解脫)로 나아가는 묘한 법문(法門)입니다.

 

이 신수기도에 동참하시고 또 회향 때, 회향 법회에 참석하신 분께는 한 분도 빠짐없이 다 나눠드리려고 합니다. 그날을 그렇게 기다리시고 일주일 동안을 어쨌든지 열심히 기도를 해서 기도 성취하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21분33초~29분45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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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재(入齋) ; 재(齋)를 시작하는 일. 또는 그 의식.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 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요지(要旨)이나  따위에서 핵심이 되는 중요한 내용.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말. [참고]헤살;남의 일이 잘 안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신장(神將) ; 불법(佛法)을 보호하는 신장. 또는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선신(善神) ; 불법(佛法)과 그것을 믿는 이들을 보호하는 신.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도병(刀兵-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 채소가 익지 않는 근(), 과일이 익지 않는 황()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이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를,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 송담스님(No.258)-1985년(을축년) 신수기도입재(1985.02.22) 법문에서.
〇삼재가 들으신 분뿐만이 아니라 삼재가 안 들으신 모든 사부대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앙(災殃)은 언제나 우리에게 닥아 올 수가 있고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삼재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그 근본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 삼재가 붙을 수가 없고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마음이 있어서 그 마음으로 부터 끊임없는 파도가 파도치고 있기 때문에 삼재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〇대관절 이 삼재라고 하는 것이 왜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있는 것이냐?
태어난 해에 따라 차례차례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삼재가 오느냐 하는 것은,
이것은 음양오행의 술가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옛날부터서 우리의 생활 경험을 통해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삼재가 든 사람은 항시 불보살과 성현께 기도를 하고, 또 항시 3년 동안 근신을 하고,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각별히 조심을 해서,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 있어서 근신하고, 지혜롭고, 참을성 있게 그렇게 조심을 해 나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〇생활은 여전히 해 가되 ‘어떻게 근신을 하고 어떻게 조심을 하느냐’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불법을 믿고 항시 염불을 하는 이는 염불을 열심히 하고, 경을 독송하는 이는 경을 열심히 독송하고,
또 참선법을 믿고 실천하는 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들며 참구를 한다면 어느 틈에 있어서 삼재가 엿볼 수가 있겠습니까.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의 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〇삼재가 우리의 마음의 틈을 타서 들어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하고 삼재에 걸린 분. 또 앞으로 삼재를 맞이할 분들은 각별히 마음의 문—마음의 문은 눈이 바로 마음의 문이요. 귀가 마음의 문이요. 코와 입이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몸뚱이가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의 문인 것입니다.
 
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육문(六門)이 바로 삼재가 들어오는 문이 것입니다. 그 문단속을 잘 하는 것으로 모든 도적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삼재를 막아내는, 비단 삼재라고 했습니다마는 더 널리 말을 한다면 육적(六賊)이 될 것이고, 더 방대하게 말한다면 팔만사천 마군(八萬四千魔軍)이 될 것입니다.
 
그 팔만사천 마군이를 ‘한 생각’에 막을 수도 있고, 도적을 불러 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비끗 잘못하면 바로 삼재와 육적과 팔만사천 도적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도 역시 그 ‘한 생각’ 때문에 육도윤회를 해서 끊임없이 생사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그 ‘한 생각’만 잘 단속해 나간다면 신수기도는 정말 옳게 봉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신수(身數)기도 ; 새해를 맞아 정초에 일년 동안의 안녕과 소원을 기원하는 기도.
*정초(正初 정월 정,처음 초) ; 정월(正月 음력으로   중의 첫째 달) 초승(初生 음력으로 매달 초하루부터 처음 며칠 동안) 해의 처음.
*기복불교(祈福佛敎) ; 복을 구하거나 비는 불교의 한 모습. 복을 구하는 행위나 생각은 종교의 본질적인 것이라 할 수 있으나, '기복'이라는 말을 종교 앞에 붙인 경우에는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인다.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지극정성(至極精誠) ; 더할 수 없이 극진한 정성(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일맥상통(一脈相通) ; 사고방식이나 성질 등이  대상  서로 통하거나 비슷해.
*사법(邪法) ; 부정한 가르침. 외도(外道)의 가르침.
*청정(清淨 맑을 청,깨끗할 정) ; 허물이나 번뇌가 없이 깨끗함.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자의식.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망상.
*인상(人相) ; 사람은 고귀하므로 지옥 중생이나 축생들과 다르다고 집착(執着)하는 견해.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전가(轉嫁 돌릴 전, 떠넘길 가) ; 잘못이나 책임 등을 남에게 떠넘겨 덮어씌움.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계합(契合) ;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참고] 〇분(分) : ①분수(分數-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〇-상(上) : ①‘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②‘추상적인 공간에서의 한 위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해소병 ; 해수병(病 기침 심하게 하는 ).

*유위(有爲) ; (산스크리트어: saṃskrta, 팔리어: savkhata)에서 위(爲)는 위작(爲作) · 조작(造作: 만들다)의 뜻으로, 유위는 만들어진 것, 조작된 것, 다수의 요소가 함께 작용된 것, 여러 인연이 함께 모여서 지은 것, 인연으로 말미암아 조작되는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또는 이렇게 하여 드러난 생성과 소멸의 세계, 즉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의 세계를 뜻한다.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방생(放生) ; 사람에게 잡힌 물고기나 새, 짐승 따위를 산이나 물에 놓아서 살려 주는 일. 불교도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첫째 계(戒)인 불살생계(不殺生戒)보다 적극적인 선을 실천하는 선행(善行)이다.

*불방일(不放逸) ; ①방일(放逸-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마음 놓고 지냄)·해태(懈怠-게으름)하지 않은 것. ②온갖 선법(善法)을 닦는 것. ③능히 마음을 수호하는 것.
[참고]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 제1권.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에서는 "온갖 선법(善法)에 있어서 방일(放逸)하지 않음, 즉 불방일을 으뜸으로 한다(於一切善法 不放逸為尊)"고 말하면서, 불방일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爲斷不善法。爲圓滿善法。常習常修堅作恒作。數修不止名不放逸。
불선법(不善法)은 끊고 선법(善法)은 원만하게 하기 위하여, 항상 익히고 항상 수행하며 견고하게 짓고 한결같이 지으며 자주자주 수행하면서 그만두지 않는 것을 불방일(不放逸)이라 한다.
 
[참고] 「불교평론」 (2005년 겨울), ‘붓다의 죽음’(안양규 글) p33에서.
팔리어본 「열반경」에 의하면 붓다는 제자들로부터 ‘불법에 의심이 없다’라는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은 최후의 가르침을 남긴다.
“비구들이여! 이제 나는 너희들에게 말한다. 제행(諸行)은 소멸되기 마련이다. 방일하지 않고(appamādena) 정진하라.”(디가 니까야, 열반경 D16)
무상한 세계에서 벗어나도록 정진하라는 가르침은 붓다의 유언으로 제자들에게 남겨졌을 법한 내용이다.
 
불방일(不放逸)의 원어는 'appamāda'인데 부정접두사 'a'와 'pamāda'로 이루어진 말이다. 
'pamāda'는 어떤 자극에 의해 정신이 마비된 것을 가리키는 말로 특히 만취한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appamāda'는 마음이 깨어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단순히 무엇인가를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이(diligent) 아니라 마음이 또렷이 각성(覺醒)한 상태(vigilance)이다. (Nyānatiloka, Buddhist Dictionary : Manual of Buddhist Terms and Doctrines. Kandy. 1980)

*알날신심(遏捺身心  누를 알,누를 날,몸 신,마음 심) ; 몸과 마음을 억누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잡도리 ;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해꼬자 ; 해꼬지. 해코지(害코지)—남을 해치고자 하는 짓.

*자비(慈悲) : [범] maitri  자비는 사랑하는 것과 불쌍히 여기는 것인데, 네 가지 끝없는 마음(四無量心) 가운데 두 가지이다。모든 중생에게 실제로 즐거움을 주는 것을 「자(慈)」라 하고(慈能與樂), 중생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 주며 근본적으로 그 근심 걱정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 내어 주는 것을 「비(悲)」라고 한다(悲能拔苦).

*심경(境) ; 마음의 상태.

*섭수(受) ; ①자비로운 마음으로 중생을 거두어 들여서 보살핌. ②관대한 마음으로 남을 받아들임.

*용담(龍潭) 스님 ; 생몰년 미상. 성은 김(金)씨, 법명은 초안(初眼)이며, 용담은 법호이다.

한용운(韓龍雲) 스님의 수제자로, 덕숭산 만공(滿空) 선사의 회상에서 지도를 받아 득의처(得意處)를 인증(認證)받았다. 그 뒤 《선가구감》 연구에 골몰하여 완벽한 번역과 풀이를 위해 정성을 다하였다.
또한 여러 고승들과 함께 「불교혁신총동맹」을 결성하여 불교혁신운동을 전개하였고, 「선학원」 부이사장, 「해동역경원」 부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8년 4월19일, 신의주에서 병원을 하고 있던 동생을 만나겠다며 김구 선생과 함께 「정당사회단체 대표자연석회의」에 참석하러 월북하였으나, 그 뒤 소식이 단절되었다.
—[선가구감] (용담 스님 역주 | 효림) 편역자 소개에서.

*견성(見性) : 성품을 본다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해방(解放)1945년 8월 15일에 우리나라가 일본 제국주의의 강점에서 벗어난 .

*선학원(禪學院) ;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있는 절. 1921년 남전(南泉)·도봉(道峰)·석두(石頭) 등 3인을 중심으로 지었다.

선학원은 당시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병합하고 사찰령(令)을 반포하여 한국 불교를 일본 총독부의 관할 아래에 다루게 되었을적에, 일본 불교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승단이 급속도로 세속화되어 가는 것을 개탄, 불조(佛祖)의 정맥을 굳게 계승하기 위하여 창설된 선종의 중앙기관이다.

사찰령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하여 절(寺, 庵)이란 이름을 쓰지 않고, 선학원이라 하였다.

그 후부터 한국 불교 선종의 책원지(策源地)로서 은연한 가운데 선객들을 통솔하였으며, 1934년 12월 5일에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으로 발족하여 초대 이사로 만공·한암·적음·남전·성월 스님이 선임되었다. 해방된 뒤에는 재단법인 선학원으로 정관을 고쳤다.

*이북(以北)한반도 북위 38  위쪽또는 휴전선 북쪽.  북한() 가리킨다.

*부잡(雜)하다어느 한곳에 오래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간섭을 잘 하고 엉뚱한 사고를 치고 거칠다.

*떠둥그치다 ; 떠둥그뜨리다(떠둥그트리다, 물체의  부분을 들고 밀어 엎어지게 하거나 기울여 쓰러뜨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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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결(結)직접적으로 연결됨.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 ; 묘협 스님께서 지으신 『보왕삼매염불직지(寶王三昧念佛直指)』 총 22편 중 제17편 ‘십대애행(十大礙行: 10가지 큰 장애가 되는 행)’에서 여러 구절을 가려 뽑아 엮은 글이다.

우리 중생이 일상 생활이나 수행을 함에 있어서 나타날 수 있는 10가지의 큰 장애가 되는 행동을 정리하고, 중생이 그 '장애 없기'를 구하지 말고 장애 속에 먼저 거처하게 하여, 그 10가지의 장애들이 실제로는 수행을 방해하는 장애가 아닌, 일체 중생의 수행·신심을 더욱 다지고 진작시키는 대선지식(大善知識)이며 또한 일체 중생을 진실하게 돕는 복전(福田)임을 알게 하여, 어리석은 중생이 장애로 인하여 퇴전하지 않고, 장애 속에서 큰 깨달음을 얻게 하기 위해 묘협 스님께서 경전에 의지하여 지으신 글.

*역경(逆境)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계(逆境界),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구경(究竟 궁구할 구, 마칠•다할 경)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그 위에 더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해탈(解脫) : [범] Vimoksa ; Vimukta ; mukti  [파] Vimokha ; Vimutta ;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또는 열반(涅槃)의 딴 이름으로도 쓰인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