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삼요)2019. 4. 8. 23:22

§(513) 도를 배우려면 모름지기 다섯 가지 올바른 믿음을 갖추어야 한다.[五種正信]

 

**송담스님(No.513)—93년 9월 첫째일요법회(93.09.06) (용513)

 

약 15분.

 

(첫째는) 신심(信心), 자기 몸 가운데 주인공은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조금도 손색이 없는 진여불성(眞如佛性)을 가지고 있고, 자기 마음속에 진짜 부처님이 들어 있다고 하는 사실을 믿어야 하는 거야.

부처님은 십 생을 온갖 행하기 어려운 것을 다 행하셨다 그말이여. 삼아승지겁(三阿僧祗劫)을 행하기 어려운 것 당하기 어려운 것을 다 행하고 최선을 다해서 수없는 목숨을 바치면서 끝없는 진리를 위해서 바쳐 왔다 그말이여. 그래서 손바닥만한 땅도 불보살이 중생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지 않는 곳이 없다.

 

우리가 평범한 범부(凡夫)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고, 풀끝에 이슬과 같은 그런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서글프고 비참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 몸 가운데에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이 주인공(主人公)은 삼세제불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조금도 손색이 없는 존재라고 믿을 때 우리는 얼마나 든든하고 보람이 있고 자신감이 생기는 것입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세상의 흥망성쇠가 하나도 마음에 걸릴 것이 없어.

바람이 좀 거센 바람이 지나갈 수도 있고, 시원한 바람이 지나갈 수도 있고, 조금 더운 바람이 지나갈 수도 있고, 차운 바람이 들어갈 수가 있어서 바람 부는데 따라서 더우면 시원한 옷을 입고 추우면 두터운 옷을 입는 거와 같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그말이여.

 

 

둘째는 무량겁래(無量劫來)로 오면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하는 모든 일들과, 내가 누구를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일과, 누구를 미워하고 미움을 받는 일과, 우리가 익힌 모든 습성과 그런 것들이 전부가 다 한 생각 생사심(生死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들이라, 그 원인이 전혀 다른 사람한테 원인이 없어.

 

다 자기 자신이 지은 업(業)으로 그렇게 된 것이고, 자기의 한 생각으로 인해서 벌어진 모든 것들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아무도 미워할 것도 없고 원망할 것도 없어. 한탄할 것도 없고.

다맛 당장 이 시간부터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만을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세속에서 살라면은 돈도 벌어야 하고, 명예도 얻어야 하고, 권리도 있어야 하고, 예쁜 마누라도 있어야 하고, 자식도 있어야 하고, 별의 별별 호강도 해야 하고, 좋은 차도 좋은 집도 있어야 하고, 너무너무 근심 걱정이 많고 해야 할 일이 너무너무 많은데,

출가해서 떠억 계(戒)를 받고 중이 되면 아무것도 걱정이 없고, 비가 오면은 신발에 물 들어가나 고거 하나만 걱정하면 된다 이거여.

 

끼니때 되면 밥 지어주고, 아무것도 걱..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을 듣고 다 가정을 버리고 '에잇! 나도 중이 되어 버려야겠다' 그러면 안 되고.

여러분도 세속에 살면서 기왕 아버지면 아버지 책임을 해야 되아. 자기가 그렇게 업을 지었기 때문에. 어머니로 있다면은 어머니 책임을 해야 하고, 며느리면 며느리 책임을 해야 하고, 아들이면 아들 책임을 해야 하고, 학생이면 학생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거여. 그러면서 '이뭣고?'만 하면 되어.

 

그러면 세속에서 사는 동안에는 어쩔 수가 피할 길이 없어. 그것이 전부 자기가 과거에 지어 놓은 인연으로 만난 사람이요, 만난 일이기 때문에 다 해야 하는 거여.

그것만 열심히 하면 다 되냐 하면 그게 아니어. 살 수가 없어. 할려고 해도 마음대로 안되기 때문에 살 수가 없는 거여.

 

그걸 이겨내는 힘을 얻어야 하는데 그 힘이 '이뭣고?'에서 나오는 거다 그말이여.

 

'이뭣고?'를 안 하고는 세속에서 아무리 잘살라고 마음을 먹고, 잘할라고 마음을 먹고, 아 미워하지 않으려고 아무리 이를 악물고 결심을 해도 일에 딱! 부딪치면 안 되는 거여. 속에서 일어나서 안 되는 거여.

'이뭣고?'를 해야 자연히 봄이 돌아오면 반드시 눈이 녹고 얼음이 녹고 뜨뜻해서 파릇파릇한 싹이 돋아나듯이, '이뭣고?'를 해야 맺힌 덩어리가 녹는 거고, '이뭣고?'를 해야 모든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힘이 생겨. 마구니를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생기는 것이다 그말이여.

 

 

세 번째는, 고인(古人)의, 고불(古佛)과 고조사(古祖師)의 일언반구(一言半句)의 법문이라 하는 것이 마치 긴 칼과 같아서 잘 갈아 논 칼과 같아서 함부로 만지고, 함부로 그놈을 가지고 장난을 하고, 함부로 접근하다가는 손을 베고 몸을 베고 다치는 거다 그말이여. 함부로 그것을 내두르다 멋도 모르고 그놈을 내두르다 보면 여러 사람을 다치게 만들어.

 

그래서 이 참선을 하는 사람은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말씀 가운데에,

대혜종고(大慧宗杲) 선사가 어떻게 지혜가 있고 혜(慧)가 빠르던지 천칠백 공안을 맥힘이 없이 다 통달을 해 가지고 어느 선지식하고 가서 법담(法談)을 해도 다 인가(印可)를 받았다 그말이여. 오직 원오극근(圜悟克勤) 선사 앞에 가서, 그런데 인가를 받지 못했어.

 

"내가 무슨 공안에 맥혔길래 인가를 안 하십니까?"

"공안에 맥히지 않았다. 네가 깨달은 것이 아니라 공안을 알았기 때문에 너는 인가를 할 수가 없다. 너는 안광낙지시(眼光落地時)에 증험(證驗)을 해 봐라"

 

공안을 가지고 의리(義理)로 따져서 이렇다 저렇다 무슨 문제, 수학 문제 풀듯이 공안을 가지고 이리저리 사량분별로 따져 가지고 알아 봤자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일본에서 나오는 선(禪)에 관한 많은 책들이 한국에도 많이 나오고 번역된 책도 있고 그런데, 행여나 그런 걸 보고 공안에 대해서—자기가 자기의 본참공안에 철저하게 참(參)해 가지고 확철대오를 해서 선지식의 인가를 받았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분상에서 그러한 책 나부랭이 봐 가지고 공안을 사량분별로 따져서 알려고 하지 말아라 그말이여.

 

천칠백 공안을 다 알았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생사 문제 해결하는 데는 조금도 도움이 안 되고, 그러헌 것을 자기가 깨달랐다고 착각을 하면 자기 신세도 망치고, 자기를 추종하는 많은 사람도 그르치게 되고, 나아가서는 불법까지 망하게 될 것이다 그말이여.

 

여러분들이 지금은 잘 못 보지만 옛날에 홍콩 영화에 이소룡이란 사람은 십팔계인가? 태권도인가? 뭘 해 가지고 어떻게 잘해 가지고 풀풀 나는 영화를 많이 찍어 내 가지고 엄청나게 흥행을 했다 그말이여.

영화를 찍을 때에 하는 그것 가지고 실지로 자기에게 그런 태권도 실력이 있는 걸로 착각해 가지고 진짜 태권도 잘하는 깡패하고 대결해 가지고는 허망하게 목숨을 잃은 사실이 있었는데, 영화는 얼마든지 풀풀 날으는 영화를 찍을 수가 있고 백 번 죽은 사람도 다시 살아나게 찍을려면 찍는 거다 그말이여.

 

공안이라는 것을 사량분별로 따져서 알라고 하지 말아라. 아무 소용없는 거야!

10년, 20년, 30년 내지 평생을 참선을 했어도 한 공안도 짐작이 안 가고 꽉 맥혔다 하더라도 부끄러울 것이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에 확! 은산철벽(銀山鐵壁)으로 맥혀서 알 수 없는 의단(疑團)으로 나간다면 설사 언젠가는 깨닫게 되고 설사 금생에 깨닫지 못하더라도 내생에라도 그 사람은 결정코 확철대오하고만 마는 거여.

 

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한 것 그 자체가 소중한 것이지, 이리저리 엉터리로 사량분별로 따져서 공안을 열 개, 아니 백 개를 알면 뭐 하는 거냐 말이여.

일본 선원에서는 백 개를 통달하면 조실 자격을 준다나 어쩐다나. 백 개 아니라 천칠백 개를 다 통달해서 조실 노릇하면 뭐 하는 거냐 그말이여.

 

그래서 고인의 일언반구를 마치 큰 칼과 같이 생각하라 이거여. 등한히 그것을 가까이하고 만지고 가지고 흔들다가는 자기 목숨 잃고 남 죽이고 불법을 망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일상생활 속에 항시 간단없이 화두를 챙겨라.

공부를 하되, 하다 보면 앉아서 하다 서면서 잊어버리고, 하다가 눈으로 무엇을 보면 잃어버리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으면 놓쳐 버리고, 무슨 생각이 일어나면 놓쳐 버리는데,

'놓쳤다 아휴! 이놈의 공부가 왜 안되냐, 좀 할라고 하면 시끄러워서 못 하겠다. 뭣 좀 할라고 하면 전화가 와서 못하겠다' 그러지 말고.

 

귀로 무슨 소리가 나면 오히려 거기서 화두를 한번 더 챙기고, 눈으로 무슨 경계가 나타나면 그때 한번 다시 또 챙기고, 전화가 따르르릉 오면은 거기서 다시 정신을 챙기고, 아들 손자가 "어머니, 할머니"하고 달려들면 "오냐, 오냐"하면서 생각은 탁! 챙기고.

 

일체 경계가 바로 나의 공부를 방해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일체 경계가 바로 나로 하여금 정신차리게 하고, 화두를 들게 하고, 공부 단속하게 하는 채찍으로 생각하라 그거거든.

그렇게 해서 또 들고 또 들고 해서 중단하지 말고 생각 생각이 알뜰히 단속을 해 가시라 이거거든.

 

지금 해제, 가을 산철인데, 더운 여름도 참 정진할려면 힘드는 계절이고, 그런데 그 여름이 지나가서 인자 앞으로 서늘한 때가 되었으니 이러한 좋은 때를 잘 이용을 해서 열심히 정진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섯 번째, 우리의 생각이 생사심이 끝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생사도 또한 끝이 없어. 이 끝이 없는 이 생사가 적은 일이 아니다 그말이여.

다행히 금생에는 사람 몸을 받아서 불법을 만나 가지고 이만하기 천만다행이지만, 금생에 이 몸뚱이 놓쳐 버리면 내생에 어디 가서 무엇으로 태어날는지 모른다 그말이여.

 

비록 금생에 나쁜 일 안 했다고 해서 내생에 꼭 좋은 곳으로 태어나라는 보장은 없어.

금생 말고 전생, 저 전생에, 무량억겁에 무슨 짓을 했는가 한량이 없기 때문에 내생에 무엇으로 또 태어날란가, 어느 삼악도(三惡途)에 태어날란가 알 수가 없거든.

 

그래서 정말 분심을 내고 결정신(決定信)을 가져야 해. 금생에 이만한 환경 속에 태어나고, 이만한 여건 속에 태어난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하고 정법에, 활구참선에 철저한 뜻을 거기다 세워라 그거거든.

그래가지고 그렇지 아니하면 무서운 삼악도의 고통을 면하기 어렵다고 하는 철저한 신심을 가져야 한다 그거거든.(29분42초~44분3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고] 『천목중봉화상광록(天目中峯和尙廣錄)』 (제20권) ‘동어서화속집하(東語西話續集下)’에서. 『동어서화(東語西話)』 (장경각) p129~131.

 

學道須具足五種正信 第一要信自己方寸心中一箇喜怒哀樂底主人翁覿體與三世諸佛不欠一毫髮

도를 배우려면 모름지기 다섯 가지 올바른 믿음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마음속에서 희로애락(喜怒哀樂)하는 주인옹(主人翁)의 본 모습은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과 더불어 한 털끝만큼도 부족하지 않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第二要信從無量劫來與聲色愛憎 染習流注結成一種生死無常 於四大身中念念遷流新新不住

둘째는 무량겁을 두고 내려오면서 바깥 세계[聲色]와 애증에 물들여져서 이루어진 생사(生死)는 무상(無常)해서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몸 가운데 생각 생각 떠돌아 다니느라 한 순간도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第三要信古人垂慈留下一言半句如倚天長劍 等閑拶透端的會斷人命根

셋째는 고조사(古祖師)들이 남겨 놓으신 일언반구(一言半句)가 마치 하늘에 뻗쳐 서 있는 큰 칼과 같아서, 그 고인(古人)의 일언반구에 대해서 등한히 그걸 따진다든지, 알음알이로 그것을 짐작을 해 볼라고 한다든지 이러다가는 그 큰 칼에 나의 목숨이 끊어진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한다.

 

第四要信日用工夫但恐不做做之不己 念念精專決有透脫之期

넷째는 일용공부(日用工夫)에 있어서 다못 자기가 공부를 짓지 아니한 것 그것을 두려워할지언정, 생각 생각이 정미(精微)롭게 한결같이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면 결정코 생사에서 투철하게 벗어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第五要信生死無常不是小事 若不奮決定志以期獨脫 其三途苦趣曾無自免之方也

다섯째는 생사무상(生死無常), 이 생사 문제가 결정코 적은 일이 아니니, 만약 큰 분심(憤心)을 내 가지고 결정적인 지조를 가지고서 나의 힘으로 칠통(漆桶)을 타파(打破)할 것을 기약하지 않는다면, 마침내 삼도(三途)의 고해(苦海)에서 진실로 벗어날 방도가 없다고 하는 사실을 깊이 믿어야 한다.

 

有三法爲進道之捷徑 一智眼明 二理性通 三志堅固

한편 도에 나아가는 첩경(捷徑)이 될만한 세 가지 법이 있다. 첫째는 지혜의 눈이 밝아야 하며, 둘째는 이성에 통달해야 하며, 셋째는 뜻이 견고해야 한다.

 

智眼明則照破世間身心現量境界一切是非憎愛取舍得失貧富壽夭苦樂等法皆是夢緣了無實義 而不起分別 

‘지혜의 눈이 밝다’는 것은 이 세간(世間)에 태어난 이 몸과 우리의 의식과 우리의 육식(六識)을 통해서 인식할 수 있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이 모든 경계(境界)와 일체 시비(是非)와 증애(憎愛)와 취사심(取捨心), 득실(得失), 빈부(貧富), 수명(壽命), 고락(苦樂) 등이 모두 꿈속의 인연이어서 조금도 그러한 것들이 실(實)다운 것이 아니다. 그렇게 간파(看破)하는 것이다. 그렇게 간파를 하고서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는다.

 

理性通則於從上佛祖所說語言名相 至於三敎聖賢諸子百家差別法要 會歸一源不生異見

‘이성에 통달했다’는 것은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의 설하신 모든 말씀과 유불선(儒佛仙) 삼교(三敎)의 성현의 말씀과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수많은 차별법이 다 한 근원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을 알고 그것에 대해서 다른 소견을 일으키지 않는다.

 

志堅固則從今日至未來際不問近遠 若不徹證決定不休

‘뜻이 견고하다’는 것은 지금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 멀고 가까움을 묻지 않고 철저하게 깨닫지 않고서는 결정코 이 공부를 그만두지 않는다.

 

此三法具一而缺二三 只成箇無事漢 具二而缺一三 只成箇伶俐漢 具三而缺一二 只成箇擔板漢

이 세 법 중에서 첫째만 갖추고 둘째와 셋째를 빠뜨리면 한갓 ‘일 없는 사람[無事漢]’이 되며, 둘째만 갖추고 첫째와 셋째를 빠뜨리면 그저 ‘영리한 사람(伶俐漢)’이 될 것이며, 셋째만 갖추고 첫째와 둘째를 빠뜨리면 단지 한쪽으로 치우쳐 전체에 대한 안목이 없는 지극히 우직한 ‘담판한(擔板漢)’이 된다.

 

當知此道如涉千里之脩途 若具一二而缺三 是由九百里而止者 具一三而缺二 終不免其岐泣 具二三而缺一  吾知其觸途成滯必矣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 도는 천리(千里)나 되는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첫째, 둘째만 갖추고 셋째를 빠뜨린다면 9백리 정도 가다가 중지하는 자이며, 첫째와 셋째만 갖추고 둘째를 빠뜨린다면 갈림길에서 어찌할 줄 몰라 우는 신세를 끝내 면하지 못하며, 둘째와 셋째는 갖추었으나 첫째를 빠뜨린다면 그는 가는 길마다 반드시 막히리라는 사실은 나는 분명히 알 수 있다.

 

三法全具雖未動足 敢保其與已到家者不相異也 豈待其重問迷津而再搖鞭影乎

이 세 가지 법을 모두 갖추면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서도 이미 깨달음의 집에 도달한 것이나 다름 없으리라는 사실을 내가 보증할 수 있다. 어찌 또다시 미진(迷津)을 묻고, 재차 말채찍의 그림자를 흔들 필요가 있겠는가?

 

*미진(迷津) ; 미혹(迷惑)이라는 나루터[津]. 열반의 피안(彼岸)에 대하여 차안(此岸)과 같은 말이다. 미혹의 경계. 삼계(三界) · 육도(六途)를 말함.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