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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산화상시각원상인(蒙山和尙示覺圓上人) (7/8) 몽산화상이 각원상인에게 주신 말씀.


**전강선사(No.226)—08-2. 몽산시 각원상인(7) (72.06.23.새벽)

(1/2) 약 19분. (2/2) 약 16분.

(1/2)----------------


낙안하장사(落雁下長沙)하고  누중인기무(樓中人起舞)니라

나무~아미타불~

목동일성적(牧童一聲笛)허고  기우과전산(騎牛過前山)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 도인들  처음 도통해 가지고 오도송(悟道頌) 짓는   .  하나 ,  모를 것이 무엇이 있나 그말이여.

 없는   것도 아니고, 땅속에서 파내서  것도 아니고, 하늘 속에서 뒤집어  가지고  것도 아니고, 세상에 있는 모도 그저 두두물물(頭頭物物) 화화초초(花花草草) 가지고 그대로 한마디씩  놓은 것이 도시(道詩).


낙안(落雁)은 하장사(下長沙)하고,  공중에서  날아서 떨어진 기러기는 어디 떨어지는  아니라 장사(長沙) 떨어져.  모래밭에 내려온다 그말이여.

그거 그대로지, 어디 다른   있나? 아무것도 없지.


누중인(樓中人) 기무(起舞) 하는구나. 누(樓) 가운데  노는 사람은,  다락 누에서 노는 사람은 일어나서 춤을 추고 논다 그말이여.

다락에 노는 사람은 춤추고 놀지, 그저 노는  아니라  누각에서   춤추고 노는 경계여.


목동(牧童) 일성적(一聲笛)허고, 소를 멕이는 동자는 젓대를 불면서 터억 전산(前山) 돌아온다. 앞산으로 젓대를 불면서 소를 멕이고 앞산으로 돌아와.

, 그게 도(道) 경계(境界), 도시(道詩) 말이여.


아, 부처님도 마지막 깨달라 가지고 마지막 지은 게송(偈頌)이여. 

 허니? 일편백운(一片白雲)은 강상래(江上來). 처음에가 뭐지? 일편백운은 강상래하고.

! 그렇지.  조각 흰구름은 강상으로 온다. 그건 말후구(末後句). , 이런 것인데.



! 이번에 경봉 스님 법문 내놨는디,  무슨 옛날  전에 견성해 가지고 지었다는 오도송(悟道頌) 나왔데?   . 대중이    .  ,  어떻게 지은 오도송이 그런 오도...


, 그때 경계에 그대로 알았다!”하고 고함질러서 다시 물으니까 답해서 그런 줄만 알았더니, 그렇게  것이 아니라고  번이나 신문에 해명을  놓고는 부채로 원상(圓相) 쓸어버렸다

부채로 원상 쓸어버린 도리의 게송인가 부여?     없군.


세상에 그러기에 공부라는 것은 깊이깊이 탁마(琢磨)   봐야 되야. 탁마 없이 서로 한마디 주고받고  봤던들 그것    없는 노릇이여.


내가  그때에 벌써 오십  전이니, 일흔 다섯 살이니깐, 육십 칠십 일흔 다섯, 오십  전이지?

오십  .

아, 그때 시대인디 내가 젊은 때인디, 어디 어디 한마디나 잊을 이치가 있는가? 요만큼이라도 내가 보태서  필요가 있냐  말이여. ! 이런   보소.


, 이 처음에 신문 들었으니까 그때 오도송 지어서  언하에 전에 몇십 년이라고 했드나?   전에  선지식한테 인가 맞았다는  글이, 인가 맞았다는 말이 있으니, 인가는 용성 스님..  내놨더군?

용성 스님, 혜월 스님, 한암 스님, 만공 큰스님   스님네께 인가를 받았다고 했는데, 인가는 어떻게 물어서 무슨 답에, 무슨 공안에 어떻게 답을 했는가가 분명히 나와야 되아.

그것, 다섯 스님네한테  나와야 되지. 하나라도  나와서는 안되지. 없는 인가를 그때  받았다 하면   거짓말은  거짓말이지.


세상에! , 오도송을   봤구만.  보고  봤구만.

   . 대중이  그런 것을 잘못 빠뜨릴 수가 있나?


여지없이 골라 놓아사, 우리나라에 선지식 스님네의 도(道)가 어디까장 있는 것을  가려 놔사,

우리 한국 불교가 인자  정법이 한번  말세에 아주 말세니까,  말세에 한번 크게 발전이 있어야   아닌가?


데데허게 어름허게 그저 아무때나 한마디 해놓고 견성(見性) 했다’ ‘인가(印可) 받았다 그러고 앉어서 조실(祖室) 노릇 허고 가르키고 그게 되아?

‘나변(那邊)에 있는가 모르겄다’고 그랬어. , 나변에 있는가 몰라. 큰일이지.



불용착력(不用着力) 위묘(爲妙). 공부할  착력(着力) 않는 것이 제일 ()허다.

이놈을 자꾸 생각하다 보면 은연중(隱然中) 힘이 거가  모이고, 자기도 아지 못허게 힘이 잔뜩 들어. 화두 거각(擧却)하는디 억지로  들어. 억지 힘이 있어. 그래 가지고 은연중 힘이 그리  모여 가지고는 착력이 되야.


착력(着力)이라는 것은, 여기 착력이라는 것은 극도의 모도 조그만한 힘이라도 그리  모여서 한목 힘 든 것이 착력이여. 보통 역(力)을 착력이라고   아니여.


‘이뭣고?’   . ‘이뭣고?’ ‘이뭣고?’

안되니까 ‘이뭣고?’하다가 그저 하도 안되면 진심(瞋心) 내고 ‘이뭣고?’, 억지로 찾아서 ‘이뭣고?’

그저 이렇게 허다 보면은 그것이 화두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고  주작(做作), 자꾸 힘이 거가 힘이 거기서 잔뜩 들어가지고는 그만 주작이 된다 그말이여.


주작이 자꾸 주작성이 되어 가지고는 힘이 차츰차츰 모여서, 모일 대로  모여서 착력이 되아.

착력이 되면은 못쓴다. ()허지 못혀.


공부 조끔 한철 허다가 아이고! 머리야 그냥 그만 머리 위에 모도 그만  뻘건 것이 솟고, 그런 모도 힘이 위로 모도 올라와서 눈이 뻘개지고 그만 그래지거든. 그게 그만 착력(着力) 해서 묘허지 못헌 것이여. 그런 것이 있다 그말이여.


그런 것이 있으니 내가 구절구절이 이렇게  말허고  따져서, 내가 이렇게 다구아서 이래 주는 것이여.

 묘허지 못허다. 착력치 말라.

 

약착력제시즉(若着力提撕則), 화두를 착력을 해서 억지로 끄집어서 억지로 안된 놈을 억지로 그만 골을 내면서, 부애를 내면, 번뇌를 내면, 그만 , 나는 어찌 안돼?” 모도  소리를 허거든. “여태까장 참선 해 봐도 , 깜깜 칠통(漆桶)이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럼 깜깜 칠통 아니면  훤헌가? 훤헌 것이 나오는 건가?

훤헌  볼라면 동쪽에 달을, 동쪽에  떠올라 온  보지. 동쪽에  떠올라 올  보면 훤허드구만.   떠올라 온  한바탕 보지. 훤허게. 그런 겐가?


그저 밝고 어둡고 무슨 그까짓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없는 도리(道理)만 하나 챙기지. 가만히 챙겨.


용착력(用着力) 즉해산정경(則解散定境)이다. 정경(定境) 없어진다.

화두가 고요허니  의심이 일어난 놈도 있다가도 없어져.  있을커니는 없어져,  착력헌 바람에.

 알아듣겄지?  해보니 알겠지? 착력헌 바람에  경계조차 없어져. 해산정경(解散定境) 된다.


능선용심(能善用心)해라. , 화두를 가만히   없는 놈만 일으켜라.

‘어째서 판때기 이빨에  났다 했노?’한 놈을 일으키다가,  할라니    없는 도리가 하나 생겨 나온다. 어째서  헐래야    없는 도리가 생겨 나오노?

 허면은 그만 중생으로 그대로 있을 터이니 중생 그대로 중생 과보를 어떻게  텐가?


우리가 중생 몸으로  과보  몸을 하나 받아 가지고 나왔으니 만족한가? 이것이 무던헌가?

좋지! 무던허고.


허지마는 요까짓 놈의 몸뚱아리, 요것 하나 받아 가지고 잠깐 가지고 있다마는 숙홀즉무(焂忽卽無)다, 곧 없어져 번지고. 늙어서 병들어서 죽어서 뼉따구 되어 버리고, 살은 물덤뱅이 모도  되아 귀화(歸火) 귀풍(歸風)으로  번지고.

 내가,  몸뚱이 가지고  지은 내가 지은 대로  받을 터이니 그걸 생각해 . 과거에 얼마나 받아 왔는지   내가 혜안통(慧眼通)이 없으니 보든 못허드래도 계산을   . 어쨌는가? 말로 할  없는 짓을  받아 왔다.


눈깔  놈을 보니, ‘저놈은 눈깔 멀었구나.  고생이 얼마냐?’  못헌 놈을 보니, ‘ 못헌  저것 봐라. 저것이 사람 되어 가지고 말도 못하는구나

저런 구렝이 같은 놈을 .   몸뚱이 큰 놈을 가지고 먹지 못허고 굴속에서 무서워 나오지도 못허고 있는 것도 . 모두가  몸뚱이다! 모두가 내가 받아  것이다!


 번만 받아 왔나? 몇백 번을 받아 온지 모른다. 몇천 번을 받아 온지 모른다.  그래야?

역사가 있어야지? 우리 생겨서 살아 나온  과거 역사가 있어야지?

하루 이틀 이렇게 가고 오는 , 그것 역사는 있지마는 우리의  영혼이 살아 나온 과거 역사는 세도 못허고, 한량도 없고, 어느  생겨난 때가 없어.  있으면사 하지마는, 없는 것이여.


없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 이렇게도 신령허고, 이렇게도 영영허고, 이렇게도 알든 것이  몸뚱이 하나 없어지면 어디로 갔는고? 그것이.

 개재묘용이 그렇게 자재묘용(自在妙用)이 어디로 갔어?  성내고 울고불고 별짓  하든  물건이 어디로 갔냐 말이여?


없나? 가기는 어디로 ? 항상 상주불멸(常住不滅)헌 것이  물건이여. 부증생(不曾生)이여. 부증멸(不曾滅)이여.

그놈을 ()라고 보니, 어디 무슨 놈의  티끌만큼이나 뭣이 있나? 아무것도 없지.

무(無)라고  놓고 보니 어디 없나? 모도 있지. 그놈이  알아내고 있지.


, 이렇게도 신령허고 묘허고, 이렇게도  일물이, 차물(此物)이 중생 껍데기만 둘러쓰고 중생의  망념만 가지고 어떻게  것이냐?

 허고 말아 가지고는 되겠느냐? 미래가 인자 어떠허냐?


지내기는  지내버린 과거는 먹고   버렸으니 그만이라 하자.

, 앞으로 미래는 어떻게  터이냐? 이놈의  미래가 다할 때가 있나? 미래가 다할  없지.


그러허니 이거 ‘이뭣고?’를 않고는 어떻게  텐가?  생각해 보지? 가만히  계산을  보지?  허고 쓰겠는가?(처음~18분59초)



(2/2)----------------


선용기심(善用其心)해라. 어쨌든지  선용기심해서  너무  마음을 착력(着力)허지 말고 화두를 ...

참, 내가 금생에   잃어버리면은 어느 때냐? 차생(此生) 실각(失却)하면, 이 이생에  몸뚱이 받아 가지고  몸뚱이를 실각하면, 깜짝 사이에 잃어버리면은 만겁(萬劫) 난우(難遇). 만겁에   몸뚱이는  받는다,  사람 몸뚱이는.


‘왜 사람 몸뚱이  받아? 이렇게 사람이 많이 나오는디,  꺼떡허면 드립대 나오는디. 산아 제한(産兒制限)을 지금  드립대 허고, 어디 많이 사람 새끼가 나와 쌌던지’


그거 많여, 그것이? 그게 많여? 세계 인구를   봤자  지금은,    억이나 되나? 십 억이나 되나? , 이십 억이나 되나?


그까짓 억(億) 수, 몇억 수 있지마는 짐승을 생각해 보아라.

그저 물에 사는 바다 괴기만 해도 그놈의 숫자 생각해 보고, 땅속에만  봐도  벌레뿐이고,  날라댕기는  준동도 ,  연비(蜎飛)도  보고, 준동(蠢動)도  생각해 . 꿈적꿈적헌 , 개미, 벌레.


왼통 몸뚱이, 그놈이 몸뚱이가 무슨  모냥만 달르지. 그놈이  꿈적꿈적허고 댕기고  즈그들도  보고 놀래고 무서워허고  죽을라고, 모기 같은 것도 달아나니라고 야단이여.  죽을라고.

‘준동함령(蠢動含靈) 그와 같은 함령이 개유불성(皆有佛性)이니라. 부처성 똑같이  있느니라했으니, !   틀림이 있어?


사람도 보지.  낳아 놓은 , 금방 뱃속에서 나온 , 핏댕이 낳아   보지.    사람 되겄는가?

 무엇이여? 그것 눈도  뜨고 꼼작꼼작헌 것이 차츰차츰 먹어서, 물질을 먹어서 몸이 차츰차츰 불어져  가지고는 사람노릇 허면, 그놈이 그렇게 야단스러워지고.

 핏덩어리로 나온 그때, 뭐여 그것이?


고래 새끼 같은 것도 처음에 나왔을  알로 나왔을   쬐끄만 하던 놈의 것이 그렇게 퍼먹고 그렇게 커지지 뭣이여? 몸이 커지면은 그놈이 운동도 크고 그놈이 굉장하게 놀아나기도 하고 그러지.


물건으로 이놈 있을 때는, 모도  물건으로써 몸뚱이가 되어 가지고 몸뚱이 그놈 큼서 따라서 그놈도 크게 ()하지. 쬐끄만 허면 쬐끔허게 동하고 그런 것이지.


‘소는 소가 되고, 사람은 사람이 되고, 말은 말이 되고, 그렇다 그런 외도설은 없어. 그런 법은 없어.

, 틀림없으니까.  되었다,  되었다,  되었다, 그저 구렝이 되었다,  그렇지.  그런  없어. 우리 부처님의 인과 말씀을  믿으면은  말을 믿을 것이여, 천하에.


그런  저런 것을 한번 생각해 보지.

 몸뚱이 받아 가지고서는 정법,   하나를 내가 어쨌든지 찾아내야   아닌가? 어떻든지 해내야   아닌가?

이렇게 정법문중(正法門中)에, 묘한 문중에 들어와 가지고는 공과일생(空過一生) 허다니! 말이 되아?  것인가 말이여?


허니, 선용기심(善用其心) 꼭 해라. 화두할 때에 대번에 그만 선용기심 못허고는 어서 헌다’고 드립대 그만  착력을 해서  허다가는 한 철  ()  닦는다. 대번에 못허고 말아.  장애가 일어난다.

그러니 이러헌 참선(參禪)해 나가는디 묘헌 글귀를 이렇게 낱낱이 해석을  주어서 알게 만들아 주어야 하는 것이지.


말은 쉽지. 참선, “이뭣고?  뿐이지. 처음    그렇지, 뭐라고 해야? “이뭣고? 해라”


“이뭣고? 해라 해 놓지마는 이뭣고?’를 가서 혼자 하다가는 모도 이러헌 병이 .

 착력해 가지고는 육단심(肉團心)이 ()허고 마구니가 일어나서 못하고 천(千)이면 ,  못하고 마는 것이여. 만(萬)이면 ,  못하고 마는 것이여.


그러허니 불가불(不可不) 스승을 찾어야 한다. 옳은 스승을 찾아서 옳은 스승한테 낱낱이 선인(先人)한테, 먼첨  해나간 분들한테 이렇게  배워야   아닌가?


그래서 홀연입득정시(忽然入得定時), 홀연히  착력허지 않고 힘만 쓰지 않고 묘허게 화두가 들어와서 의심이  일어날 때에는  몸뚱이에 힘도 하나도  들고, 의심만 일어나는 신심만  나고, 분심만  나고, 의단(疑團) 독로(獨露)해진다.

착력치  해야 그렇게 되지, 착력(着力)해서는 그렇게  법이 없어.


 그렇게  좌선법이 그려. 앉아서 공부허는 법이 이렇다 그말이여.


‘아무때나 헌다’고. ‘ 먹음서도 허고,  입음서도 허고, 서서도 허고, 가면서도 허고, 일체처(一切處)에 헌다’

일체처에 허기는  일체처에 ? 일체처에, 말만 일체처에 허지?


참으로 일체처에 허는구만? 못될 소리여.

 그러면 우리 부처님 같은 천하에 제일가는 부처님도 역부러 고행을 했다 하지마는,  설산에 들어가   고행을 허셨으며, 달마는  때문에 소림(少林) 들어가서 9세를 그렇게 면벽관심(面壁觀心) 했을까? 가만히 앉어서 그렇게 했을까?


왔다갔다 왔다갔다, 요새 선객(禪客)들은 병이 무슨 병이 들었냐? 갔다왔다 하는 병이 들어버렸어. 그 거떡허면  나가고, 거떡허면 휘딱 가고.

그 자리 비어 놓고 있다가 인자 입선(入禪)헐 때는 가서 입선 죽비(竹篦) 듣는다’고 들어갔다 나오고. 틀려. 그것 틀려.


, 생각해 보지, 생각해 . 어짤 것인고 생각해 .

그렇게 부처님 말씀에 어렵다’는  말씀.  가지, 4난득(四難得)이다.  가지 난득이다.

인생난득(人生難得)이요, 장부난득(丈夫難得)이요, 출가난득(出家難得)이요, 견성허기 난득(難得)이다. 천하에 난득이여.


장부난득(丈夫難得)이란 , 우리가 이렇게 모도  집안 천만사가 있다 하드래도,

그것 천만사가  무엇이냐? 지금, 내가  닦을, 내가  찾을, 이러헌 무서운  급(急)헌 대사(大事)를 두고 내가 일시(一時)인들 내가 집안에서 무슨 놈의 머무르고 이렇게 있겄나?’ 한  나와서  닦는  장부(丈夫) .


남자 장부? 남자, 그까짓   남자라고 장부라    있나?  닦아야 장부지.


홀연히 화두가 들어와서  무상한 속에서무상한 마음뿐이지 뭣이 있어?

각불가탐정(卻不可貪定) 이망화두(而忘話頭)니라. 화두가    때에, 화두가 의심이 일어나서 의심이 독로 되아 있을 , 독로 되아서 화두가 온전히 고대로 가만히 있다고 화두를 거각하지 않고  조용허고 고요헌  떨어져 있지 말아라.


화두가   없는 놈이 고요해야지.   없는 의심이 가도 오도 않고 ! 정(定)이 되어서 말뚝 박아  것, 쇠말뚝 박아  것처럼 꼼짝도 않고   없는 놈이 ! 정해져야 그게 정력(定力)이지.

고놈 밖에, 화두 의심 밖에  것이 뭣이 고요헌 것이 붙어 있어?  큰일나지.


그건 뭣이라고 헐까? 망조라고 할까? 무슨 묵조라고 할까? 묵조(黙照)! 묵묵히 비추는 묵조라고 하지. 그거 ?

묵조라는  뭣이여? 묵조라는   만년 있어도 소용없는 것이 묵조여. 묵조사선(默照邪禪)이라니! 죽은 참선이라니! 묵조,   것이여 그거 ?


불가탐정(不可貪定) 이망화두(而忘話頭)니라.

약망화두즉(若忘話頭則), 그때에   없는 화두는 없고,  고요해서 일체 망념도 없이 묵조가  하나 나타나면 편안하기는 한량없네.

번뇌 망상이 뒤끓으면은 제일 불편헌디, 번뇌 망상 그놈이 없어진 곳에 고요허니   없는 화두도 없이 앉어 있으면은  묵조라는 것은, 묵조가 그놈이 낙공(落空)이다. 허공이다. 허공 같은 밖에 없다. 허공에 떨어지는 것이다.


낙공(落空)에, 공에 떨어져 버리면은 그만이여. 공에 떨어져 버리면 그만이여.


그러면  원상(圓相) 하나  그려 놓고 ‘입야타불입야타(入也打不入也打)’  원상은 뭣이냐?

‘고불(古佛) 미생전(未生前),  부처도 생기기 전에 응연일상원(凝然一相圓)이다. 응연(凝然)  상(相)이 둥그렇다.

거가서 무슨 () 있으며, 거가서 무슨 () 있으며, 비유(非有) 비무(非無) 있으며, () 있으며, 중생(衆生) 있으며, 중생 제불도, 불도 뭣도 일체 이치가  공허고 아무것도 없는 자리다. 그러면  ()까장  쓸어버린다 그래 모두 다 뭉캐는 거여.


고것이 되아? 고따우 것이 조사관(祖師關) 되아?

 지랄을 허고 고걸 쓸어놓고는, 인자 고것이라고 도로 그려? 그러면 그게 뭐여, 그것이?


그게 중생굴이요, 그것이 중생  송장굴인디, 고까짓 놈의  거기서 인자 참으로 화두가 있는 법인데, 판치생모(板齒生毛) 거기 있는 것인데, 그놈 깨달르는 법인데, 뭐가 있어?

그놈 깨달은 법이 없어. 그런 것은 낙공(落空)이지.


확철대오(廓徹大悟) 해야 그게 인자 참말로 공안이거든.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거기서 깨닫는 것이여.



그때  하나가 “입야타불입야타(入也打不入也打)”하니께 ! 들어갔지.

들어간  수단을 알아? 그걸 알아야 되아!

그러니 어째 들어갔는가를 알아야 되아. 법(法)  나가는  알아야지. 용무생사(用無生死), 생사 없는   쓰는 것이  쓰는 것이여.


 들어가, 딱! 쳐버렸다. 쳤어.

! “막타모갑부득(莫打某甲不得)입니다. 모갑(某甲)  쳤습니다헌게, 떠억 쉬어 버렸다. 휴거(休去)했다.

휴거 같은 것은 그건 법불견이니, 본래 없니, 본래 무니, 본래  비어, 고런  가지고는 소용없어.


마조(馬祖) 터억 휴거아무 말도  하니까, 마조가 ‘대답 못했다 하지?

그것을 알아야 . 그거 대답 못헌 것인가? 대답만  허면 제일인가? ! 이거.


이놈 입만 벌리면  대답이 제일인  알고 든지 가져다 대답하지. ‘양말  짝입니다 고따구 소리.   덕숭산서 나오는구만 그거. 모도 고런 행사를 허는구만 그거.

기가 맥혀서 내가 당최 뺨대기를 쳐서 내쫓아 버려야지 그런 것들. 뺨대기 뿐인가? 작대기로 우서내 버려야지.



약망화두즉(若忘話頭則),  화두를 잊어버리고 무슨 정(定)이라고 앉었은 (), 그것이 그만 무기공(無記空) 무기에  떨어져 버린다. 무기(無記) 떨어져 버리면 무유묘오(無有妙悟)다. 깨달은 법도 없고.


인자 그것으로써 견성했다고 나부대고. 나부대 가지고 발무인과(撥無因果)하고, 인자 인과도 없다’하고 돌아댕김서 제가 제일이라고 야단이고.

‘스승이  인자,  스승이 뭐냐? 어떤  스승이냐? 누구는  본래 부처는  인가가 있나?’ 요따구 소리나 하고. ! 일난다 말이여, 일나.


차라리  그대로 중생으로 있어서, 그저 그대로 있다 아무때라도 부처님 성불할  만나서 발심 출가를 하면 오히려 나을지언정, 천만 겁을 지낸 후라도 나을지언정,

 묵조사선(黙照邪禪) 무기선(無記禪) 떨어져 가지고 인자 제가 도인노릇  가지고  가르키고,  죽고  죽이고 모도  가지고, 불법(佛法) 영원히 종자도 없이 망쳐 버리는 것이여. 이것을 깊이깊이 학자들은 알아두란 말이여.


무유묘오(無有妙悟)니라. 묘오가 있지 못하니라.

묘오(妙悟), () 결코 화두를 () 해야지, 화두 활구(活句) 오도(悟道) 해야지, 오도(悟道)  해서는  되는  없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묘오(妙悟) 오도(悟道) 있는 법이니 이렇게 믿어라.


 대문 읽어보지. 어디 갔나?(19분1초~35분8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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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落雁下長沙  樓中人起舞’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 박경훈 역 | 동국대학교 역경원) ‘저물어 여강(驪江)에 머물다[驪江晩泊]’ p41 참고.

*(게송) ‘牧童一聲笛  騎牛過前山’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 박경훈 역 | 동국대학교 역경원) ‘고향집을 지나며[過故宅]’ p44 참고.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偈頌).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두두물물(頭頭物物) ; 온갖 사물과 현상.

*젓대 ; ‘저(가로로 불게 되어 있는 관악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를 일상적으로 이를는 말. 적(笛).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5권 165칙 ‘원상(圓相)’ 공안.

馬祖因見僧參  畫一圓相云  入也打不入也打  僧便入  師便打  僧云和尙打某甲不得  師靠却拄杖  休去.

마조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하고 물으시니, 그 스님이 원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 대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셨습니다.


[참고] 송담스님(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2분19초)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이 공안을 물은데 어떤 스님이 그 안에 들어갔어.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대 후려쳤습니다. 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 원상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한 그 공안에 그 스님이 턱 뛰어들어가는 도리는 무슨 도리며,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한 방을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그 방(棒)을 맞고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또 그 스님이 그렇게 말한 데에 마조 스님이 아무 말없이 저리 가버렸으니...

이러한 공안에 확연(確然)히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공안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라 하는데, 이것이 다 부처님과 조사가 씹다가 버린, 먹다가 버린 찌꺼기에 지나지 못한 것이기는 하나, 이러한 공안이 바로 학자(學者)의 소견(所見)을 가려보는 데에는 좋은 시금석(試金石)이 되는 것입니다.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데데하다 ; 시시하고 변변치 못하여 보잘것없다.

*어름하다 ; 어떤 상황을 대강 짐작으로 헤아리는 데가 있다.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나변(那邊 어찌·어느 나/가장자리·곁 변) ; 어느 곳 또는 어디.

*은연중(隱然中) ; 남이 모르는 가운데.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칠통(漆桶 옻 칠/통 통) ; ①옻칠을 한 통. ②중생의 마음은 무명이 덮여서 어둡고 검기가 옻을 담은 통 속과 같은 상태 또는 그런 상태의 사람. ③무명(無明).

*숙홀즉무(焂忽卽無 갑자기·문득 숙/갑자기·돌연히 홀/곧 즉/없을 무) ; 갑자기 곧 없어지다.

*‘늙어서 병들어서 죽어서 뼉따구 되어 버리고, 살은 물덤뱅이 모도  되아 귀화(歸火) 귀풍(歸風)으로  번지고’ ;

[참고] 「무상계(無常戒)」 (영가천도용靈駕薦度用 독송문)에서.

靈駕  劫火洞燃  大千俱壞  須彌巨海  磨滅無餘  何況此身  生老病死  憂悲苦惱  能與遠違  靈駕  髮毛爪齒  皮肉筋骨  髓腦垢色  皆歸於地  唾涕膿血  津液涎沫  痰淚精氣  大小便利  皆歸於水  煖氣歸火  動轉歸風  四大各離  今日亡身 當在何處  靈駕  四大虛假  非可愛惜


영가여, 겁화가 타오르면 대천세계가 온통 무너져서 수미산도 큰바다도 모두 없어지거늘 하물며 이 미약한 몸뚱이가 생로병사와 근심 걱정을 어떻게 면하랴.

영가여, 머리카락 터럭 손톱 발톱 이빨 가죽 살 힘줄 뼈 골수 뇌장 때 같은 것은 흙으로 돌아가고, 침 눈물 콧물 피 고름 진액 담 정기 대소변 따위는 물로 돌아가고, 따뜻한 기운은 불로 돌아가고, 움직이는 기운은 바람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이렇게 사대(四大)가 따로 따로 흩어지면 오늘날 그대의 죽은 몸이 어디에 있겠는가. 영가여, 사대는 헛것이니 아까울 게 없도다.

*상주불멸(常住不滅 항상 상/머무를 주/아닐 불/꺼질·없어질·멸할 멸) ; ‘항상 머물고 사라지지 않는다’

변함없는 본질을 유지하며 소멸하지 않는 존재를 나타낸다. 법신(法身) 또는 궁극적인 깨달음의 경지를 묘사한다. 열반(涅槃) 등의 무위법(無爲法)에만 해당하는 속성이며 어떤 유위법(有爲法)에도 이러한 본질은 없다.

*부증생부증멸(不曾生不曾滅 아니다·없다 부/일찍이·이전에 증/날 생//꺼질·없어질·멸할 멸) ; 일찍이 남[生]도 없고 멸함도 없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1.

〇有一物於此(유일물어차)호대  從本以來(종본이래)로  昭昭靈靈(소소영령)하야  不曾生不曾滅(부증생부증멸)이며  名不得狀不得(명부득상부득)이로다.

여기에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일찌기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음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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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비윤동지류(蜎飛蝡動之流 장구벌레 연/날 비/꿈틀거릴 윤/움직일 동/~의 지/갈래 류) ; 기거나 날거나 꿈틀대며 돌아다니는 것.

*준동함령(蠢動含靈 꿈틀거릴 준/움직일 동/머금을·품을 함/신령·신령할 령) ; 꿈지럭거리며 움직이는 함령(含靈, 심령心靈을 가지고 있는 것). 모든 생물. 중생(衆生).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공과일생(空過一生 헛될 공/경과할 과/한 일/삶 생) ; 일생을 헛되이 보내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역부러 ; ‘일부러’의 사투리.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공양할 때 공양순서를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대사(大事) ; 일대사(一大事).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間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참고] [선문염송·염송설화] (혜심·각운 지음 | 월운 옮김) 제 692칙 ‘대사(大事)’

동산(洞山)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괴로운가?”

스님이 말하였다. “지옥의 고통이 가장 괴롭습니다”

선사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 이 옷 밑에서 큰 일[大事]을 밝히지 못하는 것이 진짜 괴로운 일이니라”

洞山  門僧  世間  是甚麼物最苦  僧云  地獄最苦  師云  不然  向此衣線下  不明大事  始是苦


<염송설화(拈頌說話)>

동산(洞山) 노인이 노파심이 간절해서 입이 쓰도록 간곡히 일러 준 말씀이니 모름지기 이 대사(大事)를 밝혀야 동산의 뜻을 저버리지 않는다.

*묵조사선(默照邪禪) ;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이, 그냥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 나가는 그러한 공부. 이것은 깜깜한 귀신굴(鬼神窟) 속에서 살림살이를 하는 것이라 해서 영원히 깨달을 분(分)이 없는 것이다.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무기(無記) : [범] Avyaksita 선(善)•악(惡)•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발무인과(撥無因果) ; 인과의 도리를 부정하는 것. 연기(緣起)의 근거를 부정하는 삿된 견해이며, 모든 것은 단멸하여 상속되지 않는다는 단견(斷見)이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Posted by 닥공닥정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세등09)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몽산화상이 총상인에게 보이심) 법문.(송담스님)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 (세등09)

 

(1/3) 약 21분.

 

(2/3) 약 20분.

 

(3/3) 약 21분.

 

(1/3)----------------

 

법문(法門)이라고 허는 것이 입으로 설헐 것이 있고, 귀로 들을 것이 있는 법문은참법문이라고 수가 없어. 그래서 고인이 말씀허시기를 『설() 없이 법을 설해야 하고, 들은 바가 없이 들어야 법문은 옳게 들은 것이 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동안에 대중스님네들이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 자주자주 들으면서 정진을 애써서 오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발심(發心) 해서 열심히 정진을 하고 있기는 하지마는 냉정히 말해서 우리는 중근기(中根機), 하근기(下根機)이기 때문에 법문을 설사 설한 있이 설한 법문이 되었건, 설한 없이 설한 법문이 되었건, 자주 듣고 자주 채찍질을 가함으로서 우리의 마음과 신심을 일깨우고, 나태(懶怠) 빠지지 않도록 계속 채찍질을 가해 나가야 우리의 목적 달성을 단축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정진(精進) 하는데 우리의 마음가짐을 어떻게 써야 하며, 정진을 여법(如法) 나가면은 차츰 우리의 경계(境界) 어떻게 진취있게 나가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하겠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열심히 공부를 가지고 좋은 경계가 닥쳐옴에도 불구하고 좋은 경계를 살려 나갈 모르고, 애써서 도달한 좋은 경계를 살리지 못하고서 거기에서 그릇 빗나가 버리는 애석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반면에 좋지 못한 경지가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옳은 알고 거기에 집착하는 그러헌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벌써 결제(結制)—어떻게 지냈는지 반살림을 지내고, 앞으로 해제도 20여일 밖에 남지를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 마무리를 짓기 위해서 이러헌 말씀을 택해 왔습니다.

 

 

정진은 한마디로 말해서 본참공안(本參公案), 본참공안에 의심(疑心) 있어야 한다.

아무리 잠을 자고, 일종(一種) 하고, 말을 하고,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않고 애를 쓴다고 해도 본참공안, 자기에게 주어진 자기의 본참화두에 의심이 없다고 하면은 정진은 옳은 정진이 아닙니다. 자기의 본참공안에 의심이 있어야 반드시 크게 깨달을 수가 있다.

 

우리는 불교의 교리 문제라든지 그밖에 천칠백 공안은 말할 것도 없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하루에는 수천만 가지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데 있어서 의심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의심을 허기로 하면은 보고 듣고 있는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의심 아닌 것이 없어. 의심, 의심, 한량없는 의심을 똘똘 하나로 뭉쳐서 자기의 본참화두로 돌려야 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조실 스님 법문을 듣고 듣고 그러면서 정진을 하는 것도 한마디로 말해서 자기의 본참화두에 간절(懇切)하고 돈독(敦篤) 의심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법문을 듣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그러한 법문을 들으므로 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의심이 간절히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법문을 듣는 것이다.

 

법문이 비단 녹음된 조실 스님 법문만이 법문이 아니고 오늘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있는 이것만이 법문이 아니라,

참으로 간절히 발심을 하고 신심을 일으킨 사람은 바람 부는 소리를 들어도 거기에서 자기의 본참공안을 들고, 일상생활 속에 보고 듣고 느끼고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건 또는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흔들어 놓는 일이건, 그러헌 일을 계기로 해서 나의 본참공안으로 돌아올 있고 본참공안에 대한 의심을 일으킨다면은 법문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 본참공안에 대한 의심을 하지 아니한 , 이것이 우리 정진에 있어서 가장 병이다.

모든 인연세속에 대한 인연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대중생활 나가는데 있어서 누가 잘하고 못하고, 시시비비(是是非非) 일체 인연을 놔버려. 누가 잘하건 못허건 그것에 말려들어서는 벌써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잘하는 것을 봐도 나는 화두를 들고, 못허는 것을 봐도 화두를 들고, 누가 아픈 것을 봐도 나는 화두를 들고, 일체 인연을 놔버리고서 앉았거나 누웠거나 섰거나 걸어가거나, 하루 종일 다맛 자기 화두를 들고 들고, 생각[別念] 일어난 알면 생각 버릴려 하지 말고 바로 거기에서 일어난 생각으로 화두를 ! 들면 되는 것이다.

 

앉어서도 하고, 서서도 하고, 누워서도 하고, 걸어 다니면서도 해야 하지마는 있으면은 앉어서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공부를 다져나가는 것이 가장 힘을 얻는 데에 효과적이다.

 

그러면 앉어서 하는 데에는 어떻게 하느냐? 지나치게 눈을 ! 부릅뜨고 억지로 힘을 써서도 아니 되는 것이고, 지나치게 몸뚱이를 억제하고 구속하고 무리하게 몸뚱이를 다루어도 되는 것이다.

공연히 헛심을 들여 가지고 눈을 부릅뜨고 지나치게 몸을 억누르고 구속을 가하면은 혈액이 혈액순환 하는 데에 이상이 생겨서 상기병(上氣病)이라든지 그밖에 혈기(血氣) 고르지 못한 병을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에,

 

다맛 단정(端正) 앉을지언정 그리고 눈은 평상(平常)으로 뜨고 몸과 마음을 지나치게 억제를 한다든지 구속을 한다든지, 무리를 가해서 하지 말고, 단정하게만 허고서 일체 긴장과 억제를 풀어 버리고서 화두를 들되,

지금도 이렇게 여러 차례 말을 했지마는 호흡을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 자연스럽고 부담없이 깊이 들어마셨다가 조용히 내쉬면서 화두를 들되,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이뭣고~?’   ‘ 없는 생각()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 무엇인고?’ 무자(無字) 허는 이는어째서 () 했는고?’ ‘어째서 ()라고 했는고?’ 없는 의심.

 

그렇게 애써서 해가되, 혼침(昏沈) 가지고 꾸벅 꾸벅, 이렇게 혼침이 오면은 정신을 바짝 차려서 (한두 소리내어) 화두를 들고, 그렇게 해도 아무리 해도 날씨는 더웁고 그래 가지고 혼침이 오면은 살모시 이렇게 사람 방해되지 않도록 살모시 일어나서 밖에 가서 왔다갔다 5너무 오래 돌아다니면 못쓰니까, 5 왔다갔다 해서 정신을 차려 가지고 와서 정진을 하고.

이렇게 공부를 다져 나가면은 자연히 모든 () 소멸(消滅) 되고. ‘마가 소멸된다 것은 혼침도 그것이 (), 산란심(散亂心) 그것도 () 그말이여. 밖에서 들어오는 (), 안에서 일어나는 (), 모든 것이 (), ()라고 수가 있는데.

 

성성적적하게 화두를 다져 나감으로써 마가 소멸이 되고, 마가 소멸이 되면은 눈이 떠억 안정이 된다 그말이여. 눈이 깜빡 깜빡 깜빡하는 것도 안정이 되고,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도 안정이 된다.

눈이 안정이 되면은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면은 몸도 안정이 되어서, 조금도 지루한 줄도 모르고 어떻게 시간이 지나간 줄도 모른다.

 

그러니 ()라는 놈이 북적북적하고 그러면은 눈이 안정이 되는 것이고, 눈이 안정이 되면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면은 몸뚱이도 안정이 되아서 괴롭고 뒤틀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말이여.

 

이렇게 해서 눈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고, 몸이 안정이 때에 이렇게 () 들어갔을 때에, 정에 들어간 고요한 것으로서 능사(能事) 삼아서는 안되아. ‘ 좋다. 이러헌 경지가 오래오래 계속 되었으면...’ 이러한 생각이 벌써 바른 생각이 아니다 그말이여.

그렇게 눈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고, 몸이 안정이 되고 해서 말로 없이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 그러한 경지에 들어갔을 때에 화두를 잊어서는 된다. 그럴 때에 화두를 깨끗하게 화두를 들어 나가야 한다 그말이여.

 

만약에 그러한 고요해진 경지에서 화두를 놓쳐 버리면은 그것이 (), 데에 잠기고, 적적한 데에 () 가지고서 아무리 그러한 경지로 오래오래 나간다고한들 깨닫지는 못하는 것이다.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 되는 것이다.

달마스님이 인도에서 오셔서 다맛 직지인심(直指人心),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도리만을 말씀을 하셨지, 이렇게 고요한 () 들어가지고 신통(神通) 나고 하는 그러한 것은 일체 말씀을 하시지 했다.

 

헌들(?) 그래 가지고 오래 지내면은 뭣이 알아지기도 하고 신통도 나고 틀림없이 그런 것은 그렇지마는 견성(見性) 하지 못하고 신통천안통, 천이통, 타심통, 신족통, 숙명통 이러헌 신통이 먼저 나는 사람은 그것은 외도(外道), 그것은 벌써 삿된 길에 떨어진 사람이라, 자기도 생사해탈을 못할 뿐만 아니라, 결국은 남까지 그르치고 외도 마구니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한목 고요하고 조촐해질 화두를 일체처 일체시에 화두를 놓지 아니허되,

있으면 앉어서 공부를 다져 나가는 것이 아까 내가 말한 바와 같이 효과적이기 때문에 앉어서 하루에 사분정진(四分精進) 하고 그밖에 방선(放禪) 시간이라도 시간이 있는 대로 항시 앉어서 단정히 앉어서 공부를 다져 나가고, 그러다 잠이 오면 일어나서 바람 쐬고 들어와서 하고.

그렇다고 해서 혼침에 떨어져 가지고도 계속 일어나지도 않고 앉어서 조는 것으로서 정진을 삼고, 앉아 있는 것에 집착을 가지고 그러헌 정진도 옳은 정진이 아니다.(처음~2051)

 

 

 

 

 

(2/3)----------------

 

이렇게 공부를 나가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도저히 공부가 잘된 같지 아니하고, 계속 몸도 괴롭고 마음도 답답하고 이래서그런데 그럴 때에 공부가 안되는 알고 대단히 번민을 하고 몸부림을 치고 그러는데,

깨끗이 깨끗이 잘되다가 ! 변해 가지고 화두가 들리지 아니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정신이 맑지를 못하고 몸도 뒤틀리고 지루하고 그런데, 그럴 때가 한고비 올라서기 위한 좋은 중요한 고비인데,

좋은 고비를 어떻게 단속해야 하느냐 하는 것을 모르고서 공부가 못된 알고 몸부림을 치고 번민을 하는데, 고비가 한고비 올라서기 위한 막이라 그말이여.

 

그래서 그럴 때에 아까 말한 대로 살며시 일어나서 왔다갔다 해서 맑은 공기도 쐬고 그렇게 포행(布行) 거니는 가운데에 화두를 단속해 나가야 고비를 참으로 올바르게 넘어가는 것이 되지,

공연히 번민하고 화두도 놓쳐 버리고 몸부림치고 공부를 그럭저럭 번민으로써 넘어간다면은 애써 공부해 가지고 참으로 좋은 고비 넘어갈 데에 가서 뒤로 물러서 버린 것이 된다 그말이여.

 

아주 기가 막히게 중요한 대목이기 때문에우리는 그러한 고비를 수없이 차례를 그러헌 고비를 넘기고 나면은 인자 수월하게,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게 공부가 되아가.

그렇게 얼마 동안 나가다가 ! 변해 가지고 시간이 지루하고 몸이 뒤틀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화두가 순일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때에 선용기심(善用其心), 마음을 가지고 지혜스럽게 화두를 단속해 나가면서 고비를 넘기고.

 

그래서 공부하는 사람은 성성적적하게 순일하게 된다고 해서 기쁜 마음 내서도 아니 되는 것이고, 답답허고 지루하고 몸과 마음이 덤덤하고 답답하고 멍멍하고 이러헌 고비가 오드라도 번뇌심(煩惱心) 내지 말고 그래야 한다 그말이여. 그것이 공부해 나가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마음 다져가는 방법이다.

 

우리가 공부해 나가는 데에는 성성(惺惺)하면서 적적(寂寂)해야 . 성성하기만 하고 적적하지를 못하고, 적적하기만 하고 성성하지 못하면 공부는 옳은 공부가 아니여.

어쨌든지 성성한 가운데에 공부를 나가야 하는데, 성성하게 화두를 잡드리 나가면은 몸과 마음이 고요해 수밖에는 없고, 고요해지면은 그것이 () 드는 것이다.

 

그런데 정에 가서 가지가 있는데삿된 ()’바른 ()’ 있다 그말이여.

삿된 () 화두를 놓쳐 버리면은 그것이 삿된 정이여. 고요하고, 일체 마음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 망상이 끊어진 가운데에도 화두가 성성하게 들려 나가야 그것이 바른 ()이지, 화두만 놓쳤다 하면은 그것은 벌써 삿된 정에 들어가는 것이니 그것을 명심을 .

 

그렇게 성성하고 적적한 가운데에 일체 혼침과 산란심이 끊어져서 그렇게 고요하고 정한 데에 들어갔다가 일어설 때에 몸과 마음이 경청(輕淸)해서, 가볍고 맑아서 일체처에 화두를 들려고 하지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어지고, 일체처에 공부를 애써서 단속할라고 하지 해도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움직이는 가운데에나, 고요한 가운데에나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

 

그때에 함부로 몸을 거동을 한다든지, 함부로 큰소리로 웃고 쓸데없는 잡담을 한다든지, 이렇게 하면은 지지리 애써서 들어갔던 좋은 경지가 흩어지고 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헌 경지에서 아주 우리의 행동과 마음을 자세히 지혜스럽고 조심스럽게 단속을 나가야 .

 

그래서 언제나 어느 때나 고요하고 조촐한고요 ()’, ‘조촐헐 ()’, 정정(靜淨) 글자를 여의어서는 되는 것이다. 고요한 것이 고요할수록 고요해지면은 결국은 깨닫게 되는 것이고, 조촐한 것이 지극(至極) 경지에 도달하면은 (), 빛이 통달(通達)하게 된다.

 

기운(氣韻) 엄숙해지고 맑아지면은 움직이거나 고요하거나, 움직이거나 가만있거나 동정경계(動靜境界) 우리의 움직임일체 행동, 생활 경계가 마치 뭣과 같으냐 하면은 가을 하늘과 같아서, 새파란 가을 하늘에 구름 없는 상쾌하고 깨끗하고 새파란 맑은 가을 하늘과 같은 그러헌 경지가 오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것이 공부해 들어가는데 있어서 첫째 과정이여. 그러헌 경지에 도달했을 때에 경지를 타서 공부를 단속해 나가야 한다.

 

가을 들에 가면은 농사도 짓고 맑은 물이 출출출출 출출출, 깨끗한 가을 들에 나가면은 가을 들물이 흘러가는데 그러한 가을 들물과 같고, 오래된 사당(祠堂) 향로(香爐)처럼 그러한 경지, 그래서 적적하고 성성해서 우리의 마음길이 끊어진다 그말이여.

일체 번뇌 망상이 저절로 끊어져 버리고, 일체 혼침도 거기에서는 물러가 버리고, 심지어 우리의 육신이... (녹음 끊김)(인간에 있는 것도 모르고 다못 화두만 면면히) 끊어지지 아니하고 화두 하나만이 성성적적하게 들려 있다 그말이여.

그러헌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은 일체 우리의 중생의 티끌이 쉬어 없어지고 (), 빛이 발하게 된다. 이것이 둘째 과정이다.

 

만약에 이러한 경지에 도달해 가지고 지각심(知覺心) 내면은—‘빨리 깨달았으면...’ 이러한 깨닫기를 기다리는, 생각이라도 그러헌 생각을 일으키면은, 알기를 기대한다든지, 깨닫기를 기대한다든지 이렇게 되면은 순일(純一) () 끊어버린 것이 되어서 ()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공부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화두를 들라고 하지 해도 저절로 들어지고, 이러헌 순일무잡한 경지에 도달했을 때에 지각심을 일으키는깨닫기를 기다린다든지, 뭣이 알아지기를 기다린다든지, 무슨 공안을 가지고 이리저리 따진다든지, 그러헌 지각심만 내지 아니하고,

오직 동정(動靜) 일여(一如)하고, 오매(寤寐) 성성(惺惺)하게 화두가 현전(現前)해서 마치 깨끗한 물에 달빛이 비치면은 아무리 물결이 일어나도 활발발(活潑潑) 달빛이 변함이 없이 흩어지지 아니하고 아무리 흔들어도 우리의 순일한 경계가 흩어지지 아니해.

 

외부로부터 어떠헌 충격을 받드라도 순일무잡한 경계가 흩어지지 아니하고, 어떤 보고 듣고 느끼고 간에 경지가 조금도 지장 없게 되어서, 안으로도 적적해서 흔들림이 없고, 밖으로 아무리 흔들어도 움직이지 아니한 그러헌 경지에 도달하면 이것이 셋째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헌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결국은 우리의 의심이, 의심덩어리가 ! 터지면서 우리는 확철대오(廓徹大悟) 날이 머지않다 그말이여.

 

셋째 경지에 도달했을 때에 자기 자신도 공부 지어 나가는데 있어서 지혜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공부를 나가야 하지마는 주변에 있는 대중들도 역시 사람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 벌써 밖으로 보면은 공부가 순일하게 잘되어 가면은 밖으로도 보면은 아무라도 보면은 아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런 사람을 자꾸 찝쩍거려서 공부해 나가는데 방해가 되도록 하면은 죄가 되는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서로서로 서로서로 보호를 하고 아끼고 조심하면서 공부를 닦아 나가야 된다.

 

그러헌 순일무잡한 경지에 도달해서 아무리 아무리 생각을 일으킬라 해도 일으켜지지 아니하고, 밖으로 어떤 충격을 가해도 동요함이 없이, 이렇게 저절로 그렇게 되아 가는 , 그것이 셋째 과정인데, 셋째 과정에 도달하게 되면은 일주일, 오래가도 일주일 가서 결국은 의단(疑團) ()하면서 확철대오 한다.

과거에 고봉(高峰) 스님도 그러헌 과정을 겪으셨고 그밖에 많은 선지식(善知識)들이 그러헌 경지를 거쳐서 깨달으신 분이 많은 것이다.

 

그러헌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은 마치 계란이, 닭이 알을 21 동안을 품고 있게 되면은 안에서 병아리가 차츰차츰차츰 거의 병아리가 되었을 때에 기일이 ! 차면은 밖에서 애미가 좃고, 안에서 병아리가 나오기 위해서 좃고 것이동시에 안에서 좃고, 밖에서 좃고 해서 ! 터지게 되면서 병아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맷돌을 무거운 맷돌을 아래짝과 위짝과 맞추는데 있어서 좀해 맞는다 그말이여. 이리 쪼금 맞추고 저리 맞추고 이리저리 이리저리 허다가 찰크닥! 우아래짝이 맞는 거와 같이, 이렇게 해서 자기를 깨닫게 되고 불조(佛祖) 득인증처(得人憎處) 잡아 ()하게 된다.

 

불조(佛祖) 사람 미워한 곳이부처님과 조사는 진즉 내가 나를 깨닫는 일대사(一大事) 해결을 짓고 우리에게 길을 열어 주신 은인이지마는 불조의 허물이 하나가 있다. 허물이 무엇인가를 내가 나를 깨달음으로써 불조의 허물을 우리는 똑바로 깨닫게 된다 그말이여.

내가 나의 본참공안(本參公案) 여지없이 타파(打破)하고 불조의 허물을 여지없이 꿰뚫어 보게 때에 우리는 반드시 선지식을 그때에 친견을 해서 단련을 받고, 깨닫고 뒤에 우리 공부 지어가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지도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친견을 못하면은 지지리 애써서 좋은 경지에 들어갔다가 거기에서 애석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기 때문에마치 제호() 인도에서 가장 영양이 많고 맛있는 음식인데 그런 우유로써 만든 것인데, 제호를 관리를 못함으로써 그것이 변질이 되면은 사람을 해롭게 하는 독약으로 변할 수가 있다 그말이여.

그러한 좋은 맛있는 귀중한 제호와 같은 음식을 얻어 가지고 관리를 잘못해 가지고 독약을 만든다고 해서는 기가 막히게 애석한 일이다.

 

그렇게 애를 가지고 깨달은 경지에 도달을 했다 허드라도 선지식(善知識) 만나서 오후(悟後) 공부 지어가는 구체적인 지도를 받지 못하게 되면은 외도 마구니가 되어 수도 있고, 공부가 지지리 고비에 올라서 가지고 망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선지식을 만나서 지도를 받아야 한다.(2052~4004)

 

 

 

 

 

(3/3)----------------

 

우리가 공부를 해서 어떤 그런 좋은 경지에 올라섰다 하드라도 그것을 ()함을 삼지를 말어야 한다.

 

깨달은 뒤에 만약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은 () 한두 가지가 아니다.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만나서 철저한 지도를 받아야 한다.

반드시 불조기연(佛祖機緣), 일체 공안에 대한 탁마(琢磨) 해야 하고, 불조의 제자를 지도하는 가운데에 문답이라든지, 역대조사(歷代祖師) 출가해서 도를 닦아서 교화하는 모든 기연상(機緣上) 조금이라도 걸림이 있으면은 이것은 깨달은 것이 옅은 것이여. 그래서 현묘(玄妙)함을 다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현묘함을 다하지 못하고서 일기지사(一期之事)—정진한 사람은 열심히 공부하면 반드시 일기지사가 있는데, 그러한 일기지사로써 만족함을 삼고 현묘함을 다하지 못한 사람은 반드시 자기의 원만한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남까지 해롭게 맨들고 결국은 불법(佛法)까지 망치게 되는 것이여.

 

그래서 깨달은 뒤에 반드시 선지식을 만나서 탁마를 하고 정식으로 인가(印可) 받아서 일체 불조기연상(佛祖機緣上) 맥힘이 없도록 이렇게 다음에 터억 자기의 자취를 감추고 철저히 오후(悟後) 보림(保任) 다음에 유교, 불교, 도교의 그러한 심지어 제자백가지설(諸子百家之說)까지라도 한바탕 거쳐서 보고 그래 가지고 다생습기(多生習氣) 녹여야 한다.

 

그래 가지고 원명무애(圓明無碍)해서그저 밝아서 조금도 맥힘이 없어야사, 높이 그리고 멀리 날을 수가 있어서, 빛이 멀고 그리고 넓게 비추어서 자기 자신도 정말 확철대오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 뿐만 아니라 일체 중생을 교화하는 데에 맥힘이 없어야 비로소 부처님과 역대조사를 욕되게 허지 아니하고 은혜를 갚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공부를 여법(如法)하게공부를 처음과 중간과 끝을 이렇게 여법하게 단속해 나가지 아니하고 조금 얻은 것을 가지고 족함을 삼고 여법하게 단속해 나가지 아니한다 하면은 반드시 다시 옛날 깨닫기 이전의 그러한 생활로 다시 타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말할 때에는 깨달은 같지마는 경계를 당하면은 도로 () 버려. 말이 법도가 없이 미친 사람처럼 취한 사람처럼 말이 함부로 나와 가지고 입만 벌렸다 하면은 큰소리치고, 입만 벌렸다 하면은 입에 담을 상스러운 소리로 세월을 보내고,

어찌 보면 미친 사람 같고, 어찌 보면 도인 같고, 어찌 보면 취한 사람 같고, 이렇게 해서 자기 자신을 기만하고 사람을 속이고.

 

불법에는 공공연하게 누구에게라도 말을 있는 면이 있고, 함부로 까발쳐서 말을 해서는 되고 은밀히 때와 장소를 가려서 사람의 근기(根機) 따라서 말이 있고, 주어서는 말이 있는 것이여.

함부로 말해 주어서는 알아듣지도 못하고, 그러헌 사람에게는 말해 주어서는 절대로 그러헌 말씀도 있는 것인데, 그것을 가리지를 못하고 함부로 말을 가지고 오히려 상대방으로 하여금 신심이 떨어지게 맨든다든지, 오히려 의심을쓸데없는, 망설이는, 주저하는, 갈팡질팡하는 의심을, 회의심(懷疑心) 일으키게 하는 그러헌 경우도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부처님이 팔만사천 법문을 말하셨지마는 말씀이 모든 사람에게 누구에게나 말해 주어도 이익이 되냐 하면 그런 것이 아니다 그말이여. 반드시 근기와 사람의 현재 도달해 있는 경지에 따라서 말이 있고, 주어서는 말이 있는데, 그것을 가리지를 못한다 그말이여.

그것이 깨달은 뒤에 바른 선지식의 철저하고 직접적인 지도를 받지 못하고, 오후(悟後) 깨달은 뒤에 정진를 올바르게 하지 못하고서 잘못 단속을 함으로써 일어나는 폐단이다.

 

철저히 깨닫기 전에 옳은 선지식의 철저한 지도하에 공부를 하고, 깨달은 뒤에도 반드시 안목을 갖춘 선지식의 탁마와 오후(悟後) 지도를 받아 가지고 여법하게 정진을 사람은 절대로 그럴 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 가지고 저도 망하고 남도 망하고 불법을 망해. 모르는 사람이 보면아따, 도인이다. 거리낌이 없고 기가 맥힌 도인이라고 잘못 좋게 판단한 사람이 있지마는,

불법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높고, 얼마나 깊고, 얼마나 원만한 것이기에 그렇게 방편을 선방편(善方便) 줄을 모르고, () () 가리지를 못하고, 중생의 근기를 살피지를 못하고서 함부로 인과(因果) 갖다가 부정해 버려.

말을 나투어서 말이 있고, 은밀히 해야 말이 있는 것인데 그런 것을 가리지 못해 가지고는 죽고, 죽이고, 불법 망하고, 이것이 얼마나 해가 되는 것이냐 그말이여.

 

, 공부라는 것이 깨닫기 전에도 기가 맥히게 중요한 것이지마는 중간에 공부가 잘되어 때에도 참으로 지혜스럽고 자상하고 조심스럽게 단속을 나가야 하고, 깨달은 뒤에도 참으로 바른 선지식의 알뜰하고 직접적이고 간절한 지도를 받어야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공부인은 , 그것에 대해서 깊이 명심을 해야 .

 

그리고 공부는 () 없는 것이여. 바다와 같아서 깊이 들어갈수록 한량이 없이 드는(?) 것이여.

부처님하면은 부처님은 공부 하고 인자 끝났으니까 아무 것도 하고, 그것으로써 마지막 도달할 데에 도달했으니까 더이상 곳이 없냐 하면 그게 아니라, 부처님도 한량없이 공부를 나가시는 것이여. 끝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도 끝이 없는 것에 공부라 하는 것이여. 부처님이라고 해서 끝났으니까 해도 괜찮은 것이 아니여.

 

하물며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서 확철대오 했다고 해서 그것이 끝이 아니어. 깨달은 뒤에도 한이 없는 것이 우리가 나아갈 공부라, 세계에 육도법계에 중생도 없을 때까지 나도 공부하고 중생 교화하고, 중생 교화 하면서 공부하고, 공부가 자리(自利) 이타(利他) 둘이 아니고, 동시에 중생도 없을 때까지 우리의 공부는 끝이 없는 것이여.

 

달마스님이 말씀하시기를부처님의 마음 깨닫는 도리가 우리가 우리 마음을 깨달으면 부처요, 깨닫지 못하면 중생인데, 깨달은 부처님이나, 마음이나, 우리 깨닫지 못한 중생이 조끔도 차이가 없다

부처님하면 우리와는 동떨어진 전혀 우리하고는 상관이 없는 그러헌 것이 아니라 부처님과 마음과 우리 중생이 조끔도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자성, 본분(本分) 도리(道理) 입각(立脚)해서 보면은 하나도 차별이 없는 것이여. 부처나, 마음이나, 우리 중생이나,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본분 도리에 입각해서는 깨달을 것도 없고 () 것도 없고, () 없고 () 없고, 열반도 없고 조금도 차별이 없는 거여.

우리가 참선(參禪) 하는 것은 차등(差等) 없는 이치를 깨닫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공부하면 반드시 확철대오 있는 능력과 자격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이여. 우리는 그렇게 믿고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

 

 

금년 겨울에 이렇게 좋은 스님네와 좋은 보살님네들이 모여서 이렇게 처음부터서 열심히 열심히 정진을 허더니마는 중간쯤에 와서 더욱 신심이 돈발(頓發)하고 여법히 정진을 하고 해제가 이렇게 가까워 올수록에 더욱 공부를 잘하고 있다고 원장 스님이나 입승 스님을 통해서 말씀을 듣고, 내가 이렇게 봐도 능히 짐작을 수가 있습니다.

 

흔히 벌써 ()살림 지내면은 공부할 마음이 풀어져 가지고 공부가 되지를 않고, 하루하루가 빨리 해제가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하루하루 지내는 것이 지루하고 시간이 가서 애를 먹고 흔히 그러헌 것인데,

금년에 세등선원에 모인 대중은 전혀 그러헌 기색(氣色) 보이지를 않고 날짜 가는 것이 오히려 애닯고 너무 어떻게 시간 날짜가 지내간지 모르게 벌써 이렇게 지내가게 되었다 그말이여.

 

그것은 그만큼 신심(信心) 분심(憤心)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 간절해서 공부가 여법허게 잘되어간 증거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앞으로 이십 여일 남았는데 하루하루를 더욱 지내간 동안보다도 훨씬 간절하고 알뜰하게 단속을 해서 공부를 잘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진로해탈(塵勞解脫) 사비상(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라

나무~아미타불~

 

생사해탈(生死解脫) 보통 일이 아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보통 마음으로 보통 수행해 가지고 성취할 있는 그러한 보통 일이 아니다, 쉬운 일이 아니다.

화두(話頭) 정말 알뜰히 간절히 다잽이하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정말죽을 ()’자를 이마빡에다 붙이고 정말 철저히 단속을 해서 공부를 지어나가야만 것이다.

 

겨울에 되게 강추위를 해야 매화 몽우리가 열려서 향취가 우리의 코에 들어올 수가 있다. 강추위를 허지 아니하고 그러면은 매화꽃이 피기는 펴도 향취가 없는 것이여. 되게 강추위를 가운데에 모진 추위를 이겨내고 그런 가운데에 피어야 매화꽃이 배나 향기로운 것이다.

우리가 되게, 간절히 그리고 골똘히 애써서 정진한 뒤끝이라야 확철대오 수가 있는 것이지, 그렁저렁 그저 시시비비와 한화잡담(閑話雜談)으로 그렁저렁 지내는 가운데에 어찌 하늘과 땅을 놀래게 하고, 하늘과 땅을 울리게 있는 그러헌 확철대오가 어찌 얻어질 수가 있겠느냐?

 

금생에 만나기 어려운 사람 받아 가지고 금생에 확철대오를 해서 생사해탈 헐랴면은 그만큼 철저하게 간절하게 발심을 해서 철두철미하게 하루하루를 단속해 나간 데에서 목적 달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 말씀이여.(4005~6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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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發起菩提心 발기보리심, 發菩提心 발보리심.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나태(懶怠 게으를 /게으를 ) ; 행동, 성격 따위가 느리고 게으름.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그릇 ; 옳지 않고 잘못되게.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해 없는 생각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어째서 () 했는고?’ 또는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종(一種) ; 일종식(一種食). 하루에 끼만 먹는 .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정성스런·절박할 )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돈독하다(敦篤-- 도타울 /도타울 ) ; (인정이나 마음이)매우 도탑고 믿음성이 있고 진실하다. *도탑다 ; (정이나 사귐이)깊고 많다.

* 생각 ; 별념(別念).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p164-166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있으면 고인이 말한 「잡독(雜毒)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생각[別念]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외에는, 불법(佛法) 온갖 좋은 일이라도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 취하거나[], 버리거나[], 집착하거나[], 변화하는[] 것이 모두 생각[別念]이니라.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상태.

*헛심아무런 보람이나 이득이 없이 헛되이 쓰는 .

*상기병(上氣病 오를 /기운 / )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 머리에 치밀게()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혈기(血氣) ; ①피의 기운이라는 뜻으로, 힘을 쓰고 활동하게 하는 원기(元氣) 이르는 . ②적극적으로 무슨 일을 하려는 마음속의 뜨거운 기운. ③혈액과 기식(氣息 숨을 쉬는 기운) 아울러 이르는 . 또는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살아 있는 .

*단정히(端正- 바를 /바를 ) ; 옷차림새나 몸가짐 따위가 흐트러짐이 없이 얌전하고 바르게.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

*복식 호흡(腹式呼吸) ; 숨을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해서 가로막의 신축에 의하여 하는 호흡. 단전호흡(丹田呼吸).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살모시 ; 살며시(남의 눈에 띄지 않게 가만히).

*() ; 마구니. []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 하고, 줄여서 ()라고만 한다。장애자(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魔軍)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 보고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것이다。옛말에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 하시니라.

*소멸(消滅)사라져 없어짐.

*산란(散亂 흩을 , 어지러울 ) ; 혼침(昏沈)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 마음이 어지러운 .

*() : ①계()•()•() 3(三學) 하나. [] samadhi  음대로 써서 삼마지(三摩地)•삼마야(三摩耶) 또는 삼매(三昧)라고 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 않음을 말한다.

*능사(能事 능할·잘할 / ) ; ①잘하는 . ②쉽게 잘해 있는 .

*직지인심(直指人心견성성불(見性成佛) ; 부처는 마음이니, 사람의 마음[人心] 곧바로[] 가리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成佛].
*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신통(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없는 것을 헤아림을 ()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이라 한다. 신통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하지마는 흔히 여섯 가지로 말한다.

①신족통(神足通) 공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있는 . ②천안통(天眼通)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 ③천이통(天耳通)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릴 없이 무슨 소리나 듣는 . ④타심통(他心通)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생각하는 바를 아는 . ⑤숙명통(宿命通)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아는 . ⑥누진통(漏盡通)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 닦는 외도(外道)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 읽어도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여기서는 누진통을 제외한 오통을 가리킨다.

*외도(外道 바깥 / ) ; ①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 가르침. 또는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조촐하다 ; ①아담하고 깨끗하다[]. ②행동, 행실 따위가 깔끔하고 얌전하다. ③외모나 모습 따위가 말쑥하고 맵시가 있다.

*사분정진(四分精進) ; 참선이나 기도를 하루 (새벽, 오전, 오후, 저녁) 시간을 정해 정진하는 .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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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민(煩悶 번거로울·괴로워할·어지러울 /번민할·마음이 답답할·걱정할 ) ; 마음이 답답하여 괴로워함.

*한고비 ; 어떤 일의 진행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거나 어려운 단계나 국면.

* ; ‘울타리 사투리.

*포행(布行) ; 참선(參禪)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

*수월하다 ; 까다롭거나 어렵지 않아 하기가 쉽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상태.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지지리 ; ‘기껏(정도나 힘이 미치는 데까지)’ 사투리.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하나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일(純一)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지극하다(至極-- 이를·매우·궁극·극진히 ·깊을 /·다할·막다른 지경·매우 ) ; (마음이나 정성이)더없이 극진(極盡)하다(매우 정성스럽다).

*사당(祠堂) ; 조상의 신주(神主) 모셔 놓은 . 또는 신주를 모셔 놓기 위해 조그맣게 집처럼 만들어 .

*향로(香爐 /화로 ) ; 향을 피우는 쓰는 작은 화로.

*지각심(知覺心) : ①바로 경계로구나 알았다 깨달았다 하는, 그런 마음。 ②빨리 깨달으려는 마음。누가 깨닫게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

*오매(寤寐 잠이 /잠잘 ) ; 자나깨나 언제나.

*성성(惺惺) ; 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활발발(活潑潑) : 고기가 기운 좋게 위로 뛰노는 모습.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의단(疑團 의심할 ,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의단(疑團) ()하다 ; 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의 덩어리[疑團]’ 깨지다.

[참고] 송담스님 법문참선법 A’ 에서.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고봉(高峰) 스님 ; ‘고봉 스님 자신의 수행담법문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애미 ; ‘어미 사투리. *어미 ; 어머니 낯춤말. ②새끼를 낳은 암컷의 동물.

*좃다 ; ‘쪼다(뽀족한 것으로 찍다)’ 사투리.

*좀해 ; 좀처럼(여간하여서는).

*우아래 ; 위아래(위쪽과 아래쪽).

*불조득인증처(佛祖得人憎處) ; 부처와 조사의 사람에게 미움받은 . 불조의 패궐처(敗闕處)라고도 하니, 부처와 조사의 허물된 .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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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조기연(佛祖機緣) : 차별기연(差別機緣) ①중생이 발심하여 구경의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모든 보살이 근기(根機) 단계에 따라 가지가지 방편을 써서 중생에게 작용하는 것。 ②선종에서는 종사가 학자의 근기와 인연에 따라 베푸는 수단으로, 고금(古今) 불조의 언교(言敎)•기연(機緣)•공안 등을 말함.

*탁마(琢磨 / )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②옥이나 따위를 쪼고 .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기연(機緣 기틀·기회·작용· /인연·이유·연줄 ) ; ①시기인연(時機因緣) 준말. 어떠한 기회 또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 계기·동기. ②중생의 소질이나 능력이 부처님 또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을 만한 인연, 조건이 되는 . ③가르침을 주고받게 스승과 제자의 인연.

*현묘하다(玄妙-- 검을·깊을·고요할·신묘할 /묘할·신묘할·젊을 ) ; (이치나 기예의 경지가)헤아릴 없이 미묘하다.

*일기지사(一期之事) ; ①한 때의 . 일시적인 . ②당장의 .

*인가(印可 도장 /옳을·인정할 )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오후보림(悟後保任) ;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 습기(習氣) 제하고 ()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공부. 장양성태(長養聖胎).

*제자백가(諸子百家) ; 중국 춘추시대 말기부터 전국시대에 걸친 여러 학자 여러 학파를 통틀어 이르는 . 시대의 사상가들을 제자(諸子) 하며, 학파들을 백가(百家) 부른다. 음양가(陰陽家) 추연, 유가(儒家) 공자와 맹자 순자, 묵가(墨家) 묵자, 법가(法家) 한비자, 도가(道家) 노자와 장자, 병가(兵家) 손자 등이 있다.

*습기(習氣) ; 과거의 인식행위경험학습 등이 아뢰야식(阿賴耶識) 남긴 기운, 잠재력. 종자(種子) 같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없는 미혹함)하는 .

*공공연하다(公公然--) ; (사실이)거리낌이나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회의심(懷疑心) ; 어떤 일이 올바른지 확실한지 여부를 의심하는 마음.

*선방편(善方便) ; 선교방편(善巧方便). 방편에 정교한 . 뛰어난 수단. 부처님이 () 설함에, 교묘하게 중생의 근기(根機) 따라 여러가지 방법·수단을 사용하는 .

*인과(因果) ; ①원인과 결과. 현상을 생성시키는 것과 생성된 현상. ②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이치. ③선악의 행위에는 반드시 과보가 있다는 도리.

*본분(本分 근원·마음·본성 /신분· ) ;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라, 중생이라 하는 것은 꿈속에서 하는 말이다. 본래 어둡고 밝고 알고 모를 것이 없으며, 온갖 속박과 고통을 새로 끊을 것이 없고, 대자유(大自由)• 대해탈(大解脫) 비로소 얻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인 것이다. 그러므로근본 깨달음(本覺)’이라기도 하는데, ‘선가귀감첫구절에서 말한  일원상(一圓相)’ 이것을 나타냄이다.

*도리(道理) ; 이치(理致).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는 모든 만유(萬有) 꿰뚫고 있는 법칙. 모든 것에 두루 통하는 진리. 진리와 결합된 이론이나 증명. 타당한 이치.

*입각(立脚 /다리 ) ; 어떤 사실이나 주장 따위을 근거로 삼아 거기에 [] 디딤[]( 입장에 )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차등(差等 어긋날·다를 /등급·같을 ) ; 고르거나 가지런하지 않고 차별이 있음.

*돈발(頓發 갑자기 /일어날·나타날·밝힐 )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 直頓의 , 곧바로.

* ; [주로없다’, ‘않다’, ‘못하다따위의 부정어와 함께 쓰여]아무리 애를 봐도 도무지.

*기색(氣色 기운 /모양··얼굴 ) ; ①마음의 작용으로 인하여 얼굴빛[]으로 드러나는 기운[]). 얼굴빛. ②어떠한 행동이나 현상 따위가 일어나는 것을 짐작할 있게 하여 주는 눈치나 낌새.

*애닯다 ; 애달프다. *애달프다 : (마음이나 사연 따위가) (근심에 싸여 초조한 마음) 닳도록 쓰리고 아프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게송) 진로해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진로(塵勞 티끌·속세 /근심할 ) ;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번뇌(煩惱).

*승두(繩頭) : ()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 어조사다。 불조의 계법(戒法) 규칙. 화두.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다잽이하다 ; 다잡이하다.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죄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몽우리 ;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아직 피지는 않고 망울만 맺혀 있는 ).

*한화잡담(閑話雜談) ; 심심풀이로 한가롭게 얘기를 나누거나[閑話], 쓸데없이 지껄이는 [雜談].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6. 2. 22. 08:47

 

 

§(577) (게송)만리산하평사장~ / 은산철벽(銀山鐵壁)이란? / 선용기심(善用其心) / (게송)홍엽난봉추색리~ / 올바르게 열심히 / 자체가 정진이다.

 

모기가 소의 등어리에다 입부리를 박는 것이나, 우리가 본참화두를 거각(擧却) 가지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깨닫기 위해서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는 것이나, 그것이 똑같은 일이다.

 

자기의 근기(根機) 따질 것도 없고, 자기의 건강도 따질 것도 없고, 자기의 어리석고 영리한 것도 따질 것도 없고, 남녀노소도 따질 것도 없고, 유식 무식도 따질 것이 없어.

 

나이가 많건 적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올바른 방법에 의해서 열심히만 가면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자기가 찾는 것이니까,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찾으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자루 속에 자라, 자기가 아무리 종일토록 버르적거려도 구덕 속에 들어있는 자라는 거기에 있듯이, 내게 있는 것을 내가 찾는 것이지 밖에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거든. “아무개야!”  “바로 거기에 있거든. 그놈을 내놓고 찾는 것이 아니거든.

 

우리는 너나 없이 잘해 봤자, ()하니 점수를 매겨 봤자 중근기(中根機), 짜게 매기면 전부가 하근기(下根機) 것입니다. 하근기이기 때문에 특별한 장소가 필요하고, 특별한 시간을 짜야 하고, 특별한 규칙을 세워서 범위 내에서 오직 전일하게 가지만 밀고 나가자 이거거든.

 

**송담스님(No.577)—96 11 첫째일요법회(96.11.03) (용577)

 

(1) 약 15분.

(2) 약 21분.

 

(1)------------------

 

만리산하평사장(萬里山河平似掌)한데  일조관로직여현(一條官路直如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행인약문궁통사(行人若問窮通事)하면  철벽은산재면전(鐵壁銀山在面前)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만리강산평사장(萬里江山平似掌)한데  일조관로직여현(一條管路直如絃)이다. 만리의 산하는 평평하기가 손바닥 같은데, 가닥 관로(官路) 곧기가 거문고 같구나.

 

행인이 만약 일을 통달할 것을 다하기를 묻는다면(行人若問窮通事), 어떻게 하면은 어려운 문제를 바르게 통달을 시킬 수가 있는가? 그걸 묻는다면,

철벽은산재면전(鐵壁銀山在面前)이다. 쇠로 벽과 은으로 , 철벽은산은 도저히 피할라야 피할 수도 없고, 올라갈라야 올라갈 수도 없고, 부수고 나아갈라야 나아갈 수도 없는, 그러한 철벽은산이 얼굴 앞에 ! 있느니라.

 

만리강산평사장(萬里江山平似掌)이라. 우리가 수행을 나가는 여러 가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통해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몸으로 느끼고, 뜻으로 생각하고 하는, 이것이 우리의 앞에 펼쳐진 만리강산이여.

그런데 만리강산이 평평하기가 손바닥 같다. 무엇을 보건, 무엇을 듣건, 무엇을 느끼건, 그것이 우리의 면전(面前) 통해서 일어나는 일이라 다른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손바닥 안에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일조관로직여현(一條官路直如絃)이여. 가닥 관로가 곧기가 거문고 줄과 같이 곧다 이거여.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공부를 바르게 수가 있느냐? 어떻게 하면 목적지에 바로 도달할 수가 있느냐?(行人若問窮通事)

눈으로 보면 온갖 색상이 들어오고, 귀를 통해서는 온갖 소리가 들려오고, 코를 통해서는 온갖 냄새가 들어오고, 몸을 통해서는 온갖 춥고 덥고 하는 것을 느끼고, 생각을 통해서는 과거, 현재, 미래, 선악, 온갖 생각이 끊일 사이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데, 속에서 어떻게 하면 가장 바르게, 그리고 가장 빨리 '참나' 깨달을 수가 있느냐? 그것이 행인(行人) 약문궁통사(若問窮通事)거든.

 

공부에는어떻게 하면 공부가 빨리 되느니라특별히 가르켜 있는 법이 있는 것이 아니여. 철벽은산이 ! 앞을 가로막고 있어서 전후좌우로 피할 없어. 이러한 절박한 상황에 직면(直面) 해야 한다 그말이여.

거기서 누가 사다리를 놔서 올라가기 좋게 준다든지, 위에서 무슨 밧줄을 내려줘서 그놈을 타고 올라오게 한다든지, 은산철벽을 포기하고 그만두고 뒷걸음을 쳐서 무슨 수월하게 나아갈 있는 길을 찾는다든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서는 우리의 목적지에 도달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은산철벽(銀山鐵壁) 무엇인가?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 여하약하(如何若何) 막론(莫論)하고, 마치 모기가 쇠로 등어리에 올라타고서 입부리를 등어리에다가 처쑤셔박는 것처럼,

부드러운 모기의 입부리가 어떻게 쇠로 등어리를 뚫고 들어갈 수가 있겠는가? 것인가? 안될 것인가? 어떻게 하면 것인가?’ 여하약하를 따져 가지고서는 입부리를 등어리에 박기 커녕은 결국은 거기서 목도 부러지고, 몸뚱이도 부셔져서 가망이 없는 일이니, 여하약하를 막론하고 입부리와 머리와 몸을 압량해서, 합해서 처박고 돌격을 들어가야 한다 그말이여.

 

옛날에 어떤 사람이 화살을 짊어지고 산중을 가는데 저만큼 호랑이가 ! 버티고 앉았다. 그러니 뒷걸음질 쳐서 도망갈 수도 없고, 나아가자니 잡혀먹을 것이고, 옆으로 좌우로 도망칠 수도 없고, 그래서 몸에 가지고 있던 화살을 뽑아 가지고 거기다 대고 활을 쐈다 그말이여.

정통으로 쐈는데 활이 호랑이의 가슴통에 ! 꽂혔는데 까딱도 한다 그말이여. 그래서 이상해서 봤더니 그것이 호랑이가 아니고 바윗덩어리다 그말이여.

 

바윗덩어리가 데서 보니까 마치 호랑이가 버티고 앉은 것처럼 보여서 저놈을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죽으니까, 있는 힘과 정신을 다해 가지고는 바로 쏴댔다 그말이여. 화살이 바윗돌 속으로 들어가서 꽂혀 갖고 있어. 두들겨 봐도 바위가 분명하다 그말이여.

어떻게 약한 화살이 바위 속으로 뚫고 들어갔을 것인가? 다시 와서 등에서 다른 화살을 뽑아서 쏘니까 , 튀겨 버리고 들어가지를 않아.

 

모기가 소의 등어리에다 입부리를 박는 것이나, 우리가 본참화두를 거각(擧却) 가지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깨닫기 위해서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는 것이나, 그것이 똑같은 일이다 그말이여.

은산철벽은 몸과 나의 목숨을 다해서 내가 뚫고 들어갈 수밖에는 없는 관문(關門)이다 그말이여. 자기의 근기(根機) 따질 것도 없고, 자기의 건강도 따질 것도 없고, 자기의 어리석고 영리한 것도 따질 것도 없고, 남녀노소도 따질 것도 없고, 유식 무식도 따질 것이 없어.

 

흔히들화두가 들린다. 의심이 정말  참다운 의심이 나지를 않고 염화두(念話頭), 그냥 염불하듯이 화두만 자꾸 챙기되 의단(疑團) 독로(獨露)하지를 않는다. 무엇이 잘못되어서 그런가? 어떻게 하면은 신심(信心) 분심(憤心) 의심(疑心) 한목 돈발(頓發)해서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공부가 것인가?’

이러한 것에 대한 질문, 이러한 것에 대한 문제점은 참선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것인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하면서 자기의 본참공안, ‘이뭣고?’ 시심마(是甚) ‘이뭣고?’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되고 되고 하는 것을  따질 것이 없어.

 

대부분 처음 하는 사람은 화두를 들기는 들되 생각으로만 들고 입으로만 들지, 간절한 의심이 나니까어떻게 하면 정말 참의심이 돈발해서 의단이 독로하게 것인가? 간단(間斷) 없이 정말 간절한 의심이 것인가?’ 그것을 따지지 말아.

되고 되고 하는 것을 따지지 말고처음부터서 간절(懇切) 의심이 돈발한다고 하는 것은 이것은 너무 욕심이 과한 탓이다 그말이여.

 

욕심을 내서 몸을 너무 지나치게 긴장을 가지고 목에 힘을 주고, 눈에다가 용을 쓰면서이뭣고?’ 또는 무자 화두(無字話頭) 하는 분은어째서 () 했는고?’ ‘간절히 하라 하는 말을 지나치게 힘을 쓰고, 용을 써서 하라는 말로 잘못 알고 우악스럽게 그렇게 해서는 된다 그말이여.

선용기심(善用其心)이여. ‘ 마음을 쓴다 하는 것은 너무 용을 쓰고 힘을 들여서도 되는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매카리 없어 늘어져 처져 가지고 멍하니 그렇게 해서도 된거다 그말이여. 이것은 본인이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본인이 스스로 그것을 터득할 밖에는 없어.(처음~1513)

 

 

 

 

 

(2)------------------

 

홍엽난봉추색리(紅葉亂峰秋色裏)  석양소우단교변(夕陽疎雨斷橋邊)이로구나

나무~아마타불~

망망우주인무수(茫茫宇宙人無數)한데  나개친증도지두(那箇親曾到地頭)

나무~아미타불~

 

홍엽난봉추색리(紅葉亂峰秋色裏), 울긋불긋한 단풍이 어지러운 봉다리, 높고 낮은 봉다리와 계곡에 가을색이 깊었다 그말이여. 요새 한창 오대산이나 설악산, 내장산이나 또는 백양산, 도처 방방곡곡에 산과 들이 모다 단풍이 져서 한참 아름다움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석양소우단교변(夕陽疎雨斷橋邊)이다, 석양에 성근 비는 끊어진 다리 가로구나.

 

우리 삼천리강산(三千里江山) 가을 경치의 장면을 읊은 것이지만, 우리는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하면서 지금 시간, 자리까지 왔습니다. 천만년을 그렇게 돌고 돌아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것이 바로 나이의 많고 적은 것을 물을 것도 없이, 우리는 역사가 없는 과거에, 때를 따질 수가 없는 무량겁 전으로부터 오늘까지 왔으니, 우리는 어지러운 봉다리에  단풍이 가을철을 맞이했다고 말할 수가 있다 그말이여.

 

가을철은 나무와 풀들이 모다 단풍이 들어서 잠간동안 울긋불긋 아름답다고는 하지마는 며칠 지나가면 단풍이 시들어서 볼쌍사납게 떨어지고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이파리는 단풍이 졌지만 모든 나무나 , 곡식들은 열매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 단풍이 지는 것입니다.

 

봄에는 잎이 푸릇푸릇하고, 여름에는 사뭇 녹음(綠陰) 그렇게 깊은 것도 가을에 열매를 맺기 위해서, 태양으로부터 기운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그런 푸른 빛깔이 필요해서인 것입니다.

땅에서 올라오는 수분과 태양에서 받아들인 기운을 이파리가 그놈을 배합을 해서 열매를 맺는데 힘을 거기다 쏟는 것입니다. 그렇게 열매를 맺게 다음에는 이파리는 시들어서 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량겁(無量劫) 육도법계(六道法界) 돌고 돌면서 지금까지 무엇을 왔습니까? 우리는 무슨 열매를 맺기 위해서 무량 다겁생래(多劫生來) 오늘날까지 걸어왔습니까? 다행히 우리는 금생에 불법을 만났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명예를 위해서, 권리를 위해서, 재산을 위해서, 그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고 때로는 목숨까지 거기다 바치면서 그런 것을 얻으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얻어지기도 어렵고, 설사 얻었다 해도 영원히 자기 것이 되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위가 온통 그러한 세상 속에 살면서 우리는 불법을 믿고, 참나를 찾기 위해서 우리는 이렇게 모였습니다. 그것만하더라도 우리는 다행스런 일이고, 생각할수록 감사하고, 생각할수록 복된 그러한 처지라고 우리는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다행스럽고 복된 처지이기는 하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럭저럭 지낼 수는 없습니다. 기왕 받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았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났을진대는 정말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해서 기어코 몸으로, 육신으로, 육신 받았을 금생에 문제를 해결을 해서 좋은 열매를 맺도록 해야 것입니다.

 

이것은 남이 열매를 맺게 해줄 수는 없습니다. 자기의 열매를 자기가 해야 합니다. 나무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뭇가지의 열매는 나뭇가지에서 되도록 해야지, 다른 나뭇가지가 와서 자기를 맺게 해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나이가 많건 적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올바른 방법에 의해서 열심히만 가면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자기가 찾는 것이니까,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찾으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자루 속에 자라, 자기가 아무리 종일토록 버르적거려도 구덕 속에 들어있는 자라는 거기에 있듯이, 내게 있는 것을 내가 찾는 것이지 밖에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거든.

 

아무개야!”  “바로 거기에 있거든. 그놈을 내놓고 찾는 것이 아니거든.

무슨 물건이냐?’ 앉아서도이뭣고?’ 서서도이뭣고?’ 일을 하면서도이뭣고?’ 걸어가면서도이뭣고?’ 자꾸 챙기고 챙기고, 잊어버리면 챙기고, 우리는 경계(境界) 당하면 깜박깜박 잊어버리거든. 잊어버린 알면 챙기면 그만이여.

 

언제나 거기에 있는 것이거든. 눈으로 , 귀로 들을 , 코로 냄새 맡을 , 혀로 맛볼 , 일체처 일체시에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거기에 있는 것을 바로 거기서 챙기는 것이니까 이것은 사실 어렵다고 생각할 것도 없고, 하나도 복잡하다고 생각할 것이 없어.

이뭣고?’ ‘이뭣고?’ 잠깐 놓쳤다고 해서 어디 가는 것이 아닌 거여. 거기에 있는 것이지.

 

귀가 먹지 않았으니까 소리도 들릴  것이고, 눈이 멀지 않았으니까 눈을 뜨면 모든 것이 보일 것이여. 보여도 그냥 고대로 놔두고 자기는이뭣고?’거든. 그저 수저로 밥을 넣고 저분으로 반찬을 집어서 입에 넣어서 저작(咀嚼) 하면서 터억 생각은이뭣고?’거든.

 

그래서 옛날 사람은 시끄럽고 복잡한 장바닥에 가지고, 일부로 거기 가서 정진을 그러한 분들도 있었다 그말이여. 그러한 속에서도 시끄러운 소리가 방해가 되지 않는가? 속에서 공부가 되는가 되는가 한번 시험해 보는 것이거든.

 

 

어떤 스님이 중국을 갔는데, 항구에 내리니까 연세가 많은 스님이 항구에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고 다닌다 그말이여. 처음으로 중국을 갔으니까 스님을 만났으니 반가웠겄다.

어느 절에서 오셨습니까?”

아무데 , 아무데서 왔다

참선을 하시고 이리 항구에 가지고 이렇게 두리번거리고 있습니까?”

 

이분이 참선에 대해서 아직 무엇인지를 모르시는구나

나는 선방에 들어와서 정진한지가 벌써 수십 년인데 지금 전좌(典座)” 전좌라고 하면 별좌(別座) 채공(菜供), 그러한 소임이 바로 전좌라고 하는 소임에 해당 되는데, 그러한 별좌나 원주(院主), “그러한 소임을 맡았기 때문에 항구에 오면 대중공양(大衆供養) 만한 것이 있을까, 그래서 그것을 구하러 왔다

 

그런데 말을 들어보니까, 스님은 그러한 전좌라고 하는 소임을 맡아 가지고 대중을 외호(外護) 하고, 외호하면서 참선하는 것이 아니라, 외호하면서 속에 바로 그것이 정진이다 그거거든.

따로 있고 정진 따로 있는 아니라, 일이 바로 정진이고 정진이 바로 일이다 그말이여. 일과 정진이 둘이 아니어. 속에서 바로 일도 열심히 하면서 자체가 정진이다 그말이여.

 

벌써 입승(立繩), 선덕(禪德) 지내 가지고 조실(祖室) 추대를 받을만한 그러한 법랍(法臘) 경륜을 가진 스님이 그런 전좌의 소임을 자원해서 맡아 가지고 그렇게 정진을 한다 그말이여.

그래서 스님은 전좌 스님 안내로 절을 가지고 3년간을 여법히 정진을 가지고, 확철대오를 가지고 인가(印可) 받아 가지고 왔다. 스님이 누구냐 하면은 일본의 조동종 개산조(開山祖) 도원 선사(道元禪師)라고 하는 선사인데, 그래서 일본에 조동종 초조(初祖) 되어서 오늘날 일본에 조동종이 굉장히 번창을 그러한 종파를 개산을 했다 그말이여.

 

우리나라에도 도원 선사 못지않을 만큼 훌륭한 선사들이 많이 계시지만,

참선이라 하는 것은 선방에 앉아서 시간 맞춰서 죽비() 치고물론 선방에 방부를 들이고, 결제 중에는 시간을 맞추고 여법하게 지내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나 입선·방선, 입선(入禪) 중에는 여법하게 하고, 방선(放禪)하면 그냥 화두도 버리고 잡담으로 세월을 보내고 그렇게 지내서는 아니 되는 것이고.

 

결제(結制) 중에는 여법하게 지내다가 해제(解制) 되면 팔도강산 경치 좋고 좋은 데를 다니면서 구경이나 하고 그럭저럭 지내고, 이렇게 가지고서는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오십육억 칠천만 뒤에 미륵불(彌勒佛) 염부제(閻浮提) 하생(下生) 때까지 참선해도 깨달을 기약은 없다고 고인(古人)네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참선(參禪) 대한 개념이물론 아까 조실 스님의 법문 가운데에도앉아서 하는 것이 힘을 얻기가 쉽다 하는 구절에 대해서도 말씀이 있었지마는,

당연히 참선은 좌선(坐禪)만이 참선은 아니나, 가급적이면 단정히 앉아서 가부좌나 반가부좌를 하고, 눈은 평상으로 뜨고 그래가지고 단전호흡을 하면서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면서이뭣고?’ 초보자는 마땅히 그렇게 길을 들여가야 하는 것은 사실이나, 어찌 좌선만이 참선이겠느냐 이거거든.

 

먹을 , 입을 , 변소에 , 세수하고 양치질 , 목욕할 , 일체처 일체시 항상 자기 본참공안을 거각을 해서, 면면밀밀(綿綿密密), 밀밀면면(密密綿綿), 간단(間斷)없이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잡드리를 해가야 것이다.

 

그래서 고인은 그럭저럭 지내지 말고, 몸과 목숨을 바쳐서 오직 한길로 전일(專一)하게 나아가도록 그렇게 법문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너나 없이 잘해 봤자, ()하니 점수를 매겨 봤자 중근기(中根機), 짜게 매기면 전부가 하근기(下根機) 것입니다.

하근기이기 때문에 특별한 장소가 필요하고, 특별한 시간을 짜야 하고, 특별한 규칙을 세워서 범위 내에서 오직 전일하게 가지만 밀고 나가자 이거거든.(1526~3624)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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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만리산하평사장~’ ; [천목중봉화상광록(天目中峰和尙廣錄)] 3 '송고(頌古)'大事未明如喪考  大事已明亦如喪考 대한 중봉화상의 게송.

[참고]大事未明如喪考  大事已明亦如喪考’ ; ‘ [大事] 밝히지 못했으면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같이 하고, 일을 밝혔더라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같이 하라” [종감법림(宗鑑法林)] 23 ‘睦州示衆  大事未明  如喪考  大事已明  亦如喪考

*(게송)萬里山河平似掌  一條官路直如絃  行人若問窮通事  鐵壁銀山在面前 ;  게송에 대한  하나의 법문---> http://emokko.tistory.com/433

*면전(面前 ·얼굴·눈앞 / ) ; 얼굴[] 대한 바로 [].

*직면(直面 맞을·대적할 /·얼굴·눈앞 ) ; 어떠한 일이나 사물을 직접 당하거나 접함.

*은산철벽(銀山鐵壁) ; 철벽은산(鐵壁銀山). 은과 철은 견고해서 뚫기 어렵고 산과 벽은 높아 오르기 어려움을 나타낸 .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여하약하(如何若何) ; 이러쿵저러쿵. 이러하다는 저러하다는 자꾸 말을 늘어놓는 모양.

*막론하다(莫論--) ; 이것저것 따지고 가려 말하지 아니하다.

*등어리 ; '' 사투리.

*입부리 ; 새의 부리나 동물의 입을 말하는주둥이 속되게 이르는 .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본래면목(本來面目 / / / )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관문(關門) ; ①다른 영역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거쳐야 단계. 또는 중요한 고비. ②다른 지역으로 나아가는 통로가 되는 지점. ③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세워 지나가는 사람이나 물품을 조사하는 . ④국경이나 요새의 성문.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참고] 송담스님(No.88)—(참선법A) 법련사 불교학생회 청법 법문(1978.10.1)에서.

중생 말세다, 중생 근기가 미약하다, 그러니까 참선법 가지고는 안되고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이러한 것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마는, 말세라고 하는 것은 편의에 따라서 정법 시대, 상법 시대, 말법 시대 이렇게 해서 말씀해 놨지만은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할 있는 사람이면, 사람은 하근기가 아니라 상근기(上根機) 것입니다.

 

아무리 부처님 당시에 태어났으되 법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하근기인 것이고, 지금 삼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 태어났어도 활구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실천에 옮긴 사람이면, 사람은 바로 정법 시대 사람이요, 사람은 상근기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선법을 배우고자 하고, 참선에 의해서 자아를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냈을 여러분은 이미 정법 시대를 만나 것이고, 여러분은 상근기인 것입니다. 조금도 그런 염려를 마시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결정코 금생에참나 자각하도록 도업을 성취하기를 간절히 빕니다.

*의단(疑團 의심할 ,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돈발(頓發 갑자기 /일어날·나타날·밝힐 )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 直頓의 , 곧바로.

*한목 ; 번에 모두. 한꺼번에 몰아서 .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상태.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정성스런·절박할 )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매카리 ; 매가리. 맥아리. ( 기운이나 ) 속되게 이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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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紅葉亂峰秋色裏  夕陽疏雨斷橋邊 ; [청허당집(淸虛堂集)] ‘戱次老秀才韻公遊山故雲참고.

*(게송) 茫茫宇宙人無數  那箇親曾到地頭 ; 卍新纂續藏經 65 <禪宗頌古聯珠通集 36> 설암조흠(雪巖祖欽) 스님 게송.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No.26)—기미년 동안거 해제 법어(80.01.17)

서왕한래춘부추(暑往寒來春復秋)하고  석양서거수동류(夕陽西去水東流)로구나.

더위가 가고 추위가 오는구나. 봄이 지나면 다시 가을이 오는구나. 석양에는 서쪽으로 해가 넘어가고 물은 동쪽으로 흘러가는구나.

 

망망우주인무수(茫茫宇宙人無數)한데  나개친증도지두(那箇親曾到地頭).

망망(茫茫) 우주에 수없이 많은 사람이 있는데, 나개친증도지두(那箇親曾到地頭), 가운데 사람이 친히 대도를 성취할 사람이 나올 것이냐.(5711~5930)

*봉다리 ; ‘산봉우리(山봉우리, 산꼭대기의 뾰족하게 솟은 머리)’ 사투리.

*삼천리강산(三千里江山) ; 우리나라 땅의 남북의 길이가 삼천리라 하여 우리나라의 강산을 이르는 .

*녹음(綠陰 초록빛 /응달·그늘 ) ; 잎이 푸르게 우거진 . 또는 숲의 그늘.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동자(同字).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다겁생래(多劫生來) ; 매우 오랜 세월동안 세상에 태어난 이래로.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구덕 ; ‘구덩이 사투리.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 이치(理致)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라고 일체의 (). ③시비(是非)•선악(善惡)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 순경(順境), 내경(內境) 외경(外境) 있다.

*저작(咀嚼 씹을 /씹을 ) ; 음식물을 입에 넣고 씹음.

*별좌(別座) ; 절에서 식사·의복·방석·이부자리 등을 담당하는 직책, 또는 일을 맡은 스님.

*채공(菜供) ; 절에서 반찬을 마련하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일을 맡은 스님.

*선덕(禪德) ; 참선한 기간이 길고, 지혜와 덕을 갖춘 훌륭한 선승(禪僧) 대한 존칭.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법랍(法臘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스님의 나이·승납 ) ; 법세(法歲), 계랍(戒臘), 하랍(夏臘)이라고도 한다.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 받아 비구, 비구니가 되고 부터의 햇수를 말한다.

*인가(印可 도장 , 옳을·인정할 )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개산조(開山祖) ; 절이나 종파를 처음으로 개산(開山) 시조(始祖).

*개산(開山) ; ①사원을 세우는 . 산속에 세웠기 때문에 이렇게 쓴다. ②일사(一寺) 스님. 사원의 초대 주지(住持). ③일종(一宗) 고승.

*초조(初祖) ; () 처음 세운 스님.

*죽비( 대나무 /빗치개·통발 )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 들어가는 , 좌선(坐禪) 시작하는 .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결제(結制 맺을 /만들법도 )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만들법도 ) ; (안거)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

*미륵불(彌勒佛) : []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呾麗耶), 매달례야(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불의 5().

*염부제(閻浮提) ; 염부(閻浮). 남염부제(南閻浮提). 섬부주(贍部洲). 남섬부주(南贍部洲).

산스크리트어 jambu-dvīpa 음사. 염부(閻浮), 섬부(贍部) jambu 음역어이며, () () dvipa 각각 음역어 의역어이다. jambu 나무 이름.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수미산(須彌山) 사방에 대륙(四洲) 있는데, 염부라는 이름은 여기에 자란다는 점부(jambu) 유래하며, 남방에 있기 때문에 남섬부주(南贍部洲)라고 한다.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라 하며, 여러 부처님이 나타나는 곳은 사주(四洲) 가운데 이곳뿐이라 . 불전에서는 인간세계의 전체를 의미하는 말로서 사용되고 있다.

*고인(古人) ; 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이구동성(異口同聲 다를 / /같을 /소리 ) ; ‘입은 다르나 목소리는 같다 뜻으로, 여러 사람의 하는 말이 한결같고 일치함을 이르는 .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면면밀밀(綿綿密密) ; 면면(綿綿)하고 밀밀(密密)하게. 끊어지지 않고 아주 빽빽하게 잇따라 있는. 밀밀면면(密密綿綿).

*간단(間斷 ·사이 /끊을 ) ; 계속되던 것이 잠시 그치거나 끊어짐.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후하다(--) ; (마음이나 태도가)인색하지 않고 넉넉하다.

*전일(專一 오로지 / ) ; ①마음과 힘을 모아 오직 곳에만 쓰다. (사람이나 사물이)한결같고 변화가 없다.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5. 6. 21. 16:11

 

 

§(세등39) (게송)황앵상수일지화~ / 무상설법(無上說法) / 일초직입여래지 / 선용기심(善用其心) / 화두 의단타파 확철대오하는 이 도리를 산승은 부처님을 모시고 증명합니다.

언제 어느 찰나에 깨달을런지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거각(擧却)하고 성성적적한 상태로 정진을 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공부가 잘 안되고, 화두가 잘 안 들리고, 답답하고 몸부림쳐지고 애를 먹을 때 그때, 선용기심(善用其心), 잘 그 마음을 잡드리해서 화두를 들고 공부를 지어 나가면 그 고비가 바로 깨달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고비다.

 

‘철저하게 무상(無常)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도업(道業)을 이루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생사(生死)가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고 하는 사실을 명심을 하셔서 1초 1초를 금쪽같이 아껴서 공부하고, 한 생각 한 생각 일어날 때마다 화두를 거각해서 등한(等閒)히 지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39)—임술년 하안거 결제 법어(82.04.17) (세등39)

 

(1) 약 22분.

(2) 약 12분.


(1)------------------

황앵상수일지화(黃鶯上樹一枝花)요  백로하야천점설(白鷺下野千點雪)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야래풍우(夜來風雨)를 객문선(客聞先)헌데  춘산의구초당전(春山依舊草堂前)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황앵(黃鶯)이 상수(上樹)하니 일지화(一枝花)요, 노란 꾀꼬리가 나무에 오르니 한 가지 꽃이요.
백로하야천점설(白鷺下野千點雪)이다. 흰 해오라기가 들에 내리니 천점의 눈이더라.

야래풍우(夜來風雨)를 객문선(客聞先)인데, 밤새 오는 비바람 소리를 객이 먼저 들었는데,
춘산의구초당전(春山依舊草堂前)이로구나.  봄 산은 옛을 의지해서 초당 앞에 서 있구나.

임술년 하안거 결제일을 맞이했습니다.
벌써 4월 17일 입하(入夏)가 지나서 뜰 앞, 뜰 뒤 산과 들은 바야흐로 연록(軟綠)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그 아름다운 꽃들도 지고 지금 모란꽃이 한창 피어 있습니다.

노란 꾀꼬리가 가지에 오르니 한 송이의 꽃이요, 흰 해오라기가 들에 내리니 천점의 눈이로다.
한 송이의 꽃, 노란 꾀꼬리 한 마리가 떠억 나뭇가지에 오르니 한 송이의 아름다운 꽃이다.

꾀꼬리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오를 때 한 가지의 아름다운 꽃이요.
산과 들과 방방곡곡 금수강산(錦繡江山)이 울긋불긋한 꽃과 잎이 비단에 수(繡)놓은 것처럼 이렇게 싱그럽고 아름답게 장엄(莊嚴)을 하고 있습니다.

범연(泛然)히 보면, 예사로 보면, 봄이 오니까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여름이 돌아오니까 이렇게 무성하게 잎이 모다 피어오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너무나 평범한 일이지만,
깨달은 눈으로 보면 이 평범한 현실이 입으로 설할 수 없고,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최고의 진리를 남음이 없이 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눈을 통해서 보는 모든 색상, 귀를 통해서 듣는 모든 소리, 코를 통해서 맡는 모든 냄새, 혀를 통해서 맛보는 모든 맛, 몸을 통해서 느끼는 모든 감각, 뜻을 통해서 받아 들여지는 모든 의식이 바로 진리를 깨닫게 하는 무상설법(無上說法)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부처님은 납월팔일(臘月八日) 새벽 동천(東天)에 떠오르는 샛별을 보시고 견성성불(見性成佛) 하셨고,
어떠한 도인(道人)은 복숭아꽃 피는 것을 보고 깨달으시기도 하고, 어떠한 도인은 물 흘러가는 것을 보고 깨닫기도 하고, 어떠한 도인은 닭 우는 소리를 듣고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기도 하고,
어떠한 도인은 시장에서 장사꾼들이 멱살을 거머쥐고 서로 다투고 욕을 하는 그 소리를 듣고 깨달은 분도 있고, 우리도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확철대오를 할는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깨달을 때에, 차츰 차츰 알아 들어가 가지고 깨닫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의단,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해서 순일무잡(純一無雜)한 경계에 들어가서,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만 나가고 있으면, 언제 어느 찰나에 의단이 타파(打破)될런지를 알 수가 없어.


예를 들자면 어느날 중대한 뉴스가 발표가 된다. 확실한 시간은 모르지만 오늘 중으로 무슨 중대한 발표가 있다.
이럴 때에 아침부터 라디오나 TV 다이알을 딱 맞춰 놓고—언제 중대한 발표가 돌연히 발표가 될는지 모를 때 딱 다이알을 맞춰놓고 대기하고 있는 것처럼,
벌써 다이알을 맞춰놓지 아니한 채 있다가 지나가 버리면 중대한 발표를 듣지 못하는 거여.

언제 발표될지를 모를 때처럼, 딱 다이알을 맞춰놓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언제 어느 찰나에 깨달을런지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떠억 거각(擧却)하고 성성적적한 상태로 정진을 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번갯불 번쩍할 때에 그 번쩍 하는 그 찰나를 이용해서 바늘귀를 뀌듯이, 깨달음의 눈을 뜨는 그 장면은 마치 그와 같은 것이여.
점진적(漸進的)인 것이 아니고, 비약적(飛躍的)인 것이기 때문에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한번 뛰어서 여래(如來)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 공부는 1분 1초라도 등한히 놓아 지낼 수가 없는 것이여.

다른 공부는 시간을 맞춰서도 하고, 또 공부 아니할 때에는 만사를 다 잊어버리고 즐겁게 놀기도 하고, 먹고 잠도 자기도 하고, 사업이나 무슨 사무나 모든 것을 다 놔 버리고 훌쩍 떠나서 저 산이나 바다로 쉬러 가기도 하고,
그렇지만, 우리의 공부는 쉬는 시간이 없습니다.

밥을 먹을 때에도 화두를 들고 먹어야 하고, 세수를 할 때에도 화두를 들고 세수를 해야 하고, 똥을 눌 때에도 화두를 들고 똥을 눠야 하고, 몸이 아플 때에도 화두를 들고 꿍꿍 앓아야 하고,
속이 상할 때에도 화두를 들고 속을 상해야 하고, 다정한 사람이 죽어서 슬플 때에도 화두를 들고 슬퍼해야 하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속이 상할 때나 괴로울 때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단 1초 동안이라도, 찰나 동안이라도 화두를 놔 버리면 그 사람은 진실한 수행인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공부가 마냥 한결같이 잘되는 것이 아니고, 어느 때에는 순풍에 돛 달듯이 화두가 저절로 들리면서 성성하게 잘되어 가다가,
또 어떤 때에는 뚝 변해 가지고 영 답답하고 머리가 개운치를 못하고, 시간이 지루하고 몸부림이 쳐지고 어찌해 볼 수 없이 그렇게 애를 먹은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귀를 끌고 깊은 우물로 들어갈라고 하는 것처럼, 되게 고삐를 땡겨서 우물로 들어갈라고 하면 할수록 나귀는 뒤로 버티고 안 들어올라고, 이렇게 공부하기가 어렵고 힘이 든 때도 있습니다.
수월하게 잘될 때 보다도 이렇게 공부가 잘 안되고 힘이 들고, 애를 먹고 답답하고 몸부림쳐질 때 그때가 훨씬 중대한 중요한 고비라 하는 것을 잘 인식을 해야 할 것입니다.

<서장(書狀)>에도 대혜(大慧) 스님께서 그 점에 대해서 누누히 강조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공부가 잘 안되고, 화두가 잘 안 들리고, 답답하고 몸부림쳐지고 애를 먹을 때 그때,
선용기심(善用其心), 잘 그 마음을 잡드리해서 화두를 들고 공부를 지어 나가면 그 고비가 바로 깨달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고비다 이 말씀이여.

공부가 한 걸음 나아갈랴면은 그와 같은 경계를 만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고비를 잘 넘기고 나면 그 다음부터서는 한결 공부가 수월하고 힘을 얻게 된다 이것입니다.

흔히 화두가 성성하게 잘 들리면은 공부가 잘된다고 좋아하고,
그러다가 보면 또 공부가 영 답답하고 잘 안되면 그 안되어서 성화를 내고 거기에서 번뇌심을 내고, 짜증을 내고, 자포자기하는 마음을 내고, 어쩔 줄을 몰라.
기도를 해볼까? 주력을 해볼까?


불행방초로(不行芳草路)허면  난지낙화촌(難至落花村)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산진수궁의무로(山盡水窮疑無路)터니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불행방초로(不行芳草路)허면 난지낙화촌(難至落花村)이라.
꽃다운 풀 우거진 길을 지나가지 아니하면, 꽃 떨어진 마을에 이르기 어렵다.
향기나는 풀이 우거진 오솔길을 지나가야 꽃이 활짝 피고 지고 한 아름다운 고장에 들어갈 수가 있다.

수궁산진의무로(水窮山盡疑無路)터니, 산이 다하고 물이 다해서 이제 맥혀 가지고 인자 길이 없지 않나? 이렇게 의심했더니,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이다. 버들은 그윽히 드리워져 있고, 꽃이 화사하게 피어있는 또 한 마을이 있더라.(처음~21분37초)




(2)------------------

아무리 화두를 들고 정진 할라고 애를 써도 가도가도 답답하기만 하고, 한 걸음도 공부가 더 나아가는 늘어나는 수가 없어. 작년에 마냥해도 그 택이요, 금년에도 마냥해도 그 택이요. 그 또 몇 해냐?

몇 해를 자기 딴에는 밤잠을 안 자고, 남 구경하고 놀러가도 자기는 구경하고 놀 것을 그만두고 자나깨나 화두를 들고 애를 써서 공부를 한다고 하는데 만(萬)날 해도 죽 떠먹은 자리여.
누구한테 내놓을래야 내놓을 것이 있나, 콱 맥혀서 답답하기만 하고.

‘참으로 확철대오라고 하는 것이 있는 것인가?’

‘공연히 이렇게 화두만 꽉 아무 생각 못하게 하고 잡념 못하게 하기 위해서, 풀라야 풀 수도 없고 아무 답도 있을 수도 없는 그런 공안(公案)이라 하는 문제를 주어 가지고 이 사람 골때리는 지서리가 아닌가?’

‘무슨 이거 방편(方便)으로 이 화두를 참구(參究)하게 만들어 가지고 마침내 번뇌 망상 안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조사(祖師)가 방편으로 화두니, 공안이니 하는 것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이러한 생각도 들드라 이 말씀이여.

3년 5년 10년 해봤자 무슨 소식이 있어야지?
해 갈수록 답답하기만 하고 혼침(昏沈)만 오고, 아무리 화두를 들라고 몸부림을 쳐도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망상뿐이고, 망상이 조금 잠잠해질라 하면 그때는 또 혼침이 와 가지고,

얼마나 답답하고 얼마나 지루하고 얼마나 못 견뎠으면 웃옷을 벗어서 방바닥을 치면서 ‘이 조주(趙州)가 뭣 때문에 무자(無字) 화두를 내 가지고 이 사람을 이렇게 골탕을 먹이냐’고 다리를 뻗고 우는 스님도 있었고,
머리를 갖다가 벼람박에나 기둥에다 갖다가 이마를 수없이 들이받으면서 피가 나도록 받으면서 죽어버리고 싶은 이러한 충동을 느끼는 수도 있고,

그러나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남기신 법어(法語)를 보면 결정코 우리를 속이지 않는 사실을 우리는 인증할 수가 있습니다.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으로는 아무리 따져도 해결이 안 되지만,
선지식(善知識)의 바른 지도에 의해서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하면, 그래 가지고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랴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독로하고,

머리를 들어도 하늘이 보이지 아니하고, 머리를 숙여도 땅이 보이지 아니하고, 산을 봐도 산의 빛깔과 모냥에 대해서 보이지 아니하고, 물을 봐도 물이 보이지 아니하고,
걸어가되 걸어가는 줄을 모르고, 앉았으되 앉아있는 줄을 모르고, 천 명 만 명 사람이 있는데 서 있어도 한 사람도 사람이 보이지 아니하고, 밥을 먹고 반찬을 먹어도 짜고 싱거운 줄을 모르고,

이러한 경지에—오직 화두의 의단 하나만이 성성적적하게 독로하고, 이러한 경계에 들어가서도 빨리 깨닫기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누가 나로 하여금 이럴 때 툭 깨닫게 해 주기를 바래지도 말고,
다못 이와같이 공부를 지어가야 일주일이 가지 아니해서 반드시 의단이 타파가 되어서 확철대오를 할 것이다.
이것은 속일 수 없는 사실이여. 역대조사가 다 그러한 과정을 겪으셨어.

‘이것이 만약에 거짓이라면은 거짓말한 죄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가겠다’고 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도 맹세를 하셨고, 몽산(蒙山) 스님도 맹세를 하셨고,
산승(山僧)도 이 도리를 믿고 여러분 앞에 부처님을 증명으로 모시고 여러분에게 선언을 합니다.

출가한 목적은 오직 이 한 문제!
이 일대사(一大事) 해결하는 일 밖에는 다시 무엇이 있습니까?

부모와 정든 고향을 버리고 청춘을 버리고 인생의 모든 낙(樂)을 다 버리고 머리를 깎고 출가한 우리들입니다. 정말 목숨 바쳐서 정진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인생 칠십이라 하지만 누구나 칠십까지 다 사는 것도 아니고, 하루도 장담을 못하는 것이고, 한 시간도 믿을 수가 없고,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바로 그것이 내생(來生)인 것입니다.

‘철저하게 무상(無常)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도업(道業)을 이루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생사(生死)가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고 하는 사실을 명심을 하셔서 1초 1초를 금쪽같이 아껴서 공부하고, 한 생각 한 생각 일어날 때마다 화두를 거각해서 등한(等閒)히 지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진심(精進心)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오늘부터서는 내가 잠을 안 자고 공부를 하리라. 내일부터서는 묵언을 하고 공부를 하리라. 내일부터서는 오후불식(午後不食)을 하리라. 그래 가지고 말을 아니하고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리라’
그렇게 마음을 먹고 정진을 애써서 할려고 하는 그러한 기특하고 갸륵한 수행인이 있습니다.

대단히 기특하고 갸륵하고 매일 같이 자기를 ‘오늘 하루는 어떻게 공부를 했는가’ 반성을 해 보고 ‘내일은 어제보다 더 알뜰히 공부를 하리라’ 이렇게 시시각각으로 단속을 하고 또 단속을 하는 것, 참 좋습니다.
단 하루도 등한히 지낸 날이 없고, 하루하루 갈수록 더 알차게 공부를 해 나가는 것, 대단히 좋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 일으키는 그 생각마저도 화두를 간절히 든다면 어느 것이 더 낫겠습니까?

‘게으른 사람은 항상 뒤를 바라보고, 지금의 일찰나(一刹那)를 등한히 한다’ 그랬습니다.

진실한 수행인은 ‘앞으로 잘하리라’하는 생각도 일으키지 말고, 당장 지금 이 찰나에 허리를 쭉 펴고 화두를 간절히 드는 법인 것입니다. 이것이 최상승 학자의 수행 자세인 것입니다.
이렇게 1초 1초를 다져 나간다면 그 사람은 그날 하루도 알차게 공부를 하게 될 것이고, 물어 볼 것도 없이 내일 하루도 충실하게 정진이 되어질 것입니다.

1초 1초가 모여서 1분이 되고, 1분 1분이 모여서 한 시간이 되고, 한 시간 한 시간이 모여서 하루가 되고, 하루 하루가 모여서 한 달이 되고, 한 달 한 달이 모여서 1년이 되기 때문에,
1초 1초, 한 생각 한 생각을 알뜰히 단속한 사람이야말로 일생을 충실하게 정진할 사람이고, 나아가서는 억겁(億劫)의 생사 문제도 ‘한 생각’에서 해결이 나는 것입니다.

‘일념(一念)이 바로 무량겁(無量劫)’이라고 하는 법성게(法性偈)의 법문을 보면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일념 일념, 1초 1초를 등한히 한 사람은 무량겁 생사윤회가 끊어지지를 아니한 것입니다.(21분40초~34분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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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黃鶯上樹一枝花 白鷺下野千點雪 ; 『오등회원(五燈會元)』 15 「奉先深禪師 참고.
師曰 古人道白鷺下田千點雪,黃鶯上樹一枝花 維那作麼生商量?
*(게송) 夜來風雨客聞先 春山依舊草堂前 ; 『매천집』 (3권) (매천 황현의 시문집) ‘復至文星齋 참고.
[참고] 『매천집(梅泉集)』 (3) - () : 신축고(辛丑稿)
 다시 문성재에 이르러〔復至文星齋〕 (한국고전번역원, 박헌순 )
夜來風雨客聞先 隔嶺思家轉杳然 已過頭番摘茶候 將蕪一畝種蔘田 老懷慣與同庚話 詩訣勤從後輩傳 世事十年驚百變 春山依舊草堂前
 
밤에 부는 비바람 소리 나그네가 먼저 듣고, 고개 너머 고향 집이 더욱 아득히 생각나네. 첫 찻잎  시기는 이미 제철 지나갔고, 한 뙈기 인삼 밭은 장차 묵밭이 되어 가리.
늙은이 회포를 익숙하게 동갑 벗과 주고받고, 시 짓는 비결은 부지런히 후배에게 전해 주네. 세상일은   동안 백번이나 변했지만, 봄 산은 예전처럼 초당 앞에 우뚝하네.
*매천 황현(梅泉 黃玹 1855~1910) ; 전남 광양 출생. 한말의 시인, 문장가, 우국지사. 1910 829 한일합방의 치욕을 당하자, 절명시(絶命詩) 4편을 남기고 910 음독 자결하였다.
*연록(軟綠 연할 /초록빛 ) ; 연한 녹색. 연녹색. 연한 초록색(草綠色).
*금수강산(錦繡江山) ; 비단에 수를 놓은  매우 아름다운 산천. 함경북도 북쪽 끝에서 제주도 남쪽 끝까지 3,000리가 되는 우리나라의 자연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장엄(莊嚴 엄숙할삼가할꾸밀 /엄할공경할꾸밈 ) ; ①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국토를 꾸미고, 훌륭한 공덕을 쌓아 몸을 장식하고, 향이나  따위를 부처님께 올려 장식하는 .
②건립하는 . 건립. 훌륭히 배치, 배열되어 있는 . ③장식. 물건을 장식하는 . 아름답게 장식함. 훌륭한 . 엄숙하게 장식된 모양, 모습. 장식물.
*범연(泛然) ; ①두드러진 데가 없이 평범하게. ②특별한 관심이 없어 데면데면하게.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무상설법(無上說法) ; 진리를 깨닫게 하는 최고의 가르침.
*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을 이르는 말.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35세의 12월 8일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선하(尼連禪河)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샛별[明星]이 뜰 무렵 별을 보고 불도(佛道)를 이루던 날. 부처님의 성도일(成道日). 납팔(臘八)이라고 줄여 쓰기도 하고, 성도회(成道會) · 성도절(成道節) · 성도재일(成道齋日) 등이라고도 한다.
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밤낮으로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
*샛별 ; 새벽별. 명성(明星).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금성(金星)’을 이르는 말. 새벽별, 태백성(太白星), 계명성(啓明星), 장경성(長庚星) 등이라고도 한다. 『보요경(普曜經)』에 따르면 석가모니(釋迦牟尼)께서 이 별이 돋을 때, 정각(正覺)을 이루었다고 한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成佛].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어떠한 도인(道人) 복숭아꽃 피는 것을 보고 깨달으시기도 하고' ;
[참고]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제11권) (전등록 1,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730.
福州靈雲志勤禪師本州長溪人也 初在潙山因桃華悟道 有偈曰 三十來年尋劍客 幾逢落葉幾抽枝 自從一見桃華後 直至如今更不疑 祐師覽偈詰其所悟與之符契 祐曰 從緣悟達永無退失 善自護持
 
복주(福州) 영운지근(靈雲志勤) 선사. 그는 본주(本州 : 福州)의 장계(長溪) 사람이니, 처음에 위산에 있다가 복사꽃을 보고서는 도를 깨닫고 게송을 지었다.
 
30년 동안 검(劍)을 찾던 나그네여. 몇 차례나 잎이 지고 가지가 돋았나.
스스로 복사꽃을 한 차례 본 뒤로는 지금에 이르도록 다시는 의심치 않네.
 
영우(靈祐)가 이 게송을 보고 그 깨달은 바를 따져서 서로 계합하였다. 영우가 말했다.
"인연 따라 깨달아 도달했으니, 영원히 물러나지 않으리니 잘 보호하여 간직하라"
 
*'어떠한 도인은  흘러가는 것을 보고 깨닫기도 하고' ;
[참고] 『선관책진(禪關策進)』 (운서주굉 스님 지음) 「제조고공절략(諸祖苦功節略 조사들의 공부법)」의 ‘이두촉주(以頭觸柱 머리를 기둥에 부딪치다)’에서.
中峰本禪師 侍高峰死關 晝夜精勤 困則以頭觸柱 一日 誦金剛經 至荷擔如來處 恍然開解 自謂所證未極 彌益勤苦 咨決無怠 及觀流水 乃大悟
評曰 自謂所證未極 故終至極處 今之以途路 爲到家者 衆矣 嗟夫
 
중봉본(中峰本) 선사는 사관(死關)에서 고봉(高峰) 화상을 모시고 주야로 정진하며 지내는데, 곤(困)하면 머리를 기둥에 부딪치곤 했다. 하루는 금강경을 외우다가 '하담여래처(荷擔如來處)'라는 대목에 이르러 환하게 개해(開解)하더니 스스로 말하기를 "증한 바가 아직 구경(究竟)이 아니다"하고 더욱 힘써 정진하여 부지런히 법을 묻고 결택하더니, 어느 날 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마침내 대오(大悟)하였다.
(평) 중봉선사는 스스로 '증한 바가 구경이 아니다'라 했으니, 그런 까닭으로 마침내 지극한 곳에 이르렀거늘 지금에 길위에 있으면서도 집에 이른 것으로 아는 자가 많으니 딱한 일이다.
 
*'어떠한 도인은  우는 소리를 듣고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기도 하고' ;
[참고] 서산대사(西山大師) ; (1520~1604) 조선의 스님. 평남 안주 출신. 법명은 휴정(休靜). 호는 청허(淸虛). 서산(西山)인 묘향산에 오래 머물러 서산(西山)이라고도 함.
9세에 어머니를, 10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안주 군수를 따라 한양에 가서 12세에 성균관에 입학함. 15세에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고 동배(同輩) 여러 명과 함께 지리산을 유람하며 지내다 숭인(崇仁)의 설법을 듣고 남아 여러 경전을 정독하고 다시 부용 영관(芙蓉靈觀, 1485-1571)에게 3년 동안 지도를 받았다. 그 때 그의 나이 18세. 그 3년뒤 21세에 계(戒)를 받음.
 
그 후 명산 제찰(名山 諸剎)을 찾아다니면서 수도하다가, 어느 날 벗을 찾아 봉성(鳳城 : 南原)을 지나가다 우연히 낮닭 우는 소리를 듣고 크게 깨쳐 다음과 같이 게송을 지었다.
 
발백심비백(髮白心非白) 고인증누설(古人曾漏洩) 머리 세어도 마음 안 센다고 옛 사람 일찌기 일렀더구나.
금문일계성(今聞一鷄聲) 장부능사필(丈夫能事畢) 닭울음 한 소리 이제 듣고 나니 장부의 할 일을 다 마쳤도다.
홀득자가저(勿得自家底) 두두지차이(頭頭只此爾) 문득 자가 것을 깨닫고 나니 온갖 것이 다만 이뿐이로세.
천만금보장(千萬金寶藏) 원시일공지(元是一空紙) 팔만대장경도 본시는 한 장 빈 종이로세.
 
그 뒤로 관동(關東)의 명산을 두루 편답하니 그 때 나이가 30이었다.
 
1552년(명종 7)에 새로 부활된 승과(僧科)에 합격하여 대선(大選)이 되고, 3년 후에는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가 되었으나 2년 후에 그 직책을 사양하고 금강산 · 지리산 · 묘향산에서 수행함.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휴정을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에 임명하니, 그는 묘향산에서 나와 전국 승려들에게 총궐기하는 격문을 방방곡곡에 보내 승군(僧軍)을 평남 순안 법흥사(法興寺)에 집결시켜 여러 곳에서 큰 공을 세움.
 
임진왜란 7년 전쟁이 끝난 후 79세의 휴정은 그의 제자 유정(惟政)과 처영(處英)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묘향산으로 들어감. 그 뒤로도 금강산, 지리산, 묘향산 등지를 왕래하며 많은 제자를 이끌었다. 1604년(선조 37) 정월 23일에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입적함. 세수 85세, 선납(禪臘) 65.
 
그 날 아침 대사는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눈이 쌓인 길을 헤치고 남여(籃輿 : 주로 산길에 쓰이는 뚜껑이 없고 의자같이 된 가마)를 타고 여러 암자를 마지막으로 돌아보신 후 원적암으로 돌아와 손을 씻고 위의를 갖추고 불전에 분향한 다음 스스로 붓을 들고 조실(祖室)에 들어가서 그의 자화상에 이렇게 적었다. 즉
 
팔십 년 전 거시아(八十年前渠是我) 팔십 년 전에는 네가 내러니
팔십 년 후 아시거(八十年後我是渠) 팔십 년 뒤 오늘은 내가 너로다.
 
하고, 다시 임종게(臨終偈)로써 「千計萬思量  紅爐一點雪  泥牛水上行  大地虛空裂」
억천만 가지 온갖 생각들  불에 떨어진 흰눈 한 조각, 진흙 황소가 물 위로 가고  땅과 허공이 꺼져 버렸네.
 
이렇게 써놓고 고요히 앉아서 입적하였다.
저서 : 삼가귀감(三家龜鑑)·선가귀감(禪家龜鑑)·선교석(禪敎釋)·청허집(淸虛集)·운수단(雲水壇).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惺惺]한 상태.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더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뀌다 ; ‘꿰다 사투리.
*점진적(漸進的 점점 /나아갈 /조사 ) ; ①점차로 조금씩 나아가는. ②점차로 조금씩 나아가는 .
*비약적(飛躍的  / /조사 ) ; ①단계를 껑충 뛰어 아주 빠르고 눈부시게 발전, 향상하는. 정상적인 단계를 차례로 밟지 않는. ②단계를 껑충 뛰어 아주 빠르고 눈부시게 발전, 향상하는 . 정상적인 단계를 차례로 밟지 않는 .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 ‘한 번 뛰어 여래(如來)의 경지에 바로 들어간다’
*여래(如來) : 부처님 10호(十號)의 하나。 범어 tathāgata의 역(譯)。 여(如)는 진여(眞如)의 뜻이니 곧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의 뜻。 또 여거여래(如去如來)의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참고] 『증도가(證道歌)』 (영가永嘉 스님)에서.
覺卽了不施功  一切有爲法不同  住相布施生天福  猶如仰箭射虛空  勢力盡箭還墜  招得來生不如意
 
깨닫고 나면 공(功)을 베풀지 않으니 일체 유위법(有爲法)과 같지 않다. 상(相)에 머문 보시는 천상에 나는 복이나, 마치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 올라가는 힘이 다하면 화살은 다시 떨어지니, 내생(來生)에 뜻과 같지 않음을 초래하게 되리라.
 
爭似無爲實相門  一超直入如來地  但得本莫愁末  如淨琉璃貪寶月  我今解此如意珠  自利利他終不竭
 
어찌 무위(無爲)의 실상문에, 한 번 뛰어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것만 하겠는가. 다만 근본을 얻을지언정 지엽은 근심하지 말라. 마치 깨끗한 유리구슬 안에 보배 달을 머금은 것과 같네. 내, 이제 여의주를 아나니 나와 남을 이롭게 함에 마침내 다함이 없도다.
*'그런데  공부가 마냥 한결같이 잘되는 것이 아니고, 어느 때에는 순풍에  달듯이 화두가 저절로 들리면서 성성하게 잘되어 가다가,  어떤 때에는  변해 가지고  답답하고 머리가 개운치를 못하고, 시간이 지루하고 몸부림이 쳐지고 어찌해   없이 그렇게 애를 먹은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귀를 끌고 깊은 우물로 들어갈라고 하는 것처럼, 되게 고삐를 땡겨서 우물로 들어갈라고 하면 할수록 나귀는 뒤로 버티고  들어올라고, 이렇게 공부하기가 어렵고 힘이  때도 있습니다.
 
수월하게 잘될  보다도 이렇게 공부가  안되고 힘이 들고 애를 먹고 답답하고 몸부림쳐질 , 그때가 훨씬 중대한 중요한 고비라 하는 것을  인식을 해야  것입니다. 『서장(書狀)』에도 대혜(大慧) 스님께서  점에 대해서 누누히 강조하신 것을  수가 있습니다' ;  '공부가 안될 때가 한 계단 올라서려는 고비’ 법문을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 · 『대혜서(大慧書)』 · 『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杲)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총 62장(狀)의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글).
이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할 때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주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을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을 역설하였다.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그렇게 공부가  안되고, 화두가   들리고 답답하고 몸부림쳐지고 애를 먹을 , 그때! 선용기심(善用其心),   마음을 잡드리해서 화두를 들고 공부를 지어 나가면  고비가 바로 깨달을  있는 힘을 얻을  있는 좋은 고비다  말씀이여공부가  걸음 나아갈라면은 그러한 그와 같은 경계를 만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고비를  넘기고 나면 그다음부터서는 한결 공부가 수월하고 '힘을 얻게 된다[得力]' 이것입니다 ; 득력(得力). 수행이나 어떤 기술 · 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참고] 『서장(書狀)』 (대혜종고 著) ‘증시랑(曾侍朗)에게 답함(여섯 번째)’
苟念念에 不退初心하고 把自家心識이 緣世間塵勞底하야 回來抵在般若上이면 雖今生에 打未徹이라도 臨命終時에 定不爲惡業所牽하야 流落惡道하고 來生出頭에 隨我今生願力하야 定在般若中하야 現成受用하리니 此時決定底事라 無可疑者니라.
 
참으로 생각생각에 초심(初心)에서 물러나지 말고 자기 자신의 마음이 세간의 번뇌와 반연하는 것을 잡아 돌이켜 반야(般若) 위에 이르게 하면, 설령 금생에 (이 일을) 타개打開하여 사무치지 못하더라도 임종시에 결정코 악업(惡業)에 이끌리는 바가 되어 악도(惡道)에 흘러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며, 내생에 태어나면 나의 금생 원력에 따라 반드시 반야 가운데에 있어 수용(受用)을 현전 성취(現前成就)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결정적인 일이라, 의심할 게 없는 것입니다.
 
衆生界中事는 不著學하야도 無始時來로 習得熟하며 路頭亦熟이 自然取之에 左右逢其原하니 須著撥置니이다.
出世間學般若心은 無始時來로 背違라 乍聞知識의 說著이어도 自然理會不得하나니 須著立決定志하며 與之作頭抵하야 決不兩立이니다.
 
중생계의 일은 배우지 않더라도 아득한 옛날부터 익혀서 무르익어졌으며, 인생길에도 역시 익어져서 자연스레 취하여 그 중생계의 일 속으로 들어가니, 마땅히 이 습기를 없애 버리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에) 세간을 나와서 반야(般若)를 배운다는 마음은 시작을 알 수 없는 때로부터 등지고 어겨왔으므로 잠깐 선지식의 설법(說法)을 듣는다 해도 쉽사리 이해되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결정(決定)한 뜻을 세워서 더불어 머리를 맞대고 겨루어 나가야 합니다. (습기와 반야는) 결코 양립되지 않습니다.
 
此處에 若入得深하면 彼處는 不著排遣하야도 諸魔外道가 自然竄伏矣니이다. 生處는 放敎熟하고 熟處는 放敎生이 政爲此也니 日用做工夫處에 捉著欛柄하면 漸覺省力時가 便是得力處也니이다.
 
이 곳[般若心]에 깊이 들어가게 되면 저 곳은 (습기를 굳이) 물리쳐 보내지 않아도 모든 마(魔)와 외도가 자연히 항복해 숨을 것입니다. 설은 곳[生處]은 익게 하고, 익은 곳[熟處]은 설게 함이 바로 이 때문이니, 일용에 공부하는 곳에서 요점을 잡고[欛柄] 차츰 힘이 덜어진다고 느낄 때가, 바로 그때가 힘을 얻는 곳입니다.
 
*(게송) '불행방초로(不行芳草路) 난지낙화촌(難至落花村)' ; ‘우거진 풀밭길 걷지 않으면 꽃이 지는 마을에 가긴 어려워.’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66 (가로판 p174)
*(게송) ‘수궁산진의무로(水窮山盡疑無路)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 ; 중국 남송 세대의 시인, 육유(陸遊)의 시 《遊山西村》 참고.
莫笑農家臘酒渾,豊年留客足鷄豚。山重水復疑無路,柳暗花明又一村。 簫鼓追隨春社近,衣冠簡樸古風存。從今若許閑乘月,拄杖無時夜叩門。
 
[참고] 송담스님(No.523)—93년(계유년)성도재 법회(93.12.08.음)
수궁산진의무로(水窮山盡疑無路)터니, 물이 다하고 산이 다해. 목적지를 찾아서 깊은 산중에 들어가는데 이제 계곡을 따라서 올라가니 물도 다 끊어지고 산도 콱 막혀서 인자 더이상 갈 곳이 없구나. 내가 갈 곳은 어디냐? 이렇게 물도 끊어지고 산도 콱 막혀서 이제 길이 콱 끊어졌으니 ‘이제는 내가 여기서 죽는구나’
 
그러나 거기서 쉬지 않고 다시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겨서 한 고개를 넘어가니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이다. 파란 버들은 그윽히 휘늘어지고 밝은 꽃은 환하니 핀 또 한 마을이 거기에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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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도.  만큼.  수준.
*만날(-) ; ①어떤 경우든 한결같이. ②특정한 시간에 한정되지 않고 어느 때든. ③때를 가리지 않을 만큼 매우 자주.
*골때리다 ; 어이없고 터무니없다.
*지서리 ; ‘짓거리('' 낮잡아 이르는 )’ 사투리. * : 몸이나 몸의 일부를 놀려 움직이는 행동이나 행위를 나타내는 .
*방편(方便 방법·수단 /편할 )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참구(參究 헤아릴 /궁구할 ) ; ①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조사선법(祖師禪法)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 같다.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벼람박 ; ‘바람벽(--, 집의 둘레 또는 방의 칸막이를 하기 위해 만든 )’ 사투리.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리(事理)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바가 아니다라고 .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 아비(阿鼻) 산스크리트어 avīci 음사.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 아버지를 죽인 , 어머니를 죽인 , 아라한을 죽인 ,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 ,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 죄인의 눈을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지옥에 가겠다(떨어지리라) ;
[참고 ①] 「최상승론(最上乘論)」 (5조 홍인대사 弘忍大師 602 ~ 675)
若有人依文行者即在前成佛. 若我誑汝當來墮十八地獄. 指天地爲誓. 若不信我世世被虎狼所食.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글(最上乘論)에 의지해 수행하면 곧 성불하게 될 것이다. 내가 만약 너를 속인다면 다음 세상에 십팔지옥(十八地獄)에 떨어지리라. 하늘과 땅에 맹세하노라. 만약 나를 믿지 아니하면 세세생생에 호랑이 밥이 되리라.
 
[참고 ②]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하권 (백운화상초록 白雲和尙抄錄) ‘승고선사(承古禪師 ? ~ 1045)’
承古禪師 常勸諸人 莫學佛法 但自無心去 利根人晝時解脫 鈍根人或三五年 遠不過十年 若不悟去 老僧 替你入拔舌
 
승고선사께서 항상 여러 사람에게 권하되 “불법을 배우지 말고 다만 스스로 무심하여라. 영리한 근기의 사람은 한나절에 해탈하고, 둔한 근기의 사람은 혹은 3년 · 5년이며 멀어도 10년을 지나지 않는다. 만약 깨닫지 못하면 노승이 너를 대신해서 혀를 뽑는 발설지옥(拔舌地獄)에 들어가리라”
 
[참고 ③]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 『몽산법어』 (몽산화상 1231 ~ 1298 또는 1308) (용화선원刊) p97-99.
若有來此(약유내차)하야  同甘寂寥者(동감적료자)인댄  捨此世緣(사차세연)하며  除去執着顚倒(제거집착전도)하고  眞實爲生死大事(진실위생사대사)하야  肯順菴中規矩(긍순암중규구)하야 截斷人事(절단인사)하고  隨緣受用(수연수용)호대  除三更外(제삼경외)에  不許睡眠(불허수면)하며 不許出街(불허출가)하며  不許赴請(불허부청)하며  未有發明(미유발명)이어든 不許看讀(불허간독)하며  非公界請(비공계청)이어든  不許閱經(불허열경)이니
 
만약 이에 와 고요함을 같이 즐기려는 이는, 이 세상 인연을 다 여의며 제 고집과 애착과 모든 거꾸러진 생각을 다 버리고, 참으로 생사의 큰일을 위하야 절의 규칙을 잘 지키고 인사(人事)를 끊고 먹고 입는 것을 되어가는 대로 하되, 밤 삼경 외에는 자지 말고 거리에도 나가지 말며 오라는 데도 가지 말고 깨치기 전에는 글도 읽지 말며 예식 때가 아니거든 경도 보지 말지니
 
如法下三年工夫(여법하삼년공부)호대  若不見性通宗(약불견성통종)인댄 山僧(산승)이  替爾(체이)하야  入地獄(입지옥)호리라
법다이 삼 년 동안 공부해 만약 견성하여 종지(宗旨)를 통달하지 못하면, 산승(山僧)이 너희들을 대신하여 지옥에 들어가리라.
 
[참고 ④] 「고봉화상선요·어록(高峰和尙禪要·語錄)」 ‘立限示衆(其九)—9. 기한을 정하고 대중에게 보임’ (고봉원묘 高峰原妙 1238 ~ 1295) (통광 역주 | 불광출판사) p85, p88 참고.
參禪 若要剋日成功 如墮千尺井底相似 從朝至暮 從暮至朝 千思想萬思量 單單只是箇求出之心 究竟決無二念 誠能如是施工 或三日 或五日 或七日 若不徹去 西峰今日 犯大妄語 永墮拔舌犁耕
 
참선하는데 만일 한정된 날짜에 공(功)을 이루려면 마치 천척이나 되는 우물에 빠졌을 경우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밤이나 낮이나 천 생각 만 생각이 오로지 다만 우물에서 나오려는 마음뿐이고 끝끝내 결코 다른 생각이 없는 것과 같이 하여라. 진실로 이렇게 공부하기를 혹은 3일, 혹은 5일, 혹은 7일 하고도 깨치지 못한다면 서봉은 오늘 대망어죄(大妄語罪)를 범했으므로 영원히 혀를 뽑아 밭을 가는 지옥[拔舌犁耕地獄]에 떨어질 것이다.
*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 몽산 스님 ;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생사재호흡지간(生死在呼吸之間) ; ‘생사(生死)가 한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 생사라 하는 것은 멀리 잡을 것이 아니라 하루도 멀고, 한끼도 멀고, 한 호흡 사이에 있다고 하는 것. 그렇게 무상하고 기약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생사인 것이다.
*호흡지간(呼吸之間) ; 한 번 내쉬고[呼] 들이쉬고[吸] 할 사이[間]라는 뜻으로, 아주 짧은 시간을 이르는 말.
[참고]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제38장’
佛問沙門 人命在幾間 對曰數曰間 佛言 子未知道 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 對曰飯食間 佛言 子未知道 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 對曰呼吸間 佛言 善哉子知道矣
 
부처님께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는 아직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밥 먹을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도 아직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호흡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너는 도를 아는구나”
*등한(等閒) ; 무관심하거나 소홀하게.
*오후불식(午後不食) ; 정오(正午),  열두 시가 지나면 먹지 않는 .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일찰나(一刹那) ; 극히 짧은 순간.
*억겁(億劫) ; 무한히 길고 오랜 세월.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 ‘한 생각이 바로 무량겁’
통일 신라 시대에,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화엄경을 연구하고 그 경의 핵심을 추려서 7언 30구(210자)의 게송으로 지은 「화엄일승법계도 華嚴一乘法界圖」 또는 「법성게 法性偈」에 나오는 구절.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 (무량원겁즉일념  일념즉시무량겁) 한량없는 오랜 세월이 한 생각 찰나요, 찰나의 한 생각이 무량한 시간이네.
*법성게(法性偈) ; 통일 신라 시대에, 의상(義湘 625 ~702) 스님이 중국에서 화엄경을 연구하고 그 경의 핵심을 추려서 지은 7언 30구(210자)의 게송. 210자를 54개의 각(角 굴절)이 있는 도인(圖印)에 합쳐서 만든 「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의 게송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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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4. 6. 13. 14:15

§(401) 심우송(尋牛頌) / 공안을 사량분별로 따지지 말라. 의단독로 하도록 잡드리해 가야 / 불가심문축구(不可尋文逐句) / 선용기심(善用其心).

우리가 지금 그러한 심우송(尋牛頌)을 자세히 따져보는 것도 퍽 뜻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단계는 어디까지나 이 '마음 소'를 찾기 위해서 화두를 들고 주삼야삼(晝三夜三)에 앞과 뒷이 콱 맥힌 상태에서 의단으로 공안을 참구(參究)해 나가는 그 단계, 그것이 매우 중요한 단계인 것입니다.


어쨌든지 공안을 참구하는데 가서는 앞뒤가 끊어져 버려야 하거든. 꽉 맥혀서 오직 의단만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잡두리를 해 가야 그래야 그 사람이 공안을 타파하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게 되는 것이여.


오직 그 화두 한 마디, 한 의심만을 향해서 의단이 독로허도록 이렇게 잡드리를 해 나가야 해. 답답허면 답답헐수록 그렇게 해 나가고, 아무리 공부가 안되면 안 될수록에 그렇게만 해 나가야 돼.


**송담스님(No.401) - 1989년 11월 첫째일요법회(65분)에서. (용401)

 

(1) 약 13분.

 

(2) 약 17분.

 


(1)------------------

 

방금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십우송(十牛頌)-10가지의 소를 찾는 게송에 대한 그 심우송(尋牛頌)에 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우리의 그 마음자리를 ‘소’에다가 비유해 가지고 고인(古人)들이 게송(偈頌)을 읊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보리심(菩提心)을 발해 가지고,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견성(見性)해서 중생교화하는 데까지 10단계로 노나서 게송으로 읊은 것인데 그 게송에 따라서 고인들은 또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것이 많이 여러 가지 종류의 게송도 나오고, 여러 가지 종류의 그것에 의한 그림도 나오고, 요새는 달력 캘린더에도 그런 그림이 나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있습니다마는,

첫째, 제일의 심우(尋牛)-'찾을 심(尋)'자, '소 우(牛)'자-‘소를 찾는다. 심우(尋牛)’ 그 단계는 보리심을 발하는 위치여.
우리는 언제 생겨날 때가 없는, ‘언제 그 마음자리가 생겨났다’하고 헤아려 볼 수 없을 만큼 우주세계가 생겨나기 이전에부터서 있었던 그 '마음 소'인데,
그 '마음 소'를 부처님도 가지고 계시고, 모든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역대조사(歷代祖師)도 그 '마음 소'를 다 가지고 계시고, 우리의 중생도 가지고 있고, 심지어 개·소·돼지·미물에 짐승·벌레까지라도 그 자리를 다 가지고 있다 그말이야.

근데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잊어 버렸어. 가지고 있으면서도 까마득해 모르고 살고 있다 그말이여. 그러니 부처님의 법, 조사의 법문에 의지해서 잃어버렸던 그 '마음 소'를 찾는다 그말이여.
그 마음, 진여불성 자리를 찾는 것을 그 ‘소를 찾는다’고 해서 심우(尋牛)라 그러는데, 보리심을 발(發)해야 그때부터서 '마음 소'를 찾기 시작한 거다 그말이여.

그래 아까 조실 스님께서 첫 번째 읊으신 게송이 바로 그 '마음 소' 찾는 데에다가 두고 읊으신 게송인데, 그 게송이 중국의 그 곽암(廓庵) 선사라고 하는 도인(道人)이 읊으신 게송입니다.

그 다음에 가서 견적(見跡)이거든. 자취를 봐. 소를 찾아서 인자 집을 떠나 가지고 그 소를 찾으러,
그 산이 험하고 물이 넓고 하는 것을 꺼리지 아니하고 그 소를 찾으러 방방곡곡이 다니는데 그 참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이 막심을 하다 그말이여.
근데 그렇게 찾아다니다 보니 발자취를 발견을 했어. 발자취를 발견한 것을 두 번째 견적이라 그러는데,

그리고 세 번째가 견우(見牛)고-소를 보고,
또 소를 본 다음에는 득우(得牛)-소를 붙잡는 거여.
그리고 다섯 번째 가서 목우(牧牛)여. 소를 먹이는 거여. 길들여서 먹여.

그러니 처음에 소를 찾을랴고 하는 그 보리심을 발한 것도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지금 세계 50억 인구가 있다 하지마는 정말 그 '마음 소' 찾으려는 마음을 낸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다행히 우리는 1600년 전에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가지고 고구려·백제·신라를 거쳐서 또 고려, 해서 오늘날까지 이렇게 1600년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한국으로 태어난 사람은 참 이 불교에 인연이 있어서 우리는 이렇게 참 여기에 까지 왔으나 그러한 국가적으로 역사적으로 그런 불교와 인연이 없는 나라 사람들은 꿈에도 생각지도 못할 일인 것입니다.

그렇게 소를 열심히 찾다 보면은 그 자취를 발견하게 되고 그 자취를 따라서 나아가다 보면은 결국은 소가 거기에 있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 소를 본 다음에는 그놈을 붙잡을라고 하면 도망치거든.

그놈을 잘 어떻게 해서 지혜와 인내와 방편으로써, 그놈을 잘해서 접근을 해 가지고 그놈을 재치있게 붙들어야지. 소를 저 먼 밑으로 소 봤다고 해서 막 지혜없이 쫓아가서 어거지로 잡을라고 하면 그 소가 도망가 버리고 말 것이다 그말이여.

참선도 역시 그 바른 선각자의 바른 지도하에 여법하게 정진을 해야 되지, 자기 멋대로 아무렇게나 우격다짐으로 막 몰아붙인다고 해서 이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소를 본 다음에는 그것을 잘 붙들고, 붙든 다음에도 그놈을 참 지혜롭게 요령있게 소를 잘 먹여야지, 붙들어만 놨다고 해서 그걸 아무렇게나 놔두면 다시 또 도망쳐 버릴 것이고.
무엇을 먹는가? 어떻게 이 소를 잘 다스려 나가는가? 그것을 참 정성을 다해서 잘 그 소를 먹이고 거두어 나가야 그 소가 토실토실 살이 찌고 번질번질하니 기름져서, 그 소가 농사도 짓고 병도 안 나고 그 소를 인자 맘대로 참 잘 길러 가지고,

여섯 번째 가서 그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외양간에다 딱 묶어 놓고 잘 먹이는데, 얼마동안 잘 먹이다 보면,
일곱 번째 가서 망우존인(忘牛存人)이거든. 소를 잊어버리고 사람만 있어.
인자 딱 잘 먹여서 외양간에다 해 놓으니까 소가 길이 들어서 도망가질 않으니까, 소에 대한 인자 관심을 놔 버리고 딱 주인만 있는 거지.
'소에 대한 생각'은 인자 아주 길이 잘 들여있고, 편안하게 외양간에 길들여져서 있으니까, 이것도 다 공부해 나가는 절차를 거기에다 그렇게 비교를 하는 것입니다.

쉬웁게 말하자면은 이 길을 들이는 과정에서는,
화두를 열심히 열심히 애를 써서 열심히 들다 보면은 화두를 들지 안 해도 제대로 의단(疑團)이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들리는 과정, 그놈을 거쳐서 나중에 공안을 타파해 가지고 확철대오를 하거든.
확철대오를 하면은 일체처 일체시에서 깨달음의 경지가 낭연독존하며-원각대지(圓覺大智)가 낭연독존(朗然獨存)한 경지에 이르르거든. 무수이수(無修而修)거든. 닦음이 없이 닦는 거거든.

그리고 여덟 번째 가서는 인우구망(人牛俱忘)이거든. 사람과 소를 완전히 다 잊어버리거든.
그래서 '집에 돌아와 가지고 소는 잊어버리고 사람만 있는 것[忘牛存人]'은 잊어버리고 그 다음에 사람과 소를 둘 다 잊어버린 것은 보리(菩提)를 이룬 위치다.

또 '소를 잊어버리고 사람만 있는 것[忘牛存人]'은 소승(小乘)에서는 아공(我空)의 경계를 그렇게 표현을 했다 그러고, 그 다음에 인우구망(人牛俱忘)의 자리는 대승의 경지에서 말하는 보리를 이룬 경지에다가 비유해서 그렇게 했다고 고인은 그렇게 해설을 합니다.

그리고 아홉 번째 와서 이 반본환원(返本還源) 이것은 열반(涅槃)의 경지에 들어간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이것은 대승이나 소승이 다 같이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열 번 째 가서 수수입전(垂手入廛) 손을 드리고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중생계로 나아가는 것인데.

이런 10가지 단계로 보리심을 발(發)해 가지고 도업(道業)을 성취해서 보림(保任)을 다 완성을 한 다음에 중생을 교화하러 나가는 그러한 단계를 10가지로 이렇게 구분한 것인데,
참 대단히 그 '마음 소'를 찾는 경계를 그 '소' 찾는 경계에다가 비유해서 이렇게 게송을 읊고 또 그림을 이렇게 그려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를 닦아가는 데에 퍽 이해하기 쉽고 재미스럽게 표현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방금 조실 스님께서는 첫 번째 제일 심우(尋牛) 단계와 두 번째 자취를 보는 견적(見跡)의 단계만을 게송으로 읊으시고 그것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9분43초~22분30초)

 

 

 


(2)------------------

 

우리가 지금 그러한 심우송(尋牛頌)을 자세히 따져보는 것도 퍽 뜻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단계는 어디까지나 이 '마음 소'를 찾기 위해서 화두를 들고 주삼야삼(晝三夜三)에 앞과 뒷이 콱 맥힌 상태에서 의단으로 공안을 참구(參究)해 나가는 그 단계, 그것이 매우 중요한 단계인 것입니다.

그래서 방금 산승이 읊은 그 게송에 ‘불법(佛法)이다. 전등(傳燈)을 계승한다’ 그러한 생각도 일으키지 말고,
다못 자기의 공안-본참공안(本參公案)만을 위해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공부를 지어 가는데,

공부를 지어 가는데 있어서 고인(古人) 공안 상에 복탁(卜度)하고 망령되이 해석을 가하지 말아라. 비록 낱낱이 해석을 해 가지고 그럴싸한 해답을 얻었다 할지라도 '참나'를 깨닫는 일과는 아무 교섭(交涉)이 없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공안을 갖다가 사량분별로 따져서 이것은 무슨 최초구다, 이것은 말후구(末後句)다, 이것은 제삼구(第三句)다, 이것은 제2구다, 이것은 체(體)다 용(用)이다, 체용동시(體用同時)다, 이런 식으로.. 이것은 본분이다 신훈이다.
옛날에 강사나 또는 의리선(義理禪)을 하는 사람들은 공안을 낱낱이 그렇게 분석하고 따져 가지고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서 그 공안을 다 깨달은 것처럼 그렇게 여겼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활구참선(活句參禪)이 아니여. 그러한 식으로 백 천 공안을 다 따져서 결론을 내려 봤자 그것은 생사해탈도 아니고 견성성불도 아니여.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와 같아서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그렇거늘, 하물며 그 불 속에 어떻게 앉거나 누울 수가 있겠는가?
공안을 가지고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비교하고 분석하고 그래 가지고 어떤 분별심으로 결론을 내린 것은 마치 불덩어리에 훨훨 타는 무서운 불길 가까이 가 가지고 그것을 만져 볼랴고 그러고 또 그 속에 들어갈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이거거든.

그 공안 속에, 크게 나누고 작게 나누고 논상논하(論上論下) 이러쿵 저러쿵 체(體)다, 용(用)이다, 체용동시(體用同時)다, 신훈이다, 본분이다, 일구·이구·삼구다, 이렇게 따진 것이 다 분대분소(分大分小)하고 논상논하 한 것이거든.
이러면 그것이 상신실명(喪身失命)-벌써 수행자로써 공안을 갖다가 의리(義理)로 따지고 사량분별로 이렇게 따지는 짓을 하는 것은 벌써 생명을 잃어버린 것이여.

조실 스님께서 항상 말씀하신 것은 이 공안을 가지고 사량분별로 따진 것을 극히 엄격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까닭이 바로 공안은 큰 불덩어리와 같아서 가까이 하면은 수행자로서의 생명을 잃어버려.

공안을 그런 식으로 따져서 무슨 공안을 대하든지, 법문을 듣던지, 어록을 보던지, 보면은 자기 나름대로 이러쿵이러쿵 따져서 결론을 내려.

조실 스님께서는 그것을 말씀하시기를 사견종자(邪見種子)라 그랬습니다.
사견(邪見) 삿된 종자, 삿된 견해를 가진 씨알머리다 그거거든. 사견종자는 암만 해봤자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일러주면 『예 알았습니다.』 그래 놓고는 금방 다음에 또 사견을 내거든.

어쨌든지 공안을 참구하는데 가서는 앞뒤가 끊어져 버려야 하거든. 꽉 맥혀서 오직 의단만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잡두리를 해 가야 그래야 그 사람이 공안을 타파하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게 되는 것이여.

그리고 또 하나, 공부하는 사람이 주의할 것은 불가심문축구(不可尋文逐句)여. 글을 찾고 글귀를 쫓는 거여.
그것이 공부하다가 답답하고 암만해도 안 되고 하면은 뭐 전등(傳燈)·염송(拈頌) 기타 조사어록 모다 이런 것을 뜨적뜨적 하며 행여나 거기서 무슨 좋은 해결이 나올까?

워낙 해도 해도 안 되고 가슴은 못 견디게 그렇게 답답하니까 혹 그런 것을 보면 좀 후련하고 시원해지는 맛이 있어서 그런 것을 다 볼라고 그러고,
또 그런 어록 속에 기언묘구(奇言妙句)-'기특한 말과 묘한 글귀'가 있으면 그런 것을 마음속에 기억을 하고, 이런 것은 다맛 아무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공부에 큰 장애가 된다.
진실로 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러한 짓을 하지 말아라.

그 공부가 안 되고, 암만해도 공부가 진취가 없고, 해 갈수록 답답하기만 하고, 앉아서도 답답하고 서서도 답답하고 추호도 어떤 그 공부가 잘된다고 하는 그런 시원한 대목이 없으니까,
대단히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지마는, 그 답답하고 꽉 맥히고 이 단계가 이러한 경지가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중요하고도 좋은 경계라 그랬습니다.

대혜 스님도 그러한 경지야말로 깨달음에 나아갈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단계니까, 거기에서 번뇌심(煩惱心)을 내지 말아라. 번뇌심을 내지 말고 거기에서-그 답답하고 답답한 그런 경지에서,
선용기심(善用其心)-잘 그 마음을 잡드리를 해 가지고, 화두를 놓치지 말고 참구를 잘 해가면 반드시 깨달음에 이를 것이다. 고인이 한결같이 당부하신 말입니다.

그리고 공부하는 사람은 이 비량(比量)-이것과 저것을 비교허고 공안을 이 공안과 저 공안을 비교허는 거야.
그래 가지고 마음을 가져서-이 공안 저 공안에 대해서 마음을 가지고 거기에서 주박(湊泊)을 혀.
그걸 따지고 그놈을 가지고 속으로 속 살림을 해 나가는 거여. 이렇게도 생각해 보고 저렇게도 생각하고.

이것은 그렇게 하면은 도(道) 하고는 점점 더 멀어지는 거야. 공안을 가지고 이렇게 따지고 저렇게 따지고, 이놈과 저놈을 비교허고,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사량분별로 복탁(卜度)하고 이런 것은 미륵불(彌勒佛)-56억 7천만 년 뒤에 미륵불이 출생허실 때까지 이르러도 그 사람은 참 깨달음과는 아무 교섭(交涉)이 없다.

그래서 이 활구참선을 허는 사람은 마치 은산철벽(銀山鐵壁) 속에 갇혀 있는 거와 같애서,
‘다못 어떻게 허면 이 사방이 은산철벽으로 둘러서 나갈래야 나갈 수가 없는데 어떻게 허면 여기서 빠져나갈까?’ 오직 그 활로(活路)를 찾는 그 한가지 일만이 문제가 되야 해.

그래서 그 활로를 찾는 방법이 「이 뭣고?」거든. 「이뭣고?」
아까 조실 스님께서는 판치생모 화두를 말씀허셨는데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무자 화두를 허신 분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이뭣고」 화두를 허신 분은 「이 뭣고?」

오직 그 화두 한 마디, 한 의심만을 향해서 의단이 독로허도록 이렇게 잡드리를 해 나가야 해. 답답허면 답답헐수록 그렇게 해 나가고, 아무리 공부가 안되면 안 될수록에 그렇게만 해 나가야 돼.

또 그렇게 해 나가다 보면, 머리가 개운하면서 화두를 들랴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리면서 그렇게 깨끗하고 조용하고 잘 들릴 때가 오되, 그럴 때라 하더라도 ‘아! 됐다. 이제 공부가 잘된다’ 그런 기쁜 마음을 내서는 안 돼. 그런 기쁜 마음을 내면 금방 또 경계가 확 변한 거거든.

그래서 설사 공부가 좀 수월허게 화두가 잘 들리고 의심이 의단이 잘 순일허게 된다 하더라도 조금도 기뻐하는 마음을 내면 안 돼.
왜 그러냐 하면은 우리의 육근문두(六根門頭)에는 항상 마왕(魔王) 파순(波旬)의 권속이 육근문두에 와서 지키고 있거든. 그래 가지고 잠깐이라도 틈만 있으면 그 육근을 통해서 들어와 가지고 아주 내란을 일으킬라고 작정을 허는거여.

마치 한 국가도 이웃나라가 그 나라를 침범을 할라며는 항상 간첩을 보내 가지고 그 나라의 모든 것을 감시허다가, 감시허면서 계속 서로 이간(離間)을 붙이는 거여.
정부와 백성을 이간을 붙이고, 백성과 백성을 이간을 시키고, 신하와 임금을 이간을 시켜 가지고, 이간을 시켜서 싸움만 일어나면은, 그것이 바로 침범해서 그 나라를 갔다가 빼앗기가 가장 좋기 때문에,
그래서 그 나라가 이웃나라로부터서 침범을 안 받고 멸망을 안 할랴며는 어쨌든지 그 나라 백성이 서로 화합을 해야 하거든.
그 나라 백성이 화합이 돼 가지고 모두가 서로 믿고 자기의 맡은바 소임을 열심히 허고 그러면은 그것이 바로 가장 나라를 위하고 국가 민족을 위하는 것이 되어서 외부에서 침범해봤자 도저히 성공을 못 허는 것이여.

우리 공부해 나가는 사람도 눈과 코와 입, 귀-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가 서로 눈은 자기의 역할이 따로 있고, 입은 입의 역할이 따로 있고, 또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따로 있고,
그러니 우리의 발심한 그 마음으로 주재(主宰)가 되아야, 육근(六根)이 심왕(心王)의 명령에 모두가 다 복종을 하고 합심해서 한 대사(大事)를 향해서 합심이 될 때에 도(道)도 이룰 수가 있는 것이여.

그런데 그놈이 흩어져 가지고 오욕락(五欲樂)에 빠지고 탐진치(貪瞋癡) 삼독심의 종이 된다면 도업(道業)은 성취허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결국은 마군(魔軍)이의 함정에 빠지고 그 홀랑게에 걸려서 도업 이루기 커녕은 마군이의 종자(種子)가 되고 마는 것이여.
그 마군이의 종자가 안 되고 법왕 권속이 되는 길은 마군이의 올개미가 무엇인가를 잘 알면은 그 올개미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 올개미가 바로 사량분별이거든.

우리 공부하는 분상에는 사량분별(思量分別)이 가장 중요헌 것이야.
일체처 일체시에 알 수 없는 의단으로 그렇게 나가면은 마군이가 거기에는 발붙이지를 못하는거여.
꽉 맥히지 않고 알아 들어가고 이치 길이 있고 말 길이 있고 더듬어 들어 갈 것이 있으면 그것이 바로 마군이 올가미에 걸려드는 것이여.(9분43초~39분3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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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인(古人) ; 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의단(疑團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원각대지(圓覺大智)가 낭연독존(朗然獨存) ; 원각(圓覺)의 대지(大智)가 밝게 홀로 드러나.
[참고] 원각(圓覺) ; 석가여래의 원만(圓滿)한 깨달음. 진여(眞如)의 체득. 부처님의 지혜.
*보리(菩提) : [범] bodhi  도(道) • 지(智) • 각(覺)이라 번역。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곧 불과(佛果)를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의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도(道), 곧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범어의 음대로 쓰면 「보디」라고 하겠지만, 우리 말의 관습상(ㄷ —> ㄹ) 「보리」로 읽는다。따라서 「보제」나 「보데」로는 읽지 않아야 할 것이다.
*아공(我空) ; 인공(人空). 인무아(人無我).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아집(我執)에 대해,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없다고 보는 견해 혹은 이치, 또는 이러한 깨우침을 증득한 상태 또는 경지이다.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불도의 수행. 진리의 실천.
*보림(保任 보임) ;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더욱 갈고 닦는 수행. 흔히 ‘보림’이라 읽는다.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2)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방금 산승이 읊은 그 게송>>> 이 법문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사량복탁(思量卜度) :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衆生心)이요 사량심(思量心)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나쁜 마음의 작용.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미륵불(彌勒佛) ; Maitreya. 번역하여 자씨(慈氏).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출신으로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 천인(天人)을 위해 설법•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 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세존의 교화에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석가모니세존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으로 보처(補悽)의 미륵이라 한다.
*은산철벽(銀山鐵壁) ; 철벽은산(鐵壁銀山). 은과 철은 견고해서 뚫기 어렵고 산과 벽은 높아 오르기 어려움을 나타낸 것.
*육근문두(六根門頭) ; 육근(六根-眼耳鼻舌身意)의 문 앞. 육근과의 경계.
*마왕(魔王) 파순(波旬) ; 천마(天魔). 욕계(欲界)의 제육천(第六天) 곧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임금은 곧 마왕(魔王)이니, 그 이름이 파순(波旬)이다。그는 항상 불법을 파괴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것은 불도를 공부하는 이가 있으면 그의 궁전이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한다。그러므로 누구나 불법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낼 때에 곧 천마가 따르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한 생각 일어나는 그것이 곧 천마다.
*이간(離間) ; 두 사람 사이에서 서로를 헐뜯어 관계가 멀어지게 만듦. 또는 두 사람 사이에서 각각 제삼자를 헐뜯고 일러바치고 하여 사이의 정을 떨어뜨림.
*주재(主宰) ; 어떤 일을 중심이 되어 맡아 처리함. 또는 그 사람.
*심왕(心王) : 의식 작용의 본체。객관(客觀) 대상에 대하여 그 일반상(一般相)을 인식하는 정신 작용。여기에 육식(六識), 팔식(八識), 구식(九識)의 구별이 있다.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홀랑게 ; '매듭'의 사투리.
*올개미 ; '올가미'의 사투리. 노끈이나 철선 따위로, 잡아당겨도 매듭이 풀어지지 않도록 한 가닥을 고리처럼 만들어 짐승을 잡는 기구.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