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6) (게송)남북동서무정착~ / 장판때 / (게송)이인유밀불수저~ / 수행자는 코뿔소의 뿔처럼 외롭게 지내라 / 자각(自覺) 각타(覺他) 각행원만(覺行圓滿)—수행자목표.


도 닦는 참선의 기쁨을 먹고 사는 것이 수좌의 음식이다.

수행자는 항상 냉정하고 쌀쌀하고, 무슨 명예나 이끗이나 이양(利養)이나 재색(財色)에 그런 데에 솔깃하게 넘어가서는 안된다.

부처님 말씀에 ‘스스로의 자기의 깨달음을 얻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할 수 없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깨닫는 공부를 게을리 하고서는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전통해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송담스님(No.616)—98년(무인년) 동안거결제 법어(98.12.03)


약 22분.


남북동서무정착(南北東西無定着)하고  생애지재일지공(生涯只在一枝筇)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설두세작연하미(舌頭細嚼烟霞味)하고  직입천봉갱만봉(直入千峰更萬峰)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남북동서무정착(南北東西無定着)하고  생애지재일지공(生涯只在一枝筇)이다.

동서남북 정착한 데가 없어. 겨울에는 남쪽 선방(禪房)에 가서 지내고, 여름에는 저 북쪽 선방으로 가고, 동쪽으로 갔다, 서쪽으로 갔다, 남쪽으로 동쪽으로 갔다.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서 도반(道伴)을 찾아서 또 지내기 좋은 도량(道場)을 찾아서, 동서남북으로 일정하게 딱 정착한 데가 없듯이 계절 따라서 왔다갔다 하는데,


생애지재일지공(生涯只在一枝筇)이다. 수좌(首座)의 일생애(一生涯)라 하는 것이 오직 이 한 가지 주장자(拄杖子)에 달려 있다 그말이여.


설두세작연하미(舌頭細嚼烟霞味)하고, 혀끄터리는 다못 안개와 연기, 연하(烟霞)의 맛을 가늘게 씹는 것이다 그말이여.

연하를 씹으면서 연하의 맛을—무슨 맛있는 고량진미(味), 산해(山海)의 진미를 먹고 사는 게 아니라 연하의 맛을 씹으면서,


그 연하(烟霞)의 맛이라는 게 무엇이냐? 법희선열(法喜禪悅)이요, 선열(禪悅)로 위식(爲食)하는 겁니다. 도 닦는 참선의 기쁨을 먹고 사는 것이 수좌의 음식이다 그말이여.


연하의 맛을 씹으면서 직입천봉갱만봉(直入千峰更萬峰)이다. 바로 천봉(千峰) 다시 만봉(萬峰)을 향해서 들어가더라.


‘천봉 그리고 또 다시 거기서 더 만봉을 찾아서 들어간다’ 그 말은 아까 조실스님의 법문 가운데에 활구참선이라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따져서 말 길[語路]을 더듬어서 알아들어가는 공부가 아니여.


해 갈수록 알 수가 없는 그 본참공안(本參公案)을 향해서 바로 의심관(疑心觀)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들어갈수록 깊고, 들어갈수록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천봉만봉갱만봉(千峰萬峰更萬峰)을 향해서 들어간다고 이렇게 표현을 한 것입니다.



오늘 동안거 결제를 맞이해서 비구·비구니·청신사·청신녀 형제자매 도반들이 여기에 모다 운집(雲集)을 했습니다.

각자 자기가 지내는 처소에서 결제를 해도 되겠지만은 조실스님의 최상승법문(最上乘法門)을 뜻을 같이한 도반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그 법문을 듣기 위해서 여기에 오셨습니다.


그 선방에도 다 녹음테이프가 있어서 거기서 들어도 충분하리라고 생각이 되는데 여기에 와서 지내는 데에는,

도반들 같은 도반들을 여기서 만나서 입을 벌려서 말은 안 하지만은 한번 눈과 눈이 마주칠 때, 마음과 마음이 마주침으로서 한 목표를 향해서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 나가는 선후배 도반이 만나는데 뜻이 있는 것이고,


석 달 동안을 알뜰히 정진을 하고 해제 때 또 다시 만나자고 하는 말 없는 가운데에 거기서 깊은 말이 오고가는 것입니다.


방금 조실스님의 녹음법문에 활구참선, ‘여하시 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이냐?'하는데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이 조실스님의 법문 속에 결제 법문은 분명히 그리고 충분히 법문을 들었습니다.


(법문을) 들어서 산승이 결제 법문이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마는 도반들이 이렇게 모이셨으니 석 달 동안을 무장무애하게 그리고 알뜰하고 짬지게 지내기를 바래는 마음에서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해마다, 철마다 여름이면 여름 결제, 겨울이면 겨울 결제 하는데, 처음에 첫 철에 나갈 때에는 엄섬하고 경건하고 아주 근신(謹愼)하는 마음으로 방부를 들이고 한 철을 지냅니다.


두 철이 또 지나가고 세 철, 네 철 지내다 보면 엄섬하고 경건한 그러한 기분은 차츰 사라지고 모다 아무 근신하는 마음가짐이 차츰 해이(弛)해져서 그럭저럭 한 철 지내고,


또 거기서 해제를 하면 또 다른 선방에 가서 지내고 해서 ‘장판때’만 반들반들 묻어 가지고,

철저한 신심으로 정진하는 기운이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해이해지는 그런 경향이 있다고 옛날 스님네들은 그 ‘장판때’라는 말을 많이 사용을 했습니다.


여기에 모이신 도반들은 결단코 그러한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러한 말이 해당이 된다면 안 되겠다고 하는 도반으로서의 노바심(老婆心)에서 나오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인유밀불수저(利刃有蜜不須舐)하고  고독지가수막상(蠱毒之家水莫嘗)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시비해리횡신입(是非海裏橫身入)하고  표호군중자재행(豹虎群中自在行)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이인유밀불수저(利刃有蜜不須舐)요, 날카로운 칼날에 꿀이 묻어있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그 꿀을 핥아먹다가 혀를 베게 되는 것이니 설사 칼끝에 꿀이 묻었다 하더라도 그 꿀을 핥아먹지를 말아라 이것입니다.


고독지가(蠱毒之家)에 수막상(水莫嘗)이여. 고독지가(蠱毒之家)라 하는 것은 그 흉가(家)—샘에 독이 풀어져 있는 집의 물은 아무리 목이 마른다 하더라도 그 물을 먹지를 말아라 이것입니다.


무엇이 칼날 위에 꿀이고 고독지가에 물이라는 게 무엇이냐?


수행자는 명예나 이끗이나 재색(財色)이나 이양(利養)이나 모다 이러한 것들이,

누가 나한테 따뜻하게 잘 해주고, 잘 보시를 하고, 좋은 옷을 해주고, 약을 지어주고, 명예를 주고, 어떤 권리를 주고, 내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그러한 것들이 다 칼날 위의 꿀이고 고독지가(蠱毒之家)의 물이라 하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항상 냉정하고 쌀쌀하고, 무슨 그러한 이끗이나 이양이나 재색(財色)에 그런 데에 솔깃하게 넘어가서는 안된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수행자는 코뿔소의 코뿔처럼 외롭게 지내라’ 그러셨습니다.

다른 모든 짐승은 뿔이 두 개씩인데 코뿔소는 코끝에 뿔이 하나가 딱 있는데, 그 하나만을 앞세우고 일생을 사는데 ‘그렇게 외롭게 살아라.’


이끗과 명예 모다 그런 데에 부합을 하지 말고, 그런 데에 넘어가지 말고,

돈 많이 주는 데 찾아당기고, 맛있게 해 주는 데 찾아당기고, 그런 데에 휩쓸리지를 말고, 먹고 잘 먹고 못 입는 것은 그것은 인연에다 맡겨.


가난한 데에 검박하고 그래도 수행하는데 도움이 되는 그런 데를 찾아가야지,

돈을 생각해서 찾아가고, 맛있게 잘 받들어 주는 데만 찾아다니면 결과적으로 남은 것은 칼끝의 꿀을 빨아먹다 혀를 짤리는 거고, 고독지가에 물을 먹다가 결국은 목숨을 잃게 된다 그 말입니다.


시비해리(是非海裏)에 횡신입(橫身入)이요. 옳다 그르다 하는 시비(是非)의 바다 속에 몸을 비켜서 들어가.

도처가 간 곳마다 시비가 끊어지는 데가 없고, 어디를 가나 크고 작은 시비는 있기 마련이고, 그런 시비에 말려 들어가지 말고 그 시비 속에서도 몸을 비켜서 나가는 거고.


표호군중자재행(豹虎群中自在行)이다. 표범과 호랑이가 득실거리는 그런 속에 자재(自在)하게 행해야 한다 그 말인데, 여러분들도 다 아시다시피 종단이 퍽 시끄럽습니다.


총무원, 조계사 모다 전국승려대회도 일어나고, 이 파 저 파 해 가지고 천여 명씩이 모아서 온갖 불상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 어떻게 하면 종단을 잘해 나갈까? 자기가 나가야 이 종단을 잘해 나가겠다. 피차 그런 마음에서 하다보니까 충돌이 생기고, 외부에서 볼 때에는 대단히 참 가슴 아픈 사건이 벌어지고 있습니다마는,

그 분은 그런 나름대로 종단을 걱정하고 불교의 장래를 걱정해서 자기가 나가야만 되겠다고 하는 그런 끓는 용기와 원력으로 모다 그렇게 하지 않는가 생각이 됩니다마는,


그것이 진정코 종단을 위하는 일인가? 불교를 위하는 일인가? 그것은 생각하는 사람, 보는 사람의 관점에 달려 있을 것이고, 일양으로 매도할 일도 못되고, 누구 편을 들기도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불법은 자각(自覺) 각타(覺他) 각행원만(覺行圓滿)이 수행자로서 불자로서 목표를 삼고 나가야 하는 것인데,


대발심(大發心)을 해서 대지혜와 대자비로 실천 수행하는데 있어서 각자 자신의 원력과 또 자기 믿는 선지식의 지도에 따라서,


경(經) 공부를 하는 사람 또 주력(呪力) 공부를 하는 사람, 염불을 하는 사람 또 나름대로 자기가 터득한 부처님의 말씀을 포교하는 데에다가 관점을 두고 또 그렇게 해 나가는 사람,

육바라밀(六波羅密)을 수행을 해야겠다 또는 어떤 사람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사념주관(四念住觀), 비파사나(Vipassanā)라고 하는 신·수·심·법(身受心法)을 향해서 수행하는 사람,


여러 가지 방편(方便)이 다 있어서 나름대로 열심히 그렇게 수행을 하고 있는데, 각자 그 근기와 수준에 따라서 이것이 그 단계에 따라서 이렇게 수행하는 사람, 저렇게 수행하는 사람, 여러 가지 길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도반들은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에 의해서, 직절근원(直截根源)하는 이 활구참선에 의해서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는 그러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모이신 것입니다.


종단이 이렇게 시끄러울수록에 우리 이 자리에 모이신 도반들은 각자 다른 철보다도 훨씬 더 자가(自家) 중심(中心)을 탁 세우고서 정말 알뜰하고 짬지게 이 한 철을 잘 지내주시기를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스스로의 자기의 깨달음을 얻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할 수 없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깨닫는 공부를 게을리 하고서는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전통해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금년 삼동(三冬) 안거는 다른 안거 때보다도 더욱 마음을 가다듬고 그 선원의 청규(淸規)를 잘 지키면서 조용하게 말없는 가운데에 알뜰히 정진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처음~21분3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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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남북동서무정착~’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62 ‘혜총선자(慧聰禪子)를 보내며’ 게송 참고.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선실(禪室)과 같은 말. ②‘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량(道場) : [범] bodhimandala '도를 닦는 곳'이란 말이다。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수좌(首座)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주장자(拄杖子 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들이 좌선(坐禪)할 때나 설법(說法)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혀끄터리 ; 혀끝( 앞쪽  부분). '끄터리'는 '끄트머리(  부분)'의 사투리.

*고량진미( 기름 고,기장 량,보배 진,맛 미) ; 기름진 고기 좋은 곡식으로 만든 맛있는 음식.

*산해진미(山海珍味) ; 산과 바다 온갖 진귀한 산물  갖추어 차린매우  좋은 음식.

*법희선열(法喜禪悅) ; 부처님의 가르침[法]을 듣고 따르는 기쁨[喜]과 선정(禪定)에 드는 기쁨[悅].

*선열(禪悅)① 선정(禪定)에 드는 기쁨. ② 참선할 때 가슴에 잔잔히 사무치는 기쁨.

*본참공안(本參公案) :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짬지다일하는 솜씨 여물고 깐깐하다.

*근신(謹愼 삼갈 근,삼갈 신) ; 말이나 행동, 마음가짐을 삼가고 조심함.

*해이하다(弛-- 풀 해,느슨할 이) ; (마음가짐이나 태도 따위)긴장 풀어져서 슨한 상태이다.

*노바심(老婆心) ; 노파(老婆)가 자식·손자를 애지중지 하듯이, 스승이 수행자에게 나타내는 자비심. 친절심(親切心). 파심(婆心)이라고도 함.

*(게송) ‘利刃有蜜不須舐  蠱毒之家水莫嘗’ ; [선문염송] (혜심 지음) ‘제1권 1칙 도솔(兜率)’ 대혜고(大慧杲) 게송 참고.

*(게송) ‘是非海裏橫身入  豹虎群中自在行’ ; [선문염송] (혜심 지음) ‘제1권 1칙 도솔(兜率)’ 죽암규(竹庵珪) 게송 참고.
*고독(蠱毒 벌레·害毒 고,독 독) ; 지네두꺼비  (). 또는  독이 들어 있는 음식 먹어서 생기는 복통이나 가슴앓이토혈(), 하혈( 증상 나타난다.
*이끗(利끗) ; ①이익이 되는 실마리. ②잇끝(말리 末利)—지말(枝末), 지엽(枝葉)적인 이익. 작은 이익.
*재색(財色) ; 재물(財物)과 타인의 몸(色).
*이양(利養) ; ① 산스크리트어 lābha  이익(利益). 이득(利得). 획득한 물(物 : 특히 출가자에 대하여 말함). 남에게서 물건을 받는 등 실질적인 이득(利得)을 말함.
② 이익(利益)을 얻어 자기몸을 보양하는 것. 재물을 탐하여 자신을 살찌우는 것.
③ 산스크리트어 satkāra 존경. 존중. 공경. 공양.
*솔깃하다(사람 어떤 )마음 끌리다.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포구발심(怖懼發心 두려워할 포,두려워할 구,일어날 발,마음 심) : 끝없이 되풀이 되는 육도윤회(六途輪廻)에서 받을 생사(生死)가 정말 무섭구나. 그 생사의 고통을 매우 두려워(怖懼)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주력(呪力) ;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로 하는 기도.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의 효과.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로, 도피안(到彼岸)·도(度)·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여섯 가지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사념주관(四念住觀) ; 깨달음을 실현하도록 도와주고 장엄하는 37보리분법(菩提分法) 또는 37조도품(三十七助道品) 가운데 하나이다.

사념처관(四念處觀)·사의지(四意止)·사념(四念)이라고도 한다.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念處]. 네 종류의 수행방법. 네 가지의 관상법(觀想法). 네 종류의 마음이 고요해지는 내관(內觀).


염(念, sati, 마음챙김)은 ‘마음을 챙김’으로, 구체적인 의미는 ‘마음이 대상을 챙김’이다.

“여기서 마치 송아지 길들이는 자가 [송아지를] 기둥에 묶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을 염(念, sati, 마음챙김)으로써 대상을 굳게 묶어야 한다” 『디가 니까야 주석서』에서.


염(念, sati, 마음챙김)의 대상인 몸과 느낌과 마음과 법[身·受·心·法]에서 그들을 각각 더러움[不淨], 괴로움[苦], 무상(無常), 무아(無我)라고 파악하면서, 또 깨끗함, 행복, 항상함, 자아라는 인식을 버리는 역할을 성취하면서 일어나기 때문에 네 가지로 분류된다. 그러므로 사념주(四念住, 四念處)라고 한다.

*비파사나(팔리어 vipassanā, 산스크리트어 vipaśyanā) ; 비바사나(毘婆舍那)·비발사나(毘鉢舍那)로 음역.
능견(能見)·정견(正見)·관찰(觀察)·관(觀)이라 번역.
비파사나(위빳사나)는 ‘분리해서vi  보는 것passanā’이라는 문자적인 뜻 그대로,
대상[유위제법(有爲諸法)—오온(五薀)·십이처(十二處)·십팔계(十八界)]을 나타난 모양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명상하고 관찰하여 법(法)의 무상(無常)하고 고(苦)이고 무아(無我)인 특성을 통찰하는 수행.

비파사나는 마음[心]·마음부수[心所]·물질[色]로 구분되는 71가지 구경법들 가운데 하나를 통찰하는 수행인데 이처럼 법을 통찰해 들어가면 제법의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철견(徹見)하게 된다.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비파사나의 힘으로 탐·진·치의 뿌리를 멸절시켜야 영원히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되며 그래야 해탈·열반을 실현하게 된다.
비파사나는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것 그 자체이지 결코 특정한 수행기법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 「초기불교 이해」 (각묵 스님, 초기불전연구원) 참고.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직절근원(直截根源) ; 근원(根源)을 바로 꺾었다(다스리다). 근원에 몰록 들어갔다.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자가(自家) ; ①자신의 집. ②자기 자체.
*중심(中心) ; ①중요하고 기본 되는 부분. ②사물이나 일정한 장소 가장 가운데 되는 . ③ 잡은 마음또는 확고한 생각 태도.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말. 대도정법(大道正法)의 명맥(命脈). ②법신(法身)은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뜻.
*청규(淸規) ; ①선종(禪宗)의 사원에서, 여러 스님들이 늘 지켜야 할 규칙. ②참되고 바른 규칙이나 법도.


Posted by 닥공닥정
생활속 정진(요중선)2014. 11. 24. 11:59
§(복전암26) (게송)다생원채기어친~ / 무연자비(無緣慈悲), 무주상보시 / 지장보살의 원력 / 인과법(因果法) / ‘이뭣고?’는 ‘참나’를 찾는 공부, 자기마음을 바로잡는 법.
 
남에게 줄 때는 무심(無心) 속에서 주어야 하고 조건 없이 주어야 해. 이것이 부처님의 ‘무주상 보시(無住相布施)’라 하는 것이여. 금강경을 독송하신 분은 잘 아시겠지. 무주상 보시를 해야 이것이 그 공덕이 영원한 것이지, 유주상으로 준 것은 그것 나중에 꼭 그놈이 나를 웬수로 상대하게 되는 것이다.
 
어떠한 큰 죄도 ‘어떻게 해서 그 죄를 짓게 되었는가?’ 그 근원을 살펴보면 꼭 마음 ‘한 생각’에서 그것을 짓는 거여.
쇠고랑도 안 차고, 지옥에도 안 가는 방법은 한 생각 일어날 때 그때 딱! 돌이켜버리면 큰 죄를 안 짓게 되는 것이다.
 
인과법을 철저히 믿는 사람은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인과법을 안 믿고 마구잡이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다. 모든 죄도 인과법을 안 믿는 데서 저질르게 되는 것이다.
흰머리가 다른 것이 아니라 염라대왕(閻羅大王)이 ‘너 벌써 늙기 시작을 했으니 얼마 안 있으면 너를 데리러 갈테니까 정신 차려라.’ 염라대왕이 우리에게 보낸 편지다.
 
**송담스님(복전암No.26)—지장기도 천도재 회향 (93년) (복전암26)

 

(1) 약 21분.

(2) 약 21분.

 

(1)------------------
 
다생원채기어친(多生怨債起於親)하니  막약다생불식인(莫若多生不識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향아불문여광제(向我佛門如廣濟)인댄  무연진개대비은(無緣眞箇大悲恩)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다생원채(多生怨債)가 기어친(起於親)이여, 다생! 다생겁래(多生劫來)로 웬수와 빚이 친한 데에서 일어난 거여. 
막약다생(莫若多生)에 불식인(不識人)이다, 다생에 웬수가 없고자 하면 사람을 알지 아니한 것만 같지 못하다.
 
사람을 알고 지내면은 친하게 되고, 친함이 생기면은 그것이 언젠가는 변해서 웬수, 빚쟁이가 된다.
그래서 웬수와 빚쟁이를 안 만날라면 사람을 알고 지내지 아니한 것이 좋다.
 
이 ‘사람을 안다’고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인연(因緣)을 맺는 것인데,
그 인연으로 인해서 우리가 잠시 한자리에 만나서 얘기하는 인연, 함께 차를 타고 가는 인연, 함께 길을 가는 인연, 한 집에서 사는 인연, 한 마을에서 사는 인연, 한 나라에서 사는 인연, 한 이 지구상에 함께 태어난 인연,
 
한 집에서 살되 부모 자식간의 인연, 부부간의 인연, 형제 간의 인연, 그 인연이 천 생, 만 생, 몇백 생, 오백 생 그러한 깊은 인연으로 해서 그렇게 만나게 되고,
이렇게 한자리에서 법문을 듣는 그 인연도 몇천 생의 인연으로 이렇게 된 것이다.
 
유루법(有漏法), 유위법(有爲法)의 인연은 그 인연이 언젠가는 원수로 변하는 것이고.
무위법(無爲法), 무루(無漏)의 인연 — 법(法)을 믿고, 법을 권하고, 법을 듣고, 법을 실천하고, 법에 있어서의 인연이 바로 무위법의 인연이요, 무루의 인연인데.
 
그런 인연은 몰라도 유루법, 유위의 인연은 전부 다 웬수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부모 자식간은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아낄 것이 없고, 자식을 위해서는 한량없는 죄도 서슴지 않고 짓게 된다 그말이여.
그것이 전생(前生)에 깊고도 깊은 전생의 빚이 있기 때문에 — 엄청난 빚이 있기 때문에 그 빚을 갚기 위해서 금생에 빚 받으러 온 놈이 그것이 자식이다 그말이여. 그러니 전생에 지어논 빚을 안 갚을 수 있는가!
 
그래서 자식을 위해서는 무엇이고 아까운 것이 없어.
자식은 물론 효자도 더러는 있지만은 대부분의 자식이라 하는 것은 빚 받으러 온 웬수거든.
그래서 그놈을 위해서는 아까운 것이 없다 그말이야. 다 주어도 또 주고 싶어.
 
그렇게 불효막심(不孝莫甚)해도—남이라면은 그렇게 고약한 놈은 탁! 인연을 끊어버리고 안 봐 버리면 되는데, 불효자식일수록에 부모는 더 가슴이 아프고 더 못 잊는다 그말이여.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알고 모르게 크고 작은 죄를 짓지마는 자식을 위해서 지은 죄가 엄청나게 많다 그말이여. 빚을 갚기 위해서 그런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지어 놓은 빚은 안 갚을 수가 없으니까 최선을 다해서 빚은 갚을 수 밖에는 없고, 아무리 피할래야 피할 수도 없는 것이니까 빚은 갚되,
그 빚을 갚으면서도 항상 ‘이뭣고?’를 해야지, ‘이뭣고?’를 안하면 계속해서 또 빚은 늘어나고만 만다.
 
자식은 ‘으레이 부모는 나를 낳았으니까 당연히 그렇게 해주어야 한다’ 생각하고 별로 고마운 생각도 없는 거여.
알뜰히도 빚을 받으면서도 별로 고마운 줄 모르고, 나중에 다 커서는 으레이 부모가 자식을 해주어야 한 걸로 생각한다 그말이여. 그놈이 또 자식을 낳으면 자식한테 또 빚을 갚아야 하고.
 
그러니 ‘이뭣고?’를 안 한 사람은 무량겁을 그것을 되풀이를 해. 되풀이를 하면서도 정신을 못 차려. 
 
지금 ‘부정부패 척결’해서 온통 야단이지마는 전부가 다 처자(妻子)·권속(眷屬)을 위해서 저지른 죄다 그말이여. 한도 끝도 없는 것이여.
 
그래서 우리의 불자(佛子)! 형제자매 여러 도반들은 원수 빚을 안 갚을 수가 없으니까 갚지마는 그 속에서 항상 ‘이뭣고?’를 해야 되야.
‘이뭣고?’를 해서 묵은 빚은 갚지마는 새 빚을 짓지를 말라.
 
 
향아불문여광제(向我佛門如廣濟)인댄, 우리 불문(佛門)에 있어서 널리 제도(濟度)를 하는데 있어서는,
무연(無緣), 무연자비(無緣慈悲), 인연 없는 자비 — 인연을 맺지 아니한 것이 이것이... (無緣眞箇大悲恩)
 
남에게 보시를 하되 인연이 있고 정을 따라서 주는 보시는 참다운 보시가 아닌 거여.
전혀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지만은 주어야 할 때는 무주상(無住相)으로 주고 이리 해야지,
유주상(有住相)으로 주어 놓으면 결국은 그것도 빚을 만드는 것이여. 웬수를 맺는 올가미가 되는 것이다.
 
내가 물심양면으로 많이 그 사람을 구제를 해 놓고 나중에 많이 주어 놨는데, 나중에는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사람이 되는 거여, 그 사람이.
내 것 많이 먹은 사람이 웬수가 되는 것이지, 전혀 나와 인연 없는 사람은 웬수가 전혀 안되는 법이거든.
 
남에게 보시를 하고 베푸는 것도 대단히 좋은 일인데 완전히 무주상으로 주어야 해.
조건 없이 주고도 잊어버리고 주어야지,
“내가 이것을 너를 주었으니까 너는 정말 나한테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이 은혜를 잊어서는 안되고 나중에 네가 이것을 내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러한 마음으로 조건부(條件附)로 주고,
 
“이것을 주었으니까 언젠가 너는 나한테 잘해야 한다. 평생토록 내 은혜를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그런한 조건이 있어 가지고 주어서는 그 사람이 받으면서도 겉으로만 ‘고맙습니다’ 그러지, 속으로는 하나도 고맙지도 않고, 많이 받아먹은 놈일수록에 나중에 그놈이 꼭 배은망덕한 놈이 되고, 나를 해꼬지 하는 것이여.
 
그래서 남에게 줄 때는 무심(無心) 속에서 주어야 하고 조건 없이 주어야 해.
이것이 부처님의 ‘무주상 보시(無住相布施)’라 하는 것이여. 금강경을 독송하신 분은 잘 아시겠지.
 
무주상 보시를 해야 이것이 그 공덕이 영원한 것이지, 유주상으로 준 것은 그것 나중에 꼭 그놈이 나를 웬수로 상대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7일 지장기도 회향식인데, 윤달을 기해서 왜 지장기도를 주지스님이 그렇게 원력(願力)을 발했느냐 하면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지은 죄로 자기가 그 과보를 받게 돼.
무량겁을 두고 몸으로 지은 죄가 태산과 같고, 입으로 지은 죄가 저 대해(大海)와 같고, 마음으로 지은 죄가 허공처럼 많다 그말이야.
 
그 자기가 지은 — 지금 이렇게 세상을 살아가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자체가 또 내생(來生)에 윤회할 그리고 고통을 받아야 할 그 원인을 만드는 거여.
과거에 지은 죄를 금생에 받으면서 또 금생에 이렇게 살아가면서 내생에 받을 죄를 또 짓고 있거든.
 
그래서 과거에 지은 죄를 참회(懺悔)하고 내생에 받을 과보를 받지 않는 참다운 길을 여러분에게 깨닫게 해 드리기 위해서 지장기도를 봉행한 것이다.
 
윤달에 예수재(預修齋)도 지내고, 윤달에 가사불사도 하고, 윤달에 개금불사도 하고, 참 수많은 불사(佛事)가 있는데 이렇게 지장기도를 한 경우는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닙니다
대단히 주지스님이 원력을 발해 가지고 지장기도를 이렇게 봉행을 했는데 여기에 동참하신 여러 불자, 신남신녀 여러분은 그 지장기도의 참다운 뜻을 잘 인식을 하셔야 할 것이다.
 
 
지장보살(地藏菩薩)은 지옥 중생 — 이 세상에 고통이 제일 심한 곳이 지옥인데.
지옥에는 팔만지옥(八萬地獄)이 있고, 그 가운데 참 무서운 데가 십팔지옥(十八地獄)이 있고, 무간아비(無間阿鼻) 지옥이 있고 그런데.
 
그 지옥 문전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지옥 중생을 위해서 지옥문에 가 가지고 눈물이 마를 겨를이 없이 그 지옥 중생들에게 고통을 멈추게 해주기 위해서 애를 쓰고 계시다 그말이야.
 
우리도 지장보살의 대원력을 따라서 「지옥에 들어가기 전에 해탈도를 가는 것」이 그것이 지장보살의 참으로 큰 대원력이여.
 
이미 지옥에 들어가 가지고 그놈을 벗어나기는 참 어려운 거여.
한번 들어가면 나올 기약이 없어. 거의 영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할 만큼 몇 무량겁을 지옥고를 받게 되는 것인데,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열심히 해둔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냐.
 
탐진치(貪瞋癡), 탐욕과 성내는 것과 어리석은 마음 — 이 세 가지 죄로 지옥, 아귀, 축생의 과보를 받게 되는 거여. 어리석은 마음을 내면 축생보를 받고, 탐심을 내면 아귀보를 받고, 진심을 내면 지옥을 가는 것이여.
 
물론 중생은 세 가지를 다 고루고루 지어 가지고 축생에 갔다가 아귀도에 갔다 지옥고에 갔다, 그 삼악도(三惡道)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지만은,
 
 
그 어떻게 했으면은 탐욕심을 안 내고, 진심을 안 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안 낼 수가 있느냐?
 
천하에 간단한 것이지.
아무리 탐욕이 과하고, 진심을 성을 잘 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많이 낸다 하더라도 그것이 근본은 마음에서 그것을 짓는 것이지 다른 것으로 짓는 게 아니여.
 
어떠한 큰 죄도 ‘어떻게 해서 그 죄를 짓게 되었는가?’ 그 근원을 살펴보면 꼭 마음 ‘한 생각’에서 그것을 짓는 거여.
한 생각이 일어나 가지고 그 한 생각이 차츰차츰 이리저리 발전해 가지고 결국은 그런 큰 죄를 짓게 되어.
 
‘한 생각’이 딱 일어나면 그것이 말로 표현이 되고, 그것이 얼굴에 나타나고,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나 가지고 큰 죄를 지어 가지고 금생에도 쇠고랑을 차게 되고 내생에는 물어볼 것도 없이 지옥에 가게 되는데.
 
쇠고랑도 안 차고, 지옥에도 안 가는 방법은 한 생각 일어날 때 그때 딱! 돌이켜버리면 큰 죄를 안 짓게 되는 것이다.
 
지금 장관도 걸리고, 국회의원도 걸리고, 그 별 단 장성들도 모다 걸려 들어가는데 그 죄가 한 생각에서 일어난거다.
 
산불이, 건조기에 산불이 지난달에 몇천 건이 일어나 가지고 한국의 금수강산이 모다 다 타고 그랬는데, 그 엄청난 불이 처음부터 그렇게 큰불이 난 것이 아니여. 
처음에는 성냥불 하나나 담뱃불 하나가 결국은 번져 가지고 그렇게 큰불이 된 것이거든.
 
처음에 담뱃불 하나만 탁! 밟아서 잘 껐어도 그런 큰불이 안 날거거든.
담뱃불 하나만 단속을 잘 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여. 성냥불 하나 — 그때는 탁! 손바닥으로 눌러도 꺼지고, 발로 탁! 밟아도 꺼지고.
 
그때 조심을 했으면 될 것인데 그걸 조심을 안하고, 그때 단속을 안했기 때문에 집도 타고 공장도 타고, 저 엄청난 산도 다 탄다 그말이여.
 
 
한 생각 일어난 그 한 생각이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 욕심!
아까 그 자식때문에 요새 모다 부정 입학문제도 그 자식이 평소에 공부를 잘해서 실력으로 들어가 주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은 그놈이 국민학교 때는 잘하던 놈이 중학교 가면서 조금 떨어지고, 고등학교 가서는 나쁜 친구를 사귀고 그럭저럭 지내다가 대학을 갈라고 하니 되냐 그말이여.
 
그러니 부모는 돈이 없는 사람은 몰라도 있는 사람은 몇천 만원, 몇억이라도 넣어서라도 들여서라도 입학을 시키고 보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말이여. 그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면은 참 기가 맥히지.
 
그러나 지가 공부 못한 놈을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을 시킬 것까지는 없는 일이었었다 애당초에.
못하면 못한대로 지가 공부를 안 해 가지고 못한 걸 어떻게 하냐?
전생에 지혜를 닦아 놓지 아니해서 금생에 머리가 나쁘고, 지가 금생에 어려서부터 열심히 했으면 되는데 그렇게 공부를 하라하라 해도 지가 안 한 것을 어떻게 돈을 들여서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을 시킬 것이냐 그말이여.
 
못하면 못한대로 구두닦이를 하던지, 노동판에 가서 일을 하던지, 신문팔이를 하던지 아주 매정한 마음으로 했어야 한다 그말이야.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을 시켜놨다가 1학년, 2학년 대학에 가 가지고 그때사 퇴학을 당하면 그거 어떻게 되는 것이며, 부정한 방법으로 별자리를 올라갔다 그것이 떨어지니 그것이 될 일이냐 그말이여.(19분41초~40분4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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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람은 바르게 살아야 하고 정에 떨어져서는 안돼.
제 자식이지만은 지가 공부 안한 놈은 안 하는대로 해야지, 인정(人情) 정을 써서 해 놓으면 결과가 결국은 그렇게 되고만 만다 그말이야.
설사 부정한 짓을 해서 금생에 잘산다 하더라도, 금생에 쇠고랑은 안 찬다 하더라도 내생에 저 내생에는 반드시..(법문 끊김)
 
탐욕! — 자기 욕심대로 안 되면은 진심(瞋心)을 내고, 그러기를 무량겁을 두고 그렇게 해 가지고 육도윤회를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어리석은 것도 가지각색이지만 제일 어리석은 것이 무엇이냐?
‘가장 어리석은 것의 근본이 무엇이냐’하면은 인과법(因果法)을 안 믿는 거여.
 
인과법을 철저히 믿는 사람은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인과법을 안 믿고 마구잡이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다.
 
모든 죄도 인과법을 안 믿는 데서 저질르게 되는 것이다.
인과법은 팥 심은 데 팥이 나고, 콩 심은 데 콩이 나.  털끝 만큼도 어기는 법이 없어.
 
이 세상에 모든 것은 인과법으로 다 이루어지는 것인데, 인과법은 지극히 과학적이고 컴퓨터보다도 더 정확한 것이여. 컴퓨터도 병이 나면 천하 못 믿을 것이 참, 컴퓨터라 그러는데.
 
진짜 영원히 추호도 어김이 없는 것은 인과법이여.
한 생각 탁! 먹은 것도 벌써 과보(果報)로 나타나고, 말 한마디 나온 것도 과보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말이여.
 
그래서 우리는 한 생각 일어날 때 퍼뜩 돌이켜서 ‘이뭣고?’로 돌아와야 해.
‘이뭣고?’는 무엇이냐? 내가 ‘참나’를 찾는 공부거든. ‘참나’로 돌아가는 길이여.
 
우리가 저 진묵겁(塵墨劫) 전에는 우리도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法身佛)이었어. 법신불과 똑같은 존재였어.
 
그러던 존재가 한 생각 일어나는 그 무명(無明) 때문에 이렇게 '업(業)투성이'인 중생이 되고 말았다 그말이여. 
그래서 지금도 일어나는 한 생각만 잘 단속을 하면 본래의 비로자나불로 돌아갈 수가 있다 그거거든.
 
이것 말고는 우리의 영원한 행복도 얻을 수가 없고 우리의 가정, 우리의 사회·국가·세계의 평화도 이룰 수가 없는 거여.
근원을 다스리지 않고 어떻게 지엽적인 문제만 가지고 해결이 될 것이냐 그말이여.
 
지금 부정부패 척결을 해 가지고 새 한국을 건설하자고 새 대통령께서 나와서 저렇게 애를 쓰고, 온 국가가 온통 이것 때문에 그 애를 쓰고 있는데,
대단히 부정부패는 마땅히 척결을 해야 하고 그래야 이 나라가 되어갈 것은 사실이나 법을 엄격히 적용한다고 해서, 근본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이것은 잠시 그러다가 조금 법을 느슨히 느꿔주면 또 마찬가지야.
 
 
근본은 각자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는 거여.
일어나는 한 생각을 자꾸 ‘이뭣고?’로 돌이켜서 ‘참나’로 돌아감으로서만이 부정부패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부정부패, 부정부패하지만 알고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지은 죄여, 그게.
각기 자기가 지은 죄가 노출이 되면 여러 사람이 하니까 온 나라가 썩어 문드러진 것처럼 보이나, 나라가 썩기는 무슨 나라가 썩어, 태산이 썩어?
 
아무 것도 썩은 건 없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잘못 삐틀어진거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만 바로잡어!
어떻게 나무가 삐틀어지면 깎아내고 바로잡는다 하지마는 사람의 마음을 무엇으로 잡어?
 
‘이뭣고?’가 자기 마음 바로잡는 법이거든.
자꾸 ‘이뭣고?’를 해서 자기로 돌아가. 자기의 본심으로 돌아가.
 
그것이 바로 자기 마음을 바로잡는 법인데, 마음 하나만 바로잡고 보면 말도 바르게 나오고, 행동도 바르게 나올 것이고, 마음을 바로잡은 사람은 무슨 일을 맡기더라도 그 일을 바르게 할 것이다 그말이여.
 
서장이 되거나 검사가 되거나 판사가 되거나 장관이 되거나 마음을 잘못 써 가지고 쇠고랑을 차는 것이지, 마음만 바로잡으면 무슨 걱정이 있느냐 말이여.
 
법을 아무리 무섭게 제정을 해서 엄격하게 다룬다 해도 그때 뿐이여, 중생은.
엄하게 할수록에 더 머리 좋은 사람은 그놈의 법망을 뚫고 또 죄를 저지르고 마는 거다 그말이여.
 
그래서 성현들은 법을 엄격히 적용을 하는 데에다가 역점을 두지 않고, 각자 마음을 바로잡는 데에다가 역점을 두고 가리키셨다 그거거든.
 
‘이뭣고?’ 자기 마음을 바로잡는 법이 아닌가!
집안에 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으로 인해서 두 사람, 세 사람 온 집안 식구가 ‘이뭣고?’를 하고, 그런 집안이 있으면 또 이웃집 사람들도 또 그 본을 따서 ‘이뭣고?’를 하고, 사돈네도 그걸 하게 되고 해서,
 
차츰차츰 ‘이뭣고?’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인과법을 믿고 ‘이뭣고?’만 열심히 하면 이 세상이 온통 부처님 세계로 변하는 것이다.
 
법이 전혀 필요가 없는 거여. 형무소도 필요없이 되어 버리고.
지옥도 텅텅 비어서 지장보살도 지옥에서 좀 나올 때가 된다 그말이여.
 
‘이뭣고?’을 하지 않고는 온 세계가 법을 무섭게 제정을 해 가지고,
도둑질한 놈은 왼손 자르고 또 한번 한 놈은 오른손을 자르고, 유부녀 간통한 놈은 목 매달아 죽이고 총살을 시키고, 지금도 저 아프리카 어디 가면은 도둑질하면 팔목 자르고 목 매달아 죽이는 데가 있다고 하더만.
 
그래 해봤자 마음보를 바로잡지 않고 아무리 무섭게 해서 날마다 수백 명씩 때려 죽여봤자 끝나는 날이 없어. 온 세계 사람을 다 때려 죽여도 소용이 없는 거다 그말이여. 죽자마자 또 다시 태어날 것을 죽여봤자 소용이 있나.
 
 
그래서 우리 부처님께서는 ‘이뭣고?’ ‘이뭣고?’
가정에서도 속상한 거 부애풀이 해봤자 소용 없고, 떠억 숨을 깊이 들여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뭣고?’
열 번, 스무 번 하다보면은 스르르르 가라앉거든.
 
부애난다고 때려 부수고, 부애난다고 술 잔뜩 먹고 와 가지고 막 때려 부숴봤자 무엇이 되는 일이 있냐 그말이여. 집안만 점점 복잡하고 시끄럽고 일은 무장 더 다 안되거든.
‘이뭣고?’를 해야—턱 숨을 깊이 들여마셨다 내쉬면서 ‘이뭣고?’ 자, 다 따라서 숨을 들여마셨다가 ‘이뭣고?’ ‘이뭣고?’
 
부애가 날 때는 좀 큰소리를 내서 ‘이뭣고?’를 하면 더욱 좋다.
그렇다고 해서 만자 중에서 소리를 내서 ‘이뭣고?’ ‘이뭣고?’ 하면 사람들이 모다 쳐다보고 그럴테니까 사람 없는 데서는 그렇게 하고, 사람 있는 데서는 속으로 ‘이뭣고?’를 자꾸 해서,
자꾸 하다 보면 나중에는 저절로 ‘이뭣고?’가 되야.
 
걸어가면서 ‘이뭣고?’
심심하면 ‘이뭣고?’
차를 타고 가면서도 ‘이뭣고?’
밥 먹으면서도 ‘이뭣고?’
누워서도 ‘이뭣고?’
앉아서도 ‘이뭣고?’
변소에 가서 터억 앉아서도 ‘이뭣고?’.
 
‘이뭣고?’ 저절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항상 ‘이뭣고?’가 끊어지지 않도록.
그 사람은 제발 좀 성을 내라고 해도 성을 안 내고, 제발 좀 탐욕심을 내라고 해도 안 내는 거여.
그 사람이 무슨 도둑질을 하라고 한다고 해서 할 리가 있는가!
 
자꾸 처음에는 잘 안되고 재미가 없지만은 자꾸 하면은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법희선열(法喜禪悅) — 법(法)의 기쁨과 선(禪)의 즐거움이 속에서,
 
향을 피워 놓으면 향내가, 전단향을 피우면 10리 밖에까지라도 그 향내가 풍기는데,
‘이뭣고?’를 한 사람은 마음의 기쁨이 그렇게 넘쳐 흐르고 얼굴이 환해지거든. 그 사람을 본 사람마다 다 환희심을 내는 것이다.
 
그 사람이 간 곳에는 항상 선신(善神)이 옹호를 하고, 마음으로 꼭 탐욕심을 안 내더라도 마음으로 꼭 무엇이 필요하다 하면 저절로 그것이 자기한테 이르러 오는 거여.
 
지상(地上) 사람은 무엇이 먹고 싶으면 손으로 그걸 집어서 입에다 넣어서 씹어서 먹어야 그때사 배가 부르는데, 복이 많은 저 천상(天上) 사람들은 무엇이 먹고 싶다 하면 벌써 배가 불러져 갖고 있는 거여.
 
지상 사람은 남녀 관계도 몸과 몸이 접촉해야 사랑이 이루어지는데, 천상 사람은 마음 한 생각만 내면 벌써 이루어지는 거여.
 
그래서 중생이나 축생은 입으로 씹어서 먹는 거고, 귀신은 냄새로 먹는 거고, 천상 사람은 생각으로 먹는 거고.
 
부처님은 견식(見食)이여. 떠억 보기만 해도 벌써 충분히 배가 부르신 거여.
그래서 이 법당 탁자 위에다가 떡이다 과일이다 잔뜩 갖다 놓아도 하나도 줄지를 않거던. 부처님은 보시기만 해도 배가 부르시기 때문에 그런 거여. 부처님은 견식이여.
 
그래서 ‘이뭣고?’를 열심히 해서 마음에 욕심이 없는 사람은 꼭 필요한 것은 저절로 공급이 돼.
왜 그러냐? 항상 선신이 옹호를 하기 때문에,
선신(善神)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선신은 — 대통령이나 모다 그런 사람들은 항시 호위하는 경호원이 따라다니듯이 — 참선하는 사람에게는 선신이 우리의 경호원으로 따라다녀 가지고 항상 지켜줘.
 
먹을 것, 입을 것 전혀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 
열심히 ‘이뭣고?’하면 걱정을 안 해도 항상 그 사람에게는 의식주 문제가 걱정이 없어.
 
자기 한 사람의 의식주 문제는 그렇게 크게 걱정을 안 해.
사람이 지나친 욕심을 가지고 탐욕심을 가지고 그래 가지고 분에 넘치는 욕심을 내기 때문에 죄를 지어 가지고 부정부패에 걸리는 것이지, 자기가 먹고 입고 살 만큼만 가질라고 하면은 그렇게 큰 죄를, 큰 욕심을 안 내도 되는 것이다.
 
 
우리는 시시각각으로 이 몸뚱이는 늙어가고 있습니다.
금방 30까지는 조금 마디다가, 40이 되면 더 빨리빨리 가고, 50이 되면 더 빠르고, 60이 넘으면 금방 늙어서 곧 꼬부라지는 거여.
 
우리가 이만큼 젊었을 때 어쨌든지 시간을 아껴서 열심히 ‘이뭣고?’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우리가 이 몸뚱이를 백 가지, 천 가지 방법으로 위하고 해봤자 금방 이 몸뚱이는 허망하게 늙어가.
 
벌써 여기에 앉아 계신 분들은 대부분 흰머리가 많거나 적거나 간에 다 하나, 둘씩 이상 다 생겼을 것인데,
그 흰머리가 처음에는 곧잘 보기 싫다고 뽑아 내버리지만 나중에는 몇 해 지나가면 도저히 그놈 다 뽑다가는 대머리가 되게 생기니까 도저히 못 뽑고, 나중에는 물을 들이는데 물을 들여봤자 밑에서 하얀 것이 곧 돋아나거든.
 
얼굴에 주름살 생긴다고 여기를 째고 잡아당겨봤자, 정말 늙어서는 흉직하게 늙어간다 그말이여.
 
그 흰머리가 다른 것이 아니라 염라대왕(閻羅大王)이 
‘너 벌써 늙기 시작을 했으니 얼마 안 있으면 너를 데리러 갈테니까 정신 차려라.
죄 지은 것 있으면 참회하고, 어쨌든지 ‘이뭣고?’ 열심히 하고, 남에게 욕심내지 말고, 네게 있는 것을 턱턱 털어서 보시도 많이 하고 그렇게 해서 황천에 올 때에는 가벼운 몸으로 오너라.
 
탐욕심을 잔뜩 탐욕심을 해봤자 너 죄만 짊어지고 오지, 하나도 가지고 오지도 못할 걸, 뭐하러 그렇게 오그려 쥐고,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도 그리고도 만족할 줄을 모르고 한없이 그렇게 죄만 퍼 짓느냐?’
염라대왕이 우리에게 보낸 편지다 그거여, 편지.
 
여러분 「지장기도 오늘 회향일을 맞이해서 깨끗이 과거에 지은 죄를 참회하고 앞으로 남은 여생에 죄짓지 않고 열심히 ‘이뭣고?’ 하겠습니다」하는 뜻으로 참회진언(懺悔眞言)을 외우면서 연비(燃臂)를 받으시겠습니다.(연비 준비하세요)
 
참회진언을 하고 연비를 받아서 과거 무량겁에 지은 우리의 죄는 깨끗해졌습니다.
새 마음, 새 몸으로 오늘 새로 태어났습니다.
 
새로 태어난 몸으로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면 우리는 내일엔 오늘과 다르고, 모레는 오늘과 달라서 점점 젊어지고 점점 이뻐지고, 점점 착해져서 다른 사람이 우리를 볼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볼 때 옛날에 미웠던 사람이 하나도 미운 생각이 없어지고 옛날에 원수로 여겼던 사람이 하나도 웬수로 보이지를 않고 모두가 다 한 식구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상에 극락정토(極樂淨土)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중생이 업(業)의 눈으로 보니까 이 사바세계가 악토(惡土)요 악세(惡世)요 고토(苦土)요 예토(穢土)라고 그렇게 보지마는 부처님의 눈으로 볼 때에는 이 사바세계가 고대로 적광토(寂光土)요 극락세계인 것입니다.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온갖 열매를 맺고, 겨울에는 흰 눈이 내리는 것이 하나도 지옥세계라고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바야흐로 봄이 돌아와서 산천에 푸른 잎이 돋고 온통 울긋불긋 꽃이 피어서 문자 그대로 금수강산(山)이 되었습니다.
 
나라도 새로운 정부가 섰으니 우리도 새로운 마음으로 우리의 몸도 새로와지고 우리의 가정도 새로와지고 온 세계가 새로운 새 봄으로 새출발을 하는 그러헌 계기를 우리는 오늘로서 마련을 합시다.(19분41초~61분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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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다생원채기어친~’ ;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預修十王生七齋儀纂要)』 (大愚集述) 제13 소청명부편(召請冥府篇) 게송 참고.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유루법(有漏法) ; 번뇌의 더러움에 물든 마음 상태, 또는 그러한 세계. 온갖 번뇌와 망상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차별이나 분별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사제(四諦) 가운데 미혹의 결과인 고제(苦諦)와 그 원인인 집제(集諦)에 해당하는 모든 현상.
*유위법(有爲法) ; ① 온갖 분별에 의해 인식 주관에 형성된 현상. 분별을 잇달아 일으키는 의식 작용에 의해 인식 주관에 드러난 차별 현상. 인식 주관의 망념으로 조작한 차별 현상.
② 여러 인연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모든 현상. 여러 인연으로 생성되어 변해 가는 모든 현상. 인연의 모임과 흩어짐에 따라 변하는 모든 현상.
*무위법(無爲法) ; (산스크리트어: asaṃskrta-dharma) 무위법은 무위의 세계, 즉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진리의 세계의 모든 개별 존재(법·法)를 통칭한다. 또는 그러한 개별 존재(법·法)를 가리킨다.
원래 무위 혹은 무위법은 열반(涅槃)의 다른 명칭.
*무루(無漏) ; 마음과 몸을 괴롭히는 번뇌에서 벗어남.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마음 상태. 번뇌가 사라진 경지.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무연자비(無緣慈悲) ; 무조건의 자비(慈悲). 상대의 어떤 것도 묻지 않고, 일체 평등으로 구제하는 자비심. 일체 평등의 이치를 깨달아 상대의 상(相:모습)을 가리지 않고 행하는 자비.
무연(無緣)이란 진여평등(眞如平等)의 이치를 깨달아 중생의 본체(本體)가 허망하다는 것을 알고 일으키는 자비.
*무주상(無住相) ; 집착함이 없는 모습. 집착함이 없는 상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대승불교도들의 실천덕목 중 하나. 상(相)에 머뭄(住)이 없는(無) 보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말한다.
무주상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05~106에서.
(46)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한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참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둘 아닌 것이 한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참고] [금강경오가해]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p141~145, [금강경오가해 설의-육조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p101~104.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또 수보리야, 보살은 법(法)에 응당히 머문 바 없이 보시를 할지니, 이른바 색(色)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상(相)에 머물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상(相)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육조 스님 해의解義)
부차(復次)라 한 것은 앞을 이어서 뒷말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범부(凡夫)의 보시는 다만 아름다운 외모와 오욕의 쾌락을 구하는 고로, 그 과보가 다하면 곧 삼악도(三惡途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므로,
세존께서 크나큰 자비로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를 행하도록 가르치시니,
아름다운 외모나 오욕(五欲)의 쾌락을 구하지 않고, 다만 안으로는 인색한 마음을 없애고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 이와 같이 상응(相應)하는 것이 ‘색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色布施)’이니라.

무상(無相)의 보시를 한다는 것은, '보시한다'는 마음도 없고, 베푸는 물건도 없으며,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相布施)'라 하느니라.

보살이 보시(布施)를 행할 때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면 그 얻는 복이 시방(十方)의 허공과 같아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일설에 '보(布)'란 '普(넓다)'요, '시(施)'란 '散(사방에 흩어버린다)'이니, 가슴 가운데 있는 모든 망념·습기·번뇌를 널리 흩어버려 사상(四相)도 끊어지고 마음에 전혀 쌓여 있지 않는 것이 '참 보시(眞布施)'라 하며,
또 일설에는 '보(布)'란 '普'니 육진 경계(六塵境界)에 머물지 않으며 유루(有漏)의 분별도 하지 않아 오직 항상 청정한 데 돌아가서 만법(萬法)이 공적(空寂)함을 요달함이니라.
만약 이 뜻을 요달하지 않으면 오직 온갖 업(業)만 더하므로 모름지기 안으로 탐애(貪愛)를 없애고 밖으로 보시를 행해서 안밖이 상응하여야 무량한 복을 얻게 될 것이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보아도 그 허물을 보지 않아서 자성(自性) 가운데 분별을 내지 않음이 '이상(離相)'이 되느니라.
가르침에 의해 수행해서 마음에 능소(能所)가 없는 것이 곧 선법(善法)인 것이라. 수행인이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선법이라 할 수 없고, 능소심(能所心)이 멸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치 못하니,
순간순간 항상 반야지혜를 행하여야 그 복이 무량무변한 것이니라.

이같은 수행에 의지하면 일체 인천(人天 사람과 하늘신)의 공경하고 공양함이 따르니 이것을 복덕(福德)이라 하도다.
항상 부주상보시(不住相布施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보시)를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면 그 공덕이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배은망덕(背恩忘德) ; 남에게 입은 은덕을 저버리고 배신하는 태도가 있음.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내생(來生) ; 죽은 후에 다시 맞이한다는 미래의 삶.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예수재(預修齋) ; 살아 있는 동안에 미리 재(齋)를 올려 죽은 후에 극락에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의식.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지장보살(地藏菩薩)석가모니불의 입멸 후 미륵보살이 성불할 때까지, 곧 부처가 없는 시대에 중생을 제도한다는 보살로, 그는 모든 중생이 구원을 받을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보살이기 때문에 대원본존지장보살(大願本尊地藏菩薩)이라고 한다.
특히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에 사찰의 명부전(冥府殿)에 본존(本尊)으로 모신다.
보통 삭발한 스님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한 손에는 지옥의 문이 열리도록 하는 힘을 지닌 석장(錫杖)을, 다른 한 손에는 어둠을 밝히는 여의보주(如意寶珠)를 들고 있다.
지장보살은 고통받는 이들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윤회의 여섯 세계, 즉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에 상응하는 6가지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팔만지옥(八萬地獄) ; 중생이 지닌 팔만사천의 번뇌로 생기는 여러 가지 괴로움을 지옥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살가죽을 벗겨 불 속에 집어넣거나 쇠매〔鐵鷹〕가 눈을 파먹는 따위의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함.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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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 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
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진묵겁(塵墨劫) ; 티끌이 쌓여 먹(墨)이 될 만큼의 오랜 시간.
*비로자나(毘盧遮那) ;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는 뜻으로, 부처의 진신(眞身)을 이르는 말. 비로자나는 진리 그 자체인 법신을 형상화한 것. 
*법신불(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즉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무명(無明) : [범] avidya 「어리석은 마음」 「어두컴컴한 마음」을 이름.
<기신론(起信論)>에 는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법계(法界)의 참 이치에 어둡게 된 맨 처음 한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이 근본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거나 거칠거나 한 온갖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하였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를 의인화한 부처.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법희선열(法喜禪悅) ;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따르는 기쁨과 선정(禪定)에 들어가 마음이 즐거운 것.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참회진언(懺悔眞言) ; 죄업(罪業)을 참회하는 진언.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연비(燃臂) ; 불교에서 수행자가 계(戒)를 받을 때, 팔뚝에 향이나 심지로 불을 놓아 뜨는 의식 또는 그 자국.
*극락정토(極樂淨土) ; 산스크리트어 sukhāvatī  아미타불이 살고 있다는 청정한 국토로, 서쪽으로 10만억 불국토를 지나 있는데, 괴로움이 없고 지극한 즐거움만 있는 세계. 안락(安樂), 안양(安養), 서방정토(西方淨土)라고도 한다.
*악세(惡世) ; ①혼탁하고 악한 세계. ②불법(佛法)이 쇠퇴하여 수행자도 깨달음을 이루는 자도 없는 말세(末世).
*예토(穢土) ; ①중생들이 사는 세계. ②번뇌와 망상으로 가득찬 고해(苦海)인 사바세계.
*적광토(寂光土) ; (=常寂光土) 항상(常) 변하지 않는(寂) 광명(光)의 세계(土). 법신불(法身佛)이 머무르는 정토(淨土)나 빛나는 마음의 세계를 이르는 말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하안거 해제 백종2014. 8. 17. 17:39

§(398)(게송)대호삼만육천경~ / 삼라만상이 다 부처님의 원음의 경전 / (게송)삼라만상동귀환~ / 백장청규 / (게송)진로형탈사비상~ / 밝은 데에서 밝은 데로....

진짜 살아있는 부처님의 원음의 경전은 우주법계에 있는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다 그냥 고대로 살아있는 부처님의 경전인 것입니다. 그러한 부처님의 원음을 알아들을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화두 ‘이뭣고~?’, 화두를 의심을 해서 그 화두를 타파하므로 해서 그 원음을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을 뜨는 것입니다.


인생이 70, 80 번갯불 지나가듯이 지나가고 우리도 금방 이 몸뚱이를 벗어 버리게 되는데, 이 몸뚱이 있을 때 열심히 정진을 해서 생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화두(話頭)를 들고 새로 태어난 셈 치고, 아주 이 몸뚱이 아주 안 태어난 셈 치고 한바탕 공부를 지을지니라.


**송담스님(No.398) - 1989년 하안거 해제·백일기도 회향·백종법회. (용398)

 

(1) 약 19분.

 

(2) 약 19분.


(1)------------------

대호삼만육천경(大湖三萬六千頃)에  월재파심설향수(月在波心說向誰)오
나무~아미타불~
원음낙처운산진(圓音落處雲散盡)허고  부증대보변환가(不曾擡步便還家)니라
나무~아미타불~

대호삼만육천경(大湖三萬六千頃)에, 큰 호수 삼만 육천 그 물결 이랑.
월재파심설향수(月在波心說向誰)라. 달이 그 파도 속에 있는데, 그 큰 호수에 삼만 육천 파도 이랑 속에 거기에 휘황창 밝은 달빛이 거기에 비추는데, 그 도리를 누구를 향해서 설(說)할고.

원음낙처운산진(圓音落處雲散盡)한데, 원음(圓音) 떨어진 곳에 구름이 흩어져 다한데,
부증대보변환가(不曾擡步便還家)다. 일찍이 한 발도 옮기지 아니하고 문득 고향에 돌아가더라.

이 게송은 ‘심화발명(心花發明)이 어느 곳에 있느냐? 확철대오(廓徹大悟) 할 수 있는 곳이 어느 곳인가? 어느 곳에서 확철대오를 하는가?’하는 것에 대한 게송입니다.

대호삼만육천경(大湖三萬六千頃)은 우리가 눈을 통해서 보고, 귀를 통해서 듣고, 코를 통해서 냄새 맡고, 혀를 통해서 맛보고, 몸을 통해서 차갑고·덥고·부드럽고·까끄러운 것을 느끼고, 생각을 통해서 선악(善惡)과 일체 모든 것을 분별하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이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을 만나서 거기에서 육식(六識)이 일어나서 이렇게 해서 십팔천이 이렇게 끊임없이 돌아가는데 바로 그것이 대호삼만육천경(大湖三萬六千頃)입니다.

큰 바다에 얼마나 많은 파도가 있겠느냐 그말이여. 그 파도 낱낱이, 하늘에 떠있는 그 달빛이 어느 물결 하나에도 비치지 아니한 곳이 없어.
육근(六根)·육진(六塵)·육식(六識) 이 십팔경계(十八境界)가 돌아가는 바로 거기에 비로자나(毘盧遮那) 부처님의 그 법신(法身)이 나타나지 않는 곳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물결 하나마다 달빛이 비추듯이 우리의 일어나는 십팔경계(十八境界),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엇을 듣거나, 코로 무슨 냄새를 맡거나, 혀로 무슨 맛을 보거나, 몸으로 차갑고 더운 것을 느끼거나, 생각으로 희로애락, 선악 일체사(一切事)가 우리 의식에 떠오르거나,
바로 그때 그 곳이 바로 우리가 확철대오 할 수 있는 바로 그때다 이것입니다.

원음낙처운산진(圓音落處雲散盡). 원음(圓音)은 부처님의 음성을, 부처님의 말씀을 원음이라.
둥글 원(圓)자, 소리 음(音)자, 원음이라 그러는데, 원음이라 하는 것은 부처님은 한 말, 한 음성으로 설하시되,
보살은 보살 나름대로 그 법문을 듣고, 나한은 나한 나름대로 그 법문을 듣고, 중생은 중생 나름대로 그 법문을 듣고, 축생은 축생 나름대로 그 법문을 듣고, 지옥·아귀 육도법계 중생 다 그 말을 다 알아 들어.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 말씀은 어느 근기(根機)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근기도 그 나름대로 받아들여서 법(法)의 이익(利益)을 얻을 수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 부처님의 음성을 원음이라 그런 것이여.

원음 떨어진 곳에, ‘그러면은 삼천년 전에 부처님이 설하시다가 열반하셨으니까 부처님의 원음은 우리가 못들을 것이다’ 그게 아니야.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경계, 귀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 모든 냄새, 모든 맛, 모든 느낌, 모든 생각 있는 곳이 바로 부처님의 원음(圓音)이 울리는 곳이요, 원음이 나타나는 곳이여.

그러기 때문에 그 원음을 접하게 되므로 해서, 그 원음의 뜻을 우리의 마음과 계합(契合)하게 함으로 해서, 한걸음도 옮기지 않고 우리의 깨달음의 고향에 도달할 수가 있다 이것입니다.

경(經)이라 하면은 종이로 만들어진 경만이 경으로 생각하고, 한문으로 된 경만이 경으로 생각하고, 법화경이나 화엄경·금강경·원각경 이러한 우리에 내려오는 그 경만이 경(經)인줄 생각해서는 아니 됩니다.

물론 그러한 경도,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 그것으로 또 찍어낸 모든 경전, 참 소중하기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나,
정말 영원한 경(經), 정말 살아서 움직이는 부처님의 원음의 경전은 꼭 종이로만 되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꼭 먹으로만 찍혀 나온 것이 아닙니다.

진짜 살아있는 부처님의 원음의 경전은 우주법계에 있는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다 그냥 고대로 살아있는 부처님의 경전인 것입니다. 그러한 부처님의 원음을 알아들을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화두 ‘이뭣고~?’, 화두를 의심을 해서 그 화두를 타파하므로 해서 그 원음을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을 뜨는 것입니다.


삼라만상동귀환(森羅萬像同歸幻)한데  조과장공멱몰종(鳥過長空覓沒蹤)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허공불시장신처(虛空不是藏身處)라  간취풍전대우송(看取風前帶雨松)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라만상(森羅萬像)은 동귀환(同歸幻)이요, 조과장공멱몰종(鳥過長空覓沒蹤)이다.
삼라만상, 저 해나 달이나 별이나 지구나 산천초목이나 토목 와락이나 풀이나 돌, 기와 깨진 거, 일체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환(幻)으로 돌아가. 영원성이 있는 것이 아니여.

아까 그러한 것들이 부처님의 원음의 경전이라고 했습니다마는 깨닫고 보면 그런 것이고, 깨닫지 못한 탐진치 삼독으로 가득찬 중생에게는 그러한 원음이 완전히 환(幻)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 좋은 것인 줄 알고, 영원한 것인 줄 알고, 붙잡고 아무리 안 놓을려고 해봤자 뜬구름 잡는 거와 마찬가지여. 영원성이 없는 것이고, 허망한 것이다.

조과장공멱몰종(鳥過長空覓沒蹤)이다. 허공에 저 창공에 새가 날아가는데 새가 날아간 자죽과 같은 것이다 그말이여.
눈이 왔을 때 짐승이 지나가거나 사람이 지나가면 발자죽이 남아 있고, 모래 위에 기러기가 놀다가 가면 그 모래 위에 기러기 발자죽이 남아 있어요.
그 보다도 더한 것은 허공에 새가 날아간 자죽과 같다 그말이여.

우리 인생이 태어나서 탐진치 삼독심(三毒心)으로 오욕락(五欲樂)을 탐착(貪着)을 하고, 명예·권리·지위 모다 그런 것을 탐착을 해 가지고, 아무리 그것을 만히 모으고 붙잡고 늘어져 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가지고 가지도 못하고, 자기가 다 쓰지도 못하고, 그것 모이고, 그것 지키느라고, 참 본의 아니게 많은 죄만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허공불시장신처(虛空不是藏身處)다. 그렇다면 그러한 것이 다 허망한 것이고 영원성이 없는 것이라면, 이 몸뚱이를 어떻게 간수하며 어디다 이 몸뚱이를 감출 것인가?
그러면 허공에다 감추어야 할 것인가? 허공도 이 몸뚱이 감출 곳이 못 되어.

간취풍전대우송(看取風前帶雨松)이니라. 바람 앞에 비를 띤 소나무를 똑바로 볼지니라. 비 뿌리면서 바람이 부는데 그 소나무에 스쳐가는 그 소리, 송풍(松風) 솔바람 소리, 그 솔바람을 똑바로 간취(看取)하라.

여기 게송에는 ‘바람 앞에 비를 띤 소나무를 똑바로 보라’했지만, 어찌 그 소나무 하나에 국한 되리오.
하늘에 떠있는 달을 보거나, 반짝거리는 별을 보거나, 버드나무를 보거나, 복숭아 꽃나무를 보거나, 돌맹이를 보거나, 우주법계에 있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찌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에 한하겠습니까?
귀로 들을 수 있는 솔바람 소리, 낙엽이 다 지고 앙상한 고목나무에 스쳐가는 겨울 바람소리, 흘러가는 물소리, 개 짖는 소리, 새 노래하는 소리, 버스 소리, 비행기 소리, 공장에 기계 돌아가는 소리,
우리 귀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 그 소리도 똑바로 바로 들으면 원음(圓音)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한 소리가 귀에 거슬리고, 그러한 소리가 시끄러워서 공부를 못한다. 이것이 아닙니다.
눈에 이것저것 보아 싸니까, 거기에 우리의 정신이 헷갈리니까 그래 공부가 안된다. 그것이 아닙니다.

그 소리를 우리가 따라가고,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가서 그것을 집착하니까 그것이 망상이요,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이지,
따라가지 않고 바로 그놈을 보고 그놈을 듣는 찰나(刹那)에 그놈에 즉(卽)해서 화두를 떠억 들어보시라 그말이여. 무엇이 시끄러우며 무엇이 복잡할 것이 있는가.

수원 용주사도 군(軍) 비행장이 있어서 노상 제트기가 뜨고 내리고 상당히 시끄러운 곳입니다마는 금년 여름에 많은 대중이 그까짓 시끄러운 것을 문제시하지 아니하고, 아무 장애없이 정진을 잘하셨습니다.

용화사 법보선원도 앞뒤로 불사(佛事) 공사가 일어나 가지고 온통 골이 울릴 정도로 시끄럽고 복잡했습니다마는,
‘그렇게 시끄럽고 복잡해도 상관이 없으니 방부(房付)를 받아 주십시오’해 가지고 7~8분이 그 복잡하고 시끄럽고 먼지 구덩이에서 방부를 드리고 까딱없이 정진을 했습니다.

때로는 벗어부치고 땀을 흘리면서 울력을 하면서 정진을 했습니다. 아마 앞으로 견성성불(見性成佛) 할 때까지 그 복잡한 속에서 정진한 이 기사년 여름 안거가 인상에 깊이 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보살님네도, 해마다 130명씩 방부를 드리던 보살님네들이 그렇게 시끄럽고 복잡해도 기어이 여기서 정진을 하시겠다고 모다 원을 했지마는,
방을 다 뒤집어 파고 모두 뜯어 제끼고 하는 통에 방이 없어서 방부를 받지 못하고, 저 천안 광덕사 태화선원에 가서 모두 정진들 잘 하시고 또 수원 용주사 그밖에 다른 인연있는 절에 가서 모두 정진들을 하셨습니다.(27분54초~46분50초)

 

 

 



(2)------------------

정진이 꼭 조용한 데만 찾아서 하고, 일 없는 데만 찾아서 하고, 편안한 데만 찾아서 하고 이렇게 해가지고서는 우리는 도업(道業) 성취가 대단히 늦게 되고,
설사 공부에 좀 힘을 얻는다 해도 그러한 소극적 방법, 일 없고 조용한 데만 찾아다니면서 살살하는 공부 가지고서는 대도를 성취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 백장청규(百丈淸規)에도, 그런 회상은 다 1500명, 1700명이 지내는 대회상(大會上)인데,
제일조(第一條)에 ‘일일부작(一日不作)이면 일일불식(一日不食)이다. 하루 울력 작업을 하지 아니하면 하루 먹지 않는다’하는 이러한 법규를 만들어 놓곤,
날마다 한 시간 두 시간씩 이렇게 울력을 해서 채소도 가꾸고 모두 도량을 가꾸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채소를 가꾸면서 잡초를 뽑으면서 도량을 가꾸면서, 어째서 그 속에서 정진이 안된다 이것입니까?
오히려 한가한 속에서 조용한 속에서 앉아서 꾸벅꾸벅 졸기 보다는,
울력하면서 성성(惺惺)하면서도 적적(寂寂)하게 정진을 다루어 나갈 때에, 화두를 잡두리 해 나갈 때, 그 속에 어떻게 혼침(昏沈)이 들어오며 그 속에 어떻게 화두 이외의 딴 망상이 거기에 어리댈 수가 있겠습니까?

어느 회상에 가서 정진을 하던지 반드시 울력 시간을 정해놓고, 도량(道場) 청소도 하고, 잡초도 뽑고, 빈터가 있으면 채소도 가꾸면서,
운동도 되고, 채소도 자급자족도 하고, 그 성성하게 정진을 잡두리 한다면 훨씬 더 힘있고, 우리의 정진에 훨씬 더 깨달음을 앞댕길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백장(百丈) 스님과 같은 그런 대도사가 제일조(第一條)에다가 그런 규율을 넣었습니다.

백장 큰스님의 일화, 여러분도 잘 아시겠습니다마는 연세가 많아 가지고 울력하러 나오시기에 대단히 힘들게 보이니까 그 백장 큰스님 방장(方丈)스님께서 쓰시던 연장을 갖다가 감추어 버렸습니다.
그 연장이 없으면 울력에 안 나오시리라 해 가지고 감추어 버렸는데, 백장 스님이 울력 목탁 소리를 듣고 울력에 나오시려고 연장을 찾으니까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 없으니까 울력에 참여를 못하셨는데.

그 다음에 공양 시간이 되었는데 공양을 안 나오셔. ‘공양 시간이 되었습니다. 공양 안 나오십니까. 공양하러 가십시다.’
그러니까 ‘일일부작(一日不作)이면 일일불식(一日不食)이니라. 내가 울력을 오늘 못했으니 어떻게 내가 공양을 받겠는냐? 내가 오늘 공양을 하루 굶겠노라’
그래 가지고 그 다음날 어쩔 수 없이 연장을 갖다 드렸다고 하는 일화는 이 선방에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설화입니다.

그만큼 선방에 있어서의 울력이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뜻이 깊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에도 조실스님께서 울력 시간을 설정을 하셔서 생존 시에도 그렇게 울력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때는 똥도 푸고, 아카시나무도 모두 해서 연료로 사용하고, 밭도 일궈서 닭똥을 썩혀서 주고, 채소를 가꾸고, 엄청난 울력을 하고, 언덕을 파서 앞뜰을 메우기를 얼마를 했습니다.

그때 지내신 수좌(首座) 스님네들은 다 아실 것이고, 또 그때 여기 용화사에 다니신 보살님네·거사님네들은 다 아실 것입니다. 참 무서운 울력을 했습니다.

열반하신 뒤에도 좀 할려고 해도 밭도 없어지고, 또 도량소지 청소를 제외하고는 그 밖에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날마다 할 만한 일이 없어서 못하고 있습니다마는, 그래도 일만 있으면 선방 스님네들이 그저 모두 나오셔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마 용주사도 그렇게 했을 것이고, 광덕사나 회룡사도 다 그렇게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출가해서 도 닦는 일—모르는 분이 보면 참 여러 가지로 해석이 다를 것입니다마는—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는 것입니다.

생사해탈 문제, 생사대사를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받쳐서 위법망구(爲法忘軀)로 도를 닦는 일은 그래서 그것이 법희선열(法喜禪悅)—법(法)의 기쁨과 선(禪)의 기쁨, 법희선열이 그것이 '밥'인 것입니다.
씁쓸한 된장찌개, 씁쓸한 나물에다가 그렇게 참 검박(儉朴)하게 생활하지만, 도 닦는 그 맛으로 그 기쁨으로 청춘이 늙어 간 줄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세속에 몸담아 있는 청신사·청신녀 여러분도 비록 인연 때문에 세속에 몸을 담고 계시지만,
여러분도 마음은 우리 출가 사문(沙門)과 똑같은 신심과 마음으로 그 생활 속에서 계율을 지키면서 화두(話頭)를 타고 불명(佛名)을 타 가지고 열심히 정진을 하고 계실 줄 압니다.

또 인연이 허락하신 분은, 사정이 허락하신 분은 결재때 방부를 드리고, 그 연세가 60,70,80 고령에 이르러서도 방부를 드리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그 검박한 음식을 잡수면서 정진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앞으로 겨울철부터서는 방부를 받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선방도 크게 늘리고 또 여러 가지 시설도 부족함이 없이 잘 갖추어서 130명, 150명도 아마 지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때 오셔서 열심히 정진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앞으로 우란분(盂蘭盆)—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 유주무주(有主無主)의 광겁부모(曠劫父母)의 천도(薦度) 법요식(法要式)이 진행이 됩니다.
모두 지극정성으로 참여해 주시기를 바라고, 지옥고 받던 또 아귀도에서 고(苦)을 받던 또 우주 허공계에 방황하던 모든 우리의 선망부모들이 이 법요식에 정식으로 초대되어서 참석하시고 또 이 천도를 받게 되시기 때문에 그런 영가들은 참 너무너무 기쁨에 넘쳐흐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선망부모 영가들이 이 자리에 와서 틀림없이 나의 아내가 또는 나의 아들과 나의 며느리와 나의 손자들이 혹 오늘은 오지 안했는가? 이리저리 모두 찾아보고 계실 줄 생각합니다.
모처럼 이렇게 왔다가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딸, 자기의 며느리, 자기의 손자손녀들이 안 왔다면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어떤 사정으로 참석을 못했더라도 이다음 법보재(法寶齋)나 우란분재(盂蘭盆齋)에는 반드시 참석을 해서,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또 청정한 스님네께 공양 올리고, 그리고 우리의 선망부모와 인연있는 영가들을 위해서 정성껏 공양을 올리고, 천도를 한다면 그 얼마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이며 보람있는 일입니까?

우리도 머지않아서 또 이 몸뚱이를 벗어 버리고 영가(靈駕)의 몸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또 극락세계(極樂世界)나 또는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또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이 70, 80 번갯불 지나가듯이 지나가고 우리도 금방 이 몸뚱이를 벗어 버리게 되는데, 이 몸뚱이 있을 때 열심히 정진을 해서 생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죽은 뒤에 아들이 효자니까, 며느리가 잘해 줄 것이다. 그때 천도 받아도 될 것이니 실컷 먹고 잠이나 많이 자자’ 이렇게 생각하시지 말고,
기왕이면 살아있을 때 깨달음을 얻어서 스스로 자기를 제도(濟度)하는 것만 같지 못할 것입니다.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여. 생사진로(生死塵勞), 생사해탈(生死解脫)이 이 작은 일이 아니여, 보통 일이 아니다.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다. 긴밀히 승두(繩頭)를 잡아서 한바탕 공부를 지어라.
정말로 화두(話頭)를 들고 새로 태어난 셈 치고, 아주 이 몸뚱이 아주 안 태어난 셈 치고 한바탕 공부를 지을지니라.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이면, 한바탕 그 추위가 뼛골에 사무치지 아니하면,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칠 수가 있겠느냐.(爭得梅花撲鼻香)

우리 중생은 ①어두운 데에서 어두운 데로 향하는 그러한 사람이 있고, ②어두운 데로부터 밝은 데를 향해서 나아가는 사람이 있고,
또 ③밝은 데에서 어두운 데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고, ④밝은 데로부터서 밝은 데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①그러면 어두운 데에서 어두운 데로 가는 사람은 어떠한 부류의 사람이냐?
전생에 복(福)을 짓지 못하고 금생에 가난뱅이로 태어났다가 그나마도 부처님도 잘 믿지를 않고 신심이 시원찮고, 마음씀씀이 용렬(庸劣)하고, 베풀 줄도 모르고,
항상 삿된 생각으로 계속 도를 닦지 아니하고, 속심에 가득 찬 그러헌 사람은 전생에 짓지 못해 가지고 어두운 데에서 왔다가 내생에 다시 또 어두운 데로 갈 사람이거든.

②그러면 어두운 데에서 왔지만 앞으로 미래에 밝은 데로 향하는 사람은, 설사 전생에 큰 복을 짓지 못해서 금생에 가난하게 태어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난한 가운데에도 불법을 믿고 신심이 있어, 마음씀을 항상 탐진치 삼독에 빠지지 아니하고, 항상 법문 듣기를 좋아하고, 그것을 실천하려고 노력을 해.
가난하지마는 있는 대로 보시를 해. 그리고 항상 계율을 지키고 그렇게 살아간 사람은 비록 어두운 데에서 왔지마는 앞으로는 반드시 밝은 데를 향해서 극락세계에나 도솔천내원궁으로 갈 사람이다 그거거든.

③그러면 밝은 데에서 왔지마는 앞으로 어두운 데로 갈 사람은 어떠한 부류의 사람이냐?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금생에 부자가 되어서 부자로 살지만, 부처님을 믿는 신심이 그렇게 장하지를 못해.
그래 가지고 탐심이 많고, 진심을 많이 내고, 어리석은 생각·용렬한 생각이 가득차 가지고, 보시도 할 줄도 모르고, 사견(邪見)이 꽉 차 가지고, 악한 짓을 많이 해.
그런 사람은 전생에 복을 지어서 밝은 데서 왔으나, 앞으로 사후에는 껌껌한 지옥으로 밖에는 갈 수가 없을 것이다.

④그러면 밝은 데에서 왔다가 밝은 데로 간 사람은,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부자로 태어났어.
신심도 있고, 계행도 지키고, 보시도 하고, 수행도 참선도 열심히 하고, 그래 가지고 사후에는 물어볼 것도 없이 극락세계나 도솔천내원궁에 태어날 것이 틀림이 없고,
다시 또 인도환생을 하게 되더라도 부자로 태어나고, 몸도 건강하고, 신심도 있고, 그래서 내생에 불사(佛事)도 잘하고, 대도(大道)도 성취할 것이다. 그 사람은 바로 밝은 데로부터서 밝은 데로 향할 사람이다.

여러 사부대중(四部大衆)은 스스로 자기 자신 가슴에 손을 얹고 가만히 반성을 해보시오.
‘4가지 중에 과연 어느 곳에 어느 부류에 자기가 속한가?’ 생각해서, 반드시 앞으로는 밝은 데를 향해서 가도록 노력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27분54초~65분44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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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大湖三萬六千頃  月在波心說向誰’ ; [금강경오가해] 종경 서(宗鏡序) 참고.
*(게송) ‘圓音落處雲散盡  不曾擡步便還家’ ; [금강경오가해] ‘종경 서(宗鏡序)’에 함허득통(涵虛得通)의 설의(說誼) 참고.
*원음(圓音) ; 모든 중생이 제각기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이해하는 원만한 부처님의 가르침.
*심화(心花, 心華) ; 본래 깨끗한 마음(心性)을 꽃에 비유한 말.
*발명(發明) ; 밝히다. 깨닫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귀(耳根)·코(鼻根)·혀(舌根)·몸(身根)·뜻(意根)의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근(根)은 기관·기능을 뜻함.
*육경(六境) ; 육근(六根)의 대상 경계인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을 말함.
산스크리트어 ṣaḍ-viṣaya 경(境)은 대상을 뜻함. 육진(六塵)이라고도 한다.
①색경(色境).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수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수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맛.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등.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육식(六識)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십팔계(十八界) ; 계(界, 산스크리트어 dhātu)는 요소를 뜻함. 인식을 성립시키는 열여덟 가지 요소.
불교에서 인간과 그 밖의 모든 존재 속의 인식작용을 18가지 범주로 나눈 것.
육근(六根)·육경(六境)·육식(六識)을 합한 것이다. 육식(六識)을 제외한 12가지를 12처(處)라고 한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법신(法身) : [범]  dharma - kaya 「법 몸」이란 말인데, 실불(實佛) • 법성신(法性身) •진여불(眞如佛) • 법계성(法界性) 같은 말들이 모두 한뜻. 진여의 본 바탕(眞如本體)을 이름이니, 중생에 있어서 부족할 것이 없고 부처님이라고 더 특별할 것이 없어, 본래 깨끗하고 빛나고 두렷하여 무한한 공간과 무궁한 시간에 꽉 차 있으되, 네 가지 말로도 설명할 수 없고(離四句) 백 가지 아닌 것으로도 옳게 가르칠 수 없으며(絕百非), 무엇으로나 형용하여 볼 수가 도저히 없는 것이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계합(契合) ;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
*공안(公案)을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게송) ‘삼라만상동귀환~’ ; [소요당집 外] (한글대장경 169, 동국대학교 역경원) p71 소요 스님 게송 ‘의현법사에게 답함’ 참고.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환(幻) ; ①허깨비. 모든 사물은 여러 가지 인연(因緣)이 모여서 생긴 것으로 실체가 없는 것에 비유함.
환(幻)을 실(實)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생의 미혹한 생각임. 환(幻)을 무(無)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승(二乘-聲聞,緣覺)의 공(空)에 얽매인 견해, 단공(但空-단지 空만을 집착하는 것)임.
환(幻)은 또 화(化)와 거의 같은 뜻이므로 환화(幻化), 꿈과 비슷하므로 환몽(幻夢)•몽환(夢幻)이라고도 한다.
②신기루, 아지랑이 같은 것.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탐착(貪着) ; 만족할 줄 모르고 사물에 더욱 집착함.
*찰나(剎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방부(房付 방•거처 방,줄•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울력 ; 함께 힘 모아 일하는 것,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일이란 우리말.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운력(雲力), 함께 힘을 기울인다는 의미로 운력(運力)이라고도 한다. 의미와 관계없이 울력은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뜻.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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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백장청규(百丈淸規) ; 당(唐)나라의 백장 회해(百丈懷海)가 선종(禪宗) 사원의 규범을 성문화(成文化)한 것.
당시 선종은 독립된 사원 ·제도 ·의식 등을 아직 갖추지 않았는데, 이때 백장 스님이 법당(法堂) ·승당(僧堂) ·방장(方丈) 등의 제도를 마련하고, 스님들에게는 동서(東序) ·요원(寮元) ·당주(堂主) ·화주(化主) 등의 각 직책을 규정해 놓은 선종의 법규를 정한 것.
이것을 《고청규(古淸規)》라 하는데, 이것이 당 ·송 시대에 이리저리 흩어져서 없어졌으므로, 1335년 원(元) 순제(順帝)의 칙명으로 백장 덕휘(百丈德輝)가 여러 청규(淸規)를 참조하여 소실된 백장 회해(百丈懷海, 749-814)의 청규를 복원하여 전국 선원에서 시행시켰는데, 이것이 《칙수백장청규(勅修百丈淸規)》이다.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잡두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어리대다 ; 남의 눈앞에서 귀찮게 왔다갔다 하다.
*도량(道場) : 사찰. [범] bodhimandala 도를 닦는 곳이란 말이다。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백장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방장(方丈) ; ①선원(禪院)의 운영을 주관하는 최고 책임자 스님, 또는 그가 거처하는 방.
②선원(禪院)·강원(講院)·율원(律院)을 모두 갖추고 있는 총림(叢林)의 가장 높은 스님.
*수좌(首座)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진리)를 구하기 위해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법희선열(法喜禪悅) ;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따르는 기쁨과 선정(禪定)에 들어가 마음이 즐거운 것.
*검박(儉朴 검소할 검,순박할 박) ; 검소하고 소박(素朴)함.
*사문(沙門) ; 슈라마나(산스크리트어: śramaṇa, 팔리어: samaṇa)의 음역. 식(息)·근식(勤息)·정지(淨志) 등으로 번역. 여러 선법(善法)을 근수(勤修)하고, 악법(惡法)을 행하지 않으며, 심신을 조어(調御)하여 청정(淸淨)한 깨달음의 길을 지향(志向)하고 노력함을 뜻함.
①인도에서 바라문교의 「베다」 성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제종교 수행자의 총칭.
②출가하여 불문(佛門)에 들어 도를 닦는 사람.
*불명(佛名) ; 불법에 귀의한 남녀 신자에게 붙이는 이름.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유주무주(有主無主) ; ①주인(영가를 인도해 줄만한 인연있는 사람)이 있거나 없는. ②제주(祭主)가 있거나 없는.
*광겁부모(曠劫父母) ; 과거의 지극히 오랜 세월 동안 모든 우리의 부모. 선망부모(先亡父母)와 같은 말.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법요식(法要式) ; 불사(佛事-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를 할 때 행하는 의식.
*법보재(法寶齋) ; 매년 음력 3월 16일에 용화사 법보재자(法寶齋者)와 법보전 만년위패에 모신 선망부모 영가들과 인연 있는 영가들의 무량겁으로부터 지은 업장을 참회 소멸하고,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고, 재자와 영가 모두 진리의 세계에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전강 조실스님께서 개설(1963년)하신 합동 천도재(薦度齋).
*우란분재(盂蘭盆齋) ; 우란분(盂蘭盆). 우란분(盂蘭盆)은 산스크리트어 ullambana의 음사로, 도현(倒懸)이라 번역.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을 받는다는 뜻. 절에서, 음력 7월 15일에 지옥이나 아귀의 세계에서 고통받고 있는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삼보(三寶)에 공양하는 의식.
『우란분경(盂蘭盆經)』에 의하면 부처님 제자 중에 신통력이 제일인 목련이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는 어머니를 구해주려고 하였으나 신통력으로도 어찌 할수 없어서,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따라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모두 모이는 하안거가 끝나는 7월 15일인 자자일(自恣日)에 삼보(三寶)에 공양하게 하여 목련의 모친을 악도에서 벗어나게 한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850) 게송.
*진로(塵勞 티끌·속세 진,근심할 로) ;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번뇌(煩惱).
*승두(繩頭) : 승(繩)은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두(頭)는 어조사다。 불조의 계법(戒法) 규칙.
*용렬(庸劣 쓸 용,못할·낮을 렬) ; 사람이 비겁하고 좀스러우며 변변하지 못함.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Posted by 닥공닥정

 

 

§(세등68) (게송)개개면전명월백~ / 의심관(疑心觀) /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68) - 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에서. (세등68)

 

약 21분.

 


개개면전명월백(箇箇面前明月白)이요  인인각하청풍불(人人脚下清風拂)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타파경래무영적(打破鏡來無影跡)하면  일성제조상화지(一聲啼鳥上花枝)니라
나무~아미타불~

개개면전명월백(箇箇面前明月白)이요. 모든 사람 사람 얼굴 앞에는 밝은 달이 희고,
인인각하청풍불(人人脚下清風拂)이로구나. 사람 사람의 다리 아래는 맑은 바람이 불고 있다.

타파경래무영적(打破鏡來無影跡)하면, 거울을 타파해서 그림자와 자취가 없으면, 일성제조상화지(一聲啼鳥上花枝)다. 한 소리 우는 새가 꽃가지에 오르더라.


개개면전명월백(箇箇面前明月白)  인인각하청풍불(人人脚下清風拂)은
부처님이나 조사나 모든 성현, 우리 모두 범부, 범성(凡聖)을 막론하고 낱낱이 다 본구재 도리(本具在道理), 새로 닦아서 깨달을 것도 없이 본래 원만구족(圓滿具足)하게 갖추어 있는 그 도리가 있다.

그것을 본구재 도리(本具在道理)라고도 하고,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고도 하고, 본각대지(本覺大智)라고도 하는데, 본래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없는 자성(自性)의 법신불(法身佛)을 다 가지고 있지마는 왜 우리는 이렇게 중생의 탈을 쓰고서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면서 생사고(生死苦)를 받고 있는가?

까닭 없이 한 생각 미(迷)해 가지고 멀쩡한 탈을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오늘날까지 오면서 그 탈을 바꿔 쓰면서, 여기서 나서 저기서 죽고, 저기서 나서 여기서 죽기를 수없이 해왔어.

그 무량겁을 탈을 바꿔 쓰면서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해오면서, 우리에는 그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한 거울을 가지고 있는데, 그 거울 속에 그 동안에 겪어오는 모든 일들 그 거울 속에 다 녹화(錄畵)가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제8 아뢰야식(第八 阿賴耶識)이라 하는 것이여.
아뢰야식(阿賴耶識) 속에는 무량겁을 두고 오늘날까지 오면서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모든 사실들이 터럭끝 만한 작은 일로부터서 이 세계가 파괴되는 그런 큰일에 이르기까지 전부가 그 속에 다 녹화·녹음이 되어 있는 거여.

그 거울을 타파(打破)해 버려라.
그 거울 속에 녹화되고 녹음이 되어 있는 것이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면서 어떠한 인연을 만나면은 거기서 녹화된 것이 밖으로 이렇게 현행(現行)을 하는 것이여. 밖으로 그것이 이렇게 나와.
행동으로 나타나고, 생각으로 나타나고, 눈을 통해서 나타나고, 귀를 통해서 나타나고, 그 현행을 하면서 동시에 또 새로운 사실들이 또 녹화가 되고 녹음이 돼.

녹화·녹음이 새로 되는 것을 훈습(薰習)이라 그러고, 또 훈습한 것이 밖으로 또 나타난 것을 현행이라 그러는데, 현행(現行)과 훈습(薰習)이 동시에 돌아가는 거여. 이것이 바로 우리 생사윤회(生死輪廻)하는 모습이여.

활구참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통해서 공안(公案)을 타파해서 이 거울을 갖다가 여지없이  깨트려버려서 흔적조차도 없어질 때(打破鏡來無影跡), 일성제조상화지(一聲啼鳥上花枝)다, 한 소리 우는 새가 꽃가지에 오르더라.

‘생사 없는 도리’를 간단한 한 구절로 표현을 했지만, 새가 꽃가지에 올라와서 한 소리 우는 것이 그것이 평범한 사실이지만,
깨달은 도리를 말로써 표현할 수 없지마는 표현할 수 없는 바를 이렇게 고인(古人)은 표현을 한 것입니다.

이 평범한 한 구절이 깨달은 사람은 여지없이 그 깨달은 경지를 바로 볼 수가 있지만은, 깨닫지 못한 사람이 볼 때에는 새가 꽃가지에 올라서 소리내어 우는 것이 하나의 평범한 사실에 불과한 것이여.
이 평범한 새 한 마리가 꽃가지에 올라가서 그 우는 것을 여기에다가 사량분별(思量分別)을 붙여서 이러쿵저러쿵 자기의 소견을 붙이고 사량분별을 붙인다면, 그 깨달은 도리를 표현한 이 법(法)이 완전히 죽은 소리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방금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출가해서 스승을 찾아서 바른 깨달음에 이르는 활구참선! 활구참선(活句參禪)에 의해서 이 화택(火宅)으로부터 해탈하는 법문을 고구정녕(苦口叮嚀)한 육성으로 들었습니다.

활구참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본참공안에 대해서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지는 것이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말로 따지고, 또 더듬어 들어가고, 그렇게 해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래가지고 ‘아하 바로 이 뜻이로구나.’ 이렇게 해서 사량분별로 공안을 따지는 거여. 그 '따져서는 안 된다'고 천 번 만 번 법문을 들어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따지고 앉았어.

특히 두려운 것은 한 철,두 철, 세 철 열심히 화두를 참구(參究)를 하는데, ‘이무엇고?’ ‘이뭣고?’ 마삼근(麻三斤)을 하는 사람은 ‘어째서 마삼근이라 했는고?’ 끝없이 끊임없이 일구월심(日久月深) 이렇게 해 나가면 여법(如法)하게 해 나가다 보면,
그렇게 번뇌·망상이 일어나던 것이 번뇌·망상은 차츰차츰 줄어지고, 화두를 그렇게 들려고 해도 화두는 잘 안 들렸던 것이 차츰차츰 화두가 들어지기 시작해. 화두가 차츰차츰 들어지는 시간이 불어남에 따라서 망상은 차츰차츰 줄어진다 그말이여.

그래서 몸도 편안하고, 마음도 편안하고, 마음이 고요하고, 깨끗하고,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는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기에서 기쁨을 아니 느낄 수가 없어. 참 그 고요하고, 깨끗하고, 편안한 경계를 무어라고 표현할 수가 없어.

‘아! 이것이 바로 법희선열(法喜禪悅)이라 하는 것이로구나.’ ‘이것이 바로 법열(法悅)이라 하는 것이로구나.’ ‘이것이 바로 도(道)에 낙(樂)이라 하는 것이로구나.’ ‘이것이 바로 완전하게만 된다면은 이것이 생사해탈(生死解脫)이로구나.’ 그래 가지고 이런 상태로 계속해서 그런 상태에 머물러 있기를 바래는 것입니다.

생각을 내서 바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중에 그 고요하고 깨끗한 경지에 빠져서 그 고요하고 깨끗한 것을 스스로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리라 해서가 아니라, 너무 고요하고 깨끗하고 맑고 그러니까, 그냥 그 고요한 경지에 빠져 들어가서 그것을 떠억 즐기고 있다 그말이여.

거기에서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이 주의할 바는 아무리 고요하고, 아무리 편안하고, 아무리 맑고 깨끗하다 하드라도 '깨끗하다, 편안하다, 맑고 고요하다' 그런 데에 탐착해 가지고 화두를 잃어버리는 사실.
화두를 잃어버린다면 거기에서 벌써 공부는 삐뚤어져 버린 것이여. 거기에서 저 죽을 구덩이로 빠져 들어가는 것이여. 사견(邪見)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여.

그렇게 고요하고 깨끗할수록에 그런 데에는 조금도 생각을 두지 말고, 오직 자기의 본참화두!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그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잡드리를 해 나가야 되는 것이여.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힘을 쓰면서 용을 쓰면서,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허고 막 힘을 쓰면서 허라는 게 아니여.
처음에 공부를 헐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허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허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허고 자주자주 들을 수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 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 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아니 되는 거여.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 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 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 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일 분의 백천 분의 일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할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처음~20분4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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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개개면전명월백~’ ; [소요당집 逍遙堂集] (한글대장경169, 동국대학교역경원) p100 ‘순 상인(淳上人)에게’ 게송 참고.
*범성(凡聖) ; 범인(凡人)과 성인(聖人)을 아울러 이르는 말.
*원만구족(圓滿具足)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법신불(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즉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육도윤회(六途輪廻) ; 생사윤회(生死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겁(劫) ; (산) kalpa의 음사. 인도에서의 가장 긴 시간단위. 지극히 긴 시간. 무한히 긴 시간.
[참고] 겁(劫)의 무한히 긴 시간을 개자겁(芥子劫)•반석겁(盤石劫)으로 비유한다.
개자겁(芥子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성(城) 안에 겨자 씨를 채워, 100년에 한 알씩 집어내어 겨자 씨가 다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함.
반석겁(盤石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큰 반석(盤石)을 부드러운 천으로 100년에 한 번씩 쓸어 반석이 다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함.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아뢰야식(阿賴耶識) ;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는 산스크리트어 ālaya의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아뢰야(阿賴耶)를 진제(眞諦)는 a(無)+laya(沒)로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玄奘)은 ālaya로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참고] 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여덟 가지 마음 작용.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팔식(八識) 가운데 앞의 다섯 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전오식(前五識)이라 하고, 第六 意識, 第七 末那識, 第八 阿賴耶識이라 한다.
*현행(現行) ; 아뢰야식(阿賴耶識)에 저장되어 있는 종자(種子)가 변화하고 성숙하여 일어나는 인식 작용.
[참고]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훈(熏 연기낄 훈) ; 훈습(熏習 , 薰習) ① 어떤 성질에 물듦. 어떤 기운이 배어 듦. ② 산스크리트어 vāsanā 마치 향 냄새가 옷에 스며들 듯, 몸과 말과 뜻으로 일으킨 행위의 기운과 생각이 아뢰야식(阿賴耶識)에 잠재력으로 이식되는 현상.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공안(公案, 화두)을 타파(打破)해서 ;
[참고] 화두(話頭)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〇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사량분별(思量分別) ; 생각하여(思) 헤아려서(量) 종류에 따라 나누어 가름(分別).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화택(火宅) ; 번뇌와 괴로움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불에 타고 있는 집에 비유한 말. 불길에 휩싸인 무서운 세계. 법화경에 나오는 「三界無安猶如火宅」라는 구절에 근거.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법희선열(法喜禪悅) ;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따르는 기쁨과 선정(禪定)에 들어가 마음이 즐거운 것.
*법열(法悅)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거나 배우는 기쁨. ②진리를 깨달았을 때 가슴에 잔잔히 사무치는 기쁨.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이뭣고(是甚麼) / 판치생모(板齒生毛) / 마삼근(麻三斤)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잡드리(잡두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의단(疑團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관조(觀照) ; 참된 지혜의 힘으로 사물이나 이치를 통찰함.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61~62.
〇工夫는  *如調絃之法하야  緊緩을  得其中이니,  勤則近執着하고  忘則落無明하리니,  惺惺歷歷하고  密密綿綿이니라.


공부는 거문고의 줄을 고르듯 하여 팽팽하고 느슨함이 알맞아야 하니, 너무 애쓰면 병 나기 쉽고 잊어버리면 무명에 떨어지게 된다。성성하고 역력하게 하면서도 미세하게 끊임없이 하여야 하느니라。

<註解>
彈琴者曰,  緩急이  得中한  然後에야  清音이  普矣라 하니,  工夫도  亦如此하야  急則動血囊하고,  忘則入鬼窟이니,  不徐不疾하야사  妙在其中이니라.


거문고를 타는 자가 말하기를 '그 줄의 느슨하고 팽팽함이 알맞은 뒤라야 아름다운 소리가 잘 난다'고 한다。공부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조급히 하면 혈기가 고르지 못한 병이 나고, 잊어버리면 흐리멍덩하여 귀신의 굴로 들어가게 된다。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게 되면 오묘함이 그 가운데 있을 것이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제물에 ; 저 혼자 스스로의 바람에.
*선불장(選佛場) ; 부처(佛)를 뽑는(選) 장소(場)라는 뜻.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곳.
[참고]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 ‘개당보설(開堂普說)’에, 방 거사(龐居士)의 게송이 아래와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법(無爲)을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공(空)해 급제하여 돌아가네.’ (통광 스님 역주 ‘고봉화상선요•어록’ p37,46에서)
*선방(禪房) ; 참선(參禪)하는 방.
*공부처(工夫處) ; 배우거나 수행하는 곳.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설날차례)2014. 1. 30. 17:11

§(565) 설날 통알 및 설날차례 / 복(福)을 많이 받으려면,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돈도 벌고, 보시를 하여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아야.

 

**송담스님(No.565) - 1996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1996.02.19)에서. (용565)

 

약 22분.

 


<새벽예불 후 ‘통알’ 때 하신 말씀>

 

정월 초하루날 새벽에 전국 모든 사찰에서는 통알(通謁)이라 하는 의식을 행하는데,
통할 ‘통(通)’자, 뵈일 ‘알(謁)’자, 통알이라 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에 걸림이 없이 우리가 세배(歲拜)를 올려야 할 존경할 만한 모든 성현(聖賢)과 모든 어른과 모든 선지식과 모든 도반들에게 이 자리에 서서 세배를 드리는 의식입니다.

첫째는 삼세(三世)의 모든 불보살(佛菩薩), 삼세의 모든 법보(法寶), 삼세의 모든 승가(僧伽)에 대해서 세배를 올리고 그 다음에는 물론 이 용화사 법보선원을 창건하신 전강 조실스님께 세배를 올리고,

또 현재 살아계신 또는 돌아가신 모든 원근 친척, 여기에는 선망부모(先亡父母)도 다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세배를 올리고,

그 다음에, 같이 불법을 믿고 수행을 하는 모든 도반(道伴)들, 비단 이 도량(道場) 안에서 같이 수행하는 동수정업(同修淨業) 대중 말고 전국에 있는 모든 도반, 온 법계에 있는 모든 도반들에게 세배를 올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은 삼세니까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분들, 또 멀고 가까운 데에 있는 모든 분들께 이렇게 세배를 올려서-그래서 통할 ‘통(通)’자, 통한다는 것은 걸림이 없고 막힘이 없다고 하는 그런 뜻인 것입니다.

지금부터 세배를 의식에 따라서 거행하겠습니다.

세배(歲拜)의 뜻은 ‘지난 한 해 동안 크고 작은 모든 좋은 인연과 또 나쁜 언짢았던 인연까지라도 깨끗이 다 청소를 하고 다 풀어 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또 한 해를 시작합시다.’하는 그런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세배를 하면서도 지난 한 해 동안에 있었던 모든 것을 청산 하지 못하고 세배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참뜻이 못될 것입니다.

방금 우리는 십악참회(十惡懺悔)를 하고 깨끗해진 그 마음으로 다시 새해를 시작하는 다짐의 뜻이 있기 때문에 대단히 좋은 풍속(風俗)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례 법요식 때 하신 말씀>

 

편안하게 앉으십시오.
병자년 정월 초하루 설날을 맞이했습니다. 오늘 법보전에서 설날차례 법요식(法要式)이 거행이 되겠습니다.

법보전에서는 정월 초하루와 정월 대보름과 그리고 8월 추석날 연례행사로 차례(茶禮) 법요식이 있고 그런데, 특히 오늘 정월 초하루 설날의 차례 법요식은 유난히 뜻이 깊은 날입니다.

속가(俗家)에서도 정월 초하루는 옛날부터 조상들 사당(祠堂)에 차례(茶禮)를 올려왔는데,

요새는 옛날과 달라서-옛날에는 한 마을에 살면 몇십 대(代)를 내려가면서 자작일촌(自作一村) 해 가지고,
종갓집에는 사당을 모시고, 5대조(五代祖)까지 모다 신주(神主) 또는 가묘(家廟)를 딱 모셔놓고 차례도 젓수고, 제사날 모다 제사도 모시고 그러는데
지금은 특수한 가정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사당을 모실 수가 없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보통 사당은 산소를 모시고서도 5대조 이내에서는 집안에서 제사를 모시다가, 5대가 넘어가면 그 신주를 산소에 갖다가 묻고, 집안 제사는 지내지 아니하고 산에서 이제 시사(時祀)를 젓숫고 그러는데,

이 사당이 없으니까 영가(靈駕)가 안주처(安住處)를 갖지 못하고 그렇게 집에 있다가 거리 중천에 떠돌아다니다가 모다 그러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영가를 환히 봐서 얘기가 아니고, 살아있는 사람이나 육체를 버린 영가나 그 이치에 있어서는 똑같은 것입니다.

사람은 육체를 가지고 있는 영가이고, 영가는 육체를 벗어버린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가 옷을 벗었다고 해서 딴 사람이 되고, 다른 옷을 갈아입었다고 해서 특별한 사람이 되지 아니하고,
목욕탕에서 옷을 벗었거나 목욕을 하고 나서 좋은 옷을 입었거나, 내나 그 사람인 것처럼 영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살아계신 부모를 잘 받들어 모시는 것도 우리가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이지만,
돌아가신 부모나 할아버지 할머니·증조부모(曾祖父母)·선망부모(先亡父母)를 잘 모시는 것도 우리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아주 중요하고도 좋은 도리요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등한히 해 가지고서는 가정도 질서가 없어지고, 사회도 질서가 없어져서 혼란이 오고, 나중에는 짐승과 사람의 구별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강 조실스님께서는  이 법보전(法寶殿)에 만년위패(萬年位牌) 제도를 개설을 해서 우리들의 선망부모를 편안하게 모실 수 있도록,
그래서 이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정이 되어가지고 또 좋은 법문을 듣고, 조석(朝夕)으로 올리는 축원에 의해서 항상 흐뭇하고 기쁜 마음으로 계시다가,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돌아오면은 도솔천(兜率天) 내원궁(內院宮)으로 올라가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법당 부처님 앞과 부처님 좌우에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의 궁전을 본받아서 이렇게 곱게 장엄을 한 까닭도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마을에서는 차례상(茶禮床)에 소고기, 돼지고기로 모다 굽고, 생선을 굽고, 비린내 누린내가 나도록 모다 나름대로 성의를 다해서 차례상을 마련하고, 또 온갖 과일과 떡과 모다 그런 것도 올립니다마는,

절에서는 그런 생선이나 육류 같은 것을 올리지 아니하고 깨끗한 과일과 떡만을 여러분의 정성으로 이렇게 해서 올리고, 조촐하면서도 경건하게 차례 법요식을 거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새해를 맞이해서 이 차례 법요식에 조실스님의 생사(生死) 없는 최상승 법문을 우리도 듣고, 법보전에 모신 우리의 선망부모 여러 영가들께서도 잘 들으셨을 줄 생각을 합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과일이나 떡이나 음식도 그것도 정성의 표현이지만,

조실스님의 법문(法門)이야말로, 영가들로 하여금 법희(法喜)·선열(禪悅)을 일으켜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해서 도솔천으로 올라가실 수 있도록 하는 그러한 법문이야말로 음식보다도 훨씬 더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모이신 우리 법보 가족은 정말 명실공히 영가를 위한, 그리고 우리 가정의 평화를 위한 그러한 차례를 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새해를 맞이해서 우리는 간단하게 서로 세배를 주고받았습니다.
새벽에 통알(通謁)이라고 하는 법요식을 올렸습니다마는 결제중이라 낱낱이 웃어른들께 직접 가서 세배는 올릴 수가 없어서,
법당 안에서 단체적으로 이 자리에 선 채로 돌아가신 선망부모, 현재 살아계신 부모, 어른, 스승, 더 나아가서는 모든 선지식(善知識)과 불보살님께도 이 자리에서 전부 세배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세배를 할 때는 덕담(德談)을 하게 되는데, ‘복(福) 많이 받으십시오.’ 모다 그러는데, 복을 많이 받으라고 해서 받게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제석천왕이나 되면은 ‘복 많이 받으라.’하고 수기를 주신다면 혹 또 모르겠는데,
어린아이도 어른보고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저 누구든지 ‘복 많이 받으십시오.’하는데, 생각해보면, 따져보면 좀 그 복 많이 받으라는 소리가 좀 말이 된 것도 같고, 말이 안 된 것도 같은데,
대단히 좋은 풍속이고, 자세히 생각해 보면 그 ‘복 많이 받으십시오.’하는 속에 참 좋은 뜻이 잠겨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복을 많이 받으십시오.’ 복을 많이 받으려면 첫째 복을 많이 지어야 복을 받는 것이지, 지가 복을 받으라고 한다고 해서 받는 것은 아니거든.
그러니까 ‘복 많이 받으십시오.’한 말 속에는 복을 많이 지어서, 그래 가지고 복을 많이 받으라는 뜻이 잠겨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복(福)을 지으면 어떻게 짓느냐?

부처님 말씀에 재보시(財布施). 재물로 물질로 보시를 함으로서 복을 짓는 방법이 하나있고,
그 다음에는 부처님의 법, 진리 법을 설해줌으로 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진리에 나아가도록 하는, 도(道)에 나아가도록 하는 법보시(法布施)가 있고,
또 하나는 무외시(無畏施). 상대방으로 하여금-두려운 공포심에 떨고 있고,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에게 따뜻하고 위로하는 마음-안심할 수 있도록 해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서 공포심이 없어지도록 하는,
그것은 이제 형편 따라서 능력에 따라서 여러 가지 수준이 있겠습니다마는, 알기 쉽게 상대방에 두려움을 없게 해주는 무외보시(無畏布施)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복이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 말씀에 유루복(有漏福)과 무루복(無漏福)이 있는데,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왜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 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또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또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해 볼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할 수도 없고, 생활도 할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은 안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해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할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그 과보(果報)를 바래.

공투세를 해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의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은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그 무루복을 참으로 더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서,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를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정월 초하루, 차례 법요식을 만나서 다 같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복 많이 받으십시오.’

‘많이 받으십시오.’했지만, ‘복 많이 받읍시다.’ 그 말이고, 받도록 우리도 다 같이 노력하자는 뜻으로 알으시고, 힘차게 희망찬 병자년 새해를 시작하시기를 다짐하면서 말을 맺고자 합니다.(처음~21분19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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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알(通謁 통할 통,뵈일 알) ; 불교의 신년하례식(新年賀禮式)으로 세알(歲謁)이라고도 한다.
새해 첫날 삼세(三世)의 모든 삼보(三寶 불보살·법보·승가)와 호법신중(護法神衆), 대중에게 세배를 드리는 의식이다.
우선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법보와 승보에게도 삼배를 올린다. 또 현재 살아계신·돌아가신 모든 부모, 원근친척 그리고 온 법계의 모든 도반들 또한 함께 참석한 대중들에게 세배를 올리는 것.
결재중이고 그래서 낱낱이 모든 존경하는 어른들께 세배(歲拜)를 다닐 수가 없기 때문에 자기가 있는, 수도(修道)하고 있는 도량(道場)에서 합동으로, 시간과 공간에 걸림이 없이 우리가 세배(歲拜)를 올려야 할 존경할 만한 모든 성현(聖賢)과 모든 어른과 모든 선지식과 모든 도반들에게 이 자리에 서서 세배를 드리는 의식.
*세배(歲拜) ; 섣달그믐이나 설 무렵에 웃어른을 찾아뵙고 절을 함. 또는 그 절.
*승가(僧伽) ; 불도(佛道)를 닦는 사람들의 집단·사회.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십악참회(十惡懺悔) ;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열 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지은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풍속(風俗) ; 옛날부터 그 사회에 전해 오는 생활 전반의 습관이나 습속(習俗).
*법요식(法要式) ; 불사(佛事)를 할 때 행하는 의식.
*사당(祠堂) ;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셔 놓은 집. 또는 신주를 모셔 놓기 위해 조그맣게 집처럼 만들어 둔 곳.
*차례(茶禮) ; 음력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날, 명절날, 조상 생일 등의 낮에 지내는 제사.
*자작일촌(自作一村) ; 한집안이나 뜻이 같은 사람끼리 모여서 한마을을 이룸.
*종갓집 ; ①한 문중에서 맏이와 그 식구가 사는 집. ②한 문중에서 맏아들로만 이어 온 큰집.
*5대조(五代祖) ; 고조할아버지의 아버지. *고조할아버지-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신주(神主) ; 죽은 사람의 위패.
*가묘(家廟) ; 조상의 위패를 모셔 놓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집안에 설치한 사당(祠堂).
*젓수다 ; ①궁중에서 ‘잡수다’를 이르던 말. 잡수다-->‘먹다’의 높임말. ②신과 부처님께 소원같은 것을 비는 것.
*시사(時祀) ; 음력 10월에 5대 이상의 조상 산소에 가서 지내는 제사.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안주처(安住處) ; 편안히 자리잡은 곳.
*증조부모(曾祖父母) ; 증조부와 증조모를 아울러 이르는 말. *증조부-아버지의 할아버지.
*등한(等閑)히 ; 무관심하거나 소홀하게.
*법보전(法寶殿) ; 법보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진리를 몸소 구현하신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시절인연(時節因緣) ; 시절이 도래(到來)하고 인연이 합쳐지는 기회. [참고]시절(時節)-어떤시기나 때. 도래(到來)-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기회(機會)-어떠한 일•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때.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조촐하다 ; ①아담하고 깨끗하다. ②행동, 행실 따위가 깔끔하고 얌전하다. ③외모나 모습 따위가 말쑥하고 맵시가 있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법희(法喜) ; ①설법(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진리를 깨달아 마음속에 일어나는 기쁨이나 환희. ②참된 이치를 깨달았을 때 느끼는 황홀한 기쁨.
*선열(禪悅) ; 선정(禪定)에 들어 느끼는 기쁨.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명실공히(名實共히) ; 알려진 내용과 실제의 내용이 똑같게.
*선지식(善知識) ; ①정직하고 덕(德)이 있는 벗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하여 다른 이로 하여금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나 이상경(理想境)에 이르게 하는 이. ②남녀•노소•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불연(佛緣)을 맺게 하는 사람. ③지식(知識)•선우(善友)•친우(親友)•선친우(善親友)•승우(勝友)라고도 함.
*덕담(德談) ; 남이 잘되기를 비는 말. 주로 새해에 많이 나누는 말이다.
*보시(布施) ; 자비심으로 남에게 재물이나 불법(佛法)을 베풂.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가 지은 복(福)으로, 복을 지은 만큼 쓰면 다함이 있다.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삼생(三生) ; 과거와 현재, 미래를 뜻하는, 전생(前生), 현생(現生), 후생(後生,來生)을 아울러 이르는 말.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 곧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를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일확천금(一攫千金) ; 힘들이지 않고 단번에 많은 재물을 얻음.
*무주상(無住相) ; 집착함이 없는 모습. 집착함이 없는 상태.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공투세 ; 일이 잘못되었을 때 남을 원망하며 투덜거림.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