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편'에 해당되는 글 16건

  1. 2020.11.21 §(098) (게송)약야산중봉자기~ / 포대화상, 미륵불의 화현 / 중생심으로 나를 보는 것이 견성 / 금강경 사구게 '若以色見我~' / (게송)원입송풍나월하~.
  2. 2016.05.12 §(666) 찬불게(讚佛偈) / 깨달음으로 가는 정진이 우리의 할 일 / 사람 몸 받아야 도 닦기에 가장 좋다 / 팔만대장경도 결국은 자기를 깨달으란 말로 귀결.
  3. 2016.03.14 §(508) (게송)승침상속의선마~ / 상나화수(商那和修) 존자의 방편법과 우바국다 존자 / 심우송(尋牛頌) / 지혜로운 방편.
  4. 2015.11.07 §(세등59) 용맹정진이란? / 상(相)만 내는 정진이 아니라 속으로 알짜배기 정진을 해야 / (게송)강호춘진낙화풍~ / 부처님·나라·부모·스승·신도 은혜를 갚자.
  5. 2015.08.05 §(560) (게송)심사학도별무타~ /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 / 바른 스승의 지도 / 관법(觀法), 간화선(看話禪).
  6. 2015.04.21 §(430) 참회정진 업장소멸 / 욕과 비방을 감로수처럼 받아들여야 / 단전호흡은 참선하는데 효과적이다 / (게송)선악성공여반장~.
  7. 2015.02.07 §(098) (게송)약야산중봉자기~ / 용화사에서는 방편설에 그치지 않고 활구참선법을 들려 드린다 / 포대화상, 미륵불 화현 / 중생심으로 나를 보는 것이 견성.
  8. 2015.02.04 §(257) 아육왕의 마지막 과일 반 조각 보시 / 보시의 공덕—재앙을 소멸케 한다 / 삼재를 소멸하고 예방하는 근원적인 길은 참선 정진 / (게송)인생백년정하허~.
  9. 2015.01.23 §(062) 중생의 근기, 팔만대장경, 참선법 / 방편(方便), 구경법(究竟法) / 화두 의심은 꽉 맥혀야 한다 / 참선의 자세, 호흡, 바른 생각 / 있는 그 자리에서 ‘이뭣고?’ 뿐.
  10. 2015.01.06 §(616) (게송)남북동서무정착~ / 장판때 / (게송)이인유밀불수저~ / 수행자는 코뿔소의 뿔처럼 외롭게 지내라 / 자각(自覺) 각타(覺他) 각행원만(覺行圓滿)—수행자목표.
상(相)없이2020. 11. 21. 17:02

 

 

§(098) (게송)약야산중봉자기~ / 용화사에서는 방편설에 그치지 않고 활구참선법을 들려 드린다 / 포대화상, 미륵불의 화현 / 일체처 일체시가 바로 부처님 계신 곳, 바로 그 도리 보는 가장 가까운 방법이 ‘이뭣고?’ / 포대화상이 왜 기괴한 모습으로 출현을 하셨느냐? 상견(相見)과 사견(邪見)을 때려 부시기 위해서.

 

**송담스님(No.098)—1979년 입춘 법회(79.02.04) (용098)

 

(1) 약 20분.

 

(2) 약 13분.

 

(1)------------------

 

약야산중봉자기(若也山中逢子期)인대는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냐

나무~아미타불~

 

만약 산중에서 자기(子期)를 만났다면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리요. 어찌 누런 이파리를 가지고 산아래로 내려갈 것이냐.

 

자기(子期)라고 하는 사람은 성(姓)은 ‘쇠북 종(鍾)’  종씨인데, 종자기(鍾子期)라고 하는 사람은 저 중국 고대에 요임금 당시 거문고의 이치, 음악의 이치에 달통한 사람입니다.

 

 

그때 백아(伯牙)라고 하는 사람이 대단히 거문고를 잘 탔습니다. 백아라고 하는 사람은 아주 거문고를 타기로 아주 통달한 사람인데, 백아라고 하는 사람이 거문고를 떠억 뜯으면 너무 거문고를 잘 뜯고 신묘한 경지에 이르러서 보통 사람은 그 백아의 거문고 타는 것을 능히 감상을 할 줄 모릅니다.

오직 종자기(鍾子期)라고 하는 사람만이 그 백아(伯牙)의 거문고 타는 것을 듣고서, '아! 지금 백아라고 하는 사람이 유유히 흐르는 큰 강물을 생각하면서 거문고를 뜯고 있구나' 또 어쩐 때는 '아! 지금 저 백아가 타는 거문고 소리를 들어보매, 높고 높은 태산준령을 생각하면서 저 거문고를 뜯고 있구나'

 

그렇게 종자기라고 하는 사람은 백아의 거문고 타는 소리를 듣고, 백아의 마음 소리를 능히 알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종자기라고 하는 사람이 천명(天命)을 다하여 죽게 되자 백아라고 하는 사람은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아니했다고 그럽니다.

 

 

부처님께서 삼천년 전에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탄생을 하셔서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출가하셔서 대도를 성취하신 다음 80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실 때까지 49년 동안을 팔만사천 묘법(妙法)을 설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일찍이 종자기와 같은 그러한 사람을 만났다면 어찌 49년 동안이라고 하는 장구한 세월동안 그러한 많은 방편설(方便說)을 설할 까닭이 없었을 것이다. 자기(子期)와 같은 사람을 산중에서 만약 만났다면 어찌 누른 이파리을 가지고 산아래로 내려갈 것이냐?

 

누른 잎[黃葉]이라 하는 것은 은행잎이나 단풍잎 같은 그런 아주 예쁘고 고운 그러한 단풍잎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린애들을 달랠 때에 노란 또는 빨간 단풍잎을 주면서 ‘여기 있다. 돈, 여기 있다. 돈’ 이렇게 우리는 어린애들을 곧잘 달래는 것입니다.

 

방편설이라고 하는 것은 필요 불가결(不可缺)한 것입니다. 꼭 필요한 것입니다.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린애를 달랠 때에 사탕 같은 것이 있으면 다디단 사탕을 입에다 넣어 줘서 달래기도 하고, 사탕이 없으면 무슨 노란 이파리나 그렇지 아니하면 무슨 조그만한 돌멩이라도 집어 줘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무슨 장난감 같은 것도 집어 줘서 잠시라도 어린애의 울음을 달래는 경우를 엄마들은 얼마든지 경험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방편, 또 동지 법회, 입춘 법회, 칠성 법회, 사월 초파일 관등(觀燈) 법회, 이런 법회가 노란 이파리를 가지고 어린애 울음을 달래는,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방편설, 이것이 모두 일맥상통(一脈相通)한 점이 있는 것입니다.

 

마침내 노란 이파리만 가지고 달래 봤자 어린애는 잠깐 울음을 그쳤을 뿐, 배가 고픈 허기(虛飢)는 완전히 가시질 않은 것입니다. 다시 또 울음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에서는 일양(一樣)으로 노란 이파리만 가지고 여러분의 울음을 달래는데에 그치지를 아니하고, 정말 입에 넣어서 먹으면 배가 부를 수 있는 영양제를 여러분에게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전국 각 사암에서는 입춘 불공이라 해 가지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특히 입춘이 들은 시간을 기해서 불공(佛供)을 드리고 굉장히 복잡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용화사에서는 입춘에 이렇게 최상승 활구법문(活句法門)을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경청을 했습니다.

 

한 시간 두 시간, 새벽부터 저녁까지 목탁을 치면서 여러분이 일 년 동안 무장무애하시고 복을 많이 받도록 그렇게 간곡히 불공을 드린 것과 이렇게 경건한 자세로 활구참선법을 들은 것과 비교를 해보시면, 조금이라도 뜻이 있으신 분은 능히 어느 것이 정말 올바른 불법(佛法)이고, 어느 것이 정말 우리를 영원히 복되게 하고, 행복하게 할 수가 있는 것인가를 충분히 이해하시고 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오늘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최초에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에 대해서 말씀이 계셨고, 그다음에는 포대화상(布袋和尙)에 법문을 하셨습니다.

 

포대화상은 중국 당나라 시대에 중국에 출현하신 이름도 성도 모르는 고향이 어딘지 그것도 알 수 없는 그러한 도인(道人)이 계셨습니다. 다못 큰 포대(布袋), 자루를 항시 어깨에다가 메고 다니시면서 사람만 만나면 손을 내밀면서 무엇이고 달라고 그랬습니다.

 

누가 무엇을 먹고 있으면 ‘나 좀 달라’고 해 가지고, 주면은 한입 뚝 비어 먹고 나무지기는 자루 속에다가 퐁 집어넣고, 그저 고기가 되었건, 과일이 되었건, 떡이 되었건, 닥치는 대로 얻어서 먹고 집어넣고, 얻어서 먹고 집어넣고, 자루 속에서 배고프면 꺼내 먹고, 썩거나 말거나. 누구든지 만나면 ‘나 돈 한푼 달라’고, 돈 한푼 주면 자루 속에다 탕 집어넣고.

‘너! 모레 물가에 가지 말아라’ ‘너! 이달 보름께는 차를 타지 말아라’ ‘너 내일 저녁에 니 마누라하고 싸우지 말아라’ 무엇이고 한마디 딱! 일러줍니다. 그러면 그 점이 백발백중 맞았습니다.

 

그리고 비가 오려고 하면은 나막신을 신고 줄달음질을 치고, 날씨가 좋은 날은 짚신을 신고 돌아다니고, 그래서 포대화상이 무슨 신을 신었는가 볼라면 일기(日氣)를 미리 알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과학 기구를 사용해서 기상대(氣象臺)에서 일기 예보를 해도 혹 맞기고 하고, 안 맞기도 하고 합니다마는 포대화상 발만 보면 백발백중이었습니다.

 

포대화상이 생존 시에는 아무도 그이가 도인(道人)이라고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었지만, 돌아가신 뒤에사 비로소 그분이 56억 7천만 년 뒤에 염부제(閻浮提)에 미륵불(彌勒佛)로 출현하실 부처님의 권화신(權化身)이라고 하는 것을 선지식(善知識)들은 짐작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 그 미륵불은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미륵보살(彌勒菩薩)로서 지금 머물러 계십니다. 56억 7천만 년 후에 미륵불로 출현하시지마는 그때까지는 너무너무 세월이 많기 때문에 우두커니 거기에 계시지를 아니하고 가끔가끔 보살로서, 보살의 몸으로 화현(化現)해 가지고 인연 따라 중생을 교화하시게 되는데, 그 경우에 한 경우가 바로 포대화상으로 출현하신 것이 되겠습니다.

 

어째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화현으로 나투시려면 누가 보든지 존경할 수 있고 거룩하고 위대한 그러한 몸가짐과 행실로써 출현을 하시지 아니하고, 몸뚱이는 비대해 가지고 배가 소 배만큼 불러 가지고, 여러분이 사진을 통해서 포대화상의 모습을 짐작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배는 장구통 배아지에다가, 항시 배는 떠억 배꼽까지 다 내놓고 남자이지만 유방이 여자 유방처럼 그렇게 양쪽에 드리워진 채,

자루를 하나 짊어지고 슬슬 거리로 다니면서 걸식을 하시면서 그러니까 어린이들이 항시 뒤를 따라 다니면서 올라타고 옷을 잡아당기고 같이 친구가 되었다가 유시에는 놀려댔다가, 이렇게 하면서 포대화상은 어린애로 더불어 벗 삼아서 울다가 웃다가 하면서 세월을 보내시되, 인연 따라서 점도 쳐주고 때로는 역행(逆行)과 순행(順行)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시면서 중생 교화를 하셨습니다.

 

그때 ‘야야포불면(夜夜抱佛眠)이요’ 아까 조실 스님께서 읊으신 ‘밤마다, 밤마다 부처를 안고 자고, 아침마다 또한 같이 일어난다[朝朝還共起]. 밤에 잘 때에는 부처님을 떠억 끌어안고 자다가 아침에는 그 부처님하고 같이 일어난다'

 

‘욕식불거처(欲識佛去處)인댄’ 네가 지금 그 어젯밤에 끌어안고 자고, 아침에 일어날 때 같이 일어났던 그 부처님 간 곳을 알고자 할진대는, '지자어성시(只這語聲是)니라. 지금 이 말하는 이놈이니라'

이 게송(偈頌)은 지극히 쉬운 글이지마는 이 쉬운 한마디의 게송을 똑바로 마음에 얻는다면 바로 자기의 부처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견성성불(見性成佛)한다, 견성성불’ 누구나 입에 거는 말이지만. '성품(性品)을 보고 성불(成佛)을 한다' 중생심(衆生心)을 떠나서는 성품을 볼 수가 없는 것이고, 중생심을 떠나서는 성불할 기약이 없는 것입니다.

천하 없이도 희노애락(喜怒哀樂) · 탐진치(貪瞋癡) 이것이 모다 오욕락(五欲樂), 전판 다 중생심으로 이루어진 중생심의 표현이지마는 그 중생심 여의고는 견성(見性)할 도리도 없는 것이고, 성불(成佛)할 기약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잠시도, 잠시도 여읠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중생심입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말하고, 손으로 글씨 쓰고 일하고, 발로 걸어 다니고, 성냈다, 웃었다, 울었다 하는 이것이 전부 중생심의 발로(發露)인데 그 중생심 떠나서 ‘참나’ 찾을 길은 없는 것입니다.

바로 그 중생심 버리지 아니하고, 중생심에서 중생심으로 나를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견성(見性)입니다.

 

그 가장 단적이고 가까운 것이 '부처 간 곳을 알고자 할진대는 바로 이 말하는 이놈이니라'

어찌 하필 말하는 놈일 뿐이겠습니까. 귀로 듣는 놈, 눈으로 보는 놈, 손으로 만지는 놈, 발로 차고 걷는 놈, 성내고 웃고 우는 놈, 일체처 일체시가 바로 부처님 계신 곳이요, 바로 그 도리 보는 가장 가까운 방법이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한번 드는 곳에 팔만사천 마구니가 물러가는 곳이요, 소멸하는 곳이요, 일체 재앙(災殃)과 액난(厄難)이 소멸되는 때인 것입니다.(처음~19분46초)

 

 

 

 

(2)------------------

 

아까 그 포대화상이 거룩한 도인, 거룩하게 나오시질 않고 왜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기괴한 그러한 모습으로 출현을 하셨느냐? 그것은 상견(相見)과 사견(邪見)을 때려 부시기 위해서 그러셨다.

 

상견(相見)은 무엇이냐?

'저분은 도인이다, 부처님이다'하면 32상(三十二相)을 갖추어서 얼굴도 거룩하고 법문도 잘하고 이 말소리도 웅장하고, 행실도 깨끗하고, 저러니까 저분은 진짜 도인이다. 진짜 부처님이다.

이렇게 모냥 상(相)으로 법을 구하는 거, 이것이 바로 상견이라 하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그 상견이 바로 사견(邪見)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들이나 딸을 여읠 때는 반드시 그 모습을 보고, 사주와 관상을 보고 아들과 딸을 보내기 마련입니다마는, 법을 구하는 데 있어서는 상(相)으로 구하면, 구할 때 이미 사견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참 선지식이나 부처님을 뵈올 가망성이 없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금강경』에 사구게(四句偈)로써, 게송(偈頌)으로써 부처님이 분명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만약 색으로써 나를 보거나,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하면, 음성으로써 나를 구하면,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라,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한지라,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니라,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이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색(色)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 모냥입니다. '얼굴이 저렇게 거룩하시고, 고상하시고, 32가지 거룩한 상(相)과 여든 가지의 훌륭한 상호(相好)를 갖으셨으니 그러니까 부처님이다. 확실히 범부(凡夫)와 다르고 저러니까 부처님이다' 이렇게 모냥으로 부처님을 찾는다든지.

'부처님은 음성이 거룩하시고 원음(圓音)이시라, 무슨 법문을 하시든지 한 가지의 말씀으로 법문을 하시되, 육도법계의 중생이 다 각기 들을 수가 있다. 이해할 수가 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음성이 저렇게 거룩하시기 때문에 부처님이다'

「이렇게 해서 나를 보려고 그러고, 나를 찾는다면 그 사람은 이미 그 자세가 삿되어 갖고 있어, 결단코 참 여래는 보지 못할 것이다. 참 부처님은 보지 못하느니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상견, 모냥으로 부처님을 구하려고 하는 그러한 잘못된 소견(所見)을 때려 부시기 위해서 그러한 미치광이 같은 기괴한 몸차림과 행동을 가지고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출현하신 것입니다.

 

아까 그 아들과 딸을 여읠 때는 사주 관상을 본다,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아무리 사주를 가지고 궁합을 맞춰 보고, 아무리 관상 잘 본다는 사람을 비밀리 보내 가지고 이리 갸웃, 저리 갸웃 해 봤자 자기 아들, 자기 딸이 얼마만큼 과거에 복업(福業)을 잘 지었으며 금생에 얼마만큼 정법(正法)을 믿고 올바르게 참되게 살아가려고 하느냐, 노력을 하느냐, 이 두 가지에 따라서 앞으로 자기의 운명이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사주만 봐 가지고 좋다고 해서 앞으로 참으로 그 두 내외가 잘산다고 하면 사주쟁이의 아들딸은 이 세상에 잘 못사는 사람이 없지 않겠습니까? 절대로 사주쟁이, 관상쟁이 아들딸 그렇게 별로 잘사는 거 못 봤습니다.

자기네 아들딸도 제대로 운명을 개척을 못한 사람이 남의 자식, 남의 딸, 이리저리 사주 봐 가지고 잘살게 할 수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아들딸 여의는 데에는 사주 관상으로 결정을 하시려고 하시지 말고, 가끔 저한테도 사주를 써 가지고 와서 궁합을 봐달라고 합니다마는 제가 사주를 공부를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사주를 봐 갖고 과거에 짓지 못한 사람이 금생에 잘못된 마음가짐과 잘못된 행실과 노력이 부족한 사람이 사주 하나만 가지고 잘살게 된다고 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간단하게 그 궁합 보는 법을 참고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그 규수(閨秀)와 신랑 될 사람을 대면을 시켜서 둘이 서로 좋아하는 눈치가 있으면 궁합이 어지간히 맞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볼 것은 가문도 조금 참작을 하셔야 하고, 또 학벌도 조금은 참작을 하셔야 하고, 그리저리 조금씩 보고서 그냥 성혼(成婚)을 시키면, 그리고서 단단히 단속할 것은 정법(正法)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정법을 믿어서 올바르게 살아가는 마음 자세를 갖는다면 설사 과거에 그렇게 많이 복을 지어 놓지 못했다 하더라도 금생에 어떠한 난관이라도 다 극복을 하면서 결국 보람 있게 살 수 있는 부부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여담(餘談)입니다마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이 계제에 한말씀 드렸습니다.

 

오늘은 입춘 법회, "부작은 이미 받으셨죠?" (예! 받았습니다) 잘 간직을 하십시오.

 

내일은 칠일 기도 회향이 됩니다. 아까 어떤 보살님이 오셔서 "칠일 신수기도에 들었으니까 입춘 동참금은 안 내도 되겠습니까?"

그래 "아, 그 안 내도 됩니다" 그랬더니 사무실 측에서 스님이 와 가지고 "입춘 성금은 받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이렇게 문의를 해왔습니다.

 

"'신수기도에 들었으니까, 신수기도 중간에 입춘이 들었으니 입춘은 성금을 별도로 안 내도 제물에 입춘 성금은 내지게 돼' 아,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 안 내도 되지요" 이렇게 말씀을 제가 했습니다, 그리 생각을 해서.

그러나 염불도 각각이요, 뭐 그런 속담이 있습니다마는, 신수기도에 냈고 또 입춘이니까 입춘도 내고 싶으면 내도 조금도 죄는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내시고 싶으면 내시고, 안 내셔도 하등에 상관이 없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그렇게 이해를 하시고.

 

내일 또 기도 회향이 있습니다. 내일 기도 회향에 좋은 말씀을 듣기로 하고 계속해서 법요식을 진행하겠습니다.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원컨대 솔바람 불고 칡넝쿨 우거진 사이로 비치는 달.

그런 달이 비치는 그러한 고요하고 신성한 곳에 들어가서,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다. 길이 샘[漏]이 없는, 타락이 없는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기가 원이다, 이러한 게송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참선을 하려면 꼭 그러한 달이, 솔바람 부는데 그 달이 비친 그러한 고요 적적한 깊은 산중으로만 들어가서 참선을 해야 잘되나 보다' 혹 그렇게 생각하실런지 모르지만,

도회지(都會地)가 되었건, 장바닥이 되었건, 한 생각 간절해져 화두를 떡! 들면 바로 그 자리가 솔바람 부는 곳이요, 칡넝쿨 우거진 사이로 그 고요한 밝은 달이 비치는 깊은 산중이 되는 것입니다.

 

깊은 산중에 갖다 놓아도 아들 걱정, 딸 걱정, 집안 걱정, 곗돈 걱정, 이런다면 그것은 깊은 산중이 도저히 고요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때와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생각 어떻게 단속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36분25초~48분54초) (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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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若也山中逢子期 豈將黃葉下山下’ ; 『태고집(太古集)』 (雪栖 편, 김달진 역주 | 세계사) '석가 출산상(釋迦出山相)' p229 참고.

*지음(知音) ; ①음악의 곡조를 잘 앎. ②새나 짐승의 소리를 가려 잘 알아들음. ③마음이 서로 통하는 친한 벗을 이르는 말.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가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듣고 악상(樂想)을 잘 이해해 준 벗 종자기(鐘子期)가 죽자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아는 자가 없다고 하여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열자(列子)』에 나오는 말.

*천명(天命) ; ①타고난 수명. ②타고난 운명. ③하늘의 명령.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대도(大道) ; ①부처님의 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각(覺). 보리(菩提).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묘법(妙法) ; ①심원미묘(深遠微妙)한 도리. 특별한 진리. ②바른 이법(理法). ③뛰어난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고귀한 가르침.

*묘(妙) ; (산스크리트어) sat, su, mañju. 차례대로, 살(薩) · 소(蘇) · 만유(曼乳) 등으로 음사하고, 불가사의한 것, 절대적인 것, 비교할 수 없는 것 등의 뜻이 있다.

뛰어난 경전을 묘전(妙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법을 묘법(妙法), 불가사의한 도리를 묘리(妙理), 불가사의한 경계를 묘경(妙境), 묘인(妙因)과 묘행(妙行)에 의하여 증득한 과(果)를 묘과(妙果)라고 한다. '묘(妙)'라는 말은 불가사의하고 뛰어난 모든 것을 형용하기 위해 사용된다.

*방편설(方便說 방법·수단 방/편할 편/말씀 설) ; 실상(實相)으로 이끌어 가기 위하여 상대와 조건에 알맞는 방법을 설정하여 말하는 것.

*실상(實相) ; ①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변하지 않는 진리. ③집착을 떠난 청정한 성품.

*불가결(不可缺) ; 없어서는 안 됨.

*관등(觀燈 볼 관/등 등) ; 등(燈)을 밝히고 봉축(奉祝 공경하는 마음으로 축하함)하는 행사. 연등(燃燈)과 같은 말. 주로 음력 사월 초파일에 행하였으며, 이 날을 관등절, 그 놀이를 관등놀이라고 하였다. 집집마다 등을 달고, 관청, 시장 거리의 가게, 절 등에서 등대를 세워 등을 달아 부처님의 탄생을 봉축하였다.

 

오늘날에는 이 날을 '부처님 오신날'이라 하여 국가공휴일로 정하고 밤에는 수많은 신도들이 등을 들고 거리를 돌면서 제등행렬(提燈行列)을 한다.

요즈음에는 특별한 사찰의 행사 때에도 때때로 관등을 하며, 천등불사 · 만등불사 등 관등 위주의 행사를 한다. 그 기원은 통일신라 때 행해졌던 팔관회(八關會)이다.

*일맥상통(一脈相通 한 일/줄기·맥 맥/서로 상/통할 통) ; 사고방식이나 성질 등이 두 대상 간에 어느 면에서 한 가지[一脈]로 서로[相] 통(通)하거나 비슷해짐.

*허기(虛飢 빌 허/주릴·굶주림 기) ; 굶어서[飢] 속이 비어[虛] 몹시 배가 고픔.

*일양(一樣) ; ①한결같은 모양. 또는 같은 모양. ②한결같이 그대로. 또는 꼭 그대로.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 · 등(燈) · 꽃 · 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활구(活句) ; 깨달음은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량분별이 끊어짐으로 해서 깨달음에 나아갈 길이 열리는 것이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거각하면 일부러 사량분별을 끊을려고 할 것도 없이 끊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활구(活句)라 한다.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라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 刊) p49~52. (가로판 p50~53)

大抵學者는  須參活句언정  莫參死句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모름지기 활구(活句)를 참구할지언정,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지어다.

 

<註解> 活句下에  薦得하면  堪與佛祖爲師요,  死句下에  薦得하면  自救도  不了니라.  此下는 特擧活句하야  使自悟入이니라. 【 要見臨濟인댄  須是鐵漢이니라

 

활구(活句)에서 얻어 내면 부처나 조사의 스승이 될 만하고, 사구(死句)에서 얻는다면 제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아래는 특히 활구(活句)를 들어 스스로 깨쳐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 임제를 친견하려면 쇠뭉치로 된 놈이라야.

 

<評曰> 話頭에  有句意二門하니  參句者는 徑截門活句也니  沒心路沒語路하며  無摸索故也요,  參意者는  圓頓門死句也니  有理路有語路하며  有聞解思想故也라.

 

평해 가로되, 화두(話頭)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참구는 경절문 활구(徑截門活句)니,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말 길도 끊어져서 더듬고 만질 수가 없는 때문이요,

참의라 하는 것은 원돈문 사구(圓頓門死句)니, 이치의 길도 있고, 말의 길도 있으며, 들어서 알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절문(徑截門) : 지름길문. 교문(敎門)의 55위(位) 점차(漸次)를 거치지 않고 한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원돈문(圓頓門) : 원교(圓敎)와 돈교(頓敎)가 교문(敎門)에 있어서는 가장 높고 깊은 이치를 가르친 바이지만, 말 자취가 남아 있고 뜻 길이 분명히 있어서 참으로 걸림 없는 이치를 완전히 가르친 것이 못된다. 오직 조사선이 있을 뿐이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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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포대화상(布袋和尙) ; 중국 후량(後梁) 때의 스님. 절강성(浙江省) 명주(明州) 봉화현(奉化縣) 출신. 자기가 자칭하는 이름은 계차(契此)였다. 체구가 비대하고, 이마에 주름이 잡히고, 배가 불룩하고, 말이 일정하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자고 누웠다.

항상 지팡이에 베자루 하나를 걸어 메고, 소용되는 물건은 모두 그 속에다 넣었다. 저자나 마을에 들어갔다가 물건을 보면 달라고 하여, 먹을 것은 무엇이나 주기만 하면 받아 먹으면서 조금씩 나누어 그 자루에 넣곤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별호를 지어 장정자(長汀子) 또는 포대화상(布袋和尙)이라고 불렀다. 혹 사람들에게 무엇을 달라 했다가 돈을 주면 돌려 주었고, 남에게 길흉을 예언해 주면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916년 3월에 명주 악림사(嶽林寺) 동쪽 행랑 밑의 반석 위에 단정히 앉아서 게송을 읊었다.

 

미륵진미륵(彌勒眞彌勒)  분신천백억(分身千百億) 시시시시인(時時示時人)  시인자불식(時人自不識)

미륵 부처님, 참 미륵 부처님이 분신(分身)해서 천백억 부처님이 되었다. 때때로 당시 사람들에게 보이되, 당시 사람들이 스스로 아지를 못하는구나.

 

게송을 마치고 편안히 앉아서 떠났는데, 그 뒤에 다른 고을 사람들은 여전히 대사가 포대를 메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이에 사람들은 포대화상을 미륵 보살의 화현(化現)이라 하여, 그 모양을 그려서 존경하여 받드는 사람이 많았다 한다. [참고] [전등록 3] (제27권) (동국역경원 | 김월운 옮김) p459-463 참고.

*비다 ; '베다(사람이 과일을 입으로 끊거나 자르다)'의 사투리.

*나무지기 ; ‘나머지’의 사투리.

*기상대(氣象臺) ; 기상(氣象 바람, 구름, 비 등 대기 중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관측, 통보하거나 또는 조사, 연구하기 위한 시설. 또는 그 기관.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염부(閻浮) ; 염부제(閻浮提). 남염부제(南閻浮提). 섬부주(贍部洲). 남섬부주(南贍部洲).

산스크리트어 jambu-dvīpa의 음사. 염부(閻浮), 섬부(贍部)는 jambu의 음역어이며, 제(提)와 주(洲)는 dvipa의 각각 음역어 및 의역어이다. jambu는 나무 이름.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수미산(須彌山)의 사방에 네 대륙(四洲)이 있는데, 염부라는 이름은 여기에 자란다는 점부(jambu)에 유래하며, 남방에 있기 때문에 남섬부주(南贍部洲)라고 한다.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라 하며, 여러 부처님이 나타나는 곳은 사주(四洲) 가운데 이곳뿐이라 함. 불전에서는 인간세계의 전체를 의미하는 말로서 사용되고 있다.

*미륵불(彌勒佛)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권화신(權化身) ; 불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로 변하여 나타난 몸.

*권화(權化) ; 산스크리트어  avatāra ①불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몸이나 모양으로 변하여 나타나는 것. 권현(權現) · 화현(化現) · 응현(應現)이라고도 한다. ②화신(化身)과 같음.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도솔천(兜率天)은 욕계(欲界) 육천(六天)의 넷째 하늘로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호명(護明) 보살의 이름으로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로서 여기에 있으면서 하늘나라 사람들을 제도하며 남섬부주에 하생(下生)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이 보살이 불교의 33천 중 도솔천에 머무는 이유는 중생을 구제하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도솔천은 아래로는 사천왕(四天王) · 도리천(忉利天) · 야마천(夜摩天)이 욕정(欲情)에 잠겨 있고, 위로는 화락천(化樂天) ·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 들뜬 마음이 많은데 비해 도솔천은 잠기지도 들뜨지도 않으면서 오욕락(五慾樂)에 만족한 마음을 냄으로, 다음에 성불할 보처(補處)보살이 머문다고 한다.

도솔천의 수명은 4천 세라 하고, 도솔천의 하루는 인간의 4백 세라 하였으니, 도솔천의 수명을 인간 수명으로 환산하면 인간의 5억 7천 6백만 년에 해당하지만(4천 x 3백 6십, 1년 x 4백 = 5억 7천 6백만), 고대의 기수법(記數法)에 따르면 57억 6천만 년이라고 한다.

 

도솔천에 왕생할 수 있는 인연은 ①끊임없이 정진하고 많은 공덕을 쌓은 자. ②탑을 깨끗이 하고 좋은 향과 아름다운 꽃을 공양한 자. ③여러 가지 삼매(三昧)로써 깊은 선정(禪定)을 닦은 자. ④경전을 독송하는 자. ⑤번뇌를 끊지는 못하였지만 지극한 마음으로 미륵을 염불하는 자. ⑥팔계(八戒)를 받고 청정한 행을 익히며 사홍서원을 잊지 않는 자. ⑦널리 복업(福業)을 닦는 자. ⑧계를 어기고 악을 범하였어도 미륵보살의 자비로운 이름을 듣고 정성껏 참회하는 자. ⑨미륵보살의 이름을 듣고 그 형상을 만들어 향과 꽃, 깃발로 장식하고 예배하는 자 등이다.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 : 오직 한 번만 생사(生死)에 관련되고, 일생을 마치면 다음에는 부처님이 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보살.

*일생보처(一生補處) : 일생(一生)은 '한 번 난다'는 뜻이니, 한 번 다른 지위에 난 뒤면 부처님의 지위에 오른다는 뜻. 보처(補處)는 후보(候補)의 자리[處]라는 뜻임.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중생심(衆生心) ; ①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가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②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진여심(眞如心). ③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전판(全판) ; 하나도 남김이 없는 전부.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品)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발로(發露 드러내다·밝히다 발/드러내다 로) ; 숨은 것이 겉으로 드러나거나 숨은 것을 겉으로 드러냄. 또는 그런 것.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마구니 ; 마(魔). [범] mā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64에서. (가로판 p66~67)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재앙(災殃 재앙 재/재앙 앙) ; 뜻하지 않게 생긴 불행한 변고(變故). 또는 천재지변으로 말미암아 생긴 불행한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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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견(相見) ; 상(相)이 있다는 견해.

*상(相) ; ①모습, 형태. 상대어는 성(性)으로 본래 지니고 있는 성질을 가리킨다.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금강경(金剛經) 사구게(四句偈) ;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 ‘만약 색상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려 하면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요 능히 여래(如來)를 보지 못하리라’ 『금강경』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참고]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제26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爾時 世尊 而說偈言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그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만약 색상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려 하면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요 능히 여래(如來)를 보지 못하리라"

 

【함허(涵虛) 설의(說誼, 이치를 설함)】

色見聲求 是行邪道 作麼生 不行邪道去 但知聲色本非眞 自然不被聲色惑 見盡自於玄旨會 情忘能與道相親

 

색상으로 보고 음성으로 구하는 것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삿된 도(道)를 행(行)하지 않겠는가?

다못 이 소리와 색상이 본래 참[眞]이 아닌 줄 알면 자연히 소리와 색상에 현혹을 받지 아니할 것이다. 소리를 듣고 색상(色相)을 보는 그 견(見)이 다하면, 자연히 현현(玄玄)한 뜻을 알게 되리라. 그래서 정(情)이 다하면 능히 도(道)와 더불어 서로 친(親)하게 될 것이다.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이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머금은 것,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것 등등.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무명 번뇌(煩惱)에 얽매여 업에 따라 과보를 받아 자재롭지 못하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각각의 중생들이 서로 다른 업으로 말미암아 윤회하기 때문에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사향사과(四向四果)의 성인을 기준으로 보면 도를 깨닫지 못한 이들을 모두 범부라 하고, 대승은 성문 · 연각 · 보살 · 불 등 사성(四聖)을 기준으로 하여 보면 육도에서 생사윤회하는 중생들은 모두 육범(六凡)이라 한다.

*원음(圓音) ; 치우침 없는 원만한 음성. 들을 수 없는 이가 없는 음성. 모든 유정이 제각기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 부처님께서 한 음성[一音]으로 일체법을 설하실 때, 모든 중생이 제각기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평등하게 이해하는 원만한 부처님의 가르침.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신수(身數)기도 ; 지난 1년 동안의 죄업을 참회하고, 새해를 맞아 정초에 1년 동안의 안녕과 소원을 기원하는 기도.

*신수(身數 몸·나·자신 신/운수 수) ; 사람의 운수(運數). 사람의 운명(運命)이나 길흉화복(吉凶禍福)의 운수.

*제물에 ; 지물에. 제바람에. 제풀에. 저 혼자 스스로의 바람에. (어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기운으로 말미암아.

[참고] 제물에(지물에) 지치다 : 무슨 일을 하다가 스스로 혹은 자기 힘에 지쳐서 시들해지는 것.

*(게송)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무루(無漏 없을 무/샐·구멍·번뇌 루) ; 유루(有漏)의 대칭어. 마음과 몸을 괴롭히는 번뇌에서 벗어남.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마음 상태. 번뇌가 사라진 경지.

누(漏 산스크리트어 āsrava)는 번뇌(煩惱 산스크리트어 kleśa)의 동의어로 누주(漏注) · 누설(漏泄, 漏洩 흘러나온다) · 누실(漏失) 등으로도 한역한다. 곧 육근(六根)과 아홉 구멍(九孔)에서는 항상 과실(過失 결점. 과오. 허물)과 부정한 것이 흘러나오므로 누(漏)라 한다. 혹은 누란 누락(漏落)의 뜻으로 중생을 삼악도(三惡途 : 지옥, 아귀, 축생)에 떨어뜨린다는 뜻이다. 이러한 누(漏)를 동반한 법을 유루, 그렇지 않은 법을 무루라 한다.

*'도회지(都會地)가 되었건, 장바닥이 되었건, 한 생각 간절해져 화두를 떡! 들면 바로 그 자리가 솔바람 부는 곳이요, 칡넝쿨 우거진 사이로 그 고요한 밝은 달이 비치는 깊은 산중이 되는 것입니다.

깊은 산중에 갖다 놓아도 아들 걱정, 딸 걱정, 집안 걱정, 곗돈 걱정, 이런다면 그것은 깊은 산중이 도저히 고요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때와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생각 어떻게 단속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 일념단속(一念團束). 무슨 생각이든지 한 생각 났다 하면 그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를 받는데,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것.

마음 속에 한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그 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될 수 있는데, 그 한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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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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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초파일)2016. 5. 12. 13:59

 

 

§(666) 찬불게(讚佛偈) / 깨달음으로 가는 정진이 우리의 / 사람 받아야 닦기에 가장 좋다 / 팔만대장경도 결국은 자기를 깨달으란 말로 귀결.

 

부처님 인도 말로 붓다(Buddha) 말인데, 붓다란 말은각자(覺者)’, ‘깨달으신 성현이다.

 

부처님의 위대하심과 덕을 찬양하는 데에 그치지 말고, 부처님께서 열어주신 일러주신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목적을 향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일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셔서 6 고행을 하시고 그래 가지고 깨달으신 법을 우리가 믿고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비록 살아가는데 생로병사가 있다 하더라도 인간 세상에 태어나야 고통도 있고 낙도 있고 해서 거기서 무상(無常) 깨닫고 도를 이룰 수가 있기 때문에 과거에 모든 성현들이 인간 세상에 태어나서 생사해탈을 하고 나아가서 고통 받는 중생을 제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팔만대장경에 화엄경을 비롯해서 많은 경전이 있지만 경전의 뜻을 정말 옳게 이해하고 보면자기의 마음을 자기가 찾아서 스스로 깨달으라 밖에는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근기가 약한 사람을 위해서 방편(方便)으로 설하셨지만 그런 법문도 옳게 알고 보면 결국은 자기를 깨달으란 말로 귀결(歸結) 되는 것입니다.

 

진리는 절대로 데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앉았을 때나, 서있을 때나, 걸어갈 때나, 누웠을 때나, 어떠한 생각이 일어날 좋은 생각이건, 나쁜 생각이건, 슬픈 생각이건, 무슨 생각이 일어날 일어나는 생각에 즉해서 다음 생각으로 옮겨가기 전에 바로이뭣고?’ 챙김으로 해서 깨달음과 진리와 자기가 하나 되는 길이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송담스님(No.666)—02(임오년) 부처님오신날 법어(34) (용666)

 

(1) 약 17분.

 

(2) 약 18분.

 

(1)------------------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이요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로다

나무~아미타불~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허되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로다

나무~아미타불~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이요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

하늘 하늘 아래 부처님과 같은 분이 없고, 시방세계(十方世界) 견줄만한 분이 없다.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하되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

세간에 있는 바를 내가 봤지만 부처님과 같은 분은 없습니다.

 

게송은 찬불게(讚佛偈) 하는데—‘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偈頌)이다그러는데, 게송은 누가 읊은 게송이냐 하면은 과거 저사불(底沙佛) 시대에 저사불 밑에서 석가 보살과 미륵 보살, 보살이 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석가 보살이 저사불을 찬양하는 게송입니다.

 

게송을 읊되 저사(底沙) 부처님의 삼십이상(三十二相) 팔십종호(八十種好) 갖추신 거룩하고 거룩한 찬란한 모습을 보고 읊으신 게송입니다.

 

발을 내디디고 발은 들고 있을 너무 황홀한 모습을 보고 게송을 읊기를 칠일칠야(七日七夜) 일심불란(一心不亂)으로 찬양을 해서 읊었습니다.

일심불란으로 칠일칠야를 게송으로써 부처님을 찬탄한 공덕으로 구겁(九劫) 건너뛰어 가지고 미륵 보살보다도 먼저 성불(成佛) 하시게 것입니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사바세계(娑婆世界) 먼저 하생(下生) 하시고 앞으로 56 7천만 뒤에 미륵 부처님이 사바세계에 오시게 되는데,

게송이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 자신이 저사부처님을 찬양하는 게송인데, 부처님 열반하신 삼천년이 되도록 우리는 부처님께서 읊으신 게송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유서 깊은 게송으로써 오늘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미 우리는 조실 스님께서석가모니 부처님 인도 가비라(迦毘羅) 왕국에 태자로 태어나셔 가지고 사문유관(四門遊觀) 하시다가 정거천인(淨居天人) 게송을 들으시고 그리고서 성을 넘어서 출가하셔 가지고 육년 고행을 하시고 마침내 십이월 초팔일 동천(東天) 떠오르는 샛별을 보시고 성불을 하신 데까지, 조실 스님께서 녹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법문을 설해 주셨습니다.

 

부처님 인도 말로 붓다(Buddha) 말인데, 붓다란 말은각자(覺者)’, ‘깨달으신 성현이다, 그런 뜻인데, 부처님께서 깨달으셔 가지고 깨달으신 진리를 열반하실 때까지 사십구 동안을 팔만사천법문으로써 우리 중생들에게 법문을 설해 주셨는데,

부처님의 위대함은 게송으로 찬양하고 억만년을 두고 찬양을 해도 부처님의 위대함과 우리 중생을 위하신 자비와 중생을 위해서 설하신 지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지혜를 말로써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부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써 삼천년을 두고 사월 초파일을 행사를 진행하는데, 절절이 등불을 켜고 육법공양(六法供養) 올리고 온갖 다양한 행사로써 초파일을 봉축을 하는데 하나의 연례행사로써 이어져 가고 있습니다

마땅히 불제자(佛弟子)로서는 부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해야 하는 것이고, 찬양하고도 더이상 수가 없어야 하리라고 생각이 되지마는 우리는 찬양한 것만으로도 우리가 업장이 소멸이 되고 우리의 크고 작은 모든 소원을 성취하게 되리라고 산승(山僧) 믿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위대함을 찬양하고서 우리의 소원을크고 작은 사바세계에 있어서 유루복(有漏福) 성취하는 데에 그쳐서는 진실로 정법을 믿는 불자라고 수가 없으리라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어떻게 해야 부처님의 덕을 찬양하고 나아가서 부처님의 법문을 믿고 실천해서 정말 부처님을 기쁘게 드리는 길이 무엇이냐? 이것에 대해서 잠깐 말씀을 하고자 합니다.  

 

() 말씀하시기를중생이 만약 정성이 안으로부터서 ()하지 아니하면 삼세에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에 항하사(恒河沙) 모래 수와 같은 그런 모든 부처님을 만나 뵌다 하더라도 부처님이 능히 어떻게 수가 없는 것이다.

자기가 속에서부터서 능동적으로 신심(信心) 분심(憤心) 속에서 터져 나와야지 그렇지 않으면 억만 부처님을 친견한다 하더라도 부처님이 사람을 어떻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말씀도 하시고,

중생이 자기 마음을 깨달라서 자기가 자기를 제도하는 것이지, 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수가 없는 것이다그렇게 말씀도 하셨습니다.

 

경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오조(五祖) 홍인 대사께서는 최상승론(最上乘論)이라고 하는 법문을 통해서 『만약 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있는 것이라면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항하사 모래 수와 같이 한량이 없으신데 무슨 까닭으로 우리는 오늘날까지 성불을 못하고 이렇게 생사윤회를 하고 있겠느냐?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못 정성이 안으로부터서 능동적으로 터져 나오지 아니한 까닭에 과거에 무량 부처님이 출세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한량없는 법을 설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고해(苦海) 침몰하고 우리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오조 스님께서 말씀을 하시고 『노력하고 노력할지어다. 부지런히 자기의 본마음을 찾아서 잠시 동안도 잊어서는 아니 되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통해서 보면 부처님의 위대하심과 덕을 찬양하는 데에 그치지 말고, 부처님께서 열어주신 일러주신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목적을 향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일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셔서 6 고행을 하시고 그래 가지고 깨달으신 법을 우리가 믿고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 마지막 사라쌍수(沙羅雙樹) ()에서 열반하실 유언으로써 무슨 말씀을 하셨느냐?

나는 어진 의원과 같아서 사람들의 병에 따라서 병을 진단을 가지고 좋은 약을 일러줬지만 좋은 약을 가르켜줬지만 먹고 먹는 것은 의원의 허물이 아니니라

나는 인도(引導)하는 사람과 같아서, 바른길로 안내하는 사람과 같아서 사람들을 바른길로 일러주었지마는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 하면 그것은 인도하는 사람의 허물이 아니니라마지막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러한 유교경(遺敎經) 있는 말씀과 오조 스님께서 인용하신 경전의 말씀과 오조 스님의 말씀을 통합해서 생각해보건대우리는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보유하고 있고 그것이 유네스코에서 세계의 보물로 이렇게 지정을 받았습니다.

그런 좋은 경전을 가지고 있고 고려대장경 연구소에서 CD롬으로 그것을 완성을 해가지고 컴퓨터를 통해서 가정에서도 경전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경전으로써 교리로써만 알고, 학문으로써만 연구하고, 실지로 그것을 깊이 믿고 실천을 해서 우리가 깨달음을 얻지를 못한다면 좋은 법문도 휴지에 지나지 아니할 것입니다.

아무리 유네스코에서 세계의 보물로 지정했다 하더라도 그것만 가지고서 중생이 생사해탈(生死解脫) 하게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생사해탈로 나아가는 길잡이는 될지언정 직접 우리가 안내에 의해서 목숨 바쳐서 부처님께서 설산에서 고행 수행하듯이, 역대조사(歷代祖師) 그렇게 용맹정진(勇猛精進) 하듯이 우리도 그렇게 정진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마침내 생사해탈을 못하고 것입니다.(처음~1641)

 

 

 

 

(2)------------------

 

오늘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서 이렇게 도량 법당 안과 법당 밖에 수만 개의 등불을 찬란하게 켜서 부처님의 탄신을 이렇게 축하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법당 안과 밖에 많은 사부대중(四部大衆) 운집(雲集) 해서 법요식을 갖고 있습니다.

 

마땅히 그래야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우리가 한마음 한뜻으로 부처님의 탄생을 찬양을 하고 그래야 하겠는데,

우리는 오늘을 기해서 정말 특별한 마음을 내서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자기를 반성하고 참회하고 그리고 정말 신심을 돈독히 하고 분심을 내서 불법을 닦아가는데, 팔만대장경에 있는 수행하는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 중생의 근기(根機) 따라서 갖은 방법으로 설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산승은 용화사의 전강 조실 스님의 법을 믿고 닦아가는 사람으로서 가장 조실 스님께서 팔십 평생을 한결같이 설하시고 찬양하신 (), 그리고 산승도 역시 법을 믿기 때문에 간략히 말씀하겠습니다

 

약국에 수백 가지, 수천 가지 약들이 있지만 자기에게 맞는 그리고 가장 자기의 병을 낫을 있는 약은 많은 약을 먹음으로써 병이 낫는 것이 아니라, 가장 자기 체질에 맞고 자기가 믿어지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서 병에 맞춰서 약을 먹어야 효과를 보는 것처럼,

산승이 믿는 조실 스님께서 평생에 선양하신 법을 오늘 말씀을 드리는데, 여러분들은 이미 법에 의해서 열심히 공부하신 분도 있고, 수행을 가지고 상당한 지경에까지 이르신 그런 구참 수행자도 있을 것입니다마는 부처님과 같이 그러한 지경에까지 이르기 전에는 득소위족(得少爲足) 해서는 아니 것입니다.

자기 나름대로 어떤 지경에 이르렀다 해도 그것이 구경(究竟) 깨달음이 아니면 우리는 그것에, 자기의 이르른 경지에 만족을 해서 아니 되는 것입니다. 득소위족을 하면은 공부는 이상 나아갈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참나 찾는 , ‘참나라고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이냐?

우리가하면은 자기의 성명(姓名) 것입니다. 성명은 임시로 붙여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고 이름은 몇십 가지를 가질 수도 있고 몇천 개의 이름도 가질 수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소소영령(昭昭靈靈) 주인공눈으로 볼래야 없고, 손으로 잡을래야 잡을 수도 없고, 우리의 생각으로 아무리 알려고 해도 수가 없는 그러한 주인공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고 있습니다.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루어져서 시절인연(時節因緣) 돌아오면 몸을 버리고 다른 몸을 받게 것입니다. 그러나 몸이사람의 몸을 받아야 도를 닦기에 가장 좋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천당이 좋아도 한량없는 고통을 받지 않고 즐거운 () 받는다고 해도 그것으로써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 아니고, 받을 만큼 복이 다하면 다시 떨어져서 인간 세계에 떨어지거나, 축생·아귀·지옥에 떨어지는 것이어서 천당에 가는 것도 우리의 구경의 목적지가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살아가는데 생로병사가 있다 하더라도 인간 세상에 태어나야 고통도 있고 낙도 있고 해서 거기서 무상(無常) 깨닫고 도를 이룰 수가 있기 때문에 과거에 모든 성현들이 인간 세상에 태어나서 생사해탈을 하고 나아가서 고통 받는 중생을 제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이가 젊은 사람도 있고 나이가 많은 분도 있습니다마는 크고 작고 간에 병이 없는 사람이 거의 없고 결국은 설사 건강하다 하더라도 그래서 오래 산다 하더라도 백년을 넘기가 어렵습니다.

부자 빈부귀천,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 오욕(五欲) 마음껏 누리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잠시 꿈에 봉황새를 타고 옥황상제가 있는 천국에 올라간 거와 같아서 깨고 나면은 아주 평범한 다시 본래 자기 살던 곳으로 눈을 떠보면 자리에 있게 것입니다.

 

그래서 꿈에 천상에 가면 무엇 하며, 꿈에 금은보화를 산더미처럼 소유하면 그것이 어디에다 것입니까? 사바세계에서 많은 재산, 많은 명예와 권리와 지위 부귀를 누린다 하더라도 꿈에 부귀를 얻은 것이나 조금도 차등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냐 하면, 그것은 믿을 것이 못되고 언젠가는 자기 몸으로부터서 재산도 떠나고 명예와 권리도 떠나게 되고, 자기 생전에 그런 것이 망하고 결국은 감옥에도 가고 사형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그것이 바로 사바세계의 오욕(五欲)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출가하셔서 그래서 도를 닦아서 성불(成佛) 하시게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사실은 진묵겁(塵墨劫) 전에 성불을 마치신 그러한 성현이지마는 우리 중생들에게 인생이 무상하다고 것을 몸소 보여주시고 도를 닦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사바세계에 오신 그러한 부처님인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정말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서 경전을 통해서 알고 철저하게 무상을 깨닫고서 우리는 생각 생각, 걸음 걸음, 행주좌와 어묵동정을 통해서 선지식(善知識) 지시에 따라서 역대조사의 법문에 의해서 이만큼 건강할 철저히 정진을 해서 목숨이 다하기 전에 생사해탈의 단계에 이르러야 것입니다.

 

()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어서 머리를 깎고 출가를 하거나, 머리를 깎지 아니하고 세속에서 살거나, 배고프면 먹을 알고, 몸이 아프면 끙끙 앓을 알고, 부르면 대답할 알고, 발로 걸어 다니고 앉었다 섰다 있을 만큼 이만큼 건강하면,

바로이뭣고?’ 통해서 항상 자기를 찾고 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찾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있다고 부처님을 비롯한 역대 선지식들이 설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빈부귀천을 따질 것도 없고, 머리가 좋고 나쁜 것도 따지지 말고 항상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팔만대장경에 화엄경을 비롯해서 많은 경전이 있지만 경전의 뜻을 정말 옳게 이해하고 보면자기의 마음을 자기가 찾아서 스스로 깨달으라 밖에는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근기가 약한 사람을 위해서 방편(方便)으로 설하셨지만 그런 법문도 옳게 알고 보면 결국은 자기를 깨달으란 말로 귀결(歸結) 되는 것입니다.

 

오늘 부처님 오신날을 기해서 언제나 법상에 올라올 때마다 한결같이 그런 말씀을 여러분께 드렸습니다마는 오늘도 말로써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개개면전명월백(箇箇面前明月白)이라  인인각하청풍취(人人脚下淸風吹)로다

나무~아미타불~

타파경래무영적(打破鏡來無影迹)이라  일성제조상화지(一聲啼鳥上花枝)로다

나무~아미타불~

 

개개면전명월백(箇箇面前明月白)이여. 모든 사람 낱낱이 사람 얼굴 앞에는 밝은 달이 환하니 떠있다 그말이여.

인인각하청풍취(人人脚下淸風吹). 사람 사람마다 다리 밑에는 맑은 바람이 불고 있다.

 

휘황창 밝은 밤에 어떤 사람 앞에만 달이 밝은 것이 아니고, 시원하게 바람이 때에는 모든 사람 얼굴에 바람이 부는 것이지, 특수한 사람에만 부는 것이 아니다.

말은 모든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는 부처가 있는 자성(自性) 진여불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고, 다시 나아가서 말하면 모든 사람마다 법신불(法身佛) 몸뚱이 속에 계시다 말씀이여. 어떤 특수한 사람만 법신불이 계시고 특수한 사람만이 진여불성(眞如佛性)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말이여.

 

타파경래무영적(打破鏡來無影迹)이여. 거울을 타파해 버리면 거울이라 하는 것은 중생의 팔식(八識) 속에 무량겁으로부터서 오면서 거기에 녹음 녹화된 온갖 번뇌와 망상, 그리고 부처님의 경전의 말씀, 성현의 말씀, 말로써 형언할 없는 것들이 팔식 속에, 무의식 속에 녹음 녹화가 되어 있는데 우리는이뭣고?’ 화두를 함으로써 그놈을 갖다 타파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타파함으로써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깨달으면 나뭇가지 위에 우는 소리가 바로 진리를 설파(說破)하는 말로써 자기에게 닿게 것입니다.

 

진리는 절대로 데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앉았을 때나, 서있을 때나, 걸어갈 때나, 누웠을 때나, 어떠한 생각이 일어날 좋은 생각이건, 나쁜 생각이건, 슬픈 생각이건, 무슨 생각이 일어날 일어나는 생각에 즉해서 다음 생각으로 옮겨가기 전에 바로이뭣고?’, ‘이뭣고?’ 챙김으로 해서 깨달음과 진리와 자기가 하나 되는 길이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을 명심을 하시고,

 

오늘 초파일을 기해서 법을, 최상승법(最上乘法) 철저히 믿고 , 초도 생각[別念] 일어날 기회를 주지 말고 자기를 찾는 공부를 열심히 하심으로 해서 진정으로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길이 여기에 있고,

부처님께서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출가해서 설산에서 도를 깨달으신 뜻이 바로 우리 몸에서 실천이 되도록 주시기를 당부 드리면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자리에 모이신 여러 법보가족 여러분!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 도반들!

오늘 자리에 참석해서 등불을 켜고 법요식을 같이 인연으로 무량겁(無量劫) 업장(業障) 소멸(消滅)되시고, 그리고 크고 작은 유루복도 성취를 하시고, 나아가서는 참나를 깨달아서 사람도 빠짐없이 세세생생(世世生生) 불회상(佛會上)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을 합시다.(1651~3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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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불게(讚佛偈) ;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

『본생경(本生經)』에서 말하기를, 아주 과거에 저사(底沙)라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그때 사람의 보살이 있었으니, 사람은 석가(釋迦) 보살이라 했고 또한 사람은 미륵(彌勒) 보살이라 했다.

어느날 저사불께서 보살을 관찰해 보시니, 지혜의 면에서는 미륵 보살이 앞서 있으나 중생 교화의 면에서는 석가 보살이 앞서 있어서, 저사불은 석가 보살로 하여금 속히 부처를 이루게[成佛] 하기 위하여 설산에 올라가 보굴(寶窟) 속에서 화광삼매(火光三昧, 火定) 드셨다.

이때 석가 보살이 산에 올라가 약을 캐고 있었는데, 저사불께서 보굴 속에 앉아 화광삼매에 들어 밝은 광명을 내뿜는 것을 보자, 거룩한 모습에 어찌 없어들었던 발을 내려놓고 다른 발을 들어서 걸어가지를 못하고 발을 들은 채로 합장하고, 환희하며 믿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하여 일심으로 우러러 뵙되 잠시도 눈을 깜박이지 않고 7 낮과 7 밤을 있었다.

여기에서 칠일칠야(七日七夜) 시일이 지나가면서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 천상천하에 부처님 같으신 없으시고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 시방세계에서도 견줄 없도다.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 세상에 존재하는 , 모두 보았으나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 어느 것도 부처님에 비할 아니네.

 

게송을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이다 해서 찬불게(讚佛偈) 하는데, 7 7 동안 세존(世尊) 자세히 관하되[諦觀] 조금도 눈을 깜박이지 않으시니, 이로 인해 아홉 (九劫) 뛰어넘어 91 만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耨多羅三藐三菩提,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 얻으셨다.

[참고] [대지도론(大智度論)] (4) '初品中菩薩釋論第八' 참고. [전등록 2] (동국역경원) p133 참고.

*시방세계(十方世界) ; 세계. 사방(四方 ) 사유(四維 동북동남서남서북) 상하(上下) 있는 무수한 세계.

*저사불(底沙佛) ; 산스크리트어 Tisya. 부처님 이름. 불사(弗沙보사(補沙)라고도 . (원만(圓滿귀숙(鬼宿)이라 번역한다.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눈썹 사이에 털이 있다, 발바닥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과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먹음은 ,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등등.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모두 사바세계이다.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사문유관(四門遊觀) ; 사문출유(四門出遊)라고도 한다. 석가모니부처님이 싯다르타 태자 때에 가비라성의 4문으로 나가 다녔는데, 동문 밖에서는 늙은이를 보고, 남문 밖에서는 병든 이를 보고, 서문 밖에서는 죽은 사람을 보고, 북문 밖에서는 출가수행자를 보고, 생로병사의 고통을 해결하려고 출가 수행에 뜻을 두었다.

*정거천인(淨居天人) ; 정거천(淨居天) 사는 성자, . 그냥 정거천(淨居天)이라고도 .

*정거천(淨居天) ; 불환과(不還果) () 성자가 살아야 곳으로 색계 제사선천(色界第四禪天) 무번천(無煩天), 무열천(無熱天), 선현천(善現天), 선견천(善見天), 색구경천(色究竟天) 통틀어 일컬음. 단지 성인만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오정거천(五淨居天)이라고 . 여기에 사는 성자, 신들까지도 정거천(淨居天)이라고 한다.

*육법공양(六法供養) ; , , , 과일, , 여섯 가지 중요한 공양물을 말한다. 향은 해탈향(解脫香)이라고 해서 해탈·공덕을 상징하고, () 반야등(般若燈)으로 지혜·광명을 상징하고, 꽃은 만행화(萬行花) 수행·장엄을 상징하고, 과일은 보리과(菩提果) 깨달음을 상징하고, 차는 감로다(甘露茶) 부처님의 가르침의 공덕과 이익을 상징하고쌀은 선열미(禪悅米) 수행의 기쁨을 상징한다.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 복이어서 한도(限度)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항하사(恒河沙) ; [불교] 갠지스 (Ganges) 모래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최상승론(最上乘論) ; 1. 5 홍인대사(弘忍大師) 저술.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불성(佛性) 확인하여 지키는 수심(守心) 강조한 저술.

*사라쌍수(沙羅雙樹) : 북부 인도의 구시성(拘尸城 kuśinagara) 서북쪽으로 흐르는 발제하(跋提河 Ajitavati) 물가, 사라수 여덟 대가 둘씩 마주 있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사라쌍수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고 오른쪽 겨드랑이를 밑으로 해서 입멸하시니, 숲이 하얗게 변하였다. 그리하여 학의 (鶴林, 鶴樹)이라고도 하게 되었다.

*바른길 ; ①이치에 맞고 정당한 참된 도리. ②굽지 않고 곧은 .

*유교경(遺敎經) ;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설한 최후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2)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 있는 가지 제자.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upasaka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upasika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운집(雲集 구름 /모일 ) ; 구름()처럼 모인다()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득소위족(得少爲足) ; 작은 것을 얻어 가지고 만족을 삼는다.

*구경(究竟 궁구할 /마칠·다할 )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위에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 영령(靈靈) 함께 밝은 .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 의미하는 .

*시절인연(時節因緣) ; 시절이 도래(到來)하고 인연이 합쳐지는 기회. [참고]시절(時節)—어떤 시기나 . 도래(到來)—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기회(機會)—어떠한 , 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 조건()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 없다[].

*성불(成佛 이룰 /부처 )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 얻음.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

*진묵겁(塵墨劫) ; 티끌[] 쌓여 [] 만큼의 오랜 시간[].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편할 )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귀결(歸結) ; 의논이나 행동 따위가 어떤 결론이나 결과에 도달함. 또는 도달한 결론이나 결과.

*(게송) 개개면전명월백~’ ; [소요당집(逍遙堂集)] (한글대장경169, 동국대학교역경원) p100 ‘ 상인(淳上人)에게게송 참고.

*법신불(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진리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자체. 깨달음 자체.

*제팔식(第八識) ;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 말함.

[참고] 〇아뢰야식(阿賴耶識) ;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종자(種子) 저장하고, 육근(六根)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 산스크리트어 ālaya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 산스크리트어 vijñāna 번역. 아뢰야(阿賴耶) 진제(眞諦) a()+laya()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 ālaya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8가지 마음 작용.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 8(八識)이다. ,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 5(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6의식), 第七 末那識(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8아뢰야식)이라 한다.

*본래면목(本來面目 / / / )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설파(說破) ; 어떤 내용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말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 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있으면 고인이 말한 잡독(雜毒)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생각[別念]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외에는, 불법(佛法) 온갖 좋은 일이라도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 취하거나[], 버리거나[], 집착하거나[], 변화하는[] 것이 모두 생각[別念]이니라.(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것이요, 묻는 사람이 친히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p180-181)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동자(同字).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 행동··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불회상(佛會上) ; 부처님() 회상(會上). 부처님 계시는 .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6. 3. 14. 08:06

 

 

§(508) (게송)승침상속의선마~ / 상나화수(商那和修) 존자의 방편법과 우바국다 존자 / 심우송(尋牛頌) / 지혜로운 방편.

 

부모와 부부와 자녀 그리고 세상에 모든 살림살이 속에 있으면서 거기서 벗어나는 길이 그게 활구참선이여. 철저하게 활구 참선법을 믿고, 나도 법을 믿고 여법(如法)하게 실천을 한다면 나도 확철대오(廓徹大悟) 있다고 하는 깊은 철저한 신심.

 

무상호불(無相好佛)’이라고 칭송을 받을 만한 그러한 대도인(大道人) , 검은 그런 유치원 학생이나 만한 그러한 간단한 방편(方便)법을 가지고 수다원과를 증득했다. 그러면 우리도 대학을 나왔건 또는 사서삼경을 배웠건, 부처님의 여러 경전을 읽었건 간에 자기 나름대로 닦는데 도움이 만한 좋은 방편을 써서 공부를 열심히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깨달음은 비약적인 것이지 차츰차츰 과정을 밟아 올라가서 무슨 학문 하듯이 알아 들어가는 공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모든 일이 지혜로운 방편이 없이는 구경(究竟) 목적지에 가장 바르게, 가장 빨리 도달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송담스님(No.508)−93 6 첫째 일요법회(93.06.06) (용508)

 

(1) 약 20분.

 

(2) 약 4분.

 

(1)-----------------

 

승침상속의선마(昇沈相續蟻旋磨)하고  증애교전상익니(憎愛交纏象溺泥)로구나

나무~ 아미타불~

미긍현애친살수(未肯懸崖親撒手)하고  부지신고대하시(不知辛苦待何時)이리요

나무~ 아미타불~

 

승침상속의선마(昇沈相續蟻旋磨)하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끊임없이 개미가 마치 맷돌을 돌듯이, 착한 일을 하면 천상에 태어나고 죄를 지으면 삼악도(三惡道) 떨어지고. 천당에 올라갔다가 복이 다하면 떨어지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것이 마치 개미가 쳇바퀴 돌듯 한다 그말이여.

 

증애교전상익니(憎愛交纏象溺泥). 미워했다가 사랑했다가, 마음에 들면 이뻐하고 뜻과 어기면은 미워하고 그래가지고 애정과 원한이 얽히고설켜서 미워하지 아니하면 이뻐하고, 이뻐하지 아니하면 미워하고.

그것이 마치 그렇게 서로 얽혀 가지고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 늙은 코끼리가 깊은 수렁에 빠져 가지고, 발을 빼면은 다른 발이 빠지고, 발을 간신히 빼면은 다른 발이 빠지고 가지고, 도저히 진흙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거와 같다 그말이여.

 

인간 세상에는 착한 일을 하면 좋다하고, 나쁜 짓을 하면 모다 미워하고 그러지만,

쪼금 좋은 일해서 좋은 일한 과보(果報) 복을 받는 것이나, 나쁜 죄를 지어 가지고 과보로 축생이나 아귀나 지옥에 떨어진 것이나, 그것이 쪼금 미워했다가 이뻐했다 가지고 인간관계가 얽히는 것이나 그것이 마찬가지다 그말이여.

 

왼발 빠지고 오른발 간신히 빼고 들어있어 봤자 얼마 가서 다시 오른발이 빠지고, 왼발을 간신히 들어올리나 끝끝내 코끼리가 진흙 수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고,

좋은 가지고 천상에 태어났다가 복이 다하면 다시 떨어져 가지고 () 지으면은 삼악도에 떨어졌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것이 무엇이 그렇게 다를 것이 있냐 그말이여.

 

미긍현애친살수(未肯懸崖親撒手), 선과 악에서 ! 벗어나고, 미워하고 이뻐한 그것에서 ! 벗어나 버려야지,

그것을 용기와 지혜로서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부지신고대하시(不知辛苦待何時). 쓰라리고 괴로운 것에서 언제 거기서 벗어날 것이냐 그말이여.

증애심(憎愛心) 선악 시비(是非)에서 용감하게 ! 벗어나 버려야 하거든. 벗어난다고 하는 것이 대단히 힘이 들어서 정말 투철한 용기가 아니고서는 시비와 선악, 증애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

 

우선 아까 조실 스님께서 심우도(尋牛圖) 관한 법문과 활구참선(活句參禪) 대한 법문을 주셨는데, 활구참선을 믿고 그것을 열심히 함으로써만이 구덩이에서 벗어날 수가 있어.

 

갑자기, 위로는 부모가 계시고, 아래로는 아들과 딸이 있고, 옆으로는 모다 형제간도 있고 부부간도 있는데, 그것을 일조(一朝) 끊어버리고 산중에 들어가서 머리를 깎고 () 닦는다고 하는 것은 여간해서 그것은 흉내내기가 어렵고 그걸 따르기가 어렵고,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걸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이고.

속에서 부모와 부부와 자녀 그리고 세상에 모든 살림살이 속에 있으면서 거기서 벗어나는 길이 그게 활구참선이여.

 

철저하게 활구 참선법을 믿고, 나도 법을 믿고 여법(如法)하게 실천을 한다면 나도 확철대오(廓徹大悟) 있다고 하는 깊은 철저한 신심이 있어야 하고, 자기가 믿을 있는 스승을 찾아서 화두(話頭) 가지고, 되고 되고 하는 것도 따지지 말고 그저 앉아서나 서서나, 걸어갈 때나 차를 때나, 일을 때나 자꾸 화두를 참구(參究) 하거든.

 

이뭣고?’ ‘이뭣고?’ ‘ 몸뚱이 끌고다니는 이놈이 뭣고?’

그러다가 나중에 걸음 들어가서지금 이뭣고 하는 이놈이 뭣고?’ 이렇게 다그쳐 들어가.

 

잘되느니 안되느니, 망상이 일어나서 못하느니, 잡념이 일어나서 못하느니, 졸음이 와서 못하느니, 일이 바빠서 못하느니, 시끄러워서 못하느니, 그런 핑계를 필요가 없어. 안될수록에 마음을 가다듬고이뭣고?’ ‘이뭣고?’ 해보라 그말이여.

자꾸 챙기고 챙기고 하다 보면 달을 챙겨, 달을 부셔대, 달을 . 그래도 안되어도 상관 말고 다섯 , 여섯 , 이렇게 하다 보면 나중에는 저절로 화두가 들어진다 그말이여.

 

 

부처님 다음에 가섭 존자(迦葉尊者) 부처님의 법등(法燈) 이어받고, 가섭 존자 다음에는 아난 존자(阿難尊者), 아난 존자 다음에는 상나화수(商那和修), 상나화수 다음에는 우바국다 존자(優婆毱多尊者)인데, 우바국다 존자가 상나화수 존자 밑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 상나화수 존자가 돌하고 검은 돌하고지금 같으면은 바둑과 같은 건데, 뭉텅이 하고 검은 뭉텅이를 자루 요렇게 주고서, ‘악심이 일어나면성을 내거나 무슨 하여간 악한 마음이 나거든 검은 돌을 내려 놓고, 착한 마음이 일어나면 돌을 내려 놔라이렇게 가르켰어.

 

그래서 우바국다 존자가 스승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 검은 주머니를 가지고 다니면서, 그저 악한 마음만 일으키면은 검은 돌을 내려놔. 착한 마음이 나면은 돌을 내려놔.

그렇게 해서 날마다 하루,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그것을 했다. 이틀을 , 사흘을 , 차츰차츰 검은 돌은 줄어지고 차츰차츰 돌이 불어났다. 삼사일쯤 가니까 돌과 검은 돌이 비슷비슷해 . 일주일이 지나니까 칠일이 되니까 검은 돌은 하나도 내려놓지 않고 돌만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런 연유(緣由)에사 상나화수 존자가 제자인 우바국다 존자에게고집멸도(苦集滅道)’—고집멸도를 사성제(四聖諦) 그러는데,

()’라고 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은 괴로운 것이다. 전체가 괴로운 것이다. 몸뚱이도 괴로운 것이요, 세상에 우리 모든 경계를 보고 내가 느끼는 저것은 뭐다뭐다 하고 ! 경계를 만나자마자 마음에서 그것을 받아들인 , 그것도 괴로운 것이다.

받아들여 가지고 그렇게 생각 생각 하는 것도 괴로운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이 괴로운 것이다. 이렇게 괴롭다고 확실히 마음에 깨닫는 거여.

 

다음에()’이라 하는 것은 괴로우냐 하면은 괴로움의 원인이 ()이거든괴로움을 일어나게 하는 것이, 원인이 ()이여.

다음에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 ()이고, 다음에 고집멸도는 팔정도(八正道) 닦으면 열반에 들어서 괴로움이 없어진다 그거거든.

 

이것이 고집멸도 사성제법(四聖諦法)이라 하는 건데, 사성제법을 상나화수 존자가 우바국다 존자에게 법문을 설해 주셨어. 거기에서 수다원과(須陀洹果) 증득을 했다.

수다원과(須陀洹果) 소승의 사과(四果) 중에 수다원과를 깨달았다. 우바국다 존자는 일만에 , 검은 돌을 내려놓는 그러한 방편을 통해서 수다원과를 증득했다 그러는데,

 

상나화수 존자는, 상나화수가 아니라 우바국다(優婆毱多) 존자는 어떠한 분이냐 하면은 나중에 상나화수 존자의 법을 이어서 4 조사(祖師) 되는 분인데, 이분은 부처님과 같이 삼십이상(三十二相) 갖추지 못했고, 부처님처럼 팔십종호(八十種好) 갖추지 못했어.

그렇지마는 부처님과 (같은) 삼명육통(三明六通) 팔해탈(八解脫) 증득했어. 모든 점에 있어서 부처님과 조금도 차등이 없을 만큼 그러한 도사가 되셨어.

그래서 우바국다 존자의 별명이 무상호불(無相好佛)이여삼십이상() 팔십종호(), 그래서 상호가 없는, 상호는 갖추지 못했지마는 부처님과 똑같다 해서 무상호불(無相好佛)이라, 별명이 그런데.

 

그러한무상호불이라고 칭송을 받을 만한 그러한 대도인(大道人) , 검은 그런 유치원 학생이나 만한 그러한 간단한 방편(方便)법을 가지고 수다원과를 증득했다.

그러면 우리도 대학을 나왔건 또는 사서삼경을 배웠건, 부처님의 여러 경전을 읽었건 간에 자기 나름대로 닦는데 도움이 만한 좋은 방편을 써서 공부를 열심히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말이여.

 

말을 많이 하고 수다를 떠는 사람은 특별히 말을 적게 하리라. 세상에 살면서 아주 말을 수는 없고, 필요한 말만 하되 말을 적게 하는 무슨 기구를 몸에 지닌다든지 그래가지고 말이 여까지 불쑥 나올라고 하면 ! 참고 참고해서, 대신 ! 참으면서이뭣고?’ 이렇게 하는 것도 좋고.

 

음식을 보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옆에 사람 보지도 않고 우선 입으로 가지고 가서 배가 불러야 옆에 사람보고, 자셔그런 사람은 음식을 보자마자 대번에 손이 가려고 그러면 거두어들이면서, 숨을 들어마시면서 침을 꼴딱 삼키면서이뭣고?’

돈을 좋아하는 사람은 돈만 보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갖고싶어 하는 마음이 나는 사람은 돈을 보자마자 손을 주먹을 쥐면서이뭣고?’

 

칭찬한 것을 좋아하고 잘못을 지적해 주면은 성을 내고 싫어하는 사람은아마 대부분이 그러기가 어렵지마는 그러한 사람은 남이 나를 칭찬해 주면은, 칭찬한 좋아하지 말자.’

잘못을 지적을 해주면 성을 내는 사람은 성이 여까지 올라오려고 하자마자 ! 주먹을 쥐면서이뭣고?’

칭찬해 것은 도둑놈이고, 나의 잘못을 지적해 사람이야말로 정말 훌륭한, 나를 진정으로 위해 주는 사람이다공자님, 성현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해서 생각을 돌이키고 해서, 일상 생활 속에 항상 자기를 돌이키고 반성하고 하루하루를 우바국다 존자가 , 검은 돌로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듯이 우리도 항상 생활 속에서 그런 간편한 방편 법을 가지고 자기의 마음을 화두로 돌리고, 자꾸 일어나는 생각을 거두어서 자꾸 화두를 돌리다 보면, 자연히 탐심(貪心) 줄어지고 진심(瞋心) 줄어지고 어리석은 마음도 줄어질 것이다 그말이여.

그렇게 해서 , 이태 일구월심(日久月深) 가다 보면 사람이 달라질 것은 불을 보는 것보다도 명확한 일일 것이다.(처음~1927)

 

 

 

 

 

(2)-----------------

 

아까 조실 스님께서 설하신 십우도(十牛圖), 심우송(尋牛頌) 법문도 역시 첫째는 소를 찾는 거고[심우(尋牛)], 둘째는 소를 찾다가 소의 발자죽을 발견한 거고[견적(見跡)], 셋째는 발자죽 따라가다 보니까 소를 보았다 그말이여[견우(見牛)]. 그리고 넷째는 소를 간신히 붙들었어[득우(得牛)]. 다섯째는 소를 붙들어 가지고 그것을 길을 들인다[목우(牧牛)] 말이거든.

 

여섯째는 길들인 소를 타고 자기집으로 돌아오는 거고[기우귀가(騎牛歸家)]. 일곱째는 소는 잊어버리고 사람만 있는 거고[망우존인(忘牛存人)]. 여덟째는 인우구망(人牛俱忘)이여, 소도 잊어버리고 사람도 잊어버려, 그러한 경계를 말한 거여. 아홉째는 반본환원(返本還源)이여, 근본으로 돌아가는 거고. 열째는 수수입전(垂手入廛)이여, 떠억 손을 드리워 가지고 모다 거리로 나가는 거다.

 

그러면 첫째 심우(尋牛) 보리심(菩提心) 발하는 거여, 발심(發心) 하는 단계고. 번째, 번째, 번째, 다섯 번째는 수행(修行)하는 과정이고,

그리고 일곱째, 여덟째는 보리(菩提) 성취하는 거여. 성보리(成菩提), 깨달음을 얻는 경계고.

아홉 번째 반본환원은 열반(涅槃) 경계에 들어가는 거고, 번째는 좋은 방편을 써서 중생 교화하는 경지다 말이거든.

 

뛰어서여래(如來) 들어가는 ,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하는 것이 최상승법인 활구참선이지만,

그것을 우리 중생으로 하여금 과정을 알아듣게 설명을 하기 위해서 고인(古人)네들은 이런 심우송(尋牛頌)—십우도(十牛圖)라고도 하고, 심우도(尋牛圖)라고도 하는 차례차례 과정을 이렇게 시로써 표현해 것인데,

 

깨달음은 비약적인 것이지 차츰차츰 과정을 밟아 올라가서 무슨 학문 하듯이 알아 들어가는 공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모든 일이 지혜로운 방편이 없이는 구경(究竟) 목적지에 가장 바르게, 가장 빨리 도달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1928~2247)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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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승침상속의선마~’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峯和尙廣錄卷第二十九'에서 '寄同參十首' 게송 참고.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 죽어서 간다는 가지 괴로운 세계.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

*증애심(憎愛心) ;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 애증(愛憎).

*시비(是非) ; ①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 ②이러니저러니 좋지 않게 트집을 잡아서 말함. ③옳고 그름.

*심우도(尋牛圖) ; 십우도(十牛圖). 목우도(牧牛圖). 수행자가 발심(發心) 가지고 견성(見性)해서 중생교화하는 데까지 10단계로 나눠서 그림으로 그린 . 게송으로 읊은 것을 심우송(尋牛頌), 십우송(十牛頌)이라 한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일조(一朝) ; 주로일조에 꼴로 쓰여, 하루 아침이라는 뜻으로, 갑작스럽도록 짧은 사이를 이르는 .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구(參究 헤아릴 /궁구할 ) ; ①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이뭣고(是甚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7822) [ ‘참선법 A’ 에서]

*가섭(迦葉) : [] Mahakasyapa 음을 따라 마하가섭(摩訶迦葉)이라고도 하며, 뜻으로는 대음광(大飮光)• 대구씨(大龜氏) 번역한다。Kasyapa ()이고, maha 크다는 말이니, 다섯 가섭 가운데 맏이를 뜻한다。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 .

본래는 바라문으로 석존이 성도한 년쯤 뒤에 부처님께 귀의하였다。그는 제자 가운데서도 주를 극도로 검박하게 하고, 용맹정진(勇猛精進)하는 두타행(頭陀行) 제일이었으며 부처님의 의발(衣鉢) 받은 상수 제자(上首弟子)로서 부처님이 입멸한 , 오백 아라한을 데리고 제일 결집(第一結集) 하면서 우두머리가 되었다。부처님 이후의 법통(法統) 말할 때에는 그가 초조(初祖) 된다.

*법등(法燈) ; 부처님의 가르침. () 세계의 캄캄한 마음을 없애는 것을 등불에 비유한 .

*아난존자(阿難尊者) : [] Ananda 음을 따라 아난타(阿難陀) 쓰고, 줄여서 아난(阿難) 또는 아란이라 하며, 뜻으로 번역하여 환희(歡喜) 또는 경희(慶喜)라고 하니, 기쁘다 뜻이다。

부처님의 사촌이며 조달(調達) 동생이다。부처님 성도하시던 밤에 났고, 스물 다섯 살에 출가하여 25 동안 부처님의 시자(侍者) 있었으며 십대제자 가운데서도 다문제일(多聞第一) 총명이 놀라웠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가섭존자의 주관으로 왕사성 밖에 있는 필발라굴(畢鉢羅窟 Vaibhara)에서 오백 성승(聖僧) 모여 경전을 결집하는데 아난존자는 때까지 아직 성과(聖果) 얻지 못하였으므로 거기에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가, 가섭존자에게 묻기를 『부처님께서 사형(師兄)에게 법을 전하실 때에 금란가사(襴袈裟) 말고 따로 무엇을 전하신 것이 있읍니까?』『아난아』『예?』『문 밖에 찰간(刹竿)대를 꺾어 버려라! 』하였다。그러나 아난은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용맹정진 사흘 만에야 비로소 크게 깨치고 나서, 회의에 참석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대로 외니 하나도 틀림없음을 대중이 증명하여 경의 결집이 완성된 것이다。그 가섭존자로부터 법통(法統) 받았다가 상나화수(商那和修)에게 법을 전하였다.

*사성제(四聖諦) ; 사제(四諦). () ‘sacca’ 번역으로 진리를 뜻함. (, 괴로움) 소멸시켜 열반에 이르는 가지 진리. 사성제(四聖諦,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고도 .

①고제(苦諦, 苦聖諦) : ‘(, 괴로움)’라는 성스러운 진리. “태어남이 고다. 노쇠가 고다. 죽음이 고다.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이 고다. 즐거운 것과 갈라짐이 고요, 싫은 것과 같이 함이 또한 고다. 요컨대 집착과 연관된, 존재의 다섯 쌓임(五取蘊) 고다”(상응부)

②집제(集諦, 集聖諦) : ‘고의 원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몹시 탐내어 집착하는 갈애(渴愛) () 일어나는 원인이라는 진리.

③멸제(滅諦, 滅聖諦) : ‘고의 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갈애가 남김없이 소멸됨으로써 (-괴로움) 소멸되어 고의 끝남, 열반에 이른다는 진리.

④도제(道諦, 道聖諦) : ‘고의 멸에 이르는 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팔정도(八正道)—정견(正見, 바른 이해) · 정사유(正思惟, 바른 생각) · 정어(正語, 바른 ) · 정업(正業, 바른 행위) · 정명(正命, 바른 생계) · 정정진(正精進, 바른 노력) · 정념(正念, 바른 마음챙김) · 정정(正定, 바른 집중)— 갈애를 소멸시켜,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다.

*팔정도(八正道) ; 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끄는 수행의 올바른 여덟 가지 . 정견(正見),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념(正念), 정정(正定), 정사유(正思惟), 정정진(正精進). 팔성도(八聖道) 이른다.

*수다원(須陀洹) ; 산스크리트어 srota-āpanna 팔리어 sota-āpanna 음사(音寫). 예류(預流입류(入流)라고 번역. 욕계·색계·무색계의 견혹(見惑) 끊은 성자. 깨달음의 길을 하천의 흐름에 비유하여 흐름처음으로 성자의 계열에 들었으므로 예류·입류하고 .

경지를 수다원과(須陀洹果예류과(預流果),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를 수다원향(須陀洹向예류향(預流向)이라 . 초기불교에서 성문(聲聞)으로서 해탈하는 길은성문사과(聲聞四果)’라고 하여, 수다원(須陀洹사다함(斯陀含아나함(阿那含아라한(阿羅漢) 4단계를 설정하고 있다.

*견혹(見惑) : ①사제(四諦) 명료하게 주시하지 못함으로써 일어나는 번뇌. 번뇌에는 유신견(有身見변집견(邊執見사견(邪見견취견(見取見계급취견(戒禁取見((((() 있음. ②유식설에서, 후천적으로 습득한 그릇된 지식에 의해 일어나는 번뇌, 분별기(分別起) 말함.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조사선법(祖師禪法)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 같다.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눈썹 사이에 털이 있다, 발바닥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과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먹음은 ,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등등.

*삼명육통(三明六通) ;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갖추고 있는 3가지 자유 자재한 지혜와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삼명(三明) ;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갖추고 있는 3가지 자유 자재한 지혜.

①숙명지증명(宿命智證明) 나와 남의 전생을 환히 아는 지혜. ②생사지증명(生死智證明) 중생의 미래의 생사와 과보를 환히 아는 지혜. ③누진지증명(漏盡智證明)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지혜.

*신통(神通 불가사의할 /통할 ) : 수행을 ()하여 도달하는 걸림없는 초인간적인() 능력.

*육신통(六神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①신족통(神足通) 마음대로 있고 변할 있는 능력. ②천안통(天眼通) 모든 것을 막힘없이 꿰뚫어 환히 있는 능력. ③천이통(天耳通) 모든 소리를 마음대로 들을 있는 능력. ④타심통(他心通) 남의 마음 속을 아는 능력. ⑤숙명통(宿命通)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능력. ⑥누진통(漏盡通)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팔해탈(八解脫) ;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여덟 가지 선정(禪定).

*방편(方便 방법·수단 /편할 )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

 

 

 

 

 

------------------(2)

 

*보리(菩提) : [] bodhi  () • () • ()이라 번역。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곧 불과(佛果)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범어의 음대로 쓰면 '보디'라고 하겠지만, 우리 말의 관습상( —> ) '보리' 읽는다。따라서 '보제' '보데'로는 읽지 않아야 것이다。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發起菩提心 발기보리심, 發菩提心 발보리심.

*수행(修行) ; ①실천하는 . 행하는 . ②오로지 생각에만 집중하여, 한결같이 그것을 잊지 않고 그것 외에 다른 생각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노력.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 음사. (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안온(安穩원적(圓寂안락(安樂) 등으로 번역.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버리듯이, 타오르는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 등의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하여 평온하게 상태.

사제(四諦)에서 (),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 소멸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解脫) 깨달음의 경지.

②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없이 무엇이나 열반이며 어느 때나 열반이다. 이것이 열반인 것이다.

*여래지(如來地) ; 불지(佛地). 부처의 지위(地位경지(境地). '부처의 상태를 이루었다' 뜻의 성불(成佛)과도 같은 .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 ‘ 뛰어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간다

[참고] 『증도가(證道歌) (영가永嘉 스님)에서.

覺卽了不施功  一切有爲法不同  住相布施生天福  猶如仰箭射虛空  勢力盡箭還墜  招得來生不如意

깨닫고 나면 () 베풀지 않으니 일체 유위법(有爲法) 같지 않다. () 머문 보시는 천상에 나는 복이나, 마치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 올라가는 힘이 다하면 화살은 다시 떨어지니, 내생(來生) 뜻과 같지 않음을 초래하게 되리라.

 

爭似無爲實相門  一超直入如來地  但得本莫愁末  如淨琉璃貪寶月  我今解此如意珠  自利利他終不竭

어찌 무위(無爲) 실상문에, 뛰어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것만 하겠는가.

다만 근본을 얻을지언정 지엽은 근심하지 말라. 마치 깨끗한 유리구슬 안에 보배 달을 머금은 것과 같네. , 이제 여의주를 아나니 나와 남을 이롭게 함에 마침내 다함이 없도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구경(究竟 궁구할 /마칠·다할 )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위에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5. 11. 7. 11:01

§(세등59) 용맹정진이란? / 상(相)만 내는 정진이 아니라 속으로 알짜배기 정진을 해야 / (게송)강호춘진낙화풍~ / 부처님·나라·부모·스승·신도 은혜를 갚자.

 

전강 조실 스님께서나  정혜사 만공 큰스님께서도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헐라면  시간씩을  자라 이런 말씀도 하셨다고 그럽니다.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은 진짜 용맹정진이라 하는 것은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해야 그것이  정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여.

 

형식적으로 시간만 많이  가지고 형식적으로 정진을 많이 헙네하고 () 내고, 속으로 알짜배기 정진이  된다면은 무슨 도업을 깨달을 수가 있을 거여? 성취할 수가 있겠느냐 그말이여. 어쨌든지  살림이 튼튼하도록 알뜰하고 짬진 정진을 해서 그러한 훌륭한 수행자가 되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 빈부귀천과 부귀영화와 명예와 권리, 지식의 유무(有無), 인물이 잘나고 못나고,  그게   송이 꽃에 지내지 못하고, 한덩어리의 구름에 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애착과 분별을  쉬어 버리시고 이만큼 건강했을 때에 어쨌든지 정진  정진을 해서  몸뚱이로 견성성불을 해서 부처님나라부모스승의 은혜를 갚고,   절을 피땀 흘려서 지어 놓으신 주지스님의 은혜를 갚고,  우리의 먹고 입을 것을  마련해  모든 신도의 은혜를 갚도록 합시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59)—병인년 하안거 결제 법어(86.04.17) (세등59)

 

(1) 약 18분.

(2) 약 5분.

 

(1)------------------

 

 도량에 들어오면은 첫째 아상(我相)을 무너뜨려 버리고,  주장을 버려 버리고,  선원의 규칙대로 순종을 하고 적응을 하도록 그렇게 한다면은   동안 장애 없이 공부할 수가 있어.

아무 장애 없이   동안을 정말 온전히 알차게 짬지게   동안을 정진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입선(入禪) 시간만 죽비()를 치고 입선하면은 그때만  앉아서 정진을 하다가, 방선(放禪) 죽비만 치면 치기가 무섭게 벌써 입을 벌리고 잡담을 하고 그렇게 지낸다면 미륵하생(彌勒下生), 56 7천만년 뒤에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선방에서 지낸들 그건 깨달을 기약이 없는 것이여.

 

편의상 대중이 살다보니까 그러한 규칙적인 시간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죽비를 쳐서 입선도 하고 방선도 하고 거기에 따라서 공양(供養)도 하고, 모다 운력(運力)도 하고 그런 것이지,

공부 자체는 죽비와도 상관이 없는 것이고,  앉았거나 섰거나 누웠거나 일을 하거나 빨래를 허거나 밥을 먹거나 똥을 누거나 전혀 그것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방선을  때도 화두(話頭)가 성성적적(惺惺寂寂)해야 하고, 밥을 먹을 때에도 화두가 성성해야 하고, 똥을  때도 화두가 순일(純一)해야 하고,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때에도 바로 그때에도 화두가 성성해야 하고, 목욕을 하면서도 성성해야하고,

일체처 일체시가 그저 입선할 때나 똑같이 화두를 거각(擧却)하고 단속을  나가야 .

 

그래서 겉으로 보면은 모다 대중들이 무슨 감정이 있는 사람처럼 말도 아니하고,  화두가 현전(現前) 때에 보면은 밖에서 봐도 환히  알거든. 경건하고 엄숙한 눈매가 그냥 고대로 있단 말이여. 


그렇게 야무지게 단속을 한다면 9 10시에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일어났다 하면은 하루 종일이 그냥 그대로,

구태여 밤에 10, 11, 12시까지 잠을 안 자고 앉아서 그렇게 몸부림을 치지  해도 정말    시간 5시간이면 5시간,   시간  자 주고 그리고서   때는 성성하게 정진을  나갈 수가 있어. 그렇게 해야 정말 알찬 공부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 밤에 잠을 안 자고 설쳐 놓으면은 잠을 안 자고 애쓰는  뜻은 내가 충분히 인증을 하고 대단히  고맙고 기특하지만,  잠을 안 자 놓으면  이튿날 낮에 정신이 흐리터분해 가지고 밤낮 꾸벅꾸벅 잠을 자는 것인지, 참선을 하는 것인지  수가 없거든.

입선만  놓으면 벌써 그냥 5분도 못되어서 그냥  지르르르 흘리면서 꼬부려 가지고 꾸벅꾸벅... 그렇게  가지고는 정진(精進)이라  수가 없어.

 

그래서  시간, 최소한도 5시간은  자 주고, 그래야  이튿날 깨끗한 정신으로 정진을  수가 있고,  건강도 좋다 그말이여.

잠을 설쳐 놓고 밤이나 낮이나 그냥 그렇게 해놓으면은 건강도  좋고  정진도 정진답지를 못혀.

 

한번  허리를  펴고 정진을 했다 하면은 성성하게 뽑아 나가야지, 노상 끄벅끄벅 벌써 혼침(昏沈)에 빠졌다 하면은 화두가 성성허들 못하는 법이고, 화두가 성성하지 못해 가지고 어찌 그것을 정진이라고 할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그래서 전강 조실 스님께서나  정혜사 만공 큰스님께서도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헐라면  시간씩을  자라 이런 말씀도 하셨다고 그럽니다.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은 진짜 용맹정진이라 하는 것은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해야 그것이  정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여.

 

그러니 어쨌든지    동안 입선 방선 시간을 어떻게 짰는가 모르겠는데,

접때 들으니까 전국 선방을 입선 방선 시간을 똑같이  정(定)하자 것을  입승 회의에서 결의를 했단 말을 들었는데,

‘전국 선방 규칙을 똑같이 입선 시간을 정하자 뜻을 내가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나, 대단히 좋지 못한 것을 정했다고 생각을 나는 속으로 하고 있습니다.

 

선방마다 법도(法度)가 다른 것이 아까 무방(無妨)하다고 했는데, 입선 시간도 한번 앉았으면  시간씩 하자,  시간씩 하기로 정한 선방도 있고,   시간씩 하기로 정한 선방도 있고,

 아침에 일어나면은 저녁에  때까지 계속 앉아서 정진하자 이런 선방도  좋고,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않고 계속   동안을 앉아서 정진을 하자 이렇게  정한 선방도 있을 수가 있는 것이지,

 

‘세 시간이나  시간을 전국 선방이 똑같이 하기로 결의를 하자 것은  좋은 규칙을 정한  같은데, 사실은 대단히 좋지 못한 법을 정한 것이다 그말이여.

 

사람의 근기(根機)에 따라서  그것이 적절히 맞아야 그것이 좋은 것이지, 근기를 무시하고  여러 가지 여건을 무시하고서 똑같이 정하자고 하는 것은 그것은 정법(正法)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법(邪法)인 것입니다. 지혜로운 법이 아니고 그것은 어리석은 법입니다. 

 

조달(調達)이가 10생을 부처님을 따라 다니면서 갖은 방법으로 부처님을 해꼬자 했는데, 부처님은  조달이의 그러헌 해꼬자 하는 데에 조금도 끄달리지 아니하시고, 더욱 지혜롭게 수행을 하셔 가지고 성불을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삼천  전에 인도 가비라(迦毘羅) 왕국에 탄생하실 때에 조달이도 부처님 사촌으로 왕궁에 태어났습니다. 부처님이 출가하시자 조달이도 출가를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누구 못지않게 용맹정진을 했습니다. 계율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그래 가지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만큼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부처님으로부터서 승단의 통솔권을 자기가 인수를 받을랴는 야심을 가졌습니다.

 

부처님한테 “부처님, 인자 연세도 많으시고 그러니까  통솔권을 저한테 넘겨주십시오” 하니까 부처님이 넘겨주지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다른 곳에다가 자기 회상(會上) 하나 꾸몄습니다.

꾸며 가지고 부처님 회상으로  가지고서그때 목련존자  사리불존자와 같은 수제자들이 어디 다른 데로 포교를 하러 가시고 없을 때에  가지고서 대중들에게 일장 연설을 했습니다.

 

“부처님은 계율이 물러서 늙은 사람이나 병든 사람은 고기를 먹어도 좋다고 승낙을 하시고,  병든 사람은  오신채(五辛菜)도 먹을  있다고 하시고,

 어린 사람이나 늙은 사람은 사시공양(巳時供養)뿐만이 아니라, 아침도 먹을 수가 있고 저녁도 약으로 먹을 수가 있다고 이렇게 하셨으니, 이러한 청정한  승단(僧團)에서 이렇게 법도가 물러 가지고 이래 가지고 무슨 견성성불을 할까 보냐?

 

 회상은 늙었거나 어리거나 병들거나를 막론하고 일체 어육을 금하고, 오신채도 금하고, 사시공양 이외에는 절대로 승낙을  한다. 그러니  회상의 법도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를 따라오너라”

 

그러니까 아직 불법(佛法)이 무엇인줄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들,  아직 젊은 사람들은 들어보니까 확실히 조달이의 법이  엄격하고 훌륭한  같거든.

 

그래서 “내 의견이 옳다고 하는 사람은 손을 들으라”고 하니까,  사람 들고  사람 들고 이리 뚤레뚤레 하다가 ~ 하니 거의가  손을 들었다 그말이여.

“그러면 나를 따라오너라”하니까부처님께서도  자리에 앉아 계셨지마는 아무 말씀도  하시고 가만히 보고만 계셨어. 그러니까 조달이가 “나를 따라 오라” 그러니까는 위~ 하니 수백 명이  따라가 버렸어. 

 

따라가서 조달이 밑에서 인자 조달이 법문을 듣고,   추상같은 법도 아래서  그냥 용맹정진 가행정진을 하는데, 처음에는 가서 보니까  이대로만  나간다면은 머지않아서 전부 그냥  견성 도통할  같이 느껴지고 모다 좋았었는데,

 

일주일을 지내,  이 주일을 지내, 삼 주일을 지내다 보니까, 차츰차츰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옳은 법이 아니다’ 그래서 정말 부처님 법이 우리 부처님의 법도가 정말 옳은 법이라고 하는 것을  사람씩  사람씩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목련존자와 사리불존자가   데로부터 돌아왔습니다. 와서 보니까 ! 부처님 회상에  시자  사람하고  사람  남고  어디로 가버렸다 그말이여.

“다 어디로 갔냐?”고 물어보니까, 조달이가 약하약하 해서 전부 다 선동을  가지고 끌고 갔다 그러니까 그길로 조달이한테 쫓아가 가지고는 대중을 모아 놓고 설법을 했습니다.

 

“이 어리석은 대중들아! 아무리 어리석기로서니 정법(正法) 사법(邪法) 분간을 못한다는 말이냐? 늙은 사람과 병든 사람 어린 사람에게 아침을 먹게 하고 저녁을 먹게 하는 것은 근기에 맞추어서 열어주신 부처님의 눈물겨운 자비를 모르고어찌 그것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단 말이냐?

 

병든 사람에게 오신채와 오정육(五淨肉) 허락을 하신 것은 너무나도 넓고 넓으신 부처님의 자비심이지, 어찌 그것이 도업을 깨트리는 잘못된 법일까 보냐? 부처님의 자비가 거룩한   사람은  길로 일어서서 나를 따라오너라”하니까 와~따라서 모다 눈물을 흘리면서 참회를 하고  따라 왔습니다.

 

우리 부처님의 법은 중생의 근기를 맞추어서 팔만사천 방편법(方便法)을 설하셨습니다.

 

부처님의 계율법이 어찌 엄정허지 아니하리요마는, 계율 자체를 위한 계율이 아니라 도업을 성취하기 위한 계율이여. 그래서 병든 사람에게는 경우에 따라서는 오신채를 허락을 하셨고, 경우에 따라서는 오정육도 허락을 하신 까닭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정진 시간을  시간이 좋으냐?  시간보다  시간이  좋고,  시간보다 다섯 시간이  좋고,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고 24시간을 계속 용맹정진을 허면  좋을  같지마는 그러한 것이 아니여.

 

그래서 조실 스님께서는 정진 시간은  시간씩 사분정진(四分精進)으로 하고, 방선 시간도어찌 방선 시간이라고 해서 잡담을 하고 섣불리 지낼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방선 시간도 포행(布行)할 사람은 포행을 하고,  큰방에 앉아서 정진할 사람은 얼마든지 계속해서 정진을 하라 이거여.

 

큰방에서 방선했다고 해서 잡담? 도저히 그것은  .

큰방에는 언제라도 묵언(默言) 구역으로 정해 놓고, 자기가 정진하고 싶으면은 마음껏 정진을 하라 이거여. 누가  어떻게 ?

 

어찌 입선 시간을  시간,  시간 정해 놓고 강제로 갖다가 꿇어앉아 주리를 틀게  필요가 있느냐 그말이여.

 

 시간은 누구라도  수가 있는 것이니까,  시간  정해 놓고  시간은  하고,  시간 지낸 뒤에는 계속해서   있고, 하고 싶은 사람은 계속해서 ! 공양 목탁  때까지 계속 앉아서 정진을 .

 대신 앉아서 꺼벅꺼벅 조는 사람은 나가야 . 나가서 포행을 하고 잠을  가지고 들어와.

 

형식적으로 시간만 많이  가지고 형식적으로 정진을 많이 헙네하고 () 내고, 속으로 알짜배기 정진이  된다면은 무슨 도업을 깨달을 수가 있을 거여? 성취할 수가 있겠느냐 그말이여.

 

() 내고 속이 곯아 버린다면겉으로만 사치스런 집을 짓고, 속은 빚만 잔뜩  가지고 그러한 부자가 요새 많은데 그러한 것은  부자가 아니여.

겉으로는 수수허게 살되 빚이 없고 속으로 살림이 알차야  것이고, 지식도  소문만 나가지고 속은 실상은 실력이 없는 지식은 그건 진짜 훌륭한 지식이 아니여.

 

계율도 겉으로는 지키는 상이 없지마는 정말 안과 밖이 청정하다면  사람이야말로 율사(律師)  수가 있을 것입니다.

()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쨌든지  살림이 튼튼하도록 알뜰하고 짬진 정진을 해서 그러한 훌륭한 수행자가 되기를 부탁을 드립니다.(3051~4854)

 

 

 

 

(2)------------------

 

강호춘진낙화풍(江湖春盡落花風)하고   일모한운과벽공(日暮閑雲過碧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빙거요득인간환(憑渠料得人間幻)하고   만사도망일소중(萬事都忘一笑中)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강호춘진낙화풍(江湖春盡落花風)이요. 강호(江湖)에는 봄이 다해서 바람에 꽃이  지고,

일모한운과벽공(日暮閑雲過碧空)이로구나. 해는 저무는데 한가한 구름이 푸른 하늘로 지내가는구나.

 

빙거요득인간환(憑渠料得人間幻)이요. 그것을 인해서강호에 봄이 다해서 바람에 꽃이   버리고,  저무는 푸른 하늘에는 한가한 구름이 지내간, 그러한 것을 의지해 가지고 인간 세상이 허망한 것을  수가 있겠더라.

 

봄이 돌아오면 꽃이 그렇게 화려하게 피었건만 봄이 다하니 시들어서  보기 흉하게  시들어  떨어져 버리고,  구름 모양을 보면  구름 모양이 별의별 모양이  있어.

사람같이 생긴 구름, 소같이 생긴 구름, 집같이 생긴 구름, 별별 모양으로 생긴  기기묘묘한 구름 모양이 해가 저물어 바람이 불어버리니까  모양이 이리저리 흩어져서 없어져 버리는,

 

 꽃과 구름의 변화해서 없어진 것을 보고서, 인간 세상이 명예와 권리, 부귀영화, 누가  생기고  생기고, 이런 것들이 전부가  허망하고 무상한 것을 깨달을 수가 있어.

 

만사도망일소중(萬事都忘一笑中)이여. 비긋이 한번 웃는 가운데  만사를  잊어버려.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 빈부귀천과 부귀영화와 명예와 권리, 지식의 유무(有無), 인물이 잘나고 못나고,  그게   송이 꽃에 지내지 못하고, 한덩어리의 구름에 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애착과 분별을  쉬어 버리시고 이만큼 건강했을 때에 어쨌든지 정진  정진을 해서  몸뚱이로 견성성불을 해서 부처님의 은혜를 갚고, 나라의 은혜를 갚고, 부모의 은혜를 갚고, 스승의 은혜를 갚고,

  절을 피땀 흘려서 지어 놓으신  주지스님의 은혜를 갚고,  우리의 먹고 입을 것을  마련해  모든 신도의 은혜를 갚도록 정진을  주시기를 부탁을 드리고 자리에 내려가고자 합니다.(4858~543)()

 

 

 

 

 

------------------(1)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자의식.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망상.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 들어가는 , 좌선(坐禪) 시작하는 .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죽비( 대나무 /빗치개·통발 )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미륵불(彌勒佛) : []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呾麗耶), 매달례야(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불의 5().

*공양(供養) ; ①불()•()•() 삼보(三寶) 음식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

*운력(運力) ; '함께 힘을 기울인다' 의미.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 의미로 운력(雲力)이라고도 하며,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이란 우리말 '울력' 같다. 의미와 관계없이 운력(運力)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惺惺] 상태.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정진(精進) : [] Vi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보살이 수행하는  바라밀(六波羅蜜)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그러나 닦는 생각() 닦는 () 있어서는  된다。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혼침(昏沈 어두울 ,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법도(法度) ; 규칙법칙율법법규결정들.

*무방하다(無妨-- 없을 무, 방해할·거리낌 방) ; (사람이 어찌하여도)거리낄 것이 없이 괜찮다.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사법(邪法) ; 부정한 가르침. 외도(外道) 가르침.

*조달(調達) ; 제바달다(提婆達多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devadatta 음사).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 출가하여 그의 제자가 . 부처님에게 승단을 물려줄 것을 청하여 거절당하자 500 명의 비구를 규합하여 승단을 이탈함. 여러  부처님을 살해하려다  과보로 살아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해꼬자 ; 해꼬지. 해코지(害코지)—남을 해치고자 하는 .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오신채(五辛菜) ; 우리나라 절에서 냄새가 강하고 독특해 음욕과 분노를 일으켜 수행에 방해가 된다 하여 특별히 먹지 않는 다섯 가지 채소. 마늘··부추·달래·흥거. 경론(經論) 따라  종류가 달라 일정하지 않다.

*사시공양(巳時供養) ; 절에서 평소 하루에  한번 오전  사시(巳時 오전 9~11) 하는 공양(식사) 말한다.

*승단(僧團) ; 승가(僧伽). (산스크리트)(팔리) saṃgha(상가)에서 유래하였다. (화합중(和合衆)이라 번역.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가르침대로 수행하는 사람들의 집단. 화합하고 있는 불교 교단을 뜻한다.

보통은 출가자의 집단을 가르키지만, 넓게는 재가(在家) 신도도 포함한다.

*약하약하 ; 약하(若何)하다—여하(如何)하다의 높임 말. 여하(如何)하다 : 어떠하다(어떻다, 의견·성질·형편·상태 따위가 어찌 되어 있다).

*오정육(五淨肉) ; 스님들이 먹을  있도록 허용된 다섯 가지의 청정한 고기. 오종정육(五種淨肉).

①나를 위해 죽이는 것을 목격하지 않은 (不見爲我殺). ②나를 위해 죽였다는 것을 듣지 못한 (不聞爲我殺). ③나를 위해 죽였다고 의심되지 않는 (不疑爲我殺). ④수명이 다하여저절로 죽은 (自死). ⑤새가 먹다 남긴 (鳥殘).

*방편(方便 방법·수단 /편할 )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사분정진(四分精進) ; 참선이나 기도를 하루  (새벽, 오전, 오후, 저녁) 시간을 정해 정진하는 .

*포행(布行) ; 참선(參禪)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

*큰방 ; 스님들의 본업인 수행을 행하는 장소. 예불과 공양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참선만을 행하는 선원(禪院)에서 대중이  자리에 모여 참선수행 () 말한다.

*주리(周牢) 틀다 ; 주리 틀다. 예전에, 죄인을 심문할  주리(죄인의  다리를 한데 묶고 다리 사이에  개의  막대기를 끼워 비틀던 형벌) 형벌을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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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강호춘진낙화풍~’ ; 《부휴당대사집(浮休堂大師集) (부휴선수) ‘일편한운과벽공(一片閑雲過碧空)’ 참고.

*강호(江湖) ; ①은자(隱者) 시인(詩人), 묵객(墨客) 등이 현실을 도피하여 생활하는 시골이나 자연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②세상(世上) 비유적으로 이르는 . ③강과 호수를 아울러 이르는 .

*비긋이 ; 남이 느끼지 못하게 슬그머니.

Posted by 닥공닥정

 

 

§(560) (게송)심사학도별무타~ /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 / 바른 스승의 지도 / 관법(觀法), 간화선(看話禪).

달마 스님께서 이 도를 닦으려면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라’ 했어.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 동안을 헛되이 보낸다’

 

마음으로 닦아가는 이 참선 공부는 두 갈래, 세 갈래가 아니라 몇백 갈래, 몇천 갈래로 갈라질 수가 있어. 그래서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낸다’고 달마 스님께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스승을 찾아서 도를 닦아 가는 데 그게 별것이 아니다. 다못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무슨 소를 타냐? 이건 자기의 소여. 자기의 마음소를 타고 자기의 마음을 찾는 것이다 그말이여.

 

이 화두는 아무데서나 함부로 타고, 제멋대로 책에서 골라 잡아가지고는 아니 되고, 정말 자기가 믿어지는 그리고 또 믿을 수 있는 그러한 선지식으로부터 어렵게 화두를 타야 해.
화두를 타 가지고 한 번 탔으면 확철대오 할 때까지 10년이고 20년이고 한 화두를 가지고 꾸준히 해나가야 해.

 

부처님께서 설하신 방편법이 팔만사천 가지가 있지마는 그런 방편법에 우선 잠시 효과가 있다고 해서 방편법에 떨어져 가지고 그런데 집착을 하게 되면 임시는 좋은 것 같아도 정말 구경(究竟)의 깨달음에는 이르기가 어렵고, 그러한 폐단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방편법일수록에 바른 선지식, 그러한 방편법을 통해서 목적을 달성한 그러한 선지식의 직접적인 지도하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송담스님(No.560)—95년 동안거결제 법회(95.12.07) (용560)

 

(1) 약 15분.

(2) 약 12분.


(1)------------------

심사학도별무타(尋師學道別無他)라  지재기우자도가(只在騎牛自到家)니라
나무~아미타불~
백척간두능활보(百尺竿頭能闊步)하면  항사제불안전화(恒沙諸佛眼前花)니라
나무~아마타불~

심사학도별무타(尋師學道別無他)여. 스승을 찾아 도를 배우는 것이 다른 일이 없어. 별다른 것이 없다 그말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지재기우자도가(只在騎牛自到家)니라. 다못 소를 타고 스스로 자기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달마 스님께서 이 도를 닦으려면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라’ 했어.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 동안을 헛되이 보낸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수행자들이 그 도를 배우기 위해서 불탄산고수활(不憚山高水濶)하고—산 높고 길이 먼 것을 꺼리지 아니하고, 옛날에는 요새처럼 교통이 편리하지를 못해가지고 100리, 200리, 중국 같은 데는 수천 리라도 걸어서 걸어서 선지식(善知識)을 걸망을 지고 찾아갔다 그말이여.

그 고생을 무릅쓰고 스승을 찾는 것이 다른 일이 없어. 특별히 무슨 다른 것이 아니다.

인도에서는 물이 귀해 가지고—도반(道伴)과 같이 부처님 회상(會上)을,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셨다’는 말을 듣고 수천 리를 걸어서 걸어서 가는데, 물이 귀해 가지고 목말라 죽게 되었다 그말이여.
우선 물을 먹어야겠는데, 간신히 물 웅덩이를 만났어. 만나서 물을 먹으려고 보니까 그 속에 자잘한 벌레가 우글우글우글 그러니 저것을 목마르다고 마시게 되면 살생을 하게 되고, 안 마시면 목이 말라 죽게 되었다 그말이여.

그래서 한 사람은 우선 벌레를 먹어서 살생을 하더라도 ‘우선 이 목숨을 살아야 부처님을 친견하고, 법문을 듣고 생사해탈을 할 거여’하고 ‘나는 먹어야겠다’
한 사람은 ‘어찌 내 목숨 살자고 저 수없는 벌레를 내가 죽일 수가 있느냐. 내가 도를 닦는 것도 내 한 몸도 생사해탈을 하지마는 많은 중생을 제도하는 그런 보살도를 성취하기 위해서 내가 부처님도 찾아가는 데, 나 살자고 벌레를 죽이다니 나는 그럴 수가 없다’

그래가지고 한 사람은 그 물을 마시지 않고 목이 말라서 부처님 회상에 오기 전에 이미 숨이 끊어져서 죽었고,  한 사람은 그 벌레 섞인 물을 마시면서 겨우 겨우 목숨을 부지해 가지고 부처님 회상에 왔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둘이 오다가 혼자만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보고를 하니까, 그 저 살기 위해서 벌레를 죽인 사람을 꾸짖으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두 사람 다 꾸짖을 수도 없고, 두 사람 다 칭찬하기도 어렵고,

이것은 각자 ‘안 먹고 죽은 사람이 옳다’고 생각하면 안 먹고 죽는 것이고,
‘아니야, 내가 설사 저런 살생을 하고 벌레를 죽이고라도 이 물을 먹고 부처님을 친견해야겠다’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먹고라도 부처님을 친견해서, 그 대신 정말 목숨을 바쳐서 도를 닦아가지고,
‘자기로 인해서 그 죽은 벌레까지라도 기어코 내가 제도를 해야겠다’하는 그러한 백 배, 천 배의 신심과 분심으로 정진을 한다면 그것 또한 나쁘다고만 말할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한국은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 가는 곳마다 산도 좋고, 마음대로 마실 수 있는 물이 산마다 모다 있고 마을마다 있지마는,
지금은 인간의 무지하고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그 좋은 계곡물, 좋은 샘물이 오염이 되어서 마음놓고 먹기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고, 이대로 각성(覺醒)을 못하고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외국에서 물을 사다 먹어야만 할 그러한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자연을 그렇게 오염을 시키고 망가뜨리면 사람도 결국은 살아남지 못할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짐승보다도 더 어리석은—짐승도 돼지나 개가 자기 잠자리에다가 대소변을 보지 아니하고 저 멀리 가서 대소변을 보고 오고,
돼지도 가둬 놓았으니까 울 밖으로 마음대로 나가지는 못하지만 저쪽 한쪽 구석에다가 자리를 딱 봐놓고 꼭 거기다가 대소변을 보고, 자기가 누울 자리는 보송보송하게 그렇게 유지를 해 나가는 것을 나는 농촌에서 보았습니다.


그래서 스승을 찾아가는 데 그 고생을 하면서 목숨까지 바치면서 스승을 찾아가는 그러한 신심.
바로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도반들도 그러한 신심으로 이 추위를 무릅쓰고 저 충청도에서, 전라도에서, 경기도에서 모다 도반들이 이렇게 모이셨습니다.

비록 조실 스님은 열반하셔서 직접 친견하지는 못하지만 녹음을 통해서나마 그때 설하시던 그 법문을 귀로 듣고, 다음으로는 같은 뜻과 목적을 가진 도반들과 한 법당에서, 한 자리에서 법문을 들으면서 결제(結制)를 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으로 모이셨다고 생각을 합니다.

산승(山僧)은 무슨 ‘덕숭문인(德崇門人)이다, 범어문중(梵魚門中)이다’ 무슨 그런 문중에 대한 생각이 별로 그렇게 없습니다.
누구든지 정법을 믿고, 이 조실 스님의 법문을 믿고 그 법에 의지해서 공부하려고 하는 그런 신심을 가지고 수행한 사람이면 바로 그분이 사형(師兄)·사제(師弟)고, 그분이 바로 한 문중이고, 좋은 도반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이러한 승속, 남녀노소의 도반들이 한자리에 이렇게 모여서 결제 법회를 가지게 된 것은 바로 그러한—마을에서는 형제간이 집안에 경사가 있으면 모두 다 모여서 잔치를 하고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결제, 해제 때 이런 좋은 도반들이 이렇게 모인 것에 대해서 너무나 감사하고 기쁜 것을 뭐라고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스승을 찾는 것이 가장 급하다’고 달마 스님께서 말씀을 하신 그 뜻이 무엇이냐?

이 공부는 책을 봐가지고 할 수도 없는 것이고, 스스로 혼자 연구해 가지고도—몇백만 명 가운데는 ‘위음왕불(威音王佛) 이전에는 무사자오자(無師自悟者)가 스승 없이 스스로 깨달은 사람이 있을란가 몰라도, 만중(萬中)에 희유(希有)다. 만 명 가운데에도 희유하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스승을 찾아서 공부한다고 하는 것은 수행자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고, 발심(發心)을 하고 분심을 낼수록에 바른 스승의 지도하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가령 공부를 열심히 하고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폐침망찬(廢寢忘餐)하고, 물불을 가리지 아니하고 정진하는 사람을 교통수단에다가 비유한다면 비행기를 타고 간 사람에다가 비유하고,
그럭저럭 천천히 가는 수행을 하는 사람을 걸어간 사람에다가 비유한다면, 차라리 그럭저럭 간 사람은 며칠을 간다 하더라도, 설사 잘못 간다 하더라도 몇십 리나 몇백 리 밖에는 틀리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나 빠른 비행기와 같은 교통수단을 이용한다면 잠깐만 방향을 잘못 잡아도 몇천만 리를 엉뚱한 데로 날아가 버리게 되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열심히 발심해서 공부한 사람일수록에 공부를 바른 스승의 지도하에 바르게 해야 한다.

가보지 아니한 처음 가는 길을 가는 것과 같아서—눈으로 보고, 발로 걸어가는 길도 가다가 보면 두 갈래 길도 나오고, 세 갈래 길도 나오는데 거기서 어느 길이 옳은지를 알 것이냐 그말이여.
먼저 가봐서 그 길을 아는 사람의 안내가 없이는 자기 혼자 가다가 딱! 갈라지면 왼쪽으로 가야할지, 오른쪽으로 가야할지 알 수가 없는 거여.

더군다나 마음으로 닦아가는 이 참선 공부는 두 갈래, 세 갈래가 아니라 몇백 갈래, 몇천 갈래로 갈라질 수가 있어. 그래서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낸다’고 달마 스님께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스승을 찾아서 도를 닦아 가는 데 그게 별것이 아니다. 다못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무슨 소를 타냐? 이건 자기의 소여. 자기의 마음소를 타고 자기의 마음을 찾는 것이다 그말이여.

백척간두(百尺竿頭)에 능활보(能闊步)하야사, 백척간두에, 백 척이나 되는 저 높은 장대 위에 능히 활보를 해야만,
항사제불(恒沙諸佛)이 안전화(眼前花)니라. 항하사수(恒河沙數)와 같은 모든 부처님이 눈앞에 공화(空花)가 되는 것이다.(처음~15분21초)




(2)------------------

아까 조실 스님께서 신해년에 설하신 녹음 법문을 우리는 경청했습니다마는 화두(話頭)! 선지식으로부터 딱 지정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렇게나 천칠백 공안(公案)이나 있으니까 이리저리 책을 『염송(拈頌)』이나 그런데 뒤적거리다가,
요새는 『염송(拈頌)』도 번역이 되어 나온 것이 있고 그래서 한문을 잘 모르더라도 이리 보고 ‘에잇! 나는 이 공안으로 한번 해보자’ 조금 해 보다 잘 안되면 ‘에이! 이것으로 한번 해보자’ 한 철마다 화두를 이리저리 바꾸고.

또 어떤 선지식한테 가서 화두를 타서 한 철, 두 철 해 봤지만 암만해도 바닥이 안 나고 잘 안되니까 또 저 다른 선지식을 찾아가서 화두를 타가지고 이리저리 해봐도 안된다 그말이여.
처음에는 곧잘 된 것 같아서 ‘이제는 이것이 내 본참공안으로서 좋다’ 이리 생각하고 해 보면 나중에 또 영 안돼. 안되고는 먼저 했던 공안이 다시 떠오르면서 그것을 해보니까 이제 좀 된 것같다 그말이여.

그래서 말도 이놈도 타 보고, 저놈도 타 보고 그래서 그 말 타는 사람은 말을 가끔 바꿔보는 재미도 있다고 그런 말도 들었는데, 화두를 만약에 자꾸 이놈으로 해보다 저놈으로 해보다, 그것은 무엇과 같으냐 하면,
우물을 파는데 이놈 조금 파 보다가 안되면 저쪽에 가서 또 파 보고, 그놈 파서 안되면 이쪽에 파보고 해서 몇 군데를 우물을 파 간신히 물이 나왔는데, 가무니까 물이 차츰차츰 줄어들어. 장마철에는 물이 출출출 넘고, 이러한 샘물은 그게 건수(乾水)라 해서 먹을 수가 없는 거여.

화두도 처음에 조금 요리 해 보고 되니까 ‘된다’고 그러다가, 안되니까 또 이리저리 바꾼 사람은 우물 파는 사람과 같애.
그 사람은 뭔 소견이 나 봤자 그것은 의리선(義理禪) 따위이지 정말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확철대오한 것이 아니어.

그래서 이 화두는 아무데서나 함부로 타고, 제멋대로 책에서 골라 잡아가지고는 아니 되고, 정말 자기가 믿어지는 그리고 또 믿을 수 있는 그러한 선지식으로부터 어렵게 화두를 타야 해.
화두를 타 가지고 한 번 탔으면 확철대오 할 때까지 10년이고 20년이고 한 화두를 가지고 꾸준히 해나가야 해.

이 참선 공부라 하는 것이 처음에는 곧잘 잘된다고 느껴져. ‘참 좋다. 이 공부가 잘 되는구나’하고.
뚝! 변해 가지고 또 안돼. 가슴이 답답하고, 가슴에 주먹 같은 것이 치밀러 올라와가지고 소화도 잘 안되고, 숨도 잘 안 쉬어지고 고약하다 그말이여.

이거 상기병(上氣病)이 걸렸나? 호흡을 잘못해서 그랬나? 화두를 잘못 들어서 그러나? 심지어는 이  화두가 나한테 맞지 않아서 그런가?
이래 가지고 이리저리 번민을 하고 고민을 하고, 화두를 바꾸려고 했다가 또 선지식이 내 근기를 잘 몰라가지고 나한테 공부하는 법을 잘못 일러줘서 그랬나?

천 가지 만 가지 번뇌심이 일어나고, 차라리 이거 참선을 하지 말고 경(經) 공부를 할까?
이 공부를 하지 말고 무슨 주력(呪力)을 할까? 내가 업장(業障)이 두터우니까 기도를 해가지고 업장을 소멸한 다음에 참선을 할까?

이러다가 요새 비파사나(vipassanā)라고—‘사념주관(四念住觀)’

이라고 관법(觀法)이 있는데, 부처님 때부터 관법이 있어서 동남아에서는 그러한 관법이 지금까지도 전해 와서 그런 관법 수행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도 한국 스님이 동남아에 가 가지고 그 법을 배워가지고 와서 널리 권장을 하고, 포교를 하는 그런 분도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마는,
그런 관법이 차츰차츰 중국으로 건너와서 중국에서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임제종(臨濟宗)의 화두로서 공부를 하는 그러한 참선으로까지 발전을 해서 한국에까지 지금 전해 와서 우리가 그런 간화선(看話禪)을 하고 있습니다마는.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근기 따라서 팔만사천 가지의 방편(方便)을 설하셨습니다.
어느 하나도 나쁘다 할 것은 없고 다 그 나름대로 중생의 근기에 맞으면—마치 수천 가지, 수만 가지 약이 약국에서 팔려지고 있지만, 어느 약이 좋다 나쁘다 하기가 어렵고, 약마다 그 체질과 병에 맞으면 그 병을 나을 수가 있는 것이고,

또 아직도 계속 약이라든지 의술이 발전 과정에 있어서 그 증상에는 잠시 효과가 있지마는 나중에 부작용이 남아서 좋지 않은 약을 장기간 복용을 하면은 작은 병은 나았지마는 큰 병을 얻는 수가 허다 해서 약을 너무 함부로 남용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처럼,

부처님께서 설하신 방편법이 팔만사천 가지가 있지마는 그런 방편법에 우선 잠시 효과가 있다고 해서 방편법에 떨어져 가지고 그런데 집착을 하게 되면 임시는 좋은 것 같아도 정말 구경(究竟)의 깨달음에는 이르기가 어렵고, 그러한 폐단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방편법일수록에 바른 선지식, 그러한 방편법을 통해서 목적을 달성한 그러한 선지식의 직접적인 지도하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주문을 외워서 주력을 하는 거라든지, 어떤 관법(觀法)을 닦아가지고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람일수록에 바른 지도자를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용화사에서 전강 조실 스님께서 설하신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방법은 이것은 용화사에서는 ‘최상승법(最上乘)이다. 활구참선(活句參禪)이다’ 이렇게 조실 스님께서도 말씀을 하시고, 산승도 그런 말을 하게 됩니다마는,
이것은 천 년을 두고 많은 선지식들이 이 간화선을 통해서 수행을 해 오셨고, 그래서 이것은 바르게 이 화두를 거각(擧却)하고, 바르게 정진을 해 가면 거의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물론 이 간화선도 잘못하면 얼마든지 잘못될 수가 있습니다.
자세를 바르게 안 한다든지, 호흡을 바르게 안 한다든지, 화두를 거각하고 화두를 의심하되, 잘못되게 화두를 의심하면 이것도 또한 잘못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그 약을 먹고 효험을 봤다고 해서 체질도 다르고 또 약 먹는 방법을 잘못 먹고, 지나치게 과격하게 먹는다든지, 잘못 먹으면 그 약을 먹고 해(害)를 입을 수도 있는 거와 같아서, 이 참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심을 해라. 간절히 이 화두를 의심해라’ 그러니까 간절히 한답시고 너무 용을 써 가지고 미간(眉間)에다가 ‘적을 소(小)’자를 쓰면서 이마를 찡그리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이래가지고 너무 힘을 쓰다 보면, 용을 쓰면, 기(氣)가 위로 올라가 가지고 나중에는 눈이 벌게지고, 골이 뽀개지도록 아프고 이러한 병을 얻는 수도 있습니다.

조실 스님께서도 아주 젊은 소년 시대에 발심을 해가지고 너무 그렇게 용을 쓰고 정진을 하다가 상기병(上氣病)을 얻어서 머리가 터지고, 코로 입으로 피가 넘어오고 하는 그러한 경험을 가진 분의 한 분인 것입니다.

녹음 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그러한 처절한 그 광경을 들으셔서 많이 다 알고 계실 줄 압니다마는 여러 도반들은 그래서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을 자주자주 들으시면서 정진을 하시기를 바랍니다.(15분22초~26분4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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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심사학도별무타~’ ; [부휴당대사집(浮休堂大師集)] ‘어느 선자(禪子)에게(贈某禪子)’ 게송 참고.
*불급심사 공과일생(不急尋師空過一生) ;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의 저술로 전해지는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에 있는 말씀.
[참고] [선문촬요 禪門撮要 上 血脈論] (경허성우 鏡虛惺牛 엮음)에서.
不急尋師空過一生 然卽佛性自有 若不因師終不明了 不因師悟者萬中希有.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불성은 스스로 가지고 있으나 스승을 인연하지 않으면 끝내 분명히 알지 못하니,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깨닫는 이는 만에 하나도 드물다.
*불탄산고수활(不憚山高水濶) ; 높은 산 깊은 물도 꺼리지 않고. 憚(꺼릴 탄), 濶(넓을 활).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금수강산(錦繡江山 비단 금/수놓을 수/강 강/뫼 산) ; 비단(緋緞)에 수(繡)를 놓은 듯 매우 아름다운 산천. 함경북도 북쪽 끝에서 제주도 남쪽 끝까지 3,000리가 되는 우리나라의 자연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각성(覺醒 깨달을 각/깰·잠에서 깰 성) ; ①어떤 잘못이나 사실 등을 깨달아 앎. ②깨어나 정신을 차림. ③정신을 차리고 주의깊게 살피어 경계하는 태도.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문중(門中) ; 한 스승 아래 대대로 형성된 스님들의 계통.
*사형(師兄) ; 한 스승 밑에서 자기보다 먼저 그 스승의 제자가 된 스님를 높여 이르는 말.
*사제(師弟) ; ①한 스승의 제자로서 자기보다 나중에 계(戒)를 받은 스님을 일컫는 말. ②스승과 제자.

*위음왕불(威音王佛) : [범]  Bhismagarjitasvararaja-Buddha <법화경> 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에 나타나는 부처님의 이름. 한량없는 과거의 부처님으로, 이 부처님 이전에는 부처님이 없었다고 하여 ‘지극히 오랜 옛적’을 뜻한다.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폐침망찬(廢寢忘餐 폐할 폐/잘 침/잊을 망/밥 찬) : 자는(寢) 것을 폐(廢)하고 밥 먹는(餐) 것을 잊으며(忘) 일에 심혈을 기울임.
*백척간두(百尺竿頭 일백 백, 자 척, 장대 간, 머리 두) ; ①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올라섰다는 뜻으로, 몹시 어렵고 위태로운 지경을 이르는 말. ②모든 상대적 차별을 없앤 절대의 경지.
*항하사수(恒河沙數) ; 인도 갠지스 강(Ganges江)의 모래와 같은 수(數)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공화(空花, 空華) ; 환(幻). 공안화(空眼花). 공중(空中)의 꽃. 눈의 장애로 말미암아 생기는 허공의 꽃.
실재하지 않는 것을 있는 것으로, 관념을 실재하는 객관 대상으로, 고유한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는, 번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망상(착각·환상·편견 등)을 말한다.

눈이 멀쩡한 사람은 허공 속에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데, 눈병이 난 사람은 허공에 이상한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보이고 그러는데, 눈병만 고치면은 허공에 피어있던 꽃이 안 보인다.
그래서 눈병이 났던 사람은 ‘허공에 있던 꽃이 있다가 없어졌다’고 하지마는, 허공의 꽃은 있다가 없어진 게 아니라 원래 없던 것이다.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통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을 만나면 육식(六識, 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이 생기는데, 그 육식(六識)에 포착되는 모든 것들을 이름과 모양—명상(名相)이라 하는데, 명상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림자요, 메아리, 환(幻)인 것이다.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명상(名相) 그것을 ‘있는 것’으로 집착을 함으로 해서, 모든 탐진치 삼독심이 일어나 생사윤회의 업을 짓는데, 마음 하나만 공(空)해 버리면 일체 명상(名相)은 동시에 다 공(空)해 버리는 것이다.

원래는 이 세상에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生死)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生死)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이거거든.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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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선문염송(禪門拈頌) ;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 고려 보조국사 지눌(知訥)의 제자 진각국사 혜심(慧諶) 스님이 1226년 수선사(修禪社, 지금의 송광사松廣寺)에서 화두 1125칙(則)과 각각의 칙(則)에 대한 짤막한 해설과 게송 등을 모아 엮은 30권의 책이다. 염송(拈頌)이라고도 한다.
*건수(乾水 마를 건, 물 수) ; 평상시에는 물이 고여 있지 않다가, 장마 때 땅속으로 스몄던 빗물이 잠시 솟아나서 괴는 샘물.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衆生心)이요 사량심(思量心)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곧잘 ; 제법 잘.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 기운 기, 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주력(呪力) ;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로 하는 기도.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의 효과.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비파사나(팔리어 vipassanā, 산스크리트어 vipaśyanā) ; 비바사나(毘婆舍那)·비발사나(毘鉢舍那)로 음역. 능견(能見)·정견(正見)·관찰(觀察)·관(觀)이라 번역.
비파사나(위빳사나)는 ‘분리해서vi  보는 것passanā’이라는 문자적인 뜻 그대로, 대상[유위제법(有爲諸法)—오온(五薀)·십이처(十二處)·십팔계(十八界)]을 나타난 모양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명상하고 관찰하여 법(法)의 무상(無常)하고 고(苦)이고 무아(無我)인 특성을 통찰하는 수행.

비파사나는 마음[心]·마음부수[心所]·물질[色]로 구분되는 71가지 구경법들 가운데 하나를 통찰하는 수행인데 이처럼 법을 통찰해 들어가면 제법의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철견(徹見)하게 된다.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비파사나의 힘으로 탐·진·치의 뿌리를 멸절시켜야 영원히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되며 그래야 해탈·열반을 실현하게 된다.
비파사나는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것 그 자체이지 결코 특정한 수행기법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 「초기불교 이해」 (각묵 스님, 초기불전연구원) 참고.
*사념주관(四念住觀) ; 현장법사(600~664) 이전에 번역한 경전의 번역을 말하는 구역(舊譯)에서는 사념처(四念處)라 하고, 신역에서는 사념주(四念住)라고 함. 사념처관(四念處觀)과 같음.
네 종류의 수행방법. 네 가지의 관상법(觀想法). 네 종류의 마음이 고요해지는 내관(內觀).
신념주(身念住, 身念處) · 수념주(受念住, 受念處) · 심념주(心念住, 心念處) · 법념주(法念住, 法念處)의 네 가지를 마음에 떠올리는[觀] 수행.

①신념주(身念住, 身念處) : 부모에게 받은 육신이 부정(不淨)하다고 관하는 것.
②수념주(受念住, 受念處) : 우리의 마음에 낙(樂)이라고 하는 음행·자녀·재물 등을 보고, 낙이라고 하는 것은 참 낙이 아니고, 모두 고통(苦痛)이라고 관하는 것.
③심념주(心念住, 心念處) : 우리의 마음은 항상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고, 늘 변화 생멸하는 무상(無常)한 것이라고 관하는 것.
④법념주(法念住, 法念處) : 위의 셋을 제하고, 다른 만유에 대하여 실로 자아(自我)인 실체(實體)가 없으며, 또 자아가 없으므로 소유도 없다고, 무아관(無我觀)을 하는 것.

신·수·심·법(身·受·心·法) 네 가지를 따로따로 관하기도 하고, 신수심법(身受心法)은 부정(不淨)하며, 고(苦)이며, 무상(無常)하며, 무아(無我)라고 총합하여 관하기도 한다.
*임제종(臨濟宗) ; 중국 선종 제6조(祖) 혜능(慧能)으로부터 남악(南嶽)·마조(馬祖)·백장(百丈)·황벽(黃檗)을 거쳐 임제의현(臨濟義玄, ?-867)에 이르러 일가(一家)를 이룬 종파이다.
임제종은 북방에서 널리 성행했는데, 송대(宋代)에 석상 초원(石霜楚圓) 문하에서 양기 방회(楊岐方會)의 양기파와 황룡 혜남(黃龍慧南)의 황룡파가 나와, 양기파는 성행했으나 황룡파는 얼마 안 가 쇠퇴함.
양기파 문하의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는 천만 가지 의심도 결국은 하나의 의심에 지나지 않으며, 화두(話頭)의 의심이 깨뜨려지면 천만 가지 의심이 일시에 사라진다고 하여 화두와 정면으로 대결할 것을 역설했는데, 그의 선풍(禪風)을 간화선(看話禪)이라 한다.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 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도 말씀하신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구경(究竟 궁구할 구/마칠•다할 경)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그 위에 더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관법(觀法) ; 마음을 지금 여기에 두고, 분별적인 사유에 휩싸이지 않고, 대상[諸法]의 인상이나 겉모습에 떠돌지 않고, 대상을 꿰뚫어서 대상[諸法]의 진실한 모습을 통찰하는 수행. 이로써 고통과 근심을 소멸하고 올바른 길에 들어서게 하고 열반(涅槃-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을 깨닫게 한다.
*거각(擧却 들 거, 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 ; [주로 ‘용을 쓰다’의 구성으로 쓰여]무리하게 어떤 일을 해내려고 마음을 몰아 애써서 한꺼번에 내는 힘.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화두불명수계)2015. 4. 21. 14:48

§(430) 참회정진 업장소멸 / 욕과 비방을 감로수처럼 받아들여야 / 단전호흡은 참선하는데 효과적이다 / (게송)선악성공여반장~.

 

참선은 첫째, 항상 자기의 마음을 항상 중심을 잡아 나가는 중요한 수행이여.

 

소승, 중승, 대승, 최상승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빨리 자기로 돌아오는 법문이여, 전부가.

이 참선법은 철저하게 찰나찰나, 한 생각 한 생각 일체처 일체시에 자기로 돌아오는 공부가 바로 참선이요, ‘이뭣고?’다.

 

**송담스님(No.430)—90년 12월 첫째일요법회(90.12.02) (용430)

 

(1) 약 21분.

(2) 약 22분.

 

(1)------------------

 

부처님 말씀에 ‘죄가 있거든 스스로 참회(懺悔)하고 그 마음을 몰록 쉬어 버리고 그걸 고치라’ 그랬어.

참회하고, 하던 악을 중단하고 마음을 고쳐버리면, 마치 무엇과 같으냐? 병을 앓다가 한약을 지어다가 먹고 푹 취한(汗)을 하면, 땀을 푹 싸 버리면 아주 몸이 가뿐하고 병이 낫는 거와 같다.

 

참회를 하지 아니하고 고치지 아니하면, 지은 허물이 죄가 되어 가지고 그 마음에 따라붙어. 그래 가지고 물이 흐르고 흘러서 바다에 들어가듯이, 바다에 들어가면 점점점점 바닷물이 불어나서 깊어진 거와 같다.

 

사람이 중생이 살다 보면 본의 아니게 허물을 저지를 수도 있고, 큰 허물, 작은 허물, 또 자기의 생각이 좁아 가지고 본의 아니게 그럴 수도 있고, 남의 꾀임에 빠져서 허물을 저지를 수가 있고,

그러나 항상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또 절에 와서 하다보면 ‘아하, 내가 잘못했구나!’ 염불도 하고, 경도 읽고, 참선을 하다 보면 금방 자기를 반성하게 되거든.

 

‘허물이 있는 줄을 알고, 허물을 고치고 선(善)을 행하면 지은 죄가 스스로 소멸이 된다’ 그랬어.

참회를 하면 죄가 소멸이 되는 것이여. 참회법이라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여.

 

그런데 참회를 하고 개과천선(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은 옛날에 잘못한 것을 자꾸 들추어내 가지고 ‘저 사람이 그런 나쁜 사람이다’ 또 본의 아니게 형무소에 들어갔다가 한번만 나오면 취직도 안되고, 모두가....

 

형무소에서 참회를 하고, 그러고 인자 새 사람이 되려고 나와도 한번 형무소만 갔다 나오면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고, 아주 도둑놈이라고 해서,

모르고 취직을 해서 일을 하다가도 누가 ‘아, 저 사람 형무소 갔다온 사람이라고’ 한마디만 하면 대번에 쫒아내버리거든. 그러니 해 먹을 것이 없으니까 또 도둑질을 하고 강도를 한다 그말이여.

 

그래서 ‘죄는 미워할지언정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라’ 그런 말도 있는데, 실지 일를 당하고 보면 형무소 갔다 나왔다 그러면은 사람들이 모두 꺼리게 된다 그말이여.

또 형무소는 안 가더라도 내가 어떤 잘못을 한번만 하면 항상 그 사람이 가는 곳마다 ‘저 사람이 무슨 짓을 한 사람이다. 무슨 짓을 한 사람이다’ 모두가 뒤에서 손가락질을 하고 수군수군하고 모두 그 사람을 모두 멀리하고 그러는데,

 

내가 한번 과거에는 그랬을망정 그것을 참회하고, 그 허물을 고치면 사람들이 그러더라도 그것을 미워하지 말고 ‘아, 내가 과거에 그런 일이 있으니까 내가 참회하고 고친 줄을 모르고 저러는구나’

그 사람을 원망하고 미워하지 말아야지, 그런다고 해서 자기도 같이 그 사람을 또 미워하면 자기는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착한 일을 하고, 착한 마음으로 옳게 살려고 하고, 자비심을 가지고 살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시기를 하거나, 까닭 없이 아니꼽게 생각해 가지고 비방하고, 욕을 하더라도 그 사람과 같이 싸우지 말아라’ 그렇게 말씀을 하시면서.

 

 

부처님이 마침 어디를 가셨는데, 외도(外道)가 되었던지, 바라문(婆羅門)이 되었던지, 부처님한테 입에 못 담을 욕을 퍼붓는다 그거거든. 그래서 부처님께서 그 욕한 사람보고,

 

“내가 한마디 당신에게 물어보겠소. 당신이 나한테 맛있는 음식과 패물로서 나에게 갖다가 대접을 했을 때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양을 한다면 그 맛있는 음식과 예물은 누구한테 돌아가겠소?”

“당신이 안 받으면 도로 내 것이지. 그것이 누구한테 돌아가겠느냐”고.

 

“그러냐고, 그렇다면 당신이 나한테 그렇게 욕을 퍼부었는데 나는 그걸 받아들일 이유도 없고, 내가 안 받아들이니까 그 욕은 당신한테 다 돌아가겠구려” 그러니까 그 외도가 얼굴이 빨개져 갖고 꼼짝도 못했다.

 

여러분도 가정에서나 어디에서나 누가 전생의 업연(業緣)으로 그랬던지, 금생에 무슨 그 사람이 감정이 나서 그랬던지, 공연히 시비를 붙이고 나한테 친절치 못하게 군다 하더라도 동요하지 말어.

동요하지 말고, 화두를 들고 마음만 편안하게 하면 그렇게 시비를 걸던 사람도 그냥 별 수 없이 입이 딱 붙어 버릴 것이고, 다음에는 그러지 못할 것이고.

 

그리고 저 사람이 그런다고 해서 내가 대꾸를 해 가지고 싸우면 옆에 구경하는 사람들은 둘이 다 똑같은 사람으로 취급을 할 것이다 그말이여.

‘또 싸운다’고, ‘좀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남 공부 못하게 한다’고, 다 그럴거다 그말이며.

 

그런데 한 사람이 자꾸 시비를 붙여도 나는 동심(心)이 안되고, 같이 맞서서 싸우지 아니하고 가만히 있으면 옆에 사람들이 ‘아, 저 분이 참 훌륭한 분이로구나, 참 얌전한 분이로구나, 정말 보살이로구나’ 모두가 다 존경할 것이라 그말이여.

 

그래서 대중이 이렇게 많이 모여서 사시니, 모두 크고 작은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나 피차가 서로 하심(下心)하고, 서로 양보하고, 자비심으로 대한다면, 무장무애(無障無碍)하게 공부도 잘 하시게 될 것이고,

가정에서도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면 가정도 참 화평하게 살게 되고, 화평한 가정에는 복이 굴러들어 올 것입니다.

 

공부하는데 있어서 제일 방해가 되는 것이 속상하는 것입니다. 오장이 확 뒤집어지면 여간해서 화두를 좀 챙길려고 해도 잘 안 들어지거든.

‘이뭣고?’ ‘이뭣고?’해도 영 입으로만 되지 속으로는 안되어. 자꾸 속에서 이런 놈이 틀어 오르기 때문에 잘 안되거든.

 

그래도 자꾸 심호흡,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한 서너 번만 하면은 그냥 스르르르 가라앉게 돼.

그래서 참선해 나가는데 이 심호흡이 대단히 중요하고 또 몸의 피로 회복하는 데에도 심호흡이 중요하고 또 자기감정을 스스로 잘 조정하는 데에도 심호흡이 대단히 중요해.

 

사람들은 ‘참으라, 참으라’하지만 참는 것이 그렇게 경우에 따라서는 참는 것이 대단히 참 중요할 때도 있지만,

매양 억지로 참다 보면 한도가 있어서 쌓이고 쌓이다 보면은 언젠가는 폭발을 하는데 그때는 걷잡을 수 없이 큰 사건이 일어나거든.

 

그리고 계속 참고 참다 보면 속이 화(火)가 쌓여 가지고 적(積)이 되어서 소화가 안되고, 눌러 보면 주먹 덩이 같은 놈이 속에 있거던,  그게 다 소시(時) 때부터서 참고 참아 가지고 적이 된거거든.

그것이 엑스레이를 찍어 보면 그것이 무슨 뭉텅이가 나올란가 어쩐가는 모르겠는데 분명히 누르면 무엇이 있다 그러거든. ‘그런데 어째서 그것이 생겼습니까?’하면 ‘내가 화를 많이 끓여서 그런다’고.

 

며느리로 가 가지고 시어머니한테 당해 가지고 그러기도 하고, 남편 때문에 속상해 가지고 그러기도 하고,

모다 이리저리 해서 화를 많이 끓인데다가 그것을 터뜨리지를 못하고 속으로 참고 참다 보면 속이 적(積)이 들어 앉는 거라 말이여. 그건 여간해 약 먹어도 낫지 않거든.

 

그래서 나는 참으라고—육바라밀(六波羅密) 속에 인욕(忍辱)이라는 항목이 있긴 있지만, 진짜 잘 참으려면 억지로 쪄누르기 보다는 그 일어나는 생각을 심호흡을 하면서 ‘이뭣고?’로 돌려야 한다 그거거든.

돌리면은 그놈이 풀어지면서 그것을 계기로 해서 화두(話頭)를 드니까 업(業)을 짓지 아니하고, 깨달음으로 한걸음 나아가게 되는데,

 

화두를 들지 않고 억지로 참다 보면 큰일이거든. 병이 나고, 결국은 언젠가는 참다 참다 참는 것도 한도가 있어서 터질 때는 무섭게 터지는 거라 그말이여.

 

그래서 앞으로는 억지로 참을라고 하지 말고, 그냥 심호흡을 하면서 ‘이뭣고?’ ‘이뭣고?’를 하시라 말이여.

 

남편이나 아내나 또는 친구나 또는 어른이 억울한 소리를 하시면, 숨을 들어마시면서 ‘이뭣고?’, 소리는 내지 말고 속으로 하라 그말이여. 어른이 뭐라 그러는데 ‘이뭣고?’ ‘이뭣고?’하면 그 될거냐.

속으로 ‘이뭣고?’, 조용하게 ‘이뭣고?’를 하다보면 그 억울한 소리 하다가도 그냥 쑥 들어갈 거라 말이여.

 

그런데 ‘이뭣고?’를 안 하고, 그냥 눈을 휘번득거리면서 말은 안 해도 속으로 그냥 잔뜩 골내고, 말하는데 뒤돌아서서 중얼중얼한다던지, 무슨 그릇 같은 것을 쾅쾅 놓는다던지, 절대로 그래도 안 되거든.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심호흡을 하면서 ’이뭣고?’ ‘이뭣고?’하면 그 억울한 소리 한 사람이 최상승(最上乘) 법문(法門)을 설하신 것이 되고 만다 그말이여.

아! 그 소리를 듣고 화두를 드니 그것이 법문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말이여.

 

칭찬을 하면 우선 귀에는 듣기 좋지마는 화두가 잘 안 들려. 좋은 생각으로 들뜬 생각이 되어 가지고, 그래서 칭찬하는 소리는 도둑놈이요, 나를 충고하는 소리는 약으로 감로수(甘露水)처럼 받아들이라.

 

칭찬하는 소리에 까닥 잘못하고 우쭐대다가는 큰일나는 법이고,

나의 잘못을 지적해 주고, 꾸짓는 말, 험담하는 말을 그 말을 잘 새겨서 받아들이고, 고맙게 받아들이면, 나를 비방하고 욕하는 소리가 바로 감로수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말이여.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칭찬도 듣게 되지마는 흔히 어디를 가나 본의 아니게 욕을 먹기도 하고, 비방을 듣기도 하는데 그 칭찬하는 소리 별로 좋아할 것이 못되어.

그래서 공자님도 ‘칭찬하면 대단히 좋아하고, 자기의 잘못을 지적해 주면 듣기 싫어하는 사람하고는 장래 두고 봤자 별 볼일 없는 사람이니 그런 사람 하고는 친구를 하지 말라’ 그랬습니다.

 

공자님도 세계의 삼대(三大) 성현의 한 분인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표현은 달라도 부처님 말씀과 다 통하고 영가(永嘉) 스님의 증도가(證道歌)에도 그와 같은 뜻이 다 있습니다.

 

그래서 칭찬한 걸 절대로 좋아해서는 안돼. 누구한테 칭찬하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부끄러운 생각을 가져야—‘과연 내가 저런 칭찬을 들을 만한 것인가? 참, 너무 과분한 말을 하시는구나’ 항상 부끄럽게 생각하고.

 

나의 잘못을 지적해 주거나 충고로 해 주는 말은 척 듣는 순간에는 조금 귀가 입맛 없다 그러거던.

 

그렇지만 양심적으로 생각해 보면, 한참 한 시간이나 두 시간 또 그 이튿날쯤 또는 그날 저녁에 잘 때쯤 가만히 ‘어째서 그 사람이 나한테 그런 말을 했을까? 아, 확실히 나한테 그런 말 들을 만한 요소가 있구나’

그렇게 참회를 하면 그때사 ‘아, 그 사람을 미웁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참 고맙게 생각해야겠다’

 

우리가 참선(參禪)을 많이 해서 찰나간에 자기의 감정을 돌릴 수 있는 훈련이 쌓아진 사람은 듣는 찰나에 바로 감로수처럼 받아들여질 것이고,

참선이 아직 익숙하지 못하고 수행이 옅은 사람은 그날 저녁에 잘 때쯤 또는 그 이튿날쯤 가면은 그런 생각이 들거여.

 

저기 저 북극지방에 에스키모인은 어떻게 둔하던지, 뭔 욕을 하면 그때는 아무렇지도 안해.

조금도 눈빛 하나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있다가, 그 이튿날에사 도끼를 갖고 쫒아온다 이거여. 그때사 와서 닿는 거여. 두텁띠 두터워 가지고 금방 말해도 못 알아들어.

 

그 사람들은 아주 다정한 손님이 오면 자기 부인을 데리고 자라고 대접을 한다 그러는데, 그 사람들 풍속이 그러니까.

그리고 신부가 거기를 갔다가, 그 부인을 데리고 자라고 하는 통에 ‘그 안됩니다. 나 그 못합니다’ 도저히 그 사람들은 못 알아들어. ‘어째서 우리의 친절을 거부하는가?’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거여,

 

욕을 해도 아무렇지도 안해. 골낼 줄도 모르고 아무렇지 않다가 그 이튿날 느닷없이 도끼를 가지고 와서 어제 왜 욕했냐 이거거던.

 

중생들은 자기를 위해서 충고를 해 주고, 자기를 위해서 지적을 해 주어도 금방 고마운 줄 못 알아듣는다 그말이여. 업(業)이 두터워서 금방 못 알아듣는 거여.

지금 에스키모인 이야기를 하니까 웃으셨지만, 중생은 어떻게 욕하는 소리는 금방 잘 알아듣는데, 자기를 위해서 충고를 해 주는 말은 거꾸로 알아듣는다 그말이여.

 

에스키모 사람들하고는 조금 오장이 조금 다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으나 참 그게 묘하거든.

그이를 위해서 좋은 말을 해 준 것은 잘 못 알아듣고, 그게 아마 오장육부가 다른 것은 아닐 것이고.

 

어린애기들 병에 좋으라고 약을 주면 쓰다고 안 먹으라고 그러고, 단것은 위에도 해롭고 몸에 해로와도 자꾸 단것만 먹을려고 하는 어린애기들이 무슨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직 철이 안 들어서 그래서 그런 거와 마찬가지죠.

 

나이는 40, 50 먹었어도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런 것인지, 이제 법문을 자꾸 듣다 보면 반드시 ‘이것이 나한테 이로울 것인가, 해로울 것인가’를 지혜롭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참선은 첫째, 항상 자기의 마음을 항상 중심을 잡아 나가는 중요한 수행이여.

참선 안 한 사람은 노상 중심이 잡혀 있지 않거든. 눈으로 보면 보는 데에 끄달리고, 귀로 뭘 들으면 듣는 데에 끌려가고, 코로 뭔 냄새를 맡으면 냄새에 끌려가고, 항상 중심을 잃고.

 

예를 들자면 주부가 집을 비워놓고 밤낮 밖으로 쏴 다니는 거와 마찬가지여. 그러면 집안 살림이 무엇이 되겠느냐 그말이여.

하나도 집안도 소지도 안되어 있을 것이고, 애들한테나 남편한테나 아내로서 해야 할, 주부로서 해야 할 일이 전혀 안되어 갖고 있으니 엉망진창이다.(36분22초~57분27초)

 

 

 

 

 

 

(2)------------------

 

항상 집에 있으면서 집안일을 정돈하고 주부로서 할 일을 하고, 밖에 일이 있어도 냉큼 가서 일을 보고는 바로 또 집에 오고 해야지.

 

해가 다 넘어가도록 집에 안 들어오고—집에는 벌써 애들은 학교 갔다오고, 남편도 퇴근해 가지고 있는데 주부가 없으니, 끼니 밥 차려 줄 사람도 없고, 밥도 안 하고 이렇게 되어 있는 그러한 것과,

참선을 안 하고 밤낮 외부로 끌리고, 감정의 노예가 되어 가지고 끄달리고 사는 사람은 평생을 살아도 그런 내 자신의 마음 살림이 그 집 비워놓고 다닌 주부의 가정 살림과 똑같은 형상 일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눈으로 무엇을 보아도 항상 ‘이뭣고?’, ‘이뭣고?’할 때 벌써 자기로 돌아온 것이거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때에도 ‘이뭣고?’, 벌써 소리나는 데로 갈 듯하다가 냉큼 돌아온 것이 아니냐 그말이여.

 

부처님도 자기에서 찾아야 하는데, 밖에서 찾지 말아라 그러셨거든.

 

소승, 중승, 대승, 최상승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빨리 자기로 돌아오는 법문이여, 전부가.

이 참선법은 철저하게 찰나찰나, 한 생각 한 생각 일체처 일체시에 자기로 돌아오는 공부가 바로 참선이요, ‘이뭣고?’다 이거거든.

 

‘이뭣고?’ 처음에는 누구나 잘 안돼. 잘 안되고. ‘이뭣고?’해도 그렇게 간절하게 의심이 안나지만, 자꾸 하면 되거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하는 이놈이 뭣고?’

자세를 단정히 하고 심호흡,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간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뭣고?’

 

들어마신 호흡 약 3초, 들어마셔 가지고 머무르는 시간이 약 3초, 내쉬는 시간은 약 4-5초 조금 길게, 이렇게 하되 너무 가득 들어마시지 말고, 8부(八部)쯤만 들어마셔.

또 머무르는 것도 너무 오래 참을라 하지 말고, 또 내쉬는 시간도 너무 길게 시간을 잡지 말어.

 

지금 3초 3초 5초 이렇게 말했지만, 그것도 본인한테 길다고 느껴지면 2초 동안 들어마시고, 2초 동안 머무르고, 내쉬는 것은 약 3초, 모두 합해서 한 8초나 9초 이렇게 되는데,

자기에게 조금도 무리가 가지 않도록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범위 내에서 하라 그말이여.

 

그래서 차츰차츰 길어지면 길어지는 대로 하고, 짧으면 짧은 대로, 언제나 자연스럽게 무리가 없이 해야지 억지로 하면은 안되거던.

몇 번 안 해서 된숨을 쉬어야 하고 너무 힘이 들고 이러면 안되거던. 무리 없이 할 것.

 

그리고 자세는 단정하니 하되, 너무 뒤로 자지바지하고 목에다 힘을 주고, 어깨에다 힘을 주고 그리고 용을 쓰고, 그러면 안되는 거여.

단정하면서도 어깨나 목이나 그런데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이런 자세를 가져야 돼.

 

오늘 불명(佛名)을 타고 또 십선계(十善戒)를 받고 또 화두를 타는 법요식(法要式)이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해드리는데, ‘참선을 하는데 단전 호흡(丹田呼吸)을 꼭 해야 합니까?’ 그러한 질문을 가끔 받습니다.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호흡하는 법을 잘 올바르게 터득을 해서 잘하면 참선하는데 대단히 효과가 있고, 참선에만 효과가 있는게 아니라, 육체적인 건강에도 좋아!

 

왜 그러느냐? 혈액 순환이 잘되고, 혈액 순환이 잘되므로 해서 몸 안에 있는 노폐물이 잘 배설이 되어.

뿐만 아니라 피로 회복도 잘되고 또 마음도 안정이 되고, 정신도 깨끗해지고, 또 감정도 자기가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침착한 성격으로 되고, 이 단전 호흡을 하면 그 이익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대단히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래서 참선을 하는 데 이것을 곁들여서 하면은 대단히 효과적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사람에 따라서 수식관(數息觀)을 시켜.

 

수식관은 자기가 자기의 호흡을 세는 거여. 들어마셨다 내쉬고 ‘하나’ 또 들어마셨다가 잠간 머물렀다가 내쉬고 ‘둘’ 이렇게 해서 호흡을 이렇게 세는 거여.

그래서 그것이 수식관인데, 수식관을 시키기도 하고 또 백골관(白骨觀)이라는 그런 관(觀)을 시키기도 하고 또 사념처관(四念處觀)을 시키기도 하고, 그 사람의 근기(根機)와 체질에 따라서 여러 가지 방편(方便)을 쓰셨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것을 오늘날 차츰차츰 그런 것도 다 구체화되고 체계화가 되어 가지고, 여러 가지 운동하는 사람, 무술 하는 사람까지라도, 또 요가하는 사람, 전부다 호흡법을 통해서 육체적인 건강, 정신적인 통일을 도모하기 위해서 이 호흡법이 널리 개발이 되어 있는데,

 

참선하는 사람은 여려 가지 복잡한 호흡 보다는 지금 산승(山僧)이 말한 간단한 방법을 쓰면서 그 호흡을 하면서도 화두를 드는데 지장이 없도록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인지 ‘단전 호흡을 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안되고, 여기가 콱 맥힌 것같이 느껴져서 도저히 단전 호흡을 할 수가 없다’ 이러한 호소를 하는 분을 또 가끔 만납니다.

그것은 너무 무리하게 했지 않는가? 무리하게 호흡을 해 가지고 그러한 결과가 오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을 하고.

 

‘무리하게 한다’는 것은 숨을 들어마셔 가지고, 그 호흡이 저 밑에 단전까지 가도록 막 눌러댄다 말이여. 절대로 눌러 대서는 안돼.

또 들어마셔 가지고 오래 참을수록 좋다고 어디서 들어 가지고는 한 30초씩 얼굴이 벌게지도록 참고 있다가 ‘후 ~’하고 내쉬고, 그렇게 하면 백이면 백 다 병이 납니다. 절대로 억지로 쪄 누르지 말 것이며, 그래 가지고 또 억지로 오래 오래 참아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들어마실 때 어떻게 하느냐? 스르르르 들어마실 때 배만 볼록하게 만들지, 여기서부터 눌러 대지 말라 이거여. 이것을 잘 알으셔야 되아.

들어가는 호흡을 여기까지 누르면 그 호흡이 여기까지 들어가지 않습니다. 여기는 횡격막(膜), 가로막이라는 막이 허파 밑에 요리 있어 가지고 그 이상은 바람이 절대로 안 내려가.

 

허파까지 밖에 안 가는 것을 억지로 눌러서 배꼽 밑에까지 보낼려고 하니 가지도 않고 결국은 답답하기만 하고 소화만 안되고, 안 내려가니까 기운이 부딪쳐 가지고 거꾸로 위로 올라오니까 상기병(上氣病)이 오히려 더 생길 수가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단전 호흡이 좋다고 하지만 절대로 무리하게 하거나 잘못된 방법으로 어거지로 하지를 말아라.

그렇게 할 바에는 차라리 그냥 보통 호흡을 해야지, 억지로 알지도 못하는 단전 호흡을 무리하게 할라 하지 말고 보통 호흡을 하면서 ‘이뭣고?’ 이렇게만 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이거여.

 

그리고 이 참선을 시작할 때에는 미리 입선(入禪) 시간 전에 따악 와서 다리를 발목 운동도 하고, 발가락 운동도 하고, 다리 운동도 하고,

그리고는 앉아서 몸을 좌우로 한 서너 번 이렇게 흔들다가 한 가운데다가 딱 안정을 하고는 단전 호흡을 서서히 해서 안정을 해 가지고 입선 시간을 맞이해야 돼.

 

어디서 잡답을 하면서 있다가 목탁을 치니까 헐레벌떡 쫒아와 가지고는 시근덕시근덕 하면서 그냥 할라고 하니 공부가 되냐 그말이야.

항상 입선 시간을 잘 지키고 다른 사람이 이미 죽비(竹篦) 친 뒤에사 그때서 (문을) 드르럭 (열고) 들어오고, 와서 부시럭거리고 절대로 그러면 안되거든.

 

저 옛날에는 입선 죽비 딱! 치면 밖에서 들어오지 못하도록 '발'을 쳐 버렸어.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그렇다고 하는데 어쨌든지 시간을 잘 지키고.

 

또 방선(放禪)을 하고 일어설 때 갑자기 불끈 일어서지 말고 몸을 좌우로 흔들고, 다리도 뻗고, 발목 운동도 하고, 그래 가지고는 조용히 일어나서 나가고,

그래서 입선 시간만 화두를 드는게 아니라 방선하고서도 그 화두를 들도록 하고, 방선하고 나가서 화장실에 가면서도 화두를 들고, 화장실에 가서도 화두가 놓쳐지지 않도록.

 

또 화장실에서 오는 길에도 화두를 들도록, 이렇게 까지 해 나가야 합니다. 중국 선방에서는 화장실에 갈 때 그 입승(立繩) 스님이 죽비를 갖고 따라다닌다는 말도 들었어요.

요리 따라가다가 화두를 놓치고 딴전 보는 성 싶으면 죽비로 그냥 등짝을 후려팬다고 그런 말도 들었는데 지금은 중공(共)이 되어 가지고 다 선방도 없어졌다고 들었습니다마는,

 

그런 정도까지 입선 방선을 가리지 않고 알뜰히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을 하고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도록 그러한 공력(力)이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불명은 이 법회가 끝난 다음에 차례차례로 모두 나눠 드리게 되겠습니다.

 

화두는 ‘이뭣고?’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도 알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아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이 있거던.

눈으로는 보이지 않아. 그런데 그놈이 부르면 “예”하고 대답할 줄도 알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알고, 칭찬하면 좋아할 줄도 알고.

 

이렇게 법문을 하면 듣고 ‘아, 참 옳은 말씀 하시는구나. 꼭 저 말씀은 나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이로구나’ 그렇게 생각할 줄 아는 놈이 있거던.

그놈을 보통 '마음'이라고도 하고, '영혼'이라고도 하고, '자성(自性)'이라고도 하고, 그렇지만 이름은 알고 있지만 실지로 우리는 보지는 못하거던.

 

그놈이 생각을 좋게 먹으면은 천사 같기도 하고, 그놈이 독한 마음을 먹으면 찰나간에 나찰(羅刹) 귀신도 된다 그말이여. 그러한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는데 대관절 그놈이 무엇인가를 찾는 거여.

 

어떻게 찾느냐? ‘이뭣고?’ 이렇게 찾는 거여.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사량분별로 따져서 찾는게 아니라, 그냥 무조건하고 ‘이뭣고?’ 이렇게만 찾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그렇게 찾으면 되는 거여. 이것을 화두(話頭)라 그래.

 

처음 불명을 타고, 처음 화두를 타고 하시는 분을 위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이니까,

 

그러면 십선계도 받았고, 화두도 받았고, 이제는 불명(佛名)은 이 자리에서 낱낱이 다 일러드릴 수가 없으니 계첩(牒)을 법회가 끝나고 나눠 드릴테니까 순서 있게 그것을 받아 가지고,

 

불명이 무엇인가 한번 보고는 갖다 어디다 쳐놓고는 불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러면 안되거던. 자기의 불명이 확실히 무엇인가를 딱 마음속에 넣고.

계첩을 드리면 그것을 액자를 해서 딱 갖다 걸어놓고 밤낮으로 쳐다 볼 때마다 내 불명이 무엇이다 알고,

 

또 ‘이뭣고?’가 거기에 한글로 쓰여 있으니까 볼 때마다 ‘이뭣고?’ 속상할 때 ‘이뭣고?’ 기쁠 때 ‘이뭣고?’ 슬플때 ‘이뭣고?’ 근심걱정 있을 때 ‘이뭣고?’ 항상 ‘이뭣고?’를 챙기고,

오며가며 챙기고, 앉으며 서며 챙기고, 또 친구들이 놀러오면 ‘이뭣고?’에 대해서 얘기도 해 주고 또 ‘같이 가서 참선을 하자’고 권고도 하고.

 

이렇게 해서 명실공히 법보제자(法寶弟子)가 되고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불자(佛子)가 되었습니다.

계(戒)를 받고 연비(燃臂)를 했으니 과거에 지은 알게 모르게, 크고 작은 모든 죄는 찰나간에 깨끗이 다 되었습니다.

 

이제 오늘 새로 부처님의 아들로 부처님의 딸로 새로 태어났으니, 이제 몸도 마음도 깨끗해졌어.

그러니 과거에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서 국집(局執)할 것도 없고 깨끗한 몸이 되었으니까, 깨끗한 마음으로 이제 ‘이뭣고?’만 열심히 하고, 앞으로 십선계만 잘 지키면 여러분은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가시는 것은 이미 표는 다 끊어놨어.

 

나눠 드린 계첩이 도솔천내원궁에 가는 계첩입니다.

이 내원궁에 가는 그 표를 끊어 놓은 것이니까 그것을 잘 간직을 하시고 어쨌든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될 수 있으면 금생에 결정코 견성성불(見性成佛)할 것을 목적으로 하고 열심히 공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선악성공여반장(善惡性空如反掌)하니  지악행선순성도(止惡行善順聖道)니라

나무~아미타불~

자성본무살불살(自性本無殺不殺)하니  탐진치심본공(貪瞋癡心本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선악성공(善惡性空)이 여반장(如反掌)이여.

‘선이다 악이다, 저 사람은 착하다 악한 사람이다’ 모두 그렇게 말하지마는 선인(善人)이나 악인(惡人)이나 그 본바탕은 똑같은 사람이고. 다만 업(業)에 따라서 습기(習氣)에 따라서 잠시 그런 것인데,

 

선의 성품이 뿌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악의 성의 뿌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여. 내나 진여자성(眞如自性)에서 나오는 물결에 지나지 못한 것이지, 그 근본에 들어가서는 조금도 선도 악도 없는 것이니,

그래서 착한 사람도 한 생각 잘못 먹으면 손바닥 뒤집듯이 악한 짓을 할 수도 있고, 어제까지 악한 짓을 했어도 한 생각 탁! 돌이키면은 선한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이여.

 

그래서 악한 짓 하던 사람은 그것을 참회하고 그쳐 버리고, 착한 일을 행해서 성현의 가르침을 행하면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止惡行善順聖道)

 

자성(自性)이 본래 공(空)한 것이니, 그 공한 자성에서 나오는 선악의 물결이 그것이 어디가 뿌리가 있을 것인가? 없는 뿌리를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스스로 괴로워하고, 남을 미워해서도 아니되는 것이고,

 

설사 과거에 자기 성질이 좀 나뻤거나, 나쁜 성질을 썼고, 나쁜 짓을 했다 하더라도 어쨌든지 부처님 앞에 참회하고, 생각을 돌이켜 버리고, 새로운 출발을 해서 마음의 안락을 찾고, 영원한 행복을 누려야 할 것이 아닙니까.(57분28초~78분56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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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취한( 취할 취,땀 한) ;  낫게 하려고   내어  기운 발산시킴.
*개과천선( 고칠 개,허물 과,옮길 천,착할 선) ; 지난날 잘못 뉘우치고 고쳐 착하게 .
*외도(外道) ; 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바라문(婆羅門) ; 산스크리트어 brāhmaṇa의 음역어. 고대 인도 바라문교의 카스트(caste 네 가지[四種姓]로 분류되는 세습적 신분 계급 제도) 제도의 최상위 계급인 사제(司祭) 계급을 일컫는다.
베다(Veda 바라문교 근본 경전)를 교육하고 사원과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제식(祭式)을 관장했다.
*업연(業緣) ; 업보(業報)의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의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의 인연을 부른다.
*하심(下心) ;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 자기의 마음을 스스로 겸손하게 갖는 것.
*무장무애(無障無碍) ; 일이나 행동을 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방해가 없음.
*화(火)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생기는 화가 날 만큼 섭섭하고 분하고 답답한 감정.
*적(積) ; 적취(積聚).  에 쌓인 기로 인하여 덩어리가 생겨 아픈 ()은 오장에 생겨서 일정한 부위에 있는 덩어리이고, ()는 육부에 생겨서 일정한 형태가 없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덩어리를 이른다.
*육바라밀(六波羅蜜) ; 보살이 열반(涅槃)에 이르기 위해서 해야 할 여섯 가지의 수행.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를 이른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최상승(最上乘) ; 더할 나위 없는 뛰어난 교법. 최상의 가르침. 가장 뛰어난 가르침.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감로수(甘露水) ; 감로(甘露). 산스크리트어 amta 팔리어 amata
①신들(諸天)이 상용하는 음료. 이것을 마시면 불로불사(不老不死)가 된다고 한다. 신약(神藥). 불사의 영약. 도리천(忉利天)에 있다는 감미로운 영액(靈液). 장수하고 죽은 이를 환생시킨다고 함. 최고의 자미(滋味)에 비유함.
②맛은 달고, 마시면 죽지 않는다라고 일컬어지던 것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비유함.
③불사(不死). 영원의 생(生)을 의미. ④최대의 경지. 깨달음. 열반(nirvana)와 동일. ⑤정갈하고 감미로운 물.
*영가(永嘉) : (665 – 713) 절강성(浙江省) 온주부(温州府) 영가현(永嘉縣) 대(戴)씨 집에서 났다。법명은 현각(玄覺), 자(字)는 명도(明道), 호는 진각(眞覺)이다.
여덟 살에 출가하여 장경을 널리 보고, 천태(天台)의 지관(止觀)을 숭상하였다。<유마경>을 읽다가 견성하고, 조계(曹溪)에 가서 육조(六祖)에게 인가를 받고는, 곧 돌아가서 고향의 용흥사(龍興寺)에 있었다.
그의 저술은 <선종영가집(禪宗永嘉集)> <관심십문(觀心十門)> <증도가(證道歌)> 등이 남아 있다。당나라 현종(玄宗) 개원(開院) 1년에 사십 구 세에 앉아서 입적하였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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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에서]
*8부(八部)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만큼.
*된숨아주 어렵게 쉬는 .
*불명(佛名) ; 불법에 귀의한 남녀 신자에게 붙이는 이름.
*십선계(十善戒) ;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십악(十惡) ; 몸(身)과 말(口)과 뜻(意)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〇몸(身)—①살생(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 ②투도(偸盜 남의 재물을 훔침) ③사음(邪婬 삿된 음행).
〇말(口)—④망어(妄語 거짓말이나 헛된 말) ⑤기어(綺語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⑥양설(兩舌 이간질하는 말) ⑦악구(惡口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〇뜻(意)—⑧탐욕(貪欲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 ⑨진에(瞋恚 성냄) ⓪사견(邪見 그릇된 견해).
*법요식(法要式) ; 불사(佛事-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를 할 때 행하는 의식.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80년 동안거해제(No.118) 법문에서.(1분 32초)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저 뒤에서 쭉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쑥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쑥 내쉰다, 내보낸다’ 이러한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수식관(數息觀) ; 들숨과 날숨을 세어 산란한 마음을 집중시키는 수행법.
*백골관(白骨觀) ; 시신(屍身)의 피부와 근육이 모두 없어져 백골(白骨)만 남아 있거나, 흩어져 있는 모습을 관(觀)하여 몸에 대한 집착을 없애고, 인생무상을 깨닫는 관법(觀法). 고골관(枯骨觀)이라고도 한다. 구상(九想)의 하나.
[참고] 구상(九想) ; 구상(九相)이라고도 한다. 탐욕을 제거하고, 혹업(惑業 무명번뇌와 업)을 멀리하기 위해 사람의 시신(屍身)에 대해 수행하는 9종류의 관상(觀相 깊이 생각에 집중하는 것).
부정관(不淨觀)의 9단계를 말한다.
①시신이 부어 팽창하는 것을 관상하는 창상(脹想).
②바람에 날리고, 햇빛에 쪼여 시신의 색이 변하는 것을 관하는 청어상(青瘀想).
③시신이 부패되는 것을 관하는 괴상(壞想).
④부패를 끝내고 혈육이 땅에 스며드는 것을 관하는 혈도상(血塗想).
⑤시체에서 벌레와 고름이 흘러나오고 살이 흩어져 낭자한 모습을 관하는 농란상(膿爛想).
⑥새나 짐승이 와서 시신을 먹는 것을 관찰하는 담상(噉想).
⑦새나 짐승에게 먹혀 근골두수(筋骨頭手)가 분열, 파산되는 것을 관하는 산상(散想).
⑧육신이 이미 다해 백골만 남게 되는 것을 관하는 골상(骨想).
⑨백골이 불에 태워져, 재로 돌아가는 것을 관하는 소상(燒想).
*사념처관(四念處觀) ; 현장법사(600~664) 이전에 번역한 경전의 번역을 말하는 구역(舊譯)에서는 사념처(四念處)라 하고, 신역에서는 사념주(四念住)라고 함. 사념주관(四念住觀)과 같음.
네 종류의 수행방법. 네 가지의 관상법(觀想法). 네 종류의 마음이 고요해지는 내관(內觀).
신념주(身念住, 身念處) · 수념주(受念住, 受念處) · 심념주(心念住, 心念處) · 법념주(法念住, 法念處)의 네 가지를 마음에 떠올리는[觀] 수행.
 
①신념주(身念住, 身念處) : 부모에게 받은 육신이 부정(不淨)하다고 관하는 것.
②수념주(受念住, 受念處) : 우리의 마음에 낙(樂)이라고 하는 음행·자녀·재물 등을 보고, 낙이라고 하는 것은 참 낙이 아니고, 모두 고통(苦痛)이라고 관하는 것.
③심념주(心念住, 心念處) : 우리의 마음은 항상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고, 늘 변화 생멸하는 무상(無常)한 것이라고 관하는 것.
④법념주(法念住, 法念處) : 위의 셋을 제하고, 다른 만유에 대하여 실로 자아(自我)인 실체(實體)가 없으며, 또 자아가 없으므로 소유도 없다고, 무아관(無我觀)을 하는 것.
 
신·수·심·법(身·受·心·法) 네 가지를 따로따로 관하기도 하고, 신수심법(身受心法)은 부정(不淨)하며, 고(苦)이며, 무상(無常)하며, 무아(無我)라고 총합하여 관하기도 한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횡격막(膜) ; 포유류 가슴  사이 있는 근육으로 이루어진 수축 이완 따라 위아래운동 하여 폐의 호흡 작용 돕는다.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가늘게 쪼갠  갈대 같은   따위 엮어서 만든 가리개.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나찰(羅刹) : 신속하게 땅이나 공중으로 다니면서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무서운 악귀(惡鬼). 나중에 불교의 수호신(守護神)이 되었다.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계첩( 삼가할 계,증명서 첩) ; () 받았다는 증명서.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식이란 말이다。불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지혜 목숨(慧命)을 이어 가고, 법의 집과 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1. 믿음이 종자가 되고,  2. 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3. 선정은 태(胎)가 되고,  4. 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5. 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연비(燃臂) ; 불교에서 수행자가 계(戒)를 받을 때, 팔뚝에 향이나 심지로 불을 놓아 뜨는 의식 또는 그 자국.
*국집(局執) ; 마음이 확 트이지 못하고 어느 한편에 국한(局限), 집착하는 것. 사리(事理)를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에 얽매이거나 자기의 소견만이 옳다고 고집하여 매우 답답한 모습을 말한다.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게송) ‘선악성공여반장~’ ; 卍新纂大日本續藏經 제37책 『사십이장경주(四十二章經註)』 (宋 守遂註 明 了童補註) '제4 善惡並明' 참고.
(본문) 善惡性空 猶如反掌 止惡行善 是順聖道 自性本無殺 持不殺戒 乃至自性本無貪瞋癡 持不貪等戒 八萬四千煩惱 變爲波羅蜜門 隨機差降 分上中下品 具載大經
*습기(習氣) ; 과거의 인식•행위•경험•학습 등이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남긴 기운•잠재력. 종자(種子)와 같음.
*진여자성(眞如自性)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Posted by 닥공닥정
용화선원2015. 2. 7. 14:24

§(098) (게송)약야산중봉자기~ / 용화사에서는 방편설에 그치지 않고 활구참선법을 들려 드린다 / 포대화상, 미륵불의 화현 / 중생심으로 나를 보는 것이 견성 / 일체처 일체시가 바로 부처님 계신 곳, 바로 그 도리 보는 가장 가까운 방법이 ‘이뭣고?’


**송담스님(No.098)—1979년 입춘 법회(79.02.04) (용098) (용화선원)

약 20분.

약야산중봉자기(若也山中逢子期)인대는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냐

나무~아미타불~


만약 산중에서 자기(子期)를 만났다면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리요. 어찌 누런 이파리를 가지고 산아래로 내려갈 것이냐.


자기(子期)라고 하는 사람은 성(姓)은 ‘쇠북 종(鍾)’  종씨인데, 종자기(鍾子期)라고 하는 사람은 저 중국 고대에 요임금 당시 거문고의 이치, 음악의 이치에 달통한 사람입니다.


그때 백아(伯牙)라고 하는 사람이 대단히 거문고를 잘 탔습니다. 백아라고 하는 사람은 아주 거문고를 타기로 아주 통달한 사람인데, 백아라고 하는 사람이 거문고를 떠억 뜯으면 너무 거문고를 잘 뜯고 신묘한 경지에 이르러서 보통 사람은 그 백아의 거문고 타는 것을 능히 감상을 할 줄 모릅니다.

오직 종자기(鍾子期)라고 하는 사람만이 그 백아(伯牙)의 거문고 타는 것을 듣고서, '아! 지금 백아라고 하는 사람이 유유히 흐르는 큰 강물을 생각하면서 거문고를 뜯고 있구나' 또 어쩐 때는 '아! 지금 저 백아가 타는 거문고 소리를 들어보매, 높고 높은 태산준령을 생각하면서 저 거문고를 뜯고 있구나'


그렇게 종자기라고 하는 사람은 백아의 거문고 타는 소리를 듣고, 백아의 마음 소리를 능히 알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종자기라고 하는 사람이 천명(天命)을 다하여 죽게 되자 백아라고 하는 사람은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아니했다고 그럽니다.



부처님께서 삼천년 전에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탄생을 하셔서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출가하셔서 대도를 성취하신 다음 80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실 때까지 49년 동안을 팔만사천 묘법(妙法)을 설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일찍이 종자기와 같은 그러한 사람을 만났다면 어찌 49년 동안이라고 하는 장구한 세월동안 그러한 많은 방편설(方便說)을 설할 까닭이 없었을 것이다. 자기(子期)와 같은 사람을 산중에서 만약 만났다면 어찌 누른 이파리을 가지고 산아래로 내려갈 것이냐?


누른 잎[黃葉]이라 하는 것은 은행잎이나 단풍잎 같은 그런 아주 예쁘고 고운 그러한 단풍잎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린애들을 달랠 때에 노란 또는 빨간 단풍잎을 주면서 ‘여기 있다. 돈, 여기 있다. 돈’ 이렇게 우리는 어린애들을 곧잘 달래는 것입니다.


방편설이라고 하는 것은 필요 불가결(不可缺)한 것입니다. 꼭 필요한 것입니다.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린애를 달랠 때에 사탕 같은 것이 있으면 다디단 사탕을 입에다 넣어 줘서 달래기도 하고, 사탕이 없으면 무슨 노란 이파리나 그렇지 아니하면 무슨 조그만한 돌멩이라도 집어 줘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무슨 장난감 같은 것도 집어 줘서 잠시라도 어린애의 울음을 달래는 경우를 엄마들은 얼마든지 경험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방편, 또 동지 법회, 입춘 법회, 칠성 법회, 사월 초파일 관등(觀燈) 법회, 이런 법회가 노란 이파리를 가지고 어린애 울음을 달래는,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방편설, 이것이 모두 일맥상통(一脈相通)한 점이 있는 것입니다.


마침내 노란 이파리만 가지고 달래 봤자 어린애는 잠깐 울음을 그쳤을 뿐, 배가 고픈 허기(虛飢)는 완전히 가시질 않은 것입니다. 다시 또 울음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에서는 일양(一樣)으로 노란 이파리만 가지고 여러분의 울음을 달래는데에 그치지를 아니하고, 정말 입에 넣어서 먹으면 배가 부를 수 있는 영양제를 여러분에게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전국 각 사암에서는 입춘 불공이라 해 가지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특히 입춘이 들은 시간을 기해서 불공(佛供)을 드리고 굉장히 복잡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용화사에서는 입춘에 이렇게 최상승 활구법문(活句法門)을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경청을 했습니다.


한 시간 두 시간, 새벽부터 저녁까지 목탁을 치면서 여러분이 일 년 동안 무장무애하시고 복을 많이 받도록 그렇게 간곡히 불공을 드린 것과 이렇게 경건한 자세로 활구참선법을 들은 것과 비교를 해보시면, 조금이라도 뜻이 있으신 분은 능히 어느 것이 정말 올바른 불법(佛法)이고, 어느 것이 정말 우리를 영원히 복되게 하고, 행복하게 할 수가 있는 것인가를 충분히 이해하시고 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오늘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최초에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에 대해서 말씀이 계셨고, 그다음에는 포대화상(布袋和尙)에 법문을 하셨습니다.


포대화상은 중국 당나라 시대에 중국에 출현하신 이름도 성도 모르는 고향이 어딘지 그것도 알 수 없는 그러한 도인(道人)이 계셨습니다. 다못 큰 포대(布袋), 자루를 항시 어깨에다가 메고 다니시면서 사람만 만나면 손을 내밀면서 무엇이고 달라고 그랬습니다.


누가 무엇을 먹고 있으면 ‘나 좀 달라’고 해 가지고, 주면은 한입 뚝 비어 먹고 나무지기는 자루 속에다가 퐁 집어넣고, 그저 고기가 되었건, 과일이 되었건, 떡이 되었건, 닥치는 대로 얻어서 먹고 집어넣고, 얻어서 먹고 집어넣고, 자루 속에서 배고프면 꺼내 먹고, 썩거나 말거나. 누구든지 만나면 ‘나 돈 한푼 달라’고, 돈 한푼 주면 자루 속에다 탕 집어넣고.

‘너! 모레 물가에 가지 말아라’ ‘너! 이달 보름께는 차를 타지 말아라’ ‘너 내일 저녁에 니 마누라하고 싸우지 말아라’ 무엇이고 한마디 딱! 일러줍니다. 그러면 그 점이 백발백중 맞았습니다.


그리고 비가 오려고 하면은 나막신을 신고 줄달음질을 치고, 날씨가 좋은 날은 짚신을 신고 돌아다니고, 그래서 포대화상이 무슨 신을 신었는가 볼라면 일기(日氣)를 미리 알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과학 기구를 사용해서 기상대(氣象臺)에서 일기 예보를 해도 혹 맞기고 하고, 안 맞기도 하고 합니다마는 포대화상 발만 보면 백발백중이었습니다.


포대화상이 생존 시에는 아무도 그이가 도인(道人)이라고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었지만, 돌아가신 뒤에사 비로소 그분이 56억 7천만 년 뒤에 염부제(閻浮提)에 미륵불(彌勒佛)로 출현하실 부처님의 권화신(權化身)이라고 하는 것을 선지식(善知識)들은 짐작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 그 미륵불은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미륵보살(彌勒菩薩)로서 지금 머물러 계십니다. 56억 7천만 년 후에 미륵불로 출현하시지마는 그때까지는 너무너무 세월이 많기 때문에 우두커니 거기에 계시지를 아니하고 가끔가끔 보살로서, 보살의 몸으로 화현(化現)해 가지고 인연 따라 중생을 교화하시게 되는데, 그 경우에 한 경우가 바로 포대화상으로 출현하신 것이 되겠습니다.


어째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화현으로 나투시려면 누가 보든지 존경할 수 있고 거룩하고 위대한 그러한 몸가짐과 행실로써 출현을 하시지 아니하고, 몸뚱이는 비대해 가지고 배가 소 배만큼 불러 가지고, 여러분이 사진을 통해서 포대화상의 모습을 짐작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배는 장구통 배아지에다가, 항시 배는 떠억 배꼽까지 다 내놓고 남자이지만 유방이 여자 유방처럼 그렇게 양쪽에 드리워진 채,

자루를 하나 짊어지고 슬슬 거리로 다니면서 걸식을 하시면서 그러니까 어린이들이 항시 뒤를 따라 다니면서 올라타고 옷을 잡아당기고 같이 친구가 되었다가 유시에는 놀려댔다가, 이렇게 하면서 포대화상은 어린애로 더불어 벗 삼아서 울다가 웃다가 하면서 세월을 보내시되, 인연 따라서 점도 쳐주고 때로는 역행(逆行)과 순행(順行)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시면서 중생 교화를 하셨습니다.


그때 ‘야야포불면(夜夜抱佛眠)이요’ 아까 조실 스님께서 읊으신 ‘밤마다, 밤마다 부처를 안고 자고, 아침마다 또한 같이 일어난다[朝朝還共起]. 밤에 잘 때에는 부처님을 떠억 끌어안고 자다가 아침에는 그 부처님하고 같이 일어난다'


‘욕식불거처(欲識佛去處)인댄’ 네가 지금 그 어젯밤에 끌어안고 자고, 아침에 일어날 때 같이 일어났던 그 부처님 간 곳을 알고자 할진대는, '지자어성시(只這語聲是)니라. 지금 이 말하는 이놈이니라'

이 게송(偈頌)은 지극히 쉬운 글이지마는 이 쉬운 한마디의 게송을 똑바로 마음에 얻는다면 바로 자기의 부처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견성성불(見性成佛)한다, 견성성불’ 누구나 입에 거는 말이지만. '성품(性品)을 보고 성불(成佛)을 한다' 중생심(衆生心)을 떠나서는 성품을 볼 수가 없는 것이고, 중생심을 떠나서는 성불할 기약이 없는 것입니다.

천하 없이도 희노애락(喜怒哀樂) · 탐진치(貪瞋癡) 이것이 모다 오욕락(五欲樂), 전판 다 중생심으로 이루어진 중생심의 표현이지마는 그 중생심 여의고는 견성(見性)할 도리도 없는 것이고, 성불(成佛)할 기약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잠시도, 잠시도 여읠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중생심입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말하고, 손으로 글씨 쓰고 일하고, 발로 걸어 다니고, 성냈다, 웃었다, 울었다 하는 이것이 전부 중생심의 발로(發露)인데 그 중생심 떠나서 ‘참나’ 찾을 길은 없는 것입니다.

바로 그 중생심 버리지 아니하고, 중생심에서 중생심으로 나를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견성(見性)입니다.


그 가장 단적이고 가까운 것이 '부처 간 곳을 알고자 할진대는 바로 이 말하는 이놈이니라'

어찌 하필 말하는 놈일 뿐이겠습니까. 귀로 듣는 놈, 눈으로 보는 놈, 손으로 만지는 놈, 발로 차고 걷는 놈, 성내고 웃고 우는 놈, 일체처 일체시가 바로 부처님 계신 곳이요, 바로 그 도리 보는 가장 가까운 방법이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한번 드는 곳에 팔만사천 마구니가 물러가는 곳이요, 소멸하는 곳이요, 일체 재앙(災殃)과 액난(厄難)이 소멸되는 때인 것입니다.(처음~19분4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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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若也山中逢子期 豈將黃葉下山下’ ; 『태고집(太古集)』 (雪栖 편, 김달진 역주 | 세계사) '석가 출산상(釋迦出山相)' p229 참고.

*지음(知音) ; ①음악의 곡조를 잘 앎. ②새나 짐승의 소리를 가려 잘 알아들음. ③마음이 서로 통하는 친한 벗을 이르는 말.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가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듣고 악상(樂想)을 잘 이해해 준 벗 종자기(鐘子期)가 죽자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아는 자가 없다고 하여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열자(列子)』에 나오는 말.

*천명(天命) ; ①타고난 수명. ②타고난 운명. ③하늘의 명령.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대도(大道) ; ①부처님의 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각(覺). 보리(菩提).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묘법(妙法) ; ①심원미묘(深遠微妙)한 도리. 특별한 진리. ②바른 이법(理法). ③뛰어난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고귀한 가르침.

*묘(妙) ; (산스크리트어) sat, su, mañju. 차례대로, 살(薩) · 소(蘇) · 만유(曼乳) 등으로 음사하고, 불가사의한 것, 절대적인 것, 비교할 수 없는 것 등의 뜻이 있다.

뛰어난 경전을 묘전(妙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법을 묘법(妙法), 불가사의한 도리를 묘리(妙理), 불가사의한 경계를 묘경(妙境), 묘인(妙因)과 묘행(妙行)에 의하여 증득한 과(果)를 묘과(妙果)라고 한다. '묘(妙)'라는 말은 불가사의하고 뛰어난 모든 것을 형용하기 위해 사용된다.

*방편설(方便說 방법·수단 방/편할 편/말씀 설) ; 실상(實相)으로 이끌어 가기 위하여 상대와 조건에 알맞는 방법을 설정하여 말하는 것.

*실상(實相) ; ①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변하지 않는 진리. ③집착을 떠난 청정한 성품.

*불가결(不可缺) ; 없어서는 안 됨.

*관등(觀燈 볼 관/등 등) ; 등(燈)을 밝히고 봉축(奉祝 공경하는 마음으로 축하함)하는 행사. 연등(燃燈)과 같은 말. 주로 음력 사월 초파일에 행하였으며, 이 날을 관등절, 그 놀이를 관등놀이라고 하였다. 집집마다 등을 달고, 관청, 시장 거리의 가게, 절 등에서 등대를 세워 등을 달아 부처님의 탄생을 봉축하였다.


오늘날에는 이 날을 '부처님 오신날'이라 하여 국가공휴일로 정하고 밤에는 수많은 신도들이 등을 들고 거리를 돌면서 제등행렬(提燈行列)을 한다.

요즈음에는 특별한 사찰의 행사 때에도 때때로 관등을 하며, 천등불사 · 만등불사 등 관등 위주의 행사를 한다. 그 기원은 통일신라 때 행해졌던 팔관회(八關會)이다.

*일맥상통(一脈相通 한 일/줄기·맥 맥/서로 상/통할 통) ; 사고방식이나 성질 등이 두 대상 간에 어느 면에서 한 가지[一脈]로 서로[相] 통(通)하거나 비슷해짐.

*허기(虛飢 빌 허/주릴·굶주림 기) ; 굶어서[飢] 속이 비어[虛] 몹시 배가 고픔.

*일양(一樣) ; ①한결같은 모양. 또는 같은 모양. ②한결같이 그대로. 또는 꼭 그대로.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 · 등(燈) · 꽃 · 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활구(活句) ; 깨달음은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량분별이 끊어짐으로 해서 깨달음에 나아갈 길이 열리는 것이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거각하면 일부러 사량분별을 끊을려고 할 것도 없이 끊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활구(活句)라 한다.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라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 刊) p49~52. (가로판 p50~53)

大抵學者는  須參活句언정  莫參死句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모름지기 활구(活句)를 참구할지언정,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지어다.


<註解> 活句下에  薦得하면  堪與佛祖爲師요,  死句下에  薦得하면  自救도  不了니라.  此下는 特擧活句하야  使自悟入이니라. 【 要見臨濟인댄  須是鐵漢이니라


활구(活句)에서 얻어 내면 부처나 조사의 스승이 될 만하고, 사구(死句)에서 얻는다면 제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아래는 특히 활구(活句)를 들어 스스로 깨쳐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 임제를 친견하려면 쇠뭉치로 된 놈이라야.


<評曰> 話頭에  有句意二門하니  參句者는 徑截門活句也니  沒心路沒語路하며  無摸索故也요,  參意者는  圓頓門死句也니  有理路有語路하며  有聞解思想故也라.


평해 가로되, 화두(話頭)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참구는 경절문 활구(徑截門活句)니,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말 길도 끊어져서 더듬고 만질 수가 없는 때문이요,

참의라 하는 것은 원돈문 사구(圓頓門死句)니, 이치의 길도 있고, 말의 길도 있으며, 들어서 알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절문(徑截門) : 지름길문. 교문(敎門)의 55위(位) 점차(漸次)를 거치지 않고 한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원돈문(圓頓門) : 원교(圓敎)와 돈교(頓敎)가 교문(敎門)에 있어서는 가장 높고 깊은 이치를 가르친 바이지만, 말 자취가 남아 있고 뜻 길이 분명히 있어서 참으로 걸림 없는 이치를 완전히 가르친 것이 못된다. 오직 조사선이 있을 뿐이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포대화상(布袋和尙) ; 중국 후량(後梁) 때의 스님. 절강성(浙江省) 명주(明州) 봉화현(奉化縣) 출신. 자기가 자칭하는 이름은 계차(契此)였다. 체구가 비대하고, 이마에 주름이 잡히고, 배가 불룩하고, 말이 일정하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자고 누웠다.

항상 지팡이에 베자루 하나를 걸어 메고, 소용되는 물건은 모두 그 속에다 넣었다. 저자나 마을에 들어갔다가 물건을 보면 달라고 하여, 먹을 것은 무엇이나 주기만 하면 받아 먹으면서 조금씩 나누어 그 자루에 넣곤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별호를 지어 장정자(長汀子) 또는 포대화상(布袋和尙)이라고 불렀다. 혹 사람들에게 무엇을 달라 했다가 돈을 주면 돌려 주었고, 남에게 길흉을 예언해 주면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916년 3월에 명주 악림사(嶽林寺) 동쪽 행랑 밑의 반석 위에 단정히 앉아서 게송을 읊었다.


미륵진미륵(彌勒眞彌勒)  분신천백억(分身千百億) 시시시시인(時時示時人)  시인자불식(時人自不識)

미륵 부처님, 참 미륵 부처님이 분신(分身)해서 천백억 부처님이 되었다. 때때로 당시 사람들에게 보이되, 당시 사람들이 스스로 아지를 못하는구나.


게송을 마치고 편안히 앉아서 떠났는데, 그 뒤에 다른 고을 사람들은 여전히 대사가 포대를 메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이에 사람들은 포대화상을 미륵 보살의 화현(化現)이라 하여, 그 모양을 그려서 존경하여 받드는 사람이 많았다 한다. [참고] [전등록 3] (제27권) (동국역경원 | 김월운 옮김) p459-463 참고.

*비다 ; '베다(사람이 과일을 입으로 끊거나 자르다)'의 사투리.

*나무지기 ; ‘나머지’의 사투리.

*기상대(氣象臺) ; 기상(氣象 바람, 구름, 비 등 대기 중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관측, 통보하거나 또는 조사, 연구하기 위한 시설. 또는 그 기관.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염부(閻浮) ; 염부제(閻浮提). 남염부제(南閻浮提). 섬부주(贍部洲). 남섬부주(南贍部洲).

산스크리트어 jambu-dvīpa의 음사. 염부(閻浮), 섬부(贍部)는 jambu의 음역어이며, 제(提)와 주(洲)는 dvipa의 각각 음역어 및 의역어이다. jambu는 나무 이름.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수미산(須彌山)의 사방에 네 대륙(四洲)이 있는데, 염부라는 이름은 여기에 자란다는 점부(jambu)에 유래하며, 남방에 있기 때문에 남섬부주(南贍部洲)라고 한다.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라 하며, 여러 부처님이 나타나는 곳은 사주(四洲) 가운데 이곳뿐이라 함. 불전에서는 인간세계의 전체를 의미하는 말로서 사용되고 있다.

*미륵불(彌勒佛)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권화신(權化身) ; 불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로 변하여 나타난 몸.

*권화(權化) ; 산스크리트어  avatāra ①불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몸이나 모양으로 변하여 나타나는 것. 권현(權現) · 화현(化現) · 응현(應現)이라고도 한다. ②화신(化身)과 같음.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도솔천(兜率天)은 욕계(欲界) 육천(六天)의 넷째 하늘로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호명(護明) 보살의 이름으로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로서 여기에 있으면서 하늘나라 사람들을 제도하며 남섬부주에 하생(下生)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이 보살이 불교의 33천 중 도솔천에 머무는 이유는 중생을 구제하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도솔천은 아래로는 사천왕(四天王) · 도리천(忉利天) · 야마천(夜摩天)이 욕정(欲情)에 잠겨 있고, 위로는 화락천(化樂天) ·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 들뜬 마음이 많은데 비해 도솔천은 잠기지도 들뜨지도 않으면서 오욕락(五慾樂)에 만족한 마음을 냄으로, 다음에 성불할 보처(補處)보살이 머문다고 한다.

도솔천의 수명은 4천 세라 하고, 도솔천의 하루는 인간의 4백 세라 하였으니, 도솔천의 수명을 인간 수명으로 환산하면 인간의 5억 7천 6백만 년에 해당하지만(4천 x 3백 6십, 1년 x 4백 = 5억 7천 6백만), 고대의 기수법(記數法)에 따르면 57억 6천만 년이라고 한다.


도솔천에 왕생할 수 있는 인연은 ①끊임없이 정진하고 많은 공덕을 쌓은 자. ②탑을 깨끗이 하고 좋은 향과 아름다운 꽃을 공양한 자. ③여러 가지 삼매(三昧)로써 깊은 선정(禪定)을 닦은 자. ④경전을 독송하는 자. ⑤번뇌를 끊지는 못하였지만 지극한 마음으로 미륵을 염불하는 자. ⑥팔계(八戒)를 받고 청정한 행을 익히며 사홍서원을 잊지 않는 자. ⑦널리 복업(福業)을 닦는 자. ⑧계를 어기고 악을 범하였어도 미륵보살의 자비로운 이름을 듣고 정성껏 참회하는 자. ⑨미륵보살의 이름을 듣고 그 형상을 만들어 향과 꽃, 깃발로 장식하고 예배하는 자 등이다.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 : 오직 한 번만 생사(生死)에 관련되고, 일생을 마치면 다음에는 부처님이 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보살.

*일생보처(一生補處) : 일생(一生)은 '한 번 난다'는 뜻이니, 한 번 다른 지위에 난 뒤면 부처님의 지위에 오른다는 뜻. 보처(補處)는 후보(候補)의 자리[處]라는 뜻임.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중생심(衆生心) ; ①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가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②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진여심(眞如心). ③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전판(全판) ; 하나도 남김이 없는 전부.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品)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발로(發露 드러내다·밝히다 발/드러내다 로) ; 숨은 것이 겉으로 드러나거나 숨은 것을 겉으로 드러냄. 또는 그런 것.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마구니 ; 마(魔). [범] mā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64에서. (가로판 p66~67)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재앙(災殃 재앙 재/재앙 앙) ; 뜻하지 않게 생긴 불행한 변고(變故). 또는 천재지변으로 말미암아 생긴 불행한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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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입춘기도)2015. 2. 4. 11:23

§(257) 아육왕의 마지막 과일 반 조각 보시 / 보시의 공덕—재앙을 소멸케 한다 / 삼재를 소멸하고 예방하는 근원적인 길은 참선 정진 / (게송)인생백년정하허~.

육바라밀(六波羅蜜) 첫째에 보시라고 하는 항목이 있는 것은, 도에 들어가는 첫 단계가 욕심을 버리는 것이여. 보시는 자기 마음을 비우게 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인 것이며, 모든 재앙을 소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입니다.


‘본래 생사가 없으며, 복과 죄가 없는 것이다’하는 정법의 말씀을 믿고서 한 생각 돌이켜서 좋은 일을 당해도 화두를 들고, 궂은일을 당해도 화두를 들고,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화두(話頭)를 들고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는 것이야말로 삼재를 소멸하고 예방하는 가장 근원적인 길이라고 감히 단언(斷言)을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57)—85년 입춘법회(85.02.04) (용257)

 

(1) 약 19분.

(2) 약 13분.


(1)------------------

아육왕(阿育王)은 부처님 당시에 어린아이로써 길에서 소꼽장난을 하다가 모래와 흙으로 성을 쌓고 길은 닦고 그러다가 부처님이 지나가시는 길에 부처님께 그 길을 터 드리면서 ‘어서 이리 지나가십시오’하고 길을 내드렸습니다.

소꼽장난을 하면서 부처님께 길을 닦아드리는 그 공덕으로, 부처님께서는 ‘앞으로 백년 후에 너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될 것이다’하고 수기(授記)를 주셨습니다.
전륜성왕은 무력으로써 천하를 통일한 것이 아니라 불법(佛法)으로써 천하를 통일하는 위대한 왕을 갖다가 천자를 전륜성왕이라 하는데, 전륜성왕도 부처님과 똑같이 32상(三十二相)을 갖추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 아육왕이 과연 부처님 열반하신 뒤, 백년 만에 인도에 태어나서 전 인도를 갖다가 통일을 하고 불법으로써 인도 천지를 다스린 그런 성군(聖君)이었던 것입니다.

그 아육왕이 국토를 순례하며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네팔(Nepal)에 들렸을 때에 부처님의 탄생지인 그 룸비니(Lumbini) 동산에 높은 돌기둥 탑을 세우고 거기에다가,
「여기는 부처님께서 탄생한 곳이니 이 지방 사람들에게는 세금을 면제해 주어라」하는 그러한 칙어(勅語)를 돌에 새겨놨습니다. 그 돌기둥 탑과 그 돌에 기록한 비문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성지 순례로 가셨던 분들은 그것을 직접 볼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 아육왕은 일생동안 그렇게 많은 보시를 행하고, 불법을 옹호하고, 불법으로써 부처님 진리로써 천하를 다스렸습니다. 그러자 그 아육왕은 마침내 병을 앓아눕게 되었습니다.

병을 앓고 눕게 되자 보시하려는 마음이 더욱 높아져가지고 밤으로 낮으로 황금 뭉탱이를 계원사(鷄園寺)라 하는 절로 갖다가 바쳤습니다.
절을 고치시도록 보내고, 대중공양을 하시라고 보내고, 그저 계속 날이면 날마다 황금을 보내기를 그치지 안했습니다.

그때에 불법을 잘 믿지 아니한 한 대신이 태자에게 권해 가지고, 그때 태자(太子)는 삼파지(三波地)라고 하는 태자인데,
그 태자에게 권해서 그 황금을 쌓아둔 창고 문을 굳게 닫고 황금을 내가지 못하도록 엄중하게 그 창고 문을 갖다가 지키게 했던 것입니다.

아육왕은 계속해서 그 황금을 갖다 바치라고 했지만, 그 무서운 위력을 가졌던 전륜성왕도 병이 들어 앓아눕게 되자 그 왕의 명령은 시행이 되지를 못했습니다. 그때에 왕은 점점 기력은 쇠해져 갔습니다.
왕은 게송을 읊기를,

금아아육왕(今我阿育王)이  무부자재력(無復自在力)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유반암마륵(唯半菴摩勒)이  어아득자재(於我得自在)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금아아육왕(今我阿育王)이 무부자재력(無復自在力)이다. 이제 나 아육왕이 아무런 자재력이 없구나. 아무 힘이 없구나.
오직 암마륵 반 조각에, 암마륵 과실만이 나에게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손에—암마륵이라고 하는 인도에서 나는 과일인데, 그 암마륵 과일 반 조각 밖에는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밖에 없구나.

이런 처량한 게송을 읊고서, (아육왕을) 모시고 있는 신하를 시켜서 그 반 조각 암마륵 과일을 계원사로 보내드렸던 것입니다.
계원사 원주스님은 그 반 조각의 조그마한 암마륵 과일을 갈아서 가루로 만들어가지고 죽을 쑤는데 그것을 섞어 가지고 여러 대중이 고루고루 그것을 공양을 했던 것입니다.

그 인도를 통일해 가지고 날으는 새도 떨어뜨리는 그러한 위대했던 아육왕도 늙어서 병이 드니까 그리고 그 권한이 태자에게로 돌아가니까 아무 힘이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창고에는 산더미 같은 황금이 쌓여 있고, 칠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곡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하더라도 늙고 병들면 이미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시(布施)라 하는 것은 언제나 바로 그때그때에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보시,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행하는 보시, 돈이 없어 병을 치료 못하는 그러한 사람에게 보시, 수행하는 스님네에게 보시,
그러한 보시는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부자면 부자 대로 언제나 그때그때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많이 돈을 벌어서 하리라’하면 그때는 자기의 뜻대로 되어지지 아니한 것입니다.
왜 그때그때 하지를 못하고 ‘나중에 많이 벌어서 하리라’하는 생각을 내느냐 하면, 엄격하게 말하면 하나의 욕심인 것입니다.

(녹음 끊김) ...하기보다는 이 작은 돈을 잘 굴려서 큰돈을 만들어 가지고 나도 잘살고, 그때 여유가 있으면 마음껏 보시를 하리라. 이것은 어리석고 탐심에서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이것을 해 버리면 뭘 먹고 살며, 장사는 무엇으로 하며, 사업은 무엇으로 하느냐?
그러니 이때에 할 것이 아니라 이것은 우선 먹어야 하고, 장사를 해야 하고, 사업을 해서 큰돈을 벌어 가지고 그때 해도 늦지 아니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갖기 때문에 그때그때 분(分) 따라서 할 수 있는 보시를 뒤로 미루고 못하게 되어서, 씨를 뿌리는 계절을 놓치기 때문에 정당(正當) 수확을 해야 할 가을철에 가서는 거둘 것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인가도 말했지만 잔치 때 쓰기 위해서 우유를 짜지 아니하고 한 달 내 두었다가 잔칫날 짜려고 보니까 젖이 말라서 별로 많이 나오지 못했다고 하는 비유경(譬喩經)의 말씀을 했습니다만은,
젖은 매일매일 짜야 젖이 더욱 더 잘 나오는 것입니다. 짜지 않고 한 달 내 놔두면 젖이 밭아 버리고, 한 달 동안 모인 젖이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욕심과 탐심 그리고 어리석은 마음으로 보시할 줄을 모르고 자꾸 쌓아 모으려고만 할 때에 인정사정없이 남을 해롭게 하게 되고, 남에게 원한을 사게 하는 결과로 돌아오는 것은,
원수와 원수의 결과로 재앙을 끌어드리는 그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육바라밀(六波羅蜜)에 첫째에 보시라고 하는 항목이 있는 것은, 도에 들어가는 첫 단계가 욕심을 버리는 것이여.
보시는 자기 마음을 비우게 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인 것입니다. 모든 재앙을 소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입니다.

보시는 재보시(財布施)가 있고, 법보시(法布施)가 있습니다.
재물, 자기에게 있는 금은전보(金銀錢寶)와 의복과 먹을 음식, 그런 물질로 보시하는 법이 있고, 법을 설해서 법으로 보시하는 법이 있습니다. 또 물질로도 하고 마음으로 보시할 수도 있습니다.
보시의 형태는 크고 작은 것과 유형무형의 여러 가지 의미의 보시가 있습니다.

어떠한 형태의 보시도 보시는 자기의 마음 비우게 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모든 업(業)의 종자(種子)를 소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다가올 모든 재앙을 미리 막는 가장 좋은 슬기로운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보시를 통해서 자기를 비우게 하는 그러한 항목이 바로 보살도(菩薩道)의 육바라밀의 첫째 항목에 넣어 놓은 것은 너무너무 부처님께서 설정을 잘해 주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가 하나도 빠뜨릴 수 없는 그러한 조항이지만 보시를 첫 꼭대기에다 넣은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너무 절실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중생은 무엇이던지 탐심과 욕심으로서 자꾸 쌓아 모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 마음을 깨뜨려 버리고 비움으로써 지혜로 나아가는 첫 단계가 되기 때문에 보시는....

부처님이 아무리 안 잡수어도 법당의 부처님이 배고프다고 하신 법이 없습니다. 부처님은 떡을 갖다놔도 한 덩어리도 잡수지 않습니다. 아무리 마지(摩旨)를 짓고, 공양을 올려도 잡수지 않습니다.

우리 중생으로 하여금 보시의 공덕으로서 마음을 비우고, 탐심과 욕심을 비우고, 모든 재앙을 소멸케 하려는 부처님의 자비로운 방편(方便)인 것입니다.
보시를 행하면 죽을 운수(運數)도 때우는 것이고, 어려운 재앙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31분30초~50분4초)

 

 



(2)------------------

보시를 하지 아니하고 욕심껏 쌓아 모으다가 그 돈을 한푼도 쓰지 못하고 목숨을 잃게 된 사람도 적지 않는 것입니다.

늙어서 쓰기 위해서—젊어서는 쓰더라도 또 벌게 되니까 또 쓰고 벌고 그러다가도,
나이가 50이 넘고, 60이 넘으면 이제는 내가 돈도 벌 수 없고 이 돈 떨어지면 어디서 돈이 있어서 쓸 것인가, 돈이 떨어지면 이제는 나는 물이 말라버리는 고기와 같아서 꼼짝을 못할 것이다.

이래가지고 쌓고 또 쌓고 해가 지고 영판 한번 들어가면 나올 줄을 모르고 쓰지를 않고 있다가, 죽은 뒤에 보면 돈 뭉텅이가 10번, 20번 쌓고 쌓은 뭉텅이가 나와, 이러한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구들장을 파고 구들장 밑에다가 항아리를 묻고 돈을 갖다가 몇백만 원을 묻어 놓고서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죽었는데 그 구들장 위에 방석을 놨는데 방석이 뜰썩 뜰썩해서 보니까 큰 구렁이가—그 죽은 사람이 업이 되어가지고, 그 업(業)으로 구렁이가 되어가지고 자기가 묻어놨던 그 돈 항아리에 애착을 끊지를 못해 가지고,
그 방석 밑에 또아리를 틀고 혀를 널름널름, 이것은 몇십여 년 전에 어떤 절에서 있었던 실화인 것입니다.

죽은 뒤에 구렁이가 되어가지고 그 위패 모신 상에 구렁이가 되어가지고 있었다는 얘기며, 그 구렁이를 집어 버려 그 구렁이를 따라가니까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는 그런 설화도 있습니다마는,

삼재(三災)를 면하려면 부적(符籍)을 갖다가 붙이고, 무슨 액막이를 하고 그러기 보다는 삼재를 든 분은 보시를 행하는 것, 그리고 방생(放生)을 하고 보시를 하는 것, 이런 것이 차라리 훌륭한 지혜로운 방편이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방편이 아니라 가장 근원적인, 근원에서 해결 짓는 방법은 ‘본래 생사가 없으며, 복과 죄가 없는 것이다’하는 정법의 말씀을 믿고서 한 생각 돌이켜서 좋은 일을 당해도 화두를 들고, 궂은일을 당해도 화두를 들고,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화두(話頭)를 들고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는 것이야말로 삼재를 소멸하고 예방하는 가장 근원적인 길이라고 감히 단언(斷言)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입춘 법회가 끝나면 점심공양도 하시지 않고 어디를 가시는지 급히 문밖으로 도망치듯이 빠져나갈 분들이 상당수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틀림없이 한 장에 5만 원, 10만 원, 20만 원 하는 부적을 사러 점쟁이나 무당집으로 쫓아가실 것입니다.

부적 한 장으로 재앙을 막고, 자기가 지은 업장(業障)을 소멸할 수 있다면 우리 용화사에서도 부적을 몇만 장이라도 찍어 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을 위안하는데는 도움이 될는지 모르지만 그것으로써 삼재가 면해질 까닭이 없습니다.

내가 지은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받게 됩니다.
기왕 받을 바에는 우리는 받으면서 새로운 원수를 맺을 것이 아니라, 받으면서 오히려 자기의 과거 죄를 진정으로 참회하고,
받으면서 오히려 위대한 스승을 만나고 불보살을 만난 그런 기분으로 그것을 받아서 소화를 시킨다면, 깨끗이 받아서 해결 짓고서 새로운 광명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받으면서 새로운 원수를 또 이중 삼중으로 맺어나가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것이 너무너무 다행한 인연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인생백년정하허(人生百年情何許)인고  영별유유갱대상(永別悠悠更對床)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요지백운귀거로(遙指白雲歸去路)에  원산점점천창창(遠山點點天蒼蒼)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인생 백년이 그 정(情)이 얼마나 되는가?
영별유유갱대상(永別悠悠更對床)이다. 영원히 이별한—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 이별을 하는 이 광경, 다시 또 이렇게 서로 상(床)을 앞에 대하게 된다.

요지백운귀거로(遙指白雲歸去路)에, 저 아스라니 가리키는 흰구름 돌아가는 길에, 먼산은 점점(點點)하고 하늘은 푸르르구나.

월송거사 양준호 영가. 잠시 인간 세상에 태어났다가 24세를 일기로 홀연히 떠나갔는데,
잠시 와서 그 부모와 가족들에게 무상의 도리를 일깨워 주고, 일가친척과 모든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이 몸뚱이는 허망한 것이고, 인생은 허망한 것이고, 부귀와 공명도 한낱 뜬구름과 같다고 하는 것을 역력히 보여주고,

그리고 다시 인연 따라서 극락세계나 도솔천 내원궁에 태어나기를 바라며,
다행히 이 사바세계에 인연이 있어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한다면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다 같이 도를 닦는 도반이 되어줄 것을 기약하고 다짐하노라.

오늘 입춘일을 맞이해서 이 법회에 참석하신 신남신녀 여러분,
함께 이 법석(法席)을 같이 하는 인연으로 과거 무량세에 지었던 모든 죄업은 봄눈 녹듯이 소멸하시고, 앞으로 크고 작은 모든 소원이 뜻대로 이루어지시기를 간절히 부처님께 축원하면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점심공양은 월송거사 양준호 영가의 명복(冥福)을 빌기 위해서 공양(供養)을 올리게 됩니다.
영가의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맛있게 공양을 해주시고, 일 년 내내 건강하시고, 삼재가 드신 분도 아무 탈이 없이 오히려 모든 일이 더욱 뜻대로 이루어지시기를 축원(祝願)합니다.(50분6초~62분20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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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육왕(阿育王) ; 산스크리트어 aśoka 팔리어 asoka의 음사. 무우(無憂)라고 번역.
찬드라굽타(candragupta)가 마가다국(magadha國) 난다(nanda) 왕조를 무너뜨리고 세운 마우리야(maurya) 왕조의 제3대 왕으로 인도 남단부를 제외한 전 인도를 통일함. 재위 기원전 270년경-230년경.

즉위 8년에 인도 북부 동해안의 뱅골만에 위치한-오늘날 오릿사주의 대부분-깔링가국과 전쟁을 벌여 승리하였으나, 전쟁으로 인한 사람들의 살육, 사망, 이주의 대 참상을 매우 괴로워하고 비통하게 여겨, ‘무력의 정복’을 버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비폭력과 정의에 기초한 ‘다르마(法)의 정복’으로 전환하였다.

아육왕의 주선으로 도읍지인 화씨성(華氏城)의 아육승가람(阿育僧伽藍)에서 1,000여 명의 비구들이 제3차 결집(結集)을 행하여,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을 정리함. 불교에 귀의하여 수많은 탑과 사원을 세우고, 수많은 사절들을 인도 전역에 파견하여 불교를 전파함. 특히, 자신의 아들 마힌다(mahinda)와 딸 상가밋타(saṅghamittā)를 스리랑카에 파견하여 그곳에 불교를 전함.
왕은 자신의 뜻과 행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암벽(바위)에 또는 석주(石柱 돌기둥)에 칙령(勅令)을 새겨 세웠다. 왕이 죽은 후, 마우리야 왕조는 서서히 분열되어 기원전 180년경에 멸망함.
*전륜성왕(轉輪聖王) ; 산스크리트어 cakravarti-rāja 인도 신화에서, 칠보(七寶)를 갖추고 정법(正法)으로 수미산(須彌山)의 사방에 있는 대륙을 다스리는 왕.
32상(相:신체의 특징)·7보(寶)를 갖추고, 무력에 의하지 않고 정법에 의해 세계를 정복·지배한다고 한다.
하늘로부터 받은 윤보(輪寶)를 굴려 모든 장애를 물리친다고 함. 윤보에는 금·은·동·철의 네 가지가 있는데, 금륜보(金輪寶)를 지닌 금륜왕(金輪王)은 네 대륙을 다스리고, 은륜보(銀輪寶)를 지닌 은륜왕(銀輪王)은 세 대륙을, 동륜보(銅輪寶)를 지닌 동륜왕(銅輪王)은 두 대륙을, 철륜보(鐵輪寶)를 지닌 철륜왕(鐵輪王)은 한 대륙을 다스린다고 함.
전통적으로 인도 마우리아왕조의 아쇼카왕[阿育王](BC 3세기)을 세속의 전륜성왕이라고도 말한다.
*수기(授記) ; 부처님이 불법에 귀의한 중생에게 어느 시기, 어느 국토에서 어떤 이름의 부처로 태어날 것이며, 그 수명은 얼마나 될 것이라는 것 등을 낱낱이 제시하면서, 미래세의 언젠가는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라고 알려 주는 것을 말한다. 또는 부처님이 중생에게 기별(記別)을 주는 것을 말한다.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룸비니(Lumbinī) ; 불교의 창시자인 고타마 싯다르타(Gotama Siddhārtha), 즉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가 탄생한 곳으로 네팔 남동부 테라이(Terai) 지방, 바이라와(Bhairawa)의 서방에 있다. 석가족(샤카족)의 도읍 카필라바스투의 유적이 약 16km 서쪽에 있다.

이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는 19세게 말까지만 해도 분명하게 알려지지 않았던 중, 1896년 독일의 고고학자 앨로이스 휘러(Alois Anton Führer)가 오늘날의 네팔 테라이 지역에 있는 옛 사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울창한 숲에 버려져 있는 아쇼카왕 석주(石柱)를 발견했다. 석주에 새겨진 내용은,
‘자비로운 삐야다시 왕(아쇼카 왕의 다른 이름)은 왕위에 오른지 20년에 이곳을 방문하고 참배하였다. 왜냐하면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Śākyamuni Buddha)께서 이곳에서 탄생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주위에 돌담을 쌓고 돌기둥(石柱)을 세우게 했다. 부처님께서 여기 룸비니 마을에서 탄생하셨기 때문에 이 마을에 세금을 면제하였고, 단지 생산의 8분의 1만  내도록 하였다.’ 이로써 부처님의 탄생지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참고] 아쇼카왕은 부처님이 열반하신지 약 2백년 후, 인도 마우리야 왕조의 제3대 왕으로서 기원전 269년 경에 즉위하여 36년간 인도 남단부를 제외한 전 인도를 통치하였는데, 즉위 8년(B.C. 262)에 인도 북부 동해안의 뱅골만에 위치한-오늘날 오릿사주의 대부분-깔링가국과 전쟁을 벌여 승리하였으나, 전쟁으로 인한 사람들의 살육, 사망, 이주의 대 참상을 매우 괴로워하고 비통하게 여겨, 그가 ‘무력의 정복’을 버리고 ‘다르마(法)의 정복’으로 전환하는 이정표가 된다.
[아쇼카의 '다르마(法)' 개념은 직접적인 불교의 특징적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핵심은 윤리적인 바른 삶-①바른 인간관계:웃어른•이웃에 대한 존경, 수행자에 관대함, 노예나 종의 바른 처우, 모든 교단의 화합과 비난 금지. ②계행과 바른 삶:살생금지, 동물 희생제 금지, 적게 소비. ③다르마의 수행과 백성의 복지:출가자나 재가자 모두 7가지의 경전을 듣고 명상하도록 함, 보시와 복지. 곧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는 결실을 통해 모든 사람이 현세와 내세의 모든 이익과 행복을 얻기 바라는 부처님의 ‘다르마(法)’를 근본으로 한다.] 이 다르마의 내용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암벽(바위)에 또는 석주(石柱 돌기둥)에 칙령(勅令)을 새겨 세웠다.
그 가운데 하나가 아쇼카 왕이 즉위 20년이 되던 해, B.C. 250년 무렵에 룸비니를 방문하고 기념하기 위해 세운 룸비니 석주(石柱)이다.
*칙어(勅語) ; 임금이 몸소 타이르는 말씀. 또는 그것을 공표한 글.
*(게송) ‘금아아육왕~’ ; [아육왕경(阿育王經)] 제5권, 반암마륵시승인연품(半菴摩勒施僧因緣品) 참고.
*분(分) : 분수(分數-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정당(正當) ; ‘정당하다(이치에 맞아 올바르고 마땅하다)’의 어근.
*밭다 ; (무엇이) 바싹 졸아서 물기가 거의 없어지다.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로, 도피안(到彼岸)·도(度)·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여섯 가지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금은전보(金銀錢寶) ; 금은(金銀)이나 돈[錢] 패물[寶].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보살도(菩薩道) ; ①보살의 수행. 보살이 자리이타(自利利他)를 갖추어 깨달음에 이르는 도. ②대승불교.
*마지(摩旨) ; 부처님께 올리는 밥.
부처님께 올리는 밥은 대부분 사시(巳時), 즉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에 올린다. 이것은 생전에 부처님이 하루에 한 번 그 시간에 밥을 먹은 데서 유래한다.
사시에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마지 올린다’고 하는데, 한자를 풀이하면 (摩指, 摩旨, 磨旨) ‘손으로 만들어 올린다 혹은 정성스럽게 만든 공양을 올리오니 제 뜻을 감읍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뜻을 담고 있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운수(運數) ;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천운(天運 하늘이 정한 운수)과 기수(氣數 저절로 오가고 한다는 길흉화복吉凶禍福의 운수).

 

 

 



------------------(2)

* ; 업은 한 집안의 재물 신격으로서 흔히 구렁이, 족제비 등으로 상징된다. 집안에 이런 동물이 어느 곳이든 머물러 있어야 가업이 번창한다고 믿고 있다.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인간에게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을 의미한다. 도병(刀兵-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큰병이 유행함)이 있으며 십이지(十二支)에 따라 든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들삼재)이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눌삼재·앉은삼재)를,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날삼재)라고 한다.
*부적(符籍 부적 부,문서 적) ; 잡귀를 쫓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하여 붉은색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몸에 지니거나 집에 붙이는 종이.
*방생(放生) ; 사람에게 잡힌 물고기나 새, 짐승 따위를 산이나 물에 놓아서 살려 주는 일. 불교도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첫째 계(戒)인 불살생계(不殺生戒)보다 적극적인 선을 실천하는 선행(善行)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단언(斷言) ; 머뭇거리지 않고 딱 잘라서 말함.
*(게송) ‘인생백년정하허~’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81 ‘원상인(圓上人)을 이별하며 드림’  참고.
*아스랗다 ; (보이는 것이)까마득하게 멀거나 아슬아슬하게 높다.
*점점(點點)하다 ; (사물이 어떤 곳에)여기저기 점을 찍은 듯이 흩어져 있다.
*한낱 ; 기껏해야 대단한 것 없이 다만.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법석(法席) ; 대중이 둘러앉아서 설법, 독경, 강경, 법화(法話) 따위를 행하는 자리.
*명복(冥福 저승 명,복 복) ; ①죽은 뒤 저승에서 받는 복. ②(불교)죽은 뒤에 받는 복덕.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성도재)2015. 1. 23. 13:15

§(062) 중생의 근기, 팔만대장경, 참선법 / 방편(方便), 구경법(究竟法) / 화두 의심은 꽉 맥혀야 한다 / 참선의 자세, 호흡, 바른 생각 / 있는 그 자리에서 ‘이뭣고?’ 뿐.

 

대오(大悟), 확철대오를 얻을려면은 의심이 깊고 간절하고 커야 하는 것입니다. 「깊고 간절하고 커야 한다」고 하는 것은 꽉 맥혀야 하는 것입니다. 알 수 없이 맥혀야 하는 것입니다.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 큰 의심 아래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다’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위대한 스승을 만나서 그 지긋지긋하고 무서운 생사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최고 위대한 정법(正法)을 금생에 만났습니다. 만나 가지고서도 열심히 닦지 않는다면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문제는 ‘열심히 닦느냐, 닦지 않느냐’에 우리는 문제가 거기에 있을 뿐인 것입니다.

 

‘내일이 있다. 이 일만 끝나고 다음에 하지. 금년, 이삼년만 더 기다리고 3, 4년 뒤에 하리라’ 이러한 생각은 가장 어리석고 게으른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참으로 발심(發心)한 사람은 자기가 지금 어떠한 처지에 놓여있건 그것은 가릴 것이 없이, 있는 그 자리에서 ‘이뭣고?’ 뿐인 것입니다. 있는 그 자리에서 그때 그때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이놈이 무엇인고?’ 이렇게 해 나가게 되면은 이것이 바로 무량겁 생사를 끊어 나가는 가장 유일한 방법이요, 가장 지혜 있는 사람이 살아가는 길인 것입니다.

 

**송담스님(No.062)—77년(정사년) 성도재 법문(77.12.08.음)

 

(1) 약 20분.

(2) 약 13분.

 

 

(1)------------------

 

부처님께서는 기원전 558년에 탄생하셔 가지고, 기원전 479년에 80세를 일기로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열반(涅槃)을 보이셨습니다.

 

기원전 558년에 탄생하셔 가지고, 29세에 출가하셔서 6년 동안 고행을 하시고, 35세에 대도(大道)를 깨달으셨습니다.

일설에는 19세에 출가하셔서 12년 동안 고행 수도하신 끝에 30세에 대도를 성취했다고 그렇게 전해지기도 합니다만은,

대도를 성취하신 뒤 부처님께서는 3년 뒤에 고향에 돌아가셔서 아버님을 가서 뵈옵고, 아버님과 계모이신 '마하파자파티'를 비롯한 '야수다라' 아내와 '라후라'라고 하는 아드님 그리고 궁중의 모든 일가친척을 두루 다 만나셨습니다.

 

그리시고서 법을 설하시고 80세를 일기로 돌아가실 때까지 일생 동안을 이 생사고해(生死苦海)로부터 벗어나는 위대한 위없는 법을 설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실 때에 그 어머니이신 마야 부인(人)께서—그때 인도의 풍속은 여인이 포태를 해 가지고 해산기가 되면은 친정으로 돌아가서 해산(産)을 하는 풍속이 있었으므로—친정으로 가는 도중에 룸비니(Lumbinī) 동산이라고 하는 동산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실 때 부처님께서는 탄생을 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친정으로 가시는 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29세에 출가하셔 가지고 일생 동안을 길에서 사시면서 모든 중생들에게 법을 설하시고,

 마지막에 열반하실 때에도 길에서—'구시나가라(kuśinagara 拘尸那伽羅)'라고 하는 나라에 사라쌍수(沙羅雙樹) 간에서, 결국 거기도 길이였습니다. 길에서 최후의 임종을 맞으셨던 것입니다.

 

길에서 나셔서, 길에서 사시다가, 길에서 사시면서 사람이 가야 할 길을 가르켜 주시고 마지막에 길에서 고요히 열반에 들으셨던 것입니다.

 

 

그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이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라 해 가지고, 그 일생동안 설하신 법문을 결집(結集)을 해서 목판에다 조각한 그 경판(板)이 해인사 장경각에 보관이 되어 있습니다.

 

그 많은 경전들은 무엇 때문에—이 참선법(參禪法)이라 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고 간단하건만은, 간단하게 그 참선법만을 말씀을 하시지 왜 그 팔만대장경과 같은 방대한 법을 설하셨느냐?

그것은 중생들의 근기(根機)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각도에서 중생의 근기에 따라서 말씀을 49년 동안에 걸쳐서 설하시다 보니, 그렇게 방대한 법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삼천년을 내려오면서 부처님의 제자들이 그 스승으로부터 지도 받아서 도를 닦고, 또 자신이 체험을 통해서 또 다음 제자에게 전수하고, 이렇게 해서 삼천 년을 내려오면서 수행하는 방법이 세련(練)되고 다듬어져서,

오늘날에는 그 많은 팔만대장경을 읽지 않고서도 바른 스승만 만나서 직접적으로 지도만 받을 수 있다면, 간단한 방법으로 나 자신을 깨달아서 고해로부터 해탈을 하고, 나아가서는 일체 중생을 고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지도할 수 있는 역량(量)까지도 갖출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도저히, 출가해서 머리를 깎고 일생을 도만 닦은 스님네들도 어렵거든 하물며 세속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도를 닦아서 목적을 달성한다고 하는 것은 가망 없는 일이다. 그러니 옴마니반메홈 이나 아미타불, 그런 염불(念佛), 주력(呪力)을 함으로 해서 업장(業障)을 소멸하고, 아미타불의 48대원(四十八大願)에 의해서 숨지자마자 극락세계에 가는 그러한 우리에게 알맞은 길이 있다’고,

이렇게 믿고 그렇게 주장하는 그러한 종파도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하나의 방편(方便)은 될 수 있을지언정 구경법(究竟法)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은 방편은 일시적으로 이용할지언정 그 방편을 어떠한 단계에 이르러서는 버릴 줄 알고 새로운 단계에 나아가지 아니하면 아니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단계에 나아가지 못하고 오랜 시간 동안을 방편에만 걸려 가지고 몸부림친다고 하는 것은 결단코 지혜 있는 수행인이 아닌 것입니다.

 

깨달음에, 우리가 수행을 열심히 해 가지고 깨달음을 증득했다 하더라도 그 깨달음에 착(着)해서는 아니되거든, 하물며 깨달음에 이르는 중간에 어떠한 방편 또는 중간의 어떤 과정에서 딱 얽매이고 착(着)해 가지고 나아갈 줄을 모른다면은 그것은 안타깝고 가련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번 믿는 마음이 견성성불(見性成佛) 할 때까지 그 믿음이 변함이 없어야하지마는, 닦아 나아가는 과정에 있어서는 나날이 새로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이고 구태의연(然)해서 답보(步)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매일 한결같이 공부를 해 나가되 언제나 새롭게 새롭게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단계에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참선을 경전에 있는 말씀이나 또는 어떠한 스님네한테 들은 법문이나 또는 자기가 알고 있는 어떤 교리적인 철학적인 지식을 통해서 계속 추구하고, 따지고, 비교하고, 적용하고 해서 차츰차츰 파고들어 가고 알아들어 가고 이렇게 공부하라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참선은 다른 학문과 달라서—다른 모든 학문은 점진적으로 차츰차츰 쌓아올려 가야 하고, 차츰차츰 알아들어 가야 하고, 점점 깊이 파고들어 가야 되지마는, 이 참선은 언제나 말씀드린 바와 같이 처음부터 다못 꽉 막혀서 알 수 없는 의심으로 계속 정진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육조(六祖) 스님 앞에 하택신회(荷澤神會) 선사라고 하는 스님이 젊었을 때 육조 스님 앞에 떠억 나왔습니다.

‘무슨 물건이냐?’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육조 스님이 물으시기를,

‘내게 한 물건이 있으니 옛날부터 소소영령(昭昭靈靈)해서 부증생부증멸(不曾生不曾滅)이라, 일찍이 생겨난 때도 없고 일찍이 멸한 때도 없다. 밝기는 태양보다도 더 밝고, 검기는 옻칠보다도 더 검으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어. 항상 일상생활 속에 보고 듣고 생각하는 가운데에 그놈이 있건마는 찾아봤자 도저히 잡히지를 않는다. 그러니 이것이 무슨 물건이냐?’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그때 하택신회 선사가 대답하기를 ‘모든 부처님의 근원이요, 하택신회의 본 마음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너는 나중에 공부를 열심히 해봤자 너는 지해종사(知解宗師) 밖에는 못되겠구나. 지해종사란 말은 알음알이로 따져서 공부해 가는 강사나 이론가 밖에는 안되겠다 이 말씀입니다.

 

그 다음에 남악회양(南嶽懷讓) 선사가 왔습니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남악회양 선사는 그 한 말씀 육조 스님의 물음에 꽉 막혀 가지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길로 물러나와 8년 동안을 ‘무슨 물건인고?’ 다못 알 수 없는 마음으로 꽉 막혀 가지고 밥을 먹으나, 똥을 누나, 옷을 입으나, 일을 하나, 앉았거나 누웠거나 섯거나, 일체처 일체시에 알 수 없는 마음, ‘무슨 물건인고?’

아무리 생각해봤자 꽉 막혀서 알 수가 없고, 이렇게 해서 8년만에사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습니다.

 

의심이 깊고 간절해서 꽉 막힐수록에 터질 때는 무섭게 터지는 것입니다.

 

의심이 시원치 않고, 꽉 막히지 못하고 자꾸 이리저리 따지고, 알음알이가 거기에 게재가 되고 이러한 식으로 참선 공부를 해봤자 깨달음에 이르기도 어려우려니와, 설사 어떠한 깨달음에 도달했다 해도 지극히 미약한 그런 깨달음에 지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대오(大悟), 확철대오를 얻을려면은 의심이 깊고 간절하고 커야 하는 것입니다.

「깊고 간절하고 커야 한다」고 하는 것은 꽉 맥혀야 하는 것입니다. 알 수 없이 맥혀야 하는 것입니다.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 큰 의심 아래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참선 공부를 잘할려면은 첫째, 몸을 바르게 골라야 합니다. 바르게 가지고 바르게 단속을 해야 하고.

둘째는, 호흡을 바르게 쉬어야 합니다. 호흡을 바로 하지 못하면 참선 공부의 중간에 큰 지장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셋째에 가서는, 우리의 생각을 잘 단속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살았다'고 하는 것은 첫째 몸이 있어야겠고, 몸이 있는 한에는 숨을 쉬어야 하고, 숨을 쉬고 있는 한에는 생각을 할 수밖에는 없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긴(緊)히 몸을 가질 바에는 바르게 가져야 되겠고, 긴히 호흡을 할 바에는 바르게 호흡을 해야 하고, 긴히 무엇인가 생각하지 않고는 안될 바에는 바른 생각을 해야만 되지 않겠습니까?

 

『바르게 몸을 갖는다』고 하는 것은 가부좌(坐) 또는 반가부좌.

허리를 쭉 펴고, 코끝이 배꼽 밑에 단전(丹田)과 수직으로 놓이게 하고, 두 귀가 두 어깨에 수직으로 놓이도록. 그렇게 몸을 가지면은 그 몸이 전후좌우로 기울어짐이 없이 단정하게 앉아지는 것입니다.

 

단정하게 앉되, 어깨와 목과 몸의 긴장은 완전히 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긴장은 다 풀면서도 몸은 단정하게 가지고.

 

이는 어금니부터 지그시 물고, 입은 '한 일'자로 딱 다물고, 눈은 자기 앉은자리로부터 3미터 지점에다 떨구고 이렇게 앉으면은 몸이 단정하게 몸을 갖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호흡을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르게 하는 것이냐?』

우리 보통 사람들은 가슴으로 호흡을 하고 무의식적으로 호흡을 하기 때문에 숨이 짧고 빠릅니다.

 

그러나 가장 이상적인 호흡은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까지 숨을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깊이깊이 들어마셔. 쑥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5~6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이렇게 내쉬도록.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쪽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입니다.

 

복식 심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이 가벼워지고, 오장육부가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되면서 깨끗해지기 때문에 그러한 상태에서 생각을, 바른 생각을 단속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22분14초~41분33초)

 

 

 

 

(2)------------------

 

『바른 생각이라는 게 무엇이냐』 아까 육조 스님께서 그 제자들에게 물으신 문제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우리는 '나'라고 하면은 이 몸뚱이 육체가 '나'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몸뚱이 육체는 ‘참나’가 아닙니다. ‘참나’는 이 몸뚱이 육체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는 물질이라 자기 멋대로 행동을 취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행동은 이 몸뚱이의 주인인, 주인공(主人公)의 명령에 따라서 이 몸뚱이는 움직이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그놈이 들어서 이 몸뚱이로 하여금 움직이게 하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눈을 통해서 보지마는 눈이 보는 것이 아니라 눈을 통해서 보는 놈은 나의 주인인 것이고, 듣는 것도 그렇고, 웃고 울고 성내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고 아무리 잡을라야 잡히지는 않지만은 그것이 나의 주인이지, 이 몸뚱이는 그 주인이 살고 있는 임시로 살고 있는 집에 지나지 못하고, 임시로 입고 있는 옷에 지나지 못한 것입니다.

집이나 옷은 얼마 동안 살다가 낡고 못쓰게 되면은 버리고 또 새집으로 이사 가거나 새집을 짓지 아니하면 아니 됩니다. 옷이 낡고 더러워지면 그 옷은 벗어버리고 새 옷을 입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이 몸뚱이도 어떠한 단계에까지는 입고 있지마는 단계가 지나면은 이 몸뚱이는 언젠가는 기어코 버리고 새 옷을 갈아입지 아니하면 아니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사(生死)입니다.

 

이 몸뚱이 있을 때 그 주인공이 무엇인가? 그놈을 깨달아 버려야 영원한 생사윤회(生死輪廻)로부터 해탈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생들은 이 몸뚱이가 자기인 줄 알고, 이놈에다가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좋은 옷을 입히고, 분을 바르고, 연지를 찍고, 향수를 발라서 이 몸뚱이는 이쁘게 이쁘게 단속하고 가꿀 줄 알면서,

이 몸뚱이 안에 있는 ‘참나’, 나의 주인공은 밥 한 숟갈 먹일 줄도 모르고, 약 한 모금 먹일 줄도 모르고, 그놈이 어디가 있는 줄도 모르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채 일생을 살고 또 다음 생에 또 그렇게 해서 무량겁을 두고 생사윤회를 거쳐서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부처님의 그 깨달음, 깨닫는 법을 만나지 못했다면 우리는 영원을 두고 생사(生死)의 그 괴로운 윤회(輪廻)를 계속 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그러한 위대한 스승을 만나서 그 지긋지긋하고 무서운 생사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최고 위대한 그러한 정법(正法)을 금생에 만났습니다.

 

만나 가지고서도 열심히 닦지 않는다면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문제는 ‘열심히 닦느냐, 닦지 않느냐’에 우리는 문제가 거기에 있을 뿐인 것입니다.

 

이 문제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가만히 있어도, 눈을 감고 가만히 있어도 무엇인가 과거 일이 생각이 나고, 괴로운 일이 생각이 나고, 슬픈 일이 생각이 나고, 기뻤던 일이 생각이 납니다.

일어나는 그 생각—그것이 바로 우리를 괴롭히는 고민이요, 망상이요 번뇌입니다마는 그놈 일어나는 그...(녹음 끊김)

 

버스에서나, 절에서나 언제라도 내가 나를 찾을 수 있는 기회는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단 1분, 1초도 틈이 없이 우리에게는 공부할 수 있는 좋은 장소와 때가 우리에게는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 한번 버리면 다시 또 사람 몸을 받을지, 지옥에 갈지, 축생이 될지, 천당에 갈지, 아귀가 될지, 수라가 될지, 우리는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몸 있을 때 열심히 참선을 해놔야 내생에 다시 사람 몸을 받는 것이고, 다행히 금생에 대도(大道)를 성취해서 자유자재 할 수 있다면 그때는 중생 교화하기 위해서 지옥에를 가건, 축생이 되건, 다시 사람이 되건 그것은 두려워할 것이 없는 것이고.

 

문제는 어쨌든지 이 몸은 시시때때로 늙어가고 있고, 시시때때로 낡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룻밤 자고 나면 또 낡아지고, 이틀 밤 자고 나면 낡아지고, 철없는 어린 아이들은 설이 되면 좋다고 춤을 추고 야단이지마는 설이라 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죽음의 사형 무대 앞에 한 해 성큼 다가선 것에 지나지 못한 것입니다.

 

이 몸이 잠시도 쉬지 아니하고 걸음걸음이 시시때때로 수명이 단축이 되어가고 있는 이때에 우리는 단 1초도 단 한 생각도 범연(然)히 그럭저럭 지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1초 1초가 쌓이고 쌓여서 1년 10년이 되고, 금방 이 몸을 버려야만 할 죽음의 문이 돌아오고 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무상(無常)함을—이 몸뚱이가 정말 허망하고, 이 세상에 모든 것이 정말 허망한 것임을 철저히 깨달아야만 도를 닦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내일이 있다. 모래사 있다. 이 일만 끝나고 다음에 하지. 금년, 이삼 년만 더 기다리고 3, 4년 뒤에 하리라’ 이러한 생각은 가장 어리석고 게으른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참으로 발심(發心)한 사람은 자기가 지금 어떠한 처지에 놓여있건 그것은 가릴 것이 없이, 있는 그 자리에서 ‘이뭣고?’ 뿐인 것입니다.

있는 그 자리에서 그때 그때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이놈이 무엇인고?’ 이렇게 해 나가게 되면은 이것이 바로 무량겁 생사를 끊어 나가는 가장 유일한 방법이요, 가장 지혜 있는 사람이 살아가는 길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 나간 사람에게는 어떠한 어려운 일도 그 사람 앞에는 다 풀려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우리는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하면 당황해서 지혜로운 생각은 간 곳 없고, 계속 자기를 해롭게 하고, 괴롭게 하고, 일을 그르치게 하는 생각만이 계속 퍼일어나게 마련인 것입니다.

 

어떠한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이뭣고?’ 이렇게 한번 들 때에 그 사람에게는 온갖 쓸데없는 생각이 거기서 끊어지는 것이며, 당황하는 생각이 거기에서 일어나지 아니한 것입니다.

어리석은 생각이 거기에서는 일어나지 아니했기 때문에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됨으로 해서 마음이 맑아지고, 마음이 맑아진 데에서 일어나는 생각은 지혜로울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생각으로 어려운 일을 처리해야 그 일이 풀려나가는 것이지 당황한 마음, 어리석은 마음, 삿된 마음으로 어려운 일이 풀려날 리가 있겠습니까?

점점 복잡하게 만들 뿐이고, 그럴수록에 자기만 점점 괴로워지고 점점 주변을 불행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뭣고?’를 찾는 사람에게는 과거의 한량없는 죄가 있다 하더라도 그 앞에는 녹아질 수밖에는 없는 것이고, 죄가 녹아질 때에 불보살이 그 사람을 돌봐 주시지 아니할 리가 없습니다.

일체 선신(善神)이 계시다면은 그 사람을 옹호(護)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어리석고 삿된 마음을 일으킬 때에 잡신과 악귀(鬼)들이 그 사람을 맴돌면서 따라다니는 것이고, 맑고 깨끗하고 지혜로운 마음을 가졌을 때에 불보살과 일체 선신들은 그 사람을 돌보아 주시고, 옹호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리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믿고,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어떠한 괴로운 일을 당하더라도 그 괴로운 일에 나의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그러한 괴로운 일을 당할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서 몸을 바로잡고 깊은 호흡을 하면서 ‘이뭣고?’ 이렇게 가다듬어 보십시오.

 

한 번, 두 번,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일 년, 이태 이렇게 쌓아 나갈 때에 여러분들은 정말 여러분 자신이 어디로부터서 이러한 위대한 힘이 생겨났는가에 대해서 스스로 놀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팔만대장경을 한덩어리로 뭉쳐서 여러분 앞에, 낱낱이 여러분의 가슴속에다가 선사(賜)드리는 새해의 선물입니다. 

 

부처님이 성도(成道)하신 오늘, 정사년 납월팔일(臘月八日)을 기념해서 부처님의 뜻을 받들고, 조실 스님의 법문에 의지해서 제가 자신 있는 마음으로 여러분 앞에 말씀을 드리는 것이니, 이 법을 진즉부터 알고 닦으신 분, 새로 오신 분, 누구를 막론하시고 희망과 자신과 용기를 가지시고 열심히 정진을 해서 결정코 금생에 우리의 목적인 견성성불을 성취하시기를 간곡(懇曲)히 부탁드리고 말씀을 맺습니다.(41분34초~53분56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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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생사고해(生死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삼계(三界-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를 가리킴. 생사와 그 괴로움이 무한한 것을 바다에 비유함.

*마야 부인(人)māyā.  석가모니 어머니인도 콜리야족(koliya각왕(善覺王)의 딸로 카필라바(Kapilavastu) 슈도다나

uddhodana, 정반왕淨飯王)과 결혼하였으나석가모니 낳고 7 후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당시의 풍속으로 정반왕은 마야의 여동생 마하프라자파티(mahāprajāpatī)과 재혼함.

*해산(解産) ; 아이를 낳음.

*룸비니(Lumbinī) ; 불교의 창시자인 고타마 싯다르타(Gotama Siddhārtha), 즉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가 탄생한 곳으로 네팔 남동부 테라이(Terai) 지방, 바이라와(Bhairawa)의 서방에 있다. 석가족(샤카족)의 도읍 카필라바스투의 유적이 약 16km 서쪽에 있다.

 

이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는 19세게 말까지만 해도 분명하게 알려지지 않았던 중, 1896년 독일의 고고학자 앨로이스 휘러(Alois Anton Führer)가 오늘날의 네팔 테라이 지역에 있는 옛 사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울창한 숲에 버려져 있는 아쇼카왕 석주(石柱)를 발견했다. 석주에 새겨진 내용은,

‘자비로운 삐야다시 왕(아쇼카 왕의 다른 이름)은 왕위에 오른지 20년에 이곳을 방문하고 참배하였다. 왜냐하면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Śākyamuni Buddha)께서 이곳에서 탄생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주위에 돌담을 쌓고 돌기둥(石柱)을 세우게 했다. 부처님께서 여기 룸비니 마을에서 탄생하셨기 때문에 이 마을에 세금을 면제하였고, 단지 생산의 8분의 1만  내도록 하였다.’ 이로써 부처님의 탄생지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구시나가라(拘尸那伽羅) ; 산스크리트어 쿠시나가라(kuśinagara). 지금의 네팔 남쪽에 인접해 있던 말라족(malla族)의 거주지로, 붓다가 입멸한 곳. 붓다는 이 나라의 북방의 사라쌍수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고 오른쪽 겨드랑이를 밑으로 해서 입멸하셨다.

*사라쌍수(沙羅雙樹) : 북부 인도의 구시성(拘尸城 kuśinagara) 서북쪽으로 흐르는 발제하(跋提河 Ajitavati) 물가, 사라수 여덟 대가 둘씩 마주 서 있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이 사라쌍수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고 오른쪽 겨드랑이를 밑으로 해서 입멸하시니, 그 숲이 하얗게 변하였다. 그리하여 학의 숲(鶴林, 鶴樹)이라고도 하게 되었다.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결집(結集)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saṃgīti  상기티는 결경(結經)·집법(集法) 또는 합송(合誦)·합창(合唱)으로 해석하며, 회의(會議)를 의미한다고도 한다. 많은 자격 있는 사람들이 모여 불전(佛典)을 올바로 평가하고 편찬하는 일을 의미한다.
인도에서는 붓다의 입멸 후부터 2세기경까지 4차례의 결집이 있었고, 그 후 현대에 오기까지 세계 각국에서 여러 차례의 대장경(大藏經) 결집이 있었다.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세련되다(練-- 씻을 세,익힐 련) ; 서투르거나 어색한  없이 훌륭하고 미끈하게 가다듬어 있다.
*염불(念佛) ;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과 같은 불•보살님의 이름을 외움. 흔히 어떤 일을 기원하며 ‘나무관세음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을 소리 내어 외우는 일을 말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12에서.
(52)念佛者는  在口曰誦이요,  在心曰念이니  徒誦失念하면,  於道無益이니라.
 
염불이란 입으로 하면 송불이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염불이니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 데 아무 이익이 없으리라.
 
註解
阿彌陀佛六字法門이  定出輪㢠之捷徑也라.
心則緣佛境界하야  憶持不忘하고,  口則稱佛名號하야  分明不亂이니,  如是心口相應이  名曰念佛이니라.
 
「나무아미타불」의 육자 법문은 바로 윤회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여 잊지 말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되 분명하고 일심불난(一心不亂)해야 하니, 이와 같이 마음과 입이 상응하는 것이 염불이다.
*주력(呪力) ;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로 하는 기도.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의 효과.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사십팔대원(四十八大願) : 아미타불이 지난 세상에서 수행할 때에,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 가 되어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 - Buddha) 앞에서 장차 자기가 성불하여 주지(住持)할 이상적인 국토의 구체적 조건을 들어서, 그것이 실현될 때라야 성불한다고 맹세하고 발원하였던 것이다. 마침내 그가 무한히 분투 노력하여 그의 복과 덕이 쌓이고 쌓여, 그가 목표한 극락세계가 이루어지게 된다.
<무량수경>에 나오는 그 서원 가운데서 주요한 것을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1. 그 나라 안에는 온갖 고통과 비참한 일이  아주 없을 것.
3. 그 나라 사람들은 모두 얼굴이나 몸이 똑 같게 될 것.
5. 그 나라 사람들은 모두 육신통이 있을 것.
15. 그 나라 사람들은 모두 끝없는 수명과 한량없는 광명을 가질 것.
18. 어느 세계의 어떤 중생이나 그 이름(아미타불)을 열 번만 염하면 그 나라에 태어날수 있을 것.
33. 시방 세계의 어떤 중생이나 모두 그의 빛을 쏘이면 그 몸과 마음이 함께 아름답게 될 것 등등.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구경법(究竟法 궁구할 구,마칠·다할 경,진리 법) ; 그 위에 더 없는 최고의 가르침. 궁극의 진리.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구태의연(然)하다(생각 태도방법 따위)발전하거나 진보되지 않고 예전 묵은 모습 그대로이다.
*답보( 밟을 답,걸을 보) ; ① 따위 진행되지 못하고 한자리 머물러 있음 유적으로 이르는 . ②으로 나아가지 않고제자리에서 걷는 처럼 다리 움직이는 동작.
*육조 스님, 하택신회, 남악회양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긴(緊)히 ; ①꼳 필요하게. ②매우 간절하게.
 
 
 
 
------------------(2)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시시때때 ; 시시(時時, 지나가는 시각 시각)를 강조하는 말. 시간이 흐르는 매 순간.
*걸음걸음이 ; 걸음을 걸을 적마다.
*범연(然) ; ①두드러진  없이 평범하게. ②특별한 관심 없어 데면데면하게.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에서]
*선신(善神) ; 불법(佛法)과 그것을 믿는 이들을 보호하는 신.
*옹호하다(護-- 안을 옹,보호할 호) ; 「…을」 두둔하고 편들어 지키다.
*성도(成道) ; 깨달음.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됨.
*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은 음력으로  해의  마지막  이르는 .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35세의 12월 8일 샛별이 뜰 무렵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하(河)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불도(佛道)를 이루던 날. 납팔(臘八)이라고 줄여 쓰기도 한다. 일명 성도재일(成道齋日).
*간곡히(懇曲- 간절할 간,간절할 곡) ; 간절하고 정성스럽게.

 

Posted by 닥공닥정

§(616) (게송)남북동서무정착~ / 장판때 / (게송)이인유밀불수저~ / 수행자는 코뿔소의 뿔처럼 외롭게 지내라 / 자각(自覺) 각타(覺他) 각행원만(覺行圓滿)—수행자목표.


도 닦는 참선의 기쁨을 먹고 사는 것이 수좌의 음식이다.

수행자는 항상 냉정하고 쌀쌀하고, 무슨 명예나 이끗이나 이양(利養)이나 재색(財色)에 그런 데에 솔깃하게 넘어가서는 안된다.

부처님 말씀에 ‘스스로의 자기의 깨달음을 얻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할 수 없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깨닫는 공부를 게을리 하고서는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전통해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송담스님(No.616)—98년(무인년) 동안거결제 법어(98.12.03)


약 22분.


남북동서무정착(南北東西無定着)하고  생애지재일지공(生涯只在一枝筇)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설두세작연하미(舌頭細嚼烟霞味)하고  직입천봉갱만봉(直入千峰更萬峰)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남북동서무정착(南北東西無定着)하고  생애지재일지공(生涯只在一枝筇)이다.

동서남북 정착한 데가 없어. 겨울에는 남쪽 선방(禪房)에 가서 지내고, 여름에는 저 북쪽 선방으로 가고, 동쪽으로 갔다, 서쪽으로 갔다, 남쪽으로 동쪽으로 갔다.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서 도반(道伴)을 찾아서 또 지내기 좋은 도량(道場)을 찾아서, 동서남북으로 일정하게 딱 정착한 데가 없듯이 계절 따라서 왔다갔다 하는데,


생애지재일지공(生涯只在一枝筇)이다. 수좌(首座)의 일생애(一生涯)라 하는 것이 오직 이 한 가지 주장자(拄杖子)에 달려 있다 그말이여.


설두세작연하미(舌頭細嚼烟霞味)하고, 혀끄터리는 다못 안개와 연기, 연하(烟霞)의 맛을 가늘게 씹는 것이다 그말이여.

연하를 씹으면서 연하의 맛을—무슨 맛있는 고량진미(味), 산해(山海)의 진미를 먹고 사는 게 아니라 연하의 맛을 씹으면서,


그 연하(烟霞)의 맛이라는 게 무엇이냐? 법희선열(法喜禪悅)이요, 선열(禪悅)로 위식(爲食)하는 겁니다. 도 닦는 참선의 기쁨을 먹고 사는 것이 수좌의 음식이다 그말이여.


연하의 맛을 씹으면서 직입천봉갱만봉(直入千峰更萬峰)이다. 바로 천봉(千峰) 다시 만봉(萬峰)을 향해서 들어가더라.


‘천봉 그리고 또 다시 거기서 더 만봉을 찾아서 들어간다’ 그 말은 아까 조실스님의 법문 가운데에 활구참선이라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따져서 말 길[語路]을 더듬어서 알아들어가는 공부가 아니여.


해 갈수록 알 수가 없는 그 본참공안(本參公案)을 향해서 바로 의심관(疑心觀)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들어갈수록 깊고, 들어갈수록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천봉만봉갱만봉(千峰萬峰更萬峰)을 향해서 들어간다고 이렇게 표현을 한 것입니다.



오늘 동안거 결제를 맞이해서 비구·비구니·청신사·청신녀 형제자매 도반들이 여기에 모다 운집(雲集)을 했습니다.

각자 자기가 지내는 처소에서 결제를 해도 되겠지만은 조실스님의 최상승법문(最上乘法門)을 뜻을 같이한 도반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그 법문을 듣기 위해서 여기에 오셨습니다.


그 선방에도 다 녹음테이프가 있어서 거기서 들어도 충분하리라고 생각이 되는데 여기에 와서 지내는 데에는,

도반들 같은 도반들을 여기서 만나서 입을 벌려서 말은 안 하지만은 한번 눈과 눈이 마주칠 때, 마음과 마음이 마주침으로서 한 목표를 향해서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 나가는 선후배 도반이 만나는데 뜻이 있는 것이고,


석 달 동안을 알뜰히 정진을 하고 해제 때 또 다시 만나자고 하는 말 없는 가운데에 거기서 깊은 말이 오고가는 것입니다.


방금 조실스님의 녹음법문에 활구참선, ‘여하시 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이냐?'하는데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이 조실스님의 법문 속에 결제 법문은 분명히 그리고 충분히 법문을 들었습니다.


(법문을) 들어서 산승이 결제 법문이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마는 도반들이 이렇게 모이셨으니 석 달 동안을 무장무애하게 그리고 알뜰하고 짬지게 지내기를 바래는 마음에서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해마다, 철마다 여름이면 여름 결제, 겨울이면 겨울 결제 하는데, 처음에 첫 철에 나갈 때에는 엄섬하고 경건하고 아주 근신(謹愼)하는 마음으로 방부를 들이고 한 철을 지냅니다.


두 철이 또 지나가고 세 철, 네 철 지내다 보면 엄섬하고 경건한 그러한 기분은 차츰 사라지고 모다 아무 근신하는 마음가짐이 차츰 해이(弛)해져서 그럭저럭 한 철 지내고,


또 거기서 해제를 하면 또 다른 선방에 가서 지내고 해서 ‘장판때’만 반들반들 묻어 가지고,

철저한 신심으로 정진하는 기운이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해이해지는 그런 경향이 있다고 옛날 스님네들은 그 ‘장판때’라는 말을 많이 사용을 했습니다.


여기에 모이신 도반들은 결단코 그러한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러한 말이 해당이 된다면 안 되겠다고 하는 도반으로서의 노바심(老婆心)에서 나오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인유밀불수저(利刃有蜜不須舐)하고  고독지가수막상(蠱毒之家水莫嘗)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시비해리횡신입(是非海裏橫身入)하고  표호군중자재행(豹虎群中自在行)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이인유밀불수저(利刃有蜜不須舐)요, 날카로운 칼날에 꿀이 묻어있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그 꿀을 핥아먹다가 혀를 베게 되는 것이니 설사 칼끝에 꿀이 묻었다 하더라도 그 꿀을 핥아먹지를 말아라 이것입니다.


고독지가(蠱毒之家)에 수막상(水莫嘗)이여. 고독지가(蠱毒之家)라 하는 것은 그 흉가(家)—샘에 독이 풀어져 있는 집의 물은 아무리 목이 마른다 하더라도 그 물을 먹지를 말아라 이것입니다.


무엇이 칼날 위에 꿀이고 고독지가에 물이라는 게 무엇이냐?


수행자는 명예나 이끗이나 재색(財色)이나 이양(利養)이나 모다 이러한 것들이,

누가 나한테 따뜻하게 잘 해주고, 잘 보시를 하고, 좋은 옷을 해주고, 약을 지어주고, 명예를 주고, 어떤 권리를 주고, 내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그러한 것들이 다 칼날 위의 꿀이고 고독지가(蠱毒之家)의 물이라 하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항상 냉정하고 쌀쌀하고, 무슨 그러한 이끗이나 이양이나 재색(財色)에 그런 데에 솔깃하게 넘어가서는 안된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수행자는 코뿔소의 코뿔처럼 외롭게 지내라’ 그러셨습니다.

다른 모든 짐승은 뿔이 두 개씩인데 코뿔소는 코끝에 뿔이 하나가 딱 있는데, 그 하나만을 앞세우고 일생을 사는데 ‘그렇게 외롭게 살아라.’


이끗과 명예 모다 그런 데에 부합을 하지 말고, 그런 데에 넘어가지 말고,

돈 많이 주는 데 찾아당기고, 맛있게 해 주는 데 찾아당기고, 그런 데에 휩쓸리지를 말고, 먹고 잘 먹고 못 입는 것은 그것은 인연에다 맡겨.


가난한 데에 검박하고 그래도 수행하는데 도움이 되는 그런 데를 찾아가야지,

돈을 생각해서 찾아가고, 맛있게 잘 받들어 주는 데만 찾아다니면 결과적으로 남은 것은 칼끝의 꿀을 빨아먹다 혀를 짤리는 거고, 고독지가에 물을 먹다가 결국은 목숨을 잃게 된다 그 말입니다.


시비해리(是非海裏)에 횡신입(橫身入)이요. 옳다 그르다 하는 시비(是非)의 바다 속에 몸을 비켜서 들어가.

도처가 간 곳마다 시비가 끊어지는 데가 없고, 어디를 가나 크고 작은 시비는 있기 마련이고, 그런 시비에 말려 들어가지 말고 그 시비 속에서도 몸을 비켜서 나가는 거고.


표호군중자재행(豹虎群中自在行)이다. 표범과 호랑이가 득실거리는 그런 속에 자재(自在)하게 행해야 한다 그 말인데, 여러분들도 다 아시다시피 종단이 퍽 시끄럽습니다.


총무원, 조계사 모다 전국승려대회도 일어나고, 이 파 저 파 해 가지고 천여 명씩이 모아서 온갖 불상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 어떻게 하면 종단을 잘해 나갈까? 자기가 나가야 이 종단을 잘해 나가겠다. 피차 그런 마음에서 하다보니까 충돌이 생기고, 외부에서 볼 때에는 대단히 참 가슴 아픈 사건이 벌어지고 있습니다마는,

그 분은 그런 나름대로 종단을 걱정하고 불교의 장래를 걱정해서 자기가 나가야만 되겠다고 하는 그런 끓는 용기와 원력으로 모다 그렇게 하지 않는가 생각이 됩니다마는,


그것이 진정코 종단을 위하는 일인가? 불교를 위하는 일인가? 그것은 생각하는 사람, 보는 사람의 관점에 달려 있을 것이고, 일양으로 매도할 일도 못되고, 누구 편을 들기도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불법은 자각(自覺) 각타(覺他) 각행원만(覺行圓滿)이 수행자로서 불자로서 목표를 삼고 나가야 하는 것인데,


대발심(大發心)을 해서 대지혜와 대자비로 실천 수행하는데 있어서 각자 자신의 원력과 또 자기 믿는 선지식의 지도에 따라서,


경(經) 공부를 하는 사람 또 주력(呪力) 공부를 하는 사람, 염불을 하는 사람 또 나름대로 자기가 터득한 부처님의 말씀을 포교하는 데에다가 관점을 두고 또 그렇게 해 나가는 사람,

육바라밀(六波羅密)을 수행을 해야겠다 또는 어떤 사람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사념주관(四念住觀), 비파사나(Vipassanā)라고 하는 신·수·심·법(身受心法)을 향해서 수행하는 사람,


여러 가지 방편(方便)이 다 있어서 나름대로 열심히 그렇게 수행을 하고 있는데, 각자 그 근기와 수준에 따라서 이것이 그 단계에 따라서 이렇게 수행하는 사람, 저렇게 수행하는 사람, 여러 가지 길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도반들은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에 의해서, 직절근원(直截根源)하는 이 활구참선에 의해서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는 그러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모이신 것입니다.


종단이 이렇게 시끄러울수록에 우리 이 자리에 모이신 도반들은 각자 다른 철보다도 훨씬 더 자가(自家) 중심(中心)을 탁 세우고서 정말 알뜰하고 짬지게 이 한 철을 잘 지내주시기를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스스로의 자기의 깨달음을 얻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할 수 없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깨닫는 공부를 게을리 하고서는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전통해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금년 삼동(三冬) 안거는 다른 안거 때보다도 더욱 마음을 가다듬고 그 선원의 청규(淸規)를 잘 지키면서 조용하게 말없는 가운데에 알뜰히 정진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처음~21분3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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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남북동서무정착~’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62 ‘혜총선자(慧聰禪子)를 보내며’ 게송 참고.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선실(禪室)과 같은 말. ②‘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량(道場) : [범] bodhimandala '도를 닦는 곳'이란 말이다。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수좌(首座)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주장자(拄杖子 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들이 좌선(坐禪)할 때나 설법(說法)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혀끄터리 ; 혀끝( 앞쪽  부분). '끄터리'는 '끄트머리(  부분)'의 사투리.

*고량진미( 기름 고,기장 량,보배 진,맛 미) ; 기름진 고기 좋은 곡식으로 만든 맛있는 음식.

*산해진미(山海珍味) ; 산과 바다 온갖 진귀한 산물  갖추어 차린매우  좋은 음식.

*법희선열(法喜禪悅) ; 부처님의 가르침[法]을 듣고 따르는 기쁨[喜]과 선정(禪定)에 드는 기쁨[悅].

*선열(禪悅)① 선정(禪定)에 드는 기쁨. ② 참선할 때 가슴에 잔잔히 사무치는 기쁨.

*본참공안(本參公案) :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짬지다일하는 솜씨 여물고 깐깐하다.

*근신(謹愼 삼갈 근,삼갈 신) ; 말이나 행동, 마음가짐을 삼가고 조심함.

*해이하다(弛-- 풀 해,느슨할 이) ; (마음가짐이나 태도 따위)긴장 풀어져서 슨한 상태이다.

*노바심(老婆心) ; 노파(老婆)가 자식·손자를 애지중지 하듯이, 스승이 수행자에게 나타내는 자비심. 친절심(親切心). 파심(婆心)이라고도 함.

*(게송) ‘利刃有蜜不須舐  蠱毒之家水莫嘗’ ; [선문염송] (혜심 지음) ‘제1권 1칙 도솔(兜率)’ 대혜고(大慧杲) 게송 참고.

*(게송) ‘是非海裏橫身入  豹虎群中自在行’ ; [선문염송] (혜심 지음) ‘제1권 1칙 도솔(兜率)’ 죽암규(竹庵珪) 게송 참고.
*고독(蠱毒 벌레·害毒 고,독 독) ; 지네두꺼비  (). 또는  독이 들어 있는 음식 먹어서 생기는 복통이나 가슴앓이토혈(), 하혈( 증상 나타난다.
*이끗(利끗) ; ①이익이 되는 실마리. ②잇끝(말리 末利)—지말(枝末), 지엽(枝葉)적인 이익. 작은 이익.
*재색(財色) ; 재물(財物)과 타인의 몸(色).
*이양(利養) ; ① 산스크리트어 lābha  이익(利益). 이득(利得). 획득한 물(物 : 특히 출가자에 대하여 말함). 남에게서 물건을 받는 등 실질적인 이득(利得)을 말함.
② 이익(利益)을 얻어 자기몸을 보양하는 것. 재물을 탐하여 자신을 살찌우는 것.
③ 산스크리트어 satkāra 존경. 존중. 공경. 공양.
*솔깃하다(사람 어떤 )마음 끌리다.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포구발심(怖懼發心 두려워할 포,두려워할 구,일어날 발,마음 심) : 끝없이 되풀이 되는 육도윤회(六途輪廻)에서 받을 생사(生死)가 정말 무섭구나. 그 생사의 고통을 매우 두려워(怖懼)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주력(呪力) ;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로 하는 기도.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의 효과.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로, 도피안(到彼岸)·도(度)·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여섯 가지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사념주관(四念住觀) ; 깨달음을 실현하도록 도와주고 장엄하는 37보리분법(菩提分法) 또는 37조도품(三十七助道品) 가운데 하나이다.

사념처관(四念處觀)·사의지(四意止)·사념(四念)이라고도 한다.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念處]. 네 종류의 수행방법. 네 가지의 관상법(觀想法). 네 종류의 마음이 고요해지는 내관(內觀).


염(念, sati, 마음챙김)은 ‘마음을 챙김’으로, 구체적인 의미는 ‘마음이 대상을 챙김’이다.

“여기서 마치 송아지 길들이는 자가 [송아지를] 기둥에 묶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을 염(念, sati, 마음챙김)으로써 대상을 굳게 묶어야 한다” 『디가 니까야 주석서』에서.


염(念, sati, 마음챙김)의 대상인 몸과 느낌과 마음과 법[身·受·心·法]에서 그들을 각각 더러움[不淨], 괴로움[苦], 무상(無常), 무아(無我)라고 파악하면서, 또 깨끗함, 행복, 항상함, 자아라는 인식을 버리는 역할을 성취하면서 일어나기 때문에 네 가지로 분류된다. 그러므로 사념주(四念住, 四念處)라고 한다.

*비파사나(팔리어 vipassanā, 산스크리트어 vipaśyanā) ; 비바사나(毘婆舍那)·비발사나(毘鉢舍那)로 음역.
능견(能見)·정견(正見)·관찰(觀察)·관(觀)이라 번역.
비파사나(위빳사나)는 ‘분리해서vi  보는 것passanā’이라는 문자적인 뜻 그대로,
대상[유위제법(有爲諸法)—오온(五薀)·십이처(十二處)·십팔계(十八界)]을 나타난 모양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명상하고 관찰하여 법(法)의 무상(無常)하고 고(苦)이고 무아(無我)인 특성을 통찰하는 수행.

비파사나는 마음[心]·마음부수[心所]·물질[色]로 구분되는 71가지 구경법들 가운데 하나를 통찰하는 수행인데 이처럼 법을 통찰해 들어가면 제법의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철견(徹見)하게 된다.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비파사나의 힘으로 탐·진·치의 뿌리를 멸절시켜야 영원히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되며 그래야 해탈·열반을 실현하게 된다.
비파사나는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것 그 자체이지 결코 특정한 수행기법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 「초기불교 이해」 (각묵 스님, 초기불전연구원) 참고.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직절근원(直截根源) ; 근원(根源)을 바로 꺾었다(다스리다). 근원에 몰록 들어갔다.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자가(自家) ; ①자신의 집. ②자기 자체.
*중심(中心) ; ①중요하고 기본 되는 부분. ②사물이나 일정한 장소 가장 가운데 되는 . ③ 잡은 마음또는 확고한 생각 태도.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말. 대도정법(大道正法)의 명맥(命脈). ②법신(法身)은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뜻.
*청규(淸規) ; ①선종(禪宗)의 사원에서, 여러 스님들이 늘 지켜야 할 규칙. ②참되고 바른 규칙이나 법도.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