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솔천내원궁'에 해당되는 글 14건

  1. 2019.07.16 §(109) (게송)산월투창백~ / 물의 습성 / 중생의 망념을 여의지 말고 거기서 화두를 거각하는 것이 참나를 깨닫는 가장 가까운 길 / 일념단속 / 도솔천내원궁 / 득력.
  2. 2018.09.17 §(385) (게송) '백천경권송여사~' / 선종에서는 도솔천내원궁에 탄생하길 발원 / 자기 뜻대로 할라고 한 것이 벌써 그것이 탐심 / 바보 스님의 깨달음 / 삼요.
  3. 2015.05.07 §(세등24) 유루복, 무루복을 겸해서 지어야 / 自利利他 / 飯器已破 / 단전호흡과 화두가 함께 되어가게 / ‘이뭣고?’할 때 바로 그 자리가 부처님을 모시고 앉아있는 선방.
  4. 2015.04.21 §(430) 참회정진 업장소멸 / 욕과 비방을 감로수처럼 받아들여야 / 단전호흡은 참선하는데 효과적이다 / (게송)선악성공여반장~.
  5. 2015.04.16 §(430) 자기의 도를 닦는 데에 대한, 견성성불하는 데에 대한 자포자기 그것이 참으로 가장 무서운 살생 / 인과를 철저히 믿어야 / 참회하고 선을 행하면 죄가 소멸이 된다.
  6. 2014.12.15 §(770) (게송)약인정좌일수유~ / (게송)활구참선객~ / 염라대왕의 합장 배례 / 대승십선계 / (게송)삼계진화택~ / (게송)온포사아귀~.
  7. 2014.09.19 §(761) (게송)거심진속윤회업~ / 해제가 곧 결제 / 백중날–선망부모의 해탈 / 수행자의 본분 / (게송)호향차시명자기~.
  8. 2014.08.18 §(769) (게송)당하지귀아시수~ / 목련경(目連經)-효도 / 생사 호흡지간-무상(無常)하다 / (게송)전단목주중생상~ / 우리 다같이 영원한 도반으로서 성불합시다.
  9. 2014.08.17 §(398)(게송)대호삼만육천경~ / 삼라만상이 다 부처님의 원음의 경전 / (게송)삼라만상동귀환~ / 백장청규 / (게송)진로형탈사비상~ / 밝은 데에서 밝은 데로....
  10. 2014.06.17 §(246) (게송)산중하사기~ / 이 공부는 되고 안 되고 헌 것을 전혀 따질 것이 없습니다. ‘내가 본래 부처다’ / 고기 눈깔을 가지고 야광주(夜光珠)로 착각하면 안된다.
활구참선 최상승법2019. 7. 16. 11:49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109) (게송)산월투창백~ / 물의 습성 / 중생의 망념을 여의지 말고 거기서 화두를 거각하는 것이 참나를 깨닫는 가장 가까운 길 / 일념단속 / 도솔천내원궁 / 득력.
 
일어나는 그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중생의 망념 그놈을 여의지 말고 거기서 화두(話頭)를 거각(擧却)하는 도리, 오직 여기에서만 바로 참나를 깨닫는 가장 가까운 길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모든 우리의 중생심, 번뇌 망상을 버리고 따로 찾는다면 그 사람은 무량겁을 닦아도 깨달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중생심(衆生心)을 여의고 불성(佛性)이 존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중생심 있는 곳에는 반드시 부처님이 있다.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 진여자성, 참나, 나는 성불(成佛)을 해서 부처님으로 계실 때나, 죄를 짓고 지옥에 가서 있거나, 우리 중생으로서 육도(六途)를 윤회(輪廻)하건 간에 우리의 진여불성에는 조금도 늘거나 줄거나 새로 생겨나거나 죽거나, 때가 묻거나 깨끗하거나 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진여불성은 조금도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변함이 없으면서도 때와 장소에 따라서 천 가지 만 가지로 모습을 나투면서도 원래로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물에 있어서의 습성에다가 비유해서 말씀을 드렸지마는 이것은 하나의 비유에 지내지 못하고 '참나'라고 하는 것은 오직 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참선(參禪)을 함으로서만이 스스로 깨달을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말씀을 드린 것은 우리 모두가 올바르게 열심히만 하면 반드시 이 몸으로, 이 죄 많은 몸으로, 이 똥과 피와 오줌과 고름으로 가득찬 이 인간의 육신을 가지고 반드시 참나를 깨달을 수 있다고 하는 가능성을 여러분에게 증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제가 석 달 동안, 내년 보름까지 석 달입니다마는 하루 하루씩을, 「오늘 하루 결제다」 이렇게 생각하고 하루를 딱! 작정을 하고서 알뜰하게 하루를 지내셔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109)—1979년 동안거 결제 법문(79.12.4) (용109)

 

(1/3) 21분.

(2/3) 19분.

(3/3) 9분.

 

(1/3)----------------
 
산월투창백(山月投窓白)이요  계성입호명(溪聲入戶鳴)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욕지구년묵(欲知九年黙)인댄  수향차중명(須向此中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산에 산위에 뜬 달이 창에 비추어서 환하구나. 그리고 시냇물 소리는 문안에까지 들려온다. 산월투창백(山月投窓白)이요  계성입호명(溪聲入戶鳴)이라.
 
욕지구년묵(欲知九年黙)인댄, 달마대사가 소림굴에서 9년 동안 묵무언(默無言) 하신 뜻을 알고자 할진댄, 그 말은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알고자 할진댄,
수향차중명(須向此中明)이니라. 모름지기 이 가운데를 향해서 밝힐지니라.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을 그 도리를 알고자 할진댄, 산 달이 창에 비추어서 희고 시냇물 소리가 방안에까지 들려온다. 이 속을 향해서 밝힐지니라[須向此中明].
 
 
오늘 기미년 10 15 동안거 결제일을 맞이했습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격외선(格外禪) 도리, 내가 나를 깨닫는 도리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도리는 깨닫지 못한 분상에서는 아무 재미도 없고 맛도 없고 무슨 뜻인지 요량을 할 수가 없지마는 그렇게 어렵고 복잡하고 깊고 깊어서 그래서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산 달이 창에 비추어서 환하니 희고, 방안에 앉아서도 시냇물 소리 흘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농부가 쟁기를 짊어지고 논으로 가고, 밥을 먹을 때 숟갈로 밥을 떠서 입에다 넣으면 저분은 반찬 그릇으로 간다.
 
바로 이 평상화(平常話)—우리 일상 생활에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피곤하면 한숨 자고, 부르면 대답하고,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고, 봄이 오면 풀은 파릇파릇 풀이 돋아오고, 가을이 오면 단풍이 져서 떨어지는 이 도리,
이 도리를 내놓고는 최상승 활구법, 격외선 도리, 도솔천 내원궁, 모든 부처님이 적멸궁(寂滅宮)을 장엄하는 도리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가장 빨리 바로 깨닫기 위해서는 우리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발로 걸어 다니고, 손으로 일하고 글씨 쓰고, 입으로 말하고 하는 중생으로서 육체적인 모든 동작, 정신적인 모든 작용, 일상 생활을 떠나서 이것을 찾을라고 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자리 그때 거기서 생각 생각이 일어나는 그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중생의 망념 그놈을 여의지 말고 거기서 화두(話頭)를 거각(擧却)하는 도리, 오직 여기에서만 바로 참나를 깨닫는 가장 가까운 길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모든 우리의 중생념, 중생심 번뇌 망상을 버리고 따로 찾는다면 그 사람은 무량겁을 닦아도 깨달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물을 버리고서 물의 습성(濕性)을 찾아서는 영원히 그 사람은 습성을 찾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마치 우리의 중생심을 물에다가 비유한다면 물은 온도에 따라서 때로는 흐를 수 있는 액체로 되기도 하고, 때로는 영하로 내려가면 얼어서 고체가 되기도 하고, 섭씨 백 도가 되면 끓어서 증기로 기체로 변하기도 합니다.
기체도 되었다, 액체도 되었다, 고체도 되었다, 그때 그때 상황 따라서 물도 되었다, 얼음도 되었다, 김으로도 되었다 또는 눈도 되었다, 서리도 되었다, 우박도 되었다 그때 그때 상황 따라서 변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모양으로 있던지 간에 변함이 없는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습성(濕性)이라 하는 것입니다. 습한 성질. 물의 습성이라 하는 것은 그 모양의 여하에 따라서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 진여자성(眞如自性), 참나, 나는 성불(成佛)을 해서 부처님으로 계실 때나, 죄를 짓고 지옥에 가서 있거나, 우리 중생으로서 육도(六途)를 윤회(輪廻)하건 간에 우리의 진여불성에는 조금도 늘거나 줄거나 새로 생겨나거나 죽거나, 때가 묻거나 깨끗하거나 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진여불성은 조금도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변함이 없으면서도 때와 장소에 따라서 천 가지 만 가지 모습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천 가지 만 가지로 모습을 나투면서도 원래로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물에 있어서의 습성에다가 비유해서 말씀을 드렸지마는 이것은 하나의 비유에 지내지 못하고 '참나'라고 하는 것은 오직 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참선(參禪)을 함으로서만이 스스로 깨달을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말씀을 드린 것은 우리 모두가 올바르게 열심히만 하면 반드시 이 몸으로, 이 죄 많은 몸으로, 이 똥과 피와 오줌과 고름으로 가득찬 이 인간의 육신을 가지고 반드시 참나를 깨달을 수 있다고 하는 가능성을 여러분에게 증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대보살님들도, 모든 성현들도 깨닫기 전에는 우리 범부(凡夫)와 똑같은 것입니다. 깨달으면 그것을 '깨달은 분'이라 해서 '붓다(Buddha)'라 이렇게 말씀을 하는 것이고, 깨닫지 못하면 그것이 바로 범부인 것입니다.
 
범부와 성현과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 밖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차이가 있다기보다는 부처님 경전에 말씀에는 「중생과 부처님과 조금도 차별이 없다」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은 참 말씀이요, 진실한 말씀인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중생심(衆生心)을 여의고 불성(佛性)이 존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중생심 있는 곳에는 반드시 부처님이 있다.
 
물이 있는 곳에는 설사 그것이 얼음이 되었건, 우박이 되었건, 눈이 되었건, 물의 변화체에 어떠한 변화된 상태에 있건 간에 거기에는 반드시 습성(濕性)이 있는 거와 같이, 모든 중생 있는 곳에는 반드시 그 중생을 여의지 아니하고 거기에 부처님이 계시다고 하는 확고부동한 신념을 갖고서,
바른 방법으로 올바른 지도하에 열심히 생활 속에서 슬픈 일을 당하면 슬픈 일 속에서, 괴로운 일을 당하면 괴로운 일을 당한 바로 거기에서 괴로운 것을 띠어 버릴려고 하지 말고, 슬픈 것을 버릴려고 하지 말고 바로 그 슬픔 속에 젖어 있는 그 자리에서 그 속에서 '이 뭣고?' 이렇게 한 생각을 돌이킨다면 그 슬픈 그 상황이 바로 선방(禪房)이요, 선불장(選佛場)이요, 부처님 회상(會上)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활구참선 하는 방법이며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 최상승법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넓고 범위가 넓고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그러한 좋은 길인 것이며 또한 어떠한 근기가 하열 하건, 죄가 많건, 몸이 아프건 그런 것, 오히려 그러한 역경계(逆境界) 속에서 더욱 간절해질 수 있는, 간절(懇切)한 마음으로 공부할 수 있는 그래 가지고 깨달을 수 있는 그러한 미묘하고도 고마운 길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에는 절로 절로 다니시면서 기도를 주로 하신 분도 계실 것이고, 주로 염불이나 경을 읽으시거나 그렇지 않으면 천수(千手)를 열심히 하시거나, 여러 가지 그러한 신앙심을 가지고 계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것도 다 나를 깨닫게 하기 위한, 정법(正法)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한 부처님과 성현들이 설허신 다 미묘한 방편(方便)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마는, 우리는 방편을 통해서 그것을 징검다리로 해서 바로 구경(究竟)의 길로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지, 방편에 오래 집착해 가지고 있어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그동안 용화사에서 누누이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法門)과 저의 말씀을 통해서 어떠한 것이 방편이고, 어떠한 것이 바로 직접적으로 설해 드리는 경절문(徑截門), 바로 가깝고 바른 길인가 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동안거 결제(結制)일인 동시에 백일기도 입재(入齋)일입니다.
기도를 하기 위해서 오대산이라든지 남해 보리암이라든지 강화 보문, 낙산사 이런 성지(聖地)로 가서 기도를 하시는 것도 좋습니다마는 참 기도는 때와 장소가 따로 없어야만 정말 참다운 기도가 된다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부처님은 꼭 오대산만 가야 거기에 계신 것이 아니고 바닷가만 가야 거기에 관세음보살이 꼭 계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편의상 보다 더 철저한 마음으로 일주일이나 사흘 간을 철저하게 기도를 하기 위해서 그러한 성지를 찾아가는 것도 또한 뜻이 있다고 하겠습니다마는 우리는 노상 그런 성지만 찾아가야만 기도가 된다고 생각해서는 아니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가 한 생각 간절한 마음으로 불보살(佛菩薩)의 명호(名號)를 염(念)할 때 그곳에는 언제라도 불보살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먼 데서 오셔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한 생각 정성스럽고 간절할 때에는 언제나 거기에 불보살이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일 년에 한두 번 특별히 기회를 내서 성지에 가는 것도 뜻은 있다고는 하지마는, 우리는 꼭 그때만을 기도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 속에, 가정에서 직장에서 거리에서 차중에서,
더군다나 이 절에 오시고 가시고 할 때 또 절에 와 계실 때 언제 어디라도 바로 그 자리가 법당이요, 성현이 계시고 기도 도량으로 알고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 나가신다면 그분이야말로 정말 크고 작은 모든 소원을 반드시 성취하실 것이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처음~20분42초)
 
 
 
 
 
(2/3)----------------
 
언젠가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옴마니반메훔'이나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 다 좋은 염불이요 주문이지만 '이 무엇고?' 한번 거각(擧却)하는 것이 '관세음보살, 옴마니반메훔' 육백만 번하는 공덕보다도 더 수승하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를 드는 곳에 최상승 활구참선을 하면 그것은 바로 팔만대장경을 다 읽고 그것을 바로 실천에 옮긴 것과 똑같은 이치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 많은 경을 읽으신 분도 계실 줄 생각합니다마는, 아무리 많은 대소 십이부경전(十二部經典)을 다 읽으신다 하더라도 올바르게 읽으신다면 결국은 '이뭣고?' 참선을 할 수밖에는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읽지 아니하고도 이 말씀을 정말 뼛속 깊게 믿고 느끼고 그리고 실천을 하신다면 더욱 좋은 것입니다.
 
참선을 하라고 권고를 하면 '아직 아무것도 모릅니다. 경전도 읽어보지를 못했고 절에도 별로 다니질 안 해서 뭘 좀 알아야 하지, 아무것도 몰라가지고 무슨 참선을 하겠습니까?'
그래 가지고 무슨 읽을 책을 좀 구해달라고 이러한 부탁을 하시는 분들 가끔 만납니다.
 
많이 알아 가지고, 불교에 교리에 대해서 모다 많이 알아야만 참선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저것을 많이 알아가지고 참선을 잘 못한 그런 분도 많이 있습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경도 별로 읽어 보지를 못하고 다못 시키는 대로만 고지식하게 진실하게 하는 분이 오히려 더 공부를 잘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저것 많이 읽고 생각하고 알고 그래 가지고 교리에 대해서 '뭐?'하면 줄줄줄줄 줄줄줄 아주 거 잘 해설을 하고 말을 하고 그리고 그것으로써 스스로도 흐뭇하게 생각하고, 많이 불교에 대해서 자기가 참 공부를 많이 한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신 분도 있습니다.
물론 불교에 대해서 후배들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불교는 좋다고 하는 것을 얘기함으로써 그 사람으로 하여금 불법을 믿겄게 하는 데에는 하나의 좋은 재료가 될 수가 있고 방편이 될 수가 있지마는, 자기 스스로의 공부를 위해서는 그러한 것을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공부를 잘한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공부에 장애가 된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물론 불법은 자기 한 사람만 좋으면 그만인 게 아니고—자기만 옳게 믿고 닦으면 그만이다, 그것이 아니라 될 수 있으면 다른 사람도 이러한 좋은 불법을 믿고 실천하게 하도록 해 주기 위해서 손을 이끌어 주고 권고하고 이렇게 하는 것도 큰 복을 짓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자리이타(自利利他), 자기도 좋고 남도 이롭게 하는 대승불교요, 대단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물론 여러분들께서도 한 사람이라도 더 이 불법을 믿고 정법을 믿어서 참선을 하도록 서로 이끌고 권고하고 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것입니다.
자기가 공양미(供養米)라든지 성금을 갔다가 부처님께 올리고 불공을 드리고 기도를 하고 그런 것보다도 한 사람이라도 더 이 불법을 믿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그 공덕이 몇십 배 더 수승하다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다른 사람에게 밥을 주고 돈을 주고 옷을 준 그런 물질적인 공덕 짓는 것은 한정이 있어. 언젠가는 거기에 해당한 복을 받고 나면 그것으로써 끝이지만,
말로써건, 자기의 마음으로써건 또는 행동으로써 남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어 가지고 자기를 인연해서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닦도록 해 준다면 그것은 영원한 무루(無漏)의 복(福)을 짓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의 공부를, 자기 마음 닦는 화두를 내동댕이쳐 버리고 계속 동분서주, 그런 복을 짓기 위해서 동분서주(東奔西走)하라,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자리(自利)와 이타(利他)가 동시에 이루어질랴면 오면서 가면서, 일을 하면서 차를 타면서 화두를 들고 가고, 화두를 들고 오고 이렇게 해서 자기 생활이 완전히 화두를 중심으로 해서 화두 관조(觀照)하는 것을 여의지 아니하면서 생활을 하게 되면 자기도 나날이 향상되어 가는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 향상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에 모든 재앙과 장애와 업은 자기의 마음으로부터 지어서 받는 것이 되기 때문에 자기 마음을 정법으로 돌려서, 참나 깨닫기 위한 진실한 수행이 바로 생활이 될 때에 그 생활은 한 걸음 내디디고 한 손 올렸다 내린 모든 자기의 동작, 눈 한번 감았다 뜨고 입으로 말하고 밥 먹는 모든 동작이 고대로 참된 수행이 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부처님과 같이 생활을 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 그러한 행동, 그러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들은 다른 사람에게 많은 좋은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는 수행을 하지 아니하고, 자기는 조금도 옛날보다 더 향상되는 것이 없이 입으로만 '참선을 해라, 정법을 믿으라' 아무리 권고해 봤자 별로 그렇게 그 사람이 나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것입니다.
 
내 먼저 철저히 정법을 믿고 일상 생활 속에서 아주 진실하게 수행을 함으로써 '그분의 말과 마음가짐과 모든 행동이 그 전보다 더 모든 점에 있어서 향상이 되고 개선이 되야 한다'고.
나아가서는 그 사람 몸에서는 코로 맡을 수 없는 미묘한 향내가 풍기게 될 때에 주변 사람들은, 더욱이 가정에 모든 사람들 이웃에 모든 사람들은 자연히 그 사람을 따르게 되고 믿게 되고 말 한마디에 많은 사람들이 순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의 수행법이며, 생활이며 포교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기도 입재요, 결제로써 우리는 물론 이 용화사 선원에 결제에 방부(房付)를 드린 분도 계시고, 또 결제에는 들지 아니하지만 백일기도에 참석하신 분도 계시고 그러겠습니다.
 
어떻든 간에 '한 생각' 간절하게 돌이켜서 화두를 드는 곳에 백일기도는 거기에서 소원을 성취할 수 있도록 여물어 가는 것이 되는 것이고, 한 생각, 어디에서 무엇을 하시고 간에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를 드는 곳에 성불(成佛)을 향해서 스스로 향상되어 가는 것입니다.
 
백일기도는 한 생각 단속으로,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에 따라서 백일기도를 성취하느냐 못하느냐에 기로가 거기에서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한 생각 단속하지 아니하고 방치한 곳에는 마구니가 들어올 수 있는 문을, 틈을 거기에서 열어주는 것이 되는 것이고, 모든 재앙이 들어올 수 있는 틈을 터주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무량겁이 바로 이 한 생각, 일념지간(一念之間)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단속한다면 무량겁 업도 소멸이 되고, 무량겁 생사를 끊는 길도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 최상승법에 있어서는 한 생각이 바로 무량겁(無量劫)인 것입니다. 한 생각을 떠나서 무량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도 그러려니와 이 한 생각 일어나는 그 자리를 여의고서 육도윤회(六途輪廻)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솔천, 아까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대한 말씀이 계셨지마는 도솔천 내원궁은 불과 물 그런 삼재(三災)의 겁풍이 도달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외원궁까지도 불과 물에 겁풍이 도달하지만 내원궁에는 도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도솔천 내원궁은 모든 부처님께서 출현(出現)하시기 위해서 지금 대기하고 계신 곳이 바로 도솔천 내원궁입니다.
 
도솔천 내원궁은 바로 극락세계와 조금도 차등이 없을 만큼 그렇게 좋은 곳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성현들이 도솔천 내원궁에 환생(還生)하시기를, 거기에 왕생(往生)하시기를 발원을 하셨습니다.
지금 앞으로 56억 7천만년 뒤에 출현하실 하강(下降)하실 미륵 부처님, 미륵불도 지금 도솔천 내원궁에 대기하고 계십니다.
 
그 도솔천 내원궁이 저 하늘나라 높은 데에 있다고 생각하시지를 말고 도솔천 내원궁은 우리의 자성(自性) 본궁이다. 내가 한 생각 탁! 깨달으면 깨달은 바로 그 본각 자리가 도솔천 내원궁이다.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그러한 뜻의 말씀이 계셨습니다. 이것은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볼 때에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정말 죽어서 도솔천 내원궁에 가기를 발원하기보다는 살아서 도솔천 내원궁에 가실 수 있다면 그것이 더욱 좋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살아서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길을 열심히 한다면 살아서 가는 사람이 죽어서 못 갈까 걱정할 것은 하등에 없는 것입니다.
 
살아서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법이 바로 우리의 중생의 일념, 그 한 생각이 슬픈 생각이건 또는 어떠한
노여운 생각이건, 괴로운 생각이건, 어떠한 생각이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심지어 어떠한 고약한 욕심스런 생각이건, 누구를 해롭게 헐랴고 하는 그러한 나쁜 생각일지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때일수록 그 한 생각을 탁! 돌이켜서 숨을 깊이 들어마셔서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그렇게 돌이켜서 단속해 나가면, 그러한 노도(怒濤)와 같이 일어나는 어떠한 중생에 번뇌 망상에 마음이라 할지라도 스르르르르 가라앉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 나가다 보면 하루 이틀 사흘 나흘 한 달 일 년 이렇게 일구월심(日久月深), 날이 가고 달이 감에 따라서 점점 그것이, 생각 돌려서 화두 드는 것이 습관이 되고 또 나아가서는 그것이 체질화가 되어서 그렇게 할려고 안 해도 제절로 그렇게 되어진다면, 언제나 순일무잡하게
일여(一如)하게 그렇게 공부가 되어간다면 바로 그것이 득력(得力)을 하는 것이여.
 
'득력(得力)은 생력(省力)이다, 힘을 얻는다고 하는 것은 힘을 더는 것이다'
애를 써도 처음에는 잘 안되고 깜박 잊어버리고 잊어버려서 못하고 그러다가 한 달 두 달 일 년 이태 이렇게 공부를 함으로써 할랴고 안 해도 무심 속에 저절로 그렇게 공부가 되어 가면 그것이 바로 힘을 더는 것인데, 그 힘을 더는 것이 바로 득력하는 것이다, 힘을 얻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질 때 스스로 가만히 자기 자신을 반성을 해 보면, 완연히 내가 이 참선 공부를 하기 전의 자기와 참선을 해 가지고 벌써 오늘에 이르러서와 스스로 냉정하게 반성을 해 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달라진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때에 '내가 어쩌다가 이러한 좋은 법을 만났던가?' 스스로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참 보람을 느끼고 스스로 참 이 행복함을 느끼고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이 정법에서 물러나지 않겠다' 이러한 결심이 서게 될 것이며, '내가 금생에 이 몸 있을 때 기어코 대도를 성취하겠다'고 하는 이런 신심이 돈발(頓發)하게 될 것입니다.(20분46초~40분6초)
 
 
 
 
 
(3/3)----------------
 
결제가 석 달 동안, 내년 보름까지 석 달입니다마는 하루 하루씩을, 「오늘 하루 결제다」 이렇게 생각하고 하루를 딱! 작정을 하고서 알뜰하게 하루를 지내셔야 하는 것입니다.
 
선방에 계신 스님네와 보살님 또 가정에 계신 보살님네나 거사님들, 하루씩을 딱 결정을 하셔요.
「하루 결제다」 이리 생각하고, 그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세수하고 가벼운 운동도 하고 그래가지고 좌선(坐禪)을 떠억 해서 30분이건 한 시간이건 이렇게 딱! 하고서 새벽부터서 하루 결제가 시작하는 것입니다.
 
직장에 가실 때, 직장에서 모든 사람을 만날 때, 어디에서 무엇을 하시건 간에 하루 결제를 아주 알뜰하게 하셔서 그날 저녁에 침대에 들기 전에 또 30분 내지 1시간을 터억~ 좌선을 하시고,
자리에 누워서 '내가 오늘 하루는 얼마만큼 알뜰히 공부를 했나? 이러이러한 일은 내가 이때 내가 잠깐 화두를 놓쳤었구나. 내일은 더 알뜰히 해야겄다' 이렇게 반성을 하고서 눈을 딱 감은 채 심호흡을 하면서 '이뭣고?' 숨을 스르르르 들여마셔 가지고 잠깐 머물렀다 내쉬면서 '이뭣고?'
 
눈을 감고 자리에서 잠을 청하지를 말고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생각 생각에 화두를 거각하면은 언제 잠이 오는 줄 모르게 잠이 스르르르 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그 이튿날 자기가 필요할 때 저절로 눈이 딱! 떠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눈이 딱! 뜨자마자 새로 화두를 들지 아니해도 엊저녁에 잠자리에 누워서 들던 그 화두가 고대로 딱 들어져 있는 것을 느끼게 될 날이 있습니다.
 
시간을 보면은 대여섯 시간이 지내갔는데, 실지 자기 생각에는 한두 시간 잠깐 눈 붙인 거 같이 그렇게 잠을 별로 안 잔 거 같이 느껴지지만 그렇게 몸이 가볍고 정신이 깨끗하고, 그러지만 너무 깊이 너무 맛있게 달게 잤기 때문에 대여섯 시간을 잤어도 그렇게 짧은 시간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바로 눈을 감고 자는 상태에서도 고대로 화두가 들려져 있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공부가 무르익어 가면 오매일여(寤寐一如)가 되는 것입니다. 잠을 잘 때나 눈을 떴을 때나 언제라도 화두가 순일하게 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가 될 때까지 한 생각 한 생각을 꾸준히 들고 열심히 해 나가면 누구라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할까 염려할 것도 없고, 빨리 깨닫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서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일여하게 되어 간다면 버려야 할 망상도 없고, 해탈해야 할 생사도 없고, 깨달라 증득해야 할 열반(涅槃)도 따로 바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버려야 할 생사가 없는데 증득해야 할 열반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사(祖師)가 말씀하시기를 「단진범정(但盡凡情)이요 별무성해(別無聖解)니라. 다못 범부에 정이 다할지언정 별무성해다. 따로 성스러운 알음알이를 내지 말아라」
 
간절한 마음으로 한 생각 한 생각을 돌이켜서 묵묵히 화두를 관조해 나가는 곳에 일체 범정(凡情), 범부의 망상 번뇌는 거기에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 그 범부에 번뇌 망상이 바로 보리심(菩提心)으로 바꿔지는 곳인 것입니다.
보리심으로 바꿔졌는데 무슨 성인의 성스러운 알음알이를 새로 지을 수가 있겠습니까? 성해(聖解)를 새로 짓는 곳에 망상의 물결이 치게 되는 것입니다.
 
'(법문 끊김) 그것 때문에 공부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분이 있었습니다마는.
저에게가 오늘 말씀드린 말을 잘 이해를 하신다면 번뇌가 일어난다고 짜증을 낼 것도 없고, 화두가 잘 안 들린다고 짜증을 낼 필요도 없습니다. 바쁘다고 핑계댈 것도 없고 몸이 아프다고 원망할 것도 없습니다.
 
몸이 아프건 바쁘건, 가정에 어떤 근심 걱정이 될 만한 일이 있건 없건, 그럴수록에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서 오직 이 하나를 위해서 모든 우리의 몸과 마음과 정성이 똘똘 뭉쳐서 일념 단속하는 데에 회향(廻向)이 된다면 바로 거기에서 모든 재앙(災殃)과 액난(厄難)은 거기에서 소멸이 되고, 재앙과 액난 없으면 소원은 성취하기 마련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결제와 백일기도 입재를 기해서 여러 사부대중께 간곡히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욕식불조회광처(欲識佛祖廻光處)인댄 당정기의여허공(當淨其意如虛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만약 부처와 조사의 회광처(廻光處)를 알고자 할진대는 다못 그 뜻을 허공과 같이 할지니라.
일부로 마음을 비워서 허공과 같이 헐랴고 허면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로서 가장 빨리 부처님의 마음과 같이 될려면 우리로서는 화두를 거각하는 것이 가장 요긴한 것입니다.(40분9초~49분12초)(끝)
 
 
 
----------------(1/3)
 
*(게송) ‘산월투창백~’ ; 『소요당집(逍遙堂集)』 소요 태능(逍遙太能)의 ‘무제(無題)’ 게송 참고.
*달마대사(達摩大師)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https://emokko.tistory.com/55
*면벽구년(面壁九年) ; 중국 선종의 초조 달마대사가 9년 동안 면벽했던 고사를 가리킨다.
달마대사가 중국에 와서 양 무제(武帝)를 만나 문답하였으나 무제가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여 마침내 물러나 양자강을 건너 위(魏)나라의 낙양으로 가서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 머물렀다. 경론을 강설하지도 않고, 불상에 절을 하지도 않으며 종일토록 말하지 않고 벽을 향하여 좌선하기 9년을 지냈다. 이를 '면벽구년(面壁九年)'이라 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뒤부터 선승(禪僧)들이 선원에서 벽을 향하여 좌선하게 되었다.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불교의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였고, 계율이나 염불이나 송주(誦呪)를 죄다 부인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觀心一法總攝諸行)」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直指人心見性成佛)」고 하였다.
실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성인이 나왔었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다투어 묵은 불교를 버리고 이 새 법, 참선법(參禪法)을 배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란 것은 달마조사가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的大意)」란 말과 같은 말이다.
*격외선(格外禪) ; 언어 · 문자로 의론할 수 있는 격식을 초월한 선법. 조사선(祖師禪)에서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 교외별전(敎外別傳)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는 선을 말한다.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참고] 분(分) : 분수(分數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상(上) : ①‘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②‘추상적인 공간에서의 한 위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예) 정진하는 분상에는 ---> 정진하는 수행자에 알맞은 입장에 따르자면.
*평상화(平常話) ; 평범한 말. 평상시의 말.
*적멸궁(寂滅宮 고요할 적/다할·끊어질 멸/집·대궐·절·마음 궁) ; 적멸의 궁전은 적멸을 형상화한 말로서, 부처님의 깨달은 해탈의 경지를 말한다.
*적멸(寂滅 고요할 적/다할·끊어질 멸) ; ①번뇌의 불을 완전히 꺼버린, 탐욕(貪欲)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마음의 궁극적인 고요함. 적정(寂靜)으로 돌아가 일체의 상(相)을 여의고 있는 것. ②열반, 부처님의 경지, 깨달음.
*장엄(莊嚴 엄숙할·삼가할·꾸밀 장/엄할·공경할·꾸밈 엄) ; ①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국토를 꾸미고, 훌륭한 공덕을 쌓아 몸을 장식하고, 향이나 꽃 따위를 부처님께 올려 장식하는 일. ②건립하는 것. 건립. 훌륭히 배치, 배열되어 있는 것. ③장식. 물건을 장식하는 것. 아름답게 장식함. 훌륭한 것. 엄숙하게 장식된 모양, 모습. 장식물.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중생심(衆生心) ; ①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가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②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진여심(眞如心). ③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진여불성(眞如佛性) ; 진여(眞如)인 불성(佛性).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진여자성(眞如自性)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부처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지자(知者), 각(覺)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부처님 경전에 말씀에는 「중생과 부처님과 조금도 차별이 없다」' ; 삼무차별(三無差別). 마음[心]과 부처[佛]와 중생(衆生) 세 가지가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 삼법무차(三法無差)라고도 한다.
[참고] 60권본 『화엄경(華嚴經)』 불타발타라 역(佛馱跋陀羅 譯) 제10권, 제16 야마천궁보살설게품(夜摩天宮菩薩說偈品).
心如工畫師 畫種種五陰 一切世界中 無法而不造 如心佛亦爾 如佛衆生然 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
 
마음은 (빛깔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화가와 같이 갖가지 오음으로 그림을 그리니, 일체의 세계 속에서 짓지 못하는 법이 없네. 마음과 같이 부처 또한 그러하고 부처와 같이 중생 또한 그러하니, 마음 · 부처 · 중생, 이 세 가지는 차별이 없다.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근본 성품, 각성(覺性), 자성(自性).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큰방. 선실(禪室). ②선원(禪院).
‘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 수행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참고 ❶]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 수덕사 능인선원) p249.
선방만 선방이 아니라 참선하는 사람은 각각 자기 육체가 곧 선방이라, 선방에 상주(常住)하는 것이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에 간단(間斷) 없이 정진할 수 있나니라.
[참고 ❷] 송담스님(No.582)—1997년 성도재 법회(96.12.08)에서.
보살선방 또는 비구선방, 시민선방 또 후원, 사무실 각자 자기 있는 처소에서 자기 분(分) 따라서 모다 열심히 정진을 하고 계시고, 가정에서도 터억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면 가정이 바로 자기의 선방(禪房)입니다. 차를 타고 갈 때는 차 안이 바로 선방인 것이고,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이 바로 선방인 것입니다.
일체처 일체시, 시간과 공간에 따질 것 없이 언제나 한 생각 돌이키면은 바로 그 자리가 활구참선 도량(道場)이여.(53분52초~54분41초)
*선불장(選佛場) ; 부처[佛]를 뽑는[選] 장소[場]라는 뜻. 과거시험(科擧試驗 예전에,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관리 채용 시험 제도로서 보는 시험)을 보는 장소에서 유추된 말이다.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곳. 선당(禪堂) · 승당(僧堂) · 선방(禪房) 등을 가리킨다. 수행자들이 선방에서 좌선하여 도를 깨달으므로 이렇게 부른다.
 
[참고]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제14권 「단하천연전(丹霞天然傳)」
鄧州 丹霞天然禪師不知何許人也 初習儒學 將入長安應擧 方宿於逆旅 忽夢白光滿室 占者曰 解空之祥也 偶一禪客 問曰 仁者何往 曰 選官去 禪客曰 選官何如選佛 曰 選佛當往何所 禪客曰 今江西馬大師出世 是選佛之場 仁者可往 遂直造江西
 
등주 단하천연선사는 어느 곳의 사람인지 모른다. 처음에 유교를 배워서 장안으로 과거에 응시하러 가던 길에 여관에서 자다가 홀연히 밝은 빛이 방에 가득차는 꿈을 꾸었다. 이에 점치는 자가 '공을 터득할[解空] 상서로운 조짐이다'라고 풀었다.
우연히 어떤 선객(禪客)이 '당신은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물어 '관리 뽑는 시험을 보러 갑니다'라고 대답했더니, 그 선객이 '관리 뽑는 시험이 어찌 부처 뽑는 시험만 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단하가 '부처 뽑는 시험을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라고 물었고, 선객이 '지금 강서(江西)에서 마조대사가 출세 했습니다. 그곳이 부처를 뽑는 시험장[選佛之場]이니 그곳에 가보도록 하십시오'라고 한 말을 듣고 그길로 강서로 갔다.
 
[참고]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 ‘개당보설(開堂普說)’에 방거사(龐居士)의 게송이 다음과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법[無爲]을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공(空)해 급제하여 돌아가네’ 『고봉화상선요•어록』 (통광 스님 역주) p37, 46에서.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참고] 송담스님(No.88)—(참선법A) 법련사 불교학생회 청법 법문(1978.10.1)에서.
‘중생 말세다, 중생 근기가 미약하다, 그러니까 참선법 가지고는 안되고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이러한 것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마는,
말세라고 하는 것은 편의에 따라서 정법 시대, 상법 시대, 말법 시대 이렇게 해서 말씀해 놨지만은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하근기가 아니라 상근기(上根機)인 것입니다.
 
아무리 부처님 당시에 태어났으되 이 법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하근기인 것이고,
지금 삼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 태어났어도 이 활구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실천에 옮긴 사람이면, 그 사람은 바로 정법 시대 사람이요, 그 사람은 상근기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선법을 배우고자 하고, 참선에 의해서 자아를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냈을 때 여러분은 이미 정법 시대를 만나 것이고, 여러분은 상근기인 것입니다.
조금도 그런 염려를 마시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결정코 금생에 ‘참나’를 자각하도록 도업을 성취하기를 간절히 빕니다.
*하열(下劣 아래 하/못할·낮을 렬) ; (행동이나 생각이) 남보다 뒤떨어짐. 수준이 낮음.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천수(千手) ; 천수다라니(千手陀羅尼). 「천수경(千手經)」에 나오는 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를 말함. 82구(句)의 주문(呪文). 천수관음의 공덕을 말한 것으로, 이것을 외면 모든 죄업이 없어진다고 한다.
대비주(大悲呪), 천수주(千手呪), 천수천안대비심다라니(千手千眼大悲心陀羅尼)라고도 한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구경(究竟 궁구할 구/마칠·다할 경)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그 위에 더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경절문(徑截門 지름길 경/끊을 절/문 문) ; 지름길문. 경절(徑截)이란 ‘바로 질러 간다’는 뜻. 교문(敎門)의 55위 점차를 거치지 않고 한 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즉 일체의 어로(語路), 의리(義理), 사량분별의 길을 거치지 않고 직접 마음의 본체에 계합함을 일컫는다.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입재(入齋) ; 재(齋)를 시작하는 일. 또는 그 의식.
*재(齋 재계할 재) ; ‘재(齋)’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신·구·의 3업(身口意 三業)을 깨끗하게 하여 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 관세음(觀世音)은 산스크리트어 avalokiteśvara의 번역, 보살(菩薩)은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세간(世間)의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받을 때,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음성(音聲)을 듣고(觀) 대자비와 지혜로써 자유 자재로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보살.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왼쪽 보처(補處).
또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 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 한다. 또 광세음(光世音)·관세음(觀世音)·관세자재(觀世自在)·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쓰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관세음보살의 주처는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이다.
한국에서는 동해에 있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洛山寺)가 관음 도량으로 유명하다.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명호(名號) ; 명자(名字), 명(名)이라고도 함. 이름. 주로 부처님과 보살의 이름이기에 존호(尊號), 가호(嘉號) 등이라고도 한다. 이 명호(名號)를 듣기도 하고 부르기도 하는 것에 커다란 작용이 있다고 여기고, 여기에서 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르는 등의 행(行)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2/3)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십이부경전(十二部經典) ; 십이부경(十二部經)은 부처님의 일대 교설을 그 경문의 서술 형식 또는 내용을 열두 가지로 분류한 것으로, 십이부경전(十二部經典)은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한다. 팔만사천법문.
*대승교(大乘敎) : [범] Mahayana 대승(大乘)이란 큰 수레를 뜻한다。큰 원(願)과 큰 뜻을 세워서 나를 희생하여 모든 중생을 즐겁고 편안하게 건져 주겠다는 보살심(菩薩心) 있는 이들을 위하여, 육도(六度)와 만행(萬行)을 닦아 가도록 깊은 이치를 말씀하신 법문이다。그 대표적인 경전은 <반야경(般若經)> <해심밀경(解深密經)> <능가경(楞伽經)> <기신론(起信論)> <범망경(梵網經)> 같은 것들이다.
이 법문을 요약하여 말하면, 이 세상에 온갖 물질과 일(森羅萬象)이 벌어져 있으나, 낱낱이 현상(現象) 그대로 비어 없는 것이며, 모든 차별된 것이 그대로 다 평등하여 열반인 것이다。따라서 무엇에나 걸릴 것이 없는 것이다。소승의 열반이 소극적이며 작고 옅은 것이라면 대승의 열반은 적극적이며 크고 참된 것이다。한 중생도 남음이 없이 모두 제도한 뒤에야, 자기가 성불하겠다는 소원이야말로 대승의 보살심인 것이다.
*공양미(供養米) ; 공양에 쓰는 쌀. 공양으로 바치는 쌀.
*공양(供養 이바지하다·받들다·모시다·바치다 공/기르다·공양하다 양)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무루(無漏 없을 무/샐·구멍·번뇌 루) ; 유루(有漏)의 대칭어. 마음과 몸을 괴롭히는 번뇌에서 벗어남.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마음 상태. 번뇌가 사라진 경지.
누(漏)는 누설(漏泄, 漏洩 흘러나온다)의 뜻으로 번뇌의 다른 이름이다. 곧 육근(六根)과 아홉 구멍(九孔)에서는 항상 부정한 것이 흘러나오므로 누(漏)라 한다. 혹은 누란 누락(漏落)의 뜻으로 중생을 삼악도(三惡途 : 지옥, 아귀, 축생)에 떨어뜨린다는 뜻이다. 이러한 누(漏)를 동반한 법을 유루, 그렇지 않은 법을 무루라 한다.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고 인도하고, 자기도 열심히 닦으면서 남도 같이 닦게 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마구니 ; 마(魔). [범] mā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64에서. (가로판 p66~67)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무량겁(無量劫 없을 무/헤아릴 량/가장 긴 시간 겁) ; 헤아릴[量] 수 없는[無] 오랜 시간[劫]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도솔천(兜率天)은 욕계(欲界) 육천(六天)의 넷째 하늘로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로서 여기에 있으면서 하늘나라 사람들을 제도하며 남섬부주에 하생(下生)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이 보살이 불교의 33천 중 도솔천에 머무는 이유는 중생을 구제하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도솔천은 아래로는 사천왕(四天王) · 도리천(忉利天) · 야마천(夜摩天)이 욕정(欲情)에 잠겨 있고, 위로는 화락천(化樂天) ·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 들뜬 마음이 많은데 비해 도솔천은 잠기지도 들뜨지도 않으면서 오욕락(五慾樂)에 만족한 마음을 냄으로, 다음에 성불할 보처(補處)보살이 머문다고 한다.
 
도솔천의 수명은 4천 세라 하고, 도솔천의 하루는 인간의 4백 세라 하였으니, 도솔천의 수명을 인간 수명으로 환산하면 인간의 5억 7천 6백만 년에 해당하지만(4천 x 3백 6십, 1년 x 4백 = 5억 7천 6백만), 고대의 기수법(記數法)에 따르면 57억 6천만 년이라고 한다.
 
도솔천에 왕생할 수 있는 인연은 ①끊임없이 정진하고 많은 공덕을 쌓은 자. ②탑을 깨끗이 하고 좋은 향과 아름다운 꽃을 공양한 자. ③여러 가지 삼매(三昧)로써 깊은 선정(禪定)을 닦은 자. ④경전을 독송하는 자. ⑤번뇌를 끊지는 못하였지만 지극한 마음으로 미륵을 염불하는 자. ⑥팔계(八戒)를 받고 청정한 행을 익히며 사홍서원을 잊지 않는 자. ⑦널리 복업(福業)을 닦는 자. ⑧계를 어기고 악을 범하였어도 미륵보살의 자비로운 이름을 듣고 정성껏 참회하는 자. ⑨미륵보살의 이름을 듣고 그 형상을 만들어 향과 꽃, 깃발로 장식하고 예배하는 자 등이다.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 : 오직 한 번만 생사(生死)에 관련되고, 일생을 마치면 다음에는 부처님이 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보살.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 :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 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④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인한 육도윤회(六途輪廻)의 재난.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미륵불(彌勒佛)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본각(本覺) : 일체 중생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각성(覺性)의 뜻으로서 청정한 심성(心性)을 말함。 이 심성은 허명(虛明)해서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또 자연적인 것도 아니며, 본래 중생의 상념(想念)을 떠나서 법계에 두루 가득차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망(迷妄)과 깨달음에 관계 없는 절대적인 경위(境位)이다.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일여(一如)하다 ; 내가 몸과 마음이 깨끗하고 간절하게 기도를 하면 내 마음이 바로 부처님 마음과 하나가 되는 것.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 · 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참고] 『서장(書狀)』 (대혜종고 著) ‘증시랑(曾侍朗)에게 답함(여섯 번째)’
苟念念에 不退初心하고 把自家心識이 緣世間塵勞底하야 回來抵在般若上이면 雖今生에 打未徹이라도 臨命終時에 定不爲惡業所牽하야 流落惡道하고 來生出頭에 隨我今生願力하야 定在般若中하야 現成受用하리니 此時決定底事라 無可疑者니라.
 
참으로 생각생각에 초심(初心)에서 물러나지 말고 자기 자신의 마음이 세간의 번뇌와 반연하는 것을 잡아 돌이켜 반야(般若) 위에 이르게 하면, 설령 금생에 (이 일을) 타개打開하여 사무치지 못하더라도 임종시에 결정코 악업(惡業)에 이끌리는 바가 되어 악도(惡道)에 흘러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며, 내생에 태어나면 나의 금생 원력에 따라 반드시 반야 가운데에 있어 수용(受用)을 현전 성취(現前成就)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결정적인 일이라, 의심할 게 없는 것입니다.
 
衆生界中事는 不著學하야도 無始時來로 習得熟하며 路頭亦熟이 自然取之에 左右逢其原하니 須著撥置니이다.
出世間學般若心은 無始時來로 背違라 乍聞知識의 說著이어도 自然理會不得하나니 須著立決定志하며 與之作頭抵하야 決不兩立이니다.
 
중생계의 일은 배우지 않더라도 아득한 옛날부터 익혀서 무르익어졌으며, 인생길에도 역시 익어져서 자연스레 취하여 그 중생계의 일 속으로 들어가니, 마땅히 이 습기를 없애 버리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에) 세간을 나와서 반야(般若)를 배운다는 마음은 시작을 알 수 없는 때로부터 등지고 어겨왔으므로 잠깐 선지식의 설법(說法)을 듣는다 해도 쉽사리 이해되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결정(決定)한 뜻을 세워서 더불어 머리를 맞대고 겨루어 나가야 합니다. (습기와 반야는) 결코 양립되지 않습니다.
 
此處에 若入得深하면 彼處는 不著排遣하야도 諸魔外道가 自然竄伏矣니이다. 生處는 放敎熟하고 熟處는 放敎生이 政爲此也니 日用做工夫處에 捉著欛柄하면 漸覺省力時가 便是得力處也니이다.
 
이 곳[般若心]에 깊이 들어가게 되면 저 곳은 (습기를 굳이) 물리쳐 보내지 않아도 모든 마(魔)와 외도가 자연히 항복해 숨을 것입니다. 설은 곳[生處]은 익게 하고, 익은 곳[熟處]은 설게 함이 바로 이 때문이니, 일용에 공부하는 곳에서 요점을 잡고[欛柄] 차츰 힘이 덜어진다고 느낄 때가, 바로 그때가 힘을 얻는 곳입니다.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나 망상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구체적인 대상 속에 있으면서 그 대상에 대한 어떤 망상 분별도 없으므로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어떤 생각이나 감정도 없다거나 사물에 무관심하다는 뜻은 아니며, 대상을 지향하되 그 대상에 대한 망상 분별과 집착이 없음을 나타낸다. 또한 일정하게 정해진 마음의 양태가 없이 대상에 응하며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자유롭게 변화하는 마음을 가리키기도 한다.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3/3)
 
*좌선(坐禪) ; 단정히 앉아서 가부좌(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고, 단정히 앉아서 선(禪) 수행을 하는 것.
*오매일여(寤寐一如 잠이 깰 오/잠잘 매/하나 일/같을 여) ; 자나깨나 언제나 완전히 하나가 되어 나눌 수 없음.
*타성일편(打成一片) : ①‘쳐서 한 조각(덩어리)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②차별대립을 여읜 경지.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인 것이 융화 · 용해되어 하나가 되는 것.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조사(祖師) : ①1종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종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단진범정(但盡凡情) 별무성해(別無聖解) ; ‘다만 범부의 생각이 다할지언정, 따로 성인의 알음알이가 없는 것이니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83. (가로판 p87)
修行之要는  但盡凡情이언정  別無聖解니라
수행의 요결은 다만 범부의 생각이 다할지언정, 따로 성인의 알음알이가 없는 것이니라.
 
(註解) 病盡藥除하면  還是本人이니라
병이 없어지고 약까지 쓰지 않는다면, 앓기 전 그 사람이니라.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범정(凡情 무릇·보통 범/뜻 정) ; 범부(凡夫 번뇌에 얽매여 생사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의 생각. 또는 범부의 망상분별을 말한다. 깨닫지 못한 이들이 근거 없이 범상한 알음알이로 헤아리는 것. 범심(凡心)과 같은 말.
*보리심(菩提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
*회향(廻向) ; 회전취향(回轉趣向)의 뜻. ①방향을 바꾸어 향하다. ②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그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함. ③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그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재앙(災殃 재앙 재/재앙 앙) ; 뜻하지 않게 생긴 불행한 변고. 또는 천재지변으로 말미암아 생긴 불행한 사고.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게송) '욕식불조회광처(欲識佛祖廻光處) 당정기의여허공(當淨其意如虛空)' ; '부처님과 조사님의 회광처(廻光處 깨치신 도리)를 알고자 하거든, 마땅히 그 뜻을 허공처럼 맑히어라'
[참고] 80권본 『화엄경(華嚴經)』 실차난타(實叉難陀) 역. 제50권 제37의 1 '여래출현품(如來出現品)' 보현보살(普賢菩薩) 송(頌)
약유욕지불경계(若有欲知佛境界) 당정기의여허공(當淨其意如虛空) 원리망상급제취(遠離妄想及諸取) 영심소향개무애(令心所向皆無礙)
만약 어떤 이가 부처님의 경계를 알고자 하거든, 마땅히 그 뜻을 허공처럼 맑히어라. 망상과 모든 집착 멀리 여의면 그 마음 향하는 바 걸림이 없으리라.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화두불명수계)2018. 9. 17. 22:29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385) (게송) '백천경권송여사~' / 선종에서는 도솔천내원궁에 탄생하길 발원 / 자기 뜻대로 할라고 한 것이 벌써 그것이 탐심 / 바보 스님의 깨달음 / 삼요.

 

우리 선종(禪宗)에서는 그래서 옛날부터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불러서 극락세계(極樂世界)에 태어나기를 발원하지 않고 십선계를 잘 지키면서 참선을 해 가지고 도솔천 내원궁에 탄생하기를 발원을 하는 것입니다.

 

탐진치를 평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지옥에 갈 차표를 딱 끊어 놓은 거와 같다. 십악을 범하지 아니하고 그놈을 돌리면은 그것이 십선법이 되는 거여. 십선법을 행하면은 그 사람은 도솔천 내원궁에 갈 표를 끊어 논 것이다.

 

이 바보 스님은 날마다 게송을 외웠어. ‘입을 다물고 뜻을 세워서 그릇된 행동을 하지 아니하며, 능히 이렇게 수행을 잘 닦아가면 반드시 깨달음을 얻으리’ 그렇게 그 게송을 외우면서 십선계를 잘 지키다 어느날 툭! 터져 버렸다. 툭 터져 가지고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해서 부처님께 인가(印可)를 받았습니다.

 

“바보라고 남을 업신여기는 법이 아닙니다. 머리가 영리해서 천 가지 만 가지 경전을 외워도 바로 그 뜻을 알고 실천을 하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고. 설사 한 구절의 게송을 외웠다 하더라도 그 게송의 참뜻을 알고 그것을 실천을 한다면 거기에는 위없는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고 한량없는 삼명육통(三明六通)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설법을 해 주셨습니다.

 

도(道)라고 하는 것은 무슨 기억력이 좋고 지능지수가 높고 머리가 좋다고 해서 도를 깨닫는 것이 아니여. 머리야 좋건 나쁘건 또 지식이야 학식이야 많건 적건, 전혀 그런 것 하고는 상관이 없어.

 

**송담스님(No.385)—1989년 3월 첫째 일요법회(화두 불명 십선계 법회)

 

(1/3) 약 21분.

 

(2/3) 약 21분.

 

(3/3) 약 20분.

 

(1/3)----------------

 

백천경권송여사(百千經卷誦如沙)하되  심지허로풍리사(心地虛勞風裡沙)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하사조주공안상(何似趙州公案上)에  번신일척파사진(飜身一擲破沙塵)고

나무~아미타불~

 

백천경권송여사(百千經卷誦如沙)하고, 백천경권(百千經卷), 팔만대장경. 백 개, 천 개의 경권을 외우기를 모래수와 같이 그 많은 경전을 외운다 하더라도.

심지허로풍리사(心地虛勞風裡沙)다, 마음속이 공연히 복잡하고 수고로워서 마치 바람 속에 모래 먼지가 휘날리는 거와 같다.

 

하사조주공안상(何似趙州公案上)에, 어찌 조주 공안—조주 무자(無字)나 판치생모(板齒生毛)나 조주 공안상에,

번신일척파사진(飜身一擲破沙塵)이다, 몸을 뒤쳐서 한번 던져 가지고 그 모래알과 같은 티끌을 한바탕 타파해 버릴지니다. 어찌 타파해 버린 것만 같을까 보냐.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최상승법(最上乘法), 이 정법(正法)은 숙세에 깊은 인연을 심지 아니한 사람은 참 믿기가 어렵고, 겨우 믿어도 참 이것을 철저하게 실천하기가 어려워.

뭘 좀 많이 배우고 지식이 있는 사람은 자꾸 경전이나 무슨 어려운 경전 같은 것을 해설하고 이론적으로 따지고 철학적으로 따지고 교리적으로 따지고. 그렇게 해서 속으로 알아진 것이 있고 얻은 바가 있고, 남에게 자랑할 것이 있어야 무슨 불교를 공부를 많이 한 것처럼 그렇게 스스로 생각이 들고.

 

탁! 경을 갖다가 때려 덮어버리고 오직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 화두 한마디, 이 의단(疑團) 하나에 몸과 목숨을 거기다 내동댕이 쳐 봐.

모기란 놈이 쇠로 된 황소 등어리에 몸뚱이 채 처박고 들어가듯이 이 무자(無字), ‘이뭣고?’나 시삼마(是甚麽)나 이 화두 의단, 이 뭉텅이 하나 속에 나의 모든 것을 거기다 갖다 탁! 뭉쳐서 던지고 들어가는 이러한 최상승법.

이거라야 화두(話頭) 한번 드는 가운데에 백천 가지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이 거기에서 떨어져 나가고 천 가지 만 가지 업(業)과 마구니가 한마디 의심 앞에 어리대지를 못하고 물러서게 되는데.

 

참! 이 참선법(參禪法)이 믿어지기만 해도 숙세의 인연이요, 그놈을 믿고 거기 철저하게 대드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보통 정법에 인연을 심은 사람이 아니고선 그렇게 되기는 어려운 것이다.

 

 

방금 기사년 3월 첫째 일요법회를 맞이해서 전강 조실 스님의 활구참선에 대한 법문을 참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 알기 쉽게 그렇게 간곡히 설해 주시는 법문(法門)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불명(佛名)을 신청하신 분이 불명을 타고, 또 화두를 신청하신 분이 화두를 타고, 또 이 불명을 신청하신 분에게 오계, 십선법을 설해 드리는 날입니다.

 

계(戒)에는 오계가 있고, 처사 오계, 사미 오계가 있고 또 비구 이백오십계, 비구니 오백계 그리고 보살계에는 십중대계와 48경계가 있고. 이렇게 많은 여러 가지 종류의 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선문중(禪門中)에서는 십선법, 십선계(十善戒)를 닦아가지고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가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도솔천 내원궁에는 앞으로 석가모니 부처님 다음 부처님으로 이 염부제(閻浮提)에 출생하실 미륵(彌勒) 부처님이 현재 보살의 지위로 도솔천 내원궁에 지금 대기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어쨌든지 이 십선계를 잘 닦으면서 활구참선, 이 활구참선 최상승법을 열심히 닦어.

이게 닦아가지고 도솔천 내원궁에 탄생하기를 항상 기도를 하고 축원(祝願)을 하고 발심(發心)을 하면 우리 숨이 뚝 떨어지자마자 도솔천 내원궁에 가서 탄생을 해 가지고 미륵 보살님을 친견하고.

 

그 미륵 보살님 회상(會上)에서 계속해서 법문을 들으면서 참선을 하다가, 거기서 확철대오(廓徹大悟) 해서 미륵 부처님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나실 때, 미륵 부처님을 모시고서 이 땅에 같이 하생(下生)을 해 가지고 미륵 부처님의 제자로서 미륵 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하시는데 거기에 미륵 부처님을 도와서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그러한 원(願)을 세워 왔습니다.

 

우리 선종(禪宗)에서는 그래서 옛날부터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불러서 극락세계(極樂世界)에 태어나기를 발원하지 않고 십선계를 잘 지키면서 참선을 해 가지고 도솔천 내원궁에 탄생하기를 발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선계가 무엇이냐?

몸으로 세 가지, 또 입으로 짓는 죄 네 가지, 또 뜻으로 짓는 죄가 세 가지, 이렇게 해서 합해서 열 가지인데 이것을 십악(十惡)이라 그러는데.

 

그러면 몸으로 짓는 세 가지 죄악은 무엇이냐?

산목숨을 죽이는 거, 둘째 도둑질하는 거, 셋째 사음을 하는 거. 이것이 몸으로 짓는 세 가지 죄악이다.

 

그다음에 입으로 짓는 네 가지 죄는 무엇인고?

망어(妄語), 거짓말하는 거. 기어(綺語), 이리저리 진실치 못하게 꾸며 대는 거. 셋째, 두 가지 말로 사람을 이간(離間)을 붙여. 이간을 붙여 가지고 간에 가 붙었다 쓸개에 가 붙었다 그러면서 남을 속이고 그래가지고 아첨을 하고 해가지고 그런 것이 '두 가지 말[兩舌]'이다.

넷째에 가서 악구(惡口), 욕하는 거여. ‘호랭이 물어 갈 놈’ ‘벼락 맞을 놈’ 온갖 입에 못 담을 고약한 욕을 아주 남에게 부해가 나서 남에게도 하지만 자기 집안에 애들한테도 꺼떡하면 입에 습관이 되어 가지고 그렇게 막 욕을 퍼붓는다 그말이여. 그 욕이 입으로 짓는 네 가지와.

 

그다음에 뜻으로 짓는 세 가지는 탐, 탐심(貪心), 욕심내는 거. 또 진심(瞋心), 골내는 성내는 거. 셋째에 가서 어리석은 마음[癡心]을 내는 거.

그래서 몸으로 세 가지, 입으로 네 가지, 뜻으로 세 가지, 합해서 이것이 열 가지인데 이것을 십악이라 그러는 것이고.

 

그 십악을—살생을 하지 않고 오히려 죽어 가는 목숨을 살려 주면 요것이 '착할 선(善)'자 선이 되고, 도둑질을 아니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내 물건을 남에게 보시를 하면 이것이 또 선(善)이 되는 것이고.

또 음행을 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을 항상 청정하게 갖는다 말이여. 그러면 몸으로 짓는 삼악이 삼선으로 변하는 거고.

 

또 거짓말하고 꾸며 대고, 또 두 가지 말로 이간질하고 또 욕하는 대신 항상 진실한 말을 하고 또 꾸며 대지 않고 항상 말을 했다 하면은 실다운 말을 하고 또 두 가지 말로 이간질을 하지 아니하고 항상 진실한 말, 믿을 수 있는 말을 해서 모든 사람을 서로 화합을 시키고.

또 욕을 퍼붓는 게 아니라 항상 부드럽고 자비스러운 말을 써 버릇하면, 곱고 아름답고 자비스럽고 그런 말을 쓰면은 입으로 짓는 네 가지 죄가 아니라 네 가지 선이 되는 것이고.

 

탐심을 내거나 진심을 내거나 치심을 내지 않고서, 탐심 대신 항상 분(分)에 지나친 욕심을 내지 아니하고.

이 탐심은 물질적인 것만 탐심이 아니라—무엇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자기 주관적으로 이기적으로 독선적이고 그러지를 않고, 항상 내 고집을 버리고서 항상 빈 마음으로 남의 의견을 존중히 여기고, 남의 인격을 존중히 여기고, 남의 말을 귀담아 듣고 그래야 하는데, 자기 뜻대로 안되고 제 고집 세우다가 뜻대로 안되면 성을 내거든. 그래서 자기 뜻대로 할라고 한 것이 벌써 그것이 탐심이여.

 

자기 뜻대로 고집을 내세우다가 상대방이 들어주지 않고 자기 뜻대로 안되면은 범부(凡夫)는 전부 다 진심을 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심을 내가지고 입으로 퍼붓고 속으로 성내고 뾰루퉁하고, 그리고 상대방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부부간에도 그렇고, 부모 자식 간에도 그렇고, 형제간에도 그렇고, 고부간도 그렇고, 친구 간도 자기 의견을 따라 주지 아니하면 그냥 성을 내고 상대방을 원수로 여긴다 그말이여.

 

내가 내 고집을 세우고 내만 옳다고 하고 내 하고 싶은 대로만 할라고 그러면 상대방도 마찬가지여. 상대방은 또 상대방대로 자기 의견만을 주장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할라고 고집을 세우면 백사불성(百事不成)이여. 화합이 되지를 않은 거여.

그래가지고 싸워가지고 나중에는 저도 망하고 나도 망하고, 되는 일이 없고, 집안도 파괴가 되고, 당도 파괴가 되고, 사회 국가도 파괴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말이여.

 

나의 의견이 소중하면 상대방의 의견도 소중한 것이고, 나의 생명이 소중하면 상대방의 생명도 소중한 것이고, 나의 재산이 소중하면 상대방의 재산도 소중한 것이지, 제 것만을 위주(爲主)하고 제 것만을 내세우고 남을 갖다가 짓밟고 억누를라고 하면 가만히 있나요.

처음에는 조금 당하지마는 두 번 세 번 당하면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상대방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힘을 모아가지고 대들면 결국은 사이가 벙그러져 버리고, 아무리 다정한 친구도 원수가 되고 말아버린다 그말이여.

 

그래서 탐심을 내지 아니하고 오히려 양보하고, 물질도 양보하고, 모든 주장도 한 걸음씩 양보를 해서 서로의 좋은 점을, 서로 내 의견보다 상대방 의견이 좋으면 상대방을 또 따라줄 줄을 아는, 이렇게 되면 은 진심을 내지 않고, 진심을 내지 아니하면 서로 화합이 될 것이다 그말이여.

 

중생은 한 번 해 봐 갖고 안되고, 두 번 해 가지고 안되면 세 번쯤에 가서는 ‘아하! 내 주장만 해서는 안되겠구나’ 그렇게 깨달으면 될 텐데, 그걸 깨닫지를 못해.

평생을 제 주견(主見)만을 내세우고 자기 의견만을 존중하는 그 버릇을 평생을 그 고집을 가지고 산다 그말이여. 그러니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다.

 

이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 그것 때문에 지옥(地獄) · 아귀(餓鬼) · 축생(畜生)의 삼악도(三惡途)가 벌어진 것이여. 그 탐진치 삼독심을 휘두르기 때문에 그 사람을 위해서 준비된 세계가 축생이요, 아귀요, 지옥 세계여.

그래서 탐진치를 평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지옥에 갈 차표를 딱 끊어 놓은 거와 같다 이거거든.

 

이렇게 해서 십악을 범하지 아니하고 그놈을 돌리면은 그것이 십선법이 되는 거여. 십선법을 행하면은 그 사람은 도솔천 내원궁에 갈 표를 끊어 논 것이다 이거거든.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에 계실 때 아주 그 제자 가운데에 나이는 많으면서 아주 바보 천치(天癡) 같은 제자가 한 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經)이라든지 또는 게송(偈頌)이라든지 그런 것을 서로서로 외워 가지고 아침 저녁으로 그것을 모다 합해서 같이 외우기도 하고 그러는데.

다른 사람은 수백 마디씩 법구경이라든지 그 게송을 모다 외우는데 그 늙고 우둔한 비구는 그 게송을 한마디도 못 외와. 그래가지고 아주 바보 천치로 부처님 제자끼리도 널리 알려졌지만, 부처님 제자끼리만 알려질 뿐만 아니라 온 사위성 전체와 사위국 전 나라에 널리 소문이 났어.

 

아주 바보 천치 백치로 아주 소문이 났는데, 생긴 것도 농판 바보 같이 생겨 가지고.

그런데 모다 정말 비구 ・ 비구니 ・ 청신사 ・ 청신녀 사부대중(四部大衆)과 심지어는 어떻게 참 유명해졌던지 국왕 대신과 일반 시민까지도 그 바보라고 하는 것은 널리 알려졌더라.

 

그런데 그 형도 같이 출가를 했는데 형은 머리가 좋은데 동생이 그렇게 바보라. 그러니까 형이 너무 창피하고 그러니까 ‘이 바보 같은 것. 괜히 따라와서 출가한다고 해 가지고 나까지 망신을 시킨다’고 ‘너 집으로 가거라. 가서 빌어를 먹던지 말던지 집으로 가라’고 하니까, 참! 너무 자기 신세를 생각해 보니 기가 맥히다 그말이여.

그래서 참, 보따리를 싸 가지고 ‘천상 내가 여기는 있을 곳이 못 되는구나. 형이 나를 저렇게 가라고 하니 오죽 했으면 나를 가라고 할까. 괜히 나 때문에 형까지 망신을 하고 그러니 차라리 집으로 가서 뭐 장사를 하던지 농사를 짓던지 집으로 가야겠다’ 하고는.(처음~21분25초)

 

 

 

(2/3)----------------

 

그러니 참 너무너무 가슴이 아프고 슬퍼서 일주문(一柱門) 근처에 가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까, 부처님께서 떠억 정(定)에 들어서 관(觀)으로 살펴보시니까 아! 제자 하나가 나갈라고 그런단 말이여.

그래서 그걸 불러오게 해 가지고는 물어보니까 과연 “제가 바보라고 모다 나를 사람 취급도 안 하고 또 형도 가라고 그러고, 내가 생각해도 3년이나 되었는데도 아무 게송 하나를 못 읊으니 저 같은 것은 여기 있어 봤자 공연히 부처님과 승단만 갖다가 망신을 주고 그러니 차라리 집으로 가야겠습니다”

 

“그래. 그렇다면은 내가 일러줄 테니 내 시키는 대로 해라”

 

부처님께서는 너무너무 참 불쌍하고 가련해서, 그 울고 있는 모습이 너무너무 참 가련해서,

“그럼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입을 꼭 다물고, 뜻을 딱! 결심을 세우고서 모든 그릇된 일을 행하지를 말면서 열심히 수행을 하면 반드시 깨달음을 얻느니라. 이 말을 계속해서 날마다 고것만 해라”해 가지고, 그 앉혀 놓고서 수십 번을 일러주었어.

 

“입을 다물고”

“입을 다물고”

 

“뜻을 세우고”

“뜻을 세우고”

 

“그릇된 행동을 하지 아니하며”

“그릇된 행동을 하지 아니하며”

 

“능히 이렇게 잘 수행한 자는 반드시 깨달음을 얻는다”

 

그 말을 수십 번, 수백 번 해 가지고 그걸 외웠다 그말이여. 그거를 외운 다음에 십선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금방 설한 십선계를. 그것을 떠억 설해 주었어.

 

그러니까 이 사람이 날마다 그 게송을 외웠어. ‘입을 다물고 뜻을 세워서 그릇된 행동을 범하지 아니하고, 능히 이렇게 수행을 잘 닦아가면 반드시 깨달음을 얻으리’

그렇게 그 게송을 외우면서 십선계를 잘 지키다 어느날 툭! 터져 버렸다 그말이여. 툭 터져 가지고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해서 부처님께 인가(印可)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 있다가 부처님 계신 데로부터서 얼마 떨어진 데에 오백 명의 비구니(比丘尼), 여자 스님들이 모여서 수행을 하고 있는데, 한 달에 한 번씩 부처님께서 지정한 비구(比丘) 스님이 한 분씩 가서 그 비구니 여자 스님들한테 가서 설법을 하게 되어 있었어요. 마침 이번 차례가 그 바보 스님이 차례가 돌아왔습니다.

 

그러니 외우는 게송이라고는 게송 한 구절밖에는 모르는데 부처님이 가라고 하시니까 거기를 가게 되었는데, 그 소문이 비구니 처소에 소문이 건너갔어. 그래가지고 그 오백 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아주 그냥 확 뒤집어졌습니다.

‘그 바보 같은 스님이 우리한테 와서 설법을 해? 게송 겨우 한 구절을 외워 갖고 그것을 가지고 우리한테 설법을 해? 요놈의 작자(作者)가 오기만 하면 그냥 아주 개망신을 시켜 가지고 아주 보내리라’해 가지고.

특히 젊은 비구니 스님네들이 그냥 모여 가지고 깔깔대고 웃으면서 그 바보 스님 오기를 기다리고 있어.

 

떡! 바보 스님이 뚜벅뚜벅 걸어서 비구니 처소에 갔어. 가서 다 삼귀의(三歸依)를 하고, 다 청법(請法)을 해서 법상(法床)에 떠억 뚜께비 같이 뜨윽 올라가서 눈을 꺼먹꺼먹하고 앉았는데.

오백 명의 비구니들은 응당 조용하게 법상에 법사가 올라가면 기침 소리도 하지 않는 법이거든.

 

가만히 숨을 죽이고 참, 경청을 해야 할 텐데, 킥킥킥킥킥 이쪽 구석에서 킥킥킥킥 웃음을 참을수록에 더 나온다 그말이여. 아! 킥킥킥킥 웃어 가지고는 '무슨 게송, 자기가 읊어 봤자 겨우 부처님한테 배운 게송 그놈 한 구절 외울 것이다'해 가지고는.

그것 좀 당돌하고 장난 좋아하는 비구니가 자기가 그 게송을 한번 떠억 읊을라고 입을 벌리는데 소리가 안 나와. 하! 그것 참, 암만 소리를 내 가지고 ‘입을 다물고’ 할라고 해도 ‘이이...’ 입만 떨썩거리지 소리가 안 나온다 그말이여. 그것 참 이상하다 말이여.

 

그래 인자 모다 다 그 하기로 짜 놨는데, 빨리 그 비구니가 게송을 읊어야 하는데 안 읊으니까 전부 그 사람 보고 ‘뭣 하고 있냐? 빨리 안 읊으고 그러고 있느냐?’하고 쳐다보는데, 그럴수록에 읊을라고 입을 떨썩떨썩해도 안 된다 그말이여. 그래가지고는 또 다른 사람이 할라고 해도 안 되고.

 

그래 가지고는 그러고 있는 차에 그 바보 스님이 “입을 다물고...” 턱! 읊은데, 그 오백 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바늘을 떨구어도 귀에 들릴 만큼 그렇게 조용해져 버렸어.

그래가지고 게송을 떠억 읊고서 “여러분이 다 아시다시피 나는 천하에 바보올시다. 출가한지 여러 해가 되었고 나이도 많이 먹었지만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고 여러분 앞에 설법할 것이 없습니다. 다맛 이 게송 한 구절밖에 모르나 그 게송을 읊으면서 내가 능히 행해야 할 바를 나는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이 십선계에 대해서 말을 했습니다.

 

이 십선계—살생을 하지 마라. 도둑질을 하지 말아라. 사음을 하지 말아라. 또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 꾸며 대는 말을 하지 말아라. 두 가지 말을 하지 말아라. 욕을 하지 마라. 탐심을 내지 마라. 진심을 내지 마라. 어리석은 마음을 내지 마라.

이 십선계의 계목(戒目)은 사미승(沙彌僧)도 다 알고, 뭐 절에 와서 법문 몇번 들으면 삼척동자(三尺童子)도 다 아는 게송인데.

 

그래도 그 바보 스님이 뚜벅뚜벅 말하는데 그 오백 명의 비구니 스님네들은 그까짓 것은 천 번 만 번도 다 알고 조르르 다 외우고 있는 것인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확 그냥 경건한 마음으로 그 무식한 투로 하는 말씀이지만 그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진지한 데에서 나와.

 

그래가지고 조용하게 그 말씀을 듣고서 너무너무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가지고는 다시는 그 비구니들이 바보 스님을 업신여길 수가 없게 되어 버렸어.

‘확실히 부처님께 아라한과를 증득했다고 인가를 받았다더니 정말 바보, 바보, 바보라고 우리가 함부로 놀려 대고 욕하고 무시하고 그러다가는 큰일나겠다. 아! 세상에 좀 놀려먹고 망신을 줄려고 하니 입이 딱 붙어 갖고 안 떨어지는 걸 보면 분명히 참 저런 바보라도 깨닫기만 하면 그냥 그 법력(法力)이 있는 것이로구나’이리 생각하고는.

 

 

그런데 법회를 마치고 떠억 돌아왔는데, 어느 날 그 나라 왕이 공양(供養)을 청했어. 왕궁에다가 음식을 잘 차려 가지고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을 다 청해서 그래서 인자 부처님이 가시게 되었는데.

그때 그 국왕의 이름이 하시노프왕이여. 하시노프왕이 이렇게 정성스럽게 청하니까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거느리고 가시는데, 그 바보 스님을 부처님 바리때를 들려서 데리고 가셨어.

 

데리고 가는데 쭈욱 부처님과 그 밑에 모다 사리불, 목련존자, 가섭, 아란 할 것 없이 전부 고제자(高弟子)들이 전부 다 쭈욱 들어가고 맨끝에 인자 바보 스님이 바리때를 들고 따라 들어갈라고 하니까 문지기가, 그 성문 문지기가 탁 앞을 가로막으면서,

 

“못 들어가요. 당신은 스님이라고는 출가한 수행인이라고는 하지마는 당신 같은 바보 스님은 게송 하나도 제대로 못 외우면서. 우리 같은 무식한 사람도 부처님의 게송 하나둘쯤은 다 외우는데 게송 겨우 하나 외울둥 말둥 그까짓 것 해 갖고 어떻게 상감마마가 드리는 공양을 받을 수가 있겠느냐”고.

"당신 같은 사람이 들어가면 국왕을 갖다가 모독하는 것이라 안 된다"고 못 들어가게 해. 아, 그냥 참 난처하게 되었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냥 못 들어가게 하니까 우두커니 거기 인자 서 있는데.

 

우리 생각 같으면 그까짓 것 또 좀 신통력을 써서 주둥이가 딱 붙어버리게 하겠지마는 그런 도인들은 그런다고 해서 그런 어리석은 중생 앞에 신통술을 함부로 쓰는 법이 아니거든.

가만히 서서 인자 정진을 하고 있는데. '지금쯤은 부처님께서 다 발을 씻으시고 손을 씻으시고 인자 딱 자리에 앉으셨겠다. 인자 발우(鉢盂)를 펴실 시간이 되었다'하는 것을 딱 앉아서 짐작을 해 가지고는 그 바리때를 문밖에서 떠억 들어서 요렇게, 이렇게 부처님한테 드렸어.

 

아, 그러니까 궁중에 임금님 왕비 고관대신들이 쭈욱 있고, 스님네들이 차례차례 차례차례 발우를 탁 인자 앞에다 놓고 앉아 계시는데.

모두 발우를 펴시고 공양을 잡숫는 그 거동을 전 국왕 대신들이 전부 지켜보고 있는데, 어디서 부처님 앞에 기다란 팔이 쑤욱 나와 가지고 부처님 앞에 바리때를 갖다가 드리니까 부처님이 그 바리때를 딱 받아서 있는데.

 

아, 그냥 왕과 왕비와 고관대신들이 깜짝 놀랬어. 그래가지고 부처님께 여쭈었단 말이여.

“세상에 그 누구의 팔인데 그렇게 긴 팔이 이렇게 쑥 들어옵니까?”

“이건 다름이 아니라 나의 제자 아무개의 팔입니다”

 

“아, 그 팔이 왜 이렇게 여기 들어옵니까?”

“당신의 신하 문지기가 바보라고 못 들어오게 해서 그래서 성문 밖에서 할 수 없이 들어오지는 못하고 바리때를 나한테 이렇게 바치는 것이오”

 

“아, 세상에 그 사람이라면은 천하 바보인데 어떻게 팔이 이렇게 길게 궁중에까지 들어올 수가 있습니까?”

“바보라고 남을 업신여기는 법이 아닙니다. 머리가 영리해서 천 가지 만 가지 경전을 외워도 바로 그 뜻을 알고 실천을 하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고. 설사 한 구절의 게송을 외웠다 하더라도 그 게송의 참뜻을 알고 그것을 실천을 한다면 거기에는 위없는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고 한량없는 삼명육통(三明六通)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설법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국왕 대신과 모든 사람들이 '바보'라고 해서 업신여기는 법이 없고, 또 자기 생각에도 바보라고 해서 ‘나는 참선 해 봤자 소용이 없다’ ‘도를 닦아 봤자 소용이 없다’ 그러한 자포자기하는 일이 없게 되었다 이거거든.

 

도(道)라고 하는 것은 무슨 기억력이 좋고 지능지수가 높고 머리가 좋다고 해서 도를 깨닫는 것이 아니여. 머리야 좋건 나쁘건 또 지식이야 학식이야 많건 적건, 전혀 그런 것 하고는 상관이 없어.

 

설사 「낫 놓고 기역자를 모른다」 하더라도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탁 그렇게만 하면은 반드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순일무잡 해 가지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확철대오(廓徹大悟) 할 수 있다고 하는 굳센 신념을 가지고 열심히 여법(如法)하게 수행을 하면 반드시 도업(道業)은 얻을 수가 있는 거여.

 

요새 지성인들은 이러한 손가락으로 바윗돌을 뚫을 그러한 끈기가 부족해.

뭘 많이 알고, 이론적으로 무엇을 많이 아는 것을 위주로 하고 교리적으로 무슨 많이 알고, 화엄경이 어떻고, 법화경이 어떻고, 금강경이 무엇이 어떻고 그런 것을 이론적으로 따져서 쫙 외우고 해설할 수 있다한들 그것이 도(道)하고는 상관이 없는 거여.

 

이 설화를 통해서 우리는 바보, 무식하고 바보라고 해서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알았고, 또 무식하고 바보라 하더라도 끈기를 가지고, 신심을 가지고, 대의단을 가지고 철저히 정진을 해 가면 반드시 깨달을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불명을 타실 분은 이렇게 해서 십선법, 십악을 행하지 아니하고 십선을 잘 닦아가.

십선을 잘 닦아가는 것이, 그러면 열 가지를 낱낱이 몸으로 지키는 세 가지, 입으로 지키는 네 가지, 뜻으로 지키는 세 가지, 그 계목을 그렇게 잘 외우는 것보다는 무엇을 보던지 무엇을 듣던지 무슨 경계(境界)를 당하던지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항상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괴롭고 외로울 때도 ‘이뭣고?’ 몸이 아플 때도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 ‘이뭣고?’

 

‘이뭣고?’로 자기의 모든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로 돌리면은 살생하는 미운 생각도 거기에서 없어지고, 도둑질할 마음도 없어지고, 음행할 마음도 없어지고, 거짓말하고 비단 꾸며대는 일도 없어지는 거고, 욕하고 두 가지 말할 필요도 없어지는 거고, 탐심 내고 진심 내고 어리석은 마음 낼 겨를이 없어.

 

그러니 마음 닦는 최상승법을 닦지 아니하면서 그러한 계(戒)만을 위주로 해서 계만을 철저히 지킬라고 전전긍긍(戰戰兢兢)한다 하더라고 그것이 잘 안되는 것이여.

그런데 참선! ‘이뭣고?’를 열심히,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면서 ‘이뭣고?’ ‘이뭣고?’를 간절히 간절히 해 가면 제절로 십선계가 지켜지는 것이다 그말이여.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이여.

 

 

오늘 불명을 타고 계를 받을 분은 무릎을 꿇고 호궤합장(互跪合掌)을 하세요.

옳지, 그렇게 쭉 궁뎅이를 들으셔요. 합장을 딱 하고. (이렇게 몸을 세워서 꿇어 앉으십시오, 이렇게) 꿇어 앉고 몸을 세우세요. 꿇어서 무릎을 땅에다 대고 꿇고 쭈욱 서면 되아.

 

“이상 설한 열 가지 성스러운 십선계를 잘 지키겠는가?”

“능지(能持)”

 

“이상 설한 열 가지 십선계를 능히 잘 지키겠는가?”

“능지”

 

“이상 설한 성스러운 십선계를 불자(佛子)로서 능히 잘 지키겠는가?”

“능지”

 

참회진언(懺悔眞言)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21분21초~42분17초)

 

 

 

(3/3)----------------

 

참회진언(懺悔眞言)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편안하게 앉으세요.

이렇게 해서 십선계를 받았고 또 화두 드는 법을 전강 조실 스님께서도 간곡히 아까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설해셨지만, 십선계 설하는 가운데에 화두에 대한 법문도 겸해서 설해 드렸습니다.

 

화두는, 아까 조실 스님께서도 말씀하신 바와 같이 시삼마(是甚麼)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처음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놈이 무엇인고?’ 이렇게 하지만, 나중에는 앞에 부분은 할 필요가 없고 안 해도 알고 있는 것이니까 그냥 ‘이뭣고?’ 이렇게만 하시면 되아. ‘이뭣고?’

 

‘이뭣고 하는 이놈이 뭣고?’ 그런 뜻이지요. 그런 뜻으로 ‘이뭣고?’

다맛 ‘이뭣고?’ 뿐이거던. ‘이뭣고?’

 

‘이뭣고?’을 열심히 할라면 첫째, 신심이 철저해야 하고. 둘째, 분심이 철저해야 해.

 

신심(信心)은 무슨 신심이냐?

‘나도 부처님과 똑같은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고 나도 열심히 수행하면 나도 견성성불(見性成佛) 할 수 있다’고 하는. 다만 내가 매(昧)했을 뿐이지 나도 부처님이라고 하는 신심! 그 신심이 바로 최상승법에 있어서의 신심이여.

 

분심(憤心)은 무엇인가?

'과거에 불보살(佛菩薩)과 모든 선지식(善知識)들은 전부 진즉 이 문제를, 이 생사대사(生死大事) 일대사(一大事)를 해결을 했는데 나는 왜 오늘날까지 그 문제를 해결을 못했던가' 그것에 대한 분심이 있어야 해. 그 분심이 있어야 신심이 더 나고 혼침(昏沈) 산란(散亂)도 거기에는 붙지를 못하는 거여.

 

그렇게 신심과 분심이 있는 위에 화두에 대한 의심! 알 수 없는 의심!

이 화두는 그 핵심이 의심(疑心)이여.

 

그냥 ‘이뭣고’하는 어구(語句)가 아니여. 그냥 건성으로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한마디 하면은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 염불 육백만 번 한 공덕보다 더 낫다 하니까,

‘그래, 이뭣고? 한번 한 것이 육백만 번이면 열 번 하면은 육천만 번이요, 백 번을 하면은 육억만 번이다. 그러면 하루에 백 번 아니라 천 번 만 번이라도 할 수 있다’ 이래 가지고 염주를 들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참선은 그런 것이 아니여.

 

간절하게 알 수 없는 의심이 핵심이 되어 있어야 하거든. ‘이뭣고?’

‘이뭣고?’한 말, 글자 석 자가 아니고 ‘이뭣고?’하고 나서 그 뒤에 남은 그 의심의 여운.

 

‘이뭣고?’ 말은 끝났지마는 그 뒤에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어야 하거든.

그 의심이 있으면, 그 의심이 있는 동안에는 ‘이뭣고?’ ‘이뭣고?’ 안 해도 되어요. 알 수 없는 의심을 묵묵히 관(觀)하는 거여. 관조하는 거여.

 

그러다가 그 의심이 없어지거나 또는 딴 생각[別念]이 일어나면 그때 다시 또 ‘이뭣고?’ 챙기는 거여.

한 번 챙겨 가지고 일 분이고 이 분이고 삼 분 지나가도록 그 의심이 없어지지 않고 고대로 있으면은 고대로 그 의심을 관하는 거여. 그러다가 또 딴 생각이 일어나고 의심이 달아나 버리면 또 그때 가서 ‘이뭣고?’

 

‘이뭣고?’ 화두를 참구(參究)하라 하니까,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상식 모다 그런 이론적으로 이것을 따지는 게 아니여.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이렇게 저렇게 따지는 것이 아니고 그냥 앞뒤도 따지지 말고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이뭣고?’ 그뿐인 거여.

‘이뭣고?’하는 데에서 탁! 모든 생각이 거기서 끊어져 버려야 하는 거여. 그래가지고 알 수 없는 의단만 있어야 되는 거여.

 

말길로 따지고 이치길로 따지고 이렇게 이리저리 더듬어 들어갈 것이 있고, 뭘 듣고 알고 생각하는 그러한 것이 여기에는 있어서는 안 되어.

아무리 화엄경을 외우고, 법화경을 해석할 줄 알아도 또는 무슨 경책이고 어록이고 다 알아도 거기에 있는 것을 끌어다가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이런 것일 것이다' 이렇게 따지고 알아 들어가는 게 아니예요.

 

일단 ‘이뭣고?’를 드는 데는 거기에는 화엄경도 생각할 필요가 없고 법화경도 생각할 필요가 없어. 금강경도 생각할 필요가 없어. 다맛 ‘이뭣고?’뿐인 거여.

 

 

숨을 깊이 들어마셔. 7부(七部)나 8부쯤만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하셔.

숨을 들어마실 때에는 아랫배가 약간 볼록해지게. 한 8부쯤만 들어마셨다가 딱 정지를 했다가 조용하니 내쉬면서 ‘이뭣고?’ 아무 힘을 들이지 말게 해.

무리하게 힘을 들이고 용을 쓰고, 자세도 바르게 하라니까 너무 파악 목에다 힘을 주고 이렇게 하는 게 아니여. 단정하면서도 힘을 빼야 하는 거여. 어깨에 힘도 빼고 목에 힘도 빼고 모든 힘을 다 빼버려. 단정하면서도 힘을 다 빼야 하거든.

 

그리고 숨도 스르르르 들어마시는데, 8부쯤만 들어마셔 가지고 잠깐 머물렀다가 너무 오랫동안 20초 30초 40초 이렇게 그냥 얼굴이 벌건 채로 억지로 참으면 못쓰는 거여. 한 2~3초, 3~4초 이렇게 자기에 가장 편안 만큼 잠깐 참았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들어마시는 시간이 3초, 머무르는 시간이 3초, 내쉬는 시간이 3~4초 이렇게 해서 자연히 세월이 지나가면은 시간이 조금씩 길어져도, 길어지면 길어진 대로 편안하면 길어져도 괜찮은데.

 

한 몇 번 안 해서 헛숨이 쉬어지고 숨이 가쁘고 이렇게 무리를 하면 그것은 단전호흡 좋다는 말을 듣고 하다가 오히려 큰 병이 생기는 거여.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잘 안되고 이거 참 부작용이 생기면 큰일나는 것이니까 어쨌든지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셔.

 

그러면서 화두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이뭣고?’

알 수 없는 의심. 그 의심이 핵심이거든.

 

그 의심이 처음에는 그렇게 간절(懇切)하게 되기가 어렵고 그냥 약간 염화두(念話頭)로, 자꾸 잊어버리면 또 챙기고 또 챙기고 그러는데.

그 간절한 의단이 독로하는 그 뜻을 처음에는 잘 몰라. 모르지만 자꾸 법문을 들으면서 자꾸 하다 보면 자연히 그 ‘의단이 독로(獨露)한다, 또는 의단이 현전(現前)한다, 또 그 의단이 순일무잡(純一無雜)하다’하는 그러한 뜻을 스스로 다 터득하게 되는 거여.

 

그렇게 정진이 잘되어도 좋아하는 생각을 내서는 안돼. ‘아, 참 정진이 잘된다. 너무너무 좋다’ 그런 생각을 내면 벌써 아니거든, 그건. 정진이 잘되어도 좋아하는 생각을 내지 말 것이며.

 

또 그렇게 얼마동안 잘되어 가다가 뚝 변해 갖고 영 정신도 맑지 못하고 가슴도 답답하고 화두도 잘 들리지도 안 해. 의심도 잘 간절하지를 못하고, 그래가지고는 영판 상태가 안 좋다 그말이여. 그래도 번뇌심을 내지 말아라.

그런 때는 포행(布行)도 좀 하고 잘 선용기심(善用其心), 그 마음을 잘 써서 달래 가지고 그래도 공부는 중단하지 말고. 이렇게 해서 잘 또 그 고비를 지혜롭게 넘기면, 끈기와 지혜로써 고비를 넘기면 또 그전에보단 훨씬 더 한결 공부가 더 수월하게 잘되는 거여.

 

이게 하다가 잘 안되다가, 안되어도 중단하지 않고 번뇌심을 내지 않고 그래도 또 계속하면 또 잘되고. 또 잘 얼마동안 잘되어 가다 안되고.

그런 고비고비를 지낸 다음에 일구월심(日久月深)하면 결국은 순일무잡한 타성일편(打成一片) 지경에 오고만 마는 거여.

 

그렇게 해 가지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에 잠들 때까지도 고대로 화두가 독로하고 언제 잠이 든 중 모르게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꾸는데 꿈속에서도 화두가 곧 들리고, 또 새벽에 눈을 딱 뜨는데 새로 화두를 들지 안 해도 엊저녁에 들고 있던 그 화두가 고대로 들어져 있게 된다 그말이여.

그래서 잠을 잘 때나, 꿈을 꿀 때나 또는 잠을 깨 갖고 있을 때나 몽교(夢覺)가 일여(一如)하게 되는 때가 반드시 오는 거여.

 

그래가지고 그런 상태에서, 그런 상태가 돌아오면 고요하고 편안하고 맑고 깨끗하기가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어.

그러한 지경에서도 좋아하는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것이며, '누가 이럴 때 좀 툭 터지게 해줬으면' 그런 생각도 내지 말 것이며, 빨리 깨달았으면 그런 생각도 내서는 안 돼.

 

그런 때에 화두를 놔 버려서는 안되는 거여.

화두를 놓지 말아야 한다니까 그런 때에 좀 피치를, 뭐 박차를 가한다 해 가지고 ‘이뭣고!’ 막 용을 더 써 갖고, 그거 안되는 거여. 그럴 때는 그런 용을 쓰지 않고 터억 풍유한 의단만을 잘 관(觀)해 나가는 것 뿐인 거여.

 

너무 고요하고 깨끗하고 편안하니까 화두까지 드는 것이 귀찮고, 화두 들다가 그 고요한 것이 깨질까봐서 화두도 안 든 채 그 고요한 것을 맛보면서 그것만 들여다보고 있는 그런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참 못쓰는 거여. 그 애써서 그런 지경에까지 올라가 가지고 진짜 마지막 판에 가서 천길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리는 거여.

 

그럴 때에 화두를 잘 들고 놓지지 말 것이며, 그럴 때에 지각심(知覺心)을 내지 말어. 그럴 때에 어떤 경계가 나타나도 그런 경계에 떨어지지 말어.

부처님이 나타나도 그런 데에 떨어지지 말 것이며, 그럴 때에 잘 정진을 밀고 나가야 하는 거여. 그러면 반드시, 오히려 바보일수록 그런 고비를 잘 넘겨서 크게 깨닫는 수가 있는 것이여.

 

바보도 자포자기하지 말 것이며, 무식해도 자포자기하지 말 것이며, 몸이 건강이 좀 좋지 안 해도 이건 완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니까 앉아서 하고 앉아서 하다가 정 아프면 누워서도 하고, 몸이 안 좋으면 포행을 하면서도 하고.

 

어쨌든지 일심불란(一心不亂)하게 신심과 분심과 의심으로 일 초 일 초를 그렇게 해 나가고, 하루하루를 그렇게 공부를 지어 나가고 그래서 일구월심하면 반드시 의단을 타파(打破)해 가지고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달을 때가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대조사(歷代祖師)가 한결같이 아주 보증을 하신 것입니다.

 

 

파사노년친석가(怕死老年親釋迦)한데  두상광음전두비(頭上光陰轉頭飛)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제득혈루무용처(啼得血淚無用處)라  불여함구과잔춘(不如緘口過殘春)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파사노년(怕死老年)에 친석가(親釋迦)여. 죽음이 두려운 늘그막에사 석가모니 부처님, 이 불법을 친하게 되었는데.

두상광음(頭上光陰)이 전두비(轉頭飛)로구나. 저 머리 위에 시간은 번갯불처럼, 흐르는 물처럼 지나가는구나.

 

무량겁을 오늘날까지 살아왔어. 이제 우리는 말세(末世)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 늘그막에사 부처님을 만났다 이거거든.

그런데 왠 시간은 이렇게 휘딱 하루가 지나가고 휘딱 하루가 지나가고, 그럭저럭하다 보면 일 년이 지나가고 그럭저럭하면 일 년이 지나가다가 벌써 주름살이 생기고 흰머리가 나고 허리가 꼬부라지게 되었다 이거거든.

 

지금 이만큼 젊었을 때, 이만큼 늙었을 때, 그래도 이만할 때 어쨌든지 신심과 분심과 의심, 이 삼요(三要), 삼요를 몰록 돈발(頓發)해서 이 생사대사를 해결지어야 할 것입니다.

 

제득혈루무용처(啼得血淚無用處)여. 피눈물이 나오도록 울고 울어도 아무 소용이 없구나.

입을 다물고 남은 봄을 보낸 것만 같지 못하구나.[不如緘口過殘春]

 

어느 고인(古人)이 중생들을 위해서 목이 쇠도록 그렇게 참 생사 문제를 해결하라고 그렇게 간곡히 고구정녕하게 그렇게 일러주어도 중생은 들을 때 뿐이고 돌아서면 탐심이요, 진심이요, 치심이요.

그러니 차라리 입을 꼭 다물고 여생(餘生)을, 남은 봄을 지낸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한탄하는 그러한 고인의 시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은 이 고인의 게송을 통해서 우리는 이 시각부터 정말 철저한 신심과 분심과 대의심이 독로하도록 잡드리를 해 가실 것을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 법회 때마다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본래 산중(山中)에 사는 사람이기에 항상 산중 얘기를 하기를 좋아하더라.(44분53초~64분26초)(끝)

 

 

 

----------------(1/3)

 

*(게송) '백천경권송여사~' ; 『소요당집(逍遙堂集)』 (소요태능) '贈性源禪子'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 -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苦]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불명(佛名) ; 법명(法名). ①출가하여 절에서 행자(行者)로서 일정 기간 동안 수행한 뒤, 계(戒)를 받을 때 스승이 지어 주는 이름. ②스님이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한 남녀신자에게 지어 주는 이름.

[참고] 송담스님(No.470)—92년 4월 첫째 일요법회

불법(佛法)에의 깊은 인연으로, 발심(發心)해서 진리를 향해서 살아가는 부처님의 아들딸로 새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불보살(佛菩薩)의 이름을 따서 불명으로 받는다. 더 철저히 말하면 그때마다 불명을 받을 수는 없지만, 참선 수행을 통해서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야 하고 시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도솔천(兜率天)은 욕계(欲界) 육천(六天)의 넷째 하늘로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로서 여기에 있으면서 하늘나라 사람들을 제도하며 남섬부주에 하생(下生)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이 보살이 불교의 33천 중 도솔천에 머무는 이유는 중생을 구제하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도솔천은 아래로는 사천왕(四天王) · 도리천(忉利天) · 야마천(夜摩天)이 욕정(欲情)에 잠겨 있고, 위로는 화락천(化樂天) ·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 들뜬 마음이 많은데 비해 도솔천은 잠기지도 들뜨지도 않으면서 오욕락(五慾樂)에 만족한 마음을 냄으로, 다음에 성불할 보처(補處)보살이 머문다고 한다.

도솔천의 수명은 4천 세라 하고, 도솔천의 하루는 인간의 4백 세라 하였으니, 도솔천의 수명을 인간 수명으로 환산하면 인간의 5억 7천 6백만 년에 해당하지만(4천 x 3백 6십, 1년 x 4백 = 5억 7천 6백만), 고대의 기수법(記數法)에 따르면 57억 6천만 년이라고 한다.

 

도솔천에 왕생할 수 있는 인연은 ①끊임없이 정진하고 많은 공덕을 쌓은 자. ②탑을 깨끗이 하고 좋은 향과 아름다운 꽃을 공양한 자. ③여러 가지 삼매(三昧)로써 깊은 선정(禪定)을 닦은 자. ④경전을 독송하는 자. ⑤번뇌를 끊지는 못하였지만 지극한 마음으로 미륵을 염불하는 자. ⑥팔계(八戒)를 받고 청정한 행을 익히며 사홍서원을 잊지 않는 자. ⑦널리 복업(福業)을 닦는 자. ⑧계를 어기고 악을 범하였어도 미륵보살의 자비로운 이름을 듣고 정성껏 참회하는 자. ⑨미륵보살의 이름을 듣고 그 형상을 만들어 향과 꽃, 깃발로 장식하고 예배하는 자 등이다.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 : 오직 한 번만 생사(生死)에 관련되고, 일생을 마치면 다음에는 부처님이 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보살.

*염부제(閻浮提) ; 염부(閻浮). 남염부제(南閻浮提). 섬부주(贍部洲). 남섬부주(南贍部洲).

산스크리트어 jambu-dvīpa의 음사. 염부(閻浮), 섬부(贍部)는 jambu의 음역어이며, 제(提)와 주(洲)는 dvipa의 각각 음역어 및 의역어이다. jambu는 나무 이름.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수미산(須彌山)의 사방에 네 대륙(四洲)이 있는데, '염부'라는 이름은 여기에 자란다는 점부(jambu)에 유래하며, 남방에 있기 때문에 남섬부주(南贍部洲)라고 한다.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라 하며, 여러 부처님이 나타나는 곳은 사주(四洲) 가운데 이곳뿐이라 함.

불전(佛典)에서는 ‘인간세계의 전체’를 의미하는 말로서 사용되고 있다.

*미륵불(彌勒佛)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벙그러지다 ; 벌어지다.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 곧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를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천치(天癡, 天痴) ; ①어리석고 못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선천적으로 정신 작용이 완전하지 못하여 어리석고 못난 사람.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2/3)

 

*일주문(一柱門) ; 사찰로 들어가는 첫번째 문으로, 한 줄로 세운 기둥 위에 맞배지붕 양식으로 되어 있음.

일심(一心)을 상징한다. 붓다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붓다의 진리를 생각하며 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정(定) : ①계(戒)•정(定)•혜(慧) 3학의 하나。 ②[범] samadhi  음대로 써서 삼마지(三摩地)•삼마야(三摩耶) 또는 삼매(三昧)라고 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 않음을 말한다.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아라한과(阿羅漢果) ; 아라한(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의 깨달음의 경지. 곧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자의 지위로서, 성문 사과(聲聞四果 -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의 가장 윗자리이다.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작자(作者) ; ①지은이. ②남을 업신여기어 얕잡아 이르는 말. ③물건을 살 사람.

*삼귀의(三歸依) ; 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몸과 마음을 바쳐 믿고 의지함. 귀의불(歸依佛)•귀의법(歸依法)•귀의승(歸依僧)을 말함.

*청법(請法 청할 청/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법(法)을 설해 줄 것을 청(請)함.

*계목(戒目) ; 삼귀의계(三歸依戒) · 오계(五戒) · 십중대계(十重大戒) 등의 계(戒)의 제목(題目). 조목(條目), 중요(重要) 항목(項目).

*사미(沙彌) ; 산스크리트어 śrāmaṇera 팔리어 sāmaṇera의 음사. 근책(勤策)·구적(求寂)이라 번역. 출가하여 십계(十戒)를 받고, 구족계(具足戒)를 받아 비구(比丘)가 되기 전의 남자 수행자.

십계는 살생·도둑질·음행·거짓말·음주뿐만 아니라, 때가 아닌 때에 식사하는 것, 춤과 노래를 보고 듣는 것, 향수를 바르고 몸을 단장하는 것, 높고 큰 평상에 앉는 것, 금은 보물을 지니는 것 등을 금지하는 10가지이다.

*삼척동자(三尺童子) ; 키가 석[三] 자[尺]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어린아이[童子]. 철없는 어린아이를 이르는 말. 한 자[尺]는 약 30.3 cm에 해당한다.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法)의 힘. ②가르침의 힘. 불법의 공덕. 불•보살의 위신력(威神力)을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것.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힘.

*공양(供養)을 청(請)하다 ; 재가신도가 스님들께 공양(식사)을 드리기 위하여 초청하는 것.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식사)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드는데, 나무에는 안팎에 칠(漆)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應量器)라고도 한다.

응량기(應量器)란 법에 응하는 또는 1명의 식량에 마땅한 그릇이니 먹을 만큼의 분량을 담는 그릇이고, 또 남의 공양을 받기에 마땅한 수행과 덕을 갖춘 성현(聖賢)이 사용하는 그릇이란 뜻이다.

*삼명육통(三明六通) ;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갖추고 있는 3가지 자유 자재한 지혜와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삼명(三明) ;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갖추고 있는 3가지 자유 자재한 지혜.

①숙명지증명(宿命智證明) 나와 남의 전생을 환히 아는 지혜.

②생사지증명(生死智證明) 중생의 미래의 생사와 과보를 환히 아는 지혜.

③누진지증명(漏盡智證明)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지혜.

*육신통(六神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①신족통(神足通)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변할 수 있는 능력.

②천안통(天眼通) 모든 것을 막힘없이 꿰뚫어 환히 볼 수 있는 능력.

③천이통(天耳通) 모든 소리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는 능력.

④타심통(他心通) 남의 마음 속을 아는 능력.

⑤숙명통(宿命通)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능력.

⑥누진통(漏盡通)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곳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전전긍긍하다(戰戰兢兢-- 두려워할 전/무서워 떨다 긍) ; 몹시 두려워하며 무서워 떨다.

*호궤합장(互跪合掌) ; 두 무릎을 꿇고 앉되, 무릎 위 허벅지와 상체가 수직이 되게 곧게 일으켜 세우고, 발가락은 세운 채 손은 합장을 취한 자세.

*능지(能持 능할 능/가질·지킬 지) ; ①법을 마음에 머물게 하여 잊지 않는 능력. ②계단(戒壇 : 계를 주는 의식이 이루어지는 단壇)에서 계법(戒法 : 불제자가 받는 계)을 받을 때 전계화상(傳戒和尙 : 계를 내려주는 스승)이 수계자(受戒者)에게 그 계의 조목을 하나 하나 설명한 뒤 “그대는 능히 이 계를 받아 굳게 지키겠느냐”라고 물을 때 수계자가 “능지(能持 : ‘능히 받들어 지키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을 말한다.

*참회진언(懺悔眞言) ; 죄업(罪業)을 참회하는 진언.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3/3)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라는 것은 본래 실체가 없는데[無自性] 마음으로 좇아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마음이 소멸되면 죄 또한 없어진다.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마음도 없어지고 죄도 없어져서 그 두가지가 함께 공(空)해져서 없어져 버릴 때, 이것이야말로 진짜 참회이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참고] 『임제록(臨濟錄)』

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

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을 말함。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에 이르기까지 그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매(昧)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모른다. 어둡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생사대사(生死大事) ; ①삶과 죽음, 생사(生死)의 큰 일. ②수행을 하여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는 큰 일.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산란(散亂 흩을 산/어지러울 란) ; 혼침(昏沈)의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 마음이 어지러운 것.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의심관(疑心觀) ;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5분 59초)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 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그말이여.

(5분 57초)

[참고] 송담스님(No.256)—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딴 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거두절미(去頭截尾) ; 말이나 사건 등의 부차적인 설명은 빼어 버리고 사실의 요점(要點)만 말함.

*7부(七部)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70% 정도 만큼.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포행(布行) ;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일.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

*몽교(夢覺 꿈 몽/깰 교) ; 꿈[夢]과 잠을 깸[覺].

*일여(一如) ; 완전히 하나가 되어 나눌 수 없음.

*지각심(知覺心) : ①바로 이 경계로구나 알았다 깨달았다 하는, 그런 마음。 ②빨리 깨달으려는 마음。누가 깨닫게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

*일심불란(一心不亂) : ①두 생각이 없이, 딴 생각이 없이 마음이 흩어지지 않음. ②마음을 흩어지지 않게 함.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게송) ‘怕死老年親釋迦 頭上光陰轉頭飛’ ;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61~162.

怕死老年에  親釋迦로다. 好向此時明自己어다  百年光影이  轉頭非로다.

죽음이 두려운 늙으막에야 부처님을 가까이 함이로다. 당장 이 때에 마음을 애써 밝히소, 백 년 세월도 순식간에 글러지느니.

*파사노년(怕死老年) : 송(宋)나라 소강절(邵康節)의 글에 「이름 구할 젊을 적 공자님만 따랐고, 죽기 싫은 늙으막 부처님께 나가네(求名少日慕宣聖 怕死老年親釋迦)」라고 하였다.

*(게송) ‘啼得血淚無用處 不如緘口過殘年’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 1권 1칙 도솔(兜率)’ 취암열상당거차화운(翠嵓悅上堂擧此話云) 참고.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삼요(三要) : 참선하는데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요건. 첫째는 큰 신심(大信心)이요, 둘째는 큰 분심(大憤心)이요, 세째는 큰 의심(大疑心)이다.

①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②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③의심(疑心) :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Posted by 닥공닥정

§(세등24) 유루복, 무루복을 겸해서 지어야 / 自利利他 / 飯器已破 / 단전호흡과 화두가 함께 되어가게 / ‘이뭣고?’할 때 바로 그 자리가 부처님을 모시고 앉아있는 선방.

참으로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극락세계나 또는 영원히 생사 없는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느냐 하는 것은 오직 내가 나를 깨쳐야만 됩니다.

복을 짓되 무루복(無漏福)을 지어야 합니다. 유루복(有漏福)만 지으면은 복은 받지마는 윤회(輪廻)는 면틀 못하고, 유루복을 지으면서도 무루복을 겸해서 지을 줄 알아야 해. 무루복이란 무엇이냐? 함이 없는 법, 내가 나를 깨닫는 법이여.

 

단전 호흡에다 화두를 꼭 붙여 가지고 의단이 독로(獨露)하도록, 의단이 순일무잡(純一無雜)하도록 그렇게 해 나가면 몸도 건강하고 마침내는 깨달음에까지 이르른다. 이것이 바로 정법(正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이다.

장소야 어디건 그거 상관이 없어. 한 생각 딱! 챙겨 가지고 ‘이뭣고?’할 때 바로 그 자리가 선방(禪房)이여. 선불장(選佛場)이여. 바로 그 자리가 부처님을 모시고 앉아있는 선방이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24)—기미년 동안거 결제 법문(79.10.17) (세등24)

 

(1) 약 21분.

(2) 약 6분.


(1)------------------

대도(大道)를 성취하는 법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반야심경이 좋다니까 반야심경을 읽고, 천수경이 좋다니까 천수경을 냅다 틀어재끼고, 관세음보살이 좋다면 아들을 위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죽은 영감을 위해서는 지장보살을 부르고 아미타불을 부르고, 그러다 참선이 좋다니까 앉아서 참선 흉내 좀 내고, 입춘이 되면은 또 무당집에 가서 5만원 10만원짜리 또 부작을 사고, 좋다는 데는 다 쫓아다니고, 그러다가 결국은 눈 한번 감았다 뜨지 못하고,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바로 내생(來生)입니다.

이리저리 좋다는 것은 다 인연을 맺고 공덕을 지었으니까 악도(惡途)에는 떨어지지 않기를 나도 바래고, 원(願)대로 극락세계(極樂世界)로 가실 것을 나는 다같이 바래기는 하지마는 과연 그분이 극락세계에 꼭 갈 것인가? 나는 보증을 못합니다.

복을 짓고 착한 일을 한 만큼 내생에 천당에도 가고 또 사람이 되더라도 부자도 되고 인물도 잘 태어날 것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나도 믿습니다마는, 참으로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극락세계나 또는 영원히 생사 없는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느냐 하는 것은 오직 내가 나를 깨쳐야만 됩니다.

복을 짓되 무루복(無漏福)을 지어야 합니다. 유루복(有漏福)만 지으면은 복은 받지마는 윤회(輪廻)는 면틀 못하고, 유루복을 지으면서도 무루복을 겸해서 지을 줄 알아야 해.

무루복이란 무엇이냐? 함이 없는 법, 내가 나를 깨닫는 법이여.

다른 사람에게 이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고 인도하고, 자기도 열심히 닦으면서 남도 같이 닦을 수 있도록 이것이야말로 샘이 없는 복[無漏福]이요, 함이 없는 법[無爲法]이라. 이 복이야말로 영원한 것입니다.
남 보고 하라고만 하고 자기는 안한 사람이 있거든. 자기만 하고 남 보고는 별로 권고를 하지 않은 사람이 있거든.

자리이타(自利利他),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의 법이야말로 이것이 바로 대승법이요, 새에 두 날개가 있는 거와 같고, 수레에 두 수레바퀴가 있는 거와 같아서, 새가 날개 하나만 가지고서는 도저히 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수레바퀴 하나만 가지고서는 굴러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리이타, 이 세등선원을 짓는 것도 역시 자리이타를 하기 위해서 짓는 것이요, 이 세등선원을 짓는데 여러 신남신녀가 시주(施主)를 하고 화주(化主)를 하는 것도 이것 또한 자리이타를 하는 것이여.

부처님 출현하신 것도 역시 자리이타를 위하는 것이여. 부처님 경지에 있어서야 원래 생사 없는 본각(本覺)자리에 계시는데 무엇이 다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나실 것이 무엇이 있느냐? 그렇지마는 중생을 위해서 대자비심을 일으켜 가지고 사바세계에 출현하신 것이다.

한 글자도 설할 곳이 없는 곳을 향해서 팔만사천(八萬四千) 법을 설하셨다. 이것이 또한 자리이타를 위하는 것이다.
한 글귀도 설할 곳이 없는 곳을 향해서 역대 조사(祖師)가 많은 어록(語錄)을 남기셨다. 이것이 또한 자리이타를 위한 자비심에서 나오신 소식이다.

오늘 산승이 나와서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는 것도 내 자신만을 생각한다면 수행 과정에 있는 사람으로서 내 시간도 바쁘다. 무엇 때문에 여기에 올라와서 눈썹을 아끼지 아니하고 중언부언 두서없는 소리를 하고 있느냐?

부처님께서 다겁(多劫)을 두고 스스로 생사 속에서 윤회하신 그런 뼈아픈 경험이 계셨기 때문에 여러 중생들을 위해서  나오셨어.

저 자신도 선지식의 법문을 듣고 스스로 정진을 해봤기 때문에 선지식한테 들은 말씀, 나의 경험을 통해서 얻은 바를 여러분에게 간곡히 말씀을 드림으로 해서 여러분에게 조금이라도 정진을 잘할 수 있는, 발심하실 수 있는 채찍이 되고 도움이 된다면 하는 그러한 마음에서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진즉부터서 공부를 해서 이런 말을 듣지 아니하고라도 잘 정진을 하신 분도 계실 것이고, 처음으로 공부를 하러 오셔서 이러한 말씀이 꼭 필요한 분도 계실 것입니다.
이미 다 잘 알고 공부를 잘하고 계신 분은 증명을 하시면 되는 게고, 처음 와서 들으신 분은 뼈에 사무쳐서 명심해서 듣고 발심을 해서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면 이것이 바로 우리 선배 후배 도반들의 그 돈독한 정의가 아니고 무었이겠습니까.


‘참 법문’이라 하는 것은 설할래야 설할 수가 없는 것이여. 따라서 들을라야 들을 것 없는 도리를 알아야 되는 것이여.

아까 조실 스님 법문에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쥐는 바로 고양이의 밥인데, 고양이는 쥐를 먹고 사니까 쥐가 바로 고양이 밥인데, ‘쥐가 쥐를 먹었다’ 이러한 풀이를 해 주셨습니다.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라 일러 가지고 인가(印可)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한 풀이를 해 주셨습니다.

공안(公案)이라 하는 것은 미제(美製) 자물쇠통과 같아서 아무리 것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생겼어도 제 번호가 아니면은 열리지를 않습니다.

체중현(體中玄) 도리에서 본다면 손을 한번 드나, 고함을 한번 치나, 발을 한번 구르거나, 좌복을 한번 들었다가 내동댕이를 치거나, 빰을 한 대 올려붙이거나, 눈을 한번 감았다 뜨거나, 일거수 일투족이 다 맞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방귀를 한번 뀌거나, 부처라고 하거나 똥이거나, 일체가 다 한 소식입니다. 한 맛입니다.

그러나 이 공안은 그러한 체중현 도리, 일체가 텅 빈 도리, 한 맛인 도리로 보아 가지고서는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이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구경(究竟)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여러분들이 어떠한 공안을 가지고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하는 그러한 식으로 따져서 어떠한 결론을 얻을라고 해서는 그것은 공연한 헛수고인 것입니다. 얻었다고 해봤자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여.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습니다” “맞지 아니하니 다시 일러라”
“반기이파(飯器已破)입니다. 밥그릇은 이미 깨졌습니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는데, 무슨 밥그릇이 어떻게 깨져?
이 도리는 우리가 아무리 따져 봤자 알 수가 없는 도리여. 가르켜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도리여. 반기이파(飯器已破) 도리.

여러분이 가지고 하는 판치생모, 또는 정전백수자, 또는 시삼마 이런 모든 공안은 알래야 알 수 없고, 따질라야 따질 수 없고, 꽉 맥힌 상태에서 ‘어째서 판치생모(版齒生毛)라 했는고?’ 알 수 없는 꽉 맥힌 상태에서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가야지,
‘쥐가 고양이 밥을... 밥...,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뜰앞에 잣나무 잣나무......’ 이런 식으로 해서 이렇게 따지보고, 저렇게 따져보고, 이러한 참선은 이건 ‘죽은 참선’이여. 절대로 그런 참선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덮어놓고 무조건하고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3초 동안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뭣고?’


언제든지 좌선을 해서, 참선 시작할 때에는 준비 호흡으로 숨을 가득 가슴으로 들어마셨다가, 더이상 참을 수 없을만큼 참었다가 입으로 ‘후—’하고 다 내쉬어 버리고 나서, 그렇게 2번을 하고서,
3번째는 가슴으로 들어마시지를 말고 가슴과 윗배는 고대로 놔두고 아랫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불어나도록, 볼록해지는 것을 스스로 의식하면서 숨을 스르르르 하니 들어마시는 거여. 들어마시되 윗배와 가슴은 약간은 움직이겠지만 거의 가만히 있도록 유지를 하면서 아랫배만 약간 볼록해진다.

들어마시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3초, 3초 동안에 스르르르 하니 아주 수월하게 들어마시는 거여.

너무 오랜 시간을 걸려서 들어마실라고 하지를 말고, 스르르르 하니 들어마셨으면 너무 가득 들어마시지를 말고, 아까 준비 호흡을 할 때는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셨지만 인자 본(本) 호흡, 단전 호흡에 들어가서는 배가 터지도록 들어마시면 안된다 그말이여.

8부쯤만 들어마셔. 더 들어마실수 있지마는 8부쯤만 스르르르 들어마셔 가지고, 8부쯤 들어마신 상태에서 약 3초 동안을 머물러.
딱 정지한 상태에서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는데 내쉼에 따라서 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이렇게 홀쪽해지도록.

그 홀쪽해지기 시작할 때 그때 ‘이뭣고~?’ 속으로 그렇게 하면서 숨을 내쉬는 거여.

이것은 아주 초보자를 위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보자는 이러한 방법을 써서 하면 단전 호흡과 화두가 함께 되어 가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를 지어 들어가면 머지않아서 단전 호흡도 잘되고, ‘단전 호흡했다’하면 화두도 거기에 붙여서 함께 잘되어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가 익숙해진 사람은 숨을 들어마시거나, 내쉬거나, 밥을 먹거나, 옷을 입거나, 그까짓것도 구애 없이 항시 화두의 의단(疑團)이 항시 목전(目前)에 상주해서, 눈앞에 항시 나타나서 일여(一如)하겠지만, 처음 한 사람은 ‘이뭣고?’해도, 금방 ‘이뭣고?’한 사이에 생각은 동쪽으로 서쪽으로 왔다갔다 하고, 어렸을 때로 날아갔다, 집으로 날아갔다, 야단이거든. 그러다 보면 화두를 놓쳐 버린다.

그래서 다시 또 챙길라면은 힘이 들거든. 그러다 억지로 ‘이뭣고?’ ‘이뭣고?’하다 보면은 모가지만 뻣뻣해 가지고 골만 빠개질라고 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도 안되고, 아! 이러니 할려고 마음은 내는데, 할려고 하면은 잘 안되니 그거 어떻게 하냐?
그래서 과거에 도인(道人)들이 여러 가지로 다 경험을 해 보고 연구를 한 결과 이 단전 호흡을 겸해서 하도록 이렇게 모다 지도를 해 오셨다 그말이여.
그래서 지금 오늘 유독 결제날이기 때문에 단전 호흡하는 법과 화두 드는 법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히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시간이 벌써 넘어서 배가 고파 죽겠는데, 고만 했으면’ 이러시겠지만 굶어서 돌아가시지를 않습니다. 조금 배가 고파야 말이 들어가지 잔뜩 먹고 쌕쌕거리게 되면은 졸음만 오지, 법문이 귀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금 시장한 다음에 잡숴야 밥이 맛이 있습니다.

숨을 들어마셨다가 3초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뭣고?’하면서 내쉬는데, 숨을 들어마실 때 어떻게 들어마시냐 하면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가 불룩하도록 이렇게 하지를 말고, 물론 코로는 들어가겠지만, 우리의 기분으로는 저 궁둥이 뒤에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가 이렇게 볼록해지도록 그런 기분으로 들어마시고,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머물렀다 내쉴 때는 코로 내쉰다 이런 생각을 하지 말고, 내쉴 때도 저리 뒤로 해서—궁둥이 뒤로 해서 저 뒤로 쑤욱 내보낸다는 그런 기분으로 내쉬어 보시라 그말이여.
저 뒤에서 쑤욱 들어마셨다, 들어마신 호흡을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내쉴 때는 저 뒤로 쑤욱 배꼽을 뒤로 잡어당기면서 뒤로 내쉬는 거여.

그런데 절대로 무리하게 억지로 하지를 말어. 너무 억지로 해 가지고는 그냥 한 두어 번만 하면 숨이 가쁘게 이렇게 하시다가 ‘아이고! 그거 되서 못하겠다'고 그러는데 그렇게 하시는 게 아니예요.

아주 수월하게—들어마시는데 3초 걸리고, 3초 머물렀다가 내쉴 때는 한 4~5초 걸리게 조용하게 내쉬고, 이렇게 들어마셨다 내쉬었다 하는 거기에다가 ‘이뭣고~?’하는 알 수 없는 의단을 거기다가—배꼽밑에 배가 나왔다가 들어갔다 하는 거기다가 관심을 두고서 화두를 거각(擧却)해 보시라 그말이여.

백 명이면 백 명, 몸도 차츰 건강해지고 가벼워지고 골치 아픈 병이 있는 사람도 그렇게 하면 병이 낫거든. 가슴이 답답한 증세가 있는 사람도 그게 낫고, 집안에서 무슨 일로 속이 상해서 가슴앓이 속병이 있는 사람도 이것을 하면 그 병이 낫는다 그말이여.

이것을 하면서 화두까지 거기다 겸해서 하면은 결정코 깨달음까지 이르른다 이말이여. 화두는 아니하고 밤낮 고것만 하고 있으면 그것은 병을 고치는 데에는 효과가 있지만 그래 갖고는 그건 깨닫지는 못하는 것이여.

거기에다 화두를 꼭 붙여 가지고 의단이 독로(獨露)하도록, 의단이 순일무잡(純一無雜)하도록 그렇게 해 나가면 몸도 건강하고 마침내는 깨달음에까지 이르른다. 이것이 바로 정법(正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이다.

이렇게 해 나가면 선방에 방부(房付)를 들이지 아니하고 가정에서도 아침 저녁으로 그렇게 하시고 낮에도 시간 있는 대로 그렇게 하시고,

이 공부는 꼭 앉어서만 하는 게 아니라 일하면서, 말하면서, 걸어가면서, 차 타면서, 행주좌와간에 할 수 있는 것이라, 오늘 백일기도에 동참하시고 또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은 모두가 다 이 세등선원에 방부를 들인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다못 장소가 형편상 이 세등선원일 수도 있고, 또 보문사일 수도 있고, 군산일 수도 있고, 또 시내일 수도 있고, 조치원일 수도 있고, 청주일 수도 있고, 서울일 수도 있습니다.

장소야 어디건 그거 상관이 없어. 한 생각 딱! 챙겨 가지고 ‘이뭣고?’할 때 바로 그 자리가 선방(禪房)이여. 선불장(選佛場)이여. 바로 그 자리가 부처님을 모시고 앉아있는 선방이다.
이렇게 생각하시고 한 생각 한 생각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말고, 한 생각 일어나는 그자리에서 숨을 스르르르 들어마셔 가지고 ‘이뭣고?’ 이렇게 단속해 나가. 업장(業障)이 거기에서 봄눈 녹듯이 녹아 없어져. 업장이 녹아지면은 소원성취는 거기에 있거든.(60분26초~80분55초)





(2)------------------

내가 그전에는 얼굴이 아주 시커먼 사람인데, 아! 30년을 참선을 하니까, 내 얼굴보고 검다고 하지 않는다 그말이여.
성질이 아주 불같아 가지고 신경질을 잘내기로 아주 유명하고, 고집이 센 사람인데, 아! 참선을 했더니 나 보고 마음보 고약한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 별로 없다.

여러분 가운데도 얼굴이 검어서 고민인 사람, 얼굴에 무엇이 많이 나서 고민인 사람, 또 신경질을 많이 내고 고집이 세다고 욕을 먹고 그러한 평판이 있는 분, 오장육부에 병이 많은—내가 또 병주머니여서 학교를 다닐 때는 1년에 한 달 내지 두 달은 꼭 결석을 했다.

그런데 출가해 가지고 참선을 하니까, 사람들이 나보고 대단히 건강하다고 그런는데, 내가 별로 약도 많이 먹지도 않고, 병원에 가기를 그렇게 죽기보다 더 싫어한 사람이어서 병원에 잘 안 가고 그러는데, 참선을 해서 이렇게 몸도 건강해 진 것 같어.

여러분들도 참선을 열심히 하시고, 제가 금방 이 시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의식주 문제라든지, 일상 생활 속에서 화두를 단속하는 이러한 법을 명심을 해서 실천에 옮기신다면 얼굴도 예뻐질 것이고 오장육부의 병도 다 나아질 것이고,
성격이 고약하다고 평판이 있는 시어머니, 며느리, 스승, 상좌 할 것 없이 다 불보살과 같이—나는 워낙 고약한 사람이라 그렇지, 보통 된 사람이 그만큼 열심히만 하면 틀림없이 금생에 불보살과 같이 될 것을 나는 맹세를 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해 가지고 그것이 되지 않는다면 아까 몽산 스님한테 책임을 따져야 됩니다. 몽산 스님이 대신 지옥에 간다고 맹세를 하셨거든.
나도 역시 몽산 스님과 똑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해 가지고 깨닫지 못한다면 나도 여러분 대신해서 지옥에 간다』고 자신있게 말씀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나는 경험을 통해서도 그것을 느꼈고, 이러한 선지식(善知識)들의 법문을 여지없이 믿기 때문에 추호(秋毫)도 나는 의심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는 것이니 오늘 결제일을 기해서 여기에 모이신 출가한 스님네나 마을에 계신 신도 여러분들, 오늘 새로 태어났다고 하는 그런 마음으로 정말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서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서 결정코 대도를 성취해 주시기를 간곡(懇曲)히 부탁을 드리고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수설운산천만사(雖說雲山千萬事)라도  해천명월본무언(海天明月本無言)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구름 일어나듯이, 산에 구름 일어나듯이 한도 없이 끝도 없이 천 가지, 만 가지 말을 이렇게 말을 한다 하더라도 저 바다 위에 떠있는 밝은 달은 원래로 말이 없느니라.

마지막 한마디는 끝내 여러분에게 드리지를 못합니다. 이 주장자에게 맡기고 내려갑니다.(80분56초~86분14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악도(惡道, 惡途) ; 악한 짓을 한 중생이 그 과보로 받는다고 하는 괴로움의 생존. 지옥•아귀•축생 등의 세계. 삼악도(三惡道).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복(福)—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의 복이어서 한도(限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그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그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또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또 그 얻었던 것을 결국은 다 없애면서 그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와 같은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4분 51초)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1996.02.19)에서.

 

복이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 말씀에 유루복과 무루복이 있는데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왜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또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또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해 볼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할 수도 없고, 생활도 할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 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은 안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해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할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그 과보(果報)를 바래.
공투세를 해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의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은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그 무루복을 참으로 더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서,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를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무위법(無爲法) ; (산스크리트어: asaṃskrta-dharma) 무위법은 무위의 세계, 즉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진리의 세계의 모든 개별 존재(법·法)를 통칭한다. 또는 그러한 개별 존재(법·法)를 가리킨다.
원래 무위 혹은 무위법은 열반(涅槃)의 다른 명칭.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화주(化主) ; ①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주(主). 부처님를 말함. ②신도들의 집을 돌며 절에 필요한 양식·물건·비용 등의 시물(施物)을 얻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본각(本覺) : 일체 중생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각성(覺性)의 뜻으로서 청정한 심성(心性)을 말함.
이 심성은 허명(虛明)해서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또 자연적인 것도 아니며, 본래 중생의 상념(想念)을 떠나서 법계에 두루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망(迷妄)과 깨달음에 관계 없는 절대적인 경위(境位)이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자비(慈悲) ; 자(慈)는 ‘우정•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동정’을 원의(原義)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또한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이것을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어록(語錄) ; 조사어록(祖師語錄). 선종(禪宗)에서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를 전하는 조사(禪師)나 귀의나 존경을 받을 만한 선승(禪僧)의 가르침, 문답, 언행을 모은 글, 또는 그 책.
*'눈썹을 아끼지 아니하고' ; 예로부터 석취미모(惜取眉毛, 눈썹을 아낄지어다)라고, 경(經)의 뜻을 잘못 해석하여 진리로부터 동떨어진 설법을 하면 미모(眉毛•눈썹)가 빠진다는 말이 전해온다.
그런데 ‘한 물건(一物)’이라 표현하는 진리의 본체는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고 하였으니,
'눈썹을 아끼지 아니하고 설법을 한다'는 것은 선지식의 중생을 위한 간절한 자비심을 나타내는 뜻이다.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체중현(體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體中玄•句中玄•玄中玄)의 하나.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07, p212 에서.
[三玄]삼현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체중현(법문에서) ;

 

체중현(337:2분48초).mp3
1.29MB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37)—정묘년 칠석차례(87.07.07.음)에서.(2분 48초)
체중현(體中玄)으로 보면, 공(空)의 이치에서 보면 어떠헌 공안을 묻되 할(喝)을 해 버려도 맞고, 방(棒)을 해 버려도 맞고, 양구(良久)를 해 버려도 맞고, 닥치는 대로 막 잡아서 아무것이라도 일러도 다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있어서는 아무렇게나 일러도 맞지를 않습니다. 그 공안에 여지없이 이(理)와 사(事)에 탁! 맞아떨어지게 일러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 한 철, 두 철 열심히 하다 보면 어지간한 사람이면 다 그 공의 이치를 보게 됩니다. 그 공의 이치, 그게 체중현(體中玄)인데, ‘체(體) 가운데에 현(玄)’—체의 이치를 보게 되면 그것이 바로 공(空)인데, 공의 이치를 보게 되면 경(經)을 봐도 모두가 그 소식입니다. 조사어록을 봐도 모두가 다 그 도리고, 조금도 맥힐 것이 없어. 환하고.

그런데 현중현(玄中玄)에서는 그렇지를 않거든.
체(體)의 이치를 본, 겨우 그 이치만 보고 현중현을 못 본 사람은 된장이나 똥이나 마찬가지여. 선과 악이 마찬가지고, 크고 작은 것이 마찬가지고, 부처와 중생이 다를 것이 없고, 내 마누라나 형수가 다 똑같고, 그저 거지나 임금이 다 똑같고, 생과 사가 똑같고, 그러니 오직 쾌활하냐 그말이여.

그러나 그것 가지고서는 부처님과 조사가 인가(印可)를 하지를 않았습니다. 그것 가지고서는 진리를 바로 봤다고 할 수가 없어. 그것은 바른 견성(見性)이 아니여.

그래서 조사(祖師)는 현중현이라고 하는 관문(關門)을 시설을 해 가지고, 현중현 도리를 보지를 못하면 바로 보았다고 인가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현중현 도리는 선지식이 아니면은 그것을 가려내지를 못해.

 

체중현(282:2분19초).mp3
1.07MB

[참고 ❷] 송담스님 법문(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2분 19초)
공안은 그 열쇠가 아니면은 도저히 열 수가 없는 아주 이 자물통과 같아서 도저히 그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인가(印可)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속에, 진흙 속에 들어가서 무엇이 발을 찔렀는데, ‘뭣이 찔렀다’ 이래 가지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찌른 것이 뾰족한 돌멩이냐, 그렇지 않으면 무슨 나무 꼬타리냐, 사금파리냐, 또는 쇠꼬치냐, 분명하게 딱! 말을 해야 하는 것이지, 막연하게 ‘뭣이 찔렀다’ 이렇게만 말한 거와 같아서,
아! 찌른 거야 사실이지, 사실 아닌 것은 아니여. 그러나 분명하게 쇠꼬치면 쇠꼬치, 사금파리면 사금파리, 돌멩이면 돌멩이를 분명히 말을 해야 알 수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학자가 공부를 하다가 자기 나름대로는 반드시 견처(見處)가 있어서 온 것은 사실이나, 불조(佛祖)와 같이 깨닫지 못하면 체중현(體中玄)·구중현(句中玄)·현중현(玄中玄), 현중현 도리를 바로 보지 못하면 스스로 그것에 만족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활구문중(活句門中)에 있어서의 납자(衲子)의 지조(志操)라 할 것입니다.

 

체중현(466:2분26초).mp3
1.12MB

[참고 ❸] 송담스님 법문(No.466)—92년 보살 선방에서 하신 법문(92.02.02)에서.(2분 26초)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공부해 나가다가 조금 느껴지는 그런 편안함이나 맑음이나 또는 시원함, 그런 소견이나 경계 그런 거,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중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경계에 ‘나도 한 소식 했다. 나도 깨달았다. 이것이 깨달음이 아닌가’하고 거기에 머물러 버리면 그 사람은 거기서 끝나는 거죠.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예를 들어서 저 지방에서 서울을 향해 가는데 대전이나 수원이나—시골 산중에 있던 사람이 거기에 나오면은 굉장하거든, 차도 많고 높은 건물도 많고 하니까 여기가 서울이구나! 하고 주저앉은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을 향해서 가는 사람은 중간에 좀 볼만한 데가 도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서울로 착각한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로 가서 중앙청을 갈라면 중앙청까지 딱 가서 대통령을 만나든지 장관을 만나든지 해야지, 저 중간에 가 가지고 조금 높은 건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갖다가 서울이라고 착각한다면 그거 되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니면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경지가 아니면 중간에 체중현(體中玄) 도리, 중간에 나타나는 보이는 그런 경계는 탁! 스스로 부정을 해 버리고 부인을 해 버리고 거기에 빠져서는 안 돼.

탁! 치워버리고 언제나 초학자와 같은 그런 심경으로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으로 자기의 본참공안만을 향해서 한결같이 정진을 다그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체중현(112:2분36초).mp3
1.19MB

[참고 ❹] 송담스님 법문(No.112)—79년 11월 관음재일 법어(79.11.24)에서.(2분 36초)
가끔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는 공안에 대한 조리(條理)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공안에 있어서 이 학자가 깨달은 데 있어서 체중현(體中玄) 도리를 보는 사람, 체중현 도리를 보아 가지고 그것으로써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조그마한 소견을 가지고 ‘아! 내가 깨달았다’고 하는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가질까봐,
『절대로 이 공안이라 하는 것은 현중현(玄中玄) 도리를 바로 봐야만 그것이 바로 확철대오(廓徹大悟)다.』 그러한 것을 우리에게 깊이 납득을 시키고 철저하게 명심을 하기 위해서 가끔 공안에 대한 말씀을 구체적으로 해주신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법문을 듣고, 어떠한 공안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이렇게도 따져보고, 저렇게도 일러보고 해서 ‘혹 이런 것이 아닌가. 저런 것이 아닌가’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이 공안은 마치 체중현 도리에서 보면 아무렇게 일러도 맞지 아니한 것이 없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공견(空見)에 빠진 사람, 공견에 빠져가지고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에는 고함을 치나, 욕을 하나, 호령을 하나, 손을 들거나, 발을 구르거나, 무엇이 어떻게 이르건 다 안 맞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이 현중현 도리를 본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봐가지고서는 불법을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현중현 도리는 마치 자물쇠통에 꼭 제 열쇠가 아니면은 열리지 아니한 것처럼, 바로 깨달은 사람만이 바로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8부(八部)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만큼.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

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선실(禪室)과 같은 말. ②‘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선불장(選佛場) ; 부처(佛)를 뽑는(選) 장소(場)라는 뜻.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곳.
[참고]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 ‘개당보설(開堂普說)’에, 방 거사(龐居士)의 게송이 아래와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법(無爲)을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공(空)해 급제하여 돌아가네.’ (통광 스님 역주 ‘고봉화상선요•어록’ p37,46에서)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2)

*병주머니 ; 갖가지 병이 많은 사람 또는 그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몽산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추호(秋毫 가을 추/가는 털 호) ; ‘추호도’, ‘추호의’의 꼴로 쓰여, 가을에 짐승의 털이 매우 가늘어지는 데에서 가을 털끝만큼 ‘매우 조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간곡히(懇曲- 간절할 간/간절할 곡) ; 간절하고 정성스럽게.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화두불명수계)2015. 4. 21. 14:48

§(430) 참회정진 업장소멸 / 욕과 비방을 감로수처럼 받아들여야 / 단전호흡은 참선하는데 효과적이다 / (게송)선악성공여반장~.

 

참선은 첫째, 항상 자기의 마음을 항상 중심을 잡아 나가는 중요한 수행이여.

 

소승, 중승, 대승, 최상승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빨리 자기로 돌아오는 법문이여, 전부가.

이 참선법은 철저하게 찰나찰나, 한 생각 한 생각 일체처 일체시에 자기로 돌아오는 공부가 바로 참선이요, ‘이뭣고?’다.

 

**송담스님(No.430)—90년 12월 첫째일요법회(90.12.02) (용430)

 

(1) 약 21분.

(2) 약 22분.

 

(1)------------------

 

부처님 말씀에 ‘죄가 있거든 스스로 참회(懺悔)하고 그 마음을 몰록 쉬어 버리고 그걸 고치라’ 그랬어.

참회하고, 하던 악을 중단하고 마음을 고쳐버리면, 마치 무엇과 같으냐? 병을 앓다가 한약을 지어다가 먹고 푹 취한(汗)을 하면, 땀을 푹 싸 버리면 아주 몸이 가뿐하고 병이 낫는 거와 같다.

 

참회를 하지 아니하고 고치지 아니하면, 지은 허물이 죄가 되어 가지고 그 마음에 따라붙어. 그래 가지고 물이 흐르고 흘러서 바다에 들어가듯이, 바다에 들어가면 점점점점 바닷물이 불어나서 깊어진 거와 같다.

 

사람이 중생이 살다 보면 본의 아니게 허물을 저지를 수도 있고, 큰 허물, 작은 허물, 또 자기의 생각이 좁아 가지고 본의 아니게 그럴 수도 있고, 남의 꾀임에 빠져서 허물을 저지를 수가 있고,

그러나 항상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또 절에 와서 하다보면 ‘아하, 내가 잘못했구나!’ 염불도 하고, 경도 읽고, 참선을 하다 보면 금방 자기를 반성하게 되거든.

 

‘허물이 있는 줄을 알고, 허물을 고치고 선(善)을 행하면 지은 죄가 스스로 소멸이 된다’ 그랬어.

참회를 하면 죄가 소멸이 되는 것이여. 참회법이라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여.

 

그런데 참회를 하고 개과천선(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은 옛날에 잘못한 것을 자꾸 들추어내 가지고 ‘저 사람이 그런 나쁜 사람이다’ 또 본의 아니게 형무소에 들어갔다가 한번만 나오면 취직도 안되고, 모두가....

 

형무소에서 참회를 하고, 그러고 인자 새 사람이 되려고 나와도 한번 형무소만 갔다 나오면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고, 아주 도둑놈이라고 해서,

모르고 취직을 해서 일을 하다가도 누가 ‘아, 저 사람 형무소 갔다온 사람이라고’ 한마디만 하면 대번에 쫒아내버리거든. 그러니 해 먹을 것이 없으니까 또 도둑질을 하고 강도를 한다 그말이여.

 

그래서 ‘죄는 미워할지언정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라’ 그런 말도 있는데, 실지 일를 당하고 보면 형무소 갔다 나왔다 그러면은 사람들이 모두 꺼리게 된다 그말이여.

또 형무소는 안 가더라도 내가 어떤 잘못을 한번만 하면 항상 그 사람이 가는 곳마다 ‘저 사람이 무슨 짓을 한 사람이다. 무슨 짓을 한 사람이다’ 모두가 뒤에서 손가락질을 하고 수군수군하고 모두 그 사람을 모두 멀리하고 그러는데,

 

내가 한번 과거에는 그랬을망정 그것을 참회하고, 그 허물을 고치면 사람들이 그러더라도 그것을 미워하지 말고 ‘아, 내가 과거에 그런 일이 있으니까 내가 참회하고 고친 줄을 모르고 저러는구나’

그 사람을 원망하고 미워하지 말아야지, 그런다고 해서 자기도 같이 그 사람을 또 미워하면 자기는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착한 일을 하고, 착한 마음으로 옳게 살려고 하고, 자비심을 가지고 살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시기를 하거나, 까닭 없이 아니꼽게 생각해 가지고 비방하고, 욕을 하더라도 그 사람과 같이 싸우지 말아라’ 그렇게 말씀을 하시면서.

 

 

부처님이 마침 어디를 가셨는데, 외도(外道)가 되었던지, 바라문(婆羅門)이 되었던지, 부처님한테 입에 못 담을 욕을 퍼붓는다 그거거든. 그래서 부처님께서 그 욕한 사람보고,

 

“내가 한마디 당신에게 물어보겠소. 당신이 나한테 맛있는 음식과 패물로서 나에게 갖다가 대접을 했을 때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양을 한다면 그 맛있는 음식과 예물은 누구한테 돌아가겠소?”

“당신이 안 받으면 도로 내 것이지. 그것이 누구한테 돌아가겠느냐”고.

 

“그러냐고, 그렇다면 당신이 나한테 그렇게 욕을 퍼부었는데 나는 그걸 받아들일 이유도 없고, 내가 안 받아들이니까 그 욕은 당신한테 다 돌아가겠구려” 그러니까 그 외도가 얼굴이 빨개져 갖고 꼼짝도 못했다.

 

여러분도 가정에서나 어디에서나 누가 전생의 업연(業緣)으로 그랬던지, 금생에 무슨 그 사람이 감정이 나서 그랬던지, 공연히 시비를 붙이고 나한테 친절치 못하게 군다 하더라도 동요하지 말어.

동요하지 말고, 화두를 들고 마음만 편안하게 하면 그렇게 시비를 걸던 사람도 그냥 별 수 없이 입이 딱 붙어 버릴 것이고, 다음에는 그러지 못할 것이고.

 

그리고 저 사람이 그런다고 해서 내가 대꾸를 해 가지고 싸우면 옆에 구경하는 사람들은 둘이 다 똑같은 사람으로 취급을 할 것이다 그말이여.

‘또 싸운다’고, ‘좀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남 공부 못하게 한다’고, 다 그럴거다 그말이며.

 

그런데 한 사람이 자꾸 시비를 붙여도 나는 동심(心)이 안되고, 같이 맞서서 싸우지 아니하고 가만히 있으면 옆에 사람들이 ‘아, 저 분이 참 훌륭한 분이로구나, 참 얌전한 분이로구나, 정말 보살이로구나’ 모두가 다 존경할 것이라 그말이여.

 

그래서 대중이 이렇게 많이 모여서 사시니, 모두 크고 작은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나 피차가 서로 하심(下心)하고, 서로 양보하고, 자비심으로 대한다면, 무장무애(無障無碍)하게 공부도 잘 하시게 될 것이고,

가정에서도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면 가정도 참 화평하게 살게 되고, 화평한 가정에는 복이 굴러들어 올 것입니다.

 

공부하는데 있어서 제일 방해가 되는 것이 속상하는 것입니다. 오장이 확 뒤집어지면 여간해서 화두를 좀 챙길려고 해도 잘 안 들어지거든.

‘이뭣고?’ ‘이뭣고?’해도 영 입으로만 되지 속으로는 안되어. 자꾸 속에서 이런 놈이 틀어 오르기 때문에 잘 안되거든.

 

그래도 자꾸 심호흡,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한 서너 번만 하면은 그냥 스르르르 가라앉게 돼.

그래서 참선해 나가는데 이 심호흡이 대단히 중요하고 또 몸의 피로 회복하는 데에도 심호흡이 중요하고 또 자기감정을 스스로 잘 조정하는 데에도 심호흡이 대단히 중요해.

 

사람들은 ‘참으라, 참으라’하지만 참는 것이 그렇게 경우에 따라서는 참는 것이 대단히 참 중요할 때도 있지만,

매양 억지로 참다 보면 한도가 있어서 쌓이고 쌓이다 보면은 언젠가는 폭발을 하는데 그때는 걷잡을 수 없이 큰 사건이 일어나거든.

 

그리고 계속 참고 참다 보면 속이 화(火)가 쌓여 가지고 적(積)이 되어서 소화가 안되고, 눌러 보면 주먹 덩이 같은 놈이 속에 있거던,  그게 다 소시(時) 때부터서 참고 참아 가지고 적이 된거거든.

그것이 엑스레이를 찍어 보면 그것이 무슨 뭉텅이가 나올란가 어쩐가는 모르겠는데 분명히 누르면 무엇이 있다 그러거든. ‘그런데 어째서 그것이 생겼습니까?’하면 ‘내가 화를 많이 끓여서 그런다’고.

 

며느리로 가 가지고 시어머니한테 당해 가지고 그러기도 하고, 남편 때문에 속상해 가지고 그러기도 하고,

모다 이리저리 해서 화를 많이 끓인데다가 그것을 터뜨리지를 못하고 속으로 참고 참다 보면 속이 적(積)이 들어 앉는 거라 말이여. 그건 여간해 약 먹어도 낫지 않거든.

 

그래서 나는 참으라고—육바라밀(六波羅密) 속에 인욕(忍辱)이라는 항목이 있긴 있지만, 진짜 잘 참으려면 억지로 쪄누르기 보다는 그 일어나는 생각을 심호흡을 하면서 ‘이뭣고?’로 돌려야 한다 그거거든.

돌리면은 그놈이 풀어지면서 그것을 계기로 해서 화두(話頭)를 드니까 업(業)을 짓지 아니하고, 깨달음으로 한걸음 나아가게 되는데,

 

화두를 들지 않고 억지로 참다 보면 큰일이거든. 병이 나고, 결국은 언젠가는 참다 참다 참는 것도 한도가 있어서 터질 때는 무섭게 터지는 거라 그말이여.

 

그래서 앞으로는 억지로 참을라고 하지 말고, 그냥 심호흡을 하면서 ‘이뭣고?’ ‘이뭣고?’를 하시라 말이여.

 

남편이나 아내나 또는 친구나 또는 어른이 억울한 소리를 하시면, 숨을 들어마시면서 ‘이뭣고?’, 소리는 내지 말고 속으로 하라 그말이여. 어른이 뭐라 그러는데 ‘이뭣고?’ ‘이뭣고?’하면 그 될거냐.

속으로 ‘이뭣고?’, 조용하게 ‘이뭣고?’를 하다보면 그 억울한 소리 하다가도 그냥 쑥 들어갈 거라 말이여.

 

그런데 ‘이뭣고?’를 안 하고, 그냥 눈을 휘번득거리면서 말은 안 해도 속으로 그냥 잔뜩 골내고, 말하는데 뒤돌아서서 중얼중얼한다던지, 무슨 그릇 같은 것을 쾅쾅 놓는다던지, 절대로 그래도 안 되거든.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심호흡을 하면서 ’이뭣고?’ ‘이뭣고?’하면 그 억울한 소리 한 사람이 최상승(最上乘) 법문(法門)을 설하신 것이 되고 만다 그말이여.

아! 그 소리를 듣고 화두를 드니 그것이 법문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말이여.

 

칭찬을 하면 우선 귀에는 듣기 좋지마는 화두가 잘 안 들려. 좋은 생각으로 들뜬 생각이 되어 가지고, 그래서 칭찬하는 소리는 도둑놈이요, 나를 충고하는 소리는 약으로 감로수(甘露水)처럼 받아들이라.

 

칭찬하는 소리에 까닥 잘못하고 우쭐대다가는 큰일나는 법이고,

나의 잘못을 지적해 주고, 꾸짓는 말, 험담하는 말을 그 말을 잘 새겨서 받아들이고, 고맙게 받아들이면, 나를 비방하고 욕하는 소리가 바로 감로수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말이여.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칭찬도 듣게 되지마는 흔히 어디를 가나 본의 아니게 욕을 먹기도 하고, 비방을 듣기도 하는데 그 칭찬하는 소리 별로 좋아할 것이 못되어.

그래서 공자님도 ‘칭찬하면 대단히 좋아하고, 자기의 잘못을 지적해 주면 듣기 싫어하는 사람하고는 장래 두고 봤자 별 볼일 없는 사람이니 그런 사람 하고는 친구를 하지 말라’ 그랬습니다.

 

공자님도 세계의 삼대(三大) 성현의 한 분인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표현은 달라도 부처님 말씀과 다 통하고 영가(永嘉) 스님의 증도가(證道歌)에도 그와 같은 뜻이 다 있습니다.

 

그래서 칭찬한 걸 절대로 좋아해서는 안돼. 누구한테 칭찬하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부끄러운 생각을 가져야—‘과연 내가 저런 칭찬을 들을 만한 것인가? 참, 너무 과분한 말을 하시는구나’ 항상 부끄럽게 생각하고.

 

나의 잘못을 지적해 주거나 충고로 해 주는 말은 척 듣는 순간에는 조금 귀가 입맛 없다 그러거던.

 

그렇지만 양심적으로 생각해 보면, 한참 한 시간이나 두 시간 또 그 이튿날쯤 또는 그날 저녁에 잘 때쯤 가만히 ‘어째서 그 사람이 나한테 그런 말을 했을까? 아, 확실히 나한테 그런 말 들을 만한 요소가 있구나’

그렇게 참회를 하면 그때사 ‘아, 그 사람을 미웁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참 고맙게 생각해야겠다’

 

우리가 참선(參禪)을 많이 해서 찰나간에 자기의 감정을 돌릴 수 있는 훈련이 쌓아진 사람은 듣는 찰나에 바로 감로수처럼 받아들여질 것이고,

참선이 아직 익숙하지 못하고 수행이 옅은 사람은 그날 저녁에 잘 때쯤 또는 그 이튿날쯤 가면은 그런 생각이 들거여.

 

저기 저 북극지방에 에스키모인은 어떻게 둔하던지, 뭔 욕을 하면 그때는 아무렇지도 안해.

조금도 눈빛 하나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있다가, 그 이튿날에사 도끼를 갖고 쫒아온다 이거여. 그때사 와서 닿는 거여. 두텁띠 두터워 가지고 금방 말해도 못 알아들어.

 

그 사람들은 아주 다정한 손님이 오면 자기 부인을 데리고 자라고 대접을 한다 그러는데, 그 사람들 풍속이 그러니까.

그리고 신부가 거기를 갔다가, 그 부인을 데리고 자라고 하는 통에 ‘그 안됩니다. 나 그 못합니다’ 도저히 그 사람들은 못 알아들어. ‘어째서 우리의 친절을 거부하는가?’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거여,

 

욕을 해도 아무렇지도 안해. 골낼 줄도 모르고 아무렇지 않다가 그 이튿날 느닷없이 도끼를 가지고 와서 어제 왜 욕했냐 이거거던.

 

중생들은 자기를 위해서 충고를 해 주고, 자기를 위해서 지적을 해 주어도 금방 고마운 줄 못 알아듣는다 그말이여. 업(業)이 두터워서 금방 못 알아듣는 거여.

지금 에스키모인 이야기를 하니까 웃으셨지만, 중생은 어떻게 욕하는 소리는 금방 잘 알아듣는데, 자기를 위해서 충고를 해 주는 말은 거꾸로 알아듣는다 그말이여.

 

에스키모 사람들하고는 조금 오장이 조금 다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으나 참 그게 묘하거든.

그이를 위해서 좋은 말을 해 준 것은 잘 못 알아듣고, 그게 아마 오장육부가 다른 것은 아닐 것이고.

 

어린애기들 병에 좋으라고 약을 주면 쓰다고 안 먹으라고 그러고, 단것은 위에도 해롭고 몸에 해로와도 자꾸 단것만 먹을려고 하는 어린애기들이 무슨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직 철이 안 들어서 그래서 그런 거와 마찬가지죠.

 

나이는 40, 50 먹었어도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런 것인지, 이제 법문을 자꾸 듣다 보면 반드시 ‘이것이 나한테 이로울 것인가, 해로울 것인가’를 지혜롭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참선은 첫째, 항상 자기의 마음을 항상 중심을 잡아 나가는 중요한 수행이여.

참선 안 한 사람은 노상 중심이 잡혀 있지 않거든. 눈으로 보면 보는 데에 끄달리고, 귀로 뭘 들으면 듣는 데에 끌려가고, 코로 뭔 냄새를 맡으면 냄새에 끌려가고, 항상 중심을 잃고.

 

예를 들자면 주부가 집을 비워놓고 밤낮 밖으로 쏴 다니는 거와 마찬가지여. 그러면 집안 살림이 무엇이 되겠느냐 그말이여.

하나도 집안도 소지도 안되어 있을 것이고, 애들한테나 남편한테나 아내로서 해야 할, 주부로서 해야 할 일이 전혀 안되어 갖고 있으니 엉망진창이다.(36분22초~57분27초)

 

 

 

 

 

 

(2)------------------

 

항상 집에 있으면서 집안일을 정돈하고 주부로서 할 일을 하고, 밖에 일이 있어도 냉큼 가서 일을 보고는 바로 또 집에 오고 해야지.

 

해가 다 넘어가도록 집에 안 들어오고—집에는 벌써 애들은 학교 갔다오고, 남편도 퇴근해 가지고 있는데 주부가 없으니, 끼니 밥 차려 줄 사람도 없고, 밥도 안 하고 이렇게 되어 있는 그러한 것과,

참선을 안 하고 밤낮 외부로 끌리고, 감정의 노예가 되어 가지고 끄달리고 사는 사람은 평생을 살아도 그런 내 자신의 마음 살림이 그 집 비워놓고 다닌 주부의 가정 살림과 똑같은 형상 일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눈으로 무엇을 보아도 항상 ‘이뭣고?’, ‘이뭣고?’할 때 벌써 자기로 돌아온 것이거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때에도 ‘이뭣고?’, 벌써 소리나는 데로 갈 듯하다가 냉큼 돌아온 것이 아니냐 그말이여.

 

부처님도 자기에서 찾아야 하는데, 밖에서 찾지 말아라 그러셨거든.

 

소승, 중승, 대승, 최상승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빨리 자기로 돌아오는 법문이여, 전부가.

이 참선법은 철저하게 찰나찰나, 한 생각 한 생각 일체처 일체시에 자기로 돌아오는 공부가 바로 참선이요, ‘이뭣고?’다 이거거든.

 

‘이뭣고?’ 처음에는 누구나 잘 안돼. 잘 안되고. ‘이뭣고?’해도 그렇게 간절하게 의심이 안나지만, 자꾸 하면 되거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하는 이놈이 뭣고?’

자세를 단정히 하고 심호흡,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간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뭣고?’

 

들어마신 호흡 약 3초, 들어마셔 가지고 머무르는 시간이 약 3초, 내쉬는 시간은 약 4-5초 조금 길게, 이렇게 하되 너무 가득 들어마시지 말고, 8부(八部)쯤만 들어마셔.

또 머무르는 것도 너무 오래 참을라 하지 말고, 또 내쉬는 시간도 너무 길게 시간을 잡지 말어.

 

지금 3초 3초 5초 이렇게 말했지만, 그것도 본인한테 길다고 느껴지면 2초 동안 들어마시고, 2초 동안 머무르고, 내쉬는 것은 약 3초, 모두 합해서 한 8초나 9초 이렇게 되는데,

자기에게 조금도 무리가 가지 않도록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범위 내에서 하라 그말이여.

 

그래서 차츰차츰 길어지면 길어지는 대로 하고, 짧으면 짧은 대로, 언제나 자연스럽게 무리가 없이 해야지 억지로 하면은 안되거던.

몇 번 안 해서 된숨을 쉬어야 하고 너무 힘이 들고 이러면 안되거던. 무리 없이 할 것.

 

그리고 자세는 단정하니 하되, 너무 뒤로 자지바지하고 목에다 힘을 주고, 어깨에다 힘을 주고 그리고 용을 쓰고, 그러면 안되는 거여.

단정하면서도 어깨나 목이나 그런데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이런 자세를 가져야 돼.

 

오늘 불명(佛名)을 타고 또 십선계(十善戒)를 받고 또 화두를 타는 법요식(法要式)이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해드리는데, ‘참선을 하는데 단전 호흡(丹田呼吸)을 꼭 해야 합니까?’ 그러한 질문을 가끔 받습니다.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호흡하는 법을 잘 올바르게 터득을 해서 잘하면 참선하는데 대단히 효과가 있고, 참선에만 효과가 있는게 아니라, 육체적인 건강에도 좋아!

 

왜 그러느냐? 혈액 순환이 잘되고, 혈액 순환이 잘되므로 해서 몸 안에 있는 노폐물이 잘 배설이 되어.

뿐만 아니라 피로 회복도 잘되고 또 마음도 안정이 되고, 정신도 깨끗해지고, 또 감정도 자기가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침착한 성격으로 되고, 이 단전 호흡을 하면 그 이익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대단히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래서 참선을 하는 데 이것을 곁들여서 하면은 대단히 효과적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사람에 따라서 수식관(數息觀)을 시켜.

 

수식관은 자기가 자기의 호흡을 세는 거여. 들어마셨다 내쉬고 ‘하나’ 또 들어마셨다가 잠간 머물렀다가 내쉬고 ‘둘’ 이렇게 해서 호흡을 이렇게 세는 거여.

그래서 그것이 수식관인데, 수식관을 시키기도 하고 또 백골관(白骨觀)이라는 그런 관(觀)을 시키기도 하고 또 사념처관(四念處觀)을 시키기도 하고, 그 사람의 근기(根機)와 체질에 따라서 여러 가지 방편(方便)을 쓰셨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것을 오늘날 차츰차츰 그런 것도 다 구체화되고 체계화가 되어 가지고, 여러 가지 운동하는 사람, 무술 하는 사람까지라도, 또 요가하는 사람, 전부다 호흡법을 통해서 육체적인 건강, 정신적인 통일을 도모하기 위해서 이 호흡법이 널리 개발이 되어 있는데,

 

참선하는 사람은 여려 가지 복잡한 호흡 보다는 지금 산승(山僧)이 말한 간단한 방법을 쓰면서 그 호흡을 하면서도 화두를 드는데 지장이 없도록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인지 ‘단전 호흡을 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안되고, 여기가 콱 맥힌 것같이 느껴져서 도저히 단전 호흡을 할 수가 없다’ 이러한 호소를 하는 분을 또 가끔 만납니다.

그것은 너무 무리하게 했지 않는가? 무리하게 호흡을 해 가지고 그러한 결과가 오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을 하고.

 

‘무리하게 한다’는 것은 숨을 들어마셔 가지고, 그 호흡이 저 밑에 단전까지 가도록 막 눌러댄다 말이여. 절대로 눌러 대서는 안돼.

또 들어마셔 가지고 오래 참을수록 좋다고 어디서 들어 가지고는 한 30초씩 얼굴이 벌게지도록 참고 있다가 ‘후 ~’하고 내쉬고, 그렇게 하면 백이면 백 다 병이 납니다. 절대로 억지로 쪄 누르지 말 것이며, 그래 가지고 또 억지로 오래 오래 참아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들어마실 때 어떻게 하느냐? 스르르르 들어마실 때 배만 볼록하게 만들지, 여기서부터 눌러 대지 말라 이거여. 이것을 잘 알으셔야 되아.

들어가는 호흡을 여기까지 누르면 그 호흡이 여기까지 들어가지 않습니다. 여기는 횡격막(膜), 가로막이라는 막이 허파 밑에 요리 있어 가지고 그 이상은 바람이 절대로 안 내려가.

 

허파까지 밖에 안 가는 것을 억지로 눌러서 배꼽 밑에까지 보낼려고 하니 가지도 않고 결국은 답답하기만 하고 소화만 안되고, 안 내려가니까 기운이 부딪쳐 가지고 거꾸로 위로 올라오니까 상기병(上氣病)이 오히려 더 생길 수가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단전 호흡이 좋다고 하지만 절대로 무리하게 하거나 잘못된 방법으로 어거지로 하지를 말아라.

그렇게 할 바에는 차라리 그냥 보통 호흡을 해야지, 억지로 알지도 못하는 단전 호흡을 무리하게 할라 하지 말고 보통 호흡을 하면서 ‘이뭣고?’ 이렇게만 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이거여.

 

그리고 이 참선을 시작할 때에는 미리 입선(入禪) 시간 전에 따악 와서 다리를 발목 운동도 하고, 발가락 운동도 하고, 다리 운동도 하고,

그리고는 앉아서 몸을 좌우로 한 서너 번 이렇게 흔들다가 한 가운데다가 딱 안정을 하고는 단전 호흡을 서서히 해서 안정을 해 가지고 입선 시간을 맞이해야 돼.

 

어디서 잡답을 하면서 있다가 목탁을 치니까 헐레벌떡 쫒아와 가지고는 시근덕시근덕 하면서 그냥 할라고 하니 공부가 되냐 그말이야.

항상 입선 시간을 잘 지키고 다른 사람이 이미 죽비(竹篦) 친 뒤에사 그때서 (문을) 드르럭 (열고) 들어오고, 와서 부시럭거리고 절대로 그러면 안되거든.

 

저 옛날에는 입선 죽비 딱! 치면 밖에서 들어오지 못하도록 '발'을 쳐 버렸어.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그렇다고 하는데 어쨌든지 시간을 잘 지키고.

 

또 방선(放禪)을 하고 일어설 때 갑자기 불끈 일어서지 말고 몸을 좌우로 흔들고, 다리도 뻗고, 발목 운동도 하고, 그래 가지고는 조용히 일어나서 나가고,

그래서 입선 시간만 화두를 드는게 아니라 방선하고서도 그 화두를 들도록 하고, 방선하고 나가서 화장실에 가면서도 화두를 들고, 화장실에 가서도 화두가 놓쳐지지 않도록.

 

또 화장실에서 오는 길에도 화두를 들도록, 이렇게 까지 해 나가야 합니다. 중국 선방에서는 화장실에 갈 때 그 입승(立繩) 스님이 죽비를 갖고 따라다닌다는 말도 들었어요.

요리 따라가다가 화두를 놓치고 딴전 보는 성 싶으면 죽비로 그냥 등짝을 후려팬다고 그런 말도 들었는데 지금은 중공(共)이 되어 가지고 다 선방도 없어졌다고 들었습니다마는,

 

그런 정도까지 입선 방선을 가리지 않고 알뜰히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을 하고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도록 그러한 공력(力)이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불명은 이 법회가 끝난 다음에 차례차례로 모두 나눠 드리게 되겠습니다.

 

화두는 ‘이뭣고?’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도 알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아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이 있거던.

눈으로는 보이지 않아. 그런데 그놈이 부르면 “예”하고 대답할 줄도 알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알고, 칭찬하면 좋아할 줄도 알고.

 

이렇게 법문을 하면 듣고 ‘아, 참 옳은 말씀 하시는구나. 꼭 저 말씀은 나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이로구나’ 그렇게 생각할 줄 아는 놈이 있거던.

그놈을 보통 '마음'이라고도 하고, '영혼'이라고도 하고, '자성(自性)'이라고도 하고, 그렇지만 이름은 알고 있지만 실지로 우리는 보지는 못하거던.

 

그놈이 생각을 좋게 먹으면은 천사 같기도 하고, 그놈이 독한 마음을 먹으면 찰나간에 나찰(羅刹) 귀신도 된다 그말이여. 그러한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는데 대관절 그놈이 무엇인가를 찾는 거여.

 

어떻게 찾느냐? ‘이뭣고?’ 이렇게 찾는 거여.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사량분별로 따져서 찾는게 아니라, 그냥 무조건하고 ‘이뭣고?’ 이렇게만 찾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그렇게 찾으면 되는 거여. 이것을 화두(話頭)라 그래.

 

처음 불명을 타고, 처음 화두를 타고 하시는 분을 위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이니까,

 

그러면 십선계도 받았고, 화두도 받았고, 이제는 불명(佛名)은 이 자리에서 낱낱이 다 일러드릴 수가 없으니 계첩(牒)을 법회가 끝나고 나눠 드릴테니까 순서 있게 그것을 받아 가지고,

 

불명이 무엇인가 한번 보고는 갖다 어디다 쳐놓고는 불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러면 안되거던. 자기의 불명이 확실히 무엇인가를 딱 마음속에 넣고.

계첩을 드리면 그것을 액자를 해서 딱 갖다 걸어놓고 밤낮으로 쳐다 볼 때마다 내 불명이 무엇이다 알고,

 

또 ‘이뭣고?’가 거기에 한글로 쓰여 있으니까 볼 때마다 ‘이뭣고?’ 속상할 때 ‘이뭣고?’ 기쁠 때 ‘이뭣고?’ 슬플때 ‘이뭣고?’ 근심걱정 있을 때 ‘이뭣고?’ 항상 ‘이뭣고?’를 챙기고,

오며가며 챙기고, 앉으며 서며 챙기고, 또 친구들이 놀러오면 ‘이뭣고?’에 대해서 얘기도 해 주고 또 ‘같이 가서 참선을 하자’고 권고도 하고.

 

이렇게 해서 명실공히 법보제자(法寶弟子)가 되고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불자(佛子)가 되었습니다.

계(戒)를 받고 연비(燃臂)를 했으니 과거에 지은 알게 모르게, 크고 작은 모든 죄는 찰나간에 깨끗이 다 되었습니다.

 

이제 오늘 새로 부처님의 아들로 부처님의 딸로 새로 태어났으니, 이제 몸도 마음도 깨끗해졌어.

그러니 과거에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서 국집(局執)할 것도 없고 깨끗한 몸이 되었으니까, 깨끗한 마음으로 이제 ‘이뭣고?’만 열심히 하고, 앞으로 십선계만 잘 지키면 여러분은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가시는 것은 이미 표는 다 끊어놨어.

 

나눠 드린 계첩이 도솔천내원궁에 가는 계첩입니다.

이 내원궁에 가는 그 표를 끊어 놓은 것이니까 그것을 잘 간직을 하시고 어쨌든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될 수 있으면 금생에 결정코 견성성불(見性成佛)할 것을 목적으로 하고 열심히 공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선악성공여반장(善惡性空如反掌)하니  지악행선순성도(止惡行善順聖道)니라

나무~아미타불~

자성본무살불살(自性本無殺不殺)하니  탐진치심본공(貪瞋癡心本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선악성공(善惡性空)이 여반장(如反掌)이여.

‘선이다 악이다, 저 사람은 착하다 악한 사람이다’ 모두 그렇게 말하지마는 선인(善人)이나 악인(惡人)이나 그 본바탕은 똑같은 사람이고. 다만 업(業)에 따라서 습기(習氣)에 따라서 잠시 그런 것인데,

 

선의 성품이 뿌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악의 성의 뿌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여. 내나 진여자성(眞如自性)에서 나오는 물결에 지나지 못한 것이지, 그 근본에 들어가서는 조금도 선도 악도 없는 것이니,

그래서 착한 사람도 한 생각 잘못 먹으면 손바닥 뒤집듯이 악한 짓을 할 수도 있고, 어제까지 악한 짓을 했어도 한 생각 탁! 돌이키면은 선한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이여.

 

그래서 악한 짓 하던 사람은 그것을 참회하고 그쳐 버리고, 착한 일을 행해서 성현의 가르침을 행하면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止惡行善順聖道)

 

자성(自性)이 본래 공(空)한 것이니, 그 공한 자성에서 나오는 선악의 물결이 그것이 어디가 뿌리가 있을 것인가? 없는 뿌리를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스스로 괴로워하고, 남을 미워해서도 아니되는 것이고,

 

설사 과거에 자기 성질이 좀 나뻤거나, 나쁜 성질을 썼고, 나쁜 짓을 했다 하더라도 어쨌든지 부처님 앞에 참회하고, 생각을 돌이켜 버리고, 새로운 출발을 해서 마음의 안락을 찾고, 영원한 행복을 누려야 할 것이 아닙니까.(57분28초~78분56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취한( 취할 취,땀 한) ;  낫게 하려고   내어  기운 발산시킴.
*개과천선( 고칠 개,허물 과,옮길 천,착할 선) ; 지난날 잘못 뉘우치고 고쳐 착하게 .
*외도(外道) ; 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바라문(婆羅門) ; 산스크리트어 brāhmaṇa의 음역어. 고대 인도 바라문교의 카스트(caste 네 가지[四種姓]로 분류되는 세습적 신분 계급 제도) 제도의 최상위 계급인 사제(司祭) 계급을 일컫는다.
베다(Veda 바라문교 근본 경전)를 교육하고 사원과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제식(祭式)을 관장했다.
*업연(業緣) ; 업보(業報)의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의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의 인연을 부른다.
*하심(下心) ;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 자기의 마음을 스스로 겸손하게 갖는 것.
*무장무애(無障無碍) ; 일이나 행동을 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방해가 없음.
*화(火)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생기는 화가 날 만큼 섭섭하고 분하고 답답한 감정.
*적(積) ; 적취(積聚).  에 쌓인 기로 인하여 덩어리가 생겨 아픈 ()은 오장에 생겨서 일정한 부위에 있는 덩어리이고, ()는 육부에 생겨서 일정한 형태가 없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덩어리를 이른다.
*육바라밀(六波羅蜜) ; 보살이 열반(涅槃)에 이르기 위해서 해야 할 여섯 가지의 수행.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를 이른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최상승(最上乘) ; 더할 나위 없는 뛰어난 교법. 최상의 가르침. 가장 뛰어난 가르침.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감로수(甘露水) ; 감로(甘露). 산스크리트어 amta 팔리어 amata
①신들(諸天)이 상용하는 음료. 이것을 마시면 불로불사(不老不死)가 된다고 한다. 신약(神藥). 불사의 영약. 도리천(忉利天)에 있다는 감미로운 영액(靈液). 장수하고 죽은 이를 환생시킨다고 함. 최고의 자미(滋味)에 비유함.
②맛은 달고, 마시면 죽지 않는다라고 일컬어지던 것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비유함.
③불사(不死). 영원의 생(生)을 의미. ④최대의 경지. 깨달음. 열반(nirvana)와 동일. ⑤정갈하고 감미로운 물.
*영가(永嘉) : (665 – 713) 절강성(浙江省) 온주부(温州府) 영가현(永嘉縣) 대(戴)씨 집에서 났다。법명은 현각(玄覺), 자(字)는 명도(明道), 호는 진각(眞覺)이다.
여덟 살에 출가하여 장경을 널리 보고, 천태(天台)의 지관(止觀)을 숭상하였다。<유마경>을 읽다가 견성하고, 조계(曹溪)에 가서 육조(六祖)에게 인가를 받고는, 곧 돌아가서 고향의 용흥사(龍興寺)에 있었다.
그의 저술은 <선종영가집(禪宗永嘉集)> <관심십문(觀心十門)> <증도가(證道歌)> 등이 남아 있다。당나라 현종(玄宗) 개원(開院) 1년에 사십 구 세에 앉아서 입적하였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2)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에서]
*8부(八部)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만큼.
*된숨아주 어렵게 쉬는 .
*불명(佛名) ; 불법에 귀의한 남녀 신자에게 붙이는 이름.
*십선계(十善戒) ;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십악(十惡) ; 몸(身)과 말(口)과 뜻(意)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〇몸(身)—①살생(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 ②투도(偸盜 남의 재물을 훔침) ③사음(邪婬 삿된 음행).
〇말(口)—④망어(妄語 거짓말이나 헛된 말) ⑤기어(綺語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⑥양설(兩舌 이간질하는 말) ⑦악구(惡口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〇뜻(意)—⑧탐욕(貪欲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 ⑨진에(瞋恚 성냄) ⓪사견(邪見 그릇된 견해).
*법요식(法要式) ; 불사(佛事-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를 할 때 행하는 의식.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80년 동안거해제(No.118) 법문에서.(1분 32초)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저 뒤에서 쭉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쑥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쑥 내쉰다, 내보낸다’ 이러한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수식관(數息觀) ; 들숨과 날숨을 세어 산란한 마음을 집중시키는 수행법.
*백골관(白骨觀) ; 시신(屍身)의 피부와 근육이 모두 없어져 백골(白骨)만 남아 있거나, 흩어져 있는 모습을 관(觀)하여 몸에 대한 집착을 없애고, 인생무상을 깨닫는 관법(觀法). 고골관(枯骨觀)이라고도 한다. 구상(九想)의 하나.
[참고] 구상(九想) ; 구상(九相)이라고도 한다. 탐욕을 제거하고, 혹업(惑業 무명번뇌와 업)을 멀리하기 위해 사람의 시신(屍身)에 대해 수행하는 9종류의 관상(觀相 깊이 생각에 집중하는 것).
부정관(不淨觀)의 9단계를 말한다.
①시신이 부어 팽창하는 것을 관상하는 창상(脹想).
②바람에 날리고, 햇빛에 쪼여 시신의 색이 변하는 것을 관하는 청어상(青瘀想).
③시신이 부패되는 것을 관하는 괴상(壞想).
④부패를 끝내고 혈육이 땅에 스며드는 것을 관하는 혈도상(血塗想).
⑤시체에서 벌레와 고름이 흘러나오고 살이 흩어져 낭자한 모습을 관하는 농란상(膿爛想).
⑥새나 짐승이 와서 시신을 먹는 것을 관찰하는 담상(噉想).
⑦새나 짐승에게 먹혀 근골두수(筋骨頭手)가 분열, 파산되는 것을 관하는 산상(散想).
⑧육신이 이미 다해 백골만 남게 되는 것을 관하는 골상(骨想).
⑨백골이 불에 태워져, 재로 돌아가는 것을 관하는 소상(燒想).
*사념처관(四念處觀) ; 현장법사(600~664) 이전에 번역한 경전의 번역을 말하는 구역(舊譯)에서는 사념처(四念處)라 하고, 신역에서는 사념주(四念住)라고 함. 사념주관(四念住觀)과 같음.
네 종류의 수행방법. 네 가지의 관상법(觀想法). 네 종류의 마음이 고요해지는 내관(內觀).
신념주(身念住, 身念處) · 수념주(受念住, 受念處) · 심념주(心念住, 心念處) · 법념주(法念住, 法念處)의 네 가지를 마음에 떠올리는[觀] 수행.
 
①신념주(身念住, 身念處) : 부모에게 받은 육신이 부정(不淨)하다고 관하는 것.
②수념주(受念住, 受念處) : 우리의 마음에 낙(樂)이라고 하는 음행·자녀·재물 등을 보고, 낙이라고 하는 것은 참 낙이 아니고, 모두 고통(苦痛)이라고 관하는 것.
③심념주(心念住, 心念處) : 우리의 마음은 항상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고, 늘 변화 생멸하는 무상(無常)한 것이라고 관하는 것.
④법념주(法念住, 法念處) : 위의 셋을 제하고, 다른 만유에 대하여 실로 자아(自我)인 실체(實體)가 없으며, 또 자아가 없으므로 소유도 없다고, 무아관(無我觀)을 하는 것.
 
신·수·심·법(身·受·心·法) 네 가지를 따로따로 관하기도 하고, 신수심법(身受心法)은 부정(不淨)하며, 고(苦)이며, 무상(無常)하며, 무아(無我)라고 총합하여 관하기도 한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횡격막(膜) ; 포유류 가슴  사이 있는 근육으로 이루어진 수축 이완 따라 위아래운동 하여 폐의 호흡 작용 돕는다.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가늘게 쪼갠  갈대 같은   따위 엮어서 만든 가리개.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나찰(羅刹) : 신속하게 땅이나 공중으로 다니면서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무서운 악귀(惡鬼). 나중에 불교의 수호신(守護神)이 되었다.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계첩( 삼가할 계,증명서 첩) ; () 받았다는 증명서.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식이란 말이다。불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지혜 목숨(慧命)을 이어 가고, 법의 집과 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1. 믿음이 종자가 되고,  2. 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3. 선정은 태(胎)가 되고,  4. 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5. 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연비(燃臂) ; 불교에서 수행자가 계(戒)를 받을 때, 팔뚝에 향이나 심지로 불을 놓아 뜨는 의식 또는 그 자국.
*국집(局執) ; 마음이 확 트이지 못하고 어느 한편에 국한(局限), 집착하는 것. 사리(事理)를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에 얽매이거나 자기의 소견만이 옳다고 고집하여 매우 답답한 모습을 말한다.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게송) ‘선악성공여반장~’ ; 卍新纂大日本續藏經 제37책 『사십이장경주(四十二章經註)』 (宋 守遂註 明 了童補註) '제4 善惡並明' 참고.
(본문) 善惡性空 猶如反掌 止惡行善 是順聖道 自性本無殺 持不殺戒 乃至自性本無貪瞋癡 持不貪等戒 八萬四千煩惱 變爲波羅蜜門 隨機差降 分上中下品 具載大經
*습기(習氣) ; 과거의 인식•행위•경험•학습 등이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남긴 기운•잠재력. 종자(種子)와 같음.
*진여자성(眞如自性)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화두불명수계)2015. 4. 16. 12:36

§(430) 자기의 도를 닦는 데에 대한, 견성성불하는 데에 대한 자포자기 그것이 참으로 가장 무서운 살생 / 인과를 철저히 믿어야 / 참회하고 선을 행하면 죄가 소멸이 된다.

 

살생 가운데 제일 좋지 못한 살생은 무엇이냐? ‘자기는 성불할 수 없다. 도를 닦아 봤자 소용이 없다. 아무리 도를 닦아도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못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도에 대해서 자포자기하는 살생이야말로 살생 가운데 가장 무섭고도 옳지 못한 살생이다.

 

불법(佛法)을 믿고, 도를 닦는 사람은 마음이 항상 진실하고, 질직(質直)하고, 속임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탐욕만 나쁜 게 아니라, 정신적인 탐욕—무엇이든지 자기주장(張)만 하고, 자기 생각만 옳다고 내세우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모르고, 남의 의견을 존중할 줄 모르고, 자기 고집만 내세우는 것. 이것도 탐욕중에도 대단히 중요한, 몹쓸 탐욕인 것입니다.

인과법은 우주의 질서입니다. 원인이 없이 어떤 결과가 나타난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어떤 결과가 나타날 때에는 그 원인이 있었고,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그 결과가 나타납니다.

쉬운 말로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나는 것’. 행동에 있어서, 말 한마디에 있어서, 아무도 몰래 속으로 잠깐 일어났다가 꺼져 버리는 생각까지라도 반드시 그것이 어떠한 형태로든지 그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모든 육체적인 병도 마음에서 일어난다」고 부처님은 말씀을 하셨어. 그 마음에 그러한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그것이 육체적인 병으로 표출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과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인과의 법칙을 철저하게 믿고 그러면 앞에 말한 살생이나, 도둑질이나, 사음이나, 망어·양설·악구·기어·탐욕·진심 이런 앞의 9가지의 죄과(過)를 자연히 범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430)—90년 12월 첫째일요법회(90.12.02) (용430)

 

(1) 약 20분.

(2) 약 19분.

 

(1)------------------

 

부처님 말씀에 중생이 열 가지 일로써 선(善)을 삼기도 하고, 또한 열 가지 일로서 악(惡)을 삼기도 하나니 무엇 무엇이 10가지인가? 몸으로 세 가지요, 입으로 네 가지요, 뜻으로 세 가지니,

 

그 몸으로 3가지라고 하는 것은 살생(殺生)이요, 투도(盜)요, 사음(淫)이요.

입으로 4가지는 양설(兩舌)이요, 악구(惡口)요, 망어(妄語)요, 기어(綺語)다.

뜻으로 3가지는 탐심(貪心)이요, 진심(瞋心)이요, 어리석음이다.

 

이와 같이 열 가지 일을 성현(聖賢)의 도(道)에 따르지 아니하면 그것은 십악행(十惡行)이라 그러고, 그것이 열 가지 악(惡)이고, 그 악을 행하지 아니하면 악을 그치면 이것을 십선행(十善行)이라고 한다.

 

그러면 몸으로 3가지는 산목숨을 죽이는 것, 또 도둑질을 하는 것, 또 사음을 하는 것이고,

입으로 4가지는 첫째, 두 가지 말로 이간질하는 것이요[兩舌]. 욕을 하는 것이요, 악한 말을 하고, 저주하고 하는 거고[惡口]. 또 거짓말을 하는 것이요[妄語]. 또 잡된 말, 음탕한 말, 꾸며 대는 말을 하는 것이다[綺語].

뜻으로 3가지는 탐심, 탐욕심, 그리고 진심을 내는 것, 어리석은 마음, 삿된 소견을 내는 것이다.

 

십선과 십악은 어떻게 다르냐? 내나 그 십선과 십악은 대상은 같은데, 그런 악한 짓을 하면은 십악(十惡)이 되고, 악한 짓 안 하면 그것이 십선(十善)이 되는 거여.

 

 

‘산목숨을 죽이는 것’은 생명을 끊는 것인데,

사람 목숨은 말할 것도 없고, 일체 크고 작은 축생들 이게 다 들어가는데, 그 살생(殺生) 가운데에 가장 내 몸 밖에 다른 살생을 하는 것도 살생이지만, 자기가 자기의 생명을 끊는 것도 살생이여.

 

요새 노인들도 자식에게 버림받고 갈 곳이 없어서 자살하는 사람도 있고, 국민학교 어린 학생이 자살을 하는 예도 엊그제 뉴스에 나왔습니다. 남을 죽인 것도 나쁘지만은 자기가 자기를 죽인 것도 살생이다.

 

그러면 살생이라 하는 것은 꼭 눈으로 볼 수 있는 육체만을 죽인 것만이 살생이 아니고,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적인 타격을 주어가지고, 생(生)의 의욕을 잃게 하는 것도 그런 것도 살생이고.

또 자기 스스로도 삿된 생각, 급한 생각,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 자포자기(棄)—육체에 대한 자포자기, 인생의 삶에 대한 자포자기, 그러한 것도 일종의 살생에 들어가고.

 

살생 가운데 제일 좋지 못한 살생은 무엇이냐?

‘자기는 성불할 수 없다. 도를 닦아 봤자 소용이 없다. 아무리 도를 닦아도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못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도에 대해서 자포자기하는 살생이야말로 살생 가운데 가장 무섭고도 옳지 못한 살생이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법보제자는 불법을 믿는 사람이 누구 다른 사람을 죽일 리가 있습니까?

그러한 살생보다는 자기의 도를 닦는 데에 대한, 견성성불하는 데에 대한 자포자기 그것이 참으로 무서운 살생이라고 하는 것을 명심을 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도둑질 하지 말아라.

여기에 모이신 여러분이야 계를 받았건 안 받았건, 누구 것을 훔치겠습니까? 그런 일반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러한 도둑질을 하실 리는 없겠고.

 

자기의 분(分)이 아닌 것을 형제간이라던지, 친구 간이라던지, 분이 아닌 것을 적당한 구실을 붙여서 챙기는 것, 이러한 것도 남의 것을 도둑질하는 사촌쯤 되는 도둑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 때문에 형제간에 재판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또 정을 손상을 하게 되는 겁니다.

 

요새는 어떻게 세상이 험해졌던지 청소년들도 사람을 죽이고, 강도질을 하고, 날이면 날마다 강도 절도가 온 세상을 시끄럽게 해서 강도를 없애는 전쟁을 선포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온 세상이 아주 강도 절도로 우글대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 우리 불자는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남이 주지 아니한 것을 몰래 훔치거나, 알게 훔치거나 이런 훔치는 일이 없어야겠다.

 

또 사음(淫)을 하지 말아라. 자기 아내, 자기 남편이 아닌 사람과 서로 사랑하지 말아라.

사음은 자기 스스로 몸을 더럽히고, 나아가서는 자기의 마음을 더럽히고, 몸과 마음을 더럽히면 항상 마음이 괴롭고 불안하고 언젠가는 자기 스스로를 멸망하게 하고, 가정을 파탄에 이끌고, 불화(不和)로 인해서 행복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입으로 짓는 네 가지는 거짓말, 허황된 소리, 허망한 소리, 속이는 소리 그런 말을 하지 말 것이며,

이간질해서 서로 싸움을 붙이고, 이간질은 아첨하는 데서 나오는 것인데—여기 가서는 그 사람에게, 저 사람은 또 딴소리 해가지고—상대방한테 아첨을 하다 보니, 이간질이 되고,

이간질이라 하는 것은 그 자리에서는 자기가 무슨 이득을 얻은 것 같이 느껴질런가 모르지만, 얼마 안가면 금방 그것이 발로(露)가 되어서 결국은 인격적으로 매장이 되고, 양쪽에서 다 미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을 믿고, 도를 닦는 사람은 마음이 항상 진실하고, 질직(質直)하고, 속임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악구(惡口)를 하지 마라. 악한 말, 추악한 말, 저주하는 말, 욕설을 퍼붓고 하는 그런 악한 말을 하지 마라.

자기가 자기 자신의 감정을 조절을 못하면 조금 자기 비위에 틀리면은 막 사정없는 입에 못 담을 욕설이 터져 나오는데,

 

불법을 믿고, 수행을 하는 사람은 어떠한 자기 뜻에 어기는 일을 당할지라도, 주먹 같은 놈이 속에서 틀어 오르고, 곧 목구멍까지 욕이 나올려고 할 그러한 찰나에도 심호흡(深呼吸)을 하면서 생각을 돌려.

‘아, 내가 십선계(十善戒)를 받았는데 이래서야 되겠느냐?’ 심호흡을 하면—심호흡을 깊이 숨을 마셨다가, 잠깐 참았다가, ‘후~’하고 숨을 내쉬면 그 주먹같이 틀어 오르는 격분(忿)이 스르르 가라앉게 되는 것이여.

 

그 추악한 욕은 지금은 어떻게 사람들이 성질이 급해져 가지고 조금만 건드이면 눈에 살기(氣)를 띄고, 입에서 막 욕이 터져 나오거든.

택시를 타도 운전사가 그러고, 도처에서 사람들이 노상 사람마다 칼을 품고 다니는 것 같이 살기가 등등하다 그말이여.

 

그러한 세상에서 우리가 장애 없이 살아가려면 항상 스스로 화두(話頭)를 들고 정진(精進)을 해야지, 까닥하면 그런 사람한테 만나면 부딪히게 된다 그말이여.

상대방이 좀 험하게 나오더라도 나는 항상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자비심으로 상대하면, 상대방이 험하게 나오다가도 그냥 그 사람 얼굴을 보면 스르르하니 상대방도 가라앉게 되는 것이여.

 

손뼉도 두 손이 부딪쳐야 소리가 나지, 한 손이 아무리 소리를 내려고 해도 반대쪽 손이 맞서지 아니하면 소리가 날 수가 없는 것이니,

집안에서나, 사회에서나, 직장에서나, 항상 화두를 들고 그렇게 살아가면 저절로 감정이 순화가 되고, 다른 사람에게 욕을 먹을 필요도 없고, 또 자기도 욕을 할 필요도 없게 되는 것이여.

 

그 다음에 불기어(不綺語), 꾸며 대는 말을 하지 말아라. 이 기어(綺語)에 대해서는 ‘진실치 못한 것을 아주 그럴싸하니 입담 좋게 꾸며 대가지고 번드르르니 하는 그런 짓을 하지 말아라’ 이렇게도 풀이를 하거니와,

 

‘잡되고 더러운 말을 하지 말아라. 또 허튼 소리를 하지 마라. 또 옳지 못한 말을 하지 말아라. 또 음탕한 말을 하지 마라’ 이러한 것들이 모두 합해져서 비단같이 꾸며 대지 말아라.

‘그런 꾸며 대는 말을 해가지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음심(心)을 내게 하지 말아라’ 그렇게도 풀이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뜻으로 세 가지는 탐심(貪心), 탐욕을 내지 말아라. 중생은 자칫하면 그 탐심을 내게 돼.

탐심이란 게 물건에 대한 탐심만 탐심이 아니라, 무엇이고 자기의 의사만을 고집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려고 그러고 그런 것도 정신적인 탐욕이여.

 

물질적인 탐욕만 나쁜 게 아니라, 정신적인 탐욕—무엇이든지 자기주장(張)만 하고, 자기 생각만 옳다고 내세우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모르고, 남의 의견을 존중할 줄 모르고, 자기 고집만 내세우는 것.

이것도 탐욕중에도 대단히 중요한, 몹쓸 탐욕인 것입니다.

 

진심(瞋心)은 무엇이냐? 자기 뜻대로 안되면 진심을 내거든.

진심을 낸 사람은 반드시 탐욕이 심한 사람이야. 탐욕이 없는 사람은 진심을 낼 필요가 없어.

 

자기 뜻과 좀 안 맞더라도 상대방 말을 귀담아 듣고, 상대방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고, 그래서 양보할 일은 양보하고, 상대방 의사를 존중히 여기고, 이러면 어디를 가던지 화합을 할 수가 있고, 일이 파탄이 되지 않고, 일이 성사가 될 것인데.

 

지금 야당, 여당 모두 국회에서도 자기 당 말만 옳다고 내세우고 자기 당에 이로운 쪽으로만 몰고 가고 한 데에서 국회도 저렇게 자꾸 정회(會)가 되고 모두 그런 거고.

상대방의 말을 존중히 여기고, 자기의 사욕을 버리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피차 똑같이 입으로만 국가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정말 양심적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마음으로 나간다면 어찌 사사건건이 반대가 될 리가 있겠습니까?

 

경우에 따라서는 반대 되는 일도 있고, 합해지는 일도 있겠지만 근본 목적이 같고 또 사심 없이 대한다면 반대하다가도 다시 또 화합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집안에서도 부부간도 그렇고, 부모 자식 간에도 그렇고, 친구 간에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 탐욕과 진심 이것 때문에 모든 미움이 생기고, 싸움이 생기고, 결국은 불화가 생기고 해서 혼돈이 오고, 원결(怨結)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처음~19분40초)

 

 

 

 

 

(2)------------------

 

마지막에 사견(邪見)을 내지 마라. 사견은 어리석은 데에서 나와.

그래서 ‘치심(癡心)을 내지 말라’나, ‘사견을 내지 말라’는 다 같은 말이여. 어리석기 때문에 사견을 내고, 사견을 가졌기 때문에 결국은 지혜롭지 못한 것이여.

 

불자(佛子)로서 가장 어리석고 삿된 생각은 무엇이냐?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인과(因果)를 믿지 않는 것이여.

인과를 믿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요, 인과를 믿지 않고 마구잡이 한 사람은 반드시 삿된 소견을 가지고 삿된 행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거거든.

 

인과법은 우주의 질서입니다. 원인이 없이 어떤 결과가 나타난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어떤 결과가 나타날 때에는 그 원인이 있었고,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그 결과가 나타나.

 

쉬운 말로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나는 것’입니다.

행동에 있어서나, 말 한마디에 있어서나, 아무도 몰래 속으로 잠깐 일어났다가 꺼져 버리는 생각까지라도 반드시 그것이 어떠한 형태로든지 그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모든 육체적인 병도 마음에서 일어난다」고 부처님은 말씀을 하셨어. 그 마음에 그러한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그것이 육체적인 병으로 표출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과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인과의 법칙을 철저하게 믿고 그러면 앞에 말한 살생이나, 도둑질이나, 사음이나, 망어, 양설, 악구, 기어, 탐욕, 진심 이런 앞의 아홉 가지의 죄과(過)를 자연히 범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인과의 법칙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철저하게 실천하게 되면 이 세상에 싸움은 없어질 것이요, 미움도 없어질 것이고, 따라서 감옥도 필요가 없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감옥만 없어질 뿐만 아니라, 지옥도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현세에 감옥이 없어지고 내생에 지옥이 없어진다면 온 세상이 극락정토(極樂淨土)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자는 인과를 철저하게 믿어 버려야 돼. 인과를 믿으면은 첫째 자기 마음이 편안하고, 자기하는 행동과 말과 생각이 다 십선법에 맞도록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선법을 잘 지키면, 십선계(十善戒)를 지키면은 다 천상에 태어나고, 인간 세계에 태어나되 최고의 좋은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이다.

 

십선(十善)을 행하지 않고, 십악(十惡)을 행하면 지옥과 아귀 축생의 삼악도(三惡途)에 떨어진다 그거거든.

십악을 행할 때 이미 금생에 삼악도의 고(苦)를 받게 되는 거고, 십선을 행하면 죽기 전에 이미 천상락(天上樂)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금생과 내생은 언제나 연결되어 있는 것이고, 시간적으로는 그것이 동시인 것입니다. 금생을 떠난 전생도 없고, 금생을 떠난 미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말씀에도 ‘전생사(前生事)를 알고자 하면 금생에 자기가 어떻게 받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알고, 내생에 자기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고 싶으면 금생에 자기가 어떻게 짓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알 수가 있느니라’ 그러셨어.

 

그래서 금생 속에는 전생도 물려 있고, 내생도 물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생 속에는 삼생(三生)이 동시에 있는 것입니다.

 

십선도 상품(上品)으로 닦느냐, 중품(中品)으로 닦느냐, 하품(下品)으로 닦느냐에 따라서,

사람으로 태어나냐, 하늘나라의 과(果)를 받느냐, 또는 삼승(三乘)의 과를 받느냐, 또는 불과(佛果)를 받느냐? 이렇게 그 지키는 차원에 따라서 이렇게 많은 차등이 있고.

십악을 행하는 데 있어서도 그 강약에 따라서 강한 사람은 지옥에, 중으로 그 십악을 한 사람은 축생, 또 아주 약하게 한 사람은 아귀, 이렇게 태어난다고 화엄경에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십선을 제일 잘 닦으면 도솔천 내원궁(天內院宮)에 태어나게 되는데 이 도솔천은 욕계육천(欲界六天) 가운데 제사천(第四天)인데,

거기는 상족천(上足天), 묘족천(妙足天), 희족천(喜足天), 지족천(知足天), 이런 말로 번역을 할 수가 있는데, 인간 세계에 있어서 사백세(四百歲)가 도솔천에 있어서는 일주야(一夜)에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솔천에 태어나면 수명이 사천세를 살 수가 있어. 그리고 수미산(彌山) 꼭대기에서 십이만 유순(旬)의 지점에 있다. 그리고 그 도솔천은 칠보로 만든 아름다운 궁전이 있고,

 

도솔천에는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이 있는데, 외원은 일반 하늘나라 사람들이 욕락(欲樂)을 누리는 곳이고,

내원은 56억 7천만년 뒤에 이 염부제(提)에 석가모니 부처님 다음 부처님으로 출세(出世)하실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지금 거기에 대기하고 계신 곳이다.

 

그리고 이 하늘 바로 아래는 사왕천(四王天)이 있고, 그 다음에 도리천(天)이 있고, 야마천(耶麻天)이 있는데 거기에는 다 온갖 욕정에 잠겨 있는 곳이고,

그 위로는 화락천(化樂天),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 있는데 거기는 들뜬 마음이 많은 그러한 세계여.

 

그러면 도솔천 내원궁은 욕락에 잠기지도 않고, 또 그러한 들뜨지도 않으면서 천상락에 만족한 마음을 낸다.  들뜨지도 않고 또 잠기지도 않는 아주 그런 경계로 모두 살아가기 때문에 앞으로 부처님으로 출세할 그런 보처보살(薩)들이 항상 도솔천에 계시다가 부처님으로 이렇게 하강(降)을 하시게 되는 것이여.

 

그래서 참선(參禪)하는 사람은 마음이 어떤 기쁨에 들떠 있지도 않고, 어떤 탐욕·욕락에 잠겨 있지도 않고, 그러한 마음이라야 도를 올바르게 닦을 수가 있는 거여. 또 그렇게 닦아 가면 마음이 그런 상태로 되는 것이여.

 

그래서 실지로 로켓트 같은 것을 타고 올라가면 정말 도솔천이 있는가? 얼마나 타고 올라가면 성층권을 지나서 진공권을 지내가지고 얼마나 올라가면 있는가? 그것은 아직 과학적으로는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우리 참선하는, 최상승(最上乘)을 믿고 도를 닦는 사람은 도솔천 내원궁도 우리의 마음속에 있고, 극락세계도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철저히 믿고 공부하면서도 내생에 우리가 십선계를 닦느냐, 십악을 범하느냐에 따라서 극락세계도 가고, 도솔천에도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부정을 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알지도 못하고 자기의 짧은 근시안적인 생각으로 ‘없다’고 부정을 해서는 안돼. 부처님께서 ‘있다’고 하실 때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기 때문에 말씀을 하신 것이고,

 

자기가 부처님 말씀을 믿고 열심히 올바르게 닦아 가면 바로 도솔천이나 극락세계가 일단은 제일차적으로는 자기 마음속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고, 미륵 부처님이나 아미타불도 자기 마음속에서 친견하게 될 것이고,

 

그 사람에게는 이미 생사(生死)가 없기 때문에, 있는 곳이 바로 불세계(佛世界)이기 때문에,

바로 그 찰나에 부처님을 친견한다고 하는 이러한 진리를 철저히 믿어야 하고, 죽어서 극락세계나 도솔천에 가는 것도 부정을 할 필요가 없어요.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지옥이 있는 것입니다.

‘지옥과 천당이 공(空)했다’고 한 것은 깨달은 견지(見地)에서 볼 때 공한 것이지, 깨닫지 못한 사람은 자기의 지은 업(業)에 따라서 분명히 지옥이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인과를 함부로 부정을 하고 ‘지옥이 어디가 있느냐?’고 하다가 쏜살같이 지옥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인과법을 함부로 부정한 사람은 그건 못쓰는 사람이야. 불법을 믿지 않는 사람이요, 그 사람은 올바른 길을 가기 어렵게 된 사람이여. 그래서 철저하게 인과법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십선계, 이상 설한 십선계는 재가 불자(在家佛子)로서 마땅히 잘 지켜야 할 바니, 능히 잘 지키겠는가? 능지(能持)!

이상 설한 십선계는 불자로서 마땅히 잘 믿고 지켜야 할 것이니, 능히 잘 지키겠는가? 능지(能持)!

이상 설한 십선계는 불자로서 마땅히 잘 지켜야 할 바니 능히 잘 지키겠는가? 능지(能持)!

 

연비(燃臂)해 드려.

 

참회진언(懺悔眞言),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편안하게 앉으십시오.

 

 

부처님 말씀에 ‘죄가 있거든 스스로 참회(懺悔)하고 그 마음을 몰록 쉬어 버리고 그걸 고치라’ 그랬어.

참회하고, 하던 악을 중단하고 마음을 고쳐버리면, 마치 무엇과 같으냐? 병을 앓다가 한약을 지어다가 먹고 푹 취한(汗)을 하면, 땀을 푹 싸 버리면 아주 몸이 가뿐하고 병이 낫는 거와 같다.

 

참회를 하지 아니하고 고치지 아니하면, 지은 허물이 죄가 되어 가지고 그 마음에 따라붙어. 그래 가지고 물이 흐르고 흘러서 바다에 들어가듯이, 바다에 들어가면 점점점점 바닷물이 불어나서 깊어진 거와 같다.

 

사람이 중생이 살다 보면 본의 아니게 허물을 저지를 수도 있고, 큰 허물, 작은 허물, 또 자기의 생각이 좁아 가지고 본의 아니게 그럴 수도 있고, 남의 꾀임에 빠져서 허물을 저지를 수가 있고,

그러나 항상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또 절에 와서 하다보면 ‘아하, 내가 잘못했구나!’ 염불도 하고, 경도 읽고, 참선을 하다 보면 금방 자기를 반성하게 되거든.

 

‘허물이 있는 줄을 알고, 허물을 고치고 선(善)을 행하면 지은 죄가 스스로 소멸이 된다’ 그랬어.

참회를 하면 죄가 소멸이 되는 것이여. 참회법이라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여.(19분41초~38분3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십선계(十善戒) ;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십악(十惡) ; 몸(身)과 말(口)과 뜻(意)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〇몸(身)—①살생(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 ②투도(偸盜 남의 재물을 훔침) ③사음(邪婬 삿된 음행).

〇말(口)—④망어(妄語 거짓말이나 헛된 말) ⑤기어(綺語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⑥양설(兩舌 이간질하는 말) ⑦악구(惡口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〇뜻(意)—⑧탐욕(貪欲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 ⑨진에(瞋恚 성냄) ⓪사견(邪見 그릇된 견해).

*자포자기(自暴自棄) ; 절망 상태에 빠져 스스로 자신을 내버리고 돌보지 않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발로(發露) ; 숨은 것이 겉으로 드러나거나 숨은 것을 겉으로 드러냄. 또는 그런 것.

*질직하다(質直-- 바탕 질,곧을 직) ; 꾸미거나 숨김이 없고 정직하다.

*격분(忿 부딪쳐흐를 격,성낼 분) ; 몹시 분하고 노여운 감정 북받쳐 오름.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원결(怨結 원망할 원,맺을·번뇌 결) ; 원망(怨望)의 마음이 얽혀 풀리지 않는 것을 말함.

 

 

 

 

 

------------------(2)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식이란 말이다。불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지혜목숨(慧命)을 이어가고, 법의 집과 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 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

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죄과(罪過 허물 죄,허물 과) ; 죄가 될 만한 과실이나 허물.

*극락정토(極樂淨土) ; 산스크리트어 sukhāvatī  아미타불이 살고 있다는 청정한 국토로, 서쪽으로 10만억 불국토를 지나 있는데, 괴로움이 없고 지극한 즐거움만 있는 세계. 안락(安樂), 안양(安養), 서방정토(西方淨土)라고도 한다.

*전생사(前生事) ; ①'전생(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살았던 삶)'에 있었던 일. ②'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는 이미 지나간 일'을 일컫는 말.

*삼생(三生) ; 과거와 현재, 미래를 뜻하는, 전생(前生), 현생(現生), 후생(後生,來生)을 아울러 이르는 말.

*상품(上品) ; 상등(上等 정도나 수준이 높거나 우월한 것)의 품위(品位 질적 수준). 수준이 높은 것.

*중품(中品) ; 중등(中等 정도나 수준이 중간쯤인 것)의 품위(品位 질적 수준). 질적 수준이 중간쯤인 것.

*하품(下品) ; 하등(下等 정도나 수준이 낮거나 뒤떨어지는 것)의 품위(品位 질적 수준). 질적 수준이 낮은 것.

*삼승(三乘) ; 3가지 탈 것. 3가지 길을 걷는 자. 깨달음에 이르는 3가지 실천법.
산스크리트어 tri-yāna  승(乘)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르게 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중생 각각의 능력·소질에 맞게, 즉 성문(聲聞)·연각(緣覺)·보살(菩薩)의 3가지 능력에 맞도록 깨달음으로 이끌어 가는 가르침을 성문승(聲聞乘)·연각승(緣覺乘)·보살승(菩薩乘)으로 탈 것에 비유한 말.

*욕계육천(欲界六天) ; 육천(六天) 또는 아직 도덕적으로 불완전하며 욕망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였으므로 육욕천(六欲天)이라 한다.
삼계(三界, 일체 중생이 생사윤회하는 3가지 세계로 욕계·색계·무색계) 가운데에 욕계(欲界, 식욕食欲·수면욕睡眠欲·음욕淫欲이 있는 세계)에 딸린 여섯 종의 하늘을 말한다.
곧 사왕천(四王天)·도리천(忉利天)·야마천(夜摩天)·도솔천(兜率天)·화락천(化樂天)·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다.
이 6천 가운데에서 사왕천은 수미산(須彌山) 허리에 있고, 도리천은 수미산 정상에에 있으므로 지거천(地居天)이라 한다. 야마천·도솔천·화락천·타화자재천은 다 허공(虛空)에 있으므로 공거천(空居天)이라 한다.
욕계(欲界)는 식욕(食欲)·수면욕(睡眠欲)·음욕(淫欲)이 있는 세계로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 등 5가지와 사왕천·도리천·야마천·도솔천·화락천·타화자재천 등 육욕천이 여기에 속한다.
*염부제(閻浮提) ; 염부(閻浮). 남염부제(南閻浮提). 섬부주(贍部洲). 남섬부주(南贍部洲).
산스크리트어 jambu-dvīpa의 음사. 염부(閻浮), 섬부(贍部)는 jambu의 음역어이며, 제(提)와 주(洲)는 dvipa의 각각 음역어 및 의역어이다. jambu는 나무 이름.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수미산(須彌山)의 사방에 네 대륙(四洲)이 있는데, '염부'라는 이름은 여기에 자란다는 점부(jambu)에 유래하며, 남방에 있기 때문에 남섬부주(南贍部洲)라고 한다.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라 하며, 여러 부처님이 나타나는 곳은 사주(四洲) 가운데 이곳뿐이라 함.
불전(佛典)에서는 ‘인간세계의 전체’를 의미하는 말로서 사용되고 있다.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미륵(彌勒)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내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존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
 
석존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도하여 3회의 설법으로써 석존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석존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보처보살(補處菩薩)한 번의 미혹한 생을 마치면 다음 생에는 성불하는 최고 경지의 보살. 특히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充)한다는 미륵보살을 일컬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견지(見地)사물현상 따위 관찰하거나 판단하는 입장.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연비(燃臂) ; 불교에서 수행자가 계(戒)를 받을 때, 팔뚝에 향이나 심지로 불을 놓아 뜨는 의식 또는 그 자국.

*참회진언(懺悔眞言) ; 죄업(罪業)을 참회하는 진언.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라는 것은 본래 실체가 없는데[無自性] 마음으로 좇아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마음이 소멸되면 죄 또한 없어진다.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마음도 없어지고 죄도 없어져서 그 두가지가 함께 공(空)해져서 없어져버릴 때, 이것이야말로 진짜 참회이다.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취한( 취할 취,땀 한) ;  낫게 하려고   내어  기운 발산시킴.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화두불명수계)2014. 12. 15. 14:55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770) (게송)약인정좌일수유~ / (게송)활구참선객~ / 염라대왕의 합장 배례 / 대승십선계 / (게송)삼계진화택~ / (게송)온포사아귀~.

불교의 최상승법(最上乘法)은 지식이 있거나 없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막론하고 화두를 타서 ‘이뭣고?’를 하면, 끝없이 육도법계(六道法界)에 윤회할 것을 일념(一念) 간에 그 윤회의 쇠사슬을 끊고 해탈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활구참선을 믿고, 이 정법을 믿고 정진하는 사람은 염라대왕 앞에 떠억 끌려가도, 염라대왕이 그 활구참선을 하다가 온 사람은 염라대왕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합장을 하고 절을 한다 이것입니다.


왜 그러냐?  활구참선을 한 사람은 확철대오(廓徹大悟) 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 할 수 있는 자격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염라대왕도 합장 배례를 할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불도 수행을 성취하고자 하면 계(戒)와 정(定)과 혜(慧), 삼학(三學)을 닦아야 하나니, 계의 그릇이 온당해야 선정(禪定)의 물이 담기고, 선정의 물이 맑고 고요해야 지혜의 달이 나타날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계(戒)로써 스승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송담스님(No.770) - 2014(갑오)년 동안거결제 및 화두 불명 수계식 (용770)

 

(1) 약 19분.

(2) 약 22분.


(1)------------------

약인정좌일수유(若人靜坐一須臾)하면  승조항사칠보탑(勝造恒沙七寶塔)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보탑필경쇄위진(寶塔畢竟碎爲塵)이나  일념정진성정각(一念精進成正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인(若人)이 정좌일수유(靜坐一須臾)하면  승조항사칠보탑(勝造恒沙七寶塔)이다.
만약 사람이 잠깐 동안 정좌를 하면, 항하사(恒河沙) 모래수와 같은 칠보탑을 조성해 모신 것보다도 그 공덕이 수승(殊勝)하다.

왜냐하면 보탑(寶塔)은 필경쇄위진(畢竟碎爲塵)이나  일념정진(一念精進)은 성정각(成正覺)이다.
보탑을 칠보로 해서 잘 조성을 해서 모셨다 하더라도 천 년, 만 년 가면 지진이 일어나고 그래 가지고 언젠가는 탑이 부서져서 먼지가 될 때가 있고 말지만은 ‘한 생각’ 정진을 하면 그 정진하는 공덕으로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정각(正覺), 바른 깨달음을 얻으면 그것이 성불한 것이다 그말이지.


오늘 갑오년 시월 동안거 결제날을 기해서 이 자리에는 오늘 화두를 타고, 불명(佛名)을 타고, 또 오계(五戒)를 받는 그런 법요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용화사 법보선원 19명, 인제 용화선원 16명, 광주 용화선원 12명, 용주사 중앙선원 18명, 망월사 천중선원 24명, 약사암 12명, 위봉사 선원 24명, 승련사 선원 13명, 원효사 송라선원 15명, 회룡사 선원 11명, 세등선원 14명, 복전암 15명, 도덕사 6명의 스님들이 동안거 결제에 참석을 했고,

용화유아학교, 학생회, 광주용화선원, 동화사 90명, 마하정사 8명, 묘적암 23명, 보천사 14명, 복전선원 109명, 위봉사 11명, 심우정사 13명, 연화사 4명, 영산선원 76명, 원효사 12명, 위봉사 11명, 부산시 정수사 150명, 진불선원 23명, 태유선원 8명, 화운암 11명,

이렇게 해서 1,798명의 스님과 일반 신도들이 화두 불명 십선계를 받기 위해서 이 자리에 경건한 마음으로 참석을 했습니다.

특히 유아, 어린이들 7~8, 4~5살 먹은 어린이까지도 이 자리에 모두 참석을 했습니다.
연세가 많으나, 애기처럼 나이가 아직 말귀도 못 알아들을 정도로 어린 애기거나, 남녀노소를 막론(莫論)하고, 이 자리에 참석한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육도윤회(六途輪廻)로부터서 해탈을 해 가지고 정각을 이룰 수 있는 확실한 종자(種子)를 심게 되는 것입니다.


‘불교는 일반 종교와 무엇이 다르냐?’하면은 (일반) 종교는 교주를 신봉하고 기도를 하고 해서 천상이나 모다 그런데 가거나,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을 목적으로 많이 신앙을 하고 있으나,
불교의 최상승법(最上乘法)은 지식이 있거나 없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막론하고, 화두를 타서 ‘이뭣고?’를 하면 끝없이 육도법계(六道法界)에 윤회할 것을 일념(一念) 간에 그 윤회의 쇠사슬을 끊고, 해탈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해탈(解脫)이라 하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는 부르면 ‘예’하고 대답할 수 있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알고, 칭찬하면 기뻐할 줄 아는 우리의 심성(心性)이 있는데, 그 심성자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지고 일생 동안을 살고,
일생을 살다가 다시 또 몸을 바꿔 나서 업에 따라서 천상에도 태어나고 인간으로도 태어나고 죄를 지으면 축생도 되고 지옥도 가지만은 그 근본의 마음자리는 어디를 가나 그것이 변하는 것이 아니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우리는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쓰고 있고, 그것에 의해서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그것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최상승법이요, 활구참선(活句參禪)은 눈으로 무엇을 볼 때도 ‘이뭣고?’, 귀로 무슨 말을 들을 때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슬프거나 기쁠 때도 ‘이뭣고?’
그 화두 하나를 챙김으로 해서 육도법계를 윤회 속에 있으면서 해탈하는 길에 나아가는 것이 바로 이 활구참선인 것입니다.


이 활구참선은 얼굴이 잘생기거나 못생기거나, 지식이 있거나 없거나 전혀 그것이 상관이 없습니다. 철저한 신심(信心)으로 ‘이뭣고?’
이 한마디는 흙탕물 속에 잠겨 있는 보배를 건져서 냉수에다 씻으면 거기서 빛이 나듯이, 그 동안에는 육도윤회를 무량겁을 해왔지만은 오늘 이 인연과 이 기회를 발판으로 해서 철저히 최상승법을 믿고 ‘이뭣고?’를 하기로 결심을 하고.

오늘부터는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간에 슬프거나 기쁘거나 속이 상하거나 ‘이뭣고?’
‘이뭣고?’ 한마디로써 바로 윤회로부터서 해탈하는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활구참선객(活句參禪客)을  하인작득쌍(何人作得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보연천사일(報緣遷謝日)에  염왕자귀항(閻王自歸降)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활구참선객(活句參禪客)이여, 지금 산승(山僧)의 말을 듣고 이 시간 이후로 열심히 ‘이뭣고?’를 하는 활구참선객은, 하인(何人)이 작득쌍(作得雙)이리요, 누가 그 사람과 나란히 어깨를 할 수가 있겠는가?

보연천사일(報緣遷謝日)에, 이 세상에 인연이 다해서 살 만큼 살다가 결국 몸을 바꾸게 되는데,
어디로 가냐하면은 — 일반적으로 말할 때 저승에 간다고 그러는데 그것이 자기가 지은 인연 따라서, 업에 따라서 육도(六道) 어느 곳엔가는 태어나는데.

이 활구참선을 믿고, 이 정법을 믿고 정진하는 사람은 염라대왕 앞에 떠억 끌려가도, 염라대왕이 그 활구참선을 하다가 온 사람은 염라대왕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합장을 하고 절을 한다 이것입니다.

염라대왕은 살아서 천자(天子)를 했거나, 대통령을 했거나, 만석꾼 부자였거나, 장군이거나 누구라도 염라대왕은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염라대왕은 어떠한 사람, 어떤 무서운 권리가 있는 사람이 오더라도 무서워하지 않고 큰소리를 치고, 지은 업(業)을 심판을 하는데, 활구참선을 하다가 온 사람은 염라대왕이 그 사람이 잘살았거나, 잘생겼거나 못생겼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상관이 없이 활구참선을 한 사람이 오면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합장 배례(拜禮)를 합니다.

왜 그러냐? 활구참선을 한 사람은 확철대오(廓徹大悟) 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 할 수 있는 자격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염라대왕도 합장 배례를 할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산승의 이 말을 ‘설사 그럴 수가 있을까?’ 그렇게 혹 의심을 하고, 확실히 안 믿어지는 사람도 있을런지 모르나 이것은 무엇 때문에 내가 거짓말로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이 게송(偈頌)은 과거에 확철대오한 도인(道人)이 읊어 논 게송인 것입니다. 확철대오를 한 도인의 이 게송은 진리에 계합하는 게송이기 때문에 산승도 이 게송을 믿고 자신감을 가지고 여러분께 읊어 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활구참선은 경을 읽고 해석하고 분석한 것도 아니고 이론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속이 상할 때에도 ‘이 속상하는 이놈이 무엇인가?’ 슬플 때에도 슬픈 데로 쫓아가지 않고 ‘이 슬퍼할 줄 아는 이놈이 무엇인가?’

우리는 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보면 보는 데로 쫓아가고, 귀로 무슨 말을 들으면 듣는 그리 쫓아가는데,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은 눈으로 무엇을 보자마자 그리 가지 않고,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바로 ‘이뭣고?’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귀로 좋은 말이나 나쁜 말을 듣더라도 그리 쫓아가지 아니하고, 그런 말을 듣자마자 바로 ‘이뭣고?’로 돌아오기 때문에,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희노애락(喜怒哀樂),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서 그것이 바로 자기로 돌아오는 수도장(修道場)이요,
우리 상대하는 모든 것들은 수도장이고, 모든 소리는 법문(法門)이고, 만나는 사람은 나로 하여금 자성불(自性佛)로 돌아오게 하는 선지식(善知識)이요, 부처님인 것입니다.

활구참선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은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살더라도 이 사바세계가 육도윤회 생사 속에의 그런 불구덩이가 아니라 성불로 돌아가는 발판이요, 수도장이요, 부처님이 살아계시는 세계인 것입니다. 그래서 활구참선이라 하는 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 최상승법을 믿고 열심히 앞으로 참선을 해 나갈 사람은 절차상(節次上)  대승십선계(大乘十善戒)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처음~19분4초)

 

 



(2)------------------

십선계의 첫째는 불살생(不殺生)이니,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
앉아 있는 분은 호궤합장(互跪合掌)을 하십시오, 꿇고 앉아서 합장을 하십시오.

(무릎을 꿇으시고 상체를 세워서 합장을 하십시오. 엉덩이는 발뒷꿈치에서 떼어서 상체를 세워주세요)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
둘째는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不偸盜)
셋째는 사음을 하지 말라.(不邪淫)
넷째는 망어, 거짓말을 하지 마라.(不妄語)
다섯째는 음탕하고 상스러운 말을 하지 말라.(不綺語)
여섯째는 두 가지 말을 하지 마라.(不兩舌)
일곱째는 악한 욕을 하지 마라.(不惡口)
여덟째는 탐욕심을 내지 말라.(不貪慾)
아홉째는 성을 내지 마라.(不瞋恚)
열번째는 사견을 내지 말라.(不邪見)

어째서 살생을 하지 말아야 하냐 하면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 이겁니다. 산 목숨을 죽이면, 나의 자비(慈悲)의 종자(種子)가 있는데 자비 종자를 손상하지 때문에 살생을 하지 말라.

두번째, 왜 도둑질을 하지 말아야 하냐 하면은 복덕(福德) 종자를 손상하기 때문에. 복덕이 있어야 살아갈 수가 있는데, 잘살 수가 있는데 복덕 종자를 상하기 때문에 도둑질을 하지 말라.

자기 남편, 자기 아내가 아닌 사람과 관계를 하지 말라. 사음(邪淫)을 하면은 집안의 평화가 깨지게 되고, 자기 몸을 더럽히게 되고 그러니 사음을 하지 마라.

네번째, 거짓말을 하지 마라. 거짓말을 하면은 진실(眞實) 종자를 손상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지 말라. 거짓말을 해 버릇하면은 남이 자기를 인격적으로 믿지를 않고 그러니 거짓말을 하지 마라.

다섯째, 음탕하고 상스러운 말을 하지 마라. 음탕하고 상스러운 말을 하게 되면은 그것도 수행자로서의 인격을 손상하고 남의 존경을 받지 못하고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그 사람 말을 믿지를 않는 게야.

이간(離間)하는 말을 하지 마라. 이간질을 하면은 여기 가서 이 말하고, 저 가서 저 말하고, 두 가지 말로 이랬다저랬다 하면은 그것도 자기의 인격을 손상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일곱째는 욕(辱)을 하지 마라. ‘저런 죽일 놈’ 입에 못 담을 욕을 부애가 나면 욕을 하는데, 욕을 하면은 그 욕이 상대방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남에게 욕하는 것이 결국은 자기가 자기한테 욕을 하는 거고, 자기 인격을 손상하기 때문에 욕을 하지 마라.

부애가 나면은 바로 부애 난 그 마음을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를 해야지, 욕을 해서 — 입으로 욕을 하면 자기 입을 더럽히게 되고 자기 인격을 손상하기 때문에 욕을 하지 마라.

여덟번째, 탐욕심을 내지 마라. 남의 것을 욕심을 내고 탐욕을 내 가지고 부당한 방법으로 착취를 하면은 그 탐욕심으로 인해서 자기의 인격을 손상하고 청정한 마음을 더럽히기 때문에 탐욕심을 내지 마라.

아홉번째, 진심(瞋心)을 내지 마라. 우리 마음에 조금 안 맞으면 성을 내는데, 성을 낸다고 해서 아무도 그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자기의 인격을 손상하는 일이라, 성을 내면은 맨 처음 자기가 해로운 것이고 부끄러운 것입니다.

열번째, 사견(邪見)을 내지 마라. 어리석고 삿된 견해를 가지면, 그 첫번째가 무엇이냐 하면은 인과(因果)를 안 믿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인과법에 의해서 운영이 되어 가는데, 사견을 낸 사람은 인과를 안 믿기 때문에 어리석은 말, 어리석은 생각, 어리석은 행동을 해 가지고 자기가 자기를 해롭게 하고, 자기 인격을 손상을 하고 다른 사람을 언짢게 하는 것입니다.

이상 설한 열 가지 계(戒)는 불도(佛道)를 믿고 최상승법에 의해서 자기를 깨닫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이 10가지 계를 지켜야 하니, 능히 잘 지키겠는가? ‘예!’

이 열 가지 계는 마땅히 우리가 지켜야 할 바니 잘 지키겠는가? (예!)

이상 설한 10가지 대승십선계(大乘十善戒)는 부처님을 믿고, 도를 닦고, 성불하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이 십선계를 지켜야 하니 잘 지키겠는가? (예!)

연비(燃臂)해 주세요.

백겁적집죄(百劫積集罪)
일념돈탕제(一念頓蕩除)
여화분고초(如火焚枯草)
멸진무유여(滅盡無有餘)

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瞋痴)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

참회진언(懺悔眞言)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사부대중과 같이)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자종금신지불신(自從今身至佛身)
견지금계불훼범(堅持禁戒不毁犯)
유원제불작증명(唯願諸佛作證明)
영사신명종불퇴(寧捨身命終不退)

원이차공덕(願以此功德)
보급어일체(普及於一切)
아등여중생(我等與衆生)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불도 수행을 성취하고자 하면 계(戒)와 정(定)과 혜(慧), 삼학(三學)을 닦아야 하나니, 계의 그릇이 온당해야 선정(禪定)의 물이 잠기고, 선정의 물이 맑고 고요해야 지혜의 달이 나타날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계(戒)로써 스승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십악 참회(十惡懺悔)를 하고 또 연비(燃臂)를 하고, 참회진언을 외우면서 연비를 해서 과거 무량겁으로부터 지어온 모든 죄는 다 봄눈처럼 다 소멸이 되었습니다.
이 청정한 몸으로, 청정한 마음으로 앞으로 우리는 일체처 일체시에서 언제 어디서라도 항상 ‘이뭣고?’로써 생활을 해 나가야 합니다.

속이 상할 때에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기분이 나쁠 때도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서 항상 숨을 깊이 들여마셨다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해 나아가면 자기가 어떠한 처지에 있거나 간에 바로 그때, 그 자리가 바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선방이 되는 것이고, 바로 부처님 세계로 가는 길이니, 우리는 오늘부터 정말 참되게 올바르게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인생이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일체처 일체시에서 항상 자기로 돌아오는 수행의 길을 알았고, 그것을 과거에 지은 것은 참회하고 앞으로 잘 이것을 실천해 나가겠다고 부처님 앞에서 서약을 하고 연비를 받았으니, 우리는 비록 이 몸뚱이는 이만큼 늙었지만은 우리의 마음은 갓난애기처럼 깨끗해졌습니다. 그 깨끗한 마음으로 앞으로 열심히 ‘이뭣고?’만 해가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산승은 여러분의 그 진실한 마음으로 참회하고 열심히 최상승법에 의해서 잘 ‘이뭣고?’를 하겠다고 맹세하신 것을 믿습니다.
저는 이렇게 여러분께 말씀하고 여러분의 그런 진실한 마음을 봄으로 해서 비록 내가 늙었지만은 저도 오늘 새로 태어난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여러분...(박수)


마지막으로 게송을 하나 읊고 내려가고자 합니다.

삼계진화택(三界眞火宅)이요  사대성고취(四大誠苦聚)로다
나~무~아~미~타~불~
여아구출몰(汝我俱出沒)하니  겁해종난측(劫海終難測)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이 삼계는 정말 진화택(眞火宅)이여, 불이 훨훨 타고 있는 집이다 그말이여.
이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졌으니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은 생로병사(生老病死), 생주이멸(生住異滅)의 당체(當體)다 그말이여.

그러니 여아(汝我)로 구출몰(俱出沒)이여, 나나 모든 다른 사람이나 다 그 삼계 진화택 속에서 사대(四大)의 고취(苦聚) 괴로움이 뭉쳐진 이 몸뚱이를 가지고, 이 세상에 나왔다가 이렇게 살다가 또 결국은 가는데, 어디로 가냐 하면은 자기가 지은 업(業)대로 가는데,

이 자리에 오늘 참석하신 여러 도반, 신도 여러분은 이 활구참선법을 배우고 그것을 잘하겠다고 서약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에 어떻게 살았거나 그건 상관이 없습니다.

참회를 해서 깨끗해졌고 앞으로 열심히 최상승법을 실천해 나가면 우리는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다 가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한 걸음 앞서가고, 한 걸음 뒤서 가지만은 도솔천내원궁에 가서, 미륵부처님 회상에 가서 우리는 다 같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온포사아귀(溫飽思餓鬼)하고  신안염지옥(身安念地獄)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수생참괴심(須生慚愧心)하고  염기근즉각(念起勤卽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온포사아귀(溫飽思餓鬼)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옷을 입어서 그럴 때에는 거기에 빠지지 말고 아귀도(餓鬼道)에 빠지는 중생들을 생각해 봐라. 나도 이 더운 것에 빠지고 배불리 맛있게 먹는 데에만 재미를 붙이고 살다 보면은 아귀도에 틀림없이 가게 될 것이다.

몸이 편안할 때에는 그 편안한 데에 빠져서 그럭저럭 지내지 말고 지옥 중생들을 생각해 봐라. 지옥 중생이 어떻게 해서 지옥에 갔냐 하면은 배부르고 뜨시고 몸이 편안한 데에만 빠져 가지고 '참나'를 찾는 수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가서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수생참괴심(須生慚愧心)하야, 내가 오늘날까지 그럭저럭 살아온 것에 대해서 부끄러운 생각을 가지고, 무슨 생각이 일어나거나, 무엇을 보거나 무엇을 듣거나 간에 부지런히 ‘이뭣고?’를 하라.

마지막으로 이런 고조사(古祖師)의 게송을 읊고서 자리에서 내려가고자 하는데, 여러분을 만남 김에 두서없이 여러가지 말을 했으나 앞으로 더 많은 말씀을 하고 싶으나 시간 관계로 입을 닫고, 미처 못한 간절한 뜻은 이 주장자를 한번 내림으로써 주장자에게 맡기고 내려갑니다.(19분7초~40분37초)(끝)

 

 



------------------(1)

*(게송) ‘약인정좌일수유~’ ; 보조 지눌(普照知訥) 스님의 [진심직설(眞心直說] 진심공덕(眞心功德) 장(章)에서 ‘古頌’으로 인용한 게송 참고.
*항하사(恒河沙) ; [불교] 갠지스 강(Ganges江)의 모래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수승(殊勝 특히·유달리 수, 뛰어날·훌륭할 승) ; ①가장 뛰어난 일. ②[불교] 세상에 희유하리만큼 아주 뛰어남.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해탈(解脫) : [범] Vimoksa ; Vimukta ; mukti  [파] Vimokha ; Vimutta ;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또는 열반(涅槃)의 딴 이름으로도 쓰인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게송) ‘활구참선객~’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대사) (2권) '贈熙長老' 참고.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곳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2)


*호궤합장(互跪合掌) ; 두 무릎을 꿇고 앉되, 무릎 위 허벅지와 상체가 수직이 되게 곧게 일으켜 세우고, 발가락은 세운 채 손은 합장을 취한 자세.
*대승(大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 이에 반해, 그들은 전통의 보수파를 낮추어 소승(小乘)이라 함.
②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행자•보살, 또는 그들을 위한 붓다의 가르침.
③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존칭. 위대한 가르침.
☆승(乘)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십선계(十善戒) ;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자비(慈悲) ; 자(慈)는 ‘우정•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동정’을 원의(原義)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복덕(福德) ; ①착하고 어진 행실에 대한 보답으로 받는 행복과 이익. ②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는 착한 일.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 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
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백겁적집죄(百劫積集罪)  오랜 세월(百劫) 쌓인 죄업
일념돈탕제(一念頓蕩除)  한 생각에 문득 사라지니
여화분고초(如火焚枯草)  불(火)이 마른 풀을 태우듯이
멸진무유여(滅盡無有餘)  모두 멸하여 남김없이 사라지리

*참회게(懺悔偈)
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이제까지 제가 지어온 모든 악업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瞋痴)  모두가 비롯됨 없는 탐·진·치로 말미암았네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  몸과 입과 생각으로 지었으니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  제가 지금 그 모든 것을 참회합니다

*참회진언 ; 죄업(罪業)을 참회하는 진언.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죄란 스스로 성품이 없어 마음을 좇아 일어나니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마음이 멸하면 죄도 또한 사라지니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죄와 마음 멸하여 모두가 공해지면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이것을 참된 참회라 이름하리라

*자종금신지불신(自從今身至佛身) 제가 지금 이 몸으로부터 부처의 몸에 이를 때까지
견지금계불훼범(堅持禁戒不毁犯) 금하는 계율 굳게 지켜 훼범하지 않으리니
유원제불작증명(唯願諸佛作證明) 바라옵건데 모든 부처님께서 증명해 주소서
영사신명종불퇴(寧捨身命終不退) 목숨은 차라리 버릴지라도 마침내 물러나지 않겠습니다

*원이차공덕(願以此功德) 원컨대 이 공덕으로써
보급어일체(普及於一切) 일체 중생에게 널리 미쳐서
아등여중생(我等與衆生)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모든 중생들이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모두 함께 불도를 이루어지이다

*삼학(三學) ; 깨달음에 이르려는 자가 반드시 닦아야 할 세 가지 수행.
삼증상학(三增上學)·삼승학(三勝學)이라고도 하는데, 즉 계학(戒學)·정학(定學)·혜학(慧學)의 세 가지를 말한다. 이것을 증상(增上:탁월하다는 뜻)계학·증상심학(心學)·증상혜학 또는 줄여서 계·정·혜라고도 한다.
①계는 악을 저지르지 않고 선을 닦는 계율(戒律).
②정은 심신을 고요히 하고 정신통일을 하여 마음이 산란하지 않게 하는 선정(禪定).
③혜는 번뇌를 파하고 진리를 증득(證得)하는 지혜를 가리킨다.
*연비(燃臂) ; 불교에서 수행자가 계(戒)를 받을 때, 팔뚝에 향이나 심지로 불을 놓아 뜨는 의식 또는 그 자국.
*(게송) ‘삼계진화택~’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대사) (1권) '寄應禪子兼示神秀沙彌—응선자(應禪子)에게 주면서 신수사미(神秀沙彌)에게도 보임' 참고.
*삼계(三界) : [범] trayo-dha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세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amadha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
②색계(色界 rupadha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색(色)은 곧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arupadhatu) : 맨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나(我)」를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이것을 흔히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면서 유형(有形)한 계층으로만 말하지마는, 실상은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區分)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 세계의 어떤 곳에도 탐(貪) • 진(瞋) • 치(痴) 등 삼독심(三毒心)의 경중(輕重)에 따라 삼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사대(四大) ; ① 지(地) • 수(水) • 화(火) •풍(風)을 말함. 대(大)란 원소란 뜻. 일체의 물질을 구성하는 네(四) 가지 원소(大).
(1)지대(地大). 굳고 단단한(堅) 것을 성(性)으로 하고, 만물을 실을 수(負載) 있고, 또 질애(質礙)하는 바탕. 질애(質礙)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여 다른 존재와 서로 융화하지 못한다는 뜻.
(2)수대(水大). 습윤(濕潤)을 성으로 하고, 모든 물(物)을 포용(包容)하는 바탕.
(3)화대(火大). 난(煖)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숙(成熟)시키는 바탕.
(4)풍대(風大). 동(動)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장케 하는 바탕.
② 신체를 말함. 원래, 신체는 지•수•화•풍의 4대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함.
*생주이멸(生住異滅) ; 모든 사물이 생기고(生), 머물고(住), 변화하고(異), 소멸함(滅). 또는 그런 현상.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게송) ‘온포사아귀~’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대사) (1권) '寄應禪子兼示神秀沙彌—응선자(應禪子)에게 주면서 신수사미(神秀沙彌)에게도 보임' 참고.

 

Posted by 닥공닥정
하안거 해제 백종2014. 9. 19. 11:07

 

 

§(761) (게송)거심진속윤회업~ / 해제가 곧 결제 / 백중날–선망부모의 해탈 / 수행자의 본분 / (게송)호향차시명자기~.

우리가 생사대사(生死大事)를 앞에 두고 있는 한 결제나 해제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부득이해서 해제 법요식은 하나, 우리는 오늘 다시 결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죽음은 꼭 백 세 이상 넘어야만 죽는 것이 아니고, 호흡 한 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 바로 내생(來生)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 몸뚱이가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젊었을 때 ‘한 생각’을 정말 간절하게 알뜰하게 화두가 독로하도록 잡드리해야만 언제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두려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761) - 2013(계사년) 하안거 해제(08.21) (용761)


약 20분.


거심진속윤회업(擧心盡屬輪廻業)이요  동념무비생사근(動念無非生死根)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요여태허무향배(要與太虛無向背)하고  상탄일개철혼륜(常呑一箇鐵渾侖)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거심진속윤회업(擧心盡屬輪廻業)이요, 마음을 일으킨 것은 다 윤회(輪廻)의 업(業)에 속하는 거고,
동념무비생사근(動念無非生死根)이다. 생각을 움직이면 생사(生死)의 근원(根源)이 아닌 것이 없다.

요여태허무향배(要與太虛無向背)하고, 태허(太虛)와 더불어 향배(向背)가 없고, 항상 한덩어리 쇳덩어리를 삼킨 것같이 해야 한다.(常呑一箇鐵渾侖)

우리는 계사년 7월 백중날 용화사∙용주사∙망월사∙약사암∙위봉사∙승련사∙원효사∙

회룡사∙세등선원∙복전암∙도덕사 등 결제(結制)에 정식으로 입방(入房)을 해서 안거(安居)를 한 대중이 248명이 결제를 했습니다.

그밖에 청신사(清信士)∙청신녀(清信女) 또 선방에 와서 방부(房付)를 드린 분, 가정에서 직장에서 정진하시는 그런 분까지 합하면 몇천 명이 될런지 모릅니다.

그 사부대중(四部大衆)이 더운 여름을 덥다 생각하지 아니하고 그 더위 속에서도 한마음으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오직 조실스님의 최상승(最上乘) 활구(活句) 법문에 의지해서 정진을 해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해제(解制)를 맞이해서 조실스님의 그 우레와 같은 법문을 다같이 경청을 했습니다.

산승(山僧)이 법상에 올라와서 여러분께 더 말씀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만은 기왕 올라왔으니 여러 청신사∙청신녀∙비구∙비구니 도반 여러분께 해제를 맞이해서 한말씀 당부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올라왔습니다.

비록 오늘 석 달 안거를 마치고 해제를 하게 되었습니다만은 우리는 결제∙해제는 법도상 형식상 법요식을 거행하고 있으나, 우리가 생사대사(生死大事)를 앞에 두고 있는 한 결제나 해제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부득이해서 해제 법요식은 하나, 우리는 오늘 다시 결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조실스님의 법문을 해제 법문으로 들으면서 우리는 결제 법문으로 듣게 되는 것입니다.

해제했다고 해서 결제중에와 달리 추호(秋毫)도 한 생각도 느슨한 생각을 가지고 지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결제중에 죽비를 치고 입방선할 때보다 앞으로 오늘부터 진짜 결제에 들어가는 그러한 결단심을 가지고 1초 1초를 정진을 게을리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오늘은 백중(百中)날인데, 해제이면서 백종날입니다.
백종날은 어떠한 날이냐 하면은 목련존자(目連尊者)는 부처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 신통제일(神通第一)이 목련존자인데, 그 목련존자가 신통이 나가지고 떠억 관찰을 해보니까 그 어머니이신 청제부인이 지옥에서 거꾸로 매달려 가지고 고문을 받고 있는 경계(境界)를 봤습니다.

그런데 자기 신통력(神通力)으로서도 거꾸로 매달려서 지옥고(地獄苦)를 받고 있는 어머니를 어떻게 해볼 수가 없습니다.
신통력으로 어머니한테 가 가지고 아무리 물을 먹여도 그 물이 피로 변하고, 또 먹여도 피로 변해 가지고 한모금도 마실 수가 없고,

그래서 부처님께 와 가지고,
‘어떻게 해야 저 지옥고를 받고 있는 저의 모친을 구제할 수가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길로 나가서 탁발(托鉢)을 해 가지고 밥이면 밥, 떡이면 떡, 백 가지 갖은 과일을 구해 가지고 와서 해제일을 맞이해서 여기서 저기서 석 달 동안 정진하던 그 대중(大衆)에게 대중공양(大衆供養)을 하라.
그러면 그 참선수행한 스님네와 대중에게 대중공양을 하면은 그 공덕으로 너의 모친이 지옥고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 것이다.’

그 말씀을 듣고 목련존자는 그 길로 나가서 수십, 수백 집을 다니면서 대중이 잡술 맛있는 과일과 음식을 얻어다가 해제날을 기해서 대중공양을 올렸습니다.
그 공덕(功德)으로 그 무서운 지옥고를 받던 모친이 지옥으로부터서 벗어나 가지고 해탈(解脫)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근원이 되어 가지고 백중날 — 7월 15일날 해제일에는 스님네와 모든 신도들이 선망부모(先亡父母) —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조부모나 증조부, 먼저 돌아가신 칠 세(世) 부모를 위해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또 대중공양을 올리고 나아가서는 그 스님네로 하여금 선망부모의 해탈을 위해서 축원(祝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도 법당과 법당 밖에 스님네와 청신사∙청신녀 여러분이 가뜩 모이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선망부모(先亡父母) — 7 세(世) 부모가 계십니다.
이 법당 안에도 만년위패(萬年位牌)가 모셔져 있습니다.

오늘 7월 보름 백중을 기해서 공양을 올려서 이 인연 공덕으로 또 조실스님의 법문까지 아울러서 들었고 영가도 우리와 같이 듣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7 세(世) 부모가 어떠한 악업(惡業)이 있다하더라도 오늘 이 공덕으로 반드시 해탈도(解脫道)를 증(證)해서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가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 백중날은 선망부모를 천도(薦度)해 드리는 것과 아울러서 우리 석 달 안거를 한 우리 도반들은 해제 법요식을 기해서 법문을 듣고,
오늘 해제지만은 앞으로 겨울 안거가 시작될 때까지 또 석 달 동안 해제 기간이 있는데 그 해제 기간을 어떻게 우리 단속(團束)을 하고 정진을 해가냐 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해제니까 걸망을 지고 또 다른 절로 갈 수도 있고 동서남북으로 헤어질 수가 있겠습니다만은,
어느 향방(向方)을 가더라도 한걸음 한걸음 옮길 때마다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놓치지 않고 항상 의단이 독로하도록 단속을 해 나가는 것이 오늘 해제를 기해서 산승이 여러 도반들께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해제니까 느긋한 마음으로 건강이 안 좋은 사람은 약을 먹을 수도 있고, 또 온천에 가서 온천을 할 수도 있고, 공기 좋은데 가서 쉴 수도 있을 것입니다만은,
약을 먹거나 쉬거나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한 생각'만 단속을 한다면은,
누워서도 화두(話頭)가 독로하고, 한걸음 한걸음 옮기면서도 화두가 독로하도록 잡드리한다면 정말 최상승법을 믿고 수행을 하는 사람의 본분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전생(前生)에 좋은 원력(願力)을 세웠기 때문에 우리는 받기 어려운 사람 육체를 받고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그럭저럭 지내다 보면, 언제 죽음을 맞이할런지도 모릅니다.

죽음은 꼭 백 세 이상 넘어야만 죽는 것이 아니고, 호흡 한 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 바로 내생(來生)인 것입니다.
병으로 내생을 맞이할 수도 있고, 교통사고로 내생을 맞이할 수도 있고, 어떻게 우리는 맞이하든지 간에 반드시 이 육체는 버리게 되고 또 어디에 가서 태어날런지 모릅니다.

그러니 이 몸뚱이가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젊었을 때 ‘한 생각’을 정말 간절하게 알뜰하게 화두가 독로하도록 잡드리해야만 언제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두려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호향차시명자기(好向此時明自己)하라  백년광영전두비(百年光影轉頭非)니라
나~무~아~미~타~불~
금생약불종사어(今生若不從斯語)하면  후생당연한만단(後生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호향차시명자기(好向此時明自己), 정말 이때를 향해서 자기를 밝혀라.
백년광영전두비(百年光影轉頭非)다, 백 년이란 세월이 금방 1초 1초 지나가게 되는 것이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생(後生)에 당연한만단(當然恨萬端)하다.
금생에 이렇게 간절히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는 이 말을 정말 마음속 깊이 새기고 단속을 하지 않으면 후생(後生)에 한(恨)이 만단(萬端)이나 될 것이다.

산승이 이렇게 여러분께 말씀을 드린 것은, 이 말은 바로 ‘산승이 자기에게 이르는 말’로 생각하고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있지만 1분 후에, 한 시간 후에, 하루 후에 내가 내생을 맞이할런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 도반 여러분!
정말 이만큼 건강할 때 열심히 정진을 하셔서 해제때 다시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다시 만나게 될 것을 기약을 하면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박수)(처음~19분23초)(끝)

 

 

 



---------------------

*(게송) ‘거심진속윤회업~’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峰和尚廣錄」 卷第三十 ‘警世卄二首’ 게송 참고.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청신사(清信士)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남자 신도, 곧 우바새(優婆塞).
*청신녀(清信女)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여자 신도, 곧 우바이(優婆夷).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방부(房付 방•거처 방,줄•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부득이하다(不得已--) ; (일이나 사정이)마지못해 어쩔 수 없다.
*추호(秋毫 가을 추•가는 털 호) ; ‘추호도’, ‘추호의’의 꼴로 쓰여, 가을에 짐승의 털이 매우 가늘어지는 데에서 가을 털끝만큼 ‘매우 조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백중(百中)날 ; 음력 칠월 보름날. 석 달간의 하안거(夏安居)를 마치는 날. 하안거를 마친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올리어 그 공덕으로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제한 목련존자의 효심을 기원으로 하는, 우리의 선망부모의 영가를 천도하는 법요식을 거행하는 날(우란분회 盂蘭盆會). 백중(百衆)·백종(百種)이라고도 한다.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고려 시대에는 이날 국가적으로 '우란분회'를 열었으나 조선 시대 이후로 절에서만 여러 가지 음식을 갖추어 재를 올리고, 농가에서는 이날 하루 농번기의 피로를 씻기 위해 머슴을 쉬게 하였다.
*목련존자(目連尊者), 목건련 (目犍連, 目連) ; 산스크리트어 maudgalyāyana의 음사. 대(大)목건련 또는 마하(摩訶)목건련이라고도 한다. 원명 꼴리따. 부처님 십대제자(十大弟子)의 한 사람.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인근 마을의 사리불(舍利弗)과 친하여 어느 날 바라문교의 축제를 구경하다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승을 찾아나서 라자가하(王舍城)의 유명한 회의론자 산자야 문하로 들어갔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하던 중에,
사리불이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제자 앗사지(馬勝)를 만나 들은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시네 / 그리고 또 그 소멸까지도 /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네”라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사리불한테 듣고는,
사리불과 산자야의 제자 250명과 함께 죽림정사를 방문해 부처님께 귀의했다. 신통력이 뛰어나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일컬음. 사리불과 함께 불교교단의 중심인물이었다.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고, 탁발하는 도중에 외도(外道)들이 던진 돌과 기왓장에 맞아 고통을 겪는 중에, 사리불이 열반에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붓다에게 나아가 열반에 들겠다고 말씀 드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다 마수촌에서 열반에 들었다.
*탁발(托鉢 맡길 탁, 바리때 발) ; 스님이 경문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보시를 받음.
*대중(大衆) ; 많은 스님이나 신도들.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일.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해탈(解脫) ;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해탈도(解脫道) ;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본참공안(本參公案) :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곳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게송) ‘호향차시명자기 백년광영전두비’ ;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61 게송 참고.
*(게송) ‘금생약불종사어 후세당연한만단’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만단(萬端) ; 수없이 많은 갈래.

Posted by 닥공닥정
하안거 해제 백종2014. 8. 18. 20:07

§(769) (게송)당하지귀아시수~ / 목련경(目連經)-효도 / 생사 호흡지간-무상(無常)하다 / (게송)전단목주중생상~ / 우리 다같이 영원한 도반으로서 성불합시다.

우리가 무량겁을 오면서 살아온 업이 다르기 때문에 비록 지은 업에 따라서 겉모양은 다르지마는, 이 몸뚱이를 끌고다니는 주인공은 그 불성은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님이나 우리나 똑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이 사바세계에 태어났지마는, 불법을 믿고 정법을 믿고 내 마음공부를 한 사람은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여자거나 남자거나, 유식하거나 무식하거나 전혀 그것이 문제가 안됩니다.


내가 나의 부처를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만 한다면은 이 사바세계가 바로 깨달음으로 가는 가장 좋은 수도장(修道場)이 되고 부처님 세계가 될 것입니다. 우리 다같이 그러한 마음으로 오늘부터서 영원히 좋은 도반(道伴)으로서 그렇게 살아가기를 맹세합시다.


**송담스님(No.769) - 2014년(갑오년) 하안거해제(08.10) 법문.(용769)

 

(1) 약 18분.

 

(2) 약 13분.


(1)------------------

당하지귀아시수(當下知歸我是誰)오  의정거처요분명(疑情擧處要分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막파심량중복탁(莫把心量重卜度)하고  혜등호향풍전속(慧燈好向風前續)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당하지귀아시수(當下知歸我是誰)오  의정거처요분명(疑情擧處要分明)이니라.
당장 ‘내가 이 누군가?’하고 거기에 돌아갈 줄을 알아야 한다. 당장(當場)이라는 말은 눈으로 볼 때, 귀로 들을 때, 입으로 말할 때, 몸으로 춥고 더운 것을 느낄 때 바로 그 찰나(刹那)!
그 찰나찰나가 그리 쫓아가지 말고 눈에 뭣이 보이자마자 동시에 ‘내가 이 누군가?’로 돌아와야 한다 그말이야.

그 찰나를 눈으로 보는데 ‘노랗다 빨갛다, 크다 작다, 좋다 나쁘다’ 그리 쫓아가기 시작하면 그 좋은 기회를 놓치고, 무량겁 생사윤회(生死輪廻)로 끌려가는 것이고,
그 찰나를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로 돌아오면—비록 이 사바세계에 몸을 받아나서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지마는, 그 찰나를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를 하면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여.

의정거처요분명(疑情擧處要分明)이다. 알 수 없는 ‘이뭣고?’드는 것, 그것이 분명함을 요한다 그말이야.
흐리터분하고 그런 것이 아니라 또록또록하게 분명(分明)하게 성성(惺惺)하게 ‘이뭣고?’.
이것이 생사윤회로 가느냐, 해탈 길로 가느냐의 길목인데, 천하 간단한 것이고 쉬운 것이고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막파심량중복탁(莫把心量重卜度)하라. 마음·생각을 가지고 이리저리 분석하고 해석하고 비교하고 따지지 말라.
혜등호향풍전속(慧燈好向風前續)이니라. 지혜의 등불을 풍전(風前)을 향해서 잘 이어가라 그말이여.

지혜의 등불이 무엇이냐? ‘이뭣고?’가 깨달음으로 가는 바로 지혜의 길이기 때문에 ‘지혜의 등불이 켜진 곳’이다 그말이여. 그 지혜의 등불이 그 풍전을 향해서 이어가라.

풍전(風前)이 바람인데, 오욕(五欲)·팔풍경계(八風境界)·번뇌망상(煩惱妄想),
눈을 통해서, 귀를 통해서, 입을 통해서, 몸을 통해서,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것이 팔풍·오욕 경계인데, 그 팔풍·오욕 경계를 향해서 지혜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잘 이어가라 그말이여.

방금 우리는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이신 조실스님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거기에 중언부언(重言復言) 산승(山僧)이 여러 말 할 것이 없습니다마는 비구·비구니·청신사·청신녀 어린 애기로부터서 팔십이 넘은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법당 안팎에 이렇게 운집(雲集)을 하셨으니,
비록 내가 늙었지만은 여러 선배·후배 도반 여러분에게 나는 나 나름대로 당부하고 싶어서 이 자리에 올라왔습니다.(사부대중 박수)

오늘은 갑오년 음력 7월 15일 백중(百中)날입니다. 백중날은 선방(禪房)에서는 하안거 해제일이라고 합니다만은 오늘 해제날은 우리가 영원히 잊어서는 안될 참 깊은 일화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생존하셨을 때 부처님의 제자이신 목련존자(目連尊者)—부처님 십대제자 중에 신통제일이 목련존자인데, 그 목련존자가 신통력으로 관찰을 해 보니까 그 모친(母親), 어머니이신 청제부인이 지옥고에 빠져서 지옥고를 받고 계시다 그말이여.

그래서 자기가 아무리 신통력이 있다 하더라도, 죄업(罪業)을 지어가지고 지옥고를 받고 있는 사람을 신통력으로 맘대로 끌어올 수가 없어. 그래서 부처님께 간곡(懇曲)히 말씀을 여쭈었습니다.

‘저의 모친이 생존시에 죄업을 지어서 저 지옥고에 떨어져서 지옥고를 받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어머니를 제도할 수 있겠습니까?’ 무릎을 꿇고 합장을 하고 간곡히 여쭈니까,

‘한 길이 있느니라. 오늘 칠월 백중날, 선방에서는 하안거 해제날인데 네가 백 가지 과일이다 음식이다 맛있는 음식 온갖 것을 다 준비를 해 가지고 해제를 맞이한 선방 대중에게 대중공양(大衆供養)을 올려라.
그러면 석 달 동안—특히 인도(印度)라는 데는 여름이 여기보다도 훨씬 더 더운 곳입니다.
그 더위 속에서 석 달 동안을 열심히 정진한 대중에게 백 가지, 여러 가지의 음식을 잘 공양을 하면 그 공덕으로 너의 모친을 천당(天堂)으로 올라가게 할 수가 있느니라.’

그 말을 듣고 목련존자는 탁발(托鉢)을 하고—여기저기 부자집, 가난한 집을 전부 돌고 돌아가지고 탁발을 해가지고 여러 가지 종류의 맛있는 과일도 사고, 떡에다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마련해 가지고,
선방 대중에게 공양을 올려가지고 지옥고 받고 있는 그 어머니를 천당으로 올라가시게 한, 목련경(目連經)이라고 하는 경전에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고, 원인이 되고 해 가지고 그 이후로 여름 하안거 해제, 7월 15일 날은 인도나 중국이나 한국이나 일본이나 불교을 믿는 나라에서는 7월 백중에 과일이다 떡이다 맛있는 음식을 많이 장만해 가지고 부처님께 공양도 올리고, 첫째 대중공양을 해 내려오는 준례가 오늘날까지도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이러한 일화를 다 듣고 알고 계시겠지만은 오늘 갑오년 7월 15일을 맞이해서 산승이 다시 한번 간곡히 말씀을 드리는 것은,
우리도 아직까지는 이만큼 건강하고 살고 있지마는 생사 문제는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건강해도 오늘도 눈을 감을 수도 있고 내일도 눈을 감을 수 있고, 우리의 부모님도 그렇고, 우리 자신들도 그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정말 무상(無常)하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잠시도 잊지 말고, 어쨌든지 ‘이뭣고?’를 열심히 해서 생사의 굴레로부터서 해탈하는 것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되고,
아직 부모님이 살아계시면 성의를 다해서 살아계실 때 잘 받들어 모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돌아가신 뒤에 제사를 잘 모신 것도 중요하지만,
살아계실 때 성의를 다해서—아버님, 어머님, 할머니, 할아버지께 성의를 다해서 효심으로 잘 받들어 모시면, 그 어른들이 공양을 받고 효도를 받으시면서 흐뭇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여생을 지내시게 될 것입니다.
성의를 다하지 않고 노인에게 효도를 안하면은 그 어르신들이 섭섭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사신다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겠습니까.

살아계실 때 잘 받드는데—음식을 잘 해드리는 것도 중요하고, 계절 따라서 좋은 옷을 해 드리는 것도 좋은 일이나, 첫째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을, 그 효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항상 살아야 얼굴빛도 달라지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도 그 어른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 드리고 즐겁게 해 드릴 수가 있는 것이고,

말을 한마디 푹 잘못하면 어른의 속을 뒤집어 놓을 수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속이 뒤집어져서 오장(五臟)이 상(傷)하면 금방 안 가라앉습니다.
그런 불편한 마음으로 하면 밥맛도 맛이 없고 밥을 먹어도 소화도 잘 안되고.
노인이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그럭저럭 살다가 돌아가시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젊어서도 우리는 건강하고 기쁘게 잘 살아야겠지만은,
특히 나이 먹을수록에 마음이 편안한 흐뭇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야 건강도 좋아지고, 그 노인의 생각도 흐뭇한 생각으로 노래(老來)를 지내시게 되는 것이니까,
이 자리에 모이신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은 오늘 산승이 특별히 이렇게 간곡히 말씀드린 것을 가슴속 깊이 명심하시고 노인을 잘 받들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박수)(처음~18분05초)

 

 

 



(2)------------------

아직은 우리는 이만큼 건강하고 살지만은 우리도 금방 늙습니다. 금방 머리에 흰머리가 나고, 주름살이 생기고, 허리가 꼬부라지고, 눈도 잘 안 보이고, 귀도 잘 안 들리게 됩니다.

젊다고 그럭저럭 살 일이 결코 아닙니다. 이만큼 젊을 때, 이만큼 덜 늙었을 때 노인에게도 잘 하지만은, 첫째 자기 문제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루하루를 그럭저럭 지내다보면 하루 24시간이라는 것이 금방 해가 저물어서 밤이 되고 그 이튿날로 옮겨가는데 그 시간을 소중히 알고,
앉아서나 서서나 일을 할 때나,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무엇을 보거나 무엇을 듣거나 무슨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그 찰나찰나를 바로 그걸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

‘이뭣고?’로 돌아온다면 이것이 정말 인생을 보람있게 살아가는 길이고, 이렇게 하루하루를 삶으로 해서 그렇게 산 사람이 무슨 죄를 지으며 무슨 지옥에 가겠습니까.

이런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면 물어볼 것도 없이 숨 끊어지자마자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태어나시거나 극락세계(極樂世界)에 가서 태어나시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인과법(因果法)은 지극히 과학적 사실이고 추호(秋毫)도 어김이 없고 거짓이 없습니다.
닦는 데로 가는 거고, 지은 데로 가는 것입니다.

인과는 원자현미경으로 들여다봐도 일분도 어김이 없이 고대로인 것입니다.
인과를 철저히 믿어야 우리는 올바르게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인과를 믿지 아니하고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행동하고, 함부로 살면 그야말로 딱하고 불쌍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아까 조실스님 법문에도 나왔지만은,
‘이뭣고?’를 하는데—그냥 ‘이뭣고?’해도 되는데, 숨을 깊이 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하면 속이 조금 안 좋을 때도 ‘이뭣고?’가 잘 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기분이 나쁘거나, 속이 상하거나, 언짢은 일이 있을 때에는 바로 억지로 참을라고 하지 말고 심호흡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깊이 숨을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그렇게 하면 흥분되었던 생각도 가라앉고, 안 좋았던 오장(五臟)도 가라앉게 되는 것입니다.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결국 '살았냐 죽었냐'는 '숨이 있느냐 없느냐', 이 호흡이라고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물론 맥박을 짚어봄으로 해서 죽었나 살았나도 알 수가 있지만은 ‘숨이 끊어졌냐, 안 끊어졌냐’는 ‘호흡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 안 하고 있느냐’가 생사를 알거나 건강을 아는데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항상 우리는 단전호흡(丹田呼吸)을 생활속에서 살려 나가고, 단전호흡을 하면서 항상 ‘이뭣고?’로서 자기의 정신을 차려 나간다면 우리 사바세계가 비록 흥망성쇠와 생로병사가 있는 곳이라 하지만은,
정법(正法)을 믿고 단전호흡을 하면서 ‘이뭣고?’를 하는 사람은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야말로 깨달음으로 가는, 극락세계나 천당으로 가는 가장 좋은 곳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좋은 부모님을 만나서 이런 몸을 받아서 태어났으니 부모님께 항상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말고,
그러면서 ‘이뭣고?’를 열심히 하면서 금생 일생 수명이 다할 때까지도 이런 마음을 등한히 하지 말고 열심히 우리가 도를 닦고 그럼으로 해서,
세세생생에 우리는 극락세계나 도솔천 내원궁이나 또는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더라도 우리는 다시 또 만나서 이런 최상승법(最上乘法) 참선을 이야기하면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깨달음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할 생각이 확실한 분은 손을 한번 들어보세요? 고맙습니다.(박수)

 


전단목주중생상(栴檀木做衆生像)하되  급여여래보살형(及與如來菩薩形)이로다
나~무~아~미~타~불~
만면천두수각이(萬面千頭雖各異)나  약문훈기일반향(若聞熏氣一般香)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전단목주중생상(栴檀木做衆生像)하고  급여여래보살형(及與如來菩薩形)이다.
향나무 중에서는 제일 향기가 좋은 것이 전단향나무입니다. 그 전단향나무로 여러 가지 중생의 모습을 조각을 합니다. 사람의 모습도 조각하고, 짐승의 모습도 조각을 하고 무엇이든지 조각을 하고,

또 급여여래보살형(及與如來菩薩形)이다, 부처님의 모습도 조형을 하고 관세음보살·문수보살·보현보살과 같은 훌륭한 보살님의 모습도 조각을 합니다.

그러면 여러 가지 중생의 모습, 부처님의 모습, 보살님의 모습,
만면천두(萬面千頭)가 수각이(雖各異)여. 그 얼굴이나 천 개의 머리가 비록 모양은 달라.

모양은 다르지마는 가까이 가서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면 전단향나무로 조성을 했기 때문에 부처님의 모습에서도 전단향 냄새가 나고, 관세음보살이나 문수보살의 모습에서도 전단향 냄새가 나고,
중생들의 여자·남자·어린애의 이쁜 얼굴, 덜 이쁜 얼굴을 조성을 했어도 가까이 가서 맡어보면 내나 전단향 냄새가 난다 그말이여.(若聞熏氣一般香)

비록 이 자리에 많은 신남신녀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들이 가득 계시지만은 연령도 다르고 얼굴 모습도 다릅니다.
이쁘게 생긴 분도 있고 조금 덜 이쁜 분도 있고, 주름살 있는 분, 얼굴이 긴 분,  동글동글한 분, 모습이 다 다르지마는 가까이 가서 냄새를 맡아본 것이 아니라,
정말 그 몸뚱이를 끌고다니는 그 주인공을 살펴보면 부처님과 똑같은 불성(佛性)을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겉모습은 다르지마는 이 몸뚱이를 끌고다니는 우리의 마음자리, 불성자리는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님이나 우리와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무량겁을 오면서 살아온 업이 다르기 때문에 비록 지은 업에 따라서 겉모양은 다르지마는, 이 몸뚱이를 끌고다니는 주인공은 그 불성은 똑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이 사바세계에 태어났지마는, 불법을 믿고 정법을 믿고 내 마음공부를 한 사람은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여자거나 남자거나, 유식하거나 무식하거나 전혀 그것이 문제가 안됩니다.

바로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내가 나의 부처를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만 한다면은 이 사바세계가 바로 깨달음으로 가는 가장 좋은 수도장(修道場)이 되고 부처님 세계가 될 것입니다.

우리 다같이 그러한 마음으로 오늘부터서 영원히 좋은 도반(道伴)으로서 그렇게 살아가기를 맹세합시다.
성불합시다.(처음~31분11초)(끝)

 

 

 



------------------(1)

*(게송) ‘당하지귀아시수(當下知歸我是誰)~’ ; [무이선사광록(無異禪師廣錄)] 제17권, ‘示蔡聖龍祠部’ ‘示朱羅青民部’ 게송 참고.
*이뭣고(是甚麼)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육근(六根)·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에서]
*찰나(剎那 짧은시간 찰,어찌 나)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분명(分明 명백할 분,밝을 명) : ①틀림없이 확실하게. ②모습이나 소리 따위가 흐릿함이 없이 똑똑하고(分) 뚜렷하다(明).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팔풍(八風) : 팔경(八境). 팔풍경계(八風境界). 팔풍은 세상에서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바로서 능히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서 움직이게 하므로 팔풍(八風)이라 함<몽산법어 p155, 용화선원刊>
--이쇠(利衰 이로울 리,약할 쇠) 내 뜻에 맞고(利) 내 뜻에 어기는 것(衰)
--예훼(譽毀 기릴 예,비방할 훼) 나 안보는 데서 나를 찬미하는 것(譽), 나 안보는 데서 나를 비방하는 것(毀)
--칭기(稱譏 일컬을 칭,나무랄 기) 면전에서 찬미하는 것(稱), 면전에서 비방하는 것(譏)
--고락(苦樂 괴로울 고,즐거울 락)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것(苦),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것(樂)
[참고] 팔풍=팔세법(八世法, attha lokadhamma)--세간 특유의 여덟가지 어려움.
--이득과 손실, 좋은 평판과 나쁜 평판, 칭찬과 비난, 고통과 행복<칠각지 p57,고요한소리刊>
(팔풍경계를 요약하면 결국 역순경계(逆順境界).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중언부언(重言復言) ; 이미 한 말을 자꾸 되풀이함.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백중(百中)날 ; 음력 칠월 보름날. 석 달간의 하안거(夏安居)를 마치는 날. 하안거를 마친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올리어 그 공덕으로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제한 목련존자의 효심을 기원으로 하는, 우리의 선망부모의 영가를 천도하는 법요식을 거행하는 날(우란분회 盂蘭盆會). 백중(百衆)·백종(百種)이라고도 한다.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고려 시대에는 이날 국가적으로 '우란분회'를 열었으나 조선 시대 이후로 절에서만 여러 가지 음식을 갖추어 재를 올리고, 농가에서는 이날 하루 농번기의 피로를 씻기 위해 머슴을 쉬게 하였다.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선실(禪室)과 같은 말. ②‘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신통(神通 불가사의할 신,통할 통) : 수행을 통(通)하여 도달하는 걸림없는 초인간적인(神) 능력.
*죄업(罪業) ;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위(身)와 말(口)과 생각(意). 괴로움의 과보를 초래하는 악한 행위.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일.
*천당(天堂) ; ①천상(天上)에 있다는 신(神)의 전당(殿堂), 하늘의 세계.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모든 하늘을 통칭하는 말. ②정토교(淨土敎)의 극락세계(極樂世界).
*탁발(托鉢 맡길 탁, 바리때 발) ; 스님이 경문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보시를 받음.
*목련경(目連經) ; 목련 존자(目連尊者)가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건진 일을 다룬 경문으로, 음력 칠월 백중날이면 이 경을 읽고 기도한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오장(五臟)이 상(傷)하다 ; 비위가 상해 마음이 몹시 언짢다.
*노래(老來 늙을 노,올 래) ; ‘늘그막’을 점잖게 이르는 말.

 

 

 



------------------(2)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 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
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흉(凶)·화(禍)·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추호(秋毫 가을 추•가는 털 호) ; ‘추호도’, ‘추호의’의 꼴로 쓰여, 가을에 짐승의 털이 매우 가늘어지는 데에서 가을 털끝만큼 ‘매우 조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단전호흡(丹田呼吸) ; 분류 ‘참선(자세, 호흡)’ 참고.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사바세계(娑婆世界);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게송) ‘전단목주중생상(栴檀木做衆生像)~’ ; [석문의범(釋門儀範)] 점안게(點眼偈).
*전단(栴檀) ; 산스크리트어 candana의 음사. 남인도의 서해안에 뻗어 있는 서(西)고츠 산맥에서 많이 자라는 상록 교목으로, 끝이 뾰족한 타원형의 잎이 마주나고 꽃은 주머니 모양임. 나무에서 향기가 나고 조각물의 재료로 쓰임.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
관세음(觀世音)은 산스크리트어 avalokiteśvara의 번역, 보살(菩薩)은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세간(世間)의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받을 때,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음성(音聲)을 듣고(觀) 대자비와 지혜로써 자유 자재로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보살.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왼쪽 보처(補處).
또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 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 한다. 또 광세음(光世音)·관세음(觀世音)·관세자재(觀世自在)·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쓰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관세음보살의 주처는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이다.
한국에서는 동해에 있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洛山寺)가 관음 도량으로 유명하다.
*문수보살(文殊菩薩) ;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부처의 완전한 지혜를 상징함.
문수사리는 산스크리트어 만주슈리(mañjuśrī)의 음사. 문수시리(文殊尸利),만수실리(蔓殊室利)라고도 쓴다.
‘문수’는 묘(妙, 신묘하다, 훌륭하다), ‘사리’는 길상(吉祥, 상서로움)의 뜻이다. 묘길상(妙吉祥)·묘덕(妙德)·유수(濡首)라 번역. 석가모니불을 왼쪽에서 보좌하는 보살.
문수보살은 일반적으로 연화대에 앉아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왼손에는 푸른 연꽃을 들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는 사자를 타고 있기도 하고, 경권(經卷)을 손에 든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많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완성을 상징하는 화신(化身).
≪화엄경≫ 속에서도 문수 보살은 보현보살(普賢菩薩)과 함께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양쪽 협시 보살(挾侍菩薩)을 이룸.
*보현보살(普賢菩薩) ; 불교의 진리와 수행의 덕을 맡은 보살. 한량없는 행원(行願)을 상징함.
산스크리트어 사만타바드라(Samantabhadra). 삼만다발타라(三曼多跋陀羅)라고 표기. 보현(普賢), 편길(遍吉)이라 한역. 경전을 수호하고 널리 퍼뜨리며, 불법을 펴는 보살.
연화대에 앉거나 여섯 이빨을 가진 흰 코끼리를 타고 있다. 석가모니불을 오른쪽에서 보좌하는 보살. 보현보살은 또 중생의 목숨을 길게 하는 덕을 가졌으므로 연명보살(延命菩薩)이라고도 한다.
모든 보살들은 다 각각 부처님 공덕의 어느 한 부분만을 나타내어 그것이 그의 특징이 된다.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을 말함。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에 이르기까지 그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Posted by 닥공닥정
하안거 해제 백종2014. 8. 17. 17:39

§(398)(게송)대호삼만육천경~ / 삼라만상이 다 부처님의 원음의 경전 / (게송)삼라만상동귀환~ / 백장청규 / (게송)진로형탈사비상~ / 밝은 데에서 밝은 데로....

진짜 살아있는 부처님의 원음의 경전은 우주법계에 있는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다 그냥 고대로 살아있는 부처님의 경전인 것입니다. 그러한 부처님의 원음을 알아들을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화두 ‘이뭣고~?’, 화두를 의심을 해서 그 화두를 타파하므로 해서 그 원음을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을 뜨는 것입니다.


인생이 70, 80 번갯불 지나가듯이 지나가고 우리도 금방 이 몸뚱이를 벗어 버리게 되는데, 이 몸뚱이 있을 때 열심히 정진을 해서 생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화두(話頭)를 들고 새로 태어난 셈 치고, 아주 이 몸뚱이 아주 안 태어난 셈 치고 한바탕 공부를 지을지니라.


**송담스님(No.398) - 1989년 하안거 해제·백일기도 회향·백종법회. (용398)

 

(1) 약 19분.

 

(2) 약 19분.


(1)------------------

대호삼만육천경(大湖三萬六千頃)에  월재파심설향수(月在波心說向誰)오
나무~아미타불~
원음낙처운산진(圓音落處雲散盡)허고  부증대보변환가(不曾擡步便還家)니라
나무~아미타불~

대호삼만육천경(大湖三萬六千頃)에, 큰 호수 삼만 육천 그 물결 이랑.
월재파심설향수(月在波心說向誰)라. 달이 그 파도 속에 있는데, 그 큰 호수에 삼만 육천 파도 이랑 속에 거기에 휘황창 밝은 달빛이 거기에 비추는데, 그 도리를 누구를 향해서 설(說)할고.

원음낙처운산진(圓音落處雲散盡)한데, 원음(圓音) 떨어진 곳에 구름이 흩어져 다한데,
부증대보변환가(不曾擡步便還家)다. 일찍이 한 발도 옮기지 아니하고 문득 고향에 돌아가더라.

이 게송은 ‘심화발명(心花發明)이 어느 곳에 있느냐? 확철대오(廓徹大悟) 할 수 있는 곳이 어느 곳인가? 어느 곳에서 확철대오를 하는가?’하는 것에 대한 게송입니다.

대호삼만육천경(大湖三萬六千頃)은 우리가 눈을 통해서 보고, 귀를 통해서 듣고, 코를 통해서 냄새 맡고, 혀를 통해서 맛보고, 몸을 통해서 차갑고·덥고·부드럽고·까끄러운 것을 느끼고, 생각을 통해서 선악(善惡)과 일체 모든 것을 분별하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이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을 만나서 거기에서 육식(六識)이 일어나서 이렇게 해서 십팔천이 이렇게 끊임없이 돌아가는데 바로 그것이 대호삼만육천경(大湖三萬六千頃)입니다.

큰 바다에 얼마나 많은 파도가 있겠느냐 그말이여. 그 파도 낱낱이, 하늘에 떠있는 그 달빛이 어느 물결 하나에도 비치지 아니한 곳이 없어.
육근(六根)·육진(六塵)·육식(六識) 이 십팔경계(十八境界)가 돌아가는 바로 거기에 비로자나(毘盧遮那) 부처님의 그 법신(法身)이 나타나지 않는 곳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물결 하나마다 달빛이 비추듯이 우리의 일어나는 십팔경계(十八境界),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엇을 듣거나, 코로 무슨 냄새를 맡거나, 혀로 무슨 맛을 보거나, 몸으로 차갑고 더운 것을 느끼거나, 생각으로 희로애락, 선악 일체사(一切事)가 우리 의식에 떠오르거나,
바로 그때 그 곳이 바로 우리가 확철대오 할 수 있는 바로 그때다 이것입니다.

원음낙처운산진(圓音落處雲散盡). 원음(圓音)은 부처님의 음성을, 부처님의 말씀을 원음이라.
둥글 원(圓)자, 소리 음(音)자, 원음이라 그러는데, 원음이라 하는 것은 부처님은 한 말, 한 음성으로 설하시되,
보살은 보살 나름대로 그 법문을 듣고, 나한은 나한 나름대로 그 법문을 듣고, 중생은 중생 나름대로 그 법문을 듣고, 축생은 축생 나름대로 그 법문을 듣고, 지옥·아귀 육도법계 중생 다 그 말을 다 알아 들어.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 말씀은 어느 근기(根機)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근기도 그 나름대로 받아들여서 법(法)의 이익(利益)을 얻을 수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 부처님의 음성을 원음이라 그런 것이여.

원음 떨어진 곳에, ‘그러면은 삼천년 전에 부처님이 설하시다가 열반하셨으니까 부처님의 원음은 우리가 못들을 것이다’ 그게 아니야.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경계, 귀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 모든 냄새, 모든 맛, 모든 느낌, 모든 생각 있는 곳이 바로 부처님의 원음(圓音)이 울리는 곳이요, 원음이 나타나는 곳이여.

그러기 때문에 그 원음을 접하게 되므로 해서, 그 원음의 뜻을 우리의 마음과 계합(契合)하게 함으로 해서, 한걸음도 옮기지 않고 우리의 깨달음의 고향에 도달할 수가 있다 이것입니다.

경(經)이라 하면은 종이로 만들어진 경만이 경으로 생각하고, 한문으로 된 경만이 경으로 생각하고, 법화경이나 화엄경·금강경·원각경 이러한 우리에 내려오는 그 경만이 경(經)인줄 생각해서는 아니 됩니다.

물론 그러한 경도,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 그것으로 또 찍어낸 모든 경전, 참 소중하기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나,
정말 영원한 경(經), 정말 살아서 움직이는 부처님의 원음의 경전은 꼭 종이로만 되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꼭 먹으로만 찍혀 나온 것이 아닙니다.

진짜 살아있는 부처님의 원음의 경전은 우주법계에 있는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다 그냥 고대로 살아있는 부처님의 경전인 것입니다. 그러한 부처님의 원음을 알아들을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화두 ‘이뭣고~?’, 화두를 의심을 해서 그 화두를 타파하므로 해서 그 원음을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을 뜨는 것입니다.


삼라만상동귀환(森羅萬像同歸幻)한데  조과장공멱몰종(鳥過長空覓沒蹤)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허공불시장신처(虛空不是藏身處)라  간취풍전대우송(看取風前帶雨松)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라만상(森羅萬像)은 동귀환(同歸幻)이요, 조과장공멱몰종(鳥過長空覓沒蹤)이다.
삼라만상, 저 해나 달이나 별이나 지구나 산천초목이나 토목 와락이나 풀이나 돌, 기와 깨진 거, 일체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환(幻)으로 돌아가. 영원성이 있는 것이 아니여.

아까 그러한 것들이 부처님의 원음의 경전이라고 했습니다마는 깨닫고 보면 그런 것이고, 깨닫지 못한 탐진치 삼독으로 가득찬 중생에게는 그러한 원음이 완전히 환(幻)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 좋은 것인 줄 알고, 영원한 것인 줄 알고, 붙잡고 아무리 안 놓을려고 해봤자 뜬구름 잡는 거와 마찬가지여. 영원성이 없는 것이고, 허망한 것이다.

조과장공멱몰종(鳥過長空覓沒蹤)이다. 허공에 저 창공에 새가 날아가는데 새가 날아간 자죽과 같은 것이다 그말이여.
눈이 왔을 때 짐승이 지나가거나 사람이 지나가면 발자죽이 남아 있고, 모래 위에 기러기가 놀다가 가면 그 모래 위에 기러기 발자죽이 남아 있어요.
그 보다도 더한 것은 허공에 새가 날아간 자죽과 같다 그말이여.

우리 인생이 태어나서 탐진치 삼독심(三毒心)으로 오욕락(五欲樂)을 탐착(貪着)을 하고, 명예·권리·지위 모다 그런 것을 탐착을 해 가지고, 아무리 그것을 만히 모으고 붙잡고 늘어져 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가지고 가지도 못하고, 자기가 다 쓰지도 못하고, 그것 모이고, 그것 지키느라고, 참 본의 아니게 많은 죄만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허공불시장신처(虛空不是藏身處)다. 그렇다면 그러한 것이 다 허망한 것이고 영원성이 없는 것이라면, 이 몸뚱이를 어떻게 간수하며 어디다 이 몸뚱이를 감출 것인가?
그러면 허공에다 감추어야 할 것인가? 허공도 이 몸뚱이 감출 곳이 못 되어.

간취풍전대우송(看取風前帶雨松)이니라. 바람 앞에 비를 띤 소나무를 똑바로 볼지니라. 비 뿌리면서 바람이 부는데 그 소나무에 스쳐가는 그 소리, 송풍(松風) 솔바람 소리, 그 솔바람을 똑바로 간취(看取)하라.

여기 게송에는 ‘바람 앞에 비를 띤 소나무를 똑바로 보라’했지만, 어찌 그 소나무 하나에 국한 되리오.
하늘에 떠있는 달을 보거나, 반짝거리는 별을 보거나, 버드나무를 보거나, 복숭아 꽃나무를 보거나, 돌맹이를 보거나, 우주법계에 있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찌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에 한하겠습니까?
귀로 들을 수 있는 솔바람 소리, 낙엽이 다 지고 앙상한 고목나무에 스쳐가는 겨울 바람소리, 흘러가는 물소리, 개 짖는 소리, 새 노래하는 소리, 버스 소리, 비행기 소리, 공장에 기계 돌아가는 소리,
우리 귀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 그 소리도 똑바로 바로 들으면 원음(圓音)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한 소리가 귀에 거슬리고, 그러한 소리가 시끄러워서 공부를 못한다. 이것이 아닙니다.
눈에 이것저것 보아 싸니까, 거기에 우리의 정신이 헷갈리니까 그래 공부가 안된다. 그것이 아닙니다.

그 소리를 우리가 따라가고,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가서 그것을 집착하니까 그것이 망상이요,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이지,
따라가지 않고 바로 그놈을 보고 그놈을 듣는 찰나(刹那)에 그놈에 즉(卽)해서 화두를 떠억 들어보시라 그말이여. 무엇이 시끄러우며 무엇이 복잡할 것이 있는가.

수원 용주사도 군(軍) 비행장이 있어서 노상 제트기가 뜨고 내리고 상당히 시끄러운 곳입니다마는 금년 여름에 많은 대중이 그까짓 시끄러운 것을 문제시하지 아니하고, 아무 장애없이 정진을 잘하셨습니다.

용화사 법보선원도 앞뒤로 불사(佛事) 공사가 일어나 가지고 온통 골이 울릴 정도로 시끄럽고 복잡했습니다마는,
‘그렇게 시끄럽고 복잡해도 상관이 없으니 방부(房付)를 받아 주십시오’해 가지고 7~8분이 그 복잡하고 시끄럽고 먼지 구덩이에서 방부를 드리고 까딱없이 정진을 했습니다.

때로는 벗어부치고 땀을 흘리면서 울력을 하면서 정진을 했습니다. 아마 앞으로 견성성불(見性成佛) 할 때까지 그 복잡한 속에서 정진한 이 기사년 여름 안거가 인상에 깊이 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보살님네도, 해마다 130명씩 방부를 드리던 보살님네들이 그렇게 시끄럽고 복잡해도 기어이 여기서 정진을 하시겠다고 모다 원을 했지마는,
방을 다 뒤집어 파고 모두 뜯어 제끼고 하는 통에 방이 없어서 방부를 받지 못하고, 저 천안 광덕사 태화선원에 가서 모두 정진들 잘 하시고 또 수원 용주사 그밖에 다른 인연있는 절에 가서 모두 정진들을 하셨습니다.(27분54초~46분50초)

 

 

 



(2)------------------

정진이 꼭 조용한 데만 찾아서 하고, 일 없는 데만 찾아서 하고, 편안한 데만 찾아서 하고 이렇게 해가지고서는 우리는 도업(道業) 성취가 대단히 늦게 되고,
설사 공부에 좀 힘을 얻는다 해도 그러한 소극적 방법, 일 없고 조용한 데만 찾아다니면서 살살하는 공부 가지고서는 대도를 성취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 백장청규(百丈淸規)에도, 그런 회상은 다 1500명, 1700명이 지내는 대회상(大會上)인데,
제일조(第一條)에 ‘일일부작(一日不作)이면 일일불식(一日不食)이다. 하루 울력 작업을 하지 아니하면 하루 먹지 않는다’하는 이러한 법규를 만들어 놓곤,
날마다 한 시간 두 시간씩 이렇게 울력을 해서 채소도 가꾸고 모두 도량을 가꾸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채소를 가꾸면서 잡초를 뽑으면서 도량을 가꾸면서, 어째서 그 속에서 정진이 안된다 이것입니까?
오히려 한가한 속에서 조용한 속에서 앉아서 꾸벅꾸벅 졸기 보다는,
울력하면서 성성(惺惺)하면서도 적적(寂寂)하게 정진을 다루어 나갈 때에, 화두를 잡두리 해 나갈 때, 그 속에 어떻게 혼침(昏沈)이 들어오며 그 속에 어떻게 화두 이외의 딴 망상이 거기에 어리댈 수가 있겠습니까?

어느 회상에 가서 정진을 하던지 반드시 울력 시간을 정해놓고, 도량(道場) 청소도 하고, 잡초도 뽑고, 빈터가 있으면 채소도 가꾸면서,
운동도 되고, 채소도 자급자족도 하고, 그 성성하게 정진을 잡두리 한다면 훨씬 더 힘있고, 우리의 정진에 훨씬 더 깨달음을 앞댕길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백장(百丈) 스님과 같은 그런 대도사가 제일조(第一條)에다가 그런 규율을 넣었습니다.

백장 큰스님의 일화, 여러분도 잘 아시겠습니다마는 연세가 많아 가지고 울력하러 나오시기에 대단히 힘들게 보이니까 그 백장 큰스님 방장(方丈)스님께서 쓰시던 연장을 갖다가 감추어 버렸습니다.
그 연장이 없으면 울력에 안 나오시리라 해 가지고 감추어 버렸는데, 백장 스님이 울력 목탁 소리를 듣고 울력에 나오시려고 연장을 찾으니까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 없으니까 울력에 참여를 못하셨는데.

그 다음에 공양 시간이 되었는데 공양을 안 나오셔. ‘공양 시간이 되었습니다. 공양 안 나오십니까. 공양하러 가십시다.’
그러니까 ‘일일부작(一日不作)이면 일일불식(一日不食)이니라. 내가 울력을 오늘 못했으니 어떻게 내가 공양을 받겠는냐? 내가 오늘 공양을 하루 굶겠노라’
그래 가지고 그 다음날 어쩔 수 없이 연장을 갖다 드렸다고 하는 일화는 이 선방에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설화입니다.

그만큼 선방에 있어서의 울력이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뜻이 깊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에도 조실스님께서 울력 시간을 설정을 하셔서 생존 시에도 그렇게 울력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때는 똥도 푸고, 아카시나무도 모두 해서 연료로 사용하고, 밭도 일궈서 닭똥을 썩혀서 주고, 채소를 가꾸고, 엄청난 울력을 하고, 언덕을 파서 앞뜰을 메우기를 얼마를 했습니다.

그때 지내신 수좌(首座) 스님네들은 다 아실 것이고, 또 그때 여기 용화사에 다니신 보살님네·거사님네들은 다 아실 것입니다. 참 무서운 울력을 했습니다.

열반하신 뒤에도 좀 할려고 해도 밭도 없어지고, 또 도량소지 청소를 제외하고는 그 밖에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날마다 할 만한 일이 없어서 못하고 있습니다마는, 그래도 일만 있으면 선방 스님네들이 그저 모두 나오셔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마 용주사도 그렇게 했을 것이고, 광덕사나 회룡사도 다 그렇게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출가해서 도 닦는 일—모르는 분이 보면 참 여러 가지로 해석이 다를 것입니다마는—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는 것입니다.

생사해탈 문제, 생사대사를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받쳐서 위법망구(爲法忘軀)로 도를 닦는 일은 그래서 그것이 법희선열(法喜禪悅)—법(法)의 기쁨과 선(禪)의 기쁨, 법희선열이 그것이 '밥'인 것입니다.
씁쓸한 된장찌개, 씁쓸한 나물에다가 그렇게 참 검박(儉朴)하게 생활하지만, 도 닦는 그 맛으로 그 기쁨으로 청춘이 늙어 간 줄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세속에 몸담아 있는 청신사·청신녀 여러분도 비록 인연 때문에 세속에 몸을 담고 계시지만,
여러분도 마음은 우리 출가 사문(沙門)과 똑같은 신심과 마음으로 그 생활 속에서 계율을 지키면서 화두(話頭)를 타고 불명(佛名)을 타 가지고 열심히 정진을 하고 계실 줄 압니다.

또 인연이 허락하신 분은, 사정이 허락하신 분은 결재때 방부를 드리고, 그 연세가 60,70,80 고령에 이르러서도 방부를 드리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그 검박한 음식을 잡수면서 정진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앞으로 겨울철부터서는 방부를 받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선방도 크게 늘리고 또 여러 가지 시설도 부족함이 없이 잘 갖추어서 130명, 150명도 아마 지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때 오셔서 열심히 정진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앞으로 우란분(盂蘭盆)—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 유주무주(有主無主)의 광겁부모(曠劫父母)의 천도(薦度) 법요식(法要式)이 진행이 됩니다.
모두 지극정성으로 참여해 주시기를 바라고, 지옥고 받던 또 아귀도에서 고(苦)을 받던 또 우주 허공계에 방황하던 모든 우리의 선망부모들이 이 법요식에 정식으로 초대되어서 참석하시고 또 이 천도를 받게 되시기 때문에 그런 영가들은 참 너무너무 기쁨에 넘쳐흐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선망부모 영가들이 이 자리에 와서 틀림없이 나의 아내가 또는 나의 아들과 나의 며느리와 나의 손자들이 혹 오늘은 오지 안했는가? 이리저리 모두 찾아보고 계실 줄 생각합니다.
모처럼 이렇게 왔다가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딸, 자기의 며느리, 자기의 손자손녀들이 안 왔다면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어떤 사정으로 참석을 못했더라도 이다음 법보재(法寶齋)나 우란분재(盂蘭盆齋)에는 반드시 참석을 해서,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또 청정한 스님네께 공양 올리고, 그리고 우리의 선망부모와 인연있는 영가들을 위해서 정성껏 공양을 올리고, 천도를 한다면 그 얼마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이며 보람있는 일입니까?

우리도 머지않아서 또 이 몸뚱이를 벗어 버리고 영가(靈駕)의 몸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또 극락세계(極樂世界)나 또는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또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이 70, 80 번갯불 지나가듯이 지나가고 우리도 금방 이 몸뚱이를 벗어 버리게 되는데, 이 몸뚱이 있을 때 열심히 정진을 해서 생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죽은 뒤에 아들이 효자니까, 며느리가 잘해 줄 것이다. 그때 천도 받아도 될 것이니 실컷 먹고 잠이나 많이 자자’ 이렇게 생각하시지 말고,
기왕이면 살아있을 때 깨달음을 얻어서 스스로 자기를 제도(濟度)하는 것만 같지 못할 것입니다.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여. 생사진로(生死塵勞), 생사해탈(生死解脫)이 이 작은 일이 아니여, 보통 일이 아니다.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다. 긴밀히 승두(繩頭)를 잡아서 한바탕 공부를 지어라.
정말로 화두(話頭)를 들고 새로 태어난 셈 치고, 아주 이 몸뚱이 아주 안 태어난 셈 치고 한바탕 공부를 지을지니라.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이면, 한바탕 그 추위가 뼛골에 사무치지 아니하면,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칠 수가 있겠느냐.(爭得梅花撲鼻香)

우리 중생은 ①어두운 데에서 어두운 데로 향하는 그러한 사람이 있고, ②어두운 데로부터 밝은 데를 향해서 나아가는 사람이 있고,
또 ③밝은 데에서 어두운 데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고, ④밝은 데로부터서 밝은 데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①그러면 어두운 데에서 어두운 데로 가는 사람은 어떠한 부류의 사람이냐?
전생에 복(福)을 짓지 못하고 금생에 가난뱅이로 태어났다가 그나마도 부처님도 잘 믿지를 않고 신심이 시원찮고, 마음씀씀이 용렬(庸劣)하고, 베풀 줄도 모르고,
항상 삿된 생각으로 계속 도를 닦지 아니하고, 속심에 가득 찬 그러헌 사람은 전생에 짓지 못해 가지고 어두운 데에서 왔다가 내생에 다시 또 어두운 데로 갈 사람이거든.

②그러면 어두운 데에서 왔지만 앞으로 미래에 밝은 데로 향하는 사람은, 설사 전생에 큰 복을 짓지 못해서 금생에 가난하게 태어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난한 가운데에도 불법을 믿고 신심이 있어, 마음씀을 항상 탐진치 삼독에 빠지지 아니하고, 항상 법문 듣기를 좋아하고, 그것을 실천하려고 노력을 해.
가난하지마는 있는 대로 보시를 해. 그리고 항상 계율을 지키고 그렇게 살아간 사람은 비록 어두운 데에서 왔지마는 앞으로는 반드시 밝은 데를 향해서 극락세계에나 도솔천내원궁으로 갈 사람이다 그거거든.

③그러면 밝은 데에서 왔지마는 앞으로 어두운 데로 갈 사람은 어떠한 부류의 사람이냐?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금생에 부자가 되어서 부자로 살지만, 부처님을 믿는 신심이 그렇게 장하지를 못해.
그래 가지고 탐심이 많고, 진심을 많이 내고, 어리석은 생각·용렬한 생각이 가득차 가지고, 보시도 할 줄도 모르고, 사견(邪見)이 꽉 차 가지고, 악한 짓을 많이 해.
그런 사람은 전생에 복을 지어서 밝은 데서 왔으나, 앞으로 사후에는 껌껌한 지옥으로 밖에는 갈 수가 없을 것이다.

④그러면 밝은 데에서 왔다가 밝은 데로 간 사람은,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부자로 태어났어.
신심도 있고, 계행도 지키고, 보시도 하고, 수행도 참선도 열심히 하고, 그래 가지고 사후에는 물어볼 것도 없이 극락세계나 도솔천내원궁에 태어날 것이 틀림이 없고,
다시 또 인도환생을 하게 되더라도 부자로 태어나고, 몸도 건강하고, 신심도 있고, 그래서 내생에 불사(佛事)도 잘하고, 대도(大道)도 성취할 것이다. 그 사람은 바로 밝은 데로부터서 밝은 데로 향할 사람이다.

여러 사부대중(四部大衆)은 스스로 자기 자신 가슴에 손을 얹고 가만히 반성을 해보시오.
‘4가지 중에 과연 어느 곳에 어느 부류에 자기가 속한가?’ 생각해서, 반드시 앞으로는 밝은 데를 향해서 가도록 노력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27분54초~65분44초)(끝)

 

 

 



------------------(1)

*(게송) ‘大湖三萬六千頃  月在波心說向誰’ ; [금강경오가해] 종경 서(宗鏡序) 참고.
*(게송) ‘圓音落處雲散盡  不曾擡步便還家’ ; [금강경오가해] ‘종경 서(宗鏡序)’에 함허득통(涵虛得通)의 설의(說誼) 참고.
*원음(圓音) ; 모든 중생이 제각기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이해하는 원만한 부처님의 가르침.
*심화(心花, 心華) ; 본래 깨끗한 마음(心性)을 꽃에 비유한 말.
*발명(發明) ; 밝히다. 깨닫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귀(耳根)·코(鼻根)·혀(舌根)·몸(身根)·뜻(意根)의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근(根)은 기관·기능을 뜻함.
*육경(六境) ; 육근(六根)의 대상 경계인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을 말함.
산스크리트어 ṣaḍ-viṣaya 경(境)은 대상을 뜻함. 육진(六塵)이라고도 한다.
①색경(色境).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수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수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맛.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등.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육식(六識)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십팔계(十八界) ; 계(界, 산스크리트어 dhātu)는 요소를 뜻함. 인식을 성립시키는 열여덟 가지 요소.
불교에서 인간과 그 밖의 모든 존재 속의 인식작용을 18가지 범주로 나눈 것.
육근(六根)·육경(六境)·육식(六識)을 합한 것이다. 육식(六識)을 제외한 12가지를 12처(處)라고 한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법신(法身) : [범]  dharma - kaya 「법 몸」이란 말인데, 실불(實佛) • 법성신(法性身) •진여불(眞如佛) • 법계성(法界性) 같은 말들이 모두 한뜻. 진여의 본 바탕(眞如本體)을 이름이니, 중생에 있어서 부족할 것이 없고 부처님이라고 더 특별할 것이 없어, 본래 깨끗하고 빛나고 두렷하여 무한한 공간과 무궁한 시간에 꽉 차 있으되, 네 가지 말로도 설명할 수 없고(離四句) 백 가지 아닌 것으로도 옳게 가르칠 수 없으며(絕百非), 무엇으로나 형용하여 볼 수가 도저히 없는 것이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계합(契合) ;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
*공안(公案)을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게송) ‘삼라만상동귀환~’ ; [소요당집 外] (한글대장경 169, 동국대학교 역경원) p71 소요 스님 게송 ‘의현법사에게 답함’ 참고.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환(幻) ; ①허깨비. 모든 사물은 여러 가지 인연(因緣)이 모여서 생긴 것으로 실체가 없는 것에 비유함.
환(幻)을 실(實)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생의 미혹한 생각임. 환(幻)을 무(無)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승(二乘-聲聞,緣覺)의 공(空)에 얽매인 견해, 단공(但空-단지 空만을 집착하는 것)임.
환(幻)은 또 화(化)와 거의 같은 뜻이므로 환화(幻化), 꿈과 비슷하므로 환몽(幻夢)•몽환(夢幻)이라고도 한다.
②신기루, 아지랑이 같은 것.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탐착(貪着) ; 만족할 줄 모르고 사물에 더욱 집착함.
*찰나(剎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방부(房付 방•거처 방,줄•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울력 ; 함께 힘 모아 일하는 것,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일이란 우리말.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운력(雲力), 함께 힘을 기울인다는 의미로 운력(運力)이라고도 한다. 의미와 관계없이 울력은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뜻.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2)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백장청규(百丈淸規) ; 당(唐)나라의 백장 회해(百丈懷海)가 선종(禪宗) 사원의 규범을 성문화(成文化)한 것.
당시 선종은 독립된 사원 ·제도 ·의식 등을 아직 갖추지 않았는데, 이때 백장 스님이 법당(法堂) ·승당(僧堂) ·방장(方丈) 등의 제도를 마련하고, 스님들에게는 동서(東序) ·요원(寮元) ·당주(堂主) ·화주(化主) 등의 각 직책을 규정해 놓은 선종의 법규를 정한 것.
이것을 《고청규(古淸規)》라 하는데, 이것이 당 ·송 시대에 이리저리 흩어져서 없어졌으므로, 1335년 원(元) 순제(順帝)의 칙명으로 백장 덕휘(百丈德輝)가 여러 청규(淸規)를 참조하여 소실된 백장 회해(百丈懷海, 749-814)의 청규를 복원하여 전국 선원에서 시행시켰는데, 이것이 《칙수백장청규(勅修百丈淸規)》이다.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잡두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어리대다 ; 남의 눈앞에서 귀찮게 왔다갔다 하다.
*도량(道場) : 사찰. [범] bodhimandala 도를 닦는 곳이란 말이다。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백장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방장(方丈) ; ①선원(禪院)의 운영을 주관하는 최고 책임자 스님, 또는 그가 거처하는 방.
②선원(禪院)·강원(講院)·율원(律院)을 모두 갖추고 있는 총림(叢林)의 가장 높은 스님.
*수좌(首座)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진리)를 구하기 위해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법희선열(法喜禪悅) ;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따르는 기쁨과 선정(禪定)에 들어가 마음이 즐거운 것.
*검박(儉朴 검소할 검,순박할 박) ; 검소하고 소박(素朴)함.
*사문(沙門) ; 슈라마나(산스크리트어: śramaṇa, 팔리어: samaṇa)의 음역. 식(息)·근식(勤息)·정지(淨志) 등으로 번역. 여러 선법(善法)을 근수(勤修)하고, 악법(惡法)을 행하지 않으며, 심신을 조어(調御)하여 청정(淸淨)한 깨달음의 길을 지향(志向)하고 노력함을 뜻함.
①인도에서 바라문교의 「베다」 성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제종교 수행자의 총칭.
②출가하여 불문(佛門)에 들어 도를 닦는 사람.
*불명(佛名) ; 불법에 귀의한 남녀 신자에게 붙이는 이름.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유주무주(有主無主) ; ①주인(영가를 인도해 줄만한 인연있는 사람)이 있거나 없는. ②제주(祭主)가 있거나 없는.
*광겁부모(曠劫父母) ; 과거의 지극히 오랜 세월 동안 모든 우리의 부모. 선망부모(先亡父母)와 같은 말.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법요식(法要式) ; 불사(佛事-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를 할 때 행하는 의식.
*법보재(法寶齋) ; 매년 음력 3월 16일에 용화사 법보재자(法寶齋者)와 법보전 만년위패에 모신 선망부모 영가들과 인연 있는 영가들의 무량겁으로부터 지은 업장을 참회 소멸하고,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고, 재자와 영가 모두 진리의 세계에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전강 조실스님께서 개설(1963년)하신 합동 천도재(薦度齋).
*우란분재(盂蘭盆齋) ; 우란분(盂蘭盆). 우란분(盂蘭盆)은 산스크리트어 ullambana의 음사로, 도현(倒懸)이라 번역.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을 받는다는 뜻. 절에서, 음력 7월 15일에 지옥이나 아귀의 세계에서 고통받고 있는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삼보(三寶)에 공양하는 의식.
『우란분경(盂蘭盆經)』에 의하면 부처님 제자 중에 신통력이 제일인 목련이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는 어머니를 구해주려고 하였으나 신통력으로도 어찌 할수 없어서,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따라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모두 모이는 하안거가 끝나는 7월 15일인 자자일(自恣日)에 삼보(三寶)에 공양하게 하여 목련의 모친을 악도에서 벗어나게 한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850) 게송.
*진로(塵勞 티끌·속세 진,근심할 로) ;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번뇌(煩惱).
*승두(繩頭) : 승(繩)은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두(頭)는 어조사다。 불조의 계법(戒法) 규칙.
*용렬(庸劣 쓸 용,못할·낮을 렬) ; 사람이 비겁하고 좀스러우며 변변하지 못함.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Posted by 닥공닥정
생활속 정진(요중선)2014. 6. 17. 15:36

 

 

§(246) (게송)산중하사기~ / 이 공부는 되고 안 되고 헌 것을 전혀 따질 것이 없습니다. ‘내가 본래 부처다’ / 고기 눈깔을 가지고 야광주(夜光珠)로 착각하면 안된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건 간에, 화두를 들고 참구를 하면 바로 그 자리가 선방이요, 산중(山中)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숙세(宿世)에 인연이 있어서 사람 몸으로 태어나고, 또 이렇게 불법(佛法)을 만나고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만나서, 한 생각 돌이켜서 본래 갖추어져 있는 도리를 깨달아서 견성성불(見性成佛)헐 수 있는 길이 우리 앞에는 환하게 열려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모든 부처와 조사도 깨닫기 전에는 우리와 똑같은 범부(凡夫)였었다. 똑같은 범부였었지만, 한 생각 돌이킴으로써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했다.’
그런데 착각해서는 아니 될 것은 본래 갖추어져 있는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에서 나오는 그림자를 붙잡고 자기라고 착각을 허는 수가 있습니다.
‘도적을 나의 자식으로 착각을 하고, 고기 눈깔을 가지고 야광주(夜光珠)로 착각하는 거와 같다’ 이렇게 고인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송담스님(No.246) - 84년(갑자년) 추계산철결제 법문(84.08.27)에서. (용246)

 

약 22분.

 

 

산중하사기(山中何事奇)요  석상송백다(石上松柏多)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취적기우자(吹笛騎牛子)여  동서임자재(東西任自在)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산중(山中)에 하사기(何事奇)요, 석상(石上)에 송백다(松柏多)로구나.
산중(山中)에 무슨 일이 기특한고? 돌 위에는 송백(松柏)이 많구나.

취적기우자(吹笛騎牛子)여 동서임자재(東西任自在)로구나.
젓대를 불며 소를 타고 가는 자여, 동쪽 서쪽으로 임의(任意)대로 자유자재한다.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면 바로 그 자리가 산중(山中)입니다.

시장 바닥이 되었건, 종로 사거리가 되었건, 농촌이 되었건, 주택지가 되었건, 절 마당이 되었건, 버스 안이 되었건, 전철 안이 되었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건 간에,
화두(話頭)를 떠억 들고 참구(參究)를 하면 바로 그 자리가 선방이요, 그 자리가 바로 산중인 것입니다.

첩첩산중 깊은 고을에 있으되 화두를 놓쳐 버리면은 그곳은 시장 바닥이요, 삼도(三途)-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의 삼도의 구렁텅이요.

설사 지옥 속에서라도 화두를 매각(昧却)허지 아니하고 의단이 독로하고 성성(惺惺)하면 바로 지옥이 바로 도솔천 내원궁(兜率天 內院宮)이요, 선방(禪房)이요, 영산회상(靈山會上)이 되는 것이여.

젓대를 불며 소를 타고서 동쪽으로 가고 싶으면 동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가고 싶으면 서쪽으로 가고.
젓대는 무슨 젓대냐? ‘구멍이 없는 젓대’여. 구멍이 없는 젓대를 불면, 동서남북 어디로 가나 맥힐 것이 없고 걸릴 것이 없어.

오늘은 갑자(甲子)년 가을 산철 결제날입니다. 산(散)철 결제(結制)라는 말이 최근에 생긴 말이어서 매우 생소하게 들릴 분도 계실 줄 생각합니다.

원래 결제(結制)라 하면, 음력 4월 15일에 결제를 해서 석 달 뒤인 7월 15일에 해제(解制)를 해. 이것을 하안거(夏安居)라 그리고. 겨울은 음력 10월 15일에 결제를 해 가지고, 이듬해 정월 15일에 해제를 하는데, 그 겨울 석 달 동안을 동안거(冬安居)라 그럽니다.

원래 안거(安居)라 하는 것은 인도에서부터 생겨난 것인데, 인도는 일 년 중 비가 많이 와서 장마가 계속되기 때문에, 스님들이 숲속의 나무 밑에서 모두 그런 데서 정진을 허시는데,
장마철에는 그런 숲속에서 정진을 헐 수가 없어서 기원정사(祇園精舍)나 죽림정사(竹林精舍)나, 이런 장자(長者)나 또는 신도들이 지어서 바친 그런 수도원에 모여서 그 비 오는 계절을 지내는 기간입니다.

그것을 안거라 그러는데, 중국·한국·일본은 여름에 비 오고 더울 때 석 달과 겨울에 눈이 오고 매우 추울 때 석 달, 1년에 두 번씩을 안거를 하는데,
근자에는 '산철 결제'라 하는 것이 봄 산철 두 달, 가을 산철 두 달, 산철 결제라 하는 것이 생겼다.

왜 생겼냐 하면, 7월 15일에 여름 해제를 하고 10월 15일 겨울 결제헐 때까지 석 달 동안 마땅히 머물러 있을 만한 곳이 없어.
정진은 계속해서 허고 싶은데, 일정한 데에 자리를 잡고 정진을 헐 만한 데가 마땅치를 못해서, 그 석 달 동안을 이리 가도 편틀 못허고, 저리 가도 편틀 못허고.
그러헌, 그 정진은 하고 싶으나 자리가 마땅치 않은 그 산철 동안을 계속해서 정진을 허도록 허기 위해서 '산철 결제'라 하는 것을 허게 되었습니다.

이 산철 결제를 허고 보니, 그 석 달 동안을 장소가 마땅치 안 해서 그 방황을 하던 선객(禪客) 스님들이 그 두 달 동안을 착실히 정진을 허니까 매우 정진에 유익하더라 그말이여.
그래서 용화사 선원이나 봉암사 선원이나 기타 다른 선원에서도 이렇게 산철 결제를 몇 군데 허게 되았습니다.

어떻게 허면은 정진을 간단없이 한결같이 할 수 있을까? 이 정진이라 하는 것은 꼭 여름 결제 동안만 하고 또 겨울 결제 동안만 하고, 그 나머지는 안 해도 괜찮은 것임사 구태여 산철 결제를 헐 것이 없지만,
결제·해제 상관이 없이 정진은 한결같이 해 나가야 허기 때문에 그러기 위해서는 이렇게 산철 결제를 허는 것이 퍽 효과적인 일이다. 이렇게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10분29초)

 

방금 조실스님 녹음 법문을 통해서 이 결제 법어를 다 들어 마쳤습니다. 더 이상 헐 말씀이 없지만, 이 자리에는 처음으로 참선을 허기 위해서 일부러 용화사를 찾아온 청신녀(清信女)도 계시고, 또 강원에 다니다가 강원을 졸업하고 또 이제부터 참선을 허고자 하는 그러헌 수좌(首座)도 있고,
처음으로 선방에 나와서 아직은 참선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아지 못해서 안타까와하는 그러헌 스님도 있고 해서, 오늘은 이 참선을 해 나가는 아주 요긴한 요점을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참선(參禪)이라 허는 것은 사람 사람이 본래 갖추어져 있는, 낱낱이 원만히 이루어져 있는, 조금도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역대조사(歷代祖師)에 손색이 없이 완전무결하게 갖추어져 있는 그 도리(道理).

그것이 마치 무엇과 같으냐 하면, 손을 가지고 오그리면 주먹이 되고, 펴면 손바닥이 되는 거와 같애. 쥐고 싶으면 쥐고, 손을 펴고 싶으며 펴고, 누가 그것이 어려웁다고 헐 것이냐 그말이여. 조금도 힘 들일 것이 없어.

이와 같애서 참선도 원래 내게 갖추어져 있는 것이어서 새로 찾을 것도 없고 닦을 것도 없고 깨달을 것도 없는 것이지만, 무량겁래(無量劫來)로 '한 생각' 미(迷)한 탓으로 해서, 심(心)·의(意)·식(識)-마음과 뜻과 식이 제멋대로 놀아나 가지고 그 심·의·식, 제멋대로 놀아난 그놈의 장난으로 해서 나의 본분을 망각(忘却)해 버렸다 그말이여.

부처님과 조금도 손색이 없는 그러헌 도리를 갖추어져 있으면서도 그것을 망각해 버렸기 때문에, 그 망각헌 그 탓으로 해서 육도(六道)를 본의 아니게 돌고 돌면서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 악업(惡業)을 짓고, 악업을 지음으로 해서 더욱 치성하게 고초를 받게 되고, 이렇게 허기를 무량겁 동안을 지내오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숙세(宿世)에 인연이 있어서 사람 몸으로 태어나고, 또 이렇게 불법(佛法)을 만나고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만나서, 한 생각 돌이켜서 본래 갖추어져 있는 도리를 깨달아서 견성성불(見性成佛)헐 수 있는 길이 우리 앞에는 환하게 열려있는 것입니다.

내게 갖추어져 있는 것을 내가 찾는 것이라 하나도 힘들 것이 없지마는, 무량겁으로 윤회를 허면서 지은 악업이 솜털 얽히듯이 얽혀 가지고, 내가 내 마음이면서 내 마음대로 못허고, 내가 내 뜻을 내 마음대로 못허고, 내가 내 알음알이를 내 마음대로 못합니다.

겨울에 얼음에다 물을 찌트르면 찌클수록 그 얼음 덩어리가 불어나듯이, 우리의 심(心)·의(意)·식(識)은 무량겁 우리의 지은 업에 의해서 얽힌 데 또 얽히고, 얽힌 데 또 얽히고 해 가지고, 헤치고 들어갈수록 점점 더 복잡하고 어찌 해 볼 수 없도록 그렇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헐라면 정말 쇠로 지어 부슨 쇠뭉텡이와 같이 이를 악물고 죽기로 각오를 하고 대들지 아니하면 이 일대사(一大事) 문제는 해결허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내가 근기(根機)가 약하니 될 것인가 안 될 것인가?’
‘내가 말세(末世)에 태어난 업보(業報) 중생으로서 감히 그런 참선을 해서 될 것인가?’
‘여자로 태어나 가지고 어떻게 그러헌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견성성불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건강이 좋지 못허니 어떻게 가행정진(加行精進)·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서 깨달을 수가 있을 것인가?’
‘나이가 이렇게 늙었으니 어떻게 내가 공부를 헌다고 해봤자 목적을 달성헐 수 있을 것인가 말 것인가?’
‘내가 경(經)도 보지 못하고 무식한 사람이 어떻게 확철대오를 해서 무량 중생(無量衆生)을 제도(濟度)헐 것인가?’
이러한 등으로 스스로 자기 자신을 의심하고 자포자기허는 그러헌 자신 없는 마음으로 대들어 봤자, 물어볼 것도 없이 조금 해보다가 무엇이 잘 안되면 스스로 물러서게 되고 말 것입니다.

이 공부는 되고 안 되고 헌 것을 전혀 따질 것이 없습니다.

‘내가 본래 부처다’, ‘내가 본래 부처님과 똑같은 부처다’고 허는 사실을 철저하게 믿고,
‘본래 내가 부처인데 그것 찾는 것이 무엇이 그리 어려울 것인가?’
‘과거에 모든 부처와 조사도 깨닫기 전에는 우리와 똑같은 범부(凡夫)였었다. 똑같은 범부였었지만, 한 생각 돌이킴으로써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했다.’
표현이 ‘성품을 보았다’ 또는 ‘부처를 이루었다’ 허지만, ‘본래 내가 부처’라고 허는 사실을 확인한 것뿐인 것입니다.

견성(見性)했다고 하니까, 미간(眉間) 백호(白毫)가 튀겨져 나오고, 몸에서는 방광(放光)을 하고, 육신통(六神通)을 자유자재로 행사하고, 이렇게 굉장히 불가사의하고 신비한 존재로 생각허기가 쉽지만은,

말할 줄 아는 놈, 들을 줄 아는 놈, 성낼 줄 아는 놈,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천리만리도 왔다갔다 하고, 천 년 이천 년 과거로도 갈 수도 있고, 미래로도 갔다왔다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에 걸림이 없이 자유자재한 놈, 이것이 바로 우리가 본래 갖추어져 있는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인 것입니다.

그런데 착각해서는 아니 될 것은 본래 갖추어져 있는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그 본래면목에서 나오는 그림자를 붙잡고 자기라고 착각을 허는 수가 있습니다.

성내고 욕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고허는 것은 그 나의 본래 갖추어져 있는 ‘한 물건’의 한 작용이 될지언정, 그 놈을 바로 나의 본래면목이라고 우리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인식을 하는 것은, ‘도적을 나의 자식으로 착각을 하고, 고기 눈깔을 가지고 야광주(夜光珠)로 착각하는 거와 같다’ 이렇게 고인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번뇌망상(煩惱妄想), 눈을 통해서 보고, 귀를 통해서 듣고, 혀를 통해서 맛보는 놈. 그놈을 여의고 찾는 것은 아니지만, 자칫 잘못 알면 ‘아! 바로 이놈이 이놈이로구나. 이놈이 그놈인데, 찾을 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속단(速斷)을 허게 되면, 이것은 이 최상승법을 잘못 인식을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처음~22분1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게송) ‘산중하사기~’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66 ‘고운(孤雲)의 글자를 모음’ ‘목암(牧庵)’ 게송 참고.
*젓대 ; ‘저(가로로 불게 되어 있는 관악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적(笛).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매각(昧却) ; 잊어버리다. (지혜가)어두워지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영산회상(靈山會上) ; 석가모니가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던 때의 모임, 또는 그곳에서 법화경을 설하던 때의 모임.
*구멍이 없는 젓대 ; 무공적(無孔笛). ①무저선(無底船)·몰저선(沒底船)·무영수(無影樹)·몰현금(沒絃琴)과 같은 말로 진여(眞如)의 이명(異名)이다。 ②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는 철저(徹底)한 경지。
*기원정사(祇園精舍) ;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정사의 약어(略語). 중인도 코살라국(國)의 수도 사위성(舍衛城:슈라바스티) 남쪽 1.6 km 지점에 있던 기타태자(祇陀太子) 소유의 동산에 지은 절.
이는 ‘기타태자의 동산에 수달(須達:給孤獨長者)이 지은 승원’이라는 뜻인데,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란 ‘고독한 이들에게 보시를 많이 한 부자’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죽림정사(竹林精舍) ; 마가다국(magadha國)의 왕사성(王舍城) 부근에 있던 불교 최초의 사원. 붓다가 깨달음을 이루고 왕사성을 찾았을 때, 칼란다(kalanda) 장자(長者)가 붓다에게 기증한 죽림 동산에 빔비사라(bimbisāra) 왕이 지어 붓다에게 바친 정사.
*장자(長者) ; ①덕망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아 세상일에 익숙한 어른. ②큰 부자를 점잖게 이르는 말.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청신녀(清信女)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여자 신도, 곧 우바이(優婆夷).
*수좌(首座)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도리(道理) ; 이치(理致).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는 모든 만유(萬有)를 꿰뚫고 있는 법칙. 모든 것에 두루 통하는 진리. 진리와 결합된 이론이나 증명. 타당한 이치.
*심의식(心意識) ; 심(心 citta) · 의(意 manas) · 식(識 vijñāna)의 세 낱말을 합친 복합어.
①초기 불교에서는심(心)과 의(意)와 식(識)은 동의어로서 인식 주관 또는 인식 작용을 뜻함.
②유식설에서는 심(心)은 아뢰야식(阿賴耶識), 의(意)는 말나식(末那識), 식(識)은 육식(六識)을 뜻함.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알음알이 ; ①어떤 인식대상에 대해 마음 또는 마음작용이 가지는, 그 인식대상에 대한 형상 즉 이미지를 아는 것을 말한다. ②마음이 번뇌에 덮여있는 상태, 말하자면 거울에 때가 낀 상태에서 가지는 이러한 앎을 깨달음[무루혜 無漏慧-모든 번뇌를 해탈(解脫)한 성자(聖者)의 지혜]과 구분하여 알음알이라 한다.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백호상(白毫相) ; 부처님의 32상(相) 중 하나. 부처님의 양 눈썹 사이에 난 희고 부드러운 털. 오른쪽으로 말려 있고 여기에서 광명을 발한다고 한다. 미간백호상(眉間白毫相)·
*육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①신족통(神足通) ②천안통(天眼通) ③천이통(天耳通) ④타심통(他心通) ⑤숙명통(宿命通) ⑥누진통(漏盡通).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야광주(夜光珠) ; 어두운 데서 빛을 내는 구슬.
*속단(速斷) ; 신중히 생각하지 않고 서둘러 판단을 내림.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