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칠석)2014. 7. 16. 11:23

§(181) 칠성불공(七星佛供)-불사동참(佛事同參)-법문(法門)-소원성취 / 요중선(中禪) / (게송)처자권속삼여죽~ / 부모에게 효도(孝道).


모든 신앙·방편이 불교에 들어와 버리면, 눈 밝은 도인(道人)들은 그런 여러 가지 방법을 선방편(善方便)으로 자유자재로 사용을 해서, 모든 중생을 최상승법(最上乘法)으로 이끌어 들이는 요긴한 방편으로 써버린다.
보시라 하는 것은 우선 보시하는 그와 동시에 탐착심과 애착심을 버리게 되는 것이여.


법문을 들어야만 어떠헌 것이 정법이요 어떠헌 것이 삿된 길이다 하는 것을 알 수가 있게 되는 것이여.
목적지에 도달허기 위해서는 바른길을 알아야 하고, 바른길을 알기 위해서는 법문을 들어야 하고, 법문을 듣기 위한 계기는 모든 불사에 참여를 해야만 된다.
첫째 이 최상승법을 믿을려면 맨 처음에 바른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야 한다.


일에다 핑계를 대고 공부를 안 했다고 해서, 염라대왕(閻羅大王)이 ‘아, 너는 일이 많아서 못했지 신심이 없어서 못한 것이 아니니까, 에이! 너는 공부를 그렇게 못했지만 너는 극락에 보내주마’ 이렇게 되지를 안혀.
냉정히 가슴에다 손을 대고 ‘내가 과연 부모에게 얼마만큼 효심이 있는가, 부모에게 내가 얼마만큼 효도를 했는가’ 냉정히 반성을 해 보셔서....


**송담스님(No.181) - 1982년(임술년) 칠석법회(82.8.25)(62분)에서. (용181)

 

(1) 약 19분.

 

(2) 약 20분.

 


(1)------------------

오늘은 임술년 음력 7월 7일 칠석날입니다. 저 신라 이전부터 토속 신앙(土俗信仰)으로, 중국에서부터 7월 칠석에는 칠성불공(七星佛供)을 드리는데,
그래 가지고 오복(五福)을 성취하고 인간으로서 모든 소원을 성취허기 위해서 절에 가서 칠성 불공을 드리고 칠성 기도를 드리고 소원을 빌어왔다 이 말씀이여.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고 우리 나라에 들어와 가지고, 그러헌 토속 신앙이 불교와 합해져 가지고 벌써 삼천년이 되는 오늘날에도 칠석날은 절에서 큰 불공을 드리고 법요식(法要式)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불법(佛法)은 바다와 같아서 동서남북 사방에서 흘러들어온 모든 종류의 물을 다 받아들여.
흙탕물도 받아들이고, 맑은 물도 받아들이고, 동쪽 물도 받아들이고, 서쪽 물도 받아들여서, 일단 그 많은 물을 받아들이면, 그 물이 일단 바다에 도착하면 한결같이 짠물로 변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불법은 도교(道敎)의 것도 받아들이면 그것이 불법(佛法)으로 화해 버리고, 바라문교의 것도 불교에 들어오면 그것이 짠맛으로 변해 버리고, 일반 토속 신앙도 불교에 들어오면 그것도 불법의 한 방편(方便)으로 변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헌 여러 가지의 모든 신앙, 방편이 불교에 들어와 버리면,
눈 밝은 도인(道人)들은 그러헌 여러 가지 방법을 선방편(善方便)으로 자유자재로 사용을 해 가지고, 모든 중생을 최상승법(最上乘法)으로 이끌어 들이는 요긴한 방편으로 써버린다 그 말이여.

칠석날에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기도를 허면, 온 가족의 수명장수(壽命長壽) 복덕구족(福德具足)을 빈다.
이러헌 소박한 신앙심이 아니면 방방곡곡에서 모든 할머니와 젊은이들이 어떻게 절로 그날을 찾아 갈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그러헌 소박한 신앙심 때문에 절을 찾아가게 되었고 절을 찾아갔기 때문에 좋은 법문을 듣게 되어 가지고 마침내는 정법(正法)을 믿어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할 수 있는 데까지 이르를 수가 있다 이 말씀이여.

절에는 생전예수재(生前預修齋)을 지내기도 하고, 또는 가사불사(袈裟佛事)를 하기도 하고, 또는 보살계산림(菩薩戒山林)을 하기도 하고, 또는 방생(放生) 법회를 하기도 하고, 개금불사(改金佛事)를 하기도 하고, 또는 법당을 짓는다든지 범종(梵鐘) 불사를 하기도 하고 많은 종류의 불사(佛事)가 있는데,
그 많은 불사가 원리에 입각에서 보면 모두가 다 한결같이 한군데로 한 목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말씀이여.

불사(佛事)에 동참(同參)을 하면 보시(布施)를 허게 되니까 보시 공덕을 쌓게 되는데,
‘보시 공덕은 무엇이냐'하면 ‘보시를 허는 그 공덕으로 나중에 복을 받는다’하는 것은 시간적으로 선후가 있지만, 보시라 하는 것은 우선 보시하는 그와 동시에 탐착심과 애착심을 버리게 되는 것이여.

탐착심 때문에, 탐욕 때문에 결국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허고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는 것인데,
탐진치 삼독심(三毒心)을-물질을 보시 헐 때 그 동시에 탐진치 삼독심을 희사(喜捨)를 해 버리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장차 소원을 성취할 수가 있고 복을 받을 수가 있다 이것입니다.

둘째는 보시를 허기 위해서 오고, 공을 드리기 위해서 칠석날이라던지 그 밖에 모든 법회 모든 불사에 동참을 허는데 동참하러 와서 법문(法門)을 듣게 된다 그말이여.

‘법문을 듣는다고 허는 것은 무엇이냐’하면 ‘정(正)과 사(邪)를 간택(揀擇)헐 수 있게 된다’ 그말이여.
법문을 들어야만 어떠헌 것이 정법이요 어떠헌 것이 삿된 길이다 하는 것을 알 수가 있게 되는 것이여.

법문을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그 어리석은 생각에 그것이 전부인줄 알고 꽉 집착을 해가지고 영원히 벗어날 기약이 없는데 법문을 들어야 한번 뿐만이 아니라 듣고 또 듣고, 듣고 또 듣고 법문을 들어야만 자기의 선입관 잘못된 생각을 털어 버릴 수가 있어.

잘못된 그릇된 삿된 생각을 꽉 국집(局執)해 가지고 버리지 못하고 그 독 속에 울안에 갇혀가지고,
마치 우물 안에 개구리처럼-우물 안에 개구리는 빤히 내다보이는 그 쪼그만한 것이 하늘인줄 알고 하늘이 넓은 줄을 모른다 그말이여. 또 우물 안에 그 쪼그만한 물 그것이 이 세상에 제일 큰물인줄 안다 그말이여.

우물 밖에 나와 봐야 하늘이 넓은 줄도 알고 또 바닷가에 가봐야 과연 물이라 하는 것이 이렇게 넓은 것이다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듯이,
법문을 들어 봐야 어떠헌 것이 바른 것이고 어떠헌 것이 삿된 것이고, 어떻게 믿어야 불법을 옳게 믿을 수가 있다 이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복을 빌되 어떻게 빌어야 참으로 올바른 복을 얻을 수가 있다고 하는 것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법문을 들음으로써 바르고 바르지 못한 것을 알 수가 있고, 바른 길을 알아야만 그 길을 행해 갈 수가 있어.
목적지가 동쪽에 있는지 서쪽에 있는지 북쪽에 있는지 그 목적지가 있는 방향을 먼저 알아야 하고, 방향을 알아서 우선 어느 길로 가야 한다고 하는 길을 찾아야만 행할 수가 있는 것이여.
길을 바로 잡아서 열심히 가야만 목적지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이여.

그래서 목적지에 도달허기 위해서는 바른길을 알아야 하고, 바른길을 알기 위해서는 법문을 들어야 하고, 법문을 듣기 위한 계기는 모든 불사에 참여를 해야만 된다 그말이여.

‘불사에 참여해야 복을 성취할 수 있다’ ‘복을 받고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모든 불사에 동참을 해야 한다’고 하는 말이 이러헌 까닭으로 해서 그 말이 절대로 거짓말이 아니요, 헛된 말이 아니요, 반드시 근원이 있는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은 칠월 칠석날인데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까막까치가 은하수(銀河水)에서 다리를 놓아줌으로해서 그 까막까치의 오작교(烏鵲橋)를 건너 가지고 견우와 직녀 두 사모하는 애인이 오늘 만나는 날이다.

그래서 오늘 칠석날에는 이 은하수에 까막까치가 그 오작교를 만들기 위해서 떠나버렸기 때문에 들이나 산에나 까마귀나 까치를 구경할 수가 없다 그러는데 여러분이 돌아가시는 길에 혹 까마귀가 어디가 있는가 한 번 찾아보십시오. 눈에 띄지 아니하면 틀림없이 그 은하수로 오작교를 만들기 위해서 간 것이 분명할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그 서로 사랑하는 견우와 직녀가 만나지를 못허다가, 오늘 칠석날 저녁에 까막까치의 다리로 인해서 겨우 1년 동안에 단 한번 만날 수 밖에는 없냐.

아마도 우리 탐진치의 삼독과 오욕락(五欲樂)에 얽혀서 그저 명예를 위해서 몸부림치고, 재산을 위해서 몸부림을 치고 그러다가,
한번도 나의 부모 보다도 더 가깝고, 형제간 보다도 더 가깝고, 또 부부 간 보다도 더 가까운, ‘참나’-나의 자성(自性) 그놈을 오늘 이 칠석날 법회에 참석함으로써 겨우 비로소 오늘 그 ‘참나’를 깨달을 수가 있다.

‘참나’를 깨닫는 방법을 이 ‘칠석법회라고 허는 오작교’를 인연해서 참나를 깨닫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만날 수가 있다. 아마 이렇게 풀이를 해 보는 것도 뜻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칠석날이 아니였으면 이리저리 바쁘다 핑계하고, 법회 참석허기가 어려웠을 텐데 이 칠석날 때문에 법회에 참석하니까, 오작교 때문에 견우와 직녀가 만난 것과 같은 그러헌 이치라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 조상들은 정말 그 소박한 토속 신앙으로 칠석날은 목욕재계(沐浴齋戒)를 해 가지고 쌀을 택미(擇米)를 해서 쌀을 한 자루 담고, 주머니에 꼭꼭 싸서 간직했던 주머니돈을 가지고 머리를 감고 그래 가지고 새 옷을 갈아입고서,
절로 가서 칠석날 칠석불공을 드리고서 아들딸의 수명장수를 빌고 모두 온 집안이 1년 동안 태평하기를 빌고 그렇게 정성스럽게 불공(佛供) 마지(摩旨)를 올리고서 그리고서 그 흐뭇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또 아들을 못 낳는 그런 분들은 생남 불공(生男佛供)을 하고 이렇게 해 가지고 다행이 태기(胎氣)가 있으면 틀림없이 칠성님이 점지해 주신 줄 알고 그 아들을 애지중지(愛之重之)하고 “너는 칠성님이 점지해 주셨기 때문에 절대로 불교를 배반해서는 안 된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당부를 하고 유언을 해 가지고,
일생동안 다른 종교의 유혹이 많건만 ‘절대로 나는 칠성님이 점지해 태어났기 때문에 다른 종교를 믿을 수가 없다’해 가지고 대대손손이 불교를 믿어오는 집안이 아마 적지 아니헐 줄 생각합니다.

그러헌 칠석날을 맞이해서 우리는 조실스님의 최상승 법문을 들었습니다. 언제나 조실스님은 최상승 법문을 여의고 설하신 적이 없지만 오늘은 유독 골수(骨髓)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첫째 이 최상승법을 믿을려면 맨 처음에 바른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야 한다. 선지식을 찾지 않고서는 결단코 정법(正法)을 만날 수가 없다.

선지식은 부처님으로부터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전해 내려오는 정법을 가지고 있는 분이기 때문에,
선지식을 의지해야만 정법은 들을 수가 있고 배울 수가 있고, 그 정법에 의지해야 나도 정법을 실천헐 수가 있고 정법을 실천해야 ‘참나’를 깨달을 수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4분53초~23분26초)

 

 

 



(2)------------------

우리는 세속에 태어날 때 많은 일들을 타고났습니다.
속담에 ‘일 다하고 죽은 무덤은 없다’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마는 일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해도 그 다음날 또 일헐 것이 있고 또 그 다음날 또 일헐 것이 있고 1년 열두 달 잠깐도 한가한 시간을 갖기가 어렵다 이 말씀이여.

남편을 위하는 일, 아들·손자를 위하는 일, 딸과 며느리를 위하는 일, 일가친척을 위하는 일, 그런 가정일 뿐만 아니라 사회·국가를 위하는 일, 크고 작은 일이 한도 끝도 없는데,
‘그 일을 다 끝내놓고 참선을 해야겠다’허면 영 참선헐 시간이 없어.

그래서 아까 조실스님께서는 요중선(中禪)이다, 조용한 가운데 허는 참선은 정중선(靜中禪)이라 그러고, 시끄러운 가운데 허는 참선을 동중선(動中禪) 또는 요중선이라 그러는데,

‘그 요중선을 헐 줄 알아야 참으로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실천헐 수가 있다.’ 이것입니다.

조용한 시간과 장소가 있어서 정식으로 죽비를 치고 참선을 헐 수 있다면 그것도 또한 다행한 일이지만 그러헌 시간과 장소는 여간해서 가질 수가 없어.

그래서 이 요중선을 허는 방법을 알아서 요중선을 해야 공부를 성취를 허지,
밤낮 복잡허다고 뒤로 미루고, 일이 많다고 뒤로 미루고, 시끄럽다고 뒤로 미루고, 장소가 없다고 뒤로 미루면, 미루다가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어느덧 10년 20년이 퍼뜩 지내가고 만다 이 말씀이여.

일에다 핑계를 대고 공부를 안 했다고 해서, 염라대왕(閻羅大王)이 ‘아, 너는 일이 많아서 못했지 신심이 없어서 못한 것이 아니니까, 에이! 너는 공부를 그렇게 못했지만 너는 극락에 보내주마’ 이렇게 되지를 안혀.

처자권속삼여죽(妻子眷屬森如竹)하고  금은옥백적사구(金銀玉帛積似坵)라도
나무~아미타불~
임종독자고혼서(臨終獨自孤魂逝)허니  사량야시허부부(思量也是虛浮浮)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처자권속(妻子眷屬)이 삼여죽(森如竹)하고, 처자(妻子)와 권속(眷屬)이 삼대같고 대와 같이 즐비하고,
금은옥백(金銀玉帛)이 적사구(積似坵)라도, 금과 은과 옥과 비단이 산더미같이 쌓여있다 할지라도,

임종독자고혼서(臨終獨自孤魂逝)라. 임종헐 때에는, 숨이 끊어져서 이승을 하직헐 때에는 처자·권속이 자기를 위해서 대신(代身) 가 주지를 못하는 것이고,

금은옥백이 아무리 많다고 해서, 이 세상에서는 돈·금 모다 그런 것이 많으면 그것을 뇌물을 써가지고 면하는 수도 더러있고 그렇지마는,
이승을 하직해 가지고 죽어가는 마당에는 산더미같은 금은옥백이 있다 하더라도 죽음을 면할 도리는 없어.

사량야시허부부(思量也是虛浮浮)라. 곰곰히 생각허니 정말 허망하기가 말 할 수가 없다 이 말씀이여.

조조역역홍진로(朝朝役役紅塵路)하고  작위자고이백두(爵位纔高已白頭)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염왕불파패금어(閻王不怕佩金魚)허니  사량야시허부부(思量也是虛浮浮)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조조역역홍진로(朝朝役役紅塵路) 아침부터 저녁까지 날이면 날마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홍진로(紅塵路).
작위자고이백두(爵位纔高已白頭)로구나. 벼슬이 어느 정도 올라가서 이제 참 소원을 이루었다 싶으면 벌써 흰머리가 나 버리고 만다 이말이여.

염왕불파패금어(閻王不怕佩金魚)인데, 세속에서는 무슨 국장이다·장관이다·과장이다 벼슬이 높으면 모다 그 사람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우러러보고 그러지만,
염라대왕 앞에 가면 아무리 높은 벼슬·훈장을 차고 가도 염라대왕은 눈도 거들떠보지도 않어. 그러니 생각해보면 이것도 또한 허망허기가 그지가 없구나.

세상 사람들은 처자를 잘 먹이고 잘 입히고 호강을 시키기 위해서 그 헐 짓, 못헐 짓 허다가 죄도 많이 짓고 그러는데, 기왕 본의 아니게 돈을 벌고 벼슬을 하고 명예와 권리를 얻기 위해서 애를 썼으면,
부모를 위해서 그것을 요긴하게 써 보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그말이여.

아내와 자식 그것은 응당 남편으로서 자기에게 따르는 식구이기 때문에 응당 잘 먹이고 잘 입혀야 되겠지만, 분에 넘치게 잘 입히고 잘 먹였다고 해서 나라에서 상을 주거나 누가 비석을 세워 주거나 누가 칭찬한 사람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부모에게 잘하면 효자문(孝子門)도 세워 주고, 설사 지금은 효자문 같은 것을 여간해서 세우는 일이 없지만 그래도 효부상이다, 효자상이다 그런 표창제도가 지금도 다 있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하면 부모한테 잘허는 것은 나라에 충성한 것과 똑같이 훌륭한 일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부모가 없으면 이 몸뚱이가 어디서 태어났냐 이말이여. 부모로 인해서 이 몸뚱이를 받아났기 때문에 이 몸뚱이가 있으므로 해서 하늘도 있고 땅도 있고 나라도 있고 처자 권속도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이 세상에서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이 소중허다 하더라도 내 몸이 제일 소중한 거여. 내 몸이 소중한데, ‘이 소중한 내 몸이 있는 것은 어떻게 해서 있어졌는냐?’하면은 부모로 인해서 있어졌다 그말이여.

부모가 아니 계셨다면 이 몸뚱이는 태어나지를 못했고,
부모가 나를 열 달 동안을 뱃속에 그렇게 조심스럽게 잘 태중에서 길러가지고, 그 하늘과 땅이 딱 닿아버릴 정도에 그 무서움과 괴로움을 겪으면서 나를 출산을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그 똥오줌 가릴 때까지 그 더러운 줄 모르고, 정말 그 진자리 마른자리를 갈아 뉘시면서 젖을 먹이고 밥을 먹이고, 그래 가지고 키워서 학교를 보내고,

형편이 넉넉한 분은 넉넉한대로 형편이 어려운 분은 어려운대로, 피땀을 흘려서 그 자식을 맥이고 가르켜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가리키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하셨느냐.
생각해보면 자기가 그 자식을 길러보지 않고서는 상상으로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헌 부모에게 효도(孝道)를 헌다고 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정말 그 효도를 허기가 그렇게 어려워.
자식한테 잘한 것은 가르키지 아니해도 스스로 우러나와서 자동적이요 자발적으로 자식한테는 잘해지게 되는데 부모한테 잘허는 것은 큰 마음을 먹어야 해지게 된다 그말이여.

 옛날에 어떤 참 훌륭한 학자 선비가 있었는데 부모가 병환이 났을 때에는 하루 저녁에 세 번을 부모 방에 들어가서 어떻게 잠을 잘 주무시는가, 어떻게 크게 보대끼시지는 않은가.
그래서 세 번을 들어가서 병문안(病問安)을 했는데, 병문안을 하고 나와서는 자기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코을 골고 잤다 그말이여.
한숨 실컷 자고 나와서는 또 갑자기 놀래서 일어나 깨 가지고 또 부모 방에 들어가서 문안을 여쭙고 또 돌아와서는 또 한숨 푹 자고 그랬는데,

자식이 죽을 병이 들어가지고 자식이 병을 앓고 있을 때에는 자식 방에 한번도 가보지도 않고 자기 방에 가서 있어도, 한숨 잠을 못 잤다 그말이여. 그러니 이게 어떻게 된 말씀이냐 이말이여.

부모한테 세 번을 가서 부모 방에 들어가서 문안을 헌 것은 지어서 헌 것이고, 자식이 아픈 것은 진짜 잠이 안 왔다 그말이여. 잠이 안 와.
이것이 오늘 저녁이라도 죽을 것인가, 숨을 거둘 것인가, 다행히 살아날 것인가, 오늘밤을 못 넘길 것인가. 아무리 잘라고 누웠어도 초롱초롱 잠이 안 왔다 그말이여.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걱정허는 것은 이것은 자발적이여. 사람 뿐만이 아니라 짐승도 똑같다 그말이여.

그러니 ‘부모가 자식한테 잘하라, 자식한테 잘하라’란 말은 사서삼경을 다 읽어 봐도 별로 그런 소리 없고,
부모한테 잘하란 말은 사서삼경에 구구절절이 써 있고, 팔만대장경에도 구구절절이 부모한테 잘하란 말이 써 있고,

옛날 중국에서 인재를 뽑을 때에는 모든 시험을 필기 시험도 보고, 구두 시험도 보고, 모다 자격시험을 보지만 마지막에 가서 최종 간택을 헐 때에는 ‘부모헌테 효도를 헌 사람이냐, 안 헌 사람이냐' 그거를 가지고 최종 선발을 했다 이 말씀이에요.

왜 그러냐 하면 부모에게 효도를 헌 사람이라야 나라에 충성을 헐 수가 있기 때문에 그랬다 이 말씀이여.
부모한테 불효한 사람은 아무리 학문이 훌륭하고 능력이 있고 그렇다 하더라도 결국은 역적질을 허거나 사기 횡령을 하거나 국가를 배반허고 말아 버린다 그말이여.
그래서 진짜 인물을 뽑을 때에는 ‘부모에게 효도를 헌가, 안헌가’에 의해서 최후에 분별을 했다 이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처자·권속을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이 세상에 참 부러운 것이 없다’헌 분이 많으실줄 생각하지만,
냉정히 가슴에다 손을 대고 ‘내가 과연 부모에게 얼마만큼 효심이 있는가, 부모에게 내가 얼마만큼 효도를 했는가’ 냉정히 반성을 해 보셔서,

내가 과히 그렇게 부모에게 불효는 헌 일은 없다 혹 그만큼 생각이 든다 하더라도, 부모의 은혜를 갚는데에는 한(限)이 없는 것인 만큼 더욱 효도를 할 것이고,
정말 양심적으로 반성을 해서 불효를 했다고 생각이 드신 분은 오늘부로 깊이 참회(懺悔)를 하고 새 마음으로 부모에게 효도를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4분53초~42분48초)

 

 



-------------------(1)

*토속 신앙(土俗信仰) ; 그 지방에 내려오는 고유한 신앙.
*칠성(七星) ;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신격화한 것으로 칠성에 대한 신앙은 특히 중국의 도교에서 발달하여 이후 ①불교에서 칠성은 호법선신(護法善神)의 하나로 수용되었고 ②민간에서는 특히 수명과 재복을 관장하는 신으로 믿어졌다.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오복(五福) ; 인생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다섯 가지의 복. 보통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덕을 좋아하여 즐겨 행하는 일), 고종명(考終命-사람이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음)을 이르는데, 유호덕과 고종명 대신 귀(貴)함과 자손이 중다(衆多)함을 꼽기도 한다.
*법요식(法要式) ; 불사(佛事-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를 할 때 행하는 의식.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선방편(善方便) ; 선교방편(善巧方便). 방편에 정교한 것. 뛰어난 수단.
부처님이 법(法)을 설함에, 교묘하게 잘 중생의 근기(根機)에 따라 여러가지 방법·수단을 사용하는 것.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생전예수재(生前預修齋) ; 죽은 후에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하여 생전에 미리 올리는 재(齋).
*재(齋 재계할 재) ; ‘재(齋)’란 본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신·구·의 3업(身口意 三業)을 깨끗하게 하여-악업(惡業)을 짓지 않아-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방식을 의미하였다가, 점차 불보살에게 공양을 올리며 그 공덕을 함께하기를 기원하는 불교의식을 일컫는 말로 정착되었다. 또한 법회 때 스님이나 속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근래에는 특히 돌아가신 영가를 위한 천도재(薦度齋)가 널리 행해짐에 따라 보통 ‘재=천도재’로 여긴다.
*가사(袈裟) : [범] kasaya  범어를 음대로 쓴 것인데, 뜻대로 번역하면 잡색(雜色) • 염색(染色) 곧 순색이 아닌 옷을 말한다。인도는 더운 곳이므로 속인(俗人)들은 모두 흰 옷을 입는데, 출가한 이는 그 옷을 달리하기 위하여 염색하되 검박한 빛으로 하게 되었다.
또한 품질이 좋은 새 옷감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이것 저것을 주워 모아서 누더기같이 만들었는데, 크고 작은 세 가지(三衣)가 있어서, 다섯 폭으로 된 것(五條)은 일할 때에 입고, 일곱 폭으로 된 것(七條)은 보통 때에 입고, 아홉 폭(九條)으로부터 스물 다섯 폭(二十五條)까지는 법회와 예식에 입게 된다。그러므로 인도의 승려들은 이 세 가지밖에 다른 옷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러나 불교가 기후 풍토와 인정 풍속이 같지 아니한 여러 지방에 전파되면서, 가사의 빛도 황색 또는 적색의 보기 좋은 빛으로 변하게 되고, 바탕도 비단으로 하게까지 되었다.
그 모양도 온갖 복덕이 이 법복(法服)으로 말미암아 심어지고 성숙(成熟)되는 것이라 하여, 복을 심는 밭(福田)을 상징(象徵)해서 규모가 반듯하고 법다운 밭두렁과 같은 것으로 하게 되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불교를 신앙하는 여러 나라와 그 종파에 따라 모양도 달리 한다.
또한 북방의 여러 나라에서는 추운 곳이기 때문에, 보통 입는 의복 위에 장삼(長衫)을 입고, 그 위에 다시 가사를 입게 되므로, 가사와 장삼이 함께 법복이 된다.
*보살계(菩薩戒) ; 대승의 보살이 받아 지켜야 할 계율. 대승계(大乘戒)라고도 한다.
「범망경」에서 설하는 십중금계(十重禁戒)·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와 「선계경(善戒經)」에서 설하는 삼취정계(三聚淨戒)등을 말함.  이 삼취정계 안에는 율의계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대승계 속에는 소승계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삼취정계란 ①부처님이 정한 규율을 지킴으로써 악행을 막는 섭률의계(攝律儀戒), ②한걸음 더 나아가 선행을 하는 섭선법계(攝善法戒), ③중생을 교화하고 그 이익을 위해 힘을 다하는 섭중생계(攝衆生戒)를 말한다.
*산림(山林) ; 절에서 불경(佛經)을 강설(講說)하는 모임. 산림(山林)’의 뜻은 “최절인아산(摧折人我山) 장양공덕림(長養功德林)”이라는 말에서 따온 것으로 “너다 나다 잘난체하는 아상과 교만의 산을 허물고, 공덕의 숲을 잘 가꾸라”는 뜻이다.
*방생(放生) ; 사람에게 잡힌 물고기나 새, 짐승 따위를 산이나 물에 놓아서 살려 주는 일. 불교도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첫째 계(戒)인 불살생계(不殺生戒)보다 적극적인 선을 실천하는 선행(善行)이다.
*개금불사(改金佛事) ; 불상(佛像)에 새로 금칠을 하는 것과 그때 행하는 의식.
*범종(梵鐘) ; 절에서 시간을 알리거나 사람들을 모을 때, 또는 의식을 행하고자 할 때 쓰이는 종(鐘)을 말한다. 법구사물(法具四物)-범종(梵鐘), 법고(法鼓), 운판(雲版), 목어(木魚)-의 하나.
범종은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고, 법고는 가축이나 짐승을 제도하며, 운판은 공중을 떠도는 영혼, 특히 새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고, 목어는 물고기들의 영혼을 제도한다.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동참(同參) ; 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보시(布施) : [범] dana  음을 따라 단나(檀那)라고도 쓴다。남에게 베풀어 준다는 뜻이다.
재물로써 주는 것을 재시(財施)라 하고, 설법하여 정신의 양식과 도덕의 재산을 풍부하게 하여 주는 것을 법시(法施)라 하고, 계를 지니어 남을 침해하지 아니하며 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게 하여 주는 것을 무외시(無畏施)라 한다.
*희사(喜捨 기쁠 희, 버릴 사) ; 보상을 구하지 않고, 기쁘게 재보(財寶)를 베푸는 것. 정사(淨捨)·정시(淨施)라고도 함.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간택(揀擇) ; 분간(分揀)하여 고름.
*국집(局執) ; 마음이 확 트이지 못하고 어느 한편에 국한(局限), 집착하는 것. 사리(事理)를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에 얽매이거나 자기의 소견만이 옳다고 고집하여 매우 답답한 모습을 말한다.
*까막까치 ; 까마귀와 까치를 아울러 이르는 말.
*은하수(銀河水) ; ‘은하(銀河-천구상에 남북으로 길게 보이는 수억 개의 항성 무리)’를 강물에 비유하여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목욕재계(沐浴齋戒) ; 제사나 중요한 일 따위를 앞두고 목욕을 하여 몸을 깨끗이 하고 부정(不淨)을 피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일.
*택미(擇米 가릴 택,쌀 미) 벼를 찧은 쌀(米)에서 돌과 뉘를 가려내는(擇) 것.
* ; 벼를 찧은 쌀 속에 벼껍질이 벗겨지지 않은 채로 섞인 벼 알갱이.
*마지(摩旨) ; 부처님께 올리는 밥.
*점지 ; 신령이나 부처님이 사람에게 자식을 잉태(孕胎)하게 하여 줌.
*애지중지(愛之重之) ; 매우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골수(骨髓) ; ①마음속 깊은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요점이나 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등등상속(燈燈相續) ; 등(燈)은 중생의 무명(無明)을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등(燈)에 비유한 말, 이 진리의 등(燈)을 스승이 그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이어짐을 일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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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중선(中禪) ; 시끄러운 가운데 하는 참선. 동중선(動中禪)라고도 한다.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게송) 처자권속삼여죽(妻子眷屬森如竹)~ ; 부설거사 사부시(四浮詩) 참고.
*帛(백)비단. 명주. *坵(구)언덕. 구릉. 산.
*처자(妻子) ; 아내와 자식을 아울러 이르는 말.
*권속(眷屬) ; 한집에서 거느리고 사는 식구.
*(게송) 조조역역홍진로(朝朝役役紅塵路)~ ; 부설거사 사부시(四浮詩) 참고.
*役役(부릴 역)-몸을 아끼지 않고 일에만 힘을 씀. *紅塵(홍진)-번거롭고 속된 세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佩(패)차다. 지니다. *金魚(금어)-신라 말기ㆍ고려 시대에, 공신 등 특별히 하사받은 사람이 관복을 입을 때에 차던 붕어 모양의 금빛 주머니.
*효자문(孝子門) ; 효자를 표창하여 널리 본을 보이는 뜻으로 세운 정문(旌門).
*병문안(病問安) ; 앓고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병세를 알아보고 위로하는 일.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Posted by 닥공닥정
법문 듣는 법2014. 5. 31. 15:57

<핸드폰에서, 아래 법문은 위 유튜브에서 29분 51초부터 시작됩니다>

 

 

§(240) 법문듣는 법 / 법문을 듣고 있는 이 순간에도, 자기 본참화두의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을 해야.


**송담스님(No.240)-84년 하안거 결제 및 백일기도 입재 법회에서. (용240)

 

약 5분.


오늘 갑자년 4월 15일 하안거 결제 법요식에 사부대중이 이렇게 모이셨는데, 그 법문(法門)을 듣고 무엇을 많이 알기 위해서 법문을 들은 것이 아니라,

이 법문을 통해서 자기가 무엇인가 집착하고 있는 그 생각이 떨어진다면, 그건 좋은 생각에 집착했더라도 마찬가지고 더군다나 옳지 못한 생각에 집착했을 때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 집착한 마음이 떨어진다면 여기까지 오셔서 법문을 들은 공덕이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무슨 법문을 들었어도 그 법문에 국집(局執)을 하면 좋은 약을 먹고서도 그 약에 중독(中毒)이 된거와 같애요.

그 약을 먹은 것은 속에 병이 떨어지라고 먹는 것이지, 그 약을 먹고 약에 중독이 되서 부작용이 일어난다면 그 약을 차라리 안 먹은 것만도 못하거든.

오늘 법요식뿐만이 아니라 팔만대장경 경전도 역시 마찬가지고, 부처님과 역대조사가 설하신 모든 법문이 또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법(法)에 국집하면 - 아주 신심 있는 이는 그 법에 매우 깊이 국집을 하는 수가 있는데, 그 국집을 한다면 부처님 법문을 옳게 가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언젠가도 말씀을 했고 금강경에도 그런 말씀이 있지마는,

법(法)이라 하는 것은 강을 건너가는 배와 같은 것이다. 그 배는 강을 건너는 데 목적이 있지, 강을 건너가지고서도 그 배를 짊어지고 다닌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법에 국집해도 못쓰거든 하물며 법 아닌 것에 있어서랴」 금강경에 분명히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 이 법문을 듣고 있는 이 순간에도, 자기의 화두를 놓아 버려서는 아니 되거든.
법문을 들을 때일수록 자기의 화두가 더욱 성성(惺惺)하게 잘 들려져 있어야 하거든.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를 하시는 분은 ‘이뭣고?’
「판치생모」 화두를 하시는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정전백수자」하시는 분은 ‘어째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 했는고?’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을 해야 하거든.

그 알 수 없는 화두가 들어져 있는 상태에서 법문을 들어보면 법문이 더욱 더 잘 들리고,
비단 법문 들을 때뿐만이 아니라, 생활을 허면서 밥 먹을 때에도 그렇고, 세수할 때도 그렇고, 차를 탈 때에도 그렇고,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그 화두가 항시 들려져 있는 상태에서 모든 일을 하시도록 그렇게 다그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29분3초~33분1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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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국집(局執) ; 마음이 확 트이지 못하고 어느 한편에 국한(局限), 집착하는 것. 사리(事理)를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에 얽매이거나 자기의 소견만이 옳다고 고집하여 매우 답답한 모습을 말한다.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언하대오(言下大悟)] (용화선원) p53 에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곳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인연 비유2014. 5. 11. 14:34

§ 숯쟁이 영감 / 정법(正法)을 믿는 마음으로 인과설을 들으면 그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 되는 것입니다 / 인과의 법칙을 인증(認證)하면서도 거기에서 초월하는 길이 불법(佛法)이다 / 숙명론(宿命論).

정법(正法)을 믿는 마음으로 들으면 인과설을 들어도 그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 되는 것입니다. 인과설을 듣고서 거기에서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거기서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잘못된 자기의 성격을 고쳐 나가고 참으로 이 정법을 바로 믿고 실천할 수 있게 된다면, 인과설이 바로 최상승법이 되는 것입니다.


인과의 법칙을 똑바로 인식하면서도 거기에서 초월하는 길, 이것이 바로 불법(佛法)을 옳게 믿는 것입니다. 인과의 법을 잘못 인식하면 숙명론(宿命論)이나 운명론(運命論)에 떨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또 인과의 법칙을 인정을 안 하면 그것은 올바른 생각을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특히 속이 상할 그때를 ‘더 내가 공부할 때다, 내 공부를 시험할 때이고, 내 공부를 한 계단 더 나아가게 헐 수 있는 좋은 과제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 절에 와서 계시는 분 못지않게 가정에서 열심히 정진을 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합니다.


**송담스님(No.240)-84년 하안거 결제 및 백일기도 입재 법회에서. (용240)

 

약 21분.

 


언젠가 그 정승(政丞)을 한 사람이 마누라가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어서 찾어봤더니 저 강원도 산골짜기의 숯쟁이 영감한테 가서 살고 있게 된 것을 발견을 했어.
그래서 그 할머니 보고  ‘왜 와 버렸냐?’고 ‘따라가자’고 허니까, ‘싫다’고 숯쟁이 영감이 좋으니까 거기서 살겠다고 안 와.

그래서 기가 맥혀서 정승이고 판서고 다 소용없고,
대관절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저 할망구가 나 같은 - 이 임금님 밑에는 이 나라에서 내가 최고인데, 나를 버리고 저 천하에 보기 싫게 생긴 숯쟁이 영감한테 반해가지고 저리 가버렸냐? 너무너무 궁금하고 기가 맥혀서,

그길로 오대산에 들어가 가지고 스님한테 물어봤더니, ‘그것은 당신이 스스로 참선을 허면 숙명통(宿命通)이 열리면은 그것을 알 수 있을 테니까 어쨌든지 참선을 하라고’

너무너무 분하고, 속이 상하고, 또 의심이 나고 한 바람에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그저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배고프면 한 숟갈 얻어먹고, 그렇지 않으면 말고 허면서 3년간을 죽어라하고 공부를 했는데,

아! 그까짓 것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그런 것 알 생각을 말고 오직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원(願)을 세우고서 공부를 해야 할 텐데,
하도 마누라 도망가 버린 것이 분하고 억울하고 가슴이 아퍼서 마냥 그 생각을 속에다 꼭 가지고서 자나깨나 참선을 했는데,

아! 툭 터져 가지고 터진 것이 누진통(漏盡通)을 한 것이 아니라 숙명통(宿命通)이 터져 가지고 보니까, 전생(前生)에 자기가 그 오대산에서 공부한 스님이었었다 그말이여.
그런데 이 이야기를 그전에 해서 알고 계신 분도 많겠지만, 그 할멈은 무엇이냐 하면 전생에 자기 누데기 속에서 살고 있던 '이'였었다 그말이여.

누데기 속에서 '이'가 되어가지고 사는데 그놈이, 겨울에 누데기를 빨 수가 없어서 한 해 겨울을 누데기를 빨지 않고 입은 바람에, '이'가 그 속에서 차츰차츰 큰 것이 상당히 커졌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것을 똑 까서 죽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밖에다 버리면 얼어죽을 것 같고,
이것도 다 전생의 인연이니까 누데기 속에서 살어라 해 가지고, 가려우면 요리 떠들고 보면 크막한, 보리쌀만한 '이'란 놈이 거기서 피를 빵빵허니 빨아먹고 거기서 뻐르적뻐르적 뻐르적하는데,

그놈이 새끼를 쳐 가지고 새끼도 여럿 낳고, 그놈을 집어내 놓고 심심하면 지대방에서 씨름도 시키고 달음박질도 시키고 그랬는데 그렇게 한 해 겨울을 지낸 다음에 인자 누데기를 벗어서 빨게 되는데,
그 누데기를 벗어서 빠는데 그냥 갖다가 삶으면 '이'가 죽을 것 같아서 그 마치 개가 왔길래 개한테다 '이'를 다 건너주어 버렸다 그말이여.

‘그 개한테 가서 잘 살어라’ 그러고 보냈는데, 아! 그 개가 숯쟁이 영감이 되었어.
그 스님한테 있는 동안에는 정승·판서 마누라 노릇을 허다가, 그 개한테 건너간 그 시절이 돌아오니까 어떻게 찾어갔는지 그 산중에 - 서울 사는 그 정승부인이 보따리 하나 싸 짊어지고 그 무작정 걸어간 것이 그 강원도 산중으로 해서 숯쟁이 영감을 찾어가게 됐다 그말이여.

대번에 숯쟁이 영감 집에 간 것이 아니라, 강원도 어느 장터에 가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까 숯쟁이 영감을 보니 숯쟁이 영감하고 이야기가 되어 가지고 눈이 맞아서 결국은 졸랑졸랑 따러가게 됐어.

가서 보니 생전 처음 만나 - 그 정승의 부인으로서 얼마나 고귀한 집안에서 호강을 하고 살았겠습니까마는, 아! 그 숯쟁이 영감 첫눈에 그냥 그 전에부터서 같이 살던 사람과 같이 그렇게 남같이 느껴지지를 않고 대번에 그냥 따라가는데 조금도 서슴이 없이 따라갔다 그말이여.

이조 때만 해도 남녀가 분명해서 외간남자(外間男子) 하고는 함부로 얘기도 못허고 그러는데, 대번에 첫눈에 그냥 싹 마음에 들면서 기분이 좋다 그말이여.
그래서 따라가 가지고 그 숯쟁이 영감하고 당장 물 한 그릇 떠 놓지도 않고 그냥 사는데, 정승이 자기 본 남편이 와서 그렇게 가자고 그냥 눈물을 흘리면서 손을 잡고 사정을 해도 다 소용이 없고,
팔팔 잡아떼고 안 가는 바람에 영감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이 억장이 무너져 가지고 울면서 오대산을 찾아가 가지고 결국은 그 전생사(前生事)를 다 알게 됐다 그말이여.

지금 내가 이 이야기는 인과설(因果說)을 이야기하자고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고, 참선(參禪) 이야기만 허면 꾸벅꾸벅 졸고, 어째서 멀쩡허니 앉어서 잡담을 허거나 그럴 때에는 눈이 초롱초롱하다가도 참선 법문만 허면 꾸벅꾸벅,
조실스님 법문에도 ‘그 꼬라지 보기 싫으니까 눈을 감고 법문(法門)을 한다’ 그러셨는데,

‘왜 참선법을 들으면 졸음이 오냐?’허면, 이 참선법을 바로 듣고 바로 공부를 하게 되면 마군(魔軍)이가 자기의 궁전이 흔들리고 자기의 영토가 좁아지고 자기의 모든 것이 다 권속이 멸망이 되니까,
그래서 그 법문을 못 듣게 허기 위해서 온 천하에 마군이는 그 참선 법문 듣는 사람의 눈탱이로 다 올라붙었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눈을 갖다가 잡어 누르는 바람에 아무리 정신을 채리고 눈을 부릅뜰려고 해도 안 된다 그말이여. 손톱으로 허벅지가 멍이 들도록 집어뜯어도 눈탱이 무거운 것은 안 없어져.

그래서 이 참선법을 얘기하면은 조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가끔 이런 인과설도 얘기하게 되는데, 정법(正法)을 믿는 마음으로 들으면 인과설을 들어도 그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 되는 것입니다.

인과설을 듣고서 거기에서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거기서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잘못된 자기의 성격을 고쳐 나가고 참으로 이 정법을 바로 믿고 실천할 수 있게 된다면, 인과설이 바로 최상승법이 되는 것입니다.

신랑이 멀쩡한 나무랄 데 없이 이쁘고 얌전하고 솜씨있고 한 자기를 놔두고, 한눈을 팔고 첩을 얻거나 외박을 하거나 그러헌 분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이 숯쟁이 영감과 그 정승 판서 부인을 생각해보면 ‘아! 이것이 내가 전생에 지은 업(業)의 인연(因緣)으로 이런가 보다’ 내가 미웁고 내가 싫어서 나를 버린 것이 아니라,
전생에 내 몸 안에 살던 '이'를 내가 개한테 건네주었기 때문에 나하고는 비교가 되지 아니 할만큼 그렇게 못 생기고 천한 숯쟁이 영감한테 간 그 정승의 부인을 생각을 해서,

남편을 미워하고 원망하거나 또는 남편이 좋아하는 그 여자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갖은 수단을 써서 기어이 뗄라고 하고,
뭣한 이는 남편의 그것을 알기 위해서 그런 남의 뒷조사 잘하는 그런 데다가 돈을 많이 주고 부탁해 가지고 그 뒷조사를 시키니까, 하다 보니까 남편의 법에 저촉된 잘못된 것이 드러나 가지고 그 여자 밝혀낼라다가 남편을 쇠고랑을 차게 허는 그런 참 웃지 못 할 이야기도 있습니다마는,

그런다고 바가지를 긁고 싸움을 한다고 해서 남편이 자기한테 돌아오는 것이 아니고, 그럴 때 알면서도 모르는 듯 오히려 더 가정에 충실하고 남편에게 잘하고 애들한테도 잘하고 그러면서도 인과법을 철저히 인식을 해가지고 이 참선을 열심히 허신다면,
남편도 용서가 되고 자기도 억울하고 분한 생각이 없어지면서 참으로 인생을 똑바로 보고 살게 되고, 더 훌륭한 아내로서 가정주부로서 엄마로서 하루하루를 뜻있게 살 수 있고,
오히려 그런 것이 계기가 되어가지고 진실하게 발심을 해서 도를 닦을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살아가면 남편이 잠시 바람을 피우다가도 다시 내 집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로 인식을 못하고 기다릴 줄을 모르고 계속 강짜를 부려가지고 기어이 아주 죽여서라도 그것을 뗄려고 하면 무장 더 되게 들어붙는 거고,
처음에는 그래도 비밀리 지낼 때에는 가정에 대해서도 남편으로서 최소한도로 의무를 다허고 그러다가, 자기 부인이 정말 그 내용을 확실히 알고 강짜를 부리기 시작허면 인자 형식마저도 지키지 아니하고 아주 남남이 되고 원수가 될 수 밖에 없게 되고, 나중에 다시 가정에 돌아오지 않고 마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부부간의 인연이라 하는 것은 전생에 그렇게 맺어서 또 만나게 되는데, 남편이 외도를 허는 것이나 부인이 바람을 피우는 것이나 이러헌 관계가 다 전생에 자기가 그렇게 지어 가지고 그러헌 남편을 만나게 되고, 또 그런 아내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전생에 참 많은 여자를 울리고 그렇게 난잡허게 지낸 사람은 그 사람이 금생에 여자로 태어나 가지고 그렇게 행실이 얌전하고 얼굴도 참 이쁘고 솜씨도 좋고 허면서도 계속 남편한테 소박(疏薄)을 당하는 그러헌 예도 많습니다.

이 세상의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인과의 법칙에 어긋난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든 물질에 이르기까지도 전부 정확한 인과의 법칙에 의해서 모든 것이 생성이 되고 변해가고 이렇게 자꾸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과법을 한낱 권선징악(勸善懲惡)하기 위한 하나의 이야기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고, 이것은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나듯이 추호(秋毫)도 어김이 없는 것입니다.

내 마음으로 ‘한 생각’ 잠깐 먹은 것도 그것이 한데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런 것까지도 낱낱이 다 현실화되고 마는데, 하물며 내 입을 통해서 밖으로 표현이 되고 행동을 통해서 밖에 표현이 된 것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이 더 구체적으로 실현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그러헌 인과의 법칙을 인증(認證)하면서도, 철저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인증하면서도, 거기에서 초월하는 길이 바로 이 불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인과의 법칙을 부정(否定)하고 인증을 아니 한 것이 아니라, 그대로 인증을 하고 틀림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거기에서 초월하는 길이 바로 이 불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잘못 인식하면 인과를 갖다가 부정해 버리는 그러한 데에 떨어질 수가 있는데,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또 인과의 법칙을 잘못 이해하면 거기에 딱 국집(局執)을 해서 구속이 당해가지고 자유를 얻지를 못하는 그것도 또한 잘못된 것입니다.

인과의 법칙을 똑바로 인식하면서도 거기에서 초월하는 길, 이것이 바로 불법(佛法)을 옳게 믿는 것입니다.

인과의 법을 잘못 인식하면 숙명론(宿命論)이나 운명론(運命論)에 떨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또 인과의 법칙을 인정을 안 하면 그것은 올바른 생각을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현대인들은 인과의 법칙을 인정(認定)을 할려고 하지 아니하고 부정을 해버리고 그럽니다마는 그런 사람은 극도의 근시안(近視眼)이 되어 가지고 아직 귀가 맥혀 갖고 있어서, 이 과학이라고 하는 것이 지금 매우 유치한 단계에 있는 것이지 과학이 그렇게 훌륭하게 발달되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정도의 과학은 4천 년 전에 이미 다 발달이 되어 있었고, 만 년 전에는 더 과학이 발달된 때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마야 문명이라든지 모다 그런 것이 지금 땅 속에서 바다 속에서 현대 문명보다도 훨씬 발달된 문명의 자취가 지금 다 발굴이 되어 갖고 있는 것을 볼 때에 오늘날 과학이란 것은 별로 바람직하게 발달을 못했고, 또 발달했다는 것이 유치한 단계에 놓여있다.
과학이 발달했지만 인간을 쪼끔 편리하게는 해주었다고 할 수 있으나, 인간을 갖다가 매우 해롭게 허는 나아가서는 인류를 멸망하게까지 하는 그러한 바람직하지 못한 방면으로 발달이 되어서 매우 우려되는 바입니다마는.

 

우리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은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 참으로 위대한 우리의 살길이 있는 줄을 모르고 그 유치한 단계에 있는 과학에 빠져 가지고, 그나마 그것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꺼떡허면 불교를 미신(迷信)이라고 이렇게 비방을 하고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 때문에 이 세계는 점점 병들어 가고 살기가 어려운 그러한 세계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불자들은 철저하게 인과법을 믿고 옳게 인식을 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정법에까지 나아가서 실천을 해 나가야만 우리 자신도 바르게 그리고 참되게 살아가는 것이고,
어리석고 불쌍한 인류들을 바르게 살아가고 참다운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 줄 큰 그리고 절박한 의무가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고 하는 것을 인식을 하시고, 금년 여름 안거 동안을 보다 더 철저하게 정진(精進)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방부를 들인 보살님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들도 정신적으로는 방부를 들인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가정에서 생활을 하시는 가운데에 무엇을 하시거나, 앉어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또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괴로울 때도 ‘이 무엇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특히 속이 상할 그때를 ‘더 내가 공부할 때다, 내 공부를 시험할 때이고, 내 공부를 한 계단 더 나아가게 헐 수 있는 좋은 과제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 절에 와서 계시는 분 못지않게 가정에서 열심히 정진을 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합니다.(48분14초~69분2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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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의 하나로,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의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다 아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누진통(漏盡通) ;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①신족통(神足通) ②천안통(天眼通) ③천이통(天耳通) ④타심통(他心通) ⑤숙명통(宿命通) ⑥누진통(漏盡通)-이 있는데,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누데기 ; ‘누더기(누덕누덕 기운 헌 옷)’의 사투리.
*외간남자(外間男子) ; 여자가 상대하는, 남편이나 친척이 아닌 남자.
*억장이 무너지다 ; 극심한 슬픔이나 절망 따위로 몹시 가슴이 아프고 괴롭다.
*억장 ; ①‘가슴’을 속되게 이르는 말. ②억장(億丈)으로 '썩 높은 것. 또는 그런 높이.'
*전생사(前生事) ; ①'전생(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살았던 삶)'에 있었던 일. ②'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는 이미 지나간 일'을 일컫는 말.
*인과(因果) ; ①원인과 결과. 현상을 생성시키는 것과 생성된 현상. ②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는 이치. ③선악의 행위에는 반드시 그 과보가 있다는 도리.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로 좌선(坐禪) 수행을 말한다.
*꼬라지 ; ‘꼬락서니(사람의 모습이나 행색을 속되게 이르는 말)’의 사투리.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눈탱이 ; 눈퉁이(눈두덩의 불룩한 곳을 속되게 이르는 말.)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업(業) ; 업(業)은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을 말한다. 그리고 이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그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강짜 ; ‘강샘(결혼한 상대자나 자신이 좋아하는 이성(異性)이 다른 이성을 좋아할 경우에 지나치게 시기함)’을 속되게 이르는 말.
*무장 ; 갈수록 더. 더욱. 한사코.
*소박(疏薄 멀리할·거칠 소,엷을·업신여길 박) ; 아내나 첩을 인격을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모질게 대함.
*권선징악(勸善懲惡 권할 권,착할 선,혼날 징,악할 악) ; 착한 일을 권장하고 악한 일을 징계함.
*추호(秋毫 가을 추•가는 털 호) ; ‘추호도’, ‘추호의’의 꼴로 쓰여, 가을에 짐승의 털이 매우 가늘어지는 데에서 가을 털끝만큼 ‘매우 조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한데 ; ①사방, 상하를 덮거나 가리지 아니한 곳. 곧 집채의 바깥. 노천(露天). ②일정하게 정하여진 자리가 아닌 다른 곳.
*인증(認證) ; 인정(認定)하여 증명(證明)함.
*부정(否定) ; ①그렇지 않다고 단정함. 또는 그렇다고 인정하지 않음. ②옳지 않다고 반대함.
*국집(局執) ; 마음이 확 트이지 못하고 어느 한편에 국한(局限), 집착하는 것. 사리(事理)를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에 얽매이거나 자기의 소견만이 옳다고 고집하여 매우 답답한 모습을 말한다.
*숙명론(宿命論) ; 운명론(運命論). 모든 일은 미리 정하여진 필연적인 법칙에 따라 일어나므로 인간의 의지로는 바꿀 수 없다는 이론.
세상이나 인생의 모든 것이 숙명(宿命-날 때부터 타고난, 정해진 운명)에 의해 예정되고 절대적으로 지배받는다고 보아 인간의지의 자유와 창조는 인정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무력하다는 주장.
*인정(認定) ; 확실히 그렇다고 여김.
*근시안(近視眼) ; 눈앞의 일에만 사로잡혀 먼 앞날의 일을 짐작하는 지혜가 없거나 소견이 좁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Posted by 닥공닥정

§(240) 「내 마음을 찾는 것」이 참선인데, 「찾는 그놈을 되찾는 것」 / 참선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도 어디에라도 붙으면 안 된다 / 다맛 알 수 없는 의심만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잡드리 해 가야.

‘이뭣고?’ 이렇게 허되, 그 속의 뜻은 「지금 ‘이뭣고?’하는 이놈이 무엇이냐?」 그말이거든.
이 화두 하나만 제대로 들어 버린다면 견성하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고, 성불하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고, 생사해탈하기를 바랠 것도 없는 것입니다.


법문(法門)을 듣고 무엇을 많이 알기 위해서 법문을 들은 것이 아니라, 이 법문을 통해서 자기가 무엇인가 집착하고 있는 그 생각이 떨어진다면, 그건 좋은 생각에 집착했더라도 마찬가지고 더군다나 옳지 못한 생각에 집착했을 때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 집착한 마음이 떨어진다면 여기까지 오셔서 법문을 들은 공덕이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무슨 법문을 들었어도 그 법문에 국집을 하면 좋은 약을 먹고서도 그 약에 중독(中毒)이 된거와 같애요.


지금 이 법문을 듣고 있는 이 순간에도, 자기의 화두를 놓아 버려서는 안 된다. 법문을 들을 때일수록 자기의 화두가 더욱 성성(惺惺)하게 잘 들려져 있어야.

 

**송담스님(No.240) - 84년 하안거 결제 및 백일기도 입재 법회에서. (용240)

 

약 12분.

 


아까 조실스님 법문 가운데에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은 「내 마음을 찾는 것」이 참선인데, 「찾는 그놈을 다시 되찾는다」 그것입니다.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이라 하면 일상생활(日常生活)인데, 일상생활에 앉고 서고 눕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성도 내고 슬퍼하기도 하고, 이것이 바로 행주좌와 어묵동정인데, 이것이 일상생활이거든. 그 일상생활을 하는 가운데에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거든.

 

이 몸뚱이를 끌고 서울도 가고, 서울에서 요리 끌고 오기도 허고, 이 몸뚱이를 시켜서 성도 내게도 하고, 슬퍼하게도 하고, 말도 시키기도 하고, 또 밥도 먹으라 그러고, 그 안에서 조정하는 놈이 있어.
그놈이 눈으로 볼라야 볼 수도 없고, 손으로 잡을라야 잡을 수도 없고, 생각으로 알려고 해도 알 수는 없는데, 분명히 이 몸뚱이 안에 이 몸뚱이를 운전하는 조종하는 놈이 있다 그말이여.

「그놈이 무엇인가」를 찾는데, ‘그것이 바로 무엇이냐?’ 그말이여. ‘이것이 무엇이냐?’ ‘이뭣고?’
‘대관절 이 소소영령한 이놈이 무엇인고?’ 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을 허지만, 나중에는 「지금 ‘이뭣고’허는 이놈이 바로 무엇이냐?」 이거여.
「‘이뭣고’한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할 때, ‘이’하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 뭣고?」

지금 「‘이뭣고’하는 이놈이 무엇이냐?」 그 말이, ‘찾는 놈을 되찾는 것’이거든.

「‘이뭣고’하는 이놈이 무엇인고?」 종일 「‘이뭣고’하는 이놈이 무엇인고?」 그렇게 허라는 것은 아니여.

‘이뭣고?’ 이렇게 허되, 그 속의 뜻은 「지금 ‘이뭣고?’하는 이놈이 무엇이냐?」 그말이거든.
그러나 실지로 헐 때에는 자꾸 「‘이뭣고’ 하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하는 이놈이 무엇인고?」 그러라는 게 아니여.

또 뭣헌 분은 「‘이뭣고?’ 한 번 하는 것이 관세음보살이나 또는 아미타불 육백만 번 하는 공덕이 있다」 그렇게 내가 말씀을 했더니, 한 번 할 때에 육백만 번이면 열 번을 허면 육천만 번이고, 또 백 번을 하면 육억 번이다.
그래가지고 내가 백 번이야 그까짓 것 1분 동안에 백 번을 하면 10분 동안이면은 천 번을 할 수가 있고 허니까, 그것을 육백에다 곱하면 이렇게 되겠다 해 가지고는 「이뭣고」 「이뭣고」.....「이뭣고」를 갖다가 수없이 그렇게 하는데, 그건 내 말을 잘못 알아들은 말이거든.

한 번을 하되 ‘대관절 이놈이 무엇인고?’한 그 간절(懇切)한 의심(疑心)으로 하라는 거지. 입으로 그저 횟수를 많이 채우라는 말씀은 아니거든. ‘이뭣고?’

그리고 ‘간단(間斷)없이 하라’ 그 말도, 「그 알 수 없는 그 의심이 끊어지지 않게 하라」는 말이지,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그 말소리가 끊어지지 말라는 말이 아니어요.

이 참선이라는 게 바르게 하는 방법을 가르켜 드리기도 참 어렵고, 또 그것을 방법을 바르게 배우기도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너무 쉬웁고 간단한데 실지로 해보면 이 화두(話頭)를 바르게 들 줄 알기가 그렇게 쉬운 것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3년씩 또는 10년씩 선방(禪房)에 다니면서도 또 그 공부를 하셔도 그 진짜 화두를 올바르게 들고 있는 분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화두 하나만 제대로 들어 버린다면 견성하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고, 성불하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고, 생사해탈하기를 바랠 것도 없는 것입니다.

부득이(不得已) 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야 한다.’ 부득이 해서 ‘견성(見性)을 해야 한다.’ 부득이 해서 ‘성불(成佛)을 해야 한다.’ 이렇게 말을 하지, 사실은 생사해탈해야 할 생사도 없는 것이고, 깨달라야 할 법(法)도 없고, 도(道)도 없는 것입니다.

‘생사해탈해야 한다’하면, ‘생사해탈’이란 말에 딱 국집(局執)을 하고, ‘견성을 해야 한다’하면 그 견성이라고 허는 말에 꽉 국집을 하고, ‘성불을 해야 한다’하면 그 성불이라는 말에 딱 국집을 해 가지고, 그 국집하는 찰나에 화두를 놓치게 되고 자기를 놓치게 되는 것이여.

‘견성성불해라, 생사해탈을 해야 한다’는 말은 바로 화두를 들게 하기 위해서, 바로 자기를 관조(觀照)하게 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지, 그 말에 떨어지게 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방안에 있는 파리를 문을 닫고서 파리를 내키면 그 파리가 - 방바닥에 앉은 파리를 내키면 천장에 가서 붙고, 천장에 가서 붙은 파리를 내키면 동쪽 벽에 붙고, 동쪽 벽의 파리를 내키면 서쪽 벽에, 서쪽 벽에 붙은 파리를 내키면 남쪽에 가서 붙고, 이래가지고 그 파리 내키면 반드시 어디 가서 또 붙는다 그말이여.

참선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도 어디에라도 붙으면 안 되거든.

다맛 알 수 없는 의심만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잡드리 해 가야지. 무엇이 좋다고 한다고 해서 그 좋다고 하는데 붙으면 안 돼.

이렇게 오늘 갑자년 4월 15일 하안거 결제 법요식에 사부대중이 이렇게 모이셨는데,
그 법문(法門)을 듣고 무엇을 많이 알기 위해서 법문을 들은 것이 아니라, 이 법문을 통해서 자기가 무엇인가 집착하고 있는 그 생각이 떨어진다면, 그건 좋은 생각에 집착했더라도 마찬가지고 더군다나 옳지 못한 생각에 집착했을 때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 집착한 마음이 떨어진다면 여기까지 오셔서 법문을 들은 공덕이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무슨 법문을 들었어도 그 법문에 국집을 하면 좋은 약을 먹고서도 그 약에 중독(中毒)이 된거와 같애요.
그 약을 먹은 것은 속에 병이 떨어지라고 먹는 것이지, 그 약을 먹고 약에 중독이 되서 부작용이 일어난다면 그 약을 차라리 안 먹은 것만도 못하거든.

오늘 법요식뿐만이 아니라 팔만대장경 경전도 역시 마찬가지고, 부처님과 역대조사가 설하신 모든 법문이 또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법(法)에 국집하면 - 아주 신심 있는 이는 그 법에 매우 깊이 국집을 하는 수가 있는데, 그 국집을 한다면 부처님 법문을 옳게 가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언젠가도 말씀을 했고 금강경에도 그런 말씀이 있지마는, 법(法)이라 하는 것은 강을 건너가는 배와 같은 것이다. 그 배는 강을 건너는 데 목적이 있지, 강을 건너가지고서도 그 배를 짊어지고 다닌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것이여.
「법에 국집해도 못쓰거든 하물며 법 아닌 것에 있어서랴」 금강경에 분명히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 이 법문을 듣고 있는 이 순간에도, 자기의 화두를 놓아 버려서는 아니 되거든. 법문을 들을 때일수록 자기의 화두가 더욱 성성(惺惺)하게 잘 들려져 있어야 하거든.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를 하시는 분은 ‘이뭣고?’ 「판치생모」 화두를 하시는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정전백수자」하시는 분은 ‘어째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 했는고?’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을 해야 하거든. 그 알 수 없는 화두가 들어져 있는 상태에서 법문을 들어보면 법문이 더욱 더 잘 들리고,
비단 법문 들을 때뿐만이 아니라, 생활을 하면서 - 밥 먹을 때에도 그렇고, 세수할 때도 그렇고, 차를 탈 때에도 그렇고,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그 화두가 항시 들려져 있는 상태에서 모든 일을 하시도록 그렇게 다그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21분46초~33분1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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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깨달음을 여는 것. 각자가 스스로 무상의 깨달음을 열고, 부처가 되는 것. ④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국집(局執) ; 마음이 확 트이지 못하고 어느 한편에 국한(局限), 집착하는 것. 사리(事理)를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에 얽매이거나 자기의 소견만이 옳다고 고집하여 매우 답답한 모습을 말한다.
*찰나(剎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관조(觀照) ; 참된 지혜의 힘으로 사물이나 이치를 통찰함.
*내키다 ; (사람이 무엇을)공간을 넓히려고 바깥쪽으로 물리어 내다.
*독로(獨露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금강경(金剛經) ; 금강경의 완전한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또는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能斷金剛般若波羅蜜經)].
금강(金剛)은 단단하고 날카로움을 뜻하는 다이아몬드를 가리키며, 반야(般若)는 지혜를, 바라밀(波羅蜜)은 저편 언덕으로 건너는 것, 즉 열반에 이른다는 바라밀다(波羅蜜多)의 줄임말이다.
풀이하면 ‘금강석처럼 견고한 지혜를 얻어 열반에 이르라는 부처의 말씀’을 뜻하는 것이다.
이 금강경은 대 반야경 육백부(六百部) 중에서 오백칠십칠 권에 해당되고, 그 내용이 약 3백송(三百頌) 정도의 분량이기 때문에 ‘삼백송 반야경’이라고도 하며, 대략 서기 백오십~이백년경의 대승경전 최초기에 만들어진 경전이라 할 수 있다.
「금강경」의 금강(金剛)은 금강석 곧 다이아몬드를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기에 무엇이라도 부술 수 있고, 세상에서 가장 예리하기에 무엇이라도 자를 수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기에 어둠을 밝게 비출 수 있다는 금강석을 부처님의 가르침, 반야의 지혜로 비유한 것이다.
금강석처럼 단단하고 예리하고 반짝이는 완전한 반야의 공지(空智)로 보살행을 수행하면 열반을 성취하여 성불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설한 경전이란 뜻.
「금강경」은 부처님과 수보리의 문답으로 전개되어, 공(空)사상에 입각하여 집착 없이 보살행을 실천하는 일을 중심 내용으로 대승불교의 기본 사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 (용화선원) p53 에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곳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