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 ‘한 생각’ 철저해 버리면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많다 할지라도 그런 것이 도무지 걸릴 것이 없다 /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송담스님)

**송담스님(No.280)—1985년(을축년) 동안거 결제(85.11.26)(용280)(몽산법어-몽산화상시중)

 

약 10분.


금년 을축년(乙丑年) 10월 15일 동안거 결제일을 맞이했습니다. 청풍납자(淸風衲子)가 사방에서 모여서 한철을 한 지붕 밑에서, 한 도량에서 정진을 하게 되었고 또 보살선원에도 경향 각지에서 백 명이 방부(房付)를 들이고 고락(苦樂)을 같이하게 되었습니다.

실답게 발심(發心)을 해서 실다웁게 정진(精進)을 해 가면 공기가 탁하고, 공장과 자동차에 모든 소음이 이렇게 심하고, 또 수용(受用)이 박(薄)하고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많다 할지라도 ‘한 생각’ 철저해 버리면 그런 것이 도무지 걸릴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생각 돈독(敦篤)하고 철저하지 못하면 눈으로 보는 거, 귀로 듣는 거 사사건건 걸리게 되고 내가 거기에 끌려 나가고 사소한 일에도 성질을 내게 되고 아무 일도 아닌 일에 마음이 동요가 될 것입니다.

온 세계는 그 자체가 낱낱이 자성(自性)이 있어서 존재한 것이 아니라, 나의 ‘한 생각’이 발로(發露)해서 그렇게 이루어진 것들인 것입니다.
하늘에 달이 떴으되 달 자체가 ‘내가 달이다’ 하는 생각이 없는 것이고, 하물며 ‘나는 밝다. 밝지 못하다’ ‘나는 슬프다. 나는 기쁘다’ 그러한 생각은 더욱이 없는 것입니다. 그 달 자체는 때에 따라서 둥글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 초승달이 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아주 캄캄하게 안 보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는 전혀 그런 상(想)이 없습니다.

사람이 들어서, 내가 들어서 온갖 분별심을 일으켜 가지고 거기에 대해서 이름을 붙이고, 거기에 대해서 온갖 분별심을 내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 생각 내 가지고 ‘둥글다, 밝다’ 모두 이리 분별을 내서, 자기가 한 생각 내 가지고 그 한 생각으로 인해서 자기 자신이 구속을 당하고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서 울었다 웃었다 하는 것입니다.

백 명 대중이 한 방에 모여서 석 달 동안을 지낼 때에 한 생각 거두어들이지 못하고 철저히 단속하지 못한다면 그 백 명 대중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을 것입니다. 그중에 누군가는 마음이 동요가 되고, 한 사람 동요됨으로 해서 그 방에 여러 사람이 속이 불편해질 것이고 이리해서 바람 잘 날이 없어.

그래서 몽산(蒙山) 스님께서 결제 법문에 말씀을 하시기를,[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만약 이 도량에 와 가지고 함께 이 고요함을 함께 하고자 할진댄, 참선 정진을 하고자 할진대는 세상에 인연을 다 끊어 버리고, 집착과 거꾸러진 그런 생각을 다 제거해 버리고 진실로 생사대사(生死大事)를 위해서, 생사대사만을 위해서 선원에 규칙을 자발적으로 순종하며,
인사(人事)로 왕래하는 거, 인사로 왕래하는 그 인사를 끊어 버리고 모든 수용(受用)은 인연 따라서 해. 밥이면 밥, 죽이면 죽, 반찬이 좋으면 좋은 대로, 짜면 짠 대로 인연 따라서 수용을 하되, 아홉 시부터서 세 시까지 삼경(三更) 동안을 제외하고는 수면을 하지 말아라. 그리고 문밖에 거리에 나가지를 말 것이며, 밖에서 어떤 신도가 공양을 청(請)한다 하더라도 나가지 말 것이며,
확철대오(廓徹大悟)하기 전에는 경(經)도 보지 말 것이며, 대중적인 행사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경도 보지를 말아라. 이와 같이 여법(如法)하게 3년을 정진을 하되 견성(見性)을 하지 못하면 산승(山僧)이 여러 대중을 대신해서 지옥을 가겠다’ 이렇게 법문을 하셨습니다.

3년, 10년 내지 30년을 정진을 하되 확철대오를 못하는 것은... 이와 같이 여법하게 정말 생사대사를 위해서 잠깐 동안도 한눈 팔 겨를이 없고, 잠깐 동안도 딴생각할 겨를이 없어. 오직 이 한 생각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 그 한 생각 돈독함을 여의지 아니하고 그렇게 간절히 그렇게 알뜰히 그렇게 해서 3년을 한다면 반드시 확철대오를 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보증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3년을 해서 깨닫지 못하면 내가 너희들 대신해서 지옥에 가겠다’ 한 말씀이 얼마나 목숨을 걸고 보증하신 그러한 표현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4분19초~14분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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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납자(淸風衲子 맑을 청/바람 풍/옷을 꿰맴 납/사람 자) ; 수행을 하여 맑은 기운을 지닌 스님을 청풍(淸風), 맑은 바람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참고] 운수납자(雲水衲子) ; 여러 곳으로 스승을 찾아 도(道)를 묻거나 수행을 하러 여러 곳으로 다니는 스님[衲子]을 머무름이 없는 구름[雲]과 물[水]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납자(衲子) : 「납」은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 본래 가사(袈裟)는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 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 三足金烏徹天飛』란 것이 있다. 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곧 납자의 본색을 말하는 것이다.
*보살선원(菩薩禪院) ; 스님이 수행하는 선원과 같은 기간과 방식으로 보살님(신도)들이 정진할 수 있는 선원. 용화선원에는 스님선원, 보살선원이 있고 또 매일 언제든지 와서 정진할 수 있는 시민선원이 있다.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방부(房付 방·거처 방/줄·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정진(精進) : [범]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6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수용(受用) ; (물건을 남에게) 받아 씀.
*박하다(薄-- 엷다·얇다·적다·야박하다 박) ; ①(마음 씀씀이나 태도가) 너그럽거나 푼푼하지 못하여 야멸치고 쌀쌀하다. ②(이익이나 소득이) 많지 않아 보잘것없다. ③(무엇이) 두께가 얇다. ④(물건의 품질이) 변변하지 못하다.
*돈독하다(敦篤-- 도타울 돈/도타울 독) ; (인정이나 마음이)매우 도탑고 믿음성이 있고 진실하다.
*도탑다 ; (정이나 사귐이)깊고 많다.
*발로(發露 드러내다·밝히다 발/드러내다 로) ; 숨은 것이 겉으로 드러나거나 숨은 것을 겉으로 드러냄. 또는 그런 것.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몽산(蒙山) : 남송과 원(元)대의 임제종 양기파 스님, (1231 ~ 1298 또는 1308) 이름은 덕이(德異), 강서성(江西省) 여릉도(廬陵道) 시양 고안현(時陽高安縣)에서 났다。그 고향 시양이 당나라 때에는 균주(筠州)였기 때문에 고균(古筠) 비구라고 한 일도 있었고, 여릉도 몽산에 있었으므로 몽산 화상이라 하며, 강소성(江蘇省) 송강현(松江縣) 전산(殿山)에 있었으므로 전산 화상이라기도 하고, 휴휴암(休休庵)에 있었으므로 휴휴암주라기도 하였다.
고산(鼓山)의 완산(皖山) 정응선사(正凝禪師)의 법을 이었다。그의 교화한 시기는 원나라 세조(世祖)때이며, 우리 고려의 충렬왕 때이다。그래서 고려의 고승들과 문필의 거래가 많았고, 그의 저서 가운데 <법어약록(法語略錄)> <수심결(修心訣)>등은 이조 중엽에 있어 우리 글로 번역되기까지 하였다.
*몽산법어(蒙山法語) ; 원(元)나라 「몽산 스님의 법어」로 참선 수행의 구체적인 길을 자상하게 제시한 법어집.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 『몽산법어』가 있다.
*‘몽산(蒙山) 스님께서 결제 법문에 말씀을 하시기를’ ;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97-99. (가로판 p95~97)
若有來此(약유내차)하야  同甘寂寥者(동감적료자)인댄  捨此世緣(사차세연)하며  除去執着顚倒(제거집착전도)하고  眞實爲生死大事(진실위생사대사)하야  肯順菴中規矩(긍순암중규구)하야 截斷人事(절단인사)하고  隨緣受用(수연수용)호대  除三更外(제삼경외)에  不許睡眠(불허수면)하며 不許出街(불허출가)하며  不許赴請(불허부청)하며  未有發明(미유발명)이어든 不許看讀(불허간독)하며  非公界請(비공계청)이어든  不許閱經(불허열경)이니

만약 이에 와 고요함을 같이 즐기려는 이는, 이 세상 인연을 다 여의며 제 고집과 애착과 모든 거꾸러진 생각을 다 버리고, 참으로 생사의 큰일을 위하야 절의 규칙을 잘 지키고 인사(人事)를 끊고 먹고 입는 것을 되어가는 대로 하되, 밤 삼경 외에는 자지 말고 거리에도 나가지 말며 오라는 데도 가지 말고 깨치기 전에는 글도 읽지 말며 예식 때가 아니거든 경도 보지 말지니

如法下三年工夫(여법하삼년공부)호대  若不見性通宗(약불견성통종)인댄 山僧(산승)이  替爾(체이)하야  入地獄(입지옥)호리라

법다이 삼 년 동안 공부해 만약 견성하여 종지(宗旨)를 통달하지 못하면, 산승(山僧)이 너희들을 대신하여 지옥에 들어가리라.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도장’으로 읽지 않고 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생사대사(生死大事) ; 생사사대(生死事大). ①삶과 죽음, 생사(生死)의 큰 일. ②수행을 하여 생사윤회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는 큰 일, 가장 중요한 일[一大事].
[참고 ❶] 『육조단경(六祖壇經)』 (덕이본 德異本) (심재열 역주 | 불국선원) '제6 참청기연(參請機緣 청법의 기연)'에서. p252~253.
현각 : 생사의 일이 크며 무상이 신속합니다.[生死事大 無常迅速]
육조 : 어찌하여 남이 없음을 사무쳐 깨닫지 않으며 신속한 무상이 없음을 요달하지 않는가?[何不體取無生 了無速乎]
현각 : 사무쳐 깨달으면 남(生)이 없고, 요달함에 본래로 빠름이 없나이다.[體卽無生 了本無速]
육조 : 그렇도다.[如是如是]

[참고 ❷]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 「제18권 대혜보각선사보설」 '정성충이 청한 보설(鄭成忠請普說)'에서.
無常迅速 生死事大 彈指便是來生到來 但虛却心 子細推窮 窮來窮去 善念旣相續 惡念自然不生 但如實修行 時節因緣到來 自然悟去

무상이 신속하고 생사의 일은 크다. 손가락 튕기는 사이에 곧 내생(來生)이 도래 하니, 다만 마음을 비우고 자세하게 궁구하라. 궁구하면서 오고 궁구하면서 가다 보면 좋은 생각이 이어지고 나쁜 생각은 자연히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맛 여실하게 수행하다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자연히 깨닫게 될 것이다.

[참고 ❸]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 (宋 온문蘊聞 編) 제19권 ‘示妙證居士(묘증거사에게 보임)(聶寺丞)’에서.
無常迅速 生死事大 衆生界中順生死底事 如麻似粟 撥整了一番 又一番到來 若不把生死兩字貼在鼻尖兒上作對治 則直待臘月三十日 手忙脚亂 如落湯螃蟹時 方始知悔則遲也 若要直截 請從而今便截斷

무상(無常)은 매우 빠르고 생사(生死)의 일은 큽니다. 중생계 속에서 생사에 따르는 일은 삼대나 좁쌀처럼 많아서, 한번 마치고 나면 또 한 차례 닥쳐옵니다.
만약 생사(生死) 이 두 글자를 잡아 코 끝에 붙여놓고 번뇌를 끊지[對治] 않는다면, 곧 납월삼십일 죽음을 맞이해서는 손발을 어지럽고 분주히 떠는 것이 마치 끓는 물에 게를 집어넣을 때와 같으니, 비로소 후회해야 이미 늦은 것입니다. 만약 곧장 끊고자 한다면, 청컨대 지금 곧 절단하십시오.

[참고 ❹] 『태고화상어록(太古和尙語錄)』 '시진선인(示眞禪人)'
汝旣出家 須立丈夫之志 發勇猛心 深信無常迅速 生死事大 行住坐臥 一切時中 單單不昧此事 切切參詳 如人墮在千尺井中 千思萬想 只是箇單單求出之心 不日內必有相應分 如是用功 若未成辦 佛法無靈驗矣

그대는 이미 출가하였으니 반드시 대장부의 뜻을 세우고 용맹하게 정진할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무상이 신속하고 생사의 일이 큰 것을 깊이 믿고, 행주좌와 모든 때에 오로지 이 일을 잊지 말고 절실하게 참상(참구)하여야 한다. 마치 천 길 깊이의 우물에 떨어진 사람이 천 가지 만 가지 생각이 오로지 빠져나갈 마음만 가진다면 멀지 않은 날에 반드시 그 생각에 상응하는 결과가 있게 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공을 들이고도 이루지 못한다면 불법에 영험함이 없는 것이리라.

*생사사대(生死事大) 무상신속(無常迅速) ; 생사의 일은 크고, 무상(無常)은 신속하다(매우 빠르다).
*무상신속(無常迅速 없을 무/영원할·항상 상/빠를 신/빠를 속) ; '무상은 매우 빠르다'
*무상(無常) ; 모든 사물 ·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공양(供養)을 청(請)하다 ; 재가신도가 스님들께 공양(식사)을 드리기 위하여 초청하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品)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딴생각 ; 별념(別念).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가로판 p157~158)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가로판 p156~157)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가로판 p171~172)
*화두(話頭 말씀 화/어조사 두)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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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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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 (9/9) 몽산화상의 무자십절목. (끝)

**전강선사(No.507)—무자십절목(9) (끝) (갑인74.05.29) (전507)

 

약 28분.


금봉천리객(今逢千里客)이  내파만산운(來破萬山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창연미죽색(蒼煙迷竹色)이요  창외하일지(窓外夏日遲)니라
나무~아미타불~

금봉천리객(今逢千里客)이다. 천리의 먼 손이 이제사... 천리 먼 손이여. 객(客)이여. 몇 천리가 이것 몇 천리인지, 몇억만 천리인지 모르지. 먼 놈을 의미해서 천리(千里)라고 헌 건디, 저 원객(遠客)이란 말이여. 멀리서 온 이 참! 객(客)이 나그네 객이 이제사 만났다 그 말이여. 몇 무량겁에 한량없는 겁에 이제사 나 찾는 법, 나를 깨닫는 법, 이 정법(正法)을 만났다 그 말이여.
얼마나 언제 그전 과거에 언제 한번이나 만나 봤던가? 남[生]이 없는 내가. 왜 여태까장 이렇게 이렇게 만나 보지 못했을까? 정법을 왜 만나지 못허고 여태까장 깨닫지 못했을까 말이여.

내파만산운(來破萬山雲)이로구나. 이제 와서는 만산(萬山) 구름을 헤치는구나. 그 만산(萬山) 일만 산속에 어디 바위 틈새기 어디 깊은 속에, 그 어디 가서 내 나를 바로 가르켜 줄 스승이 있는가? 그 천신만고(千辛萬苦)를 다해서 스승 찾는 법이여. 스승 없이는 못하는 법이라. 그 내가 가지고 있는 나지마는, 나를 깨닫는 법이 스승 없이는 깨닫들 못혀.

우리 부처님께서는 그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 가지고는 그 참선(參禪) 그 쉬운 법. 어려운 법 아니여, 그렇게 쉬운 법, 아 뭐 손바닥이면 손바닥이지, 손바닥을 뒤집을 것도 없네. 손바닥을 엎으면은 손등인디, 손등도 아니여 손바닥이지.
아! 그놈이 그놈이지, 내 코빼기 콧등이 내 콧등이 만져 보면 내 콧등이 그놈이지, 콧등이 안에 든 것도 아니여. 내가 나를 가지고 있는 이놈이 그렇게 가깝고, 아! 그렇게 그놈인디 시(是) 저인디, 왜 그렇게 못 깨달라?

우리 부처님 터억 깨달라 확철대오를 해 가지고서는 부처님 같이 부처님 같이 그렇게 깨달라 가지고 세 가지 능[三能]이, 세 가지 능치 못한 것[三不能]이 있어. 그렇게 확철대오를 허셨건마는 세 가지 능치 못한 일이 있다.
①한 가지는 깨닫지 못한 저 중생을, 깨닫지 못한 모도 삼계화택(三界火宅) 중생을 깨닫게 해 주어. 확철대오를 시켜주련마는 그 일시에 일체중생을 확철대오를 허게 맨들들 못혀. 그건 제가 필경 저를 제가 깨닫지, 깨달라 주지를 못혀. 아무리 깨달라 주고 싶지마는 깨달라 주들 못혀. 그것이 하나가 능치 못한 일이 있고.
②무연중생(無緣衆生)을 제도난(濟度難)이여. 나를 비방한 자를 그 비방, 부처를 비방한 자를 제도 못혀. 그 어떻게 그 비방하고 믿지 안 한디 어떻게 제도를 헐 것이냐 그 말이여. 첫째 믿어야 되는 건데, 믿지 않거든. 믿지 않은 놈을 어떻게 헐 것이냐 그 말이여. 제가 믿어서 가르켜 준 대로 인자 봉행을 해야 할 턴디, 믿지 않은 놈이 부처님의 말씀을 봉행하는가? 안 되지.
③중생업을 대신 못혀. 중생이 모도 제가 죄를 퍼 짓고 한량없는 죄를 짓고 악도(惡途)에 떨어지는 것을 대신 못혀. 부처님께서 백번이나 천번이나 대신허고 싶지마는 대신 못한다. 그 세 가지 능치 못한 일이 있어. 헐 수 없거든.

이렇게 금생에 참 이 몸 받아서 와 가지고는 금생에 정법문중(正法門中)에 믿어 들어왔다. 부처님 정법을 만났다. 이만큼 했으면 부처님 정법을 만났지. 이렇게 들어와서 이 선문(禪門)에 들어와서 부처님 참선법 가르켜 준 법을 그대로 봉행해 나가니 만났다.

내파만산운(來破萬山雲)이다. 그 그저 불탄산고수활(不憚山高水闊)하고 스승을 찾아 댕기는 법이다. 처음에 들어와 가지고는 고행(苦行)? 고행이라니? 그 괴로운 행.
뭐 돈벌이를 혀? 무엇을 혀? 무엇을 구해? 아무것도 없이 주장자나 짚고, 걸망 하나 떨어진 옷이나마 짊어지고, 내파만산운(來破萬山雲)이여. 만산 구름을 헤쳐. 불탄산고수활(不憚山高水闊)이여. 산 높고 물 널룬 것을 관계허지 안 혀. 물도 막 건네고, 산도 막 올라가고, 구름도 헤치고, 이렇게 스승을 찾는다.

그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은 어떻게—그 손바닥이건마는, 손바닥 엎은 것도 아니여 손바닥이건마는 아! 그렇게 아! 스승을 만나지 못허면은 얻기가 어려와. 그 참 묘한 일이지. 제 혼자 공부를 해 들어가다가 분석해 따져서 무엇을 맨들어 가지고 들여다보고 앉었는 것은 참선법이 아니여.
해 들어가다가 모도 그만 그 적조(寂照)에 모도 체(滯)해서, 뭐 사선(邪禪)에 떨어져서 무슨 이치나 장만해 가지고 들어앉어서 비추고 앉었다든지, 보고 앉었다든지, 깔고 앉었다든지, 그거 소용없어. 그건 헛 고행이여. 헛된 고행이지. 괴로운 고행만 하는 것이지.

어쨌든지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다. 옳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은 일생을 헛되이 보낸다'고 했다, 달마 스님도.
자! 찾아 나서 보았자, 만나 보았자 알 수가 있나? 제가 어떻게 스승을 알 도리가 있나? 동도(同道)래야 방지(方知)요. 도(道)가 같아야사 바야흐로 알고, 성현이래야 능지성현(能知聖賢)인데, 어떻게 그 선지식(善知識)을 가릴 수가 있나? 알 수가 없지.
그러니까 척 나서 가지고는 방방곡곡 이렇게 댕기면서 차츰차츰 원문(遠聞)도 허고, 근문(近聞)도 허고, 서로 대해서 이렇게 차츰 나서면은 아는 법이여. 차츰 구참도 만나고, 뭐 이래 가지고는 모도 논평도 있고, 어떤 스님이 법이 있다 없다, 그런 것도 다 만나 말을 들으면은 알 수가 있고, 차츰차츰 그렇게 찾는 법이여.

처음에 미(迷)해 가지고 대번에 어떻게 볼 수가 있어야 찾지. 모냥이 모냥이 있어야 찾지. 그 도인(道人)은 모냥이 달른가? 행동만 가지고 찾아보지? 행동만 가지고 그 찾아보니 그 도인인가? 별짓을 다하면 그게 도인인가?
도인일수록에 영아행(嬰兒行)! 제일 미친 광행(狂行)도 분수가 있지, 영아행이라는 것은 광행보다도 더 혀. 한 서너 살 먹은 놈이, 너덧 살 먹은 놈이 불인지 물인지 뭐 아나? 막 집고 그저, 미친놈은 오히려 불인 줄이나 알고 모두 허지마는 어린 것은 그것도 모른다 그 말이여. 그러헌 영아행을 가진 도인인데, 참도인은 영아행이라 했는데 어떻게 알 것인가?
과연 그러기 따문에 도(道)를 찾아 나온 학자는 그렇게 고행(苦行)이다. 그 괴로운 것뿐이여. 아무것도 없어. 그 고행뿐이여.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여. 편안한 거, 아주 무슨 뭐, 내 무슨 그런 것 구한 것 아니여.

창연(蒼煙)은 미죽색(迷竹色)이다. 푸른 연기는 죽색(竹色)을 희미허게 맨드는구나. 푸른 연기는 대색[竹色]을, 퍼런 대색을 희미하게 맨든다. 아! 그런 모도 댕기는데 그 사방 안개 속에 그 어디 모도 그 뭐 길인들 온당하며, 뭐 산인들 온당한가? 산고수활(山高水闊)이 험악, 험악하고.
창외(窓外)에는 하일지(夏日遲)다. 창밖에는 어디 그저 밖에는 하일(夏日), 여름날이 더디어. 그 날은 더워서 폭염에 기가 맥힌데, 그 고통 고생이 어떠헌가 말이여? 우리 도학자의 고행이라는 것은, 도를 구하는 도행이라는 것은 참 이러헌 괴로운 고학자(苦學者)여.
이러 않고서는 호귀득도난(豪貴得道難)이여. 호걸스럽고 귀엽고, 좋은 밥 먹고 좋은 옷 입고, 잘 살고 부귀헌 디서 도를 얻어? 소용없는 소리여. 빈한(貧寒)에, 가난허고 차운 디서 도심(道心)이 발(發)하고, 차운 역행(逆行) 속에서 도를 얻는 법이다.


어떤 것이 이 낱 네 자기(自己)냐? 어떤 것이 네, 네 자기냐? 자기(自己)라는 것은 어떤 것이 네 본래면목(本來面目)이냐? 일대장교(一大藏敎)는 시개절각(是箇切脚)이다. 부처님이 49년 설법해 놓은 장교(藏敎)는 절각(切脚)이여. 다리 부러진 것이다. 그 절각(切脚)이라 하면 다리 부러졌다니 그 뭔 소리여? 대장교(大藏敎)가 그—다리 부러졌으니 못쓴 것이지—쓸데없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러면 그놈 쓸데없다는 놈은 그렇게 볼 것이 아니여. ‘끊어질 절(切)’ 자, ‘다리 각(脚)’ 자, 한문을 바로 새기자면 다리 끊어진 놈이다. 절각이다 하지마는, 그 절각(切脚)이라는 것은 주각(註脚)이다 그 말이여. 주각(註脚)! 여러 가지 그 모도 주각을 내논 것이다.

네 자기, 네 본래면목에 대장교(大藏敎)는 주각(註脚)을 내논 것이여. 허지마는 증절착자개무자부(曾切着者箇無字否)아? 일찍이 이 낱 무자(無字)에도 한번 주각을 내보겄느냐? 절착(切着)도 주각(註脚)이여. ‘간절 절(切)’ 자는 주각이여. 절착(切着)도 '한번 따져 보겄느냐?' 그 말이여. '분석을 해보겄느냐?' 그 말이여. 이리저리 '마음이란 건 어떻다, 네 자기란 건 어떻다, 뭐 본래 없다, 뭐 본래 있다, 무슨 유도 아니다, 본래 무도 아니다, 뭐 제1구다, 제2구다, 제3구다' 무슨 뭐 그러헌 분설(分雪) 그러헌 별말을 다 했어.
허다가 조사관(祖師關)에 들어가서는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원상에다 갖다가서는 네 귀에다가서 동글뱅이를 달던지, 점을 하나씩 찍던지 찍어 놓고서는, 목마각유사사족(木馬脚有四蛇足)이로구나. 나무 말에, 목마(木馬)에 각각 네 배암 발이 달렸구나. 모도 요러헌 분설, 요러헌 공안 주각을 모도 낼 수가 있지마는, 이 무자(無字) 조주 ‘무(無)’ 헌 무자에도 그런 주각을 붙여 보겄느냐? 종문(宗門) 중에 없는 공안이니까. 조주가 ‘무(無)’ 했는데 거다가 무엇을 붙여 보겄느냐? 별 걸 다 붙여 봐라. 증절착자개무자부(曾切着者箇無字否)아? 일찍이 이 낱 무자에다가서 주각을 내보겄느냐?

영리한(靈利漢) 놈은 직하(直下)에 흔번(掀飜)헐 것이다. 이 말 아래에 바로 깨달을 것이다. 글쎄 그 그 일체가 다 아니라 했으니, 뭔 이치니 무슨 뭐 별별 도리 다 붙여 봤자 아니라 했으니 바로 그 볼 것 아니여? 바로 볼 것이다 그 말이여. 범정(凡情)도 다했고, 성해(聖解)도 거기에 붙들 못허거늘, 바로 보들 못혀? 또 거그서 절착(切着)을 혀? 또 주각(註脚)을 내아, 고렇게 말헌 디서? 그것 참! 바로 본 사람은 벌써 그 주각 낼 겨를도 없어.

영리한(靈利漢)은 직하(直下)에 흔번(掀飜)해라. 직하에 흔번, 뒤집어 버리면은 통명자기(洞明自己)다. 제 면목을 통명(洞明)헌다. 통명이라는 것은—‘고을 동(洞)’ 자를 '통(洞)'이여. 삼점변(三點邊 :氵)에 '한 가지 동(同)' 헌 자(字), 그놈을 훤출히 그려. 아주 넉넉하게 훤출히 밝혀 버린다 그 말이여. 끝도 없고 갓도 없이 남음이 없이 탁! 밝혀 버리는 것을 통명이락 햐.
자기(自己)를 통명(洞明)한다. 제 면목을 그만 통명(洞明)해 버려. 아는 것 문제 아니여. 통명이라는 것은 그만 뭐 '본다'고 해야 맞을까? 본다는 것도 소용없어. 그만 그대로 각(覺)이여. 통명(洞明)헌다.

착파조주(捉破趙州)다. 조주를 한 방맹이 놓을 것이다. 조주 한 방맹이 착파(捉破)를 헐 것이고.
'감파불조득인증처(勘破佛祖得人憎處)다. 불조(佛祖)가 사람 미워헌 곳 얻은 것을 감파(勘破)한다' 새기자면 이렇게 여는데, 그건 무슨 말인고 하니 부처님도 한 방맹이—부처님을 방(棒)을 때리다니 되아? 하지마는 부처님도 한 방맹이 맞을 분(分)이 있다 그 말이여. 그건 바로 봐야지. 불조(佛祖)가 사람 미워헌 곳 얻은 것을 감파한다.

그러면 너를 허락해서 내가 이르되, 대장교(大藏敎)도 옹창지(癰瘡紙)다. 대장교가 부스럼 닦아 내버린 종이다.
그 뭐 부처님 일대소설(一代所說) 대장경이 모도 주각 주파(註破)해 놓은 것이지. 비유컨댄 왼 몸뚱이, 이 사람의 왼 몸뚱이, 깨끗한 몸뚱이, 아주 부스럼 하나 없는 몸뚱이를 긁어서 모도 그 부스럼을 내서, 그 부스럼을 인자 닦아서 고름 핏덩이를 닦아서 내버린 종이라고 허겄다. 이렇게 말씀을 허셨어.

수연(雖然)이나 비록 이렇기는 이렇다마는 나개시무자(那箇是無字)냐? 이 무자(無字)는 어느 곳에서 나왔나? 어디서 나왔기 따문에 여시(如是) 주장(主張)했느냐? 이렇게 주장을 해 놨느냐?
이 주장해 놓은 무자(無字)는 유심기특(有甚奇特)이완댄, 무슨 기특이 있어서 종문(宗門) 가운데 허다공안(許多公案)이, 이 불교 가운데 허다한 공안이 많이 있는디, 천칠백 공안(千七百公案)이 모도 있고 이런 공안이 많이 있는디, 조주무자 공안을 이렇게 품(品)을 해 놨느냐? '종문에 제일이요' 이렇게 찬(讚)을 해 놨느냐?

이렇게 주장한 무자(無字)는 무자보담 더 지낸[능가한] 화두는 없냐?[過此無字者否]
화두가 어디 더 허고 덜 헐 게 있는가? 허지마는 경계(境界)는 다 달르지. 그 경계를, 화두 공안 그 지경 경계를 이르지 못하면 백천 가야 소용없거든. 천칠백 공안에, 천칠백 공안 천칠백 선지식의 뜻을 바로 봐야 하거든.

그러면은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인고?'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치(板齒),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그러면 "그것이 무자(無字)와 똑같다" 그 말도 아닌 소리여. "그 무자(無字)와 똑같다는 소리다" 모르는 소리여. 알고는 그렇게 말하는 법이 없어.
경계는 다 달라. 천칠백이 다 달라. 그 공안이라는 건 경계 바로 턱 일러 버릴 것 같으면은—그 낙처(落處)는 똑같어, 낙처는. 생사 없는 낙처는 같지, 다른 법이 없어. 허지마는 그 낱낱이 그 공안 그 격(格)을 바로 봐야 하거든. 그 격 밖을 바로 봐야 하거든.

‘무수호손도상수(無鬚猢猻倒上樹)다. 수염 없는 늙은 원숭이가 냉기를 올라간다’ 하면, 그러면 그놈, 거 격(格)이 맞도록 알아야 한다 그 말이여. 그 무슨 말이여? 뭐 '수염 없는 늙은 원숭이가 냉기를 올라간다. 그거 본래 없는 말이다' 그 소용없어. 모도 그러면 없는...
'말키 없다. 모도 변무(便無)다. 무자도 본래 없다는 말이고, 생사 없다는 말이고, 무수호손(無鬚猢猻)도 본래 없다는 말이고, 판치생모도 본래 없다는 말이고, 뭐 다 똑같은 말' 그러면 그건 미친놈의 선(禪)이여. 그것은 신선공(神仙空)도 아니여, 공(空)도 아녀. 고렇게 봐서는, 그 무엇이여 그것이?
낱낱이 천칠백 공안이 하나도 어김없이 그 격을 다 봐야 하거든. 그래야 공안을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이라 그러지. 글안허면 뭣 헐라고 천칠백 공안을 말해 놓을 까닭이 있나?

이 무자(無字)에 지낸[능가한] 화두가 없나?[過此無字者否]
약유(若有)인대는 무자보담 더헌, 더헌 화두가 있다 할 것 같으면은 어찌 저렇게 품제타(品題他)냐? 저그다가 저렇게 품(品)을 해 놔? '종문(宗門) 중에 제일이라' 해 놨느냐?
그러면 또 만약 없다[若無]고 헐 것 같으면은—무자(無字)가 있다고 헐 것 같으면은, 무자가 다른 일체공안 일러 논 그 가운데에 제일이라고 해 놨으니, 제일이라고 헐 것 같으면은 조주 없을 때는, 조주가 나오기 전에는 어찌 불조(佛祖)가 없었겠느냐? 조주 없을 때는 조주 나오기 전에는 불조가 없었냐? 무자(無字)가 제일이라 하게?

구안납승(具眼衲僧)은, 눈 갖춘 납승(衲僧)은 한 점도 속이기 어려우니 한번 일러 봐라. 그 무자의지(無字意旨)는 어떠헌 도리냐? 거 쎗바닥 내룰 수 없어.

그래 내가 또 말허지마는 혜봉 스님한테 가서, “무자의지(無字意旨) 반(半)만 일러주시오”
“무(無)”

“거 반(半) 될 이치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수좌가 일르소. 무자의지(無字意旨) 반만 이르게”
내가 “무(無)”

고개를 끄덕끄덕, “고인이 말씀허되 고인(古人)이 이르되, '거년(去年) 가난은 가난이 아니여. 거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어서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今年) 가난이 시(是)가난이라 추야무(錐也無)로구나. 송곳도 없구나 했으니, 그렇게 송곳도 없다 하니까, 여래선(如來禪) 밖에는 안된다. 조사선(祖師禪)을 일러라' 했으니, 어떤 게 조사선이겄나?” 이렇게 나한테 물었다 그 말이여.
그 물을 때, “능각(菱角)이 첨첨(尖尖)허지만 불사타(不似他)라” 이렇게 일렀다.

고렇게 일러 놓고서는 나는 그 이상 더 이를 수 없다고 야단쳤네, 나 혼자. 혜봉 스님은 웃고만 있는데. 그래 가지고 세상에 입을 벌리고 돌아댕기면서 '견성했다'고 '알았다'고 나도 그랬든 모냥이지. 참 기가 맥히지.

거기서 조사선은 못 일렀네.
'송곳까장 없다고.. 여래선 밖에는 안된다' 딱딱 있어. 여지없이 있어. 일체 공안이 다 있어.

십절목(十節目)은 오늘 아침에 끝났어.(처음~27분38초)

Posted by 닥공닥정

•§•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 (8/9) 몽산화상의 무자십절목.

**전강선사(No.505)—무자십절목(8) (종하처출까지) (갑인74.05.27) (전505)

 

(1) 약 23분.

 

(2) 약 29분.


(1)------------------

일성초운안(一聲楚雲雁)이요  고범원객주(孤帆遠客舟)니라
나무~아미타불~
해색벽어천(海色碧於天)이요  양양백구비(兩兩白鷗飛)니라
나무~아미타불~

일성초운안(一聲楚雲雁)이다. 한 소리 초나라로 울고 가는 기러기다. 저 장천(長天)에 떠 가지고는 울고 가는 초나라 기러기여. 우리 인생사가 아 그놈 그대로 두고 보면 그놈이 또 제일구(第一句)지. 허지마는 거다가 인생 턱 나왔다가 한번 가는 것이 저 장천(長天)에 뜬 초나라 기러기여, 저 울고 가는.
고범원객주(孤帆遠客舟)다. 외로운 돛대, 저 멀리 가물가물 가 버리는 배여. 이렇게 가 버리는 우리 인생사, 참 무상하다.

해색(海色)은 벽어천(碧於天)이다. 바다 빛은, 퍼런 바다 빛은 하늘과 같이, 같이 푸르여. 퍼러니 푸르러 가지고 있구나.
양양백구비(兩兩白鷗飛)다. 거기에 백구(白鷗)란 놈은 잼겼다가 떴다가, 떴다가 잼겼다가 이러는구나. 그저 그래 두지. 그걸 갖다가 뭐라고 해석허고 번역, 또 뭘 붙일 것도 없고, 그대로 한마디 일러두지. 그대로 한마디 일러두지 그 뭐 뭐 뻘소리 갖다 붙일 것이 뭣이 있나?


어떤 것이 네 자기(自己)냐? 어떤 것이 너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냐? 이 보고 듣고 알고, 가고 오고, 밥 먹고 옷 입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주인공 그 본 낯반대기, 본 생명이 그것이 어떤 것이냐? 도대체. 이렇게 신령할 수가 어디 있으며, 이렇게 분명할 수가 있으며, 순전히 이 낸디, 이놈이 낸디, 내가 나를 이렇게도 몰라? 이렇게도 알 수 없어?
별놈의 모냥을 다 붙여 봐라. 그 모냥 뭐 무슨 모냥을 붙일 건가? 과학이니 철학이니 다 들어대 봐라. 일체 논문을 다 갖다 거다가 때려 붙여 지어 봐라. 뭣이냐 그 말이여?

가지고 있는 놈인디, 내가 가지고 있는 이놈, 내가 수용헌 이놈인디. 죄 지면 죄만 받고, 잔뜩 지면 잔뜩 받고, 조금 지면 조금 받고, 맨 놈의 죄만 받는 놈의... 또 선(善) 지면 선만 잔뜩 받고, 한량없이 받고. 아! 이건 지은 대로 받고, 지은 대로 그놈의 업보(業報)가 모두 업(業)이 된다 그 말이여. 뭣이 이런 놈의 물건이 있는가 말이여.

그놈을 잘 닦을 것 같으면은 그만 성불(成佛)을 해서 생사(生死)가 없고. 생사니 뭣이니. 그 이놈을 가졌으니 이 보배를 가졌으니 참으로 이놈을 어서 속히 찾아 가지고는 그 깨끗헌 본 자아를, 내 본래 자아를 잘 닦아야 할 것 아닌가?
그 깨끗허니 그 닦아 놨으니 막 빛도 그 이상 더 날 수 없이 광(光)을 내놨으니, 그 깨끗헌 나를 그렇게 깨끗하게 닦아 증(證)해 버리면은 천하에 대보(大寶)인디 안 헐 수가 있나? 이걸 안 할 수가 있어? 이 우리 닦는 법, 참선법(參禪法).
그런디 이 자기(自己)란 것, 대체 자기—‘스스로 자(自)’ 자, ‘몸 기(己)’ 자—내 몸뚱이, 이 요까짓 놈의 생사 몸뚱이, 죽고 사는 몸뚱이 말고 말이여, 생사 없는 몸뚱이. 이 이거 도대체 이게 어떻게 생긴 몸뚱이냔 말이여?

일대장교(一大藏敎)는 부처님의 일대장경, 49년 동안이나 설법해 놓으신 장경(藏經)은 자기(自己)를 주각(註脚) 내논 것이다. 내 마음, 네 마음, 일체 사람 마음, 준동함령지(蠢動含靈之) 마음, 그 마음을 주각을 내놨어.
'이렇게 이렇다 저렇다, 저렇다 이렇다' 뭣 별별 소리를 다 붙이고 떼 놓고 다 해 놨다마는 장경(藏經)으로 아무리 부처님이 천하에 능술(能術)이 있고 천하에 제일 가신 혜통(慧通)이 있어도 그것은 이름도 못 붙여 놓고, 모냥도 못 붙여 놓고, 어림도 없어. 주각(註脚)만 아무리 해 놨자 못혀.

그래서 도무지 부처님도 건드려 보도 못했고, 삼세제불(三世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도 구괘벽상(口掛壁上)이다. 입을 벽상(壁上)에 걸어 버렸다 그 말이여.
그러헌 도리인디 그 자기를 49년 동안이나 주각(註脚)을 내놓으셨으며, 과거 제불도 모도 나오셔서 모도 그 자기를, 이 마음자리를 주각을 모도 내놓았다마는 절각(切脚)이다, 절각. 그 다리 부러진 것이다. 다리 뿌러져. 다리가 온당해야 하지, 뿌러지면 될 것인가? 그러면 ‘다리 부러졌다’는 그 말은 주각(註脚) 내놨다 그 말이여. 이리저리...

아무 본 몸뚱이에 부스럼 하나 없이 보드란—무슨 거 깨끗한 몸뚱이 긁어서, 그놈을 긁어서 손톱자국이 나 가지고는 차츰 이놈이 켜져서 연방(連方) 덧이 나 가지고는, 부스럼이 나 가지고 종창(腫脹)이 되어 버렸다 그 말이여. 종기 종창 되었다 그 말이여. 주각 모두 낸 것이 비유컨댄 그렇다 그 말이여. 고걸 잘 알아들어야 되아. 멀쩡헌 다리를 긁어서 부스럼 내논 것이다 그 말이여.
자기(自己)를, 별별 말씀을 우리 부처님께서 다 해 놓으셨지마는 주각(註脚) 내논 것이다. 온당한 몸뚱이 긁어서 부스럼 내논 것이다 그 말이여. 그걸 절각(切脚)이라. 그거 다리 부러져, 다리 부러져 온당치 못한 것이니, 그거 그 말이여.

증절착자개무자부(曾切着者箇無字否)아? 조주가 '무(無)' 허는 이 무자(無字)도 절착(切着)해 보겄냐?
절착도 주각(註脚)이여. 그 무자(無字)도 한 번 쎄를 내롸 보겠냐 그 말이여. '무(無)'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무(無)” 거 쎗바닥을 내롸 보겠나?

내가 또, 또 이 법문을 허는구마는 내가 뭐 없는 법문을 어디 가서 장만해서 혀? 내가 맨들아 혀? 그 있는 법문허제.
이 조주 무자(趙州無字)가—그때 무자 화두를 헐 때인디 내가—조주 무자가 하도 그 십절목(十節目)이 다 있으며 그때 당시에도, 과거 큰스님네가 있을 때에도 무자(無字) 모도 분석이 그리 많고.
무자를 헐 때인디, 나도 무자(無字)를 허다가, 거 곡성(谷城) 동리재를 넘어가다가, 어쨌든지 내야 바로 깨달랐든지 바로 못 깨달랐든지 그 학자들이 공부해 나가다가 그런 경계가 있는 것이여. 무자(無字)를 해 나가는디 문득 '담 너머에 가 외 따 오니라'

“운무중(雲霧中)에 소를 잃었으니 어떻게 해야 소를 찾겄습니까?”
“담 너머에 가 외 따 오니라”

아! 이놈이 퍼떡 들어오면서 그만 견성(見性)을 했네. 내가 견성을 했다 그 말이여. 아! 금방 깜깜하던 것이, 아! 견성을 했다.

“운무중(雲霧中)에가 소를 잃었으니, 운무중에다 소를 잃었으니, 구름 안개 속에다가 소를 잃었으니 어떻게 했으면 소를 찾겄습니까?” “담 너머에 가 외 따 오니라” 아! 그 말이 퍼떡 들어오면서 툭 깼네. 확철대오여, 나는. 내가 그랬다 그 말이여. 그 인가도 없고. 뭔 대오(大悟)를 했는지 안 했는지 누가 아나? 나 혼자 시방 헌 거지.

그때에 곡성 뒷재를 넘어가는디, 다리 노지(징검다리)를 건너가는디 ‘문아서래의(問我西來意)하면, 만약 이때에 나한테 서래의(西來意)를 묻거드면은 녹수암전거(綠水岩前去)로구나. 녹수(綠水)는 암전(岩前)으로 흐르는구나. 암전으로 가는구나’ 뭐 다른 놈 갖다 쓸 것 없어.
그때는 ‘약인(若人)이 문아서래의(問我西來意)하면, 만약 사람이 나한테 서래의를 묻거드면, 각하녹수암전거(脚下綠水岩前去)다. 각하(脚下)에 녹수(綠水)는 바위 앞으로 가는구나’ 이놈을 하나, 저 평생 그런 짓 안 보이다 나 혼자 했단 말이여, 그것 나 혼자. 뭐 누가 있어서 옆에 사람한테 헌 것도 아니고.

아! 그러고는 그 재를 넘어가서, 넘어가도 어떻게 넘어간 줄 모르고 뒷재를 넘어가서 곡성 동리사 절을 들어가니까, 고요한 산문(山門)에 뭐 선방(禪房)이라고 했자 선방은 텅 비어 있고, 이름만 선방이지 없고. 큰절 뭐 선방 그 곁에 모도 그 사판중들은 그대로 있고.
누가 아나? 누가 무슨 뭐 뭐 내가 누구한테 뭐 '알았다'고 해 봤던들 누가 알아줄 사람도 없고, 내 혼자 법당에를 들어가 봐도 부처님이 거그 다 그대로 계시건마는 부처님도 하나도 없고, 대체 원 뜰 앞을 봐도 뜰 앞에도 아무것도 없고, 산을 봐도 산이 없... 봐도 없다 그 말이여. 산이 있어도 없다 그 말이여. 없고 없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가 그만 없어. 그대로 텅 비어 버렸다 그 말이여. 그때 내 경계가 그려. 바로 깼는지 못 깼는지는 몰라도.

밤에 달은 환한디 누(樓)에 올라가서—잠이 와? 잠켕이는 뭐, 아무것도 없지. 어떻게 그 이상스러?
누(樓)에 떡 올라가서 그날 지은 것이 그것이여. 그날 처음에 지은 것은 그때는—내가 뒤에 그만 그 대갈빡을 끊어 버렸지마는,

작야삼경월만루(昨夜三更月滿樓)요  고가창외노화추(古家窓外蘆花秋)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조도차상신명(佛祖到此喪身命)이요  암하유수(岩下流水)는 과교래(過橋來)니라
나무~아미타불~

아! 그날, 내가 글이라고는 평생에 지어 본 일도 없고, 지을라고도 허지도 않고, 뭐 나 뭐 절에 들어와서 어릴 때 들어와 가지고서는 뭔 놈의 글 내가 얼매나 배웠나? 『초발심자경(初發心自警)』 배우고는 그냥 그다음에 뭐, 이것도 좀 배우다 저것도 좀 배우다 뭐 그래 그랬지.
그러다가 그만 무상(無常)한 생각이 일어나서 도 닦을 마음이 나니까, ‘그것 쓸데없는 놈의 글 그것 알아 뭣혀, 도 닦으면 그만이지. 도 닦으란 말이니 도 닦으면 그만이지 그것 배워 뭣 혀?’ 그 생각이 일어나니까 죽어도 글을 못 배우겄드구만. 배우면 글만 배우면은 전부 도 닦으란 말뿐인디 뭐 그 뭐 그 밤낮 밥 먹으라고 했으면 밥 먹으면 그만이지, 밤낮 밥 먹도 않고 ‘밥 밥’만 설식기포(說食豈飽, [說食求飽])만 하면 되아? ‘밥’ 말만 하면 앉았으면 배는 그대로 고프지, 먹어야지.

참선을 해야지! 글만 밤낮 보고 있어? 에잇 거 어리석은 일, 그 글 배우다 죽어 버리면 오늘 죽어 버리면 당장에 도(道) 못 닦을 것인디, 내일을 기약해 가지고 '내일 도(道) 닦겠다' 하고 오늘 글 배우고 앉었어? 거 어리석지 않어?
‘나, 나 뭣 뭣 해 놓고 인자 도 닦겠다’고. 그런 놈의 어디 멍청허고 미련헌 놈의 마음이 어디 있어? ‘지금 오늘은 내가 그냥 뭣 내 헐 것 다 해 놓고, 내일부텀 도 닦을란다’고. 오늘 뒈져 버리면 어쩔 것이여. 그 소용없는 것이거든.

무상을 간택하는 법이 그렇지. ‘내일 헐란다, 내년에 가을에 헐란다, 명년에’ 거 소용없는 것이여. 도학자(道學者)라는 것은 그게 아니여. 발심(發心)은 그게 아니란 말이여.
당장에 그만(그대로 곧) 닦아야지. 누가 닦아 줄 것인가? 누가 못하게 한다고 내가 안 닦을 것인가? 무슨 사정이 있다고 안 닦을 것인가? 무슨 사정에 내가 끌릴 것인가?
자식이 뭣이여? 자식 있다고 자식도 키워 놓고 도 닦아? 그놈의 것, 그까짓 놈의 자식 뒈지든지 말든지 내 일을 해야지? 이런 꼴에.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디 '어머니 따문에 도를 못 닦는다'고 그래. 그 어머니 모시고 있으면은 어머니 시봉 다 해 드리고 그저 어머니 일체사를 효자를 다 허고 도를 닦을 것 같으면 그 여읠 것도 뗄 것도 없고, 아 그대로 그만 상근(上根)이니까 나올 것도 없고.
만약에 어머니가 있어 가지고는 그만 어머니 때문에 시봉허고 어쩌고 모도 어머니 사정에 끌릴 것 같으면은, 도(道)를 끌려서 못 닦을 것 같으면은 그거는 하근(下根)이니까 내던져 버리고 나와야 하고. 그런 거여. 하근 상근이 있어서 상근, 내가 상근인가 보다, 내가 하근인가 보다, 알 수 있지.

그런 디 모도 걸리고 그런 애착 반연(攀緣)에 모도 얽혀서 도를 못 닦게 되면은 아! 그건 열 번 백 번이라도 버리고 출가(出家)해서 도 닦아야 하고.
아무 일이 없으면은 하나도 구애(拘礙) 장애 없이 그저 국민이 되었으니 나라 충성하고, 부모자식이 자식이 되았으니 부모한테 효도를 해야 하고, 마누라가 있고 자식이 있으니 마누라 그저 어쨌든지 잘 동거 생활해 가면서 자식 교육시켜 나가면서 헐 수 있는 것이여. 다 허면서 색색잉구(色色仍舊)를 허면서 그 그렇게 해 나갈 것 같으면은 촌보(寸步)도 옮길 것 없지. 뭘라고 옮겨. 참 거 상근대지(上根大智)인디. 그런 사람은 부처님이 출가를 권헌 법이 없어. 어쨌든지 그렇게 해라 했지. 그렇게 말만 그러지, 언행상위(言行相違)가 되아. 말과 행이 다르면은 뭐 헐 수 없어. 네가 도를 못 닦.. 그래 입으로만.
'일체 반연(攀緣) 경계도 아무 관계없다, 걸림 없다, 뭐 그런 디 손색이 없다' 그런 마음이 있거들랑은 도를 닦고. 그렇지 못허거든 출가를 해라. 어쨌든지 출가를 해야사 도를 닦게 되면은 그렇게 해라. 그 제 근기를 제가 다 알아야 되지.

이렇게 한참 해 놓다 보면은 그 원 가닥을 법문 가닥을 잊어번져. 나 참!
이거 그전에는 그런 법이 없더니 인자는 그만 한참 허다 보면 잊어번져. 그 어디 그렇게 어느 가닥에서 이렇게 했는지를 모르니까 그만두어 번지고, 여그서 그만 이놈은 그대로 두어 번지고 또 계속헐 수밖에 없지.

이렇게 게송(偈頌)을 내가 짓고. 그 게송은 지금도 봐도 하나도 뭐,
작야삼경(昨夜三更)에 월만루(月滿樓)요  고가창외(古家窓外)에 노화추(蘆花秋)라.
불조(佛祖)가 도차상신명(到此喪身命)인디  암하유수(岩下流水)는 과교래(過橋來)라.

그것 참! 그 송(頌)을 뭐 큰스님네도 봐도 다 절찬(絶讚)을 했다 그 말이여. 절찬했지!
그러고는 그날 밤 지내고 거기 뭣, 뭐 모도 뭐 있지마는 그런 것 다 뚝 떼 번지고, 인자 오늘 그것 하나 허고 싶... 이 이 말 하나 헌 것은 그 헐 말이 있어서 지금 허고 있어.(처음~23분29초)





(2)------------------

거기서 제일 가까운 큰스님이 마곡 혜봉 스님이락 하는디, 마곡 혜봉 스님은 뭐 보통 행(行)이 아니여. 행으로 말하면은 한국 선지식 가운데 제일 먼트러워. 먼트럽다는 것은 제일 당최 행(行) 볼 것이 없다 그 말이여. 그만 공부허다가 견성을 해 가지고는 그만 그길로 마을로 나갔어. 구암사로, 저 구암리로.
구암리 동네로 나가서는 패철을 하나 차고 패철, 그 묏자리 같은 거 보는 그 패철 그걸 차고는 산 지리(地理)가 뭐 명당인지 무슨 뭐 그런 거 잡는다고 산에 올라댕기면서 묏자리 잡는 것을 패철 타고 댕기면서 그래서 허고 있음서, 마누래를 하나 얻었는디 마누라는 제갈량(諸葛亮) 마누래처럼—천하에 못났다는구만, 제갈량 마누래가—천하에 못난 마누래를 얻었어, 혜봉 스님이. 입은 똑 말 이빨 같고, 얼굴을 뭐라고 할 수가 없어, 내가 봤구만. 눈도 어떻게 이상스럽게 툭 까지고, 양쪽 눈이 다 다르게 생기고, 뭣 입이라든지 뭐 말하는 것 봐도 기가 맥히다 그 말이여.
내가 그저 그 마곡 혜봉 스님을 찾아 들어가니까 거그 인자 그 그런 부인이 하나가 있는디 마누래라 하드구마는. 그래 아들 그때 둘 낳아 놨어. 큰놈 작은놈 둘이 커 나는데, 아들을 잘 낳아 놨다 그 말이여. 아들은 잘 낳아 놨고, 또 그 부인이 그렇게 못생겼어도 거 반찬 그런 것 참 썩 잘한다 그 말이여. 감나무 버섯을 따다가서 된장을 지져 놨는디 그 뭐 참 일품이여. 똑 같은 감이라도 지지기 달렸거든.

내가 어저께 우봉(우엉)잎 줄거리를 줏어다 주면서 장(醬)을 지지라고 했지마는, 그것도 잘못 지지면은 그 맛 아무것도 없어, 씁쓸허니. 허지마는 고놈 바탕이 좀 쌉쌀하거든. 쌉쌀한 게 그게 맛이여. 쌉쌀하지마는 고놈을 잘 잘라 가지고는 한 층 안치고, 고 한 층에다가서는 양념장을 그놈을 맛있게 해야 한다 말이여. 인자 뜻밖에 법문허다가 인자 지금 반찬 맨드는구만. 반찬 맨드는 건 법(法) 아닌가?

차분허니 한 층 놓고는 고 우에다가 양념장을, 양념장에다가 설탕 조금 넣어야 혀. 달게는 넣으면 못쓰지마는 조금 넣고, 깨소금 · 고춧가루 적당허게 넣고. 깨소금을 쪼끔 넣고, 고춧가루를 잔뜩 넣고, 그 다 못쓴 것이여. 반절 반절 똑 그래 넣고. 매와도 못쓰고, 얼마 딱 양념이랑 그래 넣고. 참기름 좀 잘 치고, 그래서 장(醬) 좀 붓고, 물을 좀 부어서 간을 맞촤 가지고는 요리 떠 가지고, 숟가락—간 같은 것, 숟가락을 넣어서 그냥 젓어 가지고 입에 쭉 훑어 마시면 그 당최 그 대중공양 허면서 못쓰니까, 요래 찍어서 손바닥에 놔 가지고 맛을 보면은 달도 쓰도 않고 적당하지. 너무 짜도 못쓰고, 싱거워도 못쓰고.
그렇게 해 가지고는 간을 아주 양념장에다 맞춰 가지고는 그놈을 한 층 썰어 놓고 거다 살모시 이렇게 붓고는, 또 고 우게다 또 한 층 놓고 붓고, 대공이 그렇게 놓고 또 잎사귀도 옆에다가 또 쟁이기도 허고, 그래 쟁여서 사이사이에다가서 양념장을 해서 따악 겹겹이 그렇게 올려 가지고서는 딱 해 놓고서는 양념장 쳐 가지고 놓고는, 옆에다가 또 좀 물 좀 살모시 그놈 쟁겨서 끓을 만큼—설찬히 물이 있어야 푹 지져져서, 가만히 물을 붓고는 조금도 건들지 말고 한 두어 시간 푹~ 쪄. 자꾸 자갈자갈 자갈자갈 쪄. 그래 가지고 다 된 뒤에 곁들이 곁들이 이파리는 이파리대로 놓고, 대공이는 대공이대로 딱 떠서 놓고, 아 그래서 놔 봐. 대중 반찬 기가 맥히제. 아! 그래 내가 그리 줏아다 주었지.

또 여까장 헌 말은 뭔 말끝에 내가 이 말을 헌고 모르겄어. 그럼 요놈은 또 여까장 두지. 거 구태야 이것을 무슨 뭐 다 이을라고 헐 것도 없고.

'감나무 버섯을 갖다가 혜봉 스님 부인이 잘 지져서 해 놨는디 그렇게 맛이 있드라' 그 말을 헌디 이놈을 했어. 참말로 맛.. 그러고 또 얻어먹고 댕길 때니까, 입이 뭐 굴퍼서 가난해서 에지간만 해 줘도 꿀맛이지. 허지마는 감나무 버섯을 지져서, 혜봉 스님 그 패철 차고 머리는 길러 가지고 막걸리나 잡솼든가 어쨌든가 그때 그건 잘 모르겄구마는, 그러고 와 계신다 그 말이여.
가서 그 같이 참 맞상에다 차려 가지고는 나를 밥을 주는디 황송허드구마는, 황송허거나 말거나 그녀러 것 뭐 야단스런 체면 채릴 것도 말 것도 없고 그렇게 채려 주셔서, 참 탈속허고 무슨 뭐 무슨 '젊은 사람이다 뭐이다 아들이다' 그런 것도 생각할 것도 없고, 내가 그때 무슨 나이 한 스물두어 살 먹었은께 뭐, 아주 새파랗지 뭐.

그래 얻어먹고 나서 절을 허고, “큰스님께 온 것은 다름이 아닙니다. 무자의지(無字意旨)를 물으러 왔습니다. 무자 화두를 허다가 의심이 없어서, 제가 곡성 동리재를 넘어오다가 그 ‘운무중(雲霧中)에 소를 잃었으니 어떻게 했으면 소를 찾겄습니까?’ 하니까 ‘담 너머에 가 외 따 오니라’ 그 말에 그만 무자(無字)의 의지가 뒤집어져서 견성을 제가 바로 헌 것 같습니다. 좀 큰스님께서 대답해 주십시오” 내가 그랬지. ‘바로 견성했습니다’ 소리도 않고, '헌 것 같습니다. 좀 바로 봐 주십시오'
“그럼, 어디 물어보게”

“무자의지(無字意旨)를 반(半)만 일러주십시오” 흥! 반만 일러 달란 말도...
“무(無)!”

“반 안 됩니다. 반 될 이치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수좌가 일르게. 어떤 게 반(半)인가? 어떤 게 무자의지 반(半)인가? 수좌가 이르소” 나한테다가 돌려보낸다 그 말이여. 법두(法頭)를 돌려보내아.
내가 또 “무(無)!”

고개를 끄덕끄덕허시면서 흠, 인자 그 뒷말이 무서워.
“거년(去年) 가난은 비(非)가난이여. 거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어서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 가난은 시(是)가난이여. 금년 가난은 참 가난해서 송곳까장 없다” 내 그냥 말로 이렇게 헐 테니까. “송곳까지 없다. 그랬으니 고인(古人)이 터억 그 옛 큰스님이 점검을 허시되, 여래선(如來禪)밖에는 안된다”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송곳까장 없다고 했으니, 송곳 꽂을 땅도 없지마는 송곳까지 없는 도리는 여래선밖에 안되아. 여래선으로는 그 인가를 헐 수 없는 거고. 조사선(祖師禪)이래야 되니 조사선을 못 일렀다 했으니, “어떤 게 조사선(祖師禪)인가?”

거 조사선 이르기... 터꺽 거그서 용 대그빡 용 몸뚱이를 붙이기가, 용 몸뚱이에 용 대그빡 거 갖다가 붙이기가 그렇게 어렵네. 도저히 못한 법이여. 바로 공안(公案)을 보지 못허면은 못혀. 거기 붙어 있지만 못혀. 그놈을 백 번을 여기서 일러 놨자 소용없어.
'오! 그런 건가 보다' 그런 것 가지고는 안 되는 법이여. 확연해서 그런 이의(異意)가 없는 것이거든, 공안에는. 뉘기 짬이 없어. '그런 겐가?' '아! 그렇다' '오! 고렇다' 그거 없어. 고런 짓이 저 죽는 것이여.

아! 그때에 내가 이르되 뭐 뭐 뭐 뭣 버떡 이르지. 뭐 뭐라고 뭐 주저할 것 없지. 뭐 버떡 일러. 허지마는 참 그것 그래 가지고 저 죽는 것이지.
능각첨첨첨사추(菱角尖尖尖似錐)라고, 그 있는 공안 뭐 말에 있는 것이여. 나는 “능각첨첨불사타(菱角尖尖不似他)”라 그랬다 그 말이여. “능각첨첨(菱角尖尖)이 타(他)와 같지 않다”고 이래 놨네.
그래 논 게 암 말씀도 안 혀. 아주 태도가 그렇게 좋지 못한 기색을 가지고 아무 말씀도 안 혀. 두 말도 안 혀. 내의 허는 경계를 보고 그랬든지 어쨌든지 아무 말도 안 해.
‘참 나를 인가(印可)를 했다’ 아무 말도 안 하니 인가한 줄 알았네. 하! 이런 미친 발광(發狂)... 아! 그래 그만 그러고는 절허고 나왔다 그 말이여. 나중에 내가 참 그 나중에, 그 뭐 또 인자 그 모도 여러 가지 헌 것 꽉 찼지마는 그것 다 그만두고.

공부에 판치생모(板齒生毛)가 그렇게 맥혀. 그건 암만해도 당최 맥혀 안되겄다 그 말이여.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인고?’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 아 그놈이 어짠지 그리 맥혀. 최후 그놈을 가지고는 참 애를 무척 썼어.
맥힌 놈, 맥히면은 그전에 했든 공안이 암만 깨달랐다 하드래도 아니라 했으니까 소용이 없거든. 안 되아. 맥힌 놈을 추켜들어 해야지. 그냥 맥힌 놈이 있어도 ‘에잇! 그 다 깨달랐다’고, 그 소용없는 놈의 아무것도 아니여. 뭣이여 그것이? 그래서 그놈을 가지고는 참 살림을 무척 했지. 한바탕 되게 했지.

아! 그놈 내가 바로 참! 그라면 물팍을 냅대 치고는 아! 보니까 혜봉 스님한테 헌 것이 큰 그것 뭣이여? 큰 대죄를 지었다 그 말이여. 그 혜봉 스님이 인가 않고 그 불연(不然)허던 경계가 나타난단 말이여.
내가 그래서 그 인자 그런 공안을 일러 논다한들 어쪄? 일러 놨다고 해서 봐? 못 봐. 소용없어. 전무나 후무나 반무나 온무나 뭐 다 똑같이 맥히는 것이고 소용없거든. 그 공안 암만 일러 놔도 언하(言下)에 대오(大悟)하면 뿐이지마는 소용없는 것이여. 그 조주 스님 공안 많이 범연히 많이 일러 놨어? 한량도 없이 일러 놨지.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까 '판치생모'는 바로 이른 것 아니고 뭣이여? 그 알 수 있어?
그 판치생모를 턱 물으면은 ‘무수호손도상수(無鬚猢猻倒上樹)다. 수염 없는 늙은 원숭이 냉기를 올라간다’ 그 그 뭐여? 그건 뭐여? 바로 일러 논 게 아니고 뭐여? 소용없어. 하나, 그놈 했자 뒤는 어쩌고? 거 안되는 것이여.
그 파설(破說)이여? 파설 아니여. 아주 그래 논께 뭐 ‘파설했다’고. 파설이 뭐이 파설이여? 자기들이 봤는가?

법문(法門)이라는 것은 공안에 밝으면은 의리(義理)에 더 밝는 법이여. 의리로 말하라면 의리를 더 더 명백하게 허는 것이여. 의리로 설파는 말라는 것이여.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들어가도 치고 나와도 친다” 그럼 들어가도 치고 나와도 친다 하니까 그때 그 학자(學者) 하나가 푹! 들어갔다. 확 들어가. 들어갔으니께 탁! 쳤다 말이여.
맞고는 학자가 “모갑(某甲)을 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께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네.
양구(良久)도 아니여. ‘쉴 휴(休)’ 자, ‘갈 거(去)’ 자, 휴거(休去)여. 그 뭣이여? 그 학자는 왜 들어갔어? 학자가 눈이 있어, 없어? 그놈을 탁! 그대로 환해. 저 길 보면 길이 어떻게 생겼다는 거까지 나타나 버리는 거여.

멋대가리 없이 ‘견성했다’고. 뭔 말하면 휙 대답 한마디, 그 뒤는 어떻게 허고?
아무때나 그러면 주먹 내밀면은 “주먹 낸 의지가 무엇이냐?” 하면, “할(喝)!” 허고, “할(喝)헌 의지(意旨)가 뭐이냐?” 하면, “방(棒)” 허고, 이러고 야단치고 있어? 그거 그거 아무것도 아닌 것이 건방지기만 건방졌지, 뭣 하는 것이냐 그 말이여, 그것이?

아니니께 아니라 하는 것인데 저는 기라고 허는구만. 그러면 뭘라고 그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와? 저는 기면, 견성했으면 그대로 가서 어디 가서 보림(保任)을 허든지, 제야 무슨 뭐 성불을 허든지, 중생교화를 허든지 허지.
그것 미쳐 버린 것이여. 그대로 인자 그 지경 되면은, 선지식 말도 안 듣고 그 지경 되면 속한[俗還]이 그대로 가 버리는 거여. 그대로 가서 그만 제대로... 안되야.

그 아! 그때에 그 “어떤 게 조사선, 조사선(祖師禪)을 일러 보소. 조사선이겄는가?” 할 때, 원 세상에 거그서 그놈을 하나를 못 일러 놓고 말았네. 내가 그때 그 일러 논 놈 내가 다시 허지 않네. 다시 허지는 안 해. 않지마는 천하에 도무지 기가 맥히지.

공부라는 것이 학자 때 견성 못하고 '견성했다'고, 제가 인자 공연히 속아 가지고는 돌아댕김서 그 지랄 피운 거 그것 제일 못쓰는 것이니, 참회를 참말로 혀. ‘옳다! 그런 게 아니로구나’ 진참회(眞懺悔)를 허고는 화두를 어쨌든지 인자 그때 참 다뤄, 그때.
뭔 못된 소견(所見)이 나 가지고서는 그 모도 일체 화두를 갖다 제 소견 소집(所執)을 붙여 가지고는 상량(商量)허는 놈의 ‘요런 것인가 보다, 저런 것인가 보다’ 그것 되는가 그것이 어데? 그게 그런 것인가 어데? 부디 거그서 주의해서 그런 지견(知見)이 날까 무서워. 날까 무서워서 활구(活句)만 자꾸 거각(擧却)해. 활구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판치생모? 판때기 이빨에 털 나?’
그놈의 것을 ‘판때기 이빨에 털 난 법이 없는디 털 난다고 했으니 없는 걸 일렀는가 보다’ 요따구 놈의 소견, ‘본래 없는 것을 이르니라고 그랬는가 보다’ 요런 놈의 소견, 별 소견을 다 붙여봐, 그 되는 것인가?

왜 어디 없나? 이렇게 소소(昭昭)허고 이렇게 영령(靈靈)한 주인공이 아무리 모냥을 찾아봐도 없고, 낯반대기도 없고, 코빼기 없지마는, 이렇게 분명허고 전부 이 ‘이뭣고?’ 요놈, 요놈의 모도 소행인디. 없어? '없다'고 해 놓고 보니까 없어야지?
'있다'고 해 놓고 보니 어디 어디 무슨 뭐 몸뚱이가 있어, 모양이 있어, 뭐가 있어? '없다'고 해 놓고, '있다'고 찾아보면 도무지 없네. 아무 모냥다리도 없는데 '없다'고 해 놓고 보니 이렇게 소소영령(昭昭靈靈)해.
주인공(主人公)이 다 알지. 주인공이 다 맨들아 놓았지. 내가 모도 맨들어 놓았지, 누가 맨들어 놓았어? 낱낱이 주인공 개개(箇箇) 주인공이, 사람사람이 주인공이 다 있으니 소소영령헌 주인공이 우주 만물을 창조했지. 우주 만물을 맨들아 냈지. 무슨 놈의 하날이 있어서 우주 만물을 창조했냐 그 말이여.(녹음 끊김)

아담을 창조해 놓고 과수를 따 먹지 말아라. 과수를, 과실(果實)을 따 먹으면은 죄악으로 화하리라. 전서(全書)에다 갖다 모도 이렇게 해 놓고는.. 고것을 그 참으로 비유해 놓은 거여. 잘해 놨지. 그런 비유가 어디 있어?
아! 그 하날(하늘)은 천성(天性)이다. 천성은 하날이다. 천성이 하날인디, 천성이여. ‘하늘 천(天)’ 자, ‘성품 성(性)’ 자. 천성(天性)은 내여. 내가 하날이여. 내가 들어서 ‘하날이다, 땅이다, 우주만물이다, 삼라만상이다, 정여무정(情與無情)이다, 두두물물(頭頭物物)이다, 화화촉촉이다’ 누가 해 놨냔 말이여? 누가 이름을 그렇게 맨들아 지어 놔 모도 불러? 내야. 내가 아닌가?

우주만물을 창조헌 주인공은 낸디, 심왕식(心王識) 심왕, 마음 심(心) 낸디. 육일(六日)이라는 것은, 육일이 뭐여? 육일, 육일이란 게 뭐냔 말이여?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6일 아닌가? 눈, 귀 둘, 코빼기 셋, 쎗바닥 넷, 몸뚱이 다섯, 뜻 여섯, 그놈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가 육식(六識)이라 그 말이여. 육식이 들어서 '하날이다, 땅이다, 우주만물'
눈은 눈은 눈은 보는 놈, 보는 것 밖에는 모르지. 눈은 보는 것 밖에 모르고, 귀는 듣는 것 밖에는 모르고, 코는 냄새 맡는 것 밖에는 모르고, 쎗바닥은 맛보는 것 밖에 모르고, 몸뚱이는 촉식—만져 보는 것, '껄끄럽다, 부드럽다' 아는 게고. 뜻으로 세아리는 거, 세알라 아는 거. 다 달라서, 맡은 게 다르다 그 말이여.
그 육식(六識) 아닌가? 그 육식(六識)이 들어서 모도 맨들어 내는 거 아닌가? 그 비유허는 말 아니여? 하날이 우주 만물을 6일 동안 창조했다는 것이 그 말이여.

거기에 안식일(安息日)이네. 7식(七識)! 제 7일은 안식일이 제7식(第七識)이여. 제7식, 7일이라는 것은 안식일이여. 그날은 쉰다 그 말이여. 그 쉬는 놈 고놈이 제7식인디, 7식이 하나가 있는디, 제8부동식 뢰야식 가운데에서 갖다가서 눈이니, 귀니, 코, 쎗바닥이니, 몸뚱이, 뜻이니 그런 것 발허기 전(前)이 심왕식(心王識)이여. 제8뢰야식장(第八賴耶識藏)이여.
아 꽉! 잠 꼭 들어, 꼭 잠든 상(想)도 없는 그 지경이 제8뢰야식장인데, 그 뢰야식장에서 한 생각이 일어나 가지고는 이놈이 터꺽 눈으로 보는 디로 전해 주는.. 눈으로 보고 터꺽 듣는 귀를, 7식 고놈 하난디 고놈이 들어서 모도 보내주는 것이여. 눈으로 보내고 귀로 보내고 쎗바닥으로 보내고, 그걸 종식(種識)이락 해. 제7식은 종식이여.

제8부동식장, 꽉! 맥혀서 알 수 없어 가지고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의심, 아무것도 알 수 없고, 그 판치생모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또 ‘이뭣고’는 ‘이뭣고?’
이뭣고? 해 들어가다 아주 의심이 독로해서 그 의단독로헌 지경은 몰라. 아주 곧 혜가 그 가운데 들어앉어서도 의심 가운데 앉어서도 몰라.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그 지경이 그게 제8근본 무명식이여.
꽉 맥힌 놈이 은산철벽(銀山鐵壁)이 나아갈 수 없고, 물러가도 죽고, 알 수 없는 곳에 다달라서, 그 알 수 없는 지경이 의심(疑心)이여. 의단이 독로해서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이레는 못 넘어가. 이레만 넘어가면은 툭 터져 버리는 거여. 폭탄 터지듯기 터져. 툭 터져야사 각(覺)인디, 각은 제9백정식(第九白淨識)이여. 백정, ‘흰 백(白)’ 자, ‘조촐헐 정(淨)’ 자, 백정식(白淨識)이여. 바로 깨달은 식(識)이란 말이여.

뻘로 공연히 입 벌려서 '견성했다'고 허면 되는가? 그래 가지고 공연히 남 속이고 저 죽고. 그런 짓 해서는 못써. 천하에 못헐 짓이 그 짓이니깐 학자가 그것을 삼가치 아니할까 보냐.


장교(藏敎)라는 것은 절각(切脚)이다. 주각(註脚)하는 거여. 내 자기(自己)를 주각 내는 것이지, 그 건들어 보도 못했어. 이 화두 공안이란 무자(無字)는 주각 한번 내 보겠냐? 내 자기(自己)에 대해서, 내란 이 마음자리에 대해서 팔만대장경으로 부처님이 주각을 냈다고 헐 수 있으니 그건 끊어진 다리다. 다리 부러진 거여.
이 낱 무자(無字)도 한번 주각을 해 보겄냐? '무(無)', 조사 공안 '무(無)' 여그 주각을 한 번 내 보겄냐? 쎗바닥을 붙여 보겄냐? 이 말이여. 이렇게 깊은 법문이여.

무자부(無字否)아? 영리한(靈利漢)은 직하흔번(直下掀飜)해라. 영리한 놈은 여그서 바로 봐 버려라. 무자(無字)를 한번 즉착(卽捉)해 보겄냐? 무자만 바로 깨달라 번질 것 같으면은 통명자기(洞明自己)다. 자기(自己)는 그대로 통명(洞明)이다. 훤출해 버렸다. 뭐 다시 말헐 것 없어. 착파조주(捉破趙州)다. 조주도 착파(捉破)해 버린다. 조주가 '무(無)' 했지마는 조주도 타파해 버려.

감파불조득인증처(勘破佛祖得人憎處)다. 불조인증처(佛祖人憎處)를 감파(勘破)한다. 불조가 인증처, 불조인증처라는 것은 인증처(人憎處)—‘사람 인(人)’ 자, ‘미워헐 증(憎)’ 자, ‘곳 처(處)’ 자여. 불조(佛祖)가 인증처(人憎處) 얻는 것을 감파(勘破)한다. 한문 투는 그려.
그건 무슨 말이냐 허면, ‘불조가 사람 미워헌 곳 얻은 것을 감파한다’ 한 것은 불(佛)도 한번 방맹이 놓는다 그 말이여. 내 자기(自己)는 툭! 터져 번지고, 내 자기 툭 터져 버릴 것 같으면 조주를 한 방맹이 놓을 것이고, 조주를 한 방맹이 놓을 것 같으면은 불조패궐처(佛祖敗闕處)도 절단 나. 불조패궐처라는 건 불조의 허물을 치는 것이여. 불조(佛祖)도 패궐(敗闕), 부처님도 허물이 있다 그 말이여. 불조패궐(佛祖敗闕)을 쳐부수리라.

허이도(許爾道), 너를 허락해서 내가 일러. 허락을 허되, 대장교(大藏敎)가 식옹창지(拭癰瘡紙)니라. 부처님의 대장교가 그 절각(切脚)이라고 아까는 했지마는 인자는 부스럼 닦아 내버린 종이다. 그 부스럼—조주무자(趙州無字) 바로 타파(打破), 탁 깨달라 네 자기 밝혀 버릴 것 같으면은, 아 조주도 한 방맹이요, 부처님도 한 방맹이 놓아 버렸으니, 대장교는 그 아까는 절각(切脚)이지마는 인자는 고름 닦아 내버린 종이때기다.
그 병 다 낫웠으니, 모도 요리조리 모도 분석 따져서 해 놨던 병 낫아 버렸으니, 고름 다 닦아 내버렸다 그 말이여.

수연여시(雖然如是)나, 비록 그렇기는 그렇다마는 이 낱 무자(無字)는 종하처출(從何處出)고? 그러면 이러헌 무자(無字)는 어디서 나왔느냐? 어디서 나왔느냐?
이 무자(無字) 도리(道理)를 한 번 참! 다시 봐 봐라. 이 무자(無字)는 어디서 나왔느냐? 이렇게까장 몽산화상(蒙山和尙)이 십절목(十節目)을, 열 가지 절목을 이렇게 말을 해 놨어. (23분32초~52분16초) (끝)

Posted by 닥공닥정

•§•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 (7/9) 몽산화상의 무자십절목.

**전강선사(No.504)—무자십절목(7) (통명자기까지) (갑인74.05.26. 새벽) (전504)

 

(1) 약 35분.

 

(2) 약 18분.


(1)------------------

교소침변부(巧笑枕邊斧)허고  감언석상사(甘言席上蛇)니라
나무~아미타불~
악의감수절(惡衣甘守節)이요  암곡호장신(巖谷好藏身)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교소(巧笑)는 침변부(枕邊斧)다. 그 교묘스럽게 이상스럽게 웃음을 웃되, 그렇게 괴상스럽게 처억 웃는 웃음은, 묘하게 싸악 웃는 웃음은 웃음 속에 도꾸(도끼)가 들었어. 도꾸, 그 나무 패는 도꾸, 그 무서운 도꾸가 있다 그 말이여. 도꾸 그놈 한번 찍으면 모가지도 뚝 떨어지는 그런 도꾸가 있거든. 좋은 이상스러운 웃음, 교소(巧笑).
감언(甘言)은 석상사(席上蛇)니라. 단, 그 단 말은—그 말을 꿀같이 좋게, 내 귀에 좋게 듣기 좋게 그렇게 헌 말은 자리 밑에 뱀이여. 내 앉었는 자리 밑에 독사여. 거 물어 죽이는 독사란 말이여.

우리 도문(道門)에는 그런 감언이설(甘言利說) 감언이, 단 말이 없고, 괴상스러운 교소(巧笑)가 없어.
뭐 공안이라도 턱 일러서 방(棒)이 내리고 할(喝)이 내리고 그 괴상허다 그 말이여. 그러헌 디 가서 견성성불(見性成佛)이 있는 것이지, 뭐 “옳다!” “네가 바로”—깨닫도 못한 걸—“깨달랐다!” 사람 천만 사람을 그렇게 갖다 버려 죽여? 그 깨닫지 못한 걸 깨달랐다 하면은 어찌 될 것인고? 그러니 인자 잡것만 되어 가지고는 모도 넘을 갖다 다 눈멀려 죽이고.
저 대혜 스님 때부텀 지금으로부터서 한 백 몇 년 전부텀 얼마나 그러헌 모도 무인가(無印可) 중이 나와 가지고, 인가도 없는 중이 제가 나와 가지고 도인 노릇을... '여마사속(如麻似粟)이라, 삼 같고 대 같다' 그랬다 그 말이여.
바로 보면은 어디 인가할 것이 뭐 인가가, 뭐 인가헐 것 없다는 건 아니지? 오히려 방(棒)을 맞지.

보월 큰스님, 만공 스님 제자 보월 큰스님이, 만공 스님이 바로 턱 인가를 헌 그런 스님인데, 10년 만에. 늦게 참 중이 되았어. 되았어도 사람은 당최 모냥은 참 세상에는 불출(不出)이지. 그렇게 불출은 아마 몇 없을 게로구만 세상에.
김보월 스님, 얼굴은 뻘거니 메주 볼태기가 메주뎅이만 한 놈이 둘이 여가 붙었다 말이여. 붙었고. 몸뚱이는 얼마나 큰지 천하 없는 옷을 해도 맞지 않으니께 여가 이래 버개 해 가지고는 원 세상에 그렇게 생긴 이는 없어. 수중다리는 양쪽 수중다리네. 다리가 둘 다 다 기둥 만한 수중다리여, 둘 다 다.

그런 어른인데, 아! 10년 만에 도를 깨 노니, 도를 깨달라 노니, 아! 도(道)가 있으니까 천하에 그 뭐 뭐 제일이지, 말할 거 뭐 있어? 만공 큰스님한테 인가를 척 받고. 만공 큰스님이 법(法)을 전해 주었지. 법을 전해서 (예산) 보덕사(報德寺)란 절에다가 인자 회상(會上)을 꾸미고 보월 스님이 거그 조실(祖室)로 계시고.
만공 큰스님은 보덕사 주지(住持)로 계시고—인자 조실 내놓으시고, 보월 스님한테다 전했으니까 조실 내놓으시고 이름을 주지라고 띄고는 그래 계시면서 조불양화(助佛揚化)를, 그 당신 제자 보월 스님한테 법은 전했으니 조불양화를, 양화(揚化)를 항상 보월 스님을 위해서 학자들을 모도 그리 믿게 맨들고 그렇게 똑 계시는데.

저 경상남도 부산, 부산 선암사! 선암사에 혜월 큰스님이 계시는데, 혜월 큰스님 회상에 정운암 스님이 법(法)을 물었다. 법을 물어 왔는디 뭐라고 법을 물었냐 하면은... 거 뭣이 자꾸 이렇게 얼른 안 나오니까 또 생각하니라고 요러고 있지. 허! 그것!
삼세심(三世心)을 도불가득(都不可得)인데, 「과거심 불가득(過去心不可得) 현재심 불가득(現在心不可得) 미래심 불가득(未來心不可得), 삼세심(三世心)을 도불가득(都不可得)인데 점마하심(點麽何心)고?」 이러헌 법문이 있는디. 점심(點心)이락 하니, 이건 어떻게 된 말이냐 하면은 옛날에—그것도 들어야 되아. 이렇게만 들어 버리면은 아는 이는 알지마는 모르는 이는 중간에 들어 놓으니까 소연(昭然)허지 못하지.

옛날에 주금강(周金剛)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디, 주금강이라는 사람은 중도 아니고 그저 속인이든가? 『금강경(金剛經)』을 하도 많이 읽어서 주금강이여. 성(姓)은 주(周)가고 이름은 금강(金剛)이란 말이여, 이름이.
그런데 금강경을 읽는디, 남방(南方)에—그때는 선방(禪房)이 별로 없던 것이여. '남방에 선방이 있으되 참선 모도 선방이 있으되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바로 사람 마음을 가르켜서 견성성불이라고 해야? 제 마음만 깨달으면은 그만 견성이요, 그만 부처가 되아 생사(生死)가 없어? 그 외도법(外道法)이다' 아! 세상에 외도가 앉어서 정법(正法)을 외도라고 헌다 그 말이여.

견성성불법밖에는 없고,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 견성해서 성불허는 법밖에는 말씀헌 것이 없지. 그 다음에는 천경만설(千經萬說)이 방편설(方便說)이지, 뭐 어디 무슨 뭐 방편으로만 설해 놨지, 그거 어디 무슨 법이라 했나? 팔만사천 다라니문(陀羅尼文)이 있고 뭐 병 낫는 주문(呪文)이 있고, 복 받는 주문이 있고, 당장에 무슨 뭐 부귀영화 하는 지위 만능헌 그러헌 무슨 맨 그 모도 방편설이지 그것이 견성성불, 생사 면하는 법인가? 그런디 이놈의 주금강이는 금강경에만 착(着)해 가지고, 경(經)에만 착(着)해 가지고는 참선법을 비방한다.

아! 참선법은 부처님의 몸뚱이요, 부처님의 눈인디. 아! 당장 출가해서 설산수도(雪山修道)해서 견성성불해 가지고 턱 나왔는디, 그거는 모르고 말이여. 견성성불헌 후에 금강경 설한 경만 딱 믿어 가지고는 아! 선(禪)을 반대 비방 배척헌다 그 말이여. 그 어디 있을 수가 있나? 그런 법이 있나?
견성성불(見性成佛)은 부처님이 바로 견성(見性)해 나와 가지고는 그 견성법 전통해 나왔지, 무슨 경을 전통해 나왔는가? 설법헌 경을 어디 전해 나온 데가 있나? 견성허란 말인디, 경(經)이라는 것은.

아! 이놈의 주금강이는 그 경에만 착(着)해 가지고는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을 닦아야사 성불헌다 했는디, 뭐 남방에서 제 마음만 깨달으면은 그것이 그만 견성성불이락 해야? 에이 이놈들, 외도놈들을 모도 항복 받아야겄다'고. 주금강이가 그 책을 짊어지고, 그 경(經)을—삼아승지겁을 닦아야만 성불헌다는 그 경을 딱 싸서 짊어지고는, 책 보따리를 해서 짊어지고는 나온다 그 말이여.
그 경 가운데 그런 말이 있으니까,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을 닦아야 견성헌다' 이런 말을, 삼아승지겁이라는 것은 숫자로 참 그 1년 2년 3년 10년 20년 백년 천년 이렇게 나가 가지고는 아! 삼아승지겁이라는 것은 그건 말로 헐 수가 없는, 햇수로는 말을 헐 수가 없어.
뭐 요새 억조(億兆)니, 무슨 뭐 십양(十穰) 백양이니, 저 해(垓)까장 있다는, 경(京) 십경 백경 뭐 그런 경까장 뭐 이렇게 있다니, 수(數) 수학은 그거는 다함이 없으니까. 숫자 다함이 있나? 수학 박사는 없어. 숫자 다 간 박사는 없다 그 말이여.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이여! 삼아승지겁이란 건 겁수(劫數)를 셀 수가 없어. 그렇게 많이 닦아야사 성불(成佛)헌다 그 말이 있다 그 말이여.

삼아승지겁이라는 것은 그건 일념(一念)에 있는 것이여. 일념, 한 생각. 턱! 깨달을 것 같으면은, 툭! 바로 턱 깨치면은 깨친 그동안이 역사도 없어. 시간도 없어. 시간 공간도 없어.
턱! 깨치는 중생성불 찰나간(刹那間)이다. 중생이 성불허는 법이 잠깐 뭣 백짓장 하나 가림이 있어? 털끝 하나가 거그 갈려져 있어? 그저 '이뭣고?' 툭 깨면은 아 그만 견성이여.

삼아승지겁이라는 것은 견성 툭 헌, 확철대오헌 바람에 누진통(漏盡通), 일체 누(漏)가 다해 버려. 그 무슨 누(漏)가 있어? 법누(法漏)가 어디 찡가져 있을 거냔 말이여? 법누(法漏)도 없고, 불누(佛漏)도 없고, 그 일체 유루지견(有漏之見)도 없지마는 무루지견(無漏之見)도 없어. 툭 깨달라 버리는 거여. 참선법이란 게 이렇게 찰나(刹那)다.
찰나라는 건 잠깐... 고건 또 이 찰나라는 것은—아까 아승지겁(阿僧祇劫)이라는 건 말로 헐 수 없는 숫자를 다 세 넣어도 안 차지마는, 찰나라는 것은 잠깐이여. 말할 것 없어. 그 시간은 어느 때인지 몰라.
나만 깨달라 번지면은 그만 견성(見性)이다. 그러면은 그 그만 그곳에 가서 중생견이 퍽 녹아져 떨어져 번지고는 일체 누(漏)가 다해 번지는, 아 번지면 그만 그건 구경각(究竟覺)이지. 그 그대로지, 뭐 말할 거 있나?

아! 그런 곳이니 거기 가서 삼독심(三毒心)이, 모두 세 가지 독헌 마음이—탐심(貪心) 일어나고, 진심(瞋心) 일어나고, 어리석은 마음[痴心]이 탐진치(貪瞋痴)인디, 탐진치가 어디 붙어 있나? 딱 깨, 툭! 깨버렸는디 어디가 붙어 있어? 탐진치가 다한 곳이 곧 그만 그 삼아승지겁(三阿僧祗劫)이라 그 말이여. 뭐 뭐 뭐 거그 무슨 시간이고 뭐이고 뭐가 있어?
이런 것인디 그런 도리는 꿈에도 보지 못하고는 그만 그 문자(文字)에 착(着)해 가지고는 삼아승지겁이—누천만억(累千萬億), 당최 말로 헐 수 없는 숫자, 그렇게 많이 겪어야 성불헌다고 그것만 꽉 믿었다 말이여. 믿어 가지고는, 그게 그게 숭악한 상견(相見)이지. 상견외도지.
그래 가지고는 남방(南方)에 언하(言下)에 대오(大悟)허는, 견성성불허는 그런 모도 마구니들을, 그 거짓말 종자요 모도 마구니들을 항복 받는다고 나온다 그 말이여. 그러면 부처님께서는 6년 만에 견성성불 견성오도를 허셨으니 부처님도 그러면 모도 마구니인가? 허! 이런 놈의 소견이...

그래 가지고 척 나오는디, 어디를 나오는고 하니, 덕산(용담) 스님이 계신 곳을 나온다 그말이여. 덕산(용담) 스님이란 큰 선지식 스님이 계시는데, 거기를 나오다가 거지반 다 오다가 덕산(용담) 스님 계시는 그 절 밑에 동구(洞口) 마을 앞에 주점이 있는데—술 파는, 점심도 팔고 술도 파는 그런 집이 있는데 거그 들어가서 잠깐 쉬어서, 배가 고프니까 점심이나 좀 사 먹고 간다고, "여보! 주인, 점심 있으면 나 좀 주십시오" 점심 달락 하니까, 그 늙은 술 파는 노인이 바로 덕산(용담) 스님 계신 그 동구에 마을 앞에 있으니까 덕산(용담) 스님 신도가 되어 가지고는 참선(參禪)을 잘 했던 것이여. 부인이라도 참 참선을 잘해서 도(道)가 참 대단했던 것이여.

아! 우리 모도 용화사 신도 여러분들 인자 참 참선 다 허지. 인제 참선만 하지, 뭐 지금 어디 속으로 무슨 뭐 상견(相見)에 떨어져 가지고는 무슨 축원이나 '아무개 보체 수명장수허고..' 요런 디 떨어져 있는가? 인자는 공양을 내도 부처님한테다 공양 올리고 축원, 그건 일없다는 것이여. 인자는 다 되아 버렸어. 무축(無祝)을 제일 치고.
아 '축원 없이 금강경 도리로 아 이렇게 허면 제일 공덕이 있다고 10년 동안이나 법문을 허셨는데 무얼 우리가 그런 것에 집착할까니 그런 거 헐락 하냐'고, 아! 대중공양(大衆供養)이면 그만이라고. 그래 안 허는구만 인자. 없제. 그 잘되았지. 무축(無祝)을 해 봐! 똑. 부처님한테다 따악 기도 올리고는 기달라 보란 말이여, 된가 안된가? 허! 참 나, 기가 맥힐 일이지.

풍랑이 큰 바다에 일어날 거 같으면은 그 물결이 출렁거리다가 바람이 자면은 물결이 교교(皎皎)허다. 물결이 교교헌 디는 천월(天月)이, 하늘 달이 공배회(共徘徊)한다. 달이 그대로 떠억 나타나듯기, 아! 축원도 없는 곳에서 일체번뇌 망념도 거가서 무슨 일어날 것도 없어. 구허는 마음도 없이 그래야 대공(大功)을 이루는 것이고, 그런 법이지. 아! 그러고 아주 무축(無祝)을 제일 치는 것이여.

아! 그래 그 노인 보고 배가 고프니깐 "나 여보시오, 점심(點心) 좀 주십시오. 점심 한 상 주시오" 사 먹을라고 그러니까, 그 노바(노파)가 덕산(용담) 스님 신도라 벌써 그만 선(禪)을 많이 공부를 해서 그 법(法)이 있든 것이여.
"아! 그 당신 그 쪼그만헌 보따리 짊어진 것이 뭣이요?" 아! 그러니 그 무슨 보따리 속에 뭐 짊어진 걸 물을 것이 없는데, 원 그 보따리 속에 든 것을 금강경인지 뭔지 알았던가 어쩐가 물었지.
물으나, 그까짓 것 안다고 그게 법인가? 그까짓 거 속에 보따리 속에 싼 것이 안 보이고, 싸 놨지마는 그거 환히 보이는 고런 것이 법일 것인가? 그까짓 것이야 그 말할 것도 없지.

허지마는 "그 보따리 속에 싼 게 뭣이요?"
"이것 금강경이요"
"금강경이요? 금강경이면은 금강경 가운데에 「과거심(過去心) 불가득(不可得)이요, 현재심(現在心) 불가득(不可得)이요, 미래심(未來心) 불가득(不可得)이다」 삼세심(三世心)을 도불가득(都不可得)이라고 했는데, 점심을 달락 하니 점마하심(點麽何心)고? 어느 마음에 점(點)을 칠라우?" 이렇게 묻네. 법이란 건 이렇게 장만해서 물으면 되는 것이지. 그 공안(公案)이지 뭣이여? 점심이라고 헌 게 '점칠 점(點)' 자, '마음 심(心)' 자, 마음에 점친다 그 말이여. 점심이란 건, 말이.

그 과거심(過去心)도 어디 있어? 얻지 못허지. 현재심(現在心)은 어디 있어? 현재심도 얻지 못허지. 미래심(未來心)은 어디 있어? 미래심도 얻지 못허지. '삼세심(三世心)을 도불가득(都不可得)인디 점마하심(點麽何心)입니까? 어느 마음에 점을 칠랍니까?' 물으니께 꽉 맥혀서 답할 수가 있나? 삼아승지겁에 착(着)했는디 어디 답할 수가 있어야지. 꽉 맥혔지.
천하없는 이치라도 이치를 장만해 가지고 제가 이치를 딱 가지고 있으면 이치 그놈이 철벽(鐵壁)이여. 철벽, 쇠벽이란 말이여. 그놈이 모도 그 번뇌장(煩惱藏), 일체중생의 생사번뇌장 고방(庫房)이여, 고방! 곳간이란 말이여, 그것이. 무슨 놈의 이치를 갖다가서 붙여 가지고는 소용없어.

"어느 마음에 점을 칠라오?" 꽉 맥혀서 답을 못했어. "당신이 점심 못 먹.. 할 수 없소. 그 말을 그 법을 답을 해사 점심을 주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점심 안 주겄오" 점심을 안 준다 그 말이여.
법(法)이 다 그렇게 박절(迫切)혀. 배가 고파 죽겄는디도 밥도 안 주어. 그 말 답하면 밥을 준다고 해놓고 안 준다 그 말이여. 그러헌 모도 박절허고, 쫓아내기도 허고. 뭐 미워서 쫓아낼 것인가?
'너 이놈 송장 끌고 온 놈이 어디를 오느냐'고 삼십방(三十棒)을 내려 우수(雨水)면은 그놈 방(棒)을 맞고 기어 들어오지, 나가? 60통방(痛棒)을 맞고도 들어오지, 나가냐 그 말이여? 그 무슨 그러헌 디 가서 개거이 휘딱 나갔다가 휘딱 들어오고 그거이 될 것이냐 그 말이여? 도학자라는 것은 그런 법이 없거든. 떠억 그 도격(道格)이 척 고물차야 되지.

그 말을 대답을 못해 가지고 밥도 못 얻어먹었지. 아! 그 안 줘. 여지없어. 그러나저러나 발써 거그서 노바(老婆)한테 그 방맹이를 짊어지고는, 덕산(용담) 스님한테를 찾아왔으니 안 올라갈 수가 없다. 그래 덕산(용담) 스님을 찾아 올라갔어, 주금강이가. 그 찾아 올라가서 법담(法談)헌 것은 그만 두고, 그건 이다음에 헐 요량하고.
주금강이한테 노바가, 주막집에 그 점심 해 파는 노바가 "과거심 불가득이요 현재심 불가득이요 미래심 불가득, 삼세심(三世心)을 도불가득(都不可得)인데 어느 마음에 점(點)을 칠라느냐? 어느 마음에 점을 칠라느냐?" 요것을 이 답, 이 법문을 부산 선암사에 있는 정운암 스님이 만공 스님한테로 물어왔다 그 말이여, 편지로. 잘 들어야 되아.

그래 만공 큰스님이 그 법문을 대답하되—법문은 이렇게 들어야 옳고 이렇게 해야 옳은 것이여. 조용허니 새벽에 깨끗한 정신에 자고 일어나서 배가 텅 비어서 뱃속에 아무것도 없을 때, 이때에 듣는 것이여. 옳은 신심(信心)과 옳은 참 의단(疑團) 의심(疑心)과 분심(憤心)을 가지고 들으면은 제일, 법문 듣고 언하(言下)에 대오(大悟)가 제일 쉬운 것이여. 새벽 정심(定心), 내가 새벽 법문헌 것이 까달이 있어.
법문이라는 것이 뭐 공연히 그저 그만 그까짓 나발 부는 소리 듣듯기, 그만 뭐 바람소리 듣듯기, 그만 지내가는 뭔 말 듣듯기, 그만 아무때나 앉아서 조음서 이것... 그것 천하 망했어. 그런 법 없거든.

앉으면 졸지. 법문만 들으면 귀에만 들어올라고 허면 졸지. 그 마구니가 고런 마구니가 귓속에 들어 가지고 망가실업(忘家失業)허게 맨든 것이여. 망가(忘家), 내 집을 잊어버리게 맨들고. 내 고향을 내 고향집을 가야 할 것 아닌가? 내 각세계(覺世界)를, 깨달은 집을, 각체(覺體)를, 묘한 각체를 깨달라야 할 것 아닌가.
깨닫지 못하게 만드는 놈의 그놈의 마구니한테 끌려 가지고는 혼비사인(魂飛死人)이여. 혼이 날아 버리고는 죽은 사람이라, 그 뭣 혀 그거? 그렇게 닦아 가지고는 미륵하생을 닦는다한들 유하익(有何益)이냐?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과거심 불가득이요, 현재심 불가득이요, 미래심 불가득, 삼세심(三世心)을 불가득(不可得)인디 점마하심(點麽何心)가? 어느 마음에 점을 칠라느냐?' 만공 큰스님이 그놈을 답을 허되, 참 그 기맥히지. 그러헌 답이라도 큰스님네도 암만 깨달랐어도 공안에 가서 희미한 공안이 있고, 그런 공안이 아마 있는 모양이지?

'위음왕불(威音王佛) 이전(以前)에 점심료야(點心了也)니라' 위음왕불 이전에, 위음왕불이 제일 최초불인디, '위음왕불 생기기 전에 점심을 먹어 마쳤다' 요렇게 답을 했네. 그 정운암 묻는디 답을 그렇게 했다 그 말이여.
그래서 편지에다 써 가지고 보내는디, 그 보월 스님이 가만히 계시다가 그 법문 답을 가만히 보니 큰일났거든. 한국에 만공 큰스님이 제일 도인(道人)이신데, 아! 학자한테 법문을 그렇게 해 보내서는 그 큰일났거든.
학자, 그 학자한테 헌 법문이지마는 만공 큰스님이 당대에 헌 그 법문이 미래로 시방까장 내려온 것 보지. 언제든지 그 구전(口傳)으로도 흘러 내려갈 법문이란 말이여. '과거 위음왕불 전에 점심을 먹어 마쳤다' 이렇게 답했네. 거 큰일날 답이거든.

보월 스님이 편지를 받아 가지고는 만공 큰스님께 떠억 그저 절을 올리고서는 "죄송합니다마는 이 편지는 보내서는 안되겄습니다" 하고 성냥불을 탁 켜서, 어른 쓴 편지를 갖다가 성냥불을 켜서 보내니 예의상으로는 크게 틀렸거든. 그러지마는 "헐 수가 없습니다" 하고 절을 올리고서는 성냥불을 탁 켜서 편지를 불에 사롸 버렸다 그 말이여.

아! 만공 큰스님이 어쩔 거여? 그 어째 세상에 제자한테 아! 그런 꼴을 당했으니 편지를 갖다 태워 버렸으니, 보내는 법문을 태워 버렸으니 그 참 깜짝 놀래 가지고는 정신을 챙겨 가지고는 밥도 안 잡숫고, 잠도 안 주무시고 이레를 계셨어, 이레를. 이레를 꼼짝... 내가 봤어. 그건 내가 본 경계여. 내가 참 요거 저 그때 공부헐 때 그게 다 회상(會上)에 있을 때여.
금선대(金仙臺)에서 꼼짝.. 당최 아! 그런게 야단났어. 밥도 안 잡숫지. 잠도 안 주무시지. 딱 앉어서 여올여치(如兀如癡)다. 부동(不動)허고 앉았어. 참, 오줌도 안 누고 앉었다 그 말이여. 이렇게.. 그렇게 참 근기(根機)가 무척... 근기도 말할 수 없는 어른이지.

이레만에 그만 물팍을 치고는 "허허!" 웃고는, "보월, 이리 오게" 보월을 불러다 놓고 "내가 자네한테 은혜를 갚음세" 그러고서는 그 법(法)을 답을 했다 그 말이여. '과거심 불가득, 현재심 불가득, 미래심 불가득, 삼세심을 도불가득인디 점마하심이냐?' 한디 답을 턱 했는데, 그 답은 밀답(密答)이라. 답을 여기서 안 해 주어.
공안 답에 밀답을 헌 법이 없거든. 고인네 법문에도 밀답이 따로 있어. 답 딱딱 해 논 것도 있고. 답 해 놓은 것은 답 해 놨자 그놈 답 들어 봤던들 그 소용없어. 왜 답이 오직 많나? 조주 스님도 답을 오직 많이 했어?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냐?" "금사탄두마랑부(金沙灘頭馬郞婦)니라. 금사탄두(金沙灘頭)에는 마랑(馬郞)의 부(婦)니라" '말 마(馬)' 자, '사내 랑(郞)' 자, '지애비(지어미) 부(婦)' 자, 마랑부(馬郞婦)니라. 이렇게 일러 놨어.
그 그렇게 일러 놨으면은 그걸 들어 봤던들 소용이 있나? 깨닫지 못하면 소용없지. 답 하나를 해 놨으면 고 답 듣고 뭐 그 공안 파설(破說)해서 알아? 봐? 씨잘데없는 소리여.

아! 그러면... 어 그것, 무슨 이렇게 잘 나오지를 않고. 그놈은 또 그만 생각했자 안 나오는 놈은 그만두지 그 억지로 헐라고 헐 것도 없고.

만공 큰스님이 그 답을 처억 해 놨단 말이여. 해 노니까 그때에 가서 보월 스님이 다시 배(拜)를, 예배를 올렸다 그 말이여. “예” 제자한테 또 인가 받네, 오히려. 그거 그걸 탁마상성(琢磨相成)이락 햐. 서로 탁마해서 이루는 것이여.
제자한테는 확철대오했으면은 서로 의심난 공안, 맥힌 공안이—암만 오(悟)라도 깨달랐어도 오후(悟後)에도 그 맥힌 공안이 있다고 했거든. 그걸 탁마(琢磨)락 햐. 맥힌 공안이 있기 따문에 탁마하거든. 공안에 천칠백 공안(千七百公案)에 맥힘이 없어야사 허는 건데, 인자 그렇게 맥힌 데가 있으면은 탁마상성 허는 법이거든.

그래 가지고는 그 정운암한테 답장을 쓰되, 인자 보월 스님이 답장을 쓰고 만공 스님은 증명을 허시고, 그래 써서 보낸다. 편지 답을. 그 답이 뭐 어떻게 했냐 하면은, 들어 봤던들 모르지마는 그저 그 들어는 두란 말이여.
「배호서(背湖西)하고 호서(湖西)를 등지고, '등질 배(背)' 자, 향영남(向嶺南)은 영남(嶺南)으로 향한 것은, 심중부절여의(心中不絶餘疑)러니, 마음 가운데 여의(餘疑)를 끊지 못했더니, 여금(如今)에도 부절여의(不絶餘疑)로구나. 지금에도 여의(餘疑)를 끊지 못했구나. 견후(見後)에 회각(灰却)하고 본 뒤에는 회각해 버리고, 본 뒤에는 회각(灰却)—'불태울 회(灰)' 자, '물리칠 각(却)' 자—회각해 버리고, 갱절여의(更絶餘疑)하라. 다시 여의를 끊어 버려라」 그렇게 해 보냈다 그 말이여. 그 답이 무슨 답이냐 말이여? 참 그러헌 답은 기가 맥힌 답이라 쎄도 못 내루는 것이여.

「배호서(背湖西)하고 향영남(向嶺南)은 심중부절여의(心中不絶餘疑)러니 여금(如今)에도 부절여의(不絶餘疑)로구나. 견후(見後)에 소각(燒却)하고 갱절여의(更絶餘疑)하라」
이렇게 해 놨네. 하! 이거 무슨 말이냔 말이여? 평상화(平常話) 시답(是答)이여. 평상으로 답한 것이여, 그것이. 허지마는 아무도 모르지. 쎄도 못 내루아. 그렇게 편지를 헌 일이 있어.(처음~34분38초)





(2)------------------

이것은 뭔 말에 내가 이러헌고 하니 교소(巧笑)는, 공교(工巧)헌 웃음 속에는 응, 웃음은 침변부(枕邊斧)요. 베개 위에 도꾸여. 베개 위에 도꾸로, 모가지 때려죽이는 도꾸여.
감언(甘言)은 석상사(席上蛇)다. 단 말은 자리 밑구녁에 독사 뱀이여. 자리 밑구녁에 그놈이 독사가 있으니 물어서 죽여 버리는 놈 아닌가.

악의(惡衣)는 감수절(甘守節)이오. 악한 옷이라는 것은 절개(節槪)를 지키는 학자 절개여. 악한 옷, 떨어진 옷 말이여. 다 헤어진 옷은 절개 옷이여, 절개 옷. 도 닦는 옷이다 그 말이여. 우리가 어디 좋은 옷 입는가? 옷이라고 모도 너절헌 거, 지드란 헌 거, 거무튀튀헌 것, 때 색, 때꼽째기 색 같은 거, 이런 것이나 입고.
그러고는 암곡(巖谷)은 호장신(好藏身)이다. 암곡(巖谷) 저런 이렇게 선방 채려 놓고 이러헌 선방 한쪽 구석에서 이러고 가만히 도 닦는 거. 이렇게 도 닦는 도학자가 이렇게 청빈허게, 가난하고 깨끗허게 도를 닦아 나가는 가운데에—무슨 그러헌 그 대접이나 받고, 어디 찬성이나 받고, 그게 뭐 법담허면은 아 그 좋다고 잘했다고 인가나 해 주고. 인가가 그것이 무슨 뭐 그렇게 인가 함부로 헐 수가 있나?

그 스승님이라도 말 한마디 잘못.. '위음왕불(威音王佛) 이전(以前)에 점심료야(點心了也)라' 벌써 그르친 곳이 있기 따문에 불을 탁! 태와 부러. 이러헌 짓. 얼마나 무참허고, 학자를 그렇게 거느리시다가 도(道)를 전(傳)허고 떠억 그래 별당에 계신 어른, 아! 그런 어른한테 그 헐 수가 있나? 헐 짓인가, 그? 그러면 일시 체면만 유지하기 위해서 알고도 안 하면 쓸 거여? 벼락날 건 내야지? 벌써 틀렸는디 그냥 두어?
마음, 거족동념시(擧足動念時)에 바로 봐 버려. 그냥 봐 버려. 벌써 척 물으면은 공안 물으면은 행동 벌써 보면 알아부러. 환혀. 그 “아! 내가 그 스님 그 말 그 말씀을 어떻게 답하리까?” 그래도 벌써 그건 답이 딱! 맞는 곳이 있거든. “스님께는 답 못허겄습니다” 이래도 딱딱 맞는 게 있거든.

박고봉 스님이 한참 참 만공 스님한테 인가 받고 그 저... 그 무슨 절인고? 거그서 돌아가신 어른 말이여, 박고봉 스님. 그 서대문 밖에나 뭐이냐 그 뭔 절, 그 절은 뭐 뭔 절이라고 허는고? 삼선암 화계사에 있는 절 밑에 그 뭐 그걸 뭔 절이라고 허지?
그 절에 있다 돌아가신 고봉 스님 젊은 당시에 한참 '견성했다' 해 가지고는 계시면서, 그 술 주면 술 잡숫고, 약주 주면 약주 잘 자시고, 술 한잔 자시고 법문 잘허고 그랬다 그말이여. 그러면 견성한 이가 또 술 생기면 술 잡숫고, 그러면 또 한잔 잡수면 그걸 또 뽄본 학자도 있지마는, 그것 뽄볼 수 있나?

그건 도인이 또 술 자신 이도 있고, 진묵 스님도 술을 무슨 뭐 참 동이로 잡솼는디. 술을 자시고, "학자가 누가 나한테 술을 먹을 때에, 나한테 만약 조주무자(趙州無字) 화두의지(話頭意旨)를 물으면은 내가 '술!' 그러겄다"
술은 무슨 그건 공안이 아니리오? 술도 공안이요. 어육 고기 먹고 술 먹고 무슨 헌 것이 반야묘용(般若妙用) 아님이 있나? 체중현(體中玄)에 들어가서는 그런 법도 있다 그 말이여.
그렇다고 해서 그만 뭐든지 물으면 “술!” 뭣 허면 “고기!” 뭐든지 물으면은 “잡담!” 그것도 막 법(法)이여? 그거는 그건 체중현으로 본다면은 추어망담(醜語妄談)도 개시묘법(皆是妙法)이니, 확철대오헌 분상(分上)에는 뭣이 아니리요. 허지만 그렇게 못혀. 그렇게 헌 법이 없어.

"술 먹을 때에 조주무자 공안을 묻거드면 내 문답 내가 답허되 '술!' 그러겄다" 그랬다 그 말이여. 그래 내가 있다가, 나는 그때 그런 그 스님네 밑에 다 공부하고 있을 때지 뭐. 나보담 나이 한 근 10년 되었으니까, 훨씬 참 선배시고. 아! 그래 고봉 스님, 고봉 큰스님, 그래 그때도 다 큰스님노릇 헐 때니께.

"조주무자의지(趙州無字意旨)를 묻거드면은 '술!' 그래요? 그렇게 문답을 해야 해요?"
"그래!" 그 말에다 "그래!"

"나한테 물으십시오" 나한테 물어. 내가 그래 가지고 그 문답 헌 놈이 지금 다 있어.
거 문답 들은 사람은 다 알지. 그런 것 지금 함부로 여기서 허면은 듣고 제 지견(知見) 붙여서 공연히 딴짓허고 앉었어. 그래서 내가 그 문답을 않고 내비두겄어.

그래 공안 문답이라는 것이 그렇게 심히 분명하고, 심히 무섭고 어림도 없어.
이 공안도 그저 그 도리, 아무때나 해도 그 도리, 아! 이놈 '양말 한 짝이가 도(道)요. 양말 한 짝이가 부처요' 요따구 짓이나 하고 돌아댕기면서 꺼떡허면 대답 푹 헐라고 나오고. 그래 돼야? 아! 그게 되냐 그 말이여? 아! 견성헌 것 같애? 마음에? 양심으로 한번 내 도(道)를 내가 비춰봐. 양심과 그 어디 허는 지정머리가 된가?
그런 버릇대기를 왜 허냐 그말이여? 왜 도 닦는 학자가 거짓 행동을 허냐 그 말이여? 무엇을 못해서 그런 짓을 혀? 차라리 빌어먹고 거리 노상에 가 춤을 추고 돌아댕길지언정 그런 짓을 왜 허냐 그 말이여. 학자가 삼가해야 한다 그 말이여. 크게 삼가혀. 그래 가지고 참말로 참회를 했거들랑 진참회(眞懺悔)를 허고.

다시는 그런 버릇이 없이 처꺽 깨달은 뒤에는 알아. 자기 양을 알아. '이게 깨달은 것이로구나. 이게 안 것이로구나. 요거 어쩌다 내 소견 들어간 게로구나' 고런 것과 달러. 주의 주의헐지어다.


일천칠백 칙 공안(一千七百則公案)을 수감향이면전(誰敢向爾面前) 염출(拈出)이리요. 한번 척 깨달을 것 같으면은 일천칠백 칙 공안(一千七百則公安)—일천칠백 선지식(一千七百善知識)이 있어서 낱낱이 그 공안을 다 묻는 법이 달러. 똑같은 생사 없는 법, 공안이지마는 공안이 다 달러. 그 묻는 공안 그 뜻을, 그 큰스님네 묻는 공안 뜻을 바로 봐야 옳게 답하는 것이거든.
그것을 모르면은 그 답을 뭐 제멋대로 제대로 '아무것도 없는디, 이것도 없는 놈이고, 이것도 없는 놈이고, 억! 그놈도 없는 놈이고, 밥 먹는 놈도 없는 놈이고, 가는 놈도 모도 없는 거이다' 개시무(皆是無)로 그것 아니여. 그런 짓 허면 그건 그건 저 신선 공법(空法)도 아니여. 고걸 고걸 체중현(體中玄) 체중현선(體中玄禪), 공선(空禪), 공에 빠진 놈의 선이여. 그건 견성했자 저 죽는 견성이여. 고따구 짓 해 가지고는 생전 된 법 없어.

그냥 곧 그래 가지고는 망발무애지행(妄發無碍之行)하고, 망담무애지담(妄談無碍之談)하고 그래 가지고 돌아댕기다가 그냥, 그 어디 속가에 가 버리고 그런 거여. 퇴속해 버리고 그런 거여. 대번 한철 들어와서 그런 소리허다 돌아댕기다 주먹이나 내밀다 퇴속하는 거여.
공안을 척척 봐 버려사 다시는 다시는 참 그 퇴타(退墮)가 없어. 퇴타한 법 없거든. 바로 공안을 견성을 바로 헌 사람이 퇴타한 법 없거든. 그 퇴타할 것인가? 일천칠백 칙 공안(一千七百則公安)을 확철대오 해 논 뒤에야 누가 다시 그 앞에 가서 뭐 말할 것이 뭣이 있어, 처꺽 처꺽 물으면은 추문낙구(推門落臼)지. 문을 열면은 확에 탁!탁! 떨어지지.

제불조(諸佛祖) 대기용(大機用)과, 모든 부처님의 큰 기용과, 부처님 모도 말씀헌 기용(機用)과 신통삼매(神通三昧)와 삼현삼요(三玄三要)와 종종차별지(種種差別智) 일체무애혜(一切無碍慧)가 진종차출(盡從此出)이여. 화두로써 다 그대로 낭발(朗發) 되아 부러. 하나도 무슨 일체 이치에 맥힘이 어디 있어? 맥히다니 뭐가 맥혀?
아무때나 아무것도 없는 곳에 가서 '다 맥히지 않는다'고 그러고 허는 건, 그것은 그건 참 망작무애지행(妄作無碍之行)이라. 망령되이 무애(無碍)의 행을 짓고 앉어서 죄업만 퍼 짓는디, 그놈의 죄는 불통참회(不通懺悔)라. 참회가 없어.
그래 가지고 제가 '알았다'고, 그거는 못쓰는 것이여. 영 버리는 것이다 그 말이여. 딴 사람까장 다 버려. 그런 종자는 같이 있어도 못쓴 것이여. 벼락같이 종문(宗門)에서 축출해 버리는 것이지, 다시 그것은 용서헐 수 없는 것이여.

바로 참회를 허거들랑 진참회(眞懺悔)를 떡! 해 번지고는, 의전지시(依前只是) 옛날 그 공부할 때보담도 더 중하게 화두를 다잽이해서—대혜(大慧) 스님이 다 견성했다고 해 가지고 갔다가 다시 와서 참회허고, 원오(圜悟) 스님한테 와서 다시 견성해서 『대혜 서장(書狀)』을 모도 짓고 허듯기, 그러면 그 발심학자(發心學者)여. 도 닦는 학자여.
'죄가 다 되어 버려서 인자는 참회도 일없고, 뭐 참회는 무슨 참회여' 그건 못써. 천하에 못써.

종종차별지(種種差別智)와 일체무애혜(一切無碍慧)가 진종차출(盡從此出)이다. 일체무애혜, 일체 도무지 공안이 일로 쫓아 다 나온다. 수연(雖然)이나, 비록 그렇기는 그렇다마는 나개시이(那箇是爾) 자기(自己)냐? 어떤 것이 이 낱 네 자기(自己)냐? 어떤 것이 네 본래면목(本來面目)고? 또 묻네. '어떤 것이 네 면목(面目)이냐?' 이놈 하나를 또 물어.

일대장교(一大藏敎)는 시개절각(是箇切脚)이다. 일대장교라는 건 시개절각이다. 부처님의 일대장교란 것은 이 낱 절각(切脚)이다. 다리 부러진 것이다. 이것 아무도 못 새기고 모르는 것이여. 이것 몰라. '느그는 다 모르는디 나만 안다' 이 말 같지마는, 어째? 또 내가 그말 하면 어쩌냐 그 말이여. 아! 아는 사람이면 나와 말해 보란 말이여.
일대장교(一大藏敎)가 시개절각(是箇切脚)이다. 일대장교라는 건 이게 절각(切脚)이다. 다리 부러진 것이다. '끊어질 절(切)' 자를, '간절 절(切)' 자를 '끊어진다'고 햐. '다리 각(脚)' 자, 다리 끊어진 것이다 그 말이여. 다리 끊어지면 온당한가? 일대장교는 시개절각이다.

증절착자개무자부(曾切着者箇無字否)아? 일찍이 간절히 이 낱 무자(無字)를 착득해 보겄냐?
이런 깊은 법문은 헐 도리가 없어. 허지마는 응 뭐 기위(旣爲) 기위 직지(直指) 절목(節目)을 내가 새기니까 이런 법문을 그대로 둘 수가 없어서 막 해 나간다 그 말이여. 듣고 뭐 알라고 헐건 없지마는.
일대장교(一大藏敎)는, 부처님 장교(藏敎)는 다리 부러진 것이다 그 말이여. 증절착자개무자부(曾切着者箇無字否)아? 일찍이 이 낱 무자(無字)도 네가 절착(切着)을 해 보겄냐? 무자도 한번 절착, 절착(切着)이라는 것은 깨달라 얻는 것을 절착이락 햐. 절착(切着)을 해 보겄느냐?

무슨 말인고 하니 일대장교(一大藏敎)라는 건 이 낱 절각(切脚)이여. 일대장교라는 것은 주각(註脚)이여, 주각. 절각(切脚)을 주각(註脚)이라고 봐. 주각(註脚)이라는 것은 뭘 주각이라고 하느냐? 요리조리 알음알이를 내서, 일대장교는 별별 알음알이를 붙여서 해석을 붙여서 말헐 수 있는 것이지마는, 주각을 할 수 있는 게지마는 이 말이여. 그것을 절각(切脚)을 그렇게 못 본다 그 말이여. 그래야 말이 되지.

부처님의 말씀은 무슨 말씀이든지 주각(註脚)을 한번 내서 '거 무슨 도리다, 무슨 이치다' 해 볼 수도 있어. '삼현(三玄)이다, 삼요(三要)다, 무슨 무문관(無門關)이다, 제일구(第一句)다, 제이구(第二句)다, 제삼구(第三句)다' 뭐 별소리 한 번 붙여서 해 볼 수가 있지마는, 이 낱 무자(無字)도 네가 한번 절착(切着)해 보겄냐? 무자에도 네가 한번 그 해석을 붙여서 요리조리 네 분석을 붙여서 말을 한번 해 보겄느냐 그 말이여. 뭐 별 그런 깊은 말은 아니여. 허지마는 글 뜻이 그렇게 어렵다 그 말이여.
그리고 부처님 말씀은 천경만설(千經萬說)은 다 말할 수 있고 이리저리 모도 변론은 붙일 수 있지마는, 이 무자(無字)에도 한번 그래 보겄냐? 무자 시방 내세우는 말이여. 무자 하나, 지금 무자의지(無字意旨) 하나 간택한 말이니까. 무자도 한번 해 보겄냐 그 말이여.

어떤 게 네 자기(自己)냐? 어떤 게 네 몸뚱이냐? 네 마음자리 그 자리냐?
일대장교는 네 자기 마음자리, 네 마음자리를 모도 이리저리 이리저리 모도 경(經)으로 교설(敎說)을 해서 이렇게 해 놓은 것이 그것이 주각해 놓은 것이지마는, 무자(無字)에도 한번 그래 보겄느냐 그말이여. 무자(無字)에도 이렇게 주각(註脚) 한 번 내 보겄냐?
영리한(靈利漢)은 직하흔번(直下掀飜)해라. 영리한 놈은 직하(直下)에 한번 바로 봐 버려라. 그래서 통명자기(洞明自己)해라. 자기를 통명해라. 너를 바로 깨달라 버려라.(34분39초~52분13초) (끝)

Posted by 닥공닥정

•§•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 (6/9) 몽산화상의 무자십절목.

**전강선사(No.503)—무자십절목(6) (수감향이면전하야 염출까지) (갑인74.05.25) (전503)

 

약 32분.


유곡소죽석천명(幽谷小竹石泉鳴)이요  하일유지객심뇌(夏日猶遲客心惱)니라
나무~아미타불~
화류임앵(花柳林鶯)은 다설고(多舌苦)허고  청산유수고인정(靑山流水古人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유곡(幽谷)에 소죽석천명(小竹石泉鳴)이다. 깊숙한 골짜구니에 조그만한 대[竹]가 있고 돌샘이가 있는디 우는구나. 골짜구니에 조그만헌 돌 틈새기에 대가 있고, 고 대밭 밑에는 돌샘이가 흘러내려서 소리가 난다 그 말이여. 운다 그 말이여.
하일유지(夏日猶遲)헌디 객심뇌(客心惱)로구나. 여름날은 더디어서 객(客)의 마음이 수고롭다. 퍽 날은 더우니 괴롭다.

화류임앵(花柳林鶯)은 다설고(多舌苦)허고, 꽃 버들 속에 그 임앵(林鶯)은 꾀꼬리는 쎗바닥이 괴로와. 자꾸 먹고 그 놈의 쎗바닥을 놀리니 퍽 괴롭다 그 말이여.
청산유수(靑山流水)는 고인정(古人情)이다. 청산 흐르는 물은 옛 사람의 뜻이다.
법상(法床)에 올라와서 그저 도시(道詩)를 한마디 그저 일러 보았지. 그 뭐 별것 없는 것이지, 뭐.


또 무자(無字)를 말이여, 이 무자 화두를 '계려궐(繫驢橛)이라, 나귀 매는 말뚝이다'
나귀는 그놈이—어제 아침에 헌 놈 또 거 좀 재설(再說)을 헌다 그 말이여. 나귀란 놈은 그놈이 영리헌 짐승이여. 꺼덕허면 벌써 안다 말이여. 그 영리헌 놈의 그 아는 것이 일체 짐승보담도 뛰어나. 퍼떡 알아.

고래(고러하여) 알음알이가, 영리헌 알음알이가 다른 짐승보담도 말보담도 그 배(倍)나 더 영리해서—'고런 영리심(伶俐心)이라든지, 일체 망념이라든지, 그런 것을 꽉 나오지 못허게 중생 망념이 나오지 못허게, 일어나지 못허게 딱! 매는 나귀 말뚝이다. 말뚝을 쇠말뚝을 콱! 박아 놓고서는 나귀란 놈이 어디 못 달아나게 여지없이 딱 매 논 그런 말뚝이니라. 중생 망상이 망념이 모도 붙어 나오지 못하게 해 나온 무자의지(無字意旨)다. 뭐 다른 거 없어. 사량분별 망념이 모도 중생념으로써 생사해 번지고 생사고를 받고, 그러니 유취(有趣)에 나고 모도 그러니까 그것 하나 없애는 것이지, 그 뭐 별것 뭐 있나? 뭐 무자(無字)가 뭐 별것 뭐 있어?' 인자 이렇게 딱 말을 헌다. 하! 이런 꼴이 있나? 그런 법이 어디 있어?

망상이야 사량분별 망상이야 그게 그 뭐 화두만 추켜들면은 '무(無),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허면은 없지 뭐. '이뭣고?'만 하면은 있다가도 없지 뭐, 그놈의 망상이 어디 있나?
'이뭣고?' 헌 놈이 이 화두가 있으면서도 망념이 그 섞여서 모도 화두 뿌럭데기에 가서 얽혀져 있으면은 그 옳은 화두가 아니지 뭐. 뻘로 헌 것이지. 공연히 입으로만 '이뭣고?' 해 놓고는 속 그 뿌럭데기에는, 화두 뿌리에 가서는 화두에 가서는 왼갖 모도 그만 망념이 찡겨 있으면은 화두가 아니여, 그것이.

'이뭣고?' 헌 놈이 참으로 알 수 없어 '이뭣고?'를 또, 또 '이뭣고?'를 또! 자꾸 이렇게 해 들어갈 것 같으면은 뭔 그런 정량(情量)이 어디 무슨 일어나? 무슨 망념이 어디서 붙어 나와? 그렇게 해 나가야 하는 것이지.

'무(無)가, 화두가 뭐 망상 뚜드려 뭉쳐서 모도 못 일어나게 맨드는 나귀 말뚝같이, 나귀 매는 말뚝같이 그런 것이라'고 요런 놈이 있다 그 말이여. '이재하처(爾在何處)하야 몽견조주(夢見趙州)오. 네가 어디 어느 곳에 있어서 꿈에나 조주를 봤느냐?'
요러헌 지견(知見) 상량(商量)을 가지고는 견성했다고 나와? '무간죄업(無間罪業)을 짓고저 허지 아니헐진댄, 네 무간아비지옥에 들어가서 지옥고를 안 받을라거든 요따구 지견 상량을 두지 말아라'

'망념 없는 곳, 아무것도 없는 곳, 일체가 다 없는 병무처(竝無處), 거 아무것도 없는 것까장도 없는 거기에 뭐가 있어?' 요러헌 놈의 지견상량을... 고거 지견상량 아닌가? 모도 떼고 여의고는 쫓아 들어가서 저 깊은 속에 가서 '한 모양도 없는 것까장 없다'고 요런 지견(知見)을 붙여 가지고 딱 들어앉았다. 그건 그 굼벵이가, 인자 굼벵이가 그 누에같이 그놈 인자 번데기 되어 가지고는 들어앉었는 것이여. 그거 뭣이여? 그게.
누에로 뽕 먹고 고갯짓허고 헐 때가 오히려 낫지. 그놈 번데기 속에 들어가서, 딱 되어 가지고 죽지도 않고는 자빠져 있는 것이여. 그것 뭣 허는 것 소용 하나도 없는 것이여. 또 그대로만 있음사 허지마는 그놈이 또 나오면은 별짓 다 헌거 아닌가? 고러헌 정량(情量) 상량(商量)을 가지고는 모도 '알았다'고 '견성했다'고.

아! 어제 그놈 보지. "그 한마디 일러라" 그 야청탄일곡(夜聽彈一曲) 헌 도리를 한마디 이르란께, 턱 일어나서 나온다. 나와. "너 이놈 나가거라" 하니께 그만 나가서는 한로축괴(韓獹逐塊)허고 도망가 버렸다 그 말이여.
그놈이 견성헌 놈이 그런 놈이 있어? 아! 거기서 나오다가라도 한마디 이를 수 있지. '어느 곳으로 가란 말씀입니까' 한마디 일러 봐야지, 물어보면. 아! 나오다가 그놈 물어보면 내가 그 헐 말 있을 건 사실 아닌가? 뭐 그래.
벌써 말 한마디에 그만 칙 달아나. 그게 도인.. 그거 견성이여? 그놈들! 나가라고 한다고 나가? 그거 어디 한마디, 참으로 한마디 일러 볼 일이지. 미친 놈! 세상에 그런 놈들이 댕기면서.

그러나 헐 수가 없어. 제멋대로 발심(發心)도 못허고 스승도 없이 댕기면서 공부해 보다가 그러헌 디 공연히 무슨 제가 하나 장만해 가지고는 그런 짓이나 허고 돌아댕기거든. 그거 인자 그러다가 사람 속일라고. 인자 '견성했다'고 할라고, 모르는 디 가서는. 고약한 행동을 허지, 인자 참 그것이. 그것이 인자 뭐 다 안 믿지. 참말로 인자 큰스님을 보았자 믿어지지도 않고. 안되아, 소용없어. 벌써 버려 버렸어.
그놈이 그럴수록에 나는 대들 줄 알고 더욱 어디를 가지 않고 있을 줄 알았더니 그 봐. 아 그놈이 첫 철에 와서 나 있는 디 와서 지낸다고 해서 그때 좀 지냈다고 하드구마는 나 뻘로 보았지. 또 왔다 하길래 '있어 봐라' 했더니 그 모양이여.
다 그렇지. 스승 없이 헌 자는, 불급심사(不急尋師)는 공과일생(空過一生)이 그거여. 소용없어. 그게 참선을 혼자, 허기야 혼자 허지. 허지마는 항상 스승을 찾아 큰스님을 찾아서 항상 탁마를 해야지. 화두헐 때에도 화두를 여지없이 자꾸 간택을 해야지.

네 이것 무간죄업(無間罪業)을 짓는 것이다. 화두헌다고 해 봤던들 그거 그러헌 상량선(商量禪) 그러헌 그 무슨 깊은 도리를 하나 만들아 가지고는 그런 디 들어앉어서 '옳다'는 지견(知見)을 가지고 있을 것 같으면은 무간죄업을 짓는 것이다. 죄업도 이만저만이지 무간죄업을 짓는다고 했단 말이여.
그러니 함부로 공부를 스승 없이 제 혼자 헐 것인가? 그러니깐 늘 법문을 들어야 한다 그 말이여. 듣고 또 듣고, 또 듣고 또 간택하고, 그래서 활구선(活句禪)이래야 하거든? 의단독로(疑團獨露)를 갖추어야 하거든? 무간업(無間業)을 네가 짓지 않을라거든 이런 이따구 행동을 말어라. 여래(如來)의 정법륜(正法輪)을 비방(誹謗)하는 법이다, 그것이.

어디 그런 것이냐? 공(空)이니, 뭐 공(空)도 다했느니, 무슨 뭐 신선공(神仙空)이란 게 그 뭣이여? 신선(神仙)은 공관(空觀)이거든? 고거 공(空) 관허는 거여. 장자(莊子)도 그 선(禪)인디, 장자는 현빈(玄牝), 현빈은 그 뭣이여? 현현헌 현(玄)까장 빈(牝)했다 그 말이여. '감을 현(玄)' 자, '암소 빈(牝)' 자, 감해서.. '감을 현(玄)' 자인게 현현묘묘(玄玄妙妙)헌 무슨 그 그러헌 도리를 관조허고 있는 것이여.
그런 거이 다 외도선(外道禪)이니까, 거 외도선이니께 그건 말할 것도 없지마는, 정법문중에 들어와서 정법학자가 무슨 소견이 나 가지고는 고런 소견을 만들아서 제가 가지고 견성했다고 돌아댕겨? 사람 벌써 속이고 그놈이 큰일날 놈이거든. 하나 가르키고 둘 가르키고 떼를 맨들고 군(群)을 맨들아서 몇십만 명, 몇백만 명을 맨들아 놓고 교주라 하고는 제가 교주노릇을 허고 있다.
그만 그런 교주 그까짓 거 불과 며칠 얼마 허도 못허고 그만 뒈져서 아비지옥에 들어가서 지옥고 받고 있지. 그러지마는 교도들은 외도 교도들은 꽉! 성(盛)해 가지고는 굉장하지. 그거 누누(纍纍) 대대(代代) 천추에 그 죄업만 져.

선(禪)이 있어야지? 확철대오해서 생사해탈한 선(禪)은 없으니까 그것이 외도니까, 모도 외도 덩어리를 만들어 놓고 있거든. 그게 뭔가 말이여? 그래 가지고서는 제가 교주(敎主)고, 제가 종주(宗主)고, 제가 종사(宗師)지, 부처님은 소용없다.
들어가면은 내부는 '뭔 대종사(大宗師)다' 이래 딱 맨들어 놓고는 죽어도 그 비밀은 '어따가 교 믿지 않는 사람한테는 말하지 말라' 이래 놓고 앉았거든. 외도란 게 다 그렇지. 굉장해 지금, 얼마가 된 줄을 몰라. 일본에도 지금 나무호랑켓교란가 뭔, 야단친 거, 춤춘 거, 그런 놈의 교가 발전되어 가지고 한국까장 모두 침투를 허거든.

참 부처님의 정법, 인가(印可) 없이는 그러기에 안 되는 법이여. 인가부텀 딱 해 놔사 그래 그 인가를 가지고 믿지, 인가도 없이 제 혼자 나온 놈들이 모도 그만 '견성했다' 해 가지고, 내가 무슨 뭐 뭐 대법사니, 무슨 대종사니, 뭣이니 해 가지고 신도는 또 무척 많네. 꾀우기를 잘 꾀우거든.
허는 법식이 묘허거든. 허는 모도 행사 무슨 범절이 훨씬 우리 부처님의 그대로 전통법 이어 나온 우리 전통 불교보담 훨씬 낫다 그 말이여. 시대 교류에 맞춰서 시대화해서 잘 해 나가거든. 그 거기 다 미치지.
이 무간업을 짓는 걸 몰라. 정법륜 비방헌 걸 참으로 모른단 말이여. 오히려 생명 살생 도둑질헌 것은 여다가 비교헐 수 없어. 그건 지옥고(地獄苦)가 지옥고 받고 나올 때가 있고 그렇거니와, 무간지옥에 떨어지면 저는 뭐, 그놈의 죄는 뭐... 허다폐병(許多弊病)을 도염거야(都拈去也)다. 이 앞에 내가 이와 같이 병(病)을 말해 놓았다.

이 가운데에도 무(無)가.. 내가 어저께 말했지. 유인타후어(有引他後語)하야 위증자(爲證者) 착요(錯了)다. 거 무서운 말이거든. 이 여기 이 『몽산법어』 가운데,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 가운데 제일 중요한 말, 이걸 알아야 혀.
'뒷말을 끄집어다가 인증을 삼는 자는 그르친 놈들이다. 할한(瞎漢)이다, 참으로 눈깔 먼 놈이다' 이래 놨네. 그것 뻘로 봐? 뻘로 봐? 후어(後語)는, 제가 무슨 도리든지 도리를 맨들어 가지고 무자(無字) 뒤에다가 붙인 놈은 다 외도다 그 말이여, '무(無)' 헌디 가서는.
종문지일관(宗門之一關)인디, 종문의 일관인디 그런 도리회(道理會), 이치, 부처도 없는 도리, 불불(佛佛)도 서로 보지 못헌 도리, 석가(釋迦)도 오히려 아지 못헌 도리, 천성(千聖)도 불식(不識)헌 도리, 그런 도리까장 다 붙여 보아라. 너 죽는다 그 말이여. 무서운 말이여. 고걸 잘 알아두어야 혀.

후어(後語)를 인증해, 이놈 후어를 찾느라고 야단이다, 뒷말을. 그 무자(無字) 뒤에 뒷말, 무슨 말을 갖다 인증헌단 말인고? 야단이지. 교가(敎家)에서 야단이여. 이거 알아야지?
그저 후어(後語) 바로 그만 그대로 해 논 말씀이여. 무자(無字)에 주각(註脚) 내지 말아라. 무자에 주해(註解)를 내지 말아라. '무자가 어떻다' 이치를 말허지 말어라. 말허는 것보담도 이치를 붙이들 말어라. 후어(後語)를 갖다 뭔 말을 붙여서 인증을 삼지 말어라. 무서운 말이여.

여래(如來)의 정법륜(正法輪) 비방하는 법이 화두 공안을 깨달지도 못하고 깨달랐다고, 이놈들 그 주뎅이 함부로 벌린 거. 아무것도 아니여. 화류임앵다설고(花柳林鶯多舌苦)여. 그 수풀 속의 꾀꼬리란 놈 그 쎗바닥만 밤낮 내들어서 그 우는 소리 좋지. 그놈 제 쎗바닥 얼마나 괴롭냐 그 말이여? 꾀꼬리 울음소리는 좋지, 빛깔 좋고. 그놈 우는 게 좋지. 다설고(多舌古)여. 함부로 쎗바닥 내둘러 앵(鶯), 꾀꼬리 소리처럼 일러 봐라.
청산유수(靑山流水)는 고인정(古人情)이여. 청산(靑山)에 흐르는 물은 고인정(古人情)이여. 청산유수가 거 무슨 뭐, 아무 거기에 뭐 분단 낼 것이냐?

병(病)은 이렇게 다 내가 가려서 모도 말을 해서 버렸으니 필경(畢竟)에 자개무자(這箇無字)는 낙재심처(落在甚處)냐? 필경(畢竟)에 이 '이뭣고?'—내가 '이뭣고?' 해 놓고 보니 '이뭣고?'라는 그 의지는 어디 있냐 말이여? 어디 떨어져 있나? 어디가 있는 거냐?
내가 가지고 있건만, 내게 딱 붙어 있건만—붙어 있다니? 내가 내건만, 어째도 그렇게 해석을 붙일 수도 없고, 이치를 붙일 수도 없고, 거다 쎄를 내룰 수도 없고, 무슨 도리냐? 응, 이렇게 밥 먹는 놈이, 이렇게 옷 입는 놈이, 이렇게 가는 놈이, 대체 이것이 뭐냔 말이여? 대체.

아!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고, 쓰고 있고, 수용허고, 오는 놈 가는 놈이 아! 이렇게도 깜깜허니 어째? 다른 것인가?
그래 이걸 이렇게 깨닫지 못허고 이렇게 알지 못허고 송장만 늙히면 뭣 혀? 송장만 뒤집어쓰고 이 더러운 핏덩어리, 고름덤벵이, 그 똥주머니 오줌 핏.. 고것만 키우고 있으면 뭣 해? 아! 생각을 좀 깊이 해 보란 말이여.
벌로 들을 것인가, 이것이? '법문 법문' 헌께 그 법문, 얘기처럼 그렇게만 모도 용이심(容易心)을 내 가지고 그저 들을 때뿐이지. 그만 또 그만 흐지부지.

내 몸뚱이, 내 송장덤벵이도 요따구 것이어늘 내 몸뚱이밖에 뭐가 있어? 몸뚱이밖에 그까짓 뭣을 믿어? 뭘 믿고 뭐 뭐 남편이니, 무슨 뭐 자식이니, 무슨 손자니, 뭐 똥덩이 같은 놈의 거, 그런 것을 모도 애착해 가지고는 나를 안 찾고 있고, 나를 깨닫지 못허고 있단 말이여?
아! 좀 깊이 좀 생각해 보란 말씀이여? 뭐 내가 뭐 헛되이 헌 거 아니여. 아침마당 내 쎗바닥을 괴롭게 말란 말이여.

오늘 그만둘라고 해도 할 수 없고, 내일 아침에는 내일은 그만둬야 해도 할 수 없고, 내 편안한 것 생각해서 말고 있어? 아! 이놈의 때는 인자 아주 말세(末世)가 닥쳐와서 이놈 인자 겁해(劫海)가 바로 다다라 오는디.
곧 앞에 인자 영원히 인자 그만 몸뚱이, 소 · 말 · 돼지 몸뚱이도 얻지 못헌 놈의 세상이 돌아온다 그 말이여. 그 더러운 축생 몸뚱이도 하나 받덜 못헐 삼재(三災)가 앞으로 닥쳐오거든. 그 삼재 그거 인자 6천년 남았는디 그까짓 놈의 거 6천년이 얼마 가냔 말이여? 퍼떡 간디.
또 사람의 수명은 자꾸 감퇴(減退)되지? 자꾸 감하(減下) 감퇴가 되어 가는디. 아주 지금 뭐 팔십 노인이, 구십 노인이 노인이 아니라고 어떠고 이런 소리, 그까짓 거 어쩌다가 몇천 명 가운데 하나 있거나 말거나 헌 그까짓 것이 어느 때는 없나? 그걸 가지고 여기 얘기헌 건가?

인수(人壽)는 차츰차츰 줄어 가고, 세상은 차츰차츰 말세가 되아 가고, 이놈의 사람 목숨 죽이기를 뭐 뭐 뭐 무수 대가빡 뿌듯기 허고, 이런 놈의 악세(惡世)가 닥쳐온디 이놈을 좀 생각해 봐야지.
그 이러헌 땐디, 이 말세 이 땐디, 어쩌다 다행히 그래도 우리가 이런 때를 만났는고? 전쟁이 없고, 아! 또 그래도 어진 군왕이 와서 모도 정치를 해 주니까 아! 이렇게 편안하게 안락하게 도 닦을 시절이 있으니 이때를 함부로 지내 부러?
어서 좀 정진허라고, 어서 공부허라고 자꾸 이런 말을 부탁해 주어도 뻘로 듣지. 뻘로 뻘로. 하! 이것 참! 이놈의 목숨이, 이 붙어 있는 놈의 목숨이 그 얼마나 이 풀 끝에 이슬 달린 것보담도 더 위험한 놈의 몸뚱이 생명인디, 풀 끝에 이슬은 아주 오히려 그놈이 시간이 있지.

요거 요 요 목숨이란 건 어디 붙어 있는 건고? 숨 한번 들이쉬고 내쉬면 없어지는 거. 허망하고 무상하지마는 무상한 허망한 몸뚱이 요것이 아니면은 이놈 붙어서 어디 도 닦을 곳이 없네, 이놈의 중음신(中陰身)이 되어 버리면, 혼백(魂魄)이 되어 버리면. 참 고약하지.
바람도 아니고 이놈의 것은—바람이 그놈이 뇌란춘풍졸미휴(惱亂春風卒未休)지, 그대로 있나? 밤낮 경계를 모도 흔들거리고 돌아댕기지. 그대로 있는 게 아니여, 바람이라는 것은. 물결을 모도 흔들고 모도 임야를 흔들고 모도 돌아댕김서 그저 꼭 바람같은 놈의 것이여. 그러지마는 아! 그놈을 그 참으로 깨달라만 놔 봐. 천하에 보배는 그런 보배가 어디 있나? 자가저(自家底), 내 보배.


이러헌 내가 화두(話頭)의 병통을 모도 가르켜 주고 말해 주니까 알아라. 꼭 듣고 알아라. 믿어라.
자개무자(這箇無字)는 낙재심처(落在甚處)냐? 이 화두의지(話頭意旨)는 '이뭣고?' 헌 그 의지는 어디가 있어 이러허냐? 조주무자(趙州無字)도 어디 있어서 이렇게 이렇게까장 해 놓느냐? 대관절 어디가 있겠나?

이 낱 무자(無字)라는 것은, 이거 다시 나와. 또 나와. 무자(無字)라는 것은 유심무심(有心無心)으로 구투부득(俱透不得)이다. 유심(有心)으로도, 유심(有心)이란 건 모도 번뇌망상심(煩惱妄想心)이 유심이여. 무심(無心)이라는 것은 또 번뇌망상이 다 없어지고 무기심(無記心), 아무것도 없는 속에 들어가서 그 묵조심(默照心), 묵묵히 뭣을 비추고 무슨 이치를 장만하고 뭔 이치가 어떻다고 고런 놈의 입 내루는 거, 그 못써. 아무것도 아니여. 뭣을, 뭣을 입을 '이-' 혀? 뜻을...
참 일체 이치가 다 소용이 없다 했으니 그만했으면 파설(破說)해 준 것 아닌가? 곧 다 말해 주는 거여, 그것이. 중생심도 아니거니와 성해(聖解)도 아니라고 했으니 무슨 도리겠냔 말이여? 그건 각(覺)이 아니면 보들 못혀. 처꺽 깨달라야지, 깨닫기 전에는 안 되여.

유심(有心)과 무심(無心)으로 구투부득(俱透不得)이니, 망상(妄想) 경계와 망상 없는 경계, 둘 다 들어간다 그 말이여. 일체 일체 도리회(道理會), 일체 그 묵조사선(默照邪禪) 다 들어간다 그 말이여. 그것 다 소용없어. 구투부득(俱透不得)이여. 그 두 가지로 다 안 되야.
그러면 뭣이냐? 기명(棄命)허고, 아주 목숨을 떼 바쳐라. 그놈 목숨 목숨을 떼 바치고, 일체 유심무심 없는 그것 붙지 않도록 활구(活句)를 다루어라. '어째서 무(無)락 했노?' '이뭣고? 뭣고 헌 이놈이 뭣고?' 이렇게 알 수 없는 놈만 붙여 다루아라. 고놈 이외에는 없다. 활구라는 게 그 밖이다.

이치만 붙었다가는 저 죽는다. 뭔 이치를 맨들아 봐라, 뭐 대답허겄다고 와서 뭐, 뭘 장만해 가지고는 한마디 해 보겄다고, 어째 한 번 시험 삼아 해 보겄다고, 그게지? 어림없는 놈의... 고런 놈의 소견을 가지고 참선헌다고 선방에 들어와서 있어 보지?

그 목숨을 버려 바쳐, 일체 유(有)니 무(無)니 비유비무(非有非無) 뭐 그런 그까짓 놈의 상량선(商量禪) 다 내던져 번지고, 한번 유(有)니, 뭐 유심(有心)이니, 무심(無心)이니 고런 것 일어나기 전을 향해서[向未擧已前], 없는 곳을 향해서, 재생[再甦재소]을 해라. 착안(着眼)해서 홀연재생[忽然再甦]을 해라. 그 곳에서 살아나가야 하지, 거기에 떨어지면 안되야.
'옳지, 이런 것인가? 옳지, 저런 것인가? 이런 이친가? 저런 이친가?' 거기 떨어져 봐라. 무슨 놈의 선(禪)이냐, 그것이? 망상분별 별 지랄 다 하는 것보담도 더 못쓰는 것이다. 홀연재생[忽然再甦홀연재소]을 재생[再甦]이라는 것은 활구(活句)여. 알 수 없는 놈을 탁! 추켜드는 것이 그게 재생[再甦]이여.

요철무여(了徹無餘)해라. 그래 가지고는 그 알 수 없는 '이뭣고?'를 한번 뒤집어 깨달라 보아라. 그놈의 낯반대기를, 면목을 한번 바로 깨달라 보아라. 남음이 없이 한번 요철(了徹)을 해라.
깨달을 것 같으면 그때 가서는 일천칠백 칙 공안(一千七百則公案)이, 일천칠백이 뭣이냐? 만천팔백이면 무슨 걸릴 것이 있나? 그런 공안이 수감향이(誰敢向爾) 네 면전(面前) 염출(拈出)고? 누가 감히 네 앞에서 말을 벌리고 입을 벌릴 것이냐?
네 앞에는 바로 깨달으면은 벌써 인가(印可)하기가 바빠. '아이고야! 옳다! 너 바로 봤다!' 인가하기가 바빠. 인가할 것이 바쁘다 그 말이여.

"야문강상적(夜聞江上笛)허고, 밤에 터억 강 젓대 소리를 듣고 한마디 일러 봐라!"
"좋다! 당~당~징 지당~동당"

이거 이른 것인가, 안 이른 것인가? (처음~31분59초) (끝)

Posted by 닥공닥정

•§•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 (5/9) 몽산화상의 무자십절목.

**전강선사(No.502)—무자십절목(5) (낙재심처까지) (갑인74.05.24. 새벽) (전502)

 

(1) 약 36분.

 

(2) 약 18분.


(1)------------------

범과탄금석(帆過彈琴石)이요  운기무학대(雲起舞鶴臺)니라
나무~아미타불~
도원(桃源)이 하소재(何所在)오  낙화만계류(落花滿溪流)니라
나무~아미타불~

범과탄금석(帆過彈琴石)이다. 배 돛대는 금석(琴石)을 지낸다. 거문고 타는 금석대(琴石臺)를 지내간다. 망망창해(茫茫蒼海)에 갓없는 창해에 배 돛대가 가물가물, 그 석대(石臺)에 올라앉어서 거문고 타는 그 대(臺)를 떠억 지내가는구나.
운기무학대(雲起舞鶴臺)다. 구름은 저 무학대(舞鶴臺) 높은 산봉아리에서 일어난다.

도원(桃源)이 하소재(何所在)냐? 도 닦는 곳이—우리 부처님도 금선(金仙)이니까 금신선(金神仙)이니까, 금선이 부처님이여. 금선! 도 닦는 곳을 도원(桃源)이락 해야. 도원이 모도 신선들, 금선(金仙)들, 부처님, 모도 도 닦는 곳을 도원이락 해야. 도원이 어느 곳에 있느냐? 어디 있는고?
낙화(落花)는 만계류(滿溪流)다. 그 떨어진 꽃은 시내 가득허게 흘러 내려오는구나.

세상 부귀 · 공명 · 지위 · 권리, 뭐 천만사를 부모 · 처자, 무슨 애별(愛別), 사랑스러운 것을 애별허는 거, 다 그만 쓸어 버리고 끊어 버리고 여의어 버리고 이별해 버리고는, 척! 나와서 단신(單身), 단 몸으로 비구승 되어 가지고 도 닦는 학자의 도 닦는 처소가 이러허다 그 말이여. 뭐 이런 디 가 앉었으니 아! 그렇지, 뭐가 걸릴 것이 뭣이 있나? 아무것도 걸릴 것이 없구나.
그렇게 지위가 좋고, 권리가 좋고, 명예가 좋고, 별별 짓이 세상에 애욕락이 그렇게 있다마는, 모도 그놈의 디 걸려 놓을 것 같으면 그것은 그 그물은 더 벗기 어렵다.
애욕 그물 그 부부지.. 그 애착 그놈 참 무섭다. 뭔 놈의 부부지간이 떠억 서로 되아 가지고는 서로 그 뭐 쇠줄도 없고, 그 사이가 노끈도 없고, 그 사이가 뭐 실 터럭만큼도 서로 손그락 하나 잡아매 논 것이 없건마는, 어째도 그렇게 그 쇠사슬보담도 더 하고, 끊을 수 없는 놈의 애욕 경계가 그렇게도 나를 잡아매 놓고 꼼짝달싹 못하게 맨드는고? 그게 무슨 짓일 것이냐 그 말이여?

생사(生死)가 그만 이 내 몸뚱이에 칭칭 얽어져 있고 감겨져 있는디, 죽고 사는 생사가 이렇게도 얽혀져 있는데, 그래 그놈의 쇠사슬에 그놈의 노끈에 걸려 가지고는 다시 꼼짝 못허고, 그 생사해탈(生死解脫) 참선법을 이렇게 그만 까마득 그만 닦지 못하고 말아 버릴 것인가?
척~! 우리는 그것이 없이 그 부모도 여의었거니와 처자가 어디 있나? 처자도 없지. 처자가 없으니 자식이 어디 있나? 처옥자쇄(妻獄子鎖)가 어디 있나? 처자는 감옥이 되고, 자식은 그 자물쇠통 같은 디. 딱! 채워졌는디, 우리는 그것 없지.

이렇게 들어와서 탄금석(彈琴石)에 그 배 돛대 지내가는 것이나 보고, 구름이 저 무학대(舞鶴臺) 산상에서 부르르르 일어나는 대자연경이나 뭐 그 내 소유지. 청풍명월(淸風明月)이라고 헐까? 그 무슨 운기(雲起) 백운이라고 헐까? 모도 그러헌 것이 뭐 내 소유지. 저 명월이 소유지. 명월조(明月照)허고 청풍취(淸風吹)허는, 명월이 비추고 청풍이 부는, 아! 모도 그것이 내 소유지. 하늘에 해가 저 중천으로 떠가고 밤에 달이 척 떠올라 오는 그것이 모도 내 소유지. 그 내 보물이지. 천하에 누가 뺏어 가나? 누가 그놈의...
세상 공명 · 부귀라는 것은 총칼이 모도 딸려 있고 모도 뺏어 갈라고 애쓰고 기가 맥히지마는, 세상에 이 보물이야 누가 뺏어 가나? 제천(諸天)이 여의식(與衣食)이요. 배고프면 밥이 들어오고, 추우면 내 몸에 옷이 감기고, 아! 이 세상에 이렇게 들어와서 도학자가 되았구나.

도 닦는 곳이 어디일 것이냐, 따로 정해져 있느냐? 도원(桃源)이 하소재(何所在)냐, 어디 있느냐? 우리, 우리 도 닦는 곳이 바로 여기다. 여기 앉어서 도 닦는 여기여.
시내에 가득허게 꽃향내만 흘러 내려오는구나. 종일 있어야 뭔 모도 지위 · 권리 · 부귀 뭣헌 뭐 냄새, 그런 그 추접헌 냄새, 어디 그거 뭐 있나? 아무것도 없는 것이, 그 꽃 시내 흘러 내려오면은 향내가 진동하는 그것이 모도 우리 걸림 없는 탕탕(蕩蕩) 걸림 없는 우리 수도(修道) 도학자 도 닦는 경계여. 무엇이 있나 거?

뭐 누가 돈 달라, 쌀 달라, 뭐 이놈아 너는 뭐 내 것 갖다 먹고 안 주냐 마냐 싸우고 뜯고, 그런 놈의 추잡스런 일이 어디 있나? 아무것도 없다. 여기서 참으로 한바탕 닦아 보자. 닦아 보는 것이 뭣이냐? 뭣을 닦고 뭣을 믿을 것이냐? 내 마음을 내가 닦고, 내 마음을 내가 찾고, 내가 나를 한번 깨달라 보자.
허! 세상에 나를 두고 뭐 딴 것을 믿어? 무엇을 믿어? 귀신 대갈빡을 믿어? 무슨 우주만물을 창조헌 하나님을 믿어? 뭐 부처님이 당신 깨달은 부처님 마음을 믿어? 부처님 마음, 뭔 부처님 마음 뭐 믿어? 내가 날 믿어야지.
부처님 마음도 그만 두어 버리자. 우리는 부처님 제자니까 부처님을 믿어? 부처님 뭘 믿어? 부처님의 무슨 뭐 누런 저 금(金) 바른 무슨 등상(等像)을 믿어? 등상 믿어 뭣 혀? 우리는 내 가지고 있는 내 마음, 세상에 내가 나를 믿어 보자. 내가 나를 한번 깨달라 보자.

우리 부처님도 참 좀 잘 말씀해 주셨어? 「내가 백억천만 겁(劫) 중 남[生]이 없이, 날 때가 없이 나를 가지고 왔건마는 내가 나 온 곳을 아지 못했으니, 세상에 내 본래 미(迷)헌 경계, 깨닫지 못한 경계, 너무 오래오래 세월을 겪어 왔다. 오다가 내가 이 감겁(減劫) 중에, 겁이 내려오는 감겁(減劫) 가운데 말세 가운데, 인유백세(人有百歲)라. 사람이 백세 나면 죽을 때」 우리 부처님이 삼천년 전에 나오셨다가 그때 돌아가셨으니 삼천년 전에는 백세 때거든. 사람이 백세 먹으면 죽을 때거든.
「내가 백세정명(百歲定命), 이 감겁말세(減劫末世)에 나왔다마는, 인수(人壽) 팔만사천 세인디, 사람이 팔만사천 세를 살다가 죽는 것이 최고 수한(壽限)인디 사람의 수명인디, 팔만사천 세 다 이 내려와서 감겁 중에 차츰차츰 감퇴 되아서, 수(壽)가 감퇴 되아서 감겁 중 백세 때 내가 나왔구나. 얼마나 이 말세에 나왔느냐?」 말세에 나온 것을 무척 탄식을 허셨지마는, 말세에 척 나오셔 가지고서는 그 깨닫지 못한 나를 깨달랐단 말씀이여.

허다한 것 다 두고 그때도 무슨 별별 도가 다 있었지마는 심외도(心外道)? 내 마음 밖에 도(道)? 그거 내 마음, 마음 밖에 도라는 건 다 외도(外道)다. 바깥 도여.
내가 내 복장 속에 들어 있는 내 마음 내가 깨달라야겄다. 그 마음, 부처님 바로 깨달라서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해 가지고서는—견성(見性)해서, 내 성품을 봐 가지고 성불(成佛)을 했다, 부처가 되었다. 성불이라는 것은 구경각(究竟覺)이여. 부처님이 구경각이다 그 말이여.

척~! 깨달라 가지고 보관일체중생(普觀一切衆生)하니, 저 일체중생을 보니, 깨닫지 못헌 저 인생들을 모도 보니, 천만 국! 만국의 인생들을 보니 하! 구유여래지혜덕상(具有如來智慧德相)이다. 여래(如來)의 지혜덕상(智慧德相)이 다 갖추어져 있구나. 나와 똑같은 각성(覺性)이 다 있다 그 말이여. 나만 있는 것이 아니여. 나만 있어서 내가 홀로 깨달은 게 아니여. 일체중생이 그대로 똑같이 갖추어져 있다. 무흠(無欠)이여, 무여(無餘)다. 모지람도 없고 남음도 없다.
아! 이러헌 그 본래각(本來覺)인디 본래 그 각이 있는디, 왜 너는 가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미(迷)해 가지고 지금까장 느그가 그렇게 있나? 나는 느그보담 좀 선각(先覺)했다. 먼첨 깨달랐다. 너도 어서 깨달라라. 어서 깨달을 것 같으면은 나와 같다. 조금도 거기에는 나보담 나을 것도 없고 모지랄 것도 없어.

거, 뭐 불을, 불 하나를 가지고는 쪼끔썩 쪼금썩 나누면은 큰 불덩어리를—그저 조끄만헌 티끌만한 거라도 가서 붙이면은 불이 쪼끄만썩 쪼끄만썩 쪼끄만썩 몇 배, 몇억 억천만 개라도 그 불을 만들 수 있는 것이고, 합하면 한데 한 뭉터기 되듯기, 우리 중생의 마음 깨달은 자체가 나나 느그나 똑같어.
불을 나누면은 그렇게 숫자가 많지마는 합하면 한덩어리여. 터억 생사 없는 해탈대도(解脫大道)만 깨달라 버릴 것 같으면은 거기에 동증무애(同證無礙)여. 같이 동증무애를 증해서 그 뭐 필경에 구경성불(究竟成佛), 구경각을 마자 다 해 버릴 것 같으면은 뭐 색상(色相)을 갖춰도 똑같여. 무슨 색상 하나, 모냥 하나 받아 나와도 똑같여.

그까짓 놈의 색상이야 어디 본래 있나? 어디가 있어? 눈깔 · 귀 · 코 · 입빼기를 가지고 우리가 있지마는 이것 색상으로 받아 나온 건데, 그 원소(元素)를 한 번 가 따져 보아라. 원소는 불멸(不滅)이지마는 어디 그것이 어디 무슨 눈이 그대로가 항상 눈이 그대로 있나? 입이 그대로 있나? 몸뚱이가 그대로 있나? 이것 도로 그만 자체가 변해져 버리고. 원소는 불멸이지. 그 각(覺)이라는 것은 똑같다. 어서 깨달라라. 이렇게 말씀을 해 주셨다 그 말이여.

그러면 이러한 만계(滿溪), 그 꽃이 모도 멀어져서 시내에 가득허게 흘러 내려오는 자연 동천(洞天)에 여의고 떼고 버리고 이별허고 부귀영화 밖에 들어와서 가만히 와서 도 닦는 우리 도학자밖에는 도를 못 얻는단 말인가? 고렇게만 똑 닦아야 하는가? 그것 그 그렇지 않았다.
그저 세상에서 소동파(蘇東坡 : 蘇軾) · 이부마(李駙馬 : 李遵勗) · 백낙천(白樂天 : 白居易) · 한문공(韓文公 : 韓愈), 그 모도 그런 분들이 그 참 얼마나 그 역사적 인물이며 거벽(巨擘)들인가? 그러헌 역사적 거벽들이 그 모도 대도를 깨달라 통해 가지고는 함재조등(咸載祖燈)이여. 다 조등에 올랐으니 그이들은 어찌 또 지위 · 권리 · 부귀 속에서 조금도 손색없이 모도 확철대오를 해 가지고는 부처님 조등(祖燈)에 올랐냔 말이여? 말할 수 없었지 또.
그러니 꼭 여의고 떼고 들어와서 못허드래도 세상에 있어서도 얼마든지 해 나갈 수 있는 참선법, 임운(任運) 적극적 법이여. 적극적 임운법(任運法)이여. 무슨 못허고 헐 사람이 누구여? 젊은 사람이면 허고 늙은 사람은 못혀? 여자는 못허고 남자만 혀? 여자도 없고 남자도 없고 처소도 없다. 적고 큰 사람도 없어.

모도 내가 가지고 있는 놈은 내가 그대로 찾는 법이고, 그대로 볼 수 있고, 아 그놈 봐 버리면 내 주인공 내가 봐 버리면 생사(生死)가, 죽고 사는 생사는 그거 그 본래 겉껍데기 그거 뭐 아무것도 아닌 것이여. 있다 없다 헌 것이여. 백운(白雲)이 공중에서 일어났다 멸했다 헌 것이여. 그 뭐, 그 뭐 어디 생사가 있나? 생사 없는 게지!

무슨 귀신 춤춘 것이나 보고, 귀신이 무슨 뭐 노래 부르는 것이나 보고, 무슨 전생일 금생일 후생일이나 알고, 고까짓 것을 법으로 아는가 말이여? 그까짓 것이 무슨 놈의 법이여?
어디 훌훌 날아댕기는 게나 법이고, 뭐 날아댕기는 것 뭐 늘 말, 내가 날마당 시(時)마당 법문할 때마당 허지마는, 모기 깔따구도 날아댕기는데 공중을 훨훨 날아댕기고 그런디 뭐 뭐 그까짓 것이 법이여? 그런 사견법, 늘 그 사견법(邪見法) 내가 상견법(相見法)이라고 안 해?

참! 해탈 참선법, 이 법이다. 뭐 '여의고 떼고 모도 이별허고 들어왔다'고 하고, '세상에 있다'고 못허는 거 아니다. 말허자니 수도학자(修道學者)의 본분 행각(本分行脚), 이렇게 모도 앉어서 아침저녁 시간 정허고 헌 것을 말허자니 내가 여까장 한 것이여.

그러고 또 그다음의 공부해 나가다가 확철대오(廓徹大悟)는 못했다 하드래도 무슨 경계가 척 날 것 같으면은, 아! 그만 그 체중현(體中玄)만 들어가드래도 ‘견성했다’는 소견이 나거든? 체중현.
체중현(體中玄) · 구중현(句中玄) · 현중현(玄中玄) 그런데, 처음에 들어와 체중현(體中玄)이라는 것은 알기 쉽게 말하자면 체(體) 가운데, ‘감을 현(玄)’ 자—‘몸 체(體)’ 자, ‘가운데 중(中)’ 자, ‘감을 현(玄)’ 자, 체중현(體中玄) 선(禪)이라.
체중현 선이라는 것은 뭣을 말하는 것이냐? 공(空)을 말하는 것이여, 공(空). 말하자면 저 허공(虛空)이다 그 말이여. 저 허공에 아무것도 없지. 아무것도 없는디 거기에 뭐 뭐 뭐 빛을 아무리 볼라고 허니 무슨 보이는 것이 있나? 뭐 보이는 무슨 자체가 있나? 아무것도 없거든. 허공이거든.

그거 허공견(虛空見)만 하나 나오드래도 일체가 도무지 거기에는 말이 없고, 이치를 붙일래야 붙일 수가 없기 따문에 말도 없지마는 이치도 없다. 말도 없고 이치도 없는디, 그 가운데 허공이라고 내가 하나 말을 붙여 놨구나.
‘허공이다’ 하면은, 그 허공성을 하나 붙여 놓고 볼 것 같으면은 비유(非有)인디 소유(所有)거든. 그 유(有)가 아닌디 유(有)를 본다 그 말이여. 허공 아닌 도리라도 뭣을 하나 장만해 가지고는 그것을 견해를 보거든, 견해를 붙이거든. 그것이 유집상(有執相)이여.
유집상이라는 것은 내가 들어서 모도 붙인 것이지, 저 공처(空處)에 가서는 없거든. 허공 자체에 가서는 ‘내가 허공이다, 내가 비허공(非虛空)이다, 내가 허공인디 크다, 내가 허공인디 적다, 내가 무슨 우주 삼라만상도 내가 모도 집어 샘키고 있다’ 그런 것이 어디 있나? 허공은 없어, 허공성에 가서는.

유집상(有執相), 우리 유(有)가 들어서 그것을 모도 무집(無執)을 유집(有執)으로 보는 것이여. 그것이 그 모도 견해, 알음알이를 모두 지어 만들아 붙인 것이지. 어디 유(有)가 유(有)가 아니고, 무(無)가 무(無)가 아니다. 유(有)가 유(有)가 아니고 무(無)가 무(無)가 아니기 따문에... 유(有)가 유(有)가 아니고 무(無)가 무(無)가 아니기 따문에 유(有)와 무(無)가 동(動)할 것이 없다, 자체가.
이렇게 들어갈 것 같으면은 벌써 그 무집상(無執相)에 들어가서 무견(無見)에 들어가서 모도 이치가 붙고, 모도 뭔 말이 붙고 해서 이로(理路)가 있고, 어로(語路)가 있어서 그걸 체중현이라 하는디, 체중현 공해라는 것은 그것은 아무리 해 봤던들 소용이 없어. 그 유루견(有漏見)이기 따문에, 없는 것이라도 유루견을 붙였기 따문에 유상견(有相見)에 빠져서 생사고(生死苦)를 받는 것이여. 그게 벌써 생사집(生死執)이여. 그러기에 모도 체중현에가 들어 잠겨 가지고 도를 닦지마는, 없는 상(相)을 하나 봐 가지고는 없는 상을 봐 가지고는 유상(有相)을 맨들어 놓고 그 처백히거든.

그걸 모도 신선(神仙)이, 신선이 아무리 공관(空觀)을 해서 5통(五通)이 나지마는 그러헌 디 집(執)했기 따문에 그 모도 유집견(有執見)이여. 유집상(有執相)이여. 된 법 없어. 그러나 그런 데 들어가서 제 소견(所見)이 나 가지고는 '옳다! 내가 견성했다. 여기에 무슨 남[生]이 있으며 멸함이 있으며, 일체 무슨 명상(名相)이 다 공(空)했으며 공상(空相)까장도 거두아 버렸는디 뭐가 있나? 그대로가 그만 각(覺)이다'
이렇게 ‘깨달랐다’ 해 가지고는, 그만 제가 ‘제일이다’ 해 가지고는 자해진도(自解眞道)허고, 제가 제일이고 남을 모도 방비(謗非), 타비(他非)하고, ‘남은 아무것도 아니라’ 하고 그만 견성했다고 그래 가지고 그만 잠타무한치남녀(賺他無限癡男女)여. 한없는 남녀를 속여 죽여서 모도 도(道)는 꿈에도 깨달지 못하게 만들고 사견외도가 되게 맨들어 가지고는 모도 삼악도(三惡途)에 문을 열어주고, 아귀 축생취에 모도 집어넣어 주고 그러기 따문에 그 죄는 불통참회(不通懺悔)라. 참회를 허락할 수가 없어.
살불살조(殺佛殺祖)는,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인 죄는 불전(佛前)에 참회를, 부모를 애비를 죽이고 에미를 죽인 죄는 부처님 앞에 참회를 죄를 빌지마는, 반야(般若)를 비방한 자는—견성 못헌 걸 견성했다고 해 가지고, 거그 견성 제 깨달은 것을 옳다 하고, 남 깨달은 것을 모도 그르다고 막 냅대 비방하고, 고인(古人)을 모도 외도라고 비방하고, 그런 자는 참회할 길이 없어. 죄! 용서할 수 없다 이게여. 바로 그랬지.

아니, 그렇게 가서 무슨 지견이 났다가도 아! 그 탁마해 봐서 스승을 찾아, '오후(悟後)에 약불견인(若不見人)이면, 오후(悟後) 깨달은 뒤에 옳은 스승을 찾아가지 못헐 것 같으면은 번성독약(翻成毒藥)이다' 죽는 약을 먹는 것이다 그 말이여.
가서 떡 찾아가서, 지식(知識)을 찾아가서 탁마를 해 가지고 '옳습니까, 그르습니까?' '아니다' 허면 아닌 줄을 척 알아 가지고는 다시 발심을 더 허고, 다시 도심을 더 허고, 다시 도를 닦으면은 그거는 부처님도 그랬고, 조사도 그랬고, 그렇게 허는 법이여. 그래사 그거 올라가는 건, 향상(向上)으로 올라가는 것이지.

허지마는 제가 깨달은 그것이 깨달도 못헌 것을 깨달았다고 해 가지고 그 집(執)을 가지고는 제가 ‘옳다’ 하고 제일이고 진도(盡道)하고 타비(他非), 타비라 하면 안 되야. 그것은 불통참회(不通懺悔)다 그 말이여. 그래 그것을 알아야 하지, 그런 것을 알덜 못허고는 무슨 뭐 내가 견성했다가 방맹이 맞는다고 그만 '에이! 그것 내가 큰일났구나' 하고 혼자 공연히 장난을 일받지 말란 말이여.
더 튼튼허고 더 참되고 아무리 뚜드려 맞고 아무리 별별 일이 다 있다한들 그 법방(法棒)은, 법 방맹이는 안 맞을 수가 없어. 이 몸뚱이가 천 번 끊어지고, 뼉따구가 녹아지고, 몸뚱이를 갖다 귀신한테 나찰귀신한테 입에다 넣고라도 이 법은 배워야 한다 그 말이여. 물러갈 수가 없어. 뭐 방맹이 좀 맞는다고 물러가고, 무슨 말 한마디에 삐껴서 가고, 잘헌다고 무슨 거그 찬탄에 떨어지고, 그것 없어. 도학(道學)이라는 건 그런 법이 없거든.

그러기에 도학자는 기가 맥히게 다루아 본다 그 말이여. 얼마나 다뤄야 헐 것인가?
지가 무슨 뭐 도 배우러 왔다고, '오냐 내가 도인이다. 아나 도!' 허고 있어? 없어. 그렇게 천허게 개볍게 가르키는 법 없어.

내가 무겁게 가르켜서 그런 것도 아니지마는 8년을 나를 찾아온 사람이 있어. 올수록에 더.., 처음에 오면 “나 없닥 해라”. 또 그다음에 와도 “없닥 해라”
‘없다’ 한디 어째? 한번 ‘없다’ 한디 어떻게 헐 거여, 자기가. ‘없다’ 한디 무슨 있다고 뭐 다시 뭐 찾아올 것이여? ‘있다’고 와서 뭐 '당신이 아니요?' 헐 것이여? 소용없지. 한 번 혀, 두 번 혀, 그냥 8년을 했다, 8년. 8년까장 허다가 마지막에는 참 나를 찾아와서 그 어떻게 허다가 알았든지 말았든지 8년이나 왔으니깐 알 것 아닌가? 와서는 그만 엎져서 떠나도 않고, 가도 않고 오도 않고 아! 그만 엎졌다 그 말이여. 나 참! 달마(達摩) 스님 밑에 혜가(慧可) 대사가 와서, 죽게 되니까 팔때기 끊어 올린 것보담도 더했다 그 말이여. 내가 말 안 해 그렇지.
거 뭐 별사람 아니여. 세상에 살림 사는 사람인데, 그래 즈그 마누라는 '중노릇 간다'고 울고 들입대 야단을 쳐도 오고 오고 그랬든가 부여. 근데 내가 그건 아나? 그래 8년만에 하도 그래싸서 말 한마디 일러주었어. 내 두 말도 일러주지 않고. 두 마디 세 마디 일러주면 뭣혀? 그녀러 것이 어디 그런 법이 있어야지? 우리 부처님도 어디 참선법 화두법에 가서 두 말 세 말 있어? 없어.

남악회양 선사(南岳懷讓禪師)가 와서 척~ 절을 허고 도(道)를 구허니까, ‘심마물(甚麽物)이 임마래(恁麽來)냐?’ 한마디 뿐이지. 두 마디 했나? ‘뭔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참 기맥힌 법문이고, 기맥힌 선물이지.
억천만 겁에 모르다가, 제 가지고 있는 물건을 모르다가, ‘심마물(甚麽物)이 임마래(恁麽來)? 너 무슨 물건이 왔느냐?’ 눈이, 눈이 보니까 ‘눈이 왔다’고 헐 것이여? 귀가 들으니까 ‘귀가 왔다’고 헐 것이여? 코가 맡으니까 ‘코가 왔다’고 할 것이여? ‘이목구비(耳目口鼻)가 왔다’고 할 것이여? ‘송장이 왔다’고 할 것이여?
그 뭐, ‘대체 온 놈은 뭔고?’ 뭔고 허다 보니 이뭣고여. ‘이뭣고?’ 허고, ‘뭣고’ 해 놓고 보니 ‘이뭣고?’여. 하! 이놈을 그 ‘이뭣고?’를 허기 시작했다.

8년을 했네. 지독허지. 8년을 그대로 깜깜해 몰랐으니 8년을 허다 보니 그것이 참선이여. 그것이 용맹정진(勇猛精進)이여. 깨닫지 못했으니 헐 수밖에 있나? ‘이뭣고?’ 또 ‘이뭣고?’ 아무때라도 ‘이뭣고?’ 바로 볼 때까장 '이뭣고?'여.
8년만에는 확철대오를 했다. 허! 깨달라 놓고 보니 뭐 내가 육조(六祖) 스님과 못헐 것이 뭣이 있나? 오히려 육조 스님보담도 내가 낫구나 싶지. 뭐 천불조(千佛祖) 만불조(萬佛祖) 구탄불조(口呑佛祖)인디 내 입으로 불조 삼켜 버렸는데 어디 가서 있어? 그만 법만이 난다. 법아만(法我慢)이 생겨서 불조(佛祖)니 무슨 조사(祖師)니, 무슨 성인(聖人)이니 비성인(非聖人)이니 어디 내가 내 앞에 와서 그 독보건곤(獨步乾坤)이요. 홀로 건곤을 척~ 걸음허지.
‘내가 그만 제일이다’ 틀려 버렸어. 고렇게 되어 번지면은 오후(悟後)에, 옳게 깨달랐다 하드래도 오후(悟後)에 불견인(不見人)이여. 오후에 사람을 보지 못했으니 저는 인자 큰일난다 그 말이여. 거 무섭거든.

어서 큰스님을 찾아가야겠구나. 인자 그때 참으로 찾아온 것이여. 육조 스님한테를 찾아와서—아! 어제 아침에도 헌 법문 아닌가? 매일 허지. 무슨 뭐 내가 빼놓고 허나?

“제가 큰스님 묻는 말씀에 심마물(甚麽物) 임마래(恁麽來)를 바로 봐 가지고 왔습니다”
“응. 일러 봐라”

“일물부중(一物不中)입니다” 참, 말이 싱겁지. ‘일물부중(一物不中)입니다. 한 물건 맞지 않습니다’ 하! 서로 본 분들끼리는 그 뭐 환하지. 세상사도 그렇지. 서로 보고 말허는 것과 안 보고 말허는 것과, 거짓말을 헌 것과 참말 헌 것과, 다 나타나는 것이여, 면목이.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아? 가히 닦아 증(證)허겄느냐?”
니가 그렇게 깨달랐지마는 닦아 증(證)허겄느냐? 고대로 깨달은 바와 같이 깨달라서 꽉 증(證)해 버리겄냐? 다시는 매(昧)허지 않고. 저 밝은 달에 구름 한 점 없이 환한 달이 다시 그 구름 때꼽재기가 달에 찌이지 않게 허겄느냐 그 말이여, 말허자면, 쉽게 말하자면. 다시는 없어야 할 거 아닌가?

“없지 않습니다마는, 그렇게 허기는 꼭 닦아 증(證)해야 겄습니다마는 오렴(汚染)은 없습니다”
그 오렴(汚染)이란 건 누(漏)는 없습니다. 그 다시, 다시 무슨 그 달에 지금 가리운 것 뭐 그런 거, 그런 누(漏)는 없습니다. 또 찌일런지는 또 찌이면 닦을지언정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거 인가(印可)여. 이러헌 법인디, 이 법이 무슨 뭐 어디 처소가 있고, 무슨 비구니, 뭐 비구, 뭐 신남신녀, 뭐 뭐 남녀노소 차별 어디가 있는가? 없는 이 참선법이여. 그러헌 참선법인데, 왜 모도 이치(理致)를 장만하고 모도 공연히 무슨 도리회(道理會)를 만들아 가지고 그러헌 디 가서 꺼꾸러져 가지고는 본각(本覺)을 보들 못하냐 그 말이여.(처음~35분50초)





(2)------------------

“개가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무(無)!”

그 조주 뜻을 바로 봐라. 조주 무(無)라고 헌 뜻을 바로 봐라. 그 무(無)가 무슨 무냐? 그 무(無)는 도무지 이치(理致)로 아무리 갖다 붙여 봤던들 너만 손해날 일이니까 말아라.
뭐 유(有)를 붙여 보기도 허고, 유(有) 가운데도 별별 유가 다 있지 않는가? 유(有)도 유무지상(有無之相)을 떼고 보는 유(有)도 있고, 유무지상을 씻거 버리고 보는 수도 있고.
뭐 무(無)도 무슨 갑중(匣中)에 무검(無劒)허고 우무서(又無書)니, 아무 무(無)까장도 무 정량(情量)까장, 무란 도리까장 다 여의고 떼고 보는 무(無)도 있고. 그 그러헌 유무소견으로 유무소집(有無所執)으로써 그것 말아라. 그거 아니다.

뭐 있느니 없느니, 진무(眞無)니, 그런 관(觀). 고렇게 상(相)을 찾고 여의여 나오기를 여까장 나와서, 여가서는 어떤 놈은 말하기를 '쇠빗자락'이라고 헌다 그 말이여. 쇠빗자락이란 건 ‘막 쓸어버리는 놈’이라고. 쇠빗자락 같이 그 쇠꼬쟁이 빗자루 맨들어 가지고 쏵 쓸어버리니 땅까장 막 패여 버리는, ‘자최까장 막 없애 버리는 빗자루’라고 이런 놈이 다 있으니. 어떤 놈은 ‘자물쇠통’이라고, 일체를 다 망상번뇌를 콱! 못 일어나게 봉쇄, 자물쇠 해 버렸다는 이런 의미로 자물쇠통이라고도 허고.
‘별별 유무지무(有無之無)도 아니다’ 이렇게도 보기도 허고, ‘진무지무(眞無之無)도 아니다’ 고런 거로 보기도 허고, 별별 도(道)를 다 말허니, 한학해(閒學解)로, 한가로운 그러헌 네 알음알이 학해(學解)로 매몰조사심(埋沒祖師心)이다. 조사심(祖師心)을 매몰치 말아라.
이렇게 반대를 척 해 놓고서는 끝에 가서는 ‘철소추(鐵掃箒)라고 헌 놈이 다 있으니, 조주의(趙州意)가 과여시부(果如是不)아? 조주 뜻이 이러허냐?’ 고까짓 고런 것이 생사 없는 해탈도냐?

고 밑에 가서 유인타후어(有引他後語), 어제 아침에 헌 거여. 유인타후어(有引他後語)하야, 후어(後語)를 인타(引他)해다가 끄집어다가 뒷말, 위증자(爲證者)가, 증명(證明)을 삼는 자가 착요야(錯了也)로다, 그르친 놈들이다 한 것.
유인타후어(有引他後語)라는 것은 여태까장 한국불교가—몰라, 지나(支那)에서는 그만두고 한국에 나와서는 강사로서 선사로서 나옴서 해결 못된 말이여. 지금 해결 못허고 있는 말이여.
그러지마는 내가 이거 해결 붙여서 말허니 대단히 내가 방맹이를 천 방(棒)을 짊어지고 들어가는 말이지마는, 내가 내 죽기 전에 바로 일러준다 그 말이여. 바로 내 문자(文字)로 일러줄께. 바로 내가 이렇게 이놈을 다 들은 사람은 듣고 기억해 두고는 다른 디 가서 한번 서로 거론을 해봐. 탁마도 해보고. 이건 아무도 헌 말 아니고, 내가 지금 여 붙여 논 말이여.

유인타후어(有引他後語)라. 후어(後語)를 끄집어다가 위증자(爲證者)가, 증명(證明)을 삼는 자가 착요(錯了)다, 그르쳤다. 무서운 말이여.
이 후어(後語)라는 것은 뒷말이라는 것은 내나 다른 말 아니여. 조주 무(無) 밖에 진무지무(眞無之無)니, 허무지무(虛無之無)니, 유무지무(有無之無)니, 무슨 철소추(鐵掃箒)니, 계려궐(繫驢橛)이니, 나귀 매는 말뚝이니, 별별 소리를 다 해놨다마는, 고밖에 무슨 이치라도 부처님과 조사에 넘는 이치를 갖다 붙여서 말을 허드래도, 그 후어(後語)를, 그런 뒷말을 붙이드래도 붙이면은 눈깔 먼 놈이다.
내가 막 이렇게 해석적으로 의리적으로 막 해 주니까 깊이 들어. 생전 안 해 놓으면은, 몰라 놓으면은 어쩔 것이냔 말이여? 어쩔 거여? 해는 늦어가고, 내가 곧 죽을 때가 닥쳐오는디, 이런 것을 다시는 꼼짝 못한다 하고 말 안 해 놓으면 어쩔 것이여? '이렇게 본 사람이 있는가?' 다 가 물어 봐? 인타후어(引他後語)를 물어 보란 말이여.

도산, 모도 저 여그 무슨 여기서 그 10년을 허고, ‘인자 10년도 마지막 다 채왔으니께 나가 다른 데 가 지내라’ 헌게 나갔지? 내가 나가라고 헌게 갔지? 나가라고 안 하면 또 있을 것이여. ‘여 모도 구참(久參)들은 좀 나가거라. 여 신참(新參) 좀 받아야겄다’ 그 내가 그러고.
정일이 여덟인가 데리고 온 거 그날 돌려세웠어, 가라고. 여그 내가 지금 제일 뭣이 모지래냐 하면은 식량도 없고 할 수가 없다. 여 기본 재산이 있냐? 뭐가 있나? 겨우 이렇게 설법하고 나와서 뭐 불공(佛供)이 들어서 불공이 들어와? 재(齋)가 들어 재가 들어와?
재가 무슨 3만 원짜리만 해도 못 받는디, 여그서 시방 3만 원짜리나 뭐 그런 것은 혹 해 주지마는 5만 원이나 뭐 10만 원이나 그런 건 여그서 못해. '떡 해 돌라, 밥해 돌라고 헌께 못헌다'고 헌께, '아이고! 떡도 밥도 안 해도 좋습니다' 인자 그러고 들어오는 인자 신도도 있구만. 인자 공양을 못해 준다 하니까, '식량이 없어서 한때 공양을 해 주면은 대중이 굶게 되니께 못허겄다'고 해 버렸더니, 공양이 자꾸 들어온다 그 말이여. 그래 시방 공양이 밀려, 인자는. 밀려.

‘이번 때는 누가 하겄소. 이번 때는 누가 하겄소’ 참 그 공양(供養), 참 좋은 공양이지. 도 닦는 공양, 공일(空日)날 대중(大衆)도 모이지마는, 그 대중 가운데에 청신사(淸信士) · 청신녀(淸信女)도 다 모이지 않는가? 이러헌 대중에 공양 한번 올리는 것이 백겁(百劫) 천생(千生)에 그 부귀는 어떠헐 것이냐 그 말이여. 복도 청복(淸福)이지. 깨끗헌 복이지. 추복이 아니여.
내가 벌써 공양 말을 허니까, 이런 공양 말을 허니까 혹 내 귀에 들리기는 ‘에이, 그런 소리 또 헌다’고, 아 그 하품허는 이가 있는 것 같구마는 그렇잖어. 옳게 들어야 보배지. 내가 어디 공양을 허락했나? ‘헐 수 없어서 공양을 못허겄다’고 했더니 저 공양이 밀려. 또 들어왔는데, 또 들어오거든. 그러니 뭐 뭐 그런 공양은 해 올려야지 어쩔 것이냐 그 말이여.
여까장 허다가 보니 그 법문 원 가닥을 잊어버렸네. 뭘 허다가 여까장 했는고? 그 잊어버린 건 그만두지. 그것은 뭐 애 터지게 생각할 것 없는 것이고.


무자(無字)라는 것은 없어. 후어(後語)니 없어. 후어(後語)가 없어. 인타후어(引他後語)하야, 뒷말을 끄집어다가 인증을 삼는 자가 눈깔 먼 놈이다 해 놨거든. 이거 그 후어(後語)를 아무도 모르네! 내가 한번 큰소리헐 만허지.
후어(後語) 붙이들 못햐. 종문지일관(宗門之一關)이요, 종문의 일관이요, 삼세제불(三世諸佛)의 안목(眼目)이락 했어, 무자(無字)를. 그러니 거그다가 무슨 후어(後語)를 붙일 것인가? 조사선을 붙일 것이여? 여래선을 붙일 것이여? 불불불상견(佛佛不相見)을 붙일 것이여? 석가유미회(釋迦猶未會)를 붙일 것이여? 천성(千聖)도 불식(不識)을 붙일 것이여? 못 붙여.
잘 들어 두란 말이여. 잘 들어 두어! 이 견성허면은 바로 알 것인게! 거 바로 보들 못허고는 들어봤던들 그 통쾌치 못혀. 그러지마는 그래 들어 놔 두란 말이여.

그래 놓고 고 밑에다가 ‘막장한학해(莫將閒學解)하야, 한학해(閒學解)를 붙여서 조사심(祖師心)을 매몰(埋沒)치 말아라. 조사의 마음을 매몰허지 말아라’ 이렇게 해 놓고 할(喝)을 했다 그 말이여. '억!' 이렇게 따악 조졌어. 또 해 놓고는, ‘또 어떤 사람은...’ 이거 인자 이 오늘 아침에 새로 허는 거야.

‘유운(有云), 어떤 학자는 무자(無字)를 이르되 시계려궐(是繫驢橛)이다. 나귀 매는 말뚝이다’ 그러네. 나귀 매는 말뚝, 나귀란 놈이 그놈이 그 영리해서 분별이, 그 영리한 분별이 보통 말보담도 10배여. 아주 고놈이 뭐 영리해. 당나귀라니 굉장하다 그 말이여. 그 나귀 매는 말뚝이다.
'일체 망상을, 자꾸 일어나고 멸허는 기멸(起滅) 망상을 말뚝에다 나귀 매듯기 무(無)가, 무(無) 그것이 망상 못 일어나게 해 논 것이다. 아무것도 망상도 없지마는 망상도 일어나지 않고, 앞뒤가 전연 없고 전후가 다 아무것도 없고, 없는 놈까장도 거기는 붙들 못허는 말뚝이니라' 요렇게 말을 허네. 그건 후어(後語)를 붙이지 말라고 헌 말만도 못혀.

요렇게 말허는 학자가 또 있으니 ‘이재하처(爾在何處)하야 몽견조주(夢見趙州)냐? 네가 어느 곳에 있어 꿈에 조주를 봤냐? 꿈에 조주를 봐 가지고 요런 소리를 허느냐?’ 조주의(趙州意)?
욕득불초무간업(欲得不招無間業)인댄, 네 이놈 네가 무간죄업(無間罪業)을 짓지 않을라거들랑 여래(如來)의 정법륜(正法輪)을 비방(誹謗)하지 말아라. 네 여래의 정법륜 비방한 거 아니냐?
나귀 매는 말뚝이여? 낱낱이 집어내는 거여 지금. 그러니 무슨 견성했다고 무슨 뭐, 뭣 했다고 그 그 견성헌 것이 그런 거여? 견성해 놓고 보니 그려? 그거 아니여. 그런 법 없어

‘여래정법륜(如來正法輪)을 비방(誹謗)치 말아라. 허다폐병(許多弊病)을 도염거야(都拈去也)다. 여 앞에 전부 내려오면서 병을 다 내가 여 잡아내 논 것이다’
후어(後語)를 붙이들 말어라. 후어(後語) 밑에 요 말 하나 만들어 놓고는 딱 그쳐 버렸어. 이걸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이라 해야. 무자의 십절목을, 내가 여기 와서도 법문 인자 어느 때 한번 허고, 이번에 두 번째 한가 부여.

초학자(初學者) 처음 학자, 단순한 학자, 올 여름 학자 그 잘 모여서 하도 지극히 도를 닦고, 하! 운력(運力)을 시켜보면 알아. 꼭 같이 나와서—그만 그저 뭐 운력 쪼끔허면 그만 대가를 취허고, 그만 뭐 한 시간 고것 하는데 대가를 취하고, 고런 그 요망스런 행동헌 것들 그만 쫓아버렸더니, 인자 옳은 학자가 모아서 참 잘 되았다 그 말이여. 내가 바른 대로 말하지 무슨...
이렇게 잘 하거든. 무엇을 말라고 해도 꼭 와서 인자는 허네? 제발 말라고 해도 그 시간에는 착착 들어선다 그 말이여. 그 한 시간썩 일을 해서 왼 대중이 잘 도(道) 양식, 모도 부식대 돈 일절 한푼도 안 들이고 사서 똑 먹고. 아! 이러고 도를 닦아 나간다 그 말이여.
아! 인자 식량은 없다고 했는디 식량은 자꾸 공양이 들어온다 그 말이여. 올 여름 같이 또 수박도 많이 들어오고, 저 외처(外處)에서 공양이 자꾸 들어왔다 그 말이여. 떡을 해 가지고서는 짐으로 그만, 차로 싣고 들어와서 떡 공양을 얼마, 며칠을 했냐 그 말이여. 아 그만 여의식(與衣食)을 헌다 그 말이여. 족(足)하지. 도(道) 닦기가 족하고.

이렇게 진실허게만 정성스럽게만 학해(學解) 내지 말고, 알음알이 붙이지 말고, 닦아 나갈 것 같으면은 그 “무(無)!” 언하(言下)에, 그 여그 그랬어요? 언하대오(言下大悟)라는 게 조끔도 내가 뻘로 헌 소리 아니여. 영리한 놈은 직하흔번(直下掀飜)이다. 직하흔번이라는 것이 언하대오(言下大悟)란 말이여.
영리한 놈은 “무(無)!” 헌디 바로 봐 버릴 게다 그 말이여. 아는 것이 아니여. 바로 봐 버린다 했지. 견성(見性)이라고 했지. 견성, 견성이라고 했지. ‘성(性)을 본다[見]’ 했지. 성지(性知)라, 뭐 ‘성(性)을 안다’고는 안 했어. 본 것[見]은 지(知)와 달라. 각(覺)이래야 성이여. 견성(見性)이여.

‘허다폐병(許多弊病)을 다 잡아내 버렸으니, 도염거야(都拈去也)니 필경자개무자(畢竟這箇無字)는 낙재심마처(落在甚麽處)냐? 그 무자의지(無字意旨)가 어디에 있어서 이렇게 병통을 많이 가려내 놨느냐?’ 이렇게 말씀을 해 놨다 그 말이여. 허니 무자(無字)나, 이뭣고?나, 판치생모(板齒生毛)나 똑같여.

‘어째서 무(無)락 했는고?’나, '무(無)' 있다 없다 그런 것 소용없어. '무(無)!' 있단 말도 아니고 없다고 무(無)가 뭔 말이여, 무(無)가? '무(無), 어찌 무(無)라고 했는고?' '무(無), 무(無)라니?' 이렇게 다롸 해 나갔다 그 말이여.
만공 스님과 저 혜월 스님과 혜봉 스님 같은 큰스님네가 다 그렇게 해 나갔다고 우리를 가르쳤어. '무(無), 어째 무(無)라고 했는고?' 이렇게 해 갈 것이고.

‘이뭣고?’ 헌 이는 ‘이뭣고?’여 ‘이뭣고?’ “심마물(甚麽物)이 임마래냐(恁麽來)?” 꽉 맥혀 몰랐으니 ‘이뭣고?’여. ‘이- 뭣고? 이뭣고?’ 이뭣고? 뿐이여.
또 허면 또 ‘이뭣고?’, 또 허면 또 ‘이뭣고?’, 암만해도 이뭣고는 밑천이 떨어지지 않네. 그 이뭣고는 밤낮 나오네. 천년만년이고 두고두고 나온다 그 말이여. ‘이뭣고?’를 알 수 없으면 밤낮 알 수 없는 놈만 나오네. 백 번 허고 천 번 해도 더 알 수 없는 놈만 나오네. 그것이 화두(話頭)여.

알 수 없는 놈이, 알 수 없는 의지가 없고, 알 수 없는 의정(疑情)이 없고, 뭔 지(知)가 붙으면, 빼꼼허니 뭔 아는 것이 뭐 제 소견이 붙으면, 그것은 숭악한 사마외도선(邪魔外道禪)이여. 된 법이 없어.
‘잘되니, 못되니’ 뭐 인증해서 ‘요런 것인가, 조런 것인가?’ 거 사견선(邪見禪)이라 못써. 삿된 선, 사견선이라는 것은 제일 못쓸 것이 사견선(邪見禪)이여. ‘이뭣고?’ 밖의, 알 수 없는 밖의 딴 것은 다 묵조사선(默照邪禪), 삿된 선, 사견선, 견성헌 법이 없어. 견성 아니여.

‘어찌 무(無)락 했는고?’ 요렇게 해 나갈 따름이고.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인고?”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어째서 판때기 이빨에, 판자 이빨에 털이 났다 했는고? 판치생모? 어째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그 조주 뜻 찾는 것이여. ‘판치생모?’ 요렇게 해 나가는 것이여. 오늘은 또 법문이 대중법문이 있을 터니까 여까장 끝을 마쳤어.

허다폐병(許多弊病)을 다 잡아냈으니 필경(畢竟)에는 이 낱 무자의지(無字意旨)는 어느 곳에 떨어져 있느냐? 여까장. (35분50초~53분50초)(끝)

Posted by 닥공닥정

•§•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 (4/9) 몽산화상의 무자십절목.

**전강선사(No.501)—무자십절목(4) (매몰조사심까지) (갑인74.05.23.새벽) (전501)

 

(1) 약 37분.

 

(2) 약 21분.


(1)------------------

오온위주암(五蘊爲主庵)이요  기경풍우다(幾經風雨多)오
나무~아미타불~
종차이정별(從此梨亭別)이요  하생갱상봉(何生更相逢)고
나무~아미타불~

내, 이 게송(偈頌)이 모도 그 있는 말, 그런 말 갖다가서 조금조금 모도 달리 맨들아 내가 허지, 뭐 똑같은 말이여.
차신(此身)을 불향금생도(不向今生度)허면 갱대하생도차신(更待何生度此身)가? 이 몸뚱이를 금생에 제도허지 못하면은 다시 어느 때를 향해서 이 몸을 제도할꼬? 이 그 말이여. 모두 그런 말 갖다가 이렇게 써 놓은 것이여. 뭐 어디 내가 다른 말 허나? 어디 다른 말이 어디 있어야지!

오온(五蘊)으로 위주암(爲主庵)이다.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오온으로써 주암(主庵)을 했다. 내 집을 오온(五蘊), 이 몸뚱아리 가운데에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몸뚱이 이거 뭐 사대색신(四大色身) 몸뚱이 뭐 나무토막과 같은 놈의 무슨 뭐, 아무것도 무슨 주인이 없는 놈의 물질 몸뚱이, 그 몸뚱이 가운데에 색수상행식이 들어 있다.
색(色)—모도 푸르다, 누리다, 희다, 검다, 청황적백을 모도 알아내는 그러헌 색으로써서, 그것이 모도 내, 낸 줄을 안다 그 말이여. 그 망상(妄想) 숭악한 번뇌덩어리로써 그것이 낸 줄을 알거든?

이 몸뚱이 하나 가지고는 색수상행식 그놈이 들어서 밥 먹고 옷 입고 별짓 다 하지마는, 그것이 그 망상 그 덩어리로써 모도 조직된 놈의 몸뚱이 그 가운데에 색수상행식 그 망상 그놈이 주(主)여. 수(受), 받아들이고 생각하고[想] 알고[識] 행(行)하고 모도 그러헌 오음(五陰)으로써 주인이 되었다 그 말이여.
거기에 생사(生死) 없는 해탈(解脫), 내가 나를 깨달은 그 법은 꿈에도 생전 알덜 못허고는 색수상행식 요 망상, 그 근본 망상 고놈이 들어서 별놈의 망상을 다 지어 맨들어 내는 고것이 주인이 되었다 그 말이여.

그래 가지고는 거기에 모도 인자 사견(邪見) 또 상견(相見)이 사견이 모도 전부 조직되어 가지고는 삿된—세상에 벌거지같은 것도 다 공중을 날아댕기고, 벌거지같은 것도 꾸무럭꾸무럭헌 것들도 저를 잡을라고 하면 도망가고, 그런 신통묘용(神通妙用)이 있어. 그것도 다 신통묘용이여.
아! 그 아는, 잡을라고 허면 도망가는 거, 그 그만큼 더 알아? 제 몸뚱이 피할 줄 알고, 그놈들 공중을 제 마음대로 날아댕기고, 그런 신통 변화 봐. 고까짓 것이 무엇일 것이냐 그 말이여?

'무엇을 안다' 알기는 무엇을 알아? 무엇을 알면 뭣 혀? 푸른 걸 아나, 누른 걸 아나, 흰 것 검은 걸 아나 똑같지, 무슨 뭐 전생 일을 알고, 후생 일을 아는 것이 다를 것이 뭐여? 고런 것은 도(道)가 아니여. 꿈에도 도가 아니여. 그런 것을 가지고는 도(道)인 줄을 알고 모도 미친다 그 말이여.
점쟁이 같은 거 그 뭐 안다 하면 그만 그리 엎어지고 쓰러지고. 색수상행식 오음(五陰), 번뇌식으로써 그거 밖에는 모르거든. 이렇게 우리가 모아서, 저 참 이 내 주인공 내가 나를 한번 깨달아—보지 못하고 알지 못헌 내 주인공을 한번 찾아 낼 줄은 모른다 그 말이여.

오음산(五陰山) 가운데, 이 오음 가운데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못된 망상번뇌로 장엄을 헌 이 몸뚱아리, 이 망상덤배기 이것을 가지고는 이것이 낸 줄을 알고 착득(着得)을 해 가지고 꽉 착(着)해 가지고, 기경풍우다(幾經風雨多)냐. 얼마나 풍우를 많이 겪었느냐? 이렇게 미(迷)해 온 지가 얼마냐?
전생도 있었고 또 전생도 있었고, 과거 몇억천만 겁 전생이 전생이 그대로 있었건만, 어디 죽었다 났다 죽었다 났다 없어지나? 항상 있지. 그놈이 망상위본(妄想爲本)으로써 이 지경이다. 이 풍우를 얼마 겪어 왔느냐? 이걸 생각해 봐라, 금생에.

어쩌다가 이 참 정법문중(正法門中)에 들어와서 이 몸을 얻어 가지고 이 도문(道門)을 만나서 이 도학자(道學者)가 되어서, 아침마당 같이 모아서 이렇게 부처님께 예경(禮敬)허고, 그러고는 이렇게 발원(發願)하고 십악참회(十惡懺悔)허고 도 닦는 걸 한번 생각해 봐라. 그거 그거 몇억만 년을 그만 그렇게 저렇게 죄업만 지어 나오다가 금생에 와서 이렇게 우리가 도문에서 모아서 도연(道緣)을 맺고 도학자가 되았구나. 한번 생각해 봐, 얼마나 기가 맥힌 일인가.

거다가 또 믿는 법이라든지, 닦는 법이라든지, 사견(邪見) 상견(相見)이 없이 바로 닦아 나가는 거, 바로 믿어 나가는 거. 아 어저께 그 무슨 법성궁이라고 헌 여자가—나 불명(佛名)만 지어 주었지, 말은 허니께 인자 윤곽은 나타나지마는, 법성궁이라는 부인이 자부(子婦)를 보내서 돈 만 원을 보내면서, '그 사중(寺中)이 어려워서 아무 유지도 뭣도 없는 그런 사중에서, 그 어떻게 이렇게 늘 모아서 많이 많이 참 지내 나오는 가운데, 인자는 그 모도 밑천이 모지래서 생긴 것 가지고는 어떻게 지내갈 수가 없고, 모도 시대의 모도 그만 그저 거년 다르고 금년 다르고 모도 경제 혼란이 일어나서 지내시기가 어렵다'고 그런 말 듣고, '관음재일(觀音齋日) 날 여러 신도가 모여 있는디 공양(供養)도 못해 주고 허시니까 공양해 달라'고 험서 돈 만 원을 보냈다 그 말이여.

보냄서 그 자부 허는 말이여. 뭐락 하드노? 뭐 여러 가지 뭐.. “천하에 그런디 한국에서는 없는 조실(祖室) 스님이 계신 줄을 믿었습니다” 그렇게 허고. “공양해 올린디 당초에 누가 했단 말도 말아주시고” 내가 그거 그런 말 해 달라고 '공포(公布)허지 말라'고 헌 말 가운데 이 말을 헌다 그 말이여.
“누구한테 무슨 공양이니 뭐이니 그런 말씀도 허지 말고 사중에서 낸 것처럼 그렇게 해 주십시오. 내가 뭐 내 공양 냈느니 뭐 내 축원허니 뭐 그런 건 절대 마십시오. 스님 법문 말씀을 듣고 믿었습니다. 무축(無祝)이 제일이고, 축원 없는 게 제일이고, 또 '했다'는 상(相) 없는 게 제일이라고 불법은 그렇다고 했는디 내가 했네, 누가 했네, 그런 말씀을 마시고 가만히 스님 혼자만 아시고 사중에서 헌 것처럼 그렇게 해 주십시오” 그 그 말을 들으니 그 무척 참 고맙기도 허고 법을 그렇게 깊이 바로 듣고, 바로 들어 가지고는 그 법을 바로 행한다 그 말이여. 법성궁이라고 헌 여자가. 아 그 참 기특허다 그 말이여.

사실 그렇거든. 무슨 놈의 축원(祝願)에 가서 뭣이 있어? 부처님이 무슨 뭐 '축원해 달라, 뭐 명(命) 달라, 복(福) 달라' 한다고 주나? 제가 지극히 헐 것 같으면은 제 복으로 다 받는 것이지. 중생 죄업을 대신 못허고, 아무리 중생이 박복허지마는, 복을 주고져 허지마는 제가 박복헌 걸 어떻게 혀? 못혀. '대신 못헌다'고 했다 그 말이여. 응, 참 옳다 그 말이여.
『금강경(金剛經)』 법문을 듣드래도 금강경 가운데 전부가 그거거든? '보시 상(相)을 내지 마라. 헌 무슨 상을 내 가지고 허지 마라' 우리 중은 어디 무슨 뭐 기도를 허면 뭐 축원혀? 가만히 그저 작법(作法)만 허고 나가지.
그러나 '공포(公布)허지 말라'고 헌 말까장 내가 다 한다 그 말이여. 그건 내가 헌 건 관계없거든. 그렇게 해서 다 여러분들이 그러헌 정법(正法)을 바로 듣고 알게, 내가 그리해 주는 것이여. 뭐 다른 것이 아니여. 이게 조불양화(助佛揚化)거든. 부처님의 법을 양화(揚化)시키는 것이여. 그래 내 여까지 말헌다 그 말이여.

가만히 또 공양이 들어왔다 그 말이여. 허! 그것, 자꾸 인자 대중에 '사중에서 어떻게 식량을 해 댈 수가 없으니까 못헌다'고 해 놨더니, 사방서 인자 또 공양이 들어와. 벌써 자꾸 들어오는구만.
그 한번 공양에—거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 있어. 삼세제불(三世諸佛)께 공양헌 것보담도 대중공양을 몇 배 이상 더 쳤네. 그 도 닦는 스님네, 도 닦는 사부대중(四部大衆) 공양해 올리는 것은 복무변(福無邊)이라. 부처님 공양보담도 백배(百倍) 이상이다.
부처님 등상(等像)한테 밥해 올린 것이 뭐 그리 공덕이 있을 것이냐? 먹고 도 닦는 사부대중께, 그대로 도 닦는 분들께 바로 실식(實食)을 허도록 실지로 밥을 먹도록 해 주는 것이 위성도업(爲成道業)하야 이 밥을 먹어야 하니까, 그렇게 공양을 올려야사 큰 대복(大福)이니라. 『사십이장경』 보란 말씀이여. 법을 다 이렇게 알아야 하지.

허! 모도 말법(末法)에는 이놈의 아 사견종자(邪見種子)들이 나와서 맨 사견법(邪見法)으로써 그 별짓을 다해서 모도 중생을 속여서 무한치남녀(無限癡男女), 한없는 남녀를 속여서 아비지옥 무간지옥 죄, 모도 죄보(罪報)를 받게 만든다 그 말이여. 모도 그 우상 숭배허는 것이 그것이 사견 상견법 아닌가? 모도 색상법, 고따구 짓으로 불법을 맨들아 놨단 말이여. 그러니까 모도 저런 야소교(耶蘇敎) 같은, 예수교 같은 데서는 모도 그걸 보고 비방허거든. 대체 비방할 만허거든. 울긋불긋 탱화를 그려 놓고는 그 앞에다...
어쩔 수 없어 그저 '우리 부처님이 과거에 이렇게 생겼다'는 모습을 해 놓고는 거다가서 예경 참배허는 것은 내 공경을, 내 진성(眞性)을 공경히 허고, 내가 나를 공경히 허고 굴복무명(屈伏無明)이라, 내가 지은 죄를 그 굴복시키는 거 참회하는 것이여. 그것이 원 법인데, 아! 이렇게 모도 못쓰게 되았다 그 말이여.

이 못된 오온 색상 오온(五蘊)으로써 그만 망상 번뇌로써, 사대색신(四大色身) 몸뚱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써서 이놈 몸뚱이 이놈 모도 행식(行識)을 삼아 가지고는 기경풍우다(幾經風雨多)냐? 얼마나 풍우를 많이 겪어 왔느냐? 몇천만 겁을 여태까장 시방 지금까장 오느냐? 지금까장 오게 된 이게 얼마나 많이 겪어 왔냐 말이여, 생겨난 때가 없이.

종차이정별(從此梨亭別)이다. 일로써서 이정별(梨亭別)밖에 없다. 이정(梨亭)이라는 것은 우리 사는 이 세상에서 그 이정(梨亭)이여. 매화 뜰이라 그 말이여. 매화 정자라 그 말이여.
매화꽃 피는 정자니까 매화꽃이 터억 피면은 향내가 응, 매화라는 것은 기가 맥힌 향내가 있는 꽃 정자, 이 세상에 그 좋은 부부, 자식 모도 낳아 가지고는 좋은 요정, 좋은 즐거운 그러헌 이정(梨亭)에서 이별밖에 없어. 일로 쫓아서 이정별(梨亭別) 해 버리면, 이정(梨亭)에 이별을 해 버릴 것 같으면은, 인자 금생에 이별해 버리면, 하생(何生)에 갱상봉(更相逢)이냐? 어느 생에 다시 또 만날 터냐?

너 어머니, 너 아버지, 네 형제, 네 자식 손자, 네 부부 고대로 또 만날성 싶으냐? 밤낮 들여다보고 “아이고! 우리 마누라, 아이고! 우리 자식, 내 손자” 그저 눈앞에 보인께 “아이고! 이거” 못 잊어 야단치지마는 고걸 또 만날성 싶은가?
고대로는 못 만나. 고 얼굴 고대로, 고 코빼기 고대로, 눈깔 고대로, 내 아버지 어머니 내 마누라 자식 손자, 고대로 만나지 못햐. 고렇게 꾸며서 만나 가지고 나오들 못해.

그 혼, 영혼은 서로 보들 못헌 놈의 영혼, 말허는 자리 이 자리—이 몸뚱이 내던져 버리면은 모냥다리 하나 없는 그 주인공을 서로 대해 봤던들 뭘 알아? '아이고! 과거의 마누랜가? 우리 남편인가?' 그렇게 알아?
아! 잠자면 잠 꼭 든 잠 가운데에도 모르는디, 죽어버리면은 생사별(生死別)을 해 버리면은 어디 가서 아냐 그말이여? 알기는 뭘 알아? 잠 꼭 든 경계인디. 잠 꼭 들었으나 잠 꼭 들은 그 경계는 오히려 망상 없는 경계인디, 번뇌망상이 없는 경계인디.
어디 인자 잠 꼭 들은 그 경계인가? 망상은 인자 더 많이 생겨 가지고는 중음신(中陰身) 거 뭐 별짓 다 허고 돌아댕기는디. 미(迷)해 가지고는 인자 제가 귀신인 줄도 모르고 돌아댕기면서 야단친 것인디. 그러나 몸뚱이라는 놈이 걸림이 없으니까 제가 무슨 조화가 있어야지. 뭐 또 귀신으로 조화 있는 것도 있지.

종차이정별(從此梨亭別)이면, 일로 쫓아 이정(梨亭)에서 이별 이렇게 해 버릴 것 같으면은 하생(何生)에 갱상봉(更相逢)고? 다시 언제 서로 만날 것이냐?
업(業) 짓는 것이 다른디, 하나는 사람되아 나올 인연을 그러헌 일승(一乘) 인연을 지었는디, 마누라는 지옥 갈 업을 지었네. 살생을 많이 하고 도둑질도 허고, 그래 고약한 짓을 했으니 지옥 갈 인연을 지었네. 자식은 또 더군다나 이놈 또 무슨 축생취(畜生趣)에 가 날 죄업을 지었는가, 구렝이나 뭐 이런 것 모도 고런 것이 되아 버리네. 또 손자는 그놈은 또 업이 달라 별업(別業)을 뭔 짓을 해 가지고는 또 다른 업을 지어서, 거 무슨 아귀취에 가서 귀신 대갈빡을 둘러쓰고 나오네. 뭔 놈의 만나?

그래 가지고 한 번 갈리면은 또 업(業)이 달라서 별업을 다 짓는데, 하생(何生)에 어떻게 만나 다시 또 그때 저 그 가족이 만나 가지고 서로 “아이고! 내 자식, 아이고! 내 마누라, 아이고! 내 부부” 그러고 있을 거여?
이것 장몽(長夢)도 아니여. 긴 꿈도 아니여. 단몽(短夢)이여. 아주 쩌룬 꿈이여. 우리 인생이 이렇게 몸뚱이 가지고 나와서 이것 산다는 것이 단몽이여. 홑 꿈이여. 잠깐 꿈이여. 춘몽(春夢)이여. 봄꿈이여. 요까짓 걸 가지고서는 생(生)이라고 혀? 이 무슨 생이여, 이것이? 아침 게송.


어저께 아침에, 묘희(妙喜)가 이르기를 말이여. 묘희, 대혜(大慧) 스님이 말씀허되 '이 유무(有無)의 무(無)도 아니며, 진무(眞無)의 무(無)도 아니며' 그러니 그 무슨 무(無)냔 말이여? 무슨 무(無)를 갖다 거다 말해 놔? 무(無)가 무슨 무여, 그것이?
별짓을 다 집어, 별 이치를 다 붙여 봤던들 무의(無意)가 아니여, 무자(無字)의 뜻은 아니여. 그런디 거다가서 무슨 주뎅이 입을 열어서 무슨 꺼떡허면 방(棒)이나 하고, 꺼떡허면 할(喝)이나 하고, 종 내나 알고 혀? 할(喝)은 어따 하는 것인지 알아?
'할(喝)은 어따 허는 것이냐?' 물으면, 대답 못하네. 네가 그, 부처를 물으면은 부처를 할(喝)을 하고, 방(棒) 방맹이 뜻을 물으면은 방맹이 뜻에 할(喝)을 하고, 유(有)를 물으면 할(喝)을 허고, 무(無)를 물으면 할(喝)을 허고.

아! 내가 오장치를... 오장치는 그때 안 졌지, 처음이니까. 누더기 한 벌, 한 쪽을 어깨에다가 한 벌 메고 한 벌은 입고 그러고는 바가지 하나 차고는 얻어먹고 턱 나가다가서, 허태오가 허운송 스님이 유명한 도인(道人)이라고 그래서, 그 스님이 하동(河東) 쌍계사 국사암에 있다고 그래서 도인이면 다 찾으니까 뭐 뭐 찾아 올라갔지.
국사암을 찾아 올라가니까, 대체 그 스님도 그 누더기를 얼마나 집었든지 실 밖에는 남지 않았네. 베오락지는 다 없어져 번지고 실 밖에 없어. 또 집고 또 집고, 한 벌 가지고 그저 그래 입어. 두 벌도 입을 것도 없고. 밥은 무엇으로써 밥을, 그 임시 먹고 사시는 것은 뭘 먹냐 하면은 솔잎을 썰어 가지고는 발우대에 담아 놓고 고놈을 먹고 물을 마셔.
아따! 참 도인이다. 참 그런 도인이 없다 그 말이여. 물 그 솔이파리 좀 집어넣고는 물 마시고, 그러고는 옷은 한 벌 가지고는 꿰매 입고. 누가 옷을 해다 주고 부안 신도가 그렇게 막 받들어도 소용없어.

'그런 옷 나는 입지 않는다. 그 내가 시은(施恩)을, 그 시주의 은혜, 그 베 짜는 여인네가 얼마나 직녀지고(織女之苦)가 있었으며, 베 짜는 괴로운 것이 있었으며. 농부지고(農夫之苦)야, 좋은 쌀밥 같은 것은 농사짓는 사람의 고통이다. 그 농사 짓니라고 얼마나 애를 썼겠느냐? 나는 그런 밥 안 먹을란다'
밥도 안 먹지. 그런 옷도 안 입지. 방도 그 뭐 자기가 죽은 냉기—산 냉기는 꺾지도 않고, 죽은 냉기를 산에 올라가서 줏어다가서 불 때고, 겨우 돌만 돌맹이만 걸쳐 놓고는 그 위에다가서 뭐 거적대긴지 뭔지 이런 걸 펴 놓고 뒷방 하나를 얻어 가지고 그래 있다 그 말이여. 시은(施恩) 안 질라고.

하! 이런. 가 보니 얼굴은 깨끗하고 청수(淸秀)헌 스님이 옷도 그렇게 한 벌 가지고 입고, 실 같은 것은 실오라기 같은 것은 어디서 났느냔 말이여? 그 어디 돌아댕기며 나가다가서 어디 그 서낭당 같은 디 그 헝겊때기 모도 쨈매서 걸어 논 놈, 그런 놈 풀어다가서 아 고렇게 줏어 입고 이러고 지낸다 그말이여. 참 시은 하나 안 짓고, 자기 손으로 죽은 냉기 줏어다가서 꺾어 때고, 솔잎 썰어서 먹고, 아 이러고 지낸다 그 말이여. 참 도인이다.
하지마는 그까짓 고런 짓 해 가지고 도인노릇헌 것을 내가 보고, '아이고 큰스님!' 없어. 고런 것 가지고는 나는 그까짓 건 꿈에도 보도 말 것도 없고.

대번 들어가니까 '월조(月照)'라 '달 월(月)' 자, '비칠 조(照)' 자. 월조(月照)라 써 놓고는 월조 선사(月照禪師)의 찬(讚)을 해 놨어. 죽은 월조 스님의 영찬(影讚)을 해 놨는디, 그 찬(讚) 법문이여. 그걸 운송 스님이—이름은 허태오고, 당호(堂號)는 운송 스님인디 허운송인디, 운송 스님이 그렇게 송(頌)을 해 놓았다 그 말이여.
송을 해 놨는데 '월야할(月也喝)이요' 월조(月照)니까. 월(月)에도 할(喝)이요, 조(照)도 할(喝)이요. 할(喝), 할이란 건 '억!' 그 꾸짖는 거여, 억! 허는.
월(月)도 할이요, 조(照)도 할이요, 비월(非月)도 할, 비월(非月)이라고 해도 할이요, 월(月) 아니라고 해도 할이요, 비조(非照)라고 해도 할이요, 조(照)도 아니라고 해도 할이다. 그래 놨다 그 말이여.

'월(月)도 할(喝), 조(照)도 할(喝), 비월비조(非月非照)도 할(喝)이다' 요렇게 딱 해 놨거든. 그 법문이 그 끝 조짐이 없어. 안되아. 안되거든. '월(月)도 할, 조(照)도 할, 비월(非月)도 할, 비조(非照)도 할, 할이다' 거 그래만 놓고 말았거든. 그 어떻게 해야 조짐이 될까?
부처도 할(喝), 조사도 할(喝), 인자 뭣 막 할(喝)이니께 뭐, 전부 할(喝)이여. 유(有)도 할, 무(無)도 할, 뭐 생사도 할, 뭐 비생사도 할, 막 할(喝)일 테니까. 그 할(喝)은 응, 할을 해 버리고 말아 버렸다 그 말이여.

그 월조 선사(月照禪師)가 눈을 얻을 수가 있나? 그 조짐 하나 못할까? 알거든 어디 서슴지 말고 의의(擬議)치 말고 턱턱 한번 내놔 보라 그 말이여. 그러헌 바른 공안에 가서 척척 참, 답이 있어야 할 것이며, 턱 턱 답해야지.
그 뭐 답이 어디가, 거가 거가는 뭐 그거 생각할 것도 없어. 생각을 해 가지고 그놈 되는가? 그까짓 무슨 놈의 경계, 뭐 고요한 경계, 무슨 뭐 빛깔 나타난 경계, 뭔 허공 경계, 무슨 이상한 광명 경계, 무슨 투탈의 경계, 고까짓 놈의 걸 가지고 견성했다고 그려? 그게 그거 견성이여?
별(別) 나는 나비 같은 것도 별짓 다 하고 돌아댕김서 별 신통 다 부린 그까짓 것이, 모도 뭘 안다는 것이 그것이 무슨 도여, 법이여?

내가 그래 물었어. "월(月)도 할(喝)이요, 조(照)도 할(喝)이요, 비월비조(非月非照)도 할(喝)이라고 했으니, 그러면 그 할(喝)은 어따가 하는 것입니까? 할은 어따 하는 것입니까? 일체 부처[佛]고 조(祖)고, 마음이고 성품이고 일체 이치고 뭐 다 거기는 할(喝)을 허려니와 할은 어따가 하는 것입니까?" 내가 물었다 그 말이여.
거기서 답이 없었어. '양구(良久)' 답을 헌가는 몰라도, 양구가 최초 일구라고 했으니까, 제일구(第一句)라고 했으니까 양구가 더 깊은 도리인가는 모르지마는, 양구를 헌 가는 모르지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 말 없을 곳이 아니여.
거기서 말이 없다면은 기껏 앞에 해 나오다가 거기서 말이 없으면은 그 용미사두(龍尾蛇頭)라. 용 꼬리에 배암 대갈빡이여. 안 되는 법이여. 반다시 거기서는 답이 있어야 할 것이어늘 답이 없어. 그래 그 살림살이가 거기서 그만 나뒤집어지는 것이다 그 말이여. 할 수 없어. 안 나올 수 없어.

그래 내가 또 묻기를, "고봉 선사(高峰禪師)의 사구(四句)에, 고봉 스님 옛날 고봉 스님의 네 글귀 가운데, 해저이우(海底泥牛)는 함월주(啣月走)요, 바다밑에 진흙소는 달을 물고 달아나는데, 암전석호포아면(巖前石虎抱兒眠)이다. 바위 앞에 돌호랭이는 아이를 아듬고 존다. 철사찬입금강안(鐵蛇鑽入金剛眼)이요. 쇠뱀이는 금강 눈을 뚫고 들어가는데, 무슨 노사견?.. 허 그것.. 무슨.. 철사찬입금강안이요 응, 곤륜기상노사견(崑崙騎象鷺鷥牽)이라. 곤륜산이 쾨코리(코끼리)를 타니 해오라비란 놈이 이끈다.
그 사구(四句) 내에, 네 글귀 가운데에 유일구(有一句)허니 한 구(句)가 있는데, 능살(能殺) 능활(能活) 능종(能縱) 능탈(能奪)이라고 했으니, 능히 살리고 능히 죽이고 능히 뺏고 준다고 했으니, 그 글귀는 어떤 글귀를 말한 것입니까?" 물으니까, "그건 혜월 스님께서는 해저이우함월주(海底泥牛啣月走)라고 허드라"고 그러거든.
"아! 혜월 스님은 해저이우함월주라고 했거니와 화상(和尙)은 어떤 글귀입니까? 화상은 하나, 큰스님이 하나 일러주십시오. 어떤 글귀입니까?" 또 말이 없거든. 그 말 없어.

그러니 운송 스님이 그때 당시에 천하에 유명한 도인이라고 말은 나서—솔잎이나 먹고, 떨어진 옷이나 집어 입고, 시은(施恩) 안 짓고, 마른 냉기 꺾어서 갖다 줏어 때고 있으니까, 천하 도인이란 소문이 났다. 그거 가지고는 안 된다 그 말이여. 그보담 더헌 짓을 헌들 그런 것 가지고는 안 되아. 그렇게 도를 찾고 그렇게 도인을 믿으면은 그것을 상견외도(相見外道)라 그래. 여러 말 할 것 없어.

그러더니 그 운송 스님이 대구(大邱) 나와서, 아주 그만 도인은 제일이라고 나와 가지고는 대구서 선방(禪房)을 했거든. 헌디 불과 몇 철, 한 철인가 두 철인가 허다가 바탕이 뒤집어지면서 그만 못허고 말어 버렸어. 그러다가 죽을 때에는 그만 어디 무슨 그림자도 없이 어디 소식도 없이 죽어 버리고 말았어. 허운송 스님, 허태오 스님 다 시방도 들으면 물으면 다 알지. 대구 나가서 그렇게 죽고 말았어. 내가 그 고인을 그이를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에 내가 했다는 사실을 이 자리에서 말한 것이다 그 말이여.
그러면 내가 그이를 비방해서 뭣 혀? 그이를 장하다고 해 놓면 그거 될 것인가? 학자들이 그러면 그이가 장하다 하면은 학자들이 그런 모양다리나 믿고 그런 짓이나 해 가지고 모도 도인 노릇허게? 그거 못쓰거든. 허니까 그것은 척사현정(斥邪顯正)을 해서 사(邪)를 배척허고 정(正)을 나투아서 '아닌 건 아니다' 그래 가지고 조불양화(助佛揚化)를, 양화(揚化)를 어질게 교화를 해 나가는 거 아닌가? 그러니께 그러헌 짓이라는 것은 안 된다! 이게지.

그래 바로 믿고 바로 탁! 정법(正法)을 믿는 참 바른 도리, 정법 도리 그 도리를 바로 믿어 나가야 한다.
사견 상견밖에 바른 정법이 뭣이냐? 바로 닦아 나가는 법이 아무것도 없어, 모르는 법 뿐이여. 알 수 없는 법 뿐이여!

'이뭣고?' 세상에 이뭣고를 해 봐. 응 이- 뭐냔 말이여? 이 끌고 댕기는 이 송장 몸뚱이, 이 숭악헌 오온(五蘊) 몸뚱이, 오온이 쌓여 있는 몸뚱이, 오온은 망상 덤벵이를 오온이라 햐. 아까 내가 말한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오온 오온이 속에 가뜩차.
오온이라는 건 모도 도둑질허고 거짓말허고 사견 협잡질허고, 맨 도둑 그런 못된 생각만 꽉 집어 찼는데, 그 오온 몸뚱이가 찼지마는 오온 주인공(主人公)이 오온 주인공이 참된 '내'가 있어. 그 참된 '내'라는 것은 조금도 남의 걸 욕심 내지 않고, 부귀공명을 그걸 넘의 것을 내가 조금도 허욕(虛慾) 없어!

그 나를 내가 찾는 그 주인공, 깨끗한 주인공, 저절로 그 주인공만 찾으면은 깨끗해져서 남의 것 어디 마음이나 내아? 뭘 내가 마음 내? 넘의 것을 마음 낼 것이 뭣이 있어? 천하에 도무지 그게 제일 부귀(富貴)인디. 내가 나 찾는 부귀요, 내가 나 찾는 법은 실패도 없고, 꼭 그 자리를 파면 금 묻은 그 자리니 그 자리를 파면 금이 푹 나오는 것이여. '이뭣고?'를 '이뭣고?'만 해 들어갈 것 같으면 푹 나오는 법이여.
금줄(금맥)을 알도 못하고, 금 묻힌 곳을 알도 못하고 여기저기 집어 팠자 되나? '이뭣고?'는 거기 꼭 들어 있으니까. 알 수 없는 '이뭣고?'만 한번 찾아보지? '이뭣고?' 찾는 곳이 꽉 맥혀 모르는 것이여. 은산철벽(銀山鐵壁)에 진즉무문(進則無門)이여. 은산철벽이 나아가도 문이 없어. 어디 문이 있나? 은산이요 철벽인디? 그러헌 곳으로 나가는 것인디, 말할 것이 있어? 그러지마는 그것보담 더 좋은 문(門)은 없어, 철벽문.(처음~36분4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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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희(妙喜)가 이렇게 일렀어. 유(有)도 무(無)도 아니요, 진무지무(眞無之無)도 아니다. 이 묘희가 이렇게 헌 걸 아느냐? 약불구안(若不具眼)이면, 만약 눈을 갖추지 못했을진대는 동으로 가서 점(占)허고 서쪽에 가 세알라도, 별짓을 다해도 전첨의식(轉添意識)허리라. 점점 네 망상 번뇌만 더 허리라. 꿈에도 조사관은 못 본다. 절기절기(切忌切忌)다. 간절히 꺼리고 간절히 꺼린다' 내가 여까장 했단 말이여.
'영리한(靈利漢)은 차도(且道)하라. 영리한 놈은 다시 한번 일러 봐라. 조주무자의지(趙州無字意旨)가, 무(無)! 헌 그 조주의(趙州意)가 자마생(作麽生)이냐? 그 무슨 뜻이냐?' 말이여, 자마생(作麽生)은? 뭔 뜻이냐 그 말이여. 별짓 다해 봐라.

다시 끌고 나와. 근래(近來) 다도(多道)허되—새로 나온 놈이여. '근래다도(近來多道)허되, 요 근자에 많이 모도 또 무자의지(無字意旨)를 말헌다'
꺼떡허면 '견성(見性)했다'고. 견성, 기가 맥힐 도리지. 내가 언제 꿈에나 말했간디. 나한테 '탁마(琢磨)허러 온다' 그러고, 내가 '인가했다' 그러고, 아! 그러고 돌아댕기면서 학자를 몇 데리고 밤낮 그런디야. 아! 그놈의 소리를 들으니 '방부 안 받는다'고 내보내 버리고.
또 여그서 나가 가지고 또 '견성했다, 뭐 인가했다'고 그런다고, '네 그런 말 내가 두서너 번을 들었으니까 나가거라. 내가 너를 이 거짓 견성 모도 견성 시켰다고 모도 내보내니 될 수가 없다. 나는 참으로 진실헌 학자 아니면 그런 것들은 방부 안 받는다. 나가거라' 내가 바로 그래 버렸어.

나는 중 되아 가지고 천하없는 놈의 좋은 절도 나는 바래지도 않고 욕심도 내지도 않고, 그저 어떻게 했으면은 말세에 이 참다운 학자 하나라도 만들까, 만약 이 때에 진실헌 참다운 학자가 안 나온다면 큰일나 버렸거든, 이 말세에. 큰 일나 버렸어.
그래도 우리 부처님의 정법이 지금 돌아가셨는디 삼천년까장 이렇게 전통(傳統)해 오는디 삼천년까장 전통해서 온 가운데, 한동안 역사 가운데 선(禪)이 끊어져 버렸단 말이여. 똑 선맥(禪脈)뿐인디. 참선뿐인디 참선맥이 뚝 끊어져 버렸네. 도인이 안 나니까.

서산(西山) 도사 우리 한국에 나와서, 서산 도사 밑에서 환성지안(喚醒志安) 도인, 저 도사 나와 가지고—월봉이 나와서 그만 한번 냅대 뒤집어 친 바람에, 월봉이 그만 야단친 바람에 월봉 정화(淨化)는 환성지안 도사가 해 놓고.
그럼 환성지안 도사가 어째서 월봉이 그렇게 불법(佛法)이 장해서 임금까장 들입대 믿고, 왼 천하가 들입대 믿는 그런 불교를 왜 쳐 버려?
그 외도(外道)를 안 치면 어떻게 헐 것이냐 그 말이여. 외도 불법을 갖다 안 치면 어떻게 혀? 헐 수 없으니 정화를 해서 그 환성지안 도사 일할(一喝)에, 한번 할을 허는디 그만 법상에서 뚝 떨어져 죽지 안 했냐 그말이여. 월봉이 죽지 안 했냐 그 말이여.

월봉 죽어버린 뒤에 환성지안 도사까장은 정법이 내려와 가지고는 아! 이 환성지안 도사가 그 대(代)를 잇지 못해 가지고 야단을 쳤다 그 말이여. 그 뒤에 그만 정법은 없어져 가지고 야단났거든.
그런디 마침 그 속인(俗人) 가닥이—중이 거그서 이어 나오들 못하고는 속인이, 아! 이 처사(李處士)라는 분이 그 도인이 한 분이 나와 가지고는 이 처사 그 도인 밑에 경허(鏡虛) 스님이 나오셨다 그 말이여. 아! 그래 가지고 다행히 정법이 이어졌어. 이어졌는데, '뭐 경허 스님은 인가가 있나? 경허 스님은 뭐 뭐...' 이런다니, 그런 스님네가 또 있다 해야? 그런 법이 있나?

경허 스님은 최초불로 믿드래도 믿어야지. 중흥조(中興祖)로 믿어야지. 그 밑에 다 나오는 선객(禪客)이 되어 가지고는 경허 스님을 목을 탁 쳐 버리면 되아? 그거 그럴 수가 없다 그 말이여.
그 경허 스님 법문을 보지. 천하에 경허 스님 법문 덮을 법문 있는가? 아! 그러고 또 이 과거 위음왕불(威音王佛)처럼 경허 스님은 오히려 중흥조를 우리가 삼아서 모시고 도를 닦아 나가야지, 도학자들이.

바로 또 이 처사(李處士)한테 바로 듣고 이 처사한테 인가 받고 다 그랬는데. 어디 모냥이 중 · 속인이 있지, 어디 그 자리에 중 · 속인이 있나? 과거에 모도 그 유마힐(維摩詰) 같은 처사는 어쨌냐 말이여. 문수보살이 다 가서 그 밑에 가서 꼼짝달싹을 못했는데. 모도 부설 거사(浮雪居士) 같은 아 그런...
아! 그 유명헌 무용 스님 같은 이도 아주 그 당시에 제일이라고 했는디, 아! 무용 스님 같은 이도 그 추사 대감한테 방맹이 맞고—무용 스님이 그 누더기만 입고 이러고 댕기다가서, 그 허수아비가 논 가운데에 옷을 입고 있으니까 허수아비를 벳겼다 그 말이여. 그 허수아비 소용없으니까. 그 옷 베 쪼가리 베 쪼가리 그놈 떼어 오고 그 실로 모도 얽어 논 놈 떼다가서 옷 집어 입을라고 떼니까, 아! 추사 대감이 지내가다가 보고서는 "허수아비는 그 허수아비는 무엇을 입으라고 옷을 벳기느냐?" 물었다 그 말이여. 그 추사 대감은 과거에 그 해봉 스님으로서 도를 닦아 가지고서는 후신(後身)이 해봉 스님 후신이 조정(朝廷) 대신(大臣)이 되어 가지고는 벌써 그 법을 알든가, 법을 물었다 그 말이여. 그걸 보고서는.

내나야 모도 조정 대신들이 큰 복(福) 진 분들이 수도해 가지고 복 지어 가지고 세상에 가 태어나면은 그 영웅호걸들이 되는 것이지, 딴사람이 되는 건가? 소동파(蘇東坡 : 蘇軾) · 이부마(李駙馬 : 李遵勗) · 백낙천(白樂天 : 白居易) · 한문공(韓文公 : 韓愈) 같은 그러헌 영웅 영걸들도 그 다 절에서 과거에 도승들로 도를 닦다가 그렇게 세상에 태어나서 영웅호걸이 되었지. 그래 다시 또 부처님 정법을 듣고 믿어 가지고는, 도를 닦아서 항상 그 수도를 해 가지고서는 도문에 모도 함제조등(咸載祖燈) 조등(祖燈)에 올랐지? 조사등(祖師燈)에 모도 올랐다 그 말이여.

아! 그래 추사 대감이 그 스님이 허수아비 옷 벳기는 것을 보고서는 "그 허수아비는 무엇을 입으라고 옷을 벳기느냐?" 그 답을 못했다 그 말이여. 그 답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아 그런 큰스님 도인이라도 그 대답에 그만 속인한테 처사한테, 그 처사지 뭐 별거 있는가? 추사 대감이. 과거에는 해봉 승(僧)이지마는. 금생에는 몸뚱이 바꿔 가지고 처사로서 물으니 답 못했지. 그 답 못했어. 아! 고 답 고걸 못해 가지고, 허어! 그거. 허지마는 못허지. 허수아비라고 해 놓고도 답 못혀. 뭐라고 허다가 여까장 나갔는고 모르겠다. 그만두고.


'영리한 놈은, 영리한(靈利漢)은 차도(且道)하라. 한번 일러 봐라. 조주의(趙州意)는 자마생(作麽生)이냐?' 아까 여까장 하다가 거까장 나갔는데. 조주 뜻은 어떠헌 것이냐? 이 무슨 뜻고? 자마생(作麽生)이라는 것이.

함부로 입을 열어, 생사 없는 해탈대도를 함부로 그렇게 입을 열어서 견성했느니, 뭣했느니, 고런 자구(自口)를 벌려? 그런 죄는 없어, 만고(萬古)에. 바로 보면은 다시 무슨 뭐 물을 것도 없어.
아! 그런 도행(道行)을 허다가 '할(喝)은 어따가 하는 것이냐?' 헌디 답 못허고, '사구(四句)에 어떤 것이 능살능활구(能殺能活句)냐?' 헌디 답 못하고, 그래 가지고 안 되거든.

아! 옷 한 벌을 해 주면서 "이 옷 입으십시오" 하도 누더기를 입으니까 어느 시주(施主)가 해 준께, "나는 부모가 해 준 옷만으로도 평생 입고 남겠다"
그래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에는 무슨 옷을 입었소?" 물으니 꽉 맥혀 버렸네. 하! 이런 놈의 꼴이 있나? 그 부모미생전에는 뭔 옷을 입었냐 말이야, 대체. 부모가 해 준 옷은 이 몸뚱이, 이 몸뚱이는 평생 가지고 살고 남지마는 '이 몸뚱이 죽어 버리고 없으면 뭔 옷 입었냐?' 하는디 꽉 맥혀 버렸네.

그 이즉돈오(理卽頓悟)여. 이치(理致)를 몰록 깨야사 생사 없는 그 의지(意旨)를, 생사 없는 도리(道理)를 증득(證得)허는 것이여. 깨닫지 못하면 어떻게 증(證)혀? 증을 어떻게 혀? 내 논이, 논 몇 마지기 몇 두락을 사야 내 논이라고 증명을 내지, 막연허게 어떻게 증명을 낼 수 있나? 이치를 봐사 증(證)하지.
'탁! 깨달으면 구경각(究竟覺)이라'고, '그거 구경각이니 오후수(悟後修)가 없다'고, '닦을 것도 없다'고. 그따구 놈의 그 그렇게 해서는 안 되야.

도인(道人) 도인이 처음부텀 차츰차츰 선후(先後)를 알아서 이즉(理卽), 이치는 깨달라 가지고 인자 또 점수(漸修)해서 돈오돈수(頓悟頓修)가 있고, 또 막 깨달을 때 전생부텀 막 깨달아 나오다가 그 돈오돈수(頓悟頓修)도 헌 이도 있고, 처음에 들어와서 이치는 깨달랐지마는 사상사(事象事)는 못... 사무애(事無碍)는 못 되었다 그 말이여.
아! 그런..(녹음 끊김) 구경각이라는 건 그거 아니여. 아! 그러면.. 그렇게 막 해 번지고는 다 뭣 '도인이 아니다'고 막 그래 버리고. 그러면 나 하나만 진도(眞道)라 하고 타도(他道)는 모도 비방 반대해 버리고, 그렇게 가르켜서는 안 되거든. 그런 법이 없거든.

처음 처음 배워 나가는 학자를 위해서 아! 그래 인자 점수(漸修), 점점 '네가 그렇게 깨닫기는 깨달랐다마는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아? 닦아 증(證)하겠냐?' 아! 이렇게 물어야지, '오냐, 네 바로 깨달랐은께 다 되었다'고 허면, 그만 그 거기서 그만 '인자는 나는 다 되었다' 해 번지고는 후수(後修)가 없으면은 뒷 보림(保任) 후수가 없으면은 그 뭣 되아? 그놈 미친놈 되아 버리고 말지. 제호상미(醍醐上味)가 번성독약(翻成毒藥)이다. 제호(醍醐)와 같은 상미(上味), 그 좋은 약이 독약이 되아 버려. 먹고 죽어 버려.
견성해 가지고는 인자 이만 했으면 나는 견성했으니까, 무방반야(無防般若)요 반야 아님이 없고, 뭐 뭐 막행막식 막 그만 사람 돈 많은 놈 잡아 죽여서, 그 돈 뺏아다가서 막 먹고 살고 그만 이따구 짓이나, 발무인과(撥無因果)해 가지고 지내보지. 견성을 했다 하지마는 그거 소용이 있는가? 뭣 되는가?

오후재미(悟後再迷)라! 오후(悟後)에 다시 미(迷)해 버린다. 아! 그랬으니 아 그런 후수(後修)를 위해서 그렇게 분명허게 다 해 주어야 하는 것이지, 무턱 대놓고는—그 확철대오 해 가지고도 후인(後人)을 교화하기 위해서 그렇게 분명히 분명히 모두 해 주는 것을 그걸 비방 반대해 버리고, '그거 견성 못했다' 이래 버리고 아! 그래서야 될 것이냐 그 말이여.

또 인가(印可) 가닥이, 그러면 인가가 있다 하면은 '어디서 어느 스님한테 인가 받았소?'
'내가 어떤 스님한테 인가를 받았다'

'그럼 무슨 문답에 인가를 받았소? 무슨 공안에 인가를 받았소?'
'응, 내가 아무 공안에 이렇게 대답하고 인가를 받았다' 그놈이 나와야지.

'가섭이 인가 받았다'
'가섭이 어디서 인가 받았나?'
부처님이 거렴화(擧拈花)를 염화시중(拈花示衆)을 허니까 가섭(迦葉)이 미소(微笑)했으니, 염화시중 허는데 가섭 미소 답이 나왔으니, 거기에서 인가 받은 것 아니냐 그 말이여. 딱딱 있거든.

하! 이거, 이런 법도 없이 무조건 그만 자기는 그만, 도인(道人)의 그만 서적이나 봐 가지고는 그만, 그놈 가지고는 '내가 제일이다' 허고 나와서는 고인(古人)을 탕탕 반대 비방 '아니다' 해 버리고 그래서야 되는가? 나 그걸 말하는 것이지, 누가 그랬다 어쨌다 그런 말을 할 필요도 없고, 법 바탕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그 말이여.

반다시 지금부텀 화두(話頭)를 우리가 해 나갈 것 같으면은 그저 또 들고 또 들고, 또 추켜들고 또 들고 해서 옳은 스승한테 화두해 나가는 법을 잘 배워 가지고 잘 얻어 가지고는 그 해 나가다가 지견(知見)이 날 것 같으면 또 그놈, 거 방맹이 맞고 또 다시 해 가지고는 대혜(大慧) 스님처럼 원오극근(圜悟克勤) 선사 만나서 나중에 필경에 대오를 해 가지고는 인가 받듯기, 그래 다 인가가 분명히 분명히 있어야 하고. 이치 깨달라 가지고 또 후수(後修)가 있어야 하고. 아! 그런 법이지.

내가 그런 말이여. 행여라도 우리 도학자(道學者)들이 잘못 거꾸러져서 외도(外道)를 만나 가지고 외도가 되어 번지면은 천하에 그것 안 된 것만 못하지. 그래서 내가 여까장 말을 허는 것이여.
뭣 헐라고 내가 넘 비방 반대를 허는 건가? 나는 비방 반대 '누가 어떻다' 소리 여태까장 내가 법상에서 헌 법 없어. 법 바탕만 내가 얘기했지. 그런 건 아니다 그 말이여. 부처님도 운문방(雲門棒)을 맞으시지 않았어? 그것을 제일 친다 그 말이여, 척사현정법(斥邪顯正法)으로. 그 어디 그거 참 법왕 부처님을 어디 비방한 것인가? 바로 이른 말이지.


조주의(趙州意)는 이거 어떠헌 뜻이냐? 요새 근래(近來)에 다도(多道)허되, 모두 이르되 무자(無字)는—또 하나 나와. 무자(無字)는 시철소추(是鐵掃箒)라 하며, 이 '무자(無字)는 쇠 빗자락이라고 한다' 말이여, 쇠빗자락. 빗자락도 보통 빗자락 아니다. 쇠빗자락 쏵 쏵 쓸어 버리면 땅까장 패인 빗자락이란 말이여. 여지없이 그만 망상 근본망상까장 때려 부수어 버리는 쇠빗자락이라고 하며.
과여시부(果如是不)아? 조주 뜻이 과연 이러헌 것이냐? 쇠빗자락, 쇠빗자락으로 쏵 쓸어 버리는—일체 망상 번뇌까장, 망상 번뇌 없는 곳까장, 일체 이치까장 쏵 쓸어 버리는 거라고, 조주 뜻이 이런 거냐?

유인타후어(有引他後語)하야, 저 후어(後語)를 인타(引他)해다가, 뒷말을 끄집어다가 위증자(爲證者)가, 증명허는 자가 착요(錯了)다. 그르친 놈들이다.
후어(後語)라는 것을 그 모른다는 것이여. 후어(後語)가 무엇이냐 이거여? 후어(後語)라는 것은 무엇을 후어라 하느냐? 후어를 끄집어다가 인증을 삼는 자는 그르쳤다.
이 달마 스님 후어, 조주 후어, 뒷말, 뒷말이 뭣이냐 이게여? 지금. 이것 아주 이거 문단 논리가 많은 것이여. 옛날 선지식 스님네 계실 때 다, 기가 맥힌 뭐... 이거 탁마(琢磨)해 나오는 것인데, 끝 안 났어. 이것 없어. 후어(後語)를 뭣이라곤 없다 그 말이여.

별말을 다 집어 대서 증명했자 안 된다 그 말이여. 후어(後語)란 건 다른 건 아니여. 후어를 달리 알면, 뭐 뒷말이단께 이상스럽게 후어가 무엇인 줄 알어? 뒷말 끄집어다가 헌 것은 '별 이치를 다 때려 붙여 봐라' 그 말이여. 이거 알기 어려운 것이여.
후어(後語)를 끄집어다가 인증(引證)을 삼지 말어라. '무(無)!' 거기다가 별 이치를 다 붙여 봐라, 느그. 그래 '옳다! 증(證)이다' 해 봐라, 안 된다 그거여. 알아듣겄어?
항상 거다가서 뜻이라고, 뜻이 이상스런 진리 이치가 좋으니까 이치를 때려 붙이면 저 죽는 거야. 참선법이 그려.

다맛 알 수 없는 '조주는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요놈 하나 뿐이다. 도 닦는 법이 그려. 고놈 내세운 것이여.

후어를 갖다가 인증허지 말아라. 그르친 놈들이다. 안 된다. 할한(瞎漢)이다. 눈깔 먼 놈들이다. 거기서는 눈깔 멀어 다 그 봉사 되고 다 죽는다 그 말이여.
막장한학해(莫將閒學解)하야, 한가로운 학해(學解)를 가져다가, 공연히 씨잘데없는 학해(學解)를, 학(學)의 알음알이를 가져다가 매몰조사심(埋沒祖師心)이다. 조사의 마음을 매몰치 말아라. 조사가 생사 없는 도리 바로 일러 논 공안을 매장하지 말아라!

어렵게 생각하지를 말어. 천하에 쉬운 것이 참선법이고,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는 게 참선법이여.
안 허고 참선 않고 뭣 헐 거냐 그 말이여. 무슨 짓을 해야사 옳겠나 말이여.

단단히 내 주인공으로 더불어서 아주 결택(決擇)을 혀. 잘 결택을 혀.
선(禪) 법문을 잘 들어보면은 참 그 이상 어디가 있는가? 다행하고 만행하다.(36분49초~58분) (끝)

Posted by 닥공닥정

•§•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 (3/9) 몽산화상의 무자십절목.

**전강선사(No.500)—무자십절목(3) (절기절기까지) (갑인74.05.22.새벽) (전500)

 

약 35분.


납자평생사(衲子平生事)야  팽다헌조주(烹茶獻趙州)니라
나무~아미타불~
심회발백설(心灰髮白雪)이요  야문강상적(夜聞江上笛)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납자(衲子)의 평생사(平生事)야, 우리 발심 학자(發心學者)에 평생 일이여.
팽다조주헌(烹茶趙州獻)이여. 차 한 잔 달여서 조주 스님께 바치는 도리여. 차 달여 조주 스님께 올리는 도리여. 그 무슨 도리냐 그 말이여?

무엇을 알고, 무엇을 보고, 무얼 깨닫고, 뭐 뭐 무엇이 있어? 무슨 이치가 있고, 무슨 생사해탈법이 있고 뭐, 그것 다 누설(漏說)이여. 방맹이 감, 방맹이꺼리여. 방맹이 모도 짊어진 도리여. 제 방맹이 주체 못헌 놈의 도리다 그 말이여. 무슨 이치니, 무슨 법이니, 뭐 뭣이 거기 붙어 있어?
아! 그러니 그... 그 뭐고? 허어! 그것, 뭣 끄집어다가 인증 하나 할라 하면은 그 뭐 생각이 났다가도 그만 없어져 어디로 가 버려. 아! 이거 참, 뭔 말을 헐 수가 있나?

노로(老盧)가 조계전제수(曹溪傳諸受), 늙은 노행자가 조계(曹溪)에서 전제수(傳諸受)를 했는데,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육조(六祖) 스님이 노행자(盧行者) 아닌가. 육조 스님이, 노행자가 조계에서 전제수를 했어, 전허고 받았어. 받은 일이 있어. 오조(五祖) 스님한테 육조 스님이 의발(衣鉢)을 마지막 받아 가지고 멀리 도망쳐 가지 안 했는가? 그걸 말헌 거여. 의발(衣鉢)을 전했으니.
육조 스님한테까장 밖에는 전헌 법이 없었거든, 의발(衣鉢)은. 그러니 그것을 말헌 거여. 육조 스님이 전수(傳受)를, 주고받고 모도 헌 그런 일이 있었다.

우도본래무일물(又道本來無一物)이라. 또 오도송(悟道頌)에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고 헌 것이 있다. 있잖어? 신수 대사가—(오조 스님이) '느그 오도송(悟道頌)을 지어라' 오도송을 모도 짓는디—오도송 지어 논 놈을 듣고는 방애를 찧다가, 육조 스님이 송(頌)을 짓지 않았냐 그 말이여.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고 지은 송이 있잖어? 우도본래무일물(又道本來無一物)이라.
또 '받았다'고도 했지마는, '의발을 받았다'고도 했지만, '전수했다'고도 했지마는, (육조 스님이) 방아 찧는데 몰리 오조 스님이 방앗간에 나가서 불러다가서 조실 방에서 자성계를 모도 일러주고. 심지무비자성계(心地無非自性戒)요, 심지무란자성정(心地無亂自性定)이요, 심지무치자성혜(心地無痴自性慧)니라. 이렇게 전해 주지 않았어? 모도 그렇게 해 주었지마는. 또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고도 이렇게 일러서 그렇게 해 주었지마는.

고금다소천하인(古今多少天下人)을, 고금 다소 천하 사람을 불석미모행방할(不惜眉毛行棒喝)이라. 눈썹 터럭을 애끼지 않고 방할(棒喝)을 행했다 하는 금강경 송이 있다 그 말이여. 다소천하인(多少天下人)을, 인자 육조 스님과 다소천하인이니깐, 부처님으로부터서 삼세제불로부터서 역대조사로 막 그저 막 방(棒)이여. 그 방은 면치 못한 방(棒)이 있어.
미모(眉毛)를 애끼지 않고 방할(棒喝)을 행했다. 눈썹을 애끼지 않고 방할을 행했느니라. 그 방할(棒喝)이 눈썹 애끼지 않고 방할을 행했다는 도리가 그 무슨 도리(道理)냐 그 말이여?
그게 참 다, 그거 참 초월 생사 도리라고 붙이기는 붙이지마는, 거 입을 열어서 붙이면 누(漏)라고 볼 수 있지. 누(漏)라고 볼 수 있으나 그럼 입도 못 열게? 또 일체 누(漏)는 그놈이 다 조사관(祖師關)인디, 또 그 무슨 조사관을 떼고 여의고, 무슨 누를 떼고 여의고, 뭐 또 할 게 또 뭐 있나?

조주(趙州)한테 평생 다(茶) 한 잔 올린 도리다. 심회발백설(心灰髮白雪)이다. 마음은 재가 되아 번지고, 머리는 백설이 되아 버렸다.
우리 학자 일생사가 그려. 항상 그 이렇게 활구학자(活句學者)가 평생 헌 일이 이뿐이다. 조주 다(茶) 한 잔 올린 밖에 무슨 도리가 있겠나?
마음은 재가 되아 버렸다. 아! 그놈 모도 그 일어나는 마음 번뇌 망상 그놈, 불이 태워 버리듯기 다 태워 버렸으니 일체 망념을 태워 버렸으니 연소화멸(煙消火滅)이다. 연(煙)도, 연기도 없어지고 불도 멸했으니 그놈의 재까장, 재 그녀러 것 뭐 '재가 이 하나 남았구나' 그럴 겐가? 재, 그것 뭐 재 그것이 불로 다, 가스로 다 가 버렸다 그 말이여. 몸뚱아리 이것은 흰 백발 하나 남겨 버렸다 그 말이여. 백발 하나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 말이여.

그 뭐 원 '일물도 얻지 못한다' 무슨 일물(一物)을 얻지 못했는고? 거 그 일물도 방(棒)을 맞었다 그 말이여. 고금다소천하인(古今多少天下人)을 불석미모행방할(不惜眉毛行棒喝)이다. 그 미모(眉毛) 애끼지 않고 방할(棒喝)을 행했다 하는 도리여.
거기서 마음은 재가 되어 번지고 연소화멸(煙消火滅)이니까 불, 나무 태와 번지면, 나무 다 타 번지고 불도 없어져 버렸으니 재가 있다 헌 그 말인가? 재도 그까짓녀러, 재가 어디 있나? 그녀러 것.
흰 백발에, 몸뚱이는 백발이 되어 번졌다. 아무것도 없다. 뭐 없다는 놈까장 붙일 것이 뭐가 있노? 거다 무엇을 '없다 있다' 붙일 게 있어? 고금다소천하인(古今多少天下人)은 불석미모행방할(不惜眉毛行棒喝) 도리여.

헌디 거기서 야문강상적(夜聞江上笛)이로구나. 밤에 강상(江上) 젓대소리를 듣는다. 그 강상 젓대소리를 어떻게 옳게 들었거들랑 한번 일러 봐. 거 눈썹 털을 애끼지 않고 방할(棒喝) 행하는 도리여. 뭐 바로 의심이 하나 없이 바로 봤거들랑 왜 못 일러?
거기에 뭐 알았다, 뭐 환하다, 무슨 뭐 천지가 일월(日月)같이 빛깔이다, 뭐 그런 놈의 소리 가지고는 소용없어. 하늘로 올라가고, 땅속으로 기어 들어가고, 천만 부처님의 이상 가는 무슨 설법을 드리 허고, 공중에서 잠을 자고, 일월을 눈깔에다 붙여 가지고 제 눈깔 광명을 맨들고, 광명 속에 들어앉어... 그거 소용없는 거여. 그건 외도법이여.
'알면 외도고, 모르는 놈은 죽은 놈이니라' 지자(知者)는, 아는 자는 외도요, 모르는 자는 송장이다 그 말이여. 그러니 그런 등등을 그것을 묻는 거 아니여.

야문강상적(夜聞江上笛)이다. 밤에 강상(江上) 소리를 듣는구나. 강상에 젓대소리를 듣는 그놈을, 용은 용 대가리가 필요허고, 용 몸뚱이가 필요허고, 용 꽁댕이가 알맞지 들어맞지. 용 대갈빡에 뭔 도마뱀 몸뚱이를 붙이고, 도마뱀 밑구녁에는 올챙이 똥꼬리를 붙이고, 그것 다 안 되아.
목마(木馬)가 각유사사족(脚有四蛇足)이지. 나무 말이 각각 네 배암 다리가 달려 있다고 할 수가 있지, 그 뭐여? 그 이 살림살이가 있거든 한번 일러 보라 그 말이여.
무엇을 허는가, 도학자가? 두고 애낄 것이 뭣이 있나? 조불양화(助佛揚化)를 해서, 얼른 머냐 깨달았거들란 조불(助佛), 부처님을 도와서 항상 부처님 법을 봉행해서, 부처님 법은 무엇인가? 생사 없는 해탈법(解脫法)을 봉행(奉行)해서 양화(揚化)다. 어질게 교화를 모도 교화시키는 것이니, 그 머냐 깨달은 바가 있거든 한번 잘 일러서 모도 양화를 혀.
모도 여러분들이 그 모도 깨달은... 아, 그 모도 선각(先覺)을 보고 후인(後人)이 모도 깨닫게 한번 해 보라 그 말이여.

살림살이 있거든 내놔 봐. 안 맞으면 내가 또 하나 이를 것인께. 내 이른 말도 한번 듣기 위해서도 일러 봐. 나 그러고 이번에 못 이를 것 같으면은 내가 가만 두었다가 내일모레 관음재일날 신도가 몇백 명 모도 모이니 그때 내가 이를 테여. 뭐 뭐 조그만헌 대중에 내 이를 것 아니여. 그날 법문에 두었다가 이 법문을, 이 게송을 다시 해 가지고 이를 것이다 그 말이여.


어제 아침 법문 또 좀 거기 조금 또 헌 놈, 또 들어서 헌 것이여.
이 무자(無字) 화두라는 것은 일체 모도 명(命)을 끊는 칼이다. 명(命)이라는 것은 일체 번뇌 망상심, 일어나는 망상심, 중생심 그저 무슨... 내지 법불견은 망상 아닌가? 법견이니, 불견이니, 무슨 비법, 비불견이니, 비법견이니, 별 이치를 다 말해 봤던들, 그거 중생 망념이여. 중생은 망념(妄念)으로 쓰는 것이고, 확철대오헌 부처님 경계에 있어서는 모두 해탈 묘경(妙境)이고, 그렇지! 뭐 망(妄)이 따로 저 어디 있고, 법이 따로 어디 있나?

일체 번뇌 망상을 끊는 칼이며, 조주 무자(無字)라는 것은. 일체 지혜를 여는, 생사 없는 해탈 지혜광을 여는 열대, 자물쇠통 여는 열대니라. 이렇게 헌 자가 있으니 호여삼십방(好與三十棒)이다. 이놈 삼십방을 놓을 것이다.
방맹이를 놓아 놓고는 시상야벌야(是賞耶罰耶)? 이게 상방(賞棒)이냐, 벌방(罰棒)이냐? 이렇게 묻네. 거기도 또 모도 문답이 있어, 모도!
법에 가서, 활구참선법에는 문답이 있어. 턱! 또 좀 물으면 턱! 답하는 게 언하대오(言下大悟)여. 언하대오를 해사 답하는 것이지, 글안으면 사량(思量) '아! 그런 건가?' 틀렸어. '이' 허면 틀려 버려. 조금만 생각하면 틀리고, 무슨 이치를 장만해 답하면 저 죽어. 벌써 죽은 놈이 그 뭐를, 죽은 놈이 목숨 끊어진 소리헌다고 헐까? '딸그닥' 소리 헌 건가? 저 죽어.
이놈을 바로 넉넉히 네가 상방(賞棒)인지, 벌방(罰棒)인지를 가려내드래도 네가 어느 곳에 있어서 조주를 봤느냐? 무(無)가 조주의 뜻을... 조주의 뜻이 본분납승(本分衲僧)이여. 내 여까장 일러주어.

조주가 ‘무(無)’ 헌 알 수 없는 조주 뜻이 본분납승이다 그 말이여. 본분납승(本分衲僧)의 방(棒)이다 그 말이여.
‘무(無), 어째서 무라고 했나?’ 그 참 알 수 없는 부지일자(不知一字), 그걸 의심(疑心)이락 햐. 알 수 없는 것을 의심인디, 의심이 아니면은 활구참선법이 아니여. 그건 죽은 참선, 송장 참선이지. 알 수 없는 놈 하나 이외에 뭐 아는 것이 있는 참선은 그것은 숭악헌 외도 참선이여. 외도 참선이지 그 뭣이여? 그 참선이여, 그것이?

알 수 없구나! ‘이뭣고?’ 이뭣고 해놓고 보니 어디가 알 수 있나? ‘이뭣고?’ 내게 그대로 있는 이뭣고가 알 수 없네. 내가 '나'련마는 알 수가 있나? 내 코빼기요, 내 입이요, 내 몸뚱이요, 내 본래면목 아! 그놈을 그렇게 몰랐네.
이래 가지고는 뭐 아주 내가 내니, 뭐 내가 권리니, 내가 무슨 뭐 야단이지. 감토 썼으면 뭐 감토 썼다고 야단이고, 에헴 허고 야단이여. 거 참 가관(可觀)스러운 물건이지. 그 뭐 제까짓 놈의 권리가 무엇이여? 달팽이 뿔때기인가? 그녀러 것이 벼룩 훌떡훌떡 뛰는 놈의 짓인가? 뭐여? 저는 뭐 그 안 거꾸러지고, 안 죽나?

그렇지마는 우리 부처님은 터억 생사 없는 해탈대도를 깨달라 증(證)할 것 같으면은 깨달라 증허면서 권변(權變)을 갖추어야 되아. 권리 권변이 있어야 되야. 백만장자도 되고, 부귀영화도 다 해야 하고, 대통령같이 이렇게 되아서 대통령이 터억 되아서 우리 국토, 그 우리 국민들을 이렇게 모도 살리와 이렇게 공평 정직허게 모도 살게 만드는 그 원력이 어떠헌고? 기맥히지.
우리 이 험악한 우리 대한민국, 북괴(北傀)가 이렇게 노려보는 지금 이때에, 어떻게 이렇게 올바른 참 정치를 이렇게 해 나가냐 그 말이여. 그러헌 대통령 덕택이 아니고 우리가 이렇게 도 닦을 수 있나? 그런 그러헌 대통령은 우리가 어쨌든지 잘 받들고, 대통령 덕택으로 이렇게 도를 닦는구나.
불보살이 될 것 같으면은 또 그밖에는 헐 것이 없는 것이여. 달팽이 뿔따귀 같은 공명(功名)이라고, '부귀영화 같은 그 뭐 그까짓 놈의 공명이 뭣이냐?' 하지마는, 그게 무상(無常)한 디 가서 한 번 그러헌 디 쳐백혀서 도 못 닦는—그 뭐여, 그만 그 지위 권리나 남용해서 저 혼자 잔뜩 퍼먹고 살고, 저 혼자 돈을 썩혀감서도 쓸 줄 모르고 그러헌 자본주의 같은 걸 말하는 것이지. 고것도 또 잘 들어야 하는 것이여. 여까장 해 두고.


조주는 어느 곳에서 봤느냐? 네가 바로 이 방(棒)을 이르드래도 조주는 어디서 봤냐?
진도(盡道)허되, 또 이르되, 또 혹 학자가 또 이르되, '조주(趙州)는 고불(古佛)이라, 조주는 옛 부처라, 안광(眼光)이 삭파사천하(爍破四天下)다. 눈 광명이 사천하를 타파해 버린다. 혁파해 버린다' 사천하(四天下)가 조주 눈 광명에는 들어붙을 수가 없어. 뭐 사천하에 무슨 별별 기장만사(其狀萬事)라도 거가 붙을 수 없어. 세상 없는 도학자라도 조주 그 눈 광명 속에는 없어.

그런디 그 도개무자(道箇無字)컨댄, 무자(無字)를 한 번 관(觀)해 보건댄, 그 무자라 ‘무(無)’
“개가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무(無)”

그 '무(無)'라고 헌 그 도리는, 무자 도리는 그 무자의 성명(性命), 성명이란 무자의지(無字意旨)라 그 말이여. 무자(無字)의 그 성명(性命)이 낙재본색납자수리(落在本色衲子手裏)다. 본색납자 손 속에 떨어져 있다. 그것은 무슨 말인고? 그것 다 참 어려와! 당최 그 문단으로 이것 다 해석헐 수 없는 것이여.
본색납자 손 속에 떨어져 있다. ‘근본 본(本)’ 자, ‘빛 색(色)’ 자. 본색납자(本色衲子). 납자(衲子)란 건 중 아닌가? 중의 수리(手裏)에 떨어져 있다. 그런 건 내가 일러주어. 어렵다고 말만 해 놓고 일러주지 않을 것 없어.

본색납자(本色衲子)는 그 성명(性命)이 무자의지(無字意旨)는, ‘무(無)’ 헌 그 의지(意旨)는 본색납자 손 속에 떨어져 있다. 조주 뜻이다 그 말이여, 조주 뜻. 조주 뜻에 있다. 조주에게 들어 있다. 무(無)에 있어.
‘무(無)’ 헌 디 있지 않어. '무(無)' 헌 디 있는 게 아니고, 조주 뜻에 있다 그 말이여. 본색납자수리(本色衲子手裏)는 조주 스님을 가리키는 말이여. 뭐 별 뜻 아니여. 허되 무척 어려운 말이거든. 본분납자(本分衲子)의 손 속에 떨어져 있다. ‘무(無)’ 헌 도리는 조주 스님께 갖추어져 있다 그 말이여. 슬쩍 글로 새겨서 뭣들 알면 되나?

유일등인(有一等人)은, 요새 도 닦는 사람을 일등인(一等人)이라 해야. 그 도학자, 일등인은 갱향타무자상(更向他無字上)하야 토자미(討滋味) 하는구나. 다시 저 무자(無字) 위를 향(向)해서 ‘무(無)’ 헌 디 가서, ‘무(無)’ 헌 디 가서 무엇이 있는 줄 알고 찾고 있다 그 말이여. 무자상(無字上)에서 자미(滋味)를 찾는구나. 무슨 이치를 찾는구나.
기불둔치평생(豈不鈍置平生)이냐? 어찌 평생을 둔치헌 놈이 아니냐? 이 미련허고 멍청한 놈이 아닌가? 무(無)에 가서 무엇이 있나? ‘무(無)’ 조주 뜻이다. 그 조주 뜻이니 바로 봐라. 어저께 내가 여까장 허고 또 내가 인자 두었겄당.

수연(雖然)이나, 비록 그렇기는 그렇다마는 조주도(趙州道) 무(無)를, 조주 무라고 헌 뜻을 이자마생회(爾作麽生會)냐? 그 조주 뜻인디 그것이 무자의지(無字意旨)는 조주 뜻인디, 조주의(趙州意)는 자마생회(作麽生會)냐?
조주의 뜻은 어떻게 네가 알았느냐? 어떻게 네가 보았느냐? 이렇게 조주 뜻이라고 했으니. 뭐 뭐 별별 걸 다 붙였자 소용없는 그 조주 뜻, 조주 뜻을 어떻게 알았느냐?

조주노인검(趙州露刃劍)이다. 조주 들난 칼이다. 조주 칼이여, 이것이. 조주 칼! 무(無)가.
한상광염염(寒霜光焰焰)이다. 차운 서리 빛이 참 염염(焰焰)허다. 그 조주 칼날 ‘무(無)’ 헌 칼날이 어떻게 날카로운 칼날이든지 서리 빛이 염염(焰焰)헌디 취모리검(吹毛利劍)이다. 취모리. 터럭만 붙어도 끊어져 버리고, 티끌도 거가 붙들 못혀. 어떻게 붙어도—어디 붙어 가지고 끊어지나? 칼이 암만 잘 들어도—그만 털 그만 붙으면 떨어져 번져.
강남홍(江南紅)이의 부용검(芙蓉劍)이 천하에 도무지 공중으로 날라가서 칼 그놈이 제대로 하나를 던질 것 같으면은 공중에 날라가서 백천 칼이 되어 가지고 서로 칼날 소리만 나. 칼날 소리만 쟁쟁쟁쟁 쟁쟁쟁 나면서 군병 모가지는 다 떨어졌다 그 말이여. 이런 부용검(芙蓉劍)보담도 더헌 칼이여, 이거. 이 칼은, 조주노인검(趙州露刃劍)은.

그러니 칼에 뭔 일체 티끌, 무슨 일체 먼지 뭐 붙었자 다 모가지 짤라지듯기 조주무자(趙州無字)라는 것은 그러헌 칼날보담도 더한 칼인디 무슨 이치를 붙여 봐? 뭔 이치를 붙여, 거다가.
생사가 없느니, 본래무일물이니, 최초구(最初句)니 말후구(末後句)니, 비구(非句)니 비무구(非無句)니, 유구(有句)니 무구(無句)니, 별놈의 도리를 다 대 봐라, 거가서 되는가? 뭐 꺼떡허면 뭐 조끔 나타난 것 보고 견성을 했느니, 아무것도 없는 것이 나타나면 하따! 이거 견성이니, 귀신굴? 귀신 배때기 들어앉아서 통곡헌 놈의 소리여? 그게 생사 없는 도리여?

의의문여하(擬議問如何)하면, 뭐 천하 없는 것 뭐 뭔 말해 봐라, 무슨 이치를 갖다 맨들어 봐라. 네 모가지 떨어진 것이여. 분신작양단(分身作兩段)이여. 모가지서부텀 온 몸뚱이가 그대로 갈라져 버리는 거여.

'할(喝)'을 한 번 했다, 거기서. 고함을 벽력같이 한번 질러 놓고는, 치인면전(痴人面前)에는 부득설몽(不得說夢)이로구나. 어리석은 놈 낯 앞에는 꿈 얘기를 할 수가 없구나.
또 요렇게 말할 것 같으면 여기서 또 뭔 이치를 장만혀. 또 제 무슨 도리를 하나 떡 장만허네? 요렇게 해 놓으면.
'에잇 그거 옳지. 그러면 의의문여하(擬議問如何)면 분신작양단(分身作兩段)이여. 할(喝)까장 했으니 자체까장 뭐 거기서 여지없이 그만 바닥까장 쏵 소지해 버린 것이로구나' 별놈의 도리를 원각 도리를 때려 붙이든지, 별 도리를 다 때려 붙여 가지고, 이놈이 견성했다고 알았다고 나온다 그 말이여. 허니 '요런 소리도 못허겠다' 그 말이여. 설몽(說夢), 꿈 얘기를 듣고는 실(實)인 줄 아니까.

요차아왕고내(要且我王庫內)에는, 또한 내의 고방(庫房) 안에는 무여시도(無如是刀)니라. 이런 칼도 없다. 이 조주 뜻 가운데는 이런 칼도 없어, 이런 날카로운 칼이지마는. 그까짓 고런 칼에다 비유했다마는, 고런 칼도 없어.
필경(畢竟) 조주(趙州)는 시하면목(是何面目)이냐? 필경 조주는 무슨 면목이냐? 무슨 도리를 이렇게 '무(無)'라고 해 놨느냐?
‘무(無), 어째 없다고 했는고? 뭐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요' 그런 것도 여기는 소용없어. 바로 도를 막 들어 나가는 것이여. 조주는 이 무슨 면목이냐?

여기서 나와. 묘희(妙喜)가 도(道)허되, 묘희는 대혜(大慧) 스님이거든. 묘희가 도(道)허되, 묘희 스님이 이르되, 대혜 스님이 이르되 불시유무지무(不是有無之無)며, 이 '있다 없다' 하는 무(無)도 아니며, 그 '있는 것이다, 없는 것이다, 없다' 그것도 아니여. 지나(支那) 방언이 무(無)면 그저 '없단 말이다' 이것도 아니고, 그 방언도 아니고, 출처도 아니고, '있다 없다' 허는 것도 아니여. 이거 다 없다는 것이지, 뭐 뭐 하나는 있고 없는 것 아니여.
'있다 없다'는 무(無)도 아니며, 불시진무지무(不是眞無之無)니라. '참으로 없다' 하는 무(無)도 아니다. 어디 참으로 없는가 어디? 일체가 다 무(無) 되어 버리고 말아 버리게? 어디 무(無)면, '없다'고 허면 없나? 바로 있는디.

'참으로 없다'는 무(無)도 아니며, 그러면 환식묘희마(還識妙喜麽)? 이 묘희(妙喜)는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했나? 묘희, 대혜 스님은 무슨 뜻으로 이렇게 말을 해 놨나?
'있다 없다 유무(有無)도 아니며, 참으로 무(無)도 아니다' 묘희는 어째 이렇게 무자(無字)를 말해 놨는고?

약불구안(若不具眼)이면, 만약 눈을 갖추지 못했으면은—눈이 있거든, 눈이 또 없다는 게 아니여.
다 없다고—눈깔 아니면 눈이 뭐 또 눈이 있을 것이여?—허지마는 어찌 없나? 입도 있고 눈도 있지, 없나 어디? 입 없으면 말도 못허고, 눈 없으면 보도 못허게?
약불구안(若不具眼)이면, 만약 눈을 갖추지 못했으면은 우거동복서탁(又去東卜西度)해도, 또한 동쪽으로 가서 점(占)을 하고 서쪽으로 가서 한번 세알라 봐도, 동쪽에 가 점(占)하고 서쪽에 가 세알라 보고 별짓 다 해 봐라. 동립서좌(東立西坐) 해 봐라. 뭐 동쪽에 가 서고 서쪽에 가 앉아서 상량(商量)해 봐라. 무슨 소용이 있나?

전첨의식(轉添意識)허리라. 거다가 또 의식 하나만 더헐 것이다. 깨닫지 못했으면은 눌은밥처럼 그 고약 그 뭣 부스럼 염염(炎炎) 먹은 묵은 뭐 큰 창병(瘡病), 문둥이 창병 부스럼에 고약 때려 붙여 가지고 고약이 늘어붙어 고런 놈의 모도 의식만 더헐 것이다. 오히려 염(念)만 더혀. 견성했다는 게 더, 더 혹만 더 들어붙여 진흙 속에 들어갔다가 진흙 덤벵이만 더 발라 가지고 나올 것이다.

절기절기(切忌切忌)다. 간절히 꺼리고 간절히 꺼린다. 요따구 참선을 해 가지고 선(禪)이라고 말아라!
활구학자(活句學者)는 큰 활구, 여하시활구(如何是活句)냐? 무이로(無理路)하고, 첫째 이치 길이 없다. 무어로(無語路)하고, 말 길이 없다. 말 길이 없고 이치 길이 없는디, 무슨 놈의 이치를 맨들어 가지고 말해 봐라. 절기절기(切忌切忌)다. 크게 꺼리고 크게 꺼린다.

야문강상적(夜聞江上笛) 하나, 아무것도 없고 조주 그 차 달이는 도리인데, 평생 공부를 해 놓고 보니 심회(心灰)여, 마음은 재가 되어 버려. 불이라는 것은 일체 경계를 다 태우는 불인데, 다 연소화멸(煙消火滅) 되아 버렸어. 몸뚱이는 허연 백수 송장이 되아 버려. 그까짓 놈의 송장이지 뭐여? 숨 끊어지나마나 그 송장이지.

야문강상적(夜聞江上笛)이다. 밤에 강 젓대소리를 들었다.
그 강 젓대소리 하나 못 일러? 그때까장 그 생각, 그때까장 한번 잘 용맹정진해서 강상적(江上笛) 하나 일러 봐. 그 강상적(江上笛) 소리 그 뭐, 강상 젓대소리 그 뭐 그걸 못 이를까? 허! 거, 재미나게 이를 수가 있는디, 아무도 못 이르는구나.(처음~35분6초) (끝)

Posted by 닥공닥정

 

•§•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 (2/9) 몽산화상의 무자십절목.

**전강선사(No.499)—무자십절목(2) (기불둔치평생까지) (갑인74.05.21.새벽) (전499)

 

(1) 약 27분.

 

(2) 약 27분.

 

(1)------------------


동호춘수록(東湖春水綠)이요  백구임부침(白鷗任浮沈)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어주하처거(漁舟何處去)오  의구숙노화(依舊宿蘆花)니라
나무~아미타불~

조주 스님 말씀에 '지도(至道)는 무난(無難)이라. 지극한 도는, 극한 도는 무난(無難)이다. 어려움이 없다'
우리 참선, 활구참선법보담 더 더 어려운 법이 어디 있으며, 또 최고법(最高法)이 어디 어디 있는가? 제일가는 법이지.
이 법은 어려움이 없다. 견성(見性)허기도 어렵지 않고, 공부해 들어가는 법도 어렵지 않고, 천하에 어려움이 없어.

유혐간택(唯嫌揀擇)이니라. 간택(揀擇)을 혐의(嫌疑)한다.
모도 요리조리 갈려서 그놈을 간택해서 잘할라 해서 모도 그놈을 포장을 헐라고 헌다 그 말이여. 요새 모도 현대 길 포장한다, 무슨 그런 문자처럼. 길을 처음에 내 가지고는 막 내 놓으니까—어디 거 뭐 길도 아니고 뭣도 아니고, 비가 오면은 그만 물꾸렁텅이고, 이거 돌 천지고, 뭐 그것 될 수 있나, 길이? 아무것도 아니지? 포장을 해 놔사 그 길이 되어서 고속도로 같이 번쩍번쩍허니 마음대로 그저 그만 차도 가고 사람도 오고, 그와 같애서.

지도(至道)는 무난(無難)이라,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어. 유혐간택(唯嫌揀擇)이여. 간택(揀擇)을 혐의(嫌疑)한다. 요리조리 모도 간택해서 그놈을 잘할라고 모도 갈려서 야단친 것을 혐의혀.
도(道)라는 건, 길이라는 건 그건 처음에 길 내 노면은 그놈 포장하고 별짓 다 하고 도는, 저 세상에 가는 길은 도(道)는 그러허지마는, 우리 참선허는 이 대도(大道), 이 도(道)는 그거도 ‘길 도(道)’ 자여. 도는 마찬가지지. 이 도(道)는 간택이 없어. 뭐 포장하고 무슨 뭐 간택하고 뭐 그런 것이 없어. 그 도(道)와는 달러, 그 ‘길 도(道)’ 자는 마찬가진디.

그러면은 그 무슨 의미인고? 그 얼른 들으면 그 의미가 알 수 없지?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는데 간택을 혐의한다' 요리조리 모도 따지고, 간택하고, 옳은가 그른가, 모도 이 뭘 찾는 거, 그것은 못쓴다 그 말이여, 알아듣기 쉽게 말하자면. 그런 것은 안 된다 그 말이여, 간택을 혐의한다는 것은.
듣기가 그 잘못 들으면 그 잘 안되지. 그건 그렇게 허면 안 된다 그 말이여. 왜 그러냐?

활구법(活句法)이라는 것은 그저 ‘개가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무(無)!’

‘무(無),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알 수 없는 것 하나뿐인데 무슨 간택을 혀? 거다가. 뿐 뿐이라는 소리도 거 소용없는 소리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어째서 「서」 자까장 넣을 것도 없어. ‘어째 무(無)라 했는고?’

‘무(無)!’ 무(無) 하나뿐이다. 무(無) 하나뿐인디 잘잘못이 뭐가 있어? 잘못 일렀니, 잘 일렀느니, 뭣을 일렀느니, 유(有)를 일렀느니, 무(無)를 일렀느니, 뭐 그런 것이 있나? 뭐 분석 해석 거다 붙일 것이, 무엇을 잘을 붙일 것이여? 무엇을 뗄 것이며? 다시는 그뿐인데. ‘무(無)!’

아! 그러면은 불법 근본도리가 천하 없는 본래 무(無)를 일르고, 무슨 뭐 무무(無無)도 역무(亦無)를 일러 놓고, 무슨 뭐 불견(佛見) 법견(法見)까장 다 떼고 일러 놓고, 유(有)도 무(無)도 비유(非有) 비무(非無)도 아닌 것을 다 여의어 버리고 일러 놓고, 그런 것이 아니거든?
만약 그런 것을 떼고 여의고 붙일 것 같으면은 뭣 헐라고 거다가서 무슨 떼느니 여의느니 뭣을... 거 없어. 다만 무(無)여. ‘조주는 어째 무(無)?’ 뿐이여. 알 수 없는 무(無) 하나뿐이여. 그 도리가 거기 있으니 나오지, 안 나올 이치가 없어.

그런디 그 조주 무(無)라고 헌 그 도리가 무슨 광명체가 나오고, 무슨 모냥다리가 나오고, 무슨 유무(有無)가 나오고, 무슨 비무(非無)가 비유(非有)가 나오고, 그런 것이 아니여. 그런 것이 그냥 그저 공연히 해보다가 깜깜하다고, 뭘 모른다고, 아는 게 없다고. 훤허니 그 뭐 백만사(百萬事)를 다 아는 것이 법(法)일 것인가?
그 아는 것이 법일 것 같으면은 뭐 세상 요술 같은 거 모도 가르켜 가지고 알게 맨들지 뭐. 점쳐서 알게 맨들지. 점쟁이도 다 아는 것이고. 요새 봉사도 글 손으로 짚어 보고 글을 다 안다는구만. 그런 것이나 그것도 뭐 참선법이게? 그 뭐 뭐 천하사를 뭐 책을 굉장허게 많이 쟁여 놓고는 그 책에 가서 뭐 글자는 아니라는구만? 모도 뭐 뭐 오돌토톨헌 것이 있어 가지고 요렇게 만져 보고 다... 안 만져 보고도 알아야지. 또 안 만져 보고 알면 뭣혀? 화(禍)의 문(門)인데.

선법(禪法)은 그런 것이 아니기 따문에 무(無)여. 무(無)면 ‘조주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어째 무(無)?’ 무(無)뿐이여. 그러면 어디 그 무슨 간택이 있어야지? 거가 간택이 있어야 무슨.. '간택을 혐의한다'고, 간택 말아라! 그 말이여. 무(無)뿐인디. 알 수 없는 것뿐인디.
'이뭣고?'도 그렇지. 이뭣고도 ‘이뭣고?’ 알 수 없는 놈 하나, 참 부지일자(不知一字) 묘(妙)의 문(門)이다. 그밖에 더 있어?

동호(東湖)에 춘수록(春水綠)허니, 동호에 봄물이 푸렀는디, 봄물이 퍼러니 춘수(春水)는 만사택(滿四澤)으로 동호(東湖)에 물이 꽉 차서 그 물빛이 퍼렇다 그 말이여. 그 물빛 푸르지 무슨 뭐?
물빛은 푸르니까 푸르다고 헌 거여. 거다 의미를 그 해석을 붙이지 말란 말이여. 봄물은 퍼렇지. 퍼런 밖에 뭐가 있나?

백구(白鷗)는 임부침(任浮沈)이로구나. 백구(白鷗)는 아! 백구 흰 놈, 흰 백구란 놈은 물에 가라앉았다가 또 떠올랐다가 백구임부침(白鷗任浮沈)이여. 거다 무엇을 붙일 건가? 무엇을 붙이고 보지 말란 말이여. 그 모도가 모도가 개중도리(箇中道理)지, 이 가운데 도리지. 뭐 다른 도리가 무엇이 있겄나 그 말이여.

어주(漁舟)는 하처거(何處去)냐. 고깃배는 고깃배는 하처(何處)로 가느냐? 저 멀리 뜨는 배는 그 어디로 가는고?
의구숙노화(依舊宿蘆花)로구나. 예[舊]를 의지해서 노화(蘆花)에 자는구나. 그건 가다가 그 노화꽃 갓에 그 갈대꽃 모도 핀 바닷가에 거 잔다 그 말이여. 그 무슨 의미를 붙일 것인가? 거다가 뭐 의미를 갖다가서 해석해서 볼 것인가?


이 입 껍데기[口皮邊]로 조주가 ‘무(無)!’ 허는 그 도리를, 조주선(趙州禪)을 입 껍데기로 돌아 비출진댄—입으로만 ‘무, 무’ 헌다 그 말이여. ‘무, 무’ 입 껍데기로만 ‘무, 무’ 혀. 거그 까닭이 많이 있지. 아무 의단(疑團)은 없이,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은 없이, 그만 ‘무, 무’만 허고 앉었다. 그 뭣 헐 거여 그거?

그 도무지 알 수 없는 '무(無)'다.
입 껍데기로만 ‘무, 무’ 허고 있을진대는 타일(他日)에 긱철방(喫鐵棒)허리라. 다른 날에 쇠방망치를 씹으리라.
견성은 꿈에도 못헐 터이니, 조주 무(無) 도리는 꿈에도 깨닫지 못할 터이니, 거 중생 소견 그대로 입 껍데기로만 ‘무, 무’ 허고, 이뭣고만 ‘이뭣고, 이뭣고’ 껍데기만 하지, 알 수 없는 의심을 갖추지 못허면은 그 뭐, 거 뭐여 거? 아무것도 아니지.

앉어서 그만 ‘무, 무’ 허다가 잠이나 자고, ‘이뭣고’ 허다가 잠이나 자고, 성래(醒來)하면은, 깨어나면은 또 호사망상(胡思妄想)이나, 호사망상이란 것은 그 큰 망상을 드리 끄집어 일으켜 가지고는 허는 것이여. 세상 모도 그저 명예 권리나, 세상에 모도 그저 그동안 해 나오든 살림살이나, 뭐 이런 것을 한번 호사(胡思), 크게 생각을 해서 망상(妄想)으로 그만—잠자다가, 호사망상(胡思妄想)허다 큰 망상을 내다가, 덤덤허니 ‘무 무’ 허다가, ‘이뭣고’만 허다, 입으로만 참선, 입 참선만 하면 뭣 혀?

또 좌착(坐着), 앉은 참선만 허면 뭣 혀? 앉었는 것이 그거 참선이여? 가만히 앉었다고 참선이여? 그 가만히 앉었는 앉은뱅이는 평생 참선이겠네? 그것도 못쓴다 그 말이여. 앉어서 자리만 착(着)해도 못쓰고, 서서 또 참선헌다고 밤낮 댕기기만 하면 그것이 선(禪)이여?
서나 앉으나 누우나 일체처에 그 그 참말로 그 해 나가는 그 참선법, 참선법, 다루는 법, 화두를 턱 거각(擧却)하는 법, 그 법이 뭣이냐?
도무지! 거다가서 지도(至道)는 무난(無難)이니, 참 참선허는 법은 어려움이 없어. 유혐간택(唯嫌揀擇)이여. 간택을 혐의한다. 간택 말아라. '옳냐?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옳게 헌 것이냐, 그르케 한 것이냐?' 고것을 붙이지 말아라.

“개가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무(無)” 했으니,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허면, ‘어째서 무(無)?’ 있단 말도 아니요, 없다—있는 것을 말헌 것도 아니요, 없는 걸 말헌 것도 아니고, 있고 없는 놈을 말헌 것도 아니요, 참으로 없는 놈을 말헌 것도 아니요. 뭐 일체 뭐 정량(情量), 뭐 사량(思量), 분별 뭐, 여하약하 진리 이치 도무지 밖에, 아무 그 밖에 다만 무(無) 했으니, 그 조주 무(無)란 도리(道理)는 무슨 도리냐? ‘어째 무(無)?’ 해도 그 아무 일 없는 것이다 그 말이여.

거가 무엇이 붙어? '없다'고 찾으면 뭣이 그리 그 옳게 붙으며, '무(無)'라고 찾으면 못쓸 게 무엇이 있을까마는, 중생의 상량(商量) 사념(邪念)으로써 못쓰게 된다 그 말이여.
「'있다'고 헌 것이, 불성이 있다 했는데 조주는 어째서 ‘없다’ 했는고? 요것이 옳다. 뭐 지나(支那) 중국말은 ‘무(無)!’ 헌 것이 한국말로 ‘없다’ 했으니 '없다'고 찾는 것이 옳지, 거다가 일체 유무지견(有無之見)을 붙이지 않고 찾아? 그 잘못된 것이다」 또 잘못을 붙이네. 거 다 저만 속는 것이여. 잘 들어야 되아.

무(無)도 그대로 견성성불(見性成佛) 도리면은 '없다'는 놈도 견성성불 도리요, '있다'는 놈도 견성성불 도리요.
내가 그 어디, 그 설법해 논 디 그 있지. 농부가 쟁기를 짊어지고 논 갈러 가는 것도 시법(是法)이면, 여자가 호맹이를 들고 밭매러 가는 것도 시법(是法)일 것이다 그 말이여. 농부가 쟁기질 하러 가는 것도 비법(非法)이면 법이 아니면, 여자가 호미 들고 밭매러 가는 것도 비법(非法)일 것이다 그 말이여.
도무지 중생념, 중생 사량념이 그것이—따지는 법, 분별법 그것이 간택(揀擇)이여. 그 간택을 혐의(嫌疑)한다. 요걸 요렇게 들어야 한다 그 말이여.

그러면 앞으로써 화두를 해 나가는 디 뭘로 해 나가느냐? 무자(無字)로 한번 말해 보자.
‘없다’고 해 나가는 것이 옳냐? ‘무(無)’라고 해 나가는 게 옳냐? 이놈 이놈을 가지고 좀 얘기해 나간다 그 말이여.

조주선(趙州禪)을, 조주 무(無)라고 헌 그 선(禪)을 입 껍데기로만 비춰? 입 껍데기로만 비추는 것은 그거는 가만히 그저 씨잘데없는 뭐, 뭣이여? 아무 의심 없는 무사갑중(無事匣中)에 있어도, 일없는 갑중(匣中)에 들어앉어도 안 되아. 소용없어. 그 뭣이여? ‘무, 무’만 허고 있으면 뭣 할 것인가 말이여? ‘이뭣고, 이뭣고’만 하면 뭣 할 것인가 말이여?

'대체 이뭣고?' ‘뭣고? 해 놓고 보니 이뭣고?’ ‘이뭣고?’
‘이’ 그놈이 벌써 의심(疑心)이거든? ‘이’ 그놈이 알 수 없는 것이거든?
‘이’ 헌 놈까장 들멕일 것 없어. ‘이뭣고?’

'무(無)!' ‘어째 무(無)?’ '어째'가 거그 들었거든. ‘어째 무(無)?’ 이놈을 갖추어야 되아. 참으로 이놈을 갖추어야사 간택이 없는 법이다 그 말이여. 참 지도(至道)는,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어 간택(揀擇)이 없다는 말 중대한 말이여, 그 말이. 뭐 보통 말이 아니여. 보통 말씀인 것이 아니여. 극(極) 간택한 말씀이여.
지도(至道)는 무난(無難)이라 유혐간택(唯嫌揀擇)이니라. 조주 스님 말씀이 모도 그렇게 참 쉽지. 천하에 그렇게 쉬울 수가 없어.

남전(南泉) 스님, 남전 스님 말씀에 “굉이(고양이) 모가지를 추켜들고 한번 일러 봐라” 헌게. 그렇게 허니까 왼통 대중은 나와서 굉이 소리를 헌 놈도 있고, 뭐 별소리를 다 하지마는 그것 벌써 거, 다 저 죽거든, 저 죽어 버리고 말아.
굉이를 추켜들고 "일러라" 하! 그러니 굉이 소리를 헌다. 또 그 뭐 굉이 모가지를 추켜들고 보이는 그 형태를 뭐 이르기도 허고, 굉이를 뺏기도 허고, 뭐 거다가 절을 허기도 허고, 거다가서 무슨 뭐 그 긱감 소식을 보이기도—긱감, 긱감이라는 건 입을 씹어뱉은 도리다 그 말이여. 입을 꾹꾹 씹어서 뱉은 것을 긱감이라고 그려.

별짓을 다 하지마는 발써 그 남전 스님 뜻은 보들 못허거든. 남전 스님, 굉이(고양이)를 추켜들고 "일러라" 그거 모른다 그 말이여. 꽉 맥혀서 모른다 그 말이여. 모르는 놈은 그대로 죽고, 아는 놈은 외도로 죽고, 어떻게 혀? 바로 바로 본 학자래야사 그 허는 법이지, 못허는 법이여.
'굉이 무슨 눈깔이 어떻다, 굉이 코빼기가 어떻다, 굉이 몸뚱이가 어떻다, 발은 어떻게 생겼다' 그까짓 소리 해 쓸 것인가? 뭐 조주 스님 굉이 모가지를 추켜들기 전 도리를 일러 쓸 것인가?
소용없어. 그대로 공안(公案)은 봐야지. 남전 스님 떡 굉이를 추켜든 도리를 바로 봐야 되지.

조주가 들어오니까 “자네는 이 굉이(고양이)를 추켜들었으니 어떻게 헐래?” 물으니께, 신짝을 떠억 뒤집어 이고—뒤집어 이거나 옳게 이거나 상관없어, 신짝을 이었지. 신짝을 이고서는 나간다 그 말이여. 그만 나가, 밖으로 나가. 그 무슨 도리냐 그 말이여?
그 벌써 아무 때나 그거 뭐 지견 붙일라면은 누가 못혀? 뭐 별 지견 다 붙일 수 있지. 중생 망상 일어나는 대로 다 갖다 붙일 수 있지. 그거 아니거든. 공안(公案)이란 도리가 그게 그대로 있어.

남전 스님이 있다가 “자네가 있었으면 굉이 살릴 뻔 했네” 그 도리는 그건 무슨 도리여? '조주가 바로 일렀다' 그런 말이여? 그까짓 것 붙이면 뭣 혀.
거 남전 스님 “자네가 있었으면 굉이 살릴 뻔 했네” 그 무슨 도리냐 그 말이여? 무서운 말이여. 그 말이 남전 스님 그것을 바로 봐야 혀.


입 껍데기로 비추지 말아라. 다른 날에 철방(鐵棒)을 씹을 것이다. 그 삼악도에 떨어져서 나올 기약이 없이 지옥고를 받을 것이다.
무(無)가, 조주(趙州) 무(無)라는 이 무(無)가 삼세제불(三世諸佛)의 골수(骨髓)요. 삼세제불의 뼉따구 속의 골수여. 역대조사(歷代祖師)의 안목(眼目)이다. 역대조사의 바로 눈이다.
일기(一期)에 흔출(掀出)해야, 한번 무(無)에 그대로 도득(道得)을 해 놓았다. 바로 일러 놓았다. 재이면전(在爾面前)이로구나. 네 낯바닥 앞에다 딱 일러두었구나. 네 낯바닥 앞에 바로 일러 놓았어.

성조한(性燥漢), 성조한, 성품 마른 놈이, 그 날랜 대승학자가, 그 상근학자(上根學者)가 한 어깨로 턱 메 가거드면, 깨달라 가거드면 말이여. 확철대오를 해 갈 것 같으면은 산승(山僧)의 주장자(柱杖子)로도 역미긍타이재(亦未肯打爾在)다. 산승의 주장자로도 또한 너를 때릴 수가 없다. 너를 칠 수가 없다.
산승의 주장자는 본분납승(本分衲僧)의 방(棒)이여. 불조(佛祖)라도 그 방(棒)은 헐 수 없어. 어제 여까장 했든 놈 다시 연속헌 것이여.

운문 선사가 "내가 당시에 있었으면 일방타살(一棒打殺)이라. 부처님을 타살해서 개 주겄다" 하는 방(棒)이여. 운문방(雲門棒)이여. 본분납승 방(棒)이여. 본분학자의 방이라는 것은 불조(佛祖)도 헐 수가 없어.
그러면 본분납승의 방(棒)에는 다 죽고 말 것인가? 그 방(棒)은 또 못 이를 것인가? 백 번도 이를 수 있고, 천 번도 이를 수 있는 것이여.

네가 바로 무(無)에만 확철대오해 버릴 것 같으면은 본분납승(本分衲僧)의 방(棒)으로도 너를 때릴 수가 없다. 차도(且道)하라. 어째 그러냐? 필경(畢竟)에 여하(如何)오? 어째 그러냐?(처음~26분3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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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개무자(只這箇無字)는, 이 낱 무자(無字)라 하는 것은 전무파비(全無巴鼻)허되 유사파비(有些巴鼻)니라. 내 거까장 했어, 어제 아침에.
온전히 끝코[巴鼻]가 없으되 파비(巴鼻)가 있느니라. 아주 '없다'고 해 놓고, '없다'고 턱 해 번지면은 그거 어디 무슨 법이 '없다'고 헌 놈뿐인가? '없다'고 헌 놈도 방(棒)이면 '있다'는 놈도 방(棒)이요, 유무(有無)가 방(棒)이면은 방(棒) 그놈도 방(棒)이지, 뭐 뭐 방(棒) 없는 법이 있나? '파비(巴鼻)가 없다'고 해 놓고 보니 벌써 방(棒)을 짊어지고 들어온 것이다.

혹자(或者)는 위시단명도자(謂是斷命刀子)라고 허며, 혹 어떤 자는 '이것이 명(命) 끊는 칼이다' 명(命)이라는 것은—칼이란 게 생명을 끊는 칼이다 그 말이여. 생명을 끊으니까 일체 일어나는 번뇌 망상, 그저 일체 상량심, 다 그놈이 끊어 버리는 놈이다, 베어 버리는 놈이다. 이치도 다 끊어 버리고, 살불살조(殺佛殺祖)요,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이는 칼이다 그 말이여.
또 일체 차별 지혜를 모도 여는 자물쇠통이다. 꽉 잠과 논 자물쇠를 끌르는 놈이다. 조주무자(趙州無字)라는 것은 일체 범성정량(凡聖情量)이고, 일체 도리회(道理會)고, 망상은 더군다나 말할 것 없고, 일체 망상이고 다 때려 끊어 버리는 놈이다. 다 베 버린 칼과 같은 칼이다.

또 자물쇳대와 같애서, 꽉 잠과 놓은 자물쇠를 터꺽 끄르면은 문이 툭 끌러지는 자물쇠통 그놈 문 끌러 버릴 것 같으면은 문 안에 방안에 일체 등물(等物)이 그대로 다 마음대로 인자 그저 알 수도 있고, 볼 수도 있고, 가질 수도 있고, 모도 일체를 모도 차별, 뭐 지혜, 그저 생사해탈도, 뭐 할 것 없이 다 여는 자물쇠 열대(열쇠)다. 요렇게 헌 사람이 있다 그 말이여.
'조주무자(趙州無字)는 고런 것이다. 망상을 다 베 버려 버리는 칼이요, 일체 지혜를 여는 자물쇠와 같다' 요런다 그 말이여. '조주무자가 생사해탈도 막 그놈 허고 그저 그만 범성정량(凡聖情量)에도 뛰어나는 열쇠요' 요렇게 헌다.

호여삼십방(好與三十棒)이다. 네 이놈, 삼십방을 메고 들어와서 삼십방에 죽어라 이놈아. 너를 삼십방을 주겠다. 시(是) 상방(賞棒)이냐, 벌방(罰棒)이냐? 이게 무슨 방이냐? 이 방이 이게 무슨 방이여? 이걸 물었어. 제가 바로 본다면은 바로 봐서 바로 넉넉허면은 한마디씩 일러 봐. 이런 디서 일러 보라 그 말이여.
못 이르게 헌 것이 아니여. 함부로 주뎅이 벌리지 말라 이게지. 그놈의 주뎅이 절단날 테니까. 법(法) 비방해 가지고 아비지옥에 들어갈 터니까. 바로 보이거든 이르는 법이요, 바로 보들 못 했으면 못 일러.

이놈을 툭! 깨달라 버릴 것 같으면은 이게 무슨 방(棒)이냐? 벌방(罰棒)이냐, 상방(賞棒)이냐?
무서운 간택법이니까. 이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이라는 건 덮어두는 것이여. 강사도 한 번도 이건 설(說)하도 않는 것이여. 설해 봤던들 허덜 못혀.

나 뭐 내가 무슨 뭔... 과거에 강사(講師)들, 무슨 뭐 박한영 같은 강사가 거 당최 강사로는 하나뿐인디 뭐 없었지. 거 합천 해인사 홍도여관에서 나는 얻어먹고 댕기다가 뽀이질을 헐 땐디, 내가 뽀이질을 허다가 물었다 그 말이여. 이걸 물은 게 아니라 여러 가지 경론(經論), 경에 있는 말도 묻고, 금강경도 묻고, 일체유심조도 묻고, 박한영 허고 최남선이 허고 같이 왔을 때, 최남선이가 한국의 문사(文士)거든.
아 최남선이, 할 것 같으면 한국 팔문사(八文士)에 제일 최고인디 뭐. 한국 팔문사 가운데에도 최남선이는 그 역사, 역사가지. 역사에 제일 밝지. 한국 역사 하면은 모를 것이 없어. 허지마는 입이 없었지. 뭔 입이 있어? 입이 있을 수가 있어야지, 못 일러.
내가 그때 얻어먹고 내가 홍도여관에서 뽀이질허고 있었지마는, 뽀이질! 날 뽀이로 봤다가는 자기네가 잘못 봤어. 그 뽀이로 본다한들 뭐 별 거 있나?

강사(講師)가, 뭐 합천 해인사 강사가 이만저만한 강사가 꽉 찼는디 사월초파일에 사람이 몇만 명, 한 3만 명, 4만 명 온다는 초파일 날인디, 도량 경내가 그렇게 너른 경내지마는 꽉 차 버려. 긍게 법당 그 큰 법당도 막 뜰까장 꽉 차 버렸다 그 말이여.
그러헌디 내가 뽀이를 허고 있다가 뭐 이마빡에다 머리빡에다가서 수건을 동이고 떡 있다가, 뭐 수건 버릴 거 뭐 있나? 수건 쓰고 내가 들어가지. 들어가서, “법상(法床) 좀 빌려라. 내 법상에 올라갈 터니까”

홍도여관 뽀이 정영신(鄭永信)이가 들어왔다 하면 별도리 없어. 내가 올라간다고 누가 날 끄집어낼 사람 없어. 누구 누구 강사들이 올라가서 설법한다고 할 때 차례로 올라가서 차례 설법을 할 때인디, 그 차례 설법 뒤에 차츰차츰 허라고, 내가 할 말이 있다고, 내가 설법해야 허겄다고, 오늘은 내가 설법을 할 테니 좀 들으라고.
그러고서는 법상에 올라가서 “나는 홍도여관 뽀이요” 그래 논다 그 말이여. “내 설법을 좀 들어 보시오” 그래 놓고는 거 뭔 말 나온 대로 허지, 내가 무슨 뭐 거기에 뭐 준비해 논 말도 아무것도 없지. 뭣 준비해 논 말이 있어? 아무 준비해 논 말도 없고.
올라가서 척 한번, “자연적(自然的)이냐 천연적(天然的)이냐, 만겁(萬劫)에 현안(懸案)인 천지의 비밀이냐. 자연도 아니요, 천연도 아니요, 만겁 현안의 비밀도 아니다. 심마(甚麽)냐? 이 뭐냐?” 한번 아! 뭐 그런 설법했지 뭐, 다른 것 뭐 있나? 다른 말 헐 것이 있어야 하지.

아! 그렇게 허고 내려올 것 같으면은 그만 그래도 그 중들 강사들 즈그 글 가운데에서, 권중(卷中) 가운데에서 아무리 그 뭐 얻은 것이 무엇이 있나? 고인(古人)네 말해 논 것 모도 조박(糟粕), 찌거리 모도 짜 먹고 모도 그런 것 가지고 모도 횡설수설헌 거, 그런 거 아는 것 가지고 소용이 있나?
둥 그렇지 뭐. 내가 그렇게 지냈어. 뭐 틀림없어. 내 그 법문 내 밤낮 어디 모도 해 놓았지.


필경(畢竟)에 어째서 이 낱 무자(無字)가 이러허냐?
'뭐 자물쇠를 자물쇠통 같애서 문 툭 끌러 가지고 방안에 일체 등물(等物), 일체 살림살이 다 얻고 내가 다 보고 내 주물르고 마음대로 허는 그런 자물쇠다. 중생의 일체 번뇌망상심과 계교상량심, 사량분별심을 쏵 잘라 버리는 칼이다. 요것이 무자의지(無字意旨)다' 요런 놈들이 있어?
호여삼십방(好與三十棒)이여, 삼십방을 주리라. 이건 뭔 방(棒)이냐? 이게 상방(賞棒)이냐, 벌방(罰棒)이냐? 그놈 상방이라고 헐 테여, 벌방이라고 헐 테여? 그놈 뭐라고 할 테냐 그 말이여.

아! 그런 디 가서 의심이라니? 무슨 놈의 의심이여? 어디 백천 공안에 의심이 있으면은 그 견성인가? 의심이 없을 것 같으면은 천칠백 공안(千七百公案)을 다 깨달랐다 그 말이여. 그렇게 깨달랐을 것 같으면은 제불지(諸佛地)에 올라가, 부처님과 똑같이 깨달랐다 그 말이여. 일초(一超)에 직입여래지(直入如來地)다. 한 번 뛰어서 여래지에 올라갔다 그 말이여.
왜 여래지에 올라갔을 것 같으면은 그 곧 그만 그 구경각(究竟覺)이지. 여지없는 각이니 구경각이지, 무슨 놈의 또 거가서 무엇이 있어? 견성, 구경각을 해 버릴 것 같으면 무슨 생사가 있으며, 생사가 없다기 보담도 일체 변화 신통도 다 갖춰져 있고, 다시 재미(再迷)가 무엇이 있어? 아주 구경 그대로 갖추어져버려 구경각인디.

'닦을 것도 없고 그때는 그래야 각(覺)이지, 글안으면 각(覺) 아니다' 고와 달라. 그거 다른 말이여, 그 말이.
아무리 구경각을, 그 도리는 삼세제불 역대조사의 그 천칠백 공안에 가서는 확철대오를 했지마는, 일초에 직입여래지해서 이즉돈오(理卽頓悟), 이치는 몰록 깼다마는, 거기에 오후재미(悟後再迷)를 또 말해 놔. 오후(悟後)에 다시 미(迷)하면 큰일난다. 오후재미(悟後再迷)는 구(求)허들 못한다, 그랬다 그 말이여. 깨달라 가지고 재미(再迷)지, 깨달지 못하고 재미(再迷)는 그건 말도 할 것도 없는 것이고. 그 말이 다른 것이다 그 말이여.

그런 말만 봐 가지고서는 '구경각은 그런 법이 없다' 누가 구경각을 말했나? 그 지경 아직... 조주 스님도 턱 깨달은 후에 40년을 부잡용심(不雜用心)을 했고, 잡념을 쓰지 안 했고, 향림(香林)도 40년에 타성일편(打成一片)을 했고. 그런 모도 그저 오후(悟後) 단속을 기맥히게 해 놨네.

저 어린아, 어린 자식을 낳았다. 낳아 노니 뱃속에서 뿍 낳아 노니 눈도 있고, 귀도 있고, 코도 있고, 입도 있고, 손도 있고, 발도 있다. 똑같다. 사람, 사람 형용은 똑같여.
아! 허지마는 그놈이 말할 줄도 모르지, 그놈이 일어나 댕길 줄도 모르지, 걸을 줄... 뭐 밥 먹을 줄도 모르지, 그저 누워서 그러고만 있으니 그놈을 차츰차츰 길러 키워서, 어른 다 어른이 되어서 손발로 마음대로 그저 운수급반(運水及搬)하고, 아 그저 성숙시위(成熟施爲)를 마음대로 제가 하고, 그래 한 이십(二十) 길러 놓으면은 인자 큰 아들 큰 사람이 되아 버렸다 그 말이여.
그러니 장양성태(長養聖胎)를, 성태(聖胎)를 길러라. 성현이 되게 키워. 바로 깨달라 가지고 성태를 기르는 법이지, 깨닫지 못하고 어떻게 혀?

돈오(頓悟)는, 근본도리는 깨달랐지마는 아직 오후(悟後)에 그 수양을, 성태를 기뤄야 할 것이다. 아! 이 말이지.
견성해 가지고 견성 못헌 학자를, 당신은 구경각을 증(證)해 가지고도 견성 못헌 학자를 그렇게 가르켜 나가야 하지, '구경각밖에는 없다. 그게 깨달은 것이 깨달음 아니다' 거 그래 버리고 말 것인가? 그 차제(次第)를 가르켜야지. 하! 이거 내 참말로!

나 과거에 한암 스님, 만공 스님... 만공 큰스님, 혜봉 큰스님, 한암 큰스님, 용성 큰스님, 혜월 큰스님, 그런 큰스님 있을 때, 내 경허 큰스님만 못 모셨고 못 뵈었고, 수월 큰스님은 내가 못 뵜고는, 내 다 봤다 그 말이여. 그 다음 또 그 뒤에 난 큰스님네들도 내가 다 보고, 다 법문 듣고 다.
다! 만공 큰스님도 큰 단속이 무슨 단속이냐 하면은 “이 사람아! 득이수난(得易守難)이니, 얻기는 쉽지마는 지키기가 어려우니. 오후재미(悟後再迷)라니! 큰일나느니!” 내 늘 들었다 그 말이여.(녹음 끊김)

...하고 깨달라 가지고는 증오(證悟)가 또 있어. 증오가 있고. 아! 그거 분명히 있는데.
그것 보조 스님께서 "네가 이놈"—(학인 질문)"왜 깨달른 사람이 하나도 그 그저 뭐 증오가 있어야 할 턴디, 깨달은 사람이면 증오(證悟)일 턴디, 구경각(究竟覺)일 턴디, 왜 모도 한 사람도 신통변화도 없고 그런 모도 보통 사람과 똑같으니 어디 그 깨달은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답)"이놈아 네가 경발광언(輕發狂言)...” 발광언이라고 했어. 발광언(發狂言)! “미친 미친 발광언을 말아라. 네가 그렇게 이치를 아지 못허고 무슨 법을 믿는다 하냐? 설리(說理)의, 이치를 말허되 본말(本末)을 알들 못허고, 선후(先後)를 아지 못해 가지고 뭐냐?”
아! 이렇게 막 치고서는 '신통변화가 설사 낭발(朗發)허드래도, 구경각을 증해서 낭발허드래도 그런 것을 느그 같은 놈한테 쓸 것이냐?' 말하자면, 거기는 그렇게 되지 않았지마는.

모도 미인(迷人)한테다가 신통변화 구경각을 쓰면 알 것이냐? 또 써서 뭣 할 것이냐? 불가요용(不可要用)이니라. 요용(要用)을 어따 요녀러 것 쓸 것이 없어. 그러헌 그 신통변화를 모도 쓸 것 같으면은 사견 상견으로써 중생을 꼬은 것밖에 더 되냐? 아! 이 말씀이지.
보조 스님께서 구경각을 다 했지마는 학자를 가르키는 디는 아! 그렇게 가르켜 나가야 할 것이지, “에이, 구경각 안 헌 사람은 그거 그 각(覺)이 아니다” 이래 버리고 말면 될 것이냔 말이다. 그런 것을 듣고 믿고 또 차서(次序)를 알고 그래야사 중퇴(中退), 물러가지를 않고 타락을 않지. '그만 한번 깨달으면은 그만 구경각이다. 다시는 뭐 증(證)이 없고 무슨 그래야 된다'고, '그게 각(覺)이다' 아! 구경각(究竟覺)은 그렇지.

그러면 학자가 인자 처음 해 나가다가 처꺽 그 무슨... 만공 큰스님도 종을 치는디, 종소리에 땅 땅 땅 땅 땅 치는디, 아! 그만 확철대오를 했네. 아! 대오(大悟)를 했지마는 그 대오가 옳은 대오인지, 그른 대오인지 어디 큰스님네한테 가서 한번 법전(法戰)을, 한번 탁마(琢磨)를 해봐야 할 턴디, 해본 일은 없고, 밤새드락 그 깨달은 경계가 환허니, 뭐 진대지(盡大地)가 광명중이라. 대지가 그대로가 광명중이여. 아무것도 없고 광명중이여. '하! 이거 이것 참! 이게 대도로구나. 이게 참 깨달은 도리로구나' 혼자서 담뿍 안고는 밤새드락 그 도리를 수용했네.
그것이 각(覺)이여? 그 훤헌 그게 각(覺)일 것인가 말이여? 그렇지마는 밤새드락 그 경계를 가지고 계셨다는 거여. 거기 말이 많이 있지마는 그것 다 내가 언제 헐 도리도 없고, 무자(無字) 해 나가는 가운데에다가 조금 넣었지.


'이게 상방(賞棒)이냐, 벌방(罰棒)이냐?' 이것은 누가 묻냐 하면은 이 몽산 화상(蒙山和尙)이 묻는 것이여 지금은.
'자물쇠 끌르는 열쇠라고 허는 학자도 있고, 일체 지해 상량견을 끊는 칼이라고도 헌 자가 있으니, 이게 참말로 그러냐? 이놈 너 삼십방(三十棒)을 줄 것이다. 내가 삼십방을 준다마는 이게 뭔 방(棒)이냐? 상방이냐, 벌방이냐?' 요까지.

직요도득제당(直饒道得諦當)이라도, 네가 바로 넉넉히 이걸 일러. 삼십방이 이 방(棒)이 무슨 방이라는 걸 바로 이르드래도, 넉넉하게 잘 일러. 제당(諦當) 하드래도 이재심처(爾在甚處)하야 견조주(見趙州)오? 네가 어느 곳에서 조주 무(無)라고 헌 뜻을 봤냐 그 말이여. 조주 무(無)라고 하는 뜻은 그것은 삼십방을, 능히 일러도 못 본다 그 말이여. 보들 못혀.

요새 또 이르되, 이게 절목(節目) 떨어진 것이여. 요새 또 이르되, 조주(趙州)는 고불(古佛)이라. 조주는 옛 부처다. 조주가 그대로 선사(禪師)가 아니라 옛 부처여. 안광(眼光)이 삭파사천하(爍破四天下)다. 조주의 눈 광명은 사천하를 혁파한다. 사천하를 그만 눈 광명에 떨어져 버려, 사천하(四天下)가.
사천하가 보통 우리 이 지구성(地球星) 천(天)만 아니여. 사주세계(四洲世界) 천(天)이여. 동불바제(東弗婆提) · 서구다니(西瞿陀尼) · 남섬부주(南瞻部洲) · 북구로주(北俱盧洲), 사천하 천이다 그 말이여. 사천하를 혁파하는 조주(趙州) 안광(眼光)이여.

관기도개무자(觀其道箇無字)컨댄, 무(無)라고 이른 낱 그 무자의지(無字意旨)를 보건댄, 그 무자의 성명(性命)이란 건 무자의지(無字意旨)다 그 말이여. 무자의 의지가, 성명(性命)이—성명이라는 것은, 무자의 의지가 낙재본색납자수리(落在本色衲子手裏)다. 본색납자의 손 속에 떨어져 있다 그 말이여.
본색납자(本色衲子)라는 건 누구를 의미한 것인가? 본분납승(本分衲僧)은? 그 여기에 지금 의미를 갖다 헐 것 같으면은 이 여기에는 본분납승이 누구냐 하면은 조주(趙州)다 그 말이여, 조주.
조주 스님의 무(無)가 조주 스님의 뜻이거늘—조주 뜻이 딱! 무자(無字)인디, 그 무자가 조주 스님 뜻인디, 조주 스님 뜻을 본분납자의 손 속이라고 그렇게 헌 말이여. 본분납승의 수리(手裏)에 떨어져 있거늘, 조주무자의 의지는 조주 스님께 지금 딱 들어 있거늘, 그 말이여.

유일등인(有一等人)은, 요새 일등인은, 일등(一等)이란 사람은, 유일등(有一等) 일등헌 사람이 있어서는, 일등은 누구를 일등이냐 하면, 일등은 참선허는 학자를 일등이락 해야. 참선허는 학자도 활구학자를 일승이라고 한다 그 말이여. 활구학자가 아니면 일승학자 못되아.
일등인(一等人), 일등학자는 저 무자상(無字上)을 향(向)해서 토자미(討滋味)하나니, 무자에 가서 무엇이 있는 줄 알고 ‘무, 무’만 하고 있다 그 말이여. ‘무, 무’ ‘무, 무’ 무(無)가 무슨, 무가 무슨 뜻이여?

무(無)는 조주 뜻이 탁! 틀어백혀 있는데 조주 뜻을,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헌 것이 조주 뜻 찾는 것이다 그 말이여. ‘어째서 조주 스님은 무라고 했는고?’ 이렇게 의단(疑團)을 갖춰 가야 한다 그 말이여. ‘어째 무라고 했는고?’ ‘무(無), 무(無)라니?’ 여기 나와. 그렇잖아도 나오는디,

있다 없다, 무슨 유무(有無) 중이다, 무슨 비무(非無) 중이다, 그것 다 때려치워 버리고 ‘조주는 어째 무(無)라 했는고?’ 있다고도 않고, 없다고도 않고, 무슨 뭐 뭐 크다고도 않고, 적다고도 않고, "무(無)!" 했으니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이렇게 해 나가는 것이 가장 가깝다 이게여. 전부, 경허 스님, 혜월 스님, 만공 스님, 전부 한국 도인네가 이렇게 다 말씀을 했다 그 말이여. ‘어째서 무라 했는고?’
‘없다!’고 찾지 말고 ‘무(無)!’ 바로 해 나가는 것이 참으로 그 가깝게 가르킨디 제일 옳다. 조주 스님 근본 뜻을 참구해 나가는 것이 옳다. 이게 가장 영리 학자는, 영리한 일등학자는 깨닫기가 그렇게 쉽다. 그렇게 가깝다 이게여. 큰스님네 헌 말씀을 내가 들어 헌 거여.

무자(無字)를 향(向)해서 ‘무, 무’만 허고 찾고 있으니 구피변(口皮邊)이다 이게여. 입 껍데기로 찾는 것이다 이게여. '이뭣고?'도 ‘이뭣고, 이뭣고’ 입 껍데기로만 '이뭣고, 이뭣고' 해서는 안 된다 그 말이여. '이뭣고~?' ‘이-?’ 해 놓고 보니 뭐냔 말이다?

기불둔치평생(豈不鈍置平生)이냐? 어찌 평생을 둔치, 입 껍데기로만 돌라—공부헌다고 허다가서는 공연히 앉은 자리 아깝고, 참선 자리 아깝고, 좌복 아깝고, 밥 아깝고, 시주것 아깝고—그러고만 있어? 그 뭐 차라리 차라리 그 지랄병을 허지, 어디 가서 앉은뱅이 노릇을 허지, 그까짓 참선을 헐 것이여?

참말로 알 수 없는, 그 천성(千聖)도 불식(不識) 도리를 갖춰라. 석가(釋迦)도 유미회(猶未會), 석가도 오히려 알덜 못한 도리를 갖춰라. 천성이 입을 벽상(壁上)에 건 도리를 그대로 갖춰 가지고는, 알 수 없는 의단을 갖춰 나가거라. 그 의심을 갖춰 나가지 않고는 못쓸 선(禪), 못쓸 것이 되어 번지고 만다. 일등인켕이는 하등인도 안 된다.

오늘은 ‘무, 무’ 입 껍데기로만 돌아 비추는 거 그것은 안 되니 그 의단을, 어쨌든지 활구(活句)는 의심 하나뿐이니깐 의심을 갖춰라 하는 그 대문(大文)에, 평생을 네가 그르쳐 버리고 말 것이니까 한번 일등인이 되어라. 옳은 참선을 해라. 여까장. 둔치평생(鈍置平生)까장. 요 밑에 나가서 인자 '없다'고 헌 놈이 옳으냐, '무(無)' 헌 놈이 옳으냐 헌 것이 갈려져. (26분39초~53분) (끝)

Posted by 닥공닥정

 

•§•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 (1/9) 몽산화상의 무자십절목.

**전강선사(No.498)—무자십절목(1) (전무파비까지) (갑인74.05.20.새벽) (전498)

 

(1) 약 42분.

 

(2) 약 13분.


(1)------------------

원림생취연(遠林生翠煙)이요  모춘낙화풍(暮春落花風)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석비산영만(錫飛山影晩)이요  풍송수성한(風送水聲寒)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육조(六祖) 스님한테 남악회양(南岳懷讓) 선사가 와서 묻되, "도를 배우러 왔습니다. 도를 일러 주십시오"

처음, 처음 화두가 난 거여. 심마물이.. 묻는 말씀이지. "심마물(甚麽物) 임마래(恁麽來)인고?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그 말뿐이여. 다른 말씀 뭐 있나? '무슨 물건이 왔나?'
거 '송장이 왔다, 내 발이 왔다, 내 몸이 왔다' 그럴 수도 없는 거고. 그렇게 묻는 말씀도 아니고.

'네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주인공, 네가 밥 먹고 옷 입고 가고오고, 거 허는 그 주인공이 무슨 물건인고? 무슨 물건인데 이렇게 왔노?' 그렇게 물었겄단 말이여. 그렇게 물었을 거여, 그런 말씀은 없으되.

꽉 맥혔다. 그거 맥힌 것이 그거 좋은 것이여. 여지없이 맥혀 버렸다. 숨쉴 곳도 없이 꽉 맥혀 알 수가 없다 그 말이여.
부지일자(不知一字) 중묘지문(衆妙之門)이다. 거 알 수 없는 것, 참 묘한 문이여. 조금이라도 아는 것이 무엇이 생기면은 붙으면은 그만 그것은 아주 버려 버려. 아주 못쓰는 것이여.
무엇이 붙을 건가, 거가. 조금만 무슨 이치가 붙을 것 같으면은 그 도깨비 상량(商量)인디—도깨비란 놈 거, 아무 그 혼백이 그놈이 죽어 가지고는 도깨비가 되어 가지고는 어수선하니 망망량량(魍魍魎魎)해 가지고는—그 뭐 무슨 아는 지각성이 붙어서는 큰일난다 그 말이여.

꽉 맥혀서 알 수가 없다. 그 부지일자(不知一字)가 중묘지문(衆妙之門)이다. 알 수 없는 그 응, 그 한 글자, 알 수 없는 놈, 참 묘한 것이여. 꽉! 맥혀서 아무리 뭐 어디 생각을 거다 붙여 봐도 되냔 말이여? 뭘 붙일 것도 없고. 응 무슨, 뭔고 말이여? 뭣고 말이여? '이뭣고?'여 그것이.
무슨 물건인고? '물(物)' 자 붙일 것도 없고. 어디 그 물건인가? '이뭣고?'여 그저.

'이뭣고?' 그놈 가지고는 그 인자 밑천이다. 그것밖에는 밑천이 없어. 아무것도 헐 것 없고, 그밖에 헐 것 없네. 밥을 먹으나 옷을 입으나 일체처에 가나오나 대체 '이뭣고?' 알 수 없는 '이뭣고?' 하나뿐이다. 뭐 다른 것 헐 것은 도대체 없다. 그렇게 바로 들어가 버려야 되아.

8년을 허고 나니까, 아! 그만 뜻밖에 그만 '이뭣고?'가 나달아오네. 그만 바로 보인다 그 말이여 '이뭣고?'가. 낯반대기가 바로 보이여. 이놈의 낯짝이가 큰가 적은가 원, 너른가 짜룬가 알 수 없지마는 바로 봤다 그 말이여.
그만 달아 쫓아왔지. 바로 봤으면 그뿐이지, 뭐 쫓아올 건가? 허지마는 아! 바로 와서 그 큰스님한테 와서, 육조 스님한테 와서 서로 인자 탁마(琢磨)를, 옳게 깨달랐나, 그르게 깨달랐나, 아! 가서 여쭈어서 인가(印可)를 받아야 되지. 그것을 없이는 된 법이 없으니까.

아 뭔 학생들도, 대학교 학생들이라도 저 혼자 대학 해 가지고 대학 했다, 뭐 인가도 없이 대학 했다고, 그 졸업 증서도 없이 대학 했다고 하면 되나? 그 소용없는 거지. 아무 소용없는 거여. 제 혼자는 안 되는 거여.
필경 일체 학과를 제가 깨달라서 알았다 하드래도 또 인가를 받아야 하거든. '옳다!' 하는 인가가 없이는 된 법이 없으니까.

와서, 육조 스님한테 바로 와서, 바로 응 바로 왔지 무슨 뭐 조금도... 바로 와서, "제가 깨달랐습니다"

"그 깨달랐으면 일러 보아라"
"설사일물(說似一物)이라도 즉부중(卽不中)입니다. 설사 한 물건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그 물건이여? 그 어디 무슨 물건인가? '물건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그 별말이여? 원 세상에 말 치고, 그 그 말 그 무슨 뭐 뭐 야단칠 말이여?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아?"

왜 그렇게 깨달라 설사일물(說似一物)이라도 즉부중(卽不中)이니까, 맞지 않다고 허니까, 옳기는 옳다 그 말이여. 바로 인가는 했어.
바로 인가는 했는데, 그러면 그 설사일물즉부중(說似一物卽不中) 도리(道理)가 바로 깨달랐으니 그러면 그게 구경각(究竟覺)인가? 확철대오(廓徹大悟)했으니 바로 깨달랐으니 구경각인가? 그것을 한 번 어디 말을 한 번 해 봐.

그 깨닫지 못한 분상(分上), 또 깨달라도 구경각을 증(證)허지 못헌 분상의 탁마가 있고, 법담이 있고, 서로 인자 문답을 해서 아! 이렇게 다 증(證)해 가는 도리를, 바로 깨달라 가는 도리를 말하는 것이 그것이 가르키는 점차법(漸次法)이지.

확철대오를, 이치는 몰록 깨달랐다마는 '몰록 돈(頓)' 자를 놓았다마는, 이즉돈오(理卽頓悟)지마는 그밖에 왜 이치를—바로 깨달라서 인가(印可)했으면은 그만 그게 구경각이지, 깨달랐다고 한번 깨달랐으면 뿐이지, 거 가서 무슨 또 밖에 가서 무슨 증(證)이 있으며, 무슨 오증(悟證)이 있으며, 그것이 뭣이 있겄나 말이여?
그런 것을 선후를 모르면은 학자를 버리는 것이여. 학자를 죽여도 여지없이 죽이는 것이여.

'깨달랐으면 그뿐이지. 오(悟)면은, 확철대오허면은, 툭 바로 깨달랐으면은 무슨 수증(修證)이 있어? 닦아 증(證)한 것이 어디 있어? 그건 깨닫지 못한 거다. 구경각(究竟覺)이 아니다'
그렇게 그래 번지면은 그 아무라도 그저 그만 구경각 그대로 증(證)할 것인가? 왜 그럴 것 같으면 무슨 고인네들이 오후(悟後)에 수증지묘(修證之妙)가 있다고 전부 다 그래 놨지. 조주 스님이며 부처님이시며 그저 일체 다 말씀을 해 놨다 그 말이여.

"설사일물(說似一物)이라도 즉부중(卽不中)입니다"
"그러면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아? 너 도리어 닦아 증하겄냐?" 왜 환가수증을 놔 났어? 뭘라고 깨달랐으면 구경각 해 버렸는데, 왜 환가수증(還可修證)을 놔 놨어? 수증(修證)을 뭣할라고 수증을 거다 붙여놨냐 말이여? 아 이런! 기맥힐 일이지.

'확철대오해 버렸으면, 돈오(頓悟)했으면은 바로 다 깨달라 버렸는데 거가서 무슨 구경각인디, 무슨 수증이 있고, 무슨 다시 닦아 증하고, 그거 무슨 깨달랐느냐?'고.
말은 옳지. 아! 바로 확철대오해서 돈오(頓悟)해 가지고 돈수(頓修)해 버렸으면은 돈오돈수(頓悟頓修)를 그대로 해 버렸으면은 아! 뭐 뭔 수증(修證)이 무슨 소용이 있어? 증(證)할 것이 무엇이 있어? 깨달라 버렸으니 그만이지.

'그러면 스님은 그렇게 되었습니까?'
'아니다. 나는 아직 그렇게 못 되았다. 못 되았다'고.

그러면 나는 어찌 그렇게 못 되었으면 '확철대오 구경각(究竟覺)이래야 깨달른 것이지, 그다음에는 오(悟)가 아니다' '그 오(悟)가 바로 깨달라 가지고는 또 수증(修證)이 있다' 아! 있는 건 있다 하고, 없는 건 없다 하고, 그런 응 그렇게 어떻게 분석을 다—그래도 거기에 분석이 없다 하지마는, 바로 정로(正路)를 분석해 주어야 할 것 아닌가?
그래 가지고는 막 그만 고인도 그만 아! 그 육조 스님도 수증이 있다 했으니까, 그 확철대오 못 헌 큰스님, 선지식인가? 구경각을 못 이룬 분인가, 육조 스님도? 수증이 있다 했으니?

학자 분상(分上)에는 어쩔 수가 없지. 회양선사 분상에는 아직 구경각을 못했으니까 물은 게지. 아! 이것을 분단 못허겄어?
구경각일진대는 증오(證悟)가 없을 것이다 그 말이여. 그것 뭐 틀림없어. 내가 무슨 그걸 갖다가 부인허는 것 아니여.

구경각 하기 전에는 수증(修證)을, 다 오후수증(悟後修證)이 있다면은 말이여. 수증을 다 해야 할 것이지, 오(悟)도 해오(解悟)가 있고 증오(證悟)가 있다 했으니 그 증오를 바로 해야 되는 것이지, 증오도 없이 어떻게 그 언하(言下)에 무슨 대오(大悟)해 가지고는, 그 어디 대번에 증오(證悟)가 되나?
또 못헌다고 헐 거이 어디 있나? 돈오(頓悟)도 있고 돈증(頓證)도, 그 돈오돈수(頓悟頓修)도 있지. 아난이 같은 이는 가섭 할(喝)을 입고 7일 용맹정진해 가지고는 생눈깔이 빠져 번지고는 무슨 천안통을 얻어 가지고 그 돈오돈수를 증했다고 했으니, 아! 그런 분상에는 구경각(究竟覺)이지, 뭐 말할 게 있는가.

육조 스님께서도 당신은 구경각을 해 가지고 앉었지마는, 후학(後學)을 떡 볼 때에는 "네가 오(悟)는 했다마는 수증(修證)은 도리어 수증이 있나? 네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아? 가히 닦아 증(證)하겄느냐?"
대답이 "수증(修證) 없습니다" 수증이 뭐 있어? 확철대오해 버렸는디. "내가 구경각입니다" 고렇게 답했으면 안 되아. 참 기가 맥힐 소리지.

거기서 척 답이 "수증(修證)은 즉불무(卽不無)입니다. 닦아 증함은, 수증(修證)은 없지 않습니다. 오렴부득(汚染不得)입니다. 오렴(汚染)은 얻지 못합니다"
그게 바로 오(悟)여. 오렴(汚染) 얻지 못헌 것이 누진통(漏盡通)이여. 누(漏)가 다한 곳이여. 거기서 인가, 그대로 인가한 것이여. 오염즉부득(汚染卽不得)이라고 안 했드라면은 안 되아.

공안(公案)이라 하는 것은 정답, 답이 있어서 답만 척 헐 것 같으면은 옳게만 척 답하면은 그 이즉돈오(理卽頓悟)다. 이치는 몰록 일초(一超)에 직입여래지(直入如來地)다. 한 번 뛰어서 여래지(如來地)에 올라갔다 그 말이여. 이치는 그렇지마는 증(證)이라는 것이 따로 그렇게 증치 못했으면 있어야 할 것이고. 증오(證悟)까장 해 버렸으면 증처(證處)가 무슨 상관이 없어.

확철대오, 구경각, 그 그것만 가지고 말하는 것은 도저히 안 된다 그 말이여. 어디 전부가 다 언하에 대오허면은 일초에 직입여래지 했다 그 말인가? 왜 그렇게 못된 학자 분상에는 아! 그놈을 증오를 다, 다 '이 증오가 있느냐?'
이무애(理無碍) 사무애(事無碍) 사사무애(事事無碍)를 분명히 다 해 주어야 하지, 대번에 이무애가 그만 되면 사무애 사사무애 막 되어 버려. 그렇게 해서는 안되아. '나도 그렇게 못 되었다'고. 말도 아닌 소리여, 그 말이. 내가 그런 말 들었구만, 어디서.
내가 누가 그랬다 어쨌다 소리는 평생에 나는 허는 사람이 아니니까, 누가 뭔 개인을 내가 무슨 비평하고 비방하고 나는 그런 성격은 아니니까, 법(法)만 가지고 얘기했지.

부처님이 터억, 그 설법해 논 부처님—우협탄생(右脇誕生)허셔 가지고는 일수지천(一手指天)허고 일수지지(一手指地)허고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 해 놨는데, 아! (천)삼백 년 후에 그 애손(愛孫) 운문(雲門)이 나와서 '내가 당시에 있었으면 일방타살(一棒打殺)이다'
그런 법은 얘기허야지. 그게 무슨 부처님을 비방한 것인가? '일방타살을 헐 것이다' 그게 그게 이즉돈오(理卽頓悟) 도리(道理)여. 이치를 바로 깨달아 척사현정(斥邪顯正) 대의라고 했으니까.

그 부처, 부처니 조사니, 마음이니 성품이니, 유(有)니 무(無)니, 뭐 비법(非法) 비비법(非非法)이니, 뭐 그러헌 명상(名相)을 때려 친 것이다 그 말이여. 어디 법에 가서 말도 법이지, 말이라 하니 법이지, 법을 어디 보고 붙일 것이 있나? 법법법무법[法本法無法] 무법법 뭔 법[無法法亦法]이라, 모도 그 고불고제(古佛高弟)들 모도 그, 그 게송 모도 전해서 내려온 것 있지 않어?
그 가불 가상 모양 뭐이, 명상(名相) 때려쳐 버리는 뭐이, 명상을 여의고 일러라. 모도 고인네 그랬다 그 말이여. 혜월 스님도 가기만 가면은 "너 명상 여의고 일러라" 그 "명상(名相) 여의고 일러라" 한 데는 뭐라고 일러야 할까? 이름과 상(相) 여의고 이르라고 했으니.

천하에 쉬운 답이다 그 말이여. 문답이라는 건 그렇게 나와 버려야 허는 것이지, 서(西)를 물은데 동(東)을 답하고—서를 물으면 서쪽을 답해야지, 서쪽을 물은디 동을 답혀? 동쪽을 물은디 서를 답혀? 동문서답을 혀? 그것 소용없는 거여.
백 답 천 답을 했자 공안(公案) 답이라는 것은 그 그대로 딱딱 맞아. 이(理)와 사(事)가 둘인가? 사(事)도 똑같지. 밥을 물으면 밥을 답해야지, 밥을 물으면 반찬을 답하면 되아? 반찬은 반찬이고 밥은 밥이지.

'너, 명상(名相) 여의고 일러라'
이름과 상(相)을 여의고, 말도 모도 이름인데 입 딸싹도 말고 한마디 일러야 할 턴디 뭐라고 일러? 명(名) 이름, 상(相) 그러면 뭐 양구(良久)를 이를 것인가? 뭐라고 이를 건가?


내가 혜봉 스님한테를 척 가서, 처음에 가서, "무자(無字) 반(半)만 일러 주십시오"
가니까, 거 견성해 가지고 견성허신 뒨디, 패철을 하나 차고는 풍수 짓을.. 풍수 노릇을 혀. 산에 가 묘자리나 잡아 주고 그려. 그러다가 오셨는디 집에 들어오셨는디 그 물으니까, 그 어른이라 해서.
뭐 풍수 뭐 풍수를 허셨거나, 무슨 뭐 무슨 짓을 했거나, 뭐 내가 혜봉 스님, 도인 그저 큰스님으로만 알고 찾아갔지, 뭐 풍수를 보고 내가 무슨 뭐 그거 갔는가?

"무자의지(無字意旨) 반(半)만 일러주십시오"
대번 그저 턱 날 쳐다보시더니 "무(無)!" 그러시더군.

"반(半) 안 됩니다. 반은 못 됩니다. 제가 반을 물었는디 반을 못 이르셨습니다" 아! 이랬다 그 말이여, 주전 없이. 거 감히 그런 큰스님네한테 가서 주제넘는, 주제넘는 짓 아닌가? '옳게 일렀습니다, 못 일렀습니다' 인가 하듯기 그려? 하! 그것 참. 그때 그래도 그랬다 그 말이여.

대번 그 말씀에 뭐라고 묻는고 하니, "고인(古人)이 답허되 고인이 말씀을 허되, 거년(去年) 가난은 시가난이여. 거년 가난은 참 가난해서 무입추지지(無立錐之地)일러니, 송곳 꽂을 땅이 없었더니, 금년 가난은 시가난이여. 금년 가난은 참으로 가난해서 추야무(錐也無)다. 송곳도 없다. 거년 가난은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 가난은 송곳도 없다. 그렇게 했으니 그렇게 이르니, 또 큰스님이 한 분이 점검을 허시되 그 도리를 점검하시되, '여래선(如來禪)밖에 안된다. 조사선(祖師禪)은 못 된다' 그랬으니 어떻게 했으면은 수좌는 조사선(祖師禪)을 이르겄는고?" 그래 묻는다 그말이여.
그래, "능각첨첨불사타(菱角尖尖不似他)입니다" 아주 쾌활하게 일렀지. 내 딴에는 아주 뭐 참, 거침없이 일렀지. 주제 없이 이른 것이여. 퍽 일렀지. 조금도 의심헐 것도 없고. 그래 일렀다.

그때 “아니다” 아! 이렇게 말씀만 했드라면은 내가 거기서 참 무척 다시 참, "참 잘못했습니다" 거기서 한번 그 근본참회를 내가 하고서는, 다시 화두를 그 스님한테 타 가지고는 내가 공부를 했을는지도 몰라.
아! 그런디 그때는 알 수가 없지. 제 지견에 북받쳐서, 아니라 해도 곧이도 안 듣고 '당신은 뭣이요' 허고 도망갈란지도 모르지마는, 그래도 아니라고 해 줘야지, 학자를 아니라고 해 줘야 하는 것이지, 그냥 내비두면 안 되거든.

아무 말씀이 없다 그 말이여. 그 어른이 성격이 뭐 '아니다. 기다' 소리 그렇게 허는 법도 없고 그저, 그런갑등구만 내가 잠깐 보아도. 아무 말씀이 없어.
나는 '옳다' 하고, 참 '옳게 일렀다' 하고 그러고 왔지. '아무 말씀도 없으니 아주 인가해 주셨다'고 그러고 왔지. 그러고 대구(大口)를 벌리고는 왔다 그 말이여.

그 다음에, 내가 몇 해나 되었는고 모르지. 그 다음에 크게 참회를 했어, 나 혼자. 천하에 도무지 첨첨불사타(尖尖不似他)라? 그것 참! 천하에 큰 대죄를 퍼 짓고 무간업(無間業)을 지었다 그 말이여. 그 그 따위 답을 해놓고서는 '옳다'고 했다 그 말이여.
그러니 "무자(無字) 반(半)만 일러주십시오" "무(無)!" 허니께 "아! 그 반(半)이 될 리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한 것이 건방지다 그 말이여. 아주 건방진 것이여. 천하에 못쓸 건방진 물건이다 그 말이여. 첨첨불사타라는 것이.

아 내가 그 옳게만 했드라면 머냐 문답은 무척 참 잘 물었지? 허지마는 잘 물은 것도 크게 건방진, 그건 무간아비지옥을 지은 죄업이여.
거 평생 그 죄가 가슴속에서.. 만약 그 뒤에 다시 보지 못했드라면 어쩔 뻔했느냐 이거여. 내가 만약에 그래 가지고서는 만약 학자를 제접(提接)헌다면은 천하 학자를 다 눈멀렸을 터이니, 눈멀릴 터니 어쩔 것이냐 그 말이여. 내 이 법상(法床)에 올라오면은 이것을 지금 늘 말하는 것이여.

그때에 "여래선 밖에는 안되니 어떻게 했으면 조사선을 이르겄느냐?" 그때 답이 나와야 한다. 그 답이라는 것은 백천만 답을 다 붙였자 소용없는 것이여. 똑 답 하나가 있는데 그것을 뭐 벌써 그 어른은 그걸 알고 묻는 것이고, 암말도 안 할 때는 '흥! 네가 아무때라도 한번 돌이켜볼 때가 있으리라' 거까장 지음을 허셨을런지도 모르지. 내가 그때 그러고는 못 뵈었으니까.
그 어른이 살아 계신다면은 내가 쫓아가서 당장 이를 텐디, 돌아가셨다 그 말이여. 석왕산 내원 가서 돌아가셔서, 못했다 그 말이여.

그 인제 공부를 해 가지고는 공안을 깨달라 가지고 보아! 그곳이 공안을 깨달았으니, 이것이 이즉돈오냐? 뭐여? 사비돈제! 이즉돈오 사비돈제, 이즉돈오(理卽頓悟)나 사비돈제(事非頓除)인가? 사사돈오 구경각까장 다 돈오(頓悟)했는가 증험을 해 보아. 그래사 그때 증험을 해 보아사 안다 그 말이여.

대번에 그만 그 돈오(頓悟)했다면은 무슨 놈의 확철대오를 했는디, 오(悟)여. 구경각(究竟覺)은 그려. 아니라는 거 아니여. 구경 다 증(證)해 버렸으면 깨달라 증해 버렸으면 그렇다 그 말이 역득(亦得)이다 그 말이여. 득(得) 아님이 아니여.
그러면 육조 스님 같은 어른도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아?' 했으니 그 돈오가 아닌 저 구경각이 아닌가? 보조 스님 같은 어른도 이즉돈오(理卽頓悟)나 사비돈제(事非頓除)란 말씀이 그게 돈오를 못해서 구경각을 못했는가? 또 뭐 했든지 못 한 지는 알 수 없지. 허지마는 그놈을 가지고 조옥 차제(次第)를 말씀해 논 걸 봐.

이즉돈오(理卽頓悟)나 사비돈제(事非頓除)다. 이치는 몰록 깼다마는 사상사(事象事)는 몰록 제(除)헐 수가 없다.
식빙지이전수(識氷池而全水)다마는, 얼음 못이 온전히 물이다마는 얼음이 물이다마는, 차양기이용소(借陽氣以鎔消)요. 양기(陽氣)를 가자해사 그 물을 녹이고. 그 얼음을 녹여야사 방정척개지공(方呈滌漑之功)이다. 바야흐로 척개(滌漑)의 공이 있다.
얼음이 녹지 않고 얼음으로 있으면은 무엇을 씻글 수가 있나? 일체 씻글 수도 있고, 물을 먹을 수도 있고, 밥을 지을 수.. 얼음으로 있으면 되겄나? 그러니 방정척개지공(方呈滌漑之功)이다. 아 이렇게 그 공(功)이 있다. 얼음이 온전히 물인 줄을 아는 것은 이즉돈오(理卽頓悟)헌 경계요, 얼음을 녹힌 것은 후수지(後修之) 경계여. 뒤에 보림(保任) 경계가 있고 후수 경계가 있다 그 말이여.

그러면 당신이 못했으니까 이즉돈오밖에 못했으니까 구경각이 아닌가? 아니란 말인가?
구경각을 했는지 아닌지는 몰라. 그건 말할 것 없지마는, 구경각 근본자체는 그렇다 그 말이여. 이런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이지, 그만 언하(言下)에 대오(大悟)했다고 일체 공안이 맥히지 않는다고, 일체 공안이 맥히지 않는 경계에 이르러서 확철대오라고.

일체 경계에 맥히지 않는 공안도 체중현(體中玄)도 들어갈 것 같으면은, 체중현 도리만 해도 일체 경계가 일체 공안이 모도 맥히지 않아. 어째 그렇드냐?
일체 공안이라 할 것 같으면은 뭐 뭐 천칠백 공안(千七百公案)만 일체 공안이라고 헐 것 있나? 뭐 화엄경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을 다 공안이라고 할 수 있지. 다 공안(公案) 아닌가? 어디 화엄경에 상본(上本) 화엄이 일사천하미진수품이니, 일사천하미진수(一四天下微塵數), 가는 티끌수품이니 낱낱이 그 무슨 품을 설해서 미진수품인가? 그대로 두고 화엄, 말 한마디에 다 설해 버린 건디.

그러기에 그런 것을 잘 분석해서, 그래서 잘 알아사 닦아 나가는데 독해(毒害)가 없어.
'대번 깨달을 것 같으면은, 언하에 대오해서 깨달으면은 그만 천칠백 공안이 맥힘이 없고 그게 구경각이다' 그래서는 안 되아. 그러지도 못해 가지고 그려? 허! 된 법이 있어?

가령 체중현(體中玄) · 구중현(句中玄) · 현중현(玄中玄) 허면은, 체중현이라는 것은 강사 지견이 모도 체중현인디, 강사들 모도 입으로 해석으로 전부 다 붙여서 다 알거든. 공안 모르는 거 하나 없어. 하나도 맞지 않지마는, 공안은 딱딱 답이 있어서 문답이 있어서 고 답 고대로 딱딱 붙여야 되지, 용대가리에 용 몸뚱이를 붙여야지, 용대가리에 뱀 몸뚱이를 붙이면 안 되아. 그거 안 되거든.
그 공안 문답이라는 것은 낱낱이 천칠백 공안 문답이 딱딱 붙어 있어. 아무때나 안 되거든. 손이 발이라고 해도, 손을 손이라고 해야지 발이라고 하면 되아? 발은 발이라고 해야지 손이라고 하면 되아? 손은 손 답을 하고, 발은 발 답을 하고 낱낱이 있어야 하는 것이여.

아주, 견성했다 해도 견성 후에 '그만 견성 내가 했으니 인자는 인과(因果)도 인과도 없다. 무슨 놈의 인(因)이 있냐? 생사도 없는데. 뭐 죄 지으면 받는 게 어디 있어? 죄 지었자 받을 것도 없고, 죄상도 없고' 막행막식허고, 막 그저 술 먹고, 고기 먹고, 그저 막 살생 생명허고, 도둑질허고, 남의 유부녀 간통도 허고, 막 해도 하나도 걸림이 없지. 그거 그 다 체중현이니까.

'밥 먹는 놈이나, 옷 입는 놈이나, 남의 모가지를 썰어 먹는 놈이나, 살생을 해서 막 마실 놈이나 그게 다 뭐 어디 그 명상(名相)이지, 이름과 상이니 본래 명상이 없거늘, 뭔 뭐 뭐 비유해서 말하자면은 이 안경이여 안경. 안경이 내가 들어 '안경'이라고 했지, 내가 들어서 무슨 뭐 눈에 들면 눈에 쓴다고 했지, 안경 자체에 들어가 보아라. 안경 자체에 들어가 안경 그놈이 제가 안경이라고 했나? 제가 안경인데 뭐 어디 눈에 쓴다고나 했나? 이놈이 일체 명상 다 거둔 놈이여. 일체 명상이 그대로 없는 놈이여.
허니 안경이 안경 제 자체는 안경이다, 내가 무슨 뭐 유상이다, 무상이다, 비무상이다, 비유상이다, 일체 이치 다, 뭐 다 없어. 다 없어' 일체 티끌 다 그렇다 그 말이여. 그 체중현 그렇게만 봐 버린다면은 공안이 무슨 뭐 그 어디 천칠백 공안이 따로 있을 거이 뭐 있나? 그 이(理)에 걸림이 없어.

그거 죄에도 그렇지. '무슨 죄 지었자 모가지를 베었자 썬 상이 있나? 무슨 뭐 죄가, 또 죄상이 어디가 붙어 있어? 생사도 없고' 이래가지고는 그만 일체 공안 다 알았다고 허는 수가 있어. 견성했다고 허는 수가 있어.
고런 것을 돈오라고 할 수가 없어. 그게 돈오가 아니여. 그건 체중현... 체중현도 아니여. 그놈의 건 해석선, 분석선, 생사선, 아무것도 아니여. 그러니 깨달라 가지고 오후(悟後)에도 만약에 고러헌 지견 가지고, 고러헌 발무인과(撥無因果)하고 죄를 막 때려 지어서 아비지옥고(阿鼻地獄苦)를 그저 그밖에는 없는 거여, 또. 그거 매(昧)해 버리니까 소용없거든.
그 같은 것이 어디 각(覺)인가? 각은 아니거든. 각(覺)을 바로 해사 천칠백 공안을 그대로 보제. 그대로가 있으니까.

아까 여래선(如來禪)은.. 자네가 여래선은.. '송곳도 없다니까 여래선밖에 안된다고 했으니, 조사선은 아니라고 했으니, 조사선을 일러 보소' 그 답은 꽉꽉 조사선, 조사선 답이 있어.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아, 닦아 증하겄느냐?"
"수증(修證)은 즉불무(卽不無)입니다마는 오렴즉부득(汚染卽不得)"
참 답 잘했지. 고렇게 딱딱 붙어 있어, 답이. '오렴(汚染)은 즉부득(卽不得)입니다. 수증(修證)은 있습니다' '없다'고 했으면은 절단나 버려.

보조(普照) 스님한테 또 학자가 묻되, '그 요새 공부헌 사람들이, 아 깨달랐다고 헌 사람들이 있는데 깨달랐으면은 대오(大悟)를 했으면은 사사무애 신통이 막 나서 개천개지(蓋天蓋地)도 허고, 하늘도 뚫어 버릴 수도 있고 열어 보일 수도 있고, 땅도 빠개 버릴 수도 있고, 승천(昇天)이요 하늘도 올라갈 수도 있고, 입지(入地)요 지(地) 땅에도 들어갈 수 있고, 뭐 왕반무애(往返無碍)를 갔다왔다하는 왕반무애 삼계제천(三界諸天)을 마음대로 헐 턴디, 무유일인(無有一人)도 발현신통변화(發現神通變化)오이까? 한 사람도 신통변화가 없습니까?' 이렇게 물으니까.

'에이 미친놈! 얼마나 미친놈, 이 부득경발광언(不得輕發狂言)하라. 이 미친 발광언(發狂言)을 말아라. 네가 공부를 헌다고 허는 놈이 그렇게 선후(先後)를 모르고 무슨 도를 닦은 도학자냐? 설리(說理)의 이치를 네가 말허되, 그 그렇게도 조백(糟魄)을 가리지 못하고 무슨 놈의 네가 도학자란 말이냐?'
그래 가지고 거기에 다 말씀해 놓았지. 암만 이치는 바로 깨달랐다마는 구경각을 증치 못하면은 구경각 증허드락까장 닦아라.

공안은 깨닫지 못한 게 아니여. 깨달랐지마는, 이즉돈오(理卽頓悟)다마는 아직 사상사(事象事)는 몰록 제(除)할 수가 없는, 아 그걸 분명히 설해서 돈오점수(頓悟漸修) 점수돈오, 돈오돈수 돈오돈수(頓悟頓修)는 막 깨달을 때 막 증(證)해 버리는 걸 돈오돈수라고 했지?
그렇게 다 분석해서 가르켜 놓았는데, 아! 그런 경계 하나만 가지고는—이즉돈오나 사비돈제라고 했으니, '그 견성허면은 그만 그대로가 구경각인디 또 뒤에 닦는 것이 뭐 있으면 각(覺)이 아니다. 그러니 도인이 아니다' 이래 버려서야 될 수가 있나?
허허 그것 참! 그럴 수가 없지. 혹 그런 이가 있는지 없는지는 내가 모르지마는 이치가 그렇다 그 말이여.(처음~41분29초)





(2)------------------

인자는 이 좀 반산림(半山林)이 다 되어가니까 법문을 저 『초발심자경』 같은 거 이런 것만 가지고 늘 해 나갈 수가 없어서 인자는 좀, 허나 이건 너무 당최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우리 대중이 다 알아듣지 못한다는 건 아니로되 아지 못헌 사람은 이것 참 대단히 그 경계가 그 대단히 그 진공 경계인디. 「몽산화상십절목(蒙山和尙十節目)」인디,

승(僧)이 문조주(問趙州)허되, 중이 조주께 물으되, "구자환유불성야무(狗子還有佛性也無)니까? 개가 도리어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래 물었네. 왜 해필 개만 가지고 물었나? 일체함령(一切含靈)과 준동(蠢動)이 꽉 찼건마는 왜 개만 가지고 물었어?

"개가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뭐 그거 개를 가려서 역부러 물은 게 아니여. 마침 개가 그때 있으니께 '아 저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렇게 물은 거지. 눈앞에 나타난 경계 가지고 물은 거여.

"구자불성야무(狗子佛性也無)니까?"
"무(無)!" 그랬다 말이여.

무(無)면 지나(支那)말은 중국말은 무(無)면 뿐이지, 무(無)지. 무(無)가 우리 한국말로 '없다' 그 말이지. 무(無)밖에 무슨 '없다' 그런 놈이 따로 붙어 있지 않거든?
그런게 지나(支那)에서는 중국말은 무(無), 무(無), 무(無), 유(有), 무유(無有) 뭐 그러면 그 지나 그대로가 말일 것이여.

뭐 '왔냐' 그 말허면 '낼라마(你來了嗎)' 그런다고 허디야 어쩐디야? '낼라마' '올 래(來)' 잔가 부여, 그게 '낼라마'는. '부지다오(不知道)' '모른다'고 허면 '부지다오' 원 그런다든가? '모른다'고 허면.
'부지다오' 헌게, 한문으로 '부지다오' 헌게, '아니 불(不)' 자, 아지 못헌단 말이여, '부지다오' 이렇게 된 말이니. 그 한국말, 글을 잘한 사람은 그 한문으로 가서 배우기 따문에 쉽다 하드구만.

그렇게 물은 것이지. "구자(狗子)도 불성야무(佛性也無)니까?"
조주가 "무(無)!" 했다 그 말이여. 그냥 우리나라 말로는 '없다' 그 말이여. 뭐 있다 없단 말도 없고, 뭐 '있다 없다' 그런 말헐 것이 없지. 그저 "무(無)!", 그것이 '없다'는 말이여.
'무(無)!' 했으니 어째 다른 준동함령(蠢動含靈)은 다 불성이 있다고 했는디, 부처님이 준동함령(蠢動含靈)이 개유불성(皆有佛性)이라고 안 했어? 부처님이 그렇게 말씀해 놨지.

'준동함령이 개유불성이라 했는데, 어째 조주는 없다 했는고? 개는 불성이 없다 했는고? 일체함령은 불성이 있는데, 개는 어째 불성이 없다 했는고?' 이렇게 되었지?
조주(趙州)는 인심도무(因甚道無), '조주는 무얼 인(因)해서 없다 했는고?' 요렇게 해야 한다.

'어째 없다 했는고? 일체함령은 불성이 있다 했는디 조주는 어찌 해필 개는 불성이 없다 했는고?' '어찌 없다 했는고? 어찌 없다 했는고?' 요렇게 생각하락 하네. 요렇게 요렇게 해 논 말씀이란 말이여. 틀림없지 그 말이. 어디 틀려?

약언조주선(若言趙州禪)을, 조주가 이렇게 말해 논 무자선(無字禪)을 구피변(口皮邊)으로 조고(照顧)인댄, 입 껍데기로 돌아 비출진댄, 구피변(口皮邊) 입 껍데기로만 그냥 '어째서 없다 했는고? 없다 했는고? 어찌 없다 했는고?' 이 요놈 요렇게 해야, 입 껍데기로만 이렇게 헐진대는 타일(他日)에 긱철방(喫鐵棒)하리라. 다른 날에 쇠방맹이, 쇠방맹이를 씹으리라.

그것은 '쇠방맹이를 씹는다'는 것은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못했어, 내가 나를 깨닫지 못했으니, 인자 죄만 퍼진 놈의 우리 중생이 어째 공안(公案)을 깨닫지 못했으니, 무자의지(無字意旨)는 공안인디 공안을 깨닫지 못했으니, 견성성불을 못했으니, 삼악도(三惡途)에 떨어져 아비지옥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지옥고(地獄苦)만 받으리라. 인자 이 말 아닌가?
'철방(鐵棒)을 씹는다'는 것은, 쇠방맹이 씹는 것은 지옥에 들어가면은 철퇴로 막 우서대서 삶아 죽이고, 벳겨 죽이고, 타 죽이고 모도 그런 거 아닌가?

삼세제불(三世諸佛)의 골수(骨髓)와 역대조사(歷代祖師)의 안목(眼目)을 일기(一期)에, 잠깐동안 '무(無)! 없다!' 그 말에 뒤집어 내 가지고는 그 이치를 다 내 가지고는 재이면전(在爾面前)이다. 네 낯바닥 앞에다 그대로 내논 것이다.
그게 '없다'는 말이 그만 삼세제불과 역대조사의 안목이요, 그 네 본래면목이요, 네 생사해탈 면목 그놈만 깨달으면은 지옥이니 천당이니 무엇이니 어디가 있나? 네 낯반대기에 바로 내놨느니라. 그 도리를 알덜 못허는구나 이 말이여.

성조한(性燥漢)이, 참 성품 마른 놈이, 아주 영리헌 놈이, 성이 성질이 데데헌 놈 아니여. 바로 영리한 놈이, 날카로운 놈이, 지금으로 말허면은 상근대지(上根大智)가 일견(一肩)으로 담하득거(擔荷得去)허면, 한 어깨로 척 메서 얻어 갈 것 같으면, 깨달라 갈 것 같으면, 툭 깨달라 버리면, 그걸 일견담하득거(一肩擔荷得去)라 햐.
처꺽 바로 깨달라 버리면, 산승(山僧)의 주장자(柱杖子)로도 역미긍타이재(亦未肯打爾在)하리라. 산승의 주장자는 뭔 주장자여? '산승의 주장자로도 또한 너를 즐거이 치지 못하겄다' 이래 놨네.

이 산승의 주장자라는 것이 이게 참 까닭 있는 주장자여. 이 주장자라는 것은 부처님도 면(免)치 못혀. 삼세제불도 면치 못허고, 역대조사도 면치 못혀.
이 산승의 주장자, 이것은 본분납승(本分衲僧)의 향상주장자(向上柱杖子)인디, 그놈을 어떻게 해야 부질러? 어떻게 해야 함 부질러 봐? 그놈을 한 번 일러 봐야지?

거 이르라 할 것 같으면은 잘 이르지, 나와서. 어떻게 물은 줄도 모르고 나와서 일러 대아. 허! 저 죽는 줄은 모르고 일러 댄다 그 말이여. 법상도 한 번 흔들어 메칠 것이고, 방맹이를 한 번 쓸 수도 있을 것이고, 할(喝)도 헐 것이고, 야단나는구만! 해 보면. 꼴, 꼴 볼 수 없어. 꼴 볼 수 없어. 꼴 못 봐 그거.
못허는 것이여. 그러면 아주 못 이른다 그건 아니여. 그런 법이 없어. 공안 치고 답 없는 법이 있나?

산승(山僧)의 주장자(柱杖子)라도 역미긍타이재(亦未肯打爾在)다.
산승의 주장자가 이렇게 불(佛)도 치고, 조(祖)도 치고, 냅대 갱유삼십방(更有三十棒)하니, 삼십방까장 부셔 던져 버릴 산승의 주장자다마는 그러헌 훌륭한 주장자다마는, 무자(無字)를 네가 툭 깨달라 버릴 것 같으면 네 앞에는 감히 칠 수가 없다. 너는 때릴 수가 없다.
무(無)!, '없을 무(無)' 자, '없다' 그놈 하나 지금 대찬(大讚)이여. 찬(讚)뿐인가?

또한 즐거이 너를 때릴 수가 없다. 그런 주장자다마는, 불(佛)도 치고 조(祖)도 치고 마음대로 치는 주장자다마는, 네가 툭! 무자(無字)만 깨달을 것 같으면 너한테는 방(棒) 내릴 수가 없다 그 말이여. 차도(且道)하라. 어찌 그러냐? 필경여하(畢竟如何)오? 필경 어째서 그러냐?

지자개무자(只這箇無字)는, 다만 이 낱 무자 화두라는 것은 전무파비(全無巴鼻)다. 온전히 파비가 없다. '파비(巴鼻)가 없다'는 거는 '코가 없다, 끝코가 없다' 그 말이여. 끝코라는 것은 무엇을 끝코라고 허냐 그 말이여.
다 당최 알 수가 없어, 무슨 말인지? 이건 견성해 가지고 바로 봐야 되지, 헐 수 없는 것이여. 상량(商量) 분석을 해서 해 놔 봤던들 무공능(無功能)이여. 공능이 없어. 그래 그놈을 불과 파비를 해석을 헐 것 같으면은 그만 모도 따개지고 벌어지고 파상되어 버려. 그저 파비 그대로 둘 수밖에 없지.

파비(巴鼻)라는 것은, 왜 파비를 놓았느냐 하면, 파비라는 것은 근본 종래가, 그 파비라는 것이 기중(其中) 처음에 생긴 것이 파비고, 기중 끝에까장 그놈이 생겨난 것이 갖춰진 것이 파비라는구만.
파비(巴鼻)라는 것은 그 내 코빼기를 파비라 해야. 코를 파비라 하는디, 사람의 코가 이것이 제일 최초에 생겨나고, 제일 최후에 그놈이 완성된다 그 말이여.

하나도 파비가 없다[全無巴鼻]. 끝과 처음이 없다 그 말이여. 끝과 처음, 어떤 걸 처음.. 그런 게 있다.
허지마는 유사파비(有些巴鼻)니라. 조그만한 파비가 있다.

요렇게 시방 내려가면서 십절(十節)이 있어. 요 십절을 낱낱이 분석해서 새겨서 이걸 해 나가는 이건 강문에서도 없어. 강(講)에 그거 통 새기도 않는 것이여. 어디 강문에서 자기네가 아무리 해봤다 한들 어떻게 헐 수가 있나? 뜻은 뜻대로 있는디, 못하거든.
우리 선가(禪家)에 밖에는 못하는디, 나도 이건 이 참 허기 어려운 것이여. 내가 무슨 글이 있나, 뭣이 있나? 아무것도 아니지마는 이런 걸 한 번 내가 법문을 헐라고 지금 오늘 아침에 시작했지마는.

유사파비(有些巴鼻)라. 조그만한 파비가 있다. '하나도 파비가 없다마는 파비가 있다' 그 말은 '무(無)! 없다!' 그게 아무 도무지 무슨 증(證) 부증(不證)이니, 구경각(究竟覺)이니 무슨 최초각이니 근본각이니 뭐 아무것도 헐 것 없어. 여기는 그것도 없어. 파비(巴鼻)가 조금도 없다마는 파비가 또 있느니라. 오늘 아침에 고까장. 파비가 나오지. (41분35초~54분8초) (끝)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