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2021. 10. 29. 16:37

안녕하세요. 안내 말씀드립니다.



티스토리(Tistory) 본사에서 '모바일웹'을 개선했는데, 아직은 모바일(핸드폰) 버전의 지원이 원활하지 않습니다.(법문 음성이 연결이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pc 버전은 잘되고 있으니, pc에서 적극 이용하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 몽산화상시유정상인(蒙山和尙示惟正上人) (1/3) 몽산화상이 유정상인에게 주신 말씀.

**전강선사(No.218)—몽산시 유정상인(1) (임자72.07.13.새벽) 서산오도송, 반기이파 (전218)

 

 

(1/3) 약 21분.

 

(2/3) 약 18분.

 

(3/3) 약 18분.

 


(1/3)----------------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허니  홍안진백두(紅顔盡白頭)니라
나무~아미타불~
인간백년사(人間百年事)야  부유일생사(蜉蝣一生事)니라
나무~아미타불~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냐? 이 또 광음(光陰) 하루하루 오늘이다. 하룻밤 자면 오늘인디, 오늘 하루가 와서 그 밤 닥쳐온 것이 설찬히 하루가.. 하루가 시간이 있는 듯 혀? 아침 때 있고 저녁 때 있고 점심 때 있고, 놀 시간이 있고, 아 그 뭐 운동 시간이 있고 그저 하루가 그 설찬헌 것 같야.
그러지마는 광음(光陰)은 밤낮 달아나 버려, 가 가버려. 조금도 머무르지 않고 가. 허! 그, 뭐 일 시간도 그놈이 머물러 주나? 그만 간다. 광음은 가는디, 어찌 인생들은 그렇게도 깨닫지를 못하냐?

홍안진백두(紅顔盡白頭)다. 홍안 시절이 그것이 백두(白頭)인디, 내가 좀 젊다고! '아직 내가 홍안(紅顔)이고 젊고, 내가 아직 무슨 뭐 백세나 살 것인디...' 요런 놈의 생각이 있다 그 말이여.
홍안(紅顔)이 백두(白頭)인 줄을 알지 못하냐? 그 말이여. 네 얼굴이 아무리 인자 참 청춘 피어난 얼굴이라고, 고것을 믿어? 홍안(紅顔)이라고? 홍안 시절에 백두(白頭)를 생각해라.

인간백년사(人間百年事)가, 인간이 설사 백년을, 그놈의 연한을 한번 따져보자. 백년이라고 해야 따져봤자, 하루 가고 하루 간 놈이 가버린 뒤에는 백년 딱 닥쳐 놓은 뒤에는 뭐 뭐 그것이 뭐 백년이란 계산할 것이 무엇이 있나?
백년 다 그놈 가버린 그날, 마지막 가버린 그날 생각해 보아라. 그 뭐 뭐 생사(生死)를 해탈(解脫) 못해 놓고 죽음을 앞두고 그저 그 생사에 처백힐 것을 앞두고, 아 그 백년을 그 끄떡끄떡 하루하루를 산들 뭣할 거냐? 그것이.

그 '아따 백년 살았으니 참 족하다' 있는가?
'좋다! 인자 아이고 어서 죽었으면 좋겄구만 안 죽는다' 이런다. 그 벌건 거짓말이여. 빨갱이 말이여 그거.

부유일생사(蜉蝣一生事)니라. 부유(蜉蝣), 그놈이 하루 살다가 죽어도 저 백년 산 것처럼, 그 하루 겨우 하루살이가 하루 살다가 죽지마는, 인간 백년이나 똑같이 '아이고 지루하다' 하루 살다가 지루허다고 죽어? 허!
꼭 같어. 인간사(人間事)라는 게 이래. 이런디 무엇에 애착해서 도(道)를 못 닦아. 왜 이렇게 시간을 허비(虛費)혀? 왜 이럭저럭 지낼까 보냐 말이여. 참 이럭저럭 지낼 수 없는 일이다.


삼세제불(三世諸佛)이 타시옥수(他是阿誰)라.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종이여, 종. 타(他)의 종인디, 타(他)의 종노릇이니 그 타(他)는 어떤 타(他)여? 부처님 상전(上典)이 타(他)인디, 그 타(他)가 어떤 타(他)냔 말이여?
누가 부처님 상전일까 보냐? 그 따질라고 허면 천하 쉽지. 그 아무때나 그 뭐, 내 마음이 부처니께 내 마음이 부처라고 할 수도 있고, 부처 스승이라고 할 수도 있고, 부처님이 상전이라고 할 수도 있고, 뭐 별 마음 다 붙일 수 있지. 그런 것이 아니여.

부처님도 타시옥수(他是阿誰)니라. 타(他)의 옥수(阿誰)니라. 그 타(他)를 바로 깨달라야지.
'그 각이, 그놈의 깨달은 각(覺)이 타(他)다' 그 각(覺)이 타(他)면 각(覺)은 어떤 것이여? 깨달라 봤나? 각(覺)이 어떻게 생긴 게 각(覺)이여?
그 뜻으로만, 귀로만 듣고 뜻으로만 세알라서 '그런 건가?' 그렇게 주각(註脚)을 내서 소용없어. 된 법 없고. 그러니 따지들 말라 그거여. 분석을 허지 말라 이게여.

타시옥수(他是阿誰)냐? 직하(直下)에 오철(悟徹)이면, 그 타(他)를 바로 봐 버리면, 그 타(他)를 바로 오철(悟徹)해 버리면—오철(悟徹)해야 되야! 오철(悟徹), 깨달라서 사무쳐라.
도득체당(道得諦當)하리라. 그만 깨달라 버릴 것 같으면은 체당(諦當)해 버려. 당해 버려. 다 되아 버려.

깨달라 번졌느니 깨달은 후에는 설사 후사(後事)가 있다한들, 깨달은 뒤에 보림(保任)이 있다한들, 안 할 수가 있나? 애기 그놈 낳아 놨으면 그걸 키워야지 안 키울 수가 있나?
그 키우기 마련인디, 행여나 '거 배가 고픈가? 아이고! 어린아가 있은게' 모도 그러드구만. 이런 데 왔다가도 '어린아를 두고 왔어요. 곧 가야겠어요' '아 지금 인자 세 살 먹은 거 있어요, 한 살 먹은 거 있어요' 모두 이렇다. 자식은 낳아 놓으면, 그 낳기가 바쁘게 길러야지. 견성(見性)해 놓으면 안 헐래야 안 헐 수가 없고, 또 안 될 수가 있나? 그것이.

데데헌 놈의 견성을 해 놓으면, '알았다'고 해 놓으면 퇴태(退怠) 않는 건 하나도 없구만. 어째 그러냐? 견성을 해 놓고 보았자 아무것도 아니거든. 무슨 능력이 있어야지. 무슨 실력이 있어야지. 생사에는 무슨 효과가 있어야지. 아프면 더 아프고 더 죽을라 한디.
또 견성했다고 아프면 참는 법이 아니고, 안 아픈 법이 아니여. 똑같이 아프고 똑같이 죽을 지경이여. 그건 뭐 그걸 가지고선 능히 참고 안 아프고 그건 상견 외도(相見外道)여. 똑같이 아프고, 똑같이 죽을 지경이고, 그런 것이여.

허되 그 확철대오(廓徹大悟)헌 오경이 있지 않나? 오경(悟境)으로, 그 깨달은 그 오경으로 증(證)혀. 증(證)만 해 버리면 확철대오헌 후 설사 아플 때 아프고 죽게 될 때 죽게 되고 그 못 견딘다 하드래도, 깨달은 도리를 증(證)해 버리면 된디, 미처 증(證)치 못하면은, 깨달라만 가지고 증(證)치 못허면은 거 안 되지. 그러기에 고인(古人) 고인이 오후사(悟後事)를 부탁했지.
'야, 견성 후에, 견성헌 뒤에 불견기사(不見其師)하면, 그 스승을 바로 찾지 못허면, 그 스승을 바른 스승을 보지 못허면 진시독약(眞是毒藥)이니라. 깨달은 것이 도리어 독약이 되고 사약이 되느니라' 그렇게 안 해 놨는가? 그렇게 차제(次第)를 다 해놓지 않았어?

아프고 죽는다고 견성 않는 건 아니여. 견성했지마는 아파서 죽게 될.. 그건 아직도 오후사(悟後事)가 다 못 되아서 그런 것이고, 깨닫지도 못허고 깨달랐다고 허는 것은 순 벌건 거짓말을 헌다 그 말이여.
거짓말, 아 왜 거짓말을 해서 그 모도 돈이나 착취하고, 그 모도 남은 모도 비방해 번지고 도무지 제 자력(自力)은 아무것도 없어 가지고는 순전히 그 남 속이는 거 착취한 것이거든. 세상에 그거 참 잘 알아야 한단 말이여. 학자가 그것을 하나 잘 살피지 못허면은 어리석은 학자여.
학자부텀은 벌써 밝은 스승을 찾는 법이고, 순서를 알아야 하는 법이고, 직하(直下)에 체당(諦當)해야 혀. 직하에 깨달른다.

이런 그 깊은 깨달른 참선법만 말을 허면은 그 마구니 들어온다. 마구니. 마구니는 무슨 마구니가 들어오냐? 그 팔식(八識) 마구니가 들어와. 잠도 꿈도 없는 그만 그놈의 지경이 들어와. 그러니깐 주의해서 들어. 꼭 도 닦는 도인(道人)의, 고놈이 코빼기 위에 붙었다가 들어온다. 틀림없다.
그 자세히 안 들으면 소용이 없거든. 반 잠듦서 공부, "법문 들었나?"
"예, 들었습니다"

"잤나?" 아 이렇게 자온 걸 보고 물어도 "안 자올랐습니다. 안 잤습니다. 다 들었습니다"
그 거짓말을 왜 하는가 싶다 그 말이여? 어찌 자옴서 들어? 자옴서 듣기는 또 듣지.
옳게 들을 리가 있나? 아 잠잔 사람이 법문을 어떻게.. 들어도 글쎄 귀에는 들었지 뭔 말인지, 허지마는 뭔 말인지 알 수가 있나? 그래 가지고 법문 들었다 햐? 거짓말이나 안 해야지.

눈을, 정녕 잠이 그렇게 오거들랑 그 우리 어릴 때 장난헐 때 다 해 봤구만. 거 저 담쟁이, 우리집에 담장 담장 풀 많이 있구만. 고 담장 그놈 끊어서 이파리 띠어 버리고 대공만 눈을 딱 찡겨. 양쪽에 딱 찡겨. 그렇게라도 허고 들어. 그러고라도 들어야지. 그거 순전히 그만 눈 감고 들어 쓸 것인가? 그렇게 들어서는 안 되는 법문이여.
내 이 법문 잘 설(說)허지 않았어. 퍽 쉽게 맞는 듯해도 무척 어려운 법문이여. 내가 안 헌 법문이여, 이거. 오 부처님은 49년 설법했는디 나는 연조가 45년이나 했어. 그러니 무슨 이렇게 오래했다 그 말이여. 참 별일이네.

인자는 법상(法床) 면헐 때가 벌써 되었지마는 아! 이거 면헐 도리가 없네. 아! 내가 헐 사람을 좀 올려 보내면 죽어도 안 할라 하지. "죽어도 못하겠습니다" 허고 안 헐라 하지. 아! 이거.
아 꼭! 일러주어야 하고, 꼭 해 주어야 하고, 가르킬 것은 이것밖에 없는데, '뭔 숨이 끊어져 죽드래도 법문은 꼭 해야겠다. 법문을 꼭 해줘야겠다' 아! 이러네. 이거 참 큰일이여. 아무리 안 할라 해도, '안 허면 어쩌나? 안 가르키면 어쩔 거냐?' 이뿐인디 어째? 내 속속들이 헌 소리여 이게.

오직 해야사 부처님께서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출세(出世)허셔 가지고는 발을 벗고, 그 발을 벗고 그래도 꼭 청해야 설법을 허시지. 신(信)이 없으면 소용이 없으니까.
듣고 싶어서, 원해서 해 줘야 되지. 듣기도 싫은디 그 해 주면 뭣혀? 그 동풍마이(東風馬耳) 격이지, 뭣혀? 하나 소용없거든.

그러니 첫째, 믿어라. 믿어야사 법문이 귀에 들어간다. 믿어야사 그놈 잠 마구니가 눈에 안 들어와.
그러니 잠 마구니가 그놈 눈에 들어올 때는 할 수 없이 눈을 감게 되니까, 고걸로 버팅개를 질러 봐. 내일 아침부텀 버팅개를 질러. 이놈 오늘 아침에는 기이 준비 안 했으니까, 버팅개를 양쪽에 딱! 찔러 놓고 요러고 앉었어. 부디 그래야 되야. 참 사실이여.

그 직하(直下)에 오철(悟徹)해서 도득체당(道得諦當)하면—그만 체당(諦當)해 버려. 도득(道得)해서, 일러서. 꼭 일러야 하거든. 꼭 활구(活句)를 척! 이르면, "옳다!"

아! 세상에 반기이파(飯器已破)여. 밥그릇은 이미 깨졌다. 아! 뭔 소리여?
"쥐가 괴(고양이)밥 먹었습니다"
"쥐가 괴(고양이)밥 먹었으면 어디 일러 봐라" 아니 아니 "맞지 않다"

어디 쥐가 괴밥 먹으면 그 될 수가 있나? 쥐가 괴밥 먹었으니 쥐도 없고, 쥐가 괴밥 먹었으니 쥐 제가 저를 잡아먹어 버렸으니, 제게로부터.. 날(나)로부터서 우주 천하가 벌어졌는디 내가 나를 집어삼켜 버렸으니, 그 나를 깨달은 거 아닌가? 오철(悟徹)인게.
나는 그 중생 나, 중생 아(我), 아집, 중생 소견, 중생 그저 그 소집, 중생의 애착, 그 중생 번뇌, 그 숭악한 나, 나 그놈이 깨버렸으니 깨달라 버렸으니 어디가 있나. 어두운 밤중이 해가 떠올라 버렸으니 낮 되아 버렸으니 뭐가 있나. 없지?

못 알아들어? 아 이렇게 해주면 못 알아들어 그 뭣혀? 그것 무슨 응.. 그 귀구녁 없는 멍청이지 그 뭐 뭣혀 그거. 멍청이라도 귀구녁이 없는 멍청이여.

아 껌껌헌 밤인데 어둠이 어디 어둠살이 어디가 그렇게 캄캄한 밤이 되아 있다가 날이 푹 올라오니, 없네. 아무것도 없어. 중생견이 중생집(衆生執)이 그만 없어져 버려.
그러니 제가 저를 깨달라 버렸으니 비유 아닌가? 제가 저를 깨달라 알아 버렸으니, 내가 내 마음 날(나)로부터서 우주만상이 일어났는데, 아 그놈 탁! 깼으니 그걸 갖다가 인자 뭐라고 할까?
인경양구탈(人境兩俱奪)로 볼 것 아닌가? 인경양구탈이라고 말로 보자. 사람도 없고 경계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가서 무엇이 있나? 무슨 찌깽이 하나 남아 있나?

거 가서 공안이 있다고 안 해, 내가? 거 가서 깨달라야 되지, 깨달지 않고 거기 처백히면은 신선 공관도.. 신선이 공관(空觀)이나 해서 그 득력이나, 그 힘이나 있으면 차라리 뭐 오통(五通)도 나.
신선만도 못혀. 고까짓 것 가지고 언어도단(言語道斷) 심행처멸(心行處滅), 그 진공! 딱 공(空)한 거, 고따구 걸 가지고는 우리 활구문중(活句門中)에 와서는 행실.. 고따구 소리로는 저 죽고 남 죽여.

고것이 도(道)여? 만날 고런 도리를 가지고는 거기 들어가서 고놈을 그려놓고 보니 그 말만 그랬지, 그 까장만 그 말만 했지, 설식기포(說食飢夫)지. 밥만 말했지, 밤낮 배고프지. 뭣혀 그거? 그 뭐 어따 쓸 거여 그거?
그 죽는 디도 못 써. 죽으면 더 그까짓 것 간데없고 똥만 더 싸네. 똥만 더 싸. 그 똥만 더 싸고 더 죽네. 더 죽을 지경 밖에 없네. 뭣 할 것인가? 거기서 무슨 놈의 정력이 났으며, 그 정력을 뭐 쓸 것인가? 어따 쓸 것인가?

우리 활구(活句)는 그게 없어. 세계에 참선법이라는 것이 모도 고런, 고런 모도 이치길, 고거 이치 아닌가? 없는 이치, 없는 놈까장도 없는 이치, 양구공.. 인공 구공 뭐 맨 요런 이치, 그것만 가지고는 입으로만 가지고 밥 말만 했지. 입으로만 가지고는 설시사오(說時似悟)지. 말할 때는 깨달은 거 같지. 그 문학, 글 잘한게 별소리 다 하지. 글 다 알았으니께.(처음~21분20초)





(2/3)----------------

보통 육조 스님 같은 어른, "아야 아야, 그.. 그 글 뜻을 모르겠다. 그 좀 글을 일러서 좀, 아니 그 뜻을 좀 말해 줘라"
"신시보리수(身是菩提樹)요 심여명경대(心如明鏡臺)요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하처야진애(何處惹塵埃)요" 그러고 아! 이놈이, 사미중이 돌아댕긴게, 아 그 벌써 몰라 물었을 것인가? 벌써 들어보니까 법문이기 따문에 물었지.

"아야 그 무슨 법문이냐? 뭔 말이냐?"
"아! 우리 신수 스님이 도를 통해서 지금 견성(見性)헌 글, 도시(道詩), 도시다 도시"

"아! 이놈의 도, 그 뜻이 어떤 뜻인고 좀 일러라"
"아! 몸뚱이가 보리(菩提) 냉기요, 몸뚱이가 견성허면은—견성(見性)이 보리(菩提)인디, 견성 보리 냉기고, 마음이 마음이 명경 밝은 명경(明鏡)! 명경이고, 거그 명경에 때 안 찌이면은 때를 다 닦아버리면은 그만 생사 면헌다 그 말, 그 법문 아니냐"고 헌께. "아! 그러냐"고.

뭐 그 벌써 듣고, 벌써 다 깨달은 양반이기 따문에 "아! 그러면 나도 하나 해보면 어쩌겄냐"고.
"헤헤 저런 것이 다 글 짓는다고 내 참 별놈의 소리 다, 어디 지어 봐"
아! 그러니까 그 터억 나온 소리여. 어디 하나나 구애(拘礙)가 있나? 그건 아무것도 없다고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고 해도 달러. 아주 달러. 그 노총각 속에서 나오는 그 법문이 달라. 강사들 보통 그 뭐, 뭐 별 제일구 제이구 부처 각, 붙인 것과 달라. 사기(私記)니 거다가 뭐 붙여야 달라.

그 그냥 그놈을 뒤집어 버렸네. 뭐 달리 말했나?

'보리(菩提)도 본무수(本無樹)요, 보리도 본래 냉기가 없고. 명경(明鏡)도 역비대(亦非臺)라, 명경도 또한 대(臺)가 없다' 아! 모두 없단 말 아닌가?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인디 하처야진애(何處惹塵埃)냐? 본래물(本來物)이 없는디 무슨 진애(塵埃)가 있겠나?' 아 이놈을 떡 내놨네. 시대가 돌아오니까, 법 받을 시대가 돌아오니까, 다 서로 알고. 모도 때가 있어.


추지임타황엽락(秋至任他黃葉落)이요  춘래의구초자청(春來依舊草自靑)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추지임타황엽락(秋至任他黃葉落)이지. 가을이 와사 단풍이 들지. 봄이 와사 꽃이 피지.
때가 없이 함부로 동(動)혀? 그 방아 다 찧고 그 고행 다 하고, 때 기달리니라고 그런 거고. 때 없이 아무때나 나와서 해 봤던들 된 법도 없고.

잘 참! 고인(古人)네 모도 해 나온 것 보면 그 법문이 그러고 말이 조리가, 그 조리가 어떠냔 말이여. 그 조리를 좀 봐. 떡 떡 떡 떡 들어맞아 딱! 이사(理事)가 다름이 없어. 동문서답(東問西答) 같지마는, 동쪽 물으면 서쪽 대답한 것 같지마는 그렇게 분명할 수가 없어.

모도 중들 법담(法談)한 것 보고, "아 그 뭔 소린고?"
"아 여하시(如何是) 부처냐?" 하면 응, 아 이런 짓이나 하고. 그 모도 그 무슨 짓이여? 천하 우습지. 허! 그것 참!
그 조리(條理)가 당최 말로 헐 수 없는 것이여. 법담같이 조리 있는 것이 없어.

"미지(未知)허니 갱도(更道)하라. 그까짓, 거 인경양구탈(人境兩俱奪), 네가 너 집어삼킨 놈의 도리, 그것 가지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다시 일러라"
"반기이파(飯器已破)입니다" 벌써 다 알고 있은께. "반기이파(飯器已破)입니다. 밥그릇은 이미 깨졌습니다"
"옳다!"

'옳다' 안 할 수가 있나? 바로 견성은 옳게 했으니까, 인자 그 사람은 견성헌 사람이 다른 것 헐 것 무엇이 있나? 뭔 다른 것 헐 것이 있어? 여지없이 투철대오(透徹大悟)를 했으니 그밖에는 헐 것이 있나?
어떻게 퇴태(退怠)를 혀? 퇴태헐 수가 있어야 퇴태허지. 도로 생사 구녁에 들어가 버려? 이놈의 생사 구녁, 이놈의 중생 생사 구녁. 허! 났다 뒈지고 났다 뒈지고 허는 놈의 구녁. 웬 놈의 고(苦)냐? 웬 생사고(生死苦)냔 말이여?
이 생사고를—몸뚱이 받어 가지고 이만큼 건강하게 사니까 퍽 즐겁지. 흥! 변시낙시고인(便是樂是苦因)이니라. 그렇게 즐겁고 좋고 건강할 때 고것이 고인(苦因)이여. 괴로운 인연이여. 지옥 갈 인연이여. 바로 떨어지는 인연이여.

홍안(紅顔)이 젊은 놈의 얼굴, 홍안이 백두(白頭)인 줄을 알아야 혀. 홍안이 백발이니, 홍안시절(紅顔時節)에 광음(光陰)을 애껴란 말이여.
젊은께 안 혀? 젊은께 좀 늦거든.. 아 뒈지거든 허지! 송장이 허지! 어리석다. 어리석지 말어라.

직하(直下)에 오철(悟徹)해서 체당(諦當)해 버리면 가이초탈분단생사(可以超脫分段生死)다.
바로 깨달라 증해 버려. 깨달라 체당(諦當)혀. 아직 증(證)은 다 못했어. 허지마는 한번 바로만 깨달라 버리면은 타락도 없고—타락헌 법이 있나?
가이초탈분단생사(可以超脫分段生死)다. 그만 생사에 뛰어 버렸다. 생사 없다. 어디가 생사 있나? 생사 없는 법이라는 것은 활구참선(活句參禪)밖에는 없어. 천하에 없는 것이 각(覺) 하나뿐이여.

우리 인생이 깨달라 버리는 법밖에 하나.. 그 법밖에 하나는 없어. 구경법(究竟法), 영원한 법, 참 법, 없단 말이여. 곧이 안 듣켜.

갱진간두(更進竿頭)에 활보(闊步)해라. 그렇게 깨달라 가지고도 갱진활보(更進闊步)를 해라. 또 한 번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진일보(進一步)를 해라. 그 후사(後事)여.
깨달라 가지고는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는 게 망념(妄念)이 홀기(忽起)어든 도불수지(都不隨之)허고, 또 인자 견성을 해도 자연 미(迷)가 있거든. 견성헌 도리가 자꾸 미(迷)가 있어.
처음 깨달랐으니 그놈 자꾸 미(迷)가 있으니까 갱진일보(更進一步)를 해라. 활보(闊步)를 다시 해라. 일체 백천 공안을 탁마(琢磨)해서 스승께 인가(印可)를 받아야 한다 그 말이여.

그 일체 도무지 공안에 맥히면 오천(悟淺)이거든. 깨달라 가지고도 천(淺)이 있어.
그 공안 가운데 조사공안(祖師公案)이 천칠백(千七百)이나 되고, 그 천칠백이니까 만칠백(萬七百)은 안되겠는가? 일체 만칠백이고, 억만칠백이고, 그 공안상(公案上)에 가서 똑같이 계교(計較)로만 "여하시(如何是) 부처냐?"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다. 마삼근(麻三斤)이다. 아재청주(我在靑州)하야 작일령포삼(作一領布衫)하니 중칠근(重七斤)이다"

맨 일단 이놈만 해 놓으면은 그대로 모도 공안 똑같은디, 뭐 뭐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일관도천(一串都穿) 할 게 있나?
낱낱이 공안이라는 것이 그 참 비밀 공안이 있어. 그렇게 바로 해 놓았지마는 바로 보았자 볼 수가 없는 공안이 있어. 불가사의(不可思議) 공안이 있다 그 말이여. 부사의(不思議) 공안(公案)이 있어. 가히 사의(思議)할 수 없는 공안이 있거든.

부사의(不思議) 공안이 판치생모(板齒生毛)여.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판치생모(板齒生毛)여. 판치에 털 나.
그러기 땀세 지금 한국에 물어 노니 입 다 딸싹 못하네. '그거 별 뜻 있는가?' 그런다는구만.
뭐 그럼 조주 스님이 뻘로 해 놨을까? 그 별 뜻이 있어서 판치생모라고 혀?

'앞 이빨 털인디, 앞 이빨 털도 모르고는 앞 이빨도 모르고는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고 헌다'고, '전강 스님은 그런다'고.
그 신문에다 냅대 때려 놨지. 말도 없구만. 한 번 저는 말이나 해, 난 세 번이나 막 때려 노니 말도 없어.

모르니께 헌 소리여. 제가 옳게 해 놓고도 모르거든. 옳게 해 놓고도 몰라 놓으니까 의심이 나 논께 꼼짝달싹 못하지. 헐 수가 있나?
허! 못허는 것은 공안이여. 공안 그놈은 바로 깨달라야지 깨닫기 전에는 헐 수가 없어.

초탈분단생사(超脫分段生死) 해 가지고도 다시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진일보(進一步)를 해라.
그 낱낱이... 뭐 하나만 해도 안 되는 법이여. 그래 여러 스승을 다 찾아간다는 거여. 차례로 모도 찾아가서 모도 그 참 법거량(法擧揚), 거량을 모도 허고 탁마를 해야 하거든.

그래 요대장부사업(了大丈夫事業)해라. 대장부(大丈夫)의 사업을 마쳐라. 우리 인생이 인생 문제를 해결해서 바로 그만 참말로 생사 없는 큰 대사가 되어라.
그 거 거 그런 법이 있어? 그런 법을 세계에 이렇게 인구가 많지마는 믿들 못허니 어리석지 않는가? 그걸 믿지 못허니 이 우(愚) 아닌가, 우치(愚癡) 아닌가? 우치에 떨어지지 안 했는가?

기가 맥혀. 아 그놈 깨달라 버려야 이거 인자 참 그 그 능생인간인데, 능히 참 사람인데. 아 이거, 이거 이거 어따가 말을 혀.

유정상좌(惟正上座)야! 이거 유정한테 시방 얘기를 해 준 말인디—그렇게 믿지 못허고 양반으로 있어 가지고 몽산(蒙山)이 중 비방만 허고, 참선허는 사람 비방만 허고 밤낮 그러다가 아! 그놈의 개새끼 될 뻔... 꼭 개새끼지, 흰옷만 입었으면 개새끼여.
아 그놈 하나, 아! 못 입게 그만 웬 그 무서운 신장(神將)인가 누구인가 때려 침서 '그 오늘 그 절에 들어가서 대승(大乘) 법문을 들었는디, 참선 설법을 들었는데 어따가 그놈을 씌울라 하느냐?'고 때려 내친 바람에 깼단 말이여. 낮 꿈을 깼어. 그 꿈꾸고 나서 그 믿었다 그 말이여.
그렇게 어리석어서 못 믿다가 언하(言下)에—그 신심도 언하(言下)에 믿기도 허고, 언하에 꽉 믿는 법도 있고, 언하에 분심 난 법도 있고, 언하에 깨닫는 법도 있고, 그래서 언하대오(言下大悟)지.

유정상좌(惟正上座)야 능오철야(能悟徹也) 미(未)야. 능히 깨달았느냐, 못 깨달았느냐? 내 이 법문에 어쨌냐? 너 깼냐, 못 깼냐?
참 기가 맥히게 발... 그 그렇게 비방하던 이도 발심(發心)을 해 놓으니, 이거 좀 봐. 어떠헌고?

부즉급의성성(否則急宜惺惺)해라. 깨달랐으면 그만이다마는 깨달지 못했으면 어서 급(急)허게 급허게 염()해라. 어서 급의(急宜) 참구해라. 급허게 참구(參究)해라.

직하(直下)에 급의성성(急宜惺惺)해야, 급허게 깨끗 깨끗이 참 참구를 해서 직하(直下)에 진실공부(眞實工夫)해라. 진실로 공부를 해라. 진실로 발심을 해라. 참 공부를 해라. 그 거짓 공부 말고.
거짓, 발심 못하고 거짓 그냥 들어와서 선방에 들어와서는 죽어도 못 지낸다. 남은 다 참선하고 앉았는디 혼자 돌아댕김서 놀라하니, 누가 아무 말은 않지만 '저녀것은 저것은 저 공부도 안 허고 삐삐 돌아댕김서 저 지랄허고 돌아댕겨'

저 살살 도피해 돌아댕기면서 께을디 께을러 가지고는, 왜 지낼 디가 없어 선방에 들어와서 고따구 짓을 허냐 그 말이여. 왜 대중 중에, 왜 도 닦는 도문(道門)에 들어와서 모범은 못 될지언정 같이 섞이기나 해서, 같이 한 뭉테기나 되어야지, 한 묶음이 되어야지, 왜 살살 왜 손그락질이나 받고, 천둥이가 되냐 그 말이여. 지극헌 천둥이여.
하나가 말혀. '저 공부도 안 허고 저거, 얘기나 허고 저거' 둘이 말혀. '저거' 그 대중에서 쏵 돌려버리는 거여, 그만 대번에.

그러니 그 짓을 왜 할까보냐 말이여. 여지없이 믿고 참구해 들어와서 한 번 해야 할 것 아니냐?
진실(眞實)로 공부(工夫)를 해라. 내려와서 여법참구(如法參究)를 허되, 꼭 법다이 이 해 나가는 법을 잘 알아 가지고, 법다이 참선 연구를 해서 이대오(以大悟)로 위입문(爲入門)이니라. 크게 깨달음으로써서 문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 도문에 들어오는 법이 이렇다. 오(悟)가 아니면 들어오는 법 없다. 크게 깨달음으로써서 도문에 바로 들어오는 법이다.(21분21초~39분8초)





(3/3)----------------

타시옥수(他是阿誰)냐? 부처가 '다른 이[他]' 종이라고 했으니, 그 타(他)는 대체 어떤 타(他)를 가르키느냐? 타(他)가 각(覺)이라고 하면 그 각(覺)은 어떤 걸 각(覺)이라 하냔 말이여? 깨달라 보아야 알지, 알 수가 있나?
회광자간(廻光自看)해라. 그 광(光)을 돌이켜서 스스로 봐라. 회광자간이 모도 있지.
회광자간(廻光自看)이라 하는 것은 일체 번뇌 망상 중에 나간 놈 마음, 돌아댕기는 놈 마음 그놈이 없어, 회광자간에는.

'이뭣고?' 허니, '뭣고?' 헐 때, 알 수 없는 놈이 거 똑 생각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눈에도 있어. 마음눈에도 있어.
알 수 없는 놈 하나가 뿡 나와. 배꼽 밑에서 폭 나와. 나오면 알 수 없는 고놈을, 알 수 없는 의(疑)를 의관(疑觀)을 해라. 의심을 봐라 그 말이여.

'이뭣고?~' 대체 '이뭣고?'
안 되드래도 도무지 혀! 뭐 아무나 얼른 되는가? 얼른 그 되아, 그렇게 쉽게?

그러니깐, 아 오직 서산(西山) 스님 같은 이도 보란 말이여. 서산 도사도 그 죽을라하다가, 과거(科擧)를 못했으니 그렇게 글 잘한 양반이. 글이 뭐 아주 도문장(都文章)인디 무슨 말할 거 있나?
남은 모도 아! 과거 시를 써 준 사람은 다 했네. 다 했는디 자기는 못해야. 그놈의 과거 복이 없으면 못하는 모양이지? 못해 놓으니깐 죽을 마음밖에 없지.

'에, 이놈의 것 살아 뭣혀? 나는 인자 죽어 버릴란다' 그 외동자식인디 외동아들인디 집에도 가지 않고 그만 죽으러 간다. 죽으러 간다는 것이 구례 화엄사를 갔다. 골짜구니.
화엄사 학인들 강론허는 걸 들으니까 그 법문이... 마침 그 논강 뭐 하는데 가서 아! 들어보니, 거 무슨 『화엄경(華嚴經)』 왕복서(往復序)가 나왔든가 원, 왕복무제(往復無際)하고 동정일원(動靜一源)이여, 천겁불고(千劫不古)허고 만세장금(萬世長今)이여.

아 이런! 그 왕복(往復)도, 갔다왔다하는 것도 쫌이 없고—어디 쫌이 있나, 역사가 있나? 갔다왔다한 게 역사가 있어, 우리가? 죽었다 살았다 하는 것도 역사가 있어? 한 번만 죽고 살았는가? 몇백 번씩이나 했는가? 동(動) 정(靜)도 일원(一源)이니, 동(動)하는 것과 정(靜)허는 것도 모두 한 소식이란 말이여.

천겁을 지내가도 항상 이 이제지, 뭐 언제 어디 여 천겁만겁 지냈다는 뭐 있나? 만겁(萬劫)도 장금(長今)이지. 만겁을 지내가도 항상 시방이 지금이지, 지금. 지금 이거 이, 이거란 말이여.

사람 낯반대기를 썼으니, 사람 눈깔 가지고 낯반대기 쓰고 왔지마는, 또 인자 소 대갈빡을 뒤집어쓰고 나올는지, 말 배때기를 말 똥구녁을 달고 나올는지, 뭐 뭐 뭐 뭣 아냔 말이여? 이렇게 만년 억만년을 지냈으나 항상 이 모냥이지, 깨닫지 못하고. 이것 참말로 거그 거그서 그만 발심(發心)을 했다 그 말이여.
'천겁 만겁을 지내가도 이 몸뚱이라는 건 죽었다 살았다 하지마는, 이 마음이란 건 죽었다 살았다 하는 법이 없이 그만 짓는 대로 죄업을 받는구나' 하는 것이 들어와 가지고는 그만 발심을 했다.

발심을 해 가지고는 생각을 해보니 과거(科擧) 못한 것이 천하 거 참! 과거를 했드라면 그놈의 과거에 온갖 과거에 불려서 평생 점잔만 빼고 권리만 하고 권불삼년이라고...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권(權) 그까짓 놈의 것 일생 헌다 한들 뭣혀?
'에헴' 하고 양반노릇하면 뭣허며, 저 혼자 부자되아 가지고 잘살다가 뒈지면 뭣하며, 꿈같은 놈의 짓을 헐라고 했던 것이 그때에 어리석은 생각이, '그 내가 과거를 했드라면 어쩔 뻔 했나. 에이고 과거(科擧) 그놈의 것 못헌 것이 내게는 천하에 제일이로구나'
집이고 뭣이고 넘의 외동아들이지마는, 늙은 부모를 생각한다면 오호 참 인간사로는 기맥히지마는 부모 생각할 겨를도 없고 우선 나를 깨달라야 되겄으니, 그만 들어가서 그 설법을 듣고는 아는 뒤에는 그렇게 글 잘 허겄다. 글 배와 뭣혀? 글이 그녀러 것이 뭣이여? 공부하란 말이지. 불향권중구(不向卷中求)지.

그만 들어가서 용맹(勇猛), 참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안 했는가? 김천 직지사 같은 데 나와서 모도 안 했어? 활구참선을 해.
그래 서산 도사 같은 이는 그렇게 글을 잘허지마는 속서(俗書)여. 그 불서(佛書)를 안 보고 속서를 많이 봤기 따문에 그렇게 글 잘하지마는 속서 그 따질 거 뭐 있나? 아무것도 따지지..
여그 강사(講師)는 여그 강사 모도 있지마는 강사들 따지지 말란 말이여. 강사들이 잘 들어야 되아. 그까짓 놈의 그 문구(文句) 내던져 버려야 돼. 하! 그저 그저 알 수 없는 무식자(無識者)가 되어 여초생(如初生)으로 무이(無異)라. 처음 난 한 댓살 먹은 어린아로 다름이 없이 해야 한다 그랬어. 그 알아듣겠지.

아! 그래 가지고 10년을 공부.. 10년을 공부했네. 10년을 활구참선을 했어. 그렇게 쉽게 뭐 하루 이틀헌 게 아니라, 그렇게 용맹정진허되 10년 했어.
10년이라도 그 뭐 얼마 참 안된 거지마는, 10년 해 가지고 그 오도송(悟道頌), 송(頌) 나온 거 다 보지. 송을 보면 다 아는 거여, 환히.

10년 공부해 그 첫 구가 뭣고? (십년단좌옹심성)
응? (십년단좌옹심성) 무슨 상자옥림수? (십년을 단좌.. ) 오!


십년단좌옹심성(十年端坐擁心城)이다  관득심림조불경(慣得深林鳥不驚)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십년단좌옹심성(十年端坐擁心城)이다. 10년을 단정히 앉아서 심성(心城)을 옹호했다. 잘 화두를 생각... 단좌(端坐)여 단좌. 단정허게 앉으란 말이여.
이렇게 앉어서는, 앉으면... 이렇게 앉던지, 허! 꾸부리고 앉어서 이거 그거이 참선인가? 그 참선허는 사람들 그 그려? 어떤 기대앉아서 삐딱허니.. 내 이놈의 짓 좀 보지. 그 단좌한 사람이 몇 된가 봐.

탁! 이 타수(卓竪)를 턱 허고 십년단좌옹심성(十年端坐擁心城)이여. 10년을 그렇게 헐 때 못할 리가 있는가? 못헌 법이 있으며? 아! 이놈 이놈인디.
이놈이 뭐 안 나오는 법이 있어? 없는 놈이래야 안 나오지, 분명히 있는데 안 나와? 금(金)도 캐는디.

단정히 앉어서 옹심성(擁心城)을 했다. 관득심림조불경(慣得深林鳥不驚)이다. 넉넉하게 깊은 수풀의 새가 놀래지 않을 만큼 되었구나. 새가 놀래지 않으니까, 새란 놈이 어디 있다가 '바싹' 허면 놀래 달아나고 이런데, 놀래지 않아.

새는 마음이다. 이 내 마음이 망상 번뇌가 안 난다 그 말이여. 화두 일념이 되아서.
10년을 해놓고 난께, 그 새란 놈 휙휙 그 새란 놈이 놀래고 허니께 단좌(端坐)! 딱 그만 일념이 되아서 화두가 뭉쳐서 망상이 다 화두한테 와서 불 타듯기, 냉기 타듯기 타버리고 화두 하나만 따악 있다 그 말이여. 그래 그건 그거 견성헌 건 아니지. 화두 일념 되았단 말이지.

그 밑에 뭐고? 하! 이거 내 다 잃어버려. 십년단좌옹심성(十年端坐擁心城)허니 관득심림조불경(慣得深林鳥不驚)이라

작야송담풍우악(昨夜松潭風雨惡)터니  어생일각학삼성(魚生一角鶴三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좋다! 참 아닌 게 아니라 깨달은 글이지. 봐라.
작야(昨夜)에 송담풍우악(松潭風雨惡)터니, 어젯밤 송담(松潭)에 풍우(風雨)가 악(惡)하더니, 풍우가 악(惡)했은게, 풍우 부니께 바람 붐서 비 온 거여. 바람 불고 비가 막 들이 떨어지더니, 아침에는 비 쏵 개 버린, 바람 다 자고 풍랑이 쏵 가라앉은 뒤에는 그 송담에 솔냉기 갓에 모도 있고 담(潭)에, 못에 솔 못에 물이 깨끗허네.

그 인자 물이 비 우후(雨後), 비 후에 빗물이 깨끗한 물이 내려와서 그 송담에 물이 그뜩 차 넘어 가지. 철렁철렁 철렁철렁 넘어간디, 어생일각(魚生一角)이요 학삼성(鶴三聲)이로구나. 괴기 한 뿔따구가 났고, 괴기 한 뿔따구 났고, 학(鶴) 세 소리다.
'학(鶴) 세 소리다' 한 것은, '학 세 소리'라는 것은 그건 그대로 격외(格外)여. 그냥 보통 격외로 보자 그 말이여. 그 안에 어생일각(魚生一角)은 어떻게 봐야 혀? 어떻게 봐야 그게 그게 될까? 고런 것을 봐야 허네.

그 학삼성(鶴三聲)은 격외(格外)로만 알아 버렸지, 격외가 뭔지 안가?
격외는 깨달은 걸 격외(格外)라 한디, 깨달은 도리를 격외(格外)인디 그 안가? 말만 '격외다' 하지, 아는가 말이여. 모르지?

그 괴기 뿔따구, 괴기 뿔따구 났느니라. 뿔따구 난 괴기가 무엇인가?
하! 한국에는 운허당이 제일가는 강사라고 헌디, 운허당한테 "아! 그 저 어생일각(魚生一角)이라는 건 그 무슨 도리입니까?" 헌게,
"그 용이, 괴기가 뿔따구가 나면 용(龍)된께 어생일각(魚生一角)인께, '그 괴기가 용 되었다'는 말인게, 중생이 성불헌단 말이라"고.
말은 좋지. "아! 그러면 저 어생이각(魚生二角)이라고 허지, 어생양각(魚生兩角)이라고 허지, 어찌 어생일각(魚生一角)이라고 썼을까요?"
못해. 말 못햐. 나 똑 사실이여. 나 그 영감하고 태원대나 허지, 못할 리 없어.

그 용이 뿔따구가 둘이든가? 저 하나든가? 그러면 용은 다 못 봤다 하지만 그림은 봤지?
용 그림 보면 용 뿔따구가 하나든가? 용 뿔따구 둘이지? 아 종성당은 해봐. 삐식 웃지 말고.

공안이란 그래서는 안 되거든? 영 무엇 맛도 없고 되들 안 혀.
어생일각(魚生一角)이야 되거든. 그거 설찬히.. 외국 놈도 와 내가 물어본 중에 한 놈도 대답 못했네. 한 놈도 뭐 어생일각에 대하여 대답 못했어. 어디 뭐 그 어디 그거 똑 판치생모, 똑 부사의(不思議) 공안(公案)만 내가 물었구만.

마조원상(馬祖圓相), 원상(圓相)이라는 거는 바로 탁! 언하(言下)에 바로 보면 되는 것인데, 그거 바로 보면 고 밑에 가서 무서운 놈이 있어서, 고놈 하나 옳게 대답하면은 인자 고 밑에 학자(學者)가 쑥 들어가니까 때리니까, 왜 "모갑(某甲)을 못 쳤습니다" 허니,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네.
고러헌 건, 법(法) 쓴 거는 생전 꿈에도 못해. 그걸 보면 참말로 그거 인자 옳게 본 것이지. 하나 가지고 소용없어.

오늘 아침 법문 마쳤어. 오늘 아침 법문 듣고 다 신심을 내서, 아주 오늘부텀은 모도 또 대중이 더 잘할 게로구만. 아무 말썽 없이 잘할 거여. 인자 내일 밖에 안 남았는데, 아 오늘 내일도 언하(言下)에도 대오(大悟)헌다고 했는데.

모레 닷샛날 모도 법보재(法寶齋) 잘 지내도록 모도 오시기를 바랍니다. 저, 아니 어딜 가시는가? 모도 오라고 허시고 다 그러고.

뭐 법보재 날 뭐 뭐 떡 허고 뭐 아무것도 없습니다. 뭐 여다 뭐 아무것도 못 채려놓습니다. 여다 그저 떡 채려놓고 밥해 놓은 놈 가지고, 나 그저 돈냥 들어온 놈 가지고 했다고 안 헙디여? 뭐 그거. 여기 여 노장님 가 봤는디 뭐.
아 그놈 갖다가, 뭐 다 갖다가 강상(江上)에 생명 살리웠는디 뭐, 영가(靈駕)가 범연히... 그 영가들, 시방 이 법보단(法寶壇) 영가들은 시방 참 복(福) 많이 받습니다. 그런 줄 아십시오. 바로 말해 버리지 뭣하게..

여다 뭐 들이 채려놓고 뭐 그런 것 꿈에도 꾸지 마시오. 인자 이 법보단, 법보전(法寶殿)은 그만 다기(茶器)물허고 향(香)불뿐입니다. 그저 법문 『금강경(金剛經)』으로, 그런 방생(放生), 육바라밀을 해서 이래 주어야 합니다.(39분11초~56분51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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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21. 10. 18. 02:39

§((466)) 좋은 경계라고 느껴지건, 안 좋은 경계라고 느껴지건 어떤 경계에도 집착하지 말고 본참공안을 향해서 정진해야. 어떠한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그것은 구경의 깨달음에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다 / 정진하는 데 몸을 단정히 갖되 힘을 주지 마라 / 화두를 안된다고 해서 바꾸지를 말아라

결혼은 '처옥자쇄(妻獄子鎖), 마누라는 감옥이고, 자식을 나면은 그 감옥의 자물쇠통이다’ / 자기가 지어 논 빚은 갚으면서 참선을 해야 / 구경각(究竟覺),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하는 그런 경지가 아니면, 중간에 체중현(體中玄) 그런 경계는 스스로 그것을 버려 버리고, 초학자(初學者)와 같은 마음으로 여법하게 자기의 본참공안을 향해서 정진을 해 나가야 한다.

병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자기가 집착하는 데에서 일어나는 것, 스스로 집착 안 하면 병이 아니여. 없었던 걸로 해 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이뭣고?’만 해 가야 / 영가 천도를 인연이 닿으면은 해 주시는 것도 좋은 일.

**송담스님(No.466)—1992년 동안거 중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92.02.02) (용466) (정진,수행)

 

 

(1) 약 20분.

 

 

(2) 약 22분.

 


(1)------------------

큰 추위는 없었던 걸로 생각이 됩니다. 겨울은 좀 춥고 여름은 덥고 그런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좋다고 모다 그렇게 생각되어 왔는데, 여기는 해변가가 되어서 해마다 겨울에는 강한 추운 바람이 불고 그래서 새벽에 모다 일어나서 세수하고 예불 젓숫고 하는데 모다 노보살님들이 감기에도 많이 걸리시고 모다 그랬었는데 그런 면에서는 겨울이 그렇게 춥지 않은 것이 좋은 점도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어피차 편안하고 자유롭고 따뜻한 가정을 떠나서 이렇게 선원에 오셔서 정진하시게 되면, 아무리 고단하고 춥고 힘이 들어도 새벽에는 일어나야 하고 또 잠자리가 편틀 못하고, 눕고 싶을 때 눕지 못하고, 먹고 싶을 때 마음대로 먹지 못하고, 여러 가지 참 불편한 점이 있는 것을 다 아시면서도 이렇게 와서 서로 다투어서 방부(房付)를 드리고 또 심지어는 인원이 차서 방부를 못 드리고 또 울고 돌아가신 분도 많이 계신 줄 알고 있습니다.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렇게 고행을 무릅쓰고 이렇게 정진할라고 하신 여러 신도님네들 또 거사님 보살님, 참 갸륵하고 그 고마움을 원장으로서는 참 가슴깊이 느끼는 바입니다.

금생에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수행을 해 놓지 아니하면—편안한 것만 취하고, 맛있는 것만 취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그럭저럭 지내다가 염라대왕 앞에 가면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을 것입니다.
힘이 들고 어렵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여러 가지로 그 어려움을 무릅쓰고 그것을 극복하면서 수행을 해 놓은 사람만이 세세생생에 또 영원토록 참다운 편안함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정진을 해 나가는 데 처음부터 흡족하게 그렇게 수월하게 그렇게 정진이 되어가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를 못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첫째는 무량겁으로부터 오면서 자기가 지어 놓은 업(業)이 있기 때문에, 그 업이 천차만별이어서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같은 방법으로 정진을 해도 육체적으로 오는 거, 정신적으로 오는 거, 그 나타나는 경계라고 할까 그런 것이 다 다른 것입니다.
능엄경(楞嚴經)에 50상(相) 변마장(辨魔障)에 보면 자기가 지은 업과 현재 정진해 나가는 데 있어서 자기의 생각들 그런 차이로 해서 여러 가지 경계(境界)가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입승(立繩) 스님이 적어 온 걸로 보면 사람 따라서 나타나는 경계가 여러 가지로 있는데, 어떠한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그것이 좋은 경계라고 느껴지건, 안 좋은 경계라고 느껴지건 그러한 경계에 집착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법회 때마다 말씀을 했지마는 그런 경계는 집착(執着)을 하면은—환한 경계가 나타난다든지, 껌껌한 이불 속에서도 환히 머리카락이 다 보일 정도로 환하다든지, 머리가 시원하고 개운함을 느낀다든지, 미래 일이 나타난다든지, 꿈속에 뭘 느꼈다든지, 꿈속에 어떤 분이 나와서 뭐라고 일러줬다든지, 사람 몸을 보면 환히 오장육부가 다 보이고 어디가 병이 들었는지 그것도 다 알 수가 있고,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전생이 어떻다는 것도 알게 되고 또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될 거다 하는 것을 알게 된다든지, 자기 몸이 풍선처럼 가벼움을 느꼈다든지, 어떠한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그것은 우리가 구경(究竟)의 깨달음에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인 것입니다.

그것에 집착하면 공부가 삐뚤어져 나가는 거고, 그런 것에 전혀 생각을 두지 말고 집착하지 말고, ‘좋다 나쁘다’ 생각을 갖지 말고 그냥 고대로 놔 둔 채 자꾸 바른 자세로 화두(話頭)를 들고, 화두를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잡드리해 나가는 사람에게는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고 아무 상관이 없지만,
‘그런 경계가 나타났으니 내가 이거 깨달음에 이르른 것이 아닌가?’ 그렇게 그것에 대해서 밤낮 생각하고 그것에 대한 집착심을 갖고, 다른 사람에게 그런 것을 자랑하고, 그래 가지고 자기가 지금 공부가 상당한 지경에 이른 것처럼 스스로 착각하고 남에게 그것을 인정받으려고 자랑을 하고 이런 것은 진실한 수행자에게는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경계가 나타나면 보통 이러한 철저한 신심과 법문을 들은 사람이 아니면, 그런 경계가 나타나면 스스로 생각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그 말이여. 하도 신기하니까.
그러나 그런 법문(法門)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런 것에 하도 신기하고 이상하고 묘하고 그러니까 관심을 가질 수가 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미 그런 법문을 수없이 들었기 때문에 그런 데에 혼탁하지 말고, 집착하지 말고.
그런 것에 집착하면 벌써 사견(邪見)에 떨어진 것이고, 공부가 삿된 대로 빠져서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점쟁이 같은 거, 이상한 모다 신기(神氣)가 있는 그러한 존재로 떨어지고 마는 것이니까 탁! 놔 버려야 하거든.


그리고 정진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몸을 단정히 갖되 몸의 어느 부분에도 힘을 주어서는 안 돼.
허리를 쭈욱 펴고 단정히 앉되 손을 이렇게 수계(手契)를 하는데, 여기도 너무 엄지손에 힘을 준다든지, 또는 엄지손과 (엄지)손이 떨어진다든지 이렇게 비틀어진다든지, (엄지)손으로 이렇게 손장난을 한다든지 그래서는 안 되고, (양 엄지손을) 대되 전혀 힘을 주지 말고 가볍게 대야 돼.

어떤 분은 힘을 꼭 줘야 화두가 잘된 것 같이 느껴진다는 그런 분도 있는데, 그러더라도 (힘을) 꽉 주지 말고 가볍게 대야 돼요. (힘을) 꽉 주면은 나중에는 몸 전체가 그리 힘이 주어지기 때문에 공부해 나가는 데 지장이 있을 수가 있으니까, 우선 힘을 주면 된 것 같이 느껴진다 하더라도 (힘을) 주지 말고 가볍게 대기만 하고.
또 눈에다가 힘을 주고—간절히 의심을 할라고 하면은 미간(眉間)에 ‘내 천(川)’ 자가 쓰여질라고 하는 그런 느낌이 드는 경우도 있는데 그래도 거기다 힘을 주어서는 안 돼.

힘을 주지 말고 또 목에도 힘을 주지 말고, 단정하면서도 어깨에도 힘을 주지 말고, 목에도 힘을 주지 말고, 또 미간에도 힘을 주지 말고. 힘을 어디다가 주었다 하면 정진해 나가는 데 장애 요소가 거기서 생길 수가 있다 그거거든.

그러면 단전(丹田)에다 힘을 준 것은 어떠냐?
단전은 숨을 들어마실 때는 약간 볼록하게 하고, 숨을 내쉴 때는 차츰차츰 홀쭉하게 하니까 거기에는 약간 힘이 들어가질 수가 있는데 그것도 너무 힘을 많이 주어서는 안 돼. 기분상으로만 가볍게 그렇게 하는 것이지, 너무 힘을 주어서는 그것도 좋은 것이 아니다. 그걸 말씀을 드리고.


그 화두를—이 화두를 하니까 잘 안되어서 저 화두를 하고,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를 했다가 ‘무자(無字)’로 했다가 또는 ‘시삼마(是甚麽) 이뭣고’를 했다 이러는데, 안된다고 해서 화두를 자꾸 바꿔 쌓으면, 새로 바꾸면은 된 것 같다가 나중에 얼마 지내면은 옛날 것이 또 생각이 나 가지고 그것을 들어보면 또 잘되고.
그래서 화두는 아무리 안되어도 한 화두를 가지고 자꾸 여법(如法)하게 단속을 해 나가면 나중에 언젠가는 된 때가 오는 것이지, 안된다고 해서 또 바꾸고, 또 해 봐서 안된다고 또 바꾸고, 자꾸 바꿔 버릇하면은 그것은 좋은 것이 아니니까 ‘여러분들 절대로 화두를 안된다고 해서 바꾸지를 말아라’ 그것을 말씀을 드리고 싶고.

이미 바꿔 가지고 현재 잘 되어간다면 그분은 그냥 그것으로 해 나가십시오. 그동안에 자꾸 바꾼 것은 대단히 잘못된 거지만, 이미 바꾼 지가 오래되어 가지고 그대로 쭉 잘 되어가면 그분은 고대로 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자기 마음대로 화두를 바꾸면 정진하다가, 쭉 해 나가다가 중요한 고비가 닥쳤을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이여.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화두를 바꾸는 것은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니니까 그것을 조심을 하시고.


공부를 하다 보면 확 트인 것처럼 시원하고 개운하고 그러한 경계가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일시적인 경계니까 ‘이것이 좋으네 나쁘네’ 그런 생각도 할 필요가 없어요.
'좋다 나쁘다' 생각하지 말고, 확 트인 것처럼 느끼거나 뭐 성성하거나 적적하거나 어떠한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그런 데에 집착하지 말고, 그런 데에 '좋냐 나쁘냐?' 자꾸 그걸 가지고 싱갱이를 하지 말고 그냥 고대로 놔 둬.

좋으면 좋은 대로, 시원하면 시원한 대로, 환하면 환한 대로, 껌껌하면 껌껌한 대로 그냥 공부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렇게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아! 사람 건강도 소화가 잘되다 안되다, 뱃속이 거북하다 설사하다가 그렇지만, 그때그때마다 그것을 어떻게 할 거냐 말이여. 그러면 '그런가 보다' 하고 놔두고 살아가는 거지, 그것이 무슨 큰 괴변(怪變)이나 일어난 것처럼 무슨 큰 일로 취급을 하지 말고, 하다 보면 그런 것도 있으려니 하고 그냥 고대로 놔두고 여법하게 정진만 주욱 해 나가면 상관이 없는 것이니까.

가끔 말씀을 드렸지마는, 어떠한 뭐 밥을 먹다가 한다든지, 차를 마시다가 한다든지, 목욕을 하다가 한다든지, 무슨 소리를 들은 찰나에 그냥 막힘이 확 트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무슨 시(詩)가 나오기도 하고, 다른 공안에 대해서 그냥 의심이 하나도 막히지를 않고 그런 것을 느끼는 수가 있습니다. 여러 해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그런데 정말 바로 깨달았는가? ‘바른 깨달음을 얻었냐, 안 얻었냐’ 하는 것은 자기 혼자로서는 결정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자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서 선지식으로부터 점검을 받아야 하는데, 그래서 선지식이 필요한 것이고 선지식으로부터 점검을 받아야지 혼자로서는 좋다 나쁘다 할 수가 없고.
또 아무한테나 물어봐 가지고 옳다고 인정을 받았다고 해서—그것도 참 정말 바른 지혜를 갖춘 선지식의 인가(印可)를 받아야지, 아무한테라도 가서 받아 가지고 자기도 깨달은 것처럼 그렇게...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닌데 공부하다가 그런 소견이 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런 경계가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인데, 구경의 경지에 이르르지 않았다면 그러한 소견도 그러한 경계도 깨끗이 놔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 점을 거듭 말씀을 드린 것은 누구나 정진하다 보면 텅 빈 경계에 들어가기도 하고, 공안에 대해서 아무 의심도 다 없어져 버리고 너무너무 머리가 개운하고 그런 경계를 맛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구경의 깨달음—구경각(究竟覺), 확철대오해서 조사(祖師)와 같은 그런 경지가 아니라면, 스스로 ‘이것이 참 깨달음이 아니다’ 한 것을 스스로 그것을 버려 버리고, 부정해 버리고 여법하게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향해서 정진을 해 나가야 합니다.(처음~18분28초)





(2)------------------

그리고 어떤 분은 항상 자기에 영가(靈駕)가 붙어 갖고 있는데, 절 문안으로만 들어오면 영가는 거기서 떨어져서 절에서는 떨어져 버리고 또 절에서 일 다 보고 그러고 나가면은 딱! 또 들어붙고 그런다는 분도 제가 알고 있습니다마는, 영가가 그렇게 붙고 떨어지고 하는 거.
또 항상 영가가 눈에 보여. 남 49재 하는 데도 가서 보면은 그 49재 하는 그 영가가 눈에 다 보인다 그 말이여. 생전시에 무슨 옷을 입고 얼굴은 어떻게 생긴 것을 환히 다 알고, 그래 갖고 재자(齋者) 보고 ‘지금 오늘 49재 지낸 분이 얼굴이 이렇게 생겼고 무슨 옷을 입고 그랬냐’ 하면, ‘그렇다’고.
그런 것이 보인 사람이 있다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그런 것은 깨달음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고, 특수한 사람에게는 영가가 보일 수도 있고 또 영가가 붙을 수도 있다고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도(道)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여.

영가라 하는 것은 내나 우리는 ‘몸뚱이가 있는 영가(靈駕)’고, 영가는 ‘몸이 없는 사람’이니까, 혹 지금 이 방에도 영가가 있을 수가 있고, 법당에도 법문할 때는 우주법계의 영가를 다 초청을 하니까 다 영가가 다 들어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마는, 우리 이 사바세계에 사는 우리 일반 사람에게는 그런 영가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그것이 정상적이죠. 보인다고 해서 좋을 것도 없고 그런데.
영가는 사람이 죽어서 49재에 딴 데로 다 자기가 지은 업에 따라서 떠날 수도 있고, 백일에 떠날 수도 있고, 소상(小祥)에 떠날 수도 있고, 대상(大祥)을 지내고 떠날 수도 있고, 소상 · 대상 다 지내고도 떠나지 않고 자기집에서 그냥 또 그렇게 영가가 머물러 있는 수도 있고, 50년 내지 100년간도 안 떠나고 그 집에서 머물러 있는 수도 있다고 그럽니다마는.

참 이 영가는 나는 내 눈으로는 아직 영가를 보지를 못했고, ‘몸뚱이 있는 영가’는 많이 보지마는 ‘몸뚱이 없는 영가’는 내 눈에는 잘 안 보여요.

그래도 본인이 영가가 자기에게 보이고 자기 몸에 항상 붙어 있고, 꿈에도 많이 나타나기도 하고 모다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하니, 그런 분은 내 생각에는 전생에 지은 업(業)에 따라서 또 금생에 와서 지은 업에 따라서 특수한 그런 체질이라고 할까, 특수한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런 영가가 보이고 나타나고 또 몸에 항상 따라다니고 하면은 본인이 아무렇지도 않으면 상관이 없는 거고, 인연이 다하면 떠나게 될 테니까 그때까지 그냥... 그런 분은 항상 계행(戒行)을 잘 지켜야 하고 심성을 착하게 곱게 써야 하고 또 백중이라든지 법보재라든지 모다 그런 때는 항상 그런 영가들을 위해서 천도(薦度)를 잘 해 줘야 하고 그렇죠.

대부분 그런 분에게 또 그런 영가가 많이 따르고 꿈에도 나타나고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이 우주법계에는 갈 곳을 찾지 못하고 그런 참 외로운 영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천도를 잘 해 주고, 또 그분한테 가까이 가야만 천도를 해 줄 수 있는 계기가 마련이 될 경우 그런 분한테 인연 있는 영가가 따른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배고픈 사람 밥을 잘 준다’고 소문이 나면은 팔도(八道)의 모다 걸인들이 그 집을 찾아가기 마련인 것입니다. 옛날부터. 그와 마찬가지로 영가 천도를 잘 해 주고 자꾸 그런 분에게는 그런 영가들이 꿈에 와서 현몽(現夢)을 대기도 하고 그래 가지고 천도 받고 싶어서 그런 것이니까 힘닿는 대로 잘 천도를 해 주신 것도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밥 없는 사람 밥을 주고, 옷 없는 사람 옷을 주고, 직장이 없는 사람 직장을 알선을 해 주고, 병든 사람을 병을 치료해 주고 그러면은 그런 사람들이 모여와서 잘 봐 달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거고. 또 영가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영가 천도를 그런 인연이 닿으면은 또 해 주시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되고.

또 어떤 분은 염라대왕이 자기를 끌고갈라고 하는 그런 것을 느낀다고 그러는데, 염라대왕이 일부러 와서 자기를 끌고 간가 어쩐가 그것은 그 사람이 그렇게 느낀다면, 끌려가기 싫어서 안 끌려간다면 그건 잘된 일이고, 그러나 언젠가는 가게 될 테니까 너무 그걸 미리서부터 걱정하실 것은 없고.
염라대왕이 끌고 갈라고 하거나, 염라대왕이 보낸 사자(使者)가 와서 끌고 갈라고 하거나, 참선한 사람은 그럴 때일수록 정신을 가다듬고 ‘이뭣고?’를 딱 챙기시면 비명(非命)에 끌려가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꼭 가게 될 인연이 되면은 조금도 두려운 생각하지 말고 ‘이뭣고?’를 하면서 갈 때 되면 가는 것이지 뭐, 이 세상에 한번 왔다가 안 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니까, 가게 될 때는 가더라도 ‘이뭣고?’ 하는 마음으로 가면 그 상관이 없다 그 말이여.


그리고 한 가지 가끔 내가 듣는 소린데, 본인은 아직 시집을 안 가고 나이가 삼십을 넘고 그래도 그냥 처녀로 부처님 불법을 믿고 이렇게 정진하면서 이렇게 살아가는데, 본인이 꼭 안 갈라 한 것은 아닐런지도 모르고 또 좋은 인연이 있으면 갈라고 하는 생각도 있을 수도 있고, 또 그냥 이대로 보살로서 정진하다가 시절이 돌아오면은 출가해서 스님이 될려고 하는 생각도 있는 분도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 생각으로 여기 선방에 와서 방부를 들이고 정진을 하고 그러는데, 자꾸 좌우에서 “시집을 안 가고 죽으면 몽달귀신이 되니까 시집을 가라”고 자꾸 권고를 하신 분이 있다 이것입니다.
시집을 가라고 권고한 것은 절대로 나쁜 마음으로 그러신 것은 아니고, 그래도 이 세상에 여자로 태어났으면 시집을 가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것이 뭐 당연한 것이고, '시집가서 남편과 해로하고 자녀도 낳고 그래야 나중에 늙으면 외롭지 않고 그럴 것이다' 그러한 생각에서, 그것도 때가 있으니까 좋은 인연 있을 때 가라고 권고한 것은 좋은 마음에서 하신 것이지 절대로 뭐 해코자해서 그러신 것은 아닐 테지마는.

억지로 팔자에 시집 갈 팔자를 타고났는데 안 가는 것도 아니고, 갈라고 하는 생각은 있어도 적당한 인연을 만나지 못해서 사주팔자가 되었건, 전생에 지은 인연이 되었건 간에 그런 인연이 닿지 않아서 안 가게 되고, 또 불법에 인연이 있어서 이렇게 불자(佛子)로서 참선을 하고, 별로 그렇게 큰 고통이나 불편이 없이 이렇게 살아가는 데 자꾸 몽달귀신으로 협박을 하면서 자꾸 가라고 그러실 것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노처녀로 있다가 계를 받고 스님이 되어서 도를 잘 닦은다면은 그것도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되고.

여러분들 다 시집가서 결혼해 가지고 이렇게 50년, 60년, 70년 이렇게 살아보셔서 ‘정말 나는 결혼을 해서 참 행복했다’고 그렇게 생각하신 분도 이 가운데는 계시겠지만, 겪어보시면 결혼 생활이라 하는 것이 아마 출가해서 도 닦은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으리라고 나는 생각이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 스님이 되라’고 내가 한 말은 아니고, 본인이 결혼 안 하고 이렇게 출가할 수 있는 사람을 몽달귀신 얘기를 해 갖고 공포심을 느껴서 가기 싫은 시집을 억지로 가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공부하러 오신 이 마당에는 공부에 관한 공부 생각만 해야지 다른 생각은 안 하신 것이 좋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고 또 공부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좋고 그러니까, 절대로 그 자꾸 '시집가라, 시집가라'—막 좀 마음을 가다듬고 정진 좀 할라고 하면은—자꾸 그 '시집가라'고 그래 쌓으면 마음이 헷갈리거든. '내가 시집을 가야 옳은가? 안 가야 옳은가?' 그 소리가 듣기 싫으니까 한철 나왔다가 안 나와 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 말이여.

혹 집안에 홀아비가 있어서 '참 저 여자하고 짝을 맞춰줬으면 참 좋겠다' 싶어서 자꾸 그러실 수도 있지 않은가 싶은데, 결혼은 참 '처옥자쇄(妻獄子鎖)' 라고, 인자 장가를 가면은 ‘마누라는 감옥이고, 자식을 나면은 그 감옥의 자물쇠통이다’ 그래서 '처옥자쇄(妻獄子鎖)'라 그러는데.
참, 결혼 생활은 여러분도 다 겪어보셨지마는 어쩔 수 없이 다 결혼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까 하긴 했지만 결혼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습니까. 육체적인 고통, 정신적인 고통,
제가 보기에는 솔직히 말해서 대단히 힘든,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라고 생각이 되고, 공부해 나가는 데에는 대보살(大菩薩)이 아니고서는 많은 지장이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지마는 자기가 지어서 받는 업(業)으로 얽혀진 것이니, 전생에 지은 빚으로 만난 것이니 그래도 어쩔 수가 없죠.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 해야 하고. 어머니로서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다 하면서 참선을 해야 하니까 굉장히 힘이 드시겠죠. 그걸 피할 수는 없습니다. 자기가 지어 논 빚이기 때문에 갚아야 되는 거고.
그놈을 갚으면서도 참선을 해야지, 참선 안 하고 그냥 거기에 빠지면은 그 업(業)으로 인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기는 어려울 테니까 그런 속에서도 열심히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시고, 정진하면서도 엄마 노릇도 해야 하고, 아내 노릇도 해야 하고, 할머니 노릇도 해야 하죠. 그런 의미에서 여러 보살님네들은 참 너무너무 갸륵하고 훌륭하고, 참 그렇다고 생각이 됩니다.


끝으로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닌—공부해 나가다가 조금 느껴지는 그런 편안함이나 맑음이나 또는 시원함—그런 소견(所見)이나 경계(境界) 그런 거,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중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경계에 ‘나도 한소식했다. 나도 깨달았다. 이것이 깨달음이 아닌가’ 하고 거기에 머물러 버리면 그 사람은 거기서 끝나는 거죠.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예를 들어서 저 지방에서 서울을 향해 가는데, 대전이나 수원이나—시골 산중에 있던 사람이 거기에 나오면은 굉장하거든, 차도 많고 높은 건물도 많고 하니까 '아 여기가 서울이구나!' 하고 주저앉은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을 향해서 가는 사람은 중간에 좀 볼만한 데가 도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서울로 착각한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로 가서 중앙청을 갈라면은 중앙청까지 딱 가서 참 대통령을 만나든지 장관을 만나든지 그래야지, 저 중간에 가 가지고 조금 높은 건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갖다가 서울이라고 착각한다면 그거 되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니면,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경지가 아니면 중간에 체중현(體中玄) 도리, 중간에 나타나는 보이는 그런 경계는 탁! 스스로 부정을 해 버리고 부인을 해 버리고 거기에 빠져서는 안 돼.
탁! 치워 버리고 언제나 초학자(初學者)와 같은 그런 심경으로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으로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만을 향해서 한결같이 정진을 다그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한 보름 남았는데, 또 이틀 후에 정월 초하루가 돌아와서 또 차례(茶禮) 행사도 있고 어수선하겠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항상 마음을 가다듬고 화두를 놓치지 알고 정진하시도록 당부를 드리고, 남은 보름 동안을 정말 알뜰하게 잘 정진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기록되지 아니하고 또 제가 말씀을 안 드린 그런 내용에 어떤 당신 나름대로 느낀 바도 있을 것이고, 물어보고자 한 그런 점을 속으로 가지고 계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마는 낱낱이 여기서 다 말씀을 드릴 수도 없고.

어떠한 경계, 어떠한 느낌, 어떠한 소견이 났다 하더라도 그것이 구경각(究竟覺)이 아닌 확철대오(廓徹大悟)한 조사(祖師)의 경지가 아니면 그냥 스스로 딱! 치워 버리면 그만이여.
없었던 걸로 탁! 놔 버리고, 깨끗한 초학자의 마음으로 화두를 단속해 나가면—조금 어디 아프다고 해서 낱낱이 병원에 쫓아다니면 별로 좋은 것이 아닙니다. 어지간한 것은 자기가 스스로 낫어야 하거든.

마을에서는 병원에 자주 간 것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런데, 그 병원이라 한 것은 물론 호미로 막아야 할 때 병원에 안 갔다가 가래로 막게 되고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마는,
이 공부는 스스로 집착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딱! 놔 버리고 화두만 들면 낱낱이 병원에 안 가도 돼어. 그것이 기다(그렇다)고 생각하고 집착하면 거기서부터 병이 생기는 것이니까, 그 요점만을 내가 말씀을 드리면 요점만을 잊지 않고 고대로 해 나가시면 어떠한 병도 스스로 고칠 수가 있는 것이여.

병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자기가 집착하는 데에서 일어나는 것이여. 심지어는 확철대오해 가지고도 ‘나는 깨달았다’ 하는 생각을 가져도 벌써 그것이 잘못인데, 깨닫지도 못한 것을 깨달은 것처럼 착각을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거든. 그러니까 그걸 스스로 집착 안 하면 병이 아니여.

뭐 사람 몸뚱이가 환히 보이거나, 내일이나 모레가 어떻게 되고, 사람을 척 보면 전생에 무엇이다 하는 것도 안다 하더라도, 집착하지 않고 그런 소견에 떨어지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면 아무 상관이 없어, 병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데.
그것을 속으로 딱 간직하고, 그걸 자꾸 써먹고, 남에게 자랑하고, 자기가 무슨 도통이나 한 것처럼 착각을 하고, 그런 데에서 병이 되고 결국은 사도(邪道)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니까, 안 떨어지려면 집착하지 않고 없었던 걸로 해 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이뭣고?’만 해 가면 그건 괜찮다 그 말이죠.

되었습니다.(18분29초~40분15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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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이뭣고 화두2021. 10. 14. 05:08

§((242)) 참선—‘이뭣고?’ 화두 드는 법 / '마음을 관(觀)한다'는 것은 참선 공부를 하는 것 / 참선법은 본성을 깨닫는 가장 훌륭하고 빠른 길 / 사도(邪道)에—무당, 점쟁이 등—빠지지 말라 / 일체 경계 바로 거기에 즉(卽)해서 화두를 들어야 / (게송)천강동일월~.

여러 가지 수행 방법 가운데에 이 참선법이 가장 빠른 길이다’고 하는 것은 보증을 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이 참선법은 바로 ‘한 생각’에 자기의 본성(本性)을 깨닫는 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미타불을 많이 불러서 죽어서 극락세계에 가는 그러한 방편법(方便法)이 아니라, 한 생각 돌이켜서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여래(如來)의 땅에 들어가는 돈오(頓悟),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길이 바로 이 참선법(參禪法)입니다. 모든 법이 다 훌륭하지만, 그 모든 법을 다 합한 것만큼 훌륭한 것이 바로 이 참선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42)—1984년 7월 첫째일요법회(84.07.01) (용242) (이뭣고화두)

 

 

(1) 약 16분.

 

 

(2) 약 18분.

 


(1)------------------

〇참선—‘이뭣고?’ 화두 드는 법.

불법을, 불교를 믿되 무당집에 다니면서 밤낮 무당 하는 소리나 듣고 또 직접 무당은 아니라도 무당에 가까운 그러한 절에 다니면서 밤낮 그러한 소리나 듣고 점이나 치고 사주나 보고, 조금 어려운 일이 있으면 금방 거기 가서 물어보고, 이러한 식으로 불법을 믿으면 종래 그러한 20년 30년을 믿어 봤자 잘되어 봤자 그 무당 정도도 안 될 것입니다.

정법(正法)을 듣고 항시 최상승(最上乘) 법문을 듣고 그러면서 그것을 실천에 옮길려고 노력을 하고, 와서 한번만 들은 게 아니라 녹음테이프를 가지고 가서 계속해서 되풀이 듣고 또 듣고 그렇게 해서 자기의 팔식(八識)에 스스로 암시를 주어서 그 제8아뢰야식(第八阿賴耶識)에 정법의 종자(種子)를 심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의 성격이 개선이 되고, 자기의 신심은 정법을 믿는 마음으로 뿌리를 깊이 박고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에서 가지가 무성하게 자라고 잎이 피고 꽃이 피면, 깨달음의 결과—보리(菩提)의 과(果)를 수확을 하게 될 것은 너무나 다행한 일이 될 것입니다.
처음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비로자나 법신불이 벌여 놓은, 비로자나 법신불—진여불성(眞如佛性)으로부터 벌어진 것이기 때문에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전부가 다 비로자나 법신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 법(法)을 터득하면 일체법(一切法)이 다 한 법으로 통하는 것입니다. 한 법을 옳게 믿고 터득을 하면 교육 문제나 또는 가정 문제나, 회사 문제나, 사회 문제나, 국가 문제나, 세계 인류 문제나 모든 것이 다 한 통속(統屬)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달마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다.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포섭한다’ 하셨습니다. ‘마음을 관(觀)한다’ 하는 것은 참선 공부를 하는 것이여.

참선을 어떻게 하느냐? ‘이뭣고?’

이 가운데에는 너무너무 잘 아시고, 참선에 대해서 잘 이해를 하시고 또 올바르게 실천을 하시는 분도 많으시지만, 절에 법회를 몇 해를 댕겼는데, “대관절 ‘이뭐꼬’라는 것이 무엇인고? 이모의 코? 이모 코가 어쨌다는 거여? 밤낮 가면 ‘이모꼬’하라고 그러는데, 이모 코가 뭣이 어쨌다는 거여. 이모 코는 어떻고 고모의 코는 어떠냐. ‘이모 코’가 좋다는데 어째서 ‘이모 코’가 도대체 무어냐?” 하고 이렇게 몇 해를 다녀도 그 말을 못 알아듣습니다.

그건 웃을 일이 아니고, 그동안에 처음 듣는 소리거든.
용화사 가면 좋다니까 오기는 왔는데 갈 때마다 ‘이모 코’만 찾으라고 하니까, 그거 참 '이모 코'가 별난 놈의 ‘이모 코’가 다 있다.

'이모 코'가 아니라, ‘이것이 무엇인고?’ 그말이거든.
‘이것이 무엇인고~?’ 그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뭣고?’거든. ‘이뭣고?’

아하! '이모의 코'가 아니라 ‘이뭣고?’다. ‘이뭣고?’는 ‘이것이 무엇인고?’ 그 말이다. 그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이것』이라는 게 무엇을 가르키는 말이냐 하면, 지금 산승(山僧)이 이렇게 말을 하는데 여러분이 그 말을 듣고 있습니다. ‘무엇이 듣고 있느냐?’ 그 말이여.
‘귀가 듣지 무엇이 들어? 귀가 없으면 못 듣고, 귀를 콱 먹어 버리면 못 들으니까 귀가 듣지, 듣기는 무엇이 들어?’

귀를 통해서 듣는 것이지, 귀가 듣는 것이 아니여.
귀를 통해서 듣는 놈이 속에 있어. ‘귀가 듣는다’ 하는 말은 맞지 않은 말이고, '귀를 통해서 듣는다' 그 말이여.

방안에서 창문을 열어 놓고 저 밖에를 보면 창문이 보는 것이 아니거든. 창문을 통해서 보는 것이고, 보는 것은 방안에 있는 사람이 보는 것이여. 이러한 비유도 엄격히 따지면은 폐단이 있는 말이지만, 편의상 이러한 비근한 예를 드는 것입니다. 귀가 듣는 것이 아니라 귀를 통해서 들어.

‘귀를 통해서 무엇이 들어?’
‘마음이 듣지’

'마음이 듣는다' 그 말이 맞는 말인데, 들은 풍월(風月)로 ‘마음, 마음’ 하지, 실지 '그 마음이 무엇인가?'를 다시 다그쳐 물으면 대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들은 풍월로 그저 어릴 때부터 ‘마음, 마음’ 그저 속상한 마음, 기쁜 마음, 슬픈 마음. 그 슬퍼할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알고 속상할 줄도 알고 하는 그게 마음의 작용인데, 지금 ‘이것이 무엇이냐?’ 하는 그 『이것』은 그 마음의 작용을 말한 것이 아니라, 그 작용을 일으키는 그 본바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일으키는 작용」을 「마음」으로 착각을 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작용이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있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작용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등한히 해서는 안됩니다. 일어나는 작용을 통해서 「마음」을 찾어야 하는 것입니다.

슬플 때, ‘무엇이 그리 슬퍼할 줄 아는 놈이 무엇이냐?’ 그 말이여.
기쁠 때도, ‘그 기뻐할 줄 아는 그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괴로울 때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강의 최초에 수원지를 볼 수 있듯이, 일어나는 모든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면, 어떻게 거슬러 올라가냐?—‘이뭣고?’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반드시 근본 본바탕 마음자리, 자성(自性) 자리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이뭣고?’를 찾어도 도무지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참선을 하면 환히 배꼽 밑에 불이 켜지고, 따악 눈을 감고 ‘이뭣고?’를 하면 온갖 것이 환히 천상도 나타나고 지옥도 나타나고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이 환히 다 나타난다고, 그래 가지고 자기는 도통을 한 것처럼 그렇게 생각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은근히 자랑을 하고 그러한 노보살님이 그 전에 있었는데, 지금은 용화사에서 하도 법문을 많이 들어서 그러한 것을 자랑하는 분은 없을 것이고,
설사 그러한 경계가 나타나도 감히 챙피해서, 그런 소리만 하면은 ‘마섭(魔攝)이 되었다. 마구니에 빠졌다’고 호통을 맞을 테니까 은근히 함부로 말은 안 하고, 비밀 은근히 뒷구녁에서 그런 것을 자랑을 해 가지고 자기를 도통한 것처럼 믿게 할려고 공작을 하는 그러한 분이 있다면, 이것은 대단히 참 가슴 아픈 일이라 할 것입니다.

찾아갈수록—‘이뭣고?’를 할수록 알 수가 없을 뿐이어야지, 무엇이 알아지거나, 무엇이 나타나거나, 무엇이 보이거나 이러면은 그건 공부가 잘못되어 간 것입니다.
어쩌다가 혹 그런 것이 슬쩍 스쳐가거나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환상(幻相)이지, 그것이 참다운 실상(實相)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그것을 부정을 해 버려야 해.
다시는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려 하지도 말고, 없앨려고 하지도 말고, 그걸 다시 나타나기를 바랄려고 하지도 말고, 그냥 그것은 귀 끝에 스쳐가는 바람처럼 생각해 버리고 다시는 관심을 거기다가 붙이지 말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이뭣고?’
‘이뭣고? 한 이놈이 뭣고?’

나중에는 ‘지금 「이뭣고?」할 때, 「이」하는 이놈이 뭣고?’ 이렇게 다그쳐 들어가서, 나중에는 그냥 ‘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약 3초 동안 정지했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더 깊어지면 ‘이뭣고?’ 소리를 아니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 독로(獨露)하면, 거기다 대고 자꾸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그렇게 덮치기로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알 수 없는 의심이 따악 있으면, 알 수 없는 의심을 묵묵히 관(觀)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알 수 없는 의심이 희미해지거나 딴생각이 들어와 버리면 그때 가서 ‘이뭣고?~’ 한번 이렇게 챙겨 주면 되는 것입니다.


〇참선법은 본성을 깨닫는 가장 훌륭하고 빠른 길.

그래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 그런 염불을 하는 사람은 '하루에 5만 독(讀)을 한다 또는 10만 독을 한다' 해 가지고, 염주가 닳아지도록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셈보살 관셈보살.... 타불 타불 타불’ ‘나무아미타불’ 하면 시간이 걸리니까, 끄터리만 따서 ‘타불 타불 타불 타불....’

‘어쨌든지 오늘 내가 10만 독씩을 매일 채워 가지고, 내가 죽기 전에 아미타불을 봐야겠다’해 가지고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염불을 하시는데, 또 염불을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하는 염불문(念佛門)도 있습니다.
염불이 나쁜 것이 아니어요. 자기가 염불을 해야겠다는 철저한 신심이 있고 또 염불을 통해서 극락세계에 갈 그러한 원력(願力)을 가지신 분, 그런 신심을 가지신 분은 또 염불도 좋은 것이지, ‘에이, 참선이 제일이고 그까짓 염불은 아무것도 아니다’ 염불하는 사람을 우습게보고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염불도 정말 올바르게 지극정성으로 하면 반드시 극락세계(極樂世界)에 가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용화사는 주로 참선법을 주로 해서 법(法)을 설하는 도량이기 때문에 염불에 대한 말씀을 아니합니다마는, 여러분은 참선을 지극정성으로 할지언정 염불에 대해서 비방을 하거나 그것을 우습게 여기거나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동안에 여기에 계신 분 가운데에는 과거에 염불도 많이 하시고, 또 관세음보살도 많이 하시고, 또는 ‘옴마니반메훔’ 같은 그런 주력(呪力)을 지극정성으로 많이 하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마는, 수행 방법에 있어서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있어서 근기(根機)에 따라서는 염불을 하시는 것이 좋을 분도 있고, ‘옴마니반메훔’을 하시는 것이 또 근기에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에 이 참선법이 가장 빠른 길이다’고 하는 것은 보증을 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이 참선법은 바로 ‘한 생각’에 자기의 본성(本性)을 깨닫는 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미타불을 많이 불러서 죽어서 극락세계에 가는 그러한 방편법(方便法)이 아니라, 한 생각 돌이켜서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여래(如來)의 땅에 들어가는 돈오(頓悟),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길이 바로 이 참선법(參禪法)입니다.
모든 법이 다 훌륭하지만, 그 모든 법을 다 합한 것만큼 훌륭한 것이 바로 이 참선법이라 하는 것입니다.(50분43초~1시간6분42초)





(2)------------------

〇사도(邪道)에—무당, 점쟁이 등—빠지지 말라.

그래서 참선법에 한번 마음을 붙이고 여기에 발을 디딘 분은 다른 데에 ‘무엇이 좋다’ 하면 그리 그냥 귀가 솔깃, ‘무엇이 좋다’ 하면 그것에 솔깃, 그래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한번 믿은 마음이 철석같아야 하거든.
태산과 같이 부동하고 바다와 같이 깊어야지, 여기서 뭐라고 하면은 그 말에 솔깃, 저기 가서 뭔 말을 들으면 그것에 솔깃, 이거 좋다 하면 이것 솔깃, 저것 좋다 하면 저것 좀 해볼까, 이것 좋다... 밤낮 갈팡질팡, 갈팡질팡, ‘법화경을 읽으면 좋다’ 그러면 그때부터서는 인제 법화경, ‘에이, 법화경보다도 금강경이 더 좋다’ 하면 금강경, ‘화엄경이 진짜 좋다’ 하면 화엄경, ‘참선이 좋다’ 하면 참선.

참선이 좋다고 해서 왔는데, 해 보니까 잠만 퍼오고 망상만 일어나고 아무 재미가 없어. ‘에이, 법화경 다시 해야겠다’
‘에이, 법화경 해 보았자 별수없고 점쟁이한테 가서 점을 치니까 환히 내 마음이 시원하게 다 가르쳐 주더라’ 이래 가지고 겉으로는 참선하는 척, 속으로는 무당을 조실스님으로 생각하고, 도대체 20년, 30년 불법을 믿으면서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 말이어.

보통 좋을 때는 부처님 믿고, 무슨 일만 났다 하면은 부리나케 무당 점쟁이한테 쫓아간다. 만약에 무당한테 가고 점쟁이가 그렇게 사람을 잘 모든 일을 다 뜻을 성취하게 하고 생사해탈하게 한다면, 우리 절에도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족집게 점쟁이를 얼마든지 갖다가 고용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 가지고 일이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그 사람들이 지내간 이야기는 썩 잘 맞춥니다. 금방 터진 명도점쟁이라던지 그게 다 지내간 얘기를 그렇게 뭐 같이 산 사람보다도 더 잘 알아맞히고 그러는데, 그 사람 말 듣고 뭔 일이 다 해결이 된다면, 그 점쟁이는 대대손손이 대통령만 해먹고 장관만 해먹고 다 박사가 되겠지만, 점쟁이 뒤끝이 별로 좋지를 못합니다. 잡신(雜神)만 그 집구석에 드글드글 끓지, 한 자식 옳게 기르지를 못합니다. 왜 그러냐?
잡신을 숭상하기 때문에 팔도의 잡신은 그 집안으로 다 모여들어서, 잡신은 굿을 하면은 그때는 조금 헤헤 하다가 며칠 지내면 도로 또 행패를 부립니다. 깡패 불러다가 이용해 먹으면, 나중에 그 깡패 등쌀에 그 집단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은 손해가는 것 같지만 정법(正法)을 믿고 한 생각 한 생각을 정념(正念)으로 다스리고, 모든 일은 정법으로써 지혜로써 잘 수습해 나가면 결과적으로 거기에서 바른 길이 열리고 올바르게 해결이 되는 것이지, 밤낮 그런 잡신을 숭상하고 그런 잡된 삿된 길에 드나들고 추종을 하면 점점점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물이 들고 나중에는 그 점쟁이 집에 들끓던 잡신이 자기집에까지 따라옵니다.

자기집에도 물을 떠놓고 빌고 대감단지를 해놓고 남편 몰래 뭐 이상한 짓을 하고 그러면 그 애가 머리가 따끔 따끔 아프던 것이 신기하게 나은 것 같고, 그러면 계속 그 짓을 해 가지고 나중에는 며느리한테 그걸 물려주고 딸 시집가는 데도 물려주고 이래 가지고는, 나중에는 딸이 느닷없이 싱숭생숭 해 가지고 곧 그냥 미칠락 말락 하면서 뜬금없는 소리를 하고 그래 가지고 점쟁이가 될라다가 말라다가 곧 발광을 하거든.
그래 가지고 참 계속해서 처음에는 몇 해거리 한번씩 굿을 하다가 나중에는 그래 갖고 안되니까 1년에 한 번씩 하다가, 나중에는 다달이 하다가 그래 가지고 집안 살림은 탕진이 되고, 그래 가지고 집안에 계속 교통사고가 일어난다, 화재가 일어난다, 약 먹고 죽는다 그래 가지고는 사람이 연거퍼 둘씩, 셋씩 막 죽는 거거든.

그러고 평생을 경험을 해 본 뒤에사 ‘아하! 이것이 나쁘구나’ 그것을 알고서 그것을 끊을려고 하면은 정말 그 '씨아시' 에다가 손가락을 넣고 견딘 것처럼 그렇게 아픈 고비를 넘겨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씨아시' 라고 하는 것을 혹 시골에 사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지금은 그 목화씨를 빼는 좋은 기계가 많지마는, 옛날에는 수동식입니다.
수동식으로 되어 가지고 꽈배기 과자 같이 나무를 만들어 가지고 두 개를 합해서 돌리면, 그래 가지고 목화(木花)를 집어넣어서 돌리면은 씨가 거기서 뚝뚝뚝 떨어지면서 솜만 저쪽으로 나오는데, 그 꽈배기같이 생긴 두 나무 돌아가는 사이에다가 목화를 넣다가 잘못해 가지고 손가락을 넣게 되면 손가락이 아주 파싹 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놈을 참고 계속 손가락을 처음부터서 집어넣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무당을 숭배하다가 그것을 그만둘라고 할 때에 그 정신적인 그리고 육체적인 고통이 바로 거기에다가 비유할 만큼 그렇게 괴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무당이나 무당 숭배하는 사람이 처음부터 그것을 할려고 해서 한 게 아니라, 한 번 두 번 답답하면 가서 물어보고 또 물어봐서 해 보니까—밥을 해 놓고 손을 비비고 갖다 찌트러 버리고, 칼로 이리저리 해 가지고 어쩌고저쩌고 하고 나면 좀 효험이 있는 것 같으니까, 한 번 두 번 하다가 그렇게 되는 거여.
마치 아편을 한 번 두 번, 정 그렇게 아플 때에 한번 맞으면 시원하니 낫고 하니까 또 맞고, 한 너댓 번만 맞으면 아편 중독이 되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정법은 믿고 해 갈수록 담담하고, 그런 삿된 길은 한두 번 해 보면 그렇게 쌈박하고 좋거든. 그러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래 끌려 들어가다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심심하다고 별맛이 없다고 버리고, 입맛을 취해서 삿된 데에 빠지고, 입맛을 취해서 음식을 취하고 그러면은 사도(邪道)에 빠지고 결국은 건강을 해치고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악도(惡道)에 떨어지는 것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 삼복이 가까워서 몹시 더운데, 이렇게 한 분도 졸으시는 분이 없이 이렇게 참 잘 듣고 계셔서 대단히 감사한데, 정말 참선 얘기를 할 때에는 이렇게까지 눈이 초롱초롱 안 하고, 무당 얘기를 하니까 그렇게 눈이 반짝거린다 그 말이예요.


〇일체 경계 바로 거기에 즉(卽)해서 화두를 들어야.

앞으로 삼복성염(三伏盛炎)이 돌아옵니다. 선방에 계신 비구 스님네 그리고 비구니 스님들, 더울 때 아무리 더위도 그 더울 때에 즉(卽)해서 알뜰히 정진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하고, 또 이 선방에 계신 보살님네들이나, 또 가정에서 공부하시는 보살님네 · 청신사 여러분, 더울 때는 그 더울 때를 향해서 더운 곳에 즉(卽)해서 화두를 들도록 노력을 하신다면 더운 줄을 모르고 한 해 여름을 지내게 될 것입니다.
서늘 바람이 날 때에는 우리의 마음속도 모든 번뇌와 망상이 다 식어 버리고 청량한 법(法)의 기쁨과 선(禪)의 즐거움을 만끽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 여름에 되게 더워야 그래야 논밭에 모든 곡식이 잘 자라고, 겨울에 되게 추워야 모든 잡충들이 다 잘 죽고 그 이듬해 또 풍년을 기약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더울 때는 더워서 못한다고 한 사람은 추울 때는 또 추워서 못하고, 젊어서 바뻐서 못한다는 사람은 늙어서 몸이 아파서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울 때는 더웁기 때문에 더움을 향해서 공부를 가다듬고, 추울 때는 그 추운 곳에 즉(卽)해서 생각을 돌이킨다면 춥고 더운 것은 바로 나로 하여금 공부를 이루게 하는 좋은 도량(道場)이 될 것입니다.

비단 더웁고 추운 것 뿐이겠습니까? 속상할 때에는 그 속상한 바로 거기에 즉(卽)해서 화두를 들고, 슬플 때는 바로 그 슬픈 곳을 즉(卽)해서 화두를 들고, 기쁠 때 괴로울 때는 바로 기쁘고 괴로울 때를 즉(卽)해서 화두를 든다면 일체처 일체시가 바로 참마음 찾는 도량이요, 바로 법신불(法身佛)과 바로 무릎을 맞대는 적광토(寂光土)로 변할 것입니다.


천강동일월(千江同一月)이요  만호진봉춘(萬戶盡逢春)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종일주홍진(終日走紅塵)타가  실각자가진(失却自家珍)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천강동일월(千江同一月)이요  만호진봉춘(萬戶盡逢春)이다.
천 개나 되는 강에 강물마다 달이 떠 있지만 그것은 한 달이더라 그 말이여. 하늘에 한 달이—달은 하나인데 그 하나의 달이 천 개의 강물에 비추어 있더라 그 말이여. 천 개의 강에 다 강마다 달이 떠 있지만 그 달은 바로 하늘에 있는 한 달이더라 그 말이죠.
만호진봉춘(萬戶盡逢春)이로구나. 집집마다 뜨락마다 개나리도 피고 진달래도 피고 백목련도 피고 집집마다 피는데, 그것이 각각 다른 봄이 아니라 한 봄이더라 그 말이죠.

하늘에는 한 달이건만 우리는 어찌 이렇게 각각 다른 얼굴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다른 상황 속에 태어났고, 어떻게 이렇게 생각이 각각 다른 생각을 가지고 이렇게 동서남북 가가호호에 태어나서 김 서방, 이 서방, 박 서방 이렇게 태어났느냐 그 말이여.
그렇게 팔도에 태어나서 각각 피도 다르고, 성도 다르고 이렇게 태어났는데, 오늘 이 시간은 사부대중이 온통 한마음이 되었습니다. 이 한마음이 된 이 공덕으로 우리는 세세생생에 한 불회상(佛會上)에서 태어나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좋은 인연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째서 종일토록 이 홍진(紅塵) 속에 줄달음질을 치면서(終日走紅塵), 자기집 보배를 망각을 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失却自家珍)

오늘부로는 바로 이 법당에서 나가는 걸음걸음이 화두를 들고 ‘이뭣고?’ 하고 자기의 자성(自性) 부처를 찾으신다면 세세생생에 다른 길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하시고 하루하루를 단속해 나가신다면 결정코 자기집에 있는 세세생생에 쓰고 또 쓰고, 쓰고 남아서 일체 중생에게 노나 줄만큼 무진장(無盡藏)한 보물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1시간6분43초~1시간24분5초) (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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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법문 듣는 법2021. 10. 11. 06:32

<핸드폰에서, 아래 법문은 위 유튜브에서 23분 5초부터 시작됩니다>

 

 

•§•(008) 법문이 딴 것이 아니라 그 화두의 대의(大意)여. 큰 의정(疑情)의 근본 뜻이여. 언하대오허는 법이여. 화두 그대로 역력허면서, 법문 대의는 그대로 낙구(落臼)라.

법문이 딴 것이 아니라 그 화두 고놈의 대의(大意)여. 큰 의정(疑情)의 근본 뜻이여. 언하(言下)에 대오(大悟) 할 수 있는 것이여. 언하에 대오를 허는 법이여.
화두 그대로 역력(歷歷)허면서, 법문 대의는 그대로 낙구(落臼)라. 그대로 척 들어오는 것이여. 헌디, 화두 독로 했다고 법문이 안 듣켜? 다 듣고도 능히 화두는 그대로 독로 헌 것이여.

**전강선사(No.008)—전강선사 일대기 제3호(경술1970년 12월 1일 새벽.음) (전008)

 

 

약 5분.

 


법문(法門) 들을 때에는 화두를 혀! 내 본참화두(本參話頭)를 혀. 본참화두를 딱! 헌 가운데에서 법문도 안 들어와. 그 지경 좋지.
법문도 귀에 안 들어온디, 내 참선은 내 화두 허느라고 법문도 안 들어온디, 거 뭐 뭐 다시 그 경계 외에 뭣을 구헐 것이여. 뭣을 바랠 것이여. 법문은 들어서 뭣 헐 것이여. 화두 의단(疑團)만 독로(獨露) 했는데.

그러면 화두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한 가운데에서 이 법문도 안 듣킨가? 법문도 통 귀에 들어오지 않고 화두 의단독로만 나오는가?

법문, 법문이 딴 것이 아니라 그 화두 고놈의 대의(大意)여. 큰 의정(疑情)의 근본 뜻이여.
언하(言下)에 대오(大悟) 할 수 있는 것이여. 언하에 대오를 허는 법이여.

참선 화두 그대로 역력(歷歷)허면서, 법문 대의는 그대로 낙구(落臼)라. 그대로 척 들어오는 것이여. 헌디, 화두 독로 했다고 법문이 안 듣켜? 다 듣고도 능히 화두는 그대로 독로 헌 것이여.

저 조인광중중(稠人廣衆中)에, 조인(稠人)이라는 것은 모지라질 조자인디, 사람이 수천 명이 꽉 콩나물처럼 섰는 디가 조인이여.
우묵허니 조인광중중에 여러 조인들이, 여러 사람들이 그저 떠들고 대고 잡화(雜話)하고 뭐 와각 와각 그런 것은 소용없어.

의단독로에 뭐가 들어와? 뭔 말, 그 같은 게 들어올 게 뭐 있어?
아무리 시끄럽게 아니라, 아무리 무슨 천지를 뒤집는다 하드래도 화두학자한테는 안 들어와.

허지마는 이런 공안 법문이 화두 역력허면서 그 법문은 그대로 낙구(落臼)가 척척 되아.
낙구(落臼)라는 것은 뭐냐? 문을 척 열면 제대로 가서 탁 맞는 것을 낙구라 하고, 방아 찧으면은 올려 놔두면 제대로 툭 떨어진 게 낙구여. ‘구(臼)에 떨어진다[落]’ 그말이여.

뭐 들을라고 해서 들어지나. 화두 헌 학자가 그대로 법문이 그만 그 제일구(第一句) 법문 턱턱 들어온 거지. 그래서 언하대오(言下大悟)여, 언하에 대오다. 말 아래 크게 깨달는다.

‘공부, 참선 화두, 화두 허니라고 언제 법문 들을 겨를이 있느냐?’ 이런 말도 들었지마는,
그렇게까장 공부를 헐 것 같으면은, 화두 허니라고 법문도 안 듣키면은 그 지경—그 화두가 그것이 그 법문도 안 듣킨다 허는 그 지경이 반 쪼가리밖에는 안되는 것이여.

화두를 들고 역력헌 가운데에 이러헌 공안(公案) 법문을 들을라고 듣는 것이 아니라 낙구가 된다 그말이여, 내 말은.

이런 말을 잘 들어! 부처님 설법을 족 설법헐 때에는 그 뭐락 했어? 뭐라고.
‘허공이 되아가지고 들을지니라. 다 비워라! 다 비워 놓아 버려라. 안 마음, 바깥 경계 툭 놓아 버려라’
뭐 놓을 것이 뭣이 있나? 처컥 귀 들고 들으면은 그 놓고, 안 놓은 게 어디 있는가? 여여독문(如如獨聞) 이지.(22분5초~27분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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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의정(疑情) ; 의심(疑心).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의 꼴로 쓰여]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 또는 말을 하는 그 즉시.
*역력(歷歷 겪을·지낼·수를 셀·가릴 력) ; ①뚜렷한 모양. 분명한 모양. 똑똑한 모양. ②사물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모양.
*낙구(落臼 떨어질 락/절구·곡식을 찧는 기구·찧다 구) ; ‘절구[臼]에 떨어진다[落]’는 말로 ‘백발백중(百發百中)‘, ’틀림없는 결과’의 뜻을 나타낸다.
[참고] 『선요(禪要)』 (고봉화상 | 조계종출판사) 7. 示衆 p65 주석에서.
추문낙구(推門落臼) : 문을 여닫을 적에 문이 암돌짝[臼 : 절구처럼 구멍이 패인 곳]을 벗어나지 않고 자유롭게 열리고 닫히는 상태로서, 백발백중(百發百中)이라는 말과 같다.[臼是門開閉之處也 開門之時 亦發於臼 閉門之時 亦落於臼 猶言百發百中].
*조인광중(稠人廣衆) ; 빽빽하게 모인 많은 사람.
*조인(稠人 빽빽할 조/사람 인) ; 많은 사람.
*제일구(第一句) ; ①‘처음 한마디 말’이니 불교의 핵심도리를 드러내는 첫번째 말. ②말로써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 개념 지을 수 없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진리를 가리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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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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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복전암) (전강선사)

**전강선사(No.065)—몽산화상시중(복전암) (신해71.09.25.새벽) (전065)

 

 

(1/3) 약 21분.

 

(2/3) 약 20분.

 

(3/3) 약 21분.

 

 

(1/3)----------------

청산봉래기천추(靑山蓬萊幾千秋)오  증송금구옥치한(曾誦金口玉齒寒)을
나무~아미타불~
일조(一朝)에 답착가향로(踏着家鄕路)허니  옥적일성(玉笛一聲)이 강상래(江上來)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청산봉래기천추(靑山蓬萊幾千秋)냐. 산중으로 댕기면서 도 닦는 그 세월이 얼마나 되었느냐?
그것... 그 언하(言下)에도 대오(大悟)가 있고, 한 철에도 대오가 있고, 한 몇 3년 만에도 있고, 10년 만에도 있고, 하! 내지 일생 가운데도 있고, 일생 가운데 없을 수도 있고. 이게 웬일이여?
학자(學者)의 신심(信心)에 있고, 학자의 분심(憤心)에 있고, 학자가 그 화두(話頭) 의단(疑團) 잘 잡드리허는 디 가서 있단 말이다. 지재당인(只在當人)의 결정신심(決定信心), 분심, 의단에 있어.

그러니 그것 참 꼭 헐 일이 이뿐이지. 이 외에는 뭐 그것 뭐 차사(此事), 이 일 이외에 무슨 일이 있어? 이 몸 하나 받아 왔으면은 목적이 이것이지. 차사(此事)를 버리고 무엇을 혀?

자 이렇게 발심(發心)해서 수도 행각하는 우리 대중들, 척 이렇게 닦아 오기를 청산봉래(靑山蓬萊)에 몇 천추(千秋)냐? 이렇게 산간으로 들어와서, 친척 고향 다 여의고 들어와서 몇 해를 이렇게 허느냐? 자, 벌써 무슨... 나는 들어온 지가 벌써 열아홉 살에 들어왔는데 지금 팔십이니, 칠십다섯이니깐 얼마여? 하! 이렇게 오래오래 청산(靑山)살림을 허겄다.

증송금구옥치한(曾誦金口玉齒寒)이냐. 일찍이 그때부텀 금구(金口)여.
입으로써 못된 세상사(世上事)나 얘기하고, 한담(閑談)이나 하고, 쓰잘데없는 입을 벌리는 것은 무슨 금구(金口)여? 숭악한 입이지. 악구(惡口)요. 그 중생구(衆生口)요. 그놈의 입은 그 개똥구지. 똥 입이지 그 뭣이여?
우리는 그런 말, 저런 말, 세상 시시비비, 남의 무슨 허물, 없어. 한담(閑談)까지도 없어. 항상 참선허는 법을 말허고, 그 입으로써 항상 화두를 따악 생각하니 그 금구(金口) 아닌가? 금구(金口)로써 옥치한(玉齒寒)이다. 옥 이빨이 차와. 옥니가 차와.

판치생모(板齒生毛)니, '어째서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 했노?' 이놈을 얼마나 생각을 했던지, 허고 또 허고 또 허고 또 허니, 그 몇천억만 번이나 했던지 안 나올 이치가 없어. 판치생모가 안 나올 이치가 없거든. 그 어디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어야지. 판치에 있는데.
어떻게 가깝든지 너무 가깝게 찾다가 그만 죽어.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치에 털 났느니라' 판때기 이빨에 털 난 거 그걸 바로 못 봐?
생각해서 그거 무슨 알고, 요리조리 구피변(口皮邊)으로 조고(照顧)해서 알고, 그것인가?
턱! 들으면 판치생모 그대로 보여 버리고, 그대로 들려 버리고, 그대로 독로(獨露)해 버려.

일조(一朝)에 답착가향로(踏着家鄕路)다. 그 한번 깨달은 법은 그 무슨 일조(一朝)가 무엇이여? 일언지하(一言之下)라니까. 언하(言下)도 아니여. 언하(言下)도 오히려 멀어. 그 깨달은 그 지경은 아무리 시간이 없어. 무슨 시간을 거다가서, 일 분도 안 되야. 처꺽 깨달은 일도(一道) 안이라는 것은 그 어떻게 가까운지 거다가 무슨 뭔 거리를 둘 수가 없어.
그 어느 때 깨달을는지, 그러기 따문에 한 생각 한 생각을 범연히 허지 말어. 어떠헌 생각이 와서 깨달을는지. '어째 판치생모?' 그 어떤 놈이 와서, 어떤 생각이 와서 생각 머리에 깨달을는지 알 수가 없어. 고것을 잘 다뤄.

'어찌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허다가 일조(一朝)에 가향로(家鄕路)하고. 조(朝), 무슨 조(朝)인가? 하루 아침이 뭣이여?
언하(言下)도 아니지, 무슨 뭐 시간도 공간도 없다, 처꺽 깨달라 놓고 보니, 아 그 별다른 도리 아니여.

옥적일성(玉笛一聲)이 강상래(江上來)다. 저 강상(江上)에서 옥적(玉笛) 소리가 들려? 하! 그놈이 판치생모인가? 흡사하단 말이여. 허어! 그것 참.
단발차사니라. 이 일을 마쳤느니라. 일 마쳤어. 바로 깨달라 버리면, 바로 봐 버리면은 그것 인자 그 일이라고 해 봤던들 그 일은 척! 깨달라 놨으니 불가불 증(證)은 해야 하겄으니, 아! 저 증사(證事)야, 증헌 일이야 아! 그거 뭐, 깨달라 놨으니 증(證)해 놨으니 아! 그 뭐 광비세월(曠費歲月)이지. 인자 세월을 거다가 좀 요(要)할 밖에 없지.

곤래수면(困來睡眠)이요. 곤(困)헌 놈이 올 것 같으면 잠도 좀 자 주고. 기래끽반(飢來喫飯)이다, 배고프면 밥도 먹어 주어야 할 것이다.
아! 뭐 그 무슨 뭔, 거 인자 그놈 다맛 그 참 깨달라 논 그놈 키우는 것이고, 그놈 길루는 것인데 그거 뭐, 그 무슨 일인가? 밥 먹으면 그 일밖에 없는데.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 말이여.

약유내차(若有來此)하야, 여기에 모도 와서 이 도문(道門)에 와서, 자 어쩔 수 없는 인연도 떼버리고 그 얽매어 있는 그 어머니 아버지 그저 그 누연(累緣)을 처억 여의여 버리고 내차(來此)하야, 여기에 와서 동감적요(同甘寂寥)인댄 그 참선을 헐진댄, 적요(寂寥)를 뭐 동감적요(同甘寂寥)여. 같이 적요(寂寥)를 맛 봐. 알 수 없는 한 도리, 알 수 없구나. '판치생모라니? 어째 판치생모인고?'

사차세연(捨此世緣)이니라. 한번 버리고 누연(累緣)을 여의고 나온 그 인연을 다시 뭐, 다시 생각하지도 말고 다시 인연 맺지도 말고, 물러가서 또 있지 말어라.

제거집착전도(除去執着顚倒)해라. 그 집착전도(執着顚倒) 좀 버려라. 애착 집착 모도 그 이 몸뚱이, 중생 몸뚱이, 이 몸뚱이 항상 쓰고 나와서 그 익힌 버르정머리 그것이 애착집(愛着執)이요, 그것이 번뇌집(煩惱執)이요, 그것이 망상집(妄想執)이다. 망상집이고, 그러헌 세집(世執)을 세상에 익혀 나온 과거 익혀 나온 그 습기집(習氣執)을 버려라. 한번 놓아 버려라. 그 안 버릴 수 없느니라.
그것이 전도(顚倒)니까. 꺼꾸러져 엎어져서 모도 거기에 생사집(生死執)이 그만 자꾸 쌓여져 점점 점점 바다 같이 깊어지고, 산과 같이 높아지는 그 중생집(衆生執) 아닌가? 고놈의 짓만 헌다 그 말이여. 그 전도집(顚倒執)을 한번 버려라. 이것 다, 한번 여지없이 놔 버려라.

진실위생사대사(眞實爲生死大事)해라. 진실로 생사대사(生死大事)를 위해라. 죽고 사는 일이 얼마나 크냐. 안 할 일이여? 꼭 헐 일이 이 뿐이지. 이것 밖에 뭔 쓰잘데없는 짓만 허고 죄업만 짓거든. 거족동념(擧足動念)이 무비죄(無非罪)인디, 하물며 거족동념만 해도 그것도 죄인디, 역부러 위정 죄를 짓고 있어? 죄업을 자꾸 퍼 짓고 있어? 참 어리석은 일이니라.

어서 속히—세상에 내 낯반대기, 내 면목, 나를 바로 깨달라 버려야지. 원 세상에 쓰잘데없이 그 죄만 퍼 지어, 아무것도 안 허고 앉았어도 죄인디 역부러 또 죄를 짓고 있어? 얼마나 어리석냐? 그렇게 어리석어.
조그만큼 조그만큼 지은 죄라도 자꾸자꾸 지어 보태 봐라. 그놈의 업산(業山)이 업산이 얼마나 높아, 얼마나 커, 그놈의 업바다가 얼마나 깊어? 전부 업 뿐이니라. 이걸 생각해 봐라.

그 죄만 그래 퍼 지었어. 그 죄만 지었으면 또 그만인데, 그놈을 받을 것 아닌가? 낱낱이 차례로 차례로 다 받으니, 넘의 목숨을 죽였으니 그놈을 내가 안 받아? 한 놈 한 목숨 죽였으면 나는 천 번 만 번이나 갚아 주어. 그놈이 이자가 늘어서, 또 갚아 주고 또 갚아 주고 그 무섭다 그 말이여.
얼마나 무서워서 그와 같이 우리 부처님께서 계율을 들으셨는가? '생명 죽이지 말어라' 그래서 모도 그만 그 십중대계(十重大戒)가 그 모두 안 붙어? 주욱 그런 놈의 죄를 진 인생사.

생사대사(生死大事), 내 생사대사 이놈 받아왔다마는 나왔다마는 죽을 일을 생각해 봐라. 그 뭐가 붙어 있나? 뭘 해야겠나? 무엇을 해야 인자 '사(死)' 자를 면허겄나 말이여.
한번 죽으면 그뿐이지, 그 사람 목숨 그 내버리기가 그 뭐 그렇게 천하 쉽지. 일순간에 있는 건데. 거그를 무서워서?
허지마는 그놈 한번 생사, 이 목숨 죽은 끊어진 뒤에 변시신후지고마(便是身後之苦麽)? 이 몸뚱이 내 버린 뒤에 고(苦)를 아느냐? 정말 무섭다. 그놈의 고(苦).

이 몸뚱이 뚝 끊어진 뒤에 잘라진 뒤에는, 그 나타난 놈이 있지 않는가? 이 몸 지금 가지고 있으면서도 잠들여 놓고, 아! 그놈 잠자는 놈인디, 잠자고 누웠는디 내 몸이 또 하나 생겨나 가지고는 별짓 다 하고 돌아댕긴다. 그때 그 몸 아니던가? 눈이 없고 귀가 없던가? 다 듣고 눈으로 보고 다 싸우지? 그놈이 그 무슨 몸뚱이인고?
그것이 죄 짓는 몸뚱이, 업신(業身), 업 몸뚱이 아닌가? 그놈이 업 몸뚱이 그놈이 애착집, 애착했든 그놈이 그대로 나타나서 죄 받지 않든가? 그놈의 그 꿈에 뭐 꿈에, 그 꿈도 악몽(惡夢) 그 숭악한 꿈도 거 못 꾸는 꿈이고, 평소에 이 몸뚱이 가지고 당헌 일보담도 더 무섭고 더 기가 맥힌데.
그놈이 참말로 이 몸뚱이 내번지고 나타난 놈은 여지없이 나타나는 업신(業身)이여. 그놈 거 그 업신이 가서 죄 받는 것 참 무섭지. 그게 신후지고(身後之苦)여. 이 몸뚱이 내버리고 고(苦)가 그놈이 제일 무서운 것이여.

포구발심(怖懼發心)해라. 포구발심해라. 두려운 것을, 두려운 것을, 무섭고 두려운 것을 생각해서 발심을 헐지니라. 그 포구발심을 제일 쳐.
세상에 이 몸 생사, '사(死)' 자, 이놈 몸뚱이 내버리고 그 인자 참 정말 그놈의 업몸뚱이가 가서 죄 받을 때 그 고(苦)를 무서워서, 지옥고라든지 아귀 · 축생고라든지 그 무서운 고(苦)를 그걸 생각해서 발심을 해라 그 말이여.

그래서 긍순암중규구(肯順菴中規矩)해라. 즐거이 암중규구(菴中規矩)를 순종해라. 그 저 도 닦는 이 선원에 들어와서, 참선방에 들어와서 그 규칙을 지켜라. 규칙을 따라라. 내가 모범이 되도록 해라.
거그서 선방에 들어와서 제 고집 다 내고, 제 성깔 제 마음대로 그만 골내고 골이나 불쑥불쑥 내고, 대중규칙이나 모도 어기고, 제멋대로 마음대로 모두 언행을 함부로 허고, 추담(醜談)을 막하고, 그만 남을 모도 무시하고 업신여기고, 고렇게 지내야? 선방에 대중에 들어와서.

고러헌 그건, 그 추행을 망담 막행을 했다가는 큰일난다 그 말이여. 쫓겨나기가 무엇이여? 여기서 시험으로 한번 해보지, 안 쫓겨나는가?
제가 악허면 뭣혀? 요새는 더군다나 무슨 뭐 기술을 배워서 권투를 쓰고 무슨 뭐 또, 거다가서 무슨 뭔, 뭣을 혀? 그런 것을 배와 가지고는 갖다가 이런 데다 써? 그런, 뭣이여? 고까짓 고것을 무서워서? 해 보지. 어따 쓸 것인가 그런 것이.

정직허게 벌써 그놈 배운 것이니 참말로 쓸 디가 있지. 불량한 놈이 들어와서 선방을 모두 그만 뒤집어 놓고, 못하게 만들고 악하게 행동한 놈은 그놈은 한번 써 버릴 것이여. 뭣인가 정당방위에 쓰는 것인데.
내가 꼭 도를 닦아서 확철대오해서 일체중생을 제도할 이러헌 원력(願力)을 가지고 있는데, 어떤 놈이 나를 때려죽일 놈이 와? 그놈은 죽여 버려야지. 그놈 때려죽여 버리고 내가 도 닦아서 중생교화해야지. 이런 디는 한바탕 쓰는 것이여. 대중을 위해서, 우리 대중 도 닦는 대중을 위해서 극보호(極保護)를 해 나가는 디는 한번 써야지, 어떤 놈이 도를 못 닦게 만든다든지 허면. 그 좋지.

그래 그 암중규칙(菴中規則)을 탁! 지키고는 암중규칙만 지킬 뿐이 아니라, 내가 거기에 모범이 되도록 해야 혀. 내가 한바탕 이 청중(淸衆)에 제일 한번 자가 되리라. 이렇게 다 해야 그것이 인자 규칙을 옳게 지키는 것이여.
대중 규칙만 억지로 따라서, 그만 그저 억지로 끌려서, 허다 못해서 겨우 요렇게 따르면 또 못써. 고거 뭣이여? 용맹을 일으켜서 철두철미하게. 그래 암중(菴中) 그렇게 규칙을 순종을 해라.(처음~20분54초)





(2/3)----------------

절단인사(截斷人事)해라. 인사를 끊어 번져라. 무슨 꺼떡하면 인사(人事) 때문에 뭐 가느니, 무엇 때문에 가느니 오느니, 핑계 대고. 그 모도 핑계 대는 것이여. 뭣 때문에 가네, 획 달아나고, 뭣 때문에.. 다 알고 있어. 환허니 알고 있어.
그게 무슨 도 닦을 마음이 진실허면 그럴 이치가 없거늘. 그까짓 인사도 내던져 버리고 있는 것도 쓸어 버리고 들어왔는디, 또 무슨 꺼떡허면 인사, '뭣허러 간다, 어째 간다' 그거 냄새 풀풀 난다 그 말이여.
무슨 인사가 있는가? 여상부모(如喪父母)인디, 부모 죽은 것 같이 화두를 추켜들고 일순간을 지금 좌선을 허고 있어. 그 좌선에 자리가 따악 잽혀서 행여나 그 화두 일념(一念)이 거기에 조금이나 무슨 틈이 생길까 무서워서, 절단인사(截斷人事)해야지! 그까짓 인사에 무슨..

수연수용(隨緣受用)해라. 인연 따라서 수용해라. 인연 따라 해야지. 못 먹게 되면 못 먹고, 대중 먹는 대로, 악식(惡食)이라도 하고, 목기식(木其食)이라도 하고, 나무 열매라도 따 먹고, 그저 밥이라도 모도 그저 혼식밥이라도 먹고, 정 없으면 비지 찌꺼리라도 먹고. 이런 대중이 모아졌으니 도 닦는 대중이 서로 모아졌으니.

만공(滿空) 큰스님 회상에 지내는데, 양식이 없어. 양식이 없지마는 막 들이 수좌(首座)가 들이 밀어 가지고는 지낼락 한디, 누구는 쫓아 보내고 누구는 어쩔 수가 없으니까 그대로 지내는데, 식량이 없으니께 돈 좀 시주(施主)한테 이리저리 얻어서 쌀을 팔아 오는디, 쌀을 팔아 온 게 아니라 좁쌀을 팔아 왔는데, 좁쌀을 싣고 오다가 그 갯골 그 덕산 골짝에 오다, 물 건네오다가 그만 개천을 건너다가서 엎어 버렸네, 구루마가.

물이 쭈루루루 흐르는 놈을 그놈을 그대로 건져다가서는 밖에다 말릴락 하니 장마가 져서 밖에는 널 수가 없고, 큰방에다 갖다가 널어서 불을 처때 가지고는 볶듯기 볶아서 말렸네. 쉬어서 말라 가지고 기가 맥혀. 냄새가 그냥 당최 그놈의 냄새는 못 맡어. 그놈을 갖다가 밥을 해 놓으니 그 서숙쌀 썩은 꼬랑내, 세상에 못 맡아. 차라리 죽으라면 죽었지 먹들 못하게 되었어.
그놈을 죽을, 그나마 또 죽을 끓였네. 그놈을 먹고 공부를 허는디, 먹어 놓면 뱃속에 들어가서 뱃속에서 무슨 창자병이 일어나는가? 원, 설사가 나는가? 우루루루루루 쭈그러다가는 뒷간에 쫓아가다가 미쳐 못해 가 가다가 싸가지고는 모도 골마루를 뒤까고는 이랬다고. 그 우는 사람이 뭐 몇이던지 모르고.

허지마는 거그를 물러가지 않고. 가면 뭐 아무디 가 못 지나서? 뭣을 해서 못 지나?
그러지마는 만공 큰스님 설법 듣고 도(道) 닦을라고. '세상에 도 닦다가 죽으면 죽었지, 그것을 뭐 무서워 헐 게 뭐 있나?' 하고는 기어니 참고 도를 닦았다 그 말이여.
'세상에 아무디가 거 가서 도 닦으면 못 닦아? 어디 가서 못해서?' 허지마는 옳은 스승을 만나서 그 스승한테는 목숨을 바치고 도를 닦는 것이어늘, 어쩔 것이여.
뭐 어째 이 아무디나 헐 거 같으면은 참선(參禪) 아무디나 헌다 하지, 그렇게 초조(初祖) 달마조사도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니라.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허면은 일생을 헛되이 보내느니라' 어째 놨는가?

그렇게 분수(分數) 수용(受用)을 해 나가는 것이지. 분(分) 따라서 수용해 나가는 것이지. '없다 있다' 반찬 투정이나 하고, '잘해준다 못해준다'—얼마나 무척 애를 써 가지고 한 가지를 볶아 주고, 밥 한 그릇 끓여 준다한들 그 소중헌 그 음덕(蔭德)이 얼마나 장하냐 그 말이여, 앉아서 얻어먹기가. 거그서 '짜다, 싱겁다' 이것 뭣해, 이러고 앉았어? 그거 도 닦는 학자 버릇이여, 그게? 그것 없애야 되아.

제삼경외(除三更外)에는 불허수면(不許睡眠)이니라. 삼경(三更)밖에 잠자지 말아라.
잘 시간 딱 서너 시간 자면 족하지. 아! 눈만 붙여도 한숨만 잠깐 자면은 그만이지. 되게도 공부허다가서 잠깐 그만 잠이 오면 깜빡해 자올라 주면 그만 괜찮은 것이여. 그놈 몇 시간씩을 송장이 되어 가지고 자빠져서 그놈 다 자 줘? 언제 혀?

이 짜룬 시간, 세상에 무상(無常)이라니! 무상하다. 왜 무상혀?
상(常)이 없다. 평상(平常)이 없단 말이여. 항상(恒常)함이 없다 그 말이여. 어디 항상함이 있어? 우리가 지금 이렇게 이 몸이 이 만큼 건강해 가지고 있으니깐, 이게 아주 참! 백 년(百年)이나—백 년은 또 그 뭐 그까짓 놈의 백 년 허우닥 해보지, 잠깐인데. 인간 백 년이 일장춘몽(一場春夢)인데. 그게 아주 뭐 장구(長久)해, 그것이? 헌디 무슨 백 년인가?

백 년이고, 원 일 년이고 기한이 있다면사, 그거 그 시간 동안에 좀—한 두어 시간 되면 한 시간은 좀 놀고, 한 시간 도 닦는다 하지마는, 그놈의 두 시간이라는 게 어디 시간이 정해져 있나? 언제인지?

부처님 말씀에 어쨌어? “네 생명 기간이 얼마나 되느냐?”
“일일(一日)에도 죽을 수 있습니다”
“일일? 안 된다”

그 학자 하나가, 제자 하나가 있다가 “생사(生死)가 호흡지간(呼吸之間)입니다. 호흡 가운데 있습니다. 숨 한 번 들이쉬고 내쉬는 그 일순간(一瞬間)에도 있습니다”
“옳다! 그렇게 염득무상(拈得無常)이로구나. 그와 같이 무상을 네가 염했구나. 옳다“ 그런 놈의 시간인디 어디 항상(恒常)함이 있어야지.

삼경(三更) 밖에는 자지 말어라. 어쩔 수 없어 삼경도 허락한 것이지, 그놈의 세 시간도. 그렇게 마음대로 삼상을 족허게 해줄 수가 있나? 잠 마음대로 재이고. 그거 안 되아. 불허수면(不許睡眠)이다. 그 수면을 그렇게 많이 그렇게 다 재여 주지 말아라.

불허출가(不許出街)해라. 그 가고 싶어서, 이런 디 있으면 가고 싶어서 어서 가서 어디가 좀 놀다 오고, 어디 가서 동무 모도 그 친구들이 모여 있어 모두 취두(聚頭)해서 노는 디 가서 쫓아 들어가서 한담이나 하고 뭔 얘기나 하고, 뒷방 구석이나 가고. 고렇게 뭐 또 출가(出街), 문밖에 나가고, 어디 가서 무슨 뭐 좋은 영화나 좀 구경하고 요렇게? 출가(出街)나 하고.
불허부청(不許赴請)이여. 어디서 청(請)한다 하드래도 그 어디 그 청한다고 왜 가? 도 닦는 학자들이 청(請)한다고 뭣허러 가? 뭐 청해서 뭐 놀자고 헌다고 가? 어디 가서 그런 법이 있어? 출가학자가? 출가(出街)허지 말어라.

발명(發明)이 있지 못허거든, 확실히 득력(得力)해서 턱 깨달지 못허거든, 깨닫지 못했거든 불허간독(不許看讀)해라. 간독(看讀)이 왜 간독이 있어? 무슨 놈의 책이나 보고 책참선 혀?
단 화두(話頭) 하나 해 나가는 법 하나, 알 수 없는 '어째 판치생모(板齒生毛)? 판치생모라니?' 판치생모 아지 못헌 고놈이 조주(趙州) 뜻이니까. 조주 뜻을 따라라. '조주는 어째 판치생모라 했는고?' 헌 것이 판때기 이빨에 털 난 놈 찾는 것이니까.

아! 그놈 하나를 그 진짜 경(經)을 보고, 진짜 참 화두를 보는데 무슨 놈의 경을 봐?
그 경(經) 보는 것은 그건 참선 않는 사람, 발심 않는 사람, 참말로 무상한 생각이 없는 사람이 그 공송세월(空送歲月)을 허지. 책 그 보는 것이 무엇이여?
원 참선 한번 귀에 썩 들어와서, 그때 사미 때여 내가. 참선! 참선뿐이로구나.


수행(修行)을 막대빈모반(莫待鬢毛斑)하라  호리신분(蒿裡新墳)이 개소년(皆少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인신일실기시환(人身一失幾時還)이면  지옥시장기등한(地獄時長豈等閑)가
나무~아미타불~

응해 스님께서 그 설법을 허시는데, 이 설법을 혀. 이 게송(偈頌)을 혀.

수행(修行)을 막대빈모반(莫待鬢毛斑)하라. 수행이라 하는 것은 우리 도학자 수행, 참선이여. 참선을 헐라매 귀때기 위에 머리 알롱알롱 검고 흰 놈이 있도록 그걸 기다리지 말아라. 하니 그 겨우 귀때기 위에 머리털 흰 놈 하나 날 때, 그때가 어디 한참때지 무엇이여. 헌디 한참때도 기다리지 말아라.
'나이 내가 그 한참때 되면, 한 삼사십 되면은 도를 닦으리라' 그러지 말아라. 호리신분(蒿裡新墳)이 개소년(皆少年)이다. 쑥대 속에 새 무덤이는 그 소년 무덤이지! 어린것들이 죽은 무덤이지! 한참때 건강할 때 죽은 무덤 아니다.

인신일실(人身一失)이면 기시환(幾時還)고. 사람의 몸뚱이 한번 잃으면 어느 때 돌아올 것이냐. 그렇게 쉽게 돌아올 줄 아느냐. 세상에 이 몸뚱이 하나 이렇게 얻어 나온 것 참 만행(萬幸)허고 다행하다. 천겁만겁이냐? 이것 못햐. 이 몸 얻었을 때 해야지. 미뤄?
인신일실(人身一失)이면 기시환(幾時還)고. 이 사람 몸 이놈, 이 몸 잃어버리면 언제 헐 거야? 어느 때 헐 것이냐? 이 문제밖에 없는디 인생 문제!
세상에 나 찾을 시간이 어느 때며, 내가 나 깨달을 시간이 어느 때냐? 이 몸 얻어 가지고 이때다! 이때. 이때 여의면 없다. 얼마나 다행한 세월을 만났으며 다행한 세상을 만났느냐?

지옥시장기등한(地獄時長豈等閑)가. 네가 만약에 이 문제를 깨닫지 못허고 척 그만 뚝! 목숨 뚝 떨어져서 너, 이 몸뚱이 잃어버린 후에 무간아비지옥(無間阿鼻地獄)이나 악도(惡途)에 떨어져 버리면은 어쩔 테냐? 어따가 네가 원망을 할 테냐? 니가 잘못해서 너 너 너의 무간지옥에다 네 모가지 네가 달고 네 처백혀져 가지고 고(苦) 받는 놈이 어따 한탄할 것이냐?

이 게송(偈頌)에 딱! 들어오면서 발심(發心) 딱! 해 가지고는 『서장(書狀)』 읽다가 때려치워 버렸어. 서장이, 서장이 뭐냐? 내가 이까짓 것을 배우고 세월을 보내 여다가? 어림도 없어. 당최 글이 들어오도 않고 아무리 배울래야 배울 수가 없네.
“나 스님 도 닦으러 갈라우” 넨장 인자 열여덟 살인가 뭐 먹은 것이 도 닦으러 나간다 하니까 허락을 해야지? 스님이나 모도 우습게 알고, 저놈들이 공연히 쓰잘데없이 인자 글 읽기 싫은께 갈락 하고, 어른 시봉질허기 싫은께 갈라고.
그 앞을 막는디 아무리 막아 봤던들 뭐 소용이 있나? 이 지경 되아 가지고 있는디, 같이 서장을 배우든 봉윤이가 한봉윤이가 그만 이놈이 연애병이 들어 죽네. 하! 이런 놈의 꼴 좀 보소.

서도간이라고 헌 여자가 신여성(新女性)인디, 그때 당시여. 우리 어릴 때. 당시의 히가미사시(ひさし-がみ 히사시가미)라고 혀, 그걸. 머리를 한쪽에다 딱 가리매를 타. 그전에는 한쪽 가리매가 없거든. 지금은 뭐 별별 뭐 거 다 있지마는.
한쪽 가리매를 딱 타 가지고 빗고는, 아랫도리 양장을 턱 그때 처음 채리고 합천 해인사를 들어왔는데, 아주 그때는 그 대학 졸업했닥 하면은 참 없을 때야. 여자가 대학 졸업했다 하면은, 그 뭐 참 도(道)에 하나나 있을까 말까 한데. 대학은 졸업했는가 무엇인가? 신여성이라고 왔는데.

얼굴이 잘나고 깨끗한 여자가 인자 한 그저 이십 세 될락말락한 것이 합천 해인사 들어와서 귀빈실에 떠억 거그서 인자 여관을 정해 놓고. 아! 이녀러 것이 그 여름 한철을 지내면서 그저 책이나 보고 그때 시대 창가(唱歌)나 하고 갔다왔다하니까,
아! 젊은 놈의 중, 사미(沙彌)중들이 그저 한 열칠팔 살, 한 이십 살 먹은 것들이 모두 와서 그 사집(四集)도 배우고, 사교(四敎)도 배우고, 아 모도 경(經)도 배우고 이런데, 아! 거그 와서 그러고 지내니 아! 이녀러 그 또 그 아무라도 젊은 그 깨끗헌 그 참 모도 그 사미중을 보면은 탐을 내기도 하고, 그냥 데리고 댕길라고 해 쌓기도 하고, 어디 법당에 안내도 해달라고 해 쌓고, 그만 산에도 올라가자고 해 쌓고, 아! 이 지랄을 허네.

아! 그러니 아! 이 봉윤이도 깨깟하게 잘 생긴 놈인데, 아 그 여자하고 어디 몇 번 갔다왔다 어디 좀 안내도 해주고 어쩌고 친히 가까이 얘기도 하고. 아! 이놈이 그냥 거그서 어떻게 반했다 그 말이여. 그러면은 그 무슨 뭔 연애가 그놈이 어떻게 서로 맞아야 될 것인데, 되나?
처자, 여자는 그건 신여성이락 해서 남자를 대하기를 보통 대하고 어쩌고 했지, 그저 그 무슨 뭐 봉윤이 허고, 뭐 사미중 중하고 무슨 뭐 연애나 좀 통해서 어떻게 좀 해 보리라는 건 꿈에도 없었든가 부여.

그 서도간이란 여자 자는 숙소에 방에 가만히, 그 여자는 밤에 어디 놀러 잘 댕기니깐 가만히—여까장 내가 허는 것은 그거이 자세히 해야 하는 것이지, 슬쩍 그럴 수 있나?—아 그래 금침을 떡 펴놓고 저 혼자 인자 잘라고 잠 숙소를 깨끗이 해 놓고 어디 밖에 놀러 간 사이에, 아! 봉윤이라고 헌 사미승이 그 방을 살모시 들어가서 이불을 따악 둘러쓰고 누웠네. 저 혼자는 무슨 꿍수가 있었던지?

밤 열 시나 되아서 취침헐라고 서도간이가 척 들어오니까, 이불 속에 사람이 하나 일어 나오네. “아이고메!” 고함을 질러버렸다. 깜짝 놀래 고함을 질러.
아! 그만 이 투깔이 나 가지고는 왼 산중이 놀래고, 인자 김봉윤이.. 나중에 조사해 보니깐 '봉윤이가 아! 그 서도간이 방에 들어갔다' 그놈이 산중에 그만 그 투깔투설이 나 가지고는,
아 그때 당시의 사미중이 아! 그런 데 어디 여자를 보고 간통허러 들어갔닥 하면은 그 일이 여간.. 그도 서도간이 그 무슨 또 처녀로서 학생인디, 그놈의 투깔스러운 이름이 그 못쓸 이름이 그만 폭발되아 버렸으니 어찌 되겄는가 말이여.(20분55초~40분18초)





(3/3)----------------

이놈은 그냥 그길로 중노릇헐 마음도 없고, 그러자 저러자 그런 일이 일어나니까 서도간이도 부끄러워서 대구로 즈그 집에 나가 버렸는디, 아! 이놈도 중노릇 않고는 그길로 중노릇이고 뭣이고 그만 때려치워 번지고, 그런 투깔이 나고 허니까 보기도 어색하고 모도 부끄럽고 산문출송(山門黜送), 나가 가지고는 저 밖에 나가서는 제 혼자 돌아대니네. 인자 서도간이는 만나지도 못허고.

아! 돌아대니다 어쩌다가 아! 그만 그냥 미쳤네. 그저 가면서 오면서 “솔잎상투 솔잎상투 솔잎상투” 그뿐이여. 그놈의 솔잎상투는 뭔 말인지 알 수 없네. 미쳐 놓으니께 그렇대? “솔잎상투 솔잎상투” 솔잎상투 말만 혀. 그러면서 그 가끔 가다 인자 "서도간이 서도간이" 하고. 아! 이렇게 미쳐 가지고는 헐 수 없어 그 지경 되았으니 그걸 구해야지.
그래 스님이 경화 스님인데 백경화 스님이신데, 백경화 스님이 가서 사방 사람을 모두 보내고 동명을 보내고 해서, 당신 큰 상좌를 보내고 해서 차 타고 차 중에서 야단친 것을 붙잡아 왔다.

영자전(影子殿) 기둥에다가 짬매 놓으니—이놈이 뭐 당최 사람을 때릴락 하고, 장독 같은 걸 뚜드려 부술라 하니깐, 헐 수가 없어. 안 매 놓을 수가 없어. 허리를 딱 짬매 놓고는 꼼짝 못허게 해 놓으니 이놈이 그냥 밤낮 뛰고 그만 훌훌 뛰고 허다가 나중에 아무것도 못 먹고 얼굴에는 검은 버섯이 시커멓게 피고. 아따! 그러면 뛰고 야단인데 어쩔 거여. 어따 가둘 수도 없고 매 놓거든. 어디로 데리고 갈 수도 없고. 그러다가 죽었다 그 말이여. 같이 공부허던 아이인디.

화장(火葬)을 처억 허는디, 그놈 태워 버리고 나 화장 그 연기만 저 공중에 돌고. 그렇게 무상(無常) 송구(頌句)를 응해 스님한테 듣고 발심(發心)은 척 되았는데, 거다가 같이 공부허든 청춘 봉윤이가 죽고 나니깐, 세상 맛없어.
뭐! 글 배워 가지고 강사나 되고, 글 배워 가지고 넘 글이나 가르키고 고따구 심리, 그 추접한 심리, 때 찌인 마음이 없어. 그만 튀어나갈 마음뿐인디, 아! 스님은 딱! 가로막고는 안 된다고만 혀.

"자 우리가 막는다고 안 가고, 우리 부처님 봐라. 천만사에 다 안 가겠냐? 나가자"고 삼릉이를 꾀었다. 같이 또 공부허는 아이를.
"자! 그러자. 우리 뭐 막는다고 안 가고.. 가서 우리 솔잎이나 좀 따고 생콩이나 좀 어떻게 동냥이라도 얻어 가지고 산에 들어가서 고놈 솔잎에다 콩 그놈 먹고 우리 도 닦자. 어서 속히 도 닦아서 생사해탈하자"
아! 둘이 꿀떡같이 약속을 딱 하고는 밤중에 나갈라고 걸망짐 딱 싸놓고는 갈라고 작정을 허고, “가자! 나서자”고. “아이고 내야 못 가겠다” 아! 이놈이 못가겄다고 자빠져 버리네. 삼릉이란 놈이. 밤중에 못 가겄다고.

대체 그놈의 디 합천 해인사에서, 그 정공 다 알지마는 거그 내려가기가 어떠헌고? 십리동천(十里洞天)의 애기소라는 디는 귀신이 뭐 낮에도 나와서 사람 잡아다가서 바위 속에다 찌어버리고 이런 딘디, 참 못 가는 디여. 진대발골 수호신 호랑이 다 내려오고. 십리동천이라도 그 계곡 계곡이 다 무섭지. 아! 이놈이 무서워 못 가겠다고 안 가네. 밤중 밖에는 갈 시간이 없지. 낮에는 못 간디.
혼자 죽어도 못 가겠드구만, 나도. 못 나가겄어. 그 무슨 놈의 그까짓 뭐 산속 호랑이가 무섭고, 애기소 평전 귀신이 무섭겠는가? 하지마는 안 돼. 대체 그 그놈의 겁약심이 있어서 할 수 없어. 나도 못 가고 있다가.

대암 스님이, 마침 도 닦으러 댕기는 스님이 왔길래 확! 간청을 했지. “어쨌든지 날 좀 데리고 가 주십시오. 내가 꼭 가야겄습니다. 안 가면 나는 인자 이 길로는 뭐 여그 중노릇 못허겠습니다” 허고는. 대암 스님이 얼마나 인공 스님한테 말을 했던지 허락을 했어. “그러라”고.
그래 새파란 것이, 열여덟 살인가 먹은 것이 따라나왔네. 인자 거까장 해 두고. 고 밑에 그 하도 사건이 굉장한께 그만두고. 그렇게 그 때가 와서 그런 때가 와서 그렇게 내가 튀어나왔다 그 말이여.

불허부청(不許赴請)이여. 아무리 청 헌다고 뭐... 아무리 막는다고 안 갈 수 있으며, 도 닦다가 도 닦는 도학자가 또 청한다고 나갈 수가 있느냐 말이여? 없지.
미유발명(未有發明)이어든, 그리고 간독(看讀)허지 안 해. 간독(看讀)? 무슨 놈의 경을 봐? 경 보다가 이 생각이 일어나서 못 봐. 나왔지. 그리 안 했으면 그 내 무사히, 재주가 내가 뭐 보통 재주가 아닌디 무슨 뭐, 아침 글 잠깐 한번만 새겨주면 잘 알아 가지고는 석 장이고 넉 장이고 조로로 외아 버리는 성격인디 뭐, 말할 거 있어?
또 또 자찬(自讚) 하나 들어가지마는, 내 뭐 재주 있단 말 다 들었는디 무슨 뭐. 그 뭐 내가 그때 그래 있었으면은 뭐, 대교(大敎) 다 마치고 내가 대학까장에 갔었을 턴디 뭐. 스님은 가난해서 못 하지마는 공비생으로 못 가?

그래 발심해 버렸지. 무슨 경(經) 거 읽어서 뭣혀? 거기다가 세월을 갖다가 소비해 부러? 안되아.
참선허다가 꺼떡허면 '책 본다'고? 뭔 책 봐? 불향권중구(不向卷中求)다. 권(卷) 가운데 구하지 말아라. 아! 판치생모(板齒生毛)를 허고 앉었는 사람이 권(卷) 가운데 무얼 구허냐 이 말이여. 이런 놈의... 그거 발심 못헌 사람이지. 알아듣겄어 모두? 모두 자올고 앉았나? 법문을 듣고 앉았나?

간독(看讀)허지 말아라. 공계청(公界請)이 아니어든—공계청(公界請)이 있거든 헐 수가 없어. 가령 참 우리 학자라도 도반이나 도 닦다가 그런 학자가 죽었다든지, 어쩔 수 없는 참 모두 학자를 위한 은혜 깊은 그런 신도가 죽었다든지, 누가 죽어서 그 천도(薦度)헌디 청첩(請牒)이 있으면은 대중적으로 가거든. 그때는 어쩔 수 없어. 그때 쏙 빠져 혼자 또 독출(獨出)로 쏙 빠지면 괴각(乖角)이거든. 인자 그럴 때는 응해서 가.
간다고 해서 무슨 뭐 참선 못할 게 있나? 같이 따라가서 공계청(公界請)이면 갈 수 있다 이 말이여. 그럴 때 가서 경을 읽거든, 여기 우리 재단(齋壇)에 이렇게 경 읽은 거라든지 그때 경 읽거든, 같이 읽어야지. 그런 디 가서. 그런 디 빠지고 요리 빠지고 고런 것은 못써. 운력 같은 디도 빠지고, 나 혼자 인자 독출로. 그것은 괴각이여. 그럴 때 가서는 수시(須是) 운동을 허는 법이지. 그 이외에는 말라 그 말이여. 그런 공계청(公界請)에는 헐 수 없다 그 말이여.

이러헌 도학자의 그 절개로, 도학자의 그 결심으로 절대 힘으로 그 세월 일촌간(一寸間)을, 일향간(一餉間)을 절대 허송 허비를, 참 무척 애껴라. 이렇게 해서 여법하삼년공부(如法下三年工夫) 해 봐라. 3년을 작정하고 공부해 봐라. 3년 동안을 이러헌 결심으로 네가 한번 닦아 보아라.
넘 보고 안 닦고, 넘도 안 닦은께 나도 안 닦고, 넘 허는 대로 그냥 그럭저럭 지내다가, 이건 안 되야. 내 규칙이 딱 서 있어야지. 내 규칙이 내 가슴속에서 딱! 맺어져 있어야지. 누가 그놈을 어떻게 할 것이여. 그것 그와 같은 절대 학자의 규칙, 선학자(禪學者) 발심학자(發心學者)의 규칙을 딱! 세워야지.

고인(古人) 고인이 다, 참 확철대오허는 모두 선사들은 낱낱이 그랬지.
경허 스님 보란 말이여. 경허 스님도 그 어른이 3년을 사한(死限)하고. 그런 강사(講師)지마는 '그것이 무엇이냐? 이 날마다 날마다 공상지묵(恐上紙墨)이다. 지묵(紙墨)을, 내가 책을 펴고 지묵 보는 것이 두렵다. 먹 묻혀 논 것을 보고 거기서 무슨 지해(知解)를 이리저리 되풀이해서 퍼 말 되아 넘기듯기, 쌀 되아 넘기듯기 되아 넘겨보아라. 무슨 이익이 있느냐'
싹 그만 걷어 치워 번지고 척 나와서 천장암서 칼을 여그다 딱 바솨 놓고는 끄뻑하면 콕 찔러 죽게 탁! 비수(匕首)를 갈아 놓고 했다 그 말이여. 3년 안 했어?

여법하삼년공부(如法下三年工夫)를 해 봐라! 이런 결심을 가지고 해 봐.
고봉 스님도 역시 글안했어? 고봉 스님! 고봉 스님께서 그렇게 둔혀. 잠이 오고 도무지 뭐, 또 잠도 그렇게 오지마는 잠도 그렇게 많은 그 상대법이여. 잠 똑 깨면 거다가 그 가운데 사량망상이 그렇게 많네. 깨면 사량망상(思量妄想), 글안허면 무기(無記), 무기에 들어서 잠자고, 아! 이 둘 뿐이여. 무기(無記) 아니면 산란(散亂), 산란 아니면 무기. 이래 가지고서 주삼야삼(晝三夜三)에 타(他)로 시애(厮睚)다. 고 고놈 두 가지 뿐이여, 당최 참선헌다고 나 놓으니. 이런 꼴 좀 봐라.

한 번도 참선한 된 법이 없다. 그래 결심 결심 우결심을 허고 안 잘라고, 그다음에는 안 앉았을라고 도량을 그 뺑뺑 돌기를 팔십 리를 헌다. 잠 안 잘라고. 그러헌 그 지경을 넘기면서도 화두를 쥐어뜯고 삼년사한(三年死限)을 안 했는가? 삼년사한에, 죽을 한(限)을 정해 놓고 3년이 다 되아 가도 약무사자진취(略無些子進趣)다. 조금도 진취(進趣) 없다.
'하! 이거. 고인이 거짓말이요. 부처님으로부터서 삼세제불이 있고 역대조사가 있닥 했지마는, 이것이 모도 속인 말씀이지, 무슨 놈의 견성성불이 생사해탈이 있어야? 이렇게 안 된 중생사가 이뿐인데, 어디 안 되는 것뿐이고, 도무지 뭐 그 참선이 되아?'
이거 봐라? 누구는 그거 안 겪었나? 처음에 한 번 허면 어째 좀 된 듯 허다가도...

아이고! 배가 고파 죽겄다. 못하겄네 참, 법문. 아이고! 내가 이거 늙어 버렸으니 이 지경이다.

'고인이 속였지! 내가 속인 디서 속았구나. 소용없다'고 퇴타(退墮)를 날마당 몇 번씩 한다.
허지마는 또 거기서 '대체 생사(生死)가, 인생이라는 게 죽고 살고 생사가, 이것 참 인생의 생사 문제 이게 없을 수가 없구나. 아! 또 왜 그렇게 깜깜하고, 왜 내가 내라는 게 분명한디 내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나? 요까짓 몸뚱이는 곧 내버릴 것인데 분명히 또 있구나. 틀림없구나. 고불(古佛) 고조사(古祖師)의 말씀이 틀림이 없고, 내가 생사해탈이 꼭 있는가' 또 이랬다가도 이놈이 그만 금방 있다가 없고, 있다가 없고, 아! 그 애를 먹지, 3년 동안에.

아! 그러다가 그만 그렇게 안 되다가 3년 한정 해놓고 그래도 그렇게 애쓰면 애쓰는 것이 곧 용맹정진(勇猛精進)인가 부여. 아! 그만 홀연히 꿈에 아! 몽중(夢中)에 그놈이 턱 들어오네, 화두가. 참 그게 기발지시(機發之時)라.
꿈에 그만 처꺽 화두가 들어오더니 차차로 의정(疑情)이 돈발(頓發)인디 깨 놓고 보니 의심이 나는데, 절로 의심도, 의심이 무슨 그 지경이, 의심 지경이 어디 무슨 뭐 그때 그것도 저것도 없지?
그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들입대 퍼 일어나는디 감당할 수 없네. 그때 가서는 잠이고 무슨 뭐, 뭐 뭐 산란이고 그것이 어디 붙어 있어? 그 의단(疑團)만 독로(獨露)했다.

의단독로헌 지경이 칠일(七日) 못 가는 것이여. 이레 못 가. 제칠일 만에 경계(境界)로 인해서 활연대오를 했다.
아! 차차로 의정이 돈발이다. 아! 차차로 그렇게 깨달라 가지고는 의심이 제칠일 못 가고는, 그 무슨 뭐 반복원래시자한이니 뭐, 그 우게 뭣 반복원래시자한(返覆元來是這漢)이라는 게송(偈頌)을 보고 활연대오(豁然大悟)를 했다. 척 보다가, 아! 경계를 보고 깨닫던지, 언하(言下)에 대오(大悟)던지, 툭 깨달라.

하따! 그때 턱! 깨달라 가지고 증험을 해 보니, 깨달은 도리를 한번 내가 증험을 해 보니,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 · 무자화두(無字話頭) · 여자출정화(女子出定話) · 마삼근(麻三斤) ·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종두밀거험지(從頭密擧驗之)허니, 전부 쫓아, 전부 들어 가지고 한번 증험을 해보니 무불요요(無不了了)다. 하나나 어디 맥힘이 있나? 어디가 맥혀? 백천공안(百千公案)이 일관도천(一串都穿)이지. 활연대오다.
참! 고불(古佛) 고조사(古祖師)가 속임이 없는 줄 신(信)했다. '과연 중생을 속일 이치가 없으시지. 반야묘용(般若妙用)이 신불무의(信不誣矣)로구나' 확철대오해서 생사 없는 해탈법이 순전 무의(誣矣)여. 의심 없어. 바로 봤으니까.

여까지. 이렇게 3년 공부를 이렇게 결심을 허고 해서 약불견성통종(若不見性通宗), 견성통종(見性通宗)이라고 했네. 통종(通宗)까장 다한다 했네.
견성과 통종(通宗)과는 달라. 통종(通宗)이라 하는 것은 바로 증(證)해 버린 거야. 통종(通宗)이여. 종(宗)을 통(通)해 버렸어. 증(證)해! 영원히 깨달라 가지고 바로 증(證)해 버리면 생사? 인자 미(迷)허고, 뭐 어디 어느 때 없어지고 미(迷)허고 있어?
견성만 해 가지고는 태중(胎中)에도 미(迷)헐 수가 있고, 출태(出胎)에도 미(迷)헐 수가 있고, 입태(入胎)에도 미(迷)헐 수가 있고, 그놈이 그런다. 그런 위험이 있어. 허지만 통종(通宗)해 버리면 그만이다.

견성통종(見性通宗)을 해 버렸네. 3년만 이렇게 헐 거 같으면 견성통종을 안 혀? 이렇게 될 수 있다.

'산승(山僧)이—견성통종을 만약 못할 것 같으면, 이렇게 잡드리허고 이렇게 철두철미허게 해서 견성통종을 못헐 것 같으면은 내가 느그를 속였으니 느그 대신 내가 지옥에 들어가마' 이렇게 맹서를 했어.

내가 연연(年年)이 해마당 해마당 시월 초하룻날이면은 여기에 와서 설법을 일주일씩 허고 있었는데, 내가 이 설법은 여그 와서 금년에 처음이니 금일 이 대전 신도보살 대중은 이 설법을 듣고 다시 의심허시지 말고 모도 '이뭣고?' 화두를 해서 속성정각(速成正覺)해서 오늘 설법헌 이 정전강(鄭田岡)도 좀 제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금생(今生)에, 이생에 우리 이 몸뚱이 가지고 이 설법 듣고 요대로 닦아서 확철대오를 못허면은 그 한(恨)이라는 것은 말할 것이 없어.
앞에 닥쳐오는 삼재(三災)가 곧 닥쳐와. 그놈의 삼재 속에 인자 들어가 버리면은 나올 기약이라는 것은 없지, 없을 수야 없지. 영원히 그 삼재 속에서 무슨 뭔 역사도 없이 영원히 무슨 그럴 리야 없겠지마는 참말로 한이 없어. 무한이여.


일파유조(一把柳條)를 수부득(收不得)허여  화풍탑재옥난간(和風搭在玉欄干)이니다
나무~아미타불~

금일 전강(田岡)은 주장자(柱丈子) 니한테다가 밀어 맡기고 내려간다.(40분19초~61분21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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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알림2021. 10. 2. 18:01

용화선원 법문 일정표 (2021년 10월) (불기 2565년, 신축년)

 

안녕하세요.

 

용화선원에서는 1년 365일, 새벽 4시~5시오후 2시~3시, 하루 2번 선원 전체에서 법문을 경청합니다. 아래 표는 2021년 10월 달 '법문 일정표' 입니다.

 

용화선원의 모든 법문이 「참선 법문」이지만, 이 '법문 일정표'에 있는 법문들은 대중스님들께서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 위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법문 일정표'를 공유해서 다같이 법문을 듣고 참선수행에 도움이 되고자 올립니다. (앞으로 월 초에 계속 올릴 예정이오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 '법문 일정표'를 모으시면 훌륭한 '법문 목록집'이 됩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천육백여 개의 육성 법문)이 저장된,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을 수 있는, microSD 메모리카드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사무실, 032 - 872 - 6061~4)

 

 

*법문 블로그

 

송담 전강 게송집 https://yongwhasunwon.tistory.com

 

용화선원 법문듣기(주제별) https://emokko.tistory.com

 

참선법문(통법문) https://chamsonbub.tistory.com

 

참선사전(ㄱㄴㄷ순) https://chamsonsajeon.tistory.com

 

 

성불하십시오 _()_

 

 

2021년 10월 법문일정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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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