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초파일)2014. 5. 1.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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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5) (게송) 천상천하무여불~ /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 사람 사람이 본래로부터 태평하다 / (게송) 제법종본래~ / ‘모든 것이 본래로 생사가 없는 진리다’

대관절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 나오셔서 무슨 노래를 항상 부르셨을까?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 사람 사람이 본래로부터 태평하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서 생활 속에서 수행을 쌓아나가면, 「원래 내가 생사가 없는 존재이고 진리의 존재」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신 목적은 ‘너희들 모두가 다 원래로 부처님이다. 진여(眞如)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켜 주어서 그것을 깨달아서 생사를 해탈하게 해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다 부처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의 부처를 찾는 것」이 바로 그것이 정법(正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이고, 그것이 참선(參禪)인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삼천 년 전에 열반(涅槃)하셨지만, 우리가 이 법에 의해서 ‘이뭣고?’를 통해서 자성(自性)을 찾는다면 언제나 어디서나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675) - 03년 부처님오신날(03.05.08) 법문. (용675)

 

약 21분.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이요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로다
나무~아미타불~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하니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로다
나무~아미타불~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이요.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부처님과 같은 분이 안 계시다.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로다. 시방세계에 부처님께 견줄 만한 분이 없다.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하되. 내가 온 세간(世間)을 다 보되,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다. 부처님과 같은 분은 안 계시다.

이 게송(偈頌)은 무량억겁 전에 백겁(百劫) 수행을 부처님께서 하실 때, 미륵 보살(彌勒菩薩)과 석가모니 부처님이-그때는 보살로 수행하실 때인데, 그때 저사불(底沙佛)이라고 하는 부처님 밑에서 수행을 하시다가 그 석가 보살(釋迦菩薩)께서 저사불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그 노래로 인해서-칠일칠야(七日七夜) 동안을 한 발을 들은 채 그 저사불의 거룩하고 위대하신 모습을 찬양하야, 그 공덕으로 구겁(九劫)을 초월해 가지고 미륵 보살보다도 먼저 성불(成佛)을 하신 인연이 있는 게송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할 때마다, 부처님께 공양(供養)을 올릴 때마다 이 게송으로써 부처님의 모든 위대함을 찬양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어째서 부처님은 이렇게 거룩하시고, 우리는 기회있을 때마다 부처님의 거룩함을 이렇게 찬양을 하느냐 하면은, 부처님께서 왕궁에 태어나셔서 그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처럼 버리시고 출가하셔가지고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하셨습니다.

‘견성성불을 하신다’한 말은 대관절 무엇을 깨달아서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에 팔만사천의 한량없는 법문(法門)이 들어있습니다마는, 오늘 산승(山僧)은 그 가장 요점만을 간략히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과연 일생 동안을 무슨 마음으로 사셨으며, 무슨 설법을 초점을 두고 하셨으며, 평생 동안 무슨 노래를 부르셨을까?

관타야불망(觀他也不妄)이요. 모든 것을 보실 때, 모든 중생과 모든 것을 다 보실 때에는 ‘망령(妄靈)되지 않다.[不妄]’
관타야불망(觀他也不妄)이요. 관자역무생(觀自亦無生)이다. 당신 스스로는 어떻게 당신을 보셨을까? ‘남이 없다.[無生]’고 그렇게 보셨어.

‘망령되지 아니하다[不妄]’고 하는 것은 모두가 다 진실이요, 모두가 진여불성(眞如佛性)이요, 모두가 진리다 그 말씀이고, 스스로를 보실 때 무생(無生)으로 보셨다 그말이거든.

보통 우리 중생으로 볼 때는 「부처님께서 왕궁에 태어나셔가지고 그래가지고 출가하셔서 고행을 하셔가지고 깨달았다.」 그렇게 우리는 중생의 눈으로 그렇게 보지마는,
부처님 자신은 ‘남이 없다[無生]’고 그렇게 스스로를 보신 것입니다,

일생 동안 우리 중생들도 좋아하는 노래가 있어서 기쁠 때도 노래를 부르고, 슬플 때도 노래를 부르고, 혼자도 부르고 여러 사람이 모이면 다 같이 노래를 부릅니다. 어떤 의식이 있을 때도 노래를 부릅니다.

대관절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 나오셔서 무슨 노래를 항상 부르셨을까?(出世謌何事)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 사람 사람이 본래로부터 태평하다.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사람 사람마다 태평하다.’ ‘태평(太平)하다’고 하는 것은, 모든 고통이 없으며 슬픔이 없으며 아무 근심걱정 할 것 없고, 항상 행복하고 항상 넉넉하고 항상 즐겁기 때문에 그것을 ‘태평하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우리는 생로병사가 있고 흥망성쇠가 있고 희로애락이 있어서 정말로 행복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까닭이 있습니다,

자기가 본래 부처고, 본래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과 똑같은 존재임을 알지를 못하고,
‘자기는 중생이고, 중생은 생로병사 속에서 고통을 받게 되어있다.’ 그렇게 착각을 하고 살기 때문에, 본래 부족함이 없고 본래 생사가 없는 존재이면서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처음에 이 「생사 없는 도리(道理)」를 말씀을 하셨지마는 중생이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원래 우리는 괴로운 것이다. 괴로운 것을 없애야 우리가 열반에 드는데 괴로움의 원인이 뭣이냐?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 때문에 생사가 있는 것이고, 고통이 있는 것이고, 진리 속에서 있으면서 진리를 모른 것이다.’ 이렇게 차츰차츰 단계적으로 말씀을 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서 생활 속에서 수행을 쌓아나가면, 「원래 내가 생사(生死)가 없는 존재이고 진리의 존재」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법문을 설하시다가, 나중에 법화경(法華經)을 설하실 때 부처님은 무슨 게송을 읊으셨냐 하면은,

제법종본래(諸法從本來)로  상자적멸상(常自寂滅相)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자행도이(佛子行道已)하면  내세득작불(來世得作佛)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제법종본래(諸法從本來)로 상자적멸상(常自寂滅相)이다.
제법(諸法)이라 하는 것은, 우주법계 삼라만상을 모두 제법(諸法)이라 그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종본래(從本來)로 본래부터, 상자적멸상이다-항상 그대로 적멸상(寂滅相)이다. 열반상이다.
열반상(涅槃相)이라 하는 것은 ‘생사가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불자행도이(佛子行道已)하면, 불자가 이 도리를 깨달으면,
내세득작불(來世得作佛)이다, 그 도리를 깨달으면 바로 그것이 부처님이 되는 것이다.

내세(來世)라고 하니까 이 몸뚱이 80년, 90년 살다 죽은 뒤에 성불한다고 그렇게 해설한 것은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해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본래로 생사가 없는 진리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 경지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는데, 반야심경에도 불생불멸(不生不滅)이란 말이 있고, 경전마다 ‘생사는 본래 없다’고 하는 많은 법문이 나와 있는데,

어째서 우리는 생사가 있고 고통이 있고 슬픔과 괴로움이 있느냐 하면은,
비유를 들어서 물이라 하는 것은 섭씨 영도 이하로 내려가면 얼음이 됩니다. 고체가 됩니다. 그것을 끓여서 100도가 되면 증기가 나와 가지고 기체가 됩니다.

물로 되었을 때나 얼음으로 되었을 때나 증기로 있을 때나 물의 본성(本性), 습성(濕性)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때 상황 따라서 모양만 다르지 물이 본래 가지고 있는 그 물의 본성, 습성은 어떠한 모습으로 변하거나 그 자체는 언제나 고대로 있는 것입니다.

중생으로 있을 때나, 부자로 있으나, 가난뱅이로 있으나, 죄를 지어서 형무소에 가서 있거나 또는 더 무서운 죄를 지어가지고 지옥에 가서 있거나 또는 업에 따라서 축생의 모습을 뒤집어쓰고 있거나,
가지고 있는 그 본성(本性)은 부처님으로 있을 때나, 조사(祖師)로 있을 때나, 빈부귀천 어떤 모습으로 있을 때나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를 못해서 각각 다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가지고 잘난 사람은 잘난 채, 못난 사람은 기가 죽고, 부자는 부자라 해가지고 목에다 힘을 주고, 권리가 있으면 권리가 있다고 남을 업신여기고 자기의 권리를 휘두르고, 그러다가 부정(不正)을 하다가 잘못되면 또 다시 감옥에도 가고 그러한 흥망성쇠와 생사윤회와 희로애락 속에서 우리는 무량겁(無量劫)을 오늘날까지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몸속에는 어떠한 모습으로 있다하더라도 우리 속에는 부처님과 똑같은 진여불성(眞如佛性), 비로자나법신불이 우리 속에는 살아계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신 목적은 ‘너희들 모두가 다 원래로 부처님이다. 진여(眞如)다.’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켜 주어가지고 그것을 깨달아서 영원한 생사를 해탈하게 해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것을 확실히 믿고 그것을 우리가 구현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그 진리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참선을 하며 근기(根機)에 따라서 경(經) 공부를 하거나, 주력(呪力)을 하거나, 염불(念佛)을 하거나,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마는,
가장 유식(有識)·무식(無識)을 막론하고 누구라도 있는 그 자리에서 그 도를 닦을 수 있는 방법이 ‘이뭣고?’ 참선법(參禪法)입니다.

종파(宗派)에 따라서 각기 자기가 믿는 경전에 의거해서 여러 가지로 설법을 하고 교화를 하고 있지마는, 우리 용화사에서는,
일어나는 생각,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에서는 온갖 생각이 일어납니다. 좋은 생각도 일어나고 나쁜 생각도 일어나고 슬픈 생각도 일어나고 고통스러운 생각도 일어나지마는, 일어나는 그 생각을 바로 발판으로 해서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하면 그 ‘한 생각’에 자기의 본마음을 찾는 공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때가 따로 필요가 없고, 장소가 따로 필요가 없고, 언제 어디서라도 나를 찾는-나의 부처님을 찾는 길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산승이 이 법상에 올라와서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부처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의 부처를 찾는 것」이 바로 그것이 정법(正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이고, 그것이 참선(參禪)인 것입니다.

오늘 부처님 오신날을 기해서 많은 말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죄 있는 사람은 감옥에서도 ‘이뭣고?’를 하고, 부자도 ‘이뭣고?’를 하고 또 높은 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이뭣고?’를 하고, 자기가 자신을 찾다 보면 자기의 참마음을 깨달아서 진리와 자기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어려울 것입니다. 별로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자꾸하다 보면 자꾸 잊어버리고, ‘이뭣고?’를 하지마는 망상(妄想)이 일어날 것입니다마는 그 망상이 어디서 일어났냐 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여불성에서 그런 파도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원래 물은 깨끗하고 조용하지마는 바람이 불므로 해서 물결이 일어나.
물결이 일어났어도 내나 그 물결이 물인 것이고, 그 물은 원래 본성인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파도를 없애고 물을 찾지 말고, 파도에 즉해서 ‘이뭣고?’를 찾으면 진여불성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망상과 번뇌를 버리고 찾지 말고 거기에서 ‘이뭣고?’로 들어가면 가장 빨리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삼천 년 전에 열반(涅槃)하셨지만, 우리가 이 법에 의해서 ‘이뭣고?’를 통해서 자성(自性)을 찾는다면 언제나 어디서나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초파일에 많은 신도분들이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서 이렇게 많이 모이셨고 또 정성을 표하고 소원을 빌기 위해서 많은 등불을 켰습니다마는,

등불을 켜면서도 ‘이뭣고?’를 하시고, 돌아가신 길에도 ‘이뭣고?’를 하시고, 돌아가시면 가정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모든 문제를 ‘이뭣고?’-자기가 자기의 진성(眞性)을 찾는 거기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신다면,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이 될 것이고, 가정에 분위기도 좋아질 것이고, 사회도 그것으로 인해서 좋아질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 사람이 이렇게 한다면 부정부패도 없어질 것이고, 대한민국이 정말 살기 좋은 행복한 나라가 될 것이고, 온 세계에도 극락세계(極樂世界)로 변하는 길은 오직 여기에 있다고 산승은 생각합니다.(처음~20분28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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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천상천하무여불~ ;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 찬불게(讚佛偈)라 한다.
『본생경(本生經)』에서 말하기를, 아주 먼 과거에 저사(底沙)라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그때 두 사람의 보살이 있었으니, 한 사람은 석가(釋迦) 보살이라 했고 또한 한 사람은 미륵(彌勒) 보살이라 했다.
어느날 저사불께서 두 보살을 관찰해 보시니, 지혜의 면에서는 미륵 보살이 앞서 있으나 중생 교화의 면에서는 석가 보살이 앞서 있어서, 저사불은 석가 보살로 하여금 속히 부처를 이루게[成佛] 하기 위하여 설산에 올라가 보굴(寶窟) 속에서 화광삼매(火光三昧, 火定)에 드셨다.
이때 석가 보살이 산에 올라가 약을 캐고 있었는데, 저사불께서 보굴 속에 앉아 화광삼매에 들어 밝은 광명을 내뿜는 것을 보자, 그 거룩한 모습에 어찌 할 수 없어-들었던 발을 내려놓고 또 다른 발을 들어서 걸어가지를 못하고-한 발을 들은 채로 합장하고, 환희하며 믿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하여 일심으로 우러러 뵙되 잠시도 눈을 깜박이지 않고 7일 낮과 7일 밤을 있었다.
여기에서 그 칠일칠야(七日七夜) 시일이 지나가면서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 천상천하에 부처님 같으신 이 없으시고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 시방세계에서도 견줄 이 없도다.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 세상에 존재하는 것, 내 모두 보았으나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 그 어느 것도 부처님에 비할 바 아니네.

이 게송을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찬불게(讚佛偈)라 하는데,
7일 7야 동안 세존(世尊)을 자세히 관하되[諦觀] 조금도 눈을 깜박이지 않으시니, 이로 인해 아홉 겁(九劫)을 뛰어넘어 91겁 만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를 얻으셨다.
[참고] [대지도론(大智度論)] (4권) '初品中菩薩釋論第八' 참고. [전등록 2] (동국역경원) p133 참고.

*저사불(底沙佛) ; 산스크리트어 Tisya. 부처님 이름. 불사(弗沙)·보사(補沙)라고도 함. 명(明)·원만(圓滿)이라 번역한다.

*세간(世間) ; (산스크리트어 loka) 세(世)는 파괴·변화, 간(間)은 가운데·간격을 뜻함.
①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② 생물들의 세계. ③ 생물들이 거주하는 자연 환경, 곧 산하대지. ④ 세상. 이 세상. 세속. ⑤ 산스크리트어 saṃsāra 미혹한 세계.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게송) ‘관타야불망~’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99 ‘찬불(讚佛)’ 게송 참고. *謌(가) 노래. 歌와 동자.
*무생(無生) ; ①생멸(生滅)을 벗어난 절대의 진리. 생멸(生滅)이 없는 도리. 곧 불생불멸하는 진여법성(眞如法性)을 알고 거기 안주하여 움직이지 아니함. 무생법인(無生法忍).
②아라한(阿羅漢) 또는 열반(涅槃)의 번역어. 번뇌를 없앤 경지를 말함.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도리(道理) ; 이치(理致).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는 모든 만유(萬有)를 꿰뚫고 있는 법칙. 모든 것에 두루 통하는 진리. 진리와 결합된 이론이나 증명. 타당한 이치.
*법화경(法華經) ; 본이름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7권 28품. 구마라집(鳩摩羅什) 번역.
경 전체를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부에서는 회삼귀일(會三歸一)을, 후반부에서는 세존의 수명이 무량함을 설함.
회삼귀일(會三歸一)이란 세존이 이 세상에 출현하여 성문(聲聞)과 연각(緣覺)과 보살(菩薩)의 삼승(三乘)에 대한 여러 가지 가르침을 설하였지만 그것은 결국 일승(一乘, 오직 하나의 궁극적인 부처의 가르침)으로 이끌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며, 후반부에서는 세존을 법신(法身)과 동일시함으로써 영원한 존재로 상정하여 신앙의 대상을 확립함.
*(게송) 제법종본래~ ; [법화경(法華經)] 방편품(方便品) 사구게.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주력(呪力) ;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로 하는 기도.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의 효과.
*염불(念佛) ;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과 같은 불•보살님의 이름을 외움. 흔히 어떤 일을 기원하며 ‘나무관세음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을 소리 내어 외우는 일을 말한다.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종파(宗派) ; 한 종교에서 교리나 의식의 차이로 나뉜 큰 갈래.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이뭣고?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이뭣고? (이 무엇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4. 4. 30. 12:57

§(240) 공부가 안 될때, 그때가 한 계단 올라서려고 하는 중요한 고비다 / 내 뜻에 맞거나 맞지 않거나, 어떠한 경계를 만나더라도 그 경계에 속지 말고, 거기서 화두를 들고 공부를 해 나가야 한다.

 

**송담스님(No.240) - 84년 하안거 결제 및 백일기도 입재 법회에서. (용240)

 

약 12분.

 


처음에는 앉는 자세를 배우고 또 호흡하는 법도 배우고 그래가지고 화두를 드는 법을 배워서 해 가면, 처음에는 곧잘 그런대로 되어가서 ‘이렇게 되어가면 잘 되겠구나’,
그렇게 해서 앉는데 다리가 좀 아프고 허리가 아프기는 허지만 별로 졸음도 안 오고, 생각은 이 생각 저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화두만 자꾸 들고 나가고,
그대로 가면 ‘이거 석 달만 허면 내가 공부에 대해서 기초를 잡을 수 있겠구나.’ ‘이런 식으로 해서 3년만 하면 내가 틀림없이 견성(見性)을 할 거다.’ 이런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대들었는데,

과연 처음에는 졸음도 안 오고 생각만 좀 일어났다 꺼졌다 허는데, 나중에 한 달을 해 가도 별로 공부가 처음 시작한 때보다 무엇이 좀 나아진 것 같지 않고,
두 달을 해도 처음에는 졸음은 안 왔었는데 두 달쯤 허니까 졸음이 또 퍼 일어나고, 졸음에 빠졌다가 졸음에서 겨우 어떻게 정신차려서 졸음이 깰만 하면 그때는 또 망상(妄想)이 퍼 일어나고,
망상을 실컷 하다가 보면은 나중에는 또 졸음이 오고, 그래서 졸음과 망상이 번갈라 가면서 일어나 가지고 도대체 공부가 잘 되는 것 같지를 않고.

나중에는 울화통(鬱火통)이 터질라 허고 가슴이 답답하고, 한 시간이 대여섯 시간처럼 그렇게 지루하게 느껴지고, 가만히 시계를 보면은 ‘앞으로 10분만 지내면 이제 방선(放禪)을 하겠다’하는데 그 10분이 1시간보다도 더 지루하고 길게 느껴진다.
이럴 때 좀 답답할 때 일어나서 밖에 가서 포행(布行)도 좀 하고 바람도 쐬면 좋겠는데, 5분이나 10분 남겨 놓고 자발없이 일어날 수도 없고, 이렇게 해서 한 달•두 달•한철이 지내갑니다.

그런데 그 답답허고 지루허고 그때 그 공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때가 참으로 공부해 나아가는데 중요한 고비다’하는 것을 미리 잘 알고 계셔야 합니다.
공부가 한 걸음 나아갈려면, 그러헌 답답허고 견디기 어려운-이 몸이 뒤틀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시간이 지루허고-그런 고비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애기를 길러 본 경험이 있으시면 아시겠지만, 갓난 애기를 길러 보면 무럭무럭 젖 잘 먹고 잘 크다가 설사병이 나기도 하고 어디 병이 나기도 하고 그런데 그 병을 앓고 나면 살은 좀 빠지지만 그전에 아니 하던 새로운 재주를 부리게 됩니다.
재롱을 피우게 되기도 하고, 뭐 이상한 귀여운 짓을 하게 되고, 또 말을 그동안에 한마디도 못하던 애기가 무슨 말도 한마디씩 허기도 허고 그러는데. 병치레하고 나면 푹 크거든. 한 치 가량 푹 크면서, 살은 빠지면서 키는 크고 그러면서 재롱은 늘고 그러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무엇이던지 사업을 할 때나, 학문을 하거나 또 이런 참선을 헐 때에도, 한 고비 올라서려고 헐 때에는 반드시 그런 진통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답답하고 재미가 없고 공부가 허기 싫어지기도 하고 그런 고비를 만났을 때, 조금도 그것을 짜증을 내거나 ‘내가 이 공부가 안 될려고 업(業)이 두터워서 이 공부 못할 징조인가 보다’ 이런 생각을 갖지를 말고,

「이건 공부를 허다 보면 한 계단 올라설려고 할 때에 이런 증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깊이 명심을 하고,
그러한 경계(境界)가 나타나더라도 오히려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단전호흡을 허면서, 짜증이나 또는 물러서려는 그런 생각을 갖지 말고서,
오히려 좋은 징조라고 하는 것을 알고서 그 고비를 잘 지혜롭게 넘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한결 앉기도 수월하고 공부허기도 수월해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또 그렇게 공부가 수월하게 잘 들리고 화두가 잘 들린다 해서 또 좋아하는 마음을 내기가 쉬운데 그 좋아하는 마음도 내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지어가면 우리 공부허는 사람의 주변에는 항시 마군(魔軍)이가 와서 육근문두(六根門頭)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고 그랬습니다.
‘왜 마군이가 와서 기다리고 있느냐?’하면 공부를 해서 도(道)를 이루게 되면 마군이가 살 자리가 영토가 좁아지는 것입니다.

나라도 법도(法度)가 있어서 잘 해 나가면 도둑이 발붙일 곳이 없어지듯이, 나라가 법이 문란해지고 경찰이나 군인이나 이런 힘이 모다 분열이 되어가지고 힘이 타락되어 가지고 힘이 없어지면, 곳곳에 깡패가 득실거리고 도둑이 일어나고 그래가지고 일반 사람들이 살기가 어려운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모다 법률에 기강이 서고 그러면 도둑이나 깡패나 모다 사기꾼들이 발붙일 곳이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도둑이나 깡패나 그런 못된 사람들은 나라가 질서가 잡히는 것을 싫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마군이들도 역시, 공부해 나가는데 있어서 마군이들도 한 수행인이 공부를 열심히 허면 그래가지고 그이가 도(道)를 통하게 되면 자기네 발붙일 곳이 없기 때문에, 항시 주변에서 지키고 있다가 조그마한 틈만 있으면 그 틈을 타서 침입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눈으로도 들어오고, 귀로도 들어오고, 코나 입으로도 들어오고, 몸뚱이로도 들어오고, 생각을 통해서도 들어와서, 그 육근문두에 항시 마군이가 틈을 엿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공부하는 사람은 그 ‘한 생각’을 어떻게 먹느냐? 그 ‘한 생각’에 마군이가 들어오기도 하고 안 들어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아파트나 주택가에 그 틈을 타서 강도나 절도가 들어오는 거와 마찬가지로 집안 문단속을 잘 하면 그런 도둑이 엿보지를 못하겠지만, 도둑은 항시 그런 틈 나오기를 이모저모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결국은 들어오고,
그 주인이 잘 단속을 해도 영리한 도둑은 일부러 그 틈을 맨들어 가지고 갖은 수단을 부려 가지고 틈을 내도록 한눈을 팔도록 맨들어 가지고 들어오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도 닦는 사람에게는 그 점을 명심을 하고, 어떠한 경계를 만나더라도 그 경계에 속지를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군이가 들어올 때에, 마군이가 나를 유혹할 때에는 언제라도 나의 뜻에 맞는 내가 좋아하는 그러한 탈을 쓰고 나에게 접근을 해 온다는 사실. 사기꾼이 어떤 사람을 사기를 칠 때에는 흉악한 그러헌 얼굴을 가지고 나타나지 아니하고, 꼭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써 나에게 접근을 해 오는 것입니다.

돈을 좋아하면 돈벌이가 잘된다고 유혹을 하고, 그이가 색(色)을 좋아하면 그런 것을 가지고 와서 유혹을 하고, 명예나 권리를 좋아하면 명예나 권리 그런 것을 미끼로 해 가지고, 그것을 잘 해 준다고 이렇게 해 가지고 접근을 해 오는 것입니다.

우리 공부해 나아가는 데에도 반드시 그와 같다고 허는 것을 명심을 하고 그러헌 경계에 내가 현혹되지 않도록, 좋은 것을 보아도 거기에서 화두를 들고 더군다나 내 뜻에 맞지 않는 것을 보고는 더욱 더 화두를 들고서 공부를 해 나가야 허는 것입니다.(10분35초~21분4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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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울화통(鬱火통) ; [주로 ‘치밀다’나 ‘터지다’, ‘터뜨리다’ 등과 함께 쓰여]몹시 답답하거나 분한 마음이 쌓이고 쌓인 것. ‘울화(鬱火)’를 강조하여 이르는 말이다.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포행(布行) ; 스님들이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한가로이 뜰을 걷는 일.
*자발없다 ; (언행이)가볍고 참을성이 없다.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단전호흡 ; 분류 ‘참선(자세, 호흡)’ 참고.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육근문두(六根門頭) ; 육근(六根 ; 眼耳鼻舌身意)의 문 앞. 육근과의 경계.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법도(法度) ; 규칙•법칙•율법•법규•결정들.
*색(色) ; ①인식의 대상이 되는 물질적 존재의 총칭. ②육체. ③집착 또는 색욕.

Posted by 닥공닥정

 

 

§(240) (게송) 정종소식몰자미~ / 다못 바보처럼 멍청이처럼 무조건하고 ‘이뭣고~?’ /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 큰 의심 밑에 큰 깨달음을 얻는다.

그저 ‘이뭣고?’하면은 거기에서 업장(業障)이 소멸이 되고, 거기에서 생사(生死)를 해탈(解脫)을 하고, 거기에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한다, 그러니까 나도 해야겠다. 다못 그런 정도의 생각만 가지고 바보처럼 탁 맥힌 상태에서 ‘이뭣고~?’


**송담스님(No.240) - 84년 하안거 결제 및 백일기도 입재 법회에서.(용240)

 

약 11분.

 


정종소식몰자미(正宗消息沒滋味)헌데  불용여하우약하(不用如何又若何)로다
나무~아미타불~
타파은산철벽거(打破銀山鐵壁去)하면  차시방도사생하(此時方渡死生河)니라
나무~아미타불~

정종소식몰자미(正宗消息沒滋味)라. 최상승 활구참선은 몰자미(沒滋味)여. 아무 재미가 없다 그말이여.
불용여하우약하(不用如何又若何)여. 여하약하(如何若何)가 다 소용이 없어. 이러쿵저러쿵 잘하니 못하니, 잘되니 안 되니, 시비(是非)가 여기에는 붙지를 못한다.

타파은산철벽거(打破銀山鐵壁去)하면 은산철벽을 타파해 버리면,
차시방도사생하(此時方渡死生河)니라. 이때가 바로 생사대하(生死大河)를 건너가는 것이다.

은산철벽(銀山鐵壁)을 타파해 버려. 무슨 은산철벽이냐?
화두(話頭)의 의심, 자기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이 알라야 알 수 없고, 앞으로 나갈라야 앞도 맥히고, 뒤로 물러설라야 뒤도 맥히고,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둘러봐야 꽉 맥혀서,
마치 쥐가 쇠뿔 속으로 들어가서 나아가자니 앞도 맥히고, 물러서자니 뒤도 맥히고, 쇠뿔통이 좁아서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돌아서도 못하고.

‘이 쇠뿔이 무엇이냐?’하면 중국에 가면 물소가 있는데, 물소뿔이 기드란헌데 그 기드란한 물소뿔을 가지고 쥐 잡는 쥐덫을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
물소뿔 속에 저 안에다가 쥐가 좋아하는 음식물을 넣어 놓으면 쥐가 그 좋은 냄새를 맡고서 그걸 먹으려고 쇠뿔 속으로 들어가서, 그 음식을 물고 잡아댕겼다 하면은 찰크닥! 뒷문이 닫혀 가지고 쥐가 꼼짝없이 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 쥐가 물소뿔에 들어가서 꼼짝 못허고 잡혀.

앞으로 나가자니 꽉 맥혔고 뒤로 물러서자니 뒤도 닫혀서 돌아서자니 좁아서 돌아서지도 못하고, 화두를 들고 의심을 허되 이렇게 꽉 맥히도록 맥히게 공부를 지어가야 한단 말이여.

알아 들어갈 것이 있고, 따질 것이 있고 이론적으로 분석허고, 그래 가지고 무슨 「아하! 그렇구나!」하고 이렇게 알아 들어가고 더듬어 들어가고 그렇게 화두를 참구(參究)를 허면 그것은 사구선(死句禪)이라 해서 의리선(義理禪)이라 해서 그것은 바른 참선이 아니여.

무조건하고 ‘이 무엇고?’ ‘이뭣고?’

다못 바보처럼 멍청이처럼 무조건하고 ‘이뭣고~?’

그저 아무것도 몰라도 상관이 없으니까 모를수록에 더 좋으니까 ‘이뭣고~?’

그저 ‘이뭣고?’하면은 거기에서 업장(業障)이 소멸이 되고, 거기에서 생사(生死)를 해탈(解脫)을 하고, 거기에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한다, 그러니까 나도 해야겠다. 다못 그런 정도의 생각만 가지고 바보처럼 탁 맥힌 상태에서 ‘이뭣고~?’

바보처럼 그렇게 해 갈수록에 그 사람은 상근대지(上根大智)고,
이것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이렇게도 해봤다 저렇게도 해봤다, 이렇게 서성거리고 더듬거리고 갈팡질팡하고 이런 사람은 상근대지(上根大智)라 할 수가 없어. 아직 이 활구참선(活句參禪)하는 최상승법(最上乘法)에 들어가는 인연(因緣)이 성숙하지 못한 증거여.

참으로 이 최상승법에 발심(發心)을 헌 사람이면 뭘 많이 알려고 헐 필요도 없고, 이리저리 따질 것도 없고, 그저 찰나간에 바보 똥멍청이가 되어가지고 그저 ‘이뭣고~?’ 그렇게만 들어가야 된다.
그 상태를 갖다가 쥐가 쇠뿔 속에 들어가서 꼼짝 못한 거와 같고 이것이 바로 은산철벽이다 그말이여.

은(銀)으로 만들어진 산(山)이요, 쇠[鐵]로 맨든 벽(壁)에 부딪힌 것 같애서, 갈라야 갈 수가 없어. 뚫고 나갈라야 뚫을 수가 없어. 화두가 그렇게 되게 맥혀 버려야 헌다 그말이여.

그래서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 큰 의심 밑에 큰 깨달음을 얻는다.

그 되게 맥히고 그 의심이 간절(懇切)하고 크면 클수록 큰 깨달음을 얻는데, 그 의심이 「어떻게 해서 의심이 터지냐 ?」하면,
이론적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고 그 동안에 보고 듣고 한 경전이나 불교교리 그런 것을 가지고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이렇게 나가면은 죽을 때까지 그런 식으로 따져도 그것은 확철대오(廓徹大悟)라 하는 것은 오지를 않고, 무조건하고 꽉 맥힌 의심만으로만 나가. 그러니 얼마나 답답허겄냐 그말이여.

무슨 책을 보면 환히 알아지는 것이 있고 느껴지는 것이 있고 얻어지는 것이 있고, 날마다 보면 날마다 본만큼 무엇인가 알아지는 것이 있으니까 좀 재미도 있고 답답허지를 않은데,
여하약하를 막론하고 무조건하고 그저 ‘이뭣고?’만 하니, 오늘도 그 모냥이고 하루를 더 해도 그만이고, 일주일을 해도 알 수가 없고, 한 달을 해도 알 수가 없고, 석 달을 지내도 아무 것도 얻어지는 것이 없고, 답답허기만 허다.

그것이 공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어야 그것이 참으로 공부가 바르게 되어가는 것이고, 그렇게 바르게 해 가야 거기에서 업장이 소멸이 되고 결국은 확철대오를 해서 생사를 해탈하게 되는 것이다.(처음~10분3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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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정종소식몰자미~ ;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 (권6) '贈淳長老' 사명대사(1544-1610) 게송 참고.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시비(是非) ; ①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 ②이러니저러니 좋지 않게 트집을 잡아서 말함. ③옳고 그름.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衆生心)이요 사량심(思量心)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뭣고?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이뭣고? (이 무엇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상근대지(上根大智)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질이 뛰어나고, 지혜가 큰 사람.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