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4/18) 박산무이선사의 선경어.

**전강선사(No.370)—박산무이선사 선경어(4) (갑인.74.01.13.새벽) (전370)

 

약 23분.


마상공명부득한(馬上功名不得閑)이요  연래사십이쇠안(年來四十已衰顔)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고향추천만리원(故鄕秋天萬里遠)이요  일발청산낙조간(一髮靑山落照間)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마상공명(馬上功名)도 부득한(不得閑)이다. 마상(馬上)에서 공명(功名)을 허고 아무리 높은 지위 권리를 다 가지고 참 경북 경남허는 세력을 가졌다마는 한(閑)이 아니여. 아무 한가함이 없어.
그 다사분주(多事奔走)허고 벼슬허고 부귀영화(富貴榮華) 한 것이 그놈의 것이 한(閑)이 아니여. 복잡다단혀, 인생사가.

그것 해봐. 그 뭐 아무리 헌다한들 사십이 못 되아서 얼굴만 가죽살이 사방 쭈글쭈글해지면서 노쇠해서 늙어서 그만 다리도 삐뚤어지고, 눈도 틀어져 번지고, 고개도 모도 뒤로 자빠져 번지고, 등도 굽고, 팔도 모도 이상스레 돌아가고, 다리도 쩔름쩔름허고, 이래 되아 버리는 것이다. 아무리 공명(功名)이 좋다한들 그것이 사십도 못 되아 그 지경 된다.

고향만리추천원(故鄕萬里秋天遠)이다. 그거 뭐 그래 가지고는 그거 무슨 뭐 그 몸뚱이 내던져 번지고, 고향이고 무엇이고 다 내던져 번지고 추천(秋天)만 멀어져. 어디로 갈는지 부지거처(不知去處)여. 갈 곳을 알 수 있나? 어디로 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길이여? 인생사가. 이걸 한번 생각해 보지.
무엇을 해야겄는가? 꼭 그 내 본래(本來)의 내 본래 몸뚱이, 늙지 않고 죽지 않고 그 본래 갖춰져 있는 아! 그 몸뚱이, 그 내 아신(我身)을 반다시 찾아야 할 거 아닌가?

일발청산낙조간(一髮靑山落照間)이다. 한번 머리를 깎고 중이 되아서 도 닦는 것도 낙조(落照) 사이다. 그것도 잠깐 동안이니 그 잠깐 동안이라도 도문(道門)에 들어와서 도(道)를 닦거들랑 잘해라. 어떻게 해야 잘허는 것이냐?
참! 그것 거 말만 '헌다 헌다' 하고 그러지를 말고 실참(實參), 실질로 한바탕 해봐야겠다. 맨 그 소리지 뭐. 천 번 만 번 우리 부처님 49년 설법이 모도 그거지. '거 중생들 어서 어쨌든지 발심출가(發心出家)해서 도 닦아라'


주공부(做工夫)허되, 공부를 짓되—참선(參禪)허되, 참선이여! 요중정경정(要中正勁挺)이다. 중정(中正)과 경정(勁挺)을 요구하는 것이다.
중정(中正)은 '가운데 중(中)' 자, '굳셀 정(正)' 자, 아주 중정해야 되아. 여지없이 한번 참선을 믿고 참선을 허거들랑 타락 변태 없이 그 한번 그 믿으면은 믿음이 그만 좀 먹어서는 못써. 중간에 그만 퇴타해서는 못쓴다 말이여. 그밖에는 없으니 어쩌다가 정법(正法)을 내가 들어 가지고 믿었냐 말이다. 참 기가 맥히지.
그 정법 한번 믿어 가지고, '이뭣고?' 찾는 법, 그대로 견성(見性)해서 전해 준 우리 부처님의 정법, 그밖에 더 있어? 뭔 교를, 교외(敎外)에 별전선지(別傳禪旨)라고 했지, 교전(敎傳)이라고 어디 어디 있나? 교전 없어. 참선(參禪) 전(傳)하는 것이 교(敎)여. 참선허라는 것이 교(敎)여.

그 참선허라는 것이 교(敎)인디, 뭐 교(敎)를 따로 전헌 디가 어디 있어? 또 어디 계행(戒行)을 따로 전한 디가 있나? 계(戒)만 닦아 뭣혀? 계(戒)만 닦아서 뭣 할 것인가 말이여. 꼭 참선을 해사 그대로 계(戒)가 닦아지지. 참선허는 법이 그대로 계(戒)인디, 참선은 계(戒)가 저절로 따라 있어.
참선법은 그 어디 계(戒) 없이 되나? 그대로 계(戒)인디. 참선해 나가는 것이 계(戒)인디, 따로 무슨 계를 지켜? 참선허면은 그만 계(戒)다.

대승계, 범망경 십중대계, 아침에 예불 저수는 계(戒), 딱! 내가 옳게 해 놓았지. 요렇게 해 나가야 되아. 이대로가 그만 기가 맥힌 진짜 기도고, 불법이고, 참선법이고, 일체업이 갖춰진 아! 이 참선법이여. 아침마당 모아서 이렇게 떠억 십악참(十惡懺) 기도 모시고, 법문 듣고, 아! 참선해 나가는 것이여. 이게 부처님 우리 정법 닦아 나가는 본법이여.

그러니 턱 그만 불교거들란 불법이거들란, 불법(佛法)답게 부처님 정법답게 해 나가야 할 텐디, 아! 이건 중앙에다가서 척! 그만 참선 선원(禪院)부텀 척 만들고, 조계사를 선방도량(禪房道場) 탁 맨들어 가지고는 거다가서 또 그 가르켜야 할 것이니까, 교당(敎堂) 하나 저 강당(講堂) 하나 만들고, 두 가지 맨들어 놓고 내 넉넉허지 그 터에다가.
척! 그 해놓고설랑은, 대교(大敎)까장—처음에 중 되면은 사미과(沙彌科) 해서 사집과(四集科) 해서 그다음에 사교과(四敎科)로 해서, 대교과(大敎科) 터억 가르켜 가지고는 대교 마치면은 사교입선(捨敎入禪)허고, 교는 놓아버리고 참선방에 척 들어와서 5안거(五安居) 응, 5안거는 해야 혀.
안거 턱! 시켜 가지고는 그때 가서는 포교사 자격은 포교사로 내보내고, 또 절대 그만 재입임만(再入林巒), 다시 산에 들어가서, 5안거를 했지마는 산에 들어가서 어디 혼자 가서 어디 조용헌 처소에 가서 입정(入定)허고 그만 도를 닦을라는 사람은 또 그렇게 해주지. 그렇게 해주고.

아 이렇게 따악 순서(順序)이 순서적으로 이렇게 해 나갈 것 같으면은, 강당에서 사미과 · 사집과 · 사교과 · 대교과를 마쳤으니 그 중의 행동이 원만하고, 또 참선방에 들어와서 5안거를 했으니 그 자격이 훌륭허고, 그래 가지고 나올 것 같으면은 어디 가서 있든지 그 문풍(門風)이 진동헐 것이고, 가르켜 나가는 게 질서정연할 것이고, 아 참! 스님답고, 선사(禪師)답고, 기가 맥힐 것이다 그 말이여.
이건 하나 허지 않고, 맨 지방에 모두 각 조그만한 사찰 사찰에 그 돈, 모도 그 분배금 모도 거둬다가서는 중앙에서 뭣허고 다 소비해 버리고 빚만 자꾸 지냐 그 말이여. 이게 종단이여 뭣이여? 뭔 말라빠진 것이여? 이것이. 암만 말 안 헐라고 해도 내 한 말헌다 그 말이여.

지금 종회(宗會)니, 그렇게 무슨 종회 안을 어떻게 해다 놓은, '인자는 종회도 그만 두어 번지고, 대본산 30본산도 그만두어 번지고 다시 새로 모도 맨들자. 꾸며 다시 꾸며서 맨들자' 어쩌고 허니, 거기에다가 어떻게 좋은 안(案)을 내달라고 하니, 좋은 안이 뭣이여? 내 안은 나는 이뿐이여.
첫째, 선종(禪宗) 사찰 맨들어 가지고는 거기에 가리키는 강당(講堂) 만들어 가지고 그렇게 떡 해 가지고서는 자격을 떡 맨들아 내놓을 것 같으면 가나오나 어디든지 가면은 스님답고 행동답고.
이것 마구잽이 그만 그저 엊그저께 온 사람도 사미과니 뭣이니 사집과니 대교과는 그만두고, 뭐 세상에서 대학을 졸업했다한들 뭣혀? 어디 불교에서는 택이나 당한가? 모도 세상에서 익힌 것밖에 없지. 세상에서 학교나 댕기면서 뭐 세상사 익혀 논 건 뭣이여? 그저 절에 들어와서 그 행동을 다 배워 가지고서는 척 나서 놓으면은 참 정연허지.

아! 그것부텀 어떻게 만들어야 되는 것이지. 자격자부텀 맨들어야 되는 것이지. 마구잽이 그만 주먹치기나 하고 깡패 행동이나 헌 걸 막 그만 「정화(淨化)」해 머리 깎아서 중을 맨들어 놓으니, 그만 가고 오는 전체 행동이 다 삐뚤어지고 하나도 올바르지 못혀.
가도 어디 처억 화두를 들고 가는 경행(經行)도 하나도 없고, 그저 고갯짓을 사방 위로 알로, 종횡(縱橫) 묘유(卯酉)로 막 드리 허고 돌아댕기니, 세상사람들이 뽄볼 거 있어야지. '저거 비구승이냐?'고 야단들이지. 그 세상에서 치고 패고 허든 그런 짓이나 해 가지고는 잘해주느니 잘 못해주느니 모도 그만 방바닥을 파느니, 뭐래. 아! 이거 되겄냐 그말이여. 이거 이래 되아?

이걸 한바탕 어떻게 좀 조직적으로 해 나가야 헐 텐디, 지금 종회라고 헌들 무슨 종회를 어떻게 헌지 모르지. 날 보고 무슨 안을 써서 좀 해 달라고. 내 이런 말밖에 헌 일 없어. '이래야 될 것이다'


중정경정(中正勁挺)하야, 중(中)으로 경정중정(勁挺中正)해서 불퇴전(不退轉), 퇴전치 아니헐 그 자격이 여기서 나온다 그 말이여. 대교(大敎) 졸업허고 그다음에 5안거(五安居) 헌 뒤에 참선학자가 되드래도 인자 그때 가서 정식 학자가 되아.

불근인정(不近人情)이다. 인정에 끌리들 말아라. 참선허는 학자가, 정법 믿는 학자가 인정(人情)에 끌려서는 안 된다. 그놈의 인정(人情), 인정이라 하는 것이 그게 애정(愛情), '사랑 애(愛)' 자 애정, 인정 거지반 같은 것인디, 인정은 좀더 광범하고, 애정! 애정은 내 가족들 모도 '사랑 애(愛)' 자 애정, 그다음에는 모도 또 친구 반연(攀緣) 모도 인정.
요놈의 인정에 끌려? 학자가? 도(道) 닦는 도학자(道學者)가 인정에나 끌려서 그 인정에 끌려 말 것인가? 자식이 하도 예쁘고 사랑하니까 고놈 들여다보다가 말 것인가? 남편이 제일 좋으니까 남편 그러면 들여다보다가 말 것인가?

어림도 없는 짓이여. 애(愛)를 끊고 애착(愛着)을 끊고 출가해서 도(道) 닦아란 말이여. 도를 안 할 것이여? 다 안 해도 괜찮아, 도(道)는 안 해서는 안 되아. 뭐 천담만담(千談萬談) 소용없어.
왕궁, 그 무엇이여? 정반왕위, 정반왕위(淨飯王位)를 들여다보고 우리 부처님이 계셨드라면은 어찌될 뻔 했어? 확 한번 끊어 버리고 설산(雪山) 들어와서 그 애착 끊어 버린 것이 어때? 조복(朝服)을 벗어 번지고 머리를 착 깎아서 궁성(宮城)에 돌려보내니까 그만 야수다라 부인은 앙천대곡(仰天大哭)을 했고, 정반왕은 낙담(落膽)이 떨어져서, 어쨌냐 말이여? 그렇게 인정을 사정없이 끊어 베 번지시고 터억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했다.

견성성불을 해 가지고, 당신만 견성성불을 해 가지고 그만 그 견성성불의 복락(福樂)을 혼자만—그 복락이, 그놈이 견성성불한 복락이 어떠헌가? 생로병사(生老病死)가 거 붙어 있나? 무슨 그 무엇이 고(苦)가 거기 있나? 그 견성성불이라니! 마음속에서 내가 내 면목(面目)에서 그러헌 복락이 해탈복락이 있다 그 말이여. 그 내 어디가 뭐 다시 무슨 뭐, 병들어 죽는 것이 있어야지. 아정락이여. 그게 생사(生死) 없는 아정락이여.
내 마음에 있어. 내게 있어. 그지만 '나'여! 그놈이. 보들 못했으니 깨닫들 못했으니 이 지경을 허고 있거든. 그저 일어나는 마음, 번뇌 마음, 그저 산란 마음, 애정 마음, 뒤끓는 놈, 이놈 뒤끓는 놈, 이놈의 그 고(苦) 받니라고 몸뚱이 늙어 아파 죽는 것보담 더 헌다. 심(心), 그 마음 그 괴로운 고(苦)가. 일어나는 마음 그 여러 가지 그놈에 죽을 지경이여.

중정경정(中正勁挺)해서 그 인정에 끌리들 말어라. 중정(中正)이라는 것은 다시는 그만이여. 한번 믿었으면 불(佛) 되아 버리는 것이고, 견성해 버리는 것이지, 퇴타(退墮)가 없는 것을 중정경정(中正勁挺)이라 햐. 알아듣기 쉽게 말하자면.
누가 말긴다고 안 허며, 천하에 보배를 다 준다고—참선 안 허고 내 말 들으면 천하 보배를 다 준다고 허면은 참선 내번지고 그래 인정에 끌려가? 그것이 도(道)여?

못된 사견 학자(邪見學者)라는 것은 들어오면 벌써 사견을 장만해 가지고는 고약하지 그거. 사견 같이 못쓸 것은 없어. 뭐 보이는 거, 뭐 제 소견 가지고 '알았다'고 '견성했다'고 주뎅이 벌릴라 햐? 어디서? 어디라고?
제가 제 지견(知見) 다 아는 것이여. 그 몰라? 알면서 그따구 짓 허거든. 그런 그 못된 행동을 헌다 그 말이여. 일시의 무슨 뭐 그 뭐. 아! 이놈 억지로 인가(印可) 받을라 하면 뭣하며, 아닌 것을 그까짓 걸 가지고서는 견성했다고 하면 뭣할 것인가? 그런 법이 세상 어디 있을 것이냔 말이여?

중정경정(中正勁挺)해서 인정에 끌리지 말아라. 구순정응대즉(苟循情應對則), 그 모도 정(情)에 끌리고 응대(應對)를 헌즉, 애정이나 인정이나 모도 그러헌 디 가서 인정에 끌린즉은, 공부(工夫)가 주불상(做不上)이라. 공부는 올라가지, 되지 아니헐 뿐만 아니라, 참선은 된 법도 없고 안될 뿐만 아니라, 무서운 놈의 해독(害毒)이여. 참 독해(毒害)여. 그 인정 애정이.
부단공부(不但工夫)라. 공부뿐만 아니다. 공부뿐만 올라가지 아니.. 되지 아니할 뿐만 아니다. 그것 한번 혀, 두 번 혀, 월심(月深)허면은 날 깊고 달 가면은 필수류속아사(必隨流俗阿師)다. 그만 아무리 참선헌다 해도 아사(阿師)가 되고 만다. 퇴속허고 말아. 조금허다가 퇴속허고 마는 것이여. 여지없이 참 믿으면은 그저 퇴타가 없어야 되아. 퇴타 틀려.
유속아사(流俗阿師)가 무의야(無疑也). 아사(阿師)가 의심 없다. 그거 뭐 틀림없이 퇴타한다.

주공부인(做工夫人)은, 그러기 따문에 공부인은 대두불견천(擡頭不見天)이요, 머리를 들어도 하늘 쳐다볼 겨를이 없다. 그 내 공안(公案) 화두(話頭) 그거 거각해서 화두 반관(返觀)허니라고, 화두관(話頭觀) 허니라고, 어디 머리 들었자 하늘 볼 겨를이 없어. 그렇게도 틈사구니가 없어야 되아. 저두불견지(低頭不見地)니라. 머리를 숙여도 땅 볼 겨를이 없어. 이렇게 급혀.
간산불시산(看山不是山)이요. 산을 봐도 '이게 산이다' 그게 뭐 어디 가서 그 마음이 나겠나? 화두해 나가는 학자가? 알 수 없는 공안 하나 다루어 가는 학자가 '산이다. 저거 산이다' 뭐 허고 돌아댕겨? 그러면은 고개를 추켜들어 휘휘휘 돌아댕겨? 다만 그 화두 하나를 관(觀)하고 처억 가는데 얼마나 정직.. 얼마나 그 정다워. 얼마나 그 바른 곧은 행(行)이, 화두 학자가 그 얼마나 청정한 고등한 행(行)이냐 말이여.
넘 보기도 완연히 다르지. 천진(天眞)으로 그렇게 공부를 허고 나가니까. 요사적(妖邪的)으로 그거 뭐 꾸며대서 허는 건 또 알 수 있는 것이지. 백지(白地) 그 허도 않는 것이 또 요사로 헌 것이 있지.

산을 봐도 산이 아니며, 물을 봐도 물이 아니며, 모도 일체 경계가 어사(於事)에 무심(無心)이다. 보고 듣는디 다 무심(無心)혀. 화두 하나만 해 나가니까.
가도 간 줄을 몰라. 안 간 게 아니여. 행(行)해도 행(行)한 줄을 모르고, 이렇게 갈 때나, 산 볼 때나, 물 볼 때나, 일체 경계에 다맛 알 수 없는 화두 하나다. '어째서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까,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뿐이다.

좌부지좌(坐不知坐)여. 앉어도 앉은 데 끌리지 안 해. 앉아도 그놈으로 앉고, 알 수 없는 놈 그놈으로 앉고. 천인만인(千人萬人) 가운데에 내가 들어가서 있드래도 불견유일인상사(不見有一人相似)다. 한 사람도 없다. 그 조인광중(稠人廣衆)에 있건마는 하나도 없어, 내 경계가. 화두 하나뿐이기 따문에 통신내외(通身內外)가 지시일개의단(只是一箇疑團)이다. 왼 몸뚱이 안팎이 전체가 지시(只是), 낱 의단(疑團)뿐이다.

의심(疑心) 봐. 활구참선(活句參禪)에 의심 보란 말이여. 이렇게 의심이 독로(獨露)되아 버린다. 철저허게 중정경정(中正勁挺)만 갖추면 이렇게 되는 것이여.

의단불파(疑團不破)하면, 그 의심을 파(破)하지 못허면, 화두 공안에 의심을 타파(打破)하지 못허면은 서불휴심(誓不休心)이다. 쉰 법이 없다. 마음을 놓은 법이 없어. 화두를 없는 법이 없어! 화두 하나 해 나가는 학자가.
차위공부긴요야(此爲工夫緊要也)니라. 이것이, 공부해 나가는 법이 이러허느니라.(처음~23분23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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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마상공명부득한(馬上功名不得閑)~' ; 『청허당집(淸虛堂集)』 '변방의 장수에 부치다(寄邊帥)' 참고. '馬上功名不得閑 年來四十已衰顔 故鄕萬里秋天遠 一髮靑山落照間'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