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법'에 해당되는 글 30건

  1. 2016.03.25 §(081) 마음이란? / 나의 주인공 단속 아니한 죄로 무량겁 생사윤회를 하게 된다 / 내가 나를 찾는 공부 / (게송)생사해탈사비상(生死解脫事非常)~
  2. 2016.03.21 §(081) 심우(尋牛), ‘마음의 소’를 찾는 법이 바로 참선법입니다 / 삼처전심(三處傳心) / 내가 나를 깨닫는 진짜 불교의 수행법을 들을 수 있는 용화사.
  3. 2015.06.20 §(119) 참선(參禪)은 결정코 내가 나를 깨닫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4. 2015.03.21 §(115) 팔만대장경과 참선 / ‘이뭣고?’ 한번 하는 공덕 / 물의 습성, 중생의 온갖 생각 속에 진여불성 / 말세에 태어났으니까 하근기이니까 더 노력을 해야.
  5. 2015.01.23 §(062) 중생의 근기, 팔만대장경, 참선법 / 방편(方便), 구경법(究竟法) / 화두 의심은 꽉 맥혀야 한다 / 참선의 자세, 호흡, 바른 생각 / 있는 그 자리에서 ‘이뭣고?’ 뿐.
  6. 2014.11.27 §(055) 참선법은 자기의 정신혁명을 완수하는 가장 바르고, 빠르고 훌륭한 방법 / 번뇌 망상은 견성성불할 수 있는 좋은 발판.
  7. 2014.10.12 §(242) 참선법에 대한 신심이 굳고 깊어야. / 무당·점쟁이 등 사도(邪道)에 빠지지 말아야. / 일체 경계 바로 거기에 즉해서 화두를 들어야. / (게송)천강동일월~.
  8. 2014.09.14 §(172) (게송)천강동일월~ / 타 종교인을 위한 법문 / 어느 종교든 옳게 믿어야 / 종교 화합 / (게송)안비천말적유사~.
  9. 2014.07.03 §(272) (게송)적하위망적하진~ / 비로자나 법신불, 참선법(參禪法) / 인간의 고통의 원인이 자기한테 있다 / 참회(理懺,事懺) 죄업소멸을 통해서 ‘참나’로 돌아와야.
  10. 2014.06.28 §(269) (게송)광음승불계~ / 병(甁)속의 새의 꿈 / (게송)시비일침몽~ / 일장춘몽 / 공부해 나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사심(生死心)을 깨트리는 것.

§(081) 마음이란? / 나의 주인공 단속 아니한 죄로 무량겁 생사윤회를 하게 된다 / 내가 나를 찾는 공부 / (게송)생사해탈사비상(生死解脫事非常)~

 

다못 들은 풍월(風月)마음이다하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지,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빛깔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놈이 바로 나의 주인이요, 그놈 때문에 세상에 태어났으며, 그놈 때문에 세상을 버리고 어딘가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놈이입니다.

 

끌고다니는 나의 주인공 단속 아니하면은 지옥·아귀·축생 삼악도(三惡道)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를 받을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자업자득(自業自得)입니다. 이것을 단속을 해서 금생부터서 마음속에 삼악도를 돌려서 극락세계(極樂世界) 맨들고, 몸이 담아져 있는 사바세계(娑婆世界), 오탁악세(五濁惡世) 극락세계를 맨드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 생각이 그렇게 우리의 육도윤회(六途輪廻) 원인이 되는 것이므로 그러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충격을 받아서 격분했을 , 슬플 , 외로울 , 괴로울 이럴 생각을 퍼뜩 돌이켜서이뭣고?’ 이것이 바로 지옥의 문전(門前) 직전에서 극락세계로 돌아오는 묘한 방법인 것입니다. 그래서이뭣고?’ 하는 것이 팔만대장경을 전부 읽어 마친 공덕보다도 수승하다고 하였습니다. ‘관세음보살육백만 부른 만큼의 공덕이이뭣고?’ 번하는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감정을 자유자재로 조정을 가지고 과거의 모든 죄를 소멸을 하고 앞으로 새로 죄를 짓지 않게 만드는 이러한 묘한 방법인 것입니다. 그렇게 가지고 나아가서는 내가 나를 깨달을 있게까지 되는 방법, 이것이 참선법입니다.

 

생각 생각이 모여서 하루하루가 되고, 하루하루가 모여서 일생이 되고, 생이 모여서 무량겁이 되는 만큼, 무량겁 생사 문제를 해결 지을려면은 생각 생각을 지혜롭게 단속(團束)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081)—78 4 관음재일 법어(78.04.24.) (용081)

 

(1) 약 19분.

 

(2) 약 8분.

 

(1)------------------

 

몸을 바르게 하고, 둘째 호흡을 바르게 다음, 생각은 무엇을 하느냐? 이것이 인자 진짜 참선이 되겠습니다.

숨을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3 동안 머물렀다가 내쉬면서이뭣고~?’

숨이 나갔으면 들어마셔서 3 동안 머물렀다가 내쉬면서이뭣고?’ 이렇게 , , , 10 20 30, 시간 이렇게 공부를 나가는 것입니다.

몸은 앉았거나 누웠거나 걸어가거나 상관없이 숨은 단전호흡(丹田呼吸) 해야 하고, 단전호흡하면서 들어마셨다가 3 머물렀다 내쉬면서이뭣고~?’ 이렇게만 나가는 것입니다.

 

대관절 이뭣고?’ 무엇이냐?

 

지금 내가 말을 하고 있는 것을 여러분은 듣고 계십니다. 무엇이 듣고 있습니까? “귀가 듣고 있지

귀가 듣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귀를 통해서 듣고 있는 놈이 따로 있습니다.

 

귀는 언제나 무방비 상태로 열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지금 법당에 앉아 계시면서도 생각으로아휴! 내가 캐비넷 쇳대를 내가 잠그지 않고 왔는데 ! 그거 큰일났다빨리 내가 밥도 먹고 쫓아가봐야지 되겠다이러한 생각을 하시면서 말씀을 듣고 계신 동안만은 말씀을 알아듣고 계신 것입니다.

여기 앉아 계시면서 귀는 계속 열어 놓고 있으면서도! 그때 내가 조계사에서 어떤 스님이 법문을 하실 저런 말씀을 들었는데, 스님은 지금 어디로 가셨나? 스님이 그때 ! 생겼고 법문도 잘하시는데 어디로 가셨나?’ 이러한 생각을 1 동안 만이라도 그런 생각을 하고 계셨다면 생각 하신 동안에는 저의 말씀을 완전히 까먹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귀가 듣고 있지 아니하고, 귀를 통해서 듣고 있는 놈이 따로 있다하는 것을 우리는 금방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귀를 통해서 듣고 있는 , 그게 무엇이냐?

그게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대번에 방에 앉으신 , 분도 빼놓지 않고 마음이 듣고 있다고 하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우리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을 듣고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번도 마음이 어떻게 생겼는가 잡아 사람, 눈으로 사람 없습니다.

마음에서 무슨 소리가 났는지 귀로 소리를 들어 사람도 없고, 마음이라 놈에서 대관절 무슨 냄새가 나는지 냄새를 맡아 사람도 없습니다. 마음이라 하는 놈이 어떠한 모양으로 되어 있는지 손으로 만져 사람도 사람도 계실 것입니다.

 

다못 들은 풍월(風月)마음이다하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지,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빛깔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놈이 바로 나의 주인이요, 그놈 때문에 세상에 태어났으며, 그놈 때문에 세상을 버리고 어딘가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놈이입니다.

몸뚱이는 그놈이 담아져 있는 임시 하숙집에 지내지 못하고, 잠깐 줏어 입은부모한테 빌려서 입은 벌의 옷에 지나지 못합니다. 언젠가는 벌의 옷을 벗어 내던질 밖에는 없는 것이고, 하숙집! 집을 언젠가는 버려 버리고 정처없이 떠날 밖에는 없는 우리의 신세인 것입니다.

 

몸뚱이를 끌고 다니고, 몸뚱이 속에서 일생 동안을 몸뚱이를 주재하면서 몸뚱이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살고 있는데 눈을 통해서 그놈이 드나들고, 귀를 통해서 드나들고, 코를 통해서 드나들고, 입을 통해서 드나들고, 그놈이 손을 조정해 가지고 온갖 일을 하고, 손을 조정해서 입에다가 집어넣습니다.

 

그놈은 먹어야 배도 부르지 않건만 집을 관리를 해야 하죠. 비가 새도록 기와도 손봐야 하고, 빛깔이 보기 싫으면 페인트 칠도 해야 하고.

이거 아무리 좋은 분을 바르고 향수를 발라봤자 썩어 문드러 것인데 여기다가는 좋다는 화장품 처바르고, 가짜라도 미제는 사서 바를려고 하고 모다 그런데 결국은 뭄뚱이는 금방 썩어서 문드러지고.

 

몸뚱이에 담아져 있던 그놈은 번도 그것에다가는 무엇을 먹여 주지도 않고, 입혀 주지도 않고, 괄세를 제멋대로자기집 강아지 송아지는, 병아리는 잠깐만 눈에 보여도 집안을 뒤고 찾고 야단인데, 몸뚱이에 살고 있는참나나의 주인공은 눈을 통해서 어디를 가서 돌아다니거나 말거나, 귀를 통해서 어디를 한데 돌아다니거나 말거나, 다시는 찾자 생각을 합니다.

 

남편이 어디 갔다가 온다는 시간에 들어오지 아니하면 잠을 잡니다. 부애가 하늘까지 처올라가지고 왔다 하면 그날 저녁에는 바가지를 긁고 그러는데,

자기 몸뚱이의 주인은 일생 동안에 번도 그놈을 찾아보지도 아니하고, 무엇을 먹일려고 하지도 아니하고, 입힐려 하지도 아니하고, 그놈은 돌아다니면서 온갖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오욕락(五慾樂), 그러한 말로써 형언할 없는 그러한 죄를 퍼짓고 돌아다녀도 그놈 단속을 줄을 모릅니다.

 

그놈 단속 아니한 죄로 무량겁(無量劫) 생사윤회(生死輪廻) 하게 되는 것입니다. 병아리나 강아지 그런 것을 단속 아니 하면은 결국은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끌고다니는 나의 주인공 단속 아니하면은 지옥·아귀·축생 삼악도(三惡道)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를 받을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자업자득(自業自得)입니다.

 

이것을 단속을 해서 금생부터서 마음속에 삼악도를 돌려서 극락세계(極樂世界) 맨들고, 몸이 담아져 있는 사바세계(娑婆世界), 오탁악세(五濁惡世) 극락세계를 맨드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삼계(三界) 대도사(大導師), 사생(四生) 자부(慈父)이신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법을 가르켜 주시기 위해서 출현을 하셨습니다.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 같이 버리시고 출가하셔서, 12년의 피나는 고행을 하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좋은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방법을 지금 팔만대장경 속에서, 팔만대장경에 담아있지 아니한 최고의 수행 방법을 간추려서 지금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몸을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 복식 심호흡을 하면서이뭣고?’

앉아서도이뭣고?’ 서서도이뭣고?’  누워서도이뭣고?’ 걸어가면서도이뭣고?’ 차를 타면서도이뭣고?’ 소지하고 빨래하고 일하면서도이뭣고?’

 

제일 정신차려서 공부를 해야 때는 언제냐? 지옥, 축생, 아귀, 삼악도에 떨어질려고 하는 찰나, 그때 걸음 삐끗하면 삼악도에 떨어질 찰나에 정신을 차려야 하는 것입니다.

평지를 걸어갈 때는 눈을 감고 걸어가거나, 한눈을 팔고 가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마는 위태로운 절벽 그러한 데를 때에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잠깐 생각을 하거나 한눈을 팔면은 삐끗한 사이에 수십 낭떠러지에 떨어지면 몸이 박살이 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것처럼 우리의 생각이 너무 억울한 말을 들어 가지고 울화(鬱火) 치밀었을 찰나(剎那), 정신적으로 가다듬을 없을 만큼 충격을 받아 가지고 격분했을 그런 찰나, 너무 슬픈 그러한 찰나, 너무 괴로운 그러한 찰나,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그러한 찰나 찰나야말로 우리가이뭣고?’—허리를 펴면서 심호흡을 가지고 내쉬면서이뭣고~?’ 이렇게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러한 충격을 받아 가지고 스스로 수습하기 어려울만한 그러한 충격을 받았을 찰나가 바로 지옥에 떨어질 1 직전인 것입니다.

거기에서이뭣고?’ 하지 아니하고 격분 나는 대로 말을 하고, 나는 대로 행동으로 옮겨 버렸다 하면은 벌써 사람은 지옥 한가운데 ! 떨어져 갔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내생에는 축생 아니면 아귀, 지옥의 찌꺼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생각 성내는 것으로 해서 홍도 비구는 수행을 잘해 가지고 견성성불(見性成佛) 코앞에 있을 만큼 그렇게 수행이 잘되어 가는 상태에서 독사(毒蛇)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화는 오늘은 시간 관계로 말씀을 드릴 없습니다마는,

우리의 생각 생각이 그렇게 우리의 육도윤회(六途輪廻) 원인이 되는 것이므로 그러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충격을 받아서 격분했을 , 슬플 , 외로울 , 괴로울 이럴 생각을 퍼뜩 돌이켜서이뭣고?’ 이것이 바로 지옥의 문전(門前) 직전에서 극락세계로 돌아오는 묘한 방법인 것입니다.

 

그래서이뭣고?’ 하는 것이 팔만대장경을 전부 읽어 마친 공덕보다도 수승하다고 하였습니다. ‘관세음보살육백만 부른 만큼의 공덕이이뭣고?’ 번하는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방법을 가르켜 주시기 위해서 사십구 년이라고 하는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사람들 근기(根機) 천차만별인 만큼 모든 사람에게 근기에 맞춰서 말씀을 하시다가 차츰차츰 나중에 가서는 참선법(參禪法) 설하십니다.

 

설하신 참선법! 내가 나의 감정을 자유자재로 조정을 가지고 과거의 모든 죄를 소멸을 하고 앞으로 새로 죄를 짓지 않게 만드는 이러한 묘한 방법인 것입니다. 그렇게 가지고 나아가서는 내가 나를 깨달을 있게까지 되는 방법, 이것이 참선법입니다.

 

그런데 참선법에, “그러면 허리만 펴고 심호흡을 하면서이뭣고?’ 하면 그러면 되냐?”

가지로 요약해서 말씀을 했지마는 나가는데 있어서는 중생은 들은 대로 하지 아니하고 어문 생각하다가 말을 잘못 듣고 가서 잘못합니다.

 

오랫동안 조실 스님 법문을 듣고 진실한 신도 분이 계셨는데, 이뭣고?’ ‘이뭣고?’하라고 가르켜 드렸는데, 하루는 며느님과 따님이 할머니를 모시고 왔습니다.

모시고 와서할머니가 요새 참선을 이상하게 하셔서 그렇게 참선하냐?’ 했더니, 용화사 원장 스님이 그렇게 하라 했다.

어떻게 참선을 했냐?” 그러니까,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전강스님! 전강스님! 전강스님! 전강스님! , 이렇게 참선합니다

 

그래서 할머니 보고아니, 누가 그렇게 참선을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돌아가신 전강스님을 그렇게 부르라고 했더냐?” 그러니까,

, 스님이 보고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어요?” ! 이런단 말씀이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렇게 하라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노보살님은 분명히 그렇게 들었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말고이뭣고?’ 이렇게 하라고 납득을 시키는데 굉장히 애를 먹었습니다. 그래서그러면 그렇게 하겠다 가지고이뭣고?’ ‘이뭣고?’ 열심히 하시고 마지막 숨을 ! 거둘 이뭣고~?’하면서 숨이 딸끄닥! 끈치고 눈을 감으셨다고 합니다.

 

이분은 너무너무 법을 깊이 믿고 정말 정성스럽게 열심히 공부를 하셨습니다. 하셨지마는 연세가 너무 많으셔 가지고 무슨 말씀을 조금 잘못 들으셔 가지고 중간에전강스님 부르시다가 가셨어도 그래도 우리에게 정법(正法) 가르쳐 주신 생불(生佛) 같으신 그런 도인의 이름을 부르셨으니까, 공덕으로 결단코 악도(惡道)에는 떨어지지 아니하셨을 것이고,

마지막 숨을 거두실 마지막 찰나까지이뭣고?’하시면서 숨을 거두셨기 때문에, 할머니는 금생에 비록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도업(道業) 완전히 성취는 못하셨다 하더라도 금방 몸을 바꿔 나서, 좋은 몸으로 태어나서 내생에는 정말 공부하기에 가장 알맞는 그런 여건으로 몸을 받아나셔서 일찌감치 젊어서 대도를 성취할 있으리라고 나는 깊이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무엇이고 눈으로 무엇을 보든지, 귀로 무엇을 듣든지, 생각으로 무엇이 생각이 나든지, 희로애락! 기쁜 일을 당하거나 노여운 일을 당하거나, 슬픈 일을 당하거나 즐거운 일을 당하거나, 일체처 일체시에 다못 없는 생각으로이뭣고~?’

이렇게 공부를 다져 나간다면은 우리는내가 나를 찾는 공부이기 때문에, 언제나 나와 더불어 있는 그놈을 내가 찾는 것이기 때문에 챙기면 언제나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4947~6819)

 

 

 

 

 

(2)------------------

 

생각 생각이 모여서 하루하루가 되고, 하루하루가 모여서 일생이 되고, 생이 모여서 무량겁이 되는 만큼, 무량겁 문제를 해결 지을려면은 생각 생각을 지혜롭게 단속(團束)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원이 모여서 원이 되고, 원이 모여서 억대(億臺) 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잔돈을 같이 여기지 아니하고 무시를 하고 함부로 풀풀 씁니다마는 참으로 부자는 잔돈을 피나오게 아끼는 것입니다. 잔돈이 모여서 큰돈이 되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으로 돈이 귀여운 아는 사람은 잔돈푼 아껴서 목돈 만들어 가지고, 목돈을 유용하게 ! 목돈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돈이 소중한 모르는 사람은 잔돈을 풀풀풀풀 가지고 큰돈 필요할 때는 밤낮 남의 집으로 꾸러 댕기다 볼일을 보는 것입니다.

 

무량겁이 생각 생각이 모여서 무량겁이 된다 하는 사실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은, 그런 지혜 있는 사람은 생각 생각을 지혜롭게 단속을 나가는 법입니다.

가장 생각 생각을 지혜롭게 단속해 나가는 분이 누구냐 하면 부처님이십니다. 부처님은 일찍 지혜로운 마음으로 무상(無常) 것을 깨달으시고, 일어나는 생각 생각을 단속해 가지고 일찍 대도를 성취를 하셔서 생사해탈(生死解脫) 하셔 가지고, 법을 우리에게 가르켜 주신 !

 

그러고 나서 삼천 년이 지냈습니다마는 그동안에 우리가 몇백 번을 사람 몸을 받았났겠습니다마는 아직도 내가 나를 깨닫지 못한 지금 중생(衆生)으로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슬퍼할 필요는 없습니다. 비관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래도 그동안 여러 생을 두고 불법을 만나서 좋은 법문을 듣고 듣고 그러한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사람 몸을 받아 가지고, 다행히 불법을 믿어 가지고 오늘 자리에서 조실 스님의 없는 최상승 활구참선법(最上乘 活句參禪法) 들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도 우리는 늦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무량겁을 두고 생사윤회를 것을 생각한다면 지금 자리에서부터 정신차려서이뭣고?’

이건 아무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따지지 말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가지고 이리저리 더듬어 찾아 들어갈려 하지 말고, 다못 바보처럼이뭣고?’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성이 때나이뭣고?’ 앉아서도이뭣고?’ 서서도이뭣고?’

이렇게 나가면 그리고 법회 빠지지 말고 자주자주 오셔서 참선에 대한 말씀을 듣고, 밑거름을 삼고 채찍을 삼으면서 열심히 하신다면 금생에 결정코 내가 나를 깨달아서 인격을 완성을 하실 수가 있습니다. 인격 완성이 바로 자아를 자각하는 일이요, 그것이 생사해탈 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만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생사해탈(生死解脫) 사비상(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 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니라

나무~ 아미타불~

 

생사해탈사비상(生死解脫事非常)!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여.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긴히 화두를 잡아서 한바탕 공부를 지어갈지니라.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한번 것이 뼈에 사무치지 아니할 같으면,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야. 어찌 매화꽃이 코를 치는 향기를 얻을 수가 있겠느냐?

 

되게 강추위를 해야 강추위 뒤끝에 송이의 매화꽃에서 그렇게도 진동(振動) 향취가 나는 것입니다. 강추위를 하지 아니하고 겨울 날씨가 뜨뜻한 뒤끝에 매화가 싱겁게 피어 놓으면 꽃은 허옇게 피었지마는 향취가 도무지 없는 것입니다.

코를 ! 치는 매운 향기를 진동하게 하는 그러한 매화가 필려면은, 되게 강추위가 뼛골에 사무치는 그런 강추위 뒤끝에 피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말씀입니다.

 

참선 공부가 아주 쉬운 것이고, 누구나 있는 것이고, 언제 어디서라도 있는 것이다이렇게 말씀을 했지마는 생각 생각을 정신을 바짝 차려서 정말 간절(懇切) 마음으로 열심히 하셔야지,

쪼금 하다가 말다가 생각나면 하고, 기분이 좋을 때는 쪼금 하고, 속이 상할 때는 버리고 이렇게 그렁저렁 가지고서는 어느 세월에 내가 나를 깨달라야 되겠습니까?

 

아까 말씀드린 대로 때와 장소, 가장 중요한 그때 그때를 놓치지 말고 야무지게 단속을 해서 간절히 간절히 공부를 지어 가십시오. 그렇게 뒤끝에라야 정말 확철대오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6820~7619)()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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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뭣고(是甚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 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7822) [ ‘참선법 A’ 에서]

*단전 호흡(丹田呼吸) ; 의식적으로 숨을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일반적으로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이다.

*풍월(風月) ; ①정식으로 배우지 않고 어깨너머로 배운 짧은 지식. ②아름다운 자연의 경치를 읊거나 노래함. 또는 시나 노래.

*부애 ; 부아. 분하고 노여운 마음.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락(五欲, 五慾, 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동자(同字).

*생사윤회(生死輪廻 /죽을 /바퀴 /빙빙돌 )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 죽고()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 돌듯이()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 죽어서 간다는 가지 괴로운 세계.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자업자득(自業自得)자기[] 저지른 일의 결과[] 스스로[] 돌려받음[]. ‘스스로 저지른 결과 뜻으로 많이 쓴다. 과거, 전생의 선악(善惡) 인연에 따라 뒷날 길흉화복(吉凶禍福) 갚음을 받게 된다는 뜻의 인과응보(因果應報)에도 자업자득의 뜻이 들어 있다자작자수(自作自受), 자업자박(自業自縛) 같은 뜻이다.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모두 사바세계이다.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흐릴 /악할 /세상 )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①명탁(命濁)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삼계(三界) : [] trayo-dha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amadha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

②색계(色界 rupadha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arupadhatu) :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이것을 흔히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면서 유형(有形) 계층으로만 말하지마는, 실상은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區分)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 세계의 어떤 곳에도 () • () • () 삼독심(三毒心) 경중(輕重) 따라 삼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삼계도사(三界導師) : 삼계(三界) 중생을 열반(涅槃) 인도(引導)하는 위대한 사람. 부처님을 말함.

*사생자부(四生慈父) ; 육도윤회(六途輪廻)하는 세계에서 4가지 방식(四生)으로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태어나는 모든 중생을 열반으로 이끄는 대자비(大慈悲) 아버지. 부처님을 말함.

* ; '(길이의 단위 길은 여덟  또는  자로  2.4미터 또는 3미터에 해당 또는 사람의  정도의 길이)' 사투리.

*울화(鬱火 답답할 / ) ; 분한 마음을 삭이지 못하여 일어나는 (,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생기는 노엽고 답답한 감정).

*찰나(剎那 ·짧은시간 /어찌 ) ; 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成佛].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참선법(參禪法)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어문 ; '', '다른', '엉뚱한' 사투리.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생불(生佛) ; ‘현실로 살아있는 부처님이라는 의미로, 부처님과 같이 덕이 높은 사람을 존칭하여 부르는 말로 고승(高僧 행동이나 덕이 높은 스님) 찬미하는 호칭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2)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억대(億臺) ; 억으로 헤아릴 만큼 아주 많음. 또는 금액.

*피나오다 ; 피나다(몹시 고생스럽거나 힘들여서 하다).

*잔돈푼 ; ①얼마 되는 . ②자질구레하게 쓰이는 .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 조건()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 없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중생(衆生) :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정식(情識)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함령(含靈), 함식(含識), 군생(群生), 군맹(群萌),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게송) 생사해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승두(繩頭) : ()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 어조사다。 불조의 계법(戒法) 규칙. 화두.

*한바탕 ; 크게 한판( 벌이는 ). 한판 크게.

*진동하다(振動-- 떨칠 /움직일 ) ; ①흔들려 움직이다. (어떤 곳에 냄새 따위가)널리 퍼지다. (어떤 곳이 냄새 따위로)가득 메워진 상태로 되다.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정성스런·절박할 )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Posted by 닥공닥정
용화선원2016. 3. 21. 21:40

 

 

§(081) 심우(尋牛), ‘마음의 찾는 법이 바로 참선법입니다 / 삼처전심(三處傳心) / 내가 나를 깨닫는 진짜 불교의 수행법을 들을 있는 용화사.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만나서 우리에게도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없는 마음의 부처가 우리에게 낱낱이 본래부터 갖추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것입니다. 마음 부처 찾는 , 마음의 찾는 법이 바로 참선법입니다.

 

참선은 연세가 많고 적은 그러한 것도 상관이 없고, 남녀노소도 상관이 없고, 빈부귀천도 상관이 없고, 지식이 있고 없는 것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배고프면 먹을 알고, 욕하면 성낼 알고 그러한 정도의 생각만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선은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선법은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고의 수행 수단입니다.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꽃을 드시는 , 다보탑 전에서 자리를 나누신 , 열반 회상에서 발을 밖으로 내미시는 도리는 경전을 통해서는 진리법은 표현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언어로써 전할 없는 법입니다. 언어로써 전할 없는 법이 바로 참선법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은 경을 읽어 가지고 이해해 들어갈 없는 법이고, 때문에 아무리 49 동안 설하신 팔만대장경을 종횡으로 육두백판으로 외우고 이해를 한다 해도 참선법의 진리는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법은 교외별전(敎外別傳)입니다. 밖에 따로 전하는 법인 것입니다.

 

아무리 경을 외운다 하더라고 참선에 들어올려면은 자기가 배워서 알고 있는 모든 이론, 모든 이치를 놔버리고 백지(白紙) 같은 마음으로 참선의 문에 들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경을 많이 읽고 외우고 해서 아무리 진리를 부처님이 설하신 말씀을 이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부처님이 설하실 때에는 그것이 진리법이지마는 중생이 이해하게 되면은 진리법은 이미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맛있는 음식이라도 더러운 그릇에다가 옮겨 담게 되면은 음식은 먹을 없게 되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용화사는 참선법을 여러분에게 가장 알기 쉽게 누구라도 행할 있도록 말씀을 드리는 수도장(修道場) 것입니다.

 

**송담스님(No.081)—78 4 관음재일 법어(78.04.24.) (용081)

 

(1) 약 6분.

(2) 약 19분.

 

(1)------------------

 

무오년 5 24 관음재일을 맞이해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경청을 했습니다.

법문 내용은 참선법(參禪法), 참선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을 찾는 참선법은 마치 무엇과 같으냐 하면은고삐 없는 소를 잃어 버리고서 소를 찾아나서는 에다가 비유를 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자리는 마치고삐 없는 처럼 한번 놓쳐 버리고 말면은, 놓쳐 버린 고삐 없는 소가 산으로 들로 깊은 숲으로 한번 숨어 버리면 아무리 찾을라고 해도 도무지 어디가 있는지 자취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짜기마다 찾고 찾고 헤매다가 간신히 소의 발자취를 발견하게 됩니다. 발자취를 더듬어서 차츰차츰 가다 보면은 저만치 나무 그늘에 소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습을 발견을 하고 있는 데로 쫓아가면은 소는 사람을 보고 두려워서 멀리 달아납니다. 쫓아가고 멀리 달아나고 차츰차츰 그렇게 해서 겨우 어떻게 해서 소를 붙들게 됩니다.

소를 붙들어서 고삐를 잡매 가지고 그래 가지고도 얼마 동안을 ''라는 놈이 도망 다니면은 고삐를 잡고 사람이 끌려다니다가, 그렇게 하기를 얼마 동안을 땀을 흘리고 애를 다음에는 차츰차츰 소도 기운이 떨어지고, ‘사람이 자기를 정말 해칠려고 것이 아니로구나이렇게 생각이 들면서 소가 그렇게 펄펄 뛰고 도망갈려고 하던 것을 덜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차츰차츰 소에게 맛있는 풀도 뜯어 먹이고, 목이 마른 싶으면 물도 먹이고 해서 소가 길이 들게 됩니다.

길이 다음에는 그렇게 들이고 사람이 끌면 소가 따라오고, 소가 가고 싶은 데가 있으면 사람이 따라가 주고, 이리 하면서 아주 소와 사람 사이가 임의(任意)롭게 됩니다.

 

임의롭게 다음에는 완전히 길이 들게 되죠. 그럴 때에는 고삐를 붙들어 매지 아니해도 사람 가는 데로 소가 슬슬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길이 다음에는 소를 떠억 사람이 타고서 피리 젓대를 불면서 자기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이제는 아주 길을 들여놨기 때문에 소는 노상 고삐를 붙들어 매지 아니하고 집에다 놔두어도 소가 도망가지도 아니하고, 그에 따라서 사람도 소에 대해서는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아니해도 되게 되는 것입니다.

 

소는 마냥 사람의 관심 밖에서 그저 편안하게 잠도 자기도 하고, 배고프면 풀도 먹기도 하고 이렇게 되어서 나중에는 소도 사람에 대해서 지배를 받을 필요도 없고, 사람도 소에 대해서 신경을 필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렇게 잃어버렸던 소를 찾기 위해서 찾아나서 가지고 갖은 고생 끝에 소를 발견을 가지고 소를 길을 들여서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

이것은 바로 우리가 우리의 마음 언제 잃어버렸는지우리에게도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없는 마음자리, 마음의 부처, 마음 자성 자리를 언제 놓쳐 버렸는지 그것을 잃어 버리고서 무량겁(無量劫) 육도윤회(六途輪廻)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만나서 우리에게도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없는 마음의 부처가 우리에게 낱낱이 본래부터 갖추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것입니다.

마음 부처 찾는 , 마음의 찾는 법이 바로 참선법입니다. 심우(尋牛), 마음 찾는 참선법에 대해서 조실 스님의 간곡한 법문이 계셨습니다.(처음~611)

 

 

 

 

 

(2)------------------

 

오늘은 4 15일에 결제를 하고서 처음 맞는 번째 맞는 관음재일입니다. 오늘이 4 24일이죠? , 번째 맞는 관음재일로써 오늘 오신 여러분 가운데에는 참선을 열심히 하신 분도 계시고,

처음으로용화사에 가면은 좋은 법문(法門) 들을 수가 있다. 그러니 밤낮 기도나 드리고 복이나 빌고 하는 그러한 절에만 다니지 말고, 용화사에 가서 정말 참으로 내가 나를 깨닫는 진짜 불교의 수행법을 들을 있는 용화사로 가라이러한 말씀을 듣고 일부러 어렵게 절을 찾아서 오신 분이 여러 분이 계십니다.

그래서 그런 분을 위하고, 용화사에 진즉부터 나오셨지마는 참선에 대해서정말 금년 여름부터서는 철저히 나도 참선을 보겠다이러한 돈독한 신심(信心) 내신 분도 계시기 때문에 참선하는 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참선은 대단히 간단하고도 누구나 있는 그러한 법입니다.

그렇지마는 철저히 참선에 대해서 믿음이 가지를 아니하고, 그러한 법을 믿기는 해도우리 같은 사람은 해봤자 것이다,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것이다, 또는 말세에 태어났기 때문에 어려울 것이다, 나는 가정을 가지고 살림을 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러한 참선을 쪼금씩 한댔자 무슨 견성성불(見性成佛) 있겠는가?’

 

이렇게 해서 스스로 어려운 것으로만 생각하고참선은 가정을 잊어버리고 스님이 되거나 가정일이 별로 바쁘지 아니한 할머니들이나 있는 일이지, 우리 같은 사람은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자포자기(自暴自棄) 함으로 해서 아까운 세월만 하루하루 지내가고 그렇게 해서 무상한 목숨은 덧없이 흘러가 버리고, 이제 조금 참선을 있겠다 싶으면은 그때는 이미 어깨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정신은 혼미해지고, 밤낮 누울 자리만 생각이 나고 해서 그때는 이미 때가 늦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참선은 연세가 많고 적은 그러한 것도 상관이 없고, 남녀노소도 상관이 없고, 빈부귀천도 상관이 없고, 지식이 있고 없는 것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배고프면 먹을 알고, 욕하면 성낼 알고 그러한 정도의 생각만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선은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선법은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고의 수행 수단입니다.

 

 

부처님께서 지금으로부터 삼천 전에 인도 가비라(迦毘羅) 왕궁에 태자로 태어나셔서, 부처님을 낳으신 어머니께서마야 부인(摩耶夫人)께서 엿새 만에 세상을 하직하셨습니다. 바로 뒤를 이어서 부처님의 이모이신 대애도(大愛道) 부인께서 부처님의 계모로 들어오셔서 부처님을 양육을 주셨습니다.

 

계모, 이모이면서 계모이신 대애도 부인께서 부처님을 양육을 주신 덕택으로 부처님은 무럭무럭 자라셔서 어릴 적부터서 그렇게 총명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엿새 만에 낳아주신 생모(生母) 돌아가신 영향을 받으셨음인지 항시 외로움을 느끼시고 조용한 앉아서 묵묵히 무엇인가 인생의 무상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하는 그러한 일이 종종 있으셨다고 그럽니다.

 

그러자 농부들 농사짓는 것을 상감마마를 모시고 나가셔서 구경을 하시다가 쟁기로 논을 가는데 많은 벌레들이 생겨 나오고, 튀겨져 나오면 까막까치가 그것을 쪼아 먹고, 그런 것을 보고,

! 약육강식(弱肉强食)이로구나. 저런 약한 벌레는 강한 짐승에 의해서 잡아먹히는구나. 어째서 사람이라든지 저런 짐승 동물들이 어디서 태어났으며, 무엇하기 위해서 태어났으며, 태어났으면은 서로서로 화목하게 오래오래 일이지, 어떻게 저렇게 해서 보습에 찍혀서 죽기도 하고, 새나 까막까치에 잡아먹히기도 하고, 그러다가 늙어서 병들어 죽는가?’

 

이런 것을 보고 공연히 심사가 괴롭고 측은하고 인생이 무상한 것을 느끼시고, 결국은 그러한 모든 것들이 동기가 되어서 부처님은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 같이 버리시고, 정든 아내와 귀여운 라후라(睺羅) 아드님을 버리시고, 밤중에 성을 넘어서 히말라야 산속으로 들어가셔서 스스로 머리를 깎고서, 12 동안이라고 하는 세월을 고행 수도를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셔서 대도를 성취하신 다음에 법을 설하셔서 49년간, 80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실 때까지 일생 동안을 당신이 깨달은 진리법을 설하셨습니다.

 

처음에 21 동안에 걸쳐서 당신이 깨달으신 진리법을 고대로 설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진리법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내가 대도를 깨쳐서 모든 중생들에게 깨달은 진리법을 설했지마는 아무도 이해하는 사람이 없구나.’

그래서 부처님은 드디어차라리 내가 법을 설한들 아무도 이해할 사람이 없을 바에는 차라리 내가 열반에 드는 것이 낫겠다이러한 생각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때 공중에서 공청(空請) 있기를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중생의 근기(根機) 따라서 옅은 법문부터서 설해 가지고 차츰차츰 중생의 근기가 수승해짐에 따라서 점점 깊은 말씀을 하신 다음에, 마지막에 가서 부처님의 깨달으신 진리를 설하신다면은 많은 중생 가운데에는 반드시 마음의 눈을 떠서 대도를 성취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이러한 공청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생각을 돌리시고 아함경이라고 하는 아주 옅으디 옅은 법문부터서 설법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아함경(阿含經) 12 동안을 설하시고, 다음에 방등경(方等經) 8 동안 설하시고, 그리고서 깊은 경전 반야경을 21 동안에 걸쳐서 설하셨습니다. 다음에 그보다도 깊은 진리가 담겨 있는 법화경을 8 동안에 걸쳐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언어를 사용하지 아니하고 법을 설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삼처전심(三處傳心)입니다.

 

영산회상(靈山會上) 백만억 대중이 모였는데 하늘에서 꽃비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것은 부처님, 성현 가운데에 제일 높으신 성현이신 석가여래 부처님께서 중생을 위해서 법을 설하실려고 하는 그것을 하늘나라에 있는 제석천왕이옥황상제가 부처님을 찬탄하는 뜻으로 하늘에서 꽃비를 내렸습니다.

송이를 부처님께서는 주워서 대중 앞에 보이셨습니다. 아무도 대중 가운데에 부처님께서 꽃을 드신 뜻을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가섭(迦葉) 존자! 일생을 떨어진 누더기를 입고 날마다 걸식을 하면서 도를 닦으신 부처님의 제자이신 가섭 존자가 부처님께서 꽃을 드신 뜻을 이해를 하고서 비긋이 웃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벌써 많은 백만억 대중 가운데에서 오직 가섭 존자 사람이 진리법을 이해를 했구나.’ 그것을 아시고 부처님께서는 가섭 존자에게 법을 전하셨던 것입니다.

 

다음에 한번은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하시는데 땅에서 탑이 떠억 솟아올랐습니다. 탑이 공중으로 솟아올랐습니다. 그래 가지고 속에서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하시니 그것이 너무나도 법이 위대하시고 부처님이 거룩하시니까, 부처님의 설하신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무량겁전 다보불께서 부처님의 설하신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다보탑 앞에서 부처님께서는 누더기를 입고 있는 가섭 존자에게 자리를 반을 비켜 주시면서 가섭 존자로 하여금 자리에 앉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번째 법을 전하신 것입니다.

 

마지막 번째 법을 전하신 것은 부처님께서 팔십 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셨습니다. 열반에 드셨는데 모든 제자들이 사라쌍수(沙羅雙樹) () 부처님 열반하신 석상(席上) 모였습니다.

오직 가섭 존자는 부처님 계시는 곳으로부터서 너무 곳에서 공부를 하고 계셨기 때문에물론 가섭 존자도 신통으로써 감았다 사이에 부처님 열반하신 자리에 참석할 수가 있었지마는 너무너무 부처님을 존경했기 때문에 신통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발로 걸어서 걸어서 부처님 열반하신 자리에 오시느라고 여러 날이 걸렸습니다.

 

그때 이미 부처님은 칠보로 장엄한 () 속에 () 해서 입관을 모신 뒤였습니다.

그런데 가섭 존자가 오셔서부처님께서는 평소에 법을 설하시기를대도를 성취해서 견성성불을 하면은 생사해탈을 한다 하셨는데 이렇게 열반에 드시다니 그럴 수가 있습니까?’ 이러면서 부처님 발밑에 절을 했습니다.

부처님은 벌써 열반하신 지가 여러 날이 되었건만 부처님께서는 속에서 발을 밖으로 쓰윽 내밀으셨습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전하신 언어를 사용하지 아니하고 전하신 번째 전하심인 것입니다.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꽃을 드시는 , 다보탑 전에서 자리를 나누신 , 열반 회상에서 발을 밖으로 내미시는 도리는 경전을 통해서는 진리법은 표현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언어로써 전할 없는 법입니다. 언어로써 전할 없는 법이 바로 참선법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은 경을 읽어 가지고 이해해 들어갈 없는 법이고, 때문에 아무리 49 동안 설하신 팔만대장경을 종횡으로 육두백판으로 외우고 이해를 한다 해도 참선법의 진리는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법은 교외별전(敎外別傳)입니다. 밖에 따로 전하는 법인 것입니다.

 

아무리 경을 외운다 하더라고 참선에 들어올려면은 자기가 배워서 알고 있는 모든 이론, 모든 이치를 놔버리고 백지(白紙) 같은 마음으로 참선의 문에 들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경을 많이 읽고 외우고 해서 아무리 진리를 부처님이 설하신 말씀을 이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부처님이 설하실 때에는 그것이 진리법이지마는 중생이 이해하게 되면은 진리법은 이미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맛있는 음식이라도 더러운 그릇에다가 옮겨 담게 되면은 음식은 먹을 없게 되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부처님이 설하신 법은 어떠한 법이라도설하신 없이 설하신 이기 때문에 부처님이 설하신 모든 법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진리법 자체인 것입니다.

그러나 법이 이미 중생의 입을 통해서 설해지고, 중생의 귀를 통해서 받아들여질 때에는 이미 법은 김빠진 맥주와 같은 것으로 변해 버리고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전을 통해서 아무리 부처님의 진리법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받아들일려고 해도 중생심(衆生心)으로 받아들여지는 한에 있어서는 그것은 진정한 깨달음에 도달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은 부처님의 진리법을 바로 중생인 몸에서 마음에 구현을 시킬 수가 있느냐? 그것이 바로 교외별전이신 참선법입니다.

용화사는 참선법을 여러분에게 가장 알기 쉽게 누구라도 행할 있도록 말씀을 드리는 수도장(修道場) 것입니다.(612~2438)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참선법(參禪法)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잡매다 ; ‘잡아매다(①흩어지지 않게 한데 매다. ②달아나지 못하도록 묶다. ③꼼짝 못하게 하다)’ 준말.

*임의롭다(任意롭다) ; ①얽매이는 것이 없어 하고 싶은 대로 있다. ②서로 친하여 거북하지 아니하고 행동에 구애됨이 없다.

*젓대 ; ‘(가로로 불게 되어 있는 관악기를 통틀어 이르는 )’ 일상적으로 이를는 . ()

*육도윤회(六途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2)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成佛].

*자포자기(自暴自棄) ; 절망 상태에 빠져 스스로 자신을 내버리고 돌보지 않음.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대애도(大愛道) ; 산스크리트어 mahāprajāpatī  마하파사파제(摩訶波闍波提)라고 음역. 싯다르타의 어머니 마야(māyā) 여동생. 마야가 싯다르타를 낳은 7 만에 세상을 떠나자 싯다르타를 양육하였다. 정반왕(淨飯王)과의 사이에 난타(難陀) 낳았고, 왕이 세상을 떠나자 싯다르타의 아내 야소다라와 함께 출가하였다.

*나후라(睺羅) : 산스크리트어 rāhula 음사. 붓다의 아들.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고향에 왔을 , 사리불(舍利弗) 목건련(犍連) 스승으로 하여 출가함. 지켜야 것은 스스로 지켜 밀행제일(密行第一)이라 일컬음.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가섭(迦葉) : [] Mahakasyapa 음을 따라 마하가섭(摩訶迦葉)이라고도 하며, 뜻으로는 대음광(大飮光)• 대구씨(大龜氏) 번역한다。Kasyapa ()이고, maha 크다는 말이니, 다섯 가섭 가운데 맏이를 뜻한다。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 분。본래는 바라문으로 석존이 성도한 년쯤 뒤에 부처님께 귀의하였다。그는 제자 가운데서도 주를 극도로 검박하게 하고, 용맹정진(勇猛精進)하는 두타행(頭陀行) 제일이었으며 부처님의 의발(衣鉢) 받은 상수 제자(上首弟子)로서 부처님이 입멸한 , 오백 아라한을 데리고 제일 결집(第一結集) 하면서 우두머리가 되었다。부처님 이후의 법통(法統) 말할 때에는 그가 초조(初祖) 된다.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중생심(衆生心) ; 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Posted by 닥공닥정
참선 (목적)2015. 6. 20. 11:08

 

 

 

§(119) 참선(參禪)은 결정코 내가 나를 깨닫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참선은 명예와 이양(利養)을 위한 것도 아니고, 지식과 수단을 위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길이고, 내가 나를 깨달은 뒤에는 일체 중생을 제도(濟度)하는 커다란 목적과 의무를 수행할 따름인 것입니다.
‘나를 깨닫는 길’은 이 세상의 어떠한 일보다 우선(優先)해서 중요하고, 어떠한 일보다 우선해서 급하고 요긴한 것입니다.
이 공부에 철저하면서 세속적인 또는 인간적인 책임을 충실히 한다면 현실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큰 죄를 짓지 않게 되는 것이며, 앞으로도 진리를 깨닫는 목적을 향해서 걸어가므로 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기어코 기약하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119)—80년 1월 관음재일 법어(80.01.24) (용119)

 

약 6분.



참선(參禪)은 결정코 내가 나를 깨닫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참선은 명예와 이양(利養)을 위한 것도 아니고, 지식과 수단을 위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길이고, 내가 나를 깨달은 뒤에는 일체 중생을 제도(濟度)하는 커다란 목적과 의무를 수행할 따름인 것입니다.

첫째, 내가 나를 깨닫지 못하고 남을 제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능히 헤엄을 칠 줄 아는 사람이라야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기 위해서 물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헤엄도 칠 줄 모르는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진답시고 물에 풍덩 뛰어들어가면 빠진 사람을 건지기커녕 자기까지 빠져 죽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중생을 제도할 원대한 의무와 책임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 자신부터 깨닫지 아니하면 아니됩니다.

‘나를 깨닫는 길’은 이 세상의 어떠한 일보다 우선(優先)해서 중요하고, 어떠한 일보다 우선해서 급하고 요긴한 것입니다.
밥을 먹는 일도 급하고, 잠을 자는 일도 급하고, 세속에 우리가 맡은 모든 일들이 하나도 버려서는 안되겠지만 어떠한 일보다 우선해서 우선 나부터 깨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는 먹을 것 입을 것을 다 망각(忘却)하고 오직 자식 생각만을 하시지만, 그렇기는 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때는 우선 자기 발등의 불부터 끄고 자식 불을 끌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식적으로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어떠한 효자라 하더라도—그 효자는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부모만을 위하는 하늘에서 낸 효자라 할지라도 자기 발등의 불부터 끌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자기 발등의 불을 쪼끔 오래 놔둔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잠시 뜨겁다가 마는 것이지만 그래도 자기 발의 불부터 끄는 것입니다.

하물며 내가 나를 깨닫는 이 참선은 금생에 사람 몸 받을 때 하지 아니하면—이것은 영원히 다시 사람 몸을 받을지, 다시 또 이 불법을 만나게 될지, 정말 막연하고 막연할 따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의 어떠한 일보다도 우선해서 참선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모이고, 권리를 많이 누리고, 명예를 하늘 닿도록 차지한다 하더라도 그러한 일들은 나의 죽음을 막아주지 못합니다. 죽을 때 한 톨도, 한 치도 그것을 가지고 갈 수도 없습니다.

죽어갈 때에는 무엇을 가지고 가느냐? 명예를 얻느라고 얻은 죄업(罪業), 재산을 얻느라고 지은 죄업, 권리를 누리느라고 지은 죄만을 산더미처럼 지고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아무리 통곡을 하고 뉘우치고 눈물을 흘려도 아무도 받아 줄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살고 있을 때, 그리고 선지식(善知識)의 법문을 들을 수 있을 때, 하루하루를 정말 알뜰하고 착실하게 공부를 지어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오직 그것만이 과거의 무량겁에 지어 놓은 모든 죄도 소멸을 할 수가 있고,
이 공부에 철저하면서 세속적인 또는 인간적인 책임을 충실히 한다면 현실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큰 죄를 짓지 않게 되는 것이며, 앞으로도 진리를 깨닫는 목적을 향해서 걸어가므로 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기어코 기약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른길, 이러한 지혜로운 길, 인간으로서 최고의 길이 바로 이 참선법이요, 불법이요, 정법(正法)인 것입니다.(21분27초~27분3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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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이양(利養) ; 재물을 탐하는 일.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우선(優先)하다 ; (...보다, ...에) 딴 것에 앞서 특별하게 대우하다.
*죄업(罪業) ;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위(身)와 말(口)과 생각(意). 괴로움의 과보를 초래하는 악한 행위.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Posted by 닥공닥정
선(禪)과 교(敎)2015. 3. 21. 11:03

§(115) 팔만대장경과 참선 / ‘이뭣고?’ 한번 하는 공덕 / 물의 습성, 중생의 온갖 생각 속에 진여불성 / 말세에 태어났으니까 하근기이니까 더 노력을 해야.

「‘이뭣고?’ 한번 할 때 ‘관세음보살’ 육백만 번 한 공덕이 있다. 팔만대장경을 한번 다 읽은 공덕이 있다」 이렇게 고조사(古祖師) 스님은 말씀을 하셨습니다마는 이 말씀은 참선을 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뼛골에 사무치도록 감사하고 잊어서는 안될 그러한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이 자리를 빌려서 보증을 하겠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 우주의 모든 것은 우리의 일심(一心)으로부터 전부가 다 나온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 생각을 돌이킨다’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이 나온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망상, 중생의 온갖 괴로움과 슬픔과 기쁨, 그러한 생각 생각들을 한 생각도 방치하지 말고 그 일어나는 그 생각을 바로 돌이켜서 ‘이뭣고?’ 이렇게 공부를 다져 나간다면, 우리는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진여불성을—뱃속에 똥과 오줌과 고름을 가뜩 담어 갖고 있는 채 여래(如來)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법의 위대성인 것입니다.

 

**송담스님(No.115)—79년 12월 관음재일 법어(79.12.24)(용115)


약 10분.


경(經), 팔만사천경(八萬四千經)이 한량없이 많고 어렵지마는 그것을 다 읽으려고 해봤자 죽을 때까지 십분의 일도, 백분의 일도 다 읽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책으로 된 경만이 부처님의 법문이 아니라 우리의 눈으로 보는 모든 것, 산이나 나무나 돌이나 구름이나 새나, 우리의 귀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 코로 맡을 수 있는 모든 냄새, 입으로 맛볼 수 있는 모든 시고 짜고 달고 하는 모든 맛,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모든 물건, 우리의 생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사건들이 전부가 다 화엄경(華嚴經)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최고의 설법이요 경전인 것입니다.

이 진짜 경(經)을 읽는 것이 바로 이 참선(參禪)입니다.

종이에 씌여져 있는 경은 팔만사천경이라 합니다마는 그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은 우리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읽을 수 있는 경에다가 비교하면 억만 분의 일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정법을 믿고 참선을 하는 사람은 경책(經冊)을 한 장도—이 종이로 된 경을 한 장도 읽지도 아니하고서 우주세계에 가득차 있는 부처님의 ‘참 경’을 다 읽을 수가 있습니다.

‘이뭣고?’ 한 생각 돌이킬 때에, ‘이뭣고?’ 한 번 할 때, 우주에 가득차 있는 경을 한번 읽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로 자신 있게 여러분 앞에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번 할 때 ‘관세음보살’ 육백만 번 한 공덕이 있다. 팔만대장경을 한번 다 읽은 공덕이 있다」
이렇게 고조사(古祖師) 스님은 말씀을 하셨습니다마는 이 말씀은 참선을 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뼛골에 사무치도록 감사하고 잊어서는 안될 그러한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이 자리를 빌려서 보증을 하겠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 우주의 모든 것은 우리의 일심(一心)으로부터 전부가 다 나온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 생각을 돌이킨다’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이 나온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을 통해서 너무나도 배울 것이 많습니다. 물이 없다면 우리는 하루도 살 수가 없습니다.

그 물에게는 너무나도 훌륭한 덕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은 자기의 자성을 지키지를 않습니다. 자기의 고정된 어떠한 모습을 가질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때에 따라서 조건에 따라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해 가는 것입니다.

영하의 추운 기온을 만나면 얼음이 되기도 하고, 그것이 또 기온에 따라서 증기가 되어 가지고 하늘로 올라가면 구름이 되기도 하고, 그 구름이 다시 차운 공기를 만나면 엉켜서 빗방울이 되기도 합니다.
공기에 떠있는 수증기가 차운 공기를 만나면 우박이 되기도 하고 눈이 되기도 합니다. 눈이 되었다, 물이 되었다, 증기가 되었다, 얼음이 되었다, 여러 가지 모양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변해 갑니다.

그런데 얼음이 되었건, 물이 되었건, 눈이 되었건, 수증기가 되었건, 어떠한 모습으로 변할지라도 변하지 아니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물의 습성(濕性)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습성, 젖은 성질, 습성, 출렁거리는 물도 젖은 성품은 가지고 있고, 꽁꽁 어는 얼음이 되었을 때에도 젖은 성품은 가지고 있고, 휘날리는 눈이 되었다 할지라도 습성은 가지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수증기일 때도 역시 습성은 가지고 있습니다. 기온과 상황에 따라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하면서도 마침내 변하지 아니한 습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의 마음도 때에 따라서 기뻐할 줄도 알고, 때에 따라서 슬퍼할 줄도 알고, 때에 따라서 성낼 줄도 알고, 때에 따라서 즐거워할 줄도 압니다.
그렇게 별별 상황에 따라서 여러 가지 양상으로 우리는 생각을 발휘를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 하는 것입니다.
성낼 때도 진여불성은 그 속에 있는 것이며, 슬퍼할 때에도 진여불성은 그 속에 있는 거여, 괴로워할 때에도 진여불성은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성내는 생각, 괴로운 생각, 슬퍼하는 생각, 기뻐하는 생각들이 진여불성에서 나온 것들인 것입니다.
얼음이나 물이나 수증기나 어떠한 모양으로 되어 있건 그 속에 습성은 있는 것처럼 중생의 팔만사천 가지 온갖 생각들 속에도 진여불성은 있는 것입니다. 진여불성에서 그런 것들이 나온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망상, 중생의 온갖 괴로움과 슬픔과 기쁨, 그러한 생각 생각들을 한 생각도 방치하지 말고 그 일어나는 그 생각을 바로 돌이켜서 ‘이뭣고?’ 이렇게 공부를 다져 나간다면, 우리는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진여불성을—뱃속에 똥과 오줌과 고름을 가뜩 담어 갖고 있는 채 여래(如來)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법의 위대성인 것입니다.

‘말세(末世)에 태어났다, 여자의 몸을 받아 났다’ 그런 것이 전혀 도업(道業)을 성취하는 데에 문제가 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말세에 태어났으니까 또 여자로 태어났으니까, 근기(根機)를 하열(下劣)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보다도 또는 정법(正法)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보다도 10배, 100배 더 노력을 해야겠다고 하는 이러한 강인한 결심을 다질지언정,
‘말세에 태어났으니까 참선을 해봤자 안된다더라’ ‘말세에 태어났으니까 아무리 해봤자 견성성불(見性成佛)은 못하고, 어쨌던지 인연이나 맺고 하는 척이라도 해야 나중에 56억 7천만년 뒤에 미륵불(彌勒佛)이 하생할 때 구제 받는다더라’ 이러한 너무나도 엄청난 불쌍한 생각을 우리는 가져서는 안되겠습니다.(31분27초~41분2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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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사천경(八萬四千經) ;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화엄경(華嚴經) ; 본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며, 이 경은 부처님께서 성도(成道)한 깨달음의 내용을 그대로 표명한 경전이다.
3가지 번역이 있는데, 60권은 동진(東晋)의 불타발타라(佛駄跋陀羅) 번역이고, 80권은 당(唐)의 실차난타(實叉難陀) 번역, 40권은 당(唐)의 반야(般若) 번역임.
이 가운데 40권은 60권과 80권의 마지막에 있는 입법계품(入法界品)에 해당하며, 십지품(十地品)과 입법계품(入法界品)만 산스크리트 원전이 남아 있다.
[참고] 법장현수(法藏賢首) 스님의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에 보면,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용궁(龍宮)에 가서 대부사의경(大不思議經=화엄경)을 보았는데, 상본·중본·하본 3가지 본(本)이 있었다. 그 중에 상본(上本)이 십삼천대천세계미진수(十三千大千世界微塵數)게송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었다 한다.
중본(中本)은 49만 8800게송 1200품(品)이고, 하본(下本)은 10만 게송 38품이었다 한다.

 

용수보살이 상본과 중본은 사바세계 사람들 마음의 힘으로서 능히 가질 수 없으므로 전하지 않고, 하본(下本)을 외어 세상에 전하였고 또 그것을 간략히 한 약본(略本)이 80권 본, 60권 본이 되었다 한다.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은 ‘미진수(微塵數 셀 수 없는 무한수)’의 품(品)으로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모든 현상—삼라만상(森羅萬象) 전부가 그 화엄경을 이루고 있으며, 곧 비로자나(毘盧遮那) 전신체(全身體)로 우리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말한다.(전강선사 법문 275번 참고)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경책(經冊 불경 경,책 책) ; 부처님 말씀(經)의 책(冊).
*이뭣고(是甚麼)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일심(一心) ; 궁극적 근저로서의 마음. 만유의 실체진여(實體眞如)를 말함. 모든 현상의 근원에 있는 마음. 우주 사상의 기본에 있는 절대적인 진실.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여래(如來) : 부처님 10호의 하나。 범어 Tathagata의 역(譯).
여(如)는 진여(眞如)의 뜻이니 곧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의 뜻。 또 여거여래(如去如來)의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하열(下劣 아래 하,못할·낮을 렬) ; (행동이나 생각이) 남보다 뒤떨어짐. 수준이 낮음.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미륵불(彌勒佛)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석가모니 세존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성도재)2015. 1. 23. 13:15

§(062) 중생의 근기, 팔만대장경, 참선법 / 방편(方便), 구경법(究竟法) / 화두 의심은 꽉 맥혀야 한다 / 참선의 자세, 호흡, 바른 생각 / 있는 그 자리에서 ‘이뭣고?’ 뿐.

 

대오(大悟), 확철대오를 얻을려면은 의심이 깊고 간절하고 커야 하는 것입니다. 「깊고 간절하고 커야 한다」고 하는 것은 꽉 맥혀야 하는 것입니다. 알 수 없이 맥혀야 하는 것입니다.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 큰 의심 아래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다’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위대한 스승을 만나서 그 지긋지긋하고 무서운 생사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최고 위대한 정법(正法)을 금생에 만났습니다. 만나 가지고서도 열심히 닦지 않는다면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문제는 ‘열심히 닦느냐, 닦지 않느냐’에 우리는 문제가 거기에 있을 뿐인 것입니다.

 

‘내일이 있다. 이 일만 끝나고 다음에 하지. 금년, 이삼년만 더 기다리고 3, 4년 뒤에 하리라’ 이러한 생각은 가장 어리석고 게으른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참으로 발심(發心)한 사람은 자기가 지금 어떠한 처지에 놓여있건 그것은 가릴 것이 없이, 있는 그 자리에서 ‘이뭣고?’ 뿐인 것입니다. 있는 그 자리에서 그때 그때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이놈이 무엇인고?’ 이렇게 해 나가게 되면은 이것이 바로 무량겁 생사를 끊어 나가는 가장 유일한 방법이요, 가장 지혜 있는 사람이 살아가는 길인 것입니다.

 

**송담스님(No.062)—77년(정사년) 성도재 법문(77.12.08.음)

 

(1) 약 20분.

(2) 약 13분.

 

 

(1)------------------

 

부처님께서는 기원전 558년에 탄생하셔 가지고, 기원전 479년에 80세를 일기로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열반(涅槃)을 보이셨습니다.

 

기원전 558년에 탄생하셔 가지고, 29세에 출가하셔서 6년 동안 고행을 하시고, 35세에 대도(大道)를 깨달으셨습니다.

일설에는 19세에 출가하셔서 12년 동안 고행 수도하신 끝에 30세에 대도를 성취했다고 그렇게 전해지기도 합니다만은,

대도를 성취하신 뒤 부처님께서는 3년 뒤에 고향에 돌아가셔서 아버님을 가서 뵈옵고, 아버님과 계모이신 '마하파자파티'를 비롯한 '야수다라' 아내와 '라후라'라고 하는 아드님 그리고 궁중의 모든 일가친척을 두루 다 만나셨습니다.

 

그리시고서 법을 설하시고 80세를 일기로 돌아가실 때까지 일생 동안을 이 생사고해(生死苦海)로부터 벗어나는 위대한 위없는 법을 설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실 때에 그 어머니이신 마야 부인(人)께서—그때 인도의 풍속은 여인이 포태를 해 가지고 해산기가 되면은 친정으로 돌아가서 해산(産)을 하는 풍속이 있었으므로—친정으로 가는 도중에 룸비니(Lumbinī) 동산이라고 하는 동산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실 때 부처님께서는 탄생을 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친정으로 가시는 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29세에 출가하셔 가지고 일생 동안을 길에서 사시면서 모든 중생들에게 법을 설하시고,

 마지막에 열반하실 때에도 길에서—'구시나가라(kuśinagara 拘尸那伽羅)'라고 하는 나라에 사라쌍수(沙羅雙樹) 간에서, 결국 거기도 길이였습니다. 길에서 최후의 임종을 맞으셨던 것입니다.

 

길에서 나셔서, 길에서 사시다가, 길에서 사시면서 사람이 가야 할 길을 가르켜 주시고 마지막에 길에서 고요히 열반에 들으셨던 것입니다.

 

 

그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이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라 해 가지고, 그 일생동안 설하신 법문을 결집(結集)을 해서 목판에다 조각한 그 경판(板)이 해인사 장경각에 보관이 되어 있습니다.

 

그 많은 경전들은 무엇 때문에—이 참선법(參禪法)이라 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고 간단하건만은, 간단하게 그 참선법만을 말씀을 하시지 왜 그 팔만대장경과 같은 방대한 법을 설하셨느냐?

그것은 중생들의 근기(根機)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각도에서 중생의 근기에 따라서 말씀을 49년 동안에 걸쳐서 설하시다 보니, 그렇게 방대한 법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삼천년을 내려오면서 부처님의 제자들이 그 스승으로부터 지도 받아서 도를 닦고, 또 자신이 체험을 통해서 또 다음 제자에게 전수하고, 이렇게 해서 삼천 년을 내려오면서 수행하는 방법이 세련(練)되고 다듬어져서,

오늘날에는 그 많은 팔만대장경을 읽지 않고서도 바른 스승만 만나서 직접적으로 지도만 받을 수 있다면, 간단한 방법으로 나 자신을 깨달아서 고해로부터 해탈을 하고, 나아가서는 일체 중생을 고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지도할 수 있는 역량(量)까지도 갖출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도저히, 출가해서 머리를 깎고 일생을 도만 닦은 스님네들도 어렵거든 하물며 세속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도를 닦아서 목적을 달성한다고 하는 것은 가망 없는 일이다. 그러니 옴마니반메홈 이나 아미타불, 그런 염불(念佛), 주력(呪力)을 함으로 해서 업장(業障)을 소멸하고, 아미타불의 48대원(四十八大願)에 의해서 숨지자마자 극락세계에 가는 그러한 우리에게 알맞은 길이 있다’고,

이렇게 믿고 그렇게 주장하는 그러한 종파도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하나의 방편(方便)은 될 수 있을지언정 구경법(究竟法)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은 방편은 일시적으로 이용할지언정 그 방편을 어떠한 단계에 이르러서는 버릴 줄 알고 새로운 단계에 나아가지 아니하면 아니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단계에 나아가지 못하고 오랜 시간 동안을 방편에만 걸려 가지고 몸부림친다고 하는 것은 결단코 지혜 있는 수행인이 아닌 것입니다.

 

깨달음에, 우리가 수행을 열심히 해 가지고 깨달음을 증득했다 하더라도 그 깨달음에 착(着)해서는 아니되거든, 하물며 깨달음에 이르는 중간에 어떠한 방편 또는 중간의 어떤 과정에서 딱 얽매이고 착(着)해 가지고 나아갈 줄을 모른다면은 그것은 안타깝고 가련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번 믿는 마음이 견성성불(見性成佛) 할 때까지 그 믿음이 변함이 없어야하지마는, 닦아 나아가는 과정에 있어서는 나날이 새로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이고 구태의연(然)해서 답보(步)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매일 한결같이 공부를 해 나가되 언제나 새롭게 새롭게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단계에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참선을 경전에 있는 말씀이나 또는 어떠한 스님네한테 들은 법문이나 또는 자기가 알고 있는 어떤 교리적인 철학적인 지식을 통해서 계속 추구하고, 따지고, 비교하고, 적용하고 해서 차츰차츰 파고들어 가고 알아들어 가고 이렇게 공부하라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참선은 다른 학문과 달라서—다른 모든 학문은 점진적으로 차츰차츰 쌓아올려 가야 하고, 차츰차츰 알아들어 가야 하고, 점점 깊이 파고들어 가야 되지마는, 이 참선은 언제나 말씀드린 바와 같이 처음부터 다못 꽉 막혀서 알 수 없는 의심으로 계속 정진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육조(六祖) 스님 앞에 하택신회(荷澤神會) 선사라고 하는 스님이 젊었을 때 육조 스님 앞에 떠억 나왔습니다.

‘무슨 물건이냐?’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육조 스님이 물으시기를,

‘내게 한 물건이 있으니 옛날부터 소소영령(昭昭靈靈)해서 부증생부증멸(不曾生不曾滅)이라, 일찍이 생겨난 때도 없고 일찍이 멸한 때도 없다. 밝기는 태양보다도 더 밝고, 검기는 옻칠보다도 더 검으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어. 항상 일상생활 속에 보고 듣고 생각하는 가운데에 그놈이 있건마는 찾아봤자 도저히 잡히지를 않는다. 그러니 이것이 무슨 물건이냐?’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그때 하택신회 선사가 대답하기를 ‘모든 부처님의 근원이요, 하택신회의 본 마음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너는 나중에 공부를 열심히 해봤자 너는 지해종사(知解宗師) 밖에는 못되겠구나. 지해종사란 말은 알음알이로 따져서 공부해 가는 강사나 이론가 밖에는 안되겠다 이 말씀입니다.

 

그 다음에 남악회양(南嶽懷讓) 선사가 왔습니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남악회양 선사는 그 한 말씀 육조 스님의 물음에 꽉 막혀 가지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길로 물러나와 8년 동안을 ‘무슨 물건인고?’ 다못 알 수 없는 마음으로 꽉 막혀 가지고 밥을 먹으나, 똥을 누나, 옷을 입으나, 일을 하나, 앉았거나 누웠거나 섯거나, 일체처 일체시에 알 수 없는 마음, ‘무슨 물건인고?’

아무리 생각해봤자 꽉 막혀서 알 수가 없고, 이렇게 해서 8년만에사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습니다.

 

의심이 깊고 간절해서 꽉 막힐수록에 터질 때는 무섭게 터지는 것입니다.

 

의심이 시원치 않고, 꽉 막히지 못하고 자꾸 이리저리 따지고, 알음알이가 거기에 게재가 되고 이러한 식으로 참선 공부를 해봤자 깨달음에 이르기도 어려우려니와, 설사 어떠한 깨달음에 도달했다 해도 지극히 미약한 그런 깨달음에 지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대오(大悟), 확철대오를 얻을려면은 의심이 깊고 간절하고 커야 하는 것입니다.

「깊고 간절하고 커야 한다」고 하는 것은 꽉 맥혀야 하는 것입니다. 알 수 없이 맥혀야 하는 것입니다.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 큰 의심 아래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참선 공부를 잘할려면은 첫째, 몸을 바르게 골라야 합니다. 바르게 가지고 바르게 단속을 해야 하고.

둘째는, 호흡을 바르게 쉬어야 합니다. 호흡을 바로 하지 못하면 참선 공부의 중간에 큰 지장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셋째에 가서는, 우리의 생각을 잘 단속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살았다'고 하는 것은 첫째 몸이 있어야겠고, 몸이 있는 한에는 숨을 쉬어야 하고, 숨을 쉬고 있는 한에는 생각을 할 수밖에는 없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긴(緊)히 몸을 가질 바에는 바르게 가져야 되겠고, 긴히 호흡을 할 바에는 바르게 호흡을 해야 하고, 긴히 무엇인가 생각하지 않고는 안될 바에는 바른 생각을 해야만 되지 않겠습니까?

 

『바르게 몸을 갖는다』고 하는 것은 가부좌(坐) 또는 반가부좌.

허리를 쭉 펴고, 코끝이 배꼽 밑에 단전(丹田)과 수직으로 놓이게 하고, 두 귀가 두 어깨에 수직으로 놓이도록. 그렇게 몸을 가지면은 그 몸이 전후좌우로 기울어짐이 없이 단정하게 앉아지는 것입니다.

 

단정하게 앉되, 어깨와 목과 몸의 긴장은 완전히 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긴장은 다 풀면서도 몸은 단정하게 가지고.

 

이는 어금니부터 지그시 물고, 입은 '한 일'자로 딱 다물고, 눈은 자기 앉은자리로부터 3미터 지점에다 떨구고 이렇게 앉으면은 몸이 단정하게 몸을 갖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호흡을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르게 하는 것이냐?』

우리 보통 사람들은 가슴으로 호흡을 하고 무의식적으로 호흡을 하기 때문에 숨이 짧고 빠릅니다.

 

그러나 가장 이상적인 호흡은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까지 숨을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깊이깊이 들어마셔. 쑥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5~6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이렇게 내쉬도록.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쪽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입니다.

 

복식 심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이 가벼워지고, 오장육부가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되면서 깨끗해지기 때문에 그러한 상태에서 생각을, 바른 생각을 단속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22분14초~41분33초)

 

 

 

 

(2)------------------

 

『바른 생각이라는 게 무엇이냐』 아까 육조 스님께서 그 제자들에게 물으신 문제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우리는 '나'라고 하면은 이 몸뚱이 육체가 '나'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몸뚱이 육체는 ‘참나’가 아닙니다. ‘참나’는 이 몸뚱이 육체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는 물질이라 자기 멋대로 행동을 취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행동은 이 몸뚱이의 주인인, 주인공(主人公)의 명령에 따라서 이 몸뚱이는 움직이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그놈이 들어서 이 몸뚱이로 하여금 움직이게 하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눈을 통해서 보지마는 눈이 보는 것이 아니라 눈을 통해서 보는 놈은 나의 주인인 것이고, 듣는 것도 그렇고, 웃고 울고 성내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고 아무리 잡을라야 잡히지는 않지만은 그것이 나의 주인이지, 이 몸뚱이는 그 주인이 살고 있는 임시로 살고 있는 집에 지나지 못하고, 임시로 입고 있는 옷에 지나지 못한 것입니다.

집이나 옷은 얼마 동안 살다가 낡고 못쓰게 되면은 버리고 또 새집으로 이사 가거나 새집을 짓지 아니하면 아니 됩니다. 옷이 낡고 더러워지면 그 옷은 벗어버리고 새 옷을 입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이 몸뚱이도 어떠한 단계에까지는 입고 있지마는 단계가 지나면은 이 몸뚱이는 언젠가는 기어코 버리고 새 옷을 갈아입지 아니하면 아니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사(生死)입니다.

 

이 몸뚱이 있을 때 그 주인공이 무엇인가? 그놈을 깨달아 버려야 영원한 생사윤회(生死輪廻)로부터 해탈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생들은 이 몸뚱이가 자기인 줄 알고, 이놈에다가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좋은 옷을 입히고, 분을 바르고, 연지를 찍고, 향수를 발라서 이 몸뚱이는 이쁘게 이쁘게 단속하고 가꿀 줄 알면서,

이 몸뚱이 안에 있는 ‘참나’, 나의 주인공은 밥 한 숟갈 먹일 줄도 모르고, 약 한 모금 먹일 줄도 모르고, 그놈이 어디가 있는 줄도 모르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채 일생을 살고 또 다음 생에 또 그렇게 해서 무량겁을 두고 생사윤회를 거쳐서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부처님의 그 깨달음, 깨닫는 법을 만나지 못했다면 우리는 영원을 두고 생사(生死)의 그 괴로운 윤회(輪廻)를 계속 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그러한 위대한 스승을 만나서 그 지긋지긋하고 무서운 생사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최고 위대한 그러한 정법(正法)을 금생에 만났습니다.

 

만나 가지고서도 열심히 닦지 않는다면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문제는 ‘열심히 닦느냐, 닦지 않느냐’에 우리는 문제가 거기에 있을 뿐인 것입니다.

 

이 문제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가만히 있어도, 눈을 감고 가만히 있어도 무엇인가 과거 일이 생각이 나고, 괴로운 일이 생각이 나고, 슬픈 일이 생각이 나고, 기뻤던 일이 생각이 납니다.

일어나는 그 생각—그것이 바로 우리를 괴롭히는 고민이요, 망상이요 번뇌입니다마는 그놈 일어나는 그...(녹음 끊김)

 

버스에서나, 절에서나 언제라도 내가 나를 찾을 수 있는 기회는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단 1분, 1초도 틈이 없이 우리에게는 공부할 수 있는 좋은 장소와 때가 우리에게는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 한번 버리면 다시 또 사람 몸을 받을지, 지옥에 갈지, 축생이 될지, 천당에 갈지, 아귀가 될지, 수라가 될지, 우리는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몸 있을 때 열심히 참선을 해놔야 내생에 다시 사람 몸을 받는 것이고, 다행히 금생에 대도(大道)를 성취해서 자유자재 할 수 있다면 그때는 중생 교화하기 위해서 지옥에를 가건, 축생이 되건, 다시 사람이 되건 그것은 두려워할 것이 없는 것이고.

 

문제는 어쨌든지 이 몸은 시시때때로 늙어가고 있고, 시시때때로 낡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룻밤 자고 나면 또 낡아지고, 이틀 밤 자고 나면 낡아지고, 철없는 어린 아이들은 설이 되면 좋다고 춤을 추고 야단이지마는 설이라 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죽음의 사형 무대 앞에 한 해 성큼 다가선 것에 지나지 못한 것입니다.

 

이 몸이 잠시도 쉬지 아니하고 걸음걸음이 시시때때로 수명이 단축이 되어가고 있는 이때에 우리는 단 1초도 단 한 생각도 범연(然)히 그럭저럭 지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1초 1초가 쌓이고 쌓여서 1년 10년이 되고, 금방 이 몸을 버려야만 할 죽음의 문이 돌아오고 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무상(無常)함을—이 몸뚱이가 정말 허망하고, 이 세상에 모든 것이 정말 허망한 것임을 철저히 깨달아야만 도를 닦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내일이 있다. 모래사 있다. 이 일만 끝나고 다음에 하지. 금년, 이삼 년만 더 기다리고 3, 4년 뒤에 하리라’ 이러한 생각은 가장 어리석고 게으른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참으로 발심(發心)한 사람은 자기가 지금 어떠한 처지에 놓여있건 그것은 가릴 것이 없이, 있는 그 자리에서 ‘이뭣고?’ 뿐인 것입니다.

있는 그 자리에서 그때 그때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이놈이 무엇인고?’ 이렇게 해 나가게 되면은 이것이 바로 무량겁 생사를 끊어 나가는 가장 유일한 방법이요, 가장 지혜 있는 사람이 살아가는 길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 나간 사람에게는 어떠한 어려운 일도 그 사람 앞에는 다 풀려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우리는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하면 당황해서 지혜로운 생각은 간 곳 없고, 계속 자기를 해롭게 하고, 괴롭게 하고, 일을 그르치게 하는 생각만이 계속 퍼일어나게 마련인 것입니다.

 

어떠한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이뭣고?’ 이렇게 한번 들 때에 그 사람에게는 온갖 쓸데없는 생각이 거기서 끊어지는 것이며, 당황하는 생각이 거기에서 일어나지 아니한 것입니다.

어리석은 생각이 거기에서는 일어나지 아니했기 때문에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됨으로 해서 마음이 맑아지고, 마음이 맑아진 데에서 일어나는 생각은 지혜로울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생각으로 어려운 일을 처리해야 그 일이 풀려나가는 것이지 당황한 마음, 어리석은 마음, 삿된 마음으로 어려운 일이 풀려날 리가 있겠습니까?

점점 복잡하게 만들 뿐이고, 그럴수록에 자기만 점점 괴로워지고 점점 주변을 불행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뭣고?’를 찾는 사람에게는 과거의 한량없는 죄가 있다 하더라도 그 앞에는 녹아질 수밖에는 없는 것이고, 죄가 녹아질 때에 불보살이 그 사람을 돌봐 주시지 아니할 리가 없습니다.

일체 선신(善神)이 계시다면은 그 사람을 옹호(護)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어리석고 삿된 마음을 일으킬 때에 잡신과 악귀(鬼)들이 그 사람을 맴돌면서 따라다니는 것이고, 맑고 깨끗하고 지혜로운 마음을 가졌을 때에 불보살과 일체 선신들은 그 사람을 돌보아 주시고, 옹호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리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믿고,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어떠한 괴로운 일을 당하더라도 그 괴로운 일에 나의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그러한 괴로운 일을 당할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서 몸을 바로잡고 깊은 호흡을 하면서 ‘이뭣고?’ 이렇게 가다듬어 보십시오.

 

한 번, 두 번,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일 년, 이태 이렇게 쌓아 나갈 때에 여러분들은 정말 여러분 자신이 어디로부터서 이러한 위대한 힘이 생겨났는가에 대해서 스스로 놀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팔만대장경을 한덩어리로 뭉쳐서 여러분 앞에, 낱낱이 여러분의 가슴속에다가 선사(賜)드리는 새해의 선물입니다. 

 

부처님이 성도(成道)하신 오늘, 정사년 납월팔일(臘月八日)을 기념해서 부처님의 뜻을 받들고, 조실 스님의 법문에 의지해서 제가 자신 있는 마음으로 여러분 앞에 말씀을 드리는 것이니, 이 법을 진즉부터 알고 닦으신 분, 새로 오신 분, 누구를 막론하시고 희망과 자신과 용기를 가지시고 열심히 정진을 해서 결정코 금생에 우리의 목적인 견성성불을 성취하시기를 간곡(懇曲)히 부탁드리고 말씀을 맺습니다.(41분34초~53분56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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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생사고해(生死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삼계(三界-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를 가리킴. 생사와 그 괴로움이 무한한 것을 바다에 비유함.

*마야 부인(人)māyā.  석가모니 어머니인도 콜리야족(koliya각왕(善覺王)의 딸로 카필라바(Kapilavastu) 슈도다나

uddhodana, 정반왕淨飯王)과 결혼하였으나석가모니 낳고 7 후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당시의 풍속으로 정반왕은 마야의 여동생 마하프라자파티(mahāprajāpatī)과 재혼함.

*해산(解産) ; 아이를 낳음.

*룸비니(Lumbinī) ; 불교의 창시자인 고타마 싯다르타(Gotama Siddhārtha), 즉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가 탄생한 곳으로 네팔 남동부 테라이(Terai) 지방, 바이라와(Bhairawa)의 서방에 있다. 석가족(샤카족)의 도읍 카필라바스투의 유적이 약 16km 서쪽에 있다.

 

이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는 19세게 말까지만 해도 분명하게 알려지지 않았던 중, 1896년 독일의 고고학자 앨로이스 휘러(Alois Anton Führer)가 오늘날의 네팔 테라이 지역에 있는 옛 사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울창한 숲에 버려져 있는 아쇼카왕 석주(石柱)를 발견했다. 석주에 새겨진 내용은,

‘자비로운 삐야다시 왕(아쇼카 왕의 다른 이름)은 왕위에 오른지 20년에 이곳을 방문하고 참배하였다. 왜냐하면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Śākyamuni Buddha)께서 이곳에서 탄생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주위에 돌담을 쌓고 돌기둥(石柱)을 세우게 했다. 부처님께서 여기 룸비니 마을에서 탄생하셨기 때문에 이 마을에 세금을 면제하였고, 단지 생산의 8분의 1만  내도록 하였다.’ 이로써 부처님의 탄생지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구시나가라(拘尸那伽羅) ; 산스크리트어 쿠시나가라(kuśinagara). 지금의 네팔 남쪽에 인접해 있던 말라족(malla族)의 거주지로, 붓다가 입멸한 곳. 붓다는 이 나라의 북방의 사라쌍수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고 오른쪽 겨드랑이를 밑으로 해서 입멸하셨다.

*사라쌍수(沙羅雙樹) : 북부 인도의 구시성(拘尸城 kuśinagara) 서북쪽으로 흐르는 발제하(跋提河 Ajitavati) 물가, 사라수 여덟 대가 둘씩 마주 서 있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이 사라쌍수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고 오른쪽 겨드랑이를 밑으로 해서 입멸하시니, 그 숲이 하얗게 변하였다. 그리하여 학의 숲(鶴林, 鶴樹)이라고도 하게 되었다.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결집(結集)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saṃgīti  상기티는 결경(結經)·집법(集法) 또는 합송(合誦)·합창(合唱)으로 해석하며, 회의(會議)를 의미한다고도 한다. 많은 자격 있는 사람들이 모여 불전(佛典)을 올바로 평가하고 편찬하는 일을 의미한다.
인도에서는 붓다의 입멸 후부터 2세기경까지 4차례의 결집이 있었고, 그 후 현대에 오기까지 세계 각국에서 여러 차례의 대장경(大藏經) 결집이 있었다.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세련되다(練-- 씻을 세,익힐 련) ; 서투르거나 어색한  없이 훌륭하고 미끈하게 가다듬어 있다.
*염불(念佛) ;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과 같은 불•보살님의 이름을 외움. 흔히 어떤 일을 기원하며 ‘나무관세음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을 소리 내어 외우는 일을 말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12에서.
(52)念佛者는  在口曰誦이요,  在心曰念이니  徒誦失念하면,  於道無益이니라.
 
염불이란 입으로 하면 송불이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염불이니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 데 아무 이익이 없으리라.
 
註解
阿彌陀佛六字法門이  定出輪㢠之捷徑也라.
心則緣佛境界하야  憶持不忘하고,  口則稱佛名號하야  分明不亂이니,  如是心口相應이  名曰念佛이니라.
 
「나무아미타불」의 육자 법문은 바로 윤회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여 잊지 말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되 분명하고 일심불난(一心不亂)해야 하니, 이와 같이 마음과 입이 상응하는 것이 염불이다.
*주력(呪力) ;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로 하는 기도.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의 효과.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사십팔대원(四十八大願) : 아미타불이 지난 세상에서 수행할 때에,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 가 되어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 - Buddha) 앞에서 장차 자기가 성불하여 주지(住持)할 이상적인 국토의 구체적 조건을 들어서, 그것이 실현될 때라야 성불한다고 맹세하고 발원하였던 것이다. 마침내 그가 무한히 분투 노력하여 그의 복과 덕이 쌓이고 쌓여, 그가 목표한 극락세계가 이루어지게 된다.
<무량수경>에 나오는 그 서원 가운데서 주요한 것을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1. 그 나라 안에는 온갖 고통과 비참한 일이  아주 없을 것.
3. 그 나라 사람들은 모두 얼굴이나 몸이 똑 같게 될 것.
5. 그 나라 사람들은 모두 육신통이 있을 것.
15. 그 나라 사람들은 모두 끝없는 수명과 한량없는 광명을 가질 것.
18. 어느 세계의 어떤 중생이나 그 이름(아미타불)을 열 번만 염하면 그 나라에 태어날수 있을 것.
33. 시방 세계의 어떤 중생이나 모두 그의 빛을 쏘이면 그 몸과 마음이 함께 아름답게 될 것 등등.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구경법(究竟法 궁구할 구,마칠·다할 경,진리 법) ; 그 위에 더 없는 최고의 가르침. 궁극의 진리.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구태의연(然)하다(생각 태도방법 따위)발전하거나 진보되지 않고 예전 묵은 모습 그대로이다.
*답보( 밟을 답,걸을 보) ; ① 따위 진행되지 못하고 한자리 머물러 있음 유적으로 이르는 . ②으로 나아가지 않고제자리에서 걷는 처럼 다리 움직이는 동작.
*육조 스님, 하택신회, 남악회양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긴(緊)히 ; ①꼳 필요하게. ②매우 간절하게.
 
 
 
 
------------------(2)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시시때때 ; 시시(時時, 지나가는 시각 시각)를 강조하는 말. 시간이 흐르는 매 순간.
*걸음걸음이 ; 걸음을 걸을 적마다.
*범연(然) ; ①두드러진  없이 평범하게. ②특별한 관심 없어 데면데면하게.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에서]
*선신(善神) ; 불법(佛法)과 그것을 믿는 이들을 보호하는 신.
*옹호하다(護-- 안을 옹,보호할 호) ; 「…을」 두둔하고 편들어 지키다.
*성도(成道) ; 깨달음.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됨.
*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은 음력으로  해의  마지막  이르는 .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35세의 12월 8일 샛별이 뜰 무렵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하(河)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불도(佛道)를 이루던 날. 납팔(臘八)이라고 줄여 쓰기도 한다. 일명 성도재일(成道齋日).
*간곡히(懇曲- 간절할 간,간절할 곡) ; 간절하고 정성스럽게.

 

Posted by 닥공닥정
참선 (목적)2014. 11. 27. 16:16

 

 

§(055) 참선법은 자기의 정신혁명을 완수하는 가장 바르고, 빠르고 훌륭한 방법 / 번뇌 망상은 견성성불할 수 있는 좋은 발판.

참선은 내가 이 몸 이대로 가지고 정신혁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함으로 해서 영원히 생사(生死)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서 성현(聖賢)이 되는 그러한 길인 것입니다.


참선은 어떤 특수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썩어 문드러진 국가일수록 혁명이 요구되듯이, 번뇌와 망상과 탐진치 삼독과 오욕락에 빠져서 걷잡지 못한 죄 많은 중생일수록에 정신혁명은 더욱 요구되는 것입니다.


조금도 번뇌와 망상 일어나는 것을 언짢게 생각하시거나 짜증을 내시지 말고, 이놈 때문에 내가 참선을 못한다고 미워하시지를 말고 『일어나는 그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 그 방법만을 잘 아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무슨 생각이 일어나든지 일어나는 그 생각을 없애거나 누를려고 하지 말고 그 생각을 바로 발판으로 해서 그 생각하던 그 생각으로 「이뭣고?」 이렇게 화두(話頭)를 들어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백만 번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그렇게 들어나가면, 일어났던 망상이 나로 하여금 육도윤회를 하게 하는 그러한 고약한 원인이 아니라,
그 망상은 바로 나로 하여금 견성성불할 수 있는 길로 들어서게 하는 좋은 발판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055)—77년 동안거 결제 법문(77.11.25) (용055)


약 21분.


오늘은 정사년(丁巳年) 겨울 결제날입니다. 음력 10월 15일부터 내년 정월 15일까지 석 달 동안 겨울안거인데 그 처음 시작하는 결제(結制)날입니다. 동시에 백일기도 입재(入齋)하는 날입니다.

앞으로 석 달 동안 참선, 특별 참선수행이 시작되는 날로써 그러기 때문에 오늘은 참선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구체적인 법문을 조실스님의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참선(參禪)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정신 혁명(精神革命)』 사업입니다.

한 나라가 부정과 부패로 도저히 겉잡을 수 없는 그러한 상황에 놓여서 정부나 국민이나 온 사회가 질서를 유지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기나라를 자기네들이 지켜나갈 수 없게끔 혼란하게 되면은 반드시 외부로부터 침공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할 때에 그 나라에 정신을 바로 가진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 분연히 일어서서 썩은 나무둥치를 베어내고 새순을 가꾸어 가지고 다시 그 나무에서 뿌리에서 가지가 뻗고, 잎이 피고, 꽃이 피어서 열매를 맺도록 허는 거와 같이,
그 나라 그 백성을 다 없애버리고 새 나라를 세운 것이 아니라, 그 국토 그 국민으로 하여금 구태의연(舊態依然)한 썩은 마음가짐을 버리고, 새로운 정신으로 내 나라 내 민족을 우리 모두가 마음을 합해 가지고 다시 일으키자고 하는 그러한 혁명과 같이,

‘참선’이라고 하는 것은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부처님과 똑같은 진여불성(眞如佛性)을 낱낱이 우리 모두가 다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탐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으로 인해서 오욕락(五欲樂)에 빠져 가지고,
내가 무량겁, 구원겁 이전부터서 낱낱이 가지고 있는 자성(自性)의, 자기의 청정한 부처를 개발을 하지 못한 채 죄업의 구렁텅이에 빠져 가지고, 썩어 문드러져 가지고, 허는 일마다 앞으로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면서 갖은 괴로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그러한 일만을 되풀이하고 있을 때에, 부처님께서 출현하셔 가지고 일대 혁명(一大革命)을 일으켰습니다.

먼저 자신의 마음에 혁명을 일으켜서 성공을 한 다음 그 혁명하는 방법을 우리 모든 중생에게 가르켜 주셨습니다.

그 방법을 삼천 년을 내려오면서 불보살이 화현(化現)을 해 가지고 삽삼조사(卅三祖師) 이래 많은 도인들이 계속해서 출현하셔 가지고 그 방법을 한 등(燈)에서 또 다른 등으로 불을 옮기듯이 등등상속(燈燈相續) 해 가지고, 오늘날에 이르도록 부처님의 그 정법(正法)의 등불이—바꾸어 말하면 자기의 정신혁명을 완수하는 가장 바르고, 빠르고 훌륭한 방법을 오늘에 전해 내려왔습니다.

그 방법이 바로 참선법(參禪法)입니다.

참선은 어떠한 특수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썩어 문드러진 국가일수록 혁명이 요구되듯이 번뇌와 망상과 탐진치 삼독과 오욕락에 빠져서 걷잡지 못한 죄 많은 중생일수록에 정신혁명은 더욱 요구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죄가 많고 근기(根機)가 하열(下劣)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낱낱이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는 나의 부처, 자기의 부처는 조금도 때묻지 아니하고 썩지 아니한 채 고대로 다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그 나라가 아무리 어지럽고 부정과 부패가 만연해서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혼란에 빠져 있다하더라도, 온 국민이 어떠한 영도자를 중심으로 해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단합을 한다고 하면은 삽시간에 그 나라는 새 나라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조국에 있어서 근래에 잘 경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눈을 부릅뜨고 눈여겨보고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나라들은 부러워하고 어떠한 나라들은 오히려 우리들을 두려워하고 우리나라를 배울려고 하고 그러한 나라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땅이 어디서 새로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우리 삼천 오백만 국민이 옛날에 있던 그 국민이 아니고 없어지고 새로 어디서 생겨난 국민이 아니라, 내나 본래부터 단군 이전에부터서 있었던 그 나라고, 해방 전부터서 있었던 그 국민들입니다.

그 국민들이 정신을 바로 차리지 못할 때에는 자기를 멸망하고 국가를 멸망하고 그러한 보잘것없는 그러헌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생각 돌이켜서 새마을사업, 새마음사업으로 해서 모두가 나와 가정과 국가와 민족과 인류를 위해서 단합을 함으로 해서 우리는 눈부시게 발전을 하고 살기 좋은 나라를 맨든 것입니다.

참선은 내가 이 몸 이대로 가지고 정신혁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함으로 해서 영원히 생사(生死)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서 성현(聖賢)이 되는 그러한 길인 것입니다.

나 한 사람부터 먼저 이 사업에 착수를 하고 열심히 함으로 해서 이웃, 가족, 이웃친지들 한 사람이라도 더 이 사업에 나서도록 손을 이끌어주면서 자기가 앞장서서 나갈 때에 우리 모두는 다함께 불도(佛道)를 성취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까 조실스님께서 하신 법문은 이 자기 정신혁명을 수행해 나가는데 있어서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느냐? 그 실지적인 실천해 나아가는데 있어서 어떻게 해 나가야 헌 것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참선을 헐랴고 앉았으면은 누구를 막론하고 온갖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이 일어나기 마련인 것입니다.
번뇌와 망상이 한바탕 일어났다가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그런 것이 계속하다가 조금 조용해질만하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참 졸다가 눈을 뚝 뜨고 좌우를 둘러본 다음에 스스로 챙피해서 정신을 차려 가지고 허리를 쭉 펴고 화두를 한번 들어봅니다. 들기가 무섭게 또 이 생각 저 생각 쓸데없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혼침(昏沈), 졸음이 일어날 때에는 어떻게 그것을 단속을 해 나가며, 이 생각 저 생각이 일어날 때에는 어떻게 그것을 단속해 나가야 하느냐?’한 문제에 관해서 조실스님께서 30분여에 걸쳐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졸음이 일어날 때에는 허리를 쭈욱 펴고, 언제든지 졸음이 일어날 때는 허리가 꼬부라져 있는 것입니다. 허리가 쭉 폈던 허리가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에 허리가 꾸부러지면서 앞으로 몸이 수그러지는 것입니다.
설사 윗몸은 수그러지지 아니하고 쭉 폈다 하더라도 허리가 딱 꼬부라지자마자 그때부터서 잠이 오는 것입니다. 잠이 올 때는 언제든지 허리가 꼬부라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허리를 쭉 펴고 참선을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쭉 폄으로 해서 정신이 단정해지고, 정신이 깨어나면서 혼침이 침노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침이 올 때는 먼저 허리부터 쭉 펴야 허는 것입니다.

펴고서 자기 혼자 헐 때에는 자기가 들고 있는 화두를 소리를 내서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렇게 소리를 내서 두 번을 하라 이렇게 말씀을 허셨습니다.
또는 「이뭣고」를 허신 분은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소리를 내서 두어번 화두를 소리를 내가지고 들어라. 그러면은 졸음이 확 달아날 것이다 이러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모여서 입선(入禪)을 허고 있는 데에서 졸음이 온다고 해서 (소리를 내서) 「이뭣고?」「이뭣고?」 이래서는 아니 됩니다.
혹 이 말씀을 듣고서 죽비를 치고 여러분이 입선 중에 그렇게 허신다고 하면은 그것이 잘못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혼자 댁에서 할 때나 또는 산이나 숲 밑에서 혼자 허실 때에 그렇게 졸음이 오면 소리를 내서 한 두어번 그렇게 화두를 들면은 (졸음이) 달아난다 이런 말씀입니다.

그렇게 해도 졸음이 달아나지 아니할 때에는 가만히 조용히 일어나 가지고 밖으로 나가서 일직선으로 왔다갔다하는 길을 정해놓고서 한 30미터나 40미터 일직선으로 코스를 딱 정해놓고, 그 직선상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왔다갔다하면서 화두를 든다고 하면은 자연히 졸음은 도망가고 정신이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은 그렇게 한 5분 내지 10분 동안 왔다갔다하게 되면 졸음이 달아나게 됩니다. 그러면 다시 자기 자리에 돌아와서 허리를 쭈욱 펴고,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졸음이 깨고 난 뒤에 화두를 떠억 들면은 온갖 생각이 또 일어나죠? 집안생각, 남편생각, 아들생각, 아들 학교 문제, 학교 입학문제, 딸 시집가는 문제, 외손자 생각, 온갖 생각이 꼬리에서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데, ‘그러한 생각 때문에 도저히 참선을 헐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호소해 온 분이 가끔 계십니다.
그러나 그러한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생각, 그것이 바로 번뇌요 망상인데 그 생각 때문에 공부를 못한 게 아니라, ‘그 생각 때문에 참선이 안 됩니다’하고 생각한 분은 생각을 고쳐 잡숴야 합니다.

‘그 생각 때문에 나는 참선을 할 자격이 있다. 그 생각 그러한 번뇌와 망상 때문에 나는 참선을 통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 있다’고 생각을 허셔야 합니다.

왜 그러냐?
‘그 번뇌와 망상 때문에 육도윤회를 해 가지고 생사고(生死苦)를 받는데, 왜 그 번뇌 망상 때문에 견성성불할 수 있다고 하는 말은 어폐(語弊)가 있는 말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허실 분이 계시겠지마는, 사실은 그렇지 않고 번뇌와 망상 때문에, 그놈 때문에 우리는 견성성불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번뇌도 일어나지 아니하고, 망상도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혼침도 일어나지도 아니한다면 그런 사람이 어디가 있다면 그것은 나무나 돌로 깎아서 만들어 논 사람일 수 밖에 없습니다.
나무나 돌로 깎아서 만들어 논 사람은 정말 석달 열흘을 잠을 안 자도 잠이 오지 않을 것이며, 석달 열흘을 앉혀놔도 번뇌·망상 한번도 일어날 리가 없겠습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고단하면 잠이 오기 마련이고, 며칠을 밥을 안 먹으면 배고프기 마련이고, 때리면 아프기 마련이고, 앉았다 보면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일어날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혼침·산란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은 살아있는 증거이고, 살아있는 사람이면 참선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도 번뇌와 망상 일어나는 것을 언짢게 생각하시거나 짜증을 내시지 말고, 이놈 때문에 내가 참선을 못한다고 미워하시지를 말고 『일어나는 그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 그 방법만을 잘 아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무슨 생각이 일어나든지 일어나는 그 생각을 없애거나 누를려고 하지 말고 그 생각을 바로 발판으로 해서 그 생각하던 그 생각으로 「이뭣고?」 이렇게 화두(話頭)를 들어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무슨 생각이 일어나던지 그 일어나는 생각이 다음 생각으로 옮아가기 이전에 퍼뜩 「이뭣고?」 심호흡을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3초 동안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기 시작하면서 「이뭣고?」
이렇게 호흡과 화두를 함께 합쳐서 들어나간다고 하면은 백만 번 망상이 일어난다 해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백만 번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그렇게 들어나가면, 일어났던 망상이 나로 하여금 육도윤회를 하게 하는 그러한 고약한 원인이 아니라, 그 망상은 바로 나로 하여금 견성성불할 수 있는 길로 들어서게 하는 좋은 발판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높이 뛴다든지 멀리 뛸려면은 좋은 발판이 있어야 합니다. 발판이 짱짱해야 그 발판을 의지해서 높이 뛸 수가 있고 멀리 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뛰는 그 순간에 마지막 발 디딘 곳이 미끄러지거나 또는 질펑거리거나 그래서는 높이 그리고 멀리 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발판이 좋아야 멀리 뛸 수도 있고 높이 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발판이 없으면 우리는 화두를 들 수가 없습니다.

무엇이 발판이냐?
무엇을 보던지, 무엇을 듣던지, 무엇을 생각하던지, 느끼던지 간에 그것들이 좋은 발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 좋은 발판이 지옥으로 가는 육도윤회하는 발판으로 사용이 되는 것이고, 정법을 믿고 참선을 하는 사람은 그 발판이 바로 견성성불할 수 있는 발판으로 잘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처음~21분1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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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구태의연(舊態依然)하다 ; (생각이나 태도, 방법 따위가)발전하거나 진보되지 않고 예전의 묵은 모습 그대로이다.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 - 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 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삽삼조사(卅三祖師) : 삼십삼세 조사(三十三世祖師).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부처님을 대신할 전 교단(全敎團)의 어른을 한 분씩 정하여 내려왔다。그것은 스승되는 어른이 그 제자들 가운데서 빼어난 이를 선택하여 법(法)을 전하고, 그 증거로써 부처님의 가사와 발우(衣鉢)를 전해 주었다
그리하여 인도에서 1.가섭존자, 2.아란존자, 3.상나화수....이렇게 전승되어 28대 되는 달마대사(達摩大師)가 중국에 와서 중국의 초조(初祖)가 되고, 그로부터 2조 혜가, 3조 승찬, 4조 도신, 5조 홍인, 6조 혜능대사(慧能大師)로 내려왔는데, 위 33인의 조사를 삽삼조사라 한다.
6조 혜능에 이르러서는 불법을 대중화하기 위하여 정통(正統)으로 내려가는 전례를 폐지하고, 따라서 의발을 전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등등상속(燈燈相續) ; 등(燈)은 중생의 무명(無明)을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등(燈)에 비유한 말, 이 진리의 등(燈)을 스승이 그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이어짐을 일컬음.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하열(下劣 아래 하,못할·낮을 렬) ; (행동이나 생각이) 남보다 뒤떨어짐. 수준이 낮음.
*번뇌(煩惱) : 망념(妄念)이라고도 하는데, 몸과 마음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정신작용의 총칭이나, 이곳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 이외의 모든 생각을 말한다.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어폐(語弊 말씀 어,해어질·쓰러질 폐) ; ①적절하지 아니하게 사용하여 생기는 말의 폐단이나 결점. ②남에게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말.
*이뭣고(是甚麼)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참선 (목적)2014. 10. 12. 10:00

§(242) 참선법에 대한 신심이 굳고 깊어야. / 무당·점쟁이 등 사도(邪道)에 빠지지 말아야. / 일체 경계 바로 거기에 즉해서 화두를 들어야. / (게송)천강동일월~.

한 생각 돌이켜서,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여래(如來)의 땅’에 들어가는 돈오(頓悟),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길이 바로 이 참선법(參禪法)입니다. 모든 법이 다 훌륭하지만, 그 모든 법을 다 합한 것만큼 훌륭한 것이 바로 이 참선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더울 때는 더워서 못한다고 한 사람은 추울 때는 또 추워서 못하고, 젊어서 바뻐서 못한다는 사람은 늙어서 몸이 아파서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울 때는 더웁기 때문에 더움을 향해서 공부를 가다듬고, 추울 때는 그 추운 곳에 즉해서 생각을 돌이킨다면 춥고 더운 것은 바로 나로 하여금 공부를 이루게 하는 좋은 도량(道場)이 될 것입니다.


**송담스님(No.242)—84년 7월 첫째 일요법회(84.07.01)에서. (용242)


약 21분.

 


‘어쨌던지 오늘 내가 10만 독씩을 매일 채워 가지고, 내가 죽기 전에 아미타불을 봐야겠다’해 가지고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염불을 하시는데, 또 염불을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하는 염불문(念佛門)도 있습니다.

염불이 나쁜 것이 아니어요. 자기가 염불을 해야겠다는 철저한 신심이 있고 또 염불을 통해서 극락세계에 갈 그러한 원력(願力)을 가지신 분, 그런 신심을 가지신 분은 또 염불도 좋은 것이지,
‘에이, 참선이 제일이고 그까짓 염불은 아무 것도 아니다’ 염불하는 사람을 우습게 보고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염불도 정말 올바르게 지극정성으로 하면 반드시 극락세계(極樂世界)에 가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용화사는 참선법을 주로 해서 법을 설하는 도량이기 때문에 염불에 대한 말씀을 아니합니다마는, 여러분은 참선을 지극정성으로 할지언정 염불에 대해서 비방을 하거나 그것을 우습게 여기거나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 동안에 여기에 계신 분 가운데에는 과거에 염불도 많이 하시고, 또 관세음보살도 많이 하시고, 또는 ‘옴마니반메훔’같은 그런 주력(呪力)을 지극정성으로 많이 하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마는, 수행 방법에 있어서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있어서 근기(根機)에 따라서는 염불을 하시는 것이 좋을 분도 있고, ‘옴마니반메훔’을 하시는 것이 또 근기에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에 이 참선법이 가장 빠른 길이다’고 하는 것은 보증을 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이 참선법은 바로 ‘한 생각’에 자기의 본성(本性)을 깨닫는 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미타불을 많이 불러서 죽어서 극락세계에 가는 그러한 방편법이 아니라 한 생각 돌이켜서,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여래(如來)의 땅’에 들어가는 돈오(頓悟),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길이 바로 이 참선법(參禪法)입니다.

모든 법이 다 훌륭하지만, 그 모든 법을 다 합한 것만큼 훌륭한 것이 바로 이 참선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법에 한번 마음을 붙이고 여기에 발을 디딘 분은 다른 데에 ‘무엇이 좋다’하면 그리 그냥 귀가 솔깃, ‘무엇이 좋다’하면 그것에 솔깃, 그래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한번 믿은 마음이 철석같아야 하거든. 태산과 같이 부동하고 바다와 같이 깊어야지, 여기서 뭐라고 하면은 그 말에 솔깃, 저기 가서 뭔 말을 들으면 그것에 솔깃, 이거 좋다 하면 이것 솔깃, 저것 좋다 하면 저것 좀 해볼까... 밤낮 갈팡질팡, 갈팡질팡,
‘법화경을 읽으면 좋다’ 그러면 그때부터서는 인제 법화경, ‘에이, 법화경보다도 금강경이 더 좋다’하면 금강경, ‘화엄경이 진짜 좋다’하면 화엄경, ‘참선이 좋다’하면 참선.

참선이 좋다고 해서 왔는데, 해보니까 잠만 퍼오고 망상만 일어나고 아무 재미가 없어.
‘에이, 법화경 다시 해야겠다.’ ‘에이, 법화경 해 보았자 별 수 없고 점쟁이한테 가서 점을 치니까 환히 내 마음이 시원하게 다 가르쳐 주더라.’

이래 가지고 겉으로는 참선하는 척, 속으로는 무당을 조실 스님으로 생각하고, 도대체 20년, 30년 불법을 믿으면서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말이어.

보통 좋을 때는 부처님 믿고, 무슨 일만 났다 하면은 부리나케 무당 점쟁이한테 쫓아간다.
만약에 무당한테 가고 점쟁이가 그렇게 사람을 잘 모든 일을 다 뜻을 성취하게 하고 생사해탈하게 한다면, 우리 절에도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족집게 점쟁이를 얼마든지 갖다가 고용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 가지고 일이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그 사람들이 지내간 이야기는 썩 잘 맞춥니다. 금방 터진 명도점쟁이라던지 그게 다 지내간 이야기를 그렇게 같이 산 사람보다도 더 잘 알아맞히고 그러는데, 그 사람 말 듣고 뭔 일이 다 해결이 된다면, 그 점쟁이는 대대손손이 대통령만 해먹고 장관만 해먹고 다 박사가 되겠지만, 점쟁이 뒤끝이 별로 좋지를 못합니다.

잡신(雜神)만 그 집구석에 드글드글 끓지, 한 자식 옳게 기르지를 못합니다.
왜 그러냐? 잡신을 숭상하기 때문에 팔도의 잡신은 그 집안으로 다 모여 들여서, 잡신은 굿을 하면은 그때는 조금 헤헤 하다가 며칠 지내면 도로 또 행패를 부립니다. 깡패 불러다가 이용 해먹으면, 나중에 그 깡패 등쌀에 그 집단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은 손해가는 것 같지만 정법(正法)을 믿고 한 생각 한 생각을 정념(正念)으로 다스리고,
모든 일은 정법으로써 지혜로써 잘 수습해 나가면 결과적으로 거기에서 바른 길이 열리고 올바르게 해결이 되는 것이지,

밤낮 그런 잡신을 숭상하고 그런 잡된, 삿된 길에 드나들고 추종을 하면 점점점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물이 들고 나중에는 그 점쟁이 집에 들끓던 잡신이 자기집에까지 따라옵니다.

자기집에도 물을 떠놓고 빌고 대감단지를 해놓고 남편 몰래 뭐 이상한 짓을 하고 그러면 그 애가 머리가 따끔 따끔 아프던 것이 신기하게 나은 것 같고,
그러면 계속 그 짓을 해 가지고 나중에는 며느리한테 그걸 물려주고 딸 시집가는 데도 물려주고 이래 가지고는, 나중에는 딸이 느닷없이 싱숭생숭 해가지고 곧 그냥 미칠락 말락 하면서 뜬금없는 소리를 하고 그래 가지고 점쟁이가 될라다가 말라다가 곧 발광을 하거든.

그래 가지고 계속해서 처음에는 몇 해거리 한번씩 굿을 하다가 나중에는 그래 갖고 안되니까 1년에 한 번씩 하다가, 나중에는 다달이 하다가 그래 가지고 집안 살림은 탕진이 되고, 집안에 계속 교통사고가 일어난다, 화재가 일어난다, 약 먹고 죽는다 그래 가지고는 사람이 연거퍼 둘씩, 셋씩 막 죽는거거든.

그러고 평생을 경험을 해 본 뒤에사 ‘아하! 이것이 나쁘구나’ 그것을 알고서 그것을 끊을려고 하면은 정말 그 '씨앗이'에다가 손가락을 넣고 견딘 것처럼 그렇게 아픈 고비를 넘겨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씨앗이'라고 하는 것을 혹 시골에 사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지금은 그 목화씨를 빼는 좋은 기계가 많지마는, 옛날에는 수동식입니다.

수동식으로 되어 가지고 꽈배기과자 같이 나무를 만들어 가지고 두 개를 합해서 돌리면, 그래 가지고 목화(木花)를 집어넣어서 돌리면 씨가 거기서 툭툭툭 떨어지면서 솜만 저쪽으로 나오는데, 그 꽈배기 같이 생긴 두 나무 돌아가는 사이에다가 목화를 넣다가 잘못 해 가지고 손가락을 넣게 되면 손가락이 아주 파싹 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놈을 참고 계속 손가락을 처음부터서 집어넣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무당을 숭배하다가 그것을 그만둘라고 할 때에 그 정신적인 그리고 육체적인 고통이 바로 거기에다가 비유할 만큼 그렇게 괴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무당이나 무당 숭배하는 사람이 처음부터 그것을 할려고 해서 한 게 아니라, 한 번 두 번 답답하면 가서 물어보고 또 물어봐서 해보니까—밥을 해놓고 손을 비비고 갖다 찌트러 버리고, 칼로 이리저리 해 가지고 어쩌고저쩌고 하고 나면 좀 효험이 있는 것 같으니까, 한번 두 번 하다가 그렇게 되는 거여.
마치 아편을 한 번 두 번 그렇게 아플 때에 한번 맞으면 시원하니 낫고 하니까 또 맞고, 한 너댓 번만 맞으면 아편 중독이 되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정법은 믿고 해 갈수록 담담하고, 그런 삿된 길은 한두 번 해 보면 그렇게 쌈박하고 좋거든. 그러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래 끌려 들어가다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심심하다고 별맛이 없다고 버리고, 입맛을 취해서 삿된 데에 빠지고, 입맛을 취해서 음식을 취하고 그러면은 사도(邪道)에 빠지고 결국은 건강을 해치고 세세생생에 악도(惡道)에 떨어지는 것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 삼복이 가까워서 몹시 더운데, 이렇게 한 분도 졸으시는 분이 없이 이렇게 참 잘 듣고 계셔서 대단히 감사한데, 정말 참선 얘기를 할 때에는 이렇게 까지 눈이 초롱초롱 안 하고, 무당 얘기를 하니까 그렇게 눈이 반짝거린다 그말이예요.

앞으로 삼복 성염(盛炎)이 돌아옵니다. 선방에 계신 비구 스님네 그리고 비구니 스님들, 더울 때 아무리 더위도 그 더울 때에 즉해서 알뜰히 정진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하고,
또 이 선방에 계신 보살님네들이나, 또 가정에서 공부하시는 보살님네, 청신사 여러분, 더울 때는 그 더울 때를 향해서 더운 곳에 즉해서 화두를 들도록 노력을 하신다면 더운 줄을 모르고 한 해 여름을 지내게 될 것입니다.

서늘 바람이 날 때에는 우리의 마음속도 모든 번뇌와 망상이 다 식어 버리고 청량한 법의 기쁨과 선의 즐거움을 만끽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 여름에 되게 더워야 그래야 논밭에 모든 곡식이 잘 자라고, 겨울에 되게 추워야 모든 잡충들이 다 잘 죽고 그 이듬해 또 풍년을 기약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더울 때는 더워서 못한다고 한 사람은 추울 때는 또 추워서 못하고, 젊어서 바뻐서 못한다는 사람은 늙어서 몸이 아파서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울 때는 더웁기 때문에 더움을 향해서 공부를 가다듬고, 추울 때는 그 추운 곳에 즉해서 생각을 돌이킨다면 춥고 더운 것은 바로 나로 하여금 공부를 이루게 하는 좋은 도량(道場)이 될 것입니다.

비단 더웁고 추운 것 뿐이겠습니까?
속상할 때에는 그 속상한 바로 거기에 즉해서 화두를 들고, 슬플 때는 바로 그 슬픈 곳을 즉해서 화두를 들고, 기쁠 때 괴로울 때는 바로 기쁘고 괴로울 때를 즉해서 화두를 든다면, 일체처 일체시가 바로 참마음 찾는 도량이요 바로 법신불(法身佛)과 바로 무릎을 맞대는 적광토(寂光土)로 변할 것입니다.


천강동일월(千江同一月)이요  만호진봉춘(萬戶盡逢春)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종일주홍진(終日走紅塵)타가  실각자가진(失却自家珍)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천강동일월(千江同一月)이요  만호진봉춘(萬戶盡逢春)이다.
천 개나 되는 강에 강물마다 달이 떠 있지만 그것은 한 달이더라 그말이어. 하늘에 달은 하나인데 그 하나의 달이 천 개의 강물에 비추어 있더라 그말이어. 천 개의 강에 다 강마다 달이 떠 있지만 그 달은 바로 하늘에 있는 한 달이더라.

만호진봉춘(萬戶盡逢春)이로구나. 집집마다 뜨락마다 개나리도 피고 진달래도 피고 백목련도 피고 집집마다 피는데, 그것이 각각 다른 봄이 아니라 한 봄이더라 그말이죠.

하늘에는 한 달이건만 우리는 어찌 이렇게 각각 다른 얼굴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다른 상황 속에 태어났고, 어떻게 이렇게 생각이 각각 다른 생각을 가지고 이렇게 동서남북 가가호호에 태어나서 김 서방, 이 서방, 박 서방 이렇게 태어났느냐 그말이여.

그렇게 팔도에 태어나서 각각 피도 다르고, 성도 다르고 이렇게 태어났는데 오늘 이 시간은 사부대중이 온통 한마음이 되었습니다. 이 한마음이 된 이 공덕으로 우리는 세세생생에 한 불회상(佛會上)에서 태어나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좋은 인연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째서 종일토록 이 홍진(紅塵) 속에 줄달음질을 치면서(終日走紅塵), 자기집 보배를 망각을 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失却自家珍)

오늘부로는 바로 이 법당에서 나가는 걸음걸음이 화두를 들고 ‘이뭣고?’하고 자기의 자성 부처를 찾으신다면 세세생생에 다른 길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하시고 하루하루를 단속해 나가신다면 결정코 자기집에 있는 세세생생에 쓰고 또 쓰고, 쓰고 남아서 일체 중생에게 노나 줄만큼 무진장한 보물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63분43초~84분5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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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念佛) ;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과 같은 불•보살님의 이름을 외움. 흔히 어떤 일을 기원하며 ‘나무관세음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을 소리 내어 외우는 일을 말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12에서.
(52)念佛者는  在口曰誦이요,  在心曰念이니  徒誦失念하면,  於道無益이니라.
염불이란 입으로 하면 송불이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염불이니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 데 아무 이익이 없으리라.

(註解)  阿彌陀佛六字法門이  定出輪㢠之捷徑也라.
心則緣佛境界하야  憶持不忘하고,  口則稱佛名號하야  分明不亂이니,  如是心口相應이  名曰念佛이니라.
'나무아미타불'의 육자 법문은 바로 윤회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여 잊지 말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되 분명하고 일심불난(一心不亂)해야 하니, 이와 같이 마음과 입이 상응하는 것이 염불이다.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옴마니반메훔 ; 자비의 화신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성스러운 자비(慈悲)를 나타내는 진언(眞言)으로 ‘오! 연꽃 속의 보석이여!’라는 뜻이다. 여기서 보석은 자비의 상징이고, 연꽃은 지혜·깨달음의 상징이다.
산스크리트어 oṃ maṇi padme hūṃ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 육자진언(六字眞言)이라 한다. 이 진언을 외우면 관세음보살의 자비에 의해 번뇌와 죄악이 소멸되고, 온갖 지혜와 공덕을 갖추게 된다.
*주력(呪力) ;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로 하는 기도.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의 효과.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여래(如來)의 땅 ; 여래지(如來地). 불지(佛地). 부처의 지위(地位)·경지(境地). '부처의 상태를 이루었다'는 뜻의 성불(成佛)과도 같은 뜻.
*돈오(頓悟) ; 단박 깨달음. 몰록 깨달음. 문뜩 깨달음. 갑자기 깨달음.
[참고]보조국사 지눌(1158~1210)의 <수심결修心訣>에서.
頓悟者  凡夫迷時  四大爲身  妄想爲心  不知自性是眞法身  不知自己靈知是眞佛也  心外覓佛  波波浪走  忽被善知識  指示入路  一念廻光  見自本性  而此性地  原無煩惱  無漏智性  本自具足  卽與諸佛  分毫不殊  故云頓悟也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란 범부(凡夫)가 미혹했을 때 사대(四大)를 몸이라 하고 망상(妄想)을 마음이라 하여, 자기의 성품(自性)이 참 법신(法身)인 줄 모르고 자기의 신령스런 앎(靈知)이 참(眞)부처인 줄 알지 못하여,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물결따라 여기저기 헤매다가,
홀연히 선지식(善知識)의 지시로 바른 길에 들어가 한 생각 돌이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면, 이 성품(性品)자리에는 원래(原來) 번뇌(煩惱)가 없고, 무루(無漏)의 지혜 성품이 본래(本來) 스스로 구족(具足)하여 모든 부처님과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으니 그러므로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라고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대감(大監) ; 무당이 집, 터, 나무, 돌 따위에 붙어있는 신이나 그 밖의 여러 신을 높여 이르는 말.
*씨앗이 ; '씨아'라고도 하며, 목화씨를 빼는 수동식 도구.
*사도(邪道) ; 올바르지 않은 삿된 길.
*악도(惡道) ; 악한 짓을 한 중생이 그 과보로 받는다고 하는 괴로움의 생존. 지옥•아귀•축생 등의 세계.
*도량(道場) : [범] bodhimandala 도를 닦는 곳이란 말이다。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법신불(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즉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적광토(寂光土) ; 상적광토(常寂光土). 상적광(常寂光). 법신불(法身佛)이 머무르는[住] 정토(淨土).
*(게송) ‘千江同一月  萬戶盡逢春’ ; [오등회원(五燈會元)] 권13, 용광인(龍光諲)선사 참고.
*(게송) ‘終日走紅塵  失却自家珍’ ; [인천안목(人天眼目)] 1권—빈주문답(賓主問答)에서 분양(汾陽)선사 참고.
*불회상(佛會上) ; 부처님(佛)의 회상(會上). 부처님 계시는 곳.
*홍진(紅塵 붉을 홍,티끌 진) ; 탐진치 삼독(三毒)과 오욕락(五欲樂)으로 물든 번거롭고 어지러운 속된 세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홍진세계(紅塵世界).

Posted by 닥공닥정
분류없음...2014. 9. 14. 09:15

 

 

§(172) (게송)천강동일월~ / 타 종교인을 위한 법문 / 어느 종교든 옳게 믿어야 / 종교 화합 / (게송)안비천말적유사~.

믿어지기만 헌다면, 천주교나 예수교의 교리가 스스로 믿어지기만 헌다면, 불교를 안 믿을 바에는 그 종교를 열심히 믿어야 헌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 대신 ‘바로 믿어야겠드라.’


불교는 불교를 잘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비방한 것처럼 그러헌 미신(迷信)이 아니고 우상숭배(偶像崇拜)가 아닙니다. 불교는 ‘참나’를 깨닫는, 참사람 되는 길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종교를 믿든 참되게 믿고 참되게 실천해서 스스로 자기 종교끼리 화합을 해야 하고, 다른 종교와 공통점을 찾어서 서로 헐고 뜯고 비방하는 일이 없어야 할 뿐만 아니라 종교와 종교 사이에 손을 잡고 서로 도우면서 인류 평화에 이바지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송담스님(No.172) - 한병호 영가 49재 천도법어(타 종교인을 위한 법어) (82.06.15) 43분.(용172)

 

(1) 약 22분.

 

(2) 약 22분.


(1)------------------

천강동일월(千江同一月)요  만호진봉춘(萬戶盡逢春)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종일주홍진(終日走紅塵)타가  실각자가진(失却自家)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천강동일월(千江同一月)이요, 만호진봉춘(萬戶盡逢春)이라.
일천(一千) 강에, 모든 강물에는 한 달이 비추고 있드라.  하늘에 달 하나가 떠 있는데, 땅에 있는 모든 강물에는 함께 그 하늘에 떠 있는 하나의 달이 강물마다 다 비추고 있드라.

만호진봉춘(萬戶盡逢春)이다. 입춘(入春)이 지나고 우수(雨水)가 지내면 집집마다 온 천하가 모두가 함께 봄을 맞이허게 되드라 그말이여.

하늘에 떠 있는 달이 어느 강물에는 비추고, 어느 강물에는 안 비추고 헌게 아니라, 강에 물만 있으면 모든 강물마다 달이 비추고,
봄이 돌아오면 어느 집에는 봄이 오고, 어느 집에는 봄이 아니오고 헌 것이 아니라,
봄이 왔다하면 가난한 집에도 봄이 오고, 잘사는 집에도 봄이 오고, 집집마다 봄바람은 불어오고 봄소식은 전해오고 그렇더라 그말이여.

종일주홍진(終日走紅塵)타가  실각자가진(失却自家)이다.

종일토록 홍진을 달리다가, 붉을 홍(紅)자 • 티끌 진(塵)자—홍진(紅塵)이라 하는 것은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탐진치 삼독(三毒)과 오욕락(五欲樂)으로 ‘참나’를 망각해 가지고 밖으로 밖으로 내달아 허매이는 것이 그것이 바로 홍진 속에 달음박질허는 것이여.

명예를 위해서, 권리를 위해서, 재산을 위해서 불같은 욕심을 가지고 저만 잘 살라고 삼독심을 치성히 허면서 몸부림치는 것이 바로 이 홍진 속에 달음박질허는 것이여.

밖에 있는 오욕락을 불같은 욕심으로 추구하다가 자기집 보배를 잃어버리드라 그말이여.

세계에 유교·불교·천주교·기독교·마호멭교 그 밖에도 수없는 종교가 있고 유사 종교(類似宗敎)가 있고 그러는데, 그 종교가 사교(邪敎)가 아니라면 반드시 그 중요한 점에 있어서 공통점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 공통점이라 하는 것은 궁극의 공통점은 ‘나를 버려라.’

불교는 ‘탐진치 삼독심·오욕락을 추구하는 그러헌 마음을 버려라.’
그러헌 마음을 버림으로써 마음이 청정해지고 공해지면 그 관문(關門)을 지나서 ‘참나’를 깨닫게 된다.

천주교나 예수교나 ‘나는 무능한 존재요, 나는 하느님의 피조물이요, 나는 죄 많은 존재요’
그러기 때문에 내 것이라고 허는, 나라고 허는 것은 하나도 믿을 것이 못되니, 몸과 목숨과 너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다 바쳐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만 살아라.
마치 갓난애기와 같은 그러헌 마음으로 돌아가서 온전히 하나님의 품에 안기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만 살아라. 그때 너는 하나님으로부터 구제를 받을 것이다.

불교는 자력 수행교(自力修行敎)라면 예수교나 천주교는 절대 유일신을 신하는 타력 신앙교(他力信仰敎)라 이렇게 종교학적으로 분리할 수가 있는데, 자력(自力)과 타력(他力)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나를 버려라’ ‘나라고 하는 존재를 버려라’허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믿어지기만 헌다면, 천주교나 예수교의 교리가 스스로 믿어지기만 헌다면, 불교를 안 믿을 바에는 그 종교를 열심히 믿어야 헌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 대신 ‘바로 믿어야겠드라.’

불교도 잘못 믿으면 무당인지, 불교인지, 미신인지, ‘참나’를 깨닫는 정법(正法)인지 분간을 허지 못합니다.
덮어놓고 절에만 다닌다고 해서 그 사람이 참다운 불교를 믿는 사람이라 헐 수가 없듯이,
기독교나 천주교를 믿고 교회를 부지런히 다니고 교회에다가 그 돈을 많이 바치고 헌다고 해서 다 참다운 기독교인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불교도 믿을라면 정법을 바로 믿고 바로 실천을 해야 하고, 천주교나 기독교를 믿드라도 참으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실천해야지,
천주교나 기독교를 잘못 믿으면 정말 부지런히 교회는 다니면서 큰 죄를 짓고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이 되지를 못하고 그 벌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들어가기 십상팔구(十常八九)인 것이여.

불교도 덮어놓고 절에만 다니고 절만 많이 한다고 해서 참다운 불자(佛子)가 아니여.
불교를 잘못 믿으면 정말 사도(邪道)에 떨어져서 큰 죄를 지어서 지옥에 가기 십상팔구인 것이여.

어느 종교가 좋다, 어느 종교가 나쁘다, 이 자리에서 말헐 필요가 없습니다마는 기왕 믿을라면은 옳게 믿어야 겠드라.
기독교나 천주교 믿는답시고 다른 종교를 공연히 헐뜯고 비방을 헌다든지—자기의 종교를 철저하게 옳게 믿는 것이 급하지, 남의 종교를 비방하고 헐뜯는 일이 급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늘에 뜬 달은 김씨네 집에도 비추어 주고, 이씨네 집에도 비추어 주고, 부자 집에도 비추어 주고, 가난한 집에도 비추어 주고, 착한 사람 집에도 비추어 주고, 도둑질하는 사람의 집에도 달은 한결같이 비추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착하고 훌륭한 사람만을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제도하신 것이 아니라, 죄 많은 중생일수록 부처님은 더 불쌍히 여기시고 먼저 손을 쓴다면 죄 많고 불쌍한 사람 먼저 손을 뻗쳐주실 것입니다.

역시 하나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됩니다. 99마리의 양을 버리고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을 찾어 나선다고 하는 구절이 성경에 있습니다. 죄 많은 중생일수록에 더 자비가 필요한 것이고 구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을 사탄(Satan)이라 비방(誹謗)하고, 다른 종교를 핍박(逼迫)하고, 다른 종교에 신앙을 짓밟고, 심지어는 법당을 파괴하고, 법당 안에 모셔진 불상을 파괴하고, 다른 종교 믿는 사람을 사탄이라 규정해 가지고 비방을 하고,
이래 가지고서는 어찌 하나님의 뜻을 바로 믿고 바로 실천하는 사람이라 할 수가 있겠느냐.

불교는 불교를 잘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비방한 것처럼 그러헌 미신(迷信)이 아니고 우상숭배(偶像崇拜)가 아닙니다.
불교는 ‘참나’를 깨닫는, 참사람 되는 길인 것입니다.

부처님은 나무나 돌이나 쇠로 조각한 등신불(等身佛)이—우리가 추구하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참부처가 아니라, 등신불은 인류에 스승이신 진리를 체달하신 부처님의 모습입니다.
그 부처님의 모습, 부처님의 사진을 통해서 참부처님을 우리는 존경하게 되고, 참부처님을 우리의 마음속에 새기게 되고, 참부처님을 우리의 마음 속에서 깨닫게 허기 위한 방편(方便)인 것입니다.

돌아가신 스승이나 돌아가신 부모를 추모하는 뜻으로 그 사진을 모시듯이, 삼천 년 전에 열반하신 부처님의 모습을 조각해서 모시고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서 모시고,
그 앞에 설 때마다 경건한 마음, 정성스런 마음으로 추모를 할 때에 우리는 그날 하루를 그럭저럭 지낼 수가 없고, 알뜰하게 도를 닦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헌 종교상의 의식을 가지고 그 의식의 참뜻을 이해를 못하고, ‘미신이다, 우상숭배다’ 비방을 하는 것은 너무 너무 어리석고 경솔한 태도라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세계적인 철학자요, 과학자요, 종교인이지만 그분은 일찍이 불교를 평하기를 우주 종교(cosmic religion)라 했습니다.

지구상에 어떠헌 일부 민족만이 신앙할 수 있는 또는 지구상에 인류만이 믿을 수 있는 그러헌 범위가 좁은 종교가 아니라,
한량없는—우리가 살고 있는 이 태양계와 같은 세계가 백억 세계도 넘고 무량·무수의 세계가 있지만,
그 우주에 가득 차 있는 모든 종류의 영혼들이 모두가 함께 믿을 수 있는 그러헌 한량없이 깊고, 한량없이 넓고, 한량없이 큰 그러헌 종교다. 이러헌 뜻에서 불교를 가리켜서 우주 종교라 했습니다.

조그마한 볍새는 이 나무가지에서 저 나무가지로 파르르 날아가고, 산중에 조그만한 개천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파르르 날아갔다, 저쪽에서 이쪽 언덕으로 파르르 날아오고,
그래서 그 산에 사는 볍새들의 생각에는 ‘물이라 하는 것은 조그마한 계곡이다, 이 계곡보다 더 큰 물은 없다’ 이리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황새는 큰 강물에서 이쪽 강 언덕에서 저쪽 강으로 날아갔다가, 저쪽 강에서 이쪽 강으로 날아왔다 해서 큰 강물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황새가 볍새 보고 ‘너 이까짓 산중에 조그마한 계곡이 물이냐, 진짜 압록강과 같은 강도 있고 중국에 가면 양자강과 같은 황하와 같은 그런 큰 강이 있다’하면, 볍새는 믿지를 안헙니다.
그런 큰 강물은 한번도 본 일이 없거든.

참으로 제비나 오리 같은 그러헌 새는 수십만 리 바다를 건너가고 바다를 건너왔습니다.
그래서 이까짓 양자강이나 압록강 이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아니하고 진짜 태평양과 같은 그런 큰 바다가 있다고 말을 허면 볍새는 미친 소리헌다고 펄쩍 뛰고 곧이를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황새도 그런 바다는 가보지 아니했기 때문에 황새마저도 그걸 믿지를 않습니다.

불교는 바다와 같은 종교요, 허공과 같은 종교라서 어찌 황새나 볍새 따위에게 설명을 해봤자 미친 소리 헌다고 믿지를 않을 것은 뻔헌 것입니다.

불교는 불교를 30년 40년 내지 평생을 믿고 불공을 드리고 염불을 하고 경을 읽어도 불교의 참뜻은 짐작조차도 할 수가 없어.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허지 않고서는 참으로 불교의 위대하고 심오한 것을 짐작조차도 할 수가 없거든,
하물며 믿지도 아니하고 듣지도 아니한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 어찌 감히 불교의 위대함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처음~21분35초)

 

 

 



(2)------------------

아지 못하면 입을 다물고 자기의 종교만이라도 착실히 믿으면 죄는 안 지을텐데, 믿지도 아니하고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종교를 함부로 헐뜯고 비방하고 파괴하고 핍박헌다고 허는 것은 진리의 세계에서는 말헐 것도 없고 평범한 인간의 상식으로서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오늘 사십구재(四十九齋)를 맞이한 한병호 영가(靈駕)께서는 일생 동안을 참다웁게 사시고, 나라를 위해서 성실하게 일하고 민족을 위해서 모든 사람을 위해서 착한 마음으로 남을 많이 도우면서 한평생을 76년간 성실허게 사신 분입니다. 그분은 복과 덕을 갖추어서 육남삼녀 9남매(男妹)라고 하는 많은 자녀를 두셨습니다.
전생으로부터 복을 닦고 금생에도 착한 마음으로 참되게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좋은 아들과 좋은 딸과 좋은 손자들을 많이 두셨습니다. 그 아들들이 모두 착하고 부지런해서 사회에 모다 중견 인물이 되었습니다.

오늘 그 49재를 맞이해서 효심을 가진 아들과 며느님들이 이렇게 용화사 법보전에서 명복을 빌 뜻으로 천도재(薦度齋)를 봉행하게 되었습니다.
한병호 영가는 대단히 흐뭇하게 생각하고 평소에 당신이 불교를 철저히 믿은 불자라,
그 아들과 며느리들이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부처님 앞에서 사십구재 법요식을 거행해 받들어 모신데에 대해서 너무너무 흐뭇하고 기쁜 마음으로 환생을 허시리라 생각헙니다.

산승(山僧)이 그 유족들에게 부탁하고자 하는 것은 자녀를 많이 두다 보시니까 일부는 그 아버님의 뜻을 받들어서 불교를 성실히 믿는 분도 있고 민주주의 시대가 되어서 종교는 자유라, 각자 자기의 자유의사에 따라서 다른 종교를 믿는 자손도 있는 거 같습니다.
다른 종교를 믿는 것을 나쁘다고는 생각허지 않지마는 기왕이면 그 아버님께서 믿으시던 그 종교를 그 아들과 며느님들도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불교를 성실히 믿어 주셨드라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을 그렇게 안타깝게 생각을 합니다.

이 세계가 역사가 있어온 이래로 민족 간에 부족 간에 끊임없는 싸움이 있어 왔습니다.
처음에는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싸웠고, 근자에 와서는 사상—자유 민주주의다, 공산 사회주의다 해 가지고 사상적으로 싸움을 허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종교의 전쟁이 일어나 가지고 많은 사람이 죽게 되고 많은 시설들이 파괴되리라 합니다. 이미 종교 분쟁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고 우리나라에도 그러헌 징조가 보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물질을 추구하고 욕심을 내는 싸움을 허지 말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모든 종교를 창도(唱導)한 성현들이요, 종교 지도자들이요, 모든 종교의 바로 교주(敎主)이신 것입니다.
그러헌 성인의 가르침을 받들어서 마음과 행을 닦고 실천을 해서 인류의 행복을 도모하는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세계 모든 종교인들인 것입니다.

종교인의 본분은 스스로 자기의 종교를 창도한 교주의 말씀을 의지해서 법을 의지해서 스스로 교주 마음과 자기의 마음이 하나가 되고, 나아가서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와 같이 되고 교주와 같이 되도록 허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헌 목적과 사명을 가진 종교인이 스스로 자기 종교인끼리 싸우고 있고, 나아가서는 다른 종교인을 핍박하고 싸움을 일으키고 있다고 허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어느 종교를 믿든 참되게 믿고 참되게 실천해서 스스로 자기 종교끼리 화합을 해야 하고,
다른 종교와 공통점을 찾어서 서로 헐고 뜯고 비방하는 일이 없어야 할 뿐만 아니라 종교와 종교 사이에 손을 잡고 서로 도우면서 인류 평화에 이바지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오늘 사십구재를 맞이한 한병호 영가의 유족들께서도 기왕이면 아버님께서 믿으시던 그 종교로 통일을 해서 한 종교를 믿으신 것이 바람직하고, 부득이해서 그러지 못한다면 각자 자기의 종교를 참되게 믿고 ,
다른 종교를 믿는 형제자매를 비방하고 헐뜯고 욕허지 말고 자기의 종교를 소중히 여기듯이 다른 이가 믿는 종교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그 집안이 앞으로 정말 복 받은 집안이 될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한 집안에서 종교가 각각 달라서 상대방의 종교를 헐고 뜯고 화목을 허지 못한다면 그 집안은 머지않은 장래에 파멸을 초래할 것입니다.
한 집안이 파멸이 되고 한 나라가 파멸이 되어서 어찌 세계의 평화를 바랠 수가 있겠습니까.
세계 평화를 바래기 전에 한 나라가 화합을 해야 하고, 한 나라의 평화를 바랜다면은 한 가정이 평화를 가져와야 할 것입니다.

불교는 삼천 년의 역사를 가졌고 우리나라에 들어온지 1600년의 역사를 가져왔습니다.
신라·고려 때 불교가 국교로써 숭앙받을 때 그 나라들은 번창을 했고, 이웃나라에서 감히 침범을 해오지 못했습니다. 침범을 해 왔어도 그것을 불교를 믿는 신앙심으로 다 물리쳤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빼앗기지 아니했습니다.

이조(李朝)에 와서 불교를 배반하고 불교를 핍박하고 자기네끼리는 당파싸움을 하고 그러든 끝에 임진왜란의 치욕을 당해서,
그때도 서산대사와 사명대사, 뇌묵대사와 같은 그러헌 대도인(大道人)들이 나서서 승병을 일으키지 안 했다면 우리는 그때 일본 나라에 예속되었을런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다행히 그러헌 위대한 도인들이 나와서 왜놈을 쫓아내고 사명대사는 일본에 들어가서 일본을 항복을 받고 끌려갔던 많은 포로들을 다 우리나라로 데려왔습니다.
지금도 일본에 가면 사명대사를 모신 절들이 많고 사명대사를 부처님과 똑같이 숭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조에 와서 불교를 핍박하고 끝끝내 나라를 왜놈에게 뺏기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백성이 정신차리지 못하고 불교를 믿지 아니하고 비방하며 진리를 배반하고 ‘참나’를 닦는 수행을 게을리 해 가지고,
나라 사람들이 화목을 못하고 나라안에 종교로 인해서 싸움이 벌어진다면 우리나라는 파멸하게 될 것입니다. 세계도 파멸이 되고 말 것입니다.
지금 무기가 발달되어 가지고 광선을 한번 번쩍 허기만 허면 몇천만 명도 삽시간에 몸뚱이 그대로 가지고 있는 채 재가 되어버리거든.

그러헌 싸움이 어디에서 일어나냐 하면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남을 미워하고 헐고 뜯고 마음과 마음이 분열될 때에 싸움은 일어나게 되고 싸움이 일어나면 너도나도 파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분들은 이와 같은 산승의 말씀을 마음속 깊이 새겨들으시고,
불교를 믿는 분은 철저하게 참되게 닦아서 기어코 진리를 깨달라서 실천을 해서 나와 남이 없는 경지에 들어가고, 나아가서 모든 사람이 진리를 중심으로 해서 하나가 되도록 하실 것이며,

불교를 믿지 않고 다른 종교를 믿는 분—될 수 있으면 우리 조상 때부터서 믿어온 우리 동양의 종교, 우리의 풍속과 우리의 몸과 우리의 핏속에 녹아있는 불교를 믿어 주시기를 부탁을 하고,
정 그렇지 못한다 하드라도 최소한 불교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 불교를 비방하고 불교를 믿는 사람을 핍박하는 일이 없이, 자기의 종교를 성실히 믿으며 자기 종교를 사랑하듯 남의 종교도 애껴 주시고 큰 죄를 짓지 않게 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이렇게 허신 것이 돌아가신 한병호 영가의 마음을 편안케 해드리고 유족으로서의 효도를 다하는 가장 좋은 길이라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안비천말적유사(雁飛天末迹留沙)하고  인거황천명재가(人去黃名在家)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안비천말적유사(雁飛天末迹留沙)하고, 기러기는 저 하늘갓으로 날아가 버렸는데 기러기가 놀다 간 모래밭에는 기러기 발자죽이 남아 있고,

인거황천명재가(人去黃名在家)라. 사람은 벌써 저 황천(黃)으로 갔는데, 황천으로 가버린 사람의 이름만 집에 남아 있드라.


오늘 돌아가신 한병호 영가만 이렇게 가신 것이 아니라 과거에 우리의 모든 조상들도 이렇게 갔으며,
현재 지금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들도 40억 인구 모두들도 한평생 꿈결같이 살다가 결국은 이렇게 가고야만 말 것입니다.

죄 지은 사람은 지옥에 갈 것이고 착한 일 많이 한 사람은 천당에 갈 것이고, 천당에 갔다고 해서 영원히 천당에 사는 게 아니라 자기가 지은 복만큼 복을 받으면 다시 또 떨어지게 되고,
지옥에 가서도 수백만 겁 동안을 갖은 고초를 받다가 자기가 지은 만큼 다 받으면 다시 축생으로도 태어나고 다시 또 사람으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 기약이 한량이 없지만.

그래서 육도(六途)를 윤회(輪廻)를 해 왔고 앞으로도 육도를 윤회해 갈 것입니다.

그 육도윤회를 무엇 때문에 허느냐?
자기가 지은 업(業) 때문에 윤회를 허기 때문에 그 업을—과거에 지은 업을 소멸을 하고, 앞으로는 그런 업을 짓지 아니헌다면 육도윤회는 허지 않게 된다.

어떻게 허면 업을 짓지 않느냐?
‘참나’를 깨닫는 공부를 열심히 하면 자연히 업을 짓지 않게 될 것이다.

‘참나’를 깨닫는 법이 무엇이냐 하면,
참선법(參禪法)—불교에 여러가지 수행법이 있지만 그 여러가지 수행법 가운데 참선법이라 하는 최고의 수행 방법이 있는데,
그 수행 방법인 참선을 허면 과거의 업을 소멸하고 새로 업을 짓지 않게 되기 때문에 결국은 ‘참나’를 깨달라서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가 있다.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헐 수가 있다.

한병호 영가는 평생에 불법을 독실히 믿고 또 자손들의 정성으로 우리 용화사 법보전에 만년위패(萬年位牌), 이 법보단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법문을 들을 수 있듯이 돌아가신 영가도 소소영령(昭昭靈靈)해서 법문을 더 잘 들으실 수가 있습니다.

오늘 조실스님 법문을 듣고 또 산승에 이와 같이 간곡히 말씀드린 말씀을 잘 들으셨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법문을 설헐 때마다 영가도 이 법문을 들으시고, 확철대오해서 진리와 하나가 되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사십구재를 맞이해서 유족을 위해서 영가의 원하는 바를 산승이 대신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영가의 말씀—영가가 여러 유족들에게 산승이 지금 허고자 헌 말을 그렇게 해 주고 싶을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깊이 명심을 하시고 영가의 못다 푼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서 산승의 말씀을 실천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을 드리고 사십구재 법어를 마치고자 합니다.(처음~42분57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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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千江同一月  萬戶盡逢春’ ; [오등회원(五燈會元)] 제13권 '용광인(龍光諲)선사' 참고.
*(게송) ‘終日走紅塵  失却自家 ; [인천안목(人天眼目)] 제1권 '빈주문답(賓主問答)'에서 분양선소(汾陽善昭) 말씀 참고.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유사종교(類似宗敎) ; 종교와 비슷하나 사회 일반의 상식으로는 종교로서 인정하기 어려운 것.
*관문(關門) ; 다른 영역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꼭 거쳐야 할 단계. 또는 중요한 고비.
*자력(自力) ; ‘내가 본래 부처다’는 믿음을 갖고, 스스로의 힘으로 수행(修行)하여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일.
*타력(他力) ; 자신의 힘이 아닌 불·보살(佛菩薩)의 본원력(本願力)과 가피력(加被力)에 의지하여 극락왕생을 원하거나 깨달음을 구함.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살가죽을 벗겨 불 속에 집어넣거나 쇠매〔鐵鷹〕가 눈을 파먹는 따위의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함.
*십상팔구(十常八九) ; 열에 여덟이나 아홉 정도로 거의 예외가 없음.
*사탄(Satan) ; <기독교>  적대자라는 뜻으로, 하나님과 대립하여 존재하는 악(惡)을 인격화하여 이르는 말.
*등신불(等身佛) ; 사람의 키만 한 정도로 만든 불상.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볍새 ; ‘뱁새’의 옛말.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2)

*사십구재(49재, 四十九齋) ; 사십구일재(49일재, 四十九日齋) 또는 칠칠재(7 · 7재, 七七齋).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면서 또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어(천수경, 무상계, 반야심경, 장엄염불, 금강경 등), 한 생각 돌려 무상을 깨달아 윤회를 벗어나 해탈의 길로 들어서도록 하기 위해 죽은 날로부터 7일마다 7회에 걸쳐 행하는 영가를 위해 베푸는 법회의식.
불교의 내세관(來世觀)에서는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이 죽어서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의 49일 동안을 중음(中陰)이라 하는데, 이 기간 동안에 과보를 받을 다음 생이 결정되므로, 이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어 영가가 죄업을 참회하고 지혜의 눈을 밝혀 해탈의 길을 가도록 이 재(齋)을 지냄.
특히,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는 날이 죽은 지 49일째 되는 날이라고 하여 7회째의 재(齋)를 중요시함.

불경(佛經)에서 설한 바에 의하면 사람의 존재 상태를 4가지로 구분하는데, 그것은 ①생유(生有: 태어나는 순간) ②본유(本有: 生에서 死까지 생애) ③사유(死有: 죽는 그 순간) ④중유(中有, 中陰: 이생에 죽어서 다음 生까지를 말함)이다.
이들 중 네 번째의 중유(中有, 中陰)의 상태의 정상적인 기간이 49일이다. 즉 사람이 죽은 뒤에는 일반적인 경우 49일이면 중유(中有)가 끝나고 다음 생(生)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다음 생이 결정되기 전인 48일째에 정성을 다하여 영혼의 명복을 비는 것이 49일재이다.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재(薦度齋) ;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에 따라 다음 생을 받게 되는데, 유족들이 불보살(佛菩薩)을 모신 법당(法堂)에서 돌아가신 영가를 청해 모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하고 또한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門)’을 들려줌으로써,
영가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혜의 눈을 밝혀 삶의 무상을 깨달아 이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보다 좋은 곳으로-더 나아가 육도윤회를 벗어나 극락왕생·해탈의 바른 길로-잘 건너가도록 하는 불교의식.
*창도(唱導) ; 교법(敎法)을 먼저 베풀어 사람들을 가르치고 인도함.
*교주(敎主) ; 어떤 종교나 종파를 처음 세운 사람.
*이조(李朝) ; 근세조선(近世朝鮮)을, 임금의 성을 좇아 ‘이씨 조선(李氏朝鮮)’이라는 뜻으로 이르는 말.
*(게송) ‘雁飛天末迹留沙  人去黃名在家’ ;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36 게송 참고.

*황천(黃泉) ; 저승(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칠석)2014. 7. 3. 18:59

§(272) (게송)적하위망적하진~ / 비로자나 법신불, 참선법(參禪法) / 인간의 고통의 원인이 자기한테 있다 / 참회(理懺,事懺) 죄업소멸을 통해서 ‘참나’로 돌아와야.

비로자나 법신불 한 분만 모셔도 일체 선신(善神)과 삼세 제불보살(諸佛菩薩) 전부가 이 부처님 품안에 다 갖추어 계신 것입니다.


불법(佛法)도 팔만사천 그 무수 방편설, 소승·중승·대승 그런 모든 법문을 갖다가 한데 모여서 고아 가지고, 한 법으로 수습헌 것이 바로 이 최상승법이요 이 참선법(參禪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밖으로 구하지 말고 안으로 구해라. 안에서 진리를 찾아야 우주에 가득 차 있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고 하는 것이 이 불교의 근본인 것입니다.


사참(事懺)을 통해서 궁극에는 이참(理懺)의 이치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참회의 뜻을 잘 인식을 하고 항상 이참과 사참을 통해서 우리의 무량겁(無量劫) 죄와, 이 찰나찰나 생각이 일어나고, 숨을 쉬고 이렇게 생활하는 가운데에 지은 모든 죄업을 참회를 통해서 소멸을 하고, 참회 죄업소멸을 통해서 ‘참나’로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72) - 1985년(을축년) 칠석법회(65분)에서. (용272)

 

(1) 약 21분.

 

(2) 약 20분.

 


(1)------------------

적하위망적하진(摘何爲妄摘何眞)고  진망유래총부진(眞妄由來總不眞)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하비엽하추용결(霞飛葉下秋容潔)하면  의구청산대면진(依舊青山對面眞)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적하위망적하진(摘何爲妄摘何眞)고. 무엇을 가리켜서 망령된 거짓 것이다 하고, 또 무엇을 가리켜서 참이라 할 것이냐.

진망유래총부진(眞妄由來總不眞)이다. 진(眞)이니 망(妄)이니 하는 것이 본래 다 그것이 참다운 것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참이오 저것은 거짓이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며, 이러한 시비심(是非心)이 일어나는진(眞)이라고 한 놈도 참이 아니오, 망(妄)이라 한 놈도 참이 아니여. 진이니 망이니 그것이 본래 '참'이 아니니라.


하비엽하추용결(霞飛葉下秋容潔)하면, 안개가 날으고 잎이 떨어지면 가을빛이 맑아진다. 안개가 날으고 서리가 쳐서 잎이 다 져버리면, 그때 추색(秋色)이 강산에 깨끗해지면,

의구청산대면진(依舊青山對面眞)이여. 옛을 의지해서 떠억 본 푸른 청산(青山)의 면목(面目)만이 드러나더라.
울긋불긋 잎이 피고 꽃이 피고 할 때에는 그런 잎과 꽃에 가리어서 그 산의 참모습이 드러나지 않지만, 서리 쳐서 잎이 다 떨어져 버리고 꽃도 다 져버리고 그러면, 그 산 본래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다.

오늘은 을축년 7월 7일, 칠석(七夕)날입니다.
칠석날이라 하면 우리나라 저 옛날 신라 때부터 또 그 이전에부터서 우리의 토속(土俗) 신앙으로, 살아계신 부모님이나 온 자손에 이르기까지 몸 건강하고 수명장수(壽命長壽)를 빌고 그러기 위해서 절에 가고 또 칠성(七星)님께 모다 공(功)을 드리고 이러한 토속 신앙으로써, 이 칠석날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마음속에 잊지 않고, 절에 잘 다니지 아니한 사람도 칠석날은 그러한 소원을 빌기 위해서 불공(佛供)을 드리러 가고 치성(致誠)을 드리러 가고, 그래 내려 옵니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는 칠석날에는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서로 만나지를 못하고 1년 내 떨어져 있다가 이 칠석날에는 까마귀와 까치가 서로 몸과 몸을 이어서 놔준 그 다리, 그것을 오작교라 그러는데 그 오작교(烏鵲橋)를 통해서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 이러헌 전설도 있고 그렀습니다.

'헌데 무슨 업으로써 견우와 직녀는 서로 사랑하면서도 만나지를 못하고 그렇게 1년 내 떨어져 있다가 칠월 칠석날 만난다' 그 전설이지만...

우리 용화사는 부처님 한 분, 청정법신(清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비로자나 법신불 한 분만을 이 법당에 모시고, 여러 부처님과 보살상도 모시지도 아니하고, 더군다나 신장(神將)님이라던지 칠성(七星)님이나 산신(山神) 모다 그러한 탱화(幀畵)도 모시지 아니하고, 다못 이 법신불(法身佛) 부처님 한분만을 모셨다 그말이야.

여러분 가운데는 '오늘 칠석날이니까, 용화사는 칠성당도 없고 그러니 빨리 법회가 끝나면은 칠성님 모신 절로 가서 공을 드려야겠다' 혹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이 계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어째서 용화사는다른 절에는 오백 나한(羅漢)도 있고 천불님도 있고 칠성·산신·독성님 그런 여러 성현들도 다 모시고 하는데왜 부처님 한 분만 딱 모셔 가지고, 점쟁이는 ‘칠성단에 공을 드려라’ 그러고 또 ‘산신 기도를 해라’하는데, 용화사는 칠성당도 없고 산신님도 없고 참 거 안 갈 수도 없고 또 딴 데로 갈 수도 없고, 그래서 속으로 항시 불평한 마음을 가지고 계시다가 기회만 있으면 산신 모신 데로 갈 생각을 하고,
그런데 그건 전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이 이 우주 법계에서 최고의 높으신 부처님, 그리고 가장 근본 부처님이 누구시냐 하면은 바로 이 법신불, 비로자나 법신불이시다 그말이여.

그 비로자나 법신불로부터서 모든 보신(報身)도 나오고, 천백억 화신(化身)도 나오는 것이고,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도 이 법신불에서 다 나오신 거여.
칠성님이나 산신•독성 그 밖에 이 우주에 가득찬 모든 하늘나라의 천신이나 땅에 모든 산신, 지기(地祇)에 이르기까지도 전부 이 법신불의 다 부하이시고 권속이시다 그말이여.

그래서 법신불 한 분만 모셔도 일체 선신(善神)과 삼세 제불보살(諸佛菩薩)이 다 이 한 부처님 슬하에, 부처님 품안에 전부가 다 갖추어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한 부처님만 모시되 일체 제불보살과 선신이 다 계시기 때문에 구태여 여러 분을 눈에 보이게 모시지를 아니하고 이렇게 한 분만을 딱 모시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뜻을 잘 파악을 해서 실천허는 것이, 바로 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팔만사천 법을 다 설하셨지만 교외별전(敎外別傳), 이 팔만대장경을 한데 뭉쳐서 그놈을, 무슨 100가지 약초를 모아 가지고 그놈을 한 솥에다 넣어서 몇날 며칠을 고아서, 찌끄레기는 다 건져 내버리고 그 물만을 계속해서 고우면, 마지막에는 조그만한 한 그릇의 진액(津液)으로 모여진 것처럼, 조그만 환약 하나로 뭉쳐진 것처럼,
이 불법(佛法)도 팔만사천 그 무수 방편설, 소승·중승·대승 그런 모든 법문을 갖다가 한데 모여서 고아 가지고, 한 법으로 수습한 것이 바로 이 최상승법이요 이 참선법(參禪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참선법은 소의경전(所依經典)이 없어. 그 주(主)로 삼는 경전이 없지마는, 한 경전도 이 참선법에 있어서는 세울 것이 없지만, 한 글자도 주장한 바가 없는 이 가운데에 팔만사천 묘법이 그 속에 다 갖추어져 있고 팔만대장경이 그 속에 다 들어있는 것이여.

그래서 산신님도 칠성님도 그 밖에 모든 불보살의 상호(相好)도 모시지 아니했지만, 이 비로자나 법신불 한 분만을 모시되 일체 성현이 여기에 다 모셔져 있는 거와 마찬가지고, 어떠한 경전도 여기서 내세우지 않지마는 일체 경(經)이 한마디 화두(話頭) 하나 속에 다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오늘 칠석날을 맞이해서 견우와 직녀, 항시 만나고 싶고 그리웁고 사랑하면서도 만나지 못하다가 오작교로 인해서 칠월 칠석날 견우와 직녀가 만나듯이,
우리 정법(正法)을 믿는 법보제자 여러분은 이 칠석날 칠석 법요식을 통해서 정법을 바로 믿고 바로 실천함으로서, 그 정법의 다리를 통해서 부모 자식간에 또는 부부간에 형제간에 이웃간에 또는 도반끼리, 크고 작은 모든 원한이나 섭섭한 그런 거리가 있는 분은 오늘을 기해서 깨끗이 참회를 해 버리고, 그리고서 정법을 다리로 해서 화합을 하고 하나가 되어서 ‘참나’를 깨닫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내가 남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상대방도 또 나를 용서하지 않기 때문에 그 조그만한 원한이 점점 깊어져 가는 것이고, 조그마한 서운함이 나중에는 큰 원한 관계로까지 확대가 되는 것인 만큼, 어쨌든지 내가 먼저 마음에 꼬부라진 것을 펴 버리고 내 마음 속에 언짢은 생각을 털어버리고서 상대방을 응어리 없이 활짝 개인 마음으로 상대를 하면 상대방도 따라서 가슴의 문을 열게 될것입니다.

인생으로 태어나서 어느 사람을 막론하고 여덟가지 고통(八苦) 중에 여덟가지 고통을 다 받고 있는 사람도 있고, 그 중에 반만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그 중에 한 두가지 고통만 있는 사람, 그 차등은 있을지언정 완전히 그 고통을 다 벗어버린 사람은 만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여덟가지 고통(八苦)이라 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는 이별하게 되고, 미운 사람은 만나게 되고, 무엇을 구하고자 하되 내 마음대로 얻어지지 아니하고,
또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오음(五陰)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것이 고르지를 못해서, 희로애락(喜怒哀樂)과 오장육부와 사지백체(肢百體)의 기관이 고르지를 못해가지고 항상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음성고(五陰盛苦)라 하는 것이고.


그리고 생로병사-나는 것도 고통이요, 늙는 것도 고통이요, 병드는 것도 고통이요, 죽는 것도 고통이요, 이래서 이것이 중생의 여덟가지 고통인데, 이 고통은 ‘남의 염병(染病)이 내 감기만 못하다’고, 다른 사람은 염병이란 무서운 병을 걸리면 죽게 되는데 내가 감기 좀 들은거야 그까짓 병이라 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남은 염병을 걸려서 죽게 되드라도 나는 조그만한 감기 좀 걸려도 내 감기가 더 고약한 것이다’ 그말이여.

우리가 이 사바세계에 태어난 사람은 그러한 여덟가지 고통 속에서 어떠헌 형태로든지 고통을 다 받고 있습니다. 다 자기만이 그러한 고통을 받고 있는 것 같지만, 다른 사람도 다 그 고통을 다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조그만한 고통은 큰 고통으로 생각하고, 남의 큰 고통은 별 것이 아닌 것으로 생각을 하지만 고통은 어떠헌 작은 고통이나 큰 고통이나 다 괴로운 것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동병상련(同病相憐)이여, 같이 앓고 있는 처지에는 서로 돌봐줄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서로 돌봐줌으로써 우리는 그 고통을 이겨 나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서로 돌봐줄랴면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볼 줄 아는 그러한 마음의 너그러움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고 남을 갖다가 등한히 생각하고 심지어는 남을 짓밟고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우리가 살아가게 되면, 우리 사는 집이 정말 지옥(地獄)으로 변헐 것이며, 우리가 사는 마을이 지옥으로 변할 것이며, 우리가 사는 사회와 국가가 지옥·수라장(修羅場)이 되고 말것입니다.

세계가 온통 싸움·전쟁속에 있고 전쟁이 일어날려고 하는 그런 직전에 모다 놓여져 있는데, 이러한 싸움이 ‘과연 왜 그러한 싸움이 일어나냐?’하면 서로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고 남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남의 괴로움이 존재하는 한은 나도 편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처음~21분6초)

 

 

 



(2)------------------

그래서 이 싸움을 없앨랴면 다시 말해서 이 세계의 평화를 가져 올라면, 먼저 우리나라가 단합을 해야 하고, 나라가 잘 살려면 우리가 사는 고을이 잘 살게 되아야 하고, 우리 고을이 잘 살라면 우리 집안이 잘 살아야 하고, 우리 집안이 편안헐랴면 내 마음이 먼저 편안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법(佛法)은 ‘밖으로 구하지 말고 안으로 구해라. 안에서 진리를 찾아야 우주에 가득 차 있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고 하는 것이 이 불교의 근본인 것입니다.

‘이 인생에 고통이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하면, 전부 중생들은 그 원인이 자기 이외에 다른 사람한테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부모를 잘못 만나서 내가 이렇게 고통을 받는다 생각하고, 형을 잘못 만나서 고통을 받는다 생각하고, 또는 남편을 잘못 만나서 내가 이렇게 고통을 받는다 생각하고, 아내를 잘못 얻어서 내가 이렇게 고통을 받는다 생각하고, 사장을 잘못 만나서 내가 이렇게 못 산다 생각하고, 전부 자기 불행의 원인을 자기 이외의 다른사람에게서 찾기 때문에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을 하셨냐 하면 ‘전부 그 원인이 자기한테 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모든 불행과 모든 고통의 원인이 자기한테 있다'고 생각하고 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맨 먼저 자기의 고통이 소멸이 되고 행복을 얻게 될 것이며, 각자 그렇게 나아갈 때 온 집안이 평화를 찾게 되고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평화롭게 되고 이 세계가 바로 천국이 되고 극락이 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먼저 모든 고통의 원인을 자기에게 찾으면 어떻게 해야 할것인가?’ 참회(懺悔)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회를 해야 자기의 죄(罪)를 소멸(消滅)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죄를 소멸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고통은 없어지지 아니해. 고통이 없어지지 않고서는 우리는 행복과 평화를 찾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참회문(懺悔門)을 열어서 참회를 함으로써 자기의 마음속에 고통, 육체상의 고통, 가정의 불행, 사회의 고통을 해결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참회에는 이참(理懺)과 사참(事懺) 2가지 형식이 있는데, 이치(理致)로 참회하는 것과 또 실질적인 사(事)로 참회는 그런 2가지가 있는데. 사참(事懺), 일반적으로 우리가 ‘참회한다’하면 다 이 사참을 일컫는 것입니다.
‘사참은 어떻게 하느냐?’하면 부처님께 삼보(三寶)께 몸으로 백팔참회(百八懺悔) 또는 삼천배(三千拜), 이렇게 계속해서 부처님 앞에 예배(禮拜)를 하면서 또 부처님의 경전이나, 주문(呪文)이나, 부처님의 법과 덕을 찬양하는 그러한 예경문(禮敬文)을 외우면서 계속 절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으로 절을 하고, 입으로 삼보를 찬탄하고 또 경을 외우고, 마음으로는 그 부처님의 거룩한 상(像)을 염(念)하면서 그래서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으로 계속 참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내가 지은 바 죄업, 모든 악업은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이여. 몸과 입과 마음으로부터 다 생긴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면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瞋癡),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
전부 탐진치(貪瞋癡)-욕심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이 그것이 근본이 되어 가지고, 이렇게 몸으로 짓고 입으로 짓고 마음으로 짓고 해서 이런 죄를 지었으니 이걸 참회합니다.
이렇게 해서 무수배례(無數拜禮)를 하면서 이렇게 독송을 하면서 이렇게 참회를 하고.

이참(理懺)은 이치(理致)로 참회하는 것이여.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여. 죄라고 하는 것은, '죄'라고 하는 자성(自性)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다 그말이여.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이여. 마음이 공(空)해 버리면, 마음이 비어 버리면 죄도 또한 없어진다.

이 도리를 철저히 믿고 참선을 하면 거기에서 죄가 소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참'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참(理懺)은, 참선을 해서 그 힘을 얻은 사람은 찰나간(刹那間)에 무량겁 죄도 눈 한번 감았다 뜬 사이에 참회하는 도리가 있습니다.
아직 참선을 통해서 힘을 얻지 못한 사람은 그렇게 헐랴고 해도 가슴속에 띠끄름한 생각이 깨끗이 떨어지지를 않고 계속 가슴속에 두려움과 원망하는 마음과 괴로운 생각이 떨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근기, 하근기는 부처님 앞에 향을 올리고 그리고서 매일같이 백팔참회를 하고 또 천배·천배·천배해서 삼천배, 또 삼천배를 수십번 해서 삼만배·삼십만배 이렇게 하는 가운데에,

그러면서 경을 외우고 참회진언을 외우고 그리고 또 자기의 죄를 갖다가 소멸하기 위해서 물질적으로 남에게 베풀고 또 보시하고 시주를 하고 이렇게 해가지고 자기의 지은 죄업을 갖다가 소멸하는 것입니다. 이 하근기에게는 이러한 사참(事懺)이 매우 효과적인 것입니다.

그렇게 사참을 많이 하면 결국에 가서는 자기의 마음속에 업(業)이 소멸이 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고 그러고 나면은 미운 생각도 없어지고, 두려운 생각도 없어지고, 그 먹구름이 끼고 폭풍이 불고 하던 날씨가 쏴악 구름 흩어지고 샛파란 하늘이 보이면서 밝은 태양이 빛나듯이, 마음속이 그렇게 후련해지고 미운 생각도 없어지고 원망하는 생각이 없고, 모든 그렇게 그 전에 미웁고 원망스럽던 사람이 전혀 그러헌 감정은 없어져 버리면서 고마운 생각만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고맙고, 모든 일들이 다 고맙고, 이 세상에 태어난 자체가 고맙고,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참회, 이것이 바로 사참(事懺)인 것입니다.

사참(事懺)을 통해서 궁극에는 이참(理懺)의 이치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찰에서 대중 스님네들이 모여서 수도를 해나간 데에도 이 참회법(懺悔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중죄(重罪), 큰 죄를 지었을 때에는 네 사람 이상의 대중 앞에서 자기의 잘못을 고백을 하고 그리고서 참회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중법참(衆法懺)이라 하는 거고. 그 다음에 그렇게 무겁지 않지마는 비교적 중한 죄를 지을 때에는 자기가 존경하는 스님 한 분 앞에 가서 자기의 잘못을 다 털어놓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대수참(對首懺)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아주 미미한 조끄마한 그런 죄를 지은 것은 자기혼자 법당에 들어와서 아무도 없을 때에 부처님 앞에 와서 다 마음으로 고백을 하고 절을 하면서 스스로 참회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심념참(心念懺)이라 해. ‘마음 심(心)자’ ‘생각 념(念)자’ 자기 마음속으로 참회를 한다 해서 이것을 심념참이라 하는데.

이 중법참이나, 대수참큰스님 앞에 가서 참회하는 것, 그리고 자기혼자 마음으로 참회하는거 이거 심념참인데 이러한 참회를 통해서, 항시 자기 마음속에 크고 작은 잘못을 반성을 하고, 그것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소멸을 함으로써 새로운 마음으로 정진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부처님께서는 이런 참회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용화사에서는 아침마다 예불할 때에 이 십악참회(十惡懺悔)를 합니다.
향불로 팔을 따끔하게 지지면서 10가지의 죄를 참회를 하는 것인데, 도를 닦은 수행인이 무슨 살생을 하며 도둑질을 하며 음행을 하며 거짓말 할 까닭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죄'라고 하는 것이 꼭 몸으로실질적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남의 물건을 도둑질을 하거나, 또는 음행을 한 것만이 죄가 아니라, 마음으로 '한 생각' 번쩍 일어났다가 사라져도남을 죽일 마음을 낸다던지, 남을 미워하는 마음을 낸다던지, 남을 해롭게 할 마음을 낸다던지, 남의 물건을 욕심내는 마음을 낸다던지, 어떤 이성간에 색심을 일으킨다던지, 이리해도 이 대승계(大乘戒)에 있어서는 그것도 계를 파(破)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눈을 뜨고 살면 숨 한번 마시고, 물 한모금 먹고, 말 한마디 허고, 발 한발 움직이는 가운데에도 전자현미경과 같은 그런 업경대(業鏡臺)를 통해서 비추어져 볼 때에는 죄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석(朝夕)으로 예불하면서 참회하고, 참회하면서 새롭게 또 발원(發願)을 하면서 이렇게 수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스님네는 말할 것도 없고, 마을에 계시는 신남신녀 여러분께서도 비록 몸은 속세에 계신다 하더라도 마음은 이미 발심출가(發心出家)한 부처님의 제자들이기 때문에, 특히 세속에서 생활을 해 나가고 사업을 해 나갈라면 크고 작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본의거나 타의거나 간에 이 죄업을 짓지 않고서는 단 하루도 한 시간도 살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참회의 뜻을 잘 인식을 하고 그래 가지고 항상 이참과 사참을 통해서 우리의 무량겁(無量劫) 죄는 말할 것도 없고, 이 찰나찰나 생각이 일어나고, 찰나찰나 숨을 쉬고 이렇게 생활을 해나간 가운데에 지은 모든 죄업을 참회를 통해서 소멸을 하고, 참회 죄업소멸을 통해서 ‘참나’로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칠석날 여러분께서는 여러 가지 정성스러운 공양(供養)을 부처님 앞에 가지고 오셔서 모다 바치셨습니다.

여러분 마음 가운데에는 오늘 칠석날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동참(同參)을 하고 그래 가지고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고, 그래서 집안 식구의 아픈 사람 병낫기를 바래시고, 또 아들딸 모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를 발원하시고, 사업이 모다 재수대통 하고, 관재구설이 없어서, 다 뜻대로 성취하시기를 바래고, 그런 크고 작은 간절한 소망을 가지시고 모다 오신 분이 많으실줄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살고 특히 세속에 사신 분들은 그러한 소망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소망을 가지시고 오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반드시 그 소원은 이루어지시리라고 생각하고 또 이루어져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알고 보면 참 이 조그마한, 이루어져도 그것이 큰 행불행(幸不幸)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이루어져 봤자 그때 잠깐 기쁘고 흐믓한 것뿐이요, 안 이루어져 봤자 그때 좀 안 좋았을 뿐이지, 지내놓고 보면 그 일이 되거나 안되거나 그렇게 나의 근본 행복을 위해서 또는 영원한 행복을 위해서는 별것도 아닌 일인 것입니다마는 그러나 우선은 그것이 꼭 이루어져야겠고 우선은 아주 긴박한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조그마한 소원을 성취하게 위해서 오셨지만, 산승(山僧)은 여러분이 그러한 조그마한 소박한 소원이 이루어지시기를 바래는 마음으로 간절히 부처님께 축원(祝願)을 해 드리고, 또 여러분의 그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부처님은 큰 자비(慈悲)로써 반드시 그 소원이 이루어지시도록 가피(加被)를 내려 주시리라 생각이 됩니다마는,

산승의 원(願)으로서는 그러한 조그만한 원은 여러분 잠깐 마음속에 간직만 하시고 여기에 오셨어도 부처님은 이미 알고 계시고, 내가 간절히 여러분에게 부탁하고자 하는 바는 정말 영원한 행복을 얻을수 있는 그러한 소원을 이루시게 되길 바래고, 또 그러한 큰 소원 성취하는 방법을 일러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참(理懺)과 사참(事懺)의 말씀을 드렸고, 이참과 사참을 통해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그 '업(業)의 뭉탱이'가 녹아져 없어져야 될 것이고 그리해야 참선을 올바르게 할 수가 있고 또 하루하루를 보람있게 사실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처음~41분1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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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적하위망적하진~' ; [경허집(鏡虛集)] (명정 역 | 극락호국선원) '與永明堂行佛靈途中(영명당과 함께 불령을 가는 도중)' p224 참고.
*수명장수(壽命長壽 목숨 수,목숨 명,길 장,목숨 수) ; 수명이 길어 오래도록 삶. 어린아이의 명이 길어 오래 살기를 빌 때에 쓴다.
*칠성(七星) ;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신격화한 것으로 칠성이 대한 신앙은 특히 중국의 도교에서 발달하여 이후 ①불교에서 칠성은 호법선신(護法善神)의 하나로 수용되었고 ②민간에서는 특히 수명과 재복을 관장하는 신으로 믿어졌다.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치성(致誠 이룰•이를 치,정성 성) ; ①하느님 이나 부처님 등 신적 대상에게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정성을 다하여 빎. ②있는 정성을 다함. 또는 그 정성.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신장(神將) ;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곧 불법(佛法)을 지키는 신장을 이른다.
*산신(山神) ; 산신령(山神靈). 산을 수호하는 신령(神靈).
*탱화(幀畵) ; 부처님, 보살, 성현들을 그려서 벽에 거는 그림. '탱(幀)'이라고도 한다.
*나한(羅漢) ; 아라한(阿羅漢)의 준말.
*보신(報身) ;부처가 전생에 보살로 있을 때 세운 서원(誓願)과 수행의 과보(果報)로서 받은 몸. 모든 부처가 법신·보신·화신을 동시에 갖추고 있지만 대표적인 보신불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약사여래(藥師如來) 등이 있다.
아미타불은 48가지 서원을 세우고 수행하여 성불한 보신불로서 서방의 극락정토(極樂淨土)를 건립하여 중생을 교화하며, 약사여래는 12가지 서원을 세우고 수행하여 성불한 후 동방의 유리세계(瑠璃世界)에서 중생을 교화하고 있다고 한다.
*화신(化身) ; 화신불(nirmaka-kaya 化身佛). 부처의 삼신(三身:法身•報身•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응화신(應化身)·변화신(變化身)•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지기(地祇) ; 땅을 다스리는 신령. 지신(地神).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8, p34에서.
(5)世尊이  三處傳心者는  爲禪旨요  一代所説者는  爲教門이라. 故로  曰,  禪是佛心이요  教是佛語니라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教門)이 되었다。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教)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6)是故로  若人이  失之於口則拈花微笑가  皆是教迹이요.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가  皆是教外別傳禪旨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것(拈花微笑)이 모두 교의 자취(教迹)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教外別傳禪旨)가 되리라.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상호(相好) ; 부처님의 몸에 갖추어진 용모와 형상.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팔고(八苦) ;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여덟 가지의 괴로움.
생(生)·노(老)·병(病)·사(死)를 사고(四苦)라 하고, 여기에 사랑하는 자와 이별하는 고통(愛別離苦), 원망스럽고 미운 것을 만나야 하는 고통(怨憎會苦), 구해도 얻지 못하는 고통(求不得苦), 오음이 성하는 고통(五陰盛苦)의 넷을 더하여 8고라고 한다.
*오음(五陰) ; 오온(五蘊)의 구역(舊譯).
*오온(五蘊) : [범] panca-skandha 또는 오음(五陰) • 오취(五聚)라고도 한다。범어 panca는 다섯이란 말이고 skandha는 덮인다·쌓인다·뭉친다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곧 인연으로 화합한 모임을 말한다.
①빛(色)은 물질인데, 우리의 육신과 우리를 싸고 있는 환경을 가리킨다.
②받음(受)은 우리가 환경에서 받는 촉감.
③생각(想)은 우리에게 접촉되는 대상에 대하여 분별하며 생각하는 것.
④움직임(行)은 접촉되는 대상에 대하여 미워하고 사랑하고 가지고 버리고 기뻐하고 골내는 것같이, 착하고 악한 것을 물론하고 마음의 활동을 말한다.
⑤알음알이(識)는 모든 일이나 물건에 대하여 생각하고 기억하고 판단하고 집행하게 하는 마음의 주체이므로 마음 임금(心王)이라고도 한다.
이와 같은 다섯 가지는 물질과 정신의 전체를 통괄하여 말하는 것이다。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우리의 망상으로 실다운 것인 줄 착각한 것일 뿐이다。실지는 다 인연 따라 꿈같이 나타나는 빈 것이다.
*사지백체(四肢百體) ; 몸의 전체.
*염병(染病) ; ‘장티푸스(腸typhus)’를 속되게 이르는 말.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지옥(地獄) : 중생들이 자기가 지은 죄업으로 말미암아 그 과보로 사후(死後)에 가서 나게 되는, 고통이 극한 지하의 감옥을 말한다。 그러나 육신의 사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세의 우리의 마음속에 천당과 지옥이 있는 것이다.
*수라장(修羅場) ; 아수라장(阿修羅場). ①아수라왕(阿修羅王)이 제석천(帝釋天)과 싸운 마당. ②싸움이나 기타의 이유로 혼란에 빠져 모든 것이 뒤범벅이 된 곳. 또는 그러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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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삼보(三寶) ; 부처님(佛寶)과 부처님의 가르침(法寶)과 그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집단(僧寶) 의 3가지를 보배에 비유한 말. 이것은 불교를 구성하는 3가지의 중요한 요소임. 삼보(三寶)에 귀의하는 것은 불교도로서의 기본적인 조건임.
*백팔참회(百八懺悔) ; 중생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108가지의 모든 번뇌에 대한, 번뇌·업장소멸과 참회의 뜻으로 108배의 절을 하는 것.
*예배(禮拜) ; 거룩하고 성스러운 대상에 대하여 존경하는 뜻을 가지고 절을 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11 참고.
(五一) 禮拜者는  敬也며  伏也니  恭敬眞性하고  屈伏無明이니라
예배라 하는 것은 '공경하는 것'이며 '굴복하는 것'이니, 참된 성품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이니라.


(註解)身口意가  清淨하면  則佛出世니라
몸과 입과 뜻이 청정하면 그것이 곧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신 것이니라.
*무수배례(無數拜禮) ; 헤아릴 수 없이(無數) 많은 절을 하여 예를 표함.
*찰나(剎那) : [범]  ksana  시간의 제일 작은 단위로 말한 것이다。하루가 648만 찰나라 하였는데, 지금 시간으로는 1초의 75분의 1에 해당한다.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십악참회(十惡懺悔) ;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지은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대승계(大乘戒) ; 대승의 보살이 받아 지켜야 할 계율. 보살계라고도 한다.
「범망경」에서 설하는 십중금계(十重禁戒)·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와 「선계경(善戒經)」에서 설하는 삼취정계(三聚淨戒)등을 말함.  이 삼취정계 안에는 율의계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대승계 속에는 소승계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삼취정계란 ①부처님이 정한 규율을 지킴으로써 악행을 막는 섭률의계(攝律儀戒), ②한걸음 더 나아가 선행을 하는 섭선법계(攝善法戒), ③중생을 교화하고 그 이익을 위해 힘을 다하는 섭중생계(攝衆生戒)를 말한다.
*업경대(業鏡臺) ; 지옥의 염라대왕(閻羅大王)이 가지고 있다는, 인간의 죄를 비추어보는 거울이다. 업경 혹은 업경륜(業鏡輪)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어 지옥에 이르면 염라대왕은 업경대 앞에 죄인을 세우고, 업경대에는 그가 생전에 지은 선악의 행적이 그대로 나타나며, 죄의 경중이 판가름나면, 그에 따라 가야 할 지옥이 정해진다.
*발원(發願) ; 원하는 마음을 냄. 원을 세움.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지극정성(至極精誠) ; 더할 수 없이 극진한 정성(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동참(同參) ; 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자비(慈悲) : [범] maitri  자비는 사랑하는 것과 불쌍히 여기는 것인데, 네 가지 끝없는 마음(四無量心) 가운데 두 가지이다。모든 중생에게 실제로 즐거움을 주는 것을 「자(慈)」라 하고(慈能與樂), 중생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 주며 근본적으로 그 근심 걱정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 내어 주는 것을 「비(悲)」라고 한다(悲能拔苦).
*가피(加被 더할·베풀 가,입을·두를 피) ; 불보살(佛菩薩)에게 위신력(威神力)을 받는 것. 불보살이 중생에게 불가사의한 힘을 부여해서 이익을 주는 것. 가호(加護)와 같음.

Posted by 닥공닥정
무상(無常)2014. 6. 28. 12:02

 

 

§(269) (게송)광음승불계~ / 병(甁)속의 새의 꿈 / (게송)시비일침몽~ / 일장춘몽 / 공부해 나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사심(生死心)을 깨트리는 것.

이 세상에 무엇이 중대하고 무엇이 중대하고 중대하다고 하지만은 각자 당인(當人)의 생사 문제보다 더 중대한 것은 없습니다. 시간을 진실로 아껴야 하느니라.(光陰良可惜)

 

이 참선법(參禪法)이야말로 인간의 고통을 없애고 생사윤회의 근본을 끊는 가장 간단하고도 가장 빠른 요긴한 길인 것입니다.

 

'만났다 흩어졌다'하는 아무리 깊은 지중한 인연도 일시(一時)의 정(情)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남자(男子), 고추만 달고 나와야 대장부가 아니라, 시비(是非)와 취산(聚散)의 애착심을 돌려 버리고 자기의 분(分)을 알아서 마음을 쉬어버리고서, 발심(發心)해서 도를 닦아나가면 이것이야말로 장부(丈夫) 가운데에도 대장부(大丈夫)라 할 것입니다.

 

생사심(生死心),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하는데, 그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을 생사심이라 그럽니다. 번뇌(煩惱)니 망상(妄想)이니 이렇게도 말을 허지만 ‘생사심’이라고 표현한 것이 보다 더 적절하다.

 

이 '한 생각'을 가지고 도(道)에 나아가는 첫걸음을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69)-85년(을축년) 하안거결제 법회(85.06.03)(46분)에서. (용269)

 

(1) 약 18분.

 

(2) 약 18분.

 

(1)------------------

 

광음승불계(光陰繩不繫)하고  쇠병약난의(衰病藥難醫)니라

나무~아미타불~

생사중대사(生死重大事)니  광음양가석(光陰良可惜)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광음(光陰)은 승불계(繩不繫)요  쇠병(衰病)은 약난의(藥難醫)라.

흐르는 세월은 노끈으로 묶어 매 둘 수가 없고, 늙어서 노쇠해서 병나는 것은 약으로도 낫을 수가 없다.

 

생사중대사(生死重大事)니, 이 세상에 낳다가 늙어서 병들어 죽는, 그것이 이 한평생만 끝난 것이 아니고 무량겁을 이 생사윤회(生死輪廻)하는, 이 생사의 이 중대사(重大事).

이 세상에 무엇이 중대하고, 무엇이 중대하고 중대하다고 하지마는 각자 당인(當人)의 생사 문제보다 더 중대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간을 진실로 아껴야 하느니라.(光陰良可惜)

 

 

오늘 을축년 4월 15일, 하안거 결제일을 맞이해서 전강 조실 스님의 간곡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산승(山僧)이 더 말씀드릴 것이 없지마는 우리가 서로 마음을 가다듬고 이 석 달 동안을 정말 알차고 짬지게 지내기 위해서, 서로서로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서 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옛날에 큰 병(甁) 가운데에 새가 한 마리 살고 있는데, 그 새가 꾸벅꾸벅 졸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 그 새가 사람이 되었어요. 사람으로 태어나 가지고, 좋은 집안에 사람으로 태어나 가지고 잘 자라서, 그랬는데 기가 맥히게 참 예쁜 여자로 태어났는데, 절세미인(絶世美人)으로 태어나 가지고 벌써 나이가 15,6세 되니까 멀고 가까운 데에 널리 소문이 나서 그래서 여러 군데서 '며느리를 삼겠다, 아내를 삼겠다'해 가지고 청혼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가문도 생각하고 또 여러 가지 형편도 두루두루 다 살펴서 참 일등 신랑감을 골라서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을 했는데 그 신랑도 또한 훌륭한 대장부라, 높은 벼슬을 해 가지고 참 이 세상에 아무도 부러울 것이 없이 영화와 부귀를 한 몸에 다 안고 모든 사람에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아들도 낳고 딸도 낳고 이 세상에 하나도 부족함이 없이 잘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신랑이, 그래 인물도 잘나고 머리도 좋고 또 능력도 있고 그래가지고 승승장구 자꾸 높은 자리에 올라가 가지고 나중에 정승까지 되었습니다.

정승이 되었는데 너무 임금님의 신임을 받고 사랑을 받고 그러니까, 그 정승의 말이라 하면 임금님이 하나에서 백까지 다 들어주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다 옳은 말로 적절하게 말씀을 여쭈니까 임금님이 안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임금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고 신임을 독차지하게 되고 그러니까 간신(奸臣)들의 시기와 모함을 받아 가지고 결국은 역적(逆賊)으로 몰려서 귀양살이를 가 가지고 약그릇을 받게 되고 집안은 아주 몰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인도 너무너무 억울하고 가슴이 미어지는 그러한 괴로움을 받었습니다. 그래 그렇게 남편이 억울하게 죽고 나니 자기도 병을 앓게 되고, 자식들도 모다 역적의 자식으로 몰려가지고 전부 멸종을 당하고 마침내는 자기도 어느 관가에 종으로 끌려갔다가 결국은 죽게 되었습니다.

 

밤낮 남편 생각만 하고 자식 생각만 하고 그 원한에 사무쳐서 그래 가지고는 결국은 큰 병(病)이 나가지고 죽게 되었는데, 마지막 죽을 때에 숨이 딱! 끊어지자 다시 눈을 떠 보니까 병 속에 들어 있는 새로 돌아왔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자기가 사람이 되어서 결혼을 해서 신랑이 그렇게 정승이 되고 그랬던 것은 병 속에서 한 마리의 새가 꾼 하나의 꿈에 지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병 속에서 새 한 마리가 꾼 꿈이—인간 세상에 그 결혼을 해서 남편이 잘되고 자식을 낳고 모든 사람에 선망의 대상이 되고, 그러다가 역적으로 몰려서 남편 죽고 자식들도 역적으로 몰려서 다 멸종을 당하고 자기도 마침내 병들어 죽었는데, 지금 내가 이 이야기를 간단히 줄여서 이렇게 말씀을 드렸지만 이것을 낱낱이 자상하게 모든 것을 늘여 놓자면 큰 소설책이 될 것입니다.

 

한 마리의 새가 병 속에서 꾼 꿈이 이러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한 병 속에 들어있는 새가 꿈속에 지금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남자로도 태어나고 여자로도 태어나고 또 김씨도 되고 박씨도 되고 또 가운데는 출가해서 비구승도 되고 비구니도 되고 그렇게 지내지만, 숨 한번 딱! 거두어 가지고 생각해 보면 병 속에 들어 있는 한 마리의 새가 될 것입니다.

이 육도법계(六道法界)를 ‘하나의 병(甁)’이라고 생각한다면 틀림없이 이해가 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육도법계 전체를 하나의 병(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속에 들어 있는 한 마리의 새가 천당에 가기도 하고, 지옥에 가기도 하고, 또 인간에 태어나기도 하고, 축생이 되기도 하고, 아귀(餓鬼)나 수라(修羅)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국은 육도에 좋은 곳에 태어나서 낙(樂)을 받고 나쁜 데에 태어나 가지고 고통을 받고, 아무리 인간 세상에 태어나서 부귀와 영화를 한 몸에 독차지를 하고, 천상에 태어나서 한량없는 낙을 받는다 하드라도, 결국은 생사윤회하는 한 마리의 새에 지내지 못하고 '업의 불[業火]'에다가 섶을 집어넣는 그러한 결과 밖에는 아니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고 각자 우리 자신들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렇게 깊이 이해를 한다면, 정말 인간으로 태어나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 새가 잠깐 꾸는 꿈으로 태어난 이 몸이, ‘헌다면, 정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는 눈뜨게 되리라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부귀영화(富貴榮華)에 눈을 떠야 할 것인가? 남을 미워하고 남을 사랑하는 일에 우리가 집착을 해야 할 것인가? 사소한 일로 '니가 옳다, 내가 옳다' 시비에 말려들 필요가 있을 것인가?

아무리 자기가 잘나고 똑똑하고 모든 사람을 다 디디고 올라서 봤댔자, 정신 차려 보면 병 속에 든 한 마리의 새에 지내지 못한 것을.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처럼 버리시고 출가를 하셔서 대도를 성취해 가지고, 『이 세상은 모든 것이 다 괴로우니라. 이 세상에 고(苦) 아닌 것이 없느니라. 몸뚱이를 받아서 태어나는 것도 고(苦)요, 늙어가는 것도 고(苦)요, 병드는 것도 고(苦)요, 죽어가는 것도 고(苦)니라. 이 세상에 고(苦) 아닌 것은 없느니라』

이 중생들은 허망하고 무상(無常)한 것이 그나마 고통의 뭉탱이에 지내지 못한 것을 영원한 것으로 착각을 하고 거기에 집착을 하고, 그것을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아니하고 계속 업(業)에 업을 거듭 지어가고 있으니, 이 세상에 모든 것은 허망하고 무상하며 전체가 괴로운 것뿐이라고 하는 것을 맨 먼저 우리에게 설해 주신 것입니다.

 

왜 괴로우냐?

모든 것에 대한—자기 육체에 대해서, 자기의 재산에 대해서, 명예와 권리에 대해서, 그런 것에 대한 애착(愛着)과 집착심(執着心)을 갖기 때문에 모든 것은 괴로운 것이다.

 

그런데 그 괴로움을 없애야 한다. 괴로움을 없애야만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난 보람이며,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길이 바로 그 괴로움의 원인을 없애는 데 있는 것이다.

 

그 괴로움의 원인은 어떻게 없애느냐? 도(道)를 닦아야 한다, 이것입니다,

 

그 도에는 여러 가지 방편(方便)이 있겠지만, 그 도 가운데에서 이 최상승법(最上乘法), 이 참선법(參禪法)이야말로 인간의 고통을 없애고 생사윤회의 근본을 끊는 가장 간단하고도 가장 빠른 요긴한 길인 것입니다.(처음~17분5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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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일침몽(是非一枕夢)이요  취산일시정(聚散一時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안분심휴헐(安分心休歇)하면  인간대장부(人間大丈夫)니라

나무~아미타불~

 

시비일침몽(是非一枕夢)이요. 옳고 그른 것, 니가 옳고 내가 그르고, 개인적으로나 또는 단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옳고 그른 모든 시비는 다 한 벼개의 꿈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무궁한 옛날부터서 영원한 미래까지 흘러가고 있는 길고도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잠깐 꾸는 꿈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취산(聚散)은 일시정(一時情)이다. 만났다 흩어지고 흩어졌다 만난 것. 만난 것은 부모와 자식 간으로도 만나고, 아내와 남편으로도 만나고, 형과 동생으로도 만나고, 친구 간으로도 만나고 한, 이 인간이 만났다 헤어졌다 하는 이 인연(因緣)이라 하는 것은 일시(一時)의 정(情)에 지내지 못해.

금생에 부모자식 간에 인연이라 하면 가장 지중(至重)하고, 부부 인연이라 하면은 참 지중하다고 생각이 되지만 일시(一時)의 정(情)인 것입니다.

 

물론 전생에 다 숙세(宿世)의 인연이 있어서 만나긴 하지만, 전생에 부모 · 전생에 할아버지가 금생에 자기 자식이 되기도 하고, 전생에 친구가 아내가 되기도 하고, 금생에 아내가 내생에는 친구가 되기도 하고, 이리저리 만나고 만나졌다 헤어지고 하지만 우리는 전생사(前生事)는 다 잊어버리고 모르는 것이고.

물론 숙명통(宿命通)이 열리면 다 알게 되겠지만, 숙명통이 열리기 전에는 '혹 저 사람이 전생에 나의 남편이 아니었나?' 혹 이런 추측은 할 수 있지만 그것은 확실한 것이 아니고, 전생일은 다 잊어버리게 마련입니다.

 

전생, 저 전생, 수억만 생이 있어 왔기에 금생에 또 부모 자식으로도 만나고, 처자 권속으로도 만나고 그러기는 하지만 전생일은 이미 잊어버려서 알 수가 없고, 다못 금생에 이렇게 만났다가 잠시 5,60년 내지 6,70년 산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일장춘몽(一場春夢)에 지내지 못해서 잠깐입니다.

그리고 또 헤어지게 되는데, 내생에 또 인연에 따라서 다시 만나게 되리라곤 생각이 되지만 또 확실히 만날지 어쩔지도 알지도 못하고, 또 만난다 해봤자 또 전생일은 또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났다 흩어졌다 하는 아무리 깊은 지중한 인연이라 하드라도 일시(一時)의 정(情)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비(是非)와 서로 만났다 흩어졌다 하는 것, 그러한 것들에 너무 집착을 할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정 · 애정 · 인정, ‘참 저 사람이 정답다, 정이 있다’, ‘그 사람은 무정하다, 매정하다’, 정이 있는 것을 참 좋아하고 다정한 것을 좋아하고 그렇지만, 자식을 기를 때에 있어서도 정에 너무 빠져서 정(情)으로 자식을 가르키면 사실은 업(業)에 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업을 점점 두텁게 맨든 것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어찌 부모가 자식이 사랑스럽지 아니하리요마는 그 정은 속에다가 담박(澹泊)허니 놔두고, 항시 바른 마음과 지혜로써 그리고 정(情)보다는 자비(慈悲)로써 자식을 잘 길러 나간다면 그 자식은 참으로 올바르게 잘 자라 나갈 것입니다.

지혜롭지 못하고 자비가 없이 인간에, 그 중생에 애정적으로만 가르켜 놓으면, 자식이 자식이 아니라 업의 뿌리 밖에는 아니되는 것이고 '애물'에 지내지 못해서 피차 서로 얽혀 가지고 후생(後生)의 업을 장만한 것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안분심휴헐(安分心休歇), 자기의 분(分)을 알아서 마음을 쉬어 버려.

그 정 때문에 본의 아닌 죄를 짓게 되고, 정 때문에 자기의 바른 길을 찾지를 못하는데, 그 정을 돌이켜서 지혜와 자비로 승화(昇華)시켜 나간다면 이것이 바로 자기의 분을 아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분(分)을 알아서 마음을 푹 쉬어 버리면 이것이야말로 인간(人間)에 대장부(大丈夫)라 할 것이다.

 

오늘 결제일을 맞이해서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이렇게 법요식에 참석을 하셨습니다. 용화사 법보선원에 방부(房付)를 들인 스님네도 있고 또 보살님도 계십니다마는 또 경기 일원에 다른 선원에서 정진하시는 비구니 스님네들도 이 법회에 참석을 하셨고, 가정에서 공부를 하시는 신도님네들도 많이 오셨습니다.

남자(男子), 고추만 달고 나와야 대장부가 아니라, 시비(是非)와 취산(聚散)의 애착심을 돌려 버리고 자기의 분(分)을 알아서 마음을 쉬어버리고서, 발심(發心)해서 도를 닦아 나가면 이것이야말로 장부(丈夫) 가운데에도 대장부(大丈夫)라 할 것입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우리가 정진해 나가는 데에 아주 요긴한 법문을 하셔서 더 말씀할 것이 없지만, 우리가 공부해 나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사심(生死心)을 깨트리는 것입니다.

 

생사심(生死心).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하는데, 그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을 생사심이라 그럽니다.

번뇌(煩惱)니 망상(妄想)이니 이렇게도 말을 하지만 ‘생사심’이라고 표현한 것이 보다 더 적절하다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왜 생사심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냐 하면, 이 생사심 때문에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한 생각'이 일어났다가, 그 생각이 이리저리 가지가 뻗고 잎이 피고 해 가지고는 한참 뻗어나가다가 그것이 또 언제 또 사그라져 버립니다. 사그라지자마자 또 '한 생각'이 또 일어납니다.

'한 생각' 일어나가지고 또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이리저리 이리저리 발전을 해 나가다가, 혹 좋은 쪽으로 발전해 나가면 기분이 좋고, 혹 나쁜 쪽으로 발전해 나가면 공연히 속이 상하기도 하고 괜히 그냥 누가 얄미워지고도 하고, 그러다가 또 그 생각이 또 언제 꺼진 중 모르게 또 꺼져 버리면, 또 다시 또 '한 생각' 일어납니다. 그렇게 하기를 하루에도 몇만 건인 것입니다.

 

어려서 철모를 때는 모르지마는 철알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이 생사심의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기멸(起滅)이 끊임없이 계속이 되는 것입니다. 그 한 생각 한 생각이 그러고 말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 우리 제8아뢰야식(第八阿賴耶識)에 미래의 생사윤회를 위한 씨가 심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현생에 우리가 일어난 '한 생각'이 금방 우리의 8식(八識)에 종자(種子)로써 심어지는데, 그 종자가 이 시간 이후에 적당한 인(因)과 연(緣)을 만나면 거기서 새로운 생사윤회가 열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처님께 3가지 불능[三不能]이 있어서 그 중에 하나가 ‘중생계가 다할 날이 없다’ 이리 말씀을 하셨는데, 그러니 밤낮 태어났다 죽고 태어났다 죽고 육도(六途)에서 천문학적 숫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무수한 중생의 생사윤회의 현장이 바로 이 육도법계인 것입니다.

물론 깨달은 눈으로 보면 그 낱낱이 모두가 불보살(佛菩薩)의 출현이요, 그 불보살의 설법이요, 모든 것이 한량없는 부처님의 경전이요, 바로 청정법신불(淸淨法身佛)의 모습이 되겠지만, 그러한 이치를 깨닫지 못한 우리의 중생에게는 전부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가 생사윤회의 현장에 불과한 것입니다. 생사윤회는 우리를 괴롭혀 주는 것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이것이 바로 생사심인데, ‘이 생사심을 어떻게 하면 이것을 깨트려서 생사 없는 근본으로 돌아갈 수가 있느냐?’ 이것이 우리 불자(佛子)에 나아갈 길이요,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될 우리의 목표인 것입니다. 이 생사심을 깨트리려고 노력하지 아니하면 이 생사심은 영원히 끝날 기약이 없습니다.

이 생사심을 깨트리지 못하면 무상살귀(無常殺鬼)는 일분일초도 쉴 사이가 없이 우리를 핍박하고 우리를 쫓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사방팔방에서 온갖 방편과 수단으로써 그 무상살귀는 우리를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한 생각', 이 '한 생각'을 가지고 도(道)에 나아가는 첫걸음을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생각은 우리가 성불(成佛)할 때까지 이 생각은 잠시도 놓쳐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마치 훨훨 불이 타고 있는 그러한 함정 가운데 우리가 빠졌을 때 ‘어떻게 하면 이 불이 타고 있는 이 함정에서 살아날 수가 있는 있을까?’

공연히 이리저리 함부로 나부대봤자 불에 타서 죽을 것이고, 우두커니 서 있어 봤자 뜨거워서 결국은 자기한테 불이 달라들어서 죽을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무슨 딴생각을 할 겨를도 없을 것이고, 또 누가 와서 나를 살려 주었으면 그런 생각까지도 할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다못 이러할 때에 ‘어떻게 해야 이 불구덩이에서 살아날 수가 있을 것인가?’

살아나가는 방법은 오직 하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불도 돌아보지 말 것이며, 나의 몸과 목숨도 돌아보지 말 것이며, 누가 와서 나를 구해주기도 바래지 말 것이며, 딴생각—집안 생각, 무슨 자식 생각 뭐 그런 생각할 것도 없을 것이여. 잠시도 우두커니 있지도 말 것이며, 다맛 무조건 하고 밖을 향해서 내닫는 것입니다.

 

사방이 전부가 빼어난 틈이 없이 불이지만, 타 죽을 셈 치고 불도 보지 말고 막 밖을 향해서 나간다면 잠시 불에 몸이 닿을 동안에는 뜨거울는지 모르지마는, 번개같이 뛰어나가면 결국은 그 사람이 살아나올 것입니다.

참선해 나간 사람은 이만한, 이만한! 정신을 가지고 정진을 해 나가야만 할 것입니다.(18분3초~35분4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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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광음승불계~’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著, 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18 ‘잡흥(雜興)’ 게송 참고. *繩(승)노끈. *繫(계)매다. 묶다. *惜(석)아끼다. 소중히 여기다.

*생사윤회(生死輪廻) ; 육도윤회(六途輪廻).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에 의한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당인(當人 맡다·주관하다 당/사람 인) ; 어떤 일에 직접 관계가 있는 그 사람.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절세미인(絶世美人 끊다·끝나다·뛰어나다·비할 데 없다 절/세상 세/아름다울 미/사람 인) ; 이 세상(世上)에 견줄 만한 상대가 없는[絶] 아름다운[美] 여자[人].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 : 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천당(天堂) ; ①천상(天上)에 있다는 신(神)의 전당(殿堂), 하늘의 세계.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모든 하늘을 통칭하는 말. ②정토교(淨土敎)의 극락세계(極樂世界).

*지옥(地獄) : 중생들이 자기가 지은 죄업으로 말미암아 그 과보로 사후(死後)에 가서 나게 되는, 고통이 극한 지하의 감옥을 말한다。 그러나 육신의 사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세의 우리의 마음속에 천당과 지옥이 있는 것이다.

*아귀(餓鬼 굶주림·굶길 아/귀신·아귀 귀) ; 항상 굶주림과 갈증으로 괴로워하는 귀신. 전생에 탐욕이나 질투가 많아, 악업을 지은 사람이 죽은 뒤 육도(六道) 중 하나인 아귀도(餓鬼道)에 태어나 고통을 당한다.

아귀의 배는 산과 같이 크지만 목구멍은 바늘구멍만큼 작다. 먹을거리가 없어 항상 굶주림과 목마름의 고통에 있고, 우연히 먹을 것을 얻더라도 입에서 불이 나거나 먹을 것이 화염으로 변하여 고통 받는다.

*수라(修羅) ; 아수라(阿修羅)의 준말. 늘 싸움만을 일삼는 귀신들의 무리.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업의 불(業火) ; ①악업의 힘이 맹렬하게 중생을 태우므로 업(業)을 '불'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②불같이 이는 노여움. ③악업(惡業)의 갚음으로 받는 지옥의 맹렬한 불.

* ; 잎이 붙어 있는 땔나무나 잡목의 잔가지, 잡풀 따위를 말린 땔나무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

*고(苦) ; [산스크리트어] duḥkha [팔리어] dukkha 마음이나 몸이 괴로워 편하지 않음.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어지럽고 불안함. 어지러운 생각에 부대끼고 시달려서 마음이 균형을 이루지 못한 상태. 미혹으로 일어나는 마음 작용.

“태어남이 고다. 노쇠가 고다. 죽음이 고다.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이 고다. 즐거운 것과 갈라짐이 고요, 싫은 것과 같이 함이 또한 고다. 요컨대 집착과 연관된, 존재의 다섯 쌓임(五取蘊)이 고다”(상응부)

불교에서는 이를 4고 · 8고(四苦八苦) 등으로 분류한다. 사고(四苦)는 생(生)·노(老)·병(病)·사(死)의 네 가지를 말한다.

여기에 다시 사랑하는 자와 이별하는 고통(愛別離苦), 원망스럽고 미운 것을 만나야 하는 고통(怨憎會苦), 구해도 얻지 못하는 고통(求不得苦), 오음이 성하는 고통(五陰盛苦)의 넷을 더하여 8고라고 한다.

*사제(四諦) ; 사성제(四聖諦). 제(諦)는 ‘sacca’의 번역으로 진리를 뜻함. 고(苦, 괴로움)를 소멸시켜 열반에 이르는 네 가지 진리. 사성제(四聖諦,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고도 함.

①고제(苦諦, 苦聖諦) : ‘고(苦, 괴로움)’라는 성스러운 진리. “태어남이 고다. 노쇠가 고다. 죽음이 고다.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이 고다. 즐거운 것과 갈라짐이 고요, 싫은 것과 같이 함이 또한 고다. 요컨대 집착과 연관된, 존재의 다섯 쌓임(五取蘊)이 고다”(상응부)

②집제(集諦, 集聖諦) : ‘고의 원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몹시 탐내어 집착하는 갈애(渴愛)가 고(苦)가 일어나는 원인이라는 진리.

③멸제(滅諦, 滅聖諦) : ‘고의 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갈애가 남김없이 소멸됨으로써 고(苦, 괴로움)가 소멸되어 고의 끝남, 열반에 이른다는 진리.

④도제(道諦, 道聖諦) :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팔정도(八正道)—정견(正見, 바른 이해) · 정사유(正思惟, 바른 생각) · 정어(正語, 바른 말) · 정업(正業, 바른 행위) · 정명(正命, 바른 생계) · 정정진(正精進, 바른 노력) · 정념(正念, 바른 마음챙김) · 정정(正定, 바른 집중)—는 갈애를 소멸시켜,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애착(愛着) ; 사랑하여 집착함. 애집(愛執).

*집착(執着) ; 허망한 분별로써 어떤 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그릇된 분별로써 어떤 것을 탐내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함.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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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시비일침몽~’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著, 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48 ‘준선자(俊禪子)에게’, p47 ‘감흥(感興)’ 게송 참고. *枕(침)베개. 말뚝. *歇(헐)쉬다. 그치다.

*벼개 ; ‘베개’의 사투리.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정(情) ; ①오랫동안 지내 오면서 생기는 사랑하는 마음이나 친근한 마음. ②느끼어 일어나는 마음. ③[불교] 혼탁한 망념(妄念).

*지중(至重)하다 ; ①더할 수 없이 귀중하다. ②더할 수 없이 무겁다.

*전생사(前生事) ; ①'전생(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살았던 삶)'에 있었던 일. ②'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는 이미 지나간 일'을 일컫는 말.

*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의 하나로,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자유 자재한 능력.

*일장춘몽(一場春夢) ; '한바탕의 봄꿈'이라는 뜻으로, 헛된 영화나 인간 세상의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비(是非) ; ①옳음과 그름. ②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 또는 옳고 그름을 따지며 하는 말다툼.

*담박(澹泊)하다 ;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다.

*자비(慈悲) : [범] maitri  자비는 사랑하는 것과 불쌍히 여기는 것인데, 네 가지 끝없는 마음(四無量心) 가운데 두 가지이다。모든 중생에게 실제로 즐거움을 주는 것을 '자(慈)'라 하고(慈能與樂), 중생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 주며 근본적으로 그 근심 걱정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 내어 주는 것을 '비(悲)'라고 한다(悲能拔苦)。

*애물 ; 애를 태우거나 성가시게 하는 물건이나 사람.

*후생(後生) ; 죽어서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삶.

*분(分) : 분수(分數 ;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승화(昇華) ; 어떤 현상이 한 단계 더 높은 영역으로 발전함.

*대장부(大丈夫 큰·훌륭할 대/어른·존칭 장/사내·일꾼 부) ; 장부(丈夫). ①건장하고 씩씩한 사나이. ②대승의 근기를 가진 수행자. 불법의 수행이 원숙한 사람. 불성(佛性)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생사심(生死心). 우리가 공부해 나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사심(生死心)을 깨트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하는데, 그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을 생사심이라 그럽니다.

번뇌(煩惱)니 망상(妄想)이니 이렇게도 말을 하지만 ‘생사심’이라고 표현한 것이 보다 더 적절하다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왜 생사심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냐 하면, 이 생사심 때문에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보제존자시각오선인」 p103~105. (가로판 p101~103)

*普濟尊者示覺悟禪人(보제존자시각오선인) - 보제존자가 각오선인에게 보이심.

念起念滅을  謂之生死니  當生死之際하야  須盡力提起*話頭호리니  話頭가  純一하면  起滅이  卽盡하리라 起滅卽盡處를  謂之寂이라하니  寂中에  無話頭하면  謂之*無記요  寂中에  不昧話頭하면  謂之靈이라하나니  卽此空寂과  靈知가  無壞無雜하야  如是用功하면  不日成之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멸함을 생사(生死)라 이르나니, 생사(生死)의 즈음을 당하야 모름지기 힘을 다하야 화두(話頭)를 들지니, 화두가 순일하여지면 일어나고 멸하는 것이 곧 다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멸함이 곧 다한 곳을 이르되 고요함[寂]이라 하나니 고요한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무기(無記)라 함이요, 고요한 가운데 화두를 매(昧)하지 아니하면 영(靈)이라고 이르나니, 이 공적(空寂)과 영지(靈知)가 무너짐도 없고 섞임도 없어서 이와 같이 공부를 하면 며칠 안 가서 성취하리라”

 

*보제존자(普濟尊者) : (1320 ~ 1376) 나옹혜근(懶翁惠勤). 고려 스님.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역대 스님 약력’에서 참고.

*화두(話頭) ;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무기(無記) : [범] Avyaksita 선(善) • 악(惡) • 무기(無記) 3성의 하나。 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나쁜 마음의 작용.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제8아뢰야식(第八 阿賴耶識) ;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참고] 〇아뢰야식(阿賴耶識) ;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는 산스크리트어 ālaya의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아뢰야(阿賴耶)를 진제(眞諦)는 a(無)+laya(沒)로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玄奘)은 ālaya로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〇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8가지 마음 작용.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 8식(八識)이다.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식(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제6의식), 第七 末那識(제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제8아뢰야식)이라 한다.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삼불능(三不能) ; 당나라 숭악(崇嶽)의 원규(元珪)가 말한 부처님의 3능(三能)과 3불능(三不能).

(1) 3능(三能) - 부처님의 3가지 능한 것.

①일체 상(相)이 공(空)해서 만법을 아는 지혜를 이루는 것. ②모든 중생의 성품을 다 알고, 억겁(億劫)의 모든 일을 막힘이 없이 다 아는 것. ③한량없는 중생(무량중생)을 제도하는 것.

(2) 3불능(三不能) - 부처님의 3가지 능치 못한 것.

①무량겁으로부터서 지은 정업(定業)은 멸하지 못함. ②인연없는 중생을 제도하지 못함. ③무량중생을 제도하실 수는 있으나 중생계를 다 제도하지 못함.

*청정법신불(淸淨法身佛) ; 더러움이 없는 청정한 법신,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곧 비로자나불을 말함.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무상살귀(無常殺鬼) ; ‘무상(無常)’이라고 하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殺] 귀신(鬼神)이라는 뜻. ‘인간존재가 무상하다’는 것의 무서움을 비유한 말.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45~147. (가로판 p139~141)

做工夫호대  最初에  要箇破生死心堅硬하고  看破世界身心이  悉是假緣이라  無實主宰호리라. 若不發明本具底大理則生死心이 不破오  生死心이  旣不破인댄  無常殺鬼가  念念不停하나니  卻如何排遣고

 

공부를 짓되 최초에 생사(生死)를 파하려는 마음이 굳세고, 세계와 몸과 마음이 모두 이 거짓 인연[假緣]이라 실다운 주재(主宰)가 없는 줄로 간파(看破)할지니라.

만약 '본래 갖추어진 큰 이치[本具底大理]'를 밝히지 못하면, 곧 생사심(生死心)을 깨뜨리지 못하고 생사심을 깨뜨리지 못했을진댄 무상살귀(無常殺鬼)가 생각생각 멈추지 않으리니, 도리어 어떻게 물리치겠는가?

 

將此一念하야  作個*敲門瓦子호대  如坐在烈火焰中求出相似하야  亂行一步不得하며  停止一步不得하며  別生一念不得하며  望別人救不得이니 當恁麼時하야는  只須不顧猛火하며  不顧身命하며  不望人救하며  不生別念하며  不肯暫止하고  往前直奔호대  奔得出하야사  是好手이니라.

 

이 일념(一念)을 가져 문 두드리는 기와쪽[敲門瓦子]을 삼되, 마치 훨훨 타는 불꽃 가운데 앉아서 나오기를 구하는 것과 같아, 함부로 한 걸음 걸을 수도 없고, 한 걸음도 멈출 수도 없으며, 한 생각이라도 딴 생각을 낼 수 없으며, 남더러 구원해 주기를 바랄 수도 없나니,

이런 때를 당하여서는 다못 사나운 불길도 돌아보지 않으며, 신명(身命)을 돌보지 말며, 다른 사람이 구해 주기를 바라지 말며, 딴 생각 낼 것도 없으며, 잠시도 멈추지 말며 앞으로 곧장 나아가되 내달아서 벗어나야만 이 좋은 수단이니라.

 

*고문와자(敲門瓦子) : 기왓장을 문에다 걸어 놓고 손님이 와서 그 기왓장으로 문을 두드리면 주인이 문을 열어 주는 현대의 초인종과 같은 역할을 한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나부대다 ; 얌전히 있지 못하고 철없이 촐랑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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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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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