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 정진(요중선)2014. 11. 24. 11:59
§(복전암26) (게송)다생원채기어친~ / 무연자비(無緣慈悲), 무주상보시 / 지장보살의 원력 / 인과법(因果法) / ‘이뭣고?’는 ‘참나’를 찾는 공부, 자기마음을 바로잡는 법.
 
남에게 줄 때는 무심(無心) 속에서 주어야 하고 조건 없이 주어야 해. 이것이 부처님의 ‘무주상 보시(無住相布施)’라 하는 것이여. 금강경을 독송하신 분은 잘 아시겠지. 무주상 보시를 해야 이것이 그 공덕이 영원한 것이지, 유주상으로 준 것은 그것 나중에 꼭 그놈이 나를 웬수로 상대하게 되는 것이다.
 
어떠한 큰 죄도 ‘어떻게 해서 그 죄를 짓게 되었는가?’ 그 근원을 살펴보면 꼭 마음 ‘한 생각’에서 그것을 짓는 거여.
쇠고랑도 안 차고, 지옥에도 안 가는 방법은 한 생각 일어날 때 그때 딱! 돌이켜버리면 큰 죄를 안 짓게 되는 것이다.
 
인과법을 철저히 믿는 사람은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인과법을 안 믿고 마구잡이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다. 모든 죄도 인과법을 안 믿는 데서 저질르게 되는 것이다.
흰머리가 다른 것이 아니라 염라대왕(閻羅大王)이 ‘너 벌써 늙기 시작을 했으니 얼마 안 있으면 너를 데리러 갈테니까 정신 차려라.’ 염라대왕이 우리에게 보낸 편지다.
 
**송담스님(복전암No.26)—지장기도 천도재 회향 (93년) (복전암26)

 

(1) 약 21분.

(2) 약 21분.

 

(1)------------------
 
다생원채기어친(多生怨債起於親)하니  막약다생불식인(莫若多生不識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향아불문여광제(向我佛門如廣濟)인댄  무연진개대비은(無緣眞箇大悲恩)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다생원채(多生怨債)가 기어친(起於親)이여, 다생! 다생겁래(多生劫來)로 웬수와 빚이 친한 데에서 일어난 거여. 
막약다생(莫若多生)에 불식인(不識人)이다, 다생에 웬수가 없고자 하면 사람을 알지 아니한 것만 같지 못하다.
 
사람을 알고 지내면은 친하게 되고, 친함이 생기면은 그것이 언젠가는 변해서 웬수, 빚쟁이가 된다.
그래서 웬수와 빚쟁이를 안 만날라면 사람을 알고 지내지 아니한 것이 좋다.
 
이 ‘사람을 안다’고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인연(因緣)을 맺는 것인데,
그 인연으로 인해서 우리가 잠시 한자리에 만나서 얘기하는 인연, 함께 차를 타고 가는 인연, 함께 길을 가는 인연, 한 집에서 사는 인연, 한 마을에서 사는 인연, 한 나라에서 사는 인연, 한 이 지구상에 함께 태어난 인연,
 
한 집에서 살되 부모 자식간의 인연, 부부간의 인연, 형제 간의 인연, 그 인연이 천 생, 만 생, 몇백 생, 오백 생 그러한 깊은 인연으로 해서 그렇게 만나게 되고,
이렇게 한자리에서 법문을 듣는 그 인연도 몇천 생의 인연으로 이렇게 된 것이다.
 
유루법(有漏法), 유위법(有爲法)의 인연은 그 인연이 언젠가는 원수로 변하는 것이고.
무위법(無爲法), 무루(無漏)의 인연 — 법(法)을 믿고, 법을 권하고, 법을 듣고, 법을 실천하고, 법에 있어서의 인연이 바로 무위법의 인연이요, 무루의 인연인데.
 
그런 인연은 몰라도 유루법, 유위의 인연은 전부 다 웬수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부모 자식간은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아낄 것이 없고, 자식을 위해서는 한량없는 죄도 서슴지 않고 짓게 된다 그말이여.
그것이 전생(前生)에 깊고도 깊은 전생의 빚이 있기 때문에 — 엄청난 빚이 있기 때문에 그 빚을 갚기 위해서 금생에 빚 받으러 온 놈이 그것이 자식이다 그말이여. 그러니 전생에 지어논 빚을 안 갚을 수 있는가!
 
그래서 자식을 위해서는 무엇이고 아까운 것이 없어.
자식은 물론 효자도 더러는 있지만은 대부분의 자식이라 하는 것은 빚 받으러 온 웬수거든.
그래서 그놈을 위해서는 아까운 것이 없다 그말이야. 다 주어도 또 주고 싶어.
 
그렇게 불효막심(不孝莫甚)해도—남이라면은 그렇게 고약한 놈은 탁! 인연을 끊어버리고 안 봐 버리면 되는데, 불효자식일수록에 부모는 더 가슴이 아프고 더 못 잊는다 그말이여.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알고 모르게 크고 작은 죄를 짓지마는 자식을 위해서 지은 죄가 엄청나게 많다 그말이여. 빚을 갚기 위해서 그런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지어 놓은 빚은 안 갚을 수가 없으니까 최선을 다해서 빚은 갚을 수 밖에는 없고, 아무리 피할래야 피할 수도 없는 것이니까 빚은 갚되,
그 빚을 갚으면서도 항상 ‘이뭣고?’를 해야지, ‘이뭣고?’를 안하면 계속해서 또 빚은 늘어나고만 만다.
 
자식은 ‘으레이 부모는 나를 낳았으니까 당연히 그렇게 해주어야 한다’ 생각하고 별로 고마운 생각도 없는 거여.
알뜰히도 빚을 받으면서도 별로 고마운 줄 모르고, 나중에 다 커서는 으레이 부모가 자식을 해주어야 한 걸로 생각한다 그말이여. 그놈이 또 자식을 낳으면 자식한테 또 빚을 갚아야 하고.
 
그러니 ‘이뭣고?’를 안 한 사람은 무량겁을 그것을 되풀이를 해. 되풀이를 하면서도 정신을 못 차려. 
 
지금 ‘부정부패 척결’해서 온통 야단이지마는 전부가 다 처자(妻子)·권속(眷屬)을 위해서 저지른 죄다 그말이여. 한도 끝도 없는 것이여.
 
그래서 우리의 불자(佛子)! 형제자매 여러 도반들은 원수 빚을 안 갚을 수가 없으니까 갚지마는 그 속에서 항상 ‘이뭣고?’를 해야 되야.
‘이뭣고?’를 해서 묵은 빚은 갚지마는 새 빚을 짓지를 말라.
 
 
향아불문여광제(向我佛門如廣濟)인댄, 우리 불문(佛門)에 있어서 널리 제도(濟度)를 하는데 있어서는,
무연(無緣), 무연자비(無緣慈悲), 인연 없는 자비 — 인연을 맺지 아니한 것이 이것이... (無緣眞箇大悲恩)
 
남에게 보시를 하되 인연이 있고 정을 따라서 주는 보시는 참다운 보시가 아닌 거여.
전혀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지만은 주어야 할 때는 무주상(無住相)으로 주고 이리 해야지,
유주상(有住相)으로 주어 놓으면 결국은 그것도 빚을 만드는 것이여. 웬수를 맺는 올가미가 되는 것이다.
 
내가 물심양면으로 많이 그 사람을 구제를 해 놓고 나중에 많이 주어 놨는데, 나중에는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사람이 되는 거여, 그 사람이.
내 것 많이 먹은 사람이 웬수가 되는 것이지, 전혀 나와 인연 없는 사람은 웬수가 전혀 안되는 법이거든.
 
남에게 보시를 하고 베푸는 것도 대단히 좋은 일인데 완전히 무주상으로 주어야 해.
조건 없이 주고도 잊어버리고 주어야지,
“내가 이것을 너를 주었으니까 너는 정말 나한테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이 은혜를 잊어서는 안되고 나중에 네가 이것을 내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러한 마음으로 조건부(條件附)로 주고,
 
“이것을 주었으니까 언젠가 너는 나한테 잘해야 한다. 평생토록 내 은혜를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그런한 조건이 있어 가지고 주어서는 그 사람이 받으면서도 겉으로만 ‘고맙습니다’ 그러지, 속으로는 하나도 고맙지도 않고, 많이 받아먹은 놈일수록에 나중에 그놈이 꼭 배은망덕한 놈이 되고, 나를 해꼬지 하는 것이여.
 
그래서 남에게 줄 때는 무심(無心) 속에서 주어야 하고 조건 없이 주어야 해.
이것이 부처님의 ‘무주상 보시(無住相布施)’라 하는 것이여. 금강경을 독송하신 분은 잘 아시겠지.
 
무주상 보시를 해야 이것이 그 공덕이 영원한 것이지, 유주상으로 준 것은 그것 나중에 꼭 그놈이 나를 웬수로 상대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7일 지장기도 회향식인데, 윤달을 기해서 왜 지장기도를 주지스님이 그렇게 원력(願力)을 발했느냐 하면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지은 죄로 자기가 그 과보를 받게 돼.
무량겁을 두고 몸으로 지은 죄가 태산과 같고, 입으로 지은 죄가 저 대해(大海)와 같고, 마음으로 지은 죄가 허공처럼 많다 그말이야.
 
그 자기가 지은 — 지금 이렇게 세상을 살아가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자체가 또 내생(來生)에 윤회할 그리고 고통을 받아야 할 그 원인을 만드는 거여.
과거에 지은 죄를 금생에 받으면서 또 금생에 이렇게 살아가면서 내생에 받을 죄를 또 짓고 있거든.
 
그래서 과거에 지은 죄를 참회(懺悔)하고 내생에 받을 과보를 받지 않는 참다운 길을 여러분에게 깨닫게 해 드리기 위해서 지장기도를 봉행한 것이다.
 
윤달에 예수재(預修齋)도 지내고, 윤달에 가사불사도 하고, 윤달에 개금불사도 하고, 참 수많은 불사(佛事)가 있는데 이렇게 지장기도를 한 경우는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닙니다
대단히 주지스님이 원력을 발해 가지고 지장기도를 이렇게 봉행을 했는데 여기에 동참하신 여러 불자, 신남신녀 여러분은 그 지장기도의 참다운 뜻을 잘 인식을 하셔야 할 것이다.
 
 
지장보살(地藏菩薩)은 지옥 중생 — 이 세상에 고통이 제일 심한 곳이 지옥인데.
지옥에는 팔만지옥(八萬地獄)이 있고, 그 가운데 참 무서운 데가 십팔지옥(十八地獄)이 있고, 무간아비(無間阿鼻) 지옥이 있고 그런데.
 
그 지옥 문전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지옥 중생을 위해서 지옥문에 가 가지고 눈물이 마를 겨를이 없이 그 지옥 중생들에게 고통을 멈추게 해주기 위해서 애를 쓰고 계시다 그말이야.
 
우리도 지장보살의 대원력을 따라서 「지옥에 들어가기 전에 해탈도를 가는 것」이 그것이 지장보살의 참으로 큰 대원력이여.
 
이미 지옥에 들어가 가지고 그놈을 벗어나기는 참 어려운 거여.
한번 들어가면 나올 기약이 없어. 거의 영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할 만큼 몇 무량겁을 지옥고를 받게 되는 것인데,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열심히 해둔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냐.
 
탐진치(貪瞋癡), 탐욕과 성내는 것과 어리석은 마음 — 이 세 가지 죄로 지옥, 아귀, 축생의 과보를 받게 되는 거여. 어리석은 마음을 내면 축생보를 받고, 탐심을 내면 아귀보를 받고, 진심을 내면 지옥을 가는 것이여.
 
물론 중생은 세 가지를 다 고루고루 지어 가지고 축생에 갔다가 아귀도에 갔다 지옥고에 갔다, 그 삼악도(三惡道)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지만은,
 
 
그 어떻게 했으면은 탐욕심을 안 내고, 진심을 안 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안 낼 수가 있느냐?
 
천하에 간단한 것이지.
아무리 탐욕이 과하고, 진심을 성을 잘 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많이 낸다 하더라도 그것이 근본은 마음에서 그것을 짓는 것이지 다른 것으로 짓는 게 아니여.
 
어떠한 큰 죄도 ‘어떻게 해서 그 죄를 짓게 되었는가?’ 그 근원을 살펴보면 꼭 마음 ‘한 생각’에서 그것을 짓는 거여.
한 생각이 일어나 가지고 그 한 생각이 차츰차츰 이리저리 발전해 가지고 결국은 그런 큰 죄를 짓게 되어.
 
‘한 생각’이 딱 일어나면 그것이 말로 표현이 되고, 그것이 얼굴에 나타나고,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나 가지고 큰 죄를 지어 가지고 금생에도 쇠고랑을 차게 되고 내생에는 물어볼 것도 없이 지옥에 가게 되는데.
 
쇠고랑도 안 차고, 지옥에도 안 가는 방법은 한 생각 일어날 때 그때 딱! 돌이켜버리면 큰 죄를 안 짓게 되는 것이다.
 
지금 장관도 걸리고, 국회의원도 걸리고, 그 별 단 장성들도 모다 걸려 들어가는데 그 죄가 한 생각에서 일어난거다.
 
산불이, 건조기에 산불이 지난달에 몇천 건이 일어나 가지고 한국의 금수강산이 모다 다 타고 그랬는데, 그 엄청난 불이 처음부터 그렇게 큰불이 난 것이 아니여. 
처음에는 성냥불 하나나 담뱃불 하나가 결국은 번져 가지고 그렇게 큰불이 된 것이거든.
 
처음에 담뱃불 하나만 탁! 밟아서 잘 껐어도 그런 큰불이 안 날거거든.
담뱃불 하나만 단속을 잘 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여. 성냥불 하나 — 그때는 탁! 손바닥으로 눌러도 꺼지고, 발로 탁! 밟아도 꺼지고.
 
그때 조심을 했으면 될 것인데 그걸 조심을 안하고, 그때 단속을 안했기 때문에 집도 타고 공장도 타고, 저 엄청난 산도 다 탄다 그말이여.
 
 
한 생각 일어난 그 한 생각이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 욕심!
아까 그 자식때문에 요새 모다 부정 입학문제도 그 자식이 평소에 공부를 잘해서 실력으로 들어가 주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은 그놈이 국민학교 때는 잘하던 놈이 중학교 가면서 조금 떨어지고, 고등학교 가서는 나쁜 친구를 사귀고 그럭저럭 지내다가 대학을 갈라고 하니 되냐 그말이여.
 
그러니 부모는 돈이 없는 사람은 몰라도 있는 사람은 몇천 만원, 몇억이라도 넣어서라도 들여서라도 입학을 시키고 보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말이여. 그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면은 참 기가 맥히지.
 
그러나 지가 공부 못한 놈을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을 시킬 것까지는 없는 일이었었다 애당초에.
못하면 못한대로 지가 공부를 안 해 가지고 못한 걸 어떻게 하냐?
전생에 지혜를 닦아 놓지 아니해서 금생에 머리가 나쁘고, 지가 금생에 어려서부터 열심히 했으면 되는데 그렇게 공부를 하라하라 해도 지가 안 한 것을 어떻게 돈을 들여서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을 시킬 것이냐 그말이여.
 
못하면 못한대로 구두닦이를 하던지, 노동판에 가서 일을 하던지, 신문팔이를 하던지 아주 매정한 마음으로 했어야 한다 그말이야.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을 시켜놨다가 1학년, 2학년 대학에 가 가지고 그때사 퇴학을 당하면 그거 어떻게 되는 것이며, 부정한 방법으로 별자리를 올라갔다 그것이 떨어지니 그것이 될 일이냐 그말이여.(19분41초~40분45초)
 
 
 
 
 
(2)------------------
 
그래서 사람은 바르게 살아야 하고 정에 떨어져서는 안돼.
제 자식이지만은 지가 공부 안한 놈은 안 하는대로 해야지, 인정(人情) 정을 써서 해 놓으면 결과가 결국은 그렇게 되고만 만다 그말이야.
설사 부정한 짓을 해서 금생에 잘산다 하더라도, 금생에 쇠고랑은 안 찬다 하더라도 내생에 저 내생에는 반드시..(법문 끊김)
 
탐욕! — 자기 욕심대로 안 되면은 진심(瞋心)을 내고, 그러기를 무량겁을 두고 그렇게 해 가지고 육도윤회를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어리석은 것도 가지각색이지만 제일 어리석은 것이 무엇이냐?
‘가장 어리석은 것의 근본이 무엇이냐’하면은 인과법(因果法)을 안 믿는 거여.
 
인과법을 철저히 믿는 사람은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인과법을 안 믿고 마구잡이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다.
 
모든 죄도 인과법을 안 믿는 데서 저질르게 되는 것이다.
인과법은 팥 심은 데 팥이 나고, 콩 심은 데 콩이 나.  털끝 만큼도 어기는 법이 없어.
 
이 세상에 모든 것은 인과법으로 다 이루어지는 것인데, 인과법은 지극히 과학적이고 컴퓨터보다도 더 정확한 것이여. 컴퓨터도 병이 나면 천하 못 믿을 것이 참, 컴퓨터라 그러는데.
 
진짜 영원히 추호도 어김이 없는 것은 인과법이여.
한 생각 탁! 먹은 것도 벌써 과보(果報)로 나타나고, 말 한마디 나온 것도 과보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말이여.
 
그래서 우리는 한 생각 일어날 때 퍼뜩 돌이켜서 ‘이뭣고?’로 돌아와야 해.
‘이뭣고?’는 무엇이냐? 내가 ‘참나’를 찾는 공부거든. ‘참나’로 돌아가는 길이여.
 
우리가 저 진묵겁(塵墨劫) 전에는 우리도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法身佛)이었어. 법신불과 똑같은 존재였어.
 
그러던 존재가 한 생각 일어나는 그 무명(無明) 때문에 이렇게 '업(業)투성이'인 중생이 되고 말았다 그말이여. 
그래서 지금도 일어나는 한 생각만 잘 단속을 하면 본래의 비로자나불로 돌아갈 수가 있다 그거거든.
 
이것 말고는 우리의 영원한 행복도 얻을 수가 없고 우리의 가정, 우리의 사회·국가·세계의 평화도 이룰 수가 없는 거여.
근원을 다스리지 않고 어떻게 지엽적인 문제만 가지고 해결이 될 것이냐 그말이여.
 
지금 부정부패 척결을 해 가지고 새 한국을 건설하자고 새 대통령께서 나와서 저렇게 애를 쓰고, 온 국가가 온통 이것 때문에 그 애를 쓰고 있는데,
대단히 부정부패는 마땅히 척결을 해야 하고 그래야 이 나라가 되어갈 것은 사실이나 법을 엄격히 적용한다고 해서, 근본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이것은 잠시 그러다가 조금 법을 느슨히 느꿔주면 또 마찬가지야.
 
 
근본은 각자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는 거여.
일어나는 한 생각을 자꾸 ‘이뭣고?’로 돌이켜서 ‘참나’로 돌아감으로서만이 부정부패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부정부패, 부정부패하지만 알고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지은 죄여, 그게.
각기 자기가 지은 죄가 노출이 되면 여러 사람이 하니까 온 나라가 썩어 문드러진 것처럼 보이나, 나라가 썩기는 무슨 나라가 썩어, 태산이 썩어?
 
아무 것도 썩은 건 없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잘못 삐틀어진거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만 바로잡어!
어떻게 나무가 삐틀어지면 깎아내고 바로잡는다 하지마는 사람의 마음을 무엇으로 잡어?
 
‘이뭣고?’가 자기 마음 바로잡는 법이거든.
자꾸 ‘이뭣고?’를 해서 자기로 돌아가. 자기의 본심으로 돌아가.
 
그것이 바로 자기 마음을 바로잡는 법인데, 마음 하나만 바로잡고 보면 말도 바르게 나오고, 행동도 바르게 나올 것이고, 마음을 바로잡은 사람은 무슨 일을 맡기더라도 그 일을 바르게 할 것이다 그말이여.
 
서장이 되거나 검사가 되거나 판사가 되거나 장관이 되거나 마음을 잘못 써 가지고 쇠고랑을 차는 것이지, 마음만 바로잡으면 무슨 걱정이 있느냐 말이여.
 
법을 아무리 무섭게 제정을 해서 엄격하게 다룬다 해도 그때 뿐이여, 중생은.
엄하게 할수록에 더 머리 좋은 사람은 그놈의 법망을 뚫고 또 죄를 저지르고 마는 거다 그말이여.
 
그래서 성현들은 법을 엄격히 적용을 하는 데에다가 역점을 두지 않고, 각자 마음을 바로잡는 데에다가 역점을 두고 가리키셨다 그거거든.
 
‘이뭣고?’ 자기 마음을 바로잡는 법이 아닌가!
집안에 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으로 인해서 두 사람, 세 사람 온 집안 식구가 ‘이뭣고?’를 하고, 그런 집안이 있으면 또 이웃집 사람들도 또 그 본을 따서 ‘이뭣고?’를 하고, 사돈네도 그걸 하게 되고 해서,
 
차츰차츰 ‘이뭣고?’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인과법을 믿고 ‘이뭣고?’만 열심히 하면 이 세상이 온통 부처님 세계로 변하는 것이다.
 
법이 전혀 필요가 없는 거여. 형무소도 필요없이 되어 버리고.
지옥도 텅텅 비어서 지장보살도 지옥에서 좀 나올 때가 된다 그말이여.
 
‘이뭣고?’을 하지 않고는 온 세계가 법을 무섭게 제정을 해 가지고,
도둑질한 놈은 왼손 자르고 또 한번 한 놈은 오른손을 자르고, 유부녀 간통한 놈은 목 매달아 죽이고 총살을 시키고, 지금도 저 아프리카 어디 가면은 도둑질하면 팔목 자르고 목 매달아 죽이는 데가 있다고 하더만.
 
그래 해봤자 마음보를 바로잡지 않고 아무리 무섭게 해서 날마다 수백 명씩 때려 죽여봤자 끝나는 날이 없어. 온 세계 사람을 다 때려 죽여도 소용이 없는 거다 그말이여. 죽자마자 또 다시 태어날 것을 죽여봤자 소용이 있나.
 
 
그래서 우리 부처님께서는 ‘이뭣고?’ ‘이뭣고?’
가정에서도 속상한 거 부애풀이 해봤자 소용 없고, 떠억 숨을 깊이 들여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뭣고?’
열 번, 스무 번 하다보면은 스르르르 가라앉거든.
 
부애난다고 때려 부수고, 부애난다고 술 잔뜩 먹고 와 가지고 막 때려 부숴봤자 무엇이 되는 일이 있냐 그말이여. 집안만 점점 복잡하고 시끄럽고 일은 무장 더 다 안되거든.
‘이뭣고?’를 해야—턱 숨을 깊이 들여마셨다 내쉬면서 ‘이뭣고?’ 자, 다 따라서 숨을 들여마셨다가 ‘이뭣고?’ ‘이뭣고?’
 
부애가 날 때는 좀 큰소리를 내서 ‘이뭣고?’를 하면 더욱 좋다.
그렇다고 해서 만자 중에서 소리를 내서 ‘이뭣고?’ ‘이뭣고?’ 하면 사람들이 모다 쳐다보고 그럴테니까 사람 없는 데서는 그렇게 하고, 사람 있는 데서는 속으로 ‘이뭣고?’를 자꾸 해서,
자꾸 하다 보면 나중에는 저절로 ‘이뭣고?’가 되야.
 
걸어가면서 ‘이뭣고?’
심심하면 ‘이뭣고?’
차를 타고 가면서도 ‘이뭣고?’
밥 먹으면서도 ‘이뭣고?’
누워서도 ‘이뭣고?’
앉아서도 ‘이뭣고?’
변소에 가서 터억 앉아서도 ‘이뭣고?’.
 
‘이뭣고?’ 저절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항상 ‘이뭣고?’가 끊어지지 않도록.
그 사람은 제발 좀 성을 내라고 해도 성을 안 내고, 제발 좀 탐욕심을 내라고 해도 안 내는 거여.
그 사람이 무슨 도둑질을 하라고 한다고 해서 할 리가 있는가!
 
자꾸 처음에는 잘 안되고 재미가 없지만은 자꾸 하면은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법희선열(法喜禪悅) — 법(法)의 기쁨과 선(禪)의 즐거움이 속에서,
 
향을 피워 놓으면 향내가, 전단향을 피우면 10리 밖에까지라도 그 향내가 풍기는데,
‘이뭣고?’를 한 사람은 마음의 기쁨이 그렇게 넘쳐 흐르고 얼굴이 환해지거든. 그 사람을 본 사람마다 다 환희심을 내는 것이다.
 
그 사람이 간 곳에는 항상 선신(善神)이 옹호를 하고, 마음으로 꼭 탐욕심을 안 내더라도 마음으로 꼭 무엇이 필요하다 하면 저절로 그것이 자기한테 이르러 오는 거여.
 
지상(地上) 사람은 무엇이 먹고 싶으면 손으로 그걸 집어서 입에다 넣어서 씹어서 먹어야 그때사 배가 부르는데, 복이 많은 저 천상(天上) 사람들은 무엇이 먹고 싶다 하면 벌써 배가 불러져 갖고 있는 거여.
 
지상 사람은 남녀 관계도 몸과 몸이 접촉해야 사랑이 이루어지는데, 천상 사람은 마음 한 생각만 내면 벌써 이루어지는 거여.
 
그래서 중생이나 축생은 입으로 씹어서 먹는 거고, 귀신은 냄새로 먹는 거고, 천상 사람은 생각으로 먹는 거고.
 
부처님은 견식(見食)이여. 떠억 보기만 해도 벌써 충분히 배가 부르신 거여.
그래서 이 법당 탁자 위에다가 떡이다 과일이다 잔뜩 갖다 놓아도 하나도 줄지를 않거던. 부처님은 보시기만 해도 배가 부르시기 때문에 그런 거여. 부처님은 견식이여.
 
그래서 ‘이뭣고?’를 열심히 해서 마음에 욕심이 없는 사람은 꼭 필요한 것은 저절로 공급이 돼.
왜 그러냐? 항상 선신이 옹호를 하기 때문에,
선신(善神)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선신은 — 대통령이나 모다 그런 사람들은 항시 호위하는 경호원이 따라다니듯이 — 참선하는 사람에게는 선신이 우리의 경호원으로 따라다녀 가지고 항상 지켜줘.
 
먹을 것, 입을 것 전혀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 
열심히 ‘이뭣고?’하면 걱정을 안 해도 항상 그 사람에게는 의식주 문제가 걱정이 없어.
 
자기 한 사람의 의식주 문제는 그렇게 크게 걱정을 안 해.
사람이 지나친 욕심을 가지고 탐욕심을 가지고 그래 가지고 분에 넘치는 욕심을 내기 때문에 죄를 지어 가지고 부정부패에 걸리는 것이지, 자기가 먹고 입고 살 만큼만 가질라고 하면은 그렇게 큰 죄를, 큰 욕심을 안 내도 되는 것이다.
 
 
우리는 시시각각으로 이 몸뚱이는 늙어가고 있습니다.
금방 30까지는 조금 마디다가, 40이 되면 더 빨리빨리 가고, 50이 되면 더 빠르고, 60이 넘으면 금방 늙어서 곧 꼬부라지는 거여.
 
우리가 이만큼 젊었을 때 어쨌든지 시간을 아껴서 열심히 ‘이뭣고?’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우리가 이 몸뚱이를 백 가지, 천 가지 방법으로 위하고 해봤자 금방 이 몸뚱이는 허망하게 늙어가.
 
벌써 여기에 앉아 계신 분들은 대부분 흰머리가 많거나 적거나 간에 다 하나, 둘씩 이상 다 생겼을 것인데,
그 흰머리가 처음에는 곧잘 보기 싫다고 뽑아 내버리지만 나중에는 몇 해 지나가면 도저히 그놈 다 뽑다가는 대머리가 되게 생기니까 도저히 못 뽑고, 나중에는 물을 들이는데 물을 들여봤자 밑에서 하얀 것이 곧 돋아나거든.
 
얼굴에 주름살 생긴다고 여기를 째고 잡아당겨봤자, 정말 늙어서는 흉직하게 늙어간다 그말이여.
 
그 흰머리가 다른 것이 아니라 염라대왕(閻羅大王)이 
‘너 벌써 늙기 시작을 했으니 얼마 안 있으면 너를 데리러 갈테니까 정신 차려라.
죄 지은 것 있으면 참회하고, 어쨌든지 ‘이뭣고?’ 열심히 하고, 남에게 욕심내지 말고, 네게 있는 것을 턱턱 털어서 보시도 많이 하고 그렇게 해서 황천에 올 때에는 가벼운 몸으로 오너라.
 
탐욕심을 잔뜩 탐욕심을 해봤자 너 죄만 짊어지고 오지, 하나도 가지고 오지도 못할 걸, 뭐하러 그렇게 오그려 쥐고,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도 그리고도 만족할 줄을 모르고 한없이 그렇게 죄만 퍼 짓느냐?’
염라대왕이 우리에게 보낸 편지다 그거여, 편지.
 
여러분 「지장기도 오늘 회향일을 맞이해서 깨끗이 과거에 지은 죄를 참회하고 앞으로 남은 여생에 죄짓지 않고 열심히 ‘이뭣고?’ 하겠습니다」하는 뜻으로 참회진언(懺悔眞言)을 외우면서 연비(燃臂)를 받으시겠습니다.(연비 준비하세요)
 
참회진언을 하고 연비를 받아서 과거 무량겁에 지은 우리의 죄는 깨끗해졌습니다.
새 마음, 새 몸으로 오늘 새로 태어났습니다.
 
새로 태어난 몸으로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면 우리는 내일엔 오늘과 다르고, 모레는 오늘과 달라서 점점 젊어지고 점점 이뻐지고, 점점 착해져서 다른 사람이 우리를 볼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볼 때 옛날에 미웠던 사람이 하나도 미운 생각이 없어지고 옛날에 원수로 여겼던 사람이 하나도 웬수로 보이지를 않고 모두가 다 한 식구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상에 극락정토(極樂淨土)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중생이 업(業)의 눈으로 보니까 이 사바세계가 악토(惡土)요 악세(惡世)요 고토(苦土)요 예토(穢土)라고 그렇게 보지마는 부처님의 눈으로 볼 때에는 이 사바세계가 고대로 적광토(寂光土)요 극락세계인 것입니다.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온갖 열매를 맺고, 겨울에는 흰 눈이 내리는 것이 하나도 지옥세계라고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바야흐로 봄이 돌아와서 산천에 푸른 잎이 돋고 온통 울긋불긋 꽃이 피어서 문자 그대로 금수강산(山)이 되었습니다.
 
나라도 새로운 정부가 섰으니 우리도 새로운 마음으로 우리의 몸도 새로와지고 우리의 가정도 새로와지고 온 세계가 새로운 새 봄으로 새출발을 하는 그러헌 계기를 우리는 오늘로서 마련을 합시다.(19분41초~61분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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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다생원채기어친~’ ;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預修十王生七齋儀纂要)』 (大愚集述) 제13 소청명부편(召請冥府篇) 게송 참고.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유루법(有漏法) ; 번뇌의 더러움에 물든 마음 상태, 또는 그러한 세계. 온갖 번뇌와 망상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차별이나 분별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사제(四諦) 가운데 미혹의 결과인 고제(苦諦)와 그 원인인 집제(集諦)에 해당하는 모든 현상.
*유위법(有爲法) ; ① 온갖 분별에 의해 인식 주관에 형성된 현상. 분별을 잇달아 일으키는 의식 작용에 의해 인식 주관에 드러난 차별 현상. 인식 주관의 망념으로 조작한 차별 현상.
② 여러 인연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모든 현상. 여러 인연으로 생성되어 변해 가는 모든 현상. 인연의 모임과 흩어짐에 따라 변하는 모든 현상.
*무위법(無爲法) ; (산스크리트어: asaṃskrta-dharma) 무위법은 무위의 세계, 즉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진리의 세계의 모든 개별 존재(법·法)를 통칭한다. 또는 그러한 개별 존재(법·法)를 가리킨다.
원래 무위 혹은 무위법은 열반(涅槃)의 다른 명칭.
*무루(無漏) ; 마음과 몸을 괴롭히는 번뇌에서 벗어남.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마음 상태. 번뇌가 사라진 경지.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무연자비(無緣慈悲) ; 무조건의 자비(慈悲). 상대의 어떤 것도 묻지 않고, 일체 평등으로 구제하는 자비심. 일체 평등의 이치를 깨달아 상대의 상(相:모습)을 가리지 않고 행하는 자비.
무연(無緣)이란 진여평등(眞如平等)의 이치를 깨달아 중생의 본체(本體)가 허망하다는 것을 알고 일으키는 자비.
*무주상(無住相) ; 집착함이 없는 모습. 집착함이 없는 상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대승불교도들의 실천덕목 중 하나. 상(相)에 머뭄(住)이 없는(無) 보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말한다.
무주상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05~106에서.
(46)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한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참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둘 아닌 것이 한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참고] [금강경오가해]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p141~145, [금강경오가해 설의-육조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p101~104.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또 수보리야, 보살은 법(法)에 응당히 머문 바 없이 보시를 할지니, 이른바 색(色)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상(相)에 머물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상(相)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육조 스님 해의解義)
부차(復次)라 한 것은 앞을 이어서 뒷말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범부(凡夫)의 보시는 다만 아름다운 외모와 오욕의 쾌락을 구하는 고로, 그 과보가 다하면 곧 삼악도(三惡途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므로,
세존께서 크나큰 자비로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를 행하도록 가르치시니,
아름다운 외모나 오욕(五欲)의 쾌락을 구하지 않고, 다만 안으로는 인색한 마음을 없애고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 이와 같이 상응(相應)하는 것이 ‘색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色布施)’이니라.

무상(無相)의 보시를 한다는 것은, '보시한다'는 마음도 없고, 베푸는 물건도 없으며,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相布施)'라 하느니라.

보살이 보시(布施)를 행할 때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면 그 얻는 복이 시방(十方)의 허공과 같아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일설에 '보(布)'란 '普(넓다)'요, '시(施)'란 '散(사방에 흩어버린다)'이니, 가슴 가운데 있는 모든 망념·습기·번뇌를 널리 흩어버려 사상(四相)도 끊어지고 마음에 전혀 쌓여 있지 않는 것이 '참 보시(眞布施)'라 하며,
또 일설에는 '보(布)'란 '普'니 육진 경계(六塵境界)에 머물지 않으며 유루(有漏)의 분별도 하지 않아 오직 항상 청정한 데 돌아가서 만법(萬法)이 공적(空寂)함을 요달함이니라.
만약 이 뜻을 요달하지 않으면 오직 온갖 업(業)만 더하므로 모름지기 안으로 탐애(貪愛)를 없애고 밖으로 보시를 행해서 안밖이 상응하여야 무량한 복을 얻게 될 것이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보아도 그 허물을 보지 않아서 자성(自性) 가운데 분별을 내지 않음이 '이상(離相)'이 되느니라.
가르침에 의해 수행해서 마음에 능소(能所)가 없는 것이 곧 선법(善法)인 것이라. 수행인이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선법이라 할 수 없고, 능소심(能所心)이 멸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치 못하니,
순간순간 항상 반야지혜를 행하여야 그 복이 무량무변한 것이니라.

이같은 수행에 의지하면 일체 인천(人天 사람과 하늘신)의 공경하고 공양함이 따르니 이것을 복덕(福德)이라 하도다.
항상 부주상보시(不住相布施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보시)를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면 그 공덕이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배은망덕(背恩忘德) ; 남에게 입은 은덕을 저버리고 배신하는 태도가 있음.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내생(來生) ; 죽은 후에 다시 맞이한다는 미래의 삶.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예수재(預修齋) ; 살아 있는 동안에 미리 재(齋)를 올려 죽은 후에 극락에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의식.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지장보살(地藏菩薩)석가모니불의 입멸 후 미륵보살이 성불할 때까지, 곧 부처가 없는 시대에 중생을 제도한다는 보살로, 그는 모든 중생이 구원을 받을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보살이기 때문에 대원본존지장보살(大願本尊地藏菩薩)이라고 한다.
특히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에 사찰의 명부전(冥府殿)에 본존(本尊)으로 모신다.
보통 삭발한 스님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한 손에는 지옥의 문이 열리도록 하는 힘을 지닌 석장(錫杖)을, 다른 한 손에는 어둠을 밝히는 여의보주(如意寶珠)를 들고 있다.
지장보살은 고통받는 이들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윤회의 여섯 세계, 즉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에 상응하는 6가지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팔만지옥(八萬地獄) ; 중생이 지닌 팔만사천의 번뇌로 생기는 여러 가지 괴로움을 지옥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살가죽을 벗겨 불 속에 집어넣거나 쇠매〔鐵鷹〕가 눈을 파먹는 따위의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함.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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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 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
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진묵겁(塵墨劫) ; 티끌이 쌓여 먹(墨)이 될 만큼의 오랜 시간.
*비로자나(毘盧遮那) ;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는 뜻으로, 부처의 진신(眞身)을 이르는 말. 비로자나는 진리 그 자체인 법신을 형상화한 것. 
*법신불(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즉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무명(無明) : [범] avidya 「어리석은 마음」 「어두컴컴한 마음」을 이름.
<기신론(起信論)>에 는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법계(法界)의 참 이치에 어둡게 된 맨 처음 한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이 근본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거나 거칠거나 한 온갖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하였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를 의인화한 부처.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법희선열(法喜禪悅) ;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따르는 기쁨과 선정(禪定)에 들어가 마음이 즐거운 것.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참회진언(懺悔眞言) ; 죄업(罪業)을 참회하는 진언.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연비(燃臂) ; 불교에서 수행자가 계(戒)를 받을 때, 팔뚝에 향이나 심지로 불을 놓아 뜨는 의식 또는 그 자국.
*극락정토(極樂淨土) ; 산스크리트어 sukhāvatī  아미타불이 살고 있다는 청정한 국토로, 서쪽으로 10만억 불국토를 지나 있는데, 괴로움이 없고 지극한 즐거움만 있는 세계. 안락(安樂), 안양(安養), 서방정토(西方淨土)라고도 한다.
*악세(惡世) ; ①혼탁하고 악한 세계. ②불법(佛法)이 쇠퇴하여 수행자도 깨달음을 이루는 자도 없는 말세(末世).
*예토(穢土) ; ①중생들이 사는 세계. ②번뇌와 망상으로 가득찬 고해(苦海)인 사바세계.
*적광토(寂光土) ; (=常寂光土) 항상(常) 변하지 않는(寂) 광명(光)의 세계(土). 법신불(法身佛)이 머무르는 정토(淨土)나 빛나는 마음의 세계를 이르는 말이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