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 화두는 의심(疑心)입니다 / 참선은 불교의 팔만대장경을 다 추리고 간추려서 골수만 뽑아서 만들어 놓은 수행 방법.

화엄경에 있는 말씀이건, 법화경에 있는 말씀이건, 금강경에 있는 말씀이건, 그러헌 데에 써 있는 것을 보고 알거나, 남한테 듣고 아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많이 보고, 많이 듣고 알고 있는 그러한 것은 하나도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한 것을 알고 있다고 해서 자기는 불교를 참 많이 알고 있다고 자랑하실 분이 있다면은 그 생각을 버리셔야 합니다.


될 수 있으면 빨리 공부를 성취하고자 하거든, 그동안에 보고 듣고 알고 하는 것은 전부 다 버려야 합니다. ‘버린다’고 하는 것이 다른 게 아니라, 다못 그런 생각이 나더라도 버릴려고 하지 말고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화두만 들어 버리면 저절로 버려지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13)(참선법E)-76년 1월 관음재일 법문(76.01.24.음) (용013)


 

 

 약 13분.


용맹심(勇猛心), 분심(憤心), 아까 처음에 신심(信心)이 있는 사람에게는 분심과 용맹심이 없을 수가 없고, 그것이 있어야 그 다음에 이 ‘이뭣고?’ 화두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화두는 의심(疑心)입니다. 의심!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하고 의심하는 거여.

‘이뭣고?’ ‘이뭣고?’하니까 처음 듣는 분은 「이뭣고」가 무엇인가? 그러시겠지마는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그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 뭣고(이뭐꼬)?’ 이거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자(字)지만은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거든.

'사투리'지마는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이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아무리 서울의 본토박이라 하더라도 이 참선할 때에는 불가불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뭣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그러면 「이것」이란 게 뭐냐? “엄마!” 부르면 “왜?” 하고 대답할 줄 알고, “옥자야!” 하면 “예!” 하고 대답할 줄 알고, 또 듣기 싫은 욕하면 성낼 줄 알고, 꼬집어 뜯으면 아픈 줄 알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알고,
여기 앉아서도 서울 일이 환하고, 서울역을 생각하면 서울역이 환하고, 또 대전을 생각하면 대전이 환하고, 또 20년 30년 전 어릴 적 일을 생각하면 그때 일이 환하지 않습니까?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때리면 아플 줄 알고, 이 몸뚱이는 차를 타야 가고 걸어가야 가고 또 비행기를 타야 갈 수가 있고 배도 타야 하지마는, 이놈은 뭘 타고 가는 것이 아니거든.
가만히 앉아서도 퍼뜩 번갯불보다도 더 빨리 갔다 올 수도 있고, 아무리 비행기가 빠르다 해도 10년 전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 현재 과학으로는.

그렇지마는 이놈은 10년 전도 갔다 올라면 갔다 오고, 50년 전도 갔다 올라면 갔다 오고, 앞으로 10년 뒷일도 생각할라면 생각하고, 백년 뒷일도 생각할라면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이놈은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종횡자재(縱橫自在)입니다.

이렇게 조화(造化) 무쌍(無雙)한 놈이 우리의 몸뚱이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놈이 어디에 있는가는 알 수 없지마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 그러한 조화 무쌍한 그런 놈이 있어요.

그것을 보통 ‘그것이 무엇이냐? 마음이지, 그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다 대답하시겠지마는 그건 다 들은 풍월로 하시는 말씀이라, 이 참선하는 데에는 들어 가지고 아는 것은 다 소용이 없습니다.
화엄경에 있는 말씀이건, 법화경에 있는 말씀이건, 금강경에 있는 말씀이건, 그러헌 데에 써 있는 것을 보고 알거나, 남한테 듣고 아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이 참선하는 데에는 다 싹 쓸어서 다 잊어버리고, 다 버리고서 참선을 하셔야 합니다.

많이 보고, 많이 듣고 알고 있는 그러한 것은 하나도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한 것을 알고 있다고 해서 자기는 불교를 참 많이 알고 있다고 자랑하실 분이 있다면은 그 생각을 버리셔야 합니다.

깨끗이 다 씻어 없애 버리고 금방 갓난애기가 아무 생각 없듯이, 그러한 갓난애기와 같은 순진무구한 마음으로 다못 ‘이것이 무엇인고...?’ ‘이 무엇고...?’ 이렇게만 해 가셔야 됩니다.

이것을 '마음'이니 '성품'이니 그것이 '자성불'이니 그런 생각 여기다 붙여서는 안 됩니다.
일체 그러한 이론적으로 따져서 알려고 하고, 이리저리 더듬고 이리저리 비교하고, 무슨 경전에서 본 말씀을 여기다가 참조를 해서 비교해 보고, 그러한 것은 중생의 ‘알음알이’라 이 공부에는 하등의 효과가 없습니다. 오히려 공부를 가로막는 병에 지내지 못합니다.

될 수 있으면 빨리 공부를 성취하고자 하시거든, 그동안에 보고 듣고 알고 하는 것은 전부 다 버려야 합니다.

‘버린다’고 하는 것이 다른 게 아니라, 다못 그런 생각이 나더라도 버릴려고 하지 말고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화두만 들어 버리면 저절로 버려지는 것입니다.
버리는 방법이 몸에 있는 것은 자꾸 손으로 집어 던지면 되겠지만, 이것은 뭐 손으로 던질 수도 없는 것이고, 던질라고 생각냈다 하면은 벌써 던질라고 하는 망상이 하나 더 생겨날 따름입니다.

그래서 던지는 묘방은 다른 게 아니라, ‘이뭣고?’해 버리면 던져지는 거예요. 「판치생모」하시는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이뭣고」하시는 분은 ‘이 뭣고~?’
무슨 근심스러운 생각이 나면은 바로 그 생각 버리지 말고 ‘이뭣고?’하면 버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근심스러운 일이 있거나, 또는 억울한 말을 듣고 성이 나거나, 무슨 기쁜 일을 당하거나,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엇을 듣거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이렇게 자기에게 주어진 화두를 들고 또 들고, 들고 또 들고 하는데, 입으로는 들고 있으면서 속으로는 번개보다도 더 빨리 딴 생각이 침범해 들어오기 마련입니다. 들어온 줄 알면 ‘이뭣고~?’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그렇게 하시다 보면은 나중에 차츰차츰 익어지게 되어서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되어지는 때가 옵니다.

그런 때는 몸도 가볍고 머리도 개운해서 아주 그렇게 상쾌하고 조용하고 기분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마는 그렇다 하더라도 절대로 기뻐하는 마음을 내서는 안 됩니다.
기뻐하는 마음 내면은 벌써 그것이 기쁜 마군(魔軍)이가 쳐들어와 있는 것이 되기 때문에 기뻐하는 마음을 내지 말고, 계속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렇게 공부가 잘 될수록에 화두를 더욱 간절히 들어야 됩니다.

마냥 한번 잘 되기 시작하면 계속 잘 되면 참 좋겠는데, 내동 어제까지 잘 되던 것이 뚝 변해 가지고 영 안 되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무릎이 아프고, 몸이 무겁고, 가슴이 답답하고, 골치가 띵하고 해서 도저히 공부가 안 됩니다. 그 안 된다고 해서 짜증을 내서는 아니 됩니다.

그렇게 몸이 무겁고 지루하고 그럴 때에는, 그러고 가슴이 답답하고 그럴 때에는, 조용하니 일어나서 밖으로 맑은 공기를 쏘이면서 왔다갔다 포행(布行)을 좀 하면은 가슴도 후련해지고 머리도 개운해지고 몸도 좀 가벼워지면, 그러면 또 가서 방석에 앉아서 또 하시고, 이렇게 해서 그 고비를 지혜스럽게 잘 달래서 그 고비를 넘어야 합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몸이 무겁고 지루하고 한 것은 마장(魔障)이 붙어서 공부가 잘 안 될라고 그런 게 아니라, 공부가 한 계단 올라설려고 그러한 상태가 나온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가 높은 산을 오를 때에, 마지막 봉우리에 올라 설 때에는 매우 다리가 아프고 답답하고 숨이 가쁘고 그러지마는 그 고비 넘겨 놓고 나면은 그 다음부터서는 수월하게 내리막길이 나오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이 공부도 잘 되어 가다가 또 답답하고 안 되어 가다가, 그러다가 또 그 고비를 어떻게 해서 넘기면은 또 그 다음에 잘 되다 그것을 수십 번, 수백 번 그런 고비를 넘고 또 넘어야 됩니다.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열심히 공부를 하게 되면은 나중에는 밥 먹을 때에도 저절로 화두가 들어지고, 똥 눌 때도 들어지고, 걸어가고 일할 때에도, 이 화두를 좀 그만 두고 딴 생각을 할려고 해도 화두가 나타나 가지고 딴 망상이 일어나지 않게 되고, 심지어는 잠을 잘 때 꿈속에서도 이 화두가 들어지게 됩니다.

저녁에 잘 때도 눈을 감고 화두를 들고서 잠이 들 때까지 계속 ‘이뭣고..?’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이렇게 화두를 들면서 누워 있으면은 언제 잠이 온 줄 모르게 잠이 들게 됩니다.
그래 가지고 아침에 눈을 딱 뜨면은 기분에는 한 10분 누웠다 일어난 것 같은데, 시계를 보면은 대 여섯 시간 이렇게 자져 갖고 있단 말씀이에요.

그래 아침에 눈을 딱 뜨는데 새로 화두를 들지 않아도 엊저녁에 들던 그 화두가 고대로 딱 들어져 갖고 있다 그 말이에요.

이러한 지경에까지 오도록 열심히 열심히 하시면은 그 가운데에 무량겁으로 지어온 갖은 팔만사천 가지 업장(業障)은 그 속에서 다 녹아지게 되고, 그러기 때문에 견성성불(見性成佛)하고 육도윤회를 면하는 생사해탈(生死解脫)하게 되는 거예요.

이것은 불교의 팔만대장경을 다 추리고 간추려서 골수만 뽑아서 만들어 놓은 수행 방법이라고 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믿고 고대로 하셔야 됩니다.

그렇지 아니한다고 하면은 무엇 때문에 조실스님께서 팔십 고령(高齡)에 이르도록 가만히 당신 공부하시고 조용히 지내시면은 편하실 텐데, 팔십 고령에 혈압은 그렇게 200이 넘나드시면서 여러분들을 위해서 그 피를 토하는 그러한 간곡한 고구정녕(苦口丁寧)한 법문을 마지막 열반하신 날까지 그렇게 해주실 까닭이 없지 않습니까?

이 법이 그만큼 중요하고 그렇게 여러분들의 생사해탈하는 데에 유일한 묘방(妙方)이기 때문에 마지막 이 사바세계를 하직하신 그날까지 그렇게 간곡히 말씀을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한 큰스님의 법은(法恩)을 갚는 길은 오직 여러분 자신들이 조실스님의 법문(法門)에 의지해서 열심히 공부하시는 길 (법문 끊김) ...묘한 길이 되는 것입니다.(31분16초~44분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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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맹심(勇猛心) ; 용감하고 사나운 마음.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종횡자재(縱橫自在) ; 자기 마음대로 행함.
*조화(造化) ;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신통하게 된 일. 또는 일을 꾸미는 재간.
*무쌍하다(無雙--) ; 서로 견줄 만한 짝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판치생모(板齒生毛), 무자(無字) 화두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내동 ; ‘일껏(모처럼 애써서)’의 사투리.
*포행(布行) ; 스님들이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한가로이 뜰을 걷는 일.
*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말. [참고]헤살;남의 일이 잘 안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 정•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묘방(妙方) ; 신묘하고 효험이 뛰어난 처방(處方).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Posted by 닥공닥정
하안거 해제 백종2014. 8. 16. 18:14

§(398) (게송)수류상출몰~ / 우란분재(盂蘭盆齋) / 자자일(自恣日) / 몽산 스님 법문 / 부처님의 유산과 제석천왕의 호법 원력(願力).

보살은 일체 생사, 육도법계에 자유자재로 왕래하되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중생은 간 곳마다 얽매이고 집착하고 새로운 업을 짓고, 이러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용화사는 전강 조실스님께서 이 사바세계를 하직하신지 벌써 16년이 지났습니다마는, 비록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육신(肉身)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지마는 조실스님의 그 법신(法身)은 항상 이 도량에 우리는 모시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또 법문을 언제든지 듣고 싶을 때, 녹음을 통해서 그 육성을 생생하게 들을 수가 있습니다.


수행승(修行僧)들을 위해서 제석천왕(帝釋天王)은 부처님께 맹세하시기를 ‘그분들의 어떠한 허물이라도 허물을 보지 않고, 모든 의식주를 책임지고 잘 받들겠습니다.’ 이렇게 맹세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깊은 산중에서 아무 준비도 없이, 가서 공부를 하더라도 그 수행승은 굶어 죽는 법이 없습니다.


**송담스님(No.398) - 1989년 하안거 해제·백일기도 회향·백종법회. (용398)

 

(1) 약 14분.

 

(2) 약 14분.


(1)------------------

수류상출몰(隨流常出沒)한데  불체왕래종(不滯往來蹤)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두두무취사(頭頭無取捨)하고  처처절소친(處處絶疎親)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수류상출몰(隨流常出沒)한데  불체왕래종(不滯往來蹤)이다.
흐름을 따라서, 인연을 따라서, 항상 여기서 났다가 저기서 죽고, 저기서 났다가 여기서 죽어.
그런데 불체왕래종(不滯往來蹤)이요. 왔다갔다한 자취에 막히지 아니 해, 걸림이 없어.

두두무취사(頭頭無取捨)요  처처절소친(處處絶疎親)이다.
모든 것에 취하고 버릴 것이 없으며, 곳곳마다 어디를 가건 성글고 친함이 끊어졌어.

이것은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한 보살(菩薩)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육도법계(六道法界)를 자유자재로 왕래하는 그러한 모습을 밝힌 게송(偈頌)입니다.

우리 중생은 여기서 나고 저기서 죽는 것이, 순전히 자기가 지은 업(業)에 의해서 조금도 자유가 없이 업에 끌려서 육도(六道)를 윤회(輪廻)하고, 오가는데 자유가 없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얽매이고 집착하고, 그러는 가운데 새로운 업을 또 지은 것입니다.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을 대하면 취하고 버릴 것이 있고, 어디를 가든지 미운 사람이 있고 예쁜 사람이 있고, 친한 사람이 있고 소원(疎遠)한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보살은 일체 생사, 육도법계에 자유자재로 왕래하되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중생은 간 곳마다 얽매이고 집착하고 새로운 업을 짓고, 이러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기사년 음력 7월 15일 여름 하안거 해제 법요식, 백일기도 회향 법요식,
그리고 우란분재(盂蘭盆齋)—아귀도나 지옥도에 빠져서 무서운 벌을 받고 있는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 광겁부모(曠劫父母)를 그 지옥고(地獄苦)로부터 구제하는 그러한 참 뜻깊은 법요식을 거행하는 날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용화사 법보선원 대중(大衆), 용주사 중앙선원 대중, 천안 광덕사 태화선원 대중, 또 의정부 회룡선원, 전주 위봉사, 그 밖에 전국 방방곡곡에서, 토굴에서 또는 암자에서, 여름 석 달 동안을 더위를 무릅쓰고 가행정진·용맹정진한 선객(禪客) 스님들이 해제 법요식에 참석을 했습니다.

이 해제(解制)날을 ‘자자일(自恣日)’이라 그러는데 이 자자일의 행사는 부처님 제세시 때부터 아주 엄숙하게 거행한 그러한 날입니다. 스스로 자(自)자, 물을 자(恣)자, 자자일(自恣日).

석 달 동안 안거하는 동안에 대중 법규를 어긴 일이 있는가? 또 출가 사문(沙門)으로서 계율을 어긴 일이 있는가? 대중을 괴롭히는 일이 있는가? 청정하지 못한 어떤 행위가 있었는가?
이러한 것을 부처님으로부터 또 부처님 제자 백 명이면 백 명, 천이백오십 명이면 천이백오십 명이 부처님부터 시작해 가지고 차례차례 호궤합장(互跪合掌)을 하고 대중에게 묻는 것입니다.

‘석 달 동안 출가 수행인으로서 규칙을 어기고 대중을 괴롭히는 그러한 일이 있으면, 자비로서 기탄(忌憚)없이 지적해 주십시오.’ 이렇게 해서 대중에게 물으면, 대중이 아무 말이 없어. 다시 한번 또 해.

이렇게 해서 대중 가운데 ‘아무 때 어디에서 이러이러한 행동을 보았는데, 그것은 출가 사문으로서 성스러운 일이 아니니 그것을 고쳐주시기 바래오.’ 이렇게 말하면 그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그 말을 받아들여서 그걸 또 참회(懺悔)하고,
이렇게 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빠짐없이 다—대중이 많을 때에는 새벽녘께 까지도 그러한 행사가 계속이 되었다고 원시경전(原始經典)에 전해옵니다. 이 행사는 매우 엄숙하고도 뜻깊은 행사였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자기 잘못을 참회하고 반성하고, 도반(道伴)을 위해서 자비로서 충고하고,
그리고 나아가서는 석 달 동안에 공부해서 이러이러한 깨달음을 얻었으면 그 얻은 바에 대해서 또 부처님께 여쭙고, 또 인가를 받고, 잘못되었으면 거기서 새로운 길을 지도를 받고, 얼마나 참 엄숙하고 경건한 그러한 뜻깊은 법요식이였던 것입니다.

방금 녹음을 통해서 갑인년,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이고 그 해 12월 초이튿날 전강대선사(田岡大禪師)—용화선원의 조실스님께서 그날 설하신 법회 광경이 잠시 나왔었습니다.
그날도 해제 법요식 날이라, 신도들로 하여금 목련가(目連歌)라고 하는 노래를 합창을 시키신 것이 녹음에 나왔습니다. 그날의 광경이 너무도 눈에 선합니다.

조실스님께서는 법요식 때 찬불가 이런 걸 많이 직접 손수 가리켜서 합창을 하게 하시고 그랬습니다.
오늘 우리의 눈으로는 조실스님을 직접 친견하기가 어렵고, 오직 저 영단에 진영(眞影)을 통해서 우리는 조실스님의 존안(尊顔)을 살필 수가 있고, 그 음성은 녹음 법문을 통해서 우리는 생시와 똑같이 법문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용화사는 조실스님께서 이 사바세계를 하직하신지 벌써 16년이 지났습니다마는,
비록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육신(肉身)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지마는 조실스님의 그 법신(法身)은 항상 이 도량에 우리는 모시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또 법문을 언제든지 듣고 싶을 때, 녹음을 통해서 그 육성을 생생하게 들을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용화선원에서는 항상 조실(祖室)로 이렇게 모시고, 우리는 모든 법요식도 거행하고, 우리의 수도 생활도 그렇게 진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지금 이 법당에서 우리 사부대중이 이렇게 모여서 해제 법요식을 거행하고 있는 것을 역력히 법안(法眼)으로 보고 계실 줄 나는 믿는 것입니다.

삼천년 전에 부처님께서 열반하셨지마는 삼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앞으로 56억 7천만 년뒤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하실 때까지 이 사바세계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교주(敎主)로 모시고, 우리는 수행을 해 가고 받들어 나가는 것입니다.(처음~13분40초)

 

 

 



(2)------------------

오늘 해제 법요식을 맞이해서 여러 선방에서 공부하시던 선객 스님네들이 이렇게 많이 이 자리에 참석을 하셨습니다.
다 마음으로 어느 선방에서 공부를 하던지 전강 조실스님의 법을 믿고 수행하는 분들은 항상 전강 조실스님을 조실로 모시고 그렇게 정진을 하고, 녹음을 통해서 조실스님의 육성을 들으면서 정진을 해 오셨을 것입니다.

‘석 달 동안 과연 얼마만큼 열심히 정진을 하셨는가?’ 결제를 하실 때에는 몽산(蒙山) 스님께서 설하신 바와 같이,

‘만약 이 선방에 방부을 드리고 같이 이렇게 정진을 하고자 한 사람은, 세상에 모든 인연을 버리고—집착심, 전도된 생각 그런 것을 다 제거해 버리고, 진실로 생사대사(生死大事)를 위해서 이 선원의 법도와 규칙을 순응하고 적응하면서 모든 인사(人事)를 다 끊어 버리고,
밥이면 밥, 죽이면 죽, 반찬이 짜면 짠대로 싱거우면 싱거운대로 수용(受用)하는 것은 인연 따라서 하고, 삼경(三更)을 제외하고는 일체 수면(睡眠)을 허락치 말 것이며, 일주문(一柱門) 밖에 외출을 허락치 말 것이며, 신도가 혹 청(請)하더라도 나가지 말 것이며,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기 전에는 경(經)도 보지 말 것이며, 대중적으로 하는 반야심경이나 금강경 같은 경을 대중적으로 독경 할 때를 제외하고는 일절 경도 보지 말 것이다. 이와 같이 3년을 정진을 해 가지고 그러고도 견성(見性)을 하지 못하면 산승(山僧)이 대중을 너희들을 대신해서 지옥에 가겠다.’

몽산 스님께서는 정말 이렇게 간곡한 법문을 대중에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 용화선원이나 용주사 중앙선원이나 또 광덕사 태화선원 대중, 회룡사 대중, 위봉사 대중 그 밖에 윤필암이나 다 전강 조실스님을 신(信)하는, 조실(祖室)로 모신 그런 선원의 대중들은 다 이와 같이 여법(如法)하게 철저하게 그렇게 정진들을 해 왔습니다.

그렇게 정진들을 하고 오신 대중스님들을 나는 아까 인사를 했습니다. 그 눈에는 샛별처럼 빛나는 살아있는 맑은 그러한 눈동자였습니다.

그러한 수행 스님네께 공양(供養)을 올림으로써 백가지 과일과 음식으로 공양을 올림으로 해서,
목련존자(目連尊者)는 아귀도(餓鬼道)에 빠져서 벌을 받고 있는 어머니 청제(靑提)부인을 천도(薦度)해서 천상에 태어나게 한 그날이 바로 음력 15일 날인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잘 아신 바와 같이 목련존자는 부처님 10대 제자(十大弟子) 가운데에 신통(神通)이 제일인 대아라한(大阿羅漢)입니다.
그러한 신통력으로서도 아귀도에 빠져서 고을 받고 있는 그 어머니를 건져내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어머니를 어떻게 하면은 천도해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간절히 여쭈니까,
부처님께서 ‘백가지 과일과 정성스런 음식으로써 해제날 7월 15일날 해제 때 모인 대중스님네께 공양을 올릴 지니라, 그러면 그 공덕으로 너의 모친을 천도 할 수가 있느니라.’
이러한 말씀이 우란분경(盂蘭盆經)·목련경(目連經)에 소상하게 다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오늘 백중날을 기해서 이렇게 청신사·청신녀들이 법당에 가득하고, 앞뜰에도 가득하고, 아래층에도 가득 모이셨습니다.

이 자리에는 우리 법보단(法寶壇) 만년위패(萬年位牌)에 모신 우리의 선망부모 또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마는 이 용화사 창건 이래로 오늘날까지 시주(施主)하시고 화주(化主)하신 모든 영가(靈駕)들,
그리고 지옥·아귀도에서 고(苦)을 받고 있는 우리의 선망부모, 우주법계의 유주무주(有主無主)의 애혼(哀魂) 영가들이 다 법(法)으로 초청이 되어서—아까 거량(擧揚)을 통해서, 이 법요식에 정식으로 초빙이 되어서 편안히 앉아 계십니다.

우리 사부대중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선망부모도 다 이 자리에 여법하게 와서 초빙을 받아 가지고, 따악 앉아서 법문을 듣고 계시고, 또 법요식에 의해서 천도를 받을 것이고,
또 이 영단(靈壇)에 차려진 백가지 과일과 음식을 잘 공양을 잡숫고, 그 동안에 목마르고 배고프면서 그 견디기 어려운 무서운 지옥고를 받다가 오늘 지옥문이 열려서,
이 자리에 정식으로 오셔서 공양을 받고 생사(生死) 이고득락(離苦得樂)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뜻깊은 날인 것입니다.

살아있는 우리 사부대중은 석 달 동안 공부를 마치고 이렇게 모여서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듣고, 또 여러 회상(會上)에서 각기 모다 정진을 하다가 해제를 마치고 한 도량에 모여서 도반들 반갑게 인사하고 손을 잡고,
이것도 고향을 등지고 청춘을 버리고 세속의 모든 영욕(榮辱)을 다 버리고서 출가한 사람으로서 이렇게 해제 때 도반을 만난 그 기쁨은 무어라고 표현할 수가 없을 만큼 반가운 것입니다.

도반 가운데에는 공부를 해서 깨달음을 얻은 분도 계실 것이고, 깨닫지는 못했어도 정진에 힘을 얻은 분도 있을 것이고,
앞으로 결정코 깨닫기를 위해서 밤잠을 안 자고, 용맹정진(勇猛精進)·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던 그러한 청풍납자(淸風衲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수행승(修行僧)들을 위해서 제석천왕(帝釋天王)은 부처님께 맹세하시기를 ‘그분들의 어떠한 허물이라도 허물을 보지 않고, 모든 의식주를 책임지고 잘 받들겠습니다.’ 이렇게 맹세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깊은 산중에서 아무 준비도 없이, 가서 공부를 하더라도 그 수행승은 굶어 죽는 법이 없습니다.
제석천왕이 시켜서라도 어느 신심 있는 신도가 반드시 식량을 갖다 드리고 옷을 갖다 드리고, 그렇게 해서 삼천년을 내려오면서 수행하다가 굶어 죽었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보지를 못했습니다.

여러분들이 혹 어디 선방에 대중공양을 가더라도 물론 여러분 자신의 신심(信心)으로 가시지만,
반드시 여러분의 그 신심에 불을 붙이고 가도록 하는 데에는 그런 옥황상제(玉皇上帝), 위태(韋駄) 호법선신(護法善神)의 그러한 계시가 있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말세(末世)에 그 불제자(佛弟子)들, 수행하는 그 제자들을 위해서 20년 또는 40년 부처님 자신이 수용하실 것을 유산(遺産)으로 물려주신 것입니다.

부처님 살아계실 때는 보통 다 백 세를 살 수 있는 정명(定命)을 탄 때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부처님이시기 때문에 특별히 20년을 더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머무르실 수가—당신이 머무르려고 마음만 먹으면 머무르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마는,
말세 제자들을 위해서 그렇게 40년 동안 수용하실 것을 유산으로 물려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불제자들은 그러한 부처님의 유산과 제석천왕의 원력(願力)과 또 여러 청신사·청신녀들의 신심으로 아무 먹을 것, 입을 것 걱정없이 오직 정진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밤잠을 안 자고 젊음도 청춘도 명예도 권리도 다 버려 버리고 목숨 바쳐서 도를 닦는 것입니다.

그러한 불제자, 수행승을 위해서 공양을 올린 공덕이 그렇게 장해서 그 공덕으로 지옥고를 받는 선망부모를 천도하고 제도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처음~27분5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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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隨流常出沒  不滯往來蹤’ ; [천성광등록(天聖廣燈錄)] 卷25, 처인선사(蘄州靈泉山處仁禪師) 참고.
*(게송) ‘頭頭無取捨  處處絶疎親’ ; [가태보등록(嘉泰普燈錄)] 제17권, 월암선과선사(潭州大溈月庵善果禪師) 참고.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보살(菩薩) :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각유정(覺有情) • 개사(開士) • 대사(大士)등으로 번역.
①성불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
②대승교에 귀의, 사홍서원을 발하여 육바라밀을 수행하며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자리 • 이타(自利 • 利他)의 행을 닦으며 51위의 수행계단을 지나 드디어 불과(佛果)를 증득하는 이.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소원(疎遠) ; 서로 사이가 두텁지 아니하고 거리가 있어서 서먹서먹함.
*우란분재(盂蘭盆齋) ; 우란분(盂蘭盆). 우란분(盂蘭盆)은 산스크리트어 ullambana의 음사로, 도현(倒懸)이라 번역.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을 받는다는 뜻. 절에서, 음력 7월 15일에 지옥이나 아귀의 세계에서 고통받고 있는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삼보(三寶)에 공양하는 의식.
『우란분경(盂蘭盆經)』에 의하면 부처님 제자 중에 신통력이 제일인 목련이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는 어머니를 구해주려고 하였으나 신통력으로도 어찌 할수 없어서,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따라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모두 모이는 하안거가 끝나는 7월 15일인 자자일(自恣日)에 삼보(三寶)에 공양하게 하여 목련의 모친을 악도에서 벗어나게 한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광겁부모(曠劫父母) ; 과거의 지극히 오랜 세월 동안 모든 우리의 부모. 선망부모(先亡父母)와 같은 말.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사문(沙門) ; 슈라마나(산스크리트어: śramaṇa, 팔리어: samaṇa)의 음역. 식(息)·근식(勤息)·정지(淨志) 등으로 번역. 여러 선법(善法)을 근수(勤修)하고, 악법(惡法)을 행하지 않으며, 심신을 조어(調御)하여 청정(淸淨)한 깨달음의 길을 지향(志向)하고 노력함을 뜻함.
①인도에서 바라문교의 「베다」 성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제종교 수행자의 총칭.
②출가하여 불문(佛門)에 들어 도를 닦는 사람.
*호궤합장(互跪合掌) ; 두 무릎을 꿇고 앉되, 무릎 위 허벅지와 상체가 수직이 되게 곧게 일으켜 세우고, 발가락은 세운 채 손은 합장을 취한 자세.
*기탄(忌憚)없이 ; 꺼림칙하거나 마음에 걸림이 없이.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〇(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원시경전(原始經典) ; 원시불교(Early Buddhism, 原始佛敎)시대에 결집된 불경. 그것은 한역(漢譯) 아함경(阿含經) 및 팔리 삼장(三藏) 등이다.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전강선사(田岡禪師) ;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음)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셨다.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 선사의 법맥을 이으셨다.
33세의 젊은 나이로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 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고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 12월 2일(음)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하시고 앉아서 열반에 드셨다.
그리고 후학(後學)을 위한 700여 개의 육성 법문테이프를 남기셨다.
세수(世壽) 77세, 법랍(法臘) 61세.
*진영(眞影) ; 주로 얼굴을 그린 초상화(肖像畫) 또는 얼굴을 찍은 사진.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법신(法身)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즉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빛깔이나 형상이 없다.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법안(法眼) ; ①모든 현상을 꿰뚫어 보는 부처님의 눈. ②오안(五眼)의 하나. 모든 현상의 참모습과 중생을 구제하는 방법을 두루 아는 보살의 눈.
*미륵불(彌勒佛) ; Maitreya. 번역하여 자씨(慈氏).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출신으로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 천인(天人)을 위해 설법•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 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세존의 교화에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석가모니세존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으로 보처(補悽)의 미륵이라 한다.
*교주(教主) ; 석가세존(釋迦世尊). ‘석가모니(釋迦牟尼)’를 높여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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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受用) ; (물건을 남에게) 받아 씀.
*삼경(三更) : 二경~四경 (밤 9시~새벽 3시)으로 불가(佛家)의 지정된 취침시간.
*일주문(一柱門) ; 사찰로 들어가는 첫번째 문으로, 한 줄로 세운 기둥 위에 맞배지붕 양식으로 되어 있음.
일심(一心)을 상징한다. 붓다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붓다의 진리를 생각하며 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견성(見性) : ‘성품(性)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목련존자(目連尊者) ;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아귀도(餓鬼道) ; 육도(六道,六途)의 하나. 재물에 인색하거나 음식에 욕심이 많거나 남을 시기·질투하는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곳으로, 늘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괴로움을 겪는다고 함.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십대제자(十大弟子) ; 석가모니의 제자 중 수행과 지혜가 뛰어난 10명을 이르는 말.
사리불(舍利弗) : 산스크리트어 śāriputra의 음사.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지혜가 뛰어나 지혜제일(智慧第一)이라 일컬음. 원래 목건련(目犍連)과 함께 육사외도(六師外道)의 한 사람인 산자야(sañjaya)의 수제자였으나 붓다의 제자인 앗사지로부터 그의 가르침을 전해 듣고, 250명의 동료들과 함께 붓다의 제자가 됨.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다.
목건련(目犍連) : 산스크리트어 maud galyāyana의 음사.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신통력이 뛰어나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일컬음. 원래 산자야(sañjaya)의 수제자였으나 사리불(舍利弗)과 함께 붓다의 제자가 됨.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다.
가섭(迦葉) : 산스크리트어 kāśyapa의 음사. 마가다국(magadha國) 출신으로, 엄격하게 수행하여 두타제일(頭陀第一)이라 일컬음. 결혼했으나 아내와 함께 출가하여 붓다의 제자가 됨. 붓다가 입멸한 직후, 왕사성(王舍城) 밖의 칠엽굴(七葉窟)에서 행한 제1차 결집(結集) 때, 그 모임을 주도함.
수보리(須菩提) : 산스크리트어 subhūti의 음사. 사위국(舍衛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공(空)의 이치에 밝아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일컬음. 그래서 공(空)을 설하는 경(經)에 자주 등장하여 설법함.
부루나(富樓那) : 산스크리트어 pūrṇa의 음사. 바라문 출신으로, 설법을 잘 하여 설법제일(說法第一)이라 일컬음. 녹야원(鹿野苑)에서 붓다의 설법을 듣고 그의 제자가 됨. 인도의 서쪽 지방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전파하다가 거기에 입적함.
아나율(阿那律) : 산스크리트어 aniruddha의 음사. 붓다의 사촌 동생으로,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에 왔을 때, 아난(阿難)·난타(難陀) 등과 함께 출가함. 통찰력이 깊어 천안제일(天眼第一) 이라 일컬음.
가전연(迦旃延) : 산스크리트어 kātyāyana의 음사. 인도의 서쪽에 있던 아반티국(avanti國)의 크샤트리야 출신으로, 왕의 명령에 따라 붓다를 그 나라로 초청하기 위해 찾아갔다가 출가함. 깨달음을 얻은 후 귀국하여 붓다의 가르침을 전파함. 교리에 밝아 논의제일(論議第一)이라 일컬음.
우바리(優波離) : 산스크리트어 upāli의 음사. 노예 계급인 수드라 출신으로 석가족의 이발사였는데, 아난(阿難)·난타(難陀)·아나율(阿那律) 등이 출가할 때 같이 붓다의 제자가 됨.
계율에 엄격하여 지계제일(持戒第一)이라 일컬음. 붓다가 입멸한 직후, 왕사성(王舍城) 밖의 칠엽굴(七葉窟)에서 행한 제1차 결집(結集) 때, 계율에 대한 모든 사항을 암송함으로써 율장(律藏)의 성립에 크게 기여함.
나후라(羅睺羅) : 산스크리트어 rāhula의 음사. 붓다의 아들.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에 왔을 때, 사리불(舍利弗)과 목건련(目犍連)을 스승으로 하여 출가함. 지켜야 할 것은 스스로 잘 지켜 밀행제일(密行第一)이라 일컬음.
@아난(阿難) : 산스크리트어 ānanda의 음사. 붓다의 사촌 동생으로,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에 왔을 때 난타(難陀)·아나율(阿那律) 등과 함께 출가함. 붓다의 나이 50여 세에 시자(侍者)로 추천되어 붓다가 입멸할 때까지 보좌하면서 가장 많은 설법을 들어서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 일컬음.
붓다에게 여성의 출가를 3번이나 간청하여 허락을 받음. 붓다가 입멸한 직후, 왕사성(王舍城) 밖의 칠엽굴(七葉窟)에서 행한 제1차 결집(結集) 때, 아난이 기억을 더듬어 가며 “이렇게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붓다께서는……”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암송하면, 여러 비구들은 아난의 기억이 맞는지를 확인하여 잘못이 있으면 정정한 후, 모두 함께 암송함으로써 경장(經藏)이 결집됨.
*아라한(阿羅漢) ;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 응공(應供)•응진(應眞)•무학(無學)이라 번역.
*우란분경(盂蘭盆經) ; 1권. 서진(西晋)의 축법호(竺法護) 번역. 목련(目連)존자가 아귀(餓鬼)의 고통을 겪고 있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구원하기 위해 세존의 가르침대로 자자일(自恣日)에 여러 부처님와 보살, 그리고 스님에게 갖가지 음식과 과일을 지성으로 공양하여 어머니를 제도하였다는 효성을 설한 경.
*목련경(目連經) ; 목련 존자(目連尊者)가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건진 일을 다룬 경문으로, 음력 칠월 백중날이면 이 경을 읽고 기도한다.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화주(化主) ; ①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주(主). 부처님를 말함. ②신도들의 집을 돌며 절에 필요한 양식·물건·비용 등의 시물(施物)을 얻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유주무주(有主無主) ; ①주인(영가를 인도해 줄만한 인연있는 사람)이 있거나 없는. ②제주(祭主)가 있거나 없는.
*애혼(哀魂) ; 애처로운, 한이 맺혀 돌아가신 영가.
*거량(擧揚) ; ①설법할 때에,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부르는 일. ②화두, 공안(公案)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고 불교의 진수(眞髓)를 말하는 것. 불법을 선양하여 사람을 인도하는 것.
*이고득락(離苦得樂) ; 괴로움을 벗어나서 즐거움을 누림.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인 법회. ②설법하는 모임. 설법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 자리.
*청풍납자(清風衲子 맑을 청,바람 풍,옷을 꿰맴 납,자식 자) ; 수행을 하여 맑은 기운을 지닌 스님을 청풍(清風)-맑은 바람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제석천왕(帝釋天王) ; 불법(佛法) 지키는 수호신. [天神]들의 제왕[] 샤크라〔釋〕라는 . 제석(帝釋), 석제(釋帝), 제석천(帝釋天), 제석왕(帝釋王), 제석태자(帝釋太子), 천주(天主)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Śakra-devānām Indra). 석제환인다라(釋提桓因陀羅) ·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 ·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 ·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 등으로 음역하고 줄여서석제환인(釋提桓因, 釋帝桓因) · 제석천(帝釋天)이라 한다.

『법화현찬(法華玄贊)』에서는 범어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에서 석가 ()씨이며 ()이라 한역하고, ‘제바 ()’이라 한역하며, ‘인달라 ()’ 한역하니  능천제(能天帝)’ 한다 뜻으로 보면 석가(능히) 제바(하늘의) 인달라(제왕)’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는데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왕으로, 사천왕(四天王)32() 통솔하면서 불법(佛法) 불제자를 보호한다. 도리천에는 33신이 있는데, 제석은  중앙에 있는 선견성(善見城) 안의 수승전(殊勝殿)이라는 궁전에 살고, 나머지 32신은  () 밖의 궁전에서 각각 산다.

제석천은 본래 인도 성전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천신  벼락을 신격화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었으나 불교에수용되어서는 범천(梵天) 함께 호법선신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상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수호하고 사바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에서는 단군의 할아버지를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하여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동일시하여 숭배하였다.

<잡아함경>에는 제석천이 본래 사람이었으나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 향과 와구(臥具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한다. 제석천왕은 신중탱화(神衆幀畵)  손에 금강저(金剛杵) 들고 머리에 보관(寶冠) 쓰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한다.

*옥황상제(玉皇上帝) ; 도가(道家)에서 ‘하느님’을 이르는 말이나, 불가(佛家)에서는 '제석(帝釋)'으로 본다.
*위태(韋駄) ; 불법을 수호하는 신으로 위태천은 사천왕 중 남방증장천왕이 거느리는 8대 장군의 하나이며, 사천왕의 부하들인 32대장을 대표하는 수령이다.
위태천(韋駄天), 위태천신(韋駄天神), 위태보살(韋駄菩薩)이라고 부르며, 조선시대에는 ‘동진보살(童眞菩薩)’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렸다.
제석천과 더불어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출가인을 보호하고 불법을 보호하는 수호신으로 부처가 세상에 나타날 때마다 먼저 설법을 청하여 언제나 부처를 오른편에 모신다고 한다. 또 불경을 간행할 때 동진보살상을 새겨넣어 경전 수호의 상징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손에는 금강저를 들고 갑옷과 봉황의 깃털로 장식한 투구를 쓴 채 미소를 짓고 있다. 24위나 39위 탱화에서는 중심축이 되며, 더러는 마혜수천이나 제석천과 함께 중심을 이루기도 한다.
*호법선신(護法善神) ; 호법신(護法神). 불교를 보호하고 지키는 신.
금강역사(金剛力士)·사천왕(四天王)·12신장(神將)·16선신(善神)·28부중(部衆) 등 불법을 좋아하며 존중하고 옹호하는 모든 천인·귀신·용왕등을 말한다.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법보재)2014. 4. 16. 01:01

§(568) 왜 화장(火葬)이 좋으냐? / 「만년위패」를 모시는 뜻 /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다 성불(成佛)하도록 우리는...

우리는 영원히 이러한 깊은 인연(因緣)으로 맺어진 인연입니다.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정법에서 물러나지 않고 최상승법을 의지해서 우리 자신도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고, 이 우주법계에 한 중생도 남음이 없을 때까지 다 성불(成佛)하도록 우리는 그 앞잡이가 되어서, 위로는 부처님을 받들고 우리는 전강 조실스님의 법을 의지해서 손에 손잡고 최상승법에 의해서 공부를 하실 것을 약속을 합시다.


**송담스님(No.568) - 96년 법보재 법회에서. (용568)

 

약 18분.

 


오늘 이 법보재를 맞이해서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는데,
장례가 땅에다가 묻는 매장(埋葬)하는 그런 법이 있고, 또 세계 어느 나라인가는 죽으면 물에다가 넣어버리는 수장(水葬)법이 있고, 또 어느 나라인가는 풍장(風葬)이라 해 가지고 숲속에다가 그대로 시체를 갖다가 두면 독수리나 그런 짐승들이 와서 그 살을 다 발라먹고, 그런 풍장이여. 바람 속에 노출시킨다 해서 풍장도 있고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화장(火葬)법을 말씀을 하셨다 그말이여. 물론 특수한 경우에 화장을 할 연료, 나무나 장작이 없을 때는 부득이해서 풀로도 덮고, 또 흙으로도 덮으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시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는 화장법을 말씀을 하셨다.
부처님 자신도 화장을 하셨고, 육조 스님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스님들이 다 화장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화장(火葬)이 좋으냐?
우리나라는 옛날부터서 일반적으로 땅에다 묻는 매장법(埋葬)을 하고 있는데, 매장법하면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이 나오게 됩니다.

저 태조산(太祖山)으로부터서 중조산(中祖山), 소조산(小祖山)으로 해서 그래 가지고 소조산 밑에 와 가지고는, 음양이 벌어져서 그래가지고 혈토(穴土)·인목(印木)해 가지고, 딱 혈(穴)이 나와 가지고,
그 산맥오는 것을 용(龍)이라 그러는데, ‘천리행용(千里行龍)에 일석지지(一席之地)다.’ 태조산으로부터 중조산, 소조산, 천리를 와 가지고 결국은 한 자리 들어갈 만큼 혈이 딱 열려있는데, 주변이 전부가 바위 덩어리라도 그 '널' 하나 들어갈 자리는 딱! 흙으로 되어있는 거여.

이렇게 하면 내가 풍수지리설을 굉장히 숭상하는것 같지마는 어려서부터 어른들한테 들어가지고, 내가 땅을 훤히 들여다보는 신안(神眼)이니, 무슨 도안이니, 법안이니, 그런 눈은 열리지 않았지만 풍수에 대한 그 상식은 알고있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 명당(明堂)을 탁! 알아가지고 쓰면, 그 집안이 대대로 내려가면서 부자 날 자리도 있고, 장군이 나올 자리도 있고, 학자가 나올 자리도 있고, 정승·판서가 나올 자리도 있고, 또 어떤 자리는 왕이 날 자리도 있다 그말이여.
또 왕비가 날 자리도 있고, 큰 부자가 나고, 또 그렇게 큰 부자는 아니더라도 아주 자손이 백자천손(百子千孫)이라, 자손이 퍼지는 그런 자리도 있다 그말이여. 조빈모부(朝貧暮富), 아침에 써 가지고 저녁에 금방 부자가 되고 그런 자리도 있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런 자리를 아무나 들어가냐?’하면 그게 아니여.
길인(吉人)이 봉길지(逢吉地)여. 복을 많이 심은 사람이 그러헌 명당에 들어가는 것이지, 돈만 많다고 해서 돈 주고 그 풍수(風水)한테 명당을 잡아가지고 쓴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여.

그 풍수 눈에는 분명히 구룡농주(九龍弄珠)‘아홉 용이 구슬을 희롱하는 자리다’하고 보고 주었는데,
복을 짓지 아니한어떻게 해 가지고는 돈은 벌었지만 아주 못된 사람이 돈 가지고 쓸라고 하면은 풍수 눈에는 분명히 용의 형국인데, 써 놓고보면 그것이 용의 자리가 아니라 구사쟁와(九蛇爭蛙)여, 아홉 뱀이 한 마리 개구리를 다투는 그런 형국도 있다 그말이여.

그러니 있던 돈, 다 탁! 털어서 먹고 온 집안이 되는 일이 없는 거여. 돈 갖고 명당쓰는 게 아니거든.

명당에 참으로 들어가고 싶으면 최소한도로 삼대(三代) 동안을 적악(積惡)을 안 해야 하고, 항상 보시(布施)를 하고 사람들한테 자비를 베풀고, 그러한 복(福)을 심은 사람이 명당에 들어가는거다 그말이여.
그래서 명당을 돈 주고 살라고 하지 말 것이며, 덮어놓고 명당에 들어가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참으로 명당에 들어가고 싶으면은 복을 심어야 한다. 풍수지리 거기에도 십계가 있는데 거기에 제1조가 그거거든. 그런 것도 모르고 명당 쓸라고 돈만 많이 퍼들이고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거든.

그리고 땅에도 불이 지나가고, 물이 지나가고, 풀과 나무뿌리가 파고 들어가고,

그래가지고 명당이라고 큰  맘 먹고 썼는데 나중에 딴 풍수가 그것 명당 아니라고 해서 파서 보면, 뱀이 들어있기도 하고, 개미가 들어있기도 하고, 풀뿌리 나무뿌리가 콧구멍·눈구멍·갈비 사이사이에 360골조를 나무뿌리가 아주 얼키고 설켜서, 해골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렇게 된 데도 있고,

또 새까맣게 탄 데도 있고, 또는 버글버글쓴 지가 몇 해 되지 않았는데 퍼석퍼석허니 벌써 흙이 다 되어버린 데도 있다 그말이여. 그러니 그러헌 흉지(凶地)에다가 써 넣으면 집안이 되는 일이 없어.


차라리 그러기보다는 부처님 법에 따라서 법문(法門)을 하면서 화장(火葬)을 해서, '재'를 갖다가 밥이나 조밥에다가 버무려서 그리고 물에다가 주면 고기들이 그걸 먹는다 그말이여.
배고픈 고기들이 먹으므로 해서  마지막 뼈까지 보시를 하는 그러한 화장법을 쓰면은자손들이 지가 지은 대로 받는 것이지, 그 묘자리 때문에 잘될 것도 없고 해(害)를 볼 것도 없다 그말이여.


요새도 대부분 명당이 다 제자리에 쏙 들어간 데는 거의가 드물고, 근처에다가 그럴싸하니 산세(山勢)가 어울어졌으니까 근처에다 이렇게 써 가지고, 아무나 못 쓴다 그말이여.
그래서 설사 근처에다 써서 그 명당 덕을 봤다 하더라도 요새 고속도로다, 또는 도시개발이다 해 가지고 맥(脈)을 다 끊어버려서 한동안 잘되어 가다 끊은 자리에 오면은 파싹 망한다 그말이여. 그러니 명당 설사 안다 하더라도 땅을 샀다 하더라도 꼭 믿을 것이 못돼.

서울이 육백 년 전에 그 서울을 정해 가지고 무학대사니, 무슨 정도전이니, 그때 뭐 잘 보는 사람들이 경복궁을 잡아가지고 다 했는데, 이조 오백 년 동안에 그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고, 형이 동생을 죽이고, 동생이 형을 죽이고, 서로 임금노릇 해먹을려고 피비린내 나는 이조 오백 년의 궁중 역사를 여러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그나마 그럭저럭 해 오다가 해방이 되어가지고 이박사 대통령하다 하와이로 쫓겨갔죠, 윤보선 대통령하다가 또 5.16 일어나가지고 또 쫓겨났죠, 박정희 대통령되었다가 결국은 육영수 여사 총맞아 죽고, 박대통령은 자기가 가장 아끼는 김재규한테 죽었죠. 또 그 뒤로 전두환 대통령, 노태우 대통령하다가 지금은 쇠고랑을 찬 그런 신세가 되었습니다.

물론 자기네들이 잘못해서 그런 점도 있겠지만, 풍수지리학설로 보면은 그 산 자체가, 저 관악산 화체(火體)가 된 불꽃 산이 비쳐가지고 그런 악영향을 받아서 그랬다 그런 말도 있고,
요새 또 지관(地官)들은 북악터널 뚫고, 남산터널 뚫어가지고 맥(脈)을 끊어버리니까 해먹을때는 그럭저럭하다 나중에 그렇게 비참하게 된다 이거여. 그것을 나는 100% 믿지는 않지만 그것도 생각해 보면 그럴런지도 알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풍수지리에 의존하지 말고 화장(火葬)을 모시고‘아이고, 한 번 죽은 것도 억울한데 두 번 죽음을 해?’ 죽은 사람이 뜨거우면 무엇이 뜨거울 것이야 그말이여.


여러분이 비행기를 타고 삼천리강산(三千里江山) 위로 이렇게 지나가면서 보면 '명당 쓴다'고 부스럼옛날에 기계충 걸린 것처럼, 산이 그 좋은 강산을 갖다가 묘(墓) 쓴다고 부스럼 따갱이처럼 생긴 것을 보실 것이다 그말이여.

앞으로 현재 있는 사람들이 죽으면 다 명당을 써 버리면 한국에 숲은 다 없어진다 그말이여. 그래가지고 있는 것은 올록볼록하니 그 무덤뿐일 것이다 그말이여. 금수강산(錦繡江山)이 아니라 북망산(北邙山) 공동묘지가 될 거다 그말이여.

산은 숲이 우거져야 좋고, 그 명당 쓴다고 묘 하나 써 놓고서는 주변을 수백 평을 다 나무를 다 베어 버리거든. 그러니 그것 참 가슴아픈 일이고. 숲이 우거져야 홍수도 막는 것이고, 거기서 끊임없이 물이 졸졸 흘러내려야 또 비가 조금 안 오더라도 가뭄에 시달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절대로 한번 돌아가시면' 돌아가신 뒤에 적어도 3일은 있어야 하거든. 하루나 이틀 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해서 금방 가서 화장을 하시지 말고, 3일장(三日葬)은 하셔서 그동안 스님네를 초청해서 금강경도 읽고 좋은 염불도 들으시는 것이 좋고, 화장을 또 화장 법요식에 따라서 잘 지내고.

 

그 대신 육체는 갖다가 묻어봤자 물구덩이 아니면 불구덩이고, 그렇지 않으면 풀뿌리 나무뿌리 그런데 있어가지고 오래 못갑니다.
얼마 안 가면 흙에 지나지 못한데, 거기다 자손들이 와서한식(寒食)이라든지 추석(秋夕) 그런 때 와서 성묘(省墓)도 드리고, 요새 모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서 조상을 소중히 여기는 그것은 대단히 좋으나다 흙이 되어 버렸는데 거기다가 절 해봤자 별 수가 없고.

 

화장을 해서 재는 뿌리고, 그 영가(靈駕)는 만년위패(萬年位牌)에 잘 모셔 드리고조석(朝夕)으로 축원(祝願)해 드리고, 천도재를 지내 드리고, 그리고 3월 16일은 오늘과 같이 합동으로 천도재(薦度齋)를 잘 지내주고,

여러분이 만년위패 이렇게 들이면 거기에 바치신 성금으로 이 선원(禪院)이 이렇게 운영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이 「만년위패」를 모시는 것은 그런 우리의 조상들을  위해서 모셨고, 둘째는 조상을 모시러 오다 보면 자연히 정법(正法)을 믿게 되고,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의해서 우리가 모두 참선(參禪)을 해서 다 해탈도를 증득하시게 하는 그러한 멀고도 크고 깊은 그런 자비심(慈悲心)에서 이런 제도를 마련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밑에 조그만한 차마 말할 수 없는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딴 것이 아니고, 내가 조실 스님 상좌(上佐)인데 내가 너무 못나가지고 신도들한테 ‘뭔 불사가 있으니 돈을 내십시요.’ ‘선방을 운영을 할테니 시주(施主)를 하십시요. 양식을 좀 내시요.’ 그런 비우가 없어가지고 그런 말을 못합니다.

선방은 계속해서 해 나가야 하겠는데, 또 여러 좋은 상좌들도 많이 있지만 그래도 내가 맨 먼저 되었다고 해서 나한테 이 원장 책임을 맡겨야 할텐데, 천상 10년 동안 묵언(默言)을 해가지고 말도 잘 못하지, 또 누구한테 숫기가 없어가지고 돈 얘기를 못하지 그러니까,

이 선방은 기어코 해 가야 하고 정법은 펴야겠는데 누구한테 탁! 믿고 맡길 사람은 마땅치 않고,
그래서 돌아가시기 전에 녹음 테이프를 많이 녹음을 해 놓으셨고, 또 법보단 만년위패 제도를 해 놓으면 심심치 않게 영가를 모시게 되면 그래서 선방을 그럭저럭 운영해 나갈 거다.

이건 내가 창피해서 차마 말을 못할 소리인데, 여러분이 그 조실 스님의 뜻을 너무너무 잘 아셔서 방방곡곡에서 만년위패를 드시고, 그리고 또 녹음 법문을 듣고,
그래서 난 부지런히 녹음을 계속 복사를 해서 인연 있는 여러 신남신녀와 도반들에게 요구하는 대로 이렇게 보급을 해서, 조실 스님 살아계실 때 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조실 스님 법을 믿게 되고, 또 정법에 의지해서 참선하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해마다 영가에 가입하신 법보재자(法寶齋者)들이 이렇게 늘어나고 있어서정말 저는 별것도 아닌 사람이 참 조실 스님 상좌라고 이렇게 원장의 이름을 띄고 있는데, 오늘날 이렇게 이 법보가족이 일어난 것은 제가 말을 잘한 것도 아니고, 제가 무슨 여러분들한테 잘해 드린 것도 없고 한데,

순전히 이것은 전강 조실 스님의 원대한 원력(願力)과 조실 스님의 법력(法力)과 도력(道力), 그리고 자비심으로 오늘날 이렇게 용화사 법보선원이 이렇게 나날이 잘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가지고 조실스님의 영전(靈前)에 감사의 합장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영원히 이러한 깊은 인연(因緣)으로 맺어진 인연입니다.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정법에서 물러나지 않고 최상승법을 의지해서 우리 자신도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고, 이 우주법계에 한 중생도 남음이 없을 때까지 다 성불(成佛)하도록 우리는 그 앞잡이가 되어서, 위로는 부처님을 받들고 우리는 조실 스님의 법을 의지해서 손에 손잡고 최상승법에 의해서 공부를 하실 것을 약속을 합시다. 성불하십시오.(44분23초~61분5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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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 ; 산수의 지형이나 방위를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과 관련시켜 죽은 사람을 매장하거나 집을 짓는 데 적당한 장소를 찾는 이론이나 주장.
*혈(穴) ; 풍수지리에서, 산줄기나 지맥 따위의 정기(精氣)가 모인 자리.
* ; 관(棺)이나 곽(槨)을 통틀어 이르는 말.
*신안(神眼) ; 풍수지리설에 근거를 둔 지술(地術)이나 관상술 등에 정통한 눈.
*명당(明堂) ; 풍수지리에서, 아주 좋은 묏자리나 집터.
*풍수(風水) ; 풍수지리설에 따라 집터나 묏자리 따위를 가려잡는 사람.
*적악(積惡) ; 남에게 나쁜 짓을 많이 함.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보시(布施) ; 자비심으로 조건없이 남에게 재물이나 불법을 베풂.
*묘자리 ; 묏자리. 사람의 무덤을 쓸 만한 자리. 또는 쓴 자리.
*산세(山勢) ; 산의 모양과 지세(地勢).
*맥(脈) ; 기운이나 힘.
*지관(地官) ; 풍수지리설에 따라 집터나 묏자리 따위의 좋고 나쁨을 가려내는 사람.
*삼천리강산(三千里江山) ; 우리나라 땅의 남북의 길이가 삼천리라 하여 우리나라의 강산을 이르는 말.
*부스럼 ; 피부에 나는 종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
*기계충 ; 두부 백선(頭部白癬)을 이르는 말. 머리 밑에 피부 사상균이 침입하여 일어나는 피부병. 머리털이 나 있는 부분에 둥그런 홍반이 생기고 피부가 벗어지며 그 부분의 머리털이 윤기를 잃고 부스러진다.
*금수강산(錦繡江山) ; 비단에 수를 놓은 듯 매우 아름다운 산천. 함경북도 북쪽 끝에서 제주도 남쪽 끝까지 3,000리가 되는 우리나라의 자연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북망산(北邙山) : 무덤이 많은 곳이나, 사람이 죽어서 묻히는 곳을 이르는 말. 중국의 북망산에 무덤이 많았다는데서 유래한다.
*삼일장(三日葬) ; 죽은 지 사흘 만에 치르는 장사.
*성묘(省墓 살필 성,무덤 묘) ; 조상의 산소를 찾아 인사를 하고 산소를 돌봄. 주로 설, 한식(寒食), 추석(秋夕)에 행한다.
*한식(寒食) ; 동지(冬至)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 조상의 산소를 찾아 제사를 지내고 벌초를 한다.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천도재(薦度齋) ;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에 따라 다음 생을 받게 되는데,
유족들이 불보살(佛菩薩)을 모신 법당(法堂)에서 돌아가신 영가를 청해 모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함과 동시에,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門)’을 들려줌으로써,
영가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혜의 눈을 밝혀 삶의 무상을 깨달아 이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보다 좋은 곳으로-더 나아가 육도윤회를 벗어나 극락왕생·해탈의 바른 길로-잘 건너가도록 하는 불교의식.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자비(慈悲) ; 자(慈)는 ‘우정•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동정’을 원의(原義)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상좌(上佐 윗 상,도울 좌) ; 윗사람을 도운다는 뜻. 곧, 한 스승의 제자를 일컬음.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묵언(默言) ; 말을 하지 않음.
*숫기 ; 활발하여 부끄러워하지 않는 기운.
*기어코 ;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또는 결국에 가서는.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본원(本願) : 근본서원(根本誓願)의 준말. 모든 불보살님들이 지난 세상에서 일으킨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을 결정코 이루려는 맹세(서원). 본원에는 총원(總願)과 별원(別願)이 있다.
①총원(總願)--모든 불보살님들의 공통원, 사홍서원(四弘誓願).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 가없는 중생을 맹세코 다 건지리이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 끝없는 번뇌를 맹세코 다 끊으오리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 한없는 법문을 맹세코 다 배우리이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 위없는 불도를 맹세코 다 이루리이다.
②별원(別願)--불보살님마다 중생제도의 인연에 따라 세운 원(아미타불48원, 약사여래12원 등등). 별원은 사홍서원의 구체적 표현.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法)의 힘. ②가르침의 힘. 불법의 공덕. 불•보살의 위신력(威神力)을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것.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힘.
*도력(道力) ; ①도의 근본에서 생기는 힘. 도를 얻음에 의하여 나타남. ②지혜의 힘.
*한마음 한뜻 ; 모든 사람의 마음과 뜻이 똑같음.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세세생생(世世生生) ;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깨달음을 여는 것. 각자가 스스로 무상의 깨달음을 열고, 부처가 되는 것. ④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앞잡이 ; 앞에서 인도하는 사람.

Posted by 닥공닥정
참선(자세 호흡)2014. 3. 25. 14:26

§(445) 단전호흡과 상기(上氣) / 호흡은 무리가 없이 편안하게 하는게 요점 / 호흡과 화두의 관계 / 상기병의 약은 단전호흡과 요료법.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과 「화두를 바르게 들어가는」  3가지를  알아서 해나가는 것은 우리가 도업(道業) 바르게 빠르게 그리고 크게 성취하는데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호흡은 그때 그때 상황 따라서 어쨌든지 무리가 없고 편안하도록 하면 되어. 언제나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여. 누구에게나 고정된 것이 아니고 때에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 길게 해도 편안하면 길게하고, 짧게 해서 편안하면 짧게 하고, 어쨌든지 무리가 없이 편안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점이다.

 

**송담스님(No.445)—1991 5 첫째 일요법회. (용445)

 

17분.

 

 

대관절 이게 무엇이냐?’  참구(參究)하는 방법을 바로 알고 하면 공부하다가 사견(邪見) 떨어지지 않고, 이걸 바르게 참구를 안 하면 이거 하다가 정신이 샐쭉해지기도 하고,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했으면서도 자기도 깨달은 것처럼 착각을 하는 수가 있고, 이걸 참구를 잘못하면 상기병(上氣病) 올라서 골이 뽀개질라 그러고 눈알이 빠질라 그러고  안돼.

 

그래서 바르게  화두를 들어가는 법을 알고 공부를 해야 한다 그말이여.

 

전강 조실 스님께서도 대발심(大發心)을 하시고 대분심(大憤心)이 나고 대의단(大疑團)이 한목 일어나 가지고 어떻게 무섭게 하셨던지, 다못 거문고  고를 때에 너무 팽팽하게 해도 안되고 너무 느슨하게 해도 안되는 것인데, 어릴적  순수한 마음으로 너무 ()하게 ()하게 하셨기 때문에 상기병이 일어나셨다 그말이여.

그래서 눈알이 뻘겋게 충혈이 되고, 머리에 부스럼이 일어나 가지고 툭툭 터지고, 코에서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그말이여.

 

그래서  참선을 해나가는 데에는 앉는 자세를 바르게 하고,  그런 상기병이라든지 그런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아무리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더라도 상기병과 같은 그런 무서운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호흡법, 단전호흡(丹田呼吸)을  알아서 하고.

 

그런 가운데에 올바르게 화두를 잡드리 해나가는,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과 「화두를 바르게 들어가는」  3가지를  알아서 해나가는 것은 우리가 도업(道業) 바르게 빠르게 그리고 크게 성취하는데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상기(上氣) 단전호흡>

 

 

얼마 하지도 못해 가지고 상기병이 나서 고생하는 스님네가  많습니다. 미리 일어나지 않도록 지혜롭게 해서 단속을 해야지, 한번 상기병이 터져 놓으면 약을 먹어 가지고도 안되고 여간해서 이거 고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머리가 띵하고 목이 뻣뻣하고 이뭣고?’ 할라면 골치부터 아퍼서, 공부만 조금 가행정진을 하고 애써  힘차게 할려고만 하면 벌써 골치부터 아퍼.

그럭저럭 잡담하고 살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정신차려서 화두만 들고 공부만 할려고 하면 아프기 시작해. 그렇다고 해서 공부를 안 할 수도 없고.

 

출가를 안 했다면 이거  잡담을 하고 지내도 상관이 없고,  장사를 하고 지내도 상관이 없고,  농사를 지어도 상관이 없고 아무렇게 지낸들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머리를 깎고 출가 해가지고 참선을 안 하면 무엇을 할 것이냐 그말이여. 천상  것은 참선밖에는 없고, 할려고 하면은 골치만 아프고, 큰일이거든.

 

어떤 분은 가끔 단전호흡 안 하면 참선 못합니까?’ 그런 질문을 가끔 와서 하는데 상기만 안된다면   단전호흡을  해도 상관이 없어.

체질상 단전호흡을 안 하면 상기가  오르게  그런 체질을 가진 사람이 있거든. 그런 사람은  단전호흡을 해야 하고.

 

아무리 신경을 쓰고 해도 상기가  안된 체질을 타고난 사람이 있어. 기운이 밑으로 내려가서 그런 사람은  단전호흡을  해도 상관이 없겠지만. 특히 체질을 기운이 위로  올라가는, 조금 신경쓰면 얼굴이 벌게지는 그런 체질을 가진 사람은 단전호흡을  해야 하거든.

출가를   사람도 그런 사람은 단전호흡을 해야 하고, 참선을   사람도 사회의 학문을 해도 단전호흡을 해야 . 지지리 공부해 가지고 고시에 합격해 갖고도 상기로 고생하는 사람도 내가 봤거든.

 

 단전호흡은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보통 호흡보단 조금  길게. 보통 호흡은 1 동안에 들어마셨다 1 동안에 내쉬고 보통 그렇게 하고,  호흡이  느린 사람은 2 동안에 들어마셨다 2 동안에 내쉬고 그런데.

1초가 걸린지 2초가 걸린지 그것도 아지도 못하고, 무심 속에 호흡은 마지막 죽기 전까지는 그때그때 따라서 달음박질하거나 산을 올라가고 그럴 때는  급하게 쉬고  그렇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는 느리게 쉬고, 호흡에 대해서는 거의 무의식 상태에서 눈을 뜨나 감으나 호흡을 하고 있는데,

 

 단전호흡이란 것은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거여. 어떻게 하느냐?

들어마시는 호흡  3 동안에 들어마셔 가지고  3 동안 정지했다가 내쉬면서 조금 길게 3~4, 이렇게 해서 한번 들어마셨다가 정지했다가 내쉬는데  10 가량 걸리도록. 의식적으로 하거든.

 

숨을 들어마실 때에는 배꼽 밑에 단전, 아랫배가 약간 볼록하게 만들면서 숨을 들어마시는 거여. 들어마셔 가지고  3 동안  정지를 하거든. 정지했다가 조용하게 숨을 내쉬는데 내쉼에 따라서 배가 차츰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만드는 거여.

 

그러면 들어마신 호흡을 이렇게  가지고는  아랫배까지 이렇게 밀어넣을랴고 생각할 필요는 없고, 그냥 들어마시기만 하고 배는 약간 볼록하게만 만들면 . ‘호흡이 거기까지 내려간다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들어마신 다음에는 정지를 하거든. 정지한 상태로  3 동안을 가만히 있다가  내쉬면서 배가 차츰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그거 조금도 힘이 드는 거 아니여.

 

처음에는  10 걸려서 하면은 별로 힘이 안 드는데 될 수 있으면 오래 참을수록 좋다 가지고, 그런 소리를 어디서 들어가지고, 들어마셔 가지고 참기를  30 정도 참었다가 얼굴이 벌게지면 그때 내쉬고. , 그렇게 억지로 하는 사람이 있다 그말이여. 그러다가는 큰일난 것이다 그말이여.

 

처음에는 그렇게  9초나 10 동안에 하다가 차츰차츰 1년을 하고 이태를 하다 보면 호흡이 조금씩 길어져서 나중에는  20 동안에 들어마셨다가 머물렀다 내쉬고,

나중에는 10 동안에 들어마시고, 10 동안에 머물르고, 10 동안에 내쉬고 해서 한번 숨을 들어마셨다 내쉬는데 30 걸려서 하는, 무리가 없이  수가 있다면 그렇게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무리를 하면서까지 억지로 그렇게 시간을 늘릴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것이고, 해서는 안된다. 그것을  아셔야 .

 

그런데 호흡은 그때 그때 상황 따라서 어쨌든지 무리가 없고 편안하도록 하면 되어. 

언제나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여. 누구에게나 고정된 것이 아니고 때에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 길게 해도 편안하면 길게 하고, 짧게 해서 편안하면 짧게 하고, 어쨌든지 무리가 없이 편안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점이다.

 

 

 

<호흡과 화두의 관계>

 

 

그러면 호흡에 신경을 쓰면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 시원찮고, 화두에 대해서 간절히 의심을 하면 호흡이  안된다' 이런 말씀을  분이 있는데, 그럴 것이다 그말이여.

그럴 것이나, 처음으로 참선하는 사람은  호흡 쪽으로 신경을 써서 해서 호흡이  익숙해져서 무심 상태에서도 호흡이 잘되면은 나중에는 호흡에 대해서는 그냥 저절로 놔둬 버리고 화두에  신경을 쓰는 것이 좋다 그말이여.

 

그런데 호흡과 화두의 관계는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시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숨이 나가면  스르르~하니 들어마셨다가  정지했다가 내쉴 때 이뭣고----?’ 이렇게.

 

그러면은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이뭣고?’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이뭣고?’ 최초에 시작하는 얼마 동안은 그렇게 해도 좋습니다

그러다가  달쯤  다음에는   ,   이렇게 지나간 뒤에는  호흡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화두를 들지 않아도 되요.

 

들어마셨다가 머물렀다가 내쉴  이뭣고---?’

이뭣고  글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   『알  없는 의심』  의심이 있으면,  다음에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화두를 새로 들지 않고,  들어있는 의심을 따악 관조(觀照) 하거든. 『알  없는 의심』을 보는 거여.

 

 숨을 들어마셨다가 머물렀다가 내쉴 때도 아까 들었던  화두에 대한 의심이 고대로 있으면, 세 번째에도 화두를 새로 이뭣고?’  들어도 괜찮은 거여. 그러다가 딴 생각[別念]이 나거나 화두가 없어져버리면 그때  들어마셨다 내쉬면서 이뭣고?’ 한번  거각(擧却) 하는 거여. 챙기는 거여.

 

이렇게 해서 아침에 들었던 화두가 점심밥 먹을 때까지 그대로 의심이 있으면,  아침에 한번 들은 채로 그냥 그대로 있으면 되는 거고, 한번 들었던 화두가 하루 종일 있으면 자꾸 이뭣고?’ ‘이뭣고?’ 필요가 없거든.

 

그리고 그렇게  나가면 상기(上氣) 일어날 까닭이 없으나, 그러나 이미 상기가 일어났거나  중간에 본의 아니게 상기가 일어날 때에는,  상기를 낫을려고 약도 먹고 쑥도 뜨고 온갖 좋다는 건 해도 그렇게 별로  효과가 없어.

 

상기를 낫으는 약은 결국은 단전호흡으로 낫어야 . 단전호흡을 정말—우선 화두 드는 것은 보류해 놓고, 상기 때문에 고생하시는 분은 화두는  보류해 놓고 단전호흡에 전력을 해야 . 그러면 상기가 다스려지고, 상기가 다스려지면 그때 화두를 챙기면 되는 것이고.

 

그리고 부득이해서 단전호흡을 해도  안되는 경우는 요료법(尿療法) 하는 것이 가장 상책이여. 그건 기운을 밑으로 내리고 혈압도 내리고 기운을 내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건 굉장히 효과가 있는 거여. 그건 새삼스럽게 자세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26분30초~4246)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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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구(參究 헤아릴 /궁구할 ) ; ①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

*상기병(上氣病 오를 /기운 / )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 머리에 치밀게()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 상기병이 생기면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이 사용된다.

*요료법(尿療法) ; 요료법은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가행정진(加行精進) ; 어떤 일정한 기간에 일상생활보다도 좌선정진(坐禪精進)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함.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단전호흡(丹田呼吸) ; 의식적으로 숨을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일반적으로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이다.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지지리 : ‘기껏 전라남도의 사투리.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 삼푼 되는 (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 () 뜻하며, '단전'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 불도의 수행. 진리의 실천.

*별념(別念) ; ‘ 생각[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있으면 고인이 말한  「잡독(雜毒)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생각[別念]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외에는, 불법(佛法) 온갖 좋은 일이라도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 취하거나[], 버리거나[], 집착하거나[], 변화하는[] 것이 모두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것이요,  묻는 사람이 친히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없는 생각 ()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Posted by 닥공닥정
참선 (목적)2014. 2. 25. 13:16

 

 

§(152) (게송)‘견색비간색~’ / 참선은 자기가 자기를 찾는 공부이기 때문에 대단히 쉬운 것이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서 들으신 바와 같이 참선은 대단히 쉬운 것이다. 왜 쉬우냐?
저 먼 데에 있는 것을 찾는 것도 아니요. 저 높고 깊은 데에 있는 것 찾는 것도 아니요. 무슨 산 속이나 바다 속이나 그런 데에서 찾는 것도 아니고, 오직 자기가 자기를 찾는 공부이기 때문에 그렇게 쉬운 것이다.


‘앞으로 좀 내가 무슨 참선에 대한 책, 불경(佛經)에 대한 번역해 놓은 책이라도 좀 읽어보리라.’ 그러헌 계획을 가지고 계신 분은 그런 책을 읽고 나서 참선을 헐랴고 허는 생각을 쉬어버리시고, 읽기 전에 먼저 참선의 바른 법을 알아 가지고 당장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는 공부 먼저 시작을 허시는 것이 가장 올바르고 지혜로운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송담스님(No.152) (참선법B)-1981년 10월 첫째일요법회(1981.10.04)에서. (용152)

 

약 21분.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이요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색성불의처(色聲不疑處)에  친도법왕성(親到法王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이요. 색(色)을 보되 색(色)이 아니다. 색을 관계치 않는다.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라. 소리를 듣되 이 소리가 아니여.

도(道)를 닦지 아니한 사람은 무슨 색상(色相)을 보면 ‘하! 저 주장자(拄杖子)가 빛깔이 노랗구나.’ ‘주장자가 굉장히 무겁게 생겼다.’ ‘저 주장자에는 용의 모양이 조각이 되어 있구나.’
한 주장자를 보고도 두 가지, 세 가지, 네 가지 한량없는 생각이 거기서 번져 나간다 그말이여.

‘저 주장자는 무슨 나무로 깎아졌을까?’ ‘저 주장자를 깎은 나무는 어디 산에서 비어 왔을까?’ ‘몇 해나 자란 나무일까?’ ‘누가 조각을 했을까?’
이렇게 해서 한 색상을 봄으로 해서 그것이 계기가 되아 가지고 온갖 생각이 거기서 벌어진다 그말이여.

그런데 도를 닦는 사람은 그러헌 색상을 보되 색상이 아니여. 색상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말이여.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라. 어떠헌 소리를 듣되 소리가 아니다.

도(道)를 닦지 아니헌 사람은 문 열고 닫는 소리를 들으면,
‘아! 저 문은 철로 만든 문이로구나. 도롱태가 고장이 나서 소리가 요란히 나는구나. 저 문은 누가 만들았을까? 언제 만들았을까? 들어오는 사람은 누굴까? 왜 들어 올 때 가만히 들어오지 않고 저렇게 요란스럽게 들어올까?’
이러헌 식으로 해서 하나의 소리를 듣고서 그것으로 인해서 온갖 분별심과 번뇌심과 망상심이 한도 끝도 없이 퍼 일어나게 된다 그말이여.

그러는 가운데에 성을 내기도 하고, 기분을 상하기도 하고, 공연히 지나간 일·얼토당토않은 일이 생각이 나서 속이 뒤집어지기도 하고, 신경질을 내기도 하고,

이렇게 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잠시도 조용한 시간을 갖지를 못하고, 노상 눈을 통해서 마음의 풍파(風波)가 일어나고, 귀를 통해서 마음의 풍파가 일어나고, 한 생각·한 소리·한 색상을 볼 때마다 마음 속이 요동이 되고 난리가 일어난다 그말이여.

이렇게 하기를 하루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그렇고 달마다 그렇고 해마다 그래서, 마지막 숨이 끊어질 때까지 그러헌 생활이 계속이 되고 그 결과로써 가는 곳은 지옥 아니면 축생 뱃속으로 들어가고, 이리해서 육도윤회(六途輪廻) 생사고해의 윤회가 한이 없이 계속이 되는 것입니다.

색성불의처(色聲不疑處), 친도법왕성(親到法王城)이라. 무슨 색상을 보건, 무슨 소리를 듣건 의심이 없는 곳에 이르면 이것이 바로 법왕(法王)이 있는 곳에 도달한 것이다.

방금 우리는 조실(祖室) 스님께서 활구참선법, 참선허는 법에 대해서 매우 간절(懇切)하게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 법문을 해 주신 것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확성기를 새로 바꿔서 그전에 보다는 좀 잘 들린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콘크리트 건물은 지어서 얼마 안된 동안에는 울린다고 그럽니다. 조금 불편한 점이 있으시더라도 이해를 하시고, 상태가 좀 안 좋더라도 그럴수록에 더욱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귀를 기울여서 법문을 잘 들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참선법(參禪法), 이 용화사는 참선법을 핵심으로 해서 항시 전강 조실스님께서 설해 주시던 녹음 법문을 다같이 이렇게 듣고, 또 산승(山僧)도 그러헌 조실스님의 뜻을 받들어서 '어떻게 하면 우리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올바르게 해서 하루빨리 이 바른 공부길을 잡아서 ‘참나’를 깨닫게 할 것인가' 오직 여기에 온 정성을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 법문에서 들으신 바와 같이 참선은 대단히 쉬운 것이다. 왜 쉬우냐?

저 먼 데에 있는 것을 찾는 것도 아니요. 저 높고 깊은 데에 있는 것 찾는 것도 아니요. 무슨 산 속이나 바다 속이나 그런 데에서 찾는 것도 아니고, 오직 자기가 자기를 찾는 공부이기 때문에 그렇게 쉬운 것이다.

자기라니?  자기가 무엇이여?  자기가 어디가 있어?
‘내가 나를 찾는다’고 그러니, 내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생겼으며, 내라는 게 무엇인가?

우리는 ‘내’라 하면 이 부모로부터 받어난 이 육신(肉身)을 보통 다 나라고 생각하고, 이놈을 잘 멕일랴고 그러고, 또 잘 입힐랴고 그러고, 깨끗이 씻고 이쁘게 꾸밀랴고 그러고, 아픈 데가 있으면 병을 치료헐랴고 그러고, 누가 때리면 안 맞을려고 그러고,
이 육신이 자기의 전부인 것처럼 알고 그 놈을 그렇게 아끼고 보호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이 몸뚱이도 내가 아닌 것은 아니지만, 이 몸뚱이는 ‘참나’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몸뚱이가 아니면 나라고 하는 ‘참나’도 의지헐 곳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몸뚱이 안에 있는 참나는 이 육신을 주재하면서 육신을 운전하면서 한 생 동안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에 입각해서 보면 육체와 우리의 마음자리를 따로 갈라놓고 볼 수가 없는 것이지만, 편의상 쉬운 방편(方便)을 빌려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에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 육체, 생각 - 이 육식(六識), 육근(六根) 여섯 가지 문(門)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이 항시 출입을 허고 있는 것입니다.

눈이 있지만 ‘내’라 하는 놈이 없다면, 아무리 눈이 있어도 볼 수가 없는 것이고.
그 증거를 한번 보자면, 뒤에서 무슨 이야기 허는 말을 아주 거기다 전 정신을 집중을 해서 뒤에서 말허고 있는 말을 듣고 있으면, 눈을 뜨고 있어도 앞에 있는 것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책을 펴서 눈앞에다 떠억 들고 있어도 보는 데에 정신을 집중을 해야 책의 글자가 읽어지지, 눈을 뜨고 눈앞에다 책을 갖다가 떠억 펴어 놨어도, 귀를 옆에 방에서 얘기허는 소리에다가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눈을 뜨고 있어도 그 책의 글자가 하나도 읽어지지를 않습니다.

이 조그마한 가까운 예를 생각해 보더라도, 분명히 눈을 통해서 보는 놈이 따로 있다고 허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귀 자체가 듣는 것이 아니라 귀를 통해서 듣는 주인공이 있다고 허는 것을 우리는 짐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눈을 통해서 어떠헌 색상을 보되 보는 데에 끌려가지 아니하고, 보는 데에 집착을 허지 아니하고, 보는 데에 생각이 끌려가지 아니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입니다.

벌써 눈을 통해서 보는 밖의 어떠헌 경계(境界)에 나의 정신 나의 의식이 끌려가게 되면, 나는 집을 비워 놓고 외출을 허는 거와 마찬가지여. 이웃집, 저 가까운 집, 먼 집으로 밤낮 나들이만 다니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귀를 통해서 어떠헌 소리를 들을 때에도, 밤낮 듣는 그 경계에만 정신을 빼앗기고 살면 그것도 역시 내 집은 비워 놓고 밤낮 남의 집으로만 돌아댕긴 거와 마찬가지여.

코를 통해서 냄새 맡은 것도 그렇고, 혀를 통해서 맛 볼 때에도 그렇고, 몸으로 춥고 더운 것을 감촉할 때에도 그렇고, 생각으로 이 생각 저 생각 의식을 헐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통해서 육진경계(六塵境界)에 항시 끄달려서 사는 사람은 일 년에 단 하루도 자기 집에 붙어 있는 날이 없고 밤낮 밖으로만 쏘아 다니는 가정주부와 같애서 그 집안 살림은 엉망이 되고 말 것입니다.

겨우 잘 때나 자기 집에 들어오고, 눈만 떴다 하면 밖으로 돌아치면 그거 어떻게 되겠느냐 그말이여.
심지어 잘 때에는 꿈을 통해서 또 밖으로 쏴 다닌다 그말이여.

그래서 우리 참선을 허지 아니한 중생은 이렇게 해서 내 집 살림은 엉망이 되아 가지고, 그놈이 안이비설신의 육근을 통해서 육진경계에 끄달려서 돌아댕기느라고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고 생각하면서 온갖 죄업(罪業)만 퍼지어서 빚만 잔뜩 지어놓고는,
죽어 갈 때에는 노잣돈 한푼 없이 빚 문서만 짊어지고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으로 끌려가서 뒈지게 뚜들겨 맞기만 허게 될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출가허셔서 중생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출가허셔 가지고 갖은 고행을 허시다가 마침내 바른 수행법을 체득을 허셔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허셔서 그 깨달은 법을 49년 동안에 걸쳐서 고구정녕하게 중생들에게 그 길을 일러 주신 것입니다.

도를 닦는다. 참선을 한다. 최상승법이라 하니까 굉장히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고,
『불교에 대해서는 책 한권, 경(經)도 별로 읽지도 못하고 아무 것도 잘 모릅니다. 참! 더군다나 참선을 어떻게 제가 허겠습니까?』 이렇게 미리 겁을 집어먹고 참선을 허기를 꺼려하고,

『불교 초보자가 읽을 만한 무슨 좋은 책이 없겠느냐?』 『무슨 경전을 읽으면 좋겠느냐?』 이렇게 문의들을 허십니다마는,
불교 초보자가 읽을 만한 무슨 책을 많이 읽고, 무슨 경을 또 많이 읽고, 그래야만 참선을 잘 허게 되냐 허면 그것도 아니고,

또 요새 참선에 관한 여러 종류의 책이 모다 나왔습니다마는, 그러헌 책을 읽어야만 - ‘그래도 참선에 대해서 무엇인가 좀 이해를 하고 좀 알아 가지고 참선을 해야지 아무 것도 몰라 갖고 어떻게 허겠느냐?’ 이런 생각을 하시지만, 절대로 이 책 저 책 읽어봤댔자 책마다 다 말이 다르고,
또 이 참선이라 하는 것은 무슨 이론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을 많이 읽고 알아야만 되는 것이라고 허는 생각을 가지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책 저런 책 모다 그런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일수록에 이 참선을 바로 해 가는데 좋지 못한 영향을 받을 염려도 있는 것입니다.

이미 이 책 저 책을 많이 읽으신 분은 그 책에 읽은 내용을 깨끗이 다 놔 버리고 잊어버리시고, 아직 그런 책을 읽지 않고 ‘앞으로 좀 내가 무슨 참선에 대한 책, 불경(佛經)에 대한 번역해 놓은 책이라도 좀 읽어보리라.’ 그러헌 계획을 가지고 계신 분은 그런 책을 읽고 나서 참선을 헐랴고 허는 생각을 쉬어버리시고,

읽기 전에, 먼저 참선의 바른 법을 알아 가지고 당장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는 공부 먼저 시작을 허시는 것이 가장 올바르고 지혜로운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처음~20분4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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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 ; [금강경오가해] 장엄정토분, 야부 스님 게송 참고.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주장자(拄杖子 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들이 좌선(坐禪)할 때나 설법(說法)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얼토당토않다 ; (일이나 말 따위가)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법왕(法王) : [범] dharmaraja  부처님은 진리 곧 법을 가장 밝게 깨치시고, 법을 걸림 없이 쓰시고 법을 널리 가르쳐서 법에 있어 제일 높은 어른이므로, '법의 임금'이라고 존칭한 말이다. 또한 모든 세속 임금들에게도 큰 스승이 되고, 온갖 성인들 가운데서도 으뜸이 되므로 법왕이라 한다.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 정•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경계(境界) ;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 ③상태 ④범위,영역
*육진(六塵) ;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의 육경(六境)과 같음. 이것은 마음을 더럽히므로 진(塵)이라 함.
*죄업(罪業) ;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위(身)와 말(口)과 생각(意). 과로움의 과보를 초래하는 악한 행위.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노잣돈(路資돈) ; ①먼 길을 오가는 데 드는 돈. ②죽은 사람이 저승길에 편히 가라고 상여 등에 꽂아 주는 돈.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확철대오(廓徹大悟) ; 큰 깨달음. 내가 나를 깨달음.

Posted by 닥공닥정
전제 단제2013. 10. 8. 09:46

§(414) 전강 선사의 단제, 전제의 장점이 융합된 효율적인 정진을 있는 공부법.

 

**송담스님(No.414)—1990 4 첫째 일요법회 법문. (용414)

 

약 11분.

 

 

화두,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화두를 하시는 데에 ()자를어째서 무자(無字)라고 했는고?’ ‘어째서 무자(無字)라고 했는고?’ 아주 , 주먹을 부르쥐고 무릎 위에다가 ! 놓고는 아침부터서 점심, 점심부터 저녁, 저녁부터서 밤에 잠도 주무시지도 않고 그냥,

 

그러다가 예불 시간에 예불을 하시면지심귀명례...”하고 엎드려 가지고는삼계대사 사생자부...” 그냥 엎드려서 잠이 들어 버렸어. “시아본사...”해도 일어나는데 일어나시고 엎드린 예불이 끝날 때까지.

옆에서 쿡쿡 찌르면서일어나라 하니까 입승(立繩) 스님이그거 놔두라. “밤잠 자고 정진하다가 엎드려 있는데 잠시 자게 놔두라.

 

처음에는 수군덕거리고 욕하고 빈정대고, 그렇지만 , 달을 열심히 한결같이 나가니까 대중이 모다보통 애가 아니구나!” 대중 가운데 어린 사람이 그렇게 공부한 것을 보고 모두 사람이 따라서 발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모다 가행정진(加行精進) 하고 그랬다고 그럽니다.

 

그런데어째서 () 했는고?’ 화두를 의심한 것은 대단히 좋은데 조실 스님께서는 불급불완(不急不緩) 묘한 관으로, 의심관(疑心觀)으로 가는 것을 모르셨어.

 

어려서 워낙 발심(發心) 철저히 놓고 분심(憤心) 솟구쳐 오르니까 목숨을 바쳐서 거기에다 아주 용맹스럽게 나가실중만 알으셨지, 불급불완한 () 의관으로 나가는 것을 그걸 선배가 있어서 그것을 일러 주셨으면 되었을텐데 그걸 못하셨어.

 

몽산법어(蒙山法語) 보면 무자(無字) 드는데 가지,

 

하나는 단제, 그냥~~’하고 아무 일체 다른 말은 없이~’만을 항상 들여다 보는 거여.

조주 스님이했으니까~’ 들여다 보는 거여. 숨을 들어마시다 내쉬면서~’

어째서 무라 했는고그런게 아니여, 그냥~’ 들여다 보는 이것을 단제(單提)라고 그러고.

 

전제(全提)어째서 무라고 했는가?’ ‘조주스님은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이렇게 의심을 하는 이것은 전제인데,

~’하고 단제로 하는 데에도 장단점이 있고, 전제로어째서 무라고 했는고~?’하는 데에도 장점과 단점이 있다.

 

그러면~’하는 데에는 무슨 장점이 있느냐 하면,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하고 자꾸 하다 보면 성질이 급한 체질을 가진 사람은 너무 되게 몰아대다가 상기병(上氣病) 생기고, 생각이 끊어지질 않아 점점 어지러운 생각, 복잡한 생각이 일어나거든.

그냥~’하면 생각 생각 그런 복잡한 생각은 일어나지 아니헌데 의심(疑心) 없어. 의심이 없으면 깨닫지 못하거든.

 

의심이 작으면 작게 깨닫고, 의심이 크면 크게 깨닫고, 의심이 없으면 깨닫지 못한다그랬어.

 

그런데~’하고 () 항상 들여다 보면 생각 생각 복잡한 생각은 일어나지 않고 조용해지고 좋기는 좋은데, 까딱하면은 너무 조용하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혼침(昏沈) 빠질 우려가 있고 무기(無記) 떨어지거든.

 

무기에 떨어지면 아무리 고요하고 편안하고 맑고 좋다 해도 확철대오(廓徹大悟) 못하는 거여.

 

그러면어째서 무라 했는고~?’하고 의심이 있어야 하는데,

『대의지하(大疑之下) 필유대오(必有大悟), 의심이 있어야 크게 깨닫는다』 그랬으니처음부터서 크게 의심을 해야겠다 가지고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고서어째서 무라 했는고?’ 여기다가 그냥 ' ()'자를 쓰고서 몰아대면,

영락없이 피가 넘어오고 상기(上氣) 되어 가지고 눈알이 튀겨져 나올려고 하고 골이 벌어질라 그러고 목이 뻗뻗해져. 이뭣고소리만 하면 벌써 골치부터 아퍼지기 시작하는 거여.

 

그러니 몽산 스님은 처음에는 단제로~’ ‘~’하고 무만 자꾸 들어서 순일해져 순숙해져서,

순숙해진 다음에 2단계에 나아가서어째서 무라 했는고?’하고 의심을 든다면, 전제로 한다면 이것이 가장 단제와 전제를 효율적으로 활용을 해서 폐단없이 깨달음에 나아가는 수행을 수가 있다. 몽산어록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하고 무자만 바라만 보도록, 그렇게 하라고는 조실스님도 가르키시지 않았고 산승(山僧) 그렇게 공부를 하라고는 한번도 말씀한 적이 없습니다.

 

대신 처음에는 단제 전제 할것 없이, 처음에는 자세를 바르게 하고 가부좌나 반가부좌 하는 법을 익히고 다음에는 단전호흡(丹田呼吸) 해서 단전호흡이 되도록 익힌 다음에,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시 머물렀다가 내쉬면서어째서 무라 했는고~?’ 이렇게 하라고 지도를 왔습니다.

 

이렇게 가면 몽산 스님이 염려하시는 단제와 전제의 장단점이 융합된 효율적인 정진을 수가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단전호흡을 익히고, 단전호흡을 하되 처음에는 수식관(數息觀)으로부터 들어가 가지고 나중에 수식관이 잘되면은 다음에 전제(全提) 공부를 나가되 탈이 없으리라고 그렇게 보았기 때문에,

 

조실 스님께서도 단제(單提) 대한 것은 말씀을 하시지 않고, 전제(全提) 하도록 많은 설법을 하셨고, 산승도 역시 조실 스님의 뜻을 따라서 그렇게 말씀을 왔습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처음에 전제로 공부를 하시되 너무 힘을 가지고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그러헌 병이 나셨지만, 그렇기 때문에 조실 스님께서도 항상 단전호흡에 대한 법문을 간곡히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아마 자리에는 앞으로 여름 안거를 위해서 방부(房付) 들이고 갈려고 하는 수좌(首座)님들이 분인가 있을 생각합니다.

따로 내가 만나서 화두를 일러드림사 좋지마는 그러헌 시간이 없으니 법상(法床)에서 이렇게 말씀을 것을 명심해서 듣고, 그렇게 해서 화두를 걸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선방에 가서 정진을 잘하기를 바래고.

 

여기에 참석하신 사부대중 여러분들도 새로 오신 분이나, 오래 전부터서 법문을 들으시고 공부를 하신 분이나, 오늘 조실 스님의 법문이나 또는 산승의 말씀은 앞으로 공부해 나가는 데에도 명심해서 주시기를 바랍니다.(5142~6212)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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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일을 맡은 스님.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묘한 의심관(疑心觀) ; 묘관(妙觀). () 의심(疑心) (). 화두를 거각하여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 하는 .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5분 59초)

 

처음에 공부를 모르는 사람은 힘을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밖에는 없지만,

, , 이렇게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해도 화두가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걸랑,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 하는 거여. 없는 의심의 ()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일은 없는 의단(疑團)만을 잡드리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 () 긴완(緊緩) 득기중(得其中) 해야 . 그것이 묘한 ()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아는 사람은 바로 ()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의심(疑心) ()’으로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관해 나가면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의심의 ()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 막론하고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 2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 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 , , 3, 5, 10년을 해도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말로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하고, 고대로 하면서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묘한 의관(疑觀)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조정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의심관, ()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생각 없는 생각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활구참선(活句參禪)의심(疑心) 이라야 .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 서산에 지려고 ,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때에,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빨갛고 아름다운 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수가 없는데, 해가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해를 수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떨어져서 보일 때까지 시간 내지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때까지 관찰하고서, 다음에는 밤새 눈을 감으나 뜨나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다시 관을 해서,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밤새 관하고, 이튿날 관하고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일관이라든지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 있는데, 참선도 하나의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이뭣고?’ 해도 없는 의심이해가 봐두었던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 .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역대조사(歷代祖師)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발심(發心) ;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發起菩提心 발기보리심, 發菩提心 발보리심.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조주(趙州) : (778 – 897) 이름은 종심()이고 속성은 ()씨인데, 산동성(山東省) 조주부(曹州府)에서 났다. 어려서 출가하여 남전(南泉) 보원선사(普願禪師) 법을 받고, 문하에서 이십 동안 있었다. 팔십 세까지 각처로 돌아다니다가(行脚) 비로소 조주(趙州) 관음원(觀音院)에서 학자들을 제접(提接)하기 사십 . 당나라 소종(昭宗) 건녕(乾寧) 4 120세에 입적하였다. <어록(語錄)> 3권이 남았고, 그의 교화가 참으로 커서 조주 고불(趙州古佛)이라고 일컬었다.

*상기병(上氣病 오를 /기운 /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 머리에 치밀게()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 상기병이 생기면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혼침(昏沈 어두울 , 잠길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무기(無記) : [] Avyaksita ()•()•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 말한다.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몽산(蒙山) : ()나라 스님, 생몰 연대 없음. 이름은 덕이(德異), 강서성(江西省) 여릉도(廬陵道) 시양 고안현(時陽高安縣)에서 났다.

고향 시양이 당나라 때에는 균주(筠州)였기 때문에 고균(古筠) 비구라고 일도 있었고, 여릉도 몽산에 있었으므로 몽산화상이라 하며 강소성(江蘇省) 송강현(松江縣) 전산(殿山) 있었으므로 전산화상이라기도 하고, 휴휴암(休休庵) 있었으므로 휴휴암주라기도 하였다. 고산(鼓山) 완산(皖山) 정응선사(正凝禪師) 법을 이었다.

그의 교화한 시기는 원나라 세조(世祖) 때이며, 우리 고려의 충렬왕 때이다. 그래서 고려의 고승들과 문필의 거래가 많았고, 그의 저서 가운데 <법어약록(法語略錄)> <수심결(修心訣)>등은 이조 중엽에 우리 글로 번역되기까지 하였다.

*몽산법어(蒙山法語) ; ()나라 몽산스님의 법어로 참선 수행의 구체적인 길을 자상하게 제시하였다.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몽산법어 있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3,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3, 내쉬는 시간은 4~5,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80 동안거해제 법문에서.(1분 32초)

 

숨을 들어마실 코로 들어마신다 생각을 하지 말고 뒤에서 들어마셔 가지고,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지고 거기서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뒤에서 궁둥이로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내쉰다, 내보낸다이러한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수식관(數息觀); 들숨과 날숨을 세어 산란한 마음을 집중시키는 수행법.

*방부(房付)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 참가하다.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Posted by 닥공닥정
발심 자신(自信)2013. 10. 5. 14:33

 

 

§(414) (게송)무변찰해허명경~ / 발심 가운데는 포구발심(怖懼發心)이 제일, 사바세계가 도 닦기에 가장 좋다 / 전강 조실스님의 포구발심 직지사 용맹정진.

 

조실 스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발심 가운데에는 포구발심(怖懼發心), ', 생사(生死) 정말 무섭구나' 생사에 대한 무서움, 두려운 마음으로 발심하는 , 포구발심이 제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바세계가 닦기에 가장 좋다 하는 것은 천당보다도 하늘나라에 () 받는 천국보다도 사바세계가 닦기에 좋다고 하는 것은, 흥망성쇠와 생로병사와 빈부귀천의 그러헌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그러헌 모습들이 눈으로 있고 귀로 들을 있고 느낄 있고 노상 접할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사바세계는 '참나' 깨닫기 위한, 우주법계에서 가장 좋은 도량이라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생사(生死)! 무상한 생사 속에서만이 발심(發心) 수가 있고, 발심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공부는 수가 없습니다. 남이 참선을 하니까, 참선을 하면은 마음이 편안해진다니까그러한 옅은 생각으로 조금씩 흉내내 보고 조금씩 연습해 보고 이래 가지고서는, 그것도 것보다는 나을런지 모르지만 정말 생사 문제를 해결하고 대도를 성취할려면 목숨을 바치는 그러한 대분발심이 아니고서는 이룰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송담스님(No.414) - 1990년 4월 첫째 일요법회 법문에서. (용414)

 

약 17분.

 

 

무변찰해허명경(無邊刹海虛明鏡)인데  적겁매진광미휴(積劫埋塵光未虧)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종래천성부동진(從來千聖不同塵)헌데  하사횡신성색리(何事橫身聲色裏)인고

나무~아미타불~~

 

무변찰해허명경(無邊刹海虛明鏡)이요  적겁매진광미휴(積劫埋塵光未虧)다.

갓 없는 우주법계가 텅 비고 밝은 거울인데, 그 거울이 무량겁 동안 거울에 쌓이고 쌓인 티끌로 그 밝은 빛이 나타나지를 못하는구나.

 

종래천성부동진(從來千聖不同塵)인데  하사횡신성색리(何事橫身聲色裏)인고.

부처님과 모든 보살님과 역대조사와 모든 성현들은 그 티끌에 파묻히지 아니하고 터억 자아를 자각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해탈도(解脫道)를 증득했는데,

우리 중생들은 무슨 일로, 무엇 때문에 그 소리와 빛깔의 티끌 속에 파묻혀서 헤어나지를 못하는고.

이러한 고인의 게송을 읊었습니다.

 

 

오늘 경오년 4월 첫째 일요법회를 맞이해서 방금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처음에 선방에 나오셔서 직지사(直指寺)에서 첫 철을 공부하시는 그 지경을 들었습니다.

열아홉 살 열여덟 살 한참 그 어리신 나이에 같이 뛰어놀고, 같이 글을 배우고 공부하던 친구가 병이 들어서 죽은 것을 보고 너무도 큰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그 충격을 받고 있는 차에 마치 밤에 무간지옥(無間地獄)에 그 하룻밤 하루낮에 만 번 죽고 만 번 깨어나면서 만사만생(萬死萬生)하는 그 무서운 피비린내 나는 지옥고(地獄苦) 받는 광경을 보셨습니다.

사람을 세워 놓고 톱으로 머리로부터서 두 쪽으로 썰어 내리고, 또 사람을 수십 명씩 콩나물처럼 그렇게 잡어 가지고 큰 맷돌에다가 넣어서 맷돌로 갈아서 죽이는 모습, 또 그렇게 죽여 가지고 다시 또 살려 내 가지고 또 그와 같은 것을 수없이 되풀이를 하는 그러한 광경들, 그러한 꿈을 또 꾸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생사(生死)라 하는 것은 참으로 무상한 것이다. 어서 빨리 내가 선방에 나아가서 참선을 해야겠다’ 그러한 참 불같은 발심을 해 가지고 직지사로 나오신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발심 가운데에는 포구발심(怖懼發心), '아, 생사(生死)가 정말 무섭구나' 그 생사에 대한 무서움, 두려운 마음으로 발심하는 것, 포구발심이 제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사바세계(娑婆世界)에는 포구발심할 수 있는 많은 상황들이, 동서고금을 막론해서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조실스님께서는 18~9세 어린 나이로 그런 친구의 죽음을 보시고, 지옥고의 꿈을 꾸시고서 포구발심을 하셨어.

 

그런데 우리는 정든 가족이 죽어도, 친구가 죽어도, 도처에서 교통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고, 강도로 인해서 죽고, 교통사고로 죽고, 전쟁으로 죽고 그 사람들이 죽는 그런 비참한 광경을 수없이 보면서도 과연 생사에 대한 포구발심을 한 분이 몇 분이나 되십니까?

 

‘사바세계가 도 닦기에 가장 좋다’고 하는 것은 천당보다도 저 하늘나라에 낙(樂)을 받는 천국보다도 더 사바세계가 도 닦기에 좋다고 하는 것은,

흥망성쇠와 생로병사와 빈부귀천의 그러헌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그러헌 모습들이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노상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이 사바세계는 '참나'를 깨닫기 위한, 우주법계에서 가장 좋은 도량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19세의 그 어린 나이로 첫 철에 직지사 선원에 나오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공부를 하시는데 아침공양을 하시고는 자리에 앉아서 참선을—입선(入禪) 방선(放禪)도 상관이 없고, 큰방에서 대중 스님네와 같이 그렇게 하면 입선 시간이 있고, 방선하면 일어서야 하고, 대중과 행동을 같이 해야 하니까,

그러기가 불편하니까 법당 뒤에다가 방석 하나를 갖다 놓고 거기서 공양시간에는 불가불 가서 공양을 드셔야 하니까 그때만 일어서시고 공양만 끝나면은 바로 그 자리에 와서 앉었어.

 

그렇게 하기를 하루, 이틀, 사흘, 열흘, 두 달, 석 달을 한결같이 그렇게 하셨다.

대중이 ‘어린 사람이 첫 철 말뚝 신심이 나 가지고 저런다고 며칠이나 갈까 보냐?’고 모다 수군덕거리고 그랬다고 아까 말씀이 계셨습니다마는 그걸 허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이 한결같이 그렇게 하셨어.

 

그러나 이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는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과 화두를 드는 바른 법을 알고서 하셔야 할 텐데, 누가 그걸 자세히 일러준 분도 없었고, 또 그렇게 자세히 해 놓은 책도 볼 수 없었고,

 

또 그 조실 스님께서는 그때는 제산(霽山) 스님께서 조실로 계신 때인데 ‘일념미생전(一念未生前)을 관(觀)하라. 한 생각 일어나기 이전을 관하라’ 이렇게 화두를 일러 주셨으니,

그것이 도저히.. ‘일념미생전을 관한다’ 어떻게 관(觀)하며, 또 들은 법문에 의하면은 ‘화두는 의심을 관하는 것인데 의심도 없이 한 생각 이전의 상태를 관하라?’

 

도저히 바른 공부가 아닌 것 같아서 단독으로 조주무자(趙州無字) 화두를 스스로 간택을 해 가지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파고 또 파고 해 가지고 어떻게 간절히 그리고 몹시 알날신심(捺身心)하면서 막 파고 들어갔다.

그러니 마침내는 육단심(肉團心)이 동(動)해 가지고 그렇게 코로 입으로 많은 피를 토하셨다고 그럽니다.

 

결과적으로는 피를 토하셨거나 말았거나 그렇게 무섭게 공부를 하셨기 때문에 결국은 대도를 성취하셨다고 하는 생각이 됩니다마는, 애당초에 바른 자세법과 바른 호흡법과 바른 화두를 드는—어떻게 화두를 들어야 하는가?

그 화두를 드는 그런 가장 불급불완(不急不緩)한, 너무 급하지도 않고 늘어지지도 않는 가장 그 묘한 의심관(疑心觀)으로 해 나가셨다면은 그렇게 피를 토하시지 않고도 도를 이루셨지 않을까? 이렇게도 생각이 들기도 하지마는.

 

하여간 그 어리신 나이로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무서운 신심과 무서운 분심으로 그렇게 밀고 나가 가지고, 병이 난 뒤에도 계속해서 목숨을 거기다 전부 다 바치고 결국은 정진을 중단하시지 않고서 마침내 대도(大道)를 성취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정말 친구나 정든 사람의 죽음을 보고 그렇게 철저히 발심을 해서 도를 닦을라고 한 분도 지금도 역시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설사 그렇게 발심을 하신 분이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바른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서 화두를 간택하고 공부하는 방법을 바로 알아 가지고 하신다면은 중간에 무서운 그런 병이 일어나지 않고서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조실 스님은 그 어려서 그렇게 피가 넘어오는 그것으로 인해서 많은 세월 동안을 그 병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뒷머리가 툭툭 터져서 머리에 참 많은 흉터가 계셨고, 고생도 참 많이 하셨습니다.

그렇게 무섭게 정진을 하시고 밤잠을 안 주무시고 공부를 하시고 그래서, 스스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무섭게 정진을 하셨기 때문에 평생 동안 후배들을 위해서 후학들을 위해서 참 감동적인 법문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스스로 무량겁 동안을 수행을 하시는 가운데에 수없는 몸을 던지시고 참 무서운 고행정진을 하셨기 때문에 사바세계에 탄생하셔 가지고 그 팔만사천 무상법문을 그렇게 많이 남기신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생사(生死)! 무상한 이 생사 속에서만이 발심(發心)을 할 수가 있고, 발심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 공부는 할 수가 없습니다.

‘남이 참선을 하니까, 참선을 하면은 마음이 편안해진다니까’ 그러한 옅은 생각으로 조금씩 흉내내 보고 조금씩 연습해 보고 이래 가지고서는, 그것도 안 한 것보다는 나을런지 모르지만 정말 생사 문제를 해결하고 대도를 성취할려면 목숨을 바치는 그러한 대분발심이 아니고서는 이룰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처음~16분3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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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무변찰해허명경(無邊刹海虛明鏡)~ ; 『천목중봉화상광록(天目中峯和尙廣錄)』 (제14권) ‘別傳覺心’

**복전암 29번에도 이 게송이 있음.

무변찰해허명경(無邊刹海虛明鏡) 가없는 시방세계가 텅비어 밝은 거울인데

적겁매진광미휴(積劫埋塵光未虧) 무량겁 동안 티끌이 쌓여도 그 빛은 이지러짐이 없구나

종래천성부동진(從來千聖不同塵) 종래로 모든 성인은 티끌과 함께 하지 않았는데

하사횡신성색리(何事橫身聲色裏) 무슨 일로 우리는 성색의 티끌속에 죽어가느냐!

*虧 (이지러질 휴) 이지러지다. 손상됨. 그치다. 줄다.  *裏 (속 리) 가운데, 뱃속, 다스려지다. 안에 받아들이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포구발심(怖懼發心 두려워할 포/두려워할 구/일어날 발/마음 심) : 끝없이 되풀이 되는 육도윤회(六途輪廻)에서 받을 생사(生死)가 정말 무섭구나. 그 생사의 고통을 매우 두려워(怖懼)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지옥(地獄 땅 지, 감옥 옥) ; ①고통이 가득찬 세계. 현세에 악업(惡業)을 행한 자가, 사후 그 보답을 받는 곳. ②아주 괴롭거나 더없이 참담한 환경이나 형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도량(道場) : [범] bodhimandala 도를 닦는 곳이란 말이다。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말뚝 신심 ; 말뚝은 보기에는 견고해 보이나 뿌리가 없어 외부의 힘에 쉽게 흔들리거나 썩어 버린다. 이것에 비유하여 보기에는 열심인 듯하나, 꾸준하지 않고 잠깐 일어난 신심을 '말뚝 신심'이라 한다.

*조주무자(趙州無字) 화두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알날신심(捺身心  누를 알/누를 날/몸 신/마음 심) ; 몸과 마음을 억누르다.

[몽산법어]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에 나오는 구절.

*육단심(肉團心) : [범] Hrdaya  4심의 하나。 심장을 말함。 8판(瓣)의 육엽(肉葉)으로 되었다 한다。 의근(意根)이 의탁한 곳.

*묘한 의심관(疑心觀) ; 묘관(妙觀).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5분 59초)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 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 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불문곡직하다(不問曲直-- 아니 불/물을 문/옳지 않을 곡/곧을·맞을 직) ; 곡직불문하다. (사람이)옳고 그름을 따져 묻지 아니하다.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Posted by 닥공닥정
생활속 정진(요중선)2013. 10. 4. 15:07

§(457) 금생에 해 놓은 공부는 설사 깨닫지 못해도 전혀 헛것이 아니고, 시끄럽고 복잡한 속에서 해 놓은 공부는 복과 혜를 겸하고 오후보림공부까지 포함되는 것이다.

 

**송담스님(No.457) - 1991년 11월 첫째 일요법회(67분)법문에서. (용457)

 

약 7분.

 

설사 공안(公案) 하나를 일생 동안 참선을 해도, 공안 하나를 대답을 못해도 상관 없어.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 해 나가면 반드시 금생(今生)에 타파하게 되고, 설사 금생에 확철대오를 못해도 금생에 숨을 거둘 때에도 터억 화두를 들고 그 의단 하나로서 숨을 거두어 보라 그말이여.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가서 태어나거나, 설사 사람 몸을 받더라도 내생(來生)에 다시 몸을 바꾸어 가지고 또 이 정법문중(正法門中)을 만나서 내생에는 전강 조실스님처럼 어린 나이에 툭 터져버리거든.

물론 금생에 참 어린나이로 선방에 나오셔서 정말 생명을 바쳐서 정진을 하셨기도 했지만, 어떤 스님은 조실스님보고 ‘전생공부(前生工夫)라고, 전생에 그렇게 해놨기 때문에 금생에 그렇게 툭 터졌다고, 전생공부라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도 듣기도 했지만,

하여간 금생에 여법하게 해 놓은 공부는, 금생에 설사 깨닫지 못했어도 전혀 헛것이 아니고 내생에 일찍 툭 터지는 것이여. 그런 신념을 가지고 공연히 속효심(速效心)을 가지고 빨리 깨닫기를 기달릴 일이 아니라 여법하게 그리고 열심히만 하는 것 뿐이여.

깨닫고, 못 깨닫는 것은 기다릴 것도 없고 조금도 조급한 생각을 가질 것이 없어.

게으른 사람이 항상 우선은 뒤로 미뤄.
지금은 내가 자식 때문에 공부를 못하고, 딸 때문에 공부를 못하고, 영감 때문에 공부를 못하고, 영감만 죽으면 아주 선방(禪房)에 가리라. 또 뭐 딸만 여위어 버리면 선방에 가리라. 자식 저놈 대학에 들어가버리면 그때는 내가 공부하리라.

 

밤낮 뒤로 미루고 핑계를 대거든, 누구 때문에 내가 지금은 못한다.
그것이 게으른 사람이 하는 것이거든. 그것이 발심(發心)을 철저히 못한 것이고, 무상(無常)을 철저히 깨닫지 못한거여. 누구 탓할 거 없어.

그렇다고 해서 다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는 해야지, 별 수가 없다 그말이여.

아내 노릇도 해야 하고, 엄마 노릇도 해야 하고, 주부 노릇도 해야 하는데, 아직 시집 장가도 안 간 처지라면 이것 저것 다 내동댕이쳐 버리고 머리 깎고 출가하면 되겠지만 이미 다 저질렀으면 어쩔 수가 없어.

부처님은 결혼도 하셨고 아들도 낳으셨고 얼마 안 가면은 왕이 될 그런 처지에서도 탁 일도양단(一刀兩斷)해서 끊어버리고 설산(雪山)에 들어가서 고행(苦行)을 하시고 성불(成佛)을 하시는 그런 모범도 보이시기는 했으나,

내가 만약에 '다 가정을 버리고 출가하라'하면은 당장 나한테 빗발치듯이 전화가 와 가지고 야단이 나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권고는 안 합니다.

인연이 도래해서 본인이 발심해서 출가한 거야 아무도 막지 못하는 것이고, 발심 못한 사람이 내가 하라고 한다해서 하겠습니까? 그러니 괜히 내가 그런 말은 안 하지마는, 뒤로 미루지 말라 이거거든

있는 그 자리에서 이뭣고? 밥 지으면서 '이뭣고?' 빨래하면서 '이뭣고?' 앉아서 '이뭣고?' 서서 '이뭣고?' 시장보러 가면서 '이뭣고?' 보아가지고 오면서 '이뭣고?' 누워서도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 근심걱정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이뭣고?'

이렇게 해서 그러한 생사(生死)의 바다속에서 생각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를 하면 그 속에서 해 놓은 공부는 정말 생사를 이겨 낼 수 있는 무서운 힘을 발휘한 것이다.

이것저것 다 끊고 조용한 데서 해 버릇하고 고요한 데서 익힌 공부는 조금 시끄러우면 잘 안되는데

시끄럽고 복잡한 속에서 익혀논 공부는, 좀 어렵지. 어렵기야 어렵지마는 그 속에서 해 놓은 공부는 정말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림을 받지 않게 되고 정말 힘 있는 공부를 하게 될뿐만 아니라 복(福)과 혜(慧)를 겸해서 닦게 되고 오후보림(悟後保任) 공부까지 그 속에 다 포함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니까 뒤로 미룰 것이 아니라 바로 거기에 즉해서, 그 상황 속에서 턱턱 챙겨나가라.

그렇게 공부를 해 놓으면 금생에 출가를 하던지 또는 출가를 안하더라도 선방에 나오시면 문제가 없고 또 금생에는 영영 그렇게 되지 못하더라도 내생에는 정말 출가해서 오직 이 한 일만을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그러헌 좋은 여건하에 또 태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51분~57분2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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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속효심(速效心) ; 빨리 효과 나기를 바라는 마음.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불도를 얻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다.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무상(無常) ; [불교]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일도양단(一刀兩斷) ; 칼로 무엇을 한 번에 쳐서 두 동강을 냄. 어떤 일을 머뭇거리지 않고 선뜻 결정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보임(保任) ;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더욱 갈고 닦는 수행. 보림이라고도 한다.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의단(疑團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