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재(영가천도)2015. 9. 22. 09:03

§ (2)전강 선사 영가천도 법문(생야시 사야시) / 송담 스님 영가천도 법문.(심수만경전~)

 

(1) 전강선사(약 10분)

 

 

(2) 송담스님(약 8분)

 

 

(1)------------------

 

생야시(生也是)  사야시(死也是)니라

두두비로(頭頭毘盧)요  물물화장(物物華藏)이니라

 

그거 그렇게만  놓으면  무슨 도리(道理)인지  수가 있어야지.

영가(靈駕)께서는 뭐라고 말씀을 하던지 내가 ()  가지고 하면은  알아듣지마는, 여기에 모이신 사부대중(四部大衆)들도  알아들어야   아니여.

 

『생야시(生也是)』요  말은, 우리가  몸뚱이 받아 가지고  사대(四大) 육신 몸뚱이를 가지고,

 ()우리 말하는 영가(靈駕), () 몸뚱이 속에서  사대색신(四大色身) 몸뚱이를 끌고 댕기는 그것을 ()이라 하니까.

몸뚱이 하나 어머니 뱃속에서 얻어가지고 나온 것을 ()이라 하니까, 『생() ()다』 그말이여.

 

‘생() ()’라는 것은 당장 이렇게  몸뚱이 얻어 나온 이것도 ().

 ()라는 것은  ()’ 인데, ‘ ()’자는 옳을 ()’ 인데, 옳다는 () 인데, ‘이것이다, 옳다  말은 『본래 생사가 없다』 그말이여. 알아듣겄죠?

 

 

『사야시(死也是)』다.  몸뚱이를 가지고 이렇게 갔다왔다 성숙시위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黙動靜)  송장 몸뚱이 가지고 이런다마는, 그래 가지고 있다  몸뚱이는 죽는다.

그놈 몸뚱이 내던질라면 그놈의 죽는 () 무섭지! 이 죽는 것도 ()니라. ‘ ()’, ‘옳을 ()’.

 

죽는 , 몸뚱이 고녀러 것이 이놈이 죽지,

 몸뚱이 끌고 댕기는 주인공은 거기 죽는 것도 없고, 죽는 때도 묻지 않고, 송장한테  상관도 없이, 그대로 독로(獨露)  () 자리는 그놈이 ()니라.  생사 없다’ 그말이여.

 

() (), () ()니라. 고렇게  말이여.

 

『두두(頭頭) 비로(毘盧). 머리 머리가 비로(毘盧)니라』  말은,  술어가 어려워서 알기 어렵지. 말해 주어서 몰라서야, 뭐여?

 

두두(頭頭) 비로(毘盧)라는 것은 모도(모두) 여러 가지  세상에 모도 물질꽃이던지, 냉기(나무)던지, 무슨  대갈빡(대가리)이던지,

 그저 세상에 두두(頭頭), 머리 머리일체  머리,  머리, 그저 까치, 까마구 대가리 머리, 배암 대가리 머리, 일체 두두 모두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체두(體頭)  () 그말이여.

 

 ()’자여. ‘ ()’.

 옳다.  생사 없는 도리다 그말이여. ‘ 진리니라’ 그말이여. 진리여, 그게 참다운 이치여. 

 

산이다, 물이다, 돌이다, 솔냉기(소나무), 밤냉기(밤나무), 감냉기(감나무),

고런 것이 우리 사람의 분별식(分別識)으로 망상 그걸 때려 붙여서 솔냉기라고 이름을 지어 붙였고, 밤냉기라고 이름을 지어 붙였고, 까마구라고 이름을 지어 붙였고, 뱀이라고 이름을 지어 붙였지,

 

 자체에 들어가서는 뱀이 뱀이라는 것도 없고, 솔냉기가 내가 솔냉기다라는 것도 없고,

솔냉기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푸른 상(相)도 없고, 솔냉기는  크다 적다, 일체 제상(諸相)이 거기 없느니라. 본래  생사(生死) 없는 진리다. 

 

진리(眞理) 영존(永存)이다.  진리라는  영존이여. ‘있다 없다’하는 법이 없어.

일체 물질도 불생불멸(不生不滅)인데, 일체 물질도 원소불변(元素不變)이여. 원소가 변한 법이 없고 항상 그대로여. 진리는 영존하는  자리여.

 

본래 생사가 없고 본래 죄업(罪業) 없건마는,  진리 하나를 깨닫지 못하고,  진리 하나를 내가 바로 얻지 못했기 때문에,

번뇌 망상 속에 휩싸여서  지었다하면은 죄상(罪相) 휩싸여서, 그만 () 가지고는 죄를 받느니라. 허니  진리영존(眞理永存) 자리로 돌아가자. 

 

() (), () (), 두두(頭頭) (), 일체가  ()  ()했나? 『돌()!   한번  놓고서는,

거그다가서  진리 하나, () 하나,  () 진리. 그놈이 진리영존(眞理永存) 자리다. 거가서  처백힐  같으면은 ! 웬일이여. 『돌()!

 

 

회수간산취류하(回首看山醉流霞)   의수침면일이사(倚樹沈眠日已斜)니라

나무~아미타불~

 

! 그런  모도(모두) 번뇌 망상 깨달지 못하면 인생이라는 것은 처처(處處) ()이니라.

깨닫지 못한 인생이라는 것은 그저 죄에 ()하고, 그저 잘못한 데 착()하고, 그저 일체처(一切處) ()하고, 두두(頭頭) 모도 애착(愛着) () 가지고는 그만  놈의 죄업만 지으니,

 

 진리영존(眞理永存) 자리를 보덜 못허고, 찾덜 못허고,  지경이 되아서,

()() 중생이여, ()하면 깨닫지 못하면 중생이기 때문에 그런 생사 때꼽재기가 모두 끼어 있어서 밤낮 그놈으로써 일체다. 

 

중생은 ()  고통으로써 그만 근본 () 되아 가지고는 진리는 꿈에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죄업이 항상 있어서, 본래 없는 죄업이 항상 있어서, 그놈의 죄끼리만 죄만 받으러 따라댕기는 것이 그것이 중생이다.

 

 이러냐? 돼지는 어째서 돼지 몸뚱이 받아 가지고  숭악한 찌께기나 먹고 살쪄 키워 가지고는 몸뚱이로 바칠 , 점점이 포(脯) 떠낼 ,  죽을 지경 당하는 것이  이러냐?

애착고(愛着苦)니라. ()해서 모도 중생업(衆生業) 애착(愛着) 되어 그러하느니라. 

 

! 한번 걷어 버리고,  진리영존(眞理永存) 자리  깨달라 () 번지면은 일체업(一切業) 무슨 구타부득(狗他不得)이다. 일체 죄업이 어디가 붙느냐?

그러니 모도 (), 진리영존(眞理永存) 자리 (), 확철대오 하는  근본 (), 근본 도리. 

 

마침 회수간산취류하(回首看山醉流霞). 머리를 돌이켜 산을 보니 흐르는 안개에 취한다.

 흐르는 안개,  산에 흐르는 안개 츠르르르 내려오는 대자연이로구나. 그것도 대자연이지. 거가 무엇이 붙어 있나? 

 

해가 넘어가는데 냉기(나무) 기대 졸음에 잔다(倚樹沈眠日已斜).

 졸음에 잠깐 들어 조는 거나 마찬가지지 무슨 생사냐 그것이. 죽고 사는 생사가 어디 붙어 있느냐? 그것이 모도 생사 없는 해탈묘용(解脫妙用) 아니냐!  ()

 

 

 

 

 

 

 (2) 송담스님(약 8분)

 

(2)------------------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허고   전처실능유(轉處實能幽)니라

나무~아미타불~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허면   무희역무우(無喜亦無憂)니라

나무~아미타불~

 

마음은 일만 경계를 따라서 굴러가.(心隨萬境轉)

전처실능유(轉處實能幽), 굴르는 곳마다 실로 능히 그윽해.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하면,  흐름을 따라서  성품을  버리면,

무희역무우(無喜亦無憂), 기뻐할 것도 없고 또한 슬퍼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근심할 것도 없는 것이다.

 

오늘 49재를 맞이한 그리고 오늘 천도재(薦度齋)에 동참한 여러 영가들의 유족과 친지들 그리고 만년위패에 모신 법보 영가들,  자리에 초청한 우주법계에 모든 유주무주(有主無主) 영가들,

본래 생사 없는 도리, 생사 없는 진리에 계합(契合) 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따라서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유족들께서도 영원히 아주 돌아가셨다 이렇게 생각하면 한없이 슬픔이 일어나겠지만, 돌아가신 것이 아니여.

다만 인연 따라서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 헌옷을 벗었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옷을 갈아입을려면 누구든지 입고 있던 헌옷은 벗어야 하는 것입니다. 헌옷을 벗었다고 해서 그것을 아까워  것이야 없고 섭섭해  것이 없어.

헌옷을 벗는 것은  옷을 입기 위해서 헌옷을 벗는 것이라, 그렇다면 무엇이 슬퍼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그리고 진리에 있어서는 생사(生死)가 없는 것이지만 인연 따라서 헌옷을 벗고  옷을 입듯이,

 몸뚱이를  세상에 받아  사람은 인연 따라서 다시   몸뚱이를 벗어버리고  몸을  받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라고 할까, 풍류라고 할까?

 

삼세제불(三世諸佛) 역시 일단 몸뚱이를 받아  이상에는 인연 따라서   몸을 벗고,   몸을 받어.

역대조사(歷代祖師) 역시 그렇고,  우주에 있는 모든 인간 모든 생명체도 또한 그러한 것입니다.

 

봄이 왔다가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뒤에 다시 겨울이 오고, 겨울이 지난 뒤에 다시 봄이 오듯이,

세계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 있고, 우리의 몸뚱이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고, 우리의 마음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 있어.

 

우리의 마음에  생각이 일어났다가, 잠시 머물러 있다가, 다른 생각으로 발전을 했다가,   생각이 없어지면  새로운 생각이 일어나고,

우리의 마음에 생주이멸(生住異滅) 영원이 계속되는  우리의 몸뚱이의 생로병사도 또한 영원히 끊일 날이 없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우리의 몸뚱이에 생로병사,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을 하고자 한다면, 우리의 마음에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각을 단속을 하는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참선법(參禪法)이여.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괴로울 때도 이뭣고?’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항상 이뭣고?’ 챙기고, ‘이뭣고?’로서 슬픔도 대처해 나가고, 괴로움도 그놈으로서 극복해 나간다면 결정코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것입니다.

 

그러면 생사 속에서 자유를 얻게 되어.

생로병사 속에서 영원한 열반(涅槃)의 즐거움을 터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디 부탁하노니, 유족들은 돌아가신 이의 슬픔을 발판으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결정코 금생에 깨닫도록 그것을 목적으로 해서 열심히 정진을 하신다면,

영가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설한 불보살(佛菩薩) 법문(法門)을 몸으로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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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 ()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사대색신(四大色身) ; 사람의 몸을 이르는 . 사람의 몸이 , , , 바람(,,,) () 원소()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중국에서 () • () • () • () •  () 오행(五行) 말하듯 인도에서는 옛날부터 () • () • () • 바람() 사대(四大)로써 자연계(自然界) 온갖 것에 대한 구성요소(構成要素) 말하였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비로(毘盧) ;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약칭. 비로자나불은 진리  자체인 법신(法身) 의인화하여 형상화한 부처님.

비로자나(毘盧遮那) vairocana 음사(音寫), 해석하면 변일체처(遍一切處), 광명변조(光明遍照),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 모든 곳에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뜻.

진리는 어떤 특정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 속에 구현되어 있는 것이므로, 진리가  부처라고 하는 비로자나불의 관점에 서면 일체 모든 것이 부처라고   있다.

따라서 두두(頭頭) 비로(毘盧) 말은 삼라만상 일체가  부처 아님이 없고 진리 아님이 없다는 말이다.

*삼라만상(森羅萬象)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분별식(分別識) ; 팔식(八識) 가운데 6 의식(意識) 말한다.  의식은 차별하여 사유하고 판단하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죄업(罪業) ;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위() () 생각(). 괴로움의 과보를 초래하는 악한 행위.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돌(咄) ; ①탄식하는 소리. 놀람을 나타내는 소리. 쯧쯧! 어허! ②꾸짖는 소리. 호통치는 소리. 떽! 어흠!

*(게송) ‘회수간산취류하(回首看山醉流霞) 의수침면일이사(倚樹沈眠日已斜)’ ; ‘머리를 돌이켜 산을 보니 흐르는 안개에 취한다. 해가 넘어가는데 나무에 기대 졸음에 잔다’

[참고] 『용성선사어록(龍城禪師語錄)』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 문인(門人) 동산 혜일(東山慧日) 찬집(撰集) | 금천今天 옮김) 제1장 선지식 참문(參問知識章).

還歸海印寺할새 頌曰

伽倻名價高靑丘, 明心道師幾往來. 矗矗奇巖疊鱗高, 密密柏樹相連靑. 無限白雲滿洞鎻, 洪鐘轟轟碧空衝. 回首看山醉流霞, 倚樹沉眠日已斜.

 

해인사로 다시 돌아오셔서,

“가야산의 명성과 평판이 청구靑丘에 높으니 마음 밝힌 도사들이 얼마나 왕래하였던가!

우뚝 솟은 기암은 비늘처럼 포개어져 있고 빽빽한 잣나무는 서로 이어져 푸르구나.

무한한 흰 구름은 골짜기마다 가득하고 크게 울리는 범종 소리는 푸른 하늘에 사무친다.

고개 돌려 산을 보다가 저녁노을에 취해서 나무에 기대어 깊이 졸다 보니 해는 벌써 기울었네!”

라고 게송을 읊으셨다.

 

*(게송) ‘回首看山醉流霞 倚樹沈眠日已斜’ ; 『전당시(全唐詩)』 540권 이상은(李商隱)의 시 ‘화하취(花下醉)’ 참고. ‘尋芳不覺醉流霞 倚樹沈眠日已斜 客散酒醒深夜後 更持紅燭賞殘花’

*때꼽재기 ; 때가 여러 겹으로 엉겨붙은 조각이나 부스러기.

*() : ①중생이 번뇌에 의해 업을 만들어  혹업(惑業, 미혹에 바탕을  행위. 번뇌) 이끌려 사는 . 이를 6종류로 나누어 육취(六趣)라고 한다. (道, 途)라고도 한다. 특히 악취(惡趣), 악도(惡道) 일컬음. ②내세로 향하는 .

*애착(愛着) ; 사랑하여 집착함. 애집(愛執).

*() ; 깨달은 바를 다시 한번 점검하여 확인하는 .

*구타부득(狗他不得) ; 그를 구속하지 못한다.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①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이 자유 자재한 .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②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열반의 상태. ③깨달음. ④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선정(禪定) 상태. 평온한 경지.

*묘용(妙用) ; 신묘한 진리의 작용. 뛰어난 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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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심수만경전~’ ; [직지(直指)] (白雲和尙) 마나라(摩拏羅) 존자 게송 참고.

*천도재(薦度齋) ;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 따라 다음 생을 받게 되는데,

유족들이 불보살(佛菩薩) 모신 법당(法堂)에서 돌아가신 영가를 청해 모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하고 또한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門)’ 들려줌으로써,

영가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혜의 눈을 밝혀 삶의 무상을 깨달아 이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보다 좋은 곳으로  나아가 육도윤회를 벗어나 극락왕생, 해탈의 바른 길로  건너가도록 하는 불교의식.

*유주무주(有主無主) ; ①주인(영가를 인도해 줄만한 인연있는 사람) 있거나 없는. ②제주(祭主) 있거나 없는.

*계합(契合 맺을 계, 합할 합) ;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들어맞음.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 하는데,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 [불교] 삶과 죽음,  생사(生死)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참선법(參禪法)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이뭣고(是甚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 1700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우리의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안됩니다.

화두(공안)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7822) [ ‘참선법 A’ 에서]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 음사. 멸(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

·안온(安穩원적(圓寂안락(安樂) 등으로 번역.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버리듯이, 타오르는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 등의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사제(四諦)에서 (),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 소멸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解脫)한 깨달음의 경지.

②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없이 무엇이나  열반이며 어느 때나  열반이다. 이것이  열반인 것이다.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 () 불타(佛陀) 준말. 각자(覺者)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Posted by 닥공닥정
천도재(영가천도)2015. 9. 16. 16:58
§ (1)전강 선사 영가천도 법문(월원불유망~) / 송담 스님 영가천도 법문.

 

(1) 전강선사(약 6분)

 

(2) 송담스님(약 11분)

 

(1)------------------
 
월원불유망(月圓不逾望)이요  일중위지경(日中爲之傾)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여  독야사시청(獨也四時靑)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월원불유망(月圓不逾望)하고, 달은 그렇게 둥글지마는 보름을 지나지 못해. 보름이면은 그만 쪼끄만해져 버려. 반 조각이 되아 버리고 만다.
일중위지경(日中爲之傾)이로구나. 해도 반일(半日)이 되면은 기울어져.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야, 뜰 앞에 잣냉기(잣나무)여.
독야사시청(獨也四時靑)이로구나. 홀로 또한 사시(四時)에 푸르러 있구나.
 
 
『뜰 앞의 잣냉기(잣나무)니라』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깐 뜰 앞의 잣냉기(잣나무)니라.
 
항상 푸르러 가지고는 그대로 있으니깐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라고 그랬는가?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깐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고 그랬는가?
흥! 거다가 부처님인들 어떻게 쎄(혀)를 댈 수가 있으며, 역대조사(歷代祖師)인들 입을 벌릴 수가 있는가?
 
고불야(古佛也) 임마거(恁麽去)요. 옛 부처도 이렇게 갔고. 금불야(今佛也) 임마거(恁麽去)다. 이제 부처도 이렇게 갔다. 금일영가야(今日靈駕也) 임마거(恁麽去)다. 오늘 영가(靈駕)도 역시 이렇게 간 것이다.
여하시(如何是) 임마거(恁麽去)냐? 어떤 것이 이렇게 간 것이냐?
 
삼세제불(三世諸佛)과 공(共) 십육군생(十六群生), 금일 영가까지라도 임마거(恁麽去)야?
불임마거(不恁麽去)다. 이렇게 가지 않는 것이다. 임마거(恁麽去) 불임마거(不恁麽去) 총부득(總不得)이니라.
 
여하즉득(如何卽得)고? 어떻게 해야 옳냐?
 
임제는 『할(喝)』을 했다. 임제 선사는 할(喝)을 했고, 덕산(德山) 큰스님은 『방(棒)』을 했느니라. 할(喝), 방(棒)이 시야(是也)? 할, 방이 그르냐? 옳으냐?
다 영가를 위해서 한마디씩 일러봐. 우리 도 닦는, 참 이 큰 대도량(大道場) 아닌가? 이 도만 똑 닦는 대도량, 한국 큰스님네가 모여서 도 닦는 여기에 와서 천도(薦度) 받는 영가를 위해서, 여하즉득(如何卽得)고?
 
임제 스님께서는 『임마야(恁麽也) 부득(不得)이요, 불임마야(不恁麽也) 부득(不得)이다. 임마(恁麽) 불임마(不恁麽) 총부득처(總不得) 여하(如何)오? 할(喝)』을 했고, 덕산 화상은 『방(棒)』을 했으니,
할과 방이 시야(是也) 비야(非也), 옳으냐 그르냐? 영가를 위해서 대중(大衆)은 한마디씩 다 일러봐. 일러야지, 바로 한마디씩.
 
영가를 위해서 대중은 다 양구(良久)를 했구나. 양구(良久), 방(), 할(喝)인데 대중은 일시(一時)의 양구를 했다 말이다.   “억!”  (끝)
 
 

(2) 송담스님(약 11분)

 

 

(2)------------------
 
오늘 소청(所請)한 여러 영가(靈駕)들의 천도재(薦度齋)를 이렇게 대중스님네와 여러 보살님네가 참석한 가운데 그리고 재자(齋者)들이 참석한 가운데 천도재를 봉행(奉行)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천도재를 맞이한 여러 영가들은 숙세(宿世)에 깊은 이 정법(正法)의 인연이 있어서 이렇게 청정한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참석한 가운데 생사 없는 최상승 활구법문을 듣고서, 무량겁(無量劫) 업장(業障)이 일시에 소멸(消滅)하고, 대해탈도(大解脫道)를 증득(證得)해서 부처님의 나라에 왕생(往生)하시게 되었습니다.
 
부처님 말씀에 “생사(生死)는 본래 없는 것이다”
생사가 본래 없건마는 중생(衆生)의 망령(妄靈)된 소견(所見)으로 생사가 있는 것처럼 착각을 하고, 온갖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망령된 소견만 여의어 버리면 바로 생사 없는 해탈도를 증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중생을 제도(濟度)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중생들의 망령된 소견—‘생사(生死)다, 열반(涅槃)이다’하는 그러한 망령된 소견을 떼어 주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금강경(金剛經)에 『보살도(菩薩道)를 증득(證得)해서, 증득했다는 소견을 갖지 말아라.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했으되, 아라한과를 증득했다고 하는 생각을 갖지 말아라.
그런 생각을 가지면 그것이 벌써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에 떨어진 것이라, 참 아라한이라 할 수가 없고, 참 보살이라 할 수가 없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라한의 성과(聖果)를 증득하고, 보살도를 증득하고, 불과(佛果)를 이루고서도 ‘이루었다’고 하는 상(相)을 가져서는 안되거든,
하물며 우리 중생들이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남을 사랑하고 하는 생각, 그런 애착과 집착심 또는 재산에 대한 애착심, 자손에 대한 애착심, 그러한 애착과 집착심을 가져서는 되겠느냐 이 말이여.
 
성과를 증득하고도 그러한 생각에 집착해서는 안 되거든,
하물며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잠시 왔다가 맺어진 인간관계, 잠시 왔다가 얻은 명예, 권리, 재산 등 오욕락(五欲樂)에 대한 애착심, 어찌 그러한 애착심에 얽매여서 해탈도를 증득하지 못해서 되겠느냐.
 
오늘 천도재를 맞이한 여러 영가와 법보단(法寶壇)에 만년위패(萬年位牌)로 모셔진 모든 영가, 그리고 거량(擧揚)을 통해서 우주 법계에 한량없는 영가가 지금 이 법석(法席)에 초청이 되어 있습니다마는,
 
이 모든 유주무주(有主無主)의 영가들은 이 세상에 부모형제, 처자권속(眷屬)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밖에 모든 밖에서 얻어진 모든 오욕락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잠시 이 세상에 와서 몸담아 있던 이 육체까지라도 하나도 애착(愛着)을 가질 것이 없습니다.
 
그러한 애착 때문에 해탈도를 증득하지를 못하고, 극락정토(極樂淨土)에도 못 가고,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도 못 가는 것입니다.
만약 오늘 이 천도 법회(薦度法會)를 인연해서 그러한 모든 애착을 버려 버린다면, 그리고 이 몸뚱이—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이 몸뚱이에 대한 애착을 버려버린다면, 영가는 명실공히 대해탈도를 증득하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는 아무리 잘 먹이고, 잘 입혀 아끼고 받든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이 몸뚱이는 늙어서 죽거나, 병들어 죽거나, 어떠한 사고로 인해서 결국은 이 몸뚱이는 버리지 않고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는 본래 그러한 실다운 것이 아닌 것으로 잠시 인연에 의해서 모여졌기 때문에 인연이 다하면, 이것은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여.
 
버릴 수 밖에 없는 것을 망령된 소견으로 집착하기 때문에 슬픔이 있고, 원망이 있고, 괴로움이 있어.
그러한 집착 때문에 헌옷을 벗어버리고도 갈 곳을 가지 못하고, 이 사바세계에 지나간 인연에 얽매여서 자기도 괴롭고, 유족들도 괴로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간곡히 부탁하노니, 오늘 천도재를 맞이한 여러 영가들은 아무것도 애착할 것이 없어. 집착할 것이 없어.
한 생각 놔 버리면, 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처럼 끝없는 극락정토에 왕생을 하실 것입니다.
 
‘한 생각’이 무량겁(無量劫)입니다.
한 생각 놓지 못하고서 무량겁의 감옥 속에 갇혀서 몸부림을 치느냐. 한 생각 놔 버림으로서, 한 생각 돌이킴으로서, 영원한 해탈도를 증득하느냐. 한 생각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일초(一超)에 직입여래지(直入如來地)』라 하셨습니다. 『한 생각에 바로 부처님의 땅에 뛰어오른다』
이 말은 참다운 말이며, 진실한 말이며, 바른 말인 것입니다.
 
용화선원에서 조실 스님께서 이십여 년 간을 설하신 바가 바로 ‘한 생각 돌이켜서 참나를 깨닫는 것’이,
살아 있는 사람이나, 이 몸뚱이를 버린 영가나, 이 사천하(四天下) 삼계(三界)에 있는 모든 중생들에게는 이 한마디를 뼛속 깊이 듣고 실천한다면은 벗어야 할 생사도 없고, 깨달라야 할 열반도 없는 것입니다.
 
‘생사(生死), 열반(涅槃)’의 두 소견을 버리는 것이 바로 해탈도를 증득하는 것입니다.
 
영가를 위해서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을 위해서 사족(蛇足)을 이상으로서 마치고자 합니다.  (끝)
 
 
 
 
 
 
 
------------------(1)
 
*(게송) ‘월원불유망~’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西山 休靜) ‘草堂咏栢(초당영백, 초당에서 잣나무를 읊음)’ 게송 참고.
*반일(半日) ; 하루낮의 반.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불교의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였고, 계율이나 염불이나 송주(誦呪)를 죄다 부인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觀心一法總攝諸行)’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直指人心見性成佛)’고 하였다.
실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성인이 나왔었다。그리하여 사람마다 다투어 묵은 불교를 버리고 이 새 법—참선법(參禪法)을 배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란 것은 달마조사가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的大意)'란 말과 같은 말이다.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임마(恁麽) ; ‘어떤, 그런, 이런’의 뜻으로 어느 것을 가르키거나, 긍정하거나, 의문의 뜻을 나타낼 때 쓰임.
임(恁) : 생각하다. 이러하다. 이같이. 이같은.  마(麽) : 의문 어조사(語助辭). 어조를 고르는 어조사.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군생(群生 무리 군, 날 생) ; 살아 있는 많은 존재, 곧 중생을 말함.
*임제 선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할(喝) : 보통  속음(俗音)의 「갈」로는 발음하지 않는다。선종(禪宗)에서 진리를 문답하는데 쓰는 독특한 수단이다.
큰 소리로 『엑 !』하고 꾸짖는 형세를 보임이니, 이것을 처음 쓰기는 마조(馬祖)가 한 번 할했는데 백장(百丈)이 사흘이나 귀먹고 눈이 캄캄하였다는 것이 첫 기록이다。그 뒤로부터 흔히 쓰는데, 임제(臨濟)가 가장 많이 썼다.
*덕산 선감(德山宣鑑) : (780 – 865) 속성은 주(周)씨。호북성 시남부(施南府) 이천현(利川縣)에서 났다. 어려서 출가하여 계율을 숭상하고 모든 경에 밝았으나, 특히 <금강경>을 늘 강설하므로 「주금강(周金剛)」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하루는 도반들에게 말하기를 『보살이 육도 만행(六度萬行)을 무량 겁으로 닦아야 성불한다고 하였는데, 이제 남방의 외도들은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단박 성불하게 한다’하니, 내가 그들을 소탕하여 버리겠다』하고 떠나갔다.
 
중도에서 떡집에 들어가서 점심(點心)을 청하자, 떡을 파는 노파가 묻기를 『보따리에 싼 것이 무엇인가요?』『<금강경소(疏)>요』
『<금강경>에, ‘지나간 마음도 얻어 볼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찾아 볼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어 볼 수 없다’고 하였는데, 스님은 점심하신다 하니, 어떤 마음에 점심하시겠읍니까?』하는데 대답을 못하였다.
 
노파의 지시로 숭신 화상을 찾아 용담(龍潭)에 갔다。용담사 법당에 들어가 그는 『용담의 소문을 들은 지 오랬는데, 와서 보니 용도 없고 못도 안 보이는군!』하매, 숭신은 『자네가 참으로 용담에 왔네』하는 데서 또 말이 막혔다.
그곳에 머무는데, 방장(方丈)에 가서 늦도록 있다가 자기 처소로 가려 하니 바깥이 캄캄하였다。도로 들어 갔더니 용담이 초에 불을 켜서 덕산에게 내밀었다。덕산이 받으려 할 때에 그 불을 훅 불어 꺼버렸다。그 바람에 덕산은 크게 깨치고 절하였다.
『자네 무엇을 보았기에 절하는가?』 『이제부터 다시는 천하 노화상들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겠읍니다』이리하여 용담의 법을 받고, 그 이튿날 <금강경소>를 불사르고 곧 떠났다.
 
당나라 무종(武宗) 때에 일어난 불법사태(沙汰)—불교를 파괴하라는 법령—를 독부산 석실(獨浮山石室)에서 겪은 뒤에 낭주(朗州) 덕산에서 크게 교화하였다。그 밖에도 여러 곳에 있었는데, 있는 곳마다 불전(佛殿)을 폐지하고 설법하는 법당만 두었고, 학자를 다루는 데 방망이를 많이 썼다.
의종(懿宗) 함통(咸通) 6년에 86세로써 입적하였다。그의 삼세 백조 지원(白兆志圓)에게서 신라의 혜운(惠雲)선사가 나왔다.
*방할(棒喝) ; 선가(禪家)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날 때, 또는 수행자를 꾸짖거나 호통칠 때, 주장자를 세우거나 그것으로 수행자를 후려치는 것을 방(棒)이라 하고, 그러한때 토하는 큰소리를 할(喝)이라 함. 방은 덕산 스님에서 할은 임제 스님에서부터 시작.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임마야(恁麽也) 부득(不得)이요, 불임마야(不恁麽也) 부득(不得)이다. 임마(恁麽) 불임마(不恁麽) 총부득(總不得) ; '이러하여도 알 수 없고, 이렇지 않아도 알 수 없고, 이러하여도 이렇지 않아도 모두 알 수 없다.'
*양구(良久) : 한참 말이 없이 침묵하고 있는 것인데, 그 첫 기록으로는 어떤 외도(外道)가 부처님께 묻기를 『말씀하지도 말고 말씀 안 하지도 말고 진리를 가르쳐 주소서』하는데, 부처님은 양구하였다。그러자 그 외도는 깨치고 나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또 유마경에 둘 아닌 법(不二法)에 대하여 여러 보살들이 제각기 말하는데, 유마힐은 양구하여 여럿의 칭찬을 받았다。그 뒤로 종문에서 법담(法談)하는데 이 특별한 수단을 많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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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청(所請 바 소, 청할 청) ; 다른 사람에게 청하는 바. 남에게 청하거나 바라는 일.
*천도재(薦度齋) ;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에 따라 다음 생을 받게 되는데,
유족들이 불보살(佛菩薩)을 모신 법당(法堂)에서 돌아가신 영가를 청해 모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하고 또한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門)’을 들려줌으로써,
영가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혜의 눈을 밝혀 삶의 무상을 깨달아 이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보다 좋은 곳으로—더 나아가 육도윤회를 벗어나 극락왕생·해탈의 바른 길로—잘 건너가도록 하는 불교의식.
*재자(齋者) ; 절에 재(齋)를 올리거나 불공(佛供)하러 온 사람.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남자 신도), 우바이(優婆夷 여자 신도)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障礙)가 사라져 없어짐.
*해탈도(解脫道) ;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왕생(往生) ; 죽어서 다른 세계에 가서 태어남. 이 세상에서 쌓은 공덕으로 죽어서 정토에 태어남. 염불한 공덕으로 죽어서 극락에 태어남.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함령(含靈)• 함식(含識)• 군생(群生)• 군맹(群萌)•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망령(妄靈) ; 늙거나 정신이 흐려서 말이나 행동이 정상을 벗어남. 또는 그런 상태.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제도(濟度 건널 제, 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열반(涅槃) : [범] nirvana  [파] nibbana  음을 따라 니반나(泥畔那) • 니원(泥洹) • 열반나(涅槃那)라 쓰고, 뜻으로 번역하여 멸(滅) • 적멸(寂滅) • 멸도(滅度) • 원적(圓寂) • 안락(安樂) • 해탈(解脫) 등이라 한다.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를 말함이니,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할 것 없이 무엇이나 다 열반이며 어느 때나 늘 열반이다。이것이 큰 열반인 것이다.
*보살(菩薩) :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각유정(覺有情) • 개사(開士) • 대사(大士)등으로 번역.
①성불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②대승교에 귀의, 사홍서원을 발하여 육바라밀을 수행하며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자리 • 이타(自利利他)의 행을 닦으며 51위의 수행계단을 지나 드디어 불과(佛果)를 증득하는 이.
*아라한과(阿羅漢果) ; 아라한(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의 깨달음의 경지. 곧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자의 지위로서, 성문 사과(聲聞四果-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의 가장 윗자리이다.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자의식.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망상.
*인상(人相) ; 사람은 고귀하므로 지옥 중생이나 축생들과 다르다고 집착(執着)하는 견해.
*중생상(衆生相) ; 산스크리트어 sattva-saā  중생이라는 관념·생각. 부처와 중생을 따로 나누어 나 같은 중생이 어떻게 부처가 되고 무엇을 할 수 있으랴 하고 스스로 타락하고 포기하여 향상과 노력이 없는 소견.
*수자상(壽者相) ; 산스크리트어 jīva-saā  목숨이라는 관념·생각. 목숨이 있다는 관념·생각. 생명체라는 관념·생각. 자기의 나이나 지위나 학벌이나 문벌이 높다는 것에 집착된 소견.
*성과(聖果) ; 성자(聖者)의 지위. 성인(聖人)의 도달경지[果].
성자, 성인이란 무루혜(無漏慧, 번뇌를 끊어내는[無漏] 지혜[慧])의 일부를 성취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도(聖道, 성스러운 길, 성인의 길,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들어선 사람들을 말한다.
수도(修道), 성도(聖道)는 부파불교의 사향사과(四向四果), 대승불교의 보살십지(菩薩十地)를 말한다.
*불과(佛果) ; 불인(佛因, 부처님이 되기 위한 인因. 즉 모든 선근공덕善根功德)의 대응어. 불도수행의 결과. 불위(佛位). 부처라고 하는 궁극의 결과. 결과로서 부처로 된 상태. 깨달음.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법보단(法寶壇) ;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인 법보전(法寶殿) 안에 위패를 모신 단(壇).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거량(擧揚) ; ①설법할 때에,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르는 일. ②화두, 공안(公案)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고 불교의 진수(眞髓)를 말하는 것. 불법을 선양하여 사람을 인도하는 것.
*유주무주(有主無主) ; ①주인(영가를 인도해 줄만한 인연있는 사람)이 있거나 없는. ②제주(祭主)가 있거나 없는.
*극락정토(極樂淨土) ; 산스크리트어 sukhāvatī  아미타불이 살고 있다는 청정한 국토로, 서쪽으로 10만억 불국토를 지나 있는데, 괴로움이 없고 지극한 즐거움만 있는 세계. 안락(安樂), 안양(安養), 서방정토(西方淨土)라고도 한다.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 ‘한 번 뛰어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간다’
[참고] 『증도가(證道歌)』 (영가永嘉 스님)에서.
覺卽了不施功  一切有爲法不同  住相布施生天福  猶如仰箭射虛空  勢力盡箭還墜  招得來生不如意
깨닫고 나면 공(功)을 베풀지 않으니 일체 유위법(有爲法)과 같지 않다.
상(相)에 머문 보시는 천상에 나는 복이나, 마치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
올라가는 힘이 다하면 화살은 다시 떨어지니, 내생(來生)에 뜻과 같지 않음을 초래하게 되리라.
 
爭似無爲實相門  一超直入如來地  但得本莫愁末  如淨琉璃貪寶月  我今解此如意珠  自利利他終不竭
어찌 무위(無爲)의 실상문에, 한 번 뛰어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것만 하겠는가.
다만 근본을 얻을지언정 지엽은 근심하지 말라. 마치 깨끗한 유리구슬 안에 보배 달을 머금은 것과 같네.
내, 이제 여의주를 아나니 나와 남을 이롭게 함에 마침내 다함이 없도다.
*사천하(四天下) ; 사주(四洲).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수미산(須彌山)의 사방에 있다는 네 대륙. ①남섬부주(南贍部洲) ②동승신주(東勝身洲) ③서우화주(西牛貨洲) ④북구로주(北俱盧洲)
*삼계(三界) ; 불교의 세계관으로 중생이 왕래하고 거주하는 세 가지 미혹한 세계.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중생의 마음과 생존 상태를 세 단계로 나눈 것.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이른다.
*사족(蛇足) ; 화사첨족(畵蛇添足, 뱀을 다 그리고 나서 있지도 아니한 발을 덧붙여 그려 넣는다)의 뜻으로 '쓸데 없이 덧붙은 것'을 말한다.

 

Posted by 닥공닥정

•§•(275) 화엄경—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 비로자나불은 오케스트라 지휘자 / 신심 / 조실스님의 첫 설법 / 만공선사의 인가, 전법게.

‘바로 우리 성낼 줄 알고 욕할 줄 알고, 탐심낼 줄 알고 진심낼 줄 아는 그 우리 중생심 가운데에 비로자나불이 있다. 그것을 우리가 선지식의 적절한 지도 아래 그것을 개발을 해서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고 믿는 것. 나도 반드시 바른 지도를 받아서 노력을 헌다면 나도 성불(成佛)헐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것이 신심입니다.


본인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비로자나 전신체(全身體)다


필경에는 내가 나를 깨달지. 부처가 깨달라 주지 못혀. 그걸 비로자나 전신체라. 진대지(盡大地)가 비로자나 전신체여, 그러기 때문에.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여.


견성(見性) 못허면은 할 수가 없어. 잘 보면, 문제가 다른 문제 아무것도 없고 견성 문제여. 우리 모도 모아서 견성 「이뭣고?」 「이뭣고?」 잘해서 같이 생사해탈하자.


**전강선사(No.275)—임자년 동안거결제(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72.10.15) (전275)
**전강선사 법문 중간에 전강선사 명(命)으로 송담스님이 설하신 법문이 있습니다.

 

(1) 약 21분.

 

(2) 약 22분.


(1)------------------

 

이 묵언(默言)스님이 인자 호(號)가 송담(松潭)인데, 송담 스님을 10년 전부터 내가 법상에를 올라다니면서 여러분들 설법 좀 해 주고 교화해라.
법(法)을 알아 가지고 포교를 중생을 교화(敎化) 안 허면은 그 법을 애끼는 것도 그것이 돈 간탐(慳貪)과 부귀 간탐보다도 더헌 것이다.

법을 가지고, 좋은 법을 가지고 여러분 설법을 해드려서 아! 도(道)를 깨게 맨들아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허게 해야지.
일체 중생이 같이 생사없이 상락아정(常樂我淨)을 증(證)해야지. 나 혼자만 해가지고, 안해 쓰겄느냐?

오늘은 내가 송담한테 다가서 ‘내가 인가(印可)해서 법위(法位)를 전해주니 그리 알라’고.
아! 내가 게송(偈頌—傳法偈)까장 잘 지어서 그래줬더니 죽어도 마다하고,

 

『이름은 그대로 가지겄습니다마는 저는 교화 못 허겄습니다.』
『왜 못 허겄느냐?』
『언변도 없고 또 당초에 헐 마음도 없고 못 허겄습니다.』
『그러면 고인(古人)도 대도(大道)를 통해 가지고도 보림(保任)을 헐라면은 포교고 뭣이고 그만 저 무인절도(無人絶島)에 들어가서 보림허는 법이 있으니 보림을 잘해라. 그러면 네 대로 가거라.』

10년을 내 밑에 있다가—10년을 묵언허고 10년만에 너는 바로 ‘마조원상(馬祖圓相)’ 법문에 바로 깨달라 나한테 대답을 했으니...

그래 내가 그것 하나 대답한다고 되아? 이 공안 저 공안, 공안(公案)을 모두 탁마(琢磨)를 해본 즉 아! 주욱 꿴다 그말이여. 세상에 기특헌 일이다.

나는 어찌 이렇게 내가 그 인가하는 무슨 그런 자격이 있으리요마는 그것은 한국의 과거에 6대 도인이 있었으니, 6대 선지식이 있었으니 6대 선지식의 인가가 내게 없으면 내가 어떻게 인가를 해 주리요.

허지마는 과거에 6대 선지식이 인가헌 것은 조르르르 내 설법에도 다 나와있지마는 구참선객(久參禪客)은 다 알고 있으니, 그러고 틀림없이 다 듣고 아는 이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는데, 아무리 해야 안되아. 인자는 나이 80이니 곧 오늘내일이여.
오늘내일이니까, 내가 하도 권허니깐 오늘은 설법헐라고, 저를 설법허라고 허니께 겨우 아무 말도 안해. 『예. 허겄습니다.』허고 나를 가만히 봐.

그만 설법허라고 허니까 그만 얼굴이 이만해 가지고 미안헌 생각만 잔뜩 가지고 있어. 말도 않고.
‘그래도 헐 수 없어’했더니 인자 올라와서 설법을 헐 것입니다.

헌디 나보다 설법을 더 잘 헌다. 그건 믿지 말라 그 말씀이여. 나는 50년 동안 설법했어.
아직 50년은 다 못 되었소마는 아! 인자 처음 설법헌 사람이 무슨 설법을 헐 것이여?

그렇게 확철대오한 보월 스님은 법상에 올라와서 설법허라고 하니까, 젠장 설법을 거꾸로 헌단 말이여. 설법 거꾸로 허는지 안 봤어.
다 설법허고 마지막 내려오면서 하는, 꺼꾸로 그 꽁댕이를 하면서 그나마 설법도 ‘웬굉~’ 운단 말이여. 울어. 설법하면서 울어버렸어.

대중이 그만 그 많은 대중이 ‘아, 그 보월 스님, 대도를 깨달은 스님이 설법을 허니 얼마나 장하랴’ 야단치고 듣는데, ‘원공법계제중생(願共法界諸衆生)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라. 이 노래를 못 하고는.

만공 스님 항상 하는 소리 들었거든. ‘원공법계제중생 자타일시성불도’라 허고 내려오면 그 소리가 구수허게 좋으니까 자기도 올라가면 그렇게 헐 줄 알고,
(몸집은) 이만헌 이가 목은 찌끄만하게 (가는 목소리로) ‘아, 이사람아!  아, 그사람 참 별 사람이네’ 이런다 그말이여.

헌디 ‘웬굉~벱계~제중생~~’ 아! 그러고 운다 그말이여. 세상에 그렇게 우는걸 보고 안 웃는 이가 없네.
다 웃네. 그중 앞에는 조카상좌라고 이만 허니 또 그렇게 뚱뚱헌 사람이 있는데, 고것 쳐다 보고는 ‘아이고! 죽겄다’고 웃는다 그말이여. 웃음판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거 뭔 법문을 잘 헐 것이요? 허지마는 인자 불가불 이 절 원장(院長)이요, 이 절 조실(祖室)이고, 이 절을 어떻게 헐 거여? 아무리 허기 싫어도 나 혼자만 깨닫고 나 혼자만 생사해탈하고 말 것이여?

대전이 아무리 좋고 대전에다 큰 절 하나 지어놓고, 나 가본게 터가 참 우리 절터 보다 좋단 말이여.
허지마는 여그는 아주 내 본사(本寺)고, 여그는 안에 조실이고, 거그도 부속 선원으로 댕기면서 인자 봐주고 이렇게 되았습니다.

그러신 줄 아시고 오늘 설법상에 올라가서 보월 스님처럼 또 그렇게 울런지, 히히 헐란지 알 수 없소마는 잘 허리라 생각은 말란 말이여.

그저 인자 한번 올라가면 차츰차츰 인자 설법이 설통(說通)이 나와. 그렇게 알고 잘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잠깐 허고 내려오면 또 내가 올라가 또 설법을 헐테니 또 잘 들으십시오.

‘올라와. 어서 와. 헐 수 없어.’

 

 



< 송담스님 법문 >

부처님 49년 설(說)을 아함십이방등팔(阿含十二方等八) 아함경을 12년 동안 설하시고 방등경 8년,
그리고 이십일재담반야(二十一載談般若) 21년 동안을 반야경을 설하시고,
종담법화우팔년(終談法華又八年) 마지막에 법화경을 8년 동안을 설허셔서 그걸 합하면은 49년이 됩니다.

그런데 그 49년 동안 설하신 것이 팔만대장경인데 그 49년 동안에 왜 아함경 12년부터서 말을 하고, 맨 처음에 그렇게 많은 법문을 설하신 화엄경(華嚴經)은 그 49년 동안에 빼놓고 얘기를 허게 됩니다.

그것은 아함경 설하시기 전에 21일 동안에 걸쳐서 입을 열지 아니하시고 설하신 법문이기 때문에 49년 속에 계산을 넣지 않고 얘기를 허게 됩니다.

그러면은 이 화엄경은 그 화엄세계의 교주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교주(敎主)로 계시는데 그 비로자나불은 입을 열지 않고, 한마디도 비로자나불의 법문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다른 많은 보살들이 각기 자기가 느끼고 깨달고 보는 바를 그렇게 각기 많은 보살들이 번갈라가면서 설해 놓은 것이 모아 놓은 것이 그게 화엄경이예요.

결국은 그 보살들이 자기 마음대로 자기네들 말을 말한 것이 아니라, 그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비로자나불의 뒷받침에 의해서 설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비로자나불의 법문을 많은 보살들의 입을 통해서 설해졌다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은 그 많은 화엄경을 하나의 큰 교향악(交響樂)으로 비유해서 본다면은 그 많은 위대한 대교향악의 총지휘자는 바로 비로자나불이고,
그 대관혁악의 악단은 그 화엄경에 나타난 많은 불보살들이 전부 그 교향악단의 악사라고 말할 수가 있고,

아울러서 그 화엄경이 우리가 보는 그 책으로 된 그것만이 화엄경이 아니라,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다시 말해서 삼라만상(森羅萬象) 전부가 그 위대한 화엄경을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유정(有情)·무정(無情)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낱낱이 우리도 그 대관현악(大管絃樂)의 한 단원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나서 일생을 살다가 죽어가는 것, 그 가운데에 자기가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눈 한번 깜짝이고 손 한 번 움직이고 발 한 번 움직이고 웃고 울고 헌 그것들이 그 대관현악의 악단으로써 연주하는 음악입니다.
그래서 그 많은 그 악단을 지휘하는 비로자나불 바로 그분이 청정법신(淸淨法身)이십니다.

그러면은 이렇게 말허면은 그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어떠헌 상호(相好)를 가지고 또 계신 걸로 착각하기가 쉽습니다마는,
사실은 그 비로자나불은 지금 산승이 말허는 말을 듣고 계신 여러분이 낱낱 여러분 가운데 바로 그 비로자나불이 계신 겁니다.

들을 줄 알고, 볼 줄 알고, 배고픈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 아는 그 속에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계신 것을 그것을 믿는 것이 신심(信心)입니다.

부처님 앞에 돈과 쌀과 모다 그 떡과 그런 것을 많이 차려놓고 절만 많이 허고 그런다고 그것이 신심이 아니라,
‘바로 우리 성낼 줄 알고 욕할 줄 알고, 탐심낼 줄 알고 진심낼 줄 아는 그 우리 중생심 가운데에 비로자나불이 있다. 그것을 우리가 선지식의 적절한 지도 아래 그것을 개발을 해서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고 믿는 것.
나도 반드시 바른 지도를 받아서 노력을 헌다면 나도 성불(成佛)헐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것이 신심입니다.

그렇게 볼 때에 불법(佛法)이라고 하는 것은 외도(外道)들이 말헌 바와 같이 우상 숭배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왜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기어이 났으니 어떻게 살다가 가야 바르게 살았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머지않아서 젊은 사람이나, 나이가 많이 든 사람이나 한번은 또 가게 됩니다. 갈 때에 어떻게 가야 허느냐? 이러헌 중대 문제가 우리 앞에 가로놓여 있습니다.

그러헌 중대한 문제를 우리는 탐심(貪心)과 진심(瞋心)과 치심(癡心) 이러헌 삼독심(三毒心)으로 말미암아 그런 데에 눈을 팔다 결국은 그런 중대사를 망각하고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는 가운데에 하룻날 숨 한 번 내쉬었던 숨을 다시 들어마시지 못하면은 우리는 이 받기 어려운 몸을 버리고 또 어느 곳을 헤매게 되겠습니까?

다행히 우리는 만나기 어려운 사람 몸뚱이를 받았고, 사람 몸을 받어 가지고서도 그 많은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들어오기 어려운 불법 문중(佛法門中)에 들어왔습니다.

불법 문중에 들어와서도 그 많은 절이 있고 많은 스님네들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이 정법(正法)을 전해 이어받으신 전강 조실스님 문하에 들어와서 '참 불법'을 듣고 수행할 수 있는 이러한 길에 들어섰다고 하는 것은 저나 여러분이 한결같이 다행한 일이요, 희유한 일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나서, 들어오기 어려운 정법 문중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하루하루를 형식에 얽매여서 ‘결제니까 절에 가야겠다, 7일 날이니까 절에 가야겠다, 또는 관음재니까 절에 가야겄다’ 이것이 하나의 의식화 되아서 그 의식화된 가운데에 절에 왔다갔다 하는 것으로써 불법을 믿는 것으로 생각하고,

또 큰스님 법문을 들을 때는 ‘아! 내가 쫌 열심히 화두(話頭)를 듣고 공부를 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불꽃같이 일어나지만,
그것이 벌써 집에 돌아가서 아들 손자 며느리 만나서 살림 걱정하는 소리 듣고 어쩌고 허다 보면은 금방 절에서 그 불꽃같이 일어난 신심은 간 곳 없고 다시 사회의 그 오욕락(五欲樂) 속에 휩쓸려 들어가고 말아버립니다.

비단 보살님들 뿐만 아니라 출가한 스님네도 무상(無常)을 철저히 느껴서 정든 고향과 부모형제 권속을 다 여의고 머리를 깎고 출가해서 철저히 수행할 것을 명심하고 각오한지 한두 번이 아니지마는,

또 하룻밤 자고 이틀밤 자고 사흘 나흘 엿새 가다 보면은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에 그 굳었던 결심이 스르르 녹아지고 그래가지고 또 다시 또 자기를 참회하고 반성하고 해서 또 결심을 해가지고 또 정진을 애쓰고,

이렇게 애는 쓰고 있지마는 10년 20년 30년 이렇게 절에서 정진을 한답시고 함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확철대오를 하지 못한 것은 그 결심이 한 생각이 만년을 가지 못하고, 또 풀어졌다 또 세웠다 이러기 때문에,

물에 잠긴 돌이, 물이 채이면은 물속에 쟁기고, 물이 빠지면 또 돌 꼭대기가 물위로 솟았다, 또 물이 채이면 또 가라앉았다, 밤낮 이래가지고 끝장을 조매 보지 못하고 한 세상을 또 마치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올라온 것은 마치 비로자나불이 한 대관현악에 지휘자가 되셔서 그 지휘자의 지휘봉에 의해서 많은 악사들이 느리게 또는 빨리, 뭣헌데는 격하게 또 뭣헌데는 조용허게 이렇게 해서 그 수천 무량수의 그 악사들이 한 분의 지휘봉에 의해서 관혁악을 연주하게 됩니다.

그와 같이 이 중생 교화하는데 있어서도 그 부처님이 하나의 위대한 그 각본을 저술한 작가이시요 또 지휘자이시고 또 감독이시고 연출이십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조실스님이 이 세상에 나오셔서 중생 교화하신 것도 근본을 거슬러 올라가면,
청정법신 비로자불의 지휘·감독·연출에 의해서 일생을 스스로 닦아서 견성오도(見性悟道)하시고 나아가서 80 고령에 이르시도록 설법을 해서 많은 제자를 교화하신 것도 하나의 연극, 그 대관현악의 한 부분이라고 말헐 수가 있습니다.

제가 여기 올라온 것은 멀리는 비로자나불의, 가깝게는 조실스님의 지휘에 의해서 하나의 배우로서 또는 악사로서, 다시 비근(卑近)허게 말허면 꼭두각시로서 여기에 올라왔다고 말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출가해서 근 30년이 되었습니다마는 본래 근기(根機)가 우둔하고 발심이 철저허지를 못해서 노상 생각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투철한 공부를 성취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역시 출가할 때의 그 마음가짐으로 전강 조실스님의 지도하에 정진허고 있는 하나의 수행인에 지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해 드릴 수 있는 말씀이 있다고 한다면은
‘조실스님이 열반하시기 전에 하루 한 시간, 1분1초라도 시간을 애끼고 챙겨서 가행정진, 용맹정진을 하셔서 조실스님의 철저한 지도 아래 다문 조끔이라도 더 철저히 공부를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저와 같이 공부를 하십시다.’
이러한 권고의 말씀을 드릴 이외에는 아무 말씀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처음~21분2초)

 

 

 



(2)------------------

 

그리고 조실스님께서 이 용화사에 주석(駐錫)하신지가 벌써 10여년 입니다마는,
그 동안에 많은 광장설(廣長舌)로써 그 경전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그러헌 최상법(最上法)을 여러분의 근기에 맞도록 그 고구정녕(苦口丁寧)하시고 참 훌륭하신 법문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

그 그늘 잔영(殘影)이 소소영령하게 녹음기에 녹음이 다 되어있고 그것이 낱낱이 조실스님의 시자의 노고에 의해서 원고가 결집이 되어있습니다.
앞으로 그 원고를 정리허고 교정해서 그것이 하나의 설법집으로 간행할 날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그러헌 녹음기나 또는 설법집에 의해서 여러분이 공부허는 데에 좋은 도움을 받을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그것 보다는 조실스님 몸이 살아계실 그 동안에 여러분께서 공부를 허셔서, 여러분이 공부허신 만큼 밖에는 조실스님이 어떻게 더 이상 지도를 못 허십니다.

자기가 열 근을 들을 만한 힘이 있는 사람에게 열 근의 무게를 주어지고 짐을 줄 수가 있습니다. 열 근 밖에 들 수 없는 사람에게 스무 근 내지 백 근의 그런 무거운 짐을 그 사람에게 맡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얼마만큼 열심히 공부를 허느냐에 따라서 조실스님의 법문도 여러분의 근기에 설해지게 되고 조실 스님의 지도 방법도 여러분의 근기에 따라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조실스님이 가지고 계신 그 능력을 전부 그리고 철저하게 지도를 받을려면 여러분이 그만큼 철저히 정진을 허심으로써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실스님을 모시고 법문을 들어보면은 청법(聽法) 대중이 모다 구참납자(久參衲子)요, 철저히 위법망구(爲法忘軀)적으로 정진허는 그런 납자들이 터억 앞에 자리를 잡고 앉어 계시고,
또 신도님들도 철저한 신심있는 분들이 법당에 꽉 들어차서 위법망구적으로 발심헌 마음으로 들어주실 때에 조실스님은 30년을 모시고 있어도 듣지 못한 그런 법문을 대사자후(大獅子吼)를 토하신 것을 저는 종종 보았습니다.

조실스님께서 아무리 정정허시고 건강하시다 하더라도 사람의 몸은 하나의 기계라고 말할 수 있으므로 기계라고 하는 것은 그 한도가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설사 조실스님의 법력과 도력에 의해서 백년 내지 이백년을 사실 수 있는 그런 신통력과 법력이 계시다 하드라도,
부처님께서 그런 삼계(三界)의 대도사(大導師)요 사생자부(四生慈父)이신 육신통(六神通)을 다 갖추신 무량삼매를 갖추신 그런 부처님도 79세에 열반(涅槃)을 보이셨습니다.

조실스님께서도 언제 어떻게 그 열반을 보이실는지 그것은 우리는 모릅니다.
그날이 반드시 있을 것을 우리는 예상할 수가 있습니다. 그날이 돌아오기 전에 여기에 모이신 사부대중께서는 정말 이를 악물고 대분발을 해서 철저히 정진을 해주시기를 간곡히 말씀드리고 입을 다물겠습니다.

 

 



< 전강선사 법문 >

주중야문적(舟中夜聞笛)하고  하처숙어옹(何處宿漁翁)고
나무~아미타불~
일출무인견(日出無人見)하니  조제화자홍(鳥啼花自紅)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저 참 망망창해(茫茫滄海) 저 섬 중에서 도를 닦는데, ‘이뭣고?’ 참선을 허고 있는데 어디서 젓대소리가 나. 잘 부는 젓대소리가 처억 난다 그말이여.
그 하처숙어옹(何處宿漁翁)고? 그 어느 곳에서 어옹(漁翁)이 있어서, 고기 잡는 그 어옹이 있어서 이런 젓대를 부는가?
그 젓대가 활연대오(豁然大悟)하는 젓대여. 젓대소리를 듣고 툭 깨 버렸어.

아까 그 송담 스님이 여기 원장(院長) 스님이 또 올라와서 설법할 때,
비로자나가 설법을 했는데 입 하나 뗀 법이 없이 설법했는데 보살들이 백만 천만 억만 보살들이 설했자 설할 수가 없어. 만년을 설했자 역사를 넣을 수 없어. 그러니 49년 설법에 보탤 수가 없다 그말이여.

그 본인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비로자나 전신체(全身體)다 그말이여.
그러니 우리의 본래면목, 그 언제든지 가르쳐 줄 스승은 있지마는, 옳은 스승을 만나야만 깨닫지만은,
오(悟)는 자기가 깨닫지 부처가 깨달아 주지 못해. 그 비로자나 전신체, 생사 없는 몸뚱이.

그러고 화엄경은 그렇게 81권이니, 81권 뿐이여? 81권이 화엄경이여?
일사천하미진수품이 화엄경인데, 미진수품(微塵數品) 화엄경이 그것이 내 본래면목, 비로자나 전신체.

그 비로자나 전신체가 내 마음인데 내 본래면목인데,
그 본래면목이 별별 놈의 소리를 다허고, 별별 놈의 못할 소리가 없고, 뭐 말 한마디를 가지고 천만 가지를 맨들수 있고, 이것이 비로자나불이여.

이 비로자나불이 이렇게도 별말 다하지마는 그 근본 자체, 비로자나불 근본면목 속에 들어가서 사견(邪見)도 없고 상견(相見)도 없고 유(有)도 무(無)도 비유(非有)도 비무(非無)도 없는데,
무엇으로 뭣을 나투어서 거기서 무엇을 만들어놔?
못혀. 입 뿐이지. 입으로만 뿐이지, 하덜 못혀.

필경에는 내가 나를 깨달지. 부처가 깨달라 주지 못혀. 그걸 비로자나 전신체라.
진대지(盡大地)가 비로자나 전신체여, 그러기 때문에.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여.
아까 그 설법이여.

설법을 허되 첫 설법에 올라가서 우세나 하고 보월 스님 울고 내려오데끼 그럴 줄 알았더니 그 대의(大意)가 참 분명허단 말이여. 꼭 그렇지.

그런데 나는 스물세 살 먹어서 세상에 내가 그때 주전도 없지.
허지마는 한번 올라갈 용기가 있어서 첫 설법을 청하길래 좋아서, 아! 대중이 한 7-80명 대중이 직지사 선원에서 모여서 법문 해 달라고 청한다 그말이여.

그때도 그래도 뭔 좀 소견이 났다고 헐 때인데, 그래도 내가 체면상 못 올라갈 텐데,
그때 다 통쾌한 선지식한테 다 내가 말을 들었기 때문에 한 번 올라간 것인데, 올라가서 첫 설법을 허는데, 내 첫 설법 좀 들어 보시오.

아주 올라가서 얼마나 허고 싶던지 ‘내가 올라가면 한바탕 하리라’고.
올라가 놓으니깐, 법상에 올라가 놓으니깐 떨려. 떨릴 것이 하나도 없는디 속에는 아무 일 없는디.

아따! 그래서 그까짓 것 떨 것도 없다. 모도 그만 모도 개미같이 봐라.
너무 황송한 미안한 말이지만, 개미떼 같이 그냥 속으로 그냥 생각을 해 버렸다 말이여.

내가 그러고는 설법을 허되, ‘주장자를 들었다고 날 봐.’
차사(此事)는 개구즉착(開口卽錯)이여. 입만 열면 그르쳐. 착(錯) 불착(不錯)은 차치(且置)하고 여하시차사(如何是此事)냐?
일러. 일러! 왜 못 일러? 한번 일러 봐?
어디 우리 또 대중도 남녀가 있나? 남녀상(男女相)이 없는게 법인데.
내 첫 설법에 헌거여.

그때도 물었어. 대중에 물었어.
차사(此事)는 개구즉착(開口卽錯)이여. 입만 열면 그르쳐. 착(錯) 불착(不錯)은 차치하고 어떤 게 차사(此事)냐?
아무도 대답이 없어.

〇만공스님의 인가, 전법게.
그래서 만공 큰스님한테—만공 큰스님 십답, 한암 스님과 열 가지 문답(問答)이 있는데—‘열 가지 문답 가운데에 다 물어 주십시오’ 문답을 다 물어서 대답 내가 다했다.

(대답)허고 마지막 나올 때 『저는 스님 하직합니다.』
스님 밑에 있어 뭣 할 것이여? 나도 스님 법 내가 다 탁마해서 내가 다 가졌는데, 나도 인자 가서 중생 교화해야 할 것 아니여.

『갑니다』허고 절을 허니까,
『어이 가소. 저그 저 별이 있는데 저 하늘에 별이 있는데, 저 별—부처님 깨달은 별은 저 별 새벽별인데, 그 부처님은 새벽별을 보고 깼지마는 자네는 깨달은 별이 무슨 별인가? 어떤 별에 깨달았는가?』

(내가) 땅을 허부적 허부적...
『선재(善哉) 선재(善哉)로구나.』
선재란 건, ‘착할 선(善)자’는 ‘착하다’는 말이 아니여. ‘옳다. 옳다’ 그말이여.

불조미증전(佛祖未曾傳)인디  아역무소득(我亦無所得)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차일추색모(此日秋色暮)헌디  원소재후봉(猿嘯在後峰)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아! 내가 그렇게 『자네 별은 어떤 별인가?』 (만공스님 묻는 말에 내가) 왜 땅을 파? 왜?
『선재 선재다. 착하고 착하다.』

불조(佛祖)도 미증전(未曾傳)인디, 불조도 일찍이 전(傳)허들 못했는디,
아역무소득(我亦無所得)일세. 나도 또한 얻은 바가 없네.

차일(此日)에 추색모(秋色暮)인데, 오늘날에 추색(秋色)이 저문데, 이 가을날이여. 가을날이 저물었는데,
원소(猿嘯)는 재후봉(在後峰)일세. 원숭이 휘파람은 뒷봉에서 우네.

그러헌 인가(印可)가 어디 있냐 이말이여.
만공집(滿空集)에도 있어. 만공 큰스님 집(集)에 있는 것도 내가 갖다 내가 고승집에 이리 내놨어.
왜 어찌 거짓말을 허냐 그말이여. 어떻게 거짓말을 해. 거다가 어떻게 뻘 소리를 붙여 놓냐 그말이여.

인가(印可) 없이 '인가 있다'고, 인가 없이 나와서 조실(祖室) 노릇허고 있어?
차라리 지옥 귀신이 되어 가지고 귀신 노릇하면서 ‘아이고 나 죽겠다’ 소리를 허지.
인가 없이 주뎅이를 벌리고 조실 노릇혀? 못허는 법이다 그말이여.


내가 그러고 나왔으니, 직지사에 올라와서 설법 한번 헐 마음이 나지 않나? 불끈 난다 그말이여. 속에서는.

아, 그래 올라가서 설법을 헌 것이 ‘입만 열면 그르치니, 그르치고 그르치지 않는 걸’ 물은 게 아니여?
「차사(此事)는 착(錯) 불착(不錯)이니 이 일은 입만 열면 그르치니, 그르치고 그르치지 않는 건 그만두고 어떤게 차사(此事)냐?」 대답이 없어.

‘촛불이 밝다’ ‘병율이야, 촛불이 밝다.’ 그래.
이놈아! 촛불 밝은 걸 내가 물었어? 차사(此事)를 물었지.

별 것 다했자 소용 없어. 그래 이른 거 아니여.
이른 것은 바로 일러야 이른 것이지. 그깟은 놈의 소리를 불청허고 소용도 없고.

대번 했기 때문에 등단으로 내가 했기 때문에 만공 큰스님한테 내가 법문을,
『소승이 영신(永信)이가 법상에 올라가 설법을 했는데 큰스님한테 불가불 점검을 받어야 허겠습니다.
설법을 법상에 올라가서 주장자를 들어 대중을 보이고, 차사(此事)는 개구즉착(開口卽錯)이니 착(錯) 불착(不錯)은 차치하고 어떤 게 차사(此事)냐? 물었는데, 답이 없어 큰스님께 보내니 답해 줍소사』

그랬더니 만공 큰스님이 답을 해서 보내되,
요만한 종이에다가 그림을 하나 그렸는데, 그림이 요렇게 요렇게 요렇게 그렸어. 요렇게 그려놨어.
아니 그렇게 그린 게 아니라 그림이 요렇게 요렇게 꼬부라게, 요렇게 꼬부라게 그려놨어. 이 위에서 꼬부래. 아니 이놈이 꼬부라졌어, 밑으로.

거 무슨 도리일까? 아시겠어? 그 꼬부랑을 그려놨다 그말이여.
뭐여? 그 무슨 그림이여? 만공 큰스님 답이여, 이게.

알겠어? 견성(見性) 못허면은 할 수가 없어. 잘 보면, 문제가 다른 문제 아무것도 없고 견성 문제여.

우리 모도 모아서 견성 「이뭣고?」 「이뭣고?」 잘해서 같이 생사해탈하자.
너 허고 나는 안 안허고는 어떻게 될 것이냐? 지옥 귀신이 되고 말 것이냐?

우리가 지금 지옥 귀신 면한 줄 아시오? 아이고, 생각해 보면 큰일나.
생각을 못허고 이러고 있으니 그렇지, 역사 없는 우리가 과거에 지옥고를 얼마를 받았어.

포구발심(怖懼發心)이여. 무서운 발심. 무서워서 죄 안 짓고, 무서워서 도 닦는 것이여.
한번 또 들어가면 언제 나와? 지금 우리가 나왔단 말이여.
요까짓 것 나와서 잠깐 나왔지마는 또 죄를 퍼지어 간다 그말이여, 틀림없이.
지옥은 안 가고는 못 견뎌.

참선(參禪)이 아니면 못 견뎌.
과연 우리 이렇게 모아 참선 법문 배우라고, 참선 설법 들으라고, 우리 설판재주(說辦齋主)가 터억 나와 가지고 이 설판을 해서 이리 지어 놓으니깐 이렇게 많이 나왔네.(처음~42분3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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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교화(敎化) ; 가르쳐 이끌다. 사람을 일깨워 고통받는 자를 편안히 하고, 의심하는 자를 믿게 하고,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을 바른 길로 돌아가게 함. 설교. 교도감화(敎導感化)의 준말.
*간탐하다(慳貪 아낄 간,탐할 탐) ; 몹시 인색하고 욕심이 많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상락아정(常樂我淨 항상 상,즐거울 락,나 아,청정할 정) :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열반(깨달음)의 네가지 덕(德).
열반경(涅槃經)에 의하면, 열반의 경지는 생멸 변천함이 없으므로 상(常)이고, 생사의 고통을 여의어 무위(無爲) 안락하므로 낙(樂)이고, 망집(妄執)의 아(我)를 여의고 대자재(大自在)가 있는 진아(眞我)이므로 아(我)이고, 번뇌의 더러움을 여의어 담연청정(湛然清淨)하므로 정(淨)이다.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법위(法位) ; 변하지 않는 진리의 세계. 궁극적인 진리의 세계.
*전법게(전강선사가 송담스님에게 내려 주신 전법게)
비법비비법(非法非非法)이다  법(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무법역무심(無法亦無心)이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낙양추색다(洛陽秋色多)하고  낙양(洛陽)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백운비(江松白雲飛)니라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참고] 전강선사(No.046)—조실스님 생신일 법문(송담스님 인가,만공 한암 십대문답)(경술70.11.16)에서.
*보림(保任 보임) ;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더욱 갈고 닦는 수행. 흔히 ‘보림’이라 읽는다.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무인절도(無人絶島) ; 사람이 살지 않는,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외딴섬.
*마조원상(馬祖圓相) ; [참고] 송담스님(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이 공안을 물은데 어떤 스님이 그 안에 들어갔어.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대 후려쳤습니다.

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 원상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한 그 공안에 그 스님이 턱 뛰어들어가는 도리는 무슨 도리며,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한 방을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그 방(棒)을 맞고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또 그 스님이 그렇게 말한 데에 마조 스님이 아무 말없이 저리 가버렸으니...
이러한 공안에 확연(確然)히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공안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라 하는데,
이것이 다 부처님과 조사가 씹다가 버린, 먹다가 버린 찌꺼기에 지나지 못한 것이기는 하나, 이러한 공안이 바로 학자(學者)의 소견(所見)을 가려보는 데에는 좋은 시금석(試金石)이 되는 것입니다.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구참선객(久參禪客) ; 오랫동안 참선한 수행승.
*보월스님, 만공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설통(說通) ; 대중 앞에서 막힘이 없이 유창하고 당당하게 설법을 잘함.
*화엄경(華嚴經) ; 본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며, 이 경은 부처님께서 성도(成道)한 깨달음의 내용을 그대로 표명한 경전이다.
3가지 번역이 있는데, 60권은 동진(東晋)의 불타발타라(佛駄跋陀羅) 번역이고, 80권은 당(唐)의 실차난타(實叉難陀) 번역, 40권은 당(唐)의 반야(般若) 번역임.
이 가운데 40권은 60권과 80권의 마지막에 있는 입법계품(入法界品)에 해당하며, 십지품(十地品)과 입법계품(入法界品)만 산스크리트 원전이 남아 있음.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교주(敎主) ; 어떤 종교나 종파를 처음 세운 사람.
*교향악(交響樂) ; 교향곡, 교향시, 교향 모음곡 등 관현악으로 연주하는 음악을 통틀어 이르는 말.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 법장현수(法藏賢首) 스님의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에 보면,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용궁(龍宮)에 가서 대부사의경(大不思議經=화엄경)을 보았는데, 상본·중본·하본 3가지 본(本)이 있었다. 그 중에 상본(上本)이 십삼천대천세계미진수(十三千大千世界微塵數)게송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었다 한다.
중본(中本)은 49만 8800게송 1200품(品)이고, 하본(下本)은 10만 게송 38품이었다 한다.
용수보살이 상본과 중본은 사바세계 사람들 마음의 힘으로서 능히 가질 수 없으므로 전하지 않고, 하본(下本)을 외어 세상에 전하였고 또 그것을 간략히 한 약본(略本)이 80권 본, 60권 본이 되었다 한다.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은 ‘미진수(微塵數 셀 수 없는 무한수)’의 품(品)으로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모든 현상—삼라만상(森羅萬象) 전부가 그 화엄경을 이루고 있으며, 곧 비로자나(毘盧遮那) 전신체(全身體)로 우리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말한다.
*삼라만상(森羅萬象)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유정(有情) ; 생명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 살아있는 것. 생(生)이 있는 것. 감정이나 의식을 가진 것.
번뇌에 얽매여 미혹한 모든 존재. 옛날에는 중생(衆生)이라 번역하고, 현장(玄裝)이후의 새로운 해석에서는 유정(有情)이라 한역함. 정(情)은 마음이라는 뜻. 일체 살아있는 것의 총칭.
*무정(無情) ; 감정이 없는 초목·산하·대지 등을 말함.
*관현악(管絃樂) ; 여러 가지의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를 조화시킨 큰 규모의 합주.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 ‘손 한 번 들고 발 한 번 옮긴다’는 뜻으로, 크고 작은 동작 하나하나를 이르는 말.
*청정법신(淸淨法身) ; 더러움이 없는 청정한 법신, 곧 비로자나불을 말함.
*상호(相好) ; 부처님의 몸에 갖추어진 용모와 형상.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견성오도(見性悟道) : ‘성품(性)을 보아(見) 진리(道)를 깨친다(悟)’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 견성오도라 한다.
*비근(卑近)하다 ; 주위에서 흔히 보고 들을 수 있을 만큼 가깝고 알기 쉽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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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駐錫 머무를 주,석장 석) ; ①스님들이 짚고 다니는 지팡이를 석장(錫杖)이라 하는데, ‘석장(錫杖)을 머무르게 한다(駐)’는 뜻으로, 스님이 한 곳에 머무름을 일컫는 말. ②스님이 한때 어떤 지역에 포교(布敎)를 하기 위하여 머무는 일.
*광장설(廣長舌) ; 장광설(長廣舌). ①길고 줄기차게 잘하는 말솜씨. ②부처님의 설법.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 정•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청법(聽法) ; 불보살(佛菩薩)이나 스승이 설법하는 것을 경건하게 경청함.
*구참납자(久參衲子) ; 오랫동안 참선한 수행승.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진리)를 구하기 위해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사자후(獅子吼) ; ①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②사자의 울음소리처럼 우렁찬 연설.
*삼계(三界)의 대도사(大導師) : 삼계(三界)의 중생을 열반(涅槃)로 인도(引導)하는 위대한 사람. 부처님을 말함.
*사생자부(四生慈父) ; 육도윤회(六途輪廻)하는 세계에서 4가지 방식(四生)으로—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태어나는 모든 중생을 열반으로 이끄는 대자비(大慈悲)의 아버지. 부처님을 말함.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

·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게송) ‘주중야문적~’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40 ‘동호야박(東湖夜泊)’ 게송 참고.
*활연대오(豁然大悟) ; 환하게 막힘이 없이 탁 트인 큰 깨달음.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비로자나(毘盧遮那) 전신체(全身體) ; 전신(全身)은 '본질 그대로' '여래진신(如來眞身)'의 뜻으로 ‘비로자나 전신체’는 우리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말한다.
*진대지(盡大地) ; 온(盡) 산하대지. 온 세계.
*차치(且置) ; 내버려두고 문제삼지 않음.
*(게송) ‘불조미증전~’ ; 만공선사께서 전강선사에게 내려 주신 전법게(傳法偈).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 수덕사 능인선원) p111 참고.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포구발심(怖懼發心 두려워할 포,두려워할 구,일어날 발,마음 심) : ‘끝없이 되풀이 되는 육도윤회(六途輪廻)에서 받을 생사(生死)가 정말 무섭구나.’ 그 생사의 고통을 매우 두려워(怖懼)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설판재주(說辦齋主) ; 법회나 불사(佛事)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비용을 준비하고 마련하는 스님 또는 신도를 말한다. 설(說)은 '법회, 불사'  판(辦)은 '힘들이다, 주관하다'의 뜻.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