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 정진(요중선)2017. 10. 8. 11:41

 

 

§(364) (게송)유록앵전신~ / 탐진치, 사리사욕을 놔 버려라 / (게송)가소세간애~ / 내 인생 바칠 곳은 내 생사 구제하는 길밖에는 없다 / 더위 속을 향해서 피서를 허는 법을 터득해야.

 

인간의 행복도 그 욕심으로 행복을 얻을려고 하는 데에서 점점 재앙만 일어나고 불행만 돌아오는 것이지, 그 탐진치 삼독만 놔 버리면 행복은 바로 그 속에 원만구족(圓滿具足)하게 갖추어져 있는 것이여.

 

육바라밀(六波羅密) 속에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이 맨 처음에 있는데, 그 보시라고 허는 것은 버리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보시를 허는 것입니다. 가지고 있는 재산도 보시를 하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남에게 베풀고. 보시를 한다고 허는 것은 버리는 법이거든.

 

인간이 아무리 잘 먹이고 잘 입고 부귀영화를 누린다 해도 잠시 번쩍 하다가 사그라져 버리는 그러헌 한 뭉치의 불꽃과 같은 존재에 지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괴로워도 ‘이뭣고?’ 어떠헌 슬픈 일을 당해도 ‘이뭣고?’ 어떠한 어려운 지경에 당하드라도 ‘이뭣고?’ 이놈 하나로써, 이놈을 간절히 거각(擧却)함으로써 모든 난관을 극복해 나간다면 만나는 모든 슬픔과, 만나는 괴로움과, 만나는 어려운 것들이 모두가 다 나로 하여금 깨달음에 나아가게 하는 채찍이 될 것입니다.

 이 무상(無常)하고 허망한 이 세계와 이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거각한다면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 수 있는 지혜의 보배를 얻게 될 것입니다.

 

**송담스님(No.364)—88년 8월 첫째일요법회(88.08.07) (용364)

 

(1) 약 13분.

(2) 약 13분.

 

(1)------------------

 

유록앵전신(柳綠鶯傳信)이요  화홍연소원(花紅燕訴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광음여과객(光陰如過客)이요  아역일소혼(我亦一銷魂)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유록(柳綠)은 앵전신(鶯傳信)이요. 푸른 버들은 꾀꼬리가 전하는 소식이요. 꾀꼬리가 전하는 봄의 소식이요.

화홍(花紅)은 연소원(燕訴寃)이다. 꽃이 붉은 것은, 벌겋게 핀 꽃은 제비가 원한을 호소하는 것이다.

꾀꼬리가 전하는 소식이 무엇이며, 제비가 호소하는 그 원한이 무엇입니까?

 

광음(光陰)은 여과객(如過客)이여. 그 세월은 과객(過客)처럼 그렇게 잠깐 왔다가 스쳐서 지나가 버리는 손과 같어.

아역일소혼(我亦一銷魂)이다. 나도 또한 잠깐 훨훨 타다가 사라져 버리는 하나의 혼백(魂魄)에 지내지 못한다.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하나도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전부가 다 유위법(有爲法)입니다.

봄이 아무리 버들이 푸르르고 아름다운 꽃이 울긋불긋 피었다 하더라도 잠시인 것입니다. 인생으로 태어나서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려 봤댔자 잠깐인 것입니다.

부귀영화. 그 참, 인생에 살아가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마치 불과 같아서—불이 없어서는 안 되지마는 그 불을 잘못 다루면 그 불에 집도 타고, 재산도 타고, 내 몸뚱이도 타고 생명도 앗아가 버리고 맙니다.

 

부귀영화. 참, 사람마다 부귀영화를 싫어헌 사람은 거의 없고 모두가 다 부귀영화에 탐착(貪着)을 하고 부귀영화를 위해서 몸을 바치고 생명을 바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얻어진 것이 과연 자기를 참다웁게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느냐 허면은 그러기커녕은 그놈 좀 어떻게 남보다 더 많이 긁어 담을라다가 그 쇠고랑을 차게 되고, 금생에도 쇠고랑을 차고 내생에도 삼악도(三惡途)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산중에, 저 깊은 산중에 가면은 곰이 살고 있는데, 그 곰이란 놈이 이렇게 슬슬슬 땅도 뒤지고 바위도 뒤지고 허다 보면 바위 속에서 뭐 이상한 맛있는 냄새가 난다 그말이여.

뭐 토끼같은 거, 여우같은 거, 그런 것이 그 바위 굴속에 이렇게 파고 들어가서 거기서 인자 살고 있는데, 그 바위와 바위 사이로 공기통이 있어서 그 공기통으로 그놈들이 숨을 쉬고 있는데, 곰이 그리 지나가다가 돌 틈바구니에서 그 토끼나 여우나 모다 그러헌 짐승의 노랑 냄새가 난다 그말이여.

 

그래서 씩씩씩씩 냄새를 맡다가 그 돌 틈으로 그 곰이란 놈이 손을 집어넣어 가지고 이렇게 꽉! 잡았다 그말이여. 잡었는데, 암만 뺄라고 해도 그놈이 돌 틈바구니에 콱 찡겨 가지고 그놈이 빠지들 않는다 그말이여.

한 시간 두 시간을 갖다가 주먹에서 피가 나오도록 몸부림을 치면서 그놈을 뺄라고 해도 팔이 빠질라고 할지언정 주먹이 안 나온다 그말이여.

 

쥐었던 그놈이 토끼 대가리가 되았던, 여우 배떼기가 되았건, 그놈을 놔 버리면 빠질 텐데, 잡은 놈을 죽어도 안 놓을라다가 결국은 그놈이 콱! 찡겨 가지고 결국은 그놈이 포수한테 앵기면은 총에 맞아서 죽을 것이요, 나무꾼한테 앵겨 놓으면 몽둥이에 대가리가 깨져서 죽을 것이고, 혹 그런 사람을 못 만나면 그놈이 굶어서 죽을 거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놈의 곰이란 놈은 어떻게 미련하던지 아! 그놈을 놔 버리면 손이 빠질 줄을 모른다 그말이여. 그놈만 놔버리면 그냥 수르르르~ 하나도 안 아프게 손이 빠질 텐데, 아! 그 모처럼 만난 그놈을 잡아 갖고 놓칠 수는 도저히 없다 그말이여. 그래서 끝끝내 그놈을 놓을 줄을 모르고 억지로 손을 뺄라다가 팔목이 빠져 버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놈이 죽고 말 것이다 그말이여.

 

중생의 욕심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 사욕(私慾), 사리사욕(私利私慾) 그놈만 놔 버리면 온갖 재앙이 다 자기로부터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그 사리사욕, 그 탐진치(貪瞋癡), 그 욕심 그것만 놔 버리면 세계 평화도 거기에서 다 이루어질 것이고 민주주의도 정말 뭐 얼마 안 가서 금방 민주주의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여당 야당 모두가 다 그 탐진치 삼독(三毒)으로 일어난 그 사리사욕만 놔 버리면 민주주의 하나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이 남북 통일도 그것만 양쪽에서 다 놔 버리면 통일이 왜 그것이 어려울 것입니까?

 

인간의 행복도 그 욕심으로 행복을 얻을려고 하는 데에서 점점 재앙만 일어나고 불행만 돌아오는 것이지, 그 탐진치 삼독만 놔 버리면 행복은 바로 그 속에 원만구족(圓滿具足)하게 갖추어져 있는 것이여.

 

깨달음. 도저히 암만 참선(參禪)을 하고 10년, 20년 참선을 그렇게 애를 쓰고 해도 신심(信心)이 안 나고, 분심(憤心)이 안 나고,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지 못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못한다 하지만 아애(我愛), 아만(我慢), 아치(我癡), 중생에 탐진치 사욕만 놔 버리면 어찌 거기에서 신심이 일어나지 아니하며, 분심이 일어나지 아니하며, 의단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육바라밀(六波羅密) 속에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이 맨 처음에 있는데, 그 보시라고 허는 것은 버리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보시를 허는 것입니다.

가지고 있는 재산도 보시를 하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남에게 베풀고. 보시를 한다고 허는 것은 버리는 법이거든.

 

자꾸 버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버리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버리고, 일체처 일체시에 자꾸 버리고 또  버리는 가운데에 거기에서 업장(業障)이 다 거기서 떨어져 나가고, 거기에서 번뇌와 망상도 떨어져 나가고, 일체 장애도 거기에서 다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지계(持戒)와 인욕(忍辱)과 정진(精進) 선정(禪定) 그런 것이 다 참되게 닦을 수가 있고, 마침내는 지혜(智慧)의 바라밀을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잘 먹이고 잘 입고 부귀영화를 누린다 해도 잠시 번쩍 하다가 사그라져 버리는 그러헌 한 뭉치의 불꽃과 같은 존재에 지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괴로워도 ‘이뭣고?’ 어떠헌 슬픈 일을 당해도 ‘이뭣고?’ 어떠한 어려운 지경에 당하드라도 ‘이뭣고?’ 이놈 하나로써, 이놈을 간절히 거각(擧却)함으로써 모든 난관을 극복해 나간다면 만나는 모든 슬픔과, 만나는 괴로움과, 만나는 어려운 것들이 모두가 다 나로 하여금 깨달음에 나아가게 하는 채찍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푸른 버들과 꾀꼬리 우는 소리를 듣고도 그것은 바로 나로 하여금 ‘이뭣고?’를 들라고 허는 법문(法門)으로 듣고, 붉은 꽃 노란 꽃을 봐도 그것은 나로 하여금 어서 속히 화두를 들고 깨달음을 얻으라고 허는 불보살(佛菩薩)의 법문으로 듣고,

그러면서 이 무상(無常)하고 허망한 이 세계와 이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거각한다면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 수 있는 지혜의 보배를 얻게 될 것입니다.(33분39초~46분14초)

 

 

 

 

 

(2)------------------

 

가소세간애(可笑世間愛)여  빙소와해시(氷銷瓦解時)니라

나무~아미타불~

은다번극한(恩多飜極恨)이요  환극각성비(歡極却成悲)니라

나무~아미타불~

 

가소세간애(可笑世間愛)여. 가히 우습다, 세간(世間)의 애정이여. 빙소와해시(氷銷瓦解時)로구나. 얼음이 녹고 기와가 깨지는 때로구나.

세간의 부모 자식 간의 애정, 부부간의 애정, 모든 그 얽히고설킨 끊을라야 끊을 수 없는 그 애정이 잠깐 사이에 얼음이 녹고 기왓장이 깨지는 거와 같다.

 

얼음이 딱딱하게 얼어져 갖고 있을 동안에는 유리와 같고, 참 그렇지만 금방 영하 0도를 벗어나면은 슬슬슬슬 녹아 버리고 100도가 되면은 그냥 증기로 다 날아가 버린다 그말이여.

기왓장이 그놈이 성할 때에는 하늘에 내리는 비도 막고 그렇지마는 그것이 불이 난다든지 깨져서 바삭바삭 깨져 버리면 그 뭐 기왓장이라고 헐 것이 무엇이냐 그말이여.

 

은다번극한(恩多飜極恨)이요. 은혜. 은혜스럽고 은혜가 많으면은, 참 그 은혜를 많이 입고 은혜를 입으면은 참 좋다고 모다 사람들은 그것을 바래지만, 은혜가 지중(至重)하면 그것이 변해 가지고 원한이 극하게 사무치게 된다.

환극각성비(歡極却成悲)다. 사람은 슬픈 것보단 기쁜 일을 당하면은 모두가 다 당하고 무엇이든지 기쁘기를 바래고 기쁜 일이 끝없이 자기 주변에 일어나기를 바래지마는 그 기쁜 일이 극하면 도리어 슬픈 일로 변하는 것입니다.

 

재산이 많은 사람이 그 재산을 자식을 위해서 집도 사 주고, 차도 사 주고 엄청난 재산을 물려주면 참, 부모는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고, 한때는 그 자식이 그 부모가 많은 재산을 물려주고 특별히 은혜를 베풀어주면은 부모가 고맙다고 좋다고 하지만,

자기의 욕심이 차지를 않고 ‘행여나 형을 더 많이 준가? 동생을 더 많이 준가? 누나를 더 많이 준가?’해 가지고 욕심이 치솟으면 자기 평생 먹을 만큼 받아 놓고도 욕심이 더 끝이 없어서 ‘더 많이 주지 아니헌가?’해 가지고 도리어 부모를 원망하고 형제간에 싸우고 형제간에 죽이기도 하고 재판질을 하고 그러헌 예는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가 있습니다.

 

차라리 가난해서 별로 잘 맥이지도 못하고 잘 입히지도 못하고 또 많은 재산을 가 집 한 채도 사 주지도 못하고, 차라리 그런 가난한 집에서는 형제간에 우애하고 또 부모를 위해서 효도를 하고 그러헌 사람이 더러더러 있지마는 돈 많은 사람으로서 효도허는 집안은 내가 별로 보지를 못해.

그래서 자식을 위해서 돈 많이 벌어서 많이 물려줄라고 행여나 그런 짓 하지 말고, 어쨌든지 어지간히 있으면은 돈 많이 벌라 하지 말고 참선을 많이 하고.

 

있는 재산 될 수 있으면은 어쨌든지 유용하게 다 버려야 돼. 보시를 해서, 절에도 보시하고 또 다른 이웃에도 보시를 하고, 양로원 고아원에도 보시해서 자꾸 버려버려.

자식한테는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이다’ 그 참다웁게 살아가는 길을 가르켜 주는 것으로써 그것을 유산으로 그것을 물려주면, 지가 노력을 해서 저 먹을 것을 지가 벌게 해야지, 돈 많이 주면 자식은 타락하고 그 자식의 참다운 사는 길을 배울 겨를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지 우리가 생명을 바치고 인생을 바칠 곳은 내 생명, 내 생사 구제하는 길밖에는 없어.

‘이뭣고?’ 이 하나로써 더위도 이겨나가고 슬픔도 이겨나가고 고통도 이겨나가는 오직 이 ‘이뭣고?’ 하나밖에는 없는 것이여.

 

더워도 자꾸 선풍기 틀어 놓고 시원한 데만 찾지 말고, 바다로 강으로 헤매지 말고 턱! 가부좌(跏趺坐)를 하고서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면서 ‘이뭣고?’를 해보시라 그말이여.

등어리에 설사 더워서 땀이 줄줄, 저는 흐르라고 놔두고서 ‘이뭣고?’를 간절히 들면 얼마 안 가서 정말 더운 줄을 모릅니다. 더운 줄을 몰라.

 

더움 속에서 더운 줄을 망각해야 더위를 피하는 것이지, 덥다고 부지런히 부채질을 허면은 그냥 더 가슴은 답답허고 그냥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이 아주 그냥 미칠 것 같이 못 견딘다 그 말이야. 섰다 앉았다, 옷을 벗었다 입었다 그냥 안절부절할수록 무장 더 더운 거여.

 

‘지가 더우면 설마 내가 타 죽기 허랴’ 터억 버티고 앉어서 ‘이뭣고?’를 허면서 턱 한번 해보시라 그말이여. 더위는 거기에서 물리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시간 턱 하고 나서 찬물로 등목을 한번 허고, 샤워라도 한번 하고서 그때 가서 부채질을 한번 설설 해보란 말이여. 이것이 참 멋스럽게 피서(避暑)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또 앞으로 복(伏)이 한 일주일 나면 복이 끝나는데, 그동안에 강이나 바다로 가고 싶으면 물에 풍덩 들어갔다 나왔다 허지 말고, 그 뜨거운 모래 속으로 피서를 한번 해 보셔.

머리만 내놓고 모래를 6센티 내지 9센티 가량, 가슴은 너무 많이 덮으면 숨이 가쁘니까 얇게 덮고, 팔다리는 두툼허니 덮고서 얼굴에 우산이나 양산, 수건으로 얼굴만 딱 덮고서, 그 더웁지마는 터억 더운 것을 즐겨 보시라 그말이여.

 

‘지가 더우면 얼마나 더울까?’하고, ‘그 더워 허는 그놈이 대관절 무엇인가?’ 그놈을 탁 관조하면서 있으면 그렇게 따겁든 것이 언제 시원한 것으로 변허는 거여.

몸은 득신득신득신 혈관이 뛰는 것을 느끼면서 그 더운 줄 아는 놈을 그놈을 관조를 허면 하나도 더웁지를 안 해. 시원허다 그말이여. 그 뜨거운 국물을 여름에 훨훨 마시면서도 “아, 시원하다” 그러잖아요?

 

그렇게 화끈화끈화끈 더웁지마는, 그 더워할 줄 아는 그놈을 관조허면 그 더운 것이 시원한 것으로 변헌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신경통도 낮고, 관절염도 낫고, 배안에 모든 숙변도 빠지고, 간장 나쁜 것도 낫고, 위장병도 낫고, 온갖 병이 그 더위 속에서 ‘이뭣고?’로써 피서를 허면서 그 더워할 줄 아는 그놈을 관조허는 속에서,

모래, 그 뜨거운 모래가 모세관 현상으로 해서 그 몸안에 독소를—태양의 그 더위는 땀구멍을 가짓껏 열어주고 또 모래는 모세관 현상으로 해서 몸안에 독소를 흡입을 해내는 거여. 쫙 빨아내. 그래가지고 몸에 독소가 빠지니까 몸이 가벼워지고 병이 다 녹아지는 거여.

 

이렇게 그 '모래찜'에 대해서 말씀을 하니까 또 이것이 좋다하고 가서 너무 무리하게 해 가지고 병이 나선 안됩니다. 한 두어 시간—오전에 한 두어 시간, 오후에 한 1시간 내지 2시간, 자기 체질과 연령에 따라서 적당허니 허면 참 좋은 것입니다.

 

앞으로 남은 더위를 ‘이뭣고?’로써 잘 피서를 허시면 금방 또 찬바람이 올 것입니다.

 

이 더위 속을 향해서 피서를 허는 법은 거기에서 우리는 정말 훌륭한, 이 인생의 고해(苦海)를 고해 속에 바로 파고 들어가서 그 고해에 즉(卽)해서 그 고해를 해탈(解脫)하는, 생사 바다 속에 들어가서 그 생사를 해탈하는 그 생활의 지혜를 여기에서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지혜의 눈을 바로 지금 오늘 이 산승(山僧)의 말 속에서 터득을 한다면은 이 사바세계는 바로 이 적광토(寂光土)로 변조를 할 수가 있는 것이고, 이 더위 속에서 바로 서늘한 이 청량으로 변조하는 이 수단을 우리는 터득을 헐 수가 있을 것입니다.(46분21초~59분16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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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유록앵전신~’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석춘(惜春)’ 참고. 鶯, 鷪, 鸎, 䴍은 모두 같은 글자(꽤꼬리 앵).

*과객(過客 지날·들를·떠날 과/손님·나그네 객) ; 지나가는 나그네.

* ; 손님. 객(客). ①다른 곳에서 찾아온 사람. ②남의 집을 방문한 사람. 남의 집이나 여관 따위에 묵고 있는 사람. ③지나가다 잠시 들른 사람.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유위법(有爲法) ; ①여러 인연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모든 현상. 여러 인연으로 생성되어 변해 가는 모든 현상. 인연의 모임과 흩어짐에 따라 변하는 모든 현상.

②온갖 분별에 의해 인식 주관에 형성된 현상. 분별을 잇달아 일으키는 의식 작용에 의해 인식 주관에 드러난 차별 현상. 인식 주관의 망념으로 조작한 차별 현상.

*부귀영화(富貴榮華) ; 많은 재산과 높은 지위로 누릴 수 있는 영광스럽고 호화로운 생활.

*탐착(貪着) ; ①만족할 줄 모르고 탐하고 집착함. 탐하고 구하는 것. 욕심부려 집착하는 것. 집착하는 것. 욕심부리는 것. 욕심에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대상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것. ②깊이 마음에 두는 것.

갈애(渴愛), 애착(愛著 愛着), 염착(染著), 집착(執着), 탐애(貪愛), 탐욕(貪欲)이라고도 한다.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노랑 냄새 ; 노린내(노린 냄새 : 짐승의 고기에서 나는 마음에 거슬리는, 역逆한 기름내).

*앵기다 ; 잡히다. 잡다(붙들어 손에 넣다. 짐승을 죽이다)의 피동사.

*사욕(私慾 사사로울 사/욕심 욕) ;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私] 이익이나 만족만을 탐하는 욕심(慾心).

*사리사욕(私利私慾 사사로울 사/이로울 리/사사로울 사/욕심 욕) ; 사사로운[私] 이익(利益)과 개인적인[私] 욕심(慾心).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원만구족(圓滿具足 둥글·온전할·원만할 원/찰·가득할 만/갖출 구/충족할 족)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③‘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할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아애(我愛) ; 아(我)에 대한 깊은 애착심. 아탐(我貪).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제7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아만(我慢 나 아/거만할·게으를 만) ; ①오온(五蘊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일시적 화합에 지나지 않는 아(我)를 실체라고 생각하는 그릇된 견해에서 일어나는 교만. 자아가 실재한다는 교만. ②우열의 관점에서 남과 나를 차별하여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기는 자아관.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제7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아치(我癡) ; 아(我)에 대한 무지(無知). 무아(無我)의 이치를 알지 못하여 일으키는 번뇌. 네 가지 근본번뇌(四根本煩惱, 四惑) 중 나머지 세 가지 번뇌를 일으키는 근본이다.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로, 도피안(到彼岸)·도(度)·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생사의 바다를 건너 열반의 언덕에 이르는 여섯 가지 수행의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보시(布施) : [범] dana  음을 따라 단나(檀那)라고도 쓴다。남에게 베풀어 준다는 뜻이다。재물로써 주는 것을 재시(財施)라 하고, 설법하여 정신의 양식과 도덕의 재산을 풍부하게 하여 주는 것을 법시(法施)라 하고, 계를 지니어 남을 침해하지 아니하며 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게 하여 주는 것을 무외시(無畏施)라 한다.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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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가소세간애~’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태희사미귀령(太熙沙彌歸寧)’ 참고.

*세간(世間) ; (산스크리트어 loka) 세(世)는 파괴·변화, 간(間)은 가운데·간격을 뜻함.

①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② 생물들의 세계. ③ 생물들이 거주하는 자연 환경, 곧 산하대지. ④ 세상. 이 세상. 세속. ⑤ 산스크리트어 saṃsāra 미혹한 세계. ⑥ 육내입처(六內入處), 또는 십이처(十二處)를 말함.

*지중하다(至重-- 이를 지/무거울·소중할 중) ; ①(무엇이)더할 나위 없이 무겁다. ②(무엇이)더할 나위 없이 귀중하다.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줄임말.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가(跏)는 발바닥을, 부(趺)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두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가 있다.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〇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80년 동안거해제 법문에서.(1분32초)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 ‘저 뒤에서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쑤욱 내쉰다,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을 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무장 ; ‘더욱, 한사코’의 사투리.

*등목 ; 목물(바닥에 팔다리를 뻗고 엎드린 사람의 등에 물을 끼얹어, 몸을 씻고 더위를 식혀 주는 일).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 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①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이 자유 자재한 것.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②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열반의 상태. ③깨달음. ④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선정(禪定)의 상태. 평온한 경지.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적광토(寂光土) ; 상적광토(常寂光土). 항상[常] 변하지 않는[寂] 광명[光]의 세계[土]. 부처님의 거처나 빛나는 마음의 세계를 이르는 말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천도재(영가천도)2016. 3. 7. 15:55

§ (3)송담 스님 영가천도 법문.(수설운산천만사~)

 

약 13분.

 

수설운산천만사(雖說雲山千萬事)라도  해천명월본무언(海天明月本無言)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수설운산천만사(雖說雲山千萬事)라도, 비록 구름산과 같은 천만 가지 일에 대해서 말을 한다 하더라도 수천 가지의 말을 한다 하더라도, 해천명월본무언(海天明月本無言)이다. 바다 하늘에 밝은 달은 본래 아무 말도 없구나.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원컨댄 솔바람 불고 칡덩쿨 얼크러진 사이로 비친 밝은 아래 들어가서,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다. 길이길이 샘이 없는[無漏] 조사선(祖師禪) 관하고자 하노라. 이러한 게송을 읊었습니다.

 

왕궁의 부귀(富貴), 하늘을 찌르는 영화(榮華) 이것이 모두 일장춘몽(一場春夢)이여. 한마당 봄날 꿈꾸는 것에 지내지 못한 것이여. 잠깐 동안 꿈꾸는 것에 지내지 못한 것인데.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전륜성왕(轉輪聖王) 부귀와 영화를 헌신짝처럼 버리시고 히말라야, 설산에 들어가서 무서운 고행을 하셨어. 그래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 하셔서 팔십 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실 때까지 우리 중생을 위해서 생사 없는 도리를 설하셨습니다.

 

하물며 우리 중생들이 부자고, 살고, 무슨 권리가 있고 명예가 있기로서니, 어찌 전륜성왕의 백분의 , 천분의 일에도 해당이 그러한 달팽이 뿔만치도 못한 그런 인생의 부귀영화에 무슨 애착을 가질 만한 것이 있겠습니까.

 

영가(靈駕) 다행히 숙세(宿世) 심은 공덕(功德) 있어서 용화사 법보전(法寶殿)에서 영원히 생사 없는 열반(涅槃) 세계에 가시게 되었습니다

사바세계(娑婆世界) 몸담아 있는 동안에 느끼고, 보고, 생각하고 마음속에 남아있던 좋고 나쁜, 기쁘고 괴롭고 슬픈 일체 생각은 시간을 기해서 봄눈 녹듯이 자취 없이 녹아 없어졌습니다.

 

 

과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번 태어난 사람은 시시각각으로 변해서 다시 죽음을 맞이합니다.

생사(生死) 깨닫지 못한 분상(分上)에는 생사지마는, 깨닫고 보면 생사 없는 이치를 깨닫고 보면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여.

다맛 모든 것은 질서와 섭리에 따라서 시시각각으로 변해 뿐이지 그것이 어찌 두려워하고 싫어할 생사가 아니다 이거거든. 깨닫지 못한 것을 한탄할지언정 생사를 미워하고 두려워할 것은 없는 것입니다.

 

깨닫고 보면 생사(生死) 열반(涅槃)이요. 번뇌(煩惱) 보리(菩提) 변하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의 온갖 () 깨닫고 보면 그것이 지혜로 변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우리 살아 있는 사람도 오늘 돌아가신 모든 영가들의 천도재를 기해서 우리보다 걸음 앞서간 그분들을 보고서 우리 자신을 돌아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명예나, 권리나, 재산이나, 인간에 있어서의 부귀영화라 하는 것은 전혀 믿을 것이 못되는 것입니다.

믿을 것이 못되는 것을, 영원성이 없는 것을 그것이 영원성이 있는 것처럼 착각을 하고 거기에 국집(局執) 해서 정말 목숨 바쳐서 우리가 닦아야 , 자신을 깨달아야 수도(修道) 등한(等閒)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해천공활월성륜(海天空濶月成輪)한데  호호청파난사은(浩浩淸波爛似銀)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막괴편주능좌우(莫怪扁舟能左右)한데  행선유재파초인(行船由在把梢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해천(海天), 바다 하늘이 비고 넓어서 거기에 달이 휘황청 밝았는데, 호호청파난사은(浩浩淸波爛似銀)이여 호호(浩浩), 넓은 청파(淸波)에는 마치 은가루를 부어 놓은 것처럼 찬란하게 번쩍거리고 있더라.

 

사바세계가 깨닫지 못한 분상에는 생사고해(生死苦海). 흥망성쇠 속에서 슬픔과 괴로움과 외로움으로 모두 그렇지만, 깨달은 분상에는 이것이 바로 극락세계(極樂世界) 조금도 다름이 없고, 이것이 모든 불보살이 계시는 적광토(寂光土) 그말이여. 춘하추동, 생로병사, 희로애락 이것이 고대로 불세계(佛世界) 있어서의 장엄(莊嚴)이다 그말이여.

 

막괴편주능좌우(莫怪扁舟能左右)하라. 조각배가 왼쪽으로 가고, 동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가고,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가고 하는 것이 온전히 배에 노를 젓는 사람의 손에 달려 있더라(行船由在把梢人).

 

하늘에는 태양이 빛나고, 밤이 되면은 달이 휘황청 밝고, 봄에는 꽂이 피고, 가을에는 열매를 열고, 겨울에는 눈이 쏟아지는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아름다운 대자연을 생사의 고해로 만드느냐? 극락세계로 자기가 수용하느냐는 온전히 우리 자신들의 마음 하나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지옥 세계를 스스로 만들어 놓고 지옥고(地獄苦) 받을 것이냐? 극락세계를 장엄해 놓고 극락세계의 영원한 안락을 누릴 것이냐? 생각 돌이켜서 스스로 자기의 길을 정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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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願入松風蘿月下  長觀無漏祖師禪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무루(無漏) ; 마음과 몸을 괴롭히는 번뇌에서 벗어남.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마음 상태. 번뇌가 사라진 경지.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일장춘몽(一場春夢) ; 한바탕의 봄꿈이라는 뜻으로, 헛된 영화나 인간 세상의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전륜성왕(轉輪聖王) ; 산스크리트어 cakravarti-rāja 인도 신화에서, 칠보(七寶) 갖추고 정법(正法)으로 수미산(須彌山) 사방에 있는 대륙을 다스리는 . 32(:신체의 특징)·7() 갖추고, 무력에 의하지 않고 정법에 의해 세계를 정복·지배한다고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 ()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숙세(宿世 지날·묵을 /세상·시대 ) ;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宿] 세상[].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공덕(隨喜功德)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법보전(法寶殿) ; 법보전은 용화선원의 ()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 전당이라는 .
그래서 진리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 모셨고,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 음사. (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상태라는 .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분상(分上 분수 , )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번뇌(煩惱 번거러울 /괴로워할 )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성냄()•어리석음()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앞의 () () ()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이러한 번뇌[]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 과보를 받게 된다. [ 三道]

*보리(菩提) : [] bodhi  () • () • ()이라 번역。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곧 불과(佛果)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범어의 음대로 쓰면 '보디'라고 하겠지만, 우리 말의 관습상( —> ) '보리' 읽는다。따라서 '보제' '보데'로는 읽지 않아야 것이다.

*우리 중생의 온갖 () 깨닫고 보면 그것이 지혜로 변하는 ; 전식득지(轉識得智). 수행자가 수행이라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 자신의 번뇌에 오염된 8식을 지혜로 변형시키는 것을 말한다. 전식성지(轉識成智)라고도 한다.

() () 변화되는 것을 전의(轉依)라고 하는데, 전의(轉依) 뜻은소의(, basis) 발동근거를 바꾼다()’ 성도(聖道) 수행을 통해 번뇌에 오염된 8식을 지혜() 변형시키는 , 질적 전환시키는 것을 말한다.

() 전변(轉變) 또는 능변현(能變現) 뜻으로 능동적으로 바꾸고 변화시키는 것을 말하고, () 획득(獲得) 성취(成就) 말한다.

 

번뇌에 오염된 중생의 유루(有漏:세속) 마음인 ‘8’(八識전오식, 6의식, 7말나식, 8아뢰야식) 질적으로 변혁하여[轉識得智] 얻은 4가지 무루(無漏:열반) 청정한 지혜사지(四智) 다음과 같다.

①대원경지(大圓鏡智) ; 인간의식의 심연에 있는 무명(無明) 오염된 8아뢰야식(阿賴耶識)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지혜는 마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내는 크고 맑은 거울처럼, 8아뢰야식에서 무명(無明) 오염이 완전히 제거된 원만하고 분명한 지혜이므로크고 둥근 거울과 같은 지혜[大圓鏡智]’라고 말한다.

②평등성지(平等性智) ; 인간의 자의식(自意識) 해당하는 오염된 7말나식(末那識)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7식은 원래 나와 남에 대한 구별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의식이므로 여러 가지 차별을 낳게 된다.

그러나 일체가 한결같고 평등함을 관하여,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생기는 자타에 대한 차별적인 견해를 떠나, 자타(自他) 평등을 깨달아 대자비심(大慈悲心)으로 바꾸기 때문에 중생교화를 위한 평등한 지혜[平等性智] 발현된다는 것이다.

③묘관찰지(妙觀察智) ; 오염된 6(第六識) 의식(意識)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지혜는 모든 () 실상을 묘하게 관찰하여 자유 자재로 가르침을 설하고 중생의 의심을 끊어 주는 지혜이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④성소작지(成所作智) ; ····몸의 5관으로 느끼는, 오염된 5(前五識)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지혜는 5관으로 행하는 일을 올바로 이루도록 하여, 중생을 이익과 구제하기 위해 여러가지 불가사의한 일을 모두 성취하는 지혜[成所作智]이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참고] *송담스님(No.366)—88(무진년) 칠석차례 법어(88.08.18)에서.

우리 중생은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5(前五識) 6(六識, 意識) 7(말나식), 8(아뢰야식), 이런 ()으로 해서 일생을 살아가고, ()으로 해서 업을 짓고, ()으로 해서 일체 생사윤회를 하는데,

일어나는 육근(六根), 육경(六境), 육식(六識), 십팔경계에 있어서 염념불망(念念不忘)으로 화두를 단속해 나가면화두가 타성일편이 되고, 의단이 독로해 가지고 그것이 ! 터져 버리면 자성을 깨닫게 되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보게 되는데,

 

자기 본래면목을 바로 깨닫자마자, 깨닫기 전의 중생의 육근, 육경, 육식 () 부처님의 () 변해버리는 것입니다. () 데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 찰나 간에 변해 가지고 () 변하는 것이여.

() () 변하는 것이지, () 없어지고 () 어디서 따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를 인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생의 마음을 떠나서 부처님이 없어. 우리의 중생의 마음을 버리고서 부처님이 어디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여. 중생의 마음, 그것이 바로 일념무생(一念無生)하는 도리를 요달해 버리면 거기에서 바로 성불을 하는 것입니다.

*국집(局執) ; 마음이 트이지 못하고 어느 한편에 국한(局限), 집착하는 . 사리(事理)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에 얽매이거나 자기의 소견만이 옳다고 고집하여 매우 답답한 모습을 말한다.

*등한(等閒) ; 무관심하거나 소홀하게.

*(게송) 해천공활월성륜~’ ; [진각국사어록(眞覺國師語錄)] (김달진 역주 | 세계사) p375 ‘사문화(四聞話)’ 게송 참고.

*생사고해(生死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삼계(三界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 가리킴. 생사와 괴로움이 무한한 것을 바다에 비유함.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

*적광토(寂光土) ; 상적광토(常寂光土). 항상[] 변하지 않는[] 광명[] 세계[]. 부처님의 거처나 빛나는 마음의 세계를 이르는 말이다.

*불세계(佛世界) ; 부처님의 나라. 부처님이 계시는 나라. 불국(佛國). 불토(佛土). 불찰(佛刹).

 

*장엄(莊嚴 엄숙할삼가할꾸밀 /엄할공경할꾸밈 ) ; ①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국토를 꾸미고, 훌륭한 공덕을 쌓아 몸을 장식하고, 향이나 따위를 부처님께 올려 장식하는 . ②건립하는 . 건립. 훌륭히 배치, 배열되어 있는 . ③장식. 물건을 장식하는 . 아름답게 장식함. 훌륭한 . 엄숙하게 장식된 모양, 모습. 장식물.

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16. 3. 5. 16:17

§(577) (게송)일체불유환유견~ / 가정에서도 부페식 식사 / 자업자득(自業自得) 자작자수(自作自受) / 땅덩어리, 우리 몸뚱이, 우리의 마음 3가지가 하나.

 

우리의 마음이 바로 몸뚱이이고, 마음과 몸뚱이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땅덩어리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인연을 지어서 땅에 태어났고 땅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고, 우주법계도 또한 우리 마음에서 나와서 이렇게 벌어진 것이라고 부처님은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나도 역시 그렇게 믿습니다.

 

불법이 죽어서 극락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을 불국토(佛國土) 만들어 나가는 것이 우리의 최상승법(最上乘法)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바로 그것이 진여불성(眞如佛性)이고, 몸뚱이는 바로 육근(六根) 통해서 방광(放光) 하는 불신(佛身) 되는 것이고, 몸이 살고 있는 땅은 적광토(寂光土)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법은 좋고, 최상승법은 불법 중에서도 가장 가깝게 우리는 그것을 느끼고, 그것을 행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577)—96 11 첫째일요법회(96.11.03) (용577)

 

약 22분.

 

일체불유환유견(一切不留還有見)이요  요무가기상존지(了無可記尙存知)니라

나무~아미타불~

고가전지비친도(故家田地非親到)하면  화병하증요득기(畵餠何曾療得饑)리요

나무~아미타불~

 

일체(一切) 불유(不留)라도 환유견(還有見)이다. ‘일체 모든 것을 자기는 가지고 있지 않다. 머무르지 않다해도머물 자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하는 견해가 오히려 있는 것이고,

요무가기상존지(了無可記尙存知). ‘전혀 기약한 것이, 기약한 욕심이 없다 해도없다 하는 알음알이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것 생각이 없어’  ‘ 그것 전혀 생각이 없다 팔팔 잡아떼도전혀 생각이 없다 하는 생각이 있다 그거거든.

 

우리는 자기를 판단 점수를 매긴 데에는 후하고, 남을 점수 매길 때에는 아주 맵고 경향이 있습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그렇습니다.

자기는 후하게 점수를 매기고 관대하게 자기는 봐주고 적당하니 합리화 시켜서 자기의 잘못은 별로 잘못한 것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남이 잘못한 것은 아주 엄격하게 해서 조그만한 잘못한 것도 용납하지 않고 아주 죄를 지은 것처럼 몰아댑니다.

 

요새 한국도 사정(司正) 바람이라 해서 부정부패를 일소하기 위해서 굉장히 엄격하게 모두 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대단히 좋은 일이고, 나라를 만들고 세계에 으뜸가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런 엄격한 사정이 필요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법으로만 엄격히 다스린다고 해서 나라가 정말 훌륭한 나라가 되리라고는 나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물론 국가에서는 법을 엄격히 해야 하고, 하기는 하되 국민 자신들이 스스로 자기를 사정(司正) 하고, 자기의 잘못을 참회하고, 과거의 잘못은 참회하고 앞으로는 그렇게 아니할 것을 스스로 자각(自覺)하고 맹세를 하면서 다스려 나가야지, 자각이 없이 국가에서 법만 엄격히 한다고 해서 그것은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관공리의 부정부패, 대소 기업가의 부정부패, 그러한 것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산승(山僧) 정말 주장하고 싶은 것은 자연을 오염시키는 일인 것입니다.

 

강과 바다, 산과 우리 주변을 오염시키는 . 생활 쓰레기, 생활 폐수, 공장에서 나오는 쓰레기, 공장 폐수, 그리고 자동차에서 나오는 모든 매연, 그런 것들은 물론 법도 엄격하게 해야 하겠지마는,

이것은 사람 사람이 자각을 해서 있으면 생활 폐수를 줄이고, 생활 쓰레기를 줄이고, 바다에 가거나 산에 가거나 그것을 오염을 시키지 않도록 주의를 한다면 그것은 그렇게 크게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크게 힘이 드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을 자각해서 자발적으로 사람 사람, 집안 집안이 노력을 한다면은 개인적인 재산, 국가적인 재산도 몇십 조에 달하는 엄청난 경제적인 손실을 막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장보는 것으로부터, 음식을 장만하는 것으로부터 장만한 음식을 적당하니 장만하고, 장만했으면 그것을 먹을 때에 상에다가 잔뜩 차려 놓고 그냥 먹고서 남은 것은 갖다가 버리는, 그렇게 하는 아니고, 절에서처럼 장만한 것을 식탁에다가 갖다 놓고 각자 그릇을 가지고 거기서 덜어다가 먹는 거거든.

숟가락과 젓가락을 그릇에다 꽂아 놓고 거기서 먹을 만큼 덜어다 먹고, 그것이 절에서는 발우공양(鉢盂供養) 하지마는 평식기(平食器)로서 부페(buffet)식으로 그렇게 먹는다면 흐르는 그것 때문에 요새 야단인데, 그것은 당장! 없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얼마나 손실을 막은 것이 되며, 뿐만 아니라 위생적으로도 대단히 좋은 방법입니다. 삼천 전에 부처님으로부터서 오늘날까지 절에서는 법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불법(佛法) 믿고, 불법을 좋아한다면은 오늘부터서라도 여러분 가정에 가서 부페식으로 식사를 하시기를 권고를 하는 것입니다.

 

3천만, 4천만 민족이 그렇게 하면 좋지마는 우선 우리 불법을 믿는 불교 신자들, 특히 법보가족 여러분들만이라도 우선적으로 하신다면, 그렇게 해서 친구한테도 권하고, 형제간한테도 권하고, 사돈네한테도 권하고, 이렇게 해서 이것이 요원(燎原) 불길처럼 번져 나간다면 우리의 강은 그렇게 오염이 되지 않고, 생활 쓰레기로 인해서 문제는 당장 없어질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그렇게 하고.

식당에서도 잔뜩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놓고, 끼적거려 놓고 일부 10분의 1 먹고 버리게 되니, 그것을 아깝다고 다음에 오는 손님한테 쓱쓱 가지고 내놓아도 그것이 못쓸 것이고, 그것을 쓰레기통에다가 아낌없이 버린다 하더라도 그것이 자연을 오염시키고, 결국은 나라를 갖다가 사람이 수가 없는 곳으로 만들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강물이 오염이 되고, 식수가 오염이 되고, 바닷물이 오염이 되면 우리는 무엇을 먹고살며, 우리의 후손들에게 나라 금수강산(錦繡江山) 그러한 사람이 없는 곳으로 만들어서 우리 후손한테 물려줄 것입니까?

 

우리도 금방 바꿔서 다시 땅에 태어날 확률이 많은 것입니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로 인해서, 생활 폐수로 인해서, 생활 쓰레기로 인해서, 우리가 나중에 태어나 봤자 기형아로 태어날 것이며, 병신(病身)으로 태어날 것입니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요, 자작자수(自作自受)거든.

이러한 불을 보는 것보다도 확실한 것을 깨닫지를 못한다면 그러한 사람이 어떻게 확철대오를 수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문화 민족이 되며, 문화를 사랑하고 문화인이라고 자처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 정말 댁에 돌아가시거든 부페식을 하고, 자기의 밥그릇과 찬그릇은 밥풀이 하나도 없이, 찬도 남은 것을 깨끗이 긁어서 잡수시고, 숭늉을 조금 넣어서 깨끗이 이렇게 가셔서 먹으면, 설거지할 맑은 물로 헹구기만 하지, 별로 씻을 것도 없을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니 설거지물이 흘러서 흘러서 강으로 하천으로 내려간다 해도 강물이 맑을 것이다 그말이여.

 

해인사나 통도사나 범어사, 대흥사, 천육백 전부터 절이 내려왔지마는, 지금 관광지가 되어가지고 관광객들이 와서 더럽히지, 스님네가 오래 살아 가지고 강물이 더러워지지 않았습니다.

 

자리에 모이신 분은 산승이 이렇게 여러 차례 걸쳐서 말씀을 했습니다. 오늘도 다시 말씀을 것은 신토불이(身土不二). 우리가 살고 있는 땅덩어리나, 우리의 몸뚱이나, 우리의 마음이 가지가 따로따로 있는 같지만 하나인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바로 몸뚱이이고, 마음과 몸뚱이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땅덩어리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인연을 지어서 땅에 태어났고 땅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고, 우주법계도 또한 우리 마음에서 나와서 이렇게 벌어진 것이라고 부처님은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나도 역시 그렇게 믿습니다.

 

그렇다면은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해서 부처님을 만들고자 한다면, 우리의 몸도 십선계(十善戒) 지켜서 깨끗이 간직을 해야 하고, 나가서는 강산, 우리의 땅덩어리도 맑고 깨끗한 강토로 우리가 지켜나가고 유지해 나가야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옳다고 생각하시고, 우선 부페식을 하겠다고 마음에 다짐을 가지신 분은 손을 한번 들어 보셔? 좋습니다!

남이 하고 하고 하는 것을 우선 따지시지 말고, 나부터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집에서 부페식으로 공양을 하시고 나면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나로 인해서 강물이 오염이 되지 않고, 바다가 오염이 되지 않을 것이니 그거 하나만 지키면 다른 것도 자연히 그렇게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로 인해서 다른 사람을 좋게 해줘야 그것이 보살도(菩薩道) 불법(佛法)이지, 나로 인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손해를 끼치는 일을 해서는 아니 되거든.

더군다나 나라가 남의 나라가 아니고 나라인데, 어찌 우리가 조그마한 하나를 주의(注意) 하면, 그리고 사람이 함으로써 사람이 하게 되고, 사람이 사람이 되고,

 

이뭣고?’ 열심히 하는 아니라, 우리의 몸과 우리가 살고 있는 땅도 길이 하나 일진대는, 자기 방에다가화장실에 가서 용변을 하고, 에이! 추우니까 나가지 말고 방에다가 그것을 가지고 그냥 방구석에다가 놔둔다면 그거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생활 폐수를 마구 버린 사람은 방안에서 아랫목에서 먹고, 윗목에서 누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그말이여.

 

그러니까 우리는 그렇게 해서 정말 불법을 믿는 사람은 다르구나! 자기가 생각해도 흐뭇하고, 남이 보더라도 () 있도록 이렇게 한다면은, 불법이 죽어서 극락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을 불국토(佛國土) 만들어 나가는 것이 우리의 최상승법(最上乘法)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바로 그것이 진여불성(眞如佛性)이고, 몸뚱이는 바로 육근(六根) 통해서 방광(放光) 하는 불신(佛身) 되는 것이고, 몸이 살고 있는 땅은 적광토(寂光土)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법은 좋고, 최상승법은 불법 중에서도 가장 가깝게 우리는 그것을 느끼고, 그것을 행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고가전지비친도(故家田地非親到)하면, 옛집 전지(田地) 땅에옛집 땅이라 하는 것은 우리의 본분(本分), 진여(眞如) 불신(佛身) 말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깨달으신 바로 , 조사와 선지식들이 깨달은 바로 땅이 고가전지(故家田地) 것입니다.

고가전지에 몸소 경지에 이르지 않는다면, 화병하증요득기(畵餠何曾療得饑)리, 그림으로 그려놓은 떡이 어찌 그것을 보기만 가지고 요기(療飢), 배고픈 것을 면할 수가 있겠느냐?

 

직접 떡을 먹어야지, 그림으로 그려놓은 떡을 가지고는 배가 부를 수가 없는 것처럼, 밤낮 경을 보고, 염불을 하고, 법회 때마다 법문을 듣고법문을 들을 때는 , 마음도 조용해지고 기쁜 마음으로 하지만, 집에 돌아가면 아무 소용없고 옛날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산다면은 그것이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다 이거거든.

이것을 직접 마음으로 행하고, 몸으로 실천을 하고, 그렇게 해서 우리가 다같이참나 깨닫도록.

 

이건 참선을 열심히 하다 보면은 나름대로 어떠한 견해가 열릴 수가 있습니다. 크고 작은 경계가 나타날 수가 있으나, 그것이 정말 불조(佛祖) 깨달은 그런 경지가 아니면 그건 스스로 부정을 버려야 하거든.

언제나 초학자(初學者)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나가야지, 조금 견해가 생겼다고 해서나는 그런 견해를 얻었다하는 생각을 가지고,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절대로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조금 무슨 소견 것을, 그것을 가지고 얻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일생을 그렇게 말아 버린다고 해서는 그것은 부끄럽고 슬픈 일일 것입니다.

 

 

오늘 화두(話頭) 새로 가지고 선방(禪房) 가려고 하는 분은이뭣고?’ ‘이뭣고?’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소소영령(昭昭靈靈) 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뭣고?’ ~’ 하는데, ~’ 하는 이놈이 뭣고? 이렇게 가끔 번씩 그렇게 다그쳐도 상관이 없다.

 

없는 의심! 맥혀서 없는 의심만이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 해야지,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사량분별(思量分別) 이렇게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어. 그렇게 공부하면 공부를 잘못하는 것이고.

어떠한 것이 보이거나 느껴진다 하더라도 그런 데에 집착을 하고 맛들이지 말고, 항상이뭣고?’ 듦으로써그전에 있었던 생각을 없애려고 하지 말고, ! ‘이뭣고?’ 들어버리면 저절로 없어지는 거.

 

없는 의심으로만 잡드리 나가서, 앞에 놓여 있는  은산철벽(銀山鐵壁) 향해서이뭣고?’(51~7236)()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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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일체불유환유견~’ ; [신심명(信心銘) 벽의해(闢義解)] 중봉 명본선사(中峰 明本禪師) (명정 역주, 극락선원,2014) p205 참고. *(頻伽藏本)天目中峰和尚廣錄 卷第十二之下 信心銘闢義解下 게송 참고.

*사정(司正 맡을 /바를 ) ; 잘못된 일을 다스려 바로잡음.

*자각(自覺) ; ①자신의 형편이나 처지, 본분 따위를 스스로 깨달음. ②자기 자신을 의식하는 상태. ③자신의 생각과 언행에 대하여 그것이 진리성과 성실성이 있는지 자신을 반성하는 . [불교] 삼각(三覺) 하나. 스스로 깨달아 증득(證得) 알지 못함이 없는 또는 중생이 자신의 미망(迷忘)에서 벗어나 스스로 진리를 깨달음을 이른다.

*발우공양(鉢盂供養) ; 스님들이 쓰는 밥그릇을 발우(鉢盂)라고 하여, 발우공양은스님들이 하는 식사 말한다. 발우공양을 《소심경(小心經)》이라는 경전을 외운다.

공양은 단순히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이 깨달아 신과 인간의 공양 받기를 원하는하발게(下鉢偈)’, 부처님 일생의 중요한 4 성지를 생각하는회발게(回鉢偈), 보시하는 사람, 보시받는 사람, 보시하는 물건, 삼륜(三輪) 공적함을 생각하는전발게(展鉢偈)’

그리고 위로는 부처님, 성인 아래로는 일체 중생 모두에게 공양을 올린다는봉반게(奉飯偈)’ 음식이 우리 앞에 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음식을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하는오관게(五觀偈)’

그리고 생반게(生飯偈), 정식게(淨食偈), 삼시게(三匙偈), 절수게(絶水偈), 해탈주(解脫呪) 하면서 모든 중생과 함께 고통을 벗어나 무상도(無上道) 이루겠다는 서원을 다짐하며 공양하는 수행 의식이다.

*평식기(平食器) ; 평범한 식기. 평범한 그릇.

*뷔페(buffet) ; 여러 가지 음식을 식탁에 차려놓고 손님이 스스로 골라 덜어 먹도록 식당.

*요원(燎原 화톳불·태울·들불 /언덕· ) ; 불타고 있는 벌판.

*금수강산(錦繡江山 비단 /수놓을 / / ) ; 비단(緋緞) () 놓은 매우 아름다운 산천. 함경북도 북쪽 끝에서 제주도 남쪽 끝까지 삼천리가 되는 우리나라의 자연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자업자득(自業自得)자기[] 저지른 일의 결과[] 스스로[] 돌려받음[].

스스로 저지른 결과 뜻으로 많이 쓴다. 과거, 전생의 선악(善惡) 인연에 따라 뒷날 길흉화복(吉凶禍福) 갚음을 받게 된다는 뜻의 인과응보(因果應報)에도 자업자득의 뜻이 들어 있다자작자수(自作自受), 자업자박(自業自縛) 같은 뜻이다.

*십선계(十善戒) ; () () 마음()으로 짓는 10가지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 사견(邪見)—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십악(十惡) ; () () ()으로 짓는 가지 죄악.

〇몸()—①살생(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 ②투도(偸盜 남의 재물을 훔침) ③사음( 삿된 음행).

〇말()—④망어(妄語 거짓말이나 헛된 ) ⑤기어(綺語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 ⑥양설(兩舌 이간질하는 ) ⑦악구(惡口 남을 괴롭히는 나쁜 , ).

〇뜻()—⑧탐욕(貪欲 탐내어 그칠 모르는 욕심) ⑨진에( 성냄) 사견(邪見 그릇된 견해).

*보살도(菩薩道) ; ①보살의 수행. 보살이 자리이타(自利利他) 갖추어 깨달음에 이르는 . ②대승불교.

*주의(注意 물댈·마음을 쏟을 / ) ; ①마음에 새겨 두고 조심함. ②집중을 요하는 일이나 장소에 정신을 한데 모음. ③경고나 충고의 뜻으로 일깨움.

*아랫목 ; 구들을 놓아 불을 때서 난방을 하는 온돌방에서, 아궁이에 가까운 쪽의 방바닥. 불을 때면 먼저 데워지는 부분.

*웃목 ; 윗목. 구들을 놓아 불을 때서 난방을 하는 온돌방에서 위쪽 방바닥. 아궁이에서 멀고 굴뚝에 가까운 쪽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자체. 깨달음 자체.

*육근(六根) ; 육식(六識) 경계(六境) 인식하는 경우 소의(所依)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眼根(耳根(鼻根(舌根(身根(意根)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 기관·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방광(放光) ; 빛을 . 또는 . ②부처님이 광명(光明 밝고 환한 ) .

*불신(佛身) ; 부처님의 육신. 부처님의 신체. 부처님 .

*적광토(寂光土) ; 상적광토(常寂光土). 상적광(常寂光). 법신불(法身佛) 머무르는[] 정토(淨土).

상적광토는 이상(理想) 현실(現實), (:) (:) 본래(本來:) 일체(一體) 세계로 그것은 여기와 저기, 차안(此岸) 피안(彼岸) 넘어 체득되는 참된 절대계(絕對界)이고, 상주(常住) 정토(淨土)이다.

*본분(本分 근원·마음·본성 /신분· ) ;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라, 중생이라하는 것은 꿈속에서 하는 말이다. 본래 어둡고 밝고 알고 모를 것이 없으며, 온갖 속박과 고통을 새로 끊을 것이 없고, 대자유(大自由)• 대해탈(大解脫) 비로소 얻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인 것이다. 그러므로 '근본 깨달음(本覺)'이라기도 하는데, ‘선가귀감첫구절에서 말한 '   일원상(一圓相)' 이것을 나타냄이다.

*요기(療飢 병고칠 / 굶주릴 ) ; 적은 양의 음식으로 시장기(시장氣, 배가 고픈 느낌) 면함.

*불조(佛祖) : 부처님과 조사(祖師), () 삼세제불(三世諸佛), () 역대(歷代) 조사를 말함.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 선실(禪室) 같은 . 선방에 간다라는 말은참선하러 절에 간다또는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 영령(靈靈) 함께 밝은 .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 의미하는 .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 같은 .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리(事理)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바가 아니다라고 .

*은산철벽(銀山鐵壁) ; 철벽은산(鐵壁銀山). 은과 철은 견고해서 뚫기 어렵고 산과 벽은 높아 오르기 어려움을 나타낸 .

 

Posted by 닥공닥정
생활속 정진(요중선)2014. 11. 24. 11:59
§(복전암26) (게송)다생원채기어친~ / 무연자비(無緣慈悲), 무주상보시 / 지장보살의 원력 / 인과법(因果法) / ‘이뭣고?’는 ‘참나’를 찾는 공부, 자기마음을 바로잡는 법.
 
남에게 줄 때는 무심(無心) 속에서 주어야 하고 조건 없이 주어야 해. 이것이 부처님의 ‘무주상 보시(無住相布施)’라 하는 것이여. 금강경을 독송하신 분은 잘 아시겠지. 무주상 보시를 해야 이것이 그 공덕이 영원한 것이지, 유주상으로 준 것은 그것 나중에 꼭 그놈이 나를 웬수로 상대하게 되는 것이다.
 
어떠한 큰 죄도 ‘어떻게 해서 그 죄를 짓게 되었는가?’ 그 근원을 살펴보면 꼭 마음 ‘한 생각’에서 그것을 짓는 거여.
쇠고랑도 안 차고, 지옥에도 안 가는 방법은 한 생각 일어날 때 그때 딱! 돌이켜버리면 큰 죄를 안 짓게 되는 것이다.
 
인과법을 철저히 믿는 사람은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인과법을 안 믿고 마구잡이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다. 모든 죄도 인과법을 안 믿는 데서 저질르게 되는 것이다.
흰머리가 다른 것이 아니라 염라대왕(閻羅大王)이 ‘너 벌써 늙기 시작을 했으니 얼마 안 있으면 너를 데리러 갈테니까 정신 차려라.’ 염라대왕이 우리에게 보낸 편지다.
 
**송담스님(복전암No.26)—지장기도 천도재 회향 (93년) (복전암26)

 

(1) 약 21분.

(2) 약 21분.

 

(1)------------------
 
다생원채기어친(多生怨債起於親)하니  막약다생불식인(莫若多生不識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향아불문여광제(向我佛門如廣濟)인댄  무연진개대비은(無緣眞箇大悲恩)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다생원채(多生怨債)가 기어친(起於親)이여, 다생! 다생겁래(多生劫來)로 웬수와 빚이 친한 데에서 일어난 거여. 
막약다생(莫若多生)에 불식인(不識人)이다, 다생에 웬수가 없고자 하면 사람을 알지 아니한 것만 같지 못하다.
 
사람을 알고 지내면은 친하게 되고, 친함이 생기면은 그것이 언젠가는 변해서 웬수, 빚쟁이가 된다.
그래서 웬수와 빚쟁이를 안 만날라면 사람을 알고 지내지 아니한 것이 좋다.
 
이 ‘사람을 안다’고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인연(因緣)을 맺는 것인데,
그 인연으로 인해서 우리가 잠시 한자리에 만나서 얘기하는 인연, 함께 차를 타고 가는 인연, 함께 길을 가는 인연, 한 집에서 사는 인연, 한 마을에서 사는 인연, 한 나라에서 사는 인연, 한 이 지구상에 함께 태어난 인연,
 
한 집에서 살되 부모 자식간의 인연, 부부간의 인연, 형제 간의 인연, 그 인연이 천 생, 만 생, 몇백 생, 오백 생 그러한 깊은 인연으로 해서 그렇게 만나게 되고,
이렇게 한자리에서 법문을 듣는 그 인연도 몇천 생의 인연으로 이렇게 된 것이다.
 
유루법(有漏法), 유위법(有爲法)의 인연은 그 인연이 언젠가는 원수로 변하는 것이고.
무위법(無爲法), 무루(無漏)의 인연 — 법(法)을 믿고, 법을 권하고, 법을 듣고, 법을 실천하고, 법에 있어서의 인연이 바로 무위법의 인연이요, 무루의 인연인데.
 
그런 인연은 몰라도 유루법, 유위의 인연은 전부 다 웬수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부모 자식간은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아낄 것이 없고, 자식을 위해서는 한량없는 죄도 서슴지 않고 짓게 된다 그말이여.
그것이 전생(前生)에 깊고도 깊은 전생의 빚이 있기 때문에 — 엄청난 빚이 있기 때문에 그 빚을 갚기 위해서 금생에 빚 받으러 온 놈이 그것이 자식이다 그말이여. 그러니 전생에 지어논 빚을 안 갚을 수 있는가!
 
그래서 자식을 위해서는 무엇이고 아까운 것이 없어.
자식은 물론 효자도 더러는 있지만은 대부분의 자식이라 하는 것은 빚 받으러 온 웬수거든.
그래서 그놈을 위해서는 아까운 것이 없다 그말이야. 다 주어도 또 주고 싶어.
 
그렇게 불효막심(不孝莫甚)해도—남이라면은 그렇게 고약한 놈은 탁! 인연을 끊어버리고 안 봐 버리면 되는데, 불효자식일수록에 부모는 더 가슴이 아프고 더 못 잊는다 그말이여.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알고 모르게 크고 작은 죄를 짓지마는 자식을 위해서 지은 죄가 엄청나게 많다 그말이여. 빚을 갚기 위해서 그런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지어 놓은 빚은 안 갚을 수가 없으니까 최선을 다해서 빚은 갚을 수 밖에는 없고, 아무리 피할래야 피할 수도 없는 것이니까 빚은 갚되,
그 빚을 갚으면서도 항상 ‘이뭣고?’를 해야지, ‘이뭣고?’를 안하면 계속해서 또 빚은 늘어나고만 만다.
 
자식은 ‘으레이 부모는 나를 낳았으니까 당연히 그렇게 해주어야 한다’ 생각하고 별로 고마운 생각도 없는 거여.
알뜰히도 빚을 받으면서도 별로 고마운 줄 모르고, 나중에 다 커서는 으레이 부모가 자식을 해주어야 한 걸로 생각한다 그말이여. 그놈이 또 자식을 낳으면 자식한테 또 빚을 갚아야 하고.
 
그러니 ‘이뭣고?’를 안 한 사람은 무량겁을 그것을 되풀이를 해. 되풀이를 하면서도 정신을 못 차려. 
 
지금 ‘부정부패 척결’해서 온통 야단이지마는 전부가 다 처자(妻子)·권속(眷屬)을 위해서 저지른 죄다 그말이여. 한도 끝도 없는 것이여.
 
그래서 우리의 불자(佛子)! 형제자매 여러 도반들은 원수 빚을 안 갚을 수가 없으니까 갚지마는 그 속에서 항상 ‘이뭣고?’를 해야 되야.
‘이뭣고?’를 해서 묵은 빚은 갚지마는 새 빚을 짓지를 말라.
 
 
향아불문여광제(向我佛門如廣濟)인댄, 우리 불문(佛門)에 있어서 널리 제도(濟度)를 하는데 있어서는,
무연(無緣), 무연자비(無緣慈悲), 인연 없는 자비 — 인연을 맺지 아니한 것이 이것이... (無緣眞箇大悲恩)
 
남에게 보시를 하되 인연이 있고 정을 따라서 주는 보시는 참다운 보시가 아닌 거여.
전혀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지만은 주어야 할 때는 무주상(無住相)으로 주고 이리 해야지,
유주상(有住相)으로 주어 놓으면 결국은 그것도 빚을 만드는 것이여. 웬수를 맺는 올가미가 되는 것이다.
 
내가 물심양면으로 많이 그 사람을 구제를 해 놓고 나중에 많이 주어 놨는데, 나중에는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사람이 되는 거여, 그 사람이.
내 것 많이 먹은 사람이 웬수가 되는 것이지, 전혀 나와 인연 없는 사람은 웬수가 전혀 안되는 법이거든.
 
남에게 보시를 하고 베푸는 것도 대단히 좋은 일인데 완전히 무주상으로 주어야 해.
조건 없이 주고도 잊어버리고 주어야지,
“내가 이것을 너를 주었으니까 너는 정말 나한테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이 은혜를 잊어서는 안되고 나중에 네가 이것을 내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러한 마음으로 조건부(條件附)로 주고,
 
“이것을 주었으니까 언젠가 너는 나한테 잘해야 한다. 평생토록 내 은혜를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그런한 조건이 있어 가지고 주어서는 그 사람이 받으면서도 겉으로만 ‘고맙습니다’ 그러지, 속으로는 하나도 고맙지도 않고, 많이 받아먹은 놈일수록에 나중에 그놈이 꼭 배은망덕한 놈이 되고, 나를 해꼬지 하는 것이여.
 
그래서 남에게 줄 때는 무심(無心) 속에서 주어야 하고 조건 없이 주어야 해.
이것이 부처님의 ‘무주상 보시(無住相布施)’라 하는 것이여. 금강경을 독송하신 분은 잘 아시겠지.
 
무주상 보시를 해야 이것이 그 공덕이 영원한 것이지, 유주상으로 준 것은 그것 나중에 꼭 그놈이 나를 웬수로 상대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7일 지장기도 회향식인데, 윤달을 기해서 왜 지장기도를 주지스님이 그렇게 원력(願力)을 발했느냐 하면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지은 죄로 자기가 그 과보를 받게 돼.
무량겁을 두고 몸으로 지은 죄가 태산과 같고, 입으로 지은 죄가 저 대해(大海)와 같고, 마음으로 지은 죄가 허공처럼 많다 그말이야.
 
그 자기가 지은 — 지금 이렇게 세상을 살아가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자체가 또 내생(來生)에 윤회할 그리고 고통을 받아야 할 그 원인을 만드는 거여.
과거에 지은 죄를 금생에 받으면서 또 금생에 이렇게 살아가면서 내생에 받을 죄를 또 짓고 있거든.
 
그래서 과거에 지은 죄를 참회(懺悔)하고 내생에 받을 과보를 받지 않는 참다운 길을 여러분에게 깨닫게 해 드리기 위해서 지장기도를 봉행한 것이다.
 
윤달에 예수재(預修齋)도 지내고, 윤달에 가사불사도 하고, 윤달에 개금불사도 하고, 참 수많은 불사(佛事)가 있는데 이렇게 지장기도를 한 경우는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닙니다
대단히 주지스님이 원력을 발해 가지고 지장기도를 이렇게 봉행을 했는데 여기에 동참하신 여러 불자, 신남신녀 여러분은 그 지장기도의 참다운 뜻을 잘 인식을 하셔야 할 것이다.
 
 
지장보살(地藏菩薩)은 지옥 중생 — 이 세상에 고통이 제일 심한 곳이 지옥인데.
지옥에는 팔만지옥(八萬地獄)이 있고, 그 가운데 참 무서운 데가 십팔지옥(十八地獄)이 있고, 무간아비(無間阿鼻) 지옥이 있고 그런데.
 
그 지옥 문전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지옥 중생을 위해서 지옥문에 가 가지고 눈물이 마를 겨를이 없이 그 지옥 중생들에게 고통을 멈추게 해주기 위해서 애를 쓰고 계시다 그말이야.
 
우리도 지장보살의 대원력을 따라서 「지옥에 들어가기 전에 해탈도를 가는 것」이 그것이 지장보살의 참으로 큰 대원력이여.
 
이미 지옥에 들어가 가지고 그놈을 벗어나기는 참 어려운 거여.
한번 들어가면 나올 기약이 없어. 거의 영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할 만큼 몇 무량겁을 지옥고를 받게 되는 것인데,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열심히 해둔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냐.
 
탐진치(貪瞋癡), 탐욕과 성내는 것과 어리석은 마음 — 이 세 가지 죄로 지옥, 아귀, 축생의 과보를 받게 되는 거여. 어리석은 마음을 내면 축생보를 받고, 탐심을 내면 아귀보를 받고, 진심을 내면 지옥을 가는 것이여.
 
물론 중생은 세 가지를 다 고루고루 지어 가지고 축생에 갔다가 아귀도에 갔다 지옥고에 갔다, 그 삼악도(三惡道)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지만은,
 
 
그 어떻게 했으면은 탐욕심을 안 내고, 진심을 안 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안 낼 수가 있느냐?
 
천하에 간단한 것이지.
아무리 탐욕이 과하고, 진심을 성을 잘 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많이 낸다 하더라도 그것이 근본은 마음에서 그것을 짓는 것이지 다른 것으로 짓는 게 아니여.
 
어떠한 큰 죄도 ‘어떻게 해서 그 죄를 짓게 되었는가?’ 그 근원을 살펴보면 꼭 마음 ‘한 생각’에서 그것을 짓는 거여.
한 생각이 일어나 가지고 그 한 생각이 차츰차츰 이리저리 발전해 가지고 결국은 그런 큰 죄를 짓게 되어.
 
‘한 생각’이 딱 일어나면 그것이 말로 표현이 되고, 그것이 얼굴에 나타나고,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나 가지고 큰 죄를 지어 가지고 금생에도 쇠고랑을 차게 되고 내생에는 물어볼 것도 없이 지옥에 가게 되는데.
 
쇠고랑도 안 차고, 지옥에도 안 가는 방법은 한 생각 일어날 때 그때 딱! 돌이켜버리면 큰 죄를 안 짓게 되는 것이다.
 
지금 장관도 걸리고, 국회의원도 걸리고, 그 별 단 장성들도 모다 걸려 들어가는데 그 죄가 한 생각에서 일어난거다.
 
산불이, 건조기에 산불이 지난달에 몇천 건이 일어나 가지고 한국의 금수강산이 모다 다 타고 그랬는데, 그 엄청난 불이 처음부터 그렇게 큰불이 난 것이 아니여. 
처음에는 성냥불 하나나 담뱃불 하나가 결국은 번져 가지고 그렇게 큰불이 된 것이거든.
 
처음에 담뱃불 하나만 탁! 밟아서 잘 껐어도 그런 큰불이 안 날거거든.
담뱃불 하나만 단속을 잘 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여. 성냥불 하나 — 그때는 탁! 손바닥으로 눌러도 꺼지고, 발로 탁! 밟아도 꺼지고.
 
그때 조심을 했으면 될 것인데 그걸 조심을 안하고, 그때 단속을 안했기 때문에 집도 타고 공장도 타고, 저 엄청난 산도 다 탄다 그말이여.
 
 
한 생각 일어난 그 한 생각이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 욕심!
아까 그 자식때문에 요새 모다 부정 입학문제도 그 자식이 평소에 공부를 잘해서 실력으로 들어가 주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은 그놈이 국민학교 때는 잘하던 놈이 중학교 가면서 조금 떨어지고, 고등학교 가서는 나쁜 친구를 사귀고 그럭저럭 지내다가 대학을 갈라고 하니 되냐 그말이여.
 
그러니 부모는 돈이 없는 사람은 몰라도 있는 사람은 몇천 만원, 몇억이라도 넣어서라도 들여서라도 입학을 시키고 보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말이여. 그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면은 참 기가 맥히지.
 
그러나 지가 공부 못한 놈을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을 시킬 것까지는 없는 일이었었다 애당초에.
못하면 못한대로 지가 공부를 안 해 가지고 못한 걸 어떻게 하냐?
전생에 지혜를 닦아 놓지 아니해서 금생에 머리가 나쁘고, 지가 금생에 어려서부터 열심히 했으면 되는데 그렇게 공부를 하라하라 해도 지가 안 한 것을 어떻게 돈을 들여서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을 시킬 것이냐 그말이여.
 
못하면 못한대로 구두닦이를 하던지, 노동판에 가서 일을 하던지, 신문팔이를 하던지 아주 매정한 마음으로 했어야 한다 그말이야.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을 시켜놨다가 1학년, 2학년 대학에 가 가지고 그때사 퇴학을 당하면 그거 어떻게 되는 것이며, 부정한 방법으로 별자리를 올라갔다 그것이 떨어지니 그것이 될 일이냐 그말이여.(19분41초~40분45초)
 
 
 
 
 
(2)------------------
 
그래서 사람은 바르게 살아야 하고 정에 떨어져서는 안돼.
제 자식이지만은 지가 공부 안한 놈은 안 하는대로 해야지, 인정(人情) 정을 써서 해 놓으면 결과가 결국은 그렇게 되고만 만다 그말이야.
설사 부정한 짓을 해서 금생에 잘산다 하더라도, 금생에 쇠고랑은 안 찬다 하더라도 내생에 저 내생에는 반드시..(법문 끊김)
 
탐욕! — 자기 욕심대로 안 되면은 진심(瞋心)을 내고, 그러기를 무량겁을 두고 그렇게 해 가지고 육도윤회를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어리석은 것도 가지각색이지만 제일 어리석은 것이 무엇이냐?
‘가장 어리석은 것의 근본이 무엇이냐’하면은 인과법(因果法)을 안 믿는 거여.
 
인과법을 철저히 믿는 사람은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인과법을 안 믿고 마구잡이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다.
 
모든 죄도 인과법을 안 믿는 데서 저질르게 되는 것이다.
인과법은 팥 심은 데 팥이 나고, 콩 심은 데 콩이 나.  털끝 만큼도 어기는 법이 없어.
 
이 세상에 모든 것은 인과법으로 다 이루어지는 것인데, 인과법은 지극히 과학적이고 컴퓨터보다도 더 정확한 것이여. 컴퓨터도 병이 나면 천하 못 믿을 것이 참, 컴퓨터라 그러는데.
 
진짜 영원히 추호도 어김이 없는 것은 인과법이여.
한 생각 탁! 먹은 것도 벌써 과보(果報)로 나타나고, 말 한마디 나온 것도 과보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말이여.
 
그래서 우리는 한 생각 일어날 때 퍼뜩 돌이켜서 ‘이뭣고?’로 돌아와야 해.
‘이뭣고?’는 무엇이냐? 내가 ‘참나’를 찾는 공부거든. ‘참나’로 돌아가는 길이여.
 
우리가 저 진묵겁(塵墨劫) 전에는 우리도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法身佛)이었어. 법신불과 똑같은 존재였어.
 
그러던 존재가 한 생각 일어나는 그 무명(無明) 때문에 이렇게 '업(業)투성이'인 중생이 되고 말았다 그말이여. 
그래서 지금도 일어나는 한 생각만 잘 단속을 하면 본래의 비로자나불로 돌아갈 수가 있다 그거거든.
 
이것 말고는 우리의 영원한 행복도 얻을 수가 없고 우리의 가정, 우리의 사회·국가·세계의 평화도 이룰 수가 없는 거여.
근원을 다스리지 않고 어떻게 지엽적인 문제만 가지고 해결이 될 것이냐 그말이여.
 
지금 부정부패 척결을 해 가지고 새 한국을 건설하자고 새 대통령께서 나와서 저렇게 애를 쓰고, 온 국가가 온통 이것 때문에 그 애를 쓰고 있는데,
대단히 부정부패는 마땅히 척결을 해야 하고 그래야 이 나라가 되어갈 것은 사실이나 법을 엄격히 적용한다고 해서, 근본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이것은 잠시 그러다가 조금 법을 느슨히 느꿔주면 또 마찬가지야.
 
 
근본은 각자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는 거여.
일어나는 한 생각을 자꾸 ‘이뭣고?’로 돌이켜서 ‘참나’로 돌아감으로서만이 부정부패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부정부패, 부정부패하지만 알고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지은 죄여, 그게.
각기 자기가 지은 죄가 노출이 되면 여러 사람이 하니까 온 나라가 썩어 문드러진 것처럼 보이나, 나라가 썩기는 무슨 나라가 썩어, 태산이 썩어?
 
아무 것도 썩은 건 없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잘못 삐틀어진거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만 바로잡어!
어떻게 나무가 삐틀어지면 깎아내고 바로잡는다 하지마는 사람의 마음을 무엇으로 잡어?
 
‘이뭣고?’가 자기 마음 바로잡는 법이거든.
자꾸 ‘이뭣고?’를 해서 자기로 돌아가. 자기의 본심으로 돌아가.
 
그것이 바로 자기 마음을 바로잡는 법인데, 마음 하나만 바로잡고 보면 말도 바르게 나오고, 행동도 바르게 나올 것이고, 마음을 바로잡은 사람은 무슨 일을 맡기더라도 그 일을 바르게 할 것이다 그말이여.
 
서장이 되거나 검사가 되거나 판사가 되거나 장관이 되거나 마음을 잘못 써 가지고 쇠고랑을 차는 것이지, 마음만 바로잡으면 무슨 걱정이 있느냐 말이여.
 
법을 아무리 무섭게 제정을 해서 엄격하게 다룬다 해도 그때 뿐이여, 중생은.
엄하게 할수록에 더 머리 좋은 사람은 그놈의 법망을 뚫고 또 죄를 저지르고 마는 거다 그말이여.
 
그래서 성현들은 법을 엄격히 적용을 하는 데에다가 역점을 두지 않고, 각자 마음을 바로잡는 데에다가 역점을 두고 가리키셨다 그거거든.
 
‘이뭣고?’ 자기 마음을 바로잡는 법이 아닌가!
집안에 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으로 인해서 두 사람, 세 사람 온 집안 식구가 ‘이뭣고?’를 하고, 그런 집안이 있으면 또 이웃집 사람들도 또 그 본을 따서 ‘이뭣고?’를 하고, 사돈네도 그걸 하게 되고 해서,
 
차츰차츰 ‘이뭣고?’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인과법을 믿고 ‘이뭣고?’만 열심히 하면 이 세상이 온통 부처님 세계로 변하는 것이다.
 
법이 전혀 필요가 없는 거여. 형무소도 필요없이 되어 버리고.
지옥도 텅텅 비어서 지장보살도 지옥에서 좀 나올 때가 된다 그말이여.
 
‘이뭣고?’을 하지 않고는 온 세계가 법을 무섭게 제정을 해 가지고,
도둑질한 놈은 왼손 자르고 또 한번 한 놈은 오른손을 자르고, 유부녀 간통한 놈은 목 매달아 죽이고 총살을 시키고, 지금도 저 아프리카 어디 가면은 도둑질하면 팔목 자르고 목 매달아 죽이는 데가 있다고 하더만.
 
그래 해봤자 마음보를 바로잡지 않고 아무리 무섭게 해서 날마다 수백 명씩 때려 죽여봤자 끝나는 날이 없어. 온 세계 사람을 다 때려 죽여도 소용이 없는 거다 그말이여. 죽자마자 또 다시 태어날 것을 죽여봤자 소용이 있나.
 
 
그래서 우리 부처님께서는 ‘이뭣고?’ ‘이뭣고?’
가정에서도 속상한 거 부애풀이 해봤자 소용 없고, 떠억 숨을 깊이 들여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뭣고?’
열 번, 스무 번 하다보면은 스르르르 가라앉거든.
 
부애난다고 때려 부수고, 부애난다고 술 잔뜩 먹고 와 가지고 막 때려 부숴봤자 무엇이 되는 일이 있냐 그말이여. 집안만 점점 복잡하고 시끄럽고 일은 무장 더 다 안되거든.
‘이뭣고?’를 해야—턱 숨을 깊이 들여마셨다 내쉬면서 ‘이뭣고?’ 자, 다 따라서 숨을 들여마셨다가 ‘이뭣고?’ ‘이뭣고?’
 
부애가 날 때는 좀 큰소리를 내서 ‘이뭣고?’를 하면 더욱 좋다.
그렇다고 해서 만자 중에서 소리를 내서 ‘이뭣고?’ ‘이뭣고?’ 하면 사람들이 모다 쳐다보고 그럴테니까 사람 없는 데서는 그렇게 하고, 사람 있는 데서는 속으로 ‘이뭣고?’를 자꾸 해서,
자꾸 하다 보면 나중에는 저절로 ‘이뭣고?’가 되야.
 
걸어가면서 ‘이뭣고?’
심심하면 ‘이뭣고?’
차를 타고 가면서도 ‘이뭣고?’
밥 먹으면서도 ‘이뭣고?’
누워서도 ‘이뭣고?’
앉아서도 ‘이뭣고?’
변소에 가서 터억 앉아서도 ‘이뭣고?’.
 
‘이뭣고?’ 저절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항상 ‘이뭣고?’가 끊어지지 않도록.
그 사람은 제발 좀 성을 내라고 해도 성을 안 내고, 제발 좀 탐욕심을 내라고 해도 안 내는 거여.
그 사람이 무슨 도둑질을 하라고 한다고 해서 할 리가 있는가!
 
자꾸 처음에는 잘 안되고 재미가 없지만은 자꾸 하면은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법희선열(法喜禪悅) — 법(法)의 기쁨과 선(禪)의 즐거움이 속에서,
 
향을 피워 놓으면 향내가, 전단향을 피우면 10리 밖에까지라도 그 향내가 풍기는데,
‘이뭣고?’를 한 사람은 마음의 기쁨이 그렇게 넘쳐 흐르고 얼굴이 환해지거든. 그 사람을 본 사람마다 다 환희심을 내는 것이다.
 
그 사람이 간 곳에는 항상 선신(善神)이 옹호를 하고, 마음으로 꼭 탐욕심을 안 내더라도 마음으로 꼭 무엇이 필요하다 하면 저절로 그것이 자기한테 이르러 오는 거여.
 
지상(地上) 사람은 무엇이 먹고 싶으면 손으로 그걸 집어서 입에다 넣어서 씹어서 먹어야 그때사 배가 부르는데, 복이 많은 저 천상(天上) 사람들은 무엇이 먹고 싶다 하면 벌써 배가 불러져 갖고 있는 거여.
 
지상 사람은 남녀 관계도 몸과 몸이 접촉해야 사랑이 이루어지는데, 천상 사람은 마음 한 생각만 내면 벌써 이루어지는 거여.
 
그래서 중생이나 축생은 입으로 씹어서 먹는 거고, 귀신은 냄새로 먹는 거고, 천상 사람은 생각으로 먹는 거고.
 
부처님은 견식(見食)이여. 떠억 보기만 해도 벌써 충분히 배가 부르신 거여.
그래서 이 법당 탁자 위에다가 떡이다 과일이다 잔뜩 갖다 놓아도 하나도 줄지를 않거던. 부처님은 보시기만 해도 배가 부르시기 때문에 그런 거여. 부처님은 견식이여.
 
그래서 ‘이뭣고?’를 열심히 해서 마음에 욕심이 없는 사람은 꼭 필요한 것은 저절로 공급이 돼.
왜 그러냐? 항상 선신이 옹호를 하기 때문에,
선신(善神)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선신은 — 대통령이나 모다 그런 사람들은 항시 호위하는 경호원이 따라다니듯이 — 참선하는 사람에게는 선신이 우리의 경호원으로 따라다녀 가지고 항상 지켜줘.
 
먹을 것, 입을 것 전혀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 
열심히 ‘이뭣고?’하면 걱정을 안 해도 항상 그 사람에게는 의식주 문제가 걱정이 없어.
 
자기 한 사람의 의식주 문제는 그렇게 크게 걱정을 안 해.
사람이 지나친 욕심을 가지고 탐욕심을 가지고 그래 가지고 분에 넘치는 욕심을 내기 때문에 죄를 지어 가지고 부정부패에 걸리는 것이지, 자기가 먹고 입고 살 만큼만 가질라고 하면은 그렇게 큰 죄를, 큰 욕심을 안 내도 되는 것이다.
 
 
우리는 시시각각으로 이 몸뚱이는 늙어가고 있습니다.
금방 30까지는 조금 마디다가, 40이 되면 더 빨리빨리 가고, 50이 되면 더 빠르고, 60이 넘으면 금방 늙어서 곧 꼬부라지는 거여.
 
우리가 이만큼 젊었을 때 어쨌든지 시간을 아껴서 열심히 ‘이뭣고?’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우리가 이 몸뚱이를 백 가지, 천 가지 방법으로 위하고 해봤자 금방 이 몸뚱이는 허망하게 늙어가.
 
벌써 여기에 앉아 계신 분들은 대부분 흰머리가 많거나 적거나 간에 다 하나, 둘씩 이상 다 생겼을 것인데,
그 흰머리가 처음에는 곧잘 보기 싫다고 뽑아 내버리지만 나중에는 몇 해 지나가면 도저히 그놈 다 뽑다가는 대머리가 되게 생기니까 도저히 못 뽑고, 나중에는 물을 들이는데 물을 들여봤자 밑에서 하얀 것이 곧 돋아나거든.
 
얼굴에 주름살 생긴다고 여기를 째고 잡아당겨봤자, 정말 늙어서는 흉직하게 늙어간다 그말이여.
 
그 흰머리가 다른 것이 아니라 염라대왕(閻羅大王)이 
‘너 벌써 늙기 시작을 했으니 얼마 안 있으면 너를 데리러 갈테니까 정신 차려라.
죄 지은 것 있으면 참회하고, 어쨌든지 ‘이뭣고?’ 열심히 하고, 남에게 욕심내지 말고, 네게 있는 것을 턱턱 털어서 보시도 많이 하고 그렇게 해서 황천에 올 때에는 가벼운 몸으로 오너라.
 
탐욕심을 잔뜩 탐욕심을 해봤자 너 죄만 짊어지고 오지, 하나도 가지고 오지도 못할 걸, 뭐하러 그렇게 오그려 쥐고,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도 그리고도 만족할 줄을 모르고 한없이 그렇게 죄만 퍼 짓느냐?’
염라대왕이 우리에게 보낸 편지다 그거여, 편지.
 
여러분 「지장기도 오늘 회향일을 맞이해서 깨끗이 과거에 지은 죄를 참회하고 앞으로 남은 여생에 죄짓지 않고 열심히 ‘이뭣고?’ 하겠습니다」하는 뜻으로 참회진언(懺悔眞言)을 외우면서 연비(燃臂)를 받으시겠습니다.(연비 준비하세요)
 
참회진언을 하고 연비를 받아서 과거 무량겁에 지은 우리의 죄는 깨끗해졌습니다.
새 마음, 새 몸으로 오늘 새로 태어났습니다.
 
새로 태어난 몸으로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면 우리는 내일엔 오늘과 다르고, 모레는 오늘과 달라서 점점 젊어지고 점점 이뻐지고, 점점 착해져서 다른 사람이 우리를 볼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볼 때 옛날에 미웠던 사람이 하나도 미운 생각이 없어지고 옛날에 원수로 여겼던 사람이 하나도 웬수로 보이지를 않고 모두가 다 한 식구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상에 극락정토(極樂淨土)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중생이 업(業)의 눈으로 보니까 이 사바세계가 악토(惡土)요 악세(惡世)요 고토(苦土)요 예토(穢土)라고 그렇게 보지마는 부처님의 눈으로 볼 때에는 이 사바세계가 고대로 적광토(寂光土)요 극락세계인 것입니다.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온갖 열매를 맺고, 겨울에는 흰 눈이 내리는 것이 하나도 지옥세계라고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바야흐로 봄이 돌아와서 산천에 푸른 잎이 돋고 온통 울긋불긋 꽃이 피어서 문자 그대로 금수강산(山)이 되었습니다.
 
나라도 새로운 정부가 섰으니 우리도 새로운 마음으로 우리의 몸도 새로와지고 우리의 가정도 새로와지고 온 세계가 새로운 새 봄으로 새출발을 하는 그러헌 계기를 우리는 오늘로서 마련을 합시다.(19분41초~61분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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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다생원채기어친~’ ;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預修十王生七齋儀纂要)』 (大愚集述) 제13 소청명부편(召請冥府篇) 게송 참고.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유루법(有漏法) ; 번뇌의 더러움에 물든 마음 상태, 또는 그러한 세계. 온갖 번뇌와 망상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차별이나 분별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사제(四諦) 가운데 미혹의 결과인 고제(苦諦)와 그 원인인 집제(集諦)에 해당하는 모든 현상.
*유위법(有爲法) ; ① 온갖 분별에 의해 인식 주관에 형성된 현상. 분별을 잇달아 일으키는 의식 작용에 의해 인식 주관에 드러난 차별 현상. 인식 주관의 망념으로 조작한 차별 현상.
② 여러 인연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모든 현상. 여러 인연으로 생성되어 변해 가는 모든 현상. 인연의 모임과 흩어짐에 따라 변하는 모든 현상.
*무위법(無爲法) ; (산스크리트어: asaṃskrta-dharma) 무위법은 무위의 세계, 즉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진리의 세계의 모든 개별 존재(법·法)를 통칭한다. 또는 그러한 개별 존재(법·法)를 가리킨다.
원래 무위 혹은 무위법은 열반(涅槃)의 다른 명칭.
*무루(無漏) ; 마음과 몸을 괴롭히는 번뇌에서 벗어남.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마음 상태. 번뇌가 사라진 경지.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무연자비(無緣慈悲) ; 무조건의 자비(慈悲). 상대의 어떤 것도 묻지 않고, 일체 평등으로 구제하는 자비심. 일체 평등의 이치를 깨달아 상대의 상(相:모습)을 가리지 않고 행하는 자비.
무연(無緣)이란 진여평등(眞如平等)의 이치를 깨달아 중생의 본체(本體)가 허망하다는 것을 알고 일으키는 자비.
*무주상(無住相) ; 집착함이 없는 모습. 집착함이 없는 상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대승불교도들의 실천덕목 중 하나. 상(相)에 머뭄(住)이 없는(無) 보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말한다.
무주상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05~106에서.
(46)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한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참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둘 아닌 것이 한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참고] [금강경오가해]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p141~145, [금강경오가해 설의-육조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p101~104.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또 수보리야, 보살은 법(法)에 응당히 머문 바 없이 보시를 할지니, 이른바 색(色)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상(相)에 머물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상(相)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육조 스님 해의解義)
부차(復次)라 한 것은 앞을 이어서 뒷말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범부(凡夫)의 보시는 다만 아름다운 외모와 오욕의 쾌락을 구하는 고로, 그 과보가 다하면 곧 삼악도(三惡途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므로,
세존께서 크나큰 자비로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를 행하도록 가르치시니,
아름다운 외모나 오욕(五欲)의 쾌락을 구하지 않고, 다만 안으로는 인색한 마음을 없애고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 이와 같이 상응(相應)하는 것이 ‘색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色布施)’이니라.

무상(無相)의 보시를 한다는 것은, '보시한다'는 마음도 없고, 베푸는 물건도 없으며,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相布施)'라 하느니라.

보살이 보시(布施)를 행할 때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면 그 얻는 복이 시방(十方)의 허공과 같아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일설에 '보(布)'란 '普(넓다)'요, '시(施)'란 '散(사방에 흩어버린다)'이니, 가슴 가운데 있는 모든 망념·습기·번뇌를 널리 흩어버려 사상(四相)도 끊어지고 마음에 전혀 쌓여 있지 않는 것이 '참 보시(眞布施)'라 하며,
또 일설에는 '보(布)'란 '普'니 육진 경계(六塵境界)에 머물지 않으며 유루(有漏)의 분별도 하지 않아 오직 항상 청정한 데 돌아가서 만법(萬法)이 공적(空寂)함을 요달함이니라.
만약 이 뜻을 요달하지 않으면 오직 온갖 업(業)만 더하므로 모름지기 안으로 탐애(貪愛)를 없애고 밖으로 보시를 행해서 안밖이 상응하여야 무량한 복을 얻게 될 것이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보아도 그 허물을 보지 않아서 자성(自性) 가운데 분별을 내지 않음이 '이상(離相)'이 되느니라.
가르침에 의해 수행해서 마음에 능소(能所)가 없는 것이 곧 선법(善法)인 것이라. 수행인이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선법이라 할 수 없고, 능소심(能所心)이 멸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치 못하니,
순간순간 항상 반야지혜를 행하여야 그 복이 무량무변한 것이니라.

이같은 수행에 의지하면 일체 인천(人天 사람과 하늘신)의 공경하고 공양함이 따르니 이것을 복덕(福德)이라 하도다.
항상 부주상보시(不住相布施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보시)를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면 그 공덕이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배은망덕(背恩忘德) ; 남에게 입은 은덕을 저버리고 배신하는 태도가 있음.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내생(來生) ; 죽은 후에 다시 맞이한다는 미래의 삶.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예수재(預修齋) ; 살아 있는 동안에 미리 재(齋)를 올려 죽은 후에 극락에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의식.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지장보살(地藏菩薩)석가모니불의 입멸 후 미륵보살이 성불할 때까지, 곧 부처가 없는 시대에 중생을 제도한다는 보살로, 그는 모든 중생이 구원을 받을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보살이기 때문에 대원본존지장보살(大願本尊地藏菩薩)이라고 한다.
특히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에 사찰의 명부전(冥府殿)에 본존(本尊)으로 모신다.
보통 삭발한 스님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한 손에는 지옥의 문이 열리도록 하는 힘을 지닌 석장(錫杖)을, 다른 한 손에는 어둠을 밝히는 여의보주(如意寶珠)를 들고 있다.
지장보살은 고통받는 이들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윤회의 여섯 세계, 즉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에 상응하는 6가지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팔만지옥(八萬地獄) ; 중생이 지닌 팔만사천의 번뇌로 생기는 여러 가지 괴로움을 지옥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살가죽을 벗겨 불 속에 집어넣거나 쇠매〔鐵鷹〕가 눈을 파먹는 따위의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함.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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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 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
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진묵겁(塵墨劫) ; 티끌이 쌓여 먹(墨)이 될 만큼의 오랜 시간.
*비로자나(毘盧遮那) ;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는 뜻으로, 부처의 진신(眞身)을 이르는 말. 비로자나는 진리 그 자체인 법신을 형상화한 것. 
*법신불(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즉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무명(無明) : [범] avidya 「어리석은 마음」 「어두컴컴한 마음」을 이름.
<기신론(起信論)>에 는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법계(法界)의 참 이치에 어둡게 된 맨 처음 한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이 근본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거나 거칠거나 한 온갖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하였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를 의인화한 부처.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법희선열(法喜禪悅) ;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따르는 기쁨과 선정(禪定)에 들어가 마음이 즐거운 것.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참회진언(懺悔眞言) ; 죄업(罪業)을 참회하는 진언.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연비(燃臂) ; 불교에서 수행자가 계(戒)를 받을 때, 팔뚝에 향이나 심지로 불을 놓아 뜨는 의식 또는 그 자국.
*극락정토(極樂淨土) ; 산스크리트어 sukhāvatī  아미타불이 살고 있다는 청정한 국토로, 서쪽으로 10만억 불국토를 지나 있는데, 괴로움이 없고 지극한 즐거움만 있는 세계. 안락(安樂), 안양(安養), 서방정토(西方淨土)라고도 한다.
*악세(惡世) ; ①혼탁하고 악한 세계. ②불법(佛法)이 쇠퇴하여 수행자도 깨달음을 이루는 자도 없는 말세(末世).
*예토(穢土) ; ①중생들이 사는 세계. ②번뇌와 망상으로 가득찬 고해(苦海)인 사바세계.
*적광토(寂光土) ; (=常寂光土) 항상(常) 변하지 않는(寂) 광명(光)의 세계(土). 법신불(法身佛)이 머무르는 정토(淨土)나 빛나는 마음의 세계를 이르는 말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기도2014. 9. 21. 17:19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111) 경절문(徑截門) 기도법—원인과 결과가 동시 / (게송)좌간백운청수성~ / 대오선(待悟禪) / “찾다가 저 죽는다” / 육도법계가 바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깨달음도 역시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진묵겁(盡墨劫) 전에 이미 깨달음, 진여불성(眞如佛性)을 부처님과 조끔도 차별 없는 진여불성을 우리도 원만구족(圓滿具足)해 있는 것입니다.
이미 구족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바로 한 생각 딱 돌이키면—어디서 깨달음이 오는 것도 아니요, 누가 깨달음을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 곳에 이미 있는 것입니다. 원만구족하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강 조실 스님께서 항시 말씀하시기를 “찾다가 저 죽는다” 이런 너무나도 간결하고 송곳으로 찌르듯 하는 그러헌 법문을 해 주신 것입니다.


언제 어디에라도 진여불성 아닌 것이 없고 법신불(法身佛) 아닌 것이 없건만, 왜 볼려고 허면 볼 수가 없고, 들을려고 허면 들을 수가 없느냐? 우리 모두에게 진묵겁 전부터서 원만구족해 있으면서 왜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깨닫지를 못하고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이냐?
육도법계(六道法界)가 바로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시기 때문에 육도(六道)를 여의고 적광토(寂光土)는 따로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뭣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요긴한 길은 오직 이 한마디 밖에는 없습니다.


**송담스님(No.111) - 79년 동지 법회(79.12.22) (용111)

 

(1) 약 19분.

 

(2) 약 6분.


(1)------------------

법요식을 맞아서 전강 조실 스님의 폭포수가 쏟아져 내리듯 한 그리고 사자의 부르짖음과 같은 종횡무진한 활구(活句)법문을 우리 사부대중은 들었습니다.

이 법문을 경건한 마음으로 위법망구(爲法忘軀)로 듣는 그것만으로써 이 자리에 모인 우리 사부대중은 무량겁 업장(業障)이 찰나간에 다 녹아 없어졌습니다.
무량겁 업장이 녹아 없어졌기 때문에 동지 법회에 참석하신 동참하신 여러분은 크고 작은 모든 소원을 성취하시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장차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성취된 것입니다.
법문(法門)을 듣자마자 업장이 소멸이 되고, 업장이 소멸됨과 동시에 모든 소원은 그 자리에서 당장 성취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소원을 앞으로 차츰차츰 쪼끔씩 성취되어 간다고 생각하실 일이 아닙니다. 이미 성취가 다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경절문(徑截門)에 있어서의 기도법인 것입니다. 경절문은 비약적인 것이요 점진적인 것이 아닌 것입니다.

무엇을 듣고 이해를 해 가지고 차츰차츰 알아 들어가는 것—그것은 점진법이고 점진적인 것이고,
한 생각에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바로 여래지(如來地)에 도달하는 것은 이것이 바로 경절문인 것입니다.

경절문은 시간과 공간이 없습니다. 원인과 결과가 동시(同時)인 것입니다.
어떠한 원인이 있어 가지고 어떤 시간을 거쳐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원인이자 동시에 그것이 결과인 것입니다.

그래서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허신 분은—‘참선을 해 가지고 언젠가 내가 깨달으리라’ 하루바삐 깨닫기를 바래고 바래는 마음으로 화두를 들고, 그것이 아닌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딱! 화두 한번 거각(擧却)할 때 그곳에는 버려야 할 중생도 없고, 새로 깨달라야 할 부처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화두를 들더라도, 한 번을 들더라도 그렇게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 나간다면 졸음이 어디에서 오며, 망상이 어디에 일어날 것이 있는 것입니까?

 


좌간백운청수성(坐看白雲聽水聲)허니  도로성색본가풍(都盧聲色本家風)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륜상월만공산(一輪霜月滿空山)한데  한안여천향북비(寒雁唳天向北飛)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좌간백운청수성(坐看白雲聽水聲), 앉아서 흰구름을 보고 물소리를 들으니,
도로성색(都盧聲色)이 본가풍(本家風)이로구나. 모든 눈으로 보는 것, 귀로 들을 수 있는 모든 경계가 본래 가풍이로구나.

일륜상월(一輪霜月)이 만공산(滿空山)한데, 한 바퀴 서릿달이 공산(空山)에 가득한데,
한안(寒雁)이 여천향북비(唳天向北飛)로다. 차운 기러기가 하늘에 울며 북쪽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우리는 깨닫기를 위해서 참선을 합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깨닫기를 위해서 참선을 하고,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기도를 합니다.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장차 자기가 바래는 일과의 사이에는 거리가 있습니다. 시간적인 거리, 공간적인 거리가 있습니다.

벌써 거리를 두고 기도도 하고 참선을 하고 그러기 때문에 그 거리로 인해서 장벽이 가로막혀 가지고, 현재 하고 있는 그 자체도 정말 올바르게 해 가지를 못하고,
올바르게 해 가지를 못하기 때문에 소원성취가 어렵고 목적지에 도달허기 어려운 것입니다.

시간적인 거리와 공간적인 거리를 자기가 만들어서 딱 가로막아 놓고서 아무리 갈려고 발버둥을 친들 그것이 될 것이냐 이 말씀입니다.

참선허는데 있어서 제일 몹쓸 병이 깨닫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대오선(待悟禪), 「어서 깨달랐으면...」

깨닫기를 바래는 그것이 설사 밤잠을 안 자고 용맹정진을 해서 화두가 제법 일여(一如)하게 들린다 하더라도, 모든 번뇌와 망상이 다 없어지고, 맑고 고요하고 깨끗한 경지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찰나간이라도 「어서 깨달랐으면..」, 「이럴 때 어떤 선지식이 와서 탁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해 주셨으면..」
이러헌 생각을 먹게 된다면 이것은 바로 애써서 99%까지 올라갔다가 그 한 생각으로 인해서 다시 저 천길 만길 깊은 구렁텅이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깨닫기를 바래는 마음, 「어서 속히 어떠헌 목적을 성취했으면..」 그런 생각은 허지 말고,
오직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 무엇고?」
공부가 잘 되어갈수록 「이 무엇고?」 조끔도 잘 된다고 좋아하는 생각도 내지 말고 또 잘 안 된다고 번뇌심이나 짜증도 내지를 말고,

오직 한 생각 한 생각, 산을 보든지, 물소리를 듣던지, 새소리를 듣던지, 기차 소리를 듣던지, 애 우는 소리를 듣던지, 문닫는 소리를 듣던지,
무엇을 보거나 무엇을 듣거나 한 생각 한 생각 바로 거기에서 본참화두(本參話頭)를 거각하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이나 「옴마니반메훔」을 부르는 그러헌 수행을 하시는 분은 누워서도 「관세음보살」, 앉아서도 「관세음보살」, 차를 타면서도 「관세음보살」, 기쁜 일을 당해도 「관세음보살」, 슬픈 일을 당해도 「관세음보살」, 속이 상한 일을 당해도 「관세음보살」,
이렇게 염념불망(念念不忘)으로 일여(一如)하게 정진을 해 간다면 아무리 업장이 두터운 업보(業報) 중생이라 할지라도 거기에서 시간과 공간의 거리가 없이 바로 그 자리에 소원성취가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깨달음도 역시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진묵겁(盡墨劫) 전에 이미 깨달음, 진여불성(眞如佛性)을 부처님과 조끔도 차별 없는 진여불성을 우리도 원만구족(圓滿具足)해 있는 것입니다.
이미 구족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바로 한 생각 딱 돌이키면—어디서 깨달음이 오는 것도 아니요, 누가 깨달음을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 곳에 이미 있는 것입니다. 원만구족하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께서 항시 말씀하시기를 “찾다가 저 죽는다” 이런 너무나도 간결하고 송곳으로 찌르듯 하는 그러헌 법문을 해 주신 것입니다.

다못 알 수 없는 꽉 맥힌 의심, 「이 무엇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망상이 일어나고 안 일어나고 그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앉았거나 누웠거나 그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죄가 많고 적은 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몸이 아프거나 괴롭거나 쓰리거나 그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아프다고 가려 내놓고, 바쁘다고 그 시간은 가려 내놓고, 망상이 일어난다고 그 시간은 가려 내놓고,
잠잘 때라고 가려 내놓고, 속상헌다고 가려 내놓고, 기쁘다고 가려 내놓고,
이리저리 다 가려 내놓으면 언제 공부를 해야 할 때냐?

중생은 단 한 생각 동안이라도 생각 없는 시간이 없습니다.
생각 없는 편안하고 고요하고 그러헌 때를 찾어서 공부를 할려고 하면 일생 동안 공부할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눈을 통해서는 보아야 하고, 귀를 통해서는 들어야 하고, 코를 통해서는 냄새를 맡아야 하고, 숨쉬어야 하고, 입을 통해서 맛보고 말을 해야 하고, 손과 몸을 통해서는 따뜻하고 차웁고 딱딱하고 부드러운 거 그런 것을 다 감각을 해야 합니다.

잠시도 육근(六根)을 쉬고 일 없는 시간이 없습니다. 언제나 끊임없이 자동적으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은 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활동하는 시간을 없이 하고 참선을 헐랴고 한다면 그 사람은 영원토록 그 사람이 생각하는 참선은 헐 기약이 없습니다.

진여불성(眞如佛性)은 너무나도 크고, 너무나도 위대하고, 너무나도 맑고 깨끗하고 영특해서, 일체처 일체시 시간과 공간에 언제나 어디에나 두루하지 아니헌 곳이 없습니다.

그 표현이 바로 우리가 눈을 통해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요. 귀를 통해서 들을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육근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이 바로 진여불성의 표현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눈으로 볼 수 없고, 귀를 통해서 들을 수 없고, 손을 통해서 잡을 수 없는 진여불성을 우리는 깨달라야 합니다.

왜 눈으로 코로 귀로 육식(六識)을 통해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진여불성의 표현인데,
어째서 눈으로 볼랴고 하면 보이지 아니하고, 귀로 들을랴고 하면은 들리지 아니하고, 손으로 잡을랴고 하면은 잡히지를 않는 것이냐?

우리는 목숨 바쳐서, 이것을 깨닫기 위해서 목숨을 바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언제 어디에라도 진여불성 아닌 것이 없고 법신불(法身佛) 아닌 것이 없건만, 왜 볼려고 허면 볼 수가 없고, 들을려고 허면 들을 수가 없느냐?
우리 모두에게 진묵겁 전부터서 원만구족해 있으면서 왜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깨닫지를 못하고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이냐?

육도법계(六道法界)가 바로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시기 때문에 육도(六道)를 여의고 적광토(寂光土)는 따로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뭣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요긴한 길은 오직 이 한마디 밖에는 없습니다.

한 생각 돌이켜서 ‘이뭣고?’ 할 때, 불이 펄펄 타오르는 지옥으로 느껴졌던 것이,
한 생각 돌이킨 곳에 바로 그것이 천당이 되고, 극락이 되는 그 묘한 방법이 바로 참선법, 활구참선법 ‘이 무엇고?’ 뿐인 것입니다.(처음~19분3초)

 

 

 



(2)------------------

동지(冬至)는 일년 중에 밤이 제일 긴 날입니다. 하지(夏至)는 일년 중에 낮이 제일 긴 날이고, 동지는 밤이 제일 긴 날입니다.

그래서 동지에는 저 옛날부터 중국의 당나라 때부터 500명, 1000명, 1500명, 1700명, 이렇게 참선하는 대중 스님네가 많은 그런 선방에서도 이 동짓날에는 다 법회를 갖고, 또 선망부모의 천도를 해 드리고,
도량(道場)의 모든 수호신들에게도 다 공양을 해서, 앞으로 새로 다가오는 새해에 모든 업장이 소멸이 되고 모든 소원이 성취되기를 바래는 그러헌 법요식을 거행해 왔는 것이 기록에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 계실 때도 항시 동지에는 여러분들이 모다 팥도 가지고 오시고, 찹쌀도 가지고 오시고 그렇게 해서 동지 팥죽공양을 올리고 법요식을 가졌습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도 옛날부터 동지에는 팥죽을 쑤어서 선영(先塋)에 모다 제사(祭祀)도 잡숫고, 차례(茶禮)도 잡숫고 헌 풍속이 예절이 지금까지도 전해오고 있습니다마는,

동지 법요식을 맞아서 어떻게 허는 것이 정말 우리의 선영을 천도(薦度)해 드리는 것이 되며, 어떻게 허는 것이 도량 신장(神將)을 안위하는 길이 되며, 어떻게 허는 것이 우리 자신들의 업장을 소멸하게 되는 것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모든 소원을 성취허는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 조실 스님의 법문과 제가 말씀드린 말씀을 통해서 잘 이해하셨을 줄 생각합니다.

묵은 한 해를 청산하고 돌아오는 새해를 발전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새로운 각오를 해야할 줄 생각합니다.

일파유조(一把柳條)를 수부득(收不得)하야  화풍탑재옥난간(和風塔在玉欄干)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한줌, 한아름 버들가지를 거두어 잡지 못해서,
화풍탑재옥난간(和風搭在玉欄干)이라. 바람에 맡겨서 옥난간(玉欄干)에다가 걸어두노라.

버들가지는 바람에 일렁일렁해서 아무리 잡을라야 잡을 수가 없어. 그래서 바람 부는대로 바람과 함께 옥난간에 걸쳐있게 놔둔다. 이런 내용의 게송(偈頌)입니다.

참 법문은 입을 통해서 설(說)할 수 없고, 귀를 통해서 들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헌 게송을 읊어 보았습니다.(처음~24분18초)(끝)

 

 

 



------------------(1)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진리)를 구하기 위해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경절문(徑截門 지름길 경,끊을 절,문 문) ; 지름길문. 경절(徑截)이란 ‘바로 질러 간다’는 뜻.
교문(敎門)의 55위 점차를 거치지 않고 한 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 참선법(活句參禪法). 즉 일체의 어로(語路), 의리(義理), 사량 분별의 길을 거치지 않고 직접 마음의 본체에 계합함을 일컫는다.
*여래(如來) : 부처님 10호의 하나。 범어 Tathagata의 역(譯).
여(如)는 진여(眞如)의 뜻이니 곧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의 뜻。 또 여거여래(如去如來)의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여래지(如來地) ; 불지(佛地). 부처의 지위(地位)·경지(境地). '부처의 상태를 이루었다'는 뜻의 성불(成佛)과도 같은 뜻.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대오선(待悟禪 기다릴 대,깨달을 오,고요할 선) ; 참선허는데 있어서 깨닫기(悟)를 기다리는 것(待).
이 「깨닫기를 기다리는 것」은 화두를 참구하는데 10가지 병(病)의 하나로, 수행자는 이런 생각없이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알 수 없는 의심으로 본참화두를 들어야 한다.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p163-164)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일여(一如) ; 완전히 하나가 되어 나눌 수 없음.
*본참화두(本參話頭) :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옴마니반메훔 ; 자비의 화신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성스러운 자비(慈悲)를 나타내는 진언(眞言)으로 ‘오! 연꽃 속의 보석이여!’라는 뜻이다. 여기서 보석은 자비의 상징이고, 연꽃은 지혜·깨달음의 상징이다.
산스크리트어 oṃ maṇi padme hūṃ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 육자진언(六字眞言)이라 한다.
이 진언을 외우면 관세음보살의 자비에 의해 번뇌와 죄악이 소멸되고, 온갖 지혜와 공덕을 갖추게 된다.
*업보(業報) ; 자신이 행한 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게 되는 과보(果報).
*진묵겁(塵墨劫) ; 티끌이 쌓여 먹(墨)이 될 만큼의 오랜 시간.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원만구족(圓滿具足)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법신불(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즉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적광토(寂光土) ; 상적광토(常寂光土). 상적광(常寂光). 법신불(法身佛)이 머무르는 정토(淨土).
상적광토는 이상(理想)과 현실(現實), 정(靜, 寂)과 동(動, 光)의 본래(本來, 常) 일체(一體)인 세계로 그것은 여기와 저기,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을 넘어 체득되는 참된 절대계(絕對界)이고, 법신불의 상주(常住)의 정토(淨土)이다.

 

 

 



------------------(2)

*도량(道場) : [범] bodhimandala 도를 닦는 곳이란 말이다。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선영(先塋) ; 조상의 무덤. 또는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
*제사(祭祀) ;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나타냄. 또는 그런 의식.
*차례(茶禮) ; 음력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날, 명절날, 조상 생일 등의 낮에 지내는 제사.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신장(神將) ; 불법(佛法)을 보호하는 신장. 또는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게송) ‘一把柳條收不得  和風塔在玉欄干’ ; [가태보등록(嘉泰普燈錄)] 제23권 황정견(黃庭堅)거사 게송 참고.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