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심 자신(自信)2018. 10. 8. 17:20

 

 

§(434) (게송)'삼계지중분요요~' / 온 세계가 평화적으로 사는 방법은 「나 자신을 다스리는 일」 / 똑바로 무상을 깨달아 발심(發心) 하나를 철저히 해야 한다.

 

**송담스님(No.434)—1991년 2월 첫째 일요법회. (용434)

 

약 19분.

 

삼계지중분요요(三界之中紛擾擾)하되  지위무명불료절(只爲無明不了絶)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일념불생심징연(一念不生心澄然)하면  무거무래불생멸(無去無來不生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계지중분요요(三界之中紛擾擾)하되  지위무명불료절(只爲無明不了絶)이라.

삼계(三界)가, 삼계 가운데가, 온 세계가 분요요(紛擾擾)여. 그 도처(到處)에서 싸움이 일어나고, 폭격을 하고, 사람이 죽고 불이 나고 집이 파괴가 되고 피비린내 나는 참, 그런 세상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시끄럽고 복잡하냐?

무명(無明)을 요달(了達)해 끊지를 못해서 그런 것이다.[只爲無明不了絶]

 

무명(無明).

탐진치(貪嗔癡) 삼독(三毒)이 무명으로부터 나온 것인데, 그 무명을 요달해 끊지를 못하기 때문에 그걸로 인해서 탐진치 삼독이 벌어지고, 그래 가지고 작은 싸움 큰 싸움, 온 나라와 나라의 싸움, 세계 전쟁이 순전히 한 사람 한 사람의 무명(無明)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 한 생각 일념불생(一念不生), 한 생각 불생(不生), 나지 아니해서 마음이 깨끗해지면,[一念不生心澄然]

무거무래(無去無來)요, 갈 것도 없고 올 것도 없으며 생멸(生滅)이 없을 것이다.[無去無來不生滅]

 

그 한 생각 일어남으로 해서 이 몸뚱이도 이 세상에 받아서 태어났고, 무명(無明)의 업으로 인해서 이 몸뚱이를 받아 태어났고,

따라서 끝없이 끝없이 일어나는 탐진치 삼독 때문에 수없는 새로운 업(業)을 지으면서 바짝 마른 나무 섶에 기름을 부어서—불이 붙은 풀 섶, 나무 섶에 계속해서 기름을 부어서 잘 타게 만들어.

 

그래 가지고 나무만 타는 게 아니라 나무 주변에 있는 집도 타고 다른 사람도 타고, 마침내는 자기도 자기집도 타고, 자기 몸뚱이도 타고, 자기 생명도 잃게 된다 그거거든.

 

방금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그러한 훨훨 타고 있는 그 화택(火宅) 속에서 어떻게 하면 받아나기 어려운 이 몸뚱이 있을 때 해탈도(解脫道)를 증득하느냐?

오직 발심(發心)! 발심 하나를 철저히 함으로 해서 이 무상한 생로병사 속에서 해탈도를 증득하는 법을 간곡히 설해 주신 법문을 들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설산(雪山)에 들어가셔서 그 무서운 6년 고행을 하시고, 달마 스님도 소림굴(少林窟)에 들어가서 9년 동안을 묵무언(默無言)하시고 면벽관심(面壁觀心)을 하시고.

또 고인(古人)도 7개 포단(蒲團), 어떻게 좌선을 열심히 했던지 방석이 7개가 구녁이 맞구녁이 뚫어지도록 그렇게 정진을 한 예도 있고.

 

고인(古人)들, 다 근기(根機)가 수승한 고인네들도 그렇게 무섭게 정진을 해서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요달했으니, 하물며 말세에 태어난 우리 하근기들은 그 몇 배를 더 노력을 하고 애를 쓰지 않겠느냐.

이런 요지에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정말 말로만 '말세(末世)다, 말세!' 밤낮 그 말세라고 하는 말을 우리는 들어오고 있습니다마는.

말세는 투쟁견고(鬪諍堅固)의 시대다. 투쟁, 싸움만이 치성하게 일어나는. 사람과 사람, 이웃과 이웃, 나라와 나라, 온통 싸움으로써 직업을 삼어. 싸움으로써 일을 삼는 그런 시대다.

 

과연 가정도 부모자식간에, 부부간에, 고부간에, 형제간에 사소한 일로 말다툼, 재산 갖고 싸우고. 사회에서도 당파가 있어 가지고 서로 싸우고, 업체들도 서로 자기 회사가 잘되기 위해서 싸우고. 한 나라가 둘로 갈라져서 싸우고, 이웃 나라와 이웃 나라가 싸우고, 경제적으로 싸우고, 종교적으로 싸우고, 이러한 투쟁견고의 시대에 말세를 당했습니다.

 

이러한 속에서 어떻게 하면 이 싸움에 휘말려 들어가지 않고 똑바로 자기 정신을 차리고, 우선 내가 바르게 살아가는 길을 찾고, 내 집안이 어떻게 바르게 살아가며, 이웃과 어떻게 살아가며 온 나라가 어떻게 하면 바르게 살아가는가? 그렇게 해서 온 세계가 어떻게 하면 평화적으로 살 수 있는가?

 

오직 여기에는 부처님의 법(法)에 따르는 것이 최선의 방책(方策)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여러 가지 경전에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매우 자상하게 모다 설하셨지만 여기에서 그걸 낱낱이 다 설명할 수가 없고. 그러한 모든 크고 작은 싸움, 갈등 알륵 속에서 간단하게 해결해 나가는 방법은 「나 자신을 다스리는 일」인 것입니다.

 

모든 싸움은 자기가 자기를 돌아보지 않고 자기가 자기를 다스리지 않고, 밤낮 모든 싸움 모든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고, 다른 사람에게 몰아붙이고 다른 사람을 책망하는 데에서 크고 작은 싸움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싸움은 싸움으로써 그치지 아니하고, 원망은 원망으로써 그치지 않는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싸움은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함으로써 싸움은 그치는 것이고, 자기 자신의 모든 책임을 자기에게서 찾고 자기를 반성함으로 해서 싸움은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내일은 입춘날입니다. 입춘이 오므로 해서 새해가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양력으로는 오늘이 2월 4일이지만, 음력으로는 아직 섣달이지만 입춘이 드는 그날 그 시간으로부터 새해 신미년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일 입춘기도 법요식이 있습니다마는, 새해를 맞이하는 오늘 이 경오년의 마지막 날을 기해서 우리는 정말 묵은해의 모든 것을 깨끗이 다 털어버리고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물론 집안에 모든 먼지를 털고 소제(掃除)를 하고 모다 그런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또 몸도 깨끗이 씻고 그런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마음! 마음을 새로 갖는 것입니다.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발심(發心) 하나를 철저히 해야 한다」 그 발심에 대해서 매우 강조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마는.

 

'공부가 화두가 잘 안 들리고, 암만 정신을 좀 차려서 정진을 좀 착실히 하려고 마음을 먹어도 안되고, 화두가 순일하지 못하고, 의단(疑團)이 간절하지 못하고 자꾸 혼침이 오고 망상이 일어나고 영 공부가 제대로 안된다'고 많은 수좌(首座) 스님네나 또 보살님네들이 그런 것에 대해서 많이 호소를 하십니다마는 문제는 '발심을 철저히 못한 데에서 그런 것이다'

 

발심! 발심이 스스로 마음속에서 탁! 아주 일어나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발심의 동기는 친한 분이 참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든지, 친구가 비참하게 죽었다든지, 어떤 그러한 것을 계기로 해서 무상(無常)을 철저히 깨닫고 발심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그 친한 친구가 그렇게 정신착란이 일어나 가지고 그래 가지고 미쳐서 돌아다니다가 결국은 죽게 되는 것을 보고 그렇게 무상을 철저히 깨닫고, 그래 가지고 어린 나이로 발심을 해서 17세 그 어린 나이로 선방에 나와 가지고 주야불철(晝夜不撤)하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셔 가지고, 23세 때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셨는데.

 

그때 뿐만이 아니라 지금은 정말 아는 사람 가운데, 이웃에서 또는 한국 팔도 방방곡곡에서 온통 사람이 강도에게 죽고, 교통사고로 죽고, 비행기에서 떨어져서 죽고, 불타서 죽고 이렇게 해서 사람 죽는 것이 날이면 날마다 사람 죽는 그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것이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 또 사람 죽었구나’ 그 보통 느껴지겠지만.

 

그것이 자기 가족이요, 일가친척이요, 그러한 사람이 죽어도 ‘참 안되었다, 불쌍하다’ 그런 정도로만 생각하고 그냥 넘어간다. 그런데 그것이 어찌 남의 일이겠습니까?

우리 자신에게도 언제, 어떻게 그러한 사항이 일어날른지 모르는 것입니다.

 

꽃이 피었다가 지는 것을 보고도 무상을 깨달을 수도 있고, 나뭇잎이 시들어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무상을 깨달을 수가 있고, 해가 서산에 지는 것을 보고도 깨달을 수가 있고.

우리는 똑바로 정신만 차리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발심할 수 있는 계기는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처음~18분5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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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삼계지중분요요~' ; 『한산자시(寒山子詩)』에서 습득(拾得)의 시.

*삼계(三界) : [범] trayo-dha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세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amadha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

②색계(色界 rupadha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색(色)은 곧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arupadhatu) : 맨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나(我)’를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이것을 흔히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면서 유형(有形)한 계층으로만 말하지마는, 실상은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區分)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 세계의 어떤 곳에도 탐(貪) • 진(瞋) • 치(痴) 등 삼독심(三毒心)의 경중(輕重)에 따라 삼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무명(無明) ; 모든 현상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는 근본 번뇌. 사제(四諦)에 대한 무지로서,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 번뇌. 본디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원초적 번뇌.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일념불생(一念不生) ; 경계를 당하여 마음이 일지 않은 것. 불생(不生).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84, p103 참고.

斷煩惱가 名二乘이요 煩惱不生이 名大涅槃이니라. (註解) 斷者는 能所也요 不生者는 無能所也니라.

 

번뇌를 끊는 것은 이승(二乘)이요, 번뇌가 나지 않는 것이 대열반(大涅槃)이니라. (주해) 끊는 것은 주체와 객체가 벌어짐이요, ‘나지 않는(不生) 것’은 주체도 객체도 없느니라.

 

見境心不起가 名不生이요 不生이 名無念이요 無念이 名解脫이니라. (註解) 戒也定也慧也가 擧一具三이요 不是單相이니라.

 

경계를 당하여 마음이 일지 않은 것을 ‘나지 않는다(不生)’고 이름하고, ‘나지 않는 것(不生)’을 무념(無念)이라 하며, 무념을 해탈(解脫)이라 하느니라. (주해) 계율이나 선정이나 지혜가, 하나를 들면 셋이 갖추어 있는 것이요, 홑으로 된 것이 아니니라.

 

[참고] 송담스님(No.410)—90년 2월 첫째일요법회, 신수기도회향, 입춘법회(90.02.04) (6분 10초)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고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한번 본심왕(本心王)을 등지고 난 이후로,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고. 몇 번이나 삼도와 사생을 지냈던가. 삼도에 들어가서 사생을 지냈던가. 삼도(三途)는 지옥·아귀·축생 삼도요. 사생(四生)은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이요.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오늘에사 모든 번뇌의 생각을 씻어 버리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인연 따라서 옛을 의지해서 스스로 본고향(本故鄕)에 돌아가게 되었구나.

우리 모든 중생들이 원래는 다 비로자나(毘盧遮那) 법신불(法身佛)의 한 몸뚱이, 한 마음이여. 그런데 그 본심왕을 위배(違背)하고 거기서 배반을 하고 물러나왔다.

'한 생각' 동(動)하지 않았다면 영원토록 법왕(法王)과 같이 살 수가 있을 텐데 한 생각 동(動)해 가지고, 한 생각 삐끗 어긋져 가지고 거기서 떨어져 나와 가지고 육도윤회(六途輪廻)—지옥, 아귀, 삼악도(三惡途)를 몇 번이나 들어갔으며 태란습화 사생을 몇 번이나 겪었든가.

 

경오년 초삼일부터 오늘까지 칠일 기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오늘 또 입춘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2월 첫째 일요법회를 맞으셨습니다. 이 세 가지의 법회가 오늘 겹쳤습니다.

그동안 칠 일 동안 정성을 다해서 기도(祈禱)를 봉행하는 가운데 우리 사부대중의 마음은 참회(懺悔)를 하고, 기도를 하고, 발원(發願)을 하고 그래 가지고 모든 업장(業障)이 다 소멸이 되고, 번뇌의 생각—그 훨훨 타오르던 탐진치 삼독(三毒)의 번뇌염(煩惱染)이 깨끗이 씻어졌습니다.

 

번뇌(煩惱)가 나지 아니하면 그것이 무념(無念)이고, 무념이면 그것이 불생(不生)이여.

불생이면, 일념불생(一念不生) '한 생각 남이 없는 도리'를 봐 버리면 그것이 바로 본향(本鄕)으로 돌아가는 소식이더라.(처음~6분27초)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면벽관심(面壁觀心) ; 벽(壁)을 향하여[面] 앉아 자신의 마음[心]을 관[觀]하여 그 본성을 밝히는 것. 좌선(坐禪)의 다른 이름.

*면벽(面壁) ; 좌선(坐禪)의 다른 이름. 벽을 향하여 좌선하는 것.

달마대사가 중국에 와서 양 무제(武帝)를 만나 문답하였으나 무제가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여 마침내 물러나 양자강을 건너 위(魏)나라의 낙양으로 가서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 머물렀다. 경론을 강설하지도 않고, 불상에 절을 하지도 않으며 종일토록 말하지 않고 벽을 향하여 좌선하기 9년을 지냈다. 이를 '면벽구년(面壁九年)'이라 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뒤부터 선승(禪僧)들이 선원에서 벽을 향하여 좌선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면벽은 단순히 좌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경론 등 문자에 의한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관하여 깨달음을 얻는 선종의 수행법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Posted by 닥공닥정
기도2014. 9. 6. 16:51

 

 

§(410) (게송)일종위배본심왕~ / 기도(祈禱)—참회—발원—정근(精勤) /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서 ‘이뭣고?’하고 살아가야.

번뇌(煩惱)가 나지 아니하면 그것이 무념(無念)이고, 무념이면 그것이 불생(不生)이여. 일념불생(一念不生) '한 생각 남이 없는 도리'를 봐 버리면, 그것이 바로 본향(本鄕)으로 돌아가는 소식이더라.


**송담스님(No.410) - 1990년 2월 첫째일요법회, 신수기도회향, 입춘법회 법문에서. (용410)


약 15분.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고
나무~아미타불~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한번 본심왕(本心王)을 등지고 난 이후로,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고. 몇 번이나 삼도와 사생을 지냈던가. 삼도에 들어가서 사생을 지냈던가. 삼도(三途)는 지옥·아귀·축생 삼도요. 사생(四生)은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이요.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오늘에사 모든 번뇌의 생각을 씻어버리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인연 따라서 옛을 의지해서 스스로 본고향(本故鄕)에 돌아가게 되었구나.

우리 모든 중생들이 원래는 다 비로자나(毘盧遮那) 법신불(法身佛)의 한 몸뚱이, 한 마음이여. 그런데 그 본심왕을 위배(違背)하고 거기서 배반을 하고 물러나왔다.

'한 생각' 동(動)하지 않았다면 영원토록 법왕(法王)과 같이 살 수가 있을 텐데,
한 생각 동해 가지고, 한 생각 삐끗 어긋져 가지고 거기서 떨어져 나와 가지고 육도윤회—지옥, 아귀, 삼악도를 몇 번이나 들어갔으며, 태란습화 사생을 몇 번이나 겪었든가.

경오년 초삼일부터 오늘까지 칠일 기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오늘 또 입춘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2월 첫째 일요법회를 맞으셨습니다. 이 3가지의 법회가 오늘 겹쳤습니다.

그동안 7일 동안 정성을 다해서 기도(祈禱)를 봉행하는 가운데 우리 사부대중의 마음은 참회(懺悔)를 하고, 기도를 하고, 발원(發願)을 하고 그래 가지고 모든 업장(業障)이 다 소멸이 되고, 번뇌의 생각—그 훨훨 타오르던 탐진치 삼독(三毒)의 번뇌렴(煩惱染)이 깨끗이 씻어졌습니다.

번뇌(煩惱)가 나지 아니하면 그것이 무념(無念)이고, 무념이면 그것이 불생(不生)이여. 불생이면—일념불생(一念不生) '한 생각 남이 없는 도리'를 봐 버리면, 그것이 바로 본향(本鄕)으로 돌아가는 소식이더라.

방금 전강 조실스님의 최상승(最上乘) 활구참선(活句參禪) 법문을 들었습니다.
조실스님께서는 갑인년 12월 초이튿날 열반에 드셨는데, 오늘 우리가 경청한 법문은 갑인년 정월 초나흗날에 설하신 법문, 열반하신 그해의 정월 초나흗날에 설하신 법문을 들었습니다.

기도는 본래 나름대로 각각 소원이 있어서 그 소원을 성취할 목적으로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그 소원을 성취할라면, 첫째 막고 있는 업장을 소멸을 해야 하고, 업장을 소멸할라면은 참회를 해야 하고,
참회를 하고 일심(一心)으로 정근(精勤)을 하면 그 마음이 차츰차츰 번뇌가 쉬어지고 그래가지고 마음이 청정해지면 우리의 마음과 부처님의 마음이 하나가 되버려.

부처님 마음은 본래부터 허공과 같이 깨끗하신데, 우리는 번뇌 망상 때문에—본래 부처님과 내가 하나였었는데 번뇌 망상이 일어나는 바람에, 부처님과 나와는 막힘이 없는 막힘으로 막혀있다 그말이여.

그러다가 참회하고, 기도하고, 일심으로 정성을 다해서 하다 보면,
내 마음의 번뇌가 깨끗해지니까, 내 마음과 부처님 마음이 하나가 되니까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부처님께 감응(感應)이 되어서 소원을 성취하는 그러한 이치다 그말이여.

그래서 기도를 일심으로 해서 소원을 성취한 경험이 있는 분은 어려운 일만 있으면 기도를 하거든.
강화 보문사에도 가고, 양양 낙산사도 가고, 남해 보리암도 가고, 오대산 적멸보궁도 가고 이래가지고 집안에 크고 작은 어려운 일, 중요한 일만 있으면 싸짊어지고 기도를 가.
일심으로 하면은 소원을 성취하거든.

기도를 일심으로 하고 그래가지고 소원을 성취를 한 그러한 예는 영험록에 보면 가지가지 그 실화가 적혀 있는데,
불보살(佛菩薩)의 위신력(威神力)이 거룩하시고 신통력(神通力)이 있으시기 때문에, 중생들이 그 목이 말라서 일심으로 기도를 하면 그 분(分)에 따라서 소원을 성취한 것은 당연한 것인데,
그걸 하나도 나쁘다 할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도 하나부터 백까지, 백만 사(事)를 기도로만 해결을 하려고 하는 그러한 착(着)이 딱 붙어 놓으면, 그것도 참 좋은 것이면서 문제점이 있는 것입니다.

참선도 다 그만두고, 집안 살림도 그만두고 그저 기도로서 아주 일생을,
승속(僧俗) 간에 그렇게 되어버리면 그 사람한테는 화두도 소용없고, 참선도 소용없고, 가정 뭐 그런 문제도 그저 기도 하나만 가지고 다 밀고 나가니까, 참 모다 사람들은 ‘기도에 미쳤다’고 이렇게 표현을 하는데,

‘참선에 미쳤다’는 말을 차라리 들었으면 좋겠는데, ‘기도에 미쳤다’고 팔도로 싸돌아다니기만 하면 그거참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 년에 한 번쯤은 이렇게 신수(身數)기도를 한 번 하는 것도 뜻이 있는 일이라고 입재 때 말씀을 드렸습니다만은—이렇게 1주일 동안 1년에 연례행사로 이런 신수기도를 봉행을 하고 있습니다마는,
이러한 기도가 연례행사로서 그렇게 하고 1주일 동안은 제법 정성껏 하더니 딱 회향해 버리면 그 뒤는 그냥 그 정성스러운 마음가짐이 다 흩어져버려.

기도 중에는 진심(瞋心)도 아니 내야 하고, 기도 중에는 말 한마디라도 조심해야 하고, 생각 하나라도 조심해야 하고, 행동 하나라도 조심을 해서,
스스로도 진심을 안 내고, 또 다른 이로 하여금 진심을 내게 해서도 안 되고, 또 살생도 해서는 아니 되고, 그렇게 모두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오계(五戒)를 잘 지키면서 그렇게 열심히 하다가,

기도가 딱 끝나면 금방 할 짓·못할 짓, 할 소리·안 할 소리, 할 생각·안 할 생각, 마구잡이 이렇게 한다면 부처님께서 보시면은 그러실 것이다 그말이여.

‘기도 중에는 제법 그렇게 정성껏 하더니 기도 끝났다고 마구잡이 저렇게 하는구나. 철이 안 들어도 참 너무 안 들었구나.’ 아마 이렇게 생각하실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기도가 끝나더라도 항상 그 기도할 때의 그러한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가짐으로, 그것이 생활 속에 좋은 영향을 미치도록 진심도 내지 말 것이며 또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진심나게 하지도 말 것이며,
또 기도가 끝났더라도 항상 살생(殺生)을 하지 말 것이며, 거짓말도 하지 말 것이며, 사음(邪淫)도 하지 말 것이며, 이렇게 한다면 1년 내내 계속해서 기도가 진행이 될 것이다 그말이여.

그렇다면 소원을 이루지 못할 것이 어디가 있느냐 그말이여.
설사 1주일 기도해서 즉각 기도의 효험이 나타나지 않았다 하드라도 계속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서 살아가면—‘이뭣고?’하고 살아가면 차츰 차츰 어려운 문제가 해결될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처음~14분4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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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일종위배본심왕~’ ; [석문의범(釋門儀範)] 관욕(灌浴) 입실게(入室偈) 참고.
*삼도(三途•三塗) ; 악한 일을 한 중생이 그 과보로 받는다는 3가지 미혹한 생존. 지옥•아귀•축생의 생존.
*사생(四生) ;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인 육도(六途)에서의 네 가지 생(生), 4가지 태어나는 방식.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을 이른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나쁜 마음의 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법왕(法王) : [범] dharmaraja  부처님은 진리 곧 법을 가장 밝게 깨치시고, 법을 걸림 없이 쓰시고 법을 널리 가르쳐서 법에 있어 제일 높은 어른이므로, 「법의 임금」이라고 존칭한 말이다。또한 모든 세속 임금들에게도 큰 스승이 되고, 온갖 성인들 가운데서도 으뜸이 되므로 법왕이라 한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기도(祈禱) ; 불보살(佛菩薩)의 가피(加被, 중생을 이롭게 하는 불보살의 자비)를 받들어 재앙을 피하고, 복(福)을 더하도록 기도하는 것.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발원(發願) ; 원하는 마음을 냄. 원을 세움.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불생(不生) ; 경계를 당하여 마음이 일지 않은 것. 일념불생(一念不生)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84, p103 참고.
(31)斷煩惱가  名二乘이요  煩惱不生이  名大涅槃이니라.

번뇌를 끊는 것은 이승(二乘)이요, 번뇌가 나지 않는 것이 대열반(大涅槃)이니라.


(註解) 斷者는 能所也요  不生者는  無能所也니라.

끊는 것은 주체와 객체가 벌어짐이요, ‘나지 않는(不生) 것’은 주체도 객체도 없느니라.

(44)見境心不起가  名不生이요  不生이  名無念이요  無念이  名解脫이니라.
경계를 당하여 마음이 일지 않은 것을 ‘나지 않는다(不生)’고 이름하고, ‘나지 않는 것(不生)’을 무념(無念)이라 하며, 무념을 해탈(解脫)이라 하느니라.


(註解) 戒也定也慧也가  擧一具三이요  不是單相이니라.
계율이나 선정이나 지혜가, 하나를 들면 셋이 갖추어 있는 것이요, 홑으로 된 것이 아니니라.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일심(一心) ; ①대립이나 차별을 떠난 평등한 마음. ②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마음. 통일된 마음.
*정근(精勤) ; 노력하는 것. 힘써 일하는 것.
*감응(感應) ; 감응도교(感應道交). 부처님과 수행자의 마음이 교류하는 것. 중생의 신심, 선근(善根)이 모든 부처님•보살에게 통해서 그 힘이 나타나는 것. 중생의 신심이 진실하게 느껴져, 부처님과 보살이 답하는 것.
중생 기감(機感,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중생의 소질이나 능력)이 뜨거우면 부처님의 응(應)하는 마음도 또한 깊다. 그쪽과 이쪽이 사이를 두지 않음을 도교(道交)라 한다.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위신력(威神力) ; 부처님이 지닌, 헤아릴 수 없는 영묘하고도 불가사의한 힘.
*신통(神通 불가사의할 신,통할 통) : 수행을 통(通)하여 도달하는 걸림없는 초인간적인(神) 능력.
*신수(身數)기도 ; 새해를 맞아 정초에 일년 동안의 안녕과 소원을 기원하는 기도.
*목욕재계(沐浴齋戒) ; 제사나 중요한 일 따위를 앞두고 목욕을 하여 몸을 깨끗이 하고 부정(不淨)을 피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일.
*오계(五戒) ; (산스크리트어 pañca-śīla) 재가(在家)의 신도가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
①불살생(不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
②불투도(不偸盜). 주지 않은 것을 빼앗지 말라.
③불사음(不邪婬).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④불망어(不妄語). 거짓말을 하지 말라.
⑤불음주(不飮酒). 취기(醉氣)가 있는 것에 취(醉)하지 말라.
*이뭣고(是甚麼)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육근(六根)·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참고]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에서]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