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념단속'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7.06.26 §(715) 우리 자신이 생사해탈해야 부모에 대한 최고의 효도 / 참선하는 스님께 대중공양 / 시주것이 무서운 줄 알아 열심히 정진하라 / 스님, 신도 모두 한 형제자매 / 의심을 관(觀)하라.
  2. 2017.06.24 §(715) (게송)인인자유충천기~ / 초발 행자와 같은 근신하고 하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수행 / (게송)흉중하애부하증~ / 일념(一念) 단속 / 한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생사(生死)가 있다.
  3. 2017.03.27 §(014) 모든 지식과 학문, 이론을 다 잊어버릴수록 오히려 깨달음에 가까워지는 것 / 유루복 / 최상승 활구참선은 지극히 쉽다 / 일념단속, 생사심 단속.
  4. 2015.07.27 §(405) (게송)외외낙락정나라~ / 부처님께서 항상 부르시는 노래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로구나!” / 깨달은 분상에는 지옥·천당도 일념지간(一念之間)에 있다.
  5. 2015.06.06 •§• 몽산화상시고원상인(蒙山和尙示古原上人) (2/5) 몽산화상이 고원상인에게 주신 말씀.
  6. 2015.03.03 §(세등10) 인생 무상, 이미 사형(死刑) 언도(言渡)가 내려져 있는 신세 / 몽산 화상 출가 동기 / 생사가 무서운 포구발심(怖懼發心)과 철저한 일념 단속.
  7. 2014.09.07 §(765) (게송)약이색견아~ / 일념(一念)단속 / 삼요(三要) / 생사가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
  8. 2014.06.19 §(246) 도고마성(道高魔盛) / 참선하는 사람은 그 '한 생각'을 무섭게 단속을 해야 / 자가철주(自家鐵柱) / (게송) 출가수도배~ / 도(道) 닦으면 다 출가(出家) 수도인.
  9. 2014.03.27 §(445) (게송)사수여운일몽신~ / 비로자나불의 분부 / 오욕락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 1초도 뒤로 미루지 말고 지금 바로 화두를 드는 것이 용맹정진 / 일념단속.
정진(精進) 수행2017. 6. 26. 09:44

§(715) 우리 자신이 생사해탈해야 부모에 대한 최고의 효도 / 참선하는 스님께 대중공양 / 시주것이 무서운 줄 알아 열심히 정진하라 / 스님, 신도 모두 한 형제자매 / 의심을 관()하라.

 

우리 자신이 생사해탈을 해야 진실로 중생도 제도(濟度)할 수가 있는 것이고, 참다운 부모에 대한 효도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머리를 깎고 스님이  분이나 머리는  깎았어도 신도로 있는 있는 분이나 수백 생을 하면서 우리가 서로서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몸을 바꿔  때에는 신도가 스님이  수도 있고, 스님이  신도가  수가 있으니, 우리는  같은 불자(佛子)요 형제간이요, 자매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뼈빠지게  돈을 갖다가 수행하는 스님에게 공양도 올리게 되는 거고, 우리는   공양을 받아서 수행을 하면서 항상 신도들을 축원을 해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이고,  형제간입니다.

 

화두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요점이냐 하면은 의심입니다.   없는 의심. ‘이뭣고, 이뭣고하는 글자 석 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    없는 의심,  의심을 관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715)—2007년(정해년) 동안거결제 법어(07.11.24)(용715)

 

약 17분.

 

화두(話頭)를 옳게 든다고 하는 것은조실 스님께서 아까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조실 스님께 화두를  분은 계속해서 판치생모 화두를  것이고, 아직 화두를   분은 이뭣고?’ 산승(山僧)은 권하고 있습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의 근본 화두라고  수가 있습니다. 어느 화두 공안을 가지고 참선을 해도 궁극에 깨닫는 것은 이뭣고?’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몸뚱이 끌고 다니는 , 말할 줄도 알고, 배고프면  먹을 줄도 알고, 부르면 대답할 줄도 알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아는 , 그러한 주인공이 우리 사람마다  있습니다.

 

 육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송장과 같은 것입니다.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주인공이 있기 때문에 살아있다고  수가 있고 사람이라  수가 있습니다.

자성(自性)이라고도 하고, 마음이라고도 하고, 성품(性品)이라고도 하고, 불성(佛性)이라고도 합니다마는  불성이라 하는 것은 짐승이나 지옥중생이나 벌레도  가지고 있다고 그렇게 성현들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지옥에 가지 안했고, 축생이 되지 않고 아귀에 떨어지지 않고 사람 몸을 금생에 받아났습니다. 금생에 사람 몸 받아난 것만 해도 우리는 너무 행복하고 다행한 일이며 부모에게 감사를 해야  것입니다. 부모님이 아니였으면  육체는  세상에 태어날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부모의 은혜를 우리는 갚어야 합니다. 세속에서 효자로서 장가가고 아들딸 낳아서 살면서 부모에게 효자 노릇을 하는 길도 있겠습니다마는  자리에는  부모와 가정과 인생을 버리고 출가를  몸입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방법은 보시 돈이 모이면 부모에게 갖다 드리고 맛있는 것을 사다 드리고 그러한 효도는 우리는 허락되지 아니했습니다.

우리가   있는 효도는 어쨌든지 지혜롭게 건강을 관리하면서 일념 단속(一念團束)을 해서 철저하게 정진하는 것뿐인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조그만한 좁쌀만한 효도가  것이나, 우리가  생각 신심(信心)과 분심(憤心)으로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대한 철저한 의단(疑團)을 단속을 해서 수행해 나가는 것은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고 안 하고는 나중 문제고, 그렇게 단속해 나간 것이 효도 중에서 최고의 효도가  것입니다.

 

 그러냐 하면은 부모에게 물질적으로 옷이나 음식을 해 드린 것은 그것은 잠시 편안하게 해 드린 것뿐이나 우리가 일념 단속을 해서 철저하게 수행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최고의 법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생사해탈을 해야 진실로 중생도 제도(濟度)할 수가 있는 것이고, 참다운 부모에 대한 효도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목련존자가  어머니가 지옥에 떨어져서 고통을 받고 있을  온갖 방법을 다해도  어머니를 제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여쭈니까 해제날 대중공양(大衆供養) 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해제날 공양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냐 하면은 아무때나 스님네에게 공양한 것도 좋으나,

 닦는 스님네께 공양하는 일체 욕심을  버리고, 온갖 생각을  버리고서 오직 일념 단속해서  일념 단속하는  수행자,   내내  공부를   수좌(首座)에게 대중공양을 해라

그래가지고 목련존자가 탁발을 해가지고 해제날 대중공양을 해가지고  공덕으로 지옥에 떨어져서 고통 받고 있는 어머니, 청제(靑提)부인을 지옥을 벗어날  있도록 해 드린 것입니다.

 

절에 법당을 짓도록 부처님을 모신다 하면 서로서로 시주금(施主金)을 많이 냅니다. 그러나 그것도  좋은 일입니다. 절을 지어서 법당을 짓고 부처님을 모셔야 도 닦는 스님네가  거기서  수행을  수가 있기 때문에 그게  정성껏 시주하는 것이  좋은 일이나, 참선 수행하는 스님네께 공양을 올리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수행하는 사람은   있으면 시은(施恩)을  지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것을 갚을려면은 시주것만 잔뜩  먹고 입고  먹고 도업(道業)을 성취하지 못하면은 그것을 갚어야 하니 그것을좁쌀 서너  때문에 버섯이 되어가지고  은혜를 갚고.

 

부처님 말씀이, 제자들을 거느리고 소떼가 가는데  소가 무엇인줄 아느냐? 왕년에 중들이 저렇게 소가 되었느니라 이런 말씀이 경전에 있습니다.  소가 되냐 하면은 소가 되어야  은혜를 빨리 갚을 수가 있기 때문에 그럽니다.

 

소가 되어야 몸이 성할 때는 일을 해가지고 갚고, 살아서 똥을 누면은  똥을 비료로 갚고, 죽게 되면은 가죽은 벗겨서 옷이나 신발이나 그런 것을 만들고, 고기는 오장육부를 다 해서 사람들에게 먹여서 갚고.

그러기 때문에 출가한 스님네가 도를 철저히  닦고 도업을 이루지 못하면 소가 되어서,  생(生)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죽으면  ,    빚을  갚을 때까지 수십 생, 수백 생을 소가 되어서 갚어.

 

그래서 중은 시주것을 독약보다도  무섭게 생각하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리에 모이신 분은 절대로 소가  그런 분은  분도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만에 하나라도 시주것을 참으로 무서운  안다면  먹거나  먹거나 먹는 것에 대해서 너무 그렇게 신경쓰지 말고.

무엇이, 보리밥이 들어오거나 찰밥이 들어오거나 국수가 들어오거나 들어온 대로 감사한 마음으로 화두를 놓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면서 그것을 맛있게 공양하고,  공양을  때에는 그것을 시주한 신도님들에 대한 간단한 축원(祝願)을 하면서 공양을 드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공양을 드시면 소화도 잘될 것이고 음식에 대한 불평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지나 원주(院主) 도감(都監) ・ 별좌(別座) ・ 공양주(供養主) ・ 채공(菜供) 그런 소임을 맡으신 스님네들은 수행하는 도반(道伴)들을 위해서 정성을 다해서  마련을 해야 것입니다.

 

 그러냐 하면은 지금 그런 소임을 맡고 있어도 자기도 참선을 하는 분이고  다음 철이나 그다음에는 자기도  선방(禪房)에 들어가서 수행을  것이고, 금생에 안 하더라도 내생에  출가해서  참선하게  것이니.

우리는 서로서로 혼자만 밤낮 하기가 어려우니까 금생에는 내가 공양주 사마 다음 생에는 지금 수행을 하시는 분이 내생에  원주도 살고, 주지도 살고 서로 교대해 가면서 하게 됩니다.

 

그러니 금생에  나만 이렇게 어렵게 공양주를 살고, 어떤 사람은 큰방에 가만히 앉아서 잘만 먹고 편안히 한가? 그런 철없는 생각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머리를 깎고 스님이  분이나 머리는  깎았어도 신도로 있는 있는 분이나 수백 생을 하면서 우리가 서로서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몸을 바꿔  때에는 신도가 스님이 수도 있고, 스님이  신도가  수가 있으니, 우리는  같은 불자(佛子)요 형제간이요, 자매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뼈빠지게  돈을 갖다가 수행하는 스님에게 공양도 올리게 되는 거고, 우리는   공양을 받아서 수행을 하면서 항상 신도들을 축원을 해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이고,  형제간입니다.

 

그래서 나는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이라고 하는 말을  쓰기를 좋아하는데, 머리를 깎은 스님네도 전부 선배나 후배나  뱃속에서 나온 형제간이고, 머리는  깎고 청신사 청신녀 신도 여러분도 비록 멀리 가까이 살고 있어도   뱃속에서 나온 형제간이요, 자매간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결제날을 기해서 법당 안이나 법당 밖에 많은 형제자매 여러분들이 모이셨습니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그다음에 화두가 정말 참선하는 데에 껌껌한 밤에 가는 등불과 같은 것입니다. 화두를 자기가 정말 믿는 선지식(善知識)한테 화두를 타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냐 하면, 자기가 책을 보고 화두를 간택할 수도 있고  아무한테라도 화두를  수가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냐? 화두 자체는 별것이 아니나,  나가다가 잘못되면 자기가 믿는 선지식이 아니면 가다가  바꾸게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화두는 자꾸 바꿔싸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다른 것은 마음에  맞으면 바꿀 수가 있으나 화두는  되거나  되거나  화두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화두 가지고 하다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다가 보면은  화두가   들리기도 하고 영판 그럴 수가 있습니다마는 그렇다 하더라도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 하나를  잡드리해 나가는데 그래서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라도 자주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화두를 녹음법문을 듣다 보면 공부해 나가다가 애로점, 문제점이 있는 것이 그때 가서 바로 잡아지는 것입니다.

 

화두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요점이냐 하면은 의심입니다.   없는 의심,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하는 글자 석 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    없는 의심,  의심을 관하는 것입니다.

이뭣고?’하는 것은  의심을 나게 하는 것이고,  이뭣고?’함으로써 나온  의심을 떠억 ()하는 것입니다. ‘관()한다’고 하는 것은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한다’고 표현을 하는 건데.

 

 화두는 혼침(昏沈)이 오고 그럴 때에는 미간(眉間)에다가 두고 관하고, 혼침이   때에는 배꼽밑에 단전(丹田)에다가 화두를 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초학자가 너무 미간에다가 화두를 들고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기(上氣)가  수가 있으니, 어쨌든지 숨을 들어마실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들어마셨으면 한참 머물렀다가 내쉬면 아랫배가 홀쪽해진 것을 느끼면서 이뭣고?’

 

화두를  때에는 기왕이면 들었다가 내쉴  이뭣고?’ 초학자는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마는 나중에 익숙해지면 호흡에 상관없이 항상   없는 의심이 단전에  있도록 호흡은 무심(無心) 속에 항상 단전호흡을 하도록 이렇게 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2441~4113)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고 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42~145. p147. 참고.

 

(63)於戱라  *佛子여  一衣一食이  莫非農夫之血이요  織女之苦어늘  道眼이  未明하면  如何消得이리요.

 ! 불자여。그대의   옷과  그릇 밥이 농부와 직녀의 피와  아닌 것이 없거늘, 도의 눈이 밝지 못하다면 어떻게 소화하리요 !

 

(註解) 傳燈에  一道人이  道眼이  未明故로  身爲木菌하야  以還信施하니라.

전등록에 옛날 어떤  닦는 사람이 도의 눈이 밝지 못한 탓으로 죽어서 나무버섯이 되어 시주의 은혜를 갚았다 하니라.

 

(64)故로   要識披毛戴角底  卽今에  虛受信施者是어늘  有人은  未飢而食하며  未寒而衣하니  是誠何心哉아  都不思目前之樂이  便是身後之苦也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말씀하시되 털을 쓰고 뿔을 이고 있는 것을 알고자 하느냐? 그것은 지금 신도들이 베푸는 것을 헛되이 받은 자가 이것이어늘, 어떤 사람은 배고프지 않아도 먹고, 춥지 않아도 입으니  진실로 먹고, 춥지 않아도 입으니  진실로 무슨 마음일까? 눈앞의 쾌락이 바로 후생의 괴로움인 줄을 도무지 생각지 않는구나! 하시니라.

 

(註解) 智論에  一道人이  五粒粟으로  受牛身하야  生償筋骨하고  死還皮肉하니  虛受信施가  報應如響이니라.

*지도론 이르기를  수도인이 다섯  좁쌀 때문에  몸을 받아, 살아서는 뼈가 휘도록 일해 주고, 죽어서는 가죽과 살로써 빚을 갚았다하시니 헛되이 시주  받은 응보가 메아리와 같으니라.

 

(66)故로   道人은  進食을  如進毒하고  受施를  如受箭이니  幣厚言甘은  道人所畏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이르시되 도를 닦는 사람은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는 것같이 하고시주를 받을 때에는 화살을 받는 것과 같이 할지니, 두터운 대접과 달콤한 말은 도를 닦는 사람의 두려워할 바라 하시니라.

    

(註解) 進食을  如進毒者는  畏喪其道眼也요  受施를  如受箭者는  畏失其道果也니라.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듯 하라는 말은 도의 눈을 잃을까 두려워해서이고시주 받기를 화살을 받듯 하라는 말은 도의 열매를 잃을까 두려워함이니라.

 

 

 

[참고 ] (1)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권상(卷上) 백운화상초록(白雲和尙抄錄 | 원조각성 번역·해설 | 현음사) p111~112. (2) 『전등록(傳燈錄) 1 15 가나제바迦那提婆’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10 참고.

 

〇迦那提波尊者得法  後至毗羅國  彼有長者  名梵摩淨德  一日園中  樹生大耳如菌  味甚美  唯長者與第二子羅睺羅多  取而食之  取已隨長  盡而復生  自餘他人  皆不能見  時尊者知其宿因  遂至其家  長者問其故  尊者曰  汝家昔曾供養一比丘  然其比丘道眼未明  虛沾信施故  報爲木菌  唯汝與子精誠供養  得以享之  餘卽否矣  又問  長者年多少  答曰七十有九  乃說偈曰  入道不通理  復身還信施  汝年八十一  其樹不生耳

 

가나제바 존자께서 용수 대사에게 법을 얻으시고  뒤에 비라국에 가시었다. 그곳에 장자가 있으니 이름은 범마정덕이었다.

어느  정원 가운데 나무에  귀가 생기되 버섯과 같고 맛은 매우 좋았다. 오직 장자와 그의  번째 아들 라후라다가 따다 먹었는데 따고 나면 다시 자라고, 없어진 다음에도 다시 생겼다.  밖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보지 못했다.

 

  가나제바 존자께서  전생의 인연을 아시고 드디어  집에 가셨다. 장자가  까닭을 물으니 가나제바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은 전생에  비구를 공양했다. 그러나  비구는 도안(道眼) 밝지를 못해서 헛되이 신심으로 시주한 것을 받았기 때문에  과보로 나무의 버섯이 되었다. 오직 너와 너의 둘째 아들만이 정성껏  비구에게 공양을 올렸기 때문에 누릴  있을  다른 사람들은 그러하지 못한 것이다  물으시되 장자의 나이가 얼마냐?” 장자가 답하기를 “79세입니다 가나제바께서 이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도에 들어가 진리를 통달하지 못하면 몸을 바꾸어 시주의 것을 갚아주나니, 너의 나이가 81세가 되면  나무에서 버섯이 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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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 했을까?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이뭣고(是甚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 사람의 몸이 , , , 바람(,,,) () 원소()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일념단속(一念團束) ; ‘ 생각 단속’. 무슨 생각이든지  생각 났다 하면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 받는데,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

마음 속에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있는데,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昭昭靈靈)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생사도 없고, 버려야  번뇌도 없다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제도(濟度 건널 /건널 ) ; 중생을 미혹의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 이르게 하는[] . () 구제(救濟). ()도탈(度脫).

[참고] *구제(救濟 건질 /건널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

*도탈(度脫 건널 /벗을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시주(施主 베풀 /주인 )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

*시은(施恩) ; ①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은혜. ②은혜를 베풂.

*시주것(施主것) ; 절이나 스님에게 조건없이 베푼 물건.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 간절히 원하고 .

*주지(住持) ; 절이 잘 유지(維持)되도록 모든 일을 총괄적으로 책임지고 관리하는 소임.

*원주(院主) ; 후원(後院, 절에서 부엌을 일컫는 ) 책임지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도감(都監) ; 사찰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감독하는 소임.

*별좌(別座) ; 절에서 식사·의복·방석·이부자리 등을 담당하는 직책, 또는  일을 맡은 스님.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채공(菜供) ; 절에서 반찬을 마련하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 수행하는 . 불법(佛法) 닦으면서 사귄 .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큰방 ; 스님들의 본업인 수행을 행하는 장소. 예불과 공양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참선만을 행하는 선원(禪院)에서 대중이  자리에 모여 참선수행 () 말한다.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 이어가고, ()집과 ()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 되고 ④자비심(慈悲心)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 삼푼 되는 (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 () 뜻하며, '단전'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상기(上氣) ; [한의피가 뇌로 몰리는 현상얼굴이 붉어지고 열이 나며발한두통이명(耳鳴), 현기증 따위가 일어나기도 한다. ②얼굴이 흥분이나 수치감으로 붉어짐. (용715)

 

Posted by 닥공닥정
발심 자신(自信)2017. 6. 24. 11:41

 

 

§(715) (게송)인인자유충천기~ / 초발 행자와 같은 근신하고 하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수행 / (게송)흉중하애부하증~ / 일념(一念) 단속 / 한 호흡지간(呼吸之間) 생사(生死) 있다.

 

진실로 발심한 사람은  우는 소리를 들어도 그것이 바로 활구(活句)법문이  것이고,  짖는 소리를 들어도 그것이 활구법문이  것이고, 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어도 그것이 바로 자기로 하여금 화두를 들게 해주는 그런 법문이  것이고. 여기서 저기서 사람이 죽고, 이리 죽고, 죽었다는 그런 것을 봐도 정말 무상(無常)을 깨닫고 분심을 내게 하는 그런 훌륭한 살아있는 법문이  것입니다.

 

불법을 전수받고, 불법의 등불을 전하는 것은 오직 본참공안(本參公案)에 철저하게 참여해서 그것을 단속하는 외에는 전해야  불법이 따로 없다는 것입니다. 팔만대장경에 부처님께서 많은 설법을 하셨지마는  경전을 옳게 믿고, 옳게 읽고, 옳게 안다면은 마지막에는 일념(一念) 단속을 해서 본참공안을  잡드리해 가지고 자기 안에 있는 불성(佛性)을 깨닫는  일밖에는 불법(佛法)이 없다 이것입니다.

 

**송담스님(No.715)—2007년(정해년) 동안거결제 법어(07.11.24)(용715)

 

약 18분.

 

인인자유충천기(人人自有衝天氣)  일념회광시장부(一念廻光是丈夫)니라

나무~아미타불~

막도염화소식단(莫道拈花消息斷)하라  우후산조갱상호(雨後山鳥更相呼)니라

나무~아미타불~

 

인인자유충천기(人人自有衝天氣)  일념회광시장부(一念廻光是丈夫).

사람 사람이  스스로 하늘을 찌르는 기운이 있으니  생각 빛을 돌이키면[廻光] 이것이 대장부(大丈夫).

 

막도염화소식단(莫道拈花消息斷)하라. 부처님께서 염화(拈花) 드시는데 가섭존자가 미소를   염화 소식이 끊겼다고 말하지 말아라.

우후산조갱상호(雨後山鳥更相呼).  개인 뒤에 산새들이 서로 부르고 있지 않느냐.

 

고조사(古祖師) 게송입니다.

 

오늘 동안거 결제일을 맞이해서 용주사 선원 대중, 인제 용화사 대중  세등선원 대중  위봉사 선원 대중, 승련사 선원 대중, 그밖에 여기저기 수행하는 납자(衲子) 그리고 금년에 참선 수행하려고 하는 청신사・청신녀 여러분이  자리에 전부 참석을 하셔서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같이 경청을 했습니다.

결제 법문은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이신 조실 스님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으나 실지로 살아 계신 몸으로 설법을 하신  법문을 우리가 감동 깊게 들었습니다.

 

옛날에는 녹음시설이 없어서 한번 열반(涅槃)에 드시면 법어집(法語集)을 읽기 전에는  조사 큰스님네의 육성을 들을 수가 없었으나, 지금은 녹음시설이  되어서 실지로 설하신 육성 법문을 우리는 들을 수가 있어서 비록 말세에 태어났으나 복을  많이 가지고 우리는 태어났다고 생각을 합니다.

 

조실 스님께서 너무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 우리가 정진해 나가는데 필요한 조목 조목을 낱낱이 설해 주셔서 산승이 여기서  보태서 여러분께  말은 없으나,  자리에 올라왔으니 여러 비구 비구니 사미 사미니 청신사 청신녀 형제자매 여러 도반들에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결제 ・ 해제, 의례히 관행으로 법요식을 갖고 () 짜고 안거(安居) 들어갑니다.

그러나 산승이 지금 간곡히 말씀드리고자  것은 선방에 나온지  년이 되었거나,  년이 되었거나, 또는 이십 , 삼십 년이 되었거나 언제든지  철에 선방에 나온 초발(初發) 행자(行者)와 같은, 초발 납자와 같은 그러한 마음으로 결제를 하고, 하루하루를 정진을 해 나가는 것이  좋다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철에 나온 사람은 긴장도 하고 흥분도 하고, 항상 조마조마 두려우면서도 모든 법과 선배 스님을 공경하는 그러한 외경심(畏敬心)으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십이시(十二時)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항상 그런 근신하고 하심하는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수행을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며칠 간은 그러다가 차츰 익숙해지면 금방 그러한 외경심이 없어지고 긴장감도 없어지고 그래가지고 잡담하고 희소(戱笑)하고 그렇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긴장이 풀려서   지나고,   지내면 벌써 해제가 가까워지면 해제하면 어디를 갈까, 어떻게 해제 동안에 살까?’ 그런 생각으로 그럭저럭 지내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

 

오늘 산승이 부탁하고자 하는 것은 첫날부터 마지막 해제  때까지도 그러한 풀어지지 않고 경건하게 그렇게 정진을  주시기를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얼마만큼 철저히 발심(發心)을 했으며, 얼마만큼 정진하기 위해서 신심(信心)과 공안(公案)에 대한,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과 분심(憤心)이 철저한가 그것이 바로 거기에 나타난 것입니다.

 

여러 대중이 같이 지내다보면은 그러한 분이 선배 가운데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그런 모범이 될만한 그런 선배가 있으면 항상  선배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심있게 보고 좋은 점을 본받고.

 여러 대중 가운데는 여법(如法)하게 못한 그런 분도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것을 비방하고 시비할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는  그런 점이 없는가 자기를 반성하고 오히려 자기 자신을 향해서 채찍을 가하면서 그렇게 알뜰히 하루하루를 정진해 주시기를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까 조실 스님께서 설하신 법문 내용을 충실히 마음으로 받아 듣고 그것을 실천하는 그런 수행자라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비록 부처님께서 열반하신지 삼천년이 되었다고 해도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정진을 한다면 말세(末世)라고 해서 하등 걱정할 것이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진실로 발심한 사람은  우는 소리를 들어도 그것이 바로 활구(活句)법문이  것이고,  짖는 소리를 들어도 그것이 활구법문이  것이고, 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어도 그것이 바로 자기로 하여금 화두를 들게 해주는 그런 법문이  것이고.

여기서 저기서 사람이 죽고, 이리 죽고, 죽었다는 그런 것을 봐도 정말 무상(無常)을 깨닫고 분심을 내게 하는 그런 훌륭한 살아있는 법문이  것입니다.

 

 

흉중하애부하증(胸中何愛復何憎)  자괴인전백불능(自愧人前百不能)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제차현성공안외(除此現成公案外)  차무불법계전등(且無佛法繼傳燈)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흉중하애부하증(胸中何愛復何憎)  자괴인전백불능(自愧人前百不能)이다.

가슴 가운데 무엇을 좋아하고 누구를 사랑하며, 누구를 미워하고 무엇을 싫어할 것인가. 스스로 자기가 옛날 불보살(佛菩薩)과 옛날 고조사와 여러 선지식들과 같이 그에 미치지 못한 것을 항상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에 자기가 받은 화두, 공안에 대해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철저하게 단속하고 거각(擧却)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단속하는  그것밖에는 계승하고 전등(傳燈)해야  불법(佛法)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불법을 전수받고, 불법의 등불을 전하는 것은 오직 본참공안(本參公案)에 철저하게 참여해서 그것을 단속하는 외에는 전해야  불법이 따로 없다는 것입니다.

팔만대장경에 부처님께서 많은 설법을 하셨지마는  경전을 옳게 믿고, 옳게 읽고, 옳게 안다면은 마지막에는 일념(一念) 단속을 해서 본참공안을  잡드리해 가지고 자기 안에 있는 불성(佛性)을 깨닫는  일밖에는 불법(佛法)이 없다 이것입니다.

 

 자리에 모이신 여러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들! 그러한 마음으로 앞으로   동안을 한결같이, 하루같이 그렇게 철저하게 단속하며 정진을 해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우리는 지금  가운데에는 구십이 넘으신 노스님도 계시고, 육십・오십・삼십・이십 그런 젊은 분도 있습니다마는 생사에는 늙고 젊은 것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제자에게 생사(生死) 어느 때에 있는고?’ 하고 물으셨습니다.

 사람은 하루 동안에도 생사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  닦기가 어렵겠구나

 

그다음 사람이 대답하기를 일향간(一餉間)에도 있습니다. 아침 ・ 점심  한나절에도 있습니다

너도  닦기가 어렵겠구나

 

마지막  사람은  호흡지간(呼吸之間) 생사(生死) 있습니다

너는 도를 닦을  아는구나

 

이러한 법문이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 있습니다.

삼천년 전에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가  생각  생각을 어떻게 단속해야  것인가에 대해서 그렇게 뼈아프게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출가한 제자가  도를 아직 모르는구나,   닦기 어렵겠구나 이렇게 말한 그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지 않겠습니까?

 

부처님을 믿고 부모형제 고향을  버리고 출가한 사람에게  한마디 생사에 대해서 잘못 대답한 것을 보시고, ‘ 도를 모르는구나, 도를 못닦겠구나하신 말씀은 몽둥이로 패는 것보다도, 칼등으로 목을 때리는 것보다도  뼈아픈 법문이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자리에 모이신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은  한마디에  닦기 어렵겠구나, 도를 모르는구나 그렇게 말씀하신  말씀을 잊어버리지 말고, 항상 일념 단속을  하시기를 부탁을 합니다.(처음~1726)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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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인인자유충천기~’ ; 『부휴당대사집(浮休堂大師集)』 ‘次鐘峯’ - 종봉의 시에 차운(次韻)하다. *차운(次韻)하다 ; 남이 지은 시에서 운자(韻字)를 따서 시를 짓다.

*회광(回光, 廻光) ; 회광반조(廻光返照) 준말.

*회광반조(廻光返照) : 회광자간(廻光自看). 불법은 밖으로 내달으면서 구하지 말고 안으로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그러므로  생각 일어날 때에   일어나는 곳을 돌이켜 살펴보라. ,, 모두 동자(同字).

*대장부(大丈夫 ·훌륭할 /어른·존칭 /사내·일꾼 ) ; 장부(丈夫). ①건장하고 씩씩한 사나이. ②대승의 근기를 가진 수행자. 불법의 수행이 원숙한 사람. 불성(佛性) 이치를 깨달은 사람.

*염화미소(拈花微笑) ;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범어의  Grdhrakuta 음대로 써서 기사굴산(闍崛山)이라 하고, 뜻으로 번역하여 영취산(靈鷲山) • 취봉(鷲峰) 또는 영산(靈山)이라고만 한다。그  모양이 독수리 같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위에 독수리가 많았던 탓이라고도 한다。이 산은 중인도 마갈타(摩竭陀 Magadha) 서울 왕사성(王舍城 Raja-grha) 동북쪽  리에 있다.

 

부처님께서 어느   곳에서 설법을 하시는데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부처님은  꽃송이 하나를 들어 보이니, 백만 대중이 모두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하는데, 가섭존자만이 빙그레 웃었다。이에 부처님은 『바른  열반의 묘한 마음을 가섭에게 전한다』고 선언하셨다 한다.

*가섭(迦葉) : [] Mahakasyapa 음을 따라 마하가섭(摩訶迦葉)이라고도 하며, 뜻으로는 대음광(大飮光)• 대구씨(大龜氏) 번역한다。Kasyapa ()이고, maha 크다는 말이니, 다섯 가섭 가운데 맏이를 뜻한다。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  분。본래는 바라문으로 석존이 성도한   년쯤 뒤에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그는 제자 가운데서도 주를 극도로 검박하게 하고, 용맹정진(勇猛精進)하는 두타행(頭陀行) 제일이었으며 부처님의 의발(衣鉢) 받은 상수 제자(上首弟子)로서 부처님이 입멸한 , 오백 아라한을 데리고 제일 결집(第一結集) 하면서  우두머리가 되었다。부처님 이후의 법통(法統) 말할 때에는 그가 초조(初祖) 된다.

*게송(偈頌) ; (), () ()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

*납자(衲子) :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본래 가사(袈裟)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

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 三足金烏徹天飛』란 것이 있다。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납자의 본색을 말하는 것이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 집착(執着)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말할 /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간곡할 )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 간곡하게[] 말씀하심[].

*() ; 용상방(龍象榜) 말함.

[참고] 용상방(龍象榜) ; 절에서 하안거 동안거 결제 때나, 일을 치를 때에 각자  일을 정해 붙이는 명단. 행사가 끝날 때까지 모든 사람이    있는 곳에 붙여서 각자가 맡은 일에 충실하도록  것이다.

*안거(安居 편안할 /있을 )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인도의 불교도들은 4 15(또는 5 15)부터 3개월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 15일부터 7 15일까지 하안거(夏安居), 10 15부터 다음해 1 15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 한다.

*초발(初發) ; 초발심(初發心). 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인 보리심(菩提心) 처음으로 일으킴.

*행자(行者) : ①수행자. 불도(佛道) 수행하는 사람 ②계() 받기 전에 일정 기간 동안 절에 있으면서 여러 소임 밑에서 일을 돕고 있는 사람.

*십이시(十二時) : 하루 24시간을 말함。지금 쓰고 있는 이십사시(二十四時) 예전에는 십이시(十二時) 썼다.

*희소(戱笑 희롱할 희/웃음·웃을 소) ; 희롱으로 실없이 웃음.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昭昭靈靈)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생사도 없고, 버려야  번뇌도 없다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없는 생각에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말세(末世  /세상 )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 세상,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 세상,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 조건()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 없다[].

*(게송) 흉중하애부하증~’ ; 중봉명본 스님의 ‘천목중봉화상광록(天目中峯和尙廣錄)’ 권29 ‘山居十首’ 게송 참고.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없는 생각 ()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 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전등(傳燈) ; ‘()불을 ()한다 뜻으로, () 중생의 무명(無明)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 비유한 .  진리의 () 스승이  제자에게서로 전하여 가는 것을 전등(傳燈)이라 한다. 법맥(法脈) 서로 끊어지지 않고 이어가는 일을 마치 등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하는  비유한 .

*법맥(法脈) ; 세속에서 조상의 전래 혈통(血統) 밝히고 있듯이, 불교 선종(禪宗)에서는 스승에서 마음을 깨친 제자로 계속 이어져 전해 ,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 법통(法統) 전승을 법맥이라 한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일념단속(一念團束) ; ‘ 생각 단속 무슨 생각이든지  생각 났다 하면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 받는데,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

마음 속에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있는데,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 말함。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 이르기까지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일향간(一餉間  /식경食頃·   먹을 정도의 짧은 시간 /사이 ) ; ‘  먹을 사이, ‘짧은 시간 동안 뜻한다.

*호흡지간(呼吸之間) ;   내쉬고[] 들이쉬고[]  사이[]라는 뜻으로, 아주 짧은 시간을 이르는 .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 후한(後漢) 가섭마등(迦葉摩騰), 축법란(竺法蘭) 함께 한역.

(), 무상(無常), 무아(無我), 보시(布施), 애욕의 단절  불교의 요지를 42장에 걸쳐 적절한 비유로써 간명하게 풀어 설한 (). 최초의 한역(漢譯) 불경으로 알려지고 있다.(용715)

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17. 3. 27. 22:04

§(014) 모든 지식과 학문, 이론을  잊어버릴수록 오히려 깨달음에 가까워지는 것 / 유루복 / 최상승 활구참선은 지극히 쉽다 / 일념단속, 생사심 단속.

 

육도윤회를 하게  원인이 선업, 악업, 무기업,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그것이 행동화 되고,  행동으로 인해서  종자가 우리의 마음속에 저장이 되고, 그래가지고 조금 착한 일을 하면은 천당에 가고, 악한 일을 하면 지옥에 가고, 짐승이 되기도 하고,  가지고 무량겁을 두고 쉬지 않고 윤회를 하게 됩니다.

 

최상승 활구참선은 지극히 쉬운 것이요, 하기 쉬운 것이요, 누구라도   있는 법입니다. ‘최상승 활구법문’이라 하니까는 대단히 어려워서 우리 말세(末世)에 태어난 사람, 더구나 여자로 태어난 사람, 더구나 나이 먹은 할머니 할아버지는 도저히   없는 것으로  자포자기 하실는지 모릅니다마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평상시에 이뭣고?’ 열심히 해 놓지 아니하면 마지막 죽을  정신 하나  차린 것입니다. 손발을 뻐르적거리고, 눈을 뒤집어쓰고 어느 귀신이 어떻게 잡아가는  모르게 뻐르적거리다 죽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어갈 때에 새 배때기,  배때기,  뱃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거여. 마지막 죽을  정신 바싹 차려 가지고 ‘이뭣고?   있을 만큼 하려면은 평상시에 공부가 습관화가 되어야 하고, 생활화가 되어서 단단히 단속을 해놔야 그때 가서 써먹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생사(生死)가  칠팔십  살다가 마지막 죽을  그것이 죽음이 아니라, 우리 살아 있을  생각,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생각 일어나면 그것이 ()이요,  생각 꺼지면 그것 ()입니다. 생멸심(生滅心) 바로 생사(生死)입니다. 생사를 해탈하고자 할진대는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심(生死心) 단속할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상승법입니다.

 

 자리는 여러분이 많은 무슨 재미있는 얘기를 들어 가지고  지식을 넓히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여기서 들으신  말씀을 인(因)해서 ‘이뭣고?’ 간절히 들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뭣고?’가 간절히 들어짐으로 해서 거기에서 생사심이 끊어지고, 생사심 끊어짐으로 해서 우리는 생사 없는 보리도(菩提道)를 증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014)—76 2 관음재일 법문.

 

 

(1) 약 21분.

 

 

 

(2) 약 11분.

 

 

(1)------------------

 

금방 전강 조실 스님 법문(法門)을  같이 들었습니다.

 

다달이 관음재(觀音齋)를 기해서 이렇게 신남신녀 여러분께서 이렇게 참집(參集)을 하셔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사부대중이  같이 이렇게 경청을 해서 우리의 신심을 돋구고 그래서 정진하는데 이익을 얻어서 우리의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이렇게 해 오고 있습니다.

 

원래 불법(佛法)은 무슨 경(經)을 많이 보고, 교리적으로 연구해서 지식을 많이 얻어 담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전을 보거나 선지식(善知識)의 법문을 들음으로 해서 거기에서 신심(信心)과 분심(憤心)을 일으켜 내가 나를 깨닫는 데에 도달하기 위해서 경을 보고 법문을 듣는 것이지, 경을 보고 법문을 들음으로 해서 우리의 지식을 넓혀 가지고 아는 것이 많기 위해서 듣는 것이 아닙니다.

 

경을 많이 보고, 법문을 많이 들어서 아주 아는 것이 풍부해지면은 그 사람이 불교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했다’고 이렇게 스스로 자랑을 삼고, 남들도 그러한 이를 부럽게 생각하신 분을 간혹   있습니다마는,  불법은 무엇을 많이 보고 듣고 해서 알고 있는 것이 많다고 해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결단코 아닙니다.

 

오히려 많이 알고, 많이 듣고 해서 잔뜩 속에 쌓아두고 있는 것보다는 그동안에 자기가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있는 것을   있으면 하나라도  많이 잊어버리고, 버리는 데에서 오히려 불법에 공부가  많이 되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병에다가 물건을 잔뜩 집어넣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속에 이미 들어있는 것을 자꾸 쏟아서 버려서 깨끗한  병으로 만드는 거와 같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상식, 학문, 학설, 일체 이론은  잊어버릴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리해야 오히려 깨달음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지금  법보선원에 오신지가 20, 10, 5, 3 또는   아니 되시거나, 오늘 처음으로 나오신 분도 계시겠지마는, 많이 법문을 들을수록에 자기 속에 있는 모든 생각을 비울  있는 그러한 능력이 길러져야 그분이 그동안 법문을  옳게 들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참선은 오늘 처음 오셨다고 해서 하나도 공부가 되어 있지 않고 초학자(初學者), 오래 전부터서 여기 많이 오셔서 구참(久參)이 되었다고 해서 그분이 공부가 많이 되어 있다고만은 꼭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조실 스님 법문을 듣고,  들으신 것을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고 조랑조랑 이야기할  있다고 해서 그분이 오늘 법문을  들으신 것이라고는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시간 동안에 걸쳐서  여러 가지 법문을 들었지마는  말씀도 옮길 말씀이 없고, 다못   없는 이뭣고?’ 생각만 속에서 간절히 일어나고 있는 그분이야말로오늘 법문을 누구보다도  들으신 분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리에 오신 여러분은 무슨 경을 많이  가지고 누구한테라도 자랑할  있을 만큼, 자신 있게 이야기할  있을 만큼 무슨 불교에 대한 교리를 알고 싶어서 밤낮 책을 뒤적거리고 그러실 것이 아니라,

 

어쨌든지 ‘이뭣?’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간단한   말씀만에 의지해서 걸어가실 때나, 앉아 계실 때나, 무슨 일을 하실 때나, 또는 식사를 하실 때나, 변소에 가실 그런 때까지라도 생각 생각이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話頭) 들어지고, 화두를 들을라고 노력할 때에 우리는  부처님 제자가 되는 길이 바로 거기 있는 것이고, 영겁을 두고 육도윤회(六途輪廻)를   생사고(生死苦)를 여의는 길이 바로   생각 단속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법은 대단히 경을 떠들어 봐도 알기가 어렵고, 도저히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고, 암만 읽어봐도 읽어볼수록 점점  어렵고 그래서  불교의 현대화가 필요하다. 어쨌든지 경전을 쉽게 번역을 해서 누구라도 읽을  있도록 하는 것이 현재 오늘날에 불교의 나아갈 길이다’한 것을 종종 뜻있는 분들이 말씀하신 것을 듣습니다마는.

 

아무리 경전을 쉬운 말로 번역을 해서 누구라도 읽을  있도록 자꾸 간행을 한다고 해서 그래가지고 불법이 성황을 이루고 많은 중생이 제도를 받느냐 하면은 그렇다고만은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냐 하면은 경을 많이 읽어서 부처님이 하신 말씀을 육두백판으로   안다고 해서 그것이 불법이 아니요, 그런다고 해서 생사해탈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어쨌든지 간단한  한마디지마는 이뭣고?’ ‘-하는 놈이 무엇인고?’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아무 재미도 없고, 맛도 없고 하지마는 생각 생각이 이뭣고?’

 번이고,  번이고, 시간 시간이, 일 분 일 분마다, 일 초 일 초마다, 일어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생각이 잡념이 되었건, 번뇌 망상이 되었건, 성을 내건 또는 슬프건, 무슨 생각이 일어났거나 그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게 되어 있으니만큼,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육도윤회를 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하는 그것들이 전부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아까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8 뢰야식(賴耶識) 속에 고대로  녹음이 되어서 간직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이 틈만 있으면 움이 터 나오고 있습니다.

 

무를 겨울에 땅속에다가 묻어놓으면 계속 거기서 움이 자라가지고  이듬해 무를 파 보면은 노랗게 싹이  나오고 있듯이,

우리 제팔식(第八識) 아뢰야식 속에, 잠재의식 속에, 무량겁으로 생활해 내려오면서  속에 녹음되어 감춰져 갖 있는, 쌓여져 갖 있는  선(善)과 악(惡), 무기(無記) 한없는 많은  종자(種子)들이 저장이 되어 있는데,  종자가 무슨 기회만 있으면은 그 기회를 이용해서 움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움이  나오면서 그놈이  씨를 결실을  가지고 또다시 거기에  저장이 되고, 저장된 씨에서는 계속 움이  나오고 있고.

그래서 우리는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좋은 생각 아니면 악한 생각, 그렇지 않으면 쓸데없는 터무니없는 생각, 10년 , 20년 전에 있었던  또는 전혀 보고 듣지도 못한 뿌리도 밑도 끝도 없는 생각들이 잠시도  사이 없이 퍼일어났다 꺼졌다, 퍼일어났다 꺼졌다.

 

 가운데에 울다가 웃다가 몸부림치다가 그래가지고 성내다가 그러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고, 그러는 가운데에 그것이 바로 업(業)입니다. 선업도 있고, 악업도 있고, 무기업도 있고 해서 그렇게 해서 우리의 생각이 끊일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 그것이 근원이 되어서 우리는 육도윤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육도윤회를 하게  원인이 선업, 악업, 무기업,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그것이 행동화 되고,  행동으로 인해서  종자가 우리의 마음속에 저장이 되고, 그래가지고 조금 착한 일을 하면은 천당에 가고, 악한 일을 하면 지옥에 가고, 짐승이 되기도 하고,  가지고 무량겁을 두고 쉬지 않고 윤회를 하게 됩니다.

 

지금 금생에 우리가 이렇게 태어나서 다행히 사람 몸을 받아 가지고 불법을 만나서  법보선원에 이렇게 모이셨습니다마는, 이만큼 되실 때까지는 여러분들은 과거에 한없는 정법(正法)에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다행히  자리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자리에 기왕 오셨을 바에는 활구참선법을 올바르게 배워서, 지도 받아서 열심히 공부를 하시면은 금생에 결정코 도업(道業)을 성취하실 것이고,

설사 인연이 무르익지 못해서 금생에 도업을 성취 못하신다 하더라고 올바르게만 공부하신다면은 내생에 다시  바꿔 나  공부를 하시게 되어서 결정코 내생에는 대도사(大道士)가 되어가지고 당신 자신도 생사해탈을 하실 뿐만 아니라,  많은 중생을 제도(濟度)하시게 됩니다.

 

오직  길만이 자신도 해탈(解脫)하고, 남도 생사윤회(生死輪廻)에서 건져낼 수가 있어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있을 뿐이지, 다른 어떠한 착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영원한 생사해탈도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영원한 행복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가득찬 칠보(七寶)로써 모든 중생에게 보시를 한다 해도  복이 한량이 없어서 천당에 태어나고, 인도(人道)에 태어난다 해도 오복(五福)을 누릴 수는 있을는지 모르지마는 그러한 상(相)으로, 물질적으로 이룬 그러한 복은 언젠가는 다할 날이 있어서 타락이 있게 됩니다.

 

타락한 날에는   동안 복을 누리다 타락하거나, 억겁(億劫)을 누리다가 타락하거나  타락한  마당에 비참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차라리 본래부터 가난했던 사람은 하루 벌어서 하루 먹으면 별일이 없지마는, 한 삼사십  호강하고 잘살다가 하루아침에 가난해졌을 때의  비참한 것은 말로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有漏福)을 짓는 것은 삼생(三生)의 웬수(怨讐)’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유루복이라 하는 것은 세속에서 말한 부귀공명(富貴功名)이 바로 유루복인데, 유루복은  유루복을 닦느라고 죄를 짓게 됩니다.

  짓고    있습니까?   짓고 높은 자리 올라갈  있습니까? 높은 자리 올라가고, 높은  부자를 누릴려고  때에  짓지 않고는 도저히 그런 복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복을 획득하느라고 죄를 짓고,   복을 획득한 다음에   수용 하느라고 죄를 짓게 됩니다. 재산이 많고, 벼슬이 높고 하다 보니 권리도 부려야 하고, 호강도 해야 하고, 없는 사람 업신여기며 없는 사람을 개돼지처럼 종으로 부리면서   누리느라고 죄를 짓게 되고.

마지막에  복을  받아서 망(亡)해 갈 때에   있으면  복이 달아나지 않기 위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복과 귀(貴)와 권리와 명예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갖은 안간힘을 쓰다 보니  죄를 짓게 됩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 하는 것은 얻기 위해서 죄를 짓고, 얻어 가지고 누리느라고 죄를 짓고, 나중에 망해 갈  그놈을  없어지게 하기 위해서 죄를 짓게 되어서 삼생(三生) 웬수(怨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지금  세상에 살아가는 데는 돈도 필요하고, 지위도 필요하고, 명예도 필요하지마는, 그것들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이며, 차라리 우리가 무서워해야  만큼 '웬수거리'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은 돈도 웬수고 명예와 권리도 웬수면  소용없고, 그러면   파먹고 살아란 말이냐?’  이러한 의아심(疑訝心)을 가지실런지 모르지마는.

그것이  필요합니다. 필요하지마는 그것만을 위해서 우리가 생명 바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냐?  최상승(最上乘) 활구참선을 하시게 되면은, 하시면서 그러한 것들을 얻기 위해서 노력도 하시고, 그런 얻어진 것을 필요하게 적절히 사용도 하시고  그것들이 인연이 다해서 가게 되더라도 우리는 조금도 불행해지거나 죄를 짓지 아니할 수가 있습니다.

 

 활구참선을 하게 되면은 하는 가운데에 돈도 벌고, 명예도 누리고, 권리도 잡고 하신다면은 그것이 죄가  수가 없습니다.  짓지 않고 얼마든지 유효적절하게 얻을 수도 있고, 사용할 수도 있고, 마지막 그것이 나한테 떠난다 해도 모든 것을 인연에 돌리고.

그것이 떠남으로써 일반 사람은 아주 비참한 불행한 맛을 보게 되지만,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은 떠날 때에도 오히려 좋은 발심(發心)의 계기가 되어질 수가 있고, 참으로 발심할  있는 법문이 되어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좋은 법이기 때문에 최상승 활구참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최상승 활구참선은 지극히 쉬운 것이요, 하기 쉬운 것이요, 누구라도   있는 법입니다.

‘최상승 활구법문’이라 하니까는 대단히 어려워서 우리 말세(末世)에 태어난 사람, 더구나 여자로 태어난 사람, 더구나 나이 먹은 할머니 할아버지는 도저히   없는 것으로  자포자기 하실는지 모릅니다마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식해도   있고, 나이가 많아도   있고,  많은 중생일수록에 오히려  하기가 좋습니다.  그러냐?

경(經)을 공부한다든지 무슨 어려운 경책(經冊)을 학문을 한다고 하면은 젊어야 하고, 힘이 있어야 하고,  돈도 있어야 하고, 시간도 있어야 되겠지마는 이 활구참선은 맨주먹으로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앓아누워 있는 사람은 앓아누워서도  수가 있고, 바쁜 사람은 바쁜 가운데도  수가 있고, 일자무식(一字無識)한 사람도 참선(參禪)하는 간단한 법만 지도 받으면은 어디서 언제라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은 이 법이 그렇게 시간이 걸리고 어려운 것이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아무리 무식한 사람이라고 불러서 대답할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꼬집어서 아픈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배고파서  먹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꼬집어 뜯어서 아픈  알고 “아무개야!”하고 불러서 “예”하고 대답할  알고, 배고프면  먹을 줄만  사람이면은  참선은 능히 하고도 남는 것입니다.

 그러냐? ! 꼬집었을  “아야!”할 줄만 알면  아픈  아는 놈이 무엇인고?’ 이렇게 공부를  가는 것이란 말이에요.(처음~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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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때 어떤 보살님은 이렇게 조실 스님이 고구정녕(苦口叮嚀) 말씀하시고, 제가 기회 있을 때마다 조실 스님의  말씀을  알기 쉽도록 이렇게 말씀을 드리기를 벌써  남짓을 해왔는데,

이러한 말씀들이 전부 스님네나 또는 선방에 앉아서,  큰방에 앉아 계신 보살님만 하는 것이지 그밖에 집에서 왔다갔다 하신 신도 여러분에게는 해당된 일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서 전혀 이런 말씀을 들어도  말씀은 당신한테는 해당된 법문이 아니라’ 이리 생각하고 여태까지 5년 동안을 다니셨다 그럽니다.

그분은 대단히 진실하고, 아주 신심이 돈독한 분으로서 대단히 좋은 진실한 신도님인데, 어떻게  법문을 어디로 들으셨는가? 그것이 당신한테 해당된 말이 아니라 다른 분들한테만 해당된 말이요, 나한테는 해당된 말이 아니다’해 가지고 나도 언제나 저런 공부를  볼꼬?’ 이리 생각하셨다 그럽니다.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그러한 착각을 하신 분이  계시리라 생각합니다마는, 지금 제가 말씀드리고 있는 말씀은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에게 해당된 말씀입니다.

누구라도 고대로만 하시면 되는 것이지, 별도로 따로 지도를 받아야 하거나, 지금 자기에게는 해당된 말이 아니어서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셔서는 아니 됩니다.

 

누구라도, 지금 저기 어린아이가 있습니다마는,  어린아이라도 다섯 , 여섯  먹은 어린아이라도  말씀만 조용히 들어서 귀담아듣고 고대로만 하면은 오히려 나이 많이 먹어서 학교도 많이 다니고, 지식도 많은 사람보단 아주 철이 하나도 안 든 다섯, 여섯  먹은 애라도 고대로만 한다면 오히려  어린애가 훨씬  빨리 도업을 성취할  있습니다.

 

광주에서 어느 신도분의 아들이 자꾸 자기 어머니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는 것을 보고서 절에 따라와서 구경하고  자기 집에서도 어머니가 조석으로 관세음보살 부른 것을 보고는,  어린애가 열이 40도가 넘어 가지고  몸부림을 치고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대단히 곤경에 빠져 가지고  견디게 되니까,

 어린애가 서서 벽에 붙여 놓은 관세음보살 사진 앞에  가지고는,  다섯  먹은 어린애가 합장을 하고 서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이렇게  가지고   동안을 그렇게 하더니 !  쓰러져 가지고는 쿨쿨 잠을 한숨 자고 나더니 !  40도나 되던 열이 쏴악 식어 가지고.

 

! 병원에서도 얘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고 빨리 집으로 데리고 가라고 해서 데리고  어린애가 그렇게 관세음보살을  십 분 남짓을 그렇게 부르더니 !  감쪽같이  병이 낫은 것을 제가  어린애를 봤습니다.

 

순수무구(純粹無垢)한 마음, 천진한 마음으로  때에는 남녀노소가 없습니다.

그래서 경을 많이  보았다’고, ‘나는 아직 불교에 들어온 지가 얼마  되고 경도  번도  봤고, 그래서  같은 사람은 참선해 봤자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시지 말고, 금방 오셨더라도 조금도 상관이 없으니까 ‘이뭣고?

 

성이  때나 또는 슬픈 생각이  때나 또는 어떤 외로움을 느낄 때나, 가정 문제로 사회 문제로 자손 문제로 또는 내외간 문제로 해서, 어떠한 속이 상하고 슬프고 외롭고 또는 기쁘고 간에 어떠한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이뭣고?’ 지금 당장 -하는 놈이 뭣고?’ 자꾸 생각 생각이 돌이켜서  번이고,  번이고 들고  들고,  생각이 생활 속에 저절로 ‘이뭣고?’하는 생각이 저절로 되어지도록까지 열심히 하십시요.

 

밥을 먹을 때도 ‘이뭣고?’ 똥을  때도 ‘이뭣고?’ 잠을  때도 ‘이뭣고?’하면서 언제 잠이 든  모르게 공부를 하시도록, 이렇게 하시면은 무식할수록  좋고, 철이 안 들을수록  좋고, 연세가 많을수록  좋고.

 

연세 많은 분은 내가 인자 이 세상을, 이승을 하직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항시 간절하게 자기에 부딪치기 때문에 무슨 미련이 있고,  잊을 것이 있어서  생각할 겨를이 있느냐 그말이야. 그 죽음이 코앞에 닥쳐있기 때문에 더욱 간절히 ‘이뭣고?’를  수밖에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노인은 노인대로  공부하기  좋습니다. 젊었을 때는 미련도 있고 생각도 많아서  생각  생각하다가 그러지마는, 벌써 육십 칠십 넘으신 할머니는  좋습니다. 인제 자식 걱정할 것도 없고, 자기들  ()대로 살도록 놔두고, 나는 ‘이뭣고?’  좋아요.

 

마지막 숨질 , 그때 참으로 마지막 5, 3, 2, 1, 1 그때까지도 ‘이뭣고?’하는 생각으로 눈을  감을  있다면은 그분이야말로 바로 도인(道人)입니다. 도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분이 도인이여.

마지막  거둘 때에도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이뭣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생존시에 무슨 일에 애착이 있어 공부를 못하겠습니까. 마지막 숨질 , 참으로  먹던 힘을 다해서 ‘이뭣고?’를 들을  있는 사람이면 도인입니다.

 

마지막 숨질 때,  사람이 병을 이길 수만 있다면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병한테 지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육체적, 정신적 힘을 총동원해도 그놈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에 마지막 죽게 되는 것이니 만큼,  죽는 순간에 화두가 들려지고, 들을  있다면  사람의 공부는 어지간한 공부입니다.

 

평상시에 열심히 해 놓지 아니하면 마지막 죽을  정신 하나  차린 것입니다. 손발을 뻐르적거리고, 눈을 뒤집어쓰고 어느 귀신이 어떻게 잡아가는  모르게 뻐르적거리다 죽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어갈 때에 새 배때기,  배때기,  뱃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거여.

마지막 죽을  정신 바싹 차려 가지고 ‘이뭣고?   있을 만큼 하려면은 평상시에 공부가 습관화가 되어야 하고, 생활화가 되어서 단단히 단속을 해놔야 그때 가서 써먹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것이, 그것이 그때그때 화두가 들어질  있는 사람이라야  몸뚱이  거둘  되어지는 것입니다.

 

생사(生死)가  칠팔십  살다가 마지막 죽을  그것이 죽음이 아니라, 우리 살아 있을  생각,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생각 일어나면 그것이 ()이요,  생각 꺼지면 그것 ()입니다. 생멸심(生滅心) 바로 생사(生死)입니다.

 

생사를 해탈하고자 할진대는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심(生死心) 단속할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상승법입니다.

 

부처님께서 49 동안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라고 하는 방대한 법문을 설하셨지마는 한 말씀으로 줄여서 말하면 일념단속(一念團束)하는 , 생사심 단속해서거기에서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심 단속해서 생사 없는 이치를  몸에 체달(體達)할  영원한 생사윤회는 해탈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리는 여러분이 많은 무슨 재미있는 얘기를 들어 가지고  지식을 넓히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여기서 들으신  말씀을 인(因)해서 ‘이뭣고?’ 간절히 들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뭣고?’가 간절히 들어짐으로 해서 거기에서 생사심이 끊어지고, 생사심 끊어짐으로 해서 우리는 생사 없는 보리도(菩提道)를 증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살아가기는 너무나도 험준하고, 복잡하고, 어려워서  세상 살아가는 속에 정신차려 이뭣고?’ 든다고 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니하면 누가 나를 위해서 닦아줍니까?(2027~3044)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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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 조실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관음재(觀音齋) ; 관음재일(觀音齋日). 매월 음력 24.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께 기도를 드리며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 3(身口意 三業) 깨끗하게 하여악업(惡業) 짓지 않아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일.

*참집(參集 참여할 참/모일 집) ; 어떤 자리에 참가하기 위해 모임.

*돋구다 ; 돋우다(감정이나 기운을 강하게 불러일으키다. 정도를 더 높이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 부처님의 가르침.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昭昭靈靈)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생사도 없고, 버려야  번뇌도 없다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분심(憤心)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깨달음 ; (). 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구참(久參 오랠 /참구할·참여할 ) ; 오랫동안에 걸쳐서 수행한 . 오랫동안 () 닦은 . 또는 그런 사람. 불법(佛法) 귀의한지 오래 되는 . 초학(初學) 상대어.

*조랑조랑 ; (어린 사람이) 계속하여 똑똑하게 글을 외거나 말을 하는 소리.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 했을까?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생사고(生死苦) ; 생사(生死)라는 고통[]. 가장 근원적인 고통이며, 이것에서 벗어나야 해탈을 얻는다.

*생사(生死) ; ①생과 . 살아 있는 것과 죽은 .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송담스님(No.389)—89(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 생각 일어날  새로 태어난 것이고,  번뇌가 꺼질   죽는 ,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것이 바로 생사(生死)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생각이 일어날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 ,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거두절미(去頭截尾)말이나 사건 등의 부차적인 설명은 빼어 버리고 사실의 요점(要點) 말함.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동자(同字).

*뢰야식(賴耶識) ; 아뢰야식(阿賴耶識).

*아뢰야식(阿賴耶識) ;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 말함.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종자(種子)저장하고, 육근(六根)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 산스크리트어 ālaya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 산스크리트어 vijñāna 번역. 아뢰야(阿賴耶) 진제(眞諦) a()+laya()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 ālaya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참고] 〇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8가지 마음 작용.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 8(八識)이다. ,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 5(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6의식), 第七 末那識(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8아뢰야식)이라 한다.

*무기(無記) : [] Avyaksita ()•()•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 말한다.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 ; ()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 말한다. 그리고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업의 종류 ; (1)중생이 행하는 모든 행위를 3가지로 나누어, ①몸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신업(身業) ②입() 통해 말로 하는 행위를 구업(口業) ③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을 의업(意業)이라 한다.

 3가지 () ·· 삼업(三業)이라 하는데, 삼업(三業) 결국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2)업에 의하여 과보(果報) 받는 시기에 따라 ①금생(今生:지금 살고 있는 ) 업을 지어 금생에 과보를 받는 순현업(順現業) ②금생에 업을 지어 다음 생에 받는 순생업(順生業) ③금생에 업을 지어 삼생(三生) 후에 받는 순후업(順後業) 있다. 위의 삼시업(三時)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업(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부정업(不定業)이라 한다.

(3)업의 성질(性質) 따라 ①선심(善心) 의해서 일어나는 선업(善業), ②악심(惡心) 의해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 악업(惡業)), ③선악(善惡) 어떤 것도 아닌 무기심(無記心) 의해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記業) 셋을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한다.  과보도 선업은 좋은 과보를 받고, 악업은 () 과보를 받는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도사(道士) ; ①불도(佛道 :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 닦아 깨달은 사람. ②불도를 닦는 사람. ③도교(道敎) 믿고 수행하는 사람. ④어떤 일에 아주 익숙하여 잘하는 사람을 이르는 .

*제도(濟度 건널 /건널 ) ; 중생을 미혹의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 이르게 하는[] . () 구제(救濟). ()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건널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

*도탈(度脫 건널 /벗을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①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이 자유 자재한 .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②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열반의 상태. ③깨달음. ④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선정(禪定) 상태. 평온한 경지.

*생사윤회(生死輪廻  /죽을 /바퀴 /빙빙돌 )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 죽고[]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 돌듯이[]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칠보(七寶) : [] Sapta - ranta 일곱 가지의 보배。즉 (), (), 유리(琉璃), 파려(玻瓈), 또는 매괴(玫瑰), 차거(硨磲), 산호(珊瑚), 마노(瑪瑙) 등을 말한다.

*인도(人道) ; 인취(人趣). 인간계(人間界). 인간이 사는 세계. 수미산의 사방에 있다는 동승신주(東勝身洲) · 남섬부주(南膽部洲) · 서우화주(西牛貨洲) · 북구로주(北俱盧洲) 대륙을 말함.

동쪽에 있는 승신주의 인간들은 신장이 뛰어나다 하고, 남쪽에 있는 섬부주는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라 . 서쪽에 있는 우화주에서는 소를 화폐로 사용한다 하고, 북쪽에 있는 구로주는  대륙 가운데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 .

*()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오복(五福) ; 인생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다섯 가지의 .

유학(儒學) 오경(五經) 하나인 『서경(書經) 「주서(周書) 홍범(洪範)편에는 (), (), 강녕(康寧 : 건강), 유호덕(攸好德 : 덕을 좋아하여 즐겨 행하는 ), 고종명(考終命 : 사람이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음) 말하는데, 청나라  적호(翟灝) 『통속편(通俗編)』에는 유호덕과 고종명 대신 ()함과 자손이 중다(衆多)함을 꼽기도 한다.

*억겁(億劫) ; 무한이 길고 오랜 세월.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 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 복이어서 한도(限度)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복을 쌓는다하드라도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받아버리면 다시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얻었던 것을 결국은  없애면서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죄를 짓지 않게 하고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 같은  좋은 방향으로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송담스님(No.565) - 1996 설날통알  설날차례(1996.02.19)에서.

()이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 말씀에 유루복(有漏福) 무루복(無漏福) 있는데, 유루복은 삼생(三生) 원수다.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 가게 되니까 그래서  유루복은 원수이고,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수도 없고, 생활도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좋은 방향으로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과보(果報) 바래.

공투세를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무루복을 참으로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 열심히 함으로써,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삼생(三生) ; 과거와 현재, 미래를 뜻하는, 전생(前生), 현생(現生), 후생(後生,來生) 아울러 이르는 .

*웬수 ; ‘원수(怨讐)’ 사투리.

*부귀공명(富貴功名) ; 재물이 많고 지위가 높으며 공을 세워 이름을 떨침.

*웬수거리 ; 원수(怨讐)  만한 재료. 웬수는 ‘원수(怨讐)’ 사투리.  법문에서는 , 지위, 명예, 권리 따위를 '원수거리'라고 말씀하셨다.

*의아심(疑訝心 의심할 의/의심할 아/마음 심) ; 의심스럽고 이상하게 여기는 마음.

*최상승(最上乘)=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더할 나위 없는 뛰어난 교법. 최상의 가르침. 가장 뛰어난 가르침.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말세(末世  /세상 )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 세상,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 세상,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경책(經冊 불경 / ) ; 부처님 말씀() ().

*일자무식(一字無識) ;  글자도 읽을  없을 정도로 아는 것이 없음또는 그런 사람.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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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때 ; (명사)오래지 아니한 과거의 어느 때를 이르는 말. (부사)오래 지나지 않은 과거의 어느 때에.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말할 /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간곡할 )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 간곡하게() 말씀하심().

*순수무구(純粹無垢) ; 순수하여 몸과 마음이 때묻지 않고 깨끗함.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 따라 수행하는 사람.

*일사불란(一絲不亂) ; 한 오리 실도 엉키지 아니함이란 뜻으로, 질서가 정연하여 조금도 흐트러지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

*어지간하다 ; ①(무엇이) 수준이나 정도가 보통이거나 그보다 약간 더한 상태이다. ②(무엇이) 수준이나 정도가 꽤 상당하다.

*배때기 ; ‘배’를 속되게 이르는 말.

*생사심(生死心) ;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났다 꺼졌다  생각. 번뇌(煩惱), 망상(妄想) 말함.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참선만이 생각의 기멸(起滅) 끊고 생사의 윤회를 벗어날  있게 한다.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 :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 달리 이르는 .

*팔만사천(八萬四千) : 법수(法數)에는  말이  많다。그것은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또한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이것을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일념단속(一念團束) ; 무슨 생각이든지  생각 났다 하면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 받는데,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

마음 속에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있는데,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체달(體達) ; 사물의 이치를 통달하여 깨달음.

*보리도(菩提道) ; 범어(梵語) bodhi 음역(音譯) 보리(菩提)와 그 한역(漢譯)인 도(道)의 복합어. 보리와 같은 말이다.

*보리(菩提) : [] bodhi  () • () • ()이라 번역。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곧 불과(佛果)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 지혜를 얻기위하여 닦는 (),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범어의 음대로 쓰면 보디라고 하겠지만, 우리 말의 관습상( —> ) ‘보리 읽는다。따라서 보제 보데로는 읽지 않아야  것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성도재)2015. 7. 27. 11:33

§(405) (게송)외외낙락정나라~ / 부처님께서 항상 부르시는 노래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로구나!” / 깨달은 분상에는 지옥·천당도 일념지간(一念之間)에 있다.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 사람 사람이 본래 태평(太平)하다’

 

귀족이거나 천민이거나, 부자거나 가난한 사람이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머리가 좋거나 나쁘거나, 본래 원만구족(圓滿具足)해서 더 보탤 것도 없고 더 덜어낼 것도 없어. 원만구족한 본래 태평한 존재들이다.
납월팔일(臘月八日)을 맞이해서 우리는 본래 부처님과 조금도 모자랄 것도 없이 원만구족한 그러한 존재라고 하는 긍지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뭣고?’ 그래서 일념 단속(團束)을 해야 해. 일념 단속 함으로 해서 일념 속에서 천당·지옥을 타파해 버려. 일념 속에서 영원한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405)—89년 성도재 법회(90.01.04) (용405)

 

약 9분.

 

외외낙락정나라(巍巍落落淨裸裸)한데  독보건곤수반아(獨步乾坤誰伴我)오
나무~아미타불~
약야산중봉자기(若也山中逢子期)인데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오
나무~아미타불~

외외낙락정나라(巍巍落落淨裸裸)한데,  높고 높고, 높고 높아서 깨끗하고 깨끗해.
독보건곤수반아(獨步乾坤誰伴我). 건곤(乾坤)에, 천지에 홀로 가니 누가 나와 더불어 짝을 할 것인가.

약야산중봉자기(若也山中逢子期)인데, 만약 산중에서 자기(子期)를 만났던들,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오, 어찌 노란 이파리를 가지고 산 아래로 내려갔겠는가.


부처님께서는 어떠한 마음을 가지시고 일생을 살으셨을까?
부처님께서는 항상 부르시는 노래가 있었다면 부처님께서는 무슨 노래를 부르셨을까?

부처님께서는 항상 다른 사람을 보되 ‘제도(濟度)할 중생(衆生)이 있다’고 생각하신 것이 아니야.
보통 우리 상식으로는 부처님께서는 ‘일체 중생을 죄가 많고, 생각하는 것이 순 망상(妄想)만 들끓고 망령(妄靈)된 경계에 빠져있는 그러한 불쌍한 중생들이라’ 이렇게 생각하실 것 같은데, 실지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들에게 망(妄)이 있다고 그렇게 보시지를 않아.

그러면 부처님 자신은 어떻다고 생각하신가?
‘부처님은 깨달아서 진리와 하나가 된 그러한 경지’라고 우리 생각에는 그럴 것 같은데,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그래가지고 이 세상에 출현을 하셨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부처님 자신은 남이 없다, 무생(無生). 남이 없어.

일체에는 망이 없고, 당신은 남이 없는데 무엇을 제도할 중생이 어디가 있겠느냐 그말이여.

그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무슨 노래를 부르시냐 하면은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 사람 사람이 본래 태평(太平)하다’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로구나!” 이렇게 노래를 부르셨을 것이다.

사람 사람이 다 본래부터 태평해. 깨달을 바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빠져야 할 지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도할 중생이 있는 것도 아니요. 제도할 부처님이 있는 것도 아니요. 제도 받을 중생이 있는 것이 아니여.
얼굴이야 잘생겼거나 못생겼거나, 귀족이거나 천민이거나, 부자거나 가난한 사람이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머리가 좋거나 나쁘거나, 본래 원만구족(圓滿具足)해서 더 보탤 것도 없고 더 덜어낼 것도 없어.
원만구족한 본래 태평한 존재들이다 그말이여.

납월팔일(臘月八日)을 맞이해서 우리는 본래 부처님과 조금도 모자랄 것도 없이 원만구족한 그러한 존재라고 하는 긍지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어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을까요?
오장육부와 사지백체(四肢百體)는 성한 데가 없이 항상 아프고 괴롭고, 이 세상에 나서 늙어서 병들어 가지고 결국은 희로애락과 흥망성쇠(興亡盛衰)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그리고 버티다, 버티다 못해서 왜 죽어갈까요?
죽으면 과연 어느 곳에 갈까요? 천당에 아니면 지옥에 갈 것이다.

이러한 고달픈 생(生)이, 유랑(流浪)이 무량겁(無量劫)으로부터 무량겁으로 이어진다고 우리는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깨닫지 못한 분상(分上)에는 분명히 그럴 것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깨달은 분상에는 지옥도 천당도 있다면 일념지간(一念之間)에 있는 것이여. 없다면 없는 것이지만 있다면 일념지간에 있어.
무량겁도 일념 속에 들어있고, 그 일념 간에 있는 천당, 일념 속에 있는 지옥, 그것만 해결해 버리면 무량겁의 생사고(生死苦)도 바로 해탈(解脫)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뭣고?’ 그래서 일념 단속(團束)을 해야 해.
일념 단속 함으로 해서 일념 속에서 천당·지옥을 타파해 버려. 일념 속에서 영원한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하는 것입니다.

기사년 납월 8일을 기해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또 이 산승(山僧)이 여러 사부대중, 여러 도반들을 향해서 간곡히 정진하실 것을 당부하는 것입니다.(42분3초~51분11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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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외외낙락정나라~’ ; [태고집(太古集)] (雪栖 편, 김달진 역주 | 세계사) p229 '석가 출산상(釋迦出山相)' 참고.
*(게송) ‘약야산중봉자기(若也山中逢子期)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 ;
[참고] 송담스님(No.098)—79년 입춘 법회(79.02.04)에서.

 

만약 산중에서 자기(子期)를 만났다면(若也山中逢子期)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리요. 어찌 누런 이파리를 가지고 산 아래로 내려갈 것이냐.

자기(子期)라고 하는 사람은 성(姓)은 ‘쇠북 종(鍾)자’ 종씨인데, 종자기(鍾子期)라고 하는 사람은 저 중국 고대 요임금 당시 거문고의 이치, 음악의 이치에 달통한 사람입니다.

그때 백아(伯牙)라고 하는 사람이 대단히 거문고를 잘 탔습니다.
백아라고 하는 사람은 거문고 타기로 아주 통달한 사람인데, 백아라고 하는 사람이 거문고를 뜯으면 너무 거문고를 잘 뜯고 신묘한 경지에 이르러서 보통 사람은 그 백아의 거문고 타는 것을 능히 감상을 할 줄 모릅니다.

오직 종자기(鍾子期)라고 하는 사람만이 그 백아(伯牙)의 거문고 타는 것을 듣고서, ‘아! 지금 백아라고 하는 사람이 유유히 흐르는 큰 강물을 생각하면서 거문고를 뜯고 있구나.’
또 어쩐 때는 지금 저 백아가 타는 거문고 소리를 들어보매, ‘높고 높은 태산준령을 생각하면서 거문고를 뜯고 있구나.’

그렇게 종자기라고 하는 사람은 백아의 거문고 타는 소리를 듣고, 백아의 마음 소리를 능히 알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종자기라고 하는 사람이 천명(天命)을 다하여 죽게 되자 백아라고 하는 사람은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삼천년 전에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탄생을 하셔서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출가하셔서 대도를 성취하신 다음 80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실 때까지 49년 동안을 팔만사천 묘법(妙法)을 설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일찍이 종자기와 같은 그러한 사람을 만났다면 어찌 49년 동안이라고 하는 장구한 세월동안 그러한 많은 방편설(方便說)을 설할 까닭이 없었을 것이다.

자기(子期)와 같은 사람을 산중에서 만약 만났다면 어찌 누른 이파리을 가지고 산 아래로 내려갈 것이냐?
누른 잎이라 하는 것은 은행잎이나 단풍잎 같은 그런 아주 예쁘고 고운 단풍잎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린애들을 달랠 때에 노란 또는 빨간 단풍잎을 주면서 ‘여기 있다. 돈 여기 있다. 돈’ 이렇게 우리는 어린애들을 곧잘 달래는 것입니다.

방편설이라고 하는 것은 필요 불가결(不可缺)한 것입니다. 꼭 필요한 것입니다.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린애를 달랠 때에 사탕 같은 것이 있으면 다디단 사탕을 입에다 넣어 줘서 달래기도 하고, 사탕이 없으면 무슨 노란 이파리나 그렇지 아니하면 무슨 조그만한 돌멩이라도 집어 줘야 할 것이고,
그저 무슨 장난감 같은 것도 집어 줘서 잠시라도 어린애의 울음을 달래는 경우를 엄마들은 얼마든지 경험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방편,
또 동지 법회, 입춘 법회, 칠성 법회, 사월 초파일 관등법회, 이런 법회가 노란 이파리를 가지고 어린애 울음을 달래는,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방편설, 이것이 모두 일맥상통(一脈相通)한 점이 있는 것입니다.

마침내 노란 이파리만 가지고 달래 봤자 어린애는 잠깐 울음을 그쳤을 뿐 배가 고픈 허기(虛飢)는 완전히 가시질 않은 것입니다. 다시 또 울음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에서는 일양(一樣)으로 노란 이파리만 가지고 여러분의 울음을 달래는데 그치지 아니하고, 정말 입에 넣어서 먹으면 배가 부를 수 있는 영양제를 여러분에게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1분3초~7분52초)
*제도(濟度 건널 제, 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구제(救濟 건질 구, 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 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함령(含靈)• 함식(含識)• 군생(群生)• 군맹(群萌)•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 ; 욕설이나 비난의 말 따위, 좋지 않은 말을 할 때, 강조하기 위하여 ‘몹시’ 또는 ‘아주’의 뜻으로 쓰는 말.
*망상(妄想 망녕될 망, 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망령(妄靈) ; 늙거나 정신이 흐려서 말이나 행동이 정상을 벗어남. 또는 그런 상태.
*무생(無生) ; ①생멸(生滅)을 벗어난 절대의 진리. 생멸(生滅)이 없는 도리. 곧 불생불멸하는 진여법성(眞如法性)을 알고 거기 안주하여 움직이지 아니함. 무생법인(無生法忍).
②아라한(阿羅漢) 또는 열반(涅槃)의 번역어. 번뇌를 없앤 경지를 말함.
*태평(太平) ; ①마음에 아무 근심 걱정이 없음. ②나라가 안정되어 아무 걱정 없고 평안함.
*원만구족(圓滿具足)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을 이르는 말.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35세의 12월 8일 샛별이 뜰 무렵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하(河)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불도(佛道)를 이루던 날.
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납팔(臘八)이라고 줄여 쓰기도 한다. 일명 성도재일(成道齋日).
*생로병사(生老病死) ; 중생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4가지 고통. 곧,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
*사지백체(四肢百體) ; 몸의 전체.
*흥망성쇠(興亡盛衰) ; 흥하고 망함과 성하고 쇠함. 곧 어떤 사물·현상이 생겨나서 소멸하는 전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유랑(流浪 흐를·떠돌 류/물결·떠돌아다닐 랑) ; 일정한 거처가 없이 떠돌아다님.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해탈(解脫) ;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해탈도(解脫道) ;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증득(證得) ;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함.

Posted by 닥공닥정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몽산화상시고원상인(蒙山和尙示古原上人) (2/5) 몽산화상이 고원상인에게 주신 말씀.
 
**전강선사(No.256)—몽산 01-2. 몽산시 고원상인(2) (임자72.06.11.새벽)
 
(1) 약 20분.
(2) 약 21분.
 
(1)------------------
 
무심운수출(無心雲峀出)허니  유의조지환(有意鳥知還)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노화월백처(蘆花月白處)에  초택창랑사(楚澤滄浪詞)니라
나무~아미타불~
 
화두가—의단독로(疑團獨露)한 화두, 활구 화두, 활구참선, 그 화두가 독로해서, 의단이 독로해서, 필경에 그만 일체처에 독로해서, 뭐 사이가 있나?
무슨 조끔도 빈틈이 없이 화두 의단이 독로되어 그때는 필경 깨달은 수밖에 없으니, 그대로 있들 않거든.
 
필경 그건 깨달라. 불과해야 일언지하(一言之下)인데 뭐.
더군다나 그저 일언지하에, 그저 사흘만에, 7일만에 확 깨달라 버리는 거 그것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이여.
 
뭣을 알아서, 봐서, 생각해서 뭐 그렇게 그런 것이 아니여. 그래 의심(疑心)을 갖춰라.

 

무심(無心)중에 그만 산을 보다가도 툭, 뭘 보다가도 툭, 새란 놈이 돌아와 지저거려도 깨달네, 새소리에도.

 

월백노화처(月白蘆花處)에, 달 떠올라와 노화처(蘆花處)에, 그 달 모도 갈대꽃 사이에 달 비친 데에 툭 깨달라.

그래 초택창랑사(楚澤滄浪詞)라. 일 마쳐 버린다 그말이여.

 

 

이렇게 어제 아침에는 주작(做作) 때문에 안된 것을 억지로,

발심도 안되고, 신심도 갖추지 못하고, 분심도 없고, 그저 사람이면 ‘그저 사람인가 보다, 살다 죽는가 보다’

 

죽는 거 누가 아나? 당장에 그만 곧 숨 떨어질 지경이 앞에 있지마는 그런 것조차 생각할, 그런 것까지도 생각할 겨를도 없는 것이고, ‘이렇게 그저 인생이 몸 받아 나와서 이렇게 사는 것이로구나’

 

‘그 참선이나 좀 어디 선방(禪房)이나 좀 들어가 볼까?’

삼동(三冬)에 선방에 들어와서 그날그날 그저 하루하루 그저 이틀, 남 따라서 그저 그럭저럭 그럭저럭 그렇게 지내는 것, 그것은 발심(發心)을 못한 관계여.

 

참으로 발심을 해서 꼭 할 것이 참선(參禪)뿐이다. 미룰 수도 없고.

언제 시간을 미뤄? 언제 내일 해? 오늘은 이것 해 놓고 내일 해? 금년만 이것 해 놓고 명년부터 해? 그런 식으로는 틀린 거여.

 

직하(直下)에 발심을 해서—한번 그 시간에 발심했거든, 마음을 발했거든, 그때부터 해야 하는 것이여.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꼭 할 것이 참선 밖에는 없어. 그렇지 않어?

 

깨달지 못하면은 그 깨달지 못한 곳에서 그놈의 중생고(衆生苦)를 어떻게 할거여?

우리가 지금 깨달지 못하고 이 몸 뒤집어쓰고 있지만은 그것 편안한 거 아니여.

그 조끔 편안하고 밥 먹고 배부르니까, 아들도 있고 딸도 있고 뭐 그도 어쩌고 어쩌고 이래 있으니까,

뭐 그것이 인생만족, 이만 했으면 족해? 소용없어. 그런 것을 믿고 앉어서, 참선은 않고 그럭저럭 소용없어.

 

발심이 안됐기 때문에 혼침(昏沈) 도거(掉擧)가 개입작득(皆入作得)을 해.

잠 아니면 망상, 그놈의 것 밖에는 없어.

 

어디 참선을 발심을 했어야지. 발심 발심 하니까 어떻게 발심인가?

발심을 못했으니 도거와 혼침뿐이여. 그놈 안 들어오면 할 것이 없어.

앉었으나 섰으나 뭐 그밖에는 들어온 것이 없어. 그래서 그날그날, 그날그날, 그날도 그날, 이렇게 해서 일생 보내 버리는 것이여.

 

발심을 척! 해 가지고는 공부를 한바탕 하고 앉었어 보아라.

그 망상 시간, 혼침 잠자는 시간, 그놈이—이것 참 얼마나 원통하고 그까짓 짓을 하고 앉었는가?

그까짓 짓을 할라면 뭣 할라고 선방에 앉었어? 맹렬하게 다루어라.

 

그 ‘이뭣고?’ 하나, 세상에 ‘이뭣고?’가 ‘나’인데, 내가 나를 그렇게도 몰라. ‘이뭣고?’를 그렇게도 몰라.

부처님이 출세하셔서 그렇게까지 다 말씀을 해 줘도 몰라.

 

그 숭악한 못된 애착, 세상에 모도 그 인연 애착, 그까짓 것이 도대체 뭣이냐 그말이여.

애착 다 끊어버리고 이렇게 들어와서 선방에 와 앉았음에 한바탕 참선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참선을 하는 데는 발심이 그놈이 되어야 하지. 발심도 되지 않고 앉었으니 되어?

발심이 없기 때문에 분심(憤心)도 없고, 분한 마음—나를 내가 알지를 못하고 산다는 것이 뭣이여? 분한 마음뿐이지. 그놈 분한 마음.

그 분한 마음이 없으니 뭐 신심(信心)인들 있어? 콱 믿는 마음인들 어디 있어?

 

첫째, 발심을 해서 화두를 들고 ‘이뭣고?’를 들고, 그 하는 시간을 꼭 일념(一念)을 다루어라.

화두 일념 ‘이뭣고?’ 고놈 하나, 고놈을 다스려 ‘이뭣고?’를 자꾸 계속 해.

 

‘이뭣고?’ 그놈이 없어지기 전에, 도망가기 전에, 그 뒤에 ‘이뭣고?’를 거다가 딱 때려 붙여. 또 때려 붙이고 또 때려 붙이고. 그놈이 일념이 계속해서, 일념이 연속해서 끊어지지 않게 해 나가는 것이여.

 

‘하루를 그날 하루를 공부를 잘해라. 하루 동안을 그놈을 잘해라. 또 내일 하루를 또 다시 더 잘해라’

그럴 것 없어. 하루 동안, 하루 동안 그거 너무 늘어져서 못써.

 

일념 일념을 단속해라.

‘이뭣고?’ 하나 했거든 그 뒷 ‘이뭣고?’가 더 분명하게 때려 붙여야 한다.

‘이뭣고? 대체 이뭣고?’ 아! 이뭣고 그놈이 게을지 않게 틈이 없이 거다 붙여 다루어 해 나갈 것 같으면은 그게 곧 의단독로(疑團獨露) 아닌가? 그 타성일편(打成一片) 아닌가?

 

그놈이 계속해 나갈 것 같으면은 하루가 뭣이여, 이틀이 뭣이며, 일년도 그만 계속해 나갈 수 있는 것이고.

 

그놈 하나를 단속 못하고, 그만 한번 하다가는 어디로 도망가 버리고는, 그만 망상심 그 못된 번뇌 거기 쳐박혀 가지고는 그만 몇 시간씩 지내간다. 화두 하는 학자가 이리하여 되어?

 

맨 그래서 혼침(昏沈) 도거(掉擧) 그놈이 개입작득(皆入作得)해 버려. 고놈 생활해 버려.

종일 가야 살림살이가 그놈의 것 뿐이여. 잠 아니면 망상, 망상 아니면 별놈의 생각 다 짓고 앉었다 그말이여.

 

갱요좌득단정(更要坐得端正)해라.

공부할 때에도 아무 때나 앉지 말고—그냥 픽 들어와 앉어서 다리 쭉 뻗고 앉었던지, 허리를 굽히고 그냥 앉던지, 고개를 그만 숙이고 앉던지, 그것 벌써 참선하는 사람 아니여. 좌선(坐禪)하는 사람 아니여.

 

좌선하는 사람은 좌(坐)부터 단정(端正)해라. 단정하게 깨끗이 앉어라.

가부좌(跏趺坐)를 하고, 금강권(金剛拳)을 쥐고 하는 법식에 그런 건 너무 필요 없어.

금강권 쥐고, 무슨 다리 가부좌하고 드리(마구) 앉었다고 다리만 점점 그만 끊어질 것 같지, 그거 그만두고.

 

단정히 앉을 수가 있지 않는가?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허드래도 단정히 앉을 수가 있는 것이고.

딱! 앉어서 어쨌든지 수기척량(竪起脊梁)해라. 척량(脊梁)은 펴라.

 

이거 순전히 참선해 나가는 거 얘기해 주는 거여. 뭐 다른 법문 아니여. 선객(禪客)들이 참선하는데 참선 법문해 주는 거지. 무슨 다른 법문이 있어?

 

좌득단정(坐得端正)해라. 좌를 단정히 하고, 척량(脊梁)은 세워. 등줄기가 굽으면 안되니까, 이걸 세워.

 

딱! 세우고는 앉어서 첫째 ‘이뭣고?’를 해.

화두(話頭)—‘판치생모(板齒生毛)’면 ‘판치생모’, ‘이뭣고?’면 ‘이뭣고?’ 화두를 탁! 챙긴다 그말이여. 그게 첫 조건이여. 그럴 거 아닌가?

 

좌(坐)만 단정히 앉었다고 뭔 소용이 있나? 허리만 굽히지 않는다고 무슨 소용이 있나? 좌득단정도 소용없고, 허리를 척량을 세운다고 소용없어.

 

수기척량(竪起脊梁)을 하고, 척량을 세우고 좌(坐)를 단정히 앉는 것은 ‘이뭣고?’하나 하자는 것이여. 목적이 ‘이뭣고?’여. 참선 화두여.

화두 하나를 역력(歷歷)하게 거각(擧却)을 해라. 그놈을 추켜들어 거각을 해라.

 

그러면은 수마(睡魔)가 어디서 와? ‘이뭣고?’가 그렇게 분명한데 어디서 와? 잠 그놈이 어디서 오냐 그말이여.

발심도 없고, 신심도 없고, 분심도 없고, 공연히 들어와서 남의 시비나 하고, 그러고 왔으니까 그렇지. 그리 해 온 사람이니 그밖에는 올 것 없지.

 

앉으면 잠이나 오고, 망상이나 들어오고, 남은 참선하지마는 어디가 참선한 체 하고 앉아서 망상 번뇌 모도 고런 것만 분석 따지고 앉었지.

이까짓 놈의 경계, 이까짓 놈의 짓을 할라고 들어왔나? 선방에 잠이나 졸고 번뇌 망상이나 할라고 들어왔나?

 

거기서 망상이 들어오던지, 혼침이 들어오던지, 무엇이 오던지, 통(전혀) 고까짓 것을 걱정 근심도 하지 말어라. ‘이뭣고?’만 챙겨라. 오직 ‘이뭣고?‘ ‘시심마(是甚麽)오, 이뭣고?’ 그저 ‘이뭣고?’만.

 

그저 무엇이 올라오든지 말든지 그까짓 것 통 불고(顧)해 버리고,

염기(念起)를 불파(不怕)하고—무슨 망상 일어나는 놈을 두려워하지 말고, 유공각지(唯恐覺遲)니라—그저 이건 ‘이뭣고?’ 깨달으라는 것이여.

 

‘이뭣고?’ 아니면은 ‘판치생모’ 다 배운 대로.

이놈 쪼끔 하다가 또 안된다고 또 저놈 또 쪼끔 하고, 또 저놈 하다가 안된다고 이놈 쪼끔 하고. 그건 화두 아니여. 되들 안 해. 그런 법 없어.

 

똑같은 거니까. 하나 딱! 들거들랑 고놈 하나, 그 화두 일념 일심, 그 화두 하나, 그 참 소중한 거여.

 

한 생각씩 꼭 한 생각씩, 그 첫 생각 그놈이 끊어지기 전에 연속(續)을 해. 뒤 연속을 해. 뒷 생각을 척! 거다 때려 붙이고 때려 붙이고.

‘이뭣고?’ 그놈이 분명할 때 더욱 ‘이뭣고?’. ‘이뭣고?’가 더욱 더 ‘이뭣고?’.

 

그것 해서 그 틈 없이, 사이 없이 그만 해 나갈 것 같으면, 한 시간이 두 시간 되고, 하루 되고 이틀 되고 기맥힌 것이여. 화두정락(話頭定樂)이라니! 화두가 들어와서 그 정락(定樂)! 참 좋다.

 

세상에, 견성(見性)하기를 목적하는 것이 아니라, ‘이뭣고?’ 하나 의단독로(疑團獨露)를 목적해라.(처음~20분4초)

 

 

 

 

 

(2)------------------

 

꺼떡허면 건방지게 들어와서 ‘법담(法談)한다’고 ‘대답한다’고.

당장 쫓아내 버린다 내가. 했어야지! 그걸 옳게 했으면은 왜?

(견성)한 건 벌써 알어. 두말 할 것도 없어. 답할 것도 없고 벌써 알어.

 

그것 못쓴 거여. 그 거짓 견성. 그 뭐할라고, 벌써 자기는 알면서도 그따구 짓 하거든. 천하에 건방지고 못쓸 것이 그거여.

벼락이지. 이번에 그 쫓겨난 아이, 가서 기맥힌 또 편지를 했구만. ‘다시는 그런 버릇없이, 큰스님을 여의고 어디가 하겠습니까’하고 ‘다시 용서해 달라’고.

용서가 무엇이 용서여? 용서할 것이 따로 있지. 용서가 뭣이 용서여.

 

똑 그놈의 데서 올라온 것들은 다 그 모양이여! 웬일이냐 그말이여. 불교가 이렇게 되다가는 큰일나 버리겠어.

“양말 한 짝입니다” 이따구 소리나 하고, 아 이런 놈의 응..

 

견성 벌써 알어. 말할 것 없어.

 

재각안피중(纔覺眼皮重)이다.

이렇게 다루어 갈 것 같으면은—그 ‘이뭣고?’를 하던지, ‘판치생모’를 하던지, 화두를 이렇게만 똑 다루어서 해 나갈 것 같으면은, 화두뿐이여. 아무리 해도 화두뿐이여.

 

그러다가 없을 수가 없어. 점점 그 무기(無記)가 들어와서 잠이 들어오던지, 산란이 일어나든지 하면 조끔 일어나. 그때는 좀 일어나. 좌(坐)에만 착(着)하고 앉었지를 말고 일어나.

한번 척 일어나서 밖에 와서 바람도 쐬고 하되, 화두를 추켜들고 밖에 나온 사람은 그저 벌써 보면 알아.

 

어디를 가고 오던지 전체가 화두가 그대로 딱 벌써—화두가 그 방에서 애써 하든 그 화두 경계가 도망가지 않고 고대로 있어 가지고 나와서, 걸음을 걷고 가고오는 것이 환해.

아무 데나 왔다갔다 왔다갔다 쓰잘 데 없이 이러지를 말고, 어디 가서 한쪽에 조용히 걸음을 걷고 조용히 경행(經行)을 해가면서 잠을 깨 가지고 그 경계(境界)를 깨끗하게 맨들어 가지고 다시 얼른 들어와.

 

너무 그렇게 오래 자리를 비워 놔두면 되아? 항상 그 자리가 참 중(重)하다. 나 앉어 공부한 자리가 그렇게 중하다.

꼭 비유를 하자면은 암탉이란 놈이 알 나 가지고는 알 품고 있듯 해야 해. 그 닭 짐승인들, 고놈의 것이 그 제 새끼를 만들기 위해서 알 그놈, 그 껍데기 속에 든 것, 그거 품고 있는 것 좀 봐.

 

한 이십 여일, 스무 닷새나, 닭 그거 그 방정맞은 것이 한시도—그저 뭐 주워먹기도 하고, 돌아다니면서 그저 헤비고 모도—그 일순간도 참지 못하고 그런 것이,

알만 낳아 놓으면은 고놈을 품고 이십 여일 동안, 스무 닷새 동안, 근 한달 동안을 가만히 앉었네. 닭 같은 것도 보란 말이여. 그래 가지고 거그서 새끼를 만든다 그말이여. 

 

소위 중생이 성불(成佛)하는 법이, 나를 내가 깨치는 법이, 그렇게 쉽고 언하대오(言下大悟)도 있고 하지마는,

그렇게 언하대오도 그 대오가 얼마나 참말로 그 정성스러운 언하대오며, 사흘을 한다 하드래도 사흘이 얼마나 참 기가 맥힌 사흘인가?

 

뻘로 그렇게 될 줄 알어? 아무 때나 될 줄 알어?

그 모도 못된 망념(妄念)이 섞여 가지고는 화두는 그 가운데 한번 쬐끔 있다가 어디로 간 곳도 없고, 번뇌 망념만 꽉 들이차 가지고 앉어서 그 될 것인가 그게?

 

닭이란 놈이 고놈 딱 꼬누고 있을 때, 인자 다 되어가면은 알속에서 그 무슨 동정이 있대야.

따르르.. 딸그르르 소리가 나던지, 뭣이 하나 나면 고놈을 듣고 앉었다가 고걸 톡 쪼사 주어야 입이 톡 터져. 그래 가지고 알을 새끼를 깐다 그말이여.

 

벌레란 놈이, 굼벵이 같은 것이 거름 속 같은 데 가서, 땅속 같은 데 묻혀 있어도,

그놈이 굼벵이 되어 가지고 고거 인자 제 몸뚱이를 둘러싸 가지고 가만 두어야, 가만히 그놈 누가 건들도 안하고—그 건들어 놓으면 못써. 안되어버려.

가만 두어야, 그 딱 몇 달 차면은 아! 고놈이 그 속에서 되어 가지고는 나비가 되어 나온다 그말이여.

 

우리 참선 학자가 참선 화두하는 법이 무엇이 섞여? 무슨 그 잡것이 섞여? 잡독(雜毒)이 입심(入心)해 가지고는 모도 번뇌 망상으로 되아?

생각해 봐! 지극히 화두 한번 해 봐야지.

 

내가 돌아가신 큰스님네 말씀도 많이 듣고, 돌아가신 금오 스님도 그 선지식, 우리 나라에 유명한 이인데,

금오 스님도 당신 몸뚱이에 그와 같은 중풍 같은 거—어떻게 해 그 몸뚱이로 난 거야, 색상(色相)으로 난 병이야, 어떻게 해 도인(道人)인들.

 

‘도인이 저런 중풍 나고 그래?’ 고런 놈의 소리를 하지, 고런 멍청하고 미련한 게 다 있어.

몸뚱이라 하는 것은 별 수가 없어. 밥 먹고 옷 입고 사는 것 똑같으고 병난 것 똑같은 건데,

부처님은 왜 병이 나 돌아가셨나? 색신(色身)을 받어 나면 별 수 없는 것이지.

 

금오 스님 같은 이도 그 병이 들어 가지고 앓고 있다가 그 병중에 하는 말이 “세상에 내가 화두 한번 원 없이—견성 보다도 화두 한번 원 없이, 정진 한번 원 없이 하지 못하고 죽는 것이 한(恨)이다” 내가 그 말을 들었어.

 

이 몸뚱이 건강할 때, 이만 할 때, 이만큼 그래도 이 몸뚱이 가지고 이만 했으면 살지.

거기서 화두 한번 잘해!

 

 

화두에 그만 의심이 뭉쳐서 한덩어리 되어서—무엇이 뭉칠 것인가? 어째 화두가 뭉친다 하노?

 

일체 중생의 번뇌렴이, 중생의 번뇌가 한정이 없으니까. 뭐 구백생멸(九百生滅)이라고 하지만 구백생멸뿐인가? 한정이 없어. 별놈의 것이 다 일어나.

 

고런 놈의 그 먼지 같은, 가루 같은 그 번뇌 망념 그놈이 ‘이뭣고?’만 추켜들면은 전부 한덩어리 돼.

고놈이 없어져 버리니까. 그거 어디 있나? 그거 어디가 있어 그것이?

 

알 수 없는 의심 하나, 그 의심이라 해. 의단독로. 알 수 없는 놈 하나가 딱 하나.

알 수 없는 것이—없는 것 본래 없어 버리면 그만인데—알 수 없는 놈 하나가 있거든.

 

그 천하에 보물을, 그 내 보물 고놈 하나 없으면 나는 그만 죽는 건데 그 보물을 내가 잊었으니,

그놈을 도둑놈한테 잊은 게 아니고, 어디다가 두었다가 내가 둔 줄을 몰라 잊었으니, 어디다가 두었노? 그놈 어디다가 두었노? ‘어디다가 둔 곳을 찾는 거’와 ‘이뭣고?’가 마찬가지니까.

 

이뭣고 이놈이 내 몸뚱이 속에 있어서, 이 몸 가운데 있어서 이 몸을 마음대로 끌고 댕기고, 이 몸을 마음대로 부리고 댕기고, 앞세우고 댕기고, 온통 고놈이 들어서 하지, 뭐 이 몸뚱이가 하나?

 

그놈을 모른다 이말이여, 그놈을. 그놈의 낯반대기도 모르고, 코빼기도 모르고, 눈깔도 모르고, 모른다 그말이여.

 

그놈이 뭐냐 말이여? 도대체 ‘이’한 놈, 이놈이 뭐냔 말이여?

의단이, 의단독로가 안돼? ‘오래오래 해서 3년이나 10년이나 해서 그런 의단이 오리라’ 그것 소용없어. 직하에 의단독로가 되는 거여.

 

어쩌, 화두해 나가는 법을 그렇게 일러주어도 안돼? 안될 이치가 있냐 이말이여.

 

세상에 이놈 하나 안해 놓고는 제가 낯반대기 들고 사람이라고, 사람 뭐 지랄 사람,

사람이면 뭐해? 금생에 코빼기 사람됐다고 그까짓 것, 그 낯반대기 바꿀 때는 벼락인데 뭐.

 

이렇게 의심을 잡드리를 해 나가거라.

그래서 밖에 수십 보 거닐다가 그 청정하고 깨끗할 때가—인자 완전히 다 망상도 그런 것도 없이 화두만 또 더, 앉아서 하던 화두가 거닐 때 더 와서,

따악 그놈이 항상 있는 데 가서, 내 제하일촌(臍下一寸)에, 배꼽 단전 밑에 1촌(寸)에 가서 의심이 탁 박혀서 있거들랑.

 

그렇게 잘 안되어서 하고, 만약 그래도 그놈 잠이 들입다 와서 게을받아서, 그런 사람이 있어.

그놈의 잠이 자꾸 오고, 몸이 게을고, 그만 하기 싫고, 발심이 안되고 이러면 안돼. 그건 천성(天性)이 그 지경 되어서는 틀려.

 

이렇게 정신을 차려서 그놈이 물러간다.

물러가거들랑 화두를 인자 그때 들어와서는 전제(全提)로 한번 해라. 단제(單提)로 말고, 전제로 한번 해라.

 

『세상에, 일체처에 도무지 요놈이 일체처에 도무지 밥 먹고 옷 입고, 가고 오고 그저 무슨 뭐,

아! 이런 놈이 이 소소(昭昭)한 요놈이 분명히 이놈인데 ‘이놈이 뭣꼬?’ ‘시심마(是甚麽)오? 이뭣고?’』

전제로 한번, 전제로 그놈을 주욱 끄집어 가지고 한번 해.

 

한번 해 가지고는 인자 의심이 다시 일어나거들랑 ‘시심마(是甚麽)오? 이뭣고?’만 해. 또 늘 전제를 말고.

 

그러면 수마(睡魔) 그 같은 놈의 것이 안 물러갈 까닭이 있나? 수마(睡魔) 그까짓 놈의 것은 그건 마구니인데,

 

여지기량(汝之技倆)은 유진(有盡)이여. 네 힘은 다함이 있어. 마구니 네 까짓 것 밖에서 들어온 것은 네 다함이 있어. 네가 못 들어올 때가 있고, 안될 때가 있고, 내게 못 와!

내가 아지불채무궁(我之不采無窮)인데, 내가 네 까짓 것 간섭 안 하는데, 잠 네 까짓 걸 내가 환영 않는데, 네 까짓 거 어디로 들어와?

 

의심 ‘이뭣고?’가 있는데, ‘이뭣고?’가 분명한데 어디가 그놈이 들어서냐 그말이여. 

 

가여상좌(可如常坐)하야, 그렇게 턱 물리쳐 버리고는 항상 가(可)하게 상좌(常坐)를 해라.

똑 그대로 여법(如法)히 그저 법다이 또. 삐딱하게 앉지 말고 아까 마냥으로 좌(坐)를 단정히 또 앉어라.

 

그렇게 한바탕 해서도 또 안되거들랑, 그래도 또 금방 앉으면 또 잠이 들어와서 또 마찬가지로 되거들랑,

약불퇴(若不退)면, 물러가지 않고 그놈의 경계가 잠이 오든지, 망상이 들어오든지, 그만 어디 놀러가고 싶던지 이런 망상이 퍼일어나거들랑,

 

불가불 어쩔 수 없다. 하지(下地)해서, 저런 어디 따로 딱 나와서 이런 본 데라도 나와서 거닐되, 왔다갔다 왔다갔다 여 갔다 저 갔다 그렇게 거닐지를 말고, 왔다갔다한 장소를 지정을 딱 해 놓고 거 좀 걸어라.

좀 시간이 있게 걸어. 한 10분이든지 20분이든지 걸어라.

 

오직 고인(古人)도 안되어서 이렇게 말씀을 해 놓았어. 몽산(蒙山) 스님이 고원상인(古原上人)한테다가 이렇게 해 주었어.

몽산 스님도 그렇게 불교를 반대하다가 들어와서 견성(見性)해 가지고는 허! 보니 이뿐이거든. 세상에 이뿐이니 이렇게 자세히 해 놨어. 글도 잘하고 하니까.

 

(수마가) 점점 물러가지 않거든 달리 하지 말고 가만히 나와서 땅을 정해 놓고 갔다왔다 왔다갔다 이렇게 수십 보(數十歩)를 이렇게 행해라.

그래 수십 보를 해라고 했어! 한 수십 보를, 그 화두를 추켜들고 자꾸 수십 보를 하면 고놈이 인자 물러가.

 

그러거들랑 또 거좌(去坐)해라. 또 와서 또 자리에 앉어. 그 자리를 너무 비우지 말고 앉어야 해.

그 자리가 아깝다 그말이여. 내가 공부하는 그 자리가 오래 비어 있으면 아까와.

그 앉어서 공부하는 자리인데 비어져 있으면 쓰는가? 나 있는 그 자리, 닭 알 품고 앉아있는 그 자리인데.

 

좌선(坐禪)이니깐, 좌선하는 사람이니 나 앉는 그 자리를 또 비우지 말고 와서 앉어.

잠깐 수십 보 하지, 오래 너무 비워놓지 말아라. 

 

안두(眼頭)가 깨끗하고 청명(淸明)해도 돌아댕기면 또 못쓴다 그말이여. 그러거들랑 얼른 들어와서 또 앉어라. 또 거좌(去坐)를 해라.

천만조고화두(千萬照顧話頭)해라. 그래 가지고는 천 번이나 만 번이나 염(念)을 계속해서, 똑 계속해서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계속해서 해라.

 

견성뿐이다, 그것이 견성뿐이여.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뿐이여.

이것이 정법(正法)이여, 이게 참선법(參禪法)이고.

 

날마다 와서 도 닦는 사람, 저 법문 들은 사람들, 밤에는 복잡해서 잘 수가 없으니까 밤에 제일 잘 수 없어서 (낮에) 오라고 하는데, 밤에 와 자고,

낮에는 뭐 아무 데라도 공부할 수 있고, 누워 자는 사람이 기다란하게 누워 자면 자리가 많이 없어지지마는, 앉었는 데는 자리가 많이 생기니까 앉어서는 할 수 있고 한데, 밤에는 복잡할 때 자고, 낮에 오고 뭔 짓을 해.

 

밥 먹는 것을 그 뭐 다 자기네가 싸고 댕기는 것이지, 도 닦는데 뭐 제천(諸天)이 여의식(與衣食)인데.

밥 먹는 것이 없어서 나 (이런 말) 한 것 아니여. 여기 대강 지내도—뭐 식량 떨어지면은 탁발(托鉢) 갈라고 작정 딱 해놔도 탁발 한번도 안 하고—먹고 살아가는데.

 

그 뭐 식량으론 여그 못 있겠다는 거 아니고,

밤에 잘 때에 그 너룹게 방 하나 차지하고 다 활발하게 자든 그 어진 보살님네가 오셨다가 도실(道室)이라고 방이 복잡해서 누워 잘래야 잘 수도 없고, 하! 당초에 너무 그만 복잡하니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어 좁다고 내가 그런 거지.

 

그렇게 날마다 저녁에 왔다 자고 아침 때 가고 그럴라면은 너무 길은 멀고 여비는 많이 들고 그럴 것 없으니까,

그만 에지간만 하면은, 정 그래도 여그 요새 늘 와서는 자니까, 그 잘만 하면은 갔다왔다 할 것 없이 해제도 얼마 안 남고 했으니, 여그 앉어서 공부해. 뭣할라고 갔다왔다 할 것 없어. 그렇게 해. 여기까장.

 

천만 번 화두를 조고(照顧)해라. 천 번이고 만 번이고 화두를 연속해 나가거라.

이렇게 않고는 된 법 없어! 절대 된 법이 없어.

 

이 화두는, 이 활구참선, 활구화두라는 것은, 하다가 말다가—참나무로 바로 그 줄로 나무를 뭐 비빈다?

활 비비듯이 이렇게 해 가지고 드리 비벼대. 막 드리 비벼대면 거그서 불이 나듯이 그래야 되는 법이지,

 

하다 말다, 좀 비비다 말다, 불이 나?

된 법이 없어.

 

이 말을 깊이 깊이 잘 듣고, 들은 대로 여설수행(如說修行)하면 되는 것이지. 꼭 그대로 듣고 그대로 법문 대로 하면 되는 것이지!

안되아? 안되는 것을 지금 이리 고인이 말을 해 놨어?(20분5초~41분16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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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無心雲峀出  有意鳥知還’ ; [청허당집(淸虛堂集)] ‘次李秀才韻(이수재의 운을 차함), 無心雲出峀  有意鳥知還  儒佛雖云一  一忙而一閑’ 참고.

*(게송) ‘蘆花月白處  楚澤滄浪詞’ ; [청허당집(淸虛堂集)] ‘漁翁(어옹), 月白蘆花處  風淸竹葉時  扣舷歌一曲  楚澤滄浪詞’ 참고.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일언지하(一言之下) ; 한마디 말 끝에.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주작(做作 지을 주/지을 작) ; 저절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억지로 지어서 하는 것.
화두를 들 때 무상(無常)을 느껴 발심(發心)을 해서 의심이 끊어지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지 아니하고 의심을 한 번 잠깐하고 또 의심함이 없으면 진심(眞心)으로 의심을 발한 것이 아니고 억지로 한 것이어서 주작이라고 한다.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선실(禪室)과 같은 말. ②‘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삼동(三冬) ; 겨울철의 석 달.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도거(掉舉) : 혼침의 반대인데 산란(亂)이라고도 한다. 정신을 머트럽고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마음작용.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단정하다(端正-- 바를 단/바를 정) ; 옷차림새나 몸가짐 따위가 얌전하고 바르다.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가(跏)’는 ‘발바닥’을 ‘부(趺)’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가 있다.
*금강권(金剛拳) ; 네 손가락으로 엄지손가락을 감싸 쥔 주먹 모양.
*드리 ; ‘마구(아주 세차게, 매우 심하게, 앞뒤를 따지지 않고 아무렇게나 함부로)’의 옛말.
*수기척량(竪起脊梁) ; 척추를 꼿꼿하게 세우다.
*척량(脊梁 등마루 척/대들보 량) ; 등마루의 거죽 부분. *등마루 ; 등골뼈가 있어서 울룩불룩하게 줄진 등의 가운데 부분.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역력(歷歷) ; 훤히 알 수 있게 분명하고 또렷함.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수마(睡魔) ; 참선할 때 어느새 잠이 와 졸음이 쏟아지면 정신 차려 정진하기가 매우 어려우므로 ‘졸음·잠(睡)’을 수마(睡魔)로 일컫는다.
*불고( 아니 불/돌아볼 고) ; 돌아보지 않음.
*불파염기(不怕念起) 유공각지(唯恐覺遲) ; ‘생각이 일어남을 두려워말고 다만 깨달음이 늦을까를 두려워하라’
[참고] 『수심결(修心訣)』 (보조지눌 스님)에서.
或者 不知善惡性空 堅坐不動 捺伏身心 如石壓草 以爲修心 是大惑矣 故云 聲聞 心心斷惑 能斷之心 是賊
 

어떤 사람은 선과 악의 성품이 빈 것임을 알지 못하고, 굳게 앉아 움직이지 않으면서 몸과 마음을 눌러 조복하기를 마치 돌로 풀을 누르듯 하면서 마음을 닦는다고 하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문은 마음마다 미혹을 끊으려 하지만 그 끊으려는 마음이 바로 도적이다.’라고 하셨다.


但諦觀殺盜淫妄 從性而起 起卽無起 當處便寂 何須更斷 所以云  念起 唯恐覺遲 又云 念起卽覺 覺之卽無
 
다만 살생하고 도적질하고 음행하고 거짓말하는 것이 성품으로부터 일어난 것임을 자세히 관조한다면 일어남이 곧 일어남이 없는 것이라, 그 바탕이 고요한데 무엇을 다시 끊을 것인가. 
그러므로 ‘생각이 일어남을 두려워말고 다만 깨달음이 늦을까를 두려워하라.’하셨고 또 ‘생각이 일어나거던 곧 깨달아라. 깨달으면 곧 없어진다.’하셨다.
 
故 悟人分上 雖有客塵煩惱 俱成醍醐 但照惑無本 空華三界 如風卷煙 幻化六塵 如湯消氷
 
그러므로 깨친 사람의 입장에서는 비록 객진번뇌(客塵煩惱)가 있다 해도 그것은 다 제호를 이룬다.
다만 미혹(迷惑)이란 근본이 없는 것임을 관조하여 알면 허공의 꽃과 같은 삼계(三界)가 바람이 연기를 거둠과 같고, 꼭두각시와 같은 육진(六塵)이 마치 끓는 물에 녹는 얼음과 같을 것이다.
 
若能如是念念修習 不忘照顧 定慧等持 則愛惡自然淡薄 悲智自然增明 罪業 自然斷除 功行 自然增進 煩惱盡時
生死卽絶
 
만일 이처럼 생각생각에 닦고 익히며, 마음을 관조하기를 잊지 않고, 선정과 지혜를 평등하게 가지면, 곧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자연히 엷어지고, 자비와 지혜가 자연히 밝게 드러날 것이다. 
죄업이 자연히 없어지고, 공덕이 절로 늘어나서 번뇌가 다할 때에는 생사도 끊어질 것이다.
 
若微細流注永斷 圓覺大智朗然獨存 卽現千百億化身 於十方國中 赴感應機 似月現九霄
影分萬水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快樂無憂 名之爲大覺世尊
 
만약 미세한 번뇌의 흐름(근본 무명, 근본 번뇌)도 영원히 끊어져서 원만히 깨달은 지혜가 홀로 밝게 드러나면 곧 천백억 화신을 나투어 시방세계 중생들의 근기에 감응하게 되니, 그것은 마치 하늘에 높이 뜬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처럼 응용이 무궁하여 인연 있는 중생을 제도하여 쾌락(快樂)해 근심이 없으리니, 이름하여 ‘크게 깨친 세존(大覺世尊)’이라 한다.
---『마음 닦는 길(수심결 강의)』 (지눌 저,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14.  『수심결』 (지유선사 현토역해 | 도서출판 窓) p83~88 참고.
*견성(見性) : 성품을 본다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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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無記) : [범] Avyaksita 선(善)•악(惡)•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경행(經行) ; 산스크리트 cankramana, 팔리어 cankamana의 의역.
대개는 식사를 마친 뒤나 피곤할 때, 혹은 좌선을 하다가 졸음이 오는 경우에 자리에서 일어나 경행을 한다. 현재 우리나라 선방에서는 대개 50분 좌선을 한 뒤 10분 정도 경행을 하는데, 수행자들은 선원 안을 천천히 걸으면서 좌선으로 굳어진 몸을 푼다.
이때에도 계속하여 화두를 참구하기 때문에 좌선에 대비, 행선(行禪)이라고도 한다.
 
경행은 참선의 연장이기도 하지만 보통은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한 산책과 같은 것으로서 〈사분율 四分律〉에 의하면 평상시에 경행을 할 경우, 다음과 같은 이로움이 있다.
첫째, 먼길을 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둘째, 생각을 가라앉힐 수 있다. 셋째, 병을 줄일 수 있다. 넷째, 음식을 소화시켜줄 수 있다. 다섯째, 오랫동안 선정에 머무를 수 있다.
〈대비구삼천위의경 大比丘三千威儀經〉에는 경행을 하기에 적합한 곳으로 다음의 다섯 곳을 들고 있다. 첫째, 인적이 드문 곳, 둘째, 집 앞, 셋째, 강당의 앞, 넷째 탑 아래, 다섯째 건물 아래 등이다.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잡독(雜毒)이 입심(入心)하야 상호혜명(傷乎慧命)이라’ ;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색상(色相) ; 육안(肉眼)으로 볼 수 있는 모든 물질의 형상.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구백생멸(九百生滅) ; 《佛說仁王般若波羅蜜經》 (제2 관공품觀空品) '九十剎那爲一念 一念中一剎那經九百生滅' '90찰나가 한 생각이 되고, 한 생각 가운데 1찰나에 구백생멸이 지난다'
*벼락 ; ①공중 있는 전기  위의 물체 흐르는 전기와의 사이에서 방전()으로 일어나는현상.
몹시 호되게 나무라거나 꾸짖음 비유적으로 이르는 . ③어떤 일이 매우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비유적으로 이르는 .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촌(寸)길이 단위 나타내는 ()  분의  3.33센티미터이다.
*들입다 ; 세차게 마구.
*게을받다 ; ‘게으르다’의 사투리.
*천성(天性)어떤 사람이나 사물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품성.
*전제(全提) ; 전부분이 들고 일어남(全分提起)의 뜻. 본래 그대로 나타냄. 전부를 그대로 나타내 보임. 전체를 모조리 그대로 들고 나오는 것.
‘무자(無字)’ 화두의 경우, 전제는 ‘조주 스님은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단제는 그냥 ‘무~’하고 아무 일체 다른 말은 없이 ‘무~’만 들여다 보는 것. 분류 ‘전제, 단제’ 참고.
*단제(單提) ; 선가에서 어떤 수단 방편을 쓰지 않고 곧장 가리키는 본분의 참뜻.
*소소(昭昭)하다 ; 사리가 밝고 또렷하다.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여지기량(汝之伎倆)은 유진(有盡)이어니와  아지불채시무궁(我之不采是無窮)이다’ ;
‘너의 기량(伎倆)-너의 온갖 수단과 재주는 끝이 있거니와, 내가 취하지 아니한 것은, 너한테 말려들어가지 아니한 것은 시무궁(是無窮)이다-영원이다. 고봉 스님 [선요(禪要)] 示衆(其二)에 천태(天台) 스님의 글로 인용됨.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46)—계해년 하안거해제 법어(1983.07.17)
우리는 걱정을 할 것이 없습니다. 최상승법을 모르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불쌍할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다생(多生)에 숙연(宿緣)이 있어서 최상승법을 만났으므로 다못 한 생각 한 생각을 그렇게 알뜰히 단속만 해 가면 지옥에 떨어져도 겁날 것이 없고, 불구덩이에 빠져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불이 훨훨 타는 가운데에서도 ‘이뭣고?’를 들 것이며, 지옥에 끌려가서도 ‘이뭣고?’를 든다면 마침내 이 최상승법은 모든 마귀(魔鬼)를 이겨내고야만말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힘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지기량(汝之伎倆)은 유진(有盡)이어니와  아지불채시무궁(我之不采是無窮)이로다.
 
여지기량(汝之伎倆)은 유진(有盡)이어니와, 너의 기량(伎倆)-너의 온갖 수단과 재주는 끝이 있거니와, 아지불채(我之不采)는 시무궁(是無窮)이다. 내가 취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한테 끌려들어가지 안해. 너한테 말려들어가지 아니한 것은, 시무궁(是無窮)이다—영원이다 그말이여. 니 멋대로 한번 나를 유혹 할래면 해보고 나를 갖다가 막을라면 막아보고, 니 멋대로 해봐라 그말이여.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팔만사천 모든 경계(境界)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나는 상관이 없다 그말이여. 네가 그럴수록에 나는 오히려 화두를 거각할 따름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이 해제 이후에 정진을 가다듬고 정진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고인(古人) ; 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조고(照顧) ; 반조(返照)와 같은 말. 생각을 돌이켜 참구(參究)한다는 뜻.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제천(諸天)이 여의식(與衣食) ; 진심으로 도를 닦는 수행인에게는 천상에서 의식(衣食)을 준다, 제석천왕이 의식을 준다.
*탁발(托鉢 맡길 탁, 바리때 발) ; 도를 닦는 스님이 경문(經文)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보시를 받음.
수행자의 아집(我執)과 아만(我慢)을 없애고, 동시에 보시하는 이의 복덕을 길러 주는 공덕이 있다고 하여 부처님 생존 당시부터 행하였다.

 

 

Posted by 닥공닥정
무상(無常)2015. 3. 3. 14:33

 

 

§(세등10) 인생 무상, 이미 사형(刑) 언도(言渡)가 내려져 있는 신세 / 몽산 화상 출가 동기 / 생사가 무서운 포구발심(怖懼發心)과 철저한 일념 단속.

 

우리도 지금은 이만큼 건강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지마는 우리에게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이미 사형(刑) 언도(言渡)를 내려져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 집행일만을 아지 못할 뿐이지 우리에게는 언도가 이미 내려져 있는 그러한 신세인 것입니다.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그날이 그 시간이 바로 나의 사형 집행일(行日)인 것입니다.

그러한 무상(無常)한, 사형 언도를 받은 그러한 신세로서 무엇이 급한 일이 있으며, 사형 집행일을 코앞에 두고 있는 죄수가 재산이 걱정이 되겠습니까? 명예 권리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참선을 할라면은 그러헌 생사(生死)가 무서운, ‘무상(無常)이 신속(速)해서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죽음이 돌아온다’고 하는 그런 철저한 발심(發心)이 없고서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선은 지극히 간단하고 쉬운 것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얼마만큼 철저히 발심을 해서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일념 단속(團束)을 철저히 하느냐 못하느냐 여기에 달려 있을 뿐인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10)—병진년 동안거 해제 법어(77.1.17)에서. (세등10)

 

약 11분.

 

 

오늘 삼동 구순 안거(九旬安居)를 마치는 해제일을 맞이해서 방금 고(故) 전강 대종사(田岡大宗師), 우리 세등선원의 조실 스님으로 계시는 전강 대종사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잘 들으신 바와 같이 몽산 화상(蒙山和尙)의 출가 동기와 중국의 고봉 선사(高峰禪師)께서 3년을 기한을 하고 ‘3년 동안 열심히 도를 닦아 가지고 견성(見性)을 못하면 내가 죽어 버리리라’ 이렇게 결심을 하고,

 

3년 동안 밥 먹고 옷 입고, 일체 생활을 다못 화두(話頭) 하나 들고 정진하는 것으로서 3년을 하루같이 애를 썼건마는 조그만큼도 공부가 진행이 없어서, 3년 기한은 머지않았는데 도는 성취를 못해서,

‘이제 나는 죽는 수 밖에는 없구나’ 이렇게 앞이 캄캄하고 그러던 차에 꿈에 화두를 얻어 가지고 일주일 만에 대도를 성취한 고봉 스님의 도를 통하신 설화를 말씀을 해 주시고, 그러는 가운데 무자(無字) 화두, 만법귀일(萬法歸一), 판치생모(板齒生毛) 이러한 화두 드는 법에 관해서 자세히 말씀이 계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참선(參禪)을 해야 하고, 조실 스님께서 법문을 하실 때 마다 참선 이야기를 그렇게 간곡히  말씀을 하셨느냐?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머지않아서 우리는 죽음의 마당을 만나지 않고서는 아니 됩니다.

단명한 사람은 어머니 뱃속에서 죽어서 나오기도 하고, 나오다 죽기도 하고, 10년 또는 30년 많이 살아 봤자 육칠십세 혹은 칠팔십세까지 살다가 죽는 이도 있지마는, 한번 태어난 사람치고 죽지 아니한 사람은 동서고금을 통해서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도 지금은 이만큼 건강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지마는 우리에게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이미 사형(刑) 언도(言渡)를 내려져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 집행일만을 아지 못할 뿐이지 우리에게는 언도가 이미 내려져 있는 그러한 신세인 것입니다.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그날이 그 시간이 바로 나의 사형 집행일(行日)인 것입니다.

 

그러한 무상(無常)한, 사형 언도를 받은 그러한 신세로서 무엇이 급한 일이 있으며, 사형 집행일을 코앞에 두고 있는 죄수가 재산이 걱정이 되겠습니까? 명예 권리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코앞에 ‘죽을 사(死)’자를 딱 써서 붙여 놓은 이 마당에 사소한 일로 시비, 인간으로 태어나서 크고 작은 어떠한 일이라도 ‘죽을 사(死)’자 앞에는 문제가 될 수가 없습니다.

 

도(道)를 닦을라면은 철저히 무상(無常)을 느끼고 깨닫지 아니하고서는 그 사람은 도를 성취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맨 처음에 말씀하신 몽산 화상도 애당초에는 유교 사상(想)에 철저히 젖어 있는 선비였습니다.

 

‘불교’ ‘스님’하면은 진절머리를 내고, 절 근처에는 지나가다가도 보지도 아니하고, 목탁 소리가 나면 귀를 막을 정도로, 중을 보면은 어제 먹은 밥이 거꾸로 넘어올 정도로 비위가 상하고 이렇게 불법(佛法)을 비방하고 반대하던 그런 선비였습니다.

 

그러나 선영(塋)에 성묘(省墓)를 갔다가 오는 길에 비가 쏟아져서 잠깐 절 일주문(一柱門)에서 비를 피하다가, 거기서 절에서 화엄경을 설하는 법문을 한마디 듣고 그리고 집에를 와서 낮잠이 들었다가,

 

꿈에 어떤 노인이 와 가지고 흰 옷을 입힐라다, 검은 옷을 입힐라다 이러는 가운데에 그런 싱갱이를 하고 있자, 어떤 사람이 와 가지고 그 노인을 꾸짖으면서 ‘금방 오늘 절에서 화엄경 법문을 들었는데 그 사람에게 어찌 그런 옷을 입힐 수가 있느냐’고 꾸짖어서 내쫓았습니다.

 

그리고 깨서 보니까, 그 꿈에 본 그 자리를 찾아가 보니 강아지 새끼가—개가 새끼를 나았는데 흰 새끼가 죽어 있었다.

 

이러헌 광경을 보고서 ‘아하, 내가 틀림없이 이 흰 강아지로 태어날 것을 오늘 절 일주문에 비를 피하다가 화엄경 법문을 들으므로 해서 그 공덕으로 강아지 보(報)를 받을 것을 면했구나’하는 것을 깨닫고, 그길로 절에 가서 완산(皖山) 정응선사(正凝禪師)를 만나 가지고 참선법(參禪法)을 배워 그래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했다고 하는 그러한 법문이 계셨습니다.

 

 

참선을 할라면은 그러헌 생사(生死)가 무서운, ‘무상(無常)이 신속(速)해서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죽음이 돌아온다’고 하는 그런 철저한 발심(發心)이 없고서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선은 출가(出家)한 스님만 할 수 있는 것이냐?’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속가(俗家)에 있어도 정말 생사가 두려운 줄 깊이 느끼고, 생활 속에서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생각만을 올바르게 단속 할 줄만 안다면 어디서나 바로 그 자리가 참선하는 도량(道場)이요,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 있는 수도장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머리를 깎고 출가했다 하더라도 무상을 철저히 느끼지 못하고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한량없는 무명(無明), 업식(業識), 번뇌(煩惱), 망상(妄想) 일어나는 놈을 단속할 줄을 모르고, 일어나는 한 생각을 점점 발전시켜서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불을 훨훨 피우며 오욕락(五欲樂)에 사로잡혀서 하루하루를 지낸다고 하면은, 아무리 머리를 깎고 먹물옷을 입고 가사(袈裟)를 몸에 걸쳤을망정 견성성불은 막연하고 요원한 것입니다.

 

참선은 지극히 간단하고 쉬운 것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얼마만큼 철저히 발심을 해서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일념 단속(團束)을 철저히 하느냐 못하느냐 여기에 달려 있을 뿐인 것입니다.(처음~10분4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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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 안거(九旬安居)수행(修行)하는 스님들이 한 곳에 모여 외출을 금지하고 도를 닦는 일을 안거(安居)라 하는데, 하안거(夏安居,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동안거(冬安居, 10월 15일부터 이듬해 1월 15일까지)의 한 안거 기간이 90일 이므로 구순 안거(九旬安居)라 한다.

*전강 선사, 몽산 화상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고봉 선사(高峰禪師) ; 분류 ‘고봉스님(선요)’ 참고.

*견성(見性) : ‘성품(性)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 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무자(無字) 화두, 만법귀일(萬法歸一), 판치생모(板齒生毛)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언도(言渡) ; 선고(宣告). 법정에서 판사가 판결의 결과를 알리는 일. 이로써 재판의 효력이 생김.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진절머리 ; ‘진저리(몹시 귀찮거나 싫증 나서 끔찍할    것)’를 속되게 이르는 말.

*선영(先塋 조상 선,무덤 영) ; 조상의 무덤. 또는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

*성묘(省墓 살필 성,무덤 묘) ; 조상의 산소를 찾아 인사를 하고 산소를 돌봄. 주로 설, 한식(寒食), 추석(秋夕)에 행한다.

*일주문(一柱門) ; 사찰로 들어가는 첫번째 문으로, 한 줄로 세운 기둥 위에 맞배지붕 양식으로 되어 있음.

일심(一心)을 상징한다. 붓다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붓다의 진리를 생각하며 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싱갱이 ; 승강이(서로 자기 주장을 고집하며 옥신각신하는 일).

*보(報) ; 과보(果報),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완산정응(皖山正凝) 선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포구발심(怖懼發心 두려워할 포,두려워할 구,일어날 발,마음 심) : 끝없이 되풀이 되는 육도윤회(六途輪廻)에서 받을 생사(生死)가 정말 무섭구나. 그 생사의 고통을 매우 두려워(怖懼)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출가(出家) : [범] Pravrajita 집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가정 생활을 떠나서 수도와 포교를 전문으로 하기 위하여, 스님이 되는 것을 말함이다.

그러나 몸 출가(身出家)보다도,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등 삼독(三毒)의 불이 늘 붙고 있는 번뇌 망상의 불집에서 뛰어나오는 마음 출가(心出家)를 하여야 한다.

 

[참고] 송담스님 법문(No.353)—88년 신수기도 회향(88.02.26)에서.(3분 21초)
출가(出家)라 하는 말은 말을 바꿔서 말하면 ‘크게 버리는 것’입니다. ‘크게 버리는 것’이 그것이 바로 출가인 것입니다.
 
출가에도 두 가지 뜻이 있고, 재가(在家)에도 두 가지 뜻이 있는데,
몸뚱이는 세속(世俗)에 있으면서 마음은 출가한—청신사(清信士) 청신녀(清信女)로서 비록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그 마음은 모든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을 다 버려 버리고, 청정한 신심으로 불법에 귀의(歸依)해서 항상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그런 분은 바로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출가한 분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또 몸뚱이는 출가했으면서도 마음은 속가(俗家)에 가 있는 그러한 출가도 있습니다.
비록 출가해서 염의(染衣)를 입고 머리는 깎았으되 마음이 완전히 오욕락(五欲樂)을 버리고, 탐진치 삼독을 버리고서 청정한 출가인으로서 사문(沙門)으로서 도를 닦지를 못하고, 몸뚱이는 절에 있으면서 마음속에 세속의 명리와 탐심을 버리지 못했다면 이것은 몸뚱이는 출가했으면서도 마음은 출가를 못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몸뚱이도 세속에 있고, 마음도 완전히 세속의 탐진치 삼독과 오욕락에 빠져서 일생을 그냥 고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바로 몸뚱이도 마음도 세속에 있는 것입니다.
 
몸도 출가하고, 마음도 출가한, 정말 청정한 사문은 바로 그러헌 분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또는 순치황제라든지 역대 조사들은 몸도 출가하고, 마음도 출가한 그러한 모범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많은 거사(居士)라든지, 청신녀 가운데에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그렇게 신심이 돈독해서 정법을 믿고 수행을 쌓아서 도를 얻은 분도 인도나 중국, 한국, 일본에 많이, 널리 이름이 알려지지 안 해서 그렇지, 정말 훌륭한 그런 분들도 많이 계시리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무명(無明) ; 모든 현상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는 근본 번뇌. 사제(四諦)에 대한 무지로서,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 번뇌. 본디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원초적 번뇌.
*업식(業識) ; ①과거에 저지른 미혹한 행위와 말과 생각의 과보로 현재에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작용. ②오의(五意)의 하나. 무명(無明)에 의해 일어나는 그릇된 마음 작용.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함[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이러한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惑-業-苦 三道]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가사(袈裟) ; 스님이 장삼 에,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으로 걸쳐 입는 의().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Posted by 닥공닥정
신심(삼요)2014. 9. 7. 13:17

§(765) (게송)약이색견아~ / 일념(一念)단속 / 삼요(三要) / 생사가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

지금 세계 인구가 56억이라고 하는데 그 많은 인간들이 정말 무상(無常)을 느끼고, 정법을 믿고, '참나'를 깨닫기 위해서 정진하는 사람이 그 몇 분의 일이 되겠습니까?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도반(道伴)들은 그 56억 가운데에서 정말 선택된 도반들이고, 우리에게는 생사해탈(生死解脫)의 길을 향해서 가는 일 밖에는 없습니다.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자기의 본참공안을 놓치지 않고 알뜰히 단속해 나가면 우리는 이 생사 속에 살면서도 영원을 살아가는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 765)—2014(갑오년) 동안거 해제 및 백일기도 회향(02.14) 15분. (용765)


약 15분.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하고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니라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니라
나~무~아~미~타~불~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만약 색상(色相)으로써 나를 보거나, 음성(音聲)으로써 나를 구하면,

시인(是人)은 행사도(行邪道)라,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니라.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함이라, 여래(如來)를 보지 못할 것이다.
금강경(金剛經)에 있는 게송을 읊었습니다.

오늘 갑오년 정월 15일 해제일(解制日)입니다.
석 달 전 10월 15일에 결제(結制)를 해 가지고 오늘 해제 법요식을 갖게 됩니다. 이 자리에는 다 비구∙비구니∙사미∙사미니∙청신사∙청신녀 여러분이 모이셨습니다.

같이 결제 법요식을 갖고 석 달 동안을 조실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열심히 정진(精進)을 해왔습니다.
오늘 석 달이 지난 뒤에 해제일을 맞이해서 우리 도반들이 그 동안에 석 달 동안을 어떻게 정진을 했는가. 서로 얼굴을 마주보기 위해서 이 법당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보고, 귀를 통해서 모든 말을 듣고, 육근(六根)을 통해서 육진(六塵)을 만나면 거기서 육식(六識)이 발동을 하는데,
남자나 여자나, 노인이나 젊은 사람이나,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유식하거나 무식하거나 상관없이 우리는 육근을 통해서—부모 뱃속에서 태어난 이래로 오늘까지—살아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사느냐?’는—각자 그 사람의 신심(信心)과 업(業)에 따라서 살아가겠는데, ‘어떻게 사느냐?’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특히 정법(正法)을 믿고 정진을 하는 사람은 한 생각, 한 생각 눈을 통해서 귀를 통해서 모든 것을 접할 때—그리 따라가면 생사(生死)의 길로 가는 것이고—눈으로 무엇을 보자마자 그 찰나(剎那)에 자기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뭣고~?’ 자기로 돌아오는 사람은 남이 봄에는 똑같이 밥 먹고, 잠자고, 앉고 서고 하지만은 이렇게 정진을 ‘한 생각’한 사람이 깨달음을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진하는 사람은 ‘일념(一念)을 어떻게 단속(團束)하느냐’가 깨달음을 가져 오느냐,
일념단속을 시원치 않게 해 가지고 다시 끝없는 육도(六途)를 윤회(輪廻)하느냐, 거기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잘나나 못나나 다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고, 우주 법계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고, 우리의 마음은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일생을 살아가는데 많이 산 사람은 100살도 살고, 중간쯤 산 사람은 7~80에 가기도 하고, 3~40에 가기도 하고, 어려서 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법을 믿지 않고 그럭저럭 산 사람은 이 타고나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아 가지고서도 거의 동물에 가깝게 일생을 살다가 가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 인구가 56억이라고 하는데 그 많은 인간들이 정말 무상(無常)을 느끼고, 정법을 믿고, '참나'를 깨닫기 위해서 정진하는 사람이 그 몇 분의 일이 되겠습니까?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도반(道伴)들은 그 56억 가운데에서 정말 선택된 도반들이고, 우리에게는 생사해탈(生死解脫)의 길을 향해서 가는 일 밖에는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도반들께 내가 와서 무슨 말을 할 말이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미 정법을 믿고 수행을 하는 도반들이라,
내가 늙어서 여러분께 할 말은 우리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삼요(三要)가 있는데,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단(疑團) 이것이 삼요라 하는데, 무엇을 믿느냐?

‘나도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역대 조사(祖師)와 같은 똑같은 자성(自性)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을 철저히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신심이 철저해야 그 다음에는 ‘내가 왜 여태까지 불조(佛祖)와 같은 자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늘날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가’ 그것에 대한 분심(憤心)이 가슴에 꽉 차 있어야 합니다.

그 분심이 없으면 공부한다고 해도 앉으면 꾸벅꾸벅 졸면서 시간을 채우는 것인데, 그 분심이 철저해야 저절로 혼침(昏沈)도 달아나고 일 초 일 초를 마음 단속하는데에 철저하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 신심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 분심이 있어야 하고, 세번째는 우리가 닦아가는 본참공안(本參公案)인 것입니다.

본참공안, 대부분 ‘이뭣고~?’를 하시는 분이 많으실 것이고, 여러분 가운데에는 ‘무(無)자’ 화두를 하는 분도 있을 것이고, 또는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를 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만은,
어떠한 공안, 어떠한 화두를 가지고 한다 하더라도 한번 결정을 하고 어떤 선지식(善知識)한테 화두를 탓으면 공부가 잘 되어가거나 잘 안 되거나 그 화두를 자꾸 바꾸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다못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단이 투철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화두는 이론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다못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이뭣고~?’

‘이뭣고~?’ 해 갈수록 알 수가 없어야지, 알아 들어가는 것이 있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면 공부를 잘못 해가는 것입니다.

신심과 분심과 의단이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하는 것 밖에는 우리는 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밥을 먹거나, 옷을 입거나, 화장실에 가거나, 목욕탕에 가거나, 도량 소지(掃地)를 하거나 또는 밭에 나가서 운력(運力)을 하거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자기의 본참공안을 놓치지 않고 알뜰히 단속해 나가면 우리는 이 생사 속에 살면서도 영원을 살아가는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왔다가 살 만큼 살다가 가는데, 한 사람도 안 죽고 몇백 년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생사(生死)가, 죽음이 일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는 것입니다.
숨 한 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 바로 그것이 내생(來生)인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부모한테 이 몸을 받아나가지고 또 좋은 인연이 있어서 불법을 만났고, 불법 가운데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우리는 닦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다행스런 좋은 여건하에 이 몸을 받아서 오늘날까지 왔으니 앞으로 3년을 살런지 10년을 살런지 한 달을 살런지 그건 살아봐야 알지 모르는 것입니다만은,
일단은 한 생각 눈을 통해서 무엇을 볼 때 ‘이뭣고~?’. 귀를 통해서 무슨 소리를 들어도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 화두 단속을 열심히 하는 것 밖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길은 없습니다.

세상이 언제 원자탄이 터져서 잿더미가 될런지, 우리는 우리 스스로 교통 사고로 죽을런지, 병으로 죽을런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만큼 건강할 때 어쨌든지 화두 단속을 열심히 해 나가는 것 뿐인 것입니다.

오늘 비록 해제일을 맞이해서 해제 법요식을 갖고 있습니다만은 해제는 ‘석 달 동안 정진하느라고 애썼으니까 이제 푹 좀 쉬어야겠다, 잠도 좀 실컷 자야겠다, 가고 싶은데 여행도 좀 해야겠다’ 그럴 겨를이 없습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여행할 일도 있고, 해야 할 일도 있겠으나,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거나 간에 자기의 본참공안을 놓치지 않으면 누워 있어도 그것이 정진이요, 일을 할 때도 그것이 정진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 밖에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느냐, 어떻게 알뜰하게 사느냐?’하는 것은 화두 단속을 철저히 하는 그 일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 해제일을 맞이해서 조실스님의 그 우렁찬 법문을 우리는 다같이 들었습니다.
산승이 여러분께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앞으로 결제까지 또 석 달이 남아있습니다마는 지난 석 달 동안 지낸 것보단 해제 동안을 정말 알뜰히 단속을 해서 정진하실 것을 우리 다같이 명심을 하고 다음 여름 결제날 또 만나게 될 것을 기약을 하면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박수)(처음~14분27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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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약이색견아~’ ; [금강경(金剛經)]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사구게(四句偈).
*색상(色相) ; 육안(肉眼)으로 볼 수 있는 모든 물질의 형상.
*여래(如來) : 부처님 10호의 하나。 범어 Tathagata의 역(譯).
여(如)는 진여(眞如)의 뜻이니 곧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의 뜻。 또 여거여래(如去如來)의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금강경(金剛經) ; 금강경의 완전한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또는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能斷金剛般若波羅蜜經)].
금강(金剛)은 단단하고 날카로움을 뜻하는 다이아몬드를 가리키며, 반야(般若)는 지혜를, 바라밀(波羅蜜)은 저편 언덕으로 건너는 것, 즉 열반에 이른다는 바라밀다(波羅蜜多)의 줄임말이다. 풀이하면 ‘금강석처럼 견고한 지혜를 얻어 열반에 이르라는 부처의 말씀’을 뜻하는 것이다.
「금강경」은 부처님과 수보리의 문답으로 전개되어, 공(空)사상에 입각하여 집착 없이 보살행을 실천하는 일을 중심 내용으로 대승불교의 기본 사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육근(六根) : 육식(六識)의 소의(所依)가 되어 육식을 일으켜 대상을 인식케 하는 근원이다。곧 눈(眼) • 귀(耳) • 코(鼻) • 혀(舌) • 몸(身) • 뜻(意)의 여섯 가지 기관(器官)을 말한다。
*육진(六塵) ;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의 육경(六境)과 같음. 이것은 마음을 더럽히므로 진(塵)이라 함.
*육식(六識)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

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찰나(剎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윤회(輪廻) ; 수레바퀴가 끊임없이 구르는 것과 같이, 중생이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 육도(三界六道)의 생사 세계를 그치지 아니하고 돌고 도는 일.
*생로병사(生老病死) ; 중생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네 가지 고통. 곧,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다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
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 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생주이멸(生住異滅) ; 모든 사물이 생기고(生), 머물고(住), 변화하고(異), 소멸함(滅). 또는 그런 현상.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삼요(三要) : 참선하는데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요건. 첫째는 큰 신심(大信心)이요, 둘째는 큰 분심(大憤心)이요, 세째는 큰 의심(大疑心)이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삼세(三世) : [범] trayo - dhvanah 과거 • 현재 • 미래, 또는 전생 • 금생 • 내생을 말한다.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본참공안(本參公案) :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무자(無字) ; 분류 ‘화두(공안)’ 참고.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에게 물었다. “만법(萬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갑니까?”
조주는 말했다. “내가 청주에 있을 때 베 장삼을 하나 만들었는데, 무게가 일곱 근이었다.”
僧問。萬法歸一一歸何所。師云。老僧在青州作得一領布衫重七斤。

[전등록(傳燈錄) 제10권. 조주선사.
僧問趙州 '萬法歸一一歸何處'  州云 '我在靑州作一領布衫重七斤' [벽암록(碧巖錄)] 제45칙.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소지(掃地) ; ①마당(땅)을 쓸다. ②청소.
*운력(運力) ; '함께 힘을 기울인다'는 의미.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운력(雲力)이라고도 하며,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일'이란 우리말 '울력'과 같다. 의미와 관계없이 운력(運力)은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뜻.
*내생(來生) ; 죽은 후에 다시 맞이한다는 미래의 삶.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Posted by 닥공닥정
하심 팔풍 경계대처2014. 6. 19. 11:21

§(246) 도고마성(道高魔盛) / 참선하는 사람은 그 '한 생각'을 무섭게 단속을 해야 / 자가철주(自家鐵柱) / (게송) 출가수도배~ / 도(道) 닦으면 다 출가(出家) 수도인.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사람은 그 '한 생각'을 무섭게 단속을 해야 해.
모든 순경계(順境界), 모든 역경계(逆境界), 일체 팔풍(八風)계를 당해서 그 '한 생각' 미끄러지는 것을 무섭게 단속을 해야만 그런 마군이의 권속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몸이야 속가에 있건 산중에 가 있건, 도심(道心)을 내서 도를 닦아 가면 모두가 다 출가 수도인인데, 출가 수도인이 가장 주의할 것은 재물(財物)과 색(色)이다.


마음은 고삐 없는 소와 같애서 잠깐! 방심을 해버리면 이놈이 밭으로도 들어가고, 논으로도 들어가고, 곡식 밭에도 가고, 채소 밭에도 들어가서, 다 그저 짓밟고 쥐어 뜯어먹고 해서 망가트려 버리는 거여.
우리의 마음, 고삐가 없는 소와 같아서 항시 단속을 하지 아니하면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천리만리를 왔다갔다 하고, 갈디 못 갈디, 생각할 거 안 할 거, 볼 거 안 볼 거, 참 그것을 표현을 헐 수가 없을 정도여.


**송담스님(No.246) - 84년(갑자년) 추계산철결제 법문(84.08.27)에서. (용246)


약 22분.

 


일심으로, 무엇이고 일심(一心)으로 허면 안정이 되고, 안정이 되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거기에는 온갖 마장(魔障)이 거기에 붙게 되는 것입니다.

능엄경(楞嚴經)에 보면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
색음(色陰)이 스러져서 없어지면, 색(色)이라 하는 것은 육체(肉體)를 말하는 것인데,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

그 육체(肉體)의 모든 기관이 안정이 되고, 안정이 되면 조용해지고, 조용허면 맑아지는 것인데, 그 색음이 맑아지면은 여러 가지 신기한 경계가 나타나는 수가 있습니다.

또 수(受)·상(想)·행(行)·식(識). 수상행식(受想行識)은 정신 작용인데 그 정신 작용이 안정이 되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거기에 여러 가지 종류의 신기하고도 묘한 경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맑아지면은 그러헌 마장(魔障)이 일어나냐’허면, 이 우주법계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신기한 능력을 갖춘 마귀(魔鬼)가 있습니다.
그런 마귀는 다 전생에 도를 닦다가 공부가 잘못되어 가지고, 공부는 지극정성으로 해서 거의 깨달음에 가까울 지경에 이르도록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도를 닦다가,
'한 생각' 잘못한 탓으로 삿된 경계에 떨어져서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한 그러한 중생, 그런 것이 귀신의 몸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온갖 신통이, 오신통(五神通)이 다 나 가지고, 참 그러한 귀신이 많이 있는데,
누구라도 도를 닦은 사람이 있으면 그 귀신이 시기가 나 가지고 그것을 온갖 수단과 방법을 써 가지고 방해를 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누가 도만 열심히 닦을랴고만 허믄, 그것을 시기·질투가 나 가지고 그걸 방해를 치게 되는 것입니다. 방해를 치기 위해서 항시 주변을 맴돌고 있어.
육근문두(六根門頭)에 그것을 엿보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틈만 있으면 그 틈을 타서 침범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도고마성(道高魔盛)’이다. ‘도가 높으면 높아질수록 마군(魔軍)이는 무장 더 성해진다’하는 말이 있는 것은 바로 그러헌 까닭인 것입니다.

그래서 도 닦은 사람은 '한 생각' 단속하기를 무섭게 단속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계중자일념(眞淨界中纔一念)이, 진정계(眞淨界) 가운데에 겨우 이 '한 생각'이,
염부조이팔천세(閻浮早已八千歲)다. 염부(閻浮)에 있어서는 벌써 팔천 세(八千歲)가 된다 그말이여.

정진을 해서 오음(五陰)이 맑아지면 맑아질수록 눈 한번 깜박하는 그 찰나 간의 '한 생각'이 이런 무서운 마귀를 자기 마음속에 불러들이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생각 삐끗한 그 '한 생각' 단속을, 마치 화약고를 지키는 파수병(把守兵)이 불조심 허듯이,
잠깐 실수로 담뱃불 하나 실수하면 그 어마어마한 화약이 터져서 그 많은 화약을 다 손실하고 거기에 있는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고 동시에 자기의 목숨까지 잃게 되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사람은 그 '한 생각'을 무섭게 단속을 해야 해.

성이 날 때, 슬플 때, 억울할 때, 근심 걱정이 있을 때, 기쁠 때, 좋을 때, 모든 순경계(順境界), 모든 역경계(逆境界), 일체 팔풍(八風)계를 당해서 그 '한 생각' 미끄러지는 것을 무섭게 단속을 해야만 그런 마군이의 권속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숙세(宿世)에 이 정법(正法)에 인연이 있어서 우리가 이런 최상승법을 만나서 듣고 이것을 실천을 허게 된 것까지는 매우 다행한 일이나,

그 의지력이 견고허지 못해 가지고 반신반의(半信半疑)를 해서 조금 해 보다가 말다가, 조금 이 마음을 가다듬고 조금 헐라고 하면 무슨 일이 생기면 그것 또 와르르 무너져 버리고,
이렇게 허는 둥 마는 둥, 허다가 말다가, 이 핑계 저 핑계 이렇게 해 가면 도(道)의 마음은 점점 생소해지고, 세속적인 그런 생각은 날이 갈수록 얽히고설켜서 그럭저럭 안 헌 것도 아니요, 헌 것도 아니요,

이렇게 해 가면, 56억 7천만 년 뒤에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헐 때까지 공부를 해도 도를 이룰 기약은 막연헐 수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오늘 산철 결제일을 맞이해서 다시 한번 우리가 다짐을 허기 위해서 이러헌 법요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시간은 이렇게 말을 허고 있는 이 동안에도 계속 쉬지 않고 흘러가고 있습니다. 한 생각 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고 1초 1초가 이렇게 지내가고 있는 동안에 우리의 수명은 죽음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명심헌다면, 우리는 한 생각 단속하는 일 이외의 다른 일에는 단 1분 1초도 시간을 허비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인은 ‘죽을 사(死)’자를 이마에다 써 붙이고 공부를 허기도 하고,
송곳을 턱 밑에다가 받쳐 놓고 공부를 허기도 하고,
잠을 잘 때에는 둥글둥글하게 목침을 깎아 가지고 그래 가지고 비고 자다가, 삐끗하면 퉁! 머리가 방바닥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깜짝 놀래서 일어나서 정진을 하고,
또 말을 허다 보면 한마디가 두 마디 되고, 두 마디가 열 마디 되아서 그렇게 말허다 보면 생각을 놓치고 화두를 놓칠까, 그래서 말을 아니 허면서 정진을 하고,
또 밥을 많이 먹다 보면은 또 식곤증(食困症)이 나서 졸음이 올까봐, 그래 밥을 한 끼씩만 먹고 허기도 하고.
이렇게 모든 방법을 다 써 가면서 애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 스님네께 ‘밥을 한 끼만 먹어라’, ‘말을 허지 말고 묵언(默言)을 하라’, 또 ‘송곳을 깎아서 턱 밑에다 괴아라’ 이런 것을 내가 권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만한 의지력과 각오를 가지고 정진을 해 나간다면,
말을 일부러 묵언을 허지 아니해도 저절로 하루에 한마디 허거나 말거나, 이틀에 한마디 허거나 말거나 하면, 일부러 묵언을 안 해도 저절로 묵언이 되아져야 그 묵언이 진짜 묵언이 될 것이고,

하루에 세 때를 먹더라도 한 알갱이도 씹은 바가 없다면 하루 세 그릇 먹는다고 해서 무엇이 방해로울 것이 있는가.
다만 과식만 허지 않도록 잘 저작(咀嚼)을 해서 소화만 잘 시킨다면, 세 그릇 먹어도 한 알갱이도 씹지 않는 도리가 그 속에 있으니, 무엇을 걱정헐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9시에 자고 3시에 일어나면 6시간인데, 그 동안에 한 시간쯤 더 안 자고 5시간만 자고 정진을 헐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6시간을 자되 잘 때에 든 화두가 꿈 속에서도 화두가 들린다면, 6시간을 잔다고 해서 무엇이 또 방해로울 것이 있습니까.

산철 동안 춥지도 덥지도 않고 그러니 그 기간을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서 다른 사람의 타율적인 그런 견제로 인해서 규칙을 지킬려고 헐 것이 아니라,
일심으로 정진을 허다 보니 저절로 모든 것이 법도에 맞고 규칙에 맞아서 한 달이 하루와 같이, 두 달이 하루와 같이 이렇게 정진을 해 가신다면 반드시 이 산철 동안에 공안을 타파해서 본래면목을 깨닫게 되실 것이 의심이 없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출가수도배(出家修道輩)여  재색최선금(財色最先禁)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군거수구신(群居須口愼)하고  독거요방심(獨居要防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출가수도(出家修道)한 선객(禪客)들이여, 재색(財色)이 최선금(最先禁)이니라.
재물과 색이 가장 먼저 금(禁)할 것이니라.

출가 수도인(出家修道人)이라 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 집을 나와서 머리를 깎고 먹물 옷을 입은 스님네를 말하는 바지마는, 출가(出家)라고 허는 뜻이 넓게 본다면, 넓은 의미에서 출가를 해석을 헌다면,
몸뚱이에 기준을 둘 것이 아니라, 마음에다 기준을 두어야 더 옳다고 생각을 허는 것입니다.

머리를 깎고 안 깎고, 먹물 옷을 입고 안 입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에 도심을 발(發)하면, 도 닦을 마음을 내면 머리가 있고 속복을 입어도 그게 출가인(出家人)이고,
설사 머리를 깎고 먹물 옷을 입었다 해도 도심(道心)이 없이 속심(俗心)이 가득 차 있다면 그건 출가인이라고 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도 출가하고 마음도 출가한 출가인도 있고, 몸도 마음도 속가에 있는 사람도 있고, 몸은 속가에 있으면서 마음은 출가한 사람도 있고, 이 네 가지로 출가·재가를 이렇게 설명을 헐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몸이야 속가에 있건 산중에 가 있건, 도심(道心)을 내서 도를 닦아 가면 모두가 다 출가 수도인인데, 출가 수도인이 가장 주의할 것은 재물(財物)과 색(色)이다.

재물(財物)은 모든 재산이나, 명예나, 권리나,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이나 이런 것들이 모두 재산에 해당이 되고, 색(色)이라 하는 것은 비단 남녀 간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일체 색상(色相)을 통해서 마음에 욕심을 내면 그것이 다 색에 해당이 되는 것이다.

도 닦는데 그것을 금(禁)해야 한다 그랬는데, 그것을 멀리허고 금(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량겁(無量劫)을 통해서 익히고 익힌 바라, 유심·무심을 통해서 항시 그것이 본의 아니게 우리의 눈에도 그것이 걸리고, 귀에도 걸리고, 코에도 걸리고, 입에도 걸리고, 몸에도 걸리고, 생각에도 그것이 걸려든다 그말이여.
걸려드는 그 찰나에 바로 그 생각을 버릴랴고 허지 말고, 그 생각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을 헌다면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을 실천하는 사람의 수행 방법이라 할 것입니다.

군거수구신(群居須口愼)이요, 여럿이 살 때에는 입을 조심을 해라.

혼자는 말을 못허는 것이고, 두 사람 세 사람 이상 열 사람, 스무 사람, 그게 인자 군거(群居)인데,
여러 사람이 모이면은 자연히 입이 벌어져서 말이 나오는데, 입을 벌려서 말을 허다 보면은 좋은 말보다도 쓸데없는 말을 많이 허고, 쓸데없는 말을 허면은 시비가 일어나서 내 속상하고 남의 속상하고 화두는 달아나 버리고, 그래 가지고 싸움이 일어나기 마련이니 그래서 입을 조심을 해라.

그 다음에는 혼자 있을 때에는 방심(放心)을 조심을 해라[獨居要防心]. 방심(放心)은 마음을 놓아 버리는 거여. 마음을 단속하는 것을 조심을 해라.

마음은 고삐 없는 소와 같애서 잠깐! 방심을 해버리면 이놈이 밭으로도 들어가고, 논으로도 들어가고, 곡식 밭에도 가고, 채소 밭에도 들어가서, 다 그저 짓밟고 쥐어 뜯어먹고 해서 망가트려 버리는 거여.
우리의 마음, 고삐가 없는 소와 같아서 항시 단속을 하지 아니하면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천리만리를 왔다갔다 하고, 갈디 못 갈디, 생각할 거 안 할 거, 볼 거 안 볼 거, 참 그것을 표현을 헐 수가 없을 정도여.

그러다 보면은 1시간 2시간이 속절없이 지내가고 하루 이틀이 속절없이 지내가니 혼자 있을 때에는,
이 ‘혼자’라 하는 것은 육체적으로 자기 혼자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모르는, 자기 속에서 일어나는 그것을 여기서 ‘홀로 독(獨)’자 ‘혼자’라, 이렇게 보면은 이 참선하는 사람은 그것이 더 해당을 하는 것입니다.

이미 그 생각이 얼굴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면은 이것이 인자 모든 사람이 보게 되니까 모든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고,
아직 그 생각이 말이나 얼굴이나 행동으로 표현이 되기 이전에 자기 혼자만 알 수 있는, 그 겨우 가는 생각이 탁! 일어날 그 순간, 이것을 ‘혼자 있는 때’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 혼자 있는 바로 그때를 탁! 돌이켜서 그 생각이 얼굴로 표현이 되기 전에, 말로 나타나기 전에, 행동으로 나타나기 이전에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바로 그 때의 생각을 잘 단속을 해 버려.
그때 탁! 돌이켜서 화두를 들어버려야 할 것이다.

이렇게 단속을 하고 정진을 해 가시기를 거듭 당부를 하고 스스로 다짐허면서 반산림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43분12초~64분25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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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말. [참고]헤살;남의 일이 잘 안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능엄경(楞嚴經) ; 본이름은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릉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10권. 당(唐)의 반자밀제(般刺蜜帝) 번역.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세존과 아난(阿難)의 문답으로 시작하여 깨달음의 본성과 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설하고 여래장(如來藏)이 무엇인가를 밝힘.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관음신앙이라 하고 능엄다라니(楞嚴陀羅尼)를 설한 다음, 보살의 수행 단계, 중생이 수행하는 과정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번뇌에 대해 그 원인과 종류를 밝힘.
*색음(色陰) ; 색온(色蘊)의 구역(舊譯). 오음(五陰)의 하나.
*색온(色蘊) ; 오온(五蘊)의 하나. '물질'이라는 집합. 색(色)은 스스로 생멸변화하고, 또 다른 것을 장애한다. 온(蘊)은 모여서 뭉친 것으로 화합하여 한덩어리가 된 것.
*마(魔) :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선가귀감 十九, p64에서)
*오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 다섯 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육근문두(六根門頭) ; 육근(六根-眼耳鼻舌身意)의 문 앞. 육근과의 경계.
*(게송)진정계중자일념(眞淨界中纔一念)  염부조이팔천세(閻浮早已八千歲) ; 중국 당나라 동안상찰(同安常察) 스님(872-961)이 마음의 현묘한 이치를 10가지 대목으로 말씀한 게송 [십현담(十玄談)]의 5번째 '연교(演敎)'의 끝 구절.
*진정계(眞淨界) ; 참되고 깨끗한 세계.
*염부(閻浮) ; 염부제(閻浮提). 남염부제(南閻浮提). 섬부주(贍部洲). 남섬부주(南贍部洲).
산스크리트어 jambu-dvīpa의 음사. 염부(閻浮), 섬부(贍部)는 jambu의 음역어이며, 제(提)와 주(洲)는 dvipa의 각각 음역어 및 의역어이다. jambu는 나무 이름.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수미산(須彌山)의 사방에 네 대륙(四洲)이 있는데, 염부라는 이름은 여기에 자란다는 점부(jambu)에 유래하며, 남방에 있기 때문에 남섬부주(南贍部洲)라고 한다.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라 하며, 여러 부처님이 나타나는 곳은 사주(四洲) 가운데 이곳뿐이라 함. 불전에서는 인간세계의 전체를 의미하는 말로서 사용되고 있다.
*오음(五陰) ; 오온(五蘊)의 구역(舊譯).
*오온(五蘊) : 온(蘊)은 무더기•모임•집합•더미를 뜻함.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의 요소의 무더기-물질적 요소인 색온(色蘊)과 정신요소인 4온(수·상·행·식)을 합쳐 부르는 말.
①색온(色蘊):몸이라는 무더기. 몸의 감각 무더기.
②수온(受蘊):괴로움이나 즐거움등, 느낌의 무더기.
③상온(想蘊):대상에 이름을 부여하고, 다양한 개념을 지어내는 생각•관념의 무더기.
④행온(行蘊):의도(意圖)하고 지향하는 의지•충동•의욕의 무더기.
⑤식온(識蘊):식별하고 판단하는 인식의 무더기.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파수병(把守兵) ; 주변을 경계하여 지키는 병사.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팔풍(八風) :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서 움직이게 하는 여덟 가지 현상을 말한다。
내 뜻에 맞고(利), 내 뜻에 어기는 것(衰), 나 안 보는 데서 나를 찬미하는 것(譽), 나 안 보는 데서 나를 비방하는 것(毀), 면전에서 찬미하는 것(稱), 면전에서 비방하는 것(譏),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것(苦),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것(樂) 등이다.
*반신반의(半信半疑) ; 한편으로는 믿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의심스러워함.
*미륵불(彌勒佛) ; Maitreya. 번역하여 자씨(慈氏).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출신으로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 천인(天人)을 위해 설법•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 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세존의 교화에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석가모니세존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으로 보처(補悽)의 미륵이라 한다.
*저작(咀嚼 씹을 저,씹을 작) ; 음식물을 입에 넣고 씹음.
*자가철주(自家鐵柱) ; 자기 스스로 정한 규칙을 쇠기둥(鐵柱)을 세워 놓은 것과 같이, 움직임없이 지켜나감을 이르는 말.
*(게송) ‘출가수도배~’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45 ‘명감(明鑑)·상주(尙珠)·언화(彥和)의 여러 문도(門徒)에게’ 게송 참고.
*도심(道心) ; 불도(佛道)를 행하고 믿는 마음.
*속심(俗心) ; 세상의 명예나 이익을 구하고자 하는 속된 마음.
*색상(色相) ; 육안(肉眼)으로 볼 수 있는 모든 물질의 형상.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Posted by 닥공닥정
발심 자신(自信)2014. 3. 27. 07:05

§(445) (게송)사수여운일몽신~ /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분부 / 오욕락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 1초도 뒤로 미루지 말고 지금 바로 화두를 드는 것이 용맹정진 / 일념단속.

 

황매산(黃梅山)에서 오조(五祖) 스님이 육조(六祖) 스님한테 아무도 어찌 하지 못할  소식을 분부(分付) 것이 우리도 부처님으로부터 구원겁(久遠劫) 전에 비로자나불로부터서 분부를 받은 것입니다.  분부를 우리는 망각하고 살아갈 뿐이지 우리도 확철대오할  있고 무량 중생을 제도해야  대사명(大使命) 분부 받은 것입니다.

 

우리도 오욕락(五欲樂) 탐착해  생각 () 탓으로 중생(衆生) 몸뚱이를 받아 가지고 윤회(輪廻) 하는 동안에 보고 듣는 것이 오욕락이거든. 그놈이 어떻게 무량겁(無量劫) 길을 들여 놨던지 그것이 아주 본능(本能)으로 굳어가지고, 인생은 오직 그것을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로 모든 사람들에게 인식되어져 버렸다. 불법을 들음으로해서 우리는 오욕락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1초도 뒤로 미룰 일이 아니여. 다른 것은  미뤄도 이것은 1 뒤로도 미루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지금이거든』 지금. 지금 바로 탁! 이뭣고?’ 챙긴 것이 그것이 공부고, 그것이 가행정진이고 그것이 용맹정진이여. ‘앞으로 내가 3 결사(結社) 들어가서....’ 그런 생각이  너저분한 생각이야.

 

나라를 걱정하고  우리의 자녀를 걱정하고 세계 인류를 참으로 걱정한다면 일념단속해서  사람이라도  진리의 눈을  사람이 나와야겠습니다. 진리의 눈을 뜨는 사람이 나와야 그것이  부처님의 탄생이요,  부처님이 탄생을 해야 () 많은 중생을 제도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송담스님(No.445)—91년 5월 첫째 일요법회. (용445)

 

약 17분.

 

 

사수여운일몽신(似水如雲一夢身)  부지차외갱하친(不知此外更何親)이리요

나무~아미타불~

개중불허용타물(箇中不許容他物)이라  분부황매노상인(分付黃梅路上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사수여운일몽신(似水如雲一夢身)이여. 물과 같고 구름과 같은  꿈속의 몸뚱이여.

부지차외갱하친(不知此外更何親)이라.  밖에 다시 무엇을 친근(親近)  것인가 아지 못하겠더라.

 

 몸뚱이는 꿈속에 몸뚱이거든. 실다운 것이 아니여. 잠시 꿈속에서 내가 임금이 되기도 하고, 꿈속에 내가 부자가 되기도 하고,  깨면 임금도  곳이 없고 부자도  곳이 없듯이.

현실적으로 우리 몸뚱이 받아 가지고 있는  아무개,  아무개하는  몸뚱이는 절대로 실다운 것이 아니요 꿈속에 몸뚱이인데, 뭣과 같으냐 하면은 물과 같애.

 

물이라 하는 것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곳에 따라서 모난 그릇에다 담으면은 물이 모난 모양으로 되고, 둥근 그릇에다 담으면 물이 둥그렇게 담겨지고.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흘러가다가 웅덩이를 만나면은 차츰차츰 채워가지고  차면 넘어가고, 때로는 폭포수가 되었다, 때로는 강물이 되었다, 흐르고 흘러서 바다에 가면은 짠물이 되었다가.

 

 안개가 되어서 피어 올라가고 구름이 되었다가  기운을 만나면 비가 되기도 하고, 눈이 되기도 하고, 우박이 되기도 하고, 더우면 녹아서 물이 되었다가, 때와 장소와 기온에 따라서 액체가 고체가 되고 고체가 액체가 되었다가, 다시  기체가 되었다 그런 것이다 그말이여.

 

 몸뚱이도 지은 () 따라서 인간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천상에 태어나기도 하고 축생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지옥에 태어나기도 하고, 인간으로 태어나되 남자로 태어나기도 하고 여자로 태어나기도 하고, 잘생긴 몸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밥맛 떨어지게 태어나기도 하고.

, 이러니 우리  몸뚱이라 하는 것이 업에 따라서 천만 가지의 모양으로 받아난다 그말이여.

 

 구름과 같애. 구름과 같애 가지고 때로는 흰구름, 먹구름,  구름 덩어리, 작은 구름 덩어리, 구름도 소같이 생긴 구름 덩어리, 말같이 생긴 구름 덩어리, 바람 따라서 동쪽으로 날아갔다 서쪽으로 날아갔다 날아가면서도 금방 소같이 생긴 것이 다시 다른 모양으로 변형되어가.

 산에서  산으로  산에서  산으로, 산에서 들로 들에서 바다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권서자유(捲舒自由). 뭉쳤다 흩어졌다 달아났다 모였다  몸뚱이가  그와 같애.

 

빈부귀천, 흥망성쇠 속에서 가지각색으로 놀아나거든. 전혀 믿을  없는 것인데 그렇게 살아가. 때로는 건강하다가 때로는 병들었다가 생로병사 흥망성쇠.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무정(無情) 물과 같이 무심(無心) 구름과 같이 인연 따라서,  따라서,  따라서 그렇게 돌아치는  몸뚱이 말고 다시 무엇을  가까이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그런데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소소영령(昭昭靈靈) 주인공 그놈은 누가 그놈을 구속할 수도 없고,  몸뚱이는 구속을 해서 두드려  수도 있고 감옥에다 가둘 수도 있고 그런데,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소소영령한 놈은 죽일 수도 없고, 묶어  수도 없고, 가둘 수도 없고, 아무도 어찌  수가 없어. ‘그놈 누가 어떻게 가두며 그놈 어떻게 죽이며 그놈 어떻게  것이냐 그말이여.

 

개중불허용타물(箇中不許容他物)이여,   가운데에 다른 물건을 여기서 용납할 수가 없더라. 아무도 이것을 어찌해  수가 없어.

 

분부황매노상인(分付黃梅路上人)이여. 황매산(黃梅山)에서 오조(五祖) 스님이 육조(六祖) 스님한테 아무도 어찌 하지 못할  소식을 분부(分付) 하셨더라 이거거든.

오조 스님이 육조 스님한테 분부한 것이 우리도 부처님으로부터 구원겁(久遠劫) 전에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로부터서 분부를 받은 것입니다.  분부를 우리는 망각하고 살아갈 뿐이지 우리는 분명히 분부를 받았어.

 

우리도 확철대오할  있고 무량 중생을 제도해야  대사명(大使命) 분부 받은 것입니다.

 

마치 국민학교 어린 학생이 학교에서 분명히 숙제를 받어 가지고 왔지만 노는데 탐착해 가지고 숙제를  잊어버려. 그래 가지고 놀다가 해가 저물어 버리고 집에 와서는 배고프니까  먹고, 곤(困)한 데에 밥을 먹어 놨으니 졸음이 오니까 초저녁부터  버렸다 그말이여.  이튿날 늦잠을  가지고 밥도  먹고 학교로 갔는데 숙제를  해가지고 갔거든. 

 

우리도 오욕락(五欲樂) 탐착해  생각 () 탓으로 중생(衆生) 몸뚱이를 받아 가지고 윤회(輪廻) 하는 동안에 보고 듣는 것이 오욕락이거든.

재산 모으는 , 남녀 간에 () 즐기는 것,  맛있는 거 먹는 거,  명예 권리를 하는 거,  그런 거 하면 재미가 있거든. 그러다가 편안하게 잠자고. 이러한 것에 길들여 놓으면 좀해 그놈을 벗어날 수가 없어.

 

그놈이 어떻게 무량겁(無量劫) 길을 들여 놨던지 그것이 아주 본능(本能)으로 굳어 버렸어.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 아주 본능으로 굳어 가지고, 인생은 오직 그것을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로 모든 사람들에게 인식되어져 버렸다.

 

불법(佛法) 듣기 전에는 그것이  인생이란 게 그런 것이지, 무슨 재미로 사느냐?’ 그렇게 살고 있지만,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서 생각해 보라 그말이여.

 

불법을 들음으로해서 우리는 오욕락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정말 내가 나를 깨달라야겠다’ ‘정말  마음의 고향을 찾아야겠다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우리는 만났습니다. 뒤로 미루지 말고 늦다고 생각할 때가 이른 때다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절대로 늦지 않았습니다.

그냥 지금 놓쳐버리면 무량겁을 흘러간 뒤에 언제 다시  우리가 불법을 만날지, 발심(發心) 하게 될지 모르는 것이니, 설사 지금 말세(末世) 되었다해도 지금 우리가 불법을 만난 것은 너무도 다행한 일이고 경행한 일이어서 조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 60세가 넘고 70세가 넘었어도 늦지 않았습니다.

 

 몸뚱이는 젊다고 오래 살고, 늙었다고 빨리 죽는 것도 아닙니다. 언제 죽을런지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지금이 가장 이른 때다』 이리 생각을 하시고.

앞으로 인자 여름철이 되면은 방부를 들이고 정말 열심히 하리라  생각도 틀린 거여.

 

지금  찰나부터 ! 의단(疑團) 독로(獨露)해야 하거든. 1초도 뒤로 미룰 일이 아니여. 다른 것은  미뤄도 이것은 1 뒤로도 미루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지금이거든』 지금.

지금 바로 탁! 이뭣고?’ 챙긴 것이 그것이 공부고, 그것이 가행정진이고 그것이 용맹정진이여. ‘앞으로 내가 3 결사(結社) 들어가서....’ 그런 생각이  너저분한 생각이야.

 

지금이거든. 지금!

여기 앉은  자리가 지금’이고, 나갈 때는 나갈 때가 지금’이고,   때는   때가 지금’이고,  먹을 때는  먹을 때가 지금’이고,   때는   때가 지금’이고 『언제나 그때그때가 지금이거든』 이렇게 공부할  아는 사람이라야 그게  수행인이거든.

 

물과 같이 구름과 같이 이렇게 무정하게 정처없이 흘러가고 흘러가는데,  무상(無常)한 속에서 무상하지 않는  챙기는 거거든.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 일념단속(一念團束)’ 속에 있는 것이고, 축생이나 아귀나 지옥 삼악도(三惡道) 떨어진 것도 일념단속   데에서 삼악도에 떨어진 것이거든.

 

일념(一念)이야말로, 일념이야말로 우리는 잠시도 잊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내일이면 입하(入夏) 되어서, 아직 봄이 한창이다 생각을 했는데 벌써 봄은 지나가고 내일부터 여름이 시작이 됩니다. 계절이 이렇게 지나가는 것은 바로 우리로 하여금 무상(無常) 깨닫게 하는 중요한  매듭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세계도 시끄럽고, 나라 안에도 정치도 시끄럽고, 경제도 시끄럽고, 학원도 시끄럽고 정말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일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러한 속에서 우리가   있는 일은  철저히 무상을 깨닫고, 나라를 걱정하고  우리의 자녀를 걱정하고 세계 인류를 참으로 걱정한다면 일념단속해서  사람이라도  진리의 눈을  사람이 나와야겠습니다.

 

진리의 눈을 뜨는 사람이 나와야 그것이  부처님의 탄생이요,  부처님이 탄생을 해야 () 많은 중생을 제도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537~6938)()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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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사수여운일몽신~ ; [금강경오가해] 불수불탐분(不受不貪分), 야부 게송 참고.

*() ; (산스크리트어: karma 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권서(卷舒, 捲舒 돌돌 감아쌀 / ) ; ①말았다 폈다 . ②나아감과 물러남. ③재덕(才德) 숨김과 나타냄.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 영령(靈靈) 함께 밝은 .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 의미하는 .

*오조(五祖) : (602 – 675) 이름은 홍인(弘忍)이고, 성은 ()씨인데, 호북성 기주(蘄州) 황매현(黃梅縣)에서 났다.

중국 선종의  4(四祖) 도신(道信) 법을 받아 황매현 쌍봉산(雙峰山)에서 오래 교화하였다. 많은 제자들 가운데 혜능(慧能) 신수(神秀)  분이 있었으므로, 6 혜능 계통은 남돈(南頓) 남종선이 되었고, 신수 계통은 북점(北漸) 북종선이 되어  종파가 생기게 되었다.

671년에 법을 혜능에게 전하고, 당나라 고종(高宗) 상원(上元) 2년에 74살로써 입적하였다. 시호(諡號) 대만선사(大滿禪師) 하고, 황매산 동산에 탑을 세웠다.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성립된 선종(禪宗) 2 혜가(慧可), 3 승찬(僧粲) 거쳐 4 도신(道信) 스님으로 이어진다. 도신의 제자 법융(法融) 스님이 우두산에서 선법을 선양하여 우두종(牛頭宗) 생겼다. 그리고 5 홍인 대사의 문하에서 남종과 북종으로 갈라져 남종선, 북종선이 되었다.

*육조(六祖) : (638 ~ 713) 중국의 선종(禪宗) 달마(達摩)대사를 초조로 삼고, 그로부터 육대 되는 혜능(慧能) 육조라고 한다。그는 속성이 ()씨고, 지금의 광동성(廣東省) 조경부(肇慶府) 신흥(新興)에서 났다。세 살에 아버지가 죽고 집이 가난하여 공부 하지 못하고, 날마다 나무를 팔아서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스물   때에 장터에서 어떤 사람이 <금강경>읽는 것을 듣고 깨친  있어  사람의 지시로 양자강을 건너 황주부(黃州府) 황매산(黃梅山) 가서 오조 홍인대사(弘忍大師) 뵙고, 그의 시키는 대로 여덟  동안이나 방아를 찧고 있었다.

 

오조가 법을 전하려고 제자들의 공부를 시험하는데, 교수사(敎授師) 있는 신수(神秀)  짓기를 몸은 보리의 나무, 마음은 밝은 거울, 부지런히 닦아서, 티끌 묻지 않도록(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勿使惹麈埃)이라 하였다.

이때 노행자(盧行者) 보리 나무 없는 , 마음 거울 비인 , 아무것도 없는데, 티끌 어디 묻으랴(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麈埃)라고 지었다。오조는 그를 인가(印可)하고 석가여래의 법통을 표시하는 의발(衣鉢) 전해 주었다.

 

그는 남방으로 돌아가서    동안이나 숨어 지내다가 비로소 중이 되어, 소양(韶陽) 조계산(曹溪山)에서 선법(禪法) 크게 일으키니 견성(見性)하여  법을 이은 제자만 사십여 명이 있었다。당나라 현종(玄宗) 개원(開元)1년에 칠십  세로써 입적하였다。저술로는 육조단경(六祖壇經) 있다.

*분부(分付, 吩咐 나눌 /·맡길 ) ; ①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하게 하거나 나누어[] []. ②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명령이나 지시, 당부를 높여 이르는 .

*구원겁(久遠劫 오랠 / /오랜 세월 ) : 아득하게 멀고 오랜 옛날.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 遍一切處) 뜻으로, 부처의 진신(眞身) 이르는 . 비로자나는 진리  자체인 법신을 형상화한 .

*사명(使命) ; 맡겨진 임무.

*()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없는 미혹함)하는 .

*중생(衆生) ; ①생존하는 . 목숨이 있는 . 산것. 살아있는 . 특히 인간. 사람들. 세상 사람. 유정(有情)이라고도 . ②번뇌에 얽매여 미혹한 모든 존재. ③부처가   있는 요소. 본질.

*윤회(輪廻) ; 수레바퀴가 끊임없이 구르는 것과 같이, 중생이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 육도(三界六道) 생사 세계를 그치지 아니하고 돌고 도는 .

*좀해 : 좀처럼(‘않다’, ‘없다 따위의 부정하는 말과 함께 쓰여, 웬만해서는 어떤 행동을 하지 않음 또는 쉽게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음을 나타내는 )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동자(同字).

*본능(本能) : 사람이나 동물이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억제할  없는 충동이나 감정.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 부처님의 가르침.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 심판하여 벌은 주는 .

*말세(末世  /세상 )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 세상,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 세상,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 세상이라고 한다.

*찰나(刹那 ·짧은시간 /어찌 )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刹과  동자(同字).

*결사(結社) ;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또는 관심에 따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결합한 집단.

불교의 경우 깨달음을 얻기까지 정진할 것을 위해 또는 불교 내부의 잘못을 혁신하려   결사(結社) . 고려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결사(定慧結社) 요세(了世) 천태종 백련결사(白蓮結社) 유명하다.

*그때그때 ; ①어떤 일이 벌어지거나 기회가 주어지는 . ②어떤 일이 벌어지거나 기회가 주어지는 때마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 죽어서 간다는  가지 괴로운 세계.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 조건()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 없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