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5.12.18 §(224) 빈두로타사, 그리고 그의 무량겁 전생 때의 단니기 이야기[현우경(賢愚經)] / 단정왕(端正王)의 명판결.
  2. 2014.11.24 §(복전암26) (게송)다생원채기어친~ / 무연자비(無緣慈悲), 무주상보시 / 지장보살의 원력 / 인과법(因果法) / ‘이뭣고?’는 ‘참나’를 찾는 공부, 자기마음을 바로잡는 법.
  3. 2014.06.28 §(269) (게송)광음승불계~ / 병(甁)속의 새의 꿈 / (게송)시비일침몽~ / 일장춘몽 / 공부해 나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사심(生死心)을 깨트리는 것.
  4. 2014.05.11 §(240) 숯쟁이영감 / 정법(正法)을 믿는 마음으로 인과설을 들으면 그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 되는 것 / 인과의 법칙을 인증(認證)하면서도 거기에서 초월하는 길이 불법(佛法)이다 / 숙명론(..
  5. 2014.04.16 §(568) 왜 화장(火葬)이 좋으냐? / 「만년위패」를 모시는 뜻 /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다 성불(成佛)하도록 우리는...
  6. 2014.04.14 §(568) (게송) 득지재심응재수~ / 「만년위패 제도」 창설 의의(意義)-‘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해탈’
  7. 2014.04.11 §(549) (게송) 행행총총급여류~ / 한평생이라 하는 것이 꿈에 지내지 못한 것 / 인간 세상의 오욕락(五欲樂)이 꿈이거든.
  8. 2014.04.02 §(521) 3능, 3불능 / 정업(定業)은 난면(難免) / 우리가 이 세상에 받는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이 각본(脚本)을 쓴 것 / 찰나(刹那) 간에 몰록 / 신•분•의(信•憤•疑) 삼요.
  9. 2014.01.26 §(287) 극기(克己) 해야 참다운 대장부 / 최상승법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가깝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하면 깨달음은 갈 곳이 없다 / 오후보림(悟後保任).
인과 인연 비유2015. 12. 18. 17:04

§(224) 빈두로타사, 그리고 그의 무량겁 전생 때의 단니기 이야기[현우경(賢愚經)] / 단정왕(端正王)의 명판결.

 

() 두터운 람도 다행히 부처님을 친견하고 출가해서 보리심(菩提心) 발하게 되면 확철대오(廓徹大悟) 해서 생사(生死) 윤회(輪廻) 벗어나게 있다고 하는 법문을 들었습니다.

 

**송담스님(No.224)—83 동지법회(83.12.22) 용224.

 

(1) 약 18분.

(2) 약 16분.

 

(1)------------------

 

부처님께서 사위성(舍衛城) 기원정사(祇園精舍) 계실 , 빈두로타사(賓頭盧埵闍) 하는 바라문(婆羅門) 있었는데, 바라문은 아내가 어떻게 독하고 모질며 사납고, 생긴 것도 억세고 보기 싫게 생긴 것이, 눈은 살조개를 놓은 것처럼 벌개 가지고 사사건건이 남편을 괴롭혔습니다.

 

그런데 빈두로타사는 아들은 없고 딸만 형제가 있었는데, 딸을 여우살이를 했습니다.

딸을 여울 때마다 있는 재산을 털어서 주고, 있는 재산 논과 밭과 임야와 모든 재산을 있는 대로 털어 가고, 그리고서 시집을 가지고도 번갈아가면서 딸과 사위가 가지고 앙탈을 부리고 그래 가지고 눈에 띄는 대로 훑어갔습니다. 그래서 주면은 포악(暴惡) 하고.

 

그렇게 시달리면서 여생(餘生) 살고 있는데,

그해는 가을이 되어서 밭에다가 농사를 지어 놓은 것이 있는데 그것을 추수(秋收) 할라니 손대는 없고, 그래서 이웃집에 있는 집에서 소를 빌려다가 농사 지은 추수한 것을 갖다가 소에 실려서 집으로 가져 나르고, 일이 끝나서 인자 해가 저물어서 소를 주인집의 앞에다 갖다 놓았습니다.

 

소를 주인집 앞에다 갖다 놓았을 주인이 보았습니다. 주인이 보았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주인이 나중에 소를 들이 맬라고 보니까 소가 어디로 버리고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빈두로타사 집에 와서 소를 썼으면 갖다 주지 않고 갖다 주냐?” 그러니까, “! 내가 아까 소를 갖다가 당신 앞에다 갖다 놓았을 당신이 보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가지고 것은 봤지마는 나한테 썼단 말을 아니 해서 아직도 알고 그냥 놔뒀는데, 무슨 소리냐? 썼으면 소를 썼다고 나한테 말을 해야지, 말을 아니 하니 내가 어떻게 알았느냐?” 그래 가지고 소를 물어내라

 

내가 당신 집에 갖다 것을 당신이 버젓이 놓고 그러느냐?” “말을 해서 나는 몰랐다이리 옥신각신 싸우다가 기어이 소를 찾아오라고 하니까,

사람이 마을을 찾고, 들을 찾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다가 어느 숲속을 가니까, 거기에 마치 부처님께서 숲속에 떠억 앉아 계신다 그말이여.

 

그래서 빈두로타사 바라문이 부처님이 그리 조용히 앉아 계신 모습을 보고,

고타마, 구담사문(瞿曇沙門) 얼마나 마음이 편안할까? 나처럼 악독한 아내한테 시달리지도 아니할 것이며, 딸과 사위 놈들한테 들볶이지도 아니할 것이며, 농사짓느라고 고생할 것도 없고, 인간 세상에 아무 걱정이 없이 얼마나 마음이 편안하실고?’ 그런 생각을 속으로 먹고 있었는데,

 

부처님께서는 벌써 빈두로타사 바라문의 마음을 아시고서네가 생각한 바와 같으니라. 나는 인간의 부귀영화(富貴榮華) 빈궁(貧窮) 그러한 생사열뇌(生死熱惱) 아무 고통도 괴로움도 없느니라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너도 그러한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고자 하거든 출가해서 도를 닦는 것이 어떠한고?” 빈두로타사가! 같은 사람도 출가를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네가 세속의 인연을 끊고 출가한다면 어찌 허락을 아니할까 보냐그래서 찾다가 소도 그만두고, 고약한 아내로부터 떠나고 싶은 생각에 그길로 집으로 가지도 않고 부처님을 따라서 출가를 버렸습니다.

() 받고 출가를 했는데자기는 늦게 출가했다 관계로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용맹정진을 해서 머지않아서 아라한과(阿羅漢果) 증득을 했습니다.

 

 

그러니 아란존자가 빈두로타사 바라문은 늦게 출가했으면서도 어떻게 저렇게 짧은 시일에 확철대오를 해서 아라한과를 증득 했습니까? 과거에 무슨 인연으로 그렇습니까?”하고 부처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과거 무량겁 전에 단정왕(端正王)이라 하는 왕이 있었는데, 왕이 정법을 ()하고, 정법으로써 나라를 다스렸기 때문에 나라 백성들이 그렇게 모다 편안하게 행복하게 살았더니라.

 

그때 나라에 단니기(膩羈) 하는 바라문이 있었는데, 바라문은 가난하기가 말로 없이 가난했었어.

그래서 빈두로타사처럼 가을에 추수를 때에 일꾼을 수도 없고, 자기가 그것을 하자니 힘이 들고 그러니까 남의 집에서 소를 빌려다가 추수 짐을 실어나르고 그리고서 소를 임자 앞에다 갖다 놔뒀는데,

주인한테 말을 하지 아니하고 소를 앞에다 갖다만 놓고 왔는데주인이 봤기 때문에 그냥 왔는데, 소가 어디로 가버렸어. 그래서 소를 찾아오라고 하니까, 암만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어.

 

그래서 주인이 소를 빨리 물어내라하니 돈이 없으니 수도 없고, 그래서 임금님한테 단정왕이라고 하는 임금님한테 가서 재판을 하게 되었습니다.

재판을 하러 가는 도중에 말이 뛰어오는데 말은 왕궁의 말인데, 왕궁의 말을 기르는 책임자가 말을 놓쳐 가지고 말이 달아나니까 말을 붙잡아 달라.

 

붙잡아 달라고 해서 앞을 가로막으니까 말이 도망간다 그말이여. 그래 급하니까 도망가게 하기 위해서 돌맹이를 주워 가지고, 도망가지 못하게 위협하느라고 던진 것이 다리에 맞아 가지고 다리가 때깍 부러져 버렸다.

 

그러니까 마부가 말을 가게 붙잡으라고 그랬지 누가 말을 갖다가 다리를 분지르라고 했느냐? 말을 내놓아라

내가 일부러 죽인 것이 아니고 당신이 붙잡아 달라고 그래서 가게 하느라고 돌을 던진 것이 맞았지, 내가 일부러 것이 아니니 물어줄 수도 없고, 물어줄 돈도 없다

너는 나쁜 놈이다. 임금님한테 가서 재판을 해야겠다그래서 마부도 따라붙었습니다.

 

그리고 어디만큼 가니까 강을 건너서 가야 하는데 어디가 얼마만큼 깊은지, 어디가 얼마만큼 옅은지 그걸 모르는데, 저쪽에서 목수가 손에 짐을 들고 옷을 걷어붙이고, 입에다가 끌을나무에 구멍을 뚫는 끌을 물고 오는데,

어디로 가면 물이 옅으고 가기가 좋소?”하고 물어보니까, ‘저리 가라 입으로 가리키다가 입을 쪼끔 뻥긋 벌린 것이 끌이 빠져 가지고 물속으로 풍덩 들어가 버렸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길이 없어.

 

그러니까 끌을 내놓으라” “당신이 입을 벌리다 끌이 빠졌는데 나보고 물어달라고 하냐?”

그러니 목수도그러면 상감마마한테 재판을 해야겠다그래 목수가 따라붙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물을 건너서 어디만큼 가니까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고 그래서, 마치 주막이 있길래 주막에서 술을 잔을 먹으려고 평상에 앉은데, 이불이 있어서 이불에 그냥 이렇게 걸터앉았는데, ‘!’ 소리가 났어.

그래서 보니까 이불 속에 어린아이를 넣고 덮어 놨던가 애기가 창자가 터져서 죽었습니다. 그러니 주막 주인이 남의 애기를 갖다가 깔고 앉아 가지고 터지게 죽였느냐? 애기를 물어내라

 

그러니 물건도 돈이 없어서 물어주는데, 어떻게 애기를 물어줄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주막 주인도 같은 놈은 상감마마한테 소송을 제기해 가지고 너를 벌을 주어야겠다그래 가지고 주막주인도 따라붙었습니다.

 

얼마를 가다가 담장이 있는데 담장 밑에를 지내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죄가 가지 죄만 지어도 살아나기가 어려울 텐데남의 소를 잃어 버려, 돌을 던져서 다리를 부러뜨려, 남의 끌을 갖다가 물에 빠뜨리게 , 주막집의 애기를 깔고 뭉개 가지고 터져 죽게

아무리 생각해도 여러 가지 죄로 상감마마 앞에 끌려가면 영락없이 자기는 징역을 살아도 무기징역을 것이고, 재수가 없으면 사형도 받게 되었다 그말이여.

 

그러느니, ‘끌려가 가지고 벌을 받기보다는 내가 이럴 어디로 도망을 밖에는 없다 가지고 담을 훌떡 뛰어서 ! 내려가니까 노인이 거기서 무슨 엎드려서 일을 하고 있던가, 노인이 꺼꾸러지면서 뇌진탕을 일으켜 가지고 노인이 뻐르적뻐르적하다가 죽어 버렸습니다.

그러니 노인의 아들이 놈이 남의 너머로 뛰어와 가지고 우리 아버지를 갖다가 돌아가시게 했느냐?” 그래 가지고이런 놈은 상감마마한테 가서 재판을 가지고 이놈도 벌을 주어야겠다그래서 사람도 따라붙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여섯 사람이 꼼짝을 못하게 에워싸면서 상감마마 계신 데로 가는데, 숲속을 지내는데 나무가 하나가 있는데 나무 위에 꿩이 앉아서여보시오, 당신 단니기(膩羈), 내가 당신한테 부탁할 말이 있는데,

내가 나무에 앉아서 울면 그렇게 목소리가 우렁차고 아름답고 나는데, 다른 데에서 울면 그렇지를 못하니, 무엇 때문에 나무에 앉아서만 울면 그렇게 목소리가 좋은가? 그것을 갖다가 지금 당신이 상감마마한테 간다 하니, 상감마마한테 가면 사유를 여쭈어 달라

 

알았다. 내가 가서 상감마마한테 말을 여쭈어 보고 죽지 아니하면 내가 너한테 이곳에 와서 일러주마

 

그렇게 승낙을 하고 얼마만큼 가다가 쉬는데, 숲속에서 독사 마리가 나오더니당신이 어디를 가요?” “나는 이러 이러한 여섯 가지 죄를 지어 가지고 나는 상감마마한테 끌려간다

 

그러니까 독사가 하는 말이내가 의심나는 것이 있는데, 훌륭한 상감마마한테 가거든 말을 물어봐라.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굴속에서 아침에 나올 때에는 그렇게 기분이 좋고 날아갈 듯한, 그렇게 가볍게 나오는데 하루 종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저녁때에 굴속으로 들어갈 때에는 너무너무 몸이 커지고 무겁고 그래 가지고 굴속에 들어가진다.

그러니 아침에 나올 때에는 그렇게 나오는 데에 아무 불편이 없고 가볍고 좋은데, 해가 저물어 집으로 들어갈 때에는 그렇게 들어가지고 아프고 무겁고 그런가? 그것을 여쭈어 달라

 

오냐, 알았다. 내가 죽지 않고 돌아오면 너한테 그것을 일러주마”(1837~3614)

 

 

 

 

 

(2)------------------

 

그래 가지고 상감마마 앞에 끌려갔습니다. 그래서 첫째, 소를 잃어버린 재판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임자가 놈이 소를 갖다 잃어버리고 갚지를 합니다. 그러니 소를 갖다가 찾아 주십시오

 

상감마마가 단니기 보고네가 정말 남의 소를 갖다가 부려먹기만 하고 갚았느냐?”

그런 것이 아니라 갖다가 일을 하고 사람 앞에다가 갖다가 놨는데, 주인이 보고 있길래 그냥 두고 왔습니다. 주인이 보았다면은 주인을 불러서여기 소를 갖다 놨습니다하겠지만, 주인이 보았기 때문에 아는 알고 그냥 왔습니다

 

그러니까 상감마마가 재판을 하기를너희들 사람 죄가 있다. 눈으로 봤으면 소를 갖다가 네가 받아서 외양간에다 갖다 넣을 일이지, 눈으로 봤으면서도 내버려두었으니 죄는 눈에가 있어. 그러니 눈을 버려야겠다.

그리고 너는 남의 소를 갖다 썼으면 소를 갖다가 써서 고맙다고, 여기 소를 가져왔다고, ! 말을 해야지 말을 했으니 혓바닥을 버려야겠다이렇게 재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임자가! 정말 상감마마 말씀을 들으니, 그렇겠습니다. 그러니 내가 달란 말은 테니 빼는 , 사람 빼는 형벌은 용서를 주십시오이래 가지고 화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번째, 돌을 던져서 다리를 부러뜨렸다는 재판을 하게 되는데,

네가 사람보고 말을 갖다가 도망가게 달라고 네가 부탁을 했으니, 너는 입으로 했으니 혀를 빼야겠고, 너는 돌을 던졌냐? 그러니 팔을 갖다가 꺾어야겠다. 사람이 죄가 없지 못하니 사람 벌을 해야겠다

그러니 임자가 말을 물어 달라고 테니 빼는 것과, 사람 팔목을 꺾는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이래서 화해를 했습니다.

 

강을 건너다가 끌을 빠트리는 재판을 하게 되는데네가 길을 묻고, 사람은 끌을 가지고 가면 당연히 손으로 들고 가야 텐데, 끌을 입에다 물고 갔느냐? 그러니 너는 앞니 개를 빼야 하겠고, 너는 입으로 길을 물었으니 너에게도 허물이 있어. 그래서 사람 벌을 내려야겠다

그러니까 임자가내가 끌을 물어 달라고 하지 아니 테니 이빨 빼는 것과 사람 빼는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그래서 화해를 했습니다.

 

주막에서 애기를 깔고 앉아 가지고 터져 죽게 재판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너희 집은 주막집이 되어서 손님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왕래가 끊어지지 아니하니, 애기를 손님이 없는 방에다가 재울 것이지 어찌 손님이 앉는 평상에다가 애기를 뉘어 놓으며, 애기를 뉘어 놓으면 머리를 내놓고 뉘어야지 어찌 이불로 싸서 덮어놨느냐? 그랬으니 너한테도 허물이 있고.

앉을라면 거기에 무엇이 있는가? 물건이 있으면 치워 놓고 앉아야지, 마구잽이 앉는 법이 어디가 있느냐? 사람이 허물이 있어.

 

그러니 애기는 이미 죽었으니 어떻게 물어줄 도리는 없고, 단니기를 애기 하나 까지 남편으로 맞이해라. 그러면은 애기를 물어주는 것이 되지 않느냐?” 이렇게 재판을 내렸습니다.

 

주막집 주인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애기를 기어이 물어 달라고 하다가는 영락없이 아무것도 없는 건달 놈을 남편으로 맞아들이자니 혹을 떼려다 붙이게 됐다 그말이여.

그리고 가난할 뿐만 아니라 백수건달(白手乾達) 남편으로 맞이했다가는 자기 신세가 오그라질 밖에는 없고, 그래서제발 애기 물어 달라고 안할 테니 저놈을 남편으로 삼으란 말씀을 거둬 주십시오이렇게 해서 재판이 화해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에 담을 뛰어넘다가 늙은이를 죽이게 해서 자기 아비를 물어 달라고 사람에게는 아비는 이미 죽었고, 그러니 아비를 어떻게 물어주겠느냐? 백수건달을 아비로 삼아라그렇게 재판을 내렸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아버지 돌아가신 것도 슬픈 데에, 아비를 죽인 웬수 놈을 아비로 모실 수는 도저히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판도 화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른 사람들은 재판을 해서 자기 잃어 버린 물건도 찾고, 그놈을 갖다가 벌을 주려고 왔던 원고(原告)들은 버리고, 단니기만 상감마마 앞에 남아 있습니다. “너는 가고 있는고?” “제가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오다가 꿩한테 들은 말을 여쭙고어째서 꿩이 나무에서 울면 소리가 납니까?” 여쭈어 봤습니다. “ 나무 밑에는 황금으로 만든 솥이 묻혀 있느니라. 그래서 황금 솥에 울려서 소리가 아름답게 나느니라이렇게 일러 주셨고.

 

"독사가 아침에 나갈 때에는 그렇게 몸이 가볍고 좋은데, 해가 저물어서 때는 어째서 그렇게 몸이 무겁고 그렇게 문턱을 넘기가 어렵습니까?” 그걸 물어보니까,

 

아침에 나갈 때에는 저녁에 편안하니 쉬었기 때문에 몸에 독소가 풀리고, 피로가 풀려서 그렇게 몸이 가볍고.

하루 종일 낮에 돌아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까막까치가 좃고 괴롭히며 모든 짐승도 잡어먹으려고 그러고, 자기도 자기를 해꼬자한 것이 있으면 그놈과 싸우고 하느라고 진심(瞋心) 많이 냈기 때문에 진심을 냄으로 해서 혈압이 오르고 따라서 몸도 커지고, 몸도 무거워지고 거칠어져서 그래서 몸이 무겁고 굴속으로 들어갈 때에는 부드럽지 않고 무거운 것이다.

 

비단 그러한 독사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람도 마음을 편안히 하고 안정을 하면, 피도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지며 정신도 맑아지려니와,

진심(瞋心) 내고크고 작은 일에 볼쏙볼쏙 진심을 싸면 혈압이 오르고 피가 탁해지고, 오장육부를 갖다가 메겡이로 치는 거와 같아서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를 못하고 여기저기 고장이 나고 이래 가지고 병이 나는 법이니라 이렇게 일러 주시고,

 

네가 꿩이 울면 소리가 우렁차고 아름답게 들린다는 나무 밑에 있는 황금으로 만든 솥은 응당 나의 소유려니와 네가 나무 밑을 파서 황금 솥이 나오거든, 솥을 가지고 그것으로 논도 사고, 밭도 사고, 집도 새로 짓고 해서 잘살아라그렇게 임금님이 일러 주셨습니다.

 

그때에 단정왕이라고 하는 임금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 석가모니 부처요, 그때 단니기라고 하는 바라문은 오늘 악독한 아내를 버리고, 딸과 사위를 버리고 늦게 출가했으나 도를 닦아 가지고 그렇게 아라한과를 증득한 빈두로타사가 바로 옛날에 단니기라고 하는 바라문인 것이다.

옛날에도 내가 단정왕으로 있을 때에 다섯 가지 재판을 판결을 지혜롭게 내려줌으로 해서 사람을 살려 주었고, 황금 있는 그것까지 일러 주어서 사람을 도와 주었을 뿐만 아니라 금생에도 저의 무서운 고통을 덜어 주어 가지고 마침내 해탈도를 얻게 했느니라이렇게 법문을 하셨습니다.

 

 

자리에 모이신 여러 사부대중,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들도 무량겁 인연으로 업연(業緣)으로 해서 크고 작은 가지, 가지 양상을 많은 업연들로 인해서 수없이 많은 고통도 받고 은혜도 입고, 남에게 고통을 주기도 하고 은혜를 베풀기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깝게는 남편, 아내, 아들, , 며느리, 손자손녀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은인으로 상대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웬수로 상대가 되기도 합니다.

 

고의적으로 지은 업연은 고의적으로 받게 되고, 전혀 고의성이 없이 무의식중에 은혜를 입히거나 해를 입히면 무의식중에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설사 법에는 제재(制裁) 면했다 하더라도 인과 관계는 그것으로써 완전히 끝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전생에 지은 다섯 가지 죄로 () 받아야 것을, 다행히 현명한 상감마마의 판단으로 해서 법의 벌은 면했지만, 전생에 지은 업으로 금생에 다시 빚쟁이들이 아내로 태어나고, 딸로 태어나고, 사위로 태어나 가지고, 기둥뿌리가 남을 정도로 샅샅이 훑어가고,

중의 제일 고약한 웬수는 아내가 되어 가지고 일생 동안을 한솥밥을 먹으면서, 지붕 밑에 살면서 날이면 날마다 오장을 뒤집어 놓고 바가지를 긁고 이렇게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 두터운 사람도 다행히 부처님을 친견하고 출가해서 보리심(菩提心) 발하게 되면 확철대오(廓徹大悟) 해서 생사(生死) 윤회(輪廻) 벗어나게 있다고 하는 법문을 들었습니다.(3615~5218)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빈두로타사 인연 이야기 ; [현우경(賢愚經), 11] 46 단니기품(膩羈品) 참고.

[참고] [현우경(賢愚經)] ‘단니기품 있는 단정왕의 다른 명판결.

見二母人,共諍一兒,詣王相言。時王明黠,以智權計,語二母言:『今唯一兒,二母召之,聽汝二人,各輓一手,誰能得者,即是其兒。』 其非母者,於兒無慈,盡力頓牽,不恐傷損;所生母者,於兒慈深,隨從愛護,不忍抴輓。王鑒真偽,語出力者:『實非汝子,強輓他兒,今於王前,道汝事實。』 即向王首:『我審虛妄,枉名他兒。大王聽聖!幸恕虛過。』 兒還其母,各爾放去。復有二人,共諍白疊,詣王紛紜,王復以智,如上斷之。

 

그때에 어떤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왕에게 와서 제각기 아들이라고 주장하였다. 왕은 현명하고 지혜로워 방편으로 여자에게 말하였다.

지금 아이는 하나인데 어머니가 서로 아이라고 주장하는구나. 너희들 둘은 각기 아기 팔씩 잡고 당겨라. 누구나 빼앗는 이가 바로 어머니다

 

아이의 어머니가 아닌 이는 아들을 사람하는 마음이 없으므로 힘을 다해 마구 잡아당기면서 아이가 상할까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를 낳은 어머니는 아이를 매우 사랑하기 때문에 끌려가면서도 아이를 아껴 보호하려 차마 잡아당기지 못하였다.

 

왕은 진위(眞僞) 판단하고, 힘을 다해 마구 잡아당긴 여자에게 말하였다. ‘ 아이는 실로 아들이 아니다. 억지로 남의 아이를 욕심낸 것이다. 지금 앞에서 사실대로 고백하라

그는 머리를 조아리고 왕에게 아뢰었다. ‘실로 거짓이었습니다. 남의 아이를 억지로 아이라 하였습니다. 대왕님의 존엄하신 판결입니다.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왕은 아이를 어머니에게 돌려주고 각기 놓아 보내었다.

 

어떤 사람이 천을 가지고 와서 서로 것이라 시끄러이 다투었다. 왕은 지혜로써 위와 같이 판결하였다. —[현우경] (몽산 관일 번역 | 두배의 느낌) p259~260 참고.

*기원정사(祇園精舍) ;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정사의 약어(略語). 중인도 코살라국() 수도 사위성(舍衛城:슈라바스티) 남쪽 1.6 km 지점에 있던 기타태자(祇陀太子) 소유의 동산에 지은 .

이는기타태자의 동산에 수달(須達:給孤獨長者) 지은 승원이라는 뜻인데,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고독한 이들에게 보시를 많이 부자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라문(婆羅門) ; 산스크리트어 brāhmaṇa 음역어. 고대 인도 바라문교의 카스트(caste 가지[四種姓] 분류되는 세습적 신분 계급 제도) 제도의 최상위 계급인 사제(司祭) 계급을 일컫는다.

베다(Veda 바라문교 근본 경전) 교육하고 사원과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제식(祭式) 관장했다.

*여우살이 ; ‘결혼 생활 말하는 우리말. 여기서의 결혼 생활이란 남자측을 말하는게 아니고 여자측의 결혼 생활을 말한다.

*여우다 ; ‘결혼을 시키다 사투리.

*훑어가다 ; ①있는 대로 빡빡 뺏어가다. (사람이 어디를)어느 한쪽에서부터 더듬거나 살피어 가다.

*포악(暴惡 사나울 /악할 ) ; 사납고 악독함.

*추수(秋收) ; 가을에 익은 곡식을 거두어들임. 가을걷이.

*손대 ; 일을 사람.

*고타마(Gotama) ; 인도의 크샤트리야 계급에 속하는 여러 ()가운데 하나. 석가모니의 (). 구담(瞿曇)이라 음역.

*사문(沙門) ; 슈라마나(산스크리트어: śramaṇa, 팔리어: samaṇa) 음역. (근식(勤息정지(淨志) 등으로 번역. 여러 선법(善法) 근수(勤修)하고, 악법(惡法) 행하지 않으며, 심신을 조어(調御)하여 청정(淸淨) 깨달음의 길을 지향(志向)하고 노력함을 뜻함.

①인도에서 바라문교의 「베다」 성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제종교 수행자의 총칭.

②출가하여 불문(佛門) 들어 도를 닦는 사람.

*부귀영화(富貴榮華) ; 많은 재산과 높은 지위로 누릴 있는 영광스럽고 호화로운 생활.

*빈궁(貧窮 가난할 /빈곤 ) ; 가난하여 살기가 어려움.

*생사열뇌(生死熱惱) ; 생사의 매우 심한 괴로움.

*() ; 불교에 귀의한 자가 () 쌓기 위해 지켜야 규범.

*아라한과(阿羅漢果) ; 아라한(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 깨달음의 경지.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자의 지위로서, 성문 사과(聲聞四果-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 가장 윗자리이다.

*아난존자(阿難尊者) : [] Ananda 음을 따라 아난타(阿難陀) 쓰고, 줄여서 아난(阿難) 또는 아란이라 하며, 뜻으로 번역하여 환희(歡喜) 또는 경희(慶喜)라고 하니, 기쁘다 뜻이다。

부처님의 사촌이며 조달(調達) 동생이다。부처님 성도하시던 밤에 났고, 스물 다섯 살에 출가하여 25 동안 부처님의 시자(侍者) 있었으며 십대제자 가운데서도 다문제일(多聞第一) 총명이 놀라웠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가섭존자의 주관으로 왕사성 밖에 있는 필발라굴(畢鉢羅窟 Vaibhara)에서 오백 성승(聖僧) 모여 경전을 결집하는데 아난존자는 때까지 아직 성과(聖果) 얻지 못하였으므로 거기에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가, 가섭존자에게 묻기를 『부처님께서 사형(師兄)에게 법을 전하실 때에 금란가사(襴袈裟) 말고 따로 무엇을 전하신 것이 있읍니까?』『아난아』『예?』『문 밖에 찰간(刹竿)대를 꺾어 버려라! 』하였다。그러나 아난은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용맹정진 사흘 만에야 비로소 크게 깨치고 나서, 회의에 참석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대로 외니 하나도 틀림없음을 대중이 증명하여 경의 결집이 완성된 것이다。그 가섭존자로부터 법통(法統) 받았다가 상나화수(商那和修)에게 법을 전하였다.

 

 

 

 

 

------------------(2)

 

*백수건달(白手乾達) ;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이 건들거리고 돌아다니는 사람.

*원고(原告) ; 소송을 제기하여 재판을 청구한 사람.

*까막까치 ; 까마귀와 까치를 아울러 이르는 .

*좃다 ; ‘쪼다(뽀족한 것으로 찍다)’ 사투리.

*해꼬자 ; 해꼬지. 해코지(害코지)—남을 해치고자 하는 .

*진심(瞋心) ; 왈칵 성내는 마음.

*메겡이 ; ‘(묵직하고 둥그스름한 나무토막이나 쇠토막에 자루를 박아 무엇을 치거나 박을 쓰는 방망이)’ 사투리.

*업연(業緣) ; 업보(業報)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 인연을 부른다.

*오장을 뒤집다 ; ‘오장(五臟) 긁다’, ‘오장을 건드리다 같은 표현으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비위를 건드려서 기분 나쁘게 하다라는 .

*보리심(菩提心) ;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생사윤회(生死輪廻 /죽을 /바퀴 /빙빙돌 )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 죽고()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 돌듯이()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Posted by 닥공닥정
생활속 정진(요중선)2014. 11. 24. 11:59
§(복전암26) (게송)다생원채기어친~ / 무연자비(無緣慈悲), 무주상보시 / 지장보살의 원력 / 인과법(因果法) / ‘이뭣고?’는 ‘참나’를 찾는 공부, 자기마음을 바로잡는 법.
 
남에게 줄 때는 무심(無心) 속에서 주어야 하고 조건 없이 주어야 해. 이것이 부처님의 ‘무주상 보시(無住相布施)’라 하는 것이여. 금강경을 독송하신 분은 잘 아시겠지. 무주상 보시를 해야 이것이 그 공덕이 영원한 것이지, 유주상으로 준 것은 그것 나중에 꼭 그놈이 나를 웬수로 상대하게 되는 것이다.
 
어떠한 큰 죄도 ‘어떻게 해서 그 죄를 짓게 되었는가?’ 그 근원을 살펴보면 꼭 마음 ‘한 생각’에서 그것을 짓는 거여.
쇠고랑도 안 차고, 지옥에도 안 가는 방법은 한 생각 일어날 때 그때 딱! 돌이켜버리면 큰 죄를 안 짓게 되는 것이다.
 
인과법을 철저히 믿는 사람은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인과법을 안 믿고 마구잡이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다. 모든 죄도 인과법을 안 믿는 데서 저질르게 되는 것이다.
흰머리가 다른 것이 아니라 염라대왕(閻羅大王)이 ‘너 벌써 늙기 시작을 했으니 얼마 안 있으면 너를 데리러 갈테니까 정신 차려라.’ 염라대왕이 우리에게 보낸 편지다.
 
**송담스님(복전암No.26)—지장기도 천도재 회향 (93년) (복전암26)

 

(1) 약 21분.

(2) 약 21분.

 

(1)------------------
 
다생원채기어친(多生怨債起於親)하니  막약다생불식인(莫若多生不識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향아불문여광제(向我佛門如廣濟)인댄  무연진개대비은(無緣眞箇大悲恩)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다생원채(多生怨債)가 기어친(起於親)이여, 다생! 다생겁래(多生劫來)로 웬수와 빚이 친한 데에서 일어난 거여. 
막약다생(莫若多生)에 불식인(不識人)이다, 다생에 웬수가 없고자 하면 사람을 알지 아니한 것만 같지 못하다.
 
사람을 알고 지내면은 친하게 되고, 친함이 생기면은 그것이 언젠가는 변해서 웬수, 빚쟁이가 된다.
그래서 웬수와 빚쟁이를 안 만날라면 사람을 알고 지내지 아니한 것이 좋다.
 
이 ‘사람을 안다’고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인연(因緣)을 맺는 것인데,
그 인연으로 인해서 우리가 잠시 한자리에 만나서 얘기하는 인연, 함께 차를 타고 가는 인연, 함께 길을 가는 인연, 한 집에서 사는 인연, 한 마을에서 사는 인연, 한 나라에서 사는 인연, 한 이 지구상에 함께 태어난 인연,
 
한 집에서 살되 부모 자식간의 인연, 부부간의 인연, 형제 간의 인연, 그 인연이 천 생, 만 생, 몇백 생, 오백 생 그러한 깊은 인연으로 해서 그렇게 만나게 되고,
이렇게 한자리에서 법문을 듣는 그 인연도 몇천 생의 인연으로 이렇게 된 것이다.
 
유루법(有漏法), 유위법(有爲法)의 인연은 그 인연이 언젠가는 원수로 변하는 것이고.
무위법(無爲法), 무루(無漏)의 인연 — 법(法)을 믿고, 법을 권하고, 법을 듣고, 법을 실천하고, 법에 있어서의 인연이 바로 무위법의 인연이요, 무루의 인연인데.
 
그런 인연은 몰라도 유루법, 유위의 인연은 전부 다 웬수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부모 자식간은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아낄 것이 없고, 자식을 위해서는 한량없는 죄도 서슴지 않고 짓게 된다 그말이여.
그것이 전생(前生)에 깊고도 깊은 전생의 빚이 있기 때문에 — 엄청난 빚이 있기 때문에 그 빚을 갚기 위해서 금생에 빚 받으러 온 놈이 그것이 자식이다 그말이여. 그러니 전생에 지어논 빚을 안 갚을 수 있는가!
 
그래서 자식을 위해서는 무엇이고 아까운 것이 없어.
자식은 물론 효자도 더러는 있지만은 대부분의 자식이라 하는 것은 빚 받으러 온 웬수거든.
그래서 그놈을 위해서는 아까운 것이 없다 그말이야. 다 주어도 또 주고 싶어.
 
그렇게 불효막심(不孝莫甚)해도—남이라면은 그렇게 고약한 놈은 탁! 인연을 끊어버리고 안 봐 버리면 되는데, 불효자식일수록에 부모는 더 가슴이 아프고 더 못 잊는다 그말이여.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알고 모르게 크고 작은 죄를 짓지마는 자식을 위해서 지은 죄가 엄청나게 많다 그말이여. 빚을 갚기 위해서 그런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지어 놓은 빚은 안 갚을 수가 없으니까 최선을 다해서 빚은 갚을 수 밖에는 없고, 아무리 피할래야 피할 수도 없는 것이니까 빚은 갚되,
그 빚을 갚으면서도 항상 ‘이뭣고?’를 해야지, ‘이뭣고?’를 안하면 계속해서 또 빚은 늘어나고만 만다.
 
자식은 ‘으레이 부모는 나를 낳았으니까 당연히 그렇게 해주어야 한다’ 생각하고 별로 고마운 생각도 없는 거여.
알뜰히도 빚을 받으면서도 별로 고마운 줄 모르고, 나중에 다 커서는 으레이 부모가 자식을 해주어야 한 걸로 생각한다 그말이여. 그놈이 또 자식을 낳으면 자식한테 또 빚을 갚아야 하고.
 
그러니 ‘이뭣고?’를 안 한 사람은 무량겁을 그것을 되풀이를 해. 되풀이를 하면서도 정신을 못 차려. 
 
지금 ‘부정부패 척결’해서 온통 야단이지마는 전부가 다 처자(妻子)·권속(眷屬)을 위해서 저지른 죄다 그말이여. 한도 끝도 없는 것이여.
 
그래서 우리의 불자(佛子)! 형제자매 여러 도반들은 원수 빚을 안 갚을 수가 없으니까 갚지마는 그 속에서 항상 ‘이뭣고?’를 해야 되야.
‘이뭣고?’를 해서 묵은 빚은 갚지마는 새 빚을 짓지를 말라.
 
 
향아불문여광제(向我佛門如廣濟)인댄, 우리 불문(佛門)에 있어서 널리 제도(濟度)를 하는데 있어서는,
무연(無緣), 무연자비(無緣慈悲), 인연 없는 자비 — 인연을 맺지 아니한 것이 이것이... (無緣眞箇大悲恩)
 
남에게 보시를 하되 인연이 있고 정을 따라서 주는 보시는 참다운 보시가 아닌 거여.
전혀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지만은 주어야 할 때는 무주상(無住相)으로 주고 이리 해야지,
유주상(有住相)으로 주어 놓으면 결국은 그것도 빚을 만드는 것이여. 웬수를 맺는 올가미가 되는 것이다.
 
내가 물심양면으로 많이 그 사람을 구제를 해 놓고 나중에 많이 주어 놨는데, 나중에는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사람이 되는 거여, 그 사람이.
내 것 많이 먹은 사람이 웬수가 되는 것이지, 전혀 나와 인연 없는 사람은 웬수가 전혀 안되는 법이거든.
 
남에게 보시를 하고 베푸는 것도 대단히 좋은 일인데 완전히 무주상으로 주어야 해.
조건 없이 주고도 잊어버리고 주어야지,
“내가 이것을 너를 주었으니까 너는 정말 나한테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이 은혜를 잊어서는 안되고 나중에 네가 이것을 내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러한 마음으로 조건부(條件附)로 주고,
 
“이것을 주었으니까 언젠가 너는 나한테 잘해야 한다. 평생토록 내 은혜를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그런한 조건이 있어 가지고 주어서는 그 사람이 받으면서도 겉으로만 ‘고맙습니다’ 그러지, 속으로는 하나도 고맙지도 않고, 많이 받아먹은 놈일수록에 나중에 그놈이 꼭 배은망덕한 놈이 되고, 나를 해꼬지 하는 것이여.
 
그래서 남에게 줄 때는 무심(無心) 속에서 주어야 하고 조건 없이 주어야 해.
이것이 부처님의 ‘무주상 보시(無住相布施)’라 하는 것이여. 금강경을 독송하신 분은 잘 아시겠지.
 
무주상 보시를 해야 이것이 그 공덕이 영원한 것이지, 유주상으로 준 것은 그것 나중에 꼭 그놈이 나를 웬수로 상대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7일 지장기도 회향식인데, 윤달을 기해서 왜 지장기도를 주지스님이 그렇게 원력(願力)을 발했느냐 하면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지은 죄로 자기가 그 과보를 받게 돼.
무량겁을 두고 몸으로 지은 죄가 태산과 같고, 입으로 지은 죄가 저 대해(大海)와 같고, 마음으로 지은 죄가 허공처럼 많다 그말이야.
 
그 자기가 지은 — 지금 이렇게 세상을 살아가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자체가 또 내생(來生)에 윤회할 그리고 고통을 받아야 할 그 원인을 만드는 거여.
과거에 지은 죄를 금생에 받으면서 또 금생에 이렇게 살아가면서 내생에 받을 죄를 또 짓고 있거든.
 
그래서 과거에 지은 죄를 참회(懺悔)하고 내생에 받을 과보를 받지 않는 참다운 길을 여러분에게 깨닫게 해 드리기 위해서 지장기도를 봉행한 것이다.
 
윤달에 예수재(預修齋)도 지내고, 윤달에 가사불사도 하고, 윤달에 개금불사도 하고, 참 수많은 불사(佛事)가 있는데 이렇게 지장기도를 한 경우는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닙니다
대단히 주지스님이 원력을 발해 가지고 지장기도를 이렇게 봉행을 했는데 여기에 동참하신 여러 불자, 신남신녀 여러분은 그 지장기도의 참다운 뜻을 잘 인식을 하셔야 할 것이다.
 
 
지장보살(地藏菩薩)은 지옥 중생 — 이 세상에 고통이 제일 심한 곳이 지옥인데.
지옥에는 팔만지옥(八萬地獄)이 있고, 그 가운데 참 무서운 데가 십팔지옥(十八地獄)이 있고, 무간아비(無間阿鼻) 지옥이 있고 그런데.
 
그 지옥 문전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지옥 중생을 위해서 지옥문에 가 가지고 눈물이 마를 겨를이 없이 그 지옥 중생들에게 고통을 멈추게 해주기 위해서 애를 쓰고 계시다 그말이야.
 
우리도 지장보살의 대원력을 따라서 「지옥에 들어가기 전에 해탈도를 가는 것」이 그것이 지장보살의 참으로 큰 대원력이여.
 
이미 지옥에 들어가 가지고 그놈을 벗어나기는 참 어려운 거여.
한번 들어가면 나올 기약이 없어. 거의 영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할 만큼 몇 무량겁을 지옥고를 받게 되는 것인데,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열심히 해둔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냐.
 
탐진치(貪瞋癡), 탐욕과 성내는 것과 어리석은 마음 — 이 세 가지 죄로 지옥, 아귀, 축생의 과보를 받게 되는 거여. 어리석은 마음을 내면 축생보를 받고, 탐심을 내면 아귀보를 받고, 진심을 내면 지옥을 가는 것이여.
 
물론 중생은 세 가지를 다 고루고루 지어 가지고 축생에 갔다가 아귀도에 갔다 지옥고에 갔다, 그 삼악도(三惡道)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지만은,
 
 
그 어떻게 했으면은 탐욕심을 안 내고, 진심을 안 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안 낼 수가 있느냐?
 
천하에 간단한 것이지.
아무리 탐욕이 과하고, 진심을 성을 잘 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많이 낸다 하더라도 그것이 근본은 마음에서 그것을 짓는 것이지 다른 것으로 짓는 게 아니여.
 
어떠한 큰 죄도 ‘어떻게 해서 그 죄를 짓게 되었는가?’ 그 근원을 살펴보면 꼭 마음 ‘한 생각’에서 그것을 짓는 거여.
한 생각이 일어나 가지고 그 한 생각이 차츰차츰 이리저리 발전해 가지고 결국은 그런 큰 죄를 짓게 되어.
 
‘한 생각’이 딱 일어나면 그것이 말로 표현이 되고, 그것이 얼굴에 나타나고,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나 가지고 큰 죄를 지어 가지고 금생에도 쇠고랑을 차게 되고 내생에는 물어볼 것도 없이 지옥에 가게 되는데.
 
쇠고랑도 안 차고, 지옥에도 안 가는 방법은 한 생각 일어날 때 그때 딱! 돌이켜버리면 큰 죄를 안 짓게 되는 것이다.
 
지금 장관도 걸리고, 국회의원도 걸리고, 그 별 단 장성들도 모다 걸려 들어가는데 그 죄가 한 생각에서 일어난거다.
 
산불이, 건조기에 산불이 지난달에 몇천 건이 일어나 가지고 한국의 금수강산이 모다 다 타고 그랬는데, 그 엄청난 불이 처음부터 그렇게 큰불이 난 것이 아니여. 
처음에는 성냥불 하나나 담뱃불 하나가 결국은 번져 가지고 그렇게 큰불이 된 것이거든.
 
처음에 담뱃불 하나만 탁! 밟아서 잘 껐어도 그런 큰불이 안 날거거든.
담뱃불 하나만 단속을 잘 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여. 성냥불 하나 — 그때는 탁! 손바닥으로 눌러도 꺼지고, 발로 탁! 밟아도 꺼지고.
 
그때 조심을 했으면 될 것인데 그걸 조심을 안하고, 그때 단속을 안했기 때문에 집도 타고 공장도 타고, 저 엄청난 산도 다 탄다 그말이여.
 
 
한 생각 일어난 그 한 생각이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 욕심!
아까 그 자식때문에 요새 모다 부정 입학문제도 그 자식이 평소에 공부를 잘해서 실력으로 들어가 주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은 그놈이 국민학교 때는 잘하던 놈이 중학교 가면서 조금 떨어지고, 고등학교 가서는 나쁜 친구를 사귀고 그럭저럭 지내다가 대학을 갈라고 하니 되냐 그말이여.
 
그러니 부모는 돈이 없는 사람은 몰라도 있는 사람은 몇천 만원, 몇억이라도 넣어서라도 들여서라도 입학을 시키고 보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말이여. 그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면은 참 기가 맥히지.
 
그러나 지가 공부 못한 놈을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을 시킬 것까지는 없는 일이었었다 애당초에.
못하면 못한대로 지가 공부를 안 해 가지고 못한 걸 어떻게 하냐?
전생에 지혜를 닦아 놓지 아니해서 금생에 머리가 나쁘고, 지가 금생에 어려서부터 열심히 했으면 되는데 그렇게 공부를 하라하라 해도 지가 안 한 것을 어떻게 돈을 들여서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을 시킬 것이냐 그말이여.
 
못하면 못한대로 구두닦이를 하던지, 노동판에 가서 일을 하던지, 신문팔이를 하던지 아주 매정한 마음으로 했어야 한다 그말이야.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을 시켜놨다가 1학년, 2학년 대학에 가 가지고 그때사 퇴학을 당하면 그거 어떻게 되는 것이며, 부정한 방법으로 별자리를 올라갔다 그것이 떨어지니 그것이 될 일이냐 그말이여.(19분41초~40분45초)
 
 
 
 
 
(2)------------------
 
그래서 사람은 바르게 살아야 하고 정에 떨어져서는 안돼.
제 자식이지만은 지가 공부 안한 놈은 안 하는대로 해야지, 인정(人情) 정을 써서 해 놓으면 결과가 결국은 그렇게 되고만 만다 그말이야.
설사 부정한 짓을 해서 금생에 잘산다 하더라도, 금생에 쇠고랑은 안 찬다 하더라도 내생에 저 내생에는 반드시..(법문 끊김)
 
탐욕! — 자기 욕심대로 안 되면은 진심(瞋心)을 내고, 그러기를 무량겁을 두고 그렇게 해 가지고 육도윤회를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어리석은 것도 가지각색이지만 제일 어리석은 것이 무엇이냐?
‘가장 어리석은 것의 근본이 무엇이냐’하면은 인과법(因果法)을 안 믿는 거여.
 
인과법을 철저히 믿는 사람은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인과법을 안 믿고 마구잡이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다.
 
모든 죄도 인과법을 안 믿는 데서 저질르게 되는 것이다.
인과법은 팥 심은 데 팥이 나고, 콩 심은 데 콩이 나.  털끝 만큼도 어기는 법이 없어.
 
이 세상에 모든 것은 인과법으로 다 이루어지는 것인데, 인과법은 지극히 과학적이고 컴퓨터보다도 더 정확한 것이여. 컴퓨터도 병이 나면 천하 못 믿을 것이 참, 컴퓨터라 그러는데.
 
진짜 영원히 추호도 어김이 없는 것은 인과법이여.
한 생각 탁! 먹은 것도 벌써 과보(果報)로 나타나고, 말 한마디 나온 것도 과보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말이여.
 
그래서 우리는 한 생각 일어날 때 퍼뜩 돌이켜서 ‘이뭣고?’로 돌아와야 해.
‘이뭣고?’는 무엇이냐? 내가 ‘참나’를 찾는 공부거든. ‘참나’로 돌아가는 길이여.
 
우리가 저 진묵겁(塵墨劫) 전에는 우리도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法身佛)이었어. 법신불과 똑같은 존재였어.
 
그러던 존재가 한 생각 일어나는 그 무명(無明) 때문에 이렇게 '업(業)투성이'인 중생이 되고 말았다 그말이여. 
그래서 지금도 일어나는 한 생각만 잘 단속을 하면 본래의 비로자나불로 돌아갈 수가 있다 그거거든.
 
이것 말고는 우리의 영원한 행복도 얻을 수가 없고 우리의 가정, 우리의 사회·국가·세계의 평화도 이룰 수가 없는 거여.
근원을 다스리지 않고 어떻게 지엽적인 문제만 가지고 해결이 될 것이냐 그말이여.
 
지금 부정부패 척결을 해 가지고 새 한국을 건설하자고 새 대통령께서 나와서 저렇게 애를 쓰고, 온 국가가 온통 이것 때문에 그 애를 쓰고 있는데,
대단히 부정부패는 마땅히 척결을 해야 하고 그래야 이 나라가 되어갈 것은 사실이나 법을 엄격히 적용한다고 해서, 근본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이것은 잠시 그러다가 조금 법을 느슨히 느꿔주면 또 마찬가지야.
 
 
근본은 각자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는 거여.
일어나는 한 생각을 자꾸 ‘이뭣고?’로 돌이켜서 ‘참나’로 돌아감으로서만이 부정부패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부정부패, 부정부패하지만 알고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지은 죄여, 그게.
각기 자기가 지은 죄가 노출이 되면 여러 사람이 하니까 온 나라가 썩어 문드러진 것처럼 보이나, 나라가 썩기는 무슨 나라가 썩어, 태산이 썩어?
 
아무 것도 썩은 건 없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잘못 삐틀어진거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만 바로잡어!
어떻게 나무가 삐틀어지면 깎아내고 바로잡는다 하지마는 사람의 마음을 무엇으로 잡어?
 
‘이뭣고?’가 자기 마음 바로잡는 법이거든.
자꾸 ‘이뭣고?’를 해서 자기로 돌아가. 자기의 본심으로 돌아가.
 
그것이 바로 자기 마음을 바로잡는 법인데, 마음 하나만 바로잡고 보면 말도 바르게 나오고, 행동도 바르게 나올 것이고, 마음을 바로잡은 사람은 무슨 일을 맡기더라도 그 일을 바르게 할 것이다 그말이여.
 
서장이 되거나 검사가 되거나 판사가 되거나 장관이 되거나 마음을 잘못 써 가지고 쇠고랑을 차는 것이지, 마음만 바로잡으면 무슨 걱정이 있느냐 말이여.
 
법을 아무리 무섭게 제정을 해서 엄격하게 다룬다 해도 그때 뿐이여, 중생은.
엄하게 할수록에 더 머리 좋은 사람은 그놈의 법망을 뚫고 또 죄를 저지르고 마는 거다 그말이여.
 
그래서 성현들은 법을 엄격히 적용을 하는 데에다가 역점을 두지 않고, 각자 마음을 바로잡는 데에다가 역점을 두고 가리키셨다 그거거든.
 
‘이뭣고?’ 자기 마음을 바로잡는 법이 아닌가!
집안에 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으로 인해서 두 사람, 세 사람 온 집안 식구가 ‘이뭣고?’를 하고, 그런 집안이 있으면 또 이웃집 사람들도 또 그 본을 따서 ‘이뭣고?’를 하고, 사돈네도 그걸 하게 되고 해서,
 
차츰차츰 ‘이뭣고?’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인과법을 믿고 ‘이뭣고?’만 열심히 하면 이 세상이 온통 부처님 세계로 변하는 것이다.
 
법이 전혀 필요가 없는 거여. 형무소도 필요없이 되어 버리고.
지옥도 텅텅 비어서 지장보살도 지옥에서 좀 나올 때가 된다 그말이여.
 
‘이뭣고?’을 하지 않고는 온 세계가 법을 무섭게 제정을 해 가지고,
도둑질한 놈은 왼손 자르고 또 한번 한 놈은 오른손을 자르고, 유부녀 간통한 놈은 목 매달아 죽이고 총살을 시키고, 지금도 저 아프리카 어디 가면은 도둑질하면 팔목 자르고 목 매달아 죽이는 데가 있다고 하더만.
 
그래 해봤자 마음보를 바로잡지 않고 아무리 무섭게 해서 날마다 수백 명씩 때려 죽여봤자 끝나는 날이 없어. 온 세계 사람을 다 때려 죽여도 소용이 없는 거다 그말이여. 죽자마자 또 다시 태어날 것을 죽여봤자 소용이 있나.
 
 
그래서 우리 부처님께서는 ‘이뭣고?’ ‘이뭣고?’
가정에서도 속상한 거 부애풀이 해봤자 소용 없고, 떠억 숨을 깊이 들여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뭣고?’
열 번, 스무 번 하다보면은 스르르르 가라앉거든.
 
부애난다고 때려 부수고, 부애난다고 술 잔뜩 먹고 와 가지고 막 때려 부숴봤자 무엇이 되는 일이 있냐 그말이여. 집안만 점점 복잡하고 시끄럽고 일은 무장 더 다 안되거든.
‘이뭣고?’를 해야—턱 숨을 깊이 들여마셨다 내쉬면서 ‘이뭣고?’ 자, 다 따라서 숨을 들여마셨다가 ‘이뭣고?’ ‘이뭣고?’
 
부애가 날 때는 좀 큰소리를 내서 ‘이뭣고?’를 하면 더욱 좋다.
그렇다고 해서 만자 중에서 소리를 내서 ‘이뭣고?’ ‘이뭣고?’ 하면 사람들이 모다 쳐다보고 그럴테니까 사람 없는 데서는 그렇게 하고, 사람 있는 데서는 속으로 ‘이뭣고?’를 자꾸 해서,
자꾸 하다 보면 나중에는 저절로 ‘이뭣고?’가 되야.
 
걸어가면서 ‘이뭣고?’
심심하면 ‘이뭣고?’
차를 타고 가면서도 ‘이뭣고?’
밥 먹으면서도 ‘이뭣고?’
누워서도 ‘이뭣고?’
앉아서도 ‘이뭣고?’
변소에 가서 터억 앉아서도 ‘이뭣고?’.
 
‘이뭣고?’ 저절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항상 ‘이뭣고?’가 끊어지지 않도록.
그 사람은 제발 좀 성을 내라고 해도 성을 안 내고, 제발 좀 탐욕심을 내라고 해도 안 내는 거여.
그 사람이 무슨 도둑질을 하라고 한다고 해서 할 리가 있는가!
 
자꾸 처음에는 잘 안되고 재미가 없지만은 자꾸 하면은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법희선열(法喜禪悅) — 법(法)의 기쁨과 선(禪)의 즐거움이 속에서,
 
향을 피워 놓으면 향내가, 전단향을 피우면 10리 밖에까지라도 그 향내가 풍기는데,
‘이뭣고?’를 한 사람은 마음의 기쁨이 그렇게 넘쳐 흐르고 얼굴이 환해지거든. 그 사람을 본 사람마다 다 환희심을 내는 것이다.
 
그 사람이 간 곳에는 항상 선신(善神)이 옹호를 하고, 마음으로 꼭 탐욕심을 안 내더라도 마음으로 꼭 무엇이 필요하다 하면 저절로 그것이 자기한테 이르러 오는 거여.
 
지상(地上) 사람은 무엇이 먹고 싶으면 손으로 그걸 집어서 입에다 넣어서 씹어서 먹어야 그때사 배가 부르는데, 복이 많은 저 천상(天上) 사람들은 무엇이 먹고 싶다 하면 벌써 배가 불러져 갖고 있는 거여.
 
지상 사람은 남녀 관계도 몸과 몸이 접촉해야 사랑이 이루어지는데, 천상 사람은 마음 한 생각만 내면 벌써 이루어지는 거여.
 
그래서 중생이나 축생은 입으로 씹어서 먹는 거고, 귀신은 냄새로 먹는 거고, 천상 사람은 생각으로 먹는 거고.
 
부처님은 견식(見食)이여. 떠억 보기만 해도 벌써 충분히 배가 부르신 거여.
그래서 이 법당 탁자 위에다가 떡이다 과일이다 잔뜩 갖다 놓아도 하나도 줄지를 않거던. 부처님은 보시기만 해도 배가 부르시기 때문에 그런 거여. 부처님은 견식이여.
 
그래서 ‘이뭣고?’를 열심히 해서 마음에 욕심이 없는 사람은 꼭 필요한 것은 저절로 공급이 돼.
왜 그러냐? 항상 선신이 옹호를 하기 때문에,
선신(善神)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선신은 — 대통령이나 모다 그런 사람들은 항시 호위하는 경호원이 따라다니듯이 — 참선하는 사람에게는 선신이 우리의 경호원으로 따라다녀 가지고 항상 지켜줘.
 
먹을 것, 입을 것 전혀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 
열심히 ‘이뭣고?’하면 걱정을 안 해도 항상 그 사람에게는 의식주 문제가 걱정이 없어.
 
자기 한 사람의 의식주 문제는 그렇게 크게 걱정을 안 해.
사람이 지나친 욕심을 가지고 탐욕심을 가지고 그래 가지고 분에 넘치는 욕심을 내기 때문에 죄를 지어 가지고 부정부패에 걸리는 것이지, 자기가 먹고 입고 살 만큼만 가질라고 하면은 그렇게 큰 죄를, 큰 욕심을 안 내도 되는 것이다.
 
 
우리는 시시각각으로 이 몸뚱이는 늙어가고 있습니다.
금방 30까지는 조금 마디다가, 40이 되면 더 빨리빨리 가고, 50이 되면 더 빠르고, 60이 넘으면 금방 늙어서 곧 꼬부라지는 거여.
 
우리가 이만큼 젊었을 때 어쨌든지 시간을 아껴서 열심히 ‘이뭣고?’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우리가 이 몸뚱이를 백 가지, 천 가지 방법으로 위하고 해봤자 금방 이 몸뚱이는 허망하게 늙어가.
 
벌써 여기에 앉아 계신 분들은 대부분 흰머리가 많거나 적거나 간에 다 하나, 둘씩 이상 다 생겼을 것인데,
그 흰머리가 처음에는 곧잘 보기 싫다고 뽑아 내버리지만 나중에는 몇 해 지나가면 도저히 그놈 다 뽑다가는 대머리가 되게 생기니까 도저히 못 뽑고, 나중에는 물을 들이는데 물을 들여봤자 밑에서 하얀 것이 곧 돋아나거든.
 
얼굴에 주름살 생긴다고 여기를 째고 잡아당겨봤자, 정말 늙어서는 흉직하게 늙어간다 그말이여.
 
그 흰머리가 다른 것이 아니라 염라대왕(閻羅大王)이 
‘너 벌써 늙기 시작을 했으니 얼마 안 있으면 너를 데리러 갈테니까 정신 차려라.
죄 지은 것 있으면 참회하고, 어쨌든지 ‘이뭣고?’ 열심히 하고, 남에게 욕심내지 말고, 네게 있는 것을 턱턱 털어서 보시도 많이 하고 그렇게 해서 황천에 올 때에는 가벼운 몸으로 오너라.
 
탐욕심을 잔뜩 탐욕심을 해봤자 너 죄만 짊어지고 오지, 하나도 가지고 오지도 못할 걸, 뭐하러 그렇게 오그려 쥐고,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도 그리고도 만족할 줄을 모르고 한없이 그렇게 죄만 퍼 짓느냐?’
염라대왕이 우리에게 보낸 편지다 그거여, 편지.
 
여러분 「지장기도 오늘 회향일을 맞이해서 깨끗이 과거에 지은 죄를 참회하고 앞으로 남은 여생에 죄짓지 않고 열심히 ‘이뭣고?’ 하겠습니다」하는 뜻으로 참회진언(懺悔眞言)을 외우면서 연비(燃臂)를 받으시겠습니다.(연비 준비하세요)
 
참회진언을 하고 연비를 받아서 과거 무량겁에 지은 우리의 죄는 깨끗해졌습니다.
새 마음, 새 몸으로 오늘 새로 태어났습니다.
 
새로 태어난 몸으로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면 우리는 내일엔 오늘과 다르고, 모레는 오늘과 달라서 점점 젊어지고 점점 이뻐지고, 점점 착해져서 다른 사람이 우리를 볼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볼 때 옛날에 미웠던 사람이 하나도 미운 생각이 없어지고 옛날에 원수로 여겼던 사람이 하나도 웬수로 보이지를 않고 모두가 다 한 식구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상에 극락정토(極樂淨土)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중생이 업(業)의 눈으로 보니까 이 사바세계가 악토(惡土)요 악세(惡世)요 고토(苦土)요 예토(穢土)라고 그렇게 보지마는 부처님의 눈으로 볼 때에는 이 사바세계가 고대로 적광토(寂光土)요 극락세계인 것입니다.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온갖 열매를 맺고, 겨울에는 흰 눈이 내리는 것이 하나도 지옥세계라고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바야흐로 봄이 돌아와서 산천에 푸른 잎이 돋고 온통 울긋불긋 꽃이 피어서 문자 그대로 금수강산(山)이 되었습니다.
 
나라도 새로운 정부가 섰으니 우리도 새로운 마음으로 우리의 몸도 새로와지고 우리의 가정도 새로와지고 온 세계가 새로운 새 봄으로 새출발을 하는 그러헌 계기를 우리는 오늘로서 마련을 합시다.(19분41초~61분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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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다생원채기어친~’ ;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預修十王生七齋儀纂要)』 (大愚集述) 제13 소청명부편(召請冥府篇) 게송 참고.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유루법(有漏法) ; 번뇌의 더러움에 물든 마음 상태, 또는 그러한 세계. 온갖 번뇌와 망상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차별이나 분별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사제(四諦) 가운데 미혹의 결과인 고제(苦諦)와 그 원인인 집제(集諦)에 해당하는 모든 현상.
*유위법(有爲法) ; ① 온갖 분별에 의해 인식 주관에 형성된 현상. 분별을 잇달아 일으키는 의식 작용에 의해 인식 주관에 드러난 차별 현상. 인식 주관의 망념으로 조작한 차별 현상.
② 여러 인연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모든 현상. 여러 인연으로 생성되어 변해 가는 모든 현상. 인연의 모임과 흩어짐에 따라 변하는 모든 현상.
*무위법(無爲法) ; (산스크리트어: asaṃskrta-dharma) 무위법은 무위의 세계, 즉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진리의 세계의 모든 개별 존재(법·法)를 통칭한다. 또는 그러한 개별 존재(법·法)를 가리킨다.
원래 무위 혹은 무위법은 열반(涅槃)의 다른 명칭.
*무루(無漏) ; 마음과 몸을 괴롭히는 번뇌에서 벗어남.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마음 상태. 번뇌가 사라진 경지.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무연자비(無緣慈悲) ; 무조건의 자비(慈悲). 상대의 어떤 것도 묻지 않고, 일체 평등으로 구제하는 자비심. 일체 평등의 이치를 깨달아 상대의 상(相:모습)을 가리지 않고 행하는 자비.
무연(無緣)이란 진여평등(眞如平等)의 이치를 깨달아 중생의 본체(本體)가 허망하다는 것을 알고 일으키는 자비.
*무주상(無住相) ; 집착함이 없는 모습. 집착함이 없는 상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대승불교도들의 실천덕목 중 하나. 상(相)에 머뭄(住)이 없는(無) 보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말한다.
무주상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05~106에서.
(46)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한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참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둘 아닌 것이 한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참고] [금강경오가해]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p141~145, [금강경오가해 설의-육조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p101~104.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또 수보리야, 보살은 법(法)에 응당히 머문 바 없이 보시를 할지니, 이른바 색(色)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상(相)에 머물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상(相)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육조 스님 해의解義)
부차(復次)라 한 것은 앞을 이어서 뒷말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범부(凡夫)의 보시는 다만 아름다운 외모와 오욕의 쾌락을 구하는 고로, 그 과보가 다하면 곧 삼악도(三惡途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므로,
세존께서 크나큰 자비로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를 행하도록 가르치시니,
아름다운 외모나 오욕(五欲)의 쾌락을 구하지 않고, 다만 안으로는 인색한 마음을 없애고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 이와 같이 상응(相應)하는 것이 ‘색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色布施)’이니라.

무상(無相)의 보시를 한다는 것은, '보시한다'는 마음도 없고, 베푸는 물건도 없으며,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相布施)'라 하느니라.

보살이 보시(布施)를 행할 때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면 그 얻는 복이 시방(十方)의 허공과 같아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일설에 '보(布)'란 '普(넓다)'요, '시(施)'란 '散(사방에 흩어버린다)'이니, 가슴 가운데 있는 모든 망념·습기·번뇌를 널리 흩어버려 사상(四相)도 끊어지고 마음에 전혀 쌓여 있지 않는 것이 '참 보시(眞布施)'라 하며,
또 일설에는 '보(布)'란 '普'니 육진 경계(六塵境界)에 머물지 않으며 유루(有漏)의 분별도 하지 않아 오직 항상 청정한 데 돌아가서 만법(萬法)이 공적(空寂)함을 요달함이니라.
만약 이 뜻을 요달하지 않으면 오직 온갖 업(業)만 더하므로 모름지기 안으로 탐애(貪愛)를 없애고 밖으로 보시를 행해서 안밖이 상응하여야 무량한 복을 얻게 될 것이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보아도 그 허물을 보지 않아서 자성(自性) 가운데 분별을 내지 않음이 '이상(離相)'이 되느니라.
가르침에 의해 수행해서 마음에 능소(能所)가 없는 것이 곧 선법(善法)인 것이라. 수행인이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선법이라 할 수 없고, 능소심(能所心)이 멸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치 못하니,
순간순간 항상 반야지혜를 행하여야 그 복이 무량무변한 것이니라.

이같은 수행에 의지하면 일체 인천(人天 사람과 하늘신)의 공경하고 공양함이 따르니 이것을 복덕(福德)이라 하도다.
항상 부주상보시(不住相布施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보시)를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면 그 공덕이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배은망덕(背恩忘德) ; 남에게 입은 은덕을 저버리고 배신하는 태도가 있음.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내생(來生) ; 죽은 후에 다시 맞이한다는 미래의 삶.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예수재(預修齋) ; 살아 있는 동안에 미리 재(齋)를 올려 죽은 후에 극락에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의식.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지장보살(地藏菩薩)석가모니불의 입멸 후 미륵보살이 성불할 때까지, 곧 부처가 없는 시대에 중생을 제도한다는 보살로, 그는 모든 중생이 구원을 받을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보살이기 때문에 대원본존지장보살(大願本尊地藏菩薩)이라고 한다.
특히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에 사찰의 명부전(冥府殿)에 본존(本尊)으로 모신다.
보통 삭발한 스님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한 손에는 지옥의 문이 열리도록 하는 힘을 지닌 석장(錫杖)을, 다른 한 손에는 어둠을 밝히는 여의보주(如意寶珠)를 들고 있다.
지장보살은 고통받는 이들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윤회의 여섯 세계, 즉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에 상응하는 6가지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팔만지옥(八萬地獄) ; 중생이 지닌 팔만사천의 번뇌로 생기는 여러 가지 괴로움을 지옥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살가죽을 벗겨 불 속에 집어넣거나 쇠매〔鐵鷹〕가 눈을 파먹는 따위의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함.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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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 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
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진묵겁(塵墨劫) ; 티끌이 쌓여 먹(墨)이 될 만큼의 오랜 시간.
*비로자나(毘盧遮那) ;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는 뜻으로, 부처의 진신(眞身)을 이르는 말. 비로자나는 진리 그 자체인 법신을 형상화한 것. 
*법신불(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즉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무명(無明) : [범] avidya 「어리석은 마음」 「어두컴컴한 마음」을 이름.
<기신론(起信論)>에 는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법계(法界)의 참 이치에 어둡게 된 맨 처음 한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이 근본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거나 거칠거나 한 온갖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하였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를 의인화한 부처.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법희선열(法喜禪悅) ;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따르는 기쁨과 선정(禪定)에 들어가 마음이 즐거운 것.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참회진언(懺悔眞言) ; 죄업(罪業)을 참회하는 진언.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연비(燃臂) ; 불교에서 수행자가 계(戒)를 받을 때, 팔뚝에 향이나 심지로 불을 놓아 뜨는 의식 또는 그 자국.
*극락정토(極樂淨土) ; 산스크리트어 sukhāvatī  아미타불이 살고 있다는 청정한 국토로, 서쪽으로 10만억 불국토를 지나 있는데, 괴로움이 없고 지극한 즐거움만 있는 세계. 안락(安樂), 안양(安養), 서방정토(西方淨土)라고도 한다.
*악세(惡世) ; ①혼탁하고 악한 세계. ②불법(佛法)이 쇠퇴하여 수행자도 깨달음을 이루는 자도 없는 말세(末世).
*예토(穢土) ; ①중생들이 사는 세계. ②번뇌와 망상으로 가득찬 고해(苦海)인 사바세계.
*적광토(寂光土) ; (=常寂光土) 항상(常) 변하지 않는(寂) 광명(光)의 세계(土). 법신불(法身佛)이 머무르는 정토(淨土)나 빛나는 마음의 세계를 이르는 말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무상(無常)2014. 6. 28. 12:02

 

 

§(269) (게송)광음승불계~ / 병(甁)속의 새의 꿈 / (게송)시비일침몽~ / 일장춘몽 / 공부해 나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사심(生死心)을 깨트리는 것.

이 세상에 무엇이 중대하고 무엇이 중대하고 중대하다고 하지만은 각자 당인(當人)의 생사 문제보다 더 중대한 것은 없습니다. 시간을 진실로 아껴야 하느니라.(光陰良可惜)

 

이 참선법(參禪法)이야말로 인간의 고통을 없애고 생사윤회의 근본을 끊는 가장 간단하고도 가장 빠른 요긴한 길인 것입니다.

 

'만났다 흩어졌다'하는 아무리 깊은 지중한 인연도 일시(一時)의 정(情)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남자(男子), 고추만 달고 나와야 대장부가 아니라, 시비(是非)와 취산(聚散)의 애착심을 돌려 버리고 자기의 분(分)을 알아서 마음을 쉬어버리고서, 발심(發心)해서 도를 닦아나가면 이것이야말로 장부(丈夫) 가운데에도 대장부(大丈夫)라 할 것입니다.

 

생사심(生死心),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하는데, 그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을 생사심이라 그럽니다. 번뇌(煩惱)니 망상(妄想)이니 이렇게도 말을 허지만 ‘생사심’이라고 표현한 것이 보다 더 적절하다.

 

이 '한 생각'을 가지고 도(道)에 나아가는 첫걸음을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69)-85년(을축년) 하안거결제 법회(85.06.03)(46분)에서. (용269)

 

(1) 약 18분.

 

(2) 약 18분.

 

(1)------------------

 

광음승불계(光陰繩不繫)하고  쇠병약난의(衰病藥難醫)니라

나무~아미타불~

생사중대사(生死重大事)니  광음양가석(光陰良可惜)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광음(光陰)은 승불계(繩不繫)요  쇠병(衰病)은 약난의(藥難醫)라.

흐르는 세월은 노끈으로 묶어 매 둘 수가 없고, 늙어서 노쇠해서 병나는 것은 약으로도 낫을 수가 없다.

 

생사중대사(生死重大事)니, 이 세상에 낳다가 늙어서 병들어 죽는, 그것이 이 한평생만 끝난 것이 아니고 무량겁을 이 생사윤회(生死輪廻)하는, 이 생사의 이 중대사(重大事).

이 세상에 무엇이 중대하고, 무엇이 중대하고 중대하다고 하지마는 각자 당인(當人)의 생사 문제보다 더 중대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간을 진실로 아껴야 하느니라.(光陰良可惜)

 

 

오늘 을축년 4월 15일, 하안거 결제일을 맞이해서 전강 조실 스님의 간곡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산승(山僧)이 더 말씀드릴 것이 없지마는 우리가 서로 마음을 가다듬고 이 석 달 동안을 정말 알차고 짬지게 지내기 위해서, 서로서로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서 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옛날에 큰 병(甁) 가운데에 새가 한 마리 살고 있는데, 그 새가 꾸벅꾸벅 졸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 그 새가 사람이 되었어요. 사람으로 태어나 가지고, 좋은 집안에 사람으로 태어나 가지고 잘 자라서, 그랬는데 기가 맥히게 참 예쁜 여자로 태어났는데, 절세미인(絶世美人)으로 태어나 가지고 벌써 나이가 15,6세 되니까 멀고 가까운 데에 널리 소문이 나서 그래서 여러 군데서 '며느리를 삼겠다, 아내를 삼겠다'해 가지고 청혼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가문도 생각하고 또 여러 가지 형편도 두루두루 다 살펴서 참 일등 신랑감을 골라서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을 했는데 그 신랑도 또한 훌륭한 대장부라, 높은 벼슬을 해 가지고 참 이 세상에 아무도 부러울 것이 없이 영화와 부귀를 한 몸에 다 안고 모든 사람에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아들도 낳고 딸도 낳고 이 세상에 하나도 부족함이 없이 잘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신랑이, 그래 인물도 잘나고 머리도 좋고 또 능력도 있고 그래가지고 승승장구 자꾸 높은 자리에 올라가 가지고 나중에 정승까지 되었습니다.

정승이 되었는데 너무 임금님의 신임을 받고 사랑을 받고 그러니까, 그 정승의 말이라 하면 임금님이 하나에서 백까지 다 들어주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다 옳은 말로 적절하게 말씀을 여쭈니까 임금님이 안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임금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고 신임을 독차지하게 되고 그러니까 간신(奸臣)들의 시기와 모함을 받아 가지고 결국은 역적(逆賊)으로 몰려서 귀양살이를 가 가지고 약그릇을 받게 되고 집안은 아주 몰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인도 너무너무 억울하고 가슴이 미어지는 그러한 괴로움을 받었습니다. 그래 그렇게 남편이 억울하게 죽고 나니 자기도 병을 앓게 되고, 자식들도 모다 역적의 자식으로 몰려가지고 전부 멸종을 당하고 마침내는 자기도 어느 관가에 종으로 끌려갔다가 결국은 죽게 되었습니다.

 

밤낮 남편 생각만 하고 자식 생각만 하고 그 원한에 사무쳐서 그래 가지고는 결국은 큰 병(病)이 나가지고 죽게 되었는데, 마지막 죽을 때에 숨이 딱! 끊어지자 다시 눈을 떠 보니까 병 속에 들어 있는 새로 돌아왔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자기가 사람이 되어서 결혼을 해서 신랑이 그렇게 정승이 되고 그랬던 것은 병 속에서 한 마리의 새가 꾼 하나의 꿈에 지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병 속에서 새 한 마리가 꾼 꿈이—인간 세상에 그 결혼을 해서 남편이 잘되고 자식을 낳고 모든 사람에 선망의 대상이 되고, 그러다가 역적으로 몰려서 남편 죽고 자식들도 역적으로 몰려서 다 멸종을 당하고 자기도 마침내 병들어 죽었는데, 지금 내가 이 이야기를 간단히 줄여서 이렇게 말씀을 드렸지만 이것을 낱낱이 자상하게 모든 것을 늘여 놓자면 큰 소설책이 될 것입니다.

 

한 마리의 새가 병 속에서 꾼 꿈이 이러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한 병 속에 들어있는 새가 꿈속에 지금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남자로도 태어나고 여자로도 태어나고 또 김씨도 되고 박씨도 되고 또 가운데는 출가해서 비구승도 되고 비구니도 되고 그렇게 지내지만, 숨 한번 딱! 거두어 가지고 생각해 보면 병 속에 들어 있는 한 마리의 새가 될 것입니다.

이 육도법계(六道法界)를 ‘하나의 병(甁)’이라고 생각한다면 틀림없이 이해가 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육도법계 전체를 하나의 병(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속에 들어 있는 한 마리의 새가 천당에 가기도 하고, 지옥에 가기도 하고, 또 인간에 태어나기도 하고, 축생이 되기도 하고, 아귀(餓鬼)나 수라(修羅)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국은 육도에 좋은 곳에 태어나서 낙(樂)을 받고 나쁜 데에 태어나 가지고 고통을 받고, 아무리 인간 세상에 태어나서 부귀와 영화를 한 몸에 독차지를 하고, 천상에 태어나서 한량없는 낙을 받는다 하드라도, 결국은 생사윤회하는 한 마리의 새에 지내지 못하고 '업의 불[業火]'에다가 섶을 집어넣는 그러한 결과 밖에는 아니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고 각자 우리 자신들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렇게 깊이 이해를 한다면, 정말 인간으로 태어나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 새가 잠깐 꾸는 꿈으로 태어난 이 몸이, ‘헌다면, 정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는 눈뜨게 되리라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부귀영화(富貴榮華)에 눈을 떠야 할 것인가? 남을 미워하고 남을 사랑하는 일에 우리가 집착을 해야 할 것인가? 사소한 일로 '니가 옳다, 내가 옳다' 시비에 말려들 필요가 있을 것인가?

아무리 자기가 잘나고 똑똑하고 모든 사람을 다 디디고 올라서 봤댔자, 정신 차려 보면 병 속에 든 한 마리의 새에 지내지 못한 것을.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처럼 버리시고 출가를 하셔서 대도를 성취해 가지고, 『이 세상은 모든 것이 다 괴로우니라. 이 세상에 고(苦) 아닌 것이 없느니라. 몸뚱이를 받아서 태어나는 것도 고(苦)요, 늙어가는 것도 고(苦)요, 병드는 것도 고(苦)요, 죽어가는 것도 고(苦)니라. 이 세상에 고(苦) 아닌 것은 없느니라』

이 중생들은 허망하고 무상(無常)한 것이 그나마 고통의 뭉탱이에 지내지 못한 것을 영원한 것으로 착각을 하고 거기에 집착을 하고, 그것을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아니하고 계속 업(業)에 업을 거듭 지어가고 있으니, 이 세상에 모든 것은 허망하고 무상하며 전체가 괴로운 것뿐이라고 하는 것을 맨 먼저 우리에게 설해 주신 것입니다.

 

왜 괴로우냐?

모든 것에 대한—자기 육체에 대해서, 자기의 재산에 대해서, 명예와 권리에 대해서, 그런 것에 대한 애착(愛着)과 집착심(執着心)을 갖기 때문에 모든 것은 괴로운 것이다.

 

그런데 그 괴로움을 없애야 한다. 괴로움을 없애야만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난 보람이며,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길이 바로 그 괴로움의 원인을 없애는 데 있는 것이다.

 

그 괴로움의 원인은 어떻게 없애느냐? 도(道)를 닦아야 한다, 이것입니다,

 

그 도에는 여러 가지 방편(方便)이 있겠지만, 그 도 가운데에서 이 최상승법(最上乘法), 이 참선법(參禪法)이야말로 인간의 고통을 없애고 생사윤회의 근본을 끊는 가장 간단하고도 가장 빠른 요긴한 길인 것입니다.(처음~17분57초)

 

 

 

 

(2)------------------

 

시비일침몽(是非一枕夢)이요  취산일시정(聚散一時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안분심휴헐(安分心休歇)하면  인간대장부(人間大丈夫)니라

나무~아미타불~

 

시비일침몽(是非一枕夢)이요. 옳고 그른 것, 니가 옳고 내가 그르고, 개인적으로나 또는 단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옳고 그른 모든 시비는 다 한 벼개의 꿈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무궁한 옛날부터서 영원한 미래까지 흘러가고 있는 길고도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잠깐 꾸는 꿈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취산(聚散)은 일시정(一時情)이다. 만났다 흩어지고 흩어졌다 만난 것. 만난 것은 부모와 자식 간으로도 만나고, 아내와 남편으로도 만나고, 형과 동생으로도 만나고, 친구 간으로도 만나고 한, 이 인간이 만났다 헤어졌다 하는 이 인연(因緣)이라 하는 것은 일시(一時)의 정(情)에 지내지 못해.

금생에 부모자식 간에 인연이라 하면 가장 지중(至重)하고, 부부 인연이라 하면은 참 지중하다고 생각이 되지만 일시(一時)의 정(情)인 것입니다.

 

물론 전생에 다 숙세(宿世)의 인연이 있어서 만나긴 하지만, 전생에 부모 · 전생에 할아버지가 금생에 자기 자식이 되기도 하고, 전생에 친구가 아내가 되기도 하고, 금생에 아내가 내생에는 친구가 되기도 하고, 이리저리 만나고 만나졌다 헤어지고 하지만 우리는 전생사(前生事)는 다 잊어버리고 모르는 것이고.

물론 숙명통(宿命通)이 열리면 다 알게 되겠지만, 숙명통이 열리기 전에는 '혹 저 사람이 전생에 나의 남편이 아니었나?' 혹 이런 추측은 할 수 있지만 그것은 확실한 것이 아니고, 전생일은 다 잊어버리게 마련입니다.

 

전생, 저 전생, 수억만 생이 있어 왔기에 금생에 또 부모 자식으로도 만나고, 처자 권속으로도 만나고 그러기는 하지만 전생일은 이미 잊어버려서 알 수가 없고, 다못 금생에 이렇게 만났다가 잠시 5,60년 내지 6,70년 산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일장춘몽(一場春夢)에 지내지 못해서 잠깐입니다.

그리고 또 헤어지게 되는데, 내생에 또 인연에 따라서 다시 만나게 되리라곤 생각이 되지만 또 확실히 만날지 어쩔지도 알지도 못하고, 또 만난다 해봤자 또 전생일은 또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났다 흩어졌다 하는 아무리 깊은 지중한 인연이라 하드라도 일시(一時)의 정(情)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비(是非)와 서로 만났다 흩어졌다 하는 것, 그러한 것들에 너무 집착을 할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정 · 애정 · 인정, ‘참 저 사람이 정답다, 정이 있다’, ‘그 사람은 무정하다, 매정하다’, 정이 있는 것을 참 좋아하고 다정한 것을 좋아하고 그렇지만, 자식을 기를 때에 있어서도 정에 너무 빠져서 정(情)으로 자식을 가르키면 사실은 업(業)에 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업을 점점 두텁게 맨든 것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어찌 부모가 자식이 사랑스럽지 아니하리요마는 그 정은 속에다가 담박(澹泊)허니 놔두고, 항시 바른 마음과 지혜로써 그리고 정(情)보다는 자비(慈悲)로써 자식을 잘 길러 나간다면 그 자식은 참으로 올바르게 잘 자라 나갈 것입니다.

지혜롭지 못하고 자비가 없이 인간에, 그 중생에 애정적으로만 가르켜 놓으면, 자식이 자식이 아니라 업의 뿌리 밖에는 아니되는 것이고 '애물'에 지내지 못해서 피차 서로 얽혀 가지고 후생(後生)의 업을 장만한 것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안분심휴헐(安分心休歇), 자기의 분(分)을 알아서 마음을 쉬어 버려.

그 정 때문에 본의 아닌 죄를 짓게 되고, 정 때문에 자기의 바른 길을 찾지를 못하는데, 그 정을 돌이켜서 지혜와 자비로 승화(昇華)시켜 나간다면 이것이 바로 자기의 분을 아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분(分)을 알아서 마음을 푹 쉬어 버리면 이것이야말로 인간(人間)에 대장부(大丈夫)라 할 것이다.

 

오늘 결제일을 맞이해서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이렇게 법요식에 참석을 하셨습니다. 용화사 법보선원에 방부(房付)를 들인 스님네도 있고 또 보살님도 계십니다마는 또 경기 일원에 다른 선원에서 정진하시는 비구니 스님네들도 이 법회에 참석을 하셨고, 가정에서 공부를 하시는 신도님네들도 많이 오셨습니다.

남자(男子), 고추만 달고 나와야 대장부가 아니라, 시비(是非)와 취산(聚散)의 애착심을 돌려 버리고 자기의 분(分)을 알아서 마음을 쉬어버리고서, 발심(發心)해서 도를 닦아 나가면 이것이야말로 장부(丈夫) 가운데에도 대장부(大丈夫)라 할 것입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우리가 정진해 나가는 데에 아주 요긴한 법문을 하셔서 더 말씀할 것이 없지만, 우리가 공부해 나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사심(生死心)을 깨트리는 것입니다.

 

생사심(生死心).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하는데, 그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을 생사심이라 그럽니다.

번뇌(煩惱)니 망상(妄想)이니 이렇게도 말을 하지만 ‘생사심’이라고 표현한 것이 보다 더 적절하다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왜 생사심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냐 하면, 이 생사심 때문에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한 생각'이 일어났다가, 그 생각이 이리저리 가지가 뻗고 잎이 피고 해 가지고는 한참 뻗어나가다가 그것이 또 언제 또 사그라져 버립니다. 사그라지자마자 또 '한 생각'이 또 일어납니다.

'한 생각' 일어나가지고 또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이리저리 이리저리 발전을 해 나가다가, 혹 좋은 쪽으로 발전해 나가면 기분이 좋고, 혹 나쁜 쪽으로 발전해 나가면 공연히 속이 상하기도 하고 괜히 그냥 누가 얄미워지고도 하고, 그러다가 또 그 생각이 또 언제 꺼진 중 모르게 또 꺼져 버리면, 또 다시 또 '한 생각' 일어납니다. 그렇게 하기를 하루에도 몇만 건인 것입니다.

 

어려서 철모를 때는 모르지마는 철알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이 생사심의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기멸(起滅)이 끊임없이 계속이 되는 것입니다. 그 한 생각 한 생각이 그러고 말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 우리 제8아뢰야식(第八阿賴耶識)에 미래의 생사윤회를 위한 씨가 심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현생에 우리가 일어난 '한 생각'이 금방 우리의 8식(八識)에 종자(種子)로써 심어지는데, 그 종자가 이 시간 이후에 적당한 인(因)과 연(緣)을 만나면 거기서 새로운 생사윤회가 열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처님께 3가지 불능[三不能]이 있어서 그 중에 하나가 ‘중생계가 다할 날이 없다’ 이리 말씀을 하셨는데, 그러니 밤낮 태어났다 죽고 태어났다 죽고 육도(六途)에서 천문학적 숫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무수한 중생의 생사윤회의 현장이 바로 이 육도법계인 것입니다.

물론 깨달은 눈으로 보면 그 낱낱이 모두가 불보살(佛菩薩)의 출현이요, 그 불보살의 설법이요, 모든 것이 한량없는 부처님의 경전이요, 바로 청정법신불(淸淨法身佛)의 모습이 되겠지만, 그러한 이치를 깨닫지 못한 우리의 중생에게는 전부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가 생사윤회의 현장에 불과한 것입니다. 생사윤회는 우리를 괴롭혀 주는 것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이것이 바로 생사심인데, ‘이 생사심을 어떻게 하면 이것을 깨트려서 생사 없는 근본으로 돌아갈 수가 있느냐?’ 이것이 우리 불자(佛子)에 나아갈 길이요,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될 우리의 목표인 것입니다. 이 생사심을 깨트리려고 노력하지 아니하면 이 생사심은 영원히 끝날 기약이 없습니다.

이 생사심을 깨트리지 못하면 무상살귀(無常殺鬼)는 일분일초도 쉴 사이가 없이 우리를 핍박하고 우리를 쫓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사방팔방에서 온갖 방편과 수단으로써 그 무상살귀는 우리를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한 생각', 이 '한 생각'을 가지고 도(道)에 나아가는 첫걸음을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생각은 우리가 성불(成佛)할 때까지 이 생각은 잠시도 놓쳐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마치 훨훨 불이 타고 있는 그러한 함정 가운데 우리가 빠졌을 때 ‘어떻게 하면 이 불이 타고 있는 이 함정에서 살아날 수가 있는 있을까?’

공연히 이리저리 함부로 나부대봤자 불에 타서 죽을 것이고, 우두커니 서 있어 봤자 뜨거워서 결국은 자기한테 불이 달라들어서 죽을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무슨 딴생각을 할 겨를도 없을 것이고, 또 누가 와서 나를 살려 주었으면 그런 생각까지도 할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다못 이러할 때에 ‘어떻게 해야 이 불구덩이에서 살아날 수가 있을 것인가?’

살아나가는 방법은 오직 하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불도 돌아보지 말 것이며, 나의 몸과 목숨도 돌아보지 말 것이며, 누가 와서 나를 구해주기도 바래지 말 것이며, 딴생각—집안 생각, 무슨 자식 생각 뭐 그런 생각할 것도 없을 것이여. 잠시도 우두커니 있지도 말 것이며, 다맛 무조건 하고 밖을 향해서 내닫는 것입니다.

 

사방이 전부가 빼어난 틈이 없이 불이지만, 타 죽을 셈 치고 불도 보지 말고 막 밖을 향해서 나간다면 잠시 불에 몸이 닿을 동안에는 뜨거울는지 모르지마는, 번개같이 뛰어나가면 결국은 그 사람이 살아나올 것입니다.

참선해 나간 사람은 이만한, 이만한! 정신을 가지고 정진을 해 나가야만 할 것입니다.(18분3초~35분4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게송) ‘광음승불계~’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著, 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18 ‘잡흥(雜興)’ 게송 참고. *繩(승)노끈. *繫(계)매다. 묶다. *惜(석)아끼다. 소중히 여기다.

*생사윤회(生死輪廻) ; 육도윤회(六途輪廻).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에 의한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당인(當人 맡다·주관하다 당/사람 인) ; 어떤 일에 직접 관계가 있는 그 사람.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절세미인(絶世美人 끊다·끝나다·뛰어나다·비할 데 없다 절/세상 세/아름다울 미/사람 인) ; 이 세상(世上)에 견줄 만한 상대가 없는[絶] 아름다운[美] 여자[人].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 : 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천당(天堂) ; ①천상(天上)에 있다는 신(神)의 전당(殿堂), 하늘의 세계.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모든 하늘을 통칭하는 말. ②정토교(淨土敎)의 극락세계(極樂世界).

*지옥(地獄) : 중생들이 자기가 지은 죄업으로 말미암아 그 과보로 사후(死後)에 가서 나게 되는, 고통이 극한 지하의 감옥을 말한다。 그러나 육신의 사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세의 우리의 마음속에 천당과 지옥이 있는 것이다.

*아귀(餓鬼 굶주림·굶길 아/귀신·아귀 귀) ; 항상 굶주림과 갈증으로 괴로워하는 귀신. 전생에 탐욕이나 질투가 많아, 악업을 지은 사람이 죽은 뒤 육도(六道) 중 하나인 아귀도(餓鬼道)에 태어나 고통을 당한다.

아귀의 배는 산과 같이 크지만 목구멍은 바늘구멍만큼 작다. 먹을거리가 없어 항상 굶주림과 목마름의 고통에 있고, 우연히 먹을 것을 얻더라도 입에서 불이 나거나 먹을 것이 화염으로 변하여 고통 받는다.

*수라(修羅) ; 아수라(阿修羅)의 준말. 늘 싸움만을 일삼는 귀신들의 무리.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업의 불(業火) ; ①악업의 힘이 맹렬하게 중생을 태우므로 업(業)을 '불'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②불같이 이는 노여움. ③악업(惡業)의 갚음으로 받는 지옥의 맹렬한 불.

* ; 잎이 붙어 있는 땔나무나 잡목의 잔가지, 잡풀 따위를 말린 땔나무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

*고(苦) ; [산스크리트어] duḥkha [팔리어] dukkha 마음이나 몸이 괴로워 편하지 않음.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어지럽고 불안함. 어지러운 생각에 부대끼고 시달려서 마음이 균형을 이루지 못한 상태. 미혹으로 일어나는 마음 작용.

“태어남이 고다. 노쇠가 고다. 죽음이 고다.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이 고다. 즐거운 것과 갈라짐이 고요, 싫은 것과 같이 함이 또한 고다. 요컨대 집착과 연관된, 존재의 다섯 쌓임(五取蘊)이 고다”(상응부)

불교에서는 이를 4고 · 8고(四苦八苦) 등으로 분류한다. 사고(四苦)는 생(生)·노(老)·병(病)·사(死)의 네 가지를 말한다.

여기에 다시 사랑하는 자와 이별하는 고통(愛別離苦), 원망스럽고 미운 것을 만나야 하는 고통(怨憎會苦), 구해도 얻지 못하는 고통(求不得苦), 오음이 성하는 고통(五陰盛苦)의 넷을 더하여 8고라고 한다.

*사제(四諦) ; 사성제(四聖諦). 제(諦)는 ‘sacca’의 번역으로 진리를 뜻함. 고(苦, 괴로움)를 소멸시켜 열반에 이르는 네 가지 진리. 사성제(四聖諦,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고도 함.

①고제(苦諦, 苦聖諦) : ‘고(苦, 괴로움)’라는 성스러운 진리. “태어남이 고다. 노쇠가 고다. 죽음이 고다.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이 고다. 즐거운 것과 갈라짐이 고요, 싫은 것과 같이 함이 또한 고다. 요컨대 집착과 연관된, 존재의 다섯 쌓임(五取蘊)이 고다”(상응부)

②집제(集諦, 集聖諦) : ‘고의 원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몹시 탐내어 집착하는 갈애(渴愛)가 고(苦)가 일어나는 원인이라는 진리.

③멸제(滅諦, 滅聖諦) : ‘고의 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갈애가 남김없이 소멸됨으로써 고(苦, 괴로움)가 소멸되어 고의 끝남, 열반에 이른다는 진리.

④도제(道諦, 道聖諦) :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팔정도(八正道)—정견(正見, 바른 이해) · 정사유(正思惟, 바른 생각) · 정어(正語, 바른 말) · 정업(正業, 바른 행위) · 정명(正命, 바른 생계) · 정정진(正精進, 바른 노력) · 정념(正念, 바른 마음챙김) · 정정(正定, 바른 집중)—는 갈애를 소멸시켜,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애착(愛着) ; 사랑하여 집착함. 애집(愛執).

*집착(執着) ; 허망한 분별로써 어떤 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그릇된 분별로써 어떤 것을 탐내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함.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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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시비일침몽~’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著, 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48 ‘준선자(俊禪子)에게’, p47 ‘감흥(感興)’ 게송 참고. *枕(침)베개. 말뚝. *歇(헐)쉬다. 그치다.

*벼개 ; ‘베개’의 사투리.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정(情) ; ①오랫동안 지내 오면서 생기는 사랑하는 마음이나 친근한 마음. ②느끼어 일어나는 마음. ③[불교] 혼탁한 망념(妄念).

*지중(至重)하다 ; ①더할 수 없이 귀중하다. ②더할 수 없이 무겁다.

*전생사(前生事) ; ①'전생(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살았던 삶)'에 있었던 일. ②'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는 이미 지나간 일'을 일컫는 말.

*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의 하나로,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자유 자재한 능력.

*일장춘몽(一場春夢) ; '한바탕의 봄꿈'이라는 뜻으로, 헛된 영화나 인간 세상의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비(是非) ; ①옳음과 그름. ②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 또는 옳고 그름을 따지며 하는 말다툼.

*담박(澹泊)하다 ;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다.

*자비(慈悲) : [범] maitri  자비는 사랑하는 것과 불쌍히 여기는 것인데, 네 가지 끝없는 마음(四無量心) 가운데 두 가지이다。모든 중생에게 실제로 즐거움을 주는 것을 '자(慈)'라 하고(慈能與樂), 중생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 주며 근본적으로 그 근심 걱정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 내어 주는 것을 '비(悲)'라고 한다(悲能拔苦)。

*애물 ; 애를 태우거나 성가시게 하는 물건이나 사람.

*후생(後生) ; 죽어서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삶.

*분(分) : 분수(分數 ;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승화(昇華) ; 어떤 현상이 한 단계 더 높은 영역으로 발전함.

*대장부(大丈夫 큰·훌륭할 대/어른·존칭 장/사내·일꾼 부) ; 장부(丈夫). ①건장하고 씩씩한 사나이. ②대승의 근기를 가진 수행자. 불법의 수행이 원숙한 사람. 불성(佛性)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생사심(生死心). 우리가 공부해 나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사심(生死心)을 깨트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하는데, 그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을 생사심이라 그럽니다.

번뇌(煩惱)니 망상(妄想)이니 이렇게도 말을 하지만 ‘생사심’이라고 표현한 것이 보다 더 적절하다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왜 생사심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냐 하면, 이 생사심 때문에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보제존자시각오선인」 p103~105. (가로판 p101~103)

*普濟尊者示覺悟禪人(보제존자시각오선인) - 보제존자가 각오선인에게 보이심.

念起念滅을  謂之生死니  當生死之際하야  須盡力提起*話頭호리니  話頭가  純一하면  起滅이  卽盡하리라 起滅卽盡處를  謂之寂이라하니  寂中에  無話頭하면  謂之*無記요  寂中에  不昧話頭하면  謂之靈이라하나니  卽此空寂과  靈知가  無壞無雜하야  如是用功하면  不日成之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멸함을 생사(生死)라 이르나니, 생사(生死)의 즈음을 당하야 모름지기 힘을 다하야 화두(話頭)를 들지니, 화두가 순일하여지면 일어나고 멸하는 것이 곧 다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멸함이 곧 다한 곳을 이르되 고요함[寂]이라 하나니 고요한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무기(無記)라 함이요, 고요한 가운데 화두를 매(昧)하지 아니하면 영(靈)이라고 이르나니, 이 공적(空寂)과 영지(靈知)가 무너짐도 없고 섞임도 없어서 이와 같이 공부를 하면 며칠 안 가서 성취하리라”

 

*보제존자(普濟尊者) : (1320 ~ 1376) 나옹혜근(懶翁惠勤). 고려 스님.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역대 스님 약력’에서 참고.

*화두(話頭) ;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무기(無記) : [범] Avyaksita 선(善) • 악(惡) • 무기(無記) 3성의 하나。 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나쁜 마음의 작용.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제8아뢰야식(第八 阿賴耶識) ;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참고] 〇아뢰야식(阿賴耶識) ;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는 산스크리트어 ālaya의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아뢰야(阿賴耶)를 진제(眞諦)는 a(無)+laya(沒)로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玄奘)은 ālaya로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〇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8가지 마음 작용.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 8식(八識)이다.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식(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제6의식), 第七 末那識(제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제8아뢰야식)이라 한다.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삼불능(三不能) ; 당나라 숭악(崇嶽)의 원규(元珪)가 말한 부처님의 3능(三能)과 3불능(三不能).

(1) 3능(三能) - 부처님의 3가지 능한 것.

①일체 상(相)이 공(空)해서 만법을 아는 지혜를 이루는 것. ②모든 중생의 성품을 다 알고, 억겁(億劫)의 모든 일을 막힘이 없이 다 아는 것. ③한량없는 중생(무량중생)을 제도하는 것.

(2) 3불능(三不能) - 부처님의 3가지 능치 못한 것.

①무량겁으로부터서 지은 정업(定業)은 멸하지 못함. ②인연없는 중생을 제도하지 못함. ③무량중생을 제도하실 수는 있으나 중생계를 다 제도하지 못함.

*청정법신불(淸淨法身佛) ; 더러움이 없는 청정한 법신,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곧 비로자나불을 말함.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무상살귀(無常殺鬼) ; ‘무상(無常)’이라고 하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殺] 귀신(鬼神)이라는 뜻. ‘인간존재가 무상하다’는 것의 무서움을 비유한 말.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45~147. (가로판 p139~141)

做工夫호대  最初에  要箇破生死心堅硬하고  看破世界身心이  悉是假緣이라  無實主宰호리라. 若不發明本具底大理則生死心이 不破오  生死心이  旣不破인댄  無常殺鬼가  念念不停하나니  卻如何排遣고

 

공부를 짓되 최초에 생사(生死)를 파하려는 마음이 굳세고, 세계와 몸과 마음이 모두 이 거짓 인연[假緣]이라 실다운 주재(主宰)가 없는 줄로 간파(看破)할지니라.

만약 '본래 갖추어진 큰 이치[本具底大理]'를 밝히지 못하면, 곧 생사심(生死心)을 깨뜨리지 못하고 생사심을 깨뜨리지 못했을진댄 무상살귀(無常殺鬼)가 생각생각 멈추지 않으리니, 도리어 어떻게 물리치겠는가?

 

將此一念하야  作個*敲門瓦子호대  如坐在烈火焰中求出相似하야  亂行一步不得하며  停止一步不得하며  別生一念不得하며  望別人救不得이니 當恁麼時하야는  只須不顧猛火하며  不顧身命하며  不望人救하며  不生別念하며  不肯暫止하고  往前直奔호대  奔得出하야사  是好手이니라.

 

이 일념(一念)을 가져 문 두드리는 기와쪽[敲門瓦子]을 삼되, 마치 훨훨 타는 불꽃 가운데 앉아서 나오기를 구하는 것과 같아, 함부로 한 걸음 걸을 수도 없고, 한 걸음도 멈출 수도 없으며, 한 생각이라도 딴 생각을 낼 수 없으며, 남더러 구원해 주기를 바랄 수도 없나니,

이런 때를 당하여서는 다못 사나운 불길도 돌아보지 않으며, 신명(身命)을 돌보지 말며, 다른 사람이 구해 주기를 바라지 말며, 딴 생각 낼 것도 없으며, 잠시도 멈추지 말며 앞으로 곧장 나아가되 내달아서 벗어나야만 이 좋은 수단이니라.

 

*고문와자(敲門瓦子) : 기왓장을 문에다 걸어 놓고 손님이 와서 그 기왓장으로 문을 두드리면 주인이 문을 열어 주는 현대의 초인종과 같은 역할을 한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나부대다 ; 얌전히 있지 못하고 철없이 촐랑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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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인연 비유2014. 5. 11. 14:34

§ 숯쟁이 영감 / 정법(正法)을 믿는 마음으로 인과설을 들으면 그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 되는 것입니다 / 인과의 법칙을 인증(認證)하면서도 거기에서 초월하는 길이 불법(佛法)이다 / 숙명론(宿命論).

정법(正法)을 믿는 마음으로 들으면 인과설을 들어도 그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 되는 것입니다. 인과설을 듣고서 거기에서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거기서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잘못된 자기의 성격을 고쳐 나가고 참으로 이 정법을 바로 믿고 실천할 수 있게 된다면, 인과설이 바로 최상승법이 되는 것입니다.


인과의 법칙을 똑바로 인식하면서도 거기에서 초월하는 길, 이것이 바로 불법(佛法)을 옳게 믿는 것입니다. 인과의 법을 잘못 인식하면 숙명론(宿命論)이나 운명론(運命論)에 떨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또 인과의 법칙을 인정을 안 하면 그것은 올바른 생각을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특히 속이 상할 그때를 ‘더 내가 공부할 때다, 내 공부를 시험할 때이고, 내 공부를 한 계단 더 나아가게 헐 수 있는 좋은 과제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 절에 와서 계시는 분 못지않게 가정에서 열심히 정진을 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합니다.


**송담스님(No.240)-84년 하안거 결제 및 백일기도 입재 법회에서. (용240)

 

약 21분.

 


언젠가 그 정승(政丞)을 한 사람이 마누라가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어서 찾어봤더니 저 강원도 산골짜기의 숯쟁이 영감한테 가서 살고 있게 된 것을 발견을 했어.
그래서 그 할머니 보고  ‘왜 와 버렸냐?’고 ‘따라가자’고 허니까, ‘싫다’고 숯쟁이 영감이 좋으니까 거기서 살겠다고 안 와.

그래서 기가 맥혀서 정승이고 판서고 다 소용없고,
대관절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저 할망구가 나 같은 - 이 임금님 밑에는 이 나라에서 내가 최고인데, 나를 버리고 저 천하에 보기 싫게 생긴 숯쟁이 영감한테 반해가지고 저리 가버렸냐? 너무너무 궁금하고 기가 맥혀서,

그길로 오대산에 들어가 가지고 스님한테 물어봤더니, ‘그것은 당신이 스스로 참선을 허면 숙명통(宿命通)이 열리면은 그것을 알 수 있을 테니까 어쨌든지 참선을 하라고’

너무너무 분하고, 속이 상하고, 또 의심이 나고 한 바람에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그저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배고프면 한 숟갈 얻어먹고, 그렇지 않으면 말고 허면서 3년간을 죽어라하고 공부를 했는데,

아! 그까짓 것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그런 것 알 생각을 말고 오직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원(願)을 세우고서 공부를 해야 할 텐데,
하도 마누라 도망가 버린 것이 분하고 억울하고 가슴이 아퍼서 마냥 그 생각을 속에다 꼭 가지고서 자나깨나 참선을 했는데,

아! 툭 터져 가지고 터진 것이 누진통(漏盡通)을 한 것이 아니라 숙명통(宿命通)이 터져 가지고 보니까, 전생(前生)에 자기가 그 오대산에서 공부한 스님이었었다 그말이여.
그런데 이 이야기를 그전에 해서 알고 계신 분도 많겠지만, 그 할멈은 무엇이냐 하면 전생에 자기 누데기 속에서 살고 있던 '이'였었다 그말이여.

누데기 속에서 '이'가 되어가지고 사는데 그놈이, 겨울에 누데기를 빨 수가 없어서 한 해 겨울을 누데기를 빨지 않고 입은 바람에, '이'가 그 속에서 차츰차츰 큰 것이 상당히 커졌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것을 똑 까서 죽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밖에다 버리면 얼어죽을 것 같고,
이것도 다 전생의 인연이니까 누데기 속에서 살어라 해 가지고, 가려우면 요리 떠들고 보면 크막한, 보리쌀만한 '이'란 놈이 거기서 피를 빵빵허니 빨아먹고 거기서 뻐르적뻐르적 뻐르적하는데,

그놈이 새끼를 쳐 가지고 새끼도 여럿 낳고, 그놈을 집어내 놓고 심심하면 지대방에서 씨름도 시키고 달음박질도 시키고 그랬는데 그렇게 한 해 겨울을 지낸 다음에 인자 누데기를 벗어서 빨게 되는데,
그 누데기를 벗어서 빠는데 그냥 갖다가 삶으면 '이'가 죽을 것 같아서 그 마치 개가 왔길래 개한테다 '이'를 다 건너주어 버렸다 그말이여.

‘그 개한테 가서 잘 살어라’ 그러고 보냈는데, 아! 그 개가 숯쟁이 영감이 되었어.
그 스님한테 있는 동안에는 정승·판서 마누라 노릇을 허다가, 그 개한테 건너간 그 시절이 돌아오니까 어떻게 찾어갔는지 그 산중에 - 서울 사는 그 정승부인이 보따리 하나 싸 짊어지고 그 무작정 걸어간 것이 그 강원도 산중으로 해서 숯쟁이 영감을 찾어가게 됐다 그말이여.

대번에 숯쟁이 영감 집에 간 것이 아니라, 강원도 어느 장터에 가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까 숯쟁이 영감을 보니 숯쟁이 영감하고 이야기가 되어 가지고 눈이 맞아서 결국은 졸랑졸랑 따러가게 됐어.

가서 보니 생전 처음 만나 - 그 정승의 부인으로서 얼마나 고귀한 집안에서 호강을 하고 살았겠습니까마는, 아! 그 숯쟁이 영감 첫눈에 그냥 그 전에부터서 같이 살던 사람과 같이 그렇게 남같이 느껴지지를 않고 대번에 그냥 따라가는데 조금도 서슴이 없이 따라갔다 그말이여.

이조 때만 해도 남녀가 분명해서 외간남자(外間男子) 하고는 함부로 얘기도 못허고 그러는데, 대번에 첫눈에 그냥 싹 마음에 들면서 기분이 좋다 그말이여.
그래서 따라가 가지고 그 숯쟁이 영감하고 당장 물 한 그릇 떠 놓지도 않고 그냥 사는데, 정승이 자기 본 남편이 와서 그렇게 가자고 그냥 눈물을 흘리면서 손을 잡고 사정을 해도 다 소용이 없고,
팔팔 잡아떼고 안 가는 바람에 영감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이 억장이 무너져 가지고 울면서 오대산을 찾아가 가지고 결국은 그 전생사(前生事)를 다 알게 됐다 그말이여.

지금 내가 이 이야기는 인과설(因果說)을 이야기하자고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고, 참선(參禪) 이야기만 허면 꾸벅꾸벅 졸고, 어째서 멀쩡허니 앉어서 잡담을 허거나 그럴 때에는 눈이 초롱초롱하다가도 참선 법문만 허면 꾸벅꾸벅,
조실스님 법문에도 ‘그 꼬라지 보기 싫으니까 눈을 감고 법문(法門)을 한다’ 그러셨는데,

‘왜 참선법을 들으면 졸음이 오냐?’허면, 이 참선법을 바로 듣고 바로 공부를 하게 되면 마군(魔軍)이가 자기의 궁전이 흔들리고 자기의 영토가 좁아지고 자기의 모든 것이 다 권속이 멸망이 되니까,
그래서 그 법문을 못 듣게 허기 위해서 온 천하에 마군이는 그 참선 법문 듣는 사람의 눈탱이로 다 올라붙었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눈을 갖다가 잡어 누르는 바람에 아무리 정신을 채리고 눈을 부릅뜰려고 해도 안 된다 그말이여. 손톱으로 허벅지가 멍이 들도록 집어뜯어도 눈탱이 무거운 것은 안 없어져.

그래서 이 참선법을 얘기하면은 조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가끔 이런 인과설도 얘기하게 되는데, 정법(正法)을 믿는 마음으로 들으면 인과설을 들어도 그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 되는 것입니다.

인과설을 듣고서 거기에서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거기서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잘못된 자기의 성격을 고쳐 나가고 참으로 이 정법을 바로 믿고 실천할 수 있게 된다면, 인과설이 바로 최상승법이 되는 것입니다.

신랑이 멀쩡한 나무랄 데 없이 이쁘고 얌전하고 솜씨있고 한 자기를 놔두고, 한눈을 팔고 첩을 얻거나 외박을 하거나 그러헌 분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이 숯쟁이 영감과 그 정승 판서 부인을 생각해보면 ‘아! 이것이 내가 전생에 지은 업(業)의 인연(因緣)으로 이런가 보다’ 내가 미웁고 내가 싫어서 나를 버린 것이 아니라,
전생에 내 몸 안에 살던 '이'를 내가 개한테 건네주었기 때문에 나하고는 비교가 되지 아니 할만큼 그렇게 못 생기고 천한 숯쟁이 영감한테 간 그 정승의 부인을 생각을 해서,

남편을 미워하고 원망하거나 또는 남편이 좋아하는 그 여자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갖은 수단을 써서 기어이 뗄라고 하고,
뭣한 이는 남편의 그것을 알기 위해서 그런 남의 뒷조사 잘하는 그런 데다가 돈을 많이 주고 부탁해 가지고 그 뒷조사를 시키니까, 하다 보니까 남편의 법에 저촉된 잘못된 것이 드러나 가지고 그 여자 밝혀낼라다가 남편을 쇠고랑을 차게 허는 그런 참 웃지 못 할 이야기도 있습니다마는,

그런다고 바가지를 긁고 싸움을 한다고 해서 남편이 자기한테 돌아오는 것이 아니고, 그럴 때 알면서도 모르는 듯 오히려 더 가정에 충실하고 남편에게 잘하고 애들한테도 잘하고 그러면서도 인과법을 철저히 인식을 해가지고 이 참선을 열심히 허신다면,
남편도 용서가 되고 자기도 억울하고 분한 생각이 없어지면서 참으로 인생을 똑바로 보고 살게 되고, 더 훌륭한 아내로서 가정주부로서 엄마로서 하루하루를 뜻있게 살 수 있고,
오히려 그런 것이 계기가 되어가지고 진실하게 발심을 해서 도를 닦을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살아가면 남편이 잠시 바람을 피우다가도 다시 내 집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로 인식을 못하고 기다릴 줄을 모르고 계속 강짜를 부려가지고 기어이 아주 죽여서라도 그것을 뗄려고 하면 무장 더 되게 들어붙는 거고,
처음에는 그래도 비밀리 지낼 때에는 가정에 대해서도 남편으로서 최소한도로 의무를 다허고 그러다가, 자기 부인이 정말 그 내용을 확실히 알고 강짜를 부리기 시작허면 인자 형식마저도 지키지 아니하고 아주 남남이 되고 원수가 될 수 밖에 없게 되고, 나중에 다시 가정에 돌아오지 않고 마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부부간의 인연이라 하는 것은 전생에 그렇게 맺어서 또 만나게 되는데, 남편이 외도를 허는 것이나 부인이 바람을 피우는 것이나 이러헌 관계가 다 전생에 자기가 그렇게 지어 가지고 그러헌 남편을 만나게 되고, 또 그런 아내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전생에 참 많은 여자를 울리고 그렇게 난잡허게 지낸 사람은 그 사람이 금생에 여자로 태어나 가지고 그렇게 행실이 얌전하고 얼굴도 참 이쁘고 솜씨도 좋고 허면서도 계속 남편한테 소박(疏薄)을 당하는 그러헌 예도 많습니다.

이 세상의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인과의 법칙에 어긋난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든 물질에 이르기까지도 전부 정확한 인과의 법칙에 의해서 모든 것이 생성이 되고 변해가고 이렇게 자꾸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과법을 한낱 권선징악(勸善懲惡)하기 위한 하나의 이야기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고, 이것은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나듯이 추호(秋毫)도 어김이 없는 것입니다.

내 마음으로 ‘한 생각’ 잠깐 먹은 것도 그것이 한데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런 것까지도 낱낱이 다 현실화되고 마는데, 하물며 내 입을 통해서 밖으로 표현이 되고 행동을 통해서 밖에 표현이 된 것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이 더 구체적으로 실현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그러헌 인과의 법칙을 인증(認證)하면서도, 철저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인증하면서도, 거기에서 초월하는 길이 바로 이 불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인과의 법칙을 부정(否定)하고 인증을 아니 한 것이 아니라, 그대로 인증을 하고 틀림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거기에서 초월하는 길이 바로 이 불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잘못 인식하면 인과를 갖다가 부정해 버리는 그러한 데에 떨어질 수가 있는데,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또 인과의 법칙을 잘못 이해하면 거기에 딱 국집(局執)을 해서 구속이 당해가지고 자유를 얻지를 못하는 그것도 또한 잘못된 것입니다.

인과의 법칙을 똑바로 인식하면서도 거기에서 초월하는 길, 이것이 바로 불법(佛法)을 옳게 믿는 것입니다.

인과의 법을 잘못 인식하면 숙명론(宿命論)이나 운명론(運命論)에 떨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또 인과의 법칙을 인정을 안 하면 그것은 올바른 생각을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현대인들은 인과의 법칙을 인정(認定)을 할려고 하지 아니하고 부정을 해버리고 그럽니다마는 그런 사람은 극도의 근시안(近視眼)이 되어 가지고 아직 귀가 맥혀 갖고 있어서, 이 과학이라고 하는 것이 지금 매우 유치한 단계에 있는 것이지 과학이 그렇게 훌륭하게 발달되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정도의 과학은 4천 년 전에 이미 다 발달이 되어 있었고, 만 년 전에는 더 과학이 발달된 때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마야 문명이라든지 모다 그런 것이 지금 땅 속에서 바다 속에서 현대 문명보다도 훨씬 발달된 문명의 자취가 지금 다 발굴이 되어 갖고 있는 것을 볼 때에 오늘날 과학이란 것은 별로 바람직하게 발달을 못했고, 또 발달했다는 것이 유치한 단계에 놓여있다.
과학이 발달했지만 인간을 쪼끔 편리하게는 해주었다고 할 수 있으나, 인간을 갖다가 매우 해롭게 허는 나아가서는 인류를 멸망하게까지 하는 그러한 바람직하지 못한 방면으로 발달이 되어서 매우 우려되는 바입니다마는.

 

우리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은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 참으로 위대한 우리의 살길이 있는 줄을 모르고 그 유치한 단계에 있는 과학에 빠져 가지고, 그나마 그것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꺼떡허면 불교를 미신(迷信)이라고 이렇게 비방을 하고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 때문에 이 세계는 점점 병들어 가고 살기가 어려운 그러한 세계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불자들은 철저하게 인과법을 믿고 옳게 인식을 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정법에까지 나아가서 실천을 해 나가야만 우리 자신도 바르게 그리고 참되게 살아가는 것이고,
어리석고 불쌍한 인류들을 바르게 살아가고 참다운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 줄 큰 그리고 절박한 의무가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고 하는 것을 인식을 하시고, 금년 여름 안거 동안을 보다 더 철저하게 정진(精進)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방부를 들인 보살님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들도 정신적으로는 방부를 들인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가정에서 생활을 하시는 가운데에 무엇을 하시거나, 앉어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또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괴로울 때도 ‘이 무엇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특히 속이 상할 그때를 ‘더 내가 공부할 때다, 내 공부를 시험할 때이고, 내 공부를 한 계단 더 나아가게 헐 수 있는 좋은 과제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 절에 와서 계시는 분 못지않게 가정에서 열심히 정진을 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합니다.(48분14초~69분2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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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의 하나로,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의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다 아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누진통(漏盡通) ;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①신족통(神足通) ②천안통(天眼通) ③천이통(天耳通) ④타심통(他心通) ⑤숙명통(宿命通) ⑥누진통(漏盡通)-이 있는데,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누데기 ; ‘누더기(누덕누덕 기운 헌 옷)’의 사투리.
*외간남자(外間男子) ; 여자가 상대하는, 남편이나 친척이 아닌 남자.
*억장이 무너지다 ; 극심한 슬픔이나 절망 따위로 몹시 가슴이 아프고 괴롭다.
*억장 ; ①‘가슴’을 속되게 이르는 말. ②억장(億丈)으로 '썩 높은 것. 또는 그런 높이.'
*전생사(前生事) ; ①'전생(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살았던 삶)'에 있었던 일. ②'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는 이미 지나간 일'을 일컫는 말.
*인과(因果) ; ①원인과 결과. 현상을 생성시키는 것과 생성된 현상. ②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는 이치. ③선악의 행위에는 반드시 그 과보가 있다는 도리.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로 좌선(坐禪) 수행을 말한다.
*꼬라지 ; ‘꼬락서니(사람의 모습이나 행색을 속되게 이르는 말)’의 사투리.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눈탱이 ; 눈퉁이(눈두덩의 불룩한 곳을 속되게 이르는 말.)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업(業) ; 업(業)은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을 말한다. 그리고 이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그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강짜 ; ‘강샘(결혼한 상대자나 자신이 좋아하는 이성(異性)이 다른 이성을 좋아할 경우에 지나치게 시기함)’을 속되게 이르는 말.
*무장 ; 갈수록 더. 더욱. 한사코.
*소박(疏薄 멀리할·거칠 소,엷을·업신여길 박) ; 아내나 첩을 인격을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모질게 대함.
*권선징악(勸善懲惡 권할 권,착할 선,혼날 징,악할 악) ; 착한 일을 권장하고 악한 일을 징계함.
*추호(秋毫 가을 추•가는 털 호) ; ‘추호도’, ‘추호의’의 꼴로 쓰여, 가을에 짐승의 털이 매우 가늘어지는 데에서 가을 털끝만큼 ‘매우 조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한데 ; ①사방, 상하를 덮거나 가리지 아니한 곳. 곧 집채의 바깥. 노천(露天). ②일정하게 정하여진 자리가 아닌 다른 곳.
*인증(認證) ; 인정(認定)하여 증명(證明)함.
*부정(否定) ; ①그렇지 않다고 단정함. 또는 그렇다고 인정하지 않음. ②옳지 않다고 반대함.
*국집(局執) ; 마음이 확 트이지 못하고 어느 한편에 국한(局限), 집착하는 것. 사리(事理)를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에 얽매이거나 자기의 소견만이 옳다고 고집하여 매우 답답한 모습을 말한다.
*숙명론(宿命論) ; 운명론(運命論). 모든 일은 미리 정하여진 필연적인 법칙에 따라 일어나므로 인간의 의지로는 바꿀 수 없다는 이론.
세상이나 인생의 모든 것이 숙명(宿命-날 때부터 타고난, 정해진 운명)에 의해 예정되고 절대적으로 지배받는다고 보아 인간의지의 자유와 창조는 인정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무력하다는 주장.
*인정(認定) ; 확실히 그렇다고 여김.
*근시안(近視眼) ; 눈앞의 일에만 사로잡혀 먼 앞날의 일을 짐작하는 지혜가 없거나 소견이 좁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법보재)2014. 4. 16. 01:01

§(568) 왜 화장(火葬)이 좋으냐? / 「만년위패」를 모시는 뜻 /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다 성불(成佛)하도록 우리는...

우리는 영원히 이러한 깊은 인연(因緣)으로 맺어진 인연입니다.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정법에서 물러나지 않고 최상승법을 의지해서 우리 자신도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고, 이 우주법계에 한 중생도 남음이 없을 때까지 다 성불(成佛)하도록 우리는 그 앞잡이가 되어서, 위로는 부처님을 받들고 우리는 전강 조실스님의 법을 의지해서 손에 손잡고 최상승법에 의해서 공부를 하실 것을 약속을 합시다.


**송담스님(No.568) - 96년 법보재 법회에서. (용568)

 

약 18분.

 


오늘 이 법보재를 맞이해서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는데,
장례가 땅에다가 묻는 매장(埋葬)하는 그런 법이 있고, 또 세계 어느 나라인가는 죽으면 물에다가 넣어버리는 수장(水葬)법이 있고, 또 어느 나라인가는 풍장(風葬)이라 해 가지고 숲속에다가 그대로 시체를 갖다가 두면 독수리나 그런 짐승들이 와서 그 살을 다 발라먹고, 그런 풍장이여. 바람 속에 노출시킨다 해서 풍장도 있고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화장(火葬)법을 말씀을 하셨다 그말이여. 물론 특수한 경우에 화장을 할 연료, 나무나 장작이 없을 때는 부득이해서 풀로도 덮고, 또 흙으로도 덮으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시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는 화장법을 말씀을 하셨다.
부처님 자신도 화장을 하셨고, 육조 스님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스님들이 다 화장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화장(火葬)이 좋으냐?
우리나라는 옛날부터서 일반적으로 땅에다 묻는 매장법(埋葬)을 하고 있는데, 매장법하면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이 나오게 됩니다.

저 태조산(太祖山)으로부터서 중조산(中祖山), 소조산(小祖山)으로 해서 그래 가지고 소조산 밑에 와 가지고는, 음양이 벌어져서 그래가지고 혈토(穴土)·인목(印木)해 가지고, 딱 혈(穴)이 나와 가지고,
그 산맥오는 것을 용(龍)이라 그러는데, ‘천리행용(千里行龍)에 일석지지(一席之地)다.’ 태조산으로부터 중조산, 소조산, 천리를 와 가지고 결국은 한 자리 들어갈 만큼 혈이 딱 열려있는데, 주변이 전부가 바위 덩어리라도 그 '널' 하나 들어갈 자리는 딱! 흙으로 되어있는 거여.

이렇게 하면 내가 풍수지리설을 굉장히 숭상하는것 같지마는 어려서부터 어른들한테 들어가지고, 내가 땅을 훤히 들여다보는 신안(神眼)이니, 무슨 도안이니, 법안이니, 그런 눈은 열리지 않았지만 풍수에 대한 그 상식은 알고있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 명당(明堂)을 탁! 알아가지고 쓰면, 그 집안이 대대로 내려가면서 부자 날 자리도 있고, 장군이 나올 자리도 있고, 학자가 나올 자리도 있고, 정승·판서가 나올 자리도 있고, 또 어떤 자리는 왕이 날 자리도 있다 그말이여.
또 왕비가 날 자리도 있고, 큰 부자가 나고, 또 그렇게 큰 부자는 아니더라도 아주 자손이 백자천손(百子千孫)이라, 자손이 퍼지는 그런 자리도 있다 그말이여. 조빈모부(朝貧暮富), 아침에 써 가지고 저녁에 금방 부자가 되고 그런 자리도 있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런 자리를 아무나 들어가냐?’하면 그게 아니여.
길인(吉人)이 봉길지(逢吉地)여. 복을 많이 심은 사람이 그러헌 명당에 들어가는 것이지, 돈만 많다고 해서 돈 주고 그 풍수(風水)한테 명당을 잡아가지고 쓴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여.

그 풍수 눈에는 분명히 구룡농주(九龍弄珠)‘아홉 용이 구슬을 희롱하는 자리다’하고 보고 주었는데,
복을 짓지 아니한어떻게 해 가지고는 돈은 벌었지만 아주 못된 사람이 돈 가지고 쓸라고 하면은 풍수 눈에는 분명히 용의 형국인데, 써 놓고보면 그것이 용의 자리가 아니라 구사쟁와(九蛇爭蛙)여, 아홉 뱀이 한 마리 개구리를 다투는 그런 형국도 있다 그말이여.

그러니 있던 돈, 다 탁! 털어서 먹고 온 집안이 되는 일이 없는 거여. 돈 갖고 명당쓰는 게 아니거든.

명당에 참으로 들어가고 싶으면 최소한도로 삼대(三代) 동안을 적악(積惡)을 안 해야 하고, 항상 보시(布施)를 하고 사람들한테 자비를 베풀고, 그러한 복(福)을 심은 사람이 명당에 들어가는거다 그말이여.
그래서 명당을 돈 주고 살라고 하지 말 것이며, 덮어놓고 명당에 들어가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참으로 명당에 들어가고 싶으면은 복을 심어야 한다. 풍수지리 거기에도 십계가 있는데 거기에 제1조가 그거거든. 그런 것도 모르고 명당 쓸라고 돈만 많이 퍼들이고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거든.

그리고 땅에도 불이 지나가고, 물이 지나가고, 풀과 나무뿌리가 파고 들어가고,

그래가지고 명당이라고 큰  맘 먹고 썼는데 나중에 딴 풍수가 그것 명당 아니라고 해서 파서 보면, 뱀이 들어있기도 하고, 개미가 들어있기도 하고, 풀뿌리 나무뿌리가 콧구멍·눈구멍·갈비 사이사이에 360골조를 나무뿌리가 아주 얼키고 설켜서, 해골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렇게 된 데도 있고,

또 새까맣게 탄 데도 있고, 또는 버글버글쓴 지가 몇 해 되지 않았는데 퍼석퍼석허니 벌써 흙이 다 되어버린 데도 있다 그말이여. 그러니 그러헌 흉지(凶地)에다가 써 넣으면 집안이 되는 일이 없어.


차라리 그러기보다는 부처님 법에 따라서 법문(法門)을 하면서 화장(火葬)을 해서, '재'를 갖다가 밥이나 조밥에다가 버무려서 그리고 물에다가 주면 고기들이 그걸 먹는다 그말이여.
배고픈 고기들이 먹으므로 해서  마지막 뼈까지 보시를 하는 그러한 화장법을 쓰면은자손들이 지가 지은 대로 받는 것이지, 그 묘자리 때문에 잘될 것도 없고 해(害)를 볼 것도 없다 그말이여.


요새도 대부분 명당이 다 제자리에 쏙 들어간 데는 거의가 드물고, 근처에다가 그럴싸하니 산세(山勢)가 어울어졌으니까 근처에다 이렇게 써 가지고, 아무나 못 쓴다 그말이여.
그래서 설사 근처에다 써서 그 명당 덕을 봤다 하더라도 요새 고속도로다, 또는 도시개발이다 해 가지고 맥(脈)을 다 끊어버려서 한동안 잘되어 가다 끊은 자리에 오면은 파싹 망한다 그말이여. 그러니 명당 설사 안다 하더라도 땅을 샀다 하더라도 꼭 믿을 것이 못돼.

서울이 육백 년 전에 그 서울을 정해 가지고 무학대사니, 무슨 정도전이니, 그때 뭐 잘 보는 사람들이 경복궁을 잡아가지고 다 했는데, 이조 오백 년 동안에 그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고, 형이 동생을 죽이고, 동생이 형을 죽이고, 서로 임금노릇 해먹을려고 피비린내 나는 이조 오백 년의 궁중 역사를 여러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그나마 그럭저럭 해 오다가 해방이 되어가지고 이박사 대통령하다 하와이로 쫓겨갔죠, 윤보선 대통령하다가 또 5.16 일어나가지고 또 쫓겨났죠, 박정희 대통령되었다가 결국은 육영수 여사 총맞아 죽고, 박대통령은 자기가 가장 아끼는 김재규한테 죽었죠. 또 그 뒤로 전두환 대통령, 노태우 대통령하다가 지금은 쇠고랑을 찬 그런 신세가 되었습니다.

물론 자기네들이 잘못해서 그런 점도 있겠지만, 풍수지리학설로 보면은 그 산 자체가, 저 관악산 화체(火體)가 된 불꽃 산이 비쳐가지고 그런 악영향을 받아서 그랬다 그런 말도 있고,
요새 또 지관(地官)들은 북악터널 뚫고, 남산터널 뚫어가지고 맥(脈)을 끊어버리니까 해먹을때는 그럭저럭하다 나중에 그렇게 비참하게 된다 이거여. 그것을 나는 100% 믿지는 않지만 그것도 생각해 보면 그럴런지도 알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풍수지리에 의존하지 말고 화장(火葬)을 모시고‘아이고, 한 번 죽은 것도 억울한데 두 번 죽음을 해?’ 죽은 사람이 뜨거우면 무엇이 뜨거울 것이야 그말이여.


여러분이 비행기를 타고 삼천리강산(三千里江山) 위로 이렇게 지나가면서 보면 '명당 쓴다'고 부스럼옛날에 기계충 걸린 것처럼, 산이 그 좋은 강산을 갖다가 묘(墓) 쓴다고 부스럼 따갱이처럼 생긴 것을 보실 것이다 그말이여.

앞으로 현재 있는 사람들이 죽으면 다 명당을 써 버리면 한국에 숲은 다 없어진다 그말이여. 그래가지고 있는 것은 올록볼록하니 그 무덤뿐일 것이다 그말이여. 금수강산(錦繡江山)이 아니라 북망산(北邙山) 공동묘지가 될 거다 그말이여.

산은 숲이 우거져야 좋고, 그 명당 쓴다고 묘 하나 써 놓고서는 주변을 수백 평을 다 나무를 다 베어 버리거든. 그러니 그것 참 가슴아픈 일이고. 숲이 우거져야 홍수도 막는 것이고, 거기서 끊임없이 물이 졸졸 흘러내려야 또 비가 조금 안 오더라도 가뭄에 시달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절대로 한번 돌아가시면' 돌아가신 뒤에 적어도 3일은 있어야 하거든. 하루나 이틀 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해서 금방 가서 화장을 하시지 말고, 3일장(三日葬)은 하셔서 그동안 스님네를 초청해서 금강경도 읽고 좋은 염불도 들으시는 것이 좋고, 화장을 또 화장 법요식에 따라서 잘 지내고.

 

그 대신 육체는 갖다가 묻어봤자 물구덩이 아니면 불구덩이고, 그렇지 않으면 풀뿌리 나무뿌리 그런데 있어가지고 오래 못갑니다.
얼마 안 가면 흙에 지나지 못한데, 거기다 자손들이 와서한식(寒食)이라든지 추석(秋夕) 그런 때 와서 성묘(省墓)도 드리고, 요새 모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서 조상을 소중히 여기는 그것은 대단히 좋으나다 흙이 되어 버렸는데 거기다가 절 해봤자 별 수가 없고.

 

화장을 해서 재는 뿌리고, 그 영가(靈駕)는 만년위패(萬年位牌)에 잘 모셔 드리고조석(朝夕)으로 축원(祝願)해 드리고, 천도재를 지내 드리고, 그리고 3월 16일은 오늘과 같이 합동으로 천도재(薦度齋)를 잘 지내주고,

여러분이 만년위패 이렇게 들이면 거기에 바치신 성금으로 이 선원(禪院)이 이렇게 운영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이 「만년위패」를 모시는 것은 그런 우리의 조상들을  위해서 모셨고, 둘째는 조상을 모시러 오다 보면 자연히 정법(正法)을 믿게 되고,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의해서 우리가 모두 참선(參禪)을 해서 다 해탈도를 증득하시게 하는 그러한 멀고도 크고 깊은 그런 자비심(慈悲心)에서 이런 제도를 마련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밑에 조그만한 차마 말할 수 없는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딴 것이 아니고, 내가 조실 스님 상좌(上佐)인데 내가 너무 못나가지고 신도들한테 ‘뭔 불사가 있으니 돈을 내십시요.’ ‘선방을 운영을 할테니 시주(施主)를 하십시요. 양식을 좀 내시요.’ 그런 비우가 없어가지고 그런 말을 못합니다.

선방은 계속해서 해 나가야 하겠는데, 또 여러 좋은 상좌들도 많이 있지만 그래도 내가 맨 먼저 되었다고 해서 나한테 이 원장 책임을 맡겨야 할텐데, 천상 10년 동안 묵언(默言)을 해가지고 말도 잘 못하지, 또 누구한테 숫기가 없어가지고 돈 얘기를 못하지 그러니까,

이 선방은 기어코 해 가야 하고 정법은 펴야겠는데 누구한테 탁! 믿고 맡길 사람은 마땅치 않고,
그래서 돌아가시기 전에 녹음 테이프를 많이 녹음을 해 놓으셨고, 또 법보단 만년위패 제도를 해 놓으면 심심치 않게 영가를 모시게 되면 그래서 선방을 그럭저럭 운영해 나갈 거다.

이건 내가 창피해서 차마 말을 못할 소리인데, 여러분이 그 조실 스님의 뜻을 너무너무 잘 아셔서 방방곡곡에서 만년위패를 드시고, 그리고 또 녹음 법문을 듣고,
그래서 난 부지런히 녹음을 계속 복사를 해서 인연 있는 여러 신남신녀와 도반들에게 요구하는 대로 이렇게 보급을 해서, 조실 스님 살아계실 때 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조실 스님 법을 믿게 되고, 또 정법에 의지해서 참선하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해마다 영가에 가입하신 법보재자(法寶齋者)들이 이렇게 늘어나고 있어서정말 저는 별것도 아닌 사람이 참 조실 스님 상좌라고 이렇게 원장의 이름을 띄고 있는데, 오늘날 이렇게 이 법보가족이 일어난 것은 제가 말을 잘한 것도 아니고, 제가 무슨 여러분들한테 잘해 드린 것도 없고 한데,

순전히 이것은 전강 조실 스님의 원대한 원력(願力)과 조실 스님의 법력(法力)과 도력(道力), 그리고 자비심으로 오늘날 이렇게 용화사 법보선원이 이렇게 나날이 잘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가지고 조실스님의 영전(靈前)에 감사의 합장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영원히 이러한 깊은 인연(因緣)으로 맺어진 인연입니다.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정법에서 물러나지 않고 최상승법을 의지해서 우리 자신도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고, 이 우주법계에 한 중생도 남음이 없을 때까지 다 성불(成佛)하도록 우리는 그 앞잡이가 되어서, 위로는 부처님을 받들고 우리는 조실 스님의 법을 의지해서 손에 손잡고 최상승법에 의해서 공부를 하실 것을 약속을 합시다. 성불하십시오.(44분23초~61분5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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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 ; 산수의 지형이나 방위를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과 관련시켜 죽은 사람을 매장하거나 집을 짓는 데 적당한 장소를 찾는 이론이나 주장.
*혈(穴) ; 풍수지리에서, 산줄기나 지맥 따위의 정기(精氣)가 모인 자리.
* ; 관(棺)이나 곽(槨)을 통틀어 이르는 말.
*신안(神眼) ; 풍수지리설에 근거를 둔 지술(地術)이나 관상술 등에 정통한 눈.
*명당(明堂) ; 풍수지리에서, 아주 좋은 묏자리나 집터.
*풍수(風水) ; 풍수지리설에 따라 집터나 묏자리 따위를 가려잡는 사람.
*적악(積惡) ; 남에게 나쁜 짓을 많이 함.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보시(布施) ; 자비심으로 조건없이 남에게 재물이나 불법을 베풂.
*묘자리 ; 묏자리. 사람의 무덤을 쓸 만한 자리. 또는 쓴 자리.
*산세(山勢) ; 산의 모양과 지세(地勢).
*맥(脈) ; 기운이나 힘.
*지관(地官) ; 풍수지리설에 따라 집터나 묏자리 따위의 좋고 나쁨을 가려내는 사람.
*삼천리강산(三千里江山) ; 우리나라 땅의 남북의 길이가 삼천리라 하여 우리나라의 강산을 이르는 말.
*부스럼 ; 피부에 나는 종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
*기계충 ; 두부 백선(頭部白癬)을 이르는 말. 머리 밑에 피부 사상균이 침입하여 일어나는 피부병. 머리털이 나 있는 부분에 둥그런 홍반이 생기고 피부가 벗어지며 그 부분의 머리털이 윤기를 잃고 부스러진다.
*금수강산(錦繡江山) ; 비단에 수를 놓은 듯 매우 아름다운 산천. 함경북도 북쪽 끝에서 제주도 남쪽 끝까지 3,000리가 되는 우리나라의 자연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북망산(北邙山) : 무덤이 많은 곳이나, 사람이 죽어서 묻히는 곳을 이르는 말. 중국의 북망산에 무덤이 많았다는데서 유래한다.
*삼일장(三日葬) ; 죽은 지 사흘 만에 치르는 장사.
*성묘(省墓 살필 성,무덤 묘) ; 조상의 산소를 찾아 인사를 하고 산소를 돌봄. 주로 설, 한식(寒食), 추석(秋夕)에 행한다.
*한식(寒食) ; 동지(冬至)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 조상의 산소를 찾아 제사를 지내고 벌초를 한다.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천도재(薦度齋) ;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에 따라 다음 생을 받게 되는데,
유족들이 불보살(佛菩薩)을 모신 법당(法堂)에서 돌아가신 영가를 청해 모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함과 동시에,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門)’을 들려줌으로써,
영가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혜의 눈을 밝혀 삶의 무상을 깨달아 이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보다 좋은 곳으로-더 나아가 육도윤회를 벗어나 극락왕생·해탈의 바른 길로-잘 건너가도록 하는 불교의식.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자비(慈悲) ; 자(慈)는 ‘우정•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동정’을 원의(原義)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상좌(上佐 윗 상,도울 좌) ; 윗사람을 도운다는 뜻. 곧, 한 스승의 제자를 일컬음.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묵언(默言) ; 말을 하지 않음.
*숫기 ; 활발하여 부끄러워하지 않는 기운.
*기어코 ;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또는 결국에 가서는.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본원(本願) : 근본서원(根本誓願)의 준말. 모든 불보살님들이 지난 세상에서 일으킨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을 결정코 이루려는 맹세(서원). 본원에는 총원(總願)과 별원(別願)이 있다.
①총원(總願)--모든 불보살님들의 공통원, 사홍서원(四弘誓願).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 가없는 중생을 맹세코 다 건지리이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 끝없는 번뇌를 맹세코 다 끊으오리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 한없는 법문을 맹세코 다 배우리이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 위없는 불도를 맹세코 다 이루리이다.
②별원(別願)--불보살님마다 중생제도의 인연에 따라 세운 원(아미타불48원, 약사여래12원 등등). 별원은 사홍서원의 구체적 표현.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法)의 힘. ②가르침의 힘. 불법의 공덕. 불•보살의 위신력(威神力)을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것.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힘.
*도력(道力) ; ①도의 근본에서 생기는 힘. 도를 얻음에 의하여 나타남. ②지혜의 힘.
*한마음 한뜻 ; 모든 사람의 마음과 뜻이 똑같음.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세세생생(世世生生) ;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깨달음을 여는 것. 각자가 스스로 무상의 깨달음을 열고, 부처가 되는 것. ④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앞잡이 ; 앞에서 인도하는 사람.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법보재)2014. 4. 14. 10:45

 

 

§(568) (게송) 득지재심응재수~ / 「만년위패 제도」 창설 의의(意義)‘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해탈’


이 「만년위패 제도」는 ‘돌아가신 분을 모시려고 하는 그 공덕’으로, ‘살아있는 사람이 정법을 믿고, 살아서부터 해탈도를 증득하게 하는’ 그러한 법도(法度)이기 때문에, 이 「만년위패 제도」는 ‘조실스님께서 큰 자비(慈悲)로 창설해 놓으신 그런 훌륭한 뜻깊은 제도다’


육도윤회(六道輪迴)지옥, 축생, 아귀, 인간, 수라도, 천상이런 것들이 원인이 딴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한 생각’을 바로 다스리지 못한 데에서 이 육도(六道)가 벌어진 것이다

 

지금 바로 그 경계를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한 생각도 떠나지 아니해서, 바로 거기에서 ‘이뭣고?’
‘이뭣고?’ 한번 거각(擧却)할 때 거기에 정법이 있고 최상승법이 있고,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바로 그때.


**송담스님(No.568)-96년 법보재 법회에서. (용568)

 

약 22분.

 


득지재심응재수(得之在心應在手)하고  설월풍화천지구(雪月風花天地久)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조조계향오경제(朝朝鷄向五更啼)한데  춘래처처산화수(春來處處山花秀)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득지재심응재수(得之在心應在手)하고, 이 도리를 마음에 깨달으면 손에 바로 그것이 응하고,
설월풍화천지구(雪月風花天地久)로구나. 눈 날리는 달밤, 바람부는 꽃피는 시절.
겨울이 오면 눈이 나부끼며, 봄이 오면은 봄바람에 꽃이 피기를 천지가 오래더라 그말이지.

조조계향오경제(朝朝鷄向五更啼)한데, 아침마다 닭은 오경(五更)을 향해서 우는데,
춘래처처산화수(春來處處山花秀)로구나. 금년에도 봄이 오니 산과 들에 곳곳이, 꽃이 아름답게 피는구나.

오늘 병자년 3월16일 법보재(法寶齋) 법요식 날을 맞이해서 방방곡곡에서 법보가족, 법보재자들이 도량에 가득 운집을 하셨습니다. 200평 법당이 앉을 자리가 없어서 밑에 서 계신 분, 그리고 앞마당에 이렇게 서서 모다 법요식에 참석을 하고 계십니다. 장시간 서서 법요식(法要式)에 참석하신 분들에게는 대단히 원장(院長)으로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법보재 법요식이용화사 법보선원에 연중 여러 행사가 있습니다마는 제일 큰 잔치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잔치는 다른 잔치가 아니라 우리 집안의 잔치이기 때문에, 집안에 잔치가 벌어지면 집안 식구는 으레이 편안히 앉을 겨를이 없고, 때가 되어도 편안하게 식사를 할 겨를이 없는 것이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서 계신 분은 ‘내가 멀리서 온 객(客)인데 내 대접을 이렇게 할 수가 있느냐’ 이렇게 섭섭하게 생각하시지 말고, ‘우린 집안 일에 주인은 으레이 서서 좀 앉을 겨를이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한결 다리가 덜 아프실 것입니다.


금방 조실스님의 녹음 법문을 통해서오늘 사만팔천 육백이십삼 번까지 만년위패 번호가 나갔고, 또 위패 모셔진 영가(靈駕)의 수는 칠만사천 백팔십오 위 영가입니다.

칠만사천 백팔십오 위의 영가 뿐만이 아니라, 우리 법보가족의여기에다 위패는 모시지 않았지만무량겁으로 오면서 수없는 선망부모(先亡父母)의 영가도 이 자리에 청(請)해 모셨고, 우리 법보가족의 선망부모 뿐만이 아니라 우주법계에 한량없는 영가들도 이 법요식에 청해 모셨습니다.


그 영가들, 그리고 우리 살아있는 법보가족들까지 조실 스님의 짤막한 생사없는 도리, 최상승법문을 경청을 했습니다.
사량분별로 이해를 할 수 있건 없건 전혀 그것과는 상관없이, 우리 살아있는 사람이나 영가 분이나 그 본성(本性) 자리에 있어서는 바로 조실 스님의 최상승법문에 계합(契合)이 되어서, 무량억겁(無量億劫)의 죄업이 다 소멸이 되고, ‘생사없는 진리’에 계합이 되셨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조실 스님께서 이 「법보영가 만년위패 제도」를 용화사 법보전(法寶殿)에 이렇게 모시도록 창설하신 뜻은 대단히 깊은 의의(意義)가 있는 것입니다.
왜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선망부모나 또는 형제자매나 처자·권속이나 그런 영가들을 이렇게 법당(法堂)에 모시게 하느냐?

그것은 지금 세계에 살아있는 사람의 수가 50억인지 60억 전후가 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해마다 인구가 불어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이 지구에서는 살 수가 없을 만큼 인구가 증가를 해 가지고, 바다에다가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을 만드느냐? 또는 저 우주세계 달나라라든지, 그밖에 화성이니 그런 데다가 사람이 살 수 있는 그러한 것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우려까지 나오고 있습니다마는,

 

‘사람의 육체’를 받은 그러한 수효가 60억이니, 앞으로 70억·80억 이렇게 되겠지마는 그것도 중대하다고 하지만 그 보다도 훨씬 더 중대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수많은 영가, 저 하늘의 별의 수에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영가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 영가가 인연 따라서 혹 사람으로도 태어나고, 짐승으로도 태어나고, 미물 곤충으로도 태어나고‘한 사람의 모공(毛孔) 속에도 9억 충(蟲)이 있다’고 부처님이 말씀하셨는데 그런 것이 비유가 될 수가 없을 만큼, 조그만한 눈으로 볼 수 없는 생명체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까지 아울러서 이 우주법계는 온통 버글버글 아주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생명체가 버글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삼천년 전에 망원경이나 또는 원자 현미경 같은 것이 없어도, 부처님께서는 그런 것을 다 소상(昭詳)하니 자상(仔詳)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근자에사 원자 현미경으로 우리의 얼굴이나 입이나 눈이나 이런 데를 그 현미경으로 보면, 확대해 놓은 것이 누에나 송충이 같은 벌레가 우리의 땀구멍에 구멍구멍이 다 버글버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없는데 혹 가렵기도 하고 이런데, 육체 가운데 제일 더러운 것이 입이라고 하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입안에는 수없는 그런 균들이 우글거리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수없는 생명체들이 인연 따라서 여기에 태어났다 저기서 죽고, 저기서 태어나서 여기서 죽고, 그래 가지고 인연(因緣)이 있으면 서로 부부의 인연을 맺고, 거기서 또 수없는 자녀들이 탄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연이 좋은 인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악연(惡緣)도 있고, 선연(善緣)도 아니고 악연도 아닌 그저 무기(無記)의 인연들도 있는 것이어서, 그런 인연이 모였다 흩어졌다하는 과정에서,
가족이라고 하는 아주 극히 작은 단위의 모임도 있고, 회사나 공장이나 사회단체 내지 크게 나누면 지금 세계 180개국이니 그러지만, 그 나라도 일종의 인연의 집합체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큰 눈으로 보면 도저히 싸워서는 안 될, 서로서로 사랑하고 서로서로 도우면서 살아가야 할 그러헌 가까운 인연들이 서로 한 탯줄에 태어나가지고도 형제간에 싸우고, 그 부모로 인해서 몸을 받아났으면서 부모를 괄세하고, 심지어는 부모를 죽이는 사람까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한 나라이면서 남북으로 갈려가지고 싸우고, 독일은 동서로 갈렸다가 우리보다 앞서서 통일이 되었습니다마는 우리도 언젠가는 평화적으로 통일이 되어서 서로 도우면서 잘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하고, 세계에 우리만 못한 나라를 도우면서 살아가야 할 그러한 과제를 우리는 안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형제간에 싸우고, 동포끼리 싸우고, 같은 인류끼리 싸워야 하느냐?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그러한 멀고도 시급한 과제를 해결하는데에 종자(種子)를 심기 위해서 조실 스님께서는 「법보 만년위패 제도」를 창설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과 이 만년위패와의 관계가 왜 그렇게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느냐 하면은 ‘악연이다. 선연이다’하는 인연이라고 하는 것이 최초에는 ‘한 생각’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 생각’을 잘못 일으켜가지고 결국은 서로 죽이고 죽음을 당하는 그런 무서운 결과에까지 이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년위패를 부모님 또는 부모가 자식을, 형이 동생을, 동생이 형을,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이렇게 해서 가장 가까운 인연부터서 그 영가가 편안히 계실 수 있는 만년위패를 모심으로 해서,
그 영가가 거리 중천에서 의지할 곳 없이 떠돌다가 편안하면은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을텐데, 앉을 자리가 없고 편안틀 못하고 (하니까), 살아서 가까운 인연 또 언짢은 인연을영가의 몸으로 있으면서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면서 본의 아니게 가족을 괴롭게 하고 이웃을 괴롭게 하고, 그러는 동안에는 가정이 편안할 수가 없고,


그래서 편안하게 이 만년위패에다가 모셔 놓으면 조석(朝夕)으로 그 영가를 위해서 축원(祝願)을 해 드리고, 법회 때는 맨 먼저 그 영가를 편안히 초청을 해서 자리를 마련해 드림으로해서 좋은 법문(法門)을 듣고,
또 축원을 해 드리고, 천도재(薦度齋)를 올려 드리면 그 영가들이 맺혔던 원한심과 증애심을 버려 버리고, 그리고서 좋은 곳에 가서 태어나도록, 이러기 위해서 만년위패를 모셨는데,

그 결과는 ‘영가를 좋은 곳으로 가시게 하기 위해서 편안한 자리를 마련해 드리자’는 그런 효심(孝心)과 자비심(慈悲心)을 가진 그 공덕(功德)으로 살아있는 사람들도 와서 법문을 듣고 정법(正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해서, ‘살아서 해탈도(解脫道)로 가는 공부’를 쌓아놓으면 이 몸뚱이를 버리는 날이 돌아올 때 무엇이 걱정이 될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그래서 이 만년위패 제도는 ‘돌아가신 분을 모시려고 하는 그 공덕’으로 ‘살아있는 사람이 정법을 믿고, 살아서부터 해탈도를 증득하게 하는’ 그러한 법도(法度)이기 때문에,
이 만년위패 제도는 ‘조실 스님께서 큰 자비(慈悲)로 창설해 놓으신 그런 훌륭한 뜻깊은 제도다’하는 것을 오늘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육도윤회(六道輪迴)지옥, 축생, 아귀, 인간, 수라도, 천상, 이런 것들이 원인이 딴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한 생각’을 바로 다스리지 못한 데에서 이 육도(六道)가 벌어진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이 ‘마음에 얻는다(得之在心)’고 하는 것은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주인공(主人公)’ 이것을 깨달라. 그것을 깨닫고 보면 육도윤회가 거기서 끊어지는 것이다 그말이여.

무량겁을 육도윤회를 해왔고, 앞으로 무량겁을 육도윤회를 하면서 생사고해(生死苦海)에서 갖은 고통을 받아야 할 중생들이 또 우리들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생각생각이 그 공부를 함으로 해서 무량겁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해탈하는 그 길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말이여.

정법을 바로 믿지 않은 사람은 행주좌와 그 생활을 버리고, 따로 어떠한 해탈길이 있는가? 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돌아다니고, 이것 좀 해보다 저것 좀 해보다, 여기가서 어떤 스님이 법문을 잘하신다 하면 거기가서 귀를 기울여보고, 저기가 어떤 법문을 잘하신다 하면 저기가서 귀를 기울여보고,
좋죠, 어떠헌 큰 스님이 나와서 법문을 잘하신다 하면 천리를 멀다하지 아니하고 가서 법문을 들으러 간 것, 그 자체는 대단히 좋은 일이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법(正法)을 바로 믿는 사람은 먼 데에 찾는 것이 아니여.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앉아 있을 때는 앉은 그 자리에서, 걸어갈 때는 걸어가는 발 옮기는 그 자리에서, 어떤 일이 있어서 차를 탈 때는 차를 타고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밭에 가서 일을 할 때는 일하는 바로 거기에서, 설겆이를 할 때는 설겆이를 하는 바로 거기에서,

바로 그 경계를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한 생각도 떠나지 아니해서, 바로 거기에서 ‘이뭣고?’

‘이뭣고?’ 한번 탁! 거각(擧却)할 때 거기에 정법이 있고 최상승법이 있고,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바로 그때가 ‘바로 거기다’ 그말이여.(처음~21분3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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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득지재심응재수~ ; [금강경오가해]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야부도천(冶父道川) 게송 참고.
*오경(五更) ; ①하룻밤을 초경(初更)에서 오경(五更)까지 다섯으로 나눈 시각을 아울러 이르는 말.
②하룻밤을 다섯 시기로 나누었을 때의 다섯째 부분. 새벽 3시부터 5시 사이이다.
*법보재(法寶齋) ; 매년 음력 3월 16일에 용화사 법보재자(法寶齋者)와 법보전 만년위패에 모신 선망부모 영가들과 인연 있는 영가들의 무량겁으로부터 지은 업장을 참회 소멸하고,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고, 재자와 영가 모두 진리의 세계에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전강 조실스님께서 개설(1963년)하신 합동 천도재(薦度齋).
*법요식(法要式) ; 불사(佛事-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를 할 때 행하는 의식.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계합(契合) ;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
*무량억겁(無量億劫) ; 헤아릴 수 없이 긴 시간.
*법보전(法寶殿) ; 법보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 그래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법당(法堂) ; ① 불상을 모신 사찰의 중심 건물.  ② 설법하거나 각종 의식을 행하는 사찰의 건물.  ③ 사찰에 있는 전각(殿閣)을 통틀어 일컬음.
*소상(昭祥)하다 ; (이유나 설명이)자세하고 분명하다.
*자상(仔祥)하다 ; ①찬찬하고 자세하다.  ②인정이 넘치고 정성이 지극하다.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악연(惡緣) ; ①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인연. 또는 맺어서는 안 되는 잘못된 인연.  ②나쁜 일을 하도록 유혹하는 주위의 환경.
*선연(善緣) ; 좋은 인연.
*무기(無記) : [범] Avyaksita 선(善)•악(惡)•무기(無記) 3성의 하나. 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천도재(薦度齋) ;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에 따라 다음 생을 받게 되는데, 유족들이 불보살(佛菩薩)을 모신 법당(法堂)에서 돌아가신 영가를 청해 모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함과 동시에,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門)’을 들려줌으로써, 영가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혜의 눈을 밝혀 삶의 무상을 깨달아 이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보다 좋은 곳으로-더 나아가 육도윤회를 벗어나 극락왕생·해탈의 바른 길로-잘 건너가도록 하는 불교의식.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좋은 과보를 받을 선행(善行).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해탈도(解脫道) ;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법도(法度) ; 규칙•법칙•율법•법규•결정들.
*자비(慈悲) ; 자(慈)는 ‘우정•친애의 생각’이 본뜻으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동정’이 본뜻으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생사고해(生死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고 태어나서 죽고 하는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삼계(三界-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를 가리킴. 생사와 그 괴로움이 무한한 것을 바다에 비유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육도윤회(六途輪廻).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Posted by 닥공닥정
무상(無常)2014. 4. 11. 07:59

 

 

<아래 법문은 위 유튜브 법문에서 53분 19초부터 들으시면 됩니다>

 

§ (게송) 행행총총급여류~ / 한평생이라 하는 것이 꿈에 지내지 못한 것 / 인간 세상의 오욕락(五欲樂)이 꿈이거든.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길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여.
명예나 권리나 부귀영화-인연(因緣)이 다해서 떠나면, 나 보기가 역겨워서 가시는 것이니까 깨끗이 보내고, 터억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이뭣고?’를 할 수 있게 되어야 해.


‘이뭣고?’ 한마디는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이 몸을 바치고 이 나의 모든 목숨을 바치고서도, 그것을 잡고 끝을 봐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여.
이것은 추구하고 추구할수록 나에게 행복을 갖다주는 것이며, 영원을 갖다주는 것이여.


**송담스님(No.549)-95년 법보재 법회에서. (용549)

 

약 9분.

 


행행총총급여류(行行悤悤急如流)하여  노색간간일상두(老色看看日上頭)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지차일신비아유(只此一身非我有)한데  휴휴신외갱하구(休休身外更何求)리요
나무~아미타불~

행행총총급여류(行行悤悤急如流)요. 우리가 끝없는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많은 말을 하고 듣고, 많은 행동을 하는 가운데에, 시간이 흘러가기가 마치 급류가 흘러가듯 잠시도 쉬지 않고 시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노색간간일상두(老色看看日上頭)다. 늙은 빛이 금방금방 날로 머리 위로 나타나. 어제 없던 흰머리가 오늘 거울을 보면 또 나고, 뽑고 뽑아도 또 나고, 물을 들여도 하루 이틀 지나면 뿌리에서 허옇게 나거든. 도저히 막을 수가 없어.
이렇게 우리가 지금 이만큼 나이를 먹었지만 엊그제다 그말이여. 서른살, 스무살 때가 엊그제요, 국민학교 다닐 때가 엊그제인데, 그렁저렁하다 보니까 이렇게 세월이 지냈다 그말이여.

지차일신(只此一身)이 비아유(非我有)요. 이 몸뚱이도 내가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나의 소유물이 아니여. 내 몸, 내 몸 하지만,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인연에 따라서 뭉쳐 가지고 잠시 우리가 뒤집어쓰고 있을 뿐이지, 이거 어떻게 내 것이라고 할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낡으면 곧 벗어 버리게 되어.
우리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 몇백 명씩 죽어가고 있는데, 나도 머지않아서 이 몸뚱이를 벗으게 될 것이다 그말이여.

이 몸뚱이도 내 것이 아닌데그래서 이걸 아무리 보약을 먹고 좋다는 것은 다 한다 하더라도, 이건 죽을 때까지 병고(病苦)로 고통을 받기가 싫어서 건강하게 살다 죽자는 거지이 몸뚱이로 아무리 잘 먹이고, 입히고, 봉양(奉養)을 한다 해도 200년 300년 사는게 아닙니다. 얼마 안 있으면 다 가게 되는 것인데.

그래서 이건 지혜롭게 관리할 필요는 있지만 이 몸뚱이에 집착할 것이 없어.

휴휴신외갱하구(休休身外更何求)냐. 하물며 이 몸뚱이도 내 것이 아닌데, 이 몸 밖의 모든 것은 다시 말해서 뭘 할 것이냐.
명예나 권리나 지위나 부귀영화도 인간을 살아가는데 필요하지, 정말 필요 아니한 것은 아니나, 올바른 방법으로 얻고, 얻었으면 올바르게 관리를 하고 행사를 하다가 인연이 다해서 버리게 되면은 미련없이 깨끗이 버려야 해.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길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여. 명예나 권리나 부귀영화, 인연(因緣)이 다해서 떠나면, 나 보기가 역겨워서 가시는 것이니까 깨끗이 보내고, 터억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이뭣고?’를 할 수 있게 되어야 해.
그것 떠났다고 해서 화병이 나고 밤잠을 못 자고, 남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그러면 못 견뎌 가지고 술을 마시고 그래 가지고 병들어 쓰러진다면, 그 인간이 그렇게 끝을 마쳐서 될 것이냐.

알고 보면 한평생이라 하는 것이 꿈에 지내지 못한 것이여. 좋은 꿈을 꾸면 기분은 좋은 것이지마는, 좋은 꿈을 꾸면 뭐 황제가 되고, 대통령이 되고, 황금 산덩이를 소유했던들, 눈 딱 떠버리면 없어지는데 그까짓 것이 뭐냐 그말이여.

인간 세상의 오욕락(五欲樂)이 꿈이거든 그게. 한참 좋은 꿈을 꾸고 있는데 누가 깨웠다 그말이여. 좋은 꿈을 더 꾸어야 하는데 깨웠다고 신경질을 내는 걸 내가 봤단 말이여. 더 꾸면 뭐하는 것이냐 그말이여.
그래서 여러분은 확실히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꿈이라 하는 것을 깨닫고, 정말 꿈 속에서 영원한 것을 찾는 ‘이뭣고?’

다같이 ‘이뭣고?’  (대중) ‘이뭣고?’  ‘이뭣고?’  (대중) ‘이뭣고?’

‘이뭣고?’ 한마디는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이 몸을 바치고 이 나의 모든 목숨을 바치고서도, 그것을 잡고 끝을 봐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여. 이것은 추구하고 추구할수록 나에게 행복을 갖다주는 것이며, 영원을 갖다주는 것이여.

일 년 만에 여러분을 만나뵈니 두서없이 여러 말이 나오는데, 이만 말을 맺고자 합니다. 앞으로 우리의 선망부모를 위해서 추모 천도 법요식이 진행이 되겠습니다.

엄숙한 마음으로 이 법요식을 마치시고, 아주 섬소(纖疏)한 점심공양이 준비가 되었습니다마는 오늘 한 끼니는 어디 소풍 나왔다가 요기만 하신 정도로 생각하시고, 될 수 있으면 한 분도 빠지시지 마시고 소박한 한 끼 점심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 주시기를 바라고,
다시 만날 때는 ‘이뭣고?’를 잘해서 새 세상의 행복을 누리시는 그러한 도반이 되어서 만나게 되기를 기약을 합니다.(49분5초~57분27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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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행행총총급여류~ ; [진각국사어록(眞覺國師語錄)] (김달진 역주 | 세계사) p337 ‘식심게(息心偈)’ 게송 참고. ‘식심(息心)’은 사문(沙門-산스크리트어 śramaṇa 팔리어 samaṇa의 음사, 스님)을 말함.
*사대(四大) ; ①지(地) • 수(水) • 화(火) •풍(風)을 말함. 대(大)란 원소란 뜻. 일체의 물질을 구성하는 네(四) 가지 원소(大).
(1)지대(地大). 굳고 단단한(堅) 것을 성(性)으로 하고, 만물을 실을 수(負載) 있고, 또 질애(質礙)하는 바탕. 질애(質礙)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여 다른 존재와 서로 융화하지 못한다는 뜻.
(2)수대(水大). 습윤(濕潤)을 성으로 하고, 모든 물(物)을 포용(包容)하는 바탕.
(3)화대(火大). 난(煖)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숙(成熟)시키는 바탕.
(4)풍대(風大). 동(動)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장케 하는 바탕.
② 신체를 말함. 원래, 신체는 지•수•화•풍의 4대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함.
*봉양(奉養) ; 받들어 모시고 섬김.
*인연(因緣) ;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사람이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
*이뭣고?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이뭣고? (이 무엇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두서없이(頭緖--) ; 일의 차례나 갈피를 잡을 수 없이. *緖(서)실마리. 시작.
*섬소하다(纖疏--) ; (체격이나 물건의 구조가)가냘프고 어설프다. *纖(섬)잘다. 검소하다. *疏(소)거칠다.

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인연 비유2014. 4. 2. 02:46

§ 3능, 3불능 / 정업(定業)은 난면(難免) / 우리가 이 세상에 받는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이 각본(脚本)을 쓴 것 / 찰나(刹那) 간에 몰록 / 신•분•의(信•憤•疑) 삼요.

 

우리가 이 세상에 받는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이 각본(脚本)을 써가지고 그 각본에 의해서 우리가 연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지은 업과 금생에 지어가는 업, 그런 것들이 합해 가지고 우리의 미래가 열려 나가는 것이니까, 우리는 이미 과거에 지어버린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나, 그 각본을 우리는 고쳐서 쓸 필요가 있다.
불교는, 인과법은 숙명론(宿命論)도 아니고 운명론(運命論)도 아니다.


명상(名相), 이름이나 모양이라는 것은 환(幻)으로 이루어진 거여.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림자요, 메아리. 마음 하나만 공(空)해 버리면 일체 명상(名相)은 동시에 다 공(空)해 버리는 것이다.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명상(名相)을 그것을 ‘있는 것’으로 집착을 함으로 해서, 모든 탐진치 삼독심이 일어나는 거여.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해서 자기의 주인공(主人公)을 깨닫는 방향으로 나가는 사람은 제외하고는, 그렇지 않는 사람은 착하나 악하나 그놈이 그놈이여. 언제 어떻게 변할른지 모르는 거여.


우선 당장 괴로운 일이 있는데 「이뭣고?」만 할 수 있느냐? 괴로운 일 자체가 꿈에 어디 종기를 앓는 거와 같애. 꿈을 꾸는 동안에는 정말 아프지만 꿈을 깨자마자 꿈에 앓던 종기가 몰록 낫어버리는 거여. 차츰차츰 낫아가는게 아니라, 찰나(刹那)간에 몰록 낫아버리는 것이여.
철저하게 믿고 철저하게 신•분•의(信•憤•疑) 삼요소로 나간다면 누가 못 깨닫게 되느냐 그말이여.


**송담스님(No.521) - 1994년 1월 첫째일요법회(94.01.02)에서.(용521)

 

(1) 약 21분.

 

(2) 약 18분.

 


(1)--------------------

 

새해가 돌아오면 토정비결을 본다든지, 어디 또 만신이나 점쟁이한테 가서 신수도 보고 해서 금년 운수가 어떤가? 뭔 일이 좀 잘될란가?

참 답답해서 가시는 분도 있고, 누가 족집게 점쟁이다 잘맞춘다 하니까 호기심으로 따라가기도 하고, 그러다가 그냥 좋다고 하면은 좋아가지고 복채도 많이 주고 돌아오지만,
‘대주(大住)가 금년에 대단히 안 좋다고.. 굿을 몇 번을 해야 하고, 무슨 몇십만 원 짜리 부적(符籍)을 사서 몸에 지녀야 하고..’ 이거 참 겁나는 소리를 하면 그 말을 듣고는 속이 편틀 못하다 그말이여.

아무리 여기서는 이런 말을 들어도 집에 가서 어쩌고저쩌고 하면 금방 생각을 내신다 그말이여. 이건 지식이 있건 없건 여자분은 여간해서 그런 데에 속지 않기가 어렵다 그말이여.
‘남편한테 해롭고 자식한테 해롭다’하는 데에는 어떠한 일이라도 해보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마음, 나 충분히 이해는 하는데, 그것이 별로 그렇게 효과가 없을 것이다 그말이여. 그거 왜 그러냐?

점쟁이는 혹 지내간 일은 더러 맞추는데,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해서는 그렇게 잘 못 맞춰. 점쟁이 한테는 삿된 귀신이 잠시 붙어가지고 그 삿된 귀신이 돌아다니면서 봐서 일러주면은 지내간 일은 잘 맞추는데, 귀신도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든. 잡귀는 모르거든.

부처님처럼 삼명육통(三明六通)이 나서 육신통(六神通)으로 보신다면은 과거•현재•미래를 손바닥 안에 보듯 환히 아시지만, 점쟁이는 육신통이 난 게 아니여. 잡신(雜神)이 잠시 붙어가지고 그 잡신의 힘으로 지내간 일 뭘 좀 아는 소리를 하는데, 그것 가지고 미래 일까지는 다 모르거든.
혹 맞추기도 하고 안 맞추기도 하고 그러는데, 그러한 말을 믿고 우리가 중대한 일을 추진을 한다고 하는 것은, 그건 정신병자가 운전하는 차를 탄 거와 같아서 그놈이 언제 어디다 꿀어박을지 모르거든.

우리는 아무리 정법(正法)을 믿고 참선을 해도 살다 보면 좋은 일도 만나고, 슬픈 일도 만나고, 괴로운 일도 만나고, 여러 가지 어려운 일도 만날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한테도 3불능(三不能)이 있어. 3능(三能)과 3불능이 부처님한테 있다고 그러는데, 부처님께서 세 가지 능한 것은 무엇이냐?
(첫째는) 일체 상이 다 공(空)해서 그래 가지고 만법의 지혜를 이루시는 것이 부처님이 능하는 일이여.
두 번째는 모든 중생의 성품을 환히 다 알고, 억겁의 모든 일을 다 맥힘이 없이 다 아시는 거여.
셋째는 무량 중생을 제도하실 수가 있어. 이것이 부처님이 세가지 능하신 것인데,

그러한 삼명육통과 팔해탈(八解脫)을 증득하신 그러한 부처님도 세 가지 능(能)치 못한 것이 있는데,
당신이 무량겁으로부터서 오시면서 지으신 정업(定業)은 멸(滅)할 수가 없어. 그래 모든 것을 환히 다 아시고 육신통이 자재(自在)하시고 팔해탈이 자재하신데 왜 모든 것을 마음대로 다 하실 수가 있을 것 같은데 정업을 멸할 수가 없다.

두 번째는 인연없는 중생을 제도할 수가 없어.
셋째는 중생계를 다하지 못혀. 이 세상의 한 중생도 없이 다 무량 중생을 제도하실 수는 있으나, 중생계가 완전히 다 없어지도록 하실 수는 없다 그말이여.

그래서 부처님의 그러한 법력(法力)과 도력(道力)과 신통력(神通力)으로서도 부처님의 고국인 가비라(迦毗羅) 왕국이 멸망할 때 그걸 번연히 알고 계셨고 보고 계시면서도 그것을 막을 수가 없으신 것이여.
과거의 삼천불, 현겁 삼천불, 미래 삼천불 삼천(三千)의 부처님이 계셔도 중생계는 다하지 못하는 거여.

부처님의 자비는 인연이 있고 없고 간에 다 똑같이 베풀어지지만, 인연(因緣) 있는 중생이라야 제도가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우리는 인연을 부처님과 맺음으로 해서 부처님의 법문을 듣게 되고,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믿게 되고, 믿고서 실천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런 부처님께도 그런 삼불능(三不能)이 있는데 하물며 우리는 부처님께서 능(能)치 못한 3가지도 우리는 또 마찬가지고, 우리는 그보다도 수수 백만 가지가 능치 못한 것이 너무너무 많은데, 우리가 과거에 지은 그런 정업(定業)을 우리가 점쟁이 말 듣고 그것이 면(免)해질 수가 없어.

방법은, 이미 우리가 지어 가지고 받는 것은 도저히 피할 길이 없는 것이고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그것을 받아 넘기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여.

공자님이 제자들을 거느리고 중국을 이렇게 유행을 하시는데, 관리한테 붙잡혀 가지고 큰 난을 당했어. 그것은 양호라고 하는 악인이 있었는데, 공자님이 그 양호란 놈하고 얼굴이 비슷하게 생겨 가지고 양호인줄 알고 체포를 당해 가지고 참 억울한 어려운 일을 당하다가 간신히 풀려났는데,

그 제자가 묻기를 ‘성현(聖賢)도 이런 어려운 일을 당할 수가 있습니까?’ 그 제자들은 우리 불자들이 부처님을 숭배하듯이 공자님을 그렇게 숭배하는데, 「어찌 공자님과 같은 성현이 이런 참 어려운 일을 당할 수가 있겠느냐?」 의심이 나서 여쭈어 본 건데,

성현이라고 해서 어려운 일을 안 당하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의 그 마음은 다를지언정 - 중생이나 범부는 어려운 일을 당하면은 당황하고 겁을 내고, 마음이 동요가 되어서 겁에 질려서 자기의 마음을 지닐 수가 없어. 그런데 성현은 당한 것은 마찬가지인데, 당한 때의 마음가짐이 다르다.

범부 같으면 당신의 고국이 그렇게 망할 때 신통력으로 그 적군을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때려 부수고 죽이고 물리치고 혹 그런 마음을 냈을런지도 모르는데, 부처님은 환히 알고 그 광경을 다 보시면서도 그런 적극적인 행동을 하시지 않았어.

신통제일(神通第一)인 목련존자(目連尊者)가 그 고국의 사람들이 아주 멸종이 되게 생겼으니까 5천 명을 골라가지고 바리때에다 담아 가지고 저 높은 하늘나라에다 갖다가 잠시 피신을 시켰어.
부처님께서는 『그래 봤자 뭔 소용이 되겠느냐? 한 번 해 봐라.』 그래서 목련존자가 그렇게 했는데 다 난리가 가라앉은 다음에 가서 바리때 가지러 가니까 속에서 다 죽어갖고 있어. 과거에 죽을 업을 지어 가지고 금생에 그걸 받게 될 때에는 피할 길이 없어.

목련존자도 5백 생을 결국은 타살(打殺)을 당했는데 과거에 업연(業緣)으로 그랬는데, 마지막 5백 생도 결국은 당신이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외도(外道)들이 자꾸 불법(佛法)이 흥왕을 하니까,
‘부처님의 왼팔, 오른팔을 끊어야만 되겠다’ 그래 가지고 목련존자가 숲속에서 턱 이렇게 좌선을 하고 있는데, 거기다가 수백 개의 돌팔매질을 해 가지고 결국은 몸이 부서지게 되었다 그말이여.

목련존자의 같은 고향에서 같이 출가한 도반인 사리불(舍利佛)존자가 『왜 그대는 신통이 제일인데 왜 신통술을 어디다 두고 그렇게 맞었냐?』 그러니까,
『신통의 신(神)자도 생각이 안 나더라』 그렇게 경전에 쓰여 있는 데도 있고,  『내가 불자(佛子)로서 인과법(因果法)을 아는 사람이 피해서 되겠느냐』 또 그렇게 된 데도 있습니다마는 두 가지가 다 맞는 말씀이고.

점쟁이 말 듣고 재앙을 면할려고 해서는 안 돼. 그런데 점쟁이가 가끔은 절에 가서 부처님께 무엇이든지 치성(致誠)을 드리라고 그렇게 보내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와서 절에 와서 천도재도 하고 기도도 하고 그런 분도 있습니다.
부처님께 시주도 하고, 치성도 드리고, 또 조상의 천도재(薦度齋)도 지내고 그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천도재를 지내 가지고 집안에 우환이 없어진 그런 경우도 나는 많이 봤습니다.

많이 보기는 했으나, 정업(定業)은 난면(難免)인 것입니다.
받되 정법(正法)으로써 마음이 딱 기둥이 서면 어떠한 어려운 일을 당해도 바른 마음으로, 바른 정신으로, 신심과 원력으로, 지혜와 인내로써 그런 일을 잘 처리해 나가고 그 일을 소화를 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받는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이 각본(脚本)을 쓴 것>

 

우리가 이 세상에 받는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이 각본(脚本)을 써가지고 그 각본에 의해서 우리가 연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배우나 탤런트는 각본을 쓴 작가가 따로 있고, 그 각본에 의해서 감독이나 연출이 그것을 연출을 해 가지고 배우나 탤런트를 잘 선정을 해서 그 사람들로 하여금 연극을 하게 하는데, 그것은 배우 자신이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어.
각본에 의해서 감독의 지시에 따라서 최선을 다할 길 밖에는 없는 것이고, 배우 지 마음대로 이리저리 못하는 것인데,

우리는 우리의 일생을, 무량겁이라고 해도 좋지만 가깝게 금생 일생 이렇게 사는 것만을 우선 생각을 해 보자 이겁니다.
우리가 어느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어떻게 어렸을 때를 살고, 어떻게 유치원으로 국민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을 다녀 가지고, 어떻게 누구와 결혼을 했고, 어떻게 이렇게 살아가고 어떤 자식을 낳았냐? 그리고 일생 동안을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어갔느냐?

생로병사 일생만을 생각해 본다 하면 그것이 무슨 하느님이나, 부처님이나, 제석천왕(帝釋天王)이나, 또 어떤 뭐 염라대왕이나, 어떠한 다른 사람이 그렇게 시켜갖고 되는 일이 아니여.

전부 우리 자신이 그러한 각본을 썼어. 각본을 써 가지고 자기가 그 각본에 의해서 지금 이렇게 태어나 가지고 마지막 죽어갈 때까지 각본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는 거여.
하나도 부모를 원망할 것도 없고, 누구를 원망할 것이 없어. 선생을 원망할 것도 없고, 사회를 원망할 것도 없고, 국가를 원망할 것도 없어. 부부 간에도 남편이 아내를 원망할 것도 없고, 아내가 남편을 원망할 것도 없어.

도둑질하다가 감옥을 가도 검사나 판사를 원망할 것이 없는 거여. 지가 그 죄를 지어 가지고 판결을 받아 가지고 징역을 사는데, 감옥에 들어가서 내나 자기를 잡아넣은 형사를 '내가 나가기만 하면은 그놈의 형사 가만 안 놔둔다'고 이를 갈아붙이는 죄수가 있다면, 그거 어떻게 된 것이냐 그말이여.
자기를 무기 징역을 청구를 하고, 무기를 갖다가 판결을 내리는 검사와 판사를 원망하는 죄수가 있다면 그거 어떻게 된 거냐 그말이여.

가끔 전혀 자기는 그런 죄를 짓지 않았는데 억울하게 징역을 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는 자기를 억울하게 그 징역을 살게 하는 형사나 검사나 판사를 정말 중생으로서는 참 원망 안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그것도 역시 원망할 것이 없어. 과거에 자기가 그렇게 사람을 억울하게 그렇게 했기 때문에 금생에 또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이다 그말이여.

과거가 없는 금생(今生)은 없어. 전부가 금생에 우리가 지은 업과 과거에 지은 업이 다 연관성 있게 우리의 모든 것이 전개되어 가기 때문에 그런 것이여.
그래서 과거에 지은 업과 금생에 지어가는 업, 그런 것들이 합해 가지고 우리의 미래가 열려 나가는 것이니까, 우리는 이미 과거에 지어버린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나, 그 각본을 우리는 고쳐서 쓸 필요가 있다 그말이여.

우리는 텔레비전을 보면은 거기서 전개되어 가는 것을 보고 야단들이여.
자기 마음에 안 맞으면은 작가한테 막 편지질을 하고 전화질 하고 방송국에다 ‘그렇게 죽여서는 안 된다, 살려야 한다’고 야단들인데, 그렇게 하두 전국에서 들어오면은 처음에 작가의 생각은 죽일라고 했다가도 하도 그래싸면 그거 바꾼다고 그래.

그까짓 TV에 나오는 거 죽이면 어떻고 살리면 어떻고 별 것이 아닌데,
우리 자신이 과거에 지은 업이 있어가지고 금생에 이렇게 불행한 일만 당하게 되었다 하면, 그 각본이 다른 사람이 쓴 것이 아니고 내가 썼기 때문에 금생에 각본을 달리 쓸 수는 있다 그말이여.
달리 써 가지고 어쨌든지 좋은 방향으로 요렇게 틀으면 좀 힘은 들랑가 모르지만, 자기가 쓴 각본을 자기가 방향을 바꿔나갈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왜 그러냐? 미래는 꼭 과거에 지은 그놈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라, 금생에 우리가 해 가는 일까지 합해져 가지고 미래가 열리기 때문에 그래서 이것은 '운명론이다, 숙명론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없어, 불교는.

인과법은 숙명론(宿命論)도 아니고 운명론(運命論)도 아니여.(42분45초~63분35초)

 

 

 

 

 

(2)--------------------

 

미래는 꼭 과거에 지은 그놈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라, 금생에 우리가 해 가는 일까지 합해져 가지고 미래가 열리기 때문에 그래서 이것은 운명론이다, 숙명론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없어, 불교는.


인과법은 숙명론(宿命論)도 아니고 운명론(運命論)도 아니여.

과거에 지은 업도 절대로 무시할 수가 없지만, 금생에 내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그것까지 합해져 가지고 미래가 열려지기 때문에 우리는 각본을 바꿔쓰면 된다 그말이여.

그러면 어떻게 각본을 쓰고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방향은 바꿀 수가 있다 그말이여.

인과의 법칙을 정말 올바르게 이해를 하고, 올바르게 활용을 해 나가야 한다.
인과법을 잘못 믿으면 완전히 숙명론•운명론에 떨어져 가지고 그러고, 그렇지 않으면 까딱하면 인과법을 믿지 않고, 발무인과(撥無因果) 『에잇 그까짓 거 소용이 없다고!』

못된 짓을 하면 응당 잘 못살아야 하고 벌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극악무도하고 못된 짓만 하는 사람이 잘사는 사람이 있다 그말이여.
그러고 정직하고 착하고 참 그런데 사사건건이 불운(不運)을 당하고 못살고 억울하게 그렇게 일을 당하는 사람도 있고 그러니, 그런 걸 보면 『그것 인과법 소용 없다고!』 안 믿는 사람도 있는데 그게 아니거든.

금생에 것만 갖고 우리의 앞이 그것에만 있는 게 아니라 과거에 지은 것까지 합해져서 되기 때문에, 과거에 워낙 좋은 복을 지어놓으면 금생에 못된 짓을 해도 우선 괜찮은 사람이 얼마든지 있어요.
금생에 나쁜짓 한 건 또 언젠가는 꼭 받게 되지만, 우선 과거에 지어놓은 것이 워낙 많으면 그것이 금생에 좀 나쁜짓 해도 그럭저럭 잘사는 사람도 있어. 그러나 그것 믿을 것이 못되는 거고.

금생(今生)에 착하고 부지런히 해도 못 당할 일 많이 당하는 것은 전생(前生)에 지은 나쁜 악업이 있기 때문에 금생에 좀 잘해도 별로 좋은 꼴을 못 보는 거여.

그래서 인과의 법칙에 금생에 지어 가지고 금생에 바로 현실적으로 받는 경우가 있고, 금생에 지어 가지고 바로 이 다음 생에 받기도 하고, 금생에 지어가지고 다음 생, 저 다음 생, 몇 생을 건너 뛰어 가지고 가서 받는 수가 있어.
현생보(現生報)•순생보(順生報)•순후보(順後報) 이것이 세 가지 차등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것이지 안 받는 것은 아니여, 언젠가는 다 받게 되는데.

그렇게 지어서 받는 것은 면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전부 우리의 마음으로 지어서 이렇게 벌어지는 일들이라,

그래서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마음이라 하는 것은 만법(萬法)의 근원이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환상이요 물거품 같은 것이다.』 다 그렇게 말씀하셨어.

그래서 범부(凡夫)는 모든 것이 환(幻)인데 환인 줄을 모르고서 환(幻)의 업(業)에 집착을 해 가지고 거기에 끄달리는 거고.

성문(聲聞)은 모든 환(幻)을 그것을 굉장히 두려워 해. 생로병사를 굉장히 두려워 해가지고 어떻게 하면 - 죽음이 무서우니까, 죽음을 안 당할라면은 태어나지 말아야겠다.
태어나기만 하면 늙어서 병들어서 결국은 고통스럽게 죽어가니까, 죽음이 없을라면은 태어나지 않아야겠다. 그래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 방법으로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삼는다 그말이여.
멸진정은 영원히 아주 정(定)에 들어가 버린 거여. 그러면 태어나지를 않기 때문에 죽음도 없다. 이게 소승(小乘)의 생각이다.

보살(菩薩)은 이 세상의 모든 경계는 환(幻)의 경계여. 본래 없는 것이고 본래 남이 없는 거여.

눈병 든 사람에게 이 허공에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 우리는 눈동자를 옆에서 요렇게 눌루고 보면 해도 둘로 보이고, 달도 둘로 보이고, 뭔 물건도 둘로 보입니다. 여러분 댁에 가서 시험을 해보세요.
그냥 보면 하나인데, 눈동자를 요렇게 눌러가지고 압력을 가해 가지고 보면은 삐뚤어지게 보이고 둘로 보인다 말이여.

눈이 멀쩡한 사람에게는 허공 속에는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데, 눈병 난 사람은 뭣이 이상한 것이 이리 왔다갔다 하고,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도 보이고, 불이 켜진 것처럼도 보이고 모다 그러는데, 눈병만 고치면은 허공에 피어있는 꽃이 안 보이거든.

눈병이 나기 전에도 없었던 거고, 눈병이 난 뒤에도 허공에는 꽃이 없는 거고,
그러다가 눈병이 나은 뒤에도 - 허공의 꽃은 원래 없는 것인데, 있는 것처럼 눈병 난 사람은 보이니까 그 눈병 난 사람에게는 그 사람은 분명히 있다고 할거라 그말이여. 눈병이 없는 사람에게는 (허공의 꽃이 원래) 없다 그말이여.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명상(名相), 이름이나 모양이나 그런 것은, 귀로 들을 수 있는 거, 코로 냄새 맡을 수 있는 거, 눈으로 볼 수 있는 거, 안이비설신의 육근(六根)을 통해서 육경(六境)을 만나면 육식(六識)이 생기는데, 그 육식(六識)에 포착되는 모든 것들은 명상(名相)이여 그게. 명상(名相)!

명상(名相)이라는 것은 환(幻)으로 이루어진 거여.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림자요, 메아리여 그것이. 마음 하나만 공(空)해 버리면 일체 명상(名相)은 동시에 다 공(空)해 버리는 것이다.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명상(名相)을 그것을 ‘있는 것’으로 집착을 함으로 해서, 모든 탐진치 삼독심이 일어나는 거여.

어린애들은 크레용이나 무슨 연필을 가지면 벼람박이고 어디고 마구잽이 막 그려 젖히거든.
철없는 중생이 우리의 마음으로 일체 경계(境界)를 당해서 온갖 것을 정말 미친 사람이 어떠한 연극에 각본을 쓰듯이 종잡을 수 없이 쓰거든.
죽일라고 했다가 살리고, 살릴라고 했다가 죽이고 그저, 도둑놈을 갖다가 착한 사람을 만들고, 착한 사람을 어떤 때는 또 도둑놈으로 만들고 해 가지고는 종잡을 수 없이 계속 끝이 없는 각본을 써 가는데.

우리 중생이 하는 짓이 바로 미친 정신병자가 연극 각본을 쓴 것처럼 종잡을 수 없이 우리의 무량겁을 그런 각본을 써 왔고,
앞으로 정법(正法)을 믿고 바른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해서 자기의 주인공(主人公)을 계발하고 그놈을 깨닫는 방향으로 나간 사람은 제외하고는, 그렇지 않는 사람은 착하나 악하나 그놈이 그놈이여.

언제 어떻게 변할는지 모르는 거여. 그래 가지고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해 갈 거다 그말이여.

조금 착한 짓 한 사람은 좋은 곳에 태어날 거고, 악한 짓 한 사람은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질 것이고, 천당에 좋은 곳으로 가봤자 받을 만큼 복을 받으면 또 떨어지는 거고, 삼악도에 떨어지면 그 받는 기한이 길고 길어서 언제 나올 기약 있을는지 모르나, 나와 봤자 또 마찬가지여. 언제 무슨 짓을 또 하냐.

그래서 무슨 소리를 듣든지 「이뭣고?」, 무슨 것을 눈으로 보든지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 「이뭣고?」를 하시라 그말이여.

우선 당장 괴로운 일이 있는데 「이뭣고?」만 할 수 있느냐?
괴로운 일 자체가 꿈에 등창을 앓거나 어디 종기를 앓는 거와 같애. 꿈이라 하지마는 실지로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정말 아퍼. 무서운 걸 보면 무섭고, 괴로운 것을 보면 괴롭고, 아플 때는 정말 꿈에도 아퍼요.

아프다가, 그렇게 몸부림을 치고 그러다가, 누가 와서 꿈을 깨거나 잠을 깨주면 눈을 뜨고 보면, 깨고 나서도 한참 아퍼. 아퍼도 정신을 차려서 보면 진짜는 안 아픈 거여 그게.
정말 눈 딱 떠서 정신만 차려버리면 그렇게 아프던 종기가 깨끗이 낫어 버리는 거여. 몰록 낫어, 몰록.

세속의 사전에는 ‘몰록’이란 말이 있는가 어쩐가 모르는데, 이 불가(佛家)에서는 ‘돈오돈수(頓悟頓修)’ 이래서 ‘몰록 깨닫고 몰록 닦는다’는 것이,
전기 스위치를 탁 올리면 찰나(刹那) 간에 탁 켜지고 탁 내리면은 찰나 간에 깜깜해지듯이, 그 꿈에 앓던 몸의 종기가 잠을 깨자마자 몰록 낫어버리는 거여. 차츰차츰 낫어가는 게 아니라.

그래서 방편(方便)•점차(漸次)가 없어. 점차(漸次)라고 하는 것이 없는 거여. 차츰차츰 요렇게 낫아가는게 아니라, 찰나(刹那) 간에 탁! 몰록 낫아버리는 것이여.

이궁어시(理窮於是)다. 모든 이치가 여기에서 다해 버린 거여.
그래서 활구참선이라 하는 것은 차츰차츰 알아 들어가고 차츰차츰 깨달라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뭣고?」를 해 가면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계속 의심으로 참구(參究)를 해 가면, 해 갈수록 꽉 맥혀서 알 수가 없어.

그래 가지고 그 의심이 더이상 커질 수가 없고, 더이상 간절할 수가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면, 우리의 속도 의심으로 가득차고, 온 세계의 무엇을 보나 듣거나 산을 봐도 ‘이뭣고?’뿐이요, 꽃을 봐도 ‘이뭣고?’뿐이요.
‘이뭣고?’를 ‘이뭣고?’들면 있고 놓으면 없어지고 한 게 아니라, 들고 놓고 할 것이 없이 일체처 일체시에 의심이 온 법계에 가득차게 되서 더이상 커질 수가 없을 때는 어떠한 찰나에 툭 터지게 되는 거여.

그래 가지고 의단(疑團)을 갖다가 통 밑구녁 빠지듯이 의단이 탁! 터지는 거여. 그러면서 자기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게 되는 거여.

비록 석 달 만에 깨달은 사람, 3년 만에 깨달은 사람, 30년 만에 깨달은 사람, 마지막 죽을 때까지 못 깨달은 사람도 있을 수가 있으나, 다른 모든 것은 하다가 안 되면 그것은 실패고, 소용이 없는데, 이 공부는 끝까지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해도 깨닫지 못했어도 그것이 헛일이 아니여.

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해 놓은 것은 고대로 그 공덕이 거기에 다 있어서 금방 새로운 몸을 받아가지고 그 인연이 있기 때문에 젊어서 정법을 만나게 되고, 그 믿어지게 되고 그것을 실천하게 되면 젊어서 툭 3일 만에 깨닫고, 언하(言下)에 깨닫고, 한철 만에 깨닫는 것이 그 까닭이 있는 거여.
전생에 그렇게 하다가 몸을 바꿔났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툭 깨닫게 되는 거여.

그래서 ‘하! 내가 이렇게 아무리 할라고 해도 안 된다’ 아까 조실 스님 법문에도 ‘그것이 왜 그러냐 하면은 믿음이 적기 때문에 그렇다’ 조실 스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결국은 철저하게 믿고 철저하게 해야 혀. 반신반의(半信半疑)를 하고, 허다가 말다가 하고, 그래 갖고는 언제 그것이 될 거냐 그말이여.

할 때는 정말 철저하게 믿고, 철저하게 믿은 데에서 열심히 하면은 거기서 또 분심(憤心)이 나고, 분심 있는 곳에 신심이 더욱 깊어지고 해서, 그래 가지고 결국은 대의지하(大疑之下)에 대오(大悟)여. 의심이 크면은 크게 깨닫는다.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심(疑心)이 이것이 삼요소(三要素)인데, 이 삼요소로 나간다면 누가 못 깨닫게 되느냐 그말이여.

새해에 우리의 법보 가족은 대분심(大憤心)과 대신심(大信心)과 대의단(大疑團)으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黙動靜) 간에 어떠한 종류의 일을 당하거나, 어떠한 종류의 사람을 만나거나,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신분의(信憤疑) 삼요소로써 단속해 나가기를 우리는 1994년의 첫 번째 법회날을 맞이해서 다 같이 다짐을 합시다.(63분10초~81분17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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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주(大主) ; ①무당이, 굿하는 집이나 단골로 다니는 집의 바깥주인을 이르는 말. ②여자가 자기 집의 바깥주인을 이르는 말.

*삼명육통(三明六通) ;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갖추고 있는 3가지 자유 자재한 지혜와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육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이 신통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하지마는 흔히 여섯 가지로 말한다
1. 신족통(神足通)은 공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그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수 있는 것
2. 천안통(天眼通)은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것
3. 천이통(天耳通)은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릴 것 없이 무슨 소리나 잘 듣는 것
4. 타심통(他心通)은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그 생각하는 바를 다 아는 것
5. 숙명통(宿命通)은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의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다 아는 것
6. 누진통(漏盡通)은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선가귀감](용화선원) p94-95 참조.
*잡신(雜神) ; 온갖 잡스러운 귀신.
*삼능(三能) 삼불능(三不能) ; 당나라 숭악(崇嶽)의 원규(元珪)가 부처님의 3능(三能)과 3불능(三不能)을 세움.
(1) 3능(三能) - 부처님의 3가지 능한 것.
①일체 상(相)이 공(空)해서 만법을 아는 지혜를 이루는 것.
②모든 중생의 성품을 다 알고, 억겁(億劫)의 모든 일을 막힘이 없이 다 아는 것.
③한량없는 중생(무량중생)을 제도하는 것.


(2) 3불능(三不能) - 부처님의 3가지 능치 못한 것.
①무량겁으로부터서 지은 정업(定業)은 멸하지 못함.
②인연없는 중생을 제도하지 못함.
③무량중생을 제도하실 수는 있으나 중생계를 다 제도하지 못함.
*팔해탈(八解脫) ;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여덟 가지 선정(禪定).
*정업(定業) ; 과거에 지은 업에 따라 현세에서 받게 되는 과보(果報).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法)의 힘. ②가르침의 힘. 불법의 공덕. 불•보살의 위신력(威神力)을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것.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힘.
*도력(道力) ; ①도의 근본에서 생기는 힘. 도를 얻음에 의하여 나타남. ②지혜의 힘.
*신통력(神通力 불가사의할 신,통할 통,힘 력) : 수행을 통(通)하여 도달하는 걸림없는 초인간적인(神) 능력.
*가비라국(迦毗羅國) ; kapila國(카필라).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아버님 정반왕(淨飯王)이 다스리던 나라. 실달다(悉達多) 태자(太子) 곧 석존(釋尊)이 태어난 곳.
*석가족의 멸망 ; BC 6세기에 코살라국(Kosals國) 사위성(舍衛城)의 왕인 파사닉왕(波斯匿王)이 석가족 사람과의 혼인을 청해 왔는데, 석가족은 파사닉왕이 낮은 신분 출신의 왕이어서, 왕의 청을 거만하게 생각하여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으나, 파사닉왕의 세력이 워낙 강했으므로 왕족 하녀의 딸을 석가족의 처녀라 속여 파사닉왕에게 보냈다.
이 하녀의 딸과  파사닉왕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유리(琉璃)태자가 8세 때 어머니의 나라인 석가족의 카필라국(Kapila國)을 방문했는데, 석가족의 사람들은 유리태자를 무시하고 ‘종년의 자식’이라 하며 천대하고 모욕을 주었다. 이에 태자는 원한을 품고 보복하려 마음 먹었다.

한 신하의 계략으로 파사닉왕이 죽고 유리태자가 왕위에 오르자,
지난날 석가족에게 당한 모욕을 보복하고자 출병을 하였는데, 그 소식을 듣고 부처님께서는 유리왕(琉璃王)과 그 군사들이 카필라국으로 가는 길목에-말라 죽은 고목 밑에 앉아 계셨다.
유리왕은 부처님의 모습을 보고, ‘부처님께서는 왜 잎이 무성한 나무 아래 앉지 않으시고, 말라 죽은 고목 아래 계십니까?’하고 여쭙자 ‘친족의 그늘은 나무의 잎과 같이 시원하다’고 말씀하시니, 유리왕은 부처님의 뜻을 알고 군대를 돌렸다. 그러나 또다시 석가족에 당한 모욕을 기억하고 카필라국으로 향했다.

이런 중에 부처님의 제자인 목련존자는 석가족을 구하고자 부처님께 나아가 사뢰었다.
‘저의 신통력으로 유리왕의 군대를 타방 세계로 던져버리거나, 카필라국을 허공에다 옮겨 놓거나, 카필라국 위에 쇠그물을 덮을 수 있다’고 하자, 부처님께서 ‘석가족의 전생 인연도 타방 세계에 던져 버릴 수 있겠느냐, 전생 인연도 허공에 옮겨 둘 수 있겠는가, 쇠그물로 전생 인연을 덮을 수 있겠는가’ 되물으시고,
‘지금 석가족들의 전생 인연이 이미 다 익었으므로, 이제는 그 갚음을 받아야 한다.’ 말씀하셨다.
세존께서는 곧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비록 저 허공을 이 땅으로 만들고, 또 이 땅을 허공으로 만들려 해도, 그것은 다 본디 인연에 매었나니, 그 인연은 영원히 안 썩느니라.”
목련존자가 그 석가족 사람들이 아주 멸종이 되게 생겼으니까 5천 명을 골라가지고 바리때에다 담아 가지고 저 높은 하늘나라에다 갖다가 잠시 피신시키려 하자, 부처님께서는 “그래 봤자 뭔 소용이 되겠느냐? 한 번 해 봐라.” 그래서 목련존자가 그렇게 했는데 다 난리가 지나고 나서 바리때 속을 보니 다 죽어 있었다.

이렇게 세 번을 거듭 진군하다 돌아오고 진군하다 돌아왔으나 네 번째에는 부처님이 나타나지 않으셨다.
이리하여 유리왕과 그 군대는 석가족을 잔인하게 짓밟아 죽이는 악행을 저지르고 사위성(舍衛城)으로 되돌아 갔다.

부처님은 비구들과 함께 유리왕과 그 군대가 휩쓸고간 불태워진 카필라국을 보시고 곧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모든 현상은 덧없는 것이니, 한 번 나면 반드시 죽음이 있네. 나지 않으면 곧 죽지 않나니, 이 열반이 가장 큰 즐거움이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사위성 기수급고독원으로 가셨다. 그 때에 비구들에게 말씁하셨다.
“지금 저 유리왕과 그 군사들은 이 세상에 오래 살지 못하고 지금부터 일주일 뒤에는 다 없어지고 말 것이다.”
과연 유리왕과 그 군사들은 일주일 뒤에 강가에서 밤에 비바람이 몰아쳐 물에 떠내려가 죽어 아비지옥에 떨어졌다. 또 하늘 불이 내려와 궁전을 모두 불살랐다.
부처님께서는 천안(天眼)으로 유리왕과 그 군사들이 지옥에 떨어진 것을 아시고 곧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악(惡)을 행하되 못내 심한 것, 그것은 모두 몸과 입의 행(行)이다. 지금의 몸으로도 고통 받지만, 타고 날 목숨도 짧을 것이다.  만일 집에서 살게 될 때는 그 집은 모두 불에 살리고, 만일 목숨을 마치게 되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리라.”

부처님께서는 석가족과 유리왕의 전생 인연을 말씀하셨다.
“옛날 이 왕사성에 한 어촌이 있었다. 마침 흉년이 들어 사람들은 풀뿌리를 먹었는데, 그 촌에 큰 못이 있었고 또 거기는 물고기가 많았다. 왕사성의 사람들은 그 못에 가서 물고기를 잡아먹었다. 그 물고기중 하나가 `우리는 전에 이 사람들에게 아무 허물이 없는데, 이 사람들은 모두 와서 우리를 잡아먹는다. 다음에 원수를 갚자.`하였다.
그 촌에는 어떤 어린애가 있었는데, 물고기를 잡지도 않고 또 목숨을 죽이지도 않았으나 물고기들이 죽는 것을 보고 매우 재밌어하였다.
비구들이여, 알라. 그 때의 그 왕사성의 사람들이 석가족이고, 그 물고기중 하나가 지금의 저 유리왕이요, 그 때에 죽는 물고기를 보고 웃던 어린애는 바로 나이니라.
그 물고기를 잡아먹은 과보로 무수한 겁을 걸쳐 지옥에 떨어졌고 또 지금에 그 갚음을 받은 것이다. 나는 그 때에 물고기 죽는 것을 보고 웃었기 때문에 지금 머리가 아파 돌로 치는 것 같고 또 머리에 수미산을 인 것처럼 무겁다.
이것이 이른바 `이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런 갚음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몸과 입과 뜻의 행을 잘 단속하고 범행을 닦는 이를 생각하고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도록 하라.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번연하다 ; 어떤 일의 결과나 상태 따위가 훤하게 들여다보이듯이 분명하다.
*삼천불(三千佛) ; 과거세(過去世)의 천불(千佛), 현재세(現在世)의 천불, 미래세(未來世)의 천불을 통틀어 이르는 말.
*인연(因緣) ;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사람이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
*목건련 (目犍連, 目連) ; 산스크리트어 maudgalyāyana의 음사. 대(大)목건련 또는 마하(摩訶)목건련이라고도 한다. 원명 꼴리따. 부처님 십대제자(十大弟子)의 한 사람.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인근 마을의 사리불(舍利弗)와 친하여 어느 날 바라문교의 축제를 구경하다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승을 찾아나서 라자가하(王舍城)의 유명한 회의론자 산자야 문하로 들어갔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하던 중에,
사리불이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제자 앗사지(馬勝)를 만나 들은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시네 / 그리고 또 그 소멸까지도 /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네”라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사리불한테 듣고는,
사리불과 산자야의 제자 250명과 함께 죽림정사를 방문해 부처님께 귀의했다. 신통력이 뛰어나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일컬음. 사리불과 함께 불교교단의 중심인물이었다.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고, 탁발하는 도중에 외도(外道)들이 던진 돌과 기왓장에 맞아 고통을 겪는 중에, 사리불이 열반에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붓다에게 나아가 열반에 들겠다고 말씀 드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다 마수촌에서 열반에 들었다.

목련존자의 과거 업연(業緣) ; 먼 과거 전생에 목련(目連)은 늙은 눈먼 부모를 모시고 나이가 들도록 결혼도 하지 않고 부모를 봉양하고 살고 있었는데, 부모는 그것이 안타까워 성화를 하는 바람에 그는 젊은 처녀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에게 시집온 여인은 처음 며칠 동안에는 별 불평없이 눈먼 시부모를 잘 모시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시부모를 보기만 해도 짜증을 내며 같이 살수 없다고 했으나, 그는 아내의 말을 듣고도 모른 척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외출하여 일을 보러 간 사이에 그녀는 일부러 진흙과 쌀겨와 쌀죽의 찌꺼기를 집안 여기저기에 흩뜨려 놓았다.
이렇게 해 놓고 돌아온 남편에게 눈먼 당신의 부모가 이렇게 해 놓았다고, 자기는 이제 시부모와 더이상 같이 못 산다고 하며 계속 들볶자 그는 아내의 말만 믿고 부모를 버릴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딴 곳에 사는 친척이 부모님더러 한번 오라고 한다고 말하고는 수레에 태워 숲속에 깊이 들어가서, ‘아버지, 이 고삐 좀 잡고 계세요. 황소가 길을 잘 알고 있어서 가만 놔두어도 잘 갈 겁니다. 여기는 도둑들이 출몰하는 곳이니 저는 내려서 살펴봐야겠습니다.’하고는 숲속으로 들어갔다.

숲속에 들어간 그는 마치 도둑들이 공격을 해오는 것처럼 소리를 지르니까, 부모는 놀라면서 ‘아들아, 우리는 살 만큼 살았다. 우리는 신경쓰지 말고 너라도 어서 도망쳐라’고 하였다.
아들은 소리를 외치며 도적들처럼 다가와 부모를 죽여 시체를 숲속에 버린 뒤 집으로 돌아왔다.

이 악업으로 그는 무수한 세월동안 무간지옥에서 고통을 받았다. 그러고도 악행의 과보가 아직 다하지 않아서 100생 동안 온몸이 가루가 될 정도로 두들겨 맞아죽었다.

그러나 그는 또한 과거에 수없이 많은 부처님들을 모시고 열심히 수행하면서 서원을 세운 사람이기도 했다. 그 때 그는 미래 세상에 고따마 부처님께서 출현하시면 자기는 그 부처님 밑에서 으뜸가는 제자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많은 공덕 바라밀을 성취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목련존자의 태어남은 이번이 마지막이 되었고, 결국 외도들에 희생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아라한을 이룬 성자였기 때문에 중생처럼 단순히 죽은 것이 아니라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완전한 적멸(寂滅)을 실현했던 것이다.

이같이 목련존자의 전생과 그에 따른 과보를 말씀하신 다음 부처님께서는 다음의 게송(법구경 137~140)을 읊으시었다.
“죄가 없고 자신과 남을 해치지 않는 자에게, 폭력를 사용하여 해를 끼치면, 참으로 아주 빠르게 다음 10가지 중 하나에 떨어지리라.
①심한 고통을 당함. ②아주 가난해짐. ③몸의 상해(신체적 절단). ④중대한 질병이나 정신이상을 일으킴. ⑤왕의 노여움을 사 모든 재산을 빼앗김. ⑥재산과 명예를 회복할 수 없는 고소를 당함. ⑦가족이 생명을 잃음. ⑧재산이 천재지변 등으로 파괴됨. ⑨집에 벼락이 내리거나 불에 탐. @그런 뒤 그 어리석은 자는 죽어서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당하리.”
[참고] [법구경-담마파다] (전재성 역주 | 한국빠알리성전협회) p451~454, [법구경이야기 2] (무념·응진 역 | 옛길) p 384~390.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들어 안팎에 칠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라고도 한다.
*업연(業緣) ; 업보(業報)의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의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의 인연을 부른다.
*외도(外道) ; 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의 가르침(道). 또는 그 신봉자.
*사리불(舍利弗) ; 산스크리트의 샤리푸트라(śāriputra), 팔리어(語) 샤리푸타(Sāriputta)의 음역(音譯)이며, 추자(鶖子) ·사리자(舍利子)라고도 한다. 원명 우빠띳사.
인도 중부의 마가다왕국 수도 왕사성(王舍城) 근처의 바라문 출신으로, 인근 마을의 목건련과 친하여 어느 날 바라문교의 축제를 구경하다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승을 찾아나서 라자가하(王舍城)의 유명한 회의론자 산자야 문하로 들어갔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하던 중에,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제자 앗사지(馬勝)를 만나 들은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시네 / 그리고 또 그 소멸까지도 /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네”라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아 목건련(目犍連) 및 250명의 산자야의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했다.
부처님도 그를 높이 평가하여, 경전 중에는 부처님을 대신하여 설법한 경우도 적지 않음을 볼 수 있다. 10대 제자 중 수제자로, 지혜가 가장 뛰어나, ‘지혜제일(智慧第一)’로 칭송되었다고 전한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1년 전, 목건련이 그렇게 외도들의 몰매를 맞고 열반에 들려고 하자, 사리불은 자신이 목련보다 먼저 열반에 들겠다고 하고, 부처님께 자신이 부처님보다 먼저 열반에 들 것을 허락받기 위해 부처님이 계시는 기원정사로 갔다.
사리불은 ‘부처님께서 곧 열반에 드실 것을 알기에, 차마 제 눈으로 부처님의 열반을 볼 수 없어 먼저 열반에 들고자 합니다’하고 간청을 하여 허락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부처님께 귀의하게 한 후 열반에 들었다.
*치성(致誠 이룰 치,정성 성) ; 있는 정성을 다함. 또는 그 정성.
*천도재(薦度齋)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각본(脚本) ; ①[연극][영화] 연극이나 영화, 방송극을 만들기 위해 배우의 대사나 동작, 장면 순서, 무대 장치 등을 구체적으로 적어 놓은 글. ②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사전에 꾸민 계획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제석천(帝釋天) ; 불법(佛法) 지키는 수호신. [天神]들의 제왕[] 샤크라〔釋〕라는 . 제석(帝釋), 석제(釋帝), 제석천(帝釋天), 제석왕(帝釋王), 제석태자(帝釋太子), 천주(天主)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Śakra-devānām Indra). 석제환인다라(釋提桓因陀羅) ·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 ·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 ·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 등으로 음역하고 줄여서석제환인(釋提桓因, 釋帝桓因) · 제석천(帝釋天)이라 한다.

『법화현찬(法華玄贊)』에서는 범어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에서 석가 ()씨이며 ()이라 한역하고, ‘제바 ()’이라 한역하며, ‘인달라 ()’ 한역하니  능천제(能天帝)’ 한다 뜻으로 보면 석가(능히) 제바(하늘의) 인달라(제왕)’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는데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왕으로, 사천왕(四天王)32() 통솔하면서 불법(佛法) 불제자를 보호한다. 도리천에는 33신이 있는데, 제석은  중앙에 있는 선견성(善見城) 안의 수승전(殊勝殿)이라는 궁전에 살고, 나머지 32신은  () 밖의 궁전에서 각각 산다.

 

제석천은 본래 인도 성전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천신  벼락을 신격화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었으나 불교에수용되어서는 범천(梵天) 함께 호법선신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상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수호하고 사바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에서는 단군의 할아버지를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하여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동일시하여 숭배하였다. <잡아함경>에는 제석천이 본래 사람이었으나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향과 와구(臥具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한다. 제석천왕은 신중탱화(神衆幀畵)  손에 금강저(金剛杵) 들고 머리에 보관(寶冠) 쓰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한다.

*인과(因果) ; ①원인과 결과. 현상을 생성시키는 것과 생성된 현상. ②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는 이치. ③선악의 행위에는 반드시 그 과보가 있다는 도리.
*숙명론(宿命論) ; 세상의 모든 일이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 견해나 학설. 같은말-운명론(運命論).

 

 

 


---------------------(2)

 

*현생보(現生報) ; 현세(現世)에서 업(業)을 지어 현세에서 받는 과보(果報)를 이른다. 순현보(順現報). 현보(現報).

*순생보(順生報) ; 지금 세상에서 지은 선악에 따라 다음 세상에서 받는 인과응보를 이른다. 생보(生報), 순차보(順次報).
*순후보(順後報) ; 지금 세상에서 지은 선악에 따라 삼생(三生) 이후에 받는 과보(果報)를 이른다. 후보(後報).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성문(聲聞) ; 부처님의 음성(聲)을 들은(聞) 사람이라는 뜻.
① 산스크리트어 śrāvaka, 팔리어 sāvaka.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음을 구하는 수행자.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사제(四諦)의 이치를 깨달아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자. 자신의 깨달음만을 위해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자. ② 성문승(聲聞乘)의 준말.
*멸진정(滅盡定) ; ①마음[心]과 마음작용[心所]을 소멸[滅盡]시켜 무심(無心)의 상태에 머무르게 하는 선정.
②무소유처(無所有處)의 경지에 이른 성자(聖者)가 모든 마음 작용을 소멸시켜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닦는 선정(禪定).
멸진정은 무색계의 4천 중 제3천인 무소유처(無所有處)의 번뇌를 이미 떠난 상태에서 닦는 선정이기 때문에, 그 경지가 거의 무여열반(無餘涅槃)의 적정(寂靜)에 비견된다.
멸정(滅定)·멸진등지(滅盡等至)·멸진삼매(滅盡三昧)·상수멸정(想受滅定)·멸수상정(滅受想定)이라 한다.
*보살(菩薩) ;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bodhi는 깨달음, sattva는 살아 있는 존재, 곧 중생을 뜻하므로 보살은 깨달을 중생, 깨달음을 구하는 중생, 구도자(求道者)라는 뜻.  보살마하살 · 각유정 등으로도 불린다.
①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수행으로 미래에 성불(成佛)할 자. 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행하는 자.
② 보살승(菩薩乘)의 준말. ③ 수행자. ④ 고승(高僧)에 대한 존칭. ⑤ 여자 신도를 일컫는 말.
*육경(六境) ; 육진(六塵). 중생의 마음을 더럽히는 여섯 가지.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을 말한다.
*육식(六識) ; 육근(六根)에 의하여 대상을 깨닫는 여섯 가지 작용. 곧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의 여섯 가지이다.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 곧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를 가리킨다.
지옥도는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점차(漸次) ; 시간이나 차례에 따라 조금씩.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의단(疑團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삼요(三要) : 참선하는데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요건. 첫째는 큰 신심(大信心)이요, 둘째는 큰 분심(大憤心)이요, 세째는 큰 의심(大疑心)이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Posted by 닥공닥정
참선의 효과2014. 1. 26. 13:38

§(287) 극기(克己) 해야 참다운 대장부 / 최상승법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가깝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하면 깨달음은 갈 곳이 없다 / 오후보림(悟後保任).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시고 그리고서 그 49년 동안 설하신 교(敎) 밖에 따로 전하신 이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이 최상승법이라 하는 것은 그렇게 듣기도 어렵고, 들어도 믿기 어렵고, 이렇게 듣고 믿어도 직접 정성과 목숨을 다해서 실천한다고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생사(生死)에 자유자재, 또 생사해탈(生死解脫)이 전부 우리의 일념(一念)을 두고 하는 것이고, 일념을 잘 단련을 하고 일념을 갖다가 돌이켜서 그놈을 갖다가 단속을 하는 가운데에 생사 자유의 이치, 진리를 터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인 것입니다.

 

우리가 공안(公案)을 타파해서 자기의 면목(面目)을 깨달랐다 하더라도 그것으로써 우리의 수도(修道)가 끝난 것이 아니라, 그 깨달은 바에 의해서 잘 보림(保任) 공부를 해서, 그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도리를 자유자재로 쓸 수가 있게 되어야 그래야 비로소 도인(道人)이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빨리 깨달라 가지고 오후보림(悟後保任)을 안 하고 등한(等閒)히 하나, 더디 깨달라도 깨달을 때까지 그 공력을 들여서 정진을 해 놓은 사람은 깨달은 뒤에 오후보림 공부가 벌써 깨닫기 전에 많이 다 숙달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빨리 깨닫고 더디 깨닫는 것을 문제 삼지 말아라. 다맛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올바르게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는 것’ 그것뿐인 것입니다.

 

**송담스님(No.287) - 1986년 2월 첫째일요법회(86.02.02) (용287)

 

약 12분.

 

 

여러분께서는 활구참선을 하시되,

 

이 불법(佛法)을 10년 20년 믿지마는 참선(參禪)이 무엇인지, 활구참선(活句參禪)이 무엇인지, 화두(話頭)가 무엇인지, 그저 부지런히 시주하고, 염불하고, 부처님께 공을 들이고, 그러한 것이 불법인줄 알고 일생을 지극정성으로 믿고서 스스로도 많은 공덕을 쌓았다고 생각하고,

 

모든 다른 사람들도 '참, 그분이 신심이 있다. 참, 공덕이 장하다. 틀림없이 극락세계에 가셨을 것이다' 이러한 칭송을 듣고 그러면서 일생을 마친 분들도 참 많습니다마는, 활구참선을 믿고 그것을 실천하기에까지 이르른 사람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이 가운데는 불문(佛門)에 들어와서 여러 해 되시고, 또 법문도 많이 들으시고, 경책(經冊)도 많이 보신 그런 분도 계시고, 여러 절을 거치고 거쳐서 오신 분들도 많이 계시고, 처음 오신 것이 바로 여기에 오신 분들도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이 자리에 법회에 참석하셔서 활구참선을 들으시게 된 인연(因緣), 이것은 숙세(宿世)의 깊은 인연이 아니고서는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시고 그리고서 그 49년 동안 설하신 교(敎) 밖에 따로 전하신 이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는 것은 그렇게 듣기도 어렵고, 들어도 믿기 어렵고, 이렇게 듣고 믿어도 직접 정성과 목숨을 다해서 실천한다고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다른 공부는 하면 한 만큼 알아진 것이 있고, 열심히 하면 한 만큼 무엇이 얻어진 것이 있고 그래서 하면 재미가 있고 보람을 느끼는데, 이 활구참선은 무엇이 알아진 것도 없고 나타난 것도 없고 맨날 해봤자 이게 죽 떠먹은 자리고. 그러니 이거 재미 붙이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하면 반드시 깨달음에 이르지만,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기 전에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건강이 좋아진다든지 또는 자기의 모든 나쁜 성격이 완화가 되고,

예를 들자면은 신경질을 내는 거, 사소한 일에 싸우고 모다 그런 것이 이 참선을 함으로써 차츰차츰 그런 신경질을 안 내게 되고 또 감정에 끄달리지 않게 되고 또 자기의 감정을 자기의 힘으로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이러한 것은 한 달, 두 달, 석 달, 1년 열심히 하다보면 누구나 그런 효과를 다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만 하더라도 인간을 살아가는데 대단히 좋은 것이고, 모든 가족들에게 직장에서 사회에서 존경받을만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식이 있고 없고, 지위가 높고 옅으고, 힘이 세고 약하고 간에 대부분 자기 감정을 자기가 마음대로 조정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감정이 일어나지 아니할 때는 참 훌륭한 분이라고 다 하는데, 한번 어디를 건드려 가지고 감정이 폭발했다 하면 뭐 박사고 교수고 장관이고 장군이고 간에 한번 속이 뒤집어졌다 하면은 여간 자기가 자기 감정을 수습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평소에 이 참선을 열심히 한 사람은 자기가 자기를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극기(克己)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마는 ‘자기가 자기를 이긴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인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도 ‘백만 군사를 호령을 해서 움직일 수는 있어도 자기가 자기를 이기기는 어려우니라. 자기가 자기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라야 참다운 대장부(大丈夫)니라’ 이렇게도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한 힘은 억지로 참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참선을 조석으로 한 시간씩 하고 낮에도 생활 속에서 항시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면서 화두를 들고 또 화두를 들고 참구하고 이럼으로써 그것이 참선이 생활화 될 때에 무의식 속에서 모든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누가 내 뜻에 어긋나는 말을 한다 하더라도, 찰나적으로 무슨 기분 나쁜 생각이 탁! 속에서 뭉클 일어날라가도 떠억 ‘이뭣고?’해 버리면 간단하게 없어지고, 그 일어나는 성나는 마음이 금방 화두로 돌이켜져 버린다 그말이여.

 

그래서 이 참선하는 사람은 성을 낼라면 내고 안 낼라면 안 내고, 슬퍼할라면 하고 슬퍼 안 할라면 안 하고, 미워할라면 미워하고 또 안 미워할라면 안 미워하고. 그까짓 것 뭐 희로애락이 자유자재해. 이것이, '자유자재다, 해탈이다'하는 것이 다른 데에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사(生死)에 자유자재, 또 생사해탈(生死解脫)이 전부 우리의 일념(一念)을 두고 하는 것이고, 일념을 잘 단련을 하고 일념을 갖다가 돌이켜서 그놈을 갖다가 단속을 하는 가운데에 생사 자유의 이치, 진리를 터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인 것입니다.

 

최상승법이라 하면, 무엇이 매우 어디 깊은 데가 있고 높은 데가 있고, 그래 가지고 어려워서 도저히 우리 범부(凡夫) 중생은 손이 닿는 것이 아니고 해 봤자 되지도 않는 것이다. 이리 겁을 집어먹고 그 자꾸 자포자기를 하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최상승법이야말로 우리 중생심, 중생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데에 있는 것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빨리 깨닫고, 더디 깨닫고 하는 것은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하면 깨달음은 갈 곳이 없는 것이지, 뭐 금방 오늘 툭 깨쳤다고 해서 그러면 다 일이 끝났냐 하면 그게 아니거든.

확철대오를 한 것은 겨우 어린아이 낳아 놓은 거와 같다. 어린아이는 낳아놔서 분명히 그것도 이목구비가 다 있고 사람이지만, 젖을 먹이고 밥을 먹이고 또 이 옷을 입히고 가리키고 해서 제 앞을 꾸릴 만큼 되어야 비로소 하나의 인간이라고 하는 권리를 인증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안(公案)을 타파해서 자기의 면목(面目)을 깨달랐다 하더라도 그것으로써 우리의 수도(修道)가 끝난 것이 아니라, 그 깨달은 바에 의해서 잘 보림(保任) 공부를 해서, 그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도리를 자유자재로 쓸 수가 있게 되어야 그래야 비로소 도인(道人)이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빨리 깨달라 가지고 오후보림(悟後保任)을 안 하고 등한(等閒)히 하나, 더디 깨달라도 깨달을 때까지 그 공력을 들여서 정진을 해 놓은 사람은 깨달은 뒤에 오후보림 공부가 벌써 깨닫기 전에 많이 다 숙달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빨리 깨닫고 더디 깨닫는 것을 문제 삼지 말아라. 다맛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올바르게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는 것’ 그것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고인(古人)께서도 ‘마음을 가지고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아라’ ‘빨리 깨달을려고 하는 그런 조급한 생각을 내지 말라’고 하는 말씀을 누누이 하신 것입니다. 생각을 내 가지고 빨리 깨달을려고 급한 생각 낸 것이야말로 깨달음을 더디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꾸준히 그리고 올바르게만 해 가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것이. 내게 있는 것을 내가 찾는 것인데. 생각만 공연히 조급한 생각을 내 가지고 올바르게 하지 않는다면 그건 깨달음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39분28초~50분5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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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숙세(宿世 지날·묵을 숙/세상·시대 세) ;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宿]의 세상[世].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 (서산대사 | 용화선원 刊) p28, p34에서.(가로판 p29, p35)

世尊이  三處傳心者는  爲禪旨요  一代所說者는  爲敎門이라. 故로  曰,  禪是佛心이요  敎是佛語니라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敎門)이 되었다。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是故로  若人이  失之於口則拈花微笑가  皆是敎迹이요.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가  皆是敎外別傳禪旨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것(拈花微笑)이 모두 교의 자취[敎迹]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敎外別傳禪旨]가 되리라.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대장부(大丈夫 큰·훌륭할 대/어른·존칭 장/사내·일꾼 부) ; 장부(丈夫). ①건장하고 씩씩한 사나이. ②대승의 근기를 가진 수행자. 불법의 수행이 원숙한 사람. 불성(佛性)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

*단전 호흡(丹田呼吸) ;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일반적으로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하면 깨달음은 갈 곳이 없는 것이지, 뭐 금방 오늘 툭 깨쳤다고 해서 그러면 다 일이 끝났냐 하면 그게 아니거든. 확철대오를 한 것은 겨우 어린아이 낳아 놓은 거와 같다.

어린아이는 낳아놔서 분명히 그것도 이목구비가 다 있고 사람이지만, 젖을 먹이고 밥을 먹이고 또 이 옷을 입히고 가리키고 해서 제 앞을 꾸릴 만큼 되어야 비로소 하나의 인간이라고 하는 권리를 인증 받게 되는 것입니다' ; 오후보림, 장양성태

[참고] 보조지눌 스님의 『수심결修心訣』에서.

頓悟者  凡夫迷時  四大爲身  妄想爲心  不知自性是眞法身  不知自己靈知是眞佛也  心外覓佛  波波浪走  忽被善知識  指示入路  一念廻光  見自本性  而此性地  原無煩惱  無漏智性  本自具足  卽與諸佛  分毫不殊  故云頓悟也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란 범부(凡夫)가 미혹했을 때 사대(四大)를 몸이라 하고 망상(妄想)을 마음이라 하여, 자기의 성품(自性)이 참 법신(法身)인 줄 모르고 자기의 신령스런 앎[靈知]이 참부처[眞佛]인 줄 알지 못하여,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물결따라 여기저기 헤매다가, 홀연히 선지식(善知識)의 지시로 바른 길에 들어가 한 생각 돌이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면 이 성품(性品)자리에는 원래(原來) 번뇌(煩惱)가 없고, 무루(無漏)의 지혜 성품이 본래(本來) 스스로 구족(具足)하여 모든 부처님과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으니 그러므로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라고 한다.

 

漸修者  雖悟本性 與佛無殊  無始習氣  卒難頓除故  依悟而修  漸熏功成  長養聖胎  久久成聖  故 云漸修也 比如孩子初生之日  諸根具足  與他無異  然  其力未充  頗經歲月  方始成人

 

점수(漸修, 차츰 닦음)란, 비록 본래 성품(本性)이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으나 오랫동안 익혀온 습기(習氣)를 갑자기 모두 없애기는 어려우므로 깨달음에 의지하여 닦아 점차로 익혀 공(功)을 이루어 성인(聖人)의 태(胎)를 길러 양성하면, 오랜 동안을 지나 성인(聖人)을 이루게 되므로, 점수(漸修, 점차로 닦음)라고 한다.

비유하면, 마치 어린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모든 기관(諸根)이 갖추어 있음은 남과 다르지 않지만, 그 힘이 아직 충실하지 못하므로 제법 세월(歲月)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어른[成人]이 되는 것과 같다.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본래면목(本來面目 본래의 얼굴·모습).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오후보림(悟後保任) ; 보림(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장양성태(長養聖胎).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