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뭣고(시심마)'에 해당되는 글 22건

  1. 2014.06.09 §(346) ‘이뭣고?’ 화두 / ‘알 수 없는 의심’을 관(觀)해야 / 용화선원의 가풍(家風)-평상시가 용맹정진 / 여법하게 정진하는 것이 참다운 불사 / 장애 극복은 정진력으로.
  2. 2014.04.14 §(568) “전생에 부모에게 효도를 한 그 공덕으로 내가 성불하게 되었느니라.” / ‘마음보’ 고쳐야! / ‘이뭣고?’만 열심히 하면 불효한 자식들이 모다 효도를 하게 된다.
  3. 2014.04.11 §(549) (게송) 행행총총급여류~ / 한평생이라 하는 것이 꿈에 지내지 못한 것 / 인간 세상의 오욕락(五欲樂)이 꿈이거든.
  4. 2014.03.24 §(445) 진짜 화두 / 포구발심(怖懼發心) / 시삼마(是甚麼)는 가장 근원적인 화두 / 화두 들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 화두를 안 들기가 더 어려운 것이다.
  5. 2014.03.01 §(152) 참선(參禪)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능력이요 자격 / 거울법문 / 다못 바보처럼 「이뭣고?」 이렇게 해야 / 참선•불법(佛法)의 목적은 깨닫는데 있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다.
  6. 2014.02.08 §(099) 신수기도 /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맑아지면은 자기의 소원은 바래지 아니해도 저절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7. 2014.01.31 §(258) (게송)불불산향만로비~ / ‘한 생각’ 단속이 기도요, 삼재를 막는 것 / 식신(識神) / 말을 적게 하라 / 수구여병(守口如甁) / 참선으로 근본을 해결해라.
  8. 2014.01.15 §(582)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 / 이 화두는 항상 가깝게 들어야 해.
  9. 2013.12.12 §(264) ‘이뭣고?’ 시삼마(是甚麼) 화두는 화두 가운데에 최초의 화두고, 가장 근원적인 화두 / 단전호흡과 의심, 득력(得力) / 경계에 속지 말아야 / (게송)묵조시귀굴~.
  10. 2013.12.07 §(088) 활구 ‘이뭣고’ (본참공안)

 

 

§(346) ‘이뭣고?’ 화두 / ‘알 수 없는 의심’을 관(觀)해야 / 용화선원의 가풍(家風)-평상시가 용맹정진 / 여법하게 정진하는 것이 참다운 불사 / 장애 극복은 정진력으로.

사실 이 ‘이뭣고~?’ ‘이뭣고?’ 이 문제는 불법(佛法)이 생겨나기 이전에, 부처님이 탄생하시기 이전에,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하나의 커다란 숙제인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볼라고 동서고금의 모든 성현들이 철인들 철학자들이 이것을 알아볼라고 별별 방법을 썼습니다마는, 오직 이 문제를 깨달으신 분, 바로 깨달라서 바로 지도하신 분은 오직 우리의 위대한 스승이신 부처님이시고, 부처님의 그 법을 깨달은 방법이 바로 법(法)이고 그 법을 이어받아서 깨닫고 또 그 제자에게 전하고 하신 분들이 바로 역대조사 선지식들이 아니시겠습니까.


‘이뭣고?’하는 그 글자, ‘이뭣고?’한 글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했을 때 그 「알 수 없는 그 의심」 그것이 화두에 요긴한 것입니다.


화두가 정말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되는 것은 마지막 깨닫기 한 일주일 전부터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을 하기 위해서, 생사윤회를 아니할라면은, 그런 부처님의 5계(五戒)를 잘 지켜야만 한다.


**송담스님(No.346)(참선법 D) - 88.1.21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 (용346)

 

(1) 약 20분.

 

(2) 약 19분.


(1)------------------

<‘이뭣고?’ 화두>

 

이 화두, 그 천칠백 화두가 있는데 그 가운데에 최초의 화두요, 동시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가 ‘시삼마(是甚麼)’ 화두입니다.  ‘시삼마’는 우리말로는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그말이여.
‘이것이 무엇이냐?’

남악회양(南嶽懷讓) 선사가 육조 스님께 딱 찾아가 뵈옵고 절을 하니까, 『십마물(什麽物)이 임마래(恁麽來)냐?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이렇게 물으셨어.

그리고 하택신회(荷澤神會) 선사가 내나 그분도 육조 스님의 제자인데, 하택신회 선사 젊어서 육조 스님 앞에 딱 가서 절을 하니까, 『십마물(什麽物)이냐? 무슨 물건이냐?』하고 물으니까,
하택신회 선사는 『제불지본원(諸佛之本源)이요 신회지불성(神會之佛性)입니다.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요. 이 자기 자신 신회의 불성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어.

그런데 남악회양 선사가 떠억 와서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하고 육조 스님이 물으시니까,
남악회양 선사는 망지소조(罔知所措)여. 몸 둘 바를 몰라.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른다 그말이여.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하고 묻는데 꽉 맥혀 가지고 어찌할 바를 몰라. 몸 둘 바를 몰랐어.

그런데 육조 스님께서 『모든 부처님의 근원이요, 신회의 불성입니다』하고 대답한 하택신회에게는 『네가 나중에 공부를 해서 깨달은 바가 있다 하더라도 너는 지해종사(知解宗師) 밖에는 안 되겠다』
지해종사라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교리적으로 불교를 연구하는 그런 강사와 같은 그런 것 밖에는 너는 못 되겠다. 그렇게 말씀을 하시고,

남악회양 선사는 꽉 맥혀 가지고 그 뒤로 8년 간을 ‘무슨 물건이냐? 그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한 그 의심을 가지고 8년 동안을 그놈을 가지고 앉으나 서나 밥을 먹으나 일을 하나, 8년 동안을 그것을 참구를 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8년 만에사 확철대오를 했어.

그래 가지고 육조 스님한테 『설사일물(說似一物)이라도 즉부중(卽不中)입니다. 설사 ‘한 물건(一物)’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이렇게 그 깨달은 바를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아? 도리어 수증할 것이 있느냐?』 그러니까, 『수증(修證)은 즉불무(卽不無)어니와 오렴(汚染)은 즉부득(卽不得)입니다. 수증할 것이 없지는 않습니다마는 오렴은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해 가지고,
『여시여시(如是如是)다. 너도 또한 그렇고 나도 또한 그렇다.』 그렇게 쾌히 인가(印可)를 하신 것입니다.

지금 용화선원에서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 또 제가 말씀을 드린 모든 것이 완전히 그 남악회양 선사가 하던 그 참선법, 그것을 바로 조사선(祖師禪)이라 그러고, 그것을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 그러는데 그 활구참선법, 남악회양 선사처럼 그렇게 해 가도록 항상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물건이냐?’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거거든.

지금 여러분이 이렇게 집을 떠나서 여기에 오셔서 석 달 동안을 고생을 하면서 고행을 하면서 이렇게 와서 계신데, ‘무엇이냐?’ 그말이여.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이 몸뚱이가 여러분이라고 혹 생각하실 분이 계실런지 모르지마는, 이 몸뚱이는 흙 기운과 물 기운과 불 기운과 바람 기운이 뭉쳐서 이렇게 몸뚱이라고 하는 것을 임시 이렇게 이루고 있는 것뿐이지, 몸뚱이 이것이 여러분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시시각각으로 변해서 늙어가다가 나중에 결국은 이 몸뚱이에서 영혼이 떠나 버리면 그냥 10분 못 가서 내장이 버글버글버글 썩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바람은 바람 기운으로 나가 버리고, 불 기운은 불 기운대로 흩어져 버리고, 물 기운은 물로 돌아가 버리고, 흙 기운은 흙으로 돌아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는 그래서 송장 덩어리인 것입니다.

송장 덩어리를 운전을 하고 있는 놈, 운전하고 있는 그놈을 우리는 찾는 것이거든.

그것을 고인들은 다 ‘자성(自性)’이라 하기도 하고, ‘마음’이라 하기도 하고, 또는 ‘영혼’이라 하기도 하고 또는 ‘진여(眞如)’라 하기도 하고 또는 ‘불성(佛性)’이라 하기도 하고, ‘법계(法界)’라 하기도 하고, ‘여래(如來)’라 하기도 하고, 경전마다 그것에 대한 이름을 달리 말씀을 하셨고 세계 나라마다 그것에 대한 이름도 다 각각 다르지만,

그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 우리는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몸뚱이를 바꿔서 태어나면서 이렇게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데, 그 자체를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생사고해(生死苦海)를 이렇게 유전(流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놈을 우리는 깨달라야겠다. ‘그놈을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자’ 이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그놈이 무엇이여?’ 눈으로 볼라야 볼 수 없고, 손으로 잡을라야 잡을 수도 없고, 냄새를 맡을라야 무슨 냄새가 거기서 나며, 그놈을 ‘어떻게 생겼는가?’ 아무리 생각해 본들 알 수가 없다 그말이여.

사실 이 ‘이뭣고~?’ ‘이뭣고?’ 이 문제는 불법(佛法)이 생겨나기 이전에, 부처님이 탄생하시기 이전에,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하나의 커다란 숙제인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볼라고 동서고금의 모든 성현들이 철인들 철학자들이 이것을 알아볼라고 별별 방법을 썼습니다마는, 오직 이 문제를 깨달으신 분, 바로 깨달라서 바로 지도하신 분은 오직 우리의 위대한 스승이신 부처님이시고, 부처님의 그 법을 깨달은 방법이 바로 법(法)이고 그 법을 이어받아서 깨닫고 또 그 제자에게 전하고 하신 분들이 바로 역대조사 선지식들이 아니시겠습니까.

이것은 그 법을 모르고서는 도저히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지만 법을 모르고서는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불법이요, 정법(正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이다.

이것은 이론적으로는 아무리 따져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과 지식 가지고 따져서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화두를 참구(參究)해 가지고 그 화두를 타파(打破)함으로 해서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 아까 ‘이뭣고?’라고 하는 화두는 그밖에 ‘마삼근(麻三斤)’이라든지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든지 ‘판치생모(板齒生毛)’라든지 천칠백 개나 되지만, 그 많은 화두 가운데에 가장 근원적이고 최초의 화두가 바로 ‘이뭣고?’거든.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앉아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일을 할 때나 속이 상할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이뭣고?’


<단전호흡과 화두 의심>

 

그러면 언제 단전호흡을 하고 언제는 이 화두를 드느냐?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꾸었다가 내쉬면서, 그 내쉴 때 ‘이뭣고~?’ 이렇게 화두를 드는 것입니다.

숨이 다 나가면 또 스르르 하니 들어마셨다가 약 3초 동안 딱 정지했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뭣고?’를 길게 숨 다 나갈 때까지 ‘이뭣고?’를 길게 하시라 그말이여. ‘이뭣고~?’ 또 숨이 다 나가면 또 스르르 호흡을 들어마셔 가지고 또 약 3초 동안 딱 머꾸었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처음 하신 분은 숨을 내쉴 때마다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하시지만, 나중에 차츰차츰 익숙해지면 그리고 ‘이뭣고?’한 뒤에 알 수 없는 생각이 있으면은 「그 알 수 없는 그 의심(疑心)」, 의심이 있는 동안에는 다시 또 ‘이뭣고?’ ‘이뭣고?’ 안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알 수 없는 그 의심’이 흩어져 없어져 버리거나, 딴 생각이 나오거나 하면은 그때 또 다시 ‘이뭣고?’하고 한 번 챙기는 것입니다.

‘이뭣고?’하는 그 글자, ‘이뭣고?’한 글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했을 때 그 「알 수 없는 그 의심」 그것이 화두에 요긴한 것입니다.

의심은 없으면서 「이뭣고?」 「이뭣고?」 밤낮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듯이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를 잠시도 잊어버리지 말고 ‘이뭣고?’를 해라』 그러니까,
아하! 그렇게 생각하고는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이뭣고?’를 마치 ‘관세음보살’하듯이 그렇게 하면은 그것은 잘 모르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이것이 무엇이냐?’한 그 알 수 없는 그 간절(懇切)한 의심, 그 의심이라야 옳게 하는 것입니다. 의심이 있어야.
그래서 입으로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그 ‘대관절 이것이 무엇인고?’한 그 알 수 없는 의심 그것이 있으면 화두를 이미 들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무슨 물건'을 가지고 다니다 어디다 놔 버렸는데, ‘아! 그걸 어디다 놨나? 그것이 어디가 있는가? 아! 그거 참 어디가 있는가?’ 그렇게 찾은 것처럼,
‘이거 참!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놈이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그 의심이 그것이 화두인 것입니다.

그 의심이 항상 있어야 하고, 그 의심이 있으면 ‘이뭣고?’ ‘이뭣고?’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할 필요가 없어요. 「알 수 없는 그 의심」을 단전호흡을 하면서 그 의심을 관(觀)하는 것입니다.

앉아서도 그 의심, 서서도 그 의심, 이것은 자꾸 안 될수록에 더 열심히 하시면 나중에 언젠가는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현전(現前)하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나, 옷을 입을 때나, 똥을 눌 때나, 입선(入禪)을 할 시간이나 또는 방선할 때나 그 의심이 항상 있어야 하거든.

그래서 ‘방선(放禪)해도 잡담을 하지 말아라.’ 이런 소리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입선·방선이 전혀 상관이 없어요. 공부가 그렇게 되면은....

여러분이 댁에 계시면은 다 편안하고 잘 잡숫고 자유롭게 계실 텐데,
아! 여기 오셔서 백 명 이렇게 많은 수가 사시니 식사도 반찬도 변변치 못하고 모든 이 목욕탕이라든지 화장실이라든지 그런 시설도 다 불편하고, 아침에 좀 늦잠도 자고 싶은데 자도 못하고, 여러 가지로 자유롭게 살고 싶은 것도 모든 자유가 제한이 되고 그래서 생각해 보면은 참 이러한 고생이 없습니다.

이러한 고생을 무릅쓰고 여기 와서 계시는 것은 순전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기 오신 것인데, 어디에 음식이 맛이 있고 없는 것이 상관이 있으며, 입선·방선이 무슨 상관있습니까?

입선을 하나 방선을 하나, 반찬이 쓰거나 달거나, 밥이 질거나 되거나, 분 따라서 잘 수용을 하고 섭취를 하고 모든 것에 적응을 하면서 자나깨나 우리가 정신 쓸 곳, 신경 쓸 것은 오직 ‘이뭣고?’ 하나 뿐이거든.

‘이뭣고?’ 벌써 화두를 떠억 들고 있는 사람을 보면 눈매가 달라지고 모습이 엄숙하고 경건하면서 벌써 눈이 왔다갔다 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눈이 딱 못박혀 있는 것처럼 눈동자가 따악 박혀 있는 것입니다.
엄숙하고 경건해서 누가 감히 옆에 가서 장난도 칠 수가 없고, 말 붙이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이렇게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입선시간은 말할 것도 없이 하지마는 방선해서 설사 자리에서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시기도 하고 혹 밖에 나가서 포행(布行)을 하신다 해도 각자 자기 나름대로 속으로 ‘이뭣고?’가 따악 자리잡혀 있어야 하거든, 어디 가서 잡담을 하고 히히덕거리고 수군덕거리고 남의 흉보고 그럴 시간이 어디가 있느냐 이 말씀이여.

이 용화선원 조실 스님 열반(涅槃)하신 뒤로 벌써 13년이라고 하는 세월이 흘렀고 그 동안에 처음에 한 2~30명 하다가 4~50명 하다가 6~70명 하다가 이제는 백삼십이 명까지 방부를 드려서,
참 팔도에서 여러 발심(發心)한 보살님네들이 구름처럼 모여서 이렇게 정진을 하시니 이러한 기쁠 도리가 없고 이렇게 고맙고 감사할 도리가 없고, 또 선방의 규칙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좋아졌으나 아직도 멀었습니다.

물론 여러분 가운데는 참 모범이 될 만한 훌륭한 분도 많이 계십니다마는 아직 오신지 얼마 안 되신 분, 아직도 공부하는 요령을 확실히 터득을 못 하신 분도 계시고, 또 오시기는 오셨지만 아직 불법이 무엇인지, 참선이 무엇인지, 선방이 무엇인지, 좋다고 하니까 오시기는 오셨으나 막상 확실히 모르시기 때문에 좀 그런 분이 계실 줄 압니다마는,

여러분 가운데 발심을 해서 공부하신 분이 계시면 그분의 거룩한 모습을 보고 모두가 다 그 본(本)을 봐 가지고 입선·방선이 상관없이, 입승(立繩) 스님이나 누가 ‘잡담하지 말아라. 떠들지 말아라. 시끄럽게 하지 말아라’ 이러한 말씀 듣기 이전에, 각자 방선 시간에도 주욱 앉아서 정진하시고 또 졸리면 나가서 포행하다가 들어오셔서 하시고 해서,

입선·방선이 상관이 없게 이 큰방을 언제나 묵언(默言) 구역으로 해 놓고, 부득이 해서 할 요긴한 말씀이 있으면 밖에 나가서 간단하게 끝마치고 들어와서 또 정진을 하셔야죠.
이 큰방에 둘씩·셋씩·넷씩·다섯씩 구석구석이 모여 가지고 수군덕수군덕 해 쌌고 그래 싸면 공부를 좀 할려고 한 분까지 공부를 못 하시게 됩니다.(55분5초)

 

 



(2)------------------

<용화선원의 가풍(家風)>

오늘부터서 지금 섣달 초하루부터서 8일날 까지는 용맹정진(勇猛精進) 기간입니다.
전국에 선방이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고 온전히 만 일주일 간을 갖다가, 공양하고 변소에 갈 시간만 내 놓고는 전부가 큰방에 앉아서 다 법복을 수하고 그렇게 용맹정진하는 시간입니다.

조금만 졸아도 죽비를 갖다가 탁탁 쳐서 경책(警策)을 주면서 그렇게 합니다마는, 이 용화선원은 왜 그렇게 용맹정진을 아니하냐 하면은 평상시가 바로 용맹정진이 되도록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다.
비록 잠은 여섯 시간을 자지만 그 밖의 시간은 완전히 용맹정진으로 석 달 동안을 그렇게 하자는 것이 조실 스님의 지도 방법이십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께서 열반하신 뒤로도 그렇게 주욱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데 선방은 용맹정진도 하고 잠도 조금씩만 자고, 참선 입선 시간을 (한번에) 3시간씩 이렇게 하기도 하고 그러는데 이 용화선원이 선방이 좋다고 와 보니 맨 잠만 자고 입선 시간도 겨우 8시간 밖에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용화선원의 가풍(家風)을 잘 이해를 못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가풍을 따르지를 못하고 실천을 안 해서 그렇지, 가풍이 무른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 도량(道場)에 들어와서 무슨 잡담을 할 시간이 있겠습니까? 그 전에 강월 스님이 입승을 할 때에 지대방이고 어디고 일체 잡담을 못하게 하고, 심지어 화장실에 가서도 말을 못하게 하고, 누구하고도 둘이 마주서서 말을 주거니 받거니 못하게 하고, 몇철 간을 그렇게 한번 해 봤습니다.
그러니까 정진할려고 애쓴 보살님네들은 참 좋다고 그러고 지금도 그렇게 했으면 좋다고 원하시는 보살님들도 상당수가 계십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유치원 학생이 아닙니다. 국민학교 학생도 아니고 중학교 학생, 고등학교 학생도 아니고 대학생도 아니고 대학을 졸업한 대학원 학생들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대학원 학생한테다가 유치원 학생 다루듯이 해서 되겠느냐 그말이여.
그것은 여러분에 대한 대접도 아니고 도리가 아니기 때문에 특수한 일 아니고선 기본법 외에는 완전히 여러분에게 자유를 드려 가지고 자발적으로 여러분들이 조실 스님의 가풍에 적응하고 순종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오셔서 나시면 잘 하신 분은 당신 좋고 여러분에게 모범이 되어서 좋고 또 용화선원의 가풍을 순종을 함으로써 용화선원을 빛내는 일이 되는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불법을 빛나게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큰 절을 짓고 돈을 많이 내서 그것이 불사(佛事)가 아니라,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이 도량에 터억 들어서서 여법(如法)하게 참되게 정진하는 것, 그것이 바로 가장 참다운 불사를 이룩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거기에 불법이 일어나는 것이지 큰 절을 몇 억씩 들여서 절만 크게 진다고 해서 불법이 흥왕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물론 그런 불사도 필요하지요. 필요하지만 그보다도 더 근본적으로 중요한 불사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진실한 불자(佛子)로서 수행을 알뜰히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견성(見性)을 하게 되고 견성을 해야 부처님이 탄생을 하시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부터 아주 그 동안에 잘 하시는 분은 계속해서 잘 하실 것이고, 그 동안에 혹 그렇게 철저히 잘 못 하신 분은 오늘부터서 아주 완전히 새로 태어난 기분으로 여법하게 해 주실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단전호흡, 화두 의심>

 

아까 단전호흡을 하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꽉 맥힌 분, 그분은 호흡을 들어마실 때 배를 볼록이 하지 말고 배를 홀쪽하게 하고 또 내쉴 때 배를 볼록하게 하고 해서 반대로 이렇게 하시라는 것과,
숨을 들어마셔서 이리해서 차츰차츰 해서 저 배꼽 밑에까지 쪄 넣을라고 그러한 호흡법을 하시지 말고, 그냥 코로 스르르 하니 숨은 들어마시되 배꼽 밑의 단전, 아랫배만 약간 볼록...

 

볼록하게 맨들으라니깐 저 개구리 배에다가 바람 넣은 것처럼, 아랫배가 그냥 포대화상(布袋和尙)처럼 맨들라고 애를 쓰고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조금 약 2, 3센치 조금만 볼록하게 자기 느낌상으로만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고 내쉴 때도 너무 뱃가죽이 등어리에 가서 따악 붙도록 그렇게 억지로 헐라고 하시지 마세요. 약간 홀쪽하게 하는 듯만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면 그렇게 답답한 것은 저절로 없어지게 될 것이고.

그리고 ‘암만 화두를 들고 할라고 해도 화두가 잘 순일하게 들리지 않는다. 한 철, 두 철 내지 3년, 4년, 5년째 해도 영 화두가 순일하게 들리지 않고 자꾸 그런다.’ 그런 것을 호소하시는 분도 계시는데, 화두가 정말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되는 것은 마지막 깨달으기 한 일주일 전부터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진짜 순일무잡하게 되어서 화두를 들라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리고, 뭐 놓고 들 것도 없이 그냥 새벽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잠을 자도 꿈속에서도 화두가 고대로, 자다가 눈을 새벽에 딱 뜨면 새로 화두 들 것도 없이 엊저녁에 들고 잠들었던 그 화두가 고대로 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아침에 눈 딱 떠도 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세수를 해도 고대로 있고, 양치질을 해도 고대로 있고, 화장실 가도 고대로 있고, 밥을 먹어도 고대로 있고, 뭐 소지를 해도 고대로 있고, 옆에서 떠들거나 말거나 전혀 상관이 없이 고대로 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지경에 이르르면 일주일이 못 가서 툭 터지게 되는 것입니다.

설사 일주일 되어서 안 터지더라도 ‘빨리 터졌으면’ 그러한 생각을 가질 것이 없습니다. 그런 상태로 있으면 일주일을 가도 좋고, 열흘을 가도 좋고, 한 달을 가도 좋고, 계속 고대로 해 나가면은 언젠가는 지가 터지지 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순일무잡하게 되었을 때에 깨닫기를 바래거나, ‘누가 이럴 때에 나를 툭 깨닫게 해 줬으면’ 그런 생각을 가져서는 아니 된 것입니다. 고대로 해 나가는 것입니다.

공부 막 좀 될라고 하면 옆에서 떠들어 싸서 못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공부가 진짜 잘된 것이 아니에요. 떠든다고 화두가 달아나 버린다면은 그 화두는 아직도 지금 들렸다 안 들렸다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그래서 이렇게 - 뭐 참선은 집에서는 못할 바 아니지마는, 그래도 여기 와서 조실 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또 모두 여러 발심한 도반들과 같이 규칙생활을 하면서 가정의 모든 복잡한 것을 떠나서 이렇게 와서 하신 것이니,
서로 서로 목적이 같을 진대는 서로 서로 여법하게 잘해서, 나로 인해서 다른 분들이 공부를 잘하고, 다른 분들로 인해서 내가 공부가 잘 되도록 이렇게 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화두가 안 들려도 그걸 성내거나 성화하시거나 번민, 번뇌심을 내실 필요가 없어요. 망상이 일어나면 그냥 고대로 놔둬 버리고 - 오늘 아침에 조실 스님께서 참 아주 요긴한 법문을 해 주셨는데,
망상 일어난 거 그걸 버릴라고 할 것이 아니고 고대로 놔두고, 그냥 다시 화두만 떠억 - 숨을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화두만 딱 다시 한번 들은 것뿐이지, 일어나는 망상을 누를라고 하거나 쫓아낼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말이여.

쫓아낼려고 하고 누를라고 하면은 그것이 눌러지지도 않고 화두만 더 달아나 버린다 그말이여.
 


<장애 - 지계·정진력으로 이겨야>

 

그리고 자기가 지은 업(業)에 따라서 - 전생에 지은 업, 또 금생에 지은 업, 그런 업으로 해서 몸에 자기가 아닌 다른 영혼, 이런 것이 항시 자기 주변을 맴돌거나 자기에게 이렇게 붙거나 그러한 경우가 있습니다.
참선을 안 하신 세속에 사신 분 가운데에도 그런 분들이 상당수가 있고, 또 그것이 남이 보면은 전혀 모르지마는 자기 혼자만 아는 일이죠.

그것이 전생에 어떤 인연있는 영가 - 그것이 원결(怨結)이 있는 영가라든지, 서로 짝사랑을 하던 그런 영혼이라든지, 자기가 너무 그 사람에 대해서 너무 애착을 하고 집착을 하던 그런 영혼이라든지, 또는 무슨 원결이 있어 가지고 나한테 복수를 하기 위해서 나한테 따라붙은 그런 영혼이라든지,
그런 것이 요렇게 붙어서 항상 자기 주변에 이렇게 맴돌며 있는 그런 경우도 있고, 아주 언제나 자기한테 붙어 갖고 다니는 그런 경우도 있고, 뭣한 경우는 계속 귀에다가 뭐라고 계속 소곤대고 명령을 하고,

자기가 이렇게 살고 있지마는 실지는 하나도 자기 마음대로 못 하고, 먹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못 먹고, 그 영혼이 먹으라고 하면 먹고 먹지 말라면 안 먹고, 어디를 가자고 하면 가고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가고, 일체가 다 그 영혼에 - 특수한 그것이 신(神)인지 영(靈)인지 - 조종한대로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애착(愛着)을 갖지 말아라. 물질에 대한 탐착·애착도 못쓰고 사람에 대한 애착과 탐착도 그것이 괴로움의 근본밖에는 아니 된 것입니다.

더군다나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자기의 잇속을 챙겨 가지고 남을 해롭게 하고 남을 갖다가 억울하게 탄압을 하고 심지어는 남을 죽이고 이러한 일은 참 해서는 아니 된 것입니다.
그때는 조금 이익을 얻었을런가 모르지마는 세세생생에 원결이 되어 가지고 기어코 그 앙갚음을 하게 되기 때문에 어찌 우선 조금 이익을 보기 위해서 그런 큰 고통을 받아서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 남에게 고통을 주지 말아라.

 

남의 물건도 훔치지 말 것이며, 남에게 진심(瞋心)을 내지 말 것이며, 산목숨을 죽이지 말 것이며, 또 남을 거짓말하고 속이고 사기를 하지 말 것이며, 또 술을 마시면은 자기의 바른 정신을 놔 버리고 그래가지고 못할 짓 없이 온갖 본의 아니게 못된 행동이 나오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말라’한 것이,
반드시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될, 생사해탈을 하기 위해서 생사윤회를 아니할라면은 그런 부처님의 5계(五戒)를 잘 지키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안 지켜 놓으면은 금생에도 그 과보(果報)를 받는 수가 있지마는, 내생에 두고두고 세세생생에 그런 참 괴로운 과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다행히 금생에 이렇게 발심을 해서 선방에 나오셨지만, 과거에 지은 업연(業緣)으로 해서 그런 영혼이 우리한테 따라붙어 가지고 참선만 할라고 하면은 와 가지고 자기를 직접 간접으로 괴롭히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참선을 안 하고 그럭저럭 지내면은 또 괜찮은데 참선만 할라고 떠억 앉으면은 와서 괴롭히는 수가 있거든.

그건 왜 그러냐 하면은, 참선을 해서 확철대오를 해 버리면 자기가 발붙일 곳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이 참선을 해서 차츰차츰 공부가 잘 되어가면 ‘도고마성(道高魔盛)이다. 도가 높아갈수록에 마군이가 성하게 된다’ 이거거든.

그렇다고 해서 참선을 안 할 수가 있습니까? 그럴수록에 더 신심을 돈독히 해 가지고 자꾸 올바른 방법으로 꾸준히 공부를 해 나가고, 옆에 와서 집적대거나 귀에다 대고 소곤거리거나 말거나, 그것을 가지고 탓을 해서는 안 돼요.
그놈을 탓하고 억지로 떼어 내버릴려고 할수록 그놈은 더욱 꽉 붙잡고 늘어지기 때문에, 떼어 버릴라고 하지 말고 그냥 놔둬 버려.

놔둬 버리고 단전호흡을 하면서 자꾸 화두를 간절히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참구해 나가면, 그렇게 해서 화두가 점점 순숙해져서 순일무잡하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그까짓 잡신·영혼이 어디에 들러붙을 것이냐 그말이여.

오직 그것을 이겨내는 방법은 정진력(精進力), 이 최상승 활구참선(活句參禪)으로 밀고 나가는 도리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조금도 조급한 생각내지 말고, 원망하고 한탄하지도 말고, 짜증내고 번민하지 말고서, 오직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을 하면서 화두를 간절히 참구해 나가면,
하루를 그렇게 지내고 이틀을 그렇게 지내고 한 달, 석 달을 그렇게 지내고 1년, 이태, 3년을 그렇게 지내고 10년 세월을 그렇게 쪼옥 해 나가면 자연히 그런 원결이 있는 영혼도 거기에 감복(感服)이 되어가지고 그냥 원결을 풀고 좋은 곳으로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드릴 말씀이 한이 없지만 오늘은 이만 말을 맺고자 합니다.(35분15초~73분48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이뭣고?’ 화두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남악회양, 육조 스님, 하택신회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십마물 이마래(什麼物伊麼來) : 십마(什麼)는 의문의 말로 '무엇이냐'의 뜻이며, 이마(伊麼)는 임마(恁麼)와 같은 말로 '이렇게'의 뜻으로, 십마물 이마래(什麼物伊麼來)라는 말은 곧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하는 말。
*망지소조(罔知所措) ; 너무 당황하거나 급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고 갈팡질팡함.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생사고해(生死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를 가리킴. 생사와 그 괴로움이 무한한 것을 바다에 비유함.
*유전(流轉) ; 생사 인과(因果)가 서로 끊임없이 이어짐.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화두(話頭)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 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마삼근(麻三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판치생모(板齒生毛)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의심(疑心)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본(本) ; 모범으로 삼을 만한 대상.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묵언(默言) ; 말을 하지 않음.

 

 



------------------(2)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경책(警策 깨우칠 /채찍·회초리 ) ; 선방에서 대중이 좌선할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지는 스님의 어깨를 쳐서 졸음을 깨워 정진을 독려하는 행위. 또는 그때 사용하는 장군죽비를 가리키기도 한다.

*장군죽비(將軍竹) ; 보통 죽비()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40~50센티의 불교 용구인데, 장군죽비는 참선할  졸거나자세가 흐트러진 수행자의 어깨를 쳐서 졸음을 쫓는  1.5~2m  죽비.

*가풍(家風) ; 한집안에서 오래 지켜 온 생활 습관이나 규범.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절. 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지대방 ; 절의 큰방 머리에 있는 작은 방. 이부자리, 옷 등의 물건을 넣어 두는 곳이며, 스님들이 잠깐 휴식을 하기도 하는 곳이다.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포대화상(布袋和尙) ; 중국 후량(後梁) 때의 스님. 본이름은 계차(契此). 절강성(浙江省) 명주(明州) 출신. 체구가 비대하고 배가 불룩하게 나왔으며, 항상 포대를 지팡이에 걸어서 어깨에 메고 동냥한 것을 그 속에 담고 떠돌아다니면서 수행한 선승(禪僧). 916년에 명주 악림사(嶽林寺)에서 입적함.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나쁜 마음의 작용.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원결(怨結 원망할 원/맺을·번뇌 결) ; 원망(怨望)의 마음이 얽혀 풀리지 않는 것을 말함.
*애착(愛着) ; 사랑하여 집착함. 애집(愛執).
*앙갚음 ; 남에게 해를 받은 만큼 저도 그에게 해를 다시 줌.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업연(業緣) ; 업보(業報)의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의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의 인연을 부른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참선할 때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감복(感服) ; 마음속으로 감동하여 탄복함.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법보재)2014. 4. 14. 18:34

§ “전생에 부모에게 효도를 한 그 공덕으로 내가 성불하게 되었느니라.” / ‘마음보’ 고쳐야! / ‘이뭣고?’만 열심히 하면 불효한 자식들이 모다 효도를 하게 된다.

우리가 몸소 부모에게 효도하고, 할머니·할아버지를 잘 모시는 그 모습을 자손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해야 자기의 아들딸, 자기의 손자·손녀가 자기가 늙었을 때, 불효를 하지 아니하고 소중히 받들게 하는 그 종자(種子)를 마음에다 심어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효도를 받고 싶으면 옛날에 내던 진심(瞋心)을 안 내고, 옛날에 내던 탐욕심을 안 내고, 자꾸 속으로 ‘이뭣고?’만 하시면 아들·딸·며느리·손자가 모두 다 잘하게 된다.


여러분은 「‘이뭣고?’를 열심히 해서 정말 정법(正法)을 믿어야 한다」고 하는 그런 사상을 자손들한테 유언(遺言)으로 남겨주셔야 한다.


**송담스님(No.568)-96년 법보재 법회에서. (용568)

 

약 19분.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거느리시고 어디를 가시는데 길가에 뼈 모여진 것이 있다. 백골(白骨)이 있으니까, 부처님께서 경건한 모습으로 그 백골을 향해서 절을 하셨어.
그 제자들이 “저 뒹굴고 있는 백골이 무엇이기에, 누구의 뼈이기에 저기다 대고 절을 하십니까?”
“나의 부모다.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다. 그러니 내가 어찌 절을 안 하고 그냥 지나갈 수가 있겠느냐?”

그래서 우리는 어디를 가다가 뼈가 있으면 비록 사람의 뼈가 아니라도, 짐승의 시체가 있더라도 마구잡이 밟고 지나가서는 아니되고, 다른 사람이 막 밟고 지나가게 나둬서도 안돼. 무엇으로 잘 치워서 한쪽에다 잘 묻어주고 가는 것이 좋고.

하물며 그런 곤충도 함부로 밟고 지나가지 아니한 그 마음이 어찌 사람의 시체를 함부로 하며, 시체도 함부로 하지 아니하거든 살아있는 생명체를 함부로 할 수가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내 몸을 낳아주신 부모의 해체(骸體)를 함부로 해서는 아니되고 하물며 살아있는 부모와 살아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함부로 할 수가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어느날 제자들에게,
“내가 오늘날 이렇게 성불(成佛)해서 삼명육통(三明六通)과 팔해탈(八解脫)을 증득하게 된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무엇이오니까?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을 그 난행고행(難行苦行)을 하셔서 그러한 결과로 이렇게 해탈도(解脫道)를 증득하신, 그리고 견성성불(見性成佛)한 것이 아닙니까?”

“물론 그런 원인도 있겠지만 그 보다도 더 근원적인 원인이 있느니라.”
“그것이  무엇이오니까?”
“내가 전생에 부모에게 효도를 한 그 원인으로, 그 공덕으로 내가 이렇게 성불하게 되었느니라.”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돌아가신 부모, 할머니 할아버지, 아내 남편, 아들딸, 며느리 또는 스승, 이러한 돌아가신 분을 위패에다가 모신 것도 대단히 좋은 일이고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할 일이지만, 그보다 한 걸음 더 앞서서 중요한 것은 살아계신 부모에 잘해 드리는 것이여. 살아계신 할머니·할아버지께 잘해 드리는 일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 계셨으면 아버지 어머니가 어디에서 나왔으며, 아버지 어머니가 아니 계셨다면 이 소중한 이 몸이 어디서 태어났겠습니까?
이 몸이 소중해서 잘 먹이고, 잘 입히고, 보약을 먹이고, 어디가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그렇게 할 줄은 대부분 사람들은 잘 압니다.

그러나 내가 이만큼 잘나고, 잘 배우고 똑똑한 것은 그것이 부모의 덕택이라고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은 적고, 부모가 소중한 것까지도 알면서도,
늙으셔서 힘 없고 주름살이 잡히고, 몸에서는 늙은 냄새가 나고, 그러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셨기에 아버지 어머니가 계셨고 그래서 이 몸뚱이가 있다고 하는 것까지는 정말 깊이깊이 깨달은 사람은 드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몸도 나날이 시간시간이 늙어가고 있고 머지않아서 저러헌 모양이 되리라고 하는 것을 정말 확실히 깨달은 사람은 더욱 드문 것입니다.

부모에게 불효하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냄새나고 잔소리한다고 싫어하신그러해 가시고서는 자기가 늙어서는 자기의 자손들에게 더 큰 괄세를 받게 될 것이 빤한 것입니다.

우리가 몸소 부모에게 효도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잘 모시는 그 모습을 자손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해야 자기의 아들딸, 자기의 손자 손녀가 자기가 늙었을 때, 불효를 하지 아니하고 소중히 받들게 하는 그 종자(種子)를 마음에다 심어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부모에게 불효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잘해 줄 수가 있으며, 자기 몸뚱이가 어떻게 태어난 그 원인을 모르는 사람이 진짜 자기를 잘 가꿀 줄을 알 길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를 잘 가꾸고 단속하는 것이 맛있는 음식, 영양있는 음식, 그리고 보약을 먹고, 좋은 향수를 처바르고, 좋은 옷을 입은 것이 자기를 잘 다스리고 아끼는 줄 알지만 그게 아닙니다.
이 몸뚱이는 아무리 잘 먹이고 잘 입혀봤자, 아무리 좋은 향수를 바르고, 좋은 화장을 하고, 얼굴 수술을 해서, 성형 수술을 해서 주름살을 펴봤자 몇 조금 안 가는 것입니다.

진짜 이 몸이 소중한 줄 알면, ‘마음보’를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마음을 다스리면 저절로 건강도 좋아지고 저절로 얼굴도 이뻐지는 것입니다.

저 보고 사람들은 칠십 먹은 노인같지 않다고, 아무래도 거짓말이라고. 내가 분명히 칠십을사실은 호적이 지금 예순여덟로 되어있는데, 중간에 어떻게 생일을 잃어버려 가지고 일흔 살로 되어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나보고 칠십 안 먹었다고 그러는데, 그래서 곰곰히 생각하고 이리저리 따져보니까 칠십 안 먹었습니다.

칠십을 안 먹어서 인제 예순여덟 밖에 안 되었는데, 어떤 사람은 환갑잔치도 안 하고 칠순잔치는 해야 할 거 아니냐? 가만히 생각하면 칠순이 안 되었는데 내가 미쳤다고 칠순잔치를 할 까닭도 없고.


그런데 이 육체가 별 것은 아닌데 육체가 건강하지 못하고서는 참선도 제대로 할 수가 없고, 그래서 육체는 집착은 할 것은 없으되 지혜롭게 관리할 필요는 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언젠가는 이 육체를  버리고 또 다른 껍데기를 뒤집어써야 할텐데, 이 육체를 버릴 때까지는 건강해야겠다 이거여. 우선 건강해야 자기도 살 만하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거든.

그래서 어쨌든지 이 몸뚱이가 죽기 전까지는 그래도 건강해야지수명장수(壽命長壽), 수명장수 모다 그렇게 축원도 하고, 대부분이 오래 산다하면 다 좋다고 생각을 하는데, 건강하면서 오래 살아야지, 건강하지 못해 가지고 오래 살면 그것은 큰 고역이다 그말이여.

그렇다고 해서 굶어 죽을 수도 없고, 독한 약을 먹고 죽을 수도 없는그런 짓을 해서는 못쓰는 거다 그말이여. 죽을 때까지는 살아야 하는데 죽을 때까지는 건강해야 해.


그래서 그 건강하는 방법으로 쑥을 뜨기도 하고, 또 부항(附缸)도 뜨기도 하고, 심지어는 자기 몸한테서 나오는 배설하는 황용탕(黃龍湯)도 복용을 하시라고 권고하기도 했습니다마는 그것도 다 좋습니다.
부항을 뜬다든지 또는 쑥을 뜬다든지 또는 황용탕을 복용을 한다든지 그것도 대단히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마음보’ 고치는 일이여.

오줌을 자기 것까지 먹고, 온 집안 식구 것을 다 거둬서 먹어도, ‘마음보’를 고치지 아니하고 탐욕심을 부리고, 진심을 내고, 어리석음을 내고, 그래가지고 하루도 자기도 편치 못하고 온 집안 식구를 들들 볶고, 생각을 냈다하면 진심을 내 가지고 부애풀이를 남에게 하고 해 가지고는 아무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어쨌든지 너무 병원이나 양약, 한약에만 의존하지 말고, 황용탕을 먹고, 쑥을 뜨고, 또 부항도 뜨고 해서 그런 자연요법(自然療法)으로 해서 치료를 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우선 ‘마음보’를 고치는거여.

탐욕심을 내지 마라. 진심을 내지 마라. 어리석은 마음을 내지 말라. 이 탐진치 삼독심은 자기를 지옥으로, 축생으로, 아귀도로 끌고 갈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자꾸 건드려 가지고 다른 사람까지 지옥으로 가게 만드는 그러한 고약한 행실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연세가 많아질수록에 될 수 있으면 말을 적게 하고, 잔소리를 적게 하고, 공자님도 ‘늙으면 노탐(老貪)을 조심해라’ 그러셨는데,

젊어서는 무엇이라도 해서 돈도 벌 수도 있고 재산도 만들 수 있는데, ‘이제 내가 늙어서 돈도 못 벌고, 지금 있는 것 써 버리면 그만이다’하는 생각이 있어서 돈만 그 손에 들어가면 딱 오그려 쥐고 안 쓸라고 작정을 하거든.

돈이 있으면 꼭 필요한 데는 써야 또 돈이 생기는 법입니다.
종자가 있으면 그 종자를 땅에다 심어야, 거기서 싹이 터 가지고 한 알을 심으면 열 알, 스무 알, 백 알도 되는 것이지, 종자가 아까워서 거머쥐고 있으면 죽을 때까지 그 종자는 싹이 트지 않는 거여. 땅에다 심어야 하거든. 그래서 연세가 들을수록에 필요한 데는 써야 또 돈이 생기는 거거든.

 

그래서 노탐을 버려야 한다. 탐심을 꽉 잡고 애착심을 가지고 거머쥐고 있다 죽으면, 그 애착심 때문에 뱀이나 구렁이가 되어가지고 와서 과보를 받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에는 재산도 필요해서 쓸 때 써야겠지만, 탐욕심을 가지면 다 쓰지도 못하고 구렁이  과보를 받아 구렁이가 되어가지고, 집안에 ‘업’이 되어가지고 어딘가 숨어갖고 있게 된다 그말이여.
집안에서 구렁이가 나오면 ‘업’이 나왔다고 좋아해 가지고 야단인데, 그게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애써서 번 돈이 아까워가지고 탐심을 버리지 못해 가지고, 그 과보로 구렁이가 되어가지고 그 집에 어디엔가 숨어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탐욕심을 내지를 말고, 자기 멋대로 안 된다고 진심(瞋心)을 내지 아니하고, 그러한 생각을 평생을 버리지  못하고 그럴 것이 아니라, 탁 털어버리고 정법(正法)을 믿고 ‘이뭣고?’를 하면‘이뭣고?’하다가 굶어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이뭣고?’만 열심히 하면 불효한 자식들이,
‘아이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실려고 마음이 변했는가보다. 그전에는 이럴 때에 화를 내시고 걱정을 하시고 했는데, 화도 안 내시고 걱정도 안 내시는 것 보니 얼마 안 있으면 돌아가시겠다. 돌아가신 뒤에 후회할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실때 잘 해야겠다’해 가지고 불효한 자식들이 모다 효도를 하게 되는 것이여.

그건 효심을 왜 바라냐 하면 아까 말한대로 ‘얼마 안 있다가 돌아가시는데, 불효하다가 나중에 원한심을 가지고 와서 해꼬지 할까봐 돌아가시기 전에 잘하리라’ 그렇게라도 잘하신다면 그것 괜찮거든.
그러니까 효도를 받고 싶으면 옛날에 내던 진심(瞋心)을 안 내고, 옛날에 내던 탐욕심을 안 내고, 자꾸 속으로 ‘이뭣고?’만 하시면 아들딸, 며느리, 손자가 모두 다 잘하게 된다 그말이여.

일 년이 되어도 안 돌아가시고, 이태가 되어도 안 돌아가시고, 오히려 건강도 더 좋아지시고 얼굴도 환하게 되신다면, 자식들로 하여금 효도를 하게 만들어서 좋고, 또 건강도 차츰 좋아지셔서 돌아가실 때까지 건강해서 좋고, 돌아가시자마자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극락세계(極樂世界)에 가니 얼마나 좋으냐 그말이여.

인간이 무엇이 슬프냐? 슬픈 것이 여러 가지가 많겠지만, 자기 뱃속에서 나온 자식들한테 괄세를 당한 것보다 더 슬픈 일은  없어.
자식이 불효한다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이 자기한테 있다고 생각을 해 보시라 그말이여.

 

내가 과거에 짓지 못해서 저런 자식을 내 뱃속으로 낳다고 생각하시고, 내가 잔소리하고 밤낮 그러니 어느 자식이 나를 좋다고 할 것이냐?
원인이 항상 자기한테 있다고 생각을 하시고, 잔소리도 안 하고, 성도 안 내고, 욕심도 안 내고, 해다 주는 대로 먹고, ‘이뭣고?’를 열심히 해서, ‘아이고, 할머니 할머니, 오래 사세요’ ‘아버지, 어머니, 오래 사세요’ 그렇게 자기가 만들면 되는 거여.

돈을 많이 줘야 효도할 것 같지만 그게 아닙니다. 재산을 많이 벌어서 하고 싶은 대로 해 주고, 살아서도 재산을 많이 주고, 죽어서도 유산 분배가 많은 사람일수록에 불효 자식이 많다 그말이여. 심지어는 빨리 죽어야 저 재산이 나한테 올텐데 해 가지고 부모를 죽이는 자식도 있다 그말이여.
오히려 형편이 가난해 가지고 피땀 흘려서 겨우겨우 먹고살고, 대학도 지가 벌어서 대학도 가고, 그러한 놈들이 오히려, 그러한 자식들이 부모한테 효도를 더한다 그말이여.

그래서 자식 걱정하고 돈 벌려 하지 말고, 자식 걱정해서 돈을 오그려 쥘라 하지 말고. 행여나 그 자식한테 다 주지마. 딱 자기 먹을 만큼 자기 쓸 만큼 가지고 있어야지, 다 줘버리고 아무것도 없으면 그때가서 자식한테 손 벌릴 수 있습니까?

자식한테는 재산으로서 부모노릇 하지 말고,
“내 재산 넘어다보지 마라. 내가 죽더라도 이 돈을 부처님한테 받치거나, 양로원에 바치거나, 고아원에다가 기증을 하거나, 학교에다 바치거나 하지, 너희들 한테 안 줄테니까 내 재산 넘어다보지 마라.
너희들은 너희들이 벌어서 잘살아라. 이만큼 키워준 것만 해도 어딘데, 너희들이 나한테 더 잘해라. 내가 늙어서까지 너희들, 재산 바라보지 말아라.” 차라리 그렇게 가르치고.

불효 자식은 재산 때문에 불효 자식이 더 많아진 것이여.
대학교수가 재산 때문에 부모를 죽였고, 많은 사람들이 재산 때문에 자식 손에 죽는 예가 많으니까,
여러분은 「‘이뭣고?’를 열심히 해서 정말 정법(正法)을 믿어야 한다」고 하는 그런 사상을 자손들한테 유언(遺言)으로 남겨주셔야 한다 그말이거든.(25분47초~44분2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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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白骨) ; 죽은 사람의 살이 썩고 남은 뼈.

*해체(骸體 몸뚱이· /신체 ) ; ‘신체(身體)’ 높임말.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부처가 되는 일.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삼명육통(三明六通) ;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갖추고 있는 3가지 자유 자재한 지혜(三明)와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六通).
*삼명(三明) ;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갖추고 있는 3가지 자유 자재한 지혜.
①숙명지증명(宿命智證明) 나와 남의 전생을 환히 아는 지혜.
②생사지증명(生死智證明) 중생의 미래의 생사와 과보를 환히 아는 지혜.
③누진지증명(漏盡智證明)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지혜.
*육통(六通) ; 육신통(六神通).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①신족통(神足通)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변할 수 있는 능력.
②천안통(天眼通) 모든 것을 막힘없이 꿰뚫어 환히 볼 수 있는 능력.
③천이통(天耳通) 모든 소리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는 능력.
④타심통(他心通) 남의 마음 속을 아는 능력.
⑤숙명통(宿命通)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능력.
⑥누진통(漏盡通)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신통(神通 불가사의할 신,통할 통) : 수행을 통(通)하여 도달하는 걸림없는 초인간적인(神) 능력.
*팔해탈(八解脫) ;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여덟 가지 선정(禪定).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 ;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긴 시간을 말한다.
아승지겁(阿僧祇劫)은 보살이 부처님이 되기 위해서 수행하는 아주 긴 시간. 이 수행의 기간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이라 한다.
*난행고행(難行苦行) ; ①아주 심하게 고생함. ②여러 가지 고난을 겪으며 하는 수행.
*괄세 ; 괄시(恝視)-사람을 업신여겨 하찮게 대함.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마음보 ; 마음을 쓰는 속 바탕.
*황룡탕(黃龍湯) ;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 요료법(尿療法).
*부애풀이 ; 부아풀이. 분하고 노여운 마음을 푼다는 뜻으로, 엉뚱하게 다른 사람이나 딴 일에 화를 냄을 이르는 말.
*자연요법(自然療法) ; 자연의 힘이나 물리적 작용을 빌려서 치료를 하는 방법. 또는 그런 치료. 광선 요법과 전기 요법, 온천 요법, 기후 요법, 온열 요법, 마사지 요법 따위가 있다.
*노탐(老貪) ; 늙은이의 욕심.
* ; 업은 한 집안의 재물 신격으로서 흔히 구렁이, 족제비 등으로 상징된다. 집안에 이런 동물이 어느 곳이든 머물러 있어야 가업이 번창한다고 믿고 있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이뭣고?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이뭣고? (이 무엇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진심(瞋心) ; 왈칵 성내는 마음.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Posted by 닥공닥정
무상(無常)2014. 4. 11. 07:59

 

 

<아래 법문은 위 유튜브 법문에서 53분 19초부터 들으시면 됩니다>

 

§ (게송) 행행총총급여류~ / 한평생이라 하는 것이 꿈에 지내지 못한 것 / 인간 세상의 오욕락(五欲樂)이 꿈이거든.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길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여.
명예나 권리나 부귀영화-인연(因緣)이 다해서 떠나면, 나 보기가 역겨워서 가시는 것이니까 깨끗이 보내고, 터억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이뭣고?’를 할 수 있게 되어야 해.


‘이뭣고?’ 한마디는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이 몸을 바치고 이 나의 모든 목숨을 바치고서도, 그것을 잡고 끝을 봐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여.
이것은 추구하고 추구할수록 나에게 행복을 갖다주는 것이며, 영원을 갖다주는 것이여.


**송담스님(No.549)-95년 법보재 법회에서. (용549)

 

약 9분.

 


행행총총급여류(行行悤悤急如流)하여  노색간간일상두(老色看看日上頭)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지차일신비아유(只此一身非我有)한데  휴휴신외갱하구(休休身外更何求)리요
나무~아미타불~

행행총총급여류(行行悤悤急如流)요. 우리가 끝없는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많은 말을 하고 듣고, 많은 행동을 하는 가운데에, 시간이 흘러가기가 마치 급류가 흘러가듯 잠시도 쉬지 않고 시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노색간간일상두(老色看看日上頭)다. 늙은 빛이 금방금방 날로 머리 위로 나타나. 어제 없던 흰머리가 오늘 거울을 보면 또 나고, 뽑고 뽑아도 또 나고, 물을 들여도 하루 이틀 지나면 뿌리에서 허옇게 나거든. 도저히 막을 수가 없어.
이렇게 우리가 지금 이만큼 나이를 먹었지만 엊그제다 그말이여. 서른살, 스무살 때가 엊그제요, 국민학교 다닐 때가 엊그제인데, 그렁저렁하다 보니까 이렇게 세월이 지냈다 그말이여.

지차일신(只此一身)이 비아유(非我有)요. 이 몸뚱이도 내가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나의 소유물이 아니여. 내 몸, 내 몸 하지만,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인연에 따라서 뭉쳐 가지고 잠시 우리가 뒤집어쓰고 있을 뿐이지, 이거 어떻게 내 것이라고 할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낡으면 곧 벗어 버리게 되어.
우리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 몇백 명씩 죽어가고 있는데, 나도 머지않아서 이 몸뚱이를 벗으게 될 것이다 그말이여.

이 몸뚱이도 내 것이 아닌데그래서 이걸 아무리 보약을 먹고 좋다는 것은 다 한다 하더라도, 이건 죽을 때까지 병고(病苦)로 고통을 받기가 싫어서 건강하게 살다 죽자는 거지이 몸뚱이로 아무리 잘 먹이고, 입히고, 봉양(奉養)을 한다 해도 200년 300년 사는게 아닙니다. 얼마 안 있으면 다 가게 되는 것인데.

그래서 이건 지혜롭게 관리할 필요는 있지만 이 몸뚱이에 집착할 것이 없어.

휴휴신외갱하구(休休身外更何求)냐. 하물며 이 몸뚱이도 내 것이 아닌데, 이 몸 밖의 모든 것은 다시 말해서 뭘 할 것이냐.
명예나 권리나 지위나 부귀영화도 인간을 살아가는데 필요하지, 정말 필요 아니한 것은 아니나, 올바른 방법으로 얻고, 얻었으면 올바르게 관리를 하고 행사를 하다가 인연이 다해서 버리게 되면은 미련없이 깨끗이 버려야 해.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길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여. 명예나 권리나 부귀영화, 인연(因緣)이 다해서 떠나면, 나 보기가 역겨워서 가시는 것이니까 깨끗이 보내고, 터억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이뭣고?’를 할 수 있게 되어야 해.
그것 떠났다고 해서 화병이 나고 밤잠을 못 자고, 남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그러면 못 견뎌 가지고 술을 마시고 그래 가지고 병들어 쓰러진다면, 그 인간이 그렇게 끝을 마쳐서 될 것이냐.

알고 보면 한평생이라 하는 것이 꿈에 지내지 못한 것이여. 좋은 꿈을 꾸면 기분은 좋은 것이지마는, 좋은 꿈을 꾸면 뭐 황제가 되고, 대통령이 되고, 황금 산덩이를 소유했던들, 눈 딱 떠버리면 없어지는데 그까짓 것이 뭐냐 그말이여.

인간 세상의 오욕락(五欲樂)이 꿈이거든 그게. 한참 좋은 꿈을 꾸고 있는데 누가 깨웠다 그말이여. 좋은 꿈을 더 꾸어야 하는데 깨웠다고 신경질을 내는 걸 내가 봤단 말이여. 더 꾸면 뭐하는 것이냐 그말이여.
그래서 여러분은 확실히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꿈이라 하는 것을 깨닫고, 정말 꿈 속에서 영원한 것을 찾는 ‘이뭣고?’

다같이 ‘이뭣고?’  (대중) ‘이뭣고?’  ‘이뭣고?’  (대중) ‘이뭣고?’

‘이뭣고?’ 한마디는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이 몸을 바치고 이 나의 모든 목숨을 바치고서도, 그것을 잡고 끝을 봐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여. 이것은 추구하고 추구할수록 나에게 행복을 갖다주는 것이며, 영원을 갖다주는 것이여.

일 년 만에 여러분을 만나뵈니 두서없이 여러 말이 나오는데, 이만 말을 맺고자 합니다. 앞으로 우리의 선망부모를 위해서 추모 천도 법요식이 진행이 되겠습니다.

엄숙한 마음으로 이 법요식을 마치시고, 아주 섬소(纖疏)한 점심공양이 준비가 되었습니다마는 오늘 한 끼니는 어디 소풍 나왔다가 요기만 하신 정도로 생각하시고, 될 수 있으면 한 분도 빠지시지 마시고 소박한 한 끼 점심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 주시기를 바라고,
다시 만날 때는 ‘이뭣고?’를 잘해서 새 세상의 행복을 누리시는 그러한 도반이 되어서 만나게 되기를 기약을 합니다.(49분5초~57분27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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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행행총총급여류~ ; [진각국사어록(眞覺國師語錄)] (김달진 역주 | 세계사) p337 ‘식심게(息心偈)’ 게송 참고. ‘식심(息心)’은 사문(沙門-산스크리트어 śramaṇa 팔리어 samaṇa의 음사, 스님)을 말함.
*사대(四大) ; ①지(地) • 수(水) • 화(火) •풍(風)을 말함. 대(大)란 원소란 뜻. 일체의 물질을 구성하는 네(四) 가지 원소(大).
(1)지대(地大). 굳고 단단한(堅) 것을 성(性)으로 하고, 만물을 실을 수(負載) 있고, 또 질애(質礙)하는 바탕. 질애(質礙)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여 다른 존재와 서로 융화하지 못한다는 뜻.
(2)수대(水大). 습윤(濕潤)을 성으로 하고, 모든 물(物)을 포용(包容)하는 바탕.
(3)화대(火大). 난(煖)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숙(成熟)시키는 바탕.
(4)풍대(風大). 동(動)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장케 하는 바탕.
② 신체를 말함. 원래, 신체는 지•수•화•풍의 4대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함.
*봉양(奉養) ; 받들어 모시고 섬김.
*인연(因緣) ;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사람이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
*이뭣고?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이뭣고? (이 무엇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두서없이(頭緖--) ; 일의 차례나 갈피를 잡을 수 없이. *緖(서)실마리. 시작.
*섬소하다(纖疏--) ; (체격이나 물건의 구조가)가냘프고 어설프다. *纖(섬)잘다. 검소하다. *疏(소)거칠다.

Posted by 닥공닥정
이뭣고 화두2014. 3. 24. 18:19

§(445) 진짜 화두 / 포구발심(怖懼發心) / 시삼마(是甚) 가장 근원적인 화두 / 화두 들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화두를 안 들기가  어려운 것이다.

 

일체처 일체시에서 낱낱이  자체가 공안 도리를 설하고 있는 것이어서, 새로 화두를 탄다고 하는 것은 부득이해서 방편(方便)으로 설하는 것이지, 정말 진짜 화두는 중생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닥치는 일—정든 가족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거기서 진짜 화두를 얻게 되며, 진짜 거기서 대발심(大發心) 하게 되며, 거기서 대분심(大憤心) 일어나게 되며, 거기서 대의단(大疑團) 돈발(頓發)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삼마 화두는 천칠백 공안 가운데에 가장 최초의 화두고, 가장 근원적인 화두여. 화두를 새로 타기 전에 모두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본참공안(本參公案)이여. 의심  할래야   수가 없거든. 이건 화두를 들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화두를  들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말이여.

 

**송담스님(No.445)—1991 5 첫째 일요법회. (용445)

 

약 10분.

 

 

앞으로 초파일이 지나고 또 4월 15일이 되면 하안거, 여름 결제가 시작이 됩니다.

새로 () 받을 행자(行者)  앞으로 선방에 가고자 하는 수좌(首座)들이 '화두를 받어 가지고 그래가지고 선방에 가야겠다' 이런 분들이 있어서 법상(法床) 올라온 기회를 타서, 선방에 여름 결제에 방부(房付) 들이고자  보살님이나  선방에 가서 방부를 들이고자  스님네를 위해서  화두 드는 것에 대해서 간략히 설하고자 합니다.

 

 화두(話頭)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千七百) 화두요,  넓은 의미에서 말하면  세상이 온통 공안(公案)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여.

눈으로  , 귀로 들을 , 코로 냄새 맡을 , 혀로 맛볼 , 몸으로 차웁고 더운 것을 느낄  우리가 닥치는 모든 경계(境界)와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하나하나가 공안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체처 일체시에서 낱낱이  자체가 공안 도리를 설하고 있는 것이어서, 새로 화두를 탄다고 하는 것은 부득이해서 방편(方便)으로 설하는 것이지,

정말 진짜 화두는 중생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닥치는 일—정든 가족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거기서 진짜 화두를 얻게 되며, 진짜 거기서 대발심(大發心) 하게 되며, 거기서 대분심(大憤心) 일어나게 되며, 거기서 대의단(大疑團) 돈발(頓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화두는 ()할래야 매할 수가 없고, 잃어버릴라야 잃어버릴 수가 없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저절로 발심이요, 저절로 분심이요, 저절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는 것이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도  어리신 나이에 다정한, 같이  배우고 같이 뛰어놀던 친구가 비참하게 죽어가는 바로 그것을 보고 발심을 하셨고, 바로 그러한 상황에서 꿈속에서 지옥고(地獄苦) 받는 광경을 보시고서 정말 포구발심(怖懼發心) 허셔.

 

 지옥고 받는 무서운, 인간의  생사고(生死苦)라고 하는 것이 어떻다고 하는 것을 느끼시고 그래 가지고 출가하셔서, 누가 선방 규칙을  지켜라’ ‘묵언을 해라’ ‘말을 많이 하지 말어라  어째라 저째라 하는 그러한 자자꾸레한 그런 말이 전혀 필요가 없어. 저절로 대분발  가지고 젊으신 나이에 확철대오(廓徹大悟) 하시게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주변에도 그만큼 발심할  있는 많은 일들이 이웃에서, 우리나라 안에서, 나라 밖에서 날이면 날마다 무수한 사건들이 연거퍼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건너 불처럼 직접  일이 아니다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저  무심히 지나쳐 버리고,  일이 아닌 것처럼 그렇게 지나쳐서 그렇지 사실은 알고 보면  기가 막힐 일이죠.

 

시삼마(是甚).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 뭉쳐진, 아버지의   방울과 어머니의   방울이 만나 가지고  몸을 받아 낳는데,  몸은 머지않아서 병들어서 늙어서 결국은  버리게 되는데,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소소영령(昭昭靈靈) 주인공(主人公) 있거든.

 

그놈이 부르면 대답할  알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알고, 칭찬하면 기뻐할 줄도 알고, 성도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알고, 슬퍼할 줄도 알고, 욕심도  줄도 알고, 착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고,  생각 돌이켜서 착하게 먹으면은 찰나간(刹那間)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같이 되기도 하고 천사와 같이 되기도 하는데,

 생각 비뚤어지면은 찰나간에 악마가  수도 있어. 나찰(羅刹) 귀신이  수도 있고, 독사가  수도 있고.  생각 잘못 먹으면 음흉하기가 구렁이보다도 더 고약하게  수도 있다 그말이여.

 

그러한 놈을 우리가 낱낱이  가지고 있어. 대관절 그놈이 무엇인가?

이거 화두가 무엇인 줄도 모르고, 불법(佛法) 무엇인 줄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가만히 자기 자신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의심을  할래야   수가 없거든.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시삼마 화두는 천칠백 공안 가운데에 가장 최초의 화두고, 가장 근원적인 화두여. 화두를 새로 타기 전에 모두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본참공안(本參公案)이여.

 

의심  할래야   수가 없거든. 이건 화두를 들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화두를  들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말이여.

자기가 자기 자신을 몰랐으니 의심이 없을 수가 없고, 다못 올바르게 참구(參究) 나가는 법만 몰랐지  시삼마 본참공안은 사람 사람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어. ‘대관절 이게 무엇이냐?’

 

 참구하는 방법을 바로 알고 하면 공부하다가 사견(邪見) 떨어지지 않고, 이걸 바르게 참구를 안 하면 이거 하다가 정신이 샐쭉해지기도 하고,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했으면서도 자기도 깨달은 것처럼 착각을 하는 수가 있고, 이걸 참구를 잘못하면 상기병(上氣病) 올라서 골이 뽀개질라 그러고 눈알이 빠질라 그러고  안돼.

 

그래서 바르게  화두를 들어가는 법을 알고 공부를 해야 한다 그말이여.(1739~2725)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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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行者) : ①수행자. 불도(佛道) 수행하는 사람. ②계() 받기 전에 일정 기간 동안 절에 있으면서 여러 소임 밑에서 일을 돕고 있는 사람.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

*방부(房付)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 참가하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이란 뜻인데, ()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 옛말이 있다. ()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열가지 병이 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 이치(理致)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라고   일체의 (). ③시비(是非)•선악(善惡)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 순경(順境), 내경(內境) 외경(外境) 있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방편(方便 방법·수단 /편할 )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돈발(頓發 갑자기 /일어날·나타날·밝힐 )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 直頓의 , 곧바로.

*()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해   없는 생각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포구발심(怖懼發心 두려워할 /두려워할 /일어날 /마음 ) : 끝없이 되풀이 되는 육도윤회(六途輪廻)에서 받을 생사(生死) 정말 무섭구나.  생사의 고통을 매우 두려워[怖懼]하여, 두려운마음으로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 사람의 몸이 , , , 바람(,,,)  요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 영령(靈靈) 함께 밝은 .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 의미하는 .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 주인옹(主人翁).

*찰나간(刹那間 ·짧은시간 /어찌 /사이 ) ; 지극히 짧은 시간 동안.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세간(世間 : 이 세상, 미혹한 세계)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받을 , 그의 이름을 부르면  음성(音聲) 듣고() 대자비와 지혜로써 자유 자재로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준다는 보살. 자비의 화신.

*나찰(羅刹) : 신속하게 땅이나 공중으로 다니면서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무서운 악귀(惡鬼). 나중에 불교의 수호신(守護神) 되었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참구(參究 헤아릴 /궁구할 ) ; ①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 ②참선하여 화두(공안)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

*상기병(上氣病 오를 /기운 / )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 머리에 치밀게()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 상기병이 생기면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이 사용된다.

*요료법(尿療法) ; 요료법은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Posted by 닥공닥정
거울 법문2014. 3. 1. 18:54

§(152) 참선(參禪)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능력이요 자격 / 거울법문 / 다못 바보처럼 「이뭣고?」 이렇게 해야 / 참선•불법(佛法)의 목적은 깨닫는데 있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다.

 

참선(參禪)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능력이요 자격입니다. 지식이 있건 없건 그것도 상관이 없고, 머리가 좋고 나쁘고 헌 것도 상관이 없고, 죄를 많이 짓고 안 짓고,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안 허고 헌 것도 전혀 상관이 없어.


참선하는데 제일 조심해야 할 것은 분별심(分別心)으로 따져 들어가는 거 - 경전에 있는 말씀, 어디서 들은 법문의 말씀, 그러헌 교리적으로 또는 철학적으로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따져 들어가는 거, 설사 무슨 그럴싸한 결론을 얻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알음알이지, 깨달음은 아닌 것입니다. 참선의 목적, 불법(佛法)의 목적은 깨닫는데 있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예요.


**송담스님(No.152) (참선법B) - 1981년 10월 첫째일요법회(1981.10.04)에서. (용152)

 

약 21분.

 


내가 나를 찾는데 - ‘내’라는 게 뭣이냐 허면은,
눈으로 무엇을 보고서 ‘아! 저것이 주장자다. 저것이 마이크다. 저것이 사람이다.’ 그렇게 아는 놈이 있거든.

‘저 산은 푸르다.’ 푸른 줄 아는 놈. 그것이 바로 나의 ‘나’여. 또 소리를 듣고 ‘저게 어린애 목소리다’하고 아는 놈. 그놈을 여의고 내가 없어. 대관절 거기에서 나를 찾어야 한다 그 말입니다.

눈으로 무엇을 볼 때 그때가 바로 나를 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때 바로 그 찰나(刹那)가 나를 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나를 찾는 기회요. 나를 깨닫는 기회다 그말이야.

그놈을 여의고 내가 없고, 그놈을 여의고 부처도 없고 성품도 없기 때문에 그렇다.

눈으로 무엇을 볼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선을 할 수가 있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줄 안 사람은 누구나 참선을 헐 수가 있고,
코로 무슨 냄새를 맡을 줄 아는 사람은 누구도 참선을 헐 수가 있는 것이어서,

참선(參禪)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능력이요 자격입니다.

지식이 있건 없건 그것도 상관이 없고,
머리가 좋고 나쁘고 헌 것도 상관이 없고,
죄를 많이 짓고 안 짓고,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안 허고 헌 것도 전혀 상관이 없어.

눈앞에 모든 물건을 보는 것은 자기가 거울을 하나 놓고 그 거울에 비추어진 자기 얼굴을 보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머리가 나쁘고 무식허다 하드라도 거울로 떠억 자기 얼굴을 보고서 『대관절 저 사람이 누군고?』 하고 의심헐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옛날에는 거울이라는 것을 전혀 보지도 듣지도 못한 사람이 자기 남편이 중국에 갔다 오는 길에 거울을 하나 선사를 했는데,
그 거울을 그 부인이 보고서 대성통곡(大聲痛哭)을 하면서 ‘중국에 가서 여러 달 있다 오더니 예쁜 각시를 하나 얻어 가지고 왔다’고 대성통곡을 헌다 그말이여.

그래 시어머니가 『아! 대관절 왜 그렇게 우냐? 좋으면 좋게 좋지. 아무리 좋다고 남편이 오랜만에 돌아와서 좋다고 그렇게 통곡까지 할 수가 있느냐?』
며느리가 『아니오, 어머니. 좋아서가 무엇입니까? 중국에 갔다 와서, 나는 잘 갔다 온 줄 알았더니 계집을 하나 뀌어 차고 왔다.』고 그러거든.
그래서 『무슨 계집이 어디가 있느냐?』
『여기 보세요.』 거울을 드리니까,
시어머니가 그 거울을 보더니 『아이구, 어디서 예쁜 각시 커녕은 늙은 년을 어디서 데리고 왔다.』

거울을 통해서 자기 얼굴을 보듯이, 하늘을 보아도-그 하늘에 뜬 구름을 보면서 그 구름을 통해서 자기를 볼 줄 알아야 하거든.
먼 산에 푸른 산을 보아도 그 푸른 산의 모습을 보고서 바로 자기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자기로 돌아 올 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지나가는 버스를 보고도 그 버스를 통해서 자기로 돌아와야 하고, 어떤 놀고 있는 어린애를 보고도 자기로 돌아올 줄 알아야 한다.
어머니 되신 분들은 어린애를 보고는 자기 어린애를 금방 생각할 줄 아실 것입니다.

그렇듯이 그 어린애를 보건, 푸른 산을 보건, 흰 구름을 보건, 버스를 보건 무엇을 보든지 간에 그 본 찰나에 자기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자기를 보아야 하는 것이다.
자기를 깨달라야 하는 것이다.
자기의 부처를 깨달라야 하는 것이다.

자성불(自性佛)을 깨닫기 위한 공부가 바로 화두(話頭)를 드는 것이여.

「이뭣고?」 무엇을 보던지 간에 「이뭣고?」 이렇게 공부를 지어 가는 것입니다.

무슨 소리를 듣더라도 마찬가지여. 어떤 소리를 듣더라도-아들을 잃어버린 사람은 어디서 어린애 우는 소리나 목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를 듣는 찰나에 죽은 아들을 생각허겠죠.

그와 같이 어떠헌 소리를 들으면 퍼뜩 「이뭣고?」 이렇게 공부를 지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이 어렵다 하겠습니까?

눈을 뜨면 무엇이 보이고 잠에서 일어나면 항시 개방되어 있는 것이 귓구멍인데 들으라고 안 해도 언제나 소리는 들려오고 있고,
눈을 떴다하면 언제라도 노란 것 아니면 파란 것, 파란 것 아니면 검은 것, 사람 아니면 짐승, 물건, 집, 장님이 아닌 동안에는 언제나 눈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보게 될 것입니다.

후각이 이상이 생기지 아니한 사람은 언젠가 무슨 냄새가 들어오던지 들어올 것이고, 무슨 음식을 먹을 때 그 맛을 볼 것이고, 짜고 싱겁고 구수한 것을 알 것이고,

눈도 감고 귀도 막고 코도 막고 입을 막았다 하더라도 무엇인가 생각이 날 것입니다.

지나간 생각, 현재 닥치고 있는 생각, 앞으로 다가올 생각, 사람 생각 아니면 재산 생각 아니면 명예와 권리에 대한 생각, 무엇인가 생각이 일어날 것입니다.

일어나는 그 생각이 두 번째 다음 생각으로 옮겨가기 전에 「이뭣고?」
「‘이뭣고?’헌 이놈이 뭣고?」 이렇게 허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찾고, 찾는 그놈을 다시 되찾고.

아까 조실스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뭣고?」 저 푸른 산을 볼 때에 「저 산을 보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그 다음에는 금방 「이 ‘이뭣고?’헌 이놈이 뭣고?」 이렇게 공부를 허는 것입니다.

분별심(分別心), 사량심(思量心), 과거에 책을 보고 알았건, 귀로 들어서 알았건, 눈으로 봐서 알았건, 누구한테 배워서 알았건, 생각해서 알았건, 일체 지식이나 상식 다 이 공부허는 데에는 필요가 없습니다.
그 보고 듣고 알고 헌 그러헌 것들을 여기에 끌어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놔두고 다못 바보처럼 「이뭣고?」 이렇게 허는 것입니다.

이 참선하는데 제일 조심해야 할 것은 분별심(分別心)으로 따져 들어가는 거-경전에 있는 말씀, 어디서 들은 법문의 말씀, 그러헌 교리적으로 또는 철학적으로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따져 들어가는 거,

설사 무슨 그럴싸한 결론을 얻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알음알이지, 깨달음은 아닌 것입니다.

참선의 목적, 불법(佛法)의 목적은 깨닫는데 있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예요.

그래서 참선하는 데에는 ‘무슨 경책(經冊)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공부를 잘하냐?’ 절대로 그렇지를 않고, ‘머리가 좋아야만 하는 것이냐?’ 절대로 그렇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코가 없으면 똥을 된장으로 알고 집어먹을 만큼 미련헌 것이 오히려 이 참선을 허는 데에는 훨씬 빨리 깨달을 수 있는 면이 있다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과거에 어떤 조사는 『지옥에 염라대왕이 와서 끌어갈랴고 해도 하나도 무서워헐 줄도 모르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오셔서 아미타불이 오셔서 극락으로 데려간다고 해도 하나도 좋아헐 줄도 모르고 이러헌 바보가 있다면 당장 내가 인가(印可)를 하겠다.』 이렇게 말씀하신 도인(道人)도 계십니다.

소란 놈이 목이 마를 때 주인이 맑은 시냇가로 끌어다 대주면 소는 의심 없이 그 물을 꿀꺽꿀꺽 마시기만 허면 되는 것입니다.

‘이 물이 농약이 안 섞여 있을까? 누가 이 물에다가 독약이나 안탔을까? 이 물에는 균이 없을까? 이 물을 마시면 설사를 안 헐까?’ 이러헌 등등 머리가 영리하고 지식이 있는 척하고 이리저리 따지고 재고 그러기 보다는 주인을 믿고 주인이 끌어다가 대주면 여지없이 의심 없이 꿀꺽꿀꺽 마시는 그러헌 순한 소처럼,

『바른 자세로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2~3초 정지헌 뒤에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뭣고?」 해라』하면,

『아무 의심 없이 「이뭣고?」 그렇게만 허면, 무량겁 업이 다 녹아지고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이도 거기에서 다 항복을 하고, 「이뭣고?」 한마디에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다 읽은 공덕(功德)과 같고,
이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해 나가면 금생에 결정코 ‘참나’를 깨달라서 대도(大道) 견성(見性)을 헌다』
그렇게 말을 들으면,

여지없이 확- 믿고, 앉어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차를 탈 때나 일을 할 때나 한 생각 한 생각 그렇게 순진하게 착실하게 간절하게 공부를 지어간다면 결단코 견성을 허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영리헌 것, 참 별로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세지총명(世智聰明), 세속적인 지혜가 영리하고 총명한 사람은 그 사람 도 닦기가 힘들다 그랬습니다.
세상에서는 영리허고 똑똑헌 것을 대단히 참 취하지만 도 닦는 데는 약삭빠르고 영리하고 똑똑한 거 그거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러믄 ‘영리하고 똑똑한 사람은 도를 닦지 않고 바보·천치(天癡)들만 모여서 참선을 해야겠구나. 나는 바보·천치가 아니고 영리허니까 참선은 해봤자 적성에 안 맞구나.’ 이렇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영리해도 영리헌 데에 빠지지 아니하면 그것도 상관이 없는 것이고, 아무리 경책을 많이 읽었어도 경책을 읽은 그것에 집착함이 없으면 아무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좋은 것, 아무리 좋은 것도 집착(執着)하면 그것이 병이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깨달음을 얻어가지고서도 그 깨달음에 집착을 허면 참 깨달음이 아닌 것입니다.

『보살도(菩薩道)를 증득(證得)한 보살이 「나는 보살도를 증득했다」한 생각을 갖게 되면 이미 보살이 아니다. 나한과(羅漢果)를 증득한 성현이 「나는 나한과를 증득했다」고 허는 생각을 가지면 이미 나한(羅漢)이 아니다.』하는 말씀이 금강경(金剛經)에 있습니다.

그러헌 깨달음을 얻은 성현(聖賢)도 ‘내가 성현이 되았다’고 허는 생각을 가져서는 아니 되거든 그밖에 무엇에 우리가 집착을 헐 것이 있겠습니까?

얼굴이 조끔 남보다 이쁘게 생겼다고 그것을 집착할 것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잘 생긴 얼굴도 1mm에 십분의 일도 못 될 만큼 얇은 껍데기만 벗겨 놓으면 보기가 흉할 것입니다.

아무리 신체가 건강한 사람도 숨 한 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10분 못가서 내장이 버글버글 썩어 들어가고, 아무리 힘이 센 장사라도 마찬가지여.
아무리 권리와 명예가 많은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은 사람도 또한 마찬가지요.

우리는 아무것에도 그것을 내가 가졌다고 해서 으시대고 뽐내고 남을 업신여기고 그럴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군자는 참으로 이 불법을 올바르게 믿는 보살은 돈이 많을수록에 겸손(謙遜)하고, 지식이 많을수록에 겸손하고, 권리와 명예가 많을수록에 겸손하고, 힘이 셀수록에 겸손을 하는 법인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 하나를 가지면 자연히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돈을 가졌다, 권리가 있다, 명예가 있다, 지식이 있다’하고 목에다 힘을 주고 뒤로 자지바지해 가지고 남을 업신여기면, 만나는 사람마다 그 사람은 싫어허는 것입니다. 미워허는 것입니다.
그 사람 잘못 되기를 고소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집착하는 마음만 없으면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힘이 세면 셀수록 좋고,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그 뭐 하등(何等)의 나쁘다 할 것이 없습니다.

집착하는 마음을 갖지 말고 언제나 「이뭣고?」를 앞세우고 살아간다면 거기에서 업장(業障)은 소멸이 되고 복(福)과 지혜(智慧)가 증장이 될 것입니다.

이러헌 그렇게도 간단하고 그렇게도 쉬웁고, 누구도 할 수 있는 이 법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는 것입니다.(20분50초~41분1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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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剎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대성통곡(大聲痛哭) ; 큰 소리로 몹시 슬프게 욺.
*자성불(自性佛) ; ‘자성(自性)이 즉 부처’라는 뜻.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이 무엇고(이뭣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알음알이 ; ①어떤 인식대상에 대해 마음 또는 마음작용이 가지는, 그 인식대상에 대한 형상 즉 이미지를 아는 것을 말한다.
②마음이 번뇌에 덮여있는 상태, 말하자면 거울에 때가 낀 상태에서 가지는 이러한 앎을 깨달음[무루혜 無漏慧-모든 번뇌를 해탈(解脫)한 성자(聖者)의 지혜]과 구분하여 알음알이라 한다.
*아미타불(阿彌陀佛) ; Amitabha Buddha(無量光佛-무한한 공간에 꽉 차 있어서 안팎과 갓이 없는 빛의 부처님), Amitayus Buddha(無量壽佛-무한한 시간에 뻗치어서 끝없는 생명의 부처님) 대승불교의 중요한 부처님. 줄여서 미타(彌陀).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Buddha)의 감화를 받은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가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로 기원하였다.
또 48원(願)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오랜 겁을 수행한 결과 지금부터 10겁 이전에 그 원행(願行)이 성취되어 아미타불이 되었다.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 ; 많은 수의 악마의 군세(軍勢)를 뜻함.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팔만사천(八萬四千) : 법수(法數)에는 이 말이 퍽 많다. 그것은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사천이다.
또한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이것을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좋은 과보를 받을 선행(善行).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천치(天癡, 天痴) ; ①어리석고 못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선천적으로 정신 작용이 완전하지 못하여 어리석고 못난 사람.
*집착(執着) ; 허망한 분별로써 어떤 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그릇된 분별로써 어떤 것을 탐내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함.
*보살도(菩薩道) ; ①보살의 수행. 보살이 자리이타(自利利他)를 갖추어 깨달음에 이르는 도. ②대승불교.
*증득(證得) ;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함.
*나한과(羅漢果) ; 아라한(阿羅漢)의 경지.
*나한(羅漢) ; 아라한(阿羅漢)의 준말.
*아라한(阿羅漢) ;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 이 경지를 아라한과(阿羅漢果),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를 아라한향(阿羅漢向)이라 함. 응공(應供)•응진(應眞)•무학(無學)•이악(離惡)살적(殺敵)•불생(不生)이라 번역.
마땅히 다른 사람의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으므로 응공(應供), 진리에 어울리므로 응진(應眞), 더 닦을 것이 없으므로 무학(無學), 악을 멀리 떠났으므로 이악(離惡), 번뇌라는 적을 죽였으므로 살적(殺敵), 미혹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불생(不生)이라 함.
*금강경(金剛經) ; 금강경의 완전한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또는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能斷金剛般若波羅蜜經)].
금강(金剛)은 단단하고 날카로움을 뜻하는 다이아몬드를 가리키며, 반야(般若)는 지혜를, 바라밀(波羅蜜)은 저편 언덕으로 건너는 것, 즉 열반에 이른다는 바라밀다(波羅蜜多)의 줄임말이다. 풀이하면 ‘금강석처럼 견고한 지혜를 얻어 열반에 이르라는 부처의 말씀’을 뜻하는 것이다.
이 금강경은 대 반야경 육백부(六百部) 중에서 577권에 해당되고, 그 내용이 약 3백송(三百頌) 정도의 분량이기 때문에 ‘삼백송 반야경’이라고도 하며, 대략 서기 150~200년경의 대승경전 최초기에 만들어진 경전이라 할 수 있다.


「금강경」의 금강(金剛)은 금강석 곧 다이아몬드를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기에 무엇이라도 부술 수 있고, 세상에서 가장 예리하기에 무엇이라도 자를 수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기에 어둠을 밝게 비출 수 있다는 금강석을 부처님의 가르침, 반야의 지혜로 비유한 것이다.
금강석처럼 단단하고 예리하고 반짝이는 완전한 반야의 공지(空智)로 보살행을 수행하면 열반을 성취하여 성불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설한 경전이란 뜻.
「금강경」은 부처님과 수보리의 문답으로 전개되어, 공(空)사상에 입각하여 집착 없이 보살행을 실천하는 일을 중심 내용으로 대승불교의 기본 사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성현(聖賢) ; 성인과 현인을 아울러 이르는 말.
*으시대다 ; 어울리지 아니하게 우쭐거리며 뽐내다.
*업신여기다 ; (사람이 대상을)교만한 마음으로 낮추어 보거나 하찮게 여기다.
*겸손(謙遜 겸손할 겸,겸손할 손) ;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있음.
*하등(何等) ; (주로 ‘하등의’ 꼴로 쓰여;뒤에 오는 ‘없다’, ‘않다’ 따위의 부정어와 호응하여) ‘아무런’, ‘아무’ 또는 ‘얼마만큼’의 뜻을 나타내는 말.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신수기도)2014. 2. 8. 09:53

§(099) 신수기도 /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맑아지면은 자기의 소원은 바래지 아니해도 저절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송담스님(No.099) - 1979년(기미년) 신수기도회향(79.1.9.음)(77분)에서. (용099)

 

약 18분.


어떻게 허면 그러헌 부작용이 없이 곱게 소원을 성취할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참선법(參禪法)입니다. ‘이 뭣고~?’

‘이 뭣고?’를 해서 자기의 마음이 순화가 되고, 순화가 되었다는 것은 안정이 되고 맑아진 것을 순화가 되었다고 합니다.
자꾸 심호흡·단전호흡을 허면서 ‘이 뭣고~?’, 이렇게 1초1초 1분1분을 알뜰허게 정진을 다져 나가면 반드시 안정이 됩니다. 안정이 되고 동시에 또 맑아집니다.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맑아지면은 자기의 소원은 바래지 아니해도 저절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무엇이 필요하다’허면 그것이 묘(妙)하게 자기에게 이르러 옵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정진하시고 열심히 수행을 허신 분은 다 그런 것을 경험을 해 보셨을 줄 생각합니다.

예수교 성경에도 ‘두들겨라, 그러면 문이 열릴 것이다. 구하여라, 그러면 얻어질 것이다.’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마는, 완전히 자기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바친다든지 부처님께 완전히 바쳐 버리고,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살고 부처님의 진리에 의해서 살아갈 때에, 우리는 잠깐 마음에 일으켰다하면 그것이 바로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원하고 바래고 그것을 얻을랴고 얼마를 몸부림을 쳤던 것이, 그래도 얻어지지 못했던 것이,
참선을 해서 마음을 맑게 하고, 마음이 맑아진다고 하는 것은 마음속의 그림자를 깨끗이 씻었기 때문에-마음속의 어두운 그림자라고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업장(業障)의 씨앗이기 때문에, 업(業)의 씨앗 그것이 바로 우리의 소원을 막는 장애물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가,

참선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맑아짐으로 해서 그러헌 업의 씨앗이 변해 가지고 보리종자(菩提種子)로 변했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바로 관세음보살과 같은 그런 부처님 마음과 같이 맑아진 상태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소원이 장애를 받지 아니하고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거울을 깨끗이 닦아 놓으면 누가 보아도 그 모습이 조금도 속임없이 제대로 나타나는 거와 마찬가집니다.

어떠헌 흙탕물이라도 그릇에다 떠다가 가만히 놔두면은 더러운 것은 밑으로 가라앉고 말간 물만,
그 뻘건 흙탕물도 마찬가집니다. 오랫동안 가만 놔두면 반드시 그 찌끄래기는 밑으로 가라앉고 말간 물만 뜨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참선은 마음을 고요히 해가지고 안정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참선하는 사람은 ‘본래 맑고 더러운 것이 없다’고 믿어야 됩니다. ‘생사(生死)는 본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믿고 다못 ‘이뭣고?’를 헐뿐입니다마는, 그렇게 믿고 그렇게 닦아 가노라면,
아무리 정신이 혼탁하고 성질이 괴팍하고 선량하지 못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느새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에 맑아지고 안정이 되고 어질어진다고 하는 것을 저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 뿐인 것입니다.

내 마음이 안정이 되고 내 마음이 깨끗했을 때 우리의 모든 주변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고 나를 따르고 나를 존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어두운 그림자가 있고 내 마음속에 악(惡)의 씨앗이 깃들고 있을 때에 주변 사람들은 나를 싫어하고 나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나를 헐뜯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원리요, 상식이요, 보편적인 이론입니다. 너무나도 평범하고 너무나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왕왕 등한(等閒)히 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평범한 속에 위대한 진리는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에로 넘어가고, 봄이 되면 잎이 피고 꽃이 피었다가 가을이 되면 단풍이 져서 잎이 지는 이 평범(平凡)한 사실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의 진리보다 더 수승한 진리라고 허는 사실을 우리는 열심히 참선(參禪)함으로써 깨닫게 될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깨닫는 길이요, 깨닫게 하는 가르침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이 인도말입니다. 인도에 ‘붓다’라 한 말을 중국에서 ‘불타(佛陀)’라고 음사(音寫)를 했습니다. 인도말 ‘붓다’란 말은 뜻으로 번역을 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은 사람 또는 깨달은 길’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배고프면 밥 먹고, 곤하면 잠자고, 부르면 대답하고,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고 이러헌 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깊디깊고 높디높은 어떠한 이상한 그러한 무슨 진리를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두가 예사로 생각하고 노상 방치허고 있는 그러헌 사실들 그 속에, 이 세상에 이 법계에 위대한 진리는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생활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 화두(話頭)를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우리는 홀연히 눈을 뜨게 될런지 모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많은 천 사량(千思量), 만 사상(萬思想), 번뇌 망상 그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찰나 찰나가 바로 ‘참나’에 눈뜰 그 찰나입니다. 그것 내놓고 나를 볼 기회는 없습니다.
그래서 성났을 때 바로 그때 ‘이뭣고?’를 들을랴고 노력을 해보십시오. 근심·걱정 있을때 그때를 놓치지 말고 ‘이뭣고?’를 들어 보십시오.

슬플 때, 저는 작년에 사람으로서 인생으로서 느낄 수 있는 큰 슬픔 가운데 한 슬픔을 만났습니다마는, 옆의 사람들이 모다 슬피 울었습니다. 나도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 눈물이 나왔을 때 나도 몰래 화두를 떠억 들었습니다. 끊임없이 하염없이 속에서 우러나왔던 슬픔이 가라앉았습니다. 간장이 미어질 것 같은 슬픔이 화두를 들므로써 슬픔인지 가슴 아픈 것이 없어졌습니다.
화두를 놓치자마자 또 슬픔은 계속 우러나왔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서, 나는 이렇게 자신있게 여러분의 모든 슬픔과 괴로움과 뼈아픈 그러헌 상황 속에서 거기에서 휘말려 들어가지 아니하고 살아나갈 길은 오직 ‘이뭣고?’ 밖에는 없다고 허는 것을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바세계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많은 슬픔과 많은 억울함과 많은 괴로움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헌 당하기 어려운 일을 당한 뒤에, 면헐려고 해봤자 이미 늦습니다.
그때사 당황해 가지고 부처님 앞에 와서 면하게 해 달라, 기도를 해 달라, 이미 딱 다가와져 가지고 어떻게 허는 것입니까? 다가오기 전에, 이 사바세계 사는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바세계(娑婆世界), ‘사바(娑婆)’라는 말은 인도말로서 우리말로 번역허면 ‘감인(堪忍)의 세계’, ‘인내(忍耐)의 세계’, ‘참는 세계’라는 말입니다.
너무나도 괴로운 일이 많기 때문에 ‘참아야만 할 세상’이라 이런 말입니다.

억지로 참을라고 헐 것이 아니라, 미리미리 내 마음을 닦아서 마음속에 그러한 재앙의 원인을 제거해 놓는다면 그러헌 일은 미연(未然)에 막을 수가 있고,
닥쳐오드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내가 꺼꾸러지지를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러헌 일들로 해서 내가 한 걸음 올라 갈 수 있는 좋은 밑거름으로 삼으면 되는 것입니다.

집안에 비린내나는 더러운 것을 놔두면 인근에 많이 파리들이 모여듭니다. 시골에서 사신 분은 그 파리 구경을 참 많이 하셨을 줄 생각합니다마는, 밥상이나 어디나 할 것 없이 수없는 새카만 파리 떼가 모여듭니다.
모여든 파리를 그것을 때려서 잡는다든지 약을 쳐서 잡는다든지, 잡아서 죽여 봤자 그 다음에는 그보다 더 많은 파리들이 모여듭니다.
나중에는 아주 면역이 되아서, 밥상에 새카맣게 들어 앵겨도 조금씩만 이리 내키고 밥을 떠먹고 또 와서 앉아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모이는 파리를 죽일라고 할 것이 아니라 미리 집안에 더러운 것을 없애고, 변소를 깨끗이 하고 변소의 뚜껑을 잘 덮고 또는 약을 쳐서 집집마다 변소 관리를 잘하고, 집을 깨끗이 하고 더러운 것을 태우거나 묻어 없앤다고 하면은 집집마다 더러운 파리가 모여들지 아니할 것입니다. 파리는 그 발에 많은 병균을 갖다가 전염병을 옮기고 그러헌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재앙을 맞이할 만한 요인을 제거해야지, 그것을 둠으로 해서 재앙을 부르게 됩니다.
재앙은 하나만 오는 게 아니라 한 재앙이 일어나면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 한 재앙이 일어나면 두 가지 재앙, 세 가지 재앙이 연거푸 다가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인생은 몹시 고달프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시달림을 받는 분-인간관계라 함은 부부문제, 부모자식 간의 문제, 며느리와 시부모와의 문제, 형제간의 문제, 이런 것들이 모다 인간관계입니다마는,인간의 괴로움 속에서 가장 괴로운 문제들인 것입니다.
그 밖의 재산문제라든지 또는 직장문제라든지 수없이 많습니다.
이러헌 괴로움이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러헌 상항 속에 놓여있습니다. 크게는 국가적으로 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화탕(火湯)-불이 펄펄 끓는 용광로와 같은-그런 지옥(地獄)이 있다고 합니다마는, 그 지옥이 바로 이 사바세계에도 있습니다. 이 사바세계에 몸담아 있는 우리 자신의 가슴속에도 그 지옥이 있습니다.

우리 가슴속에 있는 그 지옥, 그놈을 극락(極樂)으로 만드는 법이 ‘이뭣고?’ 입니다.

‘이뭣고?’ 열심히 함으로써 가슴속의 지옥을 극락으로 만들고, 그럴 때에 이 사바세계에 있는 지옥도 변해서 극락이 되는 것이고,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진짜 십팔(十八) 지옥이니 팔만사천(八萬四千) 지옥이 다 소멸이 되어 가지고 불세계(佛世界)로 변하는 것입니다.

이 ‘한 생각’ 단속함으로 해서 그 무서운 팔만사천의 지옥이 극락세계로 된다고 하는 사실은, 이것이야말로 신비스러운 것이고 불가사의한 것입니다.
거꾸로 서서 죽는 거, 비행기를 타고 달나라에 가는 거, 이거 별로 그렇게 신통할 것이 못됩니다.

어떻게 해서, 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한 생각’ 단속을 해 가지고 이 법계를 극락세계를 만들며, 일체 웬수를 불보살로 변하는 이것이 얼마나 신기한 일입니까.

이것은 대단히 멀고 먼 길 같지만은 언제나 한 걸음에 있습니다. 한 생각에 있습니다.
무량겁을 두고 닦아도 성취되기 어려울 것 같이 생각이 되지만 ‘한 생각’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이건 성현이 벌써 다 갈파(喝破)를 허신 것입니다. 이것은 거짓말도 아니고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것도 아닌 것입니다.

이 해 신수기도 회향일을 맞이해서 저는-이미 기도를 하셔서 크고 작은 재앙은 다 소멸이 되셨을 것이고, 동시에 크고 작은 소원을 여러분은 기필코 성취를 허실 줄 믿습니다.(58분35초~76분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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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이 무엇고(이뭣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보리(菩提) ; 불교 최고의 이상(理想)인 불타 정각(佛陀正覺)의 지혜. 올바른 깨달음으로 모든 것의 참된 모습을 깨닫는, 부처의 지혜를 뜻한다. 산스크리트 어 ‘Bodhi’의 한자 음역어이다.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말갛다 ; ①(무엇이) 산뜻하게 맑고 깨끗하다. ②(눈이) 맑고 생기가 있다. ③(액체가)진하지 않고 매우 묽다.
*등한(等閒,等閒視) ; 무관심하거나 소홀하게 여김.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미어지다 ; (가슴이) 찢어질 듯한 아픔이나 슬픔을 느끼다.
*미연(未然) ; [주로 ‘미연에’의 꼴로 쓰여]어떤 일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때.
*내키다 ; 「…을」 공간을 넓히려고 바깥쪽으로 물리어 내다.
*화불단행(禍不單行) ; 화(禍)는 하나로 그치지 않고 잇달아 옴을 이르는 말. 불행한 일이 겹치는 경우.
*화탕지옥(火湯地獄) ; 쇳물이 펄펄 끓는 가마솥에 지옥 옥졸의 장대에 꿰어져 들어가, 몸이 삶아 녹아서 죽은 다음 다시 살아났다가, 또 반복하여 끓는 쇳물에 들어가 몸이 삶아 녹아지는 고통을 받는 지옥.
*지옥(地獄 땅 지,감옥 옥) ①고통이 가득찬 세계. 현세에 악업(惡業)을 행한 자가, 사후 그 보답을 받는 곳. ②아주 괴롭거나 더없이 참담한 환경이나 형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 통일 신라 시대에,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화엄경을 연구하고 그 경의 핵심을 추려서 7언 30구(210자)의 게송으로 지은 <화엄일승법계도 華嚴一乘法界圖> 또는 <법성게 法性偈>에 나오는 구절.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 (무량원겁즉일념 일념즉시무량겁)
한량없는 오랜세월이 한생각 찰나요,찰나의 한생각이 무량한 시간이네.
*불가사의(不可思議) ; 말로 나타낼 수도 없고 마음으로 헤아릴 수도 없음. 생각이 미치지 못함. 생각할 수도 없는 놀라운 일.
*갈파(喝破 꾸짖을•고함칠 갈,깨뜨릴 파) ; 본질을 꿰뚫어 보고 분명하게 말함.
*회향(廻向) ; 회전취향(回轉趣向)의 뜻. ①방향을 바꾸어 향하다. ②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그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함. ③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그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신수기도)2014. 1. 31. 20:04

§(258) (게송)불불산향만로비~ / ‘ 생각단속이 기도요, 삼재를 막는 / 식신(識神) / 말을 적게 하라 / 수구여병(守口如甁) / 참선으로 근본을 해결해라.


활구참선법이야말로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으려고 하지 아니하되 제절로 바로 잡게 하고, 일부러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되 모든 업은 제절로 소멸이 되고, 우리의 시청언동(視聽言動) 통한 모든 생활은, 보면은 남과 같으되 사실은 하나하나가 성불을 향한 수행이요 불사(佛事) 되는 것입니다.

조실스님의 법문 가운데에도 고구정녕(苦口叮嚀) 말씀을 하셨지만, ()라고 하는 것은 데에 있는 것이 아니여. 우리의 생활 속에서 닦아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생활을 여위고 () 없으며,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바로 자기를 찾는 것이 이것이 최상승법인 것입니다.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의 틈을 통해서 들어온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은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가장 가깝게는 말을 많이 하지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하면 거기에서 모든 재앙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무량겁 동안의 모든 () 시비(是非) 바로 조그마한 입으로부터 들어오고, 입으로부터 나온 사실을 명심(銘心) 하셔야 것입니다.

칠일 기도를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하면서 거기에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의 업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참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영원히 삼재(三災)라고 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서 생사(生死) 해탈(解脫)하는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을 저는 재삼(再三) 강조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58)—1985(을축년) 신수기도입재(1985.02.22).


(1) 약 21분.  (2) 약 21분.  (3) 약 21분.


(1/3)----------------


불불산향만로비(拂拂山香滿路飛)한데  야화영락초리피(野花零落草離披)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춘풍무한심심의(春風無限深深意)  부득황려설여수(不得黃鸝說與誰)

나무~아미타불~


불불산향만로비(拂拂山香滿路飛)한데, 봄바람에 산에 그윽한 향기가 가득히 휘날리는데,

야화영락초리피(野花零落草離披)로구나. 들꽃이 시들어 떨어지매 풀에서 떠나서 흩어지더라 그말이여.


춘풍무한심심의(春風無限深深意)  부득황려설여수(不得黃鸝說與誰).

봄바람 ()없는 깊고 깊은 뜻은 노란 꾀꼬리가 아니면 누구와 더불어 이야기 수가 있을 것인가.


입춘, 우수가 지나고 이제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오늘 을축년 정월 초사흘 날부터 앞으로 7 간을 신수(身數)기도를 봉행하게 되는데, 우수가 지냈는데도 바로 엊그제 눈이 많이 내리고 설풍(雪風) 엄동설한(嚴冬雪寒) 같이 매섭습니다.


그러나 입춘, 우수가 지나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말이 전해 옵니다. 머지않아서 산과 들에는 여기저기 울긋불긋 꽃이 피어서 아름다운 향내가 천지에 나부끼게 되고 나무에는 잎이 피고 가지가 뻗어서 거기에는 노란 꾀꼬리가 노래할 날이 머지 아니할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생존 시부터 정월에는 신수기도를 봉행해 오고 있습니다.

선방에서 참선만을 하지, 신수기도를 할까?’ 그렇게 생각하실 분이 계실른지 모릅니다마는 부처님께서 출세(出世)하셔서 중생을 교화하실 때에 중생의 근기 따라서 소승법·중승법·대승법·최상승법 그리고 교외별전(敎外別傳) 법을 차례로 설하셨습니다.


원래 진리에 입각해서 본다면 선도 없고, 악도 없고, 복도 없고, 죄도 없고, 생사도 없는 것입니다마는,

중생이 진리와 계합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은 업에 따라서 선도 있고, 악도 있고, 죄도 있고, 복도 있고, 남도 있고, 죽음도 있는 것입니다.


이미 확철대오를 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 못한 우리 중생에게는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께 끝없이 참회(懺悔) 해야 하고 소원을 비는 기도도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조실스님께서는 평생 동안을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설해서 중생을 교화하셨지마는, 경우에 따라서는 이렇게 신수기도를 열어서 중생을 널리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앉아 계시는 법당에, 부처님 계신 좌우 벽에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 영가(靈駕) 위패가 봉안되어 있습니다마는 이것도 또한 조실스님께서 우리에게 열어주신 대자비의 방편으로 위패를 모시게 하신 것입니다.


사람을 위해서 법을 설하고 기도 () 열어 주실 뿐만이 아니라, 돌아가신 우리의 선망부모와 형제자매와 원근 친척의 외로운 영가들을 위해서도 편안히 머물러서 항시 법문을 듣고,


위로는 부처님과 조실스님을 모시고 그리고 우리 선방에서 참선하시는 청풍납자(清風衲子)들을 항시 선배로 모시고 그리고 도반으로 모시고, 같이 영가의 위치에서 도를 닦다가 인연이 도래할 때에는 도솔천(兜率天) 내원궁(內院宮)이나 다시 인도(人道) 돌아와서 정법 문중에서 도를 닦을 있도록 이러한 만년위패(萬年位牌) 제도를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신수기도를 앞으로 7일간 모시게 되는데, 신수기도라 하는 것은 지난 1 동안에 우리가 크고 작은 ()—주로 악업에 해당이 것입니다마는, 그런 죄업을 부처님께 참회하고 새해를 맞이해서 1 동안 무장무애 해서 우리의 크고 작은 소원을 성취하려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중생은 눈만 한번 감았다 뜨고, 입만 한번 열었다 닫고, 손가락 발가락만 움직여도 전부가 () 짓게 되는 것입니다. 모금을 마시고 숟가락을 먹어도 업을 짓는 것이요, 빚을 짓는 것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눈이 있기 때문에 보아야 하고, 귀가 있기 때문에 들어야 하고, 사지(四肢) 백체(百體) 있기 때문에 운동을, 거래(去來) 모든 행동을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눈으로 보되 죄를 짓지 아니하고, 귀로 모든 소리를 듣되 업을 짓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걸어가고 걸어오며 모든 일을 하고, 나아가서는 장사를 하고 사업을 하면서도 죄를 짓지 아니하면서 최선을 다할 있을 것인가? 바로 여기에 우리의 바로 살아가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모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육식(六識) 통해서 지은 모든 죄가 근본은 마음으로부터 짓게 되고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나무를 가꾸려 때에 뿌리를 북돋우고 뿌리에 적당한 수분과 비료를 공급하면은 나무는 자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뿌리에는 벌레와 균이 침범을 하고 적당한 수분과 비료가 공급되지 아니한 , 아무리 가지와 이파리에 매달려서 손질을 부지런히 한다 하더라도 나무는 건장하게 자랄 수가 없을 것이며 좋은 꽃과 훌륭한 열매를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엽적인 눈을 감고 보지 아니할려고 하고, 귀를 막고 듣지 아니할려고 그러고, 발을 묶어놓고 꼼짝을 할려고 한다고 해서 우리가 () 짓지 않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몸을 움직이고, 눈으로 보고, 귀로 모든 소리를 듣고, 입으로 말을 한다 하더라도 근본 마음이 제자리에 있고 올바르게 된다면, 마음의 발로(發露)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바르게 하고자 하지 아니하되 제절로 바르게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을 것인가?


엄격히 말하면, 바로잡으려고 마음을 먹을 이미 마음은 흐트러지기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파도치는 물을 물의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파도를 눌르고 파도에 손을 대면 새로운 파도가 일어나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물건이라 하면 바로 삐뚤어진 것을 바로 놓을 수가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물체가 아니기 때문에 눈으로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가 없어.

마음을 생각으로써 생각을 일으켜서 바로잡으려고 하면, 일으키는 바로잡으려는 생각 때문에 새로운 마음의 파도가 일어나서 더욱 혼란을 야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용화사에서 조실스님 생존시부터서 항상 선양해 오고 () 오신 활구참선법.


활구참선법이야말로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으려고 하지 아니하되 제절로 바로 잡게 하고, 일부러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되 모든 업은 제절로 소멸이 되고, 우리의 시청언동(視聽言動) 통한 모든 생활은, 보면은 남과 같으되 사실은 하나하나가 성불을 향한 수행이요, 불사(佛事) 되는 것입니다.


아까 조실스님의 법문 가운데에도 고구정녕이 말씀을 하셨지만 ()라고 하는 것은 데에 있는 것이 아니여. 우리의 생활 속에서 닦아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생활을 여의고 도가 없으며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바로 자기를 찾는 것이 이것이 최상승법인 것입니다.


신수기도에 대부분그러께 삼재(三災) 들어와 가지고 작년에 머물렀다가 금년 을축년에 삼재가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마는, 삼재가 들으신 분뿐만이 아니라 삼재가 들으신 모든 사부대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앙(災殃) 언제나 우리에게 다가올 수가 있고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냐 하면 삼재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근본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은 삼재가 붙을 수가 없고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마음이 있어서 마음으로부터 끊임없는 파도가 파도치고 있기 때문에 삼재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삼재가 집안에 사람, 사람, 사람, 사람, 이렇게 여러 사람이 있을 경우 집안은 심히 크고 작은 어려운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마는,


대관절 삼재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있는 것이냐?


뱀띠와 닭띠와 소띠는 지금 금년 삼재가 나가게 됩니다마는 사유축(巳酉丑) 생이 그렇게 되고 다음에는 차례차례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삼재가 오느냐 하는 것은 이것은 음양오행의 술가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 나는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옛날부터서 우리의 생활 경험을 통해서 절대로 무시할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삼재가 사람은 항시 불보살과 성현께 기도를 하고 항시 3 동안 근신(謹愼) 하고,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각별히 조심을 해서,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 있어서 근신하고, 지혜롭고, 참을성 있게 그렇게 조심을 나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삼재가 들었다고 해서 그러면 아무것도 아니하고 우두커니 앉아서 개구리가 겨울동안 땅속에 들어가서 동면을 하듯이 그렇게는 수가 없을 것입니다.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도 해야겠고, 관공서나 회사에 나가는 분은 출근을 해야겠고, 생활은 여전히 가되어떻게 근신을 하고 어떻게 조심을 하느냐하는 것은 다른 아니라,

불법을 믿고 항시 염불을 하는 이는 염불을 열심히 하고, 경을 독송하는 이는 경을 열심히 독송하고,

참선법을 믿고 실천하는 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들며 참구를 한다면 어느 틈이 있어서 삼재가 엿볼 수가 있겠습니까.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에 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은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처음~2040)



(2/3)-------------------


마치 집에 도둑이 침범해 들어온 거와 같아서 집이 문단속을 잘하고 모든 집안 사람이 일심이 되어서 잘해 나가고, 귀중품을 집에 두지 말고 간수를 하고, 모든 생활이 근검절약하고 이렇게 해서...

집안사람들이 문단속도 아니 하고 화목도 하지 못하고, 늦게까지 문을 열어 놓고 있고, 밤낮 싸움을 하고 이런다면 그리고 모든 생활은 사치에 빠지고 한다면 도둑이 엿보고서 침범을 하게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단속을 하고, 절약을 하고, 합심을 하고, 문단속을 잘하고 이렇게 된다면 도적이 들어올 수가 없을 것이며 들어왔다 하더라도 아무 것도 얻어 가지를 못할 것입니다.


삼재가 우리의 마음의 틈을 타서 들어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하고 삼재에 걸린 앞으로 삼재를 맞이할 분들은 각별히 마음의 마음의 문은 눈이 바로 마음의 문이요. 귀가 마음의 문이요. 코와 입이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몸뚱이가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의 문인 것입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육문(六門) 바로 삼재가 들어오는 문이 것입니다. 문단속을 잘하는 것으로 모든 도적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켜 주신 삼재를 막아내는, 비단 삼재라고 했습니다마는 널리 말을 한다면 육적(六賊) 것이고, 방대하게 말한다면 팔만사천 마군(八萬四千魔軍) 것입니다.

팔만사천 마군이를 생각 막을 수도 있고, 도적을 불러 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 생각비끗 잘못하면 바로 삼재와 육적과 팔만사천 도적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 하고 있는 것도 역시 생각때문에 육도윤회를 해서 끊임없는 생사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생각 단속해 나간다면 신수기도는 정말 옳게 봉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학도지인(學道之人) 불식진(不識眞)하고  지위종래인식신(只爲從來認識神)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무시겁래생사본(無始劫來生死本)인데  치인환작본래신(癡人喚作本來身)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학도지인(學道之人) 불식진(不識眞)하고  지위종래인식신(只爲從來認識神)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참된 것을, 이치를 아지 못하고 다못 종래로 식신(識神) 삼어. 식신을 가지고 자기의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고 그렇게 그릇 인식을 하고 있더라 그말이여.


식신(識神), 부르면 대답할 알고, 눈으로 무얼 보면 ···백을 분별을 하고 크고 작은 것을 알고, 코로 냄새를 맡으면저것 좋은 향내다’ ‘저것은 독한 가스 냄새다 향내를 분별하고,

손으로 무엇을 만져 보면 부드럽고 까끄러운 것을 알고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생각으로 무슨 말을 하면저것은 좋은 일이다 나쁜 일이다’ ‘저것은 예쁘다 밉다그런 것을 분별을 하고, 이러한 것이 모두 우리의 식신(識神) 작용이라 것입니다.


식신(識神)이라 하는 것은 무시겁래(無始劫來) 생사본(生死本)이여. 비롯함이 없는 무량겁 이전으로부터서 오는났다 죽었다. 났다 죽었다하는 생사윤회의 근본인데,

치인(癡人) 환작본래신(喚作本來身)이요. 어리석은 사람은 생사의 근본인 알음알이를 불러 가지고 본래신(本來身)이라 하더라 그말이여.


참선을 하게 되면은바로 눈으로 무얼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할 아는 이놈을 내놓고 어디가 마음이라 하는 것이 있을 것인가? 바로 이놈이 나의 면목이다이러한 착각을 일으키게 됩니다.


깨달은 분상에 보면은 눈으로 알고, 귀로 들을 알고, 코로 냄새 맡을 알고,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선과 악을 분별할 아는 그놈을 여의고 본래신(本來身) 없겠지마는,

깨닫지 못한 분상에는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뜻으로 선악을 분별하는 바로 그놈이 바로 부처다. 그놈이 진여다. 그것이 바로 나의 면목이다. 그놈을 여의고 무엇이 있을 것인가? 바로 이놈이다그러한 생각을 내서는 아니 것입니다.


생각 때에 깨달은 사람과 깨닫지 못한 사람과 거의 같은 표현인 같지마는 천지(天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것이 바로 진여불성일 있으나 사람은 영원히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생사의 근본을 그릇 인식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하는 사람은 제일 주의해야 것이! 이것이로구나 생각이 살생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도둑질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음행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무서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산목숨을 죽이지 말라하셨지만, 산목숨을 죽이면은 무간지옥(無間地獄) 떨어져서 한량없는 () 받다가 다행히 영겁 뒤에 사람의 몸을 받아난다 하더라고 단명보(短命報) 받거나, 평생에 병고(病苦) 받는다 하셨습니다.


살생(殺生) 그렇게 무서운 죄이지만 식신(識神), 생사윤회의 근본인 알음알이를 나의 본래의 부처라고 착각하는 죄는 영원한 생사(生死) 다시는 헤어나기 어려운불조(佛祖) 출세(出世)하셔도, 삼세제불(三世諸佛) 출세하셔도 구제할 없는 그러한 무서운 죄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살생하는 죄는 참회(懺悔) 하면 용서 받을 수가 있지마는, 생사의 근본인 알음알이를 참나의 면목으로 착각해서 거기에 집착하게 되면은 참회할 길이 없고 구제 받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착각에 빠진 사람은 남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공부해 나가는 사람은 식신을 갖다가 자기의 본래신으로 착각하지 것이다.



자리에는 삼재를 소멸을 하고 동안 무장무애하기 위해서 그리고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신수기도에 동참하시기 위해서 자리에 참석하신 분이 대부분이 그러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지극정성으로 사분정진(四分精進) 하게 됩니다마는, 있으면 거기에 같이 참석을 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어떠한 것이 가장 정성스럽게 기도를 봉행하는 것이 것인가?


가장 가깝게는 말을 많이 하지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하면 거기에서 모든 재앙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해서 시비(是非) 하게 되면 거기에서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날 뿐만 아니라, 자기의 마음이 산란해지기 때문에 산란한 마음으로 어떻게 정성스러운 기도가 이루어지겠습니까.


그래서 7 동안의 기도 중에는, 가정에서나 차중에서나, 노상에서나 또는 도량에 들어오셔서나 되도록이면 말을 많이 아니한 것이 기도를 정성스럽게 봉행하는 가장 좋은 방편(方便) 것입니다.


여러분이 비단 신수기도 뿐만이 아니라 강화 보문사나, 양양 낙산사나, 또는 남해 보리암이나, 또는 오대산 적멸보궁 같은 데에 기도를 1년에 한두 차례 이상 가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마는 그때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항시 출발할 때부터서 말을 적게 것입니다. 일행이 사람 내지 사람 이렇게 있다 하더라도 있으면은 말을 많이 하지 말아. 가면서도 말을 많이 하지 것이며, 오면서도 말을 많이 아니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도량(道場) 들어서서는 거의 묵언(默言) 하다시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서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시간 맞춰서 기도를 하고, 나머지 시간이 있으면 씻기도 하고, 닦기도 하고, 소지도 하고, 도량을 청결히 하면서 생각 생각이 화두를 들고 정진을 나간다면 기도는 반드시 뜻대로 성취가 것입니다.


기도합네하고 가지고 수선을 떨고, 수다를 떨고, 말을 많이 하고, 오면서 가면서 입씨름을 하고, 그래 가지고 기도가 성취되기를 바란다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고인이 말씀하시기를모든 재앙은 입으로부터 나오고, 모든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가느니라.’ 했습니다.


입으로부터 재앙이 나온다 말은말을 함부로 가지고 때문에 시비와 재앙이 일어나 가지고 온갖 원망과 원수가 거기로부터 이루어진다.’ 이것입니다.

아니할 소리를 가지고 그래 가지고 싸움을 하게 되고 원수를 맺게 되는 예는 우리는 생활 속에서 종종 보고 경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온다 하는 것은 음식을 잘못 먹어 가지고, ‘잘못 먹는다하는 것은 주로 과식(過食) 하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마는,

맛있는 음식이라고 해서 너무 많이 먹는다든지, 절도(節度) 없이 먹는 시간과 먹는 양을 지혜롭게 조절을 못하고서 욕심껏 먹고서 그래 가지고 모든 병을 이루는 경우는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입은 재앙(災殃) 문이다. 구시화문(口是禍門)이다.


수구여병(守口如甁)이니라. 입은 모든 재앙의 문이기 때문에 입을 지키기를 병마개 틀어막듯이 것이다. 틀어 막아버리면은 음식도 먹지 못하고, 말도 못하는 벙어리가 되라는 말인가?


차라리 먹고 병날 바에는 음식을 끼니쯤 먹는 것이 낫고, 말을 가지고 재앙을 불러들일 바에는 잠시 벙어리 노릇을 해야 것입니다.


입이 뚫려 있으니 언제라도 집어넣으면 먹을 수가 있고, 언제라도 입을 벌리고 혀를 내두르면 말이 나올 것입니다마는,

때와 장소와 경우에 따라서 먹어야 때와 먹어야 , 말을 해야 때와 말을 아니 해야 때를 지혜롭게 단속을 하지 못하면, 평생 동안 병을 여읠 수가 없을 것이며, 평생 동안 재앙을 모면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가슴에 손을 얹고 고요히 반성을 해보시면 음식 때문에 병을 얻은 때가 얼마나 많으며, 때문에 부부간에도 시비(是非) 일어나고, 형제간에도 시비가 일어나고, 친구 간에도 시비가 일어나고, 이웃 친척 간에도 때문에 시비가 일어났던 일이 얼마나 많은 가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무량겁 동안에 모든 () 시비(是非) 바로 조그마한 입으로부터 들어오고, 입으로부터 나온 사실을 명심(銘心) 하셔야 것입니다. 동서고금(東西古今) 모든 역사(歷史) 역시 입으로부터 많은 재앙을 이루기도 하고 복을 짓기도 하는 것입니다.


음식을 적당량을 올바르게 섭취를 하면 몸에 피가 되고 살이 되어서 건강을 유지하는 근본이 것이고,

해야 말을 해야 시간에, 해야 상대에게 말을 한다면 한마디가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수도 있고, 타락한 사람을 새로운 사람을 만들 수도 있고, 파탄에 이르른 어떠한 사항을 갖다가 새롭게 발전해 나갈 있도록 하는 좋은 채찍이 수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잘못 섭취를 하고, 잘못 먹고, 잘못 말하게 되면, 평지에 풍파를 일으키게 되고 멀쩡한 사람이 병을 앓게 것입니다.(2040~4123)



(3/3)----------------


삼재(三災) 아까마음으로부터 일어난다했지만,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 나오는 구녕은 바로 밑에 있는 구녁으로부터 모든 삼재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 자체는 형상이 없기 때문에 눈으로도 출입을 하고, 귀로도 출입을 하고, 코로도 출입을 하고, 입으로도 출입을 하고, 몸뚱이 사지백체와 팔만사천 모공(毛孔)으로도 출입을 합니다.

형상이 없기 때문에 없이도 출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뜻을 통해서, 의식을 통해서 출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놈 단속하기가 심히 어려운 것입니다.


이놈 하나를 지혜롭게 단속을 한다면 삼재는 영원히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활구참선(活句參禪)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 해버리면 일체 삼재는 나를 옹호하고 받드는 보호 신장(神將) 되어 것입니다. 바로 나의 권속(眷屬) 되고, 나의 제자가 되고, 나의 수호신이 되어 것입니다.


모든 팔만사천의 도적을 나의 명령 하에 움직이는 나의 충직한 군사가 것이며, 나의 제자가 것이며, 나의 권속이 되어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의 심왕(心王) 다스리는 데에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심왕을 다스리는 법이 바로 참선법(參禪法)이여.


참선은 일어나는 생각눈으로 무엇을 보면 희다, 검다, 누르다, 붉다, 크다, 작다, 저것은 사람이다, 짐승이다, 자동차다, 비행기다, 눈을 통해서 어떤 영상이 비치자마자 그러한 알음알이가 일어납니다.

알음알이가 일어나기 전에눈에 어떤 형상이 ! 비치자마자 거의 동시라고 만큼 알음알이가 일어납니다마는, 알음알이가 일어나기 전에이뭣고?’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때에도, 귀는 항시 열려져 있기 때문에 언제나 크고 작은 소리, 멀고 가까운 소리가 우리 귀에는 들려 수가 있습니다.

들려오면 무심코 스쳐가 버리기도 하지만 소리를 듣고서 어떠한 알음알이가 발생을 하게 됩니다. 발생을 하면 잠깐 발생하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으로 가지가 자꾸 벌어져 나갑니다.


가령 비행기 소리가 들렸다 하면, ‘비행기 소리가 들렸다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비행기는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인가 보다그리 생각하고,

비행기했다 하면은! 언젠가 우리 아저씨가 비행기를 타고 미국을 갔다그리 생각하고, ‘미국에 가서 사업이 잘되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거기서 비약을 가지고, 소련에 의해서 추락한 비행기를 생각하고 추락 비행기가 폭파할 때에 애석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생각하고, 이리 해서 끊임없이 가지에 가지가 뻗고 가지에 가지가 뻗어 가지고 계속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슬퍼지기도 하고, 속이 상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이것이 이런 식으로 소리 들었을 때에 그럴 뿐만이 아니라, 눈으로 그렇고, 코로 냄새를 맡을 그렇고, 몸에 춥고 더운 것을 느낄 별별 생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를 평생 동안을 그렇게 하고 세세생생(世世生生) 그렇게 해서,

((무기(無記) 탐진치 삼독심(三毒心) 거기서 이리저리 얽히고 머리카락 얽히듯이 얽히고 설켜 가지고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지게 되고, 이렇게 해서 새로운 무서운 () 적극적으로 형성해 나가면서 과보를 받으면서, 받으면서 짓고 지으면서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무량겁(無量劫) 오늘날까지 살아오고, 앞으로도 무량겁을 두고 그렇게 살아가게 것입니다. 무량겁의 생사윤회(生死輪廻) 근본적으로 다스리지 않고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정월에 일주일 동안 신수기도 함으로써 우리의 업장(業障) 소멸하고 그리고 모든 소원을 성취하기를 바란다고 하는 것은 우리 중생의 너무나 사려(思慮) 깊지 못한 바람이라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도 아니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칠일 기도를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하면서 거기에 그치지 아니하고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우리의 업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참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영원히 삼재(三災)라고 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서 생사(生死) 해탈(解脫)하는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을 저는 재삼(再三) 강조를 하는 것입니다.


생각 일어날 때에 바로이뭣고?’ 누가 나한테 욕을 해서 ! 귀에 거슬리는 바로 찰나에 다음 생각으로 옮겨가기 전에이뭣고?’

몸이 아파도이뭣고?’ 속이 상해도이뭣고?’ 배가 고파도이뭣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던지 항상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지금이뭣고?’하고 있는 바로 이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처음에-’ 소리부터 하는데 -’ 하는 바로 이놈이 무엇인가? 그러한 뜻으로 뭣고?


이렇게 찰나 찰나를 이렇게 야무지게 알뜰하게 단속을 나간다면, 생각 생각의 단속이 쌓이고 쌓이면 그래서 일구월심(日久月深)하면 그것은 철위산(鐵圍山) 무너뜨릴 있는 그러한 무서운 위력을 우리는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도 바로 문제를 이렇게 해결을 해서 그런 대성현이 되신 것입니다. 역대조사도 또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근본을 해결하지 않고서 지엽적으로 일을 해결할려고 하면 복잡하고, 이놈을 막아 놓으면 저기가 터지고, 저놈을 막으면 여기가 터지고, 이놈을 일으켜 놓으면 저놈이 자빠지고, 저놈을 일으켜 놓으면 이놈이 자빠지고, 도대체 어떻게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근원에서 해결하면 지엽적인 문제는 제절로 정돈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고, 어떠한 사업을 하거나 어떠한 사물을 다룰 때에도 항상 근본(根本) 찾아서 근본 문제를 해결을 할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려면은 지혜(智慧) 있어야 . 자기가 지혜가 없으면 지혜 있는 사람의 지도를 받아야 것입니다.


우리는 숙세에 선근(善根) 있어서 최상승법을 듣고 실천할 있는 그러한 길을 금생에 만났습니다. 우리에게는 철저하게 믿고 최선을 다해서 실천을 가는 일만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처음부터서 잘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공부는 지극히 방법은 간단하지만 너무 맛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맛이 없어서 되는 것인지 되는 것인지, 옳게 하는 것인지 잘못하는 것인지도 확실히 수가 없고, 할려고만 하면 무조건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조금 잘못하면 머리가 아프고, 조금 잘못하면 소화가 안되고, 이리저리 해서 여간해서 처음에 붙이기가 어렵습니다마는,


법문(法門) 자주 듣고, 좋은 도반들과 같이 애를 쓰고 열심히 나가다 보면 차츰차츰 요령을 터득하게 되고, 차츰차츰 공부해 나가는 길을 잡게 됩니다. 그러면은 그렇게 이것이 하기가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렇게 일양(一樣)으로 맛이 없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차츰차츰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않아도 들어진 때가 많고처음에는 아무리 들려고 해도 금방 생각이 들어오고, 겉으로는 들되 속으로는 의심이 간절(懇切)하지 못하고 생각이 노상 침노(侵擄)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망상(妄想)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냥 그건 고대로 두고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잠간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내쉬면서내쉴 때는 배가 차츰차츰 차츰 이렇게 홀쪽하게 하면서 그때이뭣고?’


번이고, 번이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한결같이 그렇게 나가면, 할려고 해도 제절로 화두가 떠억 들려지게 때가 오는 것입니다. 망상을 끊을려고 해도 제절로 망상이 없어지고, 마음을 고요히 할려고 해도 제절로 마음이 고요해져.


물론 간간이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일어나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고 나는 화두만 들면 바람이 귓전에 스쳐가듯이 어떠한 생각도 스쳐서 지내가는 것이지, 나에게 아무 별다른 해를 끼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가 비교적 순일(純一)하게 되어 가면 마음이 조용하고 편안하고 뭐라고 표현할 없는 어떤 감사한 생각 뭐라고 표현할 없는 기쁜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러한 생각에 떨어지지 말고, 지혜롭게 알뜰하게 화두를 참구해 나가고 잡드리 나가면, 오매(寤寐) 일여(一如)하게, 행주좌와 간에 일여하게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것입니다.


그러한 순일무잡한 경계가 일주일 이상 이렇게 나가면 반드시 화두를 타파해서 자기의 면목(面目) 요달(了達)하게 것입니다.


오늘은 삼재(三災) 소멸하는 신수기도 입재를 맞이해서 이미 있는 삼재는 소멸을 하고, 앞으로 돌아오지 아니한 삼재는 미리 예방을 있는 근본적인 묘한 방법을 말씀해 드렸습니다.

그러한 근본을 명심을 하시고 앞으로 일주일 동안 알뜰하게 기도를 하셔서 여러분의 크고 작은 소원을 성취하시기를 간곡히 빕니다.



범심불식성하구(凡心不息聖何求)리요  반료산다자일구(飯了山茶自一)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화락화개임시절(花落花開任時節)하니  나지세상기춘추(那知世上幾春秋)리오

나무~아미타불~


범심(凡心) 불식(不息)하면 성하구(聖何求)리오.

무릇 마음을 쉬지 아니하면, 범부(凡夫) 마음을 쉬지 아니하면, 우리의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마음을 쉬지 아니하면 어찌 성과(聖果), 성현(聖賢) 구하리오. 어찌 깨닫기를 바랄 수가 있으리오.


반료산다자일구(飯了山茶自一)로구나. 공양이 끝나고 산다(山茶), 잔을 마심이로다.


화락화개임시절(花落花開任時節)하니, 꽃이 지고 꽃이 피고 것을 시절(時節)에다 맡겨 버려. 꽃이 피면 대로, 꽃이 지면 대로, 세상 흥망성쇠(興亡盛衰) 영욕득실(榮辱得失) 그냥 거기에 맡긴다 그말이여.


거기에 맡겨 두고 나는 마음 닦아가는 나의 근본 문제를 충실히 나가면, 나지세상기춘추(那知世上幾春秋). 어찌 세상에 번이나 봄이 되었다 가을이 되었다 하는 것을 것이냐 그말이여.


자기의 근본사(根本事) 방치해 버리고 망각해 버리고, 피면 핀다고 거기에 굴림을 받고, 꽃이 지면 진다고 거기에 휘둘림을 받고, 무엇이 흥하면 흥한 데에 휩쓸리고, 무엇이 망하면 망한 데에 끌려간다면 그것을 어찌 참다운 인생이라 있으리오.


흥망성쇠와 꽃이 피고 지는 데에 일임(一任) 버리고, 나의 본분사(本分事) 충실하면 그것이 바로 인생을 참되게 살아가는 길일 것입니다.


모든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오고 모든 재앙은 입에서 나온다 했거늘, 오늘 신수기도 입재를 향해서 본의 아니게 재앙의 풍파를 일으키게 되었습니다.(4125~6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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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불불산향만로비~’ ; 남전보원(南泉普願) 선사의 제자, 장사경잠(長沙景岑) 선사의유산(遊山)’ 공안에 대한 삽계익(霅溪益) 선사 게송. [선문염송·염송설화 5](동국역경원刊) p31 참고.

(,)꾀꼬리,(,)꾀꼬리, 동자(同字).

*신수(身數)기도 ; 새해를 맞아 정초에 일년 동안의 안녕과 소원을 기원하는 기도.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②태어나는 .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③세간을 초월하는 . 출세간(出世間) 준말. 삼계(三界) 나오는 .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소승(小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대승(大乘)이라 하고, 전통의 보수파들을 낮추어 일컬은 .

②기원전 5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 사이에 분열된 불교 교단의 여러 부파, 부파 불교(部派佛敎) 말함.

③자신의 깨달음만을 구하는 수행자, 성문(聲聞)•연각(緣覺) 또는 그들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

④열등한 능력이나 소질을 갖춘 자를 위한 붓다의 가르침.

☆승()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대승(大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 이에 반해, 그들은 전통의 보수파를 낮추어 소승(小乘)이라 .

②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행자보살, 또는 그들을 위한 붓다의 가르침.

③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존칭. 위대한 가르침.

☆승()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 하는데,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

*참회(懺悔 뉘우칠 /뉘우칠 )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공안)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 ()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위패(位牌) ; 죽은 사람의 () 모시는 나무패.

*방편(方便 방법·수단 /편할 )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청풍납자(清風衲子 맑을 /바람 /옷을 꿰맴 /자식 ) ; 수행을 하여 맑은 기운을 지닌 스님을 청풍(清風), 맑은 바람에 비유하여 이르는 .

[참고] 운수납자(雲水衲子) ; 여러 곳으로 스승을 찾아 () 묻거나 수행을 하러 여러 곳으로 다니는 스님을 머무름이 없는 구름() () 비유하여 이르는 .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꼭대기에서 12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56 7천만 뒤에)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 뜻은 지족(知足).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음역어는갈마(羯磨)’이다.

*무장무애(無障無碍) ; 일이나 행동을 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방해가 없음.

*사지백체(四肢百體) ; 몸의 전체.

*지엽적(枝葉的) ; 사물이나 사건 따위에서 본질적이 아니라 부차적인 부분에 속하거나 관계된 .

*발로(發露) ; 숨은 것이 겉으로 드러나거나 숨은 것을 겉으로 드러냄. 또는 그런 .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 알리는 .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말할 /신신당부할 정성스러울 /간곡할 )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 간곡하게() 말씀하심().

*그러께 ; 지난해의 바로 전해. (동의어) 재작년(再昨年), 전전해(前前해), 지지난해, 전전년(前前年), 거거년(去去年).

*삼재(三災 /재앙 ) ; 사람에게 닥치는 3가지 재해(災害). 도병(刀兵 :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 큰병이 유행함) 있으며 십이지(十二支) 따라 든다.

*음양(陰陽) ; 우주 만물의 서로 반대되는 가지 기운으로서 이원적 대립 관계를 나타내는 . 달과 , 겨울과 여름, 북과 , 여자와 남자 등은 모두 음과 양으로 구분된다.

*오행(五行) ; 우주 만물을 이루는 다섯 가지 원소. (), (), (), (), () 이른다.

*술가(術家) ; 음양, 점술에 정통한 사람.

*근신(謹愼 삼갈 /삼갈 ) ; 말이나 행동, 마음가짐을 삼가고 조심함.

*염불(念佛) ;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과 같은 보살님의 이름을 외움. 흔히 어떤 일을 기원하며나무관세음보살이나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 소리 내어 외우는 일을 말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12에서.

〇念佛者는  在口曰誦이요在心曰念이니  徒誦失念하면於道無益이니라.

 염불이란 입으로 하면 송불이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염불이니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 아무 이익이 없으리라.


(註解阿彌陀佛六字法門이  定出輪㢠之捷徑也心則緣佛境界하야  憶持不忘하고口則稱佛名號하야  分明不亂이니如是心口相應이  名曰念佛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육자 법문은 바로 윤회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여 잊지 말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되 분명하고 일심불난(一心不亂)해야 하니, 이와 같이 마음과 입이 상응하는 것이 염불이다.

*독송(讀誦) ; 소리를 내어 () 읽음.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일심(一心) ; ①대립이나 차별을 떠난 평등한 마음. ②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마음. 통일된 마음. ③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천정한 마음. ④아뢰야식(阿賴耶識).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구(參究 헤아릴 /궁구할 ) ; ①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 ②참선하여 화두(공안)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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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적(六賊) ; (), (), (), (), (), () 육경(六境) 비유적으로 이르는 . ‘중생이 깨달음을 얻는 것을 방해하고 번뇌를 일으키는 여섯 도적들과 같다 뜻이다. (=육진六塵=육경六境)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 ; 많은 수의 악마의 군세(軍勢) 뜻함.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게송) 학도지인불식진~’ ; 장사경잠(長沙景岑)선사 게송. [선문염송·염송설화 5](동국역경원刊) p36 참고.

*식신(識神) ; ①심식(心識). ②분별의식(分別意識). 의식작용을 일으키는 .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자체. 깨달음 자체.

*본래신(本來身) ; 진여불성(眞如佛性).

*알음알이 ; ①어떤 인식대상에 대해 마음 또는 마음작용이 가지는, 인식대상에 대한 형상 이미지를 아는 것을 말한다.

②마음이 번뇌에 덮여있는 상태, 말하자면 거울에 때가 상태에서 가지는 이러한 앎을 깨달음[무루혜 無漏慧 : 모든 번뇌를 해탈(解脫) 성자(聖者) 지혜] 구분하여 알음알이라 한다.

*되풀이되다 ; (같은 말이나 일이)반복되어 행해지다.

*그릇 ; ①어떤 일이 사리에 맞지 아니하게. ②어떤 일이나 형편이 잘못되게. ③어떤 상태나 조건이 좋지 아니하게.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

아버지를 죽인 , 어머니를 죽인 , 아라한을 죽인 ,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살가죽을 벗겨 속에 집어넣거나 쇠매〔鐵鷹〕가 눈을 파먹는 따위의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

*참회(懺悔 뉘우칠 /뉘우칠 )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사분정진(四分精進) ; 참선이나 기도를 하루 (새벽, 오전, 오후, 저녁) 시간을 정해 정진하는 .

*시비(是非) ; ①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 ②이러니저러니 좋지 않게 트집을 잡아서 말함. ③옳고 그름.

*방편(方便 방법·수단 /편할 )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도량으로 읽음.

*묵언(默言) ; 말을 하지 않음.

*절도(節度) ; 일이나 행동 따위를 정도에 알맞게 하는 규칙적인 한도.

*동서고금(東西古今) ; 동양과 서양, 옛날과 지금이라는 뜻으로, 사람이 살아온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를 아울러 이르는 .

*구녕, 구녁 ; ‘구멍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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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神將) ;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불법(佛法) 지키는 신장을 이른다.

*심왕(心王) : 의식 작용의 본체。객관(客觀) 대상에 대하여 일반상(一般相) 인식하는 정신 작용。여기에 육식(六識), 팔식(八識), 구식(九識) 구별이 있다.

*참선법(參禪法) ; ①선() 수행을 하는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동자(同字).

*생사윤회(生死輪廻 /죽을 /바퀴 /빙빙돌 )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 죽고()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 돌듯이() 반복함.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 행동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장애() 생기는 .

*지극정성(至極精誠) ; 더할 없이 극진한 정성(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재삼(再三) ; 두세 . 또는 번씩. ‘거듭’, ‘여러

* 무엇고(이뭣고 是甚 시심마,시삼마) : ‘ 무엇고? 화두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 무엇고?'(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

*철위산(鐵圍山) ; 철륜위산(鐵輪圍山)이라고도 . 불교의 세계설에서는 수미산(須彌山) 중심으로 대륙과 9개의 산이 있고, 산과 사이에 8개의 바다가 있는데, 아홉 번째 가장 바깥쪽의 () 산을 말한다.

*지혜(智慧) ; ①모든 현상의 이치와 선악 등을 명료하게 판단하고 추리하는 마음 작용.

②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는 마음 작용.

③미혹을 끊고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주시하는 마음 작용.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을 떠난 경지에서 온갖 차별을 명료하게 아는 마음 작용.

*선근(善根) ; 좋은 과보를 받을 만한 착한 (행위. 온갖 () 낳는 근본. 청정한 행위를 근성.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 수행하는 . 불법(佛法) 닦으면서 사귄 .

*일양(一樣) ; ①한결같은 모양. 또는 같은 모양. ②한결같이 그대로. 또는 그대로.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정성스런절박할 )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침노(侵擄) ; 성가시게 달라붙어 손해를 끼치거나 해침.

*망상(妄想) ;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오매(寤寐 잠이 /잠잘 ) ; 자나깨나 언제나.

*일여(一如) ; 완전히 하나가 되어 나눌 없음.

*면목(面目 / )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게송) 범심불식성하구~’ ; 법진일(法眞一) 선사 게송. [선문염송·염송설화 1](동국역경원刊) p253 참고.

*범부(凡夫 무릇보통 /남편사내 ) ; 번뇌(煩惱) 얽매여 생사(生死)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성과(聖果) ; 성자(聖者) 지위. 성인(聖人) 도달경지[]. 성자, 성인이란 무루혜(無漏慧번뇌를 끊어내는[無漏] 지혜[]) 일부를 성취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도(聖道, 성스러운 , 성인의 ,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 들어선 사람들을 말한다.

*공양(供養) ; ①불()•()•() 삼보(三寶) 음식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

*시절(時節) ; 어떤 시기나 .

*흥망성쇠(興亡盛衰) ; 흥하고 망함과 성하고 쇠함. 어떤 사물·현상이 생겨나서 소멸하는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영욕(榮辱 영화 /욕될 ) ; 흔히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철되는 영광(榮光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 치욕(恥辱 부끄럽고 욕됨) 아울러 이르는 .

*득실(得失 얻을 /잃을 ) ; ①이익과 손해. ②얻음과 잃음. ③성공과 실패.

*근본사(根本事) ; 참선법을 통해 내가 나를 깨달아 생사해탈을 하는 .

*일임(一任) ; 모두 맡김.

*본분사(本分事) ; ①깨달음. ②인간이 부처라고 하는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

*재앙(災殃) ; 뜻하지 않게 생긴 불행한 변고. 또는 천재지변으로 말미암아 생긴 불행한 사고.

*풍파(風波) ; 세찬 바람과 거센 물결.



Posted by 닥공닥정

 

 

<핸드폰에서, 아래 법문은 위 유튜브 법문에서 49분 58초부터 들으시면 됩니다>

 

§(582)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 / 이 화두는 항상 가깝게 들어야 해.

 

깨달음에 이르는 가장 쉽고도 간단하고도 누구라도 행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이 활구참선법이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여.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니거든.


일체처 일체시 시간과 공간  따질 것 없이 언제나 화두를 들고 정진(精進)을 하면, 한 생각 돌이키면, 바로 그 자리가 자기의 선방(禪房), 활구참선 도량(道場)입니다.


**송담스님(No.582) - 1997년 성도재 법회(96.12.08)(65분)에서. (용582)

 

약 8분.

 

지계삼천겁(持戒三千劫)하고  송경팔만세(誦經八萬歲)라도
불여반식경(不如半食頃)이  단좌염실상(端坐念實相)이니라

지계삼천겁(持戒三千劫) 송경팔만세(誦經八萬歲).
계(戒) - 오계·십계·이백오십계·오백 계 그런 계를,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때 누구를 스승으로 하느냐? ‘계를 스승으로 삼으라.’ 이렇게까지 유언을 하셨습니다.

그 소중한 계를 삼천 겁 동안을 청정하게 잘 지키고,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대장경을 팔만 세 동안을 외운다 하더라도 그 공덕(功德)을 말로써 다 표현 할 수가 없지만,

삼천겁 계를 지키고 팔만 세 동안을 경을 외운다 하더라도, 불여반식경(不如半食頃)에  단좌염실상(端坐念實相)이다. 밥 반 그릇 먹은 동안 단정히 앉아서 실상(實相)을 생각한 만 같지 못하다.

반식경(半食頃) 동안 단정히 앉아서 실상을 염(念)한다는 것은 바로 이 활구참선 하는 거야. 잠깐 동안 활구참선 한 것만 못하다 그말이여,

그러니 계를 삼천겁 지키는 목적이 무엇이냐?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계를 지키는 거고,
장경(藏經)을 팔만 세 동안 열심히 읽고 외우는 목적이 무엇이냐? 나를 깨닫기 위해서 경(經)을 읽는 것이지. 다른 목적이 없어,

그러면 깨달음에 이르는 가장 쉽고도 간단하고도 누구라도 행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이 활구참선법이다.

남녀노소와  빈부귀천(貧富貴賤)과 머리가 좋고 나쁜 것이 전혀 상관이 없고,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해 갈수록 알 수 없는 의심으로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이뭣고?’ 그것이 무엇이 어려울 것이 뭐 있느냐.

그래서 이 자리에 모이신 분은 여러 선지식(善知識)들한테 여러 가지 화두(話頭)를 타셨겠으나,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여.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니거든.

여러분!  오늘 한번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 자신의 이름을 큰 소리로 한번 불러보셔.
“정은아!” 부르듯이 여러분도 여러분 이름을 부르셔,  시작!

(신도분들이 각자 자기 이름을 부른다!) OOO!
“예!”하고, (신도분들) “예!”
‘무슨 물건인고?’

공부가 잘 안 되면 조용한데 가서 자기 이름을 한번 불러보셔. 그리고 자기 목청이 터지도록 한번 불러보고 자기가 '예' 하고 대답하고 ‘무슨 물건이냐?’ 그렇게 한번 물어보시라.

무슨 화두를 가지고 공부를 하시던지, ‘이뭣고?’를 하신 분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공안을 가지고 공부하신 분도 그렇게 한번 해 보시라 그말이여.

그러면은 이 화두는 항상 가깝게 들어야 해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할 때,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렇게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일러주지만, 자꾸 하다보면,


‘이뭣고?’할 때 『‘이’하는 이놈이 무엇이냐?』 그렇게 가깝게 다그쳐서 들어야 되는 거야.
‘이뭣고?’ 『지금 ‘이뭣고?’ 하는 이놈이 무엇이냐?』

그 보담도 더 가깝게 『‘이’하는 이놈이 무엇이냐?』 그런 뜻으로 『‘이’뭣고?』

나중에는 ‘이뭣고?’ 소리도 할 것도 없이 대번에 정신만 차리면 의단(疑團)이 탁 나타나게 되는 거야.

여러분이 얼마만큼 대신심(大信心)과 대의단(大疑團)으로 알차게 다그쳐 나가냐에 따라서 여러분이 큰 깨달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보살선방 또는 비구선방, 시민선방 또 후원, 사무실 각자 자기 있는 처소에서 자기 분 따라서 모다 열심히 정진을 하고 계시고, 가정에서도 턱~ 화두를 들고 정진(精進)을 하면 가정이 바로 자기의 선방(禪房)입니다.

차를 타고 갈 때는 차 안이 선방인 것이고,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이 바로 선방인 것입니다.
일체처 일체시 시간과 공간  따질 것 없이 언제나 한 생각 돌이키면, 바로 그 자리가 활구참선 도량(道場)이야.(46분37초~54분4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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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戒) ; 불교에 귀의한 자가 선(善)을 쌓기 위해 지켜야 할 규범.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좋은 과보를 받을 선행(善行).
*실상(實相) ; ①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변하지 않는 진리. ③집착을 떠난 청정한 성품.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거두절미(去頭截尾) ; 말이나 사건 등의 부차적인 설명은 빼어 버리고 사실의 요점(要點)만 말함.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단(疑團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선방(禪房) ; 참선(參禪)하는 방.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Posted by 닥공닥정
이뭣고 화두2013. 12. 12. 09:33

§(264) ‘이뭣고?’ 시삼마(是甚麼) 화두-화두 가운데에 최초의 화두고, 가장 근원적인 화두 / 단전호흡과 의심, 득력(得力) / 경계에 속지 말아야 / (게송)묵조시귀굴~.

이뭣고?’ 시삼마(是甚麼) 화두 - 화두 가운데에 최초의 화두고, 가장 근원적인 화두.

이 활구참선법은 캄캄한 밤에 기둥에 이마빡을 부딪친 거와 같은, 앞뒷이 딱 끊어져 버린 것입니다. 다못 꽉 맥혀 가지고, 알 수 없이 ‘이뭣고?’ 그 뿐인 것입니다.

어떠한 경계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것에 현혹되지 말고 집착허지 말고,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냥 내버려두고, 정신만 탁 챙겨 가지고 눈을 뜨고서 화두를 챙겨나가면 그러헌 경계는 금방 저절로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64) - 1985년 4월 첫째일요법회(91분)에서. (용264)

 

약 18분.

 

 

그런데 흔히 화두 하면 ‘이뭣고?’ 시삼마(是甚麼) 화두를 이야기하게 됩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화두 가운데에 최초의 화두고, 가장 근원적인 화두이기 때문에 ‘이뭣고?’를 많이 말씀을 허게 됩니다.

화두(話頭)라고 하는 말은 임제(臨濟) 스님 이후로 임제종에서 이 화두라고 하는 말을 쓰게 되었습니다마는, 임제 스님 이전에 육조(六祖) 스님도 화두라고 하는 말은 사용하지 아니했지만 ‘내게 한 물건이 있으니 위로는 하늘을 기둥하고 아래로는 땅을 떠받치며, 밝기로는 해보다 더 밝고 검기로는 옻칠보다도 더 검은데, 항상 동용(動用)허는 가운데 있으되, 동용허는 가운데에서 거두어 얻지 못하니 이것이 무슨 물건이냐?’ 이렇게 제자들에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 하택신회(荷澤神會)라고 하는 제자가 터억 앞에 나와서, ‘그것은 제불지본원(諸佛之本源)이며, 모든 부처님의 근원이며 신회지불성(神會之佛性)이로소이다. 이 하택신회에, 저의 불성(佛性)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 육조 스님이 ‘뭐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도 그릴 수도 없다고 내가 그랬거늘, 어찌 불성이니 제불의 본원이니 하고 이름을 붙이는고. 니가 앞으로 공부를 해서 일가(一家)를 이룬다 하드라도 너는 지해종사(知解宗師)밖에는 못 되겠다. 불교 학자밖에는 못 되겠다’

 

이 불교(佛敎)라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교리적으로 공부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참나’를 깨닫는 것이 목적인데, ‘너는, 앞으로 니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일가를 이룬다 해도 지해종자(知解種子)밖에는 못 되겄다’ 이렇게 점검을 허셨습니다.

 

그러자 남악회양(南嶽懷讓)이 왔습니다. 와서 터억 절을 허니까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이렇게 육조 스님이 물으셨습니다.

하! 그 육조 스님이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헌 물음에 대해서 꽉! 맥혀서 뭐라고 대답헐 수가 없어 몸을 둘 바를 몰랐습니다.

 

하택신회는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니, 무슨 하택신회의 불성이니 이렇게 즉각 그 대답을 했는데, 남악회양은 육조 스님이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허고 묻는데 대해서 앞이 꽉 맥혀 가지고 몸 둘 바를 몰라. 그 뒤로 8년 만에사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습니다.

 

8년 동안을 ‘대관절 이 무슨 물건인고?’

앉아서도 그 생각, 서서도 그 생각, 밥을 먹으면서도 그 생각, 일을 허면서도 그 생각, 똥을 누면서도 그 생각, ‘대관절 이 무슨 물건인고?’ 이렇게 허기를 8년 만에사 확철대오를 했어.

 

그래 가지고 육조 스님 앞에 가서 ‘설사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육조 스님이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아, 도리어 닦아 증(證)헐 것이 있느냐?’허니까,

‘수증(修證)은 즉불무(卽不無)어니와 오렴(汚染)은 즉부득(卽不得)입니다. 닦아 증(證)헐 것이 없들 않지마는 오렴은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너도 또한 그렇고 나도 또한 그렇다' 이렇게 해서 인가(印可)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참선법, 활구참선법은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더듬어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남악회양 선사처럼 대뜸 처음부터서 꽉! 맥혀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캄캄한 밤에 기둥에 이마빡을 부딪친 거와 같은, 캄캄하니 갑자기 걸어가다가 기둥이나 벼람박에 이마빡을 부딪쳤을 때 그때 상황이 어떻습니까? 앞뒷이 딱 끊어져 버린 것입니다.

다못 꽉 맥혀 가지고, 알 수 없이 ‘이뭣고?’ 그 뿐인 것입니다.

이렇게 꽉 맥혀서 앞뒷이 끊어져야 그 공부를 옳게 해 나가는 것이지,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상식, 이론, 무슨 철학, 불교 경전에 있는 부처님 말씀, 그것을 갖다가 아는 대로 끌어다가 이렇게 분석을 하고, 종합을 하고, 비교를 하고, 적용을 하고, 이렇게 해서 공부를 허는 것이 아닙니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도 그렇고, 마삼근(麻三斤)도 그렇고, 무자(無字) 화두도 그렇고, 시삼마(是甚麼)도 그렇고, 무슨 화두(話頭)를 어느 큰스님한테 탔든지 간에 한번 탔으면 그 화두,

공부가 잘되거나 못되거나, 못될수록에 그 화두 하나에 전력을 쏟을 것이고, 잘된다 하드라도 기쁘다 하는 생각을 내지 말고 다못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 무자 화두를 하는 분은 ‘어째서 무라 했는고?’ 다못 이렇게 지어갈 따름인 것입니다.

 

꽉 맥혀서 답답허고 알 수가 없지만 조금도 조급한 생각을 낼 것이 없고, 또 그렇게 해 가다 보면 화두가 순일하게 들려서 의심(疑心)이 순일(純一)하게 들린다 하드라도, 화두가 독로(獨露)한다 하드라도 기뻐하는 마음을 내서는 안 된다.

기쁜 마음을 내면 이미 화두는 달아나 버리고, 기쁜 마음의 마구니가 벌써 침입해 들어온 것이고, 안된다고 짜증을 내고 번뇌심을 내면 이미 번뇌의 마구니가 내 마음에 침입해 들어온 것이라. 그래서 이 공부는 잘된다고 해서 기쁜 마음도 내서는 아니되고, 잘 안된다고 해서 짜증낼 일도 아닌 것입니다.

 

다못 단전호흡을 허면서 숨을 쑤욱 들어마시면 아랫배가 볼록해지는데, 볼록해지거든 약 3초 동안 딱 정지했다가, 또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뭣고~?’허면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러면 숨이 다~ 나가면 배가 홀쪽해지죠. 그러면 또 스르르르 들어마시면은 아랫배가 볼록해지는데, 볼록해지거든 딱 정지헌 상태에서 약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또 숨을 내쉬면서 ‘이 뭣고?’ 이렇게 해 나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화두를 들고... 허지만, 차츰차츰 익숙해지면 꼭 숨을 내쉴 때마다 화두를 들지 아니해도 됩니다.

들었던 화두 ‘이뭣고?’헌 그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그냥 화두는 더 들지 않고, 그 있는 의심을 묵묵히 반조(返照)를 허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두는 한번 들고서 숨은 3번, 4번, 5번 내지 10번을 쉬어도 그 화두 의심이 고대로 있으면은 덮치기로 화두를 들지 않다가, 화두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없어지거나 딴 생각이 일어났다허면 그때 가서 또 화두를 떠억 한번씩 챙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일구월심(日久月深)해 가면, 처음에는 그렇게 들랴고 해도 깜빡한 사이에 달아나 버리고 들면 또 달아나 버리고 하는데, 나중에는 들지 아니해도 저절로 화두가 항상 들어져 있게 될 때가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그때는 그것을 갖다가 공부가 많이 익숙해진 증거인 것입니다.

 

힘을 쓰지 아니해도 저절로 공부가 되어가니까 힘을 덜게 된다. ‘힘 덜게 되는 것을 득력(得力)이라, 힘을 얻는 것이라’ 이렇게 고인(古人)네들은 표현을 했습니다.

 

이 공부에 제일 주의헐 것은 사량분별로 따지지 말 것이며, 설사 공부가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순일허게 잘 들리고 의단이 독로헌다 해도 좋아하는 마음, 환희심(歡喜心)을 내지 말 것이다.

 

또 공부가 순일허게 잘되어 갈 때에 ‘빨리 깨달랐으면, 이럴 때 누가 나로 하여금 탁! 깨닫게 해줬으면’ 그러헌 생각도 내지 말 것이다.

 

또 공부가 그렇게 순일하게 잘되어 가게 되면은 여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어떠한 그 신기한 경계(境界)가—혹 환한 빛을 광명을 본다던지, 꿈에 부처님을 친견하고 꿈에 어떤 깨달은 꿈을 꾼다든지, 또는 여러 가지 뭣이 알아진다든지, 그런 신기한 경계가 나타난다 하드라도 ‘이것은 일시적으로 스쳐가는 환상(幻相)이다’ 생각하고. ‘이거 내가 깨달은 것이 아닌가?’ 그러헌 그 외람(猥濫)되고 잘못된 생각을 내지 말고.

 

어떠한 신기한 불보살이 나타나고 신기한 경계가 나타난다 하드라도 이것은 허상(虛像)이요, 환상이라 하는 것을 미리부터 잘 이해를 허시고, 그런 데에 현혹되지 말고 집착허지 말고.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냥 내버려두고, 정신만 탁 챙겨 가지고 눈을 뜨고서 화두를 챙겨 나가면 그러헌 경계는 금방 저절로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스승을 바로 만나지 못하고, ‘어떻게 해야 옳게 해 나가는 것인가’를 잘 모르는 사람은 공부허다가 이런 허상과 환상과 마경(魔境)이 나타나면 이것이 도통(道通)헌 것으로 착각을 하고, 그것에 기쁜 마음을 내고 그것에 집착을 하고 신경을 써 가지고 영영 사도(邪道)에 빠지고, 까딱하면 정신병자가 되고 하는 예도 가끔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공부는 시작할 때부터서 바르게 시작을 해야 하고, 중간에도 바르게 해 나가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묵조시귀굴(黙照是鬼窟)이요  문자역조강(文字亦糟糠)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문해하종(若問解何宗)인댄   방행여우적(棒行如雨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묵조(黙照)는 시귀굴(是鬼窟)이요. 묵묵히 앉아서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이 귀신의 굴택(窟宅)이요.

문자(文字)는 역조강(亦糟糠)이다. 문자, 이론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은 이것은 다 찌꺼기더라 그말이여.

 

참선을 허되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허면서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이 독로(獨露)허도록 잡드리를 해 나가야지,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이 그냥 조용헌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 나가는 그러헌 공부는 이것은 묵조사선(默照邪禪)이라 해 가지고, 이것은 아무리 평생을 들여다보고 있다 허드라도 이것은 귀신굴(鬼神窟) 속에서 살림살이를 허는 것이라 해서 영원히 깨달을 분(分)이 없는 것입니다.

설사 오신통(五神通)이 난다 허드라도 이것은 정법(正法)이 아니고 외도선(外道禪)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전(經典)이라 하더라도 경전을 우리의 중생 분별심으로 사량분별로 이리저리 따져서 해석을 허고 있다면, 그것은 곡식의 바른 알곡을 먹지를 못하고 그 찌꺼기를 씹고 있는 것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부처님 경전도 그 경전을 바로 읽고 바로 봐서 부처님의 그 참뜻을 옳게 깨달라야지, 그것을 이론적으로 따지고 문자로 그것을 분석해서 그렇게 일생 동안을 경을 읽고 연구를 헌다해도 그것은 찌께기—엿 국 다 뽑아내고 엿기름 찌께기를 그것은 돼지나 주는 것인데 그것을 갖다가—엿 국물은 받아서 구정물 통에 붓어 버리고 그리고 그 엿밥, 찌께기를 먹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약문해하종(若問解何宗)이면, 그렇다면은 묵조(默照)도 아니오, 문자를 (연구하는) 것도 아니라면,

'그렇다면 그대가 공부해 나가는 종지(宗旨)가 무엇이냐? 그대가 공부해 나가는 것은 어떠헌 공부를 허느냐? 무슨 목적으로 어떠헌 공부를 허느냐?’허고 묻는다면은,

 

방(棒)을 내리기를, 방맹이로 몽둥이질을 허기를 비 쏟아지듯이 몽둥이질을 허리라[棒行如雨滴].

‘그 무슨 공부를 허느냐? 그대가 하는 공부의 지취(旨趣)가 무엇이냐?’고 묻다가 뭇매를 맞게 된다 이것입니다.

 

어째서 ‘그대의 공부허는 종지가 무엇이냐?’하고 묻는데 방맹이를 맞게 되느냐?

여러분이 참선을 열심히 허시게 되면 이 뜻을 스스로 아시게 될 것입니다.(61분32초~1시간19분4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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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임제, 육조, 하택신회, 남악회향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임제종(臨濟宗) ; 중국 선종 제6조(祖) 혜능(慧能)으로부터 남악(南嶽)·마조(馬祖)·백장(百丈)·황벽(黃檗)을 거쳐 임제의현(臨濟義玄, ?-867)에 이르러 일가(一家)를 이룬 종파이다.

임제종은 북방에서 널리 성행했는데, 송대(宋代)에 석상 초원(石霜楚圓) 문하에서 양기 방회(楊岐方會)의 양기파와 황룡 혜남(黃龍慧南)의 황룡파가 나와, 양기파는 성행했으나 황룡파는 얼마 안 가 쇠퇴함.

양기파 문하의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는 천만 가지 의심도 결국은 하나의 의심에 지나지 않으며, 화두(話頭)의 의심이 깨뜨려지면 천만 가지 의심이 일시에 사라진다고 하여 화두와 정면으로 대결할 것을 역설했는데, 그의 선풍(禪風)을 간화선(看話禪)이라 한다.

*동용(動用) ; 몸을 움직거리고[動] 정신을 씀[用]. 움직이고 작용함. 활동. 동용(動容)이라고도 한다.

[참고] **송담스님(No.306) - 86년 8월 화두·불명·수계 법회(86.08.03)에서.

이 자(字)는 ‘보일 시(示)’자 입니다. 보일 시(示). ‘보인다’ 그말이여.

이 밑에 여러분의 불명(佛名)이 쓰여져 있습니다. '김 아무개에게 보인다' 아래와 같은 공부하는 법을 보여드린다.

 

유일물어차(有一物於此)하니 상재동용중(常在動用中)하되, 한 물건이 여기에 있으니 항상 움직여 쓰는 가운데 있으되, 몸을 움직거리고[動] 정신을 쓰고[用] 하는 그 가운데 이 '한 물건'이 항상 있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 몸을 움직거리고 정신을 쓰고 하는 그 가운데에 그놈을 찾으면 얻을 수가 없어[動用中收不得]. 분명히 소소영령(昭昭靈靈)하게 있는데 그놈을 거두어 찾을라고 하면 얻을 수가 없다. 눈으로 볼라고 해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 잡을라고 해도 잡히지도 않고, 생각으로 아무리 그놈을 알라고 해도 알 수가 없더라.

그러니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한문으로는 시삼마(是甚麼). 우리말로는 ‘이것이 무엇인고?’ 줄여서 ‘이뭣고?’(33분18초~35분)

*지해종사(知解宗師) ; 참선 공부를 알음알이로 따져서 해석하고 강론하고 공부해 가는 강사나 이론가를 말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가로판 p149~151)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벼람박 ; ‘바람벽(--壁, 집의 둘레 또는 방의 칸막이를 하기 위해 만든 벽)’의 사투리.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마삼근 (麻三斤) : 화두의 하나。『어떤 것이 부처님입니까?』하는 물음에 대하여, 운문종(雲門宗)의 동산(洞山) 수초선사(守初禪師)가 대답하기를 『마 삼근(삼 서근)이니라』하였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반조(返照) ; 돌이켜 살펴보는 것.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 · 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참고] 『서장(書狀)』 (대혜종고 著) ‘증시랑(曾侍朗)에게 답함(여섯 번째)’

苟念念에 不退初心하고 把自家心識이 緣世間塵勞底하야 回來抵在般若上이면 雖今生에 打未徹이라도 臨命終時에 定不爲惡業所牽하야 流落惡道하고 來生出頭에 隨我今生願力하야 定在般若中하야 現成受用하리니 此時決定底事라 無可疑者니라.

 

참으로 생각생각에 초심(初心)에서 물러나지 말고 자기 자신의 마음이 세간의 번뇌와 반연하는 것을 잡아 돌이켜 반야(般若) 위에 이르게 하면, 설령 금생에 (이 일을) 타개打開하여 사무치지 못하더라도 임종시에 결정코 악업(惡業)에 이끌리는 바가 되어 악도(惡道)에 흘러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며, 내생에 태어나면 나의 금생 원력에 따라 반드시 반야 가운데에 있어 수용(受用)을 현전 성취(現前成就)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결정적인 일이라, 의심할 게 없는 것입니다.

 

衆生界中事는 不著學하야도 無始時來로 習得熟하며 路頭亦熟이 自然取之에 左右逢其原하니 須著撥置니이다.

出世間學般若心은 無始時來로 背違라 乍聞知識의 說著이어도 自然理會不得하나니 須著立決定志하며 與之作頭抵하야 決不兩立이니다.

 

중생계의 일은 배우지 않더라도 아득한 옛날부터 익혀서 무르익어졌으며, 인생길에도 역시 익어져서 자연스레 취하여 그 중생계의 일 속으로 들어가니, 마땅히 이 습기를 없애 버리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에) 세간을 나와서 반야(般若)를 배운다는 마음은 시작을 알 수 없는 때로부터 등지고 어겨왔으므로 잠깐 선지식의 설법(說法)을 듣는다 해도 쉽사리 이해되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결정(決定)한 뜻을 세워서 더불어 머리를 맞대고 겨루어 나가야 합니다. (습기와 반야는) 결코 양립되지 않습니다. 

 

此處에 若入得深하면 彼處는 不著排遣하야도 諸魔外道가 自然竄伏矣니이다. 生處는 放敎熟하고 熟處는 放敎生이 政爲此也니 日用做工夫處에 捉著欛柄하면 漸覺省力時가 便是得力處也니이다.

 

이 곳[般若心]에 깊이 들어가게 되면 저 곳은 (습기를 굳이) 물리쳐 보내지 않아도 모든 마(魔)와 외도가 자연히 항복해 숨을 것입니다. 설은 곳[生處]은 익게 하고, 익은 곳[熟處]은 설게 함이 바로 이 때문이니, 일용에 공부하는 곳에서 요점을 잡고[欛柄] 차츰 힘이 덜어진다고 느낄 때가, 바로 그때가 힘을 얻는 곳입니다.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환상(幻相) ; 실체가 없는 무상한 형상.

*외람되다(猥濫-- 함부로·외람할 외/함부로·넘치다 람) ; (언행이나 생각이)분에 넘치는 데가 있다.

*마경(魔境) ; 마(魔)의 경계(境界).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번뇌를 말한다. 마(魔)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도통(道通) ; ①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훤히 통함. ②깨달음.

*사도(邪道) ; 올바르지 않은 삿된 길.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길.

*(게송) ‘묵조시귀굴(黙照是鬼窟)~’ ; 『청허당집(淸虛堂集)』(동국대학교역경원) p63 ‘일선자(一禪子)에게’ 게송 참고.

*굴택(窟宅) ; 거처, 집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묵조사선(默照邪禪) ;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이, 그냥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 나가는 그러한 공부. 이것은 깜깜한 귀신굴(鬼神窟) 속에서 살림살이를 하는 것이라 해서 영원히 깨달을 분(分)이 없는 것이다.

*오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 다섯 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①신족통(神足通)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변할 수 있는 능력.

②천안통(天眼通) 모든 것을 막힘없이 꿰뚫어 환히 볼 수 있는 능력.

③천이통(天耳通) 모든 소리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는 능력.

④타심통(他心通) 남의 마음 속을 아는 능력.

⑤숙명통(宿命通)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능력.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94-95 참조.(가로판 p99~100)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누진통(漏盡通) ;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정법(正法 바르다·올바르다 정/부처님의 가르침 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정법시대(正法時代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엿 국물(엿물) ; 곡식을 엿기름으로 삭힌 뒤에 자루에 넣어 짜낸 국물. 맛이 달고 끈적끈적하다. 엿 국물을 고아 굳힌 것이 우리가 보통 먹는 ‘엿’이다.

*엿밥 ; 엿을 만들 때 엿물을 짜내고 남은 밥찌끼.

*종지(宗旨 근원 종/뜻 지) ; ①종문(宗門, 종파宗派)의 교의(敎義 어떤 종교의 진리로서 공인된 가르침)의 취지(趣旨 긴요한 뜻). ②주장이 되는 요지나 근본이 되는 중요한 뜻.

*지취(旨趣 뜻 지/뜻 취) ; ①어떤 일에 대한 깊은 맛. 또는 그 일에 깃들여 있는 묘한 뜻. ②취지(趣旨 어떤 일에 대한 기본적인 목적이나 의도).

Posted by 닥공닥정
이뭣고 화두2013. 12. 7. 13:45

§ 활구 ‘이뭣고’ (본참공안)

 

**송담스님(No.88) - (참선법A) 법련사 불교학생회 청법 법문(1978.10.1)에서. (용088)

 

약 8분.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화두)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

요새 일본식 참선이 수입이 돼 가지고 화두 하나를 이리저리 따져서 “아, 이런 것이다!”, 또 그 다음에 다른 화두를 이리저리 따져서 자기 나름대로 또 하나를 해결 지어 놓고 또 다른 화두를 하고 해서, 10개 20개······, 화두를 이렇게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며 참선을 하는 지성인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이런 참선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쪼끔 생각 있는 사람이면 능히 알고도 남을 상식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차라리 참선을 안하고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을 부를지언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합니다. 활구참선을 해야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뭣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3초 동안 머물렀다 내쉴 때, “이··· 뭣고······?”

다 내쉬면 스르르 숨을 들이마시되, 들이마시면서도 아까 그 ‘이뭣고’ 한 그 의심의 그 여운이 그때까지 오도록 그렇게 조용하게 관조를 하는 것입니다.
3초 동안 머무르는 동안에도 그 의심을 묵묵히 관조하다가 조용하게 내쉴 때에 다시 또, “이···뭣고······?”

처음에는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쉴 때마다, “이···뭣고······?” 이렇게 하다가 차츰차츰 딴 생각은 줄어들고 ‘이뭣고?’ 가 잘 되어지면, 두 번 들이마셨다 내쉴 때 한 번씩만 ‘이뭣고?’ 를 들다가, 나중에 더 익숙해지면 다섯 번 호흡하는 동안 ‘이뭣고?’ 한 번의 의심으로 쭉 이어지도록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공부가 더욱 익숙해지면 아침에 눈 딱 떴을 때, “이···뭣고······?” 한 번 해놓으면 하루 종일 그 ‘이뭣고?’ 한번으로 살아갈 수 있게끔 될 때가 꼭 올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안 깨달을래야 안 깨달을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일상 생활이 바로 알 수 없는 화두 하나로써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화두를 들고서 밥도 먹고, 똥도 누고, 차도 타고, 걷기도 하고, 사람하고 대화도 하고,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팔만 사천 마구니(魔軍)가 엿보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팔만 사천 마구니가 무엇이냐 하면 바로 팔만 사천 번뇌 망상인데, 화두가 독로(獨露)한 사람한테는 와서 들어 붙지를 못합니다.

잠깐 잠깐 필요 있는 생각이 떠오르면 그 필요한 일을 적절히 처리하되, 나의 이 화두 일념은 근본적으로 흔들림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나를 깨닫는 길이요, 우주법계의 주인공이 되어서 우주법계를 내가 요리해 나가고, 내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운전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운전을 하는 것입니다.

이 법이 바로 불법(佛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입니다.

팔만대장경에 그렇게 많은 법문이 있지마는 그 말씀을 하나로 뭉치면 지금 내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이 법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76분35초~84분2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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回 이 법어는 송담(松潭)스님께서 1978년 10월 1일, 「법련사 불일 청년회」의 청법으로 설하신 내용이며, 스님께서 직접 편집하신 것을 『불일회보』(1988년 6. 7. 8월)에 게재했었던 원고임.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생사윤회(生死輪廻)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세간(世間)의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받을 때,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음성(音聲)을 듣고(觀) 대자비와 지혜로써 자유 자재로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는 보살.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왼쪽 보처(補處). (범어) 'Avalokitesvara'의 한역(漢譯).
*아미타불(阿彌陀佛) ; Amitabha Buddha(無量光佛-무한한 공간에 꽉 차 있어서 안팎과 갓이 없는 빛의 부처님), Amitayus Buddha(無量壽佛-무한한 시간에 뻗치어서 끝없는 생명의 부처님) 대승불교의 중요한 부처님. 줄여서 미타(彌陀).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Buddha)의 감화를 받은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가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로 기원하였다. 또 48원(願)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오랜 겁을 수행한 결과 지금부터 10겁 이전에 그 원행(願行)이 성취되어 아미타불이 되었다.

*관조(觀照) ; 참된 지혜의 힘으로 사물이나 이치를 통찰함.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번뇌(煩惱) ; 나쁜 마음의 작용. 번요뇌란(煩擾惱亂)의 뜻.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망상(妄想) ;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독로(獨露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