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재(영가천도)2017. 10. 10. 09:36

§ (9)송담스님 영가천도 법문.(백년삼만육천일~, 불시물혜조병모~)

 

(1) 약 21분.

 

(2) 약 4분.

 

(1)------------------

 

백년삼만육천일(百年三萬六千日)에  반복원래시자한(返覆元來是這漢)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오늘은 〇〇〇 영가(靈駕) 49재(四十九齋) 천도(薦度)일입니다.

 

방금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으로, 생사 없는 도리,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설하신  법문(法門)으로 영가는 무량 억천만 겁에 모든 죄업(罪業)이 봄눈 녹듯이  녹아져 없어졌고.  생사 없는 도리에, 영각성(靈覺性) 깨달아서 바로  생사 없는 도리에 계합(契合)을 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인생이 이생에 태어날  어데서 왔으며, 무엇을 하기 위해서 왔으며,  한평생 살다가 가면 어디를 향해서 가는가?

 

부처님으로부터 33, 법(法)을 이어받으신 육조(六祖) 스님께서—‘육조 스님은 바로 생불 화현(生佛化現)이다. 보살 화현(菩薩化現)이다 이렇게 추앙을 받는 대도인이신데, 남악회양 선사(南嶽懷讓禪師)가 육조 스님 앞에 와서  절을 했습니다.

 

“십마물(什麽物)이 마래(恁麽來)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이렇게 육조 스님이 물으시니까, 남악회양 선사는 망지소조(罔知所措)여, 몸  바를 몰라.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하고 묻는 데에 대해서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어. 뭐라고 대답해야 할런지 아주  막혀 버렸어. 콱! 맥혀가지고 8 만에사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습니다.

 

하택신회(荷澤神會) 선사는, 육조 스님께서 내게  물건’이 있는데, 위로는 하늘을 괴고 아래로는 땅을 괴는데, 밝기는 해와 같고 검기는 칠(漆)과 같다. 뭐라고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뭐라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다. 그러니 이게 무슨 물건이냐?”하고 묻는데,

하택신회 선사는 대답하기를 제불지본원(諸佛之本源)이며, 모든 부처의 근원이며, 신회(神會)의 불성(佛性)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육조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금방 말하기를 뭐라고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뭐라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다 했거늘, 어찌 제불의 본원이니, 신회의 불성이니 하고  이름을 붙이는고? 네가 앞으로 공부를 해서 어떠한 지경에 이른다 하더라도 너는 지해종도(知解宗徒)밖에는  되겠구나 이렇게 점검을 하셨습니다.

 

교리적으로  때에 이론적으로 본다면 틀림없이 모든 부처의 본원이며, 신회의 불성이라  말이 조금도 틀린 말이 아니고 너무나도 분명하게 일렀건만, 어째서 육조 스님께서는 네가 앞으로 어떤 지견을 얻는다 하더라 너는 지해종도, 이론적으로 따지는 사량분별(思量分別)로 교리를 따지는 그런 강사 그러한 것밖에는  되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냐  말이여.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사량분별심으로 따져서 알아지는 것이 아니고, 따져서 알아지는 것은 아무리 그럴싸한 해답을 얻었다 하더라도 마침내 사량분별심을 뛰어넘지 못하기 때문에 사량분별심으로 따지면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라 그것은 알음알이라, 이것은 최상승법(最上乘法)이 아니요, 활구참선(活句參禪)이 아니여.

 

남악회양 선사는 “십마물(什麽物)이 마래(恁麽來)오하고 묻는데  혀서 뭐라고 입을 벌릴 수가 없고,   바를 몰라.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 활구참선을   있는 사람이다.

 

벌써 사견종자, 지해종자는  마음가짐이라 할까? 그 종자(種子)가 다르다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공안을, 화두를 꺼떡하면 분별심으로 따져서 알아맞추려 그러고, 분별심으로 공안을 더듬어서 비교하고, 이러한 식의 참구(參究)는 벌써 이것은 사견(邪見)종자의 하는 서리다 그말이여.

 

8 동안을  혀서  수가 없고, 이렇게   상태에서 참구를 해야 거기에 확철대오   있는 길이 있다 그말이여.

확철대오   있는 길은  혀서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야지, 이리저리 따져서 알아들어가고 더듬어서 짐작을 하고 비교하고 이러한 식의 공부가 아니다.

 

8 만에사 확철대오를 해가지고 육조 스님 앞에 남악회양 선사가 갔습니다. “제가 깨달았습니다

깨달았으면 깨달은 도리를 일러봐라

설사일물(說似一物)이라도 즉부중(卽不中)입니다. 설사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습니다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아, 도리어 닦아 증(證)할 것이 있느냐?”

남악회양 선사가 대답하기를 수증(修證)은 즉불무(卽不無)어니와 오렴(汚染)은 즉부득(卽不得)입니다. 닦아 증할 것이 없지는 않지만 오렴은 얻들 못합니다. 오렴은 없습니다

 

여역여시(汝亦如是)하고 오역여시(吾亦如是)여. 너도 또한 그렇고 나도 또한 그렇다 이렇게 인가(印可)를 하셨습니다.

 

 

〇〇〇 영가는 금년 나이 21, 대학을 졸업하고 펄펄 뛰는 청년이 친구와 더불어 호수에 헤엄을 치러갔다가, 물에 풍덩 뛰어들자 가라앉아서 허망하게도 이승을 하직을 했습니다.

어떻게 펄펄 뛰는 유능한 청년이 그렇게 허망하게도 물에 들어가서 풍덩 뛰어들자마자 가라앉아 가지고 숨을 거두느냐 그말이여.

그렇게 살다가  것을 뭣하러  세상에 왔느냐 그말이여. 차라리 오지나 말았으면 부모형제와 일가친척의 피눈물이 나오지 않게나  것을. 무엇하러 그렇게  것을 왔을까  말이여.

 

누가 그렇게 가고 싶어서 왔겠습니까마는, 전생에부터 지은 업(業)이부모와의 관계, 형제간과의 관계, 자기가 전생에 지은 그러한 여러 가지의 업이 그렇게 왔다가 그렇게 갈 수밖에는 없었다  말이여.

그래서 사람은 기왕 업(業)을 지을 바에는 바르게 업을 지어야 해. 좋은 업을 지어야 한다 그말이여.

 

악한 업이나 좋은 업이나 업을 짓지 아니한 것만은 못하지만, 기왕 사람이 태어나서 업을 지을 바에는 좋은 업을 지어야 하고, 바른 업을 지어야 하고, 좋은 업보다도  함이 없는[無爲] 업’을 지어야 한다 그말이여.

함이 없는 , 무루업(無漏業), 샘이 없는 업을 지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최상승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실천하면 바로 함이 없는 , 샘이 없는 업을 닦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도 이 49재에 이 정법도량에 와서 49재에 천도 법요를 갖게 된 인연이 있는 것으로 봐서 이 불법(佛法)에 숙세의 인연이 있는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비록 금생에는 그렇게 허망하게 이승을 하직했지만, 이 인연 공덕으로 조실 스님의 최상승 법문을 듣고 또 이 청정한 대중스님네의 천도 법요식을 통해서 이 용화사 법보선원에 법보제자(法寶弟子)로 만년위패(萬年位牌)에 모셔서 동참(同參)을 하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새로 새 몸을 받아 날 때까지 이 법보전(法寶殿)에서 청정대중으로서 법문을 듣고 참선(參禪)을 해서 머지않은 장래에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하거나, 극락세계(極樂世界)나 또는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왕생(往生)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와서, 〇〇〇 영가는 무슨 인연으로 이생에 와서  꽃이 활짝 피기도 , 21세의 꽃봉우리로서 이승을 그렇게 허망하게 하직을 하게 되었느냐?

대관절 무슨 물건이냐?” “십마물(什麽物)이냐?”  한마디는 40 인구는 말할 것도 없고, 육도법계(六途法界)의 가득차 있는 모든 인비인(人非人), 축생, 유형무형의 모든 존재가 타파해야 할 과제입니다.

 

오늘부터  49재를 맞이한 영가와 여기에 초청받은 육도법계의 모든 영혼 불자들도 ‘십마물(什麽物)이요?’ ‘이뭣고?’  공안으로써 필경(畢竟) 타파(打破)해서 생사 없는 도리에 계합이 되시기를 바랍니다.(처음~20분56초)

 

 

 

 

 

(2)------------------

 

불시물혜조병모(不是物兮早騈拇)  허다명상부하위(許多名相復何爲)인고

나무~아미타불~

관간첩장연하리(慣看疊嶂烟霞裏)에  무수호손도상수(無鬚猢猻倒上樹)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마물(什麽物)고? 불시물혜조병모(不是物兮早騈拇)여. ‘  물건도 아니다.  물건이라 해도  않다해도 벌써 군더더기다 그말이여.

조병모(早騈拇), 병모(騈拇) 육손이. 사람마다 다섯 손가락이 있는데 손가락 하나가 군더더기로 더 붙어 있는  그말이여.

 

허다명상부하위(許多名相復何爲). 허다한 명상(名相)  밖에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는데,  밖에 뭐라고 이름을 붙이고, 뭐라고 모양을 그려댄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말이여.

관간첩장연하리(慣看疊嶂烟霞裏)에, 언제나 첩첩산중에 안개와 연기가 자욱한 속에서, 수염 없는 원숭이가 나무를 거꾸로 올라가는구나.(20분57초~24분28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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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百年三萬六千日  返覆元來是這漢’ ; ‘백 년 삼만육천 일에 반복하는 놈이, 엎어졌다 뒤집어졌다 하고, 일어났다 꺼졌다 하고, 왔다 갔다 하는 이 반복하는 놈이 원래로 이놈이다’ 오조법연(五祖法演) 화상의 진영(眞影) 찬(讚) 끝에 있는 두 글귀.

 

[참고] 『고봉화상 선요(高峰和尙 禪要)』 (통광 역주 | 불광출판부) ‘通仰山老和尙疑嗣書(其二八)—앙산 노화상께 사법(嗣法) 의심함을 풀어주는 글’ p168~169. p173~174 참고.

忽於次月十六夜夢中에  忽憶斷橋和尙이  室中所擧萬法歸一一歸何處話하니  自此疑情頓發하야  打成一片하야  直得東西不辨하며  寢食俱忘이라

어느덧 다음 달 16일 밤이었습니다. 꿈속에서 홀연히 단교화상이 방장실(方丈室)에서 일러 주신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고?”하는 화두가 문득 생각났습니다. 그로부터 의심이 단박 생겨 일념을 이루어서 동과 서를 잊었으며, 잠자는 것도 밥먹는 것도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至第六日하야  辰巳間에  在廊下行이라가  見衆僧堂內出하고  不覺에  輥於隊中하야  至三塔閣上하야  諷經이라가  擡頭忽睹五祖演和尙의  眞讚末後兩句에 云  百年三萬六千朝  返覆元來是這漢하고  日前被老和尙의  所問拖死屍句子를  驀然打破하니  直得魂飛膽喪하야  絶後再甦이라  何啻如放下百二十斤擔子리잇고  乃是辛酉三月廿二少林忌日也러이다  其年이  恰廿四歲요

 

그러한지 6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진시(辰時)에서 사시(巳時) 사이에 행랑(行廊) 아래서 거닐다가 대중 스님들이 승당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대열에 섞여 삼탑각에 올라갔습니다. 경을 외우면서 머리를 들어 문득 오조법연 화상의 진찬(眞讚)의 끝 두 글귀에 “백년 3만 6천 일을 반복(返覆)하는 것이 원래 이놈이다” 한 것을 보자, 전에 스님께서 다그쳐 물으시던 ‘송장 끌고 다니는 놈’이라는 화두를 확연히 깨달으니 곧 혼이 나가고 담이 없어진 듯하고 죽었다가 다시 소생한 듯하였습니다. 어찌 백이십 근의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은 것과 같을 뿐이었겠습니까.

그때가 바로 신유(辛酉)년 3월 22일 달마 대사 기일(忌日)이었고 제 나이 24세가 되었습니다.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재(薦度齋) 등의 의식과 위패(位牌) 등에서 망자(亡者 죽은 사람)의 성명 뒤에 호칭으로 붙인다.

*사십구재(49재, 四十九齋) ; 사십구일재(49일재, 四十九日齋) 또는 칠칠재(7 · 7재, 七七齋).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면서 또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어(천수경, 무상계, 반야심경, 장엄염불, 금강경 등), 한 생각 돌려 무상을 깨달아 윤회를 벗어나 해탈의 길로 들어서도록 하기 위해 죽은 날로부터 7일마다 7회에 걸쳐 행하는 영가를 위해 베푸는 법회의식.

불교의 내세관(來世觀)에서는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이 죽어서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의 49일 동안을 중음(中陰)이라 하는데, 이 기간 동안에 과보를 받을 다음 생이 결정되므로, 이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어 영가가 죄업을 참회하고 지혜의 눈을 밝혀 해탈의 길을 가도록 이 재(齋)을 지냄.

특히,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는 날이 죽은 지 49일째 되는 날이라고 하여 7회째의 재(齋)를 중요시함.

 

불경(佛經)에서 설한 바에 의하면 사람의 존재 상태를 4가지로 구분하는데, 그것은 ①생유(生有: 태어나는 순간) ②본유(本有: 生에서 死까지 생애) ③사유(死有: 죽는 그 순간) ④중유(中有: 이생에 죽어서 다음 生까지를 말함)이다.

이들 중 네 번째의 중유(中有)의 상태의 정상적인 기간이 49일이다. 즉 사람이 죽은 뒤에는 일반적인 경우 49일이면 중유(中有)가 끝나고 다음 생(生)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다음 생이 결정되기 전인 48일째에 정성을 다하여 영혼의 명복을 비는 것이 49일재이다.

*천도재(薦度齋) ;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에 따라 다음 생을 받게 되는데, 유족들이 불보살(佛菩薩)을 모신 법당(法堂)에서 돌아가신 영가를 청해 모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하고 또한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門)’을 들려줌으로써,

영가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혜의 눈을 밝혀 삶의 무상을 깨달아 이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보다 좋은 곳으로—더 나아가 육도윤회를 벗어나 극락왕생 · 해탈의 바른 길로 잘 건너가도록 하는 불교의식.

*전강선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영각(靈覺) ; 영각성(靈覺性). 모든 중생에게 갖추어진 영묘(靈妙)하게 알아차리는 성품.

*계합(契合 맺을 계, 합할 합) ;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

*부처님 ; 불(佛)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buddha의 음사.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지자(知者), 각(覺)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법(法) : [범] dharma [파] dhamma 음을 따라 달마(達磨•達摩) 또는 담무(曇無)로 써 왔다。온갖 것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이니, 온갖 일과 모든 물질이며, 온갖 이치와 옳은 것(是), 그른 것(非), 참된 것(眞), 거짓된 것(妄)이 모두 이 「달마」에 들어 있다。그러나 흔히 부처님이 가르친 교리만을 법이라고 한다.

*육조 스님, 남악회향선사, 하택신회선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생불(生佛) ; ‘현실로 살아있는 부처님’이라는 의미로, 부처님과 같이 덕이 높은 사람을 존칭하여 부르는 말로 고승(高僧 행동이나 덕이 높은 스님)을 찬미하는 호칭이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보살(菩薩) :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각유정(覺有情), 개사(開士), 대사(大士)등으로 번역.

①성불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②대승교에 귀의, 사홍서원을 발하여 육바라밀을 수행하며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자리 • 이타(自利 • 利他)의 행을 닦으며 51위의 수행계단을 지나 드디어 불과(佛果)를 증득하는 이.

*망지소조(罔知所措 그물·근심할·없을 망/알 지/ 바·방법 소/둘·처리할·조처할 조) ; 너무 당황하거나 급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고 갈팡질팡함.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한 물건 ; 일물(一物). 일상(一相). ‘한 물건’ ‘한 모양’이란 불교에서 진여(眞如)의 본체를 들어 일컫는 말이다.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 11~13.

有一物於此호대  從本以來로  昭昭靈靈하야  不曾生不曾滅이며  名不得狀不得이로다

 

여기에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일찌기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음이로다.

 

(註解) 一物者는  何物고  〇  古人이  頌云,  古佛未生前에  凝然 一相圓이라  釋迦도  猶未會어니 *迦葉이  豈能傳가 하니  此一物之所以不曾生不曾滅이라  名不得狀不得也라

六祖가  告衆云하사대  吾有一物하니  無名無字라  諸人은  還識否아 하시니 神會禪師가 卽出曰,  諸佛之本源이요  神會之佛性이니다 하니  此所以爲六祖之孽子也라

懷讓禪師가  自嵩山來어늘  六祖問曰,  什麼物이  伊麼來오 師가 罔措라가  至八年에사  方自肯曰,  説似一物이라도  卽不中이니다 하니  此所以爲六祖之嫡子也라

 

한 물건이란 무엇인가?  〇  옛 사람이 송하기를  「옛 부처 나기 전에 한 상이 두렷이 밝았도다. 석가도 몰랐거니 가섭이 전할손가」하니, 이것이 한 물건의 나는 것도 아니요, 죽는 것도 아니며,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는 까닭이다.

육조스님이 대중에게 이르시되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이름도 없고 자(字)도 없다。너희들은 알겠는가?”하시니 신회선사가 곧 나와 말하기를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요, 신회의 불성입니다”하니, 이것이 육조의 서자가 된 까닭이다.

회양선사가 숭산에서 와뵈니 육조스님이 물으시되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하시니 회양은 어쩔줄을 모르다가 팔 년 만에야 깨치고 나서 말하기를 “설사 한 물건이라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하였으니 이것이 육조의 적자가 된 소이이다.

*칠(漆 옻나무·옻나무 진·옻칠할·검다 칠) ; 옻칠(옻나무에서 나오는 진津으로 가구나 나무 그릇 따위에 썩는 것을 막고, 아름답게 꾸미고 윤을 내기 위하여 옻을 바르는 일).

*지해종도(知解宗徒) ; 참선 공부를 알음알이로 따져서 해석하고 강론하고 공부해 가는 사람.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지서리 ; ‘짓거리('짓'을 낮잡아 이르는 말)’의 사투리. *짓 : 몸이나 몸의 일부를 놀려 움직이는 행동이나 행위를 나타내는 말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身]으로나, 말[口]로나, 뜻[意]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무위(無爲) ; ①(산스크리트어: asaṃskrta, 팔리어: asavkhata) 무위(無爲)는 조작(造作: 만들다)의 뜻이 없는 것으로 유위의 대(對)가 되며, 조작되지 않은 세계, 즉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세계, 즉 생멸변화를 떠난 절대적이며 항상 존재하는 진리 또는 진리의 세계를 뜻한다.

②온갖 분별이 끊어진 마음 상태. 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마음 상태. 분별과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마음 상태.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의 삼독(三毒)이 소멸된 열반의 상태.

*무루업(無漏業 없을 무/샐·구멍·번뇌 루/선악의 소행所行 업) ; 번뇌없는 청정한 업. 오염된 과보도 청정한 과보도 초래하지 않는 업으로 생사를 벗어나는 조건이다. '무루'란 번뇌가 없거나 더이상 번뇌를 증장시키지 않는 것을 일컫는다. 유루업과 대칭된다.

[참고]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曇無讖 譯) 권37 ‘迦葉菩薩品 第十二之五’

迦葉菩薩白佛言  世尊  是無漏業  非是黑法  何因緣故  不名爲白  善男子  無有報故  不名爲白  對治黑故  故名爲白  我今乃說  受果報者  名之爲白  是無漏業  不受報故  不名爲白  名爲寂靜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이 무루업은 삿되고 더러운 흑법(黑法)이 아닌데, 어떤 인연으로 청정하고 선한 백법(白法)이라 하지 않습니까?’

‘선남자여, 과보가 없다고 하여 청정하다[白]고 하지 않으며, 삿되고 더러운 것[黑]을 대치하므로 청정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과보를 받는 자를 청정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무루업은 과보를 받지 않기 때문에 청정하다고 하지 않고 고요하다[寂靜]고 한다’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동참(同參) ; ①어떠한 일에 함께 참여함. ②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③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는, 동문수학하는 '도반(道伴)'과 같은 말. 동학(同學)이라고도 한다.

*법보전(法寶殿) ; 법보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 
그래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왕생(往生) ; 죽어서 다른 세계에 가서 태어남. 이 세상에서 쌓은 공덕으로 죽어서 정토에 태어남. 염불한 공덕으로 죽어서 극락에 태어남.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인비인(人非人) ; ①인(人)은 사람, 비인(非人)은 팔부중(八部衆 : 불법佛法을 보호하는 여덟 신神—천,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 · 귀신 · 축생 등을 말함. ②긴나라(緊那羅) : 의인(疑人) · 인비인(人非人)이라 번역. 팔부중(八部衆)의 하나로 노래하고 춤추는 신神으로 형상은 사람인지 아닌지 애매하다고 함.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필경(畢竟 마칠·끝낼 필/마칠·마침내 경) ; 끝장에 이르러. 결국에는.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2)

 

*(게송) 불시물혜조병무~’ ; [경허집(鏡虛集)] (명정  | 극락호국선원) ‘題智異山靈源寺(지리산 영원사)’ p226 참고.

*()어조사,어조사(語助辭) 윗말을 완화(緩和)하고 아래의 말을 강조(强調)하는 뜻으로 쓰임. *() 나란히 하다, 쓸모 없는  *()엄지손가락,엄지발가락 

[참고] 騈拇枝指(병무지지) 엄지발가락과 둘째 발가락이 붙어버린 병무(騈拇) 손가락이 여섯인 육손이(枝指), 쓸모 없는 , 군더더기란 .

*()익숙하다,익숙해지다 *()거듭,연속하다 *()산봉우리 *(첩장) 중첩되어 있는 산봉우리. *(,)소나무겨우살이,담쟁이덩굴 *()수염 *()원숭이 *()원숭이*猢猻(호손)원숭이 *()넘어지다,거꾸로.

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15. 10. 3. 18:42

 

 

§(212) (게송)백운아향만리표~ / 정법(正法) 위태로움 / 육조 스님의 남악회양 선사 인가. 활구참선 /  아내(육신, 재산, 부모형제, 마음) 비유.

 

남악회양 선사 같은 도인(道人)은  숙세에 선근종자(善根種子)로  전생에부터서 많이 닦으신 그러한 도인이 태어나셨겠지만 그래도 8년이라고 하는 장구한 세월이 걸린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 근기(根機)가 박약(薄弱)한 우리 말세(末世) 중생들은 8 아니라 80년이라도 지루한 생각을 갖지 말고 목숨을 바쳐서  화두(話頭)에 대해서 참구(參究)를  나가야  것입니다.(용212)

 

**송담스님(No.212)—83 9 첫째 일요법회 (1983.9.4) (용212)

 

(1) 약 19분.

 

(2) 약 19분.

 

(1)------------------

 

백운아향만리표(白雲兒向萬里飄)한데   종래불망청산부(從來不忘靑山父)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내하유자부지환(乃何遊子不知還)허고   장재미도축풍파(長在迷途逐風波)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백운아향만리표(白雲兒向萬里飄)한데  종래불망청산부(從來不忘靑山父)로구나.

백운(白雲)이라고 하는 자식이 만리의 바람에 나부끼는데, 원래 백운은 청산에 의지해서 뭉쳐서 있다가 바람이 부니까  바람에 실려서  만리 하늘에 나부껴 날아갔다 그말이여.

종래불망청산부여. 그렇게 바람에 불려서 만리 하늘을 떠내려갔지만  백운은 항시  마음속에는 자기가 본래 놀며 의지하며 살고 있던  푸른 산을 마음속에는 잊지를 않고 있더라 그말이지.

 

내하유자부지환(乃何遊子不知還)인데, 어째서 무슨 일로  백운은 청산으로 다시 돌아올 줄을 모르고,

장재미도축풍파(長在迷途逐風波)로구나. 길이길이 자기 본래 살던  청산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타향으로  구만리장천(九萬里長天)을 이리저리 바람 따라서 물결 따라서 떠돌이 신세가 되어있구나.

 

우리는 본래는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처럼 본래는 똑같은 본각(本覺)의 경지에 있었습니다.

새로 닦지 아니하고, 닦을 것도 없이 본래 깨달아져 있는 그러한 본각성(本覺性)이었건마는  생각 잘못 일어나는 것이 동기가 되어서 풍파에 나부껴 가지고 무량겁을 동서사방 육도(六途)를 돌고 돌면서 오늘에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래  부처님과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과  집에서  자리에서 기거를 같이 하고 생활을 같이 했건마는 그것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이렇게   자리로 돌아갈 줄을 모르고 육도윤회(六途輪廻)를 이렇게 돌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 바람이 그칠런지, 바람이 부는 한에 있어서는 동풍이 불면 서쪽으로 날아가고, 서풍이 불면 동쪽으로 날아가고, 북풍이 불면 남쪽으로 몰려가고, 남풍이 불면 북쪽으로 나부껴서 동서사방 정처가 없습니다.

 

쪼끔 착한 일을 하면 천당에 가고, 악한 일을 하면 지옥에 가고, 축생도 되었다 인간도 되었다인간으로 태어나되   살기도 하고  살기도 하고, 착한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악한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마치 우리의  존재가 청산을 떠난 흰구름과 같이 그렇게 비유를 해서 읊은 게송입니다.

 

 

부처님께서 삼천 년 전에 가비라(迦毘羅) 왕국의 태자로 태어나서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출가하셔서 설산에 들어가서 대도를 성취해 가지고 팔만사천(八萬四千) 묘법(妙法) 설하시고,

그래가지고 삼처전심(三處傳心)을 해서 현재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최상승법(最上乘法)이 오늘날까지 이렇게 면면(綿綿)히 전해오고 있습니다마는,

 

삼천 년이라고 하는  세월 동안에 부처님께서 전하신  정법(正法)은 실오라기처럼 위태로운 썩은 사내끼에 매달려 있는 바윗돌과 같이 언제  썩은 새끼가  끊어져 가지고  바윗돌이 땅에  떨어질른지 모른 그러한 위급한 상황 속에 불법이라고 하는  맥이 놓여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불교가 동양에 여러 나라에 전해 내려오고  경전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번역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믿고 있지마는,

참으로  불법에 등등상속해서 내려오는  법맥(法脈)이라고 하는 것은 실오라기만큼 그러한 위태로운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하는 것을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금방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육조(六祖) 스님으로부터 법을 이어받은 남악회양(南嶽懷讓) 선사의 말씀을 들었습니다마는 육조 스님께서 대중을 향해서 물으시기를,

 

여기에  물건이 있으니 위로는 하늘을 떠받고 아래로는 땅을 기둥하며, 뭐라고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모냥도 그릴 수가 없다. 항상  동용(動用)하는 가운데에 있으되 동용하는 가운데에 거두어 얻지 못하니 이것이 무슨 물건이냐?” 이렇게 대중에게 물었습니다.

 

하택신회(荷澤神會) 선사는 제불지근원(諸佛之根源)이며 신회(神會)의 불성(佛性)이로소이다. 모든 부처님의 근원이고  하택  자신의 불성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육조 스님께서 꾸짖으시기를 뭐라고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모냥도 그릴  없다고 내가 그랬거늘 어찌 제불의 근원이니, 하택의 불성이니 하고 이름을 붙이는고? 네가 앞으로 커서 공부를 열심히  가지고 설사 네가  스님이 된다 하더라도 너는 마침내 지해종사(知解宗師) 밖에는 되것다

 

지해종사라 하는 것은이론적으로 불법을 공부하는 학자나 강사 그러한 알음알이로 불법을 해석하고 강론하고 그러한 지해종사 밖에는  되것다 이렇게 점검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남악회양 선사가 육조 스님 앞에 와서 절을 했습니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하고 물으니까, 남악회양 선사는 망지소조(罔知所措)여.  맥혀 가지고 뭐라고 대답을  수도 없고 완전히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래가지고 물러 나와서 8년 간을 대관절  무슨 물건인가?’    없는 의심이 가슴속에 북받치는데  맥혀서 대관절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무슨 물건인가?’

하루를 그렇게 지내고 이틀을 그렇게 지내고,  달을 그렇게 지내고 1년 이태 3년을 그렇게 되아 8 만에사 ! 깨쳤는데, 육조스님 앞에를 갔습니다. “제가 깨달랐습니다

 

깨달랐으면 어디 일러봐라

설사일물(說似一物)이라도 즉부중(卽不中)입니다. 설사  물건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아, 도리어 닦아 증(證)할 것이 있느냐?”

수증(修證)은 즉불무(卽不無)어니와 오렴(汚染)은 즉부득(卽不得)입니다. 닦아 증할 것은 없지 아니하나 더럽히고 물들인 것은 없습니다. 오렴은  얻을 수가 없습니다

 

육조 스님께서 너도 또한 그렇고 나도 또한 그러니라 이렇게 해서 쾌히 인가(印可)를 하시고 법(法)을 남악회양 선사에 전했습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 하는 것은 제불의 근원’이니, 무슨 나의 불성’이니 그렇게 이론으로 따지고  길이 있고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있고, 이렇게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공부해서 그럴싸한 결론을 얻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알음알이요 사량분별(思量分別)을 떠나지를 못했기 때문에 그것은 깨달음이 아닌 것입니다.  맥혀서 답답해  수가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나가자니 은산철벽(銀山鐵壁)이 가로막고 있고, 뒤로 물러서자니 천길만길 절벽이라, 나아갈 수도 없고 물러  수도 없고 다못  맥혀서   없어.

 무엇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앉으나 서나 밥을 먹으나 옷을 입으나 이렇게 해서 일체처 일체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하도록 정진을 다져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남악회양 선사 같은 도인(道人)은  숙세에 선근종자(善根種子)로  전생에부터서 많이 닦으신 그러한 도인이 태어나셨겠지만 그래도 8년이라고 하는 장구한 세월이 걸린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 근기(根機)가 박약(薄弱)한 우리 말세(末世) 중생들은 8 아니라 80년이라도 지루한 생각을 갖지 말고 목숨을 바쳐서  화두(話頭)에 대해서 참구(參究)를  나가야  것입니다.

 

그만한 공력과 그만한 끈기와 그만한 노력이 없이는 생사해탈(生死解脫)을 어떻게 기약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해서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은 세수하다가 코 만진 것보다도  쉽다’ 이렇게도 쉬웁기로 말하면 그렇게 쉬웁다고 표현을 하셨지만,

 

어렵기로 말하면은   말을 갖다가  알씩을  나무 뿌럭지 있는 데서부터서 굴려서   길이나 되는 나무 꼭대기까지 굴려서, 그 나무의 몸뚱이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나씩 하나씩을 굴려서 나무 꼭대기에다 올려다 놓고,

다시 또 내려와서 깨 한 알을 갖다가 뿌리에서부터 굴려서 올려 가지고 저 꼭대기에 갖다 놓다가, 중간에 잘못해서  떨어지면 다시 뿌리부터서 굴려 올리고 그래서  한 말을 굴려 올릴 만큼.

 

그것이 얼마나 공력을 드려야—그 하나를 평면으로 굴려 올린다면 모르지만, 서 있는 나무에 굴려서 올린다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보시라 그말이여. 그만큼 공력과 끈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도를 닦겠다고 출발을 했지만 중도에서 물러서거나 중도에서 쉬어버리거나 또는  길로 빠지거나 이러기가 십상(十常) 쉽고, 끝까지 나아가서 목적을 달성한 사람은 그렇게 흔치를 못하는 것입니다.

 

까딱하면 중간에 어떠한 유혹에 빠지기도 하고, 해태심(懈怠心)을 내기도 하고 그래가지고 한결같이 쉬지 않고 나아가기가 어렵기 때문에,

 

항시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 모시고 법문(法門)을 들어야 하고,  좋은 도반들과 항시 같이 수행을 해 나가야,

내가 혹시 해태심이 나거나  생각을 내더라도 도반(道伴)으로부터 경책(警策)을 받고 선지식으로부터 법문을 들어서 그러한 위기를 면하면서 끊임없이 목적지를 향해서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처음~192)

 

 

 

 

(2)------------------

 

옛날에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원정사에 계실   거사(居士)가 있었는데 그때에  거사는  사람의 아내를 데리고 살았습니다.

 사람을그때 당시는 일부다처제로 아마 부인을 첫째 부인, 둘째, 셋째, 넷째  사람 능력 따라서 여러 부인을 거느리고  수가 있었던지  사람의 아내를 데리고 살았었는데,

 

 사람은 첫째 부인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앉을 때나 섰을 때나, 잠을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어디 외출을  때나 일을  때나, 언제 어데서라도 잠시도  첫째 부인과 같이 붙어서 살았습니다그만큼  첫째 부인을 사랑하고 애끼고 좋아하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먹는 것도  먹이고 세상에서 없는 제일 좋은 것은  먹이고,  입히고 누가 조금이나 해꼬자 할까 항시 자기  가까이에 놓고 그렇게 사랑하고 이뻐했습니다.

아마  세상에 아무리 아내를 사랑한다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사랑하기는 어려웠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둘째 부인도 첫째 부인만큼은 못해도 너무너무 사랑해서 도대체 다른 사람이  자기 아내를 볼까 두려워서 항시 가둬놓고  아내를 사랑을 했습니다.

행여나 남이 눈독을 들일까  남이 아내를 훔쳐갈까 이래가지고 아내는 도저히 어디 밖에 내보내지도 않고, 마당에도  내보내지도 않고, 항시 자기 방이나 특실에다가  넣어 놓고 쇠통을 채워 놓고 그렇게 아내를 사랑을 했습니다.

 

너무너무 애끼고 사랑을 하고 심지어는 의처증(疑妻症)이라고  만큼  아내를 밖으로 내놓지를 않고 남이 보는 것을 그렇게 꺼려했습니다. 

 

셋째 부인은셋째 부인도 애끼는 생각도 있고 사랑하는 생각도 있고 그랬지만마음대로 밖으로도 외출하고 싶으면 하게 하고, 그렇게 날마다 보지는 아니하고 가끔 한번씩 보기만 하고 그저 수수허니 그렇게 살았습니다.

 

넷째 부인이 있었는데,  넷째 부인은 항시자기(거사)는 그렇게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지마는 넷째 부인은 그렇게 남편을 하녀가 상전 모시듯이 그렇게  따르고  명령을 복종을 하면서 그렇게 했습니다마는,

 

남편은 여간해서    명절이 되어도 해주도 않고, 그냥  그저  비슷하니 그렇게 취급만 했지 별로 그렇게 아끼지도 않고 따뜻하게  주지도 않고, 그렇게 해서  아내를 그렇게 거느리고 살았습니다. 

 

 

그러자  장자(長者)는 하룻날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서   데로 귀양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가면 다시는 돌아오기가 어려울 그러한  급박한 상황에서  데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첫째 부인을 보고 내가 이렇게 인자 가는데 다시 돌아올런지  돌아올런지  수가 없고, 나는 당신을 여의고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 그러니 나를 따라서 가자”고 사정을 했습니다.

그러니  마누라는 내가 평생동안 당신을 모시고 살았고, 당신도 나를 끔찍이 애끼고 사랑한 것은 사실이나 나는  따라 가겠다”고.

 

그럴 수가 있느냐”고 했지만  이상은 죽었으면 죽었지  따라 가겠다하는 것입니다그래  수 없이 이런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여자가 있다 말이냐”고 호통을 치고, 그래도 따라가지 못하겠다고 하는 데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둘째 부인한테  말을 했습니다둘째 부인도 당신이 나를 너무 지극히 사랑해서 평생을 참 문밖을 마음대로  나가고 가둬 놓고 키우고 그랬지만 나는 당신을 따라갈 수가 없다 둘째 부인도 거절을 했습니다.

 

그래 셋째 부인한테  말을 했습니다.

내가 당신을 그동안에 살면서 첫째와 둘째한테만 내가 주로 사랑을 쏟고 당신한테는 그렇게 사랑을  해주고 해서내가  마지막 가게 될런지도 모른   나라를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하기가 미안하나, 어디 그래도 첫째 둘째가 저렇게 배은망덕을 해서 안 가니 당신이라도  같이  수가 없겠느냐?” 사정을 하니까,

 

평생동안 괄세를 하고 첫째 둘째한테만  빠져 가지고  돌아본 채도 안 해 놓고서 어째 오늘은 나보고 아주 가자고 하냐”고, “그런 철면피(鐵面皮) 같은 소리를  수가 있단 말이냐”고나도 그렇게는  하겠다”고  잡아뗐습니다.

 

그래 마지막에 넷째 부인한테 부탁을 했습니다. “내가 그동안 당신을 하녀처럼 생각하고    변변히   것도 없고,  한번 내가 따뜻하게 만져주지도 않았는데저렇게  여자들이 저렇게 배은망덕을 하고  따라가니 도저히  혼자 가기는 도저히  수가 없고 천상 당신이 나를  따라가 줘야 하지 않겠냐?”고 하니까,

 

넷째 부인이 눈물을 흘리면서 어피차 나는 일생동안 당신의 종노릇을 하면서 푸대접을 받아도 그것이 나의 팔자거니 하고 세월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당신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내가 기꺼이 내가 따라 모시겠다 그래 가지고 승낙을 했던 것입니다.

 

첫째 부인은 국경까지는 바라다 주겠다, 둘째 부인은   방안까지 밖에는  가겠다,  셋째 부인은  마을 밖에까지 밖에는  가겠다이렇게 모다 해서 거절을 당하고 그렇게 인자 마지막 넷째 부인과 길을 떠나게 되었다 이것입니다.

 

 

그런데  첫째 부인은 무엇이냐 하면은 우리의 육신(肉身)이라 이것입니다사람이  영혼이  세상에 태어날  육신을 받아서 태어나게 되고  그러기 때문에 일생동안  육신을 떠나서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영혼이 떠나는데 육신이 따라갈 수가 없고, 육신은 결국은 영혼이 떠날  육신은 떨어져서 쓰러지면 땅에다 묻거나 불에 때우거나 하지, 육신이 절대로 영혼을 따라갈 수가 없는 데다 비교를  것이고.

 

둘째 부인은 재산에다가 비교를  것입니다육신이라 하는 것은 자나깨나 항시 같이 살고 있는 것이지만 재산은 누가 보면 훔쳐갈까, 달라고 할까 두려워서 항시 창고나  속에다 가둬 놓고 쓰기 때문에 둘째 부인은 재산에다가 비유를  것이고,

 

셋째 부인은 부모나 형제나 처자권속에다가 비교를  것이어서 가끔 만나면 좋고 그저 든든한 맛으로 그저 형제간은 그렇게 살되,  영혼이 죽은다 해서 형제간이 같이 죽어갈 수는 없는 것이죠?

 

그런데 마지막 넷째 부인은 우리의 마음에다가 비교를  것입니다. 우리는 평생동안 살면서  마음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하게 사는 것입니다.

 

 몸뚱이라든지, 재산이라던지, 부모 형제에 대해서는 온갖 인정을 쏟고 애지중지 하고,  어쩔 줄을 모르고 심지어는  육신을 위해서는 온갖 음식이다 보약이다  좋은 옷이다 화장품이다 해 가지고,

그렇게  정성을 쏟아서  육체 하나를 갖다가  가꾸기 위해서 평생동안 보호를 하고 애지중지 하지만  데로 떠나는 날에는 완전히 언제 봤던가 완전히 배신을  버리고 따라가 주지를 않는 것입니다.

 

둘째 재산도  재산을 벌기 위해서 그렇게  피땀 흘려서 고생을 하고 밤잠을 안 자고 고생을 하고,  재산을 모으기 위해서 알고 모르고 지은 죄가 얼마인 줄을  수가 없고 그렇지마는 죽어 가는 마당에는 재산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부모라던지 형제간이라던지 처자권속도 내가 희생을 해 가면서 봉사를 하고 그걸  먹이고  입히기 위해서 온갖 정성을  쏟고 하지만,

내가 죽어 갈 때에는 부모도 어찌하지 못하고 형제간도 어찌하지 못하고 심지어 처자와 아내와 자식들도 내가 죽어 갈 때에는 나 대신 죽어  수도 없고 내가 죽을  따라 죽어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넷째에 평생에 괄세를 하고 소박을 했던 넷째 마누라는 바로 우리의 마음자리에다 비교한 것인데 마음자리 마음은 제일 소중하고 애끼고  먹이고  입혀야  넷째 마누라인데,

그것을 등한히 하고 첫째 마누라, 둘째 마누라, 셋째 마누라한테만  빠져 가지고 괄세를 했기 때문에,  셋째까지 먹여 살리느라고 죄만 퍼지었지, 마지막 가는 마당에는  죄만 짊어지고 가게 되고 아무도 따라와 주지 아니한 것처럼,

 

우리의 본성(本性)을 갈고 닦아서 과거에 지은 업(業)도 소멸하고, 새로 업을 짓지 말아야 극락세계(極樂世界)나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 태어나거나,

또는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하되 좋은 가문과 좋은 부모와  정법을 만날  있는 그러한 환경에 태어나서 인물도 좋고 머리도 좋고 인품도 좋게 태어나서 공부도 걸림이 없이 하고   최상승법과도 인연이 있어서 바르게 살아갈  있게 되겠지만,

 

그것을 괄세를 하고, 불고(不顧) 하고 그랬기 때문에,  마음자리를 괄세를 하고 닦지를 않았기 때문에 악도(惡道)에 떨어져서 그동안에 애끼고 가꾸고  육신이나 재산이나 부모 처자권속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특히 우리나라는 지금 부인을 하나 밖에는 갖지를 못하게 법률이 되어 있습니다마는그러한 이  명의 부인을 갖는다 하는 것은 우리의 육체와 재산과 부모와 형제 처자권속과  우리의 본래부터 타고난  마음자리와   가지를 비유를 했을 ,

 

사실 우리는 아직도 불법을 믿고, 도를 닦고 이렇게 와서 법문을 듣지만첫째 둘째 셋째만 이뻐하고, 넷째 부인은  겨우 시간이 쪼끔 있으면 형식상으로 쪼끔 들여다본  하고 실재 마음을    있고,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분이 많이 계시다면,

이것은 불법(佛法)위태로운  썩은 새끼에 매달린 불법이위태로운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불법을 그렇게 위태롭게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이 마지막 가는 길에는 여지없이 배신해 버리고 말아버릴 그러헌 첫째 둘째 셋째 부인한테만  빠져 가지고 정신이 하나도 없고,

진짜 나를 따라가  넷째 부인한테는 그렇게 등한히 하기 때문에 마지막 떠나는 길이 그렇게 처량할 수 밖에는 없는 것처럼,

 

우리의 자성(自性) 본성(本性) 바로 그놈을 제일 애끼고 사랑하고 돌봐줘야 하고  먹이고  입혀야  터인데 그것을 괄세를 하기 때문에,

우리 자신들의 장래우리 자신들의 금생은 말할 것도 없고,  내생 무량겁을 두고 처량한 신세로 객지로 육도윤회를 떠돌이  수 밖에는 없게 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불법의 명을 실오라기처럼 위태로운 지경에까지 몰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193~385) 용212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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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백운아향만리표~’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함허득통 설의(說誼) 게송 참고.

*구만리장천(九萬里長天) ; 끝도 없이 아득히 넓고  하늘.

*본각(本覺) : 일체 중생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각성(覺性) 뜻으로서 청정한 심성(心性) 말함.

 심성은 허명(虛明)해서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자연적인 것도 아니며, 본래 중생의 상념(想念) 떠나서 법계에 두루 가득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망(迷妄) 깨달음에 관계 없는 절대적인 경위(境位)이다.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 (, 의지에 기초한 행위)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 있다.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 비로자나(毘盧遮那) vairocana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 .

①진리  자체인 법신(法身) 형상화한 . ②대일여래(大日如來) 같음."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팔만사천(八萬四千) : 법수(法數)에는  말이  많다。그것은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또한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이것을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묘법(妙法) ; ①심원미묘(深遠微妙) 도리. 특별한 진리. ②바른 이법(理法). ③뛰어난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고귀한 가르침.

*삼처전심(三處傳心) ; 세존이 가섭(迦葉)존자에게 마음-() 등불을 따로 전했다는  .

 곳이란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다자탑전분반좌 多子塔前分半座) 첫째요,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심(영산회상거염화 靈山會上擧拈花) 둘째요, 사라쌍수 아래에서  속으로부터  발을 내어 보이심(사라쌍수하곽시쌍부 沙羅雙樹下槨示雙趺) 세째이다.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

다자탑(pahuputraka) 중인도 비사리(毘舍離Vaisali) 서북쪽에 있다。이 탑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는데,   하나는 어떤 장자(長者) 산에 들어가서 도를 닦아 이룬 뒤에,  아들  육십 명이 아버지가 공부하던 곳을 기념하기 위하여 탑을 쌓았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곳에서 설법하실 때에 가섭존자가 누더기를 걸치고 뒤늦게 참석하자, 여러 제자들이 그를 낮보았다。이에 부처님께서 앉으셨던 자리를 나누어  분이 함께 앉으셨다 한다.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심.

범어의  Grdhrakuta 음대로 써서 기사굴산(闍崛山)이라 하고, 뜻으로 번역하여 영취산(靈鷲山) • 취봉(鷲峰) 또는 영산(靈山)이라고만 한다。그  모양이 독수리 같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위에 독수리가 많았던 탓이라고도 한다。이 산은 중인도 마갈타(摩竭陀Magadha) 서울 왕사성(王舍城 Raja-grha) 동북쪽  리에 있다.

부처님께서 어느   곳에서 설법을 하시는데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부처님은  꽃송이 하나를 들어 보이니, 백만 대중이 모두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하는데, 가섭존자만이 빙그레 웃었다。이에 부처님은 『바른  열반의 묘한 마음을 가섭에게 전한다』고 선언하셨다 한다.

 

사라쌍수하곽시쌍부(沙羅雙樹下槨示雙趺) : 사라쌍수 아래에서  속으로부터  발을 내어 보이심.

부처님께서 북부 인도의 구시라(拘尸羅 Kusinagara) 서북쪽으로 흐르는 발제하(跋提河 Ajitavati) 물가, 사라수 여덟 대가 둘씩 마주  있는 사이에 침대를 놓게 하고 열반에 드시니,  숲이 하얗게 변하였다。그리하여 학의 (鶴林, 鶴樹)이라고도 하게 되었다.

부처님의 몸은 금으로 만든 관에 모시고 다시 구리로 지은 덧곽에 모셔 두었는데,  곳에 갔다가 부처님이 열반하신  7 만에 당도한 가섭존자가 부처님의 관을 3 돌고 3 절하매, 관곽 속으로부터  발을 내어 보이셨다 한다.

*등등상속(燈燈相續) ; () 중생의 무명(無明)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 비유한 ,  진리의 () 스승이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이어짐을 일컬음.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

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면면히(綿綿히 ·이어질·연속할 ) ; 역사나 전통 따위가 끊어지지 않고  잇따라.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실오라기 ;  가닥의 .

*사내끼 ; 새내끼. 산내끼. ‘새끼(짚으로 꼬아 만든 )’ 사투리.

*법맥(法脈) ; 세속에서 조상의 전래 혈통(血統) 밝히고 있듯이, 불교 선종(禪宗)에서는 스승에서 마음을 깨친 제자로 계속 이어져 전해 ,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 법통(法統) 전승을 법맥이라 한다.

*육조 스님, 남악회양 선사, 하택신회 선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지해종사(知解宗師) ; 참선 공부를 알음알이로 따져서 해석하고 강론하고 공부해 가는 강사나 이론가를 말한다.

*망지소조(罔知所措 그물·근심할·없을 망/알 지/ 바·방법 소/둘·처리할·조처할 조) ; 너무 당황하거나 급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고 갈팡질팡함.

*인가(印可 도장 , 옳을·인정할 )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 같은 .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리(事理)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바가 아니다’라고 .

*은산철벽(銀山鐵壁) ; 철벽은산(鐵壁銀山). 은과 철은 견고해서 뚫기 어렵고 산과 벽은 높아 오르기 어려움을 나타낸 .

*천길만길(千길萬길) ; 매우 깊거나 높은 모양을 이르는 .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의단(疑團 의심할 ,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선근(善根) ; 좋은 과보를 받을 만한 착한 (행위. 온갖 () 낳는 근본. 청정한 행위를  근성.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박약(薄弱 엷을 / 약할 ) ; ①의지나 체력 따위가 굳세지 못하고 여림. ②근거 따위가 충분하지 못하거나 모자란 데가 있음.

*말세(末世  , 세상 )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 세상,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 세상,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 세상이라고 한다.

*참구(參究 헤아릴 , 궁구할 ) ; ①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십상(十常) ; ①열에서 아홉일 정도로 확률이 높다는 . '십상팔구(十常八九, 열에 여덟이나 아홉 정도로 거의 예외가 없음)'에서  .

*해태(懈怠 게으를 , 게으를 )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 수행하는 . 불법(佛法) 닦으면서 사귄 .

*경책(警策 깨우칠 /채찍 ) ; 타이르고 채찍질하여 깨우치게 하는 .

 

 

 

 

 

------------------(2)

 

*거사(居士) ; ①고대 인도에서 ·공업에 종사하던 부호②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는 남자 신도. 출가하지 않고 법명(法名) 받은 재가(在家) 남자.

*해꼬자 ; 해꼬지. 해코지(害코지)—남을 해치고자 하는 .

*의처증(疑妻症 의심할 /아내 /증세 ) ;  이유도 없이 아내의 행동을 지나치게 의심하는 변태적인(變態的, 정상적이지 못하거나 올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달라진 ) 성격이나 병적 증세.

*장자(長者) ; ①덕망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아 세상일에 익숙한 어른. ②큰 부자를 점잖게 이르는 .

*귀양 ; 예전에, 죄인을 고향이 아닌  시골이나 섬으로 보내어 일정한 기간 동안 제한된 곳에서만 살게 하던 형벌을 이르던 .

*끔찍이 ; 정성이나 성의(誠意, 진실되고 정성스러운 ) 따위가 매우 극진(極盡). --극진히 : 마음이나 대접이 매우 정성스럽게.

*배은망덕(背恩忘德) ; 남에게 입은 은혜를 잊고 배반함.

*괄세 ; 괄시(恝視 소홀히 할·푸대접 할 괄/ 볼·대우할 시)—사람을 업신여겨 하찮게 대함.

*철면피(鐵面皮 쇠 철/낯·얼굴 면/가죽 피) ; 철로 만든 낯가죽이라는 뜻으로, 염치(廉恥, 체면을 생각하거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없고 뻔뻔스러운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 : [] karma []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 업이라 한다.

개인은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 윤회(輪廻)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꼭대기에서 12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56 7천만  뒤에)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 뜻은 지족(知足).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불고(不顧 아니 불/돌아볼 고) ; 돌아보지 않음.

*악도(惡道, 惡途) ; 악한 짓을  중생이  과보로 받는다고 하는 괴로움의 생존. 지옥아귀축생 등의 세계. 삼악도(三惡道).

Posted by 닥공닥정

 

 

§(346) ‘이뭣고?’ 화두 / ‘알 수 없는 의심’을 관(觀)해야 / 용화선원의 가풍(家風)-평상시가 용맹정진 / 여법하게 정진하는 것이 참다운 불사 / 장애 극복은 정진력으로.

사실 이 ‘이뭣고~?’ ‘이뭣고?’ 이 문제는 불법(佛法)이 생겨나기 이전에, 부처님이 탄생하시기 이전에,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하나의 커다란 숙제인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볼라고 동서고금의 모든 성현들이 철인들 철학자들이 이것을 알아볼라고 별별 방법을 썼습니다마는, 오직 이 문제를 깨달으신 분, 바로 깨달라서 바로 지도하신 분은 오직 우리의 위대한 스승이신 부처님이시고, 부처님의 그 법을 깨달은 방법이 바로 법(法)이고 그 법을 이어받아서 깨닫고 또 그 제자에게 전하고 하신 분들이 바로 역대조사 선지식들이 아니시겠습니까.


‘이뭣고?’하는 그 글자, ‘이뭣고?’한 글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했을 때 그 「알 수 없는 그 의심」 그것이 화두에 요긴한 것입니다.


화두가 정말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되는 것은 마지막 깨닫기 한 일주일 전부터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을 하기 위해서, 생사윤회를 아니할라면은, 그런 부처님의 5계(五戒)를 잘 지켜야만 한다.


**송담스님(No.346)(참선법 D) - 88.1.21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 (용346)

 

(1) 약 20분.

 

(2) 약 19분.


(1)------------------

<‘이뭣고?’ 화두>

 

이 화두, 그 천칠백 화두가 있는데 그 가운데에 최초의 화두요, 동시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가 ‘시삼마(是甚麼)’ 화두입니다.  ‘시삼마’는 우리말로는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그말이여.
‘이것이 무엇이냐?’

남악회양(南嶽懷讓) 선사가 육조 스님께 딱 찾아가 뵈옵고 절을 하니까, 『십마물(什麽物)이 임마래(恁麽來)냐?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이렇게 물으셨어.

그리고 하택신회(荷澤神會) 선사가 내나 그분도 육조 스님의 제자인데, 하택신회 선사 젊어서 육조 스님 앞에 딱 가서 절을 하니까, 『십마물(什麽物)이냐? 무슨 물건이냐?』하고 물으니까,
하택신회 선사는 『제불지본원(諸佛之本源)이요 신회지불성(神會之佛性)입니다.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요. 이 자기 자신 신회의 불성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어.

그런데 남악회양 선사가 떠억 와서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하고 육조 스님이 물으시니까,
남악회양 선사는 망지소조(罔知所措)여. 몸 둘 바를 몰라.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른다 그말이여.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하고 묻는데 꽉 맥혀 가지고 어찌할 바를 몰라. 몸 둘 바를 몰랐어.

그런데 육조 스님께서 『모든 부처님의 근원이요, 신회의 불성입니다』하고 대답한 하택신회에게는 『네가 나중에 공부를 해서 깨달은 바가 있다 하더라도 너는 지해종사(知解宗師) 밖에는 안 되겠다』
지해종사라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교리적으로 불교를 연구하는 그런 강사와 같은 그런 것 밖에는 너는 못 되겠다. 그렇게 말씀을 하시고,

남악회양 선사는 꽉 맥혀 가지고 그 뒤로 8년 간을 ‘무슨 물건이냐? 그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한 그 의심을 가지고 8년 동안을 그놈을 가지고 앉으나 서나 밥을 먹으나 일을 하나, 8년 동안을 그것을 참구를 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8년 만에사 확철대오를 했어.

그래 가지고 육조 스님한테 『설사일물(說似一物)이라도 즉부중(卽不中)입니다. 설사 ‘한 물건(一物)’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이렇게 그 깨달은 바를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아? 도리어 수증할 것이 있느냐?』 그러니까, 『수증(修證)은 즉불무(卽不無)어니와 오렴(汚染)은 즉부득(卽不得)입니다. 수증할 것이 없지는 않습니다마는 오렴은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해 가지고,
『여시여시(如是如是)다. 너도 또한 그렇고 나도 또한 그렇다.』 그렇게 쾌히 인가(印可)를 하신 것입니다.

지금 용화선원에서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 또 제가 말씀을 드린 모든 것이 완전히 그 남악회양 선사가 하던 그 참선법, 그것을 바로 조사선(祖師禪)이라 그러고, 그것을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 그러는데 그 활구참선법, 남악회양 선사처럼 그렇게 해 가도록 항상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물건이냐?’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거거든.

지금 여러분이 이렇게 집을 떠나서 여기에 오셔서 석 달 동안을 고생을 하면서 고행을 하면서 이렇게 와서 계신데, ‘무엇이냐?’ 그말이여.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이 몸뚱이가 여러분이라고 혹 생각하실 분이 계실런지 모르지마는, 이 몸뚱이는 흙 기운과 물 기운과 불 기운과 바람 기운이 뭉쳐서 이렇게 몸뚱이라고 하는 것을 임시 이렇게 이루고 있는 것뿐이지, 몸뚱이 이것이 여러분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시시각각으로 변해서 늙어가다가 나중에 결국은 이 몸뚱이에서 영혼이 떠나 버리면 그냥 10분 못 가서 내장이 버글버글버글 썩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바람은 바람 기운으로 나가 버리고, 불 기운은 불 기운대로 흩어져 버리고, 물 기운은 물로 돌아가 버리고, 흙 기운은 흙으로 돌아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는 그래서 송장 덩어리인 것입니다.

송장 덩어리를 운전을 하고 있는 놈, 운전하고 있는 그놈을 우리는 찾는 것이거든.

그것을 고인들은 다 ‘자성(自性)’이라 하기도 하고, ‘마음’이라 하기도 하고, 또는 ‘영혼’이라 하기도 하고 또는 ‘진여(眞如)’라 하기도 하고 또는 ‘불성(佛性)’이라 하기도 하고, ‘법계(法界)’라 하기도 하고, ‘여래(如來)’라 하기도 하고, 경전마다 그것에 대한 이름을 달리 말씀을 하셨고 세계 나라마다 그것에 대한 이름도 다 각각 다르지만,

그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 우리는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몸뚱이를 바꿔서 태어나면서 이렇게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데, 그 자체를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생사고해(生死苦海)를 이렇게 유전(流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놈을 우리는 깨달라야겠다. ‘그놈을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자’ 이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그놈이 무엇이여?’ 눈으로 볼라야 볼 수 없고, 손으로 잡을라야 잡을 수도 없고, 냄새를 맡을라야 무슨 냄새가 거기서 나며, 그놈을 ‘어떻게 생겼는가?’ 아무리 생각해 본들 알 수가 없다 그말이여.

사실 이 ‘이뭣고~?’ ‘이뭣고?’ 이 문제는 불법(佛法)이 생겨나기 이전에, 부처님이 탄생하시기 이전에,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하나의 커다란 숙제인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볼라고 동서고금의 모든 성현들이 철인들 철학자들이 이것을 알아볼라고 별별 방법을 썼습니다마는, 오직 이 문제를 깨달으신 분, 바로 깨달라서 바로 지도하신 분은 오직 우리의 위대한 스승이신 부처님이시고, 부처님의 그 법을 깨달은 방법이 바로 법(法)이고 그 법을 이어받아서 깨닫고 또 그 제자에게 전하고 하신 분들이 바로 역대조사 선지식들이 아니시겠습니까.

이것은 그 법을 모르고서는 도저히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지만 법을 모르고서는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불법이요, 정법(正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이다.

이것은 이론적으로는 아무리 따져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과 지식 가지고 따져서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화두를 참구(參究)해 가지고 그 화두를 타파(打破)함으로 해서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 아까 ‘이뭣고?’라고 하는 화두는 그밖에 ‘마삼근(麻三斤)’이라든지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든지 ‘판치생모(板齒生毛)’라든지 천칠백 개나 되지만, 그 많은 화두 가운데에 가장 근원적이고 최초의 화두가 바로 ‘이뭣고?’거든.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앉아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일을 할 때나 속이 상할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이뭣고?’


<단전호흡과 화두 의심>

 

그러면 언제 단전호흡을 하고 언제는 이 화두를 드느냐?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꾸었다가 내쉬면서, 그 내쉴 때 ‘이뭣고~?’ 이렇게 화두를 드는 것입니다.

숨이 다 나가면 또 스르르 하니 들어마셨다가 약 3초 동안 딱 정지했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뭣고?’를 길게 숨 다 나갈 때까지 ‘이뭣고?’를 길게 하시라 그말이여. ‘이뭣고~?’ 또 숨이 다 나가면 또 스르르 호흡을 들어마셔 가지고 또 약 3초 동안 딱 머꾸었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처음 하신 분은 숨을 내쉴 때마다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하시지만, 나중에 차츰차츰 익숙해지면 그리고 ‘이뭣고?’한 뒤에 알 수 없는 생각이 있으면은 「그 알 수 없는 그 의심(疑心)」, 의심이 있는 동안에는 다시 또 ‘이뭣고?’ ‘이뭣고?’ 안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알 수 없는 그 의심’이 흩어져 없어져 버리거나, 딴 생각이 나오거나 하면은 그때 또 다시 ‘이뭣고?’하고 한 번 챙기는 것입니다.

‘이뭣고?’하는 그 글자, ‘이뭣고?’한 글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했을 때 그 「알 수 없는 그 의심」 그것이 화두에 요긴한 것입니다.

의심은 없으면서 「이뭣고?」 「이뭣고?」 밤낮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듯이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를 잠시도 잊어버리지 말고 ‘이뭣고?’를 해라』 그러니까,
아하! 그렇게 생각하고는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이뭣고?’를 마치 ‘관세음보살’하듯이 그렇게 하면은 그것은 잘 모르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이것이 무엇이냐?’한 그 알 수 없는 그 간절(懇切)한 의심, 그 의심이라야 옳게 하는 것입니다. 의심이 있어야.
그래서 입으로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그 ‘대관절 이것이 무엇인고?’한 그 알 수 없는 의심 그것이 있으면 화두를 이미 들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무슨 물건'을 가지고 다니다 어디다 놔 버렸는데, ‘아! 그걸 어디다 놨나? 그것이 어디가 있는가? 아! 그거 참 어디가 있는가?’ 그렇게 찾은 것처럼,
‘이거 참!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놈이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그 의심이 그것이 화두인 것입니다.

그 의심이 항상 있어야 하고, 그 의심이 있으면 ‘이뭣고?’ ‘이뭣고?’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할 필요가 없어요. 「알 수 없는 그 의심」을 단전호흡을 하면서 그 의심을 관(觀)하는 것입니다.

앉아서도 그 의심, 서서도 그 의심, 이것은 자꾸 안 될수록에 더 열심히 하시면 나중에 언젠가는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현전(現前)하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나, 옷을 입을 때나, 똥을 눌 때나, 입선(入禪)을 할 시간이나 또는 방선할 때나 그 의심이 항상 있어야 하거든.

그래서 ‘방선(放禪)해도 잡담을 하지 말아라.’ 이런 소리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입선·방선이 전혀 상관이 없어요. 공부가 그렇게 되면은....

여러분이 댁에 계시면은 다 편안하고 잘 잡숫고 자유롭게 계실 텐데,
아! 여기 오셔서 백 명 이렇게 많은 수가 사시니 식사도 반찬도 변변치 못하고 모든 이 목욕탕이라든지 화장실이라든지 그런 시설도 다 불편하고, 아침에 좀 늦잠도 자고 싶은데 자도 못하고, 여러 가지로 자유롭게 살고 싶은 것도 모든 자유가 제한이 되고 그래서 생각해 보면은 참 이러한 고생이 없습니다.

이러한 고생을 무릅쓰고 여기 와서 계시는 것은 순전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기 오신 것인데, 어디에 음식이 맛이 있고 없는 것이 상관이 있으며, 입선·방선이 무슨 상관있습니까?

입선을 하나 방선을 하나, 반찬이 쓰거나 달거나, 밥이 질거나 되거나, 분 따라서 잘 수용을 하고 섭취를 하고 모든 것에 적응을 하면서 자나깨나 우리가 정신 쓸 곳, 신경 쓸 것은 오직 ‘이뭣고?’ 하나 뿐이거든.

‘이뭣고?’ 벌써 화두를 떠억 들고 있는 사람을 보면 눈매가 달라지고 모습이 엄숙하고 경건하면서 벌써 눈이 왔다갔다 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눈이 딱 못박혀 있는 것처럼 눈동자가 따악 박혀 있는 것입니다.
엄숙하고 경건해서 누가 감히 옆에 가서 장난도 칠 수가 없고, 말 붙이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이렇게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입선시간은 말할 것도 없이 하지마는 방선해서 설사 자리에서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시기도 하고 혹 밖에 나가서 포행(布行)을 하신다 해도 각자 자기 나름대로 속으로 ‘이뭣고?’가 따악 자리잡혀 있어야 하거든, 어디 가서 잡담을 하고 히히덕거리고 수군덕거리고 남의 흉보고 그럴 시간이 어디가 있느냐 이 말씀이여.

이 용화선원 조실 스님 열반(涅槃)하신 뒤로 벌써 13년이라고 하는 세월이 흘렀고 그 동안에 처음에 한 2~30명 하다가 4~50명 하다가 6~70명 하다가 이제는 백삼십이 명까지 방부를 드려서,
참 팔도에서 여러 발심(發心)한 보살님네들이 구름처럼 모여서 이렇게 정진을 하시니 이러한 기쁠 도리가 없고 이렇게 고맙고 감사할 도리가 없고, 또 선방의 규칙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좋아졌으나 아직도 멀었습니다.

물론 여러분 가운데는 참 모범이 될 만한 훌륭한 분도 많이 계십니다마는 아직 오신지 얼마 안 되신 분, 아직도 공부하는 요령을 확실히 터득을 못 하신 분도 계시고, 또 오시기는 오셨지만 아직 불법이 무엇인지, 참선이 무엇인지, 선방이 무엇인지, 좋다고 하니까 오시기는 오셨으나 막상 확실히 모르시기 때문에 좀 그런 분이 계실 줄 압니다마는,

여러분 가운데 발심을 해서 공부하신 분이 계시면 그분의 거룩한 모습을 보고 모두가 다 그 본(本)을 봐 가지고 입선·방선이 상관없이, 입승(立繩) 스님이나 누가 ‘잡담하지 말아라. 떠들지 말아라. 시끄럽게 하지 말아라’ 이러한 말씀 듣기 이전에, 각자 방선 시간에도 주욱 앉아서 정진하시고 또 졸리면 나가서 포행하다가 들어오셔서 하시고 해서,

입선·방선이 상관이 없게 이 큰방을 언제나 묵언(默言) 구역으로 해 놓고, 부득이 해서 할 요긴한 말씀이 있으면 밖에 나가서 간단하게 끝마치고 들어와서 또 정진을 하셔야죠.
이 큰방에 둘씩·셋씩·넷씩·다섯씩 구석구석이 모여 가지고 수군덕수군덕 해 쌌고 그래 싸면 공부를 좀 할려고 한 분까지 공부를 못 하시게 됩니다.(55분5초)

 

 



(2)------------------

<용화선원의 가풍(家風)>

오늘부터서 지금 섣달 초하루부터서 8일날 까지는 용맹정진(勇猛精進) 기간입니다.
전국에 선방이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고 온전히 만 일주일 간을 갖다가, 공양하고 변소에 갈 시간만 내 놓고는 전부가 큰방에 앉아서 다 법복을 수하고 그렇게 용맹정진하는 시간입니다.

조금만 졸아도 죽비를 갖다가 탁탁 쳐서 경책(警策)을 주면서 그렇게 합니다마는, 이 용화선원은 왜 그렇게 용맹정진을 아니하냐 하면은 평상시가 바로 용맹정진이 되도록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다.
비록 잠은 여섯 시간을 자지만 그 밖의 시간은 완전히 용맹정진으로 석 달 동안을 그렇게 하자는 것이 조실 스님의 지도 방법이십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께서 열반하신 뒤로도 그렇게 주욱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데 선방은 용맹정진도 하고 잠도 조금씩만 자고, 참선 입선 시간을 (한번에) 3시간씩 이렇게 하기도 하고 그러는데 이 용화선원이 선방이 좋다고 와 보니 맨 잠만 자고 입선 시간도 겨우 8시간 밖에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용화선원의 가풍(家風)을 잘 이해를 못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가풍을 따르지를 못하고 실천을 안 해서 그렇지, 가풍이 무른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 도량(道場)에 들어와서 무슨 잡담을 할 시간이 있겠습니까? 그 전에 강월 스님이 입승을 할 때에 지대방이고 어디고 일체 잡담을 못하게 하고, 심지어 화장실에 가서도 말을 못하게 하고, 누구하고도 둘이 마주서서 말을 주거니 받거니 못하게 하고, 몇철 간을 그렇게 한번 해 봤습니다.
그러니까 정진할려고 애쓴 보살님네들은 참 좋다고 그러고 지금도 그렇게 했으면 좋다고 원하시는 보살님들도 상당수가 계십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유치원 학생이 아닙니다. 국민학교 학생도 아니고 중학교 학생, 고등학교 학생도 아니고 대학생도 아니고 대학을 졸업한 대학원 학생들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대학원 학생한테다가 유치원 학생 다루듯이 해서 되겠느냐 그말이여.
그것은 여러분에 대한 대접도 아니고 도리가 아니기 때문에 특수한 일 아니고선 기본법 외에는 완전히 여러분에게 자유를 드려 가지고 자발적으로 여러분들이 조실 스님의 가풍에 적응하고 순종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오셔서 나시면 잘 하신 분은 당신 좋고 여러분에게 모범이 되어서 좋고 또 용화선원의 가풍을 순종을 함으로써 용화선원을 빛내는 일이 되는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불법을 빛나게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큰 절을 짓고 돈을 많이 내서 그것이 불사(佛事)가 아니라,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이 도량에 터억 들어서서 여법(如法)하게 참되게 정진하는 것, 그것이 바로 가장 참다운 불사를 이룩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거기에 불법이 일어나는 것이지 큰 절을 몇 억씩 들여서 절만 크게 진다고 해서 불법이 흥왕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물론 그런 불사도 필요하지요. 필요하지만 그보다도 더 근본적으로 중요한 불사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진실한 불자(佛子)로서 수행을 알뜰히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견성(見性)을 하게 되고 견성을 해야 부처님이 탄생을 하시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부터 아주 그 동안에 잘 하시는 분은 계속해서 잘 하실 것이고, 그 동안에 혹 그렇게 철저히 잘 못 하신 분은 오늘부터서 아주 완전히 새로 태어난 기분으로 여법하게 해 주실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단전호흡, 화두 의심>

 

아까 단전호흡을 하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꽉 맥힌 분, 그분은 호흡을 들어마실 때 배를 볼록이 하지 말고 배를 홀쪽하게 하고 또 내쉴 때 배를 볼록하게 하고 해서 반대로 이렇게 하시라는 것과,
숨을 들어마셔서 이리해서 차츰차츰 해서 저 배꼽 밑에까지 쪄 넣을라고 그러한 호흡법을 하시지 말고, 그냥 코로 스르르 하니 숨은 들어마시되 배꼽 밑의 단전, 아랫배만 약간 볼록...

 

볼록하게 맨들으라니깐 저 개구리 배에다가 바람 넣은 것처럼, 아랫배가 그냥 포대화상(布袋和尙)처럼 맨들라고 애를 쓰고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조금 약 2, 3센치 조금만 볼록하게 자기 느낌상으로만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고 내쉴 때도 너무 뱃가죽이 등어리에 가서 따악 붙도록 그렇게 억지로 헐라고 하시지 마세요. 약간 홀쪽하게 하는 듯만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면 그렇게 답답한 것은 저절로 없어지게 될 것이고.

그리고 ‘암만 화두를 들고 할라고 해도 화두가 잘 순일하게 들리지 않는다. 한 철, 두 철 내지 3년, 4년, 5년째 해도 영 화두가 순일하게 들리지 않고 자꾸 그런다.’ 그런 것을 호소하시는 분도 계시는데, 화두가 정말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되는 것은 마지막 깨달으기 한 일주일 전부터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진짜 순일무잡하게 되어서 화두를 들라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리고, 뭐 놓고 들 것도 없이 그냥 새벽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잠을 자도 꿈속에서도 화두가 고대로, 자다가 눈을 새벽에 딱 뜨면 새로 화두 들 것도 없이 엊저녁에 들고 잠들었던 그 화두가 고대로 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아침에 눈 딱 떠도 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세수를 해도 고대로 있고, 양치질을 해도 고대로 있고, 화장실 가도 고대로 있고, 밥을 먹어도 고대로 있고, 뭐 소지를 해도 고대로 있고, 옆에서 떠들거나 말거나 전혀 상관이 없이 고대로 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지경에 이르르면 일주일이 못 가서 툭 터지게 되는 것입니다.

설사 일주일 되어서 안 터지더라도 ‘빨리 터졌으면’ 그러한 생각을 가질 것이 없습니다. 그런 상태로 있으면 일주일을 가도 좋고, 열흘을 가도 좋고, 한 달을 가도 좋고, 계속 고대로 해 나가면은 언젠가는 지가 터지지 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순일무잡하게 되었을 때에 깨닫기를 바래거나, ‘누가 이럴 때에 나를 툭 깨닫게 해 줬으면’ 그런 생각을 가져서는 아니 된 것입니다. 고대로 해 나가는 것입니다.

공부 막 좀 될라고 하면 옆에서 떠들어 싸서 못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공부가 진짜 잘된 것이 아니에요. 떠든다고 화두가 달아나 버린다면은 그 화두는 아직도 지금 들렸다 안 들렸다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그래서 이렇게 - 뭐 참선은 집에서는 못할 바 아니지마는, 그래도 여기 와서 조실 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또 모두 여러 발심한 도반들과 같이 규칙생활을 하면서 가정의 모든 복잡한 것을 떠나서 이렇게 와서 하신 것이니,
서로 서로 목적이 같을 진대는 서로 서로 여법하게 잘해서, 나로 인해서 다른 분들이 공부를 잘하고, 다른 분들로 인해서 내가 공부가 잘 되도록 이렇게 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화두가 안 들려도 그걸 성내거나 성화하시거나 번민, 번뇌심을 내실 필요가 없어요. 망상이 일어나면 그냥 고대로 놔둬 버리고 - 오늘 아침에 조실 스님께서 참 아주 요긴한 법문을 해 주셨는데,
망상 일어난 거 그걸 버릴라고 할 것이 아니고 고대로 놔두고, 그냥 다시 화두만 떠억 - 숨을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화두만 딱 다시 한번 들은 것뿐이지, 일어나는 망상을 누를라고 하거나 쫓아낼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말이여.

쫓아낼려고 하고 누를라고 하면은 그것이 눌러지지도 않고 화두만 더 달아나 버린다 그말이여.
 


<장애 - 지계·정진력으로 이겨야>

 

그리고 자기가 지은 업(業)에 따라서 - 전생에 지은 업, 또 금생에 지은 업, 그런 업으로 해서 몸에 자기가 아닌 다른 영혼, 이런 것이 항시 자기 주변을 맴돌거나 자기에게 이렇게 붙거나 그러한 경우가 있습니다.
참선을 안 하신 세속에 사신 분 가운데에도 그런 분들이 상당수가 있고, 또 그것이 남이 보면은 전혀 모르지마는 자기 혼자만 아는 일이죠.

그것이 전생에 어떤 인연있는 영가 - 그것이 원결(怨結)이 있는 영가라든지, 서로 짝사랑을 하던 그런 영혼이라든지, 자기가 너무 그 사람에 대해서 너무 애착을 하고 집착을 하던 그런 영혼이라든지, 또는 무슨 원결이 있어 가지고 나한테 복수를 하기 위해서 나한테 따라붙은 그런 영혼이라든지,
그런 것이 요렇게 붙어서 항상 자기 주변에 이렇게 맴돌며 있는 그런 경우도 있고, 아주 언제나 자기한테 붙어 갖고 다니는 그런 경우도 있고, 뭣한 경우는 계속 귀에다가 뭐라고 계속 소곤대고 명령을 하고,

자기가 이렇게 살고 있지마는 실지는 하나도 자기 마음대로 못 하고, 먹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못 먹고, 그 영혼이 먹으라고 하면 먹고 먹지 말라면 안 먹고, 어디를 가자고 하면 가고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가고, 일체가 다 그 영혼에 - 특수한 그것이 신(神)인지 영(靈)인지 - 조종한대로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애착(愛着)을 갖지 말아라. 물질에 대한 탐착·애착도 못쓰고 사람에 대한 애착과 탐착도 그것이 괴로움의 근본밖에는 아니 된 것입니다.

더군다나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자기의 잇속을 챙겨 가지고 남을 해롭게 하고 남을 갖다가 억울하게 탄압을 하고 심지어는 남을 죽이고 이러한 일은 참 해서는 아니 된 것입니다.
그때는 조금 이익을 얻었을런가 모르지마는 세세생생에 원결이 되어 가지고 기어코 그 앙갚음을 하게 되기 때문에 어찌 우선 조금 이익을 보기 위해서 그런 큰 고통을 받아서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 남에게 고통을 주지 말아라.

 

남의 물건도 훔치지 말 것이며, 남에게 진심(瞋心)을 내지 말 것이며, 산목숨을 죽이지 말 것이며, 또 남을 거짓말하고 속이고 사기를 하지 말 것이며, 또 술을 마시면은 자기의 바른 정신을 놔 버리고 그래가지고 못할 짓 없이 온갖 본의 아니게 못된 행동이 나오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말라’한 것이,
반드시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될, 생사해탈을 하기 위해서 생사윤회를 아니할라면은 그런 부처님의 5계(五戒)를 잘 지키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안 지켜 놓으면은 금생에도 그 과보(果報)를 받는 수가 있지마는, 내생에 두고두고 세세생생에 그런 참 괴로운 과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다행히 금생에 이렇게 발심을 해서 선방에 나오셨지만, 과거에 지은 업연(業緣)으로 해서 그런 영혼이 우리한테 따라붙어 가지고 참선만 할라고 하면은 와 가지고 자기를 직접 간접으로 괴롭히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참선을 안 하고 그럭저럭 지내면은 또 괜찮은데 참선만 할라고 떠억 앉으면은 와서 괴롭히는 수가 있거든.

그건 왜 그러냐 하면은, 참선을 해서 확철대오를 해 버리면 자기가 발붙일 곳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이 참선을 해서 차츰차츰 공부가 잘 되어가면 ‘도고마성(道高魔盛)이다. 도가 높아갈수록에 마군이가 성하게 된다’ 이거거든.

그렇다고 해서 참선을 안 할 수가 있습니까? 그럴수록에 더 신심을 돈독히 해 가지고 자꾸 올바른 방법으로 꾸준히 공부를 해 나가고, 옆에 와서 집적대거나 귀에다 대고 소곤거리거나 말거나, 그것을 가지고 탓을 해서는 안 돼요.
그놈을 탓하고 억지로 떼어 내버릴려고 할수록 그놈은 더욱 꽉 붙잡고 늘어지기 때문에, 떼어 버릴라고 하지 말고 그냥 놔둬 버려.

놔둬 버리고 단전호흡을 하면서 자꾸 화두를 간절히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참구해 나가면, 그렇게 해서 화두가 점점 순숙해져서 순일무잡하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그까짓 잡신·영혼이 어디에 들러붙을 것이냐 그말이여.

오직 그것을 이겨내는 방법은 정진력(精進力), 이 최상승 활구참선(活句參禪)으로 밀고 나가는 도리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조금도 조급한 생각내지 말고, 원망하고 한탄하지도 말고, 짜증내고 번민하지 말고서, 오직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을 하면서 화두를 간절히 참구해 나가면,
하루를 그렇게 지내고 이틀을 그렇게 지내고 한 달, 석 달을 그렇게 지내고 1년, 이태, 3년을 그렇게 지내고 10년 세월을 그렇게 쪼옥 해 나가면 자연히 그런 원결이 있는 영혼도 거기에 감복(感服)이 되어가지고 그냥 원결을 풀고 좋은 곳으로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드릴 말씀이 한이 없지만 오늘은 이만 말을 맺고자 합니다.(35분15초~73분48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이뭣고?’ 화두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남악회양, 육조 스님, 하택신회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십마물 이마래(什麼物伊麼來) : 십마(什麼)는 의문의 말로 '무엇이냐'의 뜻이며, 이마(伊麼)는 임마(恁麼)와 같은 말로 '이렇게'의 뜻으로, 십마물 이마래(什麼物伊麼來)라는 말은 곧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하는 말。
*망지소조(罔知所措) ; 너무 당황하거나 급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고 갈팡질팡함.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생사고해(生死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를 가리킴. 생사와 그 괴로움이 무한한 것을 바다에 비유함.
*유전(流轉) ; 생사 인과(因果)가 서로 끊임없이 이어짐.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화두(話頭)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 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마삼근(麻三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판치생모(板齒生毛)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의심(疑心)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본(本) ; 모범으로 삼을 만한 대상.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묵언(默言) ; 말을 하지 않음.

 

 



------------------(2)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경책(警策 깨우칠 /채찍·회초리 ) ; 선방에서 대중이 좌선할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지는 스님의 어깨를 쳐서 졸음을 깨워 정진을 독려하는 행위. 또는 그때 사용하는 장군죽비를 가리키기도 한다.

*장군죽비(將軍竹) ; 보통 죽비()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40~50센티의 불교 용구인데, 장군죽비는 참선할  졸거나자세가 흐트러진 수행자의 어깨를 쳐서 졸음을 쫓는  1.5~2m  죽비.

*가풍(家風) ; 한집안에서 오래 지켜 온 생활 습관이나 규범.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절. 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지대방 ; 절의 큰방 머리에 있는 작은 방. 이부자리, 옷 등의 물건을 넣어 두는 곳이며, 스님들이 잠깐 휴식을 하기도 하는 곳이다.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포대화상(布袋和尙) ; 중국 후량(後梁) 때의 스님. 본이름은 계차(契此). 절강성(浙江省) 명주(明州) 출신. 체구가 비대하고 배가 불룩하게 나왔으며, 항상 포대를 지팡이에 걸어서 어깨에 메고 동냥한 것을 그 속에 담고 떠돌아다니면서 수행한 선승(禪僧). 916년에 명주 악림사(嶽林寺)에서 입적함.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나쁜 마음의 작용.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원결(怨結 원망할 원/맺을·번뇌 결) ; 원망(怨望)의 마음이 얽혀 풀리지 않는 것을 말함.
*애착(愛着) ; 사랑하여 집착함. 애집(愛執).
*앙갚음 ; 남에게 해를 받은 만큼 저도 그에게 해를 다시 줌.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업연(業緣) ; 업보(業報)의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의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의 인연을 부른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참선할 때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감복(感服) ; 마음속으로 감동하여 탄복함.

Posted by 닥공닥정
참선 (목적)2014. 1. 4. 14:23

§(287) 교외별전(敎外別傳) 선지(禪旨)가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 / 육조 스님의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하택신회, 남악회양 / <사진작가의 ‘참선’ 질문에 대한 ‘풍선’ 법문>

육조 스님께서도 ‘화두’라고 하는 말은 거기에 붙이지 안 했지마는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내게 한 물건이 있는데 (이름도 없고 자字도 없다) 밝기는 태양과 같고 검기는 옻칠과 같은데, 항상 우리 동용(動用)하는 가운데 있으되 동용(動用)하는 가운데 거두어 얻지 못하니 이놈이 무엇이냐?’ 이렇게 제자들에게 물으신 것입니다.

‘화두’라고 하는 말은 안 붙였지만 이 화두선(話頭禪), 화두를 가지고 참선하는 이 간화선(看話禪)이 바로 그 체계화되기 시작한 근원을 바로 거기다가 두는 것입니다.

차라리 깨닫지 못하면 말지언정, 깨달을려면 한번 깨달라서 조사(祖師)의 경지에 이르지 아니하면, 차라리 알았다고 하는 생각을 가져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참선, 이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가부좌를 하고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들고 이것이 현재 한국에서 지도하고 있는 하나의 그 체계적인 양식이기는 하지만,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그러한 반드시 일정한 양식이 있어야만 되는 것이 아니고, 진리는 일체처 일체시에 충만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역대 조사와 선지식의 수단과 능력에 따라서 어떠한 방법으로 지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참선은 초학자(初學者)를 위해서, 물론 책에 있는 그런 자세와 호흡하는 법과 화두를 참구하는 그러한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서 잘 지도를 받아서 하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참선이라고 하는 것이 워낙 범위가 넓고 자유스러운 것이어서, ‘그렇게 해야만 된다’고 생각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87) - 1986년 2월 첫째일요법회(86.02.02).

약 18분.

 

오늘은 2월 첫째 일요법회 날입니다. 방금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사부대중이 잘 들었습니다.

활구참선법. 이 용화사 법보선원에서는 조실(祖室) 스님 생존시, 조실 스님께서 15년간을 이곳에 머무르시면서 많은 납자(衲子)를 제접(提接)하시면서 항상 활구참선법, 최상승법을 선양을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출현하셔서 80세를 일기로 열반하실 때까지, 성불(成佛)을 하셔 가지고 49년 동안을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시는데, 그 팔만사천 법문을 교(敎)라 한다면 그 교(敎) 밖에 따로 마음을 전하신 것이 그것이 교외별전(敎外別傳) 선지(禪旨)라 이렇게 말하는데, 그 교외별전 선지가 바로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께서도 잠시 언급하신 바와 같이 육조(六祖) 스님 이전에는 ‘화두(話頭)’라 하는 말이 없었습니다마는.

물론 그러한 체계화된 간화선(看話禪)은 없었지만, 부처님 때부터서 그 부처님의 설법과 중생을 교화하는 그 팔만사천 법문 가운데에는 일정한 모양이 없는 가운데에 그 법(法)이 자유자재로 구사되었던 것입니다.

그랬던 것이 세상이 흐름에 따라서 중생의 근기(根機)가 차츰 약해지고 또 사량분별심이 점점 영리한 마음은 점점 늘어나 가지고 순박성을 잃어가고, 그러기 때문에 차츰차츰 그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서 역대조사(歷代祖師)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끄는 방편을 중생 근기 따라서 마련하실 수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육조 스님께서도 ‘화두’라고 하는 말은 거기에 붙이지 안 했지마는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내게 한 물건이 있는데 (이름도 없고 자字도 없다) 밝기는 태양과 같고 검기는 옻칠과 같은데, 항상 우리 동용(動用)하는 가운데 있으되 동용(動用)하는 가운데 거두어 얻지 못하니 이놈이 무엇이냐?’ 이렇게 제자들에게 물으신 것입니다.

‘화두’라고 하는 말은 안 붙였지만 이 화두선(話頭禪), 화두를 가지고 참선하는 이 간화선(看話禪)이 바로 그 체계화되기 시작한 근원을 바로 거기다가 두는 것입니다.

하택신회 선사는 그 물음에 대해서 ‘제불지본원(諸佛之本源)이며 신회지불성(神會之佛性)이로소이다. 모든 부처님의 근원이며 저 하택의 불성(佛性)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뭐라고 이름을 붙일라야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뭐라고 모양을 그릴라야 그릴 수도 없는데 어찌 네가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니 신회의 불성이니, 그것이 벌써 이름이 아니냐? 이름이 없다고 그랬는데 왜 이름을 붙이느냐?’ 이렇게 꾸짖으시고서,

‘네가 나중에 열심히 공부를 해서 일가를 이룬다 하더라도 너는 지해종도(知解宗徒) 밖에는 되지 못하겠구나. 사량(思量)으로 따지고 이론적으로 따지는 강사와 같은 그러한 무리 밖에는 못되겠구나’ 이렇게 점검을 하신 것입니다.

 

그 뒤에 남악회양(南嶽懷讓) 선사가 육조 스님을 뵈러 와서는 절을 하니까 ‘심마물(甚麽物)이 임마래(恁麽來)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물으셨는데, 남악회양 선사는 그 물음에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뭐라고 대답을 할 수도 없고 대답을 안 할 수도 없고, 꽉 막혀서 어쩔 줄을 모르고 물러 나와서 8년 동안을 ‘대관절 이 무슨 물건이냐?’

앉어서나, 서서나, 일을 할 때나, 밥을 먹을 때나, 똥 눌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대관절 이 무슨 물건인고?’하는 그 의심이 꽉~ 찼던 것입니다.

일부러 ‘이뭣고?’ ‘이뭣고?’ 형식적으로 하고, 또 할 때는 잠시 알 수 없는 생각이 있다가 금방 돌아서면 의심이 없어지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육조 스님의 그 물음 뒤끝에 꽉 막힌 그 의심이 잊어버릴라야 잊어버릴 수 없고, 안 할라야 안 할 수 없고, 저절로 그 알 수 없는 의심이, 꽉 막힌 그 의심이 차오르는데 뭐라고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심(疑心)이 한목 퍼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8년 동안을 그러한 상태에서 하루하루가 지나갔던 것입니다. 8년 만에사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던 것입니다.

이 활구참선이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뭘 이리저리 좀 하다가 무슨 어떠구라한 무슨 경계가 나타난다고 ‘아! 알았다. 내가 알았다’ 이런 생각을 내고서 무슨 공안을 갖다가 자기 사량분별심으로 따져서 뭐라고 이를라고 하고. 그러헌....

차라리 깨닫지 못하면 말지언정, 깨달을려면 한번 깨달라서 조사(祖師)의 경지에 이르지 아니하면 차라리 알았다고 하는 생각을 가져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누구나 애써서 한 철 두 철 하면 ‘일체가 곧 하나요, 하나가 일체다. 전체가 바로 나요, 나 밖에 이 세계가 어디가 있느냐. 하늘을 보나 땅을 보나 산을 보나 들을 보나 돌을 보나 그것이 모두가 딴것이 아니고 바로 이것이 내 면목(面目)이다’

이러한 체중현(體中玄)의 그런 공견(空見)이라 하는 것은 한 철 아니면 두 철이면 누구나 그러한 경계는 다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가지고 자기가 깨달랐다고 하는 소견(所見)을 내고, 그러한 소견을 가지고 살림을 떠억 지어간다면 그 사람은 조그만한 그릇을 하나 만들어 가지고 그것을 자기 그릇으로 평생을 수용하다 가는 것입니다.

 

작년에 세계적인 사진작가가, 그분은 우리나라 6.25동란 때 전쟁고아로서 미국에 양자를 가 가지고 그래 가지고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해 가지고 그 사진을 연구를 해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는데, 그이가 한번 어느 분의 소개로 찾아왔습니다.

이 참선에 대해서 항시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참선이란 게 대관절 어떠한 것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며, 참선을 해 가지고 구경(究竟)으로 도달하면 어떻게 되는 것이냐?” 이러한 질문을 해 왔습니다.

그 사람은 한국 사람이면서 한국말을 전혀 하지를 못하고 겨우 자기 이름만을 한글로 서투르게 쓸 정도였습니다. 너무 어려서 갔기 때문에 그런 거 같습니다.

그래서 그 말도 잘 못 알아듣는 사람에게 통역을 통해서 짧은 시간에 참선에 대한 설명을 해 주기도 어렵고 그래서 풍선을 하나의 예로써 얘기를 했던 것입니다.

이 참선, 이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꼭 가부좌(跏趺坐)를 하고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들고 이것이 현재 한국에서 지도하고 있는 하나의 그 체계적인 양식이기는 하지만.

이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그러한 반드시 일정한 양식이 있어야만 되는 것이 아니고, 진리는 일체처 일체시에 충만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역대조사(歷代祖師)와 선지식(善知識)의 수단과 능력에 따라서 어떠한 방법으로 지도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세계적인 사진작가지마는 그 사진을 찍고, 또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는 사람은 글씨를 쓰고, 또 쇠를 만드는 그러한 그 제철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그 쇠를 녹여서 좋은 쇠를 만드는 그 가운데, 또 백정이 소를 잡는 데에는 소를 잡는 바로 거기에도 참선이 있을 수가 있고 깨달음이 있을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얘기를 하고.

그래서 사람마다 각기 자기 나름대로 하나의 풍선을 불고 있다.

누가 가장 큰 풍선을 불며, 금방 그 풍선을 잘못 불면 처음에 조금 훅 불다가 어문 가운데에서 툭 터져 가지고 실패해 버린 사람도 있을 것이고, 상당히 클 때까지 분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러나 개중에는 이 우주의 법계에 가득찰 만큼 그러한 큰 풍선을 불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 가지고 터트릴 수 있는, 그렇게 풍선을 불 수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이 우주, 동서고금에 가장 크고도 좋은 풍선을 분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지 않겠느냐?

그래서 지금 우리는 승려로서 우리 나름대로에 가장 좋은 풍선을 불려고 목숨을 바쳐서 노력을 하고 있지만, 당신은 사진작가로서 당신의 풍선을 잘 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얘기를 했더니 그 사람이, 예술가도 상당한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면 이런 도(道)나 법(法)에 관해서 얘기를 하면은 서양 사람이나 동양 사람이나 이해를 잘 하는 것을 경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몇달 후에 그이가 인편에 쪽지를 써서 보냈는데, 지금도 풍선을 열심히 불고 있다고 하는 그러한 그 전단을 보내왔었습니다.

 

'참선을 꼭 가부좌를 하고 단전호흡을 하고 화두를 타서 화두를 참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 고정된, 참선에 관한 고정된 관념을 가져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그런 고정된 생각을 가지면 '참선이라고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지루한 것이다. 장소가 없으면 못하고 시간이 없으면 못하고 어떠한 특별히 혜택 받은 사람이 아니면 참선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참선 자체를 경원시(敬遠視)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억지로 할려고 하니까 지루하고, 발이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아프고 나중에는 졸음이 오고 아무리 해도 재미가 없으니까, ‘하! 이거 화두가 나한테 맞지 않는 것이냐?’ 또는 '내가 공부를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심지어는 '나는 이 참선하고는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냐? 내 근기가 참선을 할 만큼 미치지 못한 것이 아니냐? 차라리 이렇게 아무리 해 봤자 재미도 없고 별 성과도 없는 참선을 이렇게 한다고 해 봤자 허송세월만 하는 것이 아니냐? 그러니 경을 읽어 볼까? 염불을 할까? 주력을 할까?'

그래 가지고 경을 읽다가 염불을 하다, 주력을 하다, 그러다가 보면 또 다시 참선을 하고 싶어서 또 참선을 하다가 말다가, 참 이러한 분을 상당히 많이 겪어 봤습니다.

 

이 참선은, 초학자를 위해서 물론 책에 있는 그런 그 자세와 호흡하는 법과 화두를 참구하는 그러한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서 잘 지도를 받아서 하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참선이라고 하는 것이 워낙 범위가 넓고 자유스러운 것이어서, ‘그렇게 해야만 된다’고 생각해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망상(妄想)이 일어나서 못한다'고 하는데, 망상이 일어나고 안 일어나고 한 것이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고, 또 망상이 일어남으로써 오히려 참선을 잘할 수도 있는 그러한 면도 있는 것입니다.(2분7초~20분1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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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田岡禪師) ;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음)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셨다.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 선사의 법맥을 이으셨다.

33세의 젊은 나이로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 경북 수도선원, 도봉산 망월사, 부산 범어사, 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고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 인천 용화선원, 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 12월 2일(음)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하시고 앉아서 열반에 드셨다.

그리고 후학(後學)을 위한 칠백 여 개의 육성 법문테이프를 남기셨다.

세수(世壽) 77세, 법랍(法臘) 61세.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납자(衲子) : 「납」은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본래 가사(袈裟)는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 三足金烏徹天飛』란 것이 있다。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 』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곧 납자의 본색을 말하는 것이다.

*제접(提接 이끌 제/응대할•가까이할 접)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원적(圓寂)·안락(安樂) 등으로 번역.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 등의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解脫)한 깨달음의 경지.

②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할 것 없이 무엇이나 다 열반이며 어느 때나 늘 열반이다. 이것이 큰 열반인 것이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 (서산대사 | 용화선원 刊) p28, p34에서.(가로판 p29, p35)

世尊이  三處傳心者는  爲禪旨요  一代所說者는  爲敎門이라. 故로  曰,  禪是佛心이요  敎是佛語니라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敎門)이 되었다。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是故로  若人이  失之於口則拈花微笑가  皆是敎迹이요.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가  皆是敎外別傳禪旨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것(拈花微笑)이 모두 교의 자취[敎迹]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敎外別傳禪旨]가 되리라.

*선지(禪旨) : [범] dhyana 음을 따라 선나(禪那) • 타연나(駄衍那)라 쓰고, 줄여서 선(禪)이라고만 한다。고요히 생각함(靜慮), 생각하여 닦음(思惟修), 악한 것을 버림(棄惡) 또는 공덕림(功德林) 등으로 번역한다。진정한 이치를 궁리하고 생각을 안정하게 하여 산란치 않게 하는 것을 말한다.

중국에서는 가섭존자가 전한 선법이 널리 퍼지지 못하고 교법만이 유포되었었는데, 달마대사(達摩大師)가 건너온 뒤로부터 선법이 크게 발달되어 이른바 「조사선(祖師禪)」이 완성되었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육조스님, 하택신회, 남악회양 ;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동용(動用) ; 몸을 움직거리고[動] 정신을 씀[用]. 움직이고 작용함. 활동. 동용(動容)이라고도 한다.

[참고] **송담스님(No.306) - 86년 8월 화두·불명·수계 법회(86.08.03)에서.

이 자(字)는 ‘보일 시(示)’자 입니다. 보일 시(示). ‘보인다’ 그말이여. 이 밑에 여러분의 불명(佛名)이 쓰여져 있습니다. '김 아무개에게 보인다' 아래와 같은 공부하는 법을 보여드린다.

 

유일물어차(有一物於此)하니 상재동용중(常在動用中)하되, 한 물건이 여기에 있으니 항상 움직여 쓰는 가운데 있으되, 몸을 움직거리고[動] 정신을 쓰고[用] 하는 그 가운데 이 '한 물건'이 항상 있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 몸을 움직거리고 정신을 쓰고 하는 그 가운데에 그놈을 찾으면 얻을 수가 없어[動用中收不得]. 분명히 소소영령(昭昭靈靈)하게 있는데 그놈을 거두어 찾을라고 하면 얻을 수가 없다.

 

눈으로 볼라고 해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 잡을라고 해도 잡히지도 않고, 생각으로 아무리 그놈을 알라고 해도 알 수가 없더라. 그러니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한문으로는 시삼마(是甚麼). 우리말로는 ‘이것이 무엇인고?’ 줄여서 ‘이뭣고?’(33분18초~35분)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본래면목(本來面目 본래의 얼굴·모습).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체중현(體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 - 體中玄•句中玄•玄中玄)의 하나.

[참고] 『선가귀감』 (서산대사 | 용화선원 刊) p207, p212 에서. (가로판 p215, p219)

[三玄]삼현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체중현(법문에서)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37)—정묘년 칠석차례(87.07.07.음)에서.(2분 48초)

체중현(體中玄)으로 보면, 공(空)의 이치에서 보면 어떠헌 공안을 묻되 할(喝)을 해 버려도 맞고, 방(棒)을 해 버려도 맞고, 양구(良久)를 해 버려도 맞고, 닥치는 대로 막 잡아서 아무것이라도 일러도 다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있어서는 아무렇게나 일러도 맞지를 않습니다. 그 공안에 여지없이 이(理)와 사(事)에 탁! 맞아떨어지게 일러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 한 철, 두 철 열심히 허다 보면 어지간한 사람이면 다 그 공의 이치를 보게 됩니다. 그 공의 이치, 그게 체중현(體中玄)인데, ‘체(體) 가운데에 현(玄)’, 체의 이치를 보게 되면 그것이 바로 공(空)인데, 공의 이치를 보게 되면 경(經)을 봐도 모두가 그 소식입니다. 조사어록을 봐도 모두가 다 그 도리고, 조금도 맥힐 것이 없어. 환하고. 그런데 현중현(玄中玄)에서는 그렇지를 않거든.

 

체(體)의 이치를 본, 겨우 그 이치만 보고 현중현을 못 본 사람은 된장이나 똥이나 마찬가지여. 선과 악이 마찬가지고, 크고 작은 것이 마찬가지고, 부처와 중생이 다를 것이 없고, 내 마누라나 형수가 다 똑같고, 그저 거지나 임금이 다 똑같고, 생과 사가 똑같고, 그러니 오직 쾌활하냐 그말이여.

그러나 그것 가지고서는 부처님과 조사가 인가(印可)를 허지를 않았습니다. 그것 가지고서는 진리를 바로 봤다고 헐 수가 없어. 그것은 바른 견성(見性)이 아니여. 그래서 조사(祖師)는 현중현이라고 허는 관문(關門)을 시설을 해 가지고, 현중현 도리를 보지를 못허면 바로 보았다고 인가를 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현중현 도리는 선지식이 아니면은 그것을 가려내지를 못해.

 

[참고 ❷] 송담스님 법문(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 (2분 19초)

공안은 그 열쇠가 아니면은 도저히 그 열 수가 없는 아주 이 자물통과 같아서 도저히 그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인가(印可)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속에·진흙 속에 들어가서 무엇이 발을 찔렀는데, ‘뭣이 찔렀다.’ 이래 가지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찌른 것이 뾰족한 돌멩이냐, 그렇지 않으면 무슨 나무 꼬타리냐, 사금파리냐, 또는 쇠꼬치냐, 분명하게 딱! 말을 해야 하는 것이지, 막연하게 ‘뭣이 찔렀다.’ 이렇게만 말한 거와 같아서, 아! 찌른 거야 사실이지, 사실 아닌 것은 아니여.

그러나 분명하게 쇠꼬치면 쇠꼬치, 사금파리면 사금파리, 돌멩이면 돌멩이를 분명히 말을 해야 알 수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학자가 공부를 하다가 자기 나름대로는 반드시 견처(見處)가 있어서 온 것은 사실이나, 불조(佛祖)와 같이 깨닫지 못하면 체중현(體中玄)·구중현(句中玄)·현중현(玄中玄), 현중현 도리를 바로 보지 못하면 스스로 그것에 만족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활구문중(活句門中)에 있어서의 납자(衲子)의 지조(志操)라 할 것입니다.

 

[참고 ❸] 송담스님 법문(No.466)—92년 보살 선방에서 하신 법문(92.02.02)에서. (2분 26초)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공부해 나가다가 조금 느껴지는 그런 편안함이나 맑음이나 또는 시원함, 그런 소견이나 경계 그런 거,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중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경계에 ‘나도 한 소식 했다. 나도 깨달았다. 이것이 깨달음이 아닌가’하고 거기에 머물러 버리면 그 사람은 거기서 끝나는 거죠.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예를 들어서 저 지방에서 서울을 향해 가는데 대전이나 수원이나—시골 산중에 있던 사람이 거기에 나오면은 굉장하거든, 차도 많고 높은 건물도 많고 하니까 여기가 서울이구나! 하고 주저앉은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을 향해서 가는 사람은 중간에 좀 볼만한 데가 도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서울로 착각한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로 가서 중앙청을 갈라면 중앙청까지 딱 가서 대통령을 만나든지 장관을 만나든지 해야지, 저 중간에 가 가지고 조금 높은 건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갖다가 서울이라고 착각한다면 그거 되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니면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경지가 아니면 중간에 체중현(體中玄) 도리, 중간에 나타나는 보이는 그런 경계는 탁! 스스로 부정을 해 버리고 부인을 해 버리고 거기에 빠져서는 안 돼. 탁! 치워버리고 언제나 초학자와 같은 그런 심경으로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으로 자기의 본참공안만을 향해서 한결같이 정진을 다그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참고 ❹] 송담스님 법문(No.112)—79년 11월 관음재일 법어(79.11.24)에서. (2분 36초)

가끔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는 공안에 대한 조리(條理)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공안에 있어서 이 학자가 깨달은데 있어서 체중현(體中玄) 도리를 보는 사람, 체중현 도리를 보아 가지고 그것으로써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 조그마한 소견을 가지고 ‘아! 내가 깨달았다’고 하는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가질까봐, 『절대로 이 공안이라 하는 것은 현중현(玄中玄) 도리를 바로 봐야만 그것이 바로 확철대오(廓徹大悟)다.』 그러한 것을 우리에게 깊이 납득을 시키고 철저하게 명심을 하기 위해서 가끔 공안에 대한 말씀을 구체적으로 해주신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법문을 듣고, 어떠한 공안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이렇게도 따져보고, 저렇게도 일러보고 해서 ‘혹 이런 것이 아닌가. 저런 것이 아닌가’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이 공안은 마치 체중현 도리에서 보면 아무렇게 일러도 맞지 아니한 것이 없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공견(空見)에 빠진 사람, 공견에 빠져가지고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에는 고함을 치나, 욕을 하나, 호령을 하나, 손을 들거나, 발을 구르거나, 무엇이 어떻게 이르건 다 안 맞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이 현중현 도리를 본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봐가지고서는 불법을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현중현 도리는 마치 자물쇠통에 꼭 제 열쇠가 아니면은 열리지 아니한 것처럼, 바로 깨달은 사람만이 바로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공견(空見) ; 공(空)에 집착하여 일으키는 그릇된 견해. 공(空)을 허무론적인 견해로 이해하는 것으로, 이에 따르면 인과(因果)의 도리를 비롯한 모든 것의 존재가 부정된다.

*구경(究竟 궁구할 구/마칠·다할 경)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그 위에 더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어문 ; '딴', '다른', '엉뚱한'의 사투리.

*경원시하다(敬遠視--) ; 겉으로는 공경하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꺼리어 멀리하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Posted by 닥공닥정
이뭣고 화두2013. 12. 12. 09:33

§(264) ‘이뭣고?’ 시삼마(是甚麼) 화두-화두 가운데에 최초의 화두고, 가장 근원적인 화두 / 단전호흡과 의심, 득력(得力) / 경계에 속지 말아야 / (게송)묵조시귀굴~.

이뭣고?’ 시삼마(是甚麼) 화두 - 화두 가운데에 최초의 화두고, 가장 근원적인 화두.

이 활구참선법은 캄캄한 밤에 기둥에 이마빡을 부딪친 거와 같은, 앞뒷이 딱 끊어져 버린 것입니다. 다못 꽉 맥혀 가지고, 알 수 없이 ‘이뭣고?’ 그 뿐인 것입니다.

어떠한 경계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것에 현혹되지 말고 집착허지 말고,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냥 내버려두고, 정신만 탁 챙겨 가지고 눈을 뜨고서 화두를 챙겨나가면 그러헌 경계는 금방 저절로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64) - 1985년 4월 첫째일요법회(91분)에서. (용264)

 

약 18분.

 

 

그런데 흔히 화두 하면 ‘이뭣고?’ 시삼마(是甚麼) 화두를 이야기하게 됩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화두 가운데에 최초의 화두고, 가장 근원적인 화두이기 때문에 ‘이뭣고?’를 많이 말씀을 허게 됩니다.

화두(話頭)라고 하는 말은 임제(臨濟) 스님 이후로 임제종에서 이 화두라고 하는 말을 쓰게 되었습니다마는, 임제 스님 이전에 육조(六祖) 스님도 화두라고 하는 말은 사용하지 아니했지만 ‘내게 한 물건이 있으니 위로는 하늘을 기둥하고 아래로는 땅을 떠받치며, 밝기로는 해보다 더 밝고 검기로는 옻칠보다도 더 검은데, 항상 동용(動用)허는 가운데 있으되, 동용허는 가운데에서 거두어 얻지 못하니 이것이 무슨 물건이냐?’ 이렇게 제자들에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 하택신회(荷澤神會)라고 하는 제자가 터억 앞에 나와서, ‘그것은 제불지본원(諸佛之本源)이며, 모든 부처님의 근원이며 신회지불성(神會之佛性)이로소이다. 이 하택신회에, 저의 불성(佛性)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 육조 스님이 ‘뭐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도 그릴 수도 없다고 내가 그랬거늘, 어찌 불성이니 제불의 본원이니 하고 이름을 붙이는고. 니가 앞으로 공부를 해서 일가(一家)를 이룬다 하드라도 너는 지해종사(知解宗師)밖에는 못 되겠다. 불교 학자밖에는 못 되겠다’

 

이 불교(佛敎)라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교리적으로 공부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참나’를 깨닫는 것이 목적인데, ‘너는, 앞으로 니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일가를 이룬다 해도 지해종자(知解種子)밖에는 못 되겄다’ 이렇게 점검을 허셨습니다.

 

그러자 남악회양(南嶽懷讓)이 왔습니다. 와서 터억 절을 허니까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이렇게 육조 스님이 물으셨습니다.

하! 그 육조 스님이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헌 물음에 대해서 꽉! 맥혀서 뭐라고 대답헐 수가 없어 몸을 둘 바를 몰랐습니다.

 

하택신회는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니, 무슨 하택신회의 불성이니 이렇게 즉각 그 대답을 했는데, 남악회양은 육조 스님이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허고 묻는데 대해서 앞이 꽉 맥혀 가지고 몸 둘 바를 몰라. 그 뒤로 8년 만에사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습니다.

 

8년 동안을 ‘대관절 이 무슨 물건인고?’

앉아서도 그 생각, 서서도 그 생각, 밥을 먹으면서도 그 생각, 일을 허면서도 그 생각, 똥을 누면서도 그 생각, ‘대관절 이 무슨 물건인고?’ 이렇게 허기를 8년 만에사 확철대오를 했어.

 

그래 가지고 육조 스님 앞에 가서 ‘설사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육조 스님이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아, 도리어 닦아 증(證)헐 것이 있느냐?’허니까,

‘수증(修證)은 즉불무(卽不無)어니와 오렴(汚染)은 즉부득(卽不得)입니다. 닦아 증(證)헐 것이 없들 않지마는 오렴은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너도 또한 그렇고 나도 또한 그렇다' 이렇게 해서 인가(印可)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참선법, 활구참선법은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더듬어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남악회양 선사처럼 대뜸 처음부터서 꽉! 맥혀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캄캄한 밤에 기둥에 이마빡을 부딪친 거와 같은, 캄캄하니 갑자기 걸어가다가 기둥이나 벼람박에 이마빡을 부딪쳤을 때 그때 상황이 어떻습니까? 앞뒷이 딱 끊어져 버린 것입니다.

다못 꽉 맥혀 가지고, 알 수 없이 ‘이뭣고?’ 그 뿐인 것입니다.

이렇게 꽉 맥혀서 앞뒷이 끊어져야 그 공부를 옳게 해 나가는 것이지,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상식, 이론, 무슨 철학, 불교 경전에 있는 부처님 말씀, 그것을 갖다가 아는 대로 끌어다가 이렇게 분석을 하고, 종합을 하고, 비교를 하고, 적용을 하고, 이렇게 해서 공부를 허는 것이 아닙니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도 그렇고, 마삼근(麻三斤)도 그렇고, 무자(無字) 화두도 그렇고, 시삼마(是甚麼)도 그렇고, 무슨 화두(話頭)를 어느 큰스님한테 탔든지 간에 한번 탔으면 그 화두,

공부가 잘되거나 못되거나, 못될수록에 그 화두 하나에 전력을 쏟을 것이고, 잘된다 하드라도 기쁘다 하는 생각을 내지 말고 다못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 무자 화두를 하는 분은 ‘어째서 무라 했는고?’ 다못 이렇게 지어갈 따름인 것입니다.

 

꽉 맥혀서 답답허고 알 수가 없지만 조금도 조급한 생각을 낼 것이 없고, 또 그렇게 해 가다 보면 화두가 순일하게 들려서 의심(疑心)이 순일(純一)하게 들린다 하드라도, 화두가 독로(獨露)한다 하드라도 기뻐하는 마음을 내서는 안 된다.

기쁜 마음을 내면 이미 화두는 달아나 버리고, 기쁜 마음의 마구니가 벌써 침입해 들어온 것이고, 안된다고 짜증을 내고 번뇌심을 내면 이미 번뇌의 마구니가 내 마음에 침입해 들어온 것이라. 그래서 이 공부는 잘된다고 해서 기쁜 마음도 내서는 아니되고, 잘 안된다고 해서 짜증낼 일도 아닌 것입니다.

 

다못 단전호흡을 허면서 숨을 쑤욱 들어마시면 아랫배가 볼록해지는데, 볼록해지거든 약 3초 동안 딱 정지했다가, 또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뭣고~?’허면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러면 숨이 다~ 나가면 배가 홀쪽해지죠. 그러면 또 스르르르 들어마시면은 아랫배가 볼록해지는데, 볼록해지거든 딱 정지헌 상태에서 약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또 숨을 내쉬면서 ‘이 뭣고?’ 이렇게 해 나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화두를 들고... 허지만, 차츰차츰 익숙해지면 꼭 숨을 내쉴 때마다 화두를 들지 아니해도 됩니다.

들었던 화두 ‘이뭣고?’헌 그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그냥 화두는 더 들지 않고, 그 있는 의심을 묵묵히 반조(返照)를 허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두는 한번 들고서 숨은 3번, 4번, 5번 내지 10번을 쉬어도 그 화두 의심이 고대로 있으면은 덮치기로 화두를 들지 않다가, 화두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없어지거나 딴 생각이 일어났다허면 그때 가서 또 화두를 떠억 한번씩 챙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일구월심(日久月深)해 가면, 처음에는 그렇게 들랴고 해도 깜빡한 사이에 달아나 버리고 들면 또 달아나 버리고 하는데, 나중에는 들지 아니해도 저절로 화두가 항상 들어져 있게 될 때가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그때는 그것을 갖다가 공부가 많이 익숙해진 증거인 것입니다.

 

힘을 쓰지 아니해도 저절로 공부가 되어가니까 힘을 덜게 된다. ‘힘 덜게 되는 것을 득력(得力)이라, 힘을 얻는 것이라’ 이렇게 고인(古人)네들은 표현을 했습니다.

 

이 공부에 제일 주의헐 것은 사량분별로 따지지 말 것이며, 설사 공부가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순일허게 잘 들리고 의단이 독로헌다 해도 좋아하는 마음, 환희심(歡喜心)을 내지 말 것이다.

 

또 공부가 순일허게 잘되어 갈 때에 ‘빨리 깨달랐으면, 이럴 때 누가 나로 하여금 탁! 깨닫게 해줬으면’ 그러헌 생각도 내지 말 것이다.

 

또 공부가 그렇게 순일하게 잘되어 가게 되면은 여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어떠한 그 신기한 경계(境界)가—혹 환한 빛을 광명을 본다던지, 꿈에 부처님을 친견하고 꿈에 어떤 깨달은 꿈을 꾼다든지, 또는 여러 가지 뭣이 알아진다든지, 그런 신기한 경계가 나타난다 하드라도 ‘이것은 일시적으로 스쳐가는 환상(幻相)이다’ 생각하고. ‘이거 내가 깨달은 것이 아닌가?’ 그러헌 그 외람(猥濫)되고 잘못된 생각을 내지 말고.

 

어떠한 신기한 불보살이 나타나고 신기한 경계가 나타난다 하드라도 이것은 허상(虛像)이요, 환상이라 하는 것을 미리부터 잘 이해를 허시고, 그런 데에 현혹되지 말고 집착허지 말고.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냥 내버려두고, 정신만 탁 챙겨 가지고 눈을 뜨고서 화두를 챙겨 나가면 그러헌 경계는 금방 저절로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스승을 바로 만나지 못하고, ‘어떻게 해야 옳게 해 나가는 것인가’를 잘 모르는 사람은 공부허다가 이런 허상과 환상과 마경(魔境)이 나타나면 이것이 도통(道通)헌 것으로 착각을 하고, 그것에 기쁜 마음을 내고 그것에 집착을 하고 신경을 써 가지고 영영 사도(邪道)에 빠지고, 까딱하면 정신병자가 되고 하는 예도 가끔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공부는 시작할 때부터서 바르게 시작을 해야 하고, 중간에도 바르게 해 나가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묵조시귀굴(黙照是鬼窟)이요  문자역조강(文字亦糟糠)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문해하종(若問解何宗)인댄   방행여우적(棒行如雨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묵조(黙照)는 시귀굴(是鬼窟)이요. 묵묵히 앉아서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이 귀신의 굴택(窟宅)이요.

문자(文字)는 역조강(亦糟糠)이다. 문자, 이론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은 이것은 다 찌꺼기더라 그말이여.

 

참선을 허되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허면서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이 독로(獨露)허도록 잡드리를 해 나가야지,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이 그냥 조용헌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 나가는 그러헌 공부는 이것은 묵조사선(默照邪禪)이라 해 가지고, 이것은 아무리 평생을 들여다보고 있다 허드라도 이것은 귀신굴(鬼神窟) 속에서 살림살이를 허는 것이라 해서 영원히 깨달을 분(分)이 없는 것입니다.

설사 오신통(五神通)이 난다 허드라도 이것은 정법(正法)이 아니고 외도선(外道禪)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전(經典)이라 하더라도 경전을 우리의 중생 분별심으로 사량분별로 이리저리 따져서 해석을 허고 있다면, 그것은 곡식의 바른 알곡을 먹지를 못하고 그 찌꺼기를 씹고 있는 것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부처님 경전도 그 경전을 바로 읽고 바로 봐서 부처님의 그 참뜻을 옳게 깨달라야지, 그것을 이론적으로 따지고 문자로 그것을 분석해서 그렇게 일생 동안을 경을 읽고 연구를 헌다해도 그것은 찌께기—엿 국 다 뽑아내고 엿기름 찌께기를 그것은 돼지나 주는 것인데 그것을 갖다가—엿 국물은 받아서 구정물 통에 붓어 버리고 그리고 그 엿밥, 찌께기를 먹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약문해하종(若問解何宗)이면, 그렇다면은 묵조(默照)도 아니오, 문자를 (연구하는) 것도 아니라면,

'그렇다면 그대가 공부해 나가는 종지(宗旨)가 무엇이냐? 그대가 공부해 나가는 것은 어떠헌 공부를 허느냐? 무슨 목적으로 어떠헌 공부를 허느냐?’허고 묻는다면은,

 

방(棒)을 내리기를, 방맹이로 몽둥이질을 허기를 비 쏟아지듯이 몽둥이질을 허리라[棒行如雨滴].

‘그 무슨 공부를 허느냐? 그대가 하는 공부의 지취(旨趣)가 무엇이냐?’고 묻다가 뭇매를 맞게 된다 이것입니다.

 

어째서 ‘그대의 공부허는 종지가 무엇이냐?’하고 묻는데 방맹이를 맞게 되느냐?

여러분이 참선을 열심히 허시게 되면 이 뜻을 스스로 아시게 될 것입니다.(61분32초~1시간19분4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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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임제, 육조, 하택신회, 남악회향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임제종(臨濟宗) ; 중국 선종 제6조(祖) 혜능(慧能)으로부터 남악(南嶽)·마조(馬祖)·백장(百丈)·황벽(黃檗)을 거쳐 임제의현(臨濟義玄, ?-867)에 이르러 일가(一家)를 이룬 종파이다.

임제종은 북방에서 널리 성행했는데, 송대(宋代)에 석상 초원(石霜楚圓) 문하에서 양기 방회(楊岐方會)의 양기파와 황룡 혜남(黃龍慧南)의 황룡파가 나와, 양기파는 성행했으나 황룡파는 얼마 안 가 쇠퇴함.

양기파 문하의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는 천만 가지 의심도 결국은 하나의 의심에 지나지 않으며, 화두(話頭)의 의심이 깨뜨려지면 천만 가지 의심이 일시에 사라진다고 하여 화두와 정면으로 대결할 것을 역설했는데, 그의 선풍(禪風)을 간화선(看話禪)이라 한다.

*동용(動用) ; 몸을 움직거리고[動] 정신을 씀[用]. 움직이고 작용함. 활동. 동용(動容)이라고도 한다.

[참고] **송담스님(No.306) - 86년 8월 화두·불명·수계 법회(86.08.03)에서.

이 자(字)는 ‘보일 시(示)’자 입니다. 보일 시(示). ‘보인다’ 그말이여.

이 밑에 여러분의 불명(佛名)이 쓰여져 있습니다. '김 아무개에게 보인다' 아래와 같은 공부하는 법을 보여드린다.

 

유일물어차(有一物於此)하니 상재동용중(常在動用中)하되, 한 물건이 여기에 있으니 항상 움직여 쓰는 가운데 있으되, 몸을 움직거리고[動] 정신을 쓰고[用] 하는 그 가운데 이 '한 물건'이 항상 있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 몸을 움직거리고 정신을 쓰고 하는 그 가운데에 그놈을 찾으면 얻을 수가 없어[動用中收不得]. 분명히 소소영령(昭昭靈靈)하게 있는데 그놈을 거두어 찾을라고 하면 얻을 수가 없다. 눈으로 볼라고 해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 잡을라고 해도 잡히지도 않고, 생각으로 아무리 그놈을 알라고 해도 알 수가 없더라.

그러니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한문으로는 시삼마(是甚麼). 우리말로는 ‘이것이 무엇인고?’ 줄여서 ‘이뭣고?’(33분18초~35분)

*지해종사(知解宗師) ; 참선 공부를 알음알이로 따져서 해석하고 강론하고 공부해 가는 강사나 이론가를 말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가로판 p149~151)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벼람박 ; ‘바람벽(--壁, 집의 둘레 또는 방의 칸막이를 하기 위해 만든 벽)’의 사투리.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마삼근 (麻三斤) : 화두의 하나。『어떤 것이 부처님입니까?』하는 물음에 대하여, 운문종(雲門宗)의 동산(洞山) 수초선사(守初禪師)가 대답하기를 『마 삼근(삼 서근)이니라』하였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반조(返照) ; 돌이켜 살펴보는 것.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 · 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참고] 『서장(書狀)』 (대혜종고 著) ‘증시랑(曾侍朗)에게 답함(여섯 번째)’

苟念念에 不退初心하고 把自家心識이 緣世間塵勞底하야 回來抵在般若上이면 雖今生에 打未徹이라도 臨命終時에 定不爲惡業所牽하야 流落惡道하고 來生出頭에 隨我今生願力하야 定在般若中하야 現成受用하리니 此時決定底事라 無可疑者니라.

 

참으로 생각생각에 초심(初心)에서 물러나지 말고 자기 자신의 마음이 세간의 번뇌와 반연하는 것을 잡아 돌이켜 반야(般若) 위에 이르게 하면, 설령 금생에 (이 일을) 타개打開하여 사무치지 못하더라도 임종시에 결정코 악업(惡業)에 이끌리는 바가 되어 악도(惡道)에 흘러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며, 내생에 태어나면 나의 금생 원력에 따라 반드시 반야 가운데에 있어 수용(受用)을 현전 성취(現前成就)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결정적인 일이라, 의심할 게 없는 것입니다.

 

衆生界中事는 不著學하야도 無始時來로 習得熟하며 路頭亦熟이 自然取之에 左右逢其原하니 須著撥置니이다.

出世間學般若心은 無始時來로 背違라 乍聞知識의 說著이어도 自然理會不得하나니 須著立決定志하며 與之作頭抵하야 決不兩立이니다.

 

중생계의 일은 배우지 않더라도 아득한 옛날부터 익혀서 무르익어졌으며, 인생길에도 역시 익어져서 자연스레 취하여 그 중생계의 일 속으로 들어가니, 마땅히 이 습기를 없애 버리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에) 세간을 나와서 반야(般若)를 배운다는 마음은 시작을 알 수 없는 때로부터 등지고 어겨왔으므로 잠깐 선지식의 설법(說法)을 듣는다 해도 쉽사리 이해되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결정(決定)한 뜻을 세워서 더불어 머리를 맞대고 겨루어 나가야 합니다. (습기와 반야는) 결코 양립되지 않습니다. 

 

此處에 若入得深하면 彼處는 不著排遣하야도 諸魔外道가 自然竄伏矣니이다. 生處는 放敎熟하고 熟處는 放敎生이 政爲此也니 日用做工夫處에 捉著欛柄하면 漸覺省力時가 便是得力處也니이다.

 

이 곳[般若心]에 깊이 들어가게 되면 저 곳은 (습기를 굳이) 물리쳐 보내지 않아도 모든 마(魔)와 외도가 자연히 항복해 숨을 것입니다. 설은 곳[生處]은 익게 하고, 익은 곳[熟處]은 설게 함이 바로 이 때문이니, 일용에 공부하는 곳에서 요점을 잡고[欛柄] 차츰 힘이 덜어진다고 느낄 때가, 바로 그때가 힘을 얻는 곳입니다.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환상(幻相) ; 실체가 없는 무상한 형상.

*외람되다(猥濫-- 함부로·외람할 외/함부로·넘치다 람) ; (언행이나 생각이)분에 넘치는 데가 있다.

*마경(魔境) ; 마(魔)의 경계(境界).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번뇌를 말한다. 마(魔)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도통(道通) ; ①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훤히 통함. ②깨달음.

*사도(邪道) ; 올바르지 않은 삿된 길.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길.

*(게송) ‘묵조시귀굴(黙照是鬼窟)~’ ; 『청허당집(淸虛堂集)』(동국대학교역경원) p63 ‘일선자(一禪子)에게’ 게송 참고.

*굴택(窟宅) ; 거처, 집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묵조사선(默照邪禪) ;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이, 그냥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 나가는 그러한 공부. 이것은 깜깜한 귀신굴(鬼神窟) 속에서 살림살이를 하는 것이라 해서 영원히 깨달을 분(分)이 없는 것이다.

*오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 다섯 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①신족통(神足通)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변할 수 있는 능력.

②천안통(天眼通) 모든 것을 막힘없이 꿰뚫어 환히 볼 수 있는 능력.

③천이통(天耳通) 모든 소리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는 능력.

④타심통(他心通) 남의 마음 속을 아는 능력.

⑤숙명통(宿命通)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능력.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94-95 참조.(가로판 p99~100)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누진통(漏盡通) ;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정법(正法 바르다·올바르다 정/부처님의 가르침 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정법시대(正法時代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엿 국물(엿물) ; 곡식을 엿기름으로 삭힌 뒤에 자루에 넣어 짜낸 국물. 맛이 달고 끈적끈적하다. 엿 국물을 고아 굳힌 것이 우리가 보통 먹는 ‘엿’이다.

*엿밥 ; 엿을 만들 때 엿물을 짜내고 남은 밥찌끼.

*종지(宗旨 근원 종/뜻 지) ; ①종문(宗門, 종파宗派)의 교의(敎義 어떤 종교의 진리로서 공인된 가르침)의 취지(趣旨 긴요한 뜻). ②주장이 되는 요지나 근본이 되는 중요한 뜻.

*지취(旨趣 뜻 지/뜻 취) ; ①어떤 일에 대한 깊은 맛. 또는 그 일에 깃들여 있는 묘한 뜻. ②취지(趣旨 어떤 일에 대한 기본적인 목적이나 의도).

Posted by 닥공닥정

 

 

§ 활구참선의 법맥.


**송담스님(No.88) - (참선법A) 법련사 불교학생회 청법 법문(1978.10.1)에서. (용088)


약 6분.

 


§ 활구참선의 법맥

삼천 년 전에, 부처님께서 가섭존자에게 법을 전하시고, 가섭존자는 아난존자에게, 아난존자는 상나화수존자에게, 이렇게 해서 28대 달마대사까지 전해 왔습니다.

달마대사는 일 백 오십 세가 되도록 인도 천지를 두루 다니시면서 이 정법을 펴시다가, 그 이전에 중국에 불법이 건너갔다고는 하지마는, 경전이나 불상이나 그런 상법(像法)만이 건너갔지,
내가 나를 깨닫는 부처님의 최상승법은 전해지기 못했기 때문에 일 백 오십 세의 고령으로 3년간의 항해 끝에 중국 남해안에 도달하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맨 처음에 양(梁) 무제(武帝)를 만나니,
“짐(朕)이 절을 많이 짓고, 경전을 보시하고, 스님네 봉양을 많이 한 공덕이 얼마나 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달마대사께서는, “공덕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가장 성스러운 진리입니까?”
달마대사께서, “확연해서 성스러울 것도 없습니다!(廓然無聖)”
“그러면 내 앞에 서 있는 당신은 누구요?”
“모르겠습니다!(不識)”하고 달마대사가 대답했습니다.

거기에서 대화가 끊어져서, 달마대사는 양자강을 건너서 위나라 숭산 소림굴에 들어가 9년 간 면벽관심(面壁觀心)을 하다가 혜가라고 하는 제자를 만나 법을 전하셨습니다.

부처님으로부터 육조 혜능스님까지 33대가 되고, 육조스님 이후로 오종가풍(五宗家風)이 벌어져 중국 천지에 선풍이 크게 진작을 했습니다. 그 오종가풍 가운데 임제종의 활구참선법이 한국에 전해졌습니다.

조선에 와서 수백 년 간 교풍(教風)이 성하고 선풍(禪風)이 다소 침체한 감이 있었으나, 백여 년 전에 경허선사가 대강사로 확철대오(廓徹大悟) 하시어 종풍(宗風)을 중흥하셨습니다.
그 밑에 만공선사를 비롯한 육대 선지식이 배출되고, 오늘날 활구참선법이 이 땅에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46분29초~51분5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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回 이 법어는 송담(松潭)스님께서 1978년 10월 1일, 「법련사 불일 청년회」의 청법으로 설하신 내용이며, 스님께서 직접 편집하신 것을 『불일회보』(1988년 6. 7. 8월)에 게재했었던 원고임.

*가섭(迦葉), 아난존자(阿難尊者), 달마대사(達摩大師), 혜가(慧可) ; 분류 ‘역대 스님 약력’에서 참고.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짐(朕) ; 예전에, 임금이나 군주가 자기를 이르던 말.
*오종(五宗) ; 임제종(臨濟宗), 조동종(曹洞宗), 운문종(雲門宗), 위앙종(潙仰宗), 법안종(法眼宗)
*임제종(臨濟宗) ; 임제 의현(臨濟義玄, ?~867)에 의해 비롯된 종파.
*경허선사 ; 경허성우(鏡虛惺牛, 1849~1912). 한국 근현대 선불교의 중흥조.
*만공선사 ; 만공월면(滿空月面, 1875~1946). 경허선사의 법을 이어 덕숭산 정혜사에서 선풍(禪風)을 떨쳤다.

Posted by 닥공닥정
역대 스님 약력2013. 11. 20. 13:59

육조혜능(六祖慧能), 남악회양(南嶽懷讓), 하택신회(荷澤神會), 임제의현(臨濟義玄), 규봉종밀(圭峰宗密)

*육조(六祖) : (638 ~ 713) 육조혜능(六祖慧能).
중국의 선종(禪宗)은 달마(達摩)대사를 초조로 삼고, 그로부터 육대 되는 혜능(慧能)을 육조라고 한다.
그는 속성이 노(盧)씨고, 지금의 광동성(廣東省) 조경부(肇慶府) 신흥(新興)에서 났다。세 살에 아버지가 죽고 집이 가난하여 공부 하지 못하고, 날마다 나무를 팔아서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24살 때에 장터에서 어떤 사람이 <금강경>읽는 것을 듣고 깨친 바 있어 그 사람의 지시로 양자강을 건너 황주부(黃州府) 황매산(黃梅山)에 가서 오조 홍인대사(弘忍大師)를 뵙고, 그의 시키는 대로 여덟 달 동안이나 방아를 찧고 있었다.

오조가 법을 전하려고 제자들의 공부를 시험하는데,
교수사(敎授師)로 있는 신수(神秀)는 글 짓기를 「몸은 보리의 나무, 마음은 밝은 거울, 부지런히 닦아서, 티끌 묻지 않도록(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勿使惹麈埃)」이라 하였다.
이때 노행자(盧行者)는 「보리 나무 없는 것, 마음 거울 비인 것, 아무것도 없는데, 티끌 어디 묻으랴(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麈埃)」라고 지었다.

오조는 그를 인가(印可)하고 석가여래의 법통을 표시하는 의발(衣鉢)을 전해 주었다.
그는 남방으로 돌아가서 18년 동안이나 숨어 지내다가 비로소 중이 되어, 소양(韶陽)의 조계산(曹溪山)에서 선법(禪法)을 크게 일으키니 견성(見性)하여 그 법을 이은 제자만 40여 명이 있었다.

당나라 현종(玄宗) 개원(開元)1년에 76세로써 입적하였다。저술로는 육조단경(六祖壇經)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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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양선사(懷讓禪師) : (677 ~ 744) 남악회양(南嶽懷讓).
섬서성(陝西省) 흥안부(興安府) 두(杜)씨 집에서 났다.
15살에 출가하여 육조의 법회에 가서 8년 만에야 견성하여 그 법을 받고, 전후 15년 동안 모시고 지내다가 남악(南嶽) 반야사 관음대(般若寺觀音臺)에서 교화하니, 그 법을 받은 제자가 아홉 분이 있었다.
그 가운데는 신라의 본여선사(本如禪師)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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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회선사(神會禪師) : (686 ~ 760) 하택신회(荷澤神會) 또는 하택선사(荷澤禪師)라고도 한다.
호북성(湖北省) 양양부(襄陽府) 고(高)씨의 집에서 났다。어려서 유교(儒敎)와 도교(道敎)의 글에 정통하였는데 <후한서(後漢書)>를 보다가 불교의 묘한 이치를 알고 출가하여 경을 많이 숭상하였다.

처음엔 형주(荊州)의 옥천사(玉泉寺)에 가서 삼 년 동안이나 신수(神秀)대사를 모시고 있다가, 그가 칙천 황후(則天皇后)의 청을 받고 서울로 가게 되자 그의 지시로 육조의 법회로 갔다。그 때의 나이가 열 세 살이라기도 하고 마흔 넷이었다고도한다.

육조의 법을 받은 뒤에 남양(南陽)의 용흥사(龍興寺)와 낙양(洛陽)의 하택사에 있으면서, 육조의 종지를 크게 드날려서 신수의 종지가 쓰러지게 되었다.

어사(御史) 노혁(盧奕)의 무고(誣告)로 여러 해 동안 귀양살이를 하였고 「안록산(安祿山)의 난」에는 군비와 군수품을 많이 모집하여 나라에 바쳤다.

저술로는 <현종기(顯宗記)> 1권, <신회어록(神會語錄)> 3권, <하택미결(荷澤微決)> 1권이 있다.

그의 문하에 유능한 이가 많아서 한동안(150년 가량) 하택종이 큰 세력을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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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臨濟) : ( ? – 867) 임제의현(臨濟義玄).
속성은 형(荊)씨이고 이름은 의현(義玄)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강당에서 경을 연구하다가 황벽(黃檗) 희운선사(希運禪師)의 법회에 가서 3년 동안 있었다.
그러면서도 아무 말도 묻지 못하고 지냈는데, 제일좌(第一座)의 지도를 받아 『어떤 것이 불법의 똑바른 참뜻입니까?』하고 물었더니, 황벽은 다짜고짜로 몽둥이로 한바탕 때려 주었다。제일좌의 권에 따라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한 가지 말을 물어서 똑같이 매만 실컷 맞았다。그러나 그 맞은 까닭을 아지 못할 뿐 아니라, 그곳에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하고서 그곳을 떠나려는데 황벽의 지시로 대우(大愚)화상의 회상으로 갔다.

『황벽이 요사이 무슨 법문이 있던가?』하고 대우가 물었다。세 번이나 얻어맞은 사연을 자세히 말하고, 무슨 허물이 있어서 그처럼 때리는지 모르겠더라고 말하였다。대우는 『허! 황벽이 그처럼 너 때문에 애썼는데 허물을 찾고 있단 말이냐?』하는 데서 크게 깨치고는 『황벽의 불법이 몇 푼어치 안 되는군』하였다。대우가 『아까는 허물을 찾던 놈이 지금 와서 무슨 큰소리 하느냐?』한즉, 주먹으로 대우의 옆구리를 세 번이나 쥐어 박았다.

그리고 황벽에게 되돌아와서 그 법통을 잇고, 고향인 하북성(河北省) 진주(鎭州)의 임제원(臨濟院)에서 주로 간화선으로써 크게 교화하였다。그의 법을 이은 제자가 스물 두 분이나 있었다。그리하여 그는 임제종의 종조(宗祖)가 되었다.
당나라 의종(毅宗) 함통(咸通) 8년에 입적하였다。저서로는 <임제혜조선사어록(臨濟慧照禪師語錄)>이 한 권 있다.

그의 법을 이은 제자 가운데는 신라의 지리산 화상도 있었다。그의 밑으로 십 구 세(世) 되는 평산 처림(平山處林)의 법을 고려의 나옹왕사(懶翁王師)가 받아 왔고, 또 같은 임제 십 구 세 석옥 청공(石屋清珙)의 법을 태고국사(太古國師)가 받아 와서, 이조 시대의 우리 나라 불교는 온전히 임제종의 법맥(法脈)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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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봉(圭峰) : (780 – 841) 법명은 종밀(宗密), 규봉종밀(圭峰宗密), 속성은 하(何)씨
사천성(四川省) 순경부(順慶府) 서충현(西充縣)에서 났다.
젊어서 유교를 배웠고, 스물 여덟에 과거보러 가다가 수주(遂州) 도원선사(道圓禪師)를 만나 출가하여 참선하였다。어떤 날 신도의 재(齋)에 가서 <원각경(圓覺經)>을 읽다가 깨쳤다.

그 뒤 징관(澄觀)에게서 <화엄경>의 깊은 이치를 받아 가져 화엄종의 오조(五祖)가 되었으나, 항상 선(禪)과 교(敎)의 일치를 주장하였다.
섬서성(陝西省) 서안부(西安府) 종남산 규봉(終南山圭峰)에 많이 있었다.

그의 저술은 <원각경대소(圓覺經大疏)> 3권과 그 <석의초(釋義抄)> 13권, <화엄경윤관(華嚴經綸貫)> 15권,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 2권, <기신론소(起信論疏)> 4권, <원각도량수증의(圓覺道場修證儀)> 18권 등 모두 200여 권이 있다.

당나라 회창(會昌) 1년에 62세로써 입적하였다。

Posted by 닥공닥정
이뭣고 화두2013. 10. 13. 21:49

•§•(319) (게송) 오가유보물 가소서래의 하시황매사 방할여우적, 내가 본래 가지고 있는 물건, 내 면목(面目)을 깨닫는 것이 보물. 딴 데서 구하거나 전할 것이 아니다.

 

**전강선사(No.319) - 이뭣고 화두법(계축1973.7.26)(42분) (전319)

 

(1) 약 6분.

(2) 약 2분.

 

(1)------------------

 

오가유보물(吾家有寶物)이다  가소서래의(可笑西來意)니라

나무~아미타불~~
하시황매사(何是黃梅事)오  방할여우적(棒喝如雨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오가(吾家)에 유보물(有寶物)이다. 내게 큰 보물이 있다. 천하에 보물은 내가 보물이지.
내게 있지. 내게 있다는 것 보담도 내가 보물이다.
천상천하에 우주만물 가운데 ‘나’ 내놓고 뭐가 있나? 오직 ‘나’다.
하늘이다. 땅이다. 하늘 땅을 뒤집어 싸고 있는 큰 허공이다. 허공 가운데 두두물물 화화촉촉 뭐가 나보덤 나은 것이 있나? 내 밖에 뭐가 있나?

그 내 보물, 내가 ‘나’ 하나 찾아 놓으면, 내가 나를 깨달라 놓으면 천하에 보물이다.
그거 무슨 생(生)이 있나? 사(死)가 있나? 있다 없다 한 것이 있나? 나보다 보물이 뭐가 있겠나?

나를 내가 알지 못허고 나를 내가 깨닫지 못허고는 무슨 놈의 그 사람이니, 무슨 뭐 인생이니, 천상천하에 무슨 인유최귀(人唯最貴)니, 뭐가 있어 그것이. 그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여?

이까짓 놈의 송장 덤벵이가 ‘나’인가? 그 눈깔이 있다고 좀 본다고 잠깐 보다마는 놈의 것, 그 눈깔이 내 눈깔이며, 입이 좀 뚫어져 가지고 말 좀 헌다고 그것이 내 입이며, 내 콧구녁이며, 내 몸뚱아리며, 그 내 임시의 모두 망상(妄想)으로써 원증회고(怨憎會苦)를 가려내는 그 무슨 번뇌(煩惱)가 ‘나’인가?

그 참 내가 내 면목(面目) 그놈을 기어이 찾아서 깨달라 아는 것이, 바로 보는 것이 그것이 보물이여. 이것이 참선법(參禪法)이고.

그 밖에는, 요새 우주인이 모두 달세계를 올라가고... 그 무엇이여? 그까짓 놈의 것. 그것 뭐 진공(眞空) 가운데 좀 올라가서 달세계 갔다 왔다고, 뭐 그리 야단칠 것이 있나?
벌거지도 배때기에다가 불 달고 온 공중을 휘휘 날라 댕기고, 저 무슨 가재 속에도 진주가 모두 들어 있고, 아! 전복 속에도 모두 그러헌 사리가 들어 있는 것인디, 사람 송장 속에서 태우면 무슨 구슬이 나온다고 기특할 것이 뭐냐? 무슨 기특혀 그까짓 것이?

모양으로 상(相)으로 모두 나타나는 그까짓 것이 도(道)인가? 모양에,상(相)에, 빛깔에 고러헌 데서 도를 찾는다든지, 내 마음 밖에서 도를 무슨 구해 온다든지, 그것 도(道) 아니여.

내 마음 밖에서 천하 없는 도를 다 발견한다 해도 그건 외도(外道)라. 내 마음 밖이니.

내 마음이, 아! 그놈이 보물. 내가 보물.
아! 이놈 하나, 미왈중생(迷曰衆生)이다. 그 놈을 깨닫지 못허고 내가 보지 못했으니 그것을 중생이라 한다. 내가 나 하나 깨달라 버리고, 나 하나 봐 버리면은 그만 성(聖)이다. 성현(聖賢)이여.

그 ‘나 깨달은 방법이 무엇이냐’하면, ‘이뭣고’여. ‘이뭣고~?’ (처음~6분12초)

 

 

 

(2)------------------

 

오가(吾家)에 유보물(有寶物)인데, 내 보물이 이렇게, 이러헌 보물이 있는데,
가소서래의(可笑西來意)다. 가히 우습다 서쪽 이치여.

누가 뭐 서쪽에 따로 이치가 있나? 서쪽에서 가지고 와서 나한테 그런 보물을 주었나?

네가 너 깨달라라. 내가 낱낱이 내 보물이 있다.

하시황매사(何是黃梅事)냐? 오조(五祖) 스님이 황매산에서 육조(六祖) 스님한테 전했다는 것이 무엇이여? 육조 스님 본래 가지고 있는 물건 그대로 깨달랐지. 전할 게 뭐 있나?

 

방할(棒喝)이 여우적(如雨滴)이니라. 만약에 딴 데로 구헐 것 같으면은, 내 보물 내던지고 딴 데서 찾을 것 같으면은 방맹이로 때려 조지고 할(喝)로 때려 조질 것이다. 방할이 여우적이여.

어디 가서 왜 너를 네가 바로 깨달라서 네게 구족한 보물, 네게 갖춰져 있는 보물, 아! 너 하나 깨달라 버리면은 생사(生死)가 시심마(是甚麽)냐? 죽고 사는 게 무엇이며, 불법(佛法)이 무슨 뭐 따로 불법이 어디 있나? 서천(西天)에서 온 불법이 무슨 소용이 있나?

방맹이와 할(喝)로 조져댄다 이 말이여. 그런 게송을 인자 다 했습니다.(34분23초~35분44초)

 

 

 

 


------------------(1)

 

*(게송) ‘오가유보물~’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91 ‘덕의선자(德義禪子)에게’ 게송 참고.
*덤벵이 —> 덤벙이 ; 묽은 액체 따위가 뭉쳐진 덩이.
*원증회고(怨憎會苦) ;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8가지 괴로움의 하나. 미운 사람과 함께 해야 하는 고통이나 싫은 환경에 살거나 싫은 일을 해야 하는 고통을 이른다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기 위해 하는 수행법.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벌거지 ; ‘벌레’의 사투리.
*배때기 ; ‘배’를 속되게 이르는 말.

 

 

 

 

------------------(2)

 

*西來意 —> ‘祖師西來意’를 말함.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불교의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였고, 계율이나 염불이나 송주(誦呪)를 죄다 부인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觀心一法總攝諸行)'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直指人心見性成佛)'고 하였다.

실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성인이 나왔었다。그리하여 사람마다 다투어 묵은 불교를 버리고 이 새 법-참선법(參禪法)을 배우려고 하였다。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란 것은 달마조사가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的大意)'란 말과 같은 말이다.
*오조(五祖) ; 중국 선종의 제5조 홍인(弘忍)스님. 당(唐)의 스님. 제4조 도신(道信,580~651)의 법을 받고, 671년 법을 제6조 혜능(慧能)에게 전함.
*육조(六祖) ; 중국 선종의 제6조 혜능(慧能,638~713)스님. 당(唐)의 스님.
*방할(棒喝) ; 선가(禪家)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날 때, 또는 수행자를 꾸짖거나 호통칠 때, 주장자를 세우거나 그것으로 수행자를 후려치는 것을 방(棒)이라 하고, 그러한때 토하는 큰소리를 할(喝)이라 함. 방은 덕산 스님에서 할은 임제 스님에서부터 시작.
*서천(西天) ; 예전에, ‘인도(印度)’를 이르던 말.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