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相)없이2017. 4. 6. 05:32

§(031) 법에만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않는다 / 바른 신심이어야 선지식과 불보살 화현을 친견할 수가 있는  / 도를 깨닫고 우는 사람, 웃는 사람.

 

부처님께서도 분명히 금강경에 말씀하시기를 『만약 ()으로써 나를 보거나 음성(音聲)으로써 나를 구(求)한다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한 사람이라 여래(如來)를 보지 못하리라』하셨습니다.

 

‘법(法)에만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않는다 이러한 철저한 마음가짐이 되어있다고 하면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라도 선지식과 불보살(佛菩薩)의 화현(化現)을 우리는 친견할 수가 있습니다.

삿된 생각으로 보면은 참으로 훌륭한 선지식이라고 믿었던 것이 실지는 사마외도(邪魔外道)가  때도 있고, 사마외도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지는 훌륭한 보살의 화현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바른 마음으로 바른 신심으로 되어져 있어야 정법을 만나고 바른 선지식과 불보살 화현을 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031)—76 12 관음재일 법문(76.12.24.) (용031)

 

약 9분.

 

그리고  다음에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는 큰스님으로서, 조실 스님으로서 도(道)를 지도하는 지도 노선에 대해서 말씀이 계셨습니다.

여러분께서 생각하기에는 큰스님이라 하면은  마음가짐이나  말씨나  행동에 있어서 모든 사람이  때에 수긍이 가고 존경할 만한 그러한 그렇게 하시리라고 생각하시고, 그렇게 하신 분이 있다면은  앞에는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지고 그렇게 하신 분의 말씀이라고 하면은 고대로 부처님 말씀처럼 믿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도인(道人)들은 일향(一向)으로 여러분의 비위에만  맞는 그러한 그렇게 나투시기만은  것은 아닙니다.

화엄경을 보시는 분은  아시겠지마는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일백십 성(一百十城)을 넘어가면서 오십삼 선지식(五十三善知識)을 차례차례로 친견을 하고 한량없는 법문을 듣고서 마침내 대도를 성취했습니다.

 

 오십삼 선지식이 우리가 생각한 거와 같은 전부가 그렇게 훌륭하고 위대하고 모든 사람의 모범이 , 겉으로 보기에 그렇게만 보인 도인들이 아니었습니다.  가운데에는 창녀도 있었고, 미치광이도 있었고, 도저히 우리가 납득할  없을 만한 그러한 기행(奇行)을 하는 분도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재동자는  분도 불신(不信)을 하거나 의심을 하는 일이 없이 차례차례로 몸과 목숨을 바쳐서  설해주신 법문을 귀담아 듣고 뼛속에 새겨서 그것으로 해서 차츰차츰 마지막 깨달음에 도달하게  것입니다.

 

선지식이 학자(學者)를 제접(提接)할 때에 자세가 그렇거든, 배우는 사람의 입장은 모양으로 선지식을 믿지를 말아라.

부처님께서도 분명히 금강경에 말씀하시기를 『만약 ()으로써 나를 보거나 음성(音聲)으로써 나를 구(求)한다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한 사람이라 여래(如來)를 보지 못하리라』하셨습니다.

 

‘색()으로써 나를 본다’고 하는 것은 내가 ‘32(三十二相) 80종호(八十種好)와 팔만세행(八萬細行)  갖추어서 그렇게 거룩하고 위대하게 생겼기 때문에  부처님이시다. 그러니까 나는 부처님으로 존경을 한다 이렇게 보거나.

 

부처님께서는 원음(原音)이시라 한 가지로 말씀을 하셔도 모든 십육군생(十六群生) 각기 자기대로  알아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법문을 잘하시고 변재(辯才)가 거리낌이 없으시고 법을  설하시기 때문에 그리고 음성이 그렇게 곱고 원만하고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을 나는 믿는다 이렇게 나를 생각하고 구하고 믿는다면은 벌써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 사람이라 하셨습니다.

 

겉으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그리고서 아하! 그러니까 훌륭하다. 그러니까 나는 믿어야겠다 이러한 식으로 부처님을 믿는다든지 선지식을 믿는다든지 하는 것은 이미 마음 자체가 바르지를 못하다 이것입니다.

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삿되었다 이것입니다. 삿된 마음으로 닦는 수행이 바른 수행이 되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법(法)에 의지 할지언정 사람에 의지하지 말아라’하셨습니다.

부처님이 설하신 , 선지식 설하신 ,  법이 옳으면은 법에 의지해서 열심히 도를 닦을지언정, 겉으로 보고 뜬소문으로 돌아다니는 말을 듣고 ‘아유! 나는 큰스님인줄 알었더니 아무것도 아니다 이래 가지고 스스로 물러서는 그러한 어리석은 마음을 가지고서는 도저히 정법(正法)의 제자가  수가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법에만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않는다 이러한 철저한 마음가짐이 되어가지고 있다고 하면은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라도 선지식을 친견할  있습니다. 불보살(佛菩薩)의 화현(化現)도 우리는 친견할 수가 있습니다.

 

삿된 생각으로 보면은 참으로 훌륭한 선지식이라고 믿었던 것이 실지는 사마외도(邪魔外道)가  때도 있고, 사마외도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지는 훌륭한 보살의 화현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바른 마음으로 바른 신심으로 되어져 있어야 정법을 만나고 바른 선지식과 불보살 화현을 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도를 깨닫고 나서는 우는 사람도 있고 웃는 사람도 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깨달음에 도달한 것이 그것이 중요한 것이지, 깨닫고  뒷이야기는 아직 우리에게는 상관이 없는 일이겠습니다마는 어째서 깨닫고  다음에 우느냐?

하근기(下根機) 깨닫고  다음에 울고, 중근기(中根機) 깨닫고서 춤을 추고 웃고, 상근기(上根機) 깨닫고 나서도 담담하다고 그렇게 이야기가 됩니다.

 

내가 무량겁을 두고 어째서 여태까지 깨닫지 못하고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뼈아픈 고통을 받어 왔던가?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이  데에 있는 것이 아니요, 바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배고프면  먹을  알고 때리면 아픈  아는 바로 여기에 있거든, 어째서 그렇게 바짝 자기와 같이 있으면서 그것을 보지 못했던가? 무엇하느라고 그것을 보지 못했던가?

 

구할 것도 없이 있는 것을 무엇 때문에 구하느라고   이십  내지 일생을 고생을 했던가? 너무나도 지나간 과거가 뼈아프게 사무쳐지기 때문에 하근기로서는 울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중근기는 이미 그동안에 닦아온 것이 하근기만큼 그렇게 뼈아픈 수행을 가까이하지 안 했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게 깨달았기 때문에 ‘천하 허망한 것이로구나!’ 그래서 기쁘다기보다는 기가 맥혀서 춤을 추고 웃게 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상근기야  것도 없고 웃을 것도 없겠지요?(1758~27)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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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한역. ().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방법. ③무상(無上)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 따라 수행하는 사람.

*일향(一向) ; 언제나 한결같이.

*선재동자(善財童子) ; 화엄경의 입법계품(入法界品) 나오는 구도자(求道者). 문수보살의 법문을 듣고 발심(發心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하여  보살의 가르침대로 오십삼 선지식(五十三善知識) 차례로 만나 보살도(菩薩道) 배우고, 보현보살의 행원(行願 서원을 세우고 수행함) 실천하여 진리의 세계로 들어감.

*53선지식(五十三善知識) ; <화엄경>입법계품에서 선재 동자가 복성의 동쪽 장엄당사라림에서, 문수 보살의 법문을 듣고 남방으로 향하여 차례차례 찾아가서 법문을들은 선지식.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학자(學者) ; 학인(學人).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 성자.  수행승. ()닦는 수행승.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제접(提接 이끌 /응대할·가까이할 )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여래(如來) : 부처님 10호의 하나。 범어 Tathagata () () 진여(眞如) 뜻이니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 뜻。  여거여래(如去如來)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눈썹 사이에  털이 있다, 발바닥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과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먹음은 ,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등등.

*팔만세행(八萬細行) ; 부처님의 모든 행동은 원만하여 모자라거나 넘침이 없다는 . 팔만 가지 세세한 행동들이 전부 부처님의 위의(威儀, 훌륭한 행위) 어긋남이없다는 뜻이다.

*원음(圓音) ; 치우침 없는 원만한 음성. 들을  없는 이가 없는 음성. 모든 유정이 제각기 알아들을  있는 소리. 부처님께서  음성[一音]으로 일체법을 설하실 , 모든 중생이 제각기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평등하게 이해하는 원만한 부처님의 가르침.

*군생(群生 무리 ,  ) ; 살아 있는 많은 존재,  중생을 말함.

*변재(辨才  잘할 /재주 ) ; 말을 잘하는[] 능력과 재주(才操).

*() : [] dharma [] dhamma 음을 따라 달마(達磨達摩) 또는 담무(曇無)  왔다。온갖 것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이니, 온갖 일과 모든 물질이며, 온갖 이치와 옳은 (), 그른 (), 참된 (), 거짓된 () 모두  달마’에 들어 있다。그러나 흔히 부처님이 가르친 교리만을 법이라고 한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 () 불타(佛陀) 준말. 각자(覺者)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세상에 나타나는 .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사마외도(邪魔外道) ; 불법(佛法) 어긋나는 가르침을 주장하는 외도. ‘사마 삿된 마구니라는 뜻으로 불도(佛道) 성취하기 위한 수행을 장애하는 모든 것을 통틀어서 일컫는 말인데, 외도  삿된 견해로써 불도 수행자를 어지럽히는 자를 사마외도라 한다.

*외도(外道 바깥 / ) ; ①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 가르침. 또는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생사윤회(生死輪廻  /죽을 /바퀴 /빙빙돌 )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 죽고() 났다가 죽는것이 바퀴() 돌듯이()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추모재2015. 1. 17. 11:08

§(113) 전강선사 5주기 추모재 / 조주 스님의 가풍과 무쟁삼매법 / 참선을 잘하는 것이 최상승계를 잘 지키는 것.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과연 「정법이 무엇이며, 불법은 과연 우리에게 어떠한 길을 가르켜 주고, 우리는 어떻게 해서 불법을 통해서 자아를 완성하는가」에 대해서 밝은 지침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조실 스님의 생존에 하신 말씀이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지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이 도량을 잘 지키고 나를 기다리라”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철저한 신심으로 조실 스님의 법에 의지해서 열심히 도를 닦으면서 하루하루를 알뜰하게 살아간다면 반드시 우리는 다시 몸을 받으신 조실 스님을 친견할 수 있고, 살아계신 불보살도 친견할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습니다.

계는 참선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 계는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참 계’를 바로 지킬라면 참선을 하지 아니하고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께서는 계를 설할 때에 화두(話頭)를 주심으로써 계 설하심을 삼으셨습니다.

 

**송담스님(No.113)—조실스님 제 5주기 추모재(80.01.19) (용113)

 

(1) 약 21분.

(2) 약 13분.

 

(1)------------------

 

오늘은 전강 대종사 제 5주기 추모 법요식일입니다. 날씨는 매우 혹독한데 원근에서 이렇게 참석을 해 주신데 대해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무술년 11월 16일 날 전남 곡성에서 탄생하셔 가지고, 17세에 출가하셔서 갑인년 12월 초이튿날 용화선원에서 77세를 일기(期)로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 동안 23세에 견성오도(見性悟道) 하셔 가지고 33세에 양산 통도사에 첫 조실로 취임하셔서 학자를 제접(提接) 하신 이래로 50여 년간을 전국 유명 선원에서 많은 선객(禪客)들을 제접을 하시고,

말년에 15년간을 여기 용화선원 염전(田) 가에 조그마한 토굴에 계시면서 승속(僧俗)에 정법(正法)의 씨를 뿌려 주셨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사부대중(四部大衆)께서는 직접 대부분이 조실 스님을 친견하시고, 법의 은혜를 입으신 분이 많으실 줄 생각합니다.

 

여기에 계시면서 그 어려운 가운데에도 전국의 좋은 절을 많이 놔두고 하필 이 갯벌 가에서 고생을 하시면서, 여기서 우리들을 교화해 주셨던가.

생각해 보면 숙세의 인연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에 그렇게 우리들을 위해서 고생을 하시면서 법을 설해 주신 걸로 생각이 됩니다. 

 

맨 처음에 여기 용화사는 저 밑에 보살선원 조그마한 불당(佛堂)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서 조실 스님이 여기 왕래하시다가 그 옆에 선원을 지으시고, 그리고서 신도가 차츰 불어나니까 앞에 법보선원이라고 여기 조실 스님 계시던 벽돌집을 지으시고,

그 다음에 현재 우리가 지금 앉아있는 이 법보전(法寶殿), 법당을 옛날 신사당(社堂) 터에다가 20평 가량 지었습니다. 얼마 안 가서 그 법당(法堂)이 좁아서 다시 또 10여 평을 늘여 가지고 현재의 이 법당이 되었습니다.

 

조실 스님 열반하신 뒤 6년이라고 하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조실 스님의 법(法)은 살아계실 때에도 사자후(獅子吼)와 같은 그러한 생사 없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설해 주셨지만,

열반에 드신 뒤, 오히려 전국 방방곡곡의 사부대중들은 조실 스님의 그 위없는 법에 더욱 감동되고, 신심을 돈발(頓發)해서 조실 스님의 법을 추모하는 사부대중이 나날이 불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국의 어느 선원이나 어느 신도나 심지어는 저 구라파(巴)나 미국에까지도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은 갓 없이 멀고 가까운 곳이 없이 번지고 번져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과연 「정법이 무엇이며, 불법은 과연 우리에게 어떠한 길을 가르켜 주고, 우리는 어떻게 해서 불법을 통해서 자아를 완성하는가」에 대해서 밝은 지침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우리 용화선원도 법당이 협착(窄)해서 법회 때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법당에 다 수용을 못하고, 밖에서 추운 겨울이나 더운 뙤약빛 속에서도 밖에서 법회에 참석할 수 밖에는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조실 스님의 법이 얼마나 위대하고 거룩한가, 법문을 듣고 또 듣고 여러 번 들으면 들을수록 그 법문이 우리의 ‘참마음’을 두들겨 주기 때문에 그러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법당이 없어서 법을 못 듣는 것도 아니고, 법당이 없어서 법을 설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법문을 들을려면은 들을 장소가 필요하고, 법을 설할려면 또한 법을 설할 만한 설할 수 있는 그러한 도량(道場)이 필요한 것은 현실적으로 어찌할 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불법(佛法)은 꼭 절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온 우주법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 불법 아닌 것이 없지마는,

그래도 우리가 현실적으로 법을 듣고 설하려면은 법당이 필요하고, 닦을려면 또한 선원(禪院)이 필요한 것도 어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이 법당을 늘구실 때에 저는 “법당이 좁은들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신도가 많이 오시면 뜰에서도 듣고, 저 잔디밭에서 들어도 상관이 없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말씀도 드린 일이 있습니다마는,

얼마 안 가서 이 법당이 좁아지고, 정말 이 법당을 늘리지 않고서는 어찌할 수가 없는 그러한 상태에까지 왔습니다. 

 

 

지금부터 약 1200년 전에, 중국 하북성에 진주 관음원(觀音院)이라고 하는 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조주(趙州) 스님이라고 하는 스님이 계셨습니다.

그 스님은 18세에 출가해 가지고, 120세에 열반을 하신 고불화현(古佛化現)이라고 존경을 받는 그러한 큰스님이십니다. 그 스님은 어려서 견성(見性)을 하셔 가지고 널리 알려져 있는 큰스님입니다.

 

근데 하루는 어느 큰 선방에서 이 조주 스님을 조실(祖室)로 청했습니다.

 

(조주 스님이) 맨 처음에 그 공양주(供養主)에게 명하기를 “개를 한 마리 구해다가 잡아서 마지(摩旨) 솥에다 삶아라.”

그래 공양주는 조실 스님의 명령이니까, 개를 잡어가지고 마지 솥에다 삶아가지고 대중공양(大衆供養)에 개고기 국을 퍼서 들여왔습니다.

 

대중이 공양을 할라고 보니까 기름이 번들번들하고 누린내가 나는 개고기 국이었습니다.

대중은 일제히 바리때를 도로 싸고 ‘이런 외도(外道)한테 우리가 법을 배우다니!’ 분개해 가지고 걸망을 싸 짊어지고 모다 도망갔습니다. 그 때 공양주와 채공(菜供) 두 사람만이 남았습니다.

 

조주 스님은 “무쟁삼매법(無諍三昧法)으로 외도 놈들을 다 내쫓았구나.” 이렇게 선언을 하시고서 그해 여름에 공양주와 채공 두 사람을 데리고 거기서 지내셨습니다.

공양주와 채공은 철저한 신심, 목숨 바쳐서 도를 닦은 까닭으로 해서 그해 여름에 확철대오를 했던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모양을 보고 믿는다든지, 음성을 듣고 추종을 할 경우 열이면 열 다 물러서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금강경에 말씀하시기를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하면 시인(是人)은 행사도(行邪道)라.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라.’

 

만약 색(色)으로써 나를 보거나, 색은 모양입니다.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종호(八十種好)와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다 갖춘 그러한 거룩한 어른이기 때문에 부처님이다. 그러니까 나는 저 부처님을 '참 성현'으로 믿어야지’ 이렇게 생각한다든지.

 

‘부처님은 원음(圓音)이시라. 그 음성이 사자의 부르짖음과 같고, 한 말씀으로 설하되 육도의 모든 중생이 다 같이 들을 수가 있는 이러한 원음이시기 때문에 석가여래(釋迦如來)야말로 성현(聖賢) 가운데에 성현이다’ 이렇게 믿고 추종을 한다든지.

 

이리해서 ‘모양으로 나를 본다든지, 음성으로서 나를 구하는 자는 이 사람은 삿된 소견을 가진 사람이라, 이 사람은 마침내 참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한 개정국으로써 삿된 소견을 가진 사람들을 내쫓고, 법(法)에 의지할지언정 사람에 의지하지 아니한,

법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소견과 자기의 목숨까지도 다 바칠 수 있을 만한 그러한 참된 학자, 공양주와 채공 두 사람을 데리고 그해 여름을 지내심으로써 두 견성(見性) 불자를 만드신 것입니다.

 

그 조주 스님은 평생에 많은 학자를 거느리고 선방에 지내시기보다는 평생 동안을 한 사람 내지 두 사람 정도 철저한 사람을 데리고 지내셨습니다.

지내신 그 절이 기와가 깨지고, 지붕에 풀이 우거지고, 비가 줄줄 새도, 기와 한 장을 고치지 아니하고 풀 한 포기를 뽑지를 아니하시고, 이쪽 구석에 비가 새면 저쪽 구석으로 피해 앉고 이러시면서 일생을 지내셨습니다.

 

옛 부처님의 화현으로 태어나신 그러한 대도인으로서도 절을 짓는다든지, 큰 절을 가지고 지내신다든지, 많은 대중을 모여서 살려고 하시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수없이 많은 중생을 교화를 하시고, 많은 공안을 조사공안(祖師公案)을 남기신 대도인이십니다.

 

조실 스님께서도 역시 잠깐 잠깐 큰 선원의 조실을 부득이해서 안 맡으신 것은 아니지만 잠깐 지내시다가 내버리고 토굴(土窟)로 들어가시고,

또 토굴에 가 계시면 또 어느 큰 선방에서 조실로 모시면 마지못해서 또 따라가셨다가 한 철, 많아야 두어 철 지내시다 금방 또 토굴로 와 버리시고 이러시다가 제일 많이 지내신 곳이 바로 이 용화사 선원입니다.

 

부득이해서 이런 법당을 이렇게 지으시기는 했지만은 언제나 조실 스님께서는 꼭 조주 스님처럼 그렇게 지내셨습니다.

 

이 송담(松潭)은 그 법에 있어서나 도력에 있어서나, 조주 스님이나 조실 스님의 그런 행을 따를 수가 없지만,

그렇게 지내신 것을 항시 마음에 흠모(慕)하고 ‘내가 장차 그런 법력(法力)과 도력(道力)을 갖춘다 하더라도 조주 스님처럼 그렇게 일생을 지내리라’ 이렇게 생각을 하고 오늘날까지 살아왔습니다.

 

이 용화사가 법회 때 많은 사부대중이 모이시지만 법당이 이렇게 비좁아도 법당을 더 키우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새로 법당을 더 지을 그런 생각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웃채와 아래채 중간에 선방과 창고를 뜯어내고 20미터의 노폭을 가진 큰 길을 내년 봄부터 공사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아래 선방, 부인선방, 후원(後院)은 전부 다 뜯기게 되고, 이 웃채에서만 살 수 밖에는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선방도 없어지고, 부인선방도 없어지고, 후원채도 없어집니다.

 

그리해서 부득이 내년 봄에는 선방도 지어야 하고, 후원·요사(舍)채도 지어야 하고, 그럴 수 밖에는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선원을 운영해 나가면서 남은 돈을 한 푼 두 푼 모여서 선방을 지을 수 있을 때 지으리라 이리 생각을 하고 왔었는데요.

 

갑자기 이렇게 환율이 인상이 되고 물가가 상승이 되어서 처음에 예상했던 대로 그 준비 가지고서는 도저히 불사(佛事)를 완성시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방이나 법당을 안 지을 수도 없고, 짓자니 여러 가지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마는,

우리가 정법을 믿고 거기에 의지해서 '참나'를 깨달아서 우리의 몸에 진리를 구현할 수 있는 그러한 대원력(大願力)을 갖고서 마음을 합한다면 어떠한 불사라도 이루지 못할 까닭이 없다고 하는 신념은 가지고 있습니다.(처음~20분29초)

 

 

 

 

 

(2)------------------

 

조실 스님께서 15년간 여기에 터를 잡으신 목적이 무엇인가?

한사코 토굴로만 도망갈라고 하는 저를 보시고, ‘사람이 오십이 넘으면 옛날 고인들도 다 죽을 자리를 보는 것인데 밤낮 토굴로만 가서 숨을라고만 하고 그런다’고 노상 걱정을 하셨습니다.

마지막 열반(涅槃)하실 때까지도 저를 기다리시다가 결국은 열반에 드셨습니다.

 

생존에 조실 스님의 뜻을 잘 받들지 못한 송구한 마음, 죄스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마는 열반하신 뒤에, 생존에 하신 말씀이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지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이 도량을 잘 지키고 나를 기다리라”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육조 스님께서 돌아가실 때 열반하실 때, “어느 곳으로 가십니까?” “낙엽이 귀근(歸根)이라. 떨어진 이파리는 뿌리로 돌아가느니라.” 이렇게 말씀을 허셨습니다.

“언제 다시 돌아오십니까?” “내시무구(來時無口)니. 올 때는 말이 없느니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과연 조실 스님께서 언제 오실는지,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생사를 해탈한 부처님이나 도인은 원래 생사가 없는 것이어서 다만 우리 범부의 눈에 열반상을 보이실 뿐이지 생사가 없다고 하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마는,

우리의 눈으로 갑인년 12월 2일 이후로는 우리의 눈으로는 조실 스님을 뵈올 수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녹음법문을 통해서 생존시나 다름없이 그 우렁찬 법문은 들을 수가 있습니다마는 그 모습은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같이 우리의 정성을 모여서 법당을 세우고, 조실 스님의 육성법문을 들으면서 몸과 목숨을 바쳐서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함으로써,

조실 스님의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시는 그날까지 우리의 몸과 마음, 모든 정성을 기울여서 기다리는 것이 우리의 앞길을 위해서 우리의 도업(道業)을 위해서 바람직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불보살(佛菩薩)은 육도법계(六道法界)에 언제 어디서라도 계시는 것이며, 다못 철저한 신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 모습을 나투신 걸로 나는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철저한 신심으로 조실 스님의 법에 의지해서 열심히 도를 닦으면서 마음을 닦으면서 하루하루를 알뜰하게 살아간다면 반드시 우리는 다시 몸을 받으신 조실 스님을 친견할 수 있고, 살아계신 불보살도 우리는 친견할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고 감히 여러분 앞에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은 조실 스님 제 5주기를 맞이해서 조실 스님의 손상좌(孫上佐), 손주 상좌 다섯 사람이 새로 계를 받아서 출가를 하게 되겠습니다. 

 

계(戒)는 몸으로 지키는 계와 마음으로 지키는 계가 있습니다.

대승계는 계를 파(破)하지 않고서는 설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 계’를 지킬라면 참선(參禪)을 해야 하고, 참선을 해서 바로 깨닫기 전에는 ‘참 계’는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계는 참선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 계는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참 계’를 바로 지킬라면 참선을 하지 아니하고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께서는 계를 설할 때에 화두(話頭)를 주심으로써 계 설하심을 삼으셨습니다.

 

오늘은 조실 스님의 제 5주기 열반재일을 맞이해서 조실 스님의 뜻을 받들어서 간략히 그러나 가장 알찬 계를 설할까 합니다.

 

임행자. 불명(佛名)은 성월, 은사(恩師) 스님은 운거 스님.

서행자. 불명은 성화, 은사 스님은 용문사 주지 스님, 우담정환 스님.

황행자. 불명은 성훈, 은사 스님은 도산정몽스님.

문행자. 불명은 성천, 은사 스님은 용주사 총무 정낙 스님.

불명은 성품 ‘성’자 항상 ‘상’자, 성상, 은사 스님은 정명 스님,

 

그리고 완월, 원래는 조실 스님의... 아시는 바와 같이, 오 정월 스님이 계셨습니다.

그 스님은 진즉 돌아가시고 그래서 조실 스님과 인연이 깊고 그래서 준례에 따라서 조실 스님, 노스님 위로 올려붙이는 것이 좋다고 해서 정목 스님으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안월이 아니라. 구경‘완‘자 완월. 

 

계는 참선을 잘함으로써 저절로 계가 잘 지켜지도록... 

 

계를 설하는데 대단히 복잡한 의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까 드린 바와 같이 최상승계는 참선을 잘함으로써 지키는 상(相)이 없이 저절로 지켜지는 계, 파하고 지키고 할 것이 없는 계, 이 계야말로 최상승계인 것입니다.

 

최상승계를 명실공(共)히 잘 지키기 위해서는 조실 스님의 법에 의지해서 철저하게 참선 수행을 함으로써 ‘참나’를 깨달아서 부처님의 지혜목숨[慧命]을 계승함으로써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상으로써 계를 설해 마쳤습니다. 오랜 시간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어서 조실 스님 추모재를 거행 하겠습니다.(20분30초~33분1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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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성오도(見性悟道) : ‘성품(性)을 보아(見) 진리(道)를 깨친다(悟)’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 견성오도라 한다.

*제접(提接 이끌 제,응대할•가까이할 접)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승속(僧俗) ; 스님과 스님이 아닌 속인(俗人)을 아울러 이르는 말.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신사(神社) ; 일본에서 왕실 조상이나 고유 신앙 대상 신(神) 또는 국가 공로  사람 신(神)으로 모신 사당.

*법당(法堂) ; ① 불상을 모신 사찰의 중심 건물. ② 설법하거나 각종 의식을 행하는 사찰의 건물. ③ 사찰에 있는 전각(殿閣)을 통틀어 일컬음.

*사자후(獅子吼) ; ①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②사자의 울음소리처럼 우렁찬 연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구라파(巴)유럽(Europe)’ 음역어이.

*협착하다(窄--  좁을 협,좁을 착) ; ①차지하고 있는 자리 매우 좁다. ②처하여 있는 사정이나 형편 매우 어렵다.

*도량(道場) : [범] bodhimandala 도를 닦는 곳이란 말이다。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늘구다 ; ‘늘이다(수효, 부피, 무게 등을 더 많거나 크게 하다)’의 사투리.

*조주 스님 ;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고불화현(古佛化現) ; 부처님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견성(見性) : 성품을 본다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마지(摩旨) ; 부처님께 올리는 밥. 부처님께 올리는 밥은 대부분 사시(巳時), 즉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에 올린다. 이것은 생전에 부처님이 하루에 한 번 그 시간에 밥을 먹은 데서 유래한다.

사시에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마지 올린다’고 하는데, 한자를 풀이하면 (摩指摩旨磨旨) ‘손으로 만들어 올린다 혹은 정성스럽게 만든 공양을 올리오니 제 뜻을 감읍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뜻을 담고 있다.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일.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들어 안팎에 칠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라고도 한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채공(菜供) ; 절에서 반찬을 마련하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무쟁삼매(無諍三昧) ; ①진리에 안주(安住)하여 다른 것과 다툼이 없는 선정(禪定)을 말한다.
②타인과 다툼이 없는 경지. 다툼이 없는 것은 마음 속에 갈등이 없는 것. 나아가서는 ‘미혹이 없는 것’이다. 쟁(諍)은 번뇌(煩惱)의 다른 이름이니, 무쟁(無諍)은 곧 무번뇌(無煩惱)이니, 이것은 무루법(無漏法)이다.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과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먹음은 것,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것 등등.
*삼천위의(三千威儀) ; 비구(출가한 남자 스님)의 일상 행동에서 지켜야 할 계율이 250종이어서 이를 ‘비구 250계’라고 한다. 일상생활은 크게 행(行)·주(住)·좌(坐)·와(臥)로 나누기 때문에 이 네 가지에 250을 곱하면 천이 된다. 이를 다시 과거·현재·미래의 삼세(三世)에 곱하면 3천이 된다.
*팔만세행(八萬細行) ; 부처님의 모든 행동은 원만하여 모자라거나 넘침이 없다는 것. 팔만 가지 세세한 행동들이 전부 부처님의 위의(威儀, 훌륭한 행위)에 어긋남이 없다는 뜻이다.
*원음(圓音) ; 모든 중생이 제각기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이해하는 원만한 부처님의 가르침.
*석가여래(釋迦如來) ; 석가모니(釋迦牟尼). 석가(釋迦)에 대한 존칭.
여래(如來)는 부처님 10호(十號)의 하나로 범어 Tathagata(다타가타)의 역(譯)이다. 여(如)는 진여(眞如)의 뜻이니 곧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의 뜻.
또 여거여래(如去如來)의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개정국 ; '보신탕(湯, 개장국(--) 완곡하게 이르는 )'의 사투리. 개장국(개고기를 여러 가지 양념채소와 함께 고아  옛날부터 삼복( 또는 병자의 보신을 위하여 를 먹는 풍습이 있었다).
*조사공안(祖師公案) ; 조사가 시설(施說)한 선(禪)의 관문으로서의 공안.
*토굴(土窟) ; 사전적인 원래의 뜻은 ‘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고 흙을 덮어 추위나 비바람만 가릴 정도로 임시로 지은 집’이나, 근래에 절에서 쓰이는 의미는 대중이 함께 거주하는 ‘사찰(절)’과 대비되는 의미로, 어떤 집 형태와는 관계없이 스님의 ‘개인의 수행 거처’를 말함.
*흠모( 공경할 흠,그리워할 모) ; 마음 그리고 우러러 따름.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法)의 힘. ②가르침의 힘. 불법의 공덕. 불•보살의 위신력(威神力)을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것.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힘.
*도력(道力) ; ①도의 근본에서 생기는 힘. 도를 얻음에 의하여 나타남. ②지혜의 힘.
*후원(後院) ; 절에서 부엌을 일컫는 말.
*요사채(舍- 집 료,집 사) ; 사찰 에서 전각이나 산문  스님 생활 관련 건물 통틀어 이르는 .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2)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손상좌(孫上佐) ; 제자의 제자를 일컬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불명(佛名) ; 불법에 귀의한 남녀 신자에게 붙이는 이름.
*은사(恩師) ; ①가르침을 받은 은혜로운 스승. ②자기를 출가시켜 길러 준 스승.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명실공히(名實共-)알려진 내용 실제 내용 똑같게.
*지혜목숨혜명(慧命).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말. 대도정법(大道正法)의 명맥(命脈). ②법신(法身)은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뜻.

 

Posted by 닥공닥정
하안거 해제 백종2014. 8. 17. 17:39

§(398)(게송)대호삼만육천경~ / 삼라만상이 다 부처님의 원음의 경전 / (게송)삼라만상동귀환~ / 백장청규 / (게송)진로형탈사비상~ / 밝은 데에서 밝은 데로....

진짜 살아있는 부처님의 원음의 경전은 우주법계에 있는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다 그냥 고대로 살아있는 부처님의 경전인 것입니다. 그러한 부처님의 원음을 알아들을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화두 ‘이뭣고~?’, 화두를 의심을 해서 그 화두를 타파하므로 해서 그 원음을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을 뜨는 것입니다.


인생이 70, 80 번갯불 지나가듯이 지나가고 우리도 금방 이 몸뚱이를 벗어 버리게 되는데, 이 몸뚱이 있을 때 열심히 정진을 해서 생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화두(話頭)를 들고 새로 태어난 셈 치고, 아주 이 몸뚱이 아주 안 태어난 셈 치고 한바탕 공부를 지을지니라.


**송담스님(No.398) - 1989년 하안거 해제·백일기도 회향·백종법회. (용398)

 

(1) 약 19분.

 

(2) 약 19분.


(1)------------------

대호삼만육천경(大湖三萬六千頃)에  월재파심설향수(月在波心說向誰)오
나무~아미타불~
원음낙처운산진(圓音落處雲散盡)허고  부증대보변환가(不曾擡步便還家)니라
나무~아미타불~

대호삼만육천경(大湖三萬六千頃)에, 큰 호수 삼만 육천 그 물결 이랑.
월재파심설향수(月在波心說向誰)라. 달이 그 파도 속에 있는데, 그 큰 호수에 삼만 육천 파도 이랑 속에 거기에 휘황창 밝은 달빛이 거기에 비추는데, 그 도리를 누구를 향해서 설(說)할고.

원음낙처운산진(圓音落處雲散盡)한데, 원음(圓音) 떨어진 곳에 구름이 흩어져 다한데,
부증대보변환가(不曾擡步便還家)다. 일찍이 한 발도 옮기지 아니하고 문득 고향에 돌아가더라.

이 게송은 ‘심화발명(心花發明)이 어느 곳에 있느냐? 확철대오(廓徹大悟) 할 수 있는 곳이 어느 곳인가? 어느 곳에서 확철대오를 하는가?’하는 것에 대한 게송입니다.

대호삼만육천경(大湖三萬六千頃)은 우리가 눈을 통해서 보고, 귀를 통해서 듣고, 코를 통해서 냄새 맡고, 혀를 통해서 맛보고, 몸을 통해서 차갑고·덥고·부드럽고·까끄러운 것을 느끼고, 생각을 통해서 선악(善惡)과 일체 모든 것을 분별하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이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을 만나서 거기에서 육식(六識)이 일어나서 이렇게 해서 십팔천이 이렇게 끊임없이 돌아가는데 바로 그것이 대호삼만육천경(大湖三萬六千頃)입니다.

큰 바다에 얼마나 많은 파도가 있겠느냐 그말이여. 그 파도 낱낱이, 하늘에 떠있는 그 달빛이 어느 물결 하나에도 비치지 아니한 곳이 없어.
육근(六根)·육진(六塵)·육식(六識) 이 십팔경계(十八境界)가 돌아가는 바로 거기에 비로자나(毘盧遮那) 부처님의 그 법신(法身)이 나타나지 않는 곳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물결 하나마다 달빛이 비추듯이 우리의 일어나는 십팔경계(十八境界),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엇을 듣거나, 코로 무슨 냄새를 맡거나, 혀로 무슨 맛을 보거나, 몸으로 차갑고 더운 것을 느끼거나, 생각으로 희로애락, 선악 일체사(一切事)가 우리 의식에 떠오르거나,
바로 그때 그 곳이 바로 우리가 확철대오 할 수 있는 바로 그때다 이것입니다.

원음낙처운산진(圓音落處雲散盡). 원음(圓音)은 부처님의 음성을, 부처님의 말씀을 원음이라.
둥글 원(圓)자, 소리 음(音)자, 원음이라 그러는데, 원음이라 하는 것은 부처님은 한 말, 한 음성으로 설하시되,
보살은 보살 나름대로 그 법문을 듣고, 나한은 나한 나름대로 그 법문을 듣고, 중생은 중생 나름대로 그 법문을 듣고, 축생은 축생 나름대로 그 법문을 듣고, 지옥·아귀 육도법계 중생 다 그 말을 다 알아 들어.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 말씀은 어느 근기(根機)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근기도 그 나름대로 받아들여서 법(法)의 이익(利益)을 얻을 수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 부처님의 음성을 원음이라 그런 것이여.

원음 떨어진 곳에, ‘그러면은 삼천년 전에 부처님이 설하시다가 열반하셨으니까 부처님의 원음은 우리가 못들을 것이다’ 그게 아니야.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경계, 귀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 모든 냄새, 모든 맛, 모든 느낌, 모든 생각 있는 곳이 바로 부처님의 원음(圓音)이 울리는 곳이요, 원음이 나타나는 곳이여.

그러기 때문에 그 원음을 접하게 되므로 해서, 그 원음의 뜻을 우리의 마음과 계합(契合)하게 함으로 해서, 한걸음도 옮기지 않고 우리의 깨달음의 고향에 도달할 수가 있다 이것입니다.

경(經)이라 하면은 종이로 만들어진 경만이 경으로 생각하고, 한문으로 된 경만이 경으로 생각하고, 법화경이나 화엄경·금강경·원각경 이러한 우리에 내려오는 그 경만이 경(經)인줄 생각해서는 아니 됩니다.

물론 그러한 경도,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 그것으로 또 찍어낸 모든 경전, 참 소중하기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나,
정말 영원한 경(經), 정말 살아서 움직이는 부처님의 원음의 경전은 꼭 종이로만 되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꼭 먹으로만 찍혀 나온 것이 아닙니다.

진짜 살아있는 부처님의 원음의 경전은 우주법계에 있는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다 그냥 고대로 살아있는 부처님의 경전인 것입니다. 그러한 부처님의 원음을 알아들을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화두 ‘이뭣고~?’, 화두를 의심을 해서 그 화두를 타파하므로 해서 그 원음을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을 뜨는 것입니다.


삼라만상동귀환(森羅萬像同歸幻)한데  조과장공멱몰종(鳥過長空覓沒蹤)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허공불시장신처(虛空不是藏身處)라  간취풍전대우송(看取風前帶雨松)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라만상(森羅萬像)은 동귀환(同歸幻)이요, 조과장공멱몰종(鳥過長空覓沒蹤)이다.
삼라만상, 저 해나 달이나 별이나 지구나 산천초목이나 토목 와락이나 풀이나 돌, 기와 깨진 거, 일체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환(幻)으로 돌아가. 영원성이 있는 것이 아니여.

아까 그러한 것들이 부처님의 원음의 경전이라고 했습니다마는 깨닫고 보면 그런 것이고, 깨닫지 못한 탐진치 삼독으로 가득찬 중생에게는 그러한 원음이 완전히 환(幻)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 좋은 것인 줄 알고, 영원한 것인 줄 알고, 붙잡고 아무리 안 놓을려고 해봤자 뜬구름 잡는 거와 마찬가지여. 영원성이 없는 것이고, 허망한 것이다.

조과장공멱몰종(鳥過長空覓沒蹤)이다. 허공에 저 창공에 새가 날아가는데 새가 날아간 자죽과 같은 것이다 그말이여.
눈이 왔을 때 짐승이 지나가거나 사람이 지나가면 발자죽이 남아 있고, 모래 위에 기러기가 놀다가 가면 그 모래 위에 기러기 발자죽이 남아 있어요.
그 보다도 더한 것은 허공에 새가 날아간 자죽과 같다 그말이여.

우리 인생이 태어나서 탐진치 삼독심(三毒心)으로 오욕락(五欲樂)을 탐착(貪着)을 하고, 명예·권리·지위 모다 그런 것을 탐착을 해 가지고, 아무리 그것을 만히 모으고 붙잡고 늘어져 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가지고 가지도 못하고, 자기가 다 쓰지도 못하고, 그것 모이고, 그것 지키느라고, 참 본의 아니게 많은 죄만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허공불시장신처(虛空不是藏身處)다. 그렇다면 그러한 것이 다 허망한 것이고 영원성이 없는 것이라면, 이 몸뚱이를 어떻게 간수하며 어디다 이 몸뚱이를 감출 것인가?
그러면 허공에다 감추어야 할 것인가? 허공도 이 몸뚱이 감출 곳이 못 되어.

간취풍전대우송(看取風前帶雨松)이니라. 바람 앞에 비를 띤 소나무를 똑바로 볼지니라. 비 뿌리면서 바람이 부는데 그 소나무에 스쳐가는 그 소리, 송풍(松風) 솔바람 소리, 그 솔바람을 똑바로 간취(看取)하라.

여기 게송에는 ‘바람 앞에 비를 띤 소나무를 똑바로 보라’했지만, 어찌 그 소나무 하나에 국한 되리오.
하늘에 떠있는 달을 보거나, 반짝거리는 별을 보거나, 버드나무를 보거나, 복숭아 꽃나무를 보거나, 돌맹이를 보거나, 우주법계에 있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찌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에 한하겠습니까?
귀로 들을 수 있는 솔바람 소리, 낙엽이 다 지고 앙상한 고목나무에 스쳐가는 겨울 바람소리, 흘러가는 물소리, 개 짖는 소리, 새 노래하는 소리, 버스 소리, 비행기 소리, 공장에 기계 돌아가는 소리,
우리 귀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 그 소리도 똑바로 바로 들으면 원음(圓音)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한 소리가 귀에 거슬리고, 그러한 소리가 시끄러워서 공부를 못한다. 이것이 아닙니다.
눈에 이것저것 보아 싸니까, 거기에 우리의 정신이 헷갈리니까 그래 공부가 안된다. 그것이 아닙니다.

그 소리를 우리가 따라가고,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가서 그것을 집착하니까 그것이 망상이요,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이지,
따라가지 않고 바로 그놈을 보고 그놈을 듣는 찰나(刹那)에 그놈에 즉(卽)해서 화두를 떠억 들어보시라 그말이여. 무엇이 시끄러우며 무엇이 복잡할 것이 있는가.

수원 용주사도 군(軍) 비행장이 있어서 노상 제트기가 뜨고 내리고 상당히 시끄러운 곳입니다마는 금년 여름에 많은 대중이 그까짓 시끄러운 것을 문제시하지 아니하고, 아무 장애없이 정진을 잘하셨습니다.

용화사 법보선원도 앞뒤로 불사(佛事) 공사가 일어나 가지고 온통 골이 울릴 정도로 시끄럽고 복잡했습니다마는,
‘그렇게 시끄럽고 복잡해도 상관이 없으니 방부(房付)를 받아 주십시오’해 가지고 7~8분이 그 복잡하고 시끄럽고 먼지 구덩이에서 방부를 드리고 까딱없이 정진을 했습니다.

때로는 벗어부치고 땀을 흘리면서 울력을 하면서 정진을 했습니다. 아마 앞으로 견성성불(見性成佛) 할 때까지 그 복잡한 속에서 정진한 이 기사년 여름 안거가 인상에 깊이 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보살님네도, 해마다 130명씩 방부를 드리던 보살님네들이 그렇게 시끄럽고 복잡해도 기어이 여기서 정진을 하시겠다고 모다 원을 했지마는,
방을 다 뒤집어 파고 모두 뜯어 제끼고 하는 통에 방이 없어서 방부를 받지 못하고, 저 천안 광덕사 태화선원에 가서 모두 정진들 잘 하시고 또 수원 용주사 그밖에 다른 인연있는 절에 가서 모두 정진들을 하셨습니다.(27분54초~46분50초)

 

 

 



(2)------------------

정진이 꼭 조용한 데만 찾아서 하고, 일 없는 데만 찾아서 하고, 편안한 데만 찾아서 하고 이렇게 해가지고서는 우리는 도업(道業) 성취가 대단히 늦게 되고,
설사 공부에 좀 힘을 얻는다 해도 그러한 소극적 방법, 일 없고 조용한 데만 찾아다니면서 살살하는 공부 가지고서는 대도를 성취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 백장청규(百丈淸規)에도, 그런 회상은 다 1500명, 1700명이 지내는 대회상(大會上)인데,
제일조(第一條)에 ‘일일부작(一日不作)이면 일일불식(一日不食)이다. 하루 울력 작업을 하지 아니하면 하루 먹지 않는다’하는 이러한 법규를 만들어 놓곤,
날마다 한 시간 두 시간씩 이렇게 울력을 해서 채소도 가꾸고 모두 도량을 가꾸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채소를 가꾸면서 잡초를 뽑으면서 도량을 가꾸면서, 어째서 그 속에서 정진이 안된다 이것입니까?
오히려 한가한 속에서 조용한 속에서 앉아서 꾸벅꾸벅 졸기 보다는,
울력하면서 성성(惺惺)하면서도 적적(寂寂)하게 정진을 다루어 나갈 때에, 화두를 잡두리 해 나갈 때, 그 속에 어떻게 혼침(昏沈)이 들어오며 그 속에 어떻게 화두 이외의 딴 망상이 거기에 어리댈 수가 있겠습니까?

어느 회상에 가서 정진을 하던지 반드시 울력 시간을 정해놓고, 도량(道場) 청소도 하고, 잡초도 뽑고, 빈터가 있으면 채소도 가꾸면서,
운동도 되고, 채소도 자급자족도 하고, 그 성성하게 정진을 잡두리 한다면 훨씬 더 힘있고, 우리의 정진에 훨씬 더 깨달음을 앞댕길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백장(百丈) 스님과 같은 그런 대도사가 제일조(第一條)에다가 그런 규율을 넣었습니다.

백장 큰스님의 일화, 여러분도 잘 아시겠습니다마는 연세가 많아 가지고 울력하러 나오시기에 대단히 힘들게 보이니까 그 백장 큰스님 방장(方丈)스님께서 쓰시던 연장을 갖다가 감추어 버렸습니다.
그 연장이 없으면 울력에 안 나오시리라 해 가지고 감추어 버렸는데, 백장 스님이 울력 목탁 소리를 듣고 울력에 나오시려고 연장을 찾으니까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 없으니까 울력에 참여를 못하셨는데.

그 다음에 공양 시간이 되었는데 공양을 안 나오셔. ‘공양 시간이 되었습니다. 공양 안 나오십니까. 공양하러 가십시다.’
그러니까 ‘일일부작(一日不作)이면 일일불식(一日不食)이니라. 내가 울력을 오늘 못했으니 어떻게 내가 공양을 받겠는냐? 내가 오늘 공양을 하루 굶겠노라’
그래 가지고 그 다음날 어쩔 수 없이 연장을 갖다 드렸다고 하는 일화는 이 선방에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설화입니다.

그만큼 선방에 있어서의 울력이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뜻이 깊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에도 조실스님께서 울력 시간을 설정을 하셔서 생존 시에도 그렇게 울력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때는 똥도 푸고, 아카시나무도 모두 해서 연료로 사용하고, 밭도 일궈서 닭똥을 썩혀서 주고, 채소를 가꾸고, 엄청난 울력을 하고, 언덕을 파서 앞뜰을 메우기를 얼마를 했습니다.

그때 지내신 수좌(首座) 스님네들은 다 아실 것이고, 또 그때 여기 용화사에 다니신 보살님네·거사님네들은 다 아실 것입니다. 참 무서운 울력을 했습니다.

열반하신 뒤에도 좀 할려고 해도 밭도 없어지고, 또 도량소지 청소를 제외하고는 그 밖에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날마다 할 만한 일이 없어서 못하고 있습니다마는, 그래도 일만 있으면 선방 스님네들이 그저 모두 나오셔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마 용주사도 그렇게 했을 것이고, 광덕사나 회룡사도 다 그렇게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출가해서 도 닦는 일—모르는 분이 보면 참 여러 가지로 해석이 다를 것입니다마는—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는 것입니다.

생사해탈 문제, 생사대사를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받쳐서 위법망구(爲法忘軀)로 도를 닦는 일은 그래서 그것이 법희선열(法喜禪悅)—법(法)의 기쁨과 선(禪)의 기쁨, 법희선열이 그것이 '밥'인 것입니다.
씁쓸한 된장찌개, 씁쓸한 나물에다가 그렇게 참 검박(儉朴)하게 생활하지만, 도 닦는 그 맛으로 그 기쁨으로 청춘이 늙어 간 줄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세속에 몸담아 있는 청신사·청신녀 여러분도 비록 인연 때문에 세속에 몸을 담고 계시지만,
여러분도 마음은 우리 출가 사문(沙門)과 똑같은 신심과 마음으로 그 생활 속에서 계율을 지키면서 화두(話頭)를 타고 불명(佛名)을 타 가지고 열심히 정진을 하고 계실 줄 압니다.

또 인연이 허락하신 분은, 사정이 허락하신 분은 결재때 방부를 드리고, 그 연세가 60,70,80 고령에 이르러서도 방부를 드리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그 검박한 음식을 잡수면서 정진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앞으로 겨울철부터서는 방부를 받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선방도 크게 늘리고 또 여러 가지 시설도 부족함이 없이 잘 갖추어서 130명, 150명도 아마 지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때 오셔서 열심히 정진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앞으로 우란분(盂蘭盆)—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 유주무주(有主無主)의 광겁부모(曠劫父母)의 천도(薦度) 법요식(法要式)이 진행이 됩니다.
모두 지극정성으로 참여해 주시기를 바라고, 지옥고 받던 또 아귀도에서 고(苦)을 받던 또 우주 허공계에 방황하던 모든 우리의 선망부모들이 이 법요식에 정식으로 초대되어서 참석하시고 또 이 천도를 받게 되시기 때문에 그런 영가들은 참 너무너무 기쁨에 넘쳐흐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선망부모 영가들이 이 자리에 와서 틀림없이 나의 아내가 또는 나의 아들과 나의 며느리와 나의 손자들이 혹 오늘은 오지 안했는가? 이리저리 모두 찾아보고 계실 줄 생각합니다.
모처럼 이렇게 왔다가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딸, 자기의 며느리, 자기의 손자손녀들이 안 왔다면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어떤 사정으로 참석을 못했더라도 이다음 법보재(法寶齋)나 우란분재(盂蘭盆齋)에는 반드시 참석을 해서,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또 청정한 스님네께 공양 올리고, 그리고 우리의 선망부모와 인연있는 영가들을 위해서 정성껏 공양을 올리고, 천도를 한다면 그 얼마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이며 보람있는 일입니까?

우리도 머지않아서 또 이 몸뚱이를 벗어 버리고 영가(靈駕)의 몸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또 극락세계(極樂世界)나 또는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또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이 70, 80 번갯불 지나가듯이 지나가고 우리도 금방 이 몸뚱이를 벗어 버리게 되는데, 이 몸뚱이 있을 때 열심히 정진을 해서 생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죽은 뒤에 아들이 효자니까, 며느리가 잘해 줄 것이다. 그때 천도 받아도 될 것이니 실컷 먹고 잠이나 많이 자자’ 이렇게 생각하시지 말고,
기왕이면 살아있을 때 깨달음을 얻어서 스스로 자기를 제도(濟度)하는 것만 같지 못할 것입니다.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여. 생사진로(生死塵勞), 생사해탈(生死解脫)이 이 작은 일이 아니여, 보통 일이 아니다.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다. 긴밀히 승두(繩頭)를 잡아서 한바탕 공부를 지어라.
정말로 화두(話頭)를 들고 새로 태어난 셈 치고, 아주 이 몸뚱이 아주 안 태어난 셈 치고 한바탕 공부를 지을지니라.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이면, 한바탕 그 추위가 뼛골에 사무치지 아니하면,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칠 수가 있겠느냐.(爭得梅花撲鼻香)

우리 중생은 ①어두운 데에서 어두운 데로 향하는 그러한 사람이 있고, ②어두운 데로부터 밝은 데를 향해서 나아가는 사람이 있고,
또 ③밝은 데에서 어두운 데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고, ④밝은 데로부터서 밝은 데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①그러면 어두운 데에서 어두운 데로 가는 사람은 어떠한 부류의 사람이냐?
전생에 복(福)을 짓지 못하고 금생에 가난뱅이로 태어났다가 그나마도 부처님도 잘 믿지를 않고 신심이 시원찮고, 마음씀씀이 용렬(庸劣)하고, 베풀 줄도 모르고,
항상 삿된 생각으로 계속 도를 닦지 아니하고, 속심에 가득 찬 그러헌 사람은 전생에 짓지 못해 가지고 어두운 데에서 왔다가 내생에 다시 또 어두운 데로 갈 사람이거든.

②그러면 어두운 데에서 왔지만 앞으로 미래에 밝은 데로 향하는 사람은, 설사 전생에 큰 복을 짓지 못해서 금생에 가난하게 태어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난한 가운데에도 불법을 믿고 신심이 있어, 마음씀을 항상 탐진치 삼독에 빠지지 아니하고, 항상 법문 듣기를 좋아하고, 그것을 실천하려고 노력을 해.
가난하지마는 있는 대로 보시를 해. 그리고 항상 계율을 지키고 그렇게 살아간 사람은 비록 어두운 데에서 왔지마는 앞으로는 반드시 밝은 데를 향해서 극락세계에나 도솔천내원궁으로 갈 사람이다 그거거든.

③그러면 밝은 데에서 왔지마는 앞으로 어두운 데로 갈 사람은 어떠한 부류의 사람이냐?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금생에 부자가 되어서 부자로 살지만, 부처님을 믿는 신심이 그렇게 장하지를 못해.
그래 가지고 탐심이 많고, 진심을 많이 내고, 어리석은 생각·용렬한 생각이 가득차 가지고, 보시도 할 줄도 모르고, 사견(邪見)이 꽉 차 가지고, 악한 짓을 많이 해.
그런 사람은 전생에 복을 지어서 밝은 데서 왔으나, 앞으로 사후에는 껌껌한 지옥으로 밖에는 갈 수가 없을 것이다.

④그러면 밝은 데에서 왔다가 밝은 데로 간 사람은,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부자로 태어났어.
신심도 있고, 계행도 지키고, 보시도 하고, 수행도 참선도 열심히 하고, 그래 가지고 사후에는 물어볼 것도 없이 극락세계나 도솔천내원궁에 태어날 것이 틀림이 없고,
다시 또 인도환생을 하게 되더라도 부자로 태어나고, 몸도 건강하고, 신심도 있고, 그래서 내생에 불사(佛事)도 잘하고, 대도(大道)도 성취할 것이다. 그 사람은 바로 밝은 데로부터서 밝은 데로 향할 사람이다.

여러 사부대중(四部大衆)은 스스로 자기 자신 가슴에 손을 얹고 가만히 반성을 해보시오.
‘4가지 중에 과연 어느 곳에 어느 부류에 자기가 속한가?’ 생각해서, 반드시 앞으로는 밝은 데를 향해서 가도록 노력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27분54초~65분44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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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大湖三萬六千頃  月在波心說向誰’ ; [금강경오가해] 종경 서(宗鏡序) 참고.
*(게송) ‘圓音落處雲散盡  不曾擡步便還家’ ; [금강경오가해] ‘종경 서(宗鏡序)’에 함허득통(涵虛得通)의 설의(說誼) 참고.
*원음(圓音) ; 모든 중생이 제각기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이해하는 원만한 부처님의 가르침.
*심화(心花, 心華) ; 본래 깨끗한 마음(心性)을 꽃에 비유한 말.
*발명(發明) ; 밝히다. 깨닫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귀(耳根)·코(鼻根)·혀(舌根)·몸(身根)·뜻(意根)의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근(根)은 기관·기능을 뜻함.
*육경(六境) ; 육근(六根)의 대상 경계인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을 말함.
산스크리트어 ṣaḍ-viṣaya 경(境)은 대상을 뜻함. 육진(六塵)이라고도 한다.
①색경(色境).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수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수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맛.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등.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육식(六識)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십팔계(十八界) ; 계(界, 산스크리트어 dhātu)는 요소를 뜻함. 인식을 성립시키는 열여덟 가지 요소.
불교에서 인간과 그 밖의 모든 존재 속의 인식작용을 18가지 범주로 나눈 것.
육근(六根)·육경(六境)·육식(六識)을 합한 것이다. 육식(六識)을 제외한 12가지를 12처(處)라고 한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법신(法身) : [범]  dharma - kaya 「법 몸」이란 말인데, 실불(實佛) • 법성신(法性身) •진여불(眞如佛) • 법계성(法界性) 같은 말들이 모두 한뜻. 진여의 본 바탕(眞如本體)을 이름이니, 중생에 있어서 부족할 것이 없고 부처님이라고 더 특별할 것이 없어, 본래 깨끗하고 빛나고 두렷하여 무한한 공간과 무궁한 시간에 꽉 차 있으되, 네 가지 말로도 설명할 수 없고(離四句) 백 가지 아닌 것으로도 옳게 가르칠 수 없으며(絕百非), 무엇으로나 형용하여 볼 수가 도저히 없는 것이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계합(契合) ;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
*공안(公案)을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게송) ‘삼라만상동귀환~’ ; [소요당집 外] (한글대장경 169, 동국대학교 역경원) p71 소요 스님 게송 ‘의현법사에게 답함’ 참고.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환(幻) ; ①허깨비. 모든 사물은 여러 가지 인연(因緣)이 모여서 생긴 것으로 실체가 없는 것에 비유함.
환(幻)을 실(實)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생의 미혹한 생각임. 환(幻)을 무(無)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승(二乘-聲聞,緣覺)의 공(空)에 얽매인 견해, 단공(但空-단지 空만을 집착하는 것)임.
환(幻)은 또 화(化)와 거의 같은 뜻이므로 환화(幻化), 꿈과 비슷하므로 환몽(幻夢)•몽환(夢幻)이라고도 한다.
②신기루, 아지랑이 같은 것.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탐착(貪着) ; 만족할 줄 모르고 사물에 더욱 집착함.
*찰나(剎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방부(房付 방•거처 방,줄•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울력 ; 함께 힘 모아 일하는 것,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일이란 우리말.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운력(雲力), 함께 힘을 기울인다는 의미로 운력(運力)이라고도 한다. 의미와 관계없이 울력은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뜻.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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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백장청규(百丈淸規) ; 당(唐)나라의 백장 회해(百丈懷海)가 선종(禪宗) 사원의 규범을 성문화(成文化)한 것.
당시 선종은 독립된 사원 ·제도 ·의식 등을 아직 갖추지 않았는데, 이때 백장 스님이 법당(法堂) ·승당(僧堂) ·방장(方丈) 등의 제도를 마련하고, 스님들에게는 동서(東序) ·요원(寮元) ·당주(堂主) ·화주(化主) 등의 각 직책을 규정해 놓은 선종의 법규를 정한 것.
이것을 《고청규(古淸規)》라 하는데, 이것이 당 ·송 시대에 이리저리 흩어져서 없어졌으므로, 1335년 원(元) 순제(順帝)의 칙명으로 백장 덕휘(百丈德輝)가 여러 청규(淸規)를 참조하여 소실된 백장 회해(百丈懷海, 749-814)의 청규를 복원하여 전국 선원에서 시행시켰는데, 이것이 《칙수백장청규(勅修百丈淸規)》이다.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잡두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어리대다 ; 남의 눈앞에서 귀찮게 왔다갔다 하다.
*도량(道場) : 사찰. [범] bodhimandala 도를 닦는 곳이란 말이다。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백장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방장(方丈) ; ①선원(禪院)의 운영을 주관하는 최고 책임자 스님, 또는 그가 거처하는 방.
②선원(禪院)·강원(講院)·율원(律院)을 모두 갖추고 있는 총림(叢林)의 가장 높은 스님.
*수좌(首座)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진리)를 구하기 위해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법희선열(法喜禪悅) ;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따르는 기쁨과 선정(禪定)에 들어가 마음이 즐거운 것.
*검박(儉朴 검소할 검,순박할 박) ; 검소하고 소박(素朴)함.
*사문(沙門) ; 슈라마나(산스크리트어: śramaṇa, 팔리어: samaṇa)의 음역. 식(息)·근식(勤息)·정지(淨志) 등으로 번역. 여러 선법(善法)을 근수(勤修)하고, 악법(惡法)을 행하지 않으며, 심신을 조어(調御)하여 청정(淸淨)한 깨달음의 길을 지향(志向)하고 노력함을 뜻함.
①인도에서 바라문교의 「베다」 성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제종교 수행자의 총칭.
②출가하여 불문(佛門)에 들어 도를 닦는 사람.
*불명(佛名) ; 불법에 귀의한 남녀 신자에게 붙이는 이름.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유주무주(有主無主) ; ①주인(영가를 인도해 줄만한 인연있는 사람)이 있거나 없는. ②제주(祭主)가 있거나 없는.
*광겁부모(曠劫父母) ; 과거의 지극히 오랜 세월 동안 모든 우리의 부모. 선망부모(先亡父母)와 같은 말.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법요식(法要式) ; 불사(佛事-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를 할 때 행하는 의식.
*법보재(法寶齋) ; 매년 음력 3월 16일에 용화사 법보재자(法寶齋者)와 법보전 만년위패에 모신 선망부모 영가들과 인연 있는 영가들의 무량겁으로부터 지은 업장을 참회 소멸하고,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고, 재자와 영가 모두 진리의 세계에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전강 조실스님께서 개설(1963년)하신 합동 천도재(薦度齋).
*우란분재(盂蘭盆齋) ; 우란분(盂蘭盆). 우란분(盂蘭盆)은 산스크리트어 ullambana의 음사로, 도현(倒懸)이라 번역.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을 받는다는 뜻. 절에서, 음력 7월 15일에 지옥이나 아귀의 세계에서 고통받고 있는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삼보(三寶)에 공양하는 의식.
『우란분경(盂蘭盆經)』에 의하면 부처님 제자 중에 신통력이 제일인 목련이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는 어머니를 구해주려고 하였으나 신통력으로도 어찌 할수 없어서,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따라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모두 모이는 하안거가 끝나는 7월 15일인 자자일(自恣日)에 삼보(三寶)에 공양하게 하여 목련의 모친을 악도에서 벗어나게 한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850) 게송.
*진로(塵勞 티끌·속세 진,근심할 로) ;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번뇌(煩惱).
*승두(繩頭) : 승(繩)은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두(頭)는 어조사다。 불조의 계법(戒法) 규칙.
*용렬(庸劣 쓸 용,못할·낮을 렬) ; 사람이 비겁하고 좀스러우며 변변하지 못함.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