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칠석)2014. 7. 3. 18:59

§(272) (게송)적하위망적하진~ / 비로자나 법신불, 참선법(參禪法) / 인간의 고통의 원인이 자기한테 있다 / 참회(理懺,事懺) 죄업소멸을 통해서 ‘참나’로 돌아와야.

비로자나 법신불 한 분만 모셔도 일체 선신(善神)과 삼세 제불보살(諸佛菩薩) 전부가 이 부처님 품안에 다 갖추어 계신 것입니다.


불법(佛法)도 팔만사천 그 무수 방편설, 소승·중승·대승 그런 모든 법문을 갖다가 한데 모여서 고아 가지고, 한 법으로 수습헌 것이 바로 이 최상승법이요 이 참선법(參禪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밖으로 구하지 말고 안으로 구해라. 안에서 진리를 찾아야 우주에 가득 차 있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고 하는 것이 이 불교의 근본인 것입니다.


사참(事懺)을 통해서 궁극에는 이참(理懺)의 이치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참회의 뜻을 잘 인식을 하고 항상 이참과 사참을 통해서 우리의 무량겁(無量劫) 죄와, 이 찰나찰나 생각이 일어나고, 숨을 쉬고 이렇게 생활하는 가운데에 지은 모든 죄업을 참회를 통해서 소멸을 하고, 참회 죄업소멸을 통해서 ‘참나’로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72) - 1985년(을축년) 칠석법회(65분)에서. (용272)

 

(1) 약 21분.

 

(2) 약 20분.

 


(1)------------------

적하위망적하진(摘何爲妄摘何眞)고  진망유래총부진(眞妄由來總不眞)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하비엽하추용결(霞飛葉下秋容潔)하면  의구청산대면진(依舊青山對面眞)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적하위망적하진(摘何爲妄摘何眞)고. 무엇을 가리켜서 망령된 거짓 것이다 하고, 또 무엇을 가리켜서 참이라 할 것이냐.

진망유래총부진(眞妄由來總不眞)이다. 진(眞)이니 망(妄)이니 하는 것이 본래 다 그것이 참다운 것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참이오 저것은 거짓이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며, 이러한 시비심(是非心)이 일어나는진(眞)이라고 한 놈도 참이 아니오, 망(妄)이라 한 놈도 참이 아니여. 진이니 망이니 그것이 본래 '참'이 아니니라.


하비엽하추용결(霞飛葉下秋容潔)하면, 안개가 날으고 잎이 떨어지면 가을빛이 맑아진다. 안개가 날으고 서리가 쳐서 잎이 다 져버리면, 그때 추색(秋色)이 강산에 깨끗해지면,

의구청산대면진(依舊青山對面眞)이여. 옛을 의지해서 떠억 본 푸른 청산(青山)의 면목(面目)만이 드러나더라.
울긋불긋 잎이 피고 꽃이 피고 할 때에는 그런 잎과 꽃에 가리어서 그 산의 참모습이 드러나지 않지만, 서리 쳐서 잎이 다 떨어져 버리고 꽃도 다 져버리고 그러면, 그 산 본래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다.

오늘은 을축년 7월 7일, 칠석(七夕)날입니다.
칠석날이라 하면 우리나라 저 옛날 신라 때부터 또 그 이전에부터서 우리의 토속(土俗) 신앙으로, 살아계신 부모님이나 온 자손에 이르기까지 몸 건강하고 수명장수(壽命長壽)를 빌고 그러기 위해서 절에 가고 또 칠성(七星)님께 모다 공(功)을 드리고 이러한 토속 신앙으로써, 이 칠석날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마음속에 잊지 않고, 절에 잘 다니지 아니한 사람도 칠석날은 그러한 소원을 빌기 위해서 불공(佛供)을 드리러 가고 치성(致誠)을 드리러 가고, 그래 내려 옵니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는 칠석날에는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서로 만나지를 못하고 1년 내 떨어져 있다가 이 칠석날에는 까마귀와 까치가 서로 몸과 몸을 이어서 놔준 그 다리, 그것을 오작교라 그러는데 그 오작교(烏鵲橋)를 통해서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 이러헌 전설도 있고 그렀습니다.

'헌데 무슨 업으로써 견우와 직녀는 서로 사랑하면서도 만나지를 못하고 그렇게 1년 내 떨어져 있다가 칠월 칠석날 만난다' 그 전설이지만...

우리 용화사는 부처님 한 분, 청정법신(清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비로자나 법신불 한 분만을 이 법당에 모시고, 여러 부처님과 보살상도 모시지도 아니하고, 더군다나 신장(神將)님이라던지 칠성(七星)님이나 산신(山神) 모다 그러한 탱화(幀畵)도 모시지 아니하고, 다못 이 법신불(法身佛) 부처님 한분만을 모셨다 그말이야.

여러분 가운데는 '오늘 칠석날이니까, 용화사는 칠성당도 없고 그러니 빨리 법회가 끝나면은 칠성님 모신 절로 가서 공을 드려야겠다' 혹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이 계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어째서 용화사는다른 절에는 오백 나한(羅漢)도 있고 천불님도 있고 칠성·산신·독성님 그런 여러 성현들도 다 모시고 하는데왜 부처님 한 분만 딱 모셔 가지고, 점쟁이는 ‘칠성단에 공을 드려라’ 그러고 또 ‘산신 기도를 해라’하는데, 용화사는 칠성당도 없고 산신님도 없고 참 거 안 갈 수도 없고 또 딴 데로 갈 수도 없고, 그래서 속으로 항시 불평한 마음을 가지고 계시다가 기회만 있으면 산신 모신 데로 갈 생각을 하고,
그런데 그건 전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이 이 우주 법계에서 최고의 높으신 부처님, 그리고 가장 근본 부처님이 누구시냐 하면은 바로 이 법신불, 비로자나 법신불이시다 그말이여.

그 비로자나 법신불로부터서 모든 보신(報身)도 나오고, 천백억 화신(化身)도 나오는 것이고,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도 이 법신불에서 다 나오신 거여.
칠성님이나 산신•독성 그 밖에 이 우주에 가득찬 모든 하늘나라의 천신이나 땅에 모든 산신, 지기(地祇)에 이르기까지도 전부 이 법신불의 다 부하이시고 권속이시다 그말이여.

그래서 법신불 한 분만 모셔도 일체 선신(善神)과 삼세 제불보살(諸佛菩薩)이 다 이 한 부처님 슬하에, 부처님 품안에 전부가 다 갖추어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한 부처님만 모시되 일체 제불보살과 선신이 다 계시기 때문에 구태여 여러 분을 눈에 보이게 모시지를 아니하고 이렇게 한 분만을 딱 모시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뜻을 잘 파악을 해서 실천허는 것이, 바로 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팔만사천 법을 다 설하셨지만 교외별전(敎外別傳), 이 팔만대장경을 한데 뭉쳐서 그놈을, 무슨 100가지 약초를 모아 가지고 그놈을 한 솥에다 넣어서 몇날 며칠을 고아서, 찌끄레기는 다 건져 내버리고 그 물만을 계속해서 고우면, 마지막에는 조그만한 한 그릇의 진액(津液)으로 모여진 것처럼, 조그만 환약 하나로 뭉쳐진 것처럼,
이 불법(佛法)도 팔만사천 그 무수 방편설, 소승·중승·대승 그런 모든 법문을 갖다가 한데 모여서 고아 가지고, 한 법으로 수습한 것이 바로 이 최상승법이요 이 참선법(參禪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참선법은 소의경전(所依經典)이 없어. 그 주(主)로 삼는 경전이 없지마는, 한 경전도 이 참선법에 있어서는 세울 것이 없지만, 한 글자도 주장한 바가 없는 이 가운데에 팔만사천 묘법이 그 속에 다 갖추어져 있고 팔만대장경이 그 속에 다 들어있는 것이여.

그래서 산신님도 칠성님도 그 밖에 모든 불보살의 상호(相好)도 모시지 아니했지만, 이 비로자나 법신불 한 분만을 모시되 일체 성현이 여기에 다 모셔져 있는 거와 마찬가지고, 어떠한 경전도 여기서 내세우지 않지마는 일체 경(經)이 한마디 화두(話頭) 하나 속에 다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오늘 칠석날을 맞이해서 견우와 직녀, 항시 만나고 싶고 그리웁고 사랑하면서도 만나지 못하다가 오작교로 인해서 칠월 칠석날 견우와 직녀가 만나듯이,
우리 정법(正法)을 믿는 법보제자 여러분은 이 칠석날 칠석 법요식을 통해서 정법을 바로 믿고 바로 실천함으로서, 그 정법의 다리를 통해서 부모 자식간에 또는 부부간에 형제간에 이웃간에 또는 도반끼리, 크고 작은 모든 원한이나 섭섭한 그런 거리가 있는 분은 오늘을 기해서 깨끗이 참회를 해 버리고, 그리고서 정법을 다리로 해서 화합을 하고 하나가 되어서 ‘참나’를 깨닫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내가 남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상대방도 또 나를 용서하지 않기 때문에 그 조그만한 원한이 점점 깊어져 가는 것이고, 조그마한 서운함이 나중에는 큰 원한 관계로까지 확대가 되는 것인 만큼, 어쨌든지 내가 먼저 마음에 꼬부라진 것을 펴 버리고 내 마음 속에 언짢은 생각을 털어버리고서 상대방을 응어리 없이 활짝 개인 마음으로 상대를 하면 상대방도 따라서 가슴의 문을 열게 될것입니다.

인생으로 태어나서 어느 사람을 막론하고 여덟가지 고통(八苦) 중에 여덟가지 고통을 다 받고 있는 사람도 있고, 그 중에 반만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그 중에 한 두가지 고통만 있는 사람, 그 차등은 있을지언정 완전히 그 고통을 다 벗어버린 사람은 만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여덟가지 고통(八苦)이라 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는 이별하게 되고, 미운 사람은 만나게 되고, 무엇을 구하고자 하되 내 마음대로 얻어지지 아니하고,
또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오음(五陰)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것이 고르지를 못해서, 희로애락(喜怒哀樂)과 오장육부와 사지백체(肢百體)의 기관이 고르지를 못해가지고 항상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음성고(五陰盛苦)라 하는 것이고.


그리고 생로병사-나는 것도 고통이요, 늙는 것도 고통이요, 병드는 것도 고통이요, 죽는 것도 고통이요, 이래서 이것이 중생의 여덟가지 고통인데, 이 고통은 ‘남의 염병(染病)이 내 감기만 못하다’고, 다른 사람은 염병이란 무서운 병을 걸리면 죽게 되는데 내가 감기 좀 들은거야 그까짓 병이라 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남은 염병을 걸려서 죽게 되드라도 나는 조그만한 감기 좀 걸려도 내 감기가 더 고약한 것이다’ 그말이여.

우리가 이 사바세계에 태어난 사람은 그러한 여덟가지 고통 속에서 어떠헌 형태로든지 고통을 다 받고 있습니다. 다 자기만이 그러한 고통을 받고 있는 것 같지만, 다른 사람도 다 그 고통을 다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조그만한 고통은 큰 고통으로 생각하고, 남의 큰 고통은 별 것이 아닌 것으로 생각을 하지만 고통은 어떠헌 작은 고통이나 큰 고통이나 다 괴로운 것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동병상련(同病相憐)이여, 같이 앓고 있는 처지에는 서로 돌봐줄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서로 돌봐줌으로써 우리는 그 고통을 이겨 나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서로 돌봐줄랴면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볼 줄 아는 그러한 마음의 너그러움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고 남을 갖다가 등한히 생각하고 심지어는 남을 짓밟고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우리가 살아가게 되면, 우리 사는 집이 정말 지옥(地獄)으로 변헐 것이며, 우리가 사는 마을이 지옥으로 변할 것이며, 우리가 사는 사회와 국가가 지옥·수라장(修羅場)이 되고 말것입니다.

세계가 온통 싸움·전쟁속에 있고 전쟁이 일어날려고 하는 그런 직전에 모다 놓여져 있는데, 이러한 싸움이 ‘과연 왜 그러한 싸움이 일어나냐?’하면 서로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고 남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남의 괴로움이 존재하는 한은 나도 편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처음~21분6초)

 

 

 



(2)------------------

그래서 이 싸움을 없앨랴면 다시 말해서 이 세계의 평화를 가져 올라면, 먼저 우리나라가 단합을 해야 하고, 나라가 잘 살려면 우리가 사는 고을이 잘 살게 되아야 하고, 우리 고을이 잘 살라면 우리 집안이 잘 살아야 하고, 우리 집안이 편안헐랴면 내 마음이 먼저 편안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법(佛法)은 ‘밖으로 구하지 말고 안으로 구해라. 안에서 진리를 찾아야 우주에 가득 차 있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고 하는 것이 이 불교의 근본인 것입니다.

‘이 인생에 고통이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하면, 전부 중생들은 그 원인이 자기 이외에 다른 사람한테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부모를 잘못 만나서 내가 이렇게 고통을 받는다 생각하고, 형을 잘못 만나서 고통을 받는다 생각하고, 또는 남편을 잘못 만나서 내가 이렇게 고통을 받는다 생각하고, 아내를 잘못 얻어서 내가 이렇게 고통을 받는다 생각하고, 사장을 잘못 만나서 내가 이렇게 못 산다 생각하고, 전부 자기 불행의 원인을 자기 이외의 다른사람에게서 찾기 때문에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을 하셨냐 하면 ‘전부 그 원인이 자기한테 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모든 불행과 모든 고통의 원인이 자기한테 있다'고 생각하고 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맨 먼저 자기의 고통이 소멸이 되고 행복을 얻게 될 것이며, 각자 그렇게 나아갈 때 온 집안이 평화를 찾게 되고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평화롭게 되고 이 세계가 바로 천국이 되고 극락이 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먼저 모든 고통의 원인을 자기에게 찾으면 어떻게 해야 할것인가?’ 참회(懺悔)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회를 해야 자기의 죄(罪)를 소멸(消滅)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죄를 소멸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고통은 없어지지 아니해. 고통이 없어지지 않고서는 우리는 행복과 평화를 찾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참회문(懺悔門)을 열어서 참회를 함으로써 자기의 마음속에 고통, 육체상의 고통, 가정의 불행, 사회의 고통을 해결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참회에는 이참(理懺)과 사참(事懺) 2가지 형식이 있는데, 이치(理致)로 참회하는 것과 또 실질적인 사(事)로 참회는 그런 2가지가 있는데. 사참(事懺), 일반적으로 우리가 ‘참회한다’하면 다 이 사참을 일컫는 것입니다.
‘사참은 어떻게 하느냐?’하면 부처님께 삼보(三寶)께 몸으로 백팔참회(百八懺悔) 또는 삼천배(三千拜), 이렇게 계속해서 부처님 앞에 예배(禮拜)를 하면서 또 부처님의 경전이나, 주문(呪文)이나, 부처님의 법과 덕을 찬양하는 그러한 예경문(禮敬文)을 외우면서 계속 절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으로 절을 하고, 입으로 삼보를 찬탄하고 또 경을 외우고, 마음으로는 그 부처님의 거룩한 상(像)을 염(念)하면서 그래서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으로 계속 참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내가 지은 바 죄업, 모든 악업은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이여. 몸과 입과 마음으로부터 다 생긴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면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瞋癡),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
전부 탐진치(貪瞋癡)-욕심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이 그것이 근본이 되어 가지고, 이렇게 몸으로 짓고 입으로 짓고 마음으로 짓고 해서 이런 죄를 지었으니 이걸 참회합니다.
이렇게 해서 무수배례(無數拜禮)를 하면서 이렇게 독송을 하면서 이렇게 참회를 하고.

이참(理懺)은 이치(理致)로 참회하는 것이여.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여. 죄라고 하는 것은, '죄'라고 하는 자성(自性)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다 그말이여.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이여. 마음이 공(空)해 버리면, 마음이 비어 버리면 죄도 또한 없어진다.

이 도리를 철저히 믿고 참선을 하면 거기에서 죄가 소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참'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참(理懺)은, 참선을 해서 그 힘을 얻은 사람은 찰나간(刹那間)에 무량겁 죄도 눈 한번 감았다 뜬 사이에 참회하는 도리가 있습니다.
아직 참선을 통해서 힘을 얻지 못한 사람은 그렇게 헐랴고 해도 가슴속에 띠끄름한 생각이 깨끗이 떨어지지를 않고 계속 가슴속에 두려움과 원망하는 마음과 괴로운 생각이 떨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근기, 하근기는 부처님 앞에 향을 올리고 그리고서 매일같이 백팔참회를 하고 또 천배·천배·천배해서 삼천배, 또 삼천배를 수십번 해서 삼만배·삼십만배 이렇게 하는 가운데에,

그러면서 경을 외우고 참회진언을 외우고 그리고 또 자기의 죄를 갖다가 소멸하기 위해서 물질적으로 남에게 베풀고 또 보시하고 시주를 하고 이렇게 해가지고 자기의 지은 죄업을 갖다가 소멸하는 것입니다. 이 하근기에게는 이러한 사참(事懺)이 매우 효과적인 것입니다.

그렇게 사참을 많이 하면 결국에 가서는 자기의 마음속에 업(業)이 소멸이 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고 그러고 나면은 미운 생각도 없어지고, 두려운 생각도 없어지고, 그 먹구름이 끼고 폭풍이 불고 하던 날씨가 쏴악 구름 흩어지고 샛파란 하늘이 보이면서 밝은 태양이 빛나듯이, 마음속이 그렇게 후련해지고 미운 생각도 없어지고 원망하는 생각이 없고, 모든 그렇게 그 전에 미웁고 원망스럽던 사람이 전혀 그러헌 감정은 없어져 버리면서 고마운 생각만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고맙고, 모든 일들이 다 고맙고, 이 세상에 태어난 자체가 고맙고,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참회, 이것이 바로 사참(事懺)인 것입니다.

사참(事懺)을 통해서 궁극에는 이참(理懺)의 이치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찰에서 대중 스님네들이 모여서 수도를 해나간 데에도 이 참회법(懺悔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중죄(重罪), 큰 죄를 지었을 때에는 네 사람 이상의 대중 앞에서 자기의 잘못을 고백을 하고 그리고서 참회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중법참(衆法懺)이라 하는 거고. 그 다음에 그렇게 무겁지 않지마는 비교적 중한 죄를 지을 때에는 자기가 존경하는 스님 한 분 앞에 가서 자기의 잘못을 다 털어놓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대수참(對首懺)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아주 미미한 조끄마한 그런 죄를 지은 것은 자기혼자 법당에 들어와서 아무도 없을 때에 부처님 앞에 와서 다 마음으로 고백을 하고 절을 하면서 스스로 참회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심념참(心念懺)이라 해. ‘마음 심(心)자’ ‘생각 념(念)자’ 자기 마음속으로 참회를 한다 해서 이것을 심념참이라 하는데.

이 중법참이나, 대수참큰스님 앞에 가서 참회하는 것, 그리고 자기혼자 마음으로 참회하는거 이거 심념참인데 이러한 참회를 통해서, 항시 자기 마음속에 크고 작은 잘못을 반성을 하고, 그것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소멸을 함으로써 새로운 마음으로 정진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부처님께서는 이런 참회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용화사에서는 아침마다 예불할 때에 이 십악참회(十惡懺悔)를 합니다.
향불로 팔을 따끔하게 지지면서 10가지의 죄를 참회를 하는 것인데, 도를 닦은 수행인이 무슨 살생을 하며 도둑질을 하며 음행을 하며 거짓말 할 까닭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죄'라고 하는 것이 꼭 몸으로실질적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남의 물건을 도둑질을 하거나, 또는 음행을 한 것만이 죄가 아니라, 마음으로 '한 생각' 번쩍 일어났다가 사라져도남을 죽일 마음을 낸다던지, 남을 미워하는 마음을 낸다던지, 남을 해롭게 할 마음을 낸다던지, 남의 물건을 욕심내는 마음을 낸다던지, 어떤 이성간에 색심을 일으킨다던지, 이리해도 이 대승계(大乘戒)에 있어서는 그것도 계를 파(破)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눈을 뜨고 살면 숨 한번 마시고, 물 한모금 먹고, 말 한마디 허고, 발 한발 움직이는 가운데에도 전자현미경과 같은 그런 업경대(業鏡臺)를 통해서 비추어져 볼 때에는 죄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석(朝夕)으로 예불하면서 참회하고, 참회하면서 새롭게 또 발원(發願)을 하면서 이렇게 수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스님네는 말할 것도 없고, 마을에 계시는 신남신녀 여러분께서도 비록 몸은 속세에 계신다 하더라도 마음은 이미 발심출가(發心出家)한 부처님의 제자들이기 때문에, 특히 세속에서 생활을 해 나가고 사업을 해 나갈라면 크고 작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본의거나 타의거나 간에 이 죄업을 짓지 않고서는 단 하루도 한 시간도 살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참회의 뜻을 잘 인식을 하고 그래 가지고 항상 이참과 사참을 통해서 우리의 무량겁(無量劫) 죄는 말할 것도 없고, 이 찰나찰나 생각이 일어나고, 찰나찰나 숨을 쉬고 이렇게 생활을 해나간 가운데에 지은 모든 죄업을 참회를 통해서 소멸을 하고, 참회 죄업소멸을 통해서 ‘참나’로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칠석날 여러분께서는 여러 가지 정성스러운 공양(供養)을 부처님 앞에 가지고 오셔서 모다 바치셨습니다.

여러분 마음 가운데에는 오늘 칠석날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동참(同參)을 하고 그래 가지고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고, 그래서 집안 식구의 아픈 사람 병낫기를 바래시고, 또 아들딸 모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를 발원하시고, 사업이 모다 재수대통 하고, 관재구설이 없어서, 다 뜻대로 성취하시기를 바래고, 그런 크고 작은 간절한 소망을 가지시고 모다 오신 분이 많으실줄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살고 특히 세속에 사신 분들은 그러한 소망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소망을 가지시고 오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반드시 그 소원은 이루어지시리라고 생각하고 또 이루어져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알고 보면 참 이 조그마한, 이루어져도 그것이 큰 행불행(幸不幸)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이루어져 봤자 그때 잠깐 기쁘고 흐믓한 것뿐이요, 안 이루어져 봤자 그때 좀 안 좋았을 뿐이지, 지내놓고 보면 그 일이 되거나 안되거나 그렇게 나의 근본 행복을 위해서 또는 영원한 행복을 위해서는 별것도 아닌 일인 것입니다마는 그러나 우선은 그것이 꼭 이루어져야겠고 우선은 아주 긴박한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조그마한 소원을 성취하게 위해서 오셨지만, 산승(山僧)은 여러분이 그러한 조그마한 소박한 소원이 이루어지시기를 바래는 마음으로 간절히 부처님께 축원(祝願)을 해 드리고, 또 여러분의 그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부처님은 큰 자비(慈悲)로써 반드시 그 소원이 이루어지시도록 가피(加被)를 내려 주시리라 생각이 됩니다마는,

산승의 원(願)으로서는 그러한 조그만한 원은 여러분 잠깐 마음속에 간직만 하시고 여기에 오셨어도 부처님은 이미 알고 계시고, 내가 간절히 여러분에게 부탁하고자 하는 바는 정말 영원한 행복을 얻을수 있는 그러한 소원을 이루시게 되길 바래고, 또 그러한 큰 소원 성취하는 방법을 일러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참(理懺)과 사참(事懺)의 말씀을 드렸고, 이참과 사참을 통해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그 '업(業)의 뭉탱이'가 녹아져 없어져야 될 것이고 그리해야 참선을 올바르게 할 수가 있고 또 하루하루를 보람있게 사실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처음~41분1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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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적하위망적하진~' ; [경허집(鏡虛集)] (명정 역 | 극락호국선원) '與永明堂行佛靈途中(영명당과 함께 불령을 가는 도중)' p224 참고.
*수명장수(壽命長壽 목숨 수,목숨 명,길 장,목숨 수) ; 수명이 길어 오래도록 삶. 어린아이의 명이 길어 오래 살기를 빌 때에 쓴다.
*칠성(七星) ;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신격화한 것으로 칠성이 대한 신앙은 특히 중국의 도교에서 발달하여 이후 ①불교에서 칠성은 호법선신(護法善神)의 하나로 수용되었고 ②민간에서는 특히 수명과 재복을 관장하는 신으로 믿어졌다.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치성(致誠 이룰•이를 치,정성 성) ; ①하느님 이나 부처님 등 신적 대상에게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정성을 다하여 빎. ②있는 정성을 다함. 또는 그 정성.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신장(神將) ;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곧 불법(佛法)을 지키는 신장을 이른다.
*산신(山神) ; 산신령(山神靈). 산을 수호하는 신령(神靈).
*탱화(幀畵) ; 부처님, 보살, 성현들을 그려서 벽에 거는 그림. '탱(幀)'이라고도 한다.
*나한(羅漢) ; 아라한(阿羅漢)의 준말.
*보신(報身) ;부처가 전생에 보살로 있을 때 세운 서원(誓願)과 수행의 과보(果報)로서 받은 몸. 모든 부처가 법신·보신·화신을 동시에 갖추고 있지만 대표적인 보신불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약사여래(藥師如來) 등이 있다.
아미타불은 48가지 서원을 세우고 수행하여 성불한 보신불로서 서방의 극락정토(極樂淨土)를 건립하여 중생을 교화하며, 약사여래는 12가지 서원을 세우고 수행하여 성불한 후 동방의 유리세계(瑠璃世界)에서 중생을 교화하고 있다고 한다.
*화신(化身) ; 화신불(nirmaka-kaya 化身佛). 부처의 삼신(三身:法身•報身•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응화신(應化身)·변화신(變化身)•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지기(地祇) ; 땅을 다스리는 신령. 지신(地神).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8, p34에서.
(5)世尊이  三處傳心者는  爲禪旨요  一代所説者는  爲教門이라. 故로  曰,  禪是佛心이요  教是佛語니라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教門)이 되었다。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教)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6)是故로  若人이  失之於口則拈花微笑가  皆是教迹이요.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가  皆是教外別傳禪旨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것(拈花微笑)이 모두 교의 자취(教迹)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教外別傳禪旨)가 되리라.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상호(相好) ; 부처님의 몸에 갖추어진 용모와 형상.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팔고(八苦) ;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여덟 가지의 괴로움.
생(生)·노(老)·병(病)·사(死)를 사고(四苦)라 하고, 여기에 사랑하는 자와 이별하는 고통(愛別離苦), 원망스럽고 미운 것을 만나야 하는 고통(怨憎會苦), 구해도 얻지 못하는 고통(求不得苦), 오음이 성하는 고통(五陰盛苦)의 넷을 더하여 8고라고 한다.
*오음(五陰) ; 오온(五蘊)의 구역(舊譯).
*오온(五蘊) : [범] panca-skandha 또는 오음(五陰) • 오취(五聚)라고도 한다。범어 panca는 다섯이란 말이고 skandha는 덮인다·쌓인다·뭉친다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곧 인연으로 화합한 모임을 말한다.
①빛(色)은 물질인데, 우리의 육신과 우리를 싸고 있는 환경을 가리킨다.
②받음(受)은 우리가 환경에서 받는 촉감.
③생각(想)은 우리에게 접촉되는 대상에 대하여 분별하며 생각하는 것.
④움직임(行)은 접촉되는 대상에 대하여 미워하고 사랑하고 가지고 버리고 기뻐하고 골내는 것같이, 착하고 악한 것을 물론하고 마음의 활동을 말한다.
⑤알음알이(識)는 모든 일이나 물건에 대하여 생각하고 기억하고 판단하고 집행하게 하는 마음의 주체이므로 마음 임금(心王)이라고도 한다.
이와 같은 다섯 가지는 물질과 정신의 전체를 통괄하여 말하는 것이다。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우리의 망상으로 실다운 것인 줄 착각한 것일 뿐이다。실지는 다 인연 따라 꿈같이 나타나는 빈 것이다.
*사지백체(四肢百體) ; 몸의 전체.
*염병(染病) ; ‘장티푸스(腸typhus)’를 속되게 이르는 말.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지옥(地獄) : 중생들이 자기가 지은 죄업으로 말미암아 그 과보로 사후(死後)에 가서 나게 되는, 고통이 극한 지하의 감옥을 말한다。 그러나 육신의 사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세의 우리의 마음속에 천당과 지옥이 있는 것이다.
*수라장(修羅場) ; 아수라장(阿修羅場). ①아수라왕(阿修羅王)이 제석천(帝釋天)과 싸운 마당. ②싸움이나 기타의 이유로 혼란에 빠져 모든 것이 뒤범벅이 된 곳. 또는 그러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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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삼보(三寶) ; 부처님(佛寶)과 부처님의 가르침(法寶)과 그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집단(僧寶) 의 3가지를 보배에 비유한 말. 이것은 불교를 구성하는 3가지의 중요한 요소임. 삼보(三寶)에 귀의하는 것은 불교도로서의 기본적인 조건임.
*백팔참회(百八懺悔) ; 중생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108가지의 모든 번뇌에 대한, 번뇌·업장소멸과 참회의 뜻으로 108배의 절을 하는 것.
*예배(禮拜) ; 거룩하고 성스러운 대상에 대하여 존경하는 뜻을 가지고 절을 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11 참고.
(五一) 禮拜者는  敬也며  伏也니  恭敬眞性하고  屈伏無明이니라
예배라 하는 것은 '공경하는 것'이며 '굴복하는 것'이니, 참된 성품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이니라.


(註解)身口意가  清淨하면  則佛出世니라
몸과 입과 뜻이 청정하면 그것이 곧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신 것이니라.
*무수배례(無數拜禮) ; 헤아릴 수 없이(無數) 많은 절을 하여 예를 표함.
*찰나(剎那) : [범]  ksana  시간의 제일 작은 단위로 말한 것이다。하루가 648만 찰나라 하였는데, 지금 시간으로는 1초의 75분의 1에 해당한다.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십악참회(十惡懺悔) ;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지은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대승계(大乘戒) ; 대승의 보살이 받아 지켜야 할 계율. 보살계라고도 한다.
「범망경」에서 설하는 십중금계(十重禁戒)·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와 「선계경(善戒經)」에서 설하는 삼취정계(三聚淨戒)등을 말함.  이 삼취정계 안에는 율의계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대승계 속에는 소승계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삼취정계란 ①부처님이 정한 규율을 지킴으로써 악행을 막는 섭률의계(攝律儀戒), ②한걸음 더 나아가 선행을 하는 섭선법계(攝善法戒), ③중생을 교화하고 그 이익을 위해 힘을 다하는 섭중생계(攝衆生戒)를 말한다.
*업경대(業鏡臺) ; 지옥의 염라대왕(閻羅大王)이 가지고 있다는, 인간의 죄를 비추어보는 거울이다. 업경 혹은 업경륜(業鏡輪)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어 지옥에 이르면 염라대왕은 업경대 앞에 죄인을 세우고, 업경대에는 그가 생전에 지은 선악의 행적이 그대로 나타나며, 죄의 경중이 판가름나면, 그에 따라 가야 할 지옥이 정해진다.
*발원(發願) ; 원하는 마음을 냄. 원을 세움.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지극정성(至極精誠) ; 더할 수 없이 극진한 정성(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동참(同參) ; 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자비(慈悲) : [범] maitri  자비는 사랑하는 것과 불쌍히 여기는 것인데, 네 가지 끝없는 마음(四無量心) 가운데 두 가지이다。모든 중생에게 실제로 즐거움을 주는 것을 「자(慈)」라 하고(慈能與樂), 중생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 주며 근본적으로 그 근심 걱정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 내어 주는 것을 「비(悲)」라고 한다(悲能拔苦).
*가피(加被 더할·베풀 가,입을·두를 피) ; 불보살(佛菩薩)에게 위신력(威神力)을 받는 것. 불보살이 중생에게 불가사의한 힘을 부여해서 이익을 주는 것. 가호(加護)와 같음.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