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법문2016. 4. 4. 19:29

§(778) 구족계 수계 법문 / (게송)분골쇄신미족수(粉骨碎身未足酬)~ / (게송)승기상모속기심(僧其相貌俗其心)~.

 

말법시대 가지고, 무상(無常) 깨닫지 못하고 열심히 정진을 하면 바로 지금이 말법시대가 되어 가지고 자기도 불쌍한 중생이 되는 거고, 부처님의 계를 지키면서 열심히 정진을 해서 자기를 깨닫는다면 삼천 년이 지난 오늘이라 하더라도 여러분에 의해서 정법시대를 실현하게 되는 .

 

본래부터서 부처님이 계신 것이 아니고, 본래부터 지옥 중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도를 닦아서 성불(成佛)하면 부처님이 되는 거고, 도를 닦지 아니하고 무상을 깨닫지 못하고 그럭저럭 먹고 자고, 그럭저럭 지내면은 너나 없이 지은 () 따라서 육도윤회(六途輪廻) 밖에는 것이 없어.

 

**송담스님(No. 778)—2016 병신년 구족계 수계법문(16.03.29)(26) (용778)

 

(1) 약 17분.

(2) 약 10분.

 

(1)-----------------

 

분골쇄신미족수(粉骨碎身未足酬)하고  일구요연초백억(一句了然超百億)이로다

나무~아미타불~

가사철륜정상선(假使鐵輪頂上旋)하되  정혜원명종불실(定慧圓明終不失)이니다

나무~아미타불~

 

오늘 일곱 사람의 비구계를 받는 수계자(受戒者) 있고, 사람이 비구니계를 받는 수계자가 있습니다.

수계 제자들은 미리 설한 비구 250계와 비구니 358계를 지키겠는가?”  “능지(能持)”

지키겠는가?”  “능지(能持)”

지키겠는가?”  “능지(能持)”

 

오늘 () 받을 제자가 번을 지키겠다 부처님 앞에 서약(誓約) 했습니다. 부처님께 그러한 뜻을 마음속 깊이 여쭙고, 지키겠다는 뜻으로 부처님께 자리, 받을 사람.

(목탁에 맞추어 3)

 

다음에는 나를 낳아서 길러주시고, 출가해서 도를 닦게 주신 부모님께 자리.

(목탁에 맞추어 3)

 

조실 스님과 사부대중께 자리.

(목탁에 맞추어 3)

 

수계 제자들은 호궤합장(跪合掌) 하고 앉어.

 

연비(燃臂)

참회진언(懺悔眞言)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연비가 끝났으면 가사(袈裟) 수여해.

오늘 비구계와 비구니계를 받은 불제자(佛弟子) 비구 심공, 한송, 해광, 서광, 진광, 지광, 석준 이렇게 해서 비구가 일곱 명이고, 비구니는 나경, 종민 사람인데 모두 합해서 아홉 명입니다.

자리에 앉아.

 

불교를 크게 분류를 하면 삼학(三學)인데, 첫째는 계학(戒學)이고, 다음에는 정학(定學), 번째는  ()인데.

 

() 그릇에다가 비유해서 계기(戒器) 그러는데, () 오계와 십계와 비구 250, 비구니 358계가 있고.

다음에 정학은, ()  선정(禪定) 물에다가 비유하는데, 참선 정진하는데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항상 몸을 단정히 하고 마음을 가다듬어서, 선정의 물이 흔들리지 않고 조용하게 안정이 되고 맑아야 그것이 인자 ()인데.

그래야 거기에 () 지혜의 달이 거기에 뜨는데, 지혜의 달이 뜸으로 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 거야.

 

지혜의 이라 하는 것은 화두(話頭) 대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고 항상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야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이여. 확철대오를 해서 스스로 생사해탈을 하고 나아가서는 부처님의 법을 자기 몸에 실천을 가지고 자기도 생사해탈을 하고, 불법을 통해서 많은 중생들을 제도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부처님 열반하신 삼천 년이라고 하는데, 비록 말법시대(末法時代) 하지마는 이렇게 부처님을 믿고 계를 받고 열심히 정진을 해서 자기의 마음을 깨달아서 견성을 한다면은,

말법시대에 최상승 활구참선(活句參禪) 해서, 자기를 깨달아서 부처님 법을 이어받아 가지고, 그리고 자기도 생사해탈을 하고 많은 중생들을 제도한다면 삼천 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정법(正法)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시간에 관계 되지 않고, 올바르게 불법을 믿고 실천을 해서 바른 깨달음을 얻으면 비록 부처님 열반하신지 삼천 년이 되었다 하더라도 지금이 바로 정법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말법시대 가지고, 무상(無常) 깨닫지 못하고 열심히 정진을 하면 바로 지금이 말법시대가 되어 가지고 자기도 불쌍한 중생이 되는 거고,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부처님의 계를 지키면서 열심히 정진을 해서 자기를 깨닫는다면 삼천 년이 지난 오늘이라 하더라도 여러분에 의해서 정법시대를 실현하게 되는 것이니,

 

오늘로 자리에서 일곱 사람의 비구와 사람의 비구니가 계를 받고, 새로운 부처님 제자로서 출발하게 것을 자리에 모이신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은 정말 마음속 깊이 축하를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비록 사람에게는 생로병사(生老病死) 있고, 우주세계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 있고, 우리의 마음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 있는데, 이것은 부정할 없는 현상입니다.

세계는 성주괴공이 있어. 지금 56 7천만 뒤에는 지구도 파괴가 되어서 없어진다고 하는데, 형상이 있는 것은 길고 짧은 차이는 있으나 언젠가는 파괴 되는 거고.

 

일단은 사람 몸을 받아 났으면은 생로병사를 면할 수가 없어. 태어났으면 자라 가지고 늙어서 결국은 마지막에는 병들어서 죽게 되는데, 이러한 생로병사의 몸을 받았지마는 정법(正法) 믿고 열심히 화두를 들고 참선(參禪) 하면, 생사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서 트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믿고, 정법을 어떻게 믿고 실천하느냐에 따라서 불쌍한 생로병사의 중생이 되는 거고, 올바르게 발심(發心) 하고 신심으로 정법을 믿고 열심히이뭣고?’ 해서 정진을 하면, 무상한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열리는 것이니, 우리가 어찌 법문을 듣고 열심히이뭣고?’ 하고 참선을 아니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말법시대에 불쌍한 중생으로 살아가는 길도 있고, 마음 한번 먹고 정법을 믿고 열심히이뭣고?’ 한다면은 무상 속에서 확철대오를 가지고 정법시대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니,

자리에 모이신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은 그동안에도 열심히 나름대로 신심으로 살아왔고, 나름대로 도를 닦았겠지마는 오늘을 기해서 정말 열심히 새로 태어난 기분으로 정진을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특히 오늘 계를 받은 일곱 명의 비구와 사람의 비구니는 자리에 법당 가득히 모인 신남신녀와 대중스님네의 호념지하(護念之下) 정말 무상을 철저히 깨닫고, 결정코 몸으로 확철대오해서 불법을 실현하게 되리라고 간곡히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처음~1619)

 

 

 

 

 

(2)------------------

 

승기상모속기심(僧其相貌俗其心)하고  가불참천이괴지(可不慙天而愧地)

나무~아미타불~

추행광언임여위(麤行狂言任汝爲)하나  확탕노탄하회피(鑊湯炭何廻避)리요

나무~아미타불~

 

승기상모속기심(僧其相貌俗其心)이요  가불참천이괴지(可不慙天而愧地).

모양은 머리를 깎고 먹물 옷을 입고 가사를 씌었으니 누가 봐도 스님이라고 수가 있는데, 정말 철저히 발심(發心) 해서 시간을 아껴서 열심히 정진을 아니하고 그럭저럭 지내면 껍데기만 스님이고 속은 속인(俗人) 아니겠느냐 그말이여. 그렇다면은 하늘에 부끄럽고 땅이 부끄럽지 않겠느냐 그말이여.

 

추행광언(麤行狂言) 임여위(任汝爲), 행동을 머트럽게 하고 말을 함부로 해서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쩔 없이 그대로 수밖에 없으나, 금방 몸을 버리게 되면은 곳이 어디냐 그말이여.

나를 낳아서 출가하도록 키워 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저버리고신도들이 바친 쌀과 옷으로 승려가 되어 가지고 정말 철저히 시간을 아껴서 정진을 해야지, 그럭저럭 지내다가는 확탕노탄(鑊湯) 지옥, 불이 펄펄 끓는 용광로와 같은 지옥고를 어떻게 회피할 것이냐 그말이여.

 

이것은 진각국사(眞覺國師) 항상 써붙여 놓고 좌우명(座右銘)으로 삼는 게송(偈頌)인데, 게송은 바로 우리도 좌우명으로 삼고 정말 열심히 정진을 해서, 나를 낳아서 길러서 출가하도록 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식량과 옷을 시주(施主) 신도의 은혜에 보답하고,

그리고 나도 머리를 깎고 출가를 했으니 정말 그런 은혜를 생각하고내가 해야 일이 무엇인가?’ 한마디, 행동 하나라도 머트럽게 하지 말고, 행주좌와 간에 열심히 정진을 해서 그런 은혜를 보답하고, 머리 깎고 중노릇하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열심히 정진하리라고 믿습니다.

 

 

계첩(戒牒) 수여하는데, 비구 심공, 다음에 비구 한송, 비구 해광, 비구 서광, 다음에 비구 진광, 다음에 비구 지광, 다음에 석준, 비구니 나경, 비구니 종민.

이상으로써 비구 일곱 명과 비구니 사람이 비구계와 비구니계를 삼세제불(三世諸佛) 자리에 모인 여러 스님네와 여러 신남신녀가 지켜보는 가운데 엄숙하게 계를 받았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어려운데 사람으로 태어났고, 더군다나 세계 56억이라고 하는 인구 가운데에 정말 불법을 믿고 출가해서 부처님 제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았고, 출가하기 어려운 스님이 되었고, 이렇게 계까지 받았으니, 여러 불보살과 여러 신남신녀와 여러 선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엄숙하게 계를 받았으니,

정말 새로 태어난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 시간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정말 열심히 정진을 해서 반드시 도업(道業) 성취해서, 확철대오해서 여러 분의 은혜와 부처님의 은혜를 보답하는 보람 있는 수행자가 되리라고 나는 믿습니다.

 

아까 처음에 읊은 분골쇄신미족수(粉骨碎身未足酬), 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진다 하더라도 은혜를 갚을 길이 없어.

일구요연초백억(一句了然超百億)이다. 그래서 나를 찾는이뭣고?’ 이뭣고 한마디를 확철대오를 함으로써 무량겁으로 생사윤회를 굴레를 벗어나게 되는 것이여.

비록 쇠로 만든 수레바퀴로 머리위를 빙빙 돌리는 그러한 상황을 만난다 하더라도(假使鐵輪頂上旋) 열심히 정진을 해서 선정과 지혜가 원명(圓明)—뚜렷하고 밝도록 그렇게 열심히 정진을 한다면 어찌 생사해탈을 못할 것인가.(定慧圓明終不失)

 

마음 하나 먹기로써 지옥고를 받을지, 육도윤회를 하느냐. 마음 하나를 철저히 믿고 시간 시간, 초를 단속을 하고 정진하느냐 하는 것은 자기의 마음먹기에 달렸어.

본래부터서 부처님이 계신 것이 아니고, 본래부터 지옥 중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도를 닦아서 성불(成佛)하면 부처님이 되는 거고, 도를 닦지 아니하고 무상을 깨닫지 못하고 그럭저럭 먹고 자고, 그럭저럭 지내면은 너나 없이 지은 () 따라서 육도윤회(六途輪廻) 밖에는 것이 없어.

 

그러한 기로(岐路)에서 오늘 자리를 통해서 자리에 모이신 신남신녀, 비구 비구니 도반 여러분은 오늘 일곱 사람과 사람의 출가한 이것을 계기로 해서 『우리도마음의 새로 받았다』는 그러한 정신을 가지고 앞으로 열심히 정진을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1620~262)()

 

 

 

 

 

------------------(1)

 

*(게송) 분골쇄신미족수~’ ; 『증도가(證道歌) (영가永嘉 스님) 참고.

*호궤합장(跪合掌) ; 무릎을 꿇고 앉되, 무릎 허벅지와 상체가 수직이 되게 곧게 일으켜 세우고, 발가락은 세운 손은 합장을 취한 자세.

*연비(燃臂) ; 불교에서 수행자가 () 받을 , 팔뚝에 향이나 심지로 불을 놓아 뜨는 의식 또는 자국.

*참회진언(懺悔眞言) ; 죄업(罪業) 참회하는 진언. '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참회(懺悔 뉘우칠 /뉘우칠 )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부끄러워할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삼학(三學) ; 깨달음에 이르려는 자가 반드시 닦아야 가지 수행.

삼증상학(三增上學삼승학(三勝學)이라고도 하는데, 계학(戒學정학(定學혜학(慧學) 가지를 말한다. 이것을 증상(增上:탁월하다는 )계학·증상심학(心學증상혜학 또는 줄여서 ··혜라고도 한다.

①계는 악을 저지르지 않고 선을 닦는 계율(戒律), ②정은 심신을 고요히 하고 정신통일을 하여 마음이 산란하지 않게 하는 선정(禪定), ③혜는 번뇌를 파하고 진리를 증득(證得)하는 지혜를 가리킨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말법(末法) : 부처님의 교법이 세상에 전하여 가면서 중생을 교화하는데 대하여 부처님께서 예언한 바가 있다.

처음 오백 동안은 정법(正法) 시기가 되어, 교법이 온전히 있음은 물론 닦아 가는 사람도 많고, 닦는 사람은 대개 깨쳐서 성과(聖果) 얻게 되지마는, 다음 동안은 상법(像法) 정법에 비슷한 시기가 되어, 교법도 있고 수행하는 사람도 있지마는 깨치는 사람은 적게 되고, 다음 동안은 말법 쇠잔하고 미약한 교법이 남아 있는 시기가 되어, 수행하는 사람도 별로 없으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인도만을 표준한 말인 듯하다。인도의 불교사는 과연 그대로 되었다。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대답하여 예언하기를, 불교가 중인도에서는 차츰 쇠미하게 되겠으나, 변지(邊地) 외국에 널리 전파되어 점점 융성하게 되리라고 하였다。과연 불교의 중심이 중인도로부터 북부인도와 세일론으로 옮기었고, 다시 중앙아세아로, 북부아세아로 옮겨가게 되었다。중국한국일본에 불교가 왕성하고 많은 도인(道人) 것도 부처님이 열반한 1500 이후의 일이었다.

다시 말하면, 말법이라는 시기가 시작된 뒤의 일이다。그러므로 세계적으로 불교 교단 전체를 통하여 때에는 말법시기가 일정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파리어(巴利語) <잡아함경(雜阿含經)>에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부지런히 () • () •() • () 사염주(四念住) 닦아서 탐욕과 분심을 끊으면 정법은 영원토록 세상에 머물러 빛나게 것이나, 수행하지 않게 되면 정법은 소멸하고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여러 경전에도 『누구나 부처님 말씀대로 닦으면(説修行) 반드시 견성 성불한다』하였고, 조사들의 말씀에는 『참선하는 이가 견성하는 것은 세수하다가 코를 만지는 것처럼 아주 쉽고 당연한 일이다』하였으므로, 누구나 공부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다만 우리는 사학(邪學) 외도(外道) 번성한 시대에 났으므로, 망녕된 알음알이를 내지 말고 줄기차게 정진한다면, 하나도 실패함이 없을(萬無一失) 아니라 정법은 영원히 나아갈 것이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 조건()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 없다[].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 發起菩提心 발기보리심, 發菩提心 발보리심.

*호념(護念) ; 불보살이 선행을 닦는 중생을 잊지 않고 보살펴 주는 .

 

 

 

 

 

------------------(2)

 

*(게송)승기상모속기심~’ ; 『무의자시집(無衣子詩集) 하권』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 ‘좌우명(座右銘)’ 게송 참고.

[참고] 『진각국사어록(眞覺國師語錄) (김달진 역주 | 세계사) ‘좌우명(座右銘)’ p353.

菩薩子菩薩子  常自摩頭深有以  摩頭因得審思量  出家本意圖何事

보살님이여, 보살님이여. 항상 머리 만지는 깊은 까닭이 있네. 머리를 만지며 깊이 생각하나니 출가한 본뜻으로 무슨 도모할까.

僧其相貌俗其心  可不慙天而愧地  麤行狂言任汝爲  鑊湯炭何廻避

모양은 중으로서 마음은 ()이라면 하늘과 땅에 대해 부끄럽지 않으랴. 거친 행과 미친 소리를 그대로 한다면 확탕과 노탄을 어떻게 피하리.

*머트럽다 ; 말이나 행동이 일정하게 바르게 하지 않고 울퉁불퉁하다.

*확탕노탄(鑊湯) 지옥 ; 확탕(鑊湯) 노탄(爐炭). 쇳물이 끓는 솥에 삶기는 고통과 숯불에 달구어지는 고통을 받는 지옥.

*좌우명(座右銘) ; 자리 옆에 갖추어 두고 생활의 지침으로 삼는 말이나 문구.

*시주(施主 베풀 /주인 )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

*계첩(戒牒 삼가할 /증명서 ) ; () 받았다는 증명서.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 : [] karma []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 업이라 한다。개인은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 윤회(輪廻)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Posted by 닥공닥정
천도재(영가천도)2015. 9. 22. 09:03

§ (2)전강 선사 영가천도 법문(생야시 사야시) / 송담 스님 영가천도 법문.(심수만경전~)

 

(1) 전강선사(약 10분)

 

 

(2) 송담스님(약 8분)

 

 

(1)------------------

 

생야시(生也是)  사야시(死也是)니라

두두비로(頭頭毘盧)요  물물화장(物物華藏)이니라

 

그거 그렇게만  놓으면  무슨 도리(道理)인지  수가 있어야지.

영가(靈駕)께서는 뭐라고 말씀을 하던지 내가 ()  가지고 하면은  알아듣지마는, 여기에 모이신 사부대중(四部大衆)들도  알아들어야   아니여.

 

『생야시(生也是)』요  말은, 우리가  몸뚱이 받아 가지고  사대(四大) 육신 몸뚱이를 가지고,

 ()우리 말하는 영가(靈駕), () 몸뚱이 속에서  사대색신(四大色身) 몸뚱이를 끌고 댕기는 그것을 ()이라 하니까.

몸뚱이 하나 어머니 뱃속에서 얻어가지고 나온 것을 ()이라 하니까, 『생() ()다』 그말이여.

 

‘생() ()’라는 것은 당장 이렇게  몸뚱이 얻어 나온 이것도 ().

 ()라는 것은  ()’ 인데, ‘ ()’자는 옳을 ()’ 인데, 옳다는 () 인데, ‘이것이다, 옳다  말은 『본래 생사가 없다』 그말이여. 알아듣겄죠?

 

 

『사야시(死也是)』다.  몸뚱이를 가지고 이렇게 갔다왔다 성숙시위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黙動靜)  송장 몸뚱이 가지고 이런다마는, 그래 가지고 있다  몸뚱이는 죽는다.

그놈 몸뚱이 내던질라면 그놈의 죽는 () 무섭지! 이 죽는 것도 ()니라. ‘ ()’, ‘옳을 ()’.

 

죽는 , 몸뚱이 고녀러 것이 이놈이 죽지,

 몸뚱이 끌고 댕기는 주인공은 거기 죽는 것도 없고, 죽는 때도 묻지 않고, 송장한테  상관도 없이, 그대로 독로(獨露)  () 자리는 그놈이 ()니라.  생사 없다’ 그말이여.

 

() (), () ()니라. 고렇게  말이여.

 

『두두(頭頭) 비로(毘盧). 머리 머리가 비로(毘盧)니라』  말은,  술어가 어려워서 알기 어렵지. 말해 주어서 몰라서야, 뭐여?

 

두두(頭頭) 비로(毘盧)라는 것은 모도(모두) 여러 가지  세상에 모도 물질꽃이던지, 냉기(나무)던지, 무슨  대갈빡(대가리)이던지,

 그저 세상에 두두(頭頭), 머리 머리일체  머리,  머리, 그저 까치, 까마구 대가리 머리, 배암 대가리 머리, 일체 두두 모두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체두(體頭)  () 그말이여.

 

 ()’자여. ‘ ()’.

 옳다.  생사 없는 도리다 그말이여. ‘ 진리니라’ 그말이여. 진리여, 그게 참다운 이치여. 

 

산이다, 물이다, 돌이다, 솔냉기(소나무), 밤냉기(밤나무), 감냉기(감나무),

고런 것이 우리 사람의 분별식(分別識)으로 망상 그걸 때려 붙여서 솔냉기라고 이름을 지어 붙였고, 밤냉기라고 이름을 지어 붙였고, 까마구라고 이름을 지어 붙였고, 뱀이라고 이름을 지어 붙였지,

 

 자체에 들어가서는 뱀이 뱀이라는 것도 없고, 솔냉기가 내가 솔냉기다라는 것도 없고,

솔냉기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푸른 상(相)도 없고, 솔냉기는  크다 적다, 일체 제상(諸相)이 거기 없느니라. 본래  생사(生死) 없는 진리다. 

 

진리(眞理) 영존(永存)이다.  진리라는  영존이여. ‘있다 없다’하는 법이 없어.

일체 물질도 불생불멸(不生不滅)인데, 일체 물질도 원소불변(元素不變)이여. 원소가 변한 법이 없고 항상 그대로여. 진리는 영존하는  자리여.

 

본래 생사가 없고 본래 죄업(罪業) 없건마는,  진리 하나를 깨닫지 못하고,  진리 하나를 내가 바로 얻지 못했기 때문에,

번뇌 망상 속에 휩싸여서  지었다하면은 죄상(罪相) 휩싸여서, 그만 () 가지고는 죄를 받느니라. 허니  진리영존(眞理永存) 자리로 돌아가자. 

 

() (), () (), 두두(頭頭) (), 일체가  ()  ()했나? 『돌()!   한번  놓고서는,

거그다가서  진리 하나, () 하나,  () 진리. 그놈이 진리영존(眞理永存) 자리다. 거가서  처백힐  같으면은 ! 웬일이여. 『돌()!

 

 

회수간산취류하(回首看山醉流霞)   의수침면일이사(倚樹沈眠日已斜)니라

나무~아미타불~

 

! 그런  모도(모두) 번뇌 망상 깨달지 못하면 인생이라는 것은 처처(處處) ()이니라.

깨닫지 못한 인생이라는 것은 그저 죄에 ()하고, 그저 잘못한 데 착()하고, 그저 일체처(一切處) ()하고, 두두(頭頭) 모도 애착(愛着) () 가지고는 그만  놈의 죄업만 지으니,

 

 진리영존(眞理永存) 자리를 보덜 못허고, 찾덜 못허고,  지경이 되아서,

()() 중생이여, ()하면 깨닫지 못하면 중생이기 때문에 그런 생사 때꼽재기가 모두 끼어 있어서 밤낮 그놈으로써 일체다. 

 

중생은 ()  고통으로써 그만 근본 () 되아 가지고는 진리는 꿈에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죄업이 항상 있어서, 본래 없는 죄업이 항상 있어서, 그놈의 죄끼리만 죄만 받으러 따라댕기는 것이 그것이 중생이다.

 

 이러냐? 돼지는 어째서 돼지 몸뚱이 받아 가지고  숭악한 찌께기나 먹고 살쪄 키워 가지고는 몸뚱이로 바칠 , 점점이 포(脯) 떠낼 ,  죽을 지경 당하는 것이  이러냐?

애착고(愛着苦)니라. ()해서 모도 중생업(衆生業) 애착(愛着) 되어 그러하느니라. 

 

! 한번 걷어 버리고,  진리영존(眞理永存) 자리  깨달라 () 번지면은 일체업(一切業) 무슨 구타부득(狗他不得)이다. 일체 죄업이 어디가 붙느냐?

그러니 모도 (), 진리영존(眞理永存) 자리 (), 확철대오 하는  근본 (), 근본 도리. 

 

마침 회수간산취류하(回首看山醉流霞). 머리를 돌이켜 산을 보니 흐르는 안개에 취한다.

 흐르는 안개,  산에 흐르는 안개 츠르르르 내려오는 대자연이로구나. 그것도 대자연이지. 거가 무엇이 붙어 있나? 

 

해가 넘어가는데 냉기(나무) 기대 졸음에 잔다(倚樹沈眠日已斜).

 졸음에 잠깐 들어 조는 거나 마찬가지지 무슨 생사냐 그것이. 죽고 사는 생사가 어디 붙어 있느냐? 그것이 모도 생사 없는 해탈묘용(解脫妙用) 아니냐!  ()

 

 

 

 

 

 

 (2) 송담스님(약 8분)

 

(2)------------------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허고   전처실능유(轉處實能幽)니라

나무~아미타불~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허면   무희역무우(無喜亦無憂)니라

나무~아미타불~

 

마음은 일만 경계를 따라서 굴러가.(心隨萬境轉)

전처실능유(轉處實能幽), 굴르는 곳마다 실로 능히 그윽해.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하면,  흐름을 따라서  성품을  버리면,

무희역무우(無喜亦無憂), 기뻐할 것도 없고 또한 슬퍼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근심할 것도 없는 것이다.

 

오늘 49재를 맞이한 그리고 오늘 천도재(薦度齋)에 동참한 여러 영가들의 유족과 친지들 그리고 만년위패에 모신 법보 영가들,  자리에 초청한 우주법계에 모든 유주무주(有主無主) 영가들,

본래 생사 없는 도리, 생사 없는 진리에 계합(契合) 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따라서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유족들께서도 영원히 아주 돌아가셨다 이렇게 생각하면 한없이 슬픔이 일어나겠지만, 돌아가신 것이 아니여.

다만 인연 따라서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 헌옷을 벗었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옷을 갈아입을려면 누구든지 입고 있던 헌옷은 벗어야 하는 것입니다. 헌옷을 벗었다고 해서 그것을 아까워  것이야 없고 섭섭해  것이 없어.

헌옷을 벗는 것은  옷을 입기 위해서 헌옷을 벗는 것이라, 그렇다면 무엇이 슬퍼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그리고 진리에 있어서는 생사(生死)가 없는 것이지만 인연 따라서 헌옷을 벗고  옷을 입듯이,

 몸뚱이를  세상에 받아  사람은 인연 따라서 다시   몸뚱이를 벗어버리고  몸을  받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라고 할까, 풍류라고 할까?

 

삼세제불(三世諸佛) 역시 일단 몸뚱이를 받아  이상에는 인연 따라서   몸을 벗고,   몸을 받어.

역대조사(歷代祖師) 역시 그렇고,  우주에 있는 모든 인간 모든 생명체도 또한 그러한 것입니다.

 

봄이 왔다가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뒤에 다시 겨울이 오고, 겨울이 지난 뒤에 다시 봄이 오듯이,

세계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 있고, 우리의 몸뚱이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고, 우리의 마음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 있어.

 

우리의 마음에  생각이 일어났다가, 잠시 머물러 있다가, 다른 생각으로 발전을 했다가,   생각이 없어지면  새로운 생각이 일어나고,

우리의 마음에 생주이멸(生住異滅) 영원이 계속되는  우리의 몸뚱이의 생로병사도 또한 영원히 끊일 날이 없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우리의 몸뚱이에 생로병사,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을 하고자 한다면, 우리의 마음에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각을 단속을 하는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참선법(參禪法)이여.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괴로울 때도 이뭣고?’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항상 이뭣고?’ 챙기고, ‘이뭣고?’로서 슬픔도 대처해 나가고, 괴로움도 그놈으로서 극복해 나간다면 결정코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것입니다.

 

그러면 생사 속에서 자유를 얻게 되어.

생로병사 속에서 영원한 열반(涅槃)의 즐거움을 터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디 부탁하노니, 유족들은 돌아가신 이의 슬픔을 발판으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결정코 금생에 깨닫도록 그것을 목적으로 해서 열심히 정진을 하신다면,

영가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설한 불보살(佛菩薩) 법문(法門)을 몸으로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  것입니다.  ()

 

 

 

 

 

------------------(1)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 ()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사대색신(四大色身) ; 사람의 몸을 이르는 . 사람의 몸이 , , , 바람(,,,) () 원소()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중국에서 () • () • () • () •  () 오행(五行) 말하듯 인도에서는 옛날부터 () • () • () • 바람() 사대(四大)로써 자연계(自然界) 온갖 것에 대한 구성요소(構成要素) 말하였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비로(毘盧) ;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약칭. 비로자나불은 진리  자체인 법신(法身) 의인화하여 형상화한 부처님.

비로자나(毘盧遮那) vairocana 음사(音寫), 해석하면 변일체처(遍一切處), 광명변조(光明遍照),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 모든 곳에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뜻.

진리는 어떤 특정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 속에 구현되어 있는 것이므로, 진리가  부처라고 하는 비로자나불의 관점에 서면 일체 모든 것이 부처라고   있다.

따라서 두두(頭頭) 비로(毘盧) 말은 삼라만상 일체가  부처 아님이 없고 진리 아님이 없다는 말이다.

*삼라만상(森羅萬象)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분별식(分別識) ; 팔식(八識) 가운데 6 의식(意識) 말한다.  의식은 차별하여 사유하고 판단하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죄업(罪業) ;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위() () 생각(). 괴로움의 과보를 초래하는 악한 행위.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돌(咄) ; ①탄식하는 소리. 놀람을 나타내는 소리. 쯧쯧! 어허! ②꾸짖는 소리. 호통치는 소리. 떽! 어흠!

*(게송) ‘회수간산취류하(回首看山醉流霞) 의수침면일이사(倚樹沈眠日已斜)’ ; ‘머리를 돌이켜 산을 보니 흐르는 안개에 취한다. 해가 넘어가는데 나무에 기대 졸음에 잔다’

[참고] 『용성선사어록(龍城禪師語錄)』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 문인(門人) 동산 혜일(東山慧日) 찬집(撰集) | 금천今天 옮김) 제1장 선지식 참문(參問知識章).

還歸海印寺할새 頌曰

伽倻名價高靑丘, 明心道師幾往來. 矗矗奇巖疊鱗高, 密密柏樹相連靑. 無限白雲滿洞鎻, 洪鐘轟轟碧空衝. 回首看山醉流霞, 倚樹沉眠日已斜.

 

해인사로 다시 돌아오셔서,

“가야산의 명성과 평판이 청구靑丘에 높으니 마음 밝힌 도사들이 얼마나 왕래하였던가!

우뚝 솟은 기암은 비늘처럼 포개어져 있고 빽빽한 잣나무는 서로 이어져 푸르구나.

무한한 흰 구름은 골짜기마다 가득하고 크게 울리는 범종 소리는 푸른 하늘에 사무친다.

고개 돌려 산을 보다가 저녁노을에 취해서 나무에 기대어 깊이 졸다 보니 해는 벌써 기울었네!”

라고 게송을 읊으셨다.

 

*(게송) ‘回首看山醉流霞 倚樹沈眠日已斜’ ; 『전당시(全唐詩)』 540권 이상은(李商隱)의 시 ‘화하취(花下醉)’ 참고. ‘尋芳不覺醉流霞 倚樹沈眠日已斜 客散酒醒深夜後 更持紅燭賞殘花’

*때꼽재기 ; 때가 여러 겹으로 엉겨붙은 조각이나 부스러기.

*() : ①중생이 번뇌에 의해 업을 만들어  혹업(惑業, 미혹에 바탕을  행위. 번뇌) 이끌려 사는 . 이를 6종류로 나누어 육취(六趣)라고 한다. (道, 途)라고도 한다. 특히 악취(惡趣), 악도(惡道) 일컬음. ②내세로 향하는 .

*애착(愛着) ; 사랑하여 집착함. 애집(愛執).

*() ; 깨달은 바를 다시 한번 점검하여 확인하는 .

*구타부득(狗他不得) ; 그를 구속하지 못한다.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①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이 자유 자재한 .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②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열반의 상태. ③깨달음. ④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선정(禪定) 상태. 평온한 경지.

*묘용(妙用) ; 신묘한 진리의 작용. 뛰어난 작용.

 

 

 

 

 

------------------(2)

 

*(게송) 심수만경전~’ ; [직지(直指)] (白雲和尙) 마나라(摩拏羅) 존자 게송 참고.

*천도재(薦度齋) ;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 따라 다음 생을 받게 되는데,

유족들이 불보살(佛菩薩) 모신 법당(法堂)에서 돌아가신 영가를 청해 모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하고 또한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門)’ 들려줌으로써,

영가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혜의 눈을 밝혀 삶의 무상을 깨달아 이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보다 좋은 곳으로  나아가 육도윤회를 벗어나 극락왕생, 해탈의 바른 길로  건너가도록 하는 불교의식.

*유주무주(有主無主) ; ①주인(영가를 인도해 줄만한 인연있는 사람) 있거나 없는. ②제주(祭主) 있거나 없는.

*계합(契合 맺을 계, 합할 합) ;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들어맞음.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 하는데,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 [불교] 삶과 죽음,  생사(生死)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참선법(參禪法)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이뭣고(是甚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 1700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우리의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안됩니다.

화두(공안)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7822) [ ‘참선법 A’ 에서]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 음사. 멸(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

·안온(安穩원적(圓寂안락(安樂) 등으로 번역.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버리듯이, 타오르는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 등의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사제(四諦)에서 (),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 소멸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解脫)한 깨달음의 경지.

②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없이 무엇이나  열반이며 어느 때나  열반이다. 이것이  열반인 것이다.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 () 불타(佛陀) 준말. 각자(覺者)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Posted by 닥공닥정

 

 

§(세등24) 화두드는 법 / 최상승법 /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것이 생사(生死) / 불보살, 선지식 아닌 사람이 없다 / 중생심이 바로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체(體).

대혜(大慧) 『서장(書狀)』에 보면 공부하다가 어려운 역경계가 나타나는 것이 마장이 붙어서 그런 게 아니라 한고비 올라가기 위한 아주 중요한 경계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생사입니다. 그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생사의 연속이 바로 일평생(一平生)이 되고, 그것이 바로 육도윤회(六途輪廻)가 되고, 그것이 무량겁(無量劫)이 되는 것입니다.

 

이 끊임없이 거듭되는 이 생사의 물결 속에서 바로 생사해탈하는 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그 생각이 슬픈 생각이건, 기쁜 생각이건, 또는 노여운 생각이건, 과거의 생각이건,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일어나는 그 생각을 버릴려고 없애려고 하지 말고, 그 생각에서 ‘이뭣고?’하는 것입니다.

 

발심한 사람, 참으로 진발심(眞發心)을 한 사람이라야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도 불보살을 친견할 수가 있고, 선지식을 바로 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망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그 자리에서 ‘이뭣고?’하면 그것이 공부인데, 망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공부가 안된다고 왜 그러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냐. ‘안된다’고 생각함으로써 자기로 하여금 ‘공부 안되는 사람’으로 스스로 낙인(烙印)을 찍는 것이 된다.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

 

떠오르는 그 많은 중생심(衆生心), 번뇌 망상심, 생멸심 그것을 꼭 나쁘다고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성내는 놈, 슬퍼하는 놈, 기뻐하는 놈, 원망하는 놈, 아퍼하는 놈, 괴로워하고 외로워하는 놈, 이것이 전부 다 진여불성으로부터서 일어나는 한 거동이요 모습일진대, 그 거동 그 모습을 버릴려고 할 것이 없어.
바로 그놈을 계기로 해서 ‘이뭣고?’ 이렇게 들어가면 그것이 바로 자기 진여불성을 찾는 가장 가깝고 빠르고 묘하고 간단한 길이다.  중생의 번뇌 망상심 그놈을 버리고 어떠한 진여불성을 찾아서 깨달으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무량겁을 두고 공부를 한다해도 그 사람은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화두 하나만 제대로 들을 줄 알면 그 사람은 갈 곳이 없습니다. 결정코 대도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24)—기미년 동안거 결제 법문(79.10.17) (세등24)

 

(1) 약 18분.  (2) 약 21분.

 

 

 


(1)------------------

오늘 기미년 삼동(三冬) 결제일을 맞이해서 조실 스님의 공안법(公案法)—최상승법(最上乘法)에 있어서 공안법에 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공안법은 이론으로서 따져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공안(公案)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천 칠백 공안이 있습니다.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 칠백 공안인데, 문헌에 오르지 아니한 것을 말하자면 우주법계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전체가 공안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 한 공안, 한 화두(話頭)를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받아 가지고, 그 한 공안에만 철저하게 실참실수(實參實修) 해 가지고, 한 공안을 타파(打破)함으로써 천 칠백 공안, 무량무수의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그러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최상승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입니다.

뒤에 있는 문을 좀 잠깐 열어서 차운 공기가 들어오게 좀 하십시오. 다들 열어 주세요. 확 열어 주세요.


오늘부터서 석 달 동안 결제(結制)에 들어갑니다.
결제 동안은 부모의 부고(訃告)가 오더라도 그 부고장(訃告狀)을 본인에게 보여주지 아니하고 사무실에 보관해 놓았다가 내년 정월 15일에 해제한 뒤에사 그 부고를 본인에게 전할 만큼, 결제 동안에는 그렇게 규칙이 엄격하게 출입을 금하고 목숨을 바쳐서 정진을 하는 기간인 것입니다.

일단 방부(房付)를 들이면은 그래 가지고 방(榜)을 딱 짜고 정진에 들어가면 세상의 모든 인연을 다 끊고 인사로 왔다갔다하는 것을 다 끊고, 오직 생사대사(生死大事) 하나만을 위해서 대중의 규칙을 자발적으로 지키면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짜면 짠 대로 먹고, 싱거우면 싱거운 대로 먹고, 맛이 있으면 있는 대로 먹고, 없으면 없는 대로 먹고, 오직 의식주 문제는 인연에다 맽겨.

그리고서 밤 9시부터서 그 이튿날 새벽 3시까지 여섯 시간을 제외하고는 일체 잠을 스스로 허락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9시부터 3시까지 정식으로 잘 수 있는 시간이지마는 그동안에 보면 한 시간이라도 덜 자고 공부하고, 2시간이라도 덜 자고 공부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자는 체하고 누웠다가 가만히 일어나서 10시까지 11시까지 다시 일어나서 혼자 공부하는 분도 있고,

새벽 3시에 일어나는 것이 원칙이지만 2시나, 1시쯤 미리 일어나서 옆의 사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미리 일어나서 공부하는 이도 있고, 이렇게 해서 ‘어쨌든지 금생에 결정코 대도를 성취하리라’ 이러한 결심을 가지고 정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잠만 그럴 것이 아니라 선원 밖으로 외출하는 것도 ‘시내의 병원에 간다, 무슨 일이 있어서 나간다’ 외출하는 것도, 일주문 밖에 나가는 것도 철저히 옛날에 다 그것을 단속을 했던 것입니다.
시내에 어떠한 신심 있는 단월(檀越)로부터서 공양(供養) 청장(請狀)을 받어도 결제 중에는 가지를 아니 하고,

또 확철대오(廓徹大悟)할 때까지는 대중적으로 특별히 허용될 때를 제외하고는 일체 경전이나 어록(語錄)을 읽고 보고 하는 것도 허락이 되지를 아니했습니다.

9시부터 3시까지 삼경(三更) 외에는 잠을 허락하지 아니하고, 인사로 왕래하는 일체 출입을 금하고, 또 경전 같은 것을 읽고 하는 그런 것도 허락하지 아니하고, 특별한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말이 없다시피,
이렇게 철저하게 공부를 해서 3년을 그렇게 해서 만약에 확철대오를 못하면 내가 거짓말한 죄로 혀를 빼서 쟁기로 가는 발설여경지옥(拔舌犂耕地獄)에 내가 들어가겠다. 이렇게 몽산(蒙山) 도인께서 맹서를 하셨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한다면 아무리 근기(根機)가 하열(下劣)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3년을 하면 백발백중 공안을 타파해 가지고 견성(見性)을 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보증을 하시는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 말씀 가운데에도 화두를 어떻게 들어야 하느냐?
참선이라 하는 것은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화두를 어떻게 드느냐? 오직 그 한 점에 도업(道業)을 성취하고 하지 못하고 한 관건(關鍵)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화두는 이론으로써 교리적으로 따져서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론으로 따져서는 아무리 따져봤자 결론이 없는 것입니다.

설사 자기 나름대로 어떤 결론이 얻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깨달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 분별심으로 얻어진 것이라 아무리 묘한 답이 얻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더욱 중생의 번뇌(煩惱) 망상(妄想)만 치성(熾盛)하게 만든 결과일 뿐, 그것은 깨달음이 아닌 것입니다.

이론으로 따져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따져서 알아맞추는 그러한 참선은 활구참선(活句參禪)이 아닙니다. 그것은 죽은 참선이요, 의리선(義理禪)이요, 그것은 삿된 참선인 것입니다.
차라리 그러한 참선을 할 바에는 관세음보살 또는 아미타불을 열심히 염송(念誦)하는 것만도 못한 것입니다.


‘이 무엇고?’ 아까 조실 스님께서는 판치생모(板齒生毛),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판치생모 화두를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를 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가운데 계신 분 가운데에는 조실 스님으로부터 판치생모 화두를 받으신 분이 계실 줄 생각합니다마는 그분은 천하없는 누가 뭐라 해도 끝까지 그 판치생모 화두를 가지고 공부를 하셔야 할 것이고,
또 시삼마(是甚麽) ‘이 무엇고?’ 시삼마 화두를 하신 분은 시삼마 화두,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를 하신 분은 정전백수자, 조주의 무(無)자 화두를 하신 분은 조주 무자, 어느 화두를 하던 간에 상관이 없습니다.

무자 화두가 더 좋고, 판치생모가 더 좋고, 시삼마가 더 좋고, 그 공안 자체에 있어서 더 좋고 나쁘고 한 것은 없어.

다못 문제는 자기가 목숨을 바칠 수 있을 만큼 철저히 믿어지는 선지식, 바로 깨달라서 선지식의 인가(印可)를 받은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그 화두를 받기만 했다면 천칠백 화두 가운데의 어느 화두를 타 가지고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어느 화두건 처음부터 한결같이 잘 들리는 화두는 없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잘 들린 듯하다가 얼마 안가서 그렇게 잘 들리지를 아니하고 애를 먹고 그러다가, 그 고비를 잘 넘기면서 공부를 지어가면 또 한결 수월하게 되다가, 그렇게 수월하게 계속 잘되어 갔으면 문제가 없겠지만,
얼마동안 가다가 뚝 변해 가지고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고, 몸이 뒤틀리고 시간이 지루하고 도저히 앉어서 참을 수가 없고, 공부가 더 이상 공부를 지속할 수 없을 만큼 그러한 역경계(逆境界)가 나타나는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부에 마장(魔障)이 붙은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분이 있지만, 대혜(大慧) 『서장(書狀)』에 보면 이러한 어려운 경계가 마장이 붙어서 그런 게 아니라 한고비 올라가기 위한 아주 중요한 경계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다가 그렇게 가슴이 답답하고, 몸이 뒤틀리고, 머리가 멍하고, 시간이 지루하고, 앉았을 수도 없고 섰을 수도 없고, 화두를 놓을 수도 없고 들 수도 없고, 이렇게 답답하고 어려운 경계에 도달하거든 조금도 걱정을 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자포자기를 하지 말고, 이것이야말로 앞으로 내가 한 걸음 공부가 나아가기 위한 그러한 중대한 지점에 도달했다고 하는 것을 명심을 하고,

그런 때에는 가만히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가지고 20미터나 30미터, 일직선으로 코스를 딱 정해놓고서 왔다갔다 한 5분 내지 10분을 하면 저절로 머리가 시원해지고 가슴이 후련해지면서 화두가 성성(惺惺)하게 들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또 자리에 가만히 와서 앉아가지고 허리를 쭈욱 펴고서 성성하게 그리고 적적(寂寂)하게 화두를 단속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잘 그 마음을 써 가지고 지혜롭게 그 고비를 넘기면 그 다음에는 한결 공부가 수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라 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것이 없고, 오직 한 생각—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한—그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 오직 그 한 가지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생사대사, 생사대사, 생사해탈(生死解脫), 경전에나 조사(祖師) 법문에 생사해탈 문제가 대단히 거론됩니다마는 대관절 그 생사(生死)라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한 생각 일어나는 것’ 그것이 생(生)이요, ‘일어났던 그 한 생각이 없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죽음인 것입니다. 생사. 생멸(生滅).

그래서 우리는 ‘부모한테 몸뚱이를 받아났을 때 그것이 생(生)이고, 한평생 살다 죽은 것이 그것이 사(死)’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마는 이 몸뚱이를 표준 할 때는 그렇지만,

우리는 이 몸뚱이를 표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나’ ‘아무개야!’하고 부르면 ‘예’하고 대답하는 그놈, 지금 입을 벌리고 이렇게 말하고 있는 그놈, 이렇게 하는 말을 들을 줄 아는 그놈, 그것에다 기준을 두고 생각해야 합니다.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하루 동안에도 수없이 많은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데 그것이 바로 생사인 것입니다.


고개를 들고 산승(山僧)의 얼굴을 보십시오. 고개를 숙이고 경건하게 듣는 것도 좋지만, 고개를 숙이고 듣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르르르 잠이 와서, 졸면서 잠을 자면 이것 재미가 없습니다.
눈을 딱 뜨고, 말을 하고 있는 저의 얼굴을 보면서 들어야 훨씬 더 잘 들리는 것입니다. 보기가 싫게 생겼지만 이 시간에는 불가불 좀 봐 주시길 바라겠습니다.(5분17초~23분16초)




(2)------------------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생사입니다.
그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생사의 연속이 바로 일평생(一平生)이 되고, 그것이 바로 육도윤회(六途輪廻)가 되고, 그것이 무량겁(無量劫)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계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고, 무엇이든지 어떠한 물건이 이루어지면 한동안 머물러 있다가 그것이 파괴가 되어 가지고 나중에는 없어집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해도 그렇고, 달도 그렇고, 별도 그렇고, 이 지구도 그렇고,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지 것도 영원불멸한 것은 없습니다. 다 성주괴공(成住壞空)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습니다. 어머니한테 태어났다가 한 살 두 살 먹다 보면은 늙고, 늙으면 죽습니다. 죽으면 10분이 못 가서 10분 뒤부터서는 오장육부가 버글버글버글 썩기 시작해 가지고 결국은 화장(火葬)을 하거나, 땅에다 묻는다 하더라도 한줌 흙이 되고 없어져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 몸뚱이는 생로병사가 있고, 우리의 마음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습니다.
한 생각이 일어났다가, 잠시 그 생각이 머물러 있다가, 다른 생각으로 변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그 생각이 꺼져버립니다. 꺼지자마자 또 새로운 딴 생각이 일어났다가, 잠시 머물렀다가, 또 다른 생각으로 발전해 가지고 결국은 또 그 생각이 없어집니다. 이렇게 하기를 무량겁을 해 내려왔습니다.

이 몸뚱이 태어나 가지고 오늘날까지도 그 우리의 생각에 생주이멸, 생주이멸, 생주이멸, 생주이멸이 거듭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생사요, 그것이 앞으로 영겁을 두고 육도윤회 할 근원을 장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염기염멸(念起念滅), 바로 그 생사 속에서 생사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은 길이 있습니다.

생사 속에 나를 맡겨버리면 결국은 나도 생사의 물결 속에 무량겁을 두고 윤회하는 떠돌이 신세를 면치를 못할 것이고, 이 끊임없이 거듭되는 이 생사의 물결 속에서 바로 생사해탈하는 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그 생각이 슬픈 생각이건, 기쁜 생각이건, 또는 어떠한 노여운 생각이건, 과거의 생각이건,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일어나는 그 생각을 버릴려고 하지 말고, 없앨려고 하지 말고,
한 생각이 일어났다—여기 앉아서 지금 딸 생각이 났다. 「딸이 지금 잘 있나?」 「애기가 잘 컸나?」 그런 생각이 났다 할 때에—「아! 내가 쓸 데 없는 생각을 했구나」 그런 생각도 하지 말고, 그 생각이 났을 때 ‘이뭣고?’

무엇이 금방 그 딸 생각을 했나? 이거여. 이 딸 생각하는 이놈이 뭣고?

과거에 어떤 친구로부터 배반을 당해서 불현듯 그 생각이 나 가지고 속에서 화가 탁! 치밀어 오를 때, 바로 그 생각을 버리지 말고 그 생각에서 ‘이뭣고?’

이것이 바로 생사 속에서 생사를 해탈하는 아주 묘한 그리고 간단한 방법인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를 단속하는 사람은 망상이 일어난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망상(妄想) 한 생각 일어날 때마다 바로 화두를 들기 때문에 그 망상은 바로 그것이 선지식의 한 법문이요, 경책(警策)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선지식 또는 부처님 또는 관세음보살 하면 32상(三十二相)과 80종호(八十種好)를 갖추어서 아주 우리가 법당에 모셔진, 탱화(幀畵)에 그려진 그러한 모습으로 계실 줄 생각하지만 마냥 그렇지를 않습니다.

불보살(佛菩薩)은 천백억 화신(千百億化身)을 나투는 것입니다.

때로는 비구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여자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장자(長者)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거지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강도 도둑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문둥이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철없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시어머니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며느리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남편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아내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친구로 나타나기도 하고, 친구로 나타나서 신의를 지키는 그러한 친구로만 나투는 게 아니라 배반 배신하는 그런 친구로도 나타나고,
아내로 나타나면 아주 현모양처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아주 고약한 악처(惡妻)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수도 있습니다. 좋은 남편으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외도를 일삼는 천하의 색마(色魔)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어떻게 내 마음에 꼭 맞는 그러한 선지식으로만 나타난다면 그 참 그런 좋을 수가 없겠지마는, 불보살은 중생을 하루라도 더 빨리 생사해탈을 하게 하기 위해서 너무나도 자비가 크신 까닭으로 해서 천백억 화신으로 역경계(逆境界) 순경계(順境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발심한 사람, 참으로 진발심(眞發心)을 한 사람이라야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도 불보살을 친견할 수가 있고, 선지식을 바로 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발심을 못한 사람은 선지식을 노상 코앞에 모시고 있으면서, 한 자리에 불보살을 모시고 살면서도 선지식을 알아보지를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식이 누군가를 모르는 것입니다.

다시 더 분명히 말하자면 『불보살 아닌 사람이 없고, 불보살 아닌 것이 없고, 선지식 아닌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기가 발심을 했느냐, 못했느냐? 진발심을 했느냐, 못했느냐? 거기에 달려있는 것이지, 행여나 선지식이 없을까 걱정할 것 없고, 불보살을 만나지 못할까 근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부터서라도 댁에 가시거든 남편이 나한테 잘해 주건 못해 주건, 며느리가 자기한테 효도를 하건 말건, 시어머니가 자기에게 잘해 주시건 안해 주시건, ‘바로 저분이 선지식이다. 저분이 바로 불보살 화현(化現)으로 나타난 분이다’ 이리 생각하고,

오히려 더 시어머니가 자기한테 잘못할수록에 발심을 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한테 잘못할수록에 더욱 발심을 하고, 사돈이 자기한테 섭섭하게 할수록 자기는 더 발심을 해서,
이렇게 마음을 쓰고, 이렇게 말을 하고, 이렇게 행동에 옮긴다면 거기에서 자기의 과거에 어떠한 두터운 업장이라도 거기에서 다 소멸이 될 것이고, 업장소멸(業障消滅)하면 소원성취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소원을 성취하지 못한 것은 업장이 가로막기 때문에 성취를 못하는 것이니까, 업장만 소멸한다고 하면은 소원성취는 바로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거기에서 성취하는 것입니다.

3일 기도를 한다든지 7일 기도를 한다든지 또는 백일기도(百日祈禱)나 천일기도(千日祈禱), 만일기도(萬日祈禱) 이렇게 합니다마는, 어째서 그렇게 사람에 따라서는 3일 기도를 하고도 소원을 성취를 하고, 백일기도를 하고도 성취를 하고, 만일기도를 하고도 성취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째서 빨리하는 사람도 있고, 더디하는 사람도 있냐?’하면은 업장이 얼마만큼 소멸이 되었냐 거기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3일 기도만 하고도 마음이 맑아져서 불보살의 마음과 같이만 된다면 3일에도 소원을 성취해.

한번 가서 간절(懇切)한 마음으로 향 하나를 올리고 절을 하고, 청수(淸水) 한 그릇을 올리고 간절히 절하고 와서 그리고서 소원을 성취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 간절히 향 하나 올리고, 물 한 그릇 올리고 소원을 할 때 그 마음, 부처님 마음과 하나가 된다면 절 한 자리 하는 사이에도 소원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우리의 마음이 맑고 깨끗해지는 것은 꼭 오랜 시간만이 걸려야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한 생각, 한 생각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어째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어째서 조주는 무(無)라고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생각생각마다 들고 또 들고, 앉거나 서거나 누웠거나 걸어다니거나 차를 탈 때나 행주좌와 어묵동정을 가리지 말고,
속이 상할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일을 할 때나, 누구와 이야기를 하는 그 사이도, 밥을 먹을 때나, 똥을 눌 때나, 소지를 하거나, 밥을 짓거나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할 때라고 ‘이뭣고?’

‘하! 공부가 안된다’고, 공부가 안된다고 하는 생각이 그것이 자기로 하여금 공부가 안되게 하는 것이여.

“어째서 안되냐? 무엇을 안된다고 하느냐?”
“망상이 일어나서 안됩니다”

망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그 자리에서 ‘이뭣고?’하면 그것이 공부인데, 망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공부가 안된다고 왜 그러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냐. ‘안된다’고 생각함으로써 자기로 하여금 ‘공부 안되는 사람’으로 스스로 낙인(烙印)을 찍는 것이 된다.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

화두를 타 가지고 바로 그때부터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가지고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공부가 된다면 어찌 일주일을 넘을 필요가 있느냐.

무량겁(無量劫)으로 지어온 자기의 업(業)이 산과 같고, 바다와 같기 때문에 번뇌와 망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고, 체질화가 되어 가지고 가만히 있어도 별별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누구를 원망할 것이냐.
떠오르는 그 많은 중생심(衆生心), 번뇌 망상심, 생멸심 그것을 꼭 나쁘다고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진여불성은 모양도 없고, 냄새도 없고, 빛깔도 없고, 그래서 무어라 표현할 수도 없고, 눈으로 볼라야 볼 수도 없고, 코로 냄새 맡을 수도 없고, 손으로 만져볼 수도 없지마는, 그놈이 너무나도 신령스럽고 신기하고 묘한 것이라, 때와 인연 따라서 천만 가지 모습으로 천만 가지 빛깔로 그놈이 활동을 하게 됩니다.

때로는 불보살과 같이 착한 마음을 내기도 하고, 때로는 살인강도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천하의 대학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천하의 역적이 되기도 합니다. 그 얼마나 미묘하고 신령스러운 것이라 그렇게 천만 가지 모습으로 나타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성내는 놈, 슬퍼하는 놈, 기뻐하는 놈, 원망하는 놈, 아퍼하는 놈, 괴로워하고 외로워하는 놈, 이것이 전부 다 진여불성으로부터서 일어나는 한 거동이요 모습일진대, 그 거동 그 모습을 버릴려고 할 것이 없어.

바로 그놈을 계기로 해서 ‘이뭣고?’ 이렇게 들어가면 그것이 바로 자기 진여불성을 찾는 가장 가깝고 빠르고 묘하고 간단한 길이다.
중생의 번뇌 망상심 그놈을 버리고 어떠한 진여불성을 찾아서 깨달으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무량겁을 두고 공부를 한다해도 그 사람은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중생심은 그것이 바로 대승법,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체(體)다. 그 중생심, 번뇌 망상심 그것 때문에 육도(六途)를 윤회한다고 아까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그것 때문에 우리는 성불(成佛)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다 그말이여.

그러니 그 번뇌 망상이 우리에게는 원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큰 은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최상승 활구참선, 이 정법을 믿고 공부한 사람에게는 그 번뇌 망상이 바로 불보살의 손이요, 불보살이 보내주신 반야용선(般若龍船)이지만,
정법을 믿지 않고 활구참선법을 믿지 않는 사람은 중생심, 번뇌 망상심 이것이 큰 원수요, 나를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끌고 가는 원수요 도적놈이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이 육적(六賊)이라, 여섯 도적놈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거기에다 두고 하는 말이다.

한 생각 정법을 믿으면 여섯 도적놈이 바로 6대보살(六大菩薩)이여. 나를 극락세계로 불국세계로 인도하기 위해서 반야용선을 가지고 나를 영접하러 온 보살화신이고,
정법을 믿지 않는 사람은 여섯 도적놈이 되어 가지고 눈으로 귀로 코로 귀로 입으로 몸으로 생각으로 여섯 문을 통해서 기회만 있으면 지옥으로 끌고갈려고 엿보고 있다 그말이여.

이러한 최상승법, 활구참선법. 인간으로 태어나기도 어렵지만 인간으로 태어나가지고 어떻게 해서 이러한 묘한 최상승법을 우리는 만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 나도 희유하고 감사하고 다행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다행한 마음으로 한 생각 한 생각을 ‘이뭣고?’로 돌려서 슬픔도 그놈으로 이겨내고, 노여움도 이 ‘이뭣고?’로 이겨내고, 괴로움도 이 ‘이뭣고?’로 이겨내고, 이렇게 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물어볼 것도 없이 결정코 금생에 자아를 자각, 대도를 성취해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받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몽산 큰스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렇게 간절히 3년을 해봐라. 결정코 대도를 성취할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해서 성취를 못하면 내가 네 대신 무간지옥에 가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결제일이기 때문에 조실 스님의 법문도 이 화두, 공안에 대한 법문을 추려서 들었고, 또 산승도 이 공안에 대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하는 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두 하나만 제대로 들을 줄 알면 그 사람은 갈 곳이 없습니다. 결정코 대도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23분17초~44분2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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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

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실참실수(實參實修) ; 실답게 참구(參究)하고 실답게 수행하는 것. 공안(화두)을 이론으로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아닌 선지식의 지도 아래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을 말한다.
*화두(話頭)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것.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 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 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부고(訃告 부고 고,알릴 고) ; 어떤 사람의 죽음을 연고자에게 알림. 또는 그러한 글.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방(榜) ; 용상방(龍象榜)을 말함.
[참고] 용상방(龍象榜) ; 절에서 하안거 동안거 결제 때나, 큰일을 치를 때에 각자 할 일을 정해 붙이는 명단. 행사가 끝날 때까지 모든 사람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붙여서 각자가 맡은 일에 충실하도록 한 것이다.
*생사대사(生死大事) ; ①삶과 죽음, 생사(生死)의 큰 일. ②수행을 하여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는 큰 일.
*단월(檀越) ; 시주(施主). dana-pati 의 음역.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공양(供養) 청장(請狀) ; 공양 청첩장. 재가신도가 스님들께 공양(식사)을 드리기 위하여 초청하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어록(語錄) ; 조사어록(祖師語錄). 선종(禪宗)에서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를 전하는 조사(禪師)나 귀의나 존경을 받을 만한 선승(禪僧)의 가르침, 문답, 언행을 모은 글, 또는 그 책.
*발설여경지옥(拔舌犂耕地獄) ; 또는 발설이경지옥(拔舌犂耕地獄). 犂(밭 갈 리, 밭 갈 려).
사람의 혀를 길게 빼 늘여 놓고, 그 혓바닥을 소 쟁기로 쟁기질을 하는 지옥.
*몽산(蒙山) ;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하열(下劣 아래 하/못할·낮을 렬) ; (행동이나 생각이) 남보다 뒤떨어짐. 수준이 낮음.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거두절미(去頭截尾) ; 말이나 사건 등의 부차적인 설명은 빼어 버리고 사실의 요점(要點)만 말함.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관건(關鍵 빗장 관,열쇠 건) ; 어떤 일의 성패나 추이를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나 요인.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함[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이러한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惑-業-苦 三道]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치성(熾盛 성할 치,성할 성) ; 불길이 일어나는 것과 같이 성하게 일어남.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
*염송(念誦 생각 념,욀 송) ; 마음속으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불경(佛經)이나 진언(眞言) 등을 외움.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말. [참고]헤살;남의 일이 잘 안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대혜(大慧) 스님 ;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대혜서(大慧書)·『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62()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 역설하였다.

*한고비 ; 어떤 일의 진행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거나 어려운 단계나 국면.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조사(祖師) : ①1종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종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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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다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 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
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경책(警策 깨우칠 경,채찍 책) ; 타이르고 채찍질하여 깨우치게 하는 것.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과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먹음은 것,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것 등등.
*탱화(幀畵) ; 부처님, 보살, 성현들을 그려서 벽에 거는 그림. '탱(幀)'이라고도 한다.
*화신(化身) ; 화신불(nirmaka-kaya 化身佛). 부처의 삼신(三身:法身•報身•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응화신(應化身)·변화신(變化身)•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장자(長者) ; ①덕망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아 세상일에 익숙한 어른. ②큰 부자를 점잖게 이르는 말.
*악처(惡妻) ; 성품이나 행실이 바르지 못하고 사나운 아내.
*색마(色魔) ; 성행위나 성관계 따위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사람을 마귀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障礙)가 사라져 없어짐.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낙인(烙印 지질 락,도장 인) ; ①다시 씻기 어려운 부끄럽고 욕된 평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불에 달구어 찍는 쇠붙이로 만든 도장.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중생심(衆生心) ; 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가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 진여(眞如)를 가르켜 말함. 진여의 실체.
진여가 광대하여 모든 것을 포섭한 것을 대(大)라 하고, 일미 평등(一味平等)하여 차별의 모양을 여읜 것을 총상(總相), 수행하는 이의 모범이 되는 것을 법(法), 관하는 지혜가 드나드는 것을 문(門)이라 한다.
*반야용선(般若龍船) ; 생사의 고해(苦海)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반야(船若, 지혜)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彼岸)의 극락정토로 중생들을 건네 주는 반야바라밀의 배[船]를 말한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말. ②법신(法身)은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뜻.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