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17.04.18 §(086) (게송)작야삼경월만루~ / 바른 선지식의 지도 / 최초의 화두, 가장 기본적인 화두가 ‘이뭣고?’ / 화두를 관조(觀照)하라 / 이 공부는 모든 것을 다 바쳐서라도 해야만 할 그러한 길.
  2. 2016.05.29 §(574) 아자방 부목의 소금 장수, 머슴살이 / 실참실오(實參實悟) / 고인친증처(古人親證處) /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야 한다.
  3. 2015.09.20 §(245) 깊은 우물 속에 눈 퍼다 부어 메우듯이 정진해야 / ‘이 공부는 기어코 되고야만 된다’는 확신 / (게송)남북동서무정착~ / (게송)취면성와불귀가~.
  4. 2015.07.08 §(232) (게송)화소산전설천기~ / 결제(結制)의 뜻 / 파정(把定), 방하(放下) / 공부가 안될 때가 한 계단 높이 올라가는 중요한 때이니 지혜롭게 잘 대처해야.
  5. 2015.06.21 §(세등39) (게송)황앵상수일지화~ / 무상설법(無上說法) / 일초직입여래지 / 선용기심(善用其心) / 화두 의단타파 확철대오하는 이 도리를 부처님을 모시고 증명합니다.
  6. 2015.04.27 §(세등24) 화두드는 법 / 최상승법 /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것이 생사(生死) / 불보살, 선지식 아닌 사람이 없다 / 중생심이 바로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체(體).
  7. 2014.08.12 §(178) (게송)몽리명명유육추~ / 환몽(幻夢) /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은 교외별전(敎外別傳) / 불방일(不放逸)-최상승계(最上乘戒) / (게송)진로형탈사비상~.
  8. 2014.01.06 •§•(567) 의단독로(疑團獨露) • 타성일편(打成一片) • 공적영지(空寂靈知) 똑같은 거여.
이뭣고 화두2017. 4. 18. 09:54

<핸드폰에서, 아래 법문은 위 유튜브에서 24분 29초부터 시작됩니다>

 

 

§(086) (게송)작야삼경월만루~ / 바른 선지식의 지도 / 최초의 화두, 가장 기본적인 화두가 이뭣고?’ / 화두를 관조(觀照)하라 /  공부는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해야만  그러한 .

 

분명 숨은 코로 들어갔다 코로 나오겠지마는, 우리 의식으로는 코로 들어마신다 내쉰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궁뎅이 뒤에서 쑤욱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에 머물렀다가 다시 나갈 때에는  궁뎅이 뒤로 쑤욱 나가는 그러한 기분으로 숨을 쉬어라.

 

몸도 건강해지고 정신도 건전해져서 참선하는 데에는 필요 불가결한 것이  단전호흡법입니다.

 

천칠백 화두 가운데 가장 먼저 나온 화두, 가장 기본적인 화두가 바로 시심마(是甚麽), 이뭣고?’ 화두인 것입니다. ‘이뭣고?’ 바로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목적이 어릴 때부터서  ‘이뭣고?’대한「대관절  인생이란  무엇이냐? ‘내’라는  무엇이냐?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것이냐? 이것을 바로 구체화하고 체계화한 것이 시심마(是甚麽)’ 화두인 것입니다.

 

오직 ‘이뭣고?’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맥힌 의심(疑心)으로 ‘이뭣고?’ 생각하고 관조(觀照)해 나갈 때에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우리의 중생의 분별식(分別識)이 다하고, 번뇌와 망상이 다해서 생각 없는 데에 도달하고, 생각 없는 데에서 다시 한 걸음 나아가서  화두를 타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장독에다가 간장을 가뜩 부어놓은 것을  메겡이로 메쳐서  간장독이 ! 벌어져서 간장이 와르르르 쏟아지듯이 우리 본참화두(本參話頭)를 타파함으로써 무량겁의 칠통(漆桶)이 동시에 타파가 되고, 바로 나의 본면목을 보게 되는 것이고, 불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는 것이고, 우주의 근본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위해서 몸과 마을과 국가와 민족을 잊어야 하고 그렇게 잊음으로써 진리를 체달(體達)하게 되고, 진리를 체달한 사람은 인류와 국가와 민족과 모든 것을 위해서  몸을 바치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086)—78 7 관음재일 법회(78.08.27) (용086)

 

(1) 약 20분.

 

(2) 약 16분.

 

(1)------------------

 

작야삼경월만루(昨夜三更月滿樓)헌데  고가창외노화추(古家窓外蘆花秋)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불조도차상신명(佛祖到此喪身命)허니  암하유수과교래(岩下流水過橋來)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게송은 전강 조실 스님께서 견성(見性)을 하시고 오도송(悟道頌)으로 읊으신 게송(偈頌)입니다.

 

작야삼경월만루(昨夜三更月滿樓), 어젯밤 삼경에 달이 다락에 가득했는데, 누각에 달빛이 가득히 비추었는데,

고가창외노화추(古家窓外蘆花秋). 옛집 창밖에는 갈대꽃이 허옇게  가을이로구나.

불조도차상신명(佛祖到此喪身命)헌데, 부처와 조사가 여기에 이르러서 몸과 목숨을 잃었는데,

암하유수과교래(岩下流水過橋來). 바위 밑에 흐르는 물은 다리로 지나오는구나.

 

 게송은 조실 스님께서 깨달으신 경계를 고대로 읊으신 것입니다.

 

조실 스님은 글을 많이 배우신 문장가도 아니시고, 그러시면서 23살의 젊은 어리신 몸으로 경을 쪼끔 배우시다가 너무너무 사랑한 정든 친구가 비명에 비참하게 죽어가는 현상을 보시고 너무 무상(無常)을 철저히 깨달으신 나머지 책을 던져버리고 선방(禪房)으로 가셔서 참선(參禪) 공부를 하시다가 23살의 어린나이로 대도를 깨치셨던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읊으신 게송이 바로  게송입니다.

 

 게송은 어떠한 시인 문장가도  게송의 뜻을 올바르게 풀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각자 깨달은 분은 깨달은 분만이  게송이 내포하고 있는 참뜻을 속으로 느낄 뿐이고  깨닫지 못했을망정 참선 공부를 하시는 분은  게송을 접하므로 해서 뭐라고 표현할  없는 깊은 감명을 받게 되실 것입니다.

 

우리가 철저히 정진함으로 해서  게송의 참뜻을 직접적으로 깊이 계합(契合)이  날이 오기를 바라고, 우리 자신도 반드시 머지않은 장래에 도업(道業)을 성취해서 이러한 진리의 게송을 읊음으로 해서 많은 후인들에게 감명을   있게 된다면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자리에는 처음 오신 거사님도 계시고, 보살님도 계신만큼 참선을 해 가는 데에 구체적인 그리고 기초적인 것을 지도해 달라고 말씀을 하신 분이 여러분이 계셔서 한 분, 한 분에게 그러한 시간을 가질 수가 없어서 법회를 통해서 간단히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참선은 첫째, 바른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서 직접적인 지도를 받아야 하는 것이 이것은 필수 조건이 되는 것이고.

첫째는 몸을 바르게 가져야 한다. 둘째는 호흡을, 단전호흡(丹田呼吸)을 바르게 해야 한다. 셋째는 화두를 선지식으로부터 받아가지고 바르게 참구(參究)해 나가야 한다.

 

 

첫째, 몸을 바르게 갖는 것은 가부좌(跏趺坐) 또는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해라. 오른발목을 왼다리 무릎에다가 구부려 올려놓고, 왼발목은 오른다리 무릎 위에다가 올려놓아라.

그리고 허리는  펴고 그리고  발 위에다가 오른손을 얹어놓고  위에다 왼손을 포개서 올려놓은 다음, 엄지손은 서로 배끼리 이렇게  맞대서 세워라. 그래가지고  손을 배꼽  앞에다가 갖다가  대라. 배꼽 앞에 발 위에다 얹어 놔라.

 

그리고 어금니는 지그시 물고, 혀는 위로 꼬부려서 입천장에다 갖다 대라.

 귀는  어깨 위에 수직상(垂直上)에 놓이도록 하고, 코끝은 배꼽 밑에 단전과 수직상에 놓이도록 해라. 이렇게 하면 몸이 단정하게 됩니다. 이렇게 몸을 단정하게  다음에는 몸을 좌우로 서너 번 흔들어서 한가운데에다가  안정을 시켜라.

 

그리고 눈은 평상(平常)으로 떠서 앉은 자리에서 3미터 지점에다 떨구어라. 3미터 지점에다 눈을 떨구되 의식적으로 어떠한  점을 응시(凝視)해서는 아니되고, 의식적으론 아무것도  바가 없이 그저 평상으로만 떠라. 이렇게 자세를 갖는 것이 몸을 바르게 갖는 것이다.

 

 

그다음 호흡을 바르게 하는 것은 보통 사람은 가슴으로 호흡을 하는데, 아랫배로 호흡을 해라.

숨을 들어마실 때는 배꼽 밑에 단전이 앞으로 불룩하니 나오도록 하면서 숨을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배를 차츰차츰 홀쪽하게 하면서 숨을 조용하게 그리고 길게 내쉬어라.

 

들어마실 때나 내쉴 때나 코로 들어마시고 코로 내쉬되 코로 들어마신다 코로 내쉰다’는 생각은 전혀 갖지를 말고,

숨을 들어마실 때에는  궁뎅이 뒤에서,  뒤에서 쑤욱 궁뎅이를 통해서 들어마신 호흡이 아랫배로 가득히 들어오도록 이러한 기분으로 들어마시고, 들어마신 호흡은  3 동안 정지 상태로 머물렀다가 내쉴 때는  뒤로, 쑤욱  뒤로 내보내는 기분으로 내쉬어라.

 

분명 숨은 코로 들어갔다 코로 나오겠지마는, 우리 의식으로는 코로 들어마신다 내쉰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궁뎅이 뒤에서 쑤욱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에 머물렀다가 다시 나갈 때에는  궁뎅이 뒤로 쑤욱 나가는 그러한 기분으로 숨을 쉬어라.

 

들어마신 시간은  3 동안에 들어마시고, 머무르는 시간  3초 동안, 내쉴 때는  4 ,5 걸려서 내쉬도록. 이렇게 해서 한번 들어마셨다 머물렀다 내쉬기를  10 내지 11 이러한 정도로 시간을 잡어서 하되 절대로 무리하게 억지로 시간을 오래 머무르려 하지 말고, 너무 호흡을 배가 가뜩 들어마시지 말어라.

들어마실 때는  8부(八部) 정도만 들어마셔.  들어마실  있지마는 8부쯤 해서 숨을 멈추고 3 동안 머물렀다 조용하니 내쉬는 이것이 바로 단전호흡입니다.

 

이 단전호흡을 하면은 혈액 순환이 잘되어서 몸안에 머물러 있는 많은 노폐물, 피로의 원인이 되는 독소를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을 통해서 코로 그리고 혈액 순환을 통해서 밖으로 전부 다 배설하게 됩니다.

그래서 피가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져서 오장육부 기능이 활발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이 안정이 되고 정신이 맑아져서 그러한 상태에서 참선을 해 나가게 되면은 공부가 잘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몸도 건강해지고 정신도 건전해져서 참선하는 데에는 필요 불가결한 것이  단전호흡법입니다.

 

이러한 호흡법을 모르고서 무턱대고 화두만을 파고들게 되면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기운이 위로 올라가서 골이 아프고 상기병(上氣病)에 걸려서 도저히 참선을 더이상 계속할  없게 되는 것이고, 소화불량 내지 온갖 오장육부에 부작용이 생겨나서 도업은 성취하기도 전에  먼저 앓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옛날부터 수식관(數息觀), 부처님 당시부터 수식관을 권장을 하셨고, 대대로 조사(祖師)들이 내려오시면서  단전호흡을 통해서 더위도 그놈으로 이겨내고, 추위도  단전호흡으로 이겨내고 나아가서는  오는 , 혼침(昏沈)도 그놈으로 이겨내고, 산란심(散亂心)도  단전호흡으로써  제어를 해가지고 나아가서는 견성성불(見性成佛)하기에 가장 편리하도록 그렇게 지도를 내려오셨던 것입니다.

단전호흡에 대해서도 직접 하시면서  열흘,  ,  , 직접 해보시면 다시  문의해 보고 싶을 때에 다시  와서 물어보시면 되는 것입니다.

 

 

몸을 바르게 하고  다음에 호흡을 바르게  다음에는 화두(話頭)를 참구를 해야 합니다.

 

화두 가운데는 천칠백(千七百) 화두가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문헌에 오른 것만이고, 문헌에 오르지 아니한 공안, 이 우주세계에 가득찬 것이 바로 공안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선지식으로부터 주어진 화두  하나만을 철저히 참구를 해서  화두를 여지없이 통과를 해서 타파(打破)를 하게 되면은 천칠백 공안도 동시에  통과를 하게 되는 것이고, 천칠백 공안이 통과가 되면은 우주법계에 가득찬 모든 공안을 현성(現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지식으로부터  하나의 화두만을 받아가지고 철저하게 참구해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자기 멋대로 어떤 화두 하나를 잡아가지고 이리저리 해본다든지  화두  해봤다,  화두  해봤다, 이렇게 해서 그러한 사람은 도저히 바르게 깨달을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많은 허송(虛送) 생활을 하게 되고,  안타까운 신세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천칠백 화두 가운데 가장 먼저 나온 화두, 가장 기본적인 화두가 바로 시심마(是甚麽), 이뭣고?’ 화두인 것입니다.

‘이뭣고?’ 바로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목적이 어릴 때부터서  ‘이뭣고?’ 대한「대관절  인생이란  무엇이냐? ‘내’라는  무엇이냐?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것이냐? 이것을 바로 구체화하고 체계화한 것이 시심마(是甚麽)’ 화두인 것입니다.

 

부처님 출현하시기 이전에부터  시심마 화두는 있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삼천년 전에 출현하시기 이전 몇억만 년 이전부터서  우주가 생겨날 때부터서 우주 자체가 바로  「이뭣고?」의 뭉텡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지금 불법(佛法)이 무엇인 줄도 모르고, 참선이 무엇인 줄도 모르는 그러한 사람 가운데에 대관절  인생이라는  무엇이냐?  나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하는 문제에 골몰하고 있는 많은 사람이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철학을 통해서 자기 나름대로 시나 소설이나 또는 예술, 과학 모든 자기의 분야에 있어서 결국은 그러한 분야를 통해서 「이뭣고?」라고 하는 것을 해결하고자 노력을 하고 있지 않나 이렇게도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빨리 인생 문제를 해결   있는 방법이 바로 참선법이요, 선지식의 직접적인 지도를 받아서 철저하게 참선을 해 나가는 길이라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냐?

 

삼천 년을 두고 내려오면서 역대조사(歷代祖師)들은 오직  문제 하나만을 위해서 정든 고향과 부모 형제와 가족을 버리고 청춘과 인생을  버리고서 오직   문제만을 전문적으로 참구해 왔었던 것입니다.

목숨 바쳐 참구를 해서  일대사(一大事)를 통달하셔 가지고 그것을  제자에게 전하시고,  제자는   제자를 전해서 삼천 년을 내려오면서 77 조사(祖師)가 바로 전강 대종사(田岡大宗師)이십니다.

 

이러한 분명한 법통(法統)을 이어받으신 그런 어른으로부터 참선 지도를 받고 화두를 타고 공부를 해야만  자신도 올바른 깨달음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바른 안목을 갖지 못하고서 남을 바르게 가르킬 수는 도저히 없는 것입니다. 자기는 바로  목적지에까지 가보지도 않고서 남을  목적지에까지 올바르게 인도할  있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번도 가보지도 아니하고 그러한 안내자 없이 올바르게 목적지에 도달할  있다고 하는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기적을 바래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실(實)다웁게 닦아서 실다웁게 깨달아야지, 요행(僥行)을 바랜다든지 기적을 바래고서야 대도를 성취할 가망성은 없는 것입니다.(23분29~4318)

 

 

 

 

(2)------------------

 

‘이뭣고?’

대관절 지금 여러분들이  더위를 무릅쓰고 수백 리 밖에서, 수십 리 밖에서 이렇게 참석을 하셨는데 무엇이 왔느냐?”

내가 왔다

 

내가 누구냐?”

 아무개다

 

 아무개가 누구요?”

나여

 

내가 누구여?”

 아무개여

이러한 대답은 바른 대답이  수가 없습니다.

 

금생에  아무개’지, 전생에는  아무개었을런지 모르고. 금생에 김팔봉’이 이름을 칠봉이라고 지으면 칠봉이고, 삼봉이라고 지으면 삼봉이지, 이름이야 수천 , 수만 개라도 새로 갈아붙일 수가 있는 것이어서 그것은 임시로 붙여 놓은 이름이지 그것은 나’가 아니여.

 

“이 몸뚱이가 나’다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4대(四大)가 뭉쳐져서 임시로 건립되어 있는,  나’가 살고 있는 임시 주택이요,  벌의 옷에 지내지 못한 것이지 이것은 나’가 아니다.

 

 나’는  몸뚱이를 운전하고  몸뚱이를 주재하는 주인공(主人公), 그것은 수십 수백 가지의 이름이 있지마는  이름 붙이기 이전에  참모습이 무엇이냐? 참면목(面目)이 무엇이냐?

이것은 우리의 희고, 검고 하는 것을 보는 눈으로는  수가 없는 것이고, 새소리 닭소리를 듣는  귀로서는 아무리 들을라고 해도 들어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오직 ‘이뭣고?’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맥힌 의심(疑心)으로 ‘이뭣고?’ 생각하고 관조(觀照)해 나갈 때에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우리의 중생의 분별식(分別識)이 다하고, 번뇌와 망상이 다해서 생각 없는 데에 도달하고, 생각 없는 데에서 다시 한 걸음 나아가서  화두를 타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장독에다가 간장을 가뜩 부어놓은 것을  메겡이로 메쳐서  간장독이 ! 벌어져서 간장이 와르르르 쏟아지듯이 우리 본참화두(本參話頭)를 타파함으로써 무량겁의 칠통(漆桶)이 동시에 타파가 되고, 바로 나의 본면목을 보게 되는 것이고, 불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는 것이고, 우주의 근본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천칠백 공안은 우리가 나를 깨닫기 위한 나침판이요, 지팡이요, 등불이며 길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잠시도 화두를 떠나서는 우리의 공부는 생각할 수조차도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언제 어데서 무엇을 하고 있던지 간에 화두는 우리의 앞에 역력(歷歷)하고 또록또록하게 나타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천하 싱겁고 맛없는 한마디 말이지마는 계속 들고  들고, 생각하고  생각하고—‘생각한다’고 하면은 조금 어폐(語弊)가 있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화두를 들어 나가는 데에는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못   없는 의심에  맥힌 상태에서 ‘이뭣고?’ 이것을 생각이라고  수가 없습니다.

생각이라 하면 이리저리 따지고 비교하고 더듬어 들어가는 것인데  화두를 생각하는 것은 따지고 더듬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하는 그런 이론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생각이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인(古人)들은 관(觀)’이라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 ()’.

“화두를 관조(觀照)하라” ‘ ()’. “관(觀)하라 이렇게 본다’고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 말없는 것이고, 재미없는 말이지마는 자꾸 하고  하고 하는 가운.... 또 생각하고  생각해 나가면...(녹음 끊김)

큰방살이가 작은방살이가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언제가 수백억만 년 옛날에는 참나’가 나의 주인공이였었고, 번뇌 망상은 그때 작은방살이였었습니다.

 

그것이 아는 동안에 차츰...(녹음 끊김) 조국을 찾자는   생각뿐이었던 것입니다. 조국에 모여가지고 모래 위에 흙을 퍼다가 붓고 모래 속에다가 수도 시설을 해가지고 모래땅을 옥토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외국에 유학을  있는 학생들도 조국에 싸움이 일어났다 큰일이 일어났다 하면은 조국에서 부르기 전에 서로 앞을 다투어 조국으로 모여든다고 합니다. 조국을 잃어  사람이 아니면 조국이 얼마나 소중하다고 하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36년간이라고... (녹음 끊김) 근자에 와서 세계 사람이 눈을 부릅뜨고 놀랄 만큼 오히려 선진국들이 우리를 경계하지 아니하고서는 안될 만큼 그러한 수준에 지금 육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물질, 경제면에서 세계 사람을 놀라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녹음 끊김) 그러한 내가 참나를 찾는 진리를 탐구하는 그러한 (녹음 끊김) 자칫하면 비참한 구렁텅이에 빠지지 아니한다고 단언할 수가 없습니다.

 

동서고금의 모든 나라들이 한때 물질면에서 경제면에서 그렇게 (녹음 끊김 ) 지금 우리나라가 이만큼 잘살게 되었다고 해서 조끔도 안일에 빠질 수도 없고, 허리띠를 늦출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더욱 검박하게 살면서 우리는  물질 이상으로  정신면에 있어서 우리 정신력을 강화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정신력 강화가 바로 참선법보다  좋은 것이 없는 것입니다. 참나를 찾는  수행이야말로 부처님을 믿는 신도에 국한될 일이 아닌 것입니다. 어떠한 종교를 믿는 사람도  참선은 해야만 되고 불교를  믿는 사람도 참선법만은 바로 배워 가지고 일상생활 속에서 자기 참나를 찾는...(녹음 끊김) 

 

누차 말씀을 드리는 바이지만 이론으로 따져 들어가는 공부가 아니다. 경전에 씌어진 어떠한 경전의 말씀도 ‘이뭣고?’ 참구하는 데에 동원되어서는 아니된다 이것입니다. 다못 바보가 되어서 ‘이뭣고?’  번이고  번이고 ‘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3 머물렀다 내쉬면서 ‘이뭣고?’ 초학자는 이렇게 공부를 지어 들어가면 호흡과 화두가 함께 잘되어 가는 단계에 도달할 것입니다.

나중에 익숙해지면 들어마실 때나 내쉴 때나 그것에도 구애받을 것이 없고, 앉았을 때나 섰을 때나, 누워서나 일을  때나, 차를  때나  먹을 때나 그러한 것에도 조끔도 상관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더라도 ! 인자 되었다. ! 잘되었다 이러한 기뻐하는 마음을 내서는 아니 되고, 공부가 순일하게 잘되어 가더라도 계속 화두만을 더욱 간절하게 들어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공부가   순일하게 잘되어 가다가 어찌된 영문인지  변해가지고  화두가   들리고, 졸음이 퍼오거나 망상심이  일어나거나 화두가 도저히 잘  들리는 경우가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조끔도 번뇌심이나 짜증을 내지 마시고 계속 단전호흡을 하면서 ‘이뭣고?’ ‘이뭣고?’를 계속 들어나간다면 얼마 안 가서 어려운 고비를 넘게 됩니다.  고비를 지혜스럽게 참을성 있게  넘기고 나면 그때 가서는  한결 공부가 수월한 단계에 이르른 것입니다.

 

대혜종고(大慧宗杲) 스님이 「서장(書狀)」에 말씀하시기를  몸이 뒤틀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화두가   들리고 이러한 경지가 절대로 나쁜, 공부가  안되는 마장(魔障)의 경지가 아니라 참으로 한 걸음 올라설  있는 좋은 중요한 계기니까 그것을 놓치지 말고  정신을 차려서 지혜롭게  고비를  넘기도록 이렇게 간곡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공부는  세상에서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해야만  그러한 길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집안을 위해서는  몸을 버려야 하고  몸을 잊어야 하고, 마을을 위해서는 집안을 잊어야 하고, 국가나 민족을 위해서는 마을을 잊어야 한다. 진리를 위해서 도를 위해서는 몸과 집안과 마을과 나라까지도 버려야 하느니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참선하는 사람은 집안이고  국가도  버려 버려야 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참선이 국가를 위해서는 아무 이익을 주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 우리나라 삼천오백만 민족이 전부 참선을 하게 되면 나라는 누가 지킬 것이냐?’ 혹 이러한 생각을 하실 분이 계실런지 모릅니다마는.

 

‘이뭣고?’하는 동안에는 정말 나의 목숨까지도 바쳐야 하는 것이거늘 목숨 없는 곳에 나라 생각, 민족 생각이 거기에 떠오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말 모든 것을  바칠 , 모든 것을  잊어버릴 때에 도(道)의 문(門)에 들어갈  있기 때문에 하신 말씀이고.

 

그렇게 해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누구를 위해서 필요한 존재냐?

집안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을과 국가 민족은 말할 것도 없고,  인류는 말할 것도 없고, 우주법계에 가득찬 모든 중생을 위해서  사람의 모든 것은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위해서 몸과 마을과 국가와 민족을 잊어야 하고 그렇게 잊음으로써 진리를 체달(體達)하게 되고, 진리를 체달한 사람은 인류와 국가와 민족과 모든 것을 위해서  몸을 바치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팔만대장경을 통해서 우리는  읽을 수가 있습니다마는 부처님의 참뜻을 옳게 이해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한문(漢文)에 통달한 사람은 무슨 경전이든지 맥힐 것이 없다 이렇게 보실는지 모릅니다마는 그렇지를 않습니다. 참선을 통해서 진리를 깨달아야만 어떠한 경전의 쉬운  글귀라도 바로  수가있는 것입니다.

 

부디 덥다 핑계대지 말고, 춥다 핑계대지 말고 아직도 나는  일이 많다. 아들을 위해서 딸을 위해서  일이 많다. 집안을 위해서  일이 많다 그러한 핑계대지 말고,

1분 1초라도  생각을 돌려서 화두를 참구하심으로 해서   이만큼 건강할  반드시 참나를 깨닫도록  자리를 통해서 다짐을 하면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4315~5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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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작야삼경월만루~’ ; 전강 선사 오도송(悟道頌). 원래는 이렇게 7언이었으나 후에 5언으로 만드심.

〇작야월만루(昨夜月滿樓)  창외노화추(窓外蘆花秋)  불조상신명(佛祖喪身命)  유수과교래(流水過橋來)

*전강 조실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http://emokko.tistory.com/231)’ 참고.

*견성(見性) : ‘성품() 본다()’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 일치하는 정각(正覺)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 진리를 깨닫고  경지 또는  기쁨을 나타낸 게송.

*게송(偈頌) ; (), () ()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 조건()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 없다[].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 ②선원(禪院).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계합(契合 맺을 /합할 ) ;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들어맞음.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참구(參究 헤아릴 /궁구할 ) ; ①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책상다리할 /앉을 ) ; 결가부좌(結跏趺坐) 줄임말.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 발바닥을, ()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 : 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

*응시(凝視 엉길 /보일 ) ; ①시선을 한곳으로 모아 집중해서 뚫어지게 바라봄. ②어떤 일이나 현상에 대하여 깊이 살핌.

*팔부(八部)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복식 호흡(腹式呼吸) ; 숨을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해서 가로막의 신축에 의하여 하는 호흡. 단전호흡(丹田呼吸).

*상기병(上氣病 오를 /기운 / )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 머리에 치밀게()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수식관(數息觀) ; 출입하는 숨을 세어서 마음을 통일하는 . 그것에 의해 마음의 산란을 막음. 호흡을 세어서 마음을 집중시키는 수행법.

*조사(祖師) : 1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 깨달아서이를 전하는 () () 상응(相應)하는 도인.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산란(散亂 흩을 /어지러울 ) ; 혼침(昏沈)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 마음이 어지러운 .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 삶과 죽음,  생사(生死) .

①부처님이 중생 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법통(法統 부처님의 가르침 /거느릴·벼리·혈통) ; 불법(佛法) 물려받음. 또는 대대로 불법을 계승하는 계통. 법맥(法脈) 같은 .

*법맥(法脈) ; 세속에서 조상의 전래 혈통(血統) 밝히고 있듯이, 불교 선종(禪宗)에서는 스승에서 마음을 깨친 제자로 계속 이어져 전해 ,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 법통(法統) 전승을 법맥이라 한다.

 

 

 

 

------------------(2)

 

*사대(四大) ; ①지() · () · () · () 말함. () 원소란 . 일체의 물질을 구성하는 () 가지 원소().

(1)지대(地大) : 굳고 단단한() 것을 ()으로 하고, 만물을 실을 (負載) 있고,  질애()하는 바탕. 질애()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여 다른 존재와 서로 융화하지 못한다는 . (2)수대(水大) : 습윤(濕潤) 성으로 하고, 모든 () 포용(包容)하는 바탕. (3)화대(火大) : () 성으로 하고, () 성숙(成熟)시키는 바탕. (4)풍대(風大) : () 성으로 하고 ()성장케 하는 바탕.

②신체를 말함. 원래, 신체는 지수화풍(地水火風)의 4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함.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 주인옹(主人翁).

*면목(面目  / )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해   없는 생각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관조(觀照) ; ①지혜의 힘으로 사물이나 이치를 통찰(洞察 :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환히 꿰뚫어 봄)함. ②지()로써 ( 모든 차별의 모양. 현상계. 차별 현상. 사물) ( 모든 사물의 본체. 진리) ()하여 바르게 아는 .

[참고] 『돈황본 육조단경』

用智慧觀照  於一切法  不取不捨  卽見性成佛道

지혜로써 보고 비추어[觀照] 온갖 법에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나니,  성품을 보아 불도(佛道) 이루느니라.

 

[참고]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 (보조국사 지눌 스님)

如或世間事務  種種牽纏或病苦所惱  或邪魔惡鬼所能恐怖  有如是等  身心不安  則於十方佛前  至心洗懺  以除重障  禮念等行  消息知時

만일 세상의 일에 가지가지로 얽매이거나 병으로 아프거나 삿된 악마나 귀신에 의해 공포에 떠는  이런 일로 몸이나 마음이 불안함이 있거든, 시방세계의 부처님 전에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여 무거운 업장(業障) 제거해야 한다. 예불과 염불을 아울러 행하고, 업의 장애를 없애고 생각을 비우는 일을 때를 알아서 하라.

 

動靜施爲  或語或默  一切時中  無不了知 自他身心  從緣幻起  空無體性  猶如浮泡  亦如雲影  一切毀譽是非音聲  喉中妄出  如空谷響  亦如風聲

움직이고 그치고 말하고 침묵하는 모든 시간에 나와 남의 몸과 마음이 인연을 따라 허깨비처럼 일어난 것으로 ()하여 체성(體性) 없음이 마치 물에  거품과 같으며 또한 구름이나 그림자와 같아서, 일체 비방하고 칭찬하며, 옳다 그르다는 음성이 목구멍에서 망령되이 []  골짜기의 메아리와 같고 또한 바람 소리와 같은 것임을 환히 안다.

 

如是虛妄自他境界  察其根由  不隨傾動  全身定質  守護心城  增長觀照  寂爾有歸  恬然無間

그와 같이 나와 남이 모두 허망한 경계에서  근본 원인을 살펴, 치우친 행동을 따르지 않고,  몸은 안정하여 마음의 () 굳게 지키어 비추어 보는[觀照] 힘을 증장하면 고요히 돌아갈 곳이 있고 편안하여 끊임이 없을 것이다.

 

當是時也  愛惡自然淡薄 悲智自然增明  罪業自然斷除  功行自然增進

그때에는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저절로 엷어지고 자비와 지혜가 저절로 더욱 밝아지며 죄업은 저절로 끊어져 없어지고 공덕의 [功行] 저절로 더욱 나아갈 것이다.

 

煩惱盡時  生死卽  生滅滅已  寂照現前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是爲了事人分上  無漸次中漸次  無功用中功用也

그리하여 번뇌가 다할 때에는 생사가  끊어지고 생멸이 멸하면 () () 앞에 나타나 () 씀이 무궁하여 인연 있는 중생을 제도하리니 이것이 이른바  마친 사람의 분상(分上)점차(漸次) 없는 가운데 점차며, 공용(功用) 없는 가운데 공용이 되는 것이다

*분별식(分別識) ; 팔식(八識) 가운데 6 의식(意識) 말한다.  의식은 차별하여 사유하고 판단하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칠통(漆桶  / ) ; ①옻칠을   ②중생의 마음은 무명이 덮여서 어둡고 검기가 옻을 담은  속과 같은 상태 또는 그런 상태의 사람. ③무명(無明).

*본래면목(本來面目  / / / )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역력(歷歷 겪을·지낼·수를 ·가릴 ) ; ①뚜렷한 모양. 분명한 모양. 똑똑한 모양. ②사물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모양.

*어폐(語弊 말씀 /해어질·쓰러질 ) ; ①적절하지 아니하게 사용하여 생기는 말의 폐단이나 결점. ②남에게 오해를 일으킬  있는 .

*대혜종고(大慧宗杲)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 · 『대혜서(大慧書) · 『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62()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 역설하였다.

*마장(魔障 마귀 /장애 )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 [참고]헤살;남의 일이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한역. ().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방법. ③무상(無上)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체달(體達) ; 사물의 이치를 통달하여 깨달음.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6. 5. 29. 12:02

<핸드폰에서, 아래 법문은 위 유튜브에서 34분 9초부터 시작됩니다>

 

§(574) 아자방 부목의 소금 장수, 머슴살이 / 실참실오(實參實悟) / 고인친증처(古人親證處) / 활구참선(活句參禪) 해야 한다.

 

진실한 깨달음,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것은 그건 자기 스스로 그걸 인증을 해선 됩니다. 정말 자기의 깨달음이 고조사(古祖師) 경지가 아니면 스스로 그것을 여지없이 내팽개쳐 버려야 하는 것이여.

 

깨달음이라 하는 것이 우선 자기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서는 일체 중생을 깨닫게 하고, 그래서 법계가 깨달은 사람으로 가득차게 해서 부처님의 혜명(慧命) 이어가는 것이 그것이 수행해 가는 목적인데, 가짜 깨달음을 얻어 가지고 앞에 뽐내면 그거 어디다 쓰겠습니까?

 

**송담스님(No.574)—96 하안거 해제 법회(96.08.28) (용574)

 

약 17분.

 

오늘 해제일을 맞이해서 위봉사나 위봉선원, 세등선원 기타 여기저기서 수행하고 있는 도반들이 많이 해제 법요식에 참석을 했고 법보전(法寶殿) 만년위패(萬年位牌) 모신 여러 법보가족(法寶家族)들도 많이 참석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정말 생사 문제,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소금 장수 얘기를 잠깐 비추셨는데, 소금 장수가 다른 사람이 아니고 어느 칠불(七佛) 아자방(亞字房) 옛날에 선원이 있었는데, 아자방에 부목(負木)으로 있던 사람이 여름에 더울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가 공양 짓는 나무를 대고 그런데,

스님네는 서늘한 방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고, 해다 밥에 편안하게 먹고 저렇게 백판 놀고 있으니, 그걸 은연중(隱然中) 비방을 하고 자기 신세를 한탄하고 그러다가,

 

어떤 스님이그렇게 나무하기가 힘들고 그러면 오늘부터서 나하고 바꿔서 내가 나무를 테니 부목이 선방에 와서 참선을 봐라

, 그까짓 내가 못하냐, “ 먹여 주는데 앉아서 끼니때 되면 갖다 주면 먹고, 터억 앉았다가 졸리면 꾸벅꾸벅 졸면 점심때 되면 갖다 주는데 그거 못할 없다, “나도 한다.

 

그래서 갖다가 앉혀 놓으니 평생 앉아보들 않은 사람이 가부좌, 반가부좌를 하고 앉았으니 주리를 틀어서 도저히 다리가 저려서 견딜 수도 없고, 처음에 한나절은 좌우로 꾸벅꾸벅 조는 스님네 구경이나 하고 그럭저럭 견딜 만하더니 이튿날은 영판 못해 먹겠어. 삼일째는 정말 힘들고, 나흘째 닷새째는 견딜 수가 없어. 오금이 펴지도 않고, 변소에 가도 오줌도 나와.

 

그래 가지고는 못하겠다는 말도 못하고어지간히 스님네 흉을 봤어야지그래 보따리를 짊어지고 도망가 가지고, 갑자기 나가니 해먹을 있어야지. 그래서 염전에 가서 소금을 짊어지고 산을 넘어 다니면서 산너머에다가, 요새는 교통수단이 좋지만 옛날에는 낱낱이 사람의 등으로 소금을 날라다가 팔았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지리산이라든지, 전국 방방곡곡에 산을 넘어 다니면서 소금짐을 짊어지고 넘어가는데, 비지땀을 흘리면서 넘어가는데 뒤에 따라오는 사람이 직업이 여러 가지가 많은데 하필 소금을 짊어지고 더위에 몸으로도 올라가기가 힘드는데, 소금 가마니를 짊어지고 높은 재를 넘어가다니 얼마나 힘이 드냐하니까, “ 마십시오. 선방에서 참선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세상에 못해 먹을 지서리는 참선입니다

 

소금 장수를 하다하다 못하게 생겼으니까, 이제 들에 내려가서 남의 부잣집의 머슴살이를 . 쟁기를 가지고 논밭을 가는데, 소도 힘이 드니까 말을 들어. 후려 때리면서이놈의 소새끼, 선방에다가 참선을 시키리

 

사실 자리에 모이신 분들은 그러한 고비고비를 넘겨서 이제는 시간씩, 시간씩 앉아도 견딜 만하고 대부분 그러시겠지만, 처음 철에 나가서는 여간 견디기가 힘든 아닙니다. 두고두고 그렇게 힘든다면은 누구라도 소금 장수를 하거나 머슴살이를 하는 것이 나을 겁니다마는.

처음에는 힘들지마는 , , 하면 장좌불와(長坐不臥) 하고, 3 결사도 하고, 앉아서 터억 단전호흡을 하면서이뭣고?’ 하면 대안락지묘문(大安樂之妙門)이여. ‘정말 안락한 묘문이라고 고인(古人) 표현을 했습니다.

 

성성적적(惺惺寂寂)해서 시간 가는 모르고, 혼침(昏沈) 산란(散亂) 떨어져 버리고처음에는 망상(妄想) 일어나서 못하겠다 그러고, 다음에는 망상이 만하면 혼침이 와서 견디고, 그래도 끊임없이 중단하지 않고 나가면 다리 절인 것도 없어지고, 허리 아픈 것도 없어지고,

번뇌와 망상도 그냥 스쳐가는 바람처럼 스쳐간 채로 놔두고, 떠억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 거각(擧却)하고 의단(疑團) 거각을 하면 타성일편(打成一片) 되고 순수무잡해서 몸이 세상에 있는 줄도 모르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다맛 속이나 밖이 화두 일념, 의단이 차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처음부터서 그렇게 되는 아니어. 수없는 애를 써야 언제 오더라도 결코 그런 경계가 오는 것이다 그말이여.

 

이러한 공부를 가면 다맛 다리만 저리고 허리만 아프고, 번뇌 망상만 일고 혼침만 오는 아니라, 많은 병고(病苦) 장애도 일어날 수가 있고 인간의 장애도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나쁜 도반을 가까이하면 사도(邪道) 빠질 수도 있습니다.

 

선지식을 잘못 만나면 구경(究竟) 깨달음이 아닌데도, 일과성(一過性)으로 일어나는 그러한 경계를 바로 깨달았다고 인가(印可) 받을 수도 있습니다.

진실한 깨달음,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것은 그건 자기 스스로 그걸 인증을 해선 됩니다. 정말 자기의 깨달음이 고조사(古祖師) 경지가 아니면 스스로 그것을 여지없이 내팽개쳐 버려야 하는 것이여.

 

옳다! 여역여시(汝亦如是)하고 오역여시(吾亦如是). 너도 또한 그렇고, 나도 그렇다섣불리 남을 그렇게 인가해 가지고.....

 

사람의 그러한 일과성의 경계를 여지없이 쳐부숴 버려야, 그리고서 실참실오(實參實悟) 하도록 몰아줘야 그것이 참다운 선지식이고, 진실한 도반이 아니겠습니까.

 

한소식 했느니, 초견성 했느니, 무슨 지견이 났느니 가지고 자기도 얻었다는 생각을 갖고, 자기도 깨달았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리고 앞에 뽐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요새 세상은 가짜가 하도 많아서 보석, 많은 돈을 주고 놓고 보면 대부분 가짜 보석입니다. 가짜 보석은 위조지폐(僞造紙幣)처럼 가짜도 진짜인 알고 서로 주고받고, 팔고사고 하면 가짜가 진짜 노릇을 얼마 동안 수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재수없는 사람은 걸려 가지고 쇠고랑을 차게 되는 거여.

 

그러나 깨달음이 아닌 가짜 깨달음은 어디다 그것을 쓰겠습니까?

깨달음이라 하는 것이 우선 자기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서는 일체 중생을 깨닫게 하고, 그래서 법계가 깨달은 사람으로 가득차게 해서 부처님의 혜명(慧命) 이어가는 것이 그것이 수행해 가는 목적인데, 가짜 깨달음을 얻어 가지고 앞에 뽐내면 그거 어디다 쓰겠습니까?

 

원래 가짜 보석이라 하는 것은 앞에 과시하는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장식용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진짜 보석을 함부로 가지고 다니다가는 잃어버리기도 쉽고 도둑맞기도 쉬우니까, 진짜 보석은 깊이 간수해 놓고 비슷하게 생긴 가짜 보석을 귀에다도 걸고 목에도 걸고 손가락에다도 꽂아서 그런 사용으로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의 재산이 수도 없고 팔아서 값을 받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가짜 깨달음은 장식용으로 쓰겠습니까? 명예를 얻기 위해서 쓰겠습니까? 자기 신세도 망쳐서 자기도 지옥에 가고, 그것을 함부로 인가해 가지고 마음 먹고 닦는 사람을 지옥으로 떨어지게 하고 사도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는 불법(佛法)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인은, 여러분도 사집(四集) 서장(書狀) 배운신 분은 기억이 나시겠지만,

불오즉이(不悟則已)어니와 깨닫지 못하면 말거니와, 깨달은 즉은 모름지기 직도고인친증처(直到古人親證處)—고인(古人)이라 하면 부처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포함이 것입니다고인이 친히 증득한 경지에 가야만 대휴헐지지(大休歇之地) 삼을까 하노이다. 그래야만 나의 깨달음을 그렇게 삼고자 한다그거거든.

 

차라리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을 열심히 부르고,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자나깨나 아미타불을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눈을 감아도 아미타불을 부르고, 눈을 떠도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고, 때도 나무아미타불, 속이 상할 때도 아미타불을 부르고, 슬플 때도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고, 몸이 아플 때도 나무아미타불을 불러서 일심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숨이 끊어지려고 , 터억 반야용선(般若龍船) 타고 영접을 하러 오신다. 무량수경(無量壽經) ! 있다 그말이여. 경을 고지식하게 고대로 믿고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이 차라리 낫지,

 

참선을 한답시고 참선을 하면서 활구참선(活句參禪) 아니 하고, 의리선(義理禪)으로 따져서 공안을 이러저리 해석을 하고, 그래 가지고는 공안을 나름대로 통과했다고 해서 자기도 한소식 했느니, 견성을 했느니 가지고 그런 것을 자기의 깨달음을 삼아서 되겠느냐 이말이여.

 

  자리에 모이신 도반들은 전강 조실 스님 법문도 많이 들으시고, 벌써 진발심(眞發心) 해서 열심히 수행하는 도반들이라 이러한 노바심절(老婆心切)에서 나온 말은 필요 없을는지 모릅니다마는, 문제가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간곡히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3045~4754)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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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전(法寶殿) ; 법보전은 용화선원의 ()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 전당이라는 .
그래서 진리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 모셨고,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법보가족(法寶家族) ; [참고] 89 설날차례(89.02.06) 법요식에서.

〇여기 (용화선원 법보전) 만년위패에 우리의 조상 여러 영가와 원근 친척의 인연 있는 영가들을 모신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여러분은 법보가족이라고 말을 수가 있습니다. 가족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법당(법보전) 모셨으니 우리가 가족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정법(正法) 의지해서 도를 닦는 도반(道伴)이면서 가족인 것입니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 삶과 죽음, 생사(生死)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이다.

*아자방(亞字房) ; 방고래(방의 구들장 밑으로 불길과 연기가 통하여 나가는 ) () 모양으로 놓은 . 지리산 칠불사(七佛寺) 아자방이 대표적이다.

*부목(負木) ; 절에서 땔나무를 채취하거나 불을 지피는 소임. 불목한·화목한(火木漢화대(火臺) 등이라고도 한다. 주로 일반 일꾼이 소임을 담당했다.

*백판 ;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대책없이등의 뜻의 사투리.

*은연중(隱然中) ; 남이 모르는 가운데.

*주리(周牢) 틀다 ; 주리 틀다. 예전에, 죄인을 심문할 주리(죄인의 다리를 한데 묶고 다리 사이에 개의 막대기를 끼워 비틀던 형벌) 형벌을 주다.

*영판 ; 아주.

*지서리 ; ‘짓거리('' 낮잡아 이르는 )’ 사투리. *몸이나 몸의 일부를 놀려 움직이는 행동이나 행위를 나타내는 .

*장좌불와(長坐不臥) ; 밤이 되어도 눕지 않고 앉아서 수행 정진하는 .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惺惺] 상태.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산란(散亂 흩을 /어지러울 ) ; 혼침(昏沈)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 마음이 어지러운 .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이뭣고~?’   ‘ 없는 생각()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의단(疑團 의심할 ,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해 없는 생각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어째서 () 했는고?’ 또는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구경(究竟 궁구할 /마칠·다할 )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위에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일과성(一過性) ; 어떤 현상이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

*인가(印可 도장 /옳을·인정할 )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실참실오(實參實悟) ; 실답게 참구(參究)하고 실답게 깨달음. () 참선(參禪) 또는 참구(參究). 실참(實參) 공안(화두) 이론으로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아닌 선지식의 지도 아래 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을 말한다.

다만 맥힌 의심으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고, 의단이 더이상 간절(懇切) 수가 없고, 더이상 커질 수가 없고, 더이상 순일무잡(純一無雜) 수가 없어 가지고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 그놈을 타파(打破) 때에 확철대오(廓徹大悟) 하는 것이다.

[참고] 『조계진각국사어록(曹溪眞覺國師語錄) 「서답(書答)답노상서(答盧尙書 노상서에게 답함)’에서.

〇所以古德云 路途之樂 終未到家 見解入微 不名見道 參須實參 悟須實悟 閰羅大王 怕多語 若要實參實悟 須是從前坐禪處得底 經敎上得底 古人語錄上得底 宗師口頭下得底 有滋味寶悟處 一時掃向他方世界 好字細看

 

그러므로 스님은길의 즐거움은 종내 집에 이르지 못하게 하며, 보고 알아 미세한 들어가는 것은 도를 보았다 없습니다. 참구는 진실한 참구이어야 하고 깨달음도 진실한 깨달음이어야 합니다. 염라대왕은 많은 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만일 알차게 참구하여 진실로 깨달고자 하면, 종전에 좌선(坐禪)해서 얻은 것과 경전에서 얻은 것과 고인의 어록에서 얻은 것과 종사의 입을 통해 얻은 등에서 자미(滋味)있고 소중히 여긴 깨달았던 경계를, 한꺼번에 다른 세계에 쓸어 버리고 자세하게 살펴야 좋을 것입니다하였습니다.

*위조지폐(僞造紙幣 거짓 /지을 /종이 /화폐 ) ; 지정된 발권 은행이 아닌 곳에서 만들어 가짜 지폐().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 정법(正法) 명맥(命脈). ②법신(法身)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

*사집(四集) ; 사찰에 있는 강원(講院) 사집과(四集科)에서 배우는 과목, 규봉 종밀 스님의 <도서(都序)>, 대혜 스님의 <서장(書狀)>, 보조 지눌 스님의 <절요(節要)>, 고봉 원묘 스님의 <선요(禪要)> 말한다.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대혜서(大慧書)·『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62()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 역설하였다.

*친증처(親證處) ; 친히 (,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하다) .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휴헐지지(休歇之地) ; 모든 사량분별을 끊어 불성(佛性) 깨닫고 생사의 속박을 벗어난 자리.

*반야용선(般若龍船) ; 생사의 고해(苦海)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반야(船若, 지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彼岸) 극락정토로 중생들을 건네 주는 반야바라밀의 [] 말한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 이런 의리선(義理禪)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

 

*노바심절(老婆心切) ; 노파(老婆) 자식·손자를 애지중지 하듯이, 스승이 수행자에게 나타내는 자비심으로 지극히 친절(親切)하다는 .

 

Posted by 닥공닥정
하안거 해제 백종2015. 9. 20. 13:34

§(245) 깊은 우물 속에  퍼다 부어 메우듯이 정진해야 / ‘ 공부는 기어코 되고야만 된다 확신 / (게송)남북동서무정착~ / (게송)취면성와불귀가~.

 

오늘 해제를 하고서 걸망을 지고 어디를 가시건 간에 가시는 발걸음 한 걸음,  걸음 걷는 것이 그게 바로 선방(禪房)입니다.

참으로 살아있는 공부! 왕래하고 여러 가지 복잡한 생활 속에서 가다듬고 정진하는  참선이야말로 힘이 있고 살아있는 공부라  것입니다.

공부를 할진대는 어떻게 해야 하냐 하면 『마치  깊은 우물 속에다가 눈을 져다가 자꾸 부어 가지고  우물을 메울려고 하듯 해라』

 

 공부는 『자기가 자기를 찾아서 자기를 깨닫는 법』이기 때문에 어떠한 방법으로 어떻게 하느냐 그것이 문제이지, 『기어코 되고야만 만다』고 하는 것을 확신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보증(保證)을 서셨고,  맹세를 하셨습니다. 기어코 되는 것이라고 보증을 하셨습니다. 내가 나를 찾는 것인데, 그것이   리가 없는 것입니다.

 

서장(書狀) 대혜(大慧) 스님이 누누이 말씀하시기를  맥혀서 답답하고 몸부림쳐지고  그러한 경지야말로 견성성불할  있는 좋은 계기가  것이며, 거기에서 공부가 진취할 징조이다. 그러니까 그런 경계를 당하거든 '짜증을 내고,  공부가 안될라나 보다'하고 자포자기 하지 말고, 그러한 고비를 어쨌든지 지혜롭게  공부를 뽑아 나가도록 그렇게 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우리를 낳아 주신 부모와 조상을 위해서,  우리의 몸에서 태어난 우리의 자손들을 위해서우리는 하루빨리 고향에 돌아가서 잡초에 우거진 밭과 논을 갈아 가꾸어서 영원히 쓰고도 남고, 쓰고 남아서 모든 사람에게 베풀  있는 『마음의 농사(農事)』를 부지런히 가꾸고 가꾸어야  것입니다.

 

**송담스님(No.245)—84(갑자년) 하안거해제 법회(84.08.11) (용245)

 

(1) 약 22분.

(2) 약 14분.

 

(1)------------------

 

오늘은 7 15 여름 안거(安居)의 해제날입니다.

 해제날에는   동안 참선 수행하던 모다 스님네들이 해제를 하고,  걸망을 지고서 스승을 찾아가기도 하고 도반을 찾아가기도 하고 그러는 날입니다.

 

결제 동안에는 출입 왕래를 금하고  한군데 모여서 규칙을 지키면서 겨울  , 여름  달을 발을 묶어 놓고, 그리고서 정진을 하다가 해제를 맞이하면 걸망을 지고 팔방 사방으로 나가는데,

 

원래  결제법(結制法)이라 하는 것은—안거법(安居法)이라 하는 것은,

인도에는 우기(雨期), 비가 많이 오늘 계절이 있어서  비를 피하기 위해서 부득불 기원정사(祇園精舍) 죽림정사(竹林精舍) 이런 절에서 비를 피하기 위해서, 절에서 모두 모여 가지고 정진하다가,

 

우기(雨期) 지나면 다시  절에서 떠나 가지고 숲속에 들어가서숲속에서 자고  탁발해서 공양을 하고 숲속에서 밤새 정진을 하고, 그렇게 수도 생활을 하기 때문에 결제, 해제라고 하는 것이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참선(參禪)을 해서 빠른 시일 내에 결정코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하고자 할진대는,

오늘 해제를 하고서 걸망을 지고 어디를 가시건 간에 가시는 발걸음 한 걸음,  걸음 걷는 것이 그게 바로 선방(禪房)입니다.

 

결제 동안에는 죽비를 치고 정진을 하고, 해제 하면 여기저기 걸망을 지고 다니니까 참선을 등한히 해도 되냐 하면 그게 아닙니다.

참으로 살아있는 공부! 왕래하고 여러 가지 복잡한 생활 속에서 가다듬고 정진하는  참선이야말로 힘이 있고 살아있는 공부라  것입니다.

 

공부를 할진대는 어떻게 해야 하냐 하면 『마치  깊은 우물 속에다가 눈을 져다가 자꾸 부어 가지고  우물을 메울려고 하듯 해라』

 

우물에다가 눈을   져다가 붓고    져다가 붓고, 수십 짐을 져다 부어도 물에 들어가면 눈이 녹아 버리고 녹아 버리고  가지고, 암만 수백 짐을 져다 부어도 우물이 차오르지를 않는다 그말이여.

눈을 긁어서 뭉쳐서 져다가 붓고  져다가 붓고 그러기를 몇백 짐을 하는데, 그러다 보니 땀이 나고 그렇지만 춥고 더웁고  것도 상관없이 계속해서 져다 부어.

 

하루 종일 져다 붓고, 해가 져도 져다 붓고, 밤새도록 밤잠을  자고 져다 붓고,

동쪽에서 져다 붓고 서쪽에서 져다 붓고, 그저 이리 져다 붓고 저리 져다 붓고, 속이 상해도 져다 붓고, 기분이 좋아도 져다 붓고, 그저 배가 불러도 져다 붓고, 배가 고파도 져다 붓고.

이리  가지고 1년이 넘어가, 이태가 넘어가,  ,  세가 되어 가지고 몸을 바꾸어 가면서 져다 부어.

 

마지막까지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이,   시간도 등한히 지낸 일이 없이, 자나 깨나 그저 눈을 어쨌든지 많이 져다가 부어서, 기어코  우물을 갖다가 눈으로써 가득 메울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져다 붓다가 보면,

 

어느 땐가는 자기가 눈을 퍼다 붓는다고 하는 생각도 없고, 우물 속에 눈이 올라왔나  올라왔나  것에도 그런 생각도 없고, 인제 지쳤다는 생각도 없고, 그만할려는 생각도 없고,

그저 인자 완전히 거의 아주 열중(熱中)을 하다 하다 못해 가지고 무심(無心)에 들어가 버린다 그말이여.

 

조끔   져다 붓고 인제  찼나?’  들여다 보고, 조끔 져다 붓고 인제는 조금  올라왔나?’ 이런 것이 아니라 나중에는 올라오고  오고가 문제가 없어.

그저 죽을    눈이 무겁고 가벼운 것도 따지지 말고, 차고   것도 따지지 말고, 계속 져다 부은다 그말이여. 이러한 정도의 열성(熱誠)을 가지고 참선을 해야만 된다 그말이여.

 

겨우  철에 와서  흉내  내고 앉아서 해 보면 처음에는 망상이 들입다 일어나더니, 나중에 망상이 조금 잠잠하니까  잠이  오고, 잠이  깰만 하면 망상이 일어나고,

그렇게 조금 해보고서 암만 참선을 해도  됩니다. 저는 인연이 없는 갑습니다. 옛날에 관세음보살, 아미타불 부를 때는 잠도   오고  좋더니, 참선이 좋다고 해서 해보니까  잠만 퍼오고 망상만  일어나고 아무 재미가 없습니다 이러거든.

 

그렇게     그나마도 위법망구(爲法忘軀)적으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서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한두  해보고서 ‘그렇게 안된다’고 피렴심(疲厭心) 내고, 자기는 인연이 없느니, 근기가 약하느니, 이래 가지고 스스로 자포자기를  마음을 낸다면, 어떻게 그런 사람이 도업을 성취할 수가 있겠느냐.

 

깊은 우물에다가    퍼다 붓고서 눈이 차오르지 않는다’고,

 허부렁한  퍼다 부어 봤자 물에 닿자마자 금방 녹아 버리고 녹아 버리고 하니, 그것이 무슨 놈의 차오를 것이냐 그말이여.

 

 

깊은 우물에  퍼다 붓듯이, 해가 넘고 백천만 겁이 지내도 차고  차고 하는 것도 따지지 말고 계속 퍼다 부을만한 그러한 끈기를 가지고  나간다면 어찌   것이냐 그말이여.

마침내는 져다 붓는 놈이나, 우물이나, 눈이나, 전부가  하나가 되어서 홀연(忽然)히 어떠한 계제(階梯)를 만나면은 툭! 터져 가지고, 결국은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이다.

 

 공부는 『자기가 자기를 찾아서 자기를 깨닫는 법』이기 때문에 어떠한 방법으로 어떻게 하느냐 그것이 문제이지, 『기어코 되고야만 만다』고 하는 것을 확신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보증(保證)을 서셨고,  맹세를 하셨습니다. 기어코 되는 것이라고 보증을 하셨습니다. 내가 나를 찾는 것인데, 그것이   리가 없는 것입니다.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물건은 손만 집어넣으면 거기에 있는 것이고,

항아리 속에 자라를 넣어 놓은 거와 같아서,  자라란 놈이 아무리 버르적거려 봤자, 밤에 가봐도  항아리 속에 들어 있고, 낮에  봐도 항아리 속에 들어 있듯이, 내게 있는 것을 나를 찾는 것이여.

 

오히려 보지 아니할려고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일지언정, 찾을려고 하면 바로 언제나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남북동서무정착(南北東西無定着)이요   생애지재일지공(生涯只在一枝)이로다

나무~ 아미타불~

설두세작연하미(舌頭細嚼烟霞味)하고   직입천봉갱만봉(直入千峰更萬峰)이니라

나무~ 아미타불~

 

남북동서무정착(南北東西無定着)이요  생애지재일지공(生涯只在一枝)이라.

동서남북에 정착한 곳이 없어. 동쪽으로 가서도 공부하고 서쪽으로 가서도 공부하고, 동서남북 아무데라도 가서 공부를  수가 있다 그말이여.

 

일정한 데에 정착이 없기 때문에 생애(生涯)가 지재일지공(只在一枝筇)이여

생애가 다못 이 육환장(六環杖)—다 옛날에는 스님네들이 어디 행각을  때에는 육환장을 짚고 댕겼던 것입니다. 다못  지팡이 하나에 달려 있다 그말이여.

 

설두(舌頭) 세작연하미(細嚼烟霞味). 혀끝으로는 무엇을 먹고 사느냐 하면은 구름과 안개 연기를 먹고 살아. 산중으로 들로 다니니 자연히 좋은 공기에다가 안개 연기를 마시고   밖에는 없고,

직입천봉갱만봉(直入千峰更萬峰)이다. 바로 () 봉우리, 다시 () 봉우리를 향해서 들어가더라.

 

수행하는 것이 한때는 공부가 순일(純一)하게 잘되어 가다가 성성(惺惺)하게 잘되어 가다가,  ! 변해 가지고  화두가   들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시간이 지루하고 몸이 뒤틀리고 이런다 그말이여.

 

 놈을 포행도 하고 단전호흡도 하고 찬물로 세수도 하고 하면서,  고비를 어렵게 넘기고 나면 한결 정진하기가 수월해지는데, 수월해져 가지고 떠억 화두를 들면 화두가 성성하게 순일하게  들리고,

이만 했으면 , 공부 이대로 주욱 되어 가면 좋겠다하는 생각을 먹자마자  뚝! 변해 가지고   공부가 안되고.

 

때로는 잘되다가 때로는 안되다가,  안되다가  괜찮게 되다가, 괜찮게 되다가   안되고,

이러기를  봉우리 넘으면  내리막길이 있고, 내리막길을  가서 보면  오르막길이 있고, 오르막길을  오르면  내리막길이, 이것이 마치  봉우리를 넘어가면 다시   봉우리가 있듯이,

 

 모양이 마치 길을 가는 데에 봉우리 밖에  봉우리가 있고,  봉우리 밖에  봉우리가 있는 것이 우물 속에다가 눈을 져다 부은 것처럼 그렇다 그말이여.

 

만날 해도 무엇이 얻어지거나 나타나거나 보이는 것이 없이, 만날 해 갈수록  맥혀서  수가 없고 답답할 뿐이다 그말이여. 

  맥혀서  수가 없고 답답한 것이 공부가 잘못 되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 그렇게  맥혀서  수가 없고 답답하고 그러니까, 인연이 없어서 공부가  못된  알고 걱정들을 하시고, 와서 호소를 하시는데,

사실은  맥혀서  수가 없고 답답한  경계가 공부 옳게 되어 가는  상태인 것입니다.

 

무엇이 환하고, 무엇이 얻어진 것이 있고 알아진 것이 있고, 그러면은 그것이  좋을  같은데,

그건 공부가 잘못 비뚤어져 들어가는 것이고, 어문  데에 처박혀서, 멧돼지 쫓아가다가 한눈 파는 거와 마찬가지여서,

 

멧돼지를 잡으러 쫓아가면 한눈을 팔지 않고 계속  멧돼지 뒤를 따라서 잠깐도 한눈 팔지 않고 쫓아가야지, 멧돼지 잡으러 쫓아가다가 골마리를 까고 이를 잡고 있어야 되겠느냐 그말이여.

그러다 보면 멧돼지는 순식간에  몇백 미터 도망가 버리면, 멧돼지는 영영 놓쳐 버리고 마는 것이다.

 

잘된다고 좋아하지  것이며,  안된다고 짜증을 내지 말고, 잘되어도 지혜롭게  단속해 나가야 하고, 답답하고 그러더라도 조금도 짜증을 내지 말고 지혜롭게  고비를 심호흡, 단전호흡을 하면서  넘기면, 그게 공부가  걸음  수월하게 되어가는 것이니까.

 

서장(書狀) 대혜(大慧) 스님이 누누이 말씀하시기를  맥혀서 답답하고 몸부림쳐지고  그러한 경지야말로 견성성불할  있는 좋은 계기가  것이며, 거기에서 공부가 진취할 징조이다.

그러니까 그런 경계를 당하거든 '짜증을 내고,  공부가 안될라나 보다'하고 자포자기 하지 말고, 그러한 고비를 어쨌든지 지혜롭게  공부를 뽑아 나가도록 그렇게 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해제를 하시고 어느 선방에를 가시던지, 다시  우리 용화선원에 () 결제에 들어오시던지,  신도 여러분들께서도 지난   동안  무더위 속에서   없이  정진들을 하셨습니다.

오늘 해제를 하시고 댁에 가시더라도 여기서   동안 지내시던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정진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셔서 세수하시고 떠억  시간  시간씩 정진을 하시고, 낮에도 그저 손자 보면서, 가정  도우면서, 집에 계시거나 어디 외출을 하시거나, 걸음 걸음이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시기를 바라고,  다시 금년 겨울 결제 때가 오면은 또 와서 방부를 들이시고 정진을 하시기를바랍니다.

 

금년 겨울 결제는 금년에 10 달에 가서 윤달이 들어서 10월이 첫째 10월이 있고,  다음에 10월이 있습니다. 10월에 결제를 할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달이라고 하는 세월이 있습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는 그러한 계절인 만큼 어쨌든지,   동안 애써서 여름   동안 하시다가 그냥 팽개쳐 버리고 그럭저럭 지내면 애써서 쌓아올린 탑이  와그르르 하니 무너져 버리거든.

 

10월에 가서 다시 밑에부터서 다시 쌓을라면   힘이  것입니다.

 탑을 갖다가  허물어지지 않도록 간수를 하시고, 댁에 가서도 계속해서  탑을 쌓아올려 놓으시면 10월에 가서  뒷을 이어서 하신다면 훌륭한 탑을 쌓으시게  것입니다.

 

결제  모여서 정진하신 것은 해제  생활 속에서 시끄러운 속에서 잘하기 위해서 결제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도(道)에 있어서는 승속(僧俗) 없는 것입니다. 스님네라고 해서  도를 닦아야 하고, 세속에 계신다고 해서 도를  닦아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속에 계신 분일수록에 도를  열심히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냐? 세속에 사시면 아무래도 본의 아니게 이리저리 얽혀서 업을 많이 짓게 되고  닦을 기회는 점점 희박하기 때문에, 그럴수록에  배를  노력을 하고 애를 써야만 다소 공부가 되어갈  있기 때문에,

내생(來生) 일을 생각하고 장차 일을 생각해서  열심히 공부를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4441~6626)

 

 

 

 

 

(2)------------------

 

오늘은 백종날, 우란분(盂蘭盆) 맞이해서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 천도(薦度)해 드리는 그러한 날입니다.

 법문이 끝나면 우리의 선망부모와 인연 있는 모든 영가(靈駕)들을 천도하는 법요식이 시작이 되겠습니다.

 

우리의 선망부모가 지옥문이 열리고, 아귀도의 문이 열려서 모다  도량에 오셨는데, 여기에 동참을 하시지 아니하면 영가들이 왔다가  아들,  며느리,  가족이  왔을 때에 얼마나 쓸쓸하고 허전하게 생각하시겠습니까?

 

다행히  더움을 물리치시고 원근에서—강원도, 전라도, 경상도  데에 계신 분들이—여기에 만년 위패(萬年位牌) 모신 만년위패 법보재자들이 이렇게  많이 운집을 하셔서,

우리의 조상과 선망부모는 대단히 흐뭇하게 생각하시고, 여기서 법문도  들으시고  공양도 배불리 맛있게 드시고, 그리고서 좋은 곳으로 이고득락(離苦得樂) 하시고,

다시  인도(人道) 환생(還生) 하실 때에는,  정법문중(正法門中)에 다시 돌아오시게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한 선망부모를 생각할수록에 우리는 살아계신 부모님, 시부모님께 효도를 하시고,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들은 나한테, 인제 봐라. 법문을 들어 봐라. 너희들이 당연히 효도를 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래 가지고 목에다 힘을 주고서, 인자 아주  효도를 받을 폭을 대고 뒤로 자지바지 하실 것이 아니라 부모가 반효자 노릇을 해야 한다’하는 그러한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이 있습니다.

 

효도를  할라야    없도록 어른들이 그렇게 성격을 쓰시고 행동을 하신다면, 어떠한 아들이나 어떠한 며느리라도  어른한테는 효도를  할라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말씀을  것도 없이 첫째, 어른들이 마음을 아랫 사람들이 받들기에 편하도록 성격을 쓰셔야 하는 것입다.

너무 성격을 까다롭게 쓴다든지, 괴팍하게 쓴다든지, 사사건건이 간섭을  가지고 신경을 돋군다든지 그러지를 말고,

 

항시 그저 해다 주는 대로  잡숫고, 해다 드린 대로  입고 그러면서 생각 생각이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하시고,

아들이나 손자나 손녀나 한결같이 인자한 마음으로 상대를 하신다면, 아무리 신경질이 있는 며느리라 하더라도  시어머니 시아버지한테 효도를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외손자나 외손녀를 보면 속속들이 싸두었던 돈도 주고 맛있는 과자도 주고 하면서, 자기 친손자한테는 인색하기가 말로  수가 없고, 그리고 무엇만 잘못한다고 사사건건이 간섭을 하고,

그렇다면 어느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오래오래 사시기를 바라며, 우리 시어머니가 좋다고 기쁜 마음으로 받들어 모실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첫째, 마음을 평등하게 가지실 것이며, 마음을 선량하고 부드럽게 가지실 것이며, 같은 말이라도 듣기 좋게 하실 것이며, 사소한 잔소리는 어지간하면 삼가해 버리고,

항시 화두를 들고서 하루 하루를 그렇게 지내신다면, ‘우리 어머니 오래오래 사셔요  며느리마다  효부(孝婦)가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효부 효자가 되도록 해 주시면 당신 지내기도 좋고,

구태여 며느리를 갖다가처음에는 양과 같은 며느리를 데려다가 찌럭 찌럭  가지고 독사 며느리를 만들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 고부간(姑婦間)에 좋느니 나쁘니  것이 아닙니다.

 

 원인은 며느리한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시어머니한테도 반(半)은 원인이 있는 것이니 만큼 시어머니도  정법을 믿고 정신혁명을 일으켜서 스스로 마음을 편안히 가지신다면, 며느리도 효부가 되어서  받들어 모실 것입니다.

 

언제나 법회 때마다 며느리 보고만 효도를 해라, 자식 보고만 효도를 하라’고 계속 강조를  왔는데,

오늘은 어찌 늙은이가 듣기에  숙제를   같아서, 괜히 오늘 왔다하고  생각하실런지 모르지만,

노인들도 마지막 가실 길을ㅡ앞으로 사시면 10년을 사실런지, 20년을 사실런지 또는 5 밖에 못 사실런지, 또는 금년에 해를  넘기고 가실런지 그건 생사는  수가 없습니다마는,

 

가실 때까지 어쨌든지 자기가 평생에  오던 못된 성격이 있다면, 그것을 갖다가 ! 고쳐서,

!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실란가? 영판 마음이 변했다. 아이고, 어째서 돌아가실라나? 저렇게만 성질이 좋으시다면 돌아가시지 말고 오래오래 살아주셔야 할텐데...’

 

이렇게 마음을 갖다가 ! 돌이켜서 혁명을 일으키셔서 여생(餘生)을 정말 성스럽고 고상한 품위를 가지시고 사시도록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

 

듣기 좋은 말은 도적놈이요,  귀에 듣기 싫은 거스른 말은 나의 스승이요, 은인이다하는 성현의 말씀이 있습니다.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대로 마음씨를 바로 먹고 정법 믿는 불자로서 올바르게 살아가고,

연세가 많으신 분은 많으신 대로 내가 인제 80이나 되었는데  버릇을  년이 고칠  아느냐 이러한 생각을 가질 것이 아니라, 80 아니라  살이라도 고칠 것은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금생에 고쳐 놓지 아니하면 내생에는  고약한 인간으로 태어날 거여. 고약한 성격을 가지고 태어나면 누가 대우를  주며, 누가 받들어 주며, 누가  사람을 좋다고  것이냐 그말이여.

그러니 하루 있다가 돌아가시더라도 못된 성격은 참회(懺悔)하고 고쳐야 하고,  시간 후에 돌아가시더라도 못된 성격은 고쳐 놓고 숨을 거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취면성와불귀가(醉眠醒臥不歸家)하고   일신유락재천애(一身流落在天涯)로구나

나무~ 아미타불~

불조위중유부주(佛祖位中留不住)하고   야래의구숙노화(夜來依舊宿蘆花)로구나

나무~ 아미타불~

 

취면성화불귀가(醉眠醒臥不歸家)하고, 잔뜩 술에 취해서 잠을 자고  겨우 잠에서 깨어 가지고는  누워서 잔다. 그러면서 집에를 돌아가지를  .

일신유락재천애(一身流落在天涯).  몸이 동서 사방으로 유랑(流浪)을 하면서  하늘 갓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하늘 갓에 유랑을 하고 있더라.

 

우리가 본래는 부처님인데,  생각 잘못 먹은 탓으로 해서 우리의 본고향에서부터서 떨어져 나와 가지고 정처없이 타향살이 신세를 면치를 못하고 있는 것을 비유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부모가 있고, 내 집이 있고 하니까 내 고향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실런지 모르지만 성불(成佛)을 하기 전에는 어디  있던지 간에 타향살이여.

자기의 본마음 자리를 깨닫지를 못하고 중생의 오욕락(五欲樂)과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세계에서 계속해서 방황을 하고 있는 신세다 그말이여.

 

불조위중유부주(佛祖位中留不住)하고, 부처와 조사(祖師)의 번듯한  자리는 마다하고 나와서,

야래의구숙노화(夜來依舊宿蘆花). 오늘 밤에 갈대꽃 밭에서  밤을 지새게 되었어.

 

언제까지  타향살이 신세! 우리의 조상이 사시고 부모가 사시고, 그런 우리의 마음의 본고향으로 돌아가게 될런지.

계속 업(業)만 퍼짓고 생사윤회(生死輪廻)를 끝없이 하는 동안에 고향 땅은 잡초에 우거지고 누가 돌보아  것인가?

 

우리 자신을 위해서, 우리를 낳아 주신 부모와 조상을 위해서,  우리의 몸에서 태어난 우리의 자손들을 위해서,

우리는 하루빨리 고향에 돌아가서 잡초에 우거진 밭과 논을 갈아 가꾸어서 영원히 쓰고도 남고, 쓰고 남아서 모든 사람에게 베풀  있는 『마음의 농사(農事)』를 부지런히 가꾸고 가꾸어야  것입니다.(6947~8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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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거(安居 편안할 , 있을 )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인도의 불교도들은 4 15(또는 5 15)부터 3개월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 15일부터 7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 15부터 다음해 1 15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 한다.

*모다 ; ‘모두, 전부 옛말.

*기원정사(祇園精舍) ;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정사의 약어(略語). 중인도 코살라국() 수도 사위성(舍衛城:슈라바스티) 남쪽 1.6 km 지점에 있던 기타태자(祇陀太子) 소유의 동산에 지은 .

이는 기타태자의 동산에 수달(須達:給孤獨長者) 지은 승원이라는 뜻인데,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 고독한 이들에게 보시를 많이  부자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죽림정사(竹林精舍) ; 마가다국(magadha) 왕사성(王舍城) 부근에 있던 불교 최초의 사원. 붓다가 깨달음을 이루고 왕사성을 찾았을 , 칼란다(kalanda) 장자(長者) 붓다에게 기증한 죽림 동산에 빔비사라(bimbisāra) 왕이 지어 붓다에게 바친 정사.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成佛].

*열중(熱中 더울·열중함 /가운데 ) ;  가지 일에 정신을 쏟음.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열성(熱誠 더울·열중함 열/정성 성) ; 열렬한 정성.

*들입다 ; 세차게 마구.

*위법망구(爲法忘軀) ; (, 진리) 구하기 위해[] [] 돌보는 것을 잊는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하나 ,없을 ,섞일 ) 대상  자체가 순일(純一)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피렴심(疲厭心 피곤할 /싫어할 /마음 ) ; 피곤해하거나 싫어하는 마음.

*허부렁하다 ; 서부렁하다(묶거나 쌓은 것이 든든하게 바싹 붙지 않고 느슨하다).

*홀연히(忽然히 문득·갑자기 /그러할 ) ; 미처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갑작스럽게.

*계제(階梯 층계·사다리·실마리·오를·인연 /사다리·실마리 ) ; 어떤 일을   있게  형편이나 기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게송) 남북동서무정착~’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 ‘送慧聰禪子혜총선자(慧聰禪子) 보내며 게송 참고.

*육환장(六環杖) ; 산스크리트어 khakkhara 수행승의 지팡이. 머리 부분에 주석(朱錫)으로   고리가 있고, 거기에 여섯 개의 작은 고리가 끼워져 있어 흔들면 소리가 난다. 산길을   흔들어 짐승이나 해충을 쫓고, 걸식할  흔들어 자기가  것을 알린다. 석장(錫杖)이라고도 한다.

*어문 ; '', '다른', '엉뚱한' 사투리.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대혜서(大慧書)·『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62()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 역설하였다.

*산철(散철) ; 본철(本철하안거, 동안거) 아닌 시기.

*()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승속(僧俗) ; 스님과 스님이 아닌 속인(俗人) 아울러 이르는 .

 

 

 

 

 

------------------(2)

 

*우란분(盂蘭盆) ; 우란분(盂蘭盆) 산스크리트어 ullambana 음사로 구도현(救倒懸)이라고 번역되기도 하는데, () 식기의 뜻으로  음식을 죽은 자의 영혼에 바쳐 거꾸로 매달려진 고통을 구한다는 .

석존 당시 목건련(犍連)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제도하기 위하여 음력 7 15일에 백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대중에게 공양한 데서 연유하며 백중(百衆)이라고 한다.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사람의 선망부모가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 수천만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부모가 바로  사람의 부모고,  사람의 부모가   부모여서,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 하는 것입니다.”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이고득락(離苦得樂) ; 괴로움을 벗어나서 즐거움을 누림.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자지바지 ; 몸에 너무 힘을 주어,  전체가 긴장으로 인해 뻣뻣하게 되어 있는 모습.

*효부(孝婦 효도 효/며느리 부) ; 시부모를 섬기는 정성이 지극한 며느리.

*참회(懺悔 뉘우칠 , 뉘우칠 )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부끄러워할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게송) 취면성와불귀가~’ ; 송나라  오조법연(五祖法演) 선사의 제자 불안(佛眼) 용문청원(龍門淸遠) 스님의 게송.

*유랑(流浪 흐를·떠돌 /물결·떠돌아다닐 ) ; 일정한 거처가 없이 떠돌아다님.

* ; ‘(바깥쪽 경계가 되는 가장자리 부분이나  부근)’ 사투리.

*천애(天涯 하늘 /가장자리 ) ; ①하늘 .  변방(邊方). ②아득히 떨어진 타향(他鄕). ③이승에 살아 있는 핏줄이나 부모나 없음을 이르는 .

*성불(成佛 이룰 , 부처 )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 얻음.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 ; 자기의 뜻에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조사선법(祖師禪法)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 같다.

*생사윤회(生死輪廻  /죽을 /바퀴 /빙빙돌 )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 죽고()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 돌듯이()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5. 7. 8. 16:42

 

 

§(232) (게송)화소산전설천기~ / 결제(結制)의 뜻 / 파정(把定), 방하(放下) / 공부가 안될 때가 한 계단 높이 올라가는 중요한 때이니 지혜롭게 잘 대처해야.

석 달 동안 대중이 모여서 시간을 짜 가지고 그 시간대로 규칙 생활을 하면서 정진을 하는 것은 해제 동안에 일정한 규칙 없이 자유롭게 생활을 하는 가운데에서도 정진이 여일(如一)하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러한 특별한 기간 동안 특별한 시간을 짜서 규칙 하에 대중이 정진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고요한 가운데에서나 또는 시끄러운 가운데에서나 한결 같이 화두를 거각(擧却)해서 물샐틈없이 단속해 나간다면 이것이 바로 고요한 데에 처백히는 일도 없고, 시끄러운 데에 동요됨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정진을 알뜰히 단속해 나가게 되면 선방에 앉았거나, 도량에 나가거나 또는 여기저기 행각을 하더라도, 바로 그때 그 자리가 결제 중에 선방(禪房)에서 입방선(入放禪)을 하면서 지낸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훨씬 더 정진이 성성(惺惺)하게 잘되어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대혜 스님의 서장(書狀)에 보면, 그 공부가 잘 안되고 지루하고 답답하고, 뒤틀리고 먹먹하고 영 애를 먹을 때 그 때가 가장 중요한 때라고 여러 차례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중요하다고 하냐 하면, 그게 공부가 잘못 되어 가지고 그런 것이 아니다 이것입니다. 그동안 공부해 가지고 한 고비 넘어갈려고 할 때에 그러한 경계를 만나게 된다 그랬습니다.


**송담스님(No.232)—84년 동안거해제 법어(84.02.16) (용232)

 

(1) 약 21분.

(2) 약 15분.


(1)------------------

화소산전설천기(花笑山前泄天機)하고  조가임외화무생(鳥歌林外話無生)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두두자유무궁의(頭頭自有無窮意)요  득래무처불봉원(得來無處不逢原)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화소산전설천기(花笑山前泄天機)요, 꽃은 산 앞에서 웃어 가지고 천기(天機)를 누설(漏泄)하고 있고,
조가임외화무생(鳥歌林外話無生)이로구나. 새는 수풀 밖에 노래해 가지고 무생(無生)을 말하고 있드라.

두두자유무궁의(頭頭自有無窮意), 머리마다, 낱낱이 꽃이 웃는 것이나 새가 노래하는 것이나 모두가 다 스스로 한없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득래무처불봉원(得來無處不逢原)이로구나. 그 뜻을 깨달아 버리면, 그 한없는 뜻을 얻어 오면 그 근원을 만나지 아니하는 곳이 없어.


오늘은 계해년 10월 15일에 결제(結制)를 해 가지고 90일이 지내서 갑자년 정월 15일에 해제(解制)를 맞게 되었습니다. 삼동안거(三冬安居)의 해제인 동시에 백일기도 회향날이기도 합니다.

지난 겨울 동안 유독 날씨가 춥고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그랬습니다마는 대중스님네와 보살선방 보살님네들이 모두가 그러한 추위와 바람과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다 극복을 하시고 아무 장애 없이 삼동 안거를 마치고 오늘 이렇게 해제를 맞이했습니다.

파정(把定)하면 구름이 골짜기 어귀에 가로 놓였고, 방하(放下)하면 달이 차운 못에 떨어진다.
파정(把定)은 죽비(竹篦)를 치고 입선(入禪)을 하는 거, 입정(入定)을 하는 것이고, 방하(放下)는 죽비를 치고 방선(放禪)을 하는 것인데,

안거를 시작하면, 결제를 하면 ‘죽비를 친다’고 해서 화두(話頭)를 들고 정진(精進)을 하고, 또 ‘방선을 했다’고 해서 화두를 놓아 버리고 잡담하고 그럭저럭 지내고 그런 것이 아니라,
죽비 치고 입선하고, 죽비 치고 방선한 것은 많은 대중이 모여서 규칙 생활을 하기 위해서 부득이 시간 맞추어서 죽비를 치게 되는 것이지, 화두를 들고 안 들고 또는 정진을 하고 안 하고 하는 데에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것이다.

비단 90일 동안, 석 달 동안 이렇게 안거를 하고 정진할 때만 해당된 것이 아니고, 오늘 이렇게 해제를 한 뒤에도 설사 여러분이 가정에 돌아가시거나, 해제를 하고 걸망을 지고 행각(行脚)을 나서시건 간에,
해제 동안에 행각을 하면서 도중에서 죽비 누가 쳐 줄 사람도 없고 칠 필요도 없겠지만, 그러면 죽비를 안 치니까 참선을 안 하고 화두를 안 드느냐 하면 그게 아니거든.

석 달 동안 대중이 모여서 시간을 짜 가지고 그 시간대로 규칙 생활을 하면서 정진을 하는 것은 해제 동안에 일정한 규칙 없이 자유롭게 생활을 하는 가운데에서도 정진이 여일(如一)하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러한 특별한 기간 동안 특별한 시간을 짜서 규칙 하에 대중이 정진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원래 결제(結制)는 인도에서 장마철에 비가 너무너무 연속해서 비가 내리니까 숲속에서 정진을 할 수가 없어서,
부득이 비가 많이 오는 계절에는 국왕이나 또는 장자(長者)나 그밖에 신심 있는 분이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을 위해서 기원정사라든지 죽림정사라든지 그러한 선방을 지어드린 그 선방에서 비를 피하기 위해서 그 선방에 들어가서 대중 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서 우기(雨期)가 끝나면 각기 이리저리 흩어져서 숲속에서 자고, 숲속에서 정진하고, 인연 따라서 설법하고, 공양은 다 탁발(托鉢)을 해서—발우(鉢盂)를 들고 하루 한 끼씩 얻어 자시고 그러면서 정진을 한 것이 그것이 결제 안거(安居)의 유래인데,

중국, 한국, 일본, 이 북방으로 오면 여름에 장마철뿐만이 아니라, 겨울이 돌아오면 또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해서 날씨가 차우니까, 또 자유롭게 다니면서 정진하기가 대단히 어려워서 그래서 이 북방으로 와서는 겨울 석 달 동안 안거를 또 하게 된 것입니다.

죽비를 치고 대중이 모여서 규칙 생활을 하고, 입방선을 할 때는 여럿이 같이 살고 법도에 맞춰서 하니까 특별한 생각을 내지 안 해도 저절로 대중 따라서 정진을 할 수밖에는 없고, 정진이 되어질 것입니다마는,

해제를 하게 되면 그런 엄격한 규칙이 없이 동서남북으로 행각을 하면서 자유롭게 지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입승이 되어야 하고, 자기 자신이 주지가 되어야 하고, 자기 자신이 원주가 되어야 하고, 자기 자신이 모든 소임을 한 몸에 다 가지고 소임을 하면서 정진을 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제 기간 보다 훨씬 더 해제 기간 중에 자기를 단속을 엄격히 하고, 스스로 자기에게 채찍질을 호되게 가하면서 하루하루를 지내야만 되는 그런 계절인 것입니다.

계절인즉슨은 앞으로 석 달 봄철 동안 더웁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가장 정진하기에 좋은 계절이 돌아옵니다.
그런 좋은 계절을 참! 알뜰히 단속을 하신다면,
결제 동안에 그 추위 속에서 웅크리고 하기 보다는 또 여름 결제 그 더웁고 땀나는 그 기간 동안 보다는 이 봄철 산철 동안과 가을철 산철 동안 그 기간에 박차를 가해서 충분히 정진을 한다면 정진에 큰 향상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해제 기간 동안에 득력(得力)을 하시고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깨닫는 그러한 예를 볼 수가 있습니다.


파정(把定)하면 마음을 가다듬고 정(定)에 들면 구름이 곡구(谷口)에 가로 놓이고, 방하(放下)를 하면, 방선(放禪)을 하면 달이 한담(寒潭)에 떨어지더라.

유변(有邊)에 움직인 바가 되지 아니하면 근경법(根境法) 중에 그림자, 자취가 없고—근경법이라 하는 것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과,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진(六塵), 육경(六境)—이 육근과 육진의 그 세계에 그림자와 자취가 끊어지는 것이고,

무변(無邊)에 적적(寂寂)한 바가 되지 아니하면—무변에도 집착을 하지 아니하면, 빠지지 아니하면, 자변나변(這邊那邊)에 응하는데 이그러짐이 없어.
형이상학적으로나 형이하학적으로나 조금도 이그러짐이 없이 응할 수가 있다.

그러면 ‘자변나변에 응해 가지고 이그러짐이 없다’한 도리는 어떠하냐 하면 달이 한담(寒潭)에 떨어진 것이고, ‘근경법 가운데에 그림자와 자취가 끊어졌다’하는 것은 바로 구름이 곡구(谷口)에 가로 놓인 것이다.
이렇게 바꾸어서 표현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해제 동안에 조용한 곳을 만나도 그 조용한 데에 집착하지를 말고, 시끄럽고 복잡한 그러한 환경을 만나더라도 거기에 휘말려 들어가지를 말고서,
고요한 데에도 화두가 성성적적(惺惺寂寂)해야 하고, 아무리 복잡하고 시끄러운 그러한 환경에 처하게 되더라도 거기에서 화두가 성성적적해서,

고요한 가운데에서나 또는 시끄러운 가운데에서나 한결같이 화두를 거각(擧却)해서 물샐틈없이 단속해 나간다면 이것이 바로 고요한 데에 처백히는 일도 없고, 시끄러운 데에 동요됨이 없을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 녹음 법문 가운데에도 정진하는 데에 나아가서, 고구정녕(苦口叮嚀)한 법문이 계셨지만,
우리는 죽은 사람이 아니요 목석(木石)이 아니기 때문에 눈으로는 무엇인가 눈을 뜨면 보이게 되고, 귀로는 무슨 소리인가 듣게 되고, 생각으로는 무슨 일이건 간에 생각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가라앉었다 하게 됩니다.

그러나 눈으로 무엇을 보든지, 귀로 무슨 소리를 듣던지, 생각에 좋은 생각이나 궂은 생각이나, 지내간 과거 생각이나 미래 생각이나, 어떠한 생각이 떠오르든지 거기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거기에서 바로 화두를 돌이켜 거각을 해 나가면 보였던 것이 보되 본 바가 없고, 듣되 들은 바가 없고, 먹되 먹은 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화두를 들되 껍데기로만 들고 속으로는 온갖 생각이 계속해서 파동을 치고, 속이 상할 때도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기는 들지만 화두는 들면서도 그 속상한 생각은 여전히 훨훨 타오르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단전호흡을 하면서 계속해서 화두를 들면 차츰차츰 그 화두를 관(觀)하는 힘이 강해지면, 한 생각 턱 돌이키면 여지없이 앞 생각은 끊어져 버리고 오직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만이 몰록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단속을 해 가면 나중에는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저절로 들어지게 될 것입니다.(처음~21분27초)

 

 



(2)------------------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저절로 들어지면서,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의단이 독로(獨露)하면서, 무슨 생각이 떠올라 와도 내가 그것을 상관을 안 하고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아니하고, 눈에 무슨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거기에 내가 생각을 주지 아니하고, 귀로 무슨 좋은 소리나 궂은 소리가 들려도 내가 거기에 신경을 써 주지 아니하고,
떠억 화두만을 갖다가 관(觀)해 나가면 그런 밖의 경계나 일어나는 생각이 그냥 나한테는 아무 충격도 주지 아니하고 별 영향을 주지 아니하고서 그냥 스쳐만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귓전으로 새소리가 스쳐 지나가고, 봄바람이 스쳐 지나가고, 꽃에서 나는 향내가 스쳐 지나간다 해서 그것 때문에 공부를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를 지어 나가면 설사 누가 속상하는 소리를 계속 내 앞에서 해 가지고 나의 오장을 계획적으로 뒤집어 놓기 위해서 끈질기게 달라붙는다 하더라도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 마음을 가다듬고 화두를 들고서 무심으로 상대하면, 상대방은 자기가 계속 그렇게 수작을 걸어오되 요쪽에서도 골을 내야 재미가 나서 더 달라붙을 텐데, 내가 화두를 떡 들고서 무심(無心)해 버리고 조금도 반응이 없으면 재미가 없으니까 그냥 입이 아퍼서 그만두어 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진하는 사람, 참선하는 사람이 근경법(根境法) 가운데에 그림자와 자취가 끊어지는 것이고, 자변나변(這邊那邊)에 응하되 이그러짐이 없는 데에 들어가는 최초의 단계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진을 알뜰히 단속해 나가게 되면 선방에 앉았거나, 도량에 나가거나 또는 여기저기 행각을 하더라도, 바로 그때 그 자리가 결제 중에 선방(禪房)에서 입방선(入放禪)을 하면서 지낸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훨씬 더 정진이 성성(惺惺)하게 잘되어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실 결제 동안에 여름에 더울 때는 더운 대로 시간 맞춰서 정진을 하면 방안에 공기는 탁하고 더웁고, 궁뎅이는 땀이 나 가지고 옷이 젖고 또 겨울에는 추워서 문도 마음대로 열어 놓지 못하고 문을 닫고서 입선하게 되면,
10분 20분 처음에는 괜찮지만 한 이삼십 분 지내면 사람들의 코와 입과 팔만사천 모공(毛孔)으로 나온 탄산가스(炭酸gas)가 방안에 가득차 가지고 벌써 그 가스 기운에 취해 가지고 전부 맑은 정신이 없이 혼탁해 가지고 혼침(昏沈)에 떨어져서 꾸벅꾸벅 졸게 됩니다.

잠이 와서 좀 잠을 깨고 싶어서 아무리 허리를 펴고 눈을 부릅떠 봤자, 워낙 공기가 탁해 가지고 금방 또 스르르 눈이 감기게 되고, 가스에 취하면 본인은 졸면서도 조는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화재가 나면, 잠이 깊이 들었을 때 화재가 나 가지고 연기가 차면, 타 죽게 되는 것이 그것입니다.

눈을 떠 갖고 있을 때에는 연기가 나고 그러면은 박차고 문을 열고 나가지만, 잠이 깊이 들은 상태에서 불이 나면 차츰 차츰 연기가 차 가지고 그 연기에 꽉 질식(窒息)을 하되 눈을 뜰 줄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아주 그냥 죽게 되는 것입니다. 연탄가스로 죽은 것도 역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 콧구멍에서 호흡하는 데에서 나오는 가스도 그것이 탄산가스라, 연탄가스보다는 조금 덜 독할런가 모르지만, 그것도 역시 오래 들어마시게 되면 머리가 몽롱해지고 나중에는 골도 아파지고, 뼛골도 쑤시게 되고 몸도 무겁게 되고, 감기같은 것도 잘 걸리게 되고, 한번 감기에 걸리게 되면 잘 낫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졸음이 오고 정신이 흐리터분 하고 탁하고 그러지만 죽비를 치고 입선을 했으니, 좀 밖에 나가서 찬바람도 쐬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어나서 들락날락하면 이십 명, 삼십 명 내지 오륙십 명이 각기 입선을 해 놓고 들락날락 하면 그 어떻게 되겠냐 그말이여.

그래서 다른 대중을 위해서도 참고 앉아서 그 죽비칠 때까지 시간을 기달라야 하고, 앉아서 기어코 그 시간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사실 그 흐리터분하고 혼침 속에서 억지로 그 시간을 채워야 하다가,

이렇게 해제를 하고 나가게 되면 죽비 칠 것이 없으니, 졸리면 나가서 포행(布行)하고 포행하다가 성성(惺惺)해지면 다시 와서 정진하고, 이 해제 동안을 잘 채찍질을 하면서 유용하게 정진을 해 가면, 그래서 득력(得力)하는 율(率)이 많게 되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공부는 ‘자기가 하는 것’이고 또 ‘자기를 위해서 자기가 하는 것’이라, 다른 사람을 위하고 다른 사람이 해줄 수가 없는 것이여.

그러기 때문에 공부가 잘되고 안되고를 따질 것이 없이 화두가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게 잘 들리게 되면 그럴수록에 더 알뜰하게 잘 단속을 해 나가야 할 것이고,
영 화두가 산만해서 집중력이 없이 잘 안 들리고, 답답하고 몸이 뒤틀리고 영 정진이 잡히지를 않는다 할지라도 그럴수록에 지혜롭게 그 고비를 단속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화두가 순일해서 잘 들릴 때도 대단히 그러한 경계를 잘 유지해 나가도록 주의를 해 나가야 되겠지만,
화두가 잘 안 들리고 답답하고 먹먹하고 영 애를 먹고 그럴 때에, 정말 그럴 때 일수록 그 고비를 지혜롭게 잘 넘겨야만 되는 것입니다.

대혜 스님의 서장(書狀)에 보면, 그 공부가 잘 안되고 지루하고 답답하고, 뒤틀리고 먹먹하고 영 애를 먹을 때 그 때가 가장 중요한 때라고 여러 차례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중요하다고 하냐 하면, 그게 공부가 잘못 되어 가지고 그런 것이 아니다 이것입니다. 그동안 공부해 가지고 한 고비 넘어갈려고 할 때에 그러한 경계를 만나게 된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흔히 그렇게 되면은, 그런 경지를 만나면 “하! 내가 업장(業障)이 두터워 가지고 영 공부가 안 되고, 이거.... ” 그래 가지고 짜증을 내고 번뇌심을 내고 한탄을 하고 그러는데 그렇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이것입니다.
‘인제 내가 이 고비를 잘 넘김으로써 공부가 한 계단 더 높이 올라간다. 그러한 중요할 때를 만났다’ 이렇게 생각을 함직하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경계를 만나면 절대로 짜증을 낼 일이 아니라 지혜롭게 그것을 대처를 하는데, 어떻게 하면 그것을 지혜롭게 대처를 하는 것이 되느냐?

첫째, 짜증을 내지를 말 것이고, 둘째는 그럴 때에 단전호흡(丹田呼吸)을 잘해서 그 고비를 넘기고,
또 혼침이 와 가지고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때에는 조용하게 일어나서 밖으로 나와 가지고 일직선으로 한 50미터나 30미터쯤 이렇게 직선으로 적당한 장소를 딱 정해 가지고 꼭 그 직선상으로만 왔다갔다 하면서, 한 10분 이렇게 왔다갔다 하면서 그 가운데에 화두를 들도록.

그러면 혼침도 없어지고 또 가슴이 그렇게 답답하고 몸이 뒤틀리고 그런 것도 다 없어지고 그래서 상쾌해지면 다시 또 자기 자리에 와서 정진을 하고,
또 정진을 하되 한 얼마 동안 괜찮으면 괜찮을 때까지 고대로 쪽 정진을 하고,

또 답답하고 못 견디면 또 단전호흡을 해서 얼마 동안 그놈을 단속을 해서 고비를 넘기다가,
그래도 영 답답하고 골이 아프고 먹먹하고 지루하고 해서 잘 안되면, 또 가만히 또 나와서 포행을 하고 이렇게 해서 그 고비를 넘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을 하다 보면 다시 깨끗하게 성성적적하게 화두가 현전(現前)하고, 순일하게 정진이 되어 가는데,
그전에 보다 훨씬 공부가 수월하게, 화두를 들려고 애를 쓰지 아니해도 화두가 일상생활 속에서 순일하게 들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무한한 공력을 들이고, 무던히 끈기 있게 이 고비를 넘기기를 수없이 이렇게 닦아 가는 것입니다.(21분30초~36분3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게송) ‘화소산전설천기~’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 함허득통 설의(說誼) 게송 참고.
*천기(天機) ; ①매우 중대한 기밀. ②만물을 주관하는 하늘이나 대자연의 비밀. 또는 신비.
*누설하다(漏泄-- 샐 루/샐 설) ; 은밀히 알리다.
*수풀 ; ①풀이나 작은 나무, 넝쿨 따위가 한데 엉킨 곳. ②나무가 울창하게 가득 들어찬 곳.
*무생(無生) ; ①생멸(生滅)을 벗어난 절대의 진리. 생멸(生滅)이 없는 도리. 곧 불생불멸하는 진여법성(眞如法性)을 알고 거기 안주하여 움직이지 아니함. 무생법인(無生法忍).
②아라한(阿羅漢) 또는 열반(涅槃)의 번역어. 번뇌를 없앤 경지를 말함.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삼동안거(三冬安居) ; 삼동(三冬, 겨울철의 석 달)에 하는 동안거(冬安居, 음력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말한다.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걸망 ; 물건을 담아서 등에 질 수 있도록 만든 자루 모양의 큰 주머니.
*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를 떠나서 선(禪)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함.
*여일(如一)하다 ; (사람의 언행이)처음부터 끝까지 꼭 같거나 변하지 아니하다.
*장자(長者) ; ①덕망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아 세상일에 익숙한 어른. ②큰 부자를 점잖게 이르는 말.
*우기(雨期) ; 일 년 중에 장마가 지거나 하여 비가 많이 오는 시기.
*탁발(托鉢 맡길 탁, 바리때 발) ; 도를 닦는 스님이 경문(經文)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보시를 받음.
수행자의 아집(我執)과 아만(我慢)을 없애고, 동시에 보시하는 이의 복덕을 길러 주는 공덕이 있다고 하여 부처님 생존 당시부터 행하였다.
*발우(鉢盂) ; 발(鉢)은 (산)patra의  음역어인 발다라(鉢多羅)의 준말로 식기, 우(盂)는 그릇을 뜻함. 음역어와 번역어의 합성어로, 수행승들의 식기를 일컬음.
*계절인즉슨 ; 계절로 말할 것 같으면.
*인즉슨 ; 자음으로 끝나는 체언의 뒤에 붙어, ‘~로 말할 것 같으면’의 뜻을 힘주어 나타내는 보조사.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파정(把定)하면 ~ 구름이 곡구(谷口)에 가로 놓인 것이다 ;
[참고]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제9 ‘일상무상분(一相無相分)’에서.
(금강경 본문)世尊 佛說我得無諍三昧人中 最爲第一 是第一離欲阿羅漢

- 야부 송(冶父 頌)  把定則 雲橫谷口  放下也 月落寒潭
- 함허 설의(涵虛 說誼)  不爲有邊所動 根境法中 無影迹 不爲無邊所寂 這邊那邊 應無虧 應無虧 月落寒潭 無影迹 雲橫谷口 把定 是 放行 是 把定放行 俱不是 一掃掃向三千外
*설의(說誼) ; 설의(說義). 의리(義理, 이유·도리)를 말함.
*자변나변(這邊那邊) ; 이쪽 저쪽.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거각(擧却 들 거, 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목석(木石) ; 나무나 돌과 같이 감정이 없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 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2)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오장을 뒤집다 ; ‘오장(五臟)을 긁다’, ‘오장을 건드리다’와 같은 표현으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비위를 건드려서 기분 나쁘게 하다’라는 뜻.
*무심(無心) ; ①아무런 생각이나 감정이 없음. ②세속적인 욕망이나 가치 판단에서 벗어난 마음 상태.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선실(禪室)과 같은 말. ②‘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모공(毛孔 털 모/구멍 공) ; 털구멍. 털이 나는 작은 구멍.
*탄산가스(炭酸gas) ; 탄소와 산소로 이루어진 가스. 대기 중에 소량 존재하는 무색, 무취의 기체로 공기보다 약 1.5배 무겁다. 탄소를포함하고 있는 물질이 탈 때나 동물이 호흡할 때 생기며 식물의 광합성에 사용된다.
*혼침(昏沈 어두울 혼, 잠길 침)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질식(窒息 막을·멈출 질, 숨쉴 식) ; 숨통이 답답하거나 산소가 부족해서 숨이 막히게 됨.
*포행(布行) ;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한가로이 뜰을 걷는 일.
*율(率) ; 비율(比率).
* ; ①(주로 ‘없다’, ‘않다’, ‘못하다’ 따위의 부정어와 함께 쓰여)아무리 애를 써 봐도 도무지. ②더할 나위 없이 완전히. 또는 아주 심하게.
*대혜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대혜서(大慧書)·『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62()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 역설하였다.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80년 동안거해제 법문에서.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저 뒤에서 쭉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쑥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쑥 내쉰다, 내보낸다’ 이러한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5. 6. 21. 16:11

 

 

§(세등39) (게송)황앵상수일지화~ / 무상설법(無上說法) / 일초직입여래지 / 선용기심(善用其心) / 화두 의단타파 확철대오하는 이 도리를 산승은 부처님을 모시고 증명합니다.

언제 어느 찰나에 깨달을런지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거각(擧却)하고 성성적적한 상태로 정진을 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공부가 잘 안되고, 화두가 잘 안 들리고, 답답하고 몸부림쳐지고 애를 먹을 때 그때, 선용기심(善用其心), 잘 그 마음을 잡드리해서 화두를 들고 공부를 지어 나가면 그 고비가 바로 깨달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고비다.

 

‘철저하게 무상(無常)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도업(道業)을 이루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생사(生死)가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고 하는 사실을 명심을 하셔서 1초 1초를 금쪽같이 아껴서 공부하고, 한 생각 한 생각 일어날 때마다 화두를 거각해서 등한(等閒)히 지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39)—임술년 하안거 결제 법어(82.04.17) (세등39)

 

(1) 약 22분.

(2) 약 12분.


(1)------------------

황앵상수일지화(黃鶯上樹一枝花)요  백로하야천점설(白鷺下野千點雪)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야래풍우(夜來風雨)를 객문선(客聞先)헌데  춘산의구초당전(春山依舊草堂前)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황앵(黃鶯)이 상수(上樹)하니 일지화(一枝花)요, 노란 꾀꼬리가 나무에 오르니 한 가지 꽃이요.
백로하야천점설(白鷺下野千點雪)이다. 흰 해오라기가 들에 내리니 천점의 눈이더라.

야래풍우(夜來風雨)를 객문선(客聞先)인데, 밤새 오는 비바람 소리를 객이 먼저 들었는데,
춘산의구초당전(春山依舊草堂前)이로구나.  봄 산은 옛을 의지해서 초당 앞에 서 있구나.

임술년 하안거 결제일을 맞이했습니다.
벌써 4월 17일 입하(入夏)가 지나서 뜰 앞, 뜰 뒤 산과 들은 바야흐로 연록(軟綠)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그 아름다운 꽃들도 지고 지금 모란꽃이 한창 피어 있습니다.

노란 꾀꼬리가 가지에 오르니 한 송이의 꽃이요, 흰 해오라기가 들에 내리니 천점의 눈이로다.
한 송이의 꽃, 노란 꾀꼬리 한 마리가 떠억 나뭇가지에 오르니 한 송이의 아름다운 꽃이다.

꾀꼬리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오를 때 한 가지의 아름다운 꽃이요.
산과 들과 방방곡곡 금수강산(錦繡江山)이 울긋불긋한 꽃과 잎이 비단에 수(繡)놓은 것처럼 이렇게 싱그럽고 아름답게 장엄(莊嚴)을 하고 있습니다.

범연(泛然)히 보면, 예사로 보면, 봄이 오니까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여름이 돌아오니까 이렇게 무성하게 잎이 모다 피어오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너무나 평범한 일이지만,
깨달은 눈으로 보면 이 평범한 현실이 입으로 설할 수 없고,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최고의 진리를 남음이 없이 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눈을 통해서 보는 모든 색상, 귀를 통해서 듣는 모든 소리, 코를 통해서 맡는 모든 냄새, 혀를 통해서 맛보는 모든 맛, 몸을 통해서 느끼는 모든 감각, 뜻을 통해서 받아 들여지는 모든 의식이 바로 진리를 깨닫게 하는 무상설법(無上說法)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부처님은 납월팔일(臘月八日) 새벽 동천(東天)에 떠오르는 샛별을 보시고 견성성불(見性成佛) 하셨고,
어떠한 도인(道人)은 복숭아꽃 피는 것을 보고 깨달으시기도 하고, 어떠한 도인은 물 흘러가는 것을 보고 깨닫기도 하고, 어떠한 도인은 닭 우는 소리를 듣고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기도 하고,
어떠한 도인은 시장에서 장사꾼들이 멱살을 거머쥐고 서로 다투고 욕을 하는 그 소리를 듣고 깨달은 분도 있고, 우리도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확철대오를 할는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깨달을 때에, 차츰 차츰 알아 들어가 가지고 깨닫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의단,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해서 순일무잡(純一無雜)한 경계에 들어가서,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만 나가고 있으면, 언제 어느 찰나에 의단이 타파(打破)될런지를 알 수가 없어.


예를 들자면 어느날 중대한 뉴스가 발표가 된다. 확실한 시간은 모르지만 오늘 중으로 무슨 중대한 발표가 있다.
이럴 때에 아침부터 라디오나 TV 다이알을 딱 맞춰 놓고—언제 중대한 발표가 돌연히 발표가 될는지 모를 때 딱 다이알을 맞춰놓고 대기하고 있는 것처럼,
벌써 다이알을 맞춰놓지 아니한 채 있다가 지나가 버리면 중대한 발표를 듣지 못하는 거여.

언제 발표될지를 모를 때처럼, 딱 다이알을 맞춰놓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언제 어느 찰나에 깨달을런지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떠억 거각(擧却)하고 성성적적한 상태로 정진을 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번갯불 번쩍할 때에 그 번쩍 하는 그 찰나를 이용해서 바늘귀를 뀌듯이, 깨달음의 눈을 뜨는 그 장면은 마치 그와 같은 것이여.
점진적(漸進的)인 것이 아니고, 비약적(飛躍的)인 것이기 때문에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한번 뛰어서 여래(如來)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 공부는 1분 1초라도 등한히 놓아 지낼 수가 없는 것이여.

다른 공부는 시간을 맞춰서도 하고, 또 공부 아니할 때에는 만사를 다 잊어버리고 즐겁게 놀기도 하고, 먹고 잠도 자기도 하고, 사업이나 무슨 사무나 모든 것을 다 놔 버리고 훌쩍 떠나서 저 산이나 바다로 쉬러 가기도 하고,
그렇지만, 우리의 공부는 쉬는 시간이 없습니다.

밥을 먹을 때에도 화두를 들고 먹어야 하고, 세수를 할 때에도 화두를 들고 세수를 해야 하고, 똥을 눌 때에도 화두를 들고 똥을 눠야 하고, 몸이 아플 때에도 화두를 들고 꿍꿍 앓아야 하고,
속이 상할 때에도 화두를 들고 속을 상해야 하고, 다정한 사람이 죽어서 슬플 때에도 화두를 들고 슬퍼해야 하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속이 상할 때나 괴로울 때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단 1초 동안이라도, 찰나 동안이라도 화두를 놔 버리면 그 사람은 진실한 수행인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공부가 마냥 한결같이 잘되는 것이 아니고, 어느 때에는 순풍에 돛 달듯이 화두가 저절로 들리면서 성성하게 잘되어 가다가,
또 어떤 때에는 뚝 변해 가지고 영 답답하고 머리가 개운치를 못하고, 시간이 지루하고 몸부림이 쳐지고 어찌해 볼 수 없이 그렇게 애를 먹은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귀를 끌고 깊은 우물로 들어갈라고 하는 것처럼, 되게 고삐를 땡겨서 우물로 들어갈라고 하면 할수록 나귀는 뒤로 버티고 안 들어올라고, 이렇게 공부하기가 어렵고 힘이 든 때도 있습니다.
수월하게 잘될 때 보다도 이렇게 공부가 잘 안되고 힘이 들고, 애를 먹고 답답하고 몸부림쳐질 때 그때가 훨씬 중대한 중요한 고비라 하는 것을 잘 인식을 해야 할 것입니다.

<서장(書狀)>에도 대혜(大慧) 스님께서 그 점에 대해서 누누히 강조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공부가 잘 안되고, 화두가 잘 안 들리고, 답답하고 몸부림쳐지고 애를 먹을 때 그때,
선용기심(善用其心), 잘 그 마음을 잡드리해서 화두를 들고 공부를 지어 나가면 그 고비가 바로 깨달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고비다 이 말씀이여.

공부가 한 걸음 나아갈랴면은 그와 같은 경계를 만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고비를 잘 넘기고 나면 그 다음부터서는 한결 공부가 수월하고 힘을 얻게 된다 이것입니다.

흔히 화두가 성성하게 잘 들리면은 공부가 잘된다고 좋아하고,
그러다가 보면 또 공부가 영 답답하고 잘 안되면 그 안되어서 성화를 내고 거기에서 번뇌심을 내고, 짜증을 내고, 자포자기하는 마음을 내고, 어쩔 줄을 몰라.
기도를 해볼까? 주력을 해볼까?


불행방초로(不行芳草路)허면  난지낙화촌(難至落花村)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산진수궁의무로(山盡水窮疑無路)터니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불행방초로(不行芳草路)허면 난지낙화촌(難至落花村)이라.
꽃다운 풀 우거진 길을 지나가지 아니하면, 꽃 떨어진 마을에 이르기 어렵다.
향기나는 풀이 우거진 오솔길을 지나가야 꽃이 활짝 피고 지고 한 아름다운 고장에 들어갈 수가 있다.

수궁산진의무로(水窮山盡疑無路)터니, 산이 다하고 물이 다해서 이제 맥혀 가지고 인자 길이 없지 않나? 이렇게 의심했더니,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이다. 버들은 그윽히 드리워져 있고, 꽃이 화사하게 피어있는 또 한 마을이 있더라.(처음~21분37초)




(2)------------------

아무리 화두를 들고 정진 할라고 애를 써도 가도가도 답답하기만 하고, 한 걸음도 공부가 더 나아가는 늘어나는 수가 없어. 작년에 마냥해도 그 택이요, 금년에도 마냥해도 그 택이요. 그 또 몇 해냐?

몇 해를 자기 딴에는 밤잠을 안 자고, 남 구경하고 놀러가도 자기는 구경하고 놀 것을 그만두고 자나깨나 화두를 들고 애를 써서 공부를 한다고 하는데 만(萬)날 해도 죽 떠먹은 자리여.
누구한테 내놓을래야 내놓을 것이 있나, 콱 맥혀서 답답하기만 하고.

‘참으로 확철대오라고 하는 것이 있는 것인가?’

‘공연히 이렇게 화두만 꽉 아무 생각 못하게 하고 잡념 못하게 하기 위해서, 풀라야 풀 수도 없고 아무 답도 있을 수도 없는 그런 공안(公案)이라 하는 문제를 주어 가지고 이 사람 골때리는 지서리가 아닌가?’

‘무슨 이거 방편(方便)으로 이 화두를 참구(參究)하게 만들어 가지고 마침내 번뇌 망상 안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조사(祖師)가 방편으로 화두니, 공안이니 하는 것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이러한 생각도 들드라 이 말씀이여.

3년 5년 10년 해봤자 무슨 소식이 있어야지?
해 갈수록 답답하기만 하고 혼침(昏沈)만 오고, 아무리 화두를 들라고 몸부림을 쳐도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망상뿐이고, 망상이 조금 잠잠해질라 하면 그때는 또 혼침이 와 가지고,

얼마나 답답하고 얼마나 지루하고 얼마나 못 견뎠으면 웃옷을 벗어서 방바닥을 치면서 ‘이 조주(趙州)가 뭣 때문에 무자(無字) 화두를 내 가지고 이 사람을 이렇게 골탕을 먹이냐’고 다리를 뻗고 우는 스님도 있었고,
머리를 갖다가 벼람박에나 기둥에다 갖다가 이마를 수없이 들이받으면서 피가 나도록 받으면서 죽어버리고 싶은 이러한 충동을 느끼는 수도 있고,

그러나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남기신 법어(法語)를 보면 결정코 우리를 속이지 않는 사실을 우리는 인증할 수가 있습니다.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으로는 아무리 따져도 해결이 안 되지만,
선지식(善知識)의 바른 지도에 의해서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하면, 그래 가지고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랴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독로하고,

머리를 들어도 하늘이 보이지 아니하고, 머리를 숙여도 땅이 보이지 아니하고, 산을 봐도 산의 빛깔과 모냥에 대해서 보이지 아니하고, 물을 봐도 물이 보이지 아니하고,
걸어가되 걸어가는 줄을 모르고, 앉았으되 앉아있는 줄을 모르고, 천 명 만 명 사람이 있는데 서 있어도 한 사람도 사람이 보이지 아니하고, 밥을 먹고 반찬을 먹어도 짜고 싱거운 줄을 모르고,

이러한 경지에—오직 화두의 의단 하나만이 성성적적하게 독로하고, 이러한 경계에 들어가서도 빨리 깨닫기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누가 나로 하여금 이럴 때 툭 깨닫게 해 주기를 바래지도 말고,
다못 이와같이 공부를 지어가야 일주일이 가지 아니해서 반드시 의단이 타파가 되어서 확철대오를 할 것이다.
이것은 속일 수 없는 사실이여. 역대조사가 다 그러한 과정을 겪으셨어.

‘이것이 만약에 거짓이라면은 거짓말한 죄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가겠다’고 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도 맹세를 하셨고, 몽산(蒙山) 스님도 맹세를 하셨고,
산승(山僧)도 이 도리를 믿고 여러분 앞에 부처님을 증명으로 모시고 여러분에게 선언을 합니다.

출가한 목적은 오직 이 한 문제!
이 일대사(一大事) 해결하는 일 밖에는 다시 무엇이 있습니까?

부모와 정든 고향을 버리고 청춘을 버리고 인생의 모든 낙(樂)을 다 버리고 머리를 깎고 출가한 우리들입니다. 정말 목숨 바쳐서 정진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인생 칠십이라 하지만 누구나 칠십까지 다 사는 것도 아니고, 하루도 장담을 못하는 것이고, 한 시간도 믿을 수가 없고,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바로 그것이 내생(來生)인 것입니다.

‘철저하게 무상(無常)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도업(道業)을 이루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생사(生死)가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고 하는 사실을 명심을 하셔서 1초 1초를 금쪽같이 아껴서 공부하고, 한 생각 한 생각 일어날 때마다 화두를 거각해서 등한(等閒)히 지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진심(精進心)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오늘부터서는 내가 잠을 안 자고 공부를 하리라. 내일부터서는 묵언을 하고 공부를 하리라. 내일부터서는 오후불식(午後不食)을 하리라. 그래 가지고 말을 아니하고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리라’
그렇게 마음을 먹고 정진을 애써서 할려고 하는 그러한 기특하고 갸륵한 수행인이 있습니다.

대단히 기특하고 갸륵하고 매일 같이 자기를 ‘오늘 하루는 어떻게 공부를 했는가’ 반성을 해 보고 ‘내일은 어제보다 더 알뜰히 공부를 하리라’ 이렇게 시시각각으로 단속을 하고 또 단속을 하는 것, 참 좋습니다.
단 하루도 등한히 지낸 날이 없고, 하루하루 갈수록 더 알차게 공부를 해 나가는 것, 대단히 좋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 일으키는 그 생각마저도 화두를 간절히 든다면 어느 것이 더 낫겠습니까?

‘게으른 사람은 항상 뒤를 바라보고, 지금의 일찰나(一刹那)를 등한히 한다’ 그랬습니다.

진실한 수행인은 ‘앞으로 잘하리라’하는 생각도 일으키지 말고, 당장 지금 이 찰나에 허리를 쭉 펴고 화두를 간절히 드는 법인 것입니다. 이것이 최상승 학자의 수행 자세인 것입니다.
이렇게 1초 1초를 다져 나간다면 그 사람은 그날 하루도 알차게 공부를 하게 될 것이고, 물어 볼 것도 없이 내일 하루도 충실하게 정진이 되어질 것입니다.

1초 1초가 모여서 1분이 되고, 1분 1분이 모여서 한 시간이 되고, 한 시간 한 시간이 모여서 하루가 되고, 하루 하루가 모여서 한 달이 되고, 한 달 한 달이 모여서 1년이 되기 때문에,
1초 1초, 한 생각 한 생각을 알뜰히 단속한 사람이야말로 일생을 충실하게 정진할 사람이고, 나아가서는 억겁(億劫)의 생사 문제도 ‘한 생각’에서 해결이 나는 것입니다.

‘일념(一念)이 바로 무량겁(無量劫)’이라고 하는 법성게(法性偈)의 법문을 보면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일념 일념, 1초 1초를 등한히 한 사람은 무량겁 생사윤회가 끊어지지를 아니한 것입니다.(21분40초~34분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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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黃鶯上樹一枝花 白鷺下野千點雪 ; 『오등회원(五燈會元)』 15 「奉先深禪師 참고.
師曰 古人道白鷺下田千點雪,黃鶯上樹一枝花 維那作麼生商量?
*(게송) 夜來風雨客聞先 春山依舊草堂前 ; 『매천집』 (3권) (매천 황현의 시문집) ‘復至文星齋 참고.
[참고] 『매천집(梅泉集)』 (3) - () : 신축고(辛丑稿)
 다시 문성재에 이르러〔復至文星齋〕 (한국고전번역원, 박헌순 )
夜來風雨客聞先 隔嶺思家轉杳然 已過頭番摘茶候 將蕪一畝種蔘田 老懷慣與同庚話 詩訣勤從後輩傳 世事十年驚百變 春山依舊草堂前
 
밤에 부는 비바람 소리 나그네가 먼저 듣고, 고개 너머 고향 집이 더욱 아득히 생각나네. 첫 찻잎  시기는 이미 제철 지나갔고, 한 뙈기 인삼 밭은 장차 묵밭이 되어 가리.
늙은이 회포를 익숙하게 동갑 벗과 주고받고, 시 짓는 비결은 부지런히 후배에게 전해 주네. 세상일은   동안 백번이나 변했지만, 봄 산은 예전처럼 초당 앞에 우뚝하네.
*매천 황현(梅泉 黃玹 1855~1910) ; 전남 광양 출생. 한말의 시인, 문장가, 우국지사. 1910 829 한일합방의 치욕을 당하자, 절명시(絶命詩) 4편을 남기고 910 음독 자결하였다.
*연록(軟綠 연할 /초록빛 ) ; 연한 녹색. 연녹색. 연한 초록색(草綠色).
*금수강산(錦繡江山) ; 비단에 수를 놓은  매우 아름다운 산천. 함경북도 북쪽 끝에서 제주도 남쪽 끝까지 3,000리가 되는 우리나라의 자연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장엄(莊嚴 엄숙할삼가할꾸밀 /엄할공경할꾸밈 ) ; ①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국토를 꾸미고, 훌륭한 공덕을 쌓아 몸을 장식하고, 향이나  따위를 부처님께 올려 장식하는 .
②건립하는 . 건립. 훌륭히 배치, 배열되어 있는 . ③장식. 물건을 장식하는 . 아름답게 장식함. 훌륭한 . 엄숙하게 장식된 모양, 모습. 장식물.
*범연(泛然) ; ①두드러진 데가 없이 평범하게. ②특별한 관심이 없어 데면데면하게.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무상설법(無上說法) ; 진리를 깨닫게 하는 최고의 가르침.
*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을 이르는 말.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35세의 12월 8일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선하(尼連禪河)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샛별[明星]이 뜰 무렵 별을 보고 불도(佛道)를 이루던 날. 부처님의 성도일(成道日). 납팔(臘八)이라고 줄여 쓰기도 하고, 성도회(成道會) · 성도절(成道節) · 성도재일(成道齋日) 등이라고도 한다.
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밤낮으로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
*샛별 ; 새벽별. 명성(明星).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금성(金星)’을 이르는 말. 새벽별, 태백성(太白星), 계명성(啓明星), 장경성(長庚星) 등이라고도 한다. 『보요경(普曜經)』에 따르면 석가모니(釋迦牟尼)께서 이 별이 돋을 때, 정각(正覺)을 이루었다고 한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成佛].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어떠한 도인(道人) 복숭아꽃 피는 것을 보고 깨달으시기도 하고' ;
[참고]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제11권) (전등록 1,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730.
福州靈雲志勤禪師本州長溪人也 初在潙山因桃華悟道 有偈曰 三十來年尋劍客 幾逢落葉幾抽枝 自從一見桃華後 直至如今更不疑 祐師覽偈詰其所悟與之符契 祐曰 從緣悟達永無退失 善自護持
 
복주(福州) 영운지근(靈雲志勤) 선사. 그는 본주(本州 : 福州)의 장계(長溪) 사람이니, 처음에 위산에 있다가 복사꽃을 보고서는 도를 깨닫고 게송을 지었다.
 
30년 동안 검(劍)을 찾던 나그네여. 몇 차례나 잎이 지고 가지가 돋았나.
스스로 복사꽃을 한 차례 본 뒤로는 지금에 이르도록 다시는 의심치 않네.
 
영우(靈祐)가 이 게송을 보고 그 깨달은 바를 따져서 서로 계합하였다. 영우가 말했다.
"인연 따라 깨달아 도달했으니, 영원히 물러나지 않으리니 잘 보호하여 간직하라"
 
*'어떠한 도인은  흘러가는 것을 보고 깨닫기도 하고' ;
[참고] 『선관책진(禪關策進)』 (운서주굉 스님 지음) 「제조고공절략(諸祖苦功節略 조사들의 공부법)」의 ‘이두촉주(以頭觸柱 머리를 기둥에 부딪치다)’에서.
中峰本禪師 侍高峰死關 晝夜精勤 困則以頭觸柱 一日 誦金剛經 至荷擔如來處 恍然開解 自謂所證未極 彌益勤苦 咨決無怠 及觀流水 乃大悟
評曰 自謂所證未極 故終至極處 今之以途路 爲到家者 衆矣 嗟夫
 
중봉본(中峰本) 선사는 사관(死關)에서 고봉(高峰) 화상을 모시고 주야로 정진하며 지내는데, 곤(困)하면 머리를 기둥에 부딪치곤 했다. 하루는 금강경을 외우다가 '하담여래처(荷擔如來處)'라는 대목에 이르러 환하게 개해(開解)하더니 스스로 말하기를 "증한 바가 아직 구경(究竟)이 아니다"하고 더욱 힘써 정진하여 부지런히 법을 묻고 결택하더니, 어느 날 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마침내 대오(大悟)하였다.
(평) 중봉선사는 스스로 '증한 바가 구경이 아니다'라 했으니, 그런 까닭으로 마침내 지극한 곳에 이르렀거늘 지금에 길위에 있으면서도 집에 이른 것으로 아는 자가 많으니 딱한 일이다.
 
*'어떠한 도인은  우는 소리를 듣고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기도 하고' ;
[참고] 서산대사(西山大師) ; (1520~1604) 조선의 스님. 평남 안주 출신. 법명은 휴정(休靜). 호는 청허(淸虛). 서산(西山)인 묘향산에 오래 머물러 서산(西山)이라고도 함.
9세에 어머니를, 10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안주 군수를 따라 한양에 가서 12세에 성균관에 입학함. 15세에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고 동배(同輩) 여러 명과 함께 지리산을 유람하며 지내다 숭인(崇仁)의 설법을 듣고 남아 여러 경전을 정독하고 다시 부용 영관(芙蓉靈觀, 1485-1571)에게 3년 동안 지도를 받았다. 그 때 그의 나이 18세. 그 3년뒤 21세에 계(戒)를 받음.
 
그 후 명산 제찰(名山 諸剎)을 찾아다니면서 수도하다가, 어느 날 벗을 찾아 봉성(鳳城 : 南原)을 지나가다 우연히 낮닭 우는 소리를 듣고 크게 깨쳐 다음과 같이 게송을 지었다.
 
발백심비백(髮白心非白) 고인증누설(古人曾漏洩) 머리 세어도 마음 안 센다고 옛 사람 일찌기 일렀더구나.
금문일계성(今聞一鷄聲) 장부능사필(丈夫能事畢) 닭울음 한 소리 이제 듣고 나니 장부의 할 일을 다 마쳤도다.
홀득자가저(勿得自家底) 두두지차이(頭頭只此爾) 문득 자가 것을 깨닫고 나니 온갖 것이 다만 이뿐이로세.
천만금보장(千萬金寶藏) 원시일공지(元是一空紙) 팔만대장경도 본시는 한 장 빈 종이로세.
 
그 뒤로 관동(關東)의 명산을 두루 편답하니 그 때 나이가 30이었다.
 
1552년(명종 7)에 새로 부활된 승과(僧科)에 합격하여 대선(大選)이 되고, 3년 후에는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가 되었으나 2년 후에 그 직책을 사양하고 금강산 · 지리산 · 묘향산에서 수행함.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휴정을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에 임명하니, 그는 묘향산에서 나와 전국 승려들에게 총궐기하는 격문을 방방곡곡에 보내 승군(僧軍)을 평남 순안 법흥사(法興寺)에 집결시켜 여러 곳에서 큰 공을 세움.
 
임진왜란 7년 전쟁이 끝난 후 79세의 휴정은 그의 제자 유정(惟政)과 처영(處英)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묘향산으로 들어감. 그 뒤로도 금강산, 지리산, 묘향산 등지를 왕래하며 많은 제자를 이끌었다. 1604년(선조 37) 정월 23일에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입적함. 세수 85세, 선납(禪臘) 65.
 
그 날 아침 대사는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눈이 쌓인 길을 헤치고 남여(籃輿 : 주로 산길에 쓰이는 뚜껑이 없고 의자같이 된 가마)를 타고 여러 암자를 마지막으로 돌아보신 후 원적암으로 돌아와 손을 씻고 위의를 갖추고 불전에 분향한 다음 스스로 붓을 들고 조실(祖室)에 들어가서 그의 자화상에 이렇게 적었다. 즉
 
팔십 년 전 거시아(八十年前渠是我) 팔십 년 전에는 네가 내러니
팔십 년 후 아시거(八十年後我是渠) 팔십 년 뒤 오늘은 내가 너로다.
 
하고, 다시 임종게(臨終偈)로써 「千計萬思量  紅爐一點雪  泥牛水上行  大地虛空裂」
억천만 가지 온갖 생각들  불에 떨어진 흰눈 한 조각, 진흙 황소가 물 위로 가고  땅과 허공이 꺼져 버렸네.
 
이렇게 써놓고 고요히 앉아서 입적하였다.
저서 : 삼가귀감(三家龜鑑)·선가귀감(禪家龜鑑)·선교석(禪敎釋)·청허집(淸虛集)·운수단(雲水壇).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惺惺]한 상태.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더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뀌다 ; ‘꿰다 사투리.
*점진적(漸進的 점점 /나아갈 /조사 ) ; ①점차로 조금씩 나아가는. ②점차로 조금씩 나아가는 .
*비약적(飛躍的  / /조사 ) ; ①단계를 껑충 뛰어 아주 빠르고 눈부시게 발전, 향상하는. 정상적인 단계를 차례로 밟지 않는. ②단계를 껑충 뛰어 아주 빠르고 눈부시게 발전, 향상하는 . 정상적인 단계를 차례로 밟지 않는 .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 ‘한 번 뛰어 여래(如來)의 경지에 바로 들어간다’
*여래(如來) : 부처님 10호(十號)의 하나。 범어 tathāgata의 역(譯)。 여(如)는 진여(眞如)의 뜻이니 곧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의 뜻。 또 여거여래(如去如來)의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참고] 『증도가(證道歌)』 (영가永嘉 스님)에서.
覺卽了不施功  一切有爲法不同  住相布施生天福  猶如仰箭射虛空  勢力盡箭還墜  招得來生不如意
 
깨닫고 나면 공(功)을 베풀지 않으니 일체 유위법(有爲法)과 같지 않다. 상(相)에 머문 보시는 천상에 나는 복이나, 마치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 올라가는 힘이 다하면 화살은 다시 떨어지니, 내생(來生)에 뜻과 같지 않음을 초래하게 되리라.
 
爭似無爲實相門  一超直入如來地  但得本莫愁末  如淨琉璃貪寶月  我今解此如意珠  自利利他終不竭
 
어찌 무위(無爲)의 실상문에, 한 번 뛰어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것만 하겠는가. 다만 근본을 얻을지언정 지엽은 근심하지 말라. 마치 깨끗한 유리구슬 안에 보배 달을 머금은 것과 같네. 내, 이제 여의주를 아나니 나와 남을 이롭게 함에 마침내 다함이 없도다.
*'그런데  공부가 마냥 한결같이 잘되는 것이 아니고, 어느 때에는 순풍에  달듯이 화두가 저절로 들리면서 성성하게 잘되어 가다가,  어떤 때에는  변해 가지고  답답하고 머리가 개운치를 못하고, 시간이 지루하고 몸부림이 쳐지고 어찌해   없이 그렇게 애를 먹은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귀를 끌고 깊은 우물로 들어갈라고 하는 것처럼, 되게 고삐를 땡겨서 우물로 들어갈라고 하면 할수록 나귀는 뒤로 버티고  들어올라고, 이렇게 공부하기가 어렵고 힘이  때도 있습니다.
 
수월하게 잘될  보다도 이렇게 공부가  안되고 힘이 들고 애를 먹고 답답하고 몸부림쳐질 , 그때가 훨씬 중대한 중요한 고비라 하는 것을  인식을 해야  것입니다. 『서장(書狀)』에도 대혜(大慧) 스님께서  점에 대해서 누누히 강조하신 것을  수가 있습니다' ;  '공부가 안될 때가 한 계단 올라서려는 고비’ 법문을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 · 『대혜서(大慧書)』 · 『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杲)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총 62장(狀)의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글).
이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할 때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주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을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을 역설하였다.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그렇게 공부가  안되고, 화두가   들리고 답답하고 몸부림쳐지고 애를 먹을 , 그때! 선용기심(善用其心),   마음을 잡드리해서 화두를 들고 공부를 지어 나가면  고비가 바로 깨달을  있는 힘을 얻을  있는 좋은 고비다  말씀이여공부가  걸음 나아갈라면은 그러한 그와 같은 경계를 만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고비를  넘기고 나면 그다음부터서는 한결 공부가 수월하고 '힘을 얻게 된다[得力]' 이것입니다 ; 득력(得力). 수행이나 어떤 기술 · 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참고] 『서장(書狀)』 (대혜종고 著) ‘증시랑(曾侍朗)에게 답함(여섯 번째)’
苟念念에 不退初心하고 把自家心識이 緣世間塵勞底하야 回來抵在般若上이면 雖今生에 打未徹이라도 臨命終時에 定不爲惡業所牽하야 流落惡道하고 來生出頭에 隨我今生願力하야 定在般若中하야 現成受用하리니 此時決定底事라 無可疑者니라.
 
참으로 생각생각에 초심(初心)에서 물러나지 말고 자기 자신의 마음이 세간의 번뇌와 반연하는 것을 잡아 돌이켜 반야(般若) 위에 이르게 하면, 설령 금생에 (이 일을) 타개打開하여 사무치지 못하더라도 임종시에 결정코 악업(惡業)에 이끌리는 바가 되어 악도(惡道)에 흘러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며, 내생에 태어나면 나의 금생 원력에 따라 반드시 반야 가운데에 있어 수용(受用)을 현전 성취(現前成就)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결정적인 일이라, 의심할 게 없는 것입니다.
 
衆生界中事는 不著學하야도 無始時來로 習得熟하며 路頭亦熟이 自然取之에 左右逢其原하니 須著撥置니이다.
出世間學般若心은 無始時來로 背違라 乍聞知識의 說著이어도 自然理會不得하나니 須著立決定志하며 與之作頭抵하야 決不兩立이니다.
 
중생계의 일은 배우지 않더라도 아득한 옛날부터 익혀서 무르익어졌으며, 인생길에도 역시 익어져서 자연스레 취하여 그 중생계의 일 속으로 들어가니, 마땅히 이 습기를 없애 버리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에) 세간을 나와서 반야(般若)를 배운다는 마음은 시작을 알 수 없는 때로부터 등지고 어겨왔으므로 잠깐 선지식의 설법(說法)을 듣는다 해도 쉽사리 이해되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결정(決定)한 뜻을 세워서 더불어 머리를 맞대고 겨루어 나가야 합니다. (습기와 반야는) 결코 양립되지 않습니다.
 
此處에 若入得深하면 彼處는 不著排遣하야도 諸魔外道가 自然竄伏矣니이다. 生處는 放敎熟하고 熟處는 放敎生이 政爲此也니 日用做工夫處에 捉著欛柄하면 漸覺省力時가 便是得力處也니이다.
 
이 곳[般若心]에 깊이 들어가게 되면 저 곳은 (습기를 굳이) 물리쳐 보내지 않아도 모든 마(魔)와 외도가 자연히 항복해 숨을 것입니다. 설은 곳[生處]은 익게 하고, 익은 곳[熟處]은 설게 함이 바로 이 때문이니, 일용에 공부하는 곳에서 요점을 잡고[欛柄] 차츰 힘이 덜어진다고 느낄 때가, 바로 그때가 힘을 얻는 곳입니다.
 
*(게송) '불행방초로(不行芳草路) 난지낙화촌(難至落花村)' ; ‘우거진 풀밭길 걷지 않으면 꽃이 지는 마을에 가긴 어려워.’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66 (가로판 p174)
*(게송) ‘수궁산진의무로(水窮山盡疑無路)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 ; 중국 남송 세대의 시인, 육유(陸遊)의 시 《遊山西村》 참고.
莫笑農家臘酒渾,豊年留客足鷄豚。山重水復疑無路,柳暗花明又一村。 簫鼓追隨春社近,衣冠簡樸古風存。從今若許閑乘月,拄杖無時夜叩門。
 
[참고] 송담스님(No.523)—93년(계유년)성도재 법회(93.12.08.음)
수궁산진의무로(水窮山盡疑無路)터니, 물이 다하고 산이 다해. 목적지를 찾아서 깊은 산중에 들어가는데 이제 계곡을 따라서 올라가니 물도 다 끊어지고 산도 콱 막혀서 인자 더이상 갈 곳이 없구나. 내가 갈 곳은 어디냐? 이렇게 물도 끊어지고 산도 콱 막혀서 이제 길이 콱 끊어졌으니 ‘이제는 내가 여기서 죽는구나’
 
그러나 거기서 쉬지 않고 다시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겨서 한 고개를 넘어가니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이다. 파란 버들은 그윽히 휘늘어지고 밝은 꽃은 환하니 핀 또 한 마을이 거기에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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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도.  만큼.  수준.
*만날(-) ; ①어떤 경우든 한결같이. ②특정한 시간에 한정되지 않고 어느 때든. ③때를 가리지 않을 만큼 매우 자주.
*골때리다 ; 어이없고 터무니없다.
*지서리 ; ‘짓거리('' 낮잡아 이르는 )’ 사투리. * : 몸이나 몸의 일부를 놀려 움직이는 행동이나 행위를 나타내는 .
*방편(方便 방법·수단 /편할 )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참구(參究 헤아릴 /궁구할 ) ; ①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조사선법(祖師禪法)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 같다.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벼람박 ; ‘바람벽(--, 집의 둘레 또는 방의 칸막이를 하기 위해 만든 )’ 사투리.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리(事理)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바가 아니다라고 .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 아비(阿鼻) 산스크리트어 avīci 음사.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 아버지를 죽인 , 어머니를 죽인 , 아라한을 죽인 ,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 ,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 죄인의 눈을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지옥에 가겠다(떨어지리라) ;
[참고 ①] 「최상승론(最上乘論)」 (5조 홍인대사 弘忍大師 602 ~ 675)
若有人依文行者即在前成佛. 若我誑汝當來墮十八地獄. 指天地爲誓. 若不信我世世被虎狼所食.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글(最上乘論)에 의지해 수행하면 곧 성불하게 될 것이다. 내가 만약 너를 속인다면 다음 세상에 십팔지옥(十八地獄)에 떨어지리라. 하늘과 땅에 맹세하노라. 만약 나를 믿지 아니하면 세세생생에 호랑이 밥이 되리라.
 
[참고 ②]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하권 (백운화상초록 白雲和尙抄錄) ‘승고선사(承古禪師 ? ~ 1045)’
承古禪師 常勸諸人 莫學佛法 但自無心去 利根人晝時解脫 鈍根人或三五年 遠不過十年 若不悟去 老僧 替你入拔舌
 
승고선사께서 항상 여러 사람에게 권하되 “불법을 배우지 말고 다만 스스로 무심하여라. 영리한 근기의 사람은 한나절에 해탈하고, 둔한 근기의 사람은 혹은 3년 · 5년이며 멀어도 10년을 지나지 않는다. 만약 깨닫지 못하면 노승이 너를 대신해서 혀를 뽑는 발설지옥(拔舌地獄)에 들어가리라”
 
[참고 ③]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 『몽산법어』 (몽산화상 1231 ~ 1298 또는 1308) (용화선원刊) p97-99.
若有來此(약유내차)하야  同甘寂寥者(동감적료자)인댄  捨此世緣(사차세연)하며  除去執着顚倒(제거집착전도)하고  眞實爲生死大事(진실위생사대사)하야  肯順菴中規矩(긍순암중규구)하야 截斷人事(절단인사)하고  隨緣受用(수연수용)호대  除三更外(제삼경외)에  不許睡眠(불허수면)하며 不許出街(불허출가)하며  不許赴請(불허부청)하며  未有發明(미유발명)이어든 不許看讀(불허간독)하며  非公界請(비공계청)이어든  不許閱經(불허열경)이니
 
만약 이에 와 고요함을 같이 즐기려는 이는, 이 세상 인연을 다 여의며 제 고집과 애착과 모든 거꾸러진 생각을 다 버리고, 참으로 생사의 큰일을 위하야 절의 규칙을 잘 지키고 인사(人事)를 끊고 먹고 입는 것을 되어가는 대로 하되, 밤 삼경 외에는 자지 말고 거리에도 나가지 말며 오라는 데도 가지 말고 깨치기 전에는 글도 읽지 말며 예식 때가 아니거든 경도 보지 말지니
 
如法下三年工夫(여법하삼년공부)호대  若不見性通宗(약불견성통종)인댄 山僧(산승)이  替爾(체이)하야  入地獄(입지옥)호리라
법다이 삼 년 동안 공부해 만약 견성하여 종지(宗旨)를 통달하지 못하면, 산승(山僧)이 너희들을 대신하여 지옥에 들어가리라.
 
[참고 ④] 「고봉화상선요·어록(高峰和尙禪要·語錄)」 ‘立限示衆(其九)—9. 기한을 정하고 대중에게 보임’ (고봉원묘 高峰原妙 1238 ~ 1295) (통광 역주 | 불광출판사) p85, p88 참고.
參禪 若要剋日成功 如墮千尺井底相似 從朝至暮 從暮至朝 千思想萬思量 單單只是箇求出之心 究竟決無二念 誠能如是施工 或三日 或五日 或七日 若不徹去 西峰今日 犯大妄語 永墮拔舌犁耕
 
참선하는데 만일 한정된 날짜에 공(功)을 이루려면 마치 천척이나 되는 우물에 빠졌을 경우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밤이나 낮이나 천 생각 만 생각이 오로지 다만 우물에서 나오려는 마음뿐이고 끝끝내 결코 다른 생각이 없는 것과 같이 하여라. 진실로 이렇게 공부하기를 혹은 3일, 혹은 5일, 혹은 7일 하고도 깨치지 못한다면 서봉은 오늘 대망어죄(大妄語罪)를 범했으므로 영원히 혀를 뽑아 밭을 가는 지옥[拔舌犁耕地獄]에 떨어질 것이다.
*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 몽산 스님 ;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생사재호흡지간(生死在呼吸之間) ; ‘생사(生死)가 한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 생사라 하는 것은 멀리 잡을 것이 아니라 하루도 멀고, 한끼도 멀고, 한 호흡 사이에 있다고 하는 것. 그렇게 무상하고 기약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생사인 것이다.
*호흡지간(呼吸之間) ; 한 번 내쉬고[呼] 들이쉬고[吸] 할 사이[間]라는 뜻으로, 아주 짧은 시간을 이르는 말.
[참고]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제38장’
佛問沙門 人命在幾間 對曰數曰間 佛言 子未知道 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 對曰飯食間 佛言 子未知道 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 對曰呼吸間 佛言 善哉子知道矣
 
부처님께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는 아직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밥 먹을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도 아직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호흡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너는 도를 아는구나”
*등한(等閒) ; 무관심하거나 소홀하게.
*오후불식(午後不食) ; 정오(正午),  열두 시가 지나면 먹지 않는 .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일찰나(一刹那) ; 극히 짧은 순간.
*억겁(億劫) ; 무한히 길고 오랜 세월.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 ‘한 생각이 바로 무량겁’
통일 신라 시대에,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화엄경을 연구하고 그 경의 핵심을 추려서 7언 30구(210자)의 게송으로 지은 「화엄일승법계도 華嚴一乘法界圖」 또는 「법성게 法性偈」에 나오는 구절.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 (무량원겁즉일념  일념즉시무량겁) 한량없는 오랜 세월이 한 생각 찰나요, 찰나의 한 생각이 무량한 시간이네.
*법성게(法性偈) ; 통일 신라 시대에, 의상(義湘 625 ~702) 스님이 중국에서 화엄경을 연구하고 그 경의 핵심을 추려서 지은 7언 30구(210자)의 게송. 210자를 54개의 각(角 굴절)이 있는 도인(圖印)에 합쳐서 만든 「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의 게송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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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세등24) 화두드는 법 / 최상승법 /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것이 생사(生死) / 불보살, 선지식 아닌 사람이 없다 / 중생심이 바로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체(體).

대혜(大慧) 『서장(書狀)』에 보면 공부하다가 어려운 역경계가 나타나는 것이 마장이 붙어서 그런 게 아니라 한고비 올라가기 위한 아주 중요한 경계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생사입니다. 그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생사의 연속이 바로 일평생(一平生)이 되고, 그것이 바로 육도윤회(六途輪廻)가 되고, 그것이 무량겁(無量劫)이 되는 것입니다.

 

이 끊임없이 거듭되는 이 생사의 물결 속에서 바로 생사해탈하는 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그 생각이 슬픈 생각이건, 기쁜 생각이건, 또는 노여운 생각이건, 과거의 생각이건,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일어나는 그 생각을 버릴려고 없애려고 하지 말고, 그 생각에서 ‘이뭣고?’하는 것입니다.

 

발심한 사람, 참으로 진발심(眞發心)을 한 사람이라야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도 불보살을 친견할 수가 있고, 선지식을 바로 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망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그 자리에서 ‘이뭣고?’하면 그것이 공부인데, 망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공부가 안된다고 왜 그러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냐. ‘안된다’고 생각함으로써 자기로 하여금 ‘공부 안되는 사람’으로 스스로 낙인(烙印)을 찍는 것이 된다.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

 

떠오르는 그 많은 중생심(衆生心), 번뇌 망상심, 생멸심 그것을 꼭 나쁘다고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성내는 놈, 슬퍼하는 놈, 기뻐하는 놈, 원망하는 놈, 아퍼하는 놈, 괴로워하고 외로워하는 놈, 이것이 전부 다 진여불성으로부터서 일어나는 한 거동이요 모습일진대, 그 거동 그 모습을 버릴려고 할 것이 없어.
바로 그놈을 계기로 해서 ‘이뭣고?’ 이렇게 들어가면 그것이 바로 자기 진여불성을 찾는 가장 가깝고 빠르고 묘하고 간단한 길이다.  중생의 번뇌 망상심 그놈을 버리고 어떠한 진여불성을 찾아서 깨달으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무량겁을 두고 공부를 한다해도 그 사람은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화두 하나만 제대로 들을 줄 알면 그 사람은 갈 곳이 없습니다. 결정코 대도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24)—기미년 동안거 결제 법문(79.10.17) (세등24)

 

(1) 약 18분.  (2) 약 21분.

 

 

 


(1)------------------

오늘 기미년 삼동(三冬) 결제일을 맞이해서 조실 스님의 공안법(公案法)—최상승법(最上乘法)에 있어서 공안법에 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공안법은 이론으로서 따져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공안(公案)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천 칠백 공안이 있습니다.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 칠백 공안인데, 문헌에 오르지 아니한 것을 말하자면 우주법계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전체가 공안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 한 공안, 한 화두(話頭)를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받아 가지고, 그 한 공안에만 철저하게 실참실수(實參實修) 해 가지고, 한 공안을 타파(打破)함으로써 천 칠백 공안, 무량무수의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그러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최상승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입니다.

뒤에 있는 문을 좀 잠깐 열어서 차운 공기가 들어오게 좀 하십시오. 다들 열어 주세요. 확 열어 주세요.


오늘부터서 석 달 동안 결제(結制)에 들어갑니다.
결제 동안은 부모의 부고(訃告)가 오더라도 그 부고장(訃告狀)을 본인에게 보여주지 아니하고 사무실에 보관해 놓았다가 내년 정월 15일에 해제한 뒤에사 그 부고를 본인에게 전할 만큼, 결제 동안에는 그렇게 규칙이 엄격하게 출입을 금하고 목숨을 바쳐서 정진을 하는 기간인 것입니다.

일단 방부(房付)를 들이면은 그래 가지고 방(榜)을 딱 짜고 정진에 들어가면 세상의 모든 인연을 다 끊고 인사로 왔다갔다하는 것을 다 끊고, 오직 생사대사(生死大事) 하나만을 위해서 대중의 규칙을 자발적으로 지키면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짜면 짠 대로 먹고, 싱거우면 싱거운 대로 먹고, 맛이 있으면 있는 대로 먹고, 없으면 없는 대로 먹고, 오직 의식주 문제는 인연에다 맽겨.

그리고서 밤 9시부터서 그 이튿날 새벽 3시까지 여섯 시간을 제외하고는 일체 잠을 스스로 허락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9시부터 3시까지 정식으로 잘 수 있는 시간이지마는 그동안에 보면 한 시간이라도 덜 자고 공부하고, 2시간이라도 덜 자고 공부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자는 체하고 누웠다가 가만히 일어나서 10시까지 11시까지 다시 일어나서 혼자 공부하는 분도 있고,

새벽 3시에 일어나는 것이 원칙이지만 2시나, 1시쯤 미리 일어나서 옆의 사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미리 일어나서 공부하는 이도 있고, 이렇게 해서 ‘어쨌든지 금생에 결정코 대도를 성취하리라’ 이러한 결심을 가지고 정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잠만 그럴 것이 아니라 선원 밖으로 외출하는 것도 ‘시내의 병원에 간다, 무슨 일이 있어서 나간다’ 외출하는 것도, 일주문 밖에 나가는 것도 철저히 옛날에 다 그것을 단속을 했던 것입니다.
시내에 어떠한 신심 있는 단월(檀越)로부터서 공양(供養) 청장(請狀)을 받어도 결제 중에는 가지를 아니 하고,

또 확철대오(廓徹大悟)할 때까지는 대중적으로 특별히 허용될 때를 제외하고는 일체 경전이나 어록(語錄)을 읽고 보고 하는 것도 허락이 되지를 아니했습니다.

9시부터 3시까지 삼경(三更) 외에는 잠을 허락하지 아니하고, 인사로 왕래하는 일체 출입을 금하고, 또 경전 같은 것을 읽고 하는 그런 것도 허락하지 아니하고, 특별한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말이 없다시피,
이렇게 철저하게 공부를 해서 3년을 그렇게 해서 만약에 확철대오를 못하면 내가 거짓말한 죄로 혀를 빼서 쟁기로 가는 발설여경지옥(拔舌犂耕地獄)에 내가 들어가겠다. 이렇게 몽산(蒙山) 도인께서 맹서를 하셨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한다면 아무리 근기(根機)가 하열(下劣)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3년을 하면 백발백중 공안을 타파해 가지고 견성(見性)을 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보증을 하시는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 말씀 가운데에도 화두를 어떻게 들어야 하느냐?
참선이라 하는 것은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화두를 어떻게 드느냐? 오직 그 한 점에 도업(道業)을 성취하고 하지 못하고 한 관건(關鍵)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화두는 이론으로써 교리적으로 따져서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론으로 따져서는 아무리 따져봤자 결론이 없는 것입니다.

설사 자기 나름대로 어떤 결론이 얻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깨달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 분별심으로 얻어진 것이라 아무리 묘한 답이 얻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더욱 중생의 번뇌(煩惱) 망상(妄想)만 치성(熾盛)하게 만든 결과일 뿐, 그것은 깨달음이 아닌 것입니다.

이론으로 따져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따져서 알아맞추는 그러한 참선은 활구참선(活句參禪)이 아닙니다. 그것은 죽은 참선이요, 의리선(義理禪)이요, 그것은 삿된 참선인 것입니다.
차라리 그러한 참선을 할 바에는 관세음보살 또는 아미타불을 열심히 염송(念誦)하는 것만도 못한 것입니다.


‘이 무엇고?’ 아까 조실 스님께서는 판치생모(板齒生毛),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판치생모 화두를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를 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가운데 계신 분 가운데에는 조실 스님으로부터 판치생모 화두를 받으신 분이 계실 줄 생각합니다마는 그분은 천하없는 누가 뭐라 해도 끝까지 그 판치생모 화두를 가지고 공부를 하셔야 할 것이고,
또 시삼마(是甚麽) ‘이 무엇고?’ 시삼마 화두를 하신 분은 시삼마 화두,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를 하신 분은 정전백수자, 조주의 무(無)자 화두를 하신 분은 조주 무자, 어느 화두를 하던 간에 상관이 없습니다.

무자 화두가 더 좋고, 판치생모가 더 좋고, 시삼마가 더 좋고, 그 공안 자체에 있어서 더 좋고 나쁘고 한 것은 없어.

다못 문제는 자기가 목숨을 바칠 수 있을 만큼 철저히 믿어지는 선지식, 바로 깨달라서 선지식의 인가(印可)를 받은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그 화두를 받기만 했다면 천칠백 화두 가운데의 어느 화두를 타 가지고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어느 화두건 처음부터 한결같이 잘 들리는 화두는 없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잘 들린 듯하다가 얼마 안가서 그렇게 잘 들리지를 아니하고 애를 먹고 그러다가, 그 고비를 잘 넘기면서 공부를 지어가면 또 한결 수월하게 되다가, 그렇게 수월하게 계속 잘되어 갔으면 문제가 없겠지만,
얼마동안 가다가 뚝 변해 가지고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고, 몸이 뒤틀리고 시간이 지루하고 도저히 앉어서 참을 수가 없고, 공부가 더 이상 공부를 지속할 수 없을 만큼 그러한 역경계(逆境界)가 나타나는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부에 마장(魔障)이 붙은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분이 있지만, 대혜(大慧) 『서장(書狀)』에 보면 이러한 어려운 경계가 마장이 붙어서 그런 게 아니라 한고비 올라가기 위한 아주 중요한 경계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다가 그렇게 가슴이 답답하고, 몸이 뒤틀리고, 머리가 멍하고, 시간이 지루하고, 앉았을 수도 없고 섰을 수도 없고, 화두를 놓을 수도 없고 들 수도 없고, 이렇게 답답하고 어려운 경계에 도달하거든 조금도 걱정을 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자포자기를 하지 말고, 이것이야말로 앞으로 내가 한 걸음 공부가 나아가기 위한 그러한 중대한 지점에 도달했다고 하는 것을 명심을 하고,

그런 때에는 가만히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가지고 20미터나 30미터, 일직선으로 코스를 딱 정해놓고서 왔다갔다 한 5분 내지 10분을 하면 저절로 머리가 시원해지고 가슴이 후련해지면서 화두가 성성(惺惺)하게 들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또 자리에 가만히 와서 앉아가지고 허리를 쭈욱 펴고서 성성하게 그리고 적적(寂寂)하게 화두를 단속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잘 그 마음을 써 가지고 지혜롭게 그 고비를 넘기면 그 다음에는 한결 공부가 수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라 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것이 없고, 오직 한 생각—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한—그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 오직 그 한 가지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생사대사, 생사대사, 생사해탈(生死解脫), 경전에나 조사(祖師) 법문에 생사해탈 문제가 대단히 거론됩니다마는 대관절 그 생사(生死)라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한 생각 일어나는 것’ 그것이 생(生)이요, ‘일어났던 그 한 생각이 없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죽음인 것입니다. 생사. 생멸(生滅).

그래서 우리는 ‘부모한테 몸뚱이를 받아났을 때 그것이 생(生)이고, 한평생 살다 죽은 것이 그것이 사(死)’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마는 이 몸뚱이를 표준 할 때는 그렇지만,

우리는 이 몸뚱이를 표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나’ ‘아무개야!’하고 부르면 ‘예’하고 대답하는 그놈, 지금 입을 벌리고 이렇게 말하고 있는 그놈, 이렇게 하는 말을 들을 줄 아는 그놈, 그것에다 기준을 두고 생각해야 합니다.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하루 동안에도 수없이 많은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데 그것이 바로 생사인 것입니다.


고개를 들고 산승(山僧)의 얼굴을 보십시오. 고개를 숙이고 경건하게 듣는 것도 좋지만, 고개를 숙이고 듣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르르르 잠이 와서, 졸면서 잠을 자면 이것 재미가 없습니다.
눈을 딱 뜨고, 말을 하고 있는 저의 얼굴을 보면서 들어야 훨씬 더 잘 들리는 것입니다. 보기가 싫게 생겼지만 이 시간에는 불가불 좀 봐 주시길 바라겠습니다.(5분17초~23분16초)




(2)------------------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생사입니다.
그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생사의 연속이 바로 일평생(一平生)이 되고, 그것이 바로 육도윤회(六途輪廻)가 되고, 그것이 무량겁(無量劫)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계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고, 무엇이든지 어떠한 물건이 이루어지면 한동안 머물러 있다가 그것이 파괴가 되어 가지고 나중에는 없어집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해도 그렇고, 달도 그렇고, 별도 그렇고, 이 지구도 그렇고,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지 것도 영원불멸한 것은 없습니다. 다 성주괴공(成住壞空)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습니다. 어머니한테 태어났다가 한 살 두 살 먹다 보면은 늙고, 늙으면 죽습니다. 죽으면 10분이 못 가서 10분 뒤부터서는 오장육부가 버글버글버글 썩기 시작해 가지고 결국은 화장(火葬)을 하거나, 땅에다 묻는다 하더라도 한줌 흙이 되고 없어져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 몸뚱이는 생로병사가 있고, 우리의 마음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습니다.
한 생각이 일어났다가, 잠시 그 생각이 머물러 있다가, 다른 생각으로 변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그 생각이 꺼져버립니다. 꺼지자마자 또 새로운 딴 생각이 일어났다가, 잠시 머물렀다가, 또 다른 생각으로 발전해 가지고 결국은 또 그 생각이 없어집니다. 이렇게 하기를 무량겁을 해 내려왔습니다.

이 몸뚱이 태어나 가지고 오늘날까지도 그 우리의 생각에 생주이멸, 생주이멸, 생주이멸, 생주이멸이 거듭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생사요, 그것이 앞으로 영겁을 두고 육도윤회 할 근원을 장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염기염멸(念起念滅), 바로 그 생사 속에서 생사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은 길이 있습니다.

생사 속에 나를 맡겨버리면 결국은 나도 생사의 물결 속에 무량겁을 두고 윤회하는 떠돌이 신세를 면치를 못할 것이고, 이 끊임없이 거듭되는 이 생사의 물결 속에서 바로 생사해탈하는 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그 생각이 슬픈 생각이건, 기쁜 생각이건, 또는 어떠한 노여운 생각이건, 과거의 생각이건,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일어나는 그 생각을 버릴려고 하지 말고, 없앨려고 하지 말고,
한 생각이 일어났다—여기 앉아서 지금 딸 생각이 났다. 「딸이 지금 잘 있나?」 「애기가 잘 컸나?」 그런 생각이 났다 할 때에—「아! 내가 쓸 데 없는 생각을 했구나」 그런 생각도 하지 말고, 그 생각이 났을 때 ‘이뭣고?’

무엇이 금방 그 딸 생각을 했나? 이거여. 이 딸 생각하는 이놈이 뭣고?

과거에 어떤 친구로부터 배반을 당해서 불현듯 그 생각이 나 가지고 속에서 화가 탁! 치밀어 오를 때, 바로 그 생각을 버리지 말고 그 생각에서 ‘이뭣고?’

이것이 바로 생사 속에서 생사를 해탈하는 아주 묘한 그리고 간단한 방법인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를 단속하는 사람은 망상이 일어난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망상(妄想) 한 생각 일어날 때마다 바로 화두를 들기 때문에 그 망상은 바로 그것이 선지식의 한 법문이요, 경책(警策)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선지식 또는 부처님 또는 관세음보살 하면 32상(三十二相)과 80종호(八十種好)를 갖추어서 아주 우리가 법당에 모셔진, 탱화(幀畵)에 그려진 그러한 모습으로 계실 줄 생각하지만 마냥 그렇지를 않습니다.

불보살(佛菩薩)은 천백억 화신(千百億化身)을 나투는 것입니다.

때로는 비구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여자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장자(長者)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거지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강도 도둑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문둥이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철없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시어머니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며느리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남편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아내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친구로 나타나기도 하고, 친구로 나타나서 신의를 지키는 그러한 친구로만 나투는 게 아니라 배반 배신하는 그런 친구로도 나타나고,
아내로 나타나면 아주 현모양처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아주 고약한 악처(惡妻)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수도 있습니다. 좋은 남편으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외도를 일삼는 천하의 색마(色魔)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어떻게 내 마음에 꼭 맞는 그러한 선지식으로만 나타난다면 그 참 그런 좋을 수가 없겠지마는, 불보살은 중생을 하루라도 더 빨리 생사해탈을 하게 하기 위해서 너무나도 자비가 크신 까닭으로 해서 천백억 화신으로 역경계(逆境界) 순경계(順境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발심한 사람, 참으로 진발심(眞發心)을 한 사람이라야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도 불보살을 친견할 수가 있고, 선지식을 바로 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발심을 못한 사람은 선지식을 노상 코앞에 모시고 있으면서, 한 자리에 불보살을 모시고 살면서도 선지식을 알아보지를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식이 누군가를 모르는 것입니다.

다시 더 분명히 말하자면 『불보살 아닌 사람이 없고, 불보살 아닌 것이 없고, 선지식 아닌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기가 발심을 했느냐, 못했느냐? 진발심을 했느냐, 못했느냐? 거기에 달려있는 것이지, 행여나 선지식이 없을까 걱정할 것 없고, 불보살을 만나지 못할까 근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부터서라도 댁에 가시거든 남편이 나한테 잘해 주건 못해 주건, 며느리가 자기한테 효도를 하건 말건, 시어머니가 자기에게 잘해 주시건 안해 주시건, ‘바로 저분이 선지식이다. 저분이 바로 불보살 화현(化現)으로 나타난 분이다’ 이리 생각하고,

오히려 더 시어머니가 자기한테 잘못할수록에 발심을 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한테 잘못할수록에 더욱 발심을 하고, 사돈이 자기한테 섭섭하게 할수록 자기는 더 발심을 해서,
이렇게 마음을 쓰고, 이렇게 말을 하고, 이렇게 행동에 옮긴다면 거기에서 자기의 과거에 어떠한 두터운 업장이라도 거기에서 다 소멸이 될 것이고, 업장소멸(業障消滅)하면 소원성취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소원을 성취하지 못한 것은 업장이 가로막기 때문에 성취를 못하는 것이니까, 업장만 소멸한다고 하면은 소원성취는 바로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거기에서 성취하는 것입니다.

3일 기도를 한다든지 7일 기도를 한다든지 또는 백일기도(百日祈禱)나 천일기도(千日祈禱), 만일기도(萬日祈禱) 이렇게 합니다마는, 어째서 그렇게 사람에 따라서는 3일 기도를 하고도 소원을 성취를 하고, 백일기도를 하고도 성취를 하고, 만일기도를 하고도 성취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째서 빨리하는 사람도 있고, 더디하는 사람도 있냐?’하면은 업장이 얼마만큼 소멸이 되었냐 거기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3일 기도만 하고도 마음이 맑아져서 불보살의 마음과 같이만 된다면 3일에도 소원을 성취해.

한번 가서 간절(懇切)한 마음으로 향 하나를 올리고 절을 하고, 청수(淸水) 한 그릇을 올리고 간절히 절하고 와서 그리고서 소원을 성취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 간절히 향 하나 올리고, 물 한 그릇 올리고 소원을 할 때 그 마음, 부처님 마음과 하나가 된다면 절 한 자리 하는 사이에도 소원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우리의 마음이 맑고 깨끗해지는 것은 꼭 오랜 시간만이 걸려야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한 생각, 한 생각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어째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어째서 조주는 무(無)라고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생각생각마다 들고 또 들고, 앉거나 서거나 누웠거나 걸어다니거나 차를 탈 때나 행주좌와 어묵동정을 가리지 말고,
속이 상할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일을 할 때나, 누구와 이야기를 하는 그 사이도, 밥을 먹을 때나, 똥을 눌 때나, 소지를 하거나, 밥을 짓거나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할 때라고 ‘이뭣고?’

‘하! 공부가 안된다’고, 공부가 안된다고 하는 생각이 그것이 자기로 하여금 공부가 안되게 하는 것이여.

“어째서 안되냐? 무엇을 안된다고 하느냐?”
“망상이 일어나서 안됩니다”

망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그 자리에서 ‘이뭣고?’하면 그것이 공부인데, 망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공부가 안된다고 왜 그러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냐. ‘안된다’고 생각함으로써 자기로 하여금 ‘공부 안되는 사람’으로 스스로 낙인(烙印)을 찍는 것이 된다.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

화두를 타 가지고 바로 그때부터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가지고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공부가 된다면 어찌 일주일을 넘을 필요가 있느냐.

무량겁(無量劫)으로 지어온 자기의 업(業)이 산과 같고, 바다와 같기 때문에 번뇌와 망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고, 체질화가 되어 가지고 가만히 있어도 별별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누구를 원망할 것이냐.
떠오르는 그 많은 중생심(衆生心), 번뇌 망상심, 생멸심 그것을 꼭 나쁘다고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진여불성은 모양도 없고, 냄새도 없고, 빛깔도 없고, 그래서 무어라 표현할 수도 없고, 눈으로 볼라야 볼 수도 없고, 코로 냄새 맡을 수도 없고, 손으로 만져볼 수도 없지마는, 그놈이 너무나도 신령스럽고 신기하고 묘한 것이라, 때와 인연 따라서 천만 가지 모습으로 천만 가지 빛깔로 그놈이 활동을 하게 됩니다.

때로는 불보살과 같이 착한 마음을 내기도 하고, 때로는 살인강도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천하의 대학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천하의 역적이 되기도 합니다. 그 얼마나 미묘하고 신령스러운 것이라 그렇게 천만 가지 모습으로 나타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성내는 놈, 슬퍼하는 놈, 기뻐하는 놈, 원망하는 놈, 아퍼하는 놈, 괴로워하고 외로워하는 놈, 이것이 전부 다 진여불성으로부터서 일어나는 한 거동이요 모습일진대, 그 거동 그 모습을 버릴려고 할 것이 없어.

바로 그놈을 계기로 해서 ‘이뭣고?’ 이렇게 들어가면 그것이 바로 자기 진여불성을 찾는 가장 가깝고 빠르고 묘하고 간단한 길이다.
중생의 번뇌 망상심 그놈을 버리고 어떠한 진여불성을 찾아서 깨달으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무량겁을 두고 공부를 한다해도 그 사람은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중생심은 그것이 바로 대승법,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체(體)다. 그 중생심, 번뇌 망상심 그것 때문에 육도(六途)를 윤회한다고 아까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그것 때문에 우리는 성불(成佛)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다 그말이여.

그러니 그 번뇌 망상이 우리에게는 원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큰 은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최상승 활구참선, 이 정법을 믿고 공부한 사람에게는 그 번뇌 망상이 바로 불보살의 손이요, 불보살이 보내주신 반야용선(般若龍船)이지만,
정법을 믿지 않고 활구참선법을 믿지 않는 사람은 중생심, 번뇌 망상심 이것이 큰 원수요, 나를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끌고 가는 원수요 도적놈이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이 육적(六賊)이라, 여섯 도적놈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거기에다 두고 하는 말이다.

한 생각 정법을 믿으면 여섯 도적놈이 바로 6대보살(六大菩薩)이여. 나를 극락세계로 불국세계로 인도하기 위해서 반야용선을 가지고 나를 영접하러 온 보살화신이고,
정법을 믿지 않는 사람은 여섯 도적놈이 되어 가지고 눈으로 귀로 코로 귀로 입으로 몸으로 생각으로 여섯 문을 통해서 기회만 있으면 지옥으로 끌고갈려고 엿보고 있다 그말이여.

이러한 최상승법, 활구참선법. 인간으로 태어나기도 어렵지만 인간으로 태어나가지고 어떻게 해서 이러한 묘한 최상승법을 우리는 만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 나도 희유하고 감사하고 다행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다행한 마음으로 한 생각 한 생각을 ‘이뭣고?’로 돌려서 슬픔도 그놈으로 이겨내고, 노여움도 이 ‘이뭣고?’로 이겨내고, 괴로움도 이 ‘이뭣고?’로 이겨내고, 이렇게 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물어볼 것도 없이 결정코 금생에 자아를 자각, 대도를 성취해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받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몽산 큰스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렇게 간절히 3년을 해봐라. 결정코 대도를 성취할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해서 성취를 못하면 내가 네 대신 무간지옥에 가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결제일이기 때문에 조실 스님의 법문도 이 화두, 공안에 대한 법문을 추려서 들었고, 또 산승도 이 공안에 대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하는 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두 하나만 제대로 들을 줄 알면 그 사람은 갈 곳이 없습니다. 결정코 대도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23분17초~44분2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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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

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실참실수(實參實修) ; 실답게 참구(參究)하고 실답게 수행하는 것. 공안(화두)을 이론으로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아닌 선지식의 지도 아래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을 말한다.
*화두(話頭)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것.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 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 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부고(訃告 부고 고,알릴 고) ; 어떤 사람의 죽음을 연고자에게 알림. 또는 그러한 글.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방(榜) ; 용상방(龍象榜)을 말함.
[참고] 용상방(龍象榜) ; 절에서 하안거 동안거 결제 때나, 큰일을 치를 때에 각자 할 일을 정해 붙이는 명단. 행사가 끝날 때까지 모든 사람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붙여서 각자가 맡은 일에 충실하도록 한 것이다.
*생사대사(生死大事) ; ①삶과 죽음, 생사(生死)의 큰 일. ②수행을 하여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는 큰 일.
*단월(檀越) ; 시주(施主). dana-pati 의 음역.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공양(供養) 청장(請狀) ; 공양 청첩장. 재가신도가 스님들께 공양(식사)을 드리기 위하여 초청하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어록(語錄) ; 조사어록(祖師語錄). 선종(禪宗)에서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를 전하는 조사(禪師)나 귀의나 존경을 받을 만한 선승(禪僧)의 가르침, 문답, 언행을 모은 글, 또는 그 책.
*발설여경지옥(拔舌犂耕地獄) ; 또는 발설이경지옥(拔舌犂耕地獄). 犂(밭 갈 리, 밭 갈 려).
사람의 혀를 길게 빼 늘여 놓고, 그 혓바닥을 소 쟁기로 쟁기질을 하는 지옥.
*몽산(蒙山) ;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하열(下劣 아래 하/못할·낮을 렬) ; (행동이나 생각이) 남보다 뒤떨어짐. 수준이 낮음.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거두절미(去頭截尾) ; 말이나 사건 등의 부차적인 설명은 빼어 버리고 사실의 요점(要點)만 말함.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관건(關鍵 빗장 관,열쇠 건) ; 어떤 일의 성패나 추이를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나 요인.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함[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이러한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惑-業-苦 三道]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치성(熾盛 성할 치,성할 성) ; 불길이 일어나는 것과 같이 성하게 일어남.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
*염송(念誦 생각 념,욀 송) ; 마음속으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불경(佛經)이나 진언(眞言) 등을 외움.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말. [참고]헤살;남의 일이 잘 안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대혜(大慧) 스님 ;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대혜서(大慧書)·『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62()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 역설하였다.

*한고비 ; 어떤 일의 진행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거나 어려운 단계나 국면.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조사(祖師) : ①1종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종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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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다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 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
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경책(警策 깨우칠 경,채찍 책) ; 타이르고 채찍질하여 깨우치게 하는 것.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과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먹음은 것,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것 등등.
*탱화(幀畵) ; 부처님, 보살, 성현들을 그려서 벽에 거는 그림. '탱(幀)'이라고도 한다.
*화신(化身) ; 화신불(nirmaka-kaya 化身佛). 부처의 삼신(三身:法身•報身•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응화신(應化身)·변화신(變化身)•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장자(長者) ; ①덕망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아 세상일에 익숙한 어른. ②큰 부자를 점잖게 이르는 말.
*악처(惡妻) ; 성품이나 행실이 바르지 못하고 사나운 아내.
*색마(色魔) ; 성행위나 성관계 따위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사람을 마귀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障礙)가 사라져 없어짐.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낙인(烙印 지질 락,도장 인) ; ①다시 씻기 어려운 부끄럽고 욕된 평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불에 달구어 찍는 쇠붙이로 만든 도장.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중생심(衆生心) ; 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가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 진여(眞如)를 가르켜 말함. 진여의 실체.
진여가 광대하여 모든 것을 포섭한 것을 대(大)라 하고, 일미 평등(一味平等)하여 차별의 모양을 여읜 것을 총상(總相), 수행하는 이의 모범이 되는 것을 법(法), 관하는 지혜가 드나드는 것을 문(門)이라 한다.
*반야용선(般若龍船) ; 생사의 고해(苦海)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반야(船若, 지혜)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彼岸)의 극락정토로 중생들을 건네 주는 반야바라밀의 배[船]를 말한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말. ②법신(法身)은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뜻.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Posted by 닥공닥정
하안거 해제 백종2014. 8. 12. 14:49

§(178) (게송)몽리명명유육추~ / 환몽(幻夢) /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은 교외별전(敎外別傳) / 불방일(不放逸)-최상승계(最上乘戒) / (게송)진로형탈사비상~.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은 교외별전(敎外別傳)이여. 팔만대장경을 완전히 한데 뭉쳐서 삶아서, 거기에 아주 그걸 농축을 해 가지고 뽑아낸 거여.


진짜 정진을 할 줄 아는 사람의 참다운 용맹정진이라 하는 것은 ‘불방일’이라 하는 글자 석자를 벗어나지를 않습니다.


모든 불법의 근본인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활구참선을 여법(如法)하게 해 나가면, 계(戒)의 지키는 상(相)이 없이 저절로 모든 계가 지켜져 버리면 이것을 바로 최상승계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178) - 1982년(임술년) 하안거 해제법회. (용178)

 

(1) 약 16분.

 

(2) 약 14분.


(1)------------------

몽리명명유육추(夢裏明明有六趣)한데  각후공공무대천(覺後空空無大千)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몽리명명유육추(夢裏明明有六趣)러니, 꿈을 꾸고 있을 때에는 분명하게 육도(六道)가 있더니,
천당도 있고, 지옥도 있고, 축생도 있고, 아귀도 있고, 희로애락이 있고 생로병사가 있고 분명히 그 꿈속에서는 그러한 육도가 있더니,

각후(覺後)에는 공공무대천(空空無大千)이로구나. 깬 뒤에는 비고 비어서 대천세계(大千世界)가 없어져 부렀다 그말이여.

꿈속에 돈 뭉탱이를 줏었다. 하! 이런 보배 뭉탱이를 줏었다. 이러헌 좋은 보배를 평생에 갖고 싶었는데 어떻게 이것을 내가 얻었던가.
그렇게 기쁘고 흐뭇하고 어쩔 줄을 모르다가, 꿈을 딱! 깨고 보니까 그렇게 좋아하고 만지작거렸던 그 보물이 간 곳이 없더라.

꿈속에 그 독사란 놈이 물려고 쫓아와서 그 진땀을 흘리고 두려운 공포에 떨었었는데 탁! 눈을 뜨고 보니까 그 혀를 널름거리고 달라들었던 독사가 간 곳이 없더라.
천당과 지옥도 중생의 환몽(幻夢)—환상(幻想)의, 환각(幻覺)의 꿈을 꾸고 있을 때 천당이 있었고 지옥이 있었고 축생이 있었지만, 중생의 그 환몽을 깨버린다면 천당도 간 곳이 없고 지옥도 간 곳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출세(出世)하셔 가지고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서 6년의 그 피나는 고행을 하셔서, 마침내 납월 팔일(臘月八日) 동천(東天)에 뜬 샛별을 보시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셨는데,

확철대오를 하셔 가지고 49년 동안 팔만사천의 법문을 설하셨는데 깨달으신 것이 무엇을 깨달렀냐?
환몽(幻夢)을 깨신 것이고, 설하신 것이 무엇을 설하셨냐 하면 그 환몽을 깨는 방법을 설하신 것이여.

처음에는 바로 그 환몽(幻夢)을 깨는 법을 설하셨지만,
중생의 근기(根機)가 하열(下劣)해서 아무도 알아듣지를 못하니까 알아듣기 쉬운, 행하기 쉬운 방편(方便)을 설하시다가 마지막에 가서 바로 이 깨는 법을 여지없이 설하셨다 그말이여.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은 교외별전(敎外別傳)이여.
팔만대장경을 완전히 한데 뭉쳐서 삶아서, 거기에 아주 그걸 농축을 해 가지고 뽑아낸 거여.

바로 이 활구참선은 팔만대장경 속에는 없어요.
물론 깨달은 분이 보면은 글자마다, 한 말씀마다 바로 활구참선 아닌 것이 없지만, 그것은 깨달은 눈으로 볼 때 그런 것이고 깨닫지 못한 사람의 눈에는 활구참선법은 팔만대장경 속에는 없는 것이거든.

용궁(龍宮)에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모든 법이 한 자(字)도 빠짐이 없이, 한마디도 빠짐이 없이 전부다 용궁에는 용왕에 의해서 그것이 다 보관이 되어 있지만, 그 용궁에 있는 경전 속에도 이 활구참선법은 없다 이것입니다.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 이것은 교외별전이기 때문에 경전에는 없는 것이다 이 말씀이여.

그 경전 가운데에는 없는 이 활구참선법이 달마대사(達摩大師)에 의해서 천오백 년 전에 중국에 전해졌고,
이조 혜가(二祖慧可), 삼조 승찬(三祖僧璨), 사조 도신(四祖道信), 오조 홍인(五祖弘忍), 육조 혜능(六祖慧能) 선사를 거쳐서 오늘날에까지 그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등등상속(燈燈相續)으로 이 활구참선법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활구참선법이라는 게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여.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입니까?’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
‘개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없습니까?’하고 묻는데, 조주스님이 대답하기를 ‘무(無)’라 했으니, ‘어째서 조주는 무(無)라고 했는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문헌에 오른 공안(公案)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여. 천칠백 화두인데 어느 공안이나 좋고 나쁘고 한 것이 없어.

그러나 자기가 믿는,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간택을 받았으면,
공부가 잘되건 못되건 따지지 말고 그 한 공안상에 대의단(大疑團)을 일으켜서, 그 의단 하나만을 간절히 거각(擧却)해 나간다면, 결국은 화두를 들지 아니해도 저절로 들어진 단계가 오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이 공부는 너무 간단하고 너무 쉬웁고 너무 가까와서 그래서 하기가 어렵고, 잘 되어도 잘 된 줄을 모르고 이미 화두가 들어져 갖고 있어... (녹음끊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공부는 바로 가르켜 줄 수 있는 스승을 자주 만나지 않고서는 올바르게 할 수가 없습니다.

애써서 공부를 해 가지고 중대한 고비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고비를 잘 단속해 나갈 줄을 모르고,
공연히 거기서 스스로 분별심을 내 가지고 공연히 주저하고 망설이고 갈팡질팡하고 스스로 혐의심(嫌疑心)을 내 가지고 아까운 고비를 헛되이 지내버리는 예가 종종 있습니다.

「서장(書狀)」에 대혜(大慧) 스님의 법문을 보면, 화두를 들어도 잘 들리지 아니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시간이 지루하고 몸부림이 처지고, 나귀를 끌고 우물로 들어가는 것과 같고, 앞도 맥히고 뒤도 맥히고 좌우도 끊어져서 어찌 할 바를 모르는 그러헌 복잡하고 어려운 고비,
이러한 경계에 도달한 것이 이것이 공부가 잘못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앞으로 크게 깨닫게 될 그 이전의 경계다.

그러기 때문에 이러한 경계에 도달했을 때에 번뇌심을 내지를 말고 짜증을 내지 말고,
두려워서 ‘이것이 내가 이거 잘못 될라고 그런 것이 아닌가’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물러서지를 말고 그러한 고비에서 지혜스럽게 잘 단속을 해서 그 고비를 넘겨라.
‘절대로 물러서거나 공부를 놓아버리지 말고, 잘 그 고비를 넘겨야 한다’고 하는 말씀을 누누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공부를 지어가는 것이 그 고비를 잘 넘기는 것이냐?’하면,
무릎이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쩌 눌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터질 것 같고, 이 오목가슴에 무슨 뭉텅이가 생겨 가지고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고 소화도 잘 안되고,

화두를 들어도 머리는 먹먹해 가지고 영 애를 먹을 때에, 그럴 때에는 앉아서 억지로 비울라고 하기 보다는 조용하게 일어나서 적당한 장소에 일직선으로 딱 정해 놓고서,
한 4~50미터를 일직선으로 코스를 딱 정해 놓고 단전호흡을 하면서 왔다갔다하면서 그 가운데 화두를 떠억 들어보라 이 말씀이여.

그러면은 그 답답하고 복잡하고 하는 것이 스르르르하니 그것이 없어지면서 속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 말이여.
그렇게 한 5분 내지 10분을 그렇게 포행을 하고서 시원해지거든 다시 또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허리를 쭈욱 펴고 극히 자연스럽게 단전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떠억 들어보라 이 말씀이여.
아주 개운하고 시원하게 화두가 들릴 것이다.

또 얼마동안 잘되어 가다가 다시 또 답답해지면 앉아서 단전호흡을 몇 번을 하면 또 시원해지면 고대로 시간을 끌고 나가고, 그렇게 해도 공부가 안 되면은 또 조용하게 나가서 포행을 하고,
허기는 여러 대중이 꽈악 짜고 정진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들랑날랑하면 옆에 분들이 미안해서 차마 그럴 수가 없지요.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억지로 앉아서 그 죽비칠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참 대단히 거북하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옆에 분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렇게 허리가 아프던지, 정진이 답답해서 가슴이 미어질라고 하면 조용하게 나가서 지혜롭게 정진을 해 가지고 고비를 넘긴다면, 그러고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한결 정진이 수월하게 된다 그말이여.

그래서 공부가 한 단계 힘을 덜게 되는데, ‘그 힘을 덜게 되는 것(省力)이 바로 정진에 힘을 얻는 것(得力)이 된다’ 이 말씀입니다.

앞으로 산철 동안에는 그러한 규칙에 그렇게 크게 얽매이지 않는 계절인 만큼,
지금 산승이 일러드린 말씀을 십분 참작해서 그 여름 더운 동안에 못다한 공부를 이 산철 동안에 정말 알뜰하게 정진을 해서 그 봉을 빼도록 노력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22분10초~38분7초)

 

 

 



(2)------------------

이 정진(精進)은 한마디로 말해서 불방일(不放逸)인 것입니다.
불방일(不放逸)—아니 불(不)자, 놓을 방(放)자, 편안할 일(逸)자. ‘방일(放逸)하지 않는다.’
‘방일한다’고 하는 것은 ‘놓아 지낸다’ 그말이여. ‘그럭저럭 놓아 지낸다’ 그말인데, 그럭저럭 놓아 지내지 아니한 것이 그것이 '참정진'이다 이 말씀이여.

‘정진을 한다’하면은 꼭 아주 가행정진·용맹정진 그 정진상(精進相)을 지어서 막 이 몸을 갖다가 얽어매고 알날신심(遏捺身心)한 것을 갖다가—몸과 마음을 억지로 구속하고 얽어매 가지고 몸을 못살게 구는 것을 갖다가 가행정진이다 또는 용맹정진이다 이렇게 일반적으로 생각합니다마는,

진짜 정진을 할 줄 아는 사람의 참다운 용맹정진이라 하는 것은 ‘불방일’이라 하는 글자 석자를 벗어나지를 않습니다.

불방일만 한다면,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바로 화두가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해서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화두가 들린다면 앉아서도 정진이요 서서도 정진이요, 24시간 간단없이.
장차는 참으로 정진이 익숙해지면 꿈속에서도 화두가 순일하게 들릴 것이고, 꿈도 없고 그 깊은 잠에 들었을 때에도 화두가 순일무잡하게 떠억 들린다면 이보다 더 훌륭한 용맹정진이 어디 있을 것이냐 이 말씀이여.

그렇게 될라면은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마는 그래도 우리 수행인은 거기에다 목표를 두고 계속해서 정진을 다져나가야 할 줄 생각합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정진을 다져간다면 무슨 파(破)해야 할 계율이 있으며, 다시 또 무슨 지켜야 할 계율이 어디가 있으며, 무슨 따져야 할 시비가 있으며, 무슨 부족함이 있겠습니까.

죽이면 죽, 밥이면 밥, 떡이면 떡, 국수면 국수 그때그때 공양 시간이 되면 공양하고, 잘 시간이 되면 자고, 울력 시간이 되면 울력을 하고, 소지(掃地) 시간이 되면 소지를 하고, 또 빨래를 할 시간에는 빨래를 하고,

언제 어데서 무엇을 하던지 간에 한 생각 한 생각만을 알뜰하고 간절하게 단속해 나간다면,
비구 250계(戒), 비구니 348계, 또는 보살의 십중대계(十重大戒)와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이 의식적으로 지킬려고 안 해도 저절로 모든 계율이 지켜져 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승계(大乘戒)요, 최상승계(最上乘戒)라 하는 것입니다.

모든 불법의 근본인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활구참선을 여법(如法)하게 해 나가면, 계(戒)의 지키는 상(相)이 없이 저절로 모든 계가 지켜져 버리면 이것을 바로 최상승계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조(六祖)스님께서는 「법보단경(法寶壇經)」에 자심(自心),
그 마음 그름이 없는 것이 자성(自性)의 계(戒)요, 마음 어지러운 것·산란한 것 없는 것이 자성(自性)의 정(定)이요, 마음에 그름·허물이 없는 것이 바로 이것이 자성(自性)의 혜(慧)라, 이렇게 설파를 하신 것입니다.

오늘은 백일기도 회향일인데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들은 바로 용화사 법보선원에 방부를 드리고 정진하는 보살님과 그 근본에 있어서는 조금도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백일기도에 들었기 때문에—백일기도에 들은 그 정성에 의해서 이 용화선원이 잘 운영이 되았기 때문에 여러 스님네들이 정진을 잘 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정성으로 이 선원이 잘 운영되어 가는데 여러분이 무슨 마음을 가지고 그 동안에 살았겠느냐 그말이여.
법회 때 나와서 법문(法門)을 듣고, 법문을 듣고 가셔서 이 참선을 댁에서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서 참선을 하셨으니 어찌 그것이 이 용화선원에 방부를 들인 것이 아니겠느냐 그말이여.

바로 이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은 복(福)과 지혜(智慧)를 쌍(雙)으로 닦으신 분들이다 그말이여.
복을 지어서 선원을 잘 운영해 나갔으니 한량없는 무루복(無漏福)을 닦은 것이고, 또 여러분도 가정에서 참선을 열심히 했으니 최상승법을 닦아서 무루혜(無漏慧)를 닦은 것이 된다 그말이여.

‘이 세상에서 어느 분이 복(福)과 혜(慧)를 가장 원만히 구족하신 분이냐?’하면 바로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이야말로 천상천하에서 복과 혜, 복혜(福慧)를 원만구족(圓滿具足)하신 어른이다.

그래서 삼귀의(三歸依)를 할 때 ‘귀의불 양족존(歸依佛 兩足尊)’
2가지가 족(兩足)한 최고의 높으신 어른께 귀의합니다.’ 이 2가지가 구족하다는 것은 바로 ‘복(福)과 혜(慧) 2가지가 구족하다’ 이 말씀입니다.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에 의해서 닦아가는 불제자로서 그 2가지를 구족하도록 노력을 하고 정진을 한다면 우리의 정진은 결단코 삿된 데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 백일기도 회향이 바로 오늘입니다.

‘백일기도가 끝났으니까 인자 나는 뭐 닦아야 할 복도 없고, 닦아야 할 혜도 없다’ 그리 생각하지를 말고 산철 동안 열심히 정진을 해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하고, 상(相)에 떨어지지 않는 정진을 해 나가시면,
또 다시 음력 10월 15일이 들면 그때 또 백일기도에 동참을 하시고, 또 가정형편이 허락이 되면 또 여기에 정식으로 방부를 들여서 이 용화사 법보선원에 오셔서 정진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이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은 그 공덕으로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었던 크고 작은 소원이 반드시 성취가 되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고
나무~아미타불~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여. 진로형탈. 티끌 수고로운 거, 생사진로, 생사해탈하는 것이 이 일이 조그만한 보통 일이 아니다.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긴밀하게 승두(繩頭)를 잡아서—화두를 놓치지 말고 잡아서, 한바탕 공부를 지을지니라.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한바탕 이 추위가 뼛골 속에 사무치지 아니할 거 같으면,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냐.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침을 얻을 것이냐.

되게 강추위를 한 뒤끝에 핀 매화라야 코를 치는 그러한 향내가 진동을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겨울 날씨가 이상 기온이 되아가지고 뜨뜻해서 강추위를 아니하면 그런 끝에 핀 매화는 향취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매화꽃이 그러듯이 우리가 정말 간절(懇切)한 마음으로 뼛골에 사무치는 그러헌 간절하고도 알뜰한 정진을 하지 않고서 어찌 고불조(古佛祖)와 같은 확철대오를 할 수가 있을까보냐 이 말씀이여.

이 게송은 황벽 스님께서 우리 후래(後來) 불자를 위해서 일러주신 게송입니다.
수행 납자(衲子)가 하루 한때라도 잊어서는 안될 그러한 좋은 좌우명(座右銘)이라고 생각이 됩니다.(22분10초~51분49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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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夢裏明明有六趣  覺後空空無大千’ ; 「증도가(證道歌)」 영가현각(永嘉玄覺) 선사.
*대천세계(大千世界) ;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의 약칭.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납월 팔일(臘月八日) ;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성도(成道)한 날을 말함.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하열(下劣 아래 하,못할·낮을 렬) ; (행동이나 생각이) 남보다 뒤떨어짐. 수준이 낮음.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8, p34에서.
(5)世尊이  三處傳心者는  爲禪旨요  一代所説者는  爲教門이라. 故로  曰,  禪是佛心이요  教是佛語니라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教門)이 되었다。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教)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6)是故로  若人이  失之於口則拈花微笑가  皆是教迹이요.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가  皆是教外別傳禪旨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것(拈花微笑)이 모두 교의 자취(教迹)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教外別傳禪旨)가 되리라.
*면면밀밀(綿綿密密) ; 면면(綿綿)하고 밀밀(密密)하게. 끊어지지 않고 아주 빽빽하게 죽 잇따라 있는.
*등등상속(燈燈相續) ; 등(燈)은 중생의 무명(無明)을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등(燈)에 비유한 말, 이 진리의 등(燈)을 스승이 그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이어짐을 일컬음.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언하대오(言下大悟)] (용화선원) p53 에서.


[참고] 송담스님(No.246)-84년(갑자년) 추계산철결제 법문(84.08.27)에서.
한 스님이 조주 스님에게 묻기를 ‘여하시(如何是)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입니까?’
‘어떤 것이 달마 조사가 인도에서 오신 뜻입니까?’ ‘달마 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오신 의도가 무엇입니까?’ 이렇게 묻는 데 대해서 조주 스님이 대답허기를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 이렇게 대답을 하셨는데,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달마스님이 왜 인도에서 중국으로 오셨느냐?’하고 묻는 데에 대해서,
‘참선법을 설하기 위해서 오셨다’ ‘내가 내 마음을 깨달라서 견성성불을 허는 법을 가르키기 위해서 왔다’
우리의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에는 그렇게 대답험즉 한데,

또 ‘달마 스님은 부처님으로부터 가섭존자, 가섭존자로부터 아난존자, 아난존자로부터 상나화수, 이렇게 해서 달마 스님까지 28대를 법을 전해 왔는데, 그 28대 조사인 달마 대사가 그 부처님으로부터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내려오는 그 최상승법, 정법을 중국에 전하기 위해서 오셨다’ 이렇게 대답험즉 한데,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아! 이렇게 대답을 해.

‘대관절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을꼬~?’
이것이 바로 공안(公案)이라 하는 것이고, 화두(話頭)라 하는 것인데.

이것은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이론적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여.
이 화두를 참구하는 데에는, 그 동안에 자기가 배우고 알고 한 모든 지식이 여기에 동원되야서는 아니 되고, 모든 이론이 여기에 동원이 되어서는 아니 되어.

다못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앉아서도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걸어가면서도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밥을 먹으면서도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억울한 소리를 듣고 울화통이 치밀어서 속이 상할 때도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다못 그렇게만 참구를 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 법당에 계신 많은 신남신녀(信男信女) 사부대중이 ‘이뭣고?’, 이 ‘시삼마(是甚麽)’ 화두를 하시는 분이 많으실 줄 생각을 합니다마는, 시삼마(是甚麽) ‘이뭣고?’ 화두를 하시는 분은 ‘이뭣고~?’

앉아서도 ‘이뭣고?’, 걸어가면서도 ‘이뭣고?’, 똥을 누면서도 ‘이뭣고?’, 밥을 먹으면서도 ‘이뭣고?’, 차를 타면서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에도 ‘이뭣고~?’
다못 앞도 없고 뒤도 없고 무조건하고 그렇게만 참구를 해 나가는 것입니다.

 

*위의 송담스님 ‘판치생모, 이뭣고?’화두에 대한 말씀이 포함되어 있는 음성법문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 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용화선원) p52~53 에서.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이 무엇고(이뭣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혐의(嫌疑) ; 꺼리어 싫어함.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대혜서(大慧書)·『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62()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 역설하였다.

*바우다 ; 피하다 혹은 견디다, 이겨내다를 의미하는 전라도 사투리.

 

 

 



------------------(2)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불방일(不放逸) ; ①방일(放逸-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마음 놓고 지냄)·해태(懈怠-게으름)하지 않은 것. ②온갖 선법(善法)을 닦는 것. ③능히 마음을 수호하는 것.
[참고]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 제1권.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에서는 "온갖 선법(善法)에 있어서 방일(放逸)하지 않음, 즉 불방일을 으뜸으로 한다(於一切善法 不放逸為尊)"고 말하면서, 불방일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爲斷不善法。爲圓滿善法。常習常修堅作恒作。數修不止名不放逸。
불선법(不善法)은 끊고 선법(善法)은 원만하게 하기 위하여, 항상 익히고 항상 수행하며 견고하게 짓고 한결같이 지으며 자주자주 수행하면서 그만두지 않는 것을 불방일(不放逸)이라 한다.

[참고] 「불교평론」 (2005년 겨울), ‘붓다의 죽음’(안양규 글) p33에서.
팔리어본 「열반경」에 의하면 붓다는 제자들로부터 ‘불법에 의심이 없다’라는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은 최후의 가르침을 남긴다.
“비구들이여! 이제 나는 너희들에게 말한다. 제행(諸行)은 소멸되기 마련이다. 방일하지 않고(appamādena) 정진하라.”(디가 니까야, 열반경 D16)
무상한 세계에서 벗어나도록 정진하라는 가르침은 붓다의 유언으로 제자들에게 남겨졌을 법한 내용이다.

불방일(不放逸)의 원어는 'appamāda'인데 부정접두사 'a'와 'pamāda'로 이루어진 말이다.
'pamāda'는 어떤 자극에 의해 정신이 마비된 것을 가리키는 말로 특히 만취한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appamāda'는 마음이 깨어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단순히 무엇인가를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이(diligent) 아니라 마음이 또렷이 각성(覺醒)한 상태(vigilance)이다. (Nyānatiloka, Buddhist Dictionary : Manual of Buddhist Terms and Doctrines. Kandy. 1980)

*알날신심(遏捺身心  누를 알,누를 날,몸 신,마음 심) ; 몸과 마음을 억누르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울력 ; 함께 힘 모아 일하는 것,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일이란 우리말. 그러나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운력(雲力)이라고도 하며, 함께 힘을 기울인다는 의미로 운력(運力)이라고도 한다. 의미와 관계없이 울력은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뜻.
*소지(掃地) ; ①마당(땅)을 쓸다. ②청소.
*십중대계(十重大戒) ; 대승 불교에서, 보살이 범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열 가지 계율.
①살생, ②도둑질, ③간음, ④거짓말, ⑤술의 구입 및 판매, ⑥보살 및 비구나 비구니의 죄과를 들추어 말함, ⑦자기를 높이고 타인을 비방함, ⑧베푸는 데 인색함, ⑨화내어 타인의 사죄를 받아들이지 않음, @불법승(佛法僧)의 삼보(三寶)를 비방함 등을 금하고 있다.
*삼천위의(三千威儀) ; 비구(출가한 남자 스님)의 일상 행동에서 지켜야 할 계율이 250종이어서 이를 ‘비구 250계’라고 한다. 일상생활은 크게 행(行)·주(住)·좌(坐)·와(臥)로 나누기 때문에 이 네 가지에 250을 곱하면 천이 된다. 이를 다시 과거·현재·미래의 삼세(三世)에 곱하면 3천이 된다.
*팔만세행(八萬細行) ; 부처님의 모든 행동은 원만하여 모자라거나 넘침이 없다는 것. 팔만 가지 세세한 행동들이 전부 부처님의 위의(威儀, 훌륭한 행위)에 어긋남이 없다는 뜻이다.
*법보단경(法寶壇經) ; 중국 선종의 제6조로서 남종선의 개조인 혜능(慧能:638~713)이 사오관[韶關]의 대범사(大梵寺)에서 행한 공개 설법의 기록을 중심으로 생애와 언행을 제자 법해(法海)가 모았다고 전해지는 책. 본래 명칭은 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壇經)이며 약칭하여 '단경'이라고도 한다. '단'은 계단 (戒壇)을 가리키고 '경'은 경전과 같은 권위를 부여하여 붙인 말이다.
'육조법보단경(六祖法寶壇經)'·'육조단경(六祖壇經)' 이라고도 한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무루혜(無漏慧) ; 번뇌로 더럽혀지지 않은 진실의 지혜.
*원만구족(圓滿具足)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삼귀의(三歸依) ; 삼귀 또는 삼귀례(三歸禮)라고도 한다.
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몸과 마음을 바쳐 믿고 의지함. 즉 석가모니와 그의 가르침, 그리고 그 가르침에 따르는 교단에 귀의함을 말한다. 귀의불(歸依佛)•귀의법(歸依法)•귀의승(歸依僧)을 말함.
이와 같은 삼귀의는 원시불교 이래 수계식(受戒式) 등 여러 의식에서 실행되어 왔으며, 오늘날에도 남아시아의 불교에서는 팔리어(語)로 "부처님께 귀의하나이다", "가르침에 귀의하나이다", "스님들께 귀의하나이다"를 세 번 합송(合誦)한다.
한문으로는 여러 형식이 있으나, 한국에서는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歸依佛兩足尊)",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歸依法離欲尊)",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歸依僧衆中尊)"의 삼귀의 계문(戒文)을 합송한다.  삼보에 귀의하는 취지는 일체의 고통에서 해탈하고자 함이다.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대승불교도들의 실천덕목 중 하나. 상(相)에 머뭄(住)이 없는(無) 보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말한다. 무주상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05~106에서.
(46)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한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참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둘 아닌 것이 한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참고] [금강경오가해]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p141~145, [금강경오가해 설의-육조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p101~104.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또 수보리야, 보살은 법(法)에 응당히 머문 바 없이 보시를 할지니, 이른바 색(色)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상(相)에 머물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상(相)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육조 스님 해의解義)
부차(復次)라 한 것은 앞을 이어서 뒷말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범부(凡夫)의 보시는 다만 아름다운 외모와 오욕의 쾌락을 구하는 고로, 그 과보가 다하면 곧 삼악도(三惡途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므로,
세존께서 크나큰 자비로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를 행하도록 가르치시니,
아름다운 외모나 오욕(五欲)의 쾌락을 구하지 않고, 다만 안으로는 인색한 마음을 없애고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 이와 같이 상응(相應)하는 것이 ‘색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色布施)’이니라.

무상(無相)의 보시를 한다는 것은, '보시한다'는 마음도 없고, 베푸는 물건도 없으며,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相布施)'라 하느니라.

보살이 보시(布施)를 행할 때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면 그 얻는 복이 시방(十方)의 허공과 같아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일설에 '보(布)'란 '普(넓다)'요, '시(施)'란 '散(사방에 흩어버린다)'이니, 가슴 가운데 있는 모든 망념·습기·번뇌를 널리 흩어버려 사상(四相)도 끊어지고 마음에 전혀 쌓여 있지 않는 것이 '참 보시(眞布施)'라 하며,
또 일설에는 '보(布)'란 '普'니 육진 경계(六塵境界)에 머물지 않으며 유루(有漏)의 분별도 하지 않아 오직 항상 청정한 데 돌아가서 만법(萬法)이 공적(空寂)함을 요달함이니라.
만약 이 뜻을 요달하지 않으면 오직 온갖 업(業)만 더하므로 모름지기 안으로 탐애(貪愛)를 없애고 밖으로 보시를 행해서 안밖이 상응하여야 무량한 복을 얻게 될 것이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보아도 그 허물을 보지 않아서 자성(自性) 가운데 분별을 내지 않음이 '이상(離相)'이 되느니라.
가르침에 의해 수행해서 마음에 능소(能所)가 없는 것이 곧 선법(善法)인 것이라. 수행인이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선법이라 할 수 없고, 능소심(能所心)이 멸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치 못하니,
순간순간 항상 반야지혜를 행하여야 그 복이 무량무변한 것이니라.

이같은 수행에 의지하면 일체 인천(人天 사람과 하늘신)의 공경하고 공양함이 따르니 이것을 복덕(福德)이라 하도다.
항상 부주상보시(不住相布施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보시)를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면 그 공덕이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850) 게송.
*승두(繩頭) : 승(繩)은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두(頭)는 어조사다。 불조의 계법(戒法) 규칙.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황벽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후래(後來) ; ①뒤에 오거나 뒤져서 옴. ②장차 오게 되는 앞날.
*납자(衲子) : 「납」은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
본래 가사(袈裟)는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 三足金烏徹天飛』란 것이 있다。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곧 납자의 본색을 말하는 것이다.
*좌우명(座右銘) ; 늘 자리 옆에 갖추어 두고 생활의 지침으로 삼는 말이나 문구.

Posted by 닥공닥정
집중과 의심2014. 1. 6. 14:11

•§• 의단독로(疑團獨露) • 타성일편(打成一片) • 공적영지(空寂靈知) 똑같은 거여.

 **전강선사(No.567) - 마조원상공안, 조실스님 오도견성기(무신 1968.6.24)(35분)에서. (용567)

 

약 4분.

 


어쨌든지 화두 - 판치생모(版齒生毛) 화두, 그렇게 천하에 그 이상 더 쉬운것도 없고, 그 이상 더 가까울 것도 없고, 거그는 막아 놓은 것도 없고, 거그는 감춰논 것도 없고,
어쨌든지 그놈 하나, 참 중대헌 살림이다. 중대헌 내 일이여.

여기에 모이신 모두 화두학자, 얼마나 중요한 설법인가?
이게 뉘 설법이여? 보제존자(普濟尊者) 설법이여.

그러헌 모두 그러헌 그 화두 없는 속에서 그 작량선(酌量禪) - 요리조리 맨들어서 모두 비추고 보고 앉었는 선,
뭔 말을 한마디 물으면 요것이 옳은가? 저게 그른가? 요따구 놈의 답.
그따구 짓을 해가지고 앉어서 그 선객(禪客)이라고 헐 것인가? 뭐라 헐 것인가?
고렇게 이리 생각을 허고 저리 생각해, 맞을까 안맞을까 해가지고 대답해 될것인가?

그 일체 일념 모두 만들 수 없는 그곳에 바로 나가서 기멸(起滅)도 다해 버리고,
일체 도리에도 거기 붙들 못헌 곳에 나가서,
딴 것을 보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니,
오직 화두 하나만-알 수 없는 화두 하나만...

요런 놈을 다 말해주고 화두를 내세워야 되지.
내비두고 화두만 허라고 허면 아! 이것이 모두 지지리펀펀이지.

무엇이 나오든지 말든지 그것은 모두 잡독•사견(雜毒•邪見)이니까. 잡독•사견에 떨어지지를 말고,
모두 무기선(無記禪) - 그저 대혜 스님 그 삼년이나 읽어야 다 읽는 서장(書狀) 가운데 묵조사선(黙照死禪) 때려 부수는 것 뿐이지 뭐 다른 것 있는가?
거 다 봐봐. 모도 고놈 도로 나오고, 고놈 도로 나오고, 그놈 아니고 뭣인가? 봐!

그 화두가 이와같이 해야, 일체가 다해버린 그곳에서 알 수 없는 의단독로(疑團獨露)를 영(靈)이라 해. 고걸 영(靈)이라 해.
한덩어리 딱 뭉쳐져 가지고는 알 수 없는 놈 하나가 고대로 돈전헌 걸 적(寂)이라 하고 영(靈)이라 해.

뭐 적(寂)을 따로 갖다 붙이면 안돼.
적(寂)•영(靈), 적(寂)이다•공적(空寂)이다•공적영지(空寂靈知) 다 영지(靈知)라고 해, 고것을.

여지없이 하나만 알 수 없는 놈 나타나온 것을, 그놈이 공적영지(空寂靈知) 넉자가 다 갖춰져 버린거여 그게.

즉차공적영지(卽此空寂靈知)가 - 이와같이 화두에 공적영지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라 해.
타성일편이요. 의단독로라 해.

 

의단독로(疑團獨露)•타성일편(打成一片)•공적영지(空寂靈知) 똑같은 거여.
조금도 분단없어.

그놈이 무괴무잡(無壞無雜)이다.
되었다가 안 되었다가 없어졌다가 허면, 꿈에도 아직 타성일편이니 공적영지니 의단독로니 없어.
그 화두선(話頭禪)일 바에는 결국은 거까장 도달해야 되지.

애써 화두를 해 나가는데는 - 꼭 거까장 도달해 가지고, 화두가 타성일편 의단독로 고놈이 되어 가지고 확철대오만 꼭 헌다는 것은 아니로되,

화두하다가,   아! 허다가 젠장칠 것, 그냥 툭 깨는 수가 있어.
그건 의단(疑團)이 독로(獨露) 안 되도 깨는 수가 있어, 없는 건 아녀.(4분15초~8분2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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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제존자(普濟尊者) 설법 ;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103~105.
〇*普濟尊者示覺悟禪人(보제존자시각오선인) - 보제존자가 각오선인에게 보이심.

念起念滅을  謂之生死니  當生死之際하야  須盡力提起*話頭호리니  話頭가  純一하면  起滅이  卽盡하리라
起滅卽盡處를  謂之寂이라하니 寂中에  無話頭하면  謂之*無記요 寂中에  不昧話頭하면  謂之靈이라하나니  卽此空寂과  靈知가  無壞無雜하야 如是用하면  不日成之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멸함을 생사라 이르나니, 생사(生死)의 즈음을 당하야 모름지기 힘을 다하야 화두를 들지니, 화두가 순일하여지면 일어나고 멸하는 것이 곧 다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멸함이 곧 다한 곳을 이르되 고요함[寂]이라 하나니 고요한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무기(無記)라 함이요, 고요한 가운데 화두를 매(昧)하지 아니하면 영(靈)이라고 이르나니, 이 공적(空寂)과 영지(靈知)가 무너짐도 없고 섞임도 없어서 이와 같이 공부를 하면 며칠 안 가서 성취하리라”

(역주)
*보제존자(普濟尊者) : (1320 ~ 1376) 나옹혜근(懶翁惠勤). 고려 스님. 분류 ‘역대 스님 약력’에서 참고.
*화두(話頭) ;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무기(無記) : [범] Avyaksita 선(善)•악(惡)•무기(無記) 3성의 하나。 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작량(酌量 따를•술 작,헤아릴 량) ; 짐작하여 헤아림.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지지리펀펀 ; 기껏해야 아무 일도 아닌 것. *지지리-'기껏'의 사투리. *펀펀-아무 일도 하지 아니하고 빈둥거리며 노는 모양.
*잡독(雜毒) ; 괴로움•번뇌를 독에 비유해서 독이 섞여 있는 것을 잡독(雜毒)이라고 이름 붙임.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대혜 스님 ; 대혜종고. 분류 ‘역대 스님 약력’에서 참고.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대혜서(大慧書)·『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62()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 역설하였다.

*묵조사선(默照邪禪) ;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이, 그냥 조용헌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 나가는 그러헌 공부. 이것은 깜깜한 귀신굴(鬼神窟) 속에서 살림살이를 허는 것이라 해서 영원히 깨달을 분(分)이 없는 것이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참선할 때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