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 정진(요중선)2017. 4. 23. 21:41

§(538) 발우공양은 음식(물질) 존중, 생명(자연) 존중,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수행 의식 / 물질의 쓰레기 보다 더 무서운 마음의 쓰레기 / 법신설법 / 마음보를 바르게, 맑게, 자비롭게.

 

최상승법(最上乘法), 이 정법(正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그 생각을 아무 여과 없이 마구잽이 밖으로 쏟아내지는 법이 없어. 그 생각이 두 번째 생각으로 발전하기 전에 즉각 돌이켜서 ‘이뭣고?’ 자기의 그 생각 일어나는 뿌리로 그 생각을 회귀(回歸)를 하는 거여.

 

물질도 소중한 것이지마는 우리의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이 정신 작용이야말로 물질 보다도 몇천 배 몇만 배 소중한 것이다. 그 한 생각을 잘쓰면 자기도 좋고 남도 이롭게 하고 천당에도 갈 수가 있고 극락에도 갈 수가 있는데, 그 일어나는 생각을 단속을 못하고 잘못하면 저도 손해를 보고 남도 손해를 끼치고 급기야는 지옥에 가 질밖에는 없는 것이다.

 

산승(山僧)이 여기에 올라와서 두서없이 되지 않는 소리로—나는 이것을 법문(法門)이라고 생각해 본 일도 없고, 법문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법문은 ‘법신설법(法身說法)’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진짜 법문이거든. 이 세계에 있는 삼라만상 산하대지 두두물물이 다 그것이 비로자나법신(毘盧遮那法身) 체(體)고, 낱낱이 다 설법을 하고 있거든.

 

최상승법에 의지해서 열심히 ‘이뭣고?’를 하고 참선(參禪)을 하게 되면 그 법신설법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538)—94년 11월 첫째일요법회 (용538)

 

(1) 약 17분.

 

(2) 약 17분.

 

(1)------------------

 

요새 그린스카우트니, 무슨 자연보호니 전국적으로 바람이 일어서 산에서 들에서 강에서 바다에서 모다 쓰레기를, 학생으로부터서 관공리(官公吏)와 일반 사람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이 모두 동원이 되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을 들었습니다마는, 만시지탄(晚時之歎)이 있지마는 대단히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자연이 오염이 되고, 강물이 오염이 되고, 산이나 바다가 오염이 되면은 그 손해를 누가 봐야 하냐 하면은 인간들이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마구잽이 지각(知覺)없이 버린 쓰레기로 인해서 해(害)를 누가 봐야 하냐 하면 인간이 보게 되는 것입니다.

버리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무심코 버리는데, 해(害)는 무심코 지나가지를 않고 인간의 생명에 직결되는 것입니다.

 

큰 모다 공장에서 나오는 산업 쓰레기며 공장 폐수(廢水)도 중대하지마는 각 가정에서 나가는 쓰레기와 생활 폐수 그런 것들이 마구 살기 위해서 무심코 버리고 하수구로 나가는 폐수들이 강물로 들어가 가지고 강의 고기들이 다 죽고.

그 강이 결국은 그 강물을 수도(水道)로 또 해서 가정으로 공급이 되는 것이고, 그리고 남은 물은 바다로 들어가서 바다의 조개와 바다의 모든 미역 김, 모두 바다에 사는 고기들이 모두 죽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병든 고기를 사람이 먹고 사람이 또 암이 걸리고 온갖 무서운 병에 걸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그동안에는 우리가 먹고살기 위해서 비교적 엄하게 단속을 안 하는 사이에 이미 이렇게 모두가 병이 들었는데 이제는 우리도 많이 살 만큼 살게 되었으니,

법으로 담배꽁초를 버리면 몇만 원, 쓰레기를 버리면 몇만 원 벌금으로, 물론 법을 엄격히 해서 그걸 단속을 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나 우리가 어찌 벌금 물기 싫어서, 벌금 무는 것이 아까우니까 담배꽁초를 버릴라다가 관두고 쓰레기를 버릴라다가 안 버리고 이쯤되면 그건 하등 인간이여.

 

벌금이야 물건, 안 물건 ‘내가 버린 이 쓰레기가 결국은 자연을 손괴(損壞)하고 우리가 사는 금수강산(錦繡江山)을 쓰레기장으로 만든다’ 그런 지각이 있다면 어찌 산에 놀러 가고 바다에 놀러 가서 함부로 쓰레기를 버릴 수가 있냐 그말이여. 숟갈로 밥 먹는 인간이 그렇게 되어서야 되겠느냐.

 

우리는 스스로 자각(自覺)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제자들은 삼천년 이래로 발우공양(鉢盂供養)을 하면은 자기 먹을 만큼 딱 이렇게 덜어서 먹고, 그것을 숭늉으로 또 깨끗이 가셔 먹고 또 그래가지고 천수(千手)물로 깨끗이 헹궈서 그 바리때 네 개를 씻고 나오는 천수물이 말갛다 말이여. 조금도 탁하거나 찌끄러기가 안 섞여 있다 그말이여.

 

여러분 가운데에는 선원(禪院)에서 그런 발우공양을 하신 분이 많이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발우공양을 그렇게 한번 누구든지 다 해보셔야 합니다.

 

그래서 삼천년 전부터서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은 자연을 오염시키는 일이 없도록 산에서, 그 산중에 천 명 천오백 명 이천 명 이렇게 많은 대중스님네가 수도(修道) 생활을 하시고 해도 그 흘러가는 물이 강물이 조금도 오염이 안된다 그말이여. 저 밑에서도 얼마든지 그 물을 떠먹어도 괜찮을 만큼 깨끗했다 그말이여.

 

이것은 뭐 설거지, 발우 씻은 물을 우리 선망부모(先亡父母)인 아귀(餓鬼)가 그 물을 먹고서 갈증을 가시니까 그 발우 씻은 물속에 찌끄러기가 없도록 하라. 이렇게 법문을 우리는 듣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아귀는 어떠한 물도 어떠한 맛있는 것도 먹을 수가 없어. 먹으면 그것이 바로 불이 되어가지고 타 죽으니까 못 먹고, 그 발우공양 하고서 나오는 그 천수물만이 목으로 넘어가거던. 그런데 거기에 찌끄러기가 있으면 목이 맥혀서 또 불이 나기 때문에 우리 선망부모를 위해서 발우 씻은 물이 깨끗하도록 해라. 이렇게 전해 내려오는데.

 

오늘날 그것을 잘 해석을 하면 음식을 깨끗이 먹어야 한다고 하는 ‘음식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뜻도 거기에 들어 있고, 더러운 설거지 물이 더럽게 나가면은 강물이 오염이 되니까 ‘자연을 오염시켜서는 안된다’고 하는 그러한 뜻도 거기에 들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선망부모인 아귀를 위해서 한다’고 하는 것도 대단히 뜻이 깊지마는 현실적으로는 ‘자연을 손괴해서는 안된다’ ‘음식물을 아껴야 한다’고 하는 뜻으로 오늘날은 해석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가정에서 상에다 이렇게 차려놓고 마구잽이 먹고, 먹고 남은 것은 쓰레기통에다 막 버리고 하수구에다 막 버리고 그러실 것이 아니라,

큰 그릇에다가 반찬이고 무얼 딱 떠다 놓고 각기 빈 그릇을 자기 앞에 밥그릇, 국그릇, 또는 찬그릇 이렇게 빈 그릇을 갖다 놓고 자기가 먹을 만큼 밥도 덜고, 찬도 먹을 만큼 고루고루 조금씩 덜어서 일단 덜어온 것은 깨끗이 먹고, 먹은 그릇을 숭늉으로 잘 이렇게 헹궈서 깨끗이 먹고, 설거지 해 봤자 별로 찌끄러기가 나오지 않도록 각 가정에서도 요새 말하면 부페식으로 식사를 하시면은,

 

남은 음식이 먹고 남은 찌끄러기가 아니고 덜어서 먹었기 때문에 그 음식을 냉장고에나 잘 요렇게 간수했다 그다음 끼니에 먹더라도 변질이 안 되고 또 얼마든지 깨끗하게 기분 좋게 먹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 식구가 숟갈이 입으로 들어갔다 반찬으로 들어갔다 또 저분이 입으로 들어갔다 들랑날랑하는 가운데에 입에 침이 음식으로 섞여져 가지고 금방 그 음식이 변질이 되고, 두었다가 다음에 먹을수가 없습니다.

 

시간상 가족들이 동시에 같이 식사하기가 어렵고 바쁜 사람은 먼저 먹고 가더라도 깨끗이 덜어 먹고 갔으니까 다음 사람이 또 와서 먹어도 하나도 기분 나쁠 것이 없고 이렇게 해서 가정에서도 발우공양, 현대식으로 말하면 부페식으로 식사를 하시면은 참 좋으리라고 생각하고,

음식 반찬이나 밥이나 쓰레기로 마구잽이 들어가는 일이 없어서 강물도 오염이 안 되고 또 음식물도 아껴서 먹게 되고 위생적으로도 대단히 좋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하면 가족 가운데 혹 모르는 사이에 간염이 걸려 있거나 또는 감기 독감 같은 것이 걸리거나 전염성 질환이 혹 모르는 사이에 있다 하더라도 다른 가족에 옮겨지지 않아서 참 좋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 점에서 여러분에게 그 발우공양을 절에서 하는 식으로 그렇게 하기는 어렵고, 부페식으로 그렇게 하시면은 대단히 좋으리라고 생각을 해서 이 자리를 빌려서 권고를 하는 바입니다.

 

내가 지금 강과 산과 바다와 이 자연을 오염하지 않는 얘기를 했습니다마는 사실상은 꼭 거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이야기를 꺼낸 것은 눈에 보이는 쓰레기도 대단히 지금 중대한 국가적인 문제, 세계적인 문제로 지금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선 우리가 살아가는 데 우리의 건강과 생명이 직결되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이렇게 자연이 오염이 되면 이 세계는 하늘과 땅이 다 병들어서 식물, 동물, 인간도 살 수 없는 세계가 머지않아서 돌아오게 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손자, 증손자 저 후손들에게 우리 보다도 훨씬 더 살 수 없는 이 지구를 만들어서 남겨놓고 우리는 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금방 산승(山僧)이 말씀한 대로 그렇게 명심을 하고 음식도 아끼고 자연도 더럽히지 않는 방향으로 노력을 하고, 산이나 들에 가서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고 거기 가서 남은 쓰레기는 집으로 가지고 와 가지고 분류해서 이렇게 처리하도록 한다면 산도 깨끗하고 강물도 깨끗하고 바다도 깨끗할 것입니다.

 

첫째, 우리도 살기 좋으려니와 우리의 후손도 살기 좋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인간에게는 자기의 생명도 유지하고 자기의 후손도 끊어지지 않게 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는데, 하는 행위는 자기도 죽고, 후손도 죽게 만드는 그러한 몰지각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우리는 그러한 지혜를 부처님이나 스님한테 여태까지도 배우지를 못했던가?

 

눈에 보이는 쓰레기보다도 더 무서운 쓰레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일어나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경계(境界)를 당하면은—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엇을 듣거나, 코로 무슨 냄새를 맡거나, 혀로 맛을 보거나, 몸으로 접촉을 하면 반드시 거기에 그 육근(六根)이 육진(六塵)을 만나면 육식(六識)이 이렇게 발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육식(六識)이 발동을 해서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이 말로도 표현이 되고, 얼굴에도 표현이 되고, 나중에는 행동으로도 마침내는 표현이 됩니다.

좋은 생각이 일어나면 좋게 표현하고 나쁜 생각이 일어나면 나쁘게 표현이 되는데, 그 표현된 것이 자기도 해롭게 할 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해를 끼치고, 이웃에게도 해를 끼치고, 직장이나 관공서 회사에 가서도 해를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 이 정법(正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그 생각을 아무 여과 없이 마구잽이 밖으로 쏟아내지는 법이 없어. 그 생각이 두 번째 생각으로 발전하기 전에 즉각 돌이켜서 ‘이뭣고?’ 자기의 그 생각 일어나는 뿌리로 그 생각을 회귀(回歸)를 하는 거여.

 

무슨 생각이 불쑥 나거든. 나면은 공연히 기분 나쁘면은 가족들에게 그것을 쏴붙이고 아내한테도 쏴붙이고, 남편한테도 쏴붙이고, 자녀한테도 쏴붙이고 직장에서 표현을 하게 된다.

 

참선(參禪)을 하는 사람은 좋은 생각이 일어나도 즉각 ‘이뭣고?’ 나쁜 생각이 일어나도 즉각 ‘이뭣고?’ 따악 자기로 돌아오는 수행을 쌓아 나가거든.

한 달 두 달 일 년 이태 계속해서 올바르게 이렇게 일어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그 자기의 본성(本性)을 이렇게 참구(參究)하면, 그 생각이 정당한 생각이면은 말로 표현을 하고, 정당치 못하면 즉각 거기서 되돌려 버리니까 쓰레기가 밖으로 함부로 버려지지를 않아.

 

진짜, 물질도 소중한 것이지마는 우리의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이 정신 작용이야말로 물질 보다도 몇천 배 몇만 배 소중한 것이다 그말이여.

그 한 생각을 잘쓰면 자기도 좋고 남도 이롭게 하고 천당에도 갈 수가 있고 극락에도 갈 수가 있는데, 그 일어나는 생각을 단속을 못하고 잘못하면 저도 손해를 보고 남도 손해를 끼치고 급기야는 지옥에 가 질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오늘날 이 쓰레기니, 무슨 폐수니 그런 것을 단속을 법적으로도 단속을 해야겠지마는 정말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의해서 자기의 한 생각 한 생각을 돌이켜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그런 사람은 저절로 자연을 아름답게 자연을 청정하게 가꿀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22분11초~39분26초)

 

 

 

 

 

(2)------------------

 

밖에서 얻어지는 모든 것은 설사 그것이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잠시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이고 우리의 안에서 얻어지는 것은 그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재산이니 명예니 권리니, 다 그 지식이니, 공부해 가지고 돈 들여서 대학 갈려고 한 것이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은 여자들은 좋은 신랑감을 구하기 위해서 간다 또는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 간다.

남자들도 대학을 가야 좋은 색시를 얻을 수 있고 좋은 데에 취직을 해야 월급도 많이 받는다. 그리고 대학 교수도 되고 박사도 되고 사업가도 될라면은 대학 안 나오고는 어디다 명함도 못 내놓는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잘살라면은 대학을 가야 한다.

 

그래서 대학을 갈려고 그렇게 애를 쓰는데, 대학에 간다고 해서 다 잘되는 것도 아니고 다 잘사는 것도 아니여. 마음먹은 대로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데에 취직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행복하냐 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거든.

 

진짜 행복이라 하는 것은 밖에서 구해지는 것이 아니야. 자기의 안에서 구해야 하는 거야.

돈이 없는 사람은 돈만 많으면 행복한 것 같이 느껴지는데, 돈 많은 사람은 하나도 행복 안 해.

 

행복이라 하는 것은 그런 명예나 권리나 재산으로 매겨지는 것이 아니고, 재산이 없고 별로 권리도 없고 해도 그날그날 벌어먹고 살고 막일을 하고 살아도 ‘참, 나는 행복하다’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 사람이 행복한 거여.

아무리 돈이 많고 명예 권리가 많고 그래도 ‘나는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불행해.

 

그래서 진짜 행복하고 싶으면 ‘나는 행복하다’하는 글자를 떠억 방에다 도처에다 써 놓고 하루에 몇백 번씩 ‘나는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하고 자꾸 생각해 보시라 말이여. 이거 장난말 같지마는 절대로 장난말이 아니거든.

 

‘나는 행복하다. 왜 행복하냐?’ 가끔 한 번씩은 ‘왜 행복하냐?’하는 것을 생각해 봐.

 

‘이만큼 살고 있으니까 행복하다’ ‘나는 이렇게 이만큼 그래도 괜찮은 남편을 얻었으니까 행복하다’ ‘나는 그래도 이만큼 무던한 아내를 얻었으니까 행복하다’ ‘자식도 이만하면 괜찮으니 그래서 행복하다’ ‘이만큼 먹고 살면 그만이지 그렇게 그러니까 나는 행복하다’

좋은 점만을 생각하고 자꾸 ‘나는 행복하다. 행복하다’ 하루에 천 번씩만 해 보라 그말이야. 나중에는 진짜 얼굴이 입이 옆으로 쫘악 찢어지면서 뭐 하는 일이 잘되고 짜증낼 것도 없고 그런대로 괜찮다 그말이여. 그러다보니 진짜 행복한 사람이 되는 거다.

 

제법 먹고살고 좋은 차도 있고 돈도 있고 괜찮은 사람이 ‘나는 불행해’

자꾸 다른 사람 좋은 사람만 건너다 보고서 ‘왜 나는 왜 저렇게 이쁜 마누라를 못 얻었을까’ 괜히 저 길가에서 ‘나는 왜 저런 남편을 못 얻었을까’ 자꾸 자기 남편, 자기 아내를 다른 사람과 비교해 가지고 ‘왜 나는 우리 남편 돈 좀 더 잘 버는 남편을 못 얻었을까’

 

그래가지고 집에 들어와서 ’나는 불행해. 참, 나는 불행해. 우리 엄마는 왜 저런 사람을 신랑감을 만나게 해 줬을까’ 부모 원망 심지어는 중매쟁이 원망 그래가지고 생각해 볼수록 속에서 부글부글 부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말이여.

그러니 남편이 와도 본체만체하고. 조금만 늦게 오면 ‘뭣하고 인제 왔냐?’고. 그러니 남편이 좋아라 할 거냐 그말이여.

 

그래서 당장 오늘부터 가시면 흰 종이에다 ‘나는 행복하다’

처음에는 좀 챙피하면 안 보이는 데다 딱 써 붙여.(웃음) 그러다가 조금 잘 보면 보이고 그런 데다가 써 붙이다가 나중에 그 괜찮은 성 싶으면 버젓하게 크게 써붙여.

 

그래서 식구대로 하루에 몇 번씩 ‘나는 행복하다’ 따악 하고서 밥을 먹고. 밥을 먹고도 ‘나는 행복하다’—기독교 믿는 분들은 식사를 하기 전에 앉으면은 하느님께 기도 올리고 밥을 먹고 ‘오늘 이와같이 좋은 음식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 참 좋은 일이고.

 

또 불교 믿는 이들도 합장을 하고 이 밥을 저 농사지어서 우리 입에 들어오기까지 해 준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또 남편이 돈을 벌어다 줘서 이 먹게 해 줘서 남편을 고맙다 생각하고, 남편은 아내가 또 이렇게 해서 잘 차려 줘서 고맙다 생각하고.

이렇게 해서 그렇게 낱낱이 따져서 말은 않지마는 불교 믿는 사람들도 밥상을 대하면은 이렇게 합장을 하고 먹는 것이 참 좋은 일인데, 해필 꼭 밥먹을 때만 그럴 거냐 그말이여.

 

똥 눌 때도 이렇게 똥을 누게 해 줘서...(웃음) 먹는 것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차라리 한두 끼니 굶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 배설하는 구녁이 맥혀 놓으면... 그건 참말로 대단히 중요한 거다 그말이여.

 

먹는 음식을 장만한 것도 중요하지만 먹고 남은 그것을 잘 쓰레기를 처리하고, 하수구가 맥혀서는 안 되거든.

그 하수구에는 항상 설거지 하는 물도 찌끄러기는 탁 받아서 찌그러기가 나온 것은 화단에다가 화분에다가 살며시 묻어 놓으면 그놈이 썩어서 꽃이 아름답게 피는 거고.

 

그 찌그러기를 막 하수구에다가 막—그 하수구에 걸르는 얼개미가 있는데 그것에 걸려서 잘 안 내려가니까 차라리 빼 버리고 막 집어 넣어. 그래서야 될 것이냐 그말이여.

그 조그만한 마음씨가 결국은 그 사람이 돈 좀 벌어서 큰 공장을 하면은 공장 폐수(廢水)가 막 나와 가지고 한강 낙동강이 막 썩어 문드러져서 고기가 다 죽고, 그 물이 바다로 내려가면은 바다의 모든 고기와 김과 조개와 모다 그런 것들이 다 폐사(斃死)를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정말 우리는 한 생각 돌이키는 최상법을 믿음으로 해서 나중에는 자연을 아름답게 (이게 그만하라 그러는데) 자연을 아름답게 해서 이 세계가 정말 금수강산(錦繡江山)이 되도록 하고.

그러한 마음씨 갖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번지면 모두가 다 좋은 도반(道伴)이요, 좋은 스승이요, 모두가 다 불보살(佛菩薩)로 우리가 존경할 수 있는 상대가 되도록.

 

 

이 산승(山僧)이 여기에 올라와서 두서없이 되지 않는 소리로—나는 이것을 법문(法門)이라고 생각해 본 일도 없고, 법문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법문은 ‘법신설법(法身說法)’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진짜 법문이거든.

이 세계에 있는 삼라만상 산하대지 두두물물이 다 그것이 비로자나법신(毘盧遮那法身) 체(體)고, 낱낱이 다 설법을 하고 있거든.

 

나무가 설한 법문을 바위가 듣고, 바위가 설하는 법문은 나무가 듣고, 큰 나무가 설한 법문은 작은 나무가 듣고, 작은 나무 조그만한 풀포기 하나도 다 법을 설하고 있는 거여. 조그만한 벌레도 다 그 나름대로 무상설법(無上說法)을 하고 있는 거여.

그래서 법을 설하고 또 설한 법을 듣고, 피차(彼此) 설하고 피차 듣는 거여. 그 법신설법을 들을 줄 알아야 진짜 법문을 듣는 거여.

 

최상승법에 의지해서 열심히 ‘이뭣고?’를 하고 참선(參禪)을 하게 되면 그 법신설법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왜?

아까 바위에 앉아서는 굳은 것을 배우고, 물을 상대하게 되면은 맑은 것을 배우니 그 법문을 들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래서 나는 법(法)을 설한 것이 아니고, 여러분이 일요일 날 놀러갈 때도 많고 하실 일도 많고 그런데 이 복잡한 교통 속에서 아침부터 와 가지고 오셨으니 전강 조실 스님의 그 대사자후(大獅子吼) 법문은 들었지만, 입가심으로—그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입가심 하잖아요.

입가심으로 내가 한마디 해 드린 것이니까 이것도 잘만 들으면 ‘그 속에 그 말은 괜찮하다’ 그런 말도 한마디쯤은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최상승법을 참으로 잘 듣는 사람은 차츰차츰 귀가 열리고 눈이 열려서 가시는 걸음걸음 법문을 또 진짜 법문을 들으시게 됩니다.

 

이 법상(法床)에서 들은 것은, 이 조실 스님 법문은 굉장히 고준(高峻)해서 한두 번 들어 갖고는 잘 모르실 것이고 녹음 테이프(tape)를 사무실에서 구해가지고 가서 열 번 스무 번 백 번 천 번을 들으시면은, 들으시면서 참선을 하시면은 참선을 옳게 하시게 되고, 옳게 하시게 되면은 반드시 깨달음을 얻으시게 될 것입니다.

 

그 조실 스님 법문을 옳게 들으시는 방법을 일러드리기 위해서 산승이 법상에 올라와서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올라가서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고 있다’고 그렇게 핀잔하시지 말고 잘 들으신다면은, 음식이라는 게 꼭 맛있는 음식만 골라서 먹어서는 못쓰는 거고 밥상에 놓여진 음식은 짠 것도 있고 싱거운 것도 있고, 신 것도 있고 떱떨한 것도 있고, 쓴 것도 있다 말이여.

 

파란 것도 있고 노른 것도 있고 흰 것도 있고 빨간 것도 있는데 고루고루 덜어다가 부페식으로 빈 접시에다 고루고루 덜어서 놓고 먹을 만큼 덜어다가,

밥 한 숟갈 떠 넣고 맨입으로 한 오십 번 씹은 다음에 그 다음에 반찬을 입에다 넣고 한 오십 번 씹어서 그 먹은 음식이 곱게 갈리고 저작(咀嚼)이 되어서 그놈이 속에 들어가면 위장이 큰 부담이 없이 소화가 잘되도록. 그러고 나서 또 국물 한번 떠먹고. 그렇게 해서 씹으면서 ‘이뭣고?’하면서 공양을 해보시라 그말이여.

 

처음에는 씹다 보면은 고소한 것을 느끼게 되고, 고소해도 계속 씹다 보면은 달콤해지게 될 거다 그말이여. 그러면서 그 속에서 ‘이뭣고?’를 하니 세상에 이런 좋은 수행법이 어디가 있느냐 그말이여.

이렇게 식사를 하시면 위장병, 소화제 안 먹어도 위장병도 다 낫게 됩니다. 그래가지고 이 소화도 잘되고 흡수도 완전히 다 흡수가 돼. 그러니 얼굴도 고와지고.

 

얼굴 여기 째서 잡아당겨 봤자 그거 주름살, 나중에 늘그막에는 아주 추하게 늙게 되는 것입니다. 이뻐질라고 뭐 요리 째고 잡아당길라고 그러는데, 그러지 말고 음식을 잘 씹어서 잡수시라 그말이여.

그러면은 들어가면서 소화가 잘 되니까 뱃속에 나쁜 가스가 채이지를 않아. 나쁜 가스가 채어 가지고 그놈이 돌고 돌아서 삭신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고, 얼굴에 두들두들한 것도 나고 그래가지고 영 아무리 칠하고 바르고 토닥거려 봤자 별로 안 이뻐지거든.

 

내가 내 얘기를 해서 안 되었지마는 난 별로 얼굴에 바르는 걸  좋아하지 않고 그래도 어디가서 얼굴 추접하게 생겼다는 말은 안 들었어. 그것이 음식을 잘 씹어 먹고, 많이 먹지는 않되 잘 씹어 먹는 거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음식도 피부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마는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각입니다. 생각을 어떻게 먹느냐?

항상 감사한 마음, 항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지혜로운 마음,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생각을 항상 가지면은 자연히 얼굴은 이뻐집니다. 그것은 오늘날 과학적으로도 다 증명이 됩니다.

 

그러니 정말 이뻐질라면은 마음보를 고쳐. 마음보를 고치고 음식을 잘 씹어서 먹고. 그러면은 나이들어 가면 늙어지기 마련이지 어쩔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내가 칠십 살 먹었다면 별로 사람들이 곧이 잘 안 듣고 한 십 년쯤은 젊게 보이는데, 젊어져 봤자지 뭐 별것은 없으나 마음보를 바르게 쓰고 맑게 쓰고 자비롭게 쓰면은 확실히 얼굴도 고와지고.

 

또 몸에 병도 심장병, 간장병이 속이 바글바글 끓고 속상하고 성내는 데에서 온갖 병이 자꾸 악화가 되는 것은 여러분도 충분히 인식하고 계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해서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면 마음도 고와지고, 자연히 식사도 천천히 잘 저작을 해서 잘 잡수게 되고 모든 음식도 애껴 먹게 되고, 모든 쓰레기도 적절히 잘 처리해서 분류해서 쓰레기가 적게 나가도록 하시고.

그렇게 하면은 우리 개인도 이뻐지고 젊어지고, 가정도 편안하고 행복해지고, 이웃도 서로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서로 아끼는 마음으로 상대하게 되니 지상천국(地上天國)이 바로 이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살아간 사람이 죽어서 지옥 갈 것은 아주 걱정을 놓으시라고요.(50분09초~67분1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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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공리(官公吏 벼슬·관청 관/공적 공/관리 리) ; 관리(官吏 : 봉급을 받고 국가나 지방 자치 단체의 사무를 보는 사람)와 공리(公吏 : 관리가 아니면서 공무를 맡아보는 사람)를 아울러 이르는 말.

*만시지탄(晚時之歎 늦을·저물 만/때 시/어조사 지/탄식할 탄) ; 어떤 일에 알맞은 때[時]가 늦었음[晚]을 안타까워하는 탄식(歎息).

*지각(知覺)없다 ; 사물의 이치나 도리에 대한 분별력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 있다.

*무심코(無心-) ; 아무런 뜻이나 생각이 없이.

*폐수(廢水 폐할·버릴 폐/ 물 수) ; 불순물이나 화학 물질 따위로 더럽혀져 버리는[廢] 물[水].

*손괴하다(損壞-- 덜·해칠·상하게 할 손/무너질·무너뜨릴 괴) ; (사람이 물건을)상하거나 부서지게 하다.

*금수강산(錦繡江山 비단 금/수놓을 수/강 강/뫼 산) ; 비단(緋緞)에 수(繡)를 놓은 듯 매우 아름다운 산천. 함경북도 북쪽 끝에서 제주도 남쪽 끝까지 삼천 리(三千里)가 되는 우리나라의 자연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발우공양(鉢盂供養) ; 스님들이 쓰는 밥그릇을 발우(鉢盂)라고 하여, 발우공양은 ‘스님들이 하는 식사’를 말한다. 발우공양을 할 때 《소심경(小心經)》이라는 경전을 외운다.

이 공양은 단순히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이 깨달아 신과 인간의 공양 받기를 원하는 ‘하발게(下鉢偈)’, 부처님 일생의 중요한 4대 성지를 생각하는 ‘회발게(回鉢偈), 보시하는 사람, 보시받는 사람, 보시하는 물건, 삼륜(三輪)이 공적함을 생각하는 ‘전발게(展鉢偈)’

그리고 위로는 부처님, 성인 아래로는 일체 중생 모두에게 공양을 올린다는 ‘봉반게(奉飯偈)’ 음식이 우리 앞에 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이 음식을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하는 ‘오관게(五觀偈)’

그리고 생반게(生飯偈), 정식게(淨食偈), 삼시게(三匙偈), 절수게(絶水偈), 해탈주(解脫呪)를 하면서 모든 중생과 함께 고통을 벗어나 무상도(無上道)를 이루겠다는 서원을 다짐하며 공양하는 수행 의식이다.

*천수물(千手물) ; 청수(淸水)물. 절에서 스님들이 식사(발우공양)한 후, 발우(鉢盂)를 씻는(씻은) 물. 이 물을 모은 천수통(千手桶, 청수통, 퇴수통)을 공양방 가운데 두고 절수게(節水偈)를 외우는데, 공양방 가운데 천장에 붙여 놓은 천수다라니(千手陀羅尼, 신묘장구대다라니)가 선명하게 비칠 정도로 깨끗하므로 천수물이라 한다.

절수게(節水偈)는 ‘내 이 발우 씻은 물은(我此洗鉢水) 하늘나라 감로수의 맛과 같다(如天甘露味) 아귀들에게 베푸니(施與餓鬼衆) 받아 마셔 모두 배불러지이다(皆令得飽滿)’

이 천수물을 굶주림과 기갈에 고통 받는 아귀들에게 베푸는데, 찌꺼기가 있으면 아귀의 바늘구멍만한 목구멍에 걸려 고통을 일으키므로, 천수통에 부을 때 맑은 물만 붓고, 혹 남은 찌꺼기는 자신이 마신다.

*천수통(千手桶) ; 절에서 스님들이 식사(발우공양)을 한 후, 발우(鉢盂)를 씻은 물을 거두는 동이. 청수통, 퇴수통이라고도 한다.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식사)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드는데, 나무에는 안팎에 칠(漆)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應量器)라고도 한다.

응량기(應量器)란 법에 응하는 또는 1명의 식량에 마땅한 그릇이니 먹을 만큼의 분량을 담는 그릇이고, 또 남의 공양을 받기에 마땅한 수행과 덕을 갖춘 성현(聖賢)이 사용하는 그릇이란 뜻이다.

*수도(修道) ; 불도(佛道)를 수행(修行)함.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아귀(餓鬼 굶주림·굶길 아/귀신·아귀 귀) ; 항상 굶주림과 갈증으로 과로워하는 귀신. 전생에 탐욕이나 질투가 많아, 악업을 지은 사람이 죽은 뒤 육도(六道) 중 하나인 아귀도(餓鬼道)에 태어나 고통을 당한다.

아귀의 배는 산과 같이 크지만 목구멍은 바늘구멍만큼 작다. 먹을거리가 없어 항상 굶주림과 목마름의 고통에 있고, 우연히 먹을 것을 얻더라도 입에서 불이 나거나 먹을 것이 화염으로 변하여 고통 받는다.

*부페 ; 뷔페(buffet). 여러 가지 음식을 식탁에 차려놓고 손님이 스스로 골라 덜어 먹도록 한 식당.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 영역.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귀(耳根)·코(鼻根)·혀(舌根)·몸(身根)·뜻(意根)의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근(根)은 기관·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육진(六塵) ; 육경(六境). 육근(六根)의 대상 경계인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을 말함. 이것은 마음을 더럽히므로 육진(六塵)이라 한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viṣaya 경(境)은 대상을뜻함.

①색경(色境).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수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수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맛.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등.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육식(六識)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쏴붙이다 ; 쏘아붙이다(감정이 상할 정도로 매섭고 날카롭게 말을 내뱉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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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개미 ; ‘어레미(밑바닥의 구멍이 굵고 큰 체)’의 사투리.

*폐사(斃死) ; 주로 짐승이나 어패류가 갑자기 죽음. 급격한 기온 변화나 병원 감염으로 소, 오리, 물고기, 조개 따위가 죽는 것을 이른다.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법신설법(法身說法) ; 법신(法身)이 설법(說法)한다는 말. 진리로서의 법 그 자체가 설법하고 있는 것. 육신(肉身)의 부처님은 때 · 장소 · 사람에 의해 가르침의 일부를 설했으나, 법신불은 그와 같은 것에 상관없이 삼세에 걸쳐 영원히 항상 모든 곳에서 자신의 마음속에서 깨달은 것을 설하지만 미혹된 범부는 이것을 파악하지 못한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노사나(盧舍那)·자나(遮那) 등으로도 음사한다.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뜻에서 광명변조(光明遍照, 日), 허공과 같이 드넓은 세계에 거처하며 그 공덕과 지혜가 청정하다는 뜻에서 광박엄정(廣博嚴淨), 시공간적으로 어떤 한계도 없이 일체법과 모든 중생으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는다는 뜻에서 변일체처(遍一切處) 등이라 한다.

①진리 그 자체인 모든 곳에 편재(遍在)하는 법신으로서의 비로자나 부처님.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무상설법(無上說法) ; 진리를 깨닫게 하는 최고의 가르침.

*전강선사 ; 분류‘역대 스님 약력’ 참고.

*사자후(獅子吼) ; ①부처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②사자의 울음소리처럼 우렁찬 연설.

*고준하다(高峻-- 높을 고/높을·험할 준) ; 높고 험준하다.

*녹음 테이프(tape) ; 카세트(cassette)라고 하는 녹음기에 간편하게 장착하여 녹음을 하거나 녹음된 것을 재생하는 카세트테이프(cassette tape : 전용 플라스틱 케이스에 들어 있는 자기 테이프)를 말한다.

*저작(咀嚼 씹을 저/씹을 작) ; 음식물을 입에 넣고 씹음.

*삭신 ; 몸의 근육과 뼈마디.

*마음보 ; 마음을 쓰는 속 바탕.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