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구참선 최상승법2016. 7. 7. 19:13

 

 

§(299) (게송)묵좌허회독엄문~ / 도의 () / 활구참선이란? / 『몽산법어』 / (게송)심사학도별무타~ / 탐진치(貪瞋痴) 삼독심 / ‘ 부처님이란?

 

도의 () 남에게 수도 없고 남에게 받을 수도 없고, 스스로 도를 닦음으로 해서 자연히 얻어지는 것이라 이것은 영원한 ()이라 수가 있어. 도의 낙은 말로써는 어떻다 표현할 수가 없어.

 

활구참선(活句參禪) [語路] 끊어지고, 이치 [理路] 끊어져. 사량분별도 끊어져. 다맛 없는 의심, 화두의 의심(疑心) ‘이뭣고?’ 없는 의심만이 드러나 가지고, 앞도 끊어지고 뒤도 끊어지고, 알아 들어갈 것도 없고, 보이는 것도 없고, 더듬을 것도 없고, 다못 맥혀서 없는. 이렇게 공부를 지어 가면 이것이 활구참선인데. 활구참선을 해야 결국은 마음 [心路] 끊어져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이여.

 

몽산법어(蒙山法語) 구절씩항상 여러분은 선지식(善知識) 만나 뵙기가 어려우니까 공부하다가 가끔 법문을 듣고 싶으면, 몽산법어를 편씩을 떠억 보시면은 선지식 법문 들은 거와 같아서 신심(信心) 돈발(頓發)하고 의정(疑情) 돈발을 해서 참선이 잘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항상 법문을 듣고, 항상 정진한 사람은 탐심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탐욕이 없어져 버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진심을 줄을 모르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지가 달아나 버려.

 

부처는 업의 눈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활구참선에 의지해서 정말 가행정진(加行精進)하고 용맹정진(勇猛精進)해서 공안을 타파하고 확철대오할 때에 여러분은 눈을 감아도 전체가 부처요, 눈을 떠도 전체가 부처인 것이다.

 

**송담스님(No.299)—1986 5 첫째 일요법회(86.05.04) (용299)

 

 

(1) 약 16분.

 

(2) 약 12분.

 

(1)------------------

 

묵좌허회독엄문(黙坐虛懷獨掩門)한데   일성춘조벽산운(一聲春鳥碧山雲)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연하잉득한중취(煙霞剩得閒中趣)한데   지자희이부증군(只自熙怡不贈君)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묵좌허회독엄문(黙坐虛懷獨掩門)이라. 묵묵히 말없이 앉았어. 회포(懷抱) 비우고, 생각을 비워 버리고 홀로 문을 닫고 앉았으니,

일성춘조벽산운(一聲春鳥碧山雲)이로구나. 소리에 푸른 산에 구름이더라. 푸른 산에는 구름이 자욱히 끼었는데 소리 새가 울더라.

 

연하잉득한중취(煙霞剩得閒中趣)인데, 푸른 산중에 한가한 가운데에 정취(情趣), 구름과 연기 안개 끼어 있는 산중에 말로써 표현할 없는 취미(趣味), 정취를,

지자희이(只自熙怡)언정 부증군(不贈君)이다. 다못 스스로 한가한 가운데의 정취를 즐길지언정 이것을 어떻게 그대에게 보내 수가 있겠는가.

 

() 닦아 가면 도의 () 있는데, 도의 낙이라 하는 것은세속의 무슨 바둑을 둔다든지, 화투를 친다든지, 장기를 둔다, 무슨 사회 생활하는 데에도 여러 가지 취미 생활이 있어.

() 버는 낙도 있고, 명예와 권리를 누리는 낙도 있고, 그밖에 무슨 주색을 가까이 하는 낙도 있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 그런 있지만.

 

세속의 ()이라 하는 것은 전부 밖으로부터 얻어지는 낙이라, 언젠가는 내게로부터서 낙이 떠나가 버리게 되고, 떠나게 되면은 견디게 자기의 몸과 마음을 가누지를 못해.

너무너무 허전해서 가누지를 못해서 그것을 가까이 하고, 가까이 하고 나면 허전하고 도저히 자기를 수습을 못하고 그러는데.

그런 것들은 일시적인 것이라 정말 깊이깊이 낙을 즐길 만한 것이 못되고, 결국은 오래오래 그러한 세속적인 낙을 즐기다 보면 건강도 나빠지고 무상함만이 치밀어와서 견딜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 () 밖에서 얻어지는 낙이 아니고, 도를 닦음으로 해서 업장(業障) 소멸하고, 구할 것도 없고, 탐착할 것도 없고, 누가 이것을 빼앗아 갈까봐 두려워할 것도 없고,

도의 낙은 남에게 수도 없고 남에게 받을 수도 없고, 스스로 도를 닦음으로 해서 자연히 얻어지는 것이라 이것은 영원한 ()이라 수가 있어. 도의 낙은 말로써는 어떻다 표현 수가 없어.

 

산중에, 푸른 산에 구름과 안개는 자욱히 끼었는데 새가 울고, 그러한 청정한 맑은 공기와 맑은 바람 그리고 흐르는 시내, 사이에 새가 노래를 하는 가운데에 떠억! 도의 낙이라 하는 것은 무어라고 표현 수가 없다. 다맛 스스로 이것을 즐길지언정 그대에게 보내줄 수가 없노라.

이러한 부휴(浮休) 선사의 도시(道詩)입니다.

 

 

여러분은 5 일요법회를 맞이해서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 경청을 했습니다. 언제 법문을 들어도 조실 스님의 법문(法門)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평생 동안 거량(擧揚)하시고 모든 설법이 활구참선법이 근간이 되어 있습니다.

 

활구참선이란, 대관절 활구참선이란 무엇이냐?

여러분 가운데 알고 계시겠지만 참선에도 활구참선(活句參禪)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死句參禪)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으로 이렇게 따져 들어가고, 알아 들어가고, 더듬어 들어가는 거여.

이런 것은 전부 깨달을 없는 중생의 번뇌(煩惱) 망상(妄想)만을 치성(熾盛)하게 만들어 가지고 점점 깨달음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생사의 구렁텅이로 떨어져 들어가는 참선이기 때문에 이것은죽은 참선이다. 그래서 사구참선이라 그러고.

 

활구참선(活句參禪) [語路] 끊어지고, 이치 [理路] 끊어져. 사량분별도 끊어져. 다맛 없는 의심, 화두의 의심(疑心) ‘이뭣고?’

이뭣고?’ 없는 의심만이 드러나 가지고, 앞도 끊어지고 뒤도 끊어지고, 알아 들어갈 것도 없고, 보이는 것도 없고, 더듬을 것도 없고, 다못 맥혀서 없는. 이렇게 공부를 지어 가면 이것이 활구참선인데.

 

활구참선을 해야 결국은 마음 [心路] 끊어져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이여. 그래서 이것은 참선이다. 그래서 이것을 활구참선이라 그러는데. 다른 말로는 참구(參句) 하기도 하고.

활구참선을 참구(參句)—‘() ()한다’ ‘ 길도 끊어지고, 이치 길도 끊어진 글귀를 갖다가 참상(參祥) 한다그래서 이것을 참구라 그러고.

 

사구참선(死句參禪) 참의구(參意句) 그러는데. ‘뜻이 있는 (), 글귀를 갖다가 참상을 한다

그것이 이래서 그랬나?’ ‘이러이러한 말은 이러이러한 뜻으로 그런 것이 아니냐?’ 이렇게 해서 자기가 알고 있는 교리・이론・사량분별을 붙여 가지고 이리저리 뜻으로 더듬어 들어가면서 공부해 나가는 이것을 참의구라 그러는데. 참의구(參意句)라고 하는 것이 바로 사구선(死句禪).

 

그러고 활구선(活句禪) 참구(參句)거든. 밑도 끝도 없이어째서 () 했는고?’ ‘()?’ ‘어째서 () 했는고?’ ‘이뭣고이뭣고?’

앞도 없고 뒤도 없고, 더듬어 들어갈 것도 없고, 다못 캄캄한 밤중에 벼람박에 이마를 ! 부딪칠 찰나처럼그저 앞도 끊어져 버리고 뒤도 끊어지고, 이치 길도 끊어지고, 사량분별도 끊어져 버린 상태에서 없는 의심만이 드러나. 의심(疑心)만을 () 나가는 이것이 바로 활구참선인데.

 

풍선을 때에 풍선의 어느 곳에 바늘구멍만한 구멍만 뚫어져 있어도 아무리 불어도 풍선이 커지지를 못하고, 입으로 아무리 힘을 들여서 불어도 바늘구녁 뚫어진 데로 헛짐이 새기 때문에 풍선이 불어나지를 않어.

사구참선, 사구참선이란 바로 그런 거여. 아무리 불어도 커지지를 않고, 커지지를 않기 때문에 터지지를 못하거든.

 

그런데 구녁이 막혀서, 입으로 부는 구녁만 있지 다른 구녁은 완전히 헛짐 새는 곳이 없는 풍선이라야 쪽쪽 점점 커져 가지고, 더이상 커질 없는 지경에까지 불어대면 결국은 그놈이 ! 하고 폭음을 내면서 풍선이 터지는 거여.

 

화두도 사량분별이 없이 전후(前後) 제(). 심로(心路), 마음 길이 끊어진 상태에서 의단(疑團)만을 계속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의단을 거각(擧却)해서 의심해 가고 의심해 오고 이렇게 가면 결국은 더이상 의심이 커질라야 커질 없고, 더이상 간절할라야 간절할 없는 지경에 이르러.

화두를 들라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 가지고 항상 의단이 현전(現前)하면, 그래서 순수무잡(純粹無雜)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지경에 이르르면 결국은 의심이 ! 터지면서 화두를 타파(打破) 가지고 자기의 본성(本性)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작년에 『몽산법어(蒙山法語)』를 여러분에게 법공양(法供養) 했는데, 아마 대부분 권씩을 받아서 가지고 계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몽산법어는 활구참선법! 활구참선 하는 데에 관한 법문만을 여기에 수록한 법어집입니다.

여러분이 몽산법어를 받아서 첫째 서문을 읽어보시면 몽산법어라는 책이 어떠한 책이며, 얼마나 공부해 나가는 요긴한 책인가를 여러분 아실 수가 있고.

 

그리고 몽산법어(蒙山法語) 구절씩항상 여러분은 선지식(善知識) 만나 뵙기가 어려우니까 공부하다가 가끔 법문을 듣고 싶으면, 몽산법어를 편씩을 떠억 보시면은 선지식 법문 들은 거와 같아서 신심(信心) 돈발(頓發)하고 의정(疑情) 돈발을 해서 참선이 잘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금방 조실 스님 녹음법문도 몽산법어를 ()하셨습니다마는 몽산법어를 가끔가끔 보시고몽산법어를 보지 해도 의단이 독로하고 순수무잡해서 타성일편 지경에 들어간다면 구태여 몽산법어도 필요가 없는 것이지만,

 

우리는 공부를 하다 보면 때는 단전호흡(丹田呼吸) 잘되고, 화두도 들려서 의단이 순일무잡하게 들릴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변해 가지고 영판 단전호흡도 안되고, 정신도 청쾌하지를 못하고 의심도 나지를 가지고 그렇게 답답하고 그런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는 억지로 앉아서 시간만을 채울려고 하시지를 말고 가볍게 포행을 하고 와서 정진을 하실 수도 있고,

 

여러분 댁에서 공부하실 때에는 몽산법어도 편씩 떠억 보시고서, 이게 한글로 () 달고 그것을 번역을 하고, 거기 어려운 말에 대해서는 역주(譯註) 붙여서 놨기 때문에 누구든지 보시면 있게 되어 있습니다.(처음~1618)

 

 

 

 

(2)------------------

 

심사학도별무타(尋師學道別無他)   지재기우자도가(只在騎牛自到家)니라

나무~아미타불~

백척간두능활보(百尺竿頭能闊步)하면   항사제불안전화(恒沙諸佛眼前花)니라

나무~아미타불~

 

심사학도(尋師學道) 별무타(別無他). 스승을 찾아서 법문을 듣고 도를 배우는 것이 다른 일이 아니여.

지재기우자도가(只在騎牛自到家)니라. 다못 소를 타고 자기집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소는 무슨 ? 지금 황소나 무슨 우유를 짜는 ? 그게 아닙니다. 자기의마음 타고서 자기의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더라.

 

마음 ! 부르면 대답할 알고, 욕하면 성낼 알고, 억울한 소리를 하면 () 나고, 칭찬해 주면 기뻐하고, 배고프면 먹을 알고, 그게 바로마음 그림자거든. 마음 그림자 있는 곳에 소가 없겠느냐 그말이여.

마음 그림자를 돌이켜서 화두를 거각하면 그게 자기의 마음 소를 찾을 있는 길이 바로 거기에 있어. 마음 소를 찾아서 타고 자기의 마음 고향, 마음 부처, 마음의 극락으로 돌아가는 길이여.

 

어떻게 해야 마음 타고 고향에 돌아갈 수가 있겠느냐? 백척간두(百尺竿頭) 걸음을 나아가야 한다.(百尺竿頭能闊步)

백척간두에 올라가 가지고 떨어져 죽을까 봐서 그놈을 ! 붙잡고 벌벌벌벌 떨고 있어. 재산, 명예, 권리, 자식, ! 그놈을 붙잡고 그래 가지고 행여나 그놈을 놓칠까 벌벌벌벌 떨고 있는 동안에는, 어떻게 그러한 탐착심으로 인해서 눈이 가리워졌는데 어떻게 참나를 깨달을 수가 있겠느냐?

 

() 장애는 탐심(貪心), 진심(瞋心)이거든. 탐진치(貪瞋痴). 탐진치(貪瞋痴) 삼독심(三毒心), 탐진치 삼독심에 얽매어 가지고 결국은 마음 소를 찾지를 못해.

 

무엇이 탐심(貪心)이냐? 재산에 관한 것만이 아니에요. 마음에 드는 것을 보고서재산이 되었건 명예가 되었건 권리가 되었건, 무슨 사상이 되었건, 무엇이고 마음에 드는 것을 보고 그릇된 생각을 갖는 것이 그것이 탐욕이여. 마음에 드는 것을 보고 거기서부터 그릇된 생각을 .

 

진심(瞋心) 무엇이냐? 마음에 드는 것을 보고서 그릇된 생각을 내는 거여.

마음에 드는 것을 보고도 거기에 끌려가지 아니하고 터억 화두(話頭) 들어 버리고, 마음에 드는 일을 보고 당하고 하더라도 거기에 끌려가지 말고끌려가면 진심(瞋心) 나게 되는 것이니까, 마음에 드는 일을 당하더라도 거기에서 퍼뜩 돌이켜서 화두를 떠억 들어 버리고 그래야 텐데, 전부 그리 끌려가 버리거든.

 

마음에 드는 일을 보고서 거기에 그릇된 생각을 내서 화두를 들을 줄을 모르고 끌려가면그놈을 마음에 드는 것을 보고저건 것을 삼아야겠다벌써 그게 바로 그릇된 생각을 내는 거거든.

마음에 드는 일을 보면 퍼뜩! 돌이켜서 화두를 들어야 텐데, 그걸 보고 그릇된 생각을 내면 그것이 바로 진심(瞋心)이여.

 

다음에 치심(痴心) 뭐냐? 무지(無知) 말미암아서해야 해야 분간을 못하면 이것이 어리석은 거여. 그래서 법문을 항상 들은 사람은 자연히 지혜!—내가 해야 일과 해야 , 이것을 자연히 판단이 나게 되는 거여.

해야 , 해야 일을 판단이 것은 법문을 듣지 아니하기 때문에 어떠한 일을 당해도 그것이 분간을 바로 못하고, 무슨 말을 들어도 이렇게 해야 할지, 저렇게 해야 할지 분간을 못하거든.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거여.

 

그래서 항상 법문을 듣고, 항상 정진한 사람은 탐심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탐욕이 없어져 버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진심을 줄을 모르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지가 달아나 버려.

그래서 항상 계율을 지킬려고 해도 계율을 지키게 되고, 마음은 항상 안정이 되고, 항상 지혜로운 마음이 !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생각이 바르고, 사람의 말이 바르고, 사람의 행동이 바르고, 사람의 모든 생활이 바르게 되게.

그래서 참선을 하는, 최상승법(最上乘法) 의지해서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은 모든 생활이 자연히 바로 잡아져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탐착심(貪着心) 진심(瞋心) 치심(痴心)으로부터서 해방이 되야 .

그래서 오직 화두로써 눈을 삼고, 화두로써 귀를 삼고, 화두로써 입을 삼고, 육근(六根) 육식(六識) 전부 활구참선으로 무장을 때에 무엇에 집착할 것이 있겠느냐 그말이여.

 

명예를 집착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명예가 것이요, 권리를 탐착을 하지 해도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면 권리도 이르른 것이고.

세상의 모든 것이 시커먼 마음으로 탐심 낸다고 모든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탐착심을 버려 버리고 정법(正法) 의지해서 올바르게 살아가면 자연히 업장이 소멸이 되기 때문에 장애가 없어지고, 장애가 없어짐으로 해서 선신(善神) 옹호(擁護)하고 제석천왕(帝釋天王) 항상 보호를 하시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면 구하지 아니해도 자연히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를 나가면 자연히 그것이 그렇게 되는 것을 스스로 느껴지게 되는 것입니다. 죽어서 극락에 갈려고 하지 해도 이미 살아서 불보살(佛菩薩) 친견하고, 살아서 불보살과 더불어 생활하게 되니, 사바세계(娑婆世界) 바로 극락정토(極樂淨土) 되는 것이여. 이것이 바로 활구참선이라 하는 것입니다.

 

백척간두(百尺竿頭) 능히 활보(闊步) 해야 항사제불(恒沙諸佛) 바로 안전화(眼前花), 눈앞에 꽃이여.

부처님, 부처님하지마는 우리는 극락세계만 가야 부처님을 뵈옵고, 도솔천 내원궁에만 가야 부처님을 뵈옵고, 부처님은 하늘나라나 그런 오색 구름 속에 휩싸여 계신 걸로 생각하고 그렇지만, 그것은 중생의 마음으로 맨들어낸 중생의 허망한 부처라고 하는 허상에 지내지 못한 것이여.

 

부처님은 여기에 계시고, 저기에 계신다고 수가 없는 것이여. 법계(法界) 가득 있는 것이 바로 부처님인 것이고.

볼라야 없는 것이 부처님이요, 볼라야 없는 것이 부처님인 것입니다. 중생의 (), 업의 눈으로 보인 것이 그것이 부처일 까닭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찾고 있는 그러한 부처는 헛된 망상의 부처님이여.

부처는 업의 눈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활구참선에 의지해서 정말 가행정진(加行精進)하고 용맹정진(勇猛精進)해서 공안을 타파하고 확철대오할 때에 여러분은 눈을 감아도 전체가 부처요, 눈을 떠도 전체가 부처인 것이다.(3957~5151)()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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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묵좌허회독엄문~’ ; [부휴당대사집(浮休堂大師集)] ‘() 선백(禪伯)에게(贈巖禪伯)’ 참고.

*회포(懷抱 품을 /안을 ) ; 마음속에 품은 생각이나 ().

*자욱히 ; 자욱이. 자옥이. 연기나 안개 따위가 잔뜩 끼어 흐릿하게.

*정취(情趣 ·정취 /·취향· ) ; 심미(審美 아름다움을 살펴 알다) 바탕을 깊은 정서(情緖) 자아내는 흥취(興趣 흥과 취미).

*취미(趣味 ·취향· /·마음에 느끼는 ) ; 감흥을 느끼어 마음에 일어나는 .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 행동··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거량(擧揚 /나타낼·밝힐 ) ; 화두, 공안(公案) 들어 대중에게 보이고 불교의 진수(眞髓) 말하는 . 불법을 선양하여 사람을 인도하는 .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 같은 .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리(事理)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바가 아니다라고 .

*번뇌(煩惱 번거러울 /괴로워할 )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성냄()•어리석음()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앞의 () () ()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 삼도(三道) 설명한다. 번뇌[]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녕될 /생각 )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 생각() , 또는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

*치성(熾盛 성할 /성할 ) ; 불길이 일어나는 것과 같이 성하게 일어남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참상(參祥) ; 참구(參究) 같음.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개도 불성(佛性)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스님이 답하되()” 하시니준동함령(蠢動含靈)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벼람박 ; ‘바람벽(--집의 둘레 또는 방의 칸막이를 하기 위해 만든 )’ 사투리.

 

*의심관(疑心觀) ; 화두를 거각하여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 하는 .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5분 59초)

 

처음에 공부를 모르는 사람은 힘을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밖에는 없지만,

, , 이렇게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해도 화두가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걸랑,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 하는 거여. 없는 의심의 ()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일은 없는 의단(疑團)만을 잡드리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 () 긴완(緊緩) 득기중(得其中) 해야 . 그것이 묘한 ()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아는 사람은 바로 ()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의심(疑心) ()’으로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관해 나가면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의심의 ()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 막론하고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 2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 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 , , 3, 5, 10년을 해도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말로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하고, 고대로 하면서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묘한 의관(疑觀)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조정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의심관, ()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생각 없는 생각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활구참선(活句參禪)의심(疑心) 이라야 .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 서산에 지려고 ,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때에,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빨갛고 아름다운 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수가 없는데, 해가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해를 수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떨어져서 보일 때까지 시간 내지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때까지 관찰하고서, 다음에는 밤새 눈을 감으나 뜨나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다시 관을 해서,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밤새 관하고, 이튿날 관하고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일관이라든지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 있는데, 참선도 하나의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이뭣고?’ 해도 없는 의심이해가 봐두었던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 .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역대조사(歷代祖師)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헛짐 ; 헛김( 데로 새어 나오는 ).

*의단(疑團 의심할 ,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惺惺] 상태.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이뭣고~?’   ‘ 없는 생각()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순수무잡(純粹無雜 순수할 /순수할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수(純粹)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몽산법어(蒙山法語) ; ()나라 몽산스님의 법어로 참선 수행의 구체적인 길을 자상하게 제시하였다.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몽산법어 있다.

*법공양(法供養)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중생들에게 베풂. ②불서(佛書) 사람들에게 베풂. ③부처님의 가르침을 공경하고 찬탄함. 경전에 · 등을 바침.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돈발(頓發 갑자기 /일어날·나타날·밝힐 )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 直頓의 , 곧바로.

*단전 호흡(丹田呼吸) ; 의식적으로 숨을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일반적으로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이다.

*역주(譯註 번역·뜻을 풀이함 /주해·뜻을 풀어 밝힘 ) ; ①번역한 사람이 붙인 주석(註釋 낱말이나 문장의 뜻을 쉽게 풀이함. 또는 ). ②번역과 주석을 아울러 이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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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심사학도별무타~’ ; [부휴당대사집(浮休堂大師集)] ‘어느 선자(禪子)에게(贈某禪子)’ 참고.

*백척간두능활보(百尺竿頭能闊步) ;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백척간두에서 걸음을 나아간다는 .

①이미 연구를 쌓을 만큼 쌓은 위에, 거기서 멈추지 말고 다시 연구를 계속하여 노력한다는 .

②백척간두는 높은 장대 위에 섰다는 말로서, 막다른 매우 위험한 지경이란 뜻이다. 여기에서 걸음 나아가면 죽을 같이 생각되지만 사실은 크게 살아나게 된다는 .

③깨달음을 얻었더라도 더욱 깨달음을 넘어서 절대의 살아 움직이는 경지에까지 나아가야 함을 말한다.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 화두(話頭) 말이다. 간화(看話)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을 본다[]’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화두를 ()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최상승법(最上乘)’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소의(所依) 되어 육식을 일으켜 대상을 인식케 하는 근원이다。곧 () • () • () • () • () • () 여섯 가지 기관(器官) 말한다.

*육식(六識) ; (((((() 육근(六根)으로 각각 (((((() 육경(六境)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선신(善神) ; 불법(佛法) 그것을 믿는 이들을 보호하는 .

*옹호하다(擁護-- 안을 /보호할 ) ; 어떤 대상을 두둔하고 편들어 지키다

*제석천왕(帝釋天王) ; 불법(佛法) 지키는 수호신. [天神]들의 제왕[] 샤크라〔釋〕라는 . 제석(帝釋), 석제(釋帝), 제석천(帝釋天), 제석왕(帝釋王), 제석태자(帝釋太子), 천주(天主)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Śakra-devānām Indra). 석제환인다라(釋提桓因陀羅) ·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 ·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 ·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 등으로 음역하고 줄여서석제환인(釋提桓因, 釋帝桓因) · 제석천(帝釋天)이라 한다.

『법화현찬(法華玄贊)』에서는 범어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에서 석가 ()씨이며 ()이라 한역하고, ‘제바 ()’이라 한역하며, ‘인달라 ()’ 한역하니  능천제(能天帝)’ 한다 뜻으로 보면 석가(능히) 제바(하늘의) 인달라(제왕)’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는데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왕으로, 사천왕(四天王)32() 통솔하면서 불법(佛法) 불제자를 보호한다. 도리천에는 33신이 있는데, 제석은  중앙에 있는 선견성(善見城) 안의 수승전(殊勝殿)이라는 궁전에 살고, 나머지 32신은  () 밖의 궁전에서 각각 산다.

제석천은 본래 인도 성전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천신  벼락을 신격화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었으나 불교에수용되어서는 범천(梵天) 함께 호법선신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상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수호하고 사바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에서는 단군의 할아버지를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하여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동일시하여 숭배하였다.

<잡아함경>에는 제석천이 본래 사람이었으나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 향과 와구(臥具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한다. 제석천왕은 신중탱화(神衆幀畵)  손에 금강저(金剛杵) 들고 머리에 보관(寶冠) 쓰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한다.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 () 불타(佛陀) 준말. 각자(覺者)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모두 사바세계이다.

*극락정토(極樂淨土) ; 산스크리트어 sukhāvatī  아미타불이 계시는 청정한 국토로, 세계에서 서쪽(西方)으로 십만억 불토(佛土) 떨어진 곳에 있는데, 일체의 괴로움이 없고 자유롭고 지극한 즐거움만 있는 세계. 수가마제(須呵摩提, 須訶摩提), 수마제(須摩提) 등으로 음사하고 정토(淨土), 안락(安樂), 안양(安養), 서방정토(西方淨土), 낙방(樂邦) 등으로도 한역한다.

*활보(闊步 넓을 /걸을·걸음 ) ; 발자국을 크게 떼며 거침없이 힘차고 당당하게 걸음. 또는 걸음.

*항사(恒沙) ; 항하사(恒河沙). 인도 갠지스 (Ganges) 모래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항사제불(恒沙諸佛) ; 무수히 많은[恒沙] 모든 부처님.

*법계(法界) : [] dharmadhatu  dharma 법은 온갖 유형 무형의 물질과 모든 일과 어떤 이치이거나를 들어 말하고  dhatu 경계(境界) 또는 범위(範圍) 말이다。그러므로 온갖 (萬有) 총괄하여 하는 말이니, 우주의 전체와 진리의 전체, 성품(法性)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