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언'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20.10.27 §(024) 송담스님의 묵언 정진. 전강 조실스님께서 보살펴 주신 은혜 / 참선을 하려면 바른 스승을 구해야 한다 / 도인 81행 / 상(相)에 의지하지 아니한 진실한 신심.
  2. 2015.11.14 §(500) (게송)춘종동해남비석~ / 용맹정진이란? / (게송)부운부귀비유의~ / 어려운 일 당했을 때, 내 맘대로 안될 때, 내 마음에 거슬릴 때, 화두를 들라.
  3. 2014.06.29 §(269) (게송)종조난설인장단~ / 일체 잡담을 하지 말라 / 입방선을 형식적으로 하지 말라 / 이러한 공부하기 좋은 여건이 다시 어느 곳에 있겠는가?
  4. 2014.06.19 §(246) 도고마성(道高魔盛) / 참선하는 사람은 그 '한 생각'을 무섭게 단속을 해야 / 자가철주(自家鐵柱) / (게송) 출가수도배~ / 도(道) 닦으면 다 출가(出家) 수도인.
  5. 2014.06.09 §(346) ‘이뭣고?’ 화두 / ‘알 수 없는 의심’을 관(觀)해야 / 용화선원의 가풍(家風)-평상시가 용맹정진 / 여법하게 정진하는 것이 참다운 불사 / 장애 극복은 정진력으로.
  6. 2014.04.16 §(568) 왜 화장(火葬)이 좋으냐? / 「만년위패」를 모시는 뜻 /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다 성불(成佛)하도록 우리는...
  7. 2014.01.31 §(258) (게송)불불산향만로비~ / ‘한 생각’ 단속이 기도요, 삼재를 막는 것 / 식신(識神) / 말을 적게 하라 / 수구여병(守口如甁) / 참선으로 근본을 해결해라.
  8. 2013.11.27 §(140) 정진(精進)이란? 정진심(精進心)을 일으킨 것은 벌써 바른 정진이 아니다.

§(024) 송담스님의 묵언 정진. 전강 조실스님께서 보살펴 주신 은혜 / 참선을 하려면 바른 스승을 구해야 한다 / 도인 81행 / 상(相)에 의지하지 아니한 진실한 신심 / 금강경 사구게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선지식(善知識)이 무슨 깨닫게 해 준 것도 아니고, 무엇을 가리켜 줄 것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선지식한테 무엇을 배울 것도 없고,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른 참선을 헐라고 할 때에는 바른 선지식의 지도가 없이는 천 명, 만 명 가운데에 한 사람도 바로 깨달은 사람이 나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째서 배울 것도 없고 가리킬 것도 없는데 선지식을 만나지 아니하면은 바로 깨달을 수가 없느냐? 가리켜 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까닭입니다.

만약에 가리켜 줄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것이라면은 우리는 혼자라도 얼마든지 스승 없이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가리켜 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스승이 없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024)—1976년(병진년) 동안거 결제(76.10.15.음) (용024)

 

(1) 약 20분.

 

(2) 약 9분.

 

(1)------------------

 

방금 병진년 동안거 결제에 임해서 지금부터 4년 전, 72년도 10월 15일 바로 오늘,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그날 그 법회에 참석하신 신남신녀(信男信女) 여러분들께서 또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도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조실 스님께서 저 보고 법상(法床)에 올라가서 법을 설하라고 하셨습니다.

 

조실 스님을 모시기 30년, 처음에 출가할 때부터서 조실 스님께서 항시 하시는 말씀이 "참선(參禪) 공부를 헐라면은, 근기(根機)가 약한 중근기 · 하근기가 참선을 바로 헐라면은 바보가 되어야 한다. 멍청이가 되어야 한다. 아무 쓸모없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어야 한다. 썩은 나무둥치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자신의 근기를 생각할 때에 하근기 중에서도 가장 못난 하근기라고 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일생 동안을 정말 바보가 되어 가지고 조실 스님의 법을 철저히 믿고, 벙어리가 되어 가지고 이 세상 한 번 안 태어난 셈치고 일생을 지내보리라'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자 '바보가 되고 쓸모없는 물건이 될라면은 벙어리가 된 것이 제일 무방하겠다' 이리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출가하자마자 바로 묵언(默言)을 시작했는데, 여러 가지가 불편한 점이 다 많지마는 조실 스님께서는 참 제가 상좌(上佐)인지, 조실 스님이 상좌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저의 모든 일을 잘 보살펴 주셨습니다.

그러한 은혜로 해서 하근기로서 그래도 퇴태(退怠)하지 아니하고, 이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그럭저럭 10년이라고 하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저는 10년을 지내도 아무 얻은 바가 없었습니다.

'다맛 바보가 되어 가지고 알 수 없는 화두(話頭)만 들으라'고 그렇게 지도를 받았기 때문에 다맛 그렇게만 해 왔습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제가 양말 한 켤레, 내복 하나 빨아 드리는 것을 허락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거의 조실 스님께서는 자신이 다 그것을 하셨고, 제가 양말이라도 손을 댈까 전혀 대지 못하도록 이렇게까지 저를 아껴 주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너무나도 황송했지마는 조실 스님이 빨지 못하게 하시고 발 씻을 물 한번 떠오라고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죄송한 생각으로 조실 스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제가 조실 스님의 시봉(侍奉)을 받다시피 하면서 십 년 세월을 지냈습니다.

그 중간에는 방죽가에서 하꼬방 장사도 하고—사과 · 과일 그러한 것도 팔고, 음료수도 팔고, 이렇게 해서 고구마도 쪄 놓고 팔고, 수박 참외도 갖다 놓고 팔고. 이렇게 해서 낮에는 장사하고 밤에는 조그만한 하꼬방 속에 앉아서 날새기 정진을 하고, 이리 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에 공부는 아무것도 얻은 바도 없었지마는, 조실 스님께서는 "묵언(默言)도 어느 정도까지지 그거 말 안 하는 것 자체가 무슨 공부겠느냐? 그러니 십 년을 했으니 묵언을 그만 터라" 그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금생에 마지막 숨 딱! 끊어질 때까지 입을 열고 싶지 안 했고, 벙어리로서 일생을 바치고 싶었지마는 조실 스님의 명령이라 할 수 없이 묵언을 트고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입을 열었어도 아무 말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다못 묵언하기 전, 그 상태로 도로 돌아갔습니다.

 

묵언을 트고서 조실 스님을 모시고 구례 화엄사, 인천 보각사, 또 저 군산 은적사, 김제 흥복사, 이 인천 용화사로 여기저기 스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저는 계속 그전이나 다름없이 정진을 했지마는, 제가 가만히 생각해보건대 차라리 내가 입을 열지 말고 계속해서 묵언을 할 것을, 묵언을 할 때에는 아무도 내 하는 일에 간섭하는 사람 없었고 또 나도 다른 일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서 언제나 내가 내 시간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묵언을 트니까 내가 남의 일에 참견을 해야 하고, 남이 내 일에 참견해야 하고 해서 많은 번거로움을 가져왔습니다.

 

그럭저럭 용주사에서 주지도 해 보고, 또 영동에서 또 주지도 해 보고 이러는 동안에 삼십 년이 지내왔습니다. 그러자 72년도에 여기에 와서 조실 스님을 또 모시고 지내게 되었습니다.

 

조실 스님은 그렇게 우렁차게 법문을 하시고, 지칠 줄을 모르시고 날이면 날마다 새벽같이 하루에 두 차례, 세 차례씩 대사자후(大獅子吼)를 열으셨습니다.

그러시던 조실 스님께서는 차츰 기력이 쇠(衰)하시고 혈압이 높아지시기 시작했습니다. 72년도 그날도 금방 여러 사부대중께서 들으신 바와 같이 그전에 그 낭랑한 음성은 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한 간곡한 그 마음은 그전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어서 억지로라도 큰 소리를 내셔서 목이 갈라지도록 그렇게 법문을 해 주신 것을 지금 우리는 들었습니다.

 

그날 조실 스님께서 억지로 법상에 올라가라고 해서 사양을 하다하다 못해서 강제로 명령을 하셔서 제가 잠깐 올라와서 말씀을 한말씀하고 내려갔었습니다. 제가 올라갔다 내려온 다음에 하신 법문이 오늘 여러분께서 들으신 법문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그날 하시던 법문—참선을 할 사람, 참선을 헐라면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냐?

 

첫째, 바른 스승을 구해야 한다.

참선은 자기가 자기를 깨닫는 것이지마는, 바른 스승을 만나지 못하고 하는 참선은 아무리 밤잠을 안 자고 밥을 굶으면서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고 해도 그 참선은 결단코 우리에게 깨달음을 가져다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선지식(善知識)이 무슨 깨닫게 해 준 것도 아니고, 무엇을 가리켜 줄 것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선지식한테 무엇을 배울 것도 없고,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른 참선을 헐라고 할 때에는 바른 선지식의 지도가 없이는 천 명, 만 명 가운데에 한 사람도 바로 깨달은 사람이 나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째서 배울 것도 없고 가리킬 것도 없는데 선지식을 만나지 아니하면은 바로 깨달을 수가 없느냐?

가리켜 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까닭입니다.

 

만약에 가리켜 줄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것이라면은 우리는 혼자라도 얼마든지 스승 없이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가리켜 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스승이 없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가리켜 줄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것이라면은 부처님 당시에 1,250인을 비롯해서 모든 사부대중, 인천(人天) 백만억 대중이 어째서 부처님 당시에 일시에 다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하지 못했겠습니까?

 

삼천년을 내려오면서 역대조사(歷代祖師)가 출현을 하셔 가지고 정법을 선양(宣揚)하시고, 그동안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이 삼십이상(三十二相)과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나투시면서 천백억 화신(化身)으로 이 우주법계 방방곡곡에 오늘도 수없이 많은 불보살과 선지식이 출현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지금도 설법을 잠시도 그치지 아니하고 설법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가리킬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것이라면 이 세계에 40억이라고 하는 인구는 말할 것도 없고, 시방법계(十方法界)에 가득차 있는 무량무변(無量無邊) 중생이 한 사람도 깨치지 못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리켜 줄 수 없고 배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도 우리는 깨닫지 못한 채 육도(六途)를 윤회(輪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 부처님 참법에 입각해서 본다면은 깨닫고 깨닫지 못하고 이러한 말들은 잠꼬대 같은 말이라고 하셨습니다. 진즉 우리는 진묵겁(塵墨劫) 전에 우리는 다 성불해 마쳤다고 부처님께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밥 먹고, 똥 싸고, 울고 웃고 한 이 모든 것이 고대로 하나도 버릴 것 없이 온전히 깨달은 상태에서 모든 것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은 우리는 깨달을려고 하기 때문에 점점 미(迷)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은 깨달으려고 하지 말아야겠느냐?' 이렇게 반문을 하시겠지마는, 우리는 어떠한 법문(法門)을 들을 때라도 그 법문에 의지해서 바로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입니다. 어떤 법문을 들으면 항시 그 반대쪽 상대되는 말을 연상(聯想)을 하는 것이 우리 중생의 버릇입니다.

부처님 설법, 큰스님네의 설법을 들어도 그 설법을 듣는 가운데에 바로 자기에 본참화두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법문을 옳게 듣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법문을 듣더라도 그 법문에 의해서 그다음 생각, 그다음 생각으로 차츰 추리해 들어가는 그러한 법문을 듣는 태도는 영리한 사람이긴 하지마는, 법문을 참으로 옳게 들을 줄 아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법문을 듣더라도 그 법문을 듣자마자, 들음과 동시에 자기가 들고 있는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疑心)이 분명해질 때, 소소영령(昭昭靈靈)해질 때 그 법문은 참으로 우리에게 받아들여졌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바르게 법문을 알아들을 줄 아는 사람은 꼭 법당에만 들어와서 어떠한 법사님의 법문을 들어야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법문을 바로 알아들을 줄 아는 사람은 하늘을 보고도 산을 보고도 물을 보고도, 개 짖는 소리를 듣고도, 소와 말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도, 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도,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도, ‘이놈 저놈’하고 욕지거리 하는 소리를 듣고도, 누가 나한테 어리석은 억울한 욕을 퍼붓고 달라드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나의 목에 칼을 댈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찰나 찰나에 자기에게 주어진 본참공안(本參公案)을 들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까지는 우리는 이러한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자주자주 들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법문을 듣고서 그 시간에 들은 법문을 졸졸졸졸 한마디도 잊어버리지 않고 조르르 옮기는 그러한 영리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 법문을 듣는 동안 잠깐도 귀를 팔지 아니하고, 한눈을 팔지 않고서 열심히 들은 증거입니다.

그러나 법문을 듣고 돌아서서 한마디도 옮길 수 없지마는 들을 때나, 법문이 끝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걸음이 자기에게 주어진 본참화두가 분명히 들려서 알 수 없는 의심이 골똘해진 그 사람. 그 사람에게 비교할 때에 뒤에 사람이 앞에 사람의 몇천 배, 몇만 배 법문을 잘 제대로 들은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제가 이제까지 해 드린 말씀을 통해서 '법문(法門)은 어떻게 듣는 것이 옳다'

또 법문은 법당 안에서만 잘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정에 돌아가서 사회에 나가서 어디서 무엇을 보던지 듣던지, 무엇을 느끼던지, 어떠한 사건을 당하던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언제라도 간절(懇切)한 마음으로, 깊은 신심(信心)으로, 불같은 의심(疑心)으로, 분심(憤心)을 일으켜서 자기의 본참(本參)을 들고 또 들고 해서, 우리의 일상 모든 생활 속에 화두에 대한 의심이 한덩어리가 되도록,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가지고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누구보다도 제일 법문을 잘 들은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만일에 법문을 한 번 듣고서 하루, 한 달, 석 달, 일 년, 계속해서 그러한 상태로 나아갈 수 있다면 구태여 법문을 자주 들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렇게 되지 못한 사람이면 법회 때에 빠져서는 아니되겠습니다.

어쨌든지 듣던 말 또 듣고, 듣던 말 또 듣더라도 자주 자주 법회에 참석해서 본참화두가 타성일편이 될 때까지는 선지식의 법문을 소홀히 들어서는 아니되겠습니다.(처음~19분37초)

 

 

 

 

(2)------------------

 

스승을 찾는 데에는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부처님 이후로 선지식이 일양(一樣)으로 밖으로 보아서 인물이 잘나고, 법문을 들어보면 아주 변재(辯才)가 있고 말이 조리(條理)가 분명해서 모든 사람을 감동시킬만 하고.

그리고 그 행동은 대도사의 품위가 있고 몸에서는 광명이 비치며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향기가 풍기며, 한 번 뵙기만 해도 모든 사람이 저절로 숭배심과 신앙심이 우러나오는 그러한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종호(八十種好)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갖춘 그러한 도인(道人)으로만 세상에 출현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도인은 가끔 있을 수 있을지언정, 대체로 불보살과 역대 대도사가 출현하실 때에는 여든한 가지의 그러한 가지가지 우리 중생의 눈으로 볼 때는 의심스럽고 '세상에 저게 무슨 도인인가? 저게 무슨 불법인가? 저래 가지고 무슨 중생교화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저런 사람 앞에 법문을 들어서 무엇 하겠는가?'

이렇게 의심스러울 정도의 어찌 보면 어린애 같고, 어찌 보면 바보 같고, 어찌 보면 미치광이 같고, 그러한 양상(樣相)으로 출현하신 선지식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중생이 한번 보고 한번 들음으로써 신심이 더욱 돈발(頓發)할 수 있는 그러한 훌륭한 양상으로 출현을 한 것이 낫지, 어찌 미치광이같이 바보같이 어린애같이 주책없는 그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의아스럽게 맨드는 그러한 양상으로 출현을 해서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여기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습니다.

 

중생은 무엇을 듣던지 보던지 단통 상(相)을 먼저 보게 됩니다. 그래 가지고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자기 나름대로 저울질을 하게 됩니다.

그래 가지고 자기 눈에 들면은 좋다고 그러고, 그 앞에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하고 어쩔 줄을 모르고 야단입니다. 그러다가 조그만한 허물만 보였다면 대번에 손가락질을 하고 비방을 하고 "아! 큰스님인 줄 알고 큰 도인인줄 알았더니 내가 잘못 봤다. 어디가 도인이 그럴 수가 있느냐?" 대번에 돌아서서 욕을 하고 비방을 하고 다른 사람까지 가서 법문을 듣지 못하도록 선전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상(相)을 보고 믿는 신도, 상을 보고—법문을 잘하니까, 얼굴이 잘 생겼으니까, 참 음성 소리가 좋으니까, 참 인정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 스님이 참 좋다. 이러한 식으로 믿기 시작한 그 신심은 머지않아서 변해 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서 상(相)에, 모냥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정말 진실한 돈독한 신심으로 법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선입관, 주견을 잊어버리고 위법망구(爲法忘軀)로 신(信)하는 그 신심은 어떠한 행동이나 어떠한 언어나 자기 뜻에 맞지 않는 어떠한 경우를 당하더라도 자기의 진실된 믿음은 동요가 되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금강경』에 말씀하시기를 「만약 색(色)으로써 나를 보거나, 음성(音聲)으로써 나를 구(求)하는 자는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 사람이라 여래(如來)를 보지 못하리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금강경을 날마다 한 번씩 읽고 그러기를 몇십 년을 하는 그러한 신심을 가진 불자(佛子)가 금강경에 씌어 있는 단 한 구절의 게송의 뜻마저도 바로 보지 못하고, 마냥 정법을 비방하고 바로 선지식을 믿을 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색(色)으로써 나를 보거나, 음성(音聲)으로써 나를 구하는 자는 삿된 도를 행한지라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부처님은 32상과 80종호를 다 갖추셨고 그 음성은 원음(圓音)으로써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은 모든 중생이 자기의 근기에 맞춰서 각기 자기 나름대로 전부 그 법문을 알아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위대한 원음을 갖추셨으니까 나는 그분을 부처님으로 숭배한다. 그러한 거룩한 상호를 가지셨으니까 부처님을 숭배한다. 그래서 나는 부처님 앞에 머리 숙여 목숨 바쳐 귀의한다' 이러한 사람은 「참 여래를 보지 못한 사람이다」 이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여기서 한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나의 얼굴을 한 번만 본 사람도, 나의 이름을 한 번만 들은 사람도 결정코 삼악도(三惡途)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대해탈도(大解脫道)를 얻으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야기할 때는 밑을 보지 말고 저의 얼굴을 보시면서 들으십시오.

30년을 두고 발원을 하기를 '나의 얼굴을 본 사람은 삼도(三途)를 면하고, 나의 이름을 들은 사람은 해탈도를 증득하여지이다' 이렇게 간절히 축원을 해왔기 때문에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을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 드리는 말씀을 자칫 잘못 들으시면은 여러분은 돌아서서 웃으시게 됩니다.

「나」라고 하니까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이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낱낱이 「나」를 봐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각기 이름을 한 가지 두 가지씩 다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이름은 임시로 붙여 놓은 이름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참 이름'을 바로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 ‘참나’를 본 사람이 어찌 삼악도에 떨어지며, 여러분 자신의 '참 이름'을 들을 수 있다면 어찌 해탈도를 증득 못하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말씀을 드렸지마는, 또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송담(松潭) 얼굴을 봐도 절대로 악도를 면하고 해탈도를 증득하리라고 저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이야기할 때에는 저의 얼굴을 똑바로 보시면서 들어야 졸음이 안 온 것입니다. 요렇게 밑으로 참선 한 척하고 있으면은 남 봄에는 점잖하니 듣고 있는 것 같아도 속으로는 꾸벅꾸벅 하고 계신 분이 계시거든요. 그렇게 되면은 제가 목이 아프도록 이야기한 보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19분40초~28분4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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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신남신녀(信男信女) ; 불교에 귀의한 재가의 남자 신도와 여자 신도를 말한다.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근기(根器), 또는 줄여서 기(機)라고도 한다.

*무용지물(無用之物 없을 무/쓸 용/어조사 지/물건·만물·사물·일·사람 물) ; 아무짝에도 쓸데[用]없는[無] 물건이나 사람.

*묵언(默言) ;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음.

*상좌(上佐 윗 상/도울 좌) ; 윗사람을 도운다는 뜻. 곧, 한 스승의 제자를 일컬음.

*퇴태(退怠 물러날 퇴/그만둘·물러설 태)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오는 것. 불교를 믿는 마음에서 물러나 다른 데로 옮기는 것. 퇴타(退墮),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시봉(侍奉 모실 시/받들 봉) ; ①제자가 스승을 받들어 섬기는 것. 지위가 높은 스님을 가까이 모시고 시중드는 일. ②부모를 모셔 받듦. ③제자.

*하꼬방 ; 판잣집(판자로 허술하게 지은 집). 箱房. 箱(상자)의 일본어 훈독 ‘ばこ(하꼬)’+방(房)이 결합된 말.

*날새기 ; 저녁, 밤을 지나 날이 밝아 올 때까지 자지 않는 것.

*사자후(獅子吼) ; ①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②사자의 울음소리처럼 우렁찬 연설.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선양(宣掦 베풀·널리 알릴 선/오를·나타낼 양) ; 명성이나 권위 따위를 널리 떨치게 함.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이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머금은 것,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것 등등.

*팔만세행(八萬細行) ; 부처님의 모든 행동은 원만하여 모자라거나 넘침이 없다는 것. 팔만 가지 세세한 행동들이 전부 부처님의 위의(威儀, 훌륭한 행위)에 어긋남이 없다는 뜻이다.

*화신(化身) ; 화현(化現)한 몸[身]. 변화된 신체. 화신불(nirmaka-kaya 化身佛). 부처의 삼신(三身 : 法身 · 報身 · 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응화신(應化身) · 변화신(變化身) · 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시방법계(十方法界) ; 시방세계(十方世界). 온 세계. 사방(四方 동•서•남•북)과 사유(四維 동북•동남•서남•서북)와 상하(上下)에 있는 무수한 세계.

*무량무변(無量無邊) ; 한없이 크고 넓음. 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음.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진묵겁(塵墨劫) ; 티끌[塵]이 쌓여 먹[墨]이 될 만큼의 오랜 시간[劫].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연상(聯想 뒤를 이을 련/생각 상) ; 하나의 관념이 다른 관념을 불러일으키는 현상. '기차'로 '여행'을 떠올리는 따위의 현상이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소소영령(昭昭靈靈) ; 밝디 밝고 신령하다는 말. 번뇌와 망상에 물들지 않은 마음의 본성을 묘사한다. ‘소소’는 밝게 아는 작용, ‘영령’은 대상의 변화에 잘 응하는 영활(靈活)을 뜻한다. 또는 마음의 본체(소소)와 보고 듣는 등의 신령한 작용 전체(영령)를 나타낸다.

소소영령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이것과 상응하는 자아가 있다는 망상을 견제하는 말도 선문헌에 적지 않게 보인다.

[참고] 『임제록』

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

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찰나(刹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刹과 剎은 동자(同字).

*귀를 팔다 ; 귀를 딴 데로 돌리어 잘 듣지 않다.

*한눈 ; 마땅히 볼 데를 보지 않고 딴 데를 보는 눈.

*한눈을 팔다 ; 해야 할 일에 마음을 쓰지 않고 정신을 딴 데로 돌리다.

*걸음걸음이 ; 걸음을 걸을 적마다.

*골똘해진--->골똘하다 ; (사람이 한 가지 일에)온 정신을 쏟아 딴생각이 없다.

*불같은—> 불같다 ; 정열이나 신념, 감정 따위가 뜨겁고 강렬하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③‘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믿음.

*분심(憤心, 忿心, 奮心 분하다·원통하다·성내다·힘쓰다·떨치다·분격하다)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①‘쳐서 한 조각(덩어리)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②차별대립을 여읜 경지.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인 것이 융화 · 용해되어 하나가 되는 것.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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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양(一樣) ; ①한결같은 모양. 또는 같은 모양. ②한결같이 그대로. 또는 꼭 그대로.

*변재(辨才 말 잘할 변/재주 재) ; 말을 잘하는[辨] 능력과 재주(才操).

*조리(條理) ; 말이나 글 또는 일이나 행동에서 앞뒤가 들어맞고 체계가 서는 갈피.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대체로 불보살과 역대 대도사가 출현하실 때에는 여든한 가지의 그러한 가지가지 우리 중생의 눈으로 볼 때는 의심스럽고 '세상에 저게 무슨 도인인가? 저게 무슨 불법인가? 저래 가지고 무슨 중생교화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저런 사람 앞에 법문을 들어서 무엇 하겠는가?' 이렇게 의심스러울 정도의 어찌 보면 어린애 같고, 어찌 보면 바보 같고, 어찌 보면 미치광이 같고, 그러한 양상(樣相)으로 출현하신 선지식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 도인(道人)의 81행(行). 도인의 여러 가지 행에 있어서 81행이 있는데, 「도인의 81행」이라 함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의 좋고 궂은 모든 행위가 다 포함될 수가 있다.

불행(佛行) · 범행(梵行)으로부터 광행(狂行) · 영아행(嬰兒行)도 있고, 승행(僧行) · 속행(俗行) · 남자행 · 여자행, 그리고 심지어 살생 · 도둑질 · 음행 · 음주 등의 행(行)에까지 이르나 도안(道眼, 道의 眼目)이 명백하면 아무 걸릴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런 81행 가운데 체모(體貌)도 없고, 옳고 그른 것도 없고, 좋고 나쁜 것도 없고, 아무 철이 들지 아니한 젖을 먹을 나이의 어린아이의 행동인 영아행(嬰兒行)을 최고로 친다.

 

[참고] 『경허집(鏡虛集)』 '여등암화상(與藤菴和尙 등암화상에게 주다)'에서.

達磨大師入唐土 敷演最上乘法 不論誦經念佛持呪禮拜 不論長坐不臥一食卯齋 不論禪定解脫 不論持戒破戒僧俗男女 見性卽成佛 若以誦經等餘外法 妄爲佛法 殺却無罪過

 

달마대사가 당나라에 들어와 최상승법을 폈는데, 경을 읽고 염불하고 주문을 외고 예배하는 것을 논하지 않았으며, 장좌불와 일종식도 논하지 않았으며, 선정과 해탈도 논하지 않았으며, 계(戒)를 지키고 파하는 것이나 승속 남녀도 논하지 않았으며, 자기 성품을 보면 곧 성불한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경을 읽는 등이나 그밖의 법을 망령되이 불법이라 한다면 그런 사람은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又云 栴多羅見性成佛 不論作殺生業 縱作業 不同他人 業拘不能 白衣見性成佛 不論淫欲 縱有餘習 亦不相妨 洪州云 善亦是心 不可將心還修於心 惡亦是心 不可將心還斷於心 牛頭禪師云 心無異心 不斷貪淫

 

또 "전다라가 견성성불함에 살생업을 지은 것을 논하지 않으니, 비록 업을 짓더라도 다른 사람과 달라서 업에 구애되지 않으며, 속인이 견성성불함에 음욕을 논하지 않으니, 비록 남은 습기가 있더라도 또한 서로 방해되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홍주(마조도일) 스님은 "선(善)도 또한 이 마음이니 마음을 가지고 도리어 마음을 닦을 수 없고, 악도 또한 이 마음이니 마음을 가지고 도리어 마음을 끊을 수 없다"라고 하였으며, 우두 선사는 "마음에 다른 마음이 없으니 탐심과 음욕을 끊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故善知識牧牛 有八十一行 自佛行梵行 乃至有殺盜淫酒等行 而道眼明白 亦無所碍 故潙山禪師云 只貴正眼 不貴行李處 故此法門逈出三乘 汎學者 實不可思議 古有習小乘戒律者 皆誹謗禪師 而如蟷螂捍轍 斥鷃笑鵬 置之莫論

 

그러므로 선지식의 목우행(牧牛行)에 81가지가 있으니, 불행(佛行) · 범행(梵行)으로부터 심지어 살생 · 도둑질 · 음행 · 음주 등의 행(行)에 이르기까지 도안(道眼)이 명백하면 아무 구애될 게 없습니다. 그러므로 위산선사는 "다만 안목이 바름만 귀하게 여기고 행리(行履)는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법문은 삼승을 멀리 벗어났으니, 범범하게 배우는 사람은 실로 생각으로 헤아려 알 수 없습니다. 옛날에 소승의 계율을 익힌 이들은 모두 선사를 비방했으나 이는 버마재비(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고 뱁새가 대붕(大鵬)를 비웃는 격이니, 제쳐두고 논하지 않겠습니다.

*양상(樣相 모양·형태·상태 양/서로·모양·바탕 상) ; 사물이나 현상의 모양이나 상태.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단통 ; 그 자리에서 대번에 곧장.

*상(相) ; ①모습, 형태. 상대어는 성(性)으로 본래 지니고 있는 성질을 가리킨다.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금강경(金剛經) 사구게(四句偈) ;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 ‘만약 색상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려 하면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요 능히 여래(如來)를 보지 못하리라’ 『금강경』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참고]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제26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금강경』 爾時 世尊 而說偈言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그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만약 색상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려 하면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요 능히 여래(如來)를 보지 못하리라"

 

【함허(涵虛) 설의(說誼, 이치를 설함)】

色見聲求 是行邪道 作麼生 不行邪道去 但知聲色本非眞 自然不被聲色惑 見盡自於玄旨會 情忘能與道相親

 

색상으로 보고 음성으로 구하는 것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삿된 도(道)를 행(行)하지 않겠는가?

다못 이 소리와 색상이 본래 참[眞]이 아닌 줄 알면 자연히 소리와 색상에 현혹을 받지 아니할 것이다. 소리를 듣고 색상(色相)을 보는 그 견(見)이 다하면, 자연히 현현(玄玄)한 뜻을 알게 되리라. 그래서 정(情)이 다하면 능히 도(道)와 더불어 서로 친(親)하게 될 것이다.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원음(圓音) ; 치우침 없는 원만한 음성. 들을 수 없는 이가 없는 음성. 모든 유정이 제각기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 부처님께서 한 음성[一音]으로 일체법을 설하실 때, 모든 중생이 제각기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평등하게 이해하는 원만한 부처님의 가르침.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 곧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를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해탈도(解脫道) ; ①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②사도(四道)의 하나.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사도(四道) ; 번뇌를 끊고 해탈하는 과정을 네 단계로 나눈 것. ①가행도(加行道). 번뇌를 끊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 ②무간도(無間道). 간격이나 걸림 없이 지혜로써 번뇌를 끊는 단계. ③해탈도(解脫道).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④승진도(勝進道). 뛰어난 수행으로 해탈의 완성에 이르는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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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5. 11. 14. 08:02

§(500) (게송)춘종동해남비석~ / 용맹정진이란? / (게송)부운부귀비유의~ / 어려운  당했을 ,  맘대로 안될 ,  마음에 거슬릴 , 화두를 들라.

 

외형적으로 단식을 하고, 묵언을 하고, 오후불식을 하고, 장좌불와를 하고 그보단 훨씬  참다운 용맹정진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앉았거나 누웠거나 걸어가거나 일을 하거나, 행주좌와간에 어묵동정간에 항상  생각을 단속을 해서 간절한 생각으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한 것이 그것이야말로 참다운 용맹정진이다.

 

부처님은 집착심이 없는 것이 바로 부처님이라고 하는, 금강경에도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마는,  생각을 정말 간절하게 알뜰하게 단속을 해야지,  생각을 단속하지 않고 외형적인 데에 집착을 하고 공연히  몸뚱이만을 못살게 구는것으로써 용맹정진을 삼아서는  되겠더라.

 

어려운 일을 당할수록에 떠억 정신을 차리고 인과법을 믿고 화두를 철저하게 들어나가면 자연히 지혜가 떠올라서 사리를 바르게 판단하게 되고 바른 해결책이 열릴 것입니다.(용500)

 

**송담스님(No.500)—93 동안거해제  백일기도 회향(93.02.06) (용500)

 

(1) 약 15분.

(2) 약 12분.

 

(1)------------------

 

춘종동해남비석(春從東海南飛錫)하고   추향서산우북방(秋向西山又北方)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삼백육순장요요(三百六旬長擾擾)하면   부지하일도고향(不知何日到故鄉)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춘종동해남비석(春從東海南飛錫)하고  추향서산우북방(秋向西山又北方)이다.

봄에는  동해 쪽으로 가고  동해 쪽에서 남쪽으로 가고, 가을에는  서쪽으로 향했다가  다시  북방으로 간다.

 

여름철에는 남쪽이 더우니까  오대산이나  북쪽으로 가고, 겨울에는 추우니까  해제 때는 이 산에도 갔다가 저리도 갔다가,  남쪽의 뜨뜻한 데로 범어사나 통도사나 그렇지 않으면 송광사,

결제, 해제, 춘하추동 계절에 따라서 걸망을 지고—참 누가 억지로 붙잡은 사람이 있나, 기어이 오라고 하는 사람이 있나, 걸망 걸머지고 동서남북으로 왔다갔다 하는데 재미를 붙여 노면 세상에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지.

 

걸망을 지고 돌아다니는 청풍납자(淸風衲子)의 입장에서 보면  그까짓 것이 뭐라고  대통령을 하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선거운동   국회의원을 하려고  광풍이 일어나고,

세상에 명예나 권리나 재산이라고 하는 것은 잠깐 꿈속에서 잠깐 좋다가   버리면 천하에 허망하고  그런 것인데, 그런 사람들을 보면  한편으로 딱하고 불쌍하고 우습고 그렇지.

 

그런데, 그러면서도 걸망을 지고 그렇게 그럭저럭 그렇게 지내다보면 때로는 용맹정진도 하고 때로는 가행정진도 하고, 공부할려고 애쓴 그런  만고의 모범이  만한 그러한 선객들도 많습니다. 많으나,

 

개중(個中)에는 그냥 그렇게 아무데도 걸림이 없이 여기서  , 저기서   그게 그냥 운수납자(雲水衲子)로 그렇게 그럭저럭 삼백육십 일을 아무 이렇다  것도 없이 그렇게 왔다갔다 하는 그러한 스님네도 없다고  수는 없습니다.

 

여러 형제자매 도반들은 가슴에다 손을 얹고 과연 나도 몽산법어(蒙山法語)나  선가귀감(禪家龜鑑)이나  선문경책에 나오는 고조사(古祖師)들, 고인들이 공부하듯 정말로 그렇게 신명을 바쳐서 하고 있는 선객인가?’

‘그럭저럭 그렇게 지내고 있는가? 그렇게 지내 왔는가?’ 냉정히   반성을   필요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또 겉으로는 열심히 정진한 것처럼 하지마는 진짜 속속들이 정말 철저하게 정진을  오고 있는가? 삼백육순을 그럭저럭 그렇게 지내다가(三百六旬長擾擾)  어느 날에 우리의 본지고향(本地故鄉)에 돌아갈 수가 있을 것인가?(不知何日到故鄉)

  우리 해제일을 맞이해서 우리  같이   생각해  필요가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용맹정진, 가행정진의 말이 나왔습니다마는 흔히 용맹정진하면은 장좌불와(長坐不臥) 또는 묵언(默言) 또는 일종(一種), 오후불식(午後不食) 또는 단식(斷食), 이런 것들을 흔히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도, 물론 ‘기어코 도업(道業)을 성취해야겠다’고 하는 그러한 발심에서 나온 행동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외형적으로 단식을 하고, 묵언을 하고, 오후불식을 하고, 장좌불와를 하고 그보단 훨씬  참다운 용맹정진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앉았거나 누웠거나 걸어가거나 일을 하거나, 행주좌와간에 어묵동정간에 항상  생각을 단속을 해서 간절한 생각으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한 것이 그것이야말로 참다운 용맹정진이다 이거거든.

 

장좌불와하면은 장좌불와한 데에 끄달리고, 묵언을 하면은 묵언하는 데에 끄달리고, 생식이나 단식을 하면은 생식하고 단식하는 데에 끄달리고, 일종을 하고 오후불식을 하면 일종 하고 오후불식하는 데에 끄달리고,

‘평생을 누데기  벌만 가지고 입지, 내가 시은(施恩)을  짓겠다’해 가지고 누덕누덕 누더기를 짓고, 멀쩡한  옷에다가 걸레를 찢어서 갖다가 붙여갖고, 그것 누데기에  집착을 하게 되더라.

 

부처님은 집착심이 없는 것이 바로 부처님이라고 하는, 금강경에도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마는,

 생각을 정말 간절하게 알뜰하게 단속을 해야지,  생각을 단속하지 않고 외형적인 데에 집착을 하고 공연히  몸뚱이만을 못살게 구는 것으로써 용맹정진을 삼아서는  되겠더라.

 

산승(山僧)도 그럭저럭 10년을 묵언을  봐서 묵언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 정말 정진에 묵언을 해야만 된다고 하는 생각은 안 가지고 있습니다.

말을 많이 하고 잡담을 많이 하고 쓸데없는 데 참견하고,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입을 아주 철사로 꿰매버려야  만한 그러한 사람도 있습니다.

 

 

너무 말을 많이 하고 잡담을 많이 하고  가지고 자기도 공부를  하면서 남까지 정진을 방해를 하는 그런 사람은 시한부(時限附)로 묵언을 하는 것도 무방(無妨)하다고 생각하나,

10년이니, 20년이니 내지 평생을 완전 벙어리가 되는 것은전혀  공부에 이익이 없다고는  수가 없으나,  반면으로 많은 불편과 손해도 있고 남에게 첫째 불편을 주고, 백에 열이나 이익이 있으면 구십 정도는 손해도 있다고 나는 생각을 .

 

그래서 장좌불와도 역시 마찬가지고, 묵언도 역시 마찬가지고, 일종도 역시 마찬가지여.

 

부처님 당시에는 사시공양(巳時供養) 한끼만을 모다 공양을 하시도록 그렇게 되어 있지마는 지금은 중생근기가 약해서 하루 한끼 먹고는 도저히 허기(虛飢)가 져서 공부를  수가 없어.

그래서 아침도 공양을 하고,  저녁도 약석(藥夕)이라 해서 저녁도 공양해서   공양은 하되 과식을 아니  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너무 적게 먹어가지고 기운이 떨어져서도  돼고.

 

잠도 역시 장좌불와를 하고옛날에  그런 조사도 계시고 그런 스님네도 계시지마는,

다섯 시간,  시간 내지9시에 자고 3시에 일어나면 여섯 시간인데아무리 길어도 여섯 시간을 넘지 말고, 아무리 짧아도  시간은 자야 그래도  건강이 유지가 된다.

 

그래서 고인이 말씀하시기를 의식주,   가지가 지나치게 작아도 퇴타(退墮)의 인연이 된다 지나치게 너무 지나쳐도 좋지 않고, 지나치게 부족해도 못쓴다 이거거든.

 

해제를 했으니 마음대로 걸망을 지고 선지식을 찾아갈 수도 있고, 도반을 찾아갈 수도 있고  삼동에 너무 정진에 애를 쓰다 보니 기운이 탈진이 되어가지고 어디 적당한 데 가서 쉬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동서남북 어디를 가든지 가는 걸음걸음이 화두를 들고, 어디 가서 쉬더라도 쉬는  자리에 바로 하루를 쉬면 하루 결제했다’고 생각하고, ‘사흘을 쉬면은 사흘 결제했다’고 생각하고,

 

비록 허리가 아프면 허리를  잡아서 와선(臥禪)을 하고, 다리가 아프면 다리를  뻗는 한이 있더라도 생각만큼은 터억 구속 없는 가운데 화두를 터억 들어보시라 그말이여.

결제 중에  짜인 법규 하에서 죽비를 치고 입선할  보단, 죽비를 안 치고서 터억 부담 없는 마음으로 화두를 들어보면 한결 공부가   되거든.

 

어느 산중에 계곡을 지나갈  바위 턱에 걸터앉아서 흘러가는 시냇물을 보면서 화두를 들고, 이제 입춘도 지내고 해서 여기서 저기서 산새가  것입니다. 산새를 들으면서도 터억 화두를   들어보시라 그말이여.(3033~4523)

 

 

 

 

 

(2)------------------

 

부운부귀비유의(浮雲富貴非留意)하고   와각공명기득구(蝸角功名豈得求)리요

나무~아미타불~

춘일쾌청춘수족(春日快晴春睡足)한데   와청산조백반성(臥聽山鳥百般聲)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부운부귀비유의(浮雲富貴非留意)요, 뜬구름 같은 부귀영화에 내가 뜻을 거기에 머무르지 않어.

와각공명기득구(蝸角功名豈得求)리요. 달팽이 뿔과 같은 공명(功名), 명예 같은 것을 어찌 내가 구할까보냐 그거거든.

 

재색식명수(財色食名壽), 재산이니, 색이니, 명예니, 권리니, 부귀공명이라고 하는 것은 뜬구름과 같은 것이고 달팽이 뿔과 같은 거여.

달팽이는 뿔이 나왔다가 들어갔다가 수시로 들랑날랑 들랑달랑 하거든. 뜬구름도 하늘에 허연 구름이 뭉게뭉게 있는  보면 금방 바람에 따라서 이리저리 모양이 변해 가지고 저리 날아가 버린다 그말이여. 하나도 믿을 것이 없어.

 

달팽이 뿔이 나오니까 오래 있을  같지만 금방 들어가 버려. 들어갔다 나왔다.

부자가 평생 부자고 자손만대에 부자일  같지마는 일생 동안에도 유지가 못하고 그냥 가난뱅이가 되기도 하고, 높은 벼슬을 하던 사람도 금방 없어져 버린다.

 

 부귀공명이니 그런 것이 믿을 것이 못되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없어서도  되겠지마는 그걸 믿을 것도  된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런 것은 형편 따라서 하되 그게 집착함이 없고, 그런 것도 함부로 해서는 아니 되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너무 그런데 집착심을 가지는 것은 뜬구름을 믿는 거와 같고, 달팽이 뿔을 믿는 거와 같아서 마음에  상처만 남겨놓고 떠나버릴 그러헌 것들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높은 벼슬을 하거나,  권리를 누르거나,  재산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런 데에 집착함이 없이 정법을 믿고 정말 참선을 해야 한다 그거거든.

 

춘일쾌청춘수족(春日快晴春睡足)이여. 봄날이 쾌청하고 따뜻하니 앉으면 떠억 졸음이 오는 그런 계절이 돌아왔다.

와청산조백반성(臥聽山鳥百般聲)이다. 졸음이 오다 보면 떠억 눕고 싶고, 누우면은 온갖 산새들의 노래가 들려오기 마련이다.

 

뜨뜻하니 졸기 좋다고 해서 졸음에 빠지고, 산새 소리가 아름답다고 해서  노래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확철대오(廓徹大悟)한 그런 걸림이 없는 분상(分上)에는 졸음이 오면은 한숨 자고,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한숨 자고, 산새가 노래 부르면 노래 부르는 속에 온갖 것이  갖추어져 있겠지만,

 

우리 공안을 들고 정진하는 분상에는 졸음이 오는 가운데에도 화두를 들고, 산새의 노래 소리가 들리고 시냇물 흘러가는 소리가 들려도  속에서도 화두를 떠억 간절히 용맹스럽게 거각(擧却)을  나가야 새소리 듣다가  터지기도 하고, 시냇물 흘러가는 소리를 듣다가도  터질 수도 있다 그거거든.

 

 

오늘은 백일기도 회향(廻向)일입니다. 그동안에 구순 안거(九旬安居)에 백일기도를 병행해서  왔습니다.

새해에는 모두 여러분의 가정에  어떠한 장애, 어떠한 어려운 일이라도  봄눈 녹듯이  녹아서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시기를 간절히 기도를  왔습니다.

 

여러분들도 가정에서  그러한 마음으로 염불을 하시고 경도 읽고  참선 공부를 하신 분은 열심히 생활 속에서 ‘이뭣고?’를 하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뭣고?’를 열심히 하는 것이 어떠한 기도보다도 가장 소원을 성취할  있는 확률이 많은 그러한 기도법인 것입니다.

 

앞으로 새해를 이렇게 맞이해서 더욱 신심(信心)을 돈발(頓發)해서 열심히 정진을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그런데 세상사라는 것은 마냥 좋은 일만 있으라는 법이 없습니다.

가정적으로도 그렇고  직업상으로도 그렇고, 사업, 일체가  흥망성쇠라고 하는 것이 있어서 흥망성쇠의  파장이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고,  파장과 작은 파장이 엇갈려서 이렇게 섞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이 없다』고 그런 속담도 있습니다마는, 식구가 많다 보면 마냥 사고가 일어나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럴  일수록  발심을 해서 신심으로 그러한 문제들을 헤쳐 나가야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수록에 떠억 정신을 차리고 인과법을 믿고 화두를 철저하게 들어나가면 자연히 지혜가 떠올라서 사리를 바르게 판단하게 되고 바른 해결책이 열릴 것입니다.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면은 반드시 25신장(神將)이 항상 옹호를 한다’ 그랬습니다. 선신(善神)이 옹호하는 곳에 무슨 걱정이, 어려울 것이 있겠습니까?

 

지나친 탐욕을 내고, 자기 마음대로  되면은 지나친 진심(瞋心)을 냄으로 해서 선신은 달아나고 악신(惡神)이 모여들기 때문에 재앙은 점점  커지기 마련이고 해결책도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어디서 무엇을 하시더라도  마음대로 안될 ,  마음에 거슬릴 , 떠억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들으시라 그말이여.

그러다보면 마음이 가라앉으니까 흥분도 가라앉고, 진심도 가라앉고, 미운 마음도 가라앉게 돼. 그러다보면 악신이 붙으려다가 달아나고 선신이 떠억 나를 옹호를 하게 된다 그말이여. 그러니 어찌 일이 풀리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 그거거든.

 

해제와 백일기도 회향을 맞이해서, 형제자매 여러 도반들을 위해서 산승이 조실 스님의 법문 끝에 간곡히  마디 말씀을 드렸습니다.

새해로 소원성취하시고 만복(萬福)이 운흥(雲興)하고  가지,  가지 모든 장애가 여러분을 향상시킬  있는 좋은 밑거름이 되어 주고 채찍이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45분24초~57분25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게송) ‘춘종동해남비석~’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 ‘行脚僧 게송 참고.

*걸망 ; 물건을 담아서 등에   있도록 만든 자루 모양의  주머니.

*청풍납자(清風衲子 맑을 /바람 /옷을 꿰맴 /자식 ) ; 수행을 하여 맑은 기운을 지닌 스님을 청풍(清風), 맑은 바람에 비유하여 이르는 .

[참고] 운수납자(雲水衲子) ; 여러 곳으로 스승을 찾아 () 묻거나 수행을 하러 여러 곳으로 다니는 스님을 머무름이 없는 구름() () 비유하여 이르는 .

*개중(個中) ; 여럿이 있는 가운데.

*몽산법어(蒙山法語) ; ()나라 몽산스님의 법어로 참선 수행의 구체적인 길을 자상하게 제시하였다.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 몽산법어 있다

*선가귀감(禪家龜鑑) ; 조선 서산대사(휴정, 1520-1604) 경전과 어록 중에서 수행의 지침이 선종(禪宗) 중심으로가장 요긴하고도 절실한 부분을 가려 뽑은 불교 개론서.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 선가귀감 있다.

*본지고향(本地故鄉) ; 본지풍광(本地風光). 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부처의 성품, 부처의 경지. 본래면목(本來面目).

*장좌불와(長坐不臥) ; 밤이 되어도 눕지 않고  앉아서 수행 정진하는 .

*일종(一種) ; 일종식(一種食). 하루에  끼만 먹는 .

*오후불식(午後不食) ; 정오(正午),  열두  지나면 먹지 않는 .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의단(疑團 의심할 ,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누데기 ; ‘누더기(누덕누덕 기운  )’ 사투리.

*시은(施恩) ; ①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은혜. ②은혜를 베풂.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시한부(時限附 때 시/한정 한/붙을·붙일 부) ; 어떤 일에 대해 일정한 시간의 한계를 .

*무방하다(無妨-- 없을 무, 방해할·거리낌 방) ; (사람이 어찌하여도)거리낄 것이 없이 괜찮다.

*사시공양(巳時供養) ; 절에서 평소 하루에  한번 오전  사시(巳時 오전 9~11) 하는 공양(식사) 말한다.

*허기(虛飢  /주릴·굶주림 ) ; 굶어서 몹시 배고픈 느낌.

*약석(藥夕)절에서 저녁 식사를 이르는 . 원래 계율에는 오후의 식사를 금하였으나 병자(病者) 어리고 늙은 사람을 위해 저녁 식사는 '치료한다' 뜻에서 이와 같이 일컬음.

*퇴타(退墮 물러날 /떨어질·게으를 )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2)

 

*(게송) ‘부운부귀비유의~’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 ‘朴上舍草堂 게송 참고.

*공명(功名 공로 /이름 ) ; 공을 세워 이름이 세상에 떨쳐짐. 또는  이름.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분상(分上 분수 ,  )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참고] () : 분수(分數-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 : 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 뜻을 더하는 접미사. 추상적인 공간에서의  위치 뜻을 더하는 접미사.

() 정진하는 분상에는 ---> 정진하는 수행자에 알맞은 입장에 따르자면.

*회향(廻向) ; 회전취향(回轉趣向) . ①방향을 바꾸어 향하다. ②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 ③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구순 안거(九旬安居)수행(修行)하는 스님들이  곳에 모여 외출을 금지하고 도를 닦는 일을 안거(安居) 하는데하안거(夏安居4 15일부터 7 15일까지동안거(冬安居, 10 15일부터 이듬해 1 15까지)  안거 기간이90 이므로 구순 안거(九旬安居) 한다.

*이뭣고(是甚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7822) [ ‘참선법 A’ 에서]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돈발(頓發 갑자기 /일어날·나타날·밝힐 )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 直頓의 , 곧바로.

*신장(神將) ; 불법(佛法) 보호하는 신장. 또는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운흥(雲興) ; 구름이  듯이 ()하게 일어남.

 

Posted by 닥공닥정
대중 생활2014. 6. 29. 08:33

<핸드폰에서, 아래 법문은 위 유튜브에서 35분 58초부터 시작됩니다>

 

 

 

§(269) (게송)종조난설인장단~ / 남의 얘기, 일체 잡담을 하지 말라 / 입방선(入放禪)을 형식적으로 하지 말라 / 이러한 공부하기 좋은 여건이 다시 어느 곳에 있겠는가? / (게송)일파유조수부득~.


이러한 좋은 여건 하에서 공부의 힘을 얻지 못한다면 다시 어느 곳에서 어느 세상에 우리가 생사심(生死心)을 돌이켜서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성취할 수가 있겠습니까?

 

**송담스님(No.269)-85년(을축년) 하안거결제 법회(85.06.03)(46분)에서.(용269)

 

약 11분.

 

종조난설인장단(終朝亂說人長短)타가  경야혼침요수면(竟夜昏沈樂睡眠)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여차출가도수시(如此出家徒受施)인댄  필어삼계출두난(必於三界出頭難)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종조난설인장단(終朝亂說人長短)타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남이 잘하고 못한 것만을 어지러이 말을 하다가—누가 잘하니 못하니, 누가 옳고 그르니, 맨 남의 얘기.

선방에 와 가지고 방부를 들이고 참선을 하면서 맨 집안 얘기 아니면, 남의 집 며느리가 어떻고, 자식이 어떻고, 시어머니가 어떻고, 맨 남의 잘하고 못한 이야기만 죽비(竹篦) 쳐서 방선(放禪)하자마자 시작을 해.


하도 말을 해 쌓어 지대방을 저 별채에다 해서 따로 딱! 띄어 놓고, 인자 큰방에서는 일절 잡담을 하지 말라고 이렇게 해놨는데, 아마 큰방에서는 일체 잡담을 안 하시리라고 생각을 하는데, 워낙 참지 못한 분은 큰방에서도 간혹 혹 하시지 않는가? 내가 항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내가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또 저 별채에서 혹 연세가 많으신 분이나, 인자 그런 분을 위해서 잠시 거기서 좀 허리도 좀 펴고 그러라고 별채를 한 것이지, 거기 가서 맘대로 잡담을 하시라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저 별채에다 뚝 큰방에서 떨어지게 해놨으니까 실컷 좀 얘기 좀 해보자' 그리고 아주 마음먹고 아주 잡담을 시작을...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별채도 널찍허니 해놨으니 아! 거기서도 얼마든지 참선 하실 수도 있고 또 허리가 아프면 허리도 쭈욱 펴고 눕되 누워서도 ‘이뭣고?’ 이렇게 하셔야지, 거기서 얘기를 하면—아! 허리 좀 펴고 좀 그럴라고 가신 분들도 있는데,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도 잡담을 안 해야 하는데, 이 별채라고 해서 잡담을 하시면 언제 정진을 할 것이냐 그말이여.

지금 뭐 별채라고 해서 생사 무상살귀(無常殺鬼)가 거기는 없는 것도 아니고, 거기도 역시 사면(四面)에서 타 오는 불구덩이 함정이 아닌 것이 아닌 것입니다.


경야혼침요수면(竟夜昏沈樂睡眠)이여. 밤이 되면은 아주 세상 모르고 잠을 자는데.낮에 눈 떠 갖고 있을 때는 시비와 잡담으로 세월을 보내고, 밤이 되면은 온통 내 세상이다 해 가지고 다리를 뻗고 코를 골면서 이 꿈속에서는 온갖 잡스러운 꿈을 꾸면서 그렇게 하다가, 낮에 되면은 또 잡담으로 세월을 보내고, 입방선(入放禪)은 형식적으로 하고.
여차출가도수시(如此出家徒受施)여, 이렇게 출가해 가지고 도를 닦는다고 해봤자,필어삼계출두난(必於三界出頭難)이여. 욕계 · 색계 · 무색계, 이 삼계(三界)에서 뛰어나기는 영판 어려울 것이다, 이것입니다.


여기에 모이신 스님네나 금년에 모다 방부를 들이고 또 이 결제에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여러분들 가운데에는 결코 그러한 분은 한 분도 없으시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공연히 내가 노바심(老婆心)으로 이러한 말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그래도 우리가 결제를 맞이해서 도반(道伴)들에게 해 드릴 말씀은 우리가 서로서로 채찍질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이번 결제는 정말 알차고 짬지게 정진을 해 보자고 이렇게 말씀을 드린 것은 도반으로서에 참 좋은 것이지 이것을 나쁘게 들으실 분은 안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다 주마가편(走馬加鞭)으로, 달리는 말에는 채찍질을 할 필요가 없지만 더 잘 달리라고 채찍을 흔드는 것입니다.


앞으로 오뉴월 또 삼복더위가 돌아올 것입니다마는 아직은 그렇게 덥지를 아니합니다.어쨌든지 시간을 아끼고 거의 묵언을 하시면서, 묵언(默言)은 벙어리처럼 말을 일체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말은 간단히 한마디로 끝내버리고 그리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라 이것입니다.
그리고서 항시 앉았을 때나, 섰을 때나, 포행(布行)을 할 때나, 또는 화장실에 갈 때나, 세수를 하거나 공양을 하거나, 무엇을 빨래를 하거나, 도량 소지(掃地)를 하거나, 일체처 일체시에서 꼭 입선 시간에 큰방에 앉아서 정진하는 바로 그 마음으로 묵묵히 그러면서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화두를 들고서 한 시간 한 시간을 지내고 하루하루를 그렇게 지내신다면 반드시 이번 한철 동안에 공부에 힘을 얻으시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러한 좋은 여건하에서 공부에 힘을 얻지 못한다면 다시 어느 곳에서 어느 세상에 우리가 생사심(生死心)을 돌이켜서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성취할 수가 있겠습니까?


부디 결제 때 이렇게 간곡히 말씀을 드리고, 여러분의 면면을 내가 살펴보니 전부가 다 숙연한 마음으로, 『정말 이번 한철은 알차게 지내야겠다. 정말 내가 쓸데없는 시비와 잡담으로 단 일분일초라도 지내지 않겠다』고 하는 그러한 각오가 역력히 눈에 얼굴에 나타나 보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석 달 동안 계속해서 흐트러지지 않도록 그렇게 정진(精進)을 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드리면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일파유조(一把柳條)를 수부득(收不得)하야  화풍탑재옥난간(和風搭在玉欄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한아름 버들가지를 휘어잡지 못해서, 바람과 함께 옥난간에 매어 두노라.(35분49초~46분32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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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종조난설인장단~’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공양할 때 공양순서를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지대방 ; 절의 큰방 머리에 있는 작은 방. 이부자리, 옷 등의 물건을 넣어 두는 곳이며, 스님들이 잠깐 휴식을 하기도 하는 곳이다.

*큰방 ; 스님들의 본업인 수행을 행하는 장소. 예불과 공양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참선만을 행하는 선원(禪院)에서 대중이 한 자리에 모여 참선수행하는 방(房)을 '큰방'이라 한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삼계(三界) : [범] trayo-dhā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세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āma-dhā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②색계(色界 rūpa-dhā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색(色)은 곧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ārūpya-dhātu) : 맨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나(我)’를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이것을 흔히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면서 유형(有形)한 계층으로만 말하지마는, 실상은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區分)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 세계의 어떤 곳에도 탐(貪) • 진(瞋) • 치(痴) 등 삼독심(三毒心)의 경중(輕重)에 따라 삼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노바심(老婆心) ; 노파(老婆)가 자식·손자를 애지중지하듯이, 스승이 수행자에게 나타내는 자비심. 친절심(親切心). 파심(婆心)이라고도 함.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짬지다 ; 일하는 솜씨가 여물고 깐깐하다.

*포행(布行) ;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일.

*소지(掃地) ; ①마당(땅)을 쓸다. ②청소.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생사심(生死心) ;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 번뇌(煩惱), 망상(妄想)을 말함.

*무상대도(無上大道) ; 최고의 큰 깨달음.

*정진(精進) : [범]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게송) 일파유조수부득(一把柳條收不得) 화풍탑재옥난간(和風塔在玉欄干) ; 『가태보등록(嘉泰普燈錄)』 제23권 황정견(黃庭堅)거사 게송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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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하심 팔풍 경계대처2014. 6. 19. 11:21

§(246) 도고마성(道高魔盛) / 참선하는 사람은 그 '한 생각'을 무섭게 단속을 해야 / 자가철주(自家鐵柱) / (게송) 출가수도배~ / 도(道) 닦으면 다 출가(出家) 수도인.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사람은 그 '한 생각'을 무섭게 단속을 해야 해.
모든 순경계(順境界), 모든 역경계(逆境界), 일체 팔풍(八風)계를 당해서 그 '한 생각' 미끄러지는 것을 무섭게 단속을 해야만 그런 마군이의 권속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몸이야 속가에 있건 산중에 가 있건, 도심(道心)을 내서 도를 닦아 가면 모두가 다 출가 수도인인데, 출가 수도인이 가장 주의할 것은 재물(財物)과 색(色)이다.


마음은 고삐 없는 소와 같애서 잠깐! 방심을 해버리면 이놈이 밭으로도 들어가고, 논으로도 들어가고, 곡식 밭에도 가고, 채소 밭에도 들어가서, 다 그저 짓밟고 쥐어 뜯어먹고 해서 망가트려 버리는 거여.
우리의 마음, 고삐가 없는 소와 같아서 항시 단속을 하지 아니하면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천리만리를 왔다갔다 하고, 갈디 못 갈디, 생각할 거 안 할 거, 볼 거 안 볼 거, 참 그것을 표현을 헐 수가 없을 정도여.


**송담스님(No.246) - 84년(갑자년) 추계산철결제 법문(84.08.27)에서. (용246)


약 22분.

 


일심으로, 무엇이고 일심(一心)으로 허면 안정이 되고, 안정이 되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거기에는 온갖 마장(魔障)이 거기에 붙게 되는 것입니다.

능엄경(楞嚴經)에 보면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
색음(色陰)이 스러져서 없어지면, 색(色)이라 하는 것은 육체(肉體)를 말하는 것인데,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

그 육체(肉體)의 모든 기관이 안정이 되고, 안정이 되면 조용해지고, 조용허면 맑아지는 것인데, 그 색음이 맑아지면은 여러 가지 신기한 경계가 나타나는 수가 있습니다.

또 수(受)·상(想)·행(行)·식(識). 수상행식(受想行識)은 정신 작용인데 그 정신 작용이 안정이 되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거기에 여러 가지 종류의 신기하고도 묘한 경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맑아지면은 그러헌 마장(魔障)이 일어나냐’허면, 이 우주법계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신기한 능력을 갖춘 마귀(魔鬼)가 있습니다.
그런 마귀는 다 전생에 도를 닦다가 공부가 잘못되어 가지고, 공부는 지극정성으로 해서 거의 깨달음에 가까울 지경에 이르도록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도를 닦다가,
'한 생각' 잘못한 탓으로 삿된 경계에 떨어져서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한 그러한 중생, 그런 것이 귀신의 몸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온갖 신통이, 오신통(五神通)이 다 나 가지고, 참 그러한 귀신이 많이 있는데,
누구라도 도를 닦은 사람이 있으면 그 귀신이 시기가 나 가지고 그것을 온갖 수단과 방법을 써 가지고 방해를 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누가 도만 열심히 닦을랴고만 허믄, 그것을 시기·질투가 나 가지고 그걸 방해를 치게 되는 것입니다. 방해를 치기 위해서 항시 주변을 맴돌고 있어.
육근문두(六根門頭)에 그것을 엿보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틈만 있으면 그 틈을 타서 침범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도고마성(道高魔盛)’이다. ‘도가 높으면 높아질수록 마군(魔軍)이는 무장 더 성해진다’하는 말이 있는 것은 바로 그러헌 까닭인 것입니다.

그래서 도 닦은 사람은 '한 생각' 단속하기를 무섭게 단속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계중자일념(眞淨界中纔一念)이, 진정계(眞淨界) 가운데에 겨우 이 '한 생각'이,
염부조이팔천세(閻浮早已八千歲)다. 염부(閻浮)에 있어서는 벌써 팔천 세(八千歲)가 된다 그말이여.

정진을 해서 오음(五陰)이 맑아지면 맑아질수록 눈 한번 깜박하는 그 찰나 간의 '한 생각'이 이런 무서운 마귀를 자기 마음속에 불러들이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생각 삐끗한 그 '한 생각' 단속을, 마치 화약고를 지키는 파수병(把守兵)이 불조심 허듯이,
잠깐 실수로 담뱃불 하나 실수하면 그 어마어마한 화약이 터져서 그 많은 화약을 다 손실하고 거기에 있는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고 동시에 자기의 목숨까지 잃게 되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사람은 그 '한 생각'을 무섭게 단속을 해야 해.

성이 날 때, 슬플 때, 억울할 때, 근심 걱정이 있을 때, 기쁠 때, 좋을 때, 모든 순경계(順境界), 모든 역경계(逆境界), 일체 팔풍(八風)계를 당해서 그 '한 생각' 미끄러지는 것을 무섭게 단속을 해야만 그런 마군이의 권속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숙세(宿世)에 이 정법(正法)에 인연이 있어서 우리가 이런 최상승법을 만나서 듣고 이것을 실천을 허게 된 것까지는 매우 다행한 일이나,

그 의지력이 견고허지 못해 가지고 반신반의(半信半疑)를 해서 조금 해 보다가 말다가, 조금 이 마음을 가다듬고 조금 헐라고 하면 무슨 일이 생기면 그것 또 와르르 무너져 버리고,
이렇게 허는 둥 마는 둥, 허다가 말다가, 이 핑계 저 핑계 이렇게 해 가면 도(道)의 마음은 점점 생소해지고, 세속적인 그런 생각은 날이 갈수록 얽히고설켜서 그럭저럭 안 헌 것도 아니요, 헌 것도 아니요,

이렇게 해 가면, 56억 7천만 년 뒤에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헐 때까지 공부를 해도 도를 이룰 기약은 막연헐 수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오늘 산철 결제일을 맞이해서 다시 한번 우리가 다짐을 허기 위해서 이러헌 법요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시간은 이렇게 말을 허고 있는 이 동안에도 계속 쉬지 않고 흘러가고 있습니다. 한 생각 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고 1초 1초가 이렇게 지내가고 있는 동안에 우리의 수명은 죽음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명심헌다면, 우리는 한 생각 단속하는 일 이외의 다른 일에는 단 1분 1초도 시간을 허비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인은 ‘죽을 사(死)’자를 이마에다 써 붙이고 공부를 허기도 하고,
송곳을 턱 밑에다가 받쳐 놓고 공부를 허기도 하고,
잠을 잘 때에는 둥글둥글하게 목침을 깎아 가지고 그래 가지고 비고 자다가, 삐끗하면 퉁! 머리가 방바닥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깜짝 놀래서 일어나서 정진을 하고,
또 말을 허다 보면 한마디가 두 마디 되고, 두 마디가 열 마디 되아서 그렇게 말허다 보면 생각을 놓치고 화두를 놓칠까, 그래서 말을 아니 허면서 정진을 하고,
또 밥을 많이 먹다 보면은 또 식곤증(食困症)이 나서 졸음이 올까봐, 그래 밥을 한 끼씩만 먹고 허기도 하고.
이렇게 모든 방법을 다 써 가면서 애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 스님네께 ‘밥을 한 끼만 먹어라’, ‘말을 허지 말고 묵언(默言)을 하라’, 또 ‘송곳을 깎아서 턱 밑에다 괴아라’ 이런 것을 내가 권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만한 의지력과 각오를 가지고 정진을 해 나간다면,
말을 일부러 묵언을 허지 아니해도 저절로 하루에 한마디 허거나 말거나, 이틀에 한마디 허거나 말거나 하면, 일부러 묵언을 안 해도 저절로 묵언이 되아져야 그 묵언이 진짜 묵언이 될 것이고,

하루에 세 때를 먹더라도 한 알갱이도 씹은 바가 없다면 하루 세 그릇 먹는다고 해서 무엇이 방해로울 것이 있는가.
다만 과식만 허지 않도록 잘 저작(咀嚼)을 해서 소화만 잘 시킨다면, 세 그릇 먹어도 한 알갱이도 씹지 않는 도리가 그 속에 있으니, 무엇을 걱정헐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9시에 자고 3시에 일어나면 6시간인데, 그 동안에 한 시간쯤 더 안 자고 5시간만 자고 정진을 헐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6시간을 자되 잘 때에 든 화두가 꿈 속에서도 화두가 들린다면, 6시간을 잔다고 해서 무엇이 또 방해로울 것이 있습니까.

산철 동안 춥지도 덥지도 않고 그러니 그 기간을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서 다른 사람의 타율적인 그런 견제로 인해서 규칙을 지킬려고 헐 것이 아니라,
일심으로 정진을 허다 보니 저절로 모든 것이 법도에 맞고 규칙에 맞아서 한 달이 하루와 같이, 두 달이 하루와 같이 이렇게 정진을 해 가신다면 반드시 이 산철 동안에 공안을 타파해서 본래면목을 깨닫게 되실 것이 의심이 없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출가수도배(出家修道輩)여  재색최선금(財色最先禁)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군거수구신(群居須口愼)하고  독거요방심(獨居要防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출가수도(出家修道)한 선객(禪客)들이여, 재색(財色)이 최선금(最先禁)이니라.
재물과 색이 가장 먼저 금(禁)할 것이니라.

출가 수도인(出家修道人)이라 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 집을 나와서 머리를 깎고 먹물 옷을 입은 스님네를 말하는 바지마는, 출가(出家)라고 허는 뜻이 넓게 본다면, 넓은 의미에서 출가를 해석을 헌다면,
몸뚱이에 기준을 둘 것이 아니라, 마음에다 기준을 두어야 더 옳다고 생각을 허는 것입니다.

머리를 깎고 안 깎고, 먹물 옷을 입고 안 입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에 도심을 발(發)하면, 도 닦을 마음을 내면 머리가 있고 속복을 입어도 그게 출가인(出家人)이고,
설사 머리를 깎고 먹물 옷을 입었다 해도 도심(道心)이 없이 속심(俗心)이 가득 차 있다면 그건 출가인이라고 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도 출가하고 마음도 출가한 출가인도 있고, 몸도 마음도 속가에 있는 사람도 있고, 몸은 속가에 있으면서 마음은 출가한 사람도 있고, 이 네 가지로 출가·재가를 이렇게 설명을 헐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몸이야 속가에 있건 산중에 가 있건, 도심(道心)을 내서 도를 닦아 가면 모두가 다 출가 수도인인데, 출가 수도인이 가장 주의할 것은 재물(財物)과 색(色)이다.

재물(財物)은 모든 재산이나, 명예나, 권리나,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이나 이런 것들이 모두 재산에 해당이 되고, 색(色)이라 하는 것은 비단 남녀 간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일체 색상(色相)을 통해서 마음에 욕심을 내면 그것이 다 색에 해당이 되는 것이다.

도 닦는데 그것을 금(禁)해야 한다 그랬는데, 그것을 멀리허고 금(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량겁(無量劫)을 통해서 익히고 익힌 바라, 유심·무심을 통해서 항시 그것이 본의 아니게 우리의 눈에도 그것이 걸리고, 귀에도 걸리고, 코에도 걸리고, 입에도 걸리고, 몸에도 걸리고, 생각에도 그것이 걸려든다 그말이여.
걸려드는 그 찰나에 바로 그 생각을 버릴랴고 허지 말고, 그 생각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을 헌다면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을 실천하는 사람의 수행 방법이라 할 것입니다.

군거수구신(群居須口愼)이요, 여럿이 살 때에는 입을 조심을 해라.

혼자는 말을 못허는 것이고, 두 사람 세 사람 이상 열 사람, 스무 사람, 그게 인자 군거(群居)인데,
여러 사람이 모이면은 자연히 입이 벌어져서 말이 나오는데, 입을 벌려서 말을 허다 보면은 좋은 말보다도 쓸데없는 말을 많이 허고, 쓸데없는 말을 허면은 시비가 일어나서 내 속상하고 남의 속상하고 화두는 달아나 버리고, 그래 가지고 싸움이 일어나기 마련이니 그래서 입을 조심을 해라.

그 다음에는 혼자 있을 때에는 방심(放心)을 조심을 해라[獨居要防心]. 방심(放心)은 마음을 놓아 버리는 거여. 마음을 단속하는 것을 조심을 해라.

마음은 고삐 없는 소와 같애서 잠깐! 방심을 해버리면 이놈이 밭으로도 들어가고, 논으로도 들어가고, 곡식 밭에도 가고, 채소 밭에도 들어가서, 다 그저 짓밟고 쥐어 뜯어먹고 해서 망가트려 버리는 거여.
우리의 마음, 고삐가 없는 소와 같아서 항시 단속을 하지 아니하면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천리만리를 왔다갔다 하고, 갈디 못 갈디, 생각할 거 안 할 거, 볼 거 안 볼 거, 참 그것을 표현을 헐 수가 없을 정도여.

그러다 보면은 1시간 2시간이 속절없이 지내가고 하루 이틀이 속절없이 지내가니 혼자 있을 때에는,
이 ‘혼자’라 하는 것은 육체적으로 자기 혼자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모르는, 자기 속에서 일어나는 그것을 여기서 ‘홀로 독(獨)’자 ‘혼자’라, 이렇게 보면은 이 참선하는 사람은 그것이 더 해당을 하는 것입니다.

이미 그 생각이 얼굴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면은 이것이 인자 모든 사람이 보게 되니까 모든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고,
아직 그 생각이 말이나 얼굴이나 행동으로 표현이 되기 이전에 자기 혼자만 알 수 있는, 그 겨우 가는 생각이 탁! 일어날 그 순간, 이것을 ‘혼자 있는 때’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 혼자 있는 바로 그때를 탁! 돌이켜서 그 생각이 얼굴로 표현이 되기 전에, 말로 나타나기 전에, 행동으로 나타나기 이전에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바로 그 때의 생각을 잘 단속을 해 버려.
그때 탁! 돌이켜서 화두를 들어버려야 할 것이다.

이렇게 단속을 하고 정진을 해 가시기를 거듭 당부를 하고 스스로 다짐허면서 반산림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43분12초~64분25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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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말. [참고]헤살;남의 일이 잘 안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능엄경(楞嚴經) ; 본이름은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릉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10권. 당(唐)의 반자밀제(般刺蜜帝) 번역.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세존과 아난(阿難)의 문답으로 시작하여 깨달음의 본성과 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설하고 여래장(如來藏)이 무엇인가를 밝힘.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관음신앙이라 하고 능엄다라니(楞嚴陀羅尼)를 설한 다음, 보살의 수행 단계, 중생이 수행하는 과정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번뇌에 대해 그 원인과 종류를 밝힘.
*색음(色陰) ; 색온(色蘊)의 구역(舊譯). 오음(五陰)의 하나.
*색온(色蘊) ; 오온(五蘊)의 하나. '물질'이라는 집합. 색(色)은 스스로 생멸변화하고, 또 다른 것을 장애한다. 온(蘊)은 모여서 뭉친 것으로 화합하여 한덩어리가 된 것.
*마(魔) :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선가귀감 十九, p64에서)
*오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 다섯 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육근문두(六根門頭) ; 육근(六根-眼耳鼻舌身意)의 문 앞. 육근과의 경계.
*(게송)진정계중자일념(眞淨界中纔一念)  염부조이팔천세(閻浮早已八千歲) ; 중국 당나라 동안상찰(同安常察) 스님(872-961)이 마음의 현묘한 이치를 10가지 대목으로 말씀한 게송 [십현담(十玄談)]의 5번째 '연교(演敎)'의 끝 구절.
*진정계(眞淨界) ; 참되고 깨끗한 세계.
*염부(閻浮) ; 염부제(閻浮提). 남염부제(南閻浮提). 섬부주(贍部洲). 남섬부주(南贍部洲).
산스크리트어 jambu-dvīpa의 음사. 염부(閻浮), 섬부(贍部)는 jambu의 음역어이며, 제(提)와 주(洲)는 dvipa의 각각 음역어 및 의역어이다. jambu는 나무 이름.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수미산(須彌山)의 사방에 네 대륙(四洲)이 있는데, 염부라는 이름은 여기에 자란다는 점부(jambu)에 유래하며, 남방에 있기 때문에 남섬부주(南贍部洲)라고 한다.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라 하며, 여러 부처님이 나타나는 곳은 사주(四洲) 가운데 이곳뿐이라 함. 불전에서는 인간세계의 전체를 의미하는 말로서 사용되고 있다.
*오음(五陰) ; 오온(五蘊)의 구역(舊譯).
*오온(五蘊) : 온(蘊)은 무더기•모임•집합•더미를 뜻함.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의 요소의 무더기-물질적 요소인 색온(色蘊)과 정신요소인 4온(수·상·행·식)을 합쳐 부르는 말.
①색온(色蘊):몸이라는 무더기. 몸의 감각 무더기.
②수온(受蘊):괴로움이나 즐거움등, 느낌의 무더기.
③상온(想蘊):대상에 이름을 부여하고, 다양한 개념을 지어내는 생각•관념의 무더기.
④행온(行蘊):의도(意圖)하고 지향하는 의지•충동•의욕의 무더기.
⑤식온(識蘊):식별하고 판단하는 인식의 무더기.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파수병(把守兵) ; 주변을 경계하여 지키는 병사.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팔풍(八風) :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서 움직이게 하는 여덟 가지 현상을 말한다。
내 뜻에 맞고(利), 내 뜻에 어기는 것(衰), 나 안 보는 데서 나를 찬미하는 것(譽), 나 안 보는 데서 나를 비방하는 것(毀), 면전에서 찬미하는 것(稱), 면전에서 비방하는 것(譏),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것(苦),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것(樂) 등이다.
*반신반의(半信半疑) ; 한편으로는 믿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의심스러워함.
*미륵불(彌勒佛) ; Maitreya. 번역하여 자씨(慈氏).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출신으로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 천인(天人)을 위해 설법•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 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세존의 교화에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석가모니세존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으로 보처(補悽)의 미륵이라 한다.
*저작(咀嚼 씹을 저,씹을 작) ; 음식물을 입에 넣고 씹음.
*자가철주(自家鐵柱) ; 자기 스스로 정한 규칙을 쇠기둥(鐵柱)을 세워 놓은 것과 같이, 움직임없이 지켜나감을 이르는 말.
*(게송) ‘출가수도배~’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45 ‘명감(明鑑)·상주(尙珠)·언화(彥和)의 여러 문도(門徒)에게’ 게송 참고.
*도심(道心) ; 불도(佛道)를 행하고 믿는 마음.
*속심(俗心) ; 세상의 명예나 이익을 구하고자 하는 속된 마음.
*색상(色相) ; 육안(肉眼)으로 볼 수 있는 모든 물질의 형상.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Posted by 닥공닥정

 

 

§(346) ‘이뭣고?’ 화두 / ‘알 수 없는 의심’을 관(觀)해야 / 용화선원의 가풍(家風)-평상시가 용맹정진 / 여법하게 정진하는 것이 참다운 불사 / 장애 극복은 정진력으로.

사실 이 ‘이뭣고~?’ ‘이뭣고?’ 이 문제는 불법(佛法)이 생겨나기 이전에, 부처님이 탄생하시기 이전에,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하나의 커다란 숙제인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볼라고 동서고금의 모든 성현들이 철인들 철학자들이 이것을 알아볼라고 별별 방법을 썼습니다마는, 오직 이 문제를 깨달으신 분, 바로 깨달라서 바로 지도하신 분은 오직 우리의 위대한 스승이신 부처님이시고, 부처님의 그 법을 깨달은 방법이 바로 법(法)이고 그 법을 이어받아서 깨닫고 또 그 제자에게 전하고 하신 분들이 바로 역대조사 선지식들이 아니시겠습니까.


‘이뭣고?’하는 그 글자, ‘이뭣고?’한 글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했을 때 그 「알 수 없는 그 의심」 그것이 화두에 요긴한 것입니다.


화두가 정말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되는 것은 마지막 깨닫기 한 일주일 전부터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을 하기 위해서, 생사윤회를 아니할라면은, 그런 부처님의 5계(五戒)를 잘 지켜야만 한다.


**송담스님(No.346)(참선법 D) - 88.1.21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 (용346)

 

(1) 약 20분.

 

(2) 약 19분.


(1)------------------

<‘이뭣고?’ 화두>

 

이 화두, 그 천칠백 화두가 있는데 그 가운데에 최초의 화두요, 동시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가 ‘시삼마(是甚麼)’ 화두입니다.  ‘시삼마’는 우리말로는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그말이여.
‘이것이 무엇이냐?’

남악회양(南嶽懷讓) 선사가 육조 스님께 딱 찾아가 뵈옵고 절을 하니까, 『십마물(什麽物)이 임마래(恁麽來)냐?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이렇게 물으셨어.

그리고 하택신회(荷澤神會) 선사가 내나 그분도 육조 스님의 제자인데, 하택신회 선사 젊어서 육조 스님 앞에 딱 가서 절을 하니까, 『십마물(什麽物)이냐? 무슨 물건이냐?』하고 물으니까,
하택신회 선사는 『제불지본원(諸佛之本源)이요 신회지불성(神會之佛性)입니다.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요. 이 자기 자신 신회의 불성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어.

그런데 남악회양 선사가 떠억 와서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하고 육조 스님이 물으시니까,
남악회양 선사는 망지소조(罔知所措)여. 몸 둘 바를 몰라.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른다 그말이여.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하고 묻는데 꽉 맥혀 가지고 어찌할 바를 몰라. 몸 둘 바를 몰랐어.

그런데 육조 스님께서 『모든 부처님의 근원이요, 신회의 불성입니다』하고 대답한 하택신회에게는 『네가 나중에 공부를 해서 깨달은 바가 있다 하더라도 너는 지해종사(知解宗師) 밖에는 안 되겠다』
지해종사라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교리적으로 불교를 연구하는 그런 강사와 같은 그런 것 밖에는 너는 못 되겠다. 그렇게 말씀을 하시고,

남악회양 선사는 꽉 맥혀 가지고 그 뒤로 8년 간을 ‘무슨 물건이냐? 그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한 그 의심을 가지고 8년 동안을 그놈을 가지고 앉으나 서나 밥을 먹으나 일을 하나, 8년 동안을 그것을 참구를 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8년 만에사 확철대오를 했어.

그래 가지고 육조 스님한테 『설사일물(說似一物)이라도 즉부중(卽不中)입니다. 설사 ‘한 물건(一物)’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이렇게 그 깨달은 바를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아? 도리어 수증할 것이 있느냐?』 그러니까, 『수증(修證)은 즉불무(卽不無)어니와 오렴(汚染)은 즉부득(卽不得)입니다. 수증할 것이 없지는 않습니다마는 오렴은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해 가지고,
『여시여시(如是如是)다. 너도 또한 그렇고 나도 또한 그렇다.』 그렇게 쾌히 인가(印可)를 하신 것입니다.

지금 용화선원에서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 또 제가 말씀을 드린 모든 것이 완전히 그 남악회양 선사가 하던 그 참선법, 그것을 바로 조사선(祖師禪)이라 그러고, 그것을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 그러는데 그 활구참선법, 남악회양 선사처럼 그렇게 해 가도록 항상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물건이냐?’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거거든.

지금 여러분이 이렇게 집을 떠나서 여기에 오셔서 석 달 동안을 고생을 하면서 고행을 하면서 이렇게 와서 계신데, ‘무엇이냐?’ 그말이여.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이 몸뚱이가 여러분이라고 혹 생각하실 분이 계실런지 모르지마는, 이 몸뚱이는 흙 기운과 물 기운과 불 기운과 바람 기운이 뭉쳐서 이렇게 몸뚱이라고 하는 것을 임시 이렇게 이루고 있는 것뿐이지, 몸뚱이 이것이 여러분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시시각각으로 변해서 늙어가다가 나중에 결국은 이 몸뚱이에서 영혼이 떠나 버리면 그냥 10분 못 가서 내장이 버글버글버글 썩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바람은 바람 기운으로 나가 버리고, 불 기운은 불 기운대로 흩어져 버리고, 물 기운은 물로 돌아가 버리고, 흙 기운은 흙으로 돌아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는 그래서 송장 덩어리인 것입니다.

송장 덩어리를 운전을 하고 있는 놈, 운전하고 있는 그놈을 우리는 찾는 것이거든.

그것을 고인들은 다 ‘자성(自性)’이라 하기도 하고, ‘마음’이라 하기도 하고, 또는 ‘영혼’이라 하기도 하고 또는 ‘진여(眞如)’라 하기도 하고 또는 ‘불성(佛性)’이라 하기도 하고, ‘법계(法界)’라 하기도 하고, ‘여래(如來)’라 하기도 하고, 경전마다 그것에 대한 이름을 달리 말씀을 하셨고 세계 나라마다 그것에 대한 이름도 다 각각 다르지만,

그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 우리는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몸뚱이를 바꿔서 태어나면서 이렇게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데, 그 자체를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생사고해(生死苦海)를 이렇게 유전(流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놈을 우리는 깨달라야겠다. ‘그놈을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자’ 이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그놈이 무엇이여?’ 눈으로 볼라야 볼 수 없고, 손으로 잡을라야 잡을 수도 없고, 냄새를 맡을라야 무슨 냄새가 거기서 나며, 그놈을 ‘어떻게 생겼는가?’ 아무리 생각해 본들 알 수가 없다 그말이여.

사실 이 ‘이뭣고~?’ ‘이뭣고?’ 이 문제는 불법(佛法)이 생겨나기 이전에, 부처님이 탄생하시기 이전에,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하나의 커다란 숙제인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볼라고 동서고금의 모든 성현들이 철인들 철학자들이 이것을 알아볼라고 별별 방법을 썼습니다마는, 오직 이 문제를 깨달으신 분, 바로 깨달라서 바로 지도하신 분은 오직 우리의 위대한 스승이신 부처님이시고, 부처님의 그 법을 깨달은 방법이 바로 법(法)이고 그 법을 이어받아서 깨닫고 또 그 제자에게 전하고 하신 분들이 바로 역대조사 선지식들이 아니시겠습니까.

이것은 그 법을 모르고서는 도저히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지만 법을 모르고서는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불법이요, 정법(正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이다.

이것은 이론적으로는 아무리 따져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과 지식 가지고 따져서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화두를 참구(參究)해 가지고 그 화두를 타파(打破)함으로 해서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 아까 ‘이뭣고?’라고 하는 화두는 그밖에 ‘마삼근(麻三斤)’이라든지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든지 ‘판치생모(板齒生毛)’라든지 천칠백 개나 되지만, 그 많은 화두 가운데에 가장 근원적이고 최초의 화두가 바로 ‘이뭣고?’거든.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앉아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일을 할 때나 속이 상할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이뭣고?’


<단전호흡과 화두 의심>

 

그러면 언제 단전호흡을 하고 언제는 이 화두를 드느냐?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꾸었다가 내쉬면서, 그 내쉴 때 ‘이뭣고~?’ 이렇게 화두를 드는 것입니다.

숨이 다 나가면 또 스르르 하니 들어마셨다가 약 3초 동안 딱 정지했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뭣고?’를 길게 숨 다 나갈 때까지 ‘이뭣고?’를 길게 하시라 그말이여. ‘이뭣고~?’ 또 숨이 다 나가면 또 스르르 호흡을 들어마셔 가지고 또 약 3초 동안 딱 머꾸었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처음 하신 분은 숨을 내쉴 때마다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하시지만, 나중에 차츰차츰 익숙해지면 그리고 ‘이뭣고?’한 뒤에 알 수 없는 생각이 있으면은 「그 알 수 없는 그 의심(疑心)」, 의심이 있는 동안에는 다시 또 ‘이뭣고?’ ‘이뭣고?’ 안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알 수 없는 그 의심’이 흩어져 없어져 버리거나, 딴 생각이 나오거나 하면은 그때 또 다시 ‘이뭣고?’하고 한 번 챙기는 것입니다.

‘이뭣고?’하는 그 글자, ‘이뭣고?’한 글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했을 때 그 「알 수 없는 그 의심」 그것이 화두에 요긴한 것입니다.

의심은 없으면서 「이뭣고?」 「이뭣고?」 밤낮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듯이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를 잠시도 잊어버리지 말고 ‘이뭣고?’를 해라』 그러니까,
아하! 그렇게 생각하고는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이뭣고?’를 마치 ‘관세음보살’하듯이 그렇게 하면은 그것은 잘 모르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이것이 무엇이냐?’한 그 알 수 없는 그 간절(懇切)한 의심, 그 의심이라야 옳게 하는 것입니다. 의심이 있어야.
그래서 입으로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그 ‘대관절 이것이 무엇인고?’한 그 알 수 없는 의심 그것이 있으면 화두를 이미 들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무슨 물건'을 가지고 다니다 어디다 놔 버렸는데, ‘아! 그걸 어디다 놨나? 그것이 어디가 있는가? 아! 그거 참 어디가 있는가?’ 그렇게 찾은 것처럼,
‘이거 참!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놈이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그 의심이 그것이 화두인 것입니다.

그 의심이 항상 있어야 하고, 그 의심이 있으면 ‘이뭣고?’ ‘이뭣고?’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할 필요가 없어요. 「알 수 없는 그 의심」을 단전호흡을 하면서 그 의심을 관(觀)하는 것입니다.

앉아서도 그 의심, 서서도 그 의심, 이것은 자꾸 안 될수록에 더 열심히 하시면 나중에 언젠가는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현전(現前)하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나, 옷을 입을 때나, 똥을 눌 때나, 입선(入禪)을 할 시간이나 또는 방선할 때나 그 의심이 항상 있어야 하거든.

그래서 ‘방선(放禪)해도 잡담을 하지 말아라.’ 이런 소리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입선·방선이 전혀 상관이 없어요. 공부가 그렇게 되면은....

여러분이 댁에 계시면은 다 편안하고 잘 잡숫고 자유롭게 계실 텐데,
아! 여기 오셔서 백 명 이렇게 많은 수가 사시니 식사도 반찬도 변변치 못하고 모든 이 목욕탕이라든지 화장실이라든지 그런 시설도 다 불편하고, 아침에 좀 늦잠도 자고 싶은데 자도 못하고, 여러 가지로 자유롭게 살고 싶은 것도 모든 자유가 제한이 되고 그래서 생각해 보면은 참 이러한 고생이 없습니다.

이러한 고생을 무릅쓰고 여기 와서 계시는 것은 순전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기 오신 것인데, 어디에 음식이 맛이 있고 없는 것이 상관이 있으며, 입선·방선이 무슨 상관있습니까?

입선을 하나 방선을 하나, 반찬이 쓰거나 달거나, 밥이 질거나 되거나, 분 따라서 잘 수용을 하고 섭취를 하고 모든 것에 적응을 하면서 자나깨나 우리가 정신 쓸 곳, 신경 쓸 것은 오직 ‘이뭣고?’ 하나 뿐이거든.

‘이뭣고?’ 벌써 화두를 떠억 들고 있는 사람을 보면 눈매가 달라지고 모습이 엄숙하고 경건하면서 벌써 눈이 왔다갔다 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눈이 딱 못박혀 있는 것처럼 눈동자가 따악 박혀 있는 것입니다.
엄숙하고 경건해서 누가 감히 옆에 가서 장난도 칠 수가 없고, 말 붙이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이렇게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입선시간은 말할 것도 없이 하지마는 방선해서 설사 자리에서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시기도 하고 혹 밖에 나가서 포행(布行)을 하신다 해도 각자 자기 나름대로 속으로 ‘이뭣고?’가 따악 자리잡혀 있어야 하거든, 어디 가서 잡담을 하고 히히덕거리고 수군덕거리고 남의 흉보고 그럴 시간이 어디가 있느냐 이 말씀이여.

이 용화선원 조실 스님 열반(涅槃)하신 뒤로 벌써 13년이라고 하는 세월이 흘렀고 그 동안에 처음에 한 2~30명 하다가 4~50명 하다가 6~70명 하다가 이제는 백삼십이 명까지 방부를 드려서,
참 팔도에서 여러 발심(發心)한 보살님네들이 구름처럼 모여서 이렇게 정진을 하시니 이러한 기쁠 도리가 없고 이렇게 고맙고 감사할 도리가 없고, 또 선방의 규칙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좋아졌으나 아직도 멀었습니다.

물론 여러분 가운데는 참 모범이 될 만한 훌륭한 분도 많이 계십니다마는 아직 오신지 얼마 안 되신 분, 아직도 공부하는 요령을 확실히 터득을 못 하신 분도 계시고, 또 오시기는 오셨지만 아직 불법이 무엇인지, 참선이 무엇인지, 선방이 무엇인지, 좋다고 하니까 오시기는 오셨으나 막상 확실히 모르시기 때문에 좀 그런 분이 계실 줄 압니다마는,

여러분 가운데 발심을 해서 공부하신 분이 계시면 그분의 거룩한 모습을 보고 모두가 다 그 본(本)을 봐 가지고 입선·방선이 상관없이, 입승(立繩) 스님이나 누가 ‘잡담하지 말아라. 떠들지 말아라. 시끄럽게 하지 말아라’ 이러한 말씀 듣기 이전에, 각자 방선 시간에도 주욱 앉아서 정진하시고 또 졸리면 나가서 포행하다가 들어오셔서 하시고 해서,

입선·방선이 상관이 없게 이 큰방을 언제나 묵언(默言) 구역으로 해 놓고, 부득이 해서 할 요긴한 말씀이 있으면 밖에 나가서 간단하게 끝마치고 들어와서 또 정진을 하셔야죠.
이 큰방에 둘씩·셋씩·넷씩·다섯씩 구석구석이 모여 가지고 수군덕수군덕 해 쌌고 그래 싸면 공부를 좀 할려고 한 분까지 공부를 못 하시게 됩니다.(55분5초)

 

 



(2)------------------

<용화선원의 가풍(家風)>

오늘부터서 지금 섣달 초하루부터서 8일날 까지는 용맹정진(勇猛精進) 기간입니다.
전국에 선방이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고 온전히 만 일주일 간을 갖다가, 공양하고 변소에 갈 시간만 내 놓고는 전부가 큰방에 앉아서 다 법복을 수하고 그렇게 용맹정진하는 시간입니다.

조금만 졸아도 죽비를 갖다가 탁탁 쳐서 경책(警策)을 주면서 그렇게 합니다마는, 이 용화선원은 왜 그렇게 용맹정진을 아니하냐 하면은 평상시가 바로 용맹정진이 되도록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다.
비록 잠은 여섯 시간을 자지만 그 밖의 시간은 완전히 용맹정진으로 석 달 동안을 그렇게 하자는 것이 조실 스님의 지도 방법이십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께서 열반하신 뒤로도 그렇게 주욱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데 선방은 용맹정진도 하고 잠도 조금씩만 자고, 참선 입선 시간을 (한번에) 3시간씩 이렇게 하기도 하고 그러는데 이 용화선원이 선방이 좋다고 와 보니 맨 잠만 자고 입선 시간도 겨우 8시간 밖에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용화선원의 가풍(家風)을 잘 이해를 못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가풍을 따르지를 못하고 실천을 안 해서 그렇지, 가풍이 무른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 도량(道場)에 들어와서 무슨 잡담을 할 시간이 있겠습니까? 그 전에 강월 스님이 입승을 할 때에 지대방이고 어디고 일체 잡담을 못하게 하고, 심지어 화장실에 가서도 말을 못하게 하고, 누구하고도 둘이 마주서서 말을 주거니 받거니 못하게 하고, 몇철 간을 그렇게 한번 해 봤습니다.
그러니까 정진할려고 애쓴 보살님네들은 참 좋다고 그러고 지금도 그렇게 했으면 좋다고 원하시는 보살님들도 상당수가 계십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유치원 학생이 아닙니다. 국민학교 학생도 아니고 중학교 학생, 고등학교 학생도 아니고 대학생도 아니고 대학을 졸업한 대학원 학생들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대학원 학생한테다가 유치원 학생 다루듯이 해서 되겠느냐 그말이여.
그것은 여러분에 대한 대접도 아니고 도리가 아니기 때문에 특수한 일 아니고선 기본법 외에는 완전히 여러분에게 자유를 드려 가지고 자발적으로 여러분들이 조실 스님의 가풍에 적응하고 순종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오셔서 나시면 잘 하신 분은 당신 좋고 여러분에게 모범이 되어서 좋고 또 용화선원의 가풍을 순종을 함으로써 용화선원을 빛내는 일이 되는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불법을 빛나게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큰 절을 짓고 돈을 많이 내서 그것이 불사(佛事)가 아니라,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이 도량에 터억 들어서서 여법(如法)하게 참되게 정진하는 것, 그것이 바로 가장 참다운 불사를 이룩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거기에 불법이 일어나는 것이지 큰 절을 몇 억씩 들여서 절만 크게 진다고 해서 불법이 흥왕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물론 그런 불사도 필요하지요. 필요하지만 그보다도 더 근본적으로 중요한 불사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진실한 불자(佛子)로서 수행을 알뜰히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견성(見性)을 하게 되고 견성을 해야 부처님이 탄생을 하시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부터 아주 그 동안에 잘 하시는 분은 계속해서 잘 하실 것이고, 그 동안에 혹 그렇게 철저히 잘 못 하신 분은 오늘부터서 아주 완전히 새로 태어난 기분으로 여법하게 해 주실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단전호흡, 화두 의심>

 

아까 단전호흡을 하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꽉 맥힌 분, 그분은 호흡을 들어마실 때 배를 볼록이 하지 말고 배를 홀쪽하게 하고 또 내쉴 때 배를 볼록하게 하고 해서 반대로 이렇게 하시라는 것과,
숨을 들어마셔서 이리해서 차츰차츰 해서 저 배꼽 밑에까지 쪄 넣을라고 그러한 호흡법을 하시지 말고, 그냥 코로 스르르 하니 숨은 들어마시되 배꼽 밑의 단전, 아랫배만 약간 볼록...

 

볼록하게 맨들으라니깐 저 개구리 배에다가 바람 넣은 것처럼, 아랫배가 그냥 포대화상(布袋和尙)처럼 맨들라고 애를 쓰고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조금 약 2, 3센치 조금만 볼록하게 자기 느낌상으로만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고 내쉴 때도 너무 뱃가죽이 등어리에 가서 따악 붙도록 그렇게 억지로 헐라고 하시지 마세요. 약간 홀쪽하게 하는 듯만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면 그렇게 답답한 것은 저절로 없어지게 될 것이고.

그리고 ‘암만 화두를 들고 할라고 해도 화두가 잘 순일하게 들리지 않는다. 한 철, 두 철 내지 3년, 4년, 5년째 해도 영 화두가 순일하게 들리지 않고 자꾸 그런다.’ 그런 것을 호소하시는 분도 계시는데, 화두가 정말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되는 것은 마지막 깨달으기 한 일주일 전부터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진짜 순일무잡하게 되어서 화두를 들라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리고, 뭐 놓고 들 것도 없이 그냥 새벽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잠을 자도 꿈속에서도 화두가 고대로, 자다가 눈을 새벽에 딱 뜨면 새로 화두 들 것도 없이 엊저녁에 들고 잠들었던 그 화두가 고대로 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아침에 눈 딱 떠도 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세수를 해도 고대로 있고, 양치질을 해도 고대로 있고, 화장실 가도 고대로 있고, 밥을 먹어도 고대로 있고, 뭐 소지를 해도 고대로 있고, 옆에서 떠들거나 말거나 전혀 상관이 없이 고대로 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지경에 이르르면 일주일이 못 가서 툭 터지게 되는 것입니다.

설사 일주일 되어서 안 터지더라도 ‘빨리 터졌으면’ 그러한 생각을 가질 것이 없습니다. 그런 상태로 있으면 일주일을 가도 좋고, 열흘을 가도 좋고, 한 달을 가도 좋고, 계속 고대로 해 나가면은 언젠가는 지가 터지지 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순일무잡하게 되었을 때에 깨닫기를 바래거나, ‘누가 이럴 때에 나를 툭 깨닫게 해 줬으면’ 그런 생각을 가져서는 아니 된 것입니다. 고대로 해 나가는 것입니다.

공부 막 좀 될라고 하면 옆에서 떠들어 싸서 못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공부가 진짜 잘된 것이 아니에요. 떠든다고 화두가 달아나 버린다면은 그 화두는 아직도 지금 들렸다 안 들렸다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그래서 이렇게 - 뭐 참선은 집에서는 못할 바 아니지마는, 그래도 여기 와서 조실 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또 모두 여러 발심한 도반들과 같이 규칙생활을 하면서 가정의 모든 복잡한 것을 떠나서 이렇게 와서 하신 것이니,
서로 서로 목적이 같을 진대는 서로 서로 여법하게 잘해서, 나로 인해서 다른 분들이 공부를 잘하고, 다른 분들로 인해서 내가 공부가 잘 되도록 이렇게 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화두가 안 들려도 그걸 성내거나 성화하시거나 번민, 번뇌심을 내실 필요가 없어요. 망상이 일어나면 그냥 고대로 놔둬 버리고 - 오늘 아침에 조실 스님께서 참 아주 요긴한 법문을 해 주셨는데,
망상 일어난 거 그걸 버릴라고 할 것이 아니고 고대로 놔두고, 그냥 다시 화두만 떠억 - 숨을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화두만 딱 다시 한번 들은 것뿐이지, 일어나는 망상을 누를라고 하거나 쫓아낼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말이여.

쫓아낼려고 하고 누를라고 하면은 그것이 눌러지지도 않고 화두만 더 달아나 버린다 그말이여.
 


<장애 - 지계·정진력으로 이겨야>

 

그리고 자기가 지은 업(業)에 따라서 - 전생에 지은 업, 또 금생에 지은 업, 그런 업으로 해서 몸에 자기가 아닌 다른 영혼, 이런 것이 항시 자기 주변을 맴돌거나 자기에게 이렇게 붙거나 그러한 경우가 있습니다.
참선을 안 하신 세속에 사신 분 가운데에도 그런 분들이 상당수가 있고, 또 그것이 남이 보면은 전혀 모르지마는 자기 혼자만 아는 일이죠.

그것이 전생에 어떤 인연있는 영가 - 그것이 원결(怨結)이 있는 영가라든지, 서로 짝사랑을 하던 그런 영혼이라든지, 자기가 너무 그 사람에 대해서 너무 애착을 하고 집착을 하던 그런 영혼이라든지, 또는 무슨 원결이 있어 가지고 나한테 복수를 하기 위해서 나한테 따라붙은 그런 영혼이라든지,
그런 것이 요렇게 붙어서 항상 자기 주변에 이렇게 맴돌며 있는 그런 경우도 있고, 아주 언제나 자기한테 붙어 갖고 다니는 그런 경우도 있고, 뭣한 경우는 계속 귀에다가 뭐라고 계속 소곤대고 명령을 하고,

자기가 이렇게 살고 있지마는 실지는 하나도 자기 마음대로 못 하고, 먹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못 먹고, 그 영혼이 먹으라고 하면 먹고 먹지 말라면 안 먹고, 어디를 가자고 하면 가고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가고, 일체가 다 그 영혼에 - 특수한 그것이 신(神)인지 영(靈)인지 - 조종한대로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애착(愛着)을 갖지 말아라. 물질에 대한 탐착·애착도 못쓰고 사람에 대한 애착과 탐착도 그것이 괴로움의 근본밖에는 아니 된 것입니다.

더군다나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자기의 잇속을 챙겨 가지고 남을 해롭게 하고 남을 갖다가 억울하게 탄압을 하고 심지어는 남을 죽이고 이러한 일은 참 해서는 아니 된 것입니다.
그때는 조금 이익을 얻었을런가 모르지마는 세세생생에 원결이 되어 가지고 기어코 그 앙갚음을 하게 되기 때문에 어찌 우선 조금 이익을 보기 위해서 그런 큰 고통을 받아서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 남에게 고통을 주지 말아라.

 

남의 물건도 훔치지 말 것이며, 남에게 진심(瞋心)을 내지 말 것이며, 산목숨을 죽이지 말 것이며, 또 남을 거짓말하고 속이고 사기를 하지 말 것이며, 또 술을 마시면은 자기의 바른 정신을 놔 버리고 그래가지고 못할 짓 없이 온갖 본의 아니게 못된 행동이 나오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말라’한 것이,
반드시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될, 생사해탈을 하기 위해서 생사윤회를 아니할라면은 그런 부처님의 5계(五戒)를 잘 지키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안 지켜 놓으면은 금생에도 그 과보(果報)를 받는 수가 있지마는, 내생에 두고두고 세세생생에 그런 참 괴로운 과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다행히 금생에 이렇게 발심을 해서 선방에 나오셨지만, 과거에 지은 업연(業緣)으로 해서 그런 영혼이 우리한테 따라붙어 가지고 참선만 할라고 하면은 와 가지고 자기를 직접 간접으로 괴롭히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참선을 안 하고 그럭저럭 지내면은 또 괜찮은데 참선만 할라고 떠억 앉으면은 와서 괴롭히는 수가 있거든.

그건 왜 그러냐 하면은, 참선을 해서 확철대오를 해 버리면 자기가 발붙일 곳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이 참선을 해서 차츰차츰 공부가 잘 되어가면 ‘도고마성(道高魔盛)이다. 도가 높아갈수록에 마군이가 성하게 된다’ 이거거든.

그렇다고 해서 참선을 안 할 수가 있습니까? 그럴수록에 더 신심을 돈독히 해 가지고 자꾸 올바른 방법으로 꾸준히 공부를 해 나가고, 옆에 와서 집적대거나 귀에다 대고 소곤거리거나 말거나, 그것을 가지고 탓을 해서는 안 돼요.
그놈을 탓하고 억지로 떼어 내버릴려고 할수록 그놈은 더욱 꽉 붙잡고 늘어지기 때문에, 떼어 버릴라고 하지 말고 그냥 놔둬 버려.

놔둬 버리고 단전호흡을 하면서 자꾸 화두를 간절히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참구해 나가면, 그렇게 해서 화두가 점점 순숙해져서 순일무잡하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그까짓 잡신·영혼이 어디에 들러붙을 것이냐 그말이여.

오직 그것을 이겨내는 방법은 정진력(精進力), 이 최상승 활구참선(活句參禪)으로 밀고 나가는 도리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조금도 조급한 생각내지 말고, 원망하고 한탄하지도 말고, 짜증내고 번민하지 말고서, 오직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을 하면서 화두를 간절히 참구해 나가면,
하루를 그렇게 지내고 이틀을 그렇게 지내고 한 달, 석 달을 그렇게 지내고 1년, 이태, 3년을 그렇게 지내고 10년 세월을 그렇게 쪼옥 해 나가면 자연히 그런 원결이 있는 영혼도 거기에 감복(感服)이 되어가지고 그냥 원결을 풀고 좋은 곳으로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드릴 말씀이 한이 없지만 오늘은 이만 말을 맺고자 합니다.(35분15초~73분48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이뭣고?’ 화두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남악회양, 육조 스님, 하택신회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십마물 이마래(什麼物伊麼來) : 십마(什麼)는 의문의 말로 '무엇이냐'의 뜻이며, 이마(伊麼)는 임마(恁麼)와 같은 말로 '이렇게'의 뜻으로, 십마물 이마래(什麼物伊麼來)라는 말은 곧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하는 말。
*망지소조(罔知所措) ; 너무 당황하거나 급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고 갈팡질팡함.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생사고해(生死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를 가리킴. 생사와 그 괴로움이 무한한 것을 바다에 비유함.
*유전(流轉) ; 생사 인과(因果)가 서로 끊임없이 이어짐.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화두(話頭)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 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마삼근(麻三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판치생모(板齒生毛)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의심(疑心)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본(本) ; 모범으로 삼을 만한 대상.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묵언(默言) ; 말을 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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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경책(警策 깨우칠 /채찍·회초리 ) ; 선방에서 대중이 좌선할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지는 스님의 어깨를 쳐서 졸음을 깨워 정진을 독려하는 행위. 또는 그때 사용하는 장군죽비를 가리키기도 한다.

*장군죽비(將軍竹) ; 보통 죽비()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40~50센티의 불교 용구인데, 장군죽비는 참선할  졸거나자세가 흐트러진 수행자의 어깨를 쳐서 졸음을 쫓는  1.5~2m  죽비.

*가풍(家風) ; 한집안에서 오래 지켜 온 생활 습관이나 규범.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절. 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지대방 ; 절의 큰방 머리에 있는 작은 방. 이부자리, 옷 등의 물건을 넣어 두는 곳이며, 스님들이 잠깐 휴식을 하기도 하는 곳이다.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포대화상(布袋和尙) ; 중국 후량(後梁) 때의 스님. 본이름은 계차(契此). 절강성(浙江省) 명주(明州) 출신. 체구가 비대하고 배가 불룩하게 나왔으며, 항상 포대를 지팡이에 걸어서 어깨에 메고 동냥한 것을 그 속에 담고 떠돌아다니면서 수행한 선승(禪僧). 916년에 명주 악림사(嶽林寺)에서 입적함.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나쁜 마음의 작용.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원결(怨結 원망할 원/맺을·번뇌 결) ; 원망(怨望)의 마음이 얽혀 풀리지 않는 것을 말함.
*애착(愛着) ; 사랑하여 집착함. 애집(愛執).
*앙갚음 ; 남에게 해를 받은 만큼 저도 그에게 해를 다시 줌.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업연(業緣) ; 업보(業報)의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의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의 인연을 부른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참선할 때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감복(感服) ; 마음속으로 감동하여 탄복함.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법보재)2014. 4. 16. 01:01

§(568) 왜 화장(火葬)이 좋으냐? / 「만년위패」를 모시는 뜻 /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다 성불(成佛)하도록 우리는...

우리는 영원히 이러한 깊은 인연(因緣)으로 맺어진 인연입니다.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정법에서 물러나지 않고 최상승법을 의지해서 우리 자신도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고, 이 우주법계에 한 중생도 남음이 없을 때까지 다 성불(成佛)하도록 우리는 그 앞잡이가 되어서, 위로는 부처님을 받들고 우리는 전강 조실스님의 법을 의지해서 손에 손잡고 최상승법에 의해서 공부를 하실 것을 약속을 합시다.


**송담스님(No.568) - 96년 법보재 법회에서. (용568)

 

약 18분.

 


오늘 이 법보재를 맞이해서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는데,
장례가 땅에다가 묻는 매장(埋葬)하는 그런 법이 있고, 또 세계 어느 나라인가는 죽으면 물에다가 넣어버리는 수장(水葬)법이 있고, 또 어느 나라인가는 풍장(風葬)이라 해 가지고 숲속에다가 그대로 시체를 갖다가 두면 독수리나 그런 짐승들이 와서 그 살을 다 발라먹고, 그런 풍장이여. 바람 속에 노출시킨다 해서 풍장도 있고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화장(火葬)법을 말씀을 하셨다 그말이여. 물론 특수한 경우에 화장을 할 연료, 나무나 장작이 없을 때는 부득이해서 풀로도 덮고, 또 흙으로도 덮으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시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는 화장법을 말씀을 하셨다.
부처님 자신도 화장을 하셨고, 육조 스님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스님들이 다 화장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화장(火葬)이 좋으냐?
우리나라는 옛날부터서 일반적으로 땅에다 묻는 매장법(埋葬)을 하고 있는데, 매장법하면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이 나오게 됩니다.

저 태조산(太祖山)으로부터서 중조산(中祖山), 소조산(小祖山)으로 해서 그래 가지고 소조산 밑에 와 가지고는, 음양이 벌어져서 그래가지고 혈토(穴土)·인목(印木)해 가지고, 딱 혈(穴)이 나와 가지고,
그 산맥오는 것을 용(龍)이라 그러는데, ‘천리행용(千里行龍)에 일석지지(一席之地)다.’ 태조산으로부터 중조산, 소조산, 천리를 와 가지고 결국은 한 자리 들어갈 만큼 혈이 딱 열려있는데, 주변이 전부가 바위 덩어리라도 그 '널' 하나 들어갈 자리는 딱! 흙으로 되어있는 거여.

이렇게 하면 내가 풍수지리설을 굉장히 숭상하는것 같지마는 어려서부터 어른들한테 들어가지고, 내가 땅을 훤히 들여다보는 신안(神眼)이니, 무슨 도안이니, 법안이니, 그런 눈은 열리지 않았지만 풍수에 대한 그 상식은 알고있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 명당(明堂)을 탁! 알아가지고 쓰면, 그 집안이 대대로 내려가면서 부자 날 자리도 있고, 장군이 나올 자리도 있고, 학자가 나올 자리도 있고, 정승·판서가 나올 자리도 있고, 또 어떤 자리는 왕이 날 자리도 있다 그말이여.
또 왕비가 날 자리도 있고, 큰 부자가 나고, 또 그렇게 큰 부자는 아니더라도 아주 자손이 백자천손(百子千孫)이라, 자손이 퍼지는 그런 자리도 있다 그말이여. 조빈모부(朝貧暮富), 아침에 써 가지고 저녁에 금방 부자가 되고 그런 자리도 있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런 자리를 아무나 들어가냐?’하면 그게 아니여.
길인(吉人)이 봉길지(逢吉地)여. 복을 많이 심은 사람이 그러헌 명당에 들어가는 것이지, 돈만 많다고 해서 돈 주고 그 풍수(風水)한테 명당을 잡아가지고 쓴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여.

그 풍수 눈에는 분명히 구룡농주(九龍弄珠)‘아홉 용이 구슬을 희롱하는 자리다’하고 보고 주었는데,
복을 짓지 아니한어떻게 해 가지고는 돈은 벌었지만 아주 못된 사람이 돈 가지고 쓸라고 하면은 풍수 눈에는 분명히 용의 형국인데, 써 놓고보면 그것이 용의 자리가 아니라 구사쟁와(九蛇爭蛙)여, 아홉 뱀이 한 마리 개구리를 다투는 그런 형국도 있다 그말이여.

그러니 있던 돈, 다 탁! 털어서 먹고 온 집안이 되는 일이 없는 거여. 돈 갖고 명당쓰는 게 아니거든.

명당에 참으로 들어가고 싶으면 최소한도로 삼대(三代) 동안을 적악(積惡)을 안 해야 하고, 항상 보시(布施)를 하고 사람들한테 자비를 베풀고, 그러한 복(福)을 심은 사람이 명당에 들어가는거다 그말이여.
그래서 명당을 돈 주고 살라고 하지 말 것이며, 덮어놓고 명당에 들어가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참으로 명당에 들어가고 싶으면은 복을 심어야 한다. 풍수지리 거기에도 십계가 있는데 거기에 제1조가 그거거든. 그런 것도 모르고 명당 쓸라고 돈만 많이 퍼들이고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거든.

그리고 땅에도 불이 지나가고, 물이 지나가고, 풀과 나무뿌리가 파고 들어가고,

그래가지고 명당이라고 큰  맘 먹고 썼는데 나중에 딴 풍수가 그것 명당 아니라고 해서 파서 보면, 뱀이 들어있기도 하고, 개미가 들어있기도 하고, 풀뿌리 나무뿌리가 콧구멍·눈구멍·갈비 사이사이에 360골조를 나무뿌리가 아주 얼키고 설켜서, 해골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렇게 된 데도 있고,

또 새까맣게 탄 데도 있고, 또는 버글버글쓴 지가 몇 해 되지 않았는데 퍼석퍼석허니 벌써 흙이 다 되어버린 데도 있다 그말이여. 그러니 그러헌 흉지(凶地)에다가 써 넣으면 집안이 되는 일이 없어.


차라리 그러기보다는 부처님 법에 따라서 법문(法門)을 하면서 화장(火葬)을 해서, '재'를 갖다가 밥이나 조밥에다가 버무려서 그리고 물에다가 주면 고기들이 그걸 먹는다 그말이여.
배고픈 고기들이 먹으므로 해서  마지막 뼈까지 보시를 하는 그러한 화장법을 쓰면은자손들이 지가 지은 대로 받는 것이지, 그 묘자리 때문에 잘될 것도 없고 해(害)를 볼 것도 없다 그말이여.


요새도 대부분 명당이 다 제자리에 쏙 들어간 데는 거의가 드물고, 근처에다가 그럴싸하니 산세(山勢)가 어울어졌으니까 근처에다 이렇게 써 가지고, 아무나 못 쓴다 그말이여.
그래서 설사 근처에다 써서 그 명당 덕을 봤다 하더라도 요새 고속도로다, 또는 도시개발이다 해 가지고 맥(脈)을 다 끊어버려서 한동안 잘되어 가다 끊은 자리에 오면은 파싹 망한다 그말이여. 그러니 명당 설사 안다 하더라도 땅을 샀다 하더라도 꼭 믿을 것이 못돼.

서울이 육백 년 전에 그 서울을 정해 가지고 무학대사니, 무슨 정도전이니, 그때 뭐 잘 보는 사람들이 경복궁을 잡아가지고 다 했는데, 이조 오백 년 동안에 그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고, 형이 동생을 죽이고, 동생이 형을 죽이고, 서로 임금노릇 해먹을려고 피비린내 나는 이조 오백 년의 궁중 역사를 여러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그나마 그럭저럭 해 오다가 해방이 되어가지고 이박사 대통령하다 하와이로 쫓겨갔죠, 윤보선 대통령하다가 또 5.16 일어나가지고 또 쫓겨났죠, 박정희 대통령되었다가 결국은 육영수 여사 총맞아 죽고, 박대통령은 자기가 가장 아끼는 김재규한테 죽었죠. 또 그 뒤로 전두환 대통령, 노태우 대통령하다가 지금은 쇠고랑을 찬 그런 신세가 되었습니다.

물론 자기네들이 잘못해서 그런 점도 있겠지만, 풍수지리학설로 보면은 그 산 자체가, 저 관악산 화체(火體)가 된 불꽃 산이 비쳐가지고 그런 악영향을 받아서 그랬다 그런 말도 있고,
요새 또 지관(地官)들은 북악터널 뚫고, 남산터널 뚫어가지고 맥(脈)을 끊어버리니까 해먹을때는 그럭저럭하다 나중에 그렇게 비참하게 된다 이거여. 그것을 나는 100% 믿지는 않지만 그것도 생각해 보면 그럴런지도 알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풍수지리에 의존하지 말고 화장(火葬)을 모시고‘아이고, 한 번 죽은 것도 억울한데 두 번 죽음을 해?’ 죽은 사람이 뜨거우면 무엇이 뜨거울 것이야 그말이여.


여러분이 비행기를 타고 삼천리강산(三千里江山) 위로 이렇게 지나가면서 보면 '명당 쓴다'고 부스럼옛날에 기계충 걸린 것처럼, 산이 그 좋은 강산을 갖다가 묘(墓) 쓴다고 부스럼 따갱이처럼 생긴 것을 보실 것이다 그말이여.

앞으로 현재 있는 사람들이 죽으면 다 명당을 써 버리면 한국에 숲은 다 없어진다 그말이여. 그래가지고 있는 것은 올록볼록하니 그 무덤뿐일 것이다 그말이여. 금수강산(錦繡江山)이 아니라 북망산(北邙山) 공동묘지가 될 거다 그말이여.

산은 숲이 우거져야 좋고, 그 명당 쓴다고 묘 하나 써 놓고서는 주변을 수백 평을 다 나무를 다 베어 버리거든. 그러니 그것 참 가슴아픈 일이고. 숲이 우거져야 홍수도 막는 것이고, 거기서 끊임없이 물이 졸졸 흘러내려야 또 비가 조금 안 오더라도 가뭄에 시달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절대로 한번 돌아가시면' 돌아가신 뒤에 적어도 3일은 있어야 하거든. 하루나 이틀 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해서 금방 가서 화장을 하시지 말고, 3일장(三日葬)은 하셔서 그동안 스님네를 초청해서 금강경도 읽고 좋은 염불도 들으시는 것이 좋고, 화장을 또 화장 법요식에 따라서 잘 지내고.

 

그 대신 육체는 갖다가 묻어봤자 물구덩이 아니면 불구덩이고, 그렇지 않으면 풀뿌리 나무뿌리 그런데 있어가지고 오래 못갑니다.
얼마 안 가면 흙에 지나지 못한데, 거기다 자손들이 와서한식(寒食)이라든지 추석(秋夕) 그런 때 와서 성묘(省墓)도 드리고, 요새 모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서 조상을 소중히 여기는 그것은 대단히 좋으나다 흙이 되어 버렸는데 거기다가 절 해봤자 별 수가 없고.

 

화장을 해서 재는 뿌리고, 그 영가(靈駕)는 만년위패(萬年位牌)에 잘 모셔 드리고조석(朝夕)으로 축원(祝願)해 드리고, 천도재를 지내 드리고, 그리고 3월 16일은 오늘과 같이 합동으로 천도재(薦度齋)를 잘 지내주고,

여러분이 만년위패 이렇게 들이면 거기에 바치신 성금으로 이 선원(禪院)이 이렇게 운영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이 「만년위패」를 모시는 것은 그런 우리의 조상들을  위해서 모셨고, 둘째는 조상을 모시러 오다 보면 자연히 정법(正法)을 믿게 되고,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의해서 우리가 모두 참선(參禪)을 해서 다 해탈도를 증득하시게 하는 그러한 멀고도 크고 깊은 그런 자비심(慈悲心)에서 이런 제도를 마련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밑에 조그만한 차마 말할 수 없는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딴 것이 아니고, 내가 조실 스님 상좌(上佐)인데 내가 너무 못나가지고 신도들한테 ‘뭔 불사가 있으니 돈을 내십시요.’ ‘선방을 운영을 할테니 시주(施主)를 하십시요. 양식을 좀 내시요.’ 그런 비우가 없어가지고 그런 말을 못합니다.

선방은 계속해서 해 나가야 하겠는데, 또 여러 좋은 상좌들도 많이 있지만 그래도 내가 맨 먼저 되었다고 해서 나한테 이 원장 책임을 맡겨야 할텐데, 천상 10년 동안 묵언(默言)을 해가지고 말도 잘 못하지, 또 누구한테 숫기가 없어가지고 돈 얘기를 못하지 그러니까,

이 선방은 기어코 해 가야 하고 정법은 펴야겠는데 누구한테 탁! 믿고 맡길 사람은 마땅치 않고,
그래서 돌아가시기 전에 녹음 테이프를 많이 녹음을 해 놓으셨고, 또 법보단 만년위패 제도를 해 놓으면 심심치 않게 영가를 모시게 되면 그래서 선방을 그럭저럭 운영해 나갈 거다.

이건 내가 창피해서 차마 말을 못할 소리인데, 여러분이 그 조실 스님의 뜻을 너무너무 잘 아셔서 방방곡곡에서 만년위패를 드시고, 그리고 또 녹음 법문을 듣고,
그래서 난 부지런히 녹음을 계속 복사를 해서 인연 있는 여러 신남신녀와 도반들에게 요구하는 대로 이렇게 보급을 해서, 조실 스님 살아계실 때 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조실 스님 법을 믿게 되고, 또 정법에 의지해서 참선하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해마다 영가에 가입하신 법보재자(法寶齋者)들이 이렇게 늘어나고 있어서정말 저는 별것도 아닌 사람이 참 조실 스님 상좌라고 이렇게 원장의 이름을 띄고 있는데, 오늘날 이렇게 이 법보가족이 일어난 것은 제가 말을 잘한 것도 아니고, 제가 무슨 여러분들한테 잘해 드린 것도 없고 한데,

순전히 이것은 전강 조실 스님의 원대한 원력(願力)과 조실 스님의 법력(法力)과 도력(道力), 그리고 자비심으로 오늘날 이렇게 용화사 법보선원이 이렇게 나날이 잘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가지고 조실스님의 영전(靈前)에 감사의 합장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영원히 이러한 깊은 인연(因緣)으로 맺어진 인연입니다.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정법에서 물러나지 않고 최상승법을 의지해서 우리 자신도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고, 이 우주법계에 한 중생도 남음이 없을 때까지 다 성불(成佛)하도록 우리는 그 앞잡이가 되어서, 위로는 부처님을 받들고 우리는 조실 스님의 법을 의지해서 손에 손잡고 최상승법에 의해서 공부를 하실 것을 약속을 합시다. 성불하십시오.(44분23초~61분5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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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 ; 산수의 지형이나 방위를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과 관련시켜 죽은 사람을 매장하거나 집을 짓는 데 적당한 장소를 찾는 이론이나 주장.
*혈(穴) ; 풍수지리에서, 산줄기나 지맥 따위의 정기(精氣)가 모인 자리.
* ; 관(棺)이나 곽(槨)을 통틀어 이르는 말.
*신안(神眼) ; 풍수지리설에 근거를 둔 지술(地術)이나 관상술 등에 정통한 눈.
*명당(明堂) ; 풍수지리에서, 아주 좋은 묏자리나 집터.
*풍수(風水) ; 풍수지리설에 따라 집터나 묏자리 따위를 가려잡는 사람.
*적악(積惡) ; 남에게 나쁜 짓을 많이 함.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보시(布施) ; 자비심으로 조건없이 남에게 재물이나 불법을 베풂.
*묘자리 ; 묏자리. 사람의 무덤을 쓸 만한 자리. 또는 쓴 자리.
*산세(山勢) ; 산의 모양과 지세(地勢).
*맥(脈) ; 기운이나 힘.
*지관(地官) ; 풍수지리설에 따라 집터나 묏자리 따위의 좋고 나쁨을 가려내는 사람.
*삼천리강산(三千里江山) ; 우리나라 땅의 남북의 길이가 삼천리라 하여 우리나라의 강산을 이르는 말.
*부스럼 ; 피부에 나는 종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
*기계충 ; 두부 백선(頭部白癬)을 이르는 말. 머리 밑에 피부 사상균이 침입하여 일어나는 피부병. 머리털이 나 있는 부분에 둥그런 홍반이 생기고 피부가 벗어지며 그 부분의 머리털이 윤기를 잃고 부스러진다.
*금수강산(錦繡江山) ; 비단에 수를 놓은 듯 매우 아름다운 산천. 함경북도 북쪽 끝에서 제주도 남쪽 끝까지 3,000리가 되는 우리나라의 자연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북망산(北邙山) : 무덤이 많은 곳이나, 사람이 죽어서 묻히는 곳을 이르는 말. 중국의 북망산에 무덤이 많았다는데서 유래한다.
*삼일장(三日葬) ; 죽은 지 사흘 만에 치르는 장사.
*성묘(省墓 살필 성,무덤 묘) ; 조상의 산소를 찾아 인사를 하고 산소를 돌봄. 주로 설, 한식(寒食), 추석(秋夕)에 행한다.
*한식(寒食) ; 동지(冬至)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 조상의 산소를 찾아 제사를 지내고 벌초를 한다.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천도재(薦度齋) ;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에 따라 다음 생을 받게 되는데,
유족들이 불보살(佛菩薩)을 모신 법당(法堂)에서 돌아가신 영가를 청해 모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함과 동시에,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門)’을 들려줌으로써,
영가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혜의 눈을 밝혀 삶의 무상을 깨달아 이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보다 좋은 곳으로-더 나아가 육도윤회를 벗어나 극락왕생·해탈의 바른 길로-잘 건너가도록 하는 불교의식.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자비(慈悲) ; 자(慈)는 ‘우정•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동정’을 원의(原義)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상좌(上佐 윗 상,도울 좌) ; 윗사람을 도운다는 뜻. 곧, 한 스승의 제자를 일컬음.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묵언(默言) ; 말을 하지 않음.
*숫기 ; 활발하여 부끄러워하지 않는 기운.
*기어코 ;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또는 결국에 가서는.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본원(本願) : 근본서원(根本誓願)의 준말. 모든 불보살님들이 지난 세상에서 일으킨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을 결정코 이루려는 맹세(서원). 본원에는 총원(總願)과 별원(別願)이 있다.
①총원(總願)--모든 불보살님들의 공통원, 사홍서원(四弘誓願).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 가없는 중생을 맹세코 다 건지리이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 끝없는 번뇌를 맹세코 다 끊으오리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 한없는 법문을 맹세코 다 배우리이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 위없는 불도를 맹세코 다 이루리이다.
②별원(別願)--불보살님마다 중생제도의 인연에 따라 세운 원(아미타불48원, 약사여래12원 등등). 별원은 사홍서원의 구체적 표현.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法)의 힘. ②가르침의 힘. 불법의 공덕. 불•보살의 위신력(威神力)을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것.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힘.
*도력(道力) ; ①도의 근본에서 생기는 힘. 도를 얻음에 의하여 나타남. ②지혜의 힘.
*한마음 한뜻 ; 모든 사람의 마음과 뜻이 똑같음.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세세생생(世世生生) ;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깨달음을 여는 것. 각자가 스스로 무상의 깨달음을 열고, 부처가 되는 것. ④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앞잡이 ; 앞에서 인도하는 사람.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신수기도)2014. 1. 31. 20:04

§(258) (게송)불불산향만로비~ / ‘ 생각단속이 기도요, 삼재를 막는 / 식신(識神) / 말을 적게 하라 / 수구여병(守口如甁) / 참선으로 근본을 해결해라.


활구참선법이야말로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으려고 하지 아니하되 제절로 바로 잡게 하고, 일부러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되 모든 업은 제절로 소멸이 되고, 우리의 시청언동(視聽言動) 통한 모든 생활은, 보면은 남과 같으되 사실은 하나하나가 성불을 향한 수행이요 불사(佛事) 되는 것입니다.

조실스님의 법문 가운데에도 고구정녕(苦口叮嚀) 말씀을 하셨지만, ()라고 하는 것은 데에 있는 것이 아니여. 우리의 생활 속에서 닦아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생활을 여위고 () 없으며,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바로 자기를 찾는 것이 이것이 최상승법인 것입니다.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의 틈을 통해서 들어온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은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가장 가깝게는 말을 많이 하지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하면 거기에서 모든 재앙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무량겁 동안의 모든 () 시비(是非) 바로 조그마한 입으로부터 들어오고, 입으로부터 나온 사실을 명심(銘心) 하셔야 것입니다.

칠일 기도를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하면서 거기에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의 업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참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영원히 삼재(三災)라고 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서 생사(生死) 해탈(解脫)하는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을 저는 재삼(再三) 강조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58)—1985(을축년) 신수기도입재(1985.02.22).


(1) 약 21분.  (2) 약 21분.  (3) 약 21분.


(1/3)----------------


불불산향만로비(拂拂山香滿路飛)한데  야화영락초리피(野花零落草離披)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춘풍무한심심의(春風無限深深意)  부득황려설여수(不得黃鸝說與誰)

나무~아미타불~


불불산향만로비(拂拂山香滿路飛)한데, 봄바람에 산에 그윽한 향기가 가득히 휘날리는데,

야화영락초리피(野花零落草離披)로구나. 들꽃이 시들어 떨어지매 풀에서 떠나서 흩어지더라 그말이여.


춘풍무한심심의(春風無限深深意)  부득황려설여수(不得黃鸝說與誰).

봄바람 ()없는 깊고 깊은 뜻은 노란 꾀꼬리가 아니면 누구와 더불어 이야기 수가 있을 것인가.


입춘, 우수가 지나고 이제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오늘 을축년 정월 초사흘 날부터 앞으로 7 간을 신수(身數)기도를 봉행하게 되는데, 우수가 지냈는데도 바로 엊그제 눈이 많이 내리고 설풍(雪風) 엄동설한(嚴冬雪寒) 같이 매섭습니다.


그러나 입춘, 우수가 지나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말이 전해 옵니다. 머지않아서 산과 들에는 여기저기 울긋불긋 꽃이 피어서 아름다운 향내가 천지에 나부끼게 되고 나무에는 잎이 피고 가지가 뻗어서 거기에는 노란 꾀꼬리가 노래할 날이 머지 아니할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생존 시부터 정월에는 신수기도를 봉행해 오고 있습니다.

선방에서 참선만을 하지, 신수기도를 할까?’ 그렇게 생각하실 분이 계실른지 모릅니다마는 부처님께서 출세(出世)하셔서 중생을 교화하실 때에 중생의 근기 따라서 소승법·중승법·대승법·최상승법 그리고 교외별전(敎外別傳) 법을 차례로 설하셨습니다.


원래 진리에 입각해서 본다면 선도 없고, 악도 없고, 복도 없고, 죄도 없고, 생사도 없는 것입니다마는,

중생이 진리와 계합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은 업에 따라서 선도 있고, 악도 있고, 죄도 있고, 복도 있고, 남도 있고, 죽음도 있는 것입니다.


이미 확철대오를 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 못한 우리 중생에게는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께 끝없이 참회(懺悔) 해야 하고 소원을 비는 기도도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조실스님께서는 평생 동안을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설해서 중생을 교화하셨지마는, 경우에 따라서는 이렇게 신수기도를 열어서 중생을 널리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앉아 계시는 법당에, 부처님 계신 좌우 벽에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 영가(靈駕) 위패가 봉안되어 있습니다마는 이것도 또한 조실스님께서 우리에게 열어주신 대자비의 방편으로 위패를 모시게 하신 것입니다.


사람을 위해서 법을 설하고 기도 () 열어 주실 뿐만이 아니라, 돌아가신 우리의 선망부모와 형제자매와 원근 친척의 외로운 영가들을 위해서도 편안히 머물러서 항시 법문을 듣고,


위로는 부처님과 조실스님을 모시고 그리고 우리 선방에서 참선하시는 청풍납자(清風衲子)들을 항시 선배로 모시고 그리고 도반으로 모시고, 같이 영가의 위치에서 도를 닦다가 인연이 도래할 때에는 도솔천(兜率天) 내원궁(內院宮)이나 다시 인도(人道) 돌아와서 정법 문중에서 도를 닦을 있도록 이러한 만년위패(萬年位牌) 제도를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신수기도를 앞으로 7일간 모시게 되는데, 신수기도라 하는 것은 지난 1 동안에 우리가 크고 작은 ()—주로 악업에 해당이 것입니다마는, 그런 죄업을 부처님께 참회하고 새해를 맞이해서 1 동안 무장무애 해서 우리의 크고 작은 소원을 성취하려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중생은 눈만 한번 감았다 뜨고, 입만 한번 열었다 닫고, 손가락 발가락만 움직여도 전부가 () 짓게 되는 것입니다. 모금을 마시고 숟가락을 먹어도 업을 짓는 것이요, 빚을 짓는 것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눈이 있기 때문에 보아야 하고, 귀가 있기 때문에 들어야 하고, 사지(四肢) 백체(百體) 있기 때문에 운동을, 거래(去來) 모든 행동을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눈으로 보되 죄를 짓지 아니하고, 귀로 모든 소리를 듣되 업을 짓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걸어가고 걸어오며 모든 일을 하고, 나아가서는 장사를 하고 사업을 하면서도 죄를 짓지 아니하면서 최선을 다할 있을 것인가? 바로 여기에 우리의 바로 살아가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모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육식(六識) 통해서 지은 모든 죄가 근본은 마음으로부터 짓게 되고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나무를 가꾸려 때에 뿌리를 북돋우고 뿌리에 적당한 수분과 비료를 공급하면은 나무는 자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뿌리에는 벌레와 균이 침범을 하고 적당한 수분과 비료가 공급되지 아니한 , 아무리 가지와 이파리에 매달려서 손질을 부지런히 한다 하더라도 나무는 건장하게 자랄 수가 없을 것이며 좋은 꽃과 훌륭한 열매를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엽적인 눈을 감고 보지 아니할려고 하고, 귀를 막고 듣지 아니할려고 그러고, 발을 묶어놓고 꼼짝을 할려고 한다고 해서 우리가 () 짓지 않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몸을 움직이고, 눈으로 보고, 귀로 모든 소리를 듣고, 입으로 말을 한다 하더라도 근본 마음이 제자리에 있고 올바르게 된다면, 마음의 발로(發露)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바르게 하고자 하지 아니하되 제절로 바르게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을 것인가?


엄격히 말하면, 바로잡으려고 마음을 먹을 이미 마음은 흐트러지기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파도치는 물을 물의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파도를 눌르고 파도에 손을 대면 새로운 파도가 일어나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물건이라 하면 바로 삐뚤어진 것을 바로 놓을 수가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물체가 아니기 때문에 눈으로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가 없어.

마음을 생각으로써 생각을 일으켜서 바로잡으려고 하면, 일으키는 바로잡으려는 생각 때문에 새로운 마음의 파도가 일어나서 더욱 혼란을 야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용화사에서 조실스님 생존시부터서 항상 선양해 오고 () 오신 활구참선법.


활구참선법이야말로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으려고 하지 아니하되 제절로 바로 잡게 하고, 일부러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되 모든 업은 제절로 소멸이 되고, 우리의 시청언동(視聽言動) 통한 모든 생활은, 보면은 남과 같으되 사실은 하나하나가 성불을 향한 수행이요, 불사(佛事) 되는 것입니다.


아까 조실스님의 법문 가운데에도 고구정녕이 말씀을 하셨지만 ()라고 하는 것은 데에 있는 것이 아니여. 우리의 생활 속에서 닦아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생활을 여의고 도가 없으며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바로 자기를 찾는 것이 이것이 최상승법인 것입니다.


신수기도에 대부분그러께 삼재(三災) 들어와 가지고 작년에 머물렀다가 금년 을축년에 삼재가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마는, 삼재가 들으신 분뿐만이 아니라 삼재가 들으신 모든 사부대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앙(災殃) 언제나 우리에게 다가올 수가 있고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냐 하면 삼재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근본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은 삼재가 붙을 수가 없고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마음이 있어서 마음으로부터 끊임없는 파도가 파도치고 있기 때문에 삼재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삼재가 집안에 사람, 사람, 사람, 사람, 이렇게 여러 사람이 있을 경우 집안은 심히 크고 작은 어려운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마는,


대관절 삼재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있는 것이냐?


뱀띠와 닭띠와 소띠는 지금 금년 삼재가 나가게 됩니다마는 사유축(巳酉丑) 생이 그렇게 되고 다음에는 차례차례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삼재가 오느냐 하는 것은 이것은 음양오행의 술가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 나는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옛날부터서 우리의 생활 경험을 통해서 절대로 무시할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삼재가 사람은 항시 불보살과 성현께 기도를 하고 항시 3 동안 근신(謹愼) 하고,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각별히 조심을 해서,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 있어서 근신하고, 지혜롭고, 참을성 있게 그렇게 조심을 나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삼재가 들었다고 해서 그러면 아무것도 아니하고 우두커니 앉아서 개구리가 겨울동안 땅속에 들어가서 동면을 하듯이 그렇게는 수가 없을 것입니다.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도 해야겠고, 관공서나 회사에 나가는 분은 출근을 해야겠고, 생활은 여전히 가되어떻게 근신을 하고 어떻게 조심을 하느냐하는 것은 다른 아니라,

불법을 믿고 항시 염불을 하는 이는 염불을 열심히 하고, 경을 독송하는 이는 경을 열심히 독송하고,

참선법을 믿고 실천하는 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들며 참구를 한다면 어느 틈이 있어서 삼재가 엿볼 수가 있겠습니까.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에 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은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처음~2040)



(2/3)-------------------


마치 집에 도둑이 침범해 들어온 거와 같아서 집이 문단속을 잘하고 모든 집안 사람이 일심이 되어서 잘해 나가고, 귀중품을 집에 두지 말고 간수를 하고, 모든 생활이 근검절약하고 이렇게 해서...

집안사람들이 문단속도 아니 하고 화목도 하지 못하고, 늦게까지 문을 열어 놓고 있고, 밤낮 싸움을 하고 이런다면 그리고 모든 생활은 사치에 빠지고 한다면 도둑이 엿보고서 침범을 하게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단속을 하고, 절약을 하고, 합심을 하고, 문단속을 잘하고 이렇게 된다면 도적이 들어올 수가 없을 것이며 들어왔다 하더라도 아무 것도 얻어 가지를 못할 것입니다.


삼재가 우리의 마음의 틈을 타서 들어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하고 삼재에 걸린 앞으로 삼재를 맞이할 분들은 각별히 마음의 마음의 문은 눈이 바로 마음의 문이요. 귀가 마음의 문이요. 코와 입이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몸뚱이가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의 문인 것입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육문(六門) 바로 삼재가 들어오는 문이 것입니다. 문단속을 잘하는 것으로 모든 도적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켜 주신 삼재를 막아내는, 비단 삼재라고 했습니다마는 널리 말을 한다면 육적(六賊) 것이고, 방대하게 말한다면 팔만사천 마군(八萬四千魔軍) 것입니다.

팔만사천 마군이를 생각 막을 수도 있고, 도적을 불러 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 생각비끗 잘못하면 바로 삼재와 육적과 팔만사천 도적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 하고 있는 것도 역시 생각때문에 육도윤회를 해서 끊임없는 생사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생각 단속해 나간다면 신수기도는 정말 옳게 봉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학도지인(學道之人) 불식진(不識眞)하고  지위종래인식신(只爲從來認識神)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무시겁래생사본(無始劫來生死本)인데  치인환작본래신(癡人喚作本來身)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학도지인(學道之人) 불식진(不識眞)하고  지위종래인식신(只爲從來認識神)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참된 것을, 이치를 아지 못하고 다못 종래로 식신(識神) 삼어. 식신을 가지고 자기의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고 그렇게 그릇 인식을 하고 있더라 그말이여.


식신(識神), 부르면 대답할 알고, 눈으로 무얼 보면 ···백을 분별을 하고 크고 작은 것을 알고, 코로 냄새를 맡으면저것 좋은 향내다’ ‘저것은 독한 가스 냄새다 향내를 분별하고,

손으로 무엇을 만져 보면 부드럽고 까끄러운 것을 알고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생각으로 무슨 말을 하면저것은 좋은 일이다 나쁜 일이다’ ‘저것은 예쁘다 밉다그런 것을 분별을 하고, 이러한 것이 모두 우리의 식신(識神) 작용이라 것입니다.


식신(識神)이라 하는 것은 무시겁래(無始劫來) 생사본(生死本)이여. 비롯함이 없는 무량겁 이전으로부터서 오는났다 죽었다. 났다 죽었다하는 생사윤회의 근본인데,

치인(癡人) 환작본래신(喚作本來身)이요. 어리석은 사람은 생사의 근본인 알음알이를 불러 가지고 본래신(本來身)이라 하더라 그말이여.


참선을 하게 되면은바로 눈으로 무얼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할 아는 이놈을 내놓고 어디가 마음이라 하는 것이 있을 것인가? 바로 이놈이 나의 면목이다이러한 착각을 일으키게 됩니다.


깨달은 분상에 보면은 눈으로 알고, 귀로 들을 알고, 코로 냄새 맡을 알고,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선과 악을 분별할 아는 그놈을 여의고 본래신(本來身) 없겠지마는,

깨닫지 못한 분상에는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뜻으로 선악을 분별하는 바로 그놈이 바로 부처다. 그놈이 진여다. 그것이 바로 나의 면목이다. 그놈을 여의고 무엇이 있을 것인가? 바로 이놈이다그러한 생각을 내서는 아니 것입니다.


생각 때에 깨달은 사람과 깨닫지 못한 사람과 거의 같은 표현인 같지마는 천지(天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것이 바로 진여불성일 있으나 사람은 영원히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생사의 근본을 그릇 인식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하는 사람은 제일 주의해야 것이! 이것이로구나 생각이 살생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도둑질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음행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무서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산목숨을 죽이지 말라하셨지만, 산목숨을 죽이면은 무간지옥(無間地獄) 떨어져서 한량없는 () 받다가 다행히 영겁 뒤에 사람의 몸을 받아난다 하더라고 단명보(短命報) 받거나, 평생에 병고(病苦) 받는다 하셨습니다.


살생(殺生) 그렇게 무서운 죄이지만 식신(識神), 생사윤회의 근본인 알음알이를 나의 본래의 부처라고 착각하는 죄는 영원한 생사(生死) 다시는 헤어나기 어려운불조(佛祖) 출세(出世)하셔도, 삼세제불(三世諸佛) 출세하셔도 구제할 없는 그러한 무서운 죄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살생하는 죄는 참회(懺悔) 하면 용서 받을 수가 있지마는, 생사의 근본인 알음알이를 참나의 면목으로 착각해서 거기에 집착하게 되면은 참회할 길이 없고 구제 받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착각에 빠진 사람은 남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공부해 나가는 사람은 식신을 갖다가 자기의 본래신으로 착각하지 것이다.



자리에는 삼재를 소멸을 하고 동안 무장무애하기 위해서 그리고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신수기도에 동참하시기 위해서 자리에 참석하신 분이 대부분이 그러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지극정성으로 사분정진(四分精進) 하게 됩니다마는, 있으면 거기에 같이 참석을 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어떠한 것이 가장 정성스럽게 기도를 봉행하는 것이 것인가?


가장 가깝게는 말을 많이 하지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하면 거기에서 모든 재앙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해서 시비(是非) 하게 되면 거기에서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날 뿐만 아니라, 자기의 마음이 산란해지기 때문에 산란한 마음으로 어떻게 정성스러운 기도가 이루어지겠습니까.


그래서 7 동안의 기도 중에는, 가정에서나 차중에서나, 노상에서나 또는 도량에 들어오셔서나 되도록이면 말을 많이 아니한 것이 기도를 정성스럽게 봉행하는 가장 좋은 방편(方便) 것입니다.


여러분이 비단 신수기도 뿐만이 아니라 강화 보문사나, 양양 낙산사나, 또는 남해 보리암이나, 또는 오대산 적멸보궁 같은 데에 기도를 1년에 한두 차례 이상 가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마는 그때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항시 출발할 때부터서 말을 적게 것입니다. 일행이 사람 내지 사람 이렇게 있다 하더라도 있으면은 말을 많이 하지 말아. 가면서도 말을 많이 하지 것이며, 오면서도 말을 많이 아니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도량(道場) 들어서서는 거의 묵언(默言) 하다시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서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시간 맞춰서 기도를 하고, 나머지 시간이 있으면 씻기도 하고, 닦기도 하고, 소지도 하고, 도량을 청결히 하면서 생각 생각이 화두를 들고 정진을 나간다면 기도는 반드시 뜻대로 성취가 것입니다.


기도합네하고 가지고 수선을 떨고, 수다를 떨고, 말을 많이 하고, 오면서 가면서 입씨름을 하고, 그래 가지고 기도가 성취되기를 바란다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고인이 말씀하시기를모든 재앙은 입으로부터 나오고, 모든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가느니라.’ 했습니다.


입으로부터 재앙이 나온다 말은말을 함부로 가지고 때문에 시비와 재앙이 일어나 가지고 온갖 원망과 원수가 거기로부터 이루어진다.’ 이것입니다.

아니할 소리를 가지고 그래 가지고 싸움을 하게 되고 원수를 맺게 되는 예는 우리는 생활 속에서 종종 보고 경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온다 하는 것은 음식을 잘못 먹어 가지고, ‘잘못 먹는다하는 것은 주로 과식(過食) 하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마는,

맛있는 음식이라고 해서 너무 많이 먹는다든지, 절도(節度) 없이 먹는 시간과 먹는 양을 지혜롭게 조절을 못하고서 욕심껏 먹고서 그래 가지고 모든 병을 이루는 경우는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입은 재앙(災殃) 문이다. 구시화문(口是禍門)이다.


수구여병(守口如甁)이니라. 입은 모든 재앙의 문이기 때문에 입을 지키기를 병마개 틀어막듯이 것이다. 틀어 막아버리면은 음식도 먹지 못하고, 말도 못하는 벙어리가 되라는 말인가?


차라리 먹고 병날 바에는 음식을 끼니쯤 먹는 것이 낫고, 말을 가지고 재앙을 불러들일 바에는 잠시 벙어리 노릇을 해야 것입니다.


입이 뚫려 있으니 언제라도 집어넣으면 먹을 수가 있고, 언제라도 입을 벌리고 혀를 내두르면 말이 나올 것입니다마는,

때와 장소와 경우에 따라서 먹어야 때와 먹어야 , 말을 해야 때와 말을 아니 해야 때를 지혜롭게 단속을 하지 못하면, 평생 동안 병을 여읠 수가 없을 것이며, 평생 동안 재앙을 모면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가슴에 손을 얹고 고요히 반성을 해보시면 음식 때문에 병을 얻은 때가 얼마나 많으며, 때문에 부부간에도 시비(是非) 일어나고, 형제간에도 시비가 일어나고, 친구 간에도 시비가 일어나고, 이웃 친척 간에도 때문에 시비가 일어났던 일이 얼마나 많은 가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무량겁 동안에 모든 () 시비(是非) 바로 조그마한 입으로부터 들어오고, 입으로부터 나온 사실을 명심(銘心) 하셔야 것입니다. 동서고금(東西古今) 모든 역사(歷史) 역시 입으로부터 많은 재앙을 이루기도 하고 복을 짓기도 하는 것입니다.


음식을 적당량을 올바르게 섭취를 하면 몸에 피가 되고 살이 되어서 건강을 유지하는 근본이 것이고,

해야 말을 해야 시간에, 해야 상대에게 말을 한다면 한마디가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수도 있고, 타락한 사람을 새로운 사람을 만들 수도 있고, 파탄에 이르른 어떠한 사항을 갖다가 새롭게 발전해 나갈 있도록 하는 좋은 채찍이 수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잘못 섭취를 하고, 잘못 먹고, 잘못 말하게 되면, 평지에 풍파를 일으키게 되고 멀쩡한 사람이 병을 앓게 것입니다.(2040~4123)



(3/3)----------------


삼재(三災) 아까마음으로부터 일어난다했지만,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 나오는 구녕은 바로 밑에 있는 구녁으로부터 모든 삼재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 자체는 형상이 없기 때문에 눈으로도 출입을 하고, 귀로도 출입을 하고, 코로도 출입을 하고, 입으로도 출입을 하고, 몸뚱이 사지백체와 팔만사천 모공(毛孔)으로도 출입을 합니다.

형상이 없기 때문에 없이도 출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뜻을 통해서, 의식을 통해서 출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놈 단속하기가 심히 어려운 것입니다.


이놈 하나를 지혜롭게 단속을 한다면 삼재는 영원히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활구참선(活句參禪)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 해버리면 일체 삼재는 나를 옹호하고 받드는 보호 신장(神將) 되어 것입니다. 바로 나의 권속(眷屬) 되고, 나의 제자가 되고, 나의 수호신이 되어 것입니다.


모든 팔만사천의 도적을 나의 명령 하에 움직이는 나의 충직한 군사가 것이며, 나의 제자가 것이며, 나의 권속이 되어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의 심왕(心王) 다스리는 데에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심왕을 다스리는 법이 바로 참선법(參禪法)이여.


참선은 일어나는 생각눈으로 무엇을 보면 희다, 검다, 누르다, 붉다, 크다, 작다, 저것은 사람이다, 짐승이다, 자동차다, 비행기다, 눈을 통해서 어떤 영상이 비치자마자 그러한 알음알이가 일어납니다.

알음알이가 일어나기 전에눈에 어떤 형상이 ! 비치자마자 거의 동시라고 만큼 알음알이가 일어납니다마는, 알음알이가 일어나기 전에이뭣고?’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때에도, 귀는 항시 열려져 있기 때문에 언제나 크고 작은 소리, 멀고 가까운 소리가 우리 귀에는 들려 수가 있습니다.

들려오면 무심코 스쳐가 버리기도 하지만 소리를 듣고서 어떠한 알음알이가 발생을 하게 됩니다. 발생을 하면 잠깐 발생하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으로 가지가 자꾸 벌어져 나갑니다.


가령 비행기 소리가 들렸다 하면, ‘비행기 소리가 들렸다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비행기는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인가 보다그리 생각하고,

비행기했다 하면은! 언젠가 우리 아저씨가 비행기를 타고 미국을 갔다그리 생각하고, ‘미국에 가서 사업이 잘되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거기서 비약을 가지고, 소련에 의해서 추락한 비행기를 생각하고 추락 비행기가 폭파할 때에 애석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생각하고, 이리 해서 끊임없이 가지에 가지가 뻗고 가지에 가지가 뻗어 가지고 계속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슬퍼지기도 하고, 속이 상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이것이 이런 식으로 소리 들었을 때에 그럴 뿐만이 아니라, 눈으로 그렇고, 코로 냄새를 맡을 그렇고, 몸에 춥고 더운 것을 느낄 별별 생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를 평생 동안을 그렇게 하고 세세생생(世世生生) 그렇게 해서,

((무기(無記) 탐진치 삼독심(三毒心) 거기서 이리저리 얽히고 머리카락 얽히듯이 얽히고 설켜 가지고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지게 되고, 이렇게 해서 새로운 무서운 () 적극적으로 형성해 나가면서 과보를 받으면서, 받으면서 짓고 지으면서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무량겁(無量劫) 오늘날까지 살아오고, 앞으로도 무량겁을 두고 그렇게 살아가게 것입니다. 무량겁의 생사윤회(生死輪廻) 근본적으로 다스리지 않고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정월에 일주일 동안 신수기도 함으로써 우리의 업장(業障) 소멸하고 그리고 모든 소원을 성취하기를 바란다고 하는 것은 우리 중생의 너무나 사려(思慮) 깊지 못한 바람이라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도 아니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칠일 기도를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하면서 거기에 그치지 아니하고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우리의 업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참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영원히 삼재(三災)라고 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서 생사(生死) 해탈(解脫)하는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을 저는 재삼(再三) 강조를 하는 것입니다.


생각 일어날 때에 바로이뭣고?’ 누가 나한테 욕을 해서 ! 귀에 거슬리는 바로 찰나에 다음 생각으로 옮겨가기 전에이뭣고?’

몸이 아파도이뭣고?’ 속이 상해도이뭣고?’ 배가 고파도이뭣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던지 항상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지금이뭣고?’하고 있는 바로 이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처음에-’ 소리부터 하는데 -’ 하는 바로 이놈이 무엇인가? 그러한 뜻으로 뭣고?


이렇게 찰나 찰나를 이렇게 야무지게 알뜰하게 단속을 나간다면, 생각 생각의 단속이 쌓이고 쌓이면 그래서 일구월심(日久月深)하면 그것은 철위산(鐵圍山) 무너뜨릴 있는 그러한 무서운 위력을 우리는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도 바로 문제를 이렇게 해결을 해서 그런 대성현이 되신 것입니다. 역대조사도 또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근본을 해결하지 않고서 지엽적으로 일을 해결할려고 하면 복잡하고, 이놈을 막아 놓으면 저기가 터지고, 저놈을 막으면 여기가 터지고, 이놈을 일으켜 놓으면 저놈이 자빠지고, 저놈을 일으켜 놓으면 이놈이 자빠지고, 도대체 어떻게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근원에서 해결하면 지엽적인 문제는 제절로 정돈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고, 어떠한 사업을 하거나 어떠한 사물을 다룰 때에도 항상 근본(根本) 찾아서 근본 문제를 해결을 할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려면은 지혜(智慧) 있어야 . 자기가 지혜가 없으면 지혜 있는 사람의 지도를 받아야 것입니다.


우리는 숙세에 선근(善根) 있어서 최상승법을 듣고 실천할 있는 그러한 길을 금생에 만났습니다. 우리에게는 철저하게 믿고 최선을 다해서 실천을 가는 일만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처음부터서 잘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공부는 지극히 방법은 간단하지만 너무 맛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맛이 없어서 되는 것인지 되는 것인지, 옳게 하는 것인지 잘못하는 것인지도 확실히 수가 없고, 할려고만 하면 무조건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조금 잘못하면 머리가 아프고, 조금 잘못하면 소화가 안되고, 이리저리 해서 여간해서 처음에 붙이기가 어렵습니다마는,


법문(法門) 자주 듣고, 좋은 도반들과 같이 애를 쓰고 열심히 나가다 보면 차츰차츰 요령을 터득하게 되고, 차츰차츰 공부해 나가는 길을 잡게 됩니다. 그러면은 그렇게 이것이 하기가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렇게 일양(一樣)으로 맛이 없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차츰차츰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않아도 들어진 때가 많고처음에는 아무리 들려고 해도 금방 생각이 들어오고, 겉으로는 들되 속으로는 의심이 간절(懇切)하지 못하고 생각이 노상 침노(侵擄)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망상(妄想)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냥 그건 고대로 두고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잠간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내쉬면서내쉴 때는 배가 차츰차츰 차츰 이렇게 홀쪽하게 하면서 그때이뭣고?’


번이고, 번이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한결같이 그렇게 나가면, 할려고 해도 제절로 화두가 떠억 들려지게 때가 오는 것입니다. 망상을 끊을려고 해도 제절로 망상이 없어지고, 마음을 고요히 할려고 해도 제절로 마음이 고요해져.


물론 간간이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일어나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고 나는 화두만 들면 바람이 귓전에 스쳐가듯이 어떠한 생각도 스쳐서 지내가는 것이지, 나에게 아무 별다른 해를 끼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가 비교적 순일(純一)하게 되어 가면 마음이 조용하고 편안하고 뭐라고 표현할 없는 어떤 감사한 생각 뭐라고 표현할 없는 기쁜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러한 생각에 떨어지지 말고, 지혜롭게 알뜰하게 화두를 참구해 나가고 잡드리 나가면, 오매(寤寐) 일여(一如)하게, 행주좌와 간에 일여하게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것입니다.


그러한 순일무잡한 경계가 일주일 이상 이렇게 나가면 반드시 화두를 타파해서 자기의 면목(面目) 요달(了達)하게 것입니다.


오늘은 삼재(三災) 소멸하는 신수기도 입재를 맞이해서 이미 있는 삼재는 소멸을 하고, 앞으로 돌아오지 아니한 삼재는 미리 예방을 있는 근본적인 묘한 방법을 말씀해 드렸습니다.

그러한 근본을 명심을 하시고 앞으로 일주일 동안 알뜰하게 기도를 하셔서 여러분의 크고 작은 소원을 성취하시기를 간곡히 빕니다.



범심불식성하구(凡心不息聖何求)리요  반료산다자일구(飯了山茶自一)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화락화개임시절(花落花開任時節)하니  나지세상기춘추(那知世上幾春秋)리오

나무~아미타불~


범심(凡心) 불식(不息)하면 성하구(聖何求)리오.

무릇 마음을 쉬지 아니하면, 범부(凡夫) 마음을 쉬지 아니하면, 우리의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마음을 쉬지 아니하면 어찌 성과(聖果), 성현(聖賢) 구하리오. 어찌 깨닫기를 바랄 수가 있으리오.


반료산다자일구(飯了山茶自一)로구나. 공양이 끝나고 산다(山茶), 잔을 마심이로다.


화락화개임시절(花落花開任時節)하니, 꽃이 지고 꽃이 피고 것을 시절(時節)에다 맡겨 버려. 꽃이 피면 대로, 꽃이 지면 대로, 세상 흥망성쇠(興亡盛衰) 영욕득실(榮辱得失) 그냥 거기에 맡긴다 그말이여.


거기에 맡겨 두고 나는 마음 닦아가는 나의 근본 문제를 충실히 나가면, 나지세상기춘추(那知世上幾春秋). 어찌 세상에 번이나 봄이 되었다 가을이 되었다 하는 것을 것이냐 그말이여.


자기의 근본사(根本事) 방치해 버리고 망각해 버리고, 피면 핀다고 거기에 굴림을 받고, 꽃이 지면 진다고 거기에 휘둘림을 받고, 무엇이 흥하면 흥한 데에 휩쓸리고, 무엇이 망하면 망한 데에 끌려간다면 그것을 어찌 참다운 인생이라 있으리오.


흥망성쇠와 꽃이 피고 지는 데에 일임(一任) 버리고, 나의 본분사(本分事) 충실하면 그것이 바로 인생을 참되게 살아가는 길일 것입니다.


모든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오고 모든 재앙은 입에서 나온다 했거늘, 오늘 신수기도 입재를 향해서 본의 아니게 재앙의 풍파를 일으키게 되었습니다.(4125~6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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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불불산향만로비~’ ; 남전보원(南泉普願) 선사의 제자, 장사경잠(長沙景岑) 선사의유산(遊山)’ 공안에 대한 삽계익(霅溪益) 선사 게송. [선문염송·염송설화 5](동국역경원刊) p31 참고.

(,)꾀꼬리,(,)꾀꼬리, 동자(同字).

*신수(身數)기도 ; 새해를 맞아 정초에 일년 동안의 안녕과 소원을 기원하는 기도.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②태어나는 .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③세간을 초월하는 . 출세간(出世間) 준말. 삼계(三界) 나오는 .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소승(小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대승(大乘)이라 하고, 전통의 보수파들을 낮추어 일컬은 .

②기원전 5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 사이에 분열된 불교 교단의 여러 부파, 부파 불교(部派佛敎) 말함.

③자신의 깨달음만을 구하는 수행자, 성문(聲聞)•연각(緣覺) 또는 그들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

④열등한 능력이나 소질을 갖춘 자를 위한 붓다의 가르침.

☆승()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대승(大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 이에 반해, 그들은 전통의 보수파를 낮추어 소승(小乘)이라 .

②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행자보살, 또는 그들을 위한 붓다의 가르침.

③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존칭. 위대한 가르침.

☆승()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 하는데,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

*참회(懺悔 뉘우칠 /뉘우칠 )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공안)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 ()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위패(位牌) ; 죽은 사람의 () 모시는 나무패.

*방편(方便 방법·수단 /편할 )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청풍납자(清風衲子 맑을 /바람 /옷을 꿰맴 /자식 ) ; 수행을 하여 맑은 기운을 지닌 스님을 청풍(清風), 맑은 바람에 비유하여 이르는 .

[참고] 운수납자(雲水衲子) ; 여러 곳으로 스승을 찾아 () 묻거나 수행을 하러 여러 곳으로 다니는 스님을 머무름이 없는 구름() () 비유하여 이르는 .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꼭대기에서 12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56 7천만 뒤에)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 뜻은 지족(知足).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음역어는갈마(羯磨)’이다.

*무장무애(無障無碍) ; 일이나 행동을 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방해가 없음.

*사지백체(四肢百體) ; 몸의 전체.

*지엽적(枝葉的) ; 사물이나 사건 따위에서 본질적이 아니라 부차적인 부분에 속하거나 관계된 .

*발로(發露) ; 숨은 것이 겉으로 드러나거나 숨은 것을 겉으로 드러냄. 또는 그런 .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 알리는 .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말할 /신신당부할 정성스러울 /간곡할 )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 간곡하게() 말씀하심().

*그러께 ; 지난해의 바로 전해. (동의어) 재작년(再昨年), 전전해(前前해), 지지난해, 전전년(前前年), 거거년(去去年).

*삼재(三災 /재앙 ) ; 사람에게 닥치는 3가지 재해(災害). 도병(刀兵 :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 큰병이 유행함) 있으며 십이지(十二支) 따라 든다.

*음양(陰陽) ; 우주 만물의 서로 반대되는 가지 기운으로서 이원적 대립 관계를 나타내는 . 달과 , 겨울과 여름, 북과 , 여자와 남자 등은 모두 음과 양으로 구분된다.

*오행(五行) ; 우주 만물을 이루는 다섯 가지 원소. (), (), (), (), () 이른다.

*술가(術家) ; 음양, 점술에 정통한 사람.

*근신(謹愼 삼갈 /삼갈 ) ; 말이나 행동, 마음가짐을 삼가고 조심함.

*염불(念佛) ;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과 같은 보살님의 이름을 외움. 흔히 어떤 일을 기원하며나무관세음보살이나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 소리 내어 외우는 일을 말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12에서.

〇念佛者는  在口曰誦이요在心曰念이니  徒誦失念하면於道無益이니라.

 염불이란 입으로 하면 송불이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염불이니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 아무 이익이 없으리라.


(註解阿彌陀佛六字法門이  定出輪㢠之捷徑也心則緣佛境界하야  憶持不忘하고口則稱佛名號하야  分明不亂이니如是心口相應이  名曰念佛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육자 법문은 바로 윤회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여 잊지 말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되 분명하고 일심불난(一心不亂)해야 하니, 이와 같이 마음과 입이 상응하는 것이 염불이다.

*독송(讀誦) ; 소리를 내어 () 읽음.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일심(一心) ; ①대립이나 차별을 떠난 평등한 마음. ②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마음. 통일된 마음. ③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천정한 마음. ④아뢰야식(阿賴耶識).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구(參究 헤아릴 /궁구할 ) ; ①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 ②참선하여 화두(공안)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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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적(六賊) ; (), (), (), (), (), () 육경(六境) 비유적으로 이르는 . ‘중생이 깨달음을 얻는 것을 방해하고 번뇌를 일으키는 여섯 도적들과 같다 뜻이다. (=육진六塵=육경六境)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 ; 많은 수의 악마의 군세(軍勢) 뜻함.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게송) 학도지인불식진~’ ; 장사경잠(長沙景岑)선사 게송. [선문염송·염송설화 5](동국역경원刊) p36 참고.

*식신(識神) ; ①심식(心識). ②분별의식(分別意識). 의식작용을 일으키는 .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자체. 깨달음 자체.

*본래신(本來身) ; 진여불성(眞如佛性).

*알음알이 ; ①어떤 인식대상에 대해 마음 또는 마음작용이 가지는, 인식대상에 대한 형상 이미지를 아는 것을 말한다.

②마음이 번뇌에 덮여있는 상태, 말하자면 거울에 때가 상태에서 가지는 이러한 앎을 깨달음[무루혜 無漏慧 : 모든 번뇌를 해탈(解脫) 성자(聖者) 지혜] 구분하여 알음알이라 한다.

*되풀이되다 ; (같은 말이나 일이)반복되어 행해지다.

*그릇 ; ①어떤 일이 사리에 맞지 아니하게. ②어떤 일이나 형편이 잘못되게. ③어떤 상태나 조건이 좋지 아니하게.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

아버지를 죽인 , 어머니를 죽인 , 아라한을 죽인 ,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살가죽을 벗겨 속에 집어넣거나 쇠매〔鐵鷹〕가 눈을 파먹는 따위의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

*참회(懺悔 뉘우칠 /뉘우칠 )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사분정진(四分精進) ; 참선이나 기도를 하루 (새벽, 오전, 오후, 저녁) 시간을 정해 정진하는 .

*시비(是非) ; ①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 ②이러니저러니 좋지 않게 트집을 잡아서 말함. ③옳고 그름.

*방편(方便 방법·수단 /편할 )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도량으로 읽음.

*묵언(默言) ; 말을 하지 않음.

*절도(節度) ; 일이나 행동 따위를 정도에 알맞게 하는 규칙적인 한도.

*동서고금(東西古今) ; 동양과 서양, 옛날과 지금이라는 뜻으로, 사람이 살아온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를 아울러 이르는 .

*구녕, 구녁 ; ‘구멍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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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神將) ;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불법(佛法) 지키는 신장을 이른다.

*심왕(心王) : 의식 작용의 본체。객관(客觀) 대상에 대하여 일반상(一般相) 인식하는 정신 작용。여기에 육식(六識), 팔식(八識), 구식(九識) 구별이 있다.

*참선법(參禪法) ; ①선() 수행을 하는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동자(同字).

*생사윤회(生死輪廻 /죽을 /바퀴 /빙빙돌 )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 죽고()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 돌듯이() 반복함.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 행동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장애() 생기는 .

*지극정성(至極精誠) ; 더할 없이 극진한 정성(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재삼(再三) ; 두세 . 또는 번씩. ‘거듭’, ‘여러

* 무엇고(이뭣고 是甚 시심마,시삼마) : ‘ 무엇고? 화두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 무엇고?'(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

*철위산(鐵圍山) ; 철륜위산(鐵輪圍山)이라고도 . 불교의 세계설에서는 수미산(須彌山) 중심으로 대륙과 9개의 산이 있고, 산과 사이에 8개의 바다가 있는데, 아홉 번째 가장 바깥쪽의 () 산을 말한다.

*지혜(智慧) ; ①모든 현상의 이치와 선악 등을 명료하게 판단하고 추리하는 마음 작용.

②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는 마음 작용.

③미혹을 끊고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주시하는 마음 작용.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을 떠난 경지에서 온갖 차별을 명료하게 아는 마음 작용.

*선근(善根) ; 좋은 과보를 받을 만한 착한 (행위. 온갖 () 낳는 근본. 청정한 행위를 근성.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 수행하는 . 불법(佛法) 닦으면서 사귄 .

*일양(一樣) ; ①한결같은 모양. 또는 같은 모양. ②한결같이 그대로. 또는 그대로.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정성스런절박할 )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침노(侵擄) ; 성가시게 달라붙어 손해를 끼치거나 해침.

*망상(妄想) ;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오매(寤寐 잠이 /잠잘 ) ; 자나깨나 언제나.

*일여(一如) ; 완전히 하나가 되어 나눌 없음.

*면목(面目 / )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게송) 범심불식성하구~’ ; 법진일(法眞一) 선사 게송. [선문염송·염송설화 1](동국역경원刊) p253 참고.

*범부(凡夫 무릇보통 /남편사내 ) ; 번뇌(煩惱) 얽매여 생사(生死)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성과(聖果) ; 성자(聖者) 지위. 성인(聖人) 도달경지[]. 성자, 성인이란 무루혜(無漏慧번뇌를 끊어내는[無漏] 지혜[]) 일부를 성취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도(聖道, 성스러운 , 성인의 ,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 들어선 사람들을 말한다.

*공양(供養) ; ①불()•()•() 삼보(三寶) 음식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

*시절(時節) ; 어떤 시기나 .

*흥망성쇠(興亡盛衰) ; 흥하고 망함과 성하고 쇠함. 어떤 사물·현상이 생겨나서 소멸하는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영욕(榮辱 영화 /욕될 ) ; 흔히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철되는 영광(榮光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 치욕(恥辱 부끄럽고 욕됨) 아울러 이르는 .

*득실(得失 얻을 /잃을 ) ; ①이익과 손해. ②얻음과 잃음. ③성공과 실패.

*근본사(根本事) ; 참선법을 통해 내가 나를 깨달아 생사해탈을 하는 .

*일임(一任) ; 모두 맡김.

*본분사(本分事) ; ①깨달음. ②인간이 부처라고 하는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

*재앙(災殃) ; 뜻하지 않게 생긴 불행한 변고. 또는 천재지변으로 말미암아 생긴 불행한 사고.

*풍파(風波) ; 세찬 바람과 거센 물결.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3. 11. 27. 16:08

§ 정진(精進)이란? 정진심(精進心)을 일으킨 것은 벌써 바른 정진이 아니다.

 

**송담스님(No.140) - 1981년 3월 첫째일요법회(용140)

 

약 17분.

 


해제가 지난 음력 대보름에 끝나고, 오늘이 벌써 열흘째 되었습니다.
앞으로 4월15일, 여름결제 때까지는 80일 가량이 남아 있습니다. 그 동안에 춥도 덥지도 않는 이러한 좋은 계절을 이용을 해서 산철 결제를 해 가지고 또 열심히 정진을 할려고 하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대단히 갸륵하고 고마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 정진(精進)이라 하면,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고 잠을 덜 자는 것으로써 정진을 삼고, 묵언(默言)을 해 가지고 말을 않는 것으로써 정진을 삼는다든지, 또는 아침밥을 안 먹는다든지 오후불식(午後不食)을 해 가지고 밥을 적게 먹는 것으로써 정진을 삼는다든지,
요새 무슨 그런 잠 안자는 거, 밥 안먹는 거, 말 안하는 거, 그러한 것을 정진으로 삼는 분은 안 계시겠지만,

좀더 알뜰히 공부하기 위해서, 공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해서,
혹 잠을 1~2시간씩 덜 자 보기도 하고, 말도-입을 열었다 하면 쓸데없는 말이 나오게 되고 시비(是非)에 참견하게 되고 그러니까, 그러한 뜻에서 묵언도 하고 또 가행정진(加行精進)도 하고 그러하신 걸로 생각을 할 때에,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마는,
말을 아니한 것보다는, 필요한 말 한마디 딱 해 버리고 또 화두를 들고 차라리 그것이 낫지, 아주 묵언을 하면 꼭 해야할 말을 아니하니까, 자연히 필답(筆答)으로 말하게 되고, 손짓으로 의사를 소통하게도 되고 하니 더 복잡하게 되고 답답하다 이 말씀이여.

조금이라도 공부에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해서 잠을 덜 자고 가행정진 하는 것 대단히 좋지만, 가행정진을 한다 해 가지고 잠을 적게 자 놓으면 그 이튿날 오히려 낮 정진할 때에 혼침에 빠지기가 쉬웁다고 볼 때에,
차라리 5시간이나 6시간 푹 자 주고, 그 대신 그 이튿날 성성(惺惺)하게 정진을 해 나가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이라고도 보는 것입니다.

아침을 굶는다든지 또는 저녁을 굶는다든지 또는 단식을 한다든지, 이래 가지고 ‘정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까’ 이러한 생각을 가진 것 대단히 참 일리(一理)가 있지만,
차라리 세 때를 너무 적게 먹지도 않고 너무 과식하지도 않고 잘 저작(咀嚼)을 해서 적당히 먹고서, 원기(元氣)를 차려서 그래 가지고 정진을 알뜰히 하는 것이 훨씬 더 지혜롭고 효과적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정진(精進)이라 하는 것은, 바로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하고 자기를 깨달은 사람만이 정진은 옳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산대사께서도 선가귀감(禪家龜鑑)에 ‘미심수도(迷心修道)는 단조무명(但助無明)이다.’ ‘마음을 미(迷)해 가지고 도를 닦는다고 하는 것은, 다맛 무명(無明)만 더 치성(熾盛)하게 만드는 결과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헌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정진심(精進心)을 일으킨 것은 벌써 바른 정진이 아니다. 정진심-오늘부터서 잠을 2시간씩 덜 자리라, 밥을 한끼씩을 덜 먹고 하리라, 묵언을 하리라, 오늘부터서는 가행정진을 하리라, 좀더 열심히 하리라-이러한 정진할려고 하는 마음을 일으키면 벌써 정진에서 탈선하는 것이다.

어떠한 것이 바로 정진한 것인고?
당체(當體)가 변적(便寂)이다. 당체가 문득 공(空)한 것이다. 당체가 변시(便是)다.

당체(當體)!
눈으로 보는 놈, 귀로 듣는 놈, 코로 맡은 놈, 혀로 맛보는 놈, 손으로 만질 때 춥다 더웁다 부드럽다 깔끄럽다. 그 당체가 문득 고요해야 한다. 당체가 문득 이놈이다.

눈으로 볼 때 ‘이무엇고?’, 귀로 들을 때 ‘이무엇고?’, 코로 냄새를 맡을 때 ‘이무엇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앉았을 때, 섰을 때, 걸어갈 때, 차를 탈 때, 음식을 먹을 때, 일을 할 때, 말을 들을 때, 말을 할 때, 일체처 일체시에 무엇을 하든지 간에, 바로 당체가 변적(便寂)으로 이렇게 공부를 다져 나간다면,
잠을 덜 잘라고 할 것도 없고, 잠을 더 잘라고 할 것도 없고, 밥을 더 먹을라 할 것도 없고, 덜 먹을라 할 것도 없고, 말을 하느니 말을 안 하느니, 거기에 무슨 그러한 군더더기 생각을 일으킬 필요가 있겠습니까?

정진하는 사람은 스스로 시비심(是非心)을 일으키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시비를 일으켜 가지고 그 시비 속에 자기가 말려들어가 가지고, 그래 가지고 마음이 불안하고 짜증이 나고 불평과 불만이 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한테 시비를 걸어와도 내가 거기에 끄달리지 아니해야 수행인이거늘, 자기가 자기 속으로 공연히 시비를 일으켜 가지고, 자기가 그 시비의 물결 속에 휘말려 들어가 가지고,
그 원망을 남에게 갖다가 하고, 그 원인을 남에게 갖다가 전가(轉嫁)를 시키는 그러한 마음가짐으로서야 어찌 최상승 참선객(參禪客)이라 하겠습니까?

어느 선방이 좋다, 어느 사람이 좋다, 어느 사람은 나쁘다, 어떠한 사람하고는 내가 같이 공부를 아니하리라, 어떤 사람하고 같이 하면 좋다, 이러한 생각들이 너무나도 소극적이고 너무나도 소승적인-최상승 활구참선을 하는 최상승 활구참선객답지 못한-그러한 생각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최상승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라도 어떠한 사람을 만나거나 어떠한 일을 당할지라도, 최상승적이어야 하고, 최상승 참선객다웁게 살아가야 하고 공부를 해 가야만 될 것입니다.
화두를 들고 명색(名色)이 활구참선을 한다는 사람이, 마음자세가 너무나도 소극적이고 너무나도 소승적(小乘的)인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공부를 한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아무리 해 봤자 공부에는 조금도 진취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첫째는 (마음)자세부터 바로잡어버려.
그렇다면은 차 가운데도 좋고, 장바닥도 좋고, 산중(山中)도 좋고, 도시도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고요한 데만 찾고, 편한 데만 찾고, 일 없는 데만 찾아서 공부하면 무사안일(無事安逸)에 빠지고, 오히려 해태(懈怠)에 빠지고, 조그마한 일에도 시비(是非)가 일어나고 짜증이 나고 이럴 것입니다.

마음 하나를 대승적이고 최상승적인 그러한 자세를 가질 때는, 눈으로 무슨 색상이 나타나도 상관이 없고, 귀에 어떠한 온갖 소리, 사람소리, 짐승소리, 어떠한 기계소리, 새소리, 물소리가 들린다 한들 무슨 상관이 있으며,
오히려 그러한 소리가 내 귀에 울림으로써 그것을 계기로 해서, 정신을 차려 가지고 화두를 거각하고 생각을 새롭게 가다듬는다면, 오히려 그러한 색상 그러한 음성이 없는 것보단 더 나을 것입니다.

최상승 참선을 하는 사람은 ‘니가 주인이다 내가 주인이다, 니가 객이고 나는 주인이다’, 그런 주객-주관, 객관이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내다, 대상이다’, 그러한 것도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주객 또는 나다, 대상이다’ 이러한 소견, 이러한 생각이 결국은 나를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육도윤회(六途輪廻)로 나를 끌어가고야만 말게 되는 것입니다.

한 생각 일어날 때 ‘이뭣고?’, 눈으로 무엇을 볼 때 ‘이뭣고?’, 귀로 무엇을 들을 때 ‘이뭣고?’, 누가 나를 칭찬한다고 해서 기뻐할 것도 없고 나는 ‘이뭣고?’, 누가 나를 비평하고 나의 흠처(欠處)를 말을 하고 비방을 한다 하더라도 거기에서 속이 상할 것이 아니라 나는 ‘이뭣고?’

이렇게 화두로써 의단(疑團)으로써, 나를 다스리고 모든 것을 다스려 나갈 때 주객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거기에는 주(主)와 객(客)이 없기 때문에 일체처 일체시가 바로 ‘참나’ 찾는 선불장(選佛場)이 되는 것이고,
이 법계(法界)에 가득차 있는 것은 나를 위한 불보살(佛菩薩)의 화현(化現)이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법문(法門)일 것입니다.

눈을 감아도 비로자나불을 친견하고 눈을 떠도 삼세제불(三世諸佛)을 친견할 때에, 꿈에 부처님만 보고 꿈에 스님만 봐도 업장(業障)이 소멸하고 소원을 성취한다는데,
현실세계에 있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눈을 감으나 눈을 뜨나 불보살을 친견하고 불보살의 법문을 들을 수 있게 된다면, 어디에 육도(六道)가 있으며 어디에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이가 있겠습니까?

팔만사천 마군이는 나의 팔만사천 번뇌(煩惱), 나의 일신상(一身上)에서 일어나는 팔만사천 번뇌가 돌아서 나한테로 되돌아올 때에 그것은 마군이로써 나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념(一念)이 불생(不生)하면 팔만사천 마군이는 자취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고 이렇게 닦아 가는 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인 것입니다.(23분33초~40분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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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精進) ; 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불교] 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오후불식(午後不食) ; 정오(正午), 낮 열두 시가 지나면 먹지 않는 것.
*시비(是非) ; ①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 ②옳고 그름.
*가행정진(加行精進) ; 어떤 일정한 기간에 일상생활보다도 좌선정진(坐禪精進)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함.
*필답(筆答) ; 글로 써서 대답함.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저작(咀嚼 씹을 저,씹을 작) ; 음식물을 입에 넣고 씹음.
*선가귀감(禪家龜鑑) ; 조선 서산대사(휴정, 1520-1604)가 경전과 어록 중에서 수행의 지침이 될-선종(禪宗)을 중심으로-가장 요긴하고도 절실한 부분을 가려 뽑은 불교 개론서.
*무명(無明) ; 모든 현상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는 근본 번뇌. 사제(四諦)에 대한 무지로서,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 번뇌. 본디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원초적 번뇌.
*치성(熾盛 성할 치,성할 성) ; 불길이 일어나는 것과 같이 성하게 일어남.
*당체(當體) ; 본체(本體). 참 이치. 모든 법(法)의 실상(實相).
*전가(轉嫁 돌릴 전, 떠넘길 가) ; 잘못이나 책임 등을 남에게 떠넘겨 덮어씌움.
*참선객(參禪客)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소승적(小乘的) ; 작은 일에 얽매이는. 또는 개인의 이익이나 작은 이익에 집착하는.
*무사안일(無事安逸) ; ①아무런 일이 없이 편안하고 한가함. ②일을 쉽게 생각하고, 편안하게만 처리하려는 태도.
*해태(懈怠 게으를 해,게으를 태)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육도윤회(六途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흠처(欠處 모자랄 흠,머무를 처) ; 잘못되거나 완전하지 못한 점.
*선불장(選佛場) ; 부처(佛)를 뽑는(選) 장소(場)라는 뜻.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곳.
[참고]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 ‘개당보설(開堂普說)’에, 방 거사(龐居士)의 게송이 아래와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법(無爲)을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공(空)해 급제하여 돌아가네.’ (통광 스님 역주 ‘고봉화상선요•어록’ p37,46에서)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를 의인화한 부처.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 ; 많은 수의 악마의 군세(軍勢)를 뜻함.
[참고 -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 선가귀감 十九, p64에서]

* ‘일념(一念)이 불생(不生)하면’ ; [참고] ‘경계를 당하여 마음이 일지 않은 것을(見境心不起) 나지 않는다고 이름하고(名不生), 나지 않는 것을 무념이라 하며(不生名無念), 무념을 해탈이라 하느니라(無念名解脫).(선가귀감 四四, p103에서)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