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법보재)2018. 4. 24.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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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3) (게송)제법종인생~ / 법신게 / 무생(無生), 생사는 본래 없다 / 화장(火葬) 권고 / 만년위패 제도의 좋은 점 / (게송)일체유위법~ /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아라.

 

우리는 이 세상에 사람이 태어났다가 한평생을 살다가 늙어서 병들어 죽는데, 태어난 것을 ‘생(生)’이라 하고, 인연이 다해서 숨을 거두는 것을 ‘죽었다’고 그렇게 말하는데. 부처님께서는 ‘인연으로 좇아 생한다. 인연이 다하면은 멸한다’ 그 말씀은 「생사(生死)는 본래 없다」고 하는 뜻을 밝히신 것입니다.

 

만년위패 제도는 돌아가신 영가를 위해서도 좋고, 살아있는 사람에도 정법을 믿고 참선을 해서 해탈(解脫)을 증득을 해가지고 나아가서는 일체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그러한 대도사(大導師)가 될 수 있는 길을 가게 되니 이 만년위패 제도 이것이야말로 조실 스님께서 우리에게 열어놓으시고 창설해 주신 그 자비와 지혜를 정말 뼛속 깊게 감사하게 우리는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생사 속에서 살면서 영원히 육체적인 생사를 면하는 법은 없습니다. 생사는 반드시 오고야만 마는데, 그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으면 생사 속에서 해탈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불법(佛法)이요, 정법이요, 활구참선법입니다.

 

**송담스님(No.683)—2004년 법보재 법회(04.05.04) (용683)

 

(1) 약 21분.

(2) 약 17분.

 

 

(1)------------------

 

제법종인생(諸法從因生)이요  제법종인멸(諸法從因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인연진고멸(因緣盡故滅)이라  아작여시설(我作如是說)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부처님께서 법신게(法身偈)를, 법신송(法身頌)을 설하시기를, 제법(諸法)은 종인생(從因生)이요. 모든 법(法)은 인연(因緣)으로 좇아 났으며 모든 법은 인연으로 좇아 멸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람이 태어났다가 한평생을 살다가 늙어서 병들어 죽는데, 태어난 것을 ‘생(生)’이라 하고, 인연이 다해서 숨을 거두는 것을 ‘죽었다’고 그렇게 말하는데.

부처님께서는 ‘인연으로 좇아 생한다. 인연이 다하면은 멸한다’ 그 말씀은 「생사(生死)는 본래 없다」고 하는 뜻을 밝히신 것입니다.

 

왜 분명히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것이 생이고, 숨을 거둔 것을 죽는다고 하는 것인데 어째서 생사가 없다고 하셨느냐?

 

우리 중생의 생각으로는 조금 납득하기가 어려운 면이 없지 않지마는,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 중생의 눈으로는 새로 생했다고 말할 것이나 사실은 그 근본 자체는 생한 것이 없고, 다맛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의 인연이 모여가지고 새로 태어난 것처럼 보이고,

그 사대가 흩어져 인연이 다하면은 죽은 것처럼 보이나, 다맛 인연이 다해서 우리 중생의 눈에 죽은 것으로 보일 뿐 그 본체는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고 그것을 무생(無生)이라고 한다.

 

중생은 그 본체를 보지 못하고, 껍데기로 보이는 것만 보고 새로 태어났다고 기뻐하고 나중에 일평생을 살다가 인연이 다해서 숨을 거두면 죽었다고 그것을 슬퍼하지마는, 그것은 본체를 보지 못한 탓으로 그런 것이다.

이와 같이 새로 태어나고 죽고 하는 것은 그것은 인연이 뭉쳤냐, 인연이 흩어졌느냐 그 문제지 ‘생사는 본래 없다’고 하는 법신(法身) 본체를 우리가 분명히 깨닫는다면은 부처님의 말씀이 조금도 거짓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확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법보재(法寶齋)를 맞이해서 비구, 비구니, 사미, 행자, 청신사, 청신녀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 법요식(法要式)에 참례했습니다.

이 법보재라고 하는 것은 과연 어떠한 뜻으로 인해서 이 법보재가 생겨났느냐? 무슨 목적으로 이 법보재가 생겨났느냐?

여기에 참석하신 여러분은 대부분 다 잘 알고 계시겠지마는 간단히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현재 여러분이 보신 바와 같이 법보전(法寶殿) 안에는 오늘 7만9천3백9번까지 위패(位牌) 번호가 나와 있고, 이 위패에 모셔진 영가(靈駕)의 수는 12만2천2백5십5위에 영가가 봉안이 되었습니다.

 

이 영가 가운데에는 제 1번에 전강(田岡) 대종사 조실스님의 아버님과 어머님의 위패가 1번에 모셔져 있고 그리고 그다음에는 인연 있는 청신사 청신녀 또 비구 비구니, 다 이승을 하직한 분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데 그 가운데는 대통령을 지내신 분도 있고, 장관 국회의원을 지내신 분도 있고, 교수님 박사님도 있고, 정치가 예술가 학자 농민 상업을 하신 분, 가지각색의 직업을 가지신 분들이 있습니다.

학생도 있고, 그 가운데에는 잘 사시다가 돌아가신 분도 있고, 교통사고로 가신 분, 자살하신 분, 물에 빠져 돌아가신 분, 참 각양각색에 영가들이 모셔져 있습니다마는.

 

아까 법신 게송에 말씀하신 부처님의 뜻에 입각해서 본다면은 인연이 있어서 이 세상에 왔다가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의 인연이 다해서 숨을 거두신 분들이고,

깨달은 눈으로 보면은 생사는 본래 없다고 볼 때에 슬퍼할 것도 없고 기뻐할 것도 없는 것이다마는, 우리 중생들은 깨닫지를 못했기 때문에 분명히 생(生)도 있고 사(死)도 있다고 볼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 만년위패(萬年位牌) 제도를 조실 스님께서 창설하셨냐 하면은 우리의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 또는 아들과 딸, 형제자매, 친구, 많은 영가들이 영가의 상태로 좋은 곳으로 가지 못하고 거리중천에 고통을 받고 있는 영가가 너무 많기 때문에 그 영가로 하여금 첫째, 안식처를 마련해 주고, 나아가서는 그 영가로 하여금 법문(法門)을 듣고 천도(薦度)를 받아서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극락세계(極樂世界)에 왕생(往生)해 드리기 위해서 이런 만년위패 제도를 창설을 하셨습니다.

 

거기에 그칠 뿐만 아니라 효자 · 효부들, 효도하는 정성으로 돌아가신 분들을 만년위패에 모셔 드림으로 해서 그 인연으로 그 유족들도 정법(正法)을 믿게 되고, 정법에 의해서 열심히 참선(參禪)을 하고 수행을 함으로 해서 업장(業障)을 소멸하고 결정코 극락세계나 도솔천내원궁에 가시도록,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지 않고, 생사고해(生死苦海)에 윤회를 하지 않고 해탈도를(解脫道) 증득하게 하려는 그러한 대자비심으로 이 만년위패 제도를 창설하신 것입니다.

 

어째서 만년위패를 모시면은 영가가 해탈도를 증득하냐?

 

보통 사람이 죽으면 땅에다가 매장을 하는데 한국에서는 풍수지리(風水地理), 그런 설에 입각해서 명당(明堂)을 찾아 가지고 좋은 길지(吉地)에다가 모시는데, 우리나라는 거의 종교가 되다시피 되어왔습니다. 현재도 역시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는 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땅에다가 매장을 하면 땅속에도 물이 있고, 불이 있고 그래서 얼마 안 가서 새카맣게 타기도 하고, 물구덩이에 쟁기기도 하고, 나무뿌리 풀뿌리가 들어가서 이 사대삭신과 눈 귀 코로 얽혀가지고 그 흉참(凶慘)하기가 말로 할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무덤 속에 개미가 들끓기도 하고, 심지어는 뱀이 들어가서 살기도 합니다.

 

명당을 써서 자손이 잘되고 복을 받기 원해서 명당을 썼다가 이러한 차마 말로 하기도 어려운 흉참한 상황을 만나게 되면 그 영가는 자기 가정에 들어가서 ‘내가 이러한 상황에 놓여있으니 나를 다른 데로 옮겨다오. 나를 화장을 해다오’

그렇게 말을 해도 영가와 살아 있는 사람과는 여간해서 언어가 의사가 소통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집안에는 우환(憂患)이 끓고, 비명액사로 가고, 그러한 재난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수장법(水葬法)이 있는데, 죽으면 물에다가 갖다가 던지기도 하고, 여러분이 '바이킹'이라고 하는 영화를 보신 분은 아시겠습니다마는 배에다가 장작을 쌓고 그 위에다가 시체를 놓고 그래가지고 그 배를 저 바다에다 띄우고 화살에다 불을 붙여서 화살을 쏴가지고 그 배에 명중을 시키면 그 배에서 불이 나가지고 또 시체가 타는, 물 가운데에서 화장을 하는 그러한 화장법도 있고,

아주 물에다가 시체를 던져가지고 물고기들로 하여금 시체를 뜯어먹게 하는 그런 풍속도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풍장(風葬)이라고 하는 방법이 있는데, 사람이 죽으면 숲속에다 갖다가 버립니다.

버리면, 독수리나 산짐승들이 나와서 그걸 다 뜯어먹어서 뼈만 앙상히 남고, 뼈가 남으면은 그것이 풍마우습(風磨雨濕)해서 세월이 지내가면은 삭아서 언젠가는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에 화장(火葬)이 있는데, 화장법은 돌아가시면은 염불을 하면서 화장터에 가서 화장을 하기도 하고 또 스님네들이 돌아가시면은 산중에서 스님네끼리 모여서 장작을 쌓고 화장을 하는 예식도 있습니다.

땅에다가 매장하고, 물에다 수장하고, 산에다가 버려가지고 풍장을 하고, 불로 태워서 화장을 하고, 네 가지 법이 있는데 부처님께서는 화장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왜 화장을 하냐 하면은, 앞에 말한 세 가지 법보다는 훨씬 좋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왜 좋으냐 하면은 땅에다 묻어도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가기 마련이고, 흙으로 완전히 돌아갈 때까지는 그런 짐승들로 침해를 받고, 풀뿌리에 얽혀서 침해를 받고 그런 일이 없고.

 

땅에다 묻기로 하면은 병든 사람에 만약에 전염성이 있는 병을 앓다가 죽은 사람을 땅에다 묻으면 그놈이 썩어서 그 균이 지하수로 스며들면 그 균이 다른 사람에게 또 전염이 될 우려성도 있는데, 화장을 하면 거기서 완전히 살균이 되어가지고 그 화장한 그걸로 인해서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까닭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죽으면 땅에다 묻거나, 풍장을 하거나, 수장을 하면 영가가 자기가 한평생 의지하던 그 육체가 있는 곳에 가서 거기에 집착을 해가지고 좋은 곳으로 가지 못하고 거기에 집착을 해가지고 머물러 있게 되는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장을 해서 물에다 뿌리거나, 산에다 뿌리면 육체에 대한 애착을 가질 필요가 없고, 더군다나 그 영가로 하여금 편안하게 안주할 곳을 마련해 드리면 거기에 계시다가 인연이 돌아오면은 다른 곳으로 탄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물며 용화사 이 만년위패처럼 여기다가 딱 모셔 놓으면 아침마다 축원(祝願)을 해 드리고, 명절 때마다 차례(茶禮)를 봉행을 하고, 법회 때마다 영가로 하여금 법문을 듣게 해서 이생뿐만이 아니라 무량겁을 두면서 오늘날까지, 이생에 올 때까지 수없는 생사윤회 속에서 겪은 원한심, 슬픔, 괴로움, 그러한 영가들도 여기서 그렇게 최상승(最上乘) 법문을 들으면서 영가로서 그 업장이 소멸이 되고 원한심이 다 소멸이 되어서, 그리고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돌아오면은 도솔천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을 하실 것이고,

또 사바세계에 인연이 있으면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하시되 좋은 인연으로 태어나서 자기의 사명을 완성을 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좋은 일도 하고, 자기 자신이 못다한 한이 있으면 그 목적을 달성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만년위패에 동참을 하시면은 돌아가신 그 영가도 좋고, 그 영가를 만년위패에 모신 그 유족들도 그 인연으로 정법을 믿고, 좋은 일도 하고 나아가서는 정법에 의해서 참선을 열심히 하신다면은 그분은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생사 문제가 거기서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만년위패 제도는 돌아가신 영가를 위해서도 좋고, 살아있는 사람에도 정법을 믿고 참선을 해서 해탈(解脫)을 증득을 해가지고 나아가서는 일체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그러한 대도사(大導師)가 될 수 있는 길을 가게 되니 이 만년위패 제도 이것이야말로 조실 스님께서 우리에게 열어놓으시고 창설해 주신 그 자비와 지혜를 정말 뼛속 깊게 감사하게 우리는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처음~20분56초)

 

 

 

 

 

(2)------------------

 

그러한 만년위패 제도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는 방방곡곡에서 형제자매 법보가족(法寶家族) 여러분들이 이 한 법당에서 우리는 법요식을 봉행하고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그리고 오늘 천도 법요식을 함께 거행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해서 우리는 한 가족이 되었고, 한 도반이 되어서 한 분도 빠짐없이 세세생생에 다시 또 한 가족으로 만나고, 한 같은 도반으로 만나서 결정코 부처님 불회상(佛會上)에 만나고 정법도량(正法道場)에 만나서 우리는 영원히 생사해탈의 길을 가게 되고, 나아가서는 이 법보가족이 못 된, 만년위패 제도가 없는 분도 우리들로 인해서 다 한 가족이 되어서 손에 손을 잡고 해탈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먼 데에서 이렇게 오늘 법보재일을 잊지 않고 동참해주신 여러 형제자매 도반들께 이 원장으로서 대단히 반가운 인사와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이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이라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이 게송은 금강경(金剛經)의 게송(偈頌)입니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모든 유위법(有爲法)은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다. 꿈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이다. 풀 끝에 이슬과 같고, 번쩍하다 사라지는 번갯불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이니라. 마땅히 이와 같이 달관(達觀)을 할지니다.

 

우리의 생사고(生死苦)는, 중생은 생사고, 생로병사의 고통으로 해서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하는데,

그 원인은 모든 법이, ‘함이 있는 법[有爲法]’이 꿈과 같고, 꼭두각시와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번갯불과 같다고 하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기 때문에 생사윤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 반야심경(般若心經)을 못 외우신 분이 안 계시겠지마는, 반야심경에 근본 뜻이 그 첫 줄에 나오는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이다.

오온(五蘊)이 다 공한 뜻을 비추어보면, 오온이라는 게 무엇이냐 하면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거든. 색(色)은 우리의 가깝게 말하면 육체고, 수상행(受想行)은 우리의 정신 작용이고, 끝터리 식(識)은 정신 작용을 일으키는 그 본체 본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마디로 쉽게 말해서 우리의 육체와 정신이, 또 정신작용이 그것이 공(空)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해가지고 거기에 집착을 하는 데에서 모든 슬픔과 고통과 원망이 일어나는 것인데, 그것은 공한 것이다.

 

이 ‘공했다’고 하는 뜻은 대단히 깨달아야만 확실히 아는 것이지 이론적으로 설명하기도 어렵고, 이론적으로 알아 갖고는 '비추어 본다, 조견(照見)'이라고 하는 것에 계합(契合)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공했다’고 하는 것을 무식하게 쉽게 말하면 그것은 ‘없다’고 한 말과 아주 가깝습니다마는, 조끔 뜻이 다릅니다.

 

있기는 있으되 사실은 없다고 하는 거여.

 

그림자도 분명히 있지, 없는 것은 아닌데, 그림자라고 하는 것은 그 본래는 그것이 공한 것이거든.

그림자도 그렇고, 물거품도 그렇고, 꿈도 그렇고, 환(幻)도 그렇고, 그런 것은 우리 중생의 눈에는 분명히 있는 것으로 보이나 사실은 그것은 공한 것이여.

 

공한 것을 실지로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것이 그것이 중생의 소견이고.

확실히 그것은 본래 공한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깨닫게 되면은 생사가 없는 도리를 바로 깨닫게 되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해탈이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참선하는 것도 그 이치와 계합을 하기 위해서 참선을 하는 것이고, 경을 읽는 것도—그 이치와 확실히 그것을 요달(了達)하기 위해서 부처님께서 경을 설하셨으니 경을 읽는 것도 그 도리를 깨달아야만 되는 것인데, 무식하거나 유식하거나, 무슨 직업을 가졌거나 간에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참선법이여.

 

‘이 몸뚱이 끌고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앉아서나 서서나, 걸어갈 때나 밥 먹을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미운 생각이 났거나 원망하는 생각이 일어나더라고 바로 그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이렇게 함으로 해서 미운 생각도 없어지고 원망하는 생각도 없어지고, 슬픈 생각도 거기에서 없어질 것이다 그말이여.

 

그것은 열심히 한 사람은 누구라도 그것을 체험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열심히 해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이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고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결국은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참선하는 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을 못하고, 사무실에서 녹음테이프를 구해가지고 가셔서 댁에서도 열심히 듣고 열 번, 스무 번, 백 번을 들으면서 앉는 자세와 호흡하는 법과 화두를 참구(參究)하는 법을 고대로 열심히 실천을 하시면은 반드시 여러분도 부처님과 조사(祖師)와 같이 깨달음을 얻으시게 될 것입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 법보가족 여러분!

정말 내가 목이 터지도록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한 말씀은 이 말씀 하나뿐입니다. 이것을 실천함으로써만이 모든 고통을 해탈하실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인생으로써 돈도 벌어야 하고, 명예도 있어야 하고, 권리도 있어야 하고 또 아들딸도 있어야 하나, 그것은 진정한 우리의 구경(究竟)의 목적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그것을 추구하다 보면은 마음대로 되지도 않고 원한만 남고 고통과 연결이 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정법을 믿고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야 원수도 없어지고, 미운 사람도 없어지고, 한 가족끼리도 서로 화목을 하게 되고, 이웃과도 화목을 하게 되고,

온 국민이 이것을 하면은 온 국민이 설사 정치를 하더라고 나라가 망한 꼴을 보는 그러한 정치는 안 하게 될 것이고, 온 나라가 이것을 하게 되면은 자기 나라의 재산, 자기 나라만 잘살기 위해서 이웃나라를 침범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남북이 갈라져 있습니다마는 절대로 우리가 적이 되어가지고 싸울 상대가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단군(檀君)의 한 핏줄을 이어받은 동포인 것입니다.

지금 북한은 용천 폭파사건이 일어나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특히 학생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 동포이고 같은 가족이기 때문에 분(分) 따라서 많고 적고 간에 거기에 의연금품(義捐金品)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이 사건은 몇년 전에 이리(裡里)에도 큰 폭파사건이 일어났습니다마는 앞으로 이십 년 내지 삼십 년 안에 울산 지방에 오사카와 고베에 일어났던 6도 내지 7도에 대지진이 일어나리라고 유명한 지질학자들은 과학적 증거에 의해서 발표를 했습니다.

그러한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지진이 안 일어나기를 바라지마는 권위 있는 지질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발표를 했으니 혹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울산 지방에 있는 사람들이 다 비우고 딴 데로 피난가기도 어려운 일이나 그런 사고가 일어났을 때 동포끼리 서로 모르쇠하고, 이웃나라끼리 모르쇠하고, ‘즈그들이 업(業)이 많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했구나!’ 다 불고(不顧)해 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그러한 재난을 안 만나게 될라면은 인과법(因果法)을 철저히 믿고 남에게 피해 주는 일이 없이, 할 수 있다면은 우리는 이웃을 도우며, 남의 어려운 처지를 항상 자비심(慈悲心)으로 물심양면으로 보살펴 줄줄 아는 그러한 가족이 되어야 마땅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확철대오를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기 전에는 우리는 무서운 죽음을 언젠가는 만날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 죽음이 꼭 칠팔십 년 후에 오라는 법도 없습니다. 호흡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그것이 바로 죽음이고 내생(來生)입니다.

 

그 죽음을, 생사 속에서 살면서 영원히 육체적인 생사를 면하는 법은 없습니다.

생사는 반드시 오고야만 마는데, 그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으면 생사 속에서 해탈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불법(佛法)이요, 정법이요, 활구참선법입니다.

 

백 번, 천 번도 목이 쇠도록 산승(山僧)이 여러분에게 법회 때마다 말씀드리는 것은 그것이 바로 사실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법보가족 여러분!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숙세에 깊은 인연으로 인해서 우리가 법보가족이 되었습니다.

법보가족이 되었으니 위패만 모시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 인연으로 우리는 정법을 믿고 열심히 생활 속에서 참선을 해가지고 확실히 우리가 생사 없는 이치를 깨달아야 하고 그 진리와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항상 ‘이뭣고?’를 해서 그 의심이 잠시도 떠나지 않도록 잊어버리면 또 챙기고, 잊어버리면 또 챙기고 그렇게 함으로 해서 반드시 우리는 공안(公案)을 타파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해서 우리 자신도 해탈(解脫)을 하고, 일체 중생을 해탈의 길로 안내를 해야 할 우리에게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정말 열심히 들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주장자(拄杖子)를 한번 내리고 이 법상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

 

이 천도 법요식이 끝난 뒤에, 정성을 다해서 공양(供養)을 준비했으니 한 분도 빠지시지 마시고 공양을 잘 드시고 무사히 댁에 돌아가시고, 돌아가셔서 열심히 ‘이뭣고?’를 하시고 내년에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다 같이 만나시게 되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20분57초~37분54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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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제법종인생(諸法從因生) 제법종인멸(諸法從因滅)' ;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참고]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제48권 '사리목련인연품(舍利目連因緣品) 하' (동국역경원 한글대장경)

爾時 大德阿濕波踰祇多 告優波低沙言 「仁者 我彼大師 說因緣法 談解脫路 我師偈說如是之法」 (摩訶僧祇師作如是說 迦葉惟師又復別說) 「是義云何 仁者 我師說是法句」

諸法從因生 諸法從因滅 如是滅與生 沙門說如是』

 

그러자 대덕(大德) 아습파유기다(阿濕波踰祇多=馬勝,馬星,阿說示)는 곧 우바저사(優波低沙=舍利弗)에게 말하였다.

"그대여, 우리 큰 스승께서는 인연법을 설하시고 해탈의 길을 말씀하십니다. 우리 스승께서는 다음과 같은 법을 게송으로 설하십니다" (마하승기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가섭유사는 또 다음과 같이 다르게 말하였다) "그 뜻은 무엇인가 하면, 우리 스승께서는 다음과 같은 법의 구절을 설하셨습니다"

 

『모든 법은 인(因)을 따라 생겨나고, 모든 법은 인을 따라 멸하니, 이렇게 멸하고 또 생기는 것을 사문께서는 이와 같이 말하셨습니다』

 

爾時 優波低沙波離婆闍迦 善達文字之法 時大德彼阿濕波踰祇多比丘 能解文義 又能攝彼義及文字 是何多耶 「諸法因生者 彼法隨因滅 因緣滅卽道 大師說如是」

時 優波低沙波離婆闍迦 觀見如此法行之時 卽於是處 遠塵離垢 盡諸煩惱 得法眼淨 諸有爲法 皆得滅相 如實觀知

 

그때 우바저사 파리바사가는 문자의 법에 잘 통달하였고, 당시 대덕 아습파유기다 비구는 글귀의 뜻을 잘 이해하였고, 또 그 뜻과 문자를 아주 잘 이해하여 받아들였으니 무슨 많은 글자가 필요하겠는가.

 

「인(因)을 따라 생겨난 모든 법은 그 법은 인을 따라 멸하나니, 인연이 멸하면 곧 도(道)라고 큰 스승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우바저사 파리바사가는 이런 법행(法行)을 관하여 보고 곧 그 자리에서 티끌과 때[垢]를 멀리 버리고 모든 번뇌를 없애고 청정한 법의 눈을 얻었으며 모든 유위법(有爲法)은 모두가 멸하는 상(相)임을 사실 그대로 관찰하여 알았다.

 

*(게송) '인연진고멸(因緣盡故滅) 아작여시설(我作如是說)' ; 『불설조탑공덕경(佛說造塔功德經)』

[참고] 『불설조탑공덕경(佛說造塔功德經)』 (동국역경원 한글대장경)

爾時 世尊 說是偈言 『諸法因緣生 我說是因緣 因緣盡故滅 我作如是說

善男子 如是偈義名佛法身 汝當書寫置彼塔內 何以故 一切因緣 及所生法 性空寂故 是故 我說名爲法身 若有衆生解了如是因緣之義 當知是人卽爲見佛

 

그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인연으로 나는 것이며 내가 이 인연을 설하느니라. 인연이 다한 까닭에 없어지나니 여래는 이렇게 설하노라』

 

"선남자야, 이 게송의 뜻은 부처님의 법신(法身)이라 이르니, 너는 반드시 이 게송을 서사하여 그 탑 안에 두어라. 무슨 까닭인가? 일체의 인연과 인연으로부터 생기는 법의 성품이 공적(空寂)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법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중생이 이러한 뜻을 깨달으면 곧 부처를 보는 것이다"

 

*법신게(法身偈) ; 불교의 근본교설인 사제(四諦) · 연기(緣起)를 함축적으로 시설한 게송.

석가세존의 성도(成道) 후 오비구(五比丘) 중 마승(馬勝) 비구가 사리불에게 설해 준 게송으로 부처님의 몸(사리)와 같은 위상을 갖기에 법신게(法身偈) · 법신사리게(法身舍利偈) · 법신연기게(法身緣起偈) · 법송사리(法頌舍利)라고도 하고, 탑신(塔身) · 복장(腹藏) 등 탑과 불상 내부에 안치한다. 범본 · 티베트본 불전(佛典)의 회향게(回向偈) 끝에, 또는 불상(佛像) 등에 인장(印章)처럼 새겨져 전한다.

또한 첫 번째 '모든 법은 인연으로부터 생한다[諸法從緣生]'라는 구절에 따라 연생게(緣生偈) · 연기게(緣起偈) · 연기법송(緣起法頌) · 연생법송(緣生法頌) 등이라고도 한다.

 

이 법신게(法身偈)의 내용이 경전상에 아래와 같이 여러 가지 표현이 있다.

 

[참고 ①] 팔리 율장(律藏)의 「마하막가」(大品)

"생겨나는 모든 법의 원인을 여래는 설하셨네, 마찬가지로 그 사라짐을 대사문은 말씀하시네"

 

[참고 ②]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출가사(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出家事)』

諸法從緣起 如來說是因 彼法因緣盡 是大沙門說

모든 법은 연(緣)에서 일어나니, 여래께서는 이러한 인(因)을 설하셨노라. 저들 법의 인과 연은 결국 사라지리니, 이것이 대사문의 말씀이라네.

 

[참고 ③] 『불설초분설경(佛說初分說經)』 권하.

若法因緣生 法亦因緣滅 是生滅因緣 佛大沙門說

만일 어떤 법이 인연으로 일어난다면, 그 법은 또한 인연으로 사라지리라. 일어났다 사라지는 인연 그것은, 깨달으신 대사문의 말씀이라네.

 

[참고 ④] 『대지도론(大智度論)』 18권 '제30 석초품중반야상의(釋初品中般若相義)'

如佛於四諦中 或說一諦 或二或三 如馬星比丘 爲舍利弗說偈 『諸法從緣生 是法緣及盡 我師大聖王 是義如是說』 此偈但說三諦 當知道諦已在中 不相離故 譬如一人犯事 擧家受罪

 

부처님께서는 고 · 집 · 멸 · 도의 사제(四諦) 중에서 때로는 하나의 제(諦)만 설하거나 혹은 두 개 혹은 세 개의 제(諦)를 설하셨다. 예를 들면 마성 비구가 사리불에게 설한 게송에 '모든 법은 인연으로부터 생하고 , 이 법의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노라. 우리의 스승이신 부처님께서는 이 뜻을 이와 같이 설하셨다네'라고 하였다.

이 게송은 고 · 집 · 멸 등의 삼제만 설한 것이나 도제(道諦)가 이미 그 안에 있어서 나머지 삼제와 떨어지지 않은 줄 알아야 한다. 비유하자면 마치 한 사람이 죄를 범하면 집안 전체가 연루되어 그 죗값을 받는 것과 같다.

*법(法) : [범] dharma [파] dhamma 음을 따라 달마(達磨•達摩) 또는 담무(曇無)로 써 왔다。온갖 것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이니, 온갖 일과 모든 물질이며, 온갖 이치와 옳은 것(是), 그른 것(非), 참된 것(眞), 거짓된 것(妄)이 모두 이 「달마」에 들어 있다.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무생(無生) ; ①생겨남[生]이 없는 것[無]. 일체법이 생겨나고 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것도 자성적 실체를 갖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생겨나거나 멸하는 것이 없음을 나타내는 말.

②성문사과(聲聞四果)의 하나인 아라한(阿羅漢 arhat)의 한역어. 삼계의 번뇌를 여의어 다시 삼계에 목숨을 받아 태어나지 않는다는 뜻에서 무생이라고 한다.

*법신(法身) : [범]  dharma - kaya ‘법 몸’이란 말인데, 법불(法佛) · 이불(理佛) · 실불(實佛) · 법신불(法身佛) · 법성신(法性身) · 자성신(自性身) · 진여불(眞如佛) · 법계성(法界性) 같은 말들이 모두 한뜻이며, 「선가귀감」 첫머리에 있는 ‘한물건’이란 것도 이것이다.

진리 그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 진여의 청정한 법계를 가리키며, 비로자나불과 대일여래가 여기에 해당한다.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진여의 본 바탕(眞如本體)’을 이름이니, 중생에 있어서 부족할 것이 없고 부처님이라고 더 특별할 것이 없어, 본래 깨끗하고 빛나고 두렷하여 무한한 공간과 무궁한 시간에 꽉 차 있으되, 네 가지 말로도 설명할 수 없고(離四句) 백 가지 아닌 것으로도 옳게 가르칠 수 없으며(絕百非), 무엇으로나 형용하여 볼 수가 도저히 없는 것이다.

*법보재(法寶齋) ; 매년 음력 3월 16일에 용화사 법보재자(法寶齋者)와 대웅전(舊 법보전) 만년위패에 모신 선망부모 영가들과 인연 있는 영가들의 무량겁으로부터 지은 업장을 참회 소멸하고,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고, 재자와 영가 모두 진리의 세계에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전강 조실스님께서 개설(1963년)하신 합동 천도재(薦度齋).

*법요식(法要式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요긴할·원할·얻을 요/법·제도·의식 식) ; ①법요(法要 : 법法의 요체要諦,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를 닦아 익히는 법식(法式). ②불사(佛事 : 재齋,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의 의식. 법회(法會 : 불법을 강설하거나 불보살과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행사 모임).

*위패(位牌) ; 죽은 사람의 위(位)를 모시는 나무패.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재(薦度齋) 등의 의식과 위패(位牌) 등에서 망자(亡者 죽은 사람)의 성명 뒤에 호칭으로 붙인다.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대웅전(舊 법보전) 법보단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단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왕생(往生) ; 죽어서 다른 세계에 가서 태어남. 이 세상에서 쌓은 공덕으로 죽어서 정토에 태어남. 염불한 공덕으로 죽어서 극락에 태어남.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가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생사고해(生死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 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를 가리킴. 생사와 그 괴로움이 무한한 것을 바다에 비유함.

*해탈도(解脫道) ; ①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②사도(四道)의 하나.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 ; 산수의 지형이나 방위를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과 관련시켜 죽은 사람을 매장하거나 집을 짓는 데 적당한 장소를 찾는 이론이나 주장.

*명당(明堂 밝을 명/집 당) ; ①필요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어 어떤 일에 썩 좋은 자리. ②풍수지리에서, 후손에게 장차 좋은 일이 많이 생기게 된다는 묏자리나 집터. [비슷한 말] 길지(吉地). 명당자리.

*길지(吉地 길할 길/땅 지) ; 명당(明堂 풍수지리에서, 후손에게 장차 복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게 된다는 묏자리나 집).

*흉참하다(凶慘-- 흉할 흉/참혹할 참) ; 흉악(凶惡)하고 참혹(慘酷)하다.

*우환(憂患 근심 우/근심 환) ; ①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나 아픈 사람이 생겨서 나는 걱정이나 근심. ②몸의 온갖 병.

*풍마우습(風磨雨濕) ; 바람에 갈리고 비에 젖음.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차례(茶禮) ; 음력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날, 명절날, 조상 생일 등의 낮에 지내는 제사.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시절인연(時節因緣) ; 시절이 도래(到來)하고 인연이 합쳐지는 기회. [참고]시절(時節)—어떤 시기나 때. 도래(到來)—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기회(機會)—어떠한 일, 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때.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①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이 자유 자재한 것.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②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열반의 상태. ③깨달음. ④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선정(禪定)의 상태. 평온한 경지.

*대도사(大導師 큰 대/길·인도하다·이끌다 도/스승 사) ; 불(佛) · 보살(菩薩)의 존칭. '크신[大] 길 인도하는[導] 스승[師]'이라는 말.

도(導)는 「길[道] · 인도(引導)하다 · 이끌다」의 뜻으로, 대도사는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길로 인도하는 큰 스승이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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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가족(法寶家族) ; [참고] 89년 설날차례(89.02.06) 법요식에서.

여기 (용화선원 대웅전 법보단) 만년위패에 우리의 조상 여러 영가와 원근 친척의 인연 있는 영가들을 모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여러분은 법보가족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한 가족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한 법당(대웅전 법보단, 舊 법보전)에 모셨으니 우리가 한 가족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또 이 도반(道伴)이면서 또 한 가족인 것입니다.

*불회상(佛會上) ; 부처님(佛)의 회상(會上). 부처님 계시는 곳.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게송) '일체유위법~' ; 『금강경(金剛經)』 '제32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 게송.

*유위(有爲) ; 위(爲)는 위작(爲作) · 조작(造作: 만들다)의 뜻으로, 유위는 만들어진 것, 조작된 것, 다수의 요소가 함께 작용된 것, 여러 인연이 함께 모여서 지은 것, 인연으로 말미암아 조작되는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또는 이렇게 하여 드러난 생성과 소멸의 세계, 즉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의 세계를 뜻한다.

*달관(達觀 통달할 달/볼 관) ; 인생의 진리를 꿰뚫어 보아 사소한 일에 집착하지 않고 넓고 멀리 바라봄. 또는 그러한 경지.

반야심경

*오온개공(五蘊皆空) ; 색 · 수 · 상 · 행 · 식(色受想行識) 등 오온이 모두 실체가 아니고 공(空)이라는 뜻.

[참고] 『반야심경약소연주기(般若心經略疏連珠記)』 (하) (중국 화엄종의 제3조인 현수법장 스님이 반야심경을 주석한 『반야심경약소』에 송나라 때 사회師會 스님이 또 주석을 내어 기록한 책)

依此身心 諦觀分明 但見五蘊 求人我相終不可得 名爲人空 若觀一一蘊 皆從緣生 都無自性 求蘊相不可得 則五蘊皆空 名爲法空 是以照五蘊 而二空理現

 

이 심신에 의지하여 분명하게 관찰하면 오직 오온만 보일 뿐, 인아(人我)의 상(相)을 구해도 끝내 얻을 수 없으니 이를 인공(人空)이라 한다.

만약 각각의 온(蘊)을 관찰하면 모두 인연에 따라 생겨나 자성(自性)이 전혀 없다. 온(蘊)의 상(相)을 구해도 얻을 수 없으니 오온은 모두 공(空)이다. 이것을 법공(法空)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오온을 관조하면 인공과 법공의 두 가지 공의 이치가 드러난다.

 

[참고] 『전심법요(傳心法要)』 (황벽 스님)

凡人臨欲終時 但觀五蘊皆空 四大無我 眞心無相 不去不來 生時性亦不來 死時性亦不去 湛然圓寂 心境一如 但能如是 直下頓了 不爲三世所拘繫 便是出世人也

 

보통 사람들이 임종할 때에 다만 오온이 모두 공하고 사대는 내가 아님을 보니, 진심(眞心)은 상(相 모양)이 없어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으며, 태어날 때에 성품이 또한 오는 것도 아니고 죽을 때 성품이 또한 가는 것도 아니다. 담연히 둥글고 고요하여 마음과 경계가 일여(一如)하다.

다만 능히 이와 같이 된다면 곧바로 깨달아 요달해 삼세(三世)에 속박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세간을 뛰어넘은 사람이다.

*오온(五蘊) ; 온(蘊)은 무더기 · 모임 · 집합 · 더미를 뜻함. 생멸 · 변화하는 일체의 유위법(有爲法)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 오음(五陰) · 오중(五衆) · 오취(五聚) 등이라고도 한다.

①색온(色蘊) : 지 · 수 · 화 · 풍 사대(四大)와 사대로 만들어진 형질의 무더기. 

②수온(受蘊) : 괴로움[苦] · 즐거움[樂] · 불고불락(不苦不樂) 등의 느낌의 무더기.

③상온(想蘊) : 대상에 이름을 부여하고, 다양한 개념을 지어내는 생각 · 관념의 무더기.(경계에 대하여 갖가지 차별상을 취하는 것)

④행온(行蘊) : 의도(意圖)하고 지향하는 의지 · 충동 · 의욕의 무더기.

⑤식온(識蘊) : 식별하고 판단하는 인식의 무더기.(대상경계를 분명하게 분별하는 것이 본성인 마음)

 

오온은 유루(有漏) · 무루(無漏) 등과 선(善) · 불선(不善) · 무기(無記) 등 삼성(三性)에 통하며, 특히 유루의 오온은 오취온(五聚蘊)이라 하는데 이때 취(聚)는 번뇌의 뜻이다.

이와 같은 다섯 가지는 물질과 정신의 전체를 통괄하여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우리의 망상으로 실다운 것인 줄 착각한 것일 뿐이다. 실지는 다 인연 따라 꿈같이 나타나는 빈 것이다.

*계합(契合 맺을 계/합할 합) ; ①(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 ②진리나 본심을 깨달아 그것과 일체가 되는 것.

*환(幻) ; ①허깨비. 모든 사물은 여러 가지 인연(因緣)이 모여서 생긴 것으로 실체가 없는 것에 비유함. 환(幻)을 실(實)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생의 미혹한 생각임. 환(幻)을 무(無)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승(二乘 : 聲聞,緣覺)의 공(空)에 얽매인 견해, 단공(但空 : 단지 空만을 집착하는 것)임.

환(幻)은 또 화(化)와 거의 같은 뜻이므로 환화(幻化), 꿈과 비슷하므로 환몽(幻夢) · 몽환(夢幻)이라고도 한다. ②신기루, 아지랑이 같은 것.

*요달(了達 마칠·완전히·밝을 료/통달할·이룰 달) ; ①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밝게 통달함. ②깨달음에 도달하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구경(究竟 궁구할 구/마칠·다할 경)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그 위에 더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단군(檀君) ; 우리 민족의 시조로 받드는 태초의 임금. 단군 신화에 따르면 천제(天帝)인 환인(桓因)의 손자이며 환웅(桓雄)의 아들로 기원전 二三三三년경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朝鮮), 즉 단국(檀國)을 세워 약 2천 년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이리(裡里) ; 전라북도에 있던 시. 1995년 5월 행정 구역 개편 때 익산군과 합쳐져 익산시가 신설되면서 폐지되었다.

*모르쇠 ; 아는 것이나 모르는 것이나 다 모른다고 잡아떼는 것.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불고(不顧 아니 불/돌아볼 고) ; 돌아보지 않음.

*인과(因果) ; ①원인과 결과. 현상을 생성시키는 것과 생성된 현상. ②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는 이치. ③선악의 행위에는 반드시 그 과보가 있다는 도리.

*자비(慈悲) ; 자(慈)는 ‘우정 · 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 · 동정’을 원의(原義)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불보살(佛菩薩)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공안(公案) ; 화두(話頭)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주장자(拄杖子 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들이 좌선(坐禪)할 때나 설법(說法)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성도재)2015. 7. 27. 11:33

§(405) (게송)외외낙락정나라~ / 부처님께서 항상 부르시는 노래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로구나!” / 깨달은 분상에는 지옥·천당도 일념지간(一念之間)에 있다.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 사람 사람이 본래 태평(太平)하다’

 

귀족이거나 천민이거나, 부자거나 가난한 사람이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머리가 좋거나 나쁘거나, 본래 원만구족(圓滿具足)해서 더 보탤 것도 없고 더 덜어낼 것도 없어. 원만구족한 본래 태평한 존재들이다.
납월팔일(臘月八日)을 맞이해서 우리는 본래 부처님과 조금도 모자랄 것도 없이 원만구족한 그러한 존재라고 하는 긍지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뭣고?’ 그래서 일념 단속(團束)을 해야 해. 일념 단속 함으로 해서 일념 속에서 천당·지옥을 타파해 버려. 일념 속에서 영원한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405)—89년 성도재 법회(90.01.04) (용405)

 

약 9분.

 

외외낙락정나라(巍巍落落淨裸裸)한데  독보건곤수반아(獨步乾坤誰伴我)오
나무~아미타불~
약야산중봉자기(若也山中逢子期)인데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오
나무~아미타불~

외외낙락정나라(巍巍落落淨裸裸)한데,  높고 높고, 높고 높아서 깨끗하고 깨끗해.
독보건곤수반아(獨步乾坤誰伴我). 건곤(乾坤)에, 천지에 홀로 가니 누가 나와 더불어 짝을 할 것인가.

약야산중봉자기(若也山中逢子期)인데, 만약 산중에서 자기(子期)를 만났던들,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오, 어찌 노란 이파리를 가지고 산 아래로 내려갔겠는가.


부처님께서는 어떠한 마음을 가지시고 일생을 살으셨을까?
부처님께서는 항상 부르시는 노래가 있었다면 부처님께서는 무슨 노래를 부르셨을까?

부처님께서는 항상 다른 사람을 보되 ‘제도(濟度)할 중생(衆生)이 있다’고 생각하신 것이 아니야.
보통 우리 상식으로는 부처님께서는 ‘일체 중생을 죄가 많고, 생각하는 것이 순 망상(妄想)만 들끓고 망령(妄靈)된 경계에 빠져있는 그러한 불쌍한 중생들이라’ 이렇게 생각하실 것 같은데, 실지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들에게 망(妄)이 있다고 그렇게 보시지를 않아.

그러면 부처님 자신은 어떻다고 생각하신가?
‘부처님은 깨달아서 진리와 하나가 된 그러한 경지’라고 우리 생각에는 그럴 것 같은데,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그래가지고 이 세상에 출현을 하셨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부처님 자신은 남이 없다, 무생(無生). 남이 없어.

일체에는 망이 없고, 당신은 남이 없는데 무엇을 제도할 중생이 어디가 있겠느냐 그말이여.

그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무슨 노래를 부르시냐 하면은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 사람 사람이 본래 태평(太平)하다’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로구나!” 이렇게 노래를 부르셨을 것이다.

사람 사람이 다 본래부터 태평해. 깨달을 바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빠져야 할 지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도할 중생이 있는 것도 아니요. 제도할 부처님이 있는 것도 아니요. 제도 받을 중생이 있는 것이 아니여.
얼굴이야 잘생겼거나 못생겼거나, 귀족이거나 천민이거나, 부자거나 가난한 사람이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머리가 좋거나 나쁘거나, 본래 원만구족(圓滿具足)해서 더 보탤 것도 없고 더 덜어낼 것도 없어.
원만구족한 본래 태평한 존재들이다 그말이여.

납월팔일(臘月八日)을 맞이해서 우리는 본래 부처님과 조금도 모자랄 것도 없이 원만구족한 그러한 존재라고 하는 긍지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어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을까요?
오장육부와 사지백체(四肢百體)는 성한 데가 없이 항상 아프고 괴롭고, 이 세상에 나서 늙어서 병들어 가지고 결국은 희로애락과 흥망성쇠(興亡盛衰)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그리고 버티다, 버티다 못해서 왜 죽어갈까요?
죽으면 과연 어느 곳에 갈까요? 천당에 아니면 지옥에 갈 것이다.

이러한 고달픈 생(生)이, 유랑(流浪)이 무량겁(無量劫)으로부터 무량겁으로 이어진다고 우리는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깨닫지 못한 분상(分上)에는 분명히 그럴 것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깨달은 분상에는 지옥도 천당도 있다면 일념지간(一念之間)에 있는 것이여. 없다면 없는 것이지만 있다면 일념지간에 있어.
무량겁도 일념 속에 들어있고, 그 일념 간에 있는 천당, 일념 속에 있는 지옥, 그것만 해결해 버리면 무량겁의 생사고(生死苦)도 바로 해탈(解脫)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뭣고?’ 그래서 일념 단속(團束)을 해야 해.
일념 단속 함으로 해서 일념 속에서 천당·지옥을 타파해 버려. 일념 속에서 영원한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하는 것입니다.

기사년 납월 8일을 기해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또 이 산승(山僧)이 여러 사부대중, 여러 도반들을 향해서 간곡히 정진하실 것을 당부하는 것입니다.(42분3초~51분11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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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외외낙락정나라~’ ; [태고집(太古集)] (雪栖 편, 김달진 역주 | 세계사) p229 '석가 출산상(釋迦出山相)' 참고.
*(게송) ‘약야산중봉자기(若也山中逢子期)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 ;
[참고] 송담스님(No.098)—79년 입춘 법회(79.02.04)에서.

 

만약 산중에서 자기(子期)를 만났다면(若也山中逢子期)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리요. 어찌 누런 이파리를 가지고 산 아래로 내려갈 것이냐.

자기(子期)라고 하는 사람은 성(姓)은 ‘쇠북 종(鍾)자’ 종씨인데, 종자기(鍾子期)라고 하는 사람은 저 중국 고대 요임금 당시 거문고의 이치, 음악의 이치에 달통한 사람입니다.

그때 백아(伯牙)라고 하는 사람이 대단히 거문고를 잘 탔습니다.
백아라고 하는 사람은 거문고 타기로 아주 통달한 사람인데, 백아라고 하는 사람이 거문고를 뜯으면 너무 거문고를 잘 뜯고 신묘한 경지에 이르러서 보통 사람은 그 백아의 거문고 타는 것을 능히 감상을 할 줄 모릅니다.

오직 종자기(鍾子期)라고 하는 사람만이 그 백아(伯牙)의 거문고 타는 것을 듣고서, ‘아! 지금 백아라고 하는 사람이 유유히 흐르는 큰 강물을 생각하면서 거문고를 뜯고 있구나.’
또 어쩐 때는 지금 저 백아가 타는 거문고 소리를 들어보매, ‘높고 높은 태산준령을 생각하면서 거문고를 뜯고 있구나.’

그렇게 종자기라고 하는 사람은 백아의 거문고 타는 소리를 듣고, 백아의 마음 소리를 능히 알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종자기라고 하는 사람이 천명(天命)을 다하여 죽게 되자 백아라고 하는 사람은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삼천년 전에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탄생을 하셔서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출가하셔서 대도를 성취하신 다음 80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실 때까지 49년 동안을 팔만사천 묘법(妙法)을 설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일찍이 종자기와 같은 그러한 사람을 만났다면 어찌 49년 동안이라고 하는 장구한 세월동안 그러한 많은 방편설(方便說)을 설할 까닭이 없었을 것이다.

자기(子期)와 같은 사람을 산중에서 만약 만났다면 어찌 누른 이파리을 가지고 산 아래로 내려갈 것이냐?
누른 잎이라 하는 것은 은행잎이나 단풍잎 같은 그런 아주 예쁘고 고운 단풍잎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린애들을 달랠 때에 노란 또는 빨간 단풍잎을 주면서 ‘여기 있다. 돈 여기 있다. 돈’ 이렇게 우리는 어린애들을 곧잘 달래는 것입니다.

방편설이라고 하는 것은 필요 불가결(不可缺)한 것입니다. 꼭 필요한 것입니다.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린애를 달랠 때에 사탕 같은 것이 있으면 다디단 사탕을 입에다 넣어 줘서 달래기도 하고, 사탕이 없으면 무슨 노란 이파리나 그렇지 아니하면 무슨 조그만한 돌멩이라도 집어 줘야 할 것이고,
그저 무슨 장난감 같은 것도 집어 줘서 잠시라도 어린애의 울음을 달래는 경우를 엄마들은 얼마든지 경험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방편,
또 동지 법회, 입춘 법회, 칠성 법회, 사월 초파일 관등법회, 이런 법회가 노란 이파리를 가지고 어린애 울음을 달래는,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방편설, 이것이 모두 일맥상통(一脈相通)한 점이 있는 것입니다.

마침내 노란 이파리만 가지고 달래 봤자 어린애는 잠깐 울음을 그쳤을 뿐 배가 고픈 허기(虛飢)는 완전히 가시질 않은 것입니다. 다시 또 울음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에서는 일양(一樣)으로 노란 이파리만 가지고 여러분의 울음을 달래는데 그치지 아니하고, 정말 입에 넣어서 먹으면 배가 부를 수 있는 영양제를 여러분에게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1분3초~7분52초)
*제도(濟度 건널 제, 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구제(救濟 건질 구, 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 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함령(含靈)• 함식(含識)• 군생(群生)• 군맹(群萌)•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 ; 욕설이나 비난의 말 따위, 좋지 않은 말을 할 때, 강조하기 위하여 ‘몹시’ 또는 ‘아주’의 뜻으로 쓰는 말.
*망상(妄想 망녕될 망, 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망령(妄靈) ; 늙거나 정신이 흐려서 말이나 행동이 정상을 벗어남. 또는 그런 상태.
*무생(無生) ; ①생멸(生滅)을 벗어난 절대의 진리. 생멸(生滅)이 없는 도리. 곧 불생불멸하는 진여법성(眞如法性)을 알고 거기 안주하여 움직이지 아니함. 무생법인(無生法忍).
②아라한(阿羅漢) 또는 열반(涅槃)의 번역어. 번뇌를 없앤 경지를 말함.
*태평(太平) ; ①마음에 아무 근심 걱정이 없음. ②나라가 안정되어 아무 걱정 없고 평안함.
*원만구족(圓滿具足)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을 이르는 말.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35세의 12월 8일 샛별이 뜰 무렵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하(河)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불도(佛道)를 이루던 날.
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납팔(臘八)이라고 줄여 쓰기도 한다. 일명 성도재일(成道齋日).
*생로병사(生老病死) ; 중생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4가지 고통. 곧,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
*사지백체(四肢百體) ; 몸의 전체.
*흥망성쇠(興亡盛衰) ; 흥하고 망함과 성하고 쇠함. 곧 어떤 사물·현상이 생겨나서 소멸하는 전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유랑(流浪 흐를·떠돌 류/물결·떠돌아다닐 랑) ; 일정한 거처가 없이 떠돌아다님.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해탈(解脫) ;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해탈도(解脫道) ;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증득(證得) ;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함.

Posted by 닥공닥정

§(204) (게송)보만삼천급대천~ / 중생은 '미(迷)한 부처님', 부처님은 '깨달은 중생' / 바른 믿음을 가져야 / '제행무상~'게송 / (게송)도장칠보시삼천~ / 금강경사구게.

부처님께서 그 많은 경전을 설하셨지만 참으로 부처님의 그 경전의 뜻을 올바르게 체달(體達)을 하고 보면 한 생각 돌이켜서 '참나'를 깨달으는 그 곳으로 돌아오는 것이여.
이 도리를 믿는 사람은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사람이고, 이 도리가 믿어진 사람은 최상승법의 인연을 무량겁을 두고 심어온 그러한 상근대지(上根大智)라 할 수가 있어.


바른 믿음을 갖지 아니하면 마구니를 불보살로 착각하기도 하고, 불보살을 마구니로 착각하게 되기 때문에 바른 신심을 가지고 불법을 믿고 수행을 해야 그것을 가려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망상 일어나는 것도 걱정을 하지 말고 「이뭣고?」 화두를 들 것이고, 나를 정신적으로 또는 물질적으로 손해를 뵈인 그러한 미운 사람을 만나더라도 미움으로써 미운 생각을 일으켜서 미워하지 말고, 빨리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어 나간다면 그 미웠던 사람이 바로 불보살의 모습으로 변해질 것입니다.


중생의 번뇌 망상, 인간의 생로병사 속에 대해탈도(大解脫道)는 조끔도 숨김없이 열려져 있다고 하는 사실, 어느 망상, 어느 번뇌 한마디에서도 진리로 통하는 길은 있다고 하는 사실에 명심을 하고, 일어나는 한 생각이 다음 생각으로 번지기 전에 화두를 들도록 노력을 할 것입니다. 이 길 밖에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없는 것입니다. 백천만 억의 불보살이 출현한다 하더라도 중생의 번뇌를 여의고 부처는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04)—83년 6월 첫째 일요법회(83.06.05) (용204)

 

(1) 약 21분.

(2) 약 12분.


(1)------------------

 

보만삼천급대천(寶滿三千及大千)하고  복연응불리인천(福緣應不離人天)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약지복덕원무성(若知福德元無性)하면   매득풍광불용전(買得風光不用錢)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보만삼천급대천(寶滿三千及大千), 보배가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가득 찬 보배가 있고, 그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그 보배로 보시를 해.
보시를 하면 그 보시의 공덕이 얼마나 많으냐? 하면 하늘나라와 인간의 나라, 인천(人天)에 그 복이 인천에 가득차.(福緣應不離人天)

그 인천(人天)에 가득 찬 복은 어떠한 복이냐 하면, 그것은 무루복(無漏福)이 아니라 유루복(有漏福)에 지내지 않는다. 아무리 하늘나라와  인간 세상에 그 복의 인연이 가득차서 온 천하 것이 전부 자기 것이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유루복이다 그말이여. 유루복은 한도(限度)가 있어.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보배로 보시를 해서 아무리 공덕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말이죠. 그래서 그것은 영원한 행복이라 할 수가 없어.

그 복덕성(福德性)이 원래 자성(自性)이 없는 도리를 깨달아야,(若知福德元無性)
이 온 세계에 봄이 오면 잎이 피고 꽃이 피며, 가을이 오면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겨울에는 눈이 내리고, 여름에는 산천초목이 모다 우거져서 무성하게 자라는, 이 천지자연(天地自然)의 아름다운 풍광이 한 푼도 돈을 들이지 아니하고 온전히 자기가 즐길 수 있는 누릴 수 있는 자기의 정원이 되더라.(買得風光不用錢)

복덕(福德)에 자성이 없는 도리가 무엇이냐?
우리의 한 생각 일어났다 꺼지고 일어났다 꺼지고 좋은 생각도 일어났다가 꺼지고, 나쁜 생각도 일어났다 꺼지고, 그 한 생각을 잘 먹어서 착한 일을 하면은 천당에 가는 원인이 되고, 한 생각을 잘못 먹어서 악한 행동을 하면은 그것이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는 요인이 되는 것이여.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보물로써 보시를 해서 인천의 복락을 누린다 하더라도 그 근원을 더듬어 보면 ‘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여.

‘복덕의 자성이 원래 없는 도리는 어떻게 해서 깨닫느냐’하면 우리 한 생각 일어나는 그놈을 돌이켜서 화두를 관조할 때에 '한 생각이 남이 없는 이치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 남이 없는[無生] 이치를 깨닫게 되면 온 삼천대천세계는 바로 자기가 대자유(大自由)로 누릴 수 있는 영원한 자기의 낙원이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부처님께서 그 많은 경전을 설하셨지만 참으로 부처님의 그 경전의 뜻을 올바르게 체달(體達)을 하고 보면 한 생각 돌이켜서 '참나'를 깨달으는 그 곳으로 돌아오는 것이여.
이 도리를 믿는 사람은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사람이고, 이 도리가 믿어진 사람은 최상승법의 인연을 무량겁을 두고 심어온 그러한 상근대지(上根大智)라 할 수가 있어.

숙세의 인연이 없는 사람은 이런 말을 해 주어도 뭔 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잘 안 가고, 설사 ‘아하! 그렇구나’하고 이해가 된다 하더라도 철저하게 믿어지지를 않고 설사 알음알이로는 믿어져도 그것을 실천을 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듣게만 되는 인연도 장하고, 듣고 믿게만 된 인연은 또 장하고, 믿고 실천을 하는 사람 그것도 쪼끔만 하다가 말아도 그것이 굉장한 깊은 인연의 소치지만, 일생 동안을 목숨을 바쳐서 이 공부를 실천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차는 칠보(七寶)로써 보시를 하는 그 공덕에 몇억만 배, 도대체가 비교가 안되는 것입니다.


여기 이 법보전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은 숙세의 깊은 인연으로 최상승법을 믿게 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이신 무량겁(無量劫)의 도반이요, 전생의 선배가 금생에는 또 이렇게 위치가 바뀌어져 가지고 또 이렇게 만나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중생(衆生)은 깨닫지 못한 부처님이고, 부처님과 조사와 선지식은 깨달은 중생이다 이렇게 표현을 하면 잘 맞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요. 중생은 「깨닫지 못한 부처님」이고, 다시 미(迷)한 부처님」이고, 「잠깐 미(迷)한 부처님」이고,


마치 보석이 잘못해서 쓰레기통에 빠지듯이, 쓰레기통에 빠져서 먼지가 묻어 가지고 또는 진흙밭에 그 몇천만 원이 나가는 그런 세계적인 그런 보물이 하수구에 빠졌다고 해서 그것이 보석이 아닌 건 절대로 아닌 것은 아니거든. 쓰레기통에 빠졌건 똥통에 빠졌건 그 보석 자체에는 아무 변함이 없어.

그렇듯이 중생의 몸뚱이 속에 중생의 탈을 쓰고 있다고 해서 부처님이 아닌 것은 아니거든. 그래서 중생은 '미(迷)한 부처님'이라 이렇게 표현을 할 수가 있고.

부처님은 딴 사람이 아니여!  어디서 본래 부처님이 따로 있어 가지고 종자가 따로 있고, 혈통이 따로 있고, 어디가 그래 가지고 부처님이 어디서 나온 것이 아니라, 중생이 깨달으면 부처님이 되는 것이니까 내나 중생은 중생인데 '깨달은 중생'이다 이거거든.

그래서 그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설사 내가 망지(妄知)를 가지고 이렇게 법을 설한다고 해서 꼭 그 불에 내가 타져 죽어야 할 만한 무서운 죄가 있다고 만을 생각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쪼끔 안심이 되기는 합니다.

내나 법문을 들은 여러분도 깨닫지를 못했을망정 여러분도 부처님이고, 설사 망지(妄知)로써 내가 설한다 하드라도 미(迷)한 부처님에는 틀림이 없기 때문에,
‘부처님이 부처님을 향해서 법을 설하고 있다’해도 맞는 말이 될 것이고, ‘중생이 중생을 향해서 법을 설하고 있다’고 해도 맞는 말이 될 것입니다.

요(要)는 나의 죄를 경감하게 하는 데에는 절대적으로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금생에는 내가 내 목숨을 바쳐서 여러분 앞에 말을 하고 있는 그러한 장면이 이 자리에 연출이 되고 있지만, 이 다음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는 나를 위해서 여러분이 또 여러분의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나를 위해서 자비를 베풀어질 때가 또 올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서로 위치를 바꾸어 가며 하나는 앞에서 끌면 뒤에서는 밀면서 따라오고, 한 사람은 뒤에서 밀다가 앞에서 끌고, 앞에서 끌다가 뒤에서 밀면서 우리는 온 세상에 깨달은 중생만이 가득차는 세계가 되고, 깨달은 중생이 가득찬 세계는 바로 극락세계(極樂世界)요 적광토(寂光土)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는 온 세계는 서로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과 오욕락(五欲樂)을 위해서 남을 죽이고 자기만을 살려고 하는 아비지옥(阿鼻地獄)이 영원히 사라지게 될 때인 것입니다.

남을 죽이고 자기만 살려고 할 때에는 저 사람도 나를 죽이고 자기만 살려고 하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를 죽이는 것이 되고, 남을 죽이는 것이 바로 그것이 자기가 자기를 죽이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진리의 눈을 뜨기 위해서 자기 손에 든 횃불로 인해서 화상을 입는 희생자가 없다면, 어떻게 이 세계는 암흑세계가 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부처님은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종호(八十種好)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갖추시고 계십니다마는 그러한 원만구족한 부처님은 언제나 우리 중생 눈에 보여 주시지만을 않습니다.
몇천 년만에, 몇억만 년만에 잠깐 모습을 보였다가 열반상(涅槃相)을 보이시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천백억 화신(化身)을 나투시는 것입니다.

발심(發心)을 한 사람에게는 그 천백억 화신을 나투신 그러한 불보살(佛菩薩)의 모습을 도처에서 발견을 할 수가 있을 것이고, 발심을 하지 못한 사람은 코앞에 불보살이 나타나도 그것을 웬수로 보고 그것을 미워하고 몽둥이질을 가하고 욕설을 퍼붓고 있는 것입니다.

불보살은 삼십이상과 팔십종호를 갖추시고 만을 태어나시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은 언제나 명심을 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남편이 불보살의 화현(化現)일런지도 모르고, 시부모가 불보살 화현일런지도 모르고, 원수같이 생각했던 며느리나 자식이 불보살의 화현일런지도 모르고, 여러분의 가정에서 일하는 가정부가 불보살의 화현일런지도 모르고, 자주 찾아와서 돈과 밥을 빌러오는 거지가 불보살의 화현일런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지금 내가 여기서 설하고 있는 내가 불보살의 화현일는지도 모른다고 하는 말을 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불보살의 모습을 가장을 해 가지고 마구니가 법을 설할 수도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을 해야 할 것입니다.
불보살은 마구니의 탈을 쓰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나타나시는 수가 있고, 마구니는 불보살의 탈을 쓰고 여러분을 지옥으로 마군(魔軍)이의 권속으로 끌어갈려고 하는 수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되,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한다.
바른 믿음을 갖지 아니하면 마구니를 불보살로 착각하기도 하고, 불보살을 마구니로 착각하게 되기 때문에 바른 신심을 가지고 불법을 믿고 수행을 해야 그것을 가려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그것을 마구니라고 보지만은 바른 신심을 가진 사람은 마구니가 아니라 불보살의 화신으로 탁! 가려내게 되는 것입니다.

불법은 중생의 망상을 떠나서 깨달음은 있지 않기 때문에, 불법은 일상생활 속에서 찾아야 하고 번뇌 망상을 떠나서 지혜는 얻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번뇌 망상을 버리고 지혜를 찾는 한은 영원히 지혜는 얻어지지 않고, 일상생활을 여의고 진리를 찾는 한에서는 진리는 얻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구니의 탈을 썼지마는 거기에서 불보살을 가려내듯이 번뇌(煩惱) 망상(妄想) 속에서 바로 거기에서 화두를 들을라고 노력을 해야 거기에서 참다운 지혜는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망상 때문에 참선을 못한다. 시끄러워서 참선을 못한다. 남편 때문에 참선을 못한다. 처자권속 때문에 참선을 못한다.’ 이러한 말은 최상승법에서는 받아들일 수가 없는 말입니다.

망상, 번뇌, 무명, 원수, 미움, 슬픔, 노여움 이것들은 그 속에 부처님으로 가는 디딤돌이 되어줄 것이요, 바로 그러한 것들이 전부가 부처님의 나라로 가는 하나하나의 디딤돌이라고 하는 것을 잠시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망상 일어나는 것도 걱정을 하지 말고 「이뭣고?」 화두를 들 것이고, 나를 정신적으로 또는 물질적으로 손해를 뵈인 그러한 미운 사람을 만나더라도 미움으로써 미운 생각을 일으켜서 미워하지 말고,
빨리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어 나간다면 그 미웠던 사람이 바로 불보살의 모습으로 변해질 것입니다.(35분32초~56분41초)

 

 

 



(2)------------------

 

열반경(涅槃經)에 부처님 과거 인행(因行) 때에 설산에서 고행을 하고 계셨는데, 그렇게 목숨을 바쳐서 고행정진을 하고 있건만은 도저히 깨달음의 눈은 열리지를 안 해.

그러자 어디서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이니라』 하는 그러헌 그 아름다운 목소리로 그런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그말이여.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무상하고, 끊임없이 시시각각으로 변해서 죽어가는 그러한 무상한 것들이다.」 그러한 내용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그래서 눈을 번쩍 뜨고 두리번거리니까 그런 아름다운 목소리가 나올 만한 아무런 것도 발견을 할 수가 없어.
그래 이리저리 찾아보니까 머지않은 곳에 뿔이 달리고 어금니가 사자처럼 날카로운 사람을 생으로 잡어서 씹어 먹고 생피를 빨어 먹는 나찰귀신(羅刹鬼神)이 입을 벌리고 눈을 희번덕이면서 서있다 그말이여.

『이제 곧 그 노래가 네가 읊은 노래냐?』하고 물어봤습니다.
나찰귀신은 시치미를 뚝 따며 『무슨 소리를 합니까? 나는 지금 배가 고파서 죽겠습니다.』

『아니다. 너 밖에는 그 말을 할 아무런 사람이 없는데 네 입에서 그 노랫소리가 나왔다면 그 노래의 후반부가 있을 테니 그 후반부의 노래를 나에게 일러다오. 그리고서 내 몸을 잡어먹어라.』

나찰귀신은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이니라. 생멸이 다하면 생멸심이 끊어지면 바로 그것이 적멸(寂滅)의 대안락(大安樂)이니라.』 그러한 노래를 읊었습니다. 거기에서 부처님은 언하(言下)에 대오(大悟)를 했습니다.

당신만 알고 나찰귀신의 밥이 되어버리면 다른 많은 중생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그 노래를 나무에다가 바위에다 손가락을 깨물어서 피로써 거기에다가 글씨를 썼습니다.

그 노래를 쓰고서 나무 위에서 나찰귀신을 향해서 몸을 던졌습니다. 그 찰나에 온 천지에는 하늘나라의 장엄한 음악이 울려 퍼지면서 나찰귀신은 제석천왕(帝釋天王)의 거룩한 몸으로 변화가 되어가지고 나무에서 떨어지는 부처님을 공경스럽게 받들어 모셨습니다.

목숨을 바쳐서 참다운 신심으로 공부를 해 나가면 나찰귀신에게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법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지 못한,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그러한 사욕(私慾)으로 불법을 믿으면 살아있는 부처님을 친견하고서도 아무 이익을 얻지를 못할 것입니다.

언제나 귀가 따갑게 거듭거듭 말씀을 드린 바지만, 중생의 번뇌 망상, 인간의 생로병사 속에 대해탈도(大解脫道)는 조끔도 숨김없이 열려져 있다고 하는 사실,
어느 망상, 어느 번뇌 한마디에서도 진리로 통하는 길은 있다고 하는 사실에 명심을 하고, 일어나는 한 생각이 다음 생각으로 번지기 전에 화두를 들도록 노력을 할 것입니다.

이 길 밖에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없는 것입니다.
백천만 억의 불보살이 출현한다 하더라도 중생의 번뇌를 여의고 부처는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도장칠보시삼천(徒將七寶施三千)허되  사구친문요상근(四句親聞了上根)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무량겁래제불조(無量劫來諸佛祖)가  종자초출열반문(從玆超出涅槃門)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천대천세계에 칠보를 가지고 보시를 하는 것보다 금강경의 사구게(四句偈)를 설함으로써 상근(上根)을 요달(了達)한다.

금강경의 사구게는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만약 색(色)으로써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하면, 시인(是人)은 행사도(行邪道)여.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삿된 길을 행함이라 부처님, 여래(如來)를 보지를 못한다.(不能見如來)

이러한 사구게 한마디를 설하고, 남을 위해서 설해 주거나, 스스로 그 사구게를 들어서 지니고 또 그것을 실천한 것만 같지 못하다.

왜 그러냐 하면, 칠보로써 삼천대천세계에 보시한 공덕은 인천(人天)의 유루복(有漏福)은 될 것이나, 사구게를 듣고 믿고 실천을 하거나 남을 위해서 해설해 주는 그 공덕은 마침내 대열반(大涅槃)을 얻을 수가 있게 되기 때문에 그렇다.

그 사구게로 인해서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도 열반을 얻고, 바로 거기에서 부처님이 탄생을 하시게 되었더라.

그러면 누구라도 참선을 할 것이 없이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 그 게송만 자꾸 외우면 좋지 않겠느냐?'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이 사구게의 참뜻을 잘 이해를 못한 사람인 것입니다.

사구게의 그 글귀 문자가 문제가 아니라 그 문자의 뒤에 있는 참뜻에 눈을 떠야 하고, 그 뒤에 있는 참뜻을 실천을 해서 진리의 눈을 떠야지, 그 게송만을 무의미하게 자꾸 독송(讀誦)을 한다고 해서 거기서 부처님이 나온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뜻을 모르고라도 외우고, 뜻을 모르고라도 남에게 자꾸 일러만 줘도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언젠가는 그 씨로 부터서 싹이 트고 열매가 맺게 된다는 뜻에서는 또 뜻이 없다고 할 수가 없지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참뜻은 그러한 범위에서 머무른 것을 원하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서 빨리 대해탈도를 증득을 해서 잠시도 끊임없이 훨훨 타고 있는 이 불을 꺼주시기를 다시 부탁을 하면서 말씀을 끝맺고자 합니다.(56분42초~68분10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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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송) ‘보만삼천급대천~’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 야부 게송 참고.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함.
고대 인도인의 세계관에서,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위에 4대주(四大洲)가 있고, 그 바깥 주위를 9산8해(九山八海)가 둘러싸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이며 하나의 소세계(小世界)라 함.
이 하나의 소세계를 천개 모은 것을 하나의 소천세계(小千世界)라 부르고, 이 소천세계를 천개 모은 것을 하나의 중천세계(中千世界), 이 중천세계를 천개 합한 것을 하나의 대천세계(大千世界)라 부른다.
이 대천세계(大千世界)는 천(千)을 3번 모은 것이고, 소천•중천•대천의 3종류의 천세계(千世界)로 이루어지므로 3천세계 또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라고 한다. 이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함.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가 지은 복(福)으로, 복을 지은 만큼 쓰면 다함이 있다.
*자성(自性) ; 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살가죽을 벗겨 불 속에 집어넣거나 쇠매〔鐵鷹〕가 눈을 파먹는 따위의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함.
*무생(無生) ; ①생멸(生滅)을 벗어난 절대의 진리. 생멸(生滅)이 없는 도리. 곧 불생불멸하는 진여법성(眞如法性)을 알고 거기 안주하여 움직이지 아니함. 무생법인(無生法忍).
②아라한(阿羅漢) 또는 열반(涅槃)의 번역어. 번뇌를 없앤 경지를 말함.
*체달(體達) ; 사물의 이치를 통달하여 깨달음.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상근대지(上根大智)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질이 뛰어나고, 지혜가 큰 사람.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함령(含靈)• 함식(含識)• 군생(群生)• 군맹(群萌)•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부처님 : [범] Buddha 음을 따라 한자로 불타(佛陀)•부도(浮圖•浮屠)•부타(浮陀)•발타(勃陀)•몰타(沒駄) 등으로 쓰고, 줄여서 불(佛)이라고만 하는데, '깨친다'는 말이다.
'부처님'이라 함은 '깨친 어른(覺者)'이란 뜻이다。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는 이를 말함이니,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망지(妄知) ; 중생의 망령(妄靈)된 알음알이.
*요(要) ; [주로 ‘요는’의 꼴로 쓰여]사물의 핵심이 되는 가장 중요한 요점이나 골자.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적광토(寂光土) ; 상적광토(常寂光土). 상적광(常寂光). 법신불(法身佛)이 머무르는[住] 정토(淨土).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과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먹음은 것,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것 등등.
*팔만세행(八萬細行) ; 부처님의 모든 행동은 원만하여 모자라거나 넘침이 없다는 것. 팔만 가지 세세한 행동들이 전부 부처님의 위의(威儀, 훌륭한 행위)에 어긋남이 없다는 뜻이다.
*열반상(涅槃相) ; 부처님의 성도(成道)를 중심으로, 부처님의 일생에 있어서의 8가지의 중요한 사항인 팔상성도(八相成道) 또는 팔상(八相)의 하나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을 말한다. 쿠시나가라성 밖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최후의 설법을 마치고 열반에 드는 모습.
*화신(化身) ; 화신불(nirmaka-kaya 化身佛). 부처의 삼신(三身:法身•報身•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응화신(應化身)·변화신(變化身)•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선가귀감(용화선원刊) p64.
*마군(魔軍) ; ①불도(佛道)를 닦는 데 방해가 되는 온갖 악한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석가모니의 득도를 방해한 악마의 군사. ③일이 잘 풀리지 않도록 훼방을 놓는 무리.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나쁜 마음의 작용. 번요뇌란(煩擾惱亂)의 뜻.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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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경(涅槃經) : [범] Mahaparinirvana-sutra  한문으로 번역된 것이 여러 가지가 있어서, 소승부에 속한 것이 세 가지나 되고, 대승부에 속한 것이 남본(南本)과 북본(北本)이 있다.
보통으로 말하는 것은 북본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북량(北凉)의 담무참(曇無讖)이 번역한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인데, 13품 40권으로 되어 있다.

내용은 석가여래께서 팔십 년의 한 세상을 마칠 때의 설법과 자세한 사연이 적혀 있으며, 특히 부처님의 금강신(金剛身)은 늘 계시어서(常住不滅) 죽음이 없으며, 부처님의 참 수명은  끝이 없음을 가르치고 있다.
소승의 <열반경>은 주로 역사적으로 기록한 것으로써, 입멸 전후에 걸쳐 유행(遊行) • 발병(發病) • 순타(純陀)의 공양 • 최후의 유훈 • 멸후의 비탄 • 사리 팔분(舍利八分)등을 주요한 것으로 하고, 대승의 <열반경>은 교리를 주로 하여, 열반이란 사실에 불타론(佛陀論)의 종국과 불교의 이상을 말하였다.
*인행(因行) ; ①수행. (부처가 되기 위한) 인(因)이 되는 행(行). 깨달음을 여는 근본이 된다.
②수행에 방해가 되는 외부의 요인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롯이 수행정진하는 것. 보살이 인행(因行)을 닦아서 깨달음의 과보(果報)를 얻는 것을 수인감과(修因感果)라고 한다.
*나찰(羅刹) : 신속하게 땅이나 공중으로 다니면서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무서운 악귀(惡鬼). 나중에 불교의 수호신(守護神)이 되었다.
*시치미를 떼다[따다] ; (사람이) 매를 훔친 사람이 시치미를 떼어 내고 자기 매인 것처럼 행세한다는 뜻으로, 자기가 하고도 짐짓 하지 않은 체하거나 알고도 모르는 체하다.
'시치미'는 매의 주인를 밝히기 위해 주소를 적어서 매의 꽁지 털 속에 매어 둔 네모난 뿔을 이르는 말.
*적멸(寂滅 고요할 적,다할•끊어질 멸) ; ①번뇌의 불을 완전히 꺼버린—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마음의 궁극적인 고요함. 적정(寂靜)으로 돌아가 일체의 상(相)을 여의고 있는 것.
②열반, 부처님의 경지, 깨달음.

*제석천왕(帝釋天王) ; 불법(佛法) 지키는 수호신. [天神]들의 제왕[] 샤크라〔釋〕라는 . 제석(帝釋), 석제(釋帝), 제석천(帝釋天), 제석왕(帝釋王), 제석태자(帝釋太子), 천주(天主)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Śakra-devānām Indra). 석제환인다라(釋提桓因陀羅) ·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 ·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 ·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 등으로 음역하고 줄여서석제환인(釋提桓因, 釋帝桓因) · 제석천(帝釋天)이라 한다.

『법화현찬(法華玄贊)』에서는 범어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에서 석가 ()씨이며 ()이라 한역하고, ‘제바 ()’이라 한역하며, ‘인달라 ()’ 한역하니  능천제(能天帝)’ 한다 뜻으로 보면 석가(능히) 제바(하늘의) 인달라(제왕)’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는데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왕으로, 사천왕(四天王)32() 통솔하면서 불법(佛法) 불제자를 보호한다. 도리천에는 33신이 있는데, 제석은  중앙에 있는 선견성(善見城) 안의 수승전(殊勝殿)이라는 궁전에 살고, 나머지 32신은  () 밖의 궁전에서 각각 산다.

제석천은 본래 인도 성전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천신  벼락을 신격화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었으나 불교에수용되어서는 범천(梵天) 함께 호법선신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상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수호하고 사바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에서는 단군의 할아버지를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하여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동일시하여 숭배하였다.

<잡아함경>에는 제석천이 본래 사람이었으나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 향과 와구(臥具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한다. 제석천왕은 신중탱화(神衆幀畵)  손에 금강저(金剛杵) 들고 머리에 보관(寶冠) 쓰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한다.

*(게송) ‘도장칠보시삼천~’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 예장종경 게송 참고.
*요달(了達 마칠•완전히 료,통달할 달) ; 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열반(涅槃) : [범] nirvana  [파] nibbana  음을 따라 니반나(泥畔那) • 니원(泥洹) • 열반나(涅槃那)라 쓰고, 뜻으로 번역하여 멸(滅) • 적멸(寂滅) • 멸도(滅度) • 원적(圓寂) • 안락(安樂) • 해탈(解脫) 등이라 한다.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를 말함이니,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할 것 없이 무엇이나 다 열반이며 어느 때나 늘 열반이다。이것이 큰 열반인 것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초파일)2014. 5. 1. 05:33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675) (게송) 천상천하무여불~ /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 사람 사람이 본래로부터 태평하다 / (게송) 제법종본래~ / ‘모든 것이 본래로 생사가 없는 진리다’

대관절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 나오셔서 무슨 노래를 항상 부르셨을까?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 사람 사람이 본래로부터 태평하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서 생활 속에서 수행을 쌓아나가면, 「원래 내가 생사가 없는 존재이고 진리의 존재」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신 목적은 ‘너희들 모두가 다 원래로 부처님이다. 진여(眞如)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켜 주어서 그것을 깨달아서 생사를 해탈하게 해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다 부처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의 부처를 찾는 것」이 바로 그것이 정법(正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이고, 그것이 참선(參禪)인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삼천 년 전에 열반(涅槃)하셨지만, 우리가 이 법에 의해서 ‘이뭣고?’를 통해서 자성(自性)을 찾는다면 언제나 어디서나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675) - 03년 부처님오신날(03.05.08) 법문. (용675)

 

약 21분.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이요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로다
나무~아미타불~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하니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로다
나무~아미타불~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이요.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부처님과 같은 분이 안 계시다.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로다. 시방세계에 부처님께 견줄 만한 분이 없다.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하되. 내가 온 세간(世間)을 다 보되,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다. 부처님과 같은 분은 안 계시다.

이 게송(偈頌)은 무량억겁 전에 백겁(百劫) 수행을 부처님께서 하실 때, 미륵 보살(彌勒菩薩)과 석가모니 부처님이-그때는 보살로 수행하실 때인데, 그때 저사불(底沙佛)이라고 하는 부처님 밑에서 수행을 하시다가 그 석가 보살(釋迦菩薩)께서 저사불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그 노래로 인해서-칠일칠야(七日七夜) 동안을 한 발을 들은 채 그 저사불의 거룩하고 위대하신 모습을 찬양하야, 그 공덕으로 구겁(九劫)을 초월해 가지고 미륵 보살보다도 먼저 성불(成佛)을 하신 인연이 있는 게송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할 때마다, 부처님께 공양(供養)을 올릴 때마다 이 게송으로써 부처님의 모든 위대함을 찬양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어째서 부처님은 이렇게 거룩하시고, 우리는 기회있을 때마다 부처님의 거룩함을 이렇게 찬양을 하느냐 하면은, 부처님께서 왕궁에 태어나셔서 그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처럼 버리시고 출가하셔가지고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하셨습니다.

‘견성성불을 하신다’한 말은 대관절 무엇을 깨달아서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에 팔만사천의 한량없는 법문(法門)이 들어있습니다마는, 오늘 산승(山僧)은 그 가장 요점만을 간략히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과연 일생 동안을 무슨 마음으로 사셨으며, 무슨 설법을 초점을 두고 하셨으며, 평생 동안 무슨 노래를 부르셨을까?

관타야불망(觀他也不妄)이요. 모든 것을 보실 때, 모든 중생과 모든 것을 다 보실 때에는 ‘망령(妄靈)되지 않다.[不妄]’
관타야불망(觀他也不妄)이요. 관자역무생(觀自亦無生)이다. 당신 스스로는 어떻게 당신을 보셨을까? ‘남이 없다.[無生]’고 그렇게 보셨어.

‘망령되지 아니하다[不妄]’고 하는 것은 모두가 다 진실이요, 모두가 진여불성(眞如佛性)이요, 모두가 진리다 그 말씀이고, 스스로를 보실 때 무생(無生)으로 보셨다 그말이거든.

보통 우리 중생으로 볼 때는 「부처님께서 왕궁에 태어나셔가지고 그래가지고 출가하셔서 고행을 하셔가지고 깨달았다.」 그렇게 우리는 중생의 눈으로 그렇게 보지마는,
부처님 자신은 ‘남이 없다[無生]’고 그렇게 스스로를 보신 것입니다,

일생 동안 우리 중생들도 좋아하는 노래가 있어서 기쁠 때도 노래를 부르고, 슬플 때도 노래를 부르고, 혼자도 부르고 여러 사람이 모이면 다 같이 노래를 부릅니다. 어떤 의식이 있을 때도 노래를 부릅니다.

대관절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 나오셔서 무슨 노래를 항상 부르셨을까?(出世謌何事)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 사람 사람이 본래로부터 태평하다.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사람 사람마다 태평하다.’ ‘태평(太平)하다’고 하는 것은, 모든 고통이 없으며 슬픔이 없으며 아무 근심걱정 할 것 없고, 항상 행복하고 항상 넉넉하고 항상 즐겁기 때문에 그것을 ‘태평하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우리는 생로병사가 있고 흥망성쇠가 있고 희로애락이 있어서 정말로 행복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까닭이 있습니다,

자기가 본래 부처고, 본래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과 똑같은 존재임을 알지를 못하고,
‘자기는 중생이고, 중생은 생로병사 속에서 고통을 받게 되어있다.’ 그렇게 착각을 하고 살기 때문에, 본래 부족함이 없고 본래 생사가 없는 존재이면서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처음에 이 「생사 없는 도리(道理)」를 말씀을 하셨지마는 중생이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원래 우리는 괴로운 것이다. 괴로운 것을 없애야 우리가 열반에 드는데 괴로움의 원인이 뭣이냐?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 때문에 생사가 있는 것이고, 고통이 있는 것이고, 진리 속에서 있으면서 진리를 모른 것이다.’ 이렇게 차츰차츰 단계적으로 말씀을 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서 생활 속에서 수행을 쌓아나가면, 「원래 내가 생사(生死)가 없는 존재이고 진리의 존재」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법문을 설하시다가, 나중에 법화경(法華經)을 설하실 때 부처님은 무슨 게송을 읊으셨냐 하면은,

제법종본래(諸法從本來)로  상자적멸상(常自寂滅相)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자행도이(佛子行道已)하면  내세득작불(來世得作佛)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제법종본래(諸法從本來)로 상자적멸상(常自寂滅相)이다.
제법(諸法)이라 하는 것은, 우주법계 삼라만상을 모두 제법(諸法)이라 그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종본래(從本來)로 본래부터, 상자적멸상이다-항상 그대로 적멸상(寂滅相)이다. 열반상이다.
열반상(涅槃相)이라 하는 것은 ‘생사가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불자행도이(佛子行道已)하면, 불자가 이 도리를 깨달으면,
내세득작불(來世得作佛)이다, 그 도리를 깨달으면 바로 그것이 부처님이 되는 것이다.

내세(來世)라고 하니까 이 몸뚱이 80년, 90년 살다 죽은 뒤에 성불한다고 그렇게 해설한 것은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해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본래로 생사가 없는 진리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 경지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는데, 반야심경에도 불생불멸(不生不滅)이란 말이 있고, 경전마다 ‘생사는 본래 없다’고 하는 많은 법문이 나와 있는데,

어째서 우리는 생사가 있고 고통이 있고 슬픔과 괴로움이 있느냐 하면은,
비유를 들어서 물이라 하는 것은 섭씨 영도 이하로 내려가면 얼음이 됩니다. 고체가 됩니다. 그것을 끓여서 100도가 되면 증기가 나와 가지고 기체가 됩니다.

물로 되었을 때나 얼음으로 되었을 때나 증기로 있을 때나 물의 본성(本性), 습성(濕性)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때 상황 따라서 모양만 다르지 물이 본래 가지고 있는 그 물의 본성, 습성은 어떠한 모습으로 변하거나 그 자체는 언제나 고대로 있는 것입니다.

중생으로 있을 때나, 부자로 있으나, 가난뱅이로 있으나, 죄를 지어서 형무소에 가서 있거나 또는 더 무서운 죄를 지어가지고 지옥에 가서 있거나 또는 업에 따라서 축생의 모습을 뒤집어쓰고 있거나,
가지고 있는 그 본성(本性)은 부처님으로 있을 때나, 조사(祖師)로 있을 때나, 빈부귀천 어떤 모습으로 있을 때나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를 못해서 각각 다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가지고 잘난 사람은 잘난 채, 못난 사람은 기가 죽고, 부자는 부자라 해가지고 목에다 힘을 주고, 권리가 있으면 권리가 있다고 남을 업신여기고 자기의 권리를 휘두르고, 그러다가 부정(不正)을 하다가 잘못되면 또 다시 감옥에도 가고 그러한 흥망성쇠와 생사윤회와 희로애락 속에서 우리는 무량겁(無量劫)을 오늘날까지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몸속에는 어떠한 모습으로 있다하더라도 우리 속에는 부처님과 똑같은 진여불성(眞如佛性), 비로자나법신불이 우리 속에는 살아계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신 목적은 ‘너희들 모두가 다 원래로 부처님이다. 진여(眞如)다.’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켜 주어가지고 그것을 깨달아서 영원한 생사를 해탈하게 해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것을 확실히 믿고 그것을 우리가 구현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그 진리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참선을 하며 근기(根機)에 따라서 경(經) 공부를 하거나, 주력(呪力)을 하거나, 염불(念佛)을 하거나,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마는,
가장 유식(有識)·무식(無識)을 막론하고 누구라도 있는 그 자리에서 그 도를 닦을 수 있는 방법이 ‘이뭣고?’ 참선법(參禪法)입니다.

종파(宗派)에 따라서 각기 자기가 믿는 경전에 의거해서 여러 가지로 설법을 하고 교화를 하고 있지마는, 우리 용화사에서는,
일어나는 생각,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에서는 온갖 생각이 일어납니다. 좋은 생각도 일어나고 나쁜 생각도 일어나고 슬픈 생각도 일어나고 고통스러운 생각도 일어나지마는, 일어나는 그 생각을 바로 발판으로 해서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하면 그 ‘한 생각’에 자기의 본마음을 찾는 공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때가 따로 필요가 없고, 장소가 따로 필요가 없고, 언제 어디서라도 나를 찾는-나의 부처님을 찾는 길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산승이 이 법상에 올라와서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부처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의 부처를 찾는 것」이 바로 그것이 정법(正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이고, 그것이 참선(參禪)인 것입니다.

오늘 부처님 오신날을 기해서 많은 말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죄 있는 사람은 감옥에서도 ‘이뭣고?’를 하고, 부자도 ‘이뭣고?’를 하고 또 높은 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이뭣고?’를 하고, 자기가 자신을 찾다 보면 자기의 참마음을 깨달아서 진리와 자기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어려울 것입니다. 별로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자꾸하다 보면 자꾸 잊어버리고, ‘이뭣고?’를 하지마는 망상(妄想)이 일어날 것입니다마는 그 망상이 어디서 일어났냐 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여불성에서 그런 파도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원래 물은 깨끗하고 조용하지마는 바람이 불므로 해서 물결이 일어나.
물결이 일어났어도 내나 그 물결이 물인 것이고, 그 물은 원래 본성인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파도를 없애고 물을 찾지 말고, 파도에 즉해서 ‘이뭣고?’를 찾으면 진여불성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망상과 번뇌를 버리고 찾지 말고 거기에서 ‘이뭣고?’로 들어가면 가장 빨리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삼천 년 전에 열반(涅槃)하셨지만, 우리가 이 법에 의해서 ‘이뭣고?’를 통해서 자성(自性)을 찾는다면 언제나 어디서나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초파일에 많은 신도분들이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서 이렇게 많이 모이셨고 또 정성을 표하고 소원을 빌기 위해서 많은 등불을 켰습니다마는,

등불을 켜면서도 ‘이뭣고?’를 하시고, 돌아가신 길에도 ‘이뭣고?’를 하시고, 돌아가시면 가정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모든 문제를 ‘이뭣고?’-자기가 자기의 진성(眞性)을 찾는 거기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신다면,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이 될 것이고, 가정에 분위기도 좋아질 것이고, 사회도 그것으로 인해서 좋아질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 사람이 이렇게 한다면 부정부패도 없어질 것이고, 대한민국이 정말 살기 좋은 행복한 나라가 될 것이고, 온 세계에도 극락세계(極樂世界)로 변하는 길은 오직 여기에 있다고 산승은 생각합니다.(처음~20분28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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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천상천하무여불~ ;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 찬불게(讚佛偈)라 한다.
『본생경(本生經)』에서 말하기를, 아주 먼 과거에 저사(底沙)라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그때 두 사람의 보살이 있었으니, 한 사람은 석가(釋迦) 보살이라 했고 또한 한 사람은 미륵(彌勒) 보살이라 했다.
어느날 저사불께서 두 보살을 관찰해 보시니, 지혜의 면에서는 미륵 보살이 앞서 있으나 중생 교화의 면에서는 석가 보살이 앞서 있어서, 저사불은 석가 보살로 하여금 속히 부처를 이루게[成佛] 하기 위하여 설산에 올라가 보굴(寶窟) 속에서 화광삼매(火光三昧, 火定)에 드셨다.
이때 석가 보살이 산에 올라가 약을 캐고 있었는데, 저사불께서 보굴 속에 앉아 화광삼매에 들어 밝은 광명을 내뿜는 것을 보자, 그 거룩한 모습에 어찌 할 수 없어-들었던 발을 내려놓고 또 다른 발을 들어서 걸어가지를 못하고-한 발을 들은 채로 합장하고, 환희하며 믿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하여 일심으로 우러러 뵙되 잠시도 눈을 깜박이지 않고 7일 낮과 7일 밤을 있었다.
여기에서 그 칠일칠야(七日七夜) 시일이 지나가면서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 천상천하에 부처님 같으신 이 없으시고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 시방세계에서도 견줄 이 없도다.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 세상에 존재하는 것, 내 모두 보았으나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 그 어느 것도 부처님에 비할 바 아니네.

이 게송을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찬불게(讚佛偈)라 하는데,
7일 7야 동안 세존(世尊)을 자세히 관하되[諦觀] 조금도 눈을 깜박이지 않으시니, 이로 인해 아홉 겁(九劫)을 뛰어넘어 91겁 만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를 얻으셨다.
[참고] [대지도론(大智度論)] (4권) '初品中菩薩釋論第八' 참고. [전등록 2] (동국역경원) p133 참고.

*저사불(底沙佛) ; 산스크리트어 Tisya. 부처님 이름. 불사(弗沙)·보사(補沙)라고도 함. 명(明)·원만(圓滿)이라 번역한다.

*세간(世間) ; (산스크리트어 loka) 세(世)는 파괴·변화, 간(間)은 가운데·간격을 뜻함.
①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② 생물들의 세계. ③ 생물들이 거주하는 자연 환경, 곧 산하대지. ④ 세상. 이 세상. 세속. ⑤ 산스크리트어 saṃsāra 미혹한 세계.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게송) ‘관타야불망~’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99 ‘찬불(讚佛)’ 게송 참고. *謌(가) 노래. 歌와 동자.
*무생(無生) ; ①생멸(生滅)을 벗어난 절대의 진리. 생멸(生滅)이 없는 도리. 곧 불생불멸하는 진여법성(眞如法性)을 알고 거기 안주하여 움직이지 아니함. 무생법인(無生法忍).
②아라한(阿羅漢) 또는 열반(涅槃)의 번역어. 번뇌를 없앤 경지를 말함.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도리(道理) ; 이치(理致).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는 모든 만유(萬有)를 꿰뚫고 있는 법칙. 모든 것에 두루 통하는 진리. 진리와 결합된 이론이나 증명. 타당한 이치.
*법화경(法華經) ; 본이름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7권 28품. 구마라집(鳩摩羅什) 번역.
경 전체를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부에서는 회삼귀일(會三歸一)을, 후반부에서는 세존의 수명이 무량함을 설함.
회삼귀일(會三歸一)이란 세존이 이 세상에 출현하여 성문(聲聞)과 연각(緣覺)과 보살(菩薩)의 삼승(三乘)에 대한 여러 가지 가르침을 설하였지만 그것은 결국 일승(一乘, 오직 하나의 궁극적인 부처의 가르침)으로 이끌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며, 후반부에서는 세존을 법신(法身)과 동일시함으로써 영원한 존재로 상정하여 신앙의 대상을 확립함.
*(게송) 제법종본래~ ; [법화경(法華經)] 방편품(方便品) 사구게.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주력(呪力) ;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로 하는 기도.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의 효과.
*염불(念佛) ;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과 같은 불•보살님의 이름을 외움. 흔히 어떤 일을 기원하며 ‘나무관세음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을 소리 내어 외우는 일을 말한다.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종파(宗派) ; 한 종교에서 교리나 의식의 차이로 나뉜 큰 갈래.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이뭣고?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이뭣고? (이 무엇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초파일)2014. 4. 26. 19:15

§ (게송) 운변천첩장~ / 이 사바세계는 성불(成佛)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여건이 갖추어진 세계다 / '이뭣고?' 한마디 속에 팔만대장경, 온갖 부처님의 성스러운 관법이 다 들어있다.

모든 우리 앞에 펼쳐지는 경계는 다 환(幻)으로, 우리의 중생 환(幻)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의 모든 환(幻)은 몽환(夢幻) 경계인데, 중생의 업(業)으로 나타나는 모든 경계는 꿈속에 앓는 만신창병(滿身瘡病)과 같은 것입니다.
‘꿈속에 앓는 만신창이, 꿈을 깨면서 낫는다’
모든 경계가 환(幻)인 줄 깨닫는 법이 바로 ‘이뭣고?’를 드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해탈도로 가는 길입니다.


**송담스님(No.38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용389)

 

약 15분.

 


운변천첩장(雲邊千疊嶂)이요  난외일성천(欄外一聲川)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약불연순우(若不連旬雨)하면  나지제후천(那知霽後天)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운변천첩장(雲邊千疊嶂)이요, 난외일성천(欄外一聲川)이다.
저 구름 가에 천첩이나 쌓인 산이 있고, 울담 밖에 한 소리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가 있더라.

약불연순우(若不連旬雨)하면, 만약 열흘 동안이나 계속해서 내리는 그 비가 없었다면,
나지제후천(那知霽後天)이냐. 어찌 비 갠 뒤에 그 새파란 하늘 있음을 알 수가 있었겠는가.
앞으로 장마 계절이 옵니다마는, 장마에 구름이 끼고 비가 내리기를 열흘 스무날 계속한 뒤에 햇빛이 쨍쨍 하고 나야, 비로소 햇빛 고마운 줄도 알고 파란 하늘도 비로소 새롭게 느껴진다 이거거든.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생로병사•희로애락•흥망성쇠가 이렇게 뒤범벅이 되어있는 세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사바세계에서 발심(發心)하기가 좋고, 분심(憤心)내기가 좋고, 그래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여건이 갖추어진 세계다 이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 병고에 시달리는 분, 사업에 여의치 못해서 고통 속에 빠지신 분, 아들을 못 낳아서 고통에 빠진 며느님들, 또는 아들딸이 공부를 잘 못해서 대학에 못 들어갈까 봐 걱정이신 분, 남편과 아내가 서로 의합(義合)이 좋지 못해서 고통 받는 분, 그런 고통을 어떻게 해서 이겨갈 수가 있겠습니까?
이러한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발심할 수 있는 좋은 계기요, 발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열심히 법회에 나오셔서 듣는 법문 또 듣는 법문이라도 열심히 법문을 듣다 보면, 어느 땐가는 확! 지혜의 눈이 열릴 때가 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거슬리는 일을 당하면은 성을 내고, 우리 마음에 합당(合當)한 그러한 일을 당하면 우리는 기뻐합니다.
천하 사람이 전부 역경계(逆境界) 아니면 순경계(順境界) 속에 걸려서, 노예가 되어가지고 울다 웃다 하면서 아까운 생명을 헛되이 보내면서 삼악도(三惡道)를 향해서 굴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보십시오. 내 마음에 맞는 순경계가 머지않아서 뒤집어져 가지고 역경계로 변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역경계를 만나서 있다 하더라도 그 고비를 잘 참고 견디면서 노력을 하다보면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고, 쥐구멍에도 또 볕들 날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경계•순경계에 놀아나지 말고, 어떠한 경계(境界)를 닥치든지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닌 것'을 깊이 인식하고 항상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이뭣고?’
역경계•순경계에 끄달려서 울다 웃다한 사람은 항상 경계에 속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우리 앞에 펼쳐지는 경계는 다 환(幻)으로, 우리의 중생 환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생(衆生)은 곳곳마다 일어나는 그 환(幻)의 업(業)에 끄달려 가는 거고, 성문(聲聞)•연각(緣覺)은 그 환(幻)의 경계가 무서워서 어쨌든지 그놈을 없앨라고 그러면서 그 본심(本心)을 미(迷)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 생각만 없앨려고 번뇌 망상만 끊을려고 노력을 해가지고, 그래가지고 그 관법(觀法)을 닦아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는 것이 궁극의 목적이여. 그래야 태어나지 않고, 태어나지 아니해야 죽음이 없을 것이다. 그것도 썩 훌륭한 법이 아닌 것입니다.

보살(菩薩)은 그 환(幻) 경계라고 하는 것을 꿰뚫어 봐 버리기 때문에 그러한 희로애락•성주괴공•흥망성쇠 그러한 명사(名詞)에 얽매이지를 아니 해. 그래가지고 어떠한 경계를 닥치든지 ‘본래 남이 없는’ 무생(無生)의 진리에 딱 마음을 계합시켜 버리는 거여. 그것이 바로 ‘이뭣고?’거든.

‘이뭣고?’를 자꾸 하다보면, 무슨 생각이 ‘한 생각’이 일어나자마자 ‘이뭣고?’하면 그 생각이 둘째번 셋째번 생각으로 번질 겨를이 없어.

그것이 번져 가지고 결국은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는데,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이뭣고?’했을 때 바로 거기서 생사 없는 무생(無生)의 경지(境地)로 들어가는 법이다 그말이여.


우리 중생의 모든 환(幻)은 몽환(夢幻) 경계인데, ‘환(幻)은 왜 환(幻)이라 하냐?’하면은, 마치 어떤 사람이 꿈속에 몸뚱이에 아주 종기(腫氣)가 일어나 가지고 차츰차츰 번져서 아주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되었다 그말이여.
‘어떻게 해야 이 무서운 창병(瘡病)을 고칠까?’ 그래가지고 너무너무 비탄에 빠지고 고통에 빠졌다가, 누가 텅! 하는 바람에 눈을 뚝 떠 보니까 아! 꿈이었다 그말이여.

그렇게 온 전신이 쑤시고 애리고 가렵고 그러던 것이 눈을 딱! 뜨자마자 몸뚱이를 이리저리 살펴보니 그 구녁구녁이 고름이 터져 나오던 것이 간 곳이 없다 그말이여.
우리 중생의 모든 업(業)으로 나타나는 모든 경계는 꿈속에 앓는 만신창병(滿身瘡病)과 같은 것입니다.

‘한 생각’ 터억 돌이켜 버리면, ‘한 생각’ 돌이켜서 깨달아버리면 방편(方便)이 필요가 없어.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의 법문(法門)이 이 ‘꿈에 앓는 만신창이, 꿈을 깨면서 낫는다’고 하는 이 말씀 한마디 속에 다 포함이 되어있는 것이여.

여러분이 앞으로 어떠한 고통을 받더라도 ‘이뭣고?’ 한마디로써 모든 고통을 다 치료해 나가셔. 미운 사람을 만나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나, 좋은 경계를 만나나, 괴로운 경계를 만났을 때, 환(幻)인 줄 깨닫는 법이 바로 ‘이뭣고?’니까 ‘이뭣고?’를 드시어. 그것이 바로 새로 태어나는 길인 것입니다.

등(燈) 하나를 올리고 우리는 무량억겁(無量億劫)으로 윤회 할, 윤회(輪廻)를 벗어나는 도리를 우리는 알았습니다.

 

앞으로 이 몸뚱이가 20년, 30년 얼마를 유지할란가 모릅니다마는 그까짓 것은 우리가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10년을 살다가 가든지 30년을 살다 가든지 이 몸뚱이는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그건 큰 걱정할 것 없고,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한 생각’만 무섭게 단속(團束)을 해 나가면, 그 속에 우리는 해탈도로 가는 길이 거기에 열려져 있는 것입니다.

오늘 2533년 기사년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해서 부처님께서 태어나시듯이 우리도 오늘 이 자리에서 새로 태어났습니다. 새로 태어났으니 과거의 모든 일은 완전히 다 잊어버려.
우리가 갓난 애기 새로 태어나면서 전생일 다 잊어버리고, 우리 지금 전생에 무엇이 어쨌다 한 것을 아는 사람 있습니까? 숙명통(宿命通)이 열리면은 전생 과거사도 다 안다고 그럽니다마는, 우리는 새로 태어날 때 과거 일을 다 잊어버린 것이 정상적인 것입니다.

오늘 이전의 모든 원한(怨恨) 관계도 다 잊어버리고, 근심•고통도 다 잊어버리고, 새로 태어나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 한 시간 한 시간, 1분 1분, 1초 1초를 살아갈 것을 기약하면서,

자, 손을 드시고, ‘이뭣고?’(이뭣고?)  ‘이뭣고?’(이뭣고?)  ‘이뭣고?’(이뭣고?)

간단한 한마디지만 팔만대장경이 그 속에 다 들었고, 온갖 부처님의 성스러운 관법이 이 속에 다 들어있습니다.

이어서 여러분들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의식과 축원이 있고, 그리고서 지하실로 내려가셔서 간략한 점심 공양을 드실 것입니다. 그리고 저녁에 7시 지나서 우리의 정성스러운 등(燈)에 등불이 켜지게 될 것입니다.

일파유조(一把柳條)를 수부득(收不得)하여  화풍탑재옥난간(和風搭在玉欄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일파유조(一把柳條)를 수부득(收不得)하여, 한 움큼 버들가지를 휘어잡지 못해서,
바람과 함께 옥난간(玉欄干)에다 걸어 두노라.(44분3초~58분35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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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운변천첩장~ ; [편양당집(鞭羊堂集)] 卷一 ‘偶吟一絶’, 편양언기(鞭羊彦機 1581-1644) 게송 참고.
*疊(첩)겹치다. 포갬. *嶂(장)산봉우리. *欄(난)난간. *旬(순)열흘. 열흘 동안. *那(나) (반어)어찌…할 수 있겠는가. *霽(제)비 개다. 비 그치다.
*사바세계(娑婆世界);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합당하다(合當--) ; (…에/에게) 어떤 기준, 조건, 용도, 도리 따위에 꼭 알맞다.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 곧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를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전화위복(轉禍爲福) ; ‘재앙[禍]이 바뀌어[轉]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으로, 좋지 않은 일이 계기가 되어 오히려 좋은 일이 생김을 이르는 말.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환(幻) ; ①허깨비. 모든 사물은 여러 가지 인연(因緣)이 모여서 생긴 것으로 실체가 없는 것에 비유함. 환(幻)을 실(實)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생의 미혹한 생각임. 환(幻)을 무(無)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승(二乘-聲聞,緣覺)의 공(空)에 얽매인 견해, 단공(但空-단지 空만을 집착하는 것)임.
환(幻)은 또 화(化)와 거의 같은 뜻이므로 환화(幻化), 꿈과 비슷하므로 환몽(幻夢)•몽환(夢幻)이라고도 한다.
②신기루, 아지랑이 같은 것.
*중생(衆生) ; ①생존하는 것. 목숨이 있는 것. 산것. 살아있는 것. 특히 인간. 사람들. 세상 사람. 유정(有情)이라고도 함. ②번뇌에 얽매여 미혹한 모든 존재. ③부처가 될 수 있는 요소. 본질.
*성문(聲聞) ; 부처님의 음성(聲)을 들은(聞) 사람이라는 뜻. 산스크리트어 śrāvaka, 팔리어 sāvaka.
①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사제(四諦)의 이치를 깨달아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자.
②자신의 깨달음만을 위해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자.
*연각(緣覺) ; 산스크리트어 pratyeka-buddha  팔리어 pacce ka-buddha
①홀로 연기(緣起)의 이치를 관찰하여 깨달은 자. 가르침에 의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깨달은 자. 자신의 깨달음만을 위해 홀로 수행하는 자. 독각(獨覺)·벽지불(辟支佛)이라고도 함.
② 연각승(緣覺乘)의 준말.
*관법(觀法) ; 마음으로 진리를 관(觀)하고 염(念)하는 수행. 마음의 산동(散動)을 멈추어, 그 결과 생기는 지혜[明知]로 모든 대상[諸法]의 진실한 모습을 관찰하는 수행. 마음의 본성을 자세히 살피는 수행. 어떤 현상이나 진리를 마음 속으로 떠올려 그것을 자세히 살피는 수행. 한 생각만 주시하여 한결같이 그것을 잊지 않는 수행.
*멸진정(滅盡定) ; ①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선정(禪定).
② 무소유처(無所有處)의 경지에 이른 성자가 모든 마음 작용을 소멸시켜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닦는 선정(禪定).
멸정(滅定)·멸진등지(滅盡等至)·멸진삼매(滅盡三昧)·상수멸정(想受滅定)·멸수상정(滅受想定)이라 한다.
*보살(菩薩) ;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bodhi는 깨달음, sattva는 살아 있는 존재, 곧 중생을 뜻하므로-보살은 깨달을 중생, 깨달음을 구하는 중생, 구도자(求道者)라는 뜻.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각유정(覺有情) 등으로도 불린다.
①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수행으로 미래에 성불(成佛)할 자. 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행하는 자.
② 보살승(菩薩乘)의 준말.
*무생(無生) ; ①생멸(生滅)을 벗어난 절대의 진리. 생멸(生滅)이 없는 도리. 곧 불생불멸하는 진여법성(眞如法性)을 알고 거기 안주하여 움직이지 아니함. 무생법인(無生法忍).
②아라한(阿羅漢) 또는 열반(涅槃)의 번역어. 번뇌를 없앤 경지를 말함.
*이뭣고?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이뭣고? (이 무엇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종기(腫氣 부스럼 종,기운 기) ; 사람이나 동물의 피부가 곪아 고름이 차는 질환.
*만신창이(滿身瘡痍 찰 만,몸 신,부스럼 창,상처 이) ; 온몸이 제대로 성한 데가 없을 만큼 상처투성이가 됨.
*창병(瘡病) ; 피부나 살에 발생하는 질병을 통틀어 이르는 말.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의 하나로,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자유 자재한 능력.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