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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4.08 §(031) 이 참선법(參禪法)은 절대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 아는 것은 깨달은 것과는 다른 것 / 무엇이든지 극(極)하면 터지는 것 / 법회 때의 청법 질서.
  2. 2015.10.26 §(366) (게송)행년홀홀급여류~ / ‘내가 바로 부처다.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 전식득지(轉識得智) / (게송)광명적조변하사~ / (게송)단제번뇌중증병~.
  3. 2015.08.19 §(366) (게송)행년홀홀급여류~ / 생사도 바로 일념에서 봐야 / 공화(空花) / 믿음 ‘내가 바로 부처다.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 전식득지(轉識得智) /자기 안에 있는 보배.
  4. 2015.07.25 §(405) (게송)산당정야좌무언~ / “별을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별을 보는 것이다” / (게송)천척사륜직하수~ / 깨달음이라하는 것은 척! 보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다.
  5. 2014.09.30 §(335) (게송)작야시우치~ / 최상승법 제일구(第一句) 도리는 불조(佛祖)도 엿볼 수가 없는 것 / 내가 정신 차릴 것은 본참공안을 드는 것 뿐.
  6. 2014.09.24 §(013) 신심, 분심, 의심 / 참선은 마군이와의 전쟁 /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
  7. 2014.08.18 §(769) (게송)당하지귀아시수~ / 목련경(目連經)-효도 / 생사 호흡지간-무상(無常)하다 / (게송)전단목주중생상~ / 우리 다같이 영원한 도반으로서 성불합시다.
  8. 2014.03.26 §(445)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설사 확철대오를 못해도 악업(惡業)에 끌려가지 않는다 / ‘한 생각’ 단속하는 것이 기가 막히게 중요하다.
  9. 2014.03.12 §(세등68) (게송) 구명소일모선성~ /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알고 모르는데 있는 것이 아니여 / 조백(糟魄).
  10. 2014.03.11 §(세등68) (게송) 참선수투조사관~ / 육화(六和) / 해제(解制)가 바로 결제(結制) / 새판잽이.
정진(精進) 수행2017. 4. 8. 05:36

§(031) 이 참선법(參禪法)은 절대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 아는 것은 깨달은 것과는 다른 것 / 무엇이든지 ()하면 터지는 것 / 법회 때의 청법 질서.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깨달을  있는 요소는 잠시도 자기를 떠나지 않고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밖에 있는 진리, 이치를 아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뭣고?’하는 그놈을 자기가 깨달으면 되는 것입니다.

 

의심이 더이상 커지지 못하고 더이상 깊어지지 못하고 더이상 간절할 수가 없을 경지에 도달하면 반드시  의심은 타파(打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하면 터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깨달음에 이르른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전강 스님의 법문에 의지해서 열심히 참선을 한다고 하면은 전강 스님은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용화선원에 상주해 계시는 것이고, 언제나 여러분이 ‘이뭣고?’ 드는  찰나에 여러분의 가슴속에 전강 조실 스님은 살아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내가 나를 깨달을  우리는 전강 스님과  몸이 아니요, 석가여래(釋迦如來) 부처님과  몸이 아닌 것입니다.

 

**송담스님(No.031)—1976 12 관음재일 법문(76.12.24.) (용031)

 

약 20분.

 

 참선법(參禪法)은 절대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염불을 하기를 주장을 하고, 주문을 외우기를 주장을 하고, 경을 읽기를 주장을 하고, 기도를 하기를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은근히 참선을 이렇게 말을 합니다.

참선이 좋기는  좋지마는 그것은 상근기(上根機)라야   있는 것이지 하근기(下根機),  말세(末世)에 태어난 하근기는 죄가 많고 업이 두터워서 해봤자 되지도 않는다. 그러니 자기가 자기 분수를 알아서 염불을 하는 것이 좋다, 경을 읽는 것이 좋다, 죄가 많으니 기도를 하는 것이 좋다

 

‘참선을 해봐라 어디 되더냐? 잠이 퍼오고 글안으면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고민이 일어나고 해서  되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 그것을 해봤자 시간 낭비고 까딱하면 미친다. 그러니 참선을 하지 말고 기도를 하면 당장 해보면 알텐데

 

그래서 이리저리 꾀수아 가지고  어디 성지(聖地)로 끌고가서 기도를 시키는데,  시간  시간을 목탁을 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하고 나니까,

앞에 있던 촛불이 둘로 보였다, 셋으로 보였다 또는 하나로 보였다,  가지고 나한테 다가왔다, 그러면서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에 부처님이 떠억 손을 내밀면서 이마를 만져준 것을 느끼기도 하고,  그냥 금방 꺼졌다.

 

이래 가지고는 ! 그러한 것을  번을 맛보고서는 과연 기도가 좋다. 하고 나니까 밥맛도 좋고 잠이  오고 ! 그것  시간씩 큰소리를 치고 났으니 밥맛 있고   것은 사실이지요.

그러니까 자기는 기도해야지 참선은 안되겄다. 기도가 해보니까 정말 기분이 좋고 신심이 나고 좋더라. 참선은 암만 해봐도 이것이 골치만 아프고, 답답하기만 하고, 양다리는 저리고 쑤시고, 어깻죽지는 아프고 도저히 그것은  짓이 아니다. 이래 가지고 미끄러져 버린 사람을 많이 봤습니다.

 

참선은 아무리 그것이 쉬웁고 좋다고 해도, 쉽고 좋다고 해도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열심히 할라고 하면 할라고  만큼 그것을 가로막는 많은 마장(魔障)을 당하게 됩니다.

 마장은 나를, 겉으로는 나를 해롭게   같지마는 내가 바른 신심(信心)과 용맹심(勇猛心)으로 열심히 정진으로 밀고 나가면은 그러한 장애들은 오히려 나를 해롭게 하기보다는 나로 하여금 보다  빨리 보다  크게 대도(大道)를 성취허겄게 해주는 좋은 밑거름이요 채찍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 하는 것을 막는 남편이나 시부모나 가족이나 그러한 분들은  공부하는 것을 방해를 치면 칠수록 속으로는     그분을 향해서 절을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고마운 은혜로써 남편에게는 자기의 모든 성의를 다해서  받들어야 하고, 자식에게는 훌륭한 부모로서  사랑을 해주어야 하고, 가정을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서 주부로서 가장으로서 성의를 다하는 가운데 잊어서는 안될 것은 ‘이뭣고?’

어디를 가나 괴롭고 외롭거나 ‘이뭣고?  ‘이뭣고?’ 그놈을 앞세워서 나간다고 하면은 캄캄한 칠야삼경(漆夜三更)에 등불을 가지고 길을 걷는 거와 같을 것이고, 동서남북을 분간 못하는 일엽편주(一葉片舟)로 항해를 하는데 나침반을 얻은 거와 같을 것입니다.

 

 ‘이뭣고?’ 화두를 가지고 일생을 노력을 한다고 하면은 나를 깨닫는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깨달을  있는 요소는 잠시도 자기를 떠나지 않고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밖에 있는 진리, 이치를 아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뭣고?’하는 그놈을 자기가 깨달으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참선이나 또는 마음이다, 불성이다, 불교다,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알고는 있지마는, 아는 것은 깨달은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깨닫는 것은 이론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안다’고 하는 것은 아무리 훌륭한 것을 알았다 하드라도, 아무리 깊은 진리를 알았다 해도 알았다’고 하는 것은 이론을 통해서 알아진 것이요, 아는 것은 깨달음이 아닌 것입니다.

아는 것은 아무리 좋은 것을 알았다 해도 그것은 중생심(衆生心)의 결과요, 중생심의 결과는 계속 중생의 업(業)만을 더욱 조장한 것에 지나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정도(正道) 들어서서 나를 깨달을  있는 시간을 단축할려면은 알라고 하는 생각을 돌이켜서  맥히는 ‘이뭣고?’로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한다고 하면은 깨달음은 바로 ‘이뭣고?’   순간에도 있는 것입니다.

 

   번을 말씀을 드려도  맥혀서  수가 없는 , 처음에는 재미도 없고 별로 그렇게 의심(疑心)이 깊이 백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계속 생각 생각이 일어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의 의심을 관조(觀照) 하게 되면은 그 의심이 차츰차츰 의심이 돈독(敦篤)해지고 깊어지고  커져서 염념상속(念念相續)으로 되어서 자기의 마음속에도 의심으로 가득 차고, 생활 주변에 모든 것에서도  의심뿐이고, 하늘을 보나 땅을 보나 나무를 보나 물을 보나 일체 사물을 대할  다못   의심으로 가득차게  ,

 

의심이 더이상 커지지 못하고 더이상 깊어지지 못하고 더이상 간절할 수가 없을 경지에 도달하면 반드시  의심은 타파(打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하면 터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깨달음에 이르른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강 조실 스님께서 열반(涅槃)하신 뒤에, 그때부터서 이미 조실 스님께 화두를 타고 법문을 듣고 참선하신 분은 더욱 신심이 돈독해지시고,  뒤로 많은 신도분들이 여기서 저기서 새로 많이 오신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조실 스님 계실 때부터서 듣지를 못하고 돌아가신 뒤에 녹음 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나마 듣고서 신심을 내신 것에 대해서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좋은 도반 좋은 형제자매를 만난 기쁨을 뭐라고 표현할 도리가 없습니다.

 

원래 부모가 살아 계실 때는 백 년, 이백 년 살아 계실  알고 효도 한번 못했다가, 돌아가신 뒤에사 비로소 부모가 그리웁고 간절한 것을 흔히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도 우리가 조실 스님의 은혜를 갚을 길은 얼마든지 있고, 효도를  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조실 스님의 법문에 의지해서 열심히 참선을 한다고 하면은 조실 스님은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용화선원에 상주해 계시는 것이고, 언제나 여러분이 ‘이뭣고?’ 드는  찰나에 여러분의 가슴속에 조실 스님은 살아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내가 나를 깨달을  우리는 조실 스님과  몸이 아니요, 석가여래(釋迦如來) 부처님과  몸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다행이 무량겁을 두고 얼마나  정법의 인연을, 좋은 인연을 맺었기에 금생에   법당에서 이렇게 최상승(最上乘) 활구법문(活句法門)을 같이 듣고 같이 공부할  있게 되었겠습니까.

이런 좋은 인연을 절대로 헛되이 놓치지 마시고 금생에   받았을 때에 백만사를  발판으로 하고 그놈을 밑거름으로 해서 열심히 도를 성취하시기를 간절히 부탁해마지 않습니다.

 

 

이 다음에 법회는 앞으로  일주일 뒤에는 정월 초사흗날부터서 초아흐레까지 일주일 동안 신수기도를 봉행하게 되겠습니다.

원래  법보선원에서는 용화사 법보선원에서는 기도니 불공이니 온갖 의식이 다못 조실 스님 법문 듣고 참선하는  속에 전부를 망라(網羅)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가정이 있고 사회가 있고 국가가 있고 하기 때문에 참선은  본마음으로는 참선을 하지마는, 집안일도 잘되어야겠고 남편도 잘되어야겠고 아들딸들도 잘되어야겠고 집안이 화목하게  살아야겠고 국가도 잘되어야겠기 때문에,

그러한 의미에서 그러한 것들이 원만히 잘되는 것을 바래는 뜻으로,  그러한 것들이 잘되어야 우리가 마음놓고 공부도   있기 때문에, 1년에 한번 정초에 신수기도를 조실 스님 계실 때부터서 봉행을 해왔습니다. 여기에 모이신 사부대중께서도  기도에 성의를 다해서 동참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기에 용화사에서 거행되는, 1 동안에 거행되는 법회 종류와   법회 일자 그리고 음력과 양력 그리고  법회가 열리는 요일과 시간에 대해서   동안에 열리는  30회에 걸친 법회를 낱낱이 인쇄를 했습니다.

그날을  망각하고  오신 ,  그날이 법회인줄 모르고 다른 부득이한 약속을 하신 그런 일들이 있어서 법회에 참석을 못하신 그런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종이에다 인쇄를 했습니다.

 

그러니 어떠한 다른 약속을 하실 때라도 언제라도  용화사 법회 날짜를 감안해서 하루 밀리기도 하고 댕기기도 하고 해서,   있으면  법회에 빠지시지 말고 다같이 모여서 다시 조실스님의 법문을 듣고 다시 한번 우리 수행해 나가는 데에 채찍을 가하고 그동안에 닦아온 것을 반성을 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가다듬어 나가는 좋은 기회를 갖도록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가지 말씀을 드릴 것은 이렇게 법당이 점점 점점  법회에 참석하신 도반(道伴)들이 이렇게 많아지셔서 법당이 비좁습니다. 그러나 비좁은 대로 우리는 당분간 이렇게 법회를 진행할 수밖에는 없게 되겠습니다. 그래서 비좁은 만큼   있으면은 질서가 있어야 되겠습니다.

 

 처음에 오신 분은   있으면  앞으로 앞줄에서부터 차례차례차례 요렇게  나가도록.

그동안에 보니까 먼저 오신 분은 한사코 꽁무니를 뒤로 빼고 저리 뒤로만 자꾸 앉으실랴고 그러고, 나중에 오신 분은 앉을 데가 없으니까 부득이해서 차례차례차례 해서  나중에 오신 분이  복잡한 사이를 뚫고 나가서 앞에  앉으시게 된다 그말이여.

 

이것은 최상승 활구참선을 하는, 법이 없어도   있는 최고의 법을 수행하는 우리 법보선원의 법보제자(法寶弟子)의 청법(聽法) 질서라고는  수가 없겠습니다.

처음에 오신 분은 차례차례 앞에서부터서 질서 있게   채워서 줄을 잡어서 앉으시면은 나중에 오신 분은 오시는 대로 차츰 차츰 차츰 뒤로 이렇게 앉으시도록. 다음에 오실  앉으실 곳을 뒤에다 남겨놓고 앞으로 앉으신  마음가짐이라야 참선을 옳게 하실 수가 있겠습니다.

 

무엇 때문에 뒤에만 앉을려고 그러고 앞에를 앉기를 싫어하시느냐? 아마 앞은 이쁘게 생겼어도 뒤에가 조끔  이쁘게 생겨서 뒤통수를 안 보일라고 뒤로 빠지신가 어쩐가 모르겠으나,  참선을 하시는 분은 앞보다도 뒤가  이쁜 법입니다.

 

그리고  법회에 오시면은  30분 일찍 오셨거나,  시간 일찍 오셨거나 들어오시면은 방석을 깔고 떠억 가부좌(跏趺坐)를 틀고 ‘이뭣고?’를 하고 조용히 법회 시작할 때까지 기다릴  아셔야 되겠습니다.

물론   만에 만났으니까 무슨 문안도 해야 되겠고,  오신데 대해서 반가워서 여러 말씀도 하시고 싶고 하실 말씀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각기 그렇게 해서 쑤군덕쑤군덕하게 되면은  법회장의 엄숙한 분위기가 깨쳐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  법당에 들어오시면은 떠억 부처님께 절하고  꽂고 절하시고서  자리에 가서 앉으시되  앞에서부터 차례차례 앉으시고, 한번  자리잡고 앉으셨다 하면은 가부좌를 하고 떠억 손을 이렇게 하고서 30분도 좋고 20분도 좋고 1시간도 좋고 정말 조용하니 엄숙히 정진을 하시는,

그렇게 해서 뒤에 오신 분도 자연히  들어오자마자 엄숙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절하고  앉을  있도록, 이만한 질서는 우리 법보제자는 갖추어져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동안은 제가 이런 말씀을   동안 별로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언제라도 법문을 듣고  듣고 하면은 그러한 조그마한 일은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저절로 되어지리라 하고 그날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비교적  모다 엄숙하니 잘하시고 뒤에 오신 분을 서로서로 자리를 비키면서 앉으라고 권고하고 그러한 많은 정겨운 상황을  왔습니다.

 

 구태여 조그만한 얘기로 말씀하신 것까지 막는 것은 아닙니다마는,

 장소가 벌써 집에서 나오실 때부터서 여기에 오시고, 오셔 가지고 법문 시작할 때까지,  법문 듣고 공양하시고, 공양하시고 집에 돌아가실 때까지 고대로 그날 하루는 특별 수행일로 그렇게 생각을 하시고  차타고 오실 때도 염염(念念)으로 화두를 들고 오시고, 걸어서 오시는 길에도 그러시고, 공양 잡수면서도 그렇게 하시고 해서,

 

처음 오신 분들이 용화사에 오시면 ‘아하!  여기 용화사 신도들은  이상한 분들이로구나  보기만 하고서 대번에 자기도 엄숙해져서 여기가 바로 내가  닦을 곳이로구나 이렇게 신심이 나도록 그렇게들 주의를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종이는 지금 노나 드리기보다는 앞으로  법요식이 끝나고 나가실 때에 양쪽 문에서  장씩을 노나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이어서 법요식(法要式) 진행하겠습니다.(3827~5747)()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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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參禪法)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참고] 송담스님(No.88)—(참선법A) 법련사 불교학생회 청법 법문(1978.10.1)에서.

중생 말세다, 중생 근기가 미약하다, 그러니까 참선법 가지고는 안되고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이러한 것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마는, 말세라고 하는 것은 편의에 따라서 정법 시대, 상법 시대, 말법 시대 이렇게 해서 말씀해 놨지만은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할  있는 사람이면,  사람은 하근기가 아니라 상근기(上根機) 것입니다.

 

아무리 부처님 당시에 태어났으되  법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하근기인 것이고, 지금 삼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 태어났어도  활구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실천에 옮긴 사람이면,  사람은 바로 정법 시대 사람이요,  사람은 상근기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선법을 배우고자 하고, 참선에 의해서 자아를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냈을  여러분은 이미 정법 시대를 만나 것이고, 여러분은 상근기인 것입니다. 조금도 그런 염려를 마시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결정코 금생에 참나 자각하도록 도업을 성취하기를 간절히 빕니다.

*말세(末世  /세상 )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 세상,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 세상,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성지(聖地 성스러울 / ) ; ①성()스럽게 여기는 []. ②성인(聖人)이나 ()들과 관련된 신성한 지역. ③성인의 지위. 불보살(佛菩薩) 신성한 경지. 범부지(凡夫地) 상대어.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 ; 완전히 잠이 들지도 잠에서 깨어나지도 않은 정신이 어렴풋한 순간.

*마장(魔障 마귀 /장애 )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 [참고]헤살 : 남의 일이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昭昭靈靈)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생사도 없고, 버려야  번뇌도 없다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용맹심(勇猛心) ; 두려움 없이 용감하며 기운차고 씩씩한 맹렬한 마음.

*()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한역. ().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방법. ③무상(無上)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근원. 바른 규범.

*이뭣고(是甚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 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7822) [ ‘참선법 A’ 에서]

*칠야삼경(漆夜三更 옻·검다 칠/한밤중 야/석 삼/밤 시각 경) ; 캄캄하게 어두운 한밤중.

*삼경(三更  / 시각 ) ; 하룻밤을 오경(五更)으로 나눈 셋째 부분.  열한 시에서 새벽   사이이다.

*일엽편주(一葉片舟  / /얇은 조각 / ) ; [] [] 크기의 얇은 조각[] []라는 뜻으로 자그마한  척의 .

*중생심(衆生心) ; 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 ; (산스크리트어 : karma 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해   없는 생각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돈독하다(敦篤-- 도타울 /도타울 ) ; (인정이나 마음이)매우 도탑고 믿음성이 있고 진실하다. *도탑다 ; (정이나 사귐이)깊고 많다.

*염념상속(念念相續) ; 생각 생각이 잊지 아니하고 계속 이어 나가다.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전강 조실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 음사. (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상태라는 .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석가여래(釋迦如來) ; 석가모니(釋迦牟尼). 석가(釋迦) 대한 존칭.

여래(如來) 부처님 10(十號) 하나로 범어 Tathagata(다타가타) ()이다. () 진여(眞如) 뜻이니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 .

 여거여래(如去如來)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최상승(最上乘) ; 더할 나위 없는 뛰어난 교법. 최상의 가르침.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망라(網羅 그물 /그물 ) ; 물고기나 새를 잡는 그물이라는 뜻으로, 일정한 범위 안에 널려 있는 것들을 모두 모아서 포함시킴을 이르는 .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 수행하는 . 불법(佛法) 닦으면서 사귄 .

*청법(聽法) ; 불보살(佛菩薩)이나 스승이 설법하는 것을 경건하게 경청함.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책상다리할 /앉을 ) ; 결가부좌(結跏趺坐) 줄임말.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 발바닥을, ()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 있다.

*법요식(法要式) ; 불사(佛事 : ,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   행하는 의식.

 

Posted by 닥공닥정
신심(삼요)2015. 10. 26. 12:13

 

 

§(366) (게송)행년홀홀급여류~ / ‘내가 바로 부처다.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 전식득지(轉識得智) / (게송)광명적조변하사~ / (게송)단제번뇌중증병~.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통해서 육경(六境) 인식을 하는데,  인식하는  찰나에  객체(客體) 끌려가느냐?  객체를 만나자마자 바로 거기서 돌이켜 가지고 화두(話頭) 드느냐? 여기에 따라서 업을 지어서 생사의 윤회로 떨어질 수도 있고, 거기에서 안이비설신의 육근(六根) 육경(六境) 만나자마자 바로 돌이켜서 화두를 관조하면은 생사해탈 길로 가는 것이거든. 이것이 천하 간단한 것이고 분명한 것이여.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생사심(生死心)이고, 그것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 이렇게  때에 육도윤회는 바로 육근이 육경을 상대하는  찰나찰나가 바로 육도윤회다.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최상승 학자는 항상 시방세계도 일념(一念) 속에서 봐야 하고, 육도윤회도 일념 속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생사도 바로 일념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 법을 믿는다면  처음에 무엇을 믿느냐하면은 『내가 바로 부처다. 내가 바로 부처』라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생사도 없고, 버려야  번뇌도 없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번뇌,  번뇌 다스리는 법을 아까 말씀을 드렸죠? 번뇌는 끊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진여불성은 우리가 그놈을 찾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여. 번뇌는 끊을려고 하지 말고 화두를 들고, 진여를 찾을려고 하지 말고 화두를 들어. 화두를 염염불망으로 들어서 타성일편이 되어서 그놈을 타파(打破)하면 거기에서 번뇌는 끊을려고  해도 저절로 거기에서 끊어져 버리고, 진여는 찾을려고 하지  해도 본래면목 진여불성은 찰나 간에 드러나 버리는 것이다 그말이여.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出現) 하실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나오신 것이 아니여. 중생의 생사다, 열반이다하는   가지 소견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나오신 것이다. 생사라고 해서 두려워하고, 열반이라고 해서 그놈을 좋아라고 그놈을 쫓아가는 그러한 자세로 나아가는 동안에는 영원히 생사는 끊어지지 않고, 영원히 열반은 얻어지지를 않는 것이여. 바로 생사다, 열반이다하는  가지 소견을 제도해 버리면 바로 그것이 생사해탈이요, 바로 그것이 적적열반(寂寂涅槃) 계합(契合) 되는 것이다  말입니다.


**송담스님(No.366)—88(무진년) 칠석차례 법어(88.08.18) (용366)

 

(1) 약 22분.

(2) 약 22분.

 

(1)------------------


행년홀홀급여류(行年忽忽急如流)한데  노색간간일상두(老色看看日上頭)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지차일신비아유(只此一身非我有)하니  휴휴신외갱하구(休休身外更何求)

나무~아미타불~


행년홀홀급여류(行年忽忽急如流)한데, 흘러가는 세월이 빠르기가 흘러가는 물과 같다 그말이여. 잠시도 머꾸지 않고 주야(晝夜) 불철(不撤)하고  년이고  년이고 끝없이 흘러가 버리는데,

노색간간일상두(老色看看日上頭). 늙은 빛이 얼른 얼른 머리 위에,  해가 머리 위에 올라왔다 그말이여.


어린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살이 되고,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고, 마흔 , 육십, 칠십이 언제 어떻게 흘러간  모르게 이렇게 흘러갔어.

마치  동쪽에  해가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데, 그럭저럭하다 보면 아침해가 낮이 되고 그럭저럭하다 보면 벌써 서산(西山) 저버린다 그말이여.


지차일신(只此一身) 비아유(非我有)인데, 다못   몸뚱이도  것이 아니여.  소유라고  수가 없어.

휴휴신외갱하구(休休身外更何求). 그렇거든   밖에 다른 무엇을  구할 것이 있느냐?


무상한  세월, 무상한  몸뚱이가 낳아 가지고 그럭저럭하다가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고, 머리는 희끗희끗 머리가 나고, 허리는 아프고, 그러한 내가 그렇게 소중히 여기고 먹이고 입히고  간수하고   몸뚱이도  몸뚱이다,  것이다하고  수가 없어.


 것이면은 내가 마음대로 해야  텐데, 내가  몸뚱이를 아무리 먹이고 입히고  애끼고 간수를 한다 해도 제멋대로 늙어버리고, 제멋대로 고장이 나고 병이 나서 아무리 오래 살고 싶어도 소용이 없이 결국은 늙어서 병들어 죽어 버려야 하는데,

 몸뚱이도  몸뚱이라고  수가 없는데,  몸뚱이 밖에 무엇을  구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재산을 구하고, 명예를 구하고, 권리를 구하고 천만 가지를 구해 봤던들 뜻대로  구해지지도 않지마는 설사 뜻대로 이뤄졌다 해도 나와는 사실은 아무 소용이 없어.


그것 그렇게 구해졌다 해도 실지로 내가 행복해지냐 하면은 오히려 근심과 걱정만 더할 뿐이지 행복하지도 못하고,  그것을 가지고   있느냐 하면은 그렇게 피땀 흘려서 벌어놓은 것이지마는,  때는  가지도 가지고 가지 못하더라. 

 

 

방금 녹음 법문(錄音法門) 통해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들었는데,

무상한  몸뚱이를 받아났지마는  몸뚱이 받았을 때에 발심(發心) 해서 최상승법(最上乘法) 귀의해 가지고 어쨌든지  몸뚱이 있을  생사해탈(生死解脫) 해라 그러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 이루어졌고,   지수화풍 사대로 구성된  몸뚱이를 부모를 의탁해서, 아버지 어머니에 의탁해 가지고 그래 신세를 지고서  몸뚱이를 받아났습니다.

받아났지마는 최상승법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그저  먹고  입고, 명예와 권리  오욕락(五欲樂) 인생의 전부인  알고, 그것을 누리는 것이 행복인  알고 거기에 집착이 되어서 허대다가 본의 아니게 죄만 잔뜩 퍼짓고,


그래 가지고 결국은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끌려가서 업경대(業鏡臺) 앞에 서면은 평생 동안 지은 가지가지 죄가 거기에  나타나고  거기 염라대왕 앞에 있는  저울대에 떠억 달면은  죄를 얼마만큼 많이 지었는가, 무겁게 지었는가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 어떻게 짓게 되느냐 하면, 입으로 짓고, 몸뚱이로 짓고, 우리의 마음으로 짓고 이렇게 짓는데,

눈으로 무엇을 보면서  보는  상대 객체(客體) 따라가면은 눈을 통해서 짓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으면은  듣는  소리로 우리의 생각이 끌려가면은 귀로 들으면서 죄를 짓고,

코로 냄새를 맡으면서  냄새로 끌려가면은 냄새 맡다가 죄를 짓고,

무슨 생각이 일어나면은  생각한 쪽으로 끌려가면은 생각하다가 죄를 짓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통해서 육경(六境) 인식을 하는데,  인식하는  찰나에  객체(客體) 끌려가느냐?  객체를 만나자마자 바로 거기서 돌이켜 가지고 화두(話頭) 드느냐?

 

여기에 따라서 업을 지어서 생사의 윤회로 떨어질 수도 있고,

거기에서 안이비설신의 육근(六根) 육경(六境) 만나자마자 바로 돌이켜서 화두를 관조하면은 생사해탈 길로 가는 것이거든. 이것이 천하 간단한 것이고 분명한 것이여.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 마음이 경계(境界) 따라서 굴러가. 마음이 일만 경계를 따라서 굴러가는데,

전처실능유(轉處實能幽). 굴러가는 곳에 실로 능히 그윽하다. ‘굴러가는 이라는  크게 말하면은 육도(六途) 윤회(輪廻)하는 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께서는 소가 되기도 하고, 말이 되기도 하고, 지옥에 가기도 하고, 아귀가 되기도 하는, 천당에 가기도 하고, 아수라가 되기도 하고,  인간이 되기도 하는  육도윤회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선 당장 우리가 금생에, 지금  찰나에 일념에다가  전처실능유(轉處實能幽) 붙여서 보자면, 바로 육근(六根) 육경(六境) 상대하는 바로  찰나에다가 맞출 수가 있습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생사심(生死心)이고, 그것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 이렇게  때에 육도윤회는 바로 육근이 육경을 상대하는  찰나찰나가 바로 육도윤회다.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최상승 학자는 항상 시방세계도 일념(一念) 속에서 봐야 하고, 육도윤회도 일념 속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생사도 바로 일념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때에, 아까 말한 눈으로 청황적백 어떠한 색상을  때에 바로  찰나가 바로 전처(轉處)—경계를 따라 굴르는 곳인데,  구를 때에 어떻게 해야 능히 그윽할 수가 있느냐?

구르는 곳마다 실로 능히 그윽하다. ‘그윽하다하는 것은 생사에 휩쓸려 끌려가지 아니한 것을 말하는 거여.

 

깨달은 사람은 바로 깨달은  낭연독존(朗然獨存)  경계에서 벗어나지 않겠지만 우리 아직 깨닫지 못한  중생은,  최상승법을 믿고 참선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눈으로 무엇을 보자마자 바로 화두를 들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화두를 들고,

일체처 일체시에서 잠깐 사이도 화두를 놓치지 않도록 염념불망(念念不忘) 염념불매(念念不昧) 화두를 거각해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잡드리를  나갈 따름인 것입니다.

 

그렇게 일념 일념을 그렇게 단속을 해서 일구월심(日久月深)  나가면 마침내는 화두가 순수무잡(純粹無雜)하고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서, 낮에 앉아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다닐 때나 일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화두가 ()하지 않도록.

 

처음에  안되니 지어서라도, 억지로라도 지어서 자꾸 챙기고  챙기고 하다 보면 나중에는 할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독로하게 되고, 망상을 끊을려고  해도 저절로 망상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말이여.

 

설사 눈으로 무엇을 보아서 저것이 산이다 잠깐 사이에 저게 산인  보이지만 산으로 쫓아가지  .

산이 높다, 푸르다,  산에 구름이 끼었다 그렇게 이리저리 따져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산을 보자마자 처꺽 화두를 들어버린다 그말이여.

 

나중에는 산을 봐도 산이 보이지 아니하고, 물을 봐도 물이 보이지 아니하고, 사람을 봐도 사람이 보이지 아니하고, 하늘을 봐도 하늘이 보이지 아니하고, 다못 의단이 독로할 뿐이다 그말이여.

눈을 뜨고 있지마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어. 귀를 막지 않고 열어놓고 있지마는 아무 소리도  들리게 되어. 그래서  몸뚱이가  세상에 있는 것조차도 인식을 못해. 시간이 가는 줄도 몰라.

 

이렇게  나가면 밤에 자되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리고, 잠이 깊이 들었을 때에도 오직 화두만이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들려져 갖고 있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이렇게 되기를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렇게 가면 어떠한 찰나에  의단이  터져버리게 되는 거여.  밑구녁이 빠져서  통에 담아논 것이  쏟아져 나오듯이.

 

이것은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조사(祖師)들이 이렇게  가지고  깨달음을 얻으신 것입니다.

 

 

망상(妄想) 끊을려고 해서는 아니 되는 거여. 망상을 끊을려고 하면 끊을려고 하는  생각 바로 망상이 되기 때문에 망상을 끊을려고 해서는 아니 되는 거여.

마치 일어나는 파도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자꾸 손으로나, 판때기로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물을 누른다든지,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이리저리 친다든지, 이래봤자  파도가 없어지기 커녕은 오히려 새로운 파도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말이여.

 

소승(小乘) 공부하는 법이 일어나는 번뇌와 망상을 없앨려고 한다 그말이여.

망상이라고 하는 것을 인증을 하고  망상을 없앨려고 무한히 노력을 하고,  생사(生死)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있는 것으로 인증을 하고서  생사를 없애기 위해서 무한히 노력을 .

 

심지어는 낳다 죽었다  생사가 싫으니까,  생사를 없게 하기 위해서 태중(胎中) 들어가기를 꺼린다 그말이여.

사람이나 짐승의 뱃속에 태중에 들어가면은 낳게 되고, 낳으면은 늙어서 병들어 죽게 되니까, 늙어서 병들어 죽어가는  고통을 면하기 위해서, 받지 않기 위해서 태중에  들어가. 태중에 들어가는 것을 제일 무서워한다 그말이여.

 

그러기 때문에 태중에  들어갈려면은 어떻게 해야  들어가냐우리의 중생의 번뇌(煩惱) 끊어야 한다.

번뇌가 바로 생사심이고  생사심 때문에 () 들어가게 되고, 태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에 낳게 되고, 낳음으로써 늙어서 병들어 죽는다.

 생사(生死)  들어갈라면은 ()  들어가야 하고, 태에  들어갈라면은 우리의 번뇌 망상을 끊어야 한다. 그래서  번뇌 망상을 끊기 위해서 한량없는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소승들의 수행 방법인 것입니다.

 

그러면  대승법, 최상승법에서는 어떻게 하느냐?

 

우리가 아무리 최상승법을 믿고 이렇게 참선을 한다고 해도 한량없는 번뇌와 망상이 일어납니다.

 

눈으로 보면은 보는 데에서 일어나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으면 듣는 데에서 일어나고, 무엇을 맛보면 맛난 데에서 '쓰다 달다 맛있다 맛이 없다' 끊임없이 밥을 먹으면서도  생각  생각이 일어난다 그말이여.

코로 무슨 냄새를 맡으면은 '! 이거 무슨 기름 냄새가 난다, 무슨 고약한 시궁창 냄새가 난다, 무슨 좋은  냄새가 난다, ! 이거 무슨 향내냐? 무슨 화장품 냄새냐?' 이래 가지고 코를 통해서도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난다 그말이여.

 

그런데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번뇌 망상은 본래 없는 것이다. 본래 번뇌의 자성이 없는 것이다. 생사는 본래 생사의 자성이 없는 것이다.  생각 일어나되 일어나는  생각 일어남이 없는 것이다.  자체가 본래 없는 것이다하고 그렇게 ! 믿어 버리는 것이여.

있는 것으로 인증을 하고 그놈을 끊을라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없는 이라고 그렇게 믿어버리는 거여.

 

'왜 있는데 없다고 믿을 수가 있느냐분명히 번뇌가 일어나고 망상이 일어나고 이렇게 몸뚱이를 받아 나면은 아프고 늙어서 병들어 죽고, 아무리  몸뚱이 없다고 하지만 꼬집어보면 아픈데 어떻게 하느냐?' 도저히 믿기가 어렵습니다.(처음~2135)

 

 

 

 

 

(2)------------------

 

그러나 눈병이  사람은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눈에 병이 없는 사람은  맑은 허공을 보면 아무것도 없는데, 눈병이 있는 사람은 이상하니 무슨 꽃이 이글이글이글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말이여.

 더운  강변에 가면 모래사장에 아지랑이가 이글이글이글 타오르듯이,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 분명히 허공에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말이여.

 

그러면 아무리  허공에 꽃이 없는 것이라고 말해도 눈병이 없는 사람은  보이는데, 눈병이 있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보인다 그말이여. 그러나  생각해 보라 그말이여.

허공에 무슨 꽃이 피어있겠느냐 그말이여. 눈병만 고쳐 버리면은 허공의 꽃은 없어져 버리는 거여.

 

그러면 눈병이 있는 사람에게 보인다고 해서 실지로 허공에 꽃이 있느냐 하면은 없는 것이거든.

그래서 눈병이 없는 사람이 없다 하면, ‘없다 믿으면 되는 거여. 실지로 자기 눈에 보인다 하더라도 보이는 것은 눈병으로 인해서 헛것이 보이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으면  믿을 것도 없다 그말이여.

 

번뇌와 망상이  자성이 없다 하면 실지로 자기에게는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처님이 없다 하시고, 성현들이 없다 하시고, 선지식(善知識) 없다 하면  말을  믿고 무엇을 믿을 것이냐 그말이여.

분명히  몸뚱이를 타고난 이상 늙어서 병들어 죽는 고통이 있지만 부처님과 모든 성현이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으니  성현의 말씀을  믿고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이냐 그말이여.

 

성현의 말을 고냥 고대로, 액면 그대로 그냥 없다 ! 믿어버려믿어 버리면  그게 그렇게, 당장  자리에서 대안락(大安樂) 얻을 수가 있다 그말이여.

 

 

어려서는 하차잖은 것을 보고도 굉장히 무서워합니다. 실지는 아무것도 무섭지 않는데 굉장히 무서워 .

귀신 나온다, 애비 나온다 가지고 어린애들 갖다 울면은   울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면은 나중에는 애비 나온다 그러면은 울다가도 깜짝 놀랜다 그말이여.

 

호랑이란 놈이 배가 고파서 마을로 내려 왔는데 가만히  집에 기어 들어갔다 그말이여. 애기가  울어.

호랑이가 나온다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아니하고, ‘귀신이 나온다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않고, ‘여기 곶감 있다 그러니까, ! '곶감 있다' 하면서 나중에 쓰기 위해서 깊이  곶감을  개를 내서 주니까 어린애가 울음을  그쳤다 그말이여.

 

호랑이란 놈이  밖에서 가만히  종초지말(從初至末)  들어보니까 아! 호랑이,  세상에서 자기만큼 제일 무서운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호랑이가 왔다'고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아니하고,  '귀신이 왔다'고 해도 그치지 아니하는데 ! '곶감 있다!' 그러니까 울음을  그친다 그말이여.

 

문을 닫아놓으니까  상황은  수가 없으나, ‘도대체  곶감이란 놈은 귀신보다도  무섭고, 호랑이보다도  무서운 것이로구나. 여기서 우물쭈물 하다가는  곶감한테 잡히면은 영락없이 죽게 되겠다 이리 생각을 하고 아주 꽁지가 빠지라고 도망해 가지고다시는  곶감 있는 집에는 가지를 안했다. 그런 얘기가 있는데.

 

 호랑이란 놈은  곶감을 보지 못했지만  곶감이란 놈이 그렇게 호랑이보다도 귀신보다도  무서운 것이다하고 그렇게  믿고는 다시는  집에  가듯이,

우리가 ! 믿을 수만 있으면, ! 믿어버리기만 하면  무서운  힘이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어리석은 사람은 미신을 믿고  무당이나 만신이나 또는 무꾸리 점쟁이 그런 말을 믿는 사람은  점쟁이의 한마디,  무당의 한마디를  굉장히 무서워합니다. 그래 가지고  하라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몇백만 원을 들여서라도 굿을 하라고 하면 굿을 하고, 무슨 이상한 행동을 하라고 하면은 그걸  합니다.

 그러냐 하면,  무당이나 만신의 말을 믿기 때문에  몇백만 , 몇십만  돈도 아까운 줄을 모르고  엄청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당이나 만신이나 미신의 말은 ! 그렇게  믿어.

 

! 대학을 졸업하고 그러한  최고 학부를 졸업한 그런 지성인들이 어째서 그렇게 무당이나 점쟁이 말은 그렇게 여지없이 믿으면서,  부처님 말씀, 선지식의 말은   믿는다. 믿는다 해도 껍데기로만 믿고 속속들이는   믿는  같다 그말이여.

 그러냐?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번뇌와 망상은 본래 없는 것이다. 끊어야  번뇌는 없고 해탈해야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귀에 따깽이가 앉도록 일어주어도 그런   상식 그냥 지식으로, 알음알이로 그렇게 알기는 알아도, 그렇게 무당이나 점쟁이  믿듯이 그렇게 속속들이는   믿는다 그말이여.

 

 십분의 일만 믿어도, 당장  최상승법을 믿고 바로  화두가 타성일편이 되도록, 머지않아서 그렇게  텐데 ! 그것을 속속들이  믿는다.

 

우리가 정말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 법을 믿는다면  처음에 무엇을 믿느냐하면은 『내가 바로 부처다. 내가 바로 부처』라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생사도 없고, 버려야  번뇌도 없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부처님한테 무슨 생사(生死) 있어? 생사 없는 열반(涅槃) 경지를 요달(了達) 분이 바로 부처님인데, 부처님한테는 번뇌도 없고 생사도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내가 바로 부처다』 그렇게  믿고 대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번뇌도 없는 것이다.

 

지금 그러면 우리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는 무엇이며, 어머니한테 받아난  육체로 해서 생이 있고, 늙음이 있고, 병이 있고 마침내는 육칠십 살다가 결국은 죽는데,  죽음이 있는데  있는 죽음,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우리가 ()했기 때문에, 매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진 것이다. 이렇게 여러분은 우선 알아야 하고  그렇게 확실히 조리 있게 알면 그것이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그렇게 믿고서 화두를 들어야  번을 들어도 여지없이 화두가 들어지는 것입니다.

 

화두를 들고  들고 해서 일체처 일체시에 그놈을 들어 나가면 우리의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우리의 중생의 무명(無明)으로 인해서 없는 생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생사일망정 바로 거기서 생사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중생은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5(前五識) 6(六識, 意識) 7(말나식), 8(아뢰야식), 이런 ()으로 해서 일생을 살아가고, ()으로 해서 업을 짓고, ()으로 해서 일체 생사윤회를 하는데,

 일어나는 육근(六根), 육경(六境), 육식(六識),  십팔경계에 있어서 염념불망(念念不忘)으로 화두를 단속해 나가면, 화두가 타성일편이 되고,  의단이 독로해 가지고 그것이 ! 터져 버리면 자성을 깨닫게 되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보게 되는데,

 

 자기 본래면목을 바로 깨닫자마자,  깨닫기 전의 중생의  육근, 육경, 육식  () 부처님의 () 변해버리는 것입니다()  데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 찰나 간에 변해 가지고 () 변하는 것이여.

() () 변하는 것이지, () 없어지고 () 어디서 따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를  인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생의 마음을 떠나서 부처님이 없어. 우리의 중생의 마음을 버리고서  부처님이 어디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여중생의 마음, 그것이 바로 일념무생(一念無生)하는 도리를 요달해 버리면 거기에서 바로 성불을 하는 것입니다.

 

 

광명적조변하사(光明寂照徧河沙)하면  범성함령공아가(凡聖含靈共我家)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념불생전체현(一念不生全體現)이라  육근자동피운차(六根纔動被雲遮)니라

나무~아미타불~

 

광명적조변하사(光明寂照徧河沙)  범성함령공아가(凡聖含靈共我家).

광명이 적적(寂寂) 비추니,  항하사(恒河沙)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광명이 고요히 비치는데,

범성함령(凡聖含靈) 공아가(共我家). 범부, 성현 일체 중생이  나의 집이더라. 바로  나의 면목(面目)이더라.

 

일념불생전체현(一念不生全體現)이요,  생각 남이 없으면 전체에 드러나.

일념불생(一念不生),  생각 일어남이 없어. 일념불생하면 전체가 나타나, 전체현(全體現)이다. 부처님의 면목이 바로 드러난다 그말이여.

 

육근(六根) 자동(纔動)하면은 피운차(被雲遮). 벌써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통해서  생각이 움직이면은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 환히 비쳤던 데에 거기에 벌써 구름이 가리워져서  광명을 가리게 된다 이거거든.

 

  생각을 단속하는 것이,  생각 돌이켜서 화두가 독로하도록 단속을 하면은 삼천대천세계가  비로자나 법신(毘盧遮那 法身) 대광명이  세계를 두루 비추는 것이 되는 거고,

 생각 단속을 못해 가지고 육근(六根) 통해서 ()하면 벌써  광명에 구름이 가리워져서  광명을 덮는 것이 된다 그거거든.

 

 

단제번뇌중증병(斷除煩惱重增病)이요  취향진여역시사(趣向眞如亦是邪)니라

나무~아미타불~

수순세간무가애(隨順世間無罣碍)하면  열반생사등공화(涅槃生死等空花)니라

나무~아미타불~

 

단제번뇌중증병(斷除煩惱重增病)이요, 그러면 우리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끊임없이 퍼일어나는  번뇌 망상을 끊어서 없앨려고 하면은 거듭  병통을  증가시키는 것이 된다.  번뇌를 치성하게 하는 것이 되고.

취향진여역시사(趣向眞如亦是邪). 진여(眞如) 향해서 나아갈려고 마음을 먹으면은 또한 이것도 삿된 것이다.

 

번뇌,  번뇌 다스리는 법을 아까 말씀을 드렸죠? 번뇌는 끊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진여불성은 우리가 그놈을 찾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여번뇌는 끊을려고 하지 말고 화두를 들고, 진여를 찾을려고 하지 말고 화두를 들어.

화두를 염염불망으로 들어서 타성일편이 되어서 그놈을 타파(打破)하면 거기에서 번뇌는 끊을려고  해도 저절로 거기에서 끊어져 버리고, 진여는 찾을려고 하지  해도 본래면목 진여불성은 찰나 간에 드러나 버리는 것이다 그말이여.

 

수순세간무가애(隨順世間無罣碍). 세간(世間) 수순(隨順) 한다.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엄마는 엄마로서, 딸은 딸로서, 아들은 아들로서, 남편은 남편으로서, 아내는 아내로서 일체처 일체시에 자기에게 주어진 소임을 충실히 하면서바로  가운데에서 기쁜 일을 당해도 이뭣고?’ 슬픈 일을 당해도 이뭣고?’ 속상하는 일을 당해도 이뭣고?’

 

 당하는 일을 좋다 그놈을 탐착을 하고, ‘싫다 해서 없앨라고 피할라고 하지 말고, 닥치는 대로 자기로서 도리를 다하면서 그놈을 화두를 들고서 화두 드는 마음으로 그놈을 척척척척 해결을  나가라 그말이여그렇게 해서 걸림이 없게 하라 그말이여.

버리고 취할 것이 없이, 닥치는 대로 자기의 입장에서 가장 적절히 모든 일을 처리를  나가. 그럴라면은 그놈을 싫어서 피하지도 말고 좋아서 탐착하지도 마라.

 

어떻게 하면은 버릴 것도 없고 취할 것이 없느냐? 화두를 들고 의단이 독로하도록  나가는  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일체처 일체시에 걸림이 없이 되면 열반이다, 생사다하는 것이 바로 허공의 꽃과 같이 되어버린다 그말이여.(涅槃生死等空花) 허공의 꽃이 무엇이던가? 본래 없는 것이거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出現) 하실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나오신 것이 아니여중생의 생사다, 열반이다하는   가지 소견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나오신 것이다.

생사라고 해서 두려워하고, 열반이라고 해서 그놈을 좋아라고 그놈을 쫓아가는 그러한 자세로 나아가는 동안에는 영원히 생사는 끊어지지 않고, 영원히 열반은 얻어지지를 않는 것이여.

 

바로 생사다, 열반이다하는 그  가지 소견을 제도해 버리면 바로 그것이 생사해탈이요, 바로 그것이 적적열반(寂寂涅槃) 계합(契合) 되는 것이다  말입니다.(2136~4311)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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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행년홀홀급여류~’ ; [무의자시집(無衣子詩集)] (진각국사 혜심) ‘식심게(息心偈)’ 참고.

*녹음 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 사람의 몸이 , , , 바람(,,,) () 원소()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 심판하여 벌은 주는 .

*업경대(業鏡臺) ; 지옥의 염라대왕(閻羅大王) 가지고 있다는, 인간의 죄를 비추어보는 거울이다. 업경 혹은 업경륜(業鏡輪)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어 지옥에 이르면 염라대왕은 업경대 앞에 죄인을 세우고, 업경대에는 그가 생전에 지은 선악의 행적이 그대로 나타나며, 죄의 경중이 판가름나면, 그에 따라 가야  지옥이 정해진다.

*() : [] karma []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 업이라 한다.개인은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 윤회(輪廻)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객체(客體) ; ①작용의 대상이 되는 . ②주체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인간의 인식과 실천의 대상.

*육근(六根) ; 육식(六識) 경계(六境) 인식하는 경우  소의(所依)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眼根(耳根(鼻根(舌根(身根(意根)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 기관·기능을 뜻함. 육입(六入)이라고도 한다.

*육경(六境) ; 육근(六根) 대상 경계인 (((((() 말함. 산스크리트어 ṣaḍ-viṣaya () 대상을 뜻함. 육진(六塵육적(六賊)이라고도 한다.

①색경(色境). 눈으로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있는 대상인 .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게송) 심수만경전~’ ; [직지(直指)] (白雲和尙 抄錄, 조계종출판사) 63 마나라(摩拏羅) 존자 게송 참고.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 이치(理致)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라고   일체의 (). ③시비(是非)•선악(善惡)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 순경(順境), 내경(內境) 외경(外境) 있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낭연독존(朗然獨存) ; 홀로 밝게 드러나다.

*염념불망(念念不忘) ; 생각 생각에 잊지 않음. 자꾸 생각이 나서 잊지 못함.

*염념불매(念念不昧) ; 생각 생각에 ()하지 아니하다. 생각 생각에 또렸하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화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

*순수무잡(純粹無雜 순수할 /순수할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수(純粹)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상태.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조사선법(祖師禪法)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 같다.

*망상(妄想 망녕될 , 생각 )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 생각() , 또는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

*소승(小乘) : [] Hinayana 소승(小乘)이란 작은 수레란 뜻이다。수레는 사람을 태워서 험한 곳을 지나 안전한 곳에 가게 하는 것인데, 작은 수레는 아이들이나 타게 되며, 옅은 물이나 건널  있는 것이다。<법화경>에는 양의 수레 사슴의 수레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처음 인천교를 말씀하신 다음으로 옅고 낮은 이치의 길을 가르쳐, 생각을 끊고 마음을 비게 하여 열반(涅槃) 고요한 즐거움을 얻도록 하셨다。그 속에는 사제법(四諦法) 깨치면 아라한(阿羅漢) 되고, 십이 인연법(十二因緣法) 깨치면 연각(綠覺)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소승에도  가지 길이 있으므로 이승(二乘)이라고도 한다。소승법을 말씀한 대표적 경전은 <아함경(阿含經)> <구사론(俱舍論)> <성실론(成實論)> <사분승계본(四分僧戒本)> <사분비구니계본> 등이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 괴로워할 )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성냄()•어리석음()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앞의 () () ()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이러한 번뇌[]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 과보를 받게 된다. [-- 三道]

*대승(大乘) : [] Mahayana 대승(大乘)이란  수레를 뜻한다。큰 ()  뜻을 세워서 나를 희생하여 모든 중생을 즐겁고 편안하게 건져 주겠다는 보살심(菩薩心) 있는 이들을 위하여, 육도(六度) 만행(萬行) 닦아 가도록 깊은 이치를 말씀하신 법문이다.

 대표적인 경전은 <반야경(般若經)> <해심밀경(解深密經)> <능가경(楞伽經)> <기신론(起信論)> <범망경(梵網經)> 같은 것들이다.

 법문을 요약하여 말하면,  세상에 온갖 물질과 (森羅萬象) 벌어져 있으나, 낱낱이 현상(現象) 그대로 비어 없는 것이며, 모든 차별된 것이 그대로  평등하여 열반인 것이다。따라서 무엇에나 걸릴 것이 없는 것이다.

소승의 열반이 소극적이며 작고 옅은 것이라면 대승의 열반은 적극적이며 크고 참된 것이다。한 중생도 남음이 없이 모두 제도한 뒤에야, 자기가 성불하겠다는 소원이야말로 대승의 보살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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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고냥 ;  이상의 변화 없이  상태 고대로.

*그냥 ;  이상의 변화 없이  상태 그대로.

*종초지말(從初至末) ; 처음부터 끝까지.

*속속들이 ; 깊은 속까지 샅샅이.

*열반(涅槃) : [] nirvana  [] nibbana  음을 따라 니반나(泥畔那) • 니원(泥洹) • 열반나(涅槃那) 쓰고, 뜻으로 번역하여 () • 적멸(寂滅) • 멸도(滅度) • 원적(圓寂) • 안락(安樂) • 해탈(解脫) 등이라 한다.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를 말함이니,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없이 무엇이나  열반이며 어느 때나  열반이다。이것이 열반인 것이다.

*요달(了達 마칠완전히 , 통달할 ) ; 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무명(無明) : [] avidya ‘어리석은 마음’ ‘어두컴컴한 마음 이름.

<기신론(起信論)>  이것을  가지로 나누어, 법계(法界)  이치에 어둡게   처음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근본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거나 거칠거나  온갖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하였다.

*() ; 산스크리트어 vijñāna 팔리어 viññāṇa

대상을 식별하고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인식 작용. 인식 주관.  식에 관하여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6식설(六識說)·8식설(八識說)·9식설(九識說) 널리 채택되고 있다.

8식설(八識說) 유식설(唯識說)에서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 5(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6의식), 第七 末那識(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8아뢰야식)이라 한다.

*전오식(前五識) ; 팔식(八識) 가운데 앞의 다섯 가지 ().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 말한다.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의식(意識) ; 팔식(八識) 가운데 6 의식을 말한다. 육식(六識) 하나.

①의식 기능[]으로 의식 내용[] 식별, 인식하는 마음 작용. ②알고 사고하는 마음. 생각하는 마음. 의식은 과거, 미래에의 대상에 대해서도 작용한다.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를 예상할 수가 있다.

6식설(六識說)에서는 의식(意識) 근본이 되어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 5(前五識) 통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식을 심왕(心王)이라고도 한다.

*말나식(末那識) ; 말나(末那) [산스크리트어] manas 음사로, ()라고 번역. () 산스크리트어 vijñāna 번역. 6(第六識) 의식(意識) 구별하기 위해서 () 하지 않고 말나(末那)라고 한다.

8식설(八識說)에서 마음을 이루고 있다고 보는 8(八識: 8가지의 ) 가운데 하나로 7(第七識), 7말나식(第七末那識) 또는 말나(末那)라고도 한다.

말나식은 6식의 밑에서 조절하는 강한 자의식(自意識)으로, 아뢰야식(阿賴耶識) 끊임없이 자아(自我)라고 오인하여 집착하고, 아뢰야식과 육식(六識) 사이에서 매개 역할을 하여 끊임없이 육식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 작용으로, 항상 아치(我痴아견(我見아만(我慢아애(我愛)  번뇌와 함께 일어난다.

8아뢰야식에 저장된 종자(種子) 이끌어 내어 인식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생각과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 작용.

*아뢰야식(阿賴耶識) ; 8식설(八識說)에서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 말함.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종자(種子) 저장하고, 육근(六根)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 산스크리트어 ālaya 음사로, () () 함께 있다고 하여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이라고도 하며, 본래 깨끗한 것이 드러나 있지 않고 감추어져 있다고 하여 장식(藏識)이라고도 한다.

*십팔경계 ; 십팔계(十八界). (, 산스크리트어 dhātu) 요소를 뜻함. 인식을 성립시키는 열여덟 가지 요소.

불교에서 인간과  밖의 모든 존재 속의 인식작용을 18가지 범주로 나눈 .

육근(六根육경(六境육식(六識) 합한 것이다. 육식(六識) 제외한 12가지를 12()라고 한다.

*본래면목(本來面目  / / / )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 ; ①산스크리트어 jñāna  팔리어 ñāṇa  모든 현상의 이치를 명료하게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이해. 지식.

②산스크리트어 jñāna  깨달음. 깨달은 부분의 지혜. 완전히 아는 . ③팔리어 paññā  지혜. ().

*() () 변하는 것이지, () 없어지고 () 어디서 따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 () () 변화되는 것을 전의(轉依)라고 하는데, 전의(轉依) 뜻은 소의(, basis)  발동근거를 바꾼다()’ 성도(聖道)  수행을 통해 번뇌에 오염된 8식을 지혜() 변형시키는 ,  질적 전환시키는 것을 말한다.

전통적인 용어로 전식득지(轉識得智) 또는 전식성지(轉識成智)라고도 한다.

() 전변(轉變) 또는 능변현(能變現) 뜻으로 능동적으로 바꾸고 변화시키는 것을 말하고, () 획득(獲得) 성취(成就) 말한다.  수행자가 수행이라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 자신의 8식을 지혜로 변형시키는 것을 말한다.

 

번뇌에 오염된 중생의 유루(有漏:세속) 마음인 ‘8’(八識-전오식, 6의식, 7말나식, 8아뢰야식) 질적으로 변혁하여[轉識得智] 얻은 4가지 무루(無漏:열반) 청정한 지혜사지(四智) 다음과 같다.

①대원경지(大圓鏡智) ; 인간의식의 심연에 있는 무명(無明) 오염된 8아뢰야식(阿賴耶識)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지혜는 마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내는 크고 맑은 거울처럼, 8아뢰야식에서 무명(無明) 오염이 완전히 제거된 원만하고 분명한 지혜이므로 크고 둥근 거울과 같은 지혜[大圓鏡智]’라고 말한다.

②평등성지(平等性智) ; 인간의 자의식(自意識) 해당하는 오염된 7말나식(末那識)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7식은 원래 나와 남에 대한 구별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의식이므로 여러 가지 차별을 낳게 된다.

그러나 일체가 한결같고 평등함을 관하여,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생기는 자타에 대한 차별적인 견해를 떠나, 자타(自他) 평등을 깨달아 대자비심(大慈悲心)으로 바꾸기 때문에 중생교화를 위한 평등한 지혜[平等性智] 발현된다는 것이다.

③묘관찰지(妙觀察智) ; 오염된 6(第六識) 의식(意識)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지혜는 모든 () 실상을 묘하게  관찰하여 자유 자재로 가르침을 설하고 중생의 의심을 끊어 주는 지혜이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성소작지(成所作智) ; ····몸의 5관으로 느끼는, 오염된 5(前五識)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지혜는 5관으로 행하는 일을 올바로 이루도록 하여, 중생을 이익과 구제하기 위해 여러가지 불가사의한 일을 모두 성취하는 지혜[成所作智]이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게송) 광명적조변하사 ~ 열반생사등공화 ; 장졸수재(張拙秀才) 거사(居士) 오도송(悟道頌) 참고.

*항하사(恒河沙) ; 갠지스 (Ganges) 모래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면목(面目  ,  )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비로자나 법신(毘盧遮那 法身) ; 비로자나(毘盧遮那) vairocana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 .

①진리  자체인 법신(法身) 형상화한 . ②대일여래(大日如來) 같음.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세간(世間) ; (산스크리트어 loka) () 파괴·변화, () 가운데·간격을 뜻함.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생물들의 세계.  생물들이 거주하는 자연 환경,  산하대지.  세상.  세상. 세속.

*공화(空花, 空華) ; (). 공안화(空眼花). 공중(空中) . 눈의 장애로 말미암아 생기는 허공의 .

실재하지 않는 것을 있는 것으로, 관념을 실재하는 객관 대상으로, 고유한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는, 번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망상(착각·환상·편견 ) 말한다.

 

눈이 멀쩡한 사람은 허공 속에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데, 눈병이  사람은 허공에 이상한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보이고 그러는데, 눈병만 고치면은 허공에 피어있던 꽃이  보인다.

그래서 눈병이 났던 사람은 허공에 있던 꽃이 있다가 없어졌다 하지마는, 허공의 꽃은 있다가 없어진  아니라 원래 없던 것이다. 눈병이 낫으나,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통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 만나면 육식(六識, 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 생기는데,  육식(六識) 포착되는 모든 것들을 이름과 모양명상(名相)이라 하는데, 명상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림자요, 메아리, () 것이다.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명상(名相) 그것을 있는 으로 집착을 함으로 해서, 모든 탐진치 삼독심이 일어나 생사윤회의 업을 짓는데, 마음 하나만 () 버리면 일체 명상(名相) 동시에  () 버리는 것이다.

 

원래는  세상에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우주 법계가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소소영령(昭昭靈靈)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불성(佛性) 생사(生死) 없는 것입니다.

 

 생사가 없는 이치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生死)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눈병이 낫으나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이거거든.

우리의 생사(生死)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송담스님 법문 521, 636 참고)

*계합(契合) ;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들어맞음.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칠석)2015. 8. 19. 17:27

 

§(366) (게송)행년홀홀급여류~ / 생사도 바로 일념에서 봐야 / 공화(空花) / 믿음 ‘내가 바로 부처다.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 전식득지(轉識得智) /자기 안에 있는 보배.

 

‘무상한 이 몸뚱이를 받아났지마는 이 몸뚱이 받았을 때에 발심(發心)을 해서 최상승법(最上乘法)에 귀의해 가지고 어쨌든지 이 몸뚱이 있을 때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라’ 그러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생사심(生死心)이고, 그것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다. 이렇게 볼 때에 육도윤회는 바로 육근이 육경을 상대하는 그 찰나찰나가 바로 육도윤회다.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최상승 학자는 항상 시방세계도 일념(一念) 속에서 봐야 하고, 육도윤회도 일념 속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생사도 바로 일념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 법을 믿는다면 ‘맨 처음에 무엇을 믿느냐’하면은 『내가 바로 부처다. 내가 바로 부처』라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부처님한테 무슨 생사(生死)가 있어? 생사 없는 열반(涅槃)의 경지를 요달(了達)한 분이 바로 부처님인데, 부처님한테는 번뇌도 없고 생사도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내가 바로 부처다』 그렇게 딱 믿고 대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번뇌도 없는 것이다.

자기 본래면목을 바로 깨닫자마자, 그 깨닫기 전의 중생의 그 식(識)이 부처님의 지(智)로 변해버리는 것입니다. 식(識)이 지(智)로 변하는 것이지, 식(識)이 없어지고 지(智)가 어디서 따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번뇌 다스리는 법을 아까 말씀을 드렸죠? 번뇌는 끊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진여불성은 우리가 그놈을 찾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여. 번뇌는 끊을려고 하지 말고 화두를 들고, 진여를 찾을려고 하지 말고 화두를 들어. 화두를 염염불망으로 들어서 타성일편이 되어서 그놈을 타파(打破)하면 거기에서 번뇌는 끊을려고 안 해도 저절로 거기에서 끊어져 버리고, 진여는 찾을려고 하지 안 해도 본래면목 진여불성은 찰나 간에 드러나 버리는 것이다 그 말이여.

생사라고 해서 두려워하고, 열반이라고 해서 그놈을 좋아라고 그놈을 쫓아가는 그러한 자세로 나아가는 동안에는 영원히 생사는 끊어지지 않고, 영원히 열반은 얻어지지를 않는 것이여. 바로 ‘생사다, 열반이다’하는 두 가지 소견을 제도해 버리면 바로 그것이 생사해탈이요, 바로 그것이 적적열반(寂寂涅槃)에 계합(契合)이 되는 것이다.

 

**송담스님(No.366)—88년(무진년) 칠석차례 법어(88.08.18) (용366)

 

(1/3) 약 22분.

 

(2/3) 약 22분.

 

(3/3) 약 22분.

 

(1/3)----------------

 

행년홀홀급여류(行年忽忽急如流)한데  노색간간일상두(老色看看日上頭)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지차일신비아유(只此一身非我有)하니  휴휴신외갱하구(休休身外更何求)오

나무~아미타불~

 

행년홀홀급여류(行年忽忽急如流)한데, 흘러가는 세월이 빠르기가 흘러가는 물과 같다 그말이여. 잠시도 머꾸지 않고 주야(夜)를 불철(撤)하고 십 년이고 백 년이고 끝없이 흘러가 버리는데,

노색간간일상두(老色看看日上頭)다. 늙은 빛이 얼른 얼른 머리 위에, 그 해가 머리 위에 올라왔다 그말이여.

 

어린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열 살이 되고,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고, 마흔 살, 육십, 칠십이 언제 어떻게 흘러간 줄 모르게 이렇게 흘러갔어.

마치 저 동쪽에 뜬 해가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데, 그럭저럭하다 보면 아침해가 낮이 되고 그럭저럭하다 보면 벌써 서산(西山)에 저버린다 그말이여.

 

지차일신(只此一身)도 비아유(非我有)인데, 다못 이 한 몸뚱이도 내 것이 아니여. 내 소유라고 할 수가 없어.

휴휴신외갱하구(休休身外更何求)냐. 그렇거든 이 몸 밖에 다른 무엇을 더 구할 것이 있느냐?

 

무상한 이 세월, 무상한 이 몸뚱이가 낳아 가지고 그럭저럭하다가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고, 머리는 희끗희끗 흰머리가 나고, 허리는 아프고, 그러한 내가 그렇게 소중히 여기고 먹이고 입히고 잘 간수하고 한 이 몸뚱이도 ‘내 몸뚱이다, 내 것이다’하고 할 수가 없어.

 

내 것이면은 내가 마음대로 해야 할 텐데, 내가 내 몸뚱이를 아무리 먹이고 입히고 잘 애끼고 간수를 한다 해도 제멋대로 늙어버리고, 제멋대로 고장이 나고 병이 나서 아무리 오래 살고 싶어도 소용이 없이 결국은 늙어서 병들어 죽어 버려.

이 몸뚱이도 내 몸뚱이라고 할 수가 없는데, 이 몸뚱이 밖에 무엇을 더 구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재산을 구하고, 명예를 구하고, 권리를 구하고 천만 가지를 구해 봤던들 뜻대로 잘 구해지지도 않지마는 설사 뜻대로 이뤄졌다 해도 나와는 사실은 아무 소용이 없어.

 

그것 그렇게 구해졌다 해도 실지로 내가 행복해지냐 하면은 오히려 근심과 걱정만 더할 뿐이지 행복하지도 못하고, 또 그것을 가지고 갈 수 있느냐 하면은 그렇게 피땀 흘려서 벌어놓은 것이지마는, 갈 때는 한 가지도 가지고 가지 못하더라. 

 

 

방금 녹음 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들었는데,

‘무상한 이 몸뚱이를 받아났지마는 이 몸뚱이 받았을 때에 발심(發心)을 해서 최상승법(最上乘法)에 귀의해 가지고 어쨌든지 이 몸뚱이 있을 때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라’ 그러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이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이루어졌고, 또 이 지수화풍 사대로 구성된 이 몸뚱이를 부모를 의탁해서, 아버지 어머니에 의탁해 가지고 그래 신세를 지고서 이 몸뚱이를 받아났습니다.

받아났지마는 최상승법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그저 잘 먹고 잘 입고, 명예와 권리 이 오욕락(五欲樂)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고, 그것을 누리는 것이 행복인 줄 알고 거기에 집착이 되어서 허대다가 본의 아니게 죄만 잔뜩 퍼짓고,

 

그래 가지고 결국은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끌려가서 업경대(業鏡臺) 앞에 서면은 평생 동안 지은 가지가지 죄가 거기에 다 나타나고 또 거기 염라대왕 앞에 있는 그 저울대에 떠억 달면은 그 죄를 얼마만큼 많이 지었는가, 무겁게 지었는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업(業)을 어떻게 짓게 되느냐 하면, 입으로 짓고, 몸뚱이로 짓고, 우리의 마음으로 짓고 이렇게 짓는데,

눈으로 무엇을 보면서 그 보는 그 상대 객체(客體)에 따라가면은 눈을 통해서 짓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으면은 그 듣는 그 소리로 우리의 생각이 끌려가면은 귀로 들으면서 죄를 짓고,

코로 냄새를 맡으면서 그 냄새로 끌려가면은 냄새 맡다가 죄를 짓고,

무슨 생각이 일어나면은 그 생각한 쪽으로 끌려가면은 생각하다가 죄를 짓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통해서 육경(六境)을 인식을 하는데, 그 인식하는 그 찰나에 그 객체(客體)로 끌려가느냐? 그 객체를 만나자마자 바로 거기서 돌이켜 가지고 화두(話頭)를 드느냐?

 

여기에 따라서 업을 지어서 생사의 윤회로 떨어질 수도 있고,

거기에서 안이비설신의 육근(六根)이 육경(六境)을 만나자마자 바로 돌이켜서 화두를 관조하면은 생사해탈 길로 가는 것이거든. 이것이 천하 간단한 것이고 분명한 것이여.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 마음이 경계(境界)를 따라서 굴러가. 마음이 일만 경계를 따라서 굴러가는데,

전처실능유(轉處實能幽)다. 굴러가는 곳에 실로 능히 그윽하다. ‘굴러가는 곳’이라는 게 크게 말하면은 ‘육도(六途)를 윤회(輪廻)하는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께서는 소가 되기도 하고, 말이 되기도 하고, 지옥에 가기도 하고, 아귀가 되기도 하는, 천당에 가기도 하고, 아수라가 되기도 하고, 또 인간이 되기도 하는 그 육도윤회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선 당장 우리가 금생에, 지금 이 찰나에 일념에다가 그 전처실능유(轉處實能幽)를 붙여서 보자면, 바로 육근(六根)이 육경(六境)을 상대하는 바로 그 찰나에다가 맞출 수가 있습니다.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생사심(生死心)이고, 그것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다. 이렇게 볼 때에 육도윤회는 바로 육근이 육경을 상대하는 그 찰나찰나가 바로 육도윤회다.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최상승 학자는 항상 시방세계도 일념(一念) 속에서 봐야 하고, 육도윤회도 일념 속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생사도 바로 일념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아까 말한 눈으로 청황적백 어떠한 색상을 볼 때에 바로 그 찰나가 바로 전처(轉處)—경계를 따라 굴르는 곳인데, 그 구를 때에 어떻게 해야 능히 그윽할 수가 있느냐?

구르는 곳마다 실로 능히 그윽하다. ‘그윽하다’하는 것은 생사에 휩쓸려 끌려가지 아니한 것을 말하는 거여.

 

깨달은 사람은 바로 깨달은 그 낭연독존(朗然獨存)한 그 경계에서 벗어나지 않겠지만 우리 아직 깨닫지 못한 이 중생은, 이 최상승법을 믿고 참선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눈으로 무엇을 보자마자 바로 화두를 들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화두를 들고,

일체처 일체시에서 잠깐 사이도 화두를 놓치지 않도록 염념불망(念念不忘) 염념불매(念念不昧)로 화두를 거각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잡드리를 해 나갈 따름인 것입니다.

 

그렇게 일념 일념을 그렇게 단속을 해서 일구월심(日久月深) 해 나가면 마침내는 화두가 순수무잡(純粹無雜)하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서, 낮에 앉아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다닐 때나 일을 할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그 화두가 매(昧)하지 않도록.

 

처음에 잘 안되니 지어서라도, 억지로라도 지어서 자꾸 챙기고 또 챙기고 하다 보면 나중에는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독로하게 되고, 망상을 끊을려고 안 해도 저절로 망상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말이여.

 

설사 눈으로 무엇을 보아서 ‘저것이 산이다’ 잠깐 사이에 저게 산인 줄 보이지만 산으로 쫓아가지 안 해.

‘산이 높다, 푸르다, 저 산에 구름이 끼었다’ 그렇게 이리저리 따져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산을 보자마자 처꺽 화두를 들어버린다 그말이여.

 

나중에는 산을 봐도 산이 보이지 아니하고, 물을 봐도 물이 보이지 아니하고, 사람을 봐도 사람이 보이지 아니하고, 하늘을 봐도 하늘이 보이지 아니하고, 다못 의단이 독로할 뿐이다 그말이여.

눈을 뜨고 있지마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어. 귀를 막지 않고 열어놓고 있지마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게 되어. 그래서 이 몸뚱이가 이 세상에 있는 것조차도 인식을 못해. 시간이 가는 줄도 몰라.

 

이렇게 해 나가면 밤에 자되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리고, 잠이 깊이 들었을 때에도 오직 화두만이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들려져 갖고 있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이렇게 되기를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렇게 가면 어떠한 찰나에 그 의단이 툭 터져버리게 되는 거여. 통 밑구녁이 빠져서 그 통에 담아논 것이 확 쏟아져 나오듯이.

 

이것은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조사(祖師)들이 이렇게 해 가지고 다 깨달음을 얻으신 것입니다.

 

 

망상(妄想)을 끊을려고 해서는 아니 되는 거여. 망상을 끊을려고 하면 ‘끊을려고 하는 그 생각’이 바로 망상이 되기 때문에 망상을 끊을려고 해서는 아니 되는 거여.

마치 일어나는 파도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자꾸 손으로나, 판때기로 그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그 물을 누른다든지,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이리저리 친다든지, 이래봤자 그 파도가 없어지기 커녕은 오히려 새로운 파도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말이여.

 

소승(小乘)은 공부하는 법이 일어나는 번뇌와 망상을 없앨려고 한다 그말이여.

망상이라고 하는 것을 인증을 하고 그 망상을 없앨려고 무한히 노력을 하고, 또 생사(生死)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있는 것으로 인증을 하고서 그 생사를 없애기 위해서 무한히 노력을 해.

 

심지어는 ‘낳다 죽었다’ 그 생사가 싫으니까, 그 생사를 없게 하기 위해서 태중(胎中)에 들어가기를 꺼린다 그말이여.

사람이나 짐승의 뱃속에 태중에 들어가면은 낳게 되고, 낳으면은 늙어서 병들어 죽게 되니까, 늙어서 병들어 죽어가는 그 고통을 면하기 위해서, 받지 않기 위해서 태중에 안 들어가. 태중에 들어가는 것을 제일 무서워한다 그말이여.

 

그러기 때문에 태중에 안 들어갈려면은 어떻게 해야 안 들어가냐? 우리의 중생의 번뇌(煩惱)를 끊어야 한다.

번뇌가 바로 생사심이고 그 생사심 때문에 태(胎)에 들어가게 되고, 태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에 낳게 되고, 낳음으로써 늙어서 병들어 죽는다.

그 생사(生死)에 안 들어갈라면은 태(胎)에 안 들어가야 하고, 태에 안 들어갈라면은 우리의 번뇌 망상을 끊어야 한다. 그래서 그 번뇌 망상을 끊기 위해서 한량없는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소승들의 수행 방법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대승법, 최상승법에서는 어떻게 하느냐?

 

우리가 아무리 최상승법을 믿고 이렇게 참선을 한다고 해도 한량없는 번뇌와 망상이 일어납니다. 눈으로 보면은 보는 데에서 일어나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으면 듣는 데에서 일어나고, 무엇을 맛보면 맛난 데에서 '쓰다 달다 맛있다 맛이 없다' 끊임없이 밥을 먹으면서도 이 생각 저 생각이 일어난다 그말이여.

코로 무슨 냄새를 맡으면은 '아! 이거 무슨 기름 냄새가 난다, 무슨 고약한 시궁창 냄새가 난다. 무슨 좋은 향 냄새가 난다, 아! 이거 무슨 향내냐? 무슨 화장품 냄새냐?' 이래 가지고 코를 통해서도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난다 그말이여.

 

그런데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번뇌 망상은 본래 없는 것이다. 본래 번뇌의 자성이 없는 것이다. 생사는 본래 생사의 자성이 없는 것이다. 한 생각 일어나되 일어나는 한 생각 일어남이 없는 것이다. 그 자체가 본래 없는 것이다’하고 그렇게 딱! 믿어 버리는 것이여.

있는 것으로 인증을 하고 그놈을 끊을라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없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어버리는 거여.

 

왜 있는데 없다고 믿을 수가 있느냐? 분명히 번뇌가 일어나고 망상이 일어나고 이렇게 몸뚱이를 받아 나면은 아프고 늙어서 병들어 죽고, 아무리 이 몸뚱이 없다고 하지만 꼬집어보면 아픈데 어떻게 하느냐?' 도저히 믿기가 어렵습니다.(처음~21분35초)

 

 

 

 

 

(2/3)----------------

 

그러나 눈병이 든 사람은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눈에 병이 없는 사람은 이 맑은 허공을 보면 아무것도 없는데, 눈병이 있는 사람은 이상하니 무슨 꽃이 이글이글이글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말이여.

저 더운 날 강변에 가면 모래사장에 아지랑이가 이글이글이글 타오르듯이, 그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 분명히 허공에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말이여.

 

그러면 아무리 그 허공에 꽃이 없는 것이라고 말해도 눈병이 없는 사람은 안 보이는데, 눈병이 있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보인다 그말이여. 그러나 잘 생각해 보라 그말이여.

허공에 무슨 꽃이 피어있겠느냐 그말이여. 눈병만 고쳐 버리면은 허공의 꽃은 없어져 버리는 거여.

 

그러면 눈병이 있는 사람에게 보인다고 해서 실지로 허공에 꽃이 있느냐 하면은 없는 것이거든.

그래서 눈병이 없는 사람이 ‘없다’고 하면, ‘없다’고 믿으면 되는 거여. 실지로 자기 눈에 보인다 하더라도 보이는 것은 눈병으로 인해서 헛것이 보이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으면 못 믿을 것도 없다 그말이여.

 

‘번뇌와 망상이 그 자성이 없다’고 하면 실지로 자기에게는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처님이 ‘없다’고 하시고, 성현들이 ‘없다’고 하시고, 선지식(善知識)이 ‘없다’고 하면 그 말을 안 믿고 무엇을 믿을 것이냐 그말이여.

분명히 이 몸뚱이를 타고난 이상 늙어서 병들어 죽는 고통이 있지만 부처님과 모든 성현이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으니 그 성현의 말씀을 안 믿고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이냐 그말이여.

 

성현의 말을 고냥 고대로, 액면 그대로 ‘그냥 없다’고 딱! 믿어버려. 믿어 버리면 참 그게 그렇게, 당장 그 자리에서 대안락(大安樂)을 얻을 수가 있다 그말이여. 

 

 

어려서는 하차잖은 것을 보고도 굉장히 무서워합니다. 실지는 아무것도 무섭지 않는데 굉장히 무서워 해.

‘귀신 나온다, 애비 나온다’해 가지고 어린애들 갖다 울면은 그 못 울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몇 번 하면은 나중에는 ‘애비 나온다’ 그러면은 울다가도 깜짝 놀랜다 그말이여. 

 

호랑이란 놈이 배가 고파서 마을로 내려 왔는데 가만히 그 집에 기어 들어갔다 그말이여. 애기가 막 울어.

‘호랑이가 나온다’고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아니하고, ‘귀신이 나온다’고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않고, ‘여기 곶감 있다’ 그러니까, 아! '곶감 있다'고 하면서 나중에 쓰기 위해서 깊이 둔 곶감을 한 개를 내서 주니까 어린애가 울음을 딱 그쳤다 그말이여.

 

호랑이란 놈이 문 밖에서 가만히 그 종초지말(從初至末)을 다 들어보니까 아! 호랑이, 이 세상에서 자기만큼 제일 무서운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호랑이가 왔다'고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아니하고, 뭐 '귀신이 왔다'고 해도 그치지 아니하는데 아! '곶감 있다' 그러니까 울음을 딱 그친다 그말이여.

 

문을 닫아놓으니까 그 상황은 알 수가 없으나, ‘도대체 그 곶감이란 놈은 귀신보다도 더 무섭고, 호랑이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로구나. 여기서 우물쭈물 하다가는 그 곶감한테 잡히면은 영락없이 죽게 되겠다’ 이리 생각을 하고 아주 꽁지가 빠지라고 도망해 가지고 다시는 그 곶감 있는 집에는 가지를 안했다. 그런 얘기가 있는데.

 

그 호랑이란 놈은 이 곶감을 보지 못했지만 ‘그 곶감이란 놈이 그렇게 호랑이보다도 귀신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다’하고 그렇게 딱 믿고는 다시는 그 집에 안 가듯이,

우리가 탁! 믿을 수만 있으면, 탁! 믿어버리기만 하면 참 무서운 그 힘이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어리석은 사람은 미신을 믿고 그 무당이나 만신이나 또는 무꾸리 점쟁이 그런 말을 믿는 사람은 그 점쟁이의 한마디, 그 무당의 한마디를 참 굉장히 무서워합니다. 그래 가지고 그 하라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몇백만 원을 들여서라도 굿을 하라고 하면 굿을 하고, 무슨 이상한 행동을 하라고 하면은 그걸 다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 무당이나 만신의 말을 믿기 때문에 그 몇백만 원, 몇십만 원 돈도 아까운 줄을 모르고 그 엄청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당이나 만신이나 미신의 말은 아! 그렇게 잘 믿어.

 

아! 대학을 졸업하고 그러한 참 최고 학부를 졸업한 그런 지성인들이 어째서 그렇게 무당이나 점쟁이 말은 그렇게 여지없이 믿으면서, 그 부처님 말씀, 선지식의 말은 잘 안 믿는다. 믿는다 해도 껍데기로만 믿고 속속들이는 잘 안 믿는 것 같다 그말이여.

왜 그러냐?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번뇌와 망상은 본래 없는 것이다. 끊어야 할 번뇌는 없고 해탈해야 할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귀에 따깽이가 앉도록 일어주어도 그런 줄 그 상식 그냥 지식으로, 알음알이로 그렇게 알기는 알아도, 그렇게 무당이나 점쟁이 말 믿듯이 그렇게 속속들이는 잘 안 믿는다 그말이여.

 

그 십분의 일만 믿어도, 당장 이 최상승법을 믿고 바로 이 화두가 타성일편이 되도록, 머지않아서 그렇게 될 텐데 아! 그것을 속속들이 안 믿는다.

 

우리가 정말 이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 법을 믿는다면 ‘맨 처음에 무엇을 믿느냐’하면은 『내가 바로 부처다. 내가 바로 부처』라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부처님한테 무슨 생사(生死)가 있어? 생사 없는 열반(涅槃)의 경지를 요달(了達)한 분이 바로 부처님인데, 부처님한테는 번뇌도 없고 생사도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내가 바로 부처다』 그렇게 딱 믿고 대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번뇌도 없는 것이다.

 

지금 그러면 우리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는 무엇이며, 어머니한테 받아난 이 육체로 해서 생이 있고, 늙음이 있고, 병이 있고 마침내는 육칠십 살다가 결국은 죽는데, 그 죽음이 있는데 이 있는 죽음,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우리가 매(昧)했기 때문에, 매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진 것이다. 이렇게 여러분은 우선 알아야 하고 또 그렇게 확실히 조리 있게 알면 그것이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고서 화두를 들어야 한 번을 들어도 여지없이 화두가 들어지는 것입니다.

 

화두를 들고 또 들고 해서 일체처 일체시에 그놈을 들어 나가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우리의 중생의 무명(無明)으로 인해서 ‘없는 생사’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생사일망정 바로 거기서 생사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중생은 그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전5식(前五識)과 6식(六識, 意識)과 7식(말나식), 8식(아뢰야식), 이런 식(識)으로 해서 일생을 살아가고, 식(識)으로 해서 업을 짓고, 식(識)으로 해서 일체 생사윤회를 하는데,

그 일어나는 육근(六根), 육경(六境), 육식(六識), 이 십팔경계에 있어서 염념불망(念念不忘)으로 화두를 단속해 나가면, 화두가 타성일편이 되고, 그 의단이 독로해 가지고 그것이 툭! 터져 버리면 자성을 깨닫게 되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게 되는데,

 

그 자기 본래면목을 바로 깨닫자마자, 그 깨닫기 전의 중생의 그 육근, 육경, 육식 그 식(識)이 부처님의 지(智)로 변해버리는 것입니다. 지(智)가 딴 데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식(識)이 찰나 간에 변해 가지고 지(智)로 변하는 것이여.

식(識)이 지(智)로 변하는 것이지, 식(識)이 없어지고 지(智)가 어디서 따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 도리를 잘 인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생의 마음을 떠나서 부처님이 없어. 우리의 중생의 마음을 버리고서 그 부처님이 어디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여. 중생의 마음, 그것이 바로 일념무생(一念無生)하는 도리를 요달해 버리면 거기에서 바로 성불을 하는 것입니다.

 

 

광명적조변하사(光明寂照徧河沙)하면  범성함령공아가(凡聖含靈共我家)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념불생전체현(一念不生全體現)이라  육근자동피운차(六根纔動被雲遮)니라

나무~아미타불~

 

광명적조변하사(光明寂照河沙)요  범성함령공아가(凡聖含靈共我家)다.

광명이 적적(寂寂)이 비추니, 온 항하사(恒河沙)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그 광명이 고요히 비치는데,

범성함령(凡聖含靈)이 공아가(共我家)다. 범부, 성현 일체 중생이 다 나의 집이더라. 바로 그 참나의 면목(面目)이더라.

 

일념불생전체현(一念不生全體現)이요, 한 생각 남이 없으면 전체에 드러나.

일념불생(一念不生), 한 생각 일어남이 없어. 일념불생하면 전체가 나타나, 전체현(全體現)이다. 부처님의 면목이 바로 드러난다 그말이여.

 

육근(六根)이 자동(纔動)하면은 피운차(被雲遮)여. 벌써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한 생각이 움직이면은 그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가 환히 비쳤던 데에 거기에 벌써 구름이 가리워져서 그 광명을 가리게 된다 이거거든.

 

이 한 생각을 단속하는 것이,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가 독로하도록 단속을 하면은 삼천대천세계가 이 비로자나 법신(毘盧遮那 法身)의 대광명이 온 세계를 두루 비추는 것이 되는 거고,

한 생각 단속을 못해 가지고 육근(六根)을 통해서 동(動)하면 벌써 그 광명에 구름이 가리워져서 그 광명을 덮는 것이 된다 그거거든.

 

 

단제번뇌중증병(斷除煩惱重增病)이요  취향진여역시사(趣向眞如亦是邪)니라

나무~아미타불~

수순세간무가애(隨順世間無罣碍)하면  열반생사등공화(涅槃生死等空花)니라

나무~아미타불~

 

단제번뇌중증병(斷除煩惱重增病)이요, 그러면 우리 그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끊임없이 퍼일어나는 그 번뇌 망상을 끊어서 없앨려고 하면은 거듭 그 병통을 더 증가시키는 것이 된다. 더 번뇌를 치성하게 하는 것이 되고.

취향진여역시사(趣向眞如亦是邪)다. 진여(眞如)를 향해서 나아갈려고 마음을 먹으면은 또한 이것도 삿된 것이다.

 

번뇌, 그 번뇌 다스리는 법을 아까 말씀을 드렸죠? 번뇌는 끊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진여불성은 우리가 그놈을 찾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여. 번뇌는 끊을려고 하지 말고 화두를 들고, 진여를 찾을려고 하지 말고 화두를 들어.

화두를 염염불망으로 들어서 타성일편이 되어서 그놈을 타파(打破)하면 거기에서 번뇌는 끊을려고 안 해도 저절로 거기에서 끊어져 버리고, 진여는 찾을려고 하지 안 해도 본래면목 진여불성은 찰나 간에 드러나 버리는 것이다 그말이여.

 

수순세간무가애(隨順世間無罣碍)여. 세간(世間)에 수순(隨順)을 한다.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엄마는 엄마로서, 딸은 딸로서, 아들은 아들로서, 남편은 남편으로서, 아내는 아내로서 일체처 일체시에 자기에게 주어진 소임을 충실히 하면서, 바로 그 가운데에서 기쁜 일을 당해도 ‘이뭣고?’ 슬픈 일을 당해도 ‘이뭣고?’ 속상하는 일을 당해도 ‘이뭣고?’

 

그 당하는 일을 ‘좋다’고 그놈을 탐착을 하고, ‘싫다’고 해서 없앨라고 피할라고 하지 말고, 닥치는 대로 자기로서 도리를 다하면서 그놈을 화두를 들고서 화두 드는 마음으로 그놈을 척척척척 해결을 해 나가라 그말이여. 그렇게 해서 걸림이 없게 하라 그말이여.

버리고 취할 것이 없이, 닥치는 대로 자기의 입장에서 가장 적절히 모든 일을 처리를 해 나가. 그럴라면은 그놈을 싫어서 피하지도 말고 좋아서 탐착하지도 마라.

 

어떻게 하면은 버릴 것도 없고 취할 것이 없느냐? 화두를 들고 의단이 독로하도록 해 나가는 길 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일체처 일체시에 걸림이 없이 되면 ‘열반이다, 생사다’하는 것이 바로 허공의 꽃과 같이 되어버린다 그말이여.(涅槃生死等空花) 허공의 꽃이 무엇이던가? 본래 없는 것이거든.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출현(出現)을 하실 때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나오신 것이 아니여. 중생의 ‘생사다, 열반이다’하는 그 두 가지 소견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나오신 것이다.

생사라고 해서 두려워하고, 열반이라고 해서 그놈을 좋아라고 그놈을 쫓아가는 그러한 자세로 나아가는 동안에는 영원히 생사는 끊어지지 않고, 영원히 열반은 얻어지지를 않는 것이여.

 

바로 ‘생사다, 열반이다’하는 그 두 가지 소견을 제도해 버리면 바로 그것이 생사해탈이요, 바로 그것이 적적열반(寂寂涅槃)에 계합(契合)이 되는 것이다 그 말입니다.(21분36초~43분11초)

 

 

 

 

 

(3/3)----------------

 

오늘 무진년 칠석날입니다. 칠석(七夕)이라는 게 대관절 무엇이냐?

전설로는 저 하늘나라 은하계에 견우성(牽牛星)과 직녀성(織女星)이 있는데 그 서로 남녀의 두 별이 그렇게 사랑하건마는 그 은하에 가로 막혀서 가지를 못하다가 칠석날에 까막까치가 다리를 놔 주면은 그 다리를 건너가서 그 오작교(烏鵲橋)인데, 그 오작교를 건너가 가지고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

 

그래서 이 칠석날 이후에 까막까치 그 대가리를 보면, 견우 직녀가 그 대가리를 밟고 지내갔기 때문에 대가리 껍데기가 벗어져 있다. 오늘 여러분들은 혹 까막까치를 보거든 정말 그 대가리가 벗어졌는가 유심히 한 번 살펴보시는 것도 재미가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째서 그러한 전설로 내려오는 칠석날이 그렇게 우리 한국민에 있어서 그렇게 참 하나의 신앙으로써 그렇게 저 신라 때부터서 수천 년을 두고 이렇게 칠석날이 우리의 명절로써 쇠어지고 내려오는가?

‘칠석날은 절에 가면은 그 칠성(七星)님께 공을 들이고 공양을 올리고 기도를 하면은 모두 부모형제 아들딸들이 모두 수명장수하고 복덕구족한다’ 이것은 우리의 토속 신앙(仰)이 되어버렸습니다. 

 

본래 이 북극성은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로 숭배하고, 북두칠성은 이 칠성여래(七星如來)로 숭배를 하고, 해와 달은 일광보살(日光菩薩) 월광보살(月光菩薩)로 하고,

하늘나라의 저 무수한 별들은 그 치성광여래와 좌보처 일광보살, 우보처 월광보살 하는 이 부처님의 그 여러 ‘삼태육성(三台六星) 이십팔수(二十八宿) 주천열요(周天列曜) 제성군중(諸星君衆)’이라 해서 전부 이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의 대중이다 그말이여.

 

석가모니 부처님께는 십대제자(十大弟子)와 십육 대아라한(大阿羅漢) 그리고 천이백오십 인의 제자가 상수제자(上首弟子)로 항상 계셨지마는 이 치성광여래는 좌보처(左補處) 우보처(右補處) 일광 월광 양대 보살이 계시고, 하늘나라에 가득찬 모든 별들이 치성광여래의 다 거느리시는 대중이시다.

 

어떻게 해서 저 별을 부처님으로 이렇게 승격을 시켜서 숭배하게 되었는가?

이것은 아마도 중국에서 그 도교에서 그렇게 숭배하던 그 종교가 불교에 이렇게 받아들여져 가지고, 더군다나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서 이렇게 해서 불교 사찰 안에 칠성단(七星壇)을 모시고 이렇게 해 내려왔는데, 절절이 다 큰 절 작은 절에 가면 칠성님 모시고 산신단도 다 모시고 이래서 하는데,

우리 용화사는 오직 비로자나 법신불 한 분만을 딱 모시고, 각단 탱화라든지 그런 것을 조실 스님께서는 모시지를 안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칠석날에는 계속 이렇게 법회를 거행해 오신 것입니다. 

 

큰 눈으로 보면은 이 우주법계에 가득차 있는 삼라만상(森羅萬像) 두두물물(頭頭物物) - 저 북극성 또 북두칠성, 견우 직녀 그 은하계에 몇 수억만의 별들은 말할 것도 없고, 태양과 달 그리고 지상의 산천초목과 이 기와쪽, 돌맹이 하나 이르기까지 전부가 다 이 비로자나 법신의 몸뚱이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색상이 다 비로자나 법신의 몸뚱이요, 우리 귀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바람 부는 소리, 새 우는 소리, 물 흘러가는 소리, 자동차 소리, 기계 돌아가는 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 저 밖의 어린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지금 옆에 모두 숨쉬는 소리, 일체 모든 소리는 비로자나 부처님의 설법인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모든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부처님 아닌 것이 없고, 듣는 모든 소리는 부처님의 설법이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은 칠석날 칠성님을 숭배하고, 북극성을 치성광여래로 숭배하고, 해를 일광보살로 받들고, 달을 월광보살로 숭배한다고 해서 그것이 하등(等)의 그것을 미신이라고 배척할 만한 근거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용화사에서는 법신불(法身佛) 한 분만을 모셨다 그말이여.

우리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오직 화두 하나로써 팔만대장경을 요달(了達)하고, 삼세제불의 면목(面目)을 철견(徹見)을 하고, 이러한 최상승법을 믿고 닦아가는 도량이기 때문에 법신불 한 분만을 모셨다 그말이여. 얼마나 간결하고 참 얼마나 좋으냐 그말이여.

이 부처님 한 분 속에 치성광여래도 계시고, 칠성여래도 계시고, 일월광보살도 계시고, 이 한 부처님 속에 팔만대장경도 그 속에 다 들어 계시다 그말이여.

 

그렇다고 하면은 우리가 이 한 생각 단속함으로써 팔만사천 번뇌를 거기서 다 항복을 받고, 팔만사천 마구니를 거기서 다 항복을 받고, 그래 가지고 이 일념무생(一念無生)의 도리를 요달함으로써 삼명육통(三明六通)을 거기서 다 요달한 것이다 그말이여.

 

최상승법, 여러분은 무슨 경(經), 무슨 경을 그렇게 많이 읽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이 열어 봐도 종이와 먹으로 된 경이 아니고, 떠들어 봐도 한 글자도 쓰여 있지 않어. 이 한마디 화두, 이 의단(疑團), 이놈 하나를 단속을 해 나갈 뿐인 것입니다.

 

가정에서 살림을 할 때나, 직장에서 일을 할 때나, 절에 오셔서 방부를 들이고 정진을 할 때나, 후원에서 소임을 맡아서 공양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국을 끓이고 또 비를 들고 쓸고 걸레로 닦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서 오직 이 한 생각만을 간절히 간절히 단속을 해 나간다면 거기에는 일체의 모든 복덕과 지혜가 거기에서 다 갖추어질 것입니다.

 

오늘 칠석날을 맞이해서 여러분은 저 무당 만신 그런 데에 가서 칠성단에 공을 들이고 우리 남편 우리 자식들을 어쨌든지 그 몸 건강하고 목숨 길게 해달라고 손을 싹싹 비비고, 참기름에다가 불을 켜 놓고 그렇게 빌고, 그리 쫓아가시지를 않고.

여기 와서 참 맛없는 ‘한 생각 단속해서 화두를 들어라’ ‘의단이 독로해서 타성일편 해 가지고 그 화두를 타파해 버리면 거기에서 삼세제불(三世諸佛)의 면목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과 바로 나의 참 면목을 볼 수가 있다’ 만날 듣고 만날 이 귀에 따깽이가 들도록, 그런데 하필 이 칠석날 또 그 얘기를 하냐?

 

여러분 가운데는 빨리 이 법회가 끝나 가지고, 그거 참 우리 아들 그 만신 집에다 공들여 가지고 그 아들 낳았는데 거기를 안 가면은 그 만신이 노해 가지고 골을 내면은 행여나 우리 아들한테 해로울까, 그래 가지고 빨리 거기를 쫓아가야겠는데, 빨리 법문 그만 좀 했으면 혹 그러실 분이 계실란가 모르겠습니다마는.

여러분은 이미 모다 동참(同參)을 하셨고, 부처님께 모두 이 정성스런 폐백을 올렸고, 이렇게 조실 스님의 최상승 법문을 들었으니 만신 집에 쫓아가지 안 해도 여러분의 칠석날 공은 잘 들여졌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너무 염려를 하시지 말고, 앞으로 정말 영원히 그 무서운 생사윤회(生死輪廻)를 끊어버리고, 영원히 생사 없는 그 열반(涅槃)의 세계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실라면은 금생에 이 몸뚱이 있을 때 어쨌든지 열심히 정진을 해서 생사 문제를 해결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삼불형의총부진(三佛形儀總不眞)이요  안중동자면전인(眼中瞳子面前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능신득가중보(若能信得家中寶)하면  제조산화일양춘(啼鳥山花一樣春)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불형의(三佛形儀)가 총부진(總不眞)이요  안중동자면전인(眼中瞳子面前人)이다.

흙으로 뭉쳐서 만든 부처님, 또 나무로 깎아서 만든 부처님, 쇠를 녹여서 조성한 부처님, 이 세 가지 종류의 부처님의 그 형체가 총부진(總不眞)이여. 모두가 다 참다운 부처님이 아니여. 왜 그러냐?

 

흙으로 조성한 부처님은 물에 들어가면 풀어져 버리고, 나무로 조성한 부처님은 불 속에 들어가면 타 버리고, 쇠붙이로 녹여서 지어붓은 부처님은 용광로(爐) 속으로 들어가면 녹아버린다 그말이여. 그러니 어찌 그러한 부처님의 불상(像)을 갖다가 참다운 부처님이라고 할 수가 있겠느냐?

 

안중동자면전인(眼中瞳子面前人)이다. 눈 속에, 동자(子) 속에 나타나 있는 그것이 바로 앞에 서 있는 그 사람의 모습이더라 그말이여.

사람마다 눈동자 속에 보면은 그 사람 모습이 있는데, 그 눈동자 속에 있는 모습이 바로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의 모습이여. 그 사람의 모습이 바로 눈동자 있는 데에서 찾아봐야 그 사람의 모습이 거기에 비추어져 있다 그거거든.

 

약능신득가중보(若能信得家中寶)하면, 만약 능히 내 집안에 있는 보배를 믿는다면,

 

내 집안에 있는 보배가 무엇이냐?

어떤 사람이 죽을 때 그 평생 먹고 쓰고도 남을 보물의 구슬이 있었는데, 그 보주(珠)를 그 아들한테 전해 주어야겠는데 아들이 너무 어려가지고 그 보물을 전할 수가 없어서 그 아들의 옷 속에다가 그 보물을 딱 넣어놓고 그래 가지고 꽁꽁 꿰메서 잘 두었다 그말이여.

혹은 또 그 집안에 어디다가 깊이 딱 간직을 해 놨는데 아들한테는 일러줄 수가 없으니까, 자기의 친구한테 그것을 일러주었어. ‘내 자식이 철이 들거든 거기 그 보물이 있는 곳을 가르켜 줘라’ 일러주고서 죽었는데.

 

그 아들이 부모가 죽어버리니까 혈혈단신(身)이 되어 가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유랑걸식(流浪乞食)을 하고 돌아다녔다 그말이여.

 

자기한테 그런 아버지의 유산으로 받은 평생 쓰고 먹고 남을 보배가 있는 줄 모르고 그렇게 참 갖은 고생을 하면서 거지 신세로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어느 날 자기 아버지의 친구를 만났어.

그래 가지고 ‘바로 너의 그 옷 속에 보배가 있다’ 또는 ‘너의 집 어디에 가면은 그 보배가 있다’

그래 가지고 그 보배를 발견을 해 가지고 평생토록 참 유족(裕足)하게 살았다 하는 그 경전에 있는 말씀인데.

 

자기 안에 있는 보배, ‘그것이 바로 무엇이냐?’하면은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소소영령(昭昭靈靈)한 그 주인공, 그것을 갖다가 집안의 보배에다가 비유를 해서 말씀을 하신 거여.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 알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아는, 그리고 슬퍼할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알고, 성낼 줄도 아는 바로 그놈.

 

성내고 울고불고하는 그러한 작용이 어디서 나오느냐? 그말이여. 탐심도 낼 줄도 알고, 고약한 그 마음을 내는데, 그 마음 낼 줄 아는 놈, 그러한 작용이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그 작용이 일어나는 바로 그 당처(當處), 그것은 우리는 볼 수가 없어. 중생심으로는 그놈은 볼 수가 없고, 중생견으로는 그것을 알 수가 없는 거여. 더군다나 육안으로는 보일 수도 없어.

 

그런데 그놈으로부터서 온갖 중생의 그 육식(六識)이 거기서 발동을 한다 그말이여.

그 발동하는 그놈을, 발동하는 그 근본, 그 당처를 진실로 얻어버리면, 그놈을 깨달라 버리면, 제조산화(啼鳥山花)가 일양춘(一樣春)이다. 저 우는 새와 그 산에 울긋불긋 피는 꽃이 한결같은 봄이더라.

 

'그 우는 새소리가 바로 부처님의 법문이요, 그 산에 울긋불긋 피어있는 꽃이 바로 부처님의 몸뚱이더라' 이렇게 해석을 붙이면 이 경전은 김이 새버린 것입니다.

바로 봄이 돌아오니 산에는 울긋불긋 꽃이 피고 새는 노래한다 이거거든. 거기에다기 무슨 변명을 붙이고, 변명을 붙이면은 그것은 깨달음의 소식이 아니라 중생의 망견(妄見)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칠석날을 맞이해서 여러분은 동참을 해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으니 그리고 대중스님네 공양을 올렸으니 여러분은 유루(有漏), 무루(無漏)의 복(福)을 영생토록 쓰고 남을 복록을 받게 되셨으며,

최상승 법문을 들었으니 여러분은 생사해탈을 해서, 영원히 이 고해(苦海)에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해탈을 해서 생사 없는 열반의 세계에서 삼세제불과 더불어 무생곡(無生曲)을 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43분12초~64분28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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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행년홀홀급여류~’ ; [무의자시집(無衣子詩集)] (진각국사 혜심) ‘식심게(息心偈)’ 참고.

*녹음 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업경대(業鏡臺) ; 지옥의 염라대왕(閻羅大王)이 가지고 있다는, 인간의 죄를 비추어보는 거울이다. 업경 혹은 업경륜(業鏡輪)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어 지옥에 이르면 염라대왕은 업경대 앞에 죄인을 세우고, 업경대에는 그가 생전에 지은 선악의 행적이 그대로 나타나며, 죄의 경중이 판가름나면, 그에 따라 가야 할 지옥이 정해진다.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객체(客體) ; ①작용의 대상이 되는 쪽. ②주체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인간 인식 실천 대상.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귀(耳根)·코(鼻根)·혀(舌根)·몸(身根)·뜻(意根)의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근(根)은 기관·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육경(六境) ; 육근(六根)의 대상 경계인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을 말함.

산스크리트어 ṣaḍ-viṣaya 경(境)은 대상을 뜻함. 육진(六塵)이라고도 한다.

①색경(色境).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수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수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맛.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등.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게송) ‘심수만경전~’ ; [직지(直指)] (白雲和尙 抄錄, 조계종출판사) 63쪽 마나라(摩拏羅) 존자 게송 참고.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낭연독존(朗然獨存) ; 홀로 밝게 드러나다.

*염념불망(念念不忘) ; 생각 생각에 잊지 않음. 자꾸 생각이 나서 잊지 못함.

*염념불매(念念不昧) ; 생각 생각에 매(昧)하지 아니하다. 생각 생각에 또렸하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

*순수무잡(純粹無雜 순수할 순/순수할 수/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수(純粹)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매(昧)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망상(妄想 망녕될 망, 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소승(小乘) : [범] Hinayana 소승(小乘)이란 작은 수레란 뜻이다。수레는 사람을 태워서 험한 곳을 지나 안전한 곳에 가게 하는 것인데, 작은 수레는 아이들이나 타게 되며, 옅은 물이나 건널 수 있는 것이다。<법화경>에는 「양의 수레」와 「사슴의 수레」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처음 인천교를 말씀하신 다음으로 옅고 낮은 이치의 길을 가르쳐, 생각을 끊고 마음을 비게 하여 열반(涅槃)의 고요한 즐거움을 얻도록 하셨다。그 속에는 사제법(四諦法)을 깨치면 아라한(阿羅漢)이 되고, 십이 인연법(十二因緣法)을 깨치면 연각(綠覺)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소승에도 두 가지 길이 있으므로 이승(二乘)이라고도 한다。소승법을 말씀한 대표적 경전은 <아함경(阿含經)> <구사론(俱舍論)> <성실론(成實論)> <사분승계본(四分僧戒本)> <사분비구니계본> 등이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 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함[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이러한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惑-業-苦 三道]

*대승(大乘) : [범] Mahayana 대승(大乘)이란 큰 수레를 뜻한다。큰 원(願)과 큰 뜻을 세워서 나를 희생하여 모든 중생을 즐겁고 편안하게 건져 주겠다는 보살심(菩薩心) 있는 이들을 위하여, 육도(六度)와 만행(萬行)을 닦아 가도록 깊은 이치를 말씀하신 법문이다.

그 대표적인 경전은 <반야경(般若經)> <해심밀경(解深密經)> <능가경(楞伽經)> <기신론(起信論)> <범망경(梵網經)> 같은 것들이다.

이 법문을 요약하여 말하면, 이 세상에 온갖 물질과 일(森羅萬象)이 벌어져 있으나, 낱낱이 현상(現象) 그대로 비어 없는 것이며, 모든 차별된 것이 그대로 다 평등하여 열반인 것이다。따라서 무엇에나 걸릴 것이 없는 것이다.

소승의 열반이 소극적이며 작고 옅은 것이라면 대승의 열반은 적극적이며 크고 참된 것이다。한 중생도 남음이 없이 모두 제도한 뒤에야, 자기가 성불하겠다는 소원이야말로 대승의 보살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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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고냥 ; 더 이상의 변화 없이 고 상태 고대로.

*그냥 ; 더 이상의 변화 없이 그 상태 그대로.

*종초지말(從初至末) ; 처음부터 끝까지.

*속속들이 ; 깊은 속까지 샅샅이.

*열반(涅槃) : [범] nirvana  [파] nibbana  음을 따라 니반나(泥畔那) • 니원(泥洹) • 열반나(涅槃那)라 쓰고, 뜻으로 번역하여 멸(滅) • 적멸(寂滅) • 멸도(滅度) • 원적(圓寂) • 안락(安樂) • 해탈(解脫) 등이라 한다.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를 말함이니,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할 것 없이 무엇이나 다 열반이며 어느 때나 늘 열반이다。이것이 큰 열반인 것이다.

*요달(了達 마칠•완전히 료, 통달할 달) ; 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무명(無明) : [범] avidya ‘어리석은 마음’ ‘어두컴컴한 마음’을 이름.

<기신론(起信論)>에 는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법계(法界)의 참 이치에 어둡게 된 맨 처음 한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이 근본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거나 거칠거나 한 온갖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하였다.

*식(識) ; 산스크리트어 vijñāna 팔리어 viññāṇa

대상을 식별하고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인식 작용. 인식 주관. 이 식에 관하여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6식설(六識說)·8식설(八識說)·9식설(九識說)이 널리 채택되고 있다.

8식설(八識說)은 유식설(唯識說)에서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식(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제6의식), 第七 末那識(제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제8아뢰야식)이라 한다.

*전오식(前五識) ; 팔식(八識) 가운데 앞의 다섯 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말한다.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의식(意識) ; 팔식(八識) 가운데 제6 의식을 말한다. 육식(六識)의 하나.
①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 인식하는 마음 작용. ②알고 사고하는 마음. 생각하는 마음. 의식은 과거, 미래에의 대상에 대해서도 작용한다. 즉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를 예상할 수가 있다.
6식설(六識說)에서는 의식(意識)이 근본이 되어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 전5식(前五識)을 통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식을 심왕(心王)이라고도 한다.
*말나식(末那識) ; 말나(末那)는 [산스크리트어] manas의 음사로, 의(意)라고 번역.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제6식(第六識)인 의식(意識)과 구별하기 위해서 의(意)라 하지 않고 말나(末那)라고 한다.
8식설(八識說)에서 마음을 이루고 있다고 보는 8식(八識: 8가지의 식) 가운데 하나로 제7식(第七識), 제7말나식(第七末那識) 또는 말나(末那)라고도 한다.
말나식은 제6식의 밑에서 조절하는 강한 자의식(自意識)으로,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끊임없이 자아(自我)라고 오인하여 집착하고, 아뢰야식과 육식(六識) 사이에서 매개 역할을 하여 끊임없이 육식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 작용으로, 항상 아치(我痴)·아견(我見)·아만(我慢)·아애(我愛)의 네 번뇌와 함께 일어난다. 제8아뢰야식에 저장된 종자(種子)를 이끌어 내어 인식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생각과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 작용.
*아뢰야식(阿賴耶識) ; 8식설(八識說)에서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는 산스크리트어 ālaya의 음사로, 진(眞)과 망(妄)이 함께 있다고 하여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이라고도 하며, 본래 깨끗한 것이 드러나 있지 않고 감추어져 있다고 하여 장식(藏識)이라고도 한다.

*십팔경계 ; 십팔계(十八界). 계(界, 산스크리트어 dhātu)는 요소를 뜻함. 인식을 성립시키는 열여덟 가지 요소.

불교에서 인간과 그 밖의 모든 존재 속의 인식작용을 18가지 범주로 나눈 것. 육근(六根)·육경(六境)·육식(六識)을 합한 것이다. 육식(六識)을 제외한 12가지를 12처(處)라고 한다.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지(智) ; ①산스크리트어 jñāna  팔리어 ñāṇa  모든 현상의 이치를 명료하게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이해. 지식.

②산스크리트어 jñāna  깨달음. 깨달은 부분의 지혜. 완전히 아는 것. ③팔리어 paññā  지혜. 혜(慧).

*‘식(識)이 지(智)로 변하는 것이지, 식(識)이 없어지고 지(智)가 어디서 따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 식(識)이 지(智)로 변화되는 것을 전의(轉依)라고 하는데, 전의(轉依)의 뜻은 ‘소의(依, basis) 즉 발동근거를 바꾼다(轉)’로 성도(聖道) 즉 수행을 통해 번뇌에 오염된 8식을 지혜(智)로 변형시키는 것, 즉 질적 전환시키는 것을 말한다.

전통적인 용어로 전식득지(轉識得智) 또는 전식성지(轉識成智)라고도 한다.
전(轉)은 전변(轉變) 또는 능변현(能變現)의 뜻으로 능동적으로 바꾸고 변화시키는 것을 말하고, 득(得)은 획득(獲得)과 성취(成就)를 말한다. 즉 수행자가 수행이라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 자신의 8식을 지혜로 변형시키는 것을 말한다.
번뇌에 오염된 중생의 유루(有漏:세속)의 마음인 ‘8식’(八識-전오식, 제6의식, 제7말나식, 제8아뢰야식)을 질적으로 변혁하여[轉識得智] 얻은 4가지 무루(無漏:열반)의 청정한 지혜—사지(四智)는 다음과 같다.
대원경지(大圓鏡智) ; 인간의식의 심연에 있는 무명(無明)에 오염된 제8아뢰야식(阿賴耶識)을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이 지혜는 마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내는 크고 맑은 거울처럼, 제8아뢰야식에서 무명(無明)의 오염이 완전히 제거된 원만하고 분명한 지혜이므로 ‘크고 둥근 거울과 같은 지혜[大圓鏡智]’라고 말한다.
평등성지(平等性智) ; 인간의 자의식(自意識)에 해당하는 오염된 제7말나식(末那識)을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제7식은 원래 나와 남에 대한 구별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의식이므로 여러 가지 차별을 낳게 된다.
그러나 일체가 한결같고 평등함을 관하여,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생기는 자타에 대한 차별적인 견해를 떠나, 자타(自他)의 평등을 깨달아 대자비심(大慈悲心)으로 바꾸기 때문에 중생교화를 위한 평등한 지혜[平等性智]가 발현된다는 것이다.
묘관찰지(妙觀察智) ; 오염된 제6식(第六識)인 의식(意識)을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이 지혜는 모든 법(法)의 실상을 묘하게 잘 관찰하여 자유 자재로 가르침을 설하고 중생의 의심을 끊어 주는 지혜이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성소작지(成所作智). 눈·귀·코·혀·몸의 5관으로 느끼는, 오염된 전5식(前五識)을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이 지혜는 5관으로 행하는 일을 올바로 이루도록 하여, 중생을 이익과 구제하기 위해 여러가지 불가사의한 일을 모두 성취하는 지혜[成所作智]이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게송) ‘광명적조변하사 ~ 열반생사등공화’ ; 장졸수재(張拙秀才) 거사(居士)의 오도송(悟道頌) 참고.
*항하사(恒河沙) ; 갠지스 강(Ganges江)의 모래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면목(面目 낯 면, 눈 목)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함.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비로자나 법신(毘盧遮那 法身)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세간(世間) ; (산스크리트어 loka) 세(世)는 파괴·변화, 간(間)은 가운데·간격을 뜻함.
①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② 생물들의 세계. ③ 생물들이 거주하는 자연 환경, 곧 산하대지. ④ 세상. 이 세상. 세속.
*공화(空花, 空華) ; 환(幻). 공안화(空眼花). 공중(空中)의 꽃. 눈의 장애로 말미암아 생기는 허공의 꽃.
실재하지 않는 것을 있는 것으로, 관념을 실재하는 객관 대상으로, 고유한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는, 번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망상(착각·환상·편견 등)을 말한다.
 
눈이 멀쩡한 사람은 허공 속에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데, 눈병이 난 사람은 허공에 이상한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보이고 그러는데, 눈병만 고치면은 허공에 피어있던 꽃이 안 보인다.
그래서 눈병이 났던 사람은 ‘허공에 있던 꽃이 있다가 없어졌다’고 하지마는, 허공의 꽃은 있다가 없어진 게 아니라 원래 없던 것이다.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통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을 만나면 육식(六識, 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이 생기는데, 그 육식(六識)에 포착되는 모든 것들을 이름과 모양—명상(名相)이라 하는데, 명상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림자요, 메아리, 환(幻)인 것이다.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명상(名相) 그것을 ‘있는 것’으로 집착을 함으로 해서, 모든 탐진치 삼독심이 일어나 생사윤회의 업을 짓는데, 마음 하나만 공(空)해 버리면 일체 명상(名相)은 동시에 다 공(空)해 버리는 것이다.
 
원래는 이 세상에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生死)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生死)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이거거든.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송담스님 법문 521, 636 참고)
*계합(契合) ;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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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까치 ; 까마귀와 까치를 아울러 이르는 말.

*칠성(七星) ;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신격화한 것으로 칠성에 대한 신앙은 특히 중국의 도교에서 발달하여 이후 ①불교에서 칠성은 호법선신(護法善神)의 하나로 수용되었고 ②민간에서는 특히 수명과 재복을 관장하는 신으로 믿어졌다.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 ; 도교에서 유래한 칠성신앙을 불교에서 받아들여 북극성을 부처로 바꾸어 부르는 이름. 북극성은 그 빛이 밤하늘의 별 중 가장 밝아 치성광(熾盛光)이라는 명칭이 붙었으며 묘견보살(妙見菩薩)이라고도 한다.

*십대제자(十大弟子) ; 석가모니의 제자 중 수행과 지혜가 뛰어난 10명을 이르는 말.

*칠성단(七星壇) ;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신격화한 칠원성군(七元星君)을 모신 단.

*하등(等)주로 ‘하등  부정어 함께 쓰여, ‘아무런  나타내는 .

*법신불(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즉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삼명육통(三明六通) ;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갖추고 있는 3가지 자유 자재한 지혜와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동참(同參) ; ①어떠한 일에 함께 참여함. ②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③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는-동문수학하는 '도반(道伴)'과 같은 말. 동학(同學)이라고도 한다.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게송) ‘삼불형의총부진~’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용광로( 녹일 용/쇳돌 광/화로 로) ; 높은 온도 광석 녹여 구리 따위 쇠붙이를 뽑아내는 가마.

*혈혈단신( 외로울 혈/홑 단/몸 신) ; 의지할 곳 없이 외로운 홀몸.

*유랑걸식(流浪乞食 흐를·떠돌 류/물결·떠돌아다닐 랑/빌 걸/밥 식) ; 일정한 거처가 없이 떠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먹음.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당처(當處) ;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 그곳. 또는 이곳.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성도재)2015. 7. 25. 18:01

 

§(405) (게송)산당정야좌무언~ / “별을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별을 보는 것이다” / (게송)천척사륜직하수~ / 깨달음이라하는 것은 척! 보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다.

 

왜 부처님께서는 그 납월 8일 별을 보고 확철대오를 하셨는데, 왜 우리는 납월 8일 새벽 하늘의 별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밤마다 번쩍거리는 수없는 별을 보고도 왜 깨닫지를 못할까요?

‘별을 보고 깨달았다’고 하는 생각 때문에 별을 보고 깨닫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별을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별을 보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져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여. 척! 보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다.

 

화두(話頭)에 대한 의단(疑團) 이외의 어떠한 생각도 다 마구니를 불러들일 틈이 되는 것이다.

 

어찌 하필 부처님처럼 별에 국한된 것이 아니여.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비로자나 법신(法身)의 체(體)고, 부는 바람 소리, 흐르는 물소리, 개 짖는 소리, 차 지나가는 소리, 일체가 다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의 설법(法)이여.

그러니 무엇을 볼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 두두물물 삼라만상이 다 우리가 자아를 깨달을 수 있는 때요, 곳이다.

 

의단이 독로해서 순일무잡한 경지로 나아가야 그 언젠가 탁! 의단을 타파(打破)하게 되는 것이지,

화두를 놓쳐 버리고 사량분별에 떨어진다던지, 눈으로 무엇을 보는 데에 끄달린다든지, 귀로 무엇을 듣는데 끄달리고 있는 한은 그러한 경지에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항상 화두를 잡드리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우리가 해야 할 정진이여.

경전도 볼 것이 아니고, 어록도 볼 것이 아니고, 일체처 일체시가 행주좌와 어묵동정 사위의(四威儀)에서 화두만 성성적적(惺惺寂寂) 하게 잡드리해 갈 뿐이여.

 

**송담스님(No.405)—89년 성도재 법회(90.01.04) (용405)

 

(1) 약 22분.

 

(2) 약 20분.

 

(1)------------------

 

산당정야좌무언(山堂靜夜坐無言)한데  적적요요본자연(寂寂寥寥本自然)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하사서풍동임야(何事西風動林野)한데  일성한안여장천(一聲寒雁唳長天)고

나무~아미타불~

 

산당정야좌무언(山堂靜夜坐無言), 산당(山堂) 고요한 밤에 말없이 앉았는데,

적적요요본자연(寂寂寥寥本自然)이로구나. 적적(寂寂)하고 요요(寥寥)해. 적적하고 고요한 본자연이로구나.

 

하사서풍동임야(何事西風動林野), 무슨 일로 서풍이 임야를 흔드는데,

일성한안여장천(一聲寒雁唳長天)고, 한 소리 차운 기러기는 긴 하늘에 우는고.

 

 

오늘 기사년 납월팔일(臘月八日) 성도재(成道齋)를 맞이했습니다.

방금 17년 전, 임자년 납월 8일에 전강 대선사(田岡大禪師) 조실 스님께서 설하신 납월 8일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경청을 했습니다.  

 

삼천년 전 우리 부처님께서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처럼 버리시고 유성출가(踰城出家)해서, 설산에 들어가셔서 6년 고행(苦行)을 하셨습니다. 일찍이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우리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그렇게 무서운 고행을 하시지를 않았습니다.

그러한 피골(骨)이 상접(接)해서—하루에 삼씨 한 알, 좁쌀 한 알 그런 정도로 곡식 알갱이 하나씩 이렇게 잡숫고 6년을 지내셨으니—완전히 고목사회(枯木死灰)처럼 되었어. 완전히 해골(骨)만 남았어.

 

그러시다가 ‘이렇게 고행을 위한 고행만이 참다운 정진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시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강가로 내려가셔서 맑은 물에 목욕을 하셨습니다.

목욕을 하고 나오시니까 수자타라고 하는 마을의 청신녀가 유미죽(乳糜粥)을 쑤어 가지고 올라왔습니다. 부처님께 바치니까 부처님께서 그것을 받아 잡수셨습니다.

 

그것을 보고 부처님을 보호하면서 같이 정진하던 정반왕(淨飯王)이 보낸 다른 다섯 사람들,

실달 태자(悉達太子)와 같이 서로 약속을 하기를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결단코 고행을 쉬지 않고 용맹정진을 하자’고 약속을 해 가지고 6년을 고행을 하셨는데,

 

실달 태자가 수자타가 바친 죽을 받아 잡수신 것을 보고 “아하! 고행을 견디지를 못하고 너무 배가 고프니까 저렇게 죽을 받아 자시니 저런 의지가 박약하고 약속을 깨트리는 사람과 우리가 같이 있을 수가 없다”

그렇게 말을 하고서 교진여(憍陳如) 등 다섯 사람은 녹야원(鹿野苑)으로 떠나버렸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우리 부처님께서 자리를 옮겨서 깨끗하고 쇄락(灑落)한 그리고 참 오랜만에 유미죽을 공양을 하시니 한결 기운이 좋다 그말이여. 맑고 깨끗하고 생기가 도는 그러한 몸과 마음으로 정진을 하셨어.

그러시다가 납월팔일 새벽에 별이 반짝거리는 것을 보시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셨어. 

 

밤마다 별은 반짝거립니다. 구름이 꽉 낀 날은 안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밤이면 언제나 별은 반짝거립니다. 삼천년이 지난 오늘도 역시 밤에는 별이 빛납니다.

우리도 빛나는 번쩍거리는 그 별을 보고, 삼천년 동안에 아니 수억만 년을 내려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별을 봅니다. 번쩍이는 별을 보지마는 별을 보았다고 해서 다 확철대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는 그 별빛을 보시고 확철대오를 하셨어.

 

 

해마다 제방(諸方)에서는 섣달 초하루부터 납월팔일 새벽까지 만 7일간을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합니다.

그것은 우리 부처님께서 납월 8일에 별을 보시고 확철대오를 하셨기 때문에 그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그 뜻깊은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또 그 뜻깊은 날을 우리가 그냥 범연(泛然)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선방에서는 용맹정진을 해. 7일 동안을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고 완전히 앉은 채 그렇게 용맹정진을 합니다.

   

왜 부처님께서는 그 납월 8일 별을 보고 확철대오를 하셨는데, 왜 우리는 납월 8일 새벽 하늘의 별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밤마다 번쩍거리는 수없는 별을 보고도 왜 깨닫지를 못할까요?

‘별을 보고 깨달았다’고 하는 생각 때문에 별을 보고 깨닫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별을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별을 보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별을 보고 깨달아? 별을 보고 무엇을 깨달아?

“바로 그 별을 보는 것이다” 이 간단한 한 말씀 속에 삼천년 전에 부처님께서 별을 보고 깨달으신 바로 그 도리를 단적(端的)으로 설파(說破)하신 것입니다.

 

 

천척사륜직하수(千尺絲綸直下垂)한데  일파자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야정수한어불식(夜靜水寒魚不食)하야  만선공재월명귀(滿船空載月明歸)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천척사륜직하수(千尺絲綸直下垂), 천 자나 되는 긴 낚싯줄을 똑바로 드리우니,

일파자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여, 그 낚시가 물에 떨어지자마자 한 물결이 일어나니 일만 물결이 따라서 일어나더라.

 

야정수한어불식(夜靜水寒魚不食), 밤은 고요하고 물이 차와서 고기가 그 낚시를 물지를 않아.

만선공재월명귀(滿船空載月明歸)로구나. 가득한 배에는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더라.

 

 

우리 부처님께서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출현하셔서 별을 보시고 확철대오를 하셔가지고, 49년 동안을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셨어. 무량 중생을 제도하셨다.

 

부처님께서 확철대오하신 그 법을 가섭 존자에게 전하시고, 가섭 존자는 아란 존자, 아란 존자는 상나화수 이렇게 해서 28대를 달마 조사까지 전하고, 달마 조사가 중국으로 오셔서 6조 스님까지,  6조 스님 이후로  5종 가풍이 벌어져서 조실 스님까지 77대를 전해 내려왔습니다.

  

볼라야 볼 수 없고, 알라야 알 수 없고, 설할라야 설할 수 없고, 들을라야 들을 수 없는 이 도리를 깨닫고 또 그것을 전하고 받아서 오늘에 이르렀다.

꼭 깨달을 것이 있고, 꼭 전할 것이 있고 또 전해 받을 것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말이 됩니다.

 

‘깨달을 것이 있고, 전할 것이 있고, 받을 것이 있다’고 그렇게 그 말을 따라서 그렇게 인식하고, 또 자기도 깨달으려고 생각을 하고.

 

이러한 말에 떨어져서 그렇게 인식하는 사람은—마치 배를 타고 가다가 그 갑판 위에서 칼을 가지고 무엇을 하다가 그 칼을 잘못 놓쳐가지고 바닷물에 빠트렸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이 뱃전에서 칼을 잃어 버렸다’해 가지고, 나중에 그 잃어버린 칼을 찾기 위해서 그 장소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 뱃전을 쪼아 가지고 표(標)를 해 놨습니다.

언제라도 그 뱃전 그 자리에서 떨구었으니까, 그 뱃전에다가 표를 해 놔야 그 뱃전 밑으로 내려가면은 그 밑바닥에 칼이 있을 것이다 이거거든. 

  

또 어떤 사람은 산에서 어느 나무 등걸 밑에서 토끼를 한 마리 보았는데, 그 토끼를 놓쳐 버렸습니다.

그래가지고 그 나무 등걸에서 토끼를 발견했다가 놓쳤으니까, 항상 그 나무 등걸에 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토끼가 달아났으니까 여기 가 있으면 그 토끼가 오려니.

 

그렇게 이야기하면 여러분들은 칼을 잃어버리고 뱃전에다가 표를 한 사람이나, 토끼를 놓치고서 나무 등걸 옆에서 토끼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퍽 어리석고 바보같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시겠지만,

‘부처님께서 별을 보고 깨달으셨으니까 행여나 나도 납월팔일 날 새벽에 하늘에 뜬 그 별을 보면 혹 깨달을란가?’ 이리 생각하고 추운데 새벽에 나가가지고 동쪽에 가장 크게 빛나는 별을 새벽부터 쳐다보고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별을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바로 별을 보는 것이니라. 보는 놈이니라”(처음~21분43초)

 

 

 

 

(2)------------------

 

깨달음이 별로부터 오겠습니까?

  

저 먼산에 연기가 나는 것을 보면 ‘거기에 불이 났구나’ 뻘건 불은 보이지 않지만 하얀 연기만 일어난 것만 보고도 ‘아! 저기에 벌써 불이 났구나’ 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 담 밖에 담 너머로 뿔만 지나간 것을 보아도 ‘아! 저 담 밖에 소가 지나갔구나’ 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소 몸뚱이는 담에 가리어서 보이지 않고 뿔 끄터리만 보여도 담 밖에 소 가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말이여.

 

영리한 사람은 척! 연기만 보고 불인 줄 알고, 뿔만 보고도 소인 줄 알아.

 

어리석은 사람은 연기를 보고 불인 줄을 모르고, 그놈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저것이 무엇인가?

뿔 끄터리를 보고 벌써 소인 줄 알아야 할 텐데, 저것이 뾰족한 것이 무엇인가? 저것이 말인가? 개인가? 사람인가? 지게인가? 이러쿵저러쿵 따진다 말이여.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져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여. 척! 보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다.

 

  

용화선원에서는 납월팔일 용맹정진을 그렇게 행사로서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개인 개인이 각자 자기의 신심과 분 따라서 7일 동안을 다른 때 보다는 좀더 마음과 몸을 가다듬고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하기는 어찌하여 반드시 납월팔일뿐이리오? 결제(結制)한 날부터서 오늘날까지 하루 하루를 바로 용맹정진 가행정진으로 그렇게 정진을 해 오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날마다 용맹정진이요, 날마다 가행정진인데, 특별히 의식적으로 납월 8일을 기해서 그런 의식적인 행사로써 안 했을 뿐인 것입니다.

 

정진을 열심히 하다 보면 앉아서나 서서나, 밥을 먹을 때나, 화장실을 갈 때나, 세면장에를 가거나, 소지를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 하게 되어.

 

그러면 걸어가되 가는 줄도 모르고, 앉았으되 내가 앉았다는 생각도 없고, 밥을 먹되 밥맛도 모르고, 반찬을 먹되 짠지 싱거운 줄도 모르고, 시간이 한 시간이 지나갔는지 반 시간이 지나갔는지, 오늘이 몇월 며칠인지 시간 날짜 가는 줄도 모르고,

마침내는 이 몸뚱이가 이 세상에 있는 것도 몰라. 다맛 의단이 독로해서 순일무잡 해.

 

정진을 애써서 한 사람이면 다 그러한 고비에 이르른 것입니다. 그러한 고비에 이르렀을 때에 항상 육근문두(六根門頭)에는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이가 떠억 엿보고 있는 것입니다.

엿보고 있다가 한 생각만 삐끗 ‘딴 생각[別念]’만 일으켰다 하면 바로 그 즈음을 타 가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침입(入)해 들어와!

 

마치 호위병이, 간수나 수위가 성문을 지키고 있는데 잠깐 한눈을 팔거나, 그 자리를 잠깐 비우면 그 틈을 타서 도둑이나 적이 들어온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순일무잡하고 성성적적(惺惺寂寂)한 그러한 경지에서 무슨 마음을 일으키던지 그 일으키는 마음에 따라서, 그 어떠한 마음을 내는가에 따라서 팔만사천 마군이 가운데에 어느 마구니가 침범해 들어와. 

 

어떤 수좌는 저 남해에서 정진을 참 애써서 하는데, 어떤 거룩하게 생긴 모습을 한 사람이 나와 가지고 설법을 하는데 경전에 있는 말씀과 똑같고, 경전에 있는 말씀보다도 더 한 걸음 나아간 그러한 심오한 그런 설법을 막 설한다 그말이여.

그리고 나서 ‘네가 정말 견성성불 하려면은 네 이마를 이 기둥에다가 부딪쳐라’ 막 그냥 그 법문 끝에 막 그렇게 강요를 하니까 거기에 따르지 아니할 수가 없어서 막 기둥에다가 머리빡을 들이받아 가지고 유혈이 낭자해.

 

그러다가 또 어느 날에는 ‘네가 참으로 견성성불 하려면은 네 고추를 끊어 버려라. 그놈 때문에 무량겁을 두고 생사윤회를 하고 도를 이루지 못했는데 금생이라도 네가 결정코 도업을 성취하려면 고추를 잘라 버려라’

그 법문을 설하고 나서 막 그것을 짜르라고 하니까 그 말을 안 들을 수가 없어. 그 법문에 감동이 되어 가지고 있고, 도업 성취할 그 생각 밖에 없기 때문에 그 말을 듣고 안 끊을 수가 없어서 고추를 잘라 버렸어. 유혈이 낭자 해 가지고 참 어렵게 수습을 했다 그말이여.  

 

이 정진을 애써서 하다 보면 특히 혼자 저 섬이나, 깊은 산중에나 토굴에 들어가서 혼자 공부하다가 흔히 이러한 경계(境界)가 나타나는 거여.

 

그래서 옛날부터 이 공부는 선지식(善知識) 밑에서 좋은 도반(道伴)들과 같이 정진을 해야지,

선지식이 없는 곳에 또 좋은 도반이 없는 곳에 아직 득력(得力)을 하지 못한 분상(分上)에 혼자 가서 한다는 것은 항상 이런 위험성이 수반(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모다 경계(戒)를 했습니다.

 

대중처소(大衆處所)에 살면 모두 대중(大衆)의 규칙을 따라야 하고 또 여러 다른 대중을 위해서 항상 조심해야 하고 신경을 써야 하고, 그러니 자기의 성질에는 안 맞아도 대중의 뜻을 따라야 하고, 대중을 조심해야 하니까,

자기 혼자 있으면 그러한 공연히 신경 쓰고 그럴 것이 없이 잠도 않자고 공부하려면 공부하고, 밥도 그저 먹고 싶으면 먹고 안 먹고 싶으면 안 먹고, 그저 뭐 정진도 4시간이고 5시간이고 꼼짝않고 하려면 하고, 잠도 않자고 하려면 하고, 마음껏 할 수가 있겠다.

 

그러니 대중처소에서 하니까 그런 것을 마음대로 못하고, 더 좀 공부하고 싶어도 시간되면 자야 되고 또 조금 늦게 일어나고 싶어도 시간 되면 일어나야 하고, 밥도 먹기 싫어도 대중과 같이 발우공양(鉢盂供養)을 해야 하고,

그러한 폐단을 피해서 토굴(土窟)에 들어가서 실컷 좀 공부하기 위해서 토굴을 찾고 토굴을 마련하고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마는,

 

공부에 득력을 하지 아니한 사람이 토굴에 들어가서 하다 보면, 참 그 정진을 애써서 계행을 철저히 지키면서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삐끗하면 이상한 경계가 나타나. 관세음보살이 나타나기도 하고, 부처님이라 해가지고 나타나기도 하고.

그래가지고 아까 저 남해에 가서 공부하던 그 수좌처럼 그러한 경계가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능엄경(楞嚴經) 50상(相) 변마장(辨魔障)에 있는 그러한 경계가 나타날 수도 있다 그말이여.

 

이러할 때 좋은 도반이 옆에 있거나 선지식이 있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백이면 백 다 그러한 마(魔)에 섭(攝)하게 되고, 사견(邪見)에 떨어지게 되고, 까딱하면 정신이상(常)에까지 걸려서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단계에까지 이르를 수 있는 것이여.

 

그런데 그 순일무잡한 경계에서 행여나 빨리 깨닫기를 바란다든지, 누가 와서 자기를 깨닫게 해 주기를 바란다든지 또는 어떠한 조사의 공안을 가지고 이리저리 분별하고, 분석하고, 따져서 복탁(卜度)을 한다든지 또는 무슨 신통이 나기를 바란다던지,

그러한 『화두(話頭)에 대한 의단(疑團) 이외의 어떠한 생각도 여기에 이르러서는 다 마구니를 불러들일 틈이 되는 것이다』 이 말씀입니다.

 

 

과거에 부처님께서는 별을 보고 확철대오를 하셨고, 또 어떤 도인은 복숭화 꽃이 활짝 피어 있는 것을 보고 깨닫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비로 땅을 쓸다가 돌이 와서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닫기도 하고,

또 어떤 도인은 발을 걷어 올리다가 깨닫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시장에서 장꾼들이 싸우는 소리를 듣고 깨닫기도 했다 그말이여.

 

어찌 하필 부처님처럼 별에 국한된 것이 아니여.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비로자나 법신(法身)의 체(體)고, 부는 바람 소리, 흐르는 물소리, 개 짖는 소리, 차 지나가는 소리, 일체가 다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의 설법(法)이여.

 

그러니 무엇을 볼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 두두물물 삼라만상이 다 우리가 자아를 깨달을 수 있는 때요, 곳이다 그말이여.

언제 어디서 무엇을 보다가, 무엇을 듣다가 깨달을는지 그것은 알 수가 없어.

 

그래서 어떠한 중대한 뉴스를 방송을 한다 할 때, 시간을 잘 모를 때에는 항상 다이얼을 맞춰서 딱 놔두고 기다리듯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깨달을지를 모르기 때문에 항상 우리는 화두를 의단이 독로하도록 잡드리해 나가야 한다 그말이여.

 

의단이 독로해서 순일무잡한 경지로 나아가야 그 언젠가 탁! 의단을 타파(打破)하게 되는 것이지,

화두를 놓쳐 버리고 사량분별에 떨어진다던지, 눈으로 무엇을 보는 데에 끄달린다든지, 귀로 무엇을 듣는데 끄달리고 있는 한은 그러한 경지에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항상 화두를 잡드리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우리가 해야 할 정진이여.

경전도 볼 것이 아니고, 어록도 볼 것이 아니고, 일체처 일체시가 행주좌와 어묵동정 사위의(四威儀)에서 화두만 성성적적(惺惺寂寂) 하게 잡드리해 갈 뿐이여.

밥을 먹을 때도 그렇고, 똥을 눌 때도 그렇고, 오줌을 눌 때도 그러고, 앉아서도 그러고, 서서도 그러고.

 

이렇게 잡드리해 가지고 안 되는 법이 없어.

고조사(古祖師)들이 ‘그렇게 잡드리해 가지고 안 된다면 내가 너희들을 대신해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이렇게 아주...

 

부처님께서는 ‘무엇 무엇이 안 하면 내가 어쩌리라’고 함부로 그러한 막담을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고인(古人)네는 우리 후인(後人)들을 위해서, 그렇게도 무서운 그러한 맹세를 우리를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21분46초~41분4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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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산당정야좌무언~’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적적하다(寂寂-- 고요할 적) ; ①(장소가)조용하고 쓸쓸하다. ②(사람이)홀로 떨어져 있어 심심하고 외롭다.

*요요하다(寥寥-- 쓸쓸할·텅 빌 료) ; ①(장소가)고요하고 쓸쓸하다. ②매우 적고 드물다.

*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을 이르는 말.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35세의 12월 8일 샛별이 뜰 무렵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하(河)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불도(佛道)를 이루던 날.

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납팔(臘八)이라고 줄여 쓰기도 한다. 일명 성도재일(成道齋日).

*전강 대선사(田岡大禪師)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유성출가(踰城出家) ; 싯다르타(실달) 태자가 인간의 오욕(五欲)의 더러움과 인생의 무상을 본 뒤, 정진하는 마음을 내어 중생을 위하는 자비심의 큰 서원을 일으켜, 수행을 하기 위하여 성을 넘어서[踰城] 집을 나간[出家]것을 말함.

*고행(苦行) ; ①어떤 경지에 이르거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육신을 극도로 괴롭히는 수행. ②깨달음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가지 고난을 겪으며 하는 수행.

*피골상접(皮骨相接) ; 살가죽[皮]과 뼈[骨]가 맞붙을[相接] 정도로 바짝 마름.

*고목사회(枯木死灰) ; 말라서 죽어 버린 나무[枯木]와 불기운이 사그라진 다 식은 재[死灰]. 외형은 고목과 같고 마음은 타고 남은 재처럼 되어 생기가 없다는 의미.

*해골(骨) ; ①죽은 사람  전부 썩고 남은 . ② 전부 썩고 남은 죽은 사람 머리뼈. ③몹시 여위어   사람 비유적으로 이르는 . ④생각하는 머리 속되게 이르는 .

*유미죽(乳糜粥 젖 유/죽 미/죽 죽) ; 우유에 쌀을 넣어 만든 죽.

*정반왕(淨飯王, suddhodana) ; 고대 인도 북부에 있던 카필라(kapila)국의 임금. 석존(釋尊)의 아버지.

*실달(悉達) ; 싯다르타(siddhartha)의 음역어. 목적을 달성한다는 뜻.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가 출가하기 전 태자(太子) 때의 이름. ‘실다(悉多)’, ‘실달다(悉達多)’이라고도 쓴다.

*교진여(憍陳如) ; 산스크리트어 āāta-kauṇḍinya 팔리어 aññā-koṇḍañña의 음사. 요본제(了本際)·지본제(知本際)라고 번역. 오비구(五比丘)의 한 명.
우루벨라에서 싯다르타와 함께 다섯 명이 고행했으나 싯다르타가 네란자라(nerañjarā) 강에서 목욕하고 또 수자타에게 우유죽을 얻어 먹는 것을 보고 타락했다고 하여, 그곳을 떠나 녹야원(鹿野苑)에서 고행하고 있었는데,
네란자라강가의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성취한 붓다가 이들에게 진리를 전하기 위해 부다가야에서 바라나시까지 긴 여행을 하여 그곳을 찾아 설한 중도(中道)의 이치와 팔정도(八正道)와 사성제(四聖諦)의 가르침을 듣고 이들은 곧 붓다에게 귀의하였으며, 교진여는 그 자리에서 아라한(阿羅漢)이 되었다.
*녹야원(鹿野苑) ; 석가(釋迦)가 35세에 성도(成道)한 후 최초로 설법을 개시한 곳이며, 이때 교진여(僑陳如) 등 5명의 비구(比丘)를 제도(濟度)하였다.
갠지스 강 중류, 지금의 바라나시(Varanasi, 베나레스 Benares)에서 북동쪽 약 7㎞ 지점에 있는 사르나트(Sarnath)의 유적이 곧 녹야원의 터. 사슴동산(녹야원), 즉 사르나트(Sarnath)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슴의 왕’을 뜻하는 ‘사란가나타(Saranganatha)’가 줄어든 말이다.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우루벨라(uruvelā) 마을의 붓다가야(buddhagayā)에서 녹야원까지는 직선 거리로 약 200㎞됨.
탄생(誕生:룸비니) ·성도(成道:붓다가야) ·입멸(入滅:쿠시나가라)의 땅과 더불어 불교(佛敎) 4대 성지의 하나.

*쇄락(灑落 물뿌릴 쇄, 떨어질 락) ; 기분이나 몸이 상쾌하고 깨끗함.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제방(諸方) ; ①모든 지방 ②모든 종파의 스님.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범연(泛然)히 ; ①두드러진 데가 없이 평범하게. ②특별한 관심이 없어 데면데면하게.

*단적(端的 바를 단/과녁·확실할 적) ; ①(명사)곧바르고(기울거나 굽지 아니하고 곧고 바르다)

 명백한 것. ②(관형사)곧바르고 명백한.

*설파(說破) ; 어떤 내용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말함.

*(게송) ‘천척사륜직하수~’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지견불생분(知見不生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뱃전 ; 배의 양쪽 가장자리 부분.

*등걸 ; 나무의 줄기를 베어 내고 남은 밑동(나무줄기에서 뿌리에 가까운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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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터리 ; '끄트머리(맨 끝 부분)'의 사투리.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 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육근문두(六根門頭) ; 육근(六根-眼耳鼻舌身意)의 문 앞. 육근과의 경계.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 ; 많은 수의 악마의 군세(軍勢)를 뜻함.

*‘딴 생각’ ; 별념(別念).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

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분상(分上 분수 분, 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수반하다(伴-- 따를 수/따를·짝 반) ; ①[자동사](어떤 현상)다른 현상 따라서 더불어 기게 되다. ②[타동사](어떤 일이 다른 현상)  따라서 불어 생기게 하다.

*경계( 경계할 경, 경계할 계) ; ①뜻밖 사고 잘못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심하여 단속함적의 기습이나 간첩 활동 같은 예상하지 못한 침입  위해 일정한 지역 살펴 지킴.

*대중처소(大衆處所) ; 많은 스님, 또는 사부대중이 모여 수행하는 절(도량)을 말한다.

*대중(大衆) ; 많은 스님이나 신도들.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발우공양(鉢盂供養) ; 스님들이 쓰는 밥그릇을 발우(鉢盂)라고 하여, 발우공양은 ‘스님들이 하는 식사’를 말한다. 발우공양을 할 때 《소심경(小心經)》이라는 경전을 외운다.

이 공양은 단순히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이 깨달아 신과 인간의 공양 받기를 원하는 ‘하발게(下鉢偈)’, 부처님 일생의 중요한 4대 성지를 생각하는 ‘회발게(回鉢偈), 보시하는 사람, 보시받는 사람, 보시하는 물건, 삼륜(三輪)이 공적함을 생각하는 ‘전발게(展鉢偈)’

그리고 위로는 부처님, 성인 아래로는 일체 중생 모두에게 공양을 올린다는 ‘봉반게(奉飯偈)’ 음식이 우리 앞에 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이 음식을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하는 ‘오관게(五觀偈)’

그리고 생반게(生飯偈), 정식게(淨食偈), 삼시게(三匙偈), 절수게(絶水偈), 해탈주(解脫呪)를 하면서 모든 중생과 함께 고통을 벗어나 무상도(無上道)를 이루겠다는 서원을 다짐하며 공양하는 수행 의식이다.

*토굴(土窟) ; 사전적인 원래의 뜻은 ‘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고 흙을 덮어 추위나 비바람만 가릴 정도로 임시로 지은 집’이나, 근래에 절에서 쓰이는 의미는 대중이 함께 거주하는 ‘사찰(절)’과 대비되는 의미로, 어떤 집 형태와는 관계없이 스님의 ‘개인의 수행 거처’를 말함.

*능엄경(楞嚴經) 변마장(辨魔障) ; 능엄경 조도분(助道分)에 있는, 수행도상에 있어 나타날 수 있는, 오음(五陰-색수상행식 色受想行識)이 녹아 없어질 때에 나타나는 갖가지 마장(魔障)을 밝혀, 수행자들이 사특한 길에 떨어지지 않게 한 부처님 가르침.

*마섭(魔攝) ; 마(魔)에 포섭(包攝)되다. 마에게 끌려들어 그의 편이 되다.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정신이상(常)신경 정신 계통 장애 비정상적 괴이한 행동 하는 증상.

*복탁(卜度 점칠 복, 헤아릴·추측할 탁) ; 점치고 헤아림.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설법(法) ;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 가운데 법보(法寶)인 경전에 의지하여 스님이나 법사가 부처님을 대신하여 불교의 진리를 중생에게 일깨워 주는 것. 즉, 불법(佛法)을 설교(說敎)하는 일.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사위의(四威儀) : 행•주•좌•와(行住坐臥)。 일상생활에 있어서 온갖 동작하는 몸짓의 4종의 구별(행•주•좌•와)이 부처님의 제계(制戒)에 꼭 들어맞는 행동.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막담 ; 막말. 뒤에 여유를 두지 않고 잘라서 말함. 또는 그렇게 하는 말.

*고인(古人) ; 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후인(後人) ; 후대(後代)의 사람.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4. 9. 30. 16:52

 

 

§(335) (게송)작야시우치~ / 최상승법 제일구(第一句) 도리는 불조(佛祖)도 엿볼 수가 없는 것 / 내가 정신 차릴 것은 본참공안을 드는 것 뿐.

깨달음은 오래오래 닦아서, 그래 가지고 깨달음에 조금씩 조금씩 깨달아 들어가서, 그래 가지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어젯밤까지는 깜깜한 칠통(漆桶)으로 있던 사람이 하룻밤 새에 툭 터져 버리면 바로 해탈도를 증득을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35)-87년 7월 첫째일요법회(87.07.05)에서. (용335)


약 14분.


작야시우치(昨夜是愚痴)가  금조성준걸(今朝成俊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호개해탈문(好箇解脫門)이여  석무인맹렬(惜無人猛烈)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작야시우치(昨夜是愚痴)가, 어젯밤에 깜깜한 어리석은 멍청이가
금조성준걸(今朝成俊傑)이로구나. 오늘 아침에 갑자기 준걸(俊傑)이 되어 버렸구나.

호개해탈문(好箇解脫門)이여. 좋고 좋구나 이 해탈문이여.
맹렬한 사람이 없는 것이 아깝구나.(惜無人猛烈)

깨달음은 오래오래 닦아서, 그래 가지고 깨달음에 조금씩 조금씩 깨달아 들어가서, 그래 가지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어젯밤까지는 깜깜한 칠통(漆桶)으로 있던 사람이 하룻밤 새에 툭 터져 버리면 바로 해탈도를 증득을 하는 것입니다.

방금 우리는 조실스님의 70년도에 성도재 법문으로, 조실스님의 일대기 법문 속에서 만공 큰스님, 용성 큰스님 그리고 보월 큰스님 이 말세에 대선지식(大善知識)들, 그런 선지식들과 함께 최상승법 제일구(第一句) 도리를 가지고 염롱(拈弄)하시는,
한바탕 거량(擧量)을 해 가지고 그 서릿발 같은 칼을 휘두르면서 맞부딪치는 그러한 장면을 녹음 법문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이 법문 한 구절밖에 다시 무슨 법문을 더 들을 것이 있겠습니까?
이 법문을 듣고 뼈에 사무치고 온 몸에 털이 거꾸로 떨어 서며, 칼날을 목에다 대고 용맹정진(勇猛精進) 할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수좌(首座)가 아닐 것입니다.

법문(法門)이라는 게 무슨 경전을 해설을 하고 강의를 하고, 무슨 이론에 대해서 천착(穿鑿)을 하고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무슨 도리인지, 어떻게 된 것인지, 우리의 중생 상량심(商量心)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지만은 그 법문을 듣고 우리가 앞 생각이 끊어지고 뒷 생각이 끊어지며,
다만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이 현전(現前)해서 다시 끊어야 할 망상도 없고, 다시 일으켜야 할 화두도 없으면서, 저절로 의단이 독로해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이 몸뚱이가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다맛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한 채 찰나(剎那)가 끊어져 버려야 할 것입니다.

참선은 지극히 간단한 것이어서  당념(當念)에 생멸심을 잃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당념에 생사심(生死心)이 끊을려고 하지 안 해도 당념에 잊어버려야 하는 것이여.

보고 듣고 하는 것도—산을 보아도 산이 보이지를 않고, 물을 보아도 물이 보이지 아니하고, 수백 만 명 속에 있어도 한 사람도 보이지 아니하고, 별별 소음과 잡음이 있어도 한 소리도 귀에 들리지를 아니하는 것입니다.

누가 옆에서 잡담을 하거나, 누가 나를 칭찬을 하거나, 누가 나를 험담을 하거나, 일체 시비·우여곡절이 내게는 해당 사항이 아닙니다.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내 몸뚱이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조차도 모르거늘, 무슨 시비와 흥망성쇠가 내게 무슨 상관이 있어.

방금 조실스님께서 대사자후(大獅子吼)로 설하신 제일구 도리는 술수(術數)가 아닙니다.
배울라야 배울 수 없고 가르칠라야 가르킬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도리는 팔만대장경을 뒤적거려도 나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96종 철학을 통달을 해도 그러한 도리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도리는 엄격히 말해서 불조(佛祖)도 엿볼 수가 없는 것이고 귀신도 들여다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도리는 고요할 때에는 수미산(須彌山)과 같고, 한 번 움직였다 하면은 큰 불덩어리와 같은 것입니다.
수미산과 같아서 아무리 움직일라고 해도 끄떡도 아니한 것이며, 큰 불덩어리와 같아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한 생각 움직거리면 그 불덩어리에 타 죽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까이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온 세계에 하나도 감춘 바가 없이 적나라(赤裸裸)하게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기틀의 땅에서 찾으면 자취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참선은 사량분별로 따져서 알려고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여. 이론적으로 더듬어서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망상을 쉴려고 하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망상이 일어나서 참선을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망상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고 호소를 합니다마는 망상을 쉴려고 하는 그러한 생각은 참선을 잘못 인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망상을 끊을려고 하는 생각이 벌써 틀린 것이고, 망상을 쉬고 또 쉬고 해서 망상이 하나도 없이 맑고 깨끗하고 고요하면 참선이 참 잘될 것 같지만은 참선은 그렇게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망상이 일어나고 안 일어나고를 애당초부터 문제시를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일어나거나 말거나 상관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이 일어나거나, 나쁜 생각이 일어나거나, 과거 생각이 일어나거나, 미래 생각이 일어나거나, 일체 선악·시비·원한·애정 천하 없는 생각도 내가 관계할 일이 아닙니다. 그냥 고대로 놔버려.

다만 내가 정신 차릴 것은 본참공안을 드는 것 뿐이여. 거기에서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이지.

망상도 일어나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고,
일체처 일체시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몸으로 느끼고, 생각으로 받아들여지는 모든 것이, 내가 그것을 참견을 하고 취하고 버릴려고 하는 데에서 공부가 그릇되게 되는 것입니다.

다맛 알 수 없는 의단만이 독로하도록, 의단만을 자꾸 챙겨서 의단이 현전하도록 그렇게 잡드리를 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리면 또 챙기고, 잃어버리면 또 챙기고, 더우면 더운대로 챙겨 나가면 더위도 잊어버릴 것이고, 추워도 이놈을 추켜들고 비벼대면 추위도 잊어버릴 것이고, 배가 고파도 이놈이요, 배가 불러도 이놈이요,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이 한 의단(疑團)을 가지고 나아갈 뿐인 것입니다.(처음~13분5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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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작야시우치~’ ; 중봉명본(中峰明本) 스님의 「天目中峰和尚廣錄」 제17권 게송 참고.
*우치(愚癡) ; ①매우 어리석고 못남. ②삼독(三毒, 貪·瞋·癡)의 하나.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마음을 이른다.
*준걸(俊傑 준걸 준,뛰어날 걸) ; 재주와 슬기가 매우 뛰어남. 또는 그 사람.
*제일구(第一句) ; [참고] [三句] 삼구
第一句는  喪身失命이요  第二句는  未開口錯이요  第三句는  糞箕掃箒라.
삼구 : 첫째 구는 몸 죽고 목숨 잃는 것이요, 둘째 구는 입을 열기 전에 그르쳤고, 세째 구는 똥삼태기와 비이니라.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207.
[참고] [임제록(臨濟錄)]
山僧今日見處  與祖佛不別  若第一句中得 與祖佛爲師  若第二句中得 與人天爲師  若第三句中得 自救不了.
산승의 견처(見處)는 불조(佛祖)와 다르지 않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염롱(拈弄 집을 념,희롱할·마음대로 다룰 롱) ; 고인의 말을 자유로 다루는 뜻. ‘능정거린다’ ‘잡아 두르다’의 뜻.
*거량(擧揚) ; ①화두, 공안(公案)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고 불교의 진수(眞髓)를 말하는 것. 불법을 선양하여 사람을 인도하는 것. ②선객(禪客)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수좌(首座) ; 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천착(穿鑿 뚫을•궁구할 천,뚫을 착) ; ①깊이 살펴 연구함. ②공연히 이치에 맞지 않게 이러쿵저러쿵함.
*상량(商量 헤아릴 상,헤아릴 량) ; ①상인이 물품을 판매할 때, 서로 그 가치를 재서 결정하는 것. ②따지고 헤아리는 알음알이.
*본참공안(本參公案) :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찰나(剎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당념(當念) ; 바로 한 생각.
*생사심(生死心) ;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 번뇌(煩惱), 망상(妄想)을 말함.
*시비(是非) ; ①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 ②이러니저러니 좋지 않게 트집을 잡아서 말함. ③옳고 그름.

*우여곡절(迂餘曲折) ; 여러 가지로 뒤얽힌 복잡한 사정이나 변화.
*사자후(獅子吼) ; 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술수(術數) ;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일을 꾸미는 교묘한 생각이나 방법.
*수미산(須彌山) ; 수미(須彌)는 ‘sumeru’의 음역. 묘고산(妙高山)이라 한역함.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산.
*적나라하다(赤裸裸--) ; (실상이나 감정이)있는 그대로 다 드러나 더이상 숨김이 없다.
*기틀 ; 어떤 일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의 가장 중요한 밑받침.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Posted by 닥공닥정
신심(삼요)2014. 9. 24. 07:22

§(013) 신심, 분심, 의심 / 참선은 마군이와의 전쟁 /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

부처님과 조금도 차별이 없는 불성(佛性)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올바르게만 그리고 열심히만 하면은 다 이 공부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공부를 하시는 분은 그렇게 믿어야 됩니다.


참선법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여섯 대문으로 쳐들어오는 팔만사천 마군이를 물리침으로서 무량겁의 생사윤회(生死輪廻)에서 해탈(解脫)하는 것이고, 당장 현세에 그러한 도적놈에게 시달리지 않고 대자유·행복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최고 방법인 것입니다.


우리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은 차라리 깨닫지 못한 중생으로써, 초학자로써 숨을 거두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바로 깨닫지 못하고 부처님과 조사(祖師)와 같이 깨닫지 못하고서는 '알았다'는 생각을 갖지 맙시다.


**송담스님(No.13)(참선법E) - 76년 1월 관음재일 법문(76.01.24.음) (용013)

 

(1) 약 9분.

 

(2) 약 13분.


(1)------------------

참으로 참선(參禪)을 철저히 할라면은 인자 ‘생각을 바르게 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생각을 어떻게 해야 바르게 갖느냐? 처음에 몸을 바르게 하는 법 말씀드렸지요? 그 다음에 호흡을 바르게 하는 법을 말씀을 드렸는데, 이번에는 마음, 생각하는 것을 바르게 하는 법을 알아야 됩니다.

이 생각을 바르게 할라면은 바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도 부처님과 같이 또는 달마(達摩) 스님이나 서산대사나 사명당이나 그러한 과거의 도인(道人)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올바르게만 이 공부를 하면은 나도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 있다고 믿어야 됩니다.

이것을 믿지 않고서는 참선은 성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뭣한 사람들은 “말세는 참선했자 소용없고 아미타불 불러야 좋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있습니다마는 그런 말씀은 그 말씀에 해당하는 그 사람에게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부처님의 정법에 입각해서 말씀드린다면은 “올바른 신심으로 올바르게 지도를 받아서 올바르게만 하면은 아무리 말세라 할지라도 다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 있다.”고 부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말세도 상관이 없고, 여자도 상관이 없고, 노인도 상관이 없습니다.
왜 그러냐? 다 부처님과 조금도 차별이 없는 불성(佛性)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올바르게만 그리고 열심히만 하면은 다 이 공부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공부를 하시는 분은 그렇게 믿어야 됩니다.
‘나는 나이도 많고, 인제사 불교에 왔기 때문에 도저히 견성성불은 가망 없고 그저 인연이나 맺었다가 내생에나 하자.’ 이런 생각은 용납이 되지를 않습니다. 결단코 금생에 할 수 있다고 믿어야 됩니다.

또 금생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고 해야 이 공부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지, 그 믿음이 없으면 안 됩니다.

전쟁도 아무리 적군이 많고, 아군이 수효가 적고 무력이 좀 떨어진다 하더라도,
죽음으로써 이길 각오를 하고, 만약에 이기지 못하면 죽을 각오를 하고 대들면은 10대 1 밖에는 안 되는, 100대 1 밖에 안 되는 적은 군사력을 가지고도 능히 전쟁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참선도 전쟁입니다.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이가 눈으로 코로.. 아까 조실스님께서 여섯 가지 도둑놈(六賊)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는, 팔만사천의 도둑놈이 여섯 문(六門)으로 틈만 있으면 침범해 들어옵니다.

우리의 마음을 왕에다 비교합니다. 심왕(心王).
심왕성(心王城)인데, 이 몸뚱이는 심왕의 성(城)인데, 그 성에 여섯 문(六門)이 있습니다.
눈, 코, 귀, 입, 몸뚱이, 의(意) 여섯 가지 문이 있는데, 그 여섯 문을 통해서 팔만사천의 마군이의 군사가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들어와 가지고 이 심왕을 공격해 들어오는 이러한 무서운 전쟁입니다.

그래서 국가와 국가의 전쟁은 군인들이 싸우고, 국민은 그 마음이 단합해 가지고 뒷받침만 하면은 직접 총칼은 안 들어도 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마는,
우리의 마음의 왕을 공격해 들어오는 팔만사천의 마군이 군사는 우리가 직접 싸워야 됩니다. 직접 싸우지 않고 남이 우리의 싸움을 막아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놈을 못 막고 그 팔만사천의 마구니 군사에 진 사람은 결국은 지옥에 가는 것이고, 그놈을 싸워서 끝까지 내가 물러서지 않고 싸워서 이겨낸 사람은 극락에도 가고 견성성불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겨내지 못한 사람은 무량겁을 두고 육도윤회를 하다가 조금 착한 일 하면 천당에 갔다가,
악한 일 하면 짐승이 되기도 하고, 성을 많이 내면 독사나 구렁이가 되기도 하고, 또 더 사람을 죽이고 못된 죄를 퍼 지으면은 지옥에 떨어지기도 하고,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 참선법은 이 팔만사천 마군이—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여섯 대문으로 쳐들어오는 팔만사천 마군이를 물리침으로서 무량겁으로 윤회하는 생사윤회(生死輪廻)에서 해탈(解脫)하는 것이고,
당장 현세에 그러한 도적놈에게 시달리지 않고 대자유·행복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최고 방법인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할 수 있다’고 믿어야 됩니다. 첫째, ‘하면 된다’고 믿어야 됩니다.

둘째에 가서는 무엇 때문에 과거의 부처님과 보살님과 도인들은 이 문제를 진즉 해결을 해서 그런 성현이 되어 가지고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해탈하시고 대해탈도를 증득을 했는데,
나는 오늘날까지 무엇 하느라고 이렇게 육도윤회를 하면서 자유를 얻지 못하고 행복을 얻지 못하고, 앞으로 눈 한번 감으면은 지옥에 떨어질런지 축생이 될런지 모르는 이러한 환경에 놓여져 있는가?

생각해 보면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배불리 먹고 호강하고 살면은 그것이 전부가 될는지 모르지마는,
이 인과의 법칙—이 문제 해결하지 못한 사람이 육도에 윤회할 그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그 이치를 우리가 알고 믿고 느끼는 사람이라면은,
나는 왜 오늘날까지 이렇게 해탈을 하지 못하고 윤회를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속에서 분통이 나지 아니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 분심(憤心)이 나야 합니다.
이를 악물고, ‘다행히 내가 금생에 이 사람 몸 받아 가지고 이 정법(正法)을 만났다. 늦게 만났지마는 그래도 다행한 일이다. 다행한 마음과 아울러서, 그러니 알고서 안 할 수가 있느냐? 나도 해야겠다’고 하는 용맹심이 속에서 북받쳐 올라야 되는 것입니다.

게을러 빠져가지고, 하거나 말거나 육도윤회를 하거나 말거나, 남이 공부를 하거나 말거나 아무 생각이 없다고 하면은 그러한 사람은 이 공부를 해 봤자 별 수가 없습니다.

용맹심(勇猛心), 분심(憤心), 아까 처음에 신심(信心)이 있는 사람에게는 분심과 용맹심이 없을 수가 없고, 그것이 있어야 그 다음에 이 ‘이뭣고?’ 화두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화두는 의심(疑心)입니다. 의심!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하고 의심하는 거여.(23분30초~31분43초)

 

 

 



(2)------------------

이것은 불교의 팔만대장경을 다 추리고 간추려서 골수만 뽑아서 만들어 놓은 수행 방법이라고 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믿고 고대로 하셔야 됩니다.

그렇지 아니한다고 하면은 무엇 때문에 조실스님께서 팔십 고령(高齡)에 이르도록 가만히 당신 공부하시고 조용히 지내시면은 편하실 텐데,
팔십 고령에 혈압은 그렇게 200이 넘나드시면서 여러분들을 위해서 그 피를 토하는 그러한 간곡한 고구정녕(苦口丁寧)한 그런 법문을 마지막 열반하신 날까지 그렇게 해주실 까닭이 없지 않습니까?

이 법이 그만큼 중요하고 그렇게 여러분들의 생사해탈하는 데에 유일한 묘방(妙方)이기 때문에 마지막 이 사바세계를 하직하신 그날까지 그렇게 간곡히 말씀을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한 큰스님의 법은(法恩)을 갚는 길은 오직 여러분 자신들이 조실스님의 법문(法門)에 의지해서 열심히 공부하시는 길 (법문 끊김) ...묘한 길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첫째, 몸을 바르게 가질 것, 둘째 바른 호흡을 할 것, 셋째에 가서 바르게 생각을 가다듬는데,

생각을 바로잡을려면은 첫째 나도 성불할 수 있다고 믿고, 나도 하면은 부처님과 같이 그러한 성현(聖賢)이 될 수 있다고 믿고,
그 다음에, 무엇 때문에 나는 오늘날까지 이러한 좋은 방법을 몰랐던가? 알고서도 왜 그렇게 철저히 공부를 못했던가? 이것에 대해서 분심과 용맹심을 내시고,

마지막에 가서는 화두에 대한 간절(懇切)한 의심(疑心)을 가지셔야 됩니다. 의심이 간절할수록에 의심이 크고 의심이 클수록에 크게 깨닫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방법은 100번을 말씀드리고 1000번을 말씀드리더라도 그렇게 해서 여러분이 아주 뼛속에 이것을 새겨야 됩니다.
가슴속 깊이 새겨서 언제, 어디서, 누가 묻더라도 이 참선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알으셔야 됩니다.

애매하게 갈팡질팡 이러면 된 것인가? 저러면 된 것인가?
저기 가서 들으면 이렇게 말하고, 여기 와서 말하면 저렇게 말하고 해서, 말하는 사람마다 다르니까 어느 방법이 옳은가 모르겠다. 이렇게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여기 용화사 전강 조실스님께서 말씀해 주신 그 방법이 가장 옳은 방법이고 그렇게 하면 틀림없다고 믿고,
어디 가서 다른 절이나 다른 스님네 법문을 듣더라도 다 좋은 말씀을 하시기 때문에 그 말씀을 정성스런 마음으로 들을지언정,

이 참선해 나가는 방법에 있어서는 여기 와서 듣고 그렇게 조금 해보다가, 또 저기 가면 그대로 해보다가 갈팡질팡 하면 공부가 못쓰게 되는 것이니깐,

공부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여기 조실스님께서 지도하신 대로 아주 딱! 고정을 해서 그렇게만 해 가시고,
다른 법문을 듣거나, 다른 경책(經冊)을 보거나 하는 것은 전부 내 공부해 나가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정성스럽게만 받아들일 뿐이지, 공부하는 방법에 있어서 갈팡질팡 하시면 아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은 공부해 들어가다가 아주 여태까지 맛보지 못한 그러한 신기하고도 묘한 그러한 싱그러운 경지가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절대로—그리고서 그 나타난 것을 보고서 ‘아! 이것이로구나!’ ‘참! 좋구나!’ ‘바로 이것이 도통이구나’—이런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부처님이 나타나건, 또는 관세음보살이 나타나건, 또는 꿈속에 비몽사몽간에 별별 신기스런 경지가 나타나도 그것은 ‘헛것’이 보인 것입니다.
부처님이 나타나서 뭐라고 설법을 하셔도 그것은 ‘헛것’입니다.

‘환(幻)’—꼭두각시, 환(幻)으로 나타난 것이지 그것이 실상(實相)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 나타나더라도 눈 하나 까딱하지 말고 더욱 정신 차려서 화두를 들고 나가셔야 됩니다.

만일에 그러헌 신기한 경지가 나타났다고 해서 거기에서 기쁜 마음을 내 가지고 그놈을 따라가다 보면은 여러분은 영영 헤어나지 못할 마군이의 소굴로 흘러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한번 떨어졌다 하면은 그 다음에는 부처님이 출현하셔도 그 사람 병은 고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부하시다가 다 한 철 내지 두 철, 세 철 열심히 하다 보면은 자기 나름대로 견처(見處)가 생기는 수가 있습니다.
어떠헌 화두·공안을 보아도 자기 나름대로 가늠이 가지고, 어떠한 공안을 보아도 하나도 의심이 안 나고,
다 자기 나름대로 공안에 대한 낙처(落處)를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믿어지는 때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천하 없이도 이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알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알아지는 공부는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요, 중생심으로 중생의 사리(邪理)·상량(商量)으로 알아지는 것은 천하 없는 묘한 것을 알았다 해도 그것은 바른 것이 아닙니다.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 알았다는 생각이 있으면은 언제라도 눈 밝은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서 점검을 받어야 됩니다.

옛날에는 선지식이 “너 아니다. 그거 옳게 본 것이 아니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면은 거기에서 분심을 내 가지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서 기어코 바로 깨달을려고 노력을 했건만,
지금 세상은 선지식이 아니라고 하면은 그때부터서 그 선지식을 돌아서서 비방하고 자기가 아는 척하고 그러한 폐단이 있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우리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은 차라리 깨닫지 못한 중생으로써, 초학자로써 숨을 거두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바로 깨닫지 못하고 부처님과 조사(祖師)와 같이 깨닫지 못하고서는 '알았다'는 생각을 갖지 맙시다.

설사 한 공안, 두 공안 보았다 하더라도 자기가 자기 힘을 생각해 보면 압니다.
이러한 소견 가지고 과연 부처님과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역대 조사와 같은 법력(法力)에 있어서 도력(道力)에 있어서 덕행에 있어서 부처님과 역대 조사에 비교해서 손색이 없겠는가를 언제라도 자문자답을 해 보십시오.

해 봐서 이래 가지고 부처님이라고 할 수가 없고, 부처님과 같다고 할 수 없을 때에는 언제라도 자기의 견처(見處), 자기의 얻은 바를 깨끗이 버리고서 초학자(初學者)의 입장에서 간절히 공부해 나가야만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조금 얻은 것을 가지고 족(足)함을 삼으면은 그 공부는 거기에서 중단이 되는 것이고, 얼마 안 가면은 퇴타(退墮)하고 말아 버리는 것입니다.

결단코 이 사상(思想)은,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은 이 사상 하나는 철저해야 될 줄 압니다. 하물며 설사 바른 소견(所見)이라 하더라고 그렇습니다.
그렇거든 바른 소견이 아닌 공부 중에 환(幻)으로 나타난 그런 걸 가지고, 얻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공부에 차질이 생긴다고 하는 것은 그 이상 슬프고 통탄할 일이 없지 않겠습니까?

부디, 이 공부는 조급한 마음 갖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늘어져 쳐져도 아니 되는 것입니다.
거문고 줄 고르듯이, 기타 줄 고르듯이, 너무 강하게 졸라매도 떨어지면 못 쓰는 것이고, 너무 줄이 늘어지면은 소리가 제 소리가 안 나는 것이고, 가장 적당하게 줄을 골라야만 제 음량이 나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공부도 몸과 호흡과 마음을 가장 이상적이고 지혜스럽게 고르게 하고, 단속함으로써 우리의 공부는 나날이 진취하고 급기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언제라도 이 공부해 나가는 데 있어서 의심이 나거든 다른 큰스님을 찾아가도 좋고, 또 여기에 오시면은 문의를 하시면은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정성스럽게 말씀을 해 드리겠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은 여기 법회 때마다 참 이렇게 많이 오시는데, 오셔서 이 법당에 들어오시면은 오시는 대로 앞에서부터 차츰차츰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은 오시는 대로 차츰차츰 차츰 뒤로 가시게 되면은 좀 늦게 오신 분이 있다 하더라도 조금도 이 법회장이 소란스러운 일이 없겠습니다.

먼저 오셔서 뒤에 가서 떠억 앉아 계시면은 나중에 오신 분들은 그 사이로 오셔서 앞으로 오시기를 꺼려하시고, 대단히 법회 중에 소란하게 되면은 자기 한 사람으로 인해서 다른 분들이 법문 듣는데 장애가 있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러니 언제라도 오시는 족족 앞에서부터 차곡차곡 차곡 이렇게 앉으시면은 참 좋을 것 같습니다. 꼭 그렇게 좀 해주시고.

그리고 이 관음재 법회는 언제라도 10시 반에 딱 시작할 수 있도록 될 수 있으면은 조금 정성스러운 마음을 가지시면은 제 시간에 참여를 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서 늦어지시겠지마는, 늦게라도 참석하신 것은 안 참석하신 것보다는 낫지마는 기왕 참석하실 바에는 제 시간에 참석을 하셔서 앞자리부터서 차곡차곡 이렇게 앉아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이것으로 끝맺겠습니다. 다음에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그 다음에 영단(靈壇)에 간단한 천도식이 있겠습니다.(42분33초~54분58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달마 스님, 서산대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을 말함。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에 이르기까지 그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 ; 많은 수의 악마의 군세(軍勢)를 뜻함.
*팔만사천(八萬四千) : 법수(法數)에는 이 말이 퍽 많다。그것은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또한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이것을 줄여 팔만이라 하기도 한다.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육적(六賊) ; 번뇌를 일으키는 근원이 되는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의 육근(六根)을 도둑에 비유한 말.

 

*육문(六門) ; 육근(六根, 안근眼根·이근耳根·비근鼻根·설근舌根·신근身根·의근意根)을 말한다.
육식(六識,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이 육경(六境,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을 인식하는 경우, 그 입구가 되므로 문(門) 또는 뿌리(根)라 하는 것이다.
*심왕(心王) : 의식 작용의 본체。객관(客觀) 대상에 대하여 그 일반상(一般相)을 인식하는 정신 작용。여기에 육식(六識), 팔식(八識), 구식(九識)의 구별이 있다.
*생사윤회(生死輪廻)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해탈(解脫) : [범] Vimoksa ; Vimukta ; mukti  [파] Vimokha ; Vimutta ;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또는 열반(涅槃)의 딴 이름으로도 쓰인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용맹심(勇猛心) ; 용감하고 사나운 마음.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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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 정•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묘방(妙方) ; 신묘하고 효험이 뛰어난 처방(處方).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환(幻) : 또는 눈꽃(空眼花 • 空華)。근본 무명(根本無明)이 언제 일어났는지 그 시초를 알길 없으므로 「본래부터(從本已來)」라기도 하고, 「시작도 없음(無始)」이라고도 한다.
무명이 일어나는 곳도 없고, 또한 그 실상 자체(實相自體)도 없는 것이므로 곡두(환상)같다고도 하고, 눈이 어리어서 허공에서 아물거리는 눈꽃 같다고도 하는 것이다.
이처럼 허환된 무명에서 나온 바 온갖 것이 또한 모두 환상이며 공화(空華)인 것이다.
*실상(實相) ; ①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변하지 않는 진리. ③집착을 떠난 청정한 성품.
*견처(見處) ; 자기 나름대로 얻은 어떤 생각이나 입장, 견해.
*사리(邪理) ; 그릇된 이치나 생각.
*상량(商量 헤아릴 상,헤아릴 량) ; ①상인이 물품을 판매할 때, 서로 그 가치를 재서 결정하는 것. ②따지고 헤아리는 알음알이.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조사(祖師) : ①1종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종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法)의 힘. ②가르침의 힘. 불법의 공덕. 불•보살의 위신력(威神力)을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것.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힘.
*도력(道力) ; ①도의 근본에서 생기는 힘. 도를 얻음에 의하여 나타남. ②지혜의 힘.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영단(靈壇) ; 영가의 위패를 두는 단(壇).

Posted by 닥공닥정
하안거 해제 백종2014. 8. 18. 20:07

§(769) (게송)당하지귀아시수~ / 목련경(目連經)-효도 / 생사 호흡지간-무상(無常)하다 / (게송)전단목주중생상~ / 우리 다같이 영원한 도반으로서 성불합시다.

우리가 무량겁을 오면서 살아온 업이 다르기 때문에 비록 지은 업에 따라서 겉모양은 다르지마는, 이 몸뚱이를 끌고다니는 주인공은 그 불성은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님이나 우리나 똑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이 사바세계에 태어났지마는, 불법을 믿고 정법을 믿고 내 마음공부를 한 사람은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여자거나 남자거나, 유식하거나 무식하거나 전혀 그것이 문제가 안됩니다.


내가 나의 부처를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만 한다면은 이 사바세계가 바로 깨달음으로 가는 가장 좋은 수도장(修道場)이 되고 부처님 세계가 될 것입니다. 우리 다같이 그러한 마음으로 오늘부터서 영원히 좋은 도반(道伴)으로서 그렇게 살아가기를 맹세합시다.


**송담스님(No.769) - 2014년(갑오년) 하안거해제(08.10) 법문.(용769)

 

(1) 약 18분.

 

(2) 약 13분.


(1)------------------

당하지귀아시수(當下知歸我是誰)오  의정거처요분명(疑情擧處要分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막파심량중복탁(莫把心量重卜度)하고  혜등호향풍전속(慧燈好向風前續)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당하지귀아시수(當下知歸我是誰)오  의정거처요분명(疑情擧處要分明)이니라.
당장 ‘내가 이 누군가?’하고 거기에 돌아갈 줄을 알아야 한다. 당장(當場)이라는 말은 눈으로 볼 때, 귀로 들을 때, 입으로 말할 때, 몸으로 춥고 더운 것을 느낄 때 바로 그 찰나(刹那)!
그 찰나찰나가 그리 쫓아가지 말고 눈에 뭣이 보이자마자 동시에 ‘내가 이 누군가?’로 돌아와야 한다 그말이야.

그 찰나를 눈으로 보는데 ‘노랗다 빨갛다, 크다 작다, 좋다 나쁘다’ 그리 쫓아가기 시작하면 그 좋은 기회를 놓치고, 무량겁 생사윤회(生死輪廻)로 끌려가는 것이고,
그 찰나를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로 돌아오면—비록 이 사바세계에 몸을 받아나서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지마는, 그 찰나를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를 하면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여.

의정거처요분명(疑情擧處要分明)이다. 알 수 없는 ‘이뭣고?’드는 것, 그것이 분명함을 요한다 그말이야.
흐리터분하고 그런 것이 아니라 또록또록하게 분명(分明)하게 성성(惺惺)하게 ‘이뭣고?’.
이것이 생사윤회로 가느냐, 해탈 길로 가느냐의 길목인데, 천하 간단한 것이고 쉬운 것이고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막파심량중복탁(莫把心量重卜度)하라. 마음·생각을 가지고 이리저리 분석하고 해석하고 비교하고 따지지 말라.
혜등호향풍전속(慧燈好向風前續)이니라. 지혜의 등불을 풍전(風前)을 향해서 잘 이어가라 그말이여.

지혜의 등불이 무엇이냐? ‘이뭣고?’가 깨달음으로 가는 바로 지혜의 길이기 때문에 ‘지혜의 등불이 켜진 곳’이다 그말이여. 그 지혜의 등불이 그 풍전을 향해서 이어가라.

풍전(風前)이 바람인데, 오욕(五欲)·팔풍경계(八風境界)·번뇌망상(煩惱妄想),
눈을 통해서, 귀를 통해서, 입을 통해서, 몸을 통해서,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것이 팔풍·오욕 경계인데, 그 팔풍·오욕 경계를 향해서 지혜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잘 이어가라 그말이여.

방금 우리는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이신 조실스님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거기에 중언부언(重言復言) 산승(山僧)이 여러 말 할 것이 없습니다마는 비구·비구니·청신사·청신녀 어린 애기로부터서 팔십이 넘은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법당 안팎에 이렇게 운집(雲集)을 하셨으니,
비록 내가 늙었지만은 여러 선배·후배 도반 여러분에게 나는 나 나름대로 당부하고 싶어서 이 자리에 올라왔습니다.(사부대중 박수)

오늘은 갑오년 음력 7월 15일 백중(百中)날입니다. 백중날은 선방(禪房)에서는 하안거 해제일이라고 합니다만은 오늘 해제날은 우리가 영원히 잊어서는 안될 참 깊은 일화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생존하셨을 때 부처님의 제자이신 목련존자(目連尊者)—부처님 십대제자 중에 신통제일이 목련존자인데, 그 목련존자가 신통력으로 관찰을 해 보니까 그 모친(母親), 어머니이신 청제부인이 지옥고에 빠져서 지옥고를 받고 계시다 그말이여.

그래서 자기가 아무리 신통력이 있다 하더라도, 죄업(罪業)을 지어가지고 지옥고를 받고 있는 사람을 신통력으로 맘대로 끌어올 수가 없어. 그래서 부처님께 간곡(懇曲)히 말씀을 여쭈었습니다.

‘저의 모친이 생존시에 죄업을 지어서 저 지옥고에 떨어져서 지옥고를 받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어머니를 제도할 수 있겠습니까?’ 무릎을 꿇고 합장을 하고 간곡히 여쭈니까,

‘한 길이 있느니라. 오늘 칠월 백중날, 선방에서는 하안거 해제날인데 네가 백 가지 과일이다 음식이다 맛있는 음식 온갖 것을 다 준비를 해 가지고 해제를 맞이한 선방 대중에게 대중공양(大衆供養)을 올려라.
그러면 석 달 동안—특히 인도(印度)라는 데는 여름이 여기보다도 훨씬 더 더운 곳입니다.
그 더위 속에서 석 달 동안을 열심히 정진한 대중에게 백 가지, 여러 가지의 음식을 잘 공양을 하면 그 공덕으로 너의 모친을 천당(天堂)으로 올라가게 할 수가 있느니라.’

그 말을 듣고 목련존자는 탁발(托鉢)을 하고—여기저기 부자집, 가난한 집을 전부 돌고 돌아가지고 탁발을 해가지고 여러 가지 종류의 맛있는 과일도 사고, 떡에다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마련해 가지고,
선방 대중에게 공양을 올려가지고 지옥고 받고 있는 그 어머니를 천당으로 올라가시게 한, 목련경(目連經)이라고 하는 경전에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고, 원인이 되고 해 가지고 그 이후로 여름 하안거 해제, 7월 15일 날은 인도나 중국이나 한국이나 일본이나 불교을 믿는 나라에서는 7월 백중에 과일이다 떡이다 맛있는 음식을 많이 장만해 가지고 부처님께 공양도 올리고, 첫째 대중공양을 해 내려오는 준례가 오늘날까지도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이러한 일화를 다 듣고 알고 계시겠지만은 오늘 갑오년 7월 15일을 맞이해서 산승이 다시 한번 간곡히 말씀을 드리는 것은,
우리도 아직까지는 이만큼 건강하고 살고 있지마는 생사 문제는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건강해도 오늘도 눈을 감을 수도 있고 내일도 눈을 감을 수 있고, 우리의 부모님도 그렇고, 우리 자신들도 그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정말 무상(無常)하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잠시도 잊지 말고, 어쨌든지 ‘이뭣고?’를 열심히 해서 생사의 굴레로부터서 해탈하는 것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되고,
아직 부모님이 살아계시면 성의를 다해서 살아계실 때 잘 받들어 모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돌아가신 뒤에 제사를 잘 모신 것도 중요하지만,
살아계실 때 성의를 다해서—아버님, 어머님, 할머니, 할아버지께 성의를 다해서 효심으로 잘 받들어 모시면, 그 어른들이 공양을 받고 효도를 받으시면서 흐뭇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여생을 지내시게 될 것입니다.
성의를 다하지 않고 노인에게 효도를 안하면은 그 어르신들이 섭섭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사신다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겠습니까.

살아계실 때 잘 받드는데—음식을 잘 해드리는 것도 중요하고, 계절 따라서 좋은 옷을 해 드리는 것도 좋은 일이나, 첫째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을, 그 효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항상 살아야 얼굴빛도 달라지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도 그 어른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 드리고 즐겁게 해 드릴 수가 있는 것이고,

말을 한마디 푹 잘못하면 어른의 속을 뒤집어 놓을 수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속이 뒤집어져서 오장(五臟)이 상(傷)하면 금방 안 가라앉습니다.
그런 불편한 마음으로 하면 밥맛도 맛이 없고 밥을 먹어도 소화도 잘 안되고.
노인이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그럭저럭 살다가 돌아가시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젊어서도 우리는 건강하고 기쁘게 잘 살아야겠지만은,
특히 나이 먹을수록에 마음이 편안한 흐뭇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야 건강도 좋아지고, 그 노인의 생각도 흐뭇한 생각으로 노래(老來)를 지내시게 되는 것이니까,
이 자리에 모이신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은 오늘 산승이 특별히 이렇게 간곡히 말씀드린 것을 가슴속 깊이 명심하시고 노인을 잘 받들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박수)(처음~18분05초)

 

 

 



(2)------------------

아직은 우리는 이만큼 건강하고 살지만은 우리도 금방 늙습니다. 금방 머리에 흰머리가 나고, 주름살이 생기고, 허리가 꼬부라지고, 눈도 잘 안 보이고, 귀도 잘 안 들리게 됩니다.

젊다고 그럭저럭 살 일이 결코 아닙니다. 이만큼 젊을 때, 이만큼 덜 늙었을 때 노인에게도 잘 하지만은, 첫째 자기 문제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루하루를 그럭저럭 지내다보면 하루 24시간이라는 것이 금방 해가 저물어서 밤이 되고 그 이튿날로 옮겨가는데 그 시간을 소중히 알고,
앉아서나 서서나 일을 할 때나,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무엇을 보거나 무엇을 듣거나 무슨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그 찰나찰나를 바로 그걸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

‘이뭣고?’로 돌아온다면 이것이 정말 인생을 보람있게 살아가는 길이고, 이렇게 하루하루를 삶으로 해서 그렇게 산 사람이 무슨 죄를 지으며 무슨 지옥에 가겠습니까.

이런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면 물어볼 것도 없이 숨 끊어지자마자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태어나시거나 극락세계(極樂世界)에 가서 태어나시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인과법(因果法)은 지극히 과학적 사실이고 추호(秋毫)도 어김이 없고 거짓이 없습니다.
닦는 데로 가는 거고, 지은 데로 가는 것입니다.

인과는 원자현미경으로 들여다봐도 일분도 어김이 없이 고대로인 것입니다.
인과를 철저히 믿어야 우리는 올바르게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인과를 믿지 아니하고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행동하고, 함부로 살면 그야말로 딱하고 불쌍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아까 조실스님 법문에도 나왔지만은,
‘이뭣고?’를 하는데—그냥 ‘이뭣고?’해도 되는데, 숨을 깊이 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하면 속이 조금 안 좋을 때도 ‘이뭣고?’가 잘 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기분이 나쁘거나, 속이 상하거나, 언짢은 일이 있을 때에는 바로 억지로 참을라고 하지 말고 심호흡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깊이 숨을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그렇게 하면 흥분되었던 생각도 가라앉고, 안 좋았던 오장(五臟)도 가라앉게 되는 것입니다.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결국 '살았냐 죽었냐'는 '숨이 있느냐 없느냐', 이 호흡이라고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물론 맥박을 짚어봄으로 해서 죽었나 살았나도 알 수가 있지만은 ‘숨이 끊어졌냐, 안 끊어졌냐’는 ‘호흡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 안 하고 있느냐’가 생사를 알거나 건강을 아는데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항상 우리는 단전호흡(丹田呼吸)을 생활속에서 살려 나가고, 단전호흡을 하면서 항상 ‘이뭣고?’로서 자기의 정신을 차려 나간다면 우리 사바세계가 비록 흥망성쇠와 생로병사가 있는 곳이라 하지만은,
정법(正法)을 믿고 단전호흡을 하면서 ‘이뭣고?’를 하는 사람은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야말로 깨달음으로 가는, 극락세계나 천당으로 가는 가장 좋은 곳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좋은 부모님을 만나서 이런 몸을 받아서 태어났으니 부모님께 항상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말고,
그러면서 ‘이뭣고?’를 열심히 하면서 금생 일생 수명이 다할 때까지도 이런 마음을 등한히 하지 말고 열심히 우리가 도를 닦고 그럼으로 해서,
세세생생에 우리는 극락세계나 도솔천 내원궁이나 또는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더라도 우리는 다시 또 만나서 이런 최상승법(最上乘法) 참선을 이야기하면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깨달음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할 생각이 확실한 분은 손을 한번 들어보세요? 고맙습니다.(박수)

 


전단목주중생상(栴檀木做衆生像)하되  급여여래보살형(及與如來菩薩形)이로다
나~무~아~미~타~불~
만면천두수각이(萬面千頭雖各異)나  약문훈기일반향(若聞熏氣一般香)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전단목주중생상(栴檀木做衆生像)하고  급여여래보살형(及與如來菩薩形)이다.
향나무 중에서는 제일 향기가 좋은 것이 전단향나무입니다. 그 전단향나무로 여러 가지 중생의 모습을 조각을 합니다. 사람의 모습도 조각하고, 짐승의 모습도 조각을 하고 무엇이든지 조각을 하고,

또 급여여래보살형(及與如來菩薩形)이다, 부처님의 모습도 조형을 하고 관세음보살·문수보살·보현보살과 같은 훌륭한 보살님의 모습도 조각을 합니다.

그러면 여러 가지 중생의 모습, 부처님의 모습, 보살님의 모습,
만면천두(萬面千頭)가 수각이(雖各異)여. 그 얼굴이나 천 개의 머리가 비록 모양은 달라.

모양은 다르지마는 가까이 가서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면 전단향나무로 조성을 했기 때문에 부처님의 모습에서도 전단향 냄새가 나고, 관세음보살이나 문수보살의 모습에서도 전단향 냄새가 나고,
중생들의 여자·남자·어린애의 이쁜 얼굴, 덜 이쁜 얼굴을 조성을 했어도 가까이 가서 맡어보면 내나 전단향 냄새가 난다 그말이여.(若聞熏氣一般香)

비록 이 자리에 많은 신남신녀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들이 가득 계시지만은 연령도 다르고 얼굴 모습도 다릅니다.
이쁘게 생긴 분도 있고 조금 덜 이쁜 분도 있고, 주름살 있는 분, 얼굴이 긴 분,  동글동글한 분, 모습이 다 다르지마는 가까이 가서 냄새를 맡아본 것이 아니라,
정말 그 몸뚱이를 끌고다니는 그 주인공을 살펴보면 부처님과 똑같은 불성(佛性)을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겉모습은 다르지마는 이 몸뚱이를 끌고다니는 우리의 마음자리, 불성자리는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님이나 우리와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무량겁을 오면서 살아온 업이 다르기 때문에 비록 지은 업에 따라서 겉모양은 다르지마는, 이 몸뚱이를 끌고다니는 주인공은 그 불성은 똑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이 사바세계에 태어났지마는, 불법을 믿고 정법을 믿고 내 마음공부를 한 사람은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여자거나 남자거나, 유식하거나 무식하거나 전혀 그것이 문제가 안됩니다.

바로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내가 나의 부처를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만 한다면은 이 사바세계가 바로 깨달음으로 가는 가장 좋은 수도장(修道場)이 되고 부처님 세계가 될 것입니다.

우리 다같이 그러한 마음으로 오늘부터서 영원히 좋은 도반(道伴)으로서 그렇게 살아가기를 맹세합시다.
성불합시다.(처음~31분11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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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당하지귀아시수(當下知歸我是誰)~’ ; [무이선사광록(無異禪師廣錄)] 제17권, ‘示蔡聖龍祠部’ ‘示朱羅青民部’ 게송 참고.
*이뭣고(是甚麼)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육근(六根)·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에서]
*찰나(剎那 짧은시간 찰,어찌 나)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분명(分明 명백할 분,밝을 명) : ①틀림없이 확실하게. ②모습이나 소리 따위가 흐릿함이 없이 똑똑하고(分) 뚜렷하다(明).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팔풍(八風) : 팔경(八境). 팔풍경계(八風境界). 팔풍은 세상에서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바로서 능히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서 움직이게 하므로 팔풍(八風)이라 함<몽산법어 p155, 용화선원刊>
--이쇠(利衰 이로울 리,약할 쇠) 내 뜻에 맞고(利) 내 뜻에 어기는 것(衰)
--예훼(譽毀 기릴 예,비방할 훼) 나 안보는 데서 나를 찬미하는 것(譽), 나 안보는 데서 나를 비방하는 것(毀)
--칭기(稱譏 일컬을 칭,나무랄 기) 면전에서 찬미하는 것(稱), 면전에서 비방하는 것(譏)
--고락(苦樂 괴로울 고,즐거울 락)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것(苦),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것(樂)
[참고] 팔풍=팔세법(八世法, attha lokadhamma)--세간 특유의 여덟가지 어려움.
--이득과 손실, 좋은 평판과 나쁜 평판, 칭찬과 비난, 고통과 행복<칠각지 p57,고요한소리刊>
(팔풍경계를 요약하면 결국 역순경계(逆順境界).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중언부언(重言復言) ; 이미 한 말을 자꾸 되풀이함.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백중(百中)날 ; 음력 칠월 보름날. 석 달간의 하안거(夏安居)를 마치는 날. 하안거를 마친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올리어 그 공덕으로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제한 목련존자의 효심을 기원으로 하는, 우리의 선망부모의 영가를 천도하는 법요식을 거행하는 날(우란분회 盂蘭盆會). 백중(百衆)·백종(百種)이라고도 한다.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고려 시대에는 이날 국가적으로 '우란분회'를 열었으나 조선 시대 이후로 절에서만 여러 가지 음식을 갖추어 재를 올리고, 농가에서는 이날 하루 농번기의 피로를 씻기 위해 머슴을 쉬게 하였다.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선실(禪室)과 같은 말. ②‘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신통(神通 불가사의할 신,통할 통) : 수행을 통(通)하여 도달하는 걸림없는 초인간적인(神) 능력.
*죄업(罪業) ;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위(身)와 말(口)과 생각(意). 괴로움의 과보를 초래하는 악한 행위.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일.
*천당(天堂) ; ①천상(天上)에 있다는 신(神)의 전당(殿堂), 하늘의 세계.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모든 하늘을 통칭하는 말. ②정토교(淨土敎)의 극락세계(極樂世界).
*탁발(托鉢 맡길 탁, 바리때 발) ; 스님이 경문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보시를 받음.
*목련경(目連經) ; 목련 존자(目連尊者)가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건진 일을 다룬 경문으로, 음력 칠월 백중날이면 이 경을 읽고 기도한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오장(五臟)이 상(傷)하다 ; 비위가 상해 마음이 몹시 언짢다.
*노래(老來 늙을 노,올 래) ; ‘늘그막’을 점잖게 이르는 말.

 

 

 



------------------(2)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 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
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흉(凶)·화(禍)·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추호(秋毫 가을 추•가는 털 호) ; ‘추호도’, ‘추호의’의 꼴로 쓰여, 가을에 짐승의 털이 매우 가늘어지는 데에서 가을 털끝만큼 ‘매우 조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단전호흡(丹田呼吸) ; 분류 ‘참선(자세, 호흡)’ 참고.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사바세계(娑婆世界);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게송) ‘전단목주중생상(栴檀木做衆生像)~’ ; [석문의범(釋門儀範)] 점안게(點眼偈).
*전단(栴檀) ; 산스크리트어 candana의 음사. 남인도의 서해안에 뻗어 있는 서(西)고츠 산맥에서 많이 자라는 상록 교목으로, 끝이 뾰족한 타원형의 잎이 마주나고 꽃은 주머니 모양임. 나무에서 향기가 나고 조각물의 재료로 쓰임.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
관세음(觀世音)은 산스크리트어 avalokiteśvara의 번역, 보살(菩薩)은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세간(世間)의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받을 때,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음성(音聲)을 듣고(觀) 대자비와 지혜로써 자유 자재로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보살.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왼쪽 보처(補處).
또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 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 한다. 또 광세음(光世音)·관세음(觀世音)·관세자재(觀世自在)·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쓰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관세음보살의 주처는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이다.
한국에서는 동해에 있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洛山寺)가 관음 도량으로 유명하다.
*문수보살(文殊菩薩) ;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부처의 완전한 지혜를 상징함.
문수사리는 산스크리트어 만주슈리(mañjuśrī)의 음사. 문수시리(文殊尸利),만수실리(蔓殊室利)라고도 쓴다.
‘문수’는 묘(妙, 신묘하다, 훌륭하다), ‘사리’는 길상(吉祥, 상서로움)의 뜻이다. 묘길상(妙吉祥)·묘덕(妙德)·유수(濡首)라 번역. 석가모니불을 왼쪽에서 보좌하는 보살.
문수보살은 일반적으로 연화대에 앉아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왼손에는 푸른 연꽃을 들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는 사자를 타고 있기도 하고, 경권(經卷)을 손에 든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많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완성을 상징하는 화신(化身).
≪화엄경≫ 속에서도 문수 보살은 보현보살(普賢菩薩)과 함께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양쪽 협시 보살(挾侍菩薩)을 이룸.
*보현보살(普賢菩薩) ; 불교의 진리와 수행의 덕을 맡은 보살. 한량없는 행원(行願)을 상징함.
산스크리트어 사만타바드라(Samantabhadra). 삼만다발타라(三曼多跋陀羅)라고 표기. 보현(普賢), 편길(遍吉)이라 한역. 경전을 수호하고 널리 퍼뜨리며, 불법을 펴는 보살.
연화대에 앉거나 여섯 이빨을 가진 흰 코끼리를 타고 있다. 석가모니불을 오른쪽에서 보좌하는 보살. 보현보살은 또 중생의 목숨을 길게 하는 덕을 가졌으므로 연명보살(延命菩薩)이라고도 한다.
모든 보살들은 다 각각 부처님 공덕의 어느 한 부분만을 나타내어 그것이 그의 특징이 된다.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을 말함。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에 이르기까지 그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4. 3. 26. 11:23

§(445)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설사 확철대오를 못해도 악업(惡業) 끌려가지 않는다 / ‘한 생각’ 단속하는 것이 기가 막히게 중요하다.

 

활구참선에 의해서 수행을 해가는 사람은 부처님과 같은, 고조사(古祖師) 같은 그러한 견지(見地)에 이르기 전에는 어떤 소견(所見)  나고 공안에 대해서 무슨 소견이  난 거, 그러한 것에 착각을  가지고 방황하고 그런 것이 아니여. 그것이 구경(究竟) 깨달음이 아니면 스스로 그까짓 것을 없는 것으로  버려야 되거든.

 

우리 불법(佛法) 믿는  참선을 하는 수행인은  ‘한 생각 단속하는 것이 기가 막히게 중요한 것이다.   생각을 어떻게 단속을  나가느냐 가행정진을 하느냐, 용맹정진을 하느냐 또는 해태굴(懈怠窟) 빠지냐가 판별이 나는 것이다. 지옥으로 가느냐, 천당에 가느냐의 바로 기로(岐路),  마군이의 올가미에 걸려들고  걸려드느냐의  판가름이  생각 단속하는 데에 달려있다.

 

**송담스님(No.445)—1991 5 첫째 일요법회. (용445)

 

약 11분.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설사 확철대오(廓徹大悟) 못해도 악업(惡業) 끌려가지 않는다

 

 그러냐?  화두를 참구하는 참선법(參禪法) 최상승법(最上乘法)이기 때문에 최상승법에 의해서 타성일편이  사람은 부처를 구하지도 않고, 깨달음을 구하지도 않고, 누가 나를 깨닫게  주기를 바래지도 않아. 천당도 갈려고 하지 않고, 지옥도 피할려고 하지를 안 해.

천당 지옥이며 일체 그러한 바깥 경계나  경계에 대해서 끄달리지를 않기 때문에 두려워 지옥도 없는 것이고,  현혹될 천당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거든.

 

마지막 숨이 ! 끊어질 때까지도 떠억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 하는 것이 그것이 활구 참선객이요,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의 지조(志操) 마땅히 그래야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한 지조와 그러한 요지부동(搖之不動) 수행력이 쌓인 사람이 지옥에  까닭도 없고,  사람은 이미 확철대오 안 했어도, 확철대오를 바래지 않아도, 확철대오   밖에는 없는 사람이여, 사람은.

 

 거둘  부처님이 나타나신다 해도 좋아하는 마음을 내지  것이며, 숨을 거둘 때에 염라대왕(閻羅大王) 사자(使者) 온다해도 두려워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말이거든.

 세상에 흥망성쇠에 동요가 되지도 않고, 화두에 대한 의단이 독로함으로 해서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도  물리쳐 버렸고, 오욕락(五欲樂)도  물리쳐 버린 상태에서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현혹하고 좋아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거든.

 

그래서  활구참선(活句參禪) 의해서 수행을 해가는 사람은 부처님과 같은, 고조사(古祖師) 같은 그러한 견지(見地)에 이르기 전에는 어떤 소견(所見)  나고 공안에 대해서 무슨 소견이  난 거, 그러한 것에 착각을  가지고 방황하고 그런 것이 아니여. 그것이 구경(究竟) 깨달음이 아니면 스스로 그까짓 것을 없는 것으로  버려야 되거든.

 

 그러한 공안이나 불법(佛法) 대해서 어떤 소견 난  그런 것도 그렇지만, 계행(戒行) 철저히 지키면서 여법(如法)하게 수행을 하다보면 사람에 따라서는 () 맑아져 가지고 무엇이 보이는 수가 있거든.

사람을 보면 전생(前生)  사람이 소가 사람이 되었다’ ‘전생에  사람이 개가 사람이 되었다’ ‘ 사람은 전생에 천상에서 왔다 그런 것이 볼라고  해도 이렇게 보이는 사람이 더러 있어.

 

그거 좋은 것도 아니고 그런 경계가 나타나면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이지마는 자기가 알라고 해서 아는 게 아니라 우연히 () 맑아지니까 그런 것이 보인 것이라,

바른 법문을 듣지 못한 사람은 그것이 무슨 숙명통(宿命通) 열리고, 그것이 무슨 도인(道人)이나   것처럼 착각을  가지고 어디가서 그런 아는 소리나 풀풀하고.

 

그래 가지고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  스님이 뭣을 훤히  아는 스님이다’ ‘ 스님은 도통했다’ ‘ 스님은 도인이다  가지고 여기서 저기서 떠받들고  갖다가 도인으로 대접을 하고 그러니까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도인인  하고 아주, 그래 가지고 외도(外道) 노릇을 하고 있는 사람이 가끔 있거든.

 

그건 자기 신세 망치고 불법 망해 먹고, 그래 가지고  점쳐 주고  가지고 그거 어디다  것이냐 그말이여. 우리 수행하는  최상승법을 믿는 학자는 ! 그런 데에 떨어져서는 아니된 것이다.

 

그리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타성일편이 . 그렇게 되면 식이 맑아진 것은 사실이여. 그럴 때에 반드시 팔만사천 마군(魔軍)이가 육근문두(六根門頭)에서 엿보고 있어.

어떠한 틈만 있으면  틈을 타서 들어와 가지고 아주 도를 이루지 못하게 하리라 아주  팔만사천 마군이가 육근문두에 기다리고 있는 것인데, 그걸 모르거든.

 

어떠한 경우에도 단속을 철저히 해서 화두 의단독로하도록만 거기에다가만  정성과 신경을 거기다가 두고  나가면 팔만사천 마군이가 이중 삼중으로 둘러싸고 엿보고 있은들, 지가 어떻게  것이냐 그말이여.

내가  생각 삐끗  생각[別念]을   좀을 타서 들어온 것이지,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야 지가 어떻게  것이냐 그말이거든.

 

옛날에 어떤 선원에 조실(祖室) 스님이 계셨는데 후원에 나가보니까 수챗구녁에, 공양주(供養主) 솥을 씻어 가지고  구정물을 붓다가 그냥 구정물에 밥알이 떠내려 가지고 수챗구녁에 있는 것을 조실 스님이 보셨습니다.

   톨에 시주(施主) 은혜가 일곱근 반인데  쌀을 이렇게 함부로  가지고 수챗구녁에다가 버리다니 스님이 아주 화를 내셨어.

 

그러니까 도량신(道場神) 나타나 가지고 여러  동안을 내가  도량(道場) 있으면서 스님을 뵙지를 못했는데 오늘에사 스님을 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거든.

 

 스님은 평소에 항상  깨달은 경지가 낭연독존(朗然獨存)하도록 그렇게 일체처 일체시에 그렇게 지내시니까 도량신도  스님을 볼라야  수가 없었거든. 그러다가  생각 화를 내니까  좀을 타서 도량신이  스님을 보게 되었다 그말이여.

이것은 우리가  생각 냄으로 해서 도량신뿐만이 아니라 팔만사천 마군이의 올가미에 걸려들  있다고 하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한 일화(逸話)지마는.

 

우리 불법(佛法) 믿는  참선을 하는 수행인은  ‘한 생각 단속하는 것이 기가 막히게 중요한 것이다 그말이여.

 

  생각을 어떻게 단속을  나가느냐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느냐,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느냐 또는 해태굴(懈怠窟) 빠지냐가 판별이 나는 것이다 그말이여.

지옥으로 가느냐, 천당에 가느냐의 바로 기로(岐路),  마군이의 올가미에 걸려들고  걸려드느냐의  판가름이  생각 단속하는 데에 달려있다 그거거든.(4247~536)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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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성일편(打成一片) : 좌선할  자타(自他) 대립이 끊어져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경계.

*악업(惡業) ; 나쁜 결과의 원인이 되는 나쁜 행위. 또는 전생(前生) 나쁜 행위.

*참선법(參禪法)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지조(志操 /절개 ) : 원칙과 신념을 지켜 끝까지 굽히지 않는 꿋꿋한 의지나 기개.

*요지부동(搖之不動) ; 흔들어도 꼼짝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떠한 자극에도 움직이지 않거나 태도의 변화가 없음을 이르는 .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 심판하여 벌은 주는 .

*사자(使者 사신 / ) : 죽은 사람의 혼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일을 한다는 저승의 귀신.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락(五欲樂,五慾,五欲)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견지(見地)견처(見處). 안목(眼目). 사물현상 따위를 관찰하거나 판단하는 입장.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구경(究竟 궁구할 /마칠·다할 )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위에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계행(戒行) ; ①계() 지켜 수행하는 . ②계율과 도덕.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 : 오온(五蘊) 하나. 식별하고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인식 작용. 인식 주관.

*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 하나로,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자유 자재한 능력.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외도(外道) ; 불교 이외의 다른 가르침. 또는  신봉자.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육근문두(六根門頭) ; 육근(六根 : 眼耳鼻舌身意)  . 육근과의 경계.

*육근(六根) ; 육식(六識) 경계[六境] 인식하는 경우  소의(所依)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眼根(耳根(鼻根(舌根(身根(意根)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 기관·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 : 시간적으로 짧은 동안에.

*별념(別念) ; ‘ 생각[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있으면 고인이 말한  「잡독(雜毒)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없느니라.”

 

余云別念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생각[別念]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외에는, 불법(佛法) 온갖 좋은 일이라도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 취하거나[], 버리거나[], 집착하거나[], 변화하는[] 것이 모두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것이요,  묻는 사람이 친히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수챗구녁 ; ‘수챗구멍(허드렛물이나 빗물 따위가 빠져나가는 구멍)’ 사투리.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시주(施主) : ①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②절이나 스님에게 재물을 바침, 또는  사람.

*일미칠근(一米七斤) ; ‘  톨을 생산하기 위해 농부가 흘리는 땀의 무게가 일곱 근이다라는 말로, 쌀을 비롯한 모든 생산물이 매우 소중하고 귀한 정성이 들어간 것임을 알고,  그럼으로써 그것들에 감사하고 아껴야 한다는 뜻을 나타낸다.

*도량신(道場神) : 도량(道場) 수호신.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읽 않고 도량으로 읽음.

*원각대지(圓覺大智) 낭연독존(朗然獨存) ; 원각(圓覺) 대지(大智) 밝게 홀로 드러나다. *원각(圓覺) : 석가여래의 원만(圓滿) 깨달음. 진여(眞如) 체득. 부처님의 지혜.

[참고] 보조국사 지눌(1158~1210) <수심결修心訣>에서.

若微細流注永斷 圓覺大智 朗然獨存 卽現千百億化身 於十方國中 赴感應機 似月現九 影分萬水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快樂無憂 名之爲大覺世尊

 

만약 미세한 번뇌의 흐름도 영원히 끊어져서 원만히 깨달은  지혜가 홀로 밝게 드러나면,  천백억 화신을 나타내어, 시방세계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감응하게 되니, 그것은 마치 하늘에 높이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응용이 무궁하고 인연있는 중생을 제도하여, 쾌락하고 근심이 없으니 크게 깨친 세존(大覺世尊)’이라 한다.

---『마음 닦는 (수심결 강의) (지눌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214.  『땅에서 넘어진 , 땅을 짚고 일어나라 - 보조국사어록』 (김달진 옮김 | 동화출판사) p87, 102 참고.

*올가미 ; 노끈이나 철선 따위로, 잡아당겨도 매듭이 풀어지지 않도록  가닥을 고리처럼 만들어 짐승을 잡는 기구.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해태(懈怠 게으를 /게으를 )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기로(岐路 갈림길 / ) :  방향이 서로 다르게 나누어지는 지점.

Posted by 닥공닥정

<핸드폰에서, 아래 법문은 위 유튜브에서 42분 49초부터 시작됩니다>

 

§(세등68) (게송) 구명소일모선성~ /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알고 모르는데 있는 것이 아니여 / 조백(糟魄).
이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이것이로구나!」헐 때 틀려버린 거여. 그렇게 헐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여. 우리 수행자가 항상 주의할 것은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알고 모르는데 있는 것이 아니여.

다못 그 꽉 맥힌 의심으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고, 의단으로 나아갈 때에 그 의단이 더 이상 간절(懇切)헐 수가 없고, 더 이상 커질 수가 없고, 더 이상 순일(純一)하고 무잡(無雜)할 수가 없어.
그래 가지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야 가지고는 그놈을 타파(打破)할 때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허는 것이지, 고요하고 맑고 깨끗한 경지에서 「하! 이것이로구나.」하고 그렇게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은 그런 것은 깨달음이 아니여.

**송담스님(세등선원No.68) - 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에서.(세등68)

 

약 9분.

구명소일모선성(求名少日慕宣聖)타가  파사노년친석가(怕死老年親釋迦)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응성점두지팔각(應聲點頭遲八刻)이여  초가저사검거구(稍加佇思劍去久)니라
나무~아미타불~

구명소일모선성(求名少日慕宣聖)타가  파사노년(怕死老年)에 친석가(親釋迦)다.
명예와 권리를 추구하던 젊은 날에는 공자님을 섬겨. 보통 사람들이 다 젊었을 때는 유교를 숭상하고, 유교의 법도에 따라서 삼강오륜(三綱五倫)을 지키면서 그렇게 살아가니까, 그것이 다 공자님을 사모하는 것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철이 들어 생사 무상(無常)한 것을 깨닫고, 정말 이 세상에 오욕락(五欲樂)이라는 것이 뜻대로 이루어지기도 어렵지마는, 설사 뜻대로 이루어졌다 하드라도 일장춘몽(一場春夢)에 지내지 못한 그 무상함을 깨닫고 발심(發心)을 해서 불법(佛法)을 믿기 시작해. 그것이 바로 죽음이 무서운 늙으막에사 석가(釋迦)를 친했더라. 불법을 믿게 되었다 이거거든.

무량겁을 오욕락을 탐허다가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헌 것은 바로 이 젊은 날에 공자님을 사모한 것과 같은 것이고, 우리가 금생에 겨우 이렇게 생사가 무상한 것을 깨닫고 불법을 믿고, 불법에 귀의해서 특이한 사람은 출가해서 이렇게 납자(衲子) 생활을 하는 것은 바로 파사노년(怕死老年)에 친석가(親釋迦)다, 그렇게도 볼 수가 있는데.

응성점두지팔각(應聲點頭遲八刻)이여. 소리를 듣고서 고개를 끄덕끄덕 응두(應頭)를 허면 벌써 팔각(八刻)이 늦어져 버렸다 그말이여. 소리를 듣고 고개를 꺼떡거리면 벌써 팔각(八刻)이 늦어.
‘아무개야!’ 불러서 ‘예!’ 하고 대답한 것도, 벌써 부르는 시간이 있고, 대답하기 위해서 - 스스로 들은 바가 있기 때문에, 그놈에 응해서 대답을 허기 때문에 그 시간이 벌써 팔각이다.

초가저사검거구(稍加佇思劍去久)다. 조금 벌써 생각을 머뭇거리면 - '앗! 누가 나를 부르는구나' '앗! 응 그렇구나'하고 벌써 속에 잠깐 머뭇거리면, 칼이 이미 지내간 뒤다 그말이여.
‘칼 조심해라. 누가 너를 칼을 찌를라고 허니까 칼 조심해라’하고 그 소리 듣고 벌써 요리 피헐려고 하면 벌써 칼이 모가지를 지내간 뒤가 벌써 오래다.

우리 수행자가 공부를 헐 때에, '아! 바로 이것이로구나'하면 벌써 아닌 거여 그게. 누구한테 가서 물어보자말자 벌써 그게 모가지에 칼이 지내가 버린 거여.
이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이것이로구나!'헐 때 틀려버린 거여. 그렇게 헐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여.

우리 수행자가 항상 주의할 것은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알고 모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여.

다만 그 꽉 맥힌 의심으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고, 의단으로 나아갈 때에 그 의단이 더이상 간절(懇切)헐 수가 없고, 더이상 커질 수가 없고, 더이상 순일(純一)하고 무잡(無雜)할 수가 없어.
그래 가지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아 가지고는 그놈을 타파(打破)할 때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허는 것이지, 고요하고 맑고 깨끗한 경지에서 '하! 이것이로구나'하고 그렇게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은 그런 것은 깨달음이 아니여.

그것을 조백(糟魄)이라 그래. 그러한 조백을 안다면, 어떤 좀 그럴싸한 무슨 경지를 맛봤다고 해서 행여나 「이것이 깨달은 것이 아닌가?」 그런 서투른 생각을 내지 않을 것이다 그말이여.

우리 수행자는 이 일대사! 이 일대사(一大事)를 위해서 이미 모든 것을 다 버린 사람들입니다. 한 생각 한 생각 잡드리 해서 어쨌든지 가행정진, 명실공히 용맹정진을 해 나갈 따름인 것입니다.


일파유조(一把柳條)를 수부득(收不得)하야  화풍탑재옥난간(和風搭在玉欄干)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파유조(一把柳條)를 수부득(收不得)하야, 한 움큼 버들가지를 휘어잡지 못해서,
화풍탑재옥난간(和風搭在玉欄干)이다. 바람과 함께 옥난간에 걸어두노라.

버드나무 가지가 그 바람에 일렁거리는데, 그것을 어떻게 붙잡을 수가 있어. 그것을 붙잡을 수가 없으니까 바람과 함께 난간에다가 이렇게 걸어둔다.(41분58초~51분4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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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구명소일모선성 파사노년친석가’ ; 송(宋)나라 소강절(邵康節)의 ‘學佛吟’에서.
*(게송) ‘응성점두지팔각 초가저사검거구’ ; [신심명(信心銘) 벽의해(闢義解)] 중봉 명본선사(中峰 明本禪師) (명정 역주, 극락선원) p258 참고. *(頻伽藏本)天目中峰和尚廣錄 卷第十二之下 信心銘闢義解下 참고.
*遲(더딜·늦을 지) *刻(시간·때 각) *稍(점점 초) *佇(우두커니 설·기다릴 저)
*삼강오륜(三綱五倫) ; 유교의 도덕에서 기본이 되는 세 가지의 강령과 지켜야 할 다섯 가지의 도리.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일장춘몽(一場春夢) ; 한바탕의 봄꿈이라는 뜻으로, 헛된 영화나 인간 세상의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납자(衲子 기울•옷을 꿰맴 납/사람 자) ; 납의(衲衣)를 입은 사람, 스님을 이르는 말.
*의단(疑團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타성일편(打成一片) : 참선할 때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조백(糟魄 술지게미 조/찌꺼기 백) ; 옛날부터 내려오는 성인들의 저서와 말은 모두 찌꺼기란 뜻으로, 무릇 참된 도는 말과 글로 전달될 수 없으므로 현재 전하는 모든 것은 술지게미에 불과하다는 뜻.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가행정진(加行精進) ; 어떤 일정한 기간에 수면을 매우 줄이고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여서 하는 정진.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Posted by 닥공닥정
대중 생활2014. 3. 11. 20:33

§(세등68) (게송) 참선수투조사관~ / 육화(六和) / 해제(解制)가 바로 결제(結制) / 새판잽이.

화두를 들어서 자꾸 화두를 참구(參究)를 허는 것은 바로 거기에서 마음 길이 끊어지게 되고, 마음 길이 끊어져야 조사관을 타파하는 것이여. 다못 앞도 막히고, 뒤도 막히고,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만을 참구해 나가. 거기에서 분별심을 끊을려고 안 해도 저절로 분별심이 끊어져. 마음 길을 끊을려고 안 해도 저절로 끊어지게 되는 것이여.


원만구족(圓滿具足)한 원각(圓覺)을 이루고자 하면, 자비와 지혜와 행원과 이사에 융통(融通)해야 해.


화합하는 마음은 어디서 생기느냐? 각자 자기의 소임을 충실히 허면서 여법(如法)하게 수행을 해 나가면, 일부러 화합을 헐려고 마음을 낼 것도 없이 저절로 화합이 되는 것이여.


(산철 동안에도) 꼭 결제 중에 하는 거와 같은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그 정진이 중간에 중단되지 아니하고, 여일하게 되어가도록 잘 잡드리를 해야 다음철 여름결제에 연결이 된다 그말이여. 그 석 달 동안을 애써서 해 가지고 산철 동안에 그럭저럭 지내버리면, 다음 여름 결제 시작하면 다시 또 공부가 새판잽이가 되는 거여. 그렇게 되면은 앞으로 10년, 20년, 일생을 선방을 다닌다 해도 도업(道業)을 성취를 못하는 원인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을 하는 것이여.


**송담스님(세등선원No.68) - 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에서. (세등68)

 

약 13분.

 


참선(參禪)은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요  묘오요궁심로절(妙悟要窮心路絶)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참선(參禪)은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요.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관(祖師關)을 뚫어야 하는 것이고, 조사관을 타파해. 참선의 목적은 조사관을 타파해야 하는 거여.

묘오(妙悟)는 요궁심로절(要窮心露絕)이다. 묘한 깨달음은 마음 길이 끊어져야 한다.
마음 길! 화두를 들어서 자꾸 화두를 참구(參究)를 하는 것은 바로 거기에서 마음 길이 끊어지게 되고, 마음 길이 끊어져야 조사관을 타파하는 것이여.

의리선(義理禪)! 의리로 공안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고 하는 것은 그것이 마음 길이 끊어지기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래서 그것은 '사구(死句)다, 죽은 참선이다' 그런 거여.
확철대오 할 수 있는 참선이 아니고, 점점 중생의 사량분별을 치성하게 만들어 가지고 참 깨달음으로부터서는 점점 멀어지는 공부이기 때문에 의리선이나 사구선(死句禪)을 하지 말아라 이거거든.

활구참선(活句參禪)!  일체 말 길이 끊어지고, 이치 길이 끊어지고, 더듬어 들어가는 짓이 끊어지는, 다못 앞도 막히고, 뒤도 막히고,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만을 참구해 나가.

‘어째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그 알 수 없는 의심만을 잡드리 해 나가야 돼. 거기에서 분별심을 끊을려고 안 해도 저절로 분별심이 끊어져. 마음 길을 끊을려고 안 해도 저절로 끊어지게 되는 것이여.

수행을 해 나가는데, 이치(理致)에 치우쳐서 닦아 나가면 적적한 데에 맥혀, 꽉 체하게 되는 것이고. 적적한 데에 처박히게 되는 것이고. 또 지(智). 치우쳐서 지혜만을 닦아 나가면, 자비심이 없어져 버리고.
또 치우쳐서 자비만을 닦아나가. 그저 다른 사람만을 위하고 어떻게 허면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고, 이렇게 치우치게 자비만을 닦아 나가면, 염습(染習)! 습기에 물들어 가는 염습만을 문득 더 증장시키게 되는 것이여.
다맛 원(願)만을 발하고, 자꾸 발원(發願)만을 해 나가면은 유위(有爲)의 정(情)이 일어난다.

아무리 이치가 좋다고 해도 이치만에 치우치고, 아무리 지(智)가 좋다 해도 지혜만을 치우치고, 아무리 자비가 좋다 해도 자비만에 치우치고, 아무리 발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도 밤낮 발원만을 하고 - 그래서 이치와 지(智)와 자비와 발원, 이런 것들을 다 겸해서 다 갖추어서 해 나가야 그래야 허물이 없어.
이사(理事)가 융통하고 행원(行願)이 서로 겸해서 자비와 지혜를 겸해서 닦아 나가야, 그래야 정말 대도를 성취한다. 화엄론에 그렇게 말씀을 하셨어.

그래서 이렇게 결제 때가 되면은 방(榜)을 짜 가지고 전 대중이 각기 한 가지 내지 두 가지 이상 그런 소임을 맡아 가지고, 그래가지고 그 자기의 소임을 정성껏 다 완수하면서 그 가운데에 화두가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도록 그렇게 잡드리를 해 나가야 돼.

아무 것도 안 하고, 손발 하나 까딱 안 하고, 오직 앉아서 좌(坐)에만 국집(局執)해 가지고, 뭐 울력 조금 있으면 파르르르 하니 속으로 진심(瞋心)을 내고, 짜증을 내고, 옆에서 누가 빠스락만 해도 그러고, 남을 위해서는 손가락 하나 딸삭 하기를 싫어하고, 그렇게 인색을 허고, 그래 가지고서는 설사 어떤 소견이 나서 깨달음을 얻었다 하드라도 그것은 벽지불(辟支佛) 밖에는 되지를 못하는 것이여.

정말 원만구족(圓滿具足)한 원각(圓覺)을 이루고자 하면 자비와 지혜와 행원과 이사에 융통(融通)해야 해.

각기 자기의 소임을 맡아서 각자 정성껏 하지 아니하면, 그 선방은 밤낮 문제점이 일어나 가지고 여러 사람이 정진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여.
그래서 이 선방에는 주지나 원장이 있어야 하고, 총무와 재무와 교무가 있어야 하고, 또 원주(園主)·별좌(別座)와 채공(菜供)·공양주(供養主)가 있어야 하고, 다각(茶角)이 있어야 하고, 또 선방 내부에서도 여러 가지 소임을 맡아 가지고 전체 대중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야 하거든. 화합이 되어야!

화합(和合)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나와 남이 둘이 아니고, 내 마음과 저 사람의 마음이 하나가 돼.
서로서로 존경하고, 서로서로 아끼고, 서로서로 받드는 마음이 그것이 한마음이 되어서 그래서 조금도 신경을 쓸 것이 없어. 그러니 거기에 무슨 시비가 일어나며, 누구를 이뻐하고 누구를 미워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이것이 바로 승가(僧伽)라 하는 것이여. 승가는 인도 발음으로 상카(saṃgha)라 그러는데, 그 상카라 하는 것은 화합이라는 뜻이거든.

수행을 해 나가는데 이십 명, 삼십 명 내지 많은 대중은 중국에서는 오백 명, 칠백 명 대중도 있고, 큰 총림(叢林)은 천오백 명까지도 이렇게 지내는데, 그 많은 대중이 구십 일간을 아무 탈없이 지내게 되는 것은 오직 그 화합하는 마음이여.
화합하는 마음은 어디서 생기느냐? 각자 자기의 소임을 충실히 하면서 여법(如法)하게 수행을 해 나가면, 일부러 화합을 헐려고 마음을 낼 것도 없이 저절로 화합이 되는 것이여.

물과 물을 타면은 바로 하나가 되어 버려, 한 가지 되고. 물과 우유를 타도 이렇게 섞어지는데, 물과 기름은 아무리 타 가지고 저어도 섞어진 것 같은데, 한참 있으면 기름은 물위로 떠버리고, 물은 가라앉아 버린다.

우리가 목적이 같고, 해 나가는 생활이 같고, 우리의 생각이 같고, 그래서 육화(六和)의 원칙!
육화의 원칙에 스스로 자발적으로 순응하면은 저절로 물과 물이 섞인 듯, 물과 우유가 섞인 것처럼 이렇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렇게 될 때에 석 달 안거가 무장무애(無障無礙)하게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해제하는 마당에 왜 이 이런 말씀을 허냐 하면은 해제(解制)가 바로 결제(結制)거든.
오늘 해제니까, 벌써 걸망짐 모두 다 싸놓고 어디로 가리라 하는 것을 미리 다 며칠 전부터서 장만해 둔 것을 내가 환히 다 알고 있지마는, 해제가 결제거든.

해제인줄 알고 걸망 짊어지고 나가면은 봄바람에 기분 참 좋은 것은 사실이나, 행여나 화두 하나를 놓쳐버리면은 그것이 어찌 훌륭한 납자(衲子)라 할 수가 있겠느냐.

해제해서 터억 걸망을 지고 나가는 바로 첫걸음부터 화두가 성성하고 적적하게 잡두리를 해 나가야 정말 지난 석 달 동안 올바르게 정진을 한 사람이고,
걸망 짊어지고 팔도강산을 좁다하고 불탄산고수활(不憚山高水濶)하고 막 여기저기 싸다니면서, 희희닥거리고 화두는 놓쳐버린다면 그 사람은 석 달 동안 껍데기로만 참선을 했지 속으로는 진짜 참선을 아니한 사람이다. 이력서를 내보일 것도 없고, 벌써 허는 행동이 바로 언제나 자기의 이력서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앞으로 석 달 동안 어디 산철 결제 하는 데 가서 있으면은 그런 데 가서 정진을 해도 좋고, 그런 데가 없으면은 인연 따라서 지내되, 어디에 가서 어디를 걸어가거나 어느 절에 가서 머물거나, 무엇을 하던지 간에 - 은사스님 절에 가서 일을 거들거나, 어디 다른 친구 절에 가서 거들거나,

무엇을 하건 간에, 어디를 가건 간에, 꼭 결제 중에 하는 거와 같은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그 정진이 중간에 중단되지 아니하고, 여일하게 되아 가도록 잘 잡드리를 해야 다음 철 여름 결제에 연결이 된다 그말이여.

그 석 달 동안을 애써서 해 가지고 산철 동안에 그럭저럭 지내버리면, 다음 여름 결제 시작하면 다시 또 공부가 새판잽이가 되는 거여.
그렇게 되면은 앞으로 10년, 20년, 일생을 선방을 다닌다 해도 도업(道業)을 성취를 못하는 원인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28분44초~41분5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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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선수투조사관(參禪須透祖師關) 묘오요궁심로절(妙悟要窮心路絶)’ ; 무문 혜개 스님의 [무문관(無門關)] 1조주구자(趙州狗子)’ 있는 . [선가귀감](용화선원) p61참고. *=(끊을 ).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화두(공안) 말함. 관문(關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 관문이 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 ①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 ②참선하여 화두(공안)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치성(熾盛 맹렬하게 일어남·성할 치/성할 ) ; 불길이 일어나는 것과 같이 성하게 일어남.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 ) p49~52.

大抵學者는  叅活句언정  叅死句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모름지기 활구(活句) 참구할지언정, 사구(死句) 참구하지 말지어다。

 

<註解> 活句下에  *薦得하면  堪與佛祖爲師요死句下에  薦得하면  自救도  不了니라此下는  特擧活句하야  使自悟入이니라.

要見*臨濟인댄  須是鐵漢이니라 

 

활구(活句)에서 얻어 내면 부처나 조사의 스승이 만하고, 사구(死句)에서 얻는다면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이 아래는 특히 활구(活句) 들어 스스로 깨쳐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임제를 친견하려면 쇠뭉치로 놈이라야.

 

<評曰>

*話頭에  有句意二門하니  叅句者 *徑截門活句也니  沒心路沒語路하며  無摸索故也요叅意者  *圓頓門死句也니  有理路有語路하며  有聞解思想故也라.

 

평해 가로되, 화두(話頭) 참구(參句) 참의(參意) 가지 문이 있으니, 참구(叅句) 경절문 활구(徑截門活句), 마음 길이 끊어지고 길도 끊어져서 더듬고 만질수가 없는 때문이요, 참의(叅意) 하는 것은 원돈문 사구(圓頓門死句), 이치의 길도 있고, 말의 길도 있으며, 들어서 알고 생각할 있기 때문이다。

(譯註)

*경절문(徑截門) : 지름길문。교문(敎門) 55 점차를 거치지 않고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다시 말하면 화두(공안) 타파하여 견성 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 참선법(活句參禪法)

*원돈문(圓頓門) : 원교(圓敎) 돈교(頓敎) 교문(敎門) 있어서는 가장 높고 깊은 이치를 가르친 바이지만, 자취가 남아 있고 길이 분명히 있어서 참으로 걸림 없는 이치를 완전히 가르친 것이 못된다。오직 조사선이 있을 뿐이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치(理致) ; 사물의 정당한 조리(條理). 또는 도리에 맞는 취지(趣旨).

*지혜(智慧) ; ①모든 현상의 이치와 선악 등을 명료하게 판단하고 추리하는 마음 작용.

②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는 마음 작용.

③미혹을 끊고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주시하는 마음 작용.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을 떠난 경지에서 온갖 차별을 명료하게 아는 마음 작용.

*자비(慈悲) ; ()우정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 ()연민동정 원의(原義),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

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염습(染習) ; 습기(習氣-번뇌로 인하여 형성된 습관이나 버릇) 물들어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

*유위(有爲, 산스크리트어: saṃskrta, 팔리어: savkhata)에서 () 위작(爲作) · 조작(造作: 만들다) 뜻으로, 유위는 만들어진 , 조작된 , 다수의 요소가 함께 작용된 , 여러 인연이 함께 모여서 지은 , 인연으로 말미암아 조작되는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또는 이렇게 하여 드러난 생성과 소멸의 세계,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의 세계를 뜻한다.

*이사(理事) ; ①깨달음의 진리와 차별 현상. ②본체와 차별 현상.

*행원(行願) ; 수행과 서원(誓願). 서원을 세우고 수행함.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 ; 안거(安居)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 15일에 들어가며, 동안거는 음력 10 15일에 들어간다.

*해제(解制 해/만들법도 ) ; (안거)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

*() ; 용상방(龍象榜) 말함.

[참고] 용상방(龍象榜) ; 절에서 하안거 동안거 결제 때나, 큰일을 치를 때에 각자 일을 정해 붙이는 명단. 행사가 끝날 때까지 모든 사람이 있는 곳에 붙여서 각자가 맡은 일에 충실하도록 것이다.

*국집(局執) ; 마음이 트이지 못하고 어느 한편에 국한(局限), 집착하는 . 사리(事理)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에 얽매이거나 자기의 소견만이 옳다고 고집하여 매우 답답한 모습을 말한다.

*울력 ; 함께 모아 일하는 ,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일이란 우리말. 그러나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운력(雲力)이라고도 하며, 함께 힘을 기울인다는 의미로 운력(運力)이라고도 한다. 의미와 관계없이 울력은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

*진심(瞋心) ; 왈칵 성내는 마음.

*벽지불(辟支佛) ; 산스크리트어 pratyeka-buddha 팔리어 pacceka-buddha 음사. 홀로 깨달은 자라는 . 독각(獨覺연각(緣覺)이라 번역.

스승 없이 홀로 수행하여 깨달은 . 가르침에 의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깨달은 . 홀로 연기(緣起) 이치를 주시하여 깨달은 . 홀로 자신의 깨달음만을 구하는 수행자.

*원만구족(圓滿具足)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원각(圓覺) ; 석가여래의 원만(圓滿) 깨달음. 진여(眞如) 체득. 부처님의 지혜.

*융통(融通) ; 때나 형편에 맞게 신축성 있게 일을 처리함.

*원주(園主) ; 절에 소속된 밭의 채소를 가꾸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별좌(別座) ; 절에서 식사·의복·방석·이부자리 등을 담당하는 직책, 또는 일을 맡은 스님.

*채공(菜供) ; 절에서 반찬을 마련하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다각(茶角) ; 절에서 마실 차를 마련하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승가(僧伽) ; (산스크리트)(팔리) saṃgha 음사. (화합중(和合衆)이라 번역.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가르침대로 수행하는 사람들의 집단. 화합하고 있는 불교 교단.

보통은 출가자의 집단을 가르키지만, 넓게는 재가(在家) 신도도 포함.

*총림(叢林) ; ①많은 수행승들이 모여 수행하는 . ②전각(殿閣선원(禪院) ·강원(講院율원(律院) 등을 두루 갖춘 사찰.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육화(六和) ; 교단의 화합과 함께 대중의 수행 자세를 일깨워주는 여섯 가지 화합하는 . 육화합(六和合), 육화경(六和敬)이라고도 . 수행자(修行者) 서로에게 행위·견해를 같게 하여 화합하고, 서로 경애하는 여섯가지 방법.

①같은 계율을 가지고 수행하여 화동(和同)하고 애경(愛敬)하라(戒和).

②정견(正見) 같이하여 함께 해탈하라(見和).

③의식(衣食) 함께 하여 이로움을 균등하게 나누어 가지라(利和).

④같이 살며 부드럽게 행동하라(身和).

⑤다투지 말고 자비롭게 말하라(口和).

⑥같이 일하며 남의 뜻을 존중하라(意和).

*걸망 ; 물건을 담아서 등에 있도록 만든 자루 모양의 주머니.

*납자(衲子 옷을 꿰맴 ,사람 ) ; 남이 버린 옷이나 조각들을 기워서 만든 옷을 입은 수행승. 흔히 참선을 하는 스님(禪僧) 자신을 가리킬 사용.

*불탄산고수활(不憚山高水) ; 높은 깊은 물도 꺼리지 않고. (꺼릴 ), (넓을 ).

*산철(散철) ; 본철(本철-하안거,동안거) 아닌 시기.

*새판잡이 ; 새로 일을 벌여 다시 하는 .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 불도의 수행. 진리의 실천.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