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精進) 수행2015. 7. 8. 16:42

 

 

§(232) (게송)화소산전설천기~ / 결제(結制)의 뜻 / 파정(把定), 방하(放下) / 공부가 안될 때가 한 계단 높이 올라가는 중요한 때이니 지혜롭게 잘 대처해야.

석 달 동안 대중이 모여서 시간을 짜 가지고 그 시간대로 규칙 생활을 하면서 정진을 하는 것은 해제 동안에 일정한 규칙 없이 자유롭게 생활을 하는 가운데에서도 정진이 여일(如一)하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러한 특별한 기간 동안 특별한 시간을 짜서 규칙 하에 대중이 정진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고요한 가운데에서나 또는 시끄러운 가운데에서나 한결 같이 화두를 거각(擧却)해서 물샐틈없이 단속해 나간다면 이것이 바로 고요한 데에 처백히는 일도 없고, 시끄러운 데에 동요됨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정진을 알뜰히 단속해 나가게 되면 선방에 앉았거나, 도량에 나가거나 또는 여기저기 행각을 하더라도, 바로 그때 그 자리가 결제 중에 선방(禪房)에서 입방선(入放禪)을 하면서 지낸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훨씬 더 정진이 성성(惺惺)하게 잘되어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대혜 스님의 서장(書狀)에 보면, 그 공부가 잘 안되고 지루하고 답답하고, 뒤틀리고 먹먹하고 영 애를 먹을 때 그 때가 가장 중요한 때라고 여러 차례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중요하다고 하냐 하면, 그게 공부가 잘못 되어 가지고 그런 것이 아니다 이것입니다. 그동안 공부해 가지고 한 고비 넘어갈려고 할 때에 그러한 경계를 만나게 된다 그랬습니다.


**송담스님(No.232)—84년 동안거해제 법어(84.02.16) (용232)

 

(1) 약 21분.

(2) 약 15분.


(1)------------------

화소산전설천기(花笑山前泄天機)하고  조가임외화무생(鳥歌林外話無生)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두두자유무궁의(頭頭自有無窮意)요  득래무처불봉원(得來無處不逢原)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화소산전설천기(花笑山前泄天機)요, 꽃은 산 앞에서 웃어 가지고 천기(天機)를 누설(漏泄)하고 있고,
조가임외화무생(鳥歌林外話無生)이로구나. 새는 수풀 밖에 노래해 가지고 무생(無生)을 말하고 있드라.

두두자유무궁의(頭頭自有無窮意), 머리마다, 낱낱이 꽃이 웃는 것이나 새가 노래하는 것이나 모두가 다 스스로 한없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득래무처불봉원(得來無處不逢原)이로구나. 그 뜻을 깨달아 버리면, 그 한없는 뜻을 얻어 오면 그 근원을 만나지 아니하는 곳이 없어.


오늘은 계해년 10월 15일에 결제(結制)를 해 가지고 90일이 지내서 갑자년 정월 15일에 해제(解制)를 맞게 되었습니다. 삼동안거(三冬安居)의 해제인 동시에 백일기도 회향날이기도 합니다.

지난 겨울 동안 유독 날씨가 춥고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그랬습니다마는 대중스님네와 보살선방 보살님네들이 모두가 그러한 추위와 바람과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다 극복을 하시고 아무 장애 없이 삼동 안거를 마치고 오늘 이렇게 해제를 맞이했습니다.

파정(把定)하면 구름이 골짜기 어귀에 가로 놓였고, 방하(放下)하면 달이 차운 못에 떨어진다.
파정(把定)은 죽비(竹篦)를 치고 입선(入禪)을 하는 거, 입정(入定)을 하는 것이고, 방하(放下)는 죽비를 치고 방선(放禪)을 하는 것인데,

안거를 시작하면, 결제를 하면 ‘죽비를 친다’고 해서 화두(話頭)를 들고 정진(精進)을 하고, 또 ‘방선을 했다’고 해서 화두를 놓아 버리고 잡담하고 그럭저럭 지내고 그런 것이 아니라,
죽비 치고 입선하고, 죽비 치고 방선한 것은 많은 대중이 모여서 규칙 생활을 하기 위해서 부득이 시간 맞추어서 죽비를 치게 되는 것이지, 화두를 들고 안 들고 또는 정진을 하고 안 하고 하는 데에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것이다.

비단 90일 동안, 석 달 동안 이렇게 안거를 하고 정진할 때만 해당된 것이 아니고, 오늘 이렇게 해제를 한 뒤에도 설사 여러분이 가정에 돌아가시거나, 해제를 하고 걸망을 지고 행각(行脚)을 나서시건 간에,
해제 동안에 행각을 하면서 도중에서 죽비 누가 쳐 줄 사람도 없고 칠 필요도 없겠지만, 그러면 죽비를 안 치니까 참선을 안 하고 화두를 안 드느냐 하면 그게 아니거든.

석 달 동안 대중이 모여서 시간을 짜 가지고 그 시간대로 규칙 생활을 하면서 정진을 하는 것은 해제 동안에 일정한 규칙 없이 자유롭게 생활을 하는 가운데에서도 정진이 여일(如一)하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러한 특별한 기간 동안 특별한 시간을 짜서 규칙 하에 대중이 정진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원래 결제(結制)는 인도에서 장마철에 비가 너무너무 연속해서 비가 내리니까 숲속에서 정진을 할 수가 없어서,
부득이 비가 많이 오는 계절에는 국왕이나 또는 장자(長者)나 그밖에 신심 있는 분이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을 위해서 기원정사라든지 죽림정사라든지 그러한 선방을 지어드린 그 선방에서 비를 피하기 위해서 그 선방에 들어가서 대중 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서 우기(雨期)가 끝나면 각기 이리저리 흩어져서 숲속에서 자고, 숲속에서 정진하고, 인연 따라서 설법하고, 공양은 다 탁발(托鉢)을 해서—발우(鉢盂)를 들고 하루 한 끼씩 얻어 자시고 그러면서 정진을 한 것이 그것이 결제 안거(安居)의 유래인데,

중국, 한국, 일본, 이 북방으로 오면 여름에 장마철뿐만이 아니라, 겨울이 돌아오면 또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해서 날씨가 차우니까, 또 자유롭게 다니면서 정진하기가 대단히 어려워서 그래서 이 북방으로 와서는 겨울 석 달 동안 안거를 또 하게 된 것입니다.

죽비를 치고 대중이 모여서 규칙 생활을 하고, 입방선을 할 때는 여럿이 같이 살고 법도에 맞춰서 하니까 특별한 생각을 내지 안 해도 저절로 대중 따라서 정진을 할 수밖에는 없고, 정진이 되어질 것입니다마는,

해제를 하게 되면 그런 엄격한 규칙이 없이 동서남북으로 행각을 하면서 자유롭게 지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입승이 되어야 하고, 자기 자신이 주지가 되어야 하고, 자기 자신이 원주가 되어야 하고, 자기 자신이 모든 소임을 한 몸에 다 가지고 소임을 하면서 정진을 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제 기간 보다 훨씬 더 해제 기간 중에 자기를 단속을 엄격히 하고, 스스로 자기에게 채찍질을 호되게 가하면서 하루하루를 지내야만 되는 그런 계절인 것입니다.

계절인즉슨은 앞으로 석 달 봄철 동안 더웁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가장 정진하기에 좋은 계절이 돌아옵니다.
그런 좋은 계절을 참! 알뜰히 단속을 하신다면,
결제 동안에 그 추위 속에서 웅크리고 하기 보다는 또 여름 결제 그 더웁고 땀나는 그 기간 동안 보다는 이 봄철 산철 동안과 가을철 산철 동안 그 기간에 박차를 가해서 충분히 정진을 한다면 정진에 큰 향상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해제 기간 동안에 득력(得力)을 하시고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깨닫는 그러한 예를 볼 수가 있습니다.


파정(把定)하면 마음을 가다듬고 정(定)에 들면 구름이 곡구(谷口)에 가로 놓이고, 방하(放下)를 하면, 방선(放禪)을 하면 달이 한담(寒潭)에 떨어지더라.

유변(有邊)에 움직인 바가 되지 아니하면 근경법(根境法) 중에 그림자, 자취가 없고—근경법이라 하는 것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과,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진(六塵), 육경(六境)—이 육근과 육진의 그 세계에 그림자와 자취가 끊어지는 것이고,

무변(無邊)에 적적(寂寂)한 바가 되지 아니하면—무변에도 집착을 하지 아니하면, 빠지지 아니하면, 자변나변(這邊那邊)에 응하는데 이그러짐이 없어.
형이상학적으로나 형이하학적으로나 조금도 이그러짐이 없이 응할 수가 있다.

그러면 ‘자변나변에 응해 가지고 이그러짐이 없다’한 도리는 어떠하냐 하면 달이 한담(寒潭)에 떨어진 것이고, ‘근경법 가운데에 그림자와 자취가 끊어졌다’하는 것은 바로 구름이 곡구(谷口)에 가로 놓인 것이다.
이렇게 바꾸어서 표현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해제 동안에 조용한 곳을 만나도 그 조용한 데에 집착하지를 말고, 시끄럽고 복잡한 그러한 환경을 만나더라도 거기에 휘말려 들어가지를 말고서,
고요한 데에도 화두가 성성적적(惺惺寂寂)해야 하고, 아무리 복잡하고 시끄러운 그러한 환경에 처하게 되더라도 거기에서 화두가 성성적적해서,

고요한 가운데에서나 또는 시끄러운 가운데에서나 한결같이 화두를 거각(擧却)해서 물샐틈없이 단속해 나간다면 이것이 바로 고요한 데에 처백히는 일도 없고, 시끄러운 데에 동요됨이 없을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 녹음 법문 가운데에도 정진하는 데에 나아가서, 고구정녕(苦口叮嚀)한 법문이 계셨지만,
우리는 죽은 사람이 아니요 목석(木石)이 아니기 때문에 눈으로는 무엇인가 눈을 뜨면 보이게 되고, 귀로는 무슨 소리인가 듣게 되고, 생각으로는 무슨 일이건 간에 생각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가라앉었다 하게 됩니다.

그러나 눈으로 무엇을 보든지, 귀로 무슨 소리를 듣던지, 생각에 좋은 생각이나 궂은 생각이나, 지내간 과거 생각이나 미래 생각이나, 어떠한 생각이 떠오르든지 거기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거기에서 바로 화두를 돌이켜 거각을 해 나가면 보였던 것이 보되 본 바가 없고, 듣되 들은 바가 없고, 먹되 먹은 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화두를 들되 껍데기로만 들고 속으로는 온갖 생각이 계속해서 파동을 치고, 속이 상할 때도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기는 들지만 화두는 들면서도 그 속상한 생각은 여전히 훨훨 타오르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단전호흡을 하면서 계속해서 화두를 들면 차츰차츰 그 화두를 관(觀)하는 힘이 강해지면, 한 생각 턱 돌이키면 여지없이 앞 생각은 끊어져 버리고 오직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만이 몰록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단속을 해 가면 나중에는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저절로 들어지게 될 것입니다.(처음~21분27초)

 

 



(2)------------------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저절로 들어지면서,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의단이 독로(獨露)하면서, 무슨 생각이 떠올라 와도 내가 그것을 상관을 안 하고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아니하고, 눈에 무슨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거기에 내가 생각을 주지 아니하고, 귀로 무슨 좋은 소리나 궂은 소리가 들려도 내가 거기에 신경을 써 주지 아니하고,
떠억 화두만을 갖다가 관(觀)해 나가면 그런 밖의 경계나 일어나는 생각이 그냥 나한테는 아무 충격도 주지 아니하고 별 영향을 주지 아니하고서 그냥 스쳐만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귓전으로 새소리가 스쳐 지나가고, 봄바람이 스쳐 지나가고, 꽃에서 나는 향내가 스쳐 지나간다 해서 그것 때문에 공부를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를 지어 나가면 설사 누가 속상하는 소리를 계속 내 앞에서 해 가지고 나의 오장을 계획적으로 뒤집어 놓기 위해서 끈질기게 달라붙는다 하더라도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 마음을 가다듬고 화두를 들고서 무심으로 상대하면, 상대방은 자기가 계속 그렇게 수작을 걸어오되 요쪽에서도 골을 내야 재미가 나서 더 달라붙을 텐데, 내가 화두를 떡 들고서 무심(無心)해 버리고 조금도 반응이 없으면 재미가 없으니까 그냥 입이 아퍼서 그만두어 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진하는 사람, 참선하는 사람이 근경법(根境法) 가운데에 그림자와 자취가 끊어지는 것이고, 자변나변(這邊那邊)에 응하되 이그러짐이 없는 데에 들어가는 최초의 단계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진을 알뜰히 단속해 나가게 되면 선방에 앉았거나, 도량에 나가거나 또는 여기저기 행각을 하더라도, 바로 그때 그 자리가 결제 중에 선방(禪房)에서 입방선(入放禪)을 하면서 지낸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훨씬 더 정진이 성성(惺惺)하게 잘되어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실 결제 동안에 여름에 더울 때는 더운 대로 시간 맞춰서 정진을 하면 방안에 공기는 탁하고 더웁고, 궁뎅이는 땀이 나 가지고 옷이 젖고 또 겨울에는 추워서 문도 마음대로 열어 놓지 못하고 문을 닫고서 입선하게 되면,
10분 20분 처음에는 괜찮지만 한 이삼십 분 지내면 사람들의 코와 입과 팔만사천 모공(毛孔)으로 나온 탄산가스(炭酸gas)가 방안에 가득차 가지고 벌써 그 가스 기운에 취해 가지고 전부 맑은 정신이 없이 혼탁해 가지고 혼침(昏沈)에 떨어져서 꾸벅꾸벅 졸게 됩니다.

잠이 와서 좀 잠을 깨고 싶어서 아무리 허리를 펴고 눈을 부릅떠 봤자, 워낙 공기가 탁해 가지고 금방 또 스르르 눈이 감기게 되고, 가스에 취하면 본인은 졸면서도 조는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화재가 나면, 잠이 깊이 들었을 때 화재가 나 가지고 연기가 차면, 타 죽게 되는 것이 그것입니다.

눈을 떠 갖고 있을 때에는 연기가 나고 그러면은 박차고 문을 열고 나가지만, 잠이 깊이 들은 상태에서 불이 나면 차츰 차츰 연기가 차 가지고 그 연기에 꽉 질식(窒息)을 하되 눈을 뜰 줄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아주 그냥 죽게 되는 것입니다. 연탄가스로 죽은 것도 역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 콧구멍에서 호흡하는 데에서 나오는 가스도 그것이 탄산가스라, 연탄가스보다는 조금 덜 독할런가 모르지만, 그것도 역시 오래 들어마시게 되면 머리가 몽롱해지고 나중에는 골도 아파지고, 뼛골도 쑤시게 되고 몸도 무겁게 되고, 감기같은 것도 잘 걸리게 되고, 한번 감기에 걸리게 되면 잘 낫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졸음이 오고 정신이 흐리터분 하고 탁하고 그러지만 죽비를 치고 입선을 했으니, 좀 밖에 나가서 찬바람도 쐬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어나서 들락날락하면 이십 명, 삼십 명 내지 오륙십 명이 각기 입선을 해 놓고 들락날락 하면 그 어떻게 되겠냐 그말이여.

그래서 다른 대중을 위해서도 참고 앉아서 그 죽비칠 때까지 시간을 기달라야 하고, 앉아서 기어코 그 시간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사실 그 흐리터분하고 혼침 속에서 억지로 그 시간을 채워야 하다가,

이렇게 해제를 하고 나가게 되면 죽비 칠 것이 없으니, 졸리면 나가서 포행(布行)하고 포행하다가 성성(惺惺)해지면 다시 와서 정진하고, 이 해제 동안을 잘 채찍질을 하면서 유용하게 정진을 해 가면, 그래서 득력(得力)하는 율(率)이 많게 되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공부는 ‘자기가 하는 것’이고 또 ‘자기를 위해서 자기가 하는 것’이라, 다른 사람을 위하고 다른 사람이 해줄 수가 없는 것이여.

그러기 때문에 공부가 잘되고 안되고를 따질 것이 없이 화두가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게 잘 들리게 되면 그럴수록에 더 알뜰하게 잘 단속을 해 나가야 할 것이고,
영 화두가 산만해서 집중력이 없이 잘 안 들리고, 답답하고 몸이 뒤틀리고 영 정진이 잡히지를 않는다 할지라도 그럴수록에 지혜롭게 그 고비를 단속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화두가 순일해서 잘 들릴 때도 대단히 그러한 경계를 잘 유지해 나가도록 주의를 해 나가야 되겠지만,
화두가 잘 안 들리고 답답하고 먹먹하고 영 애를 먹고 그럴 때에, 정말 그럴 때 일수록 그 고비를 지혜롭게 잘 넘겨야만 되는 것입니다.

대혜 스님의 서장(書狀)에 보면, 그 공부가 잘 안되고 지루하고 답답하고, 뒤틀리고 먹먹하고 영 애를 먹을 때 그 때가 가장 중요한 때라고 여러 차례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중요하다고 하냐 하면, 그게 공부가 잘못 되어 가지고 그런 것이 아니다 이것입니다. 그동안 공부해 가지고 한 고비 넘어갈려고 할 때에 그러한 경계를 만나게 된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흔히 그렇게 되면은, 그런 경지를 만나면 “하! 내가 업장(業障)이 두터워 가지고 영 공부가 안 되고, 이거.... ” 그래 가지고 짜증을 내고 번뇌심을 내고 한탄을 하고 그러는데 그렇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이것입니다.
‘인제 내가 이 고비를 잘 넘김으로써 공부가 한 계단 더 높이 올라간다. 그러한 중요할 때를 만났다’ 이렇게 생각을 함직하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경계를 만나면 절대로 짜증을 낼 일이 아니라 지혜롭게 그것을 대처를 하는데, 어떻게 하면 그것을 지혜롭게 대처를 하는 것이 되느냐?

첫째, 짜증을 내지를 말 것이고, 둘째는 그럴 때에 단전호흡(丹田呼吸)을 잘해서 그 고비를 넘기고,
또 혼침이 와 가지고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때에는 조용하게 일어나서 밖으로 나와 가지고 일직선으로 한 50미터나 30미터쯤 이렇게 직선으로 적당한 장소를 딱 정해 가지고 꼭 그 직선상으로만 왔다갔다 하면서, 한 10분 이렇게 왔다갔다 하면서 그 가운데에 화두를 들도록.

그러면 혼침도 없어지고 또 가슴이 그렇게 답답하고 몸이 뒤틀리고 그런 것도 다 없어지고 그래서 상쾌해지면 다시 또 자기 자리에 와서 정진을 하고,
또 정진을 하되 한 얼마 동안 괜찮으면 괜찮을 때까지 고대로 쪽 정진을 하고,

또 답답하고 못 견디면 또 단전호흡을 해서 얼마 동안 그놈을 단속을 해서 고비를 넘기다가,
그래도 영 답답하고 골이 아프고 먹먹하고 지루하고 해서 잘 안되면, 또 가만히 또 나와서 포행을 하고 이렇게 해서 그 고비를 넘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을 하다 보면 다시 깨끗하게 성성적적하게 화두가 현전(現前)하고, 순일하게 정진이 되어 가는데,
그전에 보다 훨씬 공부가 수월하게, 화두를 들려고 애를 쓰지 아니해도 화두가 일상생활 속에서 순일하게 들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무한한 공력을 들이고, 무던히 끈기 있게 이 고비를 넘기기를 수없이 이렇게 닦아 가는 것입니다.(21분30초~36분3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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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화소산전설천기~’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 함허득통 설의(說誼) 게송 참고.
*천기(天機) ; ①매우 중대한 기밀. ②만물을 주관하는 하늘이나 대자연의 비밀. 또는 신비.
*누설하다(漏泄-- 샐 루/샐 설) ; 은밀히 알리다.
*수풀 ; ①풀이나 작은 나무, 넝쿨 따위가 한데 엉킨 곳. ②나무가 울창하게 가득 들어찬 곳.
*무생(無生) ; ①생멸(生滅)을 벗어난 절대의 진리. 생멸(生滅)이 없는 도리. 곧 불생불멸하는 진여법성(眞如法性)을 알고 거기 안주하여 움직이지 아니함. 무생법인(無生法忍).
②아라한(阿羅漢) 또는 열반(涅槃)의 번역어. 번뇌를 없앤 경지를 말함.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삼동안거(三冬安居) ; 삼동(三冬, 겨울철의 석 달)에 하는 동안거(冬安居, 음력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말한다.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걸망 ; 물건을 담아서 등에 질 수 있도록 만든 자루 모양의 큰 주머니.
*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를 떠나서 선(禪)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함.
*여일(如一)하다 ; (사람의 언행이)처음부터 끝까지 꼭 같거나 변하지 아니하다.
*장자(長者) ; ①덕망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아 세상일에 익숙한 어른. ②큰 부자를 점잖게 이르는 말.
*우기(雨期) ; 일 년 중에 장마가 지거나 하여 비가 많이 오는 시기.
*탁발(托鉢 맡길 탁, 바리때 발) ; 도를 닦는 스님이 경문(經文)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보시를 받음.
수행자의 아집(我執)과 아만(我慢)을 없애고, 동시에 보시하는 이의 복덕을 길러 주는 공덕이 있다고 하여 부처님 생존 당시부터 행하였다.
*발우(鉢盂) ; 발(鉢)은 (산)patra의  음역어인 발다라(鉢多羅)의 준말로 식기, 우(盂)는 그릇을 뜻함. 음역어와 번역어의 합성어로, 수행승들의 식기를 일컬음.
*계절인즉슨 ; 계절로 말할 것 같으면.
*인즉슨 ; 자음으로 끝나는 체언의 뒤에 붙어, ‘~로 말할 것 같으면’의 뜻을 힘주어 나타내는 보조사.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파정(把定)하면 ~ 구름이 곡구(谷口)에 가로 놓인 것이다 ;
[참고]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제9 ‘일상무상분(一相無相分)’에서.
(금강경 본문)世尊 佛說我得無諍三昧人中 最爲第一 是第一離欲阿羅漢

- 야부 송(冶父 頌)  把定則 雲橫谷口  放下也 月落寒潭
- 함허 설의(涵虛 說誼)  不爲有邊所動 根境法中 無影迹 不爲無邊所寂 這邊那邊 應無虧 應無虧 月落寒潭 無影迹 雲橫谷口 把定 是 放行 是 把定放行 俱不是 一掃掃向三千外
*설의(說誼) ; 설의(說義). 의리(義理, 이유·도리)를 말함.
*자변나변(這邊那邊) ; 이쪽 저쪽.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거각(擧却 들 거, 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목석(木石) ; 나무나 돌과 같이 감정이 없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 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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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오장을 뒤집다 ; ‘오장(五臟)을 긁다’, ‘오장을 건드리다’와 같은 표현으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비위를 건드려서 기분 나쁘게 하다’라는 뜻.
*무심(無心) ; ①아무런 생각이나 감정이 없음. ②세속적인 욕망이나 가치 판단에서 벗어난 마음 상태.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선실(禪室)과 같은 말. ②‘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모공(毛孔 털 모/구멍 공) ; 털구멍. 털이 나는 작은 구멍.
*탄산가스(炭酸gas) ; 탄소와 산소로 이루어진 가스. 대기 중에 소량 존재하는 무색, 무취의 기체로 공기보다 약 1.5배 무겁다. 탄소를포함하고 있는 물질이 탈 때나 동물이 호흡할 때 생기며 식물의 광합성에 사용된다.
*혼침(昏沈 어두울 혼, 잠길 침)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질식(窒息 막을·멈출 질, 숨쉴 식) ; 숨통이 답답하거나 산소가 부족해서 숨이 막히게 됨.
*포행(布行) ;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한가로이 뜰을 걷는 일.
*율(率) ; 비율(比率).
* ; ①(주로 ‘없다’, ‘않다’, ‘못하다’ 따위의 부정어와 함께 쓰여)아무리 애를 써 봐도 도무지. ②더할 나위 없이 완전히. 또는 아주 심하게.
*대혜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대혜서(大慧書)·『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62()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 역설하였다.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80년 동안거해제 법문에서.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저 뒤에서 쭉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쑥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쑥 내쉰다, 내보낸다’ 이러한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Posted by 닥공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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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산화상시고원상인(蒙山和尙示古原上人) (1/5) 몽산화상이 고원상인에게 주신 말씀.
 
**전강선사(No.255)—몽산 01-1. 몽산시 고원상인(1) (임자72.06.10)
 
(1) 약 21분.
 
 
 
(2) 약 16분.

 

(1)------------------
 
일신진여행(一身眞旅行)이다  만사개무생(萬事皆無生)이다
나무~아미타불~
금조상별재(今朝相別在)다  사군역불견(思君亦不見)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우리 이 몸뚱이 하나 얻은 거, 몸뚱이 하나 얻어가지고 가지고 있는 거, 이거 참 허잘 것 없고 생각할 것 없고 믿을 것 없고, 뭐라고 도무지 이걸 가지고.

일신(一身) 그놈, 몸뚱이 그것—그 생겨난 조직체 전체를 한번 생각해 보면은,

 

숨 한번, 바람 한번 들어왔다 나가면 그만인 것이고.

그 모도 조직된 몸뚱이, 그 무슨 줄 같은 거 하나 뚝 떨어져 버리면 그만이고,

구녁 하나 어디 뚫어진 거 맥혀 버리면 그만이고.

 

세상에 허망한 몸뚱이가 이것이 또 나그네 생활을 해. 여행 생활을 해.

내 집, 따뜻한 내 방이라고 뭐 어디 있나? 그냥 이 몸뚱이가 이것이 그대로가 여행 나그네여.

 

내 고향을 내가—영원한 고향, 참된 고향, 이별이 없는 고향, 그 고향을 도무지 내가 찾들 못하고, 어디 나그네로 이렇게 있다 그말이여. 

 

만사(萬事)가 개부운(皆浮雲)이다. 생각해 보건댄 이 몸뚱이 이것 가지고 별별 짓을 다해 봤던들 뜬구름 있다가 휙 달아난 것이여. 구름 한 점 저 태허공에 띄어 있다가 휙 날라가 버린 거와 같해. 이렇게 무상한 이 몸뚱이여. 

 

금조상별후(今朝相別後)다. 이별이라는 게 언제 있느냐? 오늘 아침에 있다.

설사 100년을 산다한들 100년을 믿는 것이 그 어리석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여?

내일까장 살겠다고 믿어?

금조여 금조(今朝)! 그만 당장 언하(言下)여. 그저 있다 그만 이것 떠나버려. 구름같이 가버려. 

 

사군역불견(思君亦不見)이다. 아무리 그놈, 가지고 있든 나의 몸뚱이 내 낯반대기 그 내 것이라고, 모도 그저 내 권속. 별것이 다 내게 있다한들 그것이 다시는 못 만나고 다시는 못 봐.

내 낯반대기도, 요 몸뚱이 육신 몸뚱이 요거 얻은 거, 금생 몸뚱이 이거 얻은 거, 다시는 못 봐.

 

이건 또 고대로 생겨 나오나? 뭐가 되어 나올런지, 뭐 대갈빡에 뿔을 쓰고 나올런지, 똥구녁에다가 꼬리를 달고 나올런지, 무슨 뭣을 가지고 나올런지 알 수가 있어야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것이여.

그러니 항상 무상(無常)을—무상한 마음, 허망한 마음 이것을—이 마음을 가져야 된다.

 

무상하고 허망하고, 이것이 참 진짜 발심(發心)이여.

허망한 줄을 모르고 무상한 줄을 모르고 그만 이것 아주 항상 있는 줄 알고, 아주 내가 제일이고, 아상(我相)만 퍼 가지고 있고, 그 뭐여? 그래 될 것인가?

 

 

화두상(話頭上)에, 화두한 위에 유의부단(有疑不斷)이 시명진의(是名眞疑)다.

화두에는 의단(疑團) 하나 있는 것 밖에는 없다. 의심 하나, 알 수 없는 의심 하나.

 

그 꼭 알아야 하겠는데 웬일로 이렇게 알 수 없나? 그저 밥 먹으나 옷 입으나 일체처에 ‘화두 한 생각’ 하나뿐이지, 그 이외에 뭣이 있겠나?

 

화두 위에 또 유의(有疑)가 있어야 한다 그말이여. 화두한 위에 또 의심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얼마나 의심 하나뿐인가?

 

시명(是名)이 진의(眞疑)다. 화두 위에, 화두가 있어 가지고 끊어지지 않고 항상 거기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한 놈이 그놈이 이름이 진의(眞疑)다. 참의심이다.

 

 

저 홍콩서 온 선사(禪師)가 이걸 알아들어야 할텐데, 당초에 저렇게 와서 한 일주일 있으면서 꼭 설법을 배우고 법을 듣고 가겠다고 왔는데, 어떻게 할 수가 있어야지.

한문도 서로 쓴 것이 달러. 문법이 달러. 그대로 의미는 통하나 문법이 달라서 못하지만은, 나는 필법으로는 해본 예가 없어서 천하없는 외빈(賓)이 와도 필답(答)으로는 못해.

 

늘 묵언수좌(默言首座)가 있어서 해 주고, 그저 누가 있어서 해 주고 이래서 내 말 듣고는 고대로 써서 해 주고 이랬지.

내가 직접 편지 한 장을 써서—편지 한 장을 옳게 못 쓰니까, 평생 그저 자(묵언수좌)가 내가 불러주면 쓰지.

 

한국을 척 나와서 몇 군데 큰절을 가니까 ‘전강 스님을 찾아가 봐야 한다’고 이렇게 왔으니, 당초에 무슨 설법을 어떻게 해줄 수가 있어야 하지.

 

 

이건 들었으면 좋지만은 이 화두 해 나가는 방법.

바로 달마 스님이 동토(東土)로 건너와서 달마 스님 후손, 이 몽산 스님이 몽산법어(蒙山法語) 해 놓은 거, 말세에는 적절하거든. 말세 불법은 이 법 아니면 못해.

 

이것 내놓고는 하지를 못해. 관(觀)이 되야 하지? 관선(觀禪)인데, 그전 달마 스님 때는 그 관심일법(觀心一法)이라 했거든.

관선인데, 관선이 내나 하야 관(觀)이 의단(疑團)이지. 모르면 의심이니까. 알 수 없으면 의심이고.

 

바로 봐 버리면, 뭐 의심이 그 뭐 있나? 무슨 의심이 거기에 있어?

 

화두 해 나가는 법 하나, 이것 만들어 놓은 것이 선문촬요(禪門撮要)인데, 선문촬요 한 권이면 그만이지 뭐 다시 뭐 더할 것이 어디 있나?

 

의단독로(疑團獨露)해서, 화두 위에 의심이 있어 가지고는 끊어지지 않는 것이 이것이 참 진짜 화두다.

아무 것도 없으니까, 화두란 자체가 알 수 없는 것 뿐이여.

 

그 알 수 없는 그것이 왜 ‘안된다’고 할까? ‘안된다’고 하는 원인이 어디 있나? 그 안되는 것이 원인이 어디 있는가 그걸 생각해 봐.

 

무상(無常)한 마음이 없어서 발심(發心)을 못해. 이 몸이라는 것이 금조(今朝)여, 금조(今朝)에 이별이여.

 

 

이렇게도 이 몸뚱아리 생긴 조직체가 피로, 물로, 살덩이로, 이리저리 얽허져 있는 것이 그 모두 그 핏줄이—그나저나 병원에 가보면 그 (신체 모형) 한쪽만 만들어 놓은 것 속에 모든 핏줄 좀 봐.

그 가는 핏줄, 실오리줄 고것 하나만 어디가 똑 떨어져도 그만이여.

 

이까짓 놈의 몸뚱이를 글쎄 뭣을 믿을 것이 있는가 말이여. 아무 것도 믿을 것이 없는 몸뚱이인데.

 

‘그 몸뚱이가 그렇게도 허망하고 믿을 것이 없는 것’을 바로 믿어 버리고, 바로 이렇게 무상을 깨달라 버리면은 화두 밖에 할 것이 더 있나? 화두가 의심이 안 날 수 있나?

 

깨달랐는가 어디? 깨달라야 될텐데.

화두는 아는 것이 아니여. 요렇게 ‘옳지!’ 이거 아는 건, 그건 화두가 아니여. 아는 것은 참선도 아니고.

 

탁! 그만 대오(大悟)가 있어. 반드시 깨달음이 있다 그말이여.

 

 

약의일상소시(若疑一上少時)하고, 만약 처음에 화두를 들어서, 공부를 척 거각(擧却)해 들면은 소시(少時)하고, 잠깐 있고.

(화두를 들고) 있을 때 ‘이뭣고?’,  잠깐 ‘이뭣고?’가 있다가는 금방 없지.

판치생모(板齒生毛)? 판때기 이빨에 털 나? 어찌 판치생모? 금방 (화두가) 없어. 금방 하나 해 놓고는 금방 없어.

 

또 우무의자(又無疑者)여. 이놈을 그만 없애 버린 뒤에는 찾을라고 또 화두를 다시 거각할라고 해도 안돼.

그 망상이 그만 쩔려서, 그 모든 놈의 망상이 그만 심지(心地)에 가서 전면의지(纏綿意地)해서, 뜻에 가서 모도 얽혀서 안돼.

 

화두를 찾을라고만 하면 점점 더 망념이 더 일어난다 그말이여. 이런 놈의 꼴이 있나?

비진심발의(非眞心發疑)다. 그것 진심발의(眞心發疑), 진심으로 발심한 것이 아니어서 그리어.

 

참으로 발심을 해 놓고 봐라. 뭣을 할 것이냐? 할 것이 무엇인가?

친척 여의고, 고향 여의고, 다 떼버리고 단신 몸으로 척 나와서 글쎄 이거 어째? 놀래야 놀 수 있어? 안 할래야 안 할 수 있어?

 

어떻게 조끔만 화두 그만 안 해도 불안해서 못 살아. 화두가 없어도 불안해서 못 살아.

항상 화두 그놈이 자리가 잡혀서 항상 거기에 그 자리에 그냥 그대로 있다.

 

화두가 자리가 잡혀야지? 쪼끔 하다 말고, 금방 하다 말고, 또 앉다가 그만 금방 하다가 그냥 뿡 일어나고, 조끔만 모도 백지(白地) 일어나고, 그저 그만 금방 조끔 하다 갔다왔다,

 

똥구녁이 좀 썩도록.... 7개 포단(七個團)을 뚫었을까? 좌선객(坐禪客)이 되었으니 기위(爲) 좌선을 하러 나왔으니 좌선이 목적 아닌가?

쪼끔 더웁다고 그만 휙 일어나고, 조끔 밖에 그만 뭐 생각이 나서 쫓아 나가고, 이것 그 학자들 흉 본 것 같지마는 참 아무 것도 아니여. 

 

진심발의(眞心發疑)가 되어 그렇다. 참마음을 발(發)해 보아라. 이 무상한 것을 바로 발해 보아라.

 

이 더러운 송장 요것을 몸뚱이인줄 알고는 뒤집어쓰고, 아주 그 살았다고 대갈빡 내두르고, 뭔 겨를이 있어 그저 꺼떡하면 그만 어디 놀러나 가고, 또 돌아댕기면서는 경계나 팔리고.

아무 것도 아니다. 발심(發心)을 못해서 그런 것이다.

 

속주작(屬做作)이다. 요것이 주작선(做作禪)이다. 억지로 한 것이다 그말이여.

화두를 참으로 진심으로 한번 해 보지를 못하고는 속주작이여. 주작을 해. 괜히 껍딱으로만 해본다 그말이여.

 

한철 그녀러 것이 그만 휘딱 달아나 버리지.

모아서 몇 철 지낸다고 지내봤던들—그 석 달에 견성(見性)도 능히 할 것이언만, 석 달 휘딱 달아나 버리지. 해 봐. 마찬가지지.

결제한 날이나 해제한 그날이나 다를 게 뭐 있나? 똑같애.

 

시고(是故)로 요렇게 공부를 하기 땀세, 요렇게 진발(眞發)을 못하고 거짓 그만 주작(做作)을 하기 때문에,

이런고로 혼침도거(昏沈掉擧)가 혼침(昏沈)과 잠. 첫째 앉으면 그만 잠,

앉으면 그만 이러고 자네 이렇게. 앉으면 이러고 자고 앉었어. 단 1분도 안 하고 이러고 자.

 

이것 되겠는가? 무슨 마음으로 출가해서 왜 여기 들어와서 공연히 그 공송세월(送歲月)을 해 나가면서 갖다 준 밥만, 해다 준 옷만 입고, 이렇게 그만 시은(恩)을 짓냐 그말이여.

시주(施主) 은혜가 어떤데? 시주 은혜를 갚을라고 생각을 해 봐야 할 것 아닌가.

 

아! 그놈 먹을 때 좋으니깐 퍼먹어 놓고는 갚을 때는 생각도 안 해.

아무리 시은을 할애(愛)해서, 그 많이 감해 버리고 할해 가지고 계산을 하드래도 일미(一米)가 칠근(七斤)이다. 쌀 한 냍끼가 그놈이 그 근수(數)가 일곱 근이나 된다.

 

그놈 그대로 도(道)도 닦지 않고는 퍼먹어 놓고는 갚을 때는,

가서 인자 갚아 보지? 그놈 갚을 때는 어쩔 것인고? 돈으로 갚나? 뭐 쌀로 갚나? 이건 몸뚱이 죄고(罪苦)로 갚지.

 

“너 이놈, 그러한 그 시주것을—그 농부가 애쓰고, 소가 땀 흘리고, 일체 짐승이 모도 그 농사질 때에 쌀 한 낱개 될 때에 한량없는 목숨 죽고 그 피 흘리는 살생이 기가 맥혀—그놈 퍼먹고는,

이놈 가만히 앉어서 잠만 자고 망상(妄想)만 부리고, 못된 망상 속에서 별별 거족동념(擧足動念) 죄만 짓고 이놈 갚아야 할 것 아니냐?”

 

“받아라 이놈아. 달게 받아”하고는 그저 그만 쇠 철환(丸)이나 쇳물이나 갖다가 들이붓고 어쩌? 안 그래? 그놈으로 받지 무슨 돈, 쌀로 받나?

 

말만 이러면 듣지, 그만 잊어버리네. 법문으로 알아버리고 들어버리고 말아 버려.

실지가 이런 것을 바로 알아야지.(처음~20분59초)

 

 

(2)------------------

 

그래서 앉으면 혼침(昏沈) 밖에는 들어온 것이 없고, 또 혼침 그놈 조금 나가면은 또 도거(掉擧)란 놈이 들어와서—도거라는 것은 생각이라도 '못된 망상', 그게 도거여. 그 쓸데없는 망상심 모도 고것이 들어온다.

 

개입작득(皆入作得)이여. 한 시간 앉었으면 한 시간 내 그뿐이여. 한 시간에 참선(參禪)은 뭐 어디 1분도 2분도 안돼.

가짜로 하니까 되아? 주작으로 하니까 되아? 그러니 모도 그만 개입작득을 해.

 

들어와서 모도 작득(作得)해 가지고는 아! 이놈이 가만히 앉었으니까는,

그 갔다왔다 하면서 뭐 일이라도 하고 어디 무슨 이러면— 도거가 와서 뭐 거까장 생각할 것도 없고, 그저 금방 생각난 대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지마는,

 

가만히 앉어서, 참선한다고 앉어도 참선은 간 곳 없고 화두는 없고, 도거(掉擧)란 놈이 들어와서 작득주(作得主)를 해 가지고는 별 생각을 다 한다.

 

 

이 서호당 보지. 서호당 역사 내가 어릴 때 내가 다 알고, 지금 내가 화장(葬)까지 다 하고 그랬는데 뭐 말할 거 있어?

 

변산 내소사 절 주지(住持)로 40년 하면서 삼백석지기를 모았네. 거 무척 모았지.

그 내소사 절이 부찰(富刹)이니까는 산에서 생긴 수입이 있고, 불공 수입이 있고, 토지 수입이 있고, 밭에 수입이 있고, 모도 불공 시주 수입이, 재(齋) 들고, 이런 수입을 모아서 삼백석지기를 자기 논 딱! 사 놓고.

 

주지가 떨어졌네. 삼백석지기 그놈 아낄라고—자기가 벌어 놨으니까 그놈 먹고 지내도 넉넉할 테지만은 그놈은 하나도 손도 대지 않고는 자기 앞으로 소유 내 놓고는 백양사 선방(禪房)에 척 들어가서 참선하는데,

참선 하고 앉었으면 뭐 방선(放禪)할 때까지 잠 한숨 안 졸지. 가만히 앉어서 참선을 그렇게 잘 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속에 참선이 그놈이 참말로 화두가 독로(獨露)해서 그렇게 1시간이라도 잠을 안 자고 했으면 하는데,

‘논 삼백석지기 내년에는 지상 수입 그놈, 땅 내면 돈 얼마면 순창 뜰 그 좋은 놈 상토(上土), 그놈 몇 마지기 아무개 것 그놈 내가 사야겠다’

 

요런 놈의 계산하다 보니 1시간이 휙 달아나네, 휙 가고. 언제 뭐 잠잘 겨를 있나?

그 모도 도거(掉擧)란 말이여. 도거! 참선방 앉아 놓으니까 인자 고런 놈이 생각나. 요렇게 한 철을 했다.

 

한 철을 하다가 병이 났다. 병이 나서 죽을 병이 나서 자기 본산(本山)으로 갔네. 본산이 어딘고 하니 순창 구암사인데, 구암사를 가 가지고 병을 앓는다. 천신만고를 앓다가 죽었네.

염라국을 갔다. 가니까 주욱 평생에 그 독(獨)살림 하던 것과 그 모도 돈벌이 하던 것 전체가 저 극장에 필림 돌아간 것 같애. 환하니 찍혀서—염라국이라드니, 저울대라든지 거기에 뭐 일생 지낸 필림같이 조옥 다 있어.

 

그 재산을 가지고 마지(旨) 한 불기(器) 부처님한테 온당 올린 것 없고, 그만 들어오면 그만 이리저리 모도 해서 제 돈만 만들고 한 것이 환히 나타난다.

 

그래 가지고는 “네가 저렇게 죄를 많이 지었으니 네 지옥고가 솔찬히 무겁게 되었다. 10년은 받어야겠다”

그 지옥 10년이면 인간의 몇백만 년이여. 그 10년이 인간 10년이 아니여. 한 10년 그 뭐 징역살고 나오면 마찬가지게? 그거 아니여.

 

“10년을 살테로되 네가 이 선방에를 들어왔다. 참선하는 선방에 들어와서 참선을 한다고 한 것이 참선은 않고, 네 돈 계산만 하다가 시간을 마치고 다 이랬다마는 그래도 그 선방에 좀 들어온 공덕이 있어.

선방에 들어와서 참선한다는 공덕이 있어. 그 참선 공덕으로써 3년을 감해 준다. 3년은 감해 주고 7년을 네가 지옥고를 받아라” 염라대왕의 언도가 턱 내렸다.

 

인자 감옥 7년 지옥고 받으러 옥(獄)으로 인자 들어갈 판인데,

 

“네가 그래도 부처님 앞에서 중노릇을 한다고 그렇게 40년 동안 그 부처님 돈 갖다 네 돈 만들어 놓고 모도 그랬지마는, 그래도 네가 그저 중질한 공덕이 있으니까, 네 이 길로 나가서 지금이라도 발심(發心)을 해라.

그 탐심, 탐착 그 마음을 네가 버리고 발심을 해서 파재간탐(破財慳貪)을 해라. 파재간탐은 네 여태까장 모아서 논 사놓고 밭 사논 놈을 쏵 가서 파재(破財)를 해라.

 

파재간탐을 해서 가난한 사람 이리저리 주기도 하고, 불전헌답(佛前獻畓)도 하고, 부처님한테 모도 헌답해 버리고, 쏵 없이 해 버리고, 그래 그 다음에 들어오니라. 그 다음에 들어오면은 7년 지옥도 감해 줄 수가 있다. 잘 가서 해라”

아! 그런 부탁을 염라국(羅國)에서 역력(歷歷)히 했다. 염라대왕이 바로 해 주고.

 

“그럼 이 길로 가거라”하고 내보냈는데 옥문(獄門) 밖에 나와서 깼어.

깨 가지고 보니까 꿈이지. 그 죽었지만은 꿈이여. 죽어서 열반종(鐘)까장 쳤는데 꿈이여. 대중은 다 '죽었다'고 열반종까장 쳤는데 꿈이라 그말이여.

 

그러면 그 꿈이 아니고 죽었다 살아났으니깐 참 그대로가 실제인데, 그놈 다 팔아서 어떻게 좀 이리저리 방매(賣)할 것 방매해서 보시도 좀 하고, 불전헌답 모도 해서 선방도 좀 맨들고, 아 이렇게 했으면 쓸 것 아닌가?

 

‘아! 이렇게 이번에 내가 이런 꿈을 꾸었는데, 이게 옳은가, 그른가? 이게 참인가, 거짓인가?

또 살아나면은 먹고 살아야 하고 부자가 되야 할텐데, 이거 없애버리면 어떻게 해?’

 

아 그 마음이 들어 가지고 영 그것 꿈으로 알아 돌려보내 버리고는 살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뭐 살기는 뭣을 살아? 그 뒤에 불과해야 며칠만에 돌아가셨어. 죽었어. 그 여지없이 지옥 갔지. 틀림없지.

 

이러한 간탐심(慳貪心), 중노릇을 해도 발심(發心)을 못하고 헛되이,

틀림없거든. 응 틀림없어. 이것 다시 두말 할 거 뭐 있나? 이까짓 놈의 몸뚱이가 금조(今朝)에 잊어버릴는지를 모르니, 당장에 그만 갈 것이니 그 같은 걸 생각할 게 있나?

 

다맛 진심발의(眞心發疑)를 해서, 참마음을 발해서 진심으로 도만 닦아 봐. 천하에 무슨 그까짓 놈의 삼백석이 뭣이여? 어디 제천(諸天)이 여의식(與衣食)인데.

이렇게 어리석다. 그 중생의 어리석은 거, 발심을 못하니 어리석어.

 

주작(做作) 그러니 주작심(做作心) 밖에 없어서 진짜가 아니기 따문에 가짜로 하기 따문에 화두가 들어오들 안 해. 왔다가도 곧 가버려.

도거(掉擧)가 들어오고 혼침(昏沈)이 들어와서 주재를 해 가지고 이 모냥으로, 이것 뭐 한 철 해도 그 모냥, 두 철 해도 그 모냥, 백 철을 하면 뭣 해. 일생을 하면 뭣 할 것이냐.

 

앉는 자리에 좀—얼른 나갔다가도 ‘아이고, 어서 가서 내 자리에 앉어야겠다’—가서 그저 등줄기 땀이 나든지, 똥구녁에 땀이 나든지 그까짓 것도 불구하고 척 앉어서, 안벽관심(眼壁觀心)하고 수기척량(竪起脊梁)하고 정신차리고 앉었다.

 

또 혼미(迷)하면은 일어나서 잠깐 둘러 또 들어와서 앉어서 또 찾고. 이것 좀 자리가 잡혀야지.

공부한다는 사람들이 화두가 좀 잡히고, 조직체가 좀 화두 하는 모냥다리가 좀 되야지? 이것 뭐, 다시 뭐 참선이여 뭣이여? 좌선객(坐禪客)이여 뭣이여?

 

좌선객 아닌 사람—세상에서 그저 부모 모시고 살면서, 자식 낳고 살면서 한 사람들이야 그 말할 거 뭐 있어? 그런 사람들 하는 것이야.

그렇게 요중선(中禪)하는 사람들이야 그 말할 것 없지 뭐. 근기(根機)도 그런 근기가 없고, 그러면서 대도(大道)를 통한 사람이야 더 말할 것 없지.

 

우리 출가한 승려 분상(分上)에, 우리 선객 분상에야 그럴 수가 있냐 그말이여.

그 경허 큰스님도 칼을 받쳐 놓고는 3년을—이러고 앉어서 3년을.

태고보우(太古 普愚) 선사는 어쨌으며, 우리나라 첫 건너 온 보우 선사는 어쨌냔 말이여. 백일씩을 정해 놓고는 백일만에 또 회향하고 또 하고, 백일 또 그 정진.

 

다 그래서 석가모니불 부처님은 얼마나 용맹스럽게 닦았으며, 고인(古人)의 자취를 좀 봐야 할 것 아닌가.

요새 참선한다고 참선객? 내가 이런 시비를 안 할 수 있어?

 

모도 혼침 도거란 놈이 들어와서 작득주(作得主)를 해 가지고 요 모냥 되어가지고 앉었으니 되는가 말이여. 안된다.

미륵하생(勒下生)까장 해 봐라? 미륵하생이 육억 칠천만년이래야 미륵하생이 오는데 육억 칠천만년을 해보란 말이여. 되는가?

 

앞으로써 한 7천 년만 오면은 삼재(三災) 들어와 버리는데, 삼재 그 속에 빠져 버리면은 다시는 나올 기약도 없다. 언제 나와?

그놈 삼재 속에 들어가서, 뭐 몸뚱이가 있어야 받아 나오지. 인신(人身)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데.

세계가 물 끓고, 불이 끓고 막 그만 뒤집어져 가지고는 뭐 몸뚱이 받아날 수 있나?

 

그 가운데에 몸뚱이만 못 받아 났지, 우리는 없나? 낱낱이 더 있지. 더 있어.

그놈의 몸뚱이 요까짓 육신(肉身)만 없지, 업신(業身)이 있어 가지고 그 업신으로써 몸뚱이 받을 때 없이 돌아다니면서 그 고통받을 것을 생각해 봐.

 

언제 어디가 태어날 것인가? 또 그놈의 삼재 지나간 뒤에는 육억 칠천만년이 닥쳐와서 미륵회상(彌勒會上)이 된다한들 미륵회상에 참례(禮)해? 뭣을 참례해?

 

참례할 공덕을, 참선을 해서 무슨 득력(得力)을 했나? 견성(見性)을 해서 사사무애(碍)도 증(證)했나? 그때 날만한 무슨 공과가 있나?

 

공부를 할라면은 참공부인이 한번 되아버려야 한다.

네가 한번 그저께 읽든 것 읽어라.(21분8초~36분58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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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一身眞旅行  萬事皆無生’ ; [청허당집(淸虛堂集)] 2권 ‘送英庵主出山(산을 나가는 영암주를 보내며),  一身眞逆旅  萬事皆浮雲  如見鴟爭鼠  高飛愼不群’ 참고.

*(게송) ‘今朝相別在  思君亦不見’ ; [청허당집(淸虛堂集)] 2권 ‘送芝師(지사를 보내며),  今朝相別後  消息幾時聞 明日秋雲隔  思君不見君’ 참고.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자의식.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망상.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외빈(賓)외부 외국에서 찾아오는 귀한 손님.

*필답( 글씨 필/대답 답) ; 글로 써서 대답함.

*묵언수좌(默言首座) ; 송담(松潭) 스님의 별명. 10년간 묵언을 하며 수행을 해서 '묵언수좌'라는 별명이 생김.

*달마 스님, 몽산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 원(元)나라 몽산 스님의 법어로 참선 수행의 구체적인 길을 자상하게 제시하였다.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 ‘몽산법어’가 있다.

*관심일법(觀心一法) 총섭제행(總攝諸行) ;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포섭한다.
[참고] 『선문촬요(禪門撮要)』 (경허선사 編) ‘달마대사 관심론(達摩大師觀心論)’에서.

慧可問曰  若有人 志求佛道 當修何法 最爲省要

師答曰 唯觀心一法 摠攝諸行 名爲省要
問曰 云何一法 摠攝諸行
師答曰 心者 萬法之根本也  一切諸法 唯心所生  若能了心 萬行俱備
猶如大樹 所有枝條 及諸花菓 皆悉因根 栽樹者 存根而始生 伐樹者 去根而必死
若了心修道則 省功而易成 若不了心而修道 乃費功而無益
故知一切善惡 皆由自心 心外別求 終無是處
 
혜가(慧可)가 여쭈었다.
“불도(佛道)를 얻고자 하면 어떤 법(法)을 수행하는 것이 가장 간결하고 요긴하겠습니까?”
달마대사께서 대답하였다.
“오직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포섭하나니, 이 법이 가장 간결하고 요긴하다”
 
“어찌하여 한 법이 모든 행을 다포섭한다고 하십니까?”
“마음이란 온갖 법의 근본이요 일체의 법은 오직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알면 만행(萬行)을 다 갖추게 된다.
이를테면 큰 나무의 가지와 꽃과 열매 등이 모두 뿌리로 말미암아 있으니, 나무를 가꾸려면 뿌리를 북돋우어야 비로소 살 것이요, 나무를 베려면 뿌리를 없애야 반드시 죽는 것과 같다.
만약 마음을 알아서 도를 닦으면 노력은 적게 들어도 쉽게 이루어질 것이요, 만약 마음을 알지 못하고 도를 닦으면 헛수고만 하고 이익은 없으리라.
그러므로 모든 선과 악은 다 자기 마음에서 생겼으니, 마음 밖에서 달리 구하면 끝내 옳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선문촬요(禪門撮要) ; 한국 선종의 중흥조인 경허성우(鏡虛惺牛, 1849~1912) 선사가 선(禪)을 공부할 때 지침으로 삼을 글들을 모아 엮은 책. 상하 2권.

상권에는 달마대사의 『혈맥론(血脈論)』 『관심론(觀心論)』 『이입사행론(二八四行論)』, 오조홍인(五祖弘忍) 대사의 『최상승론(最上乘論)』,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의 『완릉록(宛陵錄)』 『전심법요(傳心法要)』,
그리고 몽산덕이(蒙山德異) 스님의 『몽산법어(蒙山法語)』, 박산무이(博山無異) 선사의 『선경어(禪警語)』,
하권에는 고려 보조지눌(普照知訥) 스님의 『수심결(修心訣)』 『진심직설(眞心直說)』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 고려 진정국사(眞靜國師) 천책(天頙) 스님의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 『선문강요집(禪門綱要集)』, 서산휴정(西山休靜) 스님의 『선교석(禪敎釋)』이 있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전면의지(纏綿意地 얽을 전/얽힐 면/뜻 의/땅 지) ; 마음의 밭에 얽히고설켜.

[참고]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보조국사(普照國師)의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에서.
無始習熟  愛欲恚痴纏綿意地  暫伏還起  如隔日瘧  一切時中  直須用加行方便智慧之力  痛自遮護  豈可閒謾  遊談無根  虛喪天日  欲冀心宗而求出路哉.
비롯함이 없는 옛적부터 익혀 온 애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마음에 얽히고설켜서, 잠깐 조복 되었다가 다시 일어나는 것이, 마치 하루 걸러 앓는 학질병과 같으니라.
어느 때에나 모름지기 바로 수행을 더하는 방편과 지혜의 힘을 써서, 간절히 스스로 막아 지켜야 하거늘,
어찌 한가하게 근거 없는 잡된 이야기를 하여 헛되이 세월을 보내고, 마음의 근본을 깨닫기를 바래며 생사 벗어나는 길을 구하고자 하겠는가?
*백지(白地) ; 아무 턱(마땅히 그리하여야  까닭이나 이치)도 없이.
*7개 포단(七個團)을 뚫었을까?’ ; ‘7개의 방석을 뚫었을까?’
[참고] [고봉화상 선요(高峰和尙 禪要)] ‘시중(示衆) (其二十)—20. 대중에게 보임’에서.
嗟乎  末法  去聖時遙  多有一等泛泛之流  竟不信有悟門、
但只向者邊穿鑿  那邊計較  直饒計較得成  穿鑿得就 眼光落地時  還用得着也無、
若用得着  世尊  雪山六年  達摩  少林九載  長慶  坐破七箇蒲團  香林  四十年  方成一片  趙州  三十年  不雜用心  何須討許多生受喫、
更有一等漢子  成十年二十年  用工  不曾有箇入處者  只爲他宿無靈骨、
志不堅固  半信半疑  或起或倒  弄來弄去  世情  轉轉純熟  道念  漸漸生疎  十二時中  難有一箇時辰  把捉得定  打成一片、
似者般底  直饒弄到彌勒下生  也有甚麼交渉。
 
아! 슬프다. 말법에 성현과의 시대가 멀어져서 한결같이 꼼꼼하지 않고 조심성 없는 무리들이 많이 있어 깨달음의 문이 있는 것을 끝내 믿지 않는구나.
단지 여기에서 천착(穿鑿)하고 저기에서 계교(計較)하니, 설령 계교하여 이루게 되고 천착하여 성취되었더라도 눈빛이 땅에 떨어질 때(죽을 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만약 소용이 있다면 무엇 때문에 부처님이 설산(雪山)에서 6년 고행하시고, 달마대사가 소림굴에서 9년 면벽하시고, 장경 스님이 앉아서 방석이 7개나 헤지도록 좌선하시고, 향림 스님이 40년만에 비로서 일념(一念)을 이루시고, 조주 스님이 30년 동안 잡되게 마음을 쓰지 않으시면서, 허다한 고생을 하였겠는가!
 
또 어떤 무리들은 10년, 20년이 되도록 공부를 하였으되 깨달은 것이 없는 것은, 그가 전생에 선근이 없기 때문이다.
뜻이 견고하지 않고,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며 이럭저럭 세월을 보내니, 세상의 정(情)은 더욱 익어지고, 도(道)에 대한 생각은 점점 생소해져서 24시간 중에 한 시간도 선정에 들어 일념을 이루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놈들이 미륵불이 하생함에 이르도록 제멋대로 공부하더라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기위(爲) ; 이미. 벌써.
*주작(做作 지을 주/지을 작) ; ‘없는 사실 꾸며 만듦’의 뜻으로,
화두를 들 때 무상(無常)을 느껴 발심(發心)을 해서 의심이 끊어지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지 아니하고 의심을 한 번 잠깐하고 또 의심함이 없으면 진심(眞心)으로 의심을 발한 것이 아니고 억지로 한 것이어서 주작이라고 한다.
*껍딱 ; ‘껍질, 껍데기’의 사투리.
*견성(見性) : ‘성품(性)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도거(掉舉) : 혼침의 반대인데 산란(亂)이라고도 한다. 정신을 머트럽고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마음작용.

*공송세월(空送歲月)하는  없이 세월 헛되이 보냄또는  세월.

*시은(施恩) ; ①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은혜. ②은혜를 베풂.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할애(愛)하다(사람이나 조직 소중한  다른 사람에게나 )떼어 주다.

*일미칠근(一米七斤) ; ‘쌀 한 톨을 생산하기 위해 농부가 흘리는 땀의 무게가 일곱 근이다’라는 말로,

쌀을 비롯한 모든 생산물이 매우 소중하고 귀한 정성이 들어간 것임을 알고, 또 그럼으로써 그것들에 감사하고 아껴야 한다는 뜻을 나타낸다.

*시주것(施主것) ; 절이나 스님에게 조건없이 베푼 물건.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거족동념(擧足動念) ; ‘발을 들고(몸을 움직이고) 생각을 움직임’이라는 말로, 인간의 몸과 마음의 모든 일상 활동을 뜻한다.

*철환( 쇠 철/알 환) ; 쇠붙이로 잔 탄알같이 만든 물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

*쇳물높은  녹아 액체 상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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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①‘들(평평하고 넓게 트인 땅, 논이나 밭으로 되어 있는 넓은 땅)’의 사투리. ②전북 김제 지역에서 하천이 실어온 토사가 쌓인 충적평야를 일컫는 말.

*상토(上土)농사짓기에  좋은 조건 갖추고 있는 .

*본산(本山) ; 그 종파에 딸린 여러 절을 총괄하는 한 종(宗)의 근본 도장.

*독(獨)살림 ; ①부모 형제나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아니하고 따로 벌인 살림. ②암자나 작은 절에서 본사(本寺)에 기대지 않고 따로 사는 살림살이. ③대중 공유물인 절 재산을 개인 재산처럼 쓰는 살림살이.

*마지(摩旨) ; 부처님께 올리는 밥.

부처님께 올리는 밥은 대부분 사시(巳時), 즉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에 올린다. 이것은 생전에 부처님이 하루에 한 번 그 시간에 밥을 먹은 데서 유래한다.

사시에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마지 올린다’고 하는데, 한자를 풀이하면 (摩指, 摩旨, 磨旨) ‘손으로 만들어 올린다 혹은 정성스럽게 만든 공양을 올리오니 제 뜻을 감읍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뜻을 담고 있다.

*불기(佛器)부처님에게 올리는  담는 그릇.

*솔찬히 ; ‘상당히’ ‘제법’ 혹은 ‘아주 많이’를 뜻하는 사투리.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파재간탐(破財慳貪) ; 간탐(慳貪 물건을 아끼고 남에게 주지 않으며, 탐내어 구하면서 만족할 줄을 모르는 마음)으로 모은 재물(財物)을 깨뜨리는(破) 것. 그리고 그 재물을 널리 보시하는 것.

*불전헌답(佛前獻畓) ; ‘불전(佛前)에 전답(田畓)을 바침’으로 사찰에 양식을 공급하기 위한 논밭을 보시하는 것.

*염라국(羅國) ; 염라대왕() 다스리는  저승 뜻한다.

*역력히(歷歷-)자취 낌새 훤히   있게 분명하고 또렷하게.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열반종(鐘) ; 스님이 입적(寂 스님이 돌아가심)  치는 종.

*방매(賣) ; 물건 따위 내놓아 .

*제천(諸天)이 여의식(與衣食) ; 진심으로 도를 닦는 수행인에게는 천상에서 의식(衣食)을 준다, 제석천왕이 의식을 준다.

*안벽관심(眼壁觀心) ; 눈은 벽을 보고, 마음은 화두를 관한다.

*수기척량(竪起脊梁) ; 척추를 꼿꼿하게 세우다.

*모양다리 ;  모양새(-)’ 속되게 이르는 .

*좌선객(坐禪客 앉을 좌/참선 선/손님•사람 객) ; 좌선(坐禪),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요중선(鬧中禪)시끄러운 가운데 하는 참선. 동중선(動中禪)라고도 한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경허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삼재(三災) :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한다.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참례(參禮) ; 예식, 제사, 전쟁 따위에 참가하여 관여함.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사사무애(碍) ; 현상계의 제사상(諸事象)이 서로 융합하여 방해하는 것이 없는 것을 말함. 일체의 사물이 서로 상즉무애(相即無碍)인 것을 말함.
*증(證) ; ①증득(證得, 산스크리트어: adhigama 또는adhisajbodha). 증오(證悟).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하는 것 또는 깨치는 것을 말한다. 수행한 결과로 얻는 과보를 증과(證果)라고 하며, 최종의 증과는 성불(成佛: 부처가 됨)이다.
②증(證)은, 《대승의장》 제 10권에 따르면, 지득계회(知得契會) 즉 앎·증득·계합·깨침을 뜻하는데, 마음이 실성(實性)에 그윽히 잠겨서[冥] 분별을 잊고 실성(實性)에 계합하고 실성(實性)을 깨쳐서 실성(實性)과 평등한 상태에 있는 것을 말한다.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4. 11. 1. 17:01

§(251) (게송)사중구의원~ / 지금 이 찰나! '한 생각' 돌이켜서 ‘이뭣고?’ / 인생은 나그네, 세상만사 뜬구름 / 중생이 본래 부처다 / 최상승법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 있다.

조실스님 법문 가운데도 들으셨겠지만은 공부가 잘 안 된다고 짜증하거나 번민을 해서는 아니되고, 또 잘된다고 해서 기뻐하는 마음도 내지 말어라.
『일어나는 망상과 번뇌를 버릴려고 그러고, 쫓을려고 그러고, 억누를려고 하지를 말고, 그냥 고대로 놔둬 버리고 나는 화두만을 턱 추켜 들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지혜롭게 번뇌와 망상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오늘 법문을 들었으니까 오늘은 그럭저럭하고 내일 아침부터 하리라’ 그런 생각을 가지셨다면 그분은 벌써 틀려 버린 것입니다. 지금 이 법당에 앉어 있는 이 찰나! 이 찰나에 생각을 돌이켜야 합니다.
자기가 자기 1찰나, 1찰나를 단속할 때에 자기 생사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이지, 왜 그러냐 하면, 생사는 다른 데에서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생각’에서 생사(生死)가 생겨난 것입니다. ‘탐진치(貪瞋癡)’하지마는, 딱! 꼬집어서 말하면 생각이거든, ‘한 생각’이거든.  ‘오욕락(五欲樂)’해도 더 다그쳐 생각해 보면, 그것도 ‘한 생각’이여.  ‘천당’ 그것도 ‘한 생각’에서, 지옥도 ‘한 생각’에서.


‘이뭣고~?’하면, 그 속에 화엄경이 다 들었고, 팔만대장경이 다 들었고, 삼세제불을 친견하는 도리도 그 속에 다 들어있고, 육도윤회를 갖다가 끊어 버리는 도리도 바로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가사불사(袈裟佛事)를 하는 목적은 꼭 가사가 없어서 가사를 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이 가사불사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최상승법을 설해서 믿고 실천하게 해 드리는 데에 궁극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참선을 하는 사람은 가난해도 불행하지 아니하고, 부자가 된다고 해서 그렇게 꺼떡댈 것도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여유있고 느긋하고 멋지게—하나의 그 인생살이를 연극처럼 생각하고,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생각하고 살 수 있는 길이 이 참선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51)—84년 12월 첫째일요법회(84.12.02) (용251)

 

(1) 약 20분.

(2) 약 18분.


(1)------------------

사중구의원(死中求醫員)하고  영해억모심(嬰孩憶母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주공친절처(做工親切處)에  홍일상동령(紅日上東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사중구의원(死中求醫員)하고  영해억모심(嬰孩憶母心)이다.
죽을병든 사람이 의원(醫員)을 구하듯 그렇게 간절하게 하고, 어린 아이가 엄마를 생각하듯 하라. 이 참선(參禪)은 그만큼 간절(懇切)한 마음으로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做工親切處)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탐진치 삼독에 빠져 가지고, 오직 익히느니 그것만을 익혀 왔는데—탐진치 삼독(三毒)과 오욕락(五欲樂)만 익혀 왔는데,
금생에 그 속에서 그러한 집착과 애착으로부터 벗어나서 ‘참나’를 찾을려고 하니, 탐진치 삼독과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 이 오욕락은 무량겁을 익혀 왔기 때문에 안 할려고 해도 그것은 저절로 되어져 버리고,


내가 나를 찾는 이 참선은 할려고 해도, 화두를 아무리 들어도, 들으면서도 금방 딴 생각이 동시에 침범을 해 들어오고 들을 때 뿐이지 금방 없어져 버리고, 한두 번 해본 것도 금방 습관이 드는데 하물며 무량겁을 해온 그 습성이 일조일석(一朝一夕)에 그것이 없어질 수가 없습니다.

글씨를 쓰면, 벼루를 오른쪽에다 놓고 글씨를 쓰다가 한 서너 번 먹을 찍어다 쓰고서 그쪽이 불편하니까 그 벼루를 왼쪽에다 갖다 놓고는 인자 쓰기 시작하면은 글씨 쓰다가 먹을 찍으러 가는데, 자기 손으로 오른쪽에 놨던 벼루를 왼쪽에다 놨는데 금방 먹을 찍으러 가기를 오른쪽으로 가게 됩니다.
아까 몇 번 오른쪽에서 찍어다 썼기 때문에 벌써 그것이 습관이 되어 가지고, 분명 자기 손으로 왼쪽에다 옮겨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의식 중에 오른쪽으로 먹을 찍으러 간다 그말이어. 밥상에서 밥을 먹을 때에도 그렇고.

평상시에 자기집을 다니던 사람은 이사를 해서 동쪽에 살다가 서쪽으로 이사를 갔는데도 무의식 중에 간다는 것이 이사 간 줄을 깜박 잊어 버리고 동쪽으로 얼마 동안 가다가 ‘아! 내가 서쪽으로 이사를 갔는데, 내가 어먼 데로 가는구나’ 그런 예를 얼마든지 경험할 수가 있고.

술을 잔뜩 먹어서 완전히 인사불성(人事不省)이 되었는데도 그 취중에도 자기집을 찾아 오는 것입니다. 자기집인 줄 알고 남의 집의 침실에 들어가서 실수를 하는 예도 있다고 그럽니다마는, 무의식 중에도 평소에 익혀 놓으면 그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만큼 똑같은 일을 거듭해서, ‘거듭한다’고 하는 것은 나중에 그것이 습관이 체질화가 되고, 체질화가 되면은 무의식 중에 되게 되는 것입니다.
나쁜 업도 익히면 그것이 몸에 젖어서 체질화가 되고, 좋은 것도 자꾸 되풀이 해서 하면 그것이 습관이 되고 체질화가 되는 것입니다.


이 화두(話頭)도 처음부터 잘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동 잠이 안 오고 초롱초롱 하다가도 화두만 들고 할려고 하면 혼침(昏沈)이 오고, 아무 생각도 없이 괜찮다가도 화두만 들고 할라면 번뇌(煩惱) 망상(妄想)이 퍼 일어나고 그러거든.

참선을 해본 분이면 누구나 다 경험한 바시겠지마는 이 번뇌와 망상 그리고 혼침, 이것이 참선하는데 있어서 제일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인데,
이 잠이 오는 것과 망상이 일어나는 것만 없으면은, 그냥 화두를 한번 떠억 들면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한다면은 공부하기가 하나도 괴로울 것이 없을 것 같은데,

그것이 처음에는 잘된 듯 하다가 얼마 지나면은 뚝 변해 가지고 영 안 되고, 또 안 되지마는 계속하다 보면 또 잘되고, 잘되었다 안 되었다, 잘되었다 안 되었다 그러면서 수없는 고비를 넘다 보면,

나중에는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어지고, 망상을 안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망상이 끊어지면서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고 순수해 가지고 앉어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일을 할 때나 밥을 먹거나, 옆에서 떠들고 시끄럽게 하거나 말거나, 고대로 화두가 성성하게 들려진 때가 오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몸이 괴로운 줄도 모르고, 밤새 정진을 해도 괴롭고 피곤한 줄을 모르고 그렇다 그말이어.

그래도 ‘아! 인제 되었다. 참 좋다! 이러다가 빨리 툭 터졌으면’ 그런 생각을 하면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요. 오히려 공부를 갖다가 지지리 아홉 질 탑을 쌓는데, 여덟 질까지 쌓아 놓고 마지막 한 자 남겨 놓고 스스로 자기가 허물어뜨리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정진이 잘되어도 ‘잘된다’는 생각, ‘좋다’는 생각, ‘빨리 깨달았으면’하는 그러한 생각을 일으켜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그럴수록에 바다와 같이 깊고 태산과 같이 무거운 마음으로 한결같이 정진을 단속을 해 나가야 하는 게고.

또 공부가 영 잘 안 되고 화두가 잘 안 들리고, 혼침이 퍼 일어나고, 몸이 뒤틀리고, 시간이 5분이 1시간보다 더 지루하게 지내간다 하드라도 짜증내는 마음을 내지 말고,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도 들으셨겠지마는 잘 안 된다고 짜증하거나 번민을 해서는 아니되고, 또 잘된다고 해서 기뻐하는 마음도 내지 말어라.


그러면 망상이 퍼 일어날 때는 어떻게 하느냐?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 망상을 물리치거나 억지로 누를라고 허거나 쫒아낼려고 하지 말고, 그냥 일어나는 대로 고대로 놔둔 채 나는 ‘이뭣고?~’ 이렇게 자기의 화두만을 탁! 들어 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놈을 쫓아 버릴려고 그러고, 억지로 누를려고 하면은 화두가 잘 들리기커녕은 ‘누를라고 하는 그 망상’이 하나 더 일어나게 되는 게고,
일어나는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그 파도를 없앨려고 손으로 누르거나 손으로 갖다가 없앨려고 하면은 새로운 파도가 일어나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이것이 공부해 나가는데 아주 간단하고도 묘한 방법인 것입니다.
『일어나는 망상과 번뇌를 버릴려고 그러고, 쫓을려고 그러고, 억누를려고 하지를 말고, 그냥 고대로 놔둬 버리고 나는 화두만을 턱! 추켜 들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지혜롭게 번뇌와 망상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하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아셔야 하고.

혼침(昏沈)이 올 때는 어떻게 하냐?
눈을 힘을 주어서 눈을 부릅떠도 눈텡이가, 눈 위에 껍데기가 천 근이나 되게 무겁게 덮어 누르고, 아무리 손으로 허벅지를 꼬집어 뜯어도 시퍼렇게 멍이 들도록 집어 뜯어도 소용이 없다 그말이어.

옛날 도인(道人)들은 졸음이 오면 송곳으로 무릎을 찌르면서—자명초원(慈明楚圓) 선사 같은 이, 경허(鏡虛) 선사 같은 그런 도인들도 송곳으로 무릎을 찌르면서 밤잠을 안 자면서 정진을 하는 말씀도 전해 내려오고 있읍니다마는,

그러한 송곳으로 찌르면서 졸음을 쫓을 만한 그러한 각오가 있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부터서 낱낱이 다 송곳부터 사러 가시지 말고, 졸음이 올 때에는 살며시 일어나서 밖에 가서 포행(布行)을 하시고 세수도 하시고 그러면서, 포행을 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왔다갔다 포행을 일직선으로 정해 놓고 왔다갔다 한 5분 하면, 졸음이 나가면 또 자리에 와서 또 앉고 이렇게 하면서 혼침을 이기도록. 그래도 안 들으면 송곳으로 한번 찔러서라도 한번 해봄즉 한 일이지요. 그러다 잘못하면 또 피가 많이 나면 안 되니까 조심을 하시고.


이 세상에 사람이 태어나서 모양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취미도 다르고, 또 직업도 다르고 다 다릅니다. 각기 다 자기의 소질 따라서 능력 따라서 서로 남녀 간에 결혼을 하고 직업을 가지고 살게 되는데, 다 이것이 일장춘몽(一場春夢)입니다.

과거에 지은 업(業)으로 서로 만나서 부부간이 되고, 부모 자식 간이 되고, 며느리가 되고, 시어머니가 되고, 친구 간이 되고, 형제간이 되어서 이렇게 만나서 사는데, 이건 참! 어찌해 볼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업으로 만나졌기 때문에 인연(因緣)이 다하면 또 헤어지게 됩니다. 생이별(生離別)도 하고 사이별(死離別)도 해서 헤어지는데, 지내 놓고 보면 이것은 분명히 꿈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마치 꿈꾸고 있는 동안에는 호랑이를 보면 진짜 무섭고, 뱀이 달라들면 진짜 무섭고, 어디서 좋은 보물을 얻으면 진짜 기쁘고, 깨어 놓고 보면 허망하기가 그지할 수가 없고, 하나도 무서울 것도 없고, 좋아할 것도 없지만, 실지 그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조금도 틀림이 없는 현실입니다.

그와 같이 인생살이도 깨닫기 전에는 분명히 현실입니다. 또 버릴 수도 없습니다. 피할 수도 없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것은 충실히 최선을 또 다해야 합니다.
‘꿈이니까, 에이! 그까짓 것 소용없다. 가정도 버려 버리고, 재산도 버려 버리고, 직장도 버려 버리고, 사업도 다 팽개쳐라’ 부처님은 그렇게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특수한 사람에 한해서는, 목숨을 바치고 오직 이 한 일만을 할 각오가 선 사람은 그걸 버리고 출가하실 수가 있지만,
일반 청신사 청신녀는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또는 관리로서 농사짓는 사람, 장사하는 사람, ‘각기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충실히 하면서 그 가운데에 자기 마음 닦는 공부를 해라’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법을 설하신 것입니다.

부애나면 ‘절로 가서 중이나 되어 버릴까’ 몇 번을 생각하다가, 또 부애가 풀어지면 언제 절 생각은 잊어 버리고 ‘여보, 어쩌고...’

 

도(道)는 꼭 머리를 깎고 출가 해야만 되는 것도 아니고, 속가에 있어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속가에 있으면 있는 대로 할 길이 있고, 출가한 스님은 출가한 스님대로의 수행해 나가는 법이 있어서 각자 자기 있는 자리, 제일 이 도 닦아 나가는데 중요한 것은 ‘지금’이라고 하는 이 찰나(刹那)인 것입니다.

내년에 어떻게 하고, 앞으로 3년 더 있다 어떻게 하고, 내일 어떻게 하고, 한 시간 뒤에 어떻게 하고, 오늘 저녁부터 어떻게 하고 이런 것이 아니라, 지금! 지금이라고 하는 이 찰나가 이 참선에 있어서는 제일 소중한 것입니다.

‘오늘 법문을 들었으니까 오늘은 그럭저럭하고 내일 아침부터 하리라’ 그런 생각을 가지셨다면 그분은 벌써 틀려 버린 것입니다. 지금 이 법당에 앉어 있는 이 찰나! 이 찰나에 생각을 돌이켜야 합니다. ‘이뭣고?~’

 

한 시간도 멀고, 일 분도 멀어요. '지금' 이 찰나, 지금이라고 하는 이 찰나는 우리가 시간으로 딱 찍을 수가 없습니다. 탁! 찍어도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인 것입니다.
번갯불을 갖다가 우리가 잡을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잡을려고 해도 번갯불은 지나가 버리고 없는 것처럼, ‘지금’이라고 하는 이 시간도 우리는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잡을 수 없는 그 찰나에  ‘이뭣고?~’ 이렇게 해 나가면,
일어서면서 하고, 걸어가면서 하고, 일하면서 하고, 밥 먹으면서 하고, 차 타면서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하고, 세수하면서 하고, 발 씻으면서 하고, 옷 갈아 입으면서 하고 이런 것이지, 언제 뒤로 미루고... 그 사람은 안되는 거여.

이 한 생각 한 생각, 그 찰나 찰나, 좋은 생각이 일어나거나 나쁜 생각이 일어나거나, 속이 상하거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그때 그때, 그 찰나 찰나를 단속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로소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휴! 너무너무 바빠서 못한다.’  ‘아들 대학 입시 준비 때문에 못한다’  ‘대학만 들어가 놓으면 인제 조금씩 해볼라고 그럽니다’  ‘딸 시집보내 놓고 할랍니다’ 그것 다 틀어져 버리고,  ‘김장이나 해 놓고 할랍니다’ 그것도 틀어져 버리는 거여. 다 틀어져 버리는 거여.

이건 자기가 자기 1찰나, 1찰나를 단속할 때에 자기 생사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이지, 왜 그러냐 하면, 생사(生死)는 다른 데에서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생각’에서 생사가 생겨난 것입니다.


‘탐진치(貪瞋癡)’하지마는, 딱! 꼬집어서 말하면 생각이거든, ‘한 생각’이거든. ‘오욕락(五欲樂)’해도 더 다그쳐 생각해 보면, 그것도 ‘한 생각’이여. ‘천당’ 그것도 ‘한 생각’에서, 지옥도 ‘한 생각’에서,

‘한 생각’ 일어나는 것을 가만 놔두면 그놈이 차츰차츰 커 가지고 행동으로 나타나 가지고, 살생도 하고, 도둑질도 하고, 사음도 하고, 거짓말도 하게 되는데,
‘한 생각’ 딱! 일어나서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지기 전에 그때 탁! 돌이켜서 ‘이뭣고?~’해 버리면, 살생도 안 하고 끝나고, 도둑질도 안 하고 끝나고, 사음도 안 하고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옥, 천당을 '한 생각' 돌이킴으로써 미연(未然)에 부셔 버리는 것입니다.(40분43초~60분29초)

 

 

 



(2)------------------

그래서 여러분이 법성게(法性偈)도 보시면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이요, 무량원겁(無量遠劫)이 즉일념(卽一念)이다’
이 법성게는 그 80권 화엄경을 갖다가 간단한 몇 줄의 글로써 의상대사께서 지어 놓으신 것인데, 그 법성게의 뜻만 알면 화엄경의 진리가 그 속에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 진리가 무엇이냐 하면은 ‘한 생각’이여, 한 생각.

이 한 생각, 이 찰나 속에 십세(十世) 고금(古今)과 시방(十方) 모든 세계와 삼세제불(三世諸佛)이 그 속에 다 들어있고, 육도윤회(六道輪廻)도 그 속에 들어있고, 천당·지옥도 그 속에 다 들어있는 것이다 그말이어.

그러니 ‘이뭣고?’ 한마디, ‘이뭣고~?’하면, 그 속에 화엄경이 다 들었고, 팔만대장경이 다 들었고, 삼세제불을 친견하는 도리도 그 속에 다 들어있고, 육도윤회를 갖다가 끊어 버리는 도리도 바로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갖다가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시고.

이 ‘이뭣고~?’ ‘어째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 했는고?’ 이 화두법 이것은 용궁(龍宮)에 있는 대장경 속에도 안 들어있다.

이 사바세계에 있는 경전은 많이 불타서 없어지기도 하고,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이 일부만이 전해 내려오지, 전부가 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간에 설사 결집(結集)을 해놓았다 하더라도, 외도들에 의해서 많이 소각을 당해 버리고, 전해 내려오는 것은 극 일부에 지내지 못하는데, 용궁에는 부처님이 설하신 모든 법문이 다 거기에는 수장(收藏)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용궁에 있는 장경(藏經) 속에도 ‘정전백수자’ ‘판치생모(版齒生毛)’ 이런 화두법, 최상승법인 화두법은 없다 이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 최상승법, 이 참선법은 교외별전(敎外別傳)이여. 교(敎) 밖에 특별히 전하신,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부처님께서 가섭존자(迦葉尊者)에게 전하신 특별한 최고의 법이여.

그래서 ’이뭣고?‘ 이 한마디 속에는 염불 공덕도 그 속에 다 들어있고, 주력하는 공덕도 그 속에 다 들어있고, 기도하는 공덕도 그 속에 다 들어있고, 팔만대장경을 다 읽어서 독송하는 공덕도 그 속에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가사불사 회향에 동참하시고 또 일요법회에 참석하신 공덕으로 이러헌 최상승법을 이렇게 듣게 된 것입니다.
가사불사(袈裟佛事)를 하는 목적은 꼭 가사가 없어서 가사를 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이 가사불사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최상승법을 설해서 믿고 실천하게 해 드리는 데에 궁극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가사불사 동참했고, 그 얻기 어려운 쪼가리도 가사불사할 때 틈틈이 훔쳐 담고 또 그런데다 오늘 또 이렇게 얻었으니까, ‘나는 이거 딸 줄 것도 있고, 아들 줄 것도 있고, 며느리 줄 것도 있으니까, 인제 아무 걱정이 없다’고 아주 흐믓해 하시겠지만,
정말 ‘이뭣고?’ 한마디 한 것에다 댄다면, 가사불사 해 가지고 쪼가리 가지고 있는 것에다 대겠습니까?

물론 그 쪼가리 가진 공덕도 대단한 것이어서 말로써 다 할 수가 없읍니다마는, ‘이뭣고?’ 한마디를 하시면 천(千) 쪼가리 만(萬) 쪼가리를 몸에다가 열 거듭 백 거듭을 감은 것보다도 더 훌륭하고 더 안전하고 더 편안한 도리가 있는 것입니다.


일신진역려(一身眞逆旅)요  만사개부운(萬事皆浮雲)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금조상별후(今朝相別後)에  사군불견군(思君不見君)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일신진역려(一身眞逆旅)요, 이 한 몸뚱이, 인간, 이 세상이라는 것은 정말 이 한 나그네 손님이다 그말이어. 잠시 이 사바세계에 나그네로 왔어.
만사개부운(萬事皆浮雲)이여. 만사(萬事)는 다 하늘에 떠있는 흰구름 한 덩어리와 같은 것이다 그말이어.

나그네는 오늘은 이 여관에서 하룻밤 자고 또 그 이튿날 떠나면 또 어느 다른 지방에서 한잠을 자고 해서, 평생 동안을 나그네로 사는 거와 같애.

정말 여자의 몸을 받은 사람은 성년(成年)할 때까지는 그 어머니, 아버지 품안에서 그렇게 자라서 공부하고 그래 가지고 시집가면은 딴 타성바지 집에 들어가서 아내 노릇을 하고 며느리 노릇을 하고 그러는데. 그래 가지고 자기도 또 아들딸을 낳게 되면, 그 아들딸들도 또 장성을 해서 시집을 가고 장가를 가고 하는데.

일평생 동안 그러고 사는 거처도 충청도 살다가 서울로 이사 오기도 하고, 서울 살다가 저 부산으로 이사 가기도 하고, 우리나라 살다가 미국이나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도 하고 그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은 나그네라고 하는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또 금생에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김 아무개, 박 아무개로 태어난 것 자체가 또 그것도 나그네인 것입니다.
전생에 사바세계에 살다가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한 사람도 있겠고, 전생에는 천당에서 살다가 금생에 인도환생을 해서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전생에 개나 돼지나 소로 있다가 금생에 그 탈을 벗어 버리고 사람이 되는 수도 있고, 그러니 이것이 분명히 나그네인 것입니다.

그러면 금생에 왔으면 천년만년(千年萬年) 사느냐 하면, 많이 살아 봤자 백 년이요, 그렇지 않으면 팔십·칠십·육십·오십·사십·삼십, 10살에도 죽고 5살에도 죽고, 낳다가도 죽고, 배안에서 생기다 만 것이 죽기도 하고 그러는데, 이것도 나그네가 분명합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비 맞기도 하고 눈을 맞기도 하고, 차 타기도 하고 걸어가기도 하고, 차가 뒤집어져서 다치기도 하고 배 타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참! '인생살이라는 것이 나그네'라고 하는 말이 얼마나 적절한 표현인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세상 만사는 뜬구름과 같다’한 말도 참 적절합니다.
가난하던 사람이 부자가 되고, 부자가 가난해지기도 하고, 엊그제 장관을 하다가 그만두고 평민이 되기도 하고, 천하를 호령하던 그러한 권리를 가지던 사람이 참 하룻밤 새 죽기도 하고 또 감옥에 가기도 하고 동서고금의 역사가 모두가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나그네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히 안다면 하룻밤 여관에 방이 좀 춥기도 하고 더웁기도 한데, 그렇다고 해서 골낼 것도 없고 불행하다고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자기집에서는 편안하게 살다가 여행을 떠나면 고생이 되는데, 그 고생하는 재미로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바세계의 인생살이를 나그네라고 생각한다면, 고생도 능히 재미로 참을 수가 있고 또 좀 잘 먹고 편안히 잔다고 해서 자기가 금방 뭐 크게 팔자가 핀 것도 아니거든.
사람으로 태어나서 부자로 살고 높은 벼슬을 하고 뭣 좀 권리 좀 있다고 해서 그것을 너무 으시대고 꺼떡거리고 남을 업신여기고 그걸 것도 없는 것입니다.


잘살면 잘사는 대로, 못살면 못사는 대로 좀더 느긋한 마음으로 여유를 가지고 재미스럽게 멋지게 인생을 살아가는 길이 바로 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참선을 하는 사람은 가난해도 불행하지 아니하고, 부자가 된다고 해서 그렇게 꺼떡댈 것도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여유있고 느긋하고 멋지게—하나의 그 인생살이를 연극처럼 생각하고,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생각하고 살 수 있는 길이 이 참선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산다면 불행이라고 하는 것도 있을 수가 없고, 온 세계도 싸움이라고 하는 것이 없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이 집안에도 그런 마음으로 온 식구가 산다면, 집안은 온통 화기(和氣)가 애애(靄靄)하고 모든 일이 참 재미있고 흐뭇하고 여유있게 살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최초의 근본은 ‘한 생각 단속하는 일’이 자기의 일생을 행복하게 하고, 자기의 온 가정을 행복하게 하고, 온 사회·국가를 행복하게 하고, 인류를 행복하게 하고, 그래 가지고 영원한 진리의 세계에서 모든 사람이 서로 만나서 살 수 있는 길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 불법(佛法)은 그래서 위대하다는 것이고, 그래서 이 불법을 위해서는 삼세제불과 역대조사가 이 일대사(一大事)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시고, 그리고 거기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세세생생에 수없는 목숨을 바치면서 중생을 이 진리의 세계로 이끌으시는 데에 여념이 없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 같이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셔서 이 도를 이루신 다음에 80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실 때까지, 앉은 자리 더울 겨를이 없이 일평생 동안을 인도 오천축(五天竺)을 갖다가 유행(游行)을 하시면서 중생 교화를 하신 것도 바로 이 도리를 위해서인 것입니다.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濟度)하신다’ 그러는데, 뭐 물에 빠진 걸 갖다가 건져내는 것처럼 그런 것이 아니라, ‘중생도 깨달을 수 있다’, ‘중생이 본래 부처다.’

‘부처니 중생이니, 선이니 악이니’하는, 중생은 그러헌 생각의 쇠사슬에 얽혀 가지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본래 중생과 부처가 다른 것이 아니고, 깨달음과 미(迷)한 것이 둘이 아니라고 하는 그 도리를 깨우쳐 준다면, 거기에서 해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중생의 그러헌 소견을 씻어주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거 씻어준 것이 바로 그것이 중생 교화인 것입니다.

‘최상승법은 언제나 우리와 가까이 있다’고 하는 것.
책도 펴기도 전에 이미 우리 앞에 부처님의 법이 설해져 있는 것입니다. 입을 벌리기 전에 이미 염불이 그 속에 되어져 있는 것이고, 경을 읽고 있는 것이며, 설법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눈을 감으나 뜨나, 언제나 부처님을 친견하고 부처님 법문을 듣고, 또 자기 자신도 불법을 설하는 도리가 바로 이 최상승법이라.
이상으로써 일요 법회와 또 가사불사 회향 법어를 마칩니다.


산중하사기(山中何事奇)인고  청산백운다(靑山白雲多)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취적기우자(吹笛騎牛子)여  동서임자재(東西任自在)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산중(山中)에 하사기(何事奇)인고  청산(靑山)에 백운다(白雲多)다.
청산에 무슨 일이 기특한고? 무슨 일이 볼 만한 것이 있느냐? 특별히 볼 만한 것이 무엇이냐?

청산(靑山)에 백운다(白雲多)다. 푸른 산에 흰구름이 많느니라.

취적기우자(吹笛騎牛子)여  동서임자재(東西任自在)다.
젓대를 불고 소를 타고 가는 자여. 동서임자재(東西任自在)여. 동쪽으로 가고 싶으면 동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가고 싶으면 서쪽으로 가고, 동서에 자기 마음대로 자유자재하게 왔다갔다 하더라.(40분43초~77분46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게송) ‘사중구의원~’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27 ‘벽천선화자(碧泉禪和子)에게’ 게송 참고.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색사(色事)·음식(飮食)·명예(名譽)·수면(睡眠).
*일조일석(一朝一夕) ; 하루아침이나 하루 저녁이라는 뜻으로, 짧은 시일을 이르는 말.
*어먼 : ‘애먼’의 사투리. 애먼:(일의 결과가 다르게 돌아가)억울하게 느껴지는, 엉뚱하게 느껴지는.
*인사불성(人事不省) ; 제 몸에 벌어지는 일을 모를 정도로 정신이 흐리멍덩한 상태.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내동 ; '일껏(모처럼 애써서)'의 사투리.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나쁜 마음의 작용.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 ; '길(길이의 단위. 한 길은 여덟 자 또는 열 자로 약 2.4미터 또는 3미터에 해당 또는 사람의 키 정도의 길이)'의 사투리.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자명 초원(慈明楚圓) : (987 – 1040) 속성은 이(李)씨。광서성(廣西省) 계림부(桂林府) 전주(全州)에서 났다.
22세에 출가하여 멀리 분양 선소(汾陽善昭)선사의 회상에 갔었다. 분양은 욕설과 세속의 더러운 말만 할 뿐이므로 하루는 정성을 다하여 간 하였더니, 크게 성내어 『네가 나를 비방하느냐?』하고 내쫓았다。초원이 무엇이라고 변명하려는데, 분양이 손으로 그 입을 틀어막았다。그 바람에 크게 깨쳤다.
뒤에 석상산 숭승사(石霜山崇勝寺)와 담주 흥화사(潭州興化寺) 같은 여러 곳에서 교화하니, 법을 이은 제자가 50인이나 되었다。자명(慈明)은 54세로써 입적한 뒤의 시호(諡號)이고, 석상화상(石霜和尙)이라고도 한다.
*경허선사(鏡虛禪師)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포행(布行) ; 스님들이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한가로이 뜰을 걷는 일.
*일장춘몽(一場春夢) ; 한바탕의 봄꿈이라는 뜻으로, 헛된 영화나 인간 세상의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찰나(剎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이뭣고(是甚麼) : 「이 무엇고,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이것이 무엇인가?)」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2)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 통일 신라 시대에,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화엄경을 연구하고 그 경의 핵심을 추려서 7언 30구(210자)의 게송으로 지은 <화엄일승법계도 華嚴一乘法界圖> 또는 <법성게 法性偈>에 나오는 구절.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 (무량원겁즉일념 일념즉시무량겁)
한량없는 오랜세월이 한 생각 찰나요, 찰나의 한 생각이 무량한 시간이네.
*십세(十世) ; 화엄종의 교학에 있어서 시간 구분. 과거 현재 미래의 3세(三世)의 각각에 그 위에 과거·현재·미래가 있다고 하고, 이러한 9세(九世)를 포용하는 1세(1념)를 더하여 10세(十世)라고 한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결집(結集) ; 석가모니 부처님의 입멸 후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함께 외어 기억하는 형식으로 모아서 정리한 것.
*수장(收藏) ; 거두어서 깊이 간직함.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8, p34에서.
(5)世尊이  三處傳心者는  爲禪旨요  一代所説者는  爲教門이라. 故로  曰,  禪是佛心이요  教是佛語니라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教門)이 되었다。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教)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6)是故로  若人이  失之於口則拈花微笑가  皆是教迹이요.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가  皆是教外別傳禪旨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것(拈花微笑)이 모두 교의 자취(教迹)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教外別傳禪旨)가 되리라."
*이심전심(以心傳心) ; 진리는 말이나 글이 아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뜻.
*가섭존자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가사불사(袈裟佛事) ; 절에서 가사를 짓는 일.
*(게송) ‘일신진역려~’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16 ‘산을 나가는 영암주(英庵主)를 보내며’, p115 ‘지사(芝師)를 보내며’ 게송 참고.
*역려(逆旅 맞이할 역,나그네 려) ; '나그네를 맞이한다'는 뜻으로 '여관(旅館 일정한 돈을 지불하고 손님이 묵는 집)'을 이르는 말.
*타성바지(他姓바지) ; 자기와 성(姓)이 다른 사람.
*사바세계(娑婆世界);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화기애애(和氣靄靄)하다(화목할 화,기운 기,아지랭이 애) ; (분위기가)서로 뜻이 맞고 정다운 기운이 넘쳐흐르는 듯하다.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오천축(五天竺) ; 고대 인도에 있던 다섯 개의 정치적 구획. 동천축, 서천축, 남천축, 북천축, 중천축을 이른다.
*유행(遊行) ;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수행함. 행각(行脚).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게송) ‘산중하사기~’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66 ‘고운(孤雲)의 글자를 모음’, ‘목암(牧庵)’ 게송 참고.

Posted by 닥공닥정
참선(자세 호흡)2014. 7. 6. 12:38

§(455) 계행(戒行) / 단전호흡, 상기병 주의 / 화두 드는 법 / 화두 가운데에 가장 처음, 가장 근원적인 화두가 시삼마(是甚麼) 화두, ‘이뭣고?’

단전호흡은 항상 자연스럽게 무리가 없이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정법, 활구참선(活句參禪)은 몸 건강해 가지고 오래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여.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참나’를 깨닫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거든.

 

참선을 해 나가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잘 여법하게 하면서 화두를 드는데, 이 화두 드는 것이 참선의 요점이요 가장 중요한 것이다.

 

**송담스님(No.455)-91년 9월 첫째일요법회(91.09.01)에서. (용455)


약 15분.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는 본참화두(本參話頭)를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간택을 받아 가지고 그 화두를 여법(如法)하게 참구해 나가는 것, 그것 밖에 없지마는, 그래도 공부를 바르게 해 나갈랴면은

첫째, 계행(戒行)을 지켜야 한다. 계행을 지키되 계상(戒相)에 집착함이 없이 계상에 떨어지지 않고 계를 지키고,
또 화두를 참상(參祥)하되, 간절한 의심으로 참구를 한답시고 막 용을 쓰면서 억지로 눈썹 미간을 갖다가 찡그리면서 억지로 파고 들어가면 상기병(上氣病)에 십상(十常) 걸리기가 쉬운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하되, 맨 처음에는 폐 속에 들어있는 호흡을 전부 다 내뿜어. 다 내뿜은 다음에 또 스르르르 들어마셔. 들어마셨으면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참았다가 또 후~ 하고 다 내뿜어버려. 다 내뿜은 다음에는 또 스르르르 들어마셔.

 

이렇게 하기를 두 번 내지 세 번을 해서 허파 속에 들어있는 묵은 공기를 다 청소를 해낸 다음에, 그때부터서 본격적으로 단전호흡을 하는데,
들어마시는 호흡 약 3초, 3초 동안에 스르르르 들어마시고, 또 들어마신 다음에 딱 정지를 해. 호흡을 정지하기를 약 3초 동안 정지를 했다가 또 내쉴 때도 약 3초 동안 걸려서 내쉬고,

내쉰 다음에 약 3초 동안 또 정지를 하고, 그렇게 해도 좋지만 내쉬는 시간을 아주 미세하게 조용하게 가늘게 주욱 내쉬다 보면은 한 4초나 5초 이렇게 되니까, 다 내쉰 다음에 특별히 정지할 것이 없이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가늘게, 조용하게 내쉬면 되는 거여.

그래서 다 내쉬면 또 들어마시는 시간 3초, 들어마셔 가지고 정지하는 시간이 3초, 그래가지고 내쉬는 시간은 조용하게 미세하게 길게 내쉬다 보면 내쉬는 시간은 약 4~5초 이렇게 걸리도록.

그런데 처음에 준비 호흡을 할 때에는 더이상 들어마실 수 없을 만큼 가득 들어마시고, 또 정지하는 시간도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참았다가, 또 내쉬는 것도 더이상 내쉴 수 없을 만큼 완전히 다 내쉬지만,

이 정식 본(本) 단전호흡에 들어가서는 그렇게 가득 들어마셔도 안 되고, 너무 오랫동안 억지로 참아도 안 되고, 내쉬는 시간도 너무 완전무결하게 다 내쉴라고 해서는 안 돼.

왜 그러냐? 그러면 땀이 나고 무리가 가서 몇 분 안 가서 헛숨을 쉬어야 하고 그러니까, 절대로 이 준비호흡은 그렇게 철저하게 들어마시고 철저하게 내쉬고 하지만,
본(本) 단전호흡에 가서는 8부만 들어마시고 또 3초 동안만 정지했다가 내쉬는 것도 8부 정도만 내쉬어. 더 내쉴 수 있지만 완전히 다 내쉴라고 하면 안 된다.

그것을 잘 알고 해야지, 덮어놓고 무리하게 하면은 너댓 번도 못해서 등어리에 땀이 나고 하는데,
혹 겨울에 너무 춥거나 또 음식을 먹은 것이 소화가 잘 안되고 체했을 때에는 이 준비호흡과 같은 그러한 호흡을 다섯 번 내지 열 번을 하면 등어리에 땀이 나면서 트림이 나오면서 체한 것도 툭 터지는 거여.

그러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전호흡은 항상 자연스럽게 무리가 없이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조실 스님 녹음 법문에 병이 안 나고 참 묘(妙)하게 공부해 나가는 법이 바로 이 단전호흡에 관한 말씀인데 좀 이렇게 자세하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단전호흡도 중요하지만은 단전호흡 하나만 하고 화두를 안 하면, 그것은 몸은 건강해지고 정신 집중력도 생기고 여러 가지로 살아가는데 좋고 하지만,
화두가 없이 밤낮 단전호흡만 하면, 장생불사(長生不死)하는 신선이 되려고 하는 도교의 그런 사람들이 밤낮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법, 활구참선(活句參禪)은 몸 건강해 가지고 오래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여.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참나’를 깨닫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거든.

‘참나’를 깨달라 가지고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인데,

이 몸뚱이만 가지고 삼백 년... 팽조라는 사람은 칠백 년까지도 살았다고 하는 전설이 있지마는, 이 몸뚱이는 인연 따라서 장수(長壽)한 사람은 장수하고 6~70 살 사람은 살고 그런 것이지, 이 몸뚱이로 오래 사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돼.

그러나 사는 날까지 건강은 해야 한다 그말이여. 사는 날까지 건강하고, 건강해야 참선도 마음껏 할 수가 있으니까. 그래서 우리가 이 단전호흡을 하기는 같은 방법으로 한다 해도 목적이 다르다 그말이여.

이 참선을 해 나가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잘 여법하게 하면서 화두를 드는데, 이 화두 드는 것이 참선의 요점이요 가장 중요한 것이다.

선방에 들어와서 참선을 하는 스님네나 또 보살님 10년 20년씩 선방에 다녀도 이 화두를 여법하게 들 줄 알기가 어렵다.

‘이뭣고?’ 또는 아까 조실스님께서 말씀하신 판치생모(板齒生毛), 무자(無子) 화두나 문헌에 오른 화두만 해도 천칠백 개가 넘는데 그 천칠백 개나 되는 화두 가운데에 가장 처음 화두, 가장 근원적인 화두가 시삼마(是甚麼) 화두여. ‘이뭣고?’

‘이뭣고?’화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 부르면 대답할 줄 아는 놈, 욕하면 성낼 줄 아는 놈,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아는 놈, 눈으로 보면은 저것이 꽃이다·새다·나비다, 그 아는 놈.
귀로 들을 줄 알고, 코로 냄새 맡을 줄 알고, 혀로 맛볼 줄 알고, 몸으로 춥고 더운 것을 알고, 그러할 줄 아는 놈이 다 사람마다 다 있다 그말이여. 그것이 나의 주인공(主人公)인데, 그놈을 찾는 것이거든.

그 주인공이 분명히 이 몸뚱이에 딱 주재하고 있으면서 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보기도 하고, 귀를 통해서 모든 것을 들을 줄도 알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모든 육체적인 작용, 정신적인 작용을 하는...
차로 말하면은 운전사와 같은 그러한 주인공이 있는데, 그것을 찾는 것이여.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놈이 무엇인고?’ 맨 처음에는 그렇게 들어.
나중에는 ‘이뭣고?’  ‘이뭣고?’하는 이놈이 뭣고? 이렇게 바로 그 ‘이뭣고?’하는 그놈을 다시 되돌려 찾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생각이 그 ‘이뭣고?’하는 놈으로부터서 나오는데, 그 일어나는 생각이 우리의 마음자리로부터 모든 작용이 나오는데,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그 생각 일어나는 그 뿌리를 관조(觀照)하는 것이여.

‘이뭣고?’  ‘이뭣고?’하는 이놈이 뭣고? 이렇게 다그쳐 들어가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런데 단전호흡을 안 하고 자꾸 그렇게만 해 나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기(上氣)가 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숨을 스르르르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길게,
또 다 나갔으면 또 스르르르 하니 숨을 들어마셔 가지고 약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해 나가면 날 새기를 하면서 해도 상기가 되는 법이 없어.

처음에는 숨을 내쉴 때마다 ‘이뭣고?’ 하지만, 나중에는 숨 내쉴 때마다 ‘이뭣고?’ ‘이뭣고?’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
숨을 한번 들어마셨다 내쉬면서 ‘이뭣고?’, 다 내쉰 다음에 스르르르 들어마시면서도 아까 들었던 그 ‘이뭣고?’ 의심(疑心)이 고대로 있으면, 그 있는 의심을 관(觀)하는 거여.

딱 관(觀)하면서 숨을 들어마셔 가지고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내쉴 때에도 고대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내쉴 때 새로 또 화두를 들지 안 해도 되아. 있는 그 의심을 떠억 관조(觀照)하면서 내쉬거든.
다 내쉬면 또 스르르르 들어마시되, 들어마실 때에도 딴 생각이 안 일어나고, 아까 들었던 그 화두의 의심이 고대로 있으면 그 의심을 관조해.

그래서 그렇게 주욱 해 나가다가 어느새 화두가 달아나버리고 없거나 딴 생각이 일어났으면 그때 또 화두를 떠억 한 번씩 챙겨 나가는 거여.

이렇게 해 나가면 망상(妄想)을 안 일으킬라고 할 필요도 없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망상이 일어나자마자 바로 화두를 들어버리기 때문에 망상을 일부러 쫓아낼려고 할 것도 없어.
이렇게 해 나가면 차츰차츰 망상은 줄어지고 또 이렇게 화두를 들 때 단전호흡을 하면 혼침도 안 일어나는 것이여. 혼침(昏沈)과 산란심(散亂心)을 두 가지를 다 힘 안들이고 내가 잘 다스리는 방법이 바로 단전호흡이다 그말이여.

단전호흡을 하되 항상 들어마시고 내쉴 때 ‘이뭣고?’ 알 수 없는 의심이 성성(惺惺)하게 적적(寂寂)하게 현전(現前)되도록 그렇게 잡두리를 해 나가는 것이다.(7분20초~22분2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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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로 좌선(坐禪) 수행을 말한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계행(戒行) ; ①계() 지켜 수행하는 .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 ②계율과 도덕.

*계상(戒相) ; ①계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4가지 분류[계사별 戒四別],  계법(戒法) · 계체(戒體) · 계행(戒行) · 계상(戒相) 하나. 계율을 실천하고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차별 있는 행동 양상. () 지키거나[持戒] 범한[破戒] 상태, 또는 계를 범한 경우 그에 대한 죄의 가벼움과 무거움 등의 차별된 상.

②계() (). 계율에 대한 생각.  계상(戒相) 청정성, 집착의 여부는 그것을 일으키는 주체에 따라 달라진다. [참고] 『화엄경』 60권본 10 14 명법품(明法品)(대정장9. p.460c)  계를 지킨다는 () 일으키지 않으므로 계에 집착함이 없다. 이것을 청정시바라밀이라 한다. 不生持戒相故  於戒無著  是名淸淨尸波羅蜜

*참상(參祥) ; 참구(參究)와 같음.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십상(十常) ; ①열에서 아홉일 정도로 확률이 높다는 말. ②'십상팔구(열에 여덟이나 아홉 정도로 거의 예외가 없음)'에서 온 말.
*헛숨 ; 공연히 내쉬는 숨. 자연스러운 호흡과 상관없이 내쉬는 숨을 이른다.
*8부(八部)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만큼.
*장생불사(長生不死 길 장/날 생/아니 불/죽을 사) ; 오래도록(長) 살고(生) 죽지(死) 않음(不).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공안(公案)을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 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 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소소영령(昭昭靈靈)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산란(散亂 흩을 산/어지러울 란) ; 혼침의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머트럽고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잡두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Posted by 닥공닥정
참선(자세 호흡)2013. 10. 27. 15:32

<아래 법문은 위 유튜브 법문에서 12분 57초부터 들으시면 됩니다>

 

§(653) 참선하는 법 - 자세, 호흡, 화두의심, 삼요(三要)

**송담스님(No.653) - (신사년) 하안거결제법회(2001.5.8)(33분)법문에서.  (용653)

 

약 16분.

 

화두는 간단한 한마디에 지나지 않지마는, 아무 재미도 없고 그러한 한마디지만, 이 한마디 화두가 나의 생사(生死)의 명근(命根)을 끊는, 확철대오해서 자기의 자성불(自性佛)을 깨닫는, 본마음 고향으로 돌아가는 가장 없어서는 안 될 나침반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화두는 간단한 한마디지만 그 화두를 바로 거각하기 위해서는 기본 준비가 필요합니다.



<참선하는데 세 가지 갖출 요건(三要)>

첫째는 신심(信心)이여.

이 한마디 화두를 가지고이 화두에 근본은 의심(疑心)이니까, 이 의심을 타파(打破)함으로 해서 ‘참나’를 깨달을 수가 있고 견성성불(見性成佛) 할 수가 있다고 하는 철저한 신심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신심이 철저하지 못하고서는 참선은 바로 가지 못하는 것이고, 이 신심이 철저하지 못하면 공부는 하다가 별 재미가 없으면은 중단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니, 신심이 철저해야 하거든. 대신심(大信心)이 있어야 한다.

둘째는 대분심(大憤心)이 있어야 한다.

부처님과 역대조사(歷代祖師)와 모든 과거의 선지식(善知識)들은 일찍이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을 해서 다 중생교화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이 일대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고 있는가. 나도 결정코 이 일대사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하는 대분심이 있어야 한다.

신심을 가지고서도 분심이 약하면 공부가 중단될 수 밖에 없고 자꾸 중간중간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는 것이어서 대분심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화두에 대한 의심이, 대의단(大疑團)이 독로(獨露)해야 한다 이것입니다. 이것을 고봉선사께서는 ‘참선하는 데 세 가지 요긴(要緊)한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세  가부좌, 반가부좌>

그러한 것을 전제로 하고서, 초학자(初學者)는 몸을 바르게 갖는 법을 알아야 한다. 가부좌(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 이것이 부처님께서도 설법을 하실 때나 또는 공양을 잡술 때나 항상 이 가부좌를 하시고 계셨고, 탁발(托鉢) 걸식(乞食)을 하실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가부좌를 하셨는데,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도 이 가부좌가 가장 기본자세이고 안락지묘문(安樂之妙門)이기 때문에 가부좌를 항상 하시게 된 것입니다.

가부좌를 하면은 저절로 허리가 주욱 펴지고, 번뇌와 망상과 혼침이 침노하지 못하도록 하는 그런 좋은 자세이기 때문에, 참선을 하는데는 가부좌나 또는 반가부좌를 하는 것이 가장 요긴한 것입니다.



<호흡  단전호흡>

그 다음에는 호흡(呼吸)을 고르는 일인데, 호흡은 우리가 무심코 있어도 저절로 숨이 들어갔다 나갔다 해서 살아있는 증거가 바로 호흡을 하고 있냐, 안 하고 있느냐 그것으로써 죽고 사는 것을 알 정도로 호흡이란 것은 대단히 중요한데,

 

참선하는데 가장 마음을 안정을 시키고, 마음을 깨끗이 하고, 또 몸도 편안하게 하고, 몸 안에 있는 모든 노폐물을 밖으로 다 내보내고, 따라서 혈액도 맑아지고, 몸도 가벼워지고, 마음도 안정이 되게 하는 데에는 이 단전호흡이라고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단전호흡(丹田呼吸)만을 전문으로 가르키는 그런 수련원도 있고 학원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마는, 이 활구참선 하는 사람은 그런 데에서 가르키는 단전호흡과는 조금 다른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단전호흡은, 호흡을 들어마시되 조용하게 들어마셔서 아랫배가 약간 볼록하게 되는 것을 느끼면서 호흡을 들어마시고, 들어마셨으면 그것을 조용허니 내쉬되, 내쉼에 따라서 볼록해졌던 아랫배가 차츰차츰 홀쪽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러나 숨을 들어마실 때나•잠깐 머물렀다가•숨을 내쉴 때나—배만 약간 볼록해졌다가 잠깐 머물렀다 또 조용하게 아랫배가 홀쪽해진 것을 느끼되, 순전히 그것만을 하고 있으라는 것이 아니고, 들어마셨다 내쉴 때 ‘알 수 없는 화두를 드는’ 것입니다.

화두를 들지 아니하고 단전호흡만 하면은, 이것은 도교(道敎)나 신선도(神仙道)나 외도(外道)들이 그 단전호흡을 함으로 해서, 이 몸을 건강하게 하고 나아가서는 장생불사(長生不死)하는 수단으로 단전호흡을 하는데,

우리 활구참선에 있어서 단전호흡은 이 몸을 가지고 백 년, 이백 년 오래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단정히 하고 호흡을 잘 고르므로 해서 상기병(上氣病)과 같은 그런 병을 예방하고, 또 마음이 안정이 되어서 맑아야 화두를 들고 정진하는데 대단히 효과가 있기 때문에 단전호흡을 이렇게 권장하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외도들이 하는 단전호흡과는 차등이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근본, 주(主)가 화두를 들어서 의단이 독로해서 그 의단을 타파하는 데에 있지, 장생불사 하는 데에 목적이 있지 않기 때문에 차이가 있을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몸을 단정히 하고 그리고 단전호흡을 해서 호흡을 고르게 하며, 거기에 동시에 화두를 들고 의단이 독로하도록 해야 하는데, 이 화두를 들고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나, 이 화두를 잘못 들면 자칫 잘못하면 골이 아프기도 하고 그래 가지고 상기병이 생겨서 공부를 지속적으로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잘하지 못하는 사람도 간간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런 기본이 잘못되어 갖고 있고 마음만 급해 가지고 억지로 용을 쓰면서 잘못 공부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참선을 함으로 해서 병이 생겼다’하고 참선을 비방을 하고 그래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화두드는 법 - 화두의심>

화두를 드는 데 있어서는,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따져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따라서 말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더듬어 들어가서 알아 들어가는 그런 공부가 아닙니다. 화두를 참구(參究)한다 하니까, 참구라고 하는 게 무슨 이론을 동양철학이나 서양철학처럼 이론적으로 뭣을 따져서 파고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무이로(無理路)요 무어로(無語路)요 무모색(無摸索)이여. 이치길도 없고 말길도 없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없는 것이여. 다맛 알 수 없는 의심(疑心) 의단(疑團).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걸어가면서도 ‘이뭣고?’ 일을 하고, 밥 먹고, 옷 입고, 똥누면서도 ‘이뭣고?’ 뭔 말을 들어서 기분이 나쁠 때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요.
일체처 일체시에 알 수 없는 의단, 의심을 자꾸 거각하는 것인데,

‘이뭣고~?’하면서도 생각은, 그런 가운데 벌써 딴 생각[別念]이 일어나는 경우도 얼마던지 있습니다. 일어나는 딴 생각, 번뇌망상을 없앨라고 하지 말고 또 번뇌망상 일어났다고 성화를 하지도 말고, 무슨 딴 생각이 일어나드라도 그 생각 그냥 고대로 놔둔 채, 나는 퍼뜩 ‘이뭣고?’ 이렇게 챙겨 나가는 것입니다.


아까 조실스님 법문 가운데에도 그런 말씀이 계셨습니다마는, 일반적으로 참선을 할라면 망상이 일어나는 것 그리고 조금 마음이 고요해지면은 혼침이 오는 거, 혼침(昏沈)과 산란(散亂) 이 두 가지로 인해서 참선을 해나가는데 막대한 지장이 있다고 느끼고, 그것 때문에 공부가 순일(純一)허게 되지 않는다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서 번뇌도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또 혼침도 안 온다면은, 참선하기가 퍽 수월하고 공부가 일취월장해서, 금방 의단이 타파해 가지고 확철대오 할 거 같은데, 혼침 아니면 망상, 망상 아니면 혼침 이 두 놈이 번갈라가면서 들락거리니 그러니 공부가 한결같이 안된다. 이렇게 대부분의 참선을 허는 도반들은 그것을 성화를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이 되나,

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의 최상승 법문에 보면은,
‘혼침이 들락거리고 망상이 들락거리는 것은, 간절한 마음이 속에서부터서 솟구쳐 오르지를 않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간절한 신심(信心)이 돈발(頓發)하지 않기 때문에 망상이 일어나고 혼침이 나온 것이지, 정말 속에서부터서 간절한 마음이 나온다면 어디에 그런 것이 붙을 수가 있겠느냐'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은 우리도 틀림없는 말씀이라고 인정을 할 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화두는 알 수 없는 의심, 그 알 수 없는 의단잊어버리면 또 챙기고, 놓쳐버리면 또 챙기고, 딴 생각이 일어나면 또 챙기고, 거각하고 또 거각해서, 결국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자꾸 챙기다보면, 어느날인가는 화두를 챙기지 안 해도 저절로 의단이 독로할 때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설사 의단이 독로해서, 간단(間斷)이 없고 또 순수무잡(純粹無雜)해서, 그 맑고 깨끗하고 고요한 경계를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그러한 경계가 온다 하더라도, ‘야! 인자 내가 공부가 제대로 되아가는구나’ 좋아하는 환희심(歡喜心)도 내지 말라 이것입니다. 환희심을 내면 환희의 마군(魔軍)이가 벌써 그 마음에 들어온 증거인 것입니다.

그렇게 잘되어 가다 뚝 변해가지고, 영 혼침이 오고 망상•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래도 번뇌심을 내지 말라 이것입니다. 번뇌심을 내면 번뇌의 마군(魔軍)이가 들어온 것이다.

그러니 잘되어 간다고 좋아하는 마음 내지 말 것이며, 혼침•산란이 일어난다고 해서 번뇌심도 내지 않고서, 한결같이 화두를 들고 또 들고 해서, 이렇게 간절한 '간절 절(切)'자, 한 글자를 놓치지 말도록 고인네들은 그렇게 간절(懇切)히 당부를 하셨습니다(10분 31초~26분 5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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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 ; 짧거나 간단한 .

*명근(命根) ; 목숨과 생명의 근본.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의심(疑心) : 없는 생각에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어째서 () 했는고?’ 또는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成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육도윤회(六途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책상다리할 /앉을 ) ;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 발바닥을, ()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탁발(托鉢 /바리때 ) ; 스님이 경문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보시를 받음.

*걸식(乞食 ·구할·청할 /·음식 ) ; ①빌어서 얻어먹음. ②수행자가 수행을 위해 육신을 지탱하고자 일정한 법도에 따라 남에게 음식을 받는 .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3,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3, 내쉬는 시간은 4~5,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80 동안거해제 법문에서.

 

숨을 들어마실 코로 들어마신다 생각을 하지 말고 뒤에서 들어마셔 가지고,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지고 거기서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뒤에서 궁둥이로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내쉰다, 내보낸다이러한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장생불사(長生不死 / /아니 /죽을 ) ; 오래도록() 살고() 죽지() 않음().

*상기병(上氣病 오를 /기운 / )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 머리에 치밀게()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 상기병이 생기면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 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있으면 고인이 말한 「잡독(雜毒)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생각[別念]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외에는, 불법(佛法) 온갖 좋은 일이라도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 취하거나[], 버리거나[], 집착하거나[], 변화하는[] 것이 모두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것이요, 묻는 사람이 친히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산란(散亂 흩을 /어지러울 ) ; 혼침의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머트럽고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성화(成火) ; ①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답답하고 속이 ②매우 귀찮게 졸라 .

*일취월장(日就月將 /이룰 / /발전할 ) ; 나날이 다달이 발전하거나 성장함.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정성스런·절박할 )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돈발(頓發 갑자기 /일어날·나타날·밝힐 )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直頓의 , 곧바로.

*간단(間斷 사이 /끊을 ) ; 계속되던 것이 잠시() 그치거나 끊어짐().

*순수무잡(純粹無雜 순수할 /순수할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수(純粹)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 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전제 단제2013. 10. 8. 09:46

§(414) 전강 선사의 단제, 전제의 장점이 융합된 효율적인 정진을 있는 공부법.

 

**송담스님(No.414)—1990 4 첫째 일요법회 법문. (용414)

 

약 11분.

 

 

화두,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화두를 하시는 데에 ()자를어째서 무자(無字)라고 했는고?’ ‘어째서 무자(無字)라고 했는고?’ 아주 , 주먹을 부르쥐고 무릎 위에다가 ! 놓고는 아침부터서 점심, 점심부터 저녁, 저녁부터서 밤에 잠도 주무시지도 않고 그냥,

 

그러다가 예불 시간에 예불을 하시면지심귀명례...”하고 엎드려 가지고는삼계대사 사생자부...” 그냥 엎드려서 잠이 들어 버렸어. “시아본사...”해도 일어나는데 일어나시고 엎드린 예불이 끝날 때까지.

옆에서 쿡쿡 찌르면서일어나라 하니까 입승(立繩) 스님이그거 놔두라. “밤잠 자고 정진하다가 엎드려 있는데 잠시 자게 놔두라.

 

처음에는 수군덕거리고 욕하고 빈정대고, 그렇지만 , 달을 열심히 한결같이 나가니까 대중이 모다보통 애가 아니구나!” 대중 가운데 어린 사람이 그렇게 공부한 것을 보고 모두 사람이 따라서 발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모다 가행정진(加行精進) 하고 그랬다고 그럽니다.

 

그런데어째서 () 했는고?’ 화두를 의심한 것은 대단히 좋은데 조실 스님께서는 불급불완(不急不緩) 묘한 관으로, 의심관(疑心觀)으로 가는 것을 모르셨어.

 

어려서 워낙 발심(發心) 철저히 놓고 분심(憤心) 솟구쳐 오르니까 목숨을 바쳐서 거기에다 아주 용맹스럽게 나가실중만 알으셨지, 불급불완한 () 의관으로 나가는 것을 그걸 선배가 있어서 그것을 일러 주셨으면 되었을텐데 그걸 못하셨어.

 

몽산법어(蒙山法語) 보면 무자(無字) 드는데 가지,

 

하나는 단제, 그냥~~’하고 아무 일체 다른 말은 없이~’만을 항상 들여다 보는 거여.

조주 스님이했으니까~’ 들여다 보는 거여. 숨을 들어마시다 내쉬면서~’

어째서 무라 했는고그런게 아니여, 그냥~’ 들여다 보는 이것을 단제(單提)라고 그러고.

 

전제(全提)어째서 무라고 했는가?’ ‘조주스님은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이렇게 의심을 하는 이것은 전제인데,

~’하고 단제로 하는 데에도 장단점이 있고, 전제로어째서 무라고 했는고~?’하는 데에도 장점과 단점이 있다.

 

그러면~’하는 데에는 무슨 장점이 있느냐 하면,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하고 자꾸 하다 보면 성질이 급한 체질을 가진 사람은 너무 되게 몰아대다가 상기병(上氣病) 생기고, 생각이 끊어지질 않아 점점 어지러운 생각, 복잡한 생각이 일어나거든.

그냥~’하면 생각 생각 그런 복잡한 생각은 일어나지 아니헌데 의심(疑心) 없어. 의심이 없으면 깨닫지 못하거든.

 

의심이 작으면 작게 깨닫고, 의심이 크면 크게 깨닫고, 의심이 없으면 깨닫지 못한다그랬어.

 

그런데~’하고 () 항상 들여다 보면 생각 생각 복잡한 생각은 일어나지 않고 조용해지고 좋기는 좋은데, 까딱하면은 너무 조용하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혼침(昏沈) 빠질 우려가 있고 무기(無記) 떨어지거든.

 

무기에 떨어지면 아무리 고요하고 편안하고 맑고 좋다 해도 확철대오(廓徹大悟) 못하는 거여.

 

그러면어째서 무라 했는고~?’하고 의심이 있어야 하는데,

『대의지하(大疑之下) 필유대오(必有大悟), 의심이 있어야 크게 깨닫는다』 그랬으니처음부터서 크게 의심을 해야겠다 가지고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고서어째서 무라 했는고?’ 여기다가 그냥 ' ()'자를 쓰고서 몰아대면,

영락없이 피가 넘어오고 상기(上氣) 되어 가지고 눈알이 튀겨져 나올려고 하고 골이 벌어질라 그러고 목이 뻗뻗해져. 이뭣고소리만 하면 벌써 골치부터 아퍼지기 시작하는 거여.

 

그러니 몽산 스님은 처음에는 단제로~’ ‘~’하고 무만 자꾸 들어서 순일해져 순숙해져서,

순숙해진 다음에 2단계에 나아가서어째서 무라 했는고?’하고 의심을 든다면, 전제로 한다면 이것이 가장 단제와 전제를 효율적으로 활용을 해서 폐단없이 깨달음에 나아가는 수행을 수가 있다. 몽산어록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하고 무자만 바라만 보도록, 그렇게 하라고는 조실스님도 가르키시지 않았고 산승(山僧) 그렇게 공부를 하라고는 한번도 말씀한 적이 없습니다.

 

대신 처음에는 단제 전제 할것 없이, 처음에는 자세를 바르게 하고 가부좌나 반가부좌 하는 법을 익히고 다음에는 단전호흡(丹田呼吸) 해서 단전호흡이 되도록 익힌 다음에,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시 머물렀다가 내쉬면서어째서 무라 했는고~?’ 이렇게 하라고 지도를 왔습니다.

 

이렇게 가면 몽산 스님이 염려하시는 단제와 전제의 장단점이 융합된 효율적인 정진을 수가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단전호흡을 익히고, 단전호흡을 하되 처음에는 수식관(數息觀)으로부터 들어가 가지고 나중에 수식관이 잘되면은 다음에 전제(全提) 공부를 나가되 탈이 없으리라고 그렇게 보았기 때문에,

 

조실 스님께서도 단제(單提) 대한 것은 말씀을 하시지 않고, 전제(全提) 하도록 많은 설법을 하셨고, 산승도 역시 조실 스님의 뜻을 따라서 그렇게 말씀을 왔습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처음에 전제로 공부를 하시되 너무 힘을 가지고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그러헌 병이 나셨지만, 그렇기 때문에 조실 스님께서도 항상 단전호흡에 대한 법문을 간곡히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아마 자리에는 앞으로 여름 안거를 위해서 방부(房付) 들이고 갈려고 하는 수좌(首座)님들이 분인가 있을 생각합니다.

따로 내가 만나서 화두를 일러드림사 좋지마는 그러헌 시간이 없으니 법상(法床)에서 이렇게 말씀을 것을 명심해서 듣고, 그렇게 해서 화두를 걸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선방에 가서 정진을 잘하기를 바래고.

 

여기에 참석하신 사부대중 여러분들도 새로 오신 분이나, 오래 전부터서 법문을 들으시고 공부를 하신 분이나, 오늘 조실 스님의 법문이나 또는 산승의 말씀은 앞으로 공부해 나가는 데에도 명심해서 주시기를 바랍니다.(5142~6212)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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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일을 맡은 스님.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묘한 의심관(疑心觀) ; 묘관(妙觀). () 의심(疑心) (). 화두를 거각하여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 하는 .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5분 59초)

 

처음에 공부를 모르는 사람은 힘을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밖에는 없지만,

, , 이렇게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해도 화두가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걸랑,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 하는 거여. 없는 의심의 ()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일은 없는 의단(疑團)만을 잡드리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 () 긴완(緊緩) 득기중(得其中) 해야 . 그것이 묘한 ()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아는 사람은 바로 ()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의심(疑心) ()’으로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관해 나가면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의심의 ()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 막론하고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 2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 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 , , 3, 5, 10년을 해도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말로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하고, 고대로 하면서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묘한 의관(疑觀)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조정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의심관, ()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생각 없는 생각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활구참선(活句參禪)의심(疑心) 이라야 .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 서산에 지려고 ,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때에,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빨갛고 아름다운 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수가 없는데, 해가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해를 수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떨어져서 보일 때까지 시간 내지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때까지 관찰하고서, 다음에는 밤새 눈을 감으나 뜨나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다시 관을 해서,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밤새 관하고, 이튿날 관하고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일관이라든지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 있는데, 참선도 하나의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이뭣고?’ 해도 없는 의심이해가 봐두었던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 .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역대조사(歷代祖師)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발심(發心) ;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發起菩提心 발기보리심, 發菩提心 발보리심.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조주(趙州) : (778 – 897) 이름은 종심()이고 속성은 ()씨인데, 산동성(山東省) 조주부(曹州府)에서 났다. 어려서 출가하여 남전(南泉) 보원선사(普願禪師) 법을 받고, 문하에서 이십 동안 있었다. 팔십 세까지 각처로 돌아다니다가(行脚) 비로소 조주(趙州) 관음원(觀音院)에서 학자들을 제접(提接)하기 사십 . 당나라 소종(昭宗) 건녕(乾寧) 4 120세에 입적하였다. <어록(語錄)> 3권이 남았고, 그의 교화가 참으로 커서 조주 고불(趙州古佛)이라고 일컬었다.

*상기병(上氣病 오를 /기운 /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 머리에 치밀게()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 상기병이 생기면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혼침(昏沈 어두울 , 잠길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무기(無記) : [] Avyaksita ()•()•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 말한다.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몽산(蒙山) : ()나라 스님, 생몰 연대 없음. 이름은 덕이(德異), 강서성(江西省) 여릉도(廬陵道) 시양 고안현(時陽高安縣)에서 났다.

고향 시양이 당나라 때에는 균주(筠州)였기 때문에 고균(古筠) 비구라고 일도 있었고, 여릉도 몽산에 있었으므로 몽산화상이라 하며 강소성(江蘇省) 송강현(松江縣) 전산(殿山) 있었으므로 전산화상이라기도 하고, 휴휴암(休休庵) 있었으므로 휴휴암주라기도 하였다. 고산(鼓山) 완산(皖山) 정응선사(正凝禪師) 법을 이었다.

그의 교화한 시기는 원나라 세조(世祖) 때이며, 우리 고려의 충렬왕 때이다. 그래서 고려의 고승들과 문필의 거래가 많았고, 그의 저서 가운데 <법어약록(法語略錄)> <수심결(修心訣)>등은 이조 중엽에 우리 글로 번역되기까지 하였다.

*몽산법어(蒙山法語) ; ()나라 몽산스님의 법어로 참선 수행의 구체적인 길을 자상하게 제시하였다.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몽산법어 있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3,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3, 내쉬는 시간은 4~5,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80 동안거해제 법문에서.(1분 32초)

 

숨을 들어마실 코로 들어마신다 생각을 하지 말고 뒤에서 들어마셔 가지고,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지고 거기서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뒤에서 궁둥이로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내쉰다, 내보낸다이러한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수식관(數息觀); 들숨과 날숨을 세어 산란한 마음을 집중시키는 수행법.

*방부(房付)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 참가하다.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