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 사리불 두 제자의 백골관, 수식관 수행 / 부처님의 혜안(慧眼) / (게송)법왕권실영쌍행~ / 도(道)는 자기가 자기를 사무쳐 버리는 것.

달마 스님께서 혈맥론(血脈論)에 ‘이 도를 닦고자 할진대는 먼저 급히 바른 스승을 찾아야 할 것이다’
바른 스승만 만나서 그 앞에 위법망구(爲法忘軀)적으로 몸과 목숨을 다 바칠 수 있는 그러한 바른 스승만 우리가 만난다면 도(道)는 걸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거기에 다 도를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여.
선지식(善知識)이 무엇을 많이 가르쳐주고, 말을 많이 해주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선지식이 무엇을 할 말이 있겠습니까? 이 도(道)라고 하는 것은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자기가 한 번 탁! 봐 버리면 되는 것이지,
무슨 어려운 이론을 연구하고 무슨 그러한 공부가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사무쳐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믿지 않고서는 이것은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56)—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약 19분.



그 부처님의 왼팔과 같은 사리불(舍利弗) 존자가 두 제자를 가르키는데, 한 제자에게는 이 백골관(白骨觀)을 하도록 가르키시고, 한 제자에게는 수식관(數息觀)을 하도록 지도를 하셨습니다.

백골관 ‘흰 백(白)’자, ‘뼈 골(骨)’자, 백골관이라 하는 것은 공동묘지에 가 가지고, 그 인도는 풍장(風葬)이라 해가지고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지 아니하고 그냥 저 숲속에다 그냥 놔둡니다.
놔두면 독수리란 놈들이 달라들어서 삽시간에 그 눈알도 다 빼먹고 살도 다 뜯어먹고 뼈만 앙상하니 내놓습니다.

그래서 뼈가 풍마우습(風磨雨濕)에 닳고 닳고 얼고 불고 해 가지고는 나중에는 그것이 다 없어지는데,
처음에 시체를 갖다 놓으면 차츰차츰 썩어 들어가 가지고는 피부가 문드러져서 다 없어지고, 그 다음에 뼛골만 앙상하게 남아서 달아져 없어질 때까지 매일 가서 밥만 얻어다 먹으면 계속 그 시체 옆에서 계속 관찰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관찰하면서 거기서 정진하는데 그것을 백골관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식관(數息觀)이라 하는 것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시 머물렀다가 또 조용히 내쉬고, 또 들어마셨다가 머물렀다 내쉬고 해서, 한 번 들어마셨다 내쉬고 ‘하나’ 또 들어마셨다 내쉬고 ‘둘’,
그렇게 해서 셋, 넷, 다섯, 여섯... 해서 ‘열’까지 세어 올라가면 또 그 다음에는 아홉, 여덟, 일곱, 여섯... 해서 거꾸로 세어 내려오고, 또 하나까지 내려오면 하나에서 열, 열에서 하나,

계속 올라갔다 내려갔다 그러면서 그것이 잘되면 그 다음에는 하나에서 스물까지 세어 올라가고, 또 스물에서 열아홉, 열여덟, 열일곱... 해서 거꾸로 세어서 하나까지 내려오고,
중간에 딴 생각이 나거나 몇 가지 세었는가를 잊어버리면 다시 또 하나에서 시작하고,

이러기를 서른, 마흔, 쉰... ‘백’까지 세어 올라갔다가 ‘백’에서 아흔아홉, 아흔여덟, 아흔일곱... 해서 하나까지 거꾸로 세어 내려옵니다.

계속 새벽부터 저녁, 저녁부터 새벽까지, 날이면 날마다 그 자기의 호흡을 세는 것입니다. 이것을 수식관이라 하는데,

이 백골관이나 수식관이 우리 수행해 나가는데 대단히 요긴한 하나의 수행 방법이 될 것입니다마는,
그런데 그 두 제자가 주야불철(晝夜不撤)하고 그렇게 철저히 정진을 10년, 20년, 30년 이렇게 했습니다. 했는데 깨달음에 이르지를 못했습니다. 못하니까,

‘열반(涅槃)이니, 무루지법(無漏之法)이니, 그따위 것이 어디가 있어? 그러한 것이 있었다면 왜 내가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못했을까?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못했지, 그러한 참으로 깨달음이란 것이 있고, 무루지법이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벌써 깨달음을 얻었어야 할 거다. 우리가 못한 것으로 봐서는 틀림없이 그런 것이 없어.
괜히 그런 것이 있다고 속여 가지고 우리로 하여금 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그런 것이다’

‘왜 그런 것이 있다면 깨달을 텐데, 없기 때문에 깨닫지 못할 것이다’하는 생각을 하냐 하면은
‘오계, 십계, 내지 250계, 계율을 하나도 어김없이 철저히 지키고, 새벽부터 저녁, 저녁부터 새벽까지 1분 1초를 게으름을 부리지 아니하고 이렇게 살이 다 마르고, 피골이 상접하도록 이렇게 하는 데도 깨닫지를 못합니까?
그렇다면야 열반이니, 견성이니, 성불이니 이런 것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런 말을 스스로도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이렇게 분개해 가지고 막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그 말씀을 들으시고서 사리불과 백골관과 수식관을 한 사람을 불러다 놓고서,
“사리불아! 네가 두 제자를 지도하는데 있어서 방법이 거꾸로 되었느니라.
한 사람은 세탁업을 하던 사람이고, 한 사람은 쇠붙이를 다루는 성냥간을 하는 사람인데,
쇠붙이를 다루는 성냥간 하는 사람에게는 응당 호흡을 세는 수식관을 시켜야 옳고, 세탁업을 하던 사람에게는 백골관을 시켜야 할 것인데,

너는 꺼꾸로 성냥간하는 쇠붙이 다루는 사람에게는 백골관을 시켰고, 또 세탁소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수식관을 시켰어.
꺼꾸로 시켰기 때문에 그 수행 방법과 그 사람과의 인연이 맞지 아니해서 그렇게 피골(皮骨)이 상접(相接)하도록 정진을 했건마는 도업(道業)은 성취하지 못하고 마침내 사악(邪惡)한 소견을 일으켜서 정법을 비방하게 만들었느니라”

그렇게 사리불을 꾸짖으시고, 그 두 백골관하던 사람과 수식관하던 사람에게 이런 설법을 해서 언하(言下)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수행을 해 나가는 데는 ‘관세음보살’을 부른다던지, ‘아미타불’을 부른다든지 또는 백팔참회(百八懺悔)를 한다든지, 삼천배 예배를 한다든지, 또는 단식을 하고, 묵언을 하고, 또는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하고, 이러한 여러 가지 수행법이 있고,
또 주력(呪力)을 한다든지, 경을 외운다든지 또는 화두를 참구해서 참선을 한다든지 여러 가지 수행법이 있습니다. 있는데 주력을 해서는 안 될 사람도 있고, 또 참선을 시켜서는 안 될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주력이나 참선을 해서 안 될 사람에게 이것을 시켜 놓으면 얼마 안가서 미친병이 생기기도 하고, 헛것을 보고 자꾸 정신이 미치고 그래가지고 바르게 닦아가지를 못할 뿐만 아니라,
정법(正法)에 누(累)를 끼치고 사람들로 하여금 회의심을 품게 하는 그런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그래서 사람의 근기(根機) 따라서 때로는 금강경이나, 반야심경 내지 고왕경과 같은 그런 경(經)을 외우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이나 ‘지장보살’ 같은 염불(念佛)을 하게 할 수도 있고,
때로는 ‘옴마니반메훔’이나 그 밖에 무슨 ‘능엄주(楞嚴呪)’라든지 그런 주력을 시킬 수도 있고,

대뜸 처음부터서 ‘이뭣고?’ 화두를 주어서 화두(話頭)를 참구(參究)하는 이 참선법(參禪法)을 해야 할 사람도 있는 것이어서,
또 화두도 ‘시심마(是甚麼)’ 라든지, ‘무자(無字)’ 화두라든지,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든지, 그 사람에게 적합한 화두를 간택을 해서 그 사람에게 맞도록 공부를 지어가도록 지도를 해야 할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괜찮은 사람도 있고, 그 사람에 한해서는 주력을 해서는 안 될 그런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눈밝은 그러한 선지식(善知識)이라야 능히 중생의 근기를 거울 속 들여다보듯이 보고서 거기에 맞춰서 지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사리불이 두 제자—쇠붙이를 다루는 성냥간 하던 사람이나, 세탁업을 하던 사람,
그 두 사람을 갖다가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이 사람에게 백골관을 시키나, 저 사람에게 백골관을 시키나, 누구나 수식관은 하면 다 좋을 것이고, 누구나 백골관 하면 다 좋을 것 같이 느껴질 것입니다마는,

부처님의 혜안(慧眼)으로 볼 때에는 그 조그마한 터럭 끝만 한 차이로서 도를 깨닫고, 깨닫지 못하고,
때로는 마침내는 사견까지 발동을 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 오리라는 것을 꿰뚫어 보시게 되는 것입니다.


법왕권실영쌍행(法王權實令雙行)하니  뇌권풍치해악경(雷捲風馳海岳傾)이로구나
나무~아마타불~
벽력일성운산진(霹靂一聲雲散盡)한데  도가원불섭도정(到家元不涉途程)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법왕권실영쌍행(法王權實令雙行), 법왕(法王)의 권(權)과 실(實)이 하여금 쌍(雙)으로 행하게 한다.
대법왕(大法王)은 권(權), 방편(方便)으로—팔만사천 가지의 그 좋은 가지가지 방편으로 중생의 근기에 맞도록 방편법을 쓰시고, 그 근기가 수승함에 따라서 그 방편을 거두시고서 실법(實法)으로서는 제도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 방편법과 실법을 자유자재로 두 가지를 써서, 뇌권풍치해악경(雷捲風馳海岳傾)이여.
이 뇌성벽력(雷聲霹靂) 하는 그 뇌성이 치고, 바람이 치달아서 바닷물이 넘치고 산이 거꾸러진다 그말이여.

법왕(法王)의 권실, 방편법과 실법을 자유자재로 쓰는 그 거동이 마치 번개치고 폭풍이 불고, 바닷물이 넘치고, 그래가지고 산이 넘어지고 하는 그렇게 자유자재하며 변화가 무쌍(無雙)하며,
어떠한 업(業)이 두터운 중생, 어떠한 악한 중생이라도 그 법왕의 권실쌍행(權實雙行)하는 앞에서는 봄눈 녹듯이 다 녹아져 버릴 것이다 그말이여.

벽력일성운산진(霹靂一聲雲散盡)하면, 그렇게 뇌성벽력을 하고—바람이 갖다가 폭풍이 불고 바닷물이 넘치고, 산이 거꾸러지고 이러다가, 천지를 진동하는 벽력 한 소리에 구름은 다 흩어져버리고,
집에 돌아오는데 원래로 길을 걸을 필요가 없다.(到家元不涉途程)

집으로 돌아오는데, 자기의 본고장을 잃어버리고 타향에 방랑객으로서 타향살이를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데다가, 이 도 닦아서 자기 본심을, 본 불성(佛性)을 깨닫는 것을 갖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데다가 비유해서 표현한 건데,

고향집에 돌아오는 데 원래로 길을 걸어서 돌아올 것이 없다. 자기 서 있는 데가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바로 자기 고향집이더라. 그런 말씀입니다.


그래서 달마 스님께서 혈맥론(血脈論)에 ‘이 도를 닦고자 할진대는 먼저 급히 바른 스승을 찾아야 할 것이다’
바른 스승만 만나서 그 앞에 위법망구(爲法忘軀)적으로 몸과 목숨을 다 바칠 수 있는 그러한 바른 스승만 우리가 만난다면 도(道)는 걸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거기에 다 도를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여.

소를 끌어다가 맑고 깨끗한 물 있는 데다가 대주는 것과 같아서, 소는 주인이 끌어다가 대주면 믿고 꿀꺽 꿀꺽 꿀꺽 양껏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주인을 믿기 때문에 주인이 갖다가 끌어다가 대준 물이라면 마음놓고 먹을 수 있듯이, 바른 스승 또 내가 믿어지는 스승이라면 한마디 밖에는 더이상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 말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한마디가 전부고, 일생의 수도(修道)가, 도 닦는 것이 바로 거기에 다 있는 것입니다.

그 선지식을 참으로 깊이 믿고 목숨 바쳐서 믿을 수 있다면, 입으로 법을 설하지 아니해도 먼빛으로 거동만 봐도 온통 화두(話頭)가 독로(獨露)하게 되고, 신심이 돈발(頓發)하게 되고,
웃거나, 울거나, 방귀를 뀌거나, 똥을 싸서 뭉게거나 그것이 하나도 허물로 보이지 아니하고 다못 신심이 돈발하고,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온통 몸과 마음이 한덩어리가 되어버린 것 뿐인 것입니다.

선지식(善知識)이 무엇을 많이 가르쳐주고, 말을 많이 해주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선지식이 무엇을 할 말이 있겠습니까?

이 도(道)라고 하는 것은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자기가 한 번 탁! 봐 버리면 되는 것이지,
무슨 어려운 이론을 연구하고 무슨 그러한 공부가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사무쳐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믿지 않고서는 이것은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33분7초~52분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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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불(舍利弗) ; 산스크리트의 샤리푸트라(śāriputra), 팔리어(語) 샤리푸타(Sāriputta)의 음역(音譯)이며, 추자(鶖子) ·사리자(舍利子)라고도 한다. 원명 우빠띳사.
인도 중부의 마가다왕국 수도 왕사성(王舍城) 근처의 바라문 출신으로, 인근 마을의 목건련과 친하여 어느 날 바라문교의 축제를 구경하다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승을 찾아나서 라자가하(王舍城)의 유명한 회의론자 산자야 문하로 들어갔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하던 중에,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제자 앗사지(馬勝)를 만나 들은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시네 / 그리고 또 그 소멸까지도 /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네”라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아 목건련(目犍連) 및 250명의 산자야의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했다.
부처님도 그를 높이 평가하여, 경전 중에는 부처님을 대신하여 설법한 경우도 적지 않음을 볼 수 있다.
10대 제자 중 수제자로, 지혜가 가장 뛰어나, ‘지혜제일(智慧第一)’로 칭송되었다고 전한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1년 전, 목건련이 그렇게 외도들의 몰매를 맞고 열반에 들려고 하자, 사리불은 자신이 목련보다 먼저 열반에 들겠다고 하고, 부처님께 자신이 부처님보다 먼저 열반에 들 것을 허락받기 위해 부처님이 계시는 기원정사로 갔다.
사리불은 ‘부처님께서 곧 열반에 드실 것을 알기에, 차마 제 눈으로 부처님의 열반을 볼 수 없어 먼저 열반에 들고자 합니다’하고 간청을 하여 허락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부처님께 귀의하게 한 후 열반에 들었다.
*백골관(白骨觀) ; 시신(屍身)의 피부와 근육이 모두 없어져 백골(白骨)만 남아 있거나, 흩어져 있는 모습을 관(觀)하여 몸에 대한 집착을 없애고, 인생무상을 깨닫는 관법(觀法). 고골관(枯骨觀)이라고도 한다. 구상(九想)의 하나.
[참고] 구상(九想) ; 구상(九相)이라고도 한다. 탐욕을 제거하고, 혹업(惑業 무명번뇌와 업)을 멀리하기 위해 사람의 시신(屍身)에 대해 수행하는 9종류의 관상(觀相 깊이 생각에 집중하는 것).
부정관(不淨觀)의 9단계를 말한다.
①시신이 부어 팽창하는 것을 관상하는 창상(脹想).
②바람에 날리고, 햇빛에 쪼여 시신의 색이 변하는 것을 관하는 청어상(青瘀想).
③시신이 부패되는 것을 관하는 괴상(壞想).
④부패를 끝내고 혈육이 땅에 스며드는 것을 관하는 혈도상(血塗想).
⑤시체에서 벌레와 고름이 흘러나오고 살이 흩어져 낭자한 모습을 관하는 농란상(膿爛想).
⑥새나 짐승이 와서 시신을 먹는 것을 관찰하는 담상(噉想).
⑦새나 짐승에게 먹혀 근골두수(筋骨頭手)가 분열, 파산되는 것을 관하는 산상(散想).
⑧육신이 이미 다해 백골만 남게 되는 것을 관하는 골상(骨想).
⑨백골이 불에 태워져, 재로 돌아가는 것을 관하는 소상(燒想).
*수식관(數息觀); 출입하는 숨을 세어서 마음을 통일하는 것. 그것에 의해 마음의 산란을 막음. 호흡을 세어서 마음을 집중시키는 수행법.
*풍마우습(風磨雨濕) ; 바람에 갈리고 비에 젖음.
*주야불철(晝夜不撤) ; 불철주야(不撤晝夜). 어떤 일을 함에 있어 밤낮을 가리지 않음.
*열반(涅槃) : [범] nirvana  [파] nibbana  음을 따라 니반나(泥畔那) • 니원(泥洹) • 열반나(涅槃那)라 쓰고, 뜻으로 번역하여 멸(滅) • 적멸(寂滅) • 멸도(滅度) • 원적(圓寂) • 안락(安樂) • 해탈(解脫) 등이라 한다.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를 말함이니,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할 것 없이 무엇이나 다 열반이며 어느 때나 늘 열반이다。이것이 큰 열반인 것이다.
*무루법(無漏法) ; 번뇌를 끝낸 것. 누(漏)는 누설(漏泄)의 준말로 번뇌를 뜻한다.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마음 상태, 또는 그러한 세계.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 마음 상태. 사제(四諦) 가운데 깨달음의 결과인 멸제(滅諦)와 그 원인인 도제(道諦)에 해당하는 모든 현상.
범부의 지혜를 유루지(有漏智)라 하는 데 비하여 도를 이룬 성자의 지혜를 무루지라 한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성냥간 ; ‘대장간(--間, 쇠를 달구어 온갖 연장을 만드는 곳)’의 사투리.
*피골상접(皮骨相接) ; 살가죽[皮]과 뼈[骨]가 맞붙을[相接]정도로 바짝 마름.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백팔참회(百八懺悔) ; 중생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108가지의 모든 번뇌에 대한, 번뇌·업장소멸과 참회의 뜻으로 108배의 절을 하는 것.
*장좌불와(長坐不臥) ; 밤이 되어도 눕지 않고 늘 앉아서 수행 정진하는 것.
*주력(呪力) ;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로 하는 기도.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의 효과.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누(累 괴롭힐·근심 루) ; 남의 잘못이나 남과 관계된 일로 말미암아 받게 되는 정신적인 괴로움이나 물질적인 손해.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
관세음(觀世音)은 산스크리트어 avalokiteśvara의 번역, 보살(菩薩)은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세간(世間)의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받을 때,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음성(音聲)을 듣고(觀) 대자비와 지혜로써 자유 자재로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보살.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왼쪽 보처(補處).
또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 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 한다. 또 광세음(光世音)·관세음(觀世音)·관세자재(觀世自在)·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쓰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관세음보살의 주처는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이다.
한국에서는 동해에 있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洛山寺)가 관음 도량으로 유명하다.
*아미타불(阿彌陀佛) ; 대승불교에서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法)을 설하는 부처님.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Buddha)의 감화를 받은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가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로 기원하였다.
또 48원(願)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오랜 겁을 수행한 결과 지금부터 10겁 이전에 그 원행(願行)이 성취되어 아미타불이 되었다. 줄여서 미타(彌陀).
의역하면 무량광불(無量光佛 Amitabha Buddha-무한한 공간에 꽉 차 있어서 안팎과 갓이 없는 빛의 부처님), 무량수불(無量壽佛 Amitayus Buddha-무한한 시간에 뻗치어서 끝없는 생명의 부처님).
*지장보살(地藏菩薩) ; 석가모니불의 입멸 후 미륵보살이 성불할 때까지, 곧 부처가 없는 시대에 중생을 제도한다는 보살로, 그는 모든 중생이 구원을 받을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보살이기 때문에 대원본존지장보살(大願本尊地藏菩薩)이라고 한다.
특히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에 사찰의 명부전(冥府殿)에 본존(本尊)으로 모신다.
보통 삭발한 스님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한 손에는 지옥의 문이 열리도록 하는 힘을 지닌 석장(錫杖)을, 다른 한 손에는 어둠을 밝히는 여의보주(如意寶珠)를 들고 있다.
지장보살은 고통받는 이들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윤회의 여섯 세계, 즉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에 상응하는 6가지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염불(念佛) ;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과 같은 불•보살님의 이름을 외움. 흔히 어떤 일을 기원하며 ‘나무관세음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을 소리 내어 외우는 일을 말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12에서.
(52)念佛者는  在口曰誦이요,  在心曰念이니  徒誦失念하면,  於道無益이니라.
염불이란 입으로 하면 송불이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염불이니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 데 아무 이익이 없으리라.

註解
阿彌陀佛六字法門이  定出輪㢠之捷徑也라.
心則緣佛境界하야  憶持不忘하고,  口則稱佛名號하야  分明不亂이니,  如是心口相應이  名曰念佛이니라.
「나무아미타불」의 육자 법문은 바로 윤회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여 잊지 말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되 분명하고 일심불난(一心不亂)해야 하니, 이와 같이 마음과 입이 상응하는 것이 염불이다.
*옴마니반메훔 ; 자비의 화신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성스러운 자비(慈悲)를 나타내는 진언(眞言)으로 ‘오! 연꽃 속의 보석이여!’라는 뜻이다. 여기서 보석은 자비의 상징이고, 연꽃은 지혜·깨달음의 상징이다.
산스크리트어 oṃ maṇi padme hūṃ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 육자진언(六字眞言)이라 한다.
이 진언을 외우면 관세음보살의 자비에 의해 번뇌와 죄악이 소멸되고, 온갖 지혜와 공덕을 갖추게 된다.
*능엄주(楞嚴呪) ; 『능엄경』에 있는 427구(句)의 다라니를 말하며, 대불정다라니(大佛頂陀羅尼), 불정주(佛頂呪)라고도 하고 자세히는 『대불정만행수능엄다라니(大佛頂萬行首楞嚴陀羅尼)』라 한다.
이 주문은 큰 영험이 있다고 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일찍부터 널리 염송되었다.
*대뜸 ; 이것저것 헤아려 볼 새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시심마, 무자, 정전백수자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혜안(慧眼) ; 지혜의 눈. 사물을 바르게 관찰하는 눈이라는 뜻. 진리를 보는 눈.
*(게송) ‘법왕권실영쌍행~’ ; [금강경오가해] 종경 서(宗鏡序) 참고.
*권•실(權•實) : 부처님의 깊은 이치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대번에 알기 어렵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방편으로써 처음에는 옅은 이치의 차별법(差別法)을 중•하(中•下) 근기에게 설한 가르침을 권(權)이라 하는데 소승교를 가리킴이요,
나중에는 참된 실상(實相)의 둘 아닌 법(不二法•眞如•平等), 영원히 변함이 없는 구극적(究極的)인 진리법을 설한 가르침을 실(實)이라 하는데 대승교를 가리킨다.
*뇌성벽력(雷聲霹靂) ; 천둥소리와 벼락을 아울러 이르는 말.
*법왕(法王) ; 부처님을 찬탄하는 말. 왕(王)은 가장 수승하고 자재하다는 뜻. 부처님은 법문(法門)의 주인이며 중생을 교화함에 자유자재한 묘용(妙用)이 있으므로 이렇게 이름.
*무쌍(無雙)하다 ; (사람이나 그 실력, 능력 따위가)서로 견줄 만한 짝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본고장 ; ①나서 자랐거나 본래부터 살아온 고장. ②어떤 활동이나 생산이 이뤄지는 본래의 중심지.
*혈맥론(血脈論) ;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이라고도 한다.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의 저술로 전해지고 있다.
문답형식으로 즉심시불(卽心是佛-마음 그대로가 곧 부처), 심외무불(心外無佛-마음 밖에 부처가 없다), 성불수시견성(成佛須是見性-부처를 이루려면 반드시 성품을 보아야 한다) 등의 말씀이 있다.
혈맥(血脈)은 사자상승(師資相承)이라고도 하며,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주고받아서, 정법(正法)을 상속하는 것. 신체의 혈맥이 서로 연결되어 끊어질 수 없는 것에 비유해서 말함.
[참고] [선문촬요 禪門撮要 上 血脈論] (경허성우 鏡虛惺牛 엮음)에서.
〇若不急尋師空過一生 然卽佛性自有 若不因師終不明了 不因師悟者萬中希有.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불성은 스스로 가지고 있으나 스승을 인연하지 않으면 끝내 분명히 알지 못하니,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깨닫는 이는 만에 하나도 드물다.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양껏(量껏) ; 할 수 있는 양의 가장 큰 한도까지.
*먼빛 ; [주로 '먼빛으로'의 꼴로 쓰여]멀리서 언뜻 보이는 정도나 모양.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사무치다 ; ①강하게 느껴지다. ②깊이 스며들거나 멀리까지 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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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