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강선사 일대기2017.11.10 18:59
•§•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3호) 혜월스님과 법거량.

**전강선사(No.008)—전강선사 일대기 제3호(경술1970년 12월 1일 새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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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산촉공우(暮山促笻雨)요 기립원강풍(欹笠遠江風)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모산(暮山)에 촉공우(促笻雨)다. 저문 날에 작대기가 급허고 그 걸음이 바쁘다.
그건 무슨 말인고 하니 모산(暮山)에, 날은 저물었는데 발도 바쁘고 작대기도 급허고 비는 오는구나.

거, 우리가 이렇게 참 온 곳이 하도 무량겁(無量劫)이요, 하도 과거요, 하도 구원겁(久遠劫)이요. 말로 할 수 없다. 저물었다 그말이여. 이렇게 이렇게 저물도록 왔구나.
뭘 했느냐? 여때까지 뭘 했어, 대관절.

오늘이 경술년 동짓달 보름 지나고 섣달 초하룻날 반산림(半山林)이로구나. 발써 금년 삼동(三冬)도 반산림이 되았다. 여태까지 오면서 오늘 섣달, 음력 섣달 초하룻날 반산림까지 왔구나.
그게 모산(暮山)이요, 저문 산이요. 작대기가 급허고 발자취가 급허다. 비는 오는구나.
비가 와, 비가 와. 이렇게 저문 산에 그 바쁜 가운데 비는 온다.

우중(雨中) 속에 비 가운데 있는, 비가 오니 비 온 속에 들었으니, 우중에 있으니 깜깜한 우중에 있어. 여태까장 깨달지 못했구나. 여태까장 날 밝은 비 안 오는 하날(하늘)을 보지 못했구나.
비 안 온 하날을 봐야 할턴디. 이 비 가운데서 이렇게도 발자취도 급하고, 작대기도 급허고, 산은 저물었구나.

기입원강풍(欹笠遠江風)이냐. 또 거다가 비는 오니까 삿갓을 뒤집어썼는데 그놈의 그 산풍이 냅대 불어 제끼니 작대기가(삿갓이) 벗거지면 왼 몸뚱이에 비를 맞게 되었구나.

이게 무슨 짓이냐. 중생의 버르정머리가 여차(如此)허구나.
원, 강풍에 삿갓은 벗어지제, 비는 냅대 오제, 저 발자취는 급허제, 산은 저물었제, 이 지경이로구나. 아, 이렇게 지경이 됐으니 어쩔 꺼나.

처억 한번 거 비바람 없는 곳, 한번 쾌청헌 날빛. 아, 그 툭! 한번 터져보지 못헐 꺼나?

한번 툭 깨달라버린 지경이 있을 텐디, 반다시 비 갠 하날이 있을 텐디, 구름 안개가 다 벗겨지고 환헌 화창헌 천일(天日)이 있을 텐디. 없을까?


장천척안몰(長天尺雁沒)이요 추공한영락(秋空寒影落)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장천(長天)에는 척안몰(尺雁沒)이요, 긴 하날에는 재질을 허는 기러기가 빠졌고,
추공(秋空)에는 한영락(寒影落)이로구나, 가을 하날에는 차운 그림자가 떨어진다. 그건 무슨 말인고?

장천에는 재질을 허는 기러기가 빠진다.
아, 이놈 저 창공 장천(長天)에 구름이 벗겨지고 만리청천(萬里靑天)에 확! 거 구름 한 점 일점무운(一點無雲)헌데, 외기러기란 놈은 재질을 해서 간다. 훌훌 날아가는 게 시방 재질 헌 거 아닌가. 허공 재질을 혀.
처억 그저 그러다가 빠진다. 빠진 것은 멀리 가버리니 빠졌지. 없지. 허공 속에 풍 빠져 버리드라.

추공(秋空)에 한영락(寒影落)이다. 거 뭐가 있나?
가을 하날에 차운 그림자가 떨어진다. 그 바로 갖춘 놈 아닌가. 바로 조사관(祖師關) 바로 갖춘 놈 아닌가. 그놈 봐버리면 아! 그만 그 문제 해결이지.

장천(長天)에 척안몰(尺雁沒)이요, 진(긴) 하날에는 재질해 가는 기러기가 빠졌어.
추공(秋空)에는 한영락(寒影落)이다. 가을 허공에는 차운 그림자가 떨어졌느니라. 아, 그 그...


오늘은 경술년 동안거 반산림이다. ‘내가 견성(見性)을 했다’
허, 인자 또, 또 인자 또 천하에 못된 자찬(自讚), 제 자랑은 천하에 못된 것이라는구만.

마누래 자랑 반 미친 이고, 온 미친 이라 하드나? 온 미친 이고. 자식 자랑 그 반 미친 이고.
자찬(自讚), 제 자랑은 그건 못 쓴다는구만, 그녀러 건. 암작에도 못 쓴대야.

반만 미쳤으니 그래도 그 뭐 좀 쓸모가 있고. 다 미쳤드래도 그래도 그 미친놈이라도 그래도 그 등거리는 남아 있고. 자찬은 못 써, 그녀러 거. 버려버려.
허지마는 독찬, 자찬이란 것도 그것도 어디 꼭 못 쓸데만 갖다 붙일 것 뭐 있나. 그것 쓸디다가 붙여 보지.

바로만 견성을 했고, 바로만 일 마쳤으면 그대로 참, 이상 더 있어?
견성을 잘 못했으면 영 못쓴 것이고, 옳게 했다면 영 쓰는 것이고, 남 찬(讚)을 바랠 것도 없고 자찬도 능히 할 수 있는 문제지.

내가 견성을 해 가지고—몰라 인자 참 했는지, 그릇했는지 내가 견성을 내가 했다 이게니깐.
다 인자 그, 인자 참, 선지식(善知識)들이 다 시험을 해 보아야 하고 시험에 합격이 되아야 하는 것이지, 제 자랑, 제 찬, 제 견성은 소용없다 그말이여.

나는 내 견성을 했드라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선 그 오도송(悟道頌)을 척 그날 저녁에, 뭐 그대로 나와.
참 견성인지, 거짓 견성인지 그건 분간할 것 없고, 그대로 나와.

산 넘어 태안사를 들어가서 뜰에 턱 거닌디 그날 밤의 달은 환허다.
나온 것이 견성—내가 언제 글 지어 봤나. 뭐, 글을 한바탕 해 봤나. 아, 그런 그 경계가 척 들어오면서 나온다 그말이여.

그때 진 것은, 요새는 내가 그걸 조금 그냥 거다가서 떼어 버렸지만 그때 진 놈은 그대로여.
거그 좀 가닥을 추켜들어서 머냐(먼저) 헌 놈을 다시 해야사 분단이 있으니까 그래서 헌 거여.


작야삼경월만루(昨夜三更月滿樓)요 고가창외노화추(古家窓外蘆花秋)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조도차상신명(佛祖到此喪身命)이요 암하유수과교래(岩下流水過橋來)니라
나무~아미타불~

작야삼경(昨夜三更)에 월만루(月滿樓)다. 어젯밤 삼경 달도 누(樓)에 가득찼다.
작야(昨夜)를 넣었어. 오늘밤인데, 오늘밤 밝은 다락 누(樓) 앞에서 지은 글이 작야(昨夜)를 넣었다 그말이여. 어젯밤 삼경 달, 다락에 그득 찼다.

고가창외(古家窓外)는 노화추(蘆花秋)로구나. 옛집 창밖에는 갈대꽃 가을이로구나. 그때 가을이제. 뭐 다른 말 썼나? 아무 다른 말 없어.
달빛에 보니 거 턱 태안사 그 밑에, 그 모두 그 인자 경계, 옛집 창밖에는 갈대꽃 가을이로구나.

불조(佛祖)도 도차상신명(到此喪身命)인디, 부처님과 조사도 여기에 이르러서는 상신실명(喪身失命)을 했는데, 상신실명은 거다가 붙일 것 없어.
상신(喪身)과 실명(失命) 왜 둘을 놓았는고? 상신도 몸 죽은 것이고, 실명도 명 잃었는데.

암하(岩下)에 유수(流水)는 과교래(過橋來)로구나. 바위 아래 흐르는 물은 다리로 지내오는구나. 이놈을 했지.
그 경계가 어떻게 설향수(說向誰)오, 누구로 더불어서 그 경계를 말을 헐 것인고.

그러고 나서 아침에, 저번에 했지마는 아침에 그만 아무데나 갔다 오줌을 싸버리니까 그 원주(院主)란 놈이 나오더니—그 경계를 알 수가 있나.
그 오줌도 못 가렸으니 나는 거그서 쫓겨나야 옳고, 아침도 못 얻어먹어야 옳지. 그 옳은 일이여. 허지마는 저 원주, 저는 그 경계를 모른다 그말이여.

나는 미친 행동을 했으며 쫓겨난 짓을 했거니와 그 감원 원주는 제가 선방 원주를 허지마는 그 도리(道理)를 알 수가 있나. 아무데나 오줌 퍼싼 것을 저는 보들 못혀.

허지만 또 거다가 “어디가 이놈 오줌 눌 곳이냐. 진대지(盡大地)가 부처의 전신(全身)인디 어따가 눌 것이냐?” 한바탕 또 물었다. 그것 뭐 물어 보니 쌩댕이가 뭐 뭔 말이 있나.
아침에 밥도 안 주고 쫓겨났네. 그래 가지고 마곡사를 갔다 그말이여.

마곡사 혜봉 스님이 계시니까, 혜봉 스님한테를 가서 다짜고짜 뭐 절 한 자리 턱 해부치고는—패철(佩鐵) 차고 댕겨. 도인(道人)이 풍수(風水), 산에 묏자리 잡는 패철 차고 댕겨.

머리도 안 깎아서 이렇게 흘러내려와 가지고는 그냥 영감탱이로 아들, 큰 아들 작은 아들 둘이 있고,
마누라는 그 혜봉 스님 부인은 천하에는 그렇게 못난 분은 어디 시집갈 데 없을 거여. 어디로 시집갈 수가 있나, 그렇게 못난 이가.
눈도 홱 비틀어지고 볼 아래 뽈따구는 하나도 없고 그 이상해. 다 얘기 헐 수가 없어. 그렇게 생긴 인데, 아마도 그분은 어디 시집갈 데가 없겄드구만. 아무디 시집갈 데 없을 꺼여.

허니, 혜봉 큰스님 그 도인 스님이라 누가 하나 거둬 둘 이가 없을 것 같으니까 마누라를 했든가 부여. 그러니까 그런 못난 부인을 살제. 초가집에서.
아들은 참 잘 나놨어. 그렇게 얼굴이 못난 이라도 아들은 잘났단 말이여. 둘이 다, 다 잘났제.

지금도 혜봉 스님 아들이 큰아들이 다 있고, 어머니 잘 못났단 말 들으면은 섭섭할 터이지마는 또 거다가서 ‘아들 잘 낳았다’하니 들으면 좋아할 터이지. 그거 그저 그 내 사실대로만 허니까.

그래 가지고는 뭔 인자 머리는 기다큼헌 참 촌노인처럼 된 이가 나이는 그때 한 50살, 거지반 50살 되었는데 패철을 딱 찼어. 묏자리 잡는 동서남북 가르키는 패철 차고 그러고 계셔.(처음~20분1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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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절 한 자리 턱 하고. 수좌(首座) 옷 입었으니까 그 뭐 수좌인 줄은 알 터이고.
절을 척 허니까, 나를 척 쳐다봐.

나도 한번 쳐다보고서 합장을 허고서 “무자(無字) 반(半)만 일러주십시오” 그저 간단허게, 뿐이지.
“무자 반만 일러주십시오. 무자의지(無字意旨)를 반만 요구합니다. 일러주십시오”
“무(無)”

“그거 반 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수좌가 이르게. 어떤 것이 무자의지(無字意旨) 반인가?”

내가 합장을 허고 “무” 이렇게 했지.

“고인이 이르되, 고인 법문에 ‘거년(去年) 가난은 비(非)가난이다. 거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 무입추지지(無立錐之地)여. 송곳 꽂을 땅이 없어. 금년 가난은 시(是)가난이여. 금년 가난이 참으로 가난해서 추야무(錐也無)다. 송곳도 없다’했으니 수좌는 어떻게 이를 텐고? 조사선(祖師禪)을 이르게” 저번에 여까장 했겄다.

법문(法門) 들을 때에는 화두를 혀. 내 본참화두(本參話頭)를 혀. 본참화두를 딱! 헌 가운데에서 법문도 안 들어와. 그 지경 좋지.
법문도 귀에 안 들어온디, 내 참선은 내 화두 허느라고 법문도 안 들어온디, 거 뭐 뭐 다시 그 경계 외에 뭣을 구헐 것이여. 뭣을 바랠 것이여. 법문은 들어서 뭣 헐 것이여. 화두 의단(疑團)만 독로(獨露) 했는데.

그러면 화두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한 가운데에서 이 법문도 안 듣킨가? 법문도 통 귀에 들어오지 않고 화두 의단독로만 나오는가?

법문, 법문이 딴 것이 아니라 그 화두 고놈의 대의(大意)여. 큰 의정(疑情)의 근본 뜻이여.
언하(言下)에 대오(大悟) 할 수 있는 것이여. 언하에 대오를 허는 법이여.

참선 화두 그대로 역력(歷歷)허면서, 법문 대의는 그대로 낙구(落臼)라. 그대로 척 들어오는 것이여. 헌디, 화두 독로 했다고 법문이 안 듣켜? 다 듣고도 능히 화두는 그대로 독로 헌 것이여.

저 조인광중중(稠人廣衆中)에, 조인(稠人)이라는 것은 모지라질 조자인디, 사람이 수천 명이 꽉 콩나물처럼 섰는 디가 조인이여.
우묵허니 조인광중중에 여러 조인(稠人)들이, 여러 사람들이 그저 떠들고 대고 잡화(雜話)하고 뭐 와각 와각 그런 것은 소용없어.

의단독로에 뭐가 들어와? 뭔 말, 그 같은 게 들어올 게 뭐 있어?
아무리 시끄럽게 아니라, 아무리 무슨 천지를 뒤집는다 하드래도 화두학자한테는 안 들어와.

허지마는 이런 공안 법문이 화두 역력허면서 그 법문은 그대로 낙구(落臼)가 척척 되아.
낙구(落臼)라는 것은 뭐냐? 문을 척 열면 제대로 가서 탁 맞는 것을 낙구라 하고, 방아 찧으면은 올려 놔두면 제대로 툭 떨어진 게 낙구여. ‘구(臼)에 떨어진다[落]’ 그말이여.

뭐 들을라고 해서 들어지나. 화두 헌 학자가 그래도 법문이 그만 그 제일구(第一句) 법문 턱턱 들어온 거지. 그래서 언하대오(言下大悟)여, 언하에 대오다. 말 아래 크게 깨달는다.

‘공부, 참선 화두, 화두 허니라고 언제 법문 들을 겨를이 있느냐?’ 이런 말도 들었지마는,
그렇게까장 공부를 헐 것 같으면은, 화두 허니라고 법문도 안 듣키면은 그 지경—그 화두가 그것이 그 법문도 안 듣킨다 허는 그 지경이 반 쪼가리밖에는 안되는 것이여.

화두를 들고 역력헌 가운데에 이러헌 공안(公案) 법문을 들을라고 듣는 것이 아니라 낙구가 된다 그말이여, 내 말은.

이런 말을 잘 들어! 부처님 설법을 족 설법헐 때에는 그 뭐락 했어? 뭐라고.
‘허공이 되아가지고 들을지니라. 다 비워라! 다 비워 놓아 버려라. 안 마음, 바깥 경계 툭 놓아 버려라’
뭐 놓을 것이 뭣이 있나? 처컥 귀 들고 들으면은 그 놓고, 안 놓은 게 어디 있는가? 여여독문(如如獨聞) 이지.


‘거년 가난은 참으로 가난해서 송곳 꽂을 땅이 없다’ 그 뭔 말이여?
‘금년 가난은 참말로 가난해서 추야무(錐也無)로구나. 송곳도 없다’ 뭐 그런 말을 못 알아들을 이치가 있으며, 거가서 낙안성예(落眼成翳)가 될 것이 뭣이 있나.
밝은 눈이면 다 볼 수 있지. 왜 그 밝은 눈에 가시가 될 것이 뭣이 있어. 그 밝은 눈깔에 티끌 될 것이 뭐냔 말이여.

‘거년 가난은 비(非)가난이여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 가난은 참말로 가난해서 송곳까장 없구나’
그 어떻게 했으면은—거그서 고인(古人)이 점검하되 ‘여래선(如來禪) 밖에는 네가 몰랐느니라 했으니, 어떻게 했으면은 조사선을 옳게 이르겄는가?” 무섭게 잡드린 말이제.

혜봉 스님, 패철을 타고(차고) 묏자리나 잡고 지나셨지마는 참 도인이여. 참으로 도인은 툭! 깨달라 버리니 그것 뭐 어디 가서 무슨 뭐 인연도세(因緣度世)를 헐 것이제. 인연(因緣) 따라서 도세(度世) 헐 것이제. 별것 뭐 있나.

그때 어디 가서 조실(祖室) 스님이 되아 가지고 학자를 제접(提接)했으면은 대단히 좋으련만, 또 그 혜봉 스님의 그때 사정이 형편이 그렇게 못 되아서 그랬을런지 모르제.
허지마는 속가에 가서 패철을 차고 천하에 못난 마누라 얻어 가지고 아들 둘 턱 나 놓고 요요자재(了了自在)하게 자재요요하게 그렇게 지내드란 말이여.

거그서 말이여, 그것 참.
내가 답을 허되, 대답을 했단 말이여. “능각(菱角)은 첨첨불사타(尖尖不似他)입니다. 능각은 첨첨해서 타(他)와 같지를 않습니다” 아, 이랬다 그말이여.

그러니 그 어른이 그때 ‘아니다’ 이 말 한마디만 해주었으면, 내 거그 안 떠나. 세상없어도 안 떠나!
내가 그 어른 밑에서 불을 때주고 내가 심바람 해주고 마당을 쓸어주고 패철을 내가 가지고 대니면서, 산에 대니면서 내가 시봉(侍奉)을 헐지언정 안 떠나.

옳단 말도 없고! 거 학자를 그렇게 잡드리해서는 안 되겄드구만.

‘옳다’고 헌 말도 없고, ‘그르다’고 헌 말도 없고, 그만 그대로 그 뒤가 그만 아무 말씀도 없고, 그 말씀 없는 태도도 그렇게 부인(否認), ‘아니다’ 소리 아니여.
그래서 ‘아니다, 기다’할 것도 없고 맞으니께 그런가 보다. 옳다든지 그르다든지 그런 말이 없이 태연허니 그래서, 옳다! 인가(印可)를 허신 것이로구나. 이렇게 알았다 그말이여. 여그는 그래 두거든 내가.

능각첨첨불사타(菱角尖尖不似他)가 절대 아니여, 지금은. 지금은 아니다 그말이여. 아, 이런 놈의 꼴 좀 보소.
그 뒤에 내가 아닌 걸 발견했거든. 내가 스스로 발견을 다 한 거여.

그만 거그서 뚝 떠나 가지고는 지리산으로 들어왔다. 지리산 쌍계사(雙磎寺) 위에 동방장(東方丈)이라고 있어. 아, 학자들이 다 봤을 터이제.

동방장에 그때 누가 있었드냐 하면 허태오라는 스님이 있어. 허태오.
허태오인디 이름은 태오인디, 그 다음에는 당호 누구한테... 그 당호(堂號)를 허운송이여. 운송(雲松), 구름 운자, 솔 송자, 허운송 스님이여.

운송 스님이 그때는 허태오라고 했제, 운송 스님이라고 안 했는디.
동방장에 계시는데, 동방장 조실(祖室)로 있는 것도 아니고—언제 그분이 나와서 조실 살림 헌 일도 없고 동방장 뒷방에 가만히 이래 앉어 공부헌 분인데.
누데기는 누데기는 한국에서 그런 누데기는 없어. 참 진짜 누데기인데. 무풍 스님보담 더 혀.

왜, 옛날에 만공 큰스님 다 계시고 헐 때 무풍 스님이 있었거든. 무풍 스님은 누데기로 누데기로 유명한 분인데, 이 허태오 스님은 그 무풍 스님 계통도 아닌데, 그렇게 누데기를 입었어.
굉장하니 전부 실이제, 바늘로 꾸맨 실뿐이제, 베 자체라는 건 하나도 없어. 고렇게 집어서 입고.

음식은 잡숫되, 솔잎을 따다가서 빻아서 그 가리를 바리때에다 넣어가지고는 물에다 타서 자시고. 그밖에는 없제. 아무것도 먹는 게 없어. 거 무슨 콩가리 조금씩 먹는다 하드구만.

세상에는, 그러헌 누데기에다가 송엽 빻아서 가리, 콩가루에다 묻혀서 그 물에 좀 타서 자시고 그러고 앉었는 걸 보니 참, 세상에 도인의 아무리 참 탈속(脫俗)헌 도인의 생활이라고 헌다 헐지라도 그 이상은 더없어. 참 고상허고 깨끗허고 기맥히게 해가지고는 딱 지내는데.

마침 그 스님 책상 위에다가서 법문을 하나 써 붙여 놨는디. 그 또 책도 그 뭔 책을 많이 그 법문을 해서 모도 지어 놓고 책상에다가 걸어 놨는디.

그 법문이 월조(月照) 스님 찬(讚)이여. 달 월자, 비출 조자, 월조선사찬(月照禪師讚)이여. 영찬(影讚).
‘월야할(月也喝)이요, 월에도 할이고. 조야할(照也喝)이요, 조에도 할이요. 월조니까. 월도 할, 조도 할. 비월비조(非月非照)라도 역할(亦喝)이니라. 월도 아니고 조도 아니드래도 또한 할이다’
요렇게 딱 해 놨어. 월조 스님 영찬에다가.

내가 묻기를, 거가서 인자 보고 절 한 자리 하고는 앉었다가 내가 묻되 “월도 할이요, 조도 할이요, 비월비조라도 역할이라 했으니”
그 할도 빈할(賓喝)도 있고, 주할(主喝)도 있고—빈은 ‘손 빈(賓)’자, 손에 대해서 할도 있고, 주인에 대해서 할도 있고, 빈할도 있고 주할도 있으며 타할(他喝)도 있고 자할(自喝)도 있을 터이제. 다른 이한테 할도 있고 나, 내 자할도 있을 터이제. 그러지마는 이건 내가 헌 소리고.

‘빈할 주할 타할 자할도 있을 터이제. 그러니 월도 할이요 조도 할이요 비월비조도 할이다 하는 것이 그렇게 다 할 수가 있겠다’ 내가 짐작을 딱 하고서는,
“그래 그러면 월(月) 조(照) 비월비조(非月非照) 다 할(喝)을 했다면은 그 할은 어따가 하는 것입니까?”

불가불 할로 들어갈 밖에 없제. 빈할 주할 타할 자할 다 툭 떼 번지고 인자 불가불 바로 들어갈 수 밖에 있나. “할(喝)은 어따가 허는 것입니까?” 고런디 가서...

잔 사람은 나가! 눈깔 감고 잔 사람은 나가!
고런 놈의 심리를 가지고 선방에 들어와서 밥 도둑질 말어! 공연히 씨잘데 없이 밥 도둑질이나 해 먹고 앉아서 그렇게 지낼라고 말아!
시주것 함부로 없앨 수 없고. 제 죄 퍼짓고. 고래 가지고 무슨 되나 말이여.

그런디 그 바로 보이면은 답 하나 해야 혀. 그 바로 보이지 않고는 답 못혀. 왜 못 허냐?
왜 그렇게 어리석게 해가지고 어쩔라고? 응, 더듬허니 의심이 나 가지고는 그...
자기를, 내 경계를 내가 살펴 봐. 그래 가지고 해 되야? 바로 보이거든 해 봐.

아, 그래야 될 것 아닌가, 우리가 서로 탁마(琢磨)인디. 탁마상성(琢磨相成) 해야 하는디.
그 묻는 것 그런 거, 벌써 척 헌 데 가서 처컥 보면 왜 못혀.

허태오 스님이, 그때 허태오 스님이어. 그 말 대답을 나한테 통쾌하게 한마디를 못 일러 주었겄다.
다 알면서도, 나한테 그랬던지 어쨌든지 법을 애꼈든지 안 해 주었어.
나 안 해 준 줄만 알지, ‘몰랐다, 못 봤다, 못 깨달랐다’ 그런 말 안 해아. 나 고때 그 지경만 얘기했지.

또 그런 것을 그렇게 탈속하게 참 도를 닦고 계신 분한테 내가 함부로 거다가서 뭐 방맹이—요새 꺼떡 허면 무슨 방맹이 준다고. 제가 무슨 뭐 방맹이, 무슨 갖춘 방맹이나 있나?
쫓아 들어가서 선지식 방맹이부터 줄라고? 고렇게 평생 고런 것이 있어. 거, 천하 그런 것 천하 참 때려잡기 천하 쉽네.

그놈이 참말로 눈깔 가진 놈이야 아! 그것 무슨 뭐 편영이행(鞭影而行)이제. 말헐 것이 있나.
발써 남 방맹이 줄라고 고런 것 엿보고 댕기는 것은 가짜인 것이여. 틀렸어.(20분19초~41분3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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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뭐 들으니 어저께 여그 무슨 자혜 수좌 한테 들었나?
자혜가 통 묵언허고 들입대 공부를 해제끼는디 하! 가당(可當)토 안 혀. 지금 이 대중에서 응, 압도(壓倒)구만. 압도적이여.
그 밖에 나가서도 그만 그 공부를 허는 것 보면 냅대 버티고 허며 아! 한바탕 그래야제. 저 담 밖에 댕긴 걸 봐도 화두를 꽉 붙잡고 그 들입대 참 용맹 참 정진이여.

그런디 저 먼첨은 원청 여그가 그려. 원 돌아설 디도 없어. 방이 좀 넉넉한 방이 아! 여그저그 좀 있어야 헐턴디.
저 저짝 방, 선객 스님네 지금 지내는, 우리 대중 지내는 선방 쬐끄만헌 디서 밥을 먹고 거그 잠자고, 거그서 서서 왔다갔다 하고, 원 이것 당최 원청 복잡햐.
고런 것이 그만헌 방이라도 어디 서너 개나 있어야 헐 텐디, 원 없어. 개복실(改服室)도 있어야 하고 좀 허리 펴는 디도 있어야 헐 것인디.

아! 뒷방은 쬐깐헌 것 메주를 거다가 시방 띄우느라고 두고. 거, 부인 손님 오시면은 그 방에서 밥을 잡숫게 하고, 원 당최 꼼짝헐 수가 없어.

어디 뒷방이라도 넉넉한 방이 있으면은 같이 큰방에서 정진허고 나와서, 그 뒷방에 와서 용맹정진을 헐 생각이 꽉 차고.
거 그런 숭악헌 방에라도 들어가면 그만 정진을 허고 있고. 아, 어떻게 했으면 참 쓰련만 당최 뭐 용납헐 수가 없어.
그래 가지고는 당최 마음대로 제 양대로 한바탕 도를 닦아 봐야 하겠는디, 그 양대로 못해 봅니다. 자연 모도 걸리게 되고.

그래 내가 말을 허되, “자, 천 경계 만 경계가 내게 있으니 그 좀 복잡허고, 그 좀 처소가 방연(尨然)치 못허드래도 어쨌든 그런 데서 한번 참, 인행(忍行)을 허소. 참는 행을 허고. 약무인행(若無忍行)이면 만행(萬行)은 불성(不成)이여. 참는 행이 없으면 만행을 이루지 못혀.
집도 절도 없어 바위 틈새기 가서도 도를 닦고, 거 다 고인(古人)네가 다 옛날 고인네가 토굴터, 산중에 들어가서 토굴터 잡아 가지고 방을 맨들되 둘도 못 앉게 맨들어 가지고 눕도 못허고 다맛 앉어서 다리도 못 펴고 꼼짝없이 들어앉아서 공부헌 도인도 있어.

역부러 그렇게 방을 지어. 발 뻗고 허면은 눕고 싶기도 허고, 그런게 이리 앉어도 당최 뭐 몸뚱이 돌이킬 곳이 없이 혼자 몸뚱이 꽉 찌어 앉게 요렇게 해 가지고 도(道)도 닦았으매, 한 철 넉넉헌 방이 없고 그러드래도 불끈 참고 산림(山林) 중에 휘딱 달아나고 그러지를 말고.
다 똑 도 닦는 스님네니까, 도 닦는 스님네가 모여서 서로서로 찡겨서 그 용납할 길이 없다 하드래도 다 도 닦는 스님네니 그러헌 디서 넉넉헌 마음을 품고 화두(話頭)를 잘 잡드리허고 좀 지내고 잘 지내소.

모든 경계(境界)가 내게 있고, 삼라만상 일체 외경(外境)이 바깥 경계가 내 한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지.
분다헌 것이라든지, 시(是)와 비(非)라든지, 일체 추헌 경계와 만경(萬境)이 내 자심소현(自心所現)이니, 내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니 그 마음을 단속하고 어쩠든지 도를 한번 참아, 그 참아 가면서 닦아 보소”

그래서 내가 가서 인자 대중 큰방에서 묵언도 허고 좀 잘 좀 닦아 달라고 부탁하고, 그래서 그동안에 공부를 알뜰이 잘 허더니 또 엊저녁에 또 다시 와서 묵언(默言)을 트고—나한테 와 또 틀 밖에 없지.

묵언을 트고 말을 허되 “스님네는 참 그렇게 공부를 알뜰히 잘 허십니다. 허신 가운데 저도 좀 그 가운데 들어서 참아 가면서 잘 닦았으면 좋겠는디, 늘 그 가운데 공부는 허느라고 딴에는 애를 씁니다.
허지마는 양껏 못 해서, 양대로 좀 못 해서, 아! 우리 스님한테 ‘그 용(茸)을 좀 보내 달라’했더니 용을 보내 주어서 그놈을 달여서 먹고는 기운도 나고 앉어서 정진허기도 좋고 아, 그래서 양대로 좀 해 보고 싶은디 뒷방이 하나가 있으면은 한바탕 거그서 했으면 좋겠는데.

아, 모도 공부허시는 방에 나 혼자 부셔대고 나 혼자 잠을 안 자고, 다 주무시는디 혼자 부스럭 대고 거그서 잠 오면 또 일어나기도 허고, 또 잠 안 오면 앉기도 허고, 일어났다 앉었다 허는 가운데도 제 좀 그 양대로 한바탕 해 볼 마음이 납니다.
그러헌디 아, 뒷방 하나가 없고 허니까 양껏 못 해서 이것 큰일나고, 반산림은 다 되아 가고 또 금년 삼동에 일을 마추지 못헐 것을 생각하니 참 근심이 됩니다” 아, 이려!

아, 거 인자 나이도, 뭐 나이가 있을까마는 5세에 견성도인도 있는 것인데, 나이 18세니 뭐 넉넉허지마는 그때를 여의고 언제 있겄는고 말이여. 아! 그 참 기특허다 그말이여.

“오냐, 정 그렇다면은 내가 네 허는 짓을 보니 그래 애쓰는 것이 보인다. 그거 참 퍽 기특하다. 나는 아무것도 없고 그것밖에는 바라지 않는다.
여기에 와서 그저 내 이 처소도 아닌디 토굴도 아닌디, 이런 데 오셔서 모도 고생허고 계신 그것은 내가 미안키도 허고, 허지마는 그 가운데에 참말로 그렇게 용맹정진 헌 것이 보인다면은 자기 일이고 당신네 일이... 자기네 일이기 따문에 내가 고마운 것이여. 누가 나 해달락 하나? 무척 고마운디.

오냐, 그렇다면 방 하나를 들여 만들아 줄 수가 있나. 어디 여그서 방 하나를 치워 줄 수도 없고. 그러헌즉 용주사로 가거라.
용주사도 내가 조실로 있고 내가 거그 중앙선원(中央禪院)이라고 허고 있으니 거그는 방이 많다마는 원청 경제 곤란으로 큰방만 불 딱! 너 놓고는 ‘큰방에 모여서 삼직(三職)이고 누구고 아무도 거그는 도 닦을 사람이면 다 들어오니라’해 가지고는 사미(沙彌), 지금 저 사미가 아니라 행자(行者)라도 다 내려와서 도를 닦고 있어. 거그 들어가서 한번 해봐라.

방이 원청 넓찍허니 큰디 그 방이 훈훈허니 좋다. 저 한쪽에 앉아서 제 마음대로 해도 누가 시비 헐 사람도 없지마는 눈에 어디 뭐 원청 큰게 아무 걸림 없다.
그러고 또 다른 방은 모두 안 때아. 다 그 꼭다리만 열어 놓으면은 곧 훈훈허지마는 기름 관계로써 기름을 한 달에 10만원 어치나 가량 때아.

그러니 그렇게 경제가 없기 따문에 큰방 하나만 때면은 불과해야 돈 몇만 원만 가지면 때니까, 그런 데 가서—그래 뒷방 하나 불 때 달라고 해서 하나를 떡 가지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없을 것이나, 지대방도 또 있으니깐 어떻게 그렇게 어떻게 한번 해 봐라”했더니 참 좋은 생각을 가지고 “그러면 그래 보겄습니다” 여까장 했어.

내가 오늘 법상(法床)에서 법문 겸해서 그런 어린 사람이 발심(發心)해서 도 닦는 것이 참 찬탄헐만하고 그래서 내가 여까장 말한 것이니 대중은 그렇게 알고, 오늘 반산림이니까 반산림 법문 듣고 그렇게 그리 가도록, 내나 해야 한 산림, 한 산림, 한 중앙선원이니까 그렇게 대중이 다 알아주어.


그래 또 연속해서 ‘거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어서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 가난이 참말로 가난해서 추야무(錐也無)로다. 송곳도 없도다’
그래 우리 도인은 참선법(參禪法)은, 참선 도리는 그 가난헌 법이여. 이렇게 가난혀.
돈과 쌀과 뭐 그런 것이 없어서 가난이 아니라 우리 참말로 가난헌 도리가 있어.

생사(生死)가, 죽고 사는 것이 없으니 발써 가난하제. 사는 것도 없다. 죽는 것도 없다. 생사가 우선 없으니 퍽 무척 가난하지 않는가.

흉중무물(胸中無物)이라, 가슴 가운데 물건이 없다. 고인도 ‘흉중무물이니라, 가슴 가운데 물(物)이 없느니라’ 무슨 물건이 있어? 아무것도 없제.

그 의리(義理)로 거, 저 수수께끼처럼 그 ‘흉중무물이라, 가슴 가운데 물건이 없느니라. 아주 가난해서 생사가 없느니라’
그러면 흉중무물 가운데에 참말로 그 ‘가슴 가운데 물(物)이 없다’한디,
그런데 가서 ‘흉중무물이다. 가슴 가운데 물이 없느니라, 물건이 없느니라. 또 생사가 없느니라’ 고런 것은 비유해서 말허자면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밖에는 안 되거든. 쥐가 괴(고양이)밥 먹었다. 그밖에는 안 되아.

반기이파(飯器已破)가 있어. 밥그릇은 이미 깨졌느니라. 고 어디가 들어맞는 말일까?
이것 이렇게 무척 가깝고, 내가 자꾸 바탕을 울려준디 이렇게도 모도 멍청헌가.
멍청허단 말 들어야제. 멍청이 소리 들어야제. 어째 할 수 없제.

어째 반기이파(飯器已破)일까? 응, 모두가 공안이라는 것도 경계요, 비유인디.

아! 뭐 공안이 뭣인가?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인고?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다. 바로 경계 아니여. 그놈 갖다 막 잡아 썼지, 뭐여.
그놈을 바로 봤다면은 다른 공안이 왜 맥혀. 천칠백(공안)이 왜 맥혀. 맥힐 거가 뭐여. 하나면 똑 같은디.

흉중무물이다. 가슴 가운데 물(物)이 없느니라. 그런 데가 인자 조사관(祖師關)이 딱딱 백혀야 되아.
생사가 없느니라. 생사가 없는 데 거가 조사관이 꽉꽉 들어가서 탁! 탁! 장엄을 해버려야 되아.
반기이파가 그놈이 있어야 되거든.

격외(格外)로 볼 게 따로 있제.
서식묘아반 반기이파는 격외로 봐도 안 되거든. 거 격외로 보면 되아? 큰일나지. 안 되아.
모도 그만 격외로만 보면 될꺼여? 평상화(平常話)로만 보면 될 꺼여? 되지 않아.


허태오 스님한테 가서 그 법문을 딱 내가 인자 물었어. 답이 없었고.
여까장 허다가 지금 모도 별상(別相)에 가서 여태까지 있었어.

내가 하룻밤 자고 떠나올 적에 또 물었다. 이것 천천히 해야 되는 법문이여.
한참 내가 견성했다고 미쳐 가지고 지금 인자—왜 미쳐 미치기야 행각(行脚), 활발헌 행각이지.
아침 하룻밤 자고, 나는 그래도 밥을 얻어먹었어. 공양주가 밥—다른 사람 다 밥을 먹으니까. 허태오 스님만 뒷방에서 그렇게 지내지.

아침에 떠나올 적에 물었어. 고봉 스님 사구게(四句偈).

해저이우함월주(海底泥牛啣月走)허고 암전석호포아면(岩前石虎抱兒眠)이라
바다밑에 진흙소는 달을 물고 달아나는디 바위 앞에 돌 호랭이는 아이를 안고 조는구나.

철사찬입금강안(鐵蛇鑽入金剛眼)이여. 쇠뱀이는 금강눈을 뚫고 들어가는디,
곤륜기상노사견(崑崙騎象鷺鷥牽)이여. 곤륜산이 쾨코리(코끼리)를 타니 해오라비란 놈이 말 마부가 되어 가지고 이끈다.

사구내(四句內)에, 이 네 글귀 가운데 유일구(有一句)한디, 한 글구가 있는디, 능살(能殺)이요 능히 죽이고. 능활(能活)이여 능히 살리고. 능종(能縱)이요 능히 주고. 능탈(能奪)이요 능히 뺏고.
그러헌 글구가 있으니 고놈만 가려내면 네가 견성했다고, 일 마쳤다고 허락해 주마.

“그런 공안, 그런 글귀가 있으니 그 글귀 하나를 일러 줍소사” 공경히 묻제.

‘뭐 속도일구래(速道一句來)하라’ 뭐 어쩌고 그려? 건방진 녀러(놈의) 녀석들. 제가 견성해 가지고 요렇게 일구래(一句來)라 하는가?

공경히, 참 그 이상 더 공경(恭敬)이 어디 있어. 공경히 묻제.
허니까, “해저이우함월주에, 혜월 스님이 해저이우...” 그이는 평생에, 허태오 스님은 혜월 스님을 제일 믿어. 그때 알았어, 또 믿은 것도.

“혜월 큰스님께서는 해저이우함월주라고 했다드라”고. 이려. 대답이 아니라 혜월 스님한테 핑계를 대서 그렇게 말을 햐.
“아, 거 혜월 스님께서는, 혜월 큰스님께서는 해저이우함월주라고 그렇게 일렀다 하시드라도 아, 스님 바로 일러 주신 말 한마디 요구헙니다. 한마디 일러 줍소사” 그러니, 그 말 한마디뿐이고는 어름혀.

내가 그때에 가서 허태오 스님의 그 살림살이를 그대로 다 봐 버렸제. 틀림없어.
뭣 헐라고 바로 봤으면은 바로 한마디를 일러 주든지, 못허면 못허든지, ‘혜월 스님은 해저이우함월주라고 했다’고. 될 수가 있나.

그러고, 해저이우함월주가 될 리가 있는가? 생각해 봐.
살림살이 다—그만 그저 “예”허고는 나는 물러났지. 더 말헐 필요가 없어.

살림살이 보기가 그렇게도 쉽고, 벼락이여.
억지로는 도인 노릇 못허는 것이고, 억지로는 천하 없이 해도 그렇게 겉으로 참 없어. 도인인 체허고 암만 채리고 앉었어야 소용없는 거여.

도만 있다면 척! 세상에 초부아동(樵夫兒童)이 되드래도, 나무 베는 아이가 되고 별 천하에 걸객(乞客), 비는 걸인이 된다 하드래도 천하에 그건 거그 있지.
누구 어떻게 속이고 어떻게 헐 것이냐 이말이여. 허지마는 아무리 채려야 소영없어. 묘허제.

내가 거그서 떠나와서 그 다음부터는 그 허태오 스님이 나와서 용성 큰스님 밑에 와서 제자가 되아 가지고는 ‘제2세 교주다’ 나오드구만.
‘2세 교주(敎主)다’ 나와 가지고는 대구를 들어와서 대구에서 참선을 가르킨다고 있어.

허지만 나는 다 알아 버렸은게 소용없지. 나와 태오 스님과는 거리가 참 퍽 멀어져 버렸지.
방장(方丈)에서 떡 하룻밤 자고 허태오 스님과 그와 같이 문답을 헌 후에는.(41분35초~63분9초)



(4/5)----------------

거그는 외산(外山)이제, 쌍계사는. 그래 그 그때 참 내가 옳게도 지내왔구만.
거기서 쌍계사에서 안산(安山)으로 넘어왔다. 그 쌍계사에서 넘어오제? 그 재를 뭐 벽소령(碧宵嶺)을 넘어오나? 하도 오래되서, 아마 벽소령 재를 넘어와야제? 거 아는 사람 다 있제? 없는가 보다.

그 벽소령 재를 넘어서 영원사(靈源寺)를 들려 와 가지고는 영원사에서 상무주(上無住)를 올라갔다 그말이여.
상무주를 올라가니께 그때 하혜일(慧日) 스님이여. 하혜일 스님이 누군지 모르제? 하혜일이여. 하동산이다 그말이여. 동산 스님.
하동산 스님이 그 상무주 계셔. 그래서 하동산 스님은 그때 의학전문학교 댕기시다가 졸업은 못 허고 들어오셨나, 졸업은 했나? 그건 내 잘 몰라.

들어와 도를 닦고 계시는디 아주 청정하게 참, 도를 닦고 계셔. 그럴 때 당신이 뭐 견성했느니, 안 했느니 그런 말은 전혀 없을 때고. 또 뭐 견성했다, 안 했다 그러고 지내시도 안 허고, 탈속(脫俗)허니 깨끗허니 그래 가지고 거그서 지내셔.
그래 또 거그서 하룻밤 자고. 별 도담(道談) 해 본 일은 없고, 할 재료도 없고 서로 뭐 문답(問答)도 없었고.
그 성질이 또 그 어른은 원청 청정하고 까끄라와서 뭔 말 함부로 해 봤던들 뭐 별 용맹도 없고, 잠깐 거그 다녀서 김천 직지사, 내 첫 철 지낸 직지사를 척 왔지.

제산 큰스님이 떡 계셔. 거기에서 나를 처음에 가르킬 때에 일념미생전(一念未生前)을 봐라. 일념미생전을 보라고 허는 그 화두를 내가 안 허고 조주 무자(趙州無字)를 그때 헐 땐디, 무자 허다가 그만 병이 그렇게 나 가지고는 피를 흘리고 피덤뱅이가 되어 가지고 그만 있다가,
해제를 헌 뒤에 꼭 죽게 된 몸뚱이 그저 어쩔 수 없지, 뭐 죽게 된 몸뚱이가 석장(錫杖)을 날렸제. 내가 뭐 거그 오래 있을 수도 없고 석장하춘풍(錫杖下春風)으로 그만 그때 나섰제 뭐.

그랬는디 다시 휙 둘러 북회우동류(北廻又東流)를 해 가지고는 인자 척 거그를 들어가서 아주 그만 인자 내가 견성헌 체를 허고 굉장했다. 뭐 뭐 거 가서 그만 뭐 내 요요한 경계를 턱 야단이제.

그러나 그 어른은 뭐 조실방 벽안당에 딱 앉아서 도 닦으면 도 닦고 계시제. 조끔도 뭐 그런 거 견성했다 어쨌다 해야 그런 것은 뭐 알은 체도 안 허고, 네가 견성했냐 말았냐 그럴 것도 없고, 가서 자꾸 인자 그 큰스님께...
그 어른이 참, 만화 스님한테 계를 받았고 만화 스님이 거다 전계(傳戒), 제산 스님한테 전계를 해서 한국에 그 전계 율사(律師)로 유명헌 이로구만. 그 어른한테서 다 계가...

그런 그 어른이 계를 받아가지고는 학자를 제접하고 있는데, 견성은 아마도 그 어른이 견성했다고는 모도 안 해 주어.
그 참, 행(行)은 그렇게 고상하고 또 조실방에 앉어서 공부를 허되 늘 일념미생전을 보고 앉어 계시는가. 그냥 참, 정진은 눈 한번 깜짝거릴 사이도 없이 해아. 그렇게 장하게 해 나가지마는 제방(諸方)에서 그렇게 알아주지는 안 해아.

그런게 거그서 오래오래 있을 것도 없고 얼매 또 있다가,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어.
혼자 견성했다는 생각이 막 나가지고는 그저 그만 선지식(善知識)만 있으면 어디—목구녕에 피는 늘 토험서도 그러고 그랬어. 그래 그런 데 가서 구애(拘礙)도 없어.

그래 가지고는 거그서 그만 혜월 스님한테를 갔다 그말이여.

혜월 스님한테를 척 가니까, 통도사 극락암에 계시는데 소를 두 마리를 길러 키워. 큰 황소를 키움서 밤낮 소꼴 베다가서 소 주고, 소 요리저리 모두 옮겨 매고 그러고 계시어.
학자(學者)는 뭐 몇 안되고. 학자 그저 그 스님, 그 어른 믿고 있는 학자 불과해야 한 2-3인 될까 시봉 겸해서, 뭐 그 어른이 시봉도 안 시키고 그저...

그런데 소를 멕이는 것은 그 통도사 그 극락 평전(平田) 그 밑에 모도 산비탈 극락평전을 논을 쳐서 농사지어가지고 수좌 멕인다고 그 소를 사논 거여.
아! 그 산비탈을 언제 땅을 파서 어디 물을 잡아 넘겨서 그 헐 것이여. 편편하기는 허니까.

아! 그래 가지고는 그저 그만 앉으면 법문, 서면 법문, 가면 법문허기 때문에 그 어른을 모시고 따라 댕기면서 법문을 들어.
들은데, 오늘 들으나 내일 들으나 열흘을 들으나 똑같은 법문이여. 헌 놈 또 했지, 딴 놈이 없어.

평생 그 가운데 무슨 법문을 허냐 하면 “우리 큰스님이 나를 여지없이 인가했다” 이말이 처음 나와. 당신 자랑이란 건 말헐 수가 없어. “우리 큰스님이 나를 인가했다” 꼭 그려.

언제든 눈꼽재기 여가 여 둘이 달렸어. 허연 놈이 달려 가지고. 말만 허면 입에서 침이 튀튀튀튀튀 튀어 나와, 이렇게.
그래가지고 앉어서 여 앉어서 이렇게. 하도 들을 수가 없어, 오래 들으면 듣기 오죽헌게 살며시 밖으로 나가면—하도 오래 있어 나가야제. 나가면 혼자 그러고 앉었어, 혼자.
아주 한참 (법문)허다가 “어디 갔나? 응, 갔어? 갔구나” 이런 어른이라.

다시 뭔 세상에 무슨 인사(人事), 뭐 그런 것 없어.
“아, 저 스님, 군수가 큰스님 뵐라고 왔읍니다. 인사헐락 합니다”
“군수가 왔어? 응. 군수가 어디 있나? 내가 보제” 아따 가만히 계시라니 “그 내가 봐야지, 오라고 혀”

아, 이래가지고 “군수 응, 군수 군수여? 어디 군수여? 응” 그 어른은 평생에 반말이제, 온말 헐 줄 몰라.

“밥 채려! 밥해! 군수 밥해” 밥을 시켜 놓고는 “찬 놨나?” 찬 논디 가서 요것도 좀 집어서 잡숫고, 요것도 집어서 잡숫고 “짜냐, 싱겁냐?” 짜고 싱거운지도 몰라.
참 도인이제. 참 도인이여. 꾸며 대고 억지 없제.

아, 그러고 댕기니께 군수겉은 사람이 이렇게 보면은 어쩔 것이냐 그말이여. 그런게 가리와. 중이 있다가 가리와. 스님 못 보게 가린다.
또 거그 못 오게 허면 “왜 그래?” 아, 원 홰를 내고 야단인게 못혀. 참 세상에는.

그러고 조끔 있다보면 없어. 아! 조실 스님 어디 가셨는고 허면, 그 앞에 가서 저 솔방울 따네.
망태 하나 요만한 것, 망태 쬐끄만한 것 하나 턱 짊어지고 올라가서 솔방울 따네. 불 땔라고 솔방울 따.

천하에 도인이란 행은, 도행(道行)은 81행이 있닥 하지마는 그런 행이 없어. 그 천진행(天眞行) 영아행(嬰兒行), 그 영아행을 제일 쳤거든.

도인행이 광행(狂行)이나 미친 행, 광행. 광행이나.
또 그렇다 해서 도인행(道人行)이 광행(狂行)이고, 모도 그러헌 천진행이고, 그러헌 영아행 어린아 행이니까 도인행 헌다고 해 봐. 그녀러 건 참 못 본다.

그 위조로 나와서 해 봐. 견성도 못헌 것이, 도인도 아닌 것이 해 봐.
그런 똥을 콧구녁에다 붙여 가지고 대니지, 고놈의 더러운 냄새는 못 맡네. 보도 못허고.

천진행과 영아행이라는 것은 꾸며서 된 법이 없어. 억지로 된 법이 없어. 조태가 나타나기 따문에 안되야.
혜월 스님은 그게 안 나타나. 아무리 볼래야 소용없어. 꾸미도 않고 뭣도 소용없어. 뭐 그대론게 소용 없어.

그래 가지고는 법문을 해 주시되, 내가 그래 중방내까지 따라갔구만. 법문 들을라고. 그런 법문이라도 들을라고 거그 따라갔어.
경허 큰스님이 천하 도인이니까 ‘다시는 도인밖에 없다’고 그 믿음이 내 모가지까장 차올랐으니.

뭐 소용 있나? 소용없어.
뭐 눈에 눈꼽재기가 드글드글허거나 말거나, 뭐 허는 행은 당최 어따 비유헐 수 없는 아, 글쎄 어린아 행이라니까.
어린아가 그 뭐 서너살 먹은 놈이 애비상이 있고, 할아버지상이 있고 뭐, 뭐이고 소용 있어? 밥상에 올라가 똥을 싸고 그러지 뭐, 소용 있어?

그 영아행이라는 것은 미친놈도 그래도 말귀는 알아듣지마는, 영아(嬰兒)라는 건 말귀도 못 알아들어. 그 영아행을 제일 쳤어.
바로 옳은 도인 같으면은 옳은 영아행을 헌디 그건 위조가 없어, 위조 못햐.
참, 진짜지. 우리나라에서 혜월 스님같이 진짜 영아행이 없어.

그래 가지고는 턱 법문을 헐땐 처음, 처음 시작헐라면 그게여.
“우리 큰스님이 나를 여지없이 인가했지. ‘북으로 관세음보살이 향(向)헌 의지(意旨)가 여하(如何)냐?’ 우리 큰스님이 물어 내가 대답했지. 아, 우리 큰스님이 인가했제!” 평생 그려.

틀림없거든, 뭐 틀림없어. 그 뭣 헐라고 감춰. 감추면 뭣혀.

그래 가지고는 학자가 오면은 인자 법문부터 물어. 그 자주 묻는 것도 좋은 것이여.
“공적영지(空寂靈知)를 이르라”
공적영지를 대답하면, “영지에 공적영지를 일러라”
또 그놈 대답하면, “공적영지 등지(等持)를 일러라”

등지(等持), 같을 등자, 가질 지자, 고놈을 일러야사 인가를 혀. 그건 참, 참! 기가 맥힌 공안이제.

당신이 이렇게 맨들아 묻는 것인디, ‘관세음보살이 북으로 향한 의지를 일러라’ 고놈 묻고, 공적영지를 묻고, 영지에 공적영지를 묻고, 공적영지 등지를 대답해야사 인가를 혀.
그것! 참, 내가 대답했지. 나도 역시 혜월 스님 타겠구만. 내가 대답했어.

공적영지 물어 딱! 대답헌게, “영지에 공적영지를 일러라” 대답 착, 고 둘만 대답하면 그 밑 등지는 바로 있는 것 아닌가.
“등지를 일러라” 그놈 척 일러 논게, “아따야! 이 우리 한국에, 우리 한국에 참 이 큰 도인 났다. 이런 도인이 나!” 아! 이러고는 대찬(大讚)을 허는디,
“누가 공적영지 등지를 이를 사람이 있느냐?” 아, 이래 가지고는 대찬을 했네.


그래 놓고는 일러 놓고는 ‘자, 내가 큰스님을 좀 좋은 디다 모셔야겄구나’ 그런 마음이 난다.
‘그래 가지고는 학자가 스님 밑에서 모도 나야겄구나’ 이 마음이 나 가지고는 거그서 하직허고 직지사(直指寺)를 또 올라왔네. 또 올라와 가지고는 직지사에 와서 대중께 공포(公布)를 허고.

직지사로 말하면 산중이 크고 한국에 제이창이여. 규모는 이창이고, 선방도 천불전(千佛殿)은 조그만 허지마는 도량은 크고 그 어른이 오셨으면은, 그 국내(局內)가 널직허고 그때에 토지도 많고 거다가 모셨으면 좋을 듯 해서 아! 내가 그때 그 운동을 했네.

그러면 제산 큰스님은 벽안당에 조실로 계시는디, 가만히 조실로만 앉어 계시제 학자 눈을 띄울 수가 없으니까. 하나도 일구(一句) 법문을 해 준 법도 없고.
아, 그러니 아무리 생각해도 혜월 큰스님이 여그 와 계셔야만 도량이 참말로 불일증휘(佛日增輝)가 되고 법륜상전(法輪常轉)이 되겄어.

부처님의 정법(正法)이 여그서 한번 크게 휘황찬란허게 될 듯 허고 이래서 “혜월 큰스님을 직지사 조실로 한번 모셨으면은 어떻겠습니까?”하고는 내가 인자, 그때쯤 벌써 인자 소문이 나 가지고는 ‘정영신(鄭永信)이...’ 해가지고 이름이 났어.
내 말 한마디—공부헐 때 원청간 다잽이를 기가 맥히게 했기 때문에 그 애를 써 가지고는 견성했다 해 노니까 소문이 다 나 버렸거든 인자.

아, 다 날 것 아닌가. 그만 벌써 혜봉 스님한테로 해서, 허태오 스님한테로 해서, 하혜일 스님한테로 해서, 그 다음에는 인자 공부 잘헌다는 스님네는 다 찾아댕긴다 인자. 방방곡곡이고 어디고 다 가지.

혜월 스님한테를 척 가서 공적영지, 영지 공적영지, 등지를 대답 딱! 했다고 소문이, 뭐뭐 소문이 앞을 서.
소문이 나 가지고 직지사에 와서 대중께 공포허고, 제산 스님한테 가 그런 말씀을 허니 ‘아! 선방에서 다 도 닦는 공부허는 스님네가 아, 그런 큰스님이 오셔서 그 조실로 계시면은 좀 좋겄나’

다 그런 마음 뿐이지. 그때 모도 인자 선방에 그 스님네 이름 다 잘 모르겄구마는.
아, 그래 공포를 헌게 좋다고, 아주 좋다고.

그래 내가 또 들어갔어. 가서 “큰스님, 김천 직지사에서 아주 큰스님을 청해서 거가 큰 선불장(選佛場)이 되도록 이렇게 모두 대중이 기다리고 있고 헌게 가셔야 겄습니다”
“그리야, 갈꺼나” 뭐 두 말도 헐 것도 없고 “가 볼꺼나” 아, 그래 나섰어요.

그래 모시고서는, 내가 그만 모시고서는 올라오다가 너무 밤에 갈 수가 없고 해서 김천에 내려서, 그때 그 김천에 경상북도 김천 역전(驛前)에 대화여관이라고 있어.
대화여관에 들어가서 하룻밤 모시고 자고서는 아침에 올라갈라고 자시는디, 요런 놈도 거다 집어넣어야 되겄구만.

여관 주인이 그 아침 진지를 해 드렸는데 “아! 당최 고기도 안 잡숫고 허니까, 청정허게 마늘겉은 거 넣지 말고 깨끗하게 그래 좀 해 주십시오”
아, 그랬더니 여관에서 어디 무슨 뭐, 저 따로 된장을 찌질 수가 있나. 된장을 그놈을 잘 지졌는디 모두 손님상에 놀라고 지졌는디 거다가는 파 마늘도 넣고, 소고기를 다져서 소고기 좋은 놈을 잘 다져서 그 무슨 그놈이 그 된장도 아니고 찌개처럼 맨들은 거여. 찌개로 맨든 것이여.

잘 지져서 요런 냄비, 쪼그만 냄비에다가 찌개를 딱 놨네. 아, 이놈을 떠억 잡순디, 한참 잡솨. 아주 잘 잡솨.
한참 잡숫더니 고기 덤벵이가 그놈이 좀 씹히든 것이여. 하나도 없이 잘 쫒다가 씹히든 것이여.
근게, “이거 뭐냐?” 맛있은 게 씹힌게, “이거 뭐냐, 괴기냐?”
“된장이요”

“된장 아니다. 괴기다. 맛있다, 맛있어” 괴기로 발견허고는 안 잡솨. 그래 놓고는.
아! 그 잡솨 버리지 잡솨지, 그녀러 것을 뭐 해필 또 그럴게 뭐 있냔 말씀이여, 그러지만 또 그래도 안 잡솨. 그거 잡술리야 없지마는 아, 그것들이 그렇게 나와서 잡솼다.

잡숫고는 그날 그만 모시고 올라와서 대중 공포를 허고, 큰스님께서 여그 와서 조실로 계셔서 광도중생(廣度衆生) 허시도록 이렇게 대중 결의를 했지.(63분9초~1시간23분52초)



(5/5)----------------

아, 통도사에서 또 안 된다고, 또 저 중방내 토지 뭐 그런 것 저런 것을 전부 인자 여그 조실 스님이 모두 농사짓고 어쩌고 해서 선객(禪客) 기룬다고 허면서, 거그서 초청이 다시 뭐...
아, 이래 가지고 여그 모실라 거그 모실라 야단스럽게 헌디. 그때에도 벌써 동부산(東釜山) 신도가 꽉 차 가지고는 그 큰스님, 저 무슨 계? 그 어른 모신다는 계(契)를 모두 조직했네.

계를 조직해 가지고 그때쯤 수도든가, 계(契)를 떡! 조직해 가지고는 그 계금(契金) 만 원을 갖다 가서 그 어른을 드렸네. 내나 그 어른 위허는 계니까, 그 어른 갖다 드리면은 알아서 범연히 잘 허리야고는 돈 만 원을 올려 놓고.
이렇게 부산서 왼통 신도들이 야단친디, 모시고 올라니 될 수 있나? 뭐, 뭐 어떻게 헐 수가 있어야지.

돈 만 원, 그래 그 계를 모아가지고 계금이니까 큰스님께 맽긴다고 갖다가 맽긴 모냥이지.
돈을 한푼이나 헛돈 써 뭣혀. 조실 스님 갖다 드리면은 당신이 무슨 뭐 어따 쓸 것이여. 학자 위해 쓸 것이지.

그래 그만 갖다 드렸든가. 이놈을 가지고는 논을 친닥 하면서 논 나락 한 다발이나 두 다발, 그걸 가을에 가면은 한 다발 두 다발도 안 나오는 놈의 논을 그놈을 쳐 가지고.
가을에 한 거다가 몇십 원을, 그때 몇십 원인가? 몇십 원을 들여서 고까짓 놈의 논, 고것 쳤자 뭐 그 일 원어치도 안되는 놈의 것을 몇십 원을 주고 모도 쳐 가지고는,
가을에 나락 한 다발 나면, “봐라, 이 나락이 어디서 나오냐? 이거 봐라” 든 밑천은 하나도 안 생각하고.
그런 양반이라 무슨 그 획량이 있어? 그런 그 무슨 계획량이 어디 있어? 요것만 보시제. 돈 많이 들어간 것은 못 봐.

그래 가지고서는 아, 이 만 원 돈을 막 집어써 버리네. 이놈도 달라면은 ‘그래’ 저놈이 달라면은 ‘그래’ 아! 이렇게 써 버린다 그 말씀이여. 아! 그러니 그 못 쓰게도 못하고 이것 참 큰일났제.
그래 가지고 되야 있는 형편, 만 원을 모두 모아 드린 그런 것이 모두 있제, 저런 것이 있제, 어디 가 있을 도리가 있어야제. 당신 못 있어. 본래 또 그저, 여까장 해 놓고.


본래 그 저 견성해 가지고는 ‘관세음보살이 북으로 향한 의지가 여하냐?’ 대답 턱! 허니까—그 본래 견성헌 공안은 그건 아니여. 견성헌 후에 고놈 물어 대답했지.

이것이 나와야 되겄는디 나올란가 모르겄네. 역사 법문인게 내 이런 걸 다 집어넣어야겄다 그말이여.
‘단지불회면...’ 저 혈맥론에 가서, 혈맥론(血脈論)에 있나?
그 무슨 그 위에는 다 내가 다 외울 수 없고 ‘단지불회(但知不會)면 시즉견성(是卽見性)이니라. 단지불회면 시즉견성이다’ 거그서 견성을 했어.
그 언하대오(言下大悟)여, 그 뭐. 단지불회면 시즉견성이니라. 거그서 견성을 했어.

그만 견성해 가지고는 그만 그만, 그 또 그 어른이 글쎄 어린아같은 양반이 거 뭐 앞뒤 무슨 뭐 조리 여하약하(如何若何)가 뭐 있나. 나온대로 막 해버리는디.
아, 그러니깐 경허 큰스님이 묻기를 “관세음보살님이 북으로 향한 의지가 여하냐?” 대답 탁! 허니까 거기에 인가를 어떻게 한고 하니, 이거 다 중요하거든. 나 밖에 몰라. 아무도 모르는 거여.

“염득분명(拈得分明)이여 등등상속(燈燈相續)이니라” 이거 꼭 여그 시방 혜월 스님한테다 인가한 것이여. 그런 인가가 있어야 하는 거여, 꼭.
염득분명(拈得分明)이여, 잡아 얻은 것이 분명하다. 등등상속(燈燈相續)이니라, 등등(燈燈)이 상속헐 것이니라. 네 깨달은 도리를 또 상속해라. 인가한 것이여.

그래 가지고 그만 그 정혜사에서 견성헌 후에는 그만 뭔 산하석벽(山河石壁)이 불응장애(不應障碍)요, 산하석벽이 어디가 장애가 있으며. 녹수(綠水)가 하구여청산(何拘與靑山)가, 녹수가 어찌 청산에 걸릴까보냐.
그만 그길로 나가서 아무 참, 무애(無礙)라. 무애여. ‘걸림이 없다’ 그말이여.

그 무애라는 것은 법체(法體)에 걸림이 없다 그말이지, 무애에 가서 술 먹고 고기 먹고 마음대로 헌 무애 그것인가, 어디? 잘못 알면 큰일나, 그런 것 다. 소용없어.
술 먹을디 술 안 먹는 것이 그것이 걸림이 없는 도리고. 잡행(雜行), 못된 행실 안 헐 것을 않는 것이 그것이 무애지.

막 무애 잡행(雜行), 막 음주식육(飮酒食肉)이 무방반야(無防般若)고, 막 떨어져 거꾸러지고 그것이 무애가 아니여. 잘못 알면 못써, 학자들이.
술 안 먹을 걸 꼭 안 먹어야 하고, 계행(戒行) 지킬 걸 꼭 지켜야 그것이 곧 자체가 무애지.

술 그까짓 것 막 먹고, 그저 괴기도 막 먹고, 그저 질도 막하고, 질도 여러 가지여. 도둑질도 있고 음행질도 있고, 무슨 뭐 질도 막하고 그것이 무애 아닌 것이여. 그것 고약한 짓이제.
왜 처음에 내가 그 동리(桐裏山)에서 왜 견성했다 해 가지고 마당 앞에다 갖다 뜰에다 오줌을 싸고는 그게 옳다고 그려? 고런 것이 그 못쓴 것이다 그말이여. 어디가 있을 것이여.

탁자에 부처님을 모셔 논 것을 ‘저걸 뭐 부처냐?’고 가서 쿡 밀어 버리고, 그게 무애여? 그게 거 도통(道通)헌 짓이여?
숭악한 그거는 무애가 아니라 못된 사마외도행(邪魔外道行)이다 그말이여. 이걸 잘 들어야 허는 것이여.

그만 그대로 무애여. 아무 거침없다. 어디가서 뭘 허든지 거침없다. 도행이다.
길가에, 홍성 나가다 길가에 숭악한 집이 있는디, 그 숭악한 집 그것 다 떨어져 엎어진 그런 집이 인자 누가 내던져 버려서 살 사람도 없고 헌 것을 꼬쟁이로 겨우 괴우고, 작대기로 괴우고 거그를 쓸고서는 뭔 짚다발 갖다가 우게다(위에다) 이어 놓고서는 신을 삼아.

그 어른이 어릴 때, 뭐 어릴 때 교육이 저 속가 저 마을 촌가에서 교육을 받았어.
혜월 스님도 역시 어릴 때에 무슨 거 부모 밑에서 따뜻허게 교육 받고 커나지 않은 어른이거든. 그래 아주 무식해. 무식헌 어른인디, 또 육조 스님 뭐 무식허데끼 다 그렇지 뭐.

그 천박허게 마을에서 날처럼 커나든 안 했지만, 나같이 무슨 서모 밑에 커나든 안 했겠지마는 그 어른도 역시 글 하나 못 배우고 커났으니까 알아볼 지경이지 뭐. 그래 가지고 국문(國文)도 잘 모르시는 어른이니까.

당신이 평생에 아는 것이 신 삼는 것이여. 신 그걸 삼아서 알아.
‘신을 삼아서 벌어먹고 살아야겄다. 견성을 했으니까 보림(保任)을 해야 허겄다’
보림을 헌 지경인디 거그서 그런 찌그러진 집 하나를 어떻게 가다가 줏어 가지고는 거그 들어앉아서 신을 삼고 있는디, 그때 나이 그렇게 많지 않으시고 헌게 마누라를 하나 얻었다 그말이여. 마누라를 얻어야지, 혼자는 있을 수가 있나. 고독해서.

그러니 그 마누라도 무슨 뭐 부귀헌 그런 마누라 얻을 수 없는 것이고, 그이도 역시 가난헌 그런 마누라를 하나 얻어 가지고서는 내외간에, 그 큰스님은 신을 삼는다.
그러면 그 여자는 신 수장을 혀. 요렇게 뀌어서 옛날에 짚세기같은 거 뀌어서 모도 그 수장을 해서 신도록 만드는 거여. 골 치고.

아, 이렇게 해서 하루 다섯 커리썩 삼을 때가 있고, 네 커리썩 삼을 때가 있고, 밤까장 삼으면 다섯 커리씩 삼고 요렇게 해서 그 이튿날은 홍성장에 가서 팔아 와.
팔면은 그 몇 냥 받으면은 쌀팔고 해가지고 먹고, 두 분이 혜월 큰스님은 신 삼고 그 부인은 신 삼으면은 수장 다 해가지고 갖다 팔아서 양식 사다가서 참, 생애가 족혀.

그래 먹고 살았는데 ‘혜월 스님 견성해서 경허 큰스님이 인가했다’는 말씀은 확 났고.
그때에는 한국의 수좌가 몇 못 되아. 얼매 없어. 전부 다 보탰자 수좌라고 공부헌 이가 몇 안되아.
그러지마는 견성한 이는 썩 귀헐 때거든.

경허 스님 마침 계셔 가지고 인자 경허 스님 밑에 제일 수제자 하나 났는데, 그 다음에 만공 스님이지마는.
그래 그만 그대로 떡 견성해 가지고는 그만 마을에 저 나가다 어디 길가에서 떨어진 집, 무너진 집 하나 얻어 가지고 신 삼아 팔고 사는데.

없어, 선객이. 인자 이렇게 많이 모두 선(禪)이 자꾸 발전되제. 앞으로 인자 참선 참 크게 발전되는구만.
저 범어사도 미국 사람이 시방 와서 여그서 배워 가지고 나가 즈그 나라에 선(禪) 편다고 있다구만.
아! 여그 이 녀석은 나가더니 그 어디 붙잽혔다는구만, 인자 들은게. 아주 붙잽혀서 아(兒)들 가르키기 겨를이 없다는구만. 영어 가리키고 막 반하제, 모두 배울라고.

아, ‘혜월 큰스님이 홍성 노변(路邊)에서 그렇게 신 장사허고 계신다’ 그말 듣고는, 그때 인자 차츰 그때도 선이 좀 발전되든 때인디,
아, 젊은 선객이 한 몇 있다가는 ‘아! 그럴 수가 있겠냐’고 ‘모시러 가야겄다’고. 그래 사방 찾아서 인자 큰스님을 모시고.

아! 와 보니까 홍성 노변에서 이리저리 참 찾다 보니 거기에서 신 장사를 허고 계시는디 참, 형편없네.
그렇게 바쁘니까 언제 무슨 뭐 그릇 치울 겨를도 없고, 밥 먹으면 밥그릇 숟구락 치우도 않고 고대로 놔두고, 또 된장도 떠먹다가 씻도 안 허고 고대로 놔두고, 고러고는 앉어서 두 내외가 신 삼으면 수장허느라고 정신없어. 그러 안혀. 반찬이고 뭐 아무것도 없고 깨진 솥.

아, 그래 가서 “큰스님 모시러 왔습니다”
“모시러 와야? 어디서 왔냐?”

“저 통도사에서 왔습니다”
“그려? 나 봐라. 신 삼고 나 우리 마누라허고 산디 내가 어찌 가야?”

“아따, 가셔야 합니다. 마나님이랑 가시지요. 가셔야 합니다”
“못 간다. 안 된다”

“아, 가셔야 된다”고, 아! 그만 대들어서, 서넛이 가서 대들어서 뒤에서 밀고 그만 앞에서 스님을 업고, 업고 밀고 아! 이러고는 가자고 헌게.
업힘서 말여 “아이고, 아이고, 우리 마누라 어쩌라고 이러냐”

“아따 가셔요, 마누라...”
“아이고, 우리 마누라 어쩌란 말이냐, 아아아!” 아, 이럼서 그만 업혀 가네.

그때 참 기가 맥혀. 돌아보고 울고 돌아보고, 기어니 업혀가 간게. 남에 업힌게 떠방치는 못허고 가시기는 가시면서도 돌아보면서 울어. ‘불쌍하다’고. 허허.
마누라도 문턱에서 문가에서 울고. 그래 거그서 아! 이렇게 작별을 시켰오.

자, 도인은 여차(如此)하거늘, 이와 같이 참, 노변에 신 삼고 그러고 계시는 그런 큰스님을 그렇게 모시러 가는데.
세상에, 시방은 도인이라고 허면 숭부텀 볼락 하네. 어디 도인, 도인이면 무슨 도인은 구름 속에서나 사는 줄 알고, 어디 저 무슨 탁자에 부처님보담 더 높은 줄 알고. 이런 꼴 좀 봐.

그렇게 믿겄오, 누가? 누가 믿어?

그것 저것을 불구허고 도 배울 욕심으로 학자들은 가서 업고 그만 나와 가지고는 그 어른을 모셔다가 놨오 그려.
모셔다 놓고는 절을 턱 허고는, 산중이 모도 큰스님 모셔 왔다고 절을 헌게, 응 절 딱 받고는 또 그냥 마누래 생각은 꿈도 없네. 거, 뭐 마누래 그까짓 녀러 것, 뭐 또 그때뿐이제. 아무 소용없어.

“아 큰스님, 거 거그 그 모도 집안 생각 안 납니까?”
“뭔 집이야? 아따 뵈기도 싫다, 인자. 그 뵈기도 싫다” 그러고는 인자 논 친다고 그러고 계셨다 그 말씀이여.
그러니 도인이 그런 영아행같은 그런 도인을 그래 인자 참 믿을 줄 알아야 하고, 모실 줄 알아야 하고. 위법망구(爲法忘軀)를 헐 줄 알아야 혀. 그래야제.

넨장칠 것! 정전강 조실 스님이요, 정전강이 큰스님 스님이라고 턱 해 가지고 여그서 6년 동안이나 앉어서 도(道) 가르키고 요러고 앉었는디, 밤낮 내가 요렇게 6년 동안 설법허되 꼭 참선법밖에는 설해 드리들 않고 아! 이러고 있는디.

밤낮 그 내 모두 숭만 봐내지, 뭐 누가 한 번이나 참말로 법을 배울 줄 알어?
내 참말로 가만히 앉어서 내 혼자 우는구만. 나 혼자 울어.

세상에 내게도 이러헌 법이 있건만, 혜월 큰스님도 나한테 인가를 했고, 이게 자랑이여. 별수없어.
없는 걸 내가 있다고—내게 답이 다 있어. 그놈 답 다 해놔야 되지만 학자한테 해로워. 그래 내가 안 혀.

“공적영지를 일러라” 대답했지. “영지에 공적영지를 일러라” 대답했지. “등지를 일러라. 공적영지 등지를 일러라” 대답했지.

그놈을 내가 여그서 턱 해 놓으면 좋지. 하지마는 학자한테 해로워서 그래 내가 안 혀.

그래도 죽백천추(竹柏千秋)에, 인자 여 오늘 설법이 지금 기재(記載)를 헌다니까 여그 다 들어 가가지고 이 다음엔 결집(結集)을 해 놓으면은 거그 다 나올 터이니, 학자가 모도 그런 걸 봐 가지고서는 대단히 해로워. 그래서 내가 그건 않고 인가를 받았단 말만 해 놔.

고 가다가 그 제일귀 답 같은 것도 있어. 용성 스님한테. 그런 것은 답을 바로 해 놔. 바로 그놈이 해서 그놈 공포된 놈이니께 그리 해 논다 말이여.

이것도 혜월 큰스님한테 헌 것도 그때 당시에 다 알아. 다 알지마는 그거는 너머 갖다 그만 드러나 버려서, 그런게 인자 저놈 모도 헌 놈은 내가 다 해 놓지마는 요것은 헐 수가 없어.
내가 먼첨 헐 때는 그걸 갖다 해 놨어. 그놈을 가서 어디 해 논 것을 들어보고 찾아보고 그러지 말어. 알 필요가 없어.

부중선사(不重先師)의 도덕(道德)이요, 선사(先師)의 도덕이 중헌 게 아니여. 불위아설파(不爲我說破)다. 나를 위해서 설파치 말어라. 이것이 참으로 진면목(眞面目)이요, 참말로 도가(道家)에 가서는 여차(如此)헌 법이다 그말이여.
그 해석을 기달치 말고, 그러헌 데 법문을 알라고 말어. 학자한테 해로워.

그렇게 혜월 큰스님 어른을 갖다 모셔 놓고는 그 당시에 동래 범어사와 그때 당시에 학자가 혜월 큰스님을 어떻게 모셨냐 그말이여.
인자 선지식 모시는 법을 여까장 말씀했지마는 여그서 이어서 또 인제 더 헐 것이여. 많이 헐 것이여.

오늘 법문 아침에 마쳤어. 반산림 법문을 여까장 마쳤어.
왼통 못 견디는구만. 모도 법문 듣느라고 되아서. 응, 세 시에서 네 시, 다섯 시 삼십 분인데.

올 삼동에 법문 무척 헌다 인자.
이 법문을 옳게 들어서 양을 채와야 하는 거여. 법량(法量)을 채와야 혀. 법밖에 없는 거여.

들을 때는 싫으면 되아? 귀찮으면 되아? 듣기 싫어서 왼통 야단이다. 궁딩이를 드리 받치고 무릎도 꿇고. 에이고, 나 참말로.(1시간23분54초~1시간43분58초) (일대기 3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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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모산촉공우~’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송원선자지관동(送願禪子之關東) - 원선자(願禪子)를 관동(關東)으로 보내며’ 참고.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구원겁(久遠劫) ; 아득하게 멀고 오랜 옛날.
*반산림(半山林) ; 안거 기간의 중간.
*냅대 ; ‘냅다(몹시 빠르고 세차게. 또는 그런 모양으로)’의 사투리.
*제끼다 ; 제치다(동사의 연결어미 ‘-어’ 뒤에 쓰여, 어떤 동작이 신나고 거침없음을 나타내는 말).
*버르정머리 ; ‘버르장머리(‘버릇’을 속되게 이르는 말)’의 사투리.
*날빛 ; 햇빛.
*반다시 ; ‘반드시(틀림없이 꼭)’의 사투리.
*천일(天日) ; ①하늘과 해를 아울러 이르는 말. ②하늘에 떠 있는 해. 또는 그 햇볕.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견성(見性) : ‘성품(性品) 본다[]’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 일치하는 정각(正覺)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그녀러 ; ‘그따위(그러한 부류의.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의 사투리.
*암작 ; ‘아무짝(‘아무 데’를 비하하여 이르는 말)’의 사투리.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
*머냐 ; ‘먼저’의 사투리.
*진대지(盡大地 모든·전부의 진/클 대/땅 지) ; 모든 대지. 이 땅 전체를 가리키는 말.
*패철(佩鐵 차다·휴대하다 패/쇠 철) ; 묏자리를 정할 때 풍수설에 따라 묏자리의 좋고 나쁨을 가려내는 지관(地官)이 썼던 나침반(羅針盤)이다. 『주역(周易)』에 기초한 오행과 십이간지 및 육십갑자가 표시되어 있고 방위도 세세하게 구분되어 있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묏자리 ; 뫼(사람의 무덤)를 쓸 만한 자리. 또는 쓴 자리.



----------------(2/5)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서 이치나 일에 걸림이 없는 선.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의정(疑情) ; 의심(疑心).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의 꼴로 쓰여]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 또는 말을 하는 그 즉시.
*역력(歷歷 겪을·지낼·수를 셀·가릴 력) ; ①뚜렷한 모양. 분명한 모양. 똑똑한 모양. ②사물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모양.
*조인광중(稠人廣衆) ; 빽빽하게 모인 많은 사람.
*조인(稠人 빽빽할 조/사람 인) ; 많은 사람.
*낙구(落臼 떨어질 락/절구·곡식을 찧는 기구·찧다 구) ; ‘절구[臼]에 떨어진다[落]’는 말로 ‘백발백중(百發百中)‘, ’틀림없는 결과’의 뜻을 나타낸다.
[참고] 『선요(禪要)』 (고봉화상 | 조계종출판사) ‘7. 示衆‘ p65 주석에서.
〇추문낙구(推門落臼) : 문을 여닫을 적에 문이 암돌짝[臼 : 절구처럼 구멍이 패인 곳]을 벗어나지 않고 자유롭게 열리고 닫히는 상태로서, 백발백중(百發百中)이라는 말과 같다.[臼是門開閉之處也 開門之時 亦發於臼 閉門之時 亦落於臼 猶言百發百中].
*제일구(第一句) ; ①‘처음 한마디 말’이니 불교의 핵심도리를 드러내는 첫번째 말. ②말로써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 개념 지을 수 없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진리를 가리키는 말.
*낙안성예(落眼成翳 떨어질 낙/눈 안/이룰 성/가릴·흐릴·눈이 흐림 예) ; ‘눈에 떨어지면 병[가리움]이 된다’
[참고] 『임제록(臨濟錄)』 ‘감변(勘辨)’
〇金屑雖貴 落眼成翳 금가루가 비록 귀하지만 눈에 떨어지면 눈을 흐리는 병이 된다.
*여래선(如來禪) ; 생각과 알음알이가 아주 끊어지지 않아서 말의 자취가 있고 이치의 길이 남아 있는 선.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도세(度世 건널 도/인간 세상 세) ; 생사윤회하는 고통의 세계를 벗어나 열반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 또는 중생을 구제하여 해탈하게 하는 것.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제접(提接 이끌 제/응대할•가까이할 접)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요요(了了 마칠·깨달을·분명할 요) ; 뚜렷하게. 분명하게. 분명하게 알고 있거나 뚜렷이 드러나는 경계를 수식하는 말이다.
*세상없어도(世上---) ; 어떠한 일이 생기더라도 반드시.
*심바람 ; ‘심부름(남이 시키는 일을 하여 주는 일)’의 사투리.
*시봉(侍奉 모실 시/받들 봉) ; ①제자가 스승을 받들어 섬기는 것. 지위가 높은 스님을 가까이 모시고 시중드는 일. ②부모를 모셔 받듦. ③제자.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당호(堂號 집 당/이름 호) ; 당호(幢號)라고도 한다. 출가한 스님으로서 사미나 소비구(小比丘 : 젊은 비구) 시절에는 휘(諱)인 법명(法名)을 사용하지만, 법랍(法臘 :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부터의 햇수)과 도덕이 높아지면 남들이 감히 그의 이름을 부르기를 기피(忌避 : 諱)한다.
그러므로 종사(宗師)와 법을 거량(擧揚)하여 종사로부터 인가를 받고 그를 법사로 하여 입실건당(入室建幢)의 전법식을 가질 적에 당호와 가사, 장삼, 전법게(傳法偈) 등을 받는다. 당호란 주로 그가 살고 있는 절 이름, 또는 지명, 그가 거처하던 집 이름 등을 취하여 호를 삼는 예가 많았다.
*누데기 ; ‘누더기(누덕누덕 기운 헌 옷)’의 사투리.
*집다 ; ‘깁다(떨어지거나 해어진 곳에 다른 조각을 대거나 또는 그대로 꿰매다)’의 사투리.
*가리 ; ‘가루[분(粉), 분말(粉末)]’의 사투리.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식사)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드는데, 나무에는 안팎에 칠(漆)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應量器)라고도 한다.
응량기(應量器)란 법에 응하는 또는 1명의 식량에 마땅한 그릇이니 먹을 만큼의 분량을 담는 그릇이고, 또 남의 공양을 받기에 마땅한 수행과 덕을 갖춘 성현(聖賢)이 사용하는 그릇이란 뜻이다.
*찬(讚, 贊) ; ①남의 훌륭한 행적이나 서화 따위를 기리어 칭찬하는 글. ②서화(書畵)에 쓰는 시문(詩文)을 통틀어 이르는 말.
*영찬(影讚) ; 어떤 사람의 초상화를 보고 찬양하여 지은 글.
*씨잘데 없이 ; ‘쓸데없이. 소용없이(아무런 쓸모나 득이 될 것이 없이)’의 사투리.
*시주것(施主것) ; 절이나 스님에게 조건없이 베푼 물건.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탁마상성(琢磨相成 쫄 탁/갈 마/서로 상/이룰 성) : 서로 탁마해서 공부를 완성한다.
*편영이행(鞭影而行) ; ‘여세양마(如世良馬) 견편영이행(見鞭影而行), 세간의 좋은 말[馬]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것과 같으니라’
[참고]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 · 拈頌說話)』 제1권. (혜심, 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14 참고.
제 16칙. 「양구(良久)」
世尊因有外道問 不問有言 不問無言 世尊良久 外道讚歎云 世尊 大慈大悲 開我迷雲 令我得入 外道去後 阿難問佛云 外道有何所證 而言得入 佛言如世良馬 見鞭影而行

세존께 어떤 외도가 물었다. “말 있음으로도 묻지 않고 말 없음으로도 묻지 않겠습니다”
세존께서 양구(良久)하셨다. 그러자 외도가 찬탄하여 말하였다. “세존께서 대자대비하시어 저의 미혹의 구름을 걷어 주셔서 저로 하여금 깨달아 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물러갔다.

외도가 떠난 뒤에 아난이 부처님께 물었다. “외도가 무엇을 증득했기에 ‘깨달아 들었다’ 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간의 좋은 말[馬]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것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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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입다 ; 세차게 마구.
*가당하다(可當-- 옳을·정도·가히 가/마땅·필적하다 당) ; ①대체로 이치에 맞다. ②능력이나 수준 따위가 비슷하다.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당최 ; 도무지(아무리 해도, 이러니저러니 할 것 없이 아주). 영.
*원청 ; 원청강(워낙, 두드러지게 몹시).
*개복실(改服室) ; 옷을 갈아입는 방.
*큰방 ; 스님들의 본업인 수행을 행하는 장소. 예불과 공양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참선만을 행하는 선원(禪院)에서 대중이 한 자리에 모여 참선수행하는 방(房)을 '큰방'이라 한다.
*방연하다(尨然-- 삽살개·높고 크다 방/그럴·~이다 연) ; 두툼하고 크다.
*약무인행(若無忍行) 만행불성(萬行不成) ; ‘만약 참는 행이 없다면 만 가지 행이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107~108.
若無忍行하면  萬行不成이니라.
 만약 참는 행이 없다면 만 가지 행이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註解) 行門이  雖無量이나  慈忍이  爲根源이니라  古德云,  忍心은  如幻夢이요 辱境은  若龜毛라 하시니라.
수행하는 길이 한량없지만 자비와 인욕이 근본이 되느니라. 고덕이 이르되 「참는 마음이 꼭둑각시의 꿈이라면, 욕보는 현실은 거북의 털 같으리라」 하시니라.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산림(山林) ; 안거(安居).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경계(境界) ; ①산스크리트어 viṣaya 구역을 나눈다(疆域分劃)는 뜻. 줄여서 경(境). 곧 감각기관[根] 및 인식작용[識]의 대상이나 인식이 미치는 범위를 말한다.
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 빈부귀천, 부모형제, 희로애락, 시비이해, 삼독오욕, 춘하추동, 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곧 인간은 경계 속에서 살고 있고, 경계가 삶의 내용이다.
②내용이나 각자의 능력 등이 분명한 한계지어진 범위 · 영역 등을 말한다. 부처님과 중생이 인지하는 능력의 범위가 구분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 ‘此佛境界 一切衆生 及諸菩薩 所不能知 이것은 부처님의 경계로 모든 중생과 보살들은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③금계(禁戒 부처님께서 제정한 나쁜 행위를 금하고 경계하는 계율)를 깨뜨리는 인연이 되는 것과 그것의 어떤 환경을 뜻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환경을 순경계(順境界), 자신의 마음에 어긋나서 마음이 언짢은 것을 역경계(逆境界)라고 한다. 경(境)에는 본래 차별이 없으나 중생의 마음이 미혹됨으로 말미암아 언짢거나 수순하는 구별이 있다.
*한마음 ; 일심(一心). 궁극적 근저(根底 사물의 밑바탕이 되는 기초. 사물이 생기는 본바탕)로서의 마음. 만유(萬有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실체진여(實體眞如)를 말함. 모든 현상의 근원에 있는 마음. 우주 사상의 기본에 있는 절대적인 진실.
*용(茸) ; 녹용(鹿茸 : 새로 돋은 사슴의 연한 뿔). 녹용은 양기(陽氣)를 보하며 심장, 근골(筋骨)을 강하게 하기 때문에 보약으로 쓰인다.
*삼직(三職) ; 주지(住持)를 돕는 세 직책. 곧 총무, 교무, 재무를 말함.
*사미(沙彌) ; 산스크리트어 śrāmaṇera 팔리어 sāmaṇera의 음사. 근책(勤策)·구적(求寂)이라 번역. 출가하여 십계(十戒)를 받고, 구족계(具足戒)를 받아 비구(比丘)가 되기 전의 남자 수행자.
십계는 살생·도둑질·음행·거짓말·음주뿐만 아니라, 때가 아닌 때에 식사하는 것, 춤과 노래를 보고 듣는 것, 향수를 바르고 몸을 단장하는 것, 높고 큰 평상에 앉는 것, 금은 보물을 지니는 것 등을 금지하는 10가지이다.
*행자(行者) : ①수행자.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사람 ②계(戒)를 받기 전에 일정 기간 동안 절에 있으면서 여러 소임 밑에서 일을 돕고 있는 사람.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내나 ; ①다름이 아니라. ②결국에 가서는.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들어맞다 ; 정확히 맞다.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 반기이파(飯器已破) ;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습니다’, ‘밥그릇은 이미 깨졌습니다’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No.24) - 기미년 동안거결제 법문(79.10.17)에서.(4분18초)
‘참 법문’이라 하는 것은 설할래야 설할 수가 없는 것이여. 따라서 들을라야 들을 것 없는 도리를 알아야 되는 것이여.

아까 조실 스님 법문에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쥐는 바로 고양이의 밥인데, 고양이는 쥐를 먹고 사니까 쥐가 바로 고양이 밥인데, ‘쥐가 쥐를 먹었다’ 이러한 풀이를 해 주셨습니다.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라 일러 가지고 인가(印可)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한 풀이를 해 주셨습니다.

공안(公案)이라 하는 것은 미제(美製) 자물쇠통과 같아서 아무리 것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생겼어도 제 번호가 아니면은 열리지를 않습니다.

체중현(體中玄) 도리에서 본다면 손을 한번 드나, 고함을 한번 치나, 발을 한번 구르거나, 좌복을 한번 들었다가 내동댕이를 치거나, 빰을 한 대 올려붙이거나, 눈을 한번 감았다 뜨거나, 일거수 일투족이 다 맞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방귀를 한번 뀌거나, 부처라고 하거나 똥이거나, 일체가 다 한 소식입니다. 한 맛입니다.

그러나 이 공안은 그러한 체중현 도리, 일체가 텅 빈 도리, 한 맛인 도리로 보아 가지고서는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이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구경(究竟)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여러분들이 어떠한 공안을 가지고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하는 그러한 식으로 따져서 어떠한 결론을 얻을라고 해서는 그것은 공연한 헛수고인 것입니다. 얻었다고 해봤자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여.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습니다” “맞지 아니하니 다시 일러라”
“반기이파(飯器已破)입니다. 밥그릇은 이미 깨졌습니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는데, 무슨 밥그릇이 어떻게 깨져? 이 도리는 우리가 아무리 따져 봤자 알 수가 없는 도리여. 가르켜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도리여. 반기이파(飯器已破) 도리.

여러분이 가지고 하는 판치생모, 또는 정전백수자, 또는 시삼마 이런 모든 공안은 알래야 알 수 없고, 따질라야 따질 수 없고, 꽉 맥힌 상태에서 ‘어째서 판치생모(版齒生毛)라 했는고?’ 알 수 없는 꽉 맥힌 상태에서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가야지,
‘쥐가 고양이 밥을... 밥...,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뜰앞에 잣나무 잣나무......’ 이런 식으로 해서 이렇게 따지보고, 저렇게 따져보고, 이러한 참선은 이건 ‘죽은 참선’이여. 절대로 그런 참선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덮어놓고 무조건하고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3초 동안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뭣고?'(67분13초~71분33초)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격외(格外 격식 격/바깥 외) ; 규정되고 고체화된 세간적(世間的)인 척도를 초월하는 것. 즉 분별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실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격(格)은 격식(格式) · 규격(規格) · 법칙 · 규정 등을 말하지만 넓은 뜻으로는 세간(世間)의 척도라는 뜻이다.
*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를 떠나서 선(禪)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함.
*쾨코리 ; ‘코끼리’의 사투리.
*해오라비[鷺鷥 노사] ; ‘해오라기(왜가릿과의 새)’의 사투리. *백로(白鷺) ; 왜가릿과의 새 가운데 몸빛이 흰색인 새를 통틀어 이르는 말.
*속도일구래(速道一句來) ; ‘속히 일러 보시오’
*녀러(-녀러) ; ‘~놈의’를 뜻하는 단어.
*어름하다 ; 어떤 상황을 대강 짐작으로 헤아리는 데가 있다.
*초부(樵夫 나무할 초/지아비·사내 부) ; 나무꾼(땔나무를 하는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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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산(外山) ; 바깥쪽에 멀리 있는 산.
*안산(安山) ; 주산(主山 : 도읍, 집터, 무덤 따위의 뒤쪽에 있는 산).
*도담(道談) ; 도(道)에 관한 이야기.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탈속(脫俗 벗을·벗어날·나올 탈/풍속·관습 속) ; ①부나 명예와 같은 세속적(世俗的)인 관심사로부터 벗어남. ②스님이나 수도자가 되어 속세(俗世, 일반 사회)를 떠남.
*석장(錫杖) ; 스님이 짚고 다니는 지팡이. 비구스님이 거처를 떠나서 돌아다닐 때 휴대하는 도구(道具)이다. 성장(聲杖), 지장(智杖), 덕장(德杖), 금석(金錫) 등이라고도 한역한다.
석장 윗부분에 큰 고리가 있고, 그 고리에 작은 고리를 여러 개 달아 움직이면 서로 부딪쳐 소리가 나게 하여, 원래는 독사나 해충을 쫓아내거나 걸식할 때 석장을 울려서 멀리서도 들리게 하려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지니고 다녔지만, 후세에 법기(法器, 수도修道를 돕는 기구) 중 하나로 바뀌었다.
*전계(傳戒) ; 보살계(菩薩戒 : 대승계大乘戒)를 전수(傳授 전하여 줌), 또는 전해 받는 것.
*율사(律師) ; 계(戒)와 율(律)에 능통한 스님. 일반적으로 계행이 청정한 수행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제방(諸方) ; ①모든 지방 ②모든 종파의 스님.
*구애(拘礙 잡다·거리끼다 구/거리끼다·장애가 되다 애) ; 거리끼거나 얽매임.
*소꼴 ; 소에게 먹이는 풀.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평전(平田 평평할 평/ 밭 전) ; ①높은 곳에 있는 평평한 땅. ②평야에 있는 좋은 밭.
*오죽하다 ; 정도가 매우 심하거나 대단하다.
*영아행(嬰兒行) ; 젖을 먹을 나이의 어린아이의 행동.
*조태 ; 자태(姿態). ①어떤 모습이나 모양. ②몸가짐과 맵시(아름답고 보기 좋은 모양새).
*영아(嬰兒 어린아이·갓난아이 영/아이·아기·젖먹이·나이가 어린 사람 아) ; 젖먹이. 젖을 먹을 나이의 어린아이.
*타기다 ; ‘닮다’의 사투리.
*대찬(大讚 큰 대/기릴·찬양할 찬) ; 크게 칭찬함. 또는 큰 칭찬.
*공포(公布 공개·공적인 것·널리 공/펼·드러낼 포) ; 일반 대중에게 공개적(公開的)으로 널리 알림[布].
*국내(局內 판·마을·방·구획 국/안 내) ; ①묘지나 절의 구역 안. ②관청이나 회사에서 부서(部署)의 하나인 국(局)의 안.
*일구(一句) ; 진리를 표시하는 한 구절. 상대적 언어를 넘어선 한마디의 말이나 글. 이것을 깨달은 사람이 견성오도(見性悟道)한다. 일구도득(一句道得), 말후일구(末後一句), 투관일구(透關一句) 등을 말함.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 ‘부처님의 지혜 광명이 더욱 빛나고, 법의 수레바퀴가 항상 구르다(불법의 교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불일(佛日) ;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님의 지혜[佛]를 태양[日]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지혜로 중생의 허망한 집착을 부수는 것을 태양의 광명으로 어둠을 없애는 것에 비유한 것.
*원청간 ; ‘워낙(두드러지게 몹시)’의 사투리.
*다잽이 ; 다잡이.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죔.
*선불장(選佛場) ; 부처[佛]를 뽑는[選] 장소[場]라는 뜻. 부처님을 만들어 내는 장소라는 뜻.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곳. 승당(僧堂). 선방(禪房).
[참고]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 ‘개당보설(開堂普說)’에 방거사(龐居士)의 게송이 다음과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법(無爲)을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공(空)해 급제하여 돌아가네.’ [고봉화상선요•어록] (통광 스님 역주) p37, 46에서.
*역전(驛前 역·역참·정거장 역/앞 전) ; 역의 앞쪽. ‘역 앞’. 정거장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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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계(契) ; 주로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받거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만든 옛날부터 전해 오는 상부상조의 민간 협동 조직.
*계금(契金) ; 곗돈(契-). ①계에 들어서 내는 돈. ②계를 부어 찾는 목돈. ③계에서 가지고 있는 돈.
*집어쓰다 ; 돈 따위를 닥치는 대로 쓰다.
*단지불회 시즉견성(但知不會 是卽見性) ; [참고] 『수심결(修心訣)』 (보조지눌 스님)
〇問 作何方便 一念廻機 便悟自性
答 只汝自心 更作什麼方便 若作方便 更求解會 比如有人 不見自眼 以謂無眼 更欲求見 旣是自眼 如何更見 若知不失 卽爲見眼 更無求見之心 豈有不見之想 自己靈知 亦復如是 旣是自心 何更求會 若欲求會 便會不得 但知不會 是卽見性
(문) 어떤 방편을 지어야 한 생각 기틀을 돌이켜서 곧 자성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답) 다만 너의 스스로의 마음인데 다시 무슨 방편을 지으려 하는고. 만일 방편을 지어서 다시 알기를 구한다면,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자기 눈을 보지 못하고서는 ‘눈이 없다’고 하여 다시 보려고 하는 것과 같다. 이미 자기의 눈인데 무엇을 다시 보리오. 만일 잃지 않은 줄 알면 곧 눈을 본 것이다. 다시 보려는 마음도 없거니 어찌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있으리오.
자기의 영지(靈知)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미 자기의 마음인데 어찌 다시 알려고 하는가. 만일 알려고 한다면 곧 알지 못할 것이니, 다만 알지 못할 줄 알면 곧 성품을 본[見性] 것이니라.
*여하약하(如何若何) ; 이러쿵저러쿵. 이러하다는 둥 저러하다는 둥 자꾸 말을 늘어놓는 모양.
*등등상속(燈燈相續) ; 등(燈)은 중생의 무명(無明)을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등(燈)에 비유한 말, 이 진리의 등(燈)을 스승이 그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이어짐을 일컬음.
*무애(無礙, 無碍) ; 산스크리트어 apratihata 의 한역어(漢譯語). 무애(無閡), 무장애(無障礙), 무가애(無罣礙)라고도 한다.
①물질적으로 공간의 일부를 차지하지 않는 것. 다른 것을 거부하지 않는 것. 장애를 주지 않는 것.
②막힘이나 걸림이 없음. 거침없음. 거리낌없음. 신체적, 정신적 능력이 매우 뛰어나 어떤 것에도 장애를 받지 않고 자유 자재함.
*법체(法體) ; ①법의 본체. 법 그 자체. 법의 본질. 유위와 무위의 모든 법의 체성(體性). ②일체 만유의 본체. 실체 ③사물. 존재. ④정토종에서는 아미타불의 명호나 염불을 말한다.
*잡행(雜行 섞이다·천하다 잡/다닐·행할 행) ; ①잡스러운(순수하지 아니하고 천하고 교양이 없는) 행실. ②스님이 계율을 범하는 행위.
*음주식육(飮酒食肉) 무방반야(無防般若) ; ‘술 마시고 고기 먹는 일이 반야에 방해되지 않는다’라는 삿된 소견.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도통(道通) ; ①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훤히 통함. ②깨달음.
*사마외도(邪魔外道) ; 불법(佛法)에 어긋나는 가르침을 주장하는 외도. ‘사마’란 삿된 마구니라는 뜻으로 불도(佛道)를 성취하기 위한 수행을 장애하는 모든 것을 통틀어서 일컫는 말인데, 외도 중 삿된 견해로써 불도 수행자를 어지럽히는 자를 사마외도라 한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국문(國文 나라 국/글월 문) ; 나라 고유의 글자. 또는 그 글자로 쓴 글.
*삼다 ; 짚신이나 미투리 따위를 결어서(겯다 : 대, 갈대, 싸리 따위로 씨와 날이 서로 어긋매끼게 엮어 짜다) 만들다.
*짚신 ; 볏짚으로 삼아 만든 신.
*미투리 ; 삼[麻]이나 노(실, 삼, 종이 따위를 가늘게 비비거나 꼬아 만든 줄) 따위로 짚신처럼 삼은 신.
*보림(保任) ; 오후보림(悟後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골 치다 ; 골로 물건의 모양을 바로잡다. *골 : 만들고자 하는 물건의 일정한 모양을 잡거나, 잘못된 물건의 모양을 바로잡는 데 쓰는 틀.
*커리 ; ‘켤레(신발, 버선, 방망이 따위의 두 짝을 한 벌로 하여 세는 단위를 나타내는 말)’의 사투리.
*다섯 커리썩 ; ‘다섯 켤레씩’ *-썩 : ‘-씩’의 사투리.
*쌀팔다 ; 쌀을 돈주고 사다.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넨장칠 ; 네 난장(亂杖)을 칠 만하다는 뜻으로, 못마땅할 때 욕으로 하는 말.
*난장(亂杖) ; ①고려 · 조선 시대에, 신체의 부위를 가리지 아니하고 마구 매로 치던 고문. ②몰매(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덤비어 때리는 매).
*선사(先師) ; 돌아가신 스승.
*부중선사도덕(不重先師道德) 불위아설파(不爲我說破) ; ‘부중선사도덕(不重先師道德) 지중선사불위아설파(只重先師不爲我說破)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은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71.
本分宗師의  全提此句는  如木人唱拍하며  紅爐點雪이요  亦如石火電光이니 學者實不可擬議也니라  故로  古人이  知師恩曰,  不重先師道德이요 只重先師不爲我說破라 하시니라

본분 종사가 이 구를 온전히 들어 보이심이 마치 장승이 노래하고 불 붙는 화로에 눈 떨어지듯 하며, 또한 번갯불이 번쩍이듯 하니 배우는 자가 참으로 어떻다고 헤아리거나 더듬을 수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 어른이 그 스승의 은혜를 알고 말씀하기를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은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고 하시니라.
*법량(法量) ; ①법의 분량. 법의 크기. ②불상(佛像)을 조성할 때 불상의 크기를 정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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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일대기2017.11.02 08:14
•§•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2호) 곡성 동리산 대오, 혜봉스님과 법거량.

**전강선사(No.005)—전강선사 일대기 제2호(경술1970년 11월 21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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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좀 모두 쳐다 봐.

왜 우리 부처님께서 정각(正覺)을 이루서, 시성정각(始成正覺) 허셔 가지고는 영산회상(靈山會上)에 오셔서 설법하실 적에 왜 이랬어? 첫번이야. 처음, 왜 이래.

이게 삼세제불(三世諸佛)의 면목(面目)이고,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의 본 생명이고,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명근(命根)이고, 금일 대중의 생명, 전 생명, 근본 몸뚱이, 본래 몸뚱아리여.

그러기에 이놈이, 이 주장자(拄杖子)가 뭐 주장자만 되나?
천하에 다 붙여봐. 천하에 명상(名相) 있는 대로 다 붙여봐. 그대로요. 다 붙지.

허공도 여가(여기에) 붙고, 대지도 여가 붙고, 삼라만상도 붙고, 제불열반처(諸佛涅槃處)도 붙고, 제불출신처(諸佛出身處)도 붙고, 최초구(最初句)도 붙고, 말후구(末後句)도 붙고.
뭣이 제일구(第一句)도, 제이구(第二句)도, 제삼구(第三句)도 여가 갖춰져 있고. 그렇지 않아?

그런데, 여의고 보라 그말이여. 여의여 봐.
주장자도 이놈 한번 여의여 보고, 다 붙어 있는 허공대지도 여의여 보고, 일체 삼세제불 역대조사도 여의여 보고, 다 한번 여의여 봐라. 거가 뭣이 붙어 있나?

그러면 한번 그놈 여의고 일러 보라 그말이여. 일러 볼 수가 있지.
못 일러? 언하(言下)에 이를지언, 언하에 이를지언정 못 일러?

불 좀 꺼, 인자. 열이 딱 찼으니까.

기본축말(棄本逐末)을 말고 한번 일러 봐. 이렇게 해도 못 일러?


고와한단침(高臥邯鄲枕)이요 주류만년성(周流萬年城)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고와한단침(高臥邯鄲枕)하고 주류만년성(周流萬年城)이로구나. 무슨 말인고 허니.
고와한단침(高臥邯鄲枕)이다. 높이 누워서, 높이 누웠다. ‘높이 누웠다’는 것은 한량없이 고귀헌 지위, 높고 저 높은 부귀영화. 거, 임금님이던지 호걸 부귀 모도 그 고와(高臥), 높이 누워서 잠자는 것이 오직 좋은가. 편안허니 잠잔다. 한단침(邯鄲枕) 베고, 좋은 단침을 베고 잠을 자고 있다.

아주 한량없이 즐거운 낙 받고 부부지간의 좋은 단침, 한단침을 베고 푸근허니 잠자고 좋은 아들 낳고, 그 옥식금의(玉食錦衣) 속에서 이렇게 산다.

한번 그렇게 산다마는 주류만년성(周流萬年城)이니라. 사방 성(城)은 한량도 없이 높이 싸여 있는 그런 놈의 철위산(鐵圍山) 속에, 악도 지옥 속에 나올래야 나올 수 없는 성 속으로 들어가서 만년 죄고(罪苦)를 받니라.
그 한단침 베고 그 속에서 좀 잠깐 좀 살다 보니 맨 시은(施恩)과 악업(惡業)만 짓고 죄업만 지었느니라.

가는 곳이 어디냐? 그놈의 만년 성 속에 떨어져 들어가서—그 만년이지, 이름이 만년(萬年)이지, 만년인가?
만년 지내면 또 만년이 오고, 또 만년 지내면 또 뒷 만년이 있는데. 만년만 지내고 나오면사 좋게.

잠깐 한평생, 이놈의 평생, 인생 평생이라는 게 거그서 잠깐 동안 한단침 베고 내외, 그 자식 낳고 고것이 악연이여, 숭악한 악연(惡緣)이여.

그 진로(塵勞) 속에서 그 형탈(逈脫)치 못한 이 숭악한 사대색신(四大色身) 사대가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인디. 사대 몸뚱이 고놈이 사사(四蛇)여. 독사 네 마리여.
눈으로 보고 모두 색별(色別)을 내서 욕심 · 탐심을 눈으로 보고 턱 모도 거두어들이고 죄업 짓고, 그놈의 뱀이 독사란 놈이 보면 잡아, 팔딱만 뛰어도 잡아먹을라는 마음뿐이다.

이 몸뚱이도 역시 그러허다. 눈으로는 봐서 도둑해 오고, 이놈 몸뚱이로는 가서 몸뚱이로 집어 오고, 욕심 내고 아! 이거, 이뿐이야.

이렇게 잠깐 나와서 악업 속에서 죄업만 지어서 저 만년 성 속에 들어가서 이런 죄고 받는 것만 중생이란 것은 있느니라. 생각해 보아라.


체연개일몽(遞然開一夢)허라 잔월반루명(殘月半樓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체연개일몽(遞然開一夢)하라. 참으로 출가한 학자들이여. 향당(鄕黨)도 여의고, 어머니 아버지도 여의고, 장가들지 않고 척! 한번 끊어 버리고 과연 단신으로 이렇게 척 나와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가지고 도를 닦는 학자들이여.
학자들아, 한번 꼭 이 꿈을 깨라. 이 인생몽(人生夢)을 한번 깨라. 왜 이렇게 깨지 못하느냐?

한번 깨버리면은 본각명(本覺明)이리라. 네 본래면목 해탈광(解脫光)이 그대로 밝아 버리리라.
거가서 뭣이 있겠나. 무슨 생사가 있으며 무슨 만년성이 왜 네 몸뚱이를 얽어 집어넣겠느냐. 왜 염라대왕이 너를 처박어 넣겠느냐. 무슨 죄업이 너한테 있느냐.

깨달라라.
이만큼 홀몸이 되고, 단신(單身) 몸이 되고 그렇게 깨끗한 몸이 되아 가지고 도를 닦으러 들어와서 한바탕 못 닦는다는 말이냐?


금강산에 계시는 추천원 스님이, 추천원 스님이 곡성 동리산(桐裏山)에서 여름 산림을 허고는 해제 후에 곡성 그 태안사(泰安寺) 뒷산을 넘어오는데 산말랭이를 척 넘어오니까, 그 산말랭이가 별로 높지도 않거든. 넘어오니깐 큰 대호(大虎)란 놈이—비린내가 산에 올라오니 왈칵 난다 그말이여.

또 오늘 아침 법문도 또 그저 이렇게 상하(上下)도 없고 아무때나 또 나온 대로 헌다 그말이여.
뭣을 생각해 놨자 법문이 생각헌 대로 안 나와. 늙은 연고인지 웬 연고인지 이렇게 잘 나오들 않으니깐 나온 대로 허는 거여.

재를 넘어오니깐 비린내가 왈칵 나.
아이고, 웬 냄새가 이렇게 나는고 싶어서 아! 이래 사방을 살펴보니까 호랭이란 놈이 큰 황소만헌 놈이 누워서 자빠져 자.
아, 저런 큰 놈이 어째 저렇게 누워 자빠져 자는고 싶어서 그 옆에를 가만히 보니까 사람을 하나 잡아 다가서 다 먹어 버리고 머리빡하고, 손허고 다리허고 사족(四足)만 남겨 놓고는, 머리허고 그것만 냉겨 놓고는 다 먹어 버리고는 똥창사 냉겨 놓고는 그 잔다 그말이여.

그래 가만히 그걸 보니 참 무서운 것도 없고—추천원 스님이라고 도를 여간 닦은 이고 몸이 그렇게 큰 어른이고, 대단히 보통 담대허도 않고.
설사 도를 닦아서 어떠헌 무외(無畏), 무포외(無怖畏) 지경에 갔닥 하드래도, 포외(怖畏) 없는 지경에 갔닥 하드래도 그런 걸 보면은 포외심이 나고 안되는 것이제.

허지마는 그 어른은 무슨 뭐 대오 확철대오 해서 무외를 증하도 못한 이지마는 그만큼 담대하고, 그까짓 그런 것을 보기를 뭐 그저 보통으로 보고 이런 인데.

아! 가서 그걸 보니 그 시체가 처녀여. 하도 얼굴은 깨끗하게 예쁜 처녀인디 머리채를 가조런히 딴 머리채 그대로 있고, 손도 깨끗허니 해가지고 발도 깨끗허니 딱 두고는 이놈이 먹었다 그말이여.
아, 그것을 보니 어떻게 그만 괘씸허고, 그놈을 그냥 그 당장에서 뭣이라도 있으면 때려 모가지를 찔러 패서 죽여 버리고 싶다 그말이여. 저런 악한 놈이 저런 짓을 했으니.

그러지마는 뭐 손에 쥔 것도 없지마는, 그런 큰 대호 무지한 놈을 함부로 건드렸다가 그놈한테 상헐 것이고.
멀찌맥이 나와서 서서, 높은 데 서서—호랭이는 저 높은 디를 무서워 혀. 저보다 높은 걸 무서워 하기 따문에 의심이 많은 놈이기 따문에 골짜구로 안 댕기고, 언제든지 봉대기로 이렇게 산봉대기로 댕기는 것인디.

역부러 그놈 벌써 호랭이 그 심리를 미리 아신 어른이고, 높은 바위 위에 올라서서 작대기 이런 놈을 하나 짚고는 서서 “너 이놈! 고약한 놈 같은 이놈! 요놈 저런 놈을 산신님이 그냥 둔단 말이냐고 저놈을 당장 죽여 달라”고 아, 고함을 냅다 친게.
아, 이놈이 대가리를 툭 털고 들고 보더니, 쳐다보더니 벌떡 일어나더니 착 보고 가더니 쳐다보고는 ‘아함!’ 그러고 입을 딱 벌림서 고함을 지름서 ‘아함!’ 그러거든.

“저놈이 어디서 저런 놈을 저놈을 당장” 고함을 지른게, 눈을 이리 슬므시 감더니 그냥 고개는 들고는 산으로 올라간단 말이여. 이래 돌아보면서 눈을 조끔도 다른 데 팔지 않고 이리 돌아보며 쓱 올라가거든.
아, 그만 기를 안 애끼고 서서 “저놈이 어디로 갈까보냐”고 호령을 헌게 아, 그놈이 산으로 올라 얼마 올라가더니 산봉대기에서 휘딱 자취를 감춰. 간데없어.

그래 거그서 얼마 내려와서 마을집에 가서응, 거그서 그 당신의 속옷을 이리저리 모두 벗어서 웃옷을 벗어서 그 머리를 두골을 싸고, 수족을 이래 다 손은 손대로 인자 위에다 가운데 놓고, 발은 제일 밑에다 놓고. 그리고 창자는 그만 그 자리에 다 어떻게 해서 끌어 묻고는.

거두어 가지고는, 잘 싸가지고 흔적없이 싸가지고는 한참 그 재를 내려와서 재 밑에 와서 그 조그만한 토굴에, 저 촌사람 그 집, 산촌 산가(山家)에 들어가서 “내가 잠깐 쓸 일이 있으니 그 괭이 좀 빌려 주시겄오” 그런게,
“뭣 하실라고 그리 가시다가 노장님이 그걸 괭이를 달락 하느냐”
“예 나 잠깐 쓸 일이 있으니 좀 빌려 주십시오. 내가 몰리 가져 가지 않을 것이고, 내 보퉁이 여기 좀 두고 좀 봐 주십시오. 내가 산에 뭣 좀 캘 일이 있어서 약(藥) 하나 캘라고 그럽니다”

“그렇게 하시라”고 빌려 주어서 한참 올라가서 파기 좋은 데를 파서, 한 자쯤 두어 자쯤 파고는 그대로 잘 묻어서 꽉꽉 밟아서 그래 묻어 주고는 혼백을 청혼(請魂)을 불러서, “아무쪼록 그저 이고득락(離苦得樂)하라”고 “그 못된 놈한테 과보 당한 줄 알라”고 그러고서는 내려왔다고,
금강산 지장암서 우리가 여름에 지내는디 거기 와서 같이 지낼 때 그런 얘기를 해서 들었습니다.

그 천원 스님이라고 허는 분은 거짓말도 헐 줄 모르고 뭐 그대로...
그 거짓말이나 잘헌 사람 같으면은 그 말을 누가 곧이 듣겄오마는 그대로 참된 이이기 따문에 대중이 다 옳게 들었제.(처음~19분55초)



(2/4)----------------

내가 그 재를 넘어가는 산밑에서, 고 재를 지금 넘어가는 산 밑에 노지(露地)가 물 노지가 이렇게 있어. 그 다리를 이렇게 건네. 내가 여까장 했제, 엊저녁에.

내가 두 철을 그렇게 공부를 허고.
두 철 공부라는 거, 세상에 제 공부 잘했다고 자랑하는 것을 그거 누가 인격적으로 들을 것인가. 발써 그 인격부텀 박멸헐 터이지마는 허거나 말거나 나는 그대로 말한다 그말이여. 틀림없어.

옳게 들으면 옳게 듣고, 자기 자랑헌다고 안 들으면 안 들을 터이제. 내가 거기에 무서워서 무슨 뭐 못혀.
내가 어제 아침 법문할 때 뭐라고 했냐 그말이여. 내 어릴 때부텀 벌써 서모 밑에서 배운 기술이 도둑질이라고 안 했어. 도둑질을 잘했으니 ‘했다’ 하제, 어떡헐 거냐 이말이여.

일곱 살 먹어서 서모 밑에 있어서 그 도둑질, 는 것이 도둑질.
그 도둑질이 무슨 내가 그렇게 넘의 쌀궤 가서 내오고 돈 내온 거 아니라, 서모 밑에서 아! 어찌 살다가 보니 그대로 그 주는 음식만 먹어도 될 턴디 어짠지 그 음식같은 것을 어따 두면은 그만 기어이 돌라먹어, 요런 거.
쌀같은 것도 다 내먹어, 요런 짓. 콩같은 것도 내가 다 구워 먹어, 요런 짓. 그래 놓고는 뒤지게 뚜드려 맞아. 안 먹을락 해도 버릇이 그리 된다 그말이여, 그 이상해야. 그런 짓 했다 그말이제.

아, 뭐 그렇게 천하게 커 나왔다는 거, 그것 무슨 뭐 그 무슨 감출 것이 또 뭐 있나?
그러헌 것도 내가 다 그대로 말을 했는데, 내 잘난 것을 말 안 해? 잘난 것은 더 말하고, 잘한 것은 내가 더 말하지. 안 할 게 뭐 있냐.

척 나와서 첫 철 공부를 그렇게... 내가 말했지.
그 다음에, 첫 철 공부에 그렇게 했는데 왜 그러헌 못된 병, 뱃속에서 막 그러헌 뭐 있는 대로 피가 다 넘어오게 공부를 했냐 그말이여.

왜 내가 그때에 좀 지혜가 있었으면 그러리요마는 대번 처음 나와서 그저 그만 화두(話頭)를 허되 힘써서 허면 된 줄만 알았거든.
그만 억지로 그만 창자가 기어오르게 막 ‘어째서 무(無)‘라고 들입대 해놓으니 육단심(肉團心)이 안 동(動)할 수가 있어야지, 생전 안 허든 놈의 공부를 갖다가 그렇게 해 놓으니까.

하나도 힘 안 들고 요만큼도 육단이 동치 않게, 피같은 것 뭐 이런 것 넘어오지 않게 그 참 잘헐 수 있는 그러헌 도 닦는 데 그러헌 묘방(妙方)이 있고, 그것을 몰랐드라 그말이여.

아, 그 큰스님을 그때 믿고, 그 큰스님 시킨 대로만 했으면은 다시 일이 없을 터인디, 그 큰스님 제산 큰스님이 그 시킨 대로 내가 안 했다 그말이여. 왜 그때 그 20살, 한 20살 먹은 것이 나와서 왜 그 조실 스님을 안 믿었든고.

믿을 수가 없어. 왜 믿을 수가 없나?
들어보면 알아. 암만 처음 나온 사람이라도 가르킨 것 들어보면 안다 그말이여. 그것을 몰라?
발써 그 경중(經中) 가운데, 그 모두 그 몽산 스님의 가르키는 화두법 가운데, 간화결의(看話決疑) 같은 것 가운데, 그런 것 내 그때 다 보지 않았지마는 다 듣고도 알 수 있었는디.

그러면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니라. 크게 의심(疑心)헌 데서 깨달으니라. 불의언구(不疑言句)가 시위대병(是爲大病)이니라. 언구 의심 않는 것이 큰 병이니라.
그저 참선은 큰 대의지하에 큰 대오가 있다. 의심을 허라고 했지. 의심밖에는 다 못 쓰느니라.

의심 밖에 거 무슨 무중무(無中無)를 본다든지, 비유비무(非有非無)를 본다든지, 허무유견(虛無有見)을 본다든지, 그건 다 아무리 광명장(光明藏)을 들여다 보고 아무리 천지미분전(天地未分前)을 들여다 봐도 그것은 다 묵조사선(默照邪禪)이니라. 죽은 참선이니라. 묵조(默照), 묵묵히 비추는 죽은 참선이니라. 다 모도 말 안 해 놨어?

그런디 큰스님께서 화두를 가르키시되 “천지미분전을 보아라” 벌써 틀렸거든. 그 화두를 믿을 수가 있나.
허니,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다. 큰 의심 아래 깨달느니라’했으니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알 수 없는 의심을 일으키다 보니, 척 이놈 일으키기만 일으키제,
거기에 참, 묘법(妙法)이 있는 줄을 화두에 묘관(妙觀)이 있는 줄을 몰랐다 그말이여. 첫 철에 나와서.

그러면 그 스님 말씀은 믿지 않고 들입대 ‘어째 무라고 했노’ 이놈만 어떻게 힘을 써 했든지 그냥 기운이 막 드리 올라와 가지고는 그 코로 입으로 피를 그리 쏟았던 것이여.
그래도 그 철에 그렇게 애를 쓰되 뭐 보통 내가 다 어제 아침 말을 다 했으니 더헐 것 없지.

새로 오신 법안성 보살님이 계시니 어제 아침에 했던 것을 다시 했으면 허련만 여기 다 갖춰져 있고, 본래 또 내가 말을 다 들어 알 수 없고.
법안성 어저께 말씀이 “내가 여러 간디 그 교(敎)에도 모도 들어가 봤고, 또 중간에 내가 그 어느 또 불교라도 들어가 봤고, 그런 데가 다 가르킨 디 가서 내가 들어서 다 알았습니다. 대번에 보니 모도 가르키는디 벌써 말 한마디 한마디 들어보면은 어떤 것이 사(邪)다 정(正)이다 하는 것이 분간이 나드라”고.
그러기 따문에 그렇게 분간헐 줄 알기 따문에 정법문중(正法門中)으로 바로 들어온 것이란 말씀이 틀림없거든.

내가 그 말을 들었어. 용하다 그 말씀이여. 그것이 아니면 들어온 법 없제. 그게 참말로 정견(正見) 학자거든.

그 정견 학자가 이 다음에 그 참, 혹 또 세상에 입태(入胎)에 가서 매(昧)하지 않지마는, 주태(住胎)에 가 매해 가지고 또 출태(出胎)에 가서 매하는 수가 있어. 매(昧)해, 출태에 정법학자가.
출태에 가 매하드래도 더 후래(後來)에 몸을 받아 척 나와서 대번에 벌써 아무리 제견 외도(外道)에, 사견(邪見) 외도에 가서 외도법을 가서 어떻게 배워 보고 다 알고 다시 정견으로 확 들어오는 것이여.

우리 부처님 역시 사바세계 시현(示現)으로 나오셨지마는 설산(雪山)에 들어가서 그 외도를 만나 가지고 벌써 들어보니 알았거든. 틀림없지. 그걸 정견 학자라고 해.

아! 또 다시 말이여. 또 다시 왜 이런 말을 안 해. 왜 이런 말을 안 헐까 보냔 말이여. 왜 감출 것이냔 말이여.

부처님 그 경전 가운데 들어와 ‘어떤 그렇게 상(相)을 내지 말어라. 보시상을 내지 말어라. 네가 보시를 했닥 하드래도 보시상이 있으면은 보시가 아니니라’ 왼갖 말씀 금강경에 다 해 놨지마는 또 보시상을 나툰 디는 또 굉장하네.

‘유기철물(鍮器鐵物)은 신견고(身堅固)요’ 왜 그런 소리를 혀.
‘불양헌답(佛糧獻畓)은 복무변(福無邊)이요. 논을 드리고 밭을 드린 건 복이 한량이 없느니라’ 얼마나 말씀을 했어.
‘창호도배(窓戶塗褙)는 면팔난(免八難)이니라’ 왼통 이렇게 다 나투어 놓고 또 그런 말씀을 했지.

보살님이 이번에 참—이것 뭐 당최, 나 일절 내가 무슨 뭐 ‘얼마 했느니 말았느니 뭘 했느니’ 내 안 했어. 헌 법 없었어, 내 입으로. 허다가 어쩌다가 은근히 그저 알았지만.

이 참 이 처음 시작할 때, 이 집이 이거 시작헐 때 기가 맥힌 집입니다.
내가 여기에 평생에 이렇게 자무반전푼(自無半錢分)으로, 내 돈 한푼 없이 입을 달고 돌아댕기는 나로써서 아, 여기에 와서 어떻게 어떻게 허다가서 아, 여기 무슨 잠깐 잠연이 있어서 있다가 어쩌다가 이 법당 하나를 지을라고 할 때. 아! 이 어떻게 짓냔 말여.

보살님한테 말을 했더니 대번에 그 어떻게 해 주어서 그만 그놈을 가지고 시작해 가지고 이 집을 지었는데, 지어 놓고 나니 이 산꼭대기에 물이 있나. 또 물을 말했드니 모두 수도를 이렇게 어떻게 척 나오게 해 주셨어. 그 인연이 적지 않지.
그 다음에는 이놈 땅이 남의 땅이니 이걸 어찌해야 할까 보냐고 떡 했드니 또 그 땅 사게 되았제. 이런 시은(施恩)이 깊다.

그 다음에는, 이번에는 이거 이래 놨겄당 어떻게 어떻게 허든지 이것을 재단법인(財團法人)을 좀 만들었으면 쓰겄는디, 원 재원(財源)이 그 모지라서 이걸 가지고 이사(理事)를 꾸밀 수가 없어.

어쩌고 어쩌고 했더니 아, 그 보살님께서 그 뭣이 있나? 아무것도 별 것 없지마는 아, 그 무슨 토지를 좀 근근히 좀 장만해 놓은 것을 여가 작고 많은 건 불고허고 그 재단법인에다 붙여서 재단이 되도록 해 가지고,
“적어도 이 말세일수록에 우리 부처님의 정법이 유통되어야 할 터이니 내의 이 몸뚱이는 잠깐 그저 머물다 갈 몸뚱이뿐이여. 어쩠튼지 그런 한 몸뚱이 재원이라도 뭘 재단을 만들어서 정법을 유통허도록 허는 것이 참 좋겠습니다’고,
아, 이렇게 저렇게 원력(願力)을 발해 가지고서는 아! 그 인자 뭐 재단법인이 되도록 이렇게 떡 해놨겄다.

그런디 허나 못 허나 여기 댕김서 불명(佛名)도 받고, 불명도 지었다는 신도가 말허기를 “왜 그런 허망한 짓을 헐까 보냐”고. “왜 그렇게 애써 헌 그런 토지를 부자도 아니고 왜 거그다가 그리 다 드릴까 보냐”고. 아, 내가 그랬다는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을 해 보았어.

그러헌 디 속지 않고, 그러헌 말에 넘어가시지 않고 더욱 더 “아직 그 불법을 모르는구나. 정법을 못 믿는구나” 오히려 개탄(慨歎)을 했다고, 그런 사람의 그 정신을 개탄을 했다고.
아, 내가 이 말씀을 듣고 참 느꼈소. 그래서 여까장 말허는 거요.

그 얼마나 호사(好事)에 다마(多魔)요. 내 할 일을 내가 했느냔 말이다. 그 내 할 일이 어떠헌 일이여?

죽백천추(竹帛千秋)에, 그래도 자 이만큼 그래도 시작해 주셨는디 여가 똑 선방이 되아서 다맛 그 열 명이고 스무 명이고 20명이고 30명이고—대본산, 큰 재원이 뭉텅 있는 데도 학자 몇 데리고 지내도 못하고 빚이 있느니 뭣 허니 야단치지마는,
자 여기에 그저 몇십 명씩 와서 턱 이래 공부를 허고 계시고, 또 보살님도 이렇게 와서 떡 와서 이래 다 공부허시고, 보살님네 당신네 양식 잡순다 하지마는 아, 그 당신네 양식을 잡수드래도 이런 처소가 없으면 되야?

이렇게 불학(佛學)을 배우는, 생사해탈법을 배우는 이 정법 이 법보선원 그 어떻게 죽백천추에 이러헌 선원을 참 창건허리요. 창건해서 유통허겠느냐 그말이여. 그것을 가만히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그 보통 누가 날 것인가마는 말이제.

참으로 ‘호향차시(好向此時)하야 명자기(明自己)다. 좋다, 이때를 향해서 너를 깨달라라’ 이런 말씀도 있지마는.
‘호향차시(好向此時)하야 명작복(明作福)하라’ 이러헌 때를 당하지 아니할 것 같으면 그러헌 무루(無漏) 해탈복을 지을 수가 없다.

이거 그것 저것 조금이라도 어떻게 이렇게 안 해 준다면은 이걸 꾸며낼 수가 없고 이걸 전통 헐 수가 없고, 못하거든.

여까장 어쩌다 보니 말이 나오게 되았습니다. 왔다갔다 아무때나 한다니까. 내 법문이 그렇다 그 말씀이여. 시(始)도 없고 종(終)도 없고 무시무종(無始無終).

우리 부처님은 그렇게 안 설했나? 우리 부처님의 화엄경이 그렇게 설한 경이여.
그런데 그 경이, 화엄경이 우리 부처님 경은 그만 그대로여. 무시(無始)요, 무종(無終)이요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거든.
‘가는[微] 티끌[塵] 수(數) 품’ 그대로 한 품도 설하지 않고 품수(品數) 그대로 딱 되겄다.

화엄경에다가 내가 내 법문을 대해서, 또 좀, 그 좀, 대단히 좀, 그 미안하요. 인격상 좀 불안하요.
허지마는 그대로 내가 설헐 수 밖에 없제.(20분2초~36분38초)



(3/4)----------------

내가 첫 철을 그렇게 한바탕 공부를 하고, 그 다음 두 철에 와서 죽게 된 몸뚱이 불구허고 떡 공부를 허다가,
인자 거그 와서는 다시 인자 큰스님한테 의심난 고 화두허는 법, 의심을 다루어 나가는, 의심을 거각(擧却)해 나가는 화두를 잘 간택해 가지고 큰스님을 믿고 공부를 턱 해나가는데.

죽거나 살거나 불구허고 그렇게 해나가다가, 중간의 ‘견성했다’고 한번 들어가서 하! 해놓고는 그렇게 대방(大棒)을 맞고 해제를 마치고 떠나 가지고는. 산철이제, 인자 두 철 만에 산철.
죽게 되았거나 걸음도 못 걷고 그만 그 뭐 파리가 날라가도 자빠지게 됐지마는 원청 강한 신심이 백혀 있으니깐 그것 상관 없드구만.

호서를 내려가면서 어느 집에 들어가서 저녁밥 얻어먹고, 하룻밤 자고 아침 얻어먹고 그러고 척 불탄산고수활(不憚山高水濶) 허고 척 나가다가,
아까 그 곡성 동리, 곡성 태안사 너머로 호랭이 사람 잡아먹은 산밑에를, 그 재를 넘어갈라고 산밑에를 가는디 물 건너는 노지(露地)가 있다.

그 노지를 척 아! 건너 한 발 뛰고 두 번 건너뛸라고 허는데.

자지 마시오, 자지 말어, 응. 법문 들을 때 왜 자요. 법문 들을 때 자러 왔어? 법문 들으러 왔지.

한 발대죽 뛰고 또 발대를 건너뛸라고 헐 때인디, 화두는 내 화두는 허면서도—가면서 왜 화두를 안 혀.
앉었을 때만 화두를 허고 누울 때는 화두 못허고 그러는가? 밥 먹을 때는 화두 내버리고 먹고, 왜 똥 눌 때 화두를 내버리고 똥 누어?
이거 무슨 소리여. 화두 좀 해보란 말이여.

화두 허다, 좌선 허다가 척 누워서 화두를 추켜들고 누워 봐. 그대로 화두가 온당허게 자리가 잽혀 가지고는 그거 뭐 알 수 없는 놈만 딱! 나온다. 바로 누우나 옆으로 누우나 화두는 고대로.
잠을 딱 자고 뚝! 깨봐. 잠은 자기는 잤는데 화두는 고대로 나온다.

이것 무슨 소리들이여.
화두를 그 허다 말다가, 조끔 허다가 말다가, 조끔 있다가 없고 말허다가도 없고 쫓아댕기다 없고, 똥 쌀 때는 그대로 싸고 이래 가지고는 10년 20년 미륵하생(彌勒下生)까장 해 봐라. 틀림이 있는가. 소용없는 거여.

두 발대죽을 턱 내딛으면서 처꺽 그 ‘운무중(雲霧中)에 소를 잃었으니 어떻게 해야 소를 찾겠느냐?’
‘구름 벗어지면 소 찾지’ 대방(大棒)을 내루아 버리고는 그 학자한테 나한테 물어라.

‘운무중에 소를 잃었으니 어떻게 해 소 찾겄읍니까?’
‘담 너머에 가서 외 따 오니라’

아, 그 법문이 그만 화두를 해 나가다가 훅 들어오면서 툭!
내가 그래서 법문에 언하대오(言下大悟)라고 논 것이 그거여. 그 언하(言下)에 그만 대오(大悟)를 했네. 내가 대오를 했다 그말이여. 주제 넘게 헌말이여 이것이.
참말로 대오인지 아닌지 알 택이 있냐 그말이여. 나는 대오 했으니께.

척! ‘차시(此時)에 유인(有人)이 문아서래의(問我西來意)하면, 이때에 어떤 사람이 나한테 서래의(西來意)를 묻거드면은 녹수(綠水)는 각하(脚下)에 암전거(岩前去)로구나. 흐르는 물은 내 다리 밑에, 내 발 아래에 흐르는 물은 다리(바위) 앞으로 가는구나’
이 말 한마디 턱 일러 놓고는 곡성 그 재를 넘어갔네.

어떻게 넘어간지 모르고, 호랭이가 물어 간 재인지 뭔 이건 모르는 소리고, 내가 그 재를 지금 넘어갔기 따문에 고 이야기를 하나 해놓은 것이여.
뭐 소설도 그렇게 다 현대소설 「해왕성」 같은 거 보란 말이여. 다 그렇게 안 나왔는가.

그 재를 넘어서 태안사를 척 들어갔다. 그때 가서 오도송(悟道頌)을 지어 놨는디 내 오도송 좀 들어봐.
오도송, 밤낮 해 논 놈, 저 내 방에 써 걸어 놨으니 다 알지, 뭐 모를 건 없으되 그놈을 내가 좀 고쳐서 지금은 해 놨지.

자칭 내가 지금 내 오도송이라 한다. 어째 오도송, 나는 도통(道通)을 했으니 오도송이지. 남이야 비웃거나 말거나 나 혼자만 견성했지, 인자 잉. 그렇게 들어 두란 말이여. 그때 처음이니까.
그래도 내가 아직 오도송, 그때 고친 놈 그 글자만 몇 떼 버렸지 그대로여.

그날 밤이여. 그 재를 넘어가서 그날 밤에 태안사를 들어가서 뜰 앞에 떡 그 앞에 누(樓)가 있고, 뜰 앞에 거닐면서 이놈을 진 것이다 그말이여.
내가 무슨 놈의 글을 질 줄 아나. 내가 뭔 글을 얼마나 배우다가 나왔는디, 무슨 놈의 글.

일곱 살 먹어서 우리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 울 아버지 계실 때에는 나도 참 참말로 그런 귀동자가 없었대. 우리 어머니가 나 첫아들 낳아 가지고, 늦게 낳는데 얼마나 그만 사랑하고 예삐 키웠든지 소문이 들썩 나버렸어.
허지마는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서모 하나 들어오신 바람에 우리 서모 밑에서 그런 천둥이는 당최 만고(萬古) 천둥이는 없었다 그말이여.

그래 그 어릴 때 그때, 그 뭐 하늘 천, 따 지, 감을 현, 누르 황, 뭐 배운 것은 그때 배웠지마는 서모 들어오면서부터는 다시 글 한 자 뭐 배워 보지도 못했고는 서모 밑에서 어떻게 나는—서모가 그 뭐 참 괜찮다고 하지마는 그렇게 못되어지데, 사람이.

그러고 나와서는 또 뭐, 그 내가 아까 그러지 않어? 글도 얼마든지 절에 들어와 배울 턴디, 그 같은 친구 동무, 아이 하나 미쳐 죽어서 화장해 버린 뒤에 그것 다 태워가지고 연기는 빙 돌아 떠버리고, 그 응해 스님 글 하나 한 귀(句)에 그만 발심(發心)이 되아버렸어.

수행(修行)은 막대빈모반(莫待鬢毛斑)하라. 뭐 참선을 헐라매 머리터럭 희기를 기다리지 말아라.
호리신분개소년(蒿裡新墳皆少年)이다. 쑥대 속에 새 무덤이가 소년 무덤이다.

인신일실기시환(人身一失幾時還)이며, 사람의 몸뚱이 한번 잃으면 어느 때 돌아오며,
지옥시장기등한(地獄時長豈等閑)가. 지옥 때가 기니 어찌 등한히 노느냐. 지옥 한번 들어가면 때가 길다. 못 나온다. 어찌 등한히 노느냐. 하는 송구(頌句)에 그만 발심이 되아 가지고는 어릴 때, 통 글이란 건 읽을 수가 없어. 그까짓 놈의 글 배우다 죽어 버리면 뭣이냐.

또 사람이 수명 수한(壽限)이, 죽는 한(限)이 그놈이 때가 정해져 있으면은 어느 때까장 글 배우고 그 다음에는 참선 허겄다마는, 20년을 산다 하면 10년 글 배우고 10년은 공부하겄다마는 조석(朝夕)에 생명을 잃어 버릴 수가 있고, 숨 한 번 들이쉬고 내쉴 때에 잃어 버릴 수가 있는데 어떻게 내가 그 글을 읽고 있어.

허송(虛送), 그놈의 글 읽는다고 허송을 헐 수가 있어?
망후를 혀. 내일 헌다, 모래 헌다 후(後)를 기달라. 어찌 후기(後期)를 내가 만들아.

당체 못 하겠어. 그래 버렸는디 뭐 소용이 있나. 뭔 놈의 그래 글 하나 못 배와 못 읽었어.
쪼금 그 읽는다고 읽었자 뭐 그것 무슨 뭐, 그때 나올 때 놀이 글자 좀 알고, 한 글자 새길 수도 없어. 몰라. 그런 것이 무슨 놈의 글을 질 것인가 말이여.

허지마는 척! 가서 글이 한 수(首)가 나오는디 그 멋지게 나온다 그말이여.
글이라는 것은 염(簾)도 보고 운(韻)도 맞추고 다 이렇게 지은 것이지마는, 염(簾)이야 운(韻)이야 그런 걸 내가 해 보지 않았는데 그건 상당한 글이 있어야 하지, 어떻게 알 것인가.

허지마는 이 글이 염도 좀 맞았네, 염도. 들어 봐.
글이 원청 될 것 같으면 염도 운도 맞는데야. 12염에는 다 안 맞는다는구만. 12번 그 염 보는 데는.

그날 다리를 건너뛰다가 인자 그 견성 했다고 그날 밤에 태안사 청중에 거닐다가 떠억 허니 하나 지은 것이여.


작야삼경월만루(昨夜三更月滿樓)허고 고가창외노화추(古家窓外蘆花秋)니라
나무~아미타불~

작야삼경월만루(昨夜三更月滿樓)다. 어젯밤 삼경(三更) 달은 이 다락에 가득했구나. 내나 그 앞에 어젯밤 삼경 달 이 다락에 가득했구나.
고가창외(古家窓外)에는 노화추(蘆花秋)로구나. 저 밑에 저 옛 고가(古家) 창밖에는 갈대꽃 가을이로구나. 갈대꽃이 모도 피어서 일렁일렁해. 대(對)도 맞았네. 명월과 갈대꽃 대도 맞았어.

벌로 듣지 말어. 무식한 내가 글 진 걸 봐! 견성 했는가, 안 했는가 보라 그말이여.
고렇게 첫 귀는 빠졌다.

어젯밤 삼경 달은 다락에 가득했는데 옛집 창밖에는 갈대꽃 가을이니라.
이것은 최초구(最初句)니, 말후구(末後句)니 붙이들 말고 봐라. 거다가 최초구니 말후구니 여하약하(如何若何)오. 강사들 모도 있은게 강사 지견(知見)을 붙여보라 말이여.

고 밑의 구(句)여.


불조(佛祖)가 도차상신명(到此喪身命)이다 암하유수과교래(岩下流水過橋來)니라
나무~아미타불~

그 후구(後句)여.
불조(佛祖)가 도차상신명(到此喪身命)이니라. 부처님도 불조도 여기에 이르러서 상신실명(喪身失命) 했느니라.
암하유수과교래(岩下流水過橋來)니라. 바위 아래 흐르는 물은 다리로 지내오는구나.

그게 이제 뭣이여.
거기다 오도송을 거다가 붙이는 것이 방(棒) 짊어지고 했지마는, 삼세제불이 누가 방 짊어지지 않고 어디 법담(法談) 허는 수가 있나?

그렇게 척 나 혼자 했다. 설향수(說向誰)오. 누구로 더불어서 말을 할 것인고.
누구, 산이나 더불어 말할까? 뭐 청풍명월(淸風明月)로 대해서 말할까? 할 사람 누가 있나.
독보건곤(獨步乾坤)이제. 수반아(誰伴我)오. 홀로 나 혼자 한번 한 것이지, 누가 그 곁에 뭔 사람이 있나.(36분40초~52분16초)



(4/4)----------------

척 들어와서 그날 밤을 거그서 어떻게 좋은가 어쩐가, 당최 그 경계는 말할 것 없다. 절을 해도 그 경계. 그 경계는 뭐라고 내가 말해 놓지 못하고 혀.
밥을 먹어도 그 경계, 산을 봐도 그 경계, 어디 절을 해도 그 경계. 절을 해도 절헐 것도 없네. 아, 이것 봐.

날이 겨우 샜는데 아, 이놈의 대중은 인자 겨우 감원(監院)이 일어나서 일찍 일어나서 인자 뭐 갔다왔다 정중(庭中)에 허는데, 그까짓 감원이 있든지 말든지 지랄하든지 아, 그냥 뜰 앞에,
그 정중에 그만 뜰 앞에 오줌간도 아니고, 거다가 오줌을 그냥 철철철철 누어 버린다. 내가. 아! 이런 꼴 좀 봐라.

“아, 저런 세상에 어디서 저런 미친놈이 와서 저런 법당 뜰에다 갖다 오줌을 싸. 저런 놈이 있어?”
내가 그만 “야, 이놈의 중아. 거 오줌 눌 데를 하나 가르켜 내라. 비로자나(毘盧遮那) 전신체(全身體)요. 전체가 모도 불체(佛體)인디, 모도 부처님 몸뚱이 불체인디 어느 곳에다 오줌을 누란 말이냐? 말해!”

아, 이러고 대든게, “아, 이놈의 중, 수좌놈들이라니 이런 건방진 저놈들 보소. 아따 저런 것이 중놈으로서 저게 주인인가. 에이 녀석”
아, 그 싸워 노니까 밥도 못 얻어먹었네. 밥이나 얻어먹을 걸. 아, 이런 꼴 좀 보소. 밥을 못 얻어먹어.

인자 그때부터 나는 미쳐 버렸지. 내가 미친 사람이지, 산 사람 아니여.

그런 놈의 그런 경계가 있으니, 사람이 왜 좋게 하고 그 오줌단지 가서 오줌 누고, 상하(上下) 다 알아서 처리하고, 행주좌와(行住坐臥)가 분명하고 그려야 할 턴디,
왜 그러면 어째서, 해필 왈 갖다가서 진대지(盡大地) 땅은 땅으로 본 것이 옳을 턴디 왜 땅을 갖다 부처로 보고, 왜 갖다가 그만 아무데나 오줌을 싸고. 그거 되아? 그 미친 놈이지, 뭣이여.
그 미친놈 아니여? 허지마는 그놈의 경계가 참 당해 놓으면 별 도리 없네.

아! 아침밥도—밥을 주어야지. 아침밥도 얻어먹지 못허고 그냥, 밥을 안 준게 어째.
“허 그놈들, 호래아들놈들. 도인을 몰라보고 밥도 안 주는구나, 이 호래아들놈들. 네 이놈들 좀 겪어 봐라 이놈들” 한바탕 냅대 고함을 지른게 나는 미친놈 되아 버렸네.

그래서 그대로 그만 밥도 못... 오히려 쫓겨나다시피 쫓겨났네.
쫓겨나와 가지고는 배도 고프지마는, 배 고픈지 뭔지 그건 소용 없드구만. 그 미친 사람이 달리 어떻게 생리적으로 미쳐도 배고픈 줄 모르는가 보드구만.
참말로 나는 그 생리적으로 멀쩡하고 법으로만 미친 것이여. 법광(法狂)이 되었어.

아, 그 송(頌) 진 것 좀 봐. 그 송을 오늘날까지 큰스님네가 다 찬(讚)헌 송이여. 뭐 두말 할 것 없어.


그래 가지고는 거그서 척 ‘어라, 나는 이길로 갈 데가 어디냐? 불가불 여그서 제일 가까운 곳이 마곡사다. 동리산서 마곡사밖에 가까운 데가 없다. 마곡사를 갈 밖에 없구나. 마곡사에 큰스님이 계시니까 거그를 갈 수밖에 없다’

혜봉 스님, 마곡사에 혜봉 스님이 지혜는 제일 밝다고 소문난 이고, 견성(見性) 헌 후에 마을에 가서 마누라 얻어 가지고 아들 둘 낳고 산닥 하지마는. 그래 가지고 또 패철(佩鐵)을 차고 산에 올라 댕기면서 묏자리나 찾고 이러고 살아.

견성 도인이라도, 견성 척! 헌 후에 아무 한바탕 뭐 견성헌 속에서 보니 아, 중생(衆生)의 환화(幻化)가 개시묘법(皆是妙法)이니, 견성헌 분상에는 마누래 얻어 가지고 아들 낳고 사는 것이 무슨 하구녹수여청산(何拘綠水與靑山)고. 녹수가 청산에 걸릴 법이 어디 있으냐.

그래서 그만 마을로 가서 그대로 사는 수가 있어. 학자나 제접(提接)허고 가만히 청산(靑山) 한림(寒林) 속에서 아, 이렇게 또 계신 이도 있고.

그것 내가 관계헐 것이 뭣이 있느냐. 마누라 얻어서 아들 낳고 사는 것이 그것이 무슨 내게 무슨 걸릴 것이냐 그말이여.
법당 앞에 저 뜰 앞에다가 오줌도 철철 싸버렸는디, 그것 뭐 마누라 데리고 산다고 거기에 내가 걸려?
거 마누래 얻었다고 도인(道人)이 아니고, 마누래 없다고 도인이여? 고렇게 내가 상견(相見) 학자인가? 일없어.

척! 그만 하나도 무슨 뭐 그건 추호도 없고, 대번에 그만 혜봉 스님을 찾아갔지.
얼마를 걸어서, 그때는 뭐 어디 무슨 탈 것도 없고 내가 또 뭐 돈이 있나, 뭣이 있나. 누더기 하나 입고 가는데.

아, 그 등정(登程)을 해서 얼마를 걸어서, 운수(雲水) 등정을 해서 구공리를 척 당도해서 “혜봉 큰스님이 어느 집에 계시냐?” “저 감나무 집에 계시다”고.
아침에 척 들어—어떻게 좋든지 그 큰스님이 계신다 허니까 척 들어서니까 밑에 실에, 밑에 당신 계신 방 하나 맨들아 놓고 초가에 계시드구만.

척 들어서 가지고서는 혜봉 큰스님이 턱 나오길래 절을 한 자리 척... 어따가 절 할 것인가. 그런 큰스님네한테 절 했지.
내가 절 하다니. 아만(我慢)이 생겨 그런 건 아니지마는 참말로 그렇지.

잠 와? 잠 오면 나도 그만 잠이 와, 눈이. 그만 설(說)헐까?
잠 와요, 모도. 그만 설헐까? 여까지만 둬?
왜 암말도 없어. 자꾸 졸고 남의 법문 신심을 타락시켜. 나는 여그 다 보이거든.

여하약하(如何若何) 말이 없는 걸 보니까 조끔 더 설하라는 말이로구나.
듣기 싫어서 그만 설했으면 싶어서 암말도 안 헌게, 암말도 안 허니까 미워서 좀 더 설한다 그말이여. 밉상맞어서.

게을러 가지고 듣기 싫어서, 어서 가 좀 더 가만히 앉아서 좀 졸고 그랬으면 싶어서.
소용 없어. 소용 없어. 내가 그런 디는 더 설(說)혀, 미워서.


여기에는 참말로 들어야 한다 그말이여. 이게 정말 법문(法門)이니까.
들을 줄 모른 사람은 잠은 더 오고, 마구니 있는 사람은 그놈 마구니가 싫어서 듣기 싫어서 죽어. 그건 마구니 따문에 그려.

척 들어서 가지고는 혜봉 스님한테 법담을 허되, “제가 스님께 무자의지(無字意旨)를 물으러 왔습니다”
“거 그럼, 물어 보시오”
이것 나는 그 사미중이지마는 처음에는 큰스님도 “물어 보시오” 그러더군.

“조주무자의지(趙州無字意旨)를 반(半)만 일러 주십시오”
반만 일러 달라는 것도 벌써 거 그런 말이 없어. “다는 요구허지 않습니다. 반만 일러 주십시오” 허니까,

나를 척 한번 이래 바로 이렇게 눈을 떡! 떠 보더니 “무(無)” 그런다 그말이여.
그래서 “반이 될 이치가 있겠습니까”

“그 나는 반을 못 일렀어. 돌려 묻노니, 수좌(首座)한테 돌려 묻노니 수좌가 무자 반만 한번 일러 보오” 똑 말이 그러시드구만.
나이 그 어른은 한 오십 글썽글썽 허고, 나는 인자 한 스물한 살인가, 두 살인가, 나는 연조도 잘 모르는구만. 지내간 연조 하나도 몰라.

“스님이 물어 주십시오” 또 다시 두 번 그래. “무자 반만 일러 주오”
“무(無)” 내가 이랬다 그말이여.

턱, 참 엄연헌 태도로 나한테 다시 한마디를 묻기를,
“고인의 법문에—고인, 옛 고인 스님, 큰스님의 법문에 ‘거년(去年) 가난은 비(非)가난이다. 지나간 거년 해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 무입추지(無立錐地)니라. 송곳 꽂을 땅이 없었느니라. 금년 가난은 시(是) 가난이여. 금년 가난은 참 가난이다. 추야무(錐也無)로구나. 송곳까장 없구나’허니,
점검을 허되 ‘여래선(如來禪)밖에는 안된다’ 그랬으니, ‘여래선밖에는 안된다’했으니 수좌는 거기에 어떻게 일러사 조사선(祖師禪)을 이르겄느냐” 이놈을 묻는다 그말이여.

무서운 말이여. 선지식(善知識)이 학자 잡드리허는 걸 좀 보아! 무서운 말이여.
여간 견성해서 뭐 오도송 짓고, 뭐 대지가 산하대지(山河大地) 전체 보이는 것이 견성이라도 그런 데 가서 그 공안에 가서 눈이 멀어 버려.

응, 이- 허면 죽는다. 발써 찾으면 죽는다. 무슨 이치냐 죽는다.
고렇게 물을 때 어떻게 답허겄느냐?
어디 살림살이 있으면 하나 내놔 보쇼. 응, 보살님네도 다 살림살이 내놔 봐.
좀 내놔 보란 말이여. 어디 좀 내놔 봐.

아침에 여까장.

내가 이것, 내 인자 사방 돌아 법담 딱! 딱! 해 가지고, 인가(印可) 딱! 딱! 맞은 놈을 내가 탁탁 해놀턴게 보란 말이여.
어디서 아무때나 저 혼자 도 좀 닦다가 나와서 뭐 학자를 속이고 저 죽어? 멋대로 나와서 혀? 우리 부처님 정법이 그러고 말어? 안되아.(52분17초~66분24초)(일대기 2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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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각(正覺) ; ①깨달음. 부처님의 깨달음. 바른 깨달음. 진리를 깨닫는 것. ②부처님. 여래(如來). 진리를 깨달은 사람. 정등각(正等覺). 등정각(等正覺). 정등보리(正等菩提).
*영산회상(靈山會上) ; ①석가모니께서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던 때의 모임. 또는 그곳에서 법화경을 설하던 때의 모임. ②선종의 삼처전심(三處傳心) 중 하나로 부처님과 가섭이 이심전심으로 주고받은 염화미소(拈花微笑)의 회좌(會座).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본래면목(本來面目 본래의 얼굴·모습).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석가모니(釋迦牟尼) : sakya-muni의 음역. 샤카족의 성자(聖者)•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육백이십삼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 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오백사십사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명근(命根) ; 목숨과 생명의 근본.
*주장자(拄杖子 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들이 좌선(坐禪)할 때나 설법(說法)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명상(名相) : 모든 물건이나 일이 다 이름과 형상이 있는 것이다。우리는 그 이름만 들으면 그 사물의 형상을 생각하게 되는데, 형상이란 것은 바탕과 모양이 있고 없고를 막론하고 공간적으로 있는 형용과 체적(體積) · 질량(質量)뿐 아니라, 시간적으로 나타나는 나고 머물고 늙고 죽는 것이나, 시작되고(成) 진행하고(住) 쇠퇴하고(壤) 파멸하는(空) 것도 형상이며, 오관(五官)으로 감촉하게 되는 열도(熱度) · 소리(音響) · 빛(色) · 냄새(香) · 맛(味)같은 것도 또한 형상이다.
그러나 이 이름이나 형상은 그 자체가 본래 확실히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망녕된 생각이 지어낸 빈 이름이며, 한 때의 인연을 따라 생겨난 거짓 형상인 것이다.
*출신처(出身處) ; 큰 깨달음을 얻어, 그 깨달음의 편집(偏執 편견을 고집함)이 끊어진 자유의 경지.
*최초구(最初句) ; 최초의 한마디 말. 본래부터 타고난 본성(本性)의 진여(眞如) 나타낸다.
*말후구(末後句) ; ①말후(末後)는 구경(究竟), 필경(畢竟), 구극(究極), 지극(至極)의 뜻. 구(句)는 언구(言句), 어구(語句), 문구(文句)란 뜻. 크게 깨달아 구경에 이르러서 하는 말. 지극한 글귀. 말후일구(末後一句). ②문장의 맨 끝의 말. ③임종의 말.
*기본축말(棄本逐末 버릴 기/근본 본/쫓다·구하다 축/끝·지엽 말) ; 근본은 버리고 지엽의 끄트머리를 구하다.
*(게송) ‘고와한단침(高臥邯鄲枕) 주류만년성(周流萬年城)’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몽각(夢覺 꿈에서 깨어나)’ 참고.
*한단침(邯鄲枕) ; 한단지침(邯鄲之枕). 한단지몽(邯鄲之夢). 여옹침(呂翁枕). 여공침(呂公枕). 인생의 덧없음과 영화(榮華)의 헛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중당(中唐, 七六六~八三五) 대 전기소설의 대표작인 ‘침중기(枕中記 : 베개 속 이야기, 심기제作)’에 나오는 이야기로, 과거시험에 낙방한 노생(盧生)이 한단(邯鄲)의 여관에서 도사(道士) 여옹(呂翁)을 만나 자기의 곤궁한 신세를 한탄하였더니 여옹이 청자로 만든 베개를 그에게 건네주어, 노생이 그 베개를 베고 잠이 들었다. 이때 여관 주인은 노란 기장을 솥에 삶고 있었다.
노생은 그 베개를 베고는 곧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미인에게 장가들고 과거에 급제하여 고관대작의 부귀영화를 한껏 누리다 그의 나이 80에 병들어 죽게 되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 보니 그 모든 것은 꿈이었고, 여관 주인이 삶던 노란 기장은 아직 익지 않고 있었다. 인간 욕망의 부질없음을 깨달은 노생은 여옹에게 감사드린다.
*옥식금의(玉食錦衣 구슬·훌륭하다 옥/밥·음식 식/비단 금/옷 의) ; 금의옥식(錦衣王食). 흰쌀밥(맛있는 음식)과 비단옷이라는 뜻으로,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이르는 말.
*철위산(鐵圍山) ; 철륜위산(鐵輪圍山)이라고도 함. 불교의 세계설에서는 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네 대륙과 9개의 산이 있고, 산과 산 사이에 8개의 바다가 있는데, 그 아홉 번째 가장 바깥쪽의 철(鐵)로 된 산을 말한다.
*시은(施恩) ; ①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은혜. ②은혜를 베풂.
*악업(惡業) ; 나쁜 결과의 원인이 되는 나쁜 행위. 또는 전생(前生)의 나쁜 행위.
*악연(惡緣) ; ①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인연. 또는 맺어서는 안 되는 잘못된 인연.  ②나쁜 일을 하도록 유혹하는 주위의 환경.
*진로(塵勞 티끌·속세 진/근심할 로) ; ①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마음의 티끌. 번뇌(煩惱)를 말한다. 중생의 마음을 더럽히고 생사에 유전(流轉 끊임없이 이어짐)시켜 피로하게 하는 것. ②생사(生死). 생사윤회(生死輪廻).
*형탈(逈脫 멀다·아주 형/벗다·벗어나다 탈) ; 멀리[逈] 벗어나다[脫].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색별(色別 빛 색/나누다·구별 별) ; ①각각의 색 하나하나. 색을 구별함. ②종류에 따라 구별함.
*(게송) ‘체연개일몽(遞然開一夢) 잔월반루명(殘月半樓明)’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몽각(夢覺 꿈에서 깨어나)’ 참고.
*향당(鄕黨 시골·마을·고향 향/마을·향리鄕里 당) ; 자기가 태어났거나 살고 있는 시골의 마을. 또는 그 마을 사람들.
*본각(本覺) : 일체 중생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각성(覺性)의 뜻으로서 청정한 심성(心性)을 말함.
이 심성은 허명(虛明)해서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또 자연적인 것도 아니며, 본래 중생의 상념(想念)을 떠나서 법계에 두루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망(迷妄)과 깨달음에 관계 없는 절대적인 경위(境位)이다.
*한바탕 ; 크게 한판(한 번 벌이는 판). 한판 크게.
*산말랭이 ; ‘산마루(산의 등줄기의 가장 높은 곳)’의 사투리.
*무외(無畏 없을 무/두려워할 외) ; ①자신감을 가지고 가르침을 설하므로 누구에게도 두려움이 없음. 진리에 대한 확신으로 어떠한 장애도 두려움이 없음. ②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두려움도 불안도 없는 평온한 마음 상태. 무소외(無所畏)라고도 한다.
*포외(怖畏 두려워할 포/두려워할 외) ; 두렵고 무서움. 화엄경에서는 ①생활의 두려움. ②명예를 잃을 두려움. ③악도(惡道)에 떨어질 두려움. ④죽음의 두려움. ⑤대중 앞에 나섬에 대한 두려움 따위의 다섯 가지 두려움을 이른다.
*봉대기 ; ’봉우리(산봉우리)’의 사투리.
*청혼(請魂) ; 설법할 때에, 영가(靈駕 죽은 사람의 영혼)를 그 자리에 모시는 일. (같은 말)거량(擧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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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궤(-櫃) ; 뒤주(쌀 따위의 곡식을 담아 두는 세간의 하나). *세간 : 집안 살림에 쓰는 온갖 물건.
*어짠지 ; ‘어쩐지(어찌 된 까닭인지)’의 사투리.
*어따 ; 어디에다. 어디에.
*돌라먹다 ; 훔쳐먹다(몰래 가져다 먹다). ‘속여먹다(속여 이익을 얻다)’의 사투리.
*뒤지다 ; ‘뒈지다(‘죽다’를 속되게 이르는 말)’의 사투리.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들입다 ; 세차게 마구.
*육단심(肉團心) : [범] Hrdaya  4심의 하나。 심장을 말함。 8판(瓣)의 육엽(肉葉)으로 되었다 한다。 의근(意根)이 의탁한 곳.
*묘방(妙方) ; ①기묘한 방법. ②신묘하고 효험이 뛰어난 처방(處方).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 ; ‘간화선(看話禪)에 대한 의심을 풀어주는 글’. 고려의 보조 지눌(普照知訥) 스님 지음. 화두(공안)에 대한 하나의 큰 의심을 깨트려 곧바로 부처의 경지에 이르는 간화선(看話禪)의 뛰어남을 밝힌 저술.
*대의지하(大疑之下) 필유대오(必有大悟) ;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다’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 p52-53.
當於本叅公案上(당어본참공안상)에 有疑(유의)호리니  大疑之下(대의지하)에  必有大悟(필유대오)하리니  千疑萬疑(천의만의)를  倂作一疑(병작일의)하야  於本叅上(어본참상)에  取辦(취판)호리라
若不疑言句(약불의언구)가 是爲大病(시위대병)이니라  仍要盡捨諸緣(잉요진사제연)하고  於四威儀內(어사위의내)와 二六時中(이륙시중)에  單單提箇話頭(단단제개화두)하야  廻光自看(회광자간)호리라

바로 모름지기 본분을 의지하야 법다이 하야사 비로소 옳으리라。 반드시 본참공안상에 의정을 두리니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으리니, 천의만의(千疑萬疑)를 아울러 한 의심을 지어서 본참상에 판단할지니라.
만약 언구(言句, 화두)를 의심하지 않으면 이것이 큰 병이니라。 반드시 모든 인연을 다 버리고 사위의(四威儀)와 열두 때 가운데에 다만 화두를 잡아 빛을 돌이켜 스스로 볼지니라.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묵조사선(默照邪禪) ;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이, 그냥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 나가는 그러한 공부. 이것은 깜깜한 귀신굴(鬼神窟) 속에서 살림살이를 하는 것이라 해서 영원히 깨달을 분(分)이 없는 것이다.
*묘한 관(觀) ; 묘관(妙觀).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5분59초)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 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드리 ; ‘마구(아주 세차게, 매우 심하게, 앞뒤를 따지지 않고 아무렇게나 함부로)’의 옛말.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정견(正見) ; ①팔정도(八正道)의 하나. 바른 견해. 연기(緣起)와 사제(四諦)에 대한 지혜. ②있는 그대로 봄. ③바르게 자신의 참모습을 앎.
*팔정도(八正道) ; 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끄는 수행의 올바른 여덟 가지 길. 정견(正見),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념(正念), 정정(正定), 정사유(正思惟), 정정진(正精進). 팔성도(八聖道)를 이른다.
*정견 학자(正見學者)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알고 바르게 수행하는 이.
*입태(入胎) ; 모태(母胎)에 들어가는 것.
*주태(住胎) ; 모태(母胎)에 머물러 있는 것.
*출태(出胎) ; 태어나는 것.
*매(昧)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모른다. 어둡다.
*후래(後來) ; ①뒤에 오거나 뒤져서 옴. ②장차 오게 되는 앞날.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시현(示現 보일 시/나타날 현) ; 그때마다 적절하게 몸을 나타내[現] 보이는[示] 불보살의 작용. 현시(顯示), 현현(顯現)과 같은 뜻이다.
불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중생의 수만큼 많은 갖가지 몸으로 변화하여 나타나는 시현의 대표적인 예는 부처님의 32상 80종호나 관세음보살의 33신 등이 있다.
*설산(雪山) ; 인도 북부에 솟아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가리키는 말. 눈[雪]을 품은 곳이란 뜻. 설령(雪嶺) · 동왕산(冬王山) · 대설산(大雪山) 등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탄생지인 카필라바스투 역시 설산의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수도한 산.
*유기철물(鍮器鐵物)은 신견고(身堅固)요 ; 유기(鍮器) 철물(鐵物)을 올린 시주(施主), 몸이 견고하여지이다.
*불양헌답(佛糧獻畓)은 복무변(福無邊)이요 ; 불전(佛前)의 공양 위해 논이나 밭을 올린 시주, 복이 무량하여지이다.
*창호도배(窓戶塗褙)는 면팔난(免八難)이니라 ; 창호하고 도배한 시주, 팔난(八難)을 면해지이다.
*시은(施恩) ; ①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은혜. ②은혜를 베풂.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 • 숙원력(宿願力) • 대원업력(大願業力) • 서원(誓願) • 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개탄(慨歎, 慨嘆 슬퍼할 개/탄식할 탄) ; 어떤 일이나 현상에 대하여 못마땅하거나 분하게 여기어 한탄함.
*호향차시명자기(好向此時明自己) 백년광영전두비(百年光影轉頭非) ; ‘당장 이 때에 마음을 애써 밝히소, 백 년 세월도 순식간에 글러지느니’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61 게송 참고.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고 인도하고, 자기도 열심히 닦으면서 남도 같이 닦게 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 법장현수(法藏賢首) 스님의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에 보면,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용궁(龍宮)에 가서 대부사의경(大不思議經=화엄경)을 보았는데, 상본·중본·하본 3가지 본(本)이 있었다.
그 중에 상본(上本)이 십삼천대천세계미진수(十三千大千世界微塵數)게송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었다 한다. 중본(中本)은 49만 팔천팔백 게송 천이백 품(品)이고, 하본(下本)은 10만 게송 38품이었다 한다.

용수보살이 상본과 중본은 사바세계 사람들 마음의 힘으로서 능히 가질 수 없으므로 전하지 않고, 하본(下本)을 외어 세상에 전하였고 또 그것을 간략히 한 약본(略本)이 80권 본, 60권 본이 되었다 한다.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은 ‘미진수(微塵數 셀 수 없는 무한수)’의 품(品)으로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모든 현상—삼라만상(森羅萬象) 전부가 그 화엄경을 이루고 있으며, 곧 비로자나(毘盧遮那) 전신체(全身體)로 우리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말한다.(전강선사 법문 275번 참고)

[참고] 전강선사(No.18)—전강선사 일대기 8호(경술년 12월 13일)(1971년 1월 9일)에서.
그 참선 공부, 세상에 참선 공부 같이 쉬운 것은 없어.
그렇게 쉽건마는, 낯 씻다가 코 만지기요. 얼굴 씻글 때 코 안 만져지나? 그대로 코 만져지는 것인디. 얼굴 씻글 때 코 만지는 것이여. 허! 그것 참!

천하에 그렇게 쉬웁건마는 어째도 그렇게 모도 안 된다고 야단들이고, 망상 따문에 못 허겄다고 야단이고,
망상 그놈 따문에 참선을 하는 것이고, 망상 따문에 화두가 그놈이 있는 것이지, 망상 없으면 무슨 화두가 있나? 화두가 없어. 망상 그놈 따문에 화두가 딱 그놈이 인자 있지.

그래서 화두 그놈은 망상을 다루는 놈이여. 망상을 잡드리 하는 놈이여. 화두 그놈이 아니면은 망(妄)을 대체 주체할 수가 없어. 일어나는 전체가 망이니까.
깨달지 못했으니 망(妄)이지. 깨달랐으면 전부 그놈이 각(覺)인디. 깨달으면은 망이 없는 것이 아니여. 망(妄) 그놈이 각(覺)이여 그만!
낱낱이 각(覺)이지, 조끔도 뭐 여읠 것도 없고—망상을 여의고 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망상 자체가 각이여! 그대로가 각(覺)이여.

수은(水銀)을 한 뭉치 내던졌다. 이놈이 천 쪼가리—그놈이 조그만한 덩어리가 모도 갈라져서 만 덩어리가 되고 몇만 덩어리가 되아. 쓸어 모으면은 한 덩이여.

망(妄) 역시 그 깨달지 못해 중생 때에는 전부 망(妄)이더니, 깨달라 놓고 보니 그놈이 낱낱이 다 각(覺)이다. 그러니깐 미진수(微塵數) 법계(法界)지. 가는 티끌 수 법계라.
화엄경에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지! 화엄경 품수(品數)가 일사천하미진수품이여. 화엄이란 화엄도리는 다 각인데... 낱낱이 각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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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방(棒) ; 몽둥이. 또는 주장자(拄杖子). ‘방망이 봉’자이지만 불교에서는 덕산방(德山棒) 등의 용례에 따라 ‘방’으로 읽는다.
*방할(棒喝) ; 선가(禪家)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날 때, 또는 수행자를 점검하며 꾸짖거나 호통칠 때, 방망이나 주장자(拄杖子)를 세우거나 그것으로 수행자를 몽둥이질하는 것을 방(棒)이라 하고, 그러한 때 크게 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할(喝)이라 한다.
덕산선감(德山宣鑑)은 방으로 가풍(家風)을 삼았으며, 임제의현(臨濟義玄)은 할로써 지도방법을 삼았다. 이것을 두고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 한다.
*산철(散철) ; 본철(本철 - 하안거,동안거)가 아닌 시기.
*원청 ; 원청강(워낙, 두드러지게 몹시).
*불탄산고수활(不憚山高水濶) ; 높은 산 깊은 물도 꺼리지 않고. 憚(꺼릴 탄). 濶(넓을 활).
*미륵(彌勒) : 대승보살. 번역하여 자씨(慈氏).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운무중(雲霧中 구름 운/안개 무/가운데 중) ; 구름[雲]과 안개[霧]의 속[中].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의 꼴로 쓰여]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 또는 말을 하는 그 즉시.
*서래의(西來意) ;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불교의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였고, 계율이나 염불이나 송주(誦呪)를 죄다 부인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觀心一法總攝諸行)」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直指人心見性成佛)」고 하였다.
실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성인이 나왔었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다투어 묵은 불교를 버리고 이 새 법, 참선법(參禪法)을 배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란 것은 달마조사가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的大意)」란 말과 같은 말이다.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
*도통(道通) ; ①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훤히 통함. ②깨달음.
*천둥이(賤둥이) ; ①‘천더기(賤-- : 업신여김과 푸대접을 받는 사람)’의 사투리. ②’천한 둥이’의 준말. 조실부모한 고아나 남의 손에 길러진 아이를 일컫는다.
*만고(萬古 일만·클 만/옛날·예 고) ; ①매우 먼 옛날. ②아주 오랜 세월 동안. ③세상에 비길 데가 없음.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수행막대빈모반~ ; [치문경훈(緇門警訓)] '잡록(雜錄)'에서 '굉지선사시중(宏智禪師示衆)'
〇宏智禪師示衆(굉지 선사가 대중에게 보임)
蒿里新墳盡少年  修行莫待鬢毛斑  死生事大宜須覺  地獄時長豈等閒
道業未成何所賴  人身一失幾時還  前程黑暗路頭險  十二時中自着奸

쑥대밭에 새 무덤이 다 소년의 무덤이니, 수행(修行)하는데 귀밑을 희기를 기다리지 말아라. 생사대사(生死大事)를 모름지기 깨달아야 하니, 지옥 고통 길고 기니 어찌 등한히 하겠는가.
도업(道業)을 못 이루면 그 무엇에 의지하며, 사람 몸 한 번 잃고 언제 다시 돌아오리. 앞길이 캄캄하고 가야 할 길 험하구나. 하루 어느 때나 마음을 다잡아 도(道)를 구하여라.
*수한(壽限 목숨 수/한정 한) ; 타고난 수명(壽命 생물이 살아 있는 연한)의 한도(限度). 타고난 목숨의 한도.
*후기(後期 뒤 후/기약하다·약속하다·기간 기) ; ①어떤 기간을 둘, 또는 셋으로 나누었을 때, 맨 나중의 시기. ②뒷날의 기약.
*염(簾) ; 한시(漢詩)를 지을 때, 글자의 음의 높낮이를 맞추는 방법. 형식이 여러 가지인데, 가새염이 가장 보편화되었다.
*운(韻) ; ①소리와 음조가 비슷한 시행(詩行)의 끝부분. ②한시(漢詩)에 운(韻)으로 다는 글자.
*여하약하(如何若何) ; 이러쿵저러쿵. 이러하다는 둥 저러하다는 둥 자꾸 말을 늘어놓는 모양.
*상신실명(喪身失命) ; ‘몸 죽고 목숨 잃다’
*법담(法談 부처의 가르침 법/말씀·말할 담) ; 불교의 도리에 관하여 나누는 이야기. 또는 그러한 설법(說法). 선사(禪師)들이 본분(本分 : 근본 깨달음本覺)에 대하여 서로 묻고 대답하는 것. 법화(法話)와 같은 말.
*독보건곤(獨步乾坤) ; 건곤(乾坤)에, 천지에 홀로 걸어가는 것. 도리(道理)를 증득하여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것을 나타내는 말.
[참고①] 『무문관(無門關)』 ‘무문혜개(無門慧開) 스님의 서문’에서.
大道無門 千差有路 透得此關 乾坤獨步
대도에 문이 없다. 천 갈래 길은 있으니 이 관문을 꿰뚫으면 천지에서 홀로 걸으리.

[참고②] 『태고집(太古集)』 (雪栖 편, 김달진 역주 | 세계사) p228. 229. ‘석가 출산상(釋迦出山相)‘ 참고.
巍巍落落兮赤洒洒 密密恢恢兮淨裸裸 春風爛漫水悠悠 獨步乾坤誰伴我 若也山中逢子期 豈將黃葉下山下

높고 높음이여 아무것도 없고, 넓고 깊음이여 있는 그대로네. 봄바람은 난만하고 물은 흘러가는데, 건곤에 우뚝하여 누가 나를 짝하랴.
만일 산중에서 종자기(種子期)를 만났던들, 어찌 누른 잎 갖고 산을 내려왔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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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원(監院) ; 한 절의 사무를 총괄적으로 감독하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비로자나(毘盧遮那) ;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 遍一切處)는 뜻으로, 부처의 진신(眞身)을 이르는 말. 비로자나는 진리 그 자체인 법신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毘盧遮那) 전신체(全身體) ; 전신(全身)은 '본질 그대로' '여래진신(如來眞身)'의 뜻으로 ‘비로자나 전신체’는 우리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말한다.(조실스님 법문 275번 참고)
*해필(奚必 어찌 해/반드시 필) ; 하필(何必 : 다른 방도를 취하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꼭).
*진대지(盡大地 모든·전부의 진/클 대/땅 지) ; 모든 대지. 이 땅 전체를 가리키는 말.
*호래아들 ; 호래자식(배운 데 없이 막되게 자라 교양이나 버릇이 없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냅대 ; 냅다(몹시 빠르고 세차게. 또는 그런 모양으로).
*법광(法狂) ; 수행의 과정에서 어떤 경계가 나타나서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여 언행의 절제가 사라져 미친 것과 같은 상태. 식광(識狂)이라고도 한다.
*송(頌) ; 게송(偈頌).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찬(讚)하다 ; (...을) 칭찬하거나 찬양하다.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品)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패철(佩鐵 차다·휴대하다 패/쇠 철) ; 묏자리를 정할 때 풍수설에 따라 묏자리의 좋고 나쁨을 가려내는 지관(地官)이 썼던 나침반(羅針盤)이다. 『주역(周易)』에 기초한 오행과 십이간지 및 육십갑자가 표시되어 있고 방위도 세세하게 구분되어 있다.
*묏자리 ; 뫼(사람의 무덤)를 쓸 만한 자리. 또는 쓴 자리.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환화(幻化) ; 환(幻). ①허깨비. 모든 사물은 여러 가지 인연(因緣)이 모여서 생긴 것으로 실체가 없는 것에 비유함.
환(幻)을 실(實)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생의 미혹한 생각임. 환(幻)을 무(無)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승(二乘 : 聲聞, 緣覺)의 공(空)에 얽매인 견해, 단공(但空 : 단지 空만을 집착하는 것)임.
환(幻)은 또 화(化)와 거의 같은 뜻이므로 환화(幻化), 꿈과 비슷하므로 환몽(幻夢)•몽환(夢幻)이라고도 한다.
②신기루, 아지랑이 같은 것.
*제접(提接 이끌 제/응대할·가까이할 접)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한림(寒林) ; ①겨울의 낙엽이 진 숲. ②시다림(尸陀林 : 인도 라자그라하의 북쪽에 있던 시체를 버려두는 숲).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일없다 ; ①필요가 없다. ②걱정하거나 꺼릴 것이 없다.
*등정(登程 오를 등/노정 정) ; 노정(路程)에 오름[登]. 길을 떠남. 등도(登途).
*운수(雲水) ; ①구름과 물을 아울러 이르는 말. ②떠가는 구름이나 흐르는 물같이 정처(定處 : 정한 곳. 또는 일정한 장소) 없음. ③운수납자(雲水衲子 : 여러 곳으로 스승을 찾아 도(道)를 묻거나 수행을 하러 여러 곳으로 다니는 스님을 머무름이 없는 구름[雲]과 물[水]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④탁발승(托鉢僧 : 탁발하는 스님)을 멋스럽게 이르는 말.
*아만(我慢 나 아/거만할·게으를 만) ; ①오온(五蘊 :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일시적 화합에 지나지 않는 아(我)를 실체라고 생각하는 그릇된 견해에서 일어나는 교만. 자아가 실재한다는 교만. ②우열의 관점에서 남과 나를 차별하여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기는 자아관.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제7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밉상맞다 ; 밉상(-相)은 ‘마음에 들지 않고 거슬리는 데가 있는 미운 모습’을 이르는 말이고, ‘-맞다’는 부정적 의미를 갖는 일부 명사나 어근 뒤에 붙어, ‘그러한 상태에 처해 있거나 그러한 태도를 지니고 있음’의 뜻을 더하여 형용사를 만드는 말.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여래선(如來禪) ; 생각과 알음알이가 아주 끊어지지 않아서 말의 자취가 있고 이치의 길이 남아 있는 선.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서 이치나 일에 걸림이 없는 선.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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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086) 전강 스님의 선지식 정화 / 전강 스님에게 마지막 관문을 통과시키게 하는 법을 쓰신 만공 스님의 지도 / 공안은 이론으로 풀 수 없는 진리의 수수께끼 / 사교입선(捨敎入禪).


원래 참선(參禪)은 처음 시작할 때에도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전해 가지신 선지식으로부터 직접적인 지도를 받아서 참선을 시작해야 하고  그러한 선지식의 직접적인 지도하에서 정진을 해야 하고 정진을  끝에 무슨 소견이 나거나 얻은 바가 있을 때에도 반드시 그런 바른 정법(正法)을 갖으신 선지식의 인가를 받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공안, 화두라고 하기도 합니다마는  공안은 이론으로 풀 수 없는 진리의 수수께끼’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수수께끼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상식을 통해서 갖은 방법을 통해서 이것을 파고 분석하고 연구를 해서 결국은 밝혀내야  것이겠지마는, 이것은 보통 수수께끼가 아니라 진리의 수수께끼다

‘사교입선(捨敎入禪)이라. 교(敎)를 버리고 선(禪)에 들어간다’고 하는 고인의 말씀이 있습니다. 자기가 배운 모든 지식, 모든 이론을 깨끗이 버려버리고 백지(白紙) 상태가 되어서 완전히 바보가 되어서 선지식의 지시에 따라야만 되는 것이고, 그렇게 철저하게   있는 사람이라야 빨리 도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086)—78 7 관음재일 법회(78.08.27)

(1) 약 20분. (2) 약 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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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入秋)가 지나고 처서(處暑)가 지났는데 아직도 잔서(殘暑)가 혹심(酷甚)해서 대단히 더웁고 훈증(薰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시고 오늘 7 관음재(觀音齋)에 여기 사부대중께서 많이 법회에 참석을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모다 제방(諸方)에서 해제(解制)를 마치시고,   동안  더위를 이겨내면서 용맹, 가(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시고 해제를 마치고 오신 모다 납자(衲子) 스님네 그동안 정진하시느라고 대단히 노고가 많으셨을  생각합니다.

 

오늘은 전강 조실 스님의 6대 선지식(六大善知識)으로부터 인가(印可) 받으신 내용에 대해서 법문이 계셨습니다.

 

원래 참선(參禪)은 처음 시작할 때에도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전해 가지신 선지식으로부터 직접적인 지도를 받아서 참선을 시작해야 하고  그러한 선지식의 직접적인 지도하에서 정진을 해야 하고 정진을  끝에 무슨 소견이 나거나 얻은 바가 있을 때에도 반드시 그런 바른 정법(正法)을 갖으신 선지식의 인가를 받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달마(達摩) 스님께서 「혈맥론(血脈論)」에 말씀하시기를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이렇게 말씀하셨고, ‘스승 없이 깨달은 사람은   가운데에도 드물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 걸어가는 길도 가다가  갈래  갈래 길이 나오면은 반드시   아는 사람에게 물어야만 자기의 목적지에 어김없이 도착할 수가 있거든,


하물며 눈으로 보이지 아니한 마음으로 가는  (), 참선이야말로 확철대오(廓徹大悟)한 선각자(先覺者)의 바른 지시 없이 자기 마음대로 공부를 지어간다든지,

바른 안목을 갖추지 못한 그러한 분에게 지도를 받고 공부를 한다고 하는 것은 거의  명이면  ,  명이면  , 중간에 가다가 주저앉거나 또는 곁길에 빠져서 헤매거나, 삿된 길에 떨어져서 영원히 자기 신세를 망치고 남을 망치고 그리고 불법(佛法)을 망하게  수밖에는 없게 되는 것입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전생에 얼마나 도를 많이 닦으셨는지, 아마도 전생에 불보살(佛菩薩)이나 위대한 조사(祖師) 스님네가 말세(末世)의 정법을 선양하기 위해서 화현(化現)으로 나타나신 그러한 성현이신, 필시 그러한 어른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23살의 젊은 연세로 견성(見性)을 하셔서 한국의 여섯 분의  선지식으로부터 차례차례 인가를  맡으시고,

거의 지리산, 태백산을 위시(爲始)한 명산대찰에 선지식들을 차례차례  만나시고 강사가 되었건, 선사가 되었건 조실로 계신 분은 닥치는 대로 법(法)을 거량(擧揚)을 해서 거의, 확철대오 하지 못하고 선지식 노릇하고 계신 그러한 분들 모조리  색출을 해서 소탕을 해버리셨던 것입니다.


그때 당시 태백산에 8 도인(道人)이라 해가지고 태백산 골짝 골짜구니마다 도인이라 해가지고 도인 노릇을 하고 있는 그런 가짜 도인들을 전부   법문답(法問答)을 통해서  스스로 도인의 감투를 벗어버리고 조실 자리를 내놓을 수밖에는 없도록 그렇게 하셔서 노상  금봉 큰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선지식 정화(淨化)를 전강 스님이 하셨다”고 이렇게 노상 말씀하신 것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금봉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의 스님은, 전강 스님은 일생동안을 차라리 조실 자리에 앉지 말고 납자의 위치에서 일생을 지내셨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기억이 납니다.

“왜 그렇습니까?”하고 여쭤 봤더니 “납자의 위치에 있으면 얼마든지 어떠한 선지식이라도 가서 법거량(法擧揚)을 해가지고 정화를  수가 있는데, 스스로 조실(祖室)의 위치에 앉게  뒤에는 조실의 체모(體貌)가 있어서 그렇게  수가 없는 것이다.


근자에 와서 선지식의 인가도 없이 절절이 많은 조실들이 지금 한국에 수십 명의 조실 스님이 계십니다. 이럴 때에 정말 확철대오 했고  선지식으로부터 분명히 인가를 받은 그러한 조실이라야 정말 학자(學者)를 바로 제접(提接)해서 정법을 유통해 나갈 것이어늘, 자기도 분명히 깨닫지 못하고 선지식의 분명한 인가도 없이 조실의 책임을 띄고서 많은 후배들을 그르치고 있지 않느냐.


이럴 때에 전강 스님이 그러한 정화를 다시 한번 해주어야만 말세의 정법이, 불법이 바른 것과 삿된 것이 깨끗이 가려질텐데 전강 스님이 조실의 명예를 띄고 그러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제 선지식 정화를   사람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 이러한 말씀하신 것을 들었습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6대 선지식으로부터 차례차례  인가를 받고서 마지막 판에 만공(滿空) 스님 회상(會上)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가서 떠억 절을 하시니까 “십마물(什麽物)고? 무슨 물건인고?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와서 절을 허는고?” 다시 한번 일어서서 떠억 절을 하시니까 “무슨 물건이여?”  물으신다 말씀이여.

그래 조실 스님께서는 주먹을 들어서 만공 스님 앞에  이렇게 들었습니다. “어허! 습기를 버리지를 못했구나 만공 스님께서 그렇게 점검을 하셨던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자신(自信)이 만만(滿滿)해서 쪼끔도 막힐 바가 없고, 의심이 없으셨건마는 그날 이후로 계속 만공 스님 회상에 머물러 계시는데 기회 있을 때마다 전강 조실 스님의 하시는 말씀, 하시는 거동에 대해서 만공 스님께서는 인증을 하시지 아니하고, 사사건건이 전강 조실 스님을 비웃고, 놀려 대고 이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뭐라고 입만 벌리시면 “자네보다는 나어 도대체 입을 벌리지도 못하게 하시고 비웃고, 조롱하고 해서 그러니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일주일, 열흘을 지내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절대로 선지식이 학자를 조롱하실 리도 없고, 속일 리도 없고, 아니기 때문에 아니라고 하시겠지’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 정신을 재차 가다듬어서 철봉대(鐵棒臺)를 붙잡고 서서 밤을 지새기를 몇날 며칠, 한 달,  , 이렇게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셨던 것입니다.


결단코 선지식이 나를 조롱할 까닭도 없고 속이실 리가 없다. 반드시 까닭이 있기 때문에 그러신 것이다 이리 생각하시고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하는 화두를 들고서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셨던 것입니다.

만약에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만공 스님을 최후로 만나지 못하셨던들, 만공 스님의  쓰시는 것을 정말 깊이 믿지 아니 하셨던들, 조실 스님께서는 꼭지가  떨어진 채로 선지식 노릇을 하셨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선지식은 정말 학자로 하여금 정말 조끔도 의심 없는 경지에까지 들어가도록 이렇게 대자비를 가지시고 법을 쓰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 참선을 올바르게 하고자  때에는 그러한 만공 스님과 같은 그러한 훌륭한 선지식의 지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재삼(再三) 느끼게 됩니다.


만공 스님 말고 용성 스님이라든지, 한암 스님이라든지 혜월 스님이라든지 혜봉 스님이라든지, 그러한 선지식들도  만공 스님 만큼 그렇게 훌륭한 선지식이셨고, 각기  선지식마다 특이한 좋은 점을 장점을 가지고 계셔서 그러한 선지식들도  학자로서는 두루  찾아뵈어야 하고 지도도 받아야 하지마는,

 여러 선지식 가운데에도 특별히 만공 스님은 그러한 점에 있어서 학자의 마지막 중요한 관문을 통과시키게 하는 그러한 밝고도 밝은 그러한 안목을 갖으셨던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혜봉 스님께서 “거년 가난은 비가난이요 무입추지지(無立錐之地)러니, 금년 가난이 시가난이라 추야무(錐也無)로다.  공안에 있어서 어떻게 일러야 조사선(祖師禪)을 보았다고 하겠느냐?” 조실 스님께서는 거침없이 “능각이 뾰족하고 뽀족해서 저와 같지 않습니다[稜角尖尖不似他] 이렇게 대답하심으로써 쪼끔도 의심이 없으셨지마는,

후일에 그때 혜봉 스님께서 아무 말씀이 없으셨은 것을 인가해 주신 걸로 알았었던 것을 후에사 그것이 아니라, ‘분명히 내가 그것을 잘못 일른 것이고 혜봉 스님께서 인가해 주신 것이 아니다 것을 스스로 깨달으시고  용화사에서 연전(年前)에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운집(雲集)한 가운데에 그것을 대중 앞에 공포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은 우리의 정진도 일기지사(一期之事)로 느낀 바가 있다든지, 얻은 바가 있다든지, 어떠한  분의 선지식으로부터 인가를 받았다고 해서 득소위족(得少爲足) 조그만한 것을 얻은 것으로써 만족을 삼을 일이 결단코 아니라고  것을 다시  뼈아프게 느끼게 됩니다.

 

진리는 한(限)이 없이 높고 크고 깊은 것이어서 우리가 정진하는 가운데에 조그마한 쪼끔 느낀 바가 있고, 어떤 공안에 맥힌 바가 한두 공안에 통과한 바가 있다고 해서 그것으로써 족(足)함을 삼고 살림을 삼고 주저앉아서는 아니될  생각합니다.


옳다! 인자 되었다! 이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할   사람은 기껏 옳게 공부를 해 가다가 거기서부터 비뚤어 가는 것이 되는 것이고, 계속 정진을 해 나가다가  자리에 주저앉는 것이 되는 것이고,

좋은 제호(), 우유로 만들어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바로 제호라고 하는 음식인데, ‘ 좋은 맛있는 제호상미(醐上味) 변질케 해서 독약으로 만드는 격이 된다’고 고인이 말씀하신 뜻이 얼마나 뼈아프고 소중한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가운데에 스님이 되었건 또는 거사가 되었건 또는 청신녀가 되었건 참으로 대도(大道)를 성취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고 불조(佛祖)의 혜명(慧命)을 잇고자 하신다면 바른 선지식을 찾아서 올바른 지도하에 공부를 하실 것이고,

공부하시다가 어떠한 종류의 얻은 바가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눈밝은 선지식의 점검을 통해서 씻어버릴 것은 씻어버리고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다시 올라서야  사람은 다시 올라서도록 간곡히 부탁을 드리는 바입니다.(처음~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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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선지식으로부터 인가를 받으실 때에는 전부  공안을 통해서, 공안 문답을 통해서 점검을 받게 됩니다.  공안, 화두라고 하기도 합니다마는  공안은 이론으로 풀 수 없는 진리의 수수께끼’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수수께끼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상식을 통해서 갖은 방법을 통해서 이것을 파고 분석하고 연구를 해서 결국은 밝혀내야  것이겠지마는, 이것은 보통 수수께끼가 아니라 진리의 수수께끼다


진리는 이론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실다웁게 닦고, 참다웁게 깨달라서, 깨달라서  몸에 체달(體達)하는 것이지 이론적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갈  없는 것이고 이론적으로 가르쳐서 알게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참선 공부는 어떠한 학자라도, 어떠한 강사라도 팔만대장경을 종횡으로 걸림이 없이  해명을 하고,  해설을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힘으로 공안을 타파(打破)할 수는 없는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러한 지식이 오히려 참선하는 데에  장애가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교입선(捨敎入禪)이라. 교(敎)를 버리고 선(禪)에 들어간다’고 하는 고인의 말씀이 있습니다.

자기가 배운 모든 지식, 모든 이론을 깨끗이 버려버리고 백지(白紙) 상태가 되어서 완전히 바보가 되어서 선지식의 지시에 따라야만 되는 것이고, 그렇게 철저하게   있는 사람이라야 빨리 도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많은 고인들이 그러한 , 이론, 지식 이러한 것들이 속에 가뜩 차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도를 얻지 못한 경우가 너무나도 많았던 것입니다.

언제나 자기가 보고 듣고 생각해서 얻은 바는 빨리 버릴수록 도(道)에는 유익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2010~2326)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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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處暑) ;    늦여름 더위가 물러가는 . 이십사절기의 하나. 양력으로 8 23경이며, 더위가 물러가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이 느껴지며 벼가 익는 시기이다.

*잔서(殘暑 남을 /더울·더위 ) ; 늦여름의 한풀 꺾인 마지막 남은[] 더위[].

*혹심(酷甚 독할·심할 /심할 ) ; ①정도가 가혹(苛酷)하고 (). ②매우 지나침.

*훈증(薰蒸 불피움·태울 / ) ; ①불피워 태우고[] []. ②찌는 듯이 무더움.

*관음재(觀音齋) ; 관음재일(觀音齋日). 매월 음력 24.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께 기도를 드리며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 3(身口意 三業) 깨끗하게 하여악업(惡業) 짓지 않아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일.

*제방(諸方) ; ①모든 지방 ②모든 종파의 스님.

*해제(解制  /만들·법도 ) ; (안거)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납자(衲子) :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본래 가사(袈裟)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 三足金烏徹天飛』란 것이 있다。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납자의 본색을 말하는 것이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인가(印可 도장 /옳을·인정할 )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정법안장(正法眼藏) ; 부처님의 바른 교법이라는 .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모든 것을 간직하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체득한 깨달음을 뜻한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혈맥론(血脈論) ;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이라고도 한다.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 저술로 전해지고 있다.

문답형식으로 즉심시불(卽心是佛 : 마음 그대로가  부처), 심외무불(心外無佛 : 마음 밖에 부처가 없다), 성불수시견성(成佛須是見性 : 부처를 이루려면 반드시 성품을 보아야 한다) 등의 말씀이있다.

혈맥(血脈) 사자상승(師資相承)이라고도 하며,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주고받아서, 정법(正法) 상속하는 . 신체의 혈맥이 서로 연결되어 끊어질  없는 것에 비유해서 말함.

[참고] [선문촬요 禪門撮要  血脈論] (경허성우 鏡虛惺牛 엮음)에서.

若不急尋師空過一生 然卽佛性自有 若不因師終不明了 不因師悟者萬中希有.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불성은 스스로 가지고 있으나 스승을 인연하지 않으면 끝내 분명히 알지 못하니,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깨닫는 이는 만에 하나도 드물다.

*()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한역. ().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방법. ③무상(無上)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전강선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http://emokko.tistory.com/231)’ 참고.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 () 불타(佛陀) 준말. 각자(覺者)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조사(祖師) : 1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 깨달아서이를 전하는 () () 상응(相應)하는 도인.

*말세(末世  /세상 )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 세상,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세상,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세상에 나타나는 .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品) 꿰뚫어 보아[]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법거량(法擧揚  / /나타낼·밝힐 ) ;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 대한 문답.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 따라 수행하는 사람.

*법문답(法問答) ; 법거량(法擧揚).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객(禪客) 사이에 주고받는 () 대한 문답.

*정화(淨化) ; 불순하거나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체모(體貌  /얼굴 ) ; 체면(體面). 남을 대하기에 번듯하고 떳떳한 입장이나 면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