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신수기도)2014. 8. 31. 16:39

 

§(410) 심원사—시주화주(施主化主) 상봉(相逢) / 함경도 좁쌀양반 / 기도 정성·신심 / (게송)일중산진우일중~.

우리가 시주할 길은 돈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물질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고 정성(精誠)이거든, 신심(信心)이거든. 신심이 있으면 부처님께 아무것도 올리지 않고 향 하나를 올리거나, 청수(淸水) 한 그릇을 올리거나 그냥 맨손으로 와서 절만 지극정성으로 하고 가도 업장도 소멸할 수 있고, 소원도 성취할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돈도 벌어야 하고 자식도 잘 되어야 하고 소원이 많은데, 어떻게 ‘이뭣고?’만 할 수 있겠느냐? 그런 생각을 가지시겠지만, ‘이뭣고?’ 하나만 열심히 하면 그 속에 기도도 다 포함되어 있고, 염불도 포함되어 있고, 일체 선(善)·공덕(功德)이 다 갖추어져 있는 것이니 어쨌든지 ‘이뭣고?’ 하나만을 열심히 하십시오. 금생(今生)에 모든 소원도 성취하실 것이고,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복과 지혜를 원만히 갖추게 될 것입니다.


**송담스님(No.410) - 1990년 2월 첫째일요법회, 신수기도회향, 입춘법회 법문에서. (용410)

 

(1) 약 21분.

 

(2) 약 20분.


(1)------------------

기도를 했으니, 기도를 그렇게 정성스럽게 했으니까 반드시 당장 그 소원이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성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마는,
기도는 그 소원이 당장 나타나기도 하고 또 훨씬 좀 시간이 지난 뒤에 성취되기도 하고 또 내생에 성취되기도 하고, 몇 생(生) 있다가 성취되기도 합니다.
그것은 과거에 우리가 지어놓은 업(業)이 쌓여 있기 때문에 그러한 영향을 받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기도를 한 뒤에 생각지도 않은 엄청난 고약한 과보가 나타나는 수가 있습니다.

심원사라는 절에 스님이 한 분 있었는데, 어느 신도가 아주 외롭게 혼자 사는 할머니 보살님이 한 분 있었는데, 자식도 없고 영감도 죽고 참 너무너무 외로워. 그런데 재산은 조금 있었어요.
그래서 그 절에 개금불사(改金佛事)를 한다고 시주(施主)를 좀 하시라고, 그러면 말년에 몸도 건강하시고 마음도 편안하고 그래서 좋은 곳으로 태어날 것이라고.

그래서 그 절에 개금불사를 하는데 논을 한 마지기를 팔아 가지고 시주를 해서 개금불사를 잘했는데, 아! 그 보살님이 눈이 딱 멀어 버렸다 그말이여. 그러니 그 스님이 얼마나 미안하겠냐 그말이여.

‘아! 몸이 건강해지고 참 좋다’고 시주를 하라고 그랬는데, 아! 두 눈이 멀어 버렸다 그말이여.
그러니 가서 뭐라고 위안을 참 하기도 안 되었고, 그래도 눈이 멀었다는 말을 듣고 안 가볼 수가 있습니까.

그래 가서 ‘용기를 가지시라고, 이거 눈이 멀었다고 해서 신심이 물러져서는 안 됩니다.
지금 개금불사는 했는데 기와가 다 깨져 가지고 비가 새니, 깨끗이 개금불사 했는데 비가 새면 또 얼룩덜룩 하니까 또 좀 기와 번와(翻瓦)를 좀 하시면은 눈이 밝아질 것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하시라’고 하니까,

그 보살님이 워낙 신심이 있고 참 그런 분이라, 그냥 또 논을 팔아서 시주를 해 가지고 기와 번와를 잘했습니다.
아, 했는데, 아! 멀쩡한 다리가 딱 오그라져 가지고 앉은뱅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 기가 막혀서.
보통 사람 같으면은 그놈 중놈, 멀쩡한 사기꾼이라고 입에 못 담을 욕을 할 텐데.

그래도 또 이 주지 스님이 얼굴은 좀 껍데기가 두터웠던지 그냥 또 그 말을 듣고, 가서 위로를 하고,
그 혈액순환이 잘되고 좀 심줄이 나긋나긋 해지는 좋은 단방약(單方藥)도 여기저기서 구해 가지고 가서 요것을 좀 잡사보라고—한 솥 고아 가지고 큰 오가리에다 담아 가지고 가서 그것을 잡수라고 갖다 드리니까,

그 분이 또 보통 분이 아니었던지, 그냥 스님이 그렇게 약을 고아 온 것이 고마워서 그걸 데려서 먹고 인자 좀 눈이 밝아질라나, 약을 먹으니까 다리 심줄도 좀 펴지고 좀 괜찮은 것도 같고 그래도 아직 낫지도 않은데,

그러면서 이제 또 거기다 대고 무슨 불사(佛事)하니 논 팔아 대라고 할 수는 없고, 어쨌든지 관세음보살을 열심히 부르라고.
아무리 낯이 좀 두껍기로서니 눈멀고 앉은뱅이가 된 데다 또 시주를 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인자는 염불을 열심히 하라고. 고왕경(高王經)을 좀 열심히 하면 좋은 수가 있을 거라고.
부처님이 절대로 우리 중생을 속이시는 일이 없으니까 고왕경을 하루에 아주 100번씩 하고,
인자 앉은뱅이라 어디 나가도 못하고 눈도 보이지 않으니 나갈 수 없으니까, 앉아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러니 고왕경을 하시라고.

‘고왕경을 눈도 못 보니 어떻게 합니까?’
‘내가 날마다 와서 한 구절씩 가르켜 드릴 테니까 구전심수(口傳心授)로 그렇게 외우라’해 가지고,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불국유연 불법상인 상락아정 유연불법 나무....’ 그래가지고는 한 구절씩 한 구절씩 며칠 걸려가지고는 그놈을 외어가지고는 한 구절도 틀리지 않도록 강(講)을 딱 받고 난 다음에 그것을 외우는데,

처음에는 더듬더듬 몇십 독(讀) 하다가 그 다음에는 차츰차츰 익숙해져서 50독, 100독, 200독, 300독까지 했다 그말이여.
이거 빨리 빨리하면 1분에 한 번, 1시간에 60번, 2시간이면 120번 이래가지고 하루에—뭐 노인이 잠도 없고 앞도 캄캄하고 속이 터져 죽게 생겼으니까,

그냥 염불이나 해서 마지막 ‘인자 나는 뭐 하루 빨리 죽어야지, 이런 상태로 살아봤자 별 수도 없고, 기왕 죽을 바에 염불이나 해가지고 좋은 곳으로 가야겠다’해 가지고는 300독 이상씩 하는데,
처음에는 입에 허여니 백태가 끼었어. 혓바닥이 꺼끌꺼끌 해가지고 그래가지고는 죽도록 불렀는데.

아! 하루 저녁에는 호랑이가 와 가지고 탈싹 물어 가버렸다 그말이여.
그 스님이 호랑이가 물어 갔다는 말을 듣고 가보니까 문짝이 때려 부서져 있고, 피가 줄줄줄 흘러가지고 끌려갔는데 어디로 가서 찾을 수가 있어야지.

에라, 이 빌어먹을 놈의 것!
나는 부처님만 믿고 개금불사를 하면은 소원을 성취하고, 기와불사를 하면 소원 성취를 하고, 고왕경을 읽으면 모든 병도 다 낫고 문둥병도 다 낫는다고 나는 믿고 그랬는데, 호랭이를 물어가, 나 이런 불법 안 믿는다.

곳간에 가서 도끼를 가지고 와 가지고는, 법당문을 열어제끼고는 부처님 가슴팍에다가,
여지없이 그냥 있는 힘을 다해서 도끼로 가슴팍을 탁! 찍어 놓고는 그길로 가사·장삼 다 내동댕이쳐 버리고는 ‘걸망이나 짊어지고 산천 구경이나 하다가 얻어먹고 다니다가, 죽던지 말든지 하리라’하고는 그렇게 돌아다녀.

1년, 이태 돌아다니면서 그저 밥도 얻어먹고, 사랑방에 잠도 자고, 그러면서 근 20년을 그렇게 돌아댕겼어.
돌아댕기다가, 그래도 내가 살던 그 절은 지금 누가 다른 주지 스님이 와서 사는지, 그때 내가 도끼로 찍어 논 부처님 가슴에 있는 도끼는 누가 뺐는지, 아직도 박혀 있는지, 거 궁금하다 그말이여.

그래서 살살 지팡이를 그리 돌려서 그 절을 찾아가니까 저 동구(洞口) 밖에서 부터 사람이 인해인산(人海人山)을 이뤘는데, 몇백 명이 아주 꾸역꾸역꾸역 그 절로 들어간다 그말이여.

그래서 ‘아니 뭔 큰 굿허요?’
‘아, 지금 원님이 새로 와 가지고 절을 지금 초도순시(初度巡視)를 한다고 왔는데 지금 저 사람들이 구경을 간다고’

‘근데 지금 그 절이 어떻게 되었소?’하고 물어보니까,
‘그 절은 한 20년 전에 살던 중이 도끼로 갔다가 부처님 가슴팍에다 도끼로 찍고 어디로 도망가 버렸는데,
그 뒤로는 그 절 신도도 다 떨어져 버리고, 그 절은 주지도 안 오고, 그 절은 아주 쑥대밭.. 아주 풀이 우거지고 지붕도 아주 풀이 자욱하고 완전히 절이 폐사(廢寺)가 되어가지고 귀신 나오게 생겼어요.’
‘그러냐고, 참 그럴 것이라고’ 그래가지고 거기를 올라갔다 그말이여.

따라서 올라가니까 원님 행차가 되어 가지고 육방 관속(六房官屬)이 호위를 해가지고 원님이 거기를 왔는데,
그 원님이 말하기를, ‘이 절의 역사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있으면 나오시오. 내가 꼭 알아야 할 일이 있으니까 이 절의 역사에 대해서 잘 아는 분이 있으면 나오라고’

그러니까 그 절의 역사 아는 사람은 마을 사람도 대충은 알긴 알지마는, 제일 잘 아는 사람이야 그 스님 밖에 더 있느냐 그말이여.
뭐 누더기 감발하고 거지로 돌아다니다 왔으니 몰골이 참 볼 수가 없게 되었는데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웬 미친놈인가? 달친 놈인가?

‘당신이 잘 압니까?‘  ‘네, 잘 압니다.’
‘어떻게 해서 이 절 역사를 그렇게 잘 아냐?’고 하니까, ‘예, 내가 20년 전에 이 절 주지였습니다.’
그래가지고 그 얘기를 죽~ 얘기를 했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 동안에 어째서 그 주지가 없냐 하면은, 주지 스님이 그 뒤로 왔는데 가슴에 찍힌 도끼를 암만 뺄라고 해도 안 빼져.
안 빼지니까 도끼 박아진 부처님한테다 대고 절도 할 수도 없고, 그래서 그냥 가버려서 그 절이 폐사가 되었는데.

그 둘이 가서, 원님하고 거지 스님하고 법당문을 열어제끼니까 먼지가 자욱하고 쥐똥이 아주 그냥 한 자는 쌓였어.
도대체가 사람이 들어갈 수가 없게 됐어. 거미줄은 이리저리 치고, 아주 그냥 박쥐 똥이 부처님 몸뚱이고 무릎이고 그냥 수북허니 쌓이고 냄새나고, 도대체가 그렇게 생겼는데,

원님하고 그 주지 스님하고 탁자 위에 올라가 가지고는 그놈을 빼니까 빠듯하니 빼지는데, 거기 가서 글자가 딱 써졌는데 ‘시주화주(施主化主) 상봉(相逢)이라’ 이렇게 써졌다 그말이여.

화주(化主)는 화주승(化主僧)이거든. 스님네는 가서 신도 보고 ‘불사(佛事)가 있으니 시주하십시오’하고 시주 책(施主冊)을 가지고 댕기면서 신도들한테 모두 시주를 받는 그 스님을 '화주승'이라고 그래.
그러면 시주(施主)는 ‘시주한 사람’이다 그말이여. 시주한 신도여.

그래서 ‘시주화주(施主化主) 상봉(相逢)’—‘서로 만난다’ 그렇게 써졌거든. 아 이게 무슨 소리냐?

그 원님이 도량(道場)에 수백 명이 가득찬 데서 일장 설화(一場說話)를 하는데,
자기가 어젯밤에 꿈을 꾸니까 부처님이 떠억 나타나서, ‘네가 와서 내 가슴에 도끼를 빼다오.
나는 너 때문에 20년 전에 내 가슴에 도끼를 맞은 뒤로 내가 이렇게 물 한 그릇, 밥 한 그릇도 공양을 받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이렇게 있으니, 네가 와서 내 도끼를 빼줘야 할 것이 아니냐?
나는 아무데, 아무데 사는 심원사 법당에 있는 부처님이다’ 그런 꿈을 꾸었는데,

어째서 부처님이 자기한테 그런 현몽(現夢)을 됐는가? 전혀 알 수가 없고, ‘그런 절이 있느냐?’고 이방한데 물어보니까 그런 절이 있다고 그래서 오늘 이렇게 왔다 이거거든.

그 원님이 누구냐 하면은, 말을 안 해도 여러분은 벌써 ‘오호, 그 호랑이 물어 간 사람이로구나!’ 아시겠는데,
그 개금불사에 시주하고, 기와불사에 시주하고, 그 고왕경을 날이면 날마다 300독 이상씩을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했는데 눈멀고, 앉은뱅이 되고, 마지막에는 호랭이에 물려간 그 신도 보살님이었다 이거거든.

그 신도 보살님이 과거에 지은 업장(業障)으로 한 생(生)은 눈이 멀어서 고생을 하고, 그 다음 생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되 앉은뱅이로서 일평생을 고생을 했어야 했고,
그 다음 생에는 또 사람 몸을 받되 마지막에는 호랭이 물어 가. 호랭이 물려 간 다음에, 그 다음에는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를 받아야 할 그러한 삼생(三生) 업보(業報)를,

그 스님 말을 듣고 개금불사에 설판재자(說辦齋者)가 되고, 한번 눈이 멀었으면은 누가 다시 그 스님의 말을 믿겠냐 그말이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이곧대로 믿고 다시 기와불사에 시주를 했다.
기와불사 시주해 가지고 앉은뱅이가 되었으면은 누가 고왕경 하라고 하면 ‘고왕경, 당신이나 하시요.’ 100이면 99명은 그럴 것인데, 그 스님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그 고왕경을 혀가 닳아지도록 했다 그말이여.

삼생 받을 과보를 그렇게 해서 일생 동안에 다 받아버리고, 훌륭한 남자의 몸을 받아서 20살에 장원급제를 해 가지고 원님이 되었다 그말이여.
그래가지고 그 절에 와 가지고 부처님 가슴에 꽂힌 도끼를 뽑아드리고,
지금 원님이라 하면은 군수나 도지사 옛날에 그런 건데, 지금은 군수도 행정관으로서의 군수고, 도지사도 행정관으로서 도지사인데, 옛날에 군수나 도지사는, 관찰사는 삼권(三權)을 한 몸에 다 갖추었습니다.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고, 그러니까 도지사와 검찰청장과 또 법원장 이 삼권을 한 몸에 권리를 행사를 했습니다. 옛날에는.

그러니까 그러한 삼권을 가진 힘으로 그 절을 복원 불사를 하는데, 다 쓸어버리고 새로 하는데 가슴에 꽂힌 부처님은 안 바꿨어. 그거 바꾸겠습니까, 그런 인연 깊은 부처님을.
거기를 다시 다 보개(寶蓋)를 해서 개금불사를 깨끗이 잘 하고, 법당도 새로 지어서 단청을 하고, 요사채·객실채·선방·칠성각·산신각 다 해가지고 도량 축대로부터 일신(一新)를 했다.

여러분도 시주를 하시고 또 기도를 하시더라도 이만한 마음이 깊어야 하고,
조금 시주 하고서 금방 무슨 효과가 나타나기를 바래가지고 그것이 안 되면 ‘에이! 빌어먹을 것 예수나 믿어버리자’ 조금 안 되면 ‘어디 가서 점이나 쳐볼까?’ 어떻게 그러한 얄팍한 생각 가지고.

저 함경도 사람이 서울로 과거를 보러 오면서, 좁쌀 한 되를 가지고 가서 부처님께 마지(摩旨)를 지어서 올려놓고는 ‘이번에 나 과거만 합격하게 해 주면 이런 일이 종종 있게, 배는 골지 않게 해 줄 테니까 꼭 부탁해요 잉.’
양반은 옛날에 스님네한테 다 하게하고, 절에 와도 절도 여간 잘 안했습니다. 이조 때.
한 되 가지고 와서 굉장히 무슨 장한 것이나 올린 것처럼 ‘이런 일이 종종 있을 테니까 꼭 좀 부탁해요 잉.’

과거를 봤는데 붙겠습니까? 낙동강 오리알 떨어지듯이 뚝 떨어져.
오자마자 자기 집으로 안 가고 절로 먼저 기어 올라가 가지고 담뱃대를 들고 탁탁 때리면서 ‘내 좁쌀만 똑 따먹고 놀놀히 앉아서 과거에도 합격도 안 시켜주고 인자는 좁쌀 밥 못 얻어먹어.’(31분57초~52분15초)

 

 

 

 


(2)------------------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데, 여러분 가운데는 설마 그럴 분은...
설사 함경도에서 내려오신 분이 혹 있을란가 모르지만 그럴리는 없겠지만은 불공 좀 하고, 뭐 시주 좀 하고 그리고 뭐 기도 좀 하고서 꼭 아들이 이번에 합격했으면, 꼭 딸이 합격했으면 하다가 거 잘 안되거든.

에이, 저 다른데 영한 데가 있다니까 거기나 가서 한번 해볼까.
이리저리 몇 군데 해 봐도 안 되면, 재수해도 안 되고 삼수해도 안 되고 에이 예수나 믿어버려야지 안 되겠다. 예수 믿으면 무엇이든지 병도 낫고 부자도 된다고 하니까 거기나 가볼까.

정말 시주를 하되 많이 하든, 적게 하든 정성껏 했으면 금방 그렇게 돌아오기를 바라지 말고,
시주를 하고 눈이 멀고 또 시주를 하고 앉은뱅이가 되고 그래도 마음이 변할만 해야 삼생 업도 녹여 내는 것이지,
어떻게 그 낚싯밥 밥티 하나로 큰 잉어 낚으려고 하는 것처럼, 좁쌀 한 되 가지고 장원 급제 할라는 것처럼, 그런 사람과 비슷한 행동을 해가지고서야 어떻게 큰 소원을 성취할 것이냐.

이렇게 말하니까 소원을 성취 할라면은 계속 시주를 하라고 한 것 같아서 미안한데, 시주고 기도고 염불이고 무엇이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시주할 길은 돈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물질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고 정성(精誠)이거든, 신심(信心)이거든.

신심이 있으면 부처님께 아무것도 올리지 않고 향 하나를 올리거나, 청수(淸水) 한 그릇을 올리거나 그냥 맨손으로 와서 절만 지극정성으로 하고 가도 업장도 소멸할 수 있고, 소원도 성취할 수가 있습니다.

큰 몇백 만 원, 몇천 만 원을 부처님께 바쳐도 ‘요거 올렸으니까 꼭 해 주십시오. 해 주십시오.’ 아주 간절히 그렇게 하다가, 안 되면 딴 데로 싸짊어지면 그거 안 되거든.
열 번, 스무 번 한결같이 한 데에서 거기서 소원을 성취한 것이여.

참선을 하면 좋다니까 모처럼 아들 며느리한테 용돈을 타가지고 안 쓰고 모이고, 모이고 해가지고 방부(房付)를 들였다.
모다 보니까 꾸벅꾸벅 앉아서 졸고, ‘아! 저런 것이 참선이구나.’ 자기는 암만 좀 잘라고 해도 잠이 안와. 제법 갸우뚱 해 가지고 콜콜 코를 골면서 조는데 그렇게 맛있게 자거든.

어떤 스님께 ‘참선을 어떻게 해야 잘할 수가 있을까요?’ 여쭈어보니까, ‘많이 졸아.. 앉아서 많이 졸으라고’ 그러시거든.
그러니까 자기도 이제 ‘조는 것이 확실히 공부인가 보다.’ 가만히 보니까 구참일수록에 더 잘 졸거든. 자기도  좀 앉아서 졸라고 아무리 용을 써도 안 된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몇 해 공력을 들여 가지고 이제 조는 법을 좀 익혔어.
인자 이만하면 되겠다. 해가지고는 어디든지 가서 방부를 들이면 맨 처음에 아주 딱 앉을 채비를 하고는 허리를 조금 꼬부린 듯 해가지고 앉으면 그렇게 잠이 맛있게 온다 그말이여.

그래서 어디가든지 떳떳허지.
졸지 않고 맨송맨송 있는 사람 보면 ‘망상 끓이느라고 저렇게 잠을 못 자고 저렇게 앉았구나.’하고는, 실컷 자고나면 그때는 인자 이사람 저사람 자는가, 안 자는가, 구경도 하고 1시간 때우기가 문제가 하나도 없어.

그러다가 어떤 훌륭한 스님을 만나가지고 ‘저는 선방에 나온 지가 벌써 한 10년 되는데 공부가 어느 정도 되었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공부를 어떻게 하십니까?’하니까,

‘별로 아무것도 알아진 것은 없고 죽비 치면 3분 안에 잘 정도는 되었습니다.’
‘아니 3분 안에 잘 정도가 되다니?’
‘처음에는 한 30분 걸려야 겨우 잠을 잤는데, 이제는 3분 안에 자니까 그만하면 되었지 않습니까?’
‘어떻게 참선하는데 조는 것으로써 공부를 등급을 매길 수 있습니까?’

‘아무개 스님—그 스님 한국에서 다 큰스님이라고 하는데, 많이 졸으라고 그래서 그거 익히느라고 10년 적공(積功)을 들였습니다.’하니까
‘그 조는 것이 아니라, 참선(參禪)을 할라면은 성성적적(惺惺寂寂)해 가지고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야지, 어떻게 3분 안에... 말도 안 된 소리를 한다’고 하니까, 아! 깜짝 놀랐다 그말이여.

‘아! 그랬다’고 저한테 화두(話頭)를 타러 왔어요.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10년 동안 제가 어느 큰스님 말 한마디를 잘못 알아듣고, 이렇게 해서 적공을 들인 것이 이것이 허사(虛事)라고 그러니 앞이 캄캄합니다. 인자 환갑·진갑 다 지나고 70세가 되었는데, 이제 다시 새판잽이로 공부를 헐라니 참 앞이 캄캄하다’고 그렇게 울면서...
그때 여기는 비구니 스님은 방부를 안 받는데, 와서 울면서 사정을 해서 제도를 깨고는 그 비구니 스님의 방부를 받았습니다.

아마 이 가운데는 그 비구니 스님과 같이 정진하셨던 분도 계실란가 모르는데, 지금 아직 그분이 돌아가시지 않고 지금 근 팔십 훨씬 넘었으리라고 생각하는데 지금도 역시 열심히 정진을 하고 계시지요.

그런데 이 참선도—참 그렇게 조실스님 법문을 많이 듣고, 녹음 법문을 많이 듣고, 저도 올라올 때마다 참선에 대한 말씀을 드리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그러면서 화두를 들으라고 일러 드려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신가를 물어보면은 참 이상하게 하신 분이 있어.

어떤 할머니는 지금은 아마 돌아가셨겠는데, 여기서 법문을 듣고 가더니 밤중에 ‘전강스님, 전강스님’하고 전강스님을 불러.
그래서 며느리랑 아들이랑 손자손녀들이 ‘아니 밤중에 오밤중에 어쩌자고 전강스님을 그렇게 불러 쌌습니까?’ 그러니까 ‘송담스님이 법문을 하는데 어쨌든지 전강스님을 많이 부르라고 그래서 그런다고.’

아 그럴 리가 있느냐고, 그렇지 않은데 할머니가 잘못 들으셨을 거라고,
아니 내가 내 귀로—아직 내가 눈은 침침해도 귀는 안 어두워야. 귀는 멀쩡한데 확실히 내가 들었다고 해서 그래서 할머니를 모시고 아들, 며느리, 손자손녀 1소대(小隊)가 몰려 왔습니다.

근데 와서 면회를 청해서 인사를 받고, ‘웬일로 이렇게 오셨습니까?’하니까,
‘할머니가 송담스님이 밤중에 전강스님을 자꾸 부르라고 하셨다고 그래서 이렇게 왔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그렇게 하셨습니까?’ 참 얼토당토않고,
‘전혀 그런 일이 없다’고 하면 할머니가 섭섭하다고 생겼고, ‘그랬다’고 하자니 또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 인자 잘 말을 해서 올바르게 하시도록 일러드린 일도 있고 그랬는데.

법문을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법문을 들어도 각기 듣는 사람의 입장과 수준과 근기(根機) 따라서 다 자기 나름대로 받아들여.
그래서 들었던 법문도 자꾸 들어야! 그래야 처음에 잘못 들었던 법문을 나중에 가서 ‘아, 그렇구나!’하고 나중에 바르게 알아듣게 됩니다.

그래서 밤낮 와 봤자 뭐 ‘한 생각 단속하라’ 그러고, ‘이뭣고?’하라고 그런 소리 들으나마나 집구석에 자빠져 있지 뭐, 가봤자 앉을 자리도 없고 그래서 안 온 분들이 있다고 그래요.
그분은 틀림없이 자다가 전강스님을 부르는지 어쩐지 알 수가 없는데, 법문(法門)이라 하는 것은 사실 설할 것이 없거든.

화두 하나만 제대로 딱 들을 줄 알면—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따악 ‘한 생각’ 불급불완(不急不緩), 너무 긴(緊)하게 용을 쓰고 몰아붙여도 안 되고, 너무 매가리 없이 늘어져 처져도 안 되고,

성성(惺惺)하면서도 적적(寂寂)하고, 적적하면서도 성성한 가운데에 몸은 단정하면서도 어깨에 힘도 다 빼고 목에 힘도 빼고, 눈은 평상으로 딱 뜨고서 호흡은 자기의 체질에 맞춰서 적당하니 조용하게 호흡을 쉬면서,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깨끗하게 들어가거든.

잘 고요하고 깨끗하고 맑기가 말로서 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러도,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떠억 들어지면서, 한번 아침에 들었던 화두가 점심때 까지, 점심때 들었던 화두가 저녁때 까지,
저녁에 잘 때 떠억 들었던 화두가 아침에 눈 딱 떠도 그 화두가 고대로 들어져 있도록, 이러한 지경이 오도록 끊임없이 정진을 해가야 하거든. 반드시 열심히 하면 그렇게 되는 거여.

앉았을 때만 되고 서서 안 되고, 뭐 지지리 되었는데 밥 먹다가 잊어버리고, 누가 부르면 ‘예’하다 대답할 때 없어져 버리고, 그게 아니야. 옆에서 바스락만 하면 없어져 버리고, 그런 것이 아니어.

정말 화두가 독로해서 순일무잡하게 되어도 그래도 환희심(歡喜心)을 내서는 아니된 거여.
또 그렇게 되면은 너무 고요하고 깨끗하고 맑고 편안하니까 화두드는 것조차 싫어져버려. 화두가 들기 싫고 그냥 그 고요하고 맑은 경계를 고대로 그놈을 들이다 지키고 앉았거든, 그것도 못쓰는 거여.
그러한 가운데에도 의단이 떠억 독로하도록 화두를 들어야 하는 거여.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경지에 이르러 가지고 ‘이뭣고!’ ‘이뭣고!’ 막 그러는 게 아니어.
혀도 딸싹거리지 않고, 고대로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 요렇게 거각(擧却)하는 것이지, 고요한 데다 대고 너무 힘을 들여 가지고는 ‘이뭣고’ ‘이뭣고’하면 그 고요한 것이 깨지거든.

그 고요한 것이 깨지지 아니하면서도 의단이 독로하고, 의단이 성성(惺惺)하고 순일(純一)하도록 잡드리 해가는 것은 그렇게 일조일석(一朝一夕)에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고,
많은 세월 동안을 법문을 들으면서 여법(如法)하게 정진하는 데에서 그런 지경에 이르는 거여.

그런 지경에 이르렀을 때, ‘어서 빨리 툭 깨쳤으면’하고 바래는 것이 아니고, ‘이럴 때 누가 탁 떠지도록 좀 해줬으면’ 그런 생각도 하는 것이 아니여. 그런 생각을 내면은 깨져버리거든.

그래서 ‘내가 나를 찾는 공부’이기 때문에 올바른 방법으로—기도할 때 그러헌 정성으로, 일심(一心)으로 일구월심(日久月深) 해 나가면 반드시 되고만 마는 것이거든.

 


일중산진우일중(一重山盡又一重)하고  화진산운해월정(話盡山雲海月情)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무일물중무진장(無一物中無盡藏)하야  유화유월유루대(有花有月有樓臺)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중산진우일중(一重山盡又一重)이요  화진산운해월정(話盡山雲海月情)이다.
한 거듭 산(山)이 다하매 또 한 거듭 산(山)이로구나. 산 밖에 산이 있고—이 산 넘으면 인자 산이 없을까 하면 또 산, 그 산 넘으면 또 산, 가도 가도 거듭거듭 첩첩(疊疊) 산이로구나.

화진산운해월정(話盡山雲海月情)이다. 말을 한 시간 이상했는데 그 말이 한도 끝도 없어.
산에 산에 산 넘어 구름이 쌓이듯이, 바다에 한없는 달빛이 부서지듯이,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도 한이 없습니다.

왜 한마디도 할 것이 없는 곳에서 어떻게 이렇게 말이 많을까요?
여러분과 저와는 숙세(宿世)로부터서 뗄 라야 뗄 수 없는 인연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만나게 되고, 이렇게 또 눈썹을 아낄 줄을 모르고 이렇게 말을 하게 된 것을 이해해 주십시오.

무일물중무진장(無一物中無盡藏)이여.
한 물건도 없어. ‘이뭣고?’하는 가운데 무엇이 있겠습니까?
한마디 ‘이뭣고?’ 속에는 재산도 명예도 권리도 인정도 탐심도 진심도 거기에는 붙지를 못할 것입니다.

한 물건도 없는 가운데에 ‘이뭣고?’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그 속에는 아름다운 찬란한 꽃도 있고, 휘영청 밝은 달도 있고, 또 올라가서 먼 데도 바라보고 시(詩)도 읊을 수 있는 맑은 바람이 스쳐가는 찬란한 누각(樓閣)도 있듯이,(有花有月有樓臺)
한 물건도 없는 가운데에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원만히 다 갖추게 될 것입니다.(無一物中無盡藏)

어떻게 돈도 벌어야 하고 자식도 잘 되어야 하고 소원이 많은데, 어떻게 ‘이뭣고?’만 할 수 있겠느냐? 그런 생각을 가지시겠지만,

‘이뭣고?’ 하나만 열심히 하면 그 속에 기도도 다 포함되어 있고, 염불도 포함되어 있고, 일체 선(善)·공덕(功德)이 다 갖추어져 있는 것이니 어쨌든지 ‘이뭣고?’ 하나만을 열심히 하십시오.

금생(今生)에 모든 소원도 성취하실 것이고,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복과 지혜를 원만히 갖추게 될 것입니다.(31분57초~72분2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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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금불사(改金佛事) ; 불상(佛像)에 새로 금칠을 하는 것과 그때 행하는 의식.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마지기 ; 논밭 넓이의 단위. 한 마지기는 볍씨 한 말의 모 또는 씨앗을 심을 만한 넓이로, 지방마다 다르나 논은 약 150~300평, 밭은 약 100평 정도이다.
*번와(翻瓦 엮을 번,기와 와) ; 기와를 덮는 일.
*단방약(單方藥) ; 한 가지 약재만으로 조제되어 병을 고치는 약.
*오가리 ; '항아리'의 사투리.
*고왕경(高王經) ;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는 내용으로 구성된 경전.
또는 《관세음보살구생경(觀世音菩薩救生經)》, 관세음보살이 중생의 고통을 구제하고 소원을 성취케 하기 위하여 설하신 경으로, 누구나 일심으로 독송하면 이루지 못할 원이 없다는 영험 많은 경전이다.
*구전심수(口傳心授) ; 입으로 전하여 주고 마음으로 가르친다는 뜻으로, 일상생활을 통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배도록 가르침을 이르는 말.
*걸망 ; 물건을 담아서 등에 질 수 있도록 만든 자루 모양의 큰 주머니.
*초도순시(初度巡視) ; 한 조직의 관리자나 책임자 등이 부임한 후 처음으로 그 관할 지역을 돌아다니며 사람이나 일의 형편을 살펴보는 일.
*폐사(廢寺) ; 폐하여져 스님이 없는 절.
*누더기 감발 ; 누덕누덕 기운 헌 옷에다가 버선·양말 대신 발에 무명천을 감싼 거지 같은 차림새.
*화주(化主) ; ①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주(主). 부처님를 말함. ②신도들의 집을 돌며 절에 필요한 양식·물건·비용 등의 시물(施物)을 얻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일장 설화(一場說話) ; 한바탕의 이야기.
*현몽(現夢) ; 죽은 사람이나 신령 따위가 꿈에 나타남. 또는 그 꿈.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업보(業報) ; 자신이 행한 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게 되는 과보(果報).
*설판재자(說辦齋者) ; 법회나 불사(佛事)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비용을 준비하고 마련하는 스님 또는 신도를 말한다. 설(說)은 '법회, 불사'  판(辦)은 '힘들이다, 주관하다'의 뜻.
*곧이곧대로 ; 조금도 꾸밈이나 거짓이 없이 바로 그대로.
*보개(寶蓋) ; 불상이나 보살상의 머리 위를 가리는 일산(日傘)이나, 법당 불상 위에 장식으로 만들어 다는 집 모양의 닫집. 천개(天蓋)•화개(花蓋)•원개(圓蓋)•산개(傘蓋)•현개(懸蓋)라고도 함.
≪유마경(維摩經)≫불국품(佛國品)에 나오는 보옥(寶玉)으로 꾸며놓은 화려한 일산(日傘)에서 유래하며, 도솔천(兜率天)의 내원궁(內院宮)을 묘사함. 불상을 장엄하며 또한 이슬, 먼지 따위를 막는다.
*마지(摩旨) ; 부처님께 올리는 밥.

 

 



------------------(2)

*방부(房付 방·거처 방,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적공(積功) ; 어떤 일에 많은 힘을 들이며 애를 씀.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새판잡이 ; 새로 일을 벌여 다시 하는 일.
*얼토당토않다 ; (일이나 말 따위가)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門).
*지지리 ; ‘기껏’의 사투리.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일조일석(一朝一夕) ; 하루아침이나 하루 저녁이라는 뜻으로, 짧은 시일을 이르는 말.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일심(一心) ; ①대립이나 차별을 떠난 평등한 마음. ②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마음.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
*(게송) ‘화진산운해월정(話盡山雲海月情)’ ; [벽암록(碧巖錄)] 제53칙 설두(雪竇)스님 송(頌) 참고.
*(게송) ‘無一物中無盡藏  有花有月有樓臺’ ; 소동파 시 '백지찬(白紙贊)' 참고.
*첩첩(疊疊 겹쳐질 첩) ; 여러 겹으로 포개져 있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눈썹을 아낄 줄을 모르고' ; 예로부터 석취미모(惜取眉毛, 눈썹을 아낄지어다)라고, 경(經)의 뜻을 잘못 해석하여 진리로부터 동떨어진 설법을 하면 미모(眉毛•눈썹)가 빠진다는 말이 전해온다.
그런데 ‘한 물건(一物)’이라 표현하는 진리의 본체는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고 하였으니,
'눈썹을 아낄 줄을 모르고 설법을 한다'는 것은 선지식이 중생을 위해 간절한 자비심을 나타내는 뜻이다.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