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칠석)2014. 7. 31. 12:45

§(337) (게송)원간산색단축장~ / 부자될라면 먼저 보시를 해서 복(福)을 심어야 / 자비심 / 좋은 원(願)을 세우고 남이 잘되기를 바래야 복을 받는다.

물질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또는 법에 있어서 항상 이렇게 보시를 함으로써 거기에서 탐심이 없어지고, 탐심이 없어짐으로 해서 모든 업이 거기서 소멸이 되고, 업이 소멸이 됨으로 해서 모든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이나 부처님이나 우리의 그 마음은 우주가 생겨나기 이전에 부터서 생긴 것이라, 참 신기하고도 묘한 불가사의한 것이라, 무엇이든지 간절(懇切)히 마음으로 원허면 그것이 조만간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정말 내가 잘될려면 남이 잘되기를 항상 바라고 빌고, 남이 잘되도록 도와주고, 말 한마디 생각 하나라도 남 잘되길 축원을 허고, 남 잘되기를 원해야 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37)-정묘년 칠석차례(87.07.07.음)에서. (용337)


약 22분.

 


원간산색단축장(願看山色短築墻)하사  욕초호조다종수(欲招好鳥多種樹)니라
나무~아미타불~

원간산색단축장(願看山色短築墻), 저 먼산의 산 경치를 보고자 허거든 내집 담장을 짧게 치고,
좋은 새들을 초대허고 싶거든 정원에 나무를 많이 심어라(欲招好鳥多種樹).

조실 스님께서 참 즐겨 읊으신 게송입니다.
아주 평범헌, 평범헌 게송이지만 평범헌 가운데에 많은 깊은 뜻을 내포허고 있습니다.

사람치고 다 오복(五福)을 다 갖추기를 바랍니다. 또 불법을 믿는 또 최상승법을 믿고 행하는 사람은 다 견성성불(見性成佛)하기를 원합니다.
세속의 오복을 갖추기를 원한다 하드라도 어떻게 허면은 그 오복을 갖출 수가 있는가? 또 이 불법에 있어서 견성성불을 하고자 한 사람은 어떻게 허면은 견성성불을 헐 수가 있는가?

반드시 그 바른 길이 있습니다.
저 먼산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자 허면서 담을 높이 쌓고, 다른 사람이 자기집을 들여다보지 못할 만큼 그렇게 담을 높이 쳐 버리면,
도둑이 들어오지 못한 데에는 유익헐는지 모르나, 자기 자신이 저 먼 아름다운 경치는 볼 수가 없는 것이여.

새소리 아름다운 새를 초대하고자 허면서, 그 나무가 있으니 모다 우중충허다고 나무를 다 때려 비어버리면 오던 새는 다 날아가버리고 오지 아니헐 것입니다.
참으로 새가 자기집에 오기를 바라면은 참 좋은 나무를 많이 심어야 해. 그러면은 새를 오라고 허지 않아도 온갖 새가 모다 모여들 것이고, 경치를 보고 싶으면 높은 담을 허물어서 얕게 치면 될 것이다 그말이여.

인간의 복도 욕심만 내 가지고 막 되나깨나 움켜쥐고 닥치는 대로 제 것을 맨들라고 헌다고 해서 절대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져서는 안 될 재산을 막 회사 돈이나 관청 돈이나 일가친척 돈도 닥치는 대로 긁어 잡아댕겨서 제 것을 맨들라고 허면 당장 쇠고랑 차고 잽혀 가고, 되겠습니까? 그게.

반드시 부자가 되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공자님 말씀은 『버는 돈보다 쓰기를 적게 쓰면 부자가 되느니라.』 그렇게 말했습니다마는 그것은 저축을 허는 간단헌 한 면을 말씀허신 것이라고 볼 수는 있습니다마는, 버는 돈보다 적게 쓴다면 한 달에 돈 10만원 벌어 가지고, 한 9만원만 쓰고 만원만 남긴다고 해서 그거 만 원씩 모아 가지고 언제 부자가 되겠습니까?

만 원씩 다달이 모여 가지고 죽을 때까지 모여 봤다 몇십 만원 그것 가지고 부자라 허겠습니까?
물론 적게 쓰면 저축이 되는 것은 사실이나, 또 아무리 많이 벌어도 억만금을 벌어도 쓰기를 번 돈보다 더 쓴다면 진짜 부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정말 부자가 되는 묘법(妙法)이라 헐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허면 많이 벌 수가 있느냐? 일단은 많이 벌어가지고 버는 돈보다 적게 써야지,
벌 수는 없고 밤낮 적게 쓰는 것만 노력을 해 봤자 그것은 인색하기 밖에는 안 될 것입니다. 인색허다고 해서 부자는 안 됩니다.

부자될라면 복(福)을 심어야 되는 것입니다.
복을 심어야 부자가 되는 것이지, 욕심만 내 가지고 자꾸 거머쥔다고 해서 일시적으로 잠깐 거머쥘 수는 있을란가 몰라도, 그러헌 재산은 금방 나가게 되고 써보기도 전에 감옥에 먼저 가는 것이기 때문에 지옥에 먼저 가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복이 저절로 굴러들어와야 부자가 되는 것이지, 불같은 욕심을 내 가지고 닥치는 대로 긁어들인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여.

어떻게 허면 복이 저절로 굴러들어오느냐?
복을 심어야, '복을 심는다'허는 것은 첫째 보시(布施)를 해야 되거든. 베풀어야 돼.
물질로도 베풀고 말로도 베풀고 마음으로도 베풀어. 보통 ‘보시를 해라’허면은 돈이나 어떤 물건만을 생각허지만, 물론 그것도 중요허지만 그것보다 우선해서 더 중요헌 것은 마음이거든.

마음을 항상 자비심(慈悲心)—자비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항상 자기 몸보다도 남을 먼저 생각허고 남을 위허는 그런 마음을 가져서 항상 이 자비심으로 베풀면,

자비심을 가지면 자비심을 가진 사람에서 나오는 말이 또한 자비스런 말이 나오게 되고 또 그 사람이 허는 행동도 항상 자비스런 행동이 나오게 되고 또 그 사람이 어떤 돈이나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 항상 저절로 남에게 보시를 허게 마련인 것입니다.

마음이 인색하고 마음이 탐심이 꽉 차있고 마음이 자비심이 없으면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또한 자비스럽지 못헐 것이고, 남을 해롭게 허는 말, 남의 오장을 참 상하게 허는 그런 말이 튀겨져 나올 것이고,
그 사람의 행동이 또한 무자비한 행동이 나올 것이고, 그 사람은 남에게 베풀 줄을 모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헌 사람은 우선 재산이 좀 있다 허드라도 그 재산이 오래가지를 못헙니다. 오래가지를 못허고 아무리 거머쥐고 꽉 오그려 쥔다 허드라도 반드시 재앙이 일어나 가지고 돈이 나갈 수 밖에는 없는 그런 상항이 일어나고,
그런 상황은 자기가 어떤 사업을 허다가 못된 수도 있고, 어떤 재앙이 일어나 가지고 없어질 수도 있고, 자식을 잘못 두어 가지고 자식이 그 재산을 탕진허는 예도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육바라밀(六波羅蜜) 가운데에 첫째 보시바라밀을 설했거든.
물질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또는 법에 있어서 항상 이렇게 보시를 함으로써 거기에서 탐심이 없어지고, 탐심이 없어짐으로 해서 모든 업이 거기서 소멸이 되고, 업이 소멸이 됨으로 해서 모든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누구나 소원이 다 있지만 소원이 이루어지지 아니 헌 것은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이라고 허는 장애물이 콱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자기헌테 오지를 못 허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이나 부처님이나 우리의 그 마음은 우주가 생겨나기 이전에 부터서 생긴 것이라, 참 신기하고도 묘한 불가사의한 것이라, 무엇이든지 간절(懇切)히 마음으로 원허면 그것이 조만간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좋은 원(願)을 세워도 이루어지고, 나쁜 원을 세워도 이루어지고, 하여간 마음으로 간절히 원허기만 허면 누구라도 이루어지는데, 빨리 이루어진 사람과 더디 이루어진 차이가 있을 뿐인 것입니다.

그 원(願)을 세우면 빨리 이루어진 사람은 그것을 가로막는 장애가 없기 때문에 빨리 이루어진 것이고,
잘 안 이루어진 사람은 그 장애가 있기 때문에—과거에 지은 업 또 현재의 지은 업, 그런 업(業)의 장애(障碍)가 있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하는데, 그러나 언젠가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두들겨라, 그러면 문이 열린다. 구하여라, 그러면 얻어질 것이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마는,

간절히 원(願)을 세우면 이루어지는데, 어떠헌 원을 세우느냐? 그것이 우리 불자(佛子)로서는 대단히 중요헙니다. 기왕 원을 세울라면 좋은 원을 세워.

미웁다고 해서 그 사람 망하는 그러헌 원을 세운 것-그것을 저주(詛呪)라 그러는데, 남을 저주허면은 그 저주하는 원도 이루어집니다.
간절히 그 미운 사람이 망하기를 원허면 그것도 이루어지는데, 그런 나쁜 원을 세우고 저주를 허면 먼저 자기가 먼저 해롭습니다. 그래서 그런 좋지 못헌 원을 세운 것은 대단히 옳지 못헌 것입니다.

빈대 잡기 위해서 자기집에다 불을 질러 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차라리 빈대는 잡지 못헐지언정, 자기가 살고 있는 집에다 불을 지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빈대를 잡을라면은 그 빈대가 없어지는 지혜로운 방법을 강구해서 그 빈대가 자연히 자기집에서 떠나도록 헐지언정 빈대가 미웁다고 해서 당장 불부터 질르면은 자기 재산 다 없어지고, 자기집 다 없어지고, 까닥허면 자기 몸, 자기 식구도 타 죽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절대로 아무리 미워도 다른 사람 망하기를, 다른 사람이 해롭게 되기를 바래서는 아니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저주를 허지 말아라. 웬수를 갖지 말아라. 보복을 함으로써 싸움은 끝나지 아니헌다.』 부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을 허셨습니다.

정말 내가 잘될려면 남이 잘되기를 항상 바라고 빌고, 남이 잘되도록 도와주고, 말 한마디 생각 하나라도 남 잘되길 축원을 허고, 남 잘되기를 원해야 허는 것입니다.

중생은 평소에는 괜찮은데 너무 억울허고 분허고 오장이 뒤집어지면 까딱 잘못허면 남을 저주허게 되는데, 우리 불자는 그 한 생각 일어날 때, 미운 생각이 일어날 때 탁!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상대방을 용서허고, 그 사람 입장이 되어가지고 또 생각해 보고,

그래서 내가 먼저 이해를 하고 미움을 풀어주고 화해를 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자기의 업이 소멸이 되고 원결(怨結)이 풀어지게 되어야,
앞으로 두고두고 내가 원허는 좋은 원이 성취가 되고 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 복을 받게 되고 잘살게 되는 것입니다.

남을 원망허고 저주하고 해서, 설사 그렇게 해서 보복을 허게 되면 머지않아서 또 보복을 받게 되기 때문에 서로 죽이고 서로 웬수를 갚고 또 웬수를 되받고 이래 가지고 주거니 받거니 허면서 무량겁을 가봤자,
저도 고통 밖에는 없고 남도 고통 밖에는 없는 오늘날 이와 같은 말세(末世)의 현상이 일어나고야 마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멀리 세계를 보십시오. 도처가 싸움이고 도처가 사람을 죽이는 그런 전쟁이고, 우리나라도 여당이다 야당이다 재야세력이다 노사분규다 해 가지고 끊임없는 이러헌 분규와 싸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래 가지고서는 나라꼴도 안 되고 회사도 안 되고 그래 가지고 개인의 부귀와 행복이 이루어지겠습니까? 회사가 망허고 그 직원들이 잘 되겠습니까?

여기에는 화해 밖에는 없습니다. 서로 여당은 야당을 생각허고, 야당은 여당을 생각허고, 그래서 합해서 국가를 생각허고 민족을 생각헐 때 나라 일이 제대로 되고 민주화가 될 것입니다.
또 업주와 노동자가 서로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서 가능한 헐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합의를 봐 가지고 하루 빨리 일을 시작해야만 회사가 잘되고 국가가 잘 될 것입니다.

이 길 밖에는 세상없이도 지상의 낙원은 이루어지지 않고 민주주의도 되지 않습니다.
가정의 평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부모와 며느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고, 부모와 자식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와 남편의 관계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새를 초대허고 싶으면 나무를 심어야 허고, 먼산 좋은 경치를 보고 싶으면 담을 짧게 쳐야 허는 도리가 바로 여기에 적용이 될 것입니다.

칠석날을 맞이해서 우리가 복을 받고 싶으면 복을 받을 수 있도록 마음가짐을 쓰고, 그렇게 생활을 영위(營爲)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천불(千佛)이 출세를 허시고 천성(千聖)이 하강을 허신다 허드라도 이 도리는 바뀔 수가 없습니다. 어떠헌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행히 우리 불자는 그렇게 마음을 쓸 수 있고 그렇게 생활헐 수 있는 가장 묘한 한 법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뭣고?」 「이뭣고?」 한마디로써 그것이 가능헐 수가 있습니다.
한 생각을 탁! 돌이켜서 지옥(地獄)에 빠질뻔한 사람이 천당(天堂)으로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방법을 알고서도 어찌 아니 허겠습니까?

오늘 이것으로서 칠석의 법어를 마치고자 헙니다. 이 법문을 듣고 당장 이 자리에 부터서 실천을 허십시오.
가정에 돌아가셔서 모든 섭섭한 생각을 다 풀어 버리시고 화해를 하십시오. 그리고 용서를 하십시오. 그날부터 지옥과 같은 가정이 극락으로 변헐 것이고, 웬수가 다 사랑허는 은인으로 바꿔질 것입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허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에 만약 이렇게 간절히 일러드린 말씀을 실천허지 아니허면, 후생에 저 지옥에 떨어져서 한(恨)이 만단(萬端)이나 될 것이다.(49분56초~71분35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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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복(五福) ; 인생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다섯 가지의 복. 보통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덕을 좋아하여 즐겨 행하는 일), 고종명(考終命-사람이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음)을 이르는데, 유호덕과 고종명 대신 귀(貴)함과 자손이 중다(衆多)함을 꼽기도 한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되나깨나 ;  '도나캐나(하찮은 아무 사람이나. 또는 아무것이나)'의 사투리.
*묘법(妙法) ; 절묘한 방법.
*보시(布施) : [범] dana  음을 따라 단나(檀那)라고도 쓴다。남에게 베풀어 준다는 뜻이다.
재물로써 주는 것을 재시(財施)라 하고, 설법하여 정신의 양식과 도덕의 재산을 풍부하게 하여 주는 것을 법시(法施)라 하고, 계를 지니어 남을 침해하지 아니하며 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게 하여 주는 것을 무외시(無畏施)라 한다.
*자비(慈悲) : [범] maitri  자비는 사랑하는 것과 불쌍히 여기는 것인데, 네 가지 끝없는 마음(四無量心) 가운데 두 가지이다.
모든 중생에게 실제로 즐거움을 주는 것을 「자(慈)」라 하고(慈能與樂), 중생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 주며 근본적으로 그 근심 걱정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 내어 주는 것을 「비(悲)」라고 한다(悲能拔苦).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로, 도피안(到彼岸)·도(度)·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여섯 가지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업(業)의 장애(障碍)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원결(怨結 원망할 원,맺을·번뇌 결) ; 원망(怨望)의 마음이 얽혀 풀리지 않는 것을 말함.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이 무엇고(是甚麼, 이뭣고)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에서]
*지옥(地獄) : 중생들이 자기가 지은 죄업으로 말미암아 그 과보로 사후(死後)에 가서 나게 되는, 고통이 극한 지하의 감옥을 말한다。 그러나 육신의 사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세의 우리의 마음속에 천당과 지옥이 있는 것이다.
*천당(天堂) ; ①천상(天上)에 있다는 신(神)의 전당(殿堂), 하늘의 세계.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모든 하늘을 통칭하는 말. ②정토교(淨土敎)의 극락세계(極樂世界).
*(게송) ‘금생약불종사어 후세당연한만단’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4. 3. 26. 11:23

§(445)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설사 확철대오를 못해도 악업(惡業) 끌려가지 않는다 / ‘한 생각’ 단속하는 것이 기가 막히게 중요하다.

 

활구참선에 의해서 수행을 해가는 사람은 부처님과 같은, 고조사(古祖師) 같은 그러한 견지(見地)에 이르기 전에는 어떤 소견(所見)  나고 공안에 대해서 무슨 소견이  난 거, 그러한 것에 착각을  가지고 방황하고 그런 것이 아니여. 그것이 구경(究竟) 깨달음이 아니면 스스로 그까짓 것을 없는 것으로  버려야 되거든.

 

우리 불법(佛法) 믿는  참선을 하는 수행인은  ‘한 생각 단속하는 것이 기가 막히게 중요한 것이다.   생각을 어떻게 단속을  나가느냐 가행정진을 하느냐, 용맹정진을 하느냐 또는 해태굴(懈怠窟) 빠지냐가 판별이 나는 것이다. 지옥으로 가느냐, 천당에 가느냐의 바로 기로(岐路),  마군이의 올가미에 걸려들고  걸려드느냐의  판가름이  생각 단속하는 데에 달려있다.

 

**송담스님(No.445)—1991 5 첫째 일요법회. (용445)

 

약 11분.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설사 확철대오(廓徹大悟) 못해도 악업(惡業) 끌려가지 않는다

 

 그러냐?  화두를 참구하는 참선법(參禪法) 최상승법(最上乘法)이기 때문에 최상승법에 의해서 타성일편이  사람은 부처를 구하지도 않고, 깨달음을 구하지도 않고, 누가 나를 깨닫게  주기를 바래지도 않아. 천당도 갈려고 하지 않고, 지옥도 피할려고 하지를 안 해.

천당 지옥이며 일체 그러한 바깥 경계나  경계에 대해서 끄달리지를 않기 때문에 두려워 지옥도 없는 것이고,  현혹될 천당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거든.

 

마지막 숨이 ! 끊어질 때까지도 떠억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 하는 것이 그것이 활구 참선객이요,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의 지조(志操) 마땅히 그래야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한 지조와 그러한 요지부동(搖之不動) 수행력이 쌓인 사람이 지옥에  까닭도 없고,  사람은 이미 확철대오 안 했어도, 확철대오를 바래지 않아도, 확철대오   밖에는 없는 사람이여, 사람은.

 

 거둘  부처님이 나타나신다 해도 좋아하는 마음을 내지  것이며, 숨을 거둘 때에 염라대왕(閻羅大王) 사자(使者) 온다해도 두려워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말이거든.

 세상에 흥망성쇠에 동요가 되지도 않고, 화두에 대한 의단이 독로함으로 해서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도  물리쳐 버렸고, 오욕락(五欲樂)도  물리쳐 버린 상태에서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현혹하고 좋아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거든.

 

그래서  활구참선(活句參禪) 의해서 수행을 해가는 사람은 부처님과 같은, 고조사(古祖師) 같은 그러한 견지(見地)에 이르기 전에는 어떤 소견(所見)  나고 공안에 대해서 무슨 소견이  난 거, 그러한 것에 착각을  가지고 방황하고 그런 것이 아니여. 그것이 구경(究竟) 깨달음이 아니면 스스로 그까짓 것을 없는 것으로  버려야 되거든.

 

 그러한 공안이나 불법(佛法) 대해서 어떤 소견 난  그런 것도 그렇지만, 계행(戒行) 철저히 지키면서 여법(如法)하게 수행을 하다보면 사람에 따라서는 () 맑아져 가지고 무엇이 보이는 수가 있거든.

사람을 보면 전생(前生)  사람이 소가 사람이 되었다’ ‘전생에  사람이 개가 사람이 되었다’ ‘ 사람은 전생에 천상에서 왔다 그런 것이 볼라고  해도 이렇게 보이는 사람이 더러 있어.

 

그거 좋은 것도 아니고 그런 경계가 나타나면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이지마는 자기가 알라고 해서 아는 게 아니라 우연히 () 맑아지니까 그런 것이 보인 것이라,

바른 법문을 듣지 못한 사람은 그것이 무슨 숙명통(宿命通) 열리고, 그것이 무슨 도인(道人)이나   것처럼 착각을  가지고 어디가서 그런 아는 소리나 풀풀하고.

 

그래 가지고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  스님이 뭣을 훤히  아는 스님이다’ ‘ 스님은 도통했다’ ‘ 스님은 도인이다  가지고 여기서 저기서 떠받들고  갖다가 도인으로 대접을 하고 그러니까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도인인  하고 아주, 그래 가지고 외도(外道) 노릇을 하고 있는 사람이 가끔 있거든.

 

그건 자기 신세 망치고 불법 망해 먹고, 그래 가지고  점쳐 주고  가지고 그거 어디다  것이냐 그말이여. 우리 수행하는  최상승법을 믿는 학자는 ! 그런 데에 떨어져서는 아니된 것이다.

 

그리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타성일편이 . 그렇게 되면 식이 맑아진 것은 사실이여. 그럴 때에 반드시 팔만사천 마군(魔軍)이가 육근문두(六根門頭)에서 엿보고 있어.

어떠한 틈만 있으면  틈을 타서 들어와 가지고 아주 도를 이루지 못하게 하리라 아주  팔만사천 마군이가 육근문두에 기다리고 있는 것인데, 그걸 모르거든.

 

어떠한 경우에도 단속을 철저히 해서 화두 의단독로하도록만 거기에다가만  정성과 신경을 거기다가 두고  나가면 팔만사천 마군이가 이중 삼중으로 둘러싸고 엿보고 있은들, 지가 어떻게  것이냐 그말이여.

내가  생각 삐끗  생각[別念]을   좀을 타서 들어온 것이지,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야 지가 어떻게  것이냐 그말이거든.

 

옛날에 어떤 선원에 조실(祖室) 스님이 계셨는데 후원에 나가보니까 수챗구녁에, 공양주(供養主) 솥을 씻어 가지고  구정물을 붓다가 그냥 구정물에 밥알이 떠내려 가지고 수챗구녁에 있는 것을 조실 스님이 보셨습니다.

   톨에 시주(施主) 은혜가 일곱근 반인데  쌀을 이렇게 함부로  가지고 수챗구녁에다가 버리다니 스님이 아주 화를 내셨어.

 

그러니까 도량신(道場神) 나타나 가지고 여러  동안을 내가  도량(道場) 있으면서 스님을 뵙지를 못했는데 오늘에사 스님을 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거든.

 

 스님은 평소에 항상  깨달은 경지가 낭연독존(朗然獨存)하도록 그렇게 일체처 일체시에 그렇게 지내시니까 도량신도  스님을 볼라야  수가 없었거든. 그러다가  생각 화를 내니까  좀을 타서 도량신이  스님을 보게 되었다 그말이여.

이것은 우리가  생각 냄으로 해서 도량신뿐만이 아니라 팔만사천 마군이의 올가미에 걸려들  있다고 하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한 일화(逸話)지마는.

 

우리 불법(佛法) 믿는  참선을 하는 수행인은  ‘한 생각 단속하는 것이 기가 막히게 중요한 것이다 그말이여.

 

  생각을 어떻게 단속을  나가느냐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느냐,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느냐 또는 해태굴(懈怠窟) 빠지냐가 판별이 나는 것이다 그말이여.

지옥으로 가느냐, 천당에 가느냐의 바로 기로(岐路),  마군이의 올가미에 걸려들고  걸려드느냐의  판가름이  생각 단속하는 데에 달려있다 그거거든.(4247~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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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성일편(打成一片) : 좌선할  자타(自他) 대립이 끊어져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경계.

*악업(惡業) ; 나쁜 결과의 원인이 되는 나쁜 행위. 또는 전생(前生) 나쁜 행위.

*참선법(參禪法)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지조(志操 /절개 ) : 원칙과 신념을 지켜 끝까지 굽히지 않는 꿋꿋한 의지나 기개.

*요지부동(搖之不動) ; 흔들어도 꼼짝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떠한 자극에도 움직이지 않거나 태도의 변화가 없음을 이르는 .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 심판하여 벌은 주는 .

*사자(使者 사신 / ) : 죽은 사람의 혼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일을 한다는 저승의 귀신.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락(五欲樂,五慾,五欲)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견지(見地)견처(見處). 안목(眼目). 사물현상 따위를 관찰하거나 판단하는 입장.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구경(究竟 궁구할 /마칠·다할 )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위에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계행(戒行) ; ①계() 지켜 수행하는 . ②계율과 도덕.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 : 오온(五蘊) 하나. 식별하고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인식 작용. 인식 주관.

*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 하나로,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자유 자재한 능력.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외도(外道) ; 불교 이외의 다른 가르침. 또는  신봉자.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육근문두(六根門頭) ; 육근(六根 : 眼耳鼻舌身意)  . 육근과의 경계.

*육근(六根) ; 육식(六識) 경계[六境] 인식하는 경우  소의(所依)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眼根(耳根(鼻根(舌根(身根(意根)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 기관·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 : 시간적으로 짧은 동안에.

*별념(別念) ; ‘ 생각[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있으면 고인이 말한  「잡독(雜毒)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없느니라.”

 

余云別念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생각[別念]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외에는, 불법(佛法) 온갖 좋은 일이라도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 취하거나[], 버리거나[], 집착하거나[], 변화하는[] 것이 모두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것이요,  묻는 사람이 친히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수챗구녁 ; ‘수챗구멍(허드렛물이나 빗물 따위가 빠져나가는 구멍)’ 사투리.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시주(施主) : ①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②절이나 스님에게 재물을 바침, 또는  사람.

*일미칠근(一米七斤) ; ‘  톨을 생산하기 위해 농부가 흘리는 땀의 무게가 일곱 근이다라는 말로, 쌀을 비롯한 모든 생산물이 매우 소중하고 귀한 정성이 들어간 것임을 알고,  그럼으로써 그것들에 감사하고 아껴야 한다는 뜻을 나타낸다.

*도량신(道場神) : 도량(道場) 수호신.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읽 않고 도량으로 읽음.

*원각대지(圓覺大智) 낭연독존(朗然獨存) ; 원각(圓覺) 대지(大智) 밝게 홀로 드러나다. *원각(圓覺) : 석가여래의 원만(圓滿) 깨달음. 진여(眞如) 체득. 부처님의 지혜.

[참고] 보조국사 지눌(1158~1210) <수심결修心訣>에서.

若微細流注永斷 圓覺大智 朗然獨存 卽現千百億化身 於十方國中 赴感應機 似月現九 影分萬水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快樂無憂 名之爲大覺世尊

 

만약 미세한 번뇌의 흐름도 영원히 끊어져서 원만히 깨달은  지혜가 홀로 밝게 드러나면,  천백억 화신을 나타내어, 시방세계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감응하게 되니, 그것은 마치 하늘에 높이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응용이 무궁하고 인연있는 중생을 제도하여, 쾌락하고 근심이 없으니 크게 깨친 세존(大覺世尊)’이라 한다.

---『마음 닦는 (수심결 강의) (지눌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214.  『땅에서 넘어진 , 땅을 짚고 일어나라 - 보조국사어록』 (김달진 옮김 | 동화출판사) p87, 102 참고.

*올가미 ; 노끈이나 철선 따위로, 잡아당겨도 매듭이 풀어지지 않도록  가닥을 고리처럼 만들어 짐승을 잡는 기구.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해태(懈怠 게으를 /게으를 )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기로(岐路 갈림길 / ) :  방향이 서로 다르게 나누어지는 지점.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