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14.11.10 §(세등18) (게송) 수행막대빈모반 고리신분개소년 지옥시장기등한 일실인신기시환.
  2. 2014.07.31 §(337) (게송)원간산색단축장~ / 부자될라면 먼저 보시를 해서 복(福)을 심어야 / 자비심 / 좋은 원(願)을 세우고 남이 잘되기를 바래야 복을 받는다.
  3. 2014.06.04 §(326) 전강 선사의 발심수행 / 억지로라도 노력하면 된다 / (게송) 빈궁치천부생교~ / 깨닫는 일이 나의 본업(本業) / 언제나 지금 / ‘딴 생각(別念)’하지 마라.
  4. 2014.03.26 §(445)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설사 확철대오를 못해도 악업(惡業)에 끌려가지 않는다 / ‘한 생각’ 단속하는 것이 기가 막히게 중요하다.
  5. 2014.03.14 §(184) (게송) 심수만경전~ / 윤회의 근본은 ‘한 생각’ / 참선법은 다른 것이 아니고 그 「일어나는 한 생각을 단속하는 방법」이다.
  6. 2014.02.08 §(099) 신수기도 /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맑아지면은 자기의 소원은 바래지 아니해도 저절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7. 2013.12.09 §(088) 참선법을 믿고 수행하는 사람이 상근기. 부처님으로서도 우리에게 깨달음을 줄 수는 없고, 우리 자신이 실천을 통해서 깨달을 수밖에 없다.
  8. 2013.11.06 §(458) 우리는 다행히 불법(佛法)을 만났으니 올바르게 참선을 해야겠다. 믿을 수 있는 또 믿어지는 선지식으로부터 한 화두를 타 가지고, 활구참선을 해서 불조의 지경에 이르기까지 정진해 ..
  9. 2013.10.09 §(414) 공부는 간단하고 쉬운 것. 언제 어디서든 항상 화두를 잡드리해야. 온 우주는 우리의 한 생각 일어남으로 해서 벌어진 것. (게송)춘유백화추유월~.
  10. 2013.10.05 §(414) (게송)무변찰해허명경~ / 발심 가운데는 포구발심(怖懼發心)이 제일, 사바세계가 도 닦기에 가장 좋다 / 전강 조실스님의 포구발심 직지사 용맹정진.
무상(無常)2014. 11. 10. 13:09

§(세등18) (게송) 수행막대빈모반 고리신분개소년 지옥시장기등한 일실인신기시환.

**송담스님(세등선원No.18)—무오년 하안거 결제 법어(78.04.17) (세등18)


약 4분.

 


게송 한마디를 읊고 내려가겠습니다.

 

수행막대빈모반(修行莫待鬢毛斑)하라  고리신분개소년(蒿裡新墳皆少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지옥시장기등한(地獄時長豈等閑)가  일실인신기시환(一失人身幾時還)이냐
나무~아미타불~

참선 수행하는데 머리털 희기를 기다리지 말어라.(修行莫待鬢毛斑)
저 공동묘지에 무덤이, 젊어서 죽은 무덤이 한량없이 많은 것이다.(蒿裡新墳皆少年)

아직은 내가 젊으니까, 아들딸 키워서 다 가르켜서 장가 보내 놓고, 막내딸까지 여워 놓고 그리고서 늙발에 참선을 나도 허리라. 이리 생각하지 말어라 이말씀이여.

사람은 꼭 늙어서만 죽는 것이 아녀. 젊은 사람도 언제 죽을는지를 모르는 것이여.

늙기를 기다리지 말고 당장 이 자리서부터서 참선을 열심히 허되,
꼭 선방에만 나와야만 참선을 허는 것이 아니라 집안에서 밥짓고, 빨래하고, 소지하고, 오고가고 차 타고 허면서, 시장에 갔다왔다 허면서, 집안 살림허면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이뭣고?’

슬플때도 ‘이뭣고?’
기쁠때도 ‘이뭣고?’
앉어서도 ‘이뭣고?’
밥먹으면서도 ‘이뭣고?’
똥누면서도 ‘이뭣고?’

이 ‘이뭣고?’ 한마디 들을 때 팔만대장경 한번 읽은 공덕과 맞먹는 것이고, 오히려 그 보다도 공덕이 더 장헌거여.  성이 날때도 이뭣고?  이뭣고....(이하 녹음 끊김)

지옥시장기등한(地獄時長豈等閑)가  일실인신기시환(一失人身幾時還)이냐
지옥에 한번 들어가면 언제 나올는지 그 기약을 알 수가 없으니, 한번 이 사람 몸띵이 잃어버리고 지옥에 들어가면 다시는 언제 나올는지 모르니 어찌 그럭저럭 지낼 수가 있느냐.(57분17초~61분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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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수행막대빈모반~’ ; [치문경훈(緇門警訓)] '잡록(雜錄)'에서 '굉지선사시중(宏智禪師示衆)' 참고.
[참고] 〇宏智禪師示衆
蒿里新墳盡少年  修行莫待鬢毛斑  死生事大宜須覺  地獄時長豈等閒
道業未成何所賴  人身一失幾時還  前程黑暗路頭險  十二時中自着奸


굉지(宏智)선사가 대중에게 보임.
쑥대밭에 새 무덤이 다 소년의 무덤이니, 수행(修行)하는데 귀밑을 희기를 기다리지 말아라. 생사대사(生死大事)를 모름지기 깨달아야 하니, 지옥 고통 길고 기니 어찌 등한히 하겠는가.
도업(道業)을 못 이루면 그 무엇에 의지하며, 사람 몸 한 번 잃고 언제 다시 돌아오리. 앞길이 캄캄하고 가야 할 길 험하구나. 하루 어느 때나 마음을 다잡아 도(道)를 구하여라.
*늙발 ; 늙은 무렵. 늙었을 때.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칠석)2014. 7. 31. 12:45

§(337) (게송)원간산색단축장~ / 부자될라면 먼저 보시를 해서 복(福)을 심어야 / 자비심 / 좋은 원(願)을 세우고 남이 잘되기를 바래야 복을 받는다.

물질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또는 법에 있어서 항상 이렇게 보시를 함으로써 거기에서 탐심이 없어지고, 탐심이 없어짐으로 해서 모든 업이 거기서 소멸이 되고, 업이 소멸이 됨으로 해서 모든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이나 부처님이나 우리의 그 마음은 우주가 생겨나기 이전에 부터서 생긴 것이라, 참 신기하고도 묘한 불가사의한 것이라, 무엇이든지 간절(懇切)히 마음으로 원허면 그것이 조만간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정말 내가 잘될려면 남이 잘되기를 항상 바라고 빌고, 남이 잘되도록 도와주고, 말 한마디 생각 하나라도 남 잘되길 축원을 허고, 남 잘되기를 원해야 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37)-정묘년 칠석차례(87.07.07.음)에서. (용337)


약 22분.

 


원간산색단축장(願看山色短築墻)하사  욕초호조다종수(欲招好鳥多種樹)니라
나무~아미타불~

원간산색단축장(願看山色短築墻), 저 먼산의 산 경치를 보고자 허거든 내집 담장을 짧게 치고,
좋은 새들을 초대허고 싶거든 정원에 나무를 많이 심어라(欲招好鳥多種樹).

조실 스님께서 참 즐겨 읊으신 게송입니다.
아주 평범헌, 평범헌 게송이지만 평범헌 가운데에 많은 깊은 뜻을 내포허고 있습니다.

사람치고 다 오복(五福)을 다 갖추기를 바랍니다. 또 불법을 믿는 또 최상승법을 믿고 행하는 사람은 다 견성성불(見性成佛)하기를 원합니다.
세속의 오복을 갖추기를 원한다 하드라도 어떻게 허면은 그 오복을 갖출 수가 있는가? 또 이 불법에 있어서 견성성불을 하고자 한 사람은 어떻게 허면은 견성성불을 헐 수가 있는가?

반드시 그 바른 길이 있습니다.
저 먼산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자 허면서 담을 높이 쌓고, 다른 사람이 자기집을 들여다보지 못할 만큼 그렇게 담을 높이 쳐 버리면,
도둑이 들어오지 못한 데에는 유익헐는지 모르나, 자기 자신이 저 먼 아름다운 경치는 볼 수가 없는 것이여.

새소리 아름다운 새를 초대하고자 허면서, 그 나무가 있으니 모다 우중충허다고 나무를 다 때려 비어버리면 오던 새는 다 날아가버리고 오지 아니헐 것입니다.
참으로 새가 자기집에 오기를 바라면은 참 좋은 나무를 많이 심어야 해. 그러면은 새를 오라고 허지 않아도 온갖 새가 모다 모여들 것이고, 경치를 보고 싶으면 높은 담을 허물어서 얕게 치면 될 것이다 그말이여.

인간의 복도 욕심만 내 가지고 막 되나깨나 움켜쥐고 닥치는 대로 제 것을 맨들라고 헌다고 해서 절대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져서는 안 될 재산을 막 회사 돈이나 관청 돈이나 일가친척 돈도 닥치는 대로 긁어 잡아댕겨서 제 것을 맨들라고 허면 당장 쇠고랑 차고 잽혀 가고, 되겠습니까? 그게.

반드시 부자가 되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공자님 말씀은 『버는 돈보다 쓰기를 적게 쓰면 부자가 되느니라.』 그렇게 말했습니다마는 그것은 저축을 허는 간단헌 한 면을 말씀허신 것이라고 볼 수는 있습니다마는, 버는 돈보다 적게 쓴다면 한 달에 돈 10만원 벌어 가지고, 한 9만원만 쓰고 만원만 남긴다고 해서 그거 만 원씩 모아 가지고 언제 부자가 되겠습니까?

만 원씩 다달이 모여 가지고 죽을 때까지 모여 봤다 몇십 만원 그것 가지고 부자라 허겠습니까?
물론 적게 쓰면 저축이 되는 것은 사실이나, 또 아무리 많이 벌어도 억만금을 벌어도 쓰기를 번 돈보다 더 쓴다면 진짜 부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정말 부자가 되는 묘법(妙法)이라 헐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허면 많이 벌 수가 있느냐? 일단은 많이 벌어가지고 버는 돈보다 적게 써야지,
벌 수는 없고 밤낮 적게 쓰는 것만 노력을 해 봤자 그것은 인색하기 밖에는 안 될 것입니다. 인색허다고 해서 부자는 안 됩니다.

부자될라면 복(福)을 심어야 되는 것입니다.
복을 심어야 부자가 되는 것이지, 욕심만 내 가지고 자꾸 거머쥔다고 해서 일시적으로 잠깐 거머쥘 수는 있을란가 몰라도, 그러헌 재산은 금방 나가게 되고 써보기도 전에 감옥에 먼저 가는 것이기 때문에 지옥에 먼저 가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복이 저절로 굴러들어와야 부자가 되는 것이지, 불같은 욕심을 내 가지고 닥치는 대로 긁어들인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여.

어떻게 허면 복이 저절로 굴러들어오느냐?
복을 심어야, '복을 심는다'허는 것은 첫째 보시(布施)를 해야 되거든. 베풀어야 돼.
물질로도 베풀고 말로도 베풀고 마음으로도 베풀어. 보통 ‘보시를 해라’허면은 돈이나 어떤 물건만을 생각허지만, 물론 그것도 중요허지만 그것보다 우선해서 더 중요헌 것은 마음이거든.

마음을 항상 자비심(慈悲心)—자비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항상 자기 몸보다도 남을 먼저 생각허고 남을 위허는 그런 마음을 가져서 항상 이 자비심으로 베풀면,

자비심을 가지면 자비심을 가진 사람에서 나오는 말이 또한 자비스런 말이 나오게 되고 또 그 사람이 허는 행동도 항상 자비스런 행동이 나오게 되고 또 그 사람이 어떤 돈이나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 항상 저절로 남에게 보시를 허게 마련인 것입니다.

마음이 인색하고 마음이 탐심이 꽉 차있고 마음이 자비심이 없으면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또한 자비스럽지 못헐 것이고, 남을 해롭게 허는 말, 남의 오장을 참 상하게 허는 그런 말이 튀겨져 나올 것이고,
그 사람의 행동이 또한 무자비한 행동이 나올 것이고, 그 사람은 남에게 베풀 줄을 모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헌 사람은 우선 재산이 좀 있다 허드라도 그 재산이 오래가지를 못헙니다. 오래가지를 못허고 아무리 거머쥐고 꽉 오그려 쥔다 허드라도 반드시 재앙이 일어나 가지고 돈이 나갈 수 밖에는 없는 그런 상항이 일어나고,
그런 상황은 자기가 어떤 사업을 허다가 못된 수도 있고, 어떤 재앙이 일어나 가지고 없어질 수도 있고, 자식을 잘못 두어 가지고 자식이 그 재산을 탕진허는 예도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육바라밀(六波羅蜜) 가운데에 첫째 보시바라밀을 설했거든.
물질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또는 법에 있어서 항상 이렇게 보시를 함으로써 거기에서 탐심이 없어지고, 탐심이 없어짐으로 해서 모든 업이 거기서 소멸이 되고, 업이 소멸이 됨으로 해서 모든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누구나 소원이 다 있지만 소원이 이루어지지 아니 헌 것은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이라고 허는 장애물이 콱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자기헌테 오지를 못 허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이나 부처님이나 우리의 그 마음은 우주가 생겨나기 이전에 부터서 생긴 것이라, 참 신기하고도 묘한 불가사의한 것이라, 무엇이든지 간절(懇切)히 마음으로 원허면 그것이 조만간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좋은 원(願)을 세워도 이루어지고, 나쁜 원을 세워도 이루어지고, 하여간 마음으로 간절히 원허기만 허면 누구라도 이루어지는데, 빨리 이루어진 사람과 더디 이루어진 차이가 있을 뿐인 것입니다.

그 원(願)을 세우면 빨리 이루어진 사람은 그것을 가로막는 장애가 없기 때문에 빨리 이루어진 것이고,
잘 안 이루어진 사람은 그 장애가 있기 때문에—과거에 지은 업 또 현재의 지은 업, 그런 업(業)의 장애(障碍)가 있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하는데, 그러나 언젠가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두들겨라, 그러면 문이 열린다. 구하여라, 그러면 얻어질 것이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마는,

간절히 원(願)을 세우면 이루어지는데, 어떠헌 원을 세우느냐? 그것이 우리 불자(佛子)로서는 대단히 중요헙니다. 기왕 원을 세울라면 좋은 원을 세워.

미웁다고 해서 그 사람 망하는 그러헌 원을 세운 것-그것을 저주(詛呪)라 그러는데, 남을 저주허면은 그 저주하는 원도 이루어집니다.
간절히 그 미운 사람이 망하기를 원허면 그것도 이루어지는데, 그런 나쁜 원을 세우고 저주를 허면 먼저 자기가 먼저 해롭습니다. 그래서 그런 좋지 못헌 원을 세운 것은 대단히 옳지 못헌 것입니다.

빈대 잡기 위해서 자기집에다 불을 질러 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차라리 빈대는 잡지 못헐지언정, 자기가 살고 있는 집에다 불을 지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빈대를 잡을라면은 그 빈대가 없어지는 지혜로운 방법을 강구해서 그 빈대가 자연히 자기집에서 떠나도록 헐지언정 빈대가 미웁다고 해서 당장 불부터 질르면은 자기 재산 다 없어지고, 자기집 다 없어지고, 까닥허면 자기 몸, 자기 식구도 타 죽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절대로 아무리 미워도 다른 사람 망하기를, 다른 사람이 해롭게 되기를 바래서는 아니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저주를 허지 말아라. 웬수를 갖지 말아라. 보복을 함으로써 싸움은 끝나지 아니헌다.』 부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을 허셨습니다.

정말 내가 잘될려면 남이 잘되기를 항상 바라고 빌고, 남이 잘되도록 도와주고, 말 한마디 생각 하나라도 남 잘되길 축원을 허고, 남 잘되기를 원해야 허는 것입니다.

중생은 평소에는 괜찮은데 너무 억울허고 분허고 오장이 뒤집어지면 까딱 잘못허면 남을 저주허게 되는데, 우리 불자는 그 한 생각 일어날 때, 미운 생각이 일어날 때 탁!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상대방을 용서허고, 그 사람 입장이 되어가지고 또 생각해 보고,

그래서 내가 먼저 이해를 하고 미움을 풀어주고 화해를 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자기의 업이 소멸이 되고 원결(怨結)이 풀어지게 되어야,
앞으로 두고두고 내가 원허는 좋은 원이 성취가 되고 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 복을 받게 되고 잘살게 되는 것입니다.

남을 원망허고 저주하고 해서, 설사 그렇게 해서 보복을 허게 되면 머지않아서 또 보복을 받게 되기 때문에 서로 죽이고 서로 웬수를 갚고 또 웬수를 되받고 이래 가지고 주거니 받거니 허면서 무량겁을 가봤자,
저도 고통 밖에는 없고 남도 고통 밖에는 없는 오늘날 이와 같은 말세(末世)의 현상이 일어나고야 마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멀리 세계를 보십시오. 도처가 싸움이고 도처가 사람을 죽이는 그런 전쟁이고, 우리나라도 여당이다 야당이다 재야세력이다 노사분규다 해 가지고 끊임없는 이러헌 분규와 싸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래 가지고서는 나라꼴도 안 되고 회사도 안 되고 그래 가지고 개인의 부귀와 행복이 이루어지겠습니까? 회사가 망허고 그 직원들이 잘 되겠습니까?

여기에는 화해 밖에는 없습니다. 서로 여당은 야당을 생각허고, 야당은 여당을 생각허고, 그래서 합해서 국가를 생각허고 민족을 생각헐 때 나라 일이 제대로 되고 민주화가 될 것입니다.
또 업주와 노동자가 서로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서 가능한 헐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합의를 봐 가지고 하루 빨리 일을 시작해야만 회사가 잘되고 국가가 잘 될 것입니다.

이 길 밖에는 세상없이도 지상의 낙원은 이루어지지 않고 민주주의도 되지 않습니다.
가정의 평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부모와 며느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고, 부모와 자식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와 남편의 관계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새를 초대허고 싶으면 나무를 심어야 허고, 먼산 좋은 경치를 보고 싶으면 담을 짧게 쳐야 허는 도리가 바로 여기에 적용이 될 것입니다.

칠석날을 맞이해서 우리가 복을 받고 싶으면 복을 받을 수 있도록 마음가짐을 쓰고, 그렇게 생활을 영위(營爲)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천불(千佛)이 출세를 허시고 천성(千聖)이 하강을 허신다 허드라도 이 도리는 바뀔 수가 없습니다. 어떠헌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행히 우리 불자는 그렇게 마음을 쓸 수 있고 그렇게 생활헐 수 있는 가장 묘한 한 법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뭣고?」 「이뭣고?」 한마디로써 그것이 가능헐 수가 있습니다.
한 생각을 탁! 돌이켜서 지옥(地獄)에 빠질뻔한 사람이 천당(天堂)으로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방법을 알고서도 어찌 아니 허겠습니까?

오늘 이것으로서 칠석의 법어를 마치고자 헙니다. 이 법문을 듣고 당장 이 자리에 부터서 실천을 허십시오.
가정에 돌아가셔서 모든 섭섭한 생각을 다 풀어 버리시고 화해를 하십시오. 그리고 용서를 하십시오. 그날부터 지옥과 같은 가정이 극락으로 변헐 것이고, 웬수가 다 사랑허는 은인으로 바꿔질 것입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허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에 만약 이렇게 간절히 일러드린 말씀을 실천허지 아니허면, 후생에 저 지옥에 떨어져서 한(恨)이 만단(萬端)이나 될 것이다.(49분56초~71분35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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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복(五福) ; 인생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다섯 가지의 복. 보통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덕을 좋아하여 즐겨 행하는 일), 고종명(考終命-사람이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음)을 이르는데, 유호덕과 고종명 대신 귀(貴)함과 자손이 중다(衆多)함을 꼽기도 한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되나깨나 ;  '도나캐나(하찮은 아무 사람이나. 또는 아무것이나)'의 사투리.
*묘법(妙法) ; 절묘한 방법.
*보시(布施) : [범] dana  음을 따라 단나(檀那)라고도 쓴다。남에게 베풀어 준다는 뜻이다.
재물로써 주는 것을 재시(財施)라 하고, 설법하여 정신의 양식과 도덕의 재산을 풍부하게 하여 주는 것을 법시(法施)라 하고, 계를 지니어 남을 침해하지 아니하며 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게 하여 주는 것을 무외시(無畏施)라 한다.
*자비(慈悲) : [범] maitri  자비는 사랑하는 것과 불쌍히 여기는 것인데, 네 가지 끝없는 마음(四無量心) 가운데 두 가지이다.
모든 중생에게 실제로 즐거움을 주는 것을 「자(慈)」라 하고(慈能與樂), 중생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 주며 근본적으로 그 근심 걱정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 내어 주는 것을 「비(悲)」라고 한다(悲能拔苦).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로, 도피안(到彼岸)·도(度)·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여섯 가지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업(業)의 장애(障碍)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원결(怨結 원망할 원,맺을·번뇌 결) ; 원망(怨望)의 마음이 얽혀 풀리지 않는 것을 말함.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이 무엇고(是甚麼, 이뭣고)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에서]
*지옥(地獄) : 중생들이 자기가 지은 죄업으로 말미암아 그 과보로 사후(死後)에 가서 나게 되는, 고통이 극한 지하의 감옥을 말한다。 그러나 육신의 사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세의 우리의 마음속에 천당과 지옥이 있는 것이다.
*천당(天堂) ; ①천상(天上)에 있다는 신(神)의 전당(殿堂), 하늘의 세계.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모든 하늘을 통칭하는 말. ②정토교(淨土敎)의 극락세계(極樂世界).
*(게송) ‘금생약불종사어 후세당연한만단’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Posted by 닥공닥정
발심 자신(自信)2014. 6. 4. 16:33

§(326) 전강 선사의 발심수행 / 억지로라도 노력하면 된다 / (게송) 빈궁치천부생교~ / 깨닫는 일이 나의 본업(本業) / 언제나 지금 / ‘딴 생각(別念)’하지 마라.

‘내가 금생에 도(道)를 이루지 못하고 100세를 살면 뭐하느냐. 내가 공부하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공부를 내가 그만 둘 수가 없다’ 이렇게 막 밀고 나갔던 것입니다.


억지로라도 할 것은 이것 밖에는 없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은 결국은 진발심(眞發心)이 되는 것이니까, 이 세상에 할 것이라고는 이것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오직 이것, 이 일대사(一大事) 문제, 이 무위의 이치를 깨닫는 이 한 일에 나의 본업(本業)을 삼고 나의 모든 정성을 다 바칠 때에, 참다웁게 살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고 참다운 행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생사(生死)라 하는 것은 늙어서야만 죽는 것이 아니고 젊어서도 많이 죽습니다. 어려서도 죽습니다. 그래서 지금 아니하면 영원히 할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뒤로 미룬다.’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서 시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일부터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돌아오는 여름부터서 해야겠다 그것도 안 되고, 내일로 미뤄도 안 되고, 오늘 저녁으로 미뤄도 안 되고, 지금! 언제나 지금부터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26) - 1987년 3월 첫째일요법회(87.03.01)에서. (용326)

 

(1) 약 15분.

 

(2) 약 18분.

 


(1)------------------

우리가 방금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조실 스님께서 그 어려서 아주 소년시절에 출가를 해 가지고 어떻게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셨던지,
법당 뒤에다가 멍석을 깔고 거기에 방석 하나를 떠억 갖다 놓고서, 가서 공양시간에 공양만 드시고는 바로 나오셔서 그 법당 뒤에 자리에 와 가지고 앉아서 정진하시고,
그러다가 조금만 졸음이 오는 성 싶으면 일어나서 법당 뒤에서 왔다갔다 포행(布行)을 하시다가, 또 잠이 깨지면 다시 또 그 자리에 와서 정진하고, 한 철을 그렇게 한결같이 정진을 하셨습니다.

입선(入禪)·방선(放禪)도 상관이 없고, 그저 밥만 한 숟갈 자시면은 바로 그 자리에 가서 공부를 하시고,
처음에는 사람들이 ‘어린 것이 말뚝 신심이 나가지고 이거 아주 공부한 척 한다고, 지가 저 며칠을 갈까 보냐고?’ 모다 수근덕거리고 모다 비웃고 손가락질하고 그랬었지만,
하루를 그렇게 하시고, 이틀을 그렇게 하시고 사흘, 나흘, 1달, 2달, 계속 한결같이 그렇게 하시거든.

어떻게 참 철저하게-그것이 일부러 지어서 헐랴고 하신 것이 아니라,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심(疑心)이 그냥 한목 돈발(頓發)을 하신 것이여.
지어서 한 것 같으면 며칠 하다가 배시시하고 식어버릴 텐데 그것이 아니거든.

어떻게 그 어린 소년이 그렇게 참 신심과 분심이 한목 났는가?
어릴 때 같이 놀고 같이 공부하던 사람이 병이 나가지고 그래 가지고 죽게 되었습니다. 그 정든 친구, 같이 뛰놀고 공부하던 친구가 그렇게 허망하게 죽어서 거기에서 결국은 발심(發心)을 하신 것입니다.

그 친구가 죽은 뒤에 꿈을 꾸셨는데, 지옥 구경을 하시는 꿈을 꾸었어.
사람을 갖다가 톱으로 썰어서 죽이는 거 또 큰 맷돌에다가 사람을 콩나물처럼 여러 명씩을 집어넣으면서 맷돌을 들들들들 돌리니까 사람이 거기서 뼈와 살과 창자가 짓이겨져서 핏물이 꿀꿀꿀 쏟아지는 그런 광경하며.
그 지옥 구경을 하시고서 놀래서 꿈을 깨셨는데, 꿈을 깨가지고도 그 피비린내 나는 냄새가 콧전에서 사라지지 아니하셨다 이거거든.
그런 꿈을 꾸시고서 대발심(大發心)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그러한 어떠한 계기를 만나서 그런 발심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철저한 무상(無常)을 느낀다든지, 인간 세상에 있어서 그 흥망성쇠와 생사고뇌 속에서 가정에서나 또는 이웃친구나 그러한 인간의 영욕득실 경계에서 뼛속에 사무치는 그런 계기를 만나가지고 발심을 해야,
그래야 참 분심이 솟구쳐 오르고 공부를 해도 억지로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신심과 분심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조실 스님께서는 어려서 경을 배우시다가 그만 두어버리고 선방으로 나오셔서, 그때 선방에 나오신 수좌(首座) 가운데에 제일 나이가 어리셨다고 하니까,
그 어린 나이에 출가하셔 가지고 무섭게 정진을 해서 결국은 코에서 피가 쿨쿨 선지피가 넘어오고 그래도 공부를 쉬지 않고 계속해서 정진을 하셨습니다.

그때 앉는 자세라든지 또는 호흡하는 법이라든지, 화두를 드는 법이라든지 그런 것을 자상하게 지도하신 스님이 있었다면 그렇게 피가 넘어오지 않고도 이 공부를 잘 하실 수가 있었을 텐데,
그러한 분을 만나지를 못해가지고 그 신심과 분심이 복받쳐 오르는 바로 그것으로 화두를 맹렬히 들고 막 부셔나가다 보니까,

그냥 그렇게 기(氣)가 상충(上衝)해 가지고 상기(上氣)가 되어서,
그렇게 피가 목구멍으로 나오고 콧구멍으로 나오고 해 가지고 하룻밤 지나고 나면은 턱밑에 가슴에 피가 아주 그냥 흘러내려 가지고 멍어리가 지고, 눈알은 벌게 가지고 충혈(充血)이 되고,

그래도 ‘내가 금생에 도(道)를 이루지 못하고 100세를 살면 뭐하느냐. 내가 공부하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공부를 내가 그만 둘 수가 없다’ 이렇게 막 밀고 나갔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는 마침내 아까 조실스님 법문 가운데에 그 깨달음을 얻어가지고,
전라남도 곡성(谷城) 태안사(泰安寺)를 가시는 도중에 개천을 건너면서, 그 돌로 이렇게 징검다리를 놓은 거기를 건너시다가 거기서 공안(公案)을 타파(打破)를 하신 것입니다.

『운무(雲霧) 중에 소를 잃었으니 어떻게 하면 소를 찾겠는가?』 불현듯 그 생각이 나시면서 『담 너머 외 따오너라.』 ‘외’라고 한 것은 ‘오이’를 말한 것입니다.
‘담을 넘어가서 오이를 따오너라.’ 그 생각이 떠억 떠오르면서 그 심안(心眼)을 뜨셨는데, 그길로 태안사에 들어가 가지고 가서 오도송(悟道頌)을 읊으시고,

이 법당 앞에서 오줌을 출출출출 누니까, 주지 스님이 나와 가지고 법당 앞에다 오줌 싼다고 호통을 치니까, 부처님 앞에서 오줌을 눈다고 호통을 치니까,
『부처 없는 곳을 일러라!』 이렇게 조실 스님께서 대들었습니다.
『요새 수좌 놈들이 건방진 놈의 자식들. 당장 가라!』해 가지고 아침도 못 얻어 잡숫고 쫓겨났다고 그런 일화가 있습니다마는,

이 공부라 하는 것은 그렇게 발심이 되어야 하고, 발심이 되어서 헐 때에 정말 그때 참 잘 단속을 하고 공부를 몰아붙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를 놓쳐버리면 다시 또 생각을 아무리 가다듬고 할라고 해도 억지로는 힘만 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그러한 발심할 수 있는 그러한 경계가 수없이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역경계(逆境界)인 것입니다.
이 사바세계는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또는 육체상으로나, 대인관계에 있어서나, 가정적으로나 또는 사회 무슨 사업관계로나 도처에 우리가 발심할 수 있는 그러한 계기가 수없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계기를 거기서 놓치지 말고 거기서 돌이켜 나간다면, 우리는 조실 스님과 같이 정말 발심을 하게 되는 것이고 발심이 되어야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발심이 안 되고 ‘참선이 좋다 하니까 나도 좀 해볼까’ 이러한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억지로 하는 것은 그것은 흉내내는 것 밖에는 안 되고, 흉내도 또 안 내는 것 보다는 낫습니다마는,

옛날에 원숭이가 산중에서 이리 뛰놀고 저리 뛰놀고 하다가 그 산중에 숲속에서 참선하시는 스님을 보고서 그 원숭이도 그렇게 그 스님의 흉내을 내서 떠억 가부좌(跏趺坐)를 하고 앉아,
지가 무슨 참선이 무엇인줄 알겠습니까? 원숭이란 놈은 원래 흉내내기를 좋아하는 짐승이라, 스님이 참선하고 있으니까 저도 그와같이 흉내를 내고 앉어.
그것이 인연이 되어 다음 생에 사람으로 태어나 가지고 출가해서 참선을 해가지고 도과(道果)를 이룬 것이 그게 바로 독성(獨聖)님이라 그런 것입니다.

잠시 흉내만 내는 인연으로도 그렇게 도과를 이루거든,
사람으로써 참선이 좋다고 하는 말을 듣고 자기도 좀 아침·저녁으로 해 보기도 하고, 또 토요일에 철야정진하기도 하고, 일상생활 속에서도 자꾸 할려고 노력을 하고,
아! 그것도 쉬지 않고 애를 쓰다 보면 언젠가는 헐랴고 안 해도 저절로 되어지는 그냥 신심과 분심과 의단이 독로(獨露)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다행이 그러한 어떠한 경계를 만나서 신심과 분심이 돈발한다면 그것은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겠지만,
그런 경우를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억지로라도 자꾸 할라고 노력을 하고, 시간을 정해놓고 노력을 하고, 기회를 만들어서 노력을 하고, 방부를 들여서 노력을 하고, 또 이 선학원이라든지 그밖에 일요선방이라든지 그런데 가서도 할려고 노력을 하고,
가정에서도 새벽에 일어나서 1시간~2시간씩 하고 생활 속에서도 자꾸 할려고 노력을 하고, 그렇게 하다보면 자연히 분발(奮發)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억지로라도 할 것은 이것 밖에는 없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은 결국은 진발심(眞發心)이 되는 것이니까,
이 세상에 할 것이라고는 이것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명예나 부귀·공명, 오욕락이라 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잠시 꿈꾸는 것에 지내지 못해여.
산더미 같은 재산을 모여도 가지고 가지 못하고, 온 세상을 다 차지할 만큼 큰 부자라도 한 푼 가지고 가지를 못하고, 명예나 권리가 하늘을 뻗지른다 하더라도 10년 20년을 넘지를 못하는 것이고,
그러다가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閻羅大王)은 하나도 그것을 두려워하지를 않는 것입니다.(23분36초)

 

 

 



(2)------------------

빈궁치천부생교(貧窮致賤富生驕)하되  등시무명화자소(等是無明火自燒)니라
나무~아미타불~
숙홀보연전도전(焂忽報緣顚倒轉)헌디  방지일점불상요(方知一點不相饒)니라
나무~아미타불~

빈궁치천부생교(貧窮致賤富生驕)로구나. 가난하고 빈궁(貧窮)하면 천(賤)하게 되고 부자가 되면 교만(憍慢)이 생겨.

사업에 실패해서 재산이 다 없어져 버리고 가난해지면 스스로 아주 천둥이가 된다 그말이여. 기를 피지 못하고 기운이 없고 살맛이 없고 어디 친구도 만나기가 싫고.
그러다가 사업이 잘되어서 돈푼 벌고 좋은 집을 살고 여유가 생기면 교만이 생겨. 남을 업신여기고 아주 자기야말로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것처럼 으시대고. 그런데,

등시무명화자소(等是無明火自燒)여. 가난해서 천하게 느껴지거나, 부자가 되어 가지고 교만심이 나거나, 다 같이 무명(無明)의 불로써 자기가 자기를 태워 죽이는 것 밖에는 안 된다.

숙홀보연전도전(焂忽報緣顚倒轉)이여. 그러다가 숨 한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 이승을 하직하고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는데, 부자라고 했다고 해서 더 알아주지도 않고, 가난했다고 해서 동정을 받지도 못해.

방지일점불상요(方知一點不相饒)여. 염라대왕 앞에 턱 끌려가고서야 비로소, 하! 가난하고 부자고 그래봤자 그거 한 점(點)도 소용이 없다고 한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생사없는 도리, 무위·무위법(無爲法)은 가난한 사람도 가난할수록에 이것을 해야 천둥이가 안 되는 거고,
명예와 권리가 있고 부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교만심을 낼 것이 아니라 이 무위법-참선(參禪)을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참선을 하는 사람은 설사 가난해졌다 하더라도 천둥이가 되지를 않고, 사업이 잘되어서 부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남을 업신여기고 교만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부자고 한 것이 잠깐 꿈속에서 가난뱅이가 되고 꿈속에서 부자가 된 것뿐인대,
꿈속에서 가난해졌다고 해서 그 사람이 천해질 까닭도 없고, 꿈속에서 무슨 대갑부(大甲富)가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무슨 교만을 낼 건덕지가 있겠느냐 이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태어나서 할 것이라는 하는 것은 이 무위법-흥망성쇠와 희로애락과 빈부귀천과 이 생노병사 속에서 생사가 없고 교만하고 천할 것도 없고 하는-이 참선법 이것 밖에는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니 해 놓으면 천상 천둥이가 되었다가 교만을 부렸다가 허면서 꿈속에서 결국은 지옥 갈 채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하에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인데, 아무 소용도 없다면 결과도 아무 소용이 없으면 괜찮하겠는데 결과적으로는 지옥 갈 준비를 한 것 밖에는 안 돼.

그래서 부자도 ‘이뭣고?’를 해야 하고, 가난한 사람도 ‘이뭣고?’를 하고, 병든 사람도 ‘이뭣고?’를 해야 하고, 권리가 있는 사람도 ‘이뭣고?’를 해야 하고, 죽을 고비에 든 사람도 ‘이뭣고?’를 해야 하고,

오직 이것, 이 일대사(一大事) 문제, 이 무위의 이치를 깨닫는 이 한 일에 나의 본업(本業)을 삼고 나의 모든 정성을 다 바칠 때에, 참다웁게 살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고 참다운 행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중생은 겪고 다 겪을 대로 겪어놔야 겨우 그때사 조금 ‘그렇구나’하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남이 겪는 것을 보고도 내가 그것을 깨달아버려야 하는데, 자기가 남하는 것은 예사로 보고, 자기가 겪고 겪을 대로 겪고 난 뒤에사 겨우 조금 ‘아하, 그렇구나’하고 느끼는데 그것도 오래가지를 못하고 금방 또 다시 경계(境界)에 끌려가고 경계에 속게 되는 것입니다.

‘행여나 이제는’하고 자꾸 바래고, ‘이번만 지내고 이 다음부터서 해야겠다’하고 자꾸 뒤로 미루고, 다른 것은 뒤로 미룰 수가 있지만 이 생사 문제, 일대사 문제는 뒤로 미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남녀와 노소와 지식의 유무와 빈부귀천 그걸 가리지 말고 금생에 이 사람 몸뚱이 받았을 때 철저하게 정진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생사(生死)라 하는 것은 늙어서야만 죽는 것이 아니고 젊어서도 많이 죽습니다. 어려서도 죽습니다.
그래서 지금 아니하면 영원히 할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뒤로 미룬다.’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서 시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일부터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돌아오는 여름부터서 해야겠다 그것도 안 되고, 내일로 미뤄도 안 되고, 오늘 저녁으로 미뤄도 안 되고, 지금! 언제나 지금부터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 법당에 앉아계실 때는 지금 이 자리에서, 법당에서 나갈 때는 나갈 바로 그때,
앉았을 때는 앉았을 때 하고, 일어섰을 때는 일어섰을 때 하고, 걸어갈 때는 걸어갈 때 하고, 언제나 지금이거든.

사실은 ‘지금’이란 시간도 우리에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미 지금이라고 할 때 시계바늘은 벌써 지나가고 있기 때문에 지금이란 시간도 우리는 붙잡을 수가 없고, 다맛 ‘이뭣고?’ 뿐입니다.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몸이 아플 때도 ‘이뭣고?’
밥을 먹을 때도 ‘이뭣고?’
똥을 눌 때도 ‘이뭣고?’
1초 1초 생각 생각이 ‘이뭣고?’거든.

공부가 처음에 앉는 자세를 배우고 또 호흡하는 법을 배우고 또 화두드는 법을 배워서 해보면 처음에는 곧잘 잘 된 것 같애.

그런데 한달 두달 석달 해가다 보면 영판 잘 안 되고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고 또 이렇게 해 갖고 될 것인가 새삼스럽게 회의심이 일어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 보면은 모다 참선한다고 하지마는, 참말로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견성(見性)한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된가. 에이 해봤자 아무래도 안될 것 같다. 이렇게 어려운 것을 낸들 될 것인가’ 이렇게 해서 스스로 의심하고 자포자기를 하고.

그리고 공부를 열심히 할라고 할수록에 뭔 일이 자꾸 사건이 생겨.
집안에 뭔 일이 생기기도 하고, 자손에 뭔 일이 생기기도 하고, 일신상에 뭔 일이 생기기도 하고, 병이 나기도 하고, 무슨 근심 걱정거리가 생기기도하고,
또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잘되어간다 싶으면 꼭 무슨 사건이 일어나거든.

이것이 다 우연한 일이 아니고 ‘공부를 잘해서 도를 이루게 되면 제일 그것을 싫어한 사람이 누구냐?’하면 마군(魔軍)거든. 마군이는 참선을 열심히 한 사람이 있으면 자기가 멸망을 하게 되거든.
도인(道人)이 하나 태어남으로 해서 마군이가 설 자리가 없어지니까, 마치 대한민국이 모든 것이 잘 되어가면은 제일 싫어한 것이 이북의 공산당이거든.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해를 치거든. 그와 똑같은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대한민국이 잘 살고 잘되고 세계적으로 훌륭해지면 자기네 설자리가 없어지거든.
결국은 전 이북(以北) 동포들이 이남(以南)이 행복하고 잘 살고 한줄 알면 전부 대한민국을 그리워하고 모두다 38선을 넘어오게 될것이고 전부 자유통일이 되기를 바라게 되면,
그 공산정권은 아무리 무섭게 탄압을 한다해도 결국은 전 백성이 민주주의를 원하고 전 백성이 대한민국을 그리워한다면 이북 공산당 무너진 것은 그건 참 봄이 돌아와서 얼음 녹듯이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그것을 다 증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산치하에서 그렇게 무서운 탄압을 해서 그렇게 모다 서로 감시를 시키고 꼼짝을 못하게 하고 여행도 못하게 해도 전 백성이 자유을 원하고 민주주의를 원하고 그렇게 되면은 그 정권은 오래 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백성의 인심(人心)이 천심(天心)’이라고 모든 백성이 한결같이 바래면 그것이 바로 하늘의 마음이요 우주의 진리의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도 닦는 불자(佛子)도 열심히 도를 닦으면, 마군이가 여러 가지 각도에서-눈을 통해서, 귀를 통해서, 코를 통해서, 입을 통해서, 몸뚱이를 통해서, 우리의 심식(心識)을 통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를 갖다가 현혹을 시키고 유혹을 하고 방해를 놓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마군이의 현혹에 우리가 흔들리지 안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군이가 육근(六根) 문 뒤에서 항상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잠깐 딴 생각 먹고 한눈을 팔면 바로 그 구멍을 통해서 마군이는 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1분 1초도 딴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입니다.

그 ‘딴 생각(別念)’이라 하는 것은 명예에 대한 딴 생각, 권리나 부귀영화나 오욕락이나 그런것도 물론이지만, 가장 우리 참선을 해 나가는 사람에 있어서는 ‘빨리 깨달으리라’하는 그런 생각, 누가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해주기를 바래는 생각, ‘이렇게 해 갖고 이 공부가 깨달을 것인가?’ 그러한 생각, 또 공부해서 조금 득력(得力)을 해서 화두가 순일(純一)하게 되어가면 ‘아! 좋다’고 하는 생각, 조금 얻은걸 가지고 만족하는 생각, 이런 것들도 오히려 세속의 그런 명예·권리·재산 그런 것에 대한 생각보다도 더 무서운 생각이 바로 이러한 것인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선지식(善知識)을 여의지 않고 좋은 도반(道伴)을 여의지 아니하고 같이 정진을 하면 자연히 그러한 유혹으로부터 자기를 지킬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8분28초~41분22초)

 

 

 


------------------(1)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포행(布行) ; 스님들이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한가로이 뜰을 걷는 일.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말뚝 신심 ; 말뚝은 보기에는 견고해 보이나 뿌리가 없어 외부의 힘에 쉽게 흔들리거나 썩어 버린다. 이것에 비유하여 보기에는 열심인 듯하나, 꾸준하지 않고 잠깐 일어난 신심을 '말뚝 신심'이라 한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수좌(首座) ; 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상충(上衝) ; 위로 치밀어 오름.
*멍어리 ; ‘멍울(우유나 풀 따위 속에 작고 둥글게 엉겨 굳은 덩이)’의 사투리.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심안(心眼) ; 마음의 눈. 지혜.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
*전강 선사 오도송(悟道頌).
작야월만루(昨夜月滿樓)하더니
창외노화추(窓外蘆花秋)로다
불조상신명(佛祖喪身命)한데
유수과교래(流水過橋來)로구나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 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용화선원刊 p23.
*사바세계(娑婆世界);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가부좌(跏趺坐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도과(道果 길·불교 도,결과 과) ; 불도(佛道) 수행의 결과(結果). 깨달음. 열반.
*독성(獨聖) ; 남인도 천태산에서 홀로 수행한 성자였다고 하는 나반존자(那畔尊者)를 말함. 이 존자는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일을 꿰뚫어 알고 있고,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중생에게 복을 주고 소원을 성취시켜준다고 함.
*독로(獨露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분발(奮發 떨칠 분,꽃이필·이룰 발) ; 마음과 힘을 다하여 기운을 내어 떨쳐 일어남.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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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빈궁치천부생교~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峯和尙廣錄卷第三十'에서 '警世卄二首' 게송 참고.
*致(치)이루다. 이르다. 도달함. *賤(천)천하다. 신분이 낮다. *驕(교)교만하다. 자만함. *燒(소)타다. 사르다. *焂(=倏)(숙)갑자기. *忽(홀)문득. 갑자기. *饒(요)넉넉하다. 너그럽다. 풍요. 여유. *點(점)점. 작은 흔적. 작은 조각.
*빈궁(貧窮) ; 가난하여 살기가 어려움.
*교만(憍慢) ; 자신이나 자신의 행위에 도취되어 일으키는 거만함을 교(憍), 자신과 남을 비교하여 일으키는 거만함을 만(慢)이라 함.
*천둥이 ; ‘천더기(업신여김과 푸대접을 받는 사람. 또는 그런 물건)’의 사투리.
*무명(無明) ; 모든 현상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는 근본 번뇌. 사제(四諦)에 대한 무지로서,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 번뇌. 본디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원초적 번뇌.
*무위(無爲) ; ①(산스크리트어: asaṃskrta, 팔리어: asavkhata) 무위(無爲)는 조작(造作: 만들다)의 뜻이 없는 것으로 유위의 대(對)가 되며, 조작되지 않은 세계, 즉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세계, 즉 생멸변화를 떠난 절대적이며 항상 존재하는 진리 또는 진리의 세계를 뜻한다.
②온갖 분별이 끊어진 마음 상태. 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마음 상태. 분별과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마음 상태.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의 삼독(三毒)이 소멸된 열반의 상태.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이뭣고?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이뭣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불교]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③참학(參學)의 일대사. 절대의 수행이라는 것.
일대사는 수행의 목적으로 말하면 ‘깨닫는 것’이고, 실천으로 말하면 ‘참선(參禪)’이다.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間’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 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라고 한다.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행여나 ; [주로 부정문이나 반어 의문문에 쓰여]그럴 리야 없겠지만 그래도. ‘행여(幸-)’를 좀더 분명하게 이르는 말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견성(見性) : ‘성품(性)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마(魔) :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 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육근(六根) ; 육경(六境-色•聲•香•味•觸•法)을 인식하고 판단하기 위한 능력이 있는 기관. 눈, 귀, 코, 혀, 몸, 뜻(眼,耳,鼻,舌,身,意)을 이른다.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 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고]딴 생각(別念 별념)’에 관한 [몽산법어] (용화선원刊)에 있는 글.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몽산법어]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4. 3. 26. 11:23

§(445)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설사 확철대오를 못해도 악업(惡業) 끌려가지 않는다 / ‘한 생각’ 단속하는 것이 기가 막히게 중요하다.

 

활구참선에 의해서 수행을 해가는 사람은 부처님과 같은, 고조사(古祖師) 같은 그러한 견지(見地)에 이르기 전에는 어떤 소견(所見)  나고 공안에 대해서 무슨 소견이  난 거, 그러한 것에 착각을  가지고 방황하고 그런 것이 아니여. 그것이 구경(究竟) 깨달음이 아니면 스스로 그까짓 것을 없는 것으로  버려야 되거든.

 

우리 불법(佛法) 믿는  참선을 하는 수행인은  ‘한 생각 단속하는 것이 기가 막히게 중요한 것이다.   생각을 어떻게 단속을  나가느냐 가행정진을 하느냐, 용맹정진을 하느냐 또는 해태굴(懈怠窟) 빠지냐가 판별이 나는 것이다. 지옥으로 가느냐, 천당에 가느냐의 바로 기로(岐路),  마군이의 올가미에 걸려들고  걸려드느냐의  판가름이  생각 단속하는 데에 달려있다.

 

**송담스님(No.445)—1991 5 첫째 일요법회. (용445)

 

약 11분.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설사 확철대오(廓徹大悟) 못해도 악업(惡業) 끌려가지 않는다

 

 그러냐?  화두를 참구하는 참선법(參禪法) 최상승법(最上乘法)이기 때문에 최상승법에 의해서 타성일편이  사람은 부처를 구하지도 않고, 깨달음을 구하지도 않고, 누가 나를 깨닫게  주기를 바래지도 않아. 천당도 갈려고 하지 않고, 지옥도 피할려고 하지를 안 해.

천당 지옥이며 일체 그러한 바깥 경계나  경계에 대해서 끄달리지를 않기 때문에 두려워 지옥도 없는 것이고,  현혹될 천당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거든.

 

마지막 숨이 ! 끊어질 때까지도 떠억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 하는 것이 그것이 활구 참선객이요,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의 지조(志操) 마땅히 그래야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한 지조와 그러한 요지부동(搖之不動) 수행력이 쌓인 사람이 지옥에  까닭도 없고,  사람은 이미 확철대오 안 했어도, 확철대오를 바래지 않아도, 확철대오   밖에는 없는 사람이여, 사람은.

 

 거둘  부처님이 나타나신다 해도 좋아하는 마음을 내지  것이며, 숨을 거둘 때에 염라대왕(閻羅大王) 사자(使者) 온다해도 두려워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말이거든.

 세상에 흥망성쇠에 동요가 되지도 않고, 화두에 대한 의단이 독로함으로 해서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도  물리쳐 버렸고, 오욕락(五欲樂)도  물리쳐 버린 상태에서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현혹하고 좋아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거든.

 

그래서  활구참선(活句參禪) 의해서 수행을 해가는 사람은 부처님과 같은, 고조사(古祖師) 같은 그러한 견지(見地)에 이르기 전에는 어떤 소견(所見)  나고 공안에 대해서 무슨 소견이  난 거, 그러한 것에 착각을  가지고 방황하고 그런 것이 아니여. 그것이 구경(究竟) 깨달음이 아니면 스스로 그까짓 것을 없는 것으로  버려야 되거든.

 

 그러한 공안이나 불법(佛法) 대해서 어떤 소견 난  그런 것도 그렇지만, 계행(戒行) 철저히 지키면서 여법(如法)하게 수행을 하다보면 사람에 따라서는 () 맑아져 가지고 무엇이 보이는 수가 있거든.

사람을 보면 전생(前生)  사람이 소가 사람이 되었다’ ‘전생에  사람이 개가 사람이 되었다’ ‘ 사람은 전생에 천상에서 왔다 그런 것이 볼라고  해도 이렇게 보이는 사람이 더러 있어.

 

그거 좋은 것도 아니고 그런 경계가 나타나면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이지마는 자기가 알라고 해서 아는 게 아니라 우연히 () 맑아지니까 그런 것이 보인 것이라,

바른 법문을 듣지 못한 사람은 그것이 무슨 숙명통(宿命通) 열리고, 그것이 무슨 도인(道人)이나   것처럼 착각을  가지고 어디가서 그런 아는 소리나 풀풀하고.

 

그래 가지고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  스님이 뭣을 훤히  아는 스님이다’ ‘ 스님은 도통했다’ ‘ 스님은 도인이다  가지고 여기서 저기서 떠받들고  갖다가 도인으로 대접을 하고 그러니까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도인인  하고 아주, 그래 가지고 외도(外道) 노릇을 하고 있는 사람이 가끔 있거든.

 

그건 자기 신세 망치고 불법 망해 먹고, 그래 가지고  점쳐 주고  가지고 그거 어디다  것이냐 그말이여. 우리 수행하는  최상승법을 믿는 학자는 ! 그런 데에 떨어져서는 아니된 것이다.

 

그리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타성일편이 . 그렇게 되면 식이 맑아진 것은 사실이여. 그럴 때에 반드시 팔만사천 마군(魔軍)이가 육근문두(六根門頭)에서 엿보고 있어.

어떠한 틈만 있으면  틈을 타서 들어와 가지고 아주 도를 이루지 못하게 하리라 아주  팔만사천 마군이가 육근문두에 기다리고 있는 것인데, 그걸 모르거든.

 

어떠한 경우에도 단속을 철저히 해서 화두 의단독로하도록만 거기에다가만  정성과 신경을 거기다가 두고  나가면 팔만사천 마군이가 이중 삼중으로 둘러싸고 엿보고 있은들, 지가 어떻게  것이냐 그말이여.

내가  생각 삐끗  생각[別念]을   좀을 타서 들어온 것이지,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야 지가 어떻게  것이냐 그말이거든.

 

옛날에 어떤 선원에 조실(祖室) 스님이 계셨는데 후원에 나가보니까 수챗구녁에, 공양주(供養主) 솥을 씻어 가지고  구정물을 붓다가 그냥 구정물에 밥알이 떠내려 가지고 수챗구녁에 있는 것을 조실 스님이 보셨습니다.

   톨에 시주(施主) 은혜가 일곱근 반인데  쌀을 이렇게 함부로  가지고 수챗구녁에다가 버리다니 스님이 아주 화를 내셨어.

 

그러니까 도량신(道場神) 나타나 가지고 여러  동안을 내가  도량(道場) 있으면서 스님을 뵙지를 못했는데 오늘에사 스님을 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거든.

 

 스님은 평소에 항상  깨달은 경지가 낭연독존(朗然獨存)하도록 그렇게 일체처 일체시에 그렇게 지내시니까 도량신도  스님을 볼라야  수가 없었거든. 그러다가  생각 화를 내니까  좀을 타서 도량신이  스님을 보게 되었다 그말이여.

이것은 우리가  생각 냄으로 해서 도량신뿐만이 아니라 팔만사천 마군이의 올가미에 걸려들  있다고 하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한 일화(逸話)지마는.

 

우리 불법(佛法) 믿는  참선을 하는 수행인은  ‘한 생각 단속하는 것이 기가 막히게 중요한 것이다 그말이여.

 

  생각을 어떻게 단속을  나가느냐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느냐,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느냐 또는 해태굴(懈怠窟) 빠지냐가 판별이 나는 것이다 그말이여.

지옥으로 가느냐, 천당에 가느냐의 바로 기로(岐路),  마군이의 올가미에 걸려들고  걸려드느냐의  판가름이  생각 단속하는 데에 달려있다 그거거든.(4247~536)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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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성일편(打成一片) : 좌선할  자타(自他) 대립이 끊어져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경계.

*악업(惡業) ; 나쁜 결과의 원인이 되는 나쁜 행위. 또는 전생(前生) 나쁜 행위.

*참선법(參禪法)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지조(志操 /절개 ) : 원칙과 신념을 지켜 끝까지 굽히지 않는 꿋꿋한 의지나 기개.

*요지부동(搖之不動) ; 흔들어도 꼼짝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떠한 자극에도 움직이지 않거나 태도의 변화가 없음을 이르는 .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 심판하여 벌은 주는 .

*사자(使者 사신 / ) : 죽은 사람의 혼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일을 한다는 저승의 귀신.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락(五欲樂,五慾,五欲)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견지(見地)견처(見處). 안목(眼目). 사물현상 따위를 관찰하거나 판단하는 입장.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구경(究竟 궁구할 /마칠·다할 )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위에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계행(戒行) ; ①계() 지켜 수행하는 . ②계율과 도덕.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 : 오온(五蘊) 하나. 식별하고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인식 작용. 인식 주관.

*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 하나로,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자유 자재한 능력.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외도(外道) ; 불교 이외의 다른 가르침. 또는  신봉자.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육근문두(六根門頭) ; 육근(六根 : 眼耳鼻舌身意)  . 육근과의 경계.

*육근(六根) ; 육식(六識) 경계[六境] 인식하는 경우  소의(所依)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眼根(耳根(鼻根(舌根(身根(意根)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 기관·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 : 시간적으로 짧은 동안에.

*별념(別念) ; ‘ 생각[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있으면 고인이 말한  「잡독(雜毒)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없느니라.”

 

余云別念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생각[別念]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외에는, 불법(佛法) 온갖 좋은 일이라도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 취하거나[], 버리거나[], 집착하거나[], 변화하는[] 것이 모두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것이요,  묻는 사람이 친히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수챗구녁 ; ‘수챗구멍(허드렛물이나 빗물 따위가 빠져나가는 구멍)’ 사투리.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시주(施主) : ①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②절이나 스님에게 재물을 바침, 또는  사람.

*일미칠근(一米七斤) ; ‘  톨을 생산하기 위해 농부가 흘리는 땀의 무게가 일곱 근이다라는 말로, 쌀을 비롯한 모든 생산물이 매우 소중하고 귀한 정성이 들어간 것임을 알고,  그럼으로써 그것들에 감사하고 아껴야 한다는 뜻을 나타낸다.

*도량신(道場神) : 도량(道場) 수호신.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읽 않고 도량으로 읽음.

*원각대지(圓覺大智) 낭연독존(朗然獨存) ; 원각(圓覺) 대지(大智) 밝게 홀로 드러나다. *원각(圓覺) : 석가여래의 원만(圓滿) 깨달음. 진여(眞如) 체득. 부처님의 지혜.

[참고] 보조국사 지눌(1158~1210) <수심결修心訣>에서.

若微細流注永斷 圓覺大智 朗然獨存 卽現千百億化身 於十方國中 赴感應機 似月現九 影分萬水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快樂無憂 名之爲大覺世尊

 

만약 미세한 번뇌의 흐름도 영원히 끊어져서 원만히 깨달은  지혜가 홀로 밝게 드러나면,  천백억 화신을 나타내어, 시방세계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감응하게 되니, 그것은 마치 하늘에 높이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응용이 무궁하고 인연있는 중생을 제도하여, 쾌락하고 근심이 없으니 크게 깨친 세존(大覺世尊)’이라 한다.

---『마음 닦는 (수심결 강의) (지눌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214.  『땅에서 넘어진 , 땅을 짚고 일어나라 - 보조국사어록』 (김달진 옮김 | 동화출판사) p87, 102 참고.

*올가미 ; 노끈이나 철선 따위로, 잡아당겨도 매듭이 풀어지지 않도록  가닥을 고리처럼 만들어 짐승을 잡는 기구.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해태(懈怠 게으를 /게으를 )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기로(岐路 갈림길 / ) :  방향이 서로 다르게 나누어지는 지점.

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14. 3. 14. 10:40

 

 

§(184) (게송) 심수만경전~ / 윤회의 근본은 ‘한 생각’ / 참선법은 다른 것이 아니고 그 「일어나는 한 생각을 단속하는 방법」이다.

 

죄도 없고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죄 많은 사람일수록에 업이 두터운 사람일수록에, 그런 불보살과 성현은 백 배 더 불쌍한 마음으로 어떠헌 방법으로 이 중생을 제도할까? 그 중생에 알맞는 방편(方便)을 써서 제도허시기 위해서 노력을 허고 계시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을 비방(誹謗)하면 - 불법을 비방하는 그 과보(果報)로 일단은 지옥에 떨어졌지만, 지옥고 받은 뒤에는 - 부처님을 비방한 그러헌 부처님과 인연을 맺은 그 공덕으로 해탈도(解脫道)를 증득헐 수가 있다.

 

**송담스님(참선법C)(No.184) - 1982년 10월 첫째일요법회(1982.10.03)(77분)에서.(용184)

 

약 21분.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헌데 전처실능유(轉處實能幽)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하면 무희역무우(無喜亦無憂)니라
나무~아미타불~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이요, 마음은 모든 경계를 따라서 일어나는데
전처실능유(轉處實能幽)라, 일어나는 곳마다 바로 거기서 능히 그윽해 버린다.

중생은 경계(境界)에 따라서 마음이 일어나는데, 한 생각 일어나면 그 한 생각으로 인해서 점점 점점 생각이 벌어져 가지고 가지가 쳐서 그 생각이 점점 발전을 해 가지고, 그 생각이 얼굴에 표현이 되고 나아가서는 행동으로 나타나 가지고 큰일을 저지르게 돼.
그래 가지고 그 한 생각으로 인해서 슬픔의 구렁에 빠지기도 하고, 노여움의 불구덩이에 빠지기도 하고, 나아가서는 지옥의 구덩이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기도 하고.

그러는데 물론 우리가 살아있으니까 무슨 소리를 듣던지 무슨 색상을 보던지 어떠헌 경계를 닥치면 그 경계에 따라서 생각이 - 저것이 차 소리라든지, 비행기 소리라든지, 또는 어린애 소리라든지, 저건 꽃이다, 붉다 검다, 우리가 살아 있기 때문에 그러헌 경계에 따라서 그러헌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헌데,

그 일어나는 그 때에 그 일어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능히 경계에 휩싸여 끌려 들어가지 아니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본성(本性)을 인득(認得)해 버린다. 일어나는 바로 그 경계를 발판으로 해서 자기의 본성(本性) 자리로 돌아와 버린다. 이것이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이여.

수류인득성! 수류인득성을 해 버리면 무희역무우(無喜亦無憂)라. 기뻐헐 것도 없고 근심헐 것도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생각이 - 그것이 바로 생사심(生死心)인데,
이 세상에 나왔다가 한평생 살다가 죽어가고, 죽었다가 다시 또 자기의 업(業)에 따라서 어느 곳에 태어나면 또 한평생 살다가 또 죽고 허기를 무량 억천만 겁을 그렇게 윤회를 허면서 금생에까지 이르렀는데,

그 육도윤회(六途輪廻)의 근본이 무엇이냐 하면 「한 생각」 때문에 그런 거여.
‘한 생각 일어나는 것’ 그것이 원인이 되어 가지고 천당에도 올라가고, 지옥에도 떨어지고, 축생도 되고, 또는 사람도 되고, 귀신도 되고 그런 것이여.

그런데 그 일어나는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團束)을 허느냐?

여기에서 지옥으로 떨어질 것을 미연에 방지헐 수도 있고, 축생이 될 것을 미리 방지헐 수도 있고,
그러기 때문에 천당에 가고 싶으면 천당에 가고, 지옥에 가고 싶으면 지옥에 가고, 독사가 되고 싶으면 독사가 되고, 육도윤회(六途輪廻)를 자유자재로 헐 수가 있는 그러헌 능력을 우리는 낱낱이 다 가지고 있는 것이여.

그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한 생각을 단속을 못해 가지고 원치도 아니한 지옥에도 떨어지고 독사도 되고 귀신도 되고 수라(修羅)도 되고 이러허지, 참으로 그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헐 방법만을 분명히 알아서 실천을 해 나가면 우리는 지옥에 갈 필요가 없어.

천당에도 가고 싶으면 가고,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되 좋은 여건 하에 태어나서 자기도 훌륭한 인격을 이루고 나아가서는 모든 사람을 갖다가 제도헐 수 있는 그러헌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여.


 이것이 바로 참선법(參禪法)인데, 참선법은 다른 것이 아니고 그 「일어나는 한 생각을 단속하는 방법」이다.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허느냐?
슬픈 일을 당허든지 또는 속상한 일을 당허든지, 괴로운 일을 당하던지, 또는 기쁜 일을 당하던지, 어디에서 언제 어떠헌 일을 당하더라도 바로 그때 그 자리에서 「이뭣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거각(擧却)허는 것입니다.

금방 녹음법문을 통해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들었습니다마는 활구참선(活句參禪), 활구참선이 바로 가장 빨리 어떠헌 근기(根機)라 하더라도,
남자가 되었건 여자가 되었건, 나이가 많건 적건, 지식이 있고 없건, 또는 성질이 급해서 성을 잘 내건, 빈부귀천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라도 부처님과 차등이 없는 진여불성(眞如佛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그 생각만 두 번째 생각으로 벌어지기 전에, 어떠헌 생각이 일어나자마자 동시에 「이뭣고—?」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자기의 화두(話頭)를 참구(參究)헌다면 거기에서 육도윤회는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죄를 많이 지었는데 그 죄 많은 사람이 참선을 헌들 어떻게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허며 그 뭐 「이뭣고?」 좀 했다고 해서 어떻게 내가 그러헌 무서운 많은 죄를 지었는데 지옥에 안 떨어질 수가 있는가?
이러헌 생각을 먹고 미리 겁을 집어먹고 스스로 도업(道業)을 닦아서 이루는 것을 포기허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불보살(佛菩薩)께서는 그러헌 죄 많은 사람을 위해서, 업(業)이 두터운 중생을 위해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출현을 하셔서 그 많은 법을 설허셨고,

삼천 년 전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출현허신 그 부처님만이 아니라 그렇게 정식으로 부처님으로 출현허시는 부처님뿐만이 아니고,
온 법계(法界)에 인연 있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형형색색으로 부처님과 보살님과 또는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證得)한 그러헌 성현들이 수없이 천백 억 화신(化身)을 나투면서 우리의 중생 앞에 출현을 해 계시는 것입니다.

죄도 없고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죄 많은 사람일수록에 업이 두터운 사람일수록에, 그런 불보살과 성현은 백 배 더 불쌍한 마음으로 어떠헌 방법으로 이 중생을 제도할까? 그 중생에 알맞는 방편(方便)을 써서 제도허시기 위해서 노력을 허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들, 업이 두터운 우리 보잘 것 없는 중생도 아들과 딸을 많이 두면, 공부 잘하고 착하고 좋은 아들은 마음으로 흐믓허고 기쁘고 그렇지만,
그 공부를 잘 못헌다든지, 몸이 어디가 불구자라 한다든지, 마음이 바르지를 못해서 못된 일을 많이 헌다던지 허는 그러헌 자식에 대해서는 부모는 밤잠을 못 주무시는 것입니다. 몇백 배, 몇천 배 그 자식에게 더 마음이 더 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이 자식을 바로 잡아줄까? 어떻게 이 병신을 갖다가 이 바로 잡아줄 수가 있을까? 자나깨나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러헌 뜨거운 사랑과 자식을 아끼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생각을 미루어보면 불보살과 성현들께서 우리 중생, 죄 많은 중생들에 대해서 어떻게 허면 이 중생을 제도하고 바른길로 이끌고 생사 없는 해탈도를 증득허게 해 줄 수가 있을까? 얼마나 그 생각을 뜨겁게 가지고 계실 것인가를 우리는 충분히 알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어떠헌 종교에서는 자기만을 믿어야지 자기를 배반하고 믿지 않는 중생은, 자기를 비방하거나 자기를 배반하는 그러헌 사람은 3대까지 그 벌을 주어서 멸종을 시킨다고 허는 그러헌 외도(外道)의 경을 내가 봤습니다마는 우리 부처님은 중생에 대한 보복이라고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중생들 보고도 보복을 허지 말어라.
보복으로써 원수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보복을 허면 또 다시 다음 기회에 상대방이 나에게 또 보복을 허게 되고, 그 다음에는 내가 또 보복을 허고 해서 점점 점점 미움과 원망과 싸움은 더 커져서 나중에는 온 세계가 싸움의 세계가 되아서 지옥(地獄)으로 변헐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

원수와 싸움을 없앨라면은 보복을 허지 말고, 자비로써 바른 마음으로써 상대방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어떠헌 방법을 쓰면은 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을까? 이렇게 자비심을 가짐으로써 용서함으로써 싸움은 없어진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허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허신 부처님께서 당신을 믿지 아니하고 당신의 가르침을 안 믿는다고 해서 우리를 지옥의 불구덩이에다 집어넣거나, 더군다나 직접 부처님을 비방하고 욕헌 사람을 지옥에다 밀어넣지 아니헐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자손까지 3대까지 멸종을 시킨다고 허는 그러헌 일은 우리 부처님께는 꿈에도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인 것입니다.

불법(佛法)을 비방(誹謗)하면 - 그러면 아무리 불법을 비방허고 삼보(三寶)를 비방해도, 그러면 지옥에도 안 가고 상관이 없구나. 인자는 내가 마음놓고 불법을 좀 비방을 해야겠다. 그러헌 생각을 먹는 사람은 없겠습니다마는, 불법을 비방하면 지옥에 가기는 갑니다.

부처님이 그 불법을 비방하는 중생이 미워서 부처님이 지옥에다 갖다가 밀어넣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지옥에 갈 짓을 했기 때문에 자기의 업(業)에 의해서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다른 나쁜 짓을 헌 것이 아니고 ‘부처님을 비방했다’한 그 인연(因緣)으로, 그래도 부처님과 인연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형태로든지 부처님과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부처님을 비방함으로써도 부처님과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지옥고(地獄苦)를 받고 난 다음에는 반드시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헌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허셨습니다.
부처님을 비방하는 그 과보(果報)로 일단은 지옥에 떨어졌지만, 지옥고 받은 뒤에는 - 부처님을 비방한 그러헌 형식으로, 부처님과 인연을 맺은 그 공덕으로 해탈도(解脫道)를 증득헐 수가 있다.

그러니 부처님과 만약에 좋은 인연, 불법을 믿고 불법을 찬양하고, 많은 사람에게 불법의 인연을 맺어줄라고 노력을 헌, 그러헌 좋은 인연을 맺는 사람이라면, 과거에 지은 죄로 지옥에 갈 만한 죄업을 지은 바가 있다 하더라도 지옥고를 면허게 되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이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자기공부를 철저히 해서 ‘금생에 결정코 대도(大道)를 성취허겠다’고 허는 그런 철저한 신심으로 노력을 헌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대도를 성취허게 될 것은 의심헐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처음~20분5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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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심수만경전~’ ; [직지(直指)] (白雲和尙 抄錄, 조계종출판사) 63쪽 마나라(摩拏羅) 존자 게송 참고.
*경계(境界) ; ①대상,인식 대상 ②경지 ③상태 ④범위,영역 ⑤일, 사건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음역어는 ‘갈마(羯磨)’이다.
*구렁 ; ①헤어나기 어려운 나쁜 환경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땅이 움푹하게 팬 곳.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육도윤회(六途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천당(天堂) ; ①극락세계(極樂世界)인 정토(淨土). ②하늘 위에 있는 궁전.
*지옥(地獄 땅 지/감옥 옥) ; ①고통이 가득찬 세계. 현세에 악업(惡業)을 행한 자가, 사후 그 보답을 받는 곳. ②아주 괴롭거나 더없이 참담한 환경이나 형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수라(修羅) ; 아수라(阿修羅)의 준말. 늘 싸움만을 일삼는 귀신들의 무리.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이 무엇고(이뭣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화두를 든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의심(疑心)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 불도의 수행. 진리의 실천.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사바세계(娑婆世界);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아라한(阿羅漢) ;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 이 경지를 아라한과(阿羅漢果),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를 아라한향(阿羅漢向)이라 함. 응공(應供)•응진(應眞)•무학(無學)•이악(離惡)살적(殺敵)•불생(不生)이라 번역.
마땅히 다른 사람의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으므로 응공(應供), 진리에 어울리므로 응진(應眞), 더 닦을 것이 없으므로 무학(無學), 악을 멀리 떠났으므로 이악(離惡), 번뇌라는 적을 죽였으므로 살적(殺敵), 미혹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불생(不生)이라 함.
*화신(化身) ; 부처의 삼신(三身:法身•報身•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십바라밀(十波羅蜜)의 하나. 보살(菩薩)이 중생을 근본적인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쓰는 묘한 수단을 말한다.
*해탈도(解脫道) ;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외도(外道바깥 외/길 도) ; 불교 이외의(外) 다른 교(道).
*비방(誹謗) ; 남을 해치려고 흠을 들추어내어 비난하여 말함.
*삼보(三寶) ; 부처님(佛寶)과 부처님의 가르침(法寶)과 그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집단(僧寶) 의 3가지를 보배에 비유한 말. 이것은 불교를 구성하는 3가지의 중요한 요소임. 삼보(三寶)에 귀의하는 것은 불교도로서의 기본적인 조건임.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죄업(罪業) ;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위(身)와 말(口)과 생각(意). 과로움의 과보를 초래하는 악한 행위.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신수기도)2014. 2. 8. 09:53

§(099) 신수기도 /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맑아지면은 자기의 소원은 바래지 아니해도 저절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송담스님(No.099) - 1979년(기미년) 신수기도회향(79.1.9.음)(77분)에서. (용099)

 

약 18분.


어떻게 허면 그러헌 부작용이 없이 곱게 소원을 성취할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참선법(參禪法)입니다. ‘이 뭣고~?’

‘이 뭣고?’를 해서 자기의 마음이 순화가 되고, 순화가 되었다는 것은 안정이 되고 맑아진 것을 순화가 되었다고 합니다.
자꾸 심호흡·단전호흡을 허면서 ‘이 뭣고~?’, 이렇게 1초1초 1분1분을 알뜰허게 정진을 다져 나가면 반드시 안정이 됩니다. 안정이 되고 동시에 또 맑아집니다.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맑아지면은 자기의 소원은 바래지 아니해도 저절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무엇이 필요하다’허면 그것이 묘(妙)하게 자기에게 이르러 옵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정진하시고 열심히 수행을 허신 분은 다 그런 것을 경험을 해 보셨을 줄 생각합니다.

예수교 성경에도 ‘두들겨라, 그러면 문이 열릴 것이다. 구하여라, 그러면 얻어질 것이다.’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마는, 완전히 자기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바친다든지 부처님께 완전히 바쳐 버리고,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살고 부처님의 진리에 의해서 살아갈 때에, 우리는 잠깐 마음에 일으켰다하면 그것이 바로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원하고 바래고 그것을 얻을랴고 얼마를 몸부림을 쳤던 것이, 그래도 얻어지지 못했던 것이,
참선을 해서 마음을 맑게 하고, 마음이 맑아진다고 하는 것은 마음속의 그림자를 깨끗이 씻었기 때문에-마음속의 어두운 그림자라고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업장(業障)의 씨앗이기 때문에, 업(業)의 씨앗 그것이 바로 우리의 소원을 막는 장애물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가,

참선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맑아짐으로 해서 그러헌 업의 씨앗이 변해 가지고 보리종자(菩提種子)로 변했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바로 관세음보살과 같은 그런 부처님 마음과 같이 맑아진 상태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소원이 장애를 받지 아니하고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거울을 깨끗이 닦아 놓으면 누가 보아도 그 모습이 조금도 속임없이 제대로 나타나는 거와 마찬가집니다.

어떠헌 흙탕물이라도 그릇에다 떠다가 가만히 놔두면은 더러운 것은 밑으로 가라앉고 말간 물만,
그 뻘건 흙탕물도 마찬가집니다. 오랫동안 가만 놔두면 반드시 그 찌끄래기는 밑으로 가라앉고 말간 물만 뜨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참선은 마음을 고요히 해가지고 안정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참선하는 사람은 ‘본래 맑고 더러운 것이 없다’고 믿어야 됩니다. ‘생사(生死)는 본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믿고 다못 ‘이뭣고?’를 헐뿐입니다마는, 그렇게 믿고 그렇게 닦아 가노라면,
아무리 정신이 혼탁하고 성질이 괴팍하고 선량하지 못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느새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에 맑아지고 안정이 되고 어질어진다고 하는 것을 저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 뿐인 것입니다.

내 마음이 안정이 되고 내 마음이 깨끗했을 때 우리의 모든 주변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고 나를 따르고 나를 존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어두운 그림자가 있고 내 마음속에 악(惡)의 씨앗이 깃들고 있을 때에 주변 사람들은 나를 싫어하고 나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나를 헐뜯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원리요, 상식이요, 보편적인 이론입니다. 너무나도 평범하고 너무나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왕왕 등한(等閒)히 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평범한 속에 위대한 진리는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에로 넘어가고, 봄이 되면 잎이 피고 꽃이 피었다가 가을이 되면 단풍이 져서 잎이 지는 이 평범(平凡)한 사실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의 진리보다 더 수승한 진리라고 허는 사실을 우리는 열심히 참선(參禪)함으로써 깨닫게 될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깨닫는 길이요, 깨닫게 하는 가르침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이 인도말입니다. 인도에 ‘붓다’라 한 말을 중국에서 ‘불타(佛陀)’라고 음사(音寫)를 했습니다. 인도말 ‘붓다’란 말은 뜻으로 번역을 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은 사람 또는 깨달은 길’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배고프면 밥 먹고, 곤하면 잠자고, 부르면 대답하고,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고 이러헌 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깊디깊고 높디높은 어떠한 이상한 그러한 무슨 진리를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두가 예사로 생각하고 노상 방치허고 있는 그러헌 사실들 그 속에, 이 세상에 이 법계에 위대한 진리는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생활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 화두(話頭)를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우리는 홀연히 눈을 뜨게 될런지 모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많은 천 사량(千思量), 만 사상(萬思想), 번뇌 망상 그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찰나 찰나가 바로 ‘참나’에 눈뜰 그 찰나입니다. 그것 내놓고 나를 볼 기회는 없습니다.
그래서 성났을 때 바로 그때 ‘이뭣고?’를 들을랴고 노력을 해보십시오. 근심·걱정 있을때 그때를 놓치지 말고 ‘이뭣고?’를 들어 보십시오.

슬플 때, 저는 작년에 사람으로서 인생으로서 느낄 수 있는 큰 슬픔 가운데 한 슬픔을 만났습니다마는, 옆의 사람들이 모다 슬피 울었습니다. 나도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 눈물이 나왔을 때 나도 몰래 화두를 떠억 들었습니다. 끊임없이 하염없이 속에서 우러나왔던 슬픔이 가라앉았습니다. 간장이 미어질 것 같은 슬픔이 화두를 들므로써 슬픔인지 가슴 아픈 것이 없어졌습니다.
화두를 놓치자마자 또 슬픔은 계속 우러나왔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서, 나는 이렇게 자신있게 여러분의 모든 슬픔과 괴로움과 뼈아픈 그러헌 상황 속에서 거기에서 휘말려 들어가지 아니하고 살아나갈 길은 오직 ‘이뭣고?’ 밖에는 없다고 허는 것을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바세계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많은 슬픔과 많은 억울함과 많은 괴로움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헌 당하기 어려운 일을 당한 뒤에, 면헐려고 해봤자 이미 늦습니다.
그때사 당황해 가지고 부처님 앞에 와서 면하게 해 달라, 기도를 해 달라, 이미 딱 다가와져 가지고 어떻게 허는 것입니까? 다가오기 전에, 이 사바세계 사는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바세계(娑婆世界), ‘사바(娑婆)’라는 말은 인도말로서 우리말로 번역허면 ‘감인(堪忍)의 세계’, ‘인내(忍耐)의 세계’, ‘참는 세계’라는 말입니다.
너무나도 괴로운 일이 많기 때문에 ‘참아야만 할 세상’이라 이런 말입니다.

억지로 참을라고 헐 것이 아니라, 미리미리 내 마음을 닦아서 마음속에 그러한 재앙의 원인을 제거해 놓는다면 그러헌 일은 미연(未然)에 막을 수가 있고,
닥쳐오드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내가 꺼꾸러지지를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러헌 일들로 해서 내가 한 걸음 올라 갈 수 있는 좋은 밑거름으로 삼으면 되는 것입니다.

집안에 비린내나는 더러운 것을 놔두면 인근에 많이 파리들이 모여듭니다. 시골에서 사신 분은 그 파리 구경을 참 많이 하셨을 줄 생각합니다마는, 밥상이나 어디나 할 것 없이 수없는 새카만 파리 떼가 모여듭니다.
모여든 파리를 그것을 때려서 잡는다든지 약을 쳐서 잡는다든지, 잡아서 죽여 봤자 그 다음에는 그보다 더 많은 파리들이 모여듭니다.
나중에는 아주 면역이 되아서, 밥상에 새카맣게 들어 앵겨도 조금씩만 이리 내키고 밥을 떠먹고 또 와서 앉아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모이는 파리를 죽일라고 할 것이 아니라 미리 집안에 더러운 것을 없애고, 변소를 깨끗이 하고 변소의 뚜껑을 잘 덮고 또는 약을 쳐서 집집마다 변소 관리를 잘하고, 집을 깨끗이 하고 더러운 것을 태우거나 묻어 없앤다고 하면은 집집마다 더러운 파리가 모여들지 아니할 것입니다. 파리는 그 발에 많은 병균을 갖다가 전염병을 옮기고 그러헌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재앙을 맞이할 만한 요인을 제거해야지, 그것을 둠으로 해서 재앙을 부르게 됩니다.
재앙은 하나만 오는 게 아니라 한 재앙이 일어나면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 한 재앙이 일어나면 두 가지 재앙, 세 가지 재앙이 연거푸 다가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인생은 몹시 고달프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시달림을 받는 분-인간관계라 함은 부부문제, 부모자식 간의 문제, 며느리와 시부모와의 문제, 형제간의 문제, 이런 것들이 모다 인간관계입니다마는,인간의 괴로움 속에서 가장 괴로운 문제들인 것입니다.
그 밖의 재산문제라든지 또는 직장문제라든지 수없이 많습니다.
이러헌 괴로움이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러헌 상항 속에 놓여있습니다. 크게는 국가적으로 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화탕(火湯)-불이 펄펄 끓는 용광로와 같은-그런 지옥(地獄)이 있다고 합니다마는, 그 지옥이 바로 이 사바세계에도 있습니다. 이 사바세계에 몸담아 있는 우리 자신의 가슴속에도 그 지옥이 있습니다.

우리 가슴속에 있는 그 지옥, 그놈을 극락(極樂)으로 만드는 법이 ‘이뭣고?’ 입니다.

‘이뭣고?’ 열심히 함으로써 가슴속의 지옥을 극락으로 만들고, 그럴 때에 이 사바세계에 있는 지옥도 변해서 극락이 되는 것이고,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진짜 십팔(十八) 지옥이니 팔만사천(八萬四千) 지옥이 다 소멸이 되어 가지고 불세계(佛世界)로 변하는 것입니다.

이 ‘한 생각’ 단속함으로 해서 그 무서운 팔만사천의 지옥이 극락세계로 된다고 하는 사실은, 이것이야말로 신비스러운 것이고 불가사의한 것입니다.
거꾸로 서서 죽는 거, 비행기를 타고 달나라에 가는 거, 이거 별로 그렇게 신통할 것이 못됩니다.

어떻게 해서, 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한 생각’ 단속을 해 가지고 이 법계를 극락세계를 만들며, 일체 웬수를 불보살로 변하는 이것이 얼마나 신기한 일입니까.

이것은 대단히 멀고 먼 길 같지만은 언제나 한 걸음에 있습니다. 한 생각에 있습니다.
무량겁을 두고 닦아도 성취되기 어려울 것 같이 생각이 되지만 ‘한 생각’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이건 성현이 벌써 다 갈파(喝破)를 허신 것입니다. 이것은 거짓말도 아니고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것도 아닌 것입니다.

이 해 신수기도 회향일을 맞이해서 저는-이미 기도를 하셔서 크고 작은 재앙은 다 소멸이 되셨을 것이고, 동시에 크고 작은 소원을 여러분은 기필코 성취를 허실 줄 믿습니다.(58분35초~76분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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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이 무엇고(이뭣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보리(菩提) ; 불교 최고의 이상(理想)인 불타 정각(佛陀正覺)의 지혜. 올바른 깨달음으로 모든 것의 참된 모습을 깨닫는, 부처의 지혜를 뜻한다. 산스크리트 어 ‘Bodhi’의 한자 음역어이다.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말갛다 ; ①(무엇이) 산뜻하게 맑고 깨끗하다. ②(눈이) 맑고 생기가 있다. ③(액체가)진하지 않고 매우 묽다.
*등한(等閒,等閒視) ; 무관심하거나 소홀하게 여김.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미어지다 ; (가슴이) 찢어질 듯한 아픔이나 슬픔을 느끼다.
*미연(未然) ; [주로 ‘미연에’의 꼴로 쓰여]어떤 일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때.
*내키다 ; 「…을」 공간을 넓히려고 바깥쪽으로 물리어 내다.
*화불단행(禍不單行) ; 화(禍)는 하나로 그치지 않고 잇달아 옴을 이르는 말. 불행한 일이 겹치는 경우.
*화탕지옥(火湯地獄) ; 쇳물이 펄펄 끓는 가마솥에 지옥 옥졸의 장대에 꿰어져 들어가, 몸이 삶아 녹아서 죽은 다음 다시 살아났다가, 또 반복하여 끓는 쇳물에 들어가 몸이 삶아 녹아지는 고통을 받는 지옥.
*지옥(地獄 땅 지,감옥 옥) ①고통이 가득찬 세계. 현세에 악업(惡業)을 행한 자가, 사후 그 보답을 받는 곳. ②아주 괴롭거나 더없이 참담한 환경이나 형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 통일 신라 시대에,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화엄경을 연구하고 그 경의 핵심을 추려서 7언 30구(210자)의 게송으로 지은 <화엄일승법계도 華嚴一乘法界圖> 또는 <법성게 法性偈>에 나오는 구절.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 (무량원겁즉일념 일념즉시무량겁)
한량없는 오랜세월이 한생각 찰나요,찰나의 한생각이 무량한 시간이네.
*불가사의(不可思議) ; 말로 나타낼 수도 없고 마음으로 헤아릴 수도 없음. 생각이 미치지 못함. 생각할 수도 없는 놀라운 일.
*갈파(喝破 꾸짖을•고함칠 갈,깨뜨릴 파) ; 본질을 꿰뚫어 보고 분명하게 말함.
*회향(廻向) ; 회전취향(回轉趣向)의 뜻. ①방향을 바꾸어 향하다. ②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그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함. ③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그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3. 12. 9. 11:10

§ 참선법을 믿고 수행하는 사람이 상근기. 부처님으로서도 우리에게 깨달음을 줄 수는 없고, 우리 자신이 실천을 통해서 깨달을 수밖에 없다.

 

**송담스님(No.88) - (참선법A) 법련사 불교학생회 청법 법문(1978.10.1)에서. (용088)

 

약 7분.

 


§ 중생근기

 

어찌 말세에 그러한 최상승법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이 되겠느냐?

아미타불 부를 사람은 아미타불 불러야지 어떻게 ‘이뭣고~?’만 모든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권고해서 되겠느냐? 혹 그러한 염려를 하신 분이 있을런지 모릅니다마는,

“말세다. 중생의 근기(根機)가 미약하다. 그러니까 참선법 가지고는 안되고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이런 것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마는 말세(末世)라는 것은, 편의에 따라서 ‘정법시대, 상법시대, 말법시대’ 이렇게 말씀을 해 왔지마는,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하근기가 아니라 상근기인 것입니다.

아무리 부처님 당시에 태어났으되 이 법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하근기인 것이고, 삼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 태어났어도 이 활구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바로 정법(正法)시대 사람이요, 그 사람은 상근기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선법을 배우고자 하고 참선에 의해서 자아를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냈을 때, 여러분은 정법시대를 만난 것이고 여러분은 상근기인 것입니다.

조금도 그런 염려를 마시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결정코 금생에 ‘참나’를 자각하고 도업을 성취하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 맺음

아까 시작할 때에 읊은 <원앙수출은 종교간(鴛鴦繡出從教看)이어니와 불파금침 도여인(不把金針渡與人)이라.>하는 것은,
“원앙새 수놓은 것은 여러분에게 보여줄 수 있지마는 원앙새 수놓은 그 바늘은 여러분에게 줄 수는 없다” 이러한 내용의 게송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참나’를 깨달을 수 있는 방법은 얘기해 드릴 수 있지마는 깨달음 그 자체는 여러분에게 줄 수가 없다. 깨달음은 여러분 자신이 깨달을 수밖에는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부처님으로서도 여러분에게 깨달음을 줄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실천을 통해서 깨달을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금생에 약불종사어(今生若不從斯語)허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허리라

<금생에 약불종사어허면>, 금생에 오늘 이 자리에서 들으신 말씀을 실천하지 아니하면,
<내세에 당연한만단허리라>, 내생에 지옥에 떨어져 가지고 “아! 그때에 열심히 참선을 안 해서 이렇게 지옥에 떨어졌다!” 하고 아무리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이러한 내용의 게송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더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많고, 여러분들도 더 자세한 것을 듣고자 하시겠지마는 오늘은 시간 관계상 이것으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끝)(84분20초~90분3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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回 이 법어는 송담(松潭)스님께서 1978년 10월 1일, 「법련사 불일 청년회」의 청법으로 설하신 내용이며, 스님께서 직접 편집하신 것을 『불일회보』(1988년 6. 7. 8월)에 게재했었던 원고임.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기 위해 하는 수행법.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삼시(三時) ; 붓다가 입멸한 후 불법(佛法)의 성쇠를 나타내는 시대 구분. (1)정법(正法). 불법이 바르게 행해져 가르침과 수행자와 깨달음을 이루는 자가 있는 시기. (2)상법(像法). 정법과 비슷하다는 뜻. 가르침과 수행자는 있어도 깨달음을 이루는 자가 없는 시기. (3)말법(末法). 불법이 쇠퇴하여 오직 가르침만 있고 수행자도 깨달음을 이루는 자도 없는 시기. 각각의 기간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흔히 정법은 500년, 상법은 1,000년, 말법은 10,000년이라 함.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 불도의 수행. 진리의 실천.
*지옥(地獄 땅 지,감옥 옥) ①고통이 가득찬 세계. 현세에 악업(惡業)을 행한 자가, 사후 그 보답을 받는 곳. ②아주 괴롭거나 더없이 참담한 환경이나 형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Posted by 닥공닥정

§(458) 우리는 다행히 불법(佛法)을 만났으니 올바르게 참선을 해야겠다. 믿을 수 있는 또 믿어지는 선지식으로부터 한 화두를 타 가지고, 활구참선을 해서 불조의 지경에 이르기까지 정진해 ..

 

**송담스님(No.458) - 1991년(신미년) 동안거결제법회(37분)에서. (용458)

 

약 12분.


세상이 이렇게 말세(末世)가 되어 가지고 온통 오욕락(五欲樂)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고, 오욕락은 재산 - 요새 같으면은 국가적으로는 경제라고 하는데, 물론 나라가 부흥하고 백성이 잘 살라면은 경제가 부흥을 해야 하지요.

그러나 경제가 아무리 GNP가 만 불, 백만 불, 천만 불 올라간다 허드라도 인간성을 상실하고 인간의 생명을 존중히 여기지 않고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에 불이 타는 한, 아무리 경제가 부흥한다 해도 이 세상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는 못합니다.

이러한 말세에 정치니, 경제니, 교육이니, 일등국이니, 후진국이니 해 봤자 불법(佛法)을, 참다운 불법을 옳게 믿고 실천하지 않는 한은, 이 세상은 점점 말세적인 증상을 노출해 가지고 서로 죽이고 서로 침범하고 이웃나라끼리도 무력으로 싸우다, 사상으로 싸우다가, 경제적으로 싸우다가, 급기야는 종교로 싸우다가, 싸우고 싸우다가, 서로 죽이고 서로 죽음을 당하고 그래가지고 세상이 결국은 지옥으로 변해 가고 있다 그말이여.

나라와 나라 뿐만이 아니라 기업체와 기업체가 싸우고, 개인과 개인이 싸우고, 정치가는 당과 당이 싸우고, 이렇게 되어 가고 있다 그말이야. 이러한 싸움이 GNP가 올라간다고 그 싸움이 없어지겠습니까? 올라 갈수록 싸움은 더욱 악랄해지고 피비린내 나는 지옥(地獄)세계로 변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럴때 우리는 어떻게 해서 이런 불법(佛法)을 만났는가? 세계 60억 인구 가운데에 어떻게 해서 우리가 불법(佛法)을 만나서 생사없는 도리(道理)를 위해서, 도를 닦을 수가 있었던가?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다행스럽고 감사할 따름인 것입니다.
기왕 이렇게 불법을 믿고 결제에 방부(房付)를 드리고 참선을 할 바에는 올바르게 해야겠다 이거거든.

수참활구(須參活句)언정 막참사구(莫參死句)하라.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할지언정 사구참선(死句參禪) 하지 말아라.

그러면 활구참선은 무엇이냐?  활구참선을 해서 깨달음을 얻으면 불조의 스승이 되는 것이여. 불조(佛祖), 부처님과 조사(祖師)와 같이 되는 거여.
사구참선을 해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얻은 바가 있다고 해 봤자, 자기 스스로도 구제를 못하는 것이다. 조사께서 분명히 이렇게 말씀을 허셔.

그러면 활구(活句)는 무엇이냐 하면은 경절문(徑截門) 활구여. 마음 길이 끊어지고 뜻 길과 말 길이 끊어져. 그리고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없어.

그러면 사구(死句)는 무엇이냐 하면, 이치 길이 있고 말 길이 있어. 이렇게 따져 들어가면 “아하, 그렇구나.”하고 알아 들어가는 것이 있어. 그리고 듣고, 알고, 생각할 것이 있다 그말이야.

화엄경이나 법화경, 금강경, 원각경, 이런 경전들이 다 일승 원교니, 대승 종교니 해 가지고 경전 중에서는 참 훌륭한 경전이고 그렇지만, 이 교외별전(敎外別傳)인 조사선에서는 그런 경전에 있는 말씀도 의지해서는 안 돼. 따지면 벌써 그것이 사구(死句)가 되어.

이런 말은 불교학자나 교가에서 들으면 불법을 비방한다고 그렇게 말을 헐는지 모르나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경전을 비방한 것이 아니여.
이 활구선(活句禪)은 사교입선(捨敎入禪)이거든. 그런 경을 다 보고 알더라도 그 경을 다 버리고서 일체 이론을 떠나서, 바로 이 화두를 참구해 가지고 확철대오하는 이 조사선(祖師禪)에 있어서는 경전에 대해서 놓아라고 헐 수밖에는 없는 거여. 그렇다고 해서 경 자체를 비방하는 것은 아니야. 여러분이 그 분간을 잘 아셔야 돼.

참선을 허시기 전에는 참선이 무엇인지 모를 때에는, 금강경도 공부를 해야 하고 반야심경도 공부를 해야하고 법화경도 독송을 허고 화엄경도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어떻게 해서 숙세에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인연이 있어서 참선법을 믿고 알게된 때부터서는 경을 탁 놔야 하는 거야. 놓고서,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턱 타 가지고 - 자기가 믿을 수 있는, 믿어지는 선지식으로부터 화두를 타 가지고 그때부터서는 경에 있는 말씀도 탁 놔 버리고,
오직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영한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알 수 없는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만을 참구(參究)해야 한다 그말이야.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화두를 탄 분은 ‘어째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 했는고...?’.
판치생모 화두를 탄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무자(無字) 화두를 타신 분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이래서 무(無)라고 했는가? 저래서 무(無)라고 했는가?’. 그렇게 따지는 것이 아니야.
또 정전백수자는 ‘뜰 앞에 잣낭구?’ ‘뜰 앞에 잣낭구가 무엇인가?’ 그렇게 뜰 앞에 잣나무를 쫓아가서 그 놈을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어째서 뜰 앞에 잣낭구라 했는고...?’ 이렇게 화두를 드는 거야.

어느 화두가 좋고 어느 화두가 나쁜 것이 아니고, 일단 믿을 수 있는 또 믿어지는 선지식으로부터 화두를 하나 탔으면 아무리 공부가 안 되더라도, 그 한 화두를 가지고 한결같이 해 나가야 돼.
화두가 잘 안 들리고 의심이 안 난다고 해서 또 다른 스님한테 가서 또 화두를 타 가지고 해 보고, 그 놈이 안 되면 또 저 다른 스님한테 가서 해 보고, 그리하다 보면 맨 처음 탄 화두가 좀 의심이 난 것 같으면 그놈 좀 해 봤다, 이놈 좀 해 봤다 이래 가지고서는 확철대오를 기약할 수가 없습니다.

우물을 파되 열 자를 파서 안 나오면 오십 자를 파고, 오십 자를 파서 안 나오면 백 자를 파고, 백 자를 파서 안 되면은 백 미터를 파고, 이렇게 해서 목숨을 바쳐서 한 우물을 파야 참으로 가물어도 줄지 않고 장마에도 불지 않는 좋은 물을 만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조금 파 가지고 물이 나왔다면 그것은 의심할 것 없이 건수(乾水)로써, 장마철에는 풍풍풍풍풍 넘쳐흐르고 가뭄이 들면은 물이 차츰 줄어서 결국은 물이 밭어지게 될 것이여.

조금 이리저리 해 가지고 뭐 소견이 났다고 해서 그런 것을 견성했다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불조의 지경(至境)에 이르기 전에는, 뭐 조금 한 소견났다고 해서 그것을 자기도 깨달랐다고 착각을 하고, 그래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을 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조금 뭐 한 소식했다고 남한테 자랑하기를 좋아하고. 불조의 지경에 이르기 전에는 그까짓 무슨 소견이 난 걸 그것에 만족을 해?

스스로 그것이 참 깨달음이 아닌 줄 (알고) 스스로 그것을 탁 부인해 버리고 언제나 초학자(初學者)의 마음으로써 구경각(究竟覺)을 얻을 때까지 정진을 해야 할 것이다. 냉정히 생각해 보면 자기가 불조의 지경에 이르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기 전에 스스로 자기가 더 잘 알 것이다 그말이야.(17분6초~28분3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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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末世 끝 말, 세상 세)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지옥(地獄 땅 지/감옥 옥) ; ①고통이 가득찬 세계. 현세에 악업(惡業)을 행한 자가, 사후 그 보답을 받는 곳. ②아주 괴롭거나 더없이 참담한 환경이나 형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도리(道理) ; 이치.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는 모든 만유(萬有)를 꿰뚫고 있는 법칙.
*방부(房付 방 방/줄•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경절문(徑截門 지름길 경/끊을 절/문 문) ; 지름길문. 경절(徑截)이란 ‘바로 질러 간다’는 뜻. 교문(敎門)의 55위 점차를 거치지 않고 한 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 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 참선법(活句參禪法). 즉 일체의 어로(語路), 의리(義理), 사량 분별의 길을 거치지 않고 직접 마음의 본체에 계합함을 일컫는다.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주장하고,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선지식(善知識) ; 불교의 바른 도리를 가르치는 사람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건수(乾水) 평상시에는 물이 고여 있지 않다가, 장마 때 땅속으로 스몄던 빗물이 잠시 솟아나서 괴는 샘물.
*밭다 ; (무엇이)바싹 졸아서 물기가 거의 없어지다.
*지경(至境 이를 지/지경 경) ; 대상에 도달하는 것.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구경각(究竟覺) ; 번뇌를 완전히 소멸시켜 마침내 마음의 근원을 깨달음.

 

Posted by 닥공닥정
생활속 정진(요중선)2013. 10. 9. 17:34

 

§(414) 공부는 간단하고 쉬운 . 언제 어디서든 항상 화두를 잡드리해야. 우주는 우리의 생각 일어남으로 해서 벌어진 . (게송)춘유백화추유월~.

 

우주법계(宇宙法界) 우리의 생각일어남으로 해서 벌어진 것입니다.극락세계(極樂世界) 자기의 생각으로 인해서 극락세계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고, 무서운 지옥(地獄) 자기의 생각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옥을 만들어서 지옥으로 들어가서 () 받는 것도 자기의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에 달려 있는 거고, 천국을 건설을 해서 천국에서 유희를 하는 것도 자기의 생각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414)—1990 4 첫째 일요법회 (용414)

 

약 11분.

 

 

공부는 복잡한 것이 아니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천하 간단하고 쉬운 것입니다.

 

초학자(初學者) 불가불 장소가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나, 자꾸 버릇 하면 장소도 상관이 없고 시간도 상관이 없습니다.

앉아서도 하고, 서서도 하고, 차를 타고 가면서도 하고, 일하면서도 하고, 설거지 하면서도 하고, 누워서도 하고, 잘려고 잠자리에 누웠서도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머물렀다가 내쉬면서이뭣고~?’ 이렇게 하면서 언제 잠든 모르게 잠이 들어. 꿈속에서도 화두(話頭) 그대로. 이튿날 아침에 눈을 뜨면 엊저녁에 들던 화두가 그대로 들어 있게 되거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항상 잡드리를 하시면, 그렇게 공부가 결국은 색을 보되 색이 아니요(見色非干色), 소리를 듣되 소리가 아니요(聞聲不是聲). 성색(聲色) 걸림이 없이(色聲不礙處), 그래서 법왕성(法王城) 도달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親到法王城).

 

우주법계(宇宙法界) 우리의 생각일어남으로 해서 벌어진 것입니다.

극락세계(極樂世界) 자기의 생각으로 인해서 극락세계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고, 무서운 지옥(地獄) 자기의 생각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옥을 만들어서 지옥으로 들어가서 () 받는 것도 자기의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에 달려 있는 거고, 천국을 건설을 해서 천국에서 유희를 하는 것도 자기의 생각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이 무량겁이요, 무량원겁(無量遠劫) 즉일념(卽一念)』이라고 법성게(法性偈)에도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가운데는 법화경도 읽어 보시고, 화엄경도 읽어 보시고, 원각경, 금강경, 경이란 경은 읽어 보신 그런 분도 있을 것입니다마는,

경을 참으로 뜻을 옳게 알고 읽으셨다면 일념(一念) 속에 육도법계(六途法界) 있는 것이고, 생각 단속함으로 해서 불국토를 건설하느냐, 지옥을 만드느냐는 달려 있는 도리를 이해하실 것입니다.

 

 

춘유백화추유월(春有百花秋有月)하고  하유청풍동유설(夏有清風冬有雪)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약무한사괘심두(若無閑事掛心頭)하면  변시인간호시절(便是人間好時節)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춘유백화추유월(春有百花秋有月)이요, 봄에는 가지 꽃이 있고 가을에는 휘황찬 밝은 달이 있구나.

하유청풍동유설(夏有清風冬有雪)이로다. 여름에는 맑은 바람이 있고 겨울에는 하얀 눈이 있구나.

약무한사괘심두(若無閑事掛心頭)하면, 만약 부질없는 일이 마음에 걸려 있지 아니하면,

변시인간호시절(便是人間好時節)이다. 문득 이것이 인간의 좋은 시절이더라.

 

약무한사괘심두(若無閑事掛心頭), 부질없는 일이 마음에 걸려 있지 않는다. 무엇이 부질없는 일인가?

지나간 일에 대한 쓸데없는 생각, 아직 닥쳐오지 않은 장차 미래 일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댕겨서 걱정하고 근심하는 . 현재 보고 듣고 하는 일에 대해서 그리 끌려가 가지고 생각 생각 하는 .

 

과거의 마음, 미래의 , 현재 닥쳐 있는 모든 귀와 눈을 통해서 제출되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사량(思量) 분별(分別) 따지고, 이래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그래 가지고 스스로를 들볶는 것입니다.

 

그러면 목석(木石)이나 되면 모를까, 지나간 일도 생각이 나고, 앞으로 일도 생각 걱정도 하고, 현재 닥친 일도 생각하기 마련인데, 어떻게 지나간 일도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일도 생각하지 말고, 현재 닥치는 일에 대해서도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라.

그럼 목석(木石) 되란 말인가? 그게 아니거든.

 

살아 있으니까 지나간 일도 불현듯 생각날 것이고 앞으로 일도 무엇인가 필요해서 생각을 수가 있고, 현재 눈으로 보고 듣고 하다 보면 무슨 생각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마는, 살아 있으니까.

 

무슨 생각이 나자마자 화두(話頭) 돌리는 , 천하에 묘한 법이거든. ‘이뭣고~?’

 

아무 생각 할려고 한다고 해서 해지는 것이 아니예요. 할려고 하는 생각도 또한 생각이기 때문에, 할려고 하지도 말고 쫓아낼려고 하지도 말고이뭣고~?’ 챙기거든.

이런 간단하고도 쉽고도 묘한 법이 그래서 이것을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이제 겨울이 지내가고 입춘, 우수, 경첩, 춘분, 이제 개나리가 피고, 산에는 진달래가 피고, 목련이 도처에 피고, 그래도 조석으로는 꽃샘추위로 춥기는 허지만, 이제 봄이 무르익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헌 좋은 때에 나라는 정치적으로는 시끌사끌하고 국제적으로도 복잡하고 모다 그렇지만, 우리 최상승법을 하는 사람은 이러한 중요한 때일수록 우리가 있는 일은 열심히 정진을 해서참나 깨달라야만 앞으로 우리나라가 통일이 것이고 세계평화도 것입니다.

 

앞으로 십여 , 열흘 후에는 음력 316 법보재(法寶齋)일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아시겠지만 법보단(法寶壇) 만년위패(萬年位牌) 봉안한 여러 영가(靈駕),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 원근친척과 유주무주(有主無主) 법계 고혼(孤魂)까지도 천도(薦度)하는 대법요식이 거행되는 날입니다.

 

법보재에 들으신 분은 말할 것도 없고, 법보재에 들으신 분들도 서로서로 권고해서 법보재에 들으시도록 권고를 하시고, 분도 빠지시지 말고 모두 그날 참여하셔서 우리의 선망부모와 원근친척의 영가들을 천도하는 중대한 법요식에 빠지지 않도록 부탁을 드립니다.

설사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서 참석을 하신다 하더라도 법보영가들을 천도하는 데에는 차질이 없겠습니다마는 기왕이면은 참석을 하시면은 영가들도 기쁜 마음으로 좋은 곳으로 가서 왕생을 하시게 것입니다.(621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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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법왕(法王) ; 부처님을 찬탄하는 . () 가장 수승하고 자재하다는 . 부처님은 법문(法門) 주인이며 중생을 교화함에 자유자재한 묘용(妙用) 있으므로 이렇게 이름.

*법성게(法性偈) ; 통일 신라 시대에,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화엄경을 연구하고 경의 핵심을 추려서 지은 7 30(210) 게송.

*(게송) 춘유백화추유월~’ ; [무문관(無門關)] 19 '평상시도(平常是道)' 무문혜개(無門慧開) 게송 참고.

*부질없다 ; (사람의 언행이나 일의 형편이)공연하여 쓸모가 없다.

*쓸데없다 ; (무엇이)아무런 쓸모나 값어치가 없다.

*닥쳐오다 ; (일이나 시일이 무엇에)빠르게 가까이 다가오다.

*닥치다 ; 어떤 일이나 대상 따위가 가까이 다다르다.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열가지 병이 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 무엇고(是甚 시심마,시삼마) : ‘ 무엇고? 화두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무엇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찾는 것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법보재(法寶齋) ; 매년 음력 3 16일에 용화사 법보재자(法寶齋者) 법보전 만년위패에 모신 선망부모 영가들과 인연 있는 영가들의 무량겁으로부터 지은 업장을 참회 소멸하고, 정법(正法) 귀의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고, 재자와 영가 모두 진리의 세계에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전강 조실스님께서 개설(1963)하신 합동 천도재(薦度齋).

*법보단(法寶壇) ; 용화선원의 () 법당(法堂) 법보전(法寶殿) 안에 위패를 모신 ().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 ()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사람의 선망부모가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 수천만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부모가 바로 사람의 부모고, 사람의 부모가 부모여서,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 하는 것입니다.

*유주무주(有主無主) ; ①주인(영가를 인도해 줄만한 인연있는 사람) 있거나 없는. ②제주(祭主) 있거나 없는.

*고혼(孤魂)문상(問喪) 사람이 없는 외로운 .

*천도(薦度) ;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 따라 다음 생을 받게 되는데, 유족들이 불보살(佛菩薩) 모신 법당(法堂)에서 돌아가신 영가를 청해 모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하고 또한 영가에게부처님의 가르침(法門)’ 들려줌으로써,

영가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혜의 눈을 밝혀 삶의 무상을 깨달아 이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보다 좋은 곳으로, 나아가 육도윤회를 벗어나 극락왕생·해탈의 바른 길로 건너가도록 하는 .

 

Posted by 닥공닥정
발심 자신(自信)2013. 10. 5. 14:33

 

 

§(414) (게송)무변찰해허명경~ / 발심 가운데는 포구발심(怖懼發心)이 제일, 사바세계가 도 닦기에 가장 좋다 / 전강 조실스님의 포구발심 직지사 용맹정진.

 

조실 스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발심 가운데에는 포구발심(怖懼發心), ', 생사(生死) 정말 무섭구나' 생사에 대한 무서움, 두려운 마음으로 발심하는 , 포구발심이 제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바세계가 닦기에 가장 좋다 하는 것은 천당보다도 하늘나라에 () 받는 천국보다도 사바세계가 닦기에 좋다고 하는 것은, 흥망성쇠와 생로병사와 빈부귀천의 그러헌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그러헌 모습들이 눈으로 있고 귀로 들을 있고 느낄 있고 노상 접할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사바세계는 '참나' 깨닫기 위한, 우주법계에서 가장 좋은 도량이라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생사(生死)! 무상한 생사 속에서만이 발심(發心) 수가 있고, 발심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공부는 수가 없습니다. 남이 참선을 하니까, 참선을 하면은 마음이 편안해진다니까그러한 옅은 생각으로 조금씩 흉내내 보고 조금씩 연습해 보고 이래 가지고서는, 그것도 것보다는 나을런지 모르지만 정말 생사 문제를 해결하고 대도를 성취할려면 목숨을 바치는 그러한 대분발심이 아니고서는 이룰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송담스님(No.414) - 1990년 4월 첫째 일요법회 법문에서. (용414)

 

약 17분.

 

 

무변찰해허명경(無邊刹海虛明鏡)인데  적겁매진광미휴(積劫埋塵光未虧)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종래천성부동진(從來千聖不同塵)헌데  하사횡신성색리(何事橫身聲色裏)인고

나무~아미타불~~

 

무변찰해허명경(無邊刹海虛明鏡)이요  적겁매진광미휴(積劫埋塵光未虧)다.

갓 없는 우주법계가 텅 비고 밝은 거울인데, 그 거울이 무량겁 동안 거울에 쌓이고 쌓인 티끌로 그 밝은 빛이 나타나지를 못하는구나.

 

종래천성부동진(從來千聖不同塵)인데  하사횡신성색리(何事橫身聲色裏)인고.

부처님과 모든 보살님과 역대조사와 모든 성현들은 그 티끌에 파묻히지 아니하고 터억 자아를 자각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해탈도(解脫道)를 증득했는데,

우리 중생들은 무슨 일로, 무엇 때문에 그 소리와 빛깔의 티끌 속에 파묻혀서 헤어나지를 못하는고.

이러한 고인의 게송을 읊었습니다.

 

 

오늘 경오년 4월 첫째 일요법회를 맞이해서 방금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처음에 선방에 나오셔서 직지사(直指寺)에서 첫 철을 공부하시는 그 지경을 들었습니다.

열아홉 살 열여덟 살 한참 그 어리신 나이에 같이 뛰어놀고, 같이 글을 배우고 공부하던 친구가 병이 들어서 죽은 것을 보고 너무도 큰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그 충격을 받고 있는 차에 마치 밤에 무간지옥(無間地獄)에 그 하룻밤 하루낮에 만 번 죽고 만 번 깨어나면서 만사만생(萬死萬生)하는 그 무서운 피비린내 나는 지옥고(地獄苦) 받는 광경을 보셨습니다.

사람을 세워 놓고 톱으로 머리로부터서 두 쪽으로 썰어 내리고, 또 사람을 수십 명씩 콩나물처럼 그렇게 잡어 가지고 큰 맷돌에다가 넣어서 맷돌로 갈아서 죽이는 모습, 또 그렇게 죽여 가지고 다시 또 살려 내 가지고 또 그와 같은 것을 수없이 되풀이를 하는 그러한 광경들, 그러한 꿈을 또 꾸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생사(生死)라 하는 것은 참으로 무상한 것이다. 어서 빨리 내가 선방에 나아가서 참선을 해야겠다’ 그러한 참 불같은 발심을 해 가지고 직지사로 나오신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발심 가운데에는 포구발심(怖懼發心), '아, 생사(生死)가 정말 무섭구나' 그 생사에 대한 무서움, 두려운 마음으로 발심하는 것, 포구발심이 제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사바세계(娑婆世界)에는 포구발심할 수 있는 많은 상황들이, 동서고금을 막론해서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조실스님께서는 18~9세 어린 나이로 그런 친구의 죽음을 보시고, 지옥고의 꿈을 꾸시고서 포구발심을 하셨어.

 

그런데 우리는 정든 가족이 죽어도, 친구가 죽어도, 도처에서 교통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고, 강도로 인해서 죽고, 교통사고로 죽고, 전쟁으로 죽고 그 사람들이 죽는 그런 비참한 광경을 수없이 보면서도 과연 생사에 대한 포구발심을 한 분이 몇 분이나 되십니까?

 

‘사바세계가 도 닦기에 가장 좋다’고 하는 것은 천당보다도 저 하늘나라에 낙(樂)을 받는 천국보다도 더 사바세계가 도 닦기에 좋다고 하는 것은,

흥망성쇠와 생로병사와 빈부귀천의 그러헌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그러헌 모습들이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노상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이 사바세계는 '참나'를 깨닫기 위한, 우주법계에서 가장 좋은 도량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19세의 그 어린 나이로 첫 철에 직지사 선원에 나오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공부를 하시는데 아침공양을 하시고는 자리에 앉아서 참선을—입선(入禪) 방선(放禪)도 상관이 없고, 큰방에서 대중 스님네와 같이 그렇게 하면 입선 시간이 있고, 방선하면 일어서야 하고, 대중과 행동을 같이 해야 하니까,

그러기가 불편하니까 법당 뒤에다가 방석 하나를 갖다 놓고 거기서 공양시간에는 불가불 가서 공양을 드셔야 하니까 그때만 일어서시고 공양만 끝나면은 바로 그 자리에 와서 앉었어.

 

그렇게 하기를 하루, 이틀, 사흘, 열흘, 두 달, 석 달을 한결같이 그렇게 하셨다.

대중이 ‘어린 사람이 첫 철 말뚝 신심이 나 가지고 저런다고 며칠이나 갈까 보냐?’고 모다 수군덕거리고 그랬다고 아까 말씀이 계셨습니다마는 그걸 허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이 한결같이 그렇게 하셨어.

 

그러나 이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는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과 화두를 드는 바른 법을 알고서 하셔야 할 텐데, 누가 그걸 자세히 일러준 분도 없었고, 또 그렇게 자세히 해 놓은 책도 볼 수 없었고,

 

또 그 조실 스님께서는 그때는 제산(霽山) 스님께서 조실로 계신 때인데 ‘일념미생전(一念未生前)을 관(觀)하라. 한 생각 일어나기 이전을 관하라’ 이렇게 화두를 일러 주셨으니,

그것이 도저히.. ‘일념미생전을 관한다’ 어떻게 관(觀)하며, 또 들은 법문에 의하면은 ‘화두는 의심을 관하는 것인데 의심도 없이 한 생각 이전의 상태를 관하라?’

 

도저히 바른 공부가 아닌 것 같아서 단독으로 조주무자(趙州無字) 화두를 스스로 간택을 해 가지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파고 또 파고 해 가지고 어떻게 간절히 그리고 몹시 알날신심(捺身心)하면서 막 파고 들어갔다.

그러니 마침내는 육단심(肉團心)이 동(動)해 가지고 그렇게 코로 입으로 많은 피를 토하셨다고 그럽니다.

 

결과적으로는 피를 토하셨거나 말았거나 그렇게 무섭게 공부를 하셨기 때문에 결국은 대도를 성취하셨다고 하는 생각이 됩니다마는, 애당초에 바른 자세법과 바른 호흡법과 바른 화두를 드는—어떻게 화두를 들어야 하는가?

그 화두를 드는 그런 가장 불급불완(不急不緩)한, 너무 급하지도 않고 늘어지지도 않는 가장 그 묘한 의심관(疑心觀)으로 해 나가셨다면은 그렇게 피를 토하시지 않고도 도를 이루셨지 않을까? 이렇게도 생각이 들기도 하지마는.

 

하여간 그 어리신 나이로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무서운 신심과 무서운 분심으로 그렇게 밀고 나가 가지고, 병이 난 뒤에도 계속해서 목숨을 거기다 전부 다 바치고 결국은 정진을 중단하시지 않고서 마침내 대도(大道)를 성취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정말 친구나 정든 사람의 죽음을 보고 그렇게 철저히 발심을 해서 도를 닦을라고 한 분도 지금도 역시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설사 그렇게 발심을 하신 분이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바른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서 화두를 간택하고 공부하는 방법을 바로 알아 가지고 하신다면은 중간에 무서운 그런 병이 일어나지 않고서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조실 스님은 그 어려서 그렇게 피가 넘어오는 그것으로 인해서 많은 세월 동안을 그 병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뒷머리가 툭툭 터져서 머리에 참 많은 흉터가 계셨고, 고생도 참 많이 하셨습니다.

그렇게 무섭게 정진을 하시고 밤잠을 안 주무시고 공부를 하시고 그래서, 스스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무섭게 정진을 하셨기 때문에 평생 동안 후배들을 위해서 후학들을 위해서 참 감동적인 법문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스스로 무량겁 동안을 수행을 하시는 가운데에 수없는 몸을 던지시고 참 무서운 고행정진을 하셨기 때문에 사바세계에 탄생하셔 가지고 그 팔만사천 무상법문을 그렇게 많이 남기신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생사(生死)! 무상한 이 생사 속에서만이 발심(發心)을 할 수가 있고, 발심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 공부는 할 수가 없습니다.

‘남이 참선을 하니까, 참선을 하면은 마음이 편안해진다니까’ 그러한 옅은 생각으로 조금씩 흉내내 보고 조금씩 연습해 보고 이래 가지고서는, 그것도 안 한 것보다는 나을런지 모르지만 정말 생사 문제를 해결하고 대도를 성취할려면 목숨을 바치는 그러한 대분발심이 아니고서는 이룰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처음~16분3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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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무변찰해허명경(無邊刹海虛明鏡)~ ; 『천목중봉화상광록(天目中峯和尙廣錄)』 (제14권) ‘別傳覺心’

**복전암 29번에도 이 게송이 있음.

무변찰해허명경(無邊刹海虛明鏡) 가없는 시방세계가 텅비어 밝은 거울인데

적겁매진광미휴(積劫埋塵光未虧) 무량겁 동안 티끌이 쌓여도 그 빛은 이지러짐이 없구나

종래천성부동진(從來千聖不同塵) 종래로 모든 성인은 티끌과 함께 하지 않았는데

하사횡신성색리(何事橫身聲色裏) 무슨 일로 우리는 성색의 티끌속에 죽어가느냐!

*虧 (이지러질 휴) 이지러지다. 손상됨. 그치다. 줄다.  *裏 (속 리) 가운데, 뱃속, 다스려지다. 안에 받아들이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포구발심(怖懼發心 두려워할 포/두려워할 구/일어날 발/마음 심) : 끝없이 되풀이 되는 육도윤회(六途輪廻)에서 받을 생사(生死)가 정말 무섭구나. 그 생사의 고통을 매우 두려워(怖懼)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지옥(地獄 땅 지, 감옥 옥) ; ①고통이 가득찬 세계. 현세에 악업(惡業)을 행한 자가, 사후 그 보답을 받는 곳. ②아주 괴롭거나 더없이 참담한 환경이나 형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도량(道場) : [범] bodhimandala 도를 닦는 곳이란 말이다。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말뚝 신심 ; 말뚝은 보기에는 견고해 보이나 뿌리가 없어 외부의 힘에 쉽게 흔들리거나 썩어 버린다. 이것에 비유하여 보기에는 열심인 듯하나, 꾸준하지 않고 잠깐 일어난 신심을 '말뚝 신심'이라 한다.

*조주무자(趙州無字) 화두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알날신심(捺身心  누를 알/누를 날/몸 신/마음 심) ; 몸과 마음을 억누르다.

[몽산법어]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에 나오는 구절.

*육단심(肉團心) : [범] Hrdaya  4심의 하나。 심장을 말함。 8판(瓣)의 육엽(肉葉)으로 되었다 한다。 의근(意根)이 의탁한 곳.

*묘한 의심관(疑心觀) ; 묘관(妙觀).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5분 59초)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 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 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불문곡직하다(不問曲直-- 아니 불/물을 문/옳지 않을 곡/곧을·맞을 직) ; 곡직불문하다. (사람이)옳고 그름을 따져 묻지 아니하다.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