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성도재)2016. 1. 22. 16:50

 

 

§(523) (게송)일파재동만파수~ / 석가모니 부처님의 팔상성도(八相成道) / 諸佛說弓 祖師說絃 / (게송)참선수투조사관~ / 성도재(成道齋)의 의의(意義).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한량없는 법을 설하시고서도 “녹야원으로부터 발제하(跋提河)에 이르도록 단 한 글자도, 한 말도 설한 바가 없노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설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법문을 설하시고도 한 글자도 설한 바가 없다고 한 바로 거기에 활구참선(活句參禪)의 뿌리를 두는 것입니다.

 

조사관을 뚫을라면은 마음 길이 끊어져서 의단이 독로해서 타성일편이 되어야 조사관을 뚫는 것이지, 사량분별로 이리 따지고 저리 따져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알아 들어가는 게 아니여. 백년을 두고 따져 봤자, 그럴싸한 해답을얻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몸소 올바르게 공부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올바르게 공부하면 반드시 깨달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여. 바로 깨달음을 여실(如實)히 보여 주시는 것이 바로 이 성도재(成道齋)의 의의(意義)다. 부처님이 그렇게 확철대오 하는 그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거기에서 그것을 믿고 거기에서 용기를 가지고 우리도 청춘을 버리고 인간의 모든 욕락을 버리고 도를 닦을 수가 있게 되었다 그말이여.

 

**송담스님(No.523)—93년(계유년) 성도재 법회(93.12.08.음) (용523)

 

약 22분.

 

일파재동만파수(一波動萬波隨)한데  사의순환기료기(似蟻循環豈了期)리오

나무~아미타불~

금일여군도할단(今日與君都割斷)하면  방호출신장부아(方號出身丈夫兒)니라

나무~아미타불~

 

일파재동만파수(一波動萬波隨), 한 물결이 일어나자마자 일 만 물결이 따르더라.

사의순환기료기(似蟻循環豈了期)리오. 개미가 쳇바퀴를 돌듯이 끝없이 돌고 돌아서 언제 끝날 때가 있을까 보냐?

 

금일여군도할단(今日與君都割斷)하면, 오늘 그대와 더불어 옴막 잘라서 끊어버려야사만,

방호출신장부아(方號出身丈夫兒)다. 바야흐로 몸을 뛰쳐나온 대장부(大丈夫)라고 부를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삼천 년 전에 중인도 가비라(迦毘羅) 왕국에 ‘싯달(siddhartha) 태자’라고 하는 태자로서 탄생을 하셨어.

그래 가지고 16세에 야수다라와 결혼을 하시고 29세에 출가를 하셔서 설산에 들어가서 6년 동안을 하루에 일마일속(一麻一粟), 삼씨 하나와 곡식 알 하나를 그것을 잡숫고 무서운 고행을 하셨다.

 

그때 당시 인도에는 부처님께서 탄생하기 전부터, 출가해 가지고 산에 들어가서 고행(苦行)을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는 그러한 외도(外道)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도를 닦는다’ 하면은 고행이여. 고행이 바로 수행의 전부였습니다.

온갖 종류의 고행—도저히 사람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무서운—육체를 괴롭히는 그러한 고행을 했습니다. 가시 위에 뒹굴기도 하고, 불 속에 왔다갔다 하면서 그 뜨거운 것을 참기도 하고, 굶는 거.

 

부처님께서도 설산에 들어가셔서 일마일속(一麻一粟)을 잡숫고서 그 무서운—여러분도 사진을 통해서 보셨겠지마는 뼈가 완전히 드러나는 피골(皮骨)이 상접(相接)한 그러한 고행하시는 모습을 그려 놓은 그림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고행을 하셨는데, 이 고행이라고 하는 것이 결코 해탈도를 증득하는 바른 법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깨달으시고서 니련선하(尼連禪河)에 가서 목욕을 하시고, 수자타(Sujata)라고 하는 처녀가 갖다 바치는 유미죽(乳粥)을 받아서 잡쉈습니다. 그래 가지고 기력을 챙기셨습니다.

 

정각산(正覺山) 보리수(菩提樹) 하에 앉아서 『정각(正覺)을 얻지 못하면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결심을 하시고서 49일 동안을 정진을 하셨습니다.

그 49일째 날이 바로 12월 8일, 납월팔일(臘月八日) 새벽에 밝은 별을 보시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셨습니다. 그때가 35세였습니다.

 

그런 뒤에 바라나국 녹야원(鹿野苑)에 가서 6년 동안을 같이 고행하던 교진여 등 오비구(五比丘)를 제도하시고, 삼가섭(三迦葉)을 제도하시고, 그런 뒤에 마갈타국 빈바사라왕 또 사리불, 목련 존자를 제도하시고,

성도(成道) 후 3년 만에 고향에 돌아가서 부왕(父王)을 제도하시고, 아란·난타·라후라 등을 차례로 다 제도하시고, 그 이후로 갠지스 강 남북 마갈타국, 코살라국, 비사리 등지를 왕래하시면서 보수 80세에 이르시도록 팔만사천(八萬四千) 무량법문을 설하셨습니다.

 

49년 동안 설하시고서, 한량없는 법을 설하시고서도 “녹야원으로부터 발제하(跋提河)에 이르도록 단 한 글자도, 한 말도 설한 바가 없노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설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법문을 설하시고도 한 글자도 설한 바가 없다고 한 바로 거기에 활구참선(活句參禪)의 뿌리를 두는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 ‘49년 동안 설하신 교설(敎說)은 활등과 같고, 활등은 이래 굽어 가지고 돌아가는 거고, 활줄은 직선이다. 교설은 활등과 같고 활구참선법은 활줄과 같이 바로 설하신 것이다’ 이런 말씀 하셨는데,

 

교학은 가르킬 수가 있고, 배울 수가 있고, 자꾸 배우고 익히고 해서 알아 들어가고 이렇게 하는 건데, 참선법은 가르켜서 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것이여.

참선하는 방법은 일러 줄지언정 바로 깨닫는 것은 자기가 깨달라야지, 가르켜서 깨닫게는 못하는 거여.

 

 

참선수투조사관(參禪須透祖師關)이요  묘오요궁심로절(妙悟要窮心路絶)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수궁산진의무로(水窮山盡疑無路)터니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참선(參禪)은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요.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관(祖師關)을 뚫는 것이고,

묘오(妙悟)는 요궁심로절(要窮心路絶)이다. 묘한 깨달음은 마음 길 끊어진 것을 요하느니라.

조사관, 우리 본참공안(本參公案). 본참공안을 타파(打破)해야만 해.

 

‘이뭣고?’ 또는 「판치생모(板齒生毛)」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건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여. 은산철벽(銀山鐵壁)과 같이 꽉 막혀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의단(疑團)!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해 갈수록 알 수가 없어야 하고 꽉 막혀야... 그래서 의관(疑觀)이거든. 의심관(疑心觀)이여.

 

처음에는 자꾸 들 때만 화두가 있다가 금방 딴 생각이 일어나고, 딴 생각이 일어나서 한참 이리저리 헤매다가 그때사 정신을 차리고 다시 또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뭣고?」하는 사람은 ‘이뭣고?’ 해 갈수록 알 수가 없어! ‘이뭣고?’ 자꾸 챙기고 또 챙기고, 챙기고 또 챙기고 하다 보면 나중에는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성성(惺惺)하게 들리는 때가 온다 그말이여.

 

그렇게 해서 더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그 의단이 클 수가 없어.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어떠한 기연(機緣)에 툭! 터져 버리는 거다 그말이여. 그게 바로 조사관을 뚫는 거다.

 

조사관을 뚫을라면은 마음 길이 끊어져서 의단이 독로해서 타성일편이 되어야 조사관을 뚫는 것이지, 사량분별로 이리 따지고 저리 따져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알아 들어가는 게 아니여. 백년을 두고 따져 봤자, 그럴싸한 해답을얻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해 갈수록 재미가 없고 맛이 없고, 몇 번이나 ‘그만둘까? 이거 해 가지고 참으로 깨달을 수가 있을 것인가? 내가 이거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닌가? 차라리 머리를 기둥이나 벼람박에다 부딪쳐서 차라리 죽어버려야 할까?’ 다리를 뻗고 고인은통곡을 하는 이도 있고,

그러나 부처님을 믿고 조사(祖師)를 믿기 때문에 숙세에 정법의 인연을 심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은 잠시, 떨쳐 버리고 다시 분심(憤心)을 일으키고 화두를 거각(擧却)해. 그렇게 해서 하루하루를 일념만년(一念萬年)으로 다그쳐 나감으로 해서결국은 타성일편의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수궁산진의무로(水窮山盡疑無路)터니, 물이 다하고 산이 다해. 목적지를 찾아서 깊은 산중에 들어가는데 이제 계곡을 따라서 올라가니 물도 다 끊어지고 산도 콱 막혀서 인자 더이상 갈 곳이 없구나. 내가 갈 곳은 어디냐?

이렇게 물도 끊어지고 산도 콱 막혀서 이제 길이 콱 끊어졌으니 ‘이제는 내가 여기서 죽는구나’

 

그러나 거기서 쉬지 않고 다시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겨서 한 고개를 넘어가니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이다. 파란 버들은 그윽히 휘늘어지고 밝은 꽃은 환하니 핀 또 한 마을이 거기에 있구나.

 

참선이 어찌 수월할까 보냐 그말이여.

무량겁을 두고 한 생각 미(迷)한 그 원인으로 해서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과 오욕락(五欲樂) 속에서 업(業)을 짓고, 그 업으로 인(因)해서 점점 더 깊은 업을 짓고, 그래 가지고 삼악도(三惡道)를 돌고 돌아 육도(六途)를 윤회해 오늘에 이르렀는데 어찌 확철대오 하는 길이 그렇게 쉬울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어려운 것이 당연하고 힘든 것이 당연하다!

 

그래도 우리 부처님께서는 사실은 진묵겁(塵墨劫) 전에 다 확철대오해서 성불한 그러한 부처님이 중생 교화를 하기 위해서 진즉(卽) 원(願)을 세워 가지고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왕궁에 태어나 가지고 출가하셔서 6년 고행 끝에 결국은확철대오 하셨는데,

‘왜 6년 고행을 하셨느냐?’하면은 ‘고행(苦行)을 해야만 도를 얻을 수가 있다’고 사람들이 모두가 다 믿고 있는데, 고행을 위한 고행은 정말 참다운 바른 성스러운 수행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한 것이다 그말이여.

 

열심히 수행하다 보니 맛있는 것 찾을 겨를이 없고, 좋은 옷을 입을 겨를도 없고, 부귀영화 언제 그런데 한눈 팔 겨를이 없어야 하는 것이지 ‘몸뚱이를 괴롭히는 것으로써 그러한 고행을 하는 것이 바로 참다운 수행이다’고 착각을 해서는 안 된다.

부처님께서 몸소 올바르게 공부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올바르게 공부하면 반드시 깨달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여. 바로 깨달음을 여실(如實)히 보여 주시는 것이 바로 이 성도재(成道齋)의 의의(意義)다 그말이여.

 

부처님이 그렇게 확철대오 하는 그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거기에서 그것을 믿고 거기에서 용기를 가지고 우리도 청춘을 버리고 인간의 모든 욕락을 버리고 도를 닦을 수가 있게 되었다 그말이여.(처음~21분3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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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일파재동만파수(一波動萬波隨)~’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야부도천(冶父道川) 게송 참고.

*옴막 ; '전부(全部)'의 사투리.

*대장부(大丈夫) ; ①건장하고 씩씩한 사나이. ②불성(佛性)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의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이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싯다르타(siddhartha) ; 목적을 달성한다는 뜻.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가 출가하기 전 태자(太子) 때의 이름. 음역어는 ‘실다(悉多)’, ‘실달(悉達)’, ‘실달다(悉達多)’이다.

*고행(苦行) ; 어떤 경지에 이르거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육신을 극도로 괴롭히는 수행.

*외도(外道) ; 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피골상접(皮骨相接) ; 살가죽[皮]과 뼈[骨]가 맞붙을[相接]정도로 바짝 마름.

*니련선하(尼連禪河) ; 네란자라(nerañjarā) 강. 중인도 마갈타국 가야성의 동쪽에 북으로 흐르는 강으로 항하(恒河, 갠지스 강)의 한 지류

*유미죽(乳 젖 유/죽 미/죽 죽) ; 우유에 쌀을 넣어 만든 죽.

*보리수(菩提樹) ; 산스크리트어 bodhi-vṛkṣa  원래 이름은 아설타(阿說他, 산스크리트어 aśvattha)이며, 그 열매를 필발라(畢鉢羅, 산스크리트어 pippala)라고 하는 데서 이 나무를 필발라수(畢鉢羅樹)라고도 하고, 붓다가 이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성취였으므로 보리수라고 함. 상록 교목으로, 잎은 심장 모양이며 끝이 뾰족함.

*정각(正覺) ; ①깨달음. 부처님의 깨달음. 바른 깨달음. 진리를 깨닫는 것. ②부처님. 여래(如來). 진리를 깨달은 사람.

*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을 이르는 말.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35세의 12월 8일 샛별이 뜰 무렵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하(河)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불도(佛道)를 이루던 날.

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납팔(臘八)이라고 줄여 쓰기도 한다. 일명 성도재일(成道齋日).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녹야원(鹿野苑) ;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 붓다 buddha)이 35세에 성도(成道)한 후 최초로 설법을 개시한 곳이며, 이때 교진여(僑陳如) 등 5명의 비구(比丘)를 제도(濟度)하였다.

갠지스 강 중류, 지금의 바라나시(Varanasi, 베나레스 Benares)에서 북동쪽 약 7㎞ 지점에 있는 사르나트(Sarnath)의 유적이 곧 녹야원의 터. 사슴동산(녹야원), 즉 사르나트(Sarnath)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슴의 왕’을 뜻하는 ‘사란가나타(Saranganatha)’가 줄어든 말이다.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우루벨라(uruvelā) 마을의 붓다가야(buddhagayā)에서 녹야원까지는 직선 거리로 약 200㎞가 된다. 탄생(誕生:룸비니) · 성도(成道:붓다가야) · 입멸(入滅:쿠시나가라)하신 곳과 더불어 불교(佛敎) 4대 성지의 하나.

*오비구(五比丘) ;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 붓다 buddha)이 깨달음을 성취한 후, 처음으로 교화한 다섯 비구. 붓다가 출가하던 때 부왕(父王, 정반왕)의 명으로 이들은 우루벨라(uruvelā)에서 싯다르타와 함께 고행했으나 그가 네란자라(nerañjarā) 강에서 목욕하고 또 수자타에게 우유죽을 얻어 먹는 것을 보고 타락했다고 하여, 그곳을 떠나 녹야원(鹿野苑)에서 고행하고 있었는데, 깨달음을 성취한 붓다가 그들을 찾아가 설한 사제(四諦)의 가르침을 듣고 최초의 제자가 됨.

①아야교진여(阿若陳如) : 팔리어 aññā-koṇḍañña의 음사(音寫). 요본제(了本際)·지본제(知本際)라고 번역. 아야(阿若)는 이름, 교진여(陳如)는 성(姓).

②아설시(阿說示) : 팔리어 assaji의 음사. 마사(馬師)·마승(馬勝)이라 번역. 사리불(舍利弗)이 왕사성(王舍城)에서 아설시로부터 붓다의 가르침을 전해 듣고 목건련(目連)과 함께 붓다의 제자가 됨.

③마하남(摩訶男) : 팔리어 mahānāma의 음사. 대명(大名)·대호(大號)라고 번역.

④바제(婆提) : 팔리어 bhaddiya의 음사. 인현(仁賢)·소현(小賢)·현선(賢善)이라 번역.

⑤바부(婆敷) : 팔리어 vappa의 음사. 기식(氣息)·장기(長氣)라고 번역.

*삼가섭(三迦葉) ;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 붓다 buddha)의 제자인 3형제. 우루빈라가섭(優樓頻螺迦葉, 팔리어 uruvelā-kassapa)과 나제가섭(那提迦葉, 팔리어 nadī-kassapa)과 가야가섭(伽耶迦葉, 팔리어 gayā-kassapa). 모두불을 숭상하는 사화외도(事火外道)였으나 붓다의 성도(成道) 후, 큰형 우루빈라가섭이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 오백 명의 제자와 함께 그에게 귀의하자, 두 동생도 각각 삼백 명과 이백 명의 제자와 함께 붓다에게 귀의함.

*팔만사천(八萬四千) : 법수(法數)에는 이 말이 퍽 많다。그것은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또한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이것을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녹야원으로부터 발제하(跋提河)에 이르도록 단 한 글자도 설한 바가 없노라’ ; 서산대사의 『선교석(禪敎釋)』(淸虛 休靜撰)에서. ‘世尊偈云  始從鹿野苑  終至跋提河  於是二中間  未曾說一字  此固敎外別傳之謂也  智度論’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49년 동안 설하신 교설(敎說)은 활등과 같고 ~ 활구참선법은 활줄과 같이 바로 설하신 것이다’ ;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43~45 참고.

諸佛(제불)은  弓(설궁)하시고  祖師(조사)는  絃(설현)하시니  佛無碍之法(불설무애지법)은  方歸*一味(방귀일미)어니와  拂此一味之迹(불차일미지적)하야사  方現祖師所示一心(방현조사소시일심)이니  故(고)로  云(운),  庭前栢樹子話(정전백수자화)는  龍藏所未有底(용장소미유저)라 하시니라

 

부처님은 활같이 말씀하시고, 조사들은 활줄같이 말씀하셨다。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걸림 없는 법이란 바로 한맛에 돌아가거니와, 이 한맛의 자취마저 털어 버려야 바야흐로 조사가 보인 한 마음을 드러내게 된다。그러므로 ‘뜰 앞에 잣나무이니라’고 한 화두는 용궁의 장경[龍藏]에도 없다고 하시니라.

 

註解(주해)

弓(설궁)은  曲也(곡야)요  絃(설현)은  直也(직야)며  龍藏(용장)은  龍宮之藏經也(용궁지장경야)라  僧(승)이  問趙州(문조주)하되  如何是*祖師西來意(여하시조사서래의)닛고  州答云(주답운),  庭前栢樹子(정전백수자)라 하시니  此(차)는  所謂*格外禪旨也(소위격외선지야)라

【 魚行水濁(어행수탁)이요  鳥飛毛落(조비모락)이니라

 

활같이 말씀하셨다는 것은 ‘굽다’는 뜻이요, 활줄같이 말씀하셨다는 것은 ‘곧다’는 뜻이며, 용궁의 장경이란 것은 용궁에 모셔 둔 대장경이다。어떤 스님이 조주스님께 묻기를 ‘조사가 서(西)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 조주 스님이 대답하기를‘뜰 앞에 잣나무이니라’하시니, 이것이 이른바 격 밖의 선지[格外禪旨]이다.

【 고기가 놀면 물이 흐리고 새가 날면 깃이 떨어지느니라.

 

역주(譯註)

①일미(一味) : 만법(萬法) 곧 온갖 일과 모든 물질들은 천차만별(千差萬別)로 낱낱이 다른듯 하지마는 실상은 절대 평등하여 다르지 않고(不二) 똑 같은 것(眞如)이다.

②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중국에 와서 불교의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였고, 계율이나 염불이나 송주(誦呪)를 죄다 부인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觀心一法總攝諸行)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直指人心見性成佛)고 하였다.

실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성인이 나왔었다。그리하여 사람마다 다투어 묵은 불교를 버리고 이 새 법을 배우려고 하였다。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란 것은 달마조사가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的大意)란 말과 같은 말이다.

③격외선지(格外禪旨) : 참선의 도리는 보통 사람의 범상한 소견에 벗어난 것이어서 있는 마음으로나, 없는 마음으로나 다 알지 못하는 것(有心無心俱透不得)이다.

*(게송) ‘참선수투조사관(參禪須透祖師關) 묘오요궁심로절(妙悟要窮心路絶)’ ; 무문 혜개 스님의 [무문관(無門關)] 제1칙 ‘조주구자(趙州狗子)’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61 참고. *絶=(끊을 절).

*(게송) ‘수궁산진의무로(水窮山盡疑無路)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 ; 중국 남송 세대의 시인, 육유(陸遊)의 시 《遊山西村》 참고.

莫笑農家臘酒渾,年留客足豚。山重水復疑無路,柳暗花明又一村。

簫鼓追隨春社近,衣冠簡樸古風存。從今若許閑乘月,杖無時夜叩門。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이뭣고?’ 화두‘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 ; 분류 ‘이뭣고 화두’ ‘화두(공안)’ 참고.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은산철벽(銀山鐵壁) ; 철벽은산(鐵壁銀山). 은과 철은 견고해서 뚫기 어렵고 산과 벽은 높아 오르기 어려움을 나타낸 것.

*의심(疑心) :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관(疑觀) ; 의심관(疑心觀).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타성일편(打成一片) : 좌선할 때 자타(自他)의 대립이 끊어져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기연(機緣 기틀·기회·작용·때 기/인연·이유·연줄 연) ; ①시기인연(時機因緣)의 준말. 어떠한 기회 또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 계기·동기. ②중생의 소질이나 능력이 부처님 또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을 만한 인연, 조건이 되는 것. ③가르침을 주고받게 된 스승과 제자의 인연.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거각(擧却 들 거, 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일념만년(一念萬年) : 한결같은 마음.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진묵겁(塵墨劫) ; 티끌[塵]이 쌓여 먹[墨]이 될 만큼의 오랜 시간[劫].

*진즉( 좇을·뒤쫓아 따라붙을 진/곧·즉시 즉) ; 과거의 어느 때에 이미.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고행(苦行) ; 어떤 경지에 이르거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육신을 극도로 괴롭히는 수행.

*여실(如實)히 ; 사실과 꼭 같게.

*성도재(成道齋) ; 매년 12월 8일(납월 팔일 臘月八日), 석가모니가 성도(成道)한 날에 행하는 법회.

 

Posted by 닥공닥정
선(禪)과 교(敎)2014. 3. 16. 13:24

§(184) 선(禪)과 교(敎) /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교(敎)도 올바르게 이해를 하고 올바르게 공부를 허면 참선을 철저히 할 마음이 날 수 밖에는 없는 것이고, 참선(參禪)을 올바르게 허면 교가 하나도 버릴 말씀이 없어. 전부가 다 소중하고도 훌륭한 법문(法門)이라 이 말씀이여.

 

‘도를 닦는 수행인은 스승 만나기가 어렵고 또 그런 선지식은 정말 올바른 사상을 가지고 올바르게 수행을 해나갈 만한 그런 좋은 제자를 만나기가 어렵다’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스승을 만났다고 해서 스승한테 무엇을 얻을 것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스승을 만나지 아니하고서는 올바르게 수행을 해 나갈 수가 없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스승을 먼저 찾아야만 된다고 그렇게 강력히 말씀을 허신 것입니다.

 

**송담스님(참선법C)(No.184) - 1982년 10월 첫째일요법회(1982.10.03)(77분)에서.(용184)

 

약 19분.

 


참선은 아까 말씀 드린바와 같이 꼭 머리를 깎고 깊은 산중에 들어가야만 되는 것도 아니고, 머리가 있건 없건, 나이가 많건 적건, 지식이 있건 없건,
누구라도 일어나는 한 생각을 돌이켜서 「대관절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 무엇고?」 이렇게 한 생각을 돌이키면,
이것이 바로 무명(無明)을 돌이켜서 보리(菩提)로 돌아오는 길이고, 생사(生死)의 고해(苦海)에서 해탈 언덕으로 건너가는 길인 것입니다.

 이 방법이 너무 쉬웁고 너무 평범하고 너무 간단해서, 글 읽기를 좋아하고 무엇을 연구허기를 좋아하고 이론적으로 따지기를 좋아하는 그런 현대 학문을 한 지성인들은, 그 재미도 없고 만날 해봤자 답답허기만 하고, 무엇이 알아진 것도 아니고 그러니,
차라리 그러헌 참선을 허기보다는, 금강경이나 유마경이나 또는 법화경이나 그러헌 부처님 경전을 읽고 그것을 연구하고 해석을 하고, 교리적으로 연구를 허는 것이 훨씬 더 재미가 있고, 알아진 것이 있고, 또 누구 앞에 자신있게 불교에 대해서 이야기헐 수도 있고,
그러니 대부분 이러헌 지성인들이 교리적으로 이렇게 연구허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참선은 3년을 허거나 10년을 해도 해 갈수록 가슴이 답답허고 알 수가 없고 알아진 것이 없고 오히려 무엇이 알아지면 못쓴다고 그러고,
그러니 누구 앞에 3년 동안 내지 10년 동안 참선을 했으면서도 ‘참선이 무엇이냐?’ ‘어떻게 허면 깨달을 수가 있느냐?’ ‘깨달으면 대관절 무엇을 깨달으며 어떻게 되는 것이냐?’ 누가 물어봐도 ‘아, 나는 잘 모른다고’ 모른다고 대답허기가 참 창피허지 않느냐?

그러니 경(經)을 공부를 하고 외우고 해석하는 교리적으로 공부를 허면, 자기도 차츰 1시간 공부허면 1시간 공부헌만큼 얻은 바가 있고, 한 달을 공부허면 한 달을 공부헌만큼 무엇이 알아진 것이 있고,
누구 앞에 얘기를 허면 사람들이 모다 발심을 해서 불교가 참 좋다고 이렇게 따라와 주고, 그래서 경(經)을 공부를 허는 것이 좋다.

그래 가지고 참선에 대해서는 등한히 하고 교(敎)만을 갖다가 숭상하는 그러한 분들이 있습니다마는, 그러면 교(敎)와 참선(參禪)은 다른 것이냐?

 교(敎)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法門)이고, 참선(參禪)은 부처님께서 나를 깨닫기 위해서 지도하신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법(修行法)이다 그말이여.
그러면 그 수행을 바르게 허기 위해서 설하신 부처님 법문이 경전이라.

그러면 ‘경전과 수행해 나가는 수행법인 참선과는 둘이라 할 수가 없다’ 이 말이여.

둘로 노나서 ‘이것은 교(敎)고 이것은 선(禪)이다’ ‘선이 더 좋고 교가 더 나쁘다’ ‘교가 더 중요하고 선은 맞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놓고 분쟁을 하고 비방을 하고 차별을 둔다고 하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이 말씀이여.

교(敎)도 올바르게 이해를 하고 올바르게 공부를 허면 참선을 철저히 할 마음이 날 수 밖에는 없는 것이고,
참선을 올바르게 허면 교(敎)가 하나도 버릴 말씀이 없어.
전부가 다 소중하고도 훌륭한 법문(法門)이라 이 말씀이여.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 때부터서 달마 스님에 이를 때까지 인도(印度)에 있어서는 무엇이 선종(禪宗)이고 누구는 교종(敎宗)이고 그러헌 파당(派黨)이 없었다 이 말씀이여.
가섭존자나 아난존자나 상나화수 해 가지고 28대 달마 스님에 이르기까지 선사(禪師)이면 동시에 교리에도 다 통달했고 그런 것이지.

일부 어떠헌 선(禪)에는, ‘선(禪)은 가섭존자(迦葉尊者)에 의해서 전해졌고 교(敎)는 아난존자(阿難尊者)에 의해서 전해졌다’ 이렇게 말을 헙니다만은,
아난존자는 부처님의 사촌동생이고 출가해 가지고 평생 동안 부처님을 시봉을 허면서, 부처님의 법문을 다 듣고서 너무 총력(聰力)이 좋았기 때문에 부처님이 설하신 그 많은 경전을 한 구절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조르르르르 다 외웠습니다.

외울 수가 있었기 때문에 경전을 결집(結集)을 헐 때, 아난존자의 입을 통해서 그 많은 경전이 줄줄줄줄줄... 외웠습니다.
그렇게 아난존자가 한 구절씩 한 구절씩 외우면 5백 명의 아라한(阿羅漢)들이, 대도(大道)를 성취한 성현들-그 아라한들이 ‘과연 틀림이 없이 우리도 그렇게 들었다.’ 이렇게 증명을 험으로써 한 구절씩 한 구절씩 부처님의 그 경전이 결집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 것이지 아난존자에 의해서 교종(敎宗)이라 하는 그러헌 파(派)가 별도로 생기는 것이 아닌 것인 것입니다.
아난존자는 교종의 종주(宗主)가 아니고, 내나 부처님의 정법을 이어받은 제2대 조사(祖師)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법은 부처님의 수제자(首弟子)인 가섭존자에게 전해졌고 그 가섭존자는 아난존자에게 그 ‘참나’를 깨닫는 그 정법(正法)의 법등(法燈)을 아난존자에 전했고, 아난존자는 상나화수(商那和修)께 전했고, 이렇게 해서 28대 달마 스님까지 전해 내려온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교(敎)는 아난존자에 의해서 전해졌고 선(禪)은 가섭존자에 의해서 전해졌다’는 말은 전혀 그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다면은 교(敎)도 부처님께서 설하신 훌륭한 법이라면, 어째서 ‘경을 보는 것보다는 참선을 하는 것이 좋다’고 용화사에서는 법회 때마다 그런 말씀을 허니 왜 그랬느냐?
용화사에서도 금강경 또는 반야경 또는 법화경, 화엄경 이런 경을 갖다가 경 산림(山林)을 해서 경에 대한 해설도 하고 강의도 하고 허면 훨씬 더 좋지 않겠느냐?

이러헌 생각을 허실른지 모르지만, 그 경은 그 분량이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그 팔만대장경이라고 허는 방대한 경이 우리가 죽을 때까지 그놈을 다 읽고 해설을 헌다해도 다 볼 수가 없는 것이고 더군다나 그것을 낱낱이 다 이해할 수는 더욱 없는 것입니다.
현재 경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경이 한문으로 다 번역이 되어 있어서 한문을 여간 잘하는 사람 아니고서는 읽어도 다 알 수가 없고, 요새 차츰 또 경전이 번역해 나옵니다마는 번역해 놓은 경을 읽어도 또 알 수가 없습니다.

읽어도 알 수 없는 경을, 다 또 읽을 수도 없는데 그것을 읽기만 하다가 우리가 죽어버린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래서 우리가 직접 알기 어려운 그 경을 읽고 공부해서 대관절 부처님이 어떠헌 말씀을 했으며, 부처님께서 설하신 그 수행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된 것인가를 자기의 힘으로 경전을 읽음으로써 알려고 허다가는 죽을 때까지 읽어도 바른 수행법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 경을 보면 이렇게 허라고 말씀을 허셨고, 또 저 경을 보면 저렇게 허라고 말씀을 허셨고, 경마다 보면 그 경이 최고라고 말씀을 허셨으니,
대관절 그 경은 다 볼 수는 없고 어느 경 한 권이나 두 권만 봤으면 좋겠는데 경마다 그 경이 제일 좋다고 써졌으니, 어떻게 우리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그 말씀이여.

 그래서 우리 자신이 그 경을 읽어 가지고 수행을 해 나갈려고 허기보다는,
이미 그러헌 경을 잘 공부를 했거나 또는 올바른 수행법을 스승으로부터 지도를 받아 가지고 자기도 옳게 수행을 해서 옳은 수행법을 아는 그러헌 선지식(善知識)에게 구전심수(口傳心授)로 수행법을 직접 지도받아 가지고 당장 그 날부터서 수행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 가장 빠르고도 좋은 방법이라 이것입니다.

그 수행법이 책을 봐 가지고서는 해 나갈 수가 없다고 말을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 그러냐 하면 눈으로 볼 수 있는 길을 갈 때에도 처음 가는 길은 자꾸 사람에게 물어봐야 하고, 가다가 두 갈래길 세 갈래길 네 갈래길을 만나면은 그 사람한테 물어서 어디로 가는가를 물어서 가야 허는 것인데,
물어보지 않고 간다든지 또는 그 길을 잘 모르는 사람한테 물어봐 가지고 잘 모르는 사람의 지시를 받아 가지고 가다가는 어믄 길로 가게 된다 이 말씀이여.

 하물며 마음을 닦는 이 길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길이여.
마음으로 닦아 가는 길이기 때문에 우리의 사람이 지은 업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긴 모양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기 때문에,
공부를 지어나가되 처음에 시작은 모다 같은 방법으로 같이 해 나가지만 한 달, 두 달, 석 달, 일 년, 이태 해 나가다 보면 각기 다른 경계(境界)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책을 아무리 뒤져봐도 어떻게 허라고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쓰여 있지 않습니다.

천상 믿을 수 있는 자기가 믿어지는 스승이 있어야, 처음에 시작할 때에도 그러한 선지식한테 지도를 받아서 허고, 공부를 해 가는 도중에도 항시 옳게 허는가 잘못해 가는가에 대해서 점검을 받고,
어떠헌 이상한 경계가 나타날 때에도 즉각 가서 그 상황에 대해서 보고를 드리고 이것이 잘못된 것인가 옳은 것인가를 지도 받아서, 많이 못쓰게 되기 전에 즉각적으로 바로잡어 나가야만 허송세월(虛送歲月)을 아니할 뿐만 아니라 삿된 경계에 빠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한번 삿된 경계에 빠져놓으면 나중에 얼마 안 있다가 다른 선지식으로부터 ‘너의 그 경계가 올바르지 못하다’허는 것을 지적을 받아도 그 말을 믿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자기 나름대로의 경계에 맛을 붙여 가지고 깊이 빠져 들어갔기 때문에 그러헌 경계에서 빠져 나오기를 대단히 아깝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애를 쓰고 공력(功力)을 들여서 얻은 경계인데 또 이 경계가 얼마나 좋은데 어떻게 이 경계를 아니라고 허며 벗어날 수가 있을까? 나는 못 버린다’해 가지고 여간해서는 다른 사람 말을 곧이듣지를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부처님이 출현을 해도 그 사람은 제도헐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공부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서 바른 스승을 만나서 지도를 받아 가지고 옳게 시작을 해야만 허고, 중간 중간에도 항시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 해서 점검을 받아야 하고 또 어떤 특이한 경계가 나타나거나 또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에도 반드시 선지식의 점검을 받아서 인가(印可)를 받아 가지고,
깨달은 뒤의 보림(保任) 수행 해 나가는데 있어서도 직접적으로 지도를 받아야만 부처님과 똑같은 또 조사(祖師)와 똑같은 그러헌 완전한 수행의 목적지에 도달헐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달마스님께서도 그 혈맥론(血脈論)에 말씀 허시기를 ‘이금차도(而今此道)에 난득기인(難得其人)이다’. 이 도법(道法)에 있어서 사람 만나기가 어렵다.
‘도를 닦는 수행인은 스승 만나기가 어렵고 또 그런 선지식은 정말 올바른 사상을 가지고 올바르게 수행을 해나갈 만한 그런 좋은 제자를 만나기가 어렵다’ 이렇게 말씀을 허셨고,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이렇게도 말씀을 허셨습니다.

스승을 만났다고 해서 스승한테 무엇을 얻을 것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스승을 만나지 아니하고서는 올바르게 수행을 해 나갈 수가 없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스승을 먼저 찾아야만 된다고 그렇게 강력히 말씀을 허신 것입니다.(31분47초~50분1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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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無明) ; 모든 현상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는 근본 번뇌. 사제(四諦)에 대한 무지로서,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 번뇌. 본디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원초적 번뇌.
*보리(菩提) ; ‘bodhi’의 음사(音寫). 각(覺)•지(智)•도(道)라고 번역. 모든 집착을 끊은 깨달음의 지혜.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선종(禪宗) ; 문자를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선(禪)을 닦아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체득하는 깨달음에 이르려는 종파.
*교종(敎宗) ; 경론(經論)의 문자•어구를 이론적으로 풀이하고 정리하여 체계를 세우는 여러 종파를 통틀어 일컬음.
*가섭존자(迦葉尊者), 아난존자(阿難尊者), 달마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파당(派黨) ; 주의(主義)나 주장 또는 이해관계가 같은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인 집단.
*시봉(侍奉) ; ①제자 ②스님을 가까이 모시고 시중드는 일.
*총력(聰力) ; 보거나 들은 것을 오래 기억하는 힘.
*결집(結集) ; 석가모니 부처님의 입멸 후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함께 외어 기억하는 형식으로 모아서 정리한 것.
*아라한(阿羅漢) ;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 응공(應供)•응진(應眞)•무학(無學)이라 번역.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법등(法燈) ; 부처님의 가르침. 미(迷)한 세계의 캄캄한 마음을 없애는 것을 등불에 비유한 것.
*산림(山林) ; 절에서 불경(佛經)을 강설(講說)하는 모임. 산림(山林)’의 뜻은 ‘최절인아산(摧折人我山) 장양공덕림(長養功德林)’이라는 말에서 따온 것으로 “너다 나다 잘난체하는 아상과 교만의 산을 허물고, 공덕의 숲을 잘 가꾸라”는 뜻이다.
*선지식(善知識) ; 불교의 바른 도리를 가르치는 사람
*구전심수(口傳心授) ; 입으로 전하여 주고 마음으로 가르친다는 뜻으로, 일상생활을 통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배도록 가르침을 이르는 말.
*어믄 ; ‘애먼’의 사투리(전라). 애먼:(일의 결과가 다르게 돌아가)억울하게 느껴지는, 엉뚱하게 느껴지는.
*경계(境界) ; ①대상,인식 대상 ②경지 ③상태 ④범위,영역 ⑤일, 사건
*공력(功力) ; 애써서 들이는 정성과 힘.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보림 ; 보임(保任) ;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더욱 갈고 닦는 수행. 흔히 ‘보림’이라 읽는다.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혈맥론(血脈論) ;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이라고도 한다.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의 저술로 전해지고 있다.
문답형식으로 즉심시불(卽心是佛-마음 그대로가 곧 부처), 심외무불(心外無佛-마음 밖에 부처가 없다), 성불수시견성(成佛須是見性-부처를 이루려면 반드시 성품을 보아야 한다) 등의 말씀이 있다.
혈맥(血脈)은 사자상승(師資相承)이라고도 하며,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주고받아서, 정법(正法)을 상속하는 것. 신체의 혈맥이 서로 연결되어 끊어질 수 없는 것에 비유해서 말함.
[참고] [선문촬요 禪門撮要 上 血脈論] (경허성우 鏡虛惺牛 엮음)에서.
〇若不急尋師空過一生 然卽佛性自有 若不因師終不明了 不因師悟者萬中希有.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불성은 스스로 가지고 있으나 스승을 인연하지 않으면 끝내 분명히 알지 못하니,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깨닫는 이는 만에 하나도 드물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