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심 자신(自信)2018. 9. 30. 06:50

§(311) (게송)'참선수투조사관~' / 초발심시변정각 / 중생의 번뇌 망상심이 확철대오 할 수 있는 깨달음의 밭. 종자. 참선해서 깨달으면 식(識)이 바로 지(智)로 변하는 것 / (게송) '내여백운래~'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중생의 번뇌 망상심 그것이 바로 우리도 부처님이 될 수 있는 근원입니다. 그것이 확철대오(廓徹大悟) 할 수 있는 깨달음의 밭입니다. 깨달음의 종자(種子)인 것입니다.

중생심, 그것이 바로 깨닫지 못할 때에는 그것이 식(識)이거든. 전5식(前五識), 제6식, 제7식, 제8식, 이거 식(識)이지만, 참선을 해서 확철대오를 하면은 그 식(識)이 바로 지(智)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생의 식(識)을 여의고 부처님의 지(智)가 있는 것이 아니라 중생의 식(識)이 깨달으면 바로 부처님의 지(智)로 변하는 것입니다.

 

우리 불교에서는 우리 자신이 원래 부처님이었었고, 한 생각 미(迷)해서 우리가 생사윤회는 하고 있지만 탁! 깨달라 버리면 본래 우리가 부처님이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바세계(娑婆世界)가 고해(苦海)라고 우리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깨닫지 못한 우리 중생에게는 분명 이 세계는 고해입니다. 생노병사가 전부 고해(苦海)입니다.

그러나 내 자신이 본래 부처였다고 하는 사실, 우리의 본성(本性)을 깨닫고 보면 고해가 아닙니다. 이 세계가 바로 있는 고대로 극락세계가 되고, 적광토(寂光土) 불세계(佛世界)가 되는 것입니다.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고, '중생이다 부처다' 이게 본래 차별이 없는 것이여. 중생이니 부처니 한 것은 이름만 있는 것이지 본래는 똑같은 한 덩어리여.

손바닥과 주먹과의 관계와 마찬가지여. 폈다고 해서 그것이 손이 아니고 무엇이며, 주먹을 쥐었다고 해서 별것이냐? 주먹을 쥐었으나 폈을 때나 본래 손인 것이여.

 

참선을 한 것은 그 중생이거나 부처거나 성현이거나,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거나 천상(天上)에 가 있거나 어디가 있거나 간에 변함없는 자리, 우리의 본성(本性) 자리를 깨닫는 것이 우리 활구참선의 목적이여. 그런데 도(道)를 닦고 견성성불(見性成佛) 하기 가장 좋은 곳이 이 사바세계다.

 

'인간의 생명은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천하에 믿지 못할 것은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이 육체인 것입니다. 어제 건강했던 사람이 밤새 고인(故人)이 되기도 하고, 오늘 건강했던 사람이 하루 사이에 고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 몸뚱이 있을 때 어쨌든지 열심히, 이유를 붙이지 말고 뒤로 미루지 말고 목숨 바쳐서 정진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송담스님(No.311)—1986년 10월 첫째일요법회 (용311)

 

(1) 약 21분.

(2) 약 19분.

 

(1)------------------

 

참선(參禪)은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여  대오요궁심로절(大悟要窮心路絶)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전강 조실 스님께서 언제나 읊으시던 게송입니다.

참선은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여.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관(祖師關)을 뚫는 것이여.

 

우리 본참공안(本參公案), 내가 믿는 스승으로부터 받은 화두, 「이뭣고?」면 「이뭣고?」, 무자(無字)면 무자, 판치생모(板齒生毛)면 판치생모,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면 정전백수자,

어느 화두건 자기가 믿는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화두를 간택을 받았으면 공부가 잘되어 가고, 잘 못되고 한 것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잘된다고 느껴진다고 해서 공부가 꼭 잘된다고 할 수도 없는 거고, 공부가 잘 안된다고 느껴진다고 해서 그 공부가 잘 못된다고 단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해도 화두가 잘 안 들리고 안정이 잘 안되고,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지를 안 되고 화두가 여일(如一)하지를 않고, 해 갈수록 답답하고 힘이 들고 그런다 해서 그것이 공부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또 뭣한 분은 '화두를 들면 잘되고, 화두를 하면 편안하고 좋다'고 그러는데, 그렇게 느껴진다고 해서 참으로 그분이 참선이 잘되어 가고 있다고 보장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이미 스스로 잘되어 간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벌써 그게 잘 못되고 있는 것이고, 해 갈수록 답답하고 알 수가 없고 공부가 잘되는지 못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으나 다못 할려고 애쓰고 있으면 본인은 답답하고 된 것 같지 않지마는 실지는 그 사람이 공부가 옳게 되어가고 있다고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잘되네, 못되네' 그런 생각은 일으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잘된다고 해서 '잘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그게 잘된 것이겠습니까? 벌써 '잘된다'고 하는 망상 속에 안주하고 있는 것이지.

 

'잘 못된다'고 고민할 것이 없어요. 잘 못된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속에서 윤회를 해 왔으니 그놈을 갖다가 정법(正法)을 믿고 이 활구선(活句禪)을 하려고 한다고 해서 그것이 금방 한 달 두 달 일 년 이태에 그것이 금방 무엇이 잘될 수가 있겠습니까? 잘 안될 수밖에 없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요.

 

그러나 잘 안된 그때에 잘 안된다고 느껴진다고 해서 고민할 것이 없어요.

안되면 또 화두를 들고, 안되면 또 화두를 들고, 화두가 달아나 버리면 또 추켜들고 또 거각(擧却)하고, 그렇게 해 나가면—그렇게 해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렇게 애써서 해 나가다 보면 결국은 되는 때가 오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이 일요법회가 끝난 다음에 화두를 신청하신 분, 또 불명(佛名)을 신청하신 분, 또 오계(五戒)를 신청하신 분이 다 함께 다시 법요식(法要式)이 있겠습니다마는.

 

이 참선을 한번 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그 마음 내기가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 마음 한번 내서 발심(發心)을 하면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라 했습니다. 처음 마음 발(發)할 때가 문득 정각(正覺)이다. 발심 탁! 할 때가 벌써 바른 깨달음을 얻은 때다 그거거든.

 

우리는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 모든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과 같은 그런 모든 대승보살(大乘菩薩), 역대조사(歷代祖師) 참 수많은 이 깨달음을 얻은 성현들이 계시지마는, 그 성현들이 원래 우리와 똑같은 범부(凡夫)였었습니다. 또 우리도 과거 무량겁 전에는 부처님과 똑같은 본래 우리도 부처님이였었어.

 

그래서 한 생각, 처음 한 생각 탓으로 해서 불보살이 되고 성현이 되신 분도 있고, 한 생각 미끄러져 가지고 무량겁을 윤회하는 중생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한 생각 바로 잡으면 우리도 성현의 지위에 들어가게 되고.

 

'이 활구참선이 재미가 없다. 어렵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는 늙었다, 나는 여자다, 나는 근기(根機)가 하열(下劣)하다, 나는 몸이 약하다' 또는 '세속 생활이 바쁘다, 나는 죄가 많은 사람이다' 이리저리 각각 자기 나름대로 그러한 이유를 붙여 가지고 자포자기를 해.

'나는 참선은 못하고, 기도나 하고 염불이나 하고 경이나 읽어서 업장(業障)이나 소멸(消滅)을 해 가지고. 아미타불이 나를, 내가 숨 끊어질 때 아미타불(阿彌陀佛)이 나를 데리러 오실 것이다. 그때 그 배를 타고 극락(極樂)에 가야지,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참선을 해 가지고 확철대오를 하랴' 이렇게 자포자기를 하면 영겁을 두고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생의 근기(根機)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그 근기 따라서 여러 가지 방편설(方便說)을 설하셨습니다마는 구경(究竟)에 가서는 그러한 당신께서 설하신 방편법에 떨어지지 말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마지막에 부탁하신 말씀은 그 정말 그 한마디가 우리 중생을 위해서 눈물겹도록 뼈에 사무치는 그 말씀을 남기셨는데, 그 말씀은 귀담아듣지 아니하고 부득이해서 설하신 방편법에만 떨어져 가지고 스스로 이 최상승법에 들어오기를 두려워하고, 저 문전에서 서성대고 맴돌다가 담 밖에서 그리고 기웃기웃하다가 그리고 겁이 나서 돌아가 버리고.

남 따라서 한번 들어와서 요 들어보고는 별로 재미가 없으니까 그만 두고, 여기저기 다른 데로 방황을 하면서 부처님의 참 부득이해서 설하신 방편법에 빠져 가지고 최상승법에 들어오지 못한 그런 안타까운 사람들이 너무나 많음을 생각할 때 참 가슴 아프기 그지없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사부대중 여러분은 최상승법, 일승법, 대승법,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은 어디에다 근본을 두었냐 하면은 중생심에다가 근본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중생심(衆生心),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중생의 번뇌(煩惱) 망상심(妄想心).

눈을 떠 있을 때에는 눈을 통해서, 귀를 통해서, 코를 통해서, 입을 통해서, 몸뚱이를 통해서 또는 생각을 통해서 일분일초도 쉴 사이 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졌다 일어났다 없어졌다 하는 중생의 번뇌 망상심, 그리고 잠잘 때는 몸뚱이는 가만히 누워 있는데 꿈을 통해서 그 잠재의식이 끊임없이 활동을 합니다.

 

그리하면서 한평생을 살다가 또 몸을 바꾸어서 어디엔가 또 태어나 가지고 또 한평생을 살고 이리 지내는데, 그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중생의 번뇌 망상심 그것이 바로 우리도 부처님이 될 수 있는 근원입니다. 그것이 확철대오(廓徹大悟) 할 수 있는 깨달음의 밭입니다. 깨달음의 종자(種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그 제8식(第八識)을 여래장(如來藏)이라 그러거든. 여래(如來), 여래가 그 속에 소장이 되어 있다. 여래가 그 속에 갈무려 있다. 그래서 여래장이라고 그러거든.

 

중생심, 그것이 바로 깨닫지 못할 때에는 그것이 식(識)이거든. 전5식(前五識), 제6식, 제7식, 제8식, 이거 식(識)이지만, 참선을 해서 확철대오를 하면은 그 식(識)이 바로 지(智)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생의 식(識)을 여의고 부처님의 지(智)가,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식(識)이 깨달라 버리면, 중생의 식(識)이 깨달으면 바로 부처님의 지(智)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생 동안을 하느님을 믿고 목숨을 바쳐서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예수교에 있어서는 하나님은 유일신이고 절대자이기 때문이고, 우리 중생은 하나님의 피조물이여.

하나님이 이렇게 진흙으로 만들어 가지고 이렇게 해서 아담과 헤와를 만들어 가지고 거기다 생명력을 불어 넣어가지고 에덴동산에 놔뒀는데, 금단의 과일을 먹은 죄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가지고 그래 가지고 이 세계로 쫓겨나 가지고 그래서 이 자손이 번식한 것이 우리 인간이다.

 

그 예수교에서는 그렇게 말하는데, 그래서 우리 죄 많은 중생이 아무리 하나님을 믿어도 직접 하나님이 될 수는 없고, 천당에는 갈 수가 있다 그러는데,

우리 불교에서는 우리 자신이 원래 부처님이었었고, 한 생각 미(迷)해서 우리가 생사윤회는 하고 있지만 탁! 깨달라 버리면 본래 우리가 부처님이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바세계(娑婆世界)가 고해(苦海)라고 우리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깨닫지 못한 우리 중생에게는 분명 이 세계는 고해입니다. 생노병사가 전부 고해(苦海)입니다.

그러나 내 자신이 본래 부처였다고 하는 사실, 우리의 본성(本性)을 깨닫고 보면 고해가 아닙니다. 이 세계가 바로 있는 고대로 극락세계가 되고, 적광토(寂光土) 불세계(佛世界)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는 여러 가지 종교가 있습니다. 내가 다른 종교가 나쁘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불교의 진리가 얼마나 높고 얼마나 깊고 얼마나 위대하다고 하는 것을 내가 말하고 있는 것뿐인 것입니다.

 

우리 불자(佛子)가 우리 불법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확실히 알지 못하면 우리가 불법을 참으로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불법의 위대함을 잘 모르고 그 방편에 빠져서 기복(祈福)이나 하고, 중생의 욕구를 충족하는 방편으로 불법을 믿고 이리 하다가 무엇이 뜻대로 잘 안되고 장사가 잘 안되고 하면 그냥 다른 종교로 개종을 해 버리는 것입니다.

 

불법이 참으로 위대하고, 그 위대한 불법이 어째서 위대한 것인가를 우리는 잘 알아야 하고, 그것을 안다면 올바르게 믿고 실천하게 되고 퇴태(退怠)할라야 할 곳이 없는 것입니다. 어디 무슨 개종을 하다니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다른 종교를 믿다가 불교로 돌아오는 것은 그것은 당연한 것이여. 다른 종교는 우리 부처님의 법에 비추어서 보면 천만분의 일도 못되는 그런 아주 옅은 방편법 한두 가지를 교리로 삼고 거기에 의지해서 모다 종교 생활을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교 내에는 세계에 모든 종교의 교리가 불교 안에는 다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는 우리의 이 높고 넓고 깊은 이 불교를 표용할 수가 없습니다. 끝없이 넓고, 밑 없이 깊고, 한량없이 높기 때문에 다른 종교는 우리 불교를 표용할 수가 없습니다.

 

산간의 계곡에서 이쪽 계곡에서 저쪽 계곡으로 날아가고, 저쪽 언덕에서 요쪽으로 날아다니는, 산에는 그 시내를 중심으로 해서 이 나뭇가지에서 저 나뭇가지로 이리 파르르르 날으고, 저기서 요리 파르르 날으고 하는 그런 산새들이 있습니다.

조그마한 모다 밤톨만한 산새들이 있는데, 그런 산새는 압록강이나 또는 양자강 또는 황하 같은 그런 큰 강이 있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저런 큰 강에 사는 큰 새들이 있습니다. 오리라든지 두루미라든지 그런 새들이 있는데, 그 뱁새와 두루미나 갈매기 같은 그런 새들이 만나 가지고 뱁새한테 그런 압록강이나 황하나 양자강 같은 그런 넓은 강이 있다고 하는 것을 얘기를 해 주어도 뱁새는 믿지를 않습니다.

믿지 않고 '미친놈, 다리만 기다란한 것이 소가지 없이 그런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도대체 그런 키 크고 속없다드니, 어디가 그런 것이 있느냐? 지금 내가 여기 살고 있는 그 시내 계곡보다 더 큰 계곡이 어디가 있느냐?' 도저히 믿지를 않습니다.(20분33초~41분28초)

 

 

 

 

 

(2)------------------

 

양자강이 넓고 황하가 넓다 하지마는 정말 태평양 같은 바다, 이러한 바다가 있는 것을 또 알지를 못합니다. 바다를 건너는 그런 이 새, 바다를 지나보는 새 앞에는 바다 얘기를 해 봤자 이해를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도 그 바닷가를 가보지 아니한 사람은 바다가 정말 끝없이 넓다고 하는 사실을 이해를 못하는 것입니다.

 

정말 이 불법을, 이 대승법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한 사람이 아니면 불법의 위대성은 참으로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경이 좋다하니까 경을 부지런히 독송을 하고, 염불이 좋다니까 염불을 열심히 하고, 주문이 좋다니까 주문을 열심히 외우고, 또 '무슨 기도를 열심히 하니까 소원을 성취했다, 병이 나았다, 재수가 대통했다'

이러한 식으로 불법을 믿는 사람은 이 활구참선, 앞도 뒤도 없고 머리도 꼬리도 없고 도대체 어디다 어떻게 손을 내려야 할지 분간할 수 없는 이 활구참선은 그 믿어지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정말 믿어지기가 어려운 것이여. 들어도 믿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정말 이 활구참선법이 철저하게 믿어지고 그곳을 향해서 목숨을 바쳐.

내가 금생에 확철대오를 못하면은 마지막 죽는 그 찰나, 숨 딱! 끊어질 그때까지도 '이뭣고?'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하면서 숨이 딱! 끊어지도록. 이렇게 되어버려야 하거든.

 

'아! 내가 3년을 해도 이렇게 깨닫지를 못하고 아마 내가 이 참선을 잘못한 게 아니냐? 이거 내가 참선에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냐? 나 같은 죄 많은 것이 공연히 진즉부터 아미타불(阿彌陀佛)이나 부를 것을 괜히 이거 참선 한 것 아니냐? 지금이라도 이것 그만두고 아미타불을 할까? 내가 죽을 날이 멀지 아니한데 아미타불을 불러놔야 숨 끊어지자마자 아미타불이 반야용선(般若龍船)을 가지고 나를 데리러 오실 텐데' 이렇게 생각이 흔들려.

이거 신심(信心)이 철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 생각이 투철해 버리면 어디에 가서 마음이 흔들릴 것입니까?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고, '중생이다 부처다' 이게 본래 차별이 없는 것이여. 중생이니 부처니 한 것은 이름만 있는 것이지 본래는 똑같은 한 덩어리여.

손바닥과 주먹과의 관계와 마찬가지여. 폈다고 해서 그것이 손이 아니고 무엇이며, 주먹을 쥐었다고 해서 별것이냐? 주먹을 쥐었으나 폈을 때나 본래 손인 것이여.

 

또 물이 백 도가 되면은 수증기가 되고, 섭씨 영 도가 되면은 고체가 되는데, 고체가 되어서 얼음이 되었을 때나 그놈이 녹아서 물이 되었거나, 또는 그놈이 수증기가 되었거나, 그 물이 물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그 습성(濕性)은 조금도 변함이 없는 거여.

다만 그때 상황 되어서 기체가 되기도 하고 또 액체가 되기도 하고, 고체가 되기도 한 것뿐이지 물의 본성은 변함이 없는 것이여.

 

이 참선을 한 것은 그 중생이거나 부처거나 성현이거나,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거나 천상(天上)에 가 있거나 어디가 있거나 간에 변함없는 자리, 우리의 본성(本性) 자리를 깨닫는 것이 우리 활구참선의 목적이여.

그런데 도(道)를 닦고 견성성불(見性成佛) 하기 가장 좋은 곳이 이 사바세계다.

 

천당, 참 좋지요.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다 되고, 일체의 괴로움이 없어. '먹고 싶다'하면 벌써 배가 불러져 있고, '보고 싶다'하면 그것이 눈앞에 와 있고, '가고 싶다'하면 벌써 그 현장에 가서 있는 것입니다.

일부러 걸어가고, 일부러 무엇을 입을 통해 먹고 그런 게 아니에요. 하나에서부터 백 가지가 한 생각 딱! 내면 벌써 그것이 이루어져 갖고 있는 것이여. 전부가 다 내 마음대로여.

 

그렇게 편하고 좋고 그러나 그 낙(樂) 받느라고 도 닦을 필요도 느끼지도 않고 도도 닦을 수가 없어. 그러니 거기에 있으면 참 기가 막히게 좋은 건 사실이나, 영원히 그곳에 있게 된다면 또 별문제인데.

거기는 이 지구보다 대단히 그 시간이 깁니다. 지구의 몇백 년이 거기에 하루 낮이 되기 때문에 상당히 오랫동안 거기에 머물러서 낙(樂)을 받게는 되겠지만 그것도 끝이 있어서, 한도가 있어서 자기가 지은 복만큼 그 낙을 받아 버리면 또 다시 뚝 떨어져서 인도(人道)에 떨어지기도 하고, 축생에 떨어지기도 하고, 또 아수라나 아귀나 지옥에 떨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이 정법을 믿는 사람,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천당 그렇게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가 봤자 영원성이 없고, 그까짓 좀 편하고 좋으면 뭐하는 거여 그게. 여러분도 편한 생활을 지내보신 분은 알겠지만 별로 재미가 좋지 못합니다.

 

그리고 지옥이나 축생은 너무 고(苦)가 많아요. 지옥은 너무 고가 많아서 거기서는 또 도를 닦을 수가 없고.

축생은 배불리 먹으면 좋고, 또 다 인간과 같이 이성 간에 새끼도 낳고 모다 그럭저럭 그렇게 사는데, 그건 귀가 뚫리지를 못해 가지고 법문을 들을 수가 없어. 축생계는 항상 공포와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은 것이요.

 

인간세계는 고(苦)도 있고 낙(樂)도 있고 그래도 이 귀가 있어서 정법을 들을 수도 있고, 법문을 들어서 우리도 확철대오를 해서 견성성불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이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배불리 먹은 것으로써 행복의 구경(究竟)을 삼고, 좋은 옷 입은 것으로써 낙(樂)을 삼고, 명예나 권리 누린 것으로써 출세를 삼고서 그런 정도의 인간밖에는 안되고, 확철대오를 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는 도리를 믿고 실천할 줄 모르는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뽐낼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러냐? 짐승이나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배불리 먹고, 좋은 옷 입고, 호강하고 부귀공명 그런 것이 인생의 전부인줄 믿고 그것을 목표로 하고 일생을 그렇게 살다 말아 버린다면—개도 주인 잘 만나고, 서양 같은 데 태어나면은 개도 참 호강하고 산다고 그럼니다. 다 주인과 같이 한 침대에서 자고, 다 끼니 찾아서 고급으로 먹고, 미장원에도 다니면서 개도 화장 다 합니다. 그러면 그 개가 사람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배부르고, 등 뜨시고, 옷 잘 입고 큰소리치고 사는 것이 인간의 구경의 목적이라고 한다면, 구태여 이 가난한 나라에 태어나지 말고 미국의 개로 태어난다면 그 뭐 천당에 따로 갈 것이 없습니다. 다 차도 맘대로 타고 다니고 비행기도 타고 다니고.

 

인간으로 태어나서 무엇 때문에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냐?

우리는 진리와 하나가 될 수가 있어. 진리를 깨달아서 생사윤회로부터 해탈할 수 있는 그러한 사람, 그래서 그것을 사람이라 그러고, 그것이 그래서 만물지영장(萬物之靈長)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참선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걸어가면서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시고서 내쉬면서 '이뭣고?' 한마디에 생사해탈이 거기에 있고 확철대오 하는 길이 거기에서 열리는 것입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시지 말고, 어렵게 생각하시지 말고, 그저 그렇게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이 법회가 끝나고 화두 수여식이 있습니다마는. 그렇게 해 나가시면 스스로 「아! 과연 이 법이 정법이고, 이 법이 활구 최상승법이로구나」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얻은 바가 없지만 천하에 부러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지만 이 우주법계가 전부 내 콧구멍으로 다 드나들게 되고, 전부 내 주먹 안에 다 들어오게 되는 것이여. 이 우주법계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내여백운래(來與白雲來)여  거수명월거(去隨明月去)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거래일주인(去來一主人)이  필경재하처(畢竟在何處)오

나무~아미타불~

 

내여백운래(來與白雲來)여. 백운(白雲), 흰구름과 더불어, 올 때에는 흰구름과 더불어 오고,

거수명월거(去隨明月去)다. 갈 때에는 밝은 달을 따라서 가더라.

 

거래일주인(去來一主人)이, 이 오고가고 한, 구름 따라서 오고 명월 따라서 간 이 거래(去來)한 이 한 주인이 필경(畢竟)에 재하처(在何處)냐? 필경에 어느 곳에 있는고?

 

우리가 지금 이 세상에 백운처럼 왔습니다. 어디서 왔는지 온 곳은 알 수가 없으나 마치 흰구름이 어디서 일어났는지 일어난 곳도 모르지마는 하늘에 한 덩어리 흰구름이 떠오듯이 이 세상에 우리는 왔습니다. 부모의 몸을 빌려서 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평생 살다가 결국은 저 밝은 달이 산너머로 넘어가듯이 우리는 이승을 떠나서 갈 것입니다. 어디로 갈는지는 모르지만 한번 온 사람은 반드시 또 가고야만 마는데, 구름처럼 왔다가 달처럼 가는 이 한 물건이 필경에 어느 곳에 있느냐?

 

'인간의 생명은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천하에 믿지 못할 것은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이 육체인 것입니다. 어제 건강했던 사람이 밤새 고인(故人)이 되기도 하고, 오늘 건강했던 사람이 하루 사이에 고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 몸뚱이 있을 때 어쨌든지 열심히, 이유를 붙이지 말고 뒤로 미루지 말고 목숨 바쳐서 정진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41분33초~60분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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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참선수투조사관(參禪須透祖師關) 묘오요궁심로절(妙悟要窮心路絶)’ ; ‘참선을 하려면 조사의 관문을 뚫어야 하고, 오묘한 깨달음은 마음 길이 끊어져야 한다’

[참고] 『무문관(無門關)』 (무문 혜개 스님) 제1칙 ‘조주구자(趙州狗子)’ .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61. *絶=絕(끊을 절).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선지식(善知識) ; ①정직하고 덕(德)이 있는 벗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하여 다른 이로 하여금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나 이상경(理想境)에 이르게 하는 이. ②남녀•노소•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불연(佛緣)을 맺게 하는 사람. ③지식(知識)•선우(善友)•친우(親友)•선친우(善親友)•승우(勝友)라고도 함.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불명(佛名) ; 법명(法名). ①출가하여 절에서 행자(行者)로서 일정 기간 동안 수행한 뒤, 계(戒)를 받을 때 스승이 지어 주는 이름. ②스님이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한 남녀신자에게 지어 주는 이름.

[참고] 송담스님(No.470)—92년 4월 첫째 일요법회

〇불법(佛法)에의 깊은 인연으로, 발심(發心)해서 진리를 향해서 살아가는 부처님의 아들딸로 새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불보살(佛菩薩)의 이름을 따서 불명으로 받는다. 더 철저히 말하면 그때마다 불명을 받을 수는 없지만, 참선 수행을 통해서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야 하고 시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

*법요식(法要式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요긴할·원할·얻을 요/법·제도·의식 식) ; ①법요(法要 : 법法의 요체要諦,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를 닦아 익히는 법식(法式). ②불사(佛事 : 재齋,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의 의식. 법회(法會 : 불법을 강설하거나 불보살과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행사 모임).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초발심(初發心) ; 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인 보리심(菩提心)을 처음으로 일으킴.

*정각(正覺) ; (산스크리트어)sambodhi. 삼보리(三菩提)라 음역. ①깨달음. 부처님의 깨달음. 바른 깨달음. 진리를 깨닫는 것. ②부처님. 여래(如來). 진리를 깨달은 사람. 정등각(正等覺). 등정각(等正覺). 정등보리(正等菩提).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가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참고] 송담스님(No.88)—(참선법A) 법련사 불교학생회 청법 법문(1978.10.1)에서.

〇‘중생 말세다, 중생 근기가 미약하다, 그러니까 참선법 가지고는 안되고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이러한 것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마는, 말세라고 하는 것은 편의에 따라서 정법 시대, 상법 시대, 말법 시대 이렇게 해서 말씀해 놨지만은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하근기가 아니라 상근기(上根機)인 것입니다.

 

아무리 부처님 당시에 태어났으되 이 법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하근기인 것이고, 지금 삼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 태어났어도 이 활구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실천에 옮긴 사람이면, 그 사람은 바로 정법 시대 사람이요, 그 사람은 상근기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선법을 배우고자 하고, 참선에 의해서 자아를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냈을 때 여러분은 이미 정법 시대를 만나 것이고, 여러분은 상근기인 것입니다. 조금도 그런 염려를 마시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결정코 금생에 ‘참나’를 자각하도록 도업을 성취하기를 간절히 빕니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구경(究竟 궁구할 구/마칠·다할 경)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그 위에 더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제팔식(第八識) ;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참고] 〇아뢰야식(阿賴耶識) ;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는 산스크리트어 ālaya의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아뢰야(阿賴耶)를 진제(眞諦)는 a(無)+laya(沒)로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玄奘)은 ālaya로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〇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8가지 마음 작용.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 8식(八識)이다.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식(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제6의식), 第七 末那識(제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제8아뢰야식)이라 한다.

*여래장(如來藏) ; 산스크리트어 tathāgata-garbha 본래부터 중생의 마음 속에 감추어져 있는 여래가 될 가능성. 중생의 마음 속에 저절로 갈무리되어 있는 여래의 청정한 씨앗. 중생이 모두 갖추고 있으나 번뇌에 가려져 있는 여래의 성품. 모태(母胎)의 태아(胎兒)처럼, 중생의 마음 속에 간직되어 있는 부처의 성품.

*식(識) ; 오온(五蘊) 중 하나. 십이연기(十二緣起)의 세 번째 지분으로 지각(知覺), 요별(了別)의 의미를 갖는다. 대상을 알게 하는 정신적 작용이다.

이 식에 관하여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6식설(六識說) · 8식설(八識說) · 9식설(九識說)이 널리 채택되고 있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가 모두 채택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6식설은 그 발생 근거에 따라 6가지 식(識)을 열거 한다.

 

눈[眼] · 귀[耳] · 코[鼻] · 혀[舌] · 몸[身] · 뜻[意] 등 외부의 사물을 인식하는 감각기관인 6근(六根)이, 물질[色] · 소리[聲] · 향기[香] · 맛[味] · 감촉[觸] · 법(法)의 6가지 외부적인 대상인 6경(六境)을 대할 때 생겨나는 6가지 인식작용이 6식(六識)이다.

즉, 눈이 물질을 대할 때 보는 안식(眼識)이 있으며, 귀가 소리를 대할 때 듣는 이식(耳識)이 있으며, 코가 냄새를 대할 때 냄새를 맡는 비식(鼻識)이, 혀가 맛을 대할 때 맛을 감지하는 설식(舌識)이, 몸이 감촉을 대할 때 느끼는 신식(身識)이 있으며, 의(意)가 법(法)을 대할 때 '안다'는 의식(意識)이 있다.

이와 같이, 6근 · 6경 · 6식은 서로 연관 속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그 어느 것도 독립적으로 있는 것은 없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제6식인 의식이 근본이 되어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 전5식(前五識)을 통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식(意識)을 심왕(心王)이라고도 한다.

 

전오근(前五根), 곧 안 · 이 · 비 · 설 · 신(眼耳鼻舌身)에 근거하여 발생하는 전5식(前五識)은 언어를 매개로 하지 않은 일종의 감각지각이고, 제6의식(意識)은 언어를 매개로 하지 않는 지각과 언어를 매개로 한 인식 등 두 측면을 모두 갖고 있다.

 

8식설은 앞의 6식설에 제7 말나식(末那識)과 제8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더한 것이다. 말나식은 제6식의 밑에서 조절하는 강한 자의식(自意識)으로서, 범부가 쉽게 감지할 수 없는 의식이다. 이 말나식은 아치(我癡) · 아견(我見) · 아만(我慢) · 아애(我愛)의 번뇌가 자리를 잡고 있어서 이들을 제거하면 7식이 맑아져서 아공(我空)의 경지를 이룰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제8 아뢰야식은 일반적으로 장식(藏識)이라고 번역된다. 장식이란 곧 여래를 감추고 있는 식이라는 뜻으로, 비록 중생이 생사 속에 있지만 이 감춰져 있는 여래만은 결코 상실되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아뢰야식이 올바로 발현될 때 곧 여래(如來)가 된다고 보고 있다. 이 제8식에 대한 견해는 불교에 여러 학설이 있다.

*'참선을 해서 확철대오를 하면은 그 식(識)이 바로 지(智)로 변하는 것' ; 전식득지(轉識得智). 수행자가 수행이라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 자신의 번뇌에 오염된 8식을 지혜로 변형시키는 것을 말한다. 전식성지(轉識成智)라고도 한다.

식(識)이 지(智)로 변화되는 것을 전의(轉依)라고 하는데, 전의(轉依)의 뜻은 ‘소의(依, basis) 즉 발동근거를 바꾼다(轉)’로 성도(聖道) 즉 수행을 통해 번뇌에 오염된 8식을 지혜(智)로 변형시키는 것, 즉 질적 전환시키는 것을 말한다.

전(轉)은 전변(轉變) 또는 능변현(能變現)의 뜻으로 능동적으로 바꾸고 변화시키는 것을 말하고, 득(得)은 획득(獲得)과 성취(成就)를 말한다.

 

번뇌에 오염된 중생의 유루(有漏:세속)의 마음인 ‘8식’(八識-전오식, 제6의식, 제7말나식, 제8아뢰야식)을 질적으로 변혁하여[轉識得智] 얻은 4가지 무루(無漏:열반)의 청정한 지혜—사지(四智)는 다음과 같다.

 

①대원경지(大圓鏡智) ; 인간의식의 심연에 있는 무명(無明)에 오염된 제8아뢰야식(阿賴耶識)을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이 지혜는 마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내는 크고 맑은 거울처럼, 제8아뢰야식에서 무명(無明)의 오염이 완전히 제거된 원만하고 분명한 지혜이므로 ‘크고 둥근 거울과 같은 지혜[大圓鏡智]’라고 말한다.

②평등성지(平等性智) ; 인간의 자의식(自意識)에 해당하는 오염된 제7말나식(末那識)을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제7식은 원래 나와 남에 대한 구별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의식이므로 여러 가지 차별을 낳게 된다.

그러나 일체가 한결같고 평등함을 관하여,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생기는 자타에 대한 차별적인 견해를 떠나, 자타(自他)의 평등을 깨달아 대자비심(大慈悲心)으로 바꾸기 때문에 중생교화를 위한 평등한 지혜[平等性智]가 발현된다는 것이다.

③묘관찰지(妙觀察智) ; 오염된 제6식(第六識)인 의식(意識)을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이 지혜는 모든 법(法)의 실상을 묘하게 잘 관찰하여 자유 자재로 가르침을 설하고 중생의 의심을 끊어 주는 지혜이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④성소작지(成所作智) ; 눈·귀·코·혀·몸의 5관으로 느끼는, 오염된 전5식(前五識)을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이 지혜는 5관으로 행하는 일을 올바로 이루도록 하여, 중생을 이익과 구제하기 위해 여러가지 불가사의한 일을 모두 성취하는 지혜[成所作智]이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참고] **송담스님(No.366)—88년(무진년) 칠석차례 법어(88.08.18)에서.

우리 중생은 그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전5식(前五識)과 6식(六識, 意識)과 7식(말나식), 8식(아뢰야식), 이런 식(識)으로 해서 일생을 살아가고, 식(識)으로 해서 업을 짓고, 식(識)으로 해서 일체 생사윤회를 하는데,

그 일어나는 육근(六根), 육경(六境), 육식(六識), 이 십팔경계에 있어서 염념불망(念念不忘)으로 화두를 단속해 나가면, 화두가 타성일편이 되고, 그 의단이 독로해 가지고 그것이 툭! 터져 버리면 자성을 깨닫게 되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게 되는데,

 

그 자기 본래면목을 바로 깨닫자마자, 그 깨닫기 전의 중생의 그 육근, 육경, 육식 그 식(識)이 부처님의 지(智)로 변해버리는 것입니다.

 

지(智)가 딴 데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식(識)이 찰나 간에 변해 가지고 지(智)로 변하는 것이여. 식(識)이 지(智)로 변하는 것이지, 식(識)이 없어지고 지(智)가 어디서 따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 도리를 잘 인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생의 마음을 떠나서 부처님이 없어. 우리의 중생의 마음을 버리고서 그 부처님이 어디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여. 중생의 마음, 그것이 바로 일념무생(一念無生)하는 도리를 요달해 버리면 거기에서 바로 성불을 하는 것입니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퇴태(退怠 물러날 퇴/그만둘·물러설 태)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오는 것. 불교를 믿는 마음에서 물러나 다른 데로 옮기는 것. 퇴타(退墮),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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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용선(般若龍船) ; 생사의 고해(苦海)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반야(船若, 지혜)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彼岸)의 극락정토로 중생들을 건네 주는 반야바라밀의 배[船]를 말한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③‘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할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영장(靈長) ; 영묘(靈妙)한 능력을 가진 우두머리[長]. 인간을 다른 생물과 대비하여 이른다.

*(게송) '내여백운래(來與白雲來)~'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著) ‘곡망승(哭亡僧 스님의 죽음에 슬퍼하며 소리 내어 울다)’ 참고.

*생사재호흡지간(生死在呼吸之間) ; ‘생사(生死)가 한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 생사라 하는 것은 멀리 잡을 것이 아니라 하루도 멀고, 한끼도 멀고, 한 호흡 사이에 있다고 하는 것. 그렇게 무상하고 기약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생사인 것이다.

*호흡지간(呼吸之間) ; 한 번 내쉬고[呼] 들이쉬고[吸] 할 사이[間]라는 뜻으로, 아주 짧은 시간을 이르는 말.

[참고]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제38장’

佛問沙門 人命在幾間 對曰數曰間 佛言 子未知道 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 對曰飯食間 佛言 子未知道 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 對曰呼吸間 佛言 善哉子知道矣

 

부처님께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는 아직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밥 먹을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도 아직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호흡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너는 도를 아는구나”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고인(故人 옛 고/사람 인) ; 죽은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

 

Posted by 닥공닥정
천도재(영가천도)2016. 3. 7. 15:55

§ (3)송담 스님 영가천도 법문.(수설운산천만사~)

 

약 13분.

 

수설운산천만사(雖說雲山千萬事)라도  해천명월본무언(海天明月本無言)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수설운산천만사(雖說雲山千萬事)라도, 비록 구름산과 같은 천만 가지 일에 대해서 말을 한다 하더라도 수천 가지의 말을 한다 하더라도, 해천명월본무언(海天明月本無言)이다. 바다 하늘에 밝은 달은 본래 아무 말도 없구나.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원컨댄 솔바람 불고 칡덩쿨 얼크러진 사이로 비친 밝은 아래 들어가서,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다. 길이길이 샘이 없는[無漏] 조사선(祖師禪) 관하고자 하노라. 이러한 게송을 읊었습니다.

 

왕궁의 부귀(富貴), 하늘을 찌르는 영화(榮華) 이것이 모두 일장춘몽(一場春夢)이여. 한마당 봄날 꿈꾸는 것에 지내지 못한 것이여. 잠깐 동안 꿈꾸는 것에 지내지 못한 것인데.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전륜성왕(轉輪聖王) 부귀와 영화를 헌신짝처럼 버리시고 히말라야, 설산에 들어가서 무서운 고행을 하셨어. 그래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 하셔서 팔십 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실 때까지 우리 중생을 위해서 생사 없는 도리를 설하셨습니다.

 

하물며 우리 중생들이 부자고, 살고, 무슨 권리가 있고 명예가 있기로서니, 어찌 전륜성왕의 백분의 , 천분의 일에도 해당이 그러한 달팽이 뿔만치도 못한 그런 인생의 부귀영화에 무슨 애착을 가질 만한 것이 있겠습니까.

 

영가(靈駕) 다행히 숙세(宿世) 심은 공덕(功德) 있어서 용화사 법보전(法寶殿)에서 영원히 생사 없는 열반(涅槃) 세계에 가시게 되었습니다

사바세계(娑婆世界) 몸담아 있는 동안에 느끼고, 보고, 생각하고 마음속에 남아있던 좋고 나쁜, 기쁘고 괴롭고 슬픈 일체 생각은 시간을 기해서 봄눈 녹듯이 자취 없이 녹아 없어졌습니다.

 

 

과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번 태어난 사람은 시시각각으로 변해서 다시 죽음을 맞이합니다.

생사(生死) 깨닫지 못한 분상(分上)에는 생사지마는, 깨닫고 보면 생사 없는 이치를 깨닫고 보면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여.

다맛 모든 것은 질서와 섭리에 따라서 시시각각으로 변해 뿐이지 그것이 어찌 두려워하고 싫어할 생사가 아니다 이거거든. 깨닫지 못한 것을 한탄할지언정 생사를 미워하고 두려워할 것은 없는 것입니다.

 

깨닫고 보면 생사(生死) 열반(涅槃)이요. 번뇌(煩惱) 보리(菩提) 변하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의 온갖 () 깨닫고 보면 그것이 지혜로 변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우리 살아 있는 사람도 오늘 돌아가신 모든 영가들의 천도재를 기해서 우리보다 걸음 앞서간 그분들을 보고서 우리 자신을 돌아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명예나, 권리나, 재산이나, 인간에 있어서의 부귀영화라 하는 것은 전혀 믿을 것이 못되는 것입니다.

믿을 것이 못되는 것을, 영원성이 없는 것을 그것이 영원성이 있는 것처럼 착각을 하고 거기에 국집(局執) 해서 정말 목숨 바쳐서 우리가 닦아야 , 자신을 깨달아야 수도(修道) 등한(等閒)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해천공활월성륜(海天空濶月成輪)한데  호호청파난사은(浩浩淸波爛似銀)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막괴편주능좌우(莫怪扁舟能左右)한데  행선유재파초인(行船由在把梢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해천(海天), 바다 하늘이 비고 넓어서 거기에 달이 휘황청 밝았는데, 호호청파난사은(浩浩淸波爛似銀)이여 호호(浩浩), 넓은 청파(淸波)에는 마치 은가루를 부어 놓은 것처럼 찬란하게 번쩍거리고 있더라.

 

사바세계가 깨닫지 못한 분상에는 생사고해(生死苦海). 흥망성쇠 속에서 슬픔과 괴로움과 외로움으로 모두 그렇지만, 깨달은 분상에는 이것이 바로 극락세계(極樂世界) 조금도 다름이 없고, 이것이 모든 불보살이 계시는 적광토(寂光土) 그말이여. 춘하추동, 생로병사, 희로애락 이것이 고대로 불세계(佛世界) 있어서의 장엄(莊嚴)이다 그말이여.

 

막괴편주능좌우(莫怪扁舟能左右)하라. 조각배가 왼쪽으로 가고, 동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가고,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가고 하는 것이 온전히 배에 노를 젓는 사람의 손에 달려 있더라(行船由在把梢人).

 

하늘에는 태양이 빛나고, 밤이 되면은 달이 휘황청 밝고, 봄에는 꽂이 피고, 가을에는 열매를 열고, 겨울에는 눈이 쏟아지는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아름다운 대자연을 생사의 고해로 만드느냐? 극락세계로 자기가 수용하느냐는 온전히 우리 자신들의 마음 하나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지옥 세계를 스스로 만들어 놓고 지옥고(地獄苦) 받을 것이냐? 극락세계를 장엄해 놓고 극락세계의 영원한 안락을 누릴 것이냐? 생각 돌이켜서 스스로 자기의 길을 정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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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願入松風蘿月下  長觀無漏祖師禪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무루(無漏) ; 마음과 몸을 괴롭히는 번뇌에서 벗어남.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마음 상태. 번뇌가 사라진 경지.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일장춘몽(一場春夢) ; 한바탕의 봄꿈이라는 뜻으로, 헛된 영화나 인간 세상의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전륜성왕(轉輪聖王) ; 산스크리트어 cakravarti-rāja 인도 신화에서, 칠보(七寶) 갖추고 정법(正法)으로 수미산(須彌山) 사방에 있는 대륙을 다스리는 . 32(:신체의 특징)·7() 갖추고, 무력에 의하지 않고 정법에 의해 세계를 정복·지배한다고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 ()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숙세(宿世 지날·묵을 /세상·시대 ) ;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宿] 세상[].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공덕(隨喜功德)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법보전(法寶殿) ; 법보전은 용화선원의 ()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 전당이라는 .
그래서 진리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 모셨고,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 음사. (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상태라는 .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분상(分上 분수 , )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번뇌(煩惱 번거러울 /괴로워할 )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성냄()•어리석음()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앞의 () () ()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이러한 번뇌[]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 과보를 받게 된다. [ 三道]

*보리(菩提) : [] bodhi  () • () • ()이라 번역。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곧 불과(佛果)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범어의 음대로 쓰면 '보디'라고 하겠지만, 우리 말의 관습상( —> ) '보리' 읽는다。따라서 '보제' '보데'로는 읽지 않아야 것이다.

*우리 중생의 온갖 () 깨닫고 보면 그것이 지혜로 변하는 ; 전식득지(轉識得智). 수행자가 수행이라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 자신의 번뇌에 오염된 8식을 지혜로 변형시키는 것을 말한다. 전식성지(轉識成智)라고도 한다.

() () 변화되는 것을 전의(轉依)라고 하는데, 전의(轉依) 뜻은소의(, basis) 발동근거를 바꾼다()’ 성도(聖道) 수행을 통해 번뇌에 오염된 8식을 지혜() 변형시키는 , 질적 전환시키는 것을 말한다.

() 전변(轉變) 또는 능변현(能變現) 뜻으로 능동적으로 바꾸고 변화시키는 것을 말하고, () 획득(獲得) 성취(成就) 말한다.

 

번뇌에 오염된 중생의 유루(有漏:세속) 마음인 ‘8’(八識전오식, 6의식, 7말나식, 8아뢰야식) 질적으로 변혁하여[轉識得智] 얻은 4가지 무루(無漏:열반) 청정한 지혜사지(四智) 다음과 같다.

①대원경지(大圓鏡智) ; 인간의식의 심연에 있는 무명(無明) 오염된 8아뢰야식(阿賴耶識)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지혜는 마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내는 크고 맑은 거울처럼, 8아뢰야식에서 무명(無明) 오염이 완전히 제거된 원만하고 분명한 지혜이므로크고 둥근 거울과 같은 지혜[大圓鏡智]’라고 말한다.

②평등성지(平等性智) ; 인간의 자의식(自意識) 해당하는 오염된 7말나식(末那識)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7식은 원래 나와 남에 대한 구별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의식이므로 여러 가지 차별을 낳게 된다.

그러나 일체가 한결같고 평등함을 관하여,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생기는 자타에 대한 차별적인 견해를 떠나, 자타(自他) 평등을 깨달아 대자비심(大慈悲心)으로 바꾸기 때문에 중생교화를 위한 평등한 지혜[平等性智] 발현된다는 것이다.

③묘관찰지(妙觀察智) ; 오염된 6(第六識) 의식(意識)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지혜는 모든 () 실상을 묘하게 관찰하여 자유 자재로 가르침을 설하고 중생의 의심을 끊어 주는 지혜이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④성소작지(成所作智) ; ····몸의 5관으로 느끼는, 오염된 5(前五識)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지혜는 5관으로 행하는 일을 올바로 이루도록 하여, 중생을 이익과 구제하기 위해 여러가지 불가사의한 일을 모두 성취하는 지혜[成所作智]이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참고] *송담스님(No.366)—88(무진년) 칠석차례 법어(88.08.18)에서.

우리 중생은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5(前五識) 6(六識, 意識) 7(말나식), 8(아뢰야식), 이런 ()으로 해서 일생을 살아가고, ()으로 해서 업을 짓고, ()으로 해서 일체 생사윤회를 하는데,

일어나는 육근(六根), 육경(六境), 육식(六識), 십팔경계에 있어서 염념불망(念念不忘)으로 화두를 단속해 나가면화두가 타성일편이 되고, 의단이 독로해 가지고 그것이 ! 터져 버리면 자성을 깨닫게 되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보게 되는데,

 

자기 본래면목을 바로 깨닫자마자, 깨닫기 전의 중생의 육근, 육경, 육식 () 부처님의 () 변해버리는 것입니다. () 데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 찰나 간에 변해 가지고 () 변하는 것이여.

() () 변하는 것이지, () 없어지고 () 어디서 따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를 인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생의 마음을 떠나서 부처님이 없어. 우리의 중생의 마음을 버리고서 부처님이 어디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여. 중생의 마음, 그것이 바로 일념무생(一念無生)하는 도리를 요달해 버리면 거기에서 바로 성불을 하는 것입니다.

*국집(局執) ; 마음이 트이지 못하고 어느 한편에 국한(局限), 집착하는 . 사리(事理)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에 얽매이거나 자기의 소견만이 옳다고 고집하여 매우 답답한 모습을 말한다.

*등한(等閒) ; 무관심하거나 소홀하게.

*(게송) 해천공활월성륜~’ ; [진각국사어록(眞覺國師語錄)] (김달진 역주 | 세계사) p375 ‘사문화(四聞話)’ 게송 참고.

*생사고해(生死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삼계(三界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 가리킴. 생사와 괴로움이 무한한 것을 바다에 비유함.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

*적광토(寂光土) ; 상적광토(常寂光土). 항상[] 변하지 않는[] 광명[] 세계[]. 부처님의 거처나 빛나는 마음의 세계를 이르는 말이다.

*불세계(佛世界) ; 부처님의 나라. 부처님이 계시는 나라. 불국(佛國). 불토(佛土). 불찰(佛刹).

 

*장엄(莊嚴 엄숙할삼가할꾸밀 /엄할공경할꾸밈 ) ; ①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국토를 꾸미고, 훌륭한 공덕을 쌓아 몸을 장식하고, 향이나 따위를 부처님께 올려 장식하는 . ②건립하는 . 건립. 훌륭히 배치, 배열되어 있는 . ③장식. 물건을 장식하는 . 아름답게 장식함. 훌륭한 . 엄숙하게 장식된 모양, 모습. 장식물.

Posted by 닥공닥정
신심(삼요)2015. 10. 26. 12:13

 

 

§(366) (게송)행년홀홀급여류~ / ‘내가 바로 부처다.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 전식득지(轉識得智) / (게송)광명적조변하사~ / (게송)단제번뇌중증병~.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통해서 육경(六境) 인식을 하는데,  인식하는  찰나에  객체(客體) 끌려가느냐?  객체를 만나자마자 바로 거기서 돌이켜 가지고 화두(話頭) 드느냐? 여기에 따라서 업을 지어서 생사의 윤회로 떨어질 수도 있고, 거기에서 안이비설신의 육근(六根) 육경(六境) 만나자마자 바로 돌이켜서 화두를 관조하면은 생사해탈 길로 가는 것이거든. 이것이 천하 간단한 것이고 분명한 것이여.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생사심(生死心)이고, 그것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 이렇게  때에 육도윤회는 바로 육근이 육경을 상대하는  찰나찰나가 바로 육도윤회다.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최상승 학자는 항상 시방세계도 일념(一念) 속에서 봐야 하고, 육도윤회도 일념 속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생사도 바로 일념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 법을 믿는다면  처음에 무엇을 믿느냐하면은 『내가 바로 부처다. 내가 바로 부처』라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생사도 없고, 버려야  번뇌도 없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번뇌,  번뇌 다스리는 법을 아까 말씀을 드렸죠? 번뇌는 끊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진여불성은 우리가 그놈을 찾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여. 번뇌는 끊을려고 하지 말고 화두를 들고, 진여를 찾을려고 하지 말고 화두를 들어. 화두를 염염불망으로 들어서 타성일편이 되어서 그놈을 타파(打破)하면 거기에서 번뇌는 끊을려고  해도 저절로 거기에서 끊어져 버리고, 진여는 찾을려고 하지  해도 본래면목 진여불성은 찰나 간에 드러나 버리는 것이다 그말이여.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出現) 하실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나오신 것이 아니여. 중생의 생사다, 열반이다하는   가지 소견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나오신 것이다. 생사라고 해서 두려워하고, 열반이라고 해서 그놈을 좋아라고 그놈을 쫓아가는 그러한 자세로 나아가는 동안에는 영원히 생사는 끊어지지 않고, 영원히 열반은 얻어지지를 않는 것이여. 바로 생사다, 열반이다하는  가지 소견을 제도해 버리면 바로 그것이 생사해탈이요, 바로 그것이 적적열반(寂寂涅槃) 계합(契合) 되는 것이다  말입니다.


**송담스님(No.366)—88(무진년) 칠석차례 법어(88.08.18) (용366)

 

(1) 약 22분.

(2) 약 22분.

 

(1)------------------


행년홀홀급여류(行年忽忽急如流)한데  노색간간일상두(老色看看日上頭)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지차일신비아유(只此一身非我有)하니  휴휴신외갱하구(休休身外更何求)

나무~아미타불~


행년홀홀급여류(行年忽忽急如流)한데, 흘러가는 세월이 빠르기가 흘러가는 물과 같다 그말이여. 잠시도 머꾸지 않고 주야(晝夜) 불철(不撤)하고  년이고  년이고 끝없이 흘러가 버리는데,

노색간간일상두(老色看看日上頭). 늙은 빛이 얼른 얼른 머리 위에,  해가 머리 위에 올라왔다 그말이여.


어린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살이 되고,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고, 마흔 , 육십, 칠십이 언제 어떻게 흘러간  모르게 이렇게 흘러갔어.

마치  동쪽에  해가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데, 그럭저럭하다 보면 아침해가 낮이 되고 그럭저럭하다 보면 벌써 서산(西山) 저버린다 그말이여.


지차일신(只此一身) 비아유(非我有)인데, 다못   몸뚱이도  것이 아니여.  소유라고  수가 없어.

휴휴신외갱하구(休休身外更何求). 그렇거든   밖에 다른 무엇을  구할 것이 있느냐?


무상한  세월, 무상한  몸뚱이가 낳아 가지고 그럭저럭하다가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고, 머리는 희끗희끗 머리가 나고, 허리는 아프고, 그러한 내가 그렇게 소중히 여기고 먹이고 입히고  간수하고   몸뚱이도  몸뚱이다,  것이다하고  수가 없어.


 것이면은 내가 마음대로 해야  텐데, 내가  몸뚱이를 아무리 먹이고 입히고  애끼고 간수를 한다 해도 제멋대로 늙어버리고, 제멋대로 고장이 나고 병이 나서 아무리 오래 살고 싶어도 소용이 없이 결국은 늙어서 병들어 죽어 버려야 하는데,

 몸뚱이도  몸뚱이라고  수가 없는데,  몸뚱이 밖에 무엇을  구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재산을 구하고, 명예를 구하고, 권리를 구하고 천만 가지를 구해 봤던들 뜻대로  구해지지도 않지마는 설사 뜻대로 이뤄졌다 해도 나와는 사실은 아무 소용이 없어.


그것 그렇게 구해졌다 해도 실지로 내가 행복해지냐 하면은 오히려 근심과 걱정만 더할 뿐이지 행복하지도 못하고,  그것을 가지고   있느냐 하면은 그렇게 피땀 흘려서 벌어놓은 것이지마는,  때는  가지도 가지고 가지 못하더라. 

 

 

방금 녹음 법문(錄音法門) 통해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들었는데,

무상한  몸뚱이를 받아났지마는  몸뚱이 받았을 때에 발심(發心) 해서 최상승법(最上乘法) 귀의해 가지고 어쨌든지  몸뚱이 있을  생사해탈(生死解脫) 해라 그러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 이루어졌고,   지수화풍 사대로 구성된  몸뚱이를 부모를 의탁해서, 아버지 어머니에 의탁해 가지고 그래 신세를 지고서  몸뚱이를 받아났습니다.

받아났지마는 최상승법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그저  먹고  입고, 명예와 권리  오욕락(五欲樂) 인생의 전부인  알고, 그것을 누리는 것이 행복인  알고 거기에 집착이 되어서 허대다가 본의 아니게 죄만 잔뜩 퍼짓고,


그래 가지고 결국은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끌려가서 업경대(業鏡臺) 앞에 서면은 평생 동안 지은 가지가지 죄가 거기에  나타나고  거기 염라대왕 앞에 있는  저울대에 떠억 달면은  죄를 얼마만큼 많이 지었는가, 무겁게 지었는가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 어떻게 짓게 되느냐 하면, 입으로 짓고, 몸뚱이로 짓고, 우리의 마음으로 짓고 이렇게 짓는데,

눈으로 무엇을 보면서  보는  상대 객체(客體) 따라가면은 눈을 통해서 짓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으면은  듣는  소리로 우리의 생각이 끌려가면은 귀로 들으면서 죄를 짓고,

코로 냄새를 맡으면서  냄새로 끌려가면은 냄새 맡다가 죄를 짓고,

무슨 생각이 일어나면은  생각한 쪽으로 끌려가면은 생각하다가 죄를 짓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통해서 육경(六境) 인식을 하는데,  인식하는  찰나에  객체(客體) 끌려가느냐?  객체를 만나자마자 바로 거기서 돌이켜 가지고 화두(話頭) 드느냐?

 

여기에 따라서 업을 지어서 생사의 윤회로 떨어질 수도 있고,

거기에서 안이비설신의 육근(六根) 육경(六境) 만나자마자 바로 돌이켜서 화두를 관조하면은 생사해탈 길로 가는 것이거든. 이것이 천하 간단한 것이고 분명한 것이여.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 마음이 경계(境界) 따라서 굴러가. 마음이 일만 경계를 따라서 굴러가는데,

전처실능유(轉處實能幽). 굴러가는 곳에 실로 능히 그윽하다. ‘굴러가는 이라는  크게 말하면은 육도(六途) 윤회(輪廻)하는 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께서는 소가 되기도 하고, 말이 되기도 하고, 지옥에 가기도 하고, 아귀가 되기도 하는, 천당에 가기도 하고, 아수라가 되기도 하고,  인간이 되기도 하는  육도윤회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선 당장 우리가 금생에, 지금  찰나에 일념에다가  전처실능유(轉處實能幽) 붙여서 보자면, 바로 육근(六根) 육경(六境) 상대하는 바로  찰나에다가 맞출 수가 있습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생사심(生死心)이고, 그것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 이렇게  때에 육도윤회는 바로 육근이 육경을 상대하는  찰나찰나가 바로 육도윤회다.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최상승 학자는 항상 시방세계도 일념(一念) 속에서 봐야 하고, 육도윤회도 일념 속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생사도 바로 일념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때에, 아까 말한 눈으로 청황적백 어떠한 색상을  때에 바로  찰나가 바로 전처(轉處)—경계를 따라 굴르는 곳인데,  구를 때에 어떻게 해야 능히 그윽할 수가 있느냐?

구르는 곳마다 실로 능히 그윽하다. ‘그윽하다하는 것은 생사에 휩쓸려 끌려가지 아니한 것을 말하는 거여.

 

깨달은 사람은 바로 깨달은  낭연독존(朗然獨存)  경계에서 벗어나지 않겠지만 우리 아직 깨닫지 못한  중생은,  최상승법을 믿고 참선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눈으로 무엇을 보자마자 바로 화두를 들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화두를 들고,

일체처 일체시에서 잠깐 사이도 화두를 놓치지 않도록 염념불망(念念不忘) 염념불매(念念不昧) 화두를 거각해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잡드리를  나갈 따름인 것입니다.

 

그렇게 일념 일념을 그렇게 단속을 해서 일구월심(日久月深)  나가면 마침내는 화두가 순수무잡(純粹無雜)하고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서, 낮에 앉아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다닐 때나 일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화두가 ()하지 않도록.

 

처음에  안되니 지어서라도, 억지로라도 지어서 자꾸 챙기고  챙기고 하다 보면 나중에는 할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독로하게 되고, 망상을 끊을려고  해도 저절로 망상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말이여.

 

설사 눈으로 무엇을 보아서 저것이 산이다 잠깐 사이에 저게 산인  보이지만 산으로 쫓아가지  .

산이 높다, 푸르다,  산에 구름이 끼었다 그렇게 이리저리 따져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산을 보자마자 처꺽 화두를 들어버린다 그말이여.

 

나중에는 산을 봐도 산이 보이지 아니하고, 물을 봐도 물이 보이지 아니하고, 사람을 봐도 사람이 보이지 아니하고, 하늘을 봐도 하늘이 보이지 아니하고, 다못 의단이 독로할 뿐이다 그말이여.

눈을 뜨고 있지마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어. 귀를 막지 않고 열어놓고 있지마는 아무 소리도  들리게 되어. 그래서  몸뚱이가  세상에 있는 것조차도 인식을 못해. 시간이 가는 줄도 몰라.

 

이렇게  나가면 밤에 자되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리고, 잠이 깊이 들었을 때에도 오직 화두만이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들려져 갖고 있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이렇게 되기를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렇게 가면 어떠한 찰나에  의단이  터져버리게 되는 거여.  밑구녁이 빠져서  통에 담아논 것이  쏟아져 나오듯이.

 

이것은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조사(祖師)들이 이렇게  가지고  깨달음을 얻으신 것입니다.

 

 

망상(妄想) 끊을려고 해서는 아니 되는 거여. 망상을 끊을려고 하면 끊을려고 하는  생각 바로 망상이 되기 때문에 망상을 끊을려고 해서는 아니 되는 거여.

마치 일어나는 파도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자꾸 손으로나, 판때기로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물을 누른다든지,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이리저리 친다든지, 이래봤자  파도가 없어지기 커녕은 오히려 새로운 파도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말이여.

 

소승(小乘) 공부하는 법이 일어나는 번뇌와 망상을 없앨려고 한다 그말이여.

망상이라고 하는 것을 인증을 하고  망상을 없앨려고 무한히 노력을 하고,  생사(生死)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있는 것으로 인증을 하고서  생사를 없애기 위해서 무한히 노력을 .

 

심지어는 낳다 죽었다  생사가 싫으니까,  생사를 없게 하기 위해서 태중(胎中) 들어가기를 꺼린다 그말이여.

사람이나 짐승의 뱃속에 태중에 들어가면은 낳게 되고, 낳으면은 늙어서 병들어 죽게 되니까, 늙어서 병들어 죽어가는  고통을 면하기 위해서, 받지 않기 위해서 태중에  들어가. 태중에 들어가는 것을 제일 무서워한다 그말이여.

 

그러기 때문에 태중에  들어갈려면은 어떻게 해야  들어가냐우리의 중생의 번뇌(煩惱) 끊어야 한다.

번뇌가 바로 생사심이고  생사심 때문에 () 들어가게 되고, 태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에 낳게 되고, 낳음으로써 늙어서 병들어 죽는다.

 생사(生死)  들어갈라면은 ()  들어가야 하고, 태에  들어갈라면은 우리의 번뇌 망상을 끊어야 한다. 그래서  번뇌 망상을 끊기 위해서 한량없는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소승들의 수행 방법인 것입니다.

 

그러면  대승법, 최상승법에서는 어떻게 하느냐?

 

우리가 아무리 최상승법을 믿고 이렇게 참선을 한다고 해도 한량없는 번뇌와 망상이 일어납니다.

 

눈으로 보면은 보는 데에서 일어나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으면 듣는 데에서 일어나고, 무엇을 맛보면 맛난 데에서 '쓰다 달다 맛있다 맛이 없다' 끊임없이 밥을 먹으면서도  생각  생각이 일어난다 그말이여.

코로 무슨 냄새를 맡으면은 '! 이거 무슨 기름 냄새가 난다, 무슨 고약한 시궁창 냄새가 난다, 무슨 좋은  냄새가 난다, ! 이거 무슨 향내냐? 무슨 화장품 냄새냐?' 이래 가지고 코를 통해서도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난다 그말이여.

 

그런데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번뇌 망상은 본래 없는 것이다. 본래 번뇌의 자성이 없는 것이다. 생사는 본래 생사의 자성이 없는 것이다.  생각 일어나되 일어나는  생각 일어남이 없는 것이다.  자체가 본래 없는 것이다하고 그렇게 ! 믿어 버리는 것이여.

있는 것으로 인증을 하고 그놈을 끊을라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없는 이라고 그렇게 믿어버리는 거여.

 

'왜 있는데 없다고 믿을 수가 있느냐분명히 번뇌가 일어나고 망상이 일어나고 이렇게 몸뚱이를 받아 나면은 아프고 늙어서 병들어 죽고, 아무리  몸뚱이 없다고 하지만 꼬집어보면 아픈데 어떻게 하느냐?' 도저히 믿기가 어렵습니다.(처음~2135)

 

 

 

 

 

(2)------------------

 

그러나 눈병이  사람은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눈에 병이 없는 사람은  맑은 허공을 보면 아무것도 없는데, 눈병이 있는 사람은 이상하니 무슨 꽃이 이글이글이글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말이여.

 더운  강변에 가면 모래사장에 아지랑이가 이글이글이글 타오르듯이,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 분명히 허공에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말이여.

 

그러면 아무리  허공에 꽃이 없는 것이라고 말해도 눈병이 없는 사람은  보이는데, 눈병이 있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보인다 그말이여. 그러나  생각해 보라 그말이여.

허공에 무슨 꽃이 피어있겠느냐 그말이여. 눈병만 고쳐 버리면은 허공의 꽃은 없어져 버리는 거여.

 

그러면 눈병이 있는 사람에게 보인다고 해서 실지로 허공에 꽃이 있느냐 하면은 없는 것이거든.

그래서 눈병이 없는 사람이 없다 하면, ‘없다 믿으면 되는 거여. 실지로 자기 눈에 보인다 하더라도 보이는 것은 눈병으로 인해서 헛것이 보이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으면  믿을 것도 없다 그말이여.

 

번뇌와 망상이  자성이 없다 하면 실지로 자기에게는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처님이 없다 하시고, 성현들이 없다 하시고, 선지식(善知識) 없다 하면  말을  믿고 무엇을 믿을 것이냐 그말이여.

분명히  몸뚱이를 타고난 이상 늙어서 병들어 죽는 고통이 있지만 부처님과 모든 성현이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으니  성현의 말씀을  믿고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이냐 그말이여.

 

성현의 말을 고냥 고대로, 액면 그대로 그냥 없다 ! 믿어버려믿어 버리면  그게 그렇게, 당장  자리에서 대안락(大安樂) 얻을 수가 있다 그말이여.

 

 

어려서는 하차잖은 것을 보고도 굉장히 무서워합니다. 실지는 아무것도 무섭지 않는데 굉장히 무서워 .

귀신 나온다, 애비 나온다 가지고 어린애들 갖다 울면은   울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면은 나중에는 애비 나온다 그러면은 울다가도 깜짝 놀랜다 그말이여.

 

호랑이란 놈이 배가 고파서 마을로 내려 왔는데 가만히  집에 기어 들어갔다 그말이여. 애기가  울어.

호랑이가 나온다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아니하고, ‘귀신이 나온다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않고, ‘여기 곶감 있다 그러니까, ! '곶감 있다' 하면서 나중에 쓰기 위해서 깊이  곶감을  개를 내서 주니까 어린애가 울음을  그쳤다 그말이여.

 

호랑이란 놈이  밖에서 가만히  종초지말(從初至末)  들어보니까 아! 호랑이,  세상에서 자기만큼 제일 무서운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호랑이가 왔다'고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아니하고,  '귀신이 왔다'고 해도 그치지 아니하는데 ! '곶감 있다!' 그러니까 울음을  그친다 그말이여.

 

문을 닫아놓으니까  상황은  수가 없으나, ‘도대체  곶감이란 놈은 귀신보다도  무섭고, 호랑이보다도  무서운 것이로구나. 여기서 우물쭈물 하다가는  곶감한테 잡히면은 영락없이 죽게 되겠다 이리 생각을 하고 아주 꽁지가 빠지라고 도망해 가지고다시는  곶감 있는 집에는 가지를 안했다. 그런 얘기가 있는데.

 

 호랑이란 놈은  곶감을 보지 못했지만  곶감이란 놈이 그렇게 호랑이보다도 귀신보다도  무서운 것이다하고 그렇게  믿고는 다시는  집에  가듯이,

우리가 ! 믿을 수만 있으면, ! 믿어버리기만 하면  무서운  힘이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어리석은 사람은 미신을 믿고  무당이나 만신이나 또는 무꾸리 점쟁이 그런 말을 믿는 사람은  점쟁이의 한마디,  무당의 한마디를  굉장히 무서워합니다. 그래 가지고  하라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몇백만 원을 들여서라도 굿을 하라고 하면 굿을 하고, 무슨 이상한 행동을 하라고 하면은 그걸  합니다.

 그러냐 하면,  무당이나 만신의 말을 믿기 때문에  몇백만 , 몇십만  돈도 아까운 줄을 모르고  엄청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당이나 만신이나 미신의 말은 ! 그렇게  믿어.

 

! 대학을 졸업하고 그러한  최고 학부를 졸업한 그런 지성인들이 어째서 그렇게 무당이나 점쟁이 말은 그렇게 여지없이 믿으면서,  부처님 말씀, 선지식의 말은   믿는다. 믿는다 해도 껍데기로만 믿고 속속들이는   믿는  같다 그말이여.

 그러냐?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번뇌와 망상은 본래 없는 것이다. 끊어야  번뇌는 없고 해탈해야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귀에 따깽이가 앉도록 일어주어도 그런   상식 그냥 지식으로, 알음알이로 그렇게 알기는 알아도, 그렇게 무당이나 점쟁이  믿듯이 그렇게 속속들이는   믿는다 그말이여.

 

 십분의 일만 믿어도, 당장  최상승법을 믿고 바로  화두가 타성일편이 되도록, 머지않아서 그렇게  텐데 ! 그것을 속속들이  믿는다.

 

우리가 정말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 법을 믿는다면  처음에 무엇을 믿느냐하면은 『내가 바로 부처다. 내가 바로 부처』라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생사도 없고, 버려야  번뇌도 없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부처님한테 무슨 생사(生死) 있어? 생사 없는 열반(涅槃) 경지를 요달(了達) 분이 바로 부처님인데, 부처님한테는 번뇌도 없고 생사도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내가 바로 부처다』 그렇게  믿고 대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번뇌도 없는 것이다.

 

지금 그러면 우리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는 무엇이며, 어머니한테 받아난  육체로 해서 생이 있고, 늙음이 있고, 병이 있고 마침내는 육칠십 살다가 결국은 죽는데,  죽음이 있는데  있는 죽음,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우리가 ()했기 때문에, 매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진 것이다. 이렇게 여러분은 우선 알아야 하고  그렇게 확실히 조리 있게 알면 그것이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그렇게 믿고서 화두를 들어야  번을 들어도 여지없이 화두가 들어지는 것입니다.

 

화두를 들고  들고 해서 일체처 일체시에 그놈을 들어 나가면 우리의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우리의 중생의 무명(無明)으로 인해서 없는 생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생사일망정 바로 거기서 생사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중생은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5(前五識) 6(六識, 意識) 7(말나식), 8(아뢰야식), 이런 ()으로 해서 일생을 살아가고, ()으로 해서 업을 짓고, ()으로 해서 일체 생사윤회를 하는데,

 일어나는 육근(六根), 육경(六境), 육식(六識),  십팔경계에 있어서 염념불망(念念不忘)으로 화두를 단속해 나가면, 화두가 타성일편이 되고,  의단이 독로해 가지고 그것이 ! 터져 버리면 자성을 깨닫게 되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보게 되는데,

 

 자기 본래면목을 바로 깨닫자마자,  깨닫기 전의 중생의  육근, 육경, 육식  () 부처님의 () 변해버리는 것입니다()  데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 찰나 간에 변해 가지고 () 변하는 것이여.

() () 변하는 것이지, () 없어지고 () 어디서 따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를  인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생의 마음을 떠나서 부처님이 없어. 우리의 중생의 마음을 버리고서  부처님이 어디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여중생의 마음, 그것이 바로 일념무생(一念無生)하는 도리를 요달해 버리면 거기에서 바로 성불을 하는 것입니다.

 

 

광명적조변하사(光明寂照徧河沙)하면  범성함령공아가(凡聖含靈共我家)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념불생전체현(一念不生全體現)이라  육근자동피운차(六根纔動被雲遮)니라

나무~아미타불~

 

광명적조변하사(光明寂照徧河沙)  범성함령공아가(凡聖含靈共我家).

광명이 적적(寂寂) 비추니,  항하사(恒河沙)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광명이 고요히 비치는데,

범성함령(凡聖含靈) 공아가(共我家). 범부, 성현 일체 중생이  나의 집이더라. 바로  나의 면목(面目)이더라.

 

일념불생전체현(一念不生全體現)이요,  생각 남이 없으면 전체에 드러나.

일념불생(一念不生),  생각 일어남이 없어. 일념불생하면 전체가 나타나, 전체현(全體現)이다. 부처님의 면목이 바로 드러난다 그말이여.

 

육근(六根) 자동(纔動)하면은 피운차(被雲遮). 벌써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통해서  생각이 움직이면은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 환히 비쳤던 데에 거기에 벌써 구름이 가리워져서  광명을 가리게 된다 이거거든.

 

  생각을 단속하는 것이,  생각 돌이켜서 화두가 독로하도록 단속을 하면은 삼천대천세계가  비로자나 법신(毘盧遮那 法身) 대광명이  세계를 두루 비추는 것이 되는 거고,

 생각 단속을 못해 가지고 육근(六根) 통해서 ()하면 벌써  광명에 구름이 가리워져서  광명을 덮는 것이 된다 그거거든.

 

 

단제번뇌중증병(斷除煩惱重增病)이요  취향진여역시사(趣向眞如亦是邪)니라

나무~아미타불~

수순세간무가애(隨順世間無罣碍)하면  열반생사등공화(涅槃生死等空花)니라

나무~아미타불~

 

단제번뇌중증병(斷除煩惱重增病)이요, 그러면 우리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끊임없이 퍼일어나는  번뇌 망상을 끊어서 없앨려고 하면은 거듭  병통을  증가시키는 것이 된다.  번뇌를 치성하게 하는 것이 되고.

취향진여역시사(趣向眞如亦是邪). 진여(眞如) 향해서 나아갈려고 마음을 먹으면은 또한 이것도 삿된 것이다.

 

번뇌,  번뇌 다스리는 법을 아까 말씀을 드렸죠? 번뇌는 끊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진여불성은 우리가 그놈을 찾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여번뇌는 끊을려고 하지 말고 화두를 들고, 진여를 찾을려고 하지 말고 화두를 들어.

화두를 염염불망으로 들어서 타성일편이 되어서 그놈을 타파(打破)하면 거기에서 번뇌는 끊을려고  해도 저절로 거기에서 끊어져 버리고, 진여는 찾을려고 하지  해도 본래면목 진여불성은 찰나 간에 드러나 버리는 것이다 그말이여.

 

수순세간무가애(隨順世間無罣碍). 세간(世間) 수순(隨順) 한다.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엄마는 엄마로서, 딸은 딸로서, 아들은 아들로서, 남편은 남편으로서, 아내는 아내로서 일체처 일체시에 자기에게 주어진 소임을 충실히 하면서바로  가운데에서 기쁜 일을 당해도 이뭣고?’ 슬픈 일을 당해도 이뭣고?’ 속상하는 일을 당해도 이뭣고?’

 

 당하는 일을 좋다 그놈을 탐착을 하고, ‘싫다 해서 없앨라고 피할라고 하지 말고, 닥치는 대로 자기로서 도리를 다하면서 그놈을 화두를 들고서 화두 드는 마음으로 그놈을 척척척척 해결을  나가라 그말이여그렇게 해서 걸림이 없게 하라 그말이여.

버리고 취할 것이 없이, 닥치는 대로 자기의 입장에서 가장 적절히 모든 일을 처리를  나가. 그럴라면은 그놈을 싫어서 피하지도 말고 좋아서 탐착하지도 마라.

 

어떻게 하면은 버릴 것도 없고 취할 것이 없느냐? 화두를 들고 의단이 독로하도록  나가는  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일체처 일체시에 걸림이 없이 되면 열반이다, 생사다하는 것이 바로 허공의 꽃과 같이 되어버린다 그말이여.(涅槃生死等空花) 허공의 꽃이 무엇이던가? 본래 없는 것이거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出現) 하실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나오신 것이 아니여중생의 생사다, 열반이다하는   가지 소견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나오신 것이다.

생사라고 해서 두려워하고, 열반이라고 해서 그놈을 좋아라고 그놈을 쫓아가는 그러한 자세로 나아가는 동안에는 영원히 생사는 끊어지지 않고, 영원히 열반은 얻어지지를 않는 것이여.

 

바로 생사다, 열반이다하는 그  가지 소견을 제도해 버리면 바로 그것이 생사해탈이요, 바로 그것이 적적열반(寂寂涅槃) 계합(契合) 되는 것이다  말입니다.(2136~4311)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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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행년홀홀급여류~’ ; [무의자시집(無衣子詩集)] (진각국사 혜심) ‘식심게(息心偈)’ 참고.

*녹음 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 사람의 몸이 , , , 바람(,,,) () 원소()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 심판하여 벌은 주는 .

*업경대(業鏡臺) ; 지옥의 염라대왕(閻羅大王) 가지고 있다는, 인간의 죄를 비추어보는 거울이다. 업경 혹은 업경륜(業鏡輪)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어 지옥에 이르면 염라대왕은 업경대 앞에 죄인을 세우고, 업경대에는 그가 생전에 지은 선악의 행적이 그대로 나타나며, 죄의 경중이 판가름나면, 그에 따라 가야  지옥이 정해진다.

*() : [] karma []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 업이라 한다.개인은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 윤회(輪廻)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객체(客體) ; ①작용의 대상이 되는 . ②주체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인간의 인식과 실천의 대상.

*육근(六根) ; 육식(六識) 경계(六境) 인식하는 경우  소의(所依)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眼根(耳根(鼻根(舌根(身根(意根)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 기관·기능을 뜻함. 육입(六入)이라고도 한다.

*육경(六境) ; 육근(六根) 대상 경계인 (((((() 말함. 산스크리트어 ṣaḍ-viṣaya () 대상을 뜻함. 육진(六塵육적(六賊)이라고도 한다.

①색경(色境). 눈으로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있는 대상인 .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게송) 심수만경전~’ ; [직지(直指)] (白雲和尙 抄錄, 조계종출판사) 63 마나라(摩拏羅) 존자 게송 참고.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 이치(理致)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라고   일체의 (). ③시비(是非)•선악(善惡)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 순경(順境), 내경(內境) 외경(外境) 있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낭연독존(朗然獨存) ; 홀로 밝게 드러나다.

*염념불망(念念不忘) ; 생각 생각에 잊지 않음. 자꾸 생각이 나서 잊지 못함.

*염념불매(念念不昧) ; 생각 생각에 ()하지 아니하다. 생각 생각에 또렸하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화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

*순수무잡(純粹無雜 순수할 /순수할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수(純粹)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상태.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조사선법(祖師禪法)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 같다.

*망상(妄想 망녕될 , 생각 )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 생각() , 또는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

*소승(小乘) : [] Hinayana 소승(小乘)이란 작은 수레란 뜻이다。수레는 사람을 태워서 험한 곳을 지나 안전한 곳에 가게 하는 것인데, 작은 수레는 아이들이나 타게 되며, 옅은 물이나 건널  있는 것이다。<법화경>에는 양의 수레 사슴의 수레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처음 인천교를 말씀하신 다음으로 옅고 낮은 이치의 길을 가르쳐, 생각을 끊고 마음을 비게 하여 열반(涅槃) 고요한 즐거움을 얻도록 하셨다。그 속에는 사제법(四諦法) 깨치면 아라한(阿羅漢) 되고, 십이 인연법(十二因緣法) 깨치면 연각(綠覺)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소승에도  가지 길이 있으므로 이승(二乘)이라고도 한다。소승법을 말씀한 대표적 경전은 <아함경(阿含經)> <구사론(俱舍論)> <성실론(成實論)> <사분승계본(四分僧戒本)> <사분비구니계본> 등이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 괴로워할 )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성냄()•어리석음()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앞의 () () ()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이러한 번뇌[]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 과보를 받게 된다. [-- 三道]

*대승(大乘) : [] Mahayana 대승(大乘)이란  수레를 뜻한다。큰 ()  뜻을 세워서 나를 희생하여 모든 중생을 즐겁고 편안하게 건져 주겠다는 보살심(菩薩心) 있는 이들을 위하여, 육도(六度) 만행(萬行) 닦아 가도록 깊은 이치를 말씀하신 법문이다.

 대표적인 경전은 <반야경(般若經)> <해심밀경(解深密經)> <능가경(楞伽經)> <기신론(起信論)> <범망경(梵網經)> 같은 것들이다.

 법문을 요약하여 말하면,  세상에 온갖 물질과 (森羅萬象) 벌어져 있으나, 낱낱이 현상(現象) 그대로 비어 없는 것이며, 모든 차별된 것이 그대로  평등하여 열반인 것이다。따라서 무엇에나 걸릴 것이 없는 것이다.

소승의 열반이 소극적이며 작고 옅은 것이라면 대승의 열반은 적극적이며 크고 참된 것이다。한 중생도 남음이 없이 모두 제도한 뒤에야, 자기가 성불하겠다는 소원이야말로 대승의 보살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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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고냥 ;  이상의 변화 없이  상태 고대로.

*그냥 ;  이상의 변화 없이  상태 그대로.

*종초지말(從初至末) ; 처음부터 끝까지.

*속속들이 ; 깊은 속까지 샅샅이.

*열반(涅槃) : [] nirvana  [] nibbana  음을 따라 니반나(泥畔那) • 니원(泥洹) • 열반나(涅槃那) 쓰고, 뜻으로 번역하여 () • 적멸(寂滅) • 멸도(滅度) • 원적(圓寂) • 안락(安樂) • 해탈(解脫) 등이라 한다.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를 말함이니,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없이 무엇이나  열반이며 어느 때나  열반이다。이것이 열반인 것이다.

*요달(了達 마칠완전히 , 통달할 ) ; 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무명(無明) : [] avidya ‘어리석은 마음’ ‘어두컴컴한 마음 이름.

<기신론(起信論)>  이것을  가지로 나누어, 법계(法界)  이치에 어둡게   처음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근본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거나 거칠거나  온갖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하였다.

*() ; 산스크리트어 vijñāna 팔리어 viññāṇa

대상을 식별하고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인식 작용. 인식 주관.  식에 관하여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6식설(六識說)·8식설(八識說)·9식설(九識說) 널리 채택되고 있다.

8식설(八識說) 유식설(唯識說)에서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 5(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6의식), 第七 末那識(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8아뢰야식)이라 한다.

*전오식(前五識) ; 팔식(八識) 가운데 앞의 다섯 가지 ().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 말한다.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의식(意識) ; 팔식(八識) 가운데 6 의식을 말한다. 육식(六識) 하나.

①의식 기능[]으로 의식 내용[] 식별, 인식하는 마음 작용. ②알고 사고하는 마음. 생각하는 마음. 의식은 과거, 미래에의 대상에 대해서도 작용한다.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를 예상할 수가 있다.

6식설(六識說)에서는 의식(意識) 근본이 되어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 5(前五識) 통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식을 심왕(心王)이라고도 한다.

*말나식(末那識) ; 말나(末那) [산스크리트어] manas 음사로, ()라고 번역. () 산스크리트어 vijñāna 번역. 6(第六識) 의식(意識) 구별하기 위해서 () 하지 않고 말나(末那)라고 한다.

8식설(八識說)에서 마음을 이루고 있다고 보는 8(八識: 8가지의 ) 가운데 하나로 7(第七識), 7말나식(第七末那識) 또는 말나(末那)라고도 한다.

말나식은 6식의 밑에서 조절하는 강한 자의식(自意識)으로, 아뢰야식(阿賴耶識) 끊임없이 자아(自我)라고 오인하여 집착하고, 아뢰야식과 육식(六識) 사이에서 매개 역할을 하여 끊임없이 육식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 작용으로, 항상 아치(我痴아견(我見아만(我慢아애(我愛)  번뇌와 함께 일어난다.

8아뢰야식에 저장된 종자(種子) 이끌어 내어 인식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생각과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 작용.

*아뢰야식(阿賴耶識) ; 8식설(八識說)에서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 말함.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종자(種子) 저장하고, 육근(六根)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 산스크리트어 ālaya 음사로, () () 함께 있다고 하여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이라고도 하며, 본래 깨끗한 것이 드러나 있지 않고 감추어져 있다고 하여 장식(藏識)이라고도 한다.

*십팔경계 ; 십팔계(十八界). (, 산스크리트어 dhātu) 요소를 뜻함. 인식을 성립시키는 열여덟 가지 요소.

불교에서 인간과  밖의 모든 존재 속의 인식작용을 18가지 범주로 나눈 .

육근(六根육경(六境육식(六識) 합한 것이다. 육식(六識) 제외한 12가지를 12()라고 한다.

*본래면목(本來面目  / / / )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 ; ①산스크리트어 jñāna  팔리어 ñāṇa  모든 현상의 이치를 명료하게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이해. 지식.

②산스크리트어 jñāna  깨달음. 깨달은 부분의 지혜. 완전히 아는 . ③팔리어 paññā  지혜. ().

*() () 변하는 것이지, () 없어지고 () 어디서 따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 () () 변화되는 것을 전의(轉依)라고 하는데, 전의(轉依) 뜻은 소의(, basis)  발동근거를 바꾼다()’ 성도(聖道)  수행을 통해 번뇌에 오염된 8식을 지혜() 변형시키는 ,  질적 전환시키는 것을 말한다.

전통적인 용어로 전식득지(轉識得智) 또는 전식성지(轉識成智)라고도 한다.

() 전변(轉變) 또는 능변현(能變現) 뜻으로 능동적으로 바꾸고 변화시키는 것을 말하고, () 획득(獲得) 성취(成就) 말한다.  수행자가 수행이라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 자신의 8식을 지혜로 변형시키는 것을 말한다.

 

번뇌에 오염된 중생의 유루(有漏:세속) 마음인 ‘8’(八識-전오식, 6의식, 7말나식, 8아뢰야식) 질적으로 변혁하여[轉識得智] 얻은 4가지 무루(無漏:열반) 청정한 지혜사지(四智) 다음과 같다.

①대원경지(大圓鏡智) ; 인간의식의 심연에 있는 무명(無明) 오염된 8아뢰야식(阿賴耶識)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지혜는 마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내는 크고 맑은 거울처럼, 8아뢰야식에서 무명(無明) 오염이 완전히 제거된 원만하고 분명한 지혜이므로 크고 둥근 거울과 같은 지혜[大圓鏡智]’라고 말한다.

②평등성지(平等性智) ; 인간의 자의식(自意識) 해당하는 오염된 7말나식(末那識)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7식은 원래 나와 남에 대한 구별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의식이므로 여러 가지 차별을 낳게 된다.

그러나 일체가 한결같고 평등함을 관하여,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생기는 자타에 대한 차별적인 견해를 떠나, 자타(自他) 평등을 깨달아 대자비심(大慈悲心)으로 바꾸기 때문에 중생교화를 위한 평등한 지혜[平等性智] 발현된다는 것이다.

③묘관찰지(妙觀察智) ; 오염된 6(第六識) 의식(意識)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지혜는 모든 () 실상을 묘하게  관찰하여 자유 자재로 가르침을 설하고 중생의 의심을 끊어 주는 지혜이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성소작지(成所作智) ; ····몸의 5관으로 느끼는, 오염된 5(前五識)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지혜는 5관으로 행하는 일을 올바로 이루도록 하여, 중생을 이익과 구제하기 위해 여러가지 불가사의한 일을 모두 성취하는 지혜[成所作智]이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게송) 광명적조변하사 ~ 열반생사등공화 ; 장졸수재(張拙秀才) 거사(居士) 오도송(悟道頌) 참고.

*항하사(恒河沙) ; 갠지스 (Ganges) 모래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면목(面目  ,  )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비로자나 법신(毘盧遮那 法身) ; 비로자나(毘盧遮那) vairocana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 .

①진리  자체인 법신(法身) 형상화한 . ②대일여래(大日如來) 같음.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세간(世間) ; (산스크리트어 loka) () 파괴·변화, () 가운데·간격을 뜻함.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생물들의 세계.  생물들이 거주하는 자연 환경,  산하대지.  세상.  세상. 세속.

*공화(空花, 空華) ; (). 공안화(空眼花). 공중(空中) . 눈의 장애로 말미암아 생기는 허공의 .

실재하지 않는 것을 있는 것으로, 관념을 실재하는 객관 대상으로, 고유한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는, 번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망상(착각·환상·편견 ) 말한다.

 

눈이 멀쩡한 사람은 허공 속에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데, 눈병이  사람은 허공에 이상한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보이고 그러는데, 눈병만 고치면은 허공에 피어있던 꽃이  보인다.

그래서 눈병이 났던 사람은 허공에 있던 꽃이 있다가 없어졌다 하지마는, 허공의 꽃은 있다가 없어진  아니라 원래 없던 것이다. 눈병이 낫으나,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통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 만나면 육식(六識, 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 생기는데,  육식(六識) 포착되는 모든 것들을 이름과 모양명상(名相)이라 하는데, 명상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림자요, 메아리, () 것이다.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명상(名相) 그것을 있는 으로 집착을 함으로 해서, 모든 탐진치 삼독심이 일어나 생사윤회의 업을 짓는데, 마음 하나만 () 버리면 일체 명상(名相) 동시에  () 버리는 것이다.

 

원래는  세상에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우주 법계가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소소영령(昭昭靈靈)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불성(佛性) 생사(生死) 없는 것입니다.

 

 생사가 없는 이치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生死)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눈병이 낫으나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이거거든.

우리의 생사(生死)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송담스님 법문 521, 636 참고)

*계합(契合) ;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들어맞음.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칠석)2015. 8. 19. 17:27

 

§(366) (게송)행년홀홀급여류~ / 생사도 바로 일념에서 봐야 / 공화(空花) / 믿음 ‘내가 바로 부처다.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 전식득지(轉識得智) /자기 안에 있는 보배.

 

‘무상한 이 몸뚱이를 받아났지마는 이 몸뚱이 받았을 때에 발심(發心)을 해서 최상승법(最上乘法)에 귀의해 가지고 어쨌든지 이 몸뚱이 있을 때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라’ 그러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생사심(生死心)이고, 그것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다. 이렇게 볼 때에 육도윤회는 바로 육근이 육경을 상대하는 그 찰나찰나가 바로 육도윤회다.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최상승 학자는 항상 시방세계도 일념(一念) 속에서 봐야 하고, 육도윤회도 일념 속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생사도 바로 일념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 법을 믿는다면 ‘맨 처음에 무엇을 믿느냐’하면은 『내가 바로 부처다. 내가 바로 부처』라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부처님한테 무슨 생사(生死)가 있어? 생사 없는 열반(涅槃)의 경지를 요달(了達)한 분이 바로 부처님인데, 부처님한테는 번뇌도 없고 생사도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내가 바로 부처다』 그렇게 딱 믿고 대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번뇌도 없는 것이다.

자기 본래면목을 바로 깨닫자마자, 그 깨닫기 전의 중생의 그 식(識)이 부처님의 지(智)로 변해버리는 것입니다. 식(識)이 지(智)로 변하는 것이지, 식(識)이 없어지고 지(智)가 어디서 따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번뇌 다스리는 법을 아까 말씀을 드렸죠? 번뇌는 끊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진여불성은 우리가 그놈을 찾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여. 번뇌는 끊을려고 하지 말고 화두를 들고, 진여를 찾을려고 하지 말고 화두를 들어. 화두를 염염불망으로 들어서 타성일편이 되어서 그놈을 타파(打破)하면 거기에서 번뇌는 끊을려고 안 해도 저절로 거기에서 끊어져 버리고, 진여는 찾을려고 하지 안 해도 본래면목 진여불성은 찰나 간에 드러나 버리는 것이다 그 말이여.

생사라고 해서 두려워하고, 열반이라고 해서 그놈을 좋아라고 그놈을 쫓아가는 그러한 자세로 나아가는 동안에는 영원히 생사는 끊어지지 않고, 영원히 열반은 얻어지지를 않는 것이여. 바로 ‘생사다, 열반이다’하는 두 가지 소견을 제도해 버리면 바로 그것이 생사해탈이요, 바로 그것이 적적열반(寂寂涅槃)에 계합(契合)이 되는 것이다.

 

**송담스님(No.366)—88년(무진년) 칠석차례 법어(88.08.18) (용366)

 

(1/3) 약 22분.

 

(2/3) 약 22분.

 

(3/3) 약 22분.

 

(1/3)----------------

 

행년홀홀급여류(行年忽忽急如流)한데  노색간간일상두(老色看看日上頭)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지차일신비아유(只此一身非我有)하니  휴휴신외갱하구(休休身外更何求)오

나무~아미타불~

 

행년홀홀급여류(行年忽忽急如流)한데, 흘러가는 세월이 빠르기가 흘러가는 물과 같다 그말이여. 잠시도 머꾸지 않고 주야(夜)를 불철(撤)하고 십 년이고 백 년이고 끝없이 흘러가 버리는데,

노색간간일상두(老色看看日上頭)다. 늙은 빛이 얼른 얼른 머리 위에, 그 해가 머리 위에 올라왔다 그말이여.

 

어린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열 살이 되고,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고, 마흔 살, 육십, 칠십이 언제 어떻게 흘러간 줄 모르게 이렇게 흘러갔어.

마치 저 동쪽에 뜬 해가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데, 그럭저럭하다 보면 아침해가 낮이 되고 그럭저럭하다 보면 벌써 서산(西山)에 저버린다 그말이여.

 

지차일신(只此一身)도 비아유(非我有)인데, 다못 이 한 몸뚱이도 내 것이 아니여. 내 소유라고 할 수가 없어.

휴휴신외갱하구(休休身外更何求)냐. 그렇거든 이 몸 밖에 다른 무엇을 더 구할 것이 있느냐?

 

무상한 이 세월, 무상한 이 몸뚱이가 낳아 가지고 그럭저럭하다가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고, 머리는 희끗희끗 흰머리가 나고, 허리는 아프고, 그러한 내가 그렇게 소중히 여기고 먹이고 입히고 잘 간수하고 한 이 몸뚱이도 ‘내 몸뚱이다, 내 것이다’하고 할 수가 없어.

 

내 것이면은 내가 마음대로 해야 할 텐데, 내가 내 몸뚱이를 아무리 먹이고 입히고 잘 애끼고 간수를 한다 해도 제멋대로 늙어버리고, 제멋대로 고장이 나고 병이 나서 아무리 오래 살고 싶어도 소용이 없이 결국은 늙어서 병들어 죽어 버려.

이 몸뚱이도 내 몸뚱이라고 할 수가 없는데, 이 몸뚱이 밖에 무엇을 더 구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재산을 구하고, 명예를 구하고, 권리를 구하고 천만 가지를 구해 봤던들 뜻대로 잘 구해지지도 않지마는 설사 뜻대로 이뤄졌다 해도 나와는 사실은 아무 소용이 없어.

 

그것 그렇게 구해졌다 해도 실지로 내가 행복해지냐 하면은 오히려 근심과 걱정만 더할 뿐이지 행복하지도 못하고, 또 그것을 가지고 갈 수 있느냐 하면은 그렇게 피땀 흘려서 벌어놓은 것이지마는, 갈 때는 한 가지도 가지고 가지 못하더라. 

 

 

방금 녹음 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들었는데,

‘무상한 이 몸뚱이를 받아났지마는 이 몸뚱이 받았을 때에 발심(發心)을 해서 최상승법(最上乘法)에 귀의해 가지고 어쨌든지 이 몸뚱이 있을 때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라’ 그러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이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이루어졌고, 또 이 지수화풍 사대로 구성된 이 몸뚱이를 부모를 의탁해서, 아버지 어머니에 의탁해 가지고 그래 신세를 지고서 이 몸뚱이를 받아났습니다.

받아났지마는 최상승법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그저 잘 먹고 잘 입고, 명예와 권리 이 오욕락(五欲樂)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고, 그것을 누리는 것이 행복인 줄 알고 거기에 집착이 되어서 허대다가 본의 아니게 죄만 잔뜩 퍼짓고,

 

그래 가지고 결국은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끌려가서 업경대(業鏡臺) 앞에 서면은 평생 동안 지은 가지가지 죄가 거기에 다 나타나고 또 거기 염라대왕 앞에 있는 그 저울대에 떠억 달면은 그 죄를 얼마만큼 많이 지었는가, 무겁게 지었는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업(業)을 어떻게 짓게 되느냐 하면, 입으로 짓고, 몸뚱이로 짓고, 우리의 마음으로 짓고 이렇게 짓는데,

눈으로 무엇을 보면서 그 보는 그 상대 객체(客體)에 따라가면은 눈을 통해서 짓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으면은 그 듣는 그 소리로 우리의 생각이 끌려가면은 귀로 들으면서 죄를 짓고,

코로 냄새를 맡으면서 그 냄새로 끌려가면은 냄새 맡다가 죄를 짓고,

무슨 생각이 일어나면은 그 생각한 쪽으로 끌려가면은 생각하다가 죄를 짓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통해서 육경(六境)을 인식을 하는데, 그 인식하는 그 찰나에 그 객체(客體)로 끌려가느냐? 그 객체를 만나자마자 바로 거기서 돌이켜 가지고 화두(話頭)를 드느냐?

 

여기에 따라서 업을 지어서 생사의 윤회로 떨어질 수도 있고,

거기에서 안이비설신의 육근(六根)이 육경(六境)을 만나자마자 바로 돌이켜서 화두를 관조하면은 생사해탈 길로 가는 것이거든. 이것이 천하 간단한 것이고 분명한 것이여.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 마음이 경계(境界)를 따라서 굴러가. 마음이 일만 경계를 따라서 굴러가는데,

전처실능유(轉處實能幽)다. 굴러가는 곳에 실로 능히 그윽하다. ‘굴러가는 곳’이라는 게 크게 말하면은 ‘육도(六途)를 윤회(輪廻)하는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께서는 소가 되기도 하고, 말이 되기도 하고, 지옥에 가기도 하고, 아귀가 되기도 하는, 천당에 가기도 하고, 아수라가 되기도 하고, 또 인간이 되기도 하는 그 육도윤회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선 당장 우리가 금생에, 지금 이 찰나에 일념에다가 그 전처실능유(轉處實能幽)를 붙여서 보자면, 바로 육근(六根)이 육경(六境)을 상대하는 바로 그 찰나에다가 맞출 수가 있습니다.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생사심(生死心)이고, 그것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다. 이렇게 볼 때에 육도윤회는 바로 육근이 육경을 상대하는 그 찰나찰나가 바로 육도윤회다.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최상승 학자는 항상 시방세계도 일념(一念) 속에서 봐야 하고, 육도윤회도 일념 속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생사도 바로 일념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아까 말한 눈으로 청황적백 어떠한 색상을 볼 때에 바로 그 찰나가 바로 전처(轉處)—경계를 따라 굴르는 곳인데, 그 구를 때에 어떻게 해야 능히 그윽할 수가 있느냐?

구르는 곳마다 실로 능히 그윽하다. ‘그윽하다’하는 것은 생사에 휩쓸려 끌려가지 아니한 것을 말하는 거여.

 

깨달은 사람은 바로 깨달은 그 낭연독존(朗然獨存)한 그 경계에서 벗어나지 않겠지만 우리 아직 깨닫지 못한 이 중생은, 이 최상승법을 믿고 참선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눈으로 무엇을 보자마자 바로 화두를 들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화두를 들고,

일체처 일체시에서 잠깐 사이도 화두를 놓치지 않도록 염념불망(念念不忘) 염념불매(念念不昧)로 화두를 거각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잡드리를 해 나갈 따름인 것입니다.

 

그렇게 일념 일념을 그렇게 단속을 해서 일구월심(日久月深) 해 나가면 마침내는 화두가 순수무잡(純粹無雜)하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서, 낮에 앉아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다닐 때나 일을 할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그 화두가 매(昧)하지 않도록.

 

처음에 잘 안되니 지어서라도, 억지로라도 지어서 자꾸 챙기고 또 챙기고 하다 보면 나중에는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독로하게 되고, 망상을 끊을려고 안 해도 저절로 망상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말이여.

 

설사 눈으로 무엇을 보아서 ‘저것이 산이다’ 잠깐 사이에 저게 산인 줄 보이지만 산으로 쫓아가지 안 해.

‘산이 높다, 푸르다, 저 산에 구름이 끼었다’ 그렇게 이리저리 따져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산을 보자마자 처꺽 화두를 들어버린다 그말이여.

 

나중에는 산을 봐도 산이 보이지 아니하고, 물을 봐도 물이 보이지 아니하고, 사람을 봐도 사람이 보이지 아니하고, 하늘을 봐도 하늘이 보이지 아니하고, 다못 의단이 독로할 뿐이다 그말이여.

눈을 뜨고 있지마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어. 귀를 막지 않고 열어놓고 있지마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게 되어. 그래서 이 몸뚱이가 이 세상에 있는 것조차도 인식을 못해. 시간이 가는 줄도 몰라.

 

이렇게 해 나가면 밤에 자되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리고, 잠이 깊이 들었을 때에도 오직 화두만이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들려져 갖고 있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이렇게 되기를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렇게 가면 어떠한 찰나에 그 의단이 툭 터져버리게 되는 거여. 통 밑구녁이 빠져서 그 통에 담아논 것이 확 쏟아져 나오듯이.

 

이것은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조사(祖師)들이 이렇게 해 가지고 다 깨달음을 얻으신 것입니다.

 

 

망상(妄想)을 끊을려고 해서는 아니 되는 거여. 망상을 끊을려고 하면 ‘끊을려고 하는 그 생각’이 바로 망상이 되기 때문에 망상을 끊을려고 해서는 아니 되는 거여.

마치 일어나는 파도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자꾸 손으로나, 판때기로 그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그 물을 누른다든지,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이리저리 친다든지, 이래봤자 그 파도가 없어지기 커녕은 오히려 새로운 파도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말이여.

 

소승(小乘)은 공부하는 법이 일어나는 번뇌와 망상을 없앨려고 한다 그말이여.

망상이라고 하는 것을 인증을 하고 그 망상을 없앨려고 무한히 노력을 하고, 또 생사(生死)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있는 것으로 인증을 하고서 그 생사를 없애기 위해서 무한히 노력을 해.

 

심지어는 ‘낳다 죽었다’ 그 생사가 싫으니까, 그 생사를 없게 하기 위해서 태중(胎中)에 들어가기를 꺼린다 그말이여.

사람이나 짐승의 뱃속에 태중에 들어가면은 낳게 되고, 낳으면은 늙어서 병들어 죽게 되니까, 늙어서 병들어 죽어가는 그 고통을 면하기 위해서, 받지 않기 위해서 태중에 안 들어가. 태중에 들어가는 것을 제일 무서워한다 그말이여.

 

그러기 때문에 태중에 안 들어갈려면은 어떻게 해야 안 들어가냐? 우리의 중생의 번뇌(煩惱)를 끊어야 한다.

번뇌가 바로 생사심이고 그 생사심 때문에 태(胎)에 들어가게 되고, 태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에 낳게 되고, 낳음으로써 늙어서 병들어 죽는다.

그 생사(生死)에 안 들어갈라면은 태(胎)에 안 들어가야 하고, 태에 안 들어갈라면은 우리의 번뇌 망상을 끊어야 한다. 그래서 그 번뇌 망상을 끊기 위해서 한량없는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소승들의 수행 방법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대승법, 최상승법에서는 어떻게 하느냐?

 

우리가 아무리 최상승법을 믿고 이렇게 참선을 한다고 해도 한량없는 번뇌와 망상이 일어납니다. 눈으로 보면은 보는 데에서 일어나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으면 듣는 데에서 일어나고, 무엇을 맛보면 맛난 데에서 '쓰다 달다 맛있다 맛이 없다' 끊임없이 밥을 먹으면서도 이 생각 저 생각이 일어난다 그말이여.

코로 무슨 냄새를 맡으면은 '아! 이거 무슨 기름 냄새가 난다, 무슨 고약한 시궁창 냄새가 난다. 무슨 좋은 향 냄새가 난다, 아! 이거 무슨 향내냐? 무슨 화장품 냄새냐?' 이래 가지고 코를 통해서도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난다 그말이여.

 

그런데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번뇌 망상은 본래 없는 것이다. 본래 번뇌의 자성이 없는 것이다. 생사는 본래 생사의 자성이 없는 것이다. 한 생각 일어나되 일어나는 한 생각 일어남이 없는 것이다. 그 자체가 본래 없는 것이다’하고 그렇게 딱! 믿어 버리는 것이여.

있는 것으로 인증을 하고 그놈을 끊을라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없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어버리는 거여.

 

왜 있는데 없다고 믿을 수가 있느냐? 분명히 번뇌가 일어나고 망상이 일어나고 이렇게 몸뚱이를 받아 나면은 아프고 늙어서 병들어 죽고, 아무리 이 몸뚱이 없다고 하지만 꼬집어보면 아픈데 어떻게 하느냐?' 도저히 믿기가 어렵습니다.(처음~21분35초)

 

 

 

 

 

(2/3)----------------

 

그러나 눈병이 든 사람은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눈에 병이 없는 사람은 이 맑은 허공을 보면 아무것도 없는데, 눈병이 있는 사람은 이상하니 무슨 꽃이 이글이글이글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말이여.

저 더운 날 강변에 가면 모래사장에 아지랑이가 이글이글이글 타오르듯이, 그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 분명히 허공에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말이여.

 

그러면 아무리 그 허공에 꽃이 없는 것이라고 말해도 눈병이 없는 사람은 안 보이는데, 눈병이 있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보인다 그말이여. 그러나 잘 생각해 보라 그말이여.

허공에 무슨 꽃이 피어있겠느냐 그말이여. 눈병만 고쳐 버리면은 허공의 꽃은 없어져 버리는 거여.

 

그러면 눈병이 있는 사람에게 보인다고 해서 실지로 허공에 꽃이 있느냐 하면은 없는 것이거든.

그래서 눈병이 없는 사람이 ‘없다’고 하면, ‘없다’고 믿으면 되는 거여. 실지로 자기 눈에 보인다 하더라도 보이는 것은 눈병으로 인해서 헛것이 보이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으면 못 믿을 것도 없다 그말이여.

 

‘번뇌와 망상이 그 자성이 없다’고 하면 실지로 자기에게는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처님이 ‘없다’고 하시고, 성현들이 ‘없다’고 하시고, 선지식(善知識)이 ‘없다’고 하면 그 말을 안 믿고 무엇을 믿을 것이냐 그말이여.

분명히 이 몸뚱이를 타고난 이상 늙어서 병들어 죽는 고통이 있지만 부처님과 모든 성현이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으니 그 성현의 말씀을 안 믿고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이냐 그말이여.

 

성현의 말을 고냥 고대로, 액면 그대로 ‘그냥 없다’고 딱! 믿어버려. 믿어 버리면 참 그게 그렇게, 당장 그 자리에서 대안락(大安樂)을 얻을 수가 있다 그말이여. 

 

 

어려서는 하차잖은 것을 보고도 굉장히 무서워합니다. 실지는 아무것도 무섭지 않는데 굉장히 무서워 해.

‘귀신 나온다, 애비 나온다’해 가지고 어린애들 갖다 울면은 그 못 울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몇 번 하면은 나중에는 ‘애비 나온다’ 그러면은 울다가도 깜짝 놀랜다 그말이여. 

 

호랑이란 놈이 배가 고파서 마을로 내려 왔는데 가만히 그 집에 기어 들어갔다 그말이여. 애기가 막 울어.

‘호랑이가 나온다’고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아니하고, ‘귀신이 나온다’고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않고, ‘여기 곶감 있다’ 그러니까, 아! '곶감 있다'고 하면서 나중에 쓰기 위해서 깊이 둔 곶감을 한 개를 내서 주니까 어린애가 울음을 딱 그쳤다 그말이여.

 

호랑이란 놈이 문 밖에서 가만히 그 종초지말(從初至末)을 다 들어보니까 아! 호랑이, 이 세상에서 자기만큼 제일 무서운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호랑이가 왔다'고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아니하고, 뭐 '귀신이 왔다'고 해도 그치지 아니하는데 아! '곶감 있다' 그러니까 울음을 딱 그친다 그말이여.

 

문을 닫아놓으니까 그 상황은 알 수가 없으나, ‘도대체 그 곶감이란 놈은 귀신보다도 더 무섭고, 호랑이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로구나. 여기서 우물쭈물 하다가는 그 곶감한테 잡히면은 영락없이 죽게 되겠다’ 이리 생각을 하고 아주 꽁지가 빠지라고 도망해 가지고 다시는 그 곶감 있는 집에는 가지를 안했다. 그런 얘기가 있는데.

 

그 호랑이란 놈은 이 곶감을 보지 못했지만 ‘그 곶감이란 놈이 그렇게 호랑이보다도 귀신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다’하고 그렇게 딱 믿고는 다시는 그 집에 안 가듯이,

우리가 탁! 믿을 수만 있으면, 탁! 믿어버리기만 하면 참 무서운 그 힘이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어리석은 사람은 미신을 믿고 그 무당이나 만신이나 또는 무꾸리 점쟁이 그런 말을 믿는 사람은 그 점쟁이의 한마디, 그 무당의 한마디를 참 굉장히 무서워합니다. 그래 가지고 그 하라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몇백만 원을 들여서라도 굿을 하라고 하면 굿을 하고, 무슨 이상한 행동을 하라고 하면은 그걸 다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 무당이나 만신의 말을 믿기 때문에 그 몇백만 원, 몇십만 원 돈도 아까운 줄을 모르고 그 엄청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당이나 만신이나 미신의 말은 아! 그렇게 잘 믿어.

 

아! 대학을 졸업하고 그러한 참 최고 학부를 졸업한 그런 지성인들이 어째서 그렇게 무당이나 점쟁이 말은 그렇게 여지없이 믿으면서, 그 부처님 말씀, 선지식의 말은 잘 안 믿는다. 믿는다 해도 껍데기로만 믿고 속속들이는 잘 안 믿는 것 같다 그말이여.

왜 그러냐?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번뇌와 망상은 본래 없는 것이다. 끊어야 할 번뇌는 없고 해탈해야 할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귀에 따깽이가 앉도록 일어주어도 그런 줄 그 상식 그냥 지식으로, 알음알이로 그렇게 알기는 알아도, 그렇게 무당이나 점쟁이 말 믿듯이 그렇게 속속들이는 잘 안 믿는다 그말이여.

 

그 십분의 일만 믿어도, 당장 이 최상승법을 믿고 바로 이 화두가 타성일편이 되도록, 머지않아서 그렇게 될 텐데 아! 그것을 속속들이 안 믿는다.

 

우리가 정말 이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 법을 믿는다면 ‘맨 처음에 무엇을 믿느냐’하면은 『내가 바로 부처다. 내가 바로 부처』라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부처님한테 무슨 생사(生死)가 있어? 생사 없는 열반(涅槃)의 경지를 요달(了達)한 분이 바로 부처님인데, 부처님한테는 번뇌도 없고 생사도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내가 바로 부처다』 그렇게 딱 믿고 대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번뇌도 없는 것이다.

 

지금 그러면 우리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는 무엇이며, 어머니한테 받아난 이 육체로 해서 생이 있고, 늙음이 있고, 병이 있고 마침내는 육칠십 살다가 결국은 죽는데, 그 죽음이 있는데 이 있는 죽음,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우리가 매(昧)했기 때문에, 매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진 것이다. 이렇게 여러분은 우선 알아야 하고 또 그렇게 확실히 조리 있게 알면 그것이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고서 화두를 들어야 한 번을 들어도 여지없이 화두가 들어지는 것입니다.

 

화두를 들고 또 들고 해서 일체처 일체시에 그놈을 들어 나가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우리의 중생의 무명(無明)으로 인해서 ‘없는 생사’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생사일망정 바로 거기서 생사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중생은 그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전5식(前五識)과 6식(六識, 意識)과 7식(말나식), 8식(아뢰야식), 이런 식(識)으로 해서 일생을 살아가고, 식(識)으로 해서 업을 짓고, 식(識)으로 해서 일체 생사윤회를 하는데,

그 일어나는 육근(六根), 육경(六境), 육식(六識), 이 십팔경계에 있어서 염념불망(念念不忘)으로 화두를 단속해 나가면, 화두가 타성일편이 되고, 그 의단이 독로해 가지고 그것이 툭! 터져 버리면 자성을 깨닫게 되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게 되는데,

 

그 자기 본래면목을 바로 깨닫자마자, 그 깨닫기 전의 중생의 그 육근, 육경, 육식 그 식(識)이 부처님의 지(智)로 변해버리는 것입니다. 지(智)가 딴 데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식(識)이 찰나 간에 변해 가지고 지(智)로 변하는 것이여.

식(識)이 지(智)로 변하는 것이지, 식(識)이 없어지고 지(智)가 어디서 따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 도리를 잘 인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생의 마음을 떠나서 부처님이 없어. 우리의 중생의 마음을 버리고서 그 부처님이 어디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여. 중생의 마음, 그것이 바로 일념무생(一念無生)하는 도리를 요달해 버리면 거기에서 바로 성불을 하는 것입니다.

 

 

광명적조변하사(光明寂照徧河沙)하면  범성함령공아가(凡聖含靈共我家)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념불생전체현(一念不生全體現)이라  육근자동피운차(六根纔動被雲遮)니라

나무~아미타불~

 

광명적조변하사(光明寂照河沙)요  범성함령공아가(凡聖含靈共我家)다.

광명이 적적(寂寂)이 비추니, 온 항하사(恒河沙)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그 광명이 고요히 비치는데,

범성함령(凡聖含靈)이 공아가(共我家)다. 범부, 성현 일체 중생이 다 나의 집이더라. 바로 그 참나의 면목(面目)이더라.

 

일념불생전체현(一念不生全體現)이요, 한 생각 남이 없으면 전체에 드러나.

일념불생(一念不生), 한 생각 일어남이 없어. 일념불생하면 전체가 나타나, 전체현(全體現)이다. 부처님의 면목이 바로 드러난다 그말이여.

 

육근(六根)이 자동(纔動)하면은 피운차(被雲遮)여. 벌써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한 생각이 움직이면은 그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가 환히 비쳤던 데에 거기에 벌써 구름이 가리워져서 그 광명을 가리게 된다 이거거든.

 

이 한 생각을 단속하는 것이,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가 독로하도록 단속을 하면은 삼천대천세계가 이 비로자나 법신(毘盧遮那 法身)의 대광명이 온 세계를 두루 비추는 것이 되는 거고,

한 생각 단속을 못해 가지고 육근(六根)을 통해서 동(動)하면 벌써 그 광명에 구름이 가리워져서 그 광명을 덮는 것이 된다 그거거든.

 

 

단제번뇌중증병(斷除煩惱重增病)이요  취향진여역시사(趣向眞如亦是邪)니라

나무~아미타불~

수순세간무가애(隨順世間無罣碍)하면  열반생사등공화(涅槃生死等空花)니라

나무~아미타불~

 

단제번뇌중증병(斷除煩惱重增病)이요, 그러면 우리 그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끊임없이 퍼일어나는 그 번뇌 망상을 끊어서 없앨려고 하면은 거듭 그 병통을 더 증가시키는 것이 된다. 더 번뇌를 치성하게 하는 것이 되고.

취향진여역시사(趣向眞如亦是邪)다. 진여(眞如)를 향해서 나아갈려고 마음을 먹으면은 또한 이것도 삿된 것이다.

 

번뇌, 그 번뇌 다스리는 법을 아까 말씀을 드렸죠? 번뇌는 끊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진여불성은 우리가 그놈을 찾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여. 번뇌는 끊을려고 하지 말고 화두를 들고, 진여를 찾을려고 하지 말고 화두를 들어.

화두를 염염불망으로 들어서 타성일편이 되어서 그놈을 타파(打破)하면 거기에서 번뇌는 끊을려고 안 해도 저절로 거기에서 끊어져 버리고, 진여는 찾을려고 하지 안 해도 본래면목 진여불성은 찰나 간에 드러나 버리는 것이다 그말이여.

 

수순세간무가애(隨順世間無罣碍)여. 세간(世間)에 수순(隨順)을 한다.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엄마는 엄마로서, 딸은 딸로서, 아들은 아들로서, 남편은 남편으로서, 아내는 아내로서 일체처 일체시에 자기에게 주어진 소임을 충실히 하면서, 바로 그 가운데에서 기쁜 일을 당해도 ‘이뭣고?’ 슬픈 일을 당해도 ‘이뭣고?’ 속상하는 일을 당해도 ‘이뭣고?’

 

그 당하는 일을 ‘좋다’고 그놈을 탐착을 하고, ‘싫다’고 해서 없앨라고 피할라고 하지 말고, 닥치는 대로 자기로서 도리를 다하면서 그놈을 화두를 들고서 화두 드는 마음으로 그놈을 척척척척 해결을 해 나가라 그말이여. 그렇게 해서 걸림이 없게 하라 그말이여.

버리고 취할 것이 없이, 닥치는 대로 자기의 입장에서 가장 적절히 모든 일을 처리를 해 나가. 그럴라면은 그놈을 싫어서 피하지도 말고 좋아서 탐착하지도 마라.

 

어떻게 하면은 버릴 것도 없고 취할 것이 없느냐? 화두를 들고 의단이 독로하도록 해 나가는 길 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일체처 일체시에 걸림이 없이 되면 ‘열반이다, 생사다’하는 것이 바로 허공의 꽃과 같이 되어버린다 그말이여.(涅槃生死等空花) 허공의 꽃이 무엇이던가? 본래 없는 것이거든.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출현(出現)을 하실 때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나오신 것이 아니여. 중생의 ‘생사다, 열반이다’하는 그 두 가지 소견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나오신 것이다.

생사라고 해서 두려워하고, 열반이라고 해서 그놈을 좋아라고 그놈을 쫓아가는 그러한 자세로 나아가는 동안에는 영원히 생사는 끊어지지 않고, 영원히 열반은 얻어지지를 않는 것이여.

 

바로 ‘생사다, 열반이다’하는 그 두 가지 소견을 제도해 버리면 바로 그것이 생사해탈이요, 바로 그것이 적적열반(寂寂涅槃)에 계합(契合)이 되는 것이다 그 말입니다.(21분36초~43분11초)

 

 

 

 

 

(3/3)----------------

 

오늘 무진년 칠석날입니다. 칠석(七夕)이라는 게 대관절 무엇이냐?

전설로는 저 하늘나라 은하계에 견우성(牽牛星)과 직녀성(織女星)이 있는데 그 서로 남녀의 두 별이 그렇게 사랑하건마는 그 은하에 가로 막혀서 가지를 못하다가 칠석날에 까막까치가 다리를 놔 주면은 그 다리를 건너가서 그 오작교(烏鵲橋)인데, 그 오작교를 건너가 가지고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

 

그래서 이 칠석날 이후에 까막까치 그 대가리를 보면, 견우 직녀가 그 대가리를 밟고 지내갔기 때문에 대가리 껍데기가 벗어져 있다. 오늘 여러분들은 혹 까막까치를 보거든 정말 그 대가리가 벗어졌는가 유심히 한 번 살펴보시는 것도 재미가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째서 그러한 전설로 내려오는 칠석날이 그렇게 우리 한국민에 있어서 그렇게 참 하나의 신앙으로써 그렇게 저 신라 때부터서 수천 년을 두고 이렇게 칠석날이 우리의 명절로써 쇠어지고 내려오는가?

‘칠석날은 절에 가면은 그 칠성(七星)님께 공을 들이고 공양을 올리고 기도를 하면은 모두 부모형제 아들딸들이 모두 수명장수하고 복덕구족한다’ 이것은 우리의 토속 신앙(仰)이 되어버렸습니다. 

 

본래 이 북극성은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로 숭배하고, 북두칠성은 이 칠성여래(七星如來)로 숭배를 하고, 해와 달은 일광보살(日光菩薩) 월광보살(月光菩薩)로 하고,

하늘나라의 저 무수한 별들은 그 치성광여래와 좌보처 일광보살, 우보처 월광보살 하는 이 부처님의 그 여러 ‘삼태육성(三台六星) 이십팔수(二十八宿) 주천열요(周天列曜) 제성군중(諸星君衆)’이라 해서 전부 이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의 대중이다 그말이여.

 

석가모니 부처님께는 십대제자(十大弟子)와 십육 대아라한(大阿羅漢) 그리고 천이백오십 인의 제자가 상수제자(上首弟子)로 항상 계셨지마는 이 치성광여래는 좌보처(左補處) 우보처(右補處) 일광 월광 양대 보살이 계시고, 하늘나라에 가득찬 모든 별들이 치성광여래의 다 거느리시는 대중이시다.

 

어떻게 해서 저 별을 부처님으로 이렇게 승격을 시켜서 숭배하게 되었는가?

이것은 아마도 중국에서 그 도교에서 그렇게 숭배하던 그 종교가 불교에 이렇게 받아들여져 가지고, 더군다나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서 이렇게 해서 불교 사찰 안에 칠성단(七星壇)을 모시고 이렇게 해 내려왔는데, 절절이 다 큰 절 작은 절에 가면 칠성님 모시고 산신단도 다 모시고 이래서 하는데,

우리 용화사는 오직 비로자나 법신불 한 분만을 딱 모시고, 각단 탱화라든지 그런 것을 조실 스님께서는 모시지를 안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칠석날에는 계속 이렇게 법회를 거행해 오신 것입니다. 

 

큰 눈으로 보면은 이 우주법계에 가득차 있는 삼라만상(森羅萬像) 두두물물(頭頭物物) - 저 북극성 또 북두칠성, 견우 직녀 그 은하계에 몇 수억만의 별들은 말할 것도 없고, 태양과 달 그리고 지상의 산천초목과 이 기와쪽, 돌맹이 하나 이르기까지 전부가 다 이 비로자나 법신의 몸뚱이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색상이 다 비로자나 법신의 몸뚱이요, 우리 귀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바람 부는 소리, 새 우는 소리, 물 흘러가는 소리, 자동차 소리, 기계 돌아가는 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 저 밖의 어린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지금 옆에 모두 숨쉬는 소리, 일체 모든 소리는 비로자나 부처님의 설법인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모든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부처님 아닌 것이 없고, 듣는 모든 소리는 부처님의 설법이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은 칠석날 칠성님을 숭배하고, 북극성을 치성광여래로 숭배하고, 해를 일광보살로 받들고, 달을 월광보살로 숭배한다고 해서 그것이 하등(等)의 그것을 미신이라고 배척할 만한 근거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용화사에서는 법신불(法身佛) 한 분만을 모셨다 그말이여.

우리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오직 화두 하나로써 팔만대장경을 요달(了達)하고, 삼세제불의 면목(面目)을 철견(徹見)을 하고, 이러한 최상승법을 믿고 닦아가는 도량이기 때문에 법신불 한 분만을 모셨다 그말이여. 얼마나 간결하고 참 얼마나 좋으냐 그말이여.

이 부처님 한 분 속에 치성광여래도 계시고, 칠성여래도 계시고, 일월광보살도 계시고, 이 한 부처님 속에 팔만대장경도 그 속에 다 들어 계시다 그말이여.

 

그렇다고 하면은 우리가 이 한 생각 단속함으로써 팔만사천 번뇌를 거기서 다 항복을 받고, 팔만사천 마구니를 거기서 다 항복을 받고, 그래 가지고 이 일념무생(一念無生)의 도리를 요달함으로써 삼명육통(三明六通)을 거기서 다 요달한 것이다 그말이여.

 

최상승법, 여러분은 무슨 경(經), 무슨 경을 그렇게 많이 읽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이 열어 봐도 종이와 먹으로 된 경이 아니고, 떠들어 봐도 한 글자도 쓰여 있지 않어. 이 한마디 화두, 이 의단(疑團), 이놈 하나를 단속을 해 나갈 뿐인 것입니다.

 

가정에서 살림을 할 때나, 직장에서 일을 할 때나, 절에 오셔서 방부를 들이고 정진을 할 때나, 후원에서 소임을 맡아서 공양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국을 끓이고 또 비를 들고 쓸고 걸레로 닦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서 오직 이 한 생각만을 간절히 간절히 단속을 해 나간다면 거기에는 일체의 모든 복덕과 지혜가 거기에서 다 갖추어질 것입니다.

 

오늘 칠석날을 맞이해서 여러분은 저 무당 만신 그런 데에 가서 칠성단에 공을 들이고 우리 남편 우리 자식들을 어쨌든지 그 몸 건강하고 목숨 길게 해달라고 손을 싹싹 비비고, 참기름에다가 불을 켜 놓고 그렇게 빌고, 그리 쫓아가시지를 않고.

여기 와서 참 맛없는 ‘한 생각 단속해서 화두를 들어라’ ‘의단이 독로해서 타성일편 해 가지고 그 화두를 타파해 버리면 거기에서 삼세제불(三世諸佛)의 면목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과 바로 나의 참 면목을 볼 수가 있다’ 만날 듣고 만날 이 귀에 따깽이가 들도록, 그런데 하필 이 칠석날 또 그 얘기를 하냐?

 

여러분 가운데는 빨리 이 법회가 끝나 가지고, 그거 참 우리 아들 그 만신 집에다 공들여 가지고 그 아들 낳았는데 거기를 안 가면은 그 만신이 노해 가지고 골을 내면은 행여나 우리 아들한테 해로울까, 그래 가지고 빨리 거기를 쫓아가야겠는데, 빨리 법문 그만 좀 했으면 혹 그러실 분이 계실란가 모르겠습니다마는.

여러분은 이미 모다 동참(同參)을 하셨고, 부처님께 모두 이 정성스런 폐백을 올렸고, 이렇게 조실 스님의 최상승 법문을 들었으니 만신 집에 쫓아가지 안 해도 여러분의 칠석날 공은 잘 들여졌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너무 염려를 하시지 말고, 앞으로 정말 영원히 그 무서운 생사윤회(生死輪廻)를 끊어버리고, 영원히 생사 없는 그 열반(涅槃)의 세계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실라면은 금생에 이 몸뚱이 있을 때 어쨌든지 열심히 정진을 해서 생사 문제를 해결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삼불형의총부진(三佛形儀總不眞)이요  안중동자면전인(眼中瞳子面前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능신득가중보(若能信得家中寶)하면  제조산화일양춘(啼鳥山花一樣春)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불형의(三佛形儀)가 총부진(總不眞)이요  안중동자면전인(眼中瞳子面前人)이다.

흙으로 뭉쳐서 만든 부처님, 또 나무로 깎아서 만든 부처님, 쇠를 녹여서 조성한 부처님, 이 세 가지 종류의 부처님의 그 형체가 총부진(總不眞)이여. 모두가 다 참다운 부처님이 아니여. 왜 그러냐?

 

흙으로 조성한 부처님은 물에 들어가면 풀어져 버리고, 나무로 조성한 부처님은 불 속에 들어가면 타 버리고, 쇠붙이로 녹여서 지어붓은 부처님은 용광로(爐) 속으로 들어가면 녹아버린다 그말이여. 그러니 어찌 그러한 부처님의 불상(像)을 갖다가 참다운 부처님이라고 할 수가 있겠느냐?

 

안중동자면전인(眼中瞳子面前人)이다. 눈 속에, 동자(子) 속에 나타나 있는 그것이 바로 앞에 서 있는 그 사람의 모습이더라 그말이여.

사람마다 눈동자 속에 보면은 그 사람 모습이 있는데, 그 눈동자 속에 있는 모습이 바로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의 모습이여. 그 사람의 모습이 바로 눈동자 있는 데에서 찾아봐야 그 사람의 모습이 거기에 비추어져 있다 그거거든.

 

약능신득가중보(若能信得家中寶)하면, 만약 능히 내 집안에 있는 보배를 믿는다면,

 

내 집안에 있는 보배가 무엇이냐?

어떤 사람이 죽을 때 그 평생 먹고 쓰고도 남을 보물의 구슬이 있었는데, 그 보주(珠)를 그 아들한테 전해 주어야겠는데 아들이 너무 어려가지고 그 보물을 전할 수가 없어서 그 아들의 옷 속에다가 그 보물을 딱 넣어놓고 그래 가지고 꽁꽁 꿰메서 잘 두었다 그말이여.

혹은 또 그 집안에 어디다가 깊이 딱 간직을 해 놨는데 아들한테는 일러줄 수가 없으니까, 자기의 친구한테 그것을 일러주었어. ‘내 자식이 철이 들거든 거기 그 보물이 있는 곳을 가르켜 줘라’ 일러주고서 죽었는데.

 

그 아들이 부모가 죽어버리니까 혈혈단신(身)이 되어 가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유랑걸식(流浪乞食)을 하고 돌아다녔다 그말이여.

 

자기한테 그런 아버지의 유산으로 받은 평생 쓰고 먹고 남을 보배가 있는 줄 모르고 그렇게 참 갖은 고생을 하면서 거지 신세로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어느 날 자기 아버지의 친구를 만났어.

그래 가지고 ‘바로 너의 그 옷 속에 보배가 있다’ 또는 ‘너의 집 어디에 가면은 그 보배가 있다’

그래 가지고 그 보배를 발견을 해 가지고 평생토록 참 유족(裕足)하게 살았다 하는 그 경전에 있는 말씀인데.

 

자기 안에 있는 보배, ‘그것이 바로 무엇이냐?’하면은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소소영령(昭昭靈靈)한 그 주인공, 그것을 갖다가 집안의 보배에다가 비유를 해서 말씀을 하신 거여.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 알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아는, 그리고 슬퍼할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알고, 성낼 줄도 아는 바로 그놈.

 

성내고 울고불고하는 그러한 작용이 어디서 나오느냐? 그말이여. 탐심도 낼 줄도 알고, 고약한 그 마음을 내는데, 그 마음 낼 줄 아는 놈, 그러한 작용이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그 작용이 일어나는 바로 그 당처(當處), 그것은 우리는 볼 수가 없어. 중생심으로는 그놈은 볼 수가 없고, 중생견으로는 그것을 알 수가 없는 거여. 더군다나 육안으로는 보일 수도 없어.

 

그런데 그놈으로부터서 온갖 중생의 그 육식(六識)이 거기서 발동을 한다 그말이여.

그 발동하는 그놈을, 발동하는 그 근본, 그 당처를 진실로 얻어버리면, 그놈을 깨달라 버리면, 제조산화(啼鳥山花)가 일양춘(一樣春)이다. 저 우는 새와 그 산에 울긋불긋 피는 꽃이 한결같은 봄이더라.

 

'그 우는 새소리가 바로 부처님의 법문이요, 그 산에 울긋불긋 피어있는 꽃이 바로 부처님의 몸뚱이더라' 이렇게 해석을 붙이면 이 경전은 김이 새버린 것입니다.

바로 봄이 돌아오니 산에는 울긋불긋 꽃이 피고 새는 노래한다 이거거든. 거기에다기 무슨 변명을 붙이고, 변명을 붙이면은 그것은 깨달음의 소식이 아니라 중생의 망견(妄見)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칠석날을 맞이해서 여러분은 동참을 해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으니 그리고 대중스님네 공양을 올렸으니 여러분은 유루(有漏), 무루(無漏)의 복(福)을 영생토록 쓰고 남을 복록을 받게 되셨으며,

최상승 법문을 들었으니 여러분은 생사해탈을 해서, 영원히 이 고해(苦海)에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해탈을 해서 생사 없는 열반의 세계에서 삼세제불과 더불어 무생곡(無生曲)을 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43분12초~64분28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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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행년홀홀급여류~’ ; [무의자시집(無衣子詩集)] (진각국사 혜심) ‘식심게(息心偈)’ 참고.

*녹음 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업경대(業鏡臺) ; 지옥의 염라대왕(閻羅大王)이 가지고 있다는, 인간의 죄를 비추어보는 거울이다. 업경 혹은 업경륜(業鏡輪)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어 지옥에 이르면 염라대왕은 업경대 앞에 죄인을 세우고, 업경대에는 그가 생전에 지은 선악의 행적이 그대로 나타나며, 죄의 경중이 판가름나면, 그에 따라 가야 할 지옥이 정해진다.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객체(客體) ; ①작용의 대상이 되는 쪽. ②주체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인간 인식 실천 대상.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귀(耳根)·코(鼻根)·혀(舌根)·몸(身根)·뜻(意根)의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근(根)은 기관·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육경(六境) ; 육근(六根)의 대상 경계인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을 말함.

산스크리트어 ṣaḍ-viṣaya 경(境)은 대상을 뜻함. 육진(六塵)이라고도 한다.

①색경(色境).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수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수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맛.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등.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게송) ‘심수만경전~’ ; [직지(直指)] (白雲和尙 抄錄, 조계종출판사) 63쪽 마나라(摩拏羅) 존자 게송 참고.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낭연독존(朗然獨存) ; 홀로 밝게 드러나다.

*염념불망(念念不忘) ; 생각 생각에 잊지 않음. 자꾸 생각이 나서 잊지 못함.

*염념불매(念念不昧) ; 생각 생각에 매(昧)하지 아니하다. 생각 생각에 또렸하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

*순수무잡(純粹無雜 순수할 순/순수할 수/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수(純粹)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매(昧)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망상(妄想 망녕될 망, 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소승(小乘) : [범] Hinayana 소승(小乘)이란 작은 수레란 뜻이다。수레는 사람을 태워서 험한 곳을 지나 안전한 곳에 가게 하는 것인데, 작은 수레는 아이들이나 타게 되며, 옅은 물이나 건널 수 있는 것이다。<법화경>에는 「양의 수레」와 「사슴의 수레」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처음 인천교를 말씀하신 다음으로 옅고 낮은 이치의 길을 가르쳐, 생각을 끊고 마음을 비게 하여 열반(涅槃)의 고요한 즐거움을 얻도록 하셨다。그 속에는 사제법(四諦法)을 깨치면 아라한(阿羅漢)이 되고, 십이 인연법(十二因緣法)을 깨치면 연각(綠覺)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소승에도 두 가지 길이 있으므로 이승(二乘)이라고도 한다。소승법을 말씀한 대표적 경전은 <아함경(阿含經)> <구사론(俱舍論)> <성실론(成實論)> <사분승계본(四分僧戒本)> <사분비구니계본> 등이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 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함[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이러한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惑-業-苦 三道]

*대승(大乘) : [범] Mahayana 대승(大乘)이란 큰 수레를 뜻한다。큰 원(願)과 큰 뜻을 세워서 나를 희생하여 모든 중생을 즐겁고 편안하게 건져 주겠다는 보살심(菩薩心) 있는 이들을 위하여, 육도(六度)와 만행(萬行)을 닦아 가도록 깊은 이치를 말씀하신 법문이다.

그 대표적인 경전은 <반야경(般若經)> <해심밀경(解深密經)> <능가경(楞伽經)> <기신론(起信論)> <범망경(梵網經)> 같은 것들이다.

이 법문을 요약하여 말하면, 이 세상에 온갖 물질과 일(森羅萬象)이 벌어져 있으나, 낱낱이 현상(現象) 그대로 비어 없는 것이며, 모든 차별된 것이 그대로 다 평등하여 열반인 것이다。따라서 무엇에나 걸릴 것이 없는 것이다.

소승의 열반이 소극적이며 작고 옅은 것이라면 대승의 열반은 적극적이며 크고 참된 것이다。한 중생도 남음이 없이 모두 제도한 뒤에야, 자기가 성불하겠다는 소원이야말로 대승의 보살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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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고냥 ; 더 이상의 변화 없이 고 상태 고대로.

*그냥 ; 더 이상의 변화 없이 그 상태 그대로.

*종초지말(從初至末) ; 처음부터 끝까지.

*속속들이 ; 깊은 속까지 샅샅이.

*열반(涅槃) : [범] nirvana  [파] nibbana  음을 따라 니반나(泥畔那) • 니원(泥洹) • 열반나(涅槃那)라 쓰고, 뜻으로 번역하여 멸(滅) • 적멸(寂滅) • 멸도(滅度) • 원적(圓寂) • 안락(安樂) • 해탈(解脫) 등이라 한다.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를 말함이니,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할 것 없이 무엇이나 다 열반이며 어느 때나 늘 열반이다。이것이 큰 열반인 것이다.

*요달(了達 마칠•완전히 료, 통달할 달) ; 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무명(無明) : [범] avidya ‘어리석은 마음’ ‘어두컴컴한 마음’을 이름.

<기신론(起信論)>에 는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법계(法界)의 참 이치에 어둡게 된 맨 처음 한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이 근본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거나 거칠거나 한 온갖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하였다.

*식(識) ; 산스크리트어 vijñāna 팔리어 viññāṇa

대상을 식별하고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인식 작용. 인식 주관. 이 식에 관하여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6식설(六識說)·8식설(八識說)·9식설(九識說)이 널리 채택되고 있다.

8식설(八識說)은 유식설(唯識說)에서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식(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제6의식), 第七 末那識(제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제8아뢰야식)이라 한다.

*전오식(前五識) ; 팔식(八識) 가운데 앞의 다섯 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말한다.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의식(意識) ; 팔식(八識) 가운데 제6 의식을 말한다. 육식(六識)의 하나.
①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 인식하는 마음 작용. ②알고 사고하는 마음. 생각하는 마음. 의식은 과거, 미래에의 대상에 대해서도 작용한다. 즉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를 예상할 수가 있다.
6식설(六識說)에서는 의식(意識)이 근본이 되어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 전5식(前五識)을 통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식을 심왕(心王)이라고도 한다.
*말나식(末那識) ; 말나(末那)는 [산스크리트어] manas의 음사로, 의(意)라고 번역.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제6식(第六識)인 의식(意識)과 구별하기 위해서 의(意)라 하지 않고 말나(末那)라고 한다.
8식설(八識說)에서 마음을 이루고 있다고 보는 8식(八識: 8가지의 식) 가운데 하나로 제7식(第七識), 제7말나식(第七末那識) 또는 말나(末那)라고도 한다.
말나식은 제6식의 밑에서 조절하는 강한 자의식(自意識)으로,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끊임없이 자아(自我)라고 오인하여 집착하고, 아뢰야식과 육식(六識) 사이에서 매개 역할을 하여 끊임없이 육식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 작용으로, 항상 아치(我痴)·아견(我見)·아만(我慢)·아애(我愛)의 네 번뇌와 함께 일어난다. 제8아뢰야식에 저장된 종자(種子)를 이끌어 내어 인식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생각과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 작용.
*아뢰야식(阿賴耶識) ; 8식설(八識說)에서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는 산스크리트어 ālaya의 음사로, 진(眞)과 망(妄)이 함께 있다고 하여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이라고도 하며, 본래 깨끗한 것이 드러나 있지 않고 감추어져 있다고 하여 장식(藏識)이라고도 한다.

*십팔경계 ; 십팔계(十八界). 계(界, 산스크리트어 dhātu)는 요소를 뜻함. 인식을 성립시키는 열여덟 가지 요소.

불교에서 인간과 그 밖의 모든 존재 속의 인식작용을 18가지 범주로 나눈 것. 육근(六根)·육경(六境)·육식(六識)을 합한 것이다. 육식(六識)을 제외한 12가지를 12처(處)라고 한다.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지(智) ; ①산스크리트어 jñāna  팔리어 ñāṇa  모든 현상의 이치를 명료하게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이해. 지식.

②산스크리트어 jñāna  깨달음. 깨달은 부분의 지혜. 완전히 아는 것. ③팔리어 paññā  지혜. 혜(慧).

*‘식(識)이 지(智)로 변하는 것이지, 식(識)이 없어지고 지(智)가 어디서 따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 식(識)이 지(智)로 변화되는 것을 전의(轉依)라고 하는데, 전의(轉依)의 뜻은 ‘소의(依, basis) 즉 발동근거를 바꾼다(轉)’로 성도(聖道) 즉 수행을 통해 번뇌에 오염된 8식을 지혜(智)로 변형시키는 것, 즉 질적 전환시키는 것을 말한다.

전통적인 용어로 전식득지(轉識得智) 또는 전식성지(轉識成智)라고도 한다.
전(轉)은 전변(轉變) 또는 능변현(能變現)의 뜻으로 능동적으로 바꾸고 변화시키는 것을 말하고, 득(得)은 획득(獲得)과 성취(成就)를 말한다. 즉 수행자가 수행이라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 자신의 8식을 지혜로 변형시키는 것을 말한다.
번뇌에 오염된 중생의 유루(有漏:세속)의 마음인 ‘8식’(八識-전오식, 제6의식, 제7말나식, 제8아뢰야식)을 질적으로 변혁하여[轉識得智] 얻은 4가지 무루(無漏:열반)의 청정한 지혜—사지(四智)는 다음과 같다.
대원경지(大圓鏡智) ; 인간의식의 심연에 있는 무명(無明)에 오염된 제8아뢰야식(阿賴耶識)을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이 지혜는 마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내는 크고 맑은 거울처럼, 제8아뢰야식에서 무명(無明)의 오염이 완전히 제거된 원만하고 분명한 지혜이므로 ‘크고 둥근 거울과 같은 지혜[大圓鏡智]’라고 말한다.
평등성지(平等性智) ; 인간의 자의식(自意識)에 해당하는 오염된 제7말나식(末那識)을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제7식은 원래 나와 남에 대한 구별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의식이므로 여러 가지 차별을 낳게 된다.
그러나 일체가 한결같고 평등함을 관하여,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생기는 자타에 대한 차별적인 견해를 떠나, 자타(自他)의 평등을 깨달아 대자비심(大慈悲心)으로 바꾸기 때문에 중생교화를 위한 평등한 지혜[平等性智]가 발현된다는 것이다.
묘관찰지(妙觀察智) ; 오염된 제6식(第六識)인 의식(意識)을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이 지혜는 모든 법(法)의 실상을 묘하게 잘 관찰하여 자유 자재로 가르침을 설하고 중생의 의심을 끊어 주는 지혜이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성소작지(成所作智). 눈·귀·코·혀·몸의 5관으로 느끼는, 오염된 전5식(前五識)을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이 지혜는 5관으로 행하는 일을 올바로 이루도록 하여, 중생을 이익과 구제하기 위해 여러가지 불가사의한 일을 모두 성취하는 지혜[成所作智]이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게송) ‘광명적조변하사 ~ 열반생사등공화’ ; 장졸수재(張拙秀才) 거사(居士)의 오도송(悟道頌) 참고.
*항하사(恒河沙) ; 갠지스 강(Ganges江)의 모래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면목(面目 낯 면, 눈 목)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함.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비로자나 법신(毘盧遮那 法身)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세간(世間) ; (산스크리트어 loka) 세(世)는 파괴·변화, 간(間)은 가운데·간격을 뜻함.
①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② 생물들의 세계. ③ 생물들이 거주하는 자연 환경, 곧 산하대지. ④ 세상. 이 세상. 세속.
*공화(空花, 空華) ; 환(幻). 공안화(空眼花). 공중(空中)의 꽃. 눈의 장애로 말미암아 생기는 허공의 꽃.
실재하지 않는 것을 있는 것으로, 관념을 실재하는 객관 대상으로, 고유한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는, 번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망상(착각·환상·편견 등)을 말한다.
 
눈이 멀쩡한 사람은 허공 속에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데, 눈병이 난 사람은 허공에 이상한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보이고 그러는데, 눈병만 고치면은 허공에 피어있던 꽃이 안 보인다.
그래서 눈병이 났던 사람은 ‘허공에 있던 꽃이 있다가 없어졌다’고 하지마는, 허공의 꽃은 있다가 없어진 게 아니라 원래 없던 것이다.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통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을 만나면 육식(六識, 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이 생기는데, 그 육식(六識)에 포착되는 모든 것들을 이름과 모양—명상(名相)이라 하는데, 명상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림자요, 메아리, 환(幻)인 것이다.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명상(名相) 그것을 ‘있는 것’으로 집착을 함으로 해서, 모든 탐진치 삼독심이 일어나 생사윤회의 업을 짓는데, 마음 하나만 공(空)해 버리면 일체 명상(名相)은 동시에 다 공(空)해 버리는 것이다.
 
원래는 이 세상에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生死)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生死)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이거거든.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송담스님 법문 521, 636 참고)
*계합(契合) ;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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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까치 ; 까마귀와 까치를 아울러 이르는 말.

*칠성(七星) ;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신격화한 것으로 칠성에 대한 신앙은 특히 중국의 도교에서 발달하여 이후 ①불교에서 칠성은 호법선신(護法善神)의 하나로 수용되었고 ②민간에서는 특히 수명과 재복을 관장하는 신으로 믿어졌다.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 ; 도교에서 유래한 칠성신앙을 불교에서 받아들여 북극성을 부처로 바꾸어 부르는 이름. 북극성은 그 빛이 밤하늘의 별 중 가장 밝아 치성광(熾盛光)이라는 명칭이 붙었으며 묘견보살(妙見菩薩)이라고도 한다.

*십대제자(十大弟子) ; 석가모니의 제자 중 수행과 지혜가 뛰어난 10명을 이르는 말.

*칠성단(七星壇) ;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신격화한 칠원성군(七元星君)을 모신 단.

*하등(等)주로 ‘하등  부정어 함께 쓰여, ‘아무런  나타내는 .

*법신불(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즉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삼명육통(三明六通) ;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갖추고 있는 3가지 자유 자재한 지혜와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동참(同參) ; ①어떠한 일에 함께 참여함. ②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③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는-동문수학하는 '도반(道伴)'과 같은 말. 동학(同學)이라고도 한다.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게송) ‘삼불형의총부진~’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용광로( 녹일 용/쇳돌 광/화로 로) ; 높은 온도 광석 녹여 구리 따위 쇠붙이를 뽑아내는 가마.

*혈혈단신( 외로울 혈/홑 단/몸 신) ; 의지할 곳 없이 외로운 홀몸.

*유랑걸식(流浪乞食 흐를·떠돌 류/물결·떠돌아다닐 랑/빌 걸/밥 식) ; 일정한 거처가 없이 떠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먹음.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당처(當處) ;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 그곳. 또는 이곳.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