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점진적인 것이 아니라 비약적인 것입니다. / 똑같은 일을 계속 되풀이하면 습관화, 체질화가 되어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되어진다

**송담스님(No.099) - 1979년(기미년) 신수기도회향(79.1.9.음)(77분)에서.

약 12분.


부처님은 대도(大道)를 성취하시고 육신통을 구족(具足)하셔서, 삼명육통(三明六通)을 다 갖추신 그리고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종호(八十種好)를 갖추신 그러한 대성인이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처님은 아무것도 안하고 놀고 계셔도 다 된다. 더 닦을 것도 없으시겠다.’ 이리 생각하실런지 모르지만, 부처님께서는 우리보다 몇천 배 몇만 배의 정진을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가끔 한눈을 팔 수도 있고, 해태를 게으름을 부릴 수도 있고 그렇지만, 부처님은 단 1초 동안 한 눈을 파시는 법도 없을 뿐만 아니라, 단 1분 동안의 게으름도 부리신 일이 없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언제나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고 계신 증거인 것입니다.

부처님이 그러시거든 하물며 우리의 범부 중생들은 이를 갈아붙이고 이를 악물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우리의 목표를 향해서 꾸준히 닦아가야 할 줄 생각합니다.
그렇게하심으로 해서 재송도인(栽松道人)과 같이 생사에 자유자재 하실 수도 있는 그러헌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헌 위대한 일, 어려운 일이 그렇게 간단하게 성취가 될 것인가? 죄 많은 중생이, 말세(末世)에 태어난 우리가 어찌 그러헌 대도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가망없는 일이다. 다못 인연이나 맺게 그저 법문 듣고 기도나 해보자.

이러헌 생각을 가지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헌 생각은 이미 잘못된 선입관이 우리에게 박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사회의 모든 학문은 점진적이어서 기초부터 차츰차츰 배워서 알아 들어가는 공부요, 외우는 공부요, 속에다 쌓아 올리는 공부는 그것은 점진적인 공부라 하는 것인데, 그러헌 공부는 물론 많은 세월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이 내가 나를 깨달라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이 참선법은 점진적인 것이 아닌 것입니다.

아까 조실스님 법문 속에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번 뛰어서 곧 여래(如來)의 경지에 들어간다’ ‘한 번 뛰어가지고 성불(成佛)을 한다’ 이런 말씀입니다.

다시 바꾸어서 말하면, 이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점진적인 것이 아니라 비약적인 것입니다.
엊그제까지 꽉 맥혔던 중생이 찰나(剎那) 간에 툭 터지면은 견성(見性)을 해서 성불(成佛)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깨달음은 차츰차츰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하고 해서 따져가지고 ‘오, 그렇구나!’ 이렇게 해서 알아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알 수 없는 의심으로 꽉 맥힌 상태에서 ‘이 뭣고?’, ‘이 뭣고~~?’

아침부터 낮에까지 낮부터 저녁까지, 밥을 먹을 때나, 세수를 할 때나, 소제를 할 때나, 빨래를 할 때나, 설거지를 헐 때나, 차를 탈 때나, 이야기를 할 때나, 어느 때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겉으로 하는 일은 다 허면서도 생각은 ‘이 뭣고?’ 이렇게 단속해나가는 것입니다.

일 헐 때는 그 일에 대해서 정신을 쏟고, 밥을 먹을 때는 밥에 대해서 정신을 쏟고, 말을 할 때는 말에 대해서 정신을 쏟고 그래야지,
일 헐 때 일에는 정신을 쏟지 않고 ‘이뭣고?’를 한다면 그 일이 어떻게 되며,

반찬을 만들 때 그 반찬에 여러 가지 재료•분량과 양념의 종류 이런 것을 고루고루 모두 따지고 영양가도 따지면서 조리를 해야지,
‘이뭣고?’만 허면서 이것저것 함부로 집어넣으면-간장을 잔뜩 붓거나 고추장을 듬뿍 집어넣거나 하면-반찬이 다 못쓰게 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걱정을 하시겠지만, 절대로 그렇게 되는 경우가 적은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 특수한 경우는 너무 의심(疑心)이 독로(獨露)해서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되어 가면, 채소밭에 잡초를 매면서 잡초는 놔두고, 아껴서 세워두어야 할 채소를 다 호미로 매버리는 경우가 과거에 고인네들에 있어서 가끔 있었다고 전해옵니다.

그런 경우가 더러는 있지마는 그건 특수한 경우고, 화두를 들고서 모든 일을 해 나가면은 처음에는 화두 들라고 하면은 일이 제대로 안 되고, 일에 정신을 쏟으면은 화두가 잘 안 들리고 해서, 두 갈래 길에서 갈팡질팡 잘 안 되는 수가 있습니다마는, 자꾸 익히는 것입니다.

자꾸, 세수허면서 ‘이뭣고?’헌 그 화두를 놓치지 아니하고 세수를 한번 해보세요.
세수를 허러 세숫대야 있는 데까지는 갔고, 세숫대야에다 물을 퍼붓을 때까지도 화두가 있었고, 그런데 손으로 물을 움켜서 얼굴에다 대고 문지를 때 깜박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자꾸 그럴 때에 잊어버리지 않도록 화두를 단속(團束)을 해 보십시오. 그럴 때 한번 단속을 해봐서 세수를 끝내고 다시 수건으로 닦을 때에도 화두가 들어져 있도록,

그렇게 그때그때 잠깐잠깐의 생활 속에서 화두를 단속헌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정진을 빨리 이러한 경지-타성일편(打成一片) 경지에 몰아가는데 대단히 효과적인 것입니다.

발우(鉢盂)를 떠억 필 때까지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밥을 다 넣어두고 진지를 할 때도 (화두가) 있는데, 죽비를 딱딱 세 번 딱 치고 숟가락을 들어서 입에다 넣고 씹으면서 화두가 달아나 버리고,

그래 가지고 옆의 사람을 힐긋힐긋 쳐다보면서 행여 나보다 먼저 먹을까 싶어서 막 잘 씹지도 아니하고, 침도 바른 둥 만 둥 하고 막 삼켜가지고 그런 동안에 단 한 번도 화두를 들어보지 못하고 공양이 끝나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선방에 계신 스님네나 보살님네는 물론이고 가정에서 계실 때에도 공양은 언제나 천천히 잡숫고 잘 씹어서 잡숫고, 그럴려면은 화두를 놓치지 않을려고 노력을 하면서 화두를 들고서 그 드는 상태에서 공양을 잡숫도록 하시면,

저절로 잘 씹게 되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공양을 허시게 되기 때문에 소화도 잘되고 영양흡수도 잘되고 따라서 가장 맛있게 공양을 잡숫게 되는 것입니다.

화두는 공양 잡술 때에 한해서 만이 아니라 모든 일 할 때도 마찬가집니다.

화두를 들고 모든 일을 해야 그 일이 제대로 되어가는 것입니다.
일만 제대로 될 뿐만 아니라 피로를 덜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종일 일을 허되 일하는 데에 나의 정신을 빼앗기지 아니했기 때문에 정신적인 피로를 느끼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잘 명심을 허시고, 생활 속에 이 참선을 잘 해 나가시도록 정성들여서 단속을 해나가시면은 차츰차츰 이것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똑같은 일을 계속해서 되풀이허게 되면은 거기에서 습관성이라고 하는 것이 생깁니다. 계속 그것이 습관화가 되면 나중에 체질화가 되는 것입니다.

헐려고 안 해도 저절로 되어지는 단계에 도달해서 조금도 무리가 없이 되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에 우리의 마음과 몸은 혼연(渾然)히 일체가 되는 것이고, 우리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도 바로 나의 살림살이가 되는 것이고, 나의 수중으로 다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내 마음대로 요리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에 우리는 확철대오 할 시기가 도래한 것입니다. 이 공부만이 생사해탈을 획득하게 되는 것입니다.(43분26초~55분1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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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족(具足 갖출 구,충족할 족) ; 빠짐없이 두루 갖춤.
*삼명(三明) ;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갖추고 있는 3가지 자유 자재한 지혜.
①숙명지증명(宿命智證明) 나와 남의 전생을 환히 아는 지혜.
②생사지증명(生死智證明) 중생의 미래의 생사와 과보를 환히 아는 지혜.
③누진지증명(漏盡智證明)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지혜.
*육통(六通) ; 육신통(六神通)의 준말.
*육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이 신통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하지마는 흔히 여섯 가지로 말한다.
1. 신족통(神足通)은 공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그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수 있는 것.
2. 천안통(天眼通)은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것.
3. 천이통(天耳通)은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릴 것 없이 무슨 소리나 잘 듣는 것.
4. 타심통(他心通)은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그 생각하는 바를 다 아는 것.
5. 숙명통(宿命通)은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의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다 아는 것
6. 누진통(漏盡通)은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94~95.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과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먹음은 것,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것 등등.
*한눈을 팔다 ; 해야 할 일에 마음을 쓰지 않고 정신을 딴 데로 돌리다
*재송도인(栽松道人) ; 중국 선종(禪宗)의 제4조 도신대사(道信大師 580~651)가 제자를 맞아 인증을 하였지만, 제자가 너무 늙어 스승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법을 이을 사람이 없으니 몸을 바꾸어 오도록 하였다. 이에 몸을 바꾸어 후에 다시 만날 때 증거로 삼기 위해 황매산에 소나무를 심었다. ‘소나무를 심었다’는 뜻에서 ‘재송도인(栽松道人,栽松道者)’이라는 별명을 가진 분이 5조 홍인대사(弘仁大師 602~675)이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여래(如來) ; 여래 십호(如來十號)의 하나. 진여(眞如)의 세계, 곧 열반에 다다른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다타가타(tathāgata)의 번역어이다.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깨달음을 여는 것. 각자가 스스로 무상의 깨달음을 열고, 부처가 되는 것. ④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찰나(剎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독로(獨露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타성일편(打成一片) : 좌선할 때 자타(自他)의 대립이 끊어져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발우(鉢盂) ; 발(鉢)은 (산)patra의  음역어인 발다라(鉢多羅)의 준말로 식기, 우(盂)는 그릇을 뜻함. 음역어와 번역어의 합성어로, 수행승들의 식기를 일컬음.
*혼연(渾然 가지런할•모두 혼,그러할 연) ; 다른 것이 조금도 섞이지 않고 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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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상(相)없이2013.11.18 10:10

§(099) () 집착없이. 척사현정(斥邪顯正) / 재송도인 / 만공스님, 보월스님 / ()없이 베풀어야 / 본참화두를 들고 행동하면 자연히 상에  떨어져.

**송담스님(No.099) - 1979년(기미년) 신수기도회향(79.1.9.음)(77분)에서.

(1) 약 8분.  (2) 약 17분.

(1)------------------

금방 조실스님께서는 재송도인(栽松道人)의 법문을 허셨습니다. 여러분께서 조실스님이 아주 재미있게 해주신 법문이라 잘 들으셨을 줄 생각합니다.

참선을 해서 생사(生死)없는 이치를 깨닫고 그리고 보림(保任)을 잘하면, 생사에 그렇게 자유자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사에 자유자재하다’고 하는 것은, 앉아서 죽고 서서 죽고, 오늘 가고 싶으면 오늘 가고, 며칠 더 있다 갈라면 가고. 옛날 도인들은 떠억 편안히 앉아서 가신 분, 또 걸망을 떠억 지고 지팽이를 집고 어디 행각(行脚)을 떠나는 그런 행색(行色)을 해 가지고, 마당에 나가서 못가에 서서 선 채 딱 열반(涅槃)하신 그런 분도 계시고,

또 등(鄧隱) 조사 같은 이는 열반하실 때 옆에 시자(侍者)보고, “제방(諸方)에 앉아서 돌아가신 분이 계시냐?”

“그런 분은 많이 계십니다.”
“서서 돌아가신 분도 계시냐?”
“그런 분도 더러 있습니다.”
“그러면 까꾸로 서서 돌아가신 분도 있느냐?”
“그런 분은 아직 없습니다.”
당신은 까꾸로 서서, 선 채 열반에 드셨습니다.

전등록에 보면 까꾸로 선 채 열반에 드셨는데 옷자락, 옷고름, 옷소매까지도 밑으로 처지지 아니하고, 몸 따라서 딱 붙은 채 열반에 드셨습니다. 옆에 대중들이 전부 그분을, 열반하신 뒤에 편안하게 뉘어 드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까딱을 안했습니다. 마치 큰 나무가 우뚝 선 것처럼 아무리 밀어도 넘어지지를 안했습니다.

그래서 애를 먹고 있던 차에, 마치 등 조사의 누이동생이 여승(女僧)인데, 여승이 오빠이신 등 조사가 열반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왔습니다. 와서는 “이 노장(老長)이 평생에 추한 짓을 하더니 죽을 때에도 이런 추한 짓을 하는구나.” 하고  손가락으로 툭 밀뜨려 버리니까 툭 쓰러졌습니다.

과거 인도나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 일본에-이 동양에 걸쳐서 많은 도인들이 이렇게 생사에 자유자재 허셨습니다. 그런 분이 참 많이 계십니다.
그러나 참으로 그 분이 올바르게 깨닫고 못 깨닫고 허는 그 구분을, 돌아가실 때 서서 돌아가셨느냐 또는 앉아서 돌아가셨느냐 또는 누워서 돌아가셨느냐, 돌아가신 뒤에 방광(放光)을 했냐 안했느냐 이러헌 것으로써 그 분의 도(道)가 높고, 높지 아니한 것을 분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공 스님-조실스님의 법사(法師)스님이신 만공 스님에, 맨 처음에 법(法)을 전해 받으신 보월 스님께서 열반하셨을 때에 오색(五色)이 찬란한 방광을 하셨습니다.
그때에 만공 스님께서 보월 스님의 열반에, 그 상서(祥瑞)에 대한 점검을 하시기를 “추한 이 더러운 놈이 죽을 때 추한 짓을 면하덜 못하는구나.” 이렇게 말씀을 허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모다, 아까 등 조사의 까꾸로 서서 움직이지 아니한 것에 누이동생이 와 가지고 그 점검을 하는 말씀이나, 만공 큰스님께서 당신의 수법제자(受法弟子)이신 보월스님의 열반서상(涅槃瑞相)을 점검하신 말씀이, 다 척사현정(斥邪顯正)의 뜻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행여나 중생들이 상(相)에 집착해서 바른 법을 보지를 못하고 삿된 소견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셔서 추상(秋霜)같은 점검을 내리신 것입니다.

근자(近者)에 스님네나 또는 보살님네들이 돌아가셨을 때 화장(火葬)을 한 결과 많은 사리(舍利)들이 여기서 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불교신문에 자주자주 보도가 됩니다마는, 물론 계행을 잘 지키고 수행을 착실히 하고 마음씨를 착하게 먹고 일생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아온다면 사리가 나올 수가 있습니다. 또는 나오지 아니할 수도 있습니다.
나온 것을 꼭 나쁘다고 헐 것도 없습니다마는, 사리 나온 것을 가지고 ‘사리가 나왔기 때문에 그 분이 도인(道人)이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고 허는 것을 우리 법보제자 여러분들께서는 잘 알고 계서야 할 줄 생각합니다.

이것을 모르고 사리가 나오고 방광을 헌 것에 대해서 그것을 착각을 해가지고,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이 참 도인이다’ 이렇게 생각하신다면, 정법(正法)을 배우는 불제자(佛弟子)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5분58초~13분28초)


(2)------------------

재송도인(栽松道人)이 팔십 노인의 몸으로 인가(印可)를 받으러 갔다가 법담을 해서, 법담(法談)은 훌륭하게 해서 분명 견성(見性)헌 것을 인증을 받았지마는 늙은 탓으로 해서, 늙은 사람에게 법(法)을 전해봤자 법을 전하신 스승보다도 먼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법을 그 다음에 누가 있어서 대(代)를 이을 것인가?
그래서 몸을 바꿔 오도록 말씀을 허셨던 것입니다.

몸을 바꾸는데, 처녀의 뱃속에 들어가, 그래가지고 몸을 새로 바꿔 나와서, 어려서 출가를 해 가지고 인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출가하신 재송도인을 떠나보내고 그 어머니-처녀로 애기를 난, 그 재송도인의 어머니-께서는 아들을 찾고 찾아서, 늙발에 아들 있는 곳을 알아가지고 찾아갔습니다. 얼마동안 별당에서 밥을 얻어 자시면서 계셨습니다.
그런데 결국 돌아가실 때에, 별당에다가 가둬서 계시게 하고 밥을 갖다 드리지 아니해서 굶어서 돌아가셨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 내려옵니다.

그때 수백 명의 제자들이 ‘어째서 처녀의 몸으로 당신을 고생 끝에 낳아가지고 길러서 출가를 시켜준 그 어머니를 굶겨서 돌아가시게 헐 수가 있겠습니까? 결단코 도인(道人)이라 헐 수가 없다. 이러한 불효한 사람이 도인일 수는 없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한테 도를 배우느니 차라리 여기를 떠나자’ 이리 해 가지고 대중이 전부 걸망을 싸 짊어지고 그 절을 떠날라고 했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그 돌아가신, 재송도인의 어머니 말씀이 들렸습니다. “여러 대중 스님네, 제 말씀을 들으시오. 나는 아들 하나를 잘 둔 공덕으로 지금 나는 천상으로 올라가는 길이오. 그러니 내 아들이야말로 불보살(佛菩薩)의 화신(化身)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신 도인이고, 나에게 가장 효도를 해준 아들이니, 내 아들을 그릇 오해하지 말고 어서 걸망 짐을 풀어놓고 열심히 도를 배우시오.” 이렇게 소리가 울려나왔다고 합니다.
그 말씀을 듣고, 대중 스님네들은 다시 걸망을 풀고 그전에 보다도 훨씬 더 목숨 바쳐 공부를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에는 도저히 이해가 안가시겠지마는, 이 법(法)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인정(人情)을 써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인정(人情)과 자비(慈悲)는 그 질(質)에 있어서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인정은 우선은 따뜻하고 부드럽고 좋지마는 결국 사람을 해롭게 하는 것이고, 자비는 겉으로 보기에는 인정과 너무나도 흡사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인정이라 하는 것은, 주는 것이 있고 또 받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주면서 또 받을 것을 또 기약을 헙니다.

그러나 불보살의 무연자비(無緣慈悲), 정말 참된 자비라고 하는 것은 주되 주는 바가 없고, 따라서 상(相)이 없는 것이며, 받을 것을 전혀 생각에 두지 않는 것입니다.
그 보답을 받기를 바래면서 주는 것은 ‘참보시’가 아니고 ‘참자비’가 아니고, 은혜를 베풀어서 덕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원망과 웬수 빚으로 돌아오는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6.25 동란 때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습니다마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은혜를 베푼 자’에게, 은혜로 보답하지 아니하고 죽음을 갖다 안겨준 그러헌 사례가 방방곡곡에 일어났던 것입니다. 과거•현재•미래에 걸쳐서 언제라도 은혜를 베푸는 것에 덕(德)이 돌아오지를 못하고 그러헌 웬수 빚으로써 보답 받은 예는 너무나 흔한 것입니다.
그 원인이 뭣이냐 하면, 그 배은망덕(背恩忘德)한 그 사람을 다 나쁘다고 합니다마는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되 상(相)이 없이 주라.’ 주되 보답을 바래지 말고 주어야지, 보답을 바래고 주면은 결과적으로는 좋지를 못한 것입니다.(20분29초)

심지어 부모가 자식을 가르키고, 자식을 키우고, 자식을 결혼을 시켜서 자유롭게 해준 그 일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는 그 아들과 딸을 고생고생 하면서 포태(胞胎)를 해 가지고 낳아서 길러 가지고 맛있는 것은 아이의 입에 넣고, 따뜻하고 마른자리는 아이에게 주고 춥고 젖은 자리는 엄마가 눕고, 이러면서 키운 그 자식, 못 먹고 못 입으면서 키운 그 자식이 커서 장가가서 자식 낳고 살면은 부모의 은혜를 거의 망각하게 됩니다. 심지어는 너무나도 지나친 불효자식(不孝子息)이 되고, 나중에는 지집 말만 듣고 부모를 웬수같이 생각하고 부모를 내쫓고 부모를 죽게까지 하는 예는 신문에 가끔 보도됩니다.

이건 특수한 예라고 생각허실런지 모르지마는, 자식은 과거의 업(業)으로 인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혹 은혜를 갚기 위해서 태어난 그런 효자도 더러는 있지만, 대다수 자식이 웬수를 갚기 위해서 태어난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고 하는 것을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웬수의 자식이 태어날수록에 부모는 더욱 그 자식이 사랑스럽고 불쌍하고 피라도 빼서 그 놈을 살릴라고 허고 잘 살게 헐려고 하지마는, 그 자식은 점점 부모의 속에다가 불을 묻고 송곳으로 찌르고 고춧가루를 뿌리는 그러헌 짓을 가려가면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두 웬수가 태어나서 자식노릇을 하고 있는 경우인 것입니다. 그러헌 자식은 태어나지 아니한만 못하건마는 자기가 지어 놓은 업이라 그것을 달게 받을 수 밖에는 없습니다.

지금 세계에 42억이라고 하는 인구가 있지마는, 그 많은 인구가 부모의 몸을 빌리지 않고 태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많은 수가 얼마만큼 그 부모의 은혜를 알고 부모에 효도를 허는 사람이 있는지, 우리 자신부터 우리들의 주변 사람 가까운데부터서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웬수를 맺지 말아야 할 것을 다짐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웬수를 맺지 아니헐라면 남에게 악(惡)하게 하지 아니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남에게 착하게 허되 보답을 바래지 아니하고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어떤 재산을 베풀고서, “내가 너를 살려주느니, 너는 일생동안 백골(白骨)이 되도록 잊지를 말아라. 그리고 목숨 바쳐서 그 은혜를 나한테 갚아야 하느니라.” 그러헌 말을 입으로도 할 필요도 없고, 그러헌 생각을 마음으로도 가져서는 아니 되것습니다.
그렇게 했다면 받은 사람이 당장 부담을 느끼게 되고,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주는 사람 앞에서는 고개를 잘 들지를 못하고 항시 불안을 느끼게 되고, 그 생각이 속에서 쌓이고 쌓여 가지고 준 사람을 싫어하게 되고 꺼리게 되고, 언젠가는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담에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말라’ 이런 말이 있습니다마는, 이것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지 말어라’ ‘은혜 베풀어 가지고 좋은 꼴 보지 못한다’ 막말로 말하면 그런 말이 되겠습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뼈저린 가슴 아픈 그런 경험을 통해서 나오는 말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의 힘닿는 데까지 물심양면으로 은혜를 베풀어야 하고 자비를 베풀어야 됩니다. 단, ‘베풀되 보답을 바라지 말고 베풀고, 베풀되 상(相)이 없이 베풀어야 한다’ 이것입니다.

배은망덕한 꼴을 보고, ‘나는 다시는 옆에서 사람이 죽어도, 나는 밥 한술 못 주겠다’ 이건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물에 빠진 놈 건져주니까 보따리까지 내놓으라’, 그 보따리 내놓으라고 할까봐서, 물에 빠져서 곧 죽게 되는데 그것을 건져줄 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져주지 않는다고 허는 것은 이건 말이 되질 않습니다.
한 번 속고 두 번 속고 몇 번을 배은망덕을 당한다 하드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른 일, 착한 일을 내놓고는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허면 보답을 바래지 아니허고, 어떻게 허면 상(相)이 없이 착한 일을 할 수 있을까?
‘이 뭣고~?’ ‘이 뭣고?’하면서, ‘이 뭣고?‘허는 마음으로 주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뭣고?’를 놓치면 중생심(衆生心)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중생심으로 허는 일은 모두가 다 인연(因緣)의 인과(因果)의 올개미에 걸려드는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어떠한 어려운 처지에서도 우리는 본참화두(本參話頭)인 ‘이 뭣고?’, 본참화두를 놓치지 아니허고 행동을 허게 되면, 자연히 상(相)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착한 일을 할 수가 있고,
웬수가 나를 해코지 하러 오드라도 ‘이 무엇고?’로써 상대를 허게 되면은 웬수도 굴복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속을 살아가다보면, 나에게 자비롭게 해 주고 친절을 베풀어 준 사람도 많이 만납니다마는, 까닭 없이 나에게 해롭게 하고 까닭 없이 나에게 손해를 끼치는 그런 일을 더러 당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이렇게 규정을 내리고 미워하고, 그 놈을 언젠가는 혼을 내줄려고 이를 갈아붙입니다마는, 사실은 까닭 없이 나를 해롭게 하는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나에게 잘해 준 것도, 그것도 언젠가 내가 그 사람에게 잘해 준 일이 있어서 내게 잘해 주게 되는 것이고, 나에게 해(害)를 끼치는 사람도, 해를 끼칠 수밖에 없도록 자기가 그 원인을 진즉(趁卽) 다 심어 놓았기 때문에 그러헌 일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 사람의 허물은 바로 내 허물이다’, ‘내 허물이 저 사람에게 부딪쳐서 되돌아오는 현상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13분30초~30분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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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송도인(栽松道人) ; 중국 선종(禪宗)의 제4조 도신대사(道信大師 580~651)가 제자를 맞아 인증을 하였지만, 제자가 너무 늙어 스승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법을 이을 사람이 없으니 몸을 바꾸어 오도록 하였다. 이에 몸을 바꾸어 후에 다시 만날 때 증거로 삼기 위해 황매산에 소나무를 심었다. ‘소나무를 심었다’는 뜻에서 ‘재송도인(栽松道人)’이라는 별명을 가진 분이 5조 홍인대사(弘仁大師 602~675)이다.
*보림(保任 보임) ;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더욱 갈고 닦는 수행. 흔히 ‘보림’이라 읽는다.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걸망 ; 물건을 담아서 등에 질 수 있도록 만든 자루 모양의 큰 주머니.
*행각(行脚) ; 스님이 일정한 거처를 가지지 않고, 스승의 밑을 떠나 참선의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지식이나 좋은 벗을 구해 마치 떠도는 구름이나 흐르는 물처럼 여러곳을 편력하는 것. 운수(雲水)와 같은 의미.
*행색(行色) ; 길을 떠나기 위하여 차리고 나선 모양.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등은(鄧隱) 조사 ; ‘등은봉(鄧隱峰) 선사’를 말함. 복건(福建)의 소무(邵武) 사람. 성은 등(鄧)씨.
어릴 때에는 지혜롭지 못한 듯 했다. 부모가 출가를 허락하자, 처음에는 마조(馬祖)의 문하에서 수행했으나 오묘한 진리를 보지 못하고는 석두희천(石頭希遷)에게로 갔다. 이렇게 왕래하기를 두세 번 거듭하다가, 끝내 마조의 가르침 아래서 계합(契合)하였다.

*제방(諸方) ; ①모든 지방 ②모든 종파의 스님.
*노장(老長) ; 나이가 많고 덕행이 높은 스님.
*방광(放光) ; 광명을 발하는 것.
*법사(法師) ; ①심법(心法)을 전하여 준 스님. ②불법(佛法)에 통달하고 언제나 청정한 수행을 닦아 남의 스승이 되어 사람을 교화하는 스님. ③설법하는 스님.
*상서(祥瑞) ; 복되고 좋은 일이 일어날 조짐.
*척사현정(斥邪顯正) ; 삿된 것을 거부하여 물리쳐, 불법(佛法)의 진리를 올바르게 나타내 보임.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사리(舍利) ; sarira의 음사(音寫). 신골(身骨)•유신(遺身)이라 번역. 시체나 유골을 뜻함. 그러나 오늘날에는 화장한 뒤에 나오는 작은 구슬 모양의 물질을 가리킴.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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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발 ; 늙어 노인이 된 처지.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법담(法談) ; 선사(禪師)들이 서로 법문을 묻고 대답하는 것.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화신(化身) ; 부처의 삼신(三身:法身•報身•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무연자비(無緣慈悲) ; 무조건의 자비(慈悲). 상대의 어떤 것도 묻지 않고, 일체 평등으로 구제하는 자비심. 일체 평등의 이치를 깨달아 상대의 상(相:모습)을 가리지 않고 행하는 자비. 무연(無緣)이란 진여평등(眞如平等)의 이치를 깨달아 중생의 본체(本體)가 허망하다는 것을 알고 일으키는 자비.
*참- ; 일부 명사 앞에 붙어, ‘올바르고 진실된’의 뜻을 더하는 말.
*배은망덕(背恩忘德) ; 남에게 입은 은혜를 잊고 배반함.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지집 ; ‘계집’의 사투리. *계집 ; ‘여자’나 ‘아내’를 얕잡아 이르는 말.
*웬수 ; ‘원수(怨讐)’의 사투리. *원수(怨讐) ; 자기나 자기집에 해를 입혀 원한이 맺히게 된 사람이나 집단.
*백골(白骨) ; 죽은 사람의 살이 썩고 남은 뼈.
*한술 ; 얼마 되지 않는 적은 음식이나 그 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숟가락으로 하나의 양.
*올개미 ; ‘올가미’의 사투리. *올가미 ; 노끈이나 철선 따위로, 잡아당겨도 매듭이 풀어지지 않도록 한 가닥을 고리처럼 만들어 짐승을 잡는 기구.
*이 무엇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열가지 병이 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해코지 ; 남을 해치고자 하는 짓.
*혼을 내줄려고 —> 혼내다 ;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매우 심하게 꾸지람을 하거나 벌을 주다.
*갈아붙이다 ; 분함을 억제하지 못할 때나 결심을 굳게 할 때, 독한 마음으로 이를 바짝 갈다.
*진즉(趁卽 좇을 진,곧 즉) ; 과거의 어느 때에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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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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