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휴암주좌선문(休休庵主坐禪文) (1/4) 휴휴암주의 좌선문.


**전강선사(No.508)—몽산 24-1. 휴휴암주좌선문(1) (74.06.01새벽)

(1) 약 17분.  (2) 약 7분.

(1)------------------


구주한남객(久住漢南客)  관서행승유(關西幸勝遊)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풍안초염일(楓岸初染日)이요  소우과강추(疎雨過江秋)니라

나무~아미타불~


구주한남객(久住漢南客)이다. 오랫동안 한량없는 겁(劫)을 이렇게도 정법을 모르고, 이렇게도 나를 찾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질만   객으로만 고향 소식을 모르고 객지로만 돌아댕기는 우리 인생이다.

관서행승유(關西幸勝遊). 어쩌다가 다행이 금생에는  좋은 도량(道場), 정법도량, 나를 찾을  해탈 도량을 왔냐 말이여. 이런 불법도량(佛法道場) 왔는가 말이여.


풍안초염일(楓岸初染日)이다. 그만  일생이라는 , 이게 잠깐  만나기는 만났다마는  단풍 시절이  닥쳐온다. 그만 ,  무슨 기한  없다. 그저  그만 낙엽 시절이 돌아와. 뚝뚝 떨어지는 낙엽 시절이 앞에 닥쳐와.

소우과강추(疎雨過江秋)니라. 성근 비는 강추(江秋) 지낸다.   지내듯, 그만 바람에  지내듯 해버릴 거여. 잠깐 가버릴 것이다. 이것을 한번 생각해 보아라.


‘얻었다’고, 정법문에 들어왔다’고 해서 이걸 가지고 ()하게 족을 삼지 말아라.

어느덧 번갯불 같이 가버리는 우리 일생이 계산할 것이 있나? 아무 계산도 없다.



부좌선자(夫坐禪者)휴휴암주좌선문(休休庵主坐禪文)이다. 휴휴(休休)라는 스승이 있어. 휴휴(休休)라는 큰스님이 있다 그말이여. 큰스님이 있었어.

‘쉴 ()자’가  자여. 휴휴암주(休休庵主).

암주(庵主)라는   닦는 항상  처소를 ()이라고 . 암주(庵主)라고.


 암자(庵子), 조그만한 그런  닦는 암주로 있어서 닦는 이가  그런 조그만헌 바위 틈새기  조그만한 암(庵) 그런  있었지, 무슨 야단스러운  대찰 주지나 무슨  권리나, 무슨 어디 그런  했나?


서산 스님도 일평생을 그래 했고, 원효 스님 같은 이도 일평생을 () 짓고 들어앉어 계셨고, 나옹 스님도 그랬고.

보조 스님도 당시에 그랬지보조 스님이 인자 송광사 처음 초창(初創)  놓으니까 커졌지, 처음에야 어디 무슨 적굴인데 .


그러한 () 계시는 휴휴 큰스님이여. 휴휴(休休), ‘ ()’자가  자여.

휴휴 큰스님이신데,  스님이 공부하시는 좌선문(坐禪文) 지어놨다.



대저 참선이라는  좌선(坐禪)() 하는  좌선은, 참선은수달호지선(須達乎至善)이다. 모름지기 지선(至善) 달호(達乎)한다.

지극히 선(善)한()자 라는  착할 ()’자 인데, 착할 선자 라는 것은 아무 것도 그름이 없는 것이다.   () 잘할 ()’자다. 착한 것뿐 아니라 잘한다 ()자여.


잘한다.  잘해라. 조금도  틈이 없이 화두  지극히  나가는  (), ‘잘할 ()’자여. 지극히 잘해야 한다. 보통 해서는  되는 것이다.

말만 참선한다 앉아서, 참선  되나? 지극히 지선(至善) 달호(達乎)해라.


당자성성(當自惺惺)해라. 마땅히 스스로 깨끗 깨끗이 해라. 흐리터분하니 그렇게 지내지 말어라.

시시때때로  생각을 깨끗이 해라. 일념(一念)을 깨끗이 단속하면은 차츰 일념,  일념  일념이지.


 처음 앉어서  일념이 깨끗하면은  일념,  일념, 밤낮 일념,  찾고  찾고 화두를  연속하고 연속해서.   재미난 것은 그뿐이여.

일체 망념이 없는  , 일체 망념이 없고   없는 놈만 자꾸 들어 붙이면은 거그 같이 도무지 수행이 없고, 그렇게 깨끗하고 그렇게 안락할 수가 없어.


  !  생각을 잘하면,   생각이 일어나면  그놈 ‘이뭣고?’ ‘이뭣고? ‘'뭣고?' 이놈이  뭣고?’ 아! 이놈  들어가는  무슨  놈이 거기 붙으면은 고약스럽지.  못된 것이 붙어 놓으면 아무짝에도 못쓴다 그말이여.


  없는 , ! 그놈   뿐이지,  놈이  있어? 단속할 것이 그뿐이지. 그게 ()이여. 잘한 놈이여.


마땅히 스스로 깨끗 깨끗이 해라.  당념(當念) 깨끗해야지,

뒤에 그만    망념(妄念) 들어와 가지고 고놈이  망념이 붙고,  망념에 망념이 붙고, 자꾸 그거 사량분별이 붙고, 별것이  때려 붙으면은 그만 시끄럽고.


 혼자 있어도 공연히 시끄러워.  혼자 공연히 장난이 일어나고.

고것 모두가 내게서 일어나는 것이지, 어디 경계에 있나? 


절단사상(截斷思想)해라.  사상(思想) 붙이지를 말아라.

무슨 생각을 붙이나?  사상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해라.


어디 ‘이뭣고?’한다든지, ‘판치생모(板齒生毛)’를 한다든지, 어디 가서    놈이 붙을  있나?  놈이 일어날  있나? 그놈 때문에, ‘이뭣고?’ 때문에, 그거 당념(當念)이여.

‘이뭣고?’  당념. 그놈이 그만 일체 번뇌 망념을  그놈 절단 내버리는 거여.


당념 그놈이 모든 임금과 같아서 거기에 무슨 ...어디서 생겨 나올 것이여 그놈이?  어디서 붙어 나올 것이여 그놈이?

절단사상(截斷思想)해라. 사상을 도무지 끊어라. 끊을  아니여, 없어 그대로.



불락혼침(不落昏沈)혼침에 떨어지지 않는 .

그만 앉으면 '참선한다' 그만 눈을 감고 잔다 그말이여. 그만 ~’하고 자면 무한정이지. 그거 참선이여, 그것이? 고거 참선이여, 고런 것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사량계교(思量計)를 붙여서, 그저  생각,  생각 그저 이리... 그게 참선이여, 앉어서?

그까짓 것이 어디가 붙어?


천하에 참선같이 쉬운 것은 없다 그말이여.  . 지극히 절대 당념(當念)만 단속해 보란 말이여.

  없는 의단(疑團)만 독로(獨露)해 . 거기서 무슨 미치거나, 무슨 잡념이 있어서무슨 잡념을  가지고 미치거든. 잡것이  붙어 가지고 미치고. 고약하지.

   없는 ‘이뭣고?’만  나가는 , 미치다니 무엇이 미쳐?


 힘들 것이 무엇이 있어? 하나도 힘들 것이 없지. 안 되니께 그놈 안 되어 억지로 그만 할라고 하니까 힘이 쓰이고, 육단(肉團) ()하고 그러지.


그런 혼침에 떨어지지 않는 것을 이르되, 그걸 () 한다. 가만히 앉어서  나가는 (). 


재욕무욕(在欲無欲)! () 있지마는 () 없다.

()이라는 것은 하고자  ()’, ‘욕심 ()’.  () 있어. 세상 경계(世上境界), 반연 경계(攀緣境界) 있어. 반연을 떼고 욕심을 여의고 일체 물질 경계를 여의고 뭐가 있나?


그 내 몸뚱이도 없어야 할까?

 몸뚱이 가지고 몸뚱이가 없어야지. () 있어서 () 없어야지.

() 중에모두 이런 경계, 모든 세상 경계, () 중에있드래도 () 없다. 그저 분다(紛多) 경계에 있드래도 분다한 경계가 없다 그말이여.


그래야지! 그런 분다한 경계를 없앨라고 하면 되아?  경계 중에 있어야지.

하지마는  경계가 들어오지를 못혀. 


거진무진(居塵無塵)티끌 반연 경계, 티끌 세계에 있지마는 티끌이 없어.

이것이 재욕무욕(在欲無欲)이요욕심에 있어도 () 없고, 티끌에 있어도 티끌이 없는 경계가   세상에서 내가  모든 세상 경계를   나가면서도 없는 것이여.

그걸 여의고 떼고 없으면은 그런 경계가 어디 있나?


바로 세상에 있어도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처자를 데리고 자식을 그저 포자농손(抱子弄孫) 하면서 인구를  나가는 것이, 그러면서  ‘이뭣고?’를 하나 다뤄 나가는 것이 그것이  참선이여.

그런 것이 없이 경계를 여의고 떼고 혼자 틈새기로만 어디 찡겨 바위 틈새기로 들어갈라고 하는 , 그것 소승(小乘)이여.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걸 갖다가 ()이라 한다.

() 있어도 () 없으며, 티끌에 있어도 티끌이 없으며 욕심에 있어도 욕심이 없으며, 티끌 세계에 있어도 티끌이 없는  사람이 어디 혼자 조용한 곳에 들어와서 공부를   같으면은 얼마나  철저할 것인가. 정중(靜中).


요중(鬧中) 있어서도 !  () 없는데시끄러운 것이 없고 욕심이 없는데, 고요한 곳에 들어와서 고요한  공부하면은 얼마나  좋을 것인가, 정중(靜中)!

그러니 세상 시끄러운 곳에서 공부를  그렇게  나갈  같으면은 정처(靜處)—조용한 , 정처에 와서는  잘할  사실 아닌가.


요처(鬧處), 정처(靜處) 무슨 관계할 것이 있나. 항상 ‘이뭣고?’ 하나 뿐이다.

당념(當念) 지선(至善)이다.  당념이 항상 화두 하나, 의심 하나  나가는‘이뭣고?’ 하나  나가는 그놈이 항상 그저 떠날 틈이 없다. 여읠 틈이 없고 버릴 틈이 없다. 그걸  ()이라 한다.


재욕무욕(在欲無欲) 거진이진(居塵離塵)욕심에 있어도 욕심이 없고, 티끌에 있어도 티끌이 없고,  경계가  ()이다.(처음~1638)



(2)------------------


 외불방입(外不放入)하고밖으로 () 들어오지 않고,

아무리  밖의 경계에 가서 무슨 짓을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무슨 망념 경계가 있든지, 소용없어. 화두 하나 밖에는 그놈 밖에는 없어. 세상 그런 밖에 가서 무슨 일을 하드래도 항상 이놈 뿐이다.

 잘하는 것이, 달호지선(達乎至善) 이거여.  달호지선 하는 법이여.


내불방출(內不放出) 위지좌(謂之坐) 한다.  안으로 방출(放出) 없어.

암만 안으로 생각  할라 해도, ‘이뭣고?’를  할라 해도,  할라고  놈이 그놈이 ‘이뭣고?’여.

방출(放出)  ‘이뭣고?’여. 내던져 버릴라고 해도 ‘이뭣고?’여.


! 내버릴라 해도 항상 ‘판치생모’는   없으니내가 나를 몰랐으니,  내가! 그놈이,   없는 놈이 항상 방출을 해도 ‘이뭣고?’다. 그것  묘한 경계지. 화두를 해볼  같으면은 이런 경계가 와야 .


억지로 이놈을 하니까 그만 잠이 퍼와서 그만 졸고 앉었다가  깨면은잠잔 사람은 깨어날  같으면은, 물론 그것은 그만 잡념이네. 그렇게 잠잔 사람은 깨어나도 잡념이여. 깨어나면 그만 망상 잡념밖에 없는 것이여.

혼침에 떨어지지 않는 사람이래야 그놈이 오매(寤寐) 성성(惺惺)하지.  때나,  때나 성성하지.


 방출이 안으로는 방출이 없어. 암만 내버릴래야 화두가 어디 나가는 법도 없고, 그걸 () 한다. 



무착무의(無着無依)하야어디 가서 () 없고, 의탁(依託) 없다.   마음이 어디 의탁처가 있나? 어디 () 곳이 있나?

 마음 난 대로, 그저 마음이란 이놈이 어디 마음두면  대로, 어디 그렇게 그저 일어났다 멸했다, 일어났다 멸했다 그놈이니, 그놈이 어디 () 있고 () 있나?

어디 () 있어? 붙은 데가 어디 있어?  의지한 데가 어디 있어? 항상 일어났다 멸했다 일어났다 멸했다.


그러니 일어났다 멸했다 하는,  무착무의(無着無依)해서 일어나고 멸하는 데도 없이 항상   없는 소소영령(昭昭靈靈)  의단독로(疑團獨露) ! 그놈이 상광현전(常光現前)하다.

항상 광명이 무슨 훤허니 불처럼 밝아서 광명이 아니라, 항상  영령(靈靈) 그걸 ()이라 .


‘어디가 이리갔다 저리갔다 왔다갔다 이놈이 없이 화두 일념(一念) 항상 현전(現前)하는 것이 그것이 ()이다. 참선하는 법이 이것이 ()이여.



외감부동(不動)하고밖으로는 부동(不動) . 밖으로 외감() 아무리 흔들려대도 ()  .

아무리 밖의 경계가  별별 일이  있어도 화두 하나 현전 독로(獨露)하면은  독로가 깨진 법이 없어. 흩어진 법이 없어. 그까짓 바깥 경계가 아무리 요동을 친들, 속에 화두 마음이 어디 이리저리 흩어지고 그런 법이 없어.


그놈을 깰래야  수가 없어!  같은 ,  같은     있고,  불에 집어넣으면 녹을  있고 하지마는,    없는 의단독로내가 지금 나를 몰랐으니까  그걸  깨달라 알아야   아닌가!

그러면  당념(當念) 지선(至善)하면, 그대로 의단이 독로하면은 그건   없어. 누가 깨뜨릴 수가 없어. 암만  갈래야 가져가지를 못혀.


그래서 밖으로 아무리 흔들거려도 () 아니하며 중적불요(中寂不搖). 중적(中寂)해서 흔들거리는 법이 없다. 중적(中寂)이란  중적(中寂)—‘가운데 ()’, ‘고요 ()’,

중적(中寂) 내나 해야 아무리 ‘이뭣고?’를 누가 가져 갈래야  가져가고, 아무리 그놈을 깰래야   없고, 내버릴래야 내버릴  없는 경계, 그건 천하가  하늘과 땅이 흔들거려도 소용없어.


그걸 중적(中寂)이라 . ‘가운데 ()’, 적적(寂寂)   없는 경계를 ()이라 .

  없는 의단(疑團) 밖에 () 없어! 그놈이 적적해서 온당하게 화두가 드러나서 흔들거려지지 않는 것을 그걸 () 한다. 좌선(坐禪) 여까장 말해 주었어.(1639~2310)()



[참고] 위에 하신 법문에 해당하는 ‘휴휴암주좌선문’의 원문(原文).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89~90

夫坐禪者(부좌선자)는  須達乎至善(수달호지선)하야  當自惺惺(당자성성)이니  截斷思想(절단사상)하고  不落昏沈(불락혼침)을  謂之坐(위지좌)요  在欲無欲(재욕무욕)하며  居塵離塵(거진이진)을  謂之禪(위지선)이요


대저 좌선(坐禪)이라 함은 모름지기 지극한 () 통달하야 반드시 성성(惺惺) 할지니, 사상(思想) 절단해 버리고 혼침에 떨어지니 아니함을 일컫되 ()이요。 () 처해 있으되 욕이 없으며, () 있으되 진을 여의는 것을 일컫되 ()이요.


外不放入(외불방입)하며 內不放出(내불방출)을  謂之坐(위지좌)요  無着無依(무착무의)하야  常光現前(상광현전)이  謂之禪(위지선)이요

撼不動(외감부동)하며  中寂不搖(중적불요)가  謂之坐(위지좌)요  廻光返照(회광반조)하야  徹法根源(철법근원)을  謂之禪(위지선)이라


밖에서 받아들이지 아니하며 안에서도 놓아 내지 아니하는 것을 일컬어 ()이요, 주착(住着)함도 없고 의지함이 없어 언제나 광명이 앞에 나타남이 ()이요

밖에서 흔들어도 움직이지 아니하며 속으로 고요하야 흔들리지 아니할  좌(坐)이요。 광(光)을 돌이켜 반조(返照)하야 법의 근원을 사무치는 것을 일컫되 선(禪)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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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구주한남객~’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 ‘贈敏禪子 게송 참고.

*휴휴암주(休休庵主) : 몽산화상을 말함。 ()나라 스님, 생몰 연대   없음.

이름은 덕이(德異), 강서성(江西省) 여릉도(廬陵道) 시양 고안현(時陽高安縣)에서 났다。  고향 시양이 당나라 때에는 균주(筠州)였기 때문에 고균(古筠) 비구라고  일도 있었고, 여릉도 몽산에 있었으므로 몽산화상이라 하며 강소성(江蘇省) 송강현(松江縣) 전산(殿山) 있었으므로 전산화상이라기도 하고, 휴휴암(休休庵) 있었으므로 휴휴암주라기도 하였다.

고산(鼓山) 완산(皖山) 정응선사(正凝禪師) 법을 이었다。 그의 교화한 시기는 원나라 세조(世祖)때이며, 우리 고려의 충렬왕 때이다。 그래서 고려의 고승들과 문필의 거래가 많았고, 그의 저서 가운데 <법어약록(法語略錄)> <수심결(修心訣)>등은 이조 중엽에 있어 우리 글로 번역되기까지 하였다.

*초창(初創 처음 초/비롯할·만들 창) ; 절을 처음 세움.

*사량계교(思量計較)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분별(思量分別) 같은 .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리(事理)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바가 아니다라고 .

*당념(當念) ; 바로  생각.

*의단(疑團 의심할 ,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육단(肉團) ; 육단심(肉團心)—[] Hrdaya  4심의 하나。 심장을 말함。 8() 육엽(肉葉)으로 되었다 한다。 의근(意根) 의탁한 .

*반연(攀緣 매달릴·의지할 /인연 ) ; ①대상에 의해 마음이 움직임. 대상에 의해 일어나는 마음의 혼란. ②인식함. ③인식 대상. ④얽매임. 집착함. ⑤인연에 끌림.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분다(紛多 어지러울·많은 분/많을 다) ; 많이 어지러움. 엉클어짐이 심함.

*포자농손(抱子弄孫) ; 아들을 품고 손자와 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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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寤寐 잠이  , 잠잘 ) ; 자나깨나 언제나.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 영령(靈靈) 함께 밝은 . 밝은 모양.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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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참선의 효과2014.01.26 13:38

§(287) 극기(克己) / 최상승법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데에 있는 것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송담스님(No.287) - 1986년 2월 첫째일요법회(86.02.02)(63분)에서.

약9분.


여러분께서는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시되,
이 불법을 10년 20년 믿지만은 참선이 무엇인지, 활구참선이 무엇인지, 화두가 무엇인지, 그저 부지런히 시주(施主)하고, 염불하고, 부처님께 공(功)을 들이고, 그러한 것이 불법(佛法)인줄 알고 일생을 지극정성으로 믿고서, 스스로도 많은 공덕(功德)을 쌓았다고 생각하고,

모든 다른 사람들도 ‘참 그분이 신심이 있다.’ ‘참 공덕이 장하다.’ ‘틀림없이 극락세계에 가셨을 것이다.’ 이러한 칭송을 듣고 그러면서 일생을 마친 분들도 참 많습니다마는, 활구참선을 믿고 그것을 실천하기에까지 이르른 사람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이 가운데는 불문(佛門)에 들어와서 여러 해 되시고, 또 법문도 많이 들으시고, 경책(經冊)도 많이 보신 그런 분도 계시고, 여러 절을 거치고 거쳐서 오신 분들도 많이 계시고, 처음 오신 것이 바로 여기에 오신 분들도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이 자리에 법회에 참석하셔서 활구참선을 들으시게 된 인연(因緣), 이것은 숙세(宿世)의 깊은 인연이 아니고서는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시고, 그리고서 그 49년 동안 설하신 교(敎) 밖에 따로 전하신 이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는 것은 그렇게 듣기도 어렵고, 들어도 믿기 어렵고, 그렇게 듣고 믿어도 직접 정성과 목숨을 다해서 실천한다고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다른 공부는 하면 한 만큼 알아진 것이 있고 열심히 하면 한 만큼 무엇이 얻어진 것이 있고, 그래서 하면 재미가 있고 보람을 느끼는데, 이 활구참선은 무엇이 알아진 것도 없고 나타난 것도 없고, 맨날 해봤자 이게 죽 떠먹은 자리고, 그러니 이거 재미 붙이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하면 반드시 깨달음에 이르지만, 확철대오 하기 전에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건강이 좋아진다든지 또는 자기의 모든 나쁜 성격이 완화가 되고,
예를 들자면은 신경질을 내는 거, 사소한 일에 싸우고 모다 그런 것이 이 참선을 함으로써 차츰차츰 그런 신경질을 안내게 되고, 또 감정에 끄달리지 않게 되고, 또 자기의 감정을 자기의 힘으로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이러한 것은 한 달, 두 달, 석 달, 1년 열심히 하다보면 누구나 그런 효과를 다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만 하더라도 인간을 살아가는데 대단히 좋은 것이고, 모든 가족들에게 직장에서 사회에서 존경받을만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식이 있고 없고, 지위가 높고 옅으고, 힘이 세고 약하고 간에 대부분 자기 감정을 자기가 마음대로 조정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감정이 일어나지 아니할 때는 참 훌륭한 분이라고 다 하는데, 한번 어디를 건드려 가지고 감정이 폭발했다 하면 박사고 교수고 장관이고 장군이고 간에 한번 속이 뒤집어졌다 하면은 여간 자기가 자기 감정을 수습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평소에 이 참선을 열심히 한 사람은 자기가 자기를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극기(克己)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마는 ‘자기가 자기를 이긴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인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도 ‘백만 군사를 호령을 해서 움직일 수는 있어도 자기가 자기를 이기기는 어려우니라. 자기가 자기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라야 참다운 대장부니라.’ 이렇게도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한 힘은 억지로 참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참선을 조석으로 한 시간씩 하고 낮에도 생활 속에서 항시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들고 또 화두를 들고 참구하고 이럼으로써 그것이 참선이 생활화 될 때에 무의식 속에서 모든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누가 내 뜻에 어긋나는 말을 한다 하더라도, 찰나적으로 무슨 기분 나쁜 생각이 속에서 뭉클 일어날라가도 떠억 ‘이뭣고?’ 해 버리면 간단하게 없어지고, 그 일어나는 성나는 마음이 금방 화두로 돌이켜져 버린다 그말이여.

그래서 이 참선하는 사람은 성을 낼라면 내고 안낼라면 안내고, 슬퍼할라면 하고 슬퍼 안할라면 안하고, 미워할라면 미워하고 또 안 미워할라면 안 미워하고, 그까짓 것 희로애락이 자유자재해.

이것이 - ‘자유자재다’ ‘해탈이다’ 하는 것이 다른 데에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사(生死)에 자유자재, 또 생사해탈(生死解脫)이 전부 우리의 일념(一念)을 두고 하는 것이고, 일념을 잘 단련을 하고 일념을 갖다가 돌이켜서 그놈을 갖다가 단속을 하는 가운데에 생사자유의 이치, 진리를 터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인 것입니다.

최상승법이라 함은 무엇이 매우 어디 깊은 데 가 있고, 높은 데 가 있고, 그래 가지고 ‘어려워서 도저히 우리 범부 중생은 손이 닿는 것이 아니고 해 봤자 되지도 않는 것이다.’ 이리 겁을 집어먹고 그 자꾸 자포자기를 하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최상승법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데에 있는 것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39분28초~47분5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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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공(功) ; ①어떤 목적을 이루는 데에 힘쓴 노력이나 수고. 또는 그 공적. ② [주로 ‘공을 들이다’의 구성으로 쓰여]애를 쓰는 힘.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좋은 과보를 받을 선행(善行).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刊)p34.

*삼처전심(三處傳心) ; 세존이 가섭(迦葉)존자에게 마음-선(禪)의 등불을 따로 전했다는 세 곳.
세 곳이란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다자탑전분반좌 多子塔前分半座)이 첫째요,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심(영산회상거염화 靈山會上擧拈花)이 둘째요, 사라쌍수 아래에서 관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심(사라쌍수하곽시쌍부 沙羅雙樹下槨示雙趺)이 세째이다.[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刊)p28.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
다자탑(pahuputraka)은 중인도 비사리(毘舍離Vaisali)성 서북쪽에 있다。이 탑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어떤 장자(長者)가 산에 들어가서 도를 닦아 이룬 뒤에, 그 아들 딸 육십 명이 아버지가 공부하던 곳을 기념하기 위하여 탑을 쌓았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그 곳에서 설법하실 때에 가섭존자가 누더기를 걸치고 뒤늦게 참석하자, 여러 제자들이 그를 낮보았다。이에 부처님께서 앉으셨던 자리를 나누어 두 분이 함께 앉으셨다 한다.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심.
범어의  Grdhrakuta를 음대로 써서 기사굴산(耆闍崛山)이라 하고, 뜻으로 번역하여 영취산(靈鷲山) • 취봉(鷲峰) 또는 영산(靈山)이라고만 한다。그 산 모양이 독수리 같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그 산 위에 독수리가 많았던 탓이라고도 한다。이 산은 중인도 마갈타(摩竭陀 Magadha)의 서울 왕사성(王舍城 Raja-grha) 동북쪽 십 리에 있다.
부처님께서 어느 날 이 곳에서 설법을 하시는데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부처님은 그 꽃송이 하나를 들어 보이니, 백만 대중이 모두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하는데, 가섭존자만이 빙그레 웃었다。이에 부처님은 『바른 법 열반의 묘한 마음을 가섭에게 전한다』고 선언하셨다 한다.
사라쌍수하곽시쌍부(沙羅雙樹下槨示雙趺) : 사라쌍수 아래에서 관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심.
부처님께서 북부 인도의 구시라(拘尸羅 Kusinagara)성 서북쪽으로 흐르는 발제하(跋提河 Ajitavati) 물가, 사라수 여덟 대가 둘씩 마주 서 있는 사이에 침대를 놓게 하고 열반에 드시니, 그 숲이 하얗게 변하였다。그리하여 학의 숲(鶴林, 鶴樹)이라고도 하게 되었다.
부처님의 몸은 금으로 만든 관에 모시고 다시 구리로 지은 덧곽에 모셔 두었는데, 먼 곳에 갔다가 부처님이 열반하신 지 7일 만에 당도한 가섭존자가 부처님의 관을 3번 돌고 3번 절하매, 관곽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셨다 한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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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287) (게송) ‘대지촬래여립미~’ / 체중현(體中玄), 현중현(玄中玄) / 인가(印可)

**송담스님(No.287) - 1986년 2월 첫째일요법회(86.02.02)(63분)에서.

 약 9분.


대지촬래여립미(大地撮來如粒米)하여 당양타고대가간(當陽打鼓大家看)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안중약미제금설(眼中若未除金屑)인댄 요변현황야대난(要辨玄黃也大難)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이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잘 올바르게 하면서, 화두를 올바르게 참구(參究)할 줄만 알면 공부는 갈 곳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자세도 바라지고, 또 단전호흡을 함으로써 피로회복도 되고, 또 좋지 못한 성격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 잘 골라지고, 그러면서 이 참선을 가정에서 직장에서 일체 생활 속에서 자꾸 단속을 해 나가면 언젠가는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입니다.

걸어갈 때나, 차를 찰 때나, 밥을 먹을 때나, 똥을 눌 때나, 세수를 할 때나, 직장에서나 언제라도 그 의단이 독로해서, 일이 있을 때에는 일 하는 가운데에도 화두가 떠나지를 않고, 화두를 드는 가운데에 모든 사람을 접견할 수도 있고, 일도 할 수가 있고,

그렇게 해서 주변이 시끄러워도 상관이 없고, 조용하거나 시끄럽거나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된 때가 기어코 오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뜰히 해 가다보면 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갖다가 태양이고 달이고 별이고 무엇이고 간에 그것을 소반 위에 있는 쌀이나 곡식을 갖다가 거머쥐듯이, 온 삼천대천세계도 한 손으로 쏵 휘어잡아서 거머쥘 수 있을 것 같은 그러한 참 기백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온 태양과 별, 달까지라도 한 손에 거머쥐어다가,(大地撮來如粒米)
밝은 데다 갖다 놓고서, 그걸 갖다가 손바닥에다 놓고서 그것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그러한 걸림 없는 경계가 나타날 것입니다.(當陽打鼓大家看)

그러면 제도 받을 중생이 어디가 있으며, 제도를 할 부처가 어디가 있느냐 그말이여. 천당과 지옥이 무엇이며, 중생과 부처가 무슨 차별이 있는 것이냐 그말이여.

그러나 안중(眼中)에 약미제금설(若未除金屑)이면, 눈 가운데 만약 금싸라기를 빼내지 못하면,
요변현황야대난(要辨玄黃也大難)이다. 어떤 것이 누르고 어떤 것이 검은 것을 가려내기는 크게 어려운 것이다.

겨우 공견(空見), 과거•현재•미래 삼세(三世)가 일념(一念) 속에 있고, 육도법계(六途法界)가 바로 이 일념 속에 있어서 동서남북에 걸릴 것이 없고, 시간과 공간에 막힐 것이 없는 그런 경지에 도달한다 하더라도,

현중현(玄中玄), 공안(公案)에 있어서 현중현 도리(道理)를 바로 보지 못하면, 마치 눈 가운데에 금싸라기를 빼내지 못한 거와 같은 것입니다.

겨우 ‘시간과 공간에 걸림이 없다’고 하는 그러한 소견(所見)을 가지고, 그래 봤자 그것은 체중현(體中玄)의 경계(境界)라, 체중현의 경계는 공(空)의 이치거든.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인데,

진공의 이치도 이렇게 옅은 분별심으로 이렇게 아는 것이 아니라, 정말 확철대오해서 그렇게 크게 봐 버리면 그것도 상당히 어려운 것이고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바로 깨달랐다고 인가(印可)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활구(活句) 문중에, 이 조사(祖師) 문중에 있어서는 체중현 도리 보는 그러한 것을 깨달랐다고 인증(認證)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러한 체중현 도리를 보는 것으로서 인가를 해 주면 그 각견(覺見)을 벗어버리지를 못하고, 이치(理致)로는 짐작을 하지만은 사(事)에 걸림이 없어야 하는데,

자기는 부처가 와도 한 방맹이, 조사가 와도 한 방맹이, 그래서 거침이 없을 것 같은 그러한 횡행자재(橫行自在)한 생각을 갖지만, 이치로 그럴지언정 사(事)에 막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인가를 해 주면 그 사람의 공부가 거기에서 더 나아가지를 못하고,

그래 가지고 말을 함부로 해서 - 법(法)을 설하되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는 것이고, 현(顯)과 밀(密)이 있는데 현밀(顯密)을 가리지를 못해 가지고 함부로 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볼 때에는 기가 막힌 도인(道人) 같이 보일는지 모르지만 정말 중생의 근기(根機) 따라서 해 줄 말이 있고 안 해줄 말이 있는 것이며,

때에 따라서 인과법이라든지 모든 방편설이 다 적재적소에 쓰면은 좋은 약이 되려니와, 그것을 가리지 못하고 함부로 쓰게 되면, 법도 못쓰게 만들고, 또 중생도 못쓰게 만들고, 자기 자신도 그러한 중대한 과오를 범해서 용서받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인(古人)이 말씀하시기를 ‘자기보단 훨씬 나은 사람에게 인가를 해 주고 그 사람에게 법을 전해야지, 자기와 같은 정도의 사람에게 법을 전하고 인가를 해 주면, 인가 받은 그 사람은 그 사람의 반 밖에 못되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전강 조실스님께서도 언젠가 말씀하시기를 ‘인가(印可)라 하는 것은 「옳다! 옳다! 니가 옳게 깨달았다」 이렇게 해 준 것이 인가가 아니고, 그 종사(宗師)가 그 학인(學人)한테 꼼짝을 못해야 그것이 바로 인가다.’ 이러한 말씀도 하신 바가 있습니다.(30분52초~39분2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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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대지촬래여립미~’ ; [신심명(信心銘) 벽의해(闢義解)] 중봉 명본선사(中峰 明本禪師) (명정 역주, 극락선원) p166 게송 참고. *(頻伽藏本)天目中峰和尚廣錄 卷第十二之下 信心銘闢義解下 게송 참고.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의단(疑團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타성일편(打成一片) : 참선할 때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함.
고대 인도인의 세계관에서,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위에 4대주(四大洲)가 있고, 그 바깥 주위를 9산8해(九山八海)가 둘러싸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이며 하나의 소세계(小世界)라 함.
이 하나의 소세계를 천개 모은 것을 하나의 소천세계(小千世界)라 부르고, 이 소천세계를 천개 모은 것을 하나의 중천세계(中千世界), 이 중천세계를 천개 합한 것을 하나의 대천세계(大千世界)라 부른다.
이 대천세계(大千世界)는 천(千)을 3번 모은 것이고, 소천•중천•대천의 3종류의 천세계(千世界)로 이루어지므로 3천세계 또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라고 한다. 이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함.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육도(六途) ; (=六道)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인(業因)에 의하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현중현(玄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 ; 體中玄•句中玄•玄中玄)의 하나.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07, p212 에서.
[三玄]삼현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〇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경계(境界) ;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 ③상태 ④범위,영역
*도리(道理) ; 이치.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는 모든 만유(萬有)를 꿰뚫고 있는 법칙.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활구(活句) 문중(門中) ;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는 집안.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이(理) ; 이치(理致). ①진리. 근본 도리. 보편적인 것. ②현상의 배후에 있어서, 현상을 현상답게 하는 것.
*사(事) ; ①구체성. 현상. 나타나는 현상. ②개별적 현상. 차별의 상(相)의 하나하나. 구체적, 차별적인 것. 이(理)의 반대. 현실.
*횡행자재(橫行自在) ; 속박이나 장애가 없이 아무 거리낌이 없이 제멋대로 마음대로 행동함.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현밀(顯密) ; ①뚜렷함과 은밀함. ②현교(顯敎)와 밀교(密敎). 현로(顯露)한 가르침과 비밀스런 가르침. 드러나는 가르침과 비밀스런 가르침의 의미.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중생이 부처님 가르침인 교법(敎法)을 듣고 제각기 이를 깨달을 만한 능력.
*종사(宗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조사(祖師)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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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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