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과 깨달음2020. 12. 9. 17:06

<핸드폰에서, 아래 법문은 위 유튜브에서 42분 9초부터 시작됩니다>

 

 

§((405)) (게송)외외낙락적나라~ / 부처님께서 항상 부르시는 노래,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로구나. 사람 사람이 본래 태평(太平)하다’ 사람 사람이 원만구족한 본래 태평한 존재들이다 / ‘이뭣고?’ 일념 단속함으로 해서 일념 속에서 천당 · 지옥을 타파해, 일념 속에서 영원한 해탈도를 증득하는 것.

 

부처님 자신은 '남이 없다' 무생(無生), 남이 없어! 부처님은 일체 중생에는 망(妄)이 없다 보시고, 당신은 남[生]이 없는데 무엇을 제도할 중생이 어디가 있겠느냐 그말이여.

그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무슨 노래를 부르시냐 하면은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로구나. 사람 사람이 본래 태평(太平)하다’

 

**송담스님(No.405)—1989년(기사년) 성도재 법회(90.01.04) (용405)

 

약 9분.

 

외외낙락적나라(巍巍落落赤裸裸)한데  독보건곤수반아(獨步乾坤誰伴我)오

나무~아미타불~

약야산중봉자기(若也山中逢子期)인데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오

나무~아미타불~

 

외외낙락적나라(巍巍落落赤裸裸)한, 높고 높고, 높고 높아서 깨끗하고 깨끗해.

독보건곤수반아(獨步乾坤誰伴我), 건곤(乾坤)에, 천지에 홀로 가니 누가 나와 더불어 짝을 할 것인가.

 

약야산중봉자기(若也山中逢子期)인데, 만약 산중에서 자기(子期)를 만났던들,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오, 어찌 노란 이파리를 가지고 산 아래로 내려갔겠는가.

 

부처님께서는 어떠한 마음을 가지시고 일생을 살으셨을까?

부처님께서 항상 부르시는 노래가 있었다면 부처님께서는 무슨 노래를 부르셨을까?

 

부처님께서는 항상 다른 사람을 보되 ‘제도(濟度)할 중생(衆生)이 있다’고 생각하신 것이 아니여. 보통 우리 상식으로는 부처님께서는 ‘일체 중생을 죄가 많고, 생각하는 것이 순 망상(妄想)만 들끓고 망령(妄靈)된 경계에 빠져 있는 그러한 불쌍한 중생들이라’ 이렇게 생각하실 것 같은데, 실지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들에게 망(妄)이 있다고 그렇게 보시지를 않혀.

그러면 부처님 자신은 어떻다고 생각하신가? ‘부처님은 깨달아서 진리와 하나가 된 그러한 경지’라고 우리 생각에는 그럴 것 같은데,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그래가지고 이 세상에 출현을 하셨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부처님 자신은 '남이 없다' 무생(無生), 남이 없어!

 

부처님 자신이 남[生]이 없는데, 무엇을—일체에는 망(妄)이 없고, 당신은 남[生]이 없는데 무엇을 제도할 중생이 어디가 있겠느냐 그말이여.

그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무슨 노래를 부르시냐 하면은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 사람 사람이 본래 태평(太平)하다’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로구나!” 이렇게 노래를 부르셨을 것이다.

 

사람 사람이 다 본래부터 태평해. 깨달을 바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빠져야 할 지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도할 중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도할 부처님이 있는 것도 아니요, 제도 받을 중생이 있는 것이 아니여.

얼굴이야 잘생겼거나 못생겼거나, 귀족이거나 천민이거나, 부자거나 가난한 사람이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머리가 좋거나 나쁘거나, 본래 원만구족(圓滿具足)해서 더 보탤 것도 없고 더 덜어낼 것도 없어. 원만구족한 본래 태평한 존재들이다 그말이여.

 

납월팔일(臘月八日)을 맞이해서 우리는 본래 조금도 부처님과 조금도 모자랄 것도 없이 원만구족한 그러한 존재라고 하는 긍지를 가져야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어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을까요? 오장육부와 사지백체(四肢百體)는 성한 데가 없이 항상 아프고 괴롭고, 이 세상에 나서 늙어서 병들어 가지고 결국은 희로애락과 흥망성쇠(興亡盛衰)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그리고 버티다 버티다 못해서 왜 죽어갈까요?

죽으면 과연 어느 곳으로 갈까요? 천당에 아니면 지옥에 갈 것이다.

 

이러한 고달픈 생(生)이, 유랑(流浪)이 무량겁(無量劫)으로부터 무량겁으로 이어진다고 우리는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깨닫지 못한 분상(分上)에는 분명히 그럴 것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깨달은 분상에는 지옥도 천당도 있다면 일념지간(一念之間)에 있는 것이여. 없다면 없는 것이지만 있다면 일념지간에 있어.

무량겁도 일념 속에 들어 있고, 그 일념간에 있는 천당, 일념 속에 있는 지옥, 그것만 해결해 버리면 무량겁의 생사고(生死苦)도 바로 해탈(解脫)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뭣고?’ 그래서 일념 단속(一念團束)을 해야 해.

일념 단속함으로 해서 일념 속에서 천당 · 지옥을 타파해 버려. 일념 속에서 영원한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하는 것이여.

 

기사년 납월팔일을 기해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또 이 산승(山僧)이 여러 사부대중, 여러 도반들을 향해서 간곡히 정진하실 것을 당부하는 것입니다.(42분3초~51분9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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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성도재)2015. 7. 27. 11:33

§(405) (게송)외외낙락정나라~ / 부처님께서 항상 부르시는 노래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로구나!” / 깨달은 분상에는 지옥·천당도 일념지간(一念之間)에 있다.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 사람 사람이 본래 태평(太平)하다’

 

귀족이거나 천민이거나, 부자거나 가난한 사람이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머리가 좋거나 나쁘거나, 본래 원만구족(圓滿具足)해서 더 보탤 것도 없고 더 덜어낼 것도 없어. 원만구족한 본래 태평한 존재들이다.
납월팔일(臘月八日)을 맞이해서 우리는 본래 부처님과 조금도 모자랄 것도 없이 원만구족한 그러한 존재라고 하는 긍지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뭣고?’ 그래서 일념 단속(團束)을 해야 해. 일념 단속 함으로 해서 일념 속에서 천당·지옥을 타파해 버려. 일념 속에서 영원한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405)—89년 성도재 법회(90.01.04) (용405)

 

약 9분.

 

외외낙락정나라(巍巍落落淨裸裸)한데  독보건곤수반아(獨步乾坤誰伴我)오
나무~아미타불~
약야산중봉자기(若也山中逢子期)인데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오
나무~아미타불~

외외낙락정나라(巍巍落落淨裸裸)한데,  높고 높고, 높고 높아서 깨끗하고 깨끗해.
독보건곤수반아(獨步乾坤誰伴我). 건곤(乾坤)에, 천지에 홀로 가니 누가 나와 더불어 짝을 할 것인가.

약야산중봉자기(若也山中逢子期)인데, 만약 산중에서 자기(子期)를 만났던들,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오, 어찌 노란 이파리를 가지고 산 아래로 내려갔겠는가.


부처님께서는 어떠한 마음을 가지시고 일생을 살으셨을까?
부처님께서는 항상 부르시는 노래가 있었다면 부처님께서는 무슨 노래를 부르셨을까?

부처님께서는 항상 다른 사람을 보되 ‘제도(濟度)할 중생(衆生)이 있다’고 생각하신 것이 아니야.
보통 우리 상식으로는 부처님께서는 ‘일체 중생을 죄가 많고, 생각하는 것이 순 망상(妄想)만 들끓고 망령(妄靈)된 경계에 빠져있는 그러한 불쌍한 중생들이라’ 이렇게 생각하실 것 같은데, 실지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들에게 망(妄)이 있다고 그렇게 보시지를 않아.

그러면 부처님 자신은 어떻다고 생각하신가?
‘부처님은 깨달아서 진리와 하나가 된 그러한 경지’라고 우리 생각에는 그럴 것 같은데,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그래가지고 이 세상에 출현을 하셨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부처님 자신은 남이 없다, 무생(無生). 남이 없어.

일체에는 망이 없고, 당신은 남이 없는데 무엇을 제도할 중생이 어디가 있겠느냐 그말이여.

그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무슨 노래를 부르시냐 하면은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 사람 사람이 본래 태평(太平)하다’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로구나!” 이렇게 노래를 부르셨을 것이다.

사람 사람이 다 본래부터 태평해. 깨달을 바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빠져야 할 지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도할 중생이 있는 것도 아니요. 제도할 부처님이 있는 것도 아니요. 제도 받을 중생이 있는 것이 아니여.
얼굴이야 잘생겼거나 못생겼거나, 귀족이거나 천민이거나, 부자거나 가난한 사람이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머리가 좋거나 나쁘거나, 본래 원만구족(圓滿具足)해서 더 보탤 것도 없고 더 덜어낼 것도 없어.
원만구족한 본래 태평한 존재들이다 그말이여.

납월팔일(臘月八日)을 맞이해서 우리는 본래 부처님과 조금도 모자랄 것도 없이 원만구족한 그러한 존재라고 하는 긍지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어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을까요?
오장육부와 사지백체(四肢百體)는 성한 데가 없이 항상 아프고 괴롭고, 이 세상에 나서 늙어서 병들어 가지고 결국은 희로애락과 흥망성쇠(興亡盛衰)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그리고 버티다, 버티다 못해서 왜 죽어갈까요?
죽으면 과연 어느 곳에 갈까요? 천당에 아니면 지옥에 갈 것이다.

이러한 고달픈 생(生)이, 유랑(流浪)이 무량겁(無量劫)으로부터 무량겁으로 이어진다고 우리는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깨닫지 못한 분상(分上)에는 분명히 그럴 것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깨달은 분상에는 지옥도 천당도 있다면 일념지간(一念之間)에 있는 것이여. 없다면 없는 것이지만 있다면 일념지간에 있어.
무량겁도 일념 속에 들어있고, 그 일념 간에 있는 천당, 일념 속에 있는 지옥, 그것만 해결해 버리면 무량겁의 생사고(生死苦)도 바로 해탈(解脫)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뭣고?’ 그래서 일념 단속(團束)을 해야 해.
일념 단속 함으로 해서 일념 속에서 천당·지옥을 타파해 버려. 일념 속에서 영원한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하는 것입니다.

기사년 납월 8일을 기해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또 이 산승(山僧)이 여러 사부대중, 여러 도반들을 향해서 간곡히 정진하실 것을 당부하는 것입니다.(42분3초~51분11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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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외외낙락정나라~’ ; [태고집(太古集)] (雪栖 편, 김달진 역주 | 세계사) p229 '석가 출산상(釋迦出山相)' 참고.
*(게송) ‘약야산중봉자기(若也山中逢子期)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 ;
[참고] 송담스님(No.098)—79년 입춘 법회(79.02.04)에서.

 

만약 산중에서 자기(子期)를 만났다면(若也山中逢子期)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리요. 어찌 누런 이파리를 가지고 산 아래로 내려갈 것이냐.

자기(子期)라고 하는 사람은 성(姓)은 ‘쇠북 종(鍾)자’ 종씨인데, 종자기(鍾子期)라고 하는 사람은 저 중국 고대 요임금 당시 거문고의 이치, 음악의 이치에 달통한 사람입니다.

그때 백아(伯牙)라고 하는 사람이 대단히 거문고를 잘 탔습니다.
백아라고 하는 사람은 거문고 타기로 아주 통달한 사람인데, 백아라고 하는 사람이 거문고를 뜯으면 너무 거문고를 잘 뜯고 신묘한 경지에 이르러서 보통 사람은 그 백아의 거문고 타는 것을 능히 감상을 할 줄 모릅니다.

오직 종자기(鍾子期)라고 하는 사람만이 그 백아(伯牙)의 거문고 타는 것을 듣고서, ‘아! 지금 백아라고 하는 사람이 유유히 흐르는 큰 강물을 생각하면서 거문고를 뜯고 있구나.’
또 어쩐 때는 지금 저 백아가 타는 거문고 소리를 들어보매, ‘높고 높은 태산준령을 생각하면서 거문고를 뜯고 있구나.’

그렇게 종자기라고 하는 사람은 백아의 거문고 타는 소리를 듣고, 백아의 마음 소리를 능히 알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종자기라고 하는 사람이 천명(天命)을 다하여 죽게 되자 백아라고 하는 사람은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삼천년 전에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탄생을 하셔서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출가하셔서 대도를 성취하신 다음 80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실 때까지 49년 동안을 팔만사천 묘법(妙法)을 설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일찍이 종자기와 같은 그러한 사람을 만났다면 어찌 49년 동안이라고 하는 장구한 세월동안 그러한 많은 방편설(方便說)을 설할 까닭이 없었을 것이다.

자기(子期)와 같은 사람을 산중에서 만약 만났다면 어찌 누른 이파리을 가지고 산 아래로 내려갈 것이냐?
누른 잎이라 하는 것은 은행잎이나 단풍잎 같은 그런 아주 예쁘고 고운 단풍잎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린애들을 달랠 때에 노란 또는 빨간 단풍잎을 주면서 ‘여기 있다. 돈 여기 있다. 돈’ 이렇게 우리는 어린애들을 곧잘 달래는 것입니다.

방편설이라고 하는 것은 필요 불가결(不可缺)한 것입니다. 꼭 필요한 것입니다.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린애를 달랠 때에 사탕 같은 것이 있으면 다디단 사탕을 입에다 넣어 줘서 달래기도 하고, 사탕이 없으면 무슨 노란 이파리나 그렇지 아니하면 무슨 조그만한 돌멩이라도 집어 줘야 할 것이고,
그저 무슨 장난감 같은 것도 집어 줘서 잠시라도 어린애의 울음을 달래는 경우를 엄마들은 얼마든지 경험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방편,
또 동지 법회, 입춘 법회, 칠성 법회, 사월 초파일 관등법회, 이런 법회가 노란 이파리를 가지고 어린애 울음을 달래는,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방편설, 이것이 모두 일맥상통(一脈相通)한 점이 있는 것입니다.

마침내 노란 이파리만 가지고 달래 봤자 어린애는 잠깐 울음을 그쳤을 뿐 배가 고픈 허기(虛飢)는 완전히 가시질 않은 것입니다. 다시 또 울음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에서는 일양(一樣)으로 노란 이파리만 가지고 여러분의 울음을 달래는데 그치지 아니하고, 정말 입에 넣어서 먹으면 배가 부를 수 있는 영양제를 여러분에게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1분3초~7분52초)
*제도(濟度 건널 제, 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구제(救濟 건질 구, 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 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함령(含靈)• 함식(含識)• 군생(群生)• 군맹(群萌)•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 ; 욕설이나 비난의 말 따위, 좋지 않은 말을 할 때, 강조하기 위하여 ‘몹시’ 또는 ‘아주’의 뜻으로 쓰는 말.
*망상(妄想 망녕될 망, 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망령(妄靈) ; 늙거나 정신이 흐려서 말이나 행동이 정상을 벗어남. 또는 그런 상태.
*무생(無生) ; ①생멸(生滅)을 벗어난 절대의 진리. 생멸(生滅)이 없는 도리. 곧 불생불멸하는 진여법성(眞如法性)을 알고 거기 안주하여 움직이지 아니함. 무생법인(無生法忍).
②아라한(阿羅漢) 또는 열반(涅槃)의 번역어. 번뇌를 없앤 경지를 말함.
*태평(太平) ; ①마음에 아무 근심 걱정이 없음. ②나라가 안정되어 아무 걱정 없고 평안함.
*원만구족(圓滿具足)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을 이르는 말.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35세의 12월 8일 샛별이 뜰 무렵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하(河)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불도(佛道)를 이루던 날.
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납팔(臘八)이라고 줄여 쓰기도 한다. 일명 성도재일(成道齋日).
*생로병사(生老病死) ; 중생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4가지 고통. 곧,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
*사지백체(四肢百體) ; 몸의 전체.
*흥망성쇠(興亡盛衰) ; 흥하고 망함과 성하고 쇠함. 곧 어떤 사물·현상이 생겨나서 소멸하는 전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유랑(流浪 흐를·떠돌 류/물결·떠돌아다닐 랑) ; 일정한 거처가 없이 떠돌아다님.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해탈(解脫) ;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해탈도(解脫道) ;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증득(證得) ;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함.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초파일)2014. 5. 1.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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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5) (게송) 천상천하무여불~ /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 사람 사람이 본래로부터 태평하다 / (게송) 제법종본래~ / ‘모든 것이 본래로 생사가 없는 진리다’

대관절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 나오셔서 무슨 노래를 항상 부르셨을까?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 사람 사람이 본래로부터 태평하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서 생활 속에서 수행을 쌓아나가면, 「원래 내가 생사가 없는 존재이고 진리의 존재」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신 목적은 ‘너희들 모두가 다 원래로 부처님이다. 진여(眞如)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켜 주어서 그것을 깨달아서 생사를 해탈하게 해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다 부처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의 부처를 찾는 것」이 바로 그것이 정법(正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이고, 그것이 참선(參禪)인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삼천 년 전에 열반(涅槃)하셨지만, 우리가 이 법에 의해서 ‘이뭣고?’를 통해서 자성(自性)을 찾는다면 언제나 어디서나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675) - 03년 부처님오신날(03.05.08) 법문. (용675)

 

약 21분.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이요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로다
나무~아미타불~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하니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로다
나무~아미타불~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이요.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부처님과 같은 분이 안 계시다.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로다. 시방세계에 부처님께 견줄 만한 분이 없다.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하되. 내가 온 세간(世間)을 다 보되,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다. 부처님과 같은 분은 안 계시다.

이 게송(偈頌)은 무량억겁 전에 백겁(百劫) 수행을 부처님께서 하실 때, 미륵 보살(彌勒菩薩)과 석가모니 부처님이-그때는 보살로 수행하실 때인데, 그때 저사불(底沙佛)이라고 하는 부처님 밑에서 수행을 하시다가 그 석가 보살(釋迦菩薩)께서 저사불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그 노래로 인해서-칠일칠야(七日七夜) 동안을 한 발을 들은 채 그 저사불의 거룩하고 위대하신 모습을 찬양하야, 그 공덕으로 구겁(九劫)을 초월해 가지고 미륵 보살보다도 먼저 성불(成佛)을 하신 인연이 있는 게송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할 때마다, 부처님께 공양(供養)을 올릴 때마다 이 게송으로써 부처님의 모든 위대함을 찬양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어째서 부처님은 이렇게 거룩하시고, 우리는 기회있을 때마다 부처님의 거룩함을 이렇게 찬양을 하느냐 하면은, 부처님께서 왕궁에 태어나셔서 그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처럼 버리시고 출가하셔가지고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하셨습니다.

‘견성성불을 하신다’한 말은 대관절 무엇을 깨달아서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에 팔만사천의 한량없는 법문(法門)이 들어있습니다마는, 오늘 산승(山僧)은 그 가장 요점만을 간략히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과연 일생 동안을 무슨 마음으로 사셨으며, 무슨 설법을 초점을 두고 하셨으며, 평생 동안 무슨 노래를 부르셨을까?

관타야불망(觀他也不妄)이요. 모든 것을 보실 때, 모든 중생과 모든 것을 다 보실 때에는 ‘망령(妄靈)되지 않다.[不妄]’
관타야불망(觀他也不妄)이요. 관자역무생(觀自亦無生)이다. 당신 스스로는 어떻게 당신을 보셨을까? ‘남이 없다.[無生]’고 그렇게 보셨어.

‘망령되지 아니하다[不妄]’고 하는 것은 모두가 다 진실이요, 모두가 진여불성(眞如佛性)이요, 모두가 진리다 그 말씀이고, 스스로를 보실 때 무생(無生)으로 보셨다 그말이거든.

보통 우리 중생으로 볼 때는 「부처님께서 왕궁에 태어나셔가지고 그래가지고 출가하셔서 고행을 하셔가지고 깨달았다.」 그렇게 우리는 중생의 눈으로 그렇게 보지마는,
부처님 자신은 ‘남이 없다[無生]’고 그렇게 스스로를 보신 것입니다,

일생 동안 우리 중생들도 좋아하는 노래가 있어서 기쁠 때도 노래를 부르고, 슬플 때도 노래를 부르고, 혼자도 부르고 여러 사람이 모이면 다 같이 노래를 부릅니다. 어떤 의식이 있을 때도 노래를 부릅니다.

대관절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 나오셔서 무슨 노래를 항상 부르셨을까?(出世謌何事)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 사람 사람이 본래로부터 태평하다.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사람 사람마다 태평하다.’ ‘태평(太平)하다’고 하는 것은, 모든 고통이 없으며 슬픔이 없으며 아무 근심걱정 할 것 없고, 항상 행복하고 항상 넉넉하고 항상 즐겁기 때문에 그것을 ‘태평하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우리는 생로병사가 있고 흥망성쇠가 있고 희로애락이 있어서 정말로 행복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까닭이 있습니다,

자기가 본래 부처고, 본래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과 똑같은 존재임을 알지를 못하고,
‘자기는 중생이고, 중생은 생로병사 속에서 고통을 받게 되어있다.’ 그렇게 착각을 하고 살기 때문에, 본래 부족함이 없고 본래 생사가 없는 존재이면서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처음에 이 「생사 없는 도리(道理)」를 말씀을 하셨지마는 중생이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원래 우리는 괴로운 것이다. 괴로운 것을 없애야 우리가 열반에 드는데 괴로움의 원인이 뭣이냐?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 때문에 생사가 있는 것이고, 고통이 있는 것이고, 진리 속에서 있으면서 진리를 모른 것이다.’ 이렇게 차츰차츰 단계적으로 말씀을 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서 생활 속에서 수행을 쌓아나가면, 「원래 내가 생사(生死)가 없는 존재이고 진리의 존재」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법문을 설하시다가, 나중에 법화경(法華經)을 설하실 때 부처님은 무슨 게송을 읊으셨냐 하면은,

제법종본래(諸法從本來)로  상자적멸상(常自寂滅相)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자행도이(佛子行道已)하면  내세득작불(來世得作佛)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제법종본래(諸法從本來)로 상자적멸상(常自寂滅相)이다.
제법(諸法)이라 하는 것은, 우주법계 삼라만상을 모두 제법(諸法)이라 그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종본래(從本來)로 본래부터, 상자적멸상이다-항상 그대로 적멸상(寂滅相)이다. 열반상이다.
열반상(涅槃相)이라 하는 것은 ‘생사가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불자행도이(佛子行道已)하면, 불자가 이 도리를 깨달으면,
내세득작불(來世得作佛)이다, 그 도리를 깨달으면 바로 그것이 부처님이 되는 것이다.

내세(來世)라고 하니까 이 몸뚱이 80년, 90년 살다 죽은 뒤에 성불한다고 그렇게 해설한 것은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해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본래로 생사가 없는 진리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 경지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는데, 반야심경에도 불생불멸(不生不滅)이란 말이 있고, 경전마다 ‘생사는 본래 없다’고 하는 많은 법문이 나와 있는데,

어째서 우리는 생사가 있고 고통이 있고 슬픔과 괴로움이 있느냐 하면은,
비유를 들어서 물이라 하는 것은 섭씨 영도 이하로 내려가면 얼음이 됩니다. 고체가 됩니다. 그것을 끓여서 100도가 되면 증기가 나와 가지고 기체가 됩니다.

물로 되었을 때나 얼음으로 되었을 때나 증기로 있을 때나 물의 본성(本性), 습성(濕性)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때 상황 따라서 모양만 다르지 물이 본래 가지고 있는 그 물의 본성, 습성은 어떠한 모습으로 변하거나 그 자체는 언제나 고대로 있는 것입니다.

중생으로 있을 때나, 부자로 있으나, 가난뱅이로 있으나, 죄를 지어서 형무소에 가서 있거나 또는 더 무서운 죄를 지어가지고 지옥에 가서 있거나 또는 업에 따라서 축생의 모습을 뒤집어쓰고 있거나,
가지고 있는 그 본성(本性)은 부처님으로 있을 때나, 조사(祖師)로 있을 때나, 빈부귀천 어떤 모습으로 있을 때나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를 못해서 각각 다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가지고 잘난 사람은 잘난 채, 못난 사람은 기가 죽고, 부자는 부자라 해가지고 목에다 힘을 주고, 권리가 있으면 권리가 있다고 남을 업신여기고 자기의 권리를 휘두르고, 그러다가 부정(不正)을 하다가 잘못되면 또 다시 감옥에도 가고 그러한 흥망성쇠와 생사윤회와 희로애락 속에서 우리는 무량겁(無量劫)을 오늘날까지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몸속에는 어떠한 모습으로 있다하더라도 우리 속에는 부처님과 똑같은 진여불성(眞如佛性), 비로자나법신불이 우리 속에는 살아계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신 목적은 ‘너희들 모두가 다 원래로 부처님이다. 진여(眞如)다.’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켜 주어가지고 그것을 깨달아서 영원한 생사를 해탈하게 해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것을 확실히 믿고 그것을 우리가 구현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그 진리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참선을 하며 근기(根機)에 따라서 경(經) 공부를 하거나, 주력(呪力)을 하거나, 염불(念佛)을 하거나,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마는,
가장 유식(有識)·무식(無識)을 막론하고 누구라도 있는 그 자리에서 그 도를 닦을 수 있는 방법이 ‘이뭣고?’ 참선법(參禪法)입니다.

종파(宗派)에 따라서 각기 자기가 믿는 경전에 의거해서 여러 가지로 설법을 하고 교화를 하고 있지마는, 우리 용화사에서는,
일어나는 생각,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에서는 온갖 생각이 일어납니다. 좋은 생각도 일어나고 나쁜 생각도 일어나고 슬픈 생각도 일어나고 고통스러운 생각도 일어나지마는, 일어나는 그 생각을 바로 발판으로 해서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하면 그 ‘한 생각’에 자기의 본마음을 찾는 공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때가 따로 필요가 없고, 장소가 따로 필요가 없고, 언제 어디서라도 나를 찾는-나의 부처님을 찾는 길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산승이 이 법상에 올라와서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부처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의 부처를 찾는 것」이 바로 그것이 정법(正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이고, 그것이 참선(參禪)인 것입니다.

오늘 부처님 오신날을 기해서 많은 말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죄 있는 사람은 감옥에서도 ‘이뭣고?’를 하고, 부자도 ‘이뭣고?’를 하고 또 높은 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이뭣고?’를 하고, 자기가 자신을 찾다 보면 자기의 참마음을 깨달아서 진리와 자기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어려울 것입니다. 별로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자꾸하다 보면 자꾸 잊어버리고, ‘이뭣고?’를 하지마는 망상(妄想)이 일어날 것입니다마는 그 망상이 어디서 일어났냐 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여불성에서 그런 파도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원래 물은 깨끗하고 조용하지마는 바람이 불므로 해서 물결이 일어나.
물결이 일어났어도 내나 그 물결이 물인 것이고, 그 물은 원래 본성인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파도를 없애고 물을 찾지 말고, 파도에 즉해서 ‘이뭣고?’를 찾으면 진여불성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망상과 번뇌를 버리고 찾지 말고 거기에서 ‘이뭣고?’로 들어가면 가장 빨리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삼천 년 전에 열반(涅槃)하셨지만, 우리가 이 법에 의해서 ‘이뭣고?’를 통해서 자성(自性)을 찾는다면 언제나 어디서나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초파일에 많은 신도분들이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서 이렇게 많이 모이셨고 또 정성을 표하고 소원을 빌기 위해서 많은 등불을 켰습니다마는,

등불을 켜면서도 ‘이뭣고?’를 하시고, 돌아가신 길에도 ‘이뭣고?’를 하시고, 돌아가시면 가정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모든 문제를 ‘이뭣고?’-자기가 자기의 진성(眞性)을 찾는 거기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신다면,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이 될 것이고, 가정에 분위기도 좋아질 것이고, 사회도 그것으로 인해서 좋아질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 사람이 이렇게 한다면 부정부패도 없어질 것이고, 대한민국이 정말 살기 좋은 행복한 나라가 될 것이고, 온 세계에도 극락세계(極樂世界)로 변하는 길은 오직 여기에 있다고 산승은 생각합니다.(처음~20분28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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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천상천하무여불~ ;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 찬불게(讚佛偈)라 한다.
『본생경(本生經)』에서 말하기를, 아주 먼 과거에 저사(底沙)라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그때 두 사람의 보살이 있었으니, 한 사람은 석가(釋迦) 보살이라 했고 또한 한 사람은 미륵(彌勒) 보살이라 했다.
어느날 저사불께서 두 보살을 관찰해 보시니, 지혜의 면에서는 미륵 보살이 앞서 있으나 중생 교화의 면에서는 석가 보살이 앞서 있어서, 저사불은 석가 보살로 하여금 속히 부처를 이루게[成佛] 하기 위하여 설산에 올라가 보굴(寶窟) 속에서 화광삼매(火光三昧, 火定)에 드셨다.
이때 석가 보살이 산에 올라가 약을 캐고 있었는데, 저사불께서 보굴 속에 앉아 화광삼매에 들어 밝은 광명을 내뿜는 것을 보자, 그 거룩한 모습에 어찌 할 수 없어-들었던 발을 내려놓고 또 다른 발을 들어서 걸어가지를 못하고-한 발을 들은 채로 합장하고, 환희하며 믿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하여 일심으로 우러러 뵙되 잠시도 눈을 깜박이지 않고 7일 낮과 7일 밤을 있었다.
여기에서 그 칠일칠야(七日七夜) 시일이 지나가면서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 천상천하에 부처님 같으신 이 없으시고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 시방세계에서도 견줄 이 없도다.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 세상에 존재하는 것, 내 모두 보았으나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 그 어느 것도 부처님에 비할 바 아니네.

이 게송을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찬불게(讚佛偈)라 하는데,
7일 7야 동안 세존(世尊)을 자세히 관하되[諦觀] 조금도 눈을 깜박이지 않으시니, 이로 인해 아홉 겁(九劫)을 뛰어넘어 91겁 만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를 얻으셨다.
[참고] [대지도론(大智度論)] (4권) '初品中菩薩釋論第八' 참고. [전등록 2] (동국역경원) p133 참고.

*저사불(底沙佛) ; 산스크리트어 Tisya. 부처님 이름. 불사(弗沙)·보사(補沙)라고도 함. 명(明)·원만(圓滿)이라 번역한다.

*세간(世間) ; (산스크리트어 loka) 세(世)는 파괴·변화, 간(間)은 가운데·간격을 뜻함.
①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② 생물들의 세계. ③ 생물들이 거주하는 자연 환경, 곧 산하대지. ④ 세상. 이 세상. 세속. ⑤ 산스크리트어 saṃsāra 미혹한 세계.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게송) ‘관타야불망~’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99 ‘찬불(讚佛)’ 게송 참고. *謌(가) 노래. 歌와 동자.
*무생(無生) ; ①생멸(生滅)을 벗어난 절대의 진리. 생멸(生滅)이 없는 도리. 곧 불생불멸하는 진여법성(眞如法性)을 알고 거기 안주하여 움직이지 아니함. 무생법인(無生法忍).
②아라한(阿羅漢) 또는 열반(涅槃)의 번역어. 번뇌를 없앤 경지를 말함.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도리(道理) ; 이치(理致).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는 모든 만유(萬有)를 꿰뚫고 있는 법칙. 모든 것에 두루 통하는 진리. 진리와 결합된 이론이나 증명. 타당한 이치.
*법화경(法華經) ; 본이름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7권 28품. 구마라집(鳩摩羅什) 번역.
경 전체를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부에서는 회삼귀일(會三歸一)을, 후반부에서는 세존의 수명이 무량함을 설함.
회삼귀일(會三歸一)이란 세존이 이 세상에 출현하여 성문(聲聞)과 연각(緣覺)과 보살(菩薩)의 삼승(三乘)에 대한 여러 가지 가르침을 설하였지만 그것은 결국 일승(一乘, 오직 하나의 궁극적인 부처의 가르침)으로 이끌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며, 후반부에서는 세존을 법신(法身)과 동일시함으로써 영원한 존재로 상정하여 신앙의 대상을 확립함.
*(게송) 제법종본래~ ; [법화경(法華經)] 방편품(方便品) 사구게.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주력(呪力) ;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로 하는 기도.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의 효과.
*염불(念佛) ;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과 같은 불•보살님의 이름을 외움. 흔히 어떤 일을 기원하며 ‘나무관세음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을 소리 내어 외우는 일을 말한다.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종파(宗派) ; 한 종교에서 교리나 의식의 차이로 나뉜 큰 갈래.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이뭣고?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이뭣고? (이 무엇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