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無常)2018. 10. 9. 12:46

§(434) 관음사진, 사구게, 달마대사 / 금강경 사구게(四句偈)의 공덕 / 참선 공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니 핑계를 대고 공부를 뒤로 미루지 마라.

 

**송담스님(No.434)—91년 2월 첫째 일요법회. (용434)

 

약 21분.

 

내일 입춘을 기해서 이런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사진과 이거는 또 달마(達摩) 스님이 그려져 있고, 또 이 속에는 금강경 사구게(四句偈)가 있는 이것을 오늘 나가실 때 전부 한 장씩 다 노놔 드리고, 또 내일 또 입춘 법요식에 참여하시면은 그때도 또 한 장씩 노놔 드릴려고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보이게 넣어서 가지시던지 그것을 각자 알아서 하시기를 바라고. 이것은 왜 노놔 드리느냐 하면은.

 

여기에는 금강경(金剛經) 사구게(四句偈),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이런 사구게가 여기에 있습니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은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다. 일체 모든 유위법(有爲法)은 꿈과 같고, 환(幻)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다.

 

유위법(有爲法)이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인연(因緣)으로 생긴 모든 사물을 유위법이라 그럽니다.

 

그러면 인연으로 생기는 것이 어떠한 것들이냐? 우리의 마음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습니다.

 

우리의 눈이 밖에 어떤 색상을 보면 우리의 마음속에 안식(眼識)이 생기고, 우리의 귀가 밖에서 들리는 어떤 소리를 만나면은 우리의 마음속에는 이식(耳識)이 생기고, 코도 그렇고, 혀도 그렇고, 몸뚱이도 그렇고, 우리의 의식(意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육근(六根)이 육경(六境)을 만나면 육식(六識)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도 그래서 이 마음에는 무슨 생각이 그렇게 해서 나 가지고, 잠시 머물러 있다가, 다른 생각으로 요렇게 변해 가지고 그 생각이 없어져. 그래서 생주이멸(生住異滅)이여. 이런 것들이 마음의 유위법(有爲法)이여.

 

그다음에 우리의 몸뚱이는 과거에 지은 업으로 부모를 만나면 거기서 이 몸뚱이를 받아서 이 세상에 태어나는데, 태어나면 얼마 안 있으면 나이를 먹고 늙고, 늙으면 병들고 마침내는 언제 죽던지 죽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몸뚱이에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습니다. 이것도 다 유위법이여.

그런 원인이 있어 가지고 그런 인연으로 태어나서 없어지니까 이것도 유위법(有爲法)이다.

 

그러면 우리가 이 몸을 담고 있는 집이라든지, 우리 나라라든지, 온 세계, 또 해나 달이나 별들 산천초목 두두물물도 다 성주괴공(成住壞空),

어떤 인연으로 이루어졌다가 그것이 잠시 그 상태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니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마는 사실은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동안 그런 형태를 유지하다가 결국은 무너져서 없어져. 그래서 성주괴공이 있거든. 이것도 유위법이여.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 우리의 몸뚱이나, 우리의 생각이나, 온 세계 삼라만상이 전부 유위법 아닌 것이 없는데, 이 유위법이라 하는 것은 꿈과 같고, 허깨비 환상과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이다. 이슬, 풀끝에 이슬과 같고, 또 번갯불, 번쩍하는 번갯불과 같다.

풀끝에 이슬이 아침에 나가면 이슬이 맺혀서 햇빛에 빛날 때에는 영락없이 그 반짝이는 것이 보석과 같은데, 조끔 바람이 불거나 건드리면 툭 떨어져 버린다 그말이여.

 

우리의 몸뚱이도 지금은 이렇게 살아 있지만 하루 후에 어떻게 될른지, 한 시간 후에 어떻게 될른지, 일 분 후에 어떻게 될른지, 그 무상하고 허망하고 믿지 못할 것이 풀끝에 이슬보다도 더하다 그말이여.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이니라. 뻑뻑이 이와 같이 관(觀)을 할지니라.

 

이 금강경의 이 게송은, 금강경에 칠사구게(七四句偈)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게송입니다.

 

금강경에 '이 사구게 하나만이라도 몸에 지니거나, 수지독송(受持讀誦)하거나, 남을 위해서 설해 주거나 하면은 그 공덕은 삼천대천세계에다 칠보탑을 조성해 모신 공덕보다도 더 수승하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금강경전이나 사구게가 있는 곳은 바로 부처님이 계신 곳이며, 부처님의 탑이 거기에 봉안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

부처님이 계시고 부처님의 탑이 모셔져 있으면 거기에는 항상 제석천왕(帝釋天王)을 비롯한 모든 선신(善神)과 25신장(神將)이 그걸 잘 외호(外護)를 하고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이것을 손수 잘 써서 그것을 베겨 가지고 이렇게 노놔 드리게 되는 것은 새해를 맞이해서 이걸, 여기에 관세음보살과 또 이 사구게와 달마 스님까지,

그러면 관세음보살은 불보살이니까 「부처님」[佛]이시고, 또 이 사구게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法)」이고, 또 달마 스님은 부처님의 법을 이어받으신 「28대 조사」[僧]여. 그래서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가 이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것을 몸에 잘 지니시면 항상 불법승 삼보를 몸에 지니시기 때문에 그 공덕이 한량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 게송의 뜻을 한 번씩 읽기만 해도 업장이 소멸이 되고, 일체 잡귀가 범접을 못하고 항상 선신이 여러분을 옹호를 해 줄 것입니다.

 

특히 '새해로 삼재(三災)를 만나게 된 분은 이것을 특별히 잘 간직을 하시라'하는 뜻에서 내일 입춘날 노놔 드리기로 한 것인데, 또 직장에 나가신 분, 모다 여러 가지...

그래서 내일 참석 못하실 분도 계실 것 같고 그래서 오늘 일차적으로 다 노놔 드리고 그리고 내일 오신 분에게도 또 노놔 드립니다.

 

가족이 많으신 분은 5장, 10장도 필요하실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노놔 드리기로 하면은 굉장히 많이 준비를 해야 하고 그래서 일단은 여기에 오신 분에게, 오신 인연을 지으신 분들에게 먼저 오늘 노놔 드리고, 또 내일 오시면 내일 또 노놔 드리고 그럴 테니 그렇게 아시길 바랍니다.

 

그동안에 새로 이사를 가신다던지, 집을 수리를 하신다든지, 집안에 어떤 우환이 있다든지, 꿈에 가위를 눌린다든지, 집안에 어떤 분이 돌아가셨는데 항상 무서운 생각이 든다든지, 집안에 과거에 돌아가신 분이 있는데 그렇게 집안이 액난(厄難)이 끊이질 않는다든지, 이런 말씀들 하신 분에게는 내가 이 금강경 사구게를 이렇게 써서 드리면서 집에 이렇게 모시라고 참 꽤 많은 분에게 이렇게 해 드린 일이 있는데,

 

아! 이상하게도 신기하게도 아 그걸 갖다가 딱 액자에다 넣어서 이렇게 딱 모시거나 또 몸에 이렇게 지니면은 그런 무서운 것도 없어지고, 액난도 없어지고, 또 꿈에 가위 눌린 것도 없어지고,

이런 말씀들을 들어왔기에 금년에는 이렇게 모든 우리 법보제자(法寶弟子) 여러분들께 이것을 노놔 드리기로 이렇게 마음을 먹었는데, 어떤 분이 이것을 무주상(無住相)으로 이것을 이렇게 베겨서 이렇게 법보시(法布施)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금강경 사구게는 철저하게 이 뜻을 이해를 하시고, 턱! 고대로 믿기만 해도 마음속에 온갖 업장(業障)이 소멸(消滅)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이 실다운 것으로 믿고 재산이나 명예나 권리나 그런 오욕락(五慾樂)들이 영원한 것처럼 생각하고 그것이 있어야만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오욕락에 집착을 하는 것이고, 또 이 몸뚱이가 ‘참나’라고 착각을 하고 이 몸뚱이를 가지고 천세 만세 살 것처럼 이 몸뚱이만을 집착을 하고 애끼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허망한 것들, 그런 유위법이 지극히 무상하고 허망하고 의지할 것 없는 것인데, 그것을 실다운 상으로 착각을 하고 그것에 집착하고 애착을 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온갖 시비가 일어나고 싸움이 일어나고, 우리의 마음에 미움이 일어나고 사랑이 일어나고, 고통과 갈등과 슬픔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게송을 모르신 분은 거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이것을 그냥 글로만 해석을 하고 그렇게 지나쳐 버리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그 약을 믿고 그것을 정성껏 법답게 복용을 함으로써 그 약이 효험이 나는 것이지, '그 약이 좋다더라' 그런 정도만 알고 실지로 복용을 하지 않고, 그냥 책상 위나 방바닥에 굴리고 만다면 그것이 신기하고도 좋은 약인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와 같이 이 게송이 그렇게 참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그런 공덕이 있다 하더라도 철저히 믿고 그것을 완전히 그 뜻을 마음속에 새기고 달관(達觀)을 해서, 이 게송이 바로 자기의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자기의 영혼 속에 녹아 들어가 버려야 이 게송 효능이 발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여러분들께서 몸에 다 간직하고, 어디를 가셔도 그것이 자기에서 떠나지 않도록 뜻으로도 마음속에 새기고, 실지로 이것을 몸에 잘 지니고 그리고 행동으로 이것을 잘 실천을 해 나간다면 여러분은 새해는 모든 근심과 고통이 봄눈 녹듯이 다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아무리 삼재를 당하고, 삼재가 들었다 하더라도 조끔도 걱정하실 것이 없습니다.

 

여기 용화사 신도 한 분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돈을 벌기 위해서 갔었는데 비행기가 떨어져서 백여 명이 그때 다 죽었습니다. 그이도 그 떨어지는 비행기 속에 타고 있었는데 별로 다친 데가 없이 살아왔습니다. 그이가 가지고 갔던 가방이고 신발까지 다 벗어져서 없어졌는데 이거 하나만 몸에 지니고 있었어.

그런데 비행기가 떨어져서 한쪽에서 막 타들어 오는데 구멍이, 나갈 구멍이 있는데 자기가 먼저 나가지 않고 옆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나가도록 뒤에서 밀어주고 거들어 주고 다 나갈라고 하다 마지막 자기가 나갈라고 하는데 문이 딱 닫쳐졌습니다. 영락없이 죽게 되었습니다.

 

이걸 몸에 딱 지니고 있었는데 그래도 조끔도 당황하지 않고 '이거, 송담 스님이 준 것이다' 해 가지고는 이것을 탁 가슴에 안고 기적적으로 다시 구녁이 뚫어졌습니다.

그래 가지고 나오다가 그때는 벌써 불이 많이 타 가지고 비행기가 뜨거워져서 나오면서 살짝 화상은 입기는 했지마는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살아와 가지고 이것을 나한테 보이면서 "참말 이 덕을 봤다"고 나한테 눈물을 글썽이면서 "감사하다"고 사례를 한 것을 들었습니다.

 

그 밖에도 '이것 때문에 뭐 도둑을 면했다. 뭣을 차를 잃어버렸는데 찾았다' 무슨 별별 그런 애기들 많이 들었습니다마는.

이런 말을 왜 내가 하냐 하면 이 금강경 사구게의 위신력(威神力)이 금강경 속에 참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을 만큼, 부처님께서 금강경에 말씀하시기를 「이 공덕을 있는 그대로 말하면 듣고 모다 미쳐버릴까봐 전부를 얘기를 못한다」고 이렇게까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다 금강경을 읽으신 분은 다 그 대목을 다 보셨겠는데, 얼마만큼 그 말씀을 믿나?

'아, 그 공덕이 장하니까 많이 읽으라는 뜻으로 하셨겠지' 이런 정도로 대부분 아마 생각하실 겁니다.

 

근데 나는 그것을 곧이곧대로 나는 백 프로, 이백 프로 그것을 믿었습니다. 믿고서 이것을 고대로 써 가지고 드렸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러한 불가사의한 효과가 있었으리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이 조그만한 관세음보살 사진이요, 사구게요, 달마 스님이지만 정말 그렇게 믿고 잘 간직을 하시기를 부탁을 하고.

 

 

탐진치(貪嗔癡) 삼독심(三毒心)을 버리지 못한 것은 이 게송의 뜻을 철저하게 믿고 깨닫지를 못한 데에서 탐진치 삼독이 일어나는 것이고, 번뇌와 망상이 일어나는 것이고, 오늘날 모든 싸움도 그것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 게송 하나만 철저하다면 어찌 발심(發心)을 못하겠습니까!

 

다 핑계—집안 살림 핑계, 아들딸 핑계, 무슨 핑계 저런 핑계를 대고 '그것이 끝나야 공부를 하리라' 그렇게 모두 핑계를 대고 공부를 뒤로 미루고.

 

공부는 가장 중요한 것이 이 공부뿐인데, 그런 일 핑계를 앞세우고 가장 급한 이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저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로 뒤로 미루고 공부를 이렇게 철저히 하시지 않는 것입니다.(19분2초~39분3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 관세음(觀世音)은 산스크리트어 avalokiteśvara의 번역, 보살(菩薩)은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세간(世間)의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받을 때,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음성(音聲)을 듣고(觀) 대자비와 지혜로써 자유 자재로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보살.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왼쪽 보처(補處).

또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 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 한다. 또 광세음(光世音) · 관세음(觀世音) · 관세자재(觀世自在) · 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쓰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관세음보살의 주처는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이다. 한국에서는 동해에 있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洛山寺)가 관음 도량으로 유명하다.

*금강경(金剛經) ; 금강경의 완전한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또는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能斷金剛般若波羅蜜經)』

금강(金剛)은 단단하고 날카로움을 뜻하는 다이아몬드를 가리키며, 반야(般若)는 지혜를, 바라밀(波羅蜜)은 저편 언덕으로 건너는 것, 즉 열반에 이른다는 바라밀다(波羅蜜多)의 줄임말이다. 풀이하면 ‘금강석처럼 견고한 지혜를 얻어 열반에 이르라는 부처의 말씀’을 뜻하는 것이다.

이 금강경은 대 반야경 육백부(六百部) 중에서 五七七권에 해당되고, 그 내용이 약 3백송(三百頌) 정도의 분량이기 때문에 ‘삼백송 반야경’이라고도 하며, 대략 서기 백오십~이백 년경의 대승경전 최초기에 만들어진 경전이라 할 수 있다.

 

「금강경」의 금강(金剛)은 금강석 곧 다이아몬드를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기에 무엇이라도 부술 수 있고, 세상에서 가장 예리하기에 무엇이라도 자를 수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기에 어둠을 밝게 비출 수 있다는 금강석을 부처님의 가르침, 반야의 지혜로 비유한 것이다.

금강석처럼 단단하고 예리하고 반짝이는 완전한 반야의 공지(空智)로 보살행을 수행하면 열반을 성취하여 성불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설한 경전이란 뜻. 「금강경」은 부처님과 수보리의 문답으로 전개되어, 공(空)사상에 입각하여 집착 없이 보살행을 실천하는 일을 중심 내용으로 대승불교의 기본 사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유위법(有爲法) ; ①여러 인연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모든 현상. 여러 인연으로 생성되어 변해 가는 모든 현상. 인연의 모임과 흩어짐에 따라 변하는 모든 현상.

②온갖 분별에 의해 인식 주관에 형성된 현상. 분별을 잇달아 일으키는 의식 작용에 의해 인식 주관에 드러난 차별 현상. 인식 주관의 망념으로 조작한 차별 현상.

*환(幻) ; ①허깨비. 모든 사물은 여러 가지 인연(因緣)이 모여서 생긴 것으로 실체가 없는 것에 비유함. 환(幻)을 실(實)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생의 미혹한 생각임. 환(幻)을 무(無)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승(二乘 : 聲聞, 緣覺)의 공(空)에 얽매인 견해, 단공(但空 : 단지 空만을 집착하는 것)임.

환(幻)은 또 화(化)와 거의 같은 뜻이므로 환화(幻化), 꿈과 비슷하므로 환몽(幻夢) • 몽환(夢幻)이라고도 한다.

②신기루, 아지랑이 같은 것.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 · 귀(耳根) · 코(鼻根) · 혀(舌根) · 몸(身根) · 뜻(意根)의 총칭이다.

근(根)은 기관·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육경(六境) ; 육근(六根)의 대상 경계인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을 말함. 경(境)은 대상을 뜻함. 육진(六塵)이라고도 한다.

①색경(色境).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수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수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맛.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등.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육식(六識)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제석천왕(帝釋天王) ; 불법(佛法)을 지키는 수호신. 신[天神]들의 제왕[帝]인 샤크라〔釋〕라는 뜻. 제석(帝釋), 석제(釋帝), 제석천(帝釋天), 제석왕(帝釋王), 제석태자(帝釋太子), 천주(天主)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Śakra-devānām Indra). 석제환인다라(釋提桓因陀羅) ·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 ·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 ·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 등으로 음역하고 줄여서 석제환인(釋提桓因, 釋帝桓因) · 제석천(帝釋天)이라 한다.

『법화현찬(法華玄贊)』에서는 “범어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에서 ‘석가’는 성(姓)씨이며 ‘능(能)이라 한역하고, ‘제바’는 ‘천(天)’이라 한역하며, ‘인달라’는 ‘제(帝)’라 한역하니 곧 ‘능천제(能天帝)’라 한다” 뜻으로 보면 ‘석가(능히) 제바(하늘의) 인달라(제왕)’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는데 그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왕으로, 사천왕(四天王)과 32신(神)을 통솔하면서 불법(佛法)과 불제자를 보호한다. 도리천에는 33신이 있는데, 제석은 그 중앙에 있는 선견성(善見城) 안의 수승전(殊勝殿)이라는 궁전에 살고, 나머지 32신은 그 성(城) 밖의 궁전에서 각각 산다.

제석천은 본래 인도 성전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천신 중 벼락을 신격화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었으나 불교에 수용되어서는 범천(梵天)과 함께 호법선신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상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 수호하고 사바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에서는 단군의 할아버지를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하여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동일시하여 숭배하였다.

<잡아함경>에는 제석천이 본래 사람이었으나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 향과 와구(臥具)·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한다. 제석천왕은 신중탱화(神衆幀畵)에 한 손에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머리에 보관(寶冠)을 쓰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한다.

*선신(善神) ; 불법(佛法)과 그것을 믿는 이들을 보호하는 신.

*신장(神將) ; 불법(佛法)을 보호하는 신장. 또는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외호(外護) ; 불법(佛法)을 세상에 널리 퍼뜨리는데 힘이 되도록 수행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신(身)·구(口)·의(意)를 보호하는 것을 내호(內護)라고 한다. 내호와 외호를 합하여 이호(二護)라고 한다.

*삼보(三寶) ; 부처님(佛寶)과 부처님의 가르침(法寶)과 그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집단(僧寶) 의 3가지를 보배에 비유한 말. 이것은 불교를 구성하는 3가지의 중요한 요소임. 삼보(三寶)에 귀의하는 것은 불교도로서의 기본적인 조건임.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 :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 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④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인한 육도윤회(六途輪廻)의 재난.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 송담스님(No.258)—1985년(을축년) 신수기도입재(1985.02.22) 법문에서.

삼재가 들으신 분뿐만이 아니라, 삼재가 안 들으신 모든 사부대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앙(災殃)은 언제나 우리에게 닥아 올 수가 있고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삼재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그 근본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 삼재가 붙을 수가 없고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마음이 있어서 그 마음으로 부터 끊임없는 파도가 파도치고 있기 때문에 삼재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대관절 이 삼재라고 하는 것이 왜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있는 것이냐?

태어난 해에 따라 차례차례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삼재가 오느냐 하는 것은, 이것은 음양오행의 술가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옛날부터서 우리의 생활 경험을 통해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삼재가 든 사람은 항시 불보살과 성현께 기도를 하고, 또 항시 3년 동안 근신을 하고,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각별히 조심을 해서,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 있어서 근신하고, 지혜롭고, 참을성 있게 그렇게 조심을 해 나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생활은 여전히 해 가되 ‘어떻게 근신을 하고 어떻게 조심을 하느냐’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불법을 믿고 항시 염불을 하는 이는 염불을 열심히 하고, 경을 독송하는 이는 경을 열심히 독송하고, 또 참선법을 믿고 실천하는 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들며 참구를 한다면 어느 틈에 있어서 삼재가 엿볼 수가 있겠습니까.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의 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삼재가 우리의 마음의 틈을 타서 들어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하고 삼재에 걸린 분. 또 앞으로 삼재를 맞이할 분들은 각별히 마음의 문—마음의 문은 눈이 바로 마음의 문이요. 귀가 마음의 문이요. 코와 입이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몸뚱이가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의 문인 것입니다. 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육문(六門)이 바로 삼재가 들어오는 문이 것입니다.

 

그 문단속을 잘 하는 것으로 모든 도적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삼재를 막아내는, 비단 삼재라고 했습니다마는 더 널리 말을 한다면 육적(六賊)이 될 것이고, 더 방대하게 말한다면 팔만사천 마군(八萬四千魔軍)이 될 것입니다.

 

그 팔만사천 마군이를 ‘한 생각’에 막을 수도 있고, 도적을 불러 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비끗 잘못하면 바로 삼재와 육적과 팔만사천 도적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도 역시 그 ‘한 생각’ 때문에 육도윤회를 해서 끊임없이 생사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그 ‘한 생각’만 잘 단속해 나간다면 신수기도는 정말 옳게 봉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무주상(無住相) ; 집착함이 없는 모습. 집착함이 없는 상태.

*법보시(法布施) ; 남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불서(佛書)를 베풂.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가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오욕락(五欲樂,五欲,五慾)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달관(達觀 통달할 달/볼 관) ; 인생의 진리를 꿰뚫어 보아 사소한 일에 집착하지 않고 넓고 멀리 바라봄. 또는 그러한 경지.

*위신력(威神力) ; 부처님이 지닌, 헤아릴 수 없는 영묘하고도 불가사의한 힘.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천도재(영가천도)2016. 6. 13. 18:05

§ (5)송담 스님 영가천도 법문.(신여백운래환계~)

 

약 15분.

 

신여백운래환계(身與白雲來幻界)하고  심수명월향하방(心隨明月向何方)

나무~아미타불~

생래사거유운월(生來死去惟雲月)인데  운자산혜월자명(雲自散兮月自明)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신여백운래환계(身與白雲來幻界). 몸은 구름과 더불어 환상의 세계, 사바세계(娑婆世界) 왔고,

심수명월향하방(心隨明月向何方). 마음은 명월을 따라서, 밝은 달을 따라서 어느 곳을 향해서 갔는가?

 

마치 사람 몸뚱이가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 뭉쳐진 이루어진 몸뚱이를 부모님의 은혜로 잠시 이승에, 세상에 왔지마는, 길고 짧은 한평생을 꿈결같이 살다가 인연이 다하면 구름 사라지듯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몸뚱이는 백운(白雲) 더불어 세상에 왔다. 구름처럼 세상에 왔다가 이승을 떠난다. 마음은 밝은 달을 따라서 어느 곳으로 것인가?’

 

몸뚱이 속에, 몸뚱이를 의지해서 이승에 있던 우리의 영혼이 몸뚱이가 구름 흩어지듯이 흩어져 버린 뒤에는 영혼은 달처럼 서쪽 하늘로 버리고 만다 그말이여.

몸뚱이는 땅에다 묻거나, 화장을 하거나 장례를 지내면 언젠가는 한줌의 흙이 되고 말아 버려. 그러니 구름이 흩어진 것처럼 결국은 언젠가는 영영 없어지고 마는데, 우리의 영혼은 달이 졌다고 해서 영혼이 아주 없어진 것이 아니거든. 달이 져도 다시 다음날 저녁에 뜨고, 달의 달이 지드라도 다음 달이 돌아오면은 다시 달이 떠오른다 그말이여.

 

우리의 영혼은 달처럼 어느 세계를 향해서 가는가? 생래사거유운월(生來死去惟雲月)이여. 세상에 태어났다가 다시 세상으로 가는 것은 마치 구름과 달이 생겨났다 없어지고, 하늘에 떴다가 다시 지듯 그와 같다 그말이여.

운자산혜월자명(雲自散兮月自明)이다. 구름 흩어진 뒤에 오히려 구름 속에 가리어졌던 달이 휘황찬 밝듯이, 지수화풍 사대로 뭉쳐진 몸뚱이 속에 우리의 소소영령(昭昭靈靈) 마음자리, 영혼자리가 가리워져 있다가 지수화풍 사대로 뭉쳐진 몸뚱이를 버려버린 뒤에는 오히려 소소영령한 신령스러운 영혼이 찬란히 휘황창 영혼이 뚜렷하게 나타나더라.

 

부처님 말씀에 『회자(會者) 정리(定離)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 하셨습니다. 『만난 사람은 반드시 이별하게 되고,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주법계의 진리요 섭리입니다

 

어떠한 인연(因緣) 의해서 생겨난 것은 인연이 다할 다시 그것은 모습을 감추게 됩니다. 다맛 인연 따라서 나타나고 인연 따라서 모습이 없어질지언정 자체가 지닌 본바탕은 생겨날 때도 생겨난 것이 아니고, 우리 눈에 보이게 되더라도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모든 것은 환상(幻想), ()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범부(凡夫) 모든 유위법(有爲法) () 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처처(處處) 곳곳마다 환의 () 끄달리고, 성문(聲聞) 환의 경계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빨리 적멸(寂滅) 들려고 애를 쓰는 겁니다.

그러나 대승보살(大乘菩薩) 분명히 그것이 경계인 때문에()이다, (), 열반(涅槃)이다, 빈부귀천이다, 흥망성쇠다그런 환의 경계, 그러한 경계에 구애() 받지를 않는 것입니다.

인연 따라서 주어진 대로 최선을 다하되 거기에 집착함이 없고, 집착함이 없으되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고, 이것이 바로 대승보살의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가짐인 것입니다.

 

 

법법본래무소주(法法本來無所住)하니  무소주처절추심(無所住處絶追尋)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양오작야침서령(陽烏昨夜沈西嶺)터니  금일의연상효림(今日依然上曉林)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법법본래무소주(法法本來無所住). 모든 () 세상 삼라만상 두두물물 모든 법이 본래무소주(本來無所住). 본래 () 바가 없어. 고정불변(固定不變) 것이 아니여.

무소주처절추심(無所住處絶追尋)이다. () 없는 곳을 향해서 더듬어서 찾을려고 하지를 말아라.

 

() () 아니요, 죽음이 죽음이 아니여. 흥한 것이 흥한 것이 아니요, 망한 것이 망한 것이 아니여. 다맛 인연 따라서 봄이 되면 꽃이 피고, 가을이 되면 단풍이 지고, 겨울이 되면 눈이 뿐이지,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무엇이 새로 생겨나고 무엇이 없어질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양오작야침서령(陽烏昨夜沈西嶺)이여. 해는 어젯밤에 서쪽 서산 너머로 지더니,

금일의연상효림(今日依然上曉林)이다. 오늘 아침에 새벽 옛을 의지해서 동산에 떠오르는구나.

 

유족들은 영가(靈駕) 돌아가셨다고 슬퍼하지마는 사실은 돌아가신 것이 아니여.

잠깐 인연 따라서 헌옷 벗어 버리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곳에 가서 태어나고, 인도환생(人道還生) 하더라도 좋은 건강하고 여러 가지 좋은 점을 구비해 가지고 태어나기 위해서 잠시 헌옷 벗어버린 것뿐이지, 돌아가시기는 무엇을 돌아가셔? 우리는 부처님의 말씀 『생사(生死) 본래 없다』고 하는 말씀을 철저히 믿어버려야 .

 

세상에는 여러 가지의 종류의 선생님이 계시는데, 학교에 가면 학문 지식으로써 입을 통해서 많은 사람을 가르켜. 태권도나 무술을 가르키는 데는 몸뚱이를 가지고 가르키고.

영가는 무엇을 가지고 우리 모두에게, 유족들을 비롯해서 우리 모두에게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가르켰느냐?

지수화풍 사대로 뭉쳐진 몸뚱이를 버리면서 죽음을 통해서 유족들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좋은 법을 가르켜 주었습니다. ‘ 사람의 몸뚱이는 허망한 것이다 하는 것을 가르켜 주었고, 인간의 재산이나 명예나 권리나 모든 오욕락(五欲樂)이라고 하는 것이 절대로 믿을 것이 못되고 허망한 것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켜 주었습니다.

 

유위법(有爲法)이라고 하는 것이, 밖에서 얻어지는 모든 유위법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 허망하다고 하는 것이여. 정말 몸뚱이도 허망한 것이요, 사람의 목숨이라 하는 것도 허망하고 무상(無常)하다고 것을 그렇게 분명하게 우리에게 가르켜 주고 가신 것입니다.

 

유족들을 비롯한 우리 모두는 죽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뼛속에 사무치도록 가르켜 교훈을 거울삼고 스승 삼아서 정말 철저하게 무상을 깨닫고 진실로 발심(發心) 해서 정법(正法) 믿고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라야겠습니다.

 

영가는 소소영령한 영혼의 위치에서 법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공덕으로 무량겁을 통해서 오면서 영가와 맺은 () 인연, () 인연, 선악(善惡) 아닌 무기(無記) 인연까지라도 조그만 하게 맺은 모든 인연 있는 모든 사람들도 일시에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서 생사 없는 극락세계(極樂世界) 왕생(往生)하시게 것입니다.()

 

 

 

 

 

---------------------

 

*(게송) 신여백운래환계~’ ; 『천경집(天鏡集) (하권) ‘행적(行蹟)’ 있는 함월 해원(涵月 海源) 스님의 임종게(臨終偈).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모두 사바세계이다.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 사람의 몸이 , , , 바람(,,,) () 원소()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이승 ; 지금 살고 있는 현실 세계나 일생 동안을 이르는 .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 영령(靈靈) 함께 밝은 .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 의미하는 .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 또는 ()이라 . ②연기(緣起) 같음.

*() : 또는 눈꽃(空眼花空華)。근본 무명(根本無明) 언제 일어났는지 시초를 알길 없으므로본래부터(從本已來)’라기도 하고, ‘시작도 없음(無始)’이라고도 한다.

무명이 일어나는 곳도 없고, 또한 실상 자체(實相自體) 없는 것이므로 곡두(환상)같다고도 하고, 눈이 어리어서 허공에서 아물거리는 눈꽃 같다고도 하는 것이다。이처럼 허환된 무명에서 나온 온갖 것이 또한 모두 환상이며 공화(空華) 것이다.

*범부(凡夫 무릇보통 /남편사내 ) ; 번뇌(煩惱) 얽매여 생사(生死)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유위(有爲) ; 산스크리트어: saṃskrta, 팔리어: savkhata  () 위작(爲作) · 조작(造作: 만들다) 뜻으로, 유위는 만들어진 , 조작된 , 다수의 요소가 함께 작용된 , 여러 인연이 함께 모여서 지은 , 인연으로 말미암아 조작되는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또는 이렇게 하여 드러난 생성과 소멸의 세계,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의 세계를 뜻한다.

*()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성문(聲聞) ; 부처님의 음성() 들은() 사람이라는 . 산스크리트어 śrāvaka, 팔리어 sāvaka. ①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사제(四諦) 이치를 깨달아 아라한(阿羅漢)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 ②자신의 깨달음만을 위해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

*적멸(寂滅 고요할 /다할·끊어질 ) ; ①번뇌의 불을 완전히 꺼버린 탐욕() 노여움() 어리석음() 소멸된 마음의 궁극적인 고요함. 적정(寂靜)으로 돌아가 일체의 () 여의고 있는 . ②열반, 부처님의 경지, 깨달음.

*대승보살(大乘菩薩) ; 보살(菩薩).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 준말. bodhi 깨달음, sattva 살아 있는 존재, 중생을 뜻하므로 보살은 깨달을 중생, 깨달음을 구하는 중생, 구도자(求道者)라는 .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각유정(覺有情) 등으로도 불린다.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수행으로 미래에 성불(成佛) . 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자리(自利) 이타(利他) 행하는 .

*(게송) 법법본래무소주~’ ; [신심명(信心銘) 벽의해(闢義解)] 중봉 명본선사(中峰 明本禪師) (명정 역주, 극락선원 2014) p93 게송 참고. *(頻伽藏本)天目中峰和尚廣錄 卷第十二之上 信心銘闢義解上 게송 참고.

*() : [] dharma [] dhamma 음을 따라 달마(達磨達摩) 또는 담무(曇無) 왔다。온갖 것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이니, 온갖 일과 모든 물질이며, 온갖 이치와 옳은 (), 그른 (), 참된 (), 거짓된 () 모두 달마 들어 있다。그러나 흔히 부처님이 가르친 교리만을 법이라고 한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고정불변(固定不變) ; 고정(固定)되어 변하지 아니하다.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 ()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 조건()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 없다[].

*거울삼다 ; (사람이 어떤 일을)본받거나 경계(警戒) 만한 것으로 여기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무기(無記) : [] Avyaksita ()•()•무기(無記) 3성의 하나. 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 말한다.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

 

*왕생(往生)죽어서 다른 세계에 가서 태어남. 세상에서 쌓은 공덕으로 죽어서 정토에 태어남. 염불한 공덕으로 죽어서 극락에 태어남.

Posted by 닥공닥정
생활속 정진(요중선)2014. 11. 24. 11:59
§(복전암26) (게송)다생원채기어친~ / 무연자비(無緣慈悲), 무주상보시 / 지장보살의 원력 / 인과법(因果法) / ‘이뭣고?’는 ‘참나’를 찾는 공부, 자기마음을 바로잡는 법.
 
남에게 줄 때는 무심(無心) 속에서 주어야 하고 조건 없이 주어야 해. 이것이 부처님의 ‘무주상 보시(無住相布施)’라 하는 것이여. 금강경을 독송하신 분은 잘 아시겠지. 무주상 보시를 해야 이것이 그 공덕이 영원한 것이지, 유주상으로 준 것은 그것 나중에 꼭 그놈이 나를 웬수로 상대하게 되는 것이다.
 
어떠한 큰 죄도 ‘어떻게 해서 그 죄를 짓게 되었는가?’ 그 근원을 살펴보면 꼭 마음 ‘한 생각’에서 그것을 짓는 거여.
쇠고랑도 안 차고, 지옥에도 안 가는 방법은 한 생각 일어날 때 그때 딱! 돌이켜버리면 큰 죄를 안 짓게 되는 것이다.
 
인과법을 철저히 믿는 사람은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인과법을 안 믿고 마구잡이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다. 모든 죄도 인과법을 안 믿는 데서 저질르게 되는 것이다.
흰머리가 다른 것이 아니라 염라대왕(閻羅大王)이 ‘너 벌써 늙기 시작을 했으니 얼마 안 있으면 너를 데리러 갈테니까 정신 차려라.’ 염라대왕이 우리에게 보낸 편지다.
 
**송담스님(복전암No.26)—지장기도 천도재 회향 (93년) (복전암26)

 

(1) 약 21분.

(2) 약 21분.

 

(1)------------------
 
다생원채기어친(多生怨債起於親)하니  막약다생불식인(莫若多生不識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향아불문여광제(向我佛門如廣濟)인댄  무연진개대비은(無緣眞箇大悲恩)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다생원채(多生怨債)가 기어친(起於親)이여, 다생! 다생겁래(多生劫來)로 웬수와 빚이 친한 데에서 일어난 거여. 
막약다생(莫若多生)에 불식인(不識人)이다, 다생에 웬수가 없고자 하면 사람을 알지 아니한 것만 같지 못하다.
 
사람을 알고 지내면은 친하게 되고, 친함이 생기면은 그것이 언젠가는 변해서 웬수, 빚쟁이가 된다.
그래서 웬수와 빚쟁이를 안 만날라면 사람을 알고 지내지 아니한 것이 좋다.
 
이 ‘사람을 안다’고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인연(因緣)을 맺는 것인데,
그 인연으로 인해서 우리가 잠시 한자리에 만나서 얘기하는 인연, 함께 차를 타고 가는 인연, 함께 길을 가는 인연, 한 집에서 사는 인연, 한 마을에서 사는 인연, 한 나라에서 사는 인연, 한 이 지구상에 함께 태어난 인연,
 
한 집에서 살되 부모 자식간의 인연, 부부간의 인연, 형제 간의 인연, 그 인연이 천 생, 만 생, 몇백 생, 오백 생 그러한 깊은 인연으로 해서 그렇게 만나게 되고,
이렇게 한자리에서 법문을 듣는 그 인연도 몇천 생의 인연으로 이렇게 된 것이다.
 
유루법(有漏法), 유위법(有爲法)의 인연은 그 인연이 언젠가는 원수로 변하는 것이고.
무위법(無爲法), 무루(無漏)의 인연 — 법(法)을 믿고, 법을 권하고, 법을 듣고, 법을 실천하고, 법에 있어서의 인연이 바로 무위법의 인연이요, 무루의 인연인데.
 
그런 인연은 몰라도 유루법, 유위의 인연은 전부 다 웬수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부모 자식간은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아낄 것이 없고, 자식을 위해서는 한량없는 죄도 서슴지 않고 짓게 된다 그말이여.
그것이 전생(前生)에 깊고도 깊은 전생의 빚이 있기 때문에 — 엄청난 빚이 있기 때문에 그 빚을 갚기 위해서 금생에 빚 받으러 온 놈이 그것이 자식이다 그말이여. 그러니 전생에 지어논 빚을 안 갚을 수 있는가!
 
그래서 자식을 위해서는 무엇이고 아까운 것이 없어.
자식은 물론 효자도 더러는 있지만은 대부분의 자식이라 하는 것은 빚 받으러 온 웬수거든.
그래서 그놈을 위해서는 아까운 것이 없다 그말이야. 다 주어도 또 주고 싶어.
 
그렇게 불효막심(不孝莫甚)해도—남이라면은 그렇게 고약한 놈은 탁! 인연을 끊어버리고 안 봐 버리면 되는데, 불효자식일수록에 부모는 더 가슴이 아프고 더 못 잊는다 그말이여.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알고 모르게 크고 작은 죄를 짓지마는 자식을 위해서 지은 죄가 엄청나게 많다 그말이여. 빚을 갚기 위해서 그런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지어 놓은 빚은 안 갚을 수가 없으니까 최선을 다해서 빚은 갚을 수 밖에는 없고, 아무리 피할래야 피할 수도 없는 것이니까 빚은 갚되,
그 빚을 갚으면서도 항상 ‘이뭣고?’를 해야지, ‘이뭣고?’를 안하면 계속해서 또 빚은 늘어나고만 만다.
 
자식은 ‘으레이 부모는 나를 낳았으니까 당연히 그렇게 해주어야 한다’ 생각하고 별로 고마운 생각도 없는 거여.
알뜰히도 빚을 받으면서도 별로 고마운 줄 모르고, 나중에 다 커서는 으레이 부모가 자식을 해주어야 한 걸로 생각한다 그말이여. 그놈이 또 자식을 낳으면 자식한테 또 빚을 갚아야 하고.
 
그러니 ‘이뭣고?’를 안 한 사람은 무량겁을 그것을 되풀이를 해. 되풀이를 하면서도 정신을 못 차려. 
 
지금 ‘부정부패 척결’해서 온통 야단이지마는 전부가 다 처자(妻子)·권속(眷屬)을 위해서 저지른 죄다 그말이여. 한도 끝도 없는 것이여.
 
그래서 우리의 불자(佛子)! 형제자매 여러 도반들은 원수 빚을 안 갚을 수가 없으니까 갚지마는 그 속에서 항상 ‘이뭣고?’를 해야 되야.
‘이뭣고?’를 해서 묵은 빚은 갚지마는 새 빚을 짓지를 말라.
 
 
향아불문여광제(向我佛門如廣濟)인댄, 우리 불문(佛門)에 있어서 널리 제도(濟度)를 하는데 있어서는,
무연(無緣), 무연자비(無緣慈悲), 인연 없는 자비 — 인연을 맺지 아니한 것이 이것이... (無緣眞箇大悲恩)
 
남에게 보시를 하되 인연이 있고 정을 따라서 주는 보시는 참다운 보시가 아닌 거여.
전혀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지만은 주어야 할 때는 무주상(無住相)으로 주고 이리 해야지,
유주상(有住相)으로 주어 놓으면 결국은 그것도 빚을 만드는 것이여. 웬수를 맺는 올가미가 되는 것이다.
 
내가 물심양면으로 많이 그 사람을 구제를 해 놓고 나중에 많이 주어 놨는데, 나중에는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사람이 되는 거여, 그 사람이.
내 것 많이 먹은 사람이 웬수가 되는 것이지, 전혀 나와 인연 없는 사람은 웬수가 전혀 안되는 법이거든.
 
남에게 보시를 하고 베푸는 것도 대단히 좋은 일인데 완전히 무주상으로 주어야 해.
조건 없이 주고도 잊어버리고 주어야지,
“내가 이것을 너를 주었으니까 너는 정말 나한테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이 은혜를 잊어서는 안되고 나중에 네가 이것을 내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러한 마음으로 조건부(條件附)로 주고,
 
“이것을 주었으니까 언젠가 너는 나한테 잘해야 한다. 평생토록 내 은혜를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그런한 조건이 있어 가지고 주어서는 그 사람이 받으면서도 겉으로만 ‘고맙습니다’ 그러지, 속으로는 하나도 고맙지도 않고, 많이 받아먹은 놈일수록에 나중에 그놈이 꼭 배은망덕한 놈이 되고, 나를 해꼬지 하는 것이여.
 
그래서 남에게 줄 때는 무심(無心) 속에서 주어야 하고 조건 없이 주어야 해.
이것이 부처님의 ‘무주상 보시(無住相布施)’라 하는 것이여. 금강경을 독송하신 분은 잘 아시겠지.
 
무주상 보시를 해야 이것이 그 공덕이 영원한 것이지, 유주상으로 준 것은 그것 나중에 꼭 그놈이 나를 웬수로 상대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7일 지장기도 회향식인데, 윤달을 기해서 왜 지장기도를 주지스님이 그렇게 원력(願力)을 발했느냐 하면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지은 죄로 자기가 그 과보를 받게 돼.
무량겁을 두고 몸으로 지은 죄가 태산과 같고, 입으로 지은 죄가 저 대해(大海)와 같고, 마음으로 지은 죄가 허공처럼 많다 그말이야.
 
그 자기가 지은 — 지금 이렇게 세상을 살아가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자체가 또 내생(來生)에 윤회할 그리고 고통을 받아야 할 그 원인을 만드는 거여.
과거에 지은 죄를 금생에 받으면서 또 금생에 이렇게 살아가면서 내생에 받을 죄를 또 짓고 있거든.
 
그래서 과거에 지은 죄를 참회(懺悔)하고 내생에 받을 과보를 받지 않는 참다운 길을 여러분에게 깨닫게 해 드리기 위해서 지장기도를 봉행한 것이다.
 
윤달에 예수재(預修齋)도 지내고, 윤달에 가사불사도 하고, 윤달에 개금불사도 하고, 참 수많은 불사(佛事)가 있는데 이렇게 지장기도를 한 경우는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닙니다
대단히 주지스님이 원력을 발해 가지고 지장기도를 이렇게 봉행을 했는데 여기에 동참하신 여러 불자, 신남신녀 여러분은 그 지장기도의 참다운 뜻을 잘 인식을 하셔야 할 것이다.
 
 
지장보살(地藏菩薩)은 지옥 중생 — 이 세상에 고통이 제일 심한 곳이 지옥인데.
지옥에는 팔만지옥(八萬地獄)이 있고, 그 가운데 참 무서운 데가 십팔지옥(十八地獄)이 있고, 무간아비(無間阿鼻) 지옥이 있고 그런데.
 
그 지옥 문전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지옥 중생을 위해서 지옥문에 가 가지고 눈물이 마를 겨를이 없이 그 지옥 중생들에게 고통을 멈추게 해주기 위해서 애를 쓰고 계시다 그말이야.
 
우리도 지장보살의 대원력을 따라서 「지옥에 들어가기 전에 해탈도를 가는 것」이 그것이 지장보살의 참으로 큰 대원력이여.
 
이미 지옥에 들어가 가지고 그놈을 벗어나기는 참 어려운 거여.
한번 들어가면 나올 기약이 없어. 거의 영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할 만큼 몇 무량겁을 지옥고를 받게 되는 것인데,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열심히 해둔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냐.
 
탐진치(貪瞋癡), 탐욕과 성내는 것과 어리석은 마음 — 이 세 가지 죄로 지옥, 아귀, 축생의 과보를 받게 되는 거여. 어리석은 마음을 내면 축생보를 받고, 탐심을 내면 아귀보를 받고, 진심을 내면 지옥을 가는 것이여.
 
물론 중생은 세 가지를 다 고루고루 지어 가지고 축생에 갔다가 아귀도에 갔다 지옥고에 갔다, 그 삼악도(三惡道)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지만은,
 
 
그 어떻게 했으면은 탐욕심을 안 내고, 진심을 안 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안 낼 수가 있느냐?
 
천하에 간단한 것이지.
아무리 탐욕이 과하고, 진심을 성을 잘 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많이 낸다 하더라도 그것이 근본은 마음에서 그것을 짓는 것이지 다른 것으로 짓는 게 아니여.
 
어떠한 큰 죄도 ‘어떻게 해서 그 죄를 짓게 되었는가?’ 그 근원을 살펴보면 꼭 마음 ‘한 생각’에서 그것을 짓는 거여.
한 생각이 일어나 가지고 그 한 생각이 차츰차츰 이리저리 발전해 가지고 결국은 그런 큰 죄를 짓게 되어.
 
‘한 생각’이 딱 일어나면 그것이 말로 표현이 되고, 그것이 얼굴에 나타나고,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나 가지고 큰 죄를 지어 가지고 금생에도 쇠고랑을 차게 되고 내생에는 물어볼 것도 없이 지옥에 가게 되는데.
 
쇠고랑도 안 차고, 지옥에도 안 가는 방법은 한 생각 일어날 때 그때 딱! 돌이켜버리면 큰 죄를 안 짓게 되는 것이다.
 
지금 장관도 걸리고, 국회의원도 걸리고, 그 별 단 장성들도 모다 걸려 들어가는데 그 죄가 한 생각에서 일어난거다.
 
산불이, 건조기에 산불이 지난달에 몇천 건이 일어나 가지고 한국의 금수강산이 모다 다 타고 그랬는데, 그 엄청난 불이 처음부터 그렇게 큰불이 난 것이 아니여. 
처음에는 성냥불 하나나 담뱃불 하나가 결국은 번져 가지고 그렇게 큰불이 된 것이거든.
 
처음에 담뱃불 하나만 탁! 밟아서 잘 껐어도 그런 큰불이 안 날거거든.
담뱃불 하나만 단속을 잘 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여. 성냥불 하나 — 그때는 탁! 손바닥으로 눌러도 꺼지고, 발로 탁! 밟아도 꺼지고.
 
그때 조심을 했으면 될 것인데 그걸 조심을 안하고, 그때 단속을 안했기 때문에 집도 타고 공장도 타고, 저 엄청난 산도 다 탄다 그말이여.
 
 
한 생각 일어난 그 한 생각이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 욕심!
아까 그 자식때문에 요새 모다 부정 입학문제도 그 자식이 평소에 공부를 잘해서 실력으로 들어가 주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은 그놈이 국민학교 때는 잘하던 놈이 중학교 가면서 조금 떨어지고, 고등학교 가서는 나쁜 친구를 사귀고 그럭저럭 지내다가 대학을 갈라고 하니 되냐 그말이여.
 
그러니 부모는 돈이 없는 사람은 몰라도 있는 사람은 몇천 만원, 몇억이라도 넣어서라도 들여서라도 입학을 시키고 보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말이여. 그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면은 참 기가 맥히지.
 
그러나 지가 공부 못한 놈을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을 시킬 것까지는 없는 일이었었다 애당초에.
못하면 못한대로 지가 공부를 안 해 가지고 못한 걸 어떻게 하냐?
전생에 지혜를 닦아 놓지 아니해서 금생에 머리가 나쁘고, 지가 금생에 어려서부터 열심히 했으면 되는데 그렇게 공부를 하라하라 해도 지가 안 한 것을 어떻게 돈을 들여서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을 시킬 것이냐 그말이여.
 
못하면 못한대로 구두닦이를 하던지, 노동판에 가서 일을 하던지, 신문팔이를 하던지 아주 매정한 마음으로 했어야 한다 그말이야.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을 시켜놨다가 1학년, 2학년 대학에 가 가지고 그때사 퇴학을 당하면 그거 어떻게 되는 것이며, 부정한 방법으로 별자리를 올라갔다 그것이 떨어지니 그것이 될 일이냐 그말이여.(19분41초~40분45초)
 
 
 
 
 
(2)------------------
 
그래서 사람은 바르게 살아야 하고 정에 떨어져서는 안돼.
제 자식이지만은 지가 공부 안한 놈은 안 하는대로 해야지, 인정(人情) 정을 써서 해 놓으면 결과가 결국은 그렇게 되고만 만다 그말이야.
설사 부정한 짓을 해서 금생에 잘산다 하더라도, 금생에 쇠고랑은 안 찬다 하더라도 내생에 저 내생에는 반드시..(법문 끊김)
 
탐욕! — 자기 욕심대로 안 되면은 진심(瞋心)을 내고, 그러기를 무량겁을 두고 그렇게 해 가지고 육도윤회를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어리석은 것도 가지각색이지만 제일 어리석은 것이 무엇이냐?
‘가장 어리석은 것의 근본이 무엇이냐’하면은 인과법(因果法)을 안 믿는 거여.
 
인과법을 철저히 믿는 사람은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인과법을 안 믿고 마구잡이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다.
 
모든 죄도 인과법을 안 믿는 데서 저질르게 되는 것이다.
인과법은 팥 심은 데 팥이 나고, 콩 심은 데 콩이 나.  털끝 만큼도 어기는 법이 없어.
 
이 세상에 모든 것은 인과법으로 다 이루어지는 것인데, 인과법은 지극히 과학적이고 컴퓨터보다도 더 정확한 것이여. 컴퓨터도 병이 나면 천하 못 믿을 것이 참, 컴퓨터라 그러는데.
 
진짜 영원히 추호도 어김이 없는 것은 인과법이여.
한 생각 탁! 먹은 것도 벌써 과보(果報)로 나타나고, 말 한마디 나온 것도 과보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말이여.
 
그래서 우리는 한 생각 일어날 때 퍼뜩 돌이켜서 ‘이뭣고?’로 돌아와야 해.
‘이뭣고?’는 무엇이냐? 내가 ‘참나’를 찾는 공부거든. ‘참나’로 돌아가는 길이여.
 
우리가 저 진묵겁(塵墨劫) 전에는 우리도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法身佛)이었어. 법신불과 똑같은 존재였어.
 
그러던 존재가 한 생각 일어나는 그 무명(無明) 때문에 이렇게 '업(業)투성이'인 중생이 되고 말았다 그말이여. 
그래서 지금도 일어나는 한 생각만 잘 단속을 하면 본래의 비로자나불로 돌아갈 수가 있다 그거거든.
 
이것 말고는 우리의 영원한 행복도 얻을 수가 없고 우리의 가정, 우리의 사회·국가·세계의 평화도 이룰 수가 없는 거여.
근원을 다스리지 않고 어떻게 지엽적인 문제만 가지고 해결이 될 것이냐 그말이여.
 
지금 부정부패 척결을 해 가지고 새 한국을 건설하자고 새 대통령께서 나와서 저렇게 애를 쓰고, 온 국가가 온통 이것 때문에 그 애를 쓰고 있는데,
대단히 부정부패는 마땅히 척결을 해야 하고 그래야 이 나라가 되어갈 것은 사실이나 법을 엄격히 적용한다고 해서, 근본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이것은 잠시 그러다가 조금 법을 느슨히 느꿔주면 또 마찬가지야.
 
 
근본은 각자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는 거여.
일어나는 한 생각을 자꾸 ‘이뭣고?’로 돌이켜서 ‘참나’로 돌아감으로서만이 부정부패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부정부패, 부정부패하지만 알고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지은 죄여, 그게.
각기 자기가 지은 죄가 노출이 되면 여러 사람이 하니까 온 나라가 썩어 문드러진 것처럼 보이나, 나라가 썩기는 무슨 나라가 썩어, 태산이 썩어?
 
아무 것도 썩은 건 없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잘못 삐틀어진거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만 바로잡어!
어떻게 나무가 삐틀어지면 깎아내고 바로잡는다 하지마는 사람의 마음을 무엇으로 잡어?
 
‘이뭣고?’가 자기 마음 바로잡는 법이거든.
자꾸 ‘이뭣고?’를 해서 자기로 돌아가. 자기의 본심으로 돌아가.
 
그것이 바로 자기 마음을 바로잡는 법인데, 마음 하나만 바로잡고 보면 말도 바르게 나오고, 행동도 바르게 나올 것이고, 마음을 바로잡은 사람은 무슨 일을 맡기더라도 그 일을 바르게 할 것이다 그말이여.
 
서장이 되거나 검사가 되거나 판사가 되거나 장관이 되거나 마음을 잘못 써 가지고 쇠고랑을 차는 것이지, 마음만 바로잡으면 무슨 걱정이 있느냐 말이여.
 
법을 아무리 무섭게 제정을 해서 엄격하게 다룬다 해도 그때 뿐이여, 중생은.
엄하게 할수록에 더 머리 좋은 사람은 그놈의 법망을 뚫고 또 죄를 저지르고 마는 거다 그말이여.
 
그래서 성현들은 법을 엄격히 적용을 하는 데에다가 역점을 두지 않고, 각자 마음을 바로잡는 데에다가 역점을 두고 가리키셨다 그거거든.
 
‘이뭣고?’ 자기 마음을 바로잡는 법이 아닌가!
집안에 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으로 인해서 두 사람, 세 사람 온 집안 식구가 ‘이뭣고?’를 하고, 그런 집안이 있으면 또 이웃집 사람들도 또 그 본을 따서 ‘이뭣고?’를 하고, 사돈네도 그걸 하게 되고 해서,
 
차츰차츰 ‘이뭣고?’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인과법을 믿고 ‘이뭣고?’만 열심히 하면 이 세상이 온통 부처님 세계로 변하는 것이다.
 
법이 전혀 필요가 없는 거여. 형무소도 필요없이 되어 버리고.
지옥도 텅텅 비어서 지장보살도 지옥에서 좀 나올 때가 된다 그말이여.
 
‘이뭣고?’을 하지 않고는 온 세계가 법을 무섭게 제정을 해 가지고,
도둑질한 놈은 왼손 자르고 또 한번 한 놈은 오른손을 자르고, 유부녀 간통한 놈은 목 매달아 죽이고 총살을 시키고, 지금도 저 아프리카 어디 가면은 도둑질하면 팔목 자르고 목 매달아 죽이는 데가 있다고 하더만.
 
그래 해봤자 마음보를 바로잡지 않고 아무리 무섭게 해서 날마다 수백 명씩 때려 죽여봤자 끝나는 날이 없어. 온 세계 사람을 다 때려 죽여도 소용이 없는 거다 그말이여. 죽자마자 또 다시 태어날 것을 죽여봤자 소용이 있나.
 
 
그래서 우리 부처님께서는 ‘이뭣고?’ ‘이뭣고?’
가정에서도 속상한 거 부애풀이 해봤자 소용 없고, 떠억 숨을 깊이 들여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뭣고?’
열 번, 스무 번 하다보면은 스르르르 가라앉거든.
 
부애난다고 때려 부수고, 부애난다고 술 잔뜩 먹고 와 가지고 막 때려 부숴봤자 무엇이 되는 일이 있냐 그말이여. 집안만 점점 복잡하고 시끄럽고 일은 무장 더 다 안되거든.
‘이뭣고?’를 해야—턱 숨을 깊이 들여마셨다 내쉬면서 ‘이뭣고?’ 자, 다 따라서 숨을 들여마셨다가 ‘이뭣고?’ ‘이뭣고?’
 
부애가 날 때는 좀 큰소리를 내서 ‘이뭣고?’를 하면 더욱 좋다.
그렇다고 해서 만자 중에서 소리를 내서 ‘이뭣고?’ ‘이뭣고?’ 하면 사람들이 모다 쳐다보고 그럴테니까 사람 없는 데서는 그렇게 하고, 사람 있는 데서는 속으로 ‘이뭣고?’를 자꾸 해서,
자꾸 하다 보면 나중에는 저절로 ‘이뭣고?’가 되야.
 
걸어가면서 ‘이뭣고?’
심심하면 ‘이뭣고?’
차를 타고 가면서도 ‘이뭣고?’
밥 먹으면서도 ‘이뭣고?’
누워서도 ‘이뭣고?’
앉아서도 ‘이뭣고?’
변소에 가서 터억 앉아서도 ‘이뭣고?’.
 
‘이뭣고?’ 저절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항상 ‘이뭣고?’가 끊어지지 않도록.
그 사람은 제발 좀 성을 내라고 해도 성을 안 내고, 제발 좀 탐욕심을 내라고 해도 안 내는 거여.
그 사람이 무슨 도둑질을 하라고 한다고 해서 할 리가 있는가!
 
자꾸 처음에는 잘 안되고 재미가 없지만은 자꾸 하면은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법희선열(法喜禪悅) — 법(法)의 기쁨과 선(禪)의 즐거움이 속에서,
 
향을 피워 놓으면 향내가, 전단향을 피우면 10리 밖에까지라도 그 향내가 풍기는데,
‘이뭣고?’를 한 사람은 마음의 기쁨이 그렇게 넘쳐 흐르고 얼굴이 환해지거든. 그 사람을 본 사람마다 다 환희심을 내는 것이다.
 
그 사람이 간 곳에는 항상 선신(善神)이 옹호를 하고, 마음으로 꼭 탐욕심을 안 내더라도 마음으로 꼭 무엇이 필요하다 하면 저절로 그것이 자기한테 이르러 오는 거여.
 
지상(地上) 사람은 무엇이 먹고 싶으면 손으로 그걸 집어서 입에다 넣어서 씹어서 먹어야 그때사 배가 부르는데, 복이 많은 저 천상(天上) 사람들은 무엇이 먹고 싶다 하면 벌써 배가 불러져 갖고 있는 거여.
 
지상 사람은 남녀 관계도 몸과 몸이 접촉해야 사랑이 이루어지는데, 천상 사람은 마음 한 생각만 내면 벌써 이루어지는 거여.
 
그래서 중생이나 축생은 입으로 씹어서 먹는 거고, 귀신은 냄새로 먹는 거고, 천상 사람은 생각으로 먹는 거고.
 
부처님은 견식(見食)이여. 떠억 보기만 해도 벌써 충분히 배가 부르신 거여.
그래서 이 법당 탁자 위에다가 떡이다 과일이다 잔뜩 갖다 놓아도 하나도 줄지를 않거던. 부처님은 보시기만 해도 배가 부르시기 때문에 그런 거여. 부처님은 견식이여.
 
그래서 ‘이뭣고?’를 열심히 해서 마음에 욕심이 없는 사람은 꼭 필요한 것은 저절로 공급이 돼.
왜 그러냐? 항상 선신이 옹호를 하기 때문에,
선신(善神)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선신은 — 대통령이나 모다 그런 사람들은 항시 호위하는 경호원이 따라다니듯이 — 참선하는 사람에게는 선신이 우리의 경호원으로 따라다녀 가지고 항상 지켜줘.
 
먹을 것, 입을 것 전혀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 
열심히 ‘이뭣고?’하면 걱정을 안 해도 항상 그 사람에게는 의식주 문제가 걱정이 없어.
 
자기 한 사람의 의식주 문제는 그렇게 크게 걱정을 안 해.
사람이 지나친 욕심을 가지고 탐욕심을 가지고 그래 가지고 분에 넘치는 욕심을 내기 때문에 죄를 지어 가지고 부정부패에 걸리는 것이지, 자기가 먹고 입고 살 만큼만 가질라고 하면은 그렇게 큰 죄를, 큰 욕심을 안 내도 되는 것이다.
 
 
우리는 시시각각으로 이 몸뚱이는 늙어가고 있습니다.
금방 30까지는 조금 마디다가, 40이 되면 더 빨리빨리 가고, 50이 되면 더 빠르고, 60이 넘으면 금방 늙어서 곧 꼬부라지는 거여.
 
우리가 이만큼 젊었을 때 어쨌든지 시간을 아껴서 열심히 ‘이뭣고?’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우리가 이 몸뚱이를 백 가지, 천 가지 방법으로 위하고 해봤자 금방 이 몸뚱이는 허망하게 늙어가.
 
벌써 여기에 앉아 계신 분들은 대부분 흰머리가 많거나 적거나 간에 다 하나, 둘씩 이상 다 생겼을 것인데,
그 흰머리가 처음에는 곧잘 보기 싫다고 뽑아 내버리지만 나중에는 몇 해 지나가면 도저히 그놈 다 뽑다가는 대머리가 되게 생기니까 도저히 못 뽑고, 나중에는 물을 들이는데 물을 들여봤자 밑에서 하얀 것이 곧 돋아나거든.
 
얼굴에 주름살 생긴다고 여기를 째고 잡아당겨봤자, 정말 늙어서는 흉직하게 늙어간다 그말이여.
 
그 흰머리가 다른 것이 아니라 염라대왕(閻羅大王)이 
‘너 벌써 늙기 시작을 했으니 얼마 안 있으면 너를 데리러 갈테니까 정신 차려라.
죄 지은 것 있으면 참회하고, 어쨌든지 ‘이뭣고?’ 열심히 하고, 남에게 욕심내지 말고, 네게 있는 것을 턱턱 털어서 보시도 많이 하고 그렇게 해서 황천에 올 때에는 가벼운 몸으로 오너라.
 
탐욕심을 잔뜩 탐욕심을 해봤자 너 죄만 짊어지고 오지, 하나도 가지고 오지도 못할 걸, 뭐하러 그렇게 오그려 쥐고,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도 그리고도 만족할 줄을 모르고 한없이 그렇게 죄만 퍼 짓느냐?’
염라대왕이 우리에게 보낸 편지다 그거여, 편지.
 
여러분 「지장기도 오늘 회향일을 맞이해서 깨끗이 과거에 지은 죄를 참회하고 앞으로 남은 여생에 죄짓지 않고 열심히 ‘이뭣고?’ 하겠습니다」하는 뜻으로 참회진언(懺悔眞言)을 외우면서 연비(燃臂)를 받으시겠습니다.(연비 준비하세요)
 
참회진언을 하고 연비를 받아서 과거 무량겁에 지은 우리의 죄는 깨끗해졌습니다.
새 마음, 새 몸으로 오늘 새로 태어났습니다.
 
새로 태어난 몸으로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면 우리는 내일엔 오늘과 다르고, 모레는 오늘과 달라서 점점 젊어지고 점점 이뻐지고, 점점 착해져서 다른 사람이 우리를 볼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볼 때 옛날에 미웠던 사람이 하나도 미운 생각이 없어지고 옛날에 원수로 여겼던 사람이 하나도 웬수로 보이지를 않고 모두가 다 한 식구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상에 극락정토(極樂淨土)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중생이 업(業)의 눈으로 보니까 이 사바세계가 악토(惡土)요 악세(惡世)요 고토(苦土)요 예토(穢土)라고 그렇게 보지마는 부처님의 눈으로 볼 때에는 이 사바세계가 고대로 적광토(寂光土)요 극락세계인 것입니다.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온갖 열매를 맺고, 겨울에는 흰 눈이 내리는 것이 하나도 지옥세계라고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바야흐로 봄이 돌아와서 산천에 푸른 잎이 돋고 온통 울긋불긋 꽃이 피어서 문자 그대로 금수강산(山)이 되었습니다.
 
나라도 새로운 정부가 섰으니 우리도 새로운 마음으로 우리의 몸도 새로와지고 우리의 가정도 새로와지고 온 세계가 새로운 새 봄으로 새출발을 하는 그러헌 계기를 우리는 오늘로서 마련을 합시다.(19분41초~61분6초)
 
 
------------------(1)
 
*(게송) ‘다생원채기어친~’ ;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預修十王生七齋儀纂要)』 (大愚集述) 제13 소청명부편(召請冥府篇) 게송 참고.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유루법(有漏法) ; 번뇌의 더러움에 물든 마음 상태, 또는 그러한 세계. 온갖 번뇌와 망상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차별이나 분별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사제(四諦) 가운데 미혹의 결과인 고제(苦諦)와 그 원인인 집제(集諦)에 해당하는 모든 현상.
*유위법(有爲法) ; ① 온갖 분별에 의해 인식 주관에 형성된 현상. 분별을 잇달아 일으키는 의식 작용에 의해 인식 주관에 드러난 차별 현상. 인식 주관의 망념으로 조작한 차별 현상.
② 여러 인연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모든 현상. 여러 인연으로 생성되어 변해 가는 모든 현상. 인연의 모임과 흩어짐에 따라 변하는 모든 현상.
*무위법(無爲法) ; (산스크리트어: asaṃskrta-dharma) 무위법은 무위의 세계, 즉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진리의 세계의 모든 개별 존재(법·法)를 통칭한다. 또는 그러한 개별 존재(법·法)를 가리킨다.
원래 무위 혹은 무위법은 열반(涅槃)의 다른 명칭.
*무루(無漏) ; 마음과 몸을 괴롭히는 번뇌에서 벗어남.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마음 상태. 번뇌가 사라진 경지.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무연자비(無緣慈悲) ; 무조건의 자비(慈悲). 상대의 어떤 것도 묻지 않고, 일체 평등으로 구제하는 자비심. 일체 평등의 이치를 깨달아 상대의 상(相:모습)을 가리지 않고 행하는 자비.
무연(無緣)이란 진여평등(眞如平等)의 이치를 깨달아 중생의 본체(本體)가 허망하다는 것을 알고 일으키는 자비.
*무주상(無住相) ; 집착함이 없는 모습. 집착함이 없는 상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대승불교도들의 실천덕목 중 하나. 상(相)에 머뭄(住)이 없는(無) 보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말한다.
무주상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05~106에서.
(46)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한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참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둘 아닌 것이 한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참고] [금강경오가해]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p141~145, [금강경오가해 설의-육조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p101~104.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또 수보리야, 보살은 법(法)에 응당히 머문 바 없이 보시를 할지니, 이른바 색(色)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상(相)에 머물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상(相)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육조 스님 해의解義)
부차(復次)라 한 것은 앞을 이어서 뒷말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범부(凡夫)의 보시는 다만 아름다운 외모와 오욕의 쾌락을 구하는 고로, 그 과보가 다하면 곧 삼악도(三惡途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므로,
세존께서 크나큰 자비로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를 행하도록 가르치시니,
아름다운 외모나 오욕(五欲)의 쾌락을 구하지 않고, 다만 안으로는 인색한 마음을 없애고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 이와 같이 상응(相應)하는 것이 ‘색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色布施)’이니라.

무상(無相)의 보시를 한다는 것은, '보시한다'는 마음도 없고, 베푸는 물건도 없으며,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相布施)'라 하느니라.

보살이 보시(布施)를 행할 때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면 그 얻는 복이 시방(十方)의 허공과 같아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일설에 '보(布)'란 '普(넓다)'요, '시(施)'란 '散(사방에 흩어버린다)'이니, 가슴 가운데 있는 모든 망념·습기·번뇌를 널리 흩어버려 사상(四相)도 끊어지고 마음에 전혀 쌓여 있지 않는 것이 '참 보시(眞布施)'라 하며,
또 일설에는 '보(布)'란 '普'니 육진 경계(六塵境界)에 머물지 않으며 유루(有漏)의 분별도 하지 않아 오직 항상 청정한 데 돌아가서 만법(萬法)이 공적(空寂)함을 요달함이니라.
만약 이 뜻을 요달하지 않으면 오직 온갖 업(業)만 더하므로 모름지기 안으로 탐애(貪愛)를 없애고 밖으로 보시를 행해서 안밖이 상응하여야 무량한 복을 얻게 될 것이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보아도 그 허물을 보지 않아서 자성(自性) 가운데 분별을 내지 않음이 '이상(離相)'이 되느니라.
가르침에 의해 수행해서 마음에 능소(能所)가 없는 것이 곧 선법(善法)인 것이라. 수행인이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선법이라 할 수 없고, 능소심(能所心)이 멸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치 못하니,
순간순간 항상 반야지혜를 행하여야 그 복이 무량무변한 것이니라.

이같은 수행에 의지하면 일체 인천(人天 사람과 하늘신)의 공경하고 공양함이 따르니 이것을 복덕(福德)이라 하도다.
항상 부주상보시(不住相布施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보시)를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면 그 공덕이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배은망덕(背恩忘德) ; 남에게 입은 은덕을 저버리고 배신하는 태도가 있음.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내생(來生) ; 죽은 후에 다시 맞이한다는 미래의 삶.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예수재(預修齋) ; 살아 있는 동안에 미리 재(齋)를 올려 죽은 후에 극락에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의식.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지장보살(地藏菩薩)석가모니불의 입멸 후 미륵보살이 성불할 때까지, 곧 부처가 없는 시대에 중생을 제도한다는 보살로, 그는 모든 중생이 구원을 받을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보살이기 때문에 대원본존지장보살(大願本尊地藏菩薩)이라고 한다.
특히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에 사찰의 명부전(冥府殿)에 본존(本尊)으로 모신다.
보통 삭발한 스님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한 손에는 지옥의 문이 열리도록 하는 힘을 지닌 석장(錫杖)을, 다른 한 손에는 어둠을 밝히는 여의보주(如意寶珠)를 들고 있다.
지장보살은 고통받는 이들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윤회의 여섯 세계, 즉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에 상응하는 6가지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팔만지옥(八萬地獄) ; 중생이 지닌 팔만사천의 번뇌로 생기는 여러 가지 괴로움을 지옥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살가죽을 벗겨 불 속에 집어넣거나 쇠매〔鐵鷹〕가 눈을 파먹는 따위의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함.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2)
 
*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 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
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진묵겁(塵墨劫) ; 티끌이 쌓여 먹(墨)이 될 만큼의 오랜 시간.
*비로자나(毘盧遮那) ;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는 뜻으로, 부처의 진신(眞身)을 이르는 말. 비로자나는 진리 그 자체인 법신을 형상화한 것. 
*법신불(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즉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무명(無明) : [범] avidya 「어리석은 마음」 「어두컴컴한 마음」을 이름.
<기신론(起信論)>에 는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법계(法界)의 참 이치에 어둡게 된 맨 처음 한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이 근본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거나 거칠거나 한 온갖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하였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를 의인화한 부처.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법희선열(法喜禪悅) ;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따르는 기쁨과 선정(禪定)에 들어가 마음이 즐거운 것.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참회진언(懺悔眞言) ; 죄업(罪業)을 참회하는 진언.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연비(燃臂) ; 불교에서 수행자가 계(戒)를 받을 때, 팔뚝에 향이나 심지로 불을 놓아 뜨는 의식 또는 그 자국.
*극락정토(極樂淨土) ; 산스크리트어 sukhāvatī  아미타불이 살고 있다는 청정한 국토로, 서쪽으로 10만억 불국토를 지나 있는데, 괴로움이 없고 지극한 즐거움만 있는 세계. 안락(安樂), 안양(安養), 서방정토(西方淨土)라고도 한다.
*악세(惡世) ; ①혼탁하고 악한 세계. ②불법(佛法)이 쇠퇴하여 수행자도 깨달음을 이루는 자도 없는 말세(末世).
*예토(穢土) ; ①중생들이 사는 세계. ②번뇌와 망상으로 가득찬 고해(苦海)인 사바세계.
*적광토(寂光土) ; (=常寂光土) 항상(常) 변하지 않는(寂) 광명(光)의 세계(土). 법신불(法身佛)이 머무르는 정토(淨土)나 빛나는 마음의 세계를 이르는 말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참선 (목적)2014. 6. 3. 17:30

§(326) (게송) 군금욕식무위리~ / 생멸·차별의 세계를 여의고 따로 ‘함이 없는 이치(無爲)’를 찾을라고 하면 벌써 틀려버린 것이다.

모든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있어서의 흥망성쇠와 희로애락과 탐진·번뇌가 바로 그 ‘남이 없는 진여불성(眞如佛性)의 하나의 나타남이다, 진여불성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파도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버린다면, 번뇌망상을 여읠라고 할 것도 없고, 무위의 이치를 구할라고 할 것도 없다.


물이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된 것이기 때문에, 얼음을 보고 바로 얼음이 물과 다르지 않는 줄 안다면, 얼음을 버리고서 따로 물을 찾을 것이 없을 것이다.


**송담스님(No.326) - 1987년 3월 첫째일요법회(87.03.01)에서. (용326)


약 9분.

 


군금욕식무위리(君今欲識無爲理)인댄  불리천차만별중(不離千差萬別中)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단지공월낙담심(但知空月落潭心)하면  쟁사치원왕노형(爭似癡猿枉勞形)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군금욕식무위리(君今欲識無爲理)인댄, 그대가 이제 ‘함이 없는 이치(無爲)’를 알고자 할 진댄,
불리천차만별중(不離千差萬別中)이다. 천차만별(千差萬別) 가운데를 여의지를 말어라.

단지공월낙담심(但知空月落潭心)인데는, 다못 저 허공의 달이 못 가운데에 떨어진 줄만 안다면,
쟁사치원(爭似癡猿)이 왕노형(枉勞形)이리요. 어찌 어리석은 원숭이가 헛되이 수고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

함이 없는 이치, 우리가 참선(參禪)을 해서 고행 정진(苦行精進)을 한 목적은 무위(無爲), ‘함이 없는 이치’를 깨닫고자 한 데에 있는 것이여.

우리 인생은 나서 늙어서 병들어 죽는, 이 모든 것이 전부가 유위법(有爲法)이거든.
어떤 원인이 있어서 생겨나고, 어떤 일이 성립이 되었다가, 그 원인이 흩어지면 그것이 죽거나 또는 없어지거나 그러는데, 인간 세상에 그 오욕락(五欲樂)이 모두가 다 ‘함이 있는 법’이고, 흥망성쇠·희로애락·생노병사 일체가 다 유위법(有爲法)이여.
그럴 수밖에 없는 원인이 있어 가지고, 그러다가 그 원인이 소멸이 되면은 모두가 다 죽게 되고 또 파괴가 되고 멸망하게 되고 그러는데.

영원히 불생불멸(不生不滅)하고 생노병사를 초월한 것을 갖다가 무위(無爲)라 그러는데,
‘함이 없는 이치’다, ‘함이 없는 법’이다 그러는데.

그 ‘함이 없는 법’을 어떻게 해야 깨닫느냐? 어디서 찾아야 하느냐 하면, 바로 인간의 생노병사와 희로애락과 번뇌망상과 흥망성쇠(興亡盛衰) 바로 그 차별세계, 생멸·차별의 세계를 여의지 아니해야 한다.(不離千差萬別中)
바로 거기서 찾아야 생사없는 도리를 깨닫게 되지, 그 차별세계를 여의고 따로 ‘함이 없는 이치’를 찾을라고 하면 벌써 틀려버린 것이다.

단지공월낙담심(但知空月落潭心), 저 허공의 휘황찬 밝은 달이 못 가운데에 떨어져 못 가운데에 비춘 줄 안다면, 뭣하러 그 못 속에 있는 그 달을 건질라고 할 것이 있느냐.(爭似癡猿枉勞形)

원숭이가 샘을 들여다보니까 그 속에 휘영청 밝은 아주 좋은 것이 있으니까, 그것을 건질려고 손을 넣으면은 흩어져 버리고, 또 손을 빼고 한참 있으면 또 나타나고, 또 그놈을 건질라고 손을 집어넣으면 또 흩어져 버리고, 아! 그런 참 어리석은 짓을 한 그 설화가 있는데.
그 허공의 달이 거기에 비추지, 그 물 속에 본래 달이 있는 것이 아니요. 물 속에 비친 것은 허공에 있는 달이 비췄다고 하는 사실만 안다면, 뭣하러 물 속에 있는 달을 건질라고 할 것인가.

우리 인간의 차별 세계에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때로는 즐거워하고, 때로는 반겨하고, 때로는 미워하고 사랑하고 하는, 모든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있어서의 흥망성쇠와 희로애락과 탐진·번뇌가 바로 그 ‘남이 없는 진여불성(眞如佛性)의 하나의 나타남이다, 진여불성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파도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버린다면, 번뇌망상을 여읠라고 할 것도 없고, 무위의 이치를 구할라고 할 것도 없다 그말이여.

물이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된 것이기 때문에,
얼음을 보고 바로 얼음이 물과 다르지 않은 줄 안다면, 얼음을 버리고서 따로 물을 찾을 것이 없을 것이다.(처음~8분22초)

 

 

 



---------------------


*(게송) 군금욕식무위리~ ; [금강경오가해]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함허득통 설의(說誼) 참고.
*무위(無爲) : 조작(造作)을 뜻하는 위(爲)가 없는 생멸변화가 없는 진리 그 자체를 말함. 곧 실상•열반•보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천차만별(千差萬別) ; 여러 가지 사물이 모두 차이가 있고 구별이 있음. 세상 사물이 한결같지 아니하고 각각 모습ㆍ모양이 다름을 이르는 말. ‘온갖 차별이 있는 모양·경계’의 뜻. 모든 경계.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고행(苦行) ;  깨달음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가지 고난을 겪으며 하는 수행.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유위(有爲, 산스크리트어: saṃskrta, 팔리어: savkhata)에서 위(爲)는 위작(爲作) · 조작(造作: 만들다)의 뜻으로, 유위는 만들어진 것, 조작된 것, 다수의 요소가 함께 작용된 것, 여러 인연이 함께 모여서 지은 것, 인연으로 말미암아 조작되는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또는 이렇게 하여 드러난 생성과 소멸의 세계, 즉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의 세계를 뜻한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 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흥망성쇠(興亡盛衰) ; 흥하고 망함과 성하고 쇠함. 곧 어떤 사물·현상이 생겨나서 소멸하는 전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사바세계(娑婆世界);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입춘기도)2014. 2. 4. 08:36

§(114) 관심일법(觀心一法) 총섭제행(總攝諸行) / 참선법은 무량겁 쌓아 놓은 아뢰야식 속에 () 종자를 돌려서보리(菩提) 종자로 승화시키는 방법.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라, ‘마음을 관(觀)하는 한 법(法)이 모든 행(行)을 다 포섭(包攝)을 한다’ 이겁니다.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라는 게 무엇이냐? 그것이 바로 참선(參禪)공부입니다. 참선은 「이 무엇고?」 내가 나를 찾는 공부입니다.


정법(正法)은 그 근원을 바르게 다스려서 영원한 행복을 얻게 하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참선을 해서 성과가 눈에 보이고 결과가 나타나서, 남에게 이만큼 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면 재미가 있을 텐데, 남 앞에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한철 내 공부를 허고도 내놓을 수 없는 데에 이 참선에 정법(正法)의 묘미(妙味)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얻을 것도 없고 내놓을 것도 없는 거, 이것이 바로 얻은 것인 것입니다.


우리의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고 하는 업의 자루 속에 담아져 있는, 무량겁을 통해서 그 쌓아 담은 업의 종자를 참선을 함으로써 그것을 녹여 없앴습니다. 그러니 내보일 것은 확 뒤집어 보여 봤자 빈 자루입니다. 빈 자루를 내보였으니 거기엔 아무것도 내보일 것이 없는 것은 사실인 것입니다.


 『이뭣고?』 이 한마디는 부적(符籍) 천 장, 만 장 보다도 더 수승(殊勝)한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영원히 업장(業障)을 소멸(掃滅)하고 영원한 행복을 얻는 오직 하나의 최고의 방법입니다.

 

**송담스님(No.114) - 1980년(경신년) 입춘법회 법문(1980.02.05)에서. (용114)

 

(1) 약 21분.

 

(2) 약 22분.

 

 

(1)------------------

 

입춘(入春)일에 이렇게 법요식(法要式)을 갖는 것은 새해를 맞이해서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고 1년 동안 내가 어떻게 살았으면 어떠한 잘못이 있었는가?

그것을 반성(反省)하고 참회(懺悔)하고 그래 가지고 ‘새해부터서는 어떻게 내가 살아가야겠다’ 이러헌 각오(覺悟)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 이러헌 법요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모이신 분들 가운데에는 경신년에 범띠하고 말띠하고 개띠에 든 분은 삼재(三災)가 들었다 해 가지고 입춘에 동참불공(同參佛供)을 허면은 삼재를 소멸할 수 있다.
그래서 일부로 참여하신 분도 적지 아니 많이 계실 줄 생각합니다. 그것도 또한 좋습니다.

삼재를 소멸하기 위해서 오셨건, 백가지 재앙을 소멸허시기 위해서 오셨건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삼재는 범띠허고 말띠허고 개띠가 새해 경신년에 들삼재고, 그렇다 해서 이 대단히 조심을 해야 한다고 그렇게 모다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사실 경험을 통해서 보면은 삼재가 들면 내년부터서 내후년 저내년까지, 3년 동안 들삼재 앉을삼재 날삼재 해서 3년을 갖다가 범띠 말띠 개띠는 삼재가 듭니다마는,
삼재 때 가만히 증험을 해보면 정말 걱정헐 만큼 여러 가지 점에 있어서 병을 앓는다든지, 무슨 관재구설(官災口舌)이 있다던지, 무슨 사고를 당한다던지, 그 재수가 없다든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많은 근심·걱정거리가 있어왔다, 그런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삼재가 안 들은 사람은 그러면 전혀 그런 일이 없냐’하면은 그렇지도 않건만은,
‘삼재가 들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당하지 아니했느냐’ 이렇게 생각드는 것도,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있어서 괴로움과 즐거움이 섞여져 있는 그런 생활을 하는 가운데에 느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

삼재가 든 사람은 삼재가 들었다고 해서 더욱 조심을 하고, 그것을 어떻게 허면 그러헌 재앙을 미연에 방지허고 혹 그러헌 일을 당하더라도 가볍게 피해를 입지 않고 잘 넘길 수가 있는 방법이 없겠는가?
이리 생각하고 노력을 허는 것은 그건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삼재를 어째서 그 삼재라고 헌 것이 있는 것이냐? 인·오·술 생은 금년 경신년 부터서 3년간 삼재가 드는데, 이러헌 사상은 그 동양의 음양학설, 내나 사주(四柱)도 음양학설에서 나온 것입니다만은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 따져서 삼재가 든다.

지금 중국이나 한국이나 일본에 있어서는 이 음양오행을 수천 년 전부터서 그것이 아주 생활 속에 젖어 들어서 사주나 관상이나 모든 점이라든지 그런 것이 전부 음양오행으로 추리해서 그래 가지고 운명을 판단하는 그러헌 방법입니다.

우리 불교를 믿는 사람은 ‘그까짓 거 무슨 소용이 있느냐? 자기가 지어서 받는 것이지, 무슨 그 사주가 아무리 좋은들 무슨 소용이 있으며, 그러냐.’하고 그런 것을 전적으로 무시해 버리고 그렇게 나가는 분도 있습니다.

정말 정법(正法)을 철저히 믿음으로 해서 삼재가 되었건 오재가 되었건 그런 것을 문제하지 아니하고 궂은일이나 좋은 일이나 슬픈 일이나 괴로운 일이나,
다못 이 정법 하나 믿는 그 마음으로만 온전히 밀고 나갈 수만 있다면 그 이상 더 좋은 일이 없습니다.

근데 우리의 생활 습관상 또 그런 것이 너무너무 오랫동안 조상 때 부터서 그러헌 음양오행설이 아주 사무쳐 들어와 있어 가지고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무시할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입춘(入春)이면은 한국에 방방곡곡의 모든 사찰에는 그 입춘을 기해서 동참 기도와 불공을 드리고 그리고 업장(業障)을 소멸을 빌고 소원성취를 빌고 그럽니다.

그런데 모든 재앙은 사실 과거에 우리가 어떻게 지었느냐? 그리고 또 현재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 그것이 원인이 되어 가지고 우리의 장래가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지금으로부터 1초 전이 전부가 과거에 들어갑니다마는,
그 과거에 우리가 지은 그리고 현재 우리가 생각 생각이 짓고 있는 그것이, 하나도 빠짐없이 우리의 팔식(八識) 가운데에 그 지은 업(業)의 종자(種子)가 다 저장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제팔식(第八識) 속에, 아뢰야식(阿賴耶識) 속에 저장이 되어 있는, 우리가 지은 업의 종자가 인연(因緣)을 만나면 그 종자에서 싹이 터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앞에 전개되는 우리의 운명이고 우리의 팔자(八字)인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고서-그 원인을 ‘어떻게 해서 나에게 이러헌 팔자가 운명이 전개되는가’를 그 원인을 모르고서, 당장 그것을 없이 하기만을 바래고,
그걸 없이 하기 위해서 점을 친다던지, 갖은 푸닥거릴 한다든지, 또는 돈을 많이 주고 무당한데 그 부적 같은 것을 사 가지고 몸에 지닌다 하더라도,
그 원인을 소멸하지 아니하고서는 그것이 소멸당하지 않기라고 하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내게 그 비린내 나는 생선을 엮던 그 새끼토막 같은 것을 몸에다 두르고 다니면서, 몸에서 비린내 안 나기를 소원해 봤자 그것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첫째 몸에 비린내가 안 나게 할랴면 생선을 묶었던 그 새끼를 몸으로부터 풀어서 버리고 그리고 몸을 깨끗이 닦음으로 해서 비린내는 내 몸에서 부터서 안 나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이 나의 마음속에 아뢰야식 속에 저장되어 있는 업의 종자(種子)를 갖다가 정화(淨化)하고 승화(昇華)시키는 그러헌 노력이 없이는, 우리의 앞날에 좋은 팔자와 운로(運路)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그 업장을 소멸허는 법이 십선법(十善法)을 닦는다던지 또는 사성제(四聖諦)법을 닦는다던지 12인연법•육바라밀(六波羅蜜)법•염불(念佛)•독경(

讀經)•기도, 얼마든지 우리 불법(佛法) 가운데에는 팔만사천 가지의 그러헌 묘한 법이 있습니다.

어느 법(法)이고 하나도 버릴 법이 없고, 어느 법이고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닦는다고 하면은 우리의 업장을 소멸하고 소원을 성취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많은 법을 다 닦는다고 허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느 법이 그 가운데에 좋고 나쁘고 해야 그것을 허지, 다 좋은 법인데 어떻게 어느 법만을 추려서 하고 어느 법을 안할 수가 있겠는가?

한 번 두 번 해 보고 별 효과가 없으면 기대할 만큼 효과가 나타나지 아니하면, 또 그걸 버리고 또 다른 방법을 해 보고, 그걸 좀 얼마동안 해 보았지만 별로 신통치 아니하면 또 그걸 버리고 또 다른 법을 좀 해 보고,

이렇게 해서 많은 세월 동안을 그런 식으로 갈팡질팡을 하면서 혹 뜻대로 되는 일도 있고 안 되는 일도 있고,
되면 좋아하고, 안 되면 낙담(落膽)을 하고 비관(悲觀)을 하고 그러면서 그렇게 신앙생활을 해온 분이 적지 아니 계실 줄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용화선원에서는 부적(符籍)도 드리지도 않고, 언제나 다른 법회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 일러드리는 말은 언제나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팔만사천 묘법문(妙法門)이, 다 그것을 한데 모아서 녹여 가지고 거기에서 가장 중요한 골수(骨髓) 법문을 추출을 해낸다면,

그것이 바로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라, ‘마음을 관(觀)하는 한 법(法)이 모든 행(行)을 다 포섭(包攝)을 한다’ 이겁니다.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라는 게 무엇이냐? 그것이 바로 참선(參禪)공부입니다.
참선은 「이 무엇고?」 내가 나를 찾는 공부입니다.

‘내가 나를 찾는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은 밖에서 무엇을 찾는 데에는 익숙합니다.
물질적인 것이건 무엇이건 밖에서 찾는 데에는 어릴 때부터 여태까지 무량겁을 두고 밖에서 무엇을 찾아가지고,
자기의 소유를 만들고, 자기의 욕심을 충족을 시키고, 자기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이러는 데에는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밖에서 구한 것은, 언젠가는 인연이 도래(到來)하면 나로부터서 떠나고 마는 것입니다.

근데 이 참선법은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구하는 것입니다. 안에서 무엇을 구하느냐?
내가 나를 찾는 공부여.

‘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생겼으며, 어디에 있으며, 무엇인가?
정말 그것은 여러분들이 납득할 만큼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밖에도 있지 아니하고 안에도 있지 아니하고 그 중간에도 있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래서 ‘찾는다’고 말하는 그 말에도 어폐(語弊)를 면치 못합니다마는 부득이해서 그러헌 말을 빌릴 수 밖에는 없습니다.

나, ‘나’라고 허는 것, 중생들은 ‘나’라고 허면 이 이목구비(耳目口鼻)와 사지(四肢)가 있는 이 육체를 가지고 내 몸이다, 나다, 이리 생각합니다마는,
이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모여 가지고 그래 가지고 이 육체를 구성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연이 도래하면 다시 지수화풍 사대로 흩어져서 없어지고 맙니다.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주인공.
때리면 아픈 줄 알고, 욕허면 성낼 줄 알고, 칭찬하면 기뻐하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알고, 부르면 대답할 줄 아는 이놈이 바로 이 ‘나’입니다.
그것은 부모로부터 몸을 받아난 사람은 누구에게나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사실 이 주인공은 부모로부터 받아난 것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이전에부터 이 우주가 생겨나기 이전에부터, 언제 생겨난 역사가 없이 존재해 있습니다.
생겨난 때가 없습니다. 생겨난 때가 없기 때문에 멸하는 때도 없습니다. 그러헌 ‘한 물건’이 이 몸뚱이를 주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모로부터 받아난 물질로 이루어진 이 육체의 관리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심을 쏟고 정성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몸뚱이를 주재하는 ‘참나’, 나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너무나 소홀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바로 그것을 찾아서 깨닫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업장을 소멸을 한다.’ ‘재앙을 소멸한다.’ 하지만, 그 방법을 바로 알아야만 그 업장을 소멸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굿을 하고-아까 조실스님 법문 가운데에도 말씀이 계셨습니다마는-부적을 몸에 많이 지니고 굿을 하고 푸닥거리를 헌다고 해 봤자, 우리의 업장이 그러헌 방법으로서 소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헌 방법을 사용할 경우 일시적으로는 우선한 것 같이 느낄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또 얼마 시일이 지나면 다시 또 일어나고, 또 많은 돈을 들여 가지고 또 푸닥거리를 하면 조금 우선함을 느끼고, 이렇게 하는 가운데에 점점점점 깊이 말려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근본을 다스리지 아니하고 그러헌 삿된 믿음에 빠져 들어간 사람이면 백이면 백, 다 집안에 재앙이 끊일 날이 없고 잡귀가 득실거리고,
그래 가지고 정신까지도 점점 해를 거듭할수록 삿된 소견에 빠져 가지고 헤어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거기서 나오고 싶어도 무서운 협박과 엄포 때문에 겁이 나서 발을 빼지를 못헌 사람이 상당수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 정법(正法)은 그 근원을 바르게 다스려서 영원히 그러헌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영원한 행복을 얻게 하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나무를 가꾸고자 할 때 그 뿌리에 좋은 흙과 좋은 비료와 기타 수분이라든지 그 충분히 잘 공급을 함으로써, 그 나무는 줄기와 가지와 잎이 무성해져서 결국은 훌륭한 열매를 맺게 되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1분19초~22분2초)

 

 

 

 

 

 

(2)------------------

 

정법을 믿고 우리의 ‘참나’를 찾아서 그걸 닦고 깨닫는다면, 우리의 육체와 우리 주변의 모든 문제는 거기에서 저절로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와의 관계라든지, 부부간에 문제라든지, 형제간에 또는 자식·자녀의 문제라든지, 친구나 일가친척에 관한 건이라든지, 재산이나 명예나 권리에 관한 모든 문제가 그 근원은 나의 마음으로부터 벌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내 마음을 바로 잡지 못하고, 내가 내 마음속에 있는 과거의 업(業)의 종자(種子)를 갖다가 정화(淨化)하지 못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아무리 부모와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 부부·형제간의 관계, 일가친척의 문제를 바로잡을려고 아무리 노력을 해봤자 그리고 원망을 해봤자 그리고 한탄을 해봤자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 우리는 ‘마음’이라는 말을 어릴적부터서 듣고 그리고 그 말을 다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라 하면은 다 각기 자기 나름대로, 마음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그 말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마음’을 바로 본 사람, 바로 안 사람, 바로 깨달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過言)이 아닙니다. 그 이름만을 알고 쓰고 있을 뿐 그 실상(實相), 그 실체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루-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언제나 그놈이 그놈을 가지고 그놈으로 그놈이 하루를 살고 또 하루를 살면서 일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놈을 알 수는 없습니다.

어째서 단 1분•1초도 떠날 수가 없고, 언제나 같이 살고 있으면서도 그놈을 알 수가 없는 것인가?

눈을 통해서 모든 빛깔을 보고, 귀를 통해서 모든 소리를 듣고 분간하며, 코를 통해서 모든 냄새를 맡고 숨을 쉬고, 입을 통해서 모든 것을 맛을 보고 그리고 말을 합니다.
손과 발, 육체를 가지고 춥고 더웁고 부드럽고 까끄라운 것을 다 식별을 합니다.

그런데 대관절 ‘눈을 통해서 보는 놈이 무엇인가?’ 찾어보면 자취가 없습니다.
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보면서, 왜 보는 그놈을 다시 볼려고 하면 보이지 아니하고 알 수가 없는 것이냐?

여기에 우리가 마음을 닦는다, 도를 닦는다, 불법을 믿는다고 해도, 1년·2년·3년·10년을 절에를 다니고 법문을 듣고 또 참선을 해도, 마냥 제자리걸음이요 답답하기가 그지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습니다.

모든 것을 보면서, 보는 그놈을 찾으면 자취가 없으니 이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면서도 그놈을 찾으라고 법상(法床)에서 큰스님네는 법문하실 때마다 ‘그놈을 찾으라’고는 하고,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는 아니하고,

<아무것도 얻을 것도 없고 내놓을 것도 없는 거, 이것이 바로 얻은 것>
무슨 공부를 해서 차츰차츰 성과가 눈에 보이고, 이만큼 하면은 그만큼 한 결과가 나타나서, 스스로도 흐뭇하고 남에게 이만큼 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면 더욱 신명이 나고 재미가 있을 텐데,

석 달씩-여름 석 달, 겨울 석 달, 집안을 갖다가 떠나서 선방에 가서 석 달씩 그렇게 공부를 허고 와도, 영감님 앞에 또는 아들이나 며느리 앞에 손자들 앞에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습니다.

가서 공부를 해 가지고 아무것도 내놓을 것도 없으면서, 그리고 그 다음 철에는 또 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만큼 공부를 했다고 내놓을 것이 있으면 아들·딸·며느리·영감이 모두가 다 ‘참, 그 좋다’고 이해를 하고 더욱 가시도록 협조를 하고, 또 그분네들도 보람을 느끼고 또 그분들도 할려고 하시고 그럴 텐데,
맨날 절에만 다니고 머리가 하얗게 되도록 절로만 다니시지,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는 마당에야 그 참 딱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한철 내 공부를 허고도 내놓을 수 없는 데에 이 참선에 정법(正法)의 묘미(妙味)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만큼 했다고 내놓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유루법(有漏法)이요, 유위법(有爲法)이라 그것은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언젠가는 또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타관(他官)에 가서 고생을 해 가지고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 가지고 와 봤자 그것은 언젠가는 없어지고 마는 것이며 도둑을 맞거나 그렇지 아니면 써버리면 없어지고마는 것입니다.

절에 가서 석 달 내, 자고 싶은 잠도 다 못 자고, 먹고 싶은 것도 다 못 먹고, 그 고생을 하면서 공부를 해서 아무것도 내놓을 것은 없지만은,
그분이 정말 정법을 믿고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참선을 하셨다면, 설사 아무것도 내놓을 것은 없지만은 그분은 영원한 것을 마음 속에서 잘 닦아서 얻을 것은 얻었다고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선을 해서 아무것도 얻을 것도 없고, 내놓을 것도 없으면 그거 해서 뭐하느냐?

아무것도 얻을 것도 없고 내놓을 것도 없는 거, 이것이 바로 얻은 것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속에-제팔식(第八識) 속에 무량겁을 두고 지은 업의 종자를, 그것을 갖다가 순화하고 승화시키는 작업인 것입니다.

밖에 있는 것을 속에다 많이 쌓아 담은 것이 아니라, 제팔식(第八識) 속에 쌓여져 있는 업의 종자(種子)를 소멸을 하고 업의 종자를 승화(昇華)를 시켜서 보리과(菩提果)를 증득허게 하는 거름으로 사용을 했다 이겁니다.

있는 것을 녹여 없앴으니 무엇을 내놓을 것이냐 그말이여.

여기 하나의 빈 자루가 있습니다. 거기에다 밤도 줏어 담고 과자도 줏어 담고 해서, 많이 줏어 담아 가지고 왔으면 그 자루 속에서 그 담아진 것을 꺼내서 보여줄 것이 있겠지만,

우리의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고 하는 업의 자루 속에 담아져 있는, 무량겁을 통해서 그 쌓아 담은 업의 종자를 참선을 함으로써 그것을 녹여 없앴습니다.

그러니 가서 내보일 것은 확 뒤집어 보여 봤자 빈 자루입니다. 빈 자루를 내보였으니 거기엔 아무것도 내보일 것이 없는 것은 사실인 것입니다.

석 달 동안 공부를 하고 집에를 가서, ‘할머니 가서 공부를 해서 무엇을 얻었습니까?’
빈 자루라도 있으면 탁 까뒤집어 보이는데, 우리의 아뢰야식(阿賴耶識)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자루가 아닙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자루인데 우주법계를 그 속에다 다 담아도 그 자루에는 다 차지도 않습니다. 허공을 그 속에다 다 집어넣어도 그 아뢰야식이라고 하는 자루는 차질 않습니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자루인 것입니다.

그러헌 자루를 우리는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루 속에 무량겁을 두고 짓고 지은 선업(善業)·악업(惡業)·무기업(無記業) 이 세 가지 종류의 업으로서 지은, 수확한 종자를 그 속에 다 가뜩 담어 가지고 다닌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눈으로 무엇을 볼 때, 자기 종자에 해당되는 인연을 만나면 그 많은 종자 속에 어떤 종자가 거기서 싹이 터 나옵니다.

수수나 조나 모든 종자가 습기와 적당한 열을 온도를 만나면 눈이 터 나오듯이, 우리의 아뢰야식 속에 쌓아져 있는 선업(善業)·악업(惡業)·무기업(無記業) 종자가 그때그때 터져 나온 것입니다.

눈으로 볼 때, 귀로 들을 때, 코로 냄새 맡을 때, 혀로 맛볼 때, 손과 발 몸으로 감촉할 때, 생각으로 무엇을 생각할 때,
이러헌 육근(六根)이 육진(六塵)을 만나면-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가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을 만나면 육식(六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세 가지 불능(三不能)이 있는데
인연 없는 중생은 제도(濟度)하지 못한다. 아무리 부처님이 삼계(三界)의 대성현이시고, 신통(神通)이 구족(具足)하신 그러헌 대성현이시지만 인연 없는 중생은 제도할 수가 없다.

둘째는 중생계를 다하지 못한다. ‘중생계를 다하지 못한다’는 말은 중생이 하나도 없도록 중생을 없앨 수는 없다.

중생은 그 한량이 없는 큰, 그 아뢰야식 속에 무량겁을 두고 지은 그 업의 종자가 가뜩 차 있기 때문에, 그것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계속 거기에서는 싹이 터 나옵니다.

좁쌀도 나왔다가, 보리쌀도 나왔다가, 수수쌀도 나왔다가, 그때그때 싹이 트기에 적당한 인연을 만나면-조건을 만나면, 거기 있는 많은 종자 가운데에 그 중에 어느 하나가 나오게 되고,
그 다음에 또 나오게 되고 하는데, 계속 다 싹이 터서 다 발아(發芽)를 해 가지고 다 나가버리면 언젠가는 그 종자(種子)가 동이날 텐데 그러지를 못합니다.

왜 그러냐?
싹이 터 나오면서 새로운 종자를 동시에 갖다가 또 저장허게 됩니다.
업장(業藏) 속에 있는 종자가 싹이 터 나온 것을 현행(現行)이라고 합니다. 현행-나타날 현(現)자, 행할 행(行)자. 종자가 밖에 어떠헌 적당한 조건을 만나면은 현행(現行)을 합니다. 싹이 터 나옵니다.

싹이 터 나오면서 거기에서 속에 있는 어떠한 종자를 갔다가 훈(薰)을 합니다. 그 종자를 갔다가 이 또 찜질을 허는 것입니다.
다시 말허면 종자가 싹이 터 나오면서 다시 또 새로운 종자를 갔다가 저축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눈을 통해서 보거나, 귀를 통해서 듣거나, 코로 냄새를 맡거나, 혀로 맛을 보거나, 뜻으로 무엇을 생각헌 것은 그것이 하나의 현행(現行)이면서 그때 느꼈던 것이 고대로 아뢰야식 속에 또 녹음이 됩니다.

녹음이 된다고 하는 것이 바로 새로운 종자를 갔다가 수확을 해서 저장을 하는 것입니다.
이리해서 우리의 업의 종자가 한없이 퍼져 나오고 한없이 저장이 되기를 무량겁을 해왔고, 앞으로도 무량겁을 두고 그러헌 작업이 계속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도윤회(六道輪廻)가 끊일 날이 없습니다.

지은 복이 있으면 천당에 가고, 그놈이 다음엔 다시 인간에 떨어지기도 하고, 축생으로도 떨어지기도 하고, 그러다가 죄를 지은 바가 많으면 또 지옥에 가기도 하고, 육도윤회를 끊임없이 계속하면서 오늘날까지 왔습니다. 또 앞으로 무량겁을 두고 생사윤회가 또 계속이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그러헌 도력과 신통력과 법력으로도 그것을 갖다가 다 없앨 수가 없다 이것입니다.

<무량겁 쌓아 놓은 업(業)의 종자(種子)를 녹여 없애는 참선법>
그런데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그 방법이 바로 이 불법(佛法)이요 참선법(參禪法)입니다.

눈을 통해서 무엇을 보았다. 빨간 꽃을 보았다. 지금 이 탁자 위에도 노란 국화가 화병에 꽂혀 있습니다.
그것을 본 찰나, ‘아! 국화로구나. 이 겨울에도 국화가 피었구나. 좋은 향내가 나겠지. 어떻게 저것을 겨울에 피웠나? 온실에서 재배를 했겠지?’

이런 것을-국화 하나를 봄으로써 우리는 끝없이 생각이 그렇게 번져 나갑니다. 그러다가 과거에 어떤 국화에 관련된-자기와 국화에 관련된-어떠헌 일에 우리의 상념이 도달하게 됩니다.
그래 가지고 혹 눈물바람을 허기도 하고 혹 과거에 어떤 때를 갖다가 그리워하기도 하고 또 씁쓸한 웃음을 짓기도 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동안에는 우리의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나의 국화를 보았다. ‘노랗다. 아름답다.’ 그러헌 두 번째 생각으로 건너가기 전에 국화가 눈에 딱 띄었을 때, 그때 바로 참선을 하는 사람은 ‘이뭣고?’로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국화를 보고 ‘노랗다’, ‘아름답다’, ‘송이가 크다 작다’ 이렇게 둘째 생각,셋째 생각, 넷째 생각 그렇게 번져나갈 것이 아니라 국화가 눈에 탁 들어온 그 찰나에 두 번째 생각으로 번지기 이전에 ‘이뭣고?’
‘이뭣고?’ ‘지금 「이뭣고?」 헌 이놈이 뭣고?’ 이렇게 우리의 생각을 그렇게 다그쳐 들어가는 것입니다.

국화를 봤을 때 뿐만이 아니라 귀로 무슨 소리를 들었을 때, 새소리를 들었건, 차 소리를 들었건, 개 짖는 소리를 들었건, 들은 그 찰나에 ‘이뭣고?’ ‘이뭣고?’

어떤 생각이 일어났다-친구 생각이 일어났다, 그 친구와 자기와의 관계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생각허다 보면,
과거에 그 친구가 자기에게 섭섭히 한 일까지 생각해 가지고 공연히 심사(心思)가 사나와지고 그 끝에 아들이나 손자나 며느리가 옆에서 뭐라고 허면 거기에서까지 신경질을 부리게까지 됩니다.

참선한 사람은 그게 아니라-친구 생각이 났다, 두 번째 생각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뭣고?’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엇을 듣거나, 코로 냄새를 맡거나, 무엇을 맛을 보거나, 차겁고 더운 것을 느끼거나, 지나간 일이 생각이 나거나,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던지 간에 한 생각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이뭣고?’ 이렇게 다그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량겁을 두고 쌓아 놓은 아뢰야식 속에 업(業)의 종자를 돌려서 보리(菩提)의 종자로 승화시키는 방법입니다.
이미 업의 종자를 보리심(菩提心)으로 승화를 시켰기 때문에 업의 종자는 소멸이 되었다고 표현을 할 수가 있습니다.

사실은 소멸이라기보다는 승화를 시켰다고 표현헌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편의상 알기 쉽게 소멸을 했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이뭣고?』 이 한마디는 부적(符籍) 천 장, 만 장 보다도 더 수승(殊勝)한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영원히 업장(業障)을 소멸(掃滅)하고 영원한 행복을 얻는 오직 하나의 최고의 방법입니다.(23분23초~45분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입춘(入春) ; 이십사절기(二十四節氣)의 하나.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들며, 이때부터 봄이 시작된다고 한다. 양력으로는 2월 4일경이다.
*법요식(法要式) ; 불사(佛事-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를 할 때 행하는 의식.
*반성(反省) ; 자기 언행에 대해 잘못이나 부족함이 없는지 돌이켜봄.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각오(覺悟) ; ①앞으로 해야 할 일이나 겪을 일에 대한 마음의 준비. ②도리를 깨우쳐 앎.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인간에게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을 의미한다. 도병(刀兵-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큰병이 유행함)이 있으며 십이지(十二支)에 따라 든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들삼재)이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눌삼재·앉은삼재)를,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날삼재)라고 한다.
*동참불공(同參佛供) ; 여러 사람이 적은 돈이나 물품을 모아 함께 드리는 불공(佛供 부처 앞에 공양을 드림. 또는 그런 일).
*관재구설(官災口舌) ; 관가로부터 재앙을 입는 일(官災)과 남이 나를 비방하거나 헐뜯어서 해를 입는 일(口舌)을 아울러 이르는 말.
*사바세계(娑婆世界);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사주(四柱) ;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의 네 간지(干支). 또는 이에 근거하여 사람의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방법.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 ; 음·양의 2기(氣)와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의 5행으로 자연현상이나 인간·사회의 현상을 설명하는 사상.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아뢰야식(阿賴耶識) ;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팔자(八字) ; 사람의 한평생의 운수. 사주팔자에서 유래한 말로, 사람이 태어난 해와 달과 날과 시간을 간지(干支)로 나타내면 여덟 글자가 되는데, 이 속에 일생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본다.
*정화(淨化) ; 불순하거나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함.
*승화(昇華) ; 어떤 현상이 한 단계 더 높은 영역으로 발전함.
*운로(運路) ; 운길(운이 트인다는 길).
*십선(十善) ; 십악(十惡)을 행하지 않는 일.
*십악(十惡) ;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성제(四聖諦) ; 제(諦)는 ‘sacca’의 번역으로 진리를 뜻함. 고(苦-괴로움)를 소멸시켜 열반에 이르는 네 가지 진리. 사성제(四聖諦-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사제(四諦)라고도 함.
①고제(苦諦,苦聖諦). ‘고(苦-괴로움)’라는 성스러운 진리.
“태어남이 고다. 노쇠가 고다. 죽음이 고다.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이 고다. 즐거운 것과 갈라짐이 고요, 싫은 것과 같이 함이 또한 고다. 요컨대 집착과 연관된, 존재의 다섯 쌓임(五取蘊)이 고다”(상응부)
②집제(集諦,集聖諦). ‘고의 원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몹시 탐내어 집착하는 갈애(渴愛)가 고(苦)가 일어나는 원인이라는 진리.
③멸제(滅諦,㓕聖諦). ‘고의 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갈애가 남김없이 소멸됨으로써 고(苦-괴로움)가 소멸되어 고의 끝남, 열반에 이른다는 진리.
④도제(道諦,道聖諦).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팔정도(八正道)-정견(正見,바른 이해)•정사유(正思惟,바른 생각)•정어(正語,바른 말)•정업(正業,바른 행위)•정명(正命,바른 생계)•정정진(正精進,바른 노력)•정념(正念,바른 마음챙김)•정정(正定,바른 집중)-는 갈애를 소멸시켜,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다.
*십이인연(十二因緣) ; 십이연기(十二緣起). 진리에 대한 무지(無知)한 무명(無明)을 근본 원인으로 하여 중생으로서의 인간의 괴로운 생존이 12가지 요소의 순차적인 상관관계에 의한 것임을 설명한 것.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
◎ 무명(無明)을 조건으로, 의도적인 행위와 업을 구성하는 형성(行)이 생겨난다.
◎ 형성(行)을 조건으로, 의식(識)이 생겨난다.
◎ 의식(識)을 조건으로, 정신물리적인 현상인 명색(名色)이 생겨난다.
◎ 명색(名色)을 조건으로, 안•이•비•설•신•의 6가지 감역(六入)이 생겨난다.
◎ 감역(六入)을 조건으로, 감각적, 정신적 접촉(觸)이 이루어진다.
◎ 접촉(觸)을 조건으로, 감수(受)가 생겨난다.
◎ 감수(受)를 조건으로, 갈애(愛)가 일어난다.
◎ 갈애(愛)를 조건으로, 집착(取)이 일어난다.
◎ 집착(取)을 조건으로, 존재(有)가 생겨난다.
◎ 존재(有)를 조건으로, 태어남(生)이 생겨난다.
◎ 태어남(生)을 조건으로, 늙고 죽음(老死)가 생겨난다.
☆ 무명(無明)이 사라지면 의도적인 행위와 업을 구성하는 형성(行)이 사라지고, 형성(行)이 사라지면 의식(識)이 사라지고........마침내 태어남(生)이 없으면 늙고 죽음(老死)가 사라진다.
*육바라밀(六波羅蜜) ; 보살이 열반(涅槃)에 이르기 위해서 해야 할 여섯 가지의 수행.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를 이른다.
*염불(念佛) ;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과 같은 불•보살님의 이름을 외움. 흔히 어떤 일을 기원하며 ‘나무관세음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을 소리 내어 외우는 일을 말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12에서.
〇(52)念佛者는  在口曰誦이요,  在心曰念이니  徒誦失念하면,  於道無益이니라.


염불이란 입으로 하면 송불이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염불이니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 데 아무 이익이 없으리라.

(註解) 阿彌陀佛六字法門이  定出輪㢠之捷徑也라. 心則緣佛境界하야  憶持不忘하고,  口則稱佛名號하야  分明不亂이니,  如是心口相應이  名曰念佛이니라.


「나무아미타불」의 육자 법문은 바로 윤회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여 잊지 말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되 분명하고 일심불난(一心不亂)해야 하니, 이와 같이 마음과 입이 상응하는 것이 염불이다.

*독경(讀經) ; 경(經)을 읽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낙담(落膽 떨어질 락,쓸개 담) ; 너무 놀라 간이 떨어지는 듯하다는 뜻으로, 바라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몹시 상함.
*비관(悲觀 슬플 비,볼 관) ; ①인생을 어둡게만 보아 슬퍼하거나 절망스럽게 여김. ②앞으로의 일이 잘 안될 것이라고 봄.
*부적(符籍 부적 부,문서 적) ; 잡귀를 쫓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하여 붉은색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몸에 지니거나 집에 붙이는 종이.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포섭(包攝 감쌀 포,당길 섭) ; ①상대방을 끌어들여 자기편으로 만듦. ②어떤 개념이 보다 일반적인 개념에 포괄되는 종속 관계.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도래(到來 이를 도,올 래) ; 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어폐(語弊 말씀 어,해어질·쓰러질 폐) ; ①적절하지 아니하게 사용하여 생기는 말의 폐단이나 결점. ②남에게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말.
*부득이(不得已)하다 ; 마지못하여 할 수 없다.
*사대(四大) ; ① 지(地) • 수(水) • 화(火) •풍(風)을 말함. 대(大)란 원소란 뜻. 일체의 물질을 구성하는 네(四) 가지 원소(大).
(1)지대(地大). 굳고 단단한(堅) 것을 성(性)으로 하고, 만물을 실을 수(負載) 있고, 또 질애(質礙)하는 바탕. 질애(質礙)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여 다른 존재와 서로 융화하지 못한다는 뜻.
(2)수대(水大). 습윤(濕潤)을 성으로 하고, 모든 물(物)을 포용(包容)하는 바탕.
(3)화대(火大). 난(煖)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숙(成熟)시키는 바탕.
(4)풍대(風大). 동(動)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장케 하는 바탕.
② 신체를 말함. 원래, 신체는 지•수•화•풍의 4대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함.
*우선하다 ; ①병이 좀 차도가 있는 듯하다. ②언짢던 기분이나 감정 따위가 누그러진 듯하다. ③몰리거나 급박한 형편이 한결 나아진 듯하다.

 

 

 

 

 

------------------(2)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과언(過言) ; [주로 ‘아니다’의 앞에 쓰여]정도에 지나친 말.
*자취 ; 무엇이 시간적 혹은 공간적으로 지나가거나 있다가 남기고 간 흔적. 또는 남겨진 흔적.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아무것 ; ①특별히 정해지지 않은 어떤 모든 것. ②[주로 ‘아니다’와 함께 쓰여]특별하거나 대단한 어떤 것.
*유루법(有漏法) ; 번뇌의 더러움에 물든 마음 상태, 또는 그러한 세계. 온갖 번뇌와 망상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사제(四諦) 가운데 미혹의 결과인 고제(苦諦)와 그 원인인 집제(集諦)에 해당하는 모든 현상.
*유위법(有爲法) ; 여러 인연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모든 현상. 여러 인연으로 생성되어 변해 가는 모든 현상.
[참고] 불교에서 일체법(一切法-모든 현상. 인식된 모든 현상)을 분류하는 방식.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으로 분류하는 방식.
유위법(有爲法) - 인연의 모임과 흩어짐에 따라 변하는 모든 현상. 생성과 소멸의 세계.
무위법(無爲法) -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진리의 세계.


유루법(有漏法)과 무루법(無漏法)으로 분류하는 방식.
유루법(有漏法) - 번뇌 또는 고(苦)에 물들어 있는 상태 또는 번뇌를 일으키는 마음 작용.
무루법(無漏法) -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마음 상태, 또는 그러한 세계.
*타관(他官) ; 제가 나서 자란 곳이 아닌 다른 지역이나 고장.
*제팔식(第八識) ;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승화(昇華) ; 어떤 현상이 한 단계 더 높은 영역으로 발전함.
*보리과(菩提果) ; 깨달음.
*보리(菩提) : [산스크리트어] bodhi  도(道) • 지(智) • 각(覺)이라 번역。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곧 불과(佛果)를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의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도(道), 곧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범어의 음대로 쓰면 「보디」라고 하겠지만, 우리 말의 관습상(ㄷ —> ㄹ) 「보리」로 읽는다。따라서 「보제」나 「보데」로는 읽지 않아야 할 것이다.
*줏다 ; ‘줍다’의 사투리.
*아뢰야식(阿賴耶識) ;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는 산스크리트어 ālaya의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아뢰야(阿賴耶)를 진제(眞諦)는 a(無)+laya(沒)로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玄奘)은 ālaya로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참고] *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여덟 가지 마음 작용.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팔식(八識) 가운데 앞의 다섯 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전오식(前五識)이라 하고, 第六 意識, 第七 末那識, 第八 阿賴耶識이라 한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로 좌선(坐禪) 수행을 말한다.
*까뒤집다 ; (사람이 무엇을)가려져 있던 것을 뒤집어 드러내다.
*선업(善業) ;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는 착한 일.
*악업(惡業) ; 나쁜 결과의 원인이 되는 나쁜 행위. 또는 전생(前生)의 나쁜 행위.
*무기업(無記業) ; 삼성업(三性業)의 하나. 선업(善業)에도 악업(惡業)에도 속하지 않으며, 선악 중의 어떠한 과보(果報)도 받지 않는 업을 이른다.
*육식(六識) ; 육근(六根)에 의하여 대상을 깨닫는 여섯 가지 작용. 곧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의 여섯 가지이다.
*삼불능(三不能) ; 당나라 숭악(崇嶽)의 원규(元珪)가 부처님의 3능(三能)과 3불능(三不能)을 세움.
(1) 3능(三能) - 부처님의 3가지 능한 것.
①일체 상(相)이 공(空)해서 만법을 아는 지혜를 이루는 것.
②모든 중생의 성품을 다 알고, 억겁(億劫)의 모든 일을 막힘이 없이 다 아는 것.
③한량없는 중생(무량중생)을 제도하는 것.
(2) 3불능(三不能) - 부처님의 3가지 능치 못한 것.
①무량겁으로부터서 지은 정업(定業)은 멸하지 못함.
②인연없는 중생을 제도하지 못함.
③무량중생을 제도하실 수는 있으나 중생계를 다 제도하지 못함.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의 고해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 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삼계(三界) ; 불교의 세계관으로 중생이 왕래하고 거주하는 세 가지 미혹한 세계.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중생의 마음과 생존 상태를 세 단계로 나눈 것.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이른다.
*발아(發芽) ; 씨앗에서 싹이 나옴.
*동나다 ; 물건 따위가 다 떨어져서 남아 있는 것이 없게 되다.
*현행(現行) ; 아뢰야식(阿賴耶識)에 저장되어 있는 종자(種子)가 변화하고 성숙하여 일어나는 인식 작용.
*훈(熏 연기낄 훈) ; 훈습(熏習 , 薰習)
① 어떤 성질에 물듦. 어떤 기운이 배어 듦.
② 산스크리트어 vāsanā 마치 향 냄새가 옷에 스며들 듯, 몸과 말과 뜻으로 일으킨 행위의 기운과 생각이 아뢰야식(阿賴耶識)에 잠재력으로 이식되는 현상.
*육도윤회(六途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생사윤회(生死輪廻)=육도윤회(六途輪廻).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法)의 힘. ②가르침의 힘. 불법의 공덕. 불•보살의 위신력(威神力)을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것.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힘.
*도력(道力) ; ①도의 근본에서 생기는 힘. 도를 얻음에 의하여 나타남. ②지혜의 힘.
*신통(神通 불가사의할 신,통할 통) : 수행을 통(通)하여 도달하는 걸림없는 초인간적인(神) 능력.
*심사(心思) ; ①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일어나는 어떤 감정이나 생각. ②남을 괴롭히려는 고약하고 심술궂은 마음.
*보리(菩提) ; 불교 최고의 이상(理想)인 불타 정각(佛陀正覺)의 지혜. 올바른 깨달음으로 모든 것의 참된 모습을 깨닫는, 부처의 지혜를 뜻한다. 산스크리트 어 ‘Bodhi’의 한자 음역어이다.
*보리심(菩提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
*부적(符籍 부적 부,문서 적) ; 잡귀를 쫓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하여 붉은색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몸에 지니거나 집에 붙이는 종이.
*수승(殊勝 특히·유달리 수, 뛰어날·훌륭할 승) ; ①가장 뛰어난 일. ②[불교] 세상에 희유하리만큼 아주 뛰어남.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소멸(掃滅 쓸·제거할 소,멸망할·다할 멸) ; 모조리 쓸어서 없앰.

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13. 11. 20. 14:05

§(140) 규봉종밀(圭峰宗密) 선사의 오종선(五種禪). 최상승 활구참선은 너무 간단하고 쉬웁기 때문에, 이것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이겠구나.

 

**송담스님(No.140) - 1981년 3월 첫째일요법회(49분) (용140)

 

약 13분.


참선이라 하는 것은, 과거에 규봉종밀(圭峰宗密) 선사는 이 선(禪)에 다섯 가지가 있다.
외도선(外道禪)이 있고, 범부선(凡夫禪)이 있고, 소승선(小乘禪)이 있고, 대승선(大乘禪)이 있고, 그리고 최상승선(最上乘禪)이 있다. 이렇게 다섯 가지로 분류를 해서 이 선(禪)을 설명을 하셨습니다.

지금 이 용화사 법보선원(法寶禪院)에서 항시 선양(宣揚)하고 있는 선(禪)은 그 다섯 가지 선 가운데 최상승선(最上乘禪)을 선양을 하고 있습니다.

<외도선(外道禪)>
떠억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참선을 하면 배꼽 밑에 환히 불이 켜져 가지고, 불 켜진 그 배꼽 밑에를 관(觀)을 해 나가면 천상 세계도 환히 보고 싶으면 볼 수가 있고, 저 지옥 세계도 보고 싶으면 환히 그 배꼽 밑에서 다 지옥 세계를 볼 수가 있다.
그리고 ‘내일 누가 오겠다. 오늘은 누가 오겠다. 언제 비가 오겠다.’ 이런 것도 환히 알 수가 있다. 그래 가지고 계속해서 이 배꼽 밑에 불 켜진 것을 관(觀)해 나가는, 그것도 하나의 외도선의 일종이고,

<범부선(凡夫禪)>
이 참선을 하면 혈압이 내려간다. 참선을 하면 마음이 안정이 된다. 또는 정신통일이 된다. 이 참선을 하면 불같이 일어난 성격도 다 가라앉은다. 참선의 목적을 이러한 데에다가 두고 참선을 하면 이것은 범부선(凡夫禪)이 될 것입니다.

<소승선(小乘禪)>
우리의 육도윤회(六途輪廻)는 한 생각 일어났다 꺼지고, 한 생각 일어났다 꺼짐으로써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결국은 육도윤회를 한다. 그러니 이 생각을 일어나지 않게 해야겠다. 그래 가지고 무념무상(無念無想)에 들어가서 완전히 공(空)한 상태에 내 마음을 유지해 나가자.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계속해서 일어나는 번뇌•망상을 없애고, 생각을 한 군데에 머물르려고 노력을 해 나간다면 이러한 참선은 소승선(小乘禪)이 될 것입니다.

<대승선(大乘禪)>
‘한 생각’이라 하는 것은 생사(生死)의 근원인데, ‘한 생각’이라는 것은 본래 일어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본래 남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생(生)이라 하는 것이, 원래 남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멸(滅)할 것도 없다. 날 것이 없는데 무엇을 없앨 것이 있느냐.

일념(一念)은 무생(無生)이다.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믿고, 일체처 일체시에서 당체(當體)가 몰록 고요한 것이다.

유루법(有漏法),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유루법이요 유위법인데,
유위법(有爲法)이라 하는 것은 어떠한 원인이 있어서 그 원인으로 해서 무엇이 생겨났는데, 원인으로 인해서 어떠한 것이 생겨나고 이루어진 것은 반드시 없어지고 만다. 그런 원인이 있어서 구성이 된 것은 그것은 유위법이다. 그 유위법이라 하는 것은 반드시 없어질 때가 있기 때문에 허망한 것이요, 믿을 것이 없는 것이다. 무상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그것이 소승적인 견해지만,

모든 것은 원래 생겨난 것이 없는 것이다. 생겨난 것이 없는데 어찌 없어질 것이 있는가.
이미 생사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없이 할려고 하면 그것이 소승적인 견해가 되겠지만, ‘원래 생사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믿고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오직 ‘참나’의 표현이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전신체(全身體)다. 그러니 무엇을 없애고 적멸(寂滅)을 따로 찾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이것이 비로자나불 체다. 이러한 생각은 대승적인 견해로써,

<최상승선(最上乘禪)>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그러한 대승적인 견해에도 집착함이 없이,
바른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서 화두를 간택을 해 가지고, 일체처 일체시에 다맛 그 대신(大信) 과 대분심(大憤心)으로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을 관조해 나갈 때, 버려야 할 생사(生死)도 없고 구해야 할 열반(涅槃)도 없는 것입니다.

눈으로 어떠한 색상을 보거나, 귀로 어떠한 소리를 듣거나, 코로 어떠한 냄새를 맡거나, 혀로 무슨 맛을 보거나, 몸으로 어떠한 감촉을 받거나, 생각으로 어떠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일체처 일체시에 다못 화두에 대한 의심만을 거각해 나갈 때, 앞에 말한 외도선•범부선•소승선•대승선 일체가 다 그 속에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선(禪)에도 집착함이 없으면서, 일체가 다 그 속에 갖추어져 있는 참선, 이것이 바로 최상승선인 것입니다.

이 최상승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면 물론 우리의 번뇌와 망상이 가라앉게 되기도 하고, 혈액순환도 잘될 수 있고, 마음도 편안해질 수도 있고, 정신통일도 될 수도 있습니다.

또 진심(瞋心)을 잘 내는 사람, 항시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한 사람, 안정성이 없고 경솔한 사람, 항시 밖으로만 치닫는 사람, 번뇌와 망상 속에 사로잡혀서 잠시도 마음이 편안치 못한 사람, 모든 일에 의욕을 상실하고 불안하고 초조한 사람,

어떠한, 그러한 인간으로써 버려야 할 또는 고쳐야 할, 개선해야 할 어떠한 것이라도, 그것이 육체적이건, 정신적이건, 대인관계건, 활구참선을 여실히 여법(如法)하게 해 나감으로 해서, 다 그런 것들이 개선될 수 있고 보완될 수가 있습니다. 나아가서는 정신적인 혁명도 가져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까 말한 그러한 것들을 위해서 참선을 한다’고 할 때, 최상승 참선을 하는 사람의 목표로서는 정당한 것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목표는 분명히 바르게 세워놓고 올바르게 수행을 하면, 그러한 부산물로써 아까 말한 여러 가지 효과가 나타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것들을 위해서 참선을 한다고 하는 것은 바른 목표를 설정했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르게 참선을 한다’고 하는 것은 정말 너무나 간단하고 쉬운 것이지만, 바른 스승을 만나서 철저하게 믿고 그 지도를 받지 않는다고 하면, 정말 이 바른 참선처럼 어려운 것은 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것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냐?’ ‘달마 조사가 인도에서 이 동토(東土)로 오신 의지(意旨)가 무엇이냐?’하고 묻는데 대해서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다못 이렇게 믿고 이렇게만 해 나간다면 무엇이 어렵고 무엇이 복잡할 것인가.

그런데 1년을 하고, 이태를 하고, 3년씩 내지 10년씩 참선을 하면서도 이렇게 간단한 이렇게 쉬운 것을 잘못 행해 가고 있는 사람을 왕왕히 볼 수가 있습니다.

호흡이 잘 안된다는 둥, 의심이 잘 안된다는 둥, 어떻게 의심을 들며 어떻게 화두를 하며, 화두를 들면 호흡과 하나가 안된다는 둥, 가슴이 아프다는 둥, 뒤통수로 무엇이 근질근질 올라간다는 둥, 옆구리가 쑤신다는 둥,

천번 만번 법문을 듣고 그러면서도 이 화두가 잘 안 잡혀서 고민을 하고 몸부림을 치고 갈팡질팡, 마냥 참선을 하면서도 스스로 그 ‘참선(參禪)에 대한 신념(信念)’이 딱 서지를 못하고 초조해 하는 그러한 분들을 왕왕히 볼 때에,

‘이 최상승 활구참선은 너무 간단하고 쉬웁기 때문에, 이것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이겠구나.’ 이렇게 또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10분8초~22분42초)

 

 



---------------------

 

*규봉종밀(圭峰宗密, 780 - 841) ; 분류 ‘역대 스님 약력’에서 참조.
*육도윤회(六途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무념무상(無念無想) ; 선정 수행에서 그릇된 분별이나 집착을 떠나 마음이 빈 상태.
*번뇌(煩惱) ; 나쁜 마음의 작용. 번요뇌란(煩擾惱亂)의 뜻.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이치에 맞지 않는 허황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런 생각.
*당체(當體) ; 본체(本體). 참 이치. 모든 법(法)의 실상(實相).
*몰록 ; 단박(에). 그 자리에서 바로 곧.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를 의인화한 부처.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적멸(寂滅 고요할 적/다할•끊어질 멸) ①번뇌의 불을 완전히 꺼버린,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마음의 궁극적인 고요함. 적정(寂靜)으로 돌아가 일체의 상(相)을 여의고 있는 것. ②열반, 부처님의 경지, 깨달음.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열반(涅槃) ; 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왕왕히 ; 시간적으로 사이를 두고 가끔.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