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 (목적)2014.02.25 13:16

§(152) (게송)‘견색비간색~’ / 참선은 자기가 자기를 찾는 공부이기 때문에 대단히 쉬운 것이다.


아까 조실 스님 법문에서 들으신 바와 같이 참선은 대단히 쉬운 것이다. 왜 쉬우냐?
저 먼 데에 있는 것을 찾는 것도 아니요. 저 높고 깊은 데에 있는 것 찾는 것도 아니요. 무슨 산 속이나 바다 속이나 그런 데에서 찾는 것도 아니고, 오직 자기가 자기를 찾는 공부이기 때문에 그렇게 쉬운 것이다.
‘앞으로 좀 내가 무슨 참선에 대한 책, 불경(佛經)에 대한 번역해 놓은 책이라도 좀 읽어보리라.’ 그러헌 계획을 가지고 계신 분은 그런 책을 읽고 나서 참선을 헐랴고 허는 생각을 쉬어버리시고, 읽기 전에 먼저 참선의 바른 법을 알아 가지고 당장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는 공부 먼저 시작을 허시는 것이 가장 올바르고 지혜로운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송담스님(No.152) (참선법B)-1981년 10월 첫째일요법회(1981.10.04)에서.

 약 21분.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이요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색성불의처(色聲不疑處)에  친도법왕성(親到法王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이요. 색(色)을 보되 색(色)이 아니다. 색을 관계치 않는다.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라. 소리를 듣되 이 소리가 아니여.

도(道)를 닦지 아니한 사람은 무슨 색상(色相)을 보면 ‘하! 저 주장자(拄杖子)가 빛깔이 노랗구나.’ ‘주장자가 굉장히 무겁게 생겼다.’ ‘저 주장자에는 용의 모양이 조각이 되어 있구나.’
한 주장자를 보고도 두 가지, 세 가지, 네 가지 한량없는 생각이 거기서 번져 나간다 그말이여.

‘저 주장자는 무슨 나무로 깎아졌을까?’ ‘저 주장자를 깎은 나무는 어디 산에서 비어 왔을까?’ ‘몇 해나 자란 나무일까?’ ‘누가 조각을 했을까?’
이렇게 해서 한 색상을 봄으로 해서 그것이 계기가 되아 가지고 온갖 생각이 거기서 벌어진다 그말이여.

그런데 도를 닦는 사람은 그러헌 색상을 보되 색상이 아니여. 색상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말이여.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라. 어떠헌 소리를 듣되 소리가 아니다.

도(道)를 닦지 아니헌 사람은 문 열고 닫는 소리를 들으면,
‘아! 저 문은 철로 만든 문이로구나. 도롱태가 고장이 나서 소리가 요란히 나는구나. 저 문은 누가 만들았을까? 언제 만들았을까? 들어오는 사람은 누굴까? 왜 들어 올 때 가만히 들어오지 않고 저렇게 요란스럽게 들어올까?’
이러헌 식으로 해서 하나의 소리를 듣고서 그것으로 인해서 온갖 분별심과 번뇌심과 망상심이 한도 끝도 없이 퍼 일어나게 된다 그말이여.

그러는 가운데에 성을 내기도 하고, 기분을 상하기도 하고, 공연히 지나간 일·얼토당토않은 일이 생각이 나서 속이 뒤집어지기도 하고, 신경질을 내기도 하고,

이렇게 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잠시도 조용한 시간을 갖지를 못하고, 노상 눈을 통해서 마음의 풍파(風波)가 일어나고, 귀를 통해서 마음의 풍파가 일어나고, 한 생각·한 소리·한 색상을 볼 때마다 마음 속이 요동이 되고 난리가 일어난다 그말이여.

이렇게 하기를 하루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그렇고 달마다 그렇고 해마다 그래서, 마지막 숨이 끊어질 때까지 그러헌 생활이 계속이 되고 그 결과로써 가는 곳은 지옥 아니면 축생 뱃속으로 들어가고, 이리해서 육도윤회(六途輪廻) 생사고해의 윤회가 한이 없이 계속이 되는 것입니다.

색성불의처(色聲不疑處), 친도법왕성(親到法王城)이라. 무슨 색상을 보건, 무슨 소리를 듣건 의심이 없는 곳에 이르면 이것이 바로 법왕(法王)이 있는 곳에 도달한 것이다.

방금 우리는 조실(祖室) 스님께서 활구참선법, 참선허는 법에 대해서 매우 간절(懇切)하게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 법문을 해 주신 것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확성기를 새로 바꿔서 그전에 보다는 좀 잘 들린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콘크리트 건물은 지어서 얼마 안된 동안에는 울린다고 그럽니다. 조금 불편한 점이 있으시더라도 이해를 하시고, 상태가 좀 안 좋더라도 그럴수록에 더욱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귀를 기울여서 법문을 잘 들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참선법(參禪法), 이 용화사는 참선법을 핵심으로 해서 항시 전강 조실스님께서 설해 주시던 녹음 법문을 다같이 이렇게 듣고, 또 산승(山僧)도 그러헌 조실스님의 뜻을 받들어서 '어떻게 하면 우리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올바르게 해서 하루빨리 이 바른 공부길을 잡아서 ‘참나’를 깨닫게 할 것인가' 오직 여기에 온 정성을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 법문에서 들으신 바와 같이 참선은 대단히 쉬운 것이다. 왜 쉬우냐?

저 먼 데에 있는 것을 찾는 것도 아니요. 저 높고 깊은 데에 있는 것 찾는 것도 아니요. 무슨 산 속이나 바다 속이나 그런 데에서 찾는 것도 아니고, 오직 자기가 자기를 찾는 공부이기 때문에 그렇게 쉬운 것이다.

자기라니?  자기가 무엇이여?  자기가 어디가 있어?
‘내가 나를 찾는다’고 그러니, 내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생겼으며, 내라는 게 무엇인가?

우리는 ‘내’라 하면 이 부모로부터 받어난 이 육신(肉身)을 보통 다 나라고 생각하고, 이놈을 잘 멕일랴고 그러고, 또 잘 입힐랴고 그러고, 깨끗이 씻고 이쁘게 꾸밀랴고 그러고, 아픈 데가 있으면 병을 치료헐랴고 그러고, 누가 때리면 안 맞을려고 그러고,
이 육신이 자기의 전부인 것처럼 알고 그 놈을 그렇게 아끼고 보호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이 몸뚱이도 내가 아닌 것은 아니지만, 이 몸뚱이는 ‘참나’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몸뚱이가 아니면 나라고 하는 ‘참나’도 의지헐 곳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몸뚱이 안에 있는 참나는 이 육신을 주재하면서 육신을 운전하면서 한 생 동안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에 입각해서 보면 육체와 우리의 마음자리를 따로 갈라놓고 볼 수가 없는 것이지만, 편의상 쉬운 방편(方便)을 빌려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에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 육체, 생각 - 이 육식(六識), 육근(六根) 여섯 가지 문(門)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이 항시 출입을 허고 있는 것입니다.

눈이 있지만 ‘내’라 하는 놈이 없다면, 아무리 눈이 있어도 볼 수가 없는 것이고.
그 증거를 한번 보자면, 뒤에서 무슨 이야기 허는 말을 아주 거기다 전 정신을 집중을 해서 뒤에서 말허고 있는 말을 듣고 있으면, 눈을 뜨고 있어도 앞에 있는 것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책을 펴서 눈앞에다 떠억 들고 있어도 보는 데에 정신을 집중을 해야 책의 글자가 읽어지지, 눈을 뜨고 눈앞에다 책을 갖다가 떠억 펴어 놨어도, 귀를 옆에 방에서 얘기허는 소리에다가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눈을 뜨고 있어도 그 책의 글자가 하나도 읽어지지를 않습니다.

이 조그마한 가까운 예를 생각해 보더라도, 분명히 눈을 통해서 보는 놈이 따로 있다고 허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귀 자체가 듣는 것이 아니라 귀를 통해서 듣는 주인공이 있다고 허는 것을 우리는 짐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눈을 통해서 어떠헌 색상을 보되 보는 데에 끌려가지 아니하고, 보는 데에 집착을 허지 아니하고, 보는 데에 생각이 끌려가지 아니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입니다.

벌써 눈을 통해서 보는 밖의 어떠헌 경계(境界)에 나의 정신 나의 의식이 끌려가게 되면, 나는 집을 비워 놓고 외출을 허는 거와 마찬가지여. 이웃집, 저 가까운 집, 먼 집으로 밤낮 나들이만 다니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귀를 통해서 어떠헌 소리를 들을 때에도, 밤낮 듣는 그 경계에만 정신을 빼앗기고 살면 그것도 역시 내 집은 비워 놓고 밤낮 남의 집으로만 돌아댕긴 거와 마찬가지여.

코를 통해서 냄새 맡은 것도 그렇고, 혀를 통해서 맛 볼 때에도 그렇고, 몸으로 춥고 더운 것을 감촉할 때에도 그렇고, 생각으로 이 생각 저 생각 의식을 헐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통해서 육진경계(六塵境界)에 항시 끄달려서 사는 사람은 일 년에 단 하루도 자기 집에 붙어 있는 날이 없고 밤낮 밖으로만 쏘아 다니는 가정주부와 같애서 그 집안 살림은 엉망이 되고 말 것입니다.

겨우 잘 때나 자기 집에 들어오고, 눈만 떴다 하면 밖으로 돌아치면 그거 어떻게 되겠느냐 그말이여.
심지어 잘 때에는 꿈을 통해서 또 밖으로 쏴 다닌다 그말이여.

그래서 우리 참선을 허지 아니한 중생은 이렇게 해서 내 집 살림은 엉망이 되아 가지고, 그놈이 안이비설신의 육근을 통해서 육진경계에 끄달려서 돌아댕기느라고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고 생각하면서 온갖 죄업(罪業)만 퍼지어서 빚만 잔뜩 지어놓고는,
죽어 갈 때에는 노잣돈 한푼 없이 빚 문서만 짊어지고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으로 끌려가서 뒈지게 뚜들겨 맞기만 허게 될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출가허셔서 중생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출가허셔 가지고 갖은 고행을 허시다가 마침내 바른 수행법을 체득을 허셔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허셔서 그 깨달은 법을 49년 동안에 걸쳐서 고구정녕하게 중생들에게 그 길을 일러 주신 것입니다.

도를 닦는다. 참선을 한다. 최상승법이라 하니까 굉장히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고,
『불교에 대해서는 책 한권, 경(經)도 별로 읽지도 못하고 아무 것도 잘 모릅니다. 참! 더군다나 참선을 어떻게 제가 허겠습니까?』 이렇게 미리 겁을 집어먹고 참선을 허기를 꺼려하고,

『불교 초보자가 읽을 만한 무슨 좋은 책이 없겠느냐?』 『무슨 경전을 읽으면 좋겠느냐?』 이렇게 문의들을 허십니다마는,
불교 초보자가 읽을 만한 무슨 책을 많이 읽고, 무슨 경을 또 많이 읽고, 그래야만 참선을 잘 허게 되냐 허면 그것도 아니고,

또 요새 참선에 관한 여러 종류의 책이 모다 나왔습니다마는, 그러헌 책을 읽어야만 - ‘그래도 참선에 대해서 무엇인가 좀 이해를 하고 좀 알아 가지고 참선을 해야지 아무 것도 몰라 갖고 어떻게 허겠느냐?’ 이런 생각을 하시지만, 절대로 이 책 저 책 읽어봤댔자 책마다 다 말이 다르고,
또 이 참선이라 하는 것은 무슨 이론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을 많이 읽고 알아야만 되는 것이라고 허는 생각을 가지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책 저런 책 모다 그런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일수록에 이 참선을 바로 해 가는데 좋지 못한 영향을 받을 염려도 있는 것입니다.

이미 이 책 저 책을 많이 읽으신 분은 그 책에 읽은 내용을 깨끗이 다 놔 버리고 잊어버리시고, 아직 그런 책을 읽지 않고 ‘앞으로 좀 내가 무슨 참선에 대한 책, 불경(佛經)에 대한 번역해 놓은 책이라도 좀 읽어보리라.’ 그러헌 계획을 가지고 계신 분은 그런 책을 읽고 나서 참선을 헐랴고 허는 생각을 쉬어버리시고,

읽기 전에, 먼저 참선의 바른 법을 알아 가지고 당장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는 공부 먼저 시작을 허시는 것이 가장 올바르고 지혜로운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처음~20분4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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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 ; [금강경오가해] 장엄정토분, 야부 스님 게송 참고.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주장자(拄杖子 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들이 좌선(坐禪)할 때나 설법(說法)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얼토당토않다 ; (일이나 말 따위가)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법왕(法王) : [범] dharmaraja  부처님은 진리 곧 법을 가장 밝게 깨치시고, 법을 걸림 없이 쓰시고 법을 널리 가르쳐서 법에 있어 제일 높은 어른이므로, '법의 임금'이라고 존칭한 말이다. 또한 모든 세속 임금들에게도 큰 스승이 되고, 온갖 성인들 가운데서도 으뜸이 되므로 법왕이라 한다.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 정•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경계(境界) ;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 ③상태 ④범위,영역
*육진(六塵) ;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의 육경(六境)과 같음. 이것은 마음을 더럽히므로 진(塵)이라 함.
*죄업(罪業) ;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위(身)와 말(口)과 생각(意). 과로움의 과보를 초래하는 악한 행위.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노잣돈(路資돈) ; ①먼 길을 오가는 데 드는 돈. ②죽은 사람이 저승길에 편히 가라고 상여 등에 꽂아 주는 돈.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확철대오(廓徹大悟) ; 큰 깨달음. 내가 나를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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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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